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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 강은교씨 산문집 「허무수첩」 발간

    ◎깊고 은은한 언어로 엮은 내면세계/「고독의 방…」·「내면의 방…」등 3부로 이뤄져 좋은 시인을 알아보려면 그 산문을 보라는 말이 있다.시인 강은교씨가 최근 산문집 「허무수첩」(예전사)을 펴내 특유의 깊고 은은한 언어를 오랜만에 세상에 내보낸다. 『요즘처럼 시집이 홍수를 이루는 때 저까지 가세하는 게 어쩐지 언어공해일 것 같았어요』 시인은 지난 92년 시집 「벽속의 편지」(창작과 비평사)이후 뜸했던 근황을 이같이 설명하지만 그간 그의 시가 보여준 강렬한 실존의식은 우리 시에 흔치 않은 것으로 평가돼왔다.삶을 뻥 뚫어놓는 듯한 허무감과 존재의 고독,신과 영원에 대한 불가항력의 이끌림 같은 것들이 다른 어떤 시인과도 비교못하리 만큼 웅숭깊게 드리워졌던 것.이같은 내면세계는 이번 산문집에도 그대로 옮겨와 있다. 3부로 나눠진 산문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내 시의 방의 풍경들」이라 이름붙은 2부.여기서 시인은 시 한편,글 하나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아름답고 시적인 특유의 언어로 털어놓고 있다. 그밖에 1부「고독의 방에서」에는 삶의 세목들에서 끄집어낸 철학적 단상이,3부 「현재적 방에서」는 작가의 지난 추억과 요즘 세태에 대한 시인다운 촌평이 주로 실렸다. 『전문독자만을 위한 교과서,난해한 이론이 아닌 문학에 관한 아름다운 에세이를 써보고 싶었는데 만만치 않더군요』 신작시집(창비)을 비롯,장편동화 「하늘이의 모험」(한양출판사) 등이 발간돼 올 한해는 조금 바빠질 것 같다고 강씨는 말했다.
  • 영원한 의병장 의암 유인석(압록강 2천리:20)

    ◎을미항일투쟁 실패 후 보달원에 은거/제천서 궐기… 한때 원주·단양일대 석권/청·러시아 방해로 의병활동 재기 좌절/한족들이 기념비·허묘세워 충절의 넋기려 요령성 관전현일대에는 19세기말부터 조산팔도의 의병들이 몰려들었다.이른바 서간도로 불리는 이 압록강유역은 일찍 항일의병은 동의 요람을 이루었다.그 지도자는 의암 유인석(1842∼1915)이었는데,1896년에는 압록강을 건너 관전현 땅을 밟았다.1895년의 을미의병운동이 국내에서 실패하자 부득이 서간도로 들어온 것이다. ○작년 정부서 건립 그가 오래도록 살았다는 관전현 보달원은 이름그대로 가는 길이 멀었다.관전현 현성에서 80㎞나 되었으니,걸어가자면 먼 길이었을 것이다.지금도 승용차로 4시간이 걸린다.막상 보달원에 도착하고 나서 그가 숙영지로 삼았다는 고령지를 찾아가는 길은 더욱 멀었다.자동차로 고개를 넘어 혼하를 건넌 뒤 환인현 사첨자향으로 들어가 또 강을 따라 올라갔다.그리고나서 나루터에서 배를 탔다. 천신만고 끝에 고령지에 도착했다.유인석선생이 인솔한 의병들이 처음 자리를 붙이고 가솔들을 데려와 살았다는 고려구 골짜기가 동쪽 먼 발치로 보였다.의암 유인석선생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해 마을사람들을 따라 좁은 골짜기를 한참 올라갔을때 평평한 산언덕이 나왔다.거기서 천연의 바위를 기석으로 삼아 세운 의암기념비를 만났다.지난해 95년 5월 관전현 현정부에서 세운 이 비석은 너비 1m,높이 70㎝로 그리 크지는 않았다. 유인석선생은 본래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지만 18 95년 학맥을 따라 충북 제천 장담으로 거처를 옮겨 활약한 조선의 거유다.18 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그해 을미년 12월24일 제천에서 3천의병을 일으킨 그는 한때 제천·충주·원주·단양지역을 석권했다.그러나 관군에 밀려 서북지방인 황해도·평안도로 이동했다.서북지방에서 재기활동도 결국 실패하고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숨어든 곳이 만주땅 서간도에 해당하는 요녕성 관전현 보달원이었다. 유인석선생과 보달원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그의 의병부대가 환인현 현재 서본우에 의해 무장해제를 당한 이후 오랜 유랑과망명생활을 하고 다시 돌아온 곳이 부달현이었기 때문이다.의병운동이 청국정부와 러시아정부의 방해로 좌절되자 보달원 방취동에 물러앉아 있었던 것이다.의병활동의 기회를 눈여겨보면서 저술활동에 전념한 그는 방취동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춘천 태생 조선의 묘비 그가 말년을 살았던 방취동은 비석이 서 있는 자리에서 서쪽으로 2∼3㎞정도 떨어졌다.지금은 인가가 없고 인적도 끊겼는데,그가 「우주문답」을 저술했다는 산굴과 집터만이 남아있었다.그리고 보달원 사람들이 아직도 유인석묘소로 고집하는 무덤 하나가 자리잡았다.19 30년대 유인석선생의 증손이 유해를 고향땅 강원도 춘천으로 이장했는데 무덤이라니….당시 후손이나 독립운동가들이 여기 살아 잘못 옮겨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보달원의 한족들이 유인석선생의 허묘를 실제의 묘소로 우기는 까닭을 늦게야 터득했다.허묘를 모를까 만은 그를 오래 우러러 추모하기 위한 고집이라는 것을….평안도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도의 아내 최씨가 일본 영사관원에 능욕을 당하고 자결했을 때 그가 글을 지어서 써 준 묘비까지 문물(문화재)로 지정할 정도였다.그 묘비 「조선열부해주최씨표적비」는 지금 환인현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지난해 6월29일 관전현 조선족문화교류협회에서는 유인석학술사상연구소를 세웠다.평북 벽동군 태생인 최신화(67)선생을 소장으로 한 이 연구소에는 13명의 연구원을 두었다.그리고 유인석선생의 사촌형 유홍석선생 증손이자,현재 한국광복회 강원도지부장인 유연익씨가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다.이밖에 관전현 역사지명지판공실 상진생주임과 같은 한족 학자들도 연구소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유인석사상학술연구소는 중국 당대 역사상 첫 한국인 대상의 연구기관이다.연구소는 관전현을 중심으로 한 압록강유역에 남아있을 유인석선생 반일활동사료를 발굴하고 있다.그러나 연구에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그의 문집을 아직 입수하지 못했다.그래서 연구소장 최신화선생은 그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았다. 『유인석선생의 필적과 주석하셨던 고장은 국가 문물이 되었습니다.그런데 문집은 우리가 못 구했디요.선생께서 별세하신 뒤 문하생들이 문집을 정리해서 상해임시정부에 보냈다고 기래요.어떤 경로를 통해 그리 갔는지 몰라도 그 문집을 지금은 절강성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습네다.「의암문집」은 54권 29책이나 되디요.절강성도서관에 연락했더니 복사나 해가라고 기래요.부끄러운 말입네다만,복사비 5천불을 마련할 길이 없습네다』 지난해 5월 세번째 중국을 찾아온 광복회 강원도지부장 유연익선생이 기념사업에 써 달라고 노자에서 1천2백달러를 내놓았다.그도 1934년 요령성 무순시에서 태어나 무척이나 많은 고생을 한 사람이다.사촌동생 유인석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와 항일운동에 참가한 유홍석의 증손인지라 그럴 수 밖에 없었다.증조부로부터 부모까지를 일제의 손에 잃었다.기구한 운명을 산 독립운동가 후손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한국인 대상 첫 연구소 그는 지난 1994년 중국 방문길에 부친 유돈상의 묘소를 찾아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독립군으로 싸우다 일제에 체포되어 무순감옥에서 숨진 부친의 시신을 할머니 윤희순이 거두어 묻었다는 무순시 용봉 남산이 도시로 변해있었기 때문이었다.다행히 할머니 윤희순의 묘소는 당시 장례에 참석했다는 한족 영덕수(87)노인의 도움으로 찾아냈다.그리하여 남편과 자식을 중국땅에서 다 잃은 할머니의 골회는 고향 춘천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어떻든 강원도 춘천 가정리 유씨 일가들은 항일독립운동이라는 가시밭길을 걸었다.그런 가운데도 유인석선생은 충절을 지키면서 학덕을 쌓았다.오늘날 중국에서 그를 기리는 것을 보면 유인석선생이야말로 죽어서도 살아있는 불멸의 인물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 로버트 듀자리치 미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해외논단)

