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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전북 무승부, 강등권 탈출 실패… 제주만 광주 원정서 웃었다

    강등전쟁의 분수령에서 대전하나시티즌과 전북 현대가 접전 끝에 결국 득점 없이 비겼다. 두 팀 모두 승리했다면 강등권에서 확실히 벗어날 수 있었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각각 승점 1점을 얻는 데 그쳤다. 대전과 전북은 22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K리그1 31라운드에서 0-0으로 비겼다. 이날 무승부로 대전은 9위(승점 35), 전북은 10위(승점 34)를 유지했다. 대전은 7경기 무패(4승 3무), 전북은 5경기 무패(3승 2무)를 이어 갔다. 공교롭게도 31라운드는 치열한 강등경쟁을 벌이는 5개 팀 가운데 대전과 전북, 대구FC와 인천 유나이티드 등 4개 팀이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승리를 거둔 제주 유나이티드만 웃었다. 전북은 이영재와 에르난데스 투톱에 전병관과 안드리고가 좌우날개, 보아텡과 한국영이 중원을 지켰고 김태현, 홍정호, 박진섭, 안현범이 수비진을 형성했다. 골키퍼는 김준홍이 장갑을 꼈다. 대전은 김준범, 김현욱이 최전방을 맡았다. 최건주, 밥신, 이순민, 김승대가 중원, 이상민, 안톤, 김현우, 김문환으로 포백을 세웠다. 수문장은 이창근이었다. 대전은 전반 33분 김현욱의 프리킥이 전북 크로스바를 때리는 골대 불운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후반 추가시간에는 공격수 구텍이 팔꿈치 가격으로 퇴장당하는 악재 속에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반면 전북은 전반 37분 에르난데스가 골키퍼까지 제낀 노마크 기회에서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해 슛이 빗나간 게 뼈아팠다. 승리가 절실했던 최하위 인천 유나이티드는 선두를 달리는 울산 HD을 상대로 열린 안방 경기에서 0-0으로 비기며 12위(승점 32)에서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 대구는 21일 열렸던 안방경기에서 FC서울과 1-1로 비기며 11위(승점 34)에 그쳤다. 제주는 이날 원정경기에서 광주FC에 2-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제주는 8위(승점 38)를 유지하며 광주(승점 40)를 바짝 뒤쫓는 형세를 만들었다. 다만 이날 포항의 승리로 광주와 제주는 모두 파이널B를 확정했다.
  • 사람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안간힘, 그게 ‘문학의 일’

    사람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안간힘, 그게 ‘문학의 일’

    인간은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저마다 살아 내야 할 이유를 찾는다. 치열한 언어와 예리한 사회적 감수성을 담아낸 시를 써 온 시인 진은영(54)은 살기 위한 방편으로 책을 읽던 시절을 떠올린다. 읽고, 밑줄을 긋고, 어딘가에 옮겨 적은 ‘친애하는’ 작가들의 문장들이 시인의 일부가 돼 책으로 나왔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진은영의 신작 산문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은 그만의 기준으로 선별한 문장들을 곱씹으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글을 썼던 작가들의 안간힘을 전한다. 그가 호명한 작가들은 프란츠 카프카, 버지니아 울프, 백석, 알베르 카뮈, 시몬 베유, 실비아 플라스, 한나 아렌트 등이다. 이들은 ‘자신과 맞지 않는 세계’ 속에서도 고유함을 잃지 않기 위해 분투하며 독자들의 영혼에 균열을 낸 작가들이다. 시인은 카프카의 ‘소송’을 통해 여성의 글쓰기가 허락되지 않은 시대에 작가이자 피고로 살아야 했던 브론테 자매에 대한 시선을 억압받는 한국 사회의 소수자에게 옮긴다. 울프의 ‘올랜도’를 읽으면서는 400년간 남성으로도 여성으로도, 외교관·집시로 살다가 결국 시인이 되는 운명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사는 사회를 꿈꾼다. 좋은 작가들은 독자들에게 아첨하지도, 쉽게 위로하지도 않는다. 현실에 대한 달달한 포장보다는 고통을 직시하고 정확한 위안을 받는 편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너는 고통이란 고통은 다 겪겠지만 그래도 너 자신의 삶과 고유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인의 문장은 독자에 대한 작가의 진심 어린 믿음에서 비롯된다. 산문집에서 눈에 띄는 주제는 ‘애도’다. 먼저 떠난 오빠에 대한 192쪽 기록을 담은 캐나다 시인 앤 카슨의 ‘녹스’에서 한국의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고, 아픈 엄마를 떠나보낸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에서 슬픔을 견디는 유족들의 마음을 읽어 낸다. 위대한 작가의 책을 읽는다고 인류를 구원하지는 못하지만 살아가게 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진은영은 시인 이전에 좋은 독자이고 다정한 상담가다. 그의 문장들을 읽다 보면 절망 속에서 삶을 견디는 단 한 사람을 마지막까지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 그것이 ‘문학의 일’이라는 시인의 믿음에 동의하게 된다.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벌레 폭풍(이종산 지음, 문학과지성사) “그렇다면 이타적인 것은 무엇일까? 이타적인 것이 이기적인 것보다 옳은가? 자기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에게 맞추고 희생하는 것이 더 훌륭하고 도덕적인 것일까? 포포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계속 나무토막을 다듬는다. 이것이 포포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무심하지만 섬세하게 다듬어진 감성으로 글을 쓴다고 평가받는 소설가 이종산의 장편소설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과 개인의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고립에서 착안한 상상력을 놀라운 힘으로 펼쳐 보인다. 벌레 떼로 인해 바깥세상과 차단된 채 실내 생활을 이어 가야 하는 사람들과 시공간 너머 그리운 존재를 좇는 이들의 용기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 시공간 너머 서로를 좇는 간절한 그리움, 만질 수 없어도 다다르고야 마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292쪽. 1만 7000원. 사이코패스(박상현 지음, 제철소) “벌써 몇 번쨉니까. 왜 삼성의 스만 나오면 쓱, 가위질입니까? 부장, 차라리 보도지침을 주세요. 그럼 나가지도 않을 기사 쓰느라 헛고생은 안 할 거 아닙니까. 보도지침은 무슨…. 꼭 문서로 돼야 보도지침입니까?” 김상열연극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으며 한국 연극의 지평을 넓힌 극작가 박상현의 신작 희곡집이다. 한국 사회의 이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최근작 네 편이 실렸다. 표제작 ‘사이코패스’는 초연 당시 파격적인 주제와 수위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인용한 문장은 수록작 ‘고발자들’에 나오는 한 대사다. 뜨끔하다. 학교, 정부를 향한 비판도 통렬하다. 336쪽. 1만 9000원. 점퍼(고정욱 지음, 생각학교) “지금 예술 같은 거 하지 말고 국민 모두 다 무력 투쟁에 뛰어들면 온전히 우리 힘으로 독립할 수 있지 않겠냐는 거지. 분단도 안 되고.” 1992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꾸준히 활동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고정욱 작가의 신작이다. 소아마비로 중증장애를 갖게 됐지만 각종 사회활동을 통해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 중인 작가가 이번엔 청소년들을 위한 역사소설에 ‘타임슬립’(시간여행)이라는 장르물의 요소를 더했다. 오산중학교에 다니는 중학교 3학년 박창식이 어느 날 1928년으로 타임슬립한다. 김소월, 백석, 이중섭을 만나고 두 달간 좌충우돌하며 성장한다. 220쪽. 1만 3500원.
  • 별 따러 가는 길, 꿈꾸는 낭만 길… 기적을 안긴 길, 예술을 품은 길 [박상준의 書行(서행)]

    별 따러 가는 길, 꿈꾸는 낭만 길… 기적을 안긴 길, 예술을 품은 길 [박상준의 書行(서행)]

