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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민중·지도자, 미세먼지 함께 마셔 평등 실감”

    “中 민중·지도자, 미세먼지 함께 마셔 평등 실감”

    미세먼지 中책임 피할 수 없어 中정부 대기질 개선 노력할 것 한·중 ‘발전적 관계’ 전환 기대… 중국 내 언론·출판 검열 심해져“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첫 번째 목적지는 일본, 두 번째는 중국일 거라고 친구들과 농담 삼아 얘기했어요. 미국은 너무 멀어서 가기 어려울 거고요. 그래서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문에 제 한국 방문을 걱정하는 친구에게도 말했죠. ‘내가 가는 서울이 네가 있는 중국보다 더 안전할 거라고요(웃음).” 최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높아진 한·중 간 긴장 상황이 22일 중국 작가 위화(57)의 인터뷰 자리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23~25일 열리는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에게 사드 배치에 따른 한·중 관계 전망, 미세먼지 책임론 등 양국의 현안과 관련된 질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위화가 급변하는 중국의 현실을 예리하게 비판하면서도 해학으로 이를 흥미롭게 전하는 작가라는 점과 멀지 않아 보인다. ‘허삼관 매혈기’, ‘형제’, ‘인생’, ‘제7일’ 등 그의 대표작들은 “중국 밖에 있는 사람들이 중국을 더없이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역할을 한다”는 평(서강대 이욱연 교수)을 받기 때문이다. 시대의 부침에 따라 고통에 휩싸이고 견디는 평범한 이들을 통해 인간의 존엄을 드러내는 것도 많은 이들과 공감대를 이룬다. 위화가 모옌이나 옌롄커 등 다른 중국 작가들보다 한국 독자들에게 대중적인 사랑을 더 많이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날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배움홀에서 기자들과 만난 위화는 자신의 작품처럼 비판의식과 유머를 절묘하게 섞어 가며 한·중 간 현안과 자신의 문학관을 설파했다. 그는 “사드 배치로 한·중 관계가 상당한 냉각기로 접어든 게 사실이지만 최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양국 관계가 긍정적으로 전환된 것 같다”며 “사드 문제가 도화선이 될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4개국 가운데 가장 안정적이고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최근 한국에서 미세먼지 해법을 놓고 중국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위트 있게 중국 내 빈부 격차, 불평등을 꼬집었다. “중국이 미세먼지나 스모그로 대기 질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책임론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중국에선 물 오염, 식품 안전 문제도 계속 제기됐죠. 하지만 중국 고위 관리들은 특수한 통로로 식수나 식품을 공급받아 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이제는 많은 민중들이 국가 지도자들과 함께 오염된 공기를 마신다는 점에서 평등을 실감하고 있어요. 때문에 고위급 지도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대기 질 개선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는 건 믿으셔도 됩니다(웃음).” 그는 사드 문제와 관련해 중국 작가들의 한국 활동에는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지만 중국 내에서는 검열이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의 세태를 비판한 그의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가 한국에선 번역됐지만 중국에서는 출간이 금지된 게 대표적인 예다. 그는 “중국 내 언론 통제, 출판 검열 등이 강화되면서 앞으로 제 작품들이 출판될지 자신하기 어려워졌다”면서 “제 작품을 내고 싶어 하는 한국 출판사들엔 좋은 소식일 것”이라고 농을 던졌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장욱진, 그의 자화상

    [그 책속 이미지] 장욱진, 그의 자화상

    강가의 아틀리에/장욱진 글·그림/열화당/224쪽/1만 8000원‘나는 심플하다’를 평생의 철학으로 삼고 고독과 술을 사랑했던 화가 장욱진(1917~1990)을 글로 만날 수 있는, 그가 남긴 유일한 그림산문집이다. 올해 장욱진 탄생 100주년을 맞아 1976년 글 20편을 추려 출간된 산문집에 새로 발굴된 23편을 더 담아 낸 개정 증보판이다. 제목인 ‘강가의 아틀리에’는 경기 남양주시 덕소 강변에 작은 화실을 짓고 창작에 전념했던 ‘덕소 시절’을 가리킨다. 나무, 해, 달, 아이, 까치, 마을 등 이 땅의 풍경을 붓 가는 대로 그리는 즐거움을 만끽했던 장욱진은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현대화가다. 산문집에 실린 그림들은 생계를 잇기 위해 잡지나 신문에 그린 삽화들이다. 화가는 내켜하지 않았지만 가장이었기에 “온몸을 바쳐 지성으로 그렸다”고 아내는 회고했다. 증보판에는 세 개의 서문이 있다. 장 화백이 마지못해 쓴 듯한 ‘초판 서문’과 10년 뒤 다시 쓴 ‘중판 서문’, 딸 장경수 경운박물관장이 부친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쓴 ‘증보판 서문’이 도열해 있다. 초판본에 실린 장 화백의 자화상.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권정생 문학, 죽음 사유하며 ‘동심 천사주의’ 탈피”

    “권정생 문학, 죽음 사유하며 ‘동심 천사주의’ 탈피”

    아동문학 외연 확장…기독교적 서사 출판계, 그림책·단행본 등 추모 열기 “기존 아동문학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던 ‘죽음’의 문제를 등장시키며 이를 천착한 권정생 문학은 ‘동심 천사주의’적 경향에 강박되어 있던 국내 아동문학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권정생 문학은 여전히 새롭고 여전히 독자적이다.” 엄혜숙 아동문학 평론가는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을 쓴 권정생(1937~2007) 선생의 10주기인 17일을 맞아 그에게 헌정한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소명출판)에서 이렇게 찬사했다. 엄 평론가는 권정생 문학을 초기(강아지똥, 떠내려간 흙먼지 아이들 등), 중기(몽실언니, 한티재 하늘 등), 후기(밥데기 죽데기, 랑랑별 때때롱 등)로 나눠 거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죽음’을 분석한다. 평생 불치병을 앓았던 권정생이 사유한 ‘죽음’은 삶을 위협하는 존재에서 전쟁과 질병, 장애로, 후기 판타지 동화에는 삶을 위협하는 자본과 권력의 모습으로 확장되고 변주됐다. 권정생 문학의 백미는 사실성을 부여받은 풍요로운 서사성이다. 그의 작품은 어머니의 비애에 젖은 타령과 고통스러운 죽음의 체험이 녹아 있고, 다양한 의성어와 의태어, 적실한 사투리 등은 구술과 문자문학의 접목이라는 독특한 창작 방식을 드러낸다. 권정생 문학의 중심에는 예수와 성경이 있다. 책은 권정생과 기독교 실존주의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분석했다. 그의 기독교적 사상이 실존주의에서 아나키즘, 그리고 생태 아나키즘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드러낸 건 기존 연구와 차별화된 지점이다. 엄 평론가는 “그의 작품에서 죽음은 삶을 억압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극복하는 것 역시 죽음이었다”며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주며 타인에게 온전히 새로운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권정생의 죽음에는 ‘희생양 예수의 죽음’이 음각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그래서 예쁜 꽃을 피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거야”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온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강아지똥 중 민들레와 강아지똥의 대화) 출판계의 추모 열기도 뜨겁다. 출판사 창비는 몸이 온전치 못한 병아리의 안타까운 삶을 그린 선생의 동화 ‘빼떼기’에 김환영 작가의 그림을 보태 재탄생시켰다. 다음달 18일까지 서울 월드컵로 창비서교빌딩에서는 선생을 추모하는 ‘빼떼기’ 원화전시회가 열린다. ‘똘배어린이문학회’는 회원들의 추모문집인 ‘그리운 권정생 선생님’을 펴냈고, 출판사 단비는 1970~90년대 선생의 동화 중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은 4편을 묶은 작품집 ‘복사꽃 외딴집’을 출간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진주에, 진주에 갔었다