    ◎“동아시아에 다자안보기구 생겨야한다”/중국·대만 충돌땐 질서붕괴… 번용 크게 해쳐/이웃 일본등에 충격파… 군비경쟁 가속화 부를듯 미국 허드슨연구소의 로버트 듀자리치 선임연구원은 중국과 대만의 긴장고조를 집중분석하면서 동아시아의 안정유지를 위한 이 지역 다자간 안보기구 창설필요성을 강력 주장했다.허드슨연구소 월간논문집에 실린 그의 글을 소개한다. 최근의 대만·중국간 긴장고조는 일시적일 수 있으나 이 위기가 악화되기라도 한다면 동아시아의 질서는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간에 군비 경쟁이 불붙을 것이며 뒤따를 외교·군사적 대립은 동아시아의 경제적 번영을 크게 해치게 된다.중국·대만에 관한 외교정책은 내년 미 대통령선거에서 큰 이슈의 하나로 부각될 조짐이다. 각국 정부가 이성적 바탕에서 움직인다고 믿을 땐 중국이 대만을 실제 공격하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그러나 정부를 이성적 주체로 파악할 때 만큼 장래 중국의 행동이 선의적이지는 않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불행스럽게도 이우려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만약 중국이 사회경제적 변화의 무게와 긴장을 이겨내지 못하고 분열되기라도 하면 중국의 대만 공격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한편 중국의 민주화가 진전되는 방향을 택한다 하더라도 이같은 움직임은 대만과 중국간에 평화를 확고하게 정착시킬 정도는 되지 못할 것이다. 민주화,민주정체의 채택은 그 자체가 평화주의적 성향을 뜻한다고 보는 논자도 있으나 야심있는 국가들의 「젊은」 민주주의에 관한 실제 역사는 이와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혁명기의 프랑스,독일 제2제정,왕정체제의 이탈리아,명치·대정시대의 일본 등 반헌법국가적 경험일천한 민주정체는 필요하다면 다른 민주국가에 대한 공격과 영토확장을 불사하고 능히 이를 실행해 왔다. 대만과 중국이 맞붙게 될 때 그 결과는 선뜻 점칠 수 없다.비록 중국이 대만보다 엄청나게 인구가 많긴 하지만 이 섬 공화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전면공격보다는 장기적 마찰형태의 전쟁이 한층 가능성이 있는데 이때도 중국이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좌우간 중국이 대만에 극단적 군사행동을 취할 경우엔 아시아는 충격파에 휩쓸리게 된다. 먼저 일본이 커다란 위협을 느낀다.일본의 방위비는 아시아 기준으론 상당하긴 하나 병력이 징병제인 이웃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현대적 장비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나 다른 아시아국가도 군장비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중국 러시아 북한(한반도 통일후 북한의 핵하드웨어를 보존할 수 있을 땐 통일한국) 파키스탄 인도 등과는 달리 일본은 핵무기가 없다. 중국의 공격에 대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모른체하고 일본은 사업을 계속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으나 이는 아주 위험한 일일 것이다.중국의 공격은 실패하더라도 즉시 이 지역에 치열한 군비경쟁을 촉발할 것이며 승리할 경우 공산정권은 영토「반환」요구를 제기하면서 일본을 다음 타켓으로 할 수 있다.또 한국은 옛 식민지배국인 일본에 반감을 품고 있을 수 있으며 특히 통일을 이루었을 때 그럴 가능성은 아주 큰데 만약 중국과 한국이 동맹이라도 맺게 된다면 일본은 중국의 협박을 모른 체하지못할 것이다.일본이 재무장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다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일본에겐 중국·대만 전쟁은 어떤 상황이 되든 좋거나 보다 유리해질 가능성은 없다.동아시아의 보다 작은 나라들도 같은 상황에 빠질 것이다.한국에겐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분쟁은 국가간의 갈등 해결책으로 전쟁을 택하는 시대의 재도래를 의미한다.또 이 분쟁은 한국에겐 중국·일본간의 분쟁가능성으로 연결된다.일본과 중국 사이에 위치한 한국은 이 두 아시아 대국간의 분쟁이 있을 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왔다.중·일은 가끔 한반도에서 서로 싸웠던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분석해볼 때 중국을 대결이 아닌 협조,협력체제로 끌어들이는 일이 아시아 그리고 미국에게 떨어진 긴급임무라고 할 수 있다.대만전 가능성은 한 측면에 불과할 뿐이다.외국이 관여할 수 없는 중국 내정문제는 차치하고 아시아의 정치적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국제관계를 몇몇 열거해 볼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동맹관계는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축이다.이어 아시아 안보의두번째 요인은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다.미국은 대만국민들이 자유 의사로 본토통합을 결정하지 않은 한 대만의 실질적 독립을 지지한다는 뜻을 중국에게 명백히 해야한다.서유럽의 군사·민간 관리들은 나토를 통해 같이 일하는 걸 배웠는데 현재 동아시아는 이같은 다자간 안보기구가 결여되어 있다.미국은 이 지역에 일본과 한국이 동시에 포함되는 다자안보 기구가 생겨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이 기구는 지난 1945년이후 한·일 관계를 훼손시켜온 강한 상호의심을 완전 불식하지는 못하더라도 경감할 것이며 중국이나 러시아가 일본에 등을 돌리도록 한국을 충돌질하고자 시도하는 것을 어렵게 할 것이다.
  • 서울신문 선정 「올해의 문화인물」 10인

    ◎전수천­베니스비엔날레 수상 이용우­광주 비엔날레 전시 기획 정명훈­금관문화훈장 받아 강수진­독서 발레리나로 활약 김아라­서울 연극제 석권 신경숙­여공시절 작품화해 호평 김종학­「모래시계」를 연출 박광수­노동운동가 전태일 영화화 최근덕­“유교 종교화” 주역 룰라­6회 서울가요대상 영예 「미술의 해」인 95년 우리 문화계는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며 외형적 성공을 거둔 광주비엔날레를 잘 치러냈다. 또한 광복5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뜻있는 공연도 끊이지 않았다.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건·사고와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이 구속되는 정치적 격변속에서 문화계는 사상 유례없는 침체와 불황의 늪속에 빠져들기도 했다. 올해는 또 우리문학의 거장인 김동리선생과 세계적 명성의 원로조각가 문신씨,국악계의 보물 김소희여사,세계가 인정하는 현대음악계의 정상 윤이상선생이 유명을 달리하여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많은 문화인들이 올 한해 우리 문화마당의 전면 혹은 이면에서 한국의 문화역량을 확인시키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올해 문화예술 각 분야에서 이름을 빛낸 10명의 문화인물을 통해 지난 1년간 우리 문화계를 돌아본다. ★전수천(47·설치미술작가) 지난 6월 세계최고의 미술제인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 개관 원년행사에 출품한 작품「방황하는 혹성들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으로 특별상을 수상.1백년 전통의 이 미술제에서 한국국적 작가로는 첫 수상의 영예를 안으면서 세계적 작가로 부상했다.올해 국내 최고의 미술잔치인 광주비엔날레에도 특별전「한국 현대미술의 오늘전」에 수만마리의 누에고치를 소재로 한 설치작품을 출품,관람객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작품으로 꼽혔다.주로 일본과 미국에서 실험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오다 지난 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로 뽑혀 국내에서도 역량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베니스비엔날레 수상과 함께 올해 국내 미술계의 가장 떠오르는 작가로 부상했다.최근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용우(46·고려대교수,광주비엔날레 전시기획실장 역임)한국의 문화역량을 빛낸 광주비엔날레 성공에 중추적 역할을 해낸 인물.일간지 미술기자를 거쳐 미술평론가로 등단하고 지난 93년부터 고려대 미술교육과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학자로 변신한 그는 국내 미술평론가중 해외 미술무대에 여러 역할을 맡아 가장 진출을 많이 하는 인물로 꼽힌다. ★정명훈(42·지휘자) 명실공히 세계가 인정하는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지난해 프랑스의 묘한 정치적 알력에 휘말려 바스티유오페라단의 음악감독직에서 물러난 아쉬움을 만회하듯 고국에 쏟는 열정이 대단했다.지난 8월15일 잠실 올림픽경기장에서 광복5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축전음악회­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향연」에서 지휘봉을 잡아 한국을 빛낸 기라성같은 음악인 20명과 함께 벅찬 감동의 무대를 연출했다.이로 인해 최근 정부로부터 문화인물로는 최고의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았다.그는 또 고국에 기여하는 자세로 지난 5월 「음악을 통한 환경보호 캠페인」에 나서 환경뮤지컬 「오션월드」의 기획과 지휘를 맡아 환경보호에 대한인식을 제고시켰다. ★강수진(28·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원) 지난 10월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작품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통상 발레단의 최고무용수에게 돌아가는 시즌 첫 공연의 주역을 따내 월드스타로 발돋움했다.선화예고 1년에 재학중이던 82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을 가 85년 세계 3대 발레콩쿠르의 하나인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국발레의 자존심을 높였다.「마적」「마타하리」「로미오와 줄리엣」등에서 프리마돈나로 이미 뛰어난 기량과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내년에 공연될 빈 국립오페라발레단의 「마타하리」객원스타,슈투트가르트의 내년시즌 공연작 「오네킨」과 「에드워드 2세」에서도 주요 배역을 내정받은 상태다. ★김아라(39·극단 무천 대표) 지난 10월 제19회 서울연극제에서 「이디푸스와의 여행」으로 영예의 대상과 연출상등 4개 부문을 석권,올해 국내 연극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였다.86년 「장미의 문신」으로 데뷔한 이래 「숨은 물」「메모렌덤」등 잇따른 우수작품으로 90년대 국내연극계를 주도해오고 있다.내년에도 4월 뉴욕에서 「이디프스와의 여행」 공연에 이어 10월에는 덴마크 오페라하우스 초청으로 유럽 및 아시아 3개국 배우들과 「리어왕」을 연출할 계획이다. ★신경숙(33·소설가) 장기적,전반적인 출판계 불황속에서 작가 신경숙씨의 약진이 유난히 두드러졌다.지난해 발표한 단편 「깊은 숨을 쉴때마다」로 올초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몇달 간격으로 펴낸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과 두번째 장편소설 「외딴 방」1,2를 나란히 베스트셀러에 올려 여전한 대중적 인기를 실감케 했다.뿐만 아니라 산업체 노동자 시절을 털어놓은 「외딴 방」으로 작품세계의 질적 성숙을 이뤘다는 찬사속에 그간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소녀취향」이라는 부담에서도 벗어났다.신씨의 부상은 다분히 90년대의 새로운 징후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종학(44·프로듀서) 올해 방송가 최고의 흥행작 「모래시계」를 만든 장본인.온 국민을 안방TV에 붙들어맬 정도로 인기를 누렸던 「모래시계」는 드라마의 차원을 넘어 「모래시계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었다. 지난 77년 MBC에 입사,「영웅시대」「인간시장」「여명의 눈동자」 등 숱한 화제작을 제작한 김PD는 역사와 흥미를 적절히 결합한 작품으로 한국 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여명의 눈동자」로 93년 백상예술대상 연출상,방송대상을 수상한뒤 프리랜서를 선언,작가 송지나·음악 최경식등 「김종학 사단」을 이끌고 SBS와 계약을 맺었으며 이제는 영화쪽으로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박광수(41·영화감독) 올해 우리 영화계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연출한 박광수 감독을 화제의 인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노동운동가 전태일 분신 25주기를 기념해 만든 이 영화는 무거운 내용임에도 불구,『진실의 힘을 일깨워줬다』는 평과 함께 매진사례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88년 「칠수와 만수」로 데뷔한 이래 「그들도 우리처럼」「그 섬에 가고싶다」등 사회성 짙은 리얼리즘 영화를 주로 선보여온 박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다시한번 투철한 작가정신을 인정받았다. ★최근덕(63·성균관장) 최근덕 성균관장은 유교를 현대화된 종교로 탈바꿈하기위해 종단을 새로 설립하고 종단의 대표를 총전으로 하는 유교 개혁안을 올해 11월에 확정했다. 지난해 4월 취임한 최관장은 1년 7개월동안 유교의 개혁안을 추진한것은 2천5백년된 유교가 현대에 적응하기위해서는 제사제도와 기구와 조직등을 과감히 현대화해야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최관장은 지금까지 음력으로 지내던 공자의 탄신일과 기일인 춘계·추계석전제를 양력으로 확정하는등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했다. 최관장은 앞으로 전국 2백30여개 향교와 22만 유림들을 종교단체와 종교인으로 이끌기위한 전문인력을 육성하기위해 충남 천안에 유학학원을 신설할 계획이다. ★룰라(가수·댄스그룹) 김지현·채리나·이상민·고영욱 등 4명으로 이루어진 댄스그룹 룰라는 지난해 「백일째 만남」 「비밀은 없어」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데 이어 올해초 발표한 「날개잃은 천사」가 수록된 룰라의 2집 앨범은 올 한해동안 1백50여만장이 팔리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룰라는또 지난 9일 열린 스포츠서울 주최 제6회 서울가요대상에서 영예의 최고가수상을 차지,국내 최고의 댄스그룹임을 입증했다.
  • 원로 금융인 김진흥씨,「한무숙 문학상」 제정

