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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BC ‘왜 한국에서 감염자 급증했나’ 기사 전문 번역

    BBC ‘왜 한국에서 감염자 급증했나’ 기사 전문 번역

    영국 BBC가 25일(현지시간) 보도한 ‘왜 한국에서 감염자가 급증했나’ 제목의 기사를 그대로 옮긴다. 국내에서 처음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온 지 한달이 된 지난 20일 이후 일주일 만에 확진 환자가 1000명을 넘어서고 12명이 숨지는 등 갑자기 방역망이 무너지게 된 원인과 처방을 놓고 정치권이나 온라인 여론에서나 공방이 뜨거운데 어느 정도 객관적이고 차분한 시선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앞서 BBC 기사를 부분적으로 인용한 세계일보와 뉴스1 기사를 참고하며 원문 전체를 옮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기자의 입맛대로 발췌해 취지를 왜곡할 여지를 없게 하기 위해서란 점을 지적해둔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한국은 지금까지 중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코로나19 감염자를 보였는데 일주일 전에는 수십명이었는데 900명 이상으로 갑자기 늘어났다. 이 나라는 충분히 준비를 잘한 것으로 보였는데 갑자기 숫자가 불어 많은 이들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다른 곳에서도 발병 사례가 갑자기 불어난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등을 궁금해 했다. 한국에서의 확진 사례 가운데 절반 이상이 특정 종교 집단에 연결돼 있고, 비판적인 이들은 이 집단의 비밀스러운 속성 때문에 바이러스가 감지되지 않은 채로 확산했다고 보고 있다. 왜 갑자기 감염 사례가 치솟았는가? 당국은 괴이쩍은 기독교 집단 신천지예수교회를 코로나19 확산의 핵심 요인으로 보고 있다. 남동쪽 대구란 도시에서 예배를 하면서 교차 감염을 시켰고 그 뒤 전국으로 번져나갔는데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건 분야 관리들은 지난주 양성 판정을 받은 61세 여성이 초기 감염자 중 한 명이며 현재 감염 경로 조사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다. 이 여성 환자는 병원에 이송돼 검사받는 것을 거부한 뒤 확진 판정이 나오기 전 여러 신도 모임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참석했을지 모르는 밀폐된 공간에서의 어떤 대규모 회합도 감염 확산을 일으킨 요인이라고 관리들은 입을 모은다. 정은경 질병통제본부장은 언론 브리핑을 통해 “많은 이들이 아주 한정된 공간에 따닥따닥 붙어 앉아 한 시간 이상 예배를 보는 특성이 많은 다른 감염원들에게 노출됐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감염병 전문의 러옹 호에 남 박사는 BBC에 “바이러스는 우리의 사회적 습관과 접촉에 빌붙어 산다”며 “교회 안에서 손뼉을 마주 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침방울 등에 의한 전염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파의 많은 신도들이 지난달 말 사흘 동안 청도의 한 병원에서 거행된 이 종파 창시자의 친형 장례에 참석했다는 사실도 또하나의 전파원으로 간주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교회 커뮤니티들도 바이러스 발병 집단이 된 사례가 있지만 한국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이들 모두가 감염 확산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예배와 공동체 모임 등을 연기했다.그러면 왜 더 일찍 감지하지 못했나?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창궐이 시작된 이후 주요하게 제기된 의문 하나는 얼마나 일찍 이 바이러스가 감지되느냐, 어떤 증상도 없는 상태에서도 사람끼리 감염을 일으키느냐였는데 이 두 요소는 확산을 차단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중국 보건 당국은 오래 전부터 증상을 보이기 전에도 사람들이 균을 옮길 수 있다고 경고해왔는데 세계보건기구(WHO)는 아직까지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들 감염원이 발견되기 전부터 바이러스에 대해 일찍 경계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주의하고 서로의 건강에 더 유의했더라면 증상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빨리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었겠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WHO의 글로벌 감염 경보 및 대응 네트워크의 데일 피셔 의장은 BBC에 “논쟁적인 질문”이라며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확산 속도가 빨라 질환에 걸린 지 한참 돼서야 다른 이에게 옮기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과도 완전 다르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어떤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라도 감염된 이들은 목구멍 안에 이 바이러스를 갖고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침이나 징후 같은 것이 없더라도 바이러스를 옮길 수는 있다는 얘기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바이러스를 퍼뜨리려면 감염된 사람이 재채기를 손이나 얼굴에 묻히거나 다른 사람에게 닿게만 해도 된다. 피셔는 또 “증상 없는 사람에게 감염된 사람이 이를 다시 다른 이에게 옮길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분명히 하자면 증상이 없는 사람이 슈퍼 전파자는 아니다. 증상을 갖고 있을 때만 이것을 쉽게 퍼뜨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신천지에 대해 무얼 알게 됐나? 공식 명칭이 신천지예수교회 증언의 장막 성전인 이 집단은 1980년대 생겨났으며 25만명 남짓의 신도를 거느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배 도중 이들은 무릎을 꿇고 앉는데 다른 사람들과 아주 가깝게 앉게 하고 예배가 끝난 후에도 계속 회합을 갖는다. 이런 이단적인 대형 기독 교회는 일부 비평가들의 눈에 이교 집단으로 간주된다. 그렇게 한국에서도 인기를 끄는 집단이 아니어서 신도들은 자신의 소속을 밝히길 꺼리는 게 보통이라고 로라 비커 BBC 특파원은 말한다. 또 그들은 병약함은 곧 마음의 유약함을 뜻한다고 본다. 이 두 가지가 결합해 감염된 신도들은 숨기 때문에 추적에 애를 먹고 있다. 해서 보건 당국은 여전히 이들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고 있다. 이 종파는 당국에 전적으로 협조하고 있다며 신도 명단을 건넸다. 하지만 한 지방자치단체(경기도) 관리들은 명단 중 누락된 이들이 있음을 파악한 뒤 이 교회의 한 사무실을 급습했다. 일반 대중들 사이에선 엄청난 분노를 표출하며 직접적으로 수십 만명이 신천지예수교회의 해체를 촉구하는 청원이 지난 2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오자 벌써 55만 2000명 넘게 서명할 정도였다. 최원석 고려대 의과대학 감염내과 교수는 “신천지가 한국에서의 가파른 환자 증가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면서도 “지금 한국이 경험하는 이 상황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단언했다.한국인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한국인들은 많이 걱정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 특파원에 따르면 가장 많은 타격을 입은 대구에 있는 나이 지긋한 부모님이나 친척들을 걱정한다. 체념하는 분위기도 이지만 지금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대구에 가있는 우리 특파원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는 특히 나이 든 어르신과 친척들을 걱정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이 나라가 전염병 발병에 잘 준비가 돼 있다고 믿는다. 의료진과 병원은 몇 주째 비상 대기 중이다. 질병통제본부는 하루 두 번씩 브리핑을 하는데 그곳 전문가들은 모든 감염원을 지도로 만들어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주민들에게는 사는 곳 근처의 확진 사례가 언제 어느 곳에서 나왔는지를 말해주는 문자메시지가 전송된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달리 이번 주가 시작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미친듯 물건을 잔뜩 사들이는 행위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구의 한 슈퍼마켓에 새 마스크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천명이 하나라도 구하겠다는 희망을 안고 줄지어 서기도 했다.
  • “연극인·원칙주의자·공감능력자… 3인3색 매력”