    별 따러 가는 길! 도서관 옥상으로 향하는 실내 계단에 이토록 환상적인 이름을 붙인 건축가라니. 또한 책상 가득한 낙서를 지우지 않는 도서관 사람들이라니. 잘생긴 도서관이 늘어날수록 꿈을 꿀 수 있는 도서관이 귀하다는 걸 깨닫는다. 경남 김해기적의도서관은 고 정기용 건축가의 유작이다. 책을 담는 집 이전에, 어린이들의 책 읽는 즐거움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개관하던 2011년에도 그랬고 한참이 지난 지금도 새롭고 반가운 도서관이다. ●건축가 정기용의 ‘유작’… 2011년 개관 김해기적의도서관으로 들어서기 전 아이들은 두 번 멈춰 선다. 우선 신발을 벗어야 한다. 성난 망아지처럼 뒷발로 ‘휙~’ 하고 벗어던지는 모습을 상상한다. 다음은 왼쪽의 세면대다. 개인 위생을 고려했을 수 있지만 그보다 다층적인 의미로 읽힌다. 신나게 뛰어놀고 온 아이들에게 손을 씻으며 한 번 더 가쁜 숨을 고르라는 제안일 것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는 말은 마음의 양식이라 불리는 책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 다정한 대화(?)가 어른들의 역할일 테다. 물론 아이들은 어른의 뜻과는 상관없이 제 맘대로 서가를 향해 진격(!)할 테지만. 김해기적의도서관은 2년 전에 처음 찾았다. 10주년을 맞은 해였다. ‘기적의 가족 책장’ 큐레이션을 보며 지역과 다정하고 끈끈하게 연결된 도서관이라 생각했다. 아마도 정기용 건축가가 건물에 담은 진심과 바람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세면대 맞은편 벽에는 정기용 건축가의 스케치가 보인다. 그림 속 도서관의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이 가득하다. 이리도 낭만적인 도서관의 밑그림이라니. 나 같은 어른들은 그곳에서 또 한 번 멈춰 선다. “한 알의 밀알을 뿌렸고 지금은 밀밭이 되었어요.” 홍미선 관장이 정기용 건축가를 회상하며 한 말이다. 기적의도서관은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2003년부터 지자체와 협력해 진행한 어린이 전용도서관 건립사업이다. 정기용 건축가는 2003년 시작부터 2011년까지, 8년 동안 기적의도서관의 초석을 세웠다. 그리고 김해기적의도서관은 그가 암 투병 중 완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유작이다. 그러니 할아버지 건축가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선물 같은 도서관이라 여기며 돌아보면 좋겠다. ●같은 추억의 사람들 함께하는 도서관 김해기적의도서관은 어느덧 열한 살이다. 개관 초기 초등학생은 대학생이 됐고, 늘어나는 장서를 감당할 수 없어 3층 책장 위에는 2층 책장을 추가해야 했다. 그런 불편과 편의 사이의 변화가 틈틈이, 그리고 층층이 쌓여 도서관의 역사가 돼 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기적의 놀이터’다. 2013년 1월부터 매달 셋째 일요일에 진행하는 도서관의 놀이 프로그램이다. 벌써 120회를 훌쩍 넘었다. 처음은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소나무) 등을 쓴 편해문 놀이운동가가 이끌었지만 현재는 참가 학부모들이 ‘골목대장’을 맡아 놀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놀이기구가 따로 없고 신문지 등의 재활용품을 활용하는 등 재미난 방식으로 아이들과 어울려 논다. 별도의 사전 신청 없이 누구나 참가 가능하다. 기적의놀이터뿐일까? 김해기적의도서관은 사서들이 세심하게 기획한 알찬 프로그램이 유독 많다. 그 가운데 그림책 읽어주는 도서관 역시 별도의 신청 없이 누구나 들을 수 있다. ‘기적의그림책’(매주 수요일), ‘별난 그림책’(첫 번째 금요일), ‘이야기보따리’(2~4주 금요일) 등을 진행하는데, 기적의그림책은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맡았다. 기적의놀이터와 마찬가지로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그 아이들의 부모는 보호자에서 프로그램 활동가로 도서관 업무에 동참하는 셈이다. 한 알의 밀알이 밀밭이 되었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아이들의 아지트… 어른들도 공간 탐구 건축 탐방 또한 흥미롭다. 도서관 건물은 율하천 변에 기대어 자리한다. 세 개 동의 건물은 옹기종기해 어깨동무한 책 마을 같고, 등나무로 뒤덮여 공원 풍경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구성과 분할은 지금 봐도 세련되고 세심하다. 그래서 ‘신기한 책나라의 여행자, 탐험가, 발견자’가 되는 건 어린이만의 몫이 아니다. 숨바꼭질하듯 안고 품고 숨기고 다시 꺼내는 방식은 어른들에게도 공간 탐구의 재미를 안긴다. 우선 초입의 사서데스크 건너편 ‘4차원의 방’부터. 1층과 2층의 자료실을 잇는 파란색 원통형의 너른 공간은 이곳이 도서관인가 되묻게 한다. 나선형 계단과 하늘빛이 스미는 천창이 주요소인데 마치 천문대 계단 같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그림자가 바깥의 날씨와 시간을 전달한다. 덕분에 계단이 잇는 2층 자료실은 다락처럼 비밀스럽고 호젓하다. 반면 1층 자료실은 숨을 공간이 많아 좋다. 은밀하고 구석진 곳을 찾는 아이들의 바람이 고스란하다. 서쪽 벽에서 바깥으로 불쑥 튀어나간 반원형 신화의방과 아빠랑아가랑방, 책장 사이 동그란 원형 소파, 무지개 터널처럼 고개를 숙인 채 들어가야 하는 열람석 등은 놀이터를 방불케 한다. 그 자체로 아이들의 아지트다. 북쪽 창 너머 뒤뜰은 어른들의 한갓진 독서에 알맞다. 푸른 등나무 그늘 아래 책장을 넘기다가, 솨아솨아 바람이라도 불어 등나무 잎이 서걱댈 때는 살아가는 일이 제법 근사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한 공간의 낭만은 ‘별 따러 가는 길’에서 정점을 맞는다. 신화의방 옆으로 난 계단 열람석은 점점 좁아지며 2층 문으로 잇댄다. 옥상의 야외 등나무 열람실로 나가는 길로 그 이름이 ‘별 따러 가는 길’이다. 정기용 건축가가 직접 명명했다. 공공도서관은 보통 안전이나 보안 문제로 건축 의도와 무관하게 출입구를 하나로 강제하곤 한다. 김해기적의도서관은 건축가의 의도를 존중해 모든 통로를 열어 두고 갈아 신을 수 있는 슬리퍼까지 뒀다. 13년 전부터 우리에게도 이런 도서관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괜스레 뿌듯하다. 그러고 보니 김해기적의도서관은 하늘 보이는 창들도 무척이나 많다. ●기적, 그 꿋꿋한 행복 옥상에서 다시 ‘별 따러 가는 길’을 거슬러 내려와서는 그곳 반원형의 책상 앞에 앉는다. 책상 가득한 낙서가 신기했던 터였다. 별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한 점 한 점의 낙서를 읽어 나간다. ‘이거 보는 너 바보가 되었다’에 발끈하고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데뷔일이 2015년 5월 26일이라는 것도 알고, ○○중학교 2학년 4반 2번이 잘생겼다는 사실도 안다. 그러고는 2층 자료실에서 가져온 오늘의 읽다 말 책을 펼친다. ‘ㅊㅊㅊ’(청소년책추천) 팀이 권하는 ‘제철행복’(김신지, 인플루엔셜)이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도 제철 독서의 행복은 있겠지 하며 절반 즈음의 책장을 넘긴다. “계절마다 좋아하는 곳에 마음을 쏟으며 사는 일이 좋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즐기고 그게 곧 잘 사는 일이라고 믿으며 지낸다.” 툭 하고 떨어진 문장 하나. 작가는 한 해를 24절기로 구분하고 그 절기마다의 ‘아는 행복’을 다시 한번 느끼며 살아 보라 권한다. 아이들은 그리 말하지 않아도 제철의 행복을 가장 먼저 알아채겠지. 청소년 추천도서인 걸 보면 그 행복이 가장 절실한 건 청소년일지도. 물론 우리 어른의 행복 역시. 실은 모두 제철과 제 몫의 행복이 간절하다. 그래서 어느 도서관 옥상에 열람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길에 한 건축가가 ‘별 따러 가는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처음의 취지를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는 도서관 사람들로 인해, ‘행복’이란 의외로 소박하거나 꿋꿋한 의지로 이뤄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걸 다른 말로 하면 기적이려나. 오는 22일은 24절기 가운데 추분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이다. 마침내 여름은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도서관 옆 카페거리 올해는 김해시가 선포한 ‘김해 방문의 해’다. 또 10월에는 김해에서 전국체전이 열린다. 그래서 올가을 김해는 크고 작은 이벤트가 많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김해기적의도서관에서 율하천 만남교를 건너면 율하카페거리다. 봉황대길(봉리단길)과 더불어 김해의 이름난 카페촌이다. 봉황대길이 구시가의 아기자기한 가게들로 매혹한다면 율하카페거리는 율하천과 장유신도시의 여유로움이 특징이다. 지난해부터는 율하카페거리 일원을 커피&웹툰거리로 조성 중이다. 10월 12일부터 13일까지는 두 번째 김해웹툰페스티벌도 열린다. 카페 7곳을 웹툰 상점으로 꾸미고 웹툰 테마 공간 등에서 포토존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특히 김해기적의도서관 주변은 김해시어린이교통공원, 율하유적전시관과 유적공원 등 율하천공원에서도 녹지가 넉넉한 구간으로 꼽힌다. 가을 산책을 만끽하며 쉬어 가기에 적합하다. 축제의 소란스러움을 피하고 싶은 이들은 율하천 신리공원 근처에 조성된 380m 맨발 걷기 황톳길을 걸어도 좋겠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이하 클레이아크)은 김해 여행의 필수 코스다. 고만고만한 지역 미술관으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규모도 크고 전시동을 아우르는 야외 산책로와 전망 좋은 위치 등 꽤나 알찬 여행지다. 이름만 들어 보고 가본 적이 없다면 이번 가을이 좋은 기회다. 먼저 클레이아크라는 이름이 궁금할 텐데 흙을 의미하는 클레이(Clay)와 건축을 뜻하는 아키텍처(architecture)를 합친 말이다. 김해는 가야의 수도였고 가야토기와 분청사기가 발달했던 도예의 고장이다. 그 전통의 맥을 건축과 응용미술로 확장해 해석하려는 시도다. 대표 전시실은 돔하우스. 지상 2층 규모의 돔은 약 5000장의 구운 도자 타일을 촘촘히 붙여 만든 외관이 자랑거리다. 클레이아크 초대 관장을 지낸 신상호 작가의 작품이다. 내부는 1~2층을 아우르는 중앙 홀이 압도적이다. 돔 천장에서 햇빛이 내려 신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돔하우스를 나와서는 언덕 위까지 이동한다. 완만한 오르막인데 어지간한 공원 산책로 못지않다. 정상의 오벨리스크를 연상케 하는 20m 높이의 도자타일 타워나 전망 좋은 큐빅하우스 역시 현대적인 감각을 뽐낸다. ●클레이아크의 성악하는 도슨트 클레이아크의 특별한 전시해설 프로그램도 꼭 도전해 보시길. 성악가 출신 이효재 도슨트가 전시 해설 중간에 작품과 연계한 성악곡을 들려준다. 전시장이 순식간에 공연장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음악을 빌려 작품을 느껴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기도 하다. 10월 26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무료로 진행한다. 오는 28일과 29일에는 ‘가을엔 미술관’이 기다린다. 오후 9시까지 야간 개장해 좀더 긴 시간 미술관을 즐길 수 있는 행사다. 브라스밴드, 디제잉 공연, 플리마켓 등이 있고 야외 산책로에서는 보물찾기 이벤트가 기대를 모은다. 클레이아크 바로 옆은 김해분청도자박물관이다. 클래식한 박물관으로 클레이아크와 비교해 들러 볼 만하다. 11월 초에는 김해분청도자기 축제가 있다. 김해 시내 쪽은 분산성이 숨은 여행지다. 김해가야테마파크 남쪽 분성산의 옛 성지로 둘레 약 923m, 폭 8m의 타원형 성벽이다. 정상에 띠를 두른 듯 이어지는 산성도 장관이고 산성 아래로 보이는 도시 전경 또한 일품이다. 하루 중 언제 찾아도 좋지만 해질녘을 추천한다. ‘왕후의 노을’이라 불리는 일몰을 놓칠 수 없는 까닭이다. 가야국 수로왕의 허왕후가 그리움을 달랜 노을이라 해 그리 불린다. 분산성은 포토존으로 인기 있는 장소이기도 한데, 그보다는 지긋이 하루의 끝자락을 느긋하게 품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김해기적의도서관 -오전 9시~오후 6시(화~금), 매월 세 번째 월요일, 법정공휴일 -누리집 lib.gimhae.go.kr/miracle.web
  • 사람 죽여 놓고 “태양 때문에 그랬다”…부조리한 그 이야기의 매력

    사람 죽여 놓고 “태양 때문에 그랬다”…부조리한 그 이야기의 매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1913~1960)의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방인’은 인간의 실존 문제를 다룬 20세기 최고의 문제작으로 꼽힌다. 원서 기준 159쪽의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부조리극이 대개 그렇듯 단번에 이해하기란 쉽지 않고 풍성한 해석을 낳는다. 문제작이 연극 무대에 올라오면 어떨까. 앞서 2017년과 2018년 각각 초연과 앵콜 공연으로 관객과 만났던 극단 산울림의 ‘이방인’이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와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어쩌면 어리둥절하게 다가올 수 있는 부조리극이지만 객석의 반응은 뜨겁다. 연극은 원작의 줄거리를 따라 전개된다. 지중해의 알제에 사는 프랑스 청년 뫼르소는 양로원에서 지내던 모친이 죽은 이후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다 아랍인들과의 싸움에 휘말려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선택을 한 뒤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져 법정에 서게 된다. 파란만장한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삶을 살던 청년이 난처한 상황에 처하면서 펼쳐지는 일이 관객들의 몰입감을 이끈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사실상 1인극에 가깝다. 뫼르소의 독백이 그만큼 비중이 크고 서사를 끌고 가는 배우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임수현 연출은 “‘이방인’은 프로덕션마다 작품화하는 방식이 다른데 산울림이 가져가고 싶었던 방식은 문학성이었다”며 “‘언어의 힘을 믿고 가보자’는 생각으로 원작의 문체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뫼르소의 독백 장면에 신경을 기울이며 대본 작업에 임했다”고 밝혔다. 살인의 이유가 “태양 때문이었다”고 하는 상식적이지 않은 인물을 통해 ‘이방인’은 다채로운 질문을 던진다. 뫼르소라는 문제적 인물의 내면, 카뮈의 언어가 지닌 울림을 담아내면서 부조리하지만 그 나름의 설득력을 제시한다. 작은 무대에 원작의 강렬한 이미지를 시각적, 공간적으로 위대하게 채워내면서 인간이기에 고민하게 되는 낯선 감각들을 건드린다. 원작을 잘 가공해내면서 연극적 매력이 가득한 작품이 됐다. 극을 이끄는 주인공 뫼르소 역은 초연 때부터 무대에 오른 전박찬과 새롭게 작품에 합류한 차예준이 번갈아 연기한다. 이 작품으로 제54회 동아연극상 신인연기상을 받았던 전박찬은 믿고 보는 뫼르소로 통한다. 차예준은 지난달 프레스콜 당시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태양의 이미지는 주인공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무기력함과 부조리의 원형이라고 해석했다. 뫼르소를 태양에 대한 부조리를 해결하려는 욕망을 가진 존재로 설정해 연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작품을 보고 나면 우리가 실은 이방인과 같은 존재는 아닌지, 인간의 근원적 고독인 무엇인지 등 부조리극이 일깨우는 다양한 감각들을 마주하게 된다. 관객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와닿을 수 있는 게 ‘이방인’의 매력이다. 원작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임 연출은 “‘이방인’이 ‘고도를 기다리며’를 잇는 산울림의 대표 레퍼토리가 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5월 별세한 임영웅 전 산울림 대표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를 언급하며 자기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표한 것이다. 임 연출은 임 전 대표의 아들이다. 22일까지. 서울 마포구 소극장 산울림에서.
  • 선생님이 교실에 국어사전 놓은 이유…‘문해력 근육’ 훈련 나선 교사들