    ◎“사랑하는 당신 하늘나라로 갔어도…”/남편이 되살린 아내의 문학혼/“중매로 만나 서로 인내하며 애정 키워/이혼율 높은 요즘 세태 생각하면 씁쓸”/추모문집 이어 내년쯤엔 「반백년 해로」 회고록 펴낼 예정 얼굴도 잘 못 익히고 시집와 남편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친 아내,살림살이에 쫓기는 아내를 위해 등사기로 원고지를 밀어주며 소설쓰기를 북돋워준 남편. 요즘 세태엔 고리타분하게 들릴 이같은 「구식」부부는 그러나 「열애커플」 못잖은 애틋한 사랑을 사별이후까지 잇고 있다. 지난 93년 75세로 별세한 소설가 한무숙씨와 한일·주택·신탁은행장 등을 거친 원로금융인 김진흥씨(79)가 각자의 분야에서 거둔 사회적 성공 못잖게 남다른 부부애로 화제를 낳고 있다. 한씨가 작고한 뒤 「한무숙 재단」을 설립,장학사업 등에 힘써온 김씨는 최근 재단사업으로 「한무숙 문학상」을 제정,모든 이의 마음속에 한씨를 되살려냈다.작가의 이름을 사회에 영원히 남기는 문학상 제정으로 김씨는 떠난 아내에게 최대의 「외조」를 바친 셈. 제1회 한무숙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박완서씨는 한씨의 막내동생이자 역시 소설가인 말숙씨의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해 이래저래 상의 뜻은 더욱 깊어졌다. 『평소 누더기를 기워 실내화를 만들어 신을 만큼 알뜰하던 아내는 그간 모은 재산을 모두 재단사업에 쏟아달라는 유언을 남겼어요.마지막까지 통크고 치밀한 여장부였지요』 「역사는 흐른다」「만남」「감정이 있는 심연」「생인손」 등의 작가로 잘 알려진 한씨는 한편으론 누구보다 전통적인 대종가집 며느리의 삶을 살았다.김씨와 맺어진 것도 단지 아버지 친구분의 자제였기 때문.불 같은 연애감정도 없이 시작했지만 두 사람은 53년간 해로했다. 『열애에 빠져 결혼한 요즘의 젊은 부부의 이혼율이 얼마나 높습니까.아내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중신으로 만났어도 서로 인내하며 애정을 키웠는데 그런 것을 보면 안타깝지요』 그러나 한씨의 삶이 유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층층시하 시집살이,끝없는 남편시중,거기다 소녀시절 앓은 폐결핵이 평생 따라다녔다.한씨는 그 악조건을 쪼개 소설을 썼고 영어와 일어를 배워 세계를 돌며 강연하는 명사가 됐다.그 뒤에는 작품쓰는 데 훼방될세라 각방을 쓰며 가난한 문인들에게 집을 개방한 김씨의 「무뚝뚝하지만 속깊은」 독려가 있었다. 『집안일을 다 마친 새벽 한시가 돼서야 책상 앞에 앉곤 하던 아내는 평생 두세시간의 수면으로 버틴 완벽주의자였지요.당시 여자들의 삶이 대개가 고생스러웠지만 짐을 덜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요즘 남편들은 우리처럼 되풀이하지 않겠지요』 지난 93년12월 한무숙 추모문집을 엮은 김씨는 내년 8월쯤 한씨와의 반백년을 담은 자신의 회고록도 내놓을 예정이다.내년초엔 한씨의 작품세계를 집중조명한 「한무숙 문학연구」도 출간된다.
  •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유하 지음(화제의 책)

    ◎영화­가요 등 대중문화에 얽힌 경험 신세대 풍속도를 주로 다뤄온 시인이 대중문화에 얽힌 이런저런 본인의 체험과 상념을 들려주는 산문집.본격적인 대중문화론은 아니지만 대중문화에 밀착해 살아본 사람만의 애정어린 통찰이 재기발랄하게 드러난다. 제목에 나오는 「이소룡 세대」란 70년대 이소룡이 주연한 「정무문」「용쟁호투」등을 구경하러 3류극장을 전전하며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을 뜻한다.TV가 막 보급돼 물밀듯 쏟아지는 스타를 보며 자란 그들은 대중문화의 감수성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첫 세대다. 지은이는 대중문화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이미지가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것이라고 본다.컴퓨터의 가상현실 프로그램으로 필드에 나간 것과 똑같이 골프연습을 하고 화성여행을 다녀오는 등 기억과 정서까지 이미지만으로 이룰수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지은이는 「토탈 리콜」「블레이드 러너」등 SF영화에서 이런 사정을 뚜렷이 목도 한다.여배우들의 인기요인도 이미지의 논리로 분석한다.이에 따르면 청순한 심은하,귀여운 최진실,콜라같은 심혜진은 각기 당시 대중이 선호하는 여성이미지를 똑 떨어지게 맞추면서 「뜨게」 됐다.영화에 대한 잡다한 소감과 가수론,시인론 등도 함께 실렸다.문학동네 6천원.
  • 생존작가 전집출간 줄 잇는다

    ◎김승옥·이문구씨 이어 김지하·박경리씨 작품도/70년대 황순원·최인훈씨 전집이 효시/“작품 한눈에”·“객관적 평가 방해” 반응 엇갈려 한작가의 전집을 출판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모든 작품을 한데 모아 완성된 상품으로 만드는 이상의 의미를 지녀왔다.사방에 흩어진 판본에서 결정판을 골라내 여러권으로 묶어내는 전집출판은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총체적 해석행위로 여겨져 왔다.이때문에 전집출간은 보통 작품세계가 완결된 세상을 떠난 작가들에게 한정돼왔다.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 진지한 문학의 관례도 옛말,출판가에는 요즘 생존작가 전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다음주 문학동네에선 작가 김승옥씨의 전집이 출간되고 솔출판사에서는 올해가 가기전 단편집을 내기 시작,수 개월안에 이문구 전작을 전집으로 묶을 계획이다.김지하 시인도 시전집을 필두로 산문집 「틈」「밥」「님」,대설 「남」 등 모든 책을 솔출판사에서 정리중이고 「토지」의 작가 박경리씨도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을 같은 출판사에서 내고 있다.전작은 아니지만박완서씨의 모든 장편과 이문열씨의 모든 중·단편이 세계사와 둥지에서 각각 전집 형태로 묶이고 있다.지난 76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문학과 지성사의 황순원 전집과 최인훈 전집은 생존작가 전집의 효시격이다. 전집출간은 소설가에게만 국한된 관심은 아니다.민음사는 지난해 고려대 김우창 교수의 비평전집을 낸데 이어 얼마전 이대 유종호 교수의 평론전집을 선보였다.김춘수·미당 등 시인의 전집도 출간했다. 김승옥 소설전집은 80년 이후 절필하다시피한 작가의 전모를 되살리는 기획.「생명연습」등 단편 15편을 담은 1권,중편 5편을 실은 2권,장편 네편을 나눠 실은 3∼4권,꽁트와 작가연보로 짜인 5권 등 지난 시절 작가의 글쓰기를 총망라하고 있다.뿌리뽑혀 전망없이 떠돌던 전후 한국상황을 세련되게 그려내 60년대적 감수성을 돌올하게 대표했던 작가의 문학사적 의의를 기린다는 것. 솔출판사에서 나올 이문구 전집은 단편 33편을 실을 「몽금포 타령」,「해벽」,「만고강산」 등 세권의 작품집을 시작으로 「장한몽」,「관촌수필」,「엉겅퀴 잎새」,「우리 동네」 등 장편까지 순차적으로 영역을 넓혀갈 계획.잊혀져가는 농촌정서를 걸쭉한 입담으로 끈질기게 천착해온 작가는 우리 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때문에 「팔리는」 작가가 아니더라도 전모를 조감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출판사측은 밝힌다. 생존작가 전집이 성황을 이루는 밑자리에는 출판계의 질적 성숙이 있다는게 관계자들의 자평.이유야 어찌됐든 난립과 재편을 통해 나름대로의 힘과 색깔을 갖게된 출판사들이 「자기 스타일」의 작가를 자연스럽게 출판하면서 작가들도 전집을 내는것이 쉬워졌다는 얘기다.작가의 감수아래 작업이 이뤄져 판본확정이 쉽고 작품들이 전집으로 모이므로 중복출판도 없앨 수 있다는 게 이들이 꼽는 장점이다.또 집중적인 광고 등 작가 홍보에도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것. 하지만 이같은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전집에 실린 똑같은 작품을 다른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얼마든지 낼 수 있는 지금의 법과 관례에서는 중복출판이 줄기는 커녕 오히려 늘 수 도 있다는 것.또 작가의살아있는 검열이 작품세계에 대한 연구자의 객관적 접근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크다는 우려다. 한 문학출판사 주간은 『현대작가의 작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생존작가 전집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출판계의 관행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기작가를 묶어두는 출판사의 구실에 그칠 공산도 크다』고 말했다.
  • 김지하 생명사상 정리 산문집 「님」 출간

    ◎칼럼·강연·시인론 등 올 발표 글 모음/생명사상 해설집 「생명과 자치」도 곧 선보여 김지하 시인(54)이 자신의 생명사상을 설파하는 산문집 「님」을 솔출판사에서 펴냈다.신문칼럼,오에 겐자부로와의 대담,환경부 강연,언론과의 인터뷰,시인론 등 올해 나온 그의 글과 담론을 한데 묶은 책이다. 「님」을 통해 드러난 그의 생명론은 나름대로 꽤 다듬어진 각론에까지 다다른것 같다.생명,즉 삶 자체가 화두인 지은이의 관심은 끝없이 확산된다.그의 생명은 틈,님,기우뚱한 균형,모심 등 스스로를 풀이하고 살찌울 언어를 찾아내고 지자제 선거,세계화,쓰레기 소각장,삼풍붕괴 등 세상만사에 대한 비판적 해설을 풀어내면서 「그물코」처럼 촘촘하게 벼려진다.그는 썩은 벌레를 파먹는 잡새처럼 이 문제에서 저 문제로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지은이는 자신의 생명운동의 기초인 「시천주」의 동학을 축으로 충효타령에 그쳐버린 유교와 합리주의의 벽에 부딛친 서양을 끌어안고 넘어설 것을 해법으로 내놓는다.이같은 큰 틀 속에서 그는 한민족의 문화적 원형인 풍류도의 한사상,이제마의 사상의학,김일부의 정역,마당굿판,풍수학 등 버려져 있던 우리 것을 적극적으로 되살려낸다. 세계화의 물결밑에서 움트는 지방자치의 기운을 짚어내는 지은이는 지방화가 곧 창조적 세계화라고 단언하기도 한다.이에 따라 직장생활하느라 삶터를 떠나 있을 수 밖에 없는 남성들보다 지역내에서 내내 살림하며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들에게서 생명의 더 큰 가능성을 읽는다.탐라의 뿌리를 캐는 시인 고영기의 「거친 원목과도 같은 자연적 상상력」을 통해 지역 문학의 중요성을 본 시인은 「상상력이 정권을 잡으라!」고 주문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세상과 생활에 깊이 밀착돼있는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그러나 여전히 서정시인의 목소리다.개발의 발길이 제주를 무참하게 쓸어버릴 것을 경계하는 한 글에서 시인은 「1993년 겨울과 1994년 가을에 다시 갔을때 아직도 훼손되지 않은 중간산의 오름들,기이한 느낌의 산굼부리,원시의 비자림,흐드러진 갈대밭,한라산의 단풍진 숲들을 보며 내 마음속 제주의 틈이 다시 석류처럼 벌어지고있음을 느꼈다」고 적고 있다. 산문집에 이어 생태사회연구소 문순홍 박사와의 문답을 통해 생명사상을 해설하는 「생명과 자치」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올 예정이다.여기서 그는 그간 자신의 운명을 고스란히 반추하는 이름 「지하」를 접으면서 물맑을 「형」을 새 필명으로 선보인다.앞으로 그의 삶과 글을 새 이름처럼 틀지워가고 싶어 하는 지은이의 애틋한 마음이 보이는듯 하다.
  • 극작가 차범석(이세기의 인물탐구:83)