    “연극인·원칙주의자·공감능력자… 3인3색 매력”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두 교황’이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교황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영화에서 진보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시절 보수적인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만나 종교·사회적 이슈를 두고 대립하지만, 끝내 두 교황은 신 앞에서 서로 이해하고 개인적 신뢰와 우정을 쌓는다는 이야기는 비가톨릭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동과 사색을 안겼다. 베네딕토 16세와 직전 교황인 요한 바오르 2세 재임 기간에 주교황청 한국대사를 지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두 차례 알현해 한국에서 세 교황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인 성염(78) 전 대사를 지난 18일 서울 도봉구 자택에서 만나 세 교황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교한다면. “요한 바오로 2세는 연극인이다. 연설이나 표정에 연극인다운 제스처가 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원칙주의적 학자였고, 교황청 내 검찰청 격인 신앙교리성에서 수십년간 근무해 표정이 딱딱했다. 교회 문제에서도 진중한 스타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신부이자 교구장으로서 계속 사람을 상대하고 사귀어 온 분이다. 내가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하면 그는 나의 눈을 쳐다보며 경청하고 공감하는 공감능력자였다. 교회와 신도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항상 생각하고 같이 고민해 온 개방적인 분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화하면 영화처럼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의 연기가 대단했다.” -영화에서 진보주의자로 표현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실제로도 가톨릭 개혁에 주력하고 있는데. “가톨릭 내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이슈 중 하나는 이혼이다. 가톨릭 신자 간 결혼에 대해선 이혼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혼한 신자가 교회를 찾아오면 다른 신자들은 그들을 낮춰 보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혼이 교리에 어긋나는지 아닌지의 논쟁을 넘어 이미 이혼한 신자를 파문자 취급은 하지 말자고 말했다. 그들도 교회의 자녀이고 상처 입은 사람이니 교회를 찾아오면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결국 교황은 즉위 후 5년간 노력해서 이 문제를 풀었다.”-세 교황은 한반도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다. “2003년 주교황청 대사로 부임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신임장을 제정할 때 30분 정도 요담을 나눴다. 교황은 각국에서 새로 부임한 대사가 신임장 제정사를 하면 답을 하는데, 이를 통해 그 국가의 국민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당시 북핵 위기였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북핵 문제는 철저하고 검증 가능하게, 그러면서도 공평하게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지만 동시에 미국의 핵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부활절이나 성탄절 계기에 한반도와 북핵 문제를 이야기했다. 국제사회에 북핵 문제를 무력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을 호소하고 대북 지원에서 인도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대북 지원을 북핵 협상의 조건으로 삼지 말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한 후 전임 교황이 계획한 해외 순방지 외에 첫 순방지로 한국을 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부터 남북 대화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열 번 이상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대사께서는 김희중 대주교와 함께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특사단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했다. 당시 북미 대립이 격화되며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이었는데 교황이 한반도 문제를 언급했나. “특사단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교황과 회담하기 하루 전이었다. 우리는 교황을 예방하기 앞서 총리 격인 국무원장과 대화를 했다. ‘문 대통령께서 교황님의 많은 지도와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했다’고 전달했더니 국무원장이 ‘우리가 내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데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북핵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메시지는 없느냐는 뜻인 것 같았다. 우리는 ‘북핵 문제 해법은 북미가 직접 회담으로 풀어야 하고, 북미가 회담을 하려면 정기적인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게 방법’이라고 했다. 이튿날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후 바티칸 외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교황께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러분이 바라는 바를 다 전달했다’고 하더라.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1년 후 한미 연합훈련은 유예되고 북미 회담이 이뤄지지 않았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10월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방북 요청을 사실상 수용했다. 하지만 2019년 북미·남북 관계가 교착되면서 교황의 방북 가능성은 낮아진 것 같은데 어떻게 전망하는가. “‘교황’은 라틴어로 ‘폰티펙스’(pontifex)다. ‘폰티’는 ‘다리’, ‘펙스’는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교황은 즉위 직후 바티칸 주재 외교관들을 만나 ‘제가 하는 일은 다리를 놓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게 하고 화해하게 하고 격려하게 하는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면 제가 한다’고 했다. 교황도 국가원수라 상대국의 공식 초청이 없으면 움직이기 어렵지만, 교황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볼 때 평화에 기여한다면 어디나 기꺼이 찾아갈 분이다. 교황이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에 가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기독교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탄’으로 재정의했다. 인간 존엄성이란 인권이다. 그래서 교황은 쿠바든 북한이든 어디든 가서 인간 존엄성을 호소하는 것이다.”-프란치스코 교황은 소박한 행보로도 화제를 모았는데. “소박한 행보 또한 ‘기독교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탄’임을 실천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인 비서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교황이 즉위한 지 3일 후 이 비서가 교황에게 구두를 닦아 주겠다며 달라고 하자 교황은 ‘평생 내 손으로 구두를 닦았는데, 평생 해온 나의 직업을 뺏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위트 있게 거부했다고 한다. 교황의 소박한 행보는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 신자유주의는 우상숭배’라는 그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교황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상·하원 의장의 만찬 초대에 대해 선약이 있다고 불참한 뒤 현지 교회에서 마련한 노숙자와의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교황과의 만찬을 기대했던 정·재계 인사들은 ‘있는 놈들도 천국 가자’라고 비아냥댔지만, 교황은 ‘가난한 사람을 만져 보면 그리스도의 살결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성 전 대사는 세 교황과 한국을 연결하며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외교관이기도 하지만,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등을 라틴어 원전에서 번역하는 신학자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서울에 알리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주모자로 수배된 투사를 숨겨 주기도 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비판하고 사회에 정의 구현을 외치는 종교·사회 개혁가로 활동해 왔다. -가톨릭 내 대표적 진보단체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에서도 활동하셨는데. “내가 태어난 곳이 전남 장성인데 1948년 제주민 토벌에 파병되기를 거부한 군인들이 주도한 소위 여순사건이 있었다. 어릴 적 성당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이 교리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우익 계열인 서북청년단에서 활동했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여자 빨치산을 잡아 어떻게 난자해 죽이는지를 아이들에게 자세하게 이야기하더라. 나는 ‘가톨릭 신자인데 사람을 저렇게 죽여서 되겠는가’라고 생각하며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후 1970년대 해방신학을 접하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며 크리스천의 양심, 의무를 갖고 사회문제에 투신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대사님을 교회에서 사회로 나오게 했던 크리스천의 양심, 의무란 무엇인가. “1960년대 가톨릭은 크리스천이 정의 구현을 복음선포의 사명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회가 정의와 평화, 화해, 공평과 같은 가치 위에서 정화되도록 하는 게 신앙인으로서 크리스천의 사명이라는 가르침이다. 크리스천의 의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논변하기도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이해관계와 이념을 넘어 타인들을 품어 주는 사회적 사랑은 하느님의 나라에 속한다고 설파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사회적 사랑이란 다름 아닌 정치적 사랑을 가리킨다고 했다. 가난하고 약한 자를 위한 정의를 세우고, 이를 위해 정치에 참여하고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정치적 사랑이다.” -일반 신자들은 어떤 믿음을 갖고 정치에 참여해야 하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야기한 바가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비밀투표를 한다. 이는 모세의 장막과 비슷하다. 모세는 자신의 백성을 거느리고 이집트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장막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하느님과 만났다. 하느님과 독대하는 자리인 것이다. 투표소에서도 하느님과 일대일로 마주한다. 당신이 누구에게 투표하는지는 하느님만 안다. 하느님의 가르침대로만 투표하면 된다. 가난하고 약하고 소외받는 사람을 위해 한 표를 던지는 것이 하느님의 가르침이다. 이 외에는 이기심일 뿐이다. 다른 종교 신자도 마찬가지다. 불자라면 부처님의 대자비에 따라서 투표하면 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성염 전 주교황청대사 “베네딕토 16세는 원칙주의자, 프란치스코는 공감능력자”