    [황인숙의 해방촌에서] 진주에, 진주에 갔었다

    진주에서 하룻밤 자고 올 일이 생겼다. 피치 못할 행사가 저녁에 있어서 심야우등을 타고 돌아오더라도 당일 고양이밥 주는 데에 차질이 있기에, 하루 ‘알바’를 쓰고 느긋이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진주가 고향인 후배를 비롯해 친구 몇이 동행했다. 이참에 여기저기 둘러보자고 오전에 서울을 떠났다. “너 얼마 만에 서울을 뜨는 건데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 거라고, 알바 하루 더 쓰지 그랬니?” 운전을 맡은 친구 말에 도리질을 했지만 설핏 ‘그럴 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흠, 자랑하자면, 사실 내가 진주시에서 주는 아름다운 상 ‘형평문학상’ 수상자가 된 것이다. 혼자 훌훌 다녀오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까지 여덟 명이 가게 됐다. 원래 정오쯤에나 출발할 생각이었지만 아침 일찍 출발해야 된다는 주장이 대세여서, 그럼 너희끼리 먼저 가라고, 나는 버스 타고 뒤에 가겠다고 했다가 친구들이 삐지는 바람에 절충해서 오전 10시에 떠나게 된 것이다. “일찍 움직이면 전날 잠도 설칠 텐데, 폭삭 지치고 늙은 모습으로 시상식 가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내 하소연이 먹혀서 그나마 늦춰졌다. 집 앞에 왔다는 전화를 받고 나가자 친구가 인상을 쓰며 빽 소리를 질렀다. “야아! 너 그렇게 입고 가는 거야!?” 가는 길의 피로를 줄이려고 티셔츠에 아래는 파자마 같은 걸 입었더니 그런다. “도착하면 갈아입을 거야.” 나는 의기양양 실크원피스를 들어 보였다. “그래도 그 차림은 너무했다. 휴게실도 들르고 그럴 건데.” 친구가 혀를 찼다. 나는 뒷자리에 올라 좌석 가득 짐을 늘어놓았다. 잠시 후 픽업할 후배가 뒷자리를 탐낼까 봐 그런 것이다. 후배를 태운 뒤 짐을 모두 바닥에 내려놓고 길게 누웠다. 날씨도 쾌청했다. 수다에 동참하다가 어느새 푹 잠이 들었다. 차가 있으니 좋구나. 휴게실에 들렀을 때 깨서 인삼쥬스를 마셨다. 비로소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겨 후배에게 바꿔 앉자고 했더니 괜찮단다.친구는 남편 고향이 진주인데, 그의 고향 사랑이 대단해서 부부가 자주 진주를 다녀왔다. 무슨 비빔밥이니 냉면이니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고 노래를 했던 친구는 이번 기회에 우리한테 맛을 보이게 돼서 보람찬 듯했다. 진주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안내하는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다들 배고프던 차였기에 맛이 없을 수 없었다. 친구는 역시 진주의 명물이라는 찐빵집에 들렀다. 단팥이 든 작은 찐빵을 진한 단팥죽에 찍어 먹는 건데, 사려는 사람이 길게 줄을 서기 때문에 바쁜 사람은 맛도 못 보는 거라고, 마침 손님이 없어서 운이 좋다고 했다. 후배는 고향에 아주 오랜만에 온다고 했다. 진주시 모습이 그 옛날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와 후배는 그때는 없었고 지금은 있는 것, 전부터 있던 것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숙소에 가서 한숨 더 잔 뒤 움직이고도 싶었지만, 나를 위해 왕림한 두 진주 연고자들을 ‘나도 이제 진주 연고자’가 따르지 아니 할 수 없었다. 후배의 모교인 진주고등학교도 들르고, 후배의 소년시절 추억이 깃든 진양호에도 갔다. 진양호는 볼만했다. 진양호 전망대는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고, 노약자도 다니기 편하게 기능적이었다. 거기서 내려다보니 마치 남쪽 다도해 같은 풍광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그 너머로 멀리 보이는 게 지리산이라고 했다. 와, 지리산! 나는 정말 가 본 곳이 거의 없다. 숙소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행사장에 갔다. 시상식은 성황이었고 축하공연도 아주 좋았다. 시인 나희덕의 축사도 훌륭했고. 내 수상소감만 엉망이었다. 단상에 올라가니 머리가 하얘지면서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한 문장도 제대로 맺지 못하고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하다가 어떻게 끝냈는지도 모르겠다. 아, 몰라. 그런 망신이 없다. 다음 시상식부터는 잘해야지(헤헤). 나희덕이 새로 낸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를 줬다. 많이도 다니고 진하게도 봤구나. 글도 좋고 사진도 좋다. 언제 봐도 글이나 사람이나 의젓하고 단아한 나희덕이다. 열정을 품은 사람은 모습이 단아하다. 나희덕 산문집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내게 열정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단아함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 천주교·개신교의 특별한 사귐

    천주교·개신교의 특별한 사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천주교와 루터교가 함께 펴낸 ‘갈등에서 사귐으로’가 우리말로 번역돼 출간됐다. 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직제협의회·공동대표 김희중 대주교, 김영주 목사)는 지난 1년여간 한국천주교와 개신교계가 공동 번역 작업을 벌여온 ‘갈등에서 사귐으로’를 출간, 11일 서울 중구 성공회 서울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직제협의회는 기독교인 일치운동 활성화를 위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한국천주교, 한국정교회가 2014년 세운 단체이다.‘갈등에서 사귐으로’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와 루터교 세계연맹이 2013년 공동으로 발간한 문헌. 이번 우리말 번역 출간은 직제협의회 창립 이후 산하 신학위원회를 중심으로 천주교와 개신교 신학자들의 첫 공동 번역 작업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천주교와 개신교 용어 중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하느님(천주교)과 하나님(개신교) 표기를 하느님으로 통일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천주교, 개신교계가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 성서’(1977년) 표기에 따른 것이다. 특히 이번 발간은 1977년 발행된 ‘공동번역성서’ 이후 천주교와 개신교가 40년 만에 결실을 거둔 첫 공동 작업이기도 하다. 직제협의회는 “‘갈등에서 사귐으로’가 500년의 갈등을 넘어서 기독교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 중요한 문서로 한국 기독교의 갱신과 대화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며 “세계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발전적 대화를 학습하고 한국 교회에도 소개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의 저변 확장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전했다. 한편 직제협의회는 ‘의화’(義化)와 ‘칭의’(稱義), ‘성사’와 ‘성전례’ 등 천주교와 개신교가 각각 다르게 쓰는 용어 사전을 만들어 이해를 증진키로 했다. 특히 천주교, 개신교 각 교단 신학자 20여명으로 구성된 직제협의회 신학위원회는 각자 전공 분야별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주제로 쓴 논문을 모아 내년 상반기 중 기념 논문집도 낼 계획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백승종의 역사 산책] 식욕과 성욕에 대한 허균의 시각

    [백승종의 역사 산책] 식욕과 성욕에 대한 허균의 시각

    허균은 17세기를 대표하는 개성 만점의 문인이었다. 1611년 초여름 그는 후세에 길이 남을 또 한 권의 문제작을 저술했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고 했다. 푸줏간 앞을 지나며 입맛을 다신다는 뜻이다. 당시 그는 전라도 함열에 유배 중이었다. 그보다 한 해 전 허균은 과거 시험관으로서 여러 선비를 합격시켰다. 그 가운데 자신의 조카와 사위도 포함된 것이 문제였다. 여론이 이를 문제 삼자 광해군은 허균을 먼 시골로 쫓아냈다.갑자기 불우한 처지에 놓인 허균은 자신을 달래기 위해 진수성찬을 떠올렸다. 그는 태생부터 남다른 장안의 귀공자였다. 조선 8도의 맛난 음식을 빠짐없이 섭렵한 터였다. 귀양살이의 고초가 남다르게 느껴질 것은 당연했다. 그는 밥상 앞에서의 괴로움을 참기 어려웠다. “밥상에 오르는 것은 상한 생선과 감자, 들미나리 따위였다. 그것마저도 끼니마다 먹지 못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밤을 지새울 때면 지난날 내가 산해진미를 싫도록 먹던 때가 절로 생각났다. 침을 삼키며 음식을 그리워했지만 어찌하랴. 하늘나라에 있다는 서왕모의 복숭아처럼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는 기억을 더듬어 각지의 산해진미를 한 권의 책에 기록했다. 그러고는 가끔 꺼내 보며 허기를 달랬다. 허균은 기억력도 비상해 ‘도문대작’에는 117종이나 되는 음식이 등장한다. 떡만 해도 11종이요, 어패류는 40종이나 됐다. 책자에는 특산지는 물론 요리법, 음식의 생김과 맛까지 일일이 적혀 있다. 또 각 음식의 역사적 기원까지 꼼꼼히 밝혀 놓았다. ‘도문대작’은 일종의 식생활백과사전이었다. 거기 등장하는 음식과 식재료 중에는 현대인의 식탁에서 사라진 것도 많다. 한 탁월한 선비의 고난이 전통 한국 음식의 실상을 알려 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승화됐다니 신기한 노릇이다. 그런데 이 책의 또 다른 진가가 있다. 허균은 성리학의 인간 본성론에 일격을 가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도 볼 수 있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식욕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다. 더구나 식욕은 생명에 관계되는 것이라. 선현들이 음식물 바치는 이를 천하게 여겼다지만, 그것은 음식만 욕심내고 사익만 추구하는 행위를 비판한 것이다.”(‘도문대작인’) 알다시피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욕망을 극복의 대상으로 여겼다. 허균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그는 양명학 좌파와 마찬가지로 식욕과 성욕을 존중했다. 요약하면 이런 식의 주장이었다. ‘식욕과 성욕은 하늘이 주신 것이다. 유교의 성인들은 욕망을 극복 대상으로 여겼지만, 그것은 하늘의 뜻이 아니다. 나는 성인들이 지어낸 가르침에 맹종할 이유를 모르겠다.’ 성리학자들은 허균의 발칙한 주장에 발끈했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라서 침묵으로 응수했다. 그러다가 근세의 성리학자 전우(田愚)가 오랜 침묵을 깨고 허균을 비판의 도마에 올렸다. “(허균의 주장과 달리) 예의에 관한 성인의 가르침은 본래 하늘의 이치에서 나온 것이다.”(간재선생문집, 전편 12권) 전우는 조선의 정통 성리학자들을 대변했다. 공자, 맹자, 주자는 하늘의 뜻을 대신해 인간들에게 예의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식욕과 성욕을 긍정하는 허균은 어떤 인간인가. 허균은 남녀의 도리를 모르는 서양 오랑캐와도 같고, 명나라의 이단자 이탁오와도 같은 악인이었다. 허균처럼 생각이 시류를 벗어나 한 걸음 앞서 나가는 것은 과연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 [북마크] 여기 ‘기록’이 있습니다