    ◎리얼리즘 바탕 「정통극 파수꾼」 40년/대표작 「산불」 전쟁의 인간파괴 신랄하게 묘파/부당한 것 거부하는 「연극계 면도칼」로 한평생/최승희 무용보고 「무대 인생」 예감… 이해랑·유치진 문하서 엄격한 수련 희곡작가 차범석은 연극계의 로맨티시스트다.동숭동 마롱카페에 나가보면 젊은 연극인들에게 둘러싸여 그는 맥주를 마시며 연극과 인생을 논하고 있다.「주역만 있고 조연 없는 연극은 있을 수 없다.우리의 삶은 큰 배역만 탐내는 한편의 연극 같이 보이지만 작은 배역 없이 큰연극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파우스트보다 메피스토 텔레스가 진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역이듯이 무대 구석구석에 세워둔 단역조역들의 몫에서 극중 희열과 비감,완미가 성취된다.무릇 물이 얕으면 큰배를 띄울 수 없는 것과 같이 깊고 다양한 여러 경험이 크고 광활한 연기력을 키운다」고 후배들을 가르친다. 한배우가 무대에 등장했다가 맡은바 임무를 다하고 퇴장하기까지 그것은 하나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이다.그런만큼 배우는 등장도 중요하지만 퇴장도 중요하다.막을 내리기가 무섭게 분장을 지우고 무대를 떠나는 사람을 보면 「자기포기와 무책임」이 느껴지지만 연기의 온기를 오래도록 가슴에 담는 배우의 모습에선 「비장미가 넘친다」고 찬양해 마지않는다. 그가 63년부터 20년이나 이끌던 극단산하를 해체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연극을 지상목표로 삼으려는 의지는 눈비비고도 찾아볼 수 없이 연기를 가르쳐 무대에 설만하면 그들은 철새처럼 돈을 따라 텔레비전으로 가버린다」고 했다.「연극은 집단예술인만큼 인간적인 결합 없이는 아무런 작업도 가능하지 않다.그럼에도 정신적인 반항이 없는 정지된 예술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껍질을 깨는 아픔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환멸스럽다」고 그는 한 글에서 개탄하고 있다.이어서 「기대할 수 없는 것에 얽매어 질척대는 것은 자기비하이자 존재를 흩트리는 추일 수 밖에 없으며」「부나비처럼 떠도는 인간불신풍조속에서 나만이 홀로 절개와 의리를 지키는 것은 명분 없다」고 절규했다. 적자를 면치못하는 극단의 영세한 상황속에서도 「산불」「밀주」「대리인」「손탁호텔」등 알찬 창작극으로 꾸준히 「좋은 무대」를 이끌던 산하는 「연기자의 연극정신부재」「저질공연우려」등을 내세워 83년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채 이렇게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칠순의 나이와는 상관 없이 언제나 만년청년 같은 그는 옛 예술가의 낭만과 니힐과 반항과 순수를 지금도 면면히 지니고 있다.그가 「한달이면 29일」을 술을 마시는 이유는 사람들과의 따사로운 온정에 굶주려 「정을 마시기 위해 술잔을 든다」는 것이며 인생의 어둡고 뒤틀린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긍정에의 동경이 너무 강한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40년간 「연극계의 면도칼」로 불리면서 그는 과연 부당한 것을 굳이 옳다고 양비론을 펼치거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할 수 있다고 과장한 적이 없다.연극상을 심사하는 과정에서도 무의미한 공연기록과 긴 연륜을 앞세우기보다 작품의 질과 연기력을 따져 날카롭게 자격여부를 가려낸다.또한 스스로의 조로를 경멸하여 연극의 모든 일에 은근히 참여하고 옳바른 소리를 주저 없이 하면서도 「번뜩이는 재기나 교변」 사물에 대한 심정의 움직임에서 세말적인 기미대신 싱그러운 미소로 만사를 감싸기 때문에,각층의 폭넓은 호감을 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단산하를 잃은후 그는 한국연극협회 이사장,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사,대한민국예술원회원과 청주대 예술대학장등 여러 역할을 전전했다.86년에는 88올림픽을 앞둔 88서울예술단 초대단장에 임명되었으나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창단기념 시연회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관련장관이 코를 골고 잔 것에 자존심을 심하게 상한 나머지 사표를 내던진 씁쓸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시간과 함께 그의 까다로운 일면은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고 반항과 증오와 충동에서 시작한 초기의 경험을 버리고 「삶이란 양파를 벗겨내듯 아무리 벗겨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나보다.그 때부터 톡쏘는 옳은 소리를 줄이고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는 계신공구의 자세로 전환했다. 그의 지나온 인생은 평온한 중에 끝 없는 파고가 잔물결처럼 파동치는 것이 남과 다르다. 목포의 개화되고 풍족한 집안에서 일본 메이지대(명치대) 법학과를 나온 차남진씨의 3남3녀중 차남.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내면서 집안의 서고에 파묻혀 아리시마 다케오(유도무낭) 무샤노코지 사네아쓰(무자소로 실독)의 소설에 탐닉하고 일본 히메지(희로)고교에 시험을 보러갔다가 낙방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후지자와 다케오(등택)의 「신설」을 가슴에 품을 만큼 열렬한 문학지망생의 시기를 보냈다.어릴 때의 아명은 평균.광주고보시절 목포 평화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공연을 보고 「정중동의 미세한 움직임과 끊어질듯 이어지고 멈춘듯 움직이는 유현미와 고담미」에 반해 그는 훗날 「무대」와 관련을 갖게 되리라는 예감을 굳혔다. 그는 철저한 리얼리스트이기도 하다. 뒤늦게 23세에 대학에 진학해서 문자그대로 「경마장의 말처럼 정해진 코스를 필사적으로 달리면서」 엄격한 스승인 이해랑 유치진문하에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정통극」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연극계는 언제부턴가 「리얼리즘의 희곡작가」 또는 「리얼리즘의 파수꾼」으로 그를 부르게 되었다. 「나름대로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치열하게 몸부림쳐왔다.나라는 인간은 일관성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온 모순덩어리라는 생각 때문이다.그 증거로 나의 인생행로에는 투쟁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다.적극적인 동참이나 협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그렇다면 나는 뭐란 말인가」.그러나 평론가 유민영은 「그의 작품은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구시대의 붕괴와 전후의 사회변화,변천하는 사회속에 갈등하는 개인의 삶을 끈질기게 묘파」하고 있고 특히 대표작 「산불」은 「전쟁이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을 파멸시키는 가를 미사여구나 기교 없이 신랄하게 파고든 리얼리즘 희곡의 최고봉」으로 손꼽고 있다. 지난해 출판한 고희기념문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에서 그는 「지금까지 나는 대과 없이 살았고 욕심부리지 않았고 하고싶은 일과 가고싶은 길을 지칠줄 모르고 살았으니 행복하다」고 고백하고 있다.영원한 동반자인 박옥순여사와의 사이엔 3남2녀.자녀는 모두 출가하고 송파구 가락극동아파트에서 부부가 노후를 함께 하고 있다. 언제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소시민」을 자처하고 있지만 실은 서릿발 같은 차가운 이성을 정으로 융해시킨 처절한 삶의 애가와 뜨거운 인간애의 정수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참으로 「큰배우」의 역할이 아닐 수 없다.이제 그의 퇴장은 「한편의 좋은 작품」을 남기는 일이며 연극계가 그를 두고 「이시대 마지막 휴머니스트」라고 한 말대로 그는 지금도 동숭동 마롱카페에 앉아 「배우가 되기전 먼저 인간이 될 것」을 젊은 연극인들에게 당부하며 그의 「정」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연보 ▲1924년 전남 목포 출생 ▲1942년 광주고보 졸업후 도일 ▲1946년 연희전문 문과 입학 ▲1949년 제1회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 희랍극 「오이디푸스왕」연 출 수상 ▲1951년 처녀작 「별은 밤마다」 공연(목포문화협회 주최)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밀주」당선,제작극회 창단 ▲1961∼71년 문화방송 제작부장·편성부국장 역임 ▲1962년 「산불」 초연(국립극단) ▲1963∼83년 극단 「산하」대표 ▲1965년 이대·연대 출강 ▲1966년 연세대 영문과졸업,국제PEN대회 뉴욕회의 참가 ▲1968∼74년 한국연극협회이사장 ▲1969년 신연극 60주년기념 「그래도 막은 오른다」 공연 ▲197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사 ▲1973년 예총부회장 ▲1975년 ITI베를린회의 참가 ▲1978년 ITI한국본부 부위원장,대한민국연극제 심사위원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 ▲1983년 서울극작가그룹 발족,회장 ▲1984∼86년 청주예술대학장 ▲1986년 서울88예술단장 ▲1988년 청주대 교수협의회회장 ▲1991년 「연극의 해」집행위원장 대한민국 예술원회원·한국연극협회이사·공연윤리위 심의이원 희곡집 「껍질이 째지는 아픔없이는」「대리인」「산불」「학이여 사랑일레라」「식민지의 아침」,수필집 「거부하는 몸짓으로 사랑했노라」,고희기념문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차범석문학전집(12권·융성출판)등 대한민국 문화예술상(70)·대한민국 예술원상(82)·동랑연극상(83)·대한민국 문학상(91)·이해랑연극상(93)
  • 영화 초대석 「조니뎁의 돈주앙」