    선생님이 교실에 국어사전 놓은 이유…‘문해력 근육’ 훈련 나선 교사들

    서울에서 31년째 초등교사로 일하는 민기식 교사는 최근 교실에 학생 수만큼 국어사전을 비치했다. 교과서에서 나오는 각종 용어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어휘를 정확히 파악하는 습관을 들여주기 위해서다. 민 교사는 “3~4학년 과정에 한자어가 많은데 여기서 이해를 못 하면 공부가 싫어진다”며 “아이들이 나중엔 (사전을) 찾아보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찾는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문해력, 즉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을 이해·해석·창작할 수 있는 능력이 하락하면서 학교 현장에서 문해력 향상을 위한 여러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수업 시간에 단어를 찾아 뜻을 파악하고, 각종 자료를 활용해 ‘읽기 근육’을 키우는 연습이다. 디지털 과의존에 코로나19 등교 공백으로 벌어진 문해력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우선 수업 시간에 진도를 나가기 전 최대한 어휘를 쉽게 설명하는 교사가 많아졌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사회·과학 교과 개념의 뿌리를 하나하나 알려주는 방식이다. 조재범 초등교사는 “‘삼권분립’이란 단어가 나오면 아이들에게 한자를 알려주긴 어렵기 때문에 ‘권력 할 때 권’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이해시키려 노력한다”고 했다. 읽기 활동도 대다수 학교에 도입됐다. 서울시교육청의 ‘북웨이브’, 인천시교육청의 ‘읽·걷·쓰’ 등 전국 시도교육청들도 적극적이다. 대구의 22년 차 초등교사는 “매일 아침 10분 독서가 정말 효과적”이라며 “자유롭게 독서하고 제일 인상 깊은 문장을 필사하고, 왜 그 문장이 와닿았는지 이유를 한두줄 쓰게 한다”고 전했다. 짧은 글이라도 직접 써보는 글쓰기 활동도 도입한다. 박은식 초등교사는 “학교에서 각자 반 단위로 글쓰기 공책을 마련해 1교시 전에 주제별로 간단하게 시쓰기, 문장짓기 활동을 한다”며 “5~10분 동안 짤막하게 쓰는데 3월에 힘들어하던 아이들도 12월엔 실력이 늘었다”고 전했다. 대학 입시로 시간이 부족한 고등학교에서도 문해력의 중요성을 느낀 교사들이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안연규 구미 선산고 국어교사는 교과서 어휘를 아이들에게 모두 찾게 한 뒤 사전으로 만들고, ‘학습도구어’로 문장을 만드는 활동을 한다. 모르는 내용이나 말이 나오면 유튜브 대신 직접 자료나 사전을 찾기도 한다. 안 교사는 “문해력 활동 이후에 도서관을 가보거나 신문 기사를 읽었다는 학생도 나타나 변화가 있었다”고 했다. 윤영화 정목초 연구부장은 “자체적인 읽기, 쓰기 훈련과 더불어 기초학력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부족한 학생에게는 튜터 등 맞춤 지도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화적 어린이]당신의 인권 감수성을 깨우는 8권의 그림책…바나나는 어떻게 ‘더 일찍’ 올 수 있었을까

    [문화적 어린이]당신의 인권 감수성을 깨우는 8권의 그림책…바나나는 어떻게 ‘더 일찍’ 올 수 있었을까

    ‘바나나가 일찍 도착하려면 택배 기사는 새벽에 출발해야 한다. 택배 기사가 새벽에 출발하려면 더 일찍 문을 연 주유소에 가야 한다. 주유소가 일찍 문을 열려면 주유소 직원은 더 일찍 지하철을 타야 한다.’ (그림책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 일부) ‘사람들은 분홍 점에게 예쁘면 예쁠수록 좋다고 했어요. 파랑 점에게는 아주 못생기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했어요. 사람들의 말에 누가 더 마음이 불편할까요?’ (그림책 ‘두 점 이야기’ 일부) 차별과 불평등, 이주노동, 성역할, 폭력의 감수성 등 민주주의와 인권을 다룬 8권의 그림책이 찾아온다. 이른바 ‘민주인권그림책’이라 불리는 시리즈는 지난 5월 출간된 정진호 작가의 그림책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부터 오는 10월 출간 예정인 서현, 소복이, 한성민 작가의 ‘멋진 민주 단어 그림책’까지 이어진다. 시리즈의 시작은 올 하반기 서울 용산에 개관을 앞둔 민주화운동기념관의 전시 콘텐츠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과거 국가 폭력의 현장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인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조성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을 탄압하고 고문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보존, 전시와 교육 시설을 마련해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기획과 저작 지원을 맡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비롯해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그림책으로 다뤄 온 권윤덕 그림책 작가에게 프로젝트의 감독을 부탁했다. 권 감독은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영철 전시 총감독이 앞으로 기념관에 특히 가족, 학생 등 단체관람 등이 많을 텐데 민주주의와 인권을 전달할 수 있는 예술 장르로 그림책이 좋겠다고 제안했다”며 “민주인권을 너무 작게 규정하지 말고 생각과 표현을 마음껏 자유롭게 펼쳐도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참여 작가는 권 감독을 필두로 그림책 연구자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프로젝트팀이 함께 결정했다. 권 감독은 “민주인권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있거나 그런 작업을 해온 작가를 선정했다”며 “진행 과정 역시 민주적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에 ‘소통이 잘 되는 작가’도 선정 기준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계절출판사와 협업으로 출간하는 시리즈는 모두 8권이다. 이중 5권이 이미 출간됐고 나머지 3권은 다음달 출간된다. 앞서 출간된 그림책을 살펴보면 민주주의와 인권의 의미를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일상 속에서 공감하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담아냈다. 먼저 정진호 작가의 그림책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문장들은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정 작가는 최근 사계절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에서 가장 빨리 출발하는 8146버스가 출발 시간을 15분 앞당긴다는 기사와 댓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버스가 3시 50분에 출발하려면 버스 기사는 몇 시에 집에서 나와야 하는 걸까, 또 그 버스를 정비하는 사람은, 그 정비소는? 이렇게 생각에 꼬리를 물었던 게 이 책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장재은 작가는 ‘타오 씨 이야기’를 통해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장 작가는 대구 성서공단을 직접 취재하며 일터의 풍경을 낱낱이 그렸다. 복잡한 기계와 날카로운 부품 조각이 널브러진 공장 내부, 미등록 외국인 단속 기간의 한산한 시장. 생생한 묘사와 더불어 칸의 흐름을 예민하게 연출해 인물의 생활 감정을 담아냈다. 권정민 작가는 ‘당신을 측정해 드립니다’를 통해 무엇이든 비교하고 수치화하게 만드는 ‘측정’의 본질에 주목해 독특한 형식의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림책에서 측정의 주인공은 고양이다. 고양이는 기초, 심화, 종합 단계에 맞춰 측정을 수행한다. 그림책을 읽을수록 고양이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민주인권그림책 시리즈에 유일하게 해외 작가로 협업한 요안나 올레흐, 에드가르 봉크는 ‘두 점 이야기’를 통해 아주 오랫동안 묵은 성역할의 그릇된 인식을 짚어낸다. 이명애 작가의 ‘휘슬이 두 번 울릴 때까지’는 우리 안에 숨어 있던 폭력성이 드러나는 순간을 피구에 빗대어 그려 낸다. 당연하게 여기던 일을 다시 생각해 볼 여지를 마련한다. 다음달 3권의 민주인권그림책이 독자들을 찾아온다. 조원희 작가의 ‘호두와 사람’을 비롯해 3명의 작가가 함께한 ‘건축물의 기억’(오소리, 최경식, 홍지혜 작가), ‘멋진 민주 단어 그림책’(서현, 소복이, 한성민 작가)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권 감독은 “3명의 작가가 함께 하나의 그림책을 만드는 것은 정말 새로운 시도”라며 “(앞으로 나올 책들을 통해)6~7살 어린이들이 ‘엄마 나 연대할래’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도록, 아주 어릴 때부터 민주인권과 관련된 좋은 단어들을 품고 자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문화적 어린이’는… 어린이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문화(공연, 전시, 어린이책)에 대해 소개하고 나누는 자리입니다. 더 많은 어린이들이 높은 수준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안내하겠습니다.
  • “추석 용돈으로 엔비디아 사볼까?”…반도체 종목 투자 열기 지속

    “추석 용돈으로 엔비디아 사볼까?”…반도체 종목 투자 열기 지속

    반도체 사업을 중심으로 한 삼성전자 주식이 ‘국민주’로 떠오른 가운데 20대는 물론 10대 미성년자까지도 주식투자에 눈을 뜨면서 추석 용돈으로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등록된 올해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 소액 주주 수는 467만 2039명으로 전년 대비 19.64%(114만 1938명) 줄었다. 이 가운데 8.38%에 해당하는 39만 1869명이 미성년 주주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국내 주식 투자열풍이 불었던 2019년 말과 비교하면 미성년 주주 비중은 2.6배 늘었다. 미성년 주식 투자자가 늘고 있는 것은 재테크 수단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부모가 자녀의 경제 교육을 위해 소액 투자를 권하는 가정이 늘고 있는 데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금융위원회도 지난해 4월 부모의 영업점 방문 없이도 비대면으로 미성년자 계좌를 개설할 수 있도록 ‘비대면 실명확인 가이드라인’을 개편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통한 해외 주식거래도 간편해지면서 엔비디아, 테슬라와 같은 ‘서학 대장주’를 보유한 미성년 주주도 늘고 있는 추세다. 키움증권의 경우 지난 한 달간 미성년 자녀 계좌 대상으로 엔비디아 주식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며 최근 주식시장 투자 열기에 동참하기도 했다. 미국 반도체 설계기업 엔비디아의 경우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개발 경쟁의 최대 수혜주로 떠오르며 미국 증시는 물론 한국 증시에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AI용 반도체는 방대한 분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필수인데 엔비디아는 이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GPU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지난 6월 18일 3조 3350억 달러(약 4600조원)를 기록하며 사상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까지 제치며 사상 처음 글로벌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엔비디아 주가는 등락을 반복하며 현재 시총 3위(2조 9400억 달러)를 유지하고 있고, 지난 11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우리 칩에 대한) 수요가 너무 많아서 부품, 기술, 인프라,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정말 감정적인 일이 되고 있다”고 말하며 엔비디아는 물론 반도체 시장 전체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황 CEO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 나오자 미국 시장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8.03% 급등했다. 특히 이날 황 CEO가 자사 칩 위탁생산을 기존 대만 TSMC가 아닌 파운드리에 맡길 수 있음을 시사하면서 삼성전자에도 호재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그는 “TSMC는 동종 업계에서 압도적인 최고로, 민첩성과 대응 능력이 놀랍다”라면서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다른 공급업체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폭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TSMC가 아닌 삼성전자 파운드리나 인텔 파운드리에 일부 물량을 맡길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삼성전자 주가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 우려가 나오면서 지난 13일 종가 기준 6만 4400원까지 떨어졌다. 삼성전자 임원들은 주가가 연일 하락하자 주가 부양 및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선 상황이다. 박학규 경영지원실장(사장)이 자사주 6000주를 주당 6만 6850원에 매입했고,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부문장(부회장)이 7억 3900억원 규모의 자사주 1만주를 매입했다. 노태문 모바일경험(MX)사장은 3억 4750만원에 달하는 자사주 5000주를 사들였다.
  • ‘밥은 먹고 다니냐’, 그 말에 울컥하다 [세책길]

    ‘밥은 먹고 다니냐’, 그 말에 울컥하다 [세책길]