    성염 전 주교황청대사 “베네딕토 16세는 원칙주의자, 프란치스코는 공감능력자”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두 교황’이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교황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영화에서 진보적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시절 보수적인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만나 종교·사회적 이슈를 두고 대립하지만, 끝내 두 교황은 신 앞에서 서로 이해하고 개인적 신뢰와 우정을 쌓는다는 이야기는 비가톨릭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동과 사색을 안겼다. 베네딕토 16세와 직전 교황인 요한 바오르 2세 재임 기간에 주교황청 한국대사를 지냈고 프란치스코 교황도 두 차례 알현해 한국에서 세 교황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인 성염(78) 전 대사를 지난 18일 서울 도봉구 자택에서 만나 세 교황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교한다면. “요한 바오로 2세는 연극인이다. 연설이나 표정에 연극인다운 제스처가 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원칙주의적 학자였고, 교황청 내 검찰청 격인 신앙교리성에서 수십년간 근무해 표정이 딱딱했다. 교회 문제에서도 진중한 스타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신부이자 교구장으로서 계속 사람을 상대하고 사귀어 온 분이다. 내가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하면 그는 나의 눈을 쳐다보며 경청하고 공감하는 공감능력자였다. 교회와 신도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항상 생각하고 같이 고민해 온 개방적인 분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화하면 영화처럼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우의 연기가 대단했다.” -영화에서 진보주의자로 표현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실제로도 가톨릭 개혁에 주력하고 있는데. “가톨릭 내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이슈 중 하나는 이혼이다. 가톨릭 신자 간 결혼에 대해선 이혼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혼한 신자가 교회를 찾아오면 다른 신자들은 그들을 낮춰 보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혼이 교리에 어긋나는지 아닌지의 논쟁을 넘어 이미 이혼한 신자를 파문자 취급은 하지 말자고 말했다. 그들도 교회의 자녀이고 상처 입은 사람이니 교회를 찾아오면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이미 재혼하고 자녀까지 낳은 그들에게 이혼은 교리에 어긋나니 헤어지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결국 교황은 즉위 후 5년간 노력해서 이 문제를 풀었다.” -보수파가 반발하지는 않았나. “가톨릭 교회 안에 여전히 율법주의 전통이 존재하기에 교황이 개혁적 행보를 하면 보수파는 책을 내서 공개적으로 교황을 비난하는 등의 일이 허다하다. 보수파는 이혼 문제와 관련 ‘자비가 계명을 면제해주지 않는다’며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교황은 동성애에 반대하고 깨끗한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이혼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지금처럼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이유로 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죄라는 입장이다. 교황은 즉위하자마자 ‘가엾어서 택하노니’라는 표어를 택했다. 하느님은 사람을 불쌍해서 부르지 선량해서 부르는 게 아니다. 가엾은 사람에게 가서 교회로 오게 하자는 것이다.” -세 교황은 한반도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다. “2003년 주교황청 대사로 부임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신임장을 제정할 때 30분 정도 요담을 나눴다. 교황은 각국에서 새로 부임한 대사가 신임장 제정사를 하면 답을 하는데, 이를 통해 그 국가의 국민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당시 북핵 위기였는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북핵 문제는 철저하고 검증 가능하게, 그러면서도 공평하게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지만 동시에 미국의 핵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부활절이나 성탄절 계기에 한반도와 북핵 문제를 이야기했다. 국제사회에 북핵 문제를 무력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해결할 것을 호소하고 대북 지원에서 인도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대북 지원을 북핵 협상의 조건으로 삼지 말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한 후 전임 교황이 계획한 해외 순방지 외에 첫 순방지로 한국을 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부터 남북 대화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열 번 이상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대사께서는 김희중 대주교와 함께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특사단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했다. 당시 북미 대립이 격화되며 한반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시점이었는데 교황이 한반도 문제를 언급했나. “특사단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교황과 회담하기 하루 전이었다. 우리는 교황을 예방하기 앞서 총리 격인 국무원장과 대화를 했다. ‘문 대통령께서 교황님의 많은 지도와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했다’고 전달했더니 국무원장이 ‘우리가 내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데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북핵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메시지는 없느냐는 뜻인 것 같았다. 우리는 ‘북핵 문제 해법은 북미가 직접 회담으로 풀어야 하고, 북미가 회담을 하려면 정기적인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게 방법’이라고 했다. 이튿날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후 바티칸 외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해 ‘교황께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여러분이 바라는 바를 다 전달했다’고 하더라.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1년 후 한미 연합훈련은 유예되고 북미 회담이 이뤄지지 않았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10월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방북 요청을 사실상 수용했다. 하지만 2019년 북미·남북 관계가 교착되면서 교황의 방북 가능성은 낮아진 것 같은데 어떻게 전망하는가. “‘교황’은 라틴어로 ‘폰티펙스’(pontifex)다. ‘폰티’는 ‘다리’, ‘펙스’는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교황은 즉위 직후 바티칸 주재 외교관들을 만나 ‘제가 하는 일은 다리를 놓는 일이다. 사람을 만나게 하고 화해하게 하고 격려하게 하는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면 제가 한다’고 했다. 교황도 국가원수라 상대국의 공식 초청이 없으면 움직이기 어렵지만, 교황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볼 때 평화에 기여한다면 어디나 기꺼이 찾아갈 분이다. 교황이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에 가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기독교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탄’으로 재정의했다. 인간 존엄성이란 인권이다. 다만 바티칸은 민족자결주의, 즉 한 국가가 왕정이든 민주정이든,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중시한다. 그래서 교황은 쿠바든 북한이든 어디든 가서 인간 존엄성을 호소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소박한 행보로도 화제를 모았는데. “소박한 행보 또한 ‘기독교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탄’임을 실천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인 비서가 들려준 이야기인데, 교황이 즉위한 지 3일 후 이 비서가 교황에게 구두를 닦아 주겠다며 달라고 하자 교황은 ‘평생 내 손으로 구두를 닦았는데, 평생 해온 나의 직업을 뺏는 게 말이 되는가’라며 위트 있게 거부했다고 한다. 교황의 소박한 행보는 ‘가난한 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 신자유주의는 우상숭배’라는 그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교황이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상·하원 의장의 만찬 초대에 대해 선약이 있다고 불참한 뒤 현지 교회에서 마련한 노숙자와의 파티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교황과의 만찬을 기대했던 정·재계 인사들은 ‘있는 놈들도 천국 가자’라고 비아냥댔지만, 교황은 ‘가난한 사람을 만져 보면 그리스도의 살결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성 전 대사는 세 교황과 한국을 연결하며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외교관이기도 하지만,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등을 라틴어 원전에서 번역하는 신학자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고립된 광주의 상황을 서울에 알리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주모자로 수배된 투사를 숨겨주기도 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역사적 과오를 비판하고 사회에 정의 구현을 외치는 종교·사회 개혁가로 활동해 왔다. 80년 가까이 숨 가쁘게 달려온 그의 일생을 들어보았다. -가톨릭을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 “할아버지 적부터 개신교를 믿었다. 다만 집안이 가난해 학비는 물론 숙식까지 해결되는 가톨릭 미션스쿨 광주 살레시오중학교에 들어갔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돼 가톨릭 입교를 준비하시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종교적 유산도 있고, 가톨릭계 학교의 은덕도 있어 자연스럽게 가톨릭 신자가 됐다.” -가톨릭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사제를 준비하다가 포기했는데. “살레시오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살레시오 수도회 수사신부들이 가난하고 불우한 청소년들을 보살피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나도 그들처럼 되겠다는 생각에 가톨릭대 신학과에 입학하고 10년간 사제가 되는 길을 걸었다. 그런데 1972년 어느 날 가톨릭과 개신교, 불교, 천도교, 원불교, 유교 청년 대표들이 모이는 ‘종교제’에 나갔는데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첫눈에 반했다. 두 갈래 길에서 고민했지만 사제를 포기하고 결혼을 택했다. 지금까지도 후회는 없다. 이 길을 걸어온 게 아주 행복하다. 잘 걸어왔다.” -동양인 최초로 교황립 살레시안대학교 라틴어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로마문화와 합류해 4세기쯤 중세와 근현대의 유럽 문화를 형성한다. 그 지점에 교부라고 불리는 학자들,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있었다. 이들이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로마문화를 어떻게 통합시키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는지 연구하고 싶었고, 그래서 이들의 저작을 번역하고자 라틴어를 배우고자 했다. 처음에는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자 했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한국외대에서 중세철학과 라틴어를 공부해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강의할 사람을 찾았고, 나를 뽑았다. 이후 서강대에서 중세철학을 가르치시던 정의채 교수가 은퇴하자 나를 초빙했다.” -가톨릭 내 대표적 진보단체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에서도 활동했는데. “내가 태어난 곳이 전남 장성인데 1948년 제주민 토벌에 파병되기를 거부한 군인들이 주도한 소위 여순사건이 있었다. 당시 우리 마을 삼서 소룡리도 여수·순천 인근이라 초토화됐다. 그러니 나는 지독한 반공주의자가 됐어야 했다. 그런데 어릴 적 성당에서 주일학교 선생님이 교리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을 모아 놓고 우익 계열인 서북청년단에서 활동했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여자 빨치산을 잡아 어떻게 난자해 죽이는지를 아이들에게 자세하게 이야기하더라. 나는 ‘가톨릭 신자인데 사람을 저렇게 죽여서 되겠는가’라고 생각하며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후 1970년대 해방신학을 접하고,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으며 크리스천의 양심, 의무를 갖고 사회문제에 투신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였던 윤한봉 씨를 자택에 숨겨주고 망명을 도왔다고 들었다. “당시 서울에 있었는데 아무도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몰랐다. 나를 비롯해 교회 내 동료들은 교회 조직을 통해 간간이 소식을 듣고 있었다. 크리스천으로서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교회에 나오는 신자들이 모두 읽는 주보에 광주 소식을 실었다. 그러던 중 동료들이 윤한봉 씨를 숨겨달라고 부탁해 집에 잠시 숨겨줬다가 여의치 않아 안전한 장소를 구해 옮겨줬다. 윤 씨는 군부 세력에 의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원흉’으로 몰렸으니 잡혔으면 재판도 없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대사님을 교회에서 사회로 나오게 했던 크리스천의 양심, 의무란 무엇인가. “1960년대 가톨릭은 크리스천이 정의 구현을 복음선포의 사명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사회가 정의와 평화, 화해, 공평과 같은 가치 위에서 정화되도록 하는 게 신앙인으로서 크리스천의 사명이라는 가르침이다. 크리스천의 의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논변하기도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팔이 안으로만 굽는 사사로운 사랑은 지상의 나라에 속해 구원의 범위에서 벗어나지만, 이해관계와 이념을 넘어 타인들을 품어주는 사회적 사랑은 하느님의 나라에 속한다고 설파했다. 인간은 사회적 사랑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사회적 사랑이란 다름 아닌 정치적 사랑을 가리킨다고 했다. 가난하고 약한 자를 위한 정의를 세우고, 이를 위해 정치에 참여하고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정치적 사랑이다.” -가톨릭 내에서도 보수·진보 간 갈등이 존재하나. “일부 교회에선 신부가 정치 이야기를 하면 보수적인 신자들이 일어나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라’며 소리친다고 한다 신부가 ‘이는 정치 문제가 아니라 복음 문제다’라고 하면 그들은 ‘누가 당신에게 월급 주냐. 우리가 헌금해서 주지 않느냐’는 반박까지 나온다고 한다. 신부들도 지역감정이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갈리곤 한다. 어떤 분은 ‘박근혜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냐’고 강변하고, 어떤 분은 세월호 참사 이후 팽목항에 가서 산다. 주교들도 마찬가지다. 가톨릭 교회 내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 운동이 벌어졌을 때 주교들에게 서명을 요청하니 둘로 갈리더라. 마치 선거에서 영호남이 갈리듯이. 그런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한국 주교단이 바티칸에 갔는데, 교황이 주교들에게 ‘세월호는 어떻게 됐는가’라고 물었다. 주교들이 모두 충격을 받았는지 이후, 적어도 가톨릭 모든 교회에서는 4월 16일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미사가 있었다.” -최근 보수 개신교 일부가 보수 정치 세력과 결합하면서 점차 극단적, 배타적으로 흘러간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진보적 종교 단체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한 반감도 존재한다. 종교인의 정치 참여 어떻게 봐야하나. “결국 사회정의를 세우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성경 마태복음 25장에는 인류 전체가 운명을 판가름 받는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다. 인간을 멸망과 구원 두 패로 나누는데, 내 옆에서 누군가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을 때 입을 것을 주고 감옥에 갔을 때 찾아가는 자들을 구원한다고 설명한다. 예수를 믿어서 천국에 가는 게 아니다.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것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가 결정되는 것이다.” -일반 신자들은 어떤 믿음을 갖고 정치에 참여해야 하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야기한 바가 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비밀투표를 한다. 이는 모세의 장막과 비슷하다. 모세는 자신의 백성을 거느리고 이집트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장막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하느님과 만났다. 하느님과 독대하는 자리인 것이다. 투표소에서도 하느님과 일대일로 마주한다. 당신이 누구에게 투표하는지는 하느님만 안다. 하느님의 가르침대로만 투표하면 된다. 가난하고 약하고 소외받는 사람을 위해 한 표를 던지는 것이 하느님의 가르침이다. 이 외에는 이기심일 뿐이다. 다른 종교 신자도 마찬가지다. 불자라면 부처님의 대자비에 따라서 투표하면 된다.” -대사님께서는 지금도 아우구스티누스 라틴어 원전을 번역하시고 출간해오고 계신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지. “2007년 대사직에서 물러나고 조용히 산을 보며 번역 작업을 하고자 경남 함양의 지리산 자락에 집을 마련했다. 이후 서울에는 한 달에 한두 번 일이 있을 때만 오고 나머지는 함양에 머문다. 지리산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혜택을 받으니 건강한 것 같다. 그리고 위대한 사상가의 책을 읽고 천착하면 정신 건강은 유지되는 것 같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을 읽으면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착오로 저질러지는 게 아니라 신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가 함께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실수를 해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역사관에는 인간의 사회적 사랑이 자리한다. 정의구현이 곧 복음선포라는 가르침이 자리한다. 신앙을 가진 지성인으로서 올바른 정신을 갖고 똑바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지성인으로서의 건강이라고 할 수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조국 수사팀’ 감찰하는 추미애 “최강욱 기소는 ‘날치기’” vs 대검 “적법”