    ◎여자 1,502명 울린 청년의 방황기/조니뎁,몽상적 주인공 분위기 소화못해 펄럭이는 망토에 쾌걸조로 가면,가죽바지에 은색단추가 달린 붉은 승마조끼를 입고 감미로운 여성관을 읊조리는 젊은 남자.카스티야인 특유의 악센트와 고독한 눈빛,무의식의 영역을 자극하는 은밀한 몸짓으로 1천5백2명의 여인을 사랑의 늪에 빠뜨린 청년 돈 쥬앙.그는 과연 단순한 바람둥이에 지나지 않았을까.어느 한 여인에게도 안주하지 못하고 끝없이 새로운 사랑의 대상을 찾아나서는 그의 행동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문학,연극,오페라,나아가 서구 정신사의 한 단면을 이뤄온 전설적 인물 돈 쥬앙의 신화를 토대로한 미국영화「조니 뎁의 돈 쥬앙」(감독 제레미 레벤)이 30일 개봉된다. 영화는 이 세상 모든 여인들의 위대한 연인임을 믿었지만 한 여자(돈야 안나)와의 진실한 사랑을 이루지 못해 방황하는 21세 청년 돈 쥬앙이 뉴욕의 한 건물 옥상 난간에서 뛰어내리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경찰은 이 광기어린 젊은이를 다루기 위해 베테랑 정신과 의사 잭 미클러(말론브란도)를 불러 정신감정을 의뢰한다.잭은 열흘에 걸쳐 돈 쥬앙의 환상적인 모험과 낭만의 오디세이를 듣게되고,이들은 이내 사회적 배경과 나이의 벽을 뛰어넘어 친밀한 정신적 교감을 나누게 된다는 줄거리.다분히 시적이고 감성적인 대사가 에로틱 코미디로서의 일정한 격을 유지시켜주고 있지만 돈 쥬앙의 여성편력만 떼어놓고 보면 이 영화는 한갓 삼류소설에 나오는 질퍽거리는 사랑이야기에 다름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돈 쥬앙에게서 초인의 이미지를 보았으며,니체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았던 카뮈는 그의 산문집「시지프스의 신화」에서 돈 쥬앙을 부조리한 인간의 모델로 꼽았다.그러나 영화「조니 뎁…」은 무엇보다 전형적인 인물로서의 뚜렷한 돈 쥬앙 상을 창조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속의 돈 쥬앙은 『나는 전세계 여성의 연인』이라는 자신의 「패덕의 철학」을 말로만 외쳐댈 뿐 실제 표정연기나 대사에 있어서는 소심하고 얼뜬 모습으로 일관한다.현실과 환상이 뒤섞인,자기몽상적인 돈 쥬앙을 통해 돈 쥬앙 신화를 재해석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이로써 크게 빗나간다.새로운 현대판 돈 쥬앙 역을 만년 소년풍의 중성적 분위기가 강한 조니 뎁이 소화해내기는 역부족.여성들의 보호본능을 유발하는 마마보이 연기에만 치우쳐 「성의 화신」으로서의 강·온 연기균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에 비해 말론 브란도의 여유롭고 느릿한 매너의 연기와 그의 아내 마릴린 미클러 역을 맡은 페이 더너웨이의 부드럽고 감상적인 연기는 영화 전체에 안정감을 준다.
  • “현대문학 반세기… 분단의 아픔 관통”

    ◎대산재단 21∼22일 「해방 50주년 기념 한국문학 50년」 심포지엄/시·소설·희곡·비평 부문별로 진단/북한문학·해외 한국문학도 점검/국내외의 문인·학자 등 35명 참석 「해방 50주년 기념­한국 현대문학 50년」 심포지엄이 21.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다.대산재단 주최의 이 심포지엄은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 문학의 성과를 한국의 ▲시 ▲소설 ▲희곡(21일) ▲비평(22일) ▲북한의 문학(시·소설과 문예비평·22일) ▲세계문학과 한국문학(한국문학의 해외소개·해외의 한국문학·21일)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전망(제1,2발제·22일)등 7개 주제로 나누어 종합진단하는 것으로 국내외 문인,학자 35명이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로 참석한다. 미리 발표된 주제논문들에 나타난 한국 문학 50년의 가장 큰 원체험은 분단이다.현대문학의 시원에 깊게 팬 이 민족사적 상처는 우리 문학을 시대의 갈등과 모순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데 유리한 리얼리즘으로 자연 기울게 했다는 것이다. 최동호교수(고려대 국문과)는 「한국의 시」 발제에서 해방이후 한국시사를 ▲분단체제 성립기(19 45∼59) ▲심화기(19 60∼79) ▲전환기(19 80∼95)라는 틀을 사용해 시대구분한다.이같은 시대구분을 바탕으로 그는 60∼70년대에는 「시의 효용은 무엇인가」가 쟁점이었으나 80년대 이후는 우리시의 다양한 경향과 가능성을 보인 시기라고 정리한다.최교수는 우리 시의 80년대를 이성복에서 기형도에 이르는 모더니즘 흐름과 김정환,백무산의 리얼리즘 지향이 맞서온 역사로 파악하기도 한다. 「한국의 소설」 발제자인 조남현교수(서울대 국문과)역시 지난 50년간 우리 작가들을 사로 잡은 최대 소재를 한국전쟁으로 본다. 조교수는 우리 소설이 그간 도덕주의,세태소설,종교소설,중간소설 등 다양한 갈래를 낳았지만 혼란과 갈등상황에서는 항상 리얼리즘을 전면에 내세워 왔다고 진단한다. 그는 90년대 소설계의 특징을 ▲거대서사의 퇴조 ▲대하소설의 증가 ▲베스트셀러의 급증과 규모확대 ▲평론의무력증 ▲전업작가의 증가등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한국의 희곡」 주제발표자 유민영교수(단국대 국문과)는 우리 희곡사를 견고한 리얼리즘의 원심력에 부조리극,초현실주의극,서사극 등이 일탈을 꾀해온 역사로 정리한다.그에 의하면 한국희곡 50년중 전기 25년은 리얼리즘 일변도였고 후기 25년은 리얼리즘 극복이 최대과제였다. 「한국의 비평」 주제발표에서 유종호 교수(이대 영문과)는 해방이후 한국의 비평이 마주친 문제들을 중심으로 살피면서 60년대 후반 이후 주요 비평가들의 비평입장을 검토하고 우리 비평의 앞날을 전망하여 눈길을 끈다.유교수에 의하면 민족문학론을 주도해 온 백낙청은 이론비평이나 실제비평(기술비평)을 벗어나 시인 작가에게 글쓰기의 주제와 방법을 교시하는 입법비평의 입장에 서 있다.『김윤식과 함께 비평 생산 최다수확왕의 영예를 지녔고 김문집 이어령 이후 통념화된 험담과 독설로서의 비평을 덕담으로 변모시키는데 기여한』 김현의 경우는 기술비평의 입장이고 김우창은 자기충족적 비평(고전적 에세이),김윤식과 김용직은 국문학 지향의 비평,정명환 이상옥 곽광수 도정일등은 외국문학의 소양을 바탕으로 한 타자참조비평의 범주에 각각 속한다.유교수는 또 『앞으로 문화비속화 현상의 일환으로 비평의 중간화 잡담화 가십화가 가속화 되고 비평이 논문쪽으로 기울면서 비평의 주변화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진단한다. 이 심포지엄의 주제발표논문과 토론요지는 오는 10월말 민음사를 통해 책으로 묶일 예정이다.
  • “개성있는 언어” 산문집 4권 눈길

    ◎유년시절 고백·분단현실 등 소재 다양/신경숙 「아름다운 그늘」/김하기 「마침내 철책끝…」/함광복 「DMZ… 아니다」/고종석 「고종석의 유럽통신」 한국문학의 지도에서 산문의 위치는 모호하다.붓 가는 대로 쓴 수필로서 감상적인 여고생이나 주부의 심심파적 정도로 치부되기도 하고 시나 소설에서 맛볼 수 없는 깔끔한 언어로 삶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을 드러내는 글로 대접 받기도 한다. 감상적인 수요층을 노골적으로 겨냥,감미료를 잔뜩 친 수필집들이 서점의 에세이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가운데 최근 독특한 산문집 4권이 나왔다.작가 신경숙씨의 「아름다운 그늘」을 필두로 김하기 산문집 「마침내 철책 끝에 서다」,함광복 산문집 「DMZ는 국경이 아니다」,고종석 산문집 「고종석의 유럽통신」등이 그것.이 책들은 주제와 스타일은 다르지만 개성적인 언어로 산문정신의 본질인 「삶의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 젊은 여성작가 중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신경숙씨의 「아름다운 그늘」은 마음의 떨림을 섬세한 언어에 담아온 소설가의 사적인고백.농촌에서 식구들과 부대끼며 자란 유년시절,글쓰기와 문단 친구들 이야기 등을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속삭이며 작가는 언어로 드러나지 않는 삶의 비의에 가 닿고자 한다.이 책의 소제목인 「말해질수 없는 것들」이란 말은 그의 감성의 세계를 한마디로 드러내면서 유행어가 돼버렸다. 「마침내 철책끝에 서다」는 지은이가 휴전선을 따라 여행하며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기행문.백령도·강화도·민통선을 거쳐 최전방 철책 끝에 이르기까지 서로 대치하고 있는 민족의 고단한 운명을 보며 한층 불댕긴 지은이의 민족애가 열정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DMZ는 국경이 아니다」역시 분단 현장인 DMZ을 글감으로 한 글.하지만 사회부 기자의 글답게 DMZ의 생태계와 거주지·역사 등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의 성격이 짙다.천연기념물의 보고로서,주말 외출한 군인들이 애인과 어울리는 최소한의 삶의 터전으로서,그리고 예술가가 월북하고 남북이 정치적으로 충돌했던 역사의 현장으로서 DMZ의 중첩된 의미가 간결하고 차분한 문체에 실린다. 「고종석의 유럽통신」은 현재 파리에 체류중인 신문기자출신 지은이가 한국의 선후배·동료들에게 띄우는 편지글 형식.1백23년전의 실패한 파리 코뮌,일본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대선을 앞둔 파리의 분위기 등 현안을 보는 소감과 현지에서 본 앙리 레비의 영화,반 고흐,생텍쥐페리 등에 대한 여러가지 상념이 지은이의 두터운 문학적 소양과 사회를 보는 매운 눈에 걸러져 명쾌하게 드러나 있다. 문학동네 차창룡 편집차장은 『산문집이라면 이미 발표한 글을 모으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최근엔 시골로 내려가서 산문집에 실을 글을 따로 쓰는 시인도 있다』면서 『산문이 푸대접받는 시대라지만 산문을 통해 아름답고 정확하면서도 감각에 맞는 국어에 도전하고자 하는 젊은 문인들도 적지 않은 듯 하다』고 말했다.
  • 휴가… 선풍기 틀어놓고 수박이나(박갑천 칼럼)

