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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서실 옥상의 접시안테나(청와대)

    새정부 들어 청와대 비서실 옥상에 위성방송 수신을 할 수 있는 파라볼라 안테나가 새로 설치됐다. 10여년전부터 고급 아파트창가에 동요속의 우산처럼 「나란히 나란히…」걸려 있는게 파라볼라 안테나다.그럼에도 국정전반을 총괄,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비서실엔 외국방송을 청취할 수 있는 시설이 하나도 없었다면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었다. 지금 청와대 비서실은 위성방송안테나를 통해 일본 NHK­TV와 영국 BBC­TV,홍콩 스타 TV뉴스를 시청하고 있다.중요 국제뉴스를 비서실 스스로 체크하고,소관부처의 보고전에라도 이뉴스가 대통령집무실 책상에 올려지고 있다. 파라볼라 안테나 하나에 전선을 연결시켜 비서실 전체에 전파를 나눠주고 있다.때문에 설치비라고 해봐야 1백만원 안팎이다.그럼에도 이같은 작은 변화가 청와대 비서실 직원들의 의식구조에 끼치는 영향은 심대하다. 청와대 스스로가 국제화·세계화로 가는 작은 몸짓이라해도 좋을 것 같다. 파라볼라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곳은 공보비서실이었다.우연찮게도 공보비서실의 비서관 대부분이 외국유학이나 연수를 해본 경험을 갖고 있다.이경재 공보수석이 미국 연수중에 김영삼당시 민자당대통령후보의 요청을 받아들여 후보진에 합류했던 것은 잘알려진 사실이다. 한 관계자는 이에대해 『청와대 비서실에 외국방송을 청취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별일 아닌 것 같지만 세계가 한나라가 된 시대를 살면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구에서 외국방송도 안보고 있다는 것은 심각하다면 심각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경호실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 「총잡이」이라고 부른다.약간은 자기들의 신체의존적 직업을 폄하해서 농담삼아 부르는 경우다. 그런 경호실 직원들이 종합상사 수준의 외국어 실력을 가지려하고 있다.청와대가 국제화시대에 적응해가려는 두번째 움직임이다. 박상범경호실장이 취임한 이후 영어한가지라도 확실하게 구사하게 하라는 지시가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따라 경호실은 매학기당 10명 내외의 직원을 선발해 국내에서 외국어 연수 전문코스가 있는 대학에 위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선발은 위에서 누구 누구를 꼽아서 보내는 게 아니라 자체 경쟁을 통해 선발한다.내부 경쟁이 치열하다. 상당한 직원들이 외국어학원을 다니면서 내부선발에 대비하고 있다.직책상 학원을 다니기 어려운 사람들은 개인지도도 받고 있다.6개월의 외국어 연수코스를 다녀오지 못하면 승진등에서 불이익이 주어진다.경호실직원들이 안달복달하는 중이다. 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경호실이 외국에 나가거나 외국의 원수가 방문하는 횟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어느 경우나 원활한 경호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외국어 교육이 필수적이다. 특히 대통령 경호는 갈수록 고도화되고,또한 가상위협도 지능화되는 추세다.경호실직원들의 외국어구사 능력은 특공무술이나 사격솜씨에 못지않게 구비돼야할 중요한 기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이나 경호실이 권부로서 각부처에 호령만하고 정치만하는 집단이 아니라 고도의 전문집단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미리 짚어보게 된다.
  • 소형요트 선구자호/역사속 바뀌어온 모습을 좇는다(배:36·끝)

    ◎강동석군이 타고 사상 첫 태평양 횡단 성공/미지의 바다를 향한 꿈·도전정신 일깨워 우리나라의 지형적 특성은 삼면이 바다인 해양국가이다.그러면서도 개화기 이전의 사서는 물론 개인문집에서 조차 해양자원 이용론이나 해양사상을 고취하는 글이 전무하다.부국론과 경세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국가부흥을 모색했던 실학자들 마저도 바다를 바라보고 「바다에 뜬달이 처량하다」「떠도는 돛단배가 내신세 같다」는 감상적인 몇편의 시를 남겼을뿐 「바다는 우리의 삶의 터전이요,자원의 보고이니 바다를 개척하여 국가를 부흥시키자」는 글은 단 한편도 찾아볼 수 없다.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에는 노를 저어 보이지 않는데까지 나아간 자는 잡아다 곤장을 친다는 조문까지 있다.이같은 상황을 고려할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연에 도전하기 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바다를 두려워 했던 우리에게 바다는 미지의 세계이며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준 사건이 있었다. 미국 남가주 대학 2학년에 재학중이던 강동석군이 길이 8.7m 무게 4t의 조그마한 요트에 몸을 싣고 1990년 11월9일 로스앤젤레스를 출발,하와이∼웨이크섬∼오키나와를 거쳐 1991년 6월3일 부산에 입항하였다.돛단배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한 것이다.파도와 태풍을 헤쳐온 것은 배였지만 두려움의 대양을 친숙한 바다로 인식케 한 것은 젊은 용기였다.단 한척의 배로 단 한사람이 태평양을 횡단한 것은 세계 역사상 강동석군이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앞에는 강군이 타고온 선구자호가 전시되어 있는데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이 배는 미국 남가주 대학2학년에 재학중이던 강동석군이 로스앤젤레스에서 부산까지 세계 최초로 태평양을 단독 횡단했던 요트 「선구자호」이다. 대한 남아의 기상을 과시한 강군은 태평양 시대의 역군이 될 해군사관생도와 청소년에게 바다에 도전할 수 있는 꿈과 용기를 일깨워 주었으며 1991년 6월19일 선구자호를 해군사관학교에 기증하였다』
  • 우리말·글 통해 나라사랑 실천/외솔 최현배선생(이달의 문화인물)

    ◎기념문집·추모행사등 다양 「10월의 문화인물」에 우리말과 글을 통해 나라사랑을 실천한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선생(1894∼1970년)이 선정됐다. 문화체육부는 그의 생애와 업적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아릅답게 가꾸기 위해 한글날이 들어있는 10월을 맞아 그를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외솔은 경남 울산군 하상면 동리에서 태어나 한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한뒤 1910년 일본인들이 학교운영의 주도권을 잡자 주시경선생이 있던 조선어강습원에 나가기 시작했다.그곳에서 우리말과 글로 교육하는 것이 우리 겨레의 소망이라는 신념을 갖게된 그는 연희전문과 이화여전에 재직하며 배달말과 배달정신을 젊은이들에게 심는데 힘썼다.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 그는 해방직후 문교부 편수국장으로 있으며 황무지였던 국어교육의 터전을 마련하는 한편 한글의 체계화와 과학화에 진력했다. 그의 저서로는 「조선민족 갱생의 도」「우리말본」「글자의 혁명」「나라사랑의 길」 등이 있다. 문화체육부가 외솔회 한글학회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등 관련단체와 함께 펼칠 기념행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외솔의 국어학과 그 영향」주제의 강연회 23일 상오10시 한글학회강당 ▲「국어학자 및 사회사상가로서의 외솔」주제 특별강연회 28일 하오2시30분 연세대 ▲「외솔문법과 맞춤법 통일안」주제 학술발표회 16일 하오3시 문예진흥원강당 ▲제15회 외솔상 시상식 30일 한글회관강당 ▲외솔추모행사 19일 경기도 양주군 장현리 묘소▲기념문집과 글모음 어록집 발간 등.
  • 비류백제설(온가족이 함께 읽는 우리역사:16)