    ‘조국 수사팀’ 감찰하는 추미애 “최강욱 기소는 ‘날치기’” vs 대검 “적법”

    추 “반드시 서울지검장 결재·승인 받아야”“윤석열, 검찰청법·위임전결규정 위반소지”“절차 위반 사건 기소 경위에 감찰 필요”최 “인사 무력화 시도…인사에 보복적 기소”“공수처에서 尹 범죄행위 낱낱이 드러날 것” 대검 “檢총장 권한·책무 근거, 기소 적법” 반박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해준 혐의로 최강욱(52)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검찰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시를 받아 23일 불구속기소 한 것과 관련해 “적법 절차를 위반한 날치기 기소”로 규정하면서 감찰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최 비서관은 자신의 기소를 지시한 윤 총장을 겨냥해 “검찰권을 남용한 쿠데타”라고 비난한 뒤 “관련자를 모두 고발해 직권남용이 어떤 경우 유죄로 판단되는지 보여주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은 “최 비서관의 기소는 검찰총장의 권한과 책무에 근거해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법무부는 이날 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추 장관은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최 비서관에 대한 업무방해 사건의 기소 경과에 대한 사무보고를 받아 경위를 파악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건 처분은 지검장의 고유사무이고 소속 검사는 지검장의 위임을 받아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라면서 “특히 이 건과 같은 고위공무원에 대한 사건은 반드시 지검장의 결재·승인을 받아 처리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위반하면 검찰청법 및 위임전결규정 등의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법무부는 “적법 절차의 위반 소지가 있는 업무방해 사건 기소 경위에 대해 감찰의 필요성을 확인했다”면서 “이에 따라 감찰의 시기, 주체, 방식 등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고형곤 부장검사)는 이날 최 비서관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결재하지 않자 송경호 3차장이 윤 총장 지시에 따라 이날 오전 법원에 공소장을 접수했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은 곧바로 입장을 내고 최 비서관의 기소 경위에 위법성이 있다는 법무부의 입장을 반박했다. 대검은 “검찰청법에 따라 검찰사무를 총괄하며 전체 검찰 공무원을 지휘·감독하는 검찰총장의 권한과 책무에 근거해 최 비서관에 대한 기소가 적법하게 이뤄졌음을 알려드린다”고 밝혔다. 대검은 검찰청법 제12조 제2항을 근거로 최 비서관 기소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해당 규정에는 ‘검찰총장은 대검찰청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고 검찰사무를 총괄하며 검찰청의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고 돼 있다.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가 검찰총장이기 때문에 윤 총장의 승인을 받은 공소 제기는 적법하다는 게 대검의 주장이다. 특히 검찰청법 제7조에는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고 규정돼 있다는 점을 들어 대검은 윤 총장의 최 비서관 기소 지시에 불응한 이 지검장에게 오히려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본다. 반면 최 비서관은 윤 총장을 고발하겠다며 강력 비판했다. 최 비서관의 변호인인 하주희 변호사는 이날 저녁 자신의 사무실에서 법원 출입 기자단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고 최 비서관에 대한 수사와 기소는 검찰 인사 검증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며, 향후 출범할 고위공무원범죄수사처 등을 통해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비서관은 입장문에서 “검찰 내부의 특정 세력이 저나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대해 허위사실을 흘려가며 인사 검증을 무력화하거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시도를 반복해 왔다”고 말했다.이어 “윤석열 총장을 중심으로 특정 세력이 보여 온 행태는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지휘계통을 형해화한 사적 농단의 과정”이라면서 “관련자를 모두 고발해 직권남용이 어떤 경우 유죄로 판단되는지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또 “법무부와 대검의 감찰 조사는 물론 향후 출범할 공수처의 수사를 통해 저들의 범죄행위가 낱낱이 드러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비서관은 “검찰 인사발표 30분 전에 관련 법규와 절차를 위배한 채 권한을 남용해 다급히 기소를 감행했다”면서 “막연히 자신들의 인사 불이익을 전제하고 보복적 기소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소 내용과 관련해서도 최 비서관은 “조 전 장관의 아들은 법무법인 청맥에서 인턴 활동을 했다”고 반박했다.다만 그는 “청맥은 변호사 4명으로 구성된 사실상의 합동사무소로, 정직원들조차 출근부를 따로 기재하지 않는다”면서 “대기업이나 대형 로펌처럼 향후 입사를 전제로 업무를 맡겨 평가하거나 기록하는 과정과는 완전히 다른 활동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조 전 장관의 아들이 한 일로 ‘재판 관련 서면작성 보조(문서 편집 등), 사건기록·상담기록 정리와 편철, 공증서류의 영문 교열 및 번역, 사무실 청소, 당사자 면담 시 메모, 재판 방청, 사건기록 열람’ 등을 최 비서관은 나열했다. ‘피의자 전환 여부’를 둔 최 비서관과 검찰의 신경전은 이날도 계속됐다. 최 비서관은 지난해 12월 9일과 16일, 올해 1월 3일 받은 출석요구서를 공개하며 일반적으로 ‘피의자’에게 보내는 출석요구서와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자신이 받은 출석요구서에는 입건된 피의자에 부여되는 ‘형제’ 번호가 아니라 입건되지 않은 사건에 붙이는 ‘수제’ 번호가 적혀 있고, ‘피의사건’ 이 아닌 ‘사건’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오히려 최 비서관은 출석요구서 내용 중에는 법규에서 금지된 ‘압박용’ 표현이 포함돼 있어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즉각 “검찰사건 사무규칙에 따라 ‘피의자’에게 적법한 출석 요구가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규칙에 따르면 피의자에 대해 출석요구서를 발송하기 전에 그 혐의로 수사를 개시한다고 사건번호를 부여하는 ‘수사사건 수리’ 절차를 거쳐 피의자의 인적사항을 전산 입력해야 한다”면서 “또 수사사건의 피의자를 상대로 신문조서를 작성하거나 체포 등 강제수사가 이뤄졌을 때 입건 절차를 추가로 밟는다”고 설명했다. 최 비서관에 대해 수사사건 수리가 이뤄졌으므로 피의자 신분이 맞고, 수제번호가 아닌 형제번호는 신문이나 체포 등으로 입건 절차가 이뤄진 뒤에 부여한다는 설명이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긴급재난문자 영어·중국어로도 받는다

    긴급재난문자 영어·중국어로도 받는다

    각종 재난과 관련한 예보와 경보, 응급대응 요령을 알려주는 긴급재난문자가 앞으로 영어와 중국어로도 제공된다. 행정안전부는 한국관광공사와 ‘긴급재난문자 외국어 번역서비스 체계’를 공동 구축하는 내용의 업무협약(MOU)을 오는 10일 체결하고 영어와 중국어부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9일 밝혔다. 긴급재난문자 영어·중국어 번역서비스는 행안부의 외국인용 재난정보 안내 애플리케이션(앱) ‘이머전시 레디’(Emergency Ready)의 푸시 알람을 통해 10일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발송한 긴급재난문자를 한국관광공사의 1330 관광통역안내전화 콜센터에서 곧바로 번역해 이머전시 레디 앱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행안부는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이머전시 레디로 긴급재난문자 자동번역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시행한 적이 있지만 소프트웨어의 한계로 번역 오류가 자주 일어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를 개선하고자 외국인 관광객에게 24시간 통역서비스를 제공하는 한국관광공사와 협의해 시스템을 연계하고 통역사 교육·훈련, 시범 서비스를 거쳐 이달부터 공식 서비스에 들어가게 됐다. 긴급재난문자 영어·중국어 번역 서비스는 내년 초 한국관광공사의 관광통역안내전화 연결 앱 ‘1330 코리아 트레블 핫라인’(1330)에서도 제공된다. 김계조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양 기관의 협력으로 재난정보전달 체계를 개선해 국내에 있는 외국인과 관광객들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재난 관련 정보를 제공받고 위험 상황에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삼성전자 ‘갤럭시 워치 액티브2 LTE’ 출시

    삼성전자 ‘갤럭시 워치 액티브2 LTE’ 출시

    23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고객들이 ‘삼성 갤럭시 워치 액티브2 LTE’ 모델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날 국내 출시한 이 제품은 스마트폰이 없어도 단독으로 통화, 문자 등이 가능하다. 운동, 스트레스, 수면관리뿐만 아니라 빅스비, 카메라 컨트롤러, 번역 등의 기능도 제공한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삼성전자 ‘갤럭시 워치 액티브2 LTE’ 출시