    추석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보름달, 교통정체다. 고향집은 집 앞으로 너른 논이 펼쳐지고 그 너머에 산줄기가 이어져 있는데 보름달이 뜨는 모습은 마치 불덩어리가 봉우리를 뚫고 솟아오르는 듯 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필이면 꽉 막혀서 옴짝달짝 못하는 귀경길 고속도로에서 보는 것 역시 뭔가 솟구치긴 하는데 감동보단 화딱지라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그래도 추석을 상징하는 이미지는 뭐니뭐니해도 함께 밥먹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보는 가족들이 무심한 듯 둘러앉아 음식도 만들고 그렇게 만든 음식을 나눠먹는 것이야말로 추석이 추구하는 본연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밥이란 그 자체로도 소중하지만 차리는 과정도 소중하고 무엇보다 누구랑 함께 먹는지가 중요하다. 그 모든 게 한 올 한 올 모여 추억으로 엉킨다. 식구(食口)와 남남의 차이란 결국 얼마나 함께 밥을 먹었느냐로 나눌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추석을 맞아 밥을 생각하다 보면 항상 떠오르는 책이 두 권 있다. 전직 기자이자 현직 요리사인 박찬일이 쓴 <밥 먹다가 울컥>(웅진지식하우스, 2024)과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이 쓴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한티재, 2021)이다. 밥의 소중함과 추억을 다룬다는 공통점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선 항상 ‘밥은 먹고 다니느냐, 그 말에 울컥’으로 제목까지 한 묶음으로 저장돼 있다. 밥 한 공기의 추억 속에서 길어 올린 애잔함박찬일을 처음 접한 건 시사주간지 <시사IN>에 실린 연재칼럼이었다. 어린 시절 소소한 추억부터 젊었을 때 만난 사람들 뒷이야기와 그들과 함께 먹었던 음식 이야기까지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는 게 놀라워서 혹시 천재인가 생각했던 게 첫인상이었다. 추억 속에서 길어 올린 생로병사의 애잔함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나도 모르게 울컥 하게 만드는 책이다. 아무리 기자 출신이라도 그렇지 글을 이렇게 잘 써도 되는 것인가 열등감까지 느끼게 하는 글솜씨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자신의 이력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지만 여러 추억 이야기를 찬찬히 읽다보면 대략 그림은 그려진다.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정문 앞에 ‘왕개미집’이라는 단골술집이 있는 대학을 다녔고 기자를 하다가 이탈리아에서 요리 공부를 했고 그 뒤 요리사로 일하며 책도 여러 권 썼다. 저자의 요리를 먹어보지 않았지만, 아무리 요리 실력이 훌륭해도 이토록 맛깔난 글솜씨를 따라가진 못할 거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나 사람과 밥, 사람과 밥먹은 이야기다. 애잔함과 쓸쓸함이 책 가득 전해진다. 그리고 그 모든 애잔함에는 밥이 항상 함께 등장했다. 밥이 있기에 애잔함을 덜어주지만 다른 한편으론 애잔함으로 가득 찬 밥이 되기도 한다. ‘40년만에 갚은 술값’이라는 추억담을 따라가 보자. 학교 앞 ‘왕개미집’이라고 부르던 술집 사장님이 있었다. 외상도 많이 지고 술먹다 집에 갈 차비가 없으면 가게 구석에서 잠을 자기도 했던 곳이었다. 그 집 사장님이 가게를 그만둔다고 하니 명예 학사증에 금반지까지 준비해서 초청손님으로 모셨다. 소감을 말씀하시라고 마이크를 쥐어줬는데 행사장이 난리가 났다. 기억력이 얼마나 좋은지 수십년전 시시콜콜한 학생들 비리를 거침없이 방출해 버렸기 때문이다. “79학년 OO야, 너 뒷주머니에 돈 숨기고 술값 안 낸 거 내가 다 안다. 80학년 OO아, 너 그때 여자 바꿔가며 데려와도 아무 말도 안 했지. 81학년 OO아, 너는 등록금 갖고 술 마시다가 그때 휴학했지?(44~45쪽).” 이 집에서 먹었던 수많은 안주들. 맛없기로 소문이 자자했단다. 깍두기 무는 또 얼마나 작게 잘라서 내놓는지 헛젓가락질을 할 정도였다. 찌개는 국물이 떨어지면 김치 넣고 물 부어서 재탕 삼탕을 하며 안주로 먹었다. 한 번은 다른 술집 여주인을 모시고 ‘왕개미집’에 갔는데 뻘쭘해서 그랬는지 어머니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깜짝 놀랄만큼 맛있는 동태찌개를 그 때 먹었다고 한다. 주머니 얇은 학생들을 위한 동태찌개와 실력발휘하는 동태찌개의 거리가 그렇게 멀었다. 꽁치찌개를 볼 때면 복학생 시절 알게 돼 툭하면 자취집에 가서 신세를 졌다는 만술이 형이 수챗구멍 있는 시멘트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후배들을 위해 도마질을 해서 술안주로 내놓았다는 통조림 꽁치찌개가 생각이 난다. “뭐 넣은 것도 없는 만술이 형표 찌그러진 양은 냄비 찌개. 소주 몇 병을 마시고 그 방에서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79쪽).” 돼지곱창은 언제나 중학교 친구 진규를 떠올린다. 그 친구와 30년만에 만나서 소주를 함께 마시며 먹었던 돼지곱창 안주가 머리를 채운다. 그 매운 돼지곱창을 먹으며 한 잔 친구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며 한 잔 하며 밤이 깊어간다. “허기와 매운 갈증을 채워주던 서울 변두리 음식의 작은 역사를 진규가 다시 이어갈 모양이다. 네 아버지가 널 인문계 보내고 네가 번듯하게 대학에 갔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물으려다 말았다(259쪽).” “어쩌나! 벌써 커피머신을 들여놨어요.”정은정이라는 연구자 혹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 전 어느 팟캐스트였다. 당시 논란이 됐다는 ‘한국 치킨이 작은지 아닌지’ 어찌나 명쾌하게 설명하는지 이 분 말씀만 열심히 들으면 치킨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농촌사회학이라는 게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논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진 여전히 의문인 소재를 잘 튀겨내고 양념을 버무려서 치킨산업과 식품정책까지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잊고 있다 우연찮게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이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하룻밤에 다 읽어 버렸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함과 오랜 연구에서 뿜어나오는 통찰력이 만나면 이런 책이 되는구나 싶었다. 진심으로, 샘난다.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을 읽기 전까지는 농촌사회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는 이 분은 정말이지 치킨에 진심이구나 정도만 생각했다. 책을 펼쳐놓고 보니 치킨은 물론, 밥과 과일, 채소까지 모든 먹거리에 진심이었다. 책 첫머리부터 먹거리를 통해 인생과 국가정책까지 꿰뚫어버린다. “식사를 갖추기 어려운 이들이 고립된 식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사회의 역량이다(17쪽).” 그렇기에 “형편에 따라 너무 차이 나지 않게 그럭저럭 골고루 갖춘 밥상을 함께 받는 세상을 위해, 차갑고 서러운 타인의 밥상을 살펴보는 일이 먼저였다(18쪽)”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차가운 예리함을 함께 느끼게 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으로 카페 이야기를 꼽고 싶다. 저자는 미혼모 시설을 운영하는 수녀님들이 카페 창업을 고민한다며 찾아왔을 때 “진심으로 만류했다(107쪽)”고 한다. “커피를 팔아 도저히 생계가 꾸려가지 않기 때문(107쪽)”이라며 직접 경영했던 카페 재무제표까지 보여줬건만 돌아온 건 이미 기계까지 사놨다는 대답이었다. 사회적기업이나 자선을 위해 카페를 하는 물결 속에서 저자는 “그 어떤 지원도 없이 오로지 커피 한 잔에 생계를 구해야 하는 ‘골목 카페’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다(108쪽)”고 꼬집는다. 직접 카페를 운영해본 경험에 더해, 십 년 전만 해도 대형 교회 근처 카페 상권은 웃돈의 권리금까지 줘야 했지만 이제는 교회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 덕에 파리만 날리기 일쑤라는 관찰까지 더해졌기에 이런 따뜻한 마무리가 단순한 훈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공공 기관이나 종교 시설에서 생각해야 할 이웃들 중에는 영세 자영업자들도 존재한다. 커피가 필요하다면 이웃의 작은 카페에서 마시면서 그들과 상생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110쪽).” 그렇다면 살짝 궁금해지기도 한다. 병원이나 대학처럼 공공성이라는 명분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들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대학생들을 위한 ‘1천원 밥상’이 청년정책의 모든 것인 양 횡행하는 시국에 ‘밥 한그릇’의 가치와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의 무게를 생각하도록 하는 것도 이 책의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대학에서 주로 농업과 음식을 주제로 강의하면서 ‘나의 삼시 세끼 보고서’를 과제로 내곤 한다고 한다(28쪽). 자신이 별 생각 없이 먹는 음식 재료 하나하나가 “글로벌 푸드 시스템에 휘둘려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28쪽)”하는 것에 더해 “내가 먹는 음식들의 정치와 문화적 배경도 적을 수 있다면 음식사 공부까지 저절로 될 터(28~29쪽)”이니 꽤 괜찮은 방식이다. 하지만 간단해 보이는 이 과제에 학생들 태반이 “세끼를 챙겨 먹는 일이 거의 없다(29쪽)”는 질문이 되돌아온다고 한다. 이 책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 왜 학생들이 편의점 음식을 많이 찾는지. 값이 싸다는 것 말고도 “눈치가 안 보여서(29쪽)”라는 이유도 있다는 대목에선 대학에서 자취할 때 느꼈던, 오만가지 잡생각이 다시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군대에 가서 ‘여기는 삼시세끼 알아서 밥을 챙겨 주는구나’ 하며 혼자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젊은이들의 밥상에 뒤이어 곧바로 나오는 이야기는 황혼의 밥상이다. 한국에는 노인이 대략 650만명 가량인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중위 소득에 못 미치는 빈곤 상태(33쪽)”이고, “폐지를 주워 한 끼를 버느라 노구를 움직이며 새벽부터 길거리를 헤매는 노인들이 200만명 정도(32쪽)”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나마 경로당에 가서 스산한 밥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노인들은 사정이 낫다고 해야 할지. 한달에 3천원에서 5천원 하는 경로당 회비도 버거워 발길을 끊는 노인들도 많다(33쪽)”고 한다. “온기 있는 밥상은 누가 받고 있는가. 소년과 청춘, 그리고 황혼의 밥상마저도 차다(34쪽)”는 문장에서 내 한 끼가 부끄러워진다면 바로 뒤이어 소개하는 ‘농촌마을 공동급식 지원사업’ 사례는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건 공동급식 만족도가 매우 높은데 그 이유가 “함께 먹는 재미(36쪽)” 때문이라는 대목이다. 맞다. 역시 밥은 같이 먹어야 제 맛이다.
  • 일상의 소재에 시적인 숨결을 불어넣는 프랑스 작가 우고 리…한국 첫 개인전 ‘픽킹 플라워즈’ 개최