    [북마크] 여기 ‘기록’이 있습니다

    수습기자였던 2000년 6월 30일. 유족들의 멘트를 받아 오라는 선배 기자의 지시로 갔던 현장이 씨랜드 참사 1주기 추모식이었습니다. 씨랜드 사건은 한 해 전 경기도 화성의 청소년수련원 씨랜드에서 일어난 불로 5~6세 유치원생 19명과 교사 등 23명이 숨진 참사입니다. 그날 유족들로부터 한마디도 듣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말조차 건네지 못했습니다. 숨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엄마(아빠)가 미안해”라고 절규하는 부모들 속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했을 뿐입니다. 피눈물을 흘린다는 말의 뜻을 그때 실감했습니다.그 수습기자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됐지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참사들, 인재(人災)와 안전 불감증이라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는 진단, 그리고 개인에게 재난의 고통을 전가하는 국가의 몰염치한 태도조차. 16일은 봄이어서 더 무참했던 세월호 참사 3년입니다. 배는 뭍으로 귀환했지만 우리는 304명의 죽음 뒤에 숨은 괴물의 정체를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출판계는 남겨진 자들의 기록으로 추모를 대신합니다.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해토), ‘재난을 묻다’(서해문집),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오름) 등 참사 3년을 맞아 출간된 책들은 우리의 상처와 기억이 오롯이 담긴 ‘시대화’(時代畵)입니다. 책으로 복원된 기록 중 ‘44년 전의 세월호’ 남영호 참사가 있습니다. 제주~부산을 오가는 여객선 남영호는 1970년 12월 15일 새벽 침몰해 최소 319명, 최대 337명(정부 기관별 사망자 추정)이 숨진 비극입니다. 침몰 원인은 과적으로 결론 났지만 당시 정부가 사고 발생을 알고도 10시간 넘게 구조에 나서지 않은 사실은 은폐됐습니다. 정부는 분노한 유족들을 불순 세력으로 매도했습니다. 두 비극이 유일하게 다른 점은 기록입니다. 남영호 참사가 제대로 된 공식 기록조차 찾기 어려운 “망각의 완전한 승리”였다면, 세월호는 우리 안에 호명되고 기록되고 환기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소설가 김훈 선생과의 저녁식사 중 ‘세월호를 소설로 쓰려고 하지 않으셨나’고 물었습니다. 선생은 “세월호 자료도 모으고 팽목항과 동거차도를 기웃거리며 인터뷰도 했지만 그 참담함과 비통함은 글의 한계 너머에 있다”고 답하시더군요. 강유정 문학평론가는 문학잡지 릿터 5호에서 “말을 하든 문장을 쓰든 마침에 당도하기가 어렵고 특히 술어가 잘 떠오르지 않게 된 소설가(황정은)들의 고백을 전하며 “2014년 4월 16일 이후 쓰는 것, 써야 하는 것, 보고 들었던 그 ‘사건적 경험’에 대한 사후적 윤리 감각(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기억이 기록되지 않는 이상 진실에 닿을 수 없다”(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며 펜을 놓지 않는 수많은 무명(無名) 기록자들의 헌신이 고맙습니다. ipsofacto@seoul.co.kr
  • 강북구 ‘4·19 혁명정신’ 세계에 알린다

    강북구 ‘4·19 혁명정신’ 세계에 알린다

    사상 첫 국제학술회의 13일 개최 美 UCLA·하버드대 교수 발표 걷기대회·등불 밝히기 행사도 유네스코 기념유산·기념일 추진 서울 강북구가 ‘4·19 혁명정신’의 세계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해외 석학들이 참가하는 국제학술회의가 13일 ‘4·19 혁명 국민문화제’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지난해에는 국내 교수와 학자들만 참석했다. 올해 학술대회에서는 4·19 혁명의 의미와 세계화의 방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국내 대학에 유학하는 외국인 학생들이 국립4·19민주묘지를 탐방하는 해외 홍보 프로그램이 대폭 강화된다.강북구가 국제학술대회를 포함해 1960년 학생들과 시민이 중심이 돼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4·19 혁명 57주년을 기념해 ‘제5회 4·19 혁명 국민문화제’를 13일부터 오는 19일까지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문화제는 4·19 혁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되살리고 혁명의 정신을 계승·발전시키려고 2013년부터 강북구가 주도적으로 실시했다. 올해 행사 기간은 기존 3일에서 7일로 늘어났다. 특히 올해 문화제는 ‘세계 속의 4·19’에 초점을 맞췄다. 국제학술회의에는 한국학 권위자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존 덩컨 교수와 하버드대의 폴 창 교수가 참석해 각각 ‘4월 혁명과 포스트 한국’, ‘국제혁명과 내부 변혁의 4월 혁명’에 대해 발표한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 등이 토론에 참여할 예정이다. 홍보 프로그램 참여 외국인 학생수도 지난해 6~7명 수준에서 30명가량으로 대폭 확대한다는 게 구 관계자의 설명이다. 4·19 혁명을 널리 알리기 위한 강북구의 노력은 꾸준했다. 지난해 5월에는 4·19 혁명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신청한 4·19 기록물은 총 1450건에 이른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오는 7~8월쯤 발표가 예정돼 있었으나 내년쯤으로 미뤄졌다”고 밝혔다. ‘4월 혁명과 한국 민주주의’라는 논문집을 국문과 영문판으로 발간해 세계 대학과 도서관에 배포하는 작업도 계속 진행한다. 행사 기간이 7일로 연장돼 새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14일에는 ‘대학생 걷기대회’가 펼쳐진다. 국민대·성균관대·동국대 등 대학생들이 각 대학에서 국립4·19민주묘지까지 걸으며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한 선배들의 4·19 정신을 잇는다. 이 외에도 세계 4대 혁명 추진 서명운동, 4·19 혁명 등불 밝히기 등이 진행된다. 박 구청장은 “4·19가 국가기념일이 되면 중앙정부가 직접 행사를 주관하는데, 강북구가 그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면서 “4·19 국민문화제를 지속·발전시키면 중앙정부가 국가기념일 지정 등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작은 우주들(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문학동네 펴냄) 좌절된 혁명, 바뀌고 사라진 국경, 부서진 역사의 단역배우들을 비추는 유럽의 휴머니스트 마그리스의 픽션이자 산문집. 352쪽. 1만 8000원. 그래, 사랑이 하고 싶으시다고?(박세미 외 7명 지음, 제철소 펴냄) ‘연애하는 삶’을 꿈꾸는 젊은 시인 8명이 연애와 삶의 감각들을 48편의 시로 전한다. 180쪽. 5000원. 햇빛마을 아파트 동물원(정제광 지음, 국민지 그림, 창비 펴냄) 동물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은 어린이의 성장기. 제21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당선작이다. 164쪽. 9800원.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닉 켈먼 지음, 김소정 옮김, 푸른지식 펴냄) 인공지능을 탑재한 미래 로봇이 인간의 지각 능력, 주거, 직업, 예술, 유행, 사랑 등을 낱낱이 파헤치는 인간 안내서. 324쪽. 1만 6000원. 아주 사적인 현대미술(캘빈 톰킨스 지음, 김세진·손희경 옮김, 아트북스 펴냄) 40년 이상 ‘뉴요커’에서 동시대 미술과 예술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줬던 저자가 이 시대 가장 핫한 예술가 10인을 인터뷰했다. 364쪽. 1만 7000원. 나는 워킹맘입니다(김아연 지음, 창비 펴냄)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행복한 엄마’가 되는 것이 일과 육아 사이에서 ‘나’를 잃지 않는 것임을 일러주는 보통의 워킹맘 이야기. 296쪽. 1만 5800원.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박물관은 살아 있다’ …광주 민속박물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박물관은 살아 있다’ …광주 민속박물관