    삼성전자 ‘갤럭시 워치 액티브2 LTE’ 출시

    23일 서울 광화문 KT스퀘어에서 고객들이 ‘삼성 갤럭시 워치 액티브2 LTE’ 모델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날 국내 출시한 이 제품은 스마트폰이 없어도 단독으로 통화, 문자 등이 가능하다. 운동, 스트레스, 수면관리뿐만 아니라 빅스비, 카메라 컨트롤러, 번역 등의 기능도 제공한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삼성전자, 갤럭시워치 2종 오늘·25일 출시

    삼성전자, 갤럭시워치 2종 오늘·25일 출시

    삼성전자는 스마트워치 신제품 갤럭시 워치 액티브2의 LTE(4G·세대 이동통신) 모델을 23일, 언더아머 에디션을 25일 국내 출시한다고 22일 밝혔다. 애플워치5가 25일 출시될 예정이어서 스마트워치 시장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갤럭시워치 액티브2 LTE 모델은 스마트폰 없이 단독으로 통화, 문자를 할 수 있다. 운동·스트레스·수면트래킹을 통한 건강관리 기능과 빅스비, 카메라 컨트롤러, 번역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 언더아머 에디션은 글로벌 스포츠웨어 브랜드 언더아머와 협업한 제품으로 가벼운 알루미늄 소재에 달리기를 즐기는 사용자를 위한 전용 스트랩과 전용 워치 페이스를 탑재했다. 삼성전자는 언더아머 에디션 구매 고객 중 선착순 1000명에게 언더나이어블 3.0 색팩, 퍼포먼스 리스트 밴드, 언더아머 공식 홈페이지 30% 할인 쿠폰을 제공한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채근담 하룻말 1] 치바이스의 그림 보고 혀에 올려놓고 음미해보라

    [채근담 하룻말 1] 치바이스의 그림 보고 혀에 올려놓고 음미해보라

    옮긴 이의 글이 명징하다. 제법 긴데 짧게 줄인다. 인터뷰를 앞세우는 것보다 그 글 맛을 여러분이 오롯이 즐기게 하는 게 좋겠다고 여겨서다. [[누군가 멋진 책이 있다고 했다. 치바이스(齊白石)의 그림 삼백육십오 점을 실은 채근담이었다. 과연 그림이 좋았다. 꽃과 새, 곤충과 물고기, 산과 물, 그리고 민중의 생활을 이야기하는데, 죽은 것은 없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화가의 숨이 들렸다. 한국어로 옮긴 채근담을 보았다. 임동석의 번역은 친절했다. 김원중의 책은 치밀했다. 한용운의 글은 당당했다. 조지훈의 채근담은 정이 있었다. 때가 다르고 땅도 달라서 생활도, 말도 달랐다. 홍응명(洪應明) 시절에는 척하면 알아들었을 말이 지금은 열 번 들어도 낯설기만 했다. 문자를 버리고 뜻을 좇기로 했다. 원문을 작가의 마음으로 공감하고 한국어를 내 혀로 내놓는 일이라 여겼다. 채근담은 홍응명이 알려진 글을 골라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거나 새롭게 쓰거나 또는 자기 생각을 적어 놓은 책이다. 하여 당대를 지배한 세계관, 곧 유가의 생각, 불가의 생각 그리고 도가의 생각이 모두 담겼다. 세 가지 또는 (홍응명까지) 네 가지 시선에서 글을 이리저리 살펴야 한다. 본능은 욕망을 일으키고 문화는 글자로 못 박는다. 본능은 도전하지만 문화는 지킨다. 생명과 생활을 만드는 이 둘의 충돌, 그 현장은 곧 세계가 된 나다. 그러므로 세계를 어떻게 보는가, 나를 무엇으로 보는가에 따라 하루의 삶과 일생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버려야 할 글자, 지워야 할 뜻이 적지 않았다. 여러 가지를 머리에 넣고 그 무거운 것을 목에 얹은 채 하루 종일 분망하게 살아가는 나 자신의 삶, 아는 것은 많은데 나아지는 것은 별로 없는 우리 시대의 삶은 불쌍하지 않은가? 매일 한 구절을 읽고 그 하나를 자신에게 묻고 거울삼아 비춰보고, 그래서 굽은 곳을 펴고 넘친 것을 덜어 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그러다가 발은 길을 걷고 사람은 참해지고 하늘과 땅이 정겹고 삶은 살가워지는 자신을 발견하면 더할 나위 없다. 홍응명은 남들이 먹지 않는 나물뿌리를 싸게 사 장아찌를 잘 담가 그것으로 밥을 먹고 손님을 맞는다. 그의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절반의 오름과 절반의 내림을 산다. 그리고 오름과 내림이 바뀔 때 그곳에는 멈춤이 있다. 홍응명은 이곳에 멈춤에 필요한 자기 명령문, 자신을 돌아보는 주문을 써 놓았다. 하루에 한 편씩만 보라고 권하고 싶다. 두 편을 넘으면 달이 해를 만난 듯, 눈이 비를 만난 듯 느낌이 사라진다. 글자는 시간을 모른다. 글자를 따지다 보면 세월이 아쉬워진다. 다만 우리말로 입에 넣기 좋은 자수를 찾으려 노력했으니 혀 위에 올려놓고 재미있게 굴려 보기 바란다. 달면 돌아보고 쓰면 내다보라.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하면 씹어 보라. 달지도, 쓰지도 않으면 기뻐하라.]] 옮긴 이의 이름은 박영률(62), 협량한 기자가 만나 본 이들 가운데 몇 손가락 안에 꼽는 기인이다. 서울 성북동의 예전 나폴레옹 제과점 근처에 원형 감옥 같은 출판사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눈빛이 형형하고, 지금까지 일고여덟 가지 출판 브랜드로 책 6000여 종과 1500여 종의 오디오북을 만들어낸 욕심쟁이다. 홍응명은 명나라 신종 때 사람으로 일찍이 공명을 좇다 말년에 산림에 귀의해 예불로 마음을 씻었다. 그가 모아 펴낸 채근담은 ‘나물뿌리를 씹는 느낌, 별 볼일 없고 거칠고 질기지만 가만히 씹다 보면 차츰 맛이 깊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이야기’라고 훗날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았다.치바이스는 1864년 중국 후난성 샹탄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는데 시 서예 그림 전각 못하는 게 없었다. 무심하게 그린 듯한 그림이 사람들을 오묘하게 빠져들게 만들었다. 엄청난 그림을 엄청나게 빨리 그렸던 것으로도 이름 높다. 파블로 피카소의 유명한 말 “중국에는 치바이스가 있는데 왜 중국인들이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하는가“가 전해진다. 마오쩌둥과 연안장정 즈음부터 교류해 둘이 함께 찍힌 사진도 있다 했다. 1957년 하늘로 돌아갔으니 천세를 누렸다고 할 수도 있겠다. 4년 전 편집국장을 졸라 대학 과 선배인 박 대표를 인터뷰했는데 얼마 전 기자를 불렀다. 좋은 책 냈다고 했다. 펼치니 그러하다. 무심한 듯 그린 수묵화 같은 그림에 몇 글자 박혀 있다. 그의 말마따나 혀 위에 올려놓고 굴리기 좋게 옮겼다. 시와 운이 맞아 떨어져야 쓴 이의 뜻이 읽는 이의 마음에 박히니 하루에 한 편씩만 읽으라는 주문이다. 2편 보러가기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화면 두 개로 할 게 이렇게 많았어?’… 진화한 듀얼스크린 LG V50S 씽큐