    『층층한 성곽따라 좁은길이 희미한데/종일토록 계정에 앉았으니 세상물건 보기 어렵네/푸른기운 뚝뚝 떨어지니 나무숲이 젖어있고/물소리는 요란한데 봉우리들은 날아갈 것만 같구나/그늘진 시내 골짜기에 한가롭게 말을 매어두고/펄렁이는 발(염)아래 옷을 벗어 걸었네/우두커니 앉아있는 그것으로도 족하나니/시는지어 무얼하며 돌아가자는 말은 왜들하나』(원문생략:「다산전서」 시문집에서) 정약용의 「세검정에 노닐며」(유선검정)라는 시이다.어느 여름날이었던 것일까.탁족을 즐기면서 굴원의 「어부사」에 나오는 「가이탁오족」이라는 시구를 생각했던건지도 모른다.오솔한 가운데 풍광에취한 실학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굳이 정다산의 시대까지 거스를 것도 없다.60년대 전후만 해도 상명여대 어귀 세거리께는 솔밭이 우거져 그 개울물에서 멱감았던 일이 생생한 터이니까. 성현은 서울속의 가경을 그의 「용재총화」속에 소개해놓고 있다.「놀만한 곳」으로는 삼청동이 가장 좋고 인왕동이 다음이며 쌍계동(성균관위 골짜기)·백운동·청학동(남산골짜기)이 그다음이라고 말한다.성밖의 놀만한 곳으로는 장의사(세검국민학교 자리)앞 시내를 들고있다.흐르는 물소리가 우레같다면서 선경이라 극찬한다.정다산이 노닐었던 곳을 이름인가.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 「단오풍정」­여인네들이 풋살들 드러낸채 씻고 있는데 불목하니인지 사미인지가 엿보는 그림도 여기였을까.「동국여지승람」등에 의할때 여름날이면 이런 명승지에서 선비들도 탁족을 즐겼다.보법이 있는지라 벗지는 못할망정 차가운 물에 발적시며 시를 읊었던것.성용재는 뛰어난 곳만을 소개했을 뿐 노닐만한 데가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이제 그런 곳들은 스러져간다.내발릴대로 내발려 사람들의 숨결·발길이 닿으면서 시흥 돋우던 맑은물 대신 시커멓고 냄새역겨운 생활하수가 흘러내리잖는가.태고의 이끼가 숨쉬던 바위는 이빨빠진 배비장 낯짝으로 사람들의 야발을 원망한다.먹고싸고 깨고버린 상처에 눈물짓는 대자연.느이 보이건만 사람들은 그옰을 생각지 못한다. 차몸살·사람몸살·돈지랄몸살 생각하자니 바닷가 갈생각은 아예 가신다.그렇다고 어느 골짜기인들 마음속 티끌 씻어줄만한 곳이 있다 하겠는가.선풍기 틀어놓고 수박이나 썰어먹으면서 휴가를 보내야 할까보다.
  • 한국화가 산정 서세옥(이세기의 인물탐구:79)

    ◎스스럼없이 화필 휘젓는 큰 예인/작품마다 영혼이 움직이듯 팽팽한 긴장감/화려한 채색 거부… 발묵·석묵법 자재로이/77년 「한국현대회화 유럽전」때 “동양문화의 진수” 보여 산정의 성북동 무송재는 지금 녹음이 한창이다.큰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벌써 그 짙푸른 녹색으로 인해 집안은 유현한 산곡과도 같다.안채로 통하는 디딤돌 외에 새파란 이끼가 휘덮인 마당은 모든 것이 푸른 가운데 허공에 우러른 첨단에마저 서슬 푸른 냉기가 감돈다.「일편연홍난입문,한조각의 붉은 빛도 문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산정의 말대로 영롱산관 죽리관 수죽원하관 창하헌 등 그의 당호들은 집안에 넘치는 푸른색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화실 창앞에 쭉쭉 뻗어 있는 청청하고 곧고 차가운 대나무며 지금 막 피기 시작한 보랏빛 추국에 이르기까지 추호의 시든 빛을 보이지 않는 영롱한 환경은 서울 한복판이건만 실로 아득한 선경인 듯 감탄스럽기만하다.여기에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과 한옥중의 한채에 온통 중국고서적이 산적해 있어 그의 방대한 독서량이 얼마만한것인가를 미루어볼 수 있다. 그는 성북동 전에는 노송으로 우거진 월곡동에 살다가 대학때의 스승인 근원 김용준을 그리워하여 지금부터 20여년전 스승의 노시산방이 있는 이곳에 한옥을 지어 이사했다. ○회화예술 변혁 앞장 산정은 널리 알려지다시피 서시문화를 두루 갖추고 상식에 안주하려는 회화예술에 변혁과 개혁의 화업을 이뤄낸 동양화 대가다.초기에는 범속과 권위와 형식에 대한 강렬한 저항정신을 앞세워 「고루협애가 없는 방종자일한 표현」으로 개혁의지의 향방을 모색하다가 차츰 「감각의 해방을 원점으 로 되돌린 절제화면」을 이룩하면서 남보다 일찍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평론가 이경성씨는 그의 첫번째 전시 팸플릿에서 그와 같은 유사성을 「명대의 서위나 청초의 석도」에 비유하고 오광수 역시 「수묵화를 감필묘법으로 구사한다는 차원에서 남송의 양해나 선화파의 목계의 화격」에 닿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정병관씨는 「모든 진실한 작품은 침착하다」는 칸딘스키의 말을 인용하여 『산정의 작품은 무한을 생각케 하는활짝 트인 화면공간속에서 「숭고한 형이상학적인 회화」를 구축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과연 그리지 않으면서 그리는 상태,말하지 않으면서 말하는 듯하고 표현하지 않으면서 표현하려는 자기모순을 함축한 그의 작품은 「그 형식과 내용면에서 영혼이 움직이는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89년 개인전에서 선보인 「군무」「사람들」시리즈는 「붓으로 그렸다기보다는 붓을 던졌다는 표현이 더욱 옳다」는 정병관씨의 평에 많은 사람이 공감한 바 있다.즉 「붓의 전진하는 속도감과 상하로 누르고 떼는 강약의 압력은 낭만적인 금선의 무쌍한 변화」와도 같으며 「발묵과 석묵법의 자재로운 움직임」은 바로 산정 그림의 즉흥성과 필연성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산정은 「스스럼없이 필력을 구사할 줄 아는 이 시대 재능이 뛰어난 예인」으로서 「흉중의 고고특절한 품성 없이는 문자향과 서권기를 지니지 못한다」는 추사의 지론을 실천시킨 화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20세때 뒤늦게 입문 그가 화단에 등단한 것은 아직 대학재학중이던 20세였으나 뒤늦게 45세되던 해 서울 첫 개인전을 열 때까지만 해도 그의 그림에는 일정한 채색과 반추상의 형태가 깃들여 있었다.그러나 산정 자신은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메마른 구각이나 비좁은 질곡은 싫다」고 천명했고 이후 채색이 없는 검정색의 선묘형상들은 그 기호적인 성격과 힘과 자발성을 채색의 경우보다 한층 강하게 나타내게 되었다. 그는 우리 화단에서 그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언제나 커다란 구심점을 긋고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오늘날 수많은 미술대전에서 동양화가 구상·비구상으로 나눠지게 된 것도 단순히 이 작가의 작용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화단에서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후 산정은 유럽쪽에 눈을 돌려 수많은 해외전에서 한국회화의 독자성을 인정받았다.그중 77년 9개월에 걸친 「한국 현대회화 유럽전」에서는 현지 신문들이 「서세옥의 추상적인 묵화들은 동양화라 일컬어지는 한국 전통미술의 현대적 전모를 집약함으로써 서양인에게 동양문화의 진미를 보여주었다」(르피가로 78년6월28일자)고 쓰기도했다. ○올 11월 개인전 열어 그는 어릴 때부터 수많은 고서화가 있는 집안환경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며 자라났다.독립운동을 하던 부친 서장환(석련)공은 세 아들중 일총한 산정을 특히 총애하여 「성동」이란 아호를 내려주었으나 대학시절 영운(김용진) 춘곡(고희동) 소전(소전 손재형)등 그의 스승들이 「세옥」의 옥자와 관련된 「옥출곤강(금과 옥돌은 산에서 캔다)」이란 의미의 「산정」을 지어주었다. 지난해 서울대 정년퇴임후 산정은 무송재 녹음속에 파묻혀 그의 전생애가 그렇게 일관해왔듯이 자유하는 예술가로서의 절제와 생략과 탈속의 묘를 구체화하는 시기일 것이다. 그의 테마는 여전히 인간에 집착한다.세월도 서릿발 같은 그의 의지를 피해가는지 언제나 만년청년 같은 그는 「적진에 뛰어들어 호랑이나 사자를 사로잡듯」 우주의 올바른 기운을 수백호 화면속에 역동적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요즘은 오는 11월로 잡힌 개인전과 그가 발족한 한·중미술협회의 요청으로 그동안 써온 한시를 친필서예로 꾸미는 「산정문집」 출간준비에여념이 없다.그중 연전에 중국 양자강을 둘러보며 지었다는 「단현」이 눈에 띈다. 「비지양현회 농현감금심 고산류수곡 적막실지음 석현호불기 천재거무회 수주아양곡 공류일금대(이땅의 두 현인이 만나 거문고로 서로 마음을 느끼니 이는 고산곡과 유수곡이라,지음이 없으니 적막하구나.옛 현인 불러도 일어나지 않고 천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 누가 고산 유수곡을 연주할 것인가,속절없이 거문고 튕기던 언덕만 남았구나)」이는 중국 춘추시대의 거문고 명인이던 백아가 그의 거문고소리를 좋아하던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현을 끊어버린 일화를 그린 시로 그들이 거문고를 타던 양자강가에 서자 이런 시를 읊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3∼4년전까지만해도 송죽 우거진 뜰에서 산정은 가까운 이들을 모아 거문고며 가야금연주를 즐기곤 했다.그러나 명고수 김명환씨가 4년전 작고하고 단골손님이던 언론인 예용해씨마저 지난해 타계하자 화가는 혼자 남아 그때의 감흥을 한편의 시와 한점 획(화)으로 남기게 됐나보다. 이제 산정댁의 대나무가 그 놀라운 푸른빛을 뻗치고 소나무향이 온산을 뒤덮어도 이 풍치를 음미할 만한 유장한 현금은 울려지지 않는다.단지 우거진 나뭇닢이 단 한 잎도 시든 기색 없이 싱싱한 생명력을 지니는 것처럼 시들 줄 모르는 산정의 붓끝은 그 탁발한 금선의 선율로 「청청속의 노주」를 결국 성취하게 될 것이다. □연보 ▲19 29년 대구생 ▲49년 제1회 국전서 「꽃장수」로 국무총리상 수상 ▲50년 서울대 미대 졸업 ▲54년 제3회 국전서 「휘월의 장」으로 문교부장관상 수상 ▲54∼95년 서울대 미대 교수 ▲59년 묵림회 창립대표위원 ▲61∼82년 국전 심사위원·운영위원 ▲62년이후 상파울루비엔날레 칸국제회화제 이탈리아회화제 인도트리엔날레 도쿄비엔날레 파리현대미전 등 출품 ▲64년 국제조형예술(IAA) 한국위원회위원장,신인예술상 심사위원장 ▲64∼88년 한국미협이사장·회장 ▲66∼71년 유럽·남북미 34개국 여행,한국현대미술 프랑스순회전 ▲70년 국전 초대작가상,한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 ▲73년 예총부회장 ▲74년 서세옥전(현대화랑초대전) ▲77∼78년 한국현대 동양화유럽순회전,스웨덴 폴란드 독일 프랑스 ▲79년 서세옥전(도쿄 우에다화랑 초대) ▲82∼85년 서울대 미대학장 ▲83년 서세옥전(뉴욕 퍼시픽아시아박물관초대),전국미대협의회회장 ▲85년 서세옥특별전(뉴욕 바로카레지미술관 초대) ▲89년 서세옥전(현대화랑 초대),뤼턴오브 마르코폴로전(프랑스 파리) ▲90년 한국작가전(중국 북경),한·중미술협회 결성 ▲91년 한·중미술대전(중국 북경)이후 서울·남경·상해 등지서 교류전시 그외 한국회화대전및 아세아현대미술전 한국미술상황전 LA87미술전 조선일보미술관개관기념 현대작가초대전 서울올림픽아트 국제현대미술전 등 다수 출품,국민훈장석류장 서울시문화상 한·중미술협회회장,미협고문
  • 시간대별 상황(삼풍백화점 붕괴)