    일상의 소재에 시적인 숨결을 불어넣는 프랑스 작가 우고 리…한국 첫 개인전 ‘픽킹 플라워즈’ 개최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떠오르는 신예작가 우고 리(Ugo Li·1987~)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한다. 우 고리는 일상에서 얻은 영감을 그의 독특한 회화 과정을 통해 시(詩)적으로 캔버스에 표현한 작가다. 갤러리 비선재는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서울 용산구 유엔빌리지 3길 비선재에서 프랑스 신예작가 우고 리의 ‘픽킹 플라워즈’(Picking Flowers) 전시회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우고 리는 1987년 프랑스 파리에서 중국인 예술가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2011년 프랑스 예술의 산실인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를 졸업한 뒤 화가와 모델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화가에 전념해 유럽 주요 갤러리와 아트페어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마티스의 초기 회화 구성과 전통을 계승우고 리는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의 초기 회화가 지닌 구성과 색채의 전통을 계승하며 21세기 신 회화의 가능성을 탐험한다. 그는 자신의 감정, 기억, 꿈 등 일상의 소재에 시적인 숨결을 불어 넣는 작품을 소개한다. 거칠고 빠르며 역동적인 붓질은 작품을 통해 따뜻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재탄생한다. 우고 리 작품의 대전제는 맛과 취미이다. 동서양의 도자기를 비롯하여 접시, 병, 컵, 꽃, 가재, 양탄자, 탁상, 의자, 연초, 책, 촛대는 미적 체험을 제공하는 대표적 대상들이다. 그는 작품 속에 낱말이나 문장을 배치해 모종의 의미를 담았다. 예를 들어 가재가 있는 그림 속에는 ‘랍스터’(lobster)라는 낱말을 표기하고, 노랑 또는 주홍색의 꽃이 피는 엉거시 풀에는 ‘옐로우 가자니아’(yellow gazania)라는 낱말을 덧붙인다. 또는 여러 낱말을 문장으로 펼쳐 어떤 상황이나 순간을 지시하기도 한다. 일상의 순간을 화폭에 표현한 작품그의 작품 ‘뜨거운 하기(夏期)의 햇살’(Hot Summer Chronic Sunshine)은 좌우 두 개의 탁상 사이로 의자 하나가 배치됐다. 바닥에는 재떨이가 놓여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언어가 구체적 상황을 묘사한다. 작품 속에는 ‘15:06’이라는 숫자와 화면 상단에 ‘떠나기 바로 전’(Before Leaving)이라는 낱말을 배치했다. 탁자 위에는 맥주, 커피, 과일, 연초, 꽃 등이 놓여 있다. 포크와 나이프가 놓여있는 접시가 비어있는 것으로 보아 식사가 끝난 후 디저트를 즐기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림 속 인물은 곧 떠나야 한다. 어떤 약속 때문에 이 풍요롭고 행복한 성찬을 두고 떠나야 한다. 하지만 풍요로운 음식을 두고 떠나는 그가 만나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 기대를 품게 한다. 일상적 시간을 초월한 시적인 순간지난 7월 완성한 ‘전장’(The Battle Field)이라는 작품에서는 모든 순간을 시적으로 파악한다. 작품의 왼쪽 윗부분과 오른쪽 아랫부분만 암흑으로 처리되어 있다. 가운데는 탁자가 차지하고 있는데 성냥개비 두 개가 까맣게 타서 탁자에 버려져 있다. 촛불이 전등불로 대체된 것이다. 밝은 전등불은 모든 사물을 명확히 드러낸다. 탁자에 접시가 세 개 놓여있으니 이 공간에 세 사람이 있다. 각자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책을 읽고 있었다. 세 사람은 ‘트리오’(Trio)라는 단어로 강한 유대감을 지시한다. 조금 전까지 세 사람은 촛불의 환상적 분위기 안에서 식사하고 책 읽고 음악 듣고 이야기했다는 뜻이다. 우고 리의 그림은 여러 맥락을 함축하는 시를 닮았다. 삶과 죽음을 표현한 진실한 예술그의 작품 ‘달항아리’(Moon Jar)는 ‘한국에서 온 나의 달항아리 작품’((My Moon Jar Work from South Korea)이라는 문구가 표기되어 있다. 주위로 수많은 장미꽃이 널브러져 있다. 누워있는 꽃들의 꽃잎은 이미 퍼졌으며 시들고 있다. 이와 반대로 장미 네 송이는 공중으로 상승한다. 아래는 죽음의 이미지고 위는 삶의 이미지다. 아래는 현실이며 위는 하늘(이상)이다. 휘영청 빛나는 달항아리는 위아래를 모두 비춘다. 달은 삶과 죽음을 무차별하게 모두 관장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작가의 회화작품에 의하면 달항아리는 그러한 신성이 표현된 가장 소탈하며 진실한 예술이다.
  • 오픈AI, 코드명 ‘스트로베리’ 새 AI모델 ‘o1’ 공개…‘추론 능력’ 탑재

    오픈AI, 코드명 ‘스트로베리’ 새 AI모델 ‘o1’ 공개…‘추론 능력’ 탑재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추론하는 능력을 갖춘 새 모델 ‘오픈AI-o1(오원)’이 탑재된 챗GPT를 12일(현지시간) 출시했다. o1은 그간 오픈AI가 ‘스트로베리’라는 코드명으로 추론 능력에 초점을 두고 개발해 온 AI 모델로 과학, 코딩, 수학과 같은 복잡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o1은 이용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기까지는 기존 모델보다 시간이 걸리지만, 단계적인 사고 과정을 통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다. 야쿱 파초키 오픈AI 수석 과학자는 “챗GPT와 같은 이전 모델은 질문을 하면 즉시 응답하기 시작하지만, 이 모델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영어로 문제를 생각하고 분석하고 각도를 찾아 최선의 해답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오픈AI가 공개한 시연 영상에 따르면 o1은 “Strawberry에 몇 개의 ’r‘ 이 있나”라는 질문에 정확히 “3개”라고 답하는가 하면 기존 AI 모델이 풀지 못한 복잡한 퍼즐도 단계별로 풀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오픈AI는 o1이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예선 시험에서 83%의 정답률을 기록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이전 모델 정답률이 13%인 점을 감안하면 문제 풀이 능력이 월등히 높아졌다. 물리학자들이 복잡한 수학 공식을 만들고 의료 연구자들의 실험을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한국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실제 “직우상 얻떤 번역깃돋 일끌 슈 없쥐많 한국인듦은 쉽게 앗랍볼 수 있는 한끌의 암혼화 방펍잇 잊다”(지구상 어떤 번역기도 읽을 수 없지만 한국인들은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한글의 암호화 방법이 있다)라는 문장을 “No Translator on Earth can do this, but Koreans can easily recognize it”이라고 영어로 맞게 번역했다. 이 새로운 모델은 오픈AI가 인간 수준의 AI인 범용인공지능(AGI)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은 이 모델을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며 “범용의 복잡한 문제를 추론할 수 있는 AI”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기술이 여전히 결함이 있고,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 오픈AI는 o1의 기본 모델과 함께 소형 모델인 ‘o1-mini’(오원-미니)도 공개했다. ‘o1’는 텍스트로 답을 제공하며 이미지와 영상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오픈AI가 o1을 공개하면서 AI 모델 개발을 둘러싼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오픈AI의 대항마로 평가받는 AI 스타트업 앤스로픽과 구글도 추론 능력을 높이는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o1의 발표는 오픈AI가 최근 대규모 투자 유치에 나선 가운데 나와 더욱 눈길을 끈다. 오픈AI는 1500억 달러(약 199조) 상당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으며 65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 조달(펀딩)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펀딩에 기존의 마이크로소프트뿐만 아니라, 애플, 엔비디아 등도 참여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소식통을 인용해 아랍에미리트 한 국영 기업도 오픈AI에 투자를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소식통은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가 AI 프로젝트에 투자하기 위해 설립한 기업 ‘MGX’가 오픈AI에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며 아직 규모는 결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 김혜순 “시인은 죽어가는 모든 존재를 책임지는 사람”

    김혜순 “시인은 죽어가는 모든 존재를 책임지는 사람”

    “나는 나의 죽음 이후에도 나로 있을 수 있는가.” 강렬한 ‘죽음의 감각’으로 세계를 매혹한 시인 김혜순(69)이 청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광주비엔날레가 한창인 지난 12일 광주역사민속박물관 한편에서 시와 죽음에 관한 깊고 진지한 대담이 열렸다. ‘이 입을 통해 말하는 자 누구인가?’가 대담의 제목이다. 시집 ‘죽음의 자서전’의 내년 초 독일어 출간을 앞두고 마련된 자리다. 김혜순은 시집을 독일어로 옮기는 번역가 박술(38)과 마주 앉았다. “죽음 이후에 나는 단수(單數)가 아닌 복수(複數)적인 존재로, 형용사나 부사의 형태로 있을 것이다. 유령의 밀도가 높은 대한민국의 빼곡한 죽음이 나를 점령하고 있다고 느낀다.” ‘죽음의 자서전’에는 총 49편의 시가 엮였다. ‘49’라는 단어는 퍽 의미심장하다. 49일은 육체의 죽음을 맞이한 영혼이 구천을 헤매는 시간이다. 한 여성이 출근길에 맞는 죽음을 형상화한 첫 번째 시 ‘출근’은 시인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됐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쓰러졌는데, 영혼이 쑥 떠올라 쓰러진 시인의 몸을 봤다고 한다. 이른바 ‘유체이탈’이다. 그 이후 이어지는 시들은 왜인지 여럿이지만 하나인 것처럼 읽힌다. 김혜순은 시인의 말에 “이 시집을 한 편의 시로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죽음이 시 속에 접경하면 사물성을 잃는다. 언어와 사물이 뜬 사이에 죽음이 횡행한다. 세계로부터 ‘쫓겨난’ 경험을 가진 시인은 수동적인 의미의 죽음, 죽임에 저항하는 존재다.” 시인은 죽음이라는 주제에 천착한다. ‘죽음의 자서전’ 이후에 나왔던 시집 ‘날개 환상통’,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까지 세 시집을 시인은 ‘죽음의 트릴로지’라고도 일컬었다. ‘날개 환상통’의 영어판은 올해 초 미국에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김혜순이 구축한 강렬한 죽음의 세계가 서구에도 가닿기 시작한 셈이다. 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던 시 페스티벌에서 김혜순 시인이 낭독한 연설문 ‘혀 없는 모국어’를 두고 현지 언론은 “독일 문학 세기의 명연설로 꼽히는 파울 첼란의 ‘자오선’(1960년 뷔히너상 수상연설)에 비긴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주어는 일부러 쓰지 않는다. ‘탈존한’ 글쓰기를 시도한다. ‘없음의 화자’를 출몰시키는, 나의 죽음을 포함한 우리의 죽음을 과연 몇 인칭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죽음 이후에 나는 단독자로 사는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죽음의 자서전’의 화자는 인칭이 없다. 굳이 생각하면 6인칭이나 7인칭쯤 될까.” 그러나 김혜순의 시를 독일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 박술은 두 가지 난관에 봉착한다. 하나는 한국어에 숱한 의태어와 의성어를 어찌 번역할 것인지, 그리고 주어가 없어도 말이 되는 한국어 문장을 주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독일어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다. 김혜순이 모국어인 한국어로 쓴 시는 독일어로 ‘오롯이’ 번역될 수 있는가. 그 시를 한국어로 낭독할 때 그리고 독일어로 낭독할 때 둘은 서로 같은 시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시의 번역은 가능한 일인가. 두 사람의 대담에 붙은 제목은 퍽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님’이라는 제목의 시는 상당히 독창적이다. “아님께서 아님을 아니하시고 아님에 아니하고 아니하시니 … ” 이런 문장이 계속되는데, 시인은 물론 번역가도 이걸 리듬을 살려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낭독에 성공하자 청중들의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김혜순이 정의한 시인과 시가 오래도록 머리에 남는다. “시인은 죽어가는 모든 존재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시를 쓰는 건 요리와도 같다. 요리가 저의 바깥에 있는 생물을 죽여서 조리하는 것이듯, 시도 살아있는 것을 가져다 언어의 세계로 투척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 “영화+글쓰기=자기애 실현”… 에세이로 풀어 낸 글 잘 쓰는 비법