    “칠십년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전라도의 시골은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데가 많았다.(중략) 상차림에도 격식이 있어서 칠첩반상이 기본이었다. 밥과 국에 김치 한두 가지, 찌개나 찜이 나오고 첩에 들지 않는 간장, 초간장, 초고추장 등이 있고 숙채, 생채, 조림, 구이, 전유어, 회, 마른반찬의 일곱 가지가 칠첩이다." 한국 문단에서 가장 입담이 센 작가 중의 하나로, 흔히 ‘황구라’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황석영(74)의 산문집, ‘황석영의 밥도둑’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전라도 음식을 소개하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거의 벚꽃보다 더 화려하게 입담이 만개한다. 읽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온다. TV를 틀면 채널마다 맛집, 음식 프로그램이 넘치는 이 즈음 누구나 자기네 맛이 정통이라고 부르는 우리네 음식의 원형은 어떨까? 음식 문화는 결코 먹거리만 따로 동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역사와 지리, 풍속과 기질 등이 어우러져야 나오는 하나의 창작물이다. 바로 정통 남도 먹거리 문화의 원형과 뿌리를 다른 민속자료들과 더불어 제대로 살필 수 있는 곳이 있다. 광주 시립 민속박물관이다. 전남대학교에서 영산강으로 가는 길에 중외공원이 있고, 이 주변에 광주 비엔날레 전시장, 광주시립미술관과 더불어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이 있다. 우선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은 자리 잡음이 처음부터 넉넉하고, 전시품 하나하나는 가볍지 않고 성실하다. 남도 문화의 중심축인 광주에 터를 닦은 박물관이다 보니, 한눈에 보아도 녹록치 않은 관록과 만만치 않는 단단함을 지닌 숨겨진 고수의 풍내를 던진다. 사실 박물관 방문은 그리 마음 자연히 끌리는 방문지는 아니다. 종종 헛걸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많다. 더더구나 소장품이나 전시품이 박물관의 기본도 되지 않는 졸렬함을 드러낼 때는 입에서 쓴소리가 절로 나온다. 바로 이런 의구심을 한 번에 던져 버릴 수 있는 곳이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이다.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은 1963년 5월에 광주공원 내 도립광주박물관으로 출발하였다. 이 시기에 수많은 매장문화재의 임시 보관처로 지정이 되어 지역 출토 매장문화재를 관리하였으니 박물관 시작부터 기본기가 탄탄하였다. 이후 1964년 4월에 광주시립박물관으로 개칭이 되었고, 1978년 10월에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하던 유물을 인계하였다. 광주 시립민속박물관이라는 이름은 1987년 11월 기존의 광주시립박물관을 흡수통합하면서 부르게 되었다. 광주 시립 민속박물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구조로 건축 연면적이 2119평(상설전시실 768평, 기획전시실 311평)에 달하는 규모있는 박물관이다. 전시품은 주로 전라남도 민속문화와 관련된 자료들로 실물자료와 복제자료, 전시자료만 1만 2000 여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민속박물관이다. 광주 시립 민속박물관은 현재 1층 전시관, 2층 전시관, 야외 전시관으로 나누어 많은 남도의 유물과 민속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우선 1층 전시관에는 남도 문화의 전반적인 삶의 기반을 볼 수 있는 촌락, 주생활, 식생활, 의생활, 농업, 수렵, 강천어업, 민속공예 등의 실물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좀더 실제 모습에 가깝게 전시하기 위해 실물, 모형, 마네킹, 미니어쳐, 디오라마 등 다양한 전시기법을 이용하여 방문객들에게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특히 1층에는 남도 먹거리 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음식들이 모형으로 제작되어 있어 관람객의 가장 많은 인기를 끈다. 광주 애저찜, 송정 떡갈비, 흑산도 홍어회 등 광주 향토 음식을 포함하여 각종 젓갈류, 김치, 탕, 생선, 나물, 국, 술, 떡, 차 등의 다양한 먹거리들이 전시되어 있어 남도 음식문화의 본류를 알게 한다. 2층의 경우 한 사람의 일생을 중심 주제로 하여 민속놀이, 세시풍속, 민간신앙 등을 전시하여 남도의 민속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였다. 출생, 성장, 교육, 과거, 혼례, 세시풍속, 민간신앙, 남도음악, 상, 장례문화, 사회문화 등이 관람 동선 방향에 따라 알차게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는 8대의 비디오테크를 설치하여 9개의 테마를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선택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디스크에 수록된 테마는 진도씻김굿, 생촌당산제, 대포리갯제, 강강술래, 영광농악, 고싸움놀이, 함평농요, 혼례, 상례 등이다 이외에도 야외전시실에는 물레방앗간, 연자방앗간, 태실을 비롯한 갖가지 석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드넓은 잔디 위에서 편안한 관람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광주 시립 민속 박물관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광주를 방문한다면,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가정이 전라도 여행 중이라면 꼭! 2. 누구와 함께? -가족 3. 가는 방법은? -시내버스 : 송정29, 문흥48, 상무63/ 광주광역시 북구 서하로 48-25 (용봉동) 4. 감탄하는 점은? -민속박물관으로는 첫손 꼽히는 풍부한 자료와 전시품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비엔날레만큼 유명해져도 될 만한 정도의 수준. 6. 꼭 봐야할 전시품은? -정지(鄭池·1347~1391) 장군의 철편 갑옷, 민속놀이 기구들, 음식 모형들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국밥 ‘나주식당’(224-6943), ‘영미오리탕’(527-0248), ‘송정 떡갈비 1호점’(944-1439), ‘양동통닭’(364-5410), 애호박찌개 ‘명화식육식당’(943-7760), 김치찌개 ‘강진식육식당’(526-6733)/ 지역번호 (062)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gjfm.gwangju.go.kr/main.do?site=gjf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광주 국립박물관, 시립민술관, 비엔날레 전시장 10. 총평 및 당부사항 -민속이라는 명칭은 결코 촌스러움이 아니라 예스런 전통을 뜻한다. 우리 민족 문화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볼거리가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公슐랭 가이드] “오늘은 내가 쏜다”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의 밥상은 마음만큼 푸짐해

    [公슐랭 가이드] “오늘은 내가 쏜다”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의 밥상은 마음만큼 푸짐해

    인류는 늘 낮은 비용으로 높은 효용을 기대한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 직장인의 심정도 매한가지다. 대한민국 10대 상권으로 하루 유동인구만 8만 명에 달하는 광화문 일대는 그만큼 임대료도 비싸다. 하지만 인근 직장인들이 모두 비싼 돈을 내고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잘 찾아보면 저렴하면서 맛은 최고인 숨은 맛집도 많다.# 체부동잔치집 서촌 맛집인 체부동잔치집은 만원 한 장으로 3명까지 식사도 가능하다. 푸짐하고 정성스럽게 고명을 올린 잔치국수가 3000원, 곱빼기(특대)는 4000원이다. 여성은 3000원짜리면 충분하니 욕심내지 말자. 4000원인 김치말이 메밀전병은 이 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구수한 메밀 반죽과 아삭하게 씹히는 김치의 조합이 환상적이다. 국수와 전병을 함께 먹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여름철 인기 메뉴인 비빔국수(4000원) 도 일품이다. 잔칫집에는 전이 빠질 수 없는 법. 갖가지 전을 1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먹을 수 있어 막걸리를 좋아하는 주당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24시간 영업이니 밤이건 낮이건 언제든 갈 수 있다. 단 맛있고 저렴한 집은 붐비기 마련이니 기다릴 각오는 해야 한다.# 가봉루 53년 전통을 자랑하는 가봉루는 아름다운 봉황이라는 거창한 가게 이름과는 달리 압도적인 가성비를 자랑한다. 4000원인 짜장면은 이 집의 오랜 역사만큼 옛날 짜장의 맛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좀더 푸짐한 해산물을 원한다면 1000원만 더 써 간짜장을 시키자. 하얀 짬뽕은 이곳의 대표 메뉴다. 7000원까지 가격이 올라가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국물에 잘 볶아진 야채의 풍미가 식욕을 돋운다. 친구들과 술 한잔하고 싶다면 고기튀김을 추천한다. 이름이 생소하다면 소스를 붓기 전 탕수육이라고 보면 된다. 튀김 하면 생각나는 바삭함보다는 쫀득함을 강조하는데 간장에 찍어 먹으면 일품이다.# 광화문집 김치찌개 “광화문에서 내가 한번 쏜다”라고 과감히 외칠 수 있는 집이다. 1·2층을 합쳐 10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정부 청사 장차관도 가는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이곳 김치찌개의 가장 큰 매력은 국물이다. 젓갈 없이 담근 김치를 1년간 숙성해 사용하는 덕에 칼칼하면서도 개운하다. 육수에 사이다를 넣어 시원한 맛을 더했다고 한다. 두툼하게 썰어 나오는 목살도 듬뿍 얹어주는 덕에 누가 고기 몇 점을 더 먹는지 셀 필요가 없다. 김치찌개가 1인분에 7000원, 소주가 한 병에 5000원이니 4명이 가서 배부르게 먹어도 5만원이 안 나온다. 단 장소가 워낙 협소해서 점심에 가든 저녁에 가든 오래 기다려야 한다. 심은혜 명예기자 (금융위원회 대변인실 주무관)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두물머리에 흐르는 ‘인간 다산’의 향기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두물머리에 흐르는 ‘인간 다산’의 향기