    ◎가스냄새 진동… 바닥 심하게 요동­하오 5시30분/옥상 균열 발견­상오 7시/식당가 문짝 뒤틀림­상오 8시30분/우동집 「현지」 천당서 물쏟아지고 바닥 꺼짐­상오 11시/5층 식당가 10여분간 3차례 진동 체감­12시50분/에어컨 가동 중단­하오 4시/5층 건물 붕괴­하오 5시50분 29일 상오 7시쯤 여느때와 다름없이 순회근무를 하던 삼풍백화점측 보안담당관이 A동 옥상에 30㎝정도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불길한 징후였다. 이어 8시30분쯤 건물 5층 식당가의 전주비빔밥 전문집인 「춘원」의 천장이 20㎝가량 내려앉았다.바닥과 문짝이 뒤틀어졌다. 비슷한 시각 건물 2층 매장에는 매케한 연기가 스며들어 왔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대학생 80여명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출근해 직원 1천여명과 함께 고객을 맞고 있었다. 특히 이날에는 특별보석전이 열리고 있어 지하주차장과 1층에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여성 고객들이 쇼핑 가방을 들고 몰려 들었다. 상오 11시쯤 5층 우동집 「현지」와 냉면집 「이전」의 천장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면서 바닥이 꺼져내렸다. 정오쯤 이 건물 5층 신용판매부 사무실 바닥이 5㎝가량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놀란 일부 매장은 문을 닫았고 백화점측에 대책마련을 건의했다. 백화점측은 이날 상오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고 2차례에 걸쳐 대책회의를 가졌다.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급박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고객들이 불안해 할까봐 전전긍긍했을 뿐 대피를 하라는 안내방송 한번 하지않았다. 오히려 문제가 없는 식당은 영업을 계속하라고 독려했다. 낮 12시50분쯤 5층 식당가에서 뒤늦게 점심 식사를 하던 사법연수원 직원 8명은 식당이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진동은 10여분동안 3차례나 계속됐다.물잔이 가볍게 흔들렸다. 천장이 내려앉은 음식점들은 하오 1시30분쯤 입구에 노란 테이프를 두르고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음식점을 찾은 고객들에게 식당주인들은 『가스도 안나오고 천정공사를 하고 있어 영업을 하지 못한다』고 돌려보냈다. 하오 4시쯤 안내방송도 없이 에어컨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직원들은 찜통더위 때문에정문을 열어제치고 부채를 부치기 시작했다. 시시각각 참화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장바구니를 들고 백화점을 찾아드는 주부들이 이를 알리가 없었다.시간이 지날수록 지하 식품부에는 40∼50대 주부들의 발길이 더욱 몰렸다. 하오 5시쯤 문을 닫지 않고 영업을 계속하던 5층 죽집 「송죽」에서 저녁을 먹던 음식점 직원 김서정씨는 갑자기 「쿵」하는 소리를 듣고 음식점밖으로 뛰쳐 나왔다. 하오 5시30분쯤 아르바이트를 평소보다 일찍 마친 대학생 김모군(20)은 저녁을 먹으러 5층까지 올라갔다가 식당가가 폐쇄돼 다시 계단을 통해 내려오고 있었다. 이때 건물전체에서 갑자기 가스와 신나 냄새가 심하게 나고 심하게 멀미가 느낄 정도로 바닥이 흔들렸다. 같은 시각 천장이 내려앉았던 「춘원」의 형광등이 「와장창」 바닥에 떨어지면서 벽이 조금씩 갈라졌다.건물이 내려앉는 서곡이었다. 20분쯤뒤인 하오 5시50분쯤 갑자기 「쾅」,「와르르」 땅을 뒤흔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백화점 건물은 자욱한 먼지에 뒤덮였다. 폭발음과 함께 벽돌과 콘크리트 조각,분진들이 핸드백등 여성용품들과 뒤섞여 백화점앞 도로로 쏟아졌다. 백화점앞 차도는 이내 자욱한 연기,매케한 냄새와 함께 튕겨져 나온 여성용품들이 수북히 쌓였고 그 사이로 간혹 피투성이가 된 여자의 시신도 눈에 띄었다. 순간 신호대기중이던 회사원 최정렬씨는 암면,유리면 등 섬유가루때문에 목과 눈이 따가워 차에서 내려 길바닥에 엎드렸다. 수초뒤 자욱하던 먼지와 분진가루가 걷히면서 백화점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앙상한 뼈대를 드러냈다. 50m쯤 떨어진 삼호가든 베란다의 페어글라스에 금이 가면서 파편이 날아들었고 2백m나 떨어진 한양아파트 건물 유리창 수십여장이 깨졌다.
  • 조상의 지혜·멋 가득/「옛날 물건 종합전」등 고미술전시 풍성

    조상들의 지혜와 멋을 느낄 수 있는 골동품 전시회가 잇따라 열려 고미술품 애호가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최근 고미술품 전문전시장으로 새 단장한 인사동 고도사(735­5815)에서는 15∼31일 옛 어른들의 손때가 묻은 생활용품과 고가구 이조목기 도자기 등 3백여점을 모은 「옛날 물건 종합전」이 열린다. 답십리동 우창플라자 특별전시장(213­2697)에서도 한국고미술협회 서부지회 회원들이 소장하고 있는 서화·도자기·목기·민속품·서화 4백여점을 선보이는 「특선고미술회원전」(15∼24일)이 마련된다.옛날 도자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대호고미술전시관(212­8777)에서 오는 6월 19일까지 열리는 「고도자저가 판매전」에 관심을 가져 볼만하다. 특히 「옛날 물건 종합전」의 출품작중에는 휴대용 인쇄공방 도구,위원석 벼루 등과 같이 평소 보기드문 물건들이 많이 전시된다.휴대용 나무활자 인쇄공방 도구는 인쇄공방이 있는 큰 도읍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인쇄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한 도구.족보나 문집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놓아연락을 하면 인쇄공이 나무활자와 문선·조판·인쇄까지 가능한 이 도구 한벌을 가져와 머물며 일해주곤 했었다. 위원석은 평안북도 위원군을 가로질러 흐르는 위원강 바닥에서 캐낸 돌.이번에 전시되는 벼루들은 완성품으로 중국에 수출됐던 것들로 다양한 무늬의 조각이 환상적이다.이밖에 경상 사방탁자 머릿장 반닫이 등 고가구,투박함이 돋보이는 목기,민예적 감성이 독특한 표주박,등잔 화로 인두판 등 생활용품이 눈길을 끈다.
  • 세번째 대권 도전끝 엘리제궁 입성/시라크 불 대통령 당선자의 역정

    ◎7선의원­총리 2회 “경력 화려”/35세 정계 입문… 친화력 돋보여 자크 시라크 대통령당선자(65)는 7전8기한 오뚝이였다.미테랑 대통령에게 두번씩이나 내리 맛본 좌절을 딛고 일어나 세번만에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을 차지했다. 그는 영재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프랑스에서 보기 드문 정치인이다.영재만이 입학하는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을 정도로 똑똑하면서도 결코 영특함을 내세운 적이 없다.항상 쾌활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솔직한 대화를 함으로써 누구든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갖고 있다. 바로 그 힘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원동력인 것으로 정계에서는 평가한다.친근감의 이면에는 1백87㎝의 훤칠한 키와 당당한 풍모에서 풍기는 「만만치 않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지도자로서의 자질도 갖추고 있다. 그의 정치경력은 어느 정치인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ENA출신 가운데서도 극소수 상위성적자만이 갈 수 있는 감사원에 들어간 뒤 35살때 정계에 입문해 파리에서 내리 7선을 했다. 74년 농업장관으로입각한 지 얼마되지 않아 퐁피두 대통령이 사망하자 지스카르 대통령때부터 76년까지 2년동안 총리직을 지냈다.86년 미테랑 대통령때 총리직을 지낸 경력을 포함하면 총리직만 두번을 지냈다. 78년부터 18년째 파리시장직을 맡고 있고 74년부터 우파정당인 공화당연합(RPR)을 만들어 지난해 당수직을 알렝 쥐페 외무장관에게 넘겨줄 때까지 21년동안 당을 지켜왔다. 시라크 당선자는 하루 4∼5시간 수면을 취하면서 모자라는 잠은 승용차로 이동하는 도중 20분정도씩 보충할 정도로 하루 24시간을 쪼개 사용하는 부지런함을 가지고 있다.골프는 전혀 하지 않고 파리시청내에서 조깅을 하거나 체육관 운동을 하는 것이 유일한 건강유지방법이다. 재산은 부모의 고향인 코레즈지방과 파리시내에 주택 한채씩을 소유하고 있는등 7백만프랑(한화 약10억원)이 넘는 것으로 등록돼 있다.취미로는 프랑스인답게 목수일을 비롯해 집안의 자질구레한 수리등을 좋아하고 요리를 잘한다.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으며 맏딸 로랑스는 출가해 평범한 가정주부이고 둘째딸 클로드는 시라크 개인사무실에서 아버지의 홍보업무를 맡고 있다. ◎현역 지방의회 의장… 대학때 시라크 만나/엘리제궁 새안주인 베르나데트는 누구 엘리제궁의 새 안주인 베르나데트 시라크 여사(62) 역시 여성정치인.시라크 당선자의 고향 남부 코레즈지방의 지방의원으로 지방의회의장과 부시장직을 맡고 있다. 묵묵히 집안일을 챙기면서도 시라크 당선자의 정치를 도와 1차투표 때는 코레즈에서 시라크의 지지표가 65%나 나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내성적이고 신중한 성격이라고 밝히면서 『퍼스트 레이디로서 상징적 역할만을 할 것』이라고 강조.파리의 명문집안 출신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그녀는 영재코스인 파리정치대학을 다녔으며 한 도서관에서 시라크 당선자와 처음 만났다. 파리시 병원재단회장·파리시청예술진흥협회장 등을 맡아 사회활동을 해왔다.고고학에 조예가 깊으며 취미는 모형동물수집.
  • 조선시대 커뮤니케이션 연구/김복수 등 지음(화제의 책)