    ◎“「온조백제」외에 다른 백제 있었다”/충남이남지역 차지… 4C말 고구려에 멸망/재야사학자 김성호씨가 주장… 찬반 엇갈려 「한국사에 있어 삼국시대라고 알려진 시기는 사실상 사국시대였다.고구려·신라·백제외에 또 하나의 국가,즉 비류백제가 있었다.충남이남을 근거지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이던 비류백제는 4세기말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침략을 받고 멸망한다.비류백제의 왕과 신하·백성들은 당시 그들의 식민지인 위 열도로 건너가 새 나라를 세우니 이가 곧 일본국의 시작이다」 위의 내용은 재야사학자인 김성호씨(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원)가 지난 82년 출간한「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에서 주장한 학설이다.한·일 양국의 고대사 연구에 있어 가히 혁명적이랄 수 있는 이「이론」은,그러나 발표된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옳고그름을 가리는 검증과정을 거치지 못한채 아직 극단적인 찬반의 양론속에 묻혀 있다. 기성 사학자들은 대부분 『언급할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며 아예 무시하는 반면 많은 재야사학자들은 열광적인 지지를보내고 있다.다만 90년대 들어 김씨의 논문들이 박영석국사편찬위원장·박성수정신문화연구원 교수·최재석고려대명예교수등 원로 사학자들의「화갑」「정년퇴임」기념논문집에 잇따라 게재됨으로써 그가 이제서야 사학자로서「공인」받는게 아닌가 추측될 뿐이다.또 일부 학자들이 최근「비류백제설」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의사를 보이는 것도 큰 변화이다. 「비류백제설」은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나오는 비류·온조 형제의 건국기록에서 출발한다.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비류·온조 형제는 고구려의 첫 임금인 주몽의 의붓아들이다.주몽의 친아들인 유류(또는 유리)가 아버지를 찾아오자 남쪽으로 내려가 각각 나라를 세웠다.형인 비류는 미추홀에,온조는 위례성에 도읍했는데 미추홀이 척박해 나라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자 비류는 자살했다.반면 비류쪽의 백성을 받아들인 온조의 나라는 더욱 강성해졌으며 후에 백제로 이름을 정했다』 정사에는 이처럼 비극적인 종말을 맞은 것으로 기록된 비류의 건국기에 대해 김성호씨는 한·중·일 3국의 각종역사책에서 단편적인 기록들을 끌어모아 전혀 다르게 구성했다.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비류는 자살한 것이 아니다.그가 충남 웅진(현재의 공주)에 세운 비류백제야말로 한강 중부지역에 자리잡은 온조백제보다 강성했다.한반도 안에서는 호남 전역과 제주도,경남의 해안지역,서해 건너 황해도일대를 다스렸다.특히 일찍부터 해상진출에 눈떠 일본의 북구주 일대와 중국의 요서지방및 양자강일대에 진출했다.비류백제는 해외영토에 식민통치기구인「담로」를 설치해 통치자로서 왕자·왕의 동생등 친족을 파견했다. 이처럼 강성했던 비류백제가 일시에 멸망한 것은 광개토대왕이 수군을 동원,서해를 건너와 왕성을 기습공격했기 때문이다.겨우 목숨을 부지한 왕은 신하와 백성들을 이끌고 혈족이 다스리던 위 열도의 담로로 달아나 새나라를 열었다.비류백제의 영토와 백성은 형제국인 온조백제가 차지했다.온조백제는 이후 역사책을 만들면서 자체 역사에 비류백제사를 섞어놓아 비류백제는 결국 기록에서 사라졌다. 이같은 엄청난「이설」은 과연 무엇에 근거할까.다음 회에 알아본다.
  • 고전문학 국역작업 첫 결실/고대 민족문화연,1차분 10권 발간

    ◎「양원유집」「근재집」등 개인문집도 포함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소장 정재호)가 고전문학 가운데 중요작품을 현대문으로 옮긴다는 목표아래 추진중인 「한국고전문학전집」발간사업이 첫 결실을 거둬 1차분 10권이 최근 선보였다. 이번에 발간된 10권은 시조발생 초기부터 조선중기까지의 작품을 모은「시조1」과,「사설시조」「가사1」등의 시가집을 비롯,「임진록」「숙향전」등의 고대소설,민속극등을 담고 있다. 또 「양원유집」등의 한문학 작품과「근재집」등의 개인문집등도 포함됐다. 이 전집은 원전만을 영인하거나 현대문으로 번역·윤색된 내용만 소개했던 그동안의 고전류와는 달리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실었다.또 유명작품에 대한 이본도 덧붙여 내용상의 차이와 변화상을 비교하기 쉽게 하는등 전문가에게나 일반인에게나 모두 편리하게끔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값은 1만5천원씩이다. 민족문화연구소는 지난 91년초 국문학 교수들로 기획및 편집위원회를 구성해 작품을 선정하고 그해 10월 각분야 전문가들에게 집필을 의뢰했었다. 연구소는 앞으로 해마다 10∼15권씩을 계속 출간해 모두 2백권 규모의 전집류를 만들 계획이다. 국문학계는 국문문학·한문문학·구비문학등 우리의 고전문학전체를 망라해 현대문화 하는 이 사업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 크게 기대하고 있다. 한편 민족문화연구소는 오는 27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1차분 간행기념 학술발표회를 열어 사업추진을 중간점검할 예정이다.
  • 허난설헌집 목판초간본 발견/조선여류시인… 시문2백10수 공개

    ◎명사신 제사도 실려… 문헌가지 높아 【강릉=조성호기자】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인 허란설헌의 작품집 「난설헌집」 목판 초간본이 처음으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강릉 향토사료관 정항교 학예연구실장(39)이 16일 공개한 이 목판 초간본은 가로 18.5㎝,세로 27㎝ 크기의 39쪽으로 「유선사」「야좌」「염지봉선화가」등 2백10수의 시을 비롯한 문학작품이 실려있다. 특히 이 목판 초간본에는 난설헌집의 전형으로 알려져온 재주갑인자본(재주갑인자본)에 수록되지 않는 오언율시 8수,칠언율시 13수,오언고시 15수,칠언고시 8수등 44수와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헌정 1첩」,몽유광상산시서등이 실려 있어 허란설헌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귀중한 문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책머리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명나라 사신 주지번의 소인(소인)과 부사 양유년의 제사등도 실려 있다. 뒷표지만 떨어졌을 뿐 원형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이책 뒷장에는 허란설헌의 동생이자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발문을 통해 제작연도를선조 41년(1608년)이라고 기록해 놓고 있다.이는 1606년에 금속활자본으로 간행된 최초의 난설헌집 「재주갑인자본」보다는 2년 늦지만 동래부 목판 중간본과 필사본보다는 84년 앞선 것이다. 허란설헌은 1563년 강릉시 초당동에서 출생,27세에 요절한 조선조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그의 문집은 당시 서민들에게 많이 읽혀 활자본,목판본, 필사본등으로 다양하게 간행됐었다. 목판 초간본을 발견한 정항교실장은 『허란설헌의 새로운 문학작품이 수록돼 있을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가 좋아 지금까지 발견된 3종류 문집의 오자나 탈자를 바로 잡는등 허란설헌 연구에 큰 도움을 주게 됐다』고 평가했다.
  • 사랑이라는 이름…/여자입장서 여성에대한 편견 꼬집어(화제의 소설)