    ‘화면 두 개로 할 게 이렇게 많았어?’… 진화한 듀얼스크린 LG V50S 씽큐

    게임, 금융, 통역, 동영상, 쇼핑… 멀티태스킹 스마트폰 구현 “상품 설명 듀얼스크린 띄우면 클릭 절반 줄여 상품 구매 가능” 연내 북미에 듀얼스크린 첫 선… 한국에서의 호응 이어질까 LG전자가 한 단계 진화한 5G(세대 이동통신) 듀얼스크린 스마트폰 ‘LG V50S 씽큐’를 독일 베를린에서 6일(현지시간) 개막한 IFA 2019에서 공개했다. 지난 5월10일 첫 번째 듀얼스크린폰 LG V50 씽큐를 출시한 지 120일 만이다. ‘고객이 오십(50)니다’라고 자평할 만큼 LG V50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룬 게 두 번째 듀얼스크린 스마트폰 탄생을 이끌었고, 듀얼스크린 초기작 개선 요구에 적극 응답한 결과물이 LG V50S 씽큐다. 전작에 비해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은 스크린 두 개를 포갠 전면에 새긴 2.1형 크기의 알림창이다. 전면 알림창이 있어 LG 듀얼 스크린을 열지 않고도 사용자는 시간, 날짜, 배터리 상태, 문자·전화 수신 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스크린 두 개를 펼치지 않았을 때 느껴지던 단조로움도 사라졌다. 6.4형인 스마트폰 본체보다 작았던 듀얼 스크린 화면은 스마트폰 본체와 같은 크기로 키웠다. 스마트폰에서 보던 화면을 듀얼스크린으로 옮겼을 때 답답해 보인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다. 104도, 174도 각도로만 고정됐던 경첩도 바꿔 V50S는 360도 중 원하는 어떤 각도로도 고정 시킬 수 있게 됐다. LG전자가 시연한 여러 화면 각도 중에는 마치 아웃폴딩 방식 폴더블폰을 V자로 세워두고 마주앉은 두 사람이 각자 원하는 동영상을 보는 연출도 포함됐다.LG V50S 본체는 전면 카메라 부분을 물방울 모양으로 감싸 화면을 제외한 베젤을 최소화했다. 전작에서 2개이던 전면부 카메라를 1개로 줄여서 가능해진 디자인인데, 3200만 고화소 전면 카메라를 채택해 카메라수를 줄이면서도 후면 카메라에 버금가는 결과물을 얻어냈다고 LG전자는 설명했다. 480분의 1초를 순간 포착해 잔상 없는 사진 촬영을 가능하게 한 ‘인공지능(AI) 액션샷’, 빠른 움직임에도 흔들림을 잡아 안정적으로 동영상 촬영을 가능하게 한 ‘스테디캠’, 고성능 마이크 감도를 극대화시켜 생생한 소리를 담는 ‘ASMR 모드’는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으로 스스로 영상을 찍여 편집하는 1인 미디어 시대에 맞춘 기능으로 평가됐다.네이버웨일 등과의 협업을 통해 듀얼스크린의 활용도를 높인 LG전자의 조치는 듀얼스크린폰을 고가 폴더블폰의 현실적 대안으로 보는 측의 논리를 강화시켜줄 전망이다. 두 개의 앱을 동시에 각각의 화면에 구동시키던 전작 수준에서 진화해 ▲두 개의 화면에 걸쳐 한 개 앱을 크게 띄우거나 ▲예를 들어 리니지2 레볼루션 게임을 할 때 미니맵을 한 쪽 화면에 띄우는 식으로 2개 화면을 분리 사용하거나 ▲네이버웨일과 협업해 한 쪽엔 한글 콘텐츠를, 다른 쪽엔 같은 내용을 번역한 영어 콘텐츠를 구동해 비교하거나 ▲쇼핑앱을 사용하면서 한 쪽을 상세페이지 보기용으로 활용할 수 있게 쓰임새를 늘렸다.윤동한 LG전자 MC사업본부 상품기획담당 상무는 “기존 스마트폰 쇼핑앱에서 제품을 사려면 상세페이지를 들어갔다 나왔다 하고 몇 개 제품 가격과 성능을 비교하는데 약 11번 정도 클릭해야 했지만, 상세페이지를 우측에 따로 띄우는 듀얼스크린 스마트폰에선 약 6번 정도로 클릭 수고가 줄었다”면서 “듀얼스크린의 다른 진화 역시 고객들이 원하는 개선점을 충실히 반영하는데 목표를 두었다”고 설명했다. LG V50S 씽큐는 다음달 국내 시장을 시작으로 연내 북미 등 글로벌 시장에 순차 출시할 계획이다. 전작인 LG V50 씽큐가 듀얼스크린 없이 북미 시장에 출시한 점을 감안하면, 듀얼스크린폰의 첫 해외 시장 공략이 시작된다. 베를린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50년 만에 찾은 ‘병 속의 메시지’ 주인 페이스북으로 찾아

    50년 만에 찾은 ‘병 속의 메시지’ 주인 페이스북으로 찾아

    러시아 배의 선장이 1969년에 병 속에 넣어 띄워보낸 편지가 미국 알래스카에서 발견돼 편지를 쓴 주인까지 찾아냈다고 영국 BBC가 18일(현지시간) 전했다. 알래스카주에 사는 남성 타일러 이바노프는 쉬쉬마레프 마을에서 서쪽으로 32㎞나 떨어진 곳에 땔감을 주우러 갔다가 플라스틱 코크로 막은 병을 발견했다. 안에는 러시아 문자로 적힌 편지가 들어 있었다. 이바노프는 놈 너게츠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말 열기가 힘들었다. 이를 이용해야 할 정도였다”고 털어놓은 뒤 “병 안은 여전히 말라 있었고, 와인이나 뭐 오래된 술 냄새가 맡아졌다. 종이는 말라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어를 모르는 그는 어쩔 수 없이 페이스북에 편지 사진을 올려 해석을 부탁했다. 여러 사람이 번역해준 편지 내용은 1969년 6월 20일 러시아 배 술락에 승선했던 선원이 썼다는 것이었다. “러시아 극동함대의 모선 BRXF 술락 호 선상에서 안부 여쭌다. 이 병을 발견한 분에게 감사드리며 블라디보스토크 43번지 BRXF 술락에게 답장을 보내시어 모든 선원들이 함께 봤으면 한다. 건강과 장수, 행복한 항해를 기원하며 1969년 6월 20일 적음.”러시아 매체들이 이 얘기를 듣고 추적해 편지를 쓴 사람이 아나톨리 봇사넨코 선장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이제 봇사넨코 선장은 86세가 됐다. 50년 만에 병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기쁨의 눈물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TV 채널 로시야 1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내 필체처럼 보인다. 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1966년 이 배의 건조 과정을 감독했고 1970년까지 배를 몰았던 것으로 보도됐다. 이바노프는 페이스북에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사진 한 장이 스토리로 발전하는지 아주 멋진 일”이라며 자신도 언젠가 병 속에 메시지를 넣어 띄워보내겠다는 마음을 품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A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선 “미래에 꼬마들과 아마도 그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병 속에 메시지를 넣어 띄워 보내고 나중에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보자”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국어 순화 목적은 의사소통… 고유어 고집 말고 순화 폭 넓혀야“