    다산 정약용(그림·1762~1836)은 강진 유배 10년째를 맞은 1810년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당부하는 말을 적어 보낸다. 부인 홍씨가 보내온 치마를 자른 천에 가르침을 적은 ‘하피첩’(霞?帖)이다. 자식들을 곁에서 이끌어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두 아들은 그동안 28세, 25세로 장성했고 장손 대림도 태어났다.‘하피첩’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서첩에 쓰인 비단에는 바느질 흔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3첩 가운데 한 첩은 모두 비단을 썼지만, 나머지는 비단과 종이를 섞어 썼다. 두 첩에 을(乙)과 정(丁)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으니 애초 4첩이었다는 것이다. 조선은 태종 17년(1417) 전라도의 도강(道康)현과 탐진(耽津)현을 통합했다. 강진(康津)이라는 땅이름은 짐작처럼 두 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그럼에도 치소(治所)가 자리잡고 있던 고을은 여전히 탐진으로 불렀다. 다산이 강진이 아니라 탐진이라고 하는 이유다. “내가 탐진에 유배 중인데,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부쳤다. 시집 올 때 입었던 결혼 예복이다. 홍색은 바래고 황색도 옅어져서, 서첩으로 만들기에 꼭 맞다. 재단하여 작은 첩을 만들어, 경계하는 말을 붓 가는 대로 써서 두 아들에게 물려준다.…‘하피첩’이라고 한 것은 ‘붉은 치마’(紅裙)라는 말을 숨기고 바꾼 것이다’ ‘하피첩’의 머리글이다. 하피란 어깨에 두르는 일종의 겉옷이라고 한다. 부인 홍씨가 혼인 때 입었던 치마를 보낸 것을 두고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남편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다짐이라는 해석이 많지만, “초심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겼다는 주장도 있다. 객지에서 한눈팔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라는 것이다. 정작 다산은 그렇게 ‘깊은 뜻’을 부여하지는 않은 듯하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사제의 연을 맺은 시골 아전 황상에게 건넨 서첩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다산은 1814년 28조각의 천에 가르침을 적어 애제자에서 보냈는데 크기도, 빛이 바랜 정도도 모두 제각각이었다고 한다. 궁핍하기 이를 데 없었을 유배지의 다산은 부인의 치마, 자신의 낡은 옷자락을 잘라 종이 대신 썼던 것 같다. 빛바랜 천에 쓴 글은 사정을 이해하고도 남을 가족이나 제자에게만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하피첩’을 넘기면서 ‘서울을 떠나지 말라’는 글에 눈길이 갔다. “중국은 문명이 훌륭한 풍속을 이루어 궁벽한 시골에서도 성인이나 현인이 되는데 장애가 없지만, 우리는 도성에서 수십리만 떨어져도 인간의 법도에 눈뜨지 못한 동네”라고 했다. 그러니 벼슬이 끊어지면 바로 서울에 살 곳을 정하여 세련된 문화적 안목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다산은 자식들에게 “지금은 너희를 물러나 살게 하고 있지만, 훗날 계획은 도성 십리 안에 살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왕십리(往十里)라는 서울 동대문 밖 땅이름도 혹시 옛사람의 이런 인식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다산은 그러면서도 “고가(古家)와 세족(世族)은 저마다 상류의 명승을 점거하고 있다”며 옛 터전을 굳게 지키라고 당부했다. 마현(馬峴), 곧 마재는 다산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는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두물머리에서 합류한 한강이 마재에 이르면 다시 용인과 광주에서 흘러드는 소내와 만난다. 소내 혹은 우천(牛川)은 이제 경안천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하다. 마재에서 육로로는 도성까지 하루가 넘지만, 뱃길로는 순식간이다. 다산의 인식처럼 ‘한다 하는 집안’들이 한강 상류에 터를 잡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마현의 지명 유래는 정약용이 ‘다산시문집‘에 자세히 적어 놓았다. 마을 어르신 사이에 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이 산천의 정기를 누르고자 쇠말(鐵馬)을 만들어 묻어 놓았고, 이후 주민들이 콩과 보리를 삶아 제사를 지내 마현이라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다산은 이런 구전이 이치에 닿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왜구가 산천의 정기를 누른 것을 알았으면 뽑아내 폐기하거나 식칼로 만들어 버리는 게 정상인데 하물며 제사를 지내느냐는 것이다. 지금 철마산(鐵馬山)은 마재 북쪽으로 20㎞도 넘게 떨어져 있다. 다산이 언급한 철마산은 멀지 않은 예빈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팔당댐은 북쪽의 예빈산과 강 건너 남쪽의 검단산 자락을 가로질러 막은 것이다. 이웃마을에 역참(驛站)이 있어 말이 넘어다니던 고개여서 마재라 이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다산설(說)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다산의 집안 시조는 고려 유민으로 조선 개국 이래 황해도 배천에 은거한 정윤종이다. 나주 정씨 집안에서 벼슬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다산의 12대조인 정자급부터인데, 이후 9대가 문과(文科)에 급제했다. 대과(大科)라는 별칭처럼 고급관리를 뽑는 시험이다. 그런데 서울을 중심으로 기반을 쌓아가던 나주 정씨는 정쟁이 치열해지면서 숙종 무렵 뿔뿔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나섰다. 정시윤이 마재에 정착한 것도 이때라고 한다. 다산은 5대조인 정시윤의 마재 정착 과정을 역시 ‘시문집’에 남겼다. ‘공은 만년에 소내 북쪽에 오래 머물러 살 곳을 찾아 초가 몇 칸을 짓고 임청정(臨淸亭)이라 이름했다.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면서 소요하고 한가히 지내며, 깨끗한 마음을 지켜 당세에 뜻을 두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임청정기’(臨淸亭記)에는 ‘공은 세 아들이 있었는데, 동쪽에는 큰아들이, 서쪽에는 둘째 아들이 살고, 막내에게는 이 정자를 주었다. 유산(酉山) 아래 조그마한 집을 지어 측실에서 낳은 자제를 살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산 아래 집은 훗날 여유당(與猶堂)으로 불리는 다산의 집이 됐고, 유산은 그의 무덤이 됐다.마재에 가 보면 다산의 설명이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산 유적지는 오늘날 그의 위상만큼이나 매우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넓게 둘러친 담장 안에 무덤과 살던 집, 사당인 문도사(文度祠)와 다산문화관, 다산기념관이 규모 있게 배치된 모습이다. 문도는 다산의 시호(諡號)다. 다산 유적 앞에는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실학박물관이 보인다. 물론 한 사람을 위한 박물관은 아니지만 다산이라는 인물의 상징성 때문에 이곳에 자리잡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산유적 기행은 마을 서쪽의 마재성지(聖地)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마재 정씨 집안의 약현, 약전, 약종, 약용 4형제 가운데 약현을 제외한 3형제는 천주학에 깊이 공감했다. 정약종은 아우구스티노, 정약용은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신유박해 당시 정약종과 부인 유조이, 큰아들 철상, 작은아들 하상, 딸 정혜는 모두 참수형에 처해졌다. 정약전이 흑산도,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천주교는 정씨 형제의 생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정씨 형제는 또 한국 천주교 역사에 진한 흔적을 남겼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존 버거의 마지막 손길… 스케치북 위에 고스란히

    [그 책속 이미지] 존 버거의 마지막 손길… 스케치북 위에 고스란히

    존 버거의 초상/장 모르 사진/신해경 옮김/열화당/168쪽/3만 7000원역사상 가장 소란스러웠던 한 세기를 ‘멋지게’ 살아낸 한 영국인이 지난 1월 2일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숨졌다. 예술비평가이자 소설가, 화가, 시인, 사회비평가, 농부 등의 삶을 살며 예술과 문학, 사회 전반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해 온 영국의 지성 존 버거(1926~2017). 대표작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를 통해 예술의 관습을 거부하는 사유의 유산을 남긴 그는 1972년 소설 ‘G’로 부커상도 수상했다. 국내에 존 버거의 저서를 가장 많이 펴낸 출판사 열화당이 두 권의 책으로 그를 추모한다. 50년 지기인 사진작가 장 모르의 사진집 ‘존 버거의 초상’과 그의 마지막 산문집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그가 그려 온 오리지널 드로잉 60여점을 모은 전시회 ‘존 버거의 스케치북’도 4월 7일까지 서울 종로 온그라운드갤러리에서 열린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公슐랭 가이드] 서울시청 공무원들의 점심 힐링 맛집