    넝마같은 삶을 부정해버리기 보다는 헌옷수선소에서 희망이라는 바늘로 한뜸한뜸 꿰매 입기를 바라는 시인 김승희의 영혼을 구원하는 산문집. 4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시인은 여자로서,딸로서,엄마로서 체험을 바탕으로 여성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꼬집는다.또 습작기의 꿈과 열정을 털어 놓는가 하면 「부패한 시대에 방부제찾기」에서 병든 사회에 가차없이 매스를 대기도 한다. 김승희의 글은 『잠자는 자신의 허벅지를 찌르는 뾰족한 칼끝을 느낄 것이다.시들고 야위어 가던 감성과 지성이 꼿꼿이 등뼈를 세우고 일어나 새벽나들이를 나갈것』이란 문학평론가 이어령의 평을 실감할 수 있다. 김승희지음 한양출판 6천5백원.
  • 순정파 시인 곽재구/기행 산문집 출간

    ◎「…사랑한…」/자요로운 여행 아름다움 노래 빼어난 서정과 아름다운 언어의 결합을 노래하는 우리시대 몇안되는 「순정파」시인 곽재구(39)가 「시끌벅적한 답사나 견학보다는 마음의 여행,정신의 여행을 원하는 친구들」을 위해 여행과 꿈,사랑과 예술의 아름다움을 진솔하게 기록한 기행산문집을 냈다. 한양출판이 기획한 「한양산문정신」의 첫번째권으로 나온 곽재구의 「내가 사랑한 사람,내가 사랑한 세상」은 「먼지와 소음에 뒤덮인 일상을 훌훌 떨치고 아무런 구애받음도 없이 산맥과 사막과 강물을 바람처럼 떠도는」자유로운 여행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그래서 그의 여행은 통념적인 「예술기행」이 아니라 「예술적인 것으로의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지리산과 하동을 거쳐 남해의 금산에 이르는 여행길에서 만난 「미조」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작은 포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미조포구에서의 짧은 하룻밤의 기록」에는 미조포구에 대한 여행단상보다는 알베르 카뮈의 「티파사에서의 혼례」와 이성복의 「남해금산」,노벨상을 탄 스페인시인 비센테 알레익산드레의 「마음의 역사」같은 주옥같은 수상과 시 그리고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심금을 울린다. 이밖에 섬진강과 청학동,신동엽과 금강,김환기의 고향,박인환의 시는 물론 이철수의 목판화전,한희원의 그림으로 기행은 자유롭게 펼쳐진다.「한양산문정신」은 곽재구에 이어 김승희,도종환,강은교,김영현,양귀자편으로 계속 엮어져 나올 예정이다.
  • 댁의 뜰엔 무궁화가 있습니까(박갑천칼럼)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우리 국가의 후렴이다.온나라가 무궁화로 덮여있고 덮여있어야 함을 상징한다.한데 이태준은 생각이 다르다.「진달래삼천리 화려강산」이라고 해야 옳다고 말한다.「상허문학독본」에 씌어있다.『우리민족과 가장 정분 깊은 꽃은 진달래』라는데서이다.이책이 나온 해가 19 46년인데 글은 그전에 써둔 것인지도 모른다.그 상허가 지금 살아있다면「벚꽃삼천리 화려강산」이라 해야겠냐면서 봄철에 한번쯤 호통을 쳤음직도 하다. 광복후「국화=무궁화」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조동화씨였다(한국일보19 56년 2월3·4일자).그는 무궁화가 전국토적인 꽃이 못되고 원산지도 인도라는 점을 지적한다.진딧물이 많은 위에 단명허세의 꽃이며 휴면기가 길어 모든꽃들이 눈을 뜨는 봄에도 잠에서 안깨는 게으른 꽃이라고도 말한다.또 꽃잎이 시들어 떨어지는 점은 화랑답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이글이 나간 며칠후 이민재씨가 동감한다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다(조선일보2월8일자).그는 이 글에서 나라꽃이라면 어느 모로 보나 진달래로 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한다.이태준과 뜻이 같은 셈이다.얼마 지난 다음 주요한씨도 그에 대한 글을 썼다(조선일보2월28·29일자).개인취미로 말하자면 진달래보다는 개나리 쪽이라면서 이 문제는 통일이 될때까지「연구하는 정도」로 접어두자는 내용이었다. 그와같은 논의를 새김질하게 하는 것이 나라꽃에 대한 오늘의 일반적 무관심이다.뜻있는 이들에 의해 사랑하기·많이심기가 외쳐지고는 있지만 그 메아리는 나라꽃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정도이다.개량종이 나와 진딧물도 없어지고 더욱 아름다워지기까지한 무궁화는 나라꽃으로서 손색이 없게 됐다.하건만 주변에 얼마나들 심어놓고 있는 것인지. 무엇보다도 겨레와의 역사성이 깊은꽃이다.중국사람들이 우리나라를 가리켜 근역(근역:무궁화의 땅)이라 했지만 우리 또한 그렇게 자칭도 했다.신라의 최치원이 당나라임금(광종)에게 보낸 국서속의『무궁화나라(근화향:신라를 가리킴)는 염양한데 고시국(고시국:발해)은…』(최문창휘문집권1)같은 구절도 그것이다.꽃잎속의 빨강심이 일편단심을 뜻하는 꽃 무궁화­일제침탈기의 수난으로 우리겨레와는 인연을 더 깊이한 꽃이기도 하다. 마침 무궁화가 피고지는 계절이다.탑골공원등 여기저기서는 전시회도 열려 들러보라고 손짓한다.엊그제 지방에 갔다 올라오면서 해본 생각이 있다.­고속도로변부터라도 나라꽃으로 온통 물들여봤으면….
  • “구타남편 처벌 특별법 제정 필요”