    ◎교서·윤음 등 언론매체 통해 대민언로 특징 밝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사회·민속연구실 교수 6명이 한국언론의 토착이론과 사상을 조명해보는 연구의 하나로 조선시대의 커뮤니케이션 현상과 사회적 관계를 고찰한 연구논문집. 김복수교수는 조선시대의 고문서를 국왕과 관료·백성간에 이루어진 전형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보고 조선사회의 문서를 통한 커뮤니케이션망과 그 형태를 제시했다.박정규 교수는 커뮤니케이션체계는 국왕을 중심으로 문서와 서적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가장 대표적인 하향적 언론매체인 교서·윤음의 내용과 변화를 도출해 당시의 대민 커뮤니케이션내용과 시대적 특징을 밝혔다.조맹기교수는 언관의 구조와 언로의 실천양태를 분석해 당시 커뮤니케이션개념은 오직 권력을 나누는 과정으로 묘사됐다고 주장했다.김광옥 교수는 민중커뮤니케이션형태인 참요의 내용변화를 고찰했으며 윤병철교수는 조선사회가 다원화하는 과정을 커뮤니케이션체계속에서 재해석했다.정대철 교수는 개화기의 개혁운동과 개화기 신문의 언론관을분석해 개화기언론의 사상과 운동이 본질적으로 개혁운동방향과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밝혔다.정신문화연구원 6천5백원.
  • 교육 개혁의 길 전문가 제안:상(세계화 이렇게 하자:5)

    세계화의 핵심과제는 교육개혁이다. 정부도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현재 대학입시를 비롯한 대대적인 개혁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화 이렇게 하자」 연재의 교육개혁편은 교육개혁의 주요과제별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싣는 지상공청회로 꾸민다. ◎교육개혁 왜 필요한가/입시위주교육 탈피 「세계인」 키워야 한다/덕성·시민정신 함양은 시급한 과제/환경·외국어 비중높여 변화에 부응/김종철 전주 우석대 총장 대통령의 자문기구로서 발족된 교육개혁위원회가 가동한지 2년의 세월이 흘렀다.교육개혁에 대한 온 국민의 기대와 관심은 높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개혁에 대한 기본관점에 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견해의 차이가 있고 더구나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다소 혼미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실정이다. ○일관성 없어 문제 제5공화국 시절에 설치,운영되었던 교육개혁심의회가 10대교육개혁안을 비롯하여 42개의 개혁과제를 제시하였고 제6공화국 시절에도 대통령자문회의가 가동하면서 더욱 화려한 일련의 교육개혁안을 설계,발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부분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음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교육개혁을 논의함에 있어서 한두가지 분명히 밝혀두어야 할 점이 있다.교육에는 비교적 항구적인 측면과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계속 변화해야 할 측면이 있다.무엇이든지 뜯어고치는 것이 교육개혁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며 지난날 예컨대 1960년대초 5·16직후나 80년대초에 교육개혁을 혁명적으로 추진했다가 얼마안되어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개혁안을 백지화했던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교육기회 확충을 교육의 기회를 확충해 나가야 한다거나 덕지체 3위일체의 전인교육을 실시하고자 하는 것은 시대와 사회의 구분을 넘어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교육의 이상이며 항구적인 과제이다.따라서 교육여건의 개선과 함께 교육기회를 확충해 나가는 것은 모든 단계의 교육에 있어서 영원히 추구되어야 할 과제이다.초중등학교와 대학에 있어서 예절교육·덕성교육·민주시민교육등을 강화해 나가는 일 역시 그러한 부류의과제이다.이러한 항구적인 과제의 경우 교육의 정상화가 곧 교육개혁의 과제이다.그것은 전통적으로 이어내려온 것을 그만둔다거나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반면에 교육과정의 사회적 적합성을 높이기 위하여 환경교육을 강화한다거나 대학에서 세계화의 추세에 부응하고자 컴퓨터교육이나 외국어교육을 강화하며 지역연구(areastudies)프로그램등을 활성화하거나 학교경영의 효율화를 기하기 위하여 또는 교육의 방법을 개선하기 위하여 과학기술의 적용 등에 의한 혁신을 도입하는 것등은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급격한 사회변화의 흐름속에서 혁신과 개혁의 범위는 넓고 개혁의 과제는 많다.도전과 시련 또한 만만치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의 교육개혁을 구상하는데 있어서 두가지 기본적인 자산이 있다고 생각한다.그 하나는 우리 국민 개개인의 탁월한 잠재적 능력과 발전가능성이며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높은 교육열이요,향학열이라 할 수 있다.이는 역사적 현실로서입증되고 비교교육학적 성찰을 통해서도 고증된 사실이라 할 수 있다.그리고 이러한 사실의 토대 위에서 즉 우리국민의 위대한 저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우리의 교육으로 하여금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개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서 교육력의 극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국민의지의 발로로서 또는 국가전략의 일환으로서 교육개혁이 요청되는 까닭이 아닐 수 없다. 현존하는 우리의 교육체제는 우리 국민의 위대한 저력을 활용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뜻있는 사람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생각한다. ○획일적 교육 안돼 입시 준비교육의 틀속에서 창의력이 말살당하는 획일화교육,전인교육이나 덕성교육이 한낱 구호로 그치고 있는 학교교육의 현실,심지어 학교교육 자체가 무력화되고 학교외 교육에의 의존도가 심화될 수 밖에 없는 교육체제의 탈학교화 현상등 교육개혁을 서둘러야 할 절실한 이유는 많다. 교육개혁의 논리와 명분을 뚜렷이 밝히고 그 구체적 목표와 방향,내용과 과제,그리고 실현가능성과 방법등에 대하여 보다 분명한 해답을 해주는 것은 교육개혁위원회가 하나의 전문집단으로서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 해답을 기다리고 있다. 또 한가지 노파심으로 첨가하고 싶은 점은 교육개혁안의 제시에 있어서는 현행제도와 개혁안의 틀 사이의 괴리를 메우기 위한 정책수단과 방법,재정적 실현가능성 등에 대한 보다 세밀한 방법론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논리와 현실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메울 수 있는 가교의 방법 없이는 그 실현가능성은 반감될 수 밖에 없음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고교교육 정상화 방안/교육기관 다양화… 경쟁력 발전 유도/창의력·재능 키우는 생활교육 시급/이종재 서울대교수·교육학 학제상 교육의 단계를 초등교육·중등교육·고등교육 그리고 사회교육으로 구분할 수 있다.어느 단계의 교육이든 막중한 교육의 과제를 담당하고 있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지만 중등교육에 속한 고등학교 교육은 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고질적문제내포 우리의 고등학교 교육은 70년대에 교육기회의 보편화를 실현하였다.해당 연령층의 95%정도가 취학하고 있다.68년에 시행한 중학교 무시험제도와 73년부터 부분적으로 시행해온 고교평준화정책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중등교육」이라는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였다.이것은 우리나라 교육이 성취한 업적중에 큰 업적으로 인정할 만하다.그러나 이러한 밝은 측면의 이면에는 우리나라 특유의 고질적인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현재 고등학교제도는 크게 구분할 때 2원화된 학교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등교육에 진학을 전제로 하여 일반교육을 실시하는 일반계고등학교(속칭 인문계고교)와 직업기술교육을 위한 실업계고등학교로 나뉘어 있고 여기에 분야별 특수한 재능을 신장해 주기 위한 영재교육기관으로서 특수 목적 고교가 있다.예능계고등학교와 과학·외국어고등학교가 이 특수 목적고교에 해당한다. 고등학교 교육에 대한 문제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고등학교단계에서 학생들이 성취해야 할 전인교육과 개성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전인교육과 개성교육을 정의하기가 쉽지는 않으나 교과교육을 통하여 학생들이 지적으로 성장하고 학생들의 개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실험하며 타고난 소질과 재능을 살려가는 방향으로 가르치고 학습하고 생활하며 성장하는 교육으로 생각할 수 있다.선진국의 고등학교에서는 이러한 학교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우리의 형편을 보면 입시위주 교육으로 학교교육이 획일화되어서 이 전인교육과 개성교육이 제자리를 잡아가지 못하고 있다.학생은 피곤하고 학교는 그 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있고 학부모는 심리적으로,경제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고 사회는 우리나라의 장래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다. ○학부모 부담도 커 입시위주교육으로 획일화된 학교교육의 문제를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이 점에서 교육개혁이 필요하다.이 획일화를 풀기위하여 몇가지 원칙을 세워놓고 접근해 가야 할 것으로 본다.이 원칙으로서 교육의 다양성,교육에서의 선택과 경쟁,교육운영의 자율화를 지향해 가야 한다고 본다. 교육에서의 다양성은 특히 고등학교 교육단계부터는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개인차가 드러나고 개성에 적합한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등교육기관도 다양한 기능과 목적,형태를 가진 교육기관으로 다양화되어야할 뿐 아니라 고등학교도 다양한 형태로 특성화되어야 한다.교육에 다양성이 성립할 때 학생들은 자기에게 적합한 학교를 선택하여 갈 수 있어야 한다.이제 학교나 대학은 그 학교교육에 적합한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도록 선의의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학생들이 서로 경쟁하던 시절에서 학생들을 모시기 위하여 더 좋고 적합한 교육을 서비스하겠다고 학교가 경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학교들이 이렇게 경쟁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학교나 대학의 운영이 자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그 운영의 자율의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 ○자율운영 넓혀야 이 과정에서 고등학교의 교육은 변할 것으로 기대된다.교육의 획일성을 풀기 위하여 고교평준화제도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방향에서 보완해야 하고 각 학교가 특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학교의 운영을 자율화해 주어야 할 것이다.대학만이 아니라고등학교운영도 자율화하고 이 자율적 운영을 지원하기 위하여 행정적으로 통제하기 보다는 「학교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창의적으로 스스로 학교가 운영될 수 있을 때 학교가 변할 수 있다.교장의 권한이 위축되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도 혁신적인 교장이 학교운영회의 지원을 받아 학교를 새롭게 할 수 있을 가능성에 기대를 하게 된다. 학생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방향에서 검토한다면 이제 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자기들에게 적합한 교과를 선택하여 수강할 수 있도록 학교의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교과단위 이수제」가 가능하도록 고등학교에 재정지원도 하고 이러한 고등학교의 변화를 반영하여 대학입학전형제도(입학시험제도가 아닌)가 발전되길 기대한다.
  • 「둔촌잡영」등 4건 보물 지정/문화체육부 발표

    문화체육부는 3일 조선시대 도량형관련 해설서인 「신편산학계몽」을 보물 제1217호,고려말 학자 둔촌 이집(1314∼1388)의 문집 「둔촌잡영」을 보물 제1218호,불경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권상1­2·하1­1∼2­2(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권상일지이·하일지일∼이지이)」를 보물 제1219호,「묘법연화경 권제5·6(묘법련화경 권제오·육)」을 보물 제1010호로 각각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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