    “국어 순화 목적은 의사소통… 고유어 고집 말고 순화 폭 넓혀야“

    광복 74주년 ‘한국사회 언어’ 좌담회 광복 직후 우리 사회가 의미 있게 진행한 일은 말 다듬기였다. 일제 청산이라는 뜻도 있었지만, 민주적인 소통과 가치 있는 언어를 만들어 가기 위한 작업이었다. 한글맞춤법으로 대표되는 어문규범의 정비는 질서 있는 소통을 위한 틀을 새롭게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언어의 형식과 내용을 갖춰야 했다. 시대마다 사회적 요구는 달라졌고, 언어가 그것을 대변하도록 하는 데 우린 또 다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광복 74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은 우리 사회가 언어와 관련해 풀고 만들어 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짚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9일 서울신문 회의실에서 ‘광복과 분단, 한국사회 언어의 과제’를 주제로 전문가 좌담회를 열었다. 권재일 한글학회장, 김하수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희창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용운 겨레말큰사전 편찬실장이 참석했다. 진행은 이경우 어문부장이 맡았다.[국어 순화] -광복 직후 가장 관심을 보인 부분은 국어 순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말 다듬기다. 일본말 지우기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맞을 것이다. 오랜 숙제 같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정희창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국어 순화는 당위론적인 것이라는 믿음과 아주 근사하게 대안을 제시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경험적으로 두 번째 믿음은 아닌 것 같다. 국어 순화어로 제시된 말들이 널리 정착되지 못한 것은 국어학적으로,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어서만은 아니다. 국어 순화라는 것은 의사소통의 문제다. 국어 순화의 사전적인 정의는 언어에서 잡스러운 것을 배제하고 순수한 것을 회복한다는 식으로 돼 있는데, 순수한 것을 회복한다기보다는 소통성을 높이는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국어 순화의 방식이 반드시 한자어나 외국어를 고유어로 다듬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자어를 좀더 쉬운 한자어로 다듬을 수도 있는 것이고, 쉬운 외래어를 좀더 쉬운 외래어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국어 순화의 폭을 넓혀야 한다. 권재일 한글학회장 국어 순화는 왜 해야 하느냐에 초점을 놓고 봐야 한다. 의사소통의 능률을 높이는 것에 목표를 두면 순화는 성공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반복을 해도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전통적으로 해 온 바른 말 고운 말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차원에서 벗어나 의사소통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김하수 전 연세대 교수 대중의 정서가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하는 행동의 합목적적인 것에 치중하고 문법적 조어에 맞는 말을 순화어로 내놓으려고 굉장히 애를 많이 썼다. 그러나 이것은 대중들이 쉽게 접하는 방식이 아니다. 대중들은 직관적인 것을 좋아한다. 땡땡이, 쫄쫄이, 뻥뻥이 같은 말이 훨씬 쉽게 다가간다. 한용운 겨레말큰사전 편찬실장 이미 일반화된 어떤 말을 다시 쉬운 말, 토박이말로 제시하려는 데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헝그리 정신’을 ‘맨주먹 정신’으로, ‘포퓰리즘’을 ‘대중주의’로 바꿔 버리면 거부감이 생긴다. 대중주의와 포퓰리즘은 다른 말로 느껴진다. 외국에서 들어온 단어가 일반 국민들에게 이미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 순화어를 제시하면 국민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남북 언어] -평화와 협력, 통일로 가는 길에 언어는 큰 자산이다. 남북 언어에 대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알고 논의해 나가야 하는가. 권재일 남북 언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 이전이든 이후든 남북 주민들이 만나서 쉽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두 가지가 선행돼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말하기의 방법, 즉 화법이다. 남쪽에서는 간접화법이, 북쪽에서는 직접화법이 일반화돼 있다. 또 ‘감사’나 ‘양해’ 같은 표현이 남쪽에서는 자연스러운데, 북쪽에서는 거의 보편화돼 있지 않다. 남쪽 사람들은 북쪽 사람들이 이렇다 하는 것을 알아야 하고, 북쪽 사람들은 남쪽 화법이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툭 건드렸을 때 남쪽에서는 ‘죄송합니다’라고 하는데, 북쪽 사람들은 그 정도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안 쓴다. 남과 북의 화법 차이를 상호 이해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 두 번째로 남쪽에 무한히 들어와 있는 외래어, 외국어를 줄이는 일이 필요하다. 정희창 섬세한 부분까지 준비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사전이다. 남과 북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프로그램이 사전일 것이다. 국어사전을 중심으로 남과 북의 언어 차이를 교육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통일 비용에 속하는 것일 텐데, 준비가 꼼꼼할수록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한용운 북한 이탈 주민들이 취업했을 때 가장 두려운 게 전화를 받는 것이라고 한다. 외래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나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이다. 사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남쪽에서는 북쪽 사전을 보기가 어렵고, 북쪽에서는 남쪽 사전을 아예 볼 수가 없다. 겨레말큰사전은 함께 만들어서 함께 본다는 것이 목적이다.[호칭 논의] -최근 호칭과 관련한 논의들이 뜨거웠고 큰 관심사였다. 언어와 현실이 맞지 않는 부분이 생긴 것이다. 이 때문에 갈등도 나타난다. 어떻게 풀어 가야 하는지. 김하수 근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언어가 어떤 기능을 해야 되는지 많은 생각을 하고 운동을 해 왔지만, 시민사회에 공헌을 해야 하는 부분이 빠졌다. 존대법만 열심히 가르쳤다. 어디 가서 손윗사람이 슬쩍 말을 놓아도 아무 소리를 못 했었다. 어떨 때는 이렇게 하면 나와 친해지나 보다 하면서 좋아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더 개방적이고 자유를 많이 누리고 다양한 업무에 종사하게 하려면 서로 평등한 것을 확인해야 된다. 신문에서는 장관 인사가 나올 때 괄호 치고 나이 넣는 것도 빼버려야 한다. 모든 사람을 백지 상태에서 당당하게 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의 첫걸음이 호칭이다. 지금은 어디를 가든 자기의 사회적 우열 관계가 항상 드러난다. 이걸 드러나지 않게 해야 한다.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중립적이고 시민적이고 사회적이고 성별이나 나이의 높고 낮음이 드러나지 않게 해야 한다. 서양의 역사를 보더라도 대변혁기에 호칭의 변화가 생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에 귀족적 호칭을 폐지해 버린다든지, 1970년 여성 해방 운동이 나오니까 ‘미세스’와 ‘미스’ 대신 ‘미즈’를 쓰게 했다든지, 이렇게 호칭은 사회 변혁을 대변하는 것이다. 호칭 문제를 혁신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정희창 요즘 학생들을 보면 서로 가깝지 않으면 선후배 간이더라고 누구씨라든가 그분이라고 호칭을 한다. 이런 것들은 소셜미디어의 소통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서는 높임법이 중화되는 경우가 많다. 종결어미가 ‘요’도 아니고 ‘쇼’도 아니고 ‘삼’ 같은 것들로 끝난다. 높이는 것도 낮추는 것도 아니다. 다른 방향성이 보인다. 한용운 가족 간의 호칭 등에서도 시대 변화에 맞게 언중이 자연스럽게 호칭에 변화를 주고 있는 것 같다. 호칭에 관해 국가가 규범 형식으로 제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어문규범] -국어 하면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한글맞춤법으로 대표되는 어문 규범이다. 그런데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권재일 최근 이런 내용을 받았다. 제발 맞춤법 좀 쉽게 고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맞춤법 어렵게 하는 것이 국어 선생님들이 학생들 평가하려고, 문제 어렵게 내려고 그런 것 아니냐고 했다. 말과 표기가 우리처럼 일치돼 있는 언어는 드물다. 우리는 맞춤법 몇 개항만 있어도 문자생활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는 맞춤법이 없다. 모든 철자를 영어 사전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런 언어에 비해 우리는 맞춤법 몇 규정만 보면 된다. 그만큼 교육을 안 했거나 관심을 안 가졌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어려워한다면 규범 관리 측면에서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정희창 모든 사람이 규범을 잘 알 필요는 없다. 한글맞춤법의 세세한 조항 같은 것은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이 국어정서법 시험 볼 때나 공부하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이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규범이 가지고 있는 권위와 소통성을 잘 유지해야 하는데, 여전히 아쉽고 부족한 게 많다. 사이시옷은 고유어 사이에서만 쓰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한용운 영어나 독일어 같은 경우는 100년에 한 번 표기법을 고쳤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영어나 독일어나 프랑스어도 다 표기법은 어렵다. 정희창 교수께서는 맞춤법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지만 개인이 공문서를 써야 할 일도 있다. 맞춤법 교육을 조금 더 공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김하수 생태계를 얘기할 때 ‘기수역’이라는 말을 한다. 민물하고 바닷물이 섞이는 지역이다. 표준어와 비표준어가 넘실대며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이 있다. 한데 우리 맞춤법은 상대적으로 그걸 엄격히 해놓은 부분들이 있다. ‘~하는 바람’이라고 할 때 ‘바램’이라고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러나 규범에는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램’이라고 쓴다. 이 ‘바램’에 자기가 원하는 감성 같은 걸 넣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기수역들을 어느 정도 인정을 해 줘야 하지 않을까. [국어사전] -국어사전에 대한 기대치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높기도 하다. 국어사전이 풀어 가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정희창 표준국어대사전을 만들 때 돈을 많이 들였다고 하지만, 이 이후로는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다. 표준사전이든 뭐든 사전을 계속 가다듬고 편리하게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실제 국립국어원 사전 담당자는 한 명 있을까 말까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데도 사회의 다양한 요구라든지 개선이라든지에 대해 응답을 못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거라고 본다. 국어사전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언어생활의 기준은 사전이다. 김하수 표준국어대사전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국가의 권위를 빌려서 사전을 만들어서 다른 민간 부분의 사전을 사실상 없애 버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계속 관리도 안 한다. 학술용어들은 손도 못 대고 있다. 그게 다 이해하기도 어려운 설명들이다. 국어사전에서 빼든지 아니면 정밀하게 다듬을 수 있는 전문가들의 손이 들어와야 한다. 언어적 감각을 가지고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권재일 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계속해서 개선을 해 나가는 유일한 사전이기 때문에 그 사전만 사전 구실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개월마다 그동안 모은 수정 보완 사항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규모가 적지만 그렇게 자주 보완해 나가는 사전은 드물 것이다. 그런 면에서 표준사전 그 상황에서 하고 있는 일은 격려를 해줘야 한다. 한용운 국내 사전은 기한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독창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다. 사전 편찬은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기한이 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력 양성이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지금은 민간 출판사에서 편찬실을 운영하는 곳이 없다. 사전을 편찬하고 다 해체했다. [전문용어] -전문용어를 정비해 나가야 하는 문제도 있다. 지금보다 일상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하수 전문용어를 정비하는 것은 문화체육관광부 관할이 돼 버렸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전문용어를 관리하는 데 중요한 곳은 교육부다. 모든 교육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학 하는 사람들도 조금 문제가 있다. 전문용어를 표준어 정책의 하위 개념으로 자꾸 보려고 한다. 또 다른 부류는 언어 순화의 한 통로로 보는 것이다. 둘 다 아주 틀리지는 않는다. 한데 그런 태도에 종속시키기에는 거대한 문제다. 언어 순화와 표준어 문제에 종속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경제와 과학기술 전반을 헤집어 놓아야 하는 문제다. 전문용어는 영역별로 같은 개념을 전달해 주고, 기술을 그 안에 보존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의 체계를 도와주는 기능을 하는 어휘들이다. 총리실 같은 곳에서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교육부와 문체부가 엇박자를 치는 순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전문용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해야 한다. 남북한이 협업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문용어는 국어학의 발전이라기보다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에 국어학이 헌신해 줘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헌신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권재일 최근 들어 전문용어가 주목받는 이유는 일반 국민들도 전문용어를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전문용어를 다듬거나 표준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고 산업이 발전할수록 전문용어를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서도 전문용어를 국어화할 필요가 있다. 전문용어라는 것이 하루가 멀다 하고 원어로 들어온다. 그걸 계속 쓰면 우리말에는 조사와 어미만 남는다. 외국어로 된 전문용어가 들어올 때마다 전문가, 국어전문가, 언어정책가가 모여서 국어화해야 한다. [말뭉치 사업] -국가가 말뭉치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말뭉치는 어떤 기능을 하고 얼마나 중요한가. 김하수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의 형식, 구조, 변이 형태 등을 자산이라고 본 측면에서 축적을 해 놓으면, 이것을 가공해야 다른 기능을 하게 할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전 만드는 데 제일 기초적으로 사용되는 게 말뭉치다. 자동 번역, 기계 통역 이런 것들에도 이용된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AI)에도 이르게 된다. 기계와 사람이 말을 하게 되는 것인데, 그러려면 언어 자원을 충분하게 반영하는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속 사업이 돼야 하는 것인데, 끊임없이 말뭉치를 구축해 가면서 점점 더 완벽에 가까운 언어 자원을 구축해 놓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스마트한 사회를 이뤄 나가는 데 밑거름을 삼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소홀히 해버리면 언젠가 한국어에 대한 중요한 사전을 구글이 내놓을지도 모른다. 권재일 올해부터 정부가 200억원을 들여 말뭉치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뒤늦게나마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말뭉치는 여러 곳에 활용될 수 있다. 동사 몇 개를 알아야 우리말을 90%까지 구사할 수 있는지도 말뭉치 통계를 내보면 다 나온다. 자동 번역 같은 문제도 말뭉치가 많이 구축되면 될수록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한용운 얼마 전 미국 회사에서 ‘북한어 말뭉치’를 구축하려면 어떤 자료를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 문의가 있었다. 북한과 미국 정상 간 만남이 있었고, 북한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인 것 같다. 한영·영한 번역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 다 우리말이다. 우리가 우리말에 대해 집중할 시기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치 언어] -정치 언어는 사회 각 분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언어학자가 보는 우리 정치 언어는 어떤가. 김하수 언어를 제일 중심에 놓고 생활하는 게 민주주의 사회다. 민주주의의 가장 광범위한 사회제도로 나타난 것이 의회제도인데, 의회제도 역시 말로 풀어 나가자는 것이다. 정치 언어는 언어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눈부시고 가슴 울렁거리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필요가 있다. 그리스의 연설 전통을 보더라도 근본적으로 연설은 정치를 위해서 많이 사용됐다. 연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거침없이 자기 이익을 던져 버리고 따라오게 만든다. 그런데 세상에 가장 따라가기 싫고 뒤돌아보기 싫고 다시 한번 되새기기도 싫은 영역을 다 쌓아 놓은 게 한국의 정치계가 아닌가 싶다. 정치 언어에 대해 냉정하고 침착하게 볼 필요가 있다. 언론에서 정치 언어에 대해 비평할 수 있는 난을 만들어 보도를 하는 것도 좋겠다. 권재일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두 집단이 있다면 방송인과 정치인이다. 방송인과 정치인은 소통하기 쉽고 정확하고 품격 있는 언어 사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정치적인 발언이나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전체의 언어 품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 않을까 한다. 정희창 시대가 변해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중요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정치인이 연예인과 비슷해져서 트위터에 한마디 올리면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정치인과 연예인은 조금 차이가 있는 거 같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대립과 상대방이 있다. 그렇다 보니 품격 없는 언어가 정당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정치 언어에 대한 비평이 정당하게 들어가야 그런 것들이 제대로 판단이 되고 걸러지는 효과가 난다. 정리 이경우 어문부장 wlee@seoul.co.kr
  • “훈민정음 창제 도운 신미스님 일대기 집대성”