    ◎제3자 고발허용… 교정교육·형사처벌 포함/한림대 허남순교수 지적 「가정의 문제는 가정내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고방식과 「부부간의 문제는 제3자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는 사회문화적 배경으로 아내구타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않는 실정 이다.이때문에 우리사회에서는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이유없이 매를 맞으면서도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형편인데 가정내의 폭력을 다루는 특별법을 제정,형사법과는 별도의 처벌을 받게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돼 관심을 모은다.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허남순교수가 최근 발행된 비교사회복지논문집에 기고한 「아내구타에대한 대책 및 치료기법에관한 연구」에서 가정폭력을 일반 형사법으로 처벌하고 있는 현행법이란 사실상 아내가 구타하는 남편을 어렵게 고발한다해도 아내를 설득,무마시켜 일반 형사법에 해당하는만큼의 제재도 받지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특별법을 만들어 아내와 주위사람들이 구타하는 남편을 고발하거나 고소하는것을 쉽게하고 구타가 인지되는 경우 고발·고소없이도 경찰이나 관계기관에서 구타하는 남편을 소환,조사해 적절한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 구타하는 남편에대한 강제적인 상담 및 교정교육,혹은 부인에대한 상담과 필요한 경우 남편에대한 정신감정과 치료 및 벌금부과,보호관찰이나 집행유예등의 처벌이 부과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교수는 가정내 폭력을 다루는 특별법은 아내들을 보호하고 가정을 유지하도록 하는데 예방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보호적이고 치료적인 역할도 할 수 있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밝혔다.이와함께 남편이 아내나 아이들을 괴롭힌 것으로 생각되면 정식 판결이 나기전에 남편의 어떤 행위나 행동을 제재하는 임시판결을 내리는 제도도 필요하고 심한 경우엔 징역까지도 부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밖에 구타 당하는 여성을 보고도 남의 부부싸움은 강건너 불보듯 외면하는 우리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계몽,아내구타를 예방하고 구타의 악화를 방지하며 구타당한 아내들이 잠시라도 비밀스럽게 피신 할 수 있는 보호기능의 쉼터를 확대,설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젊은노인(외언내언)

    경남 고성군 회화면 동촌리.53가구 1백88명 가운데 60세이상 노인이 61명으로 전체의 3분의1에 이른다는 장수마을이다.70∼80대노인이 많아 60세정도는 담배도 제대로 못피울 정도로 「젊은오빠」신세라는 것.이같은 「동촌마을」현상은 지금이니까 화제로 되는거지 갈수록 일반화할 것이다.그만큼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있다. 환갑잔치라는건 거의 없어진 상태다.자녀들이 하자고 우겨도 본인들이 거절하는 세상이 되었다.대체로 10년후의 칠순잔치를 기약하면서 여행을 다녀오는 정도로 정착되어 나간다.대학교수들의 경우는 화갑기념논문집을 내면서 증정식을 가져오는 경향이지만 일부에서는 그에 대해서까지 못마땅해한다.정 그러려거든 5년후의 정년퇴임 기념논문집이 어떻겠느냐면서.하여간 60세는 「노인」축에 못끼는 세상으로 돼간다. 그렇건만 사회정책적 측면에서 보자면 60세는 노인이다.사실은 60도 안된 50대후반부터서 「정년퇴임」이라는 이름아래 노인으로 만들어 내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나는 「노인」이 아니라 「젊은오빠」다 하고 소리쳐봤자 메아리는 공허하다.「60세노인」은 사회정책이 새로운 일자리도 마련못해준 상황에서 옛일자리만 뺏겨버릴때 갑자기 70세를 느낀다.실제로 정년퇴임하고 나서 심신이 한꺼번에 버썩 늙어버린 사례들을 주변에서 보아오는것 아닌가. 지금 일본에서는 텔레비전 스타로 부상한 1백살 쌍동이할머니가 화제다.나리타 긴,가니에 긴이란 이름의 이 쌍동이할머니는 지난해 1천만엔정도 벌었고 올핸 5천만엔쯤 벌리라는 전망이다.그경우야 노인에의 일자리라기보다는 쇼맨십 아이디어의 산물이라고 함이 옳겠다.하지만 우리의 「노인아닌 60세」를 「노인60세」로 몰아가는 현실은 첫째 나라로 봐서도 「능력의 누수현상」이라 할수 없을 것인지. 엊그제 통계청이 발표한 「고령자실태분석」에 60세를 끼워넣은데 대해 입을 삐죽인 「젊은오빠」들이 있었을 법하다.내가 늙은이냐면서.
  • 박상우작 「나는 인간의 빙하기로…」(이작가 이작품)

    ◎인류멸망의 정신사적 궤적 탐구/소설의 논리구조 탈피… 마약 등 문명 비판/“2년동안 6번 실패 끝에 발표” 90년대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군의 선두주자중 한사람인 소설가 박상우씨(36)가 기호와 생경한 미래용어가 난무하는 문명비판소설 「블랙리포트;나는 인간의 빙하기로 간다」(세계사간)를 내놓았다.「지구인의 늦은 하오」「시인 마태오」에 이은 자신의 3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지난 91년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으로 60년대식 낭만주의의 부활을 노래한 작가의 「문학적 변신」이 담겨있다.그러나 작가 자신은 「변신」이 아니라 「주제의식의 확대」이며 「소설적 운동공간의 확충」이라고 말한다.등단때부터 한번쯤 쓰고 싶었던 글쓰기의 해갈이라는 것이다. 91년 가을부터 「한국문학」「현대문학」「작가세계」등 3개 문예지에 연작형식으로 각각 분재됐던 이 소설은 「분열적 소설공법」이라는 소설형식을 취하고 있다.낯선 이 용어는 세계의 가시적 분열상을 최대한으로 수용하기위해 소설의 논리구조를 의도적으로 파괴한 작가특유의 창작그릇이다.연작발표 당시 이 작품에는 『재래식 소설형식을 그대로 둔채 그 골격을 해체하는 실험』『소설개념에 대한 또 하나의 도전』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평이 뒤따랐다.그러나 작가자신은 『형식및 내용이 미흡하다』며 집필을 중단했었다.이후 2년동안 6번의 실패를 거듭한끝에 첫발표 당시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장편으로 태어났다. 이 소설은 본문에 들어가기전 일러두기를 통해 「독서의 영향으로 경미한 두통과 미열,혹은 구토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통지하고 있다.90년대말쯤에야 발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작가의 조심스러움 내지는 아직은 우리 독서풍토가 이런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자가진단때문으로 보인다. 소설은 수미상응형식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사용,전체를 미래소설로 전환시키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본문은 「사막,111통제구역」∼「사막,000사각지대」까지 10개 부문으로 나뉜다. 서기30 30년 빙하에서 19 00년대의 사막유적을 탐사하던중에 특이한 문어문집 즉「블랙리포트」를발견한다.「논리의 끝에서 내가 만난건 분열뿐이었다…」는 서두로 시작되는 이 리포트는 혼돈의 현시대를 의미하는 사막을 횡단하던 주인공이 10개의 각 통제구역에서 마주친 정치,폭력,범죄,섹스,포르노,테러,마약,종교등 위기의 문명구조가 야기하는 다양한 광기의 파편이 구토를 동반할만큼 리얼하게 그려져 있다.서기 30 30년 미래세계에 의해 「인류멸망의 정신사적 궤적을 조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 이 리포트는 사막이 끝나는 곳에 있는 빙하가 희망이나 구원이 아닌 멸절의 각성을 의미한다는 역설로 끝맺는다. 박씨는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동두천등 군부대주변에서 보냈다.춘천고와 중앙대 문창과를 나와 강원도 인제와 태백에서 교편을 잡았다.88년 중편 「스러지지 않는 빛」이 문예중앙에 당선돼 등단했다.요즘은 경기도 미금시 연립주택 지하에 작은 방 하나를 빌려 창작작업중이다. 『이 작품에 대해 평단이나 독자들은 어떠한 심판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결과에 연연치 않겠습니다.평에 관계없이 내가 가장 아끼는 소중한작품으로 남을 것입니다』
  • 족보실/이경표 국립중앙도서관(굄돌)