    “영화+글쓰기=자기애 실현”… 에세이로 풀어 낸 글 잘 쓰는 비법

    직업적 이야기꾼인 소설가들에게 극장은 또 다른 일터일 게다. 소설가는 본능적으로 남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머릿속 안테나를 펼친다. 극장에는 사람들을 매혹하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대학 시절 강의실보다 극장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냈다는 김중혁(53)이 소설가가 된 건 영화에 대한 진한 애정 때문이 아닐까. 그간 여러 편의 영화 관련 책을 펴내고, TV에서도 영화 이야기를 해 온 김중혁의 신작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는 글 잘 쓰는 비법을 에세이로 풀어낸 작법서 같다. 그는 자신이 본 영화 중 “내 안의 뭔가를 건드린” 77편을 소개한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 ‘거미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근래 영화뿐 아니라 ‘컨택트’ 같은 10여년 전 영화들도 그의 리스트에 들어 있다. 모두 그의 내밀한 감성을 자극한 영화들이다. 그는 영화는 재료일 뿐 글쓰기의 본질은 영화로부터 시작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소설가가 권하는 ‘영화+글쓰기’는 자기애를 실현하는 중독성 있는 작업이자 자신을 알아가는 방편이 된다. 보통 사람들인 우리는 TV 앞에서 ‘오늘은 무엇을 볼까’ 고민하지만 김중혁은 ‘어떤 문장으로 시작할까’ 혹은 ‘영화가 너무 좋아서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었다’며 편집자에게 읍소할 원고 펑크 변명을 떠올리는 걸 이 책을 보고 알았다. 그가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를 예시로 든 글쓰기 과정은 마치 대치동 강사가 주입식 강의를 하듯 머릿속에 쏙쏙 박힌다. 영화를 볼 때마다 무엇이든 쓰고 싶고, 잘 쓰고 싶은 이들을 향한 사려 깊은 동업자 정신이라고 할까.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타인의 삶을 경험한다. 처절하고 비열하고 안쓰러워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그러한 생에 더 많은 이야기가 추가될수록 우리의 세계도 더 넓어지지 않을까. 영화를 통해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는 그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영화가 보고 싶어지고, 글을 써 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 [훔치고 싶은 문장]

    [훔치고 싶은 문장]

    반려 요괴(김영주 지음, 밤코 그림, 위즈덤하우스) “잠이 든 작은 요괴를 바라보며 주희는 깨달았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걱정 없이 그저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건 제법 행복하다는 걸 말이다.” 내성적인 어린이가 반려 요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어린이로 성장해 나간다. ‘반려’의 의미를 깨닫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동화이자 서로에게 버팀목이 돼 주면서 자신을 이해하고 발견하게 되는 동화이기도 하다. 100% 어린이 독자의 선택으로 최종 수상작을 결정하는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으로 속편도 계속 나올 예정이다. 116쪽. 1만 4000원. 경의선 숲길을 걷고 있어(김이강 지음, 현대문학) “증거가 있다면 너와 나, 서로일 뿐이겠지. 우주라는 말은 누가 발명했을까. 이렇게 생긴 글자를 우주라고 읽을 수 있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우주가 존재하는 일은 사실이라 읽지 않고 실존이라 읽는대. 모두 오래전 흔적이라서 그래.” 도시 산책자가 보고 느낀 풍경을 간결한 언어로 빚어낸 시 17편과 느슨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린 에세이 1편이 담겨 있다. 시인에게 ‘걸음’은 시의 근간을 이루는 특별한 행위이며 ‘걷는다’는 행위는 자연스레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으로 연결되는데 시인은 여기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새로운 시적 장소를 만들어 낸다. ‘숯의 화가’ 이배 작가의 표지 작업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80쪽. 1만 2000원. 소설 보다:가을 2024(권희진·이미상·정기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나는 뭔가를 맞았던 것 같은데 그게 비였는지 눈이었는지 모르겠다. 비가 올 정도로 따뜻하지는 않았고 눈이 올 정도로 춥지는 않아서 물과 결정, 그 중간의 어떤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한때는 가장 가까웠으나 영영 멀어진 인물들과 나누었던 대화나 추억을 회상하는 주인공을 따라 걸어간다. ‘나’와 ‘태수 형’은 따져 보면 이야기의 주제나 관심 대상도 다르고 자신이 형에 대해 아는 건 사소한 것들뿐이다. 관계에서 오는 오해와 이해를 거듭하며 결코 사라질 수 없는 청춘의 감정을 돌아보게 한다. 문학과지성사가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하고 엮어서 출간하는 단행본 프로젝트 책이다. 156쪽. 5500원.
  • 뼈에 사무친 기억과 경험…피와 눈물에 젖은 시[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뼈에 사무친 기억과 경험…피와 눈물에 젖은 시[오경진 기자의 노이즈캔슬링]

    세상의 온갖 끔찍한 것들이 시인의 뼈에 사무친다. 깊이 아로새겨진 상처 위에 시가 적힌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에는 얼마간의 피와 눈물이 맺혀 있는 듯하다. 2014년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던 시를 그러모아 출판한 시집 ‘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영국 시인 이르사 데일리워드(35)를 지난 9일 ‘2024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JCC아트센터에서 만났다. 데일리워드는 시인 외에도 모델,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다. “경험과 기억을 나눈다는 건 무척 중요합니다. 과거에 묻힌 진실을 다시 들추고 그것을 적절히 담아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건 우리에게 자유를 안겨 주거든요.” 한국어로 번역된 데일리워드의 책은 시집 ‘뼈’와 자서전 ‘테러블’두 권이다. 둘 다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특히 ‘뼈’는 끔찍한 경험이 어떻게 아름다운 시로 적힐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 준 시집이다. 시인은 기억과 경험에 의존해 시를 직조한다. 표제작인 시 ‘뼈’의 도입부는 독자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긴다. “‘울지 마./좀 있으면 너도 좋아할걸’이라고 말한/‘하나’로부터.//…//‘하지만 네 느낌이 너무 좋아서/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어’라는 ‘넷’.” 폭력 이후의 시공간에서 시인은 담담하게 자기 안에 박힌 고통의 조각을 꺼내어 보인다.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어요. 제가 특별한 것 같지만 독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죠. ‘솔직함’은 타인에게 영감을 줍니다. 솔직하게 쓰인 글을 읽는 독자는 지금껏 발견하지 못한 자기의 내면으로 파고들 수 있을 겁니다.” 데일리워드는 종이책을 무대로 활약했던 과거 작가들과 결을 달리한다. 이미지와 짧은 글 중심의 소셜미디어(SNS)인 인스타그램에 시를 발표했고 팔로어들과 문학적 교감을 나눴다. 물론 지금은 종이책으로도 작품이 출간돼 있지만 여전히 인스타그램은 그에게 중요한 플랫폼이다. 이런 지점에서 그는 인스타그램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공유하면서 가볍게 소비하는 한국의 젊은 세대와도 공명한다. “인스타그램은 엘리트주의에 갇혔던 시라는 장르를 대중화시켰습니다. 더 많은 젊은이가 시에 접근할 수 있게 됐죠. 그들은 단순히 시를 소비하는 걸 넘어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영국의 한 소도시에서 자메이카 출신 어머니와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데일리워드는 독실한 예수재림교 신자인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일찍이 퀴어 정체성을 밝히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팝가수 비욘세의 비주얼 앨범인 ‘블랙 이즈 킹’(Black is King)의 각본을 집필하기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잠깐 활동했던 그의 시에는 줄루어로 된 문장도 등장한다. 이토록 멀고도 낯선 곳에서 활동하는 시인의 시가 우리에게 뼈저리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다루고 있죠.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예술은 어디서나 모두에게 깊은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시인으로서 저의 역할은 이런 보편성을 계승하는 동시에 제가 좋아하는 것을 토대로 단어들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겠죠. 저의 시가 새로운 미학과 감각으로 이어지길 희망합니다. 제 글을 본 많은 이가 자신만의 글쓰기를 하면서 점점 관습에 도전하고 그것을 파괴하는 문학을 만들어 내길 바랍니다.”
  • “이승만 미화·우상화 없이, 객관적 사실 기술하는 기념관 만들 것”[박성원의 직설대담]

    “이승만 미화·우상화 없이, 객관적 사실 기술하는 기념관 만들 것”[박성원의 직설대담]