    “훈민정음 창제 도운 신미스님 일대기 집대성”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집어엎는 화제의 책이 있다.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이다. 개봉 예정 영화 ‘나랏말싸미’의 원안이라 주장하기에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에 의해 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혜각존자 신미스님이란다. 그는 나옹, 무학으로 이어지는 여말선초의 불교 선맥을 잇는 함허의 제자이고 산스크리트어의 대가였으며 훈민정음 창제에 직접 참여한 1등 공신이란다. 15년 세월, 연구와 집필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으로 세상에 출현한 박해진 작가. 저자는 “훈민정음은 철저하게 백성과 뜻을 함께하는 바른 소리이자 모든 싸움을 화해로 이끄는 화쟁(和錚)이고 민초들이 주인 되어 온 세상이 평등해지는 ‘아롬’의 혁명”이란다. 작가와 신미와의 동행(同行)으로 새롭게 펼쳐지는 대하드라마의 역사 현장에 우리는 함께한다. 편집자 주-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그렇게 배웠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의 창제가 아니라 신미가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했음을 이 책을 통해 소상하게 밝혔다. 신미가 나고, 출가하고, 정진했던 곳을 15년간 순례하며 그의 행적을 따라 ‘조선왕조실록’ 속의 신미 관련 기록을 빠짐없이 확인했다. 집현전 학자들의 문집도 확인하며 숨은그림찾기를 거듭했다. 훈민정음은 신미가 쌓아 올린 9층 목탑이다.” -신미스님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 “2001년 겨울, 덕수궁 중화전 해체 현장에서 함께 손과 발을 섞던 김덕문 박사(현 국립문화재연구소 실장)가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이 아프다. 해체하기 전 옛 장인이 남긴 모습을 기록해 달라.”며 부탁했다. 며칠 뒤 법주사에 내려갔다. 주지스님께 인사를 올렸다. “글쟁이가 카메라를 들고 와? 부처님 집 잘 기록하게.”라며 요사채 한 칸을 내주었다. 대웅보전의 안팎을 드나들었다. 마지막 날, 법당의 노보살이 언 몸 녹이라고 차 한 잔 건네며 말했다.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운 스님이 복천암에 머물렀는데….” 천둥, 번개가 내 머리를 치고 들었다. 금시초문이었다.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마음 한 켠에 소설을 써야겠다는 숨겨두었던 꿈의 첫 장면이 등 뒤로 눈송이가 되어 파고들었다. 파릇파릇한 첫사랑, 첫눈이었다. 대웅보전의 대들보와 기둥, 마지막으로 남은 주춧돌을 찍으며 한순간도 노보살의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새벽 예불을 끝내고 복천암으로 올라갔다. 복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신미의 길을 떠올렸다. 길은 휘어지고, 이어졌다. ‘세종실록’을 따라갔다. ‘뭐야, 훈민정음과 신미는?’이라고 날마다 물었다. 답은 한길이었다. ‘찾아봐, 거듭. 자랑질하지 말고….”-신미스님은 누구인가. “신미(1403∼1480)는 전설이 아니라 역사 속의 인물이다. 몰락한 유학자 집안의 자제로 불가에 입적하여 무학의 법맥을 이은 함허당(1376∼1433)의 제자로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창제한 스님이다. 신미가 없었다면 한글도 없었다.” -신미 연구는 어떻게 했나. “시로 등단했지만, 서랍 한쪽에 소설을 쓰겠다는 바람을 쟁여 두고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신미의 자료를 끝까지 찾아나선 끝에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썼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신미가 만들고, 번역한 책을 남김없이 구해 읽었다. 신미는 내가 옆길로 빠질 때마다 미혹의 길을 끊었다. 전국의 헌 책방을 순례했다. 관련 책을 찾아내면 끝까지 읽었고, 읽고 나면 다음 책이 기다렸다는 듯 내게로 왔다. 신미의 행장을 정리한 비문(碑文)은 남아 있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과 ‘한국문집총간’ 영인본을 사서 일일이 신미 관련 기사의 원문을 입력하며 다시 번역하고, 거듭 읽었다. 15세기에 간행된 학자들의 개인문집을 남김없이 뒤졌다. 재인용은 없다. 신미가 머물렀던 절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정리된 초고는 15000매, 사진은 수만여 장이다. 1374개의 주를 달았다. 실증적 자료조사의 결과물이다. 흩어진 기록을 짜 맞추어 읽으며 신미는 분명 역사라고 확신했다. 소설은 미완성으로 두고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행간을 메꿔 나가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간행했다.”-복천암, 해인사, 송광사, 현등사를 자주 찾았다고 들었다. “속리산 복천암,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가평 현등사는 훈민정음과 뗄 수 없는 절이다. 법주사에 머무는 5년 동안 새벽예불이 끝나면 복천암의 신미와 학조의 부도를 찾아 인사를 올렸다. 현등사는 세종이 승하하고 난 뒤 문종이 ‘의금부 군사들은 신미가 주석하는 절에는 침범하지 말라’는 명을 내린 기사를 실록에서 읽고 찾아간 절이다. 그곳에서 함허당의 부도를 만났다. 신미가 출가 초기에 스승을 모시고 불사를 한 내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절을 10년 넘게 들고 나며 신미와 수양과 효령대군 등 왕실과의 관계를 찾아냈다.” -집필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신미 평전과 소설을 쓰기 위해 연구와 병행해서 현지 답사를 이어갔다. 신미의 일대기를 검증할 연구는 단편적이었다. 자료를 거듭 읽고, 찾았지만 앞과 뒤를 이어가기에는 빈 곳이 많았다. 신미와 훈민정음의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등과 전국의 고서점을 찾아다녔다. ‘조선왕조실록’ 영인본부터 함허당이 쓴 ‘금강경오가해설의’ 등 관련 책 2000권을 아낌없이 사서 읽었고, 관련 논문 1000편도 주제별로 분류해서 읽었다. 가난한 살림에 책값과 현장 답사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원고를 들고 형난옥 대표를 찾았을 때는 그는 좀더 규모있는 출판사가 출판해야 할 원고라고 했다. 형대표는 원고를 심청이 젖동냥하듯 다른 출판사에 소개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출판에 응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벼랑 끝을 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형대표에게 무턱대고 책만 출간해주면 세종대왕 동상 앞에 좌판을 펼치고 팔겠다며 깡을 부렸고, 형대표가 손수 전 과정을 편집하여 출간될 수 있었다.” -집필과정에서 가장 보람찬 일은. “신미의 전 생애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었고, 책의 출간은 모든 어려움을 잊게 해주었다.” -집필하며 깨달은 것은. “통(通)이다. 간절하면, 사무치게, 알아 뚫린다. 소용돌이치더라도 꼭 할 일은 하고 가야 한다.” -훈민정음은 한마디로 무엇인가. “훈민정음은 위와 아래가 없는 보편성, 모든 싸움을 화해로 이끄는 화쟁(和錚)이었다. 백성의 알지 못하는 절대고독과 불통의 벽을 허문 혁명의 도구다. ‘무소유의 오래된 미래’다. 훈민정음은 ‘앎’이다. 알면 남에게 기대지 않고,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통해 뭘 하고자 했는가. “백성이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했다. 소통만이 나라의 평안을 이끄는 지름길이다. 조선의 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은 기득권이 가진 묵살과 배신의 벽을 허무는 장도리이고, 얽매임 없이 함께 꿈꿀 수 있는 불꽃의 바다다. 편민(便民·백성을 편하게 함) 정신의 실천이다.” -저자에게 신미는 어떤 분인가. “동행(同行)이다. 텅 빈 길에는 위, 아래가 없다. 걷는 자만이 주인이다. 주인은 훔치지 않고 흉내 내지 않는다. 세종은 제국을 꿈꾼 조선의 유일한 왕이다. 신미는 제왕의 곁에 온 또 다른 부처였다. 조선을