    국립중앙도서관 「고전운영실」.이방은 이름만 들어서는 생소하지만 그 이름대로 퀴퀴한 냄새나는 그러나 옛 우리조상들의 얼이 서려있는 방이다. 조선시대 최초 금속활자로 찍은 국보급 자료를 비롯,옛 희귀 귀중도서와 선현들의 문집,그리고 집안족보(주보)등 20여만책이 이 방에 소장되어 있다. 그중 인기를 가장 많이 끄는 자료는 아무래도 족보이며 2만여책 2백80여 문중이 망라돼 있으니 내로라하는 문중이 진열된 셈이다. 족보는 중국 한나라 때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이래로 소규모의 필사된 계보가 작성되어 왔으며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의미의 족보는 조선시대 들어와서야 비로소 출현하였다 한다. 기록에 의하면 세종 5년(1423년)에 간행된 문화유씨의 영락보가 최초의 족보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족보로는 1476년에 발간된 안동권씨세보인 성화보이며 1562년에 간행된 문화유씨의 두번째 족보인 가정보도 전해지고 있다. 펼쳐보면 어려운 한자만 가득한 족보는 골치아프고 재미없는 구세대의 유물로 비춰질지 모르지만그러나 족보가 단순히 가계의 기록만이 아니라 종중의 단합과 사회적 통합의 기능을 지닌다고 할때 그것은 오늘날에도 존재의의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족보실 이용자는 주로 나이드신 분들이지만 얼마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렸던 어린이 책잔치에 참가한 아동들이 족보실을 열람하고서는 족보에 대해 대단한 호기심을 보였는데 이는 조상들이 간직하셨던 족보에 대한 외경심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현장을 보는듯하여 매우 흐뭇하였다. 그러나 족보뿐 아니라 희귀도서가 아무리 인기가 있다해도 제대로 보존이 이루어지지 않고 예산때문에 너덜너덜 훼손되어 사라져간다면 그 역사적 죄과는 어찌 보응할 것인가.
  • 쉽게 등돌리는 염량세태라(박갑천칼럼)

    염량세태라 했던가.어느자리에서 그게 화제에 오른다.사정의 회오리속에 권세높던 사람들이 우수수 지는 것 못지않게 세상의 얄팍한 마음자리들이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는 개탄이었다.어떤 특정인이 비록 뭇사람의 지탄을 받는다 하더라도 거기 함께 끼지않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그 특정인과 교분이 남달랐거나 은혜를 입었거나 한사람의 경우가 그것이다.옳고 그르고에 앞서 인정이라는게 있어서 아름다운 이승살이가 아니던가. 한데,시속은 역시 그렇지가 못하다.특정인이 권좌에 있을 때 뒤뿔치던 처지임을 남들이 다 아는데도 등돌려 그를 타매하는데 남보다 한술 더뜨는 경우가 적지않다.혹시라도 언걸먹을까 저어하여 방패치는 호신술이랄 수도 있다.옛날에도 그랬듯이 오늘에도 그런다.앞으로라해서 지워진다 할수없는 세상살이의 측면 아닐는지. 이같은 인정의 기미속에서 모재 김안국(모재)의 행적하나를 떠올려보게 된다.옥사를 자주 일으켜 역사에 오명을 남기는 퇴재 김안로(퇴재)와 그가 친하게 지낸일은 모재의 아우 김정국이 쓴「사재척언」에도 나타난다.모재는 김안로가 하는 짓이 못마땅하여 매양 책망한다.김안로도 모재의 충언에는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김안로가 정권을 잡자 맨먼저 모재·사재형제를 조정으로 불러들인다.김안로가 어느날 모재의 집에 와서 자는데 충고하는 모재의 말이 너무 과격한지라 옆에 누웠던 아우가 발로차 경계했을 정도다.권세뺏긴 김안로가 사사되었을 때 모재는 아우에게 말한다.『안로가 간사하다는걸 난들 왜 모르겠나마는 우리형제가 이미 그와 깊이 사귀었으니 그의 단점을 말하진 말자』.그러고서 김안로의 가족 돌보는 걸 잊지않았다.허균의 시문집 「성소부부고」(23권설부)등에 적혀 내려오는 일화이다.살았을 때 충고했고 죽은 다음에까지 베푼 한결 같은 마음씀에서 김안국의 인품은 빛난다고 하겠다. 사람마다 장단점은 있다.악명높은 김안로였지만 취할점이 있었기에 모재형제와 교분을 나누었다 할 것이다.그래서「논어」(논어:위령공편)에는「중악필찰 중호필찰」이라는 가르침이 있다.여러사람이 나쁘다면서 미워하거나 좋다면서 칭찬하거나간에 잘 살피라는뜻이다.세평(세평)이라는 것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함축에 묘미가 어린다. 남들이 미워한다 하여 나까지 덩달아 미워해버릴수 없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김안국이 김안로를 몰라서 등 안돌린건 아니었다.어쩌면 등돌리면서 자기에게 느낄 실망이 더 두려웠던 것이라 할수도있다.
  • 화엄 변상도/해인사 소장/첫 목판화 도록 출간

    ◎현대 목판화회,발표전도 개최/“판화 역사 고려까지 확대 단서” 판화가 김상구씨가 이끄는 현대목판화회는 최근 해인사 소장 「80 화엄변상도」탁본을 전부 목판화로 만들어 이를 도록으로 출판하는 한편 5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현대백화점미술관(552­22 33)에서 발표전도 갖는다. 약 1천년전 당나라의 80권 화엄경을 목판에 새긴 「80 화엄변상도」는 그동안 논문집등에 부분적으로 소개됐을뿐 전부가 선명하게 인쇄돼 도록으로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80 화엄변상도」는 절에서 화승(판화의 밑그림을 그리는 스님)과 각승(목판에 각을 새기는 스님)들에 의해 화엄경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그동안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던 우리나라 목판화를 고려시대까지 넓히는 주요 단서가 된다. 각 목판화의 크기는 58×23㎝. 성도의 환희에서 오는 초현실적 신비감과 상서로움을 환상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변상도에는 조선시대 목판화에서 보기 힘든 음각법도 더러 사용되는등 판각과 화면구성에서 조선시대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있다. 화면 전체는 부드럽고 신비로우면서도 힘과 섬세함이 교차하는 정교한 솜씨가 구석구석 배어 있으며 부분 부분에서 순수한 고려시대의 회화표현 양식도찾아볼 수 있다. 김상구씨는 『신세대 판화학도들에게 우리의 뿌리를 보고 느껴 판화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의도에서 이번에 80 화엄변상도를 도록으로 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 제1회공초문학상/이형기씨 선정/서울신문사주최 공초선생 숭모회 주관