    [公슐랭 가이드] 서울시청 공무원들의 점심 힐링 맛집

    서울시 공무원들이 동료와 점심 한 끼를 가벼운 지갑으로 부담 없이 해결하는 곳은 어디일까. 야근과 과음에 지친 서울시 공무원들의 굶주린(?) 영혼을 힐링해 주는 서소문·무교동 일대 맛집들을 수배했다.# 월매네 남원 추어탕 ‘추어탕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우려를 단박에 씻어주는 곳이랍니다. 장어 뼈와 내장을 버리지 않고 통째로 삶은 국물에 건지를 넣고 끓여 영양 손실이 없다는 게 사장님 설명입니다. 잡내 없이 구수한 맛에 매운맛·순한 맛 맵기 조절도 가능하답니다. 탕 국물에 먼저 흰 쌀밥 반 공기를 말면 입안에서 씹을 새도 없이 국물이 목구멍으로 훌훌 넘어갑니다. 추어 튀김은 기본, 다른 집에는 없는 추어 물·튀김만두도 이색 메뉴입니다. 고기소 대신 미꾸라지를 갈아 넣었습니다. 장어구이, 유황 훈제오리 같은 사이드 메뉴도 추천드려요.# 유림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남주인공 김수현도 이 집에서 우동을 먹었다죠. 1962년 개업해 55년째 영업 중인 우동·메밀국수 전문점입니다. 쑥갓이 올려진 옛날 느낌의 냄비국수와 비빔메밀이 별미입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일본식 찰진 우동면발은 아니지만 깔끔한 국물에 달걀 반숙을 터뜨려 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겨울에는 돌냄비(우동) 메뉴가 추가돼 더 뜨끈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고추장 소스에 달걀 지단이 올라가는 비빔메밀은 살짝 달콤한 맛으로 여성들 사이에 인기가 높습니다. 덕수궁 근처에 놀러 오셨다면 꼭 한번 들러보세요.# 청송옥 시청과 서소문·을지로 일대 최고의 국밥집으로 시청 공무원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집입니다. 주메뉴는 장터국밥. 사골에다 양지, 고춧가루, 파, 마늘, 무 등을 넣고 24시간 동안 끓여낸 경상도식 소고기국밥입니다. 육개장과 장국을 섞은 느낌의 묘한 국물이 점심에도 소주 한잔을 부르게 하죠. 무한리필 소면을 일단 먹고 밥으로 넘어가면 굿. 맵지 않지만 칼칼한 국물에 소고기, 사각사각한 깍두기가 조화를 이룹니다. 첫술에는 매운 느낌이 별로 없지만 먹다 보면 얼굴에 저절로 땀이 뱁니다. 저녁엔 냉동 삼겹살에 간단히 한잔 기울이기에도 부담 없답니다.# 무교동 북어국집 시청 공무원들은 물론 일대 직장인들에게 ‘해장의 성지’. 인근 관광호텔에서 묵는 단체 외국인 관광객들도 여기서 자주 아침을 해결한다고 하네요. 해장 전문집답게 아침 일찍부터 영업하고, 점심시간에는 줄지어 선 직장인들로 장사진을 이룹니다. 메뉴는 북어해장국 하나. 반찬은 부추와 김치, 오이지 3종 세트로 셀프입니다. 사골육수 베이스지만 달걀이 풀어진 담백한 국물이 일품입니다. 껍질 붙은 북어는 부드럽고, 매끈하니 긴 두부 건더기도 북어와 잘 어울립니다. 참, 계란 프라이를 추가 주문할 때는 ‘닭알’이라고 하세요. 박진순 명예기자(서울시 지하철혁신추진반장)
  • [손원천 전문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빵맛 보고 벚꽃 보고…빵빵 골목 달콤 꽃길

    [손원천 전문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빵맛 보고 벚꽃 보고…빵빵 골목 달콤 꽃길