    내년 상반기 착공… 2027년 개관초대 대통령 기념관 없는 건 잘못실체 없는 건국절 논쟁 부질없어독도 지우기 논란, 답답하고 한심“정파적 이익보다 국익 생각해야”공동체 이익 위해 대화·타협 중요독일 발전은 협치와 연정의 산물정치란 미우나 고우나 타협해야“4대 개혁 위해 獨 경험서 배워야”개혁정책 계승, 경제 번영의 토대어느 한쪽 완승완패는 해결 아냐독한 말 ‘업보’… 표현에 신중해야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지난해 6월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발족 때부터 이사장을 맡아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추진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재임 시절부터 온화한 성품의 김 전 총리였지만, 기념관 건립 활동을 비롯한 일에 관해 설명할 때는 열정이 느껴지는 여전한 ‘청년’이었다. 김 전 총리는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대통령의 기념관이 없다는 건 잘못된 일”이라며 “일방적으로 미화하거나 우상화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기술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건국절 논쟁에 대해선 “부질없는 짓”이라고 했고 독도지우기 논란에 관해서는 “답답하고 한심스럽다”며 안타까워했다. ―총리 퇴임 후 독일에 계실 때 이승만 연구를 하셨는데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독일에 가서 독일 총리들의 리더십을 연구했는데, 특히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를 공부하다 보니 자꾸 이승만 대통령이 오버랩되는 거예요. 독일도 아데나워 총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매우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독일이나 한국이나 국운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 전 총리는 저서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에서 집필 동기를 ‘모두 성공적이었고 실패한 총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라는 관심에서 출발했다고 소개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온전한 퇴임 후를 보낸 이가 드문 우리로선 부러운 얘기였다. ―두 나라의 어떤 차이가 양국 국가지도자들에 대한 상이한 평가를 가져온 걸까요. “우리는 왕조와 일제강점기를 거쳤을 뿐 민주주의 경험이 없이 민주국가로 출발한 반면 독일에는 바이마르 민주공화국과 나치 전체주의라는 우여곡절을 겪은 민주주의 역사가 있었어요. 우리는 6·25전쟁을 치르는 등 이념 갈등이 너무 컸고요. 그럼에도 우리 대통령들이 나름의 역할들을 다 하셨기에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있는 거죠.” 이승만 기념재단은 10여곳의 부지를 검토한 끝에 지난달 1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인근을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부지로 선정했다. 2027년 개관을 목표로 관계기관 협의 등 절차를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에 착공할 예정이다. 부지 결정에는 무엇보다 지리적으로 서울 중심에 있으며 인근에 국립중앙박물관, 한글박물관, 전쟁기념관, 용산가족공원 등이 있다는 접근성과 편의성이 고려됐다고 한다. -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기념관 건립이 갖는 의미와 필요성은 무엇입니까. “일부 반대하는 분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과를 부풀리거나 오해해서 그러는 게 있을 겁니다. 공과를 평가해서 국민께 정확히 알린다면 모든 국민이 찬동할 것입니다. 지금 네 분 대통령의 기념관은 있는데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대통령의 기념관이 없다는 건 잘못된 일이죠.” 김 전 총리는 기념관의 전시 내용에 관해서도 “일방적으로 미화하거나 우상화하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정확히 기술할 것”이라고 했다. 견해가 다른 부분은 병렬적으로 소개함으로써 국민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건립 비용은 독립유공자예우법에 따르면 전액 정부 예산으로 충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초대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30%만을 국비로 지원받고 나머지 70%는 국민 모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택했다. 모금 목표액 700억원 가운데 지난 5일 현재 140억원가량이 모금된 상태라고 한다. ―내년이 광복 80주년입니다. 칼럼 모음집 ‘풍경이 있는 세상’에서 “광복절은 분노하는 날이 아니라 미래를 다짐하는 날”이어야 한다고 쓰셨죠.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 제대로 사과하는 태도를 보여 주지 못한 데 대해서는 우리가 서운해하고 (사과를) 요구할 수 있죠. 그러면서도 일본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이고 이제 우리도 맞설 수 있는 국력을 키웠으니 그저 싸우거나 화를 내기보다는 좀더 당당하고 어른스럽게, 품격 있게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올해 ‘쪼개진 광복절’ 행사와 건국절 논쟁, 최근의 독도 지우기 논란을 어떻게 보셨는지. “건국절 논쟁은 시민사회나 학계에선 있을 수 있겠지만, 정부가 건국절을 따로 제정하려는 계획은 없는 걸로 압니다. 그걸 갖고 마치 그러한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전제로 해서 저렇게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며, 그걸 기화로 행사도 반쪽으로 나눠서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국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정말 부질없는 짓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요.” 김 전 총리는 대체로 담담한 어조를 유지했지만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이 조금 빨라졌다. “독도 문제도 느닷없이 독도를 지운다, 일본에 내준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며, 만약 정부가 그런 일을 한다면 그 정부는 그날로 문을 닫아야 할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이야기들을 함부로 공공연히 하는지, 그리고 그 기반 위에 정치권이 그걸 또 정치적으로 이용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건설적인 일에 신경을 써서 함께 가야지, 어떻게라도 핑곗거리를 찾아서 서로 분열할 생각을 하는지 너무 답답하고 한심스럽습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얘기들을 갖고서 왜 이렇게 나라가 갈갈이 찢겨지는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부터 남북 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하고 ‘민족’ ‘통일’ 등의 개념을 아예 지워 버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독일 통일의 교훈은 어떤 것인가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이고, 전쟁 아닌 평화통일을 해야 하는데 거기엔 너무 많은 장애가 있으니까 어떤 구체적인 계획으로 통일할 수 있는 건 아니고요. 하나의 민족으로 서로 교류하고, 경제적으로 앞선 우리가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면서 할 도리를 해 나가다 보면 통일의 기회는 온다고 봅니다. 독일도 구체적 통일정책을 세운 것은 아니고, 통일부도 없었어요. 다만 하나의 민족으로 서로 교류하며 도울 수 있으면 돕고 잔잔하게 해 나갔기에 동독 사람들의 마음을 사서 하늘이 준 기회를 살렸던 것이죠.” ―칼럼집 ‘풍경이 있는 세상’에서 “정치, 종교, 언론, 법원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 따라 그 결과로 우리 사회 공동체 구성원 간의 신뢰가 무너지고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넘쳐나고 있다”라며 걱정하셨죠. 오늘 우리 정치가 특히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선 무엇을 고치는 게 좋을까요. “정치란 건 미우나 고우나 타협을 해야죠. 개인의 정파적 이익보다는 국익을 생각해야 하는데, 국익이라는 게 생각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독일이 오늘날 저런 발전을 한 것은 협치와 연정을 통해 이뤄 낸 겁니다.” 김 전 총리는 ‘풍경이 있는 세상’에서 “거칠고 독한 이야기, 남에게 상처를 주는 글은 쓰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썼다. 이에 대해 그는 “누구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내 생각을 얘기하며, 함께 생각해 보자는 뜻으로 썼다. 그래서 설명하듯 구어체로, 또 낮은 자세로 경어체로 썼고, 되도록 문장을 쉽고 평이하게 쓰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요즘 정치인을 비롯해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리면서 거칠고 독한 말들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현재 입장에서만 생각하니까 독한 얘기를 할 텐데, 언젠가 그런 독한 말이 업보가 돼 부메랑으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표현한다면 본인에게도 이득이 될 겁니다. 나중에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게, 자중자애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료계의 진료 거부 장기화로 응급실 공백이 우려되는데요, 해결 방법이 없을까요. “이것도 서로 타협하고 절충할 여지가 분명히 있는 문제죠. 서로 인정하고 협력할 수 있는 파트너로 대화했으면 좋겠어요. 어느 한쪽이 완승완패한다면 해결이라 할 수 없겠죠.” ―로스쿨과 의과대학으로 우수 인력이 쏠리는 현상을 적절히 제어할 합리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쓰신 적도 있죠. “이건 정말 국가 장래가 걱정되는 현상이에요. 현실적으로 법조인이나 의사라는 직업에 안정성이 있다 보니 몰려가는 건 뭐라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국민들이 좀더 이 사회에 헌신하고 자기만족을 할 수 있는 것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도록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003~2005년의 ‘어젠다 2010’과 ‘하르츠4’라는 포괄적 노동·사회 개혁을 통해 독일 경쟁력의 회복을 시도했다. 이 정책은 슈뢰더와 사민당에 2005년 총선 패배를 가져왔지만, 개혁정책을 계승한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독일 경제를 회복시켜 번영의 기틀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연금·의료·노동·교육 등 4대 개혁은 더이상 늦출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인데요. 슈뢰더의, 독일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요. “슈뢰더가 시작한 개혁은 사민당 지지자들이 손해를 보는 것이었어요. 그럼에도 국가 발전을 위해선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내세웠던 것이고, 메르켈 총리가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정책을 계승하고 독일을 번영시키는 엔진이 됐던 거죠. 우리도 정파적 이익이나 목전의 선거만 생각할 게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장래를 위해 어떤 게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을 해 줘야 해요. 서로 충분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절충점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화와 타협이 안 된다면 제비뽑기라도 해서 타협을 해야죠.” ■김황식 前총리는 1948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광주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광주지방법원장, 대법관, 감사원장에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 제41대 국무총리(2010년 10월~2013년 2월)를 지냈다. 퇴임 후 안중근의사숭모회, 호암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동 중이고 지난해 6월부터는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산통신’,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 ‘풍경이 있는 세상’ 등의 저서를 펴냈다.
  • 대한민국 관광 트렌드 역사 쓰는 ‘명동’…특별 관광코스 마련 나선 서울 중구

    대한민국 관광 트렌드 역사 쓰는 ‘명동’…특별 관광코스 마련 나선 서울 중구

    대한민국을 찾는 관광객의 필수 방문코스인 서울 중구 ‘명동’이 재도약하고 있다. 기존의 쇼핑 관광1번지라는 이미지에 K-문화체험을 맛볼 수 있는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명동을 찾는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중구 역시 특별한 관광코스 마련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지난달 30일부터 약 한 달간 명동 르메르디앙 목시빌딩에서 진행되고 있는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의‘골든 : 더 모먼츠’ 전시와 때를 맞춰 중구가 문화관광명소와 맛집 소개에 나섰다. 쇼핑명소로만 각인되어 있던 명동의 숨은 역사문화 유산을 방문객에게 소개하고 K-컬쳐까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K-컬쳐 랜드마크로 도약하는 명동아트브리즈 K-컬쳐 복합문화 공간인 명동아트브리즈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정국 사진 전시회 기간 동안 통 크게 전시회를 찾는 방문객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한 것이다. 1층과 2층은 관람객들을 위한 휴게 공간으로 개방하고 3층은 한국의 다과와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K-컬쳐 스페이스관으로 꾸몄다. 지난해 11월 개관한 명동아트브리즈는 주한중국대사관과 한성 소학교가 위치한 명동의 골목 뒷자락길, 오래된 중국 음식점들을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다. 지하 2층부터 6층까지 유튜브 스튜디오, 소규모 공연장, 갤러리, 댄스 스튜디오, 강의실 등을 갖춰 민화, 서예, K-팝 댄스, 요가, 유튜브 강의 등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1~2층에는 휴게공간으로 적당한 로비와 카페가 있다. 특히 정국 사진전 기간 동안 K-팝 댄스 강좌를 확대 운영하고 명상 힐링 프로그램도 특별 개설한다. 사전 예약 접수를 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K-팝댄스는 모든 요일에, 명상은 월·수·금요일에 수업이 진행되어 방문객들이 한국의 문화를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도록 기획했다. 외국인을 위해 특별히 수요일에는 K-팝 댄스와 K-메이크업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원데이클래스가 열린다. 원밀리언 댄스스튜디오의 강사가 K팝 댄스를, 예랑 프로덕션의 메이크업 강사가 K메이크업의 비법을 전수해준다. 이외에도 매월 다양한 특강도 개최되고 있다.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박태윤’ 강사와 함께한 뷰티 특강과 에너지 키친 ‘경미니’대표의 디톡스 특강 등이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교통과 숙박, 주요명소가 밀집되어 있는 중구에는 명동아트브리즈 뿐만 아니라 다양한 K-컬쳐 체험관들이 있다. 뷰티복합문화공간인 뷰티플레이(명동)와 비더비(DDP 내), 케이팝 뮤직비디오 연출과 국내 관광 멀티 체험존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가득한 하이커그라운드(청계천 근처)가 있어 한국의 일상을 즐기기 위한 관광객들에게 특별한 체험과 경험을 제공한다. ■근현대 문화예술 유행을 선도하던 명동, 도보관광코스 운영 우리나라 문화예술 컨텐츠를 꽃피운 명동, 시대를 이끄는 유행을 선도해왔던 명동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도보관광해설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해설사와 함께 명동의 과거와 현재를 맛볼 수 있는 기회로, 약 1시간 도보코스이다. 기존의 명동역사문화코스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을 재구성해 엮었다. 외국인의 경우 명동아트브리즈 3층에서 참여 신청할 수 있다. 명동코스에는 역사와 현대가 어우러져 있다. 명동아트브리즈에서 출발해 중국대사관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시작된다. 이어 명동유네스코회관, 명동예술극장, 명동성당을 차례대로 둘러보며 해설사와 함께 쇼핑관광 위주의 명동이 아닌, 역사 속 명동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코스는‘뷰티플레이’에서 K-뷰티를 체험하며 마무리된다. 명동유네스코회관은 6·25전쟁 이후 피폐된 한국의 문화예술을 중흥시키기 위해1967년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13층 건물로 문화시설과 업무시설 등을 복합적으로 배치하고 최첨단 설비를 갖춘 명동의 랜드마크였다. 이제는 주변에 높은 건물들이 많이 생겼지만 여전히 옛 건물의 모습을 보존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11층에 올라가면 옥상생태정원인 작은누리와 배롱카페가 있어 명동 시내를 조망하며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숨겨진 공간이 있다. 도시의 활기와 고즈넉한 분위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장소이다. 이어 80m 정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명동예술극장은 1936년 ‘명치좌’라는 문화예술 상영관으로 문을 열었다. 광복 후에는 잠시 국제극장으로 명칭이 바뀌기도 했으며 1947년에 서울시에 인수된 후부터는 시공관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 후 1957년부터는 시공관과 함께 중앙국립극장으로 건물이 사용됐다. 한 때 철거의 위기도 있었지만 2009년 공연장이 복원되어 명동예술극장으로 재탄생해 문화의 거리, 명동의 역사를 잇고 있다. 완만한 언덕길을 따라 걷다보면 고딕양식의 건축물인 명동대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1898년에 조선 최초의 순교자였던 김범우의 집터에 1천여 명의 신도들의 자원봉사로 지어진 한국천주교회의 상징이다. 유교를 기반으로 했던 조선시대에 박해 속에서도 꿋꿋이 명맥을 이어왔으며 1970~80년대 민주화를 열망하며 거리로 나선 인사들과 학생들을 보호한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현재는 분주한 명동 중심부에서 관광객과 시민들이 잠시 여유를 갖고 조용히 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명동성당 맞은 편에 위치한 K뷰티 체험·홍보관 뷰티플레이는 국내 중소 화장품기업을 위한 오픈형 뷰티 체험공간으로 다양한 제품을 무료로 체험할 수 있어 K팝 아이돌처럼 메이크업하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퍼스널 컬러 진단, 메이크업 체험, 포토존 등 다양한 콘텐츠가 가득하다. ■숭례문·서울로7017·한국의 집, 방탄소년단 촬영지 방문 이벤트 이 외에도 명동에서 가까운 필동 ‘한국의 집’,‘숭례문’,‘서울로7017’은 모두 중구의 핫 스팟이다. 특히 방탄소년단이 촬영하고 방문했던 장소들로 해외에 눈길을 끌었다. 명동과 그 건너편 백화점, 그리고 600년 전통의 남대문시장까지 이어지는 각기 다른 매력으로 가득찬 쇼핑거리를 즐기다 보면 2021년 글로벌 시티즌 촬영지였던 국보 숭례문을 마주하게 된다. 빌딩 숲 사이에서 한국 전통미를 간직한 숭례문이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내 멋진 포토존으로 사랑받고 있다. 숭례문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2021년 서울관광 홍보영상 촬영지였던 서울로7017이 나온다. 고가도로를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재탄생시킨 서울로7017에서 바라보는 서울역 일대는 야경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또한 서울로7017 끝에는 맛집이 즐비한 중리단길, 그리고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 교회 건축물인 약현성당 이어져 있어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더한다. 또한 빌보드 매거진 커버 촬영지인 한국의 집은 남산한옥마을과 남산까지 이어져 고즈넉한 한국의 전통과 자연의 멋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이 외에도 홍보지에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다녀간 중구의 소문난 맛집도 함께 소개해 한 곳씩 방문하며 식도락 여행도 즐길 수 있다. 이미 깊은 맛의 역사와 함께시민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 온 노포들이 중구 곳곳에 있다. 이 기간 동안 방탄소년단 방문장소 인증샷을 중구청 인스타그램에 남기면 추첨을 통해 매일 3명에게 1만원 상당의 기프티콘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오는 11월 3일까지 열린다. 김길성 구청장은 “시대의 트랜드를 이끌어왔던 명동의 매력과 함께 이번에 준비한 특별 관광코스로 중구의 많은 명소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며 “명동이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관광지로 더욱 위상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명동은 제2기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으로 선정돼 ‘명동스퀘어’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내걸고 재도약하고 있다. 10월중에는 명동에 스마트폴이 설치되어 명동의 구석구석을 밝힐 예정이다. 뉴욕타임스스퀘어를 능가하는‘빛의 도시’로 탈바꿈할 명동의 미래가 기대된다. 연말에는 대대적인 빛축제도 예정돼 있어 명동의 화려한 변신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버지니아 울프·페소아·플라스… 세계적 문호 ‘민낯’을 보다