    ◎5일 30주기 맞아 성대한 추모행사/“초윤리의 사상가·시를 체험한 시인”평/후배문인들 91년 기금1억 마련 근대 신시운동의 선구자이자 자신이 즐겨 피우던 담배연기처럼 살다간 기인 공초 오상순시인(1894∼1963)이 우리곁을 떠난지 5일로 30주기를 맡는다.올해는 또 선생의 탄생 99돌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서울신문사와 공초오상순선생숭모회(회장 구상)는 선생의 설흔번째 기일을 맞아 3일 상오11시 문인·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수유리 빨래골 묘소에서 기제를 올린다.이와함께 하오4시부터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올해 처음 제정한 「공초문학상」시상식을 개최한다.제1회 수상자로는 이형기시인이 선정됐다. 이어 열릴 추모행사에서는 수상자인 이형기시인이 「공초의 시와 공사상」이란 공초론을 발표하며 시인 이원섭씨(숭모회 부회장)가 「공초의 생애와 사상」강연등 성대한 행사를 치를계획이다. □공초문학상제정배경및 취지 「공초문학상」은 지난91년 10월 공초선생의 제자인 구상숭모회회장 주도로 서울갤러리에서열린 「공초문학상기금마련 희사작품전」의 수익금으로 제정됐다.숭모회측은 구상·박두진·서정주·조병화·설창수·홍윤숙씨등 문인들과 화가 김기창·김영주·박고석·이대원씨등 모두 1백5명이 내놓은 자작친필과 소장품 1백32점을 팔아 모은 기금 1억1천5백만원을 지난4월 서울신문사에 기탁해 온 것이다. 이에따라 「공초문학상」은 서울신문사 주관으로 매년 시부문 1명을 시상하며 시상대상자는 20년이상의 문단경력을 가진 작가로 작품의 우수성뿐만아니라 수상자의 인품을 고려하는등의 운영규정을 정했으며 매년 6월중 시상식을 갖게 된다. □공초의 생애와 사상 오상순은 1894년 8월9일 서울 시구문안(지금의 장충동2가)에서 태어났다.비교적 개방적인 중산층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경신학교를 거쳐 19세에 일본유학길에 올라 경도의 동지사대학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한 인텔리였다. 1920년 변영노·남궁진·김억·염상섭과 함께 한국신시운동의 선구가 된 동인지 「폐허」의 창간동인이 되었다. 「허무혼의 선언」「아시아의 마지막 밤풍경」등 명시를이때 발표했다. 청춘기의 공초는 만년의 트레이드마크인 빡빡깎은 머리와는 달리 길게 드리운 올백머리의 멋쟁이 청년이었다.그는 40대에 대구에서 연하의 과부와 잠시 동거생활을 한 이외에는 평소 지론이던 독신주의를 지켰다. 그는 살아생전 혈육한점,머물 지상의 집한칸,시집 한권 내지 않았다.공간을 초월,시간속에 영원히 산다고 해서 「공초」라 했던가.그득한 담배연기속에 묻혀 살았다고 「꽁초」라고 불리었던가.그의 삶은 세속을 떠난 성자의 그것이었다. 6·25를 전후해 서울 푸라워,대구 아리스,부산 금강,서울 명동 청동,서라벌등 다방을 무대로 문학을 교리처럼 설파한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며 신화다.그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담배불을 꺼뜨리지 않았다.제자의 결혼식 주례에서도,세수할때도 담배는 항상 손에 있었다.하루평균 1백80개비(20개들이 9갑)를 연기로 만들었다.다방에서 제자들에 둘러싸여 「청동산맥」이라는 서명첩을 내놓고 「연기는 사라져 어디로 가나」같은 선문답문제를 내 제자나 방문객들이 나름대로의 단상을 적은 「청동문집」1백98권이 그가 남긴 유일한 재산이다. 무일푼,무소유로 일관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예술원종신회원,예술원상,서울시문화상등 상복이 따랐다.1963년 6월3일 노환으로 입원한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제자들의 간호를 받으며 운명했다.그는 무교리의 종교가,초윤리의 사상가,시를 몸소 체험한 유일한 시인이었다.
  • 의병장 김성일선생 논문집 발간/순국 4백주년 맞아 「학봉…」재조명

    임진왜란 당시의 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학봉 김성일선생(1538∼1593)을 재조명하는 논문집 「학봉의 학문과 구국활동」이 나왔다.이 논문집은 학봉선생의 순국 4백주년을 맞아 「학봉김선생기념사업회」(회장 김홍식)가 주관해 발간한 것. 학봉선생은 임진왜란 직전인 15 90년 통신부사로 일본에 갔다온뒤 『왜가 반드시 침입할 것』이라는 정사 황윤길과는 달리 민심을 우려해 『왜가 군사를 일으킬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 바로 그 인물.이 논문집에는 통신사로 파견됐던 당시 학봉선생의 민족의 기개를 지키려던 노력과 난이 일어난뒤 의병으로 종군하다 순국한 구국정신,퇴계선생 문하의 학자로 남긴 업적을 정리해 그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바로잡고자 했다. 이 논문집에는 이우성의 「학봉전집의 일고찰」과 이재호의 「경상우도에서의 학봉의 토적구국활동」,송재소의 「학봉의 의리정신과 기행시에 나타난 검의 이미지」 등 중진학자의 논문 15편이 실려있다.여강출판사간.
  • 연극인 강계식씨(이세기의 인물탐구:26)