    부산 사람들은 수영구 남천동을 두고 흔히 ‘빵천동’이라 부릅니다. 이유야 단순합니다. 워낙 빵집이 많아서지요. 불과 수백m 거리에 토박이 빵집과 새내기 빵집,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경쟁하듯 늘어서 있습니다. 빵을 좋아하는 이라면 즐거운 비명을 지를 법합니다. ‘빵천동’에서 한 블록 건너엔 남천동 벚꽃거리가 있습니다. 저 유명한 광안리 해변을 품고 있는 꽃길입니다. 아직은 이르지만, 볕 좋은 뜨락의 벚나무들은 벌써 가지 끝에 꽃잎 몇 장 내걸었습니다. 조만간 여기저기서 화르르 꽃등불이 켜지겠지요. 그러니 이 시기에 ‘빵천동’을 찾는다면 한 걸음에 빵 먹고, 또 한 걸음에 꽃 보는 여정이 가능해 집니다. 부산관광공사에서 ‘3월에 가볼 만한 곳’으로 ‘빵천동과 벚꽃길’을 선정한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골목 여기저기엔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제법 많이 숨어 있습니다. 외관은 여염집이 분명한데 맛있는 차와 커피를 내니 분위기가 남다를 수밖에 없지요.가장 먼저 드는 의문. 왜 남천동에 빵집이 많을까. 현지인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렇다. 옛 남천동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과 비슷했다. 비교적 요족하게 사는 이들이 많았다. 부산에서 가장 먼저 아파트가 들어선 곳도 이 지역이었다. 게다가 학원이 밀집돼 있다 보니, 이를 좇아 학생과 학부모들이 몰려들었다. 덩달아 집값도 오르고, 점점 더 주민들의 수준도 높아졌을 터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고급 제과점들도 늘게 됐다는 것이다.●빵집 순례의 출발지 ‘옵스’ 빵집 순례의 출발지는 ‘웁스’이다. 로마신화 속 ‘다산의 여신’이 상호다. 영문 표기법대로라면 ‘옵스’(OPS)라 해야 한다. 하지만 표기법대로 발음하는 부산 사람들은 없다. 옵스는 ‘빵천동’의 상징적인 가게다. 가장 먼저 생기지는 않았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건 분명하다. 전설적인 무용담도 전해 온다. 오래전, 가게 바로 옆에 생긴 거대 프랜차이즈 제과점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여 꿋꿋이 살아남았다나. 이 집의 간판 메뉴는 ‘학원전’과 슈크림 빵이다. 특히 학원전의 경우 이미 ‘전국구’ 간식으로 발돋움했다. 학원전은 줄임말이다. 풀자면, ‘학원 가기 전에 먹는 요깃거리’ 정도 되겠다. 식사 대용으로 만든 빵이니 계란 등 영양 많은 재료가 들어간 건 당연하다. 학생 입맛에 맞췄다고는 하나 그리 달지는 않다. 매장에 학원전만 있는 건 물론 아니다. ‘김치 고로케’처럼 실험정신 깃든 빵도 있다.●옵스 골목길 옆 신흥강자 ‘롤링 핀’ 옵스에서 골목길 하나 지나면 ‘롤링 핀’이다. 두터운 마니아층을 갖고 있는 신흥 강자다. 주종목은 식빵류. 주인장이 ‘옵스 키드’가 아닐까 싶었지만, 본인은 차별성을 강조하며 완곡하게 부정했다. 하긴 빵집 주인에게 자부심은 곧 생명줄과 같을 터다. 롤링 핀은 천연발효빵을 내세운다. 빵 반죽에 이스트 대신 천연발효종을 쓴다. 무슨 차이일까. 이스트는 반죽을 빠르게 발효시킨다. 그래서 빵 만드는 시간이 단축되고 보다 효율적으로 팔 수 있다. 단점도 있다. 소화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것. 반면 천연발효종은 발효시간이 오래 걸린다. ‘빨리빨리’보다 ‘느릿느릿’에 초점을 맞춘 재료다. 특히 이 가게는 저온숙성 방식을 택해 더 천천히 발효된다. 한기태(48) 대표는 “빵 하나 만들려면 재료 준비하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린다”고 했다. 공급량도 제한적이다. 많이 만들 수 없어 일정한 양을 만들고 나면 팔고 싶어도 더 팔 수가 없다. 이렇게 만든 빵은 위에 부담을 덜 준다. 풍미도 깊다. 바로 이 맛에 두터운 마니아층이 형성됐다. 롤링 핀 앞의 나무 한 그루가 인상적이다.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다. 새로 지은 건물 틈에서 힘겨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제야 겨우 쉴 공간을 얻었다는 안도감도 느껴진다. 글쎄, 나무의 속내야 사람이 알 길이 없다. 팽나무 위는 ‘보성녹차팥빙수’다. 부산 사람 치고 이 집 모르면 간첩으로 몰릴 만큼 유명한 집이다. 너나없이 못 먹던 시절, 팥빙수에 전남 보성의 녹차가루를 뿌려 팔았는데, 이게 ‘대박’을 쳤다. 팥빙수는 맛과 값이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여전히 팥과 얼음, 녹차가루가 주재료다. 요즘 유행하는 팥빙수와 확연히 다르다.●골목길 따라 내공 깊은 식빵·크루아상·쌀빵 팥빙수 집에서 좁은 골목길을 스무 걸음 남짓 올라가면 ‘옥미당’이다. 가게 이름에서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문을 열면 검은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우유에 소보루빵 먹으며 재잘대고 있을 듯하다. 상호에 견줘 빵집 외형이나 만들어 내는 제품들은 매우 ‘모던’하다. 얼핏 외국풍의 거대한 2층 건물이 마을 주변을 압도한다는 느낌도 받는다. 한데 엇비슷한 질감의 양옥집들만 있다면 그 또한 밋밋할 터. 주변과의 부조화가 희한하게 잘 어울린다. 부조화는 이 가게 집기로 이어진다. 옛 ‘국민학교’ 시절 책상으로 쓰였을 법한 낡은 탁자가 가게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매끈하고 도회지 느낌이 확 풍기는 집기들도 있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시폰케이크다. 특히 바질 시폰이 인기다. 시폰 위에는 올리브유가 담긴 플라스틱 스포이트가 꽂혀 있다. 빵을 먹을 때 올리브 오일을 뿌려 먹으란 배려다. 거친 질감의 탁자에서 먹는 시폰케이크가 일품이다. ‘메트르 아티정’은 한국인 아내와 프랑스인 남편이 운영하는 빵집이다. 프랑스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동네 빵집, 현지의 맛을 잘 살린 빵집이 이 가게의 지향점이라고 한다. 밀가루를 프랑스에서 가져다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발효종 역시 르방이라는 천연 효모를 쓴다. 가장 잘 나가는 건 크루아상이다. 바로 위의 ‘어바웃제이’는 빵집이라기보다 디저트와 케이크를 파는 카페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다. 레몬 파이, 딸기 케이크 등이 잘 나간다.‘시엘로’는 쌀로 만든 빵을 판다. 특히 ‘홍국’(紅麴) 품종으로 만든 빵이 인상적이다. 홍국은 붉은색 쌀이다. 이 때문에 빵도 붉은빛을 띤다. 이 집도 반죽할 때 천연발효종을 쓴다. ‘대한민국 제과 기능장’이 만든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홍국으로 만든 베이글과 식빵이 인기 품목이다. 발걸음을 광안리 해변으로 옮기면 ‘순쌀빵’과 만난다. 2002년 부산에 온 고 노무현 대통령이 밀가루빵 대신 주문해 먹었다고 해서 명성을 얻은 집이다. 어디 이뿐이랴. 하루 두 번 빵을 굽는 ‘브레드 슈가’ 역시 당일 생산, 당일 판매가 원칙이고, ‘무띠’ 또한 입소문 난 독일식 빵집이다. 150년 전통을 가졌다는 스페인의 도너츠 브랜드 ‘카페 도츠’, 단팥빵과 팥빙수 전문집 ‘홍옥당’, 일본식 센베이 전문집 ‘이대명과’ 등도 대단한 내공의 빵집들이다. ●남천동 벚꽃거리 재개발에 2~3년 내 사라질 듯 이제 벚꽃거리를 돌아볼 차례다. 바다 옆 삼익비치 아파트 단지 주변 700m 거리에 늙은 벚나무들이 빼곡하다. 이 아파트 단지가 조성될 때 함께 식재됐으니 수령이 얼추 40년을 헤아린다. 벚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지만 굵은 밑둥만 보더라도 벚꽃 핀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이 된다. 하지만 남천동 벚꽃거리는 2~3년 안에 사라질 전망이다. 이 아파트 단지 일대가 재개발되기 때문이다. 벚나무가 사라진다는 건 벚꽃만 못 본다는 뜻이 아니다. 분분히 꽃잎이 날리고 난 뒤 찾아오는 신록과 숲그늘, 그리고 붉게 물든 가을의 정취도 함께 잃는다는 뜻이다.●광안리 해변 ‘오랜지 바다’도 인상적 마지막으로 광안리 해변에서 꼭 찾아야 할 곳 하나 덧붙이자. ‘오랜지 바다’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선물가게다. 상호는 ‘오랜만이지 바다’를 줄인 표현이다. 800원짜리부터 8만원짜리까지 다양한 기념품을 갖췄다. 특히 우편엽서는 여행객이 그린 작품이 엽서로 제작됐을 경우 판매대금 일부를 인세 형태로 지급한다. 방문객이 제작하는 우표도 인기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이 집에서 보는 광안리 해변 전망이다. 낡은 3층 건물의 통유리 너머로 펼쳐진 바다와 광안대교가 정말 인상적이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 남천동 일대를 돌아보려면 차보다 걷는 게 훨씬 수월하다. 승용차는 해변시장 옆의 공영주차장에 대면 된다. 옵스 바로 맞은 편에 있다. 지하철을 이용할 수도 있다. 2호선 남천역 3번 출구가 빵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맛집 : 갈삼구이는 갈미조개와 삼겹살을 함께 구워 김과 깻잎에 싸 먹는 토속 음식이다. 콩나물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달달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다소 자작하게 끓이면 짭조름한 맛이 더해진다. 광안리 갈삼구이(051-612-9266)가 이름 났다.
  • ‘노무현 탄핵’ 김기춘, 8년 전 “직무 태만도 탄핵 사유”…박 대통령은?

    ‘노무현 탄핵’ 김기춘, 8년 전 “직무 태만도 탄핵 사유”…박 대통령은?

    “직무를 태만히 하거나 공직자에 대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것, 국정을 불성실하게 수행한 경우 모두 헌법 위반으로 탄핵 사유가 된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국회 측의 주장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왕실장’이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의 핵심 인사로 지목돼 구속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과거에 쓴 글 내용이다. 신동아 3월호가 입수해 보도한 이 글은 김기춘 전 실장이 서울대 법학과 제16회 동창회가 2008년에 엮은 ‘낙산의 둥지 떠나 반백년’이라는 책에 실렸다. 이 책은 1958년 입학한 동창들이 투고한 글을 모은 문집으로 시중에 판매되진 않았다. 김기춘 전 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소추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탄핵소추위원이었다. 김기춘 전 실장은 “검사, 검사장, 검찰총장, 법무장관, 국회의원을 거치면서 경험하고 느낀 바가 많지만 2004년 대통령 노무현 탄핵소추위원으로 헌정 사상 최초로, 아마도 최후로 탄핵심판에 관여한 일이 법률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적었다. 김기춘 전 실장이 당시 생각한 ‘대통령 탄핵 사유’들은 다음과 같다. 1. “제헌국회 속기록을 보면 대통령의 실정법 위반뿐 아니라 지휘·감독 관계에 있는 공직자에 대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것과 국정을 불성실하게 수행하는 경우 모두 헌법 위반으로 탄핵 사유가 된다고 설명한다.” 2. “탄핵 사유는 기소가 가능한 형사적 범죄일 필요는 없고 헌법이 부여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부패 행위를 한 경우, 공중의 신뢰를 깨뜨리는 경우도 탄핵 사유가 된다.” 3. “직무를 태만히 하거나 성실히 수행하지 않은 경우에도 탄핵 사유가 된다 할 것이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2016년 12월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탄핵 사유 중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책임자의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는 부분에 대해서 “생명권 침해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행수첩]

    ●건국대 여행작가 과정 수강생 모집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이 제 3기 여행작가 과정 수강생을 모집한다. S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시리즈’ 등 독특한 기획으로 화제를 모았던 박종우 감독, 독창적인 시각의 사진가인 탁기형 전 한겨레신문 사진부장 등이 사진 강의를 하고, 우현석 주임교수와 조성하 동아일보 국장, 박경일 문화일보 여행전문기자, 임진모 음악평론가 등이 여행 강의를 맡는다. 교육원 측은 “수강생의 사진전 개최와 문집 제작도 지원하며, 여행작가 희망자의 경우 제휴사를 통해 등단과 여행서적 발간도 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강은 오는 3월 6일이다. 강의는 내년 5월 22일까지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서울 광진구 능동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 강의실에서 14차례 진행된다. 현장실습은 두 차례다. 수강 신청은 건국대 미래지식원 홈페이지(edulife.konkuk.ac.kr)에서 받는다. 수강료 58만원. 문의는 1800-2521, 건국대 미래지식교육원 (02)450-3267. ●16일부터 내 나라 여행박람회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주관하는 ‘2017 내 나라 여행 박람회’가 16~19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다. 총 330개의 기관에서 662개 부스를 운영한다. 전시장은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맛과 멋을 보여주는 ‘내 나라 주제관’ ▲각 지방의 관광명소와 콘텐츠를 홍보하는 ‘지자체 홍보관’ ▲관광 정책을 홍보하는 ‘기획관’ ▲국내 여행상품 정보를 제공하는 ‘내 나라 여행상품관’ 등으로 구성된다. 푸드 트럭, 전국 특산물과 대표 빵을 맛 볼 수 있는 ‘내 나라 저잣거리’도 마련된다. ●제주신라호텔, 에어텔 패키지 출시 제주신라호텔이 항공권과 호텔 숙박을 연계한 ‘스프링 어웨이킹 에어텔 패키지’를 출시했다. 스탠더드 객실이 포함된 베이직 타입과 스위트 객실을 이용하는 프리미어 타입 등 두 가지이며 모두 2박을 머무는 상품이다. 이용 기간은 28일~3월 23일이다. 1박 기준 32만원, 세금과 봉사료는 별도다.
  • “발해도 한민족의 역사” 잊혀진 제국을 깨우다