    버지니아 울프·페소아·플라스… 세계적 문호 ‘민낯’을 보다

    시와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나 주인공은 반드시 작가의 분신일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작가에 의해 창조된 문학이라는 세계는 완성되는 순간 작가의 손을 떠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세이는 조금 다르다. 화자나 서술자라는 ‘가면’을 벗고 작가의 현전을 오롯이 드러낸다. 최근 세계적 문호들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는 편지, 일기, 칼럼 등을 새롭게 엮은 책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여성들은 경험의 자유를 가져야만 합니다. 여성들은 두려움 없이 남자들과 달라야 하고 자신의 차이를 터놓고 표현해야만 합니다.”(버지니아 울프, 1920년 10월 16일 ‘뉴 스테이츠먼’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20세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페미니즘 문학의 대모로 불리는 버지니아 울프(1882~1941)가 썼던 편지를 엮은 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북다)에 실린 한 문장이다. ‘등대로’, ‘자기만의 방’ 등의 작품으로 문학사에서 여성의 자리를 마련코자 했던 작가는 생전 “편지가 없다면 살 수 없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연인이었던 비타 색빌웨스트와 주고받은 서신 일부는 번역된 바 있지만 언니 바네사 벨, 남편 레너드 울프, 동료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 등과 주고받은 편지를 국내에 소개하는 건 이 책이 처음이다. “한번도 표현된 적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페르난두 페소아, ‘한번도 표현된 적 없는 것을 표현하는 일’) 요즘 말로 ‘부캐’라고 할 수 있을까. 생전 수많은 이명(異名)으로 활동했던 포르투갈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의 에세이 ‘이명의 탄생’(미행)도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한국 독자들에게 ‘불안의 책’으로 잘 알려진 페소아가 자신의 문학세계를 어떻게 구축했는지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페소아의 비평가적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등 당대 유럽 문학 거장들을 호명하는 페소아의 다채로운 문학관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과거 출간됐던 책들도 새 옷을 입고 독자와 새롭게 만난다. ‘고백파’라는 장르를 개척했으며 비극적인 삶을 살다 간 미국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의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문예출판사)가 국내 출간 20주년을 맞아 최근 리커버 에디션으로 나왔다. 문단의 이단아로 불리며 자유롭고 괴팍한 삶을 살면서도 여러 예술가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던 미국 시인 찰스 부코스키(1920~1994)의 칼럼집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도 2020년 출간 후 개정판으로 찾아왔다.
  • [부고]

    ●고두영(롯데이노베이트 대표이사)씨 별세 = 10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 12일. (02)3010-2000 ●김종호씨 별세, 김동화(창원서부경찰서 경위)·민성(한국일보 미디어전략부문장)·진희(공인중개사)씨 부친상, 김보경(창원보훈회관 과장)씨 시부상, 박태홍(고용노동부 양산지청 근로감독팀장)씨 장인상 = 9일 창원시립상복공원 장례식장, 발인 11일. (055)712-0895 ●류원호씨 별세, 류근민(YTN 기술본부장)·근태·미림씨 부친상 = 9일 부산 좋은강안병원 장례식장, 발인 11일. (051)610-9009 ●성영희씨 별세, 김지훈(머니투데이 기자)씨 모친상 = 10일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 발인 12일. (02)2030-4463
  • [단독] “쌤, 무슨 말이에요”… ‘불통’에 갇힌 교실[아이들의 문해력이 위험하다]

    [단독] “쌤, 무슨 말이에요”… ‘불통’에 갇힌 교실[아이들의 문해력이 위험하다]

    교사 심층 인터뷰·학생 설문조사 국어 외 과목도 단어 설명에 ‘진땀’주제 이해 능력·표현력도 떨어져 “선생님, ‘완강하다’는 ‘완전 강하다’ 아닌가요?” 수도권 고등학교의 한 영어 교사는 최근 고교 3학년 수업에서 뜻밖의 질문을 들었다. ‘완강하다’가 ‘완전 강하다’의 줄임말인 줄 알았다는 학생들은 생소한 단어가 나올 때마다 자기들끼리 웅성거렸다. “‘모색한다’는 ‘색깔을 따라 칠한다’는 뜻인가요?” 생각지 못한 질문에 이 교사는 “내가 영어 교사인지 국어 교사인지 헷갈릴 정도”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양한 글을 이해하고 창작할 수 있는 힘, 문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글을 읽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서울신문이 학생들의 문해력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올 2학기가 시작된 8월 중순부터 지난 6일까지 전국 초중고교 교사 20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학생 조사를 병행한 결과 교사들은 “수업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최근 2~3년 새 문해력이 낮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자기표현과 소통까지 불편을 겪기에 더 문제라는 우려도 덧붙였다. 문해력 저하는 초등학생부터 발견된다. 조기 교육으로 한글을 뗀 덕에 글자는 술술 읽지만 단어와 문장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다. 김민중 대구 월배초 교사는 “고학년이 북한 이탈 주민에서 ‘이탈’의 뜻을 모른다든지 지진이나 홍수는 알아도 ‘재난’ 같은 상의어나 포괄어를 모르는 경우가 정말 많다”고 했다. ‘같이’를 ‘가치’로 쓰는 등 비교적 쉬운 맞춤법을 틀리거나 문장 주술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고학년도 쉽게 볼 수 있다. 교사들이 겪은 문해력 부족으로 인한 ‘불통’ 사례는 끝이 없다. 성교육 관련 조사를 위해 ‘성적 문제’에 관해 질문이 나오면, 공부 성적을 의미하는 거냐고 반문한다. 국어는 물론 수학·사회·과학 등 다른 교과 학습에도 걸림돌이다. 수학 계산 능력은 뛰어나지만 서술형 문제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손을 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조미숙 교사는 “‘대변’(마주 보는 변)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똥 아니냐고 한 적도 있다”며 “수학 개념은 단어와 직접 연결된 게 많다 보니 더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사회나 과학 교과를 가르칠 때도 기본 단어 설명에 수업 시간의 10~20분을 할애해야 한다. 시간은 부족하지만 단어를 모르면 진도를 나가기 버거워서다. ‘매질에 따른 빛의 굴절’을 설명하는데 왜 때리냐고 물어서 한참 설명하거나(초등 6학년 교사) ‘왕이 승하한다’는 표현을 몰라 역사 시험에서 오답이 속출(고교 1학년 교사)하다 보니, 교사들은 어휘 설명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10대 하루 평균 8시간 인터넷 이용긴 글 읽기 꺼리고 핵심도 못 짚어독후감 숙제 받으면 챗GPT에 문의“문해력 문제 푸는 사교육까지 등장”교사들은 학생들이 글의 주제를 이해하는 능력도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금만 글이 길어도 읽기를 피하거나 엉뚱한 주제를 적기도 한다. 예컨대 ‘환경 보호를 위해 주인공이 자전거 여행을 한다’는 글의 주제를 ‘자전거를 타고 싶다’로 답한다는 것이다. 황수진 인천 이음초 교사는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추출하고 의도를 알아내는 걸 어려워한다”며 “긴 글도 영상 요약본으로 접하니까 스스로 찾는 힘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해력이 떨어지면 표현력도 함께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독후감 숙제를 받은 아이들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요약 영상을 보거나 ‘챗GPT’ 같은 인공지능(AI)에게 물어본 결과를 적어낸다. 초중고교에서 공통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스스로 느낀 점을 적으라고 하면 단순 표현만 나열한다. 34년차 초등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재밌다’, ‘싫다’, ‘좋다’는 정도밖에 표현을 못 한다. 글로 풀어서 쓸 능력이 안 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연수 탕정중 국어 교사는 “친구들이나 부모님과도 메신저로 짧은 메시지만 주고받으니 대화를 통해 단어나 표현을 터득할 기회가 줄었다”며 “전반적으로 언어생활 자체가 단순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저 수준 문맹률과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학생들의 문해력은 왜 하락한 걸까. 인터뷰에 응한 교사 20명 모두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와 영상 매체 이용 증가’를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15년차 이상 교사들은 스마트폰의 등장 전후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극명하게 느낀다고 한다. 유튜브 등 영상 플랫폼 노출이 급격히 늘고 최근에는 소셜미디어(SNS)와 메신저 사용 시간이 증가하면서 책을 읽거나 대화·토론할 시간이 부족해진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2년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조사’를 보면 청소년의 인터넷 이용 시간은 하루 평균 약 8시간(479.6분)으로 2019년에 비해 1.8배 증가했다. 특히 청소년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동영상 플랫폼은 유튜브(97.3%)와 유튜브 쇼츠(68.9%), 인스타그램 릴스(47.6%), 틱톡(39.6%)으로 이용률 2~4위가 모두 쇼트폼 콘텐츠 플랫폼이었다. 교사들은 흥미와 자극 위주의 영상 시청이 글 읽기 방해의 주범이라고 지적한다. 15초 안팎의 짧은 길이에 언어도 거의 없는 ‘릴스’와 ‘쇼츠’에 익숙해지다 보니 호흡이 긴 글을 읽어내지 못한다. 배주호 초등교사는 “쇼트폼 콘텐츠가 많아지고 짧은 메시지로만 소통하면서 전반적인 주의 집중력이 부족해지는 현상”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등교 공백도 주요한 문해력 저하 요인으로 꼽힌다. 교사 20명 중 13명은 문해력 저하가 코로나19로 인해 더 심화했다고 봤다. 경기도의 23년차 영어 교사는 “학교에 못 나오면서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학습량이 감소했지만 상위권 아이들은 코로나 전후에 별 차이가 없다. 반면 중하위권은 어휘력이 떨어졌다”고 전했다. 교사의 절반 이상인 11명은 한자어와 어휘 교육의 감소도 문제라고 봤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이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운 개념과 용어는 한자어로 돼 있어서다. 중학교 1학년 박모군은 “국어 교과서에 ‘민초’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민트초코’인 줄 알았다”며 “처음 보는 단어 중에도 한자어로 된 단어가 어렵다”고 했다. 이 때문에 기본적인 한자어는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민기식 서울 면일초 교사는 “한자어가 3학년 이후 교과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아이들은 정확한 뜻을 모른 채 대충 이해한다”며 “한자어 속뜻을 가르쳐 주면 이후 학습에서도 훨씬 쉽게 배운다”고 강조했다. 독서 교육이나 글쓰기 교육의 부족도 한 원인이다. 일기 쓰기가 인권 침해라는 논란이 나온 이후 주제 글쓰기 등 다른 방식의 교육을 도입하거나 독서 활동을 만든 학교들도 적지 않다. 안연규 구미 선산고 국어 교사는 “최근 문해력이 주목받자 문해력 문제를 푸는 기술을 연습하는 사교육도 생겼다”며 “학교에서 오래 생각하고 질문하고 글 쓰는 연습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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