    ◎“무대를 신앙으로” 외길인생 50년/열과 성으로 완벽하게 배역 소화 “관객 매료”/“40∼50년대 최고 명우” 「춘향전」 등서 불꽃연기/진실일념으로 삶 일관… 고 이해랑씨 “진정한 연기자” 칭송 햄릿이나 위대한 줄리어스 시저는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관객의 감동과 갈채를 한몸에 받는다.하나의 연극에서 주역으로 발탁된 이들은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며 자신의 기량을 활기차게 펼친다.관객은 그때마다 환호하며 주인공의 희비에 침몰하듯 매료된다.그때도 이를 희생적으로 뒷받침하는 단역배우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그들은 있는듯 없는듯 미미하게 존재할 뿐,모든 영광과 기쁨은 주인공의 차지다. 원로 연극배우 강계식씨의 연극인생은 언제부턴가 단역에 머물러있다.흥분한 어조로 「정의」와 「불의」에 대하여 「사랑」과 「미움」에 대하여 열렬히 외치는 극중 주인공은 이미 아니다. 역할이 크든 작든 대사가 짧든 길든 한마디의 대사가 없을 때라도 그의 역할은 작품전체를 구성한다는 사명감에 투철하다.따라서 어떤 배역이 돌아와도 그 역할에 완벽하게 용해되어 한낱 연기가 아닌 무대의 한 모습처럼 형형하게 서있다.그리고 확실한 목소리와 움직임과 형상을 보여준다.그의 나이에서는 연극속의 각 배역과 그 배역들이 하나같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섬세하게 보조하는 위치다. 어차피 하나의 역할은 무대에서 창조될 뿐 현란한 조명과 불꽃같은 연기는 폐막과 함께 속절없이 소멸된다.주역의 영광도 단역의 비감도 일순간에 지나지 않아 또다른 다음 역할을 위해 새로운 삶속에 곤두박질치듯 파고들어야 한다. ○자신의 역할 예감 연극에 몸담은지 50년이 넘었건만 강계식씨는 지금도 첫무대에 서는 듯한 긴장과 설레임을 떨치지 못한다.무대는 그에게 있어 고통이자 환희다.삶이자 희망이며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다. 대본을 받아든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역할을 귀신처럼 예감한다.그것이 누구의 작품이며 연출자가 누구냐에 따라 인물이 갖는 사회적 시대적 환경과 성격,인품과 직업,체질과 용모를 몸속에 형성한다. 동네노인으로 나와 서성거리는 역에 불과할 때도 자신의 움직임이 어떤 모양새로 연극을 바쳐주느냐.연극의 흐름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를 자연스럽게 몸짓해준다.번뜩이는 열기와 광기,돋보이는 개성을 어필시킬 기회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다만 다른 연기자의 대사와 동작을 효과적으로 살려내고 대사와 대사사이,동작과 동작사이의 침묵을 묵시적인 연기로 다음 장면에 연결시킨다.그에게 있어서의 연극은 「신앙이자 종교」다.역할을 맡을 때마다 「내 생애 최고의 역할」로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연습시간에도 언제나 남보다 일찍 나온다.두시간 공연에서 맨 마지막 장면의 한 동작을 위해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극의 흐름에 호흡을 맞추고 있다.무대를 떠나지 않는 그를 가리켜 연출가 오사양씨는 「선생이 창출하는 역은 항상 진실과 신뢰가 뒤따르고 높은 격조와 깊은 함축을 시사하고 있다」고 존경해 마지않았다.그의 연극초기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함께 해왔던 고 이해랑씨는 「작은 역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몰두하는 진정한 연기자」가 있음을 언제나 자랑삼았다.그리고 「그의 나이와 그의 성격에 맞는 역할로 그의 노년을 빛내주고 싶다」고 별러왔으나 숙제를 마치지 못하고 먼저 길을 떠났다. 물론 그는 처음부터 조역·단역배우는 아니었다.40년대와 50년대 우리 연극사에서 그는 단연 뛰어난 주역배우의 한사람이었다. ○토월회극 보고 꿈꿔 특히 유치진작 서항석연출의 「춘향전」에서의 이도령은 유치진씨가 살아생전에 「40년대 강계식의 춘향전은 지금까지 최고」였다고 손꼽던 무대다.그는 당대 명우였던 유계선 김양춘을 상대로 수차례의 「춘향전」앙코르 무대를 탄생시켰고 당시의 극단 현대극장 극단 민예와 청포도·신지극사·신청년·창조·상록극회에 이르기까지 각 극단의 간판배우로서 관객을 매료했다. 강계식씨가 연극을 하게된건 보통학교시절 고향인 충남 온양에 지방공연왔던 토월회의 연극 「디아블로」를 보고나서다.삭막하고 쓸쓸한 어둠을 가슴속에 뿌렸던 이 연극을 보고 그는 막연히 연극의 주인공이었던 이백수같은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 후에 서울로 올라와 경성실천상업학교에 다닐때도 연극구경에 미쳐있었고 북경에 있는 일인회사에 다니다가 연극을 포기할수없어 39년에 귀국,같은해 유치진 함대훈 이해랑씨가 주축이 된 극단 현대극장의 부설 연기자 양성소인 국민연극연구소에 들어갔다.3백명의 응시자중 10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본격적인 연기수업 받는동안에는 꿈에 그리던 토월회의 이백수씨와 「흑룡강」을 공연,연구소 수료후 41년 유치진작 서항석 연출의 「대추나무」에서 주인공인 「동욱」역을 맡아 부민관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그때 광화문 네거리까지 길게 늘어섰던 구경꾼의 행렬은 지금 생각해도 잊을수없는 감격이다.충청도 양반다운 예절과 겸손이 몸에 밴 그는 말과 행동이 한결같이 의연하여 연출자·선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모든 공연에서는 주인공을 도맡았다.남부럽지않은 주인공시대를 마음껏 누린 황금기였다. 그러나 50년 극단 창조를 창립하고 「황진이」지방공연중 6·25를 만나 가족을 고향에 남겨둔채 부산으로 피란,피란지에서 영화배우 조미령의 남편인 이철혁을 비롯,변기종 김승호 최남현과 함께 박동근 연출의 중국고전인 「추해당」공연을 갖기도 했다.주인공엔 그와 유계선이 캐스팅됐다. ○전례없는 흥행 기록 다른 사람들은 단칸방이나 판잣집이라도 제집이 있었지만 그는 국제시장이나 남성여고 교실에서 합숙으로 새우잠을 자던 때여서 도무지 연극연습을 할수가 없었다.그는 몸이 달아 뜬눈으로 밤을 밝혀야했다.공연이 임박하자 이를 보다못한 유계선씨가 연출자에게 『연극을 살리기위해선 배역을 바꿀수밖에 없다』고 제의했다.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말에 눈앞이 아찔했다.배우가 배역을 뺏긴다는 건 바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단한번도 선배들을 거역해본적이 없던 그는 「죽을 결심」으로 연출자인 이철혁씨를 찾아갔다. 『개런티는 안줘도 좋다.연습할수있는 방만 해결해달라.나는 죽어도 이 연극을 해내고야 말겠다』고 사정했다.이렇게해서 남포동 해변가에 하숙방을 얻어 1주일을 앞두고 동작연습 대사연습에 들어갔다.이 연극은 부산극장에서 상연되어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했고 사람들은 『그의 진실한 몸짓은 바위라도 뚫을수 있다』고 호평해주었다.자존심을 굽힌것이 결국자존심을 지킨 결과임을 경험한 순간이다. 그는 충분한 연습으로인해 무대에서 실수한 적은 없다.동랑청소년극단의 「방황하는 별들」에서 손주뻘의 어린 연기자들과 공연할때도 충실하게 자신의 할바를 지키면서 미숙한 연기자들을 말없이 감싸주었다.「일체의 영합을 배격하며 연극의 공리적 속념을 거부하고 진실일념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은 것이다. 인생을 관조하는 노년의 노련미와 진실의 모순속에 방황하는 지성인,삶의 무게가 힘겹게 느껴지는 스산한 서민층,숱한 인생을 재현하고 체험하면서,그가 연극에서 확인한것은 인생은 「무상」이며 「고통이 할퀴고 간 사랑이라야만 진실하다」는 진리다.그리고 『언제 어느장소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있건 그것은 그에게 있어선 연극을 위한 터득이었으며 연극은 그의 인생을 터득케해준 바로미터였음을 술회한 바 있다. 그는 극단 현대극장시절의 동료였던 이용남여사(68)와의 사이에 4남3녀. 『7남매의 등록금을 대느라고 돈도 많이 꾸러다녔고 울기도 많이 했다』『세 아이가 한꺼번에 대학에 다닐 때는 다른아이는 시험에서 떨어져으면 한적도 있으나』7남매가 모두 대학에 합격하여 장남(희열씨·47)은 서울대공대 졸업후 현재 미국 컴퓨터회사에 근무,6남매가 모두 출가하고 지금은 노부부가 이대미대를 졸업한 막내딸과 도봉동아파트에 살고있다. ○“연극인생 후회없어” 주역의 뒷자리,그의 생애가 헤아릴수 없는 시련과 고통 가난의 슬픔으로 얼룩졌다해도 그는 결코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는다.황금이 정신을 지배하는 시대에서 그의 연극은 황폐한 인간사이에 구원의 빛을 뿌리고 있음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이제 더이상 자기자신이 적나라한 정오의 햇살이 아님을 그는 알고있다. 『이로스야!이 갑옷을 좀 벗겨다오.하루일이 끝났다』연극 시저에서의 마지막 대사처럼 어느날 그도 무대위에서 연극의상을 벗게 될지 모른다. 오로지 정직하게 천직을 지켜온 이 노 예술가의 가슴은 값지고 아름다운 금빛훈장으로 현란하게 장식되어도 다하지 못할것 같다. □연보 ▲1917년 4월21일 충남 온양출생(호 화방) ▲1937년 경성 실천상업학교 졸업 ▲1938년 지방 관리 양성소 수료 ▲1940년 극단 현대극장부설 국민 연극연구소수료(연수기간중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순정해협」「흑룡강」 함세덕작 허집연출 「전설」출연) ▲1941년 극단 현대 극장입단 유치진작 서항석연출 「대추나무」 정식대뷔,지방공연외 「청춘」「봉선화」「맴도는 남편」「춘향전」「에밀레종」「산적」「낙화암」「무장선샤먼호」외 ▲1945년 극작가 이광래와 극단 민예 극장 창단 「카츄샤」「젊은그들」「민족의 전야」「백일홍 피는집」「동학군」「피는 물보다진하다」「피어린 역사」「지옥과인생」외 ▲1946년 연출·극작가 이상백등과 극단 청포도 창단,「초원의 발전」 ▲1947년 극단 신지극사 창단 「태양의 그리워」「언덕에 꽃은피고」 ▲1947년 중앙극장 전속극단,극단 신청년 창단 「오남매」「혈맥」「사랑의 가족」「상해야화」「골든보이」「어머니와아들」「여죄수의 고백」「공작부인」「송화강의 애수」「반역자」「사육신」외 ▲1950년 극단 창조극단 창단「황진이」지방공연중 6·25 ▲1951년 상록 극회창단 ▲1953년 극단 신협 창단멤버입단 「빌헬름텔」「햄릿」「오델로」「맥베드」「줄리어스 시저」「붉은장갑」「마의태자」「원술랑」「맹진사댁경사」「나도 인간이 되련다」「한강은 흐른다」외 ▲1957년 국립극단입단 「인생차압」「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족」「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대수양」「카라마조프의 형제들」「성웅 이순신」「죄와벌」「손탁호텔」「마을의 봉팔이」「순교자」 80년대까지 70여편 ▲1980년∼현재 극단 배우극장 소속 「천일의 앤」「정복되지 않는여자」「분노의 계절」「신장한몽」「어머니」외 「그래도 우리는 볍씨를 뿌린다」「이대감 망할대감」「붉은 카네이션」「밤주막」「출세기」등 타극단 공연 참가 ▲1986년 고희기념공연 윤정선작 주요철 연출「나는 어이 돌이되지 못하고」 등 2백여편 1946년부터 영화 「청춘의 행로」「쌍룡검」외 TV드라마등 1백여편. ▲국립극단 부단장·총무역임. 86,동아연극상 특별공로상 87,백상연극상 특별상 92,문화훈장 옥관장 서훈·고희기념문집 발간
  • 조선시대 희귀문집/1천8백여권 도난