    “발해도 한민족의 역사” 잊혀진 제국을 깨우다

    국내에 현존하는 최초의 발해 역사서이지만 역사서가 아닌 역사 기록은 무엇일까. 바로 조선의 실학자인 유득공(1748~1807)이 쓴 ‘발해고’(渤海考)다. 그동안 대중에게 소개되지 않은 발해고 4권본이 국내 처음으로 번역돼 출간됐다. 역사 저술가 김종성씨가 옮긴 ‘발해고-우리가 버린 제국의 역사’(위즈덤하우스)다.발해고는 조선 시대 당시에도 도전적 저작이었다. 백제·고구려가 멸망하고 신라가 살아남아 통일국가가 됐다는 기존 역사 인식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며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 시대를 주창했다. 발해를 고구려의 후계자이자, 삼국시대 이후에도 신라와 발해가 병립했다는 역사 인식을 제시한 이가 유득공이다. 이는 발해를 한민족 역사로 규정하며 조선의 강역을 대륙까지 확장한 역사관이었다. 유득공은 만주 서부를 우리 땅인 ‘변한’으로 지칭했으며, 그의 의지대로 발해고는 후대에 북방 영토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다. 우리에게 알려진 발해고는 유득공이 1784년(정조 8년)에 펴낸 1권본(초판본에 해당)이다. 이번에 번역된 발해고는 4권본으로, 유득공이 상당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쓴 개정판이다. 그의 문집 ‘영재서종’에 남겨진 기록을 도서 소장가 심의평이 필사해 전한 판본이다. 4권본의 글자 수는 1만 9546자로, 1권본의 1만 4144자보다 많다. 발해의 역대 인물을 다룬 ‘신하고’의 경우 1권본에 없는 32명이 새롭게 등장한다. 유득공은 발해의 지리를 설명한 ‘지리고’를 4권본에서 거의 다시 쓰다시피 했고, 외교문서를 다룬 ‘예문고’에는 당나라 현종이 발해 무왕에게 보낸 서한 4개를 추가했다. 1권본보다 내용과 논평이 크게 늘어난 이유다. 하지만 1권본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남북국’을 기록한 서문은 4권본에는 없다. 이에 대해 김종성씨는 “4권본에 서문이 실수로 누락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처음부터 4권본 서문이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유득공이 발해사 연구를 진전시켜 4권본보다 발전된 개정본을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서문을 쓰지 않은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유득공이 자신의 저작을 발해사가 아닌 ‘미완의 원고’라는 뜻을 담은 발해고(考)로 명명한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김종성씨는 “발해고를 처음 출간할 때 ‘감히 정식 역사서로 자처할 수 없다’고 밝힌 유득공의 고뇌가 4권본에도 이어졌다”며 “4권본 번역본이 잊혀진 제국인 발해를 인식하는 주춧돌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한자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실어 유득공의 뜻을 충실히 읽어낼 수 있도록 펴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백승종의 역사 산책] 절대로 의사 노릇 마라

    [백승종의 역사 산책] 절대로 의사 노릇 마라

    다산 정약용이 누구인가.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다. 시대의 양심이자 진보와 개혁의 상징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그의 언행에도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점이 있었다. 1810년 봄 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에서 큰아들 정학연에게 보낸 편지를 나는 떠올리고 있다. 그때 정약용의 나이 49세였다. 유배된 지 어언 10여년, 세월의 풍파 속에 그의 몸은 이미 상했다. “나는 지금 풍병으로 사지를 쓰지 못한다. 오래 살 것 같지가 않구나. 그저 단정히 앉아 섭생에 힘쓴다면, 혹시 수명을 조금 연장시킬 수 있을까.”(다산시문집 제18권) 입을 다물려 해도 절로 침이 흘러내렸고, 왼쪽 다리가 마비돼 걷기 어려웠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심하게 질책하는 대목이 있다. “네가 갑작스레 의원(醫員) 노릇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무슨 잇속이 있어 그러는 것이냐? 알량한 의술을 통해 고관들과 사귀고, 그리하여 너는 이 아비가 풀려나기를 바라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옳지 못한 일이다.” 큰아들은 의술에 조예가 있었다. 그는 의술을 통해 권력자들에게 줄을 댈 심산이었던가 보다. 그렇게라도 해서 병든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바란 것이었다. 정약용은 아들의 효심을 알았으나 짐짓 모르는 체했다. “겉으로 덕을 베푸는 척한다는 말이 있다. 저들은 그저 입술만 움직여 너를 기쁘게 만든 것이다. 돌아서서 너를 비웃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너는 아직도 모르겠느냐? 그들의 얕은 술수에 속고 말다니, 어찌 그것이 어리석은 노릇이 아닐까?” 아버지가 보기에 상대방은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들이었다. 천하에 다시 없는 보배를 가지고 애원한다 한들 될 일이겠는가. 이처럼 되묻는 정약용의 글에는 권세가를 향한 원망이 묻어 있다. 그러나 그런 분노가 이 편지의 요체는 아니다. 정약용은 큰아들이 의원 노릇을 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아들이 의료 행위로 돈을 버는 것이 싫었던 것인데, 에둘러 반대 의사를 표시했을 뿐이다. 아버지의 진심은 곧 드러난다. “너는 지금 소문을 내고,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그리하여 온갖 사람들이 날마다 거리를 메우며 찾아온다. 물고기 떼도 같고 짐승 떼도 같은 한량과 잡배들이건마는 너는 내력도 묻지 않는다. 그들의 근본과 행실도 모르면서 방금 만난 사람들을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하다니.” “도대체 이 무슨 변고인가? 내게도 들을 귀는 있느니라. 만약 그 버릇을 당장 고치지 않는다면, 너와 왕래를 끊어 버리겠다. 아마 죽어도 나는 눈을 감지 못하리라. 내 말을 절대 잊지 마라. 다시는 이런 말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구나.” 정학연은 의원의 길을 포기했다. 절규와 애원으로 가득한 아버지의 분부를 어찌 거스르겠는가. 그런데 말이다. 18세기 후반 서울에는 상당수 의원들이 개업해서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그들 중에는 내세울 만한 전공 분야가 없는 일반의들이 대다수다. 하나 한 분야에 정통한 요즘의 전문의 같은 의원들도 제법 있었다. 또 그때는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의약 분업도 이뤄졌다. 느린 속도로나마 의약업은 전문직으로서 당당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 변화를 정약용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의학에 소질도 있고 개업 의지도 완강했던 큰아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정약용은 아들에게 유교 경전과 역사책에 정통한 선비가 되라고 강요할 뿐이었다. 후세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화신으로 기리는 위인도 세상 물정에 깜깜한 구석이 있었다.
  • [그 책속 이미지] 부서지기 쉬운, 그러나 눈부신… 가장 강렬한 순간 ‘청춘’

    [그 책속 이미지] 부서지기 쉬운, 그러나 눈부신… 가장 강렬한 순간 ‘청춘’

    라이언 맥긴리 컬렉션:혼자 걷는/라이언 맥긴리 지음/박여진 옮김/윌북/240쪽/2만 2000원 벌거벗은 청춘들은 극단적인 대자연 속을 뛰고, 매달리고, 추락하고, 떠다니며 생의 가장 강렬한 순간을 만끽한다. 그 순간으로부터, 이 공간으로부터 ‘멀리 더 멀리’ 맹렬히 도약하는 청춘들. 찬란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청춘의 눈부신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미국 작가 라이언 맥긴리 컬렉션 중 하나다. 청춘의 자유와 극적인 아름다움 그리고 허무를 기록하는 작가로 유명한 맥긴리는 2014년 ‘미국의 가장 중요한 사진작가’로 선정됐다. 시인 유희경은 맥긴리 사진집의 한국어판 출간에 내놓은 산문집을 통해 “다음은 없다 이것이 청춘에 대한 유일한 정의 (…) 찬란하게 흩어질 뿐”이라고 그의 청춘 목격담을 전한다. 국내 맥긴리 사진전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5월 2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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