    【협천】 경남 합천군 묘산면 팔심리 칠원 윤씨 재실인 「동산재」(경남도 지정 문화재 자료 123호)에 보관중이던 조선시대 문집 2천8백여권 가운데 1천8백여권이 지난달 29일 도난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3일 이 재실 관리인 윤종홍씨(40)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자신의 어머니 조종두씨(70)가 재실청소를 하기위해 「동산재」에 갔다가 재실뒷문이 찢겨있고 보관중이던 문집 1천8백여권이 없어진 사실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 시·소설서 작가연구까지/러시아 문학서 발간 활발

    ◎90년 수교후 「러시아알기」 노력의 하나/슬라브학회,푸슈킨·고골리 논문집 출판/아나톨리김 등 한인작가 작품집 「아버지」도 번역 러시아 문학서 발간이 활기를 띠고 있다.이같은 움직임은 수교 이후 러시아와의 이해관계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각 분야에 요구되고 있는 「러시아를 알기위한 노력」을 문학이 선도한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발간된 러시아 문학서의 특징은 과거에 비해 연구의 심도가 크게 깊어진데다 소개되는 장르 또한 다변화되고 있다.「러시아 문학의 이해­푸슈킨과 고골리」(민음사)와 「러시아 시 강의」(열린책들)가 깊이를 더한 연구서라면 「아버지­러시아 한인작가들의 소설모음」(백의)과 「러시아 해학별곡」(열린책들)은 장르의 폭이 넓어진 경우이다. 이처럼 과거에 비해 한 차원 진전된 러시아 문학서들이 이 시기에 속속 출간되고 있는 것은 러시아와의 수교 시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러시아 문학 연구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90년10월 우리나라가 옛소련과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맺기 전까지 만해도일반인들에게 러시아 문학이란 영화로까지 소개된 제정 러시아시대의 잘 알려진 몇편의 소설과 시,기껏해야 노벨상수상작 정도에 국한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이같은 상황에서 수교는 러시아 문학 연구가들에게 실체에 대한 접근을 의미했던 것이다.문학외적으로는 러시아 한인문제와 경제교류 등 실질적 이해관계의 폭도 급격하게 늘어났다.러시아를 알아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여건도 성숙했던 셈이다.이런 배경에 따라 러시아 문학에 따른 새로운 접근이 이루어졌고 그 성과가 이제 활자화되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문학의 이해」는 한국슬라브학회가 지난 90년과 91년에 러시아의 학자들을 초청해 연 「푸슈킨심포지엄」과 「고골리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논문을 모은 책이다.슬라브학회는 86년부터 심포지엄을 열어 「러시아연구」「소련과 러시아」등 논문집을 낸 바 있다.수교 이후 연구가 총론에서 각론으로 바뀐 것이다.「러시아 시 강의」(조주관 편)도 수교 이후 입수된 러시아 시에 대한 정보가 최대한 반영된 러시아 시 개론서이다. 「아버지」는 아나톨리김과 헨리에타강,한진,알렉산드르강,미하일박 등 러시아에 사는 한인작가들이 러시아어로 쓴 작품집이다.이들은 19 37년 옛소련 당국에 의해 카자흐스탄 및 중앙아시아로 이주당한 후손들이다.이들에 대한 러시아당국의 사과와 보상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내전 상황으로 또다른 고비를 맞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러시아 해학별곡」(서정범 편역)은 러시아의 민속학자 알렉산드르 아파나셰프가 채록한 민담집이다.이 책은 러시아 민중의 질박한 이야기를 거침없는 어휘로 생동감있게 구사하고 있다.여기서 엿보이는 러시아인의 심성은 지금까지 러시아 역사가 필연이었음을 짐작케할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대처방향까지 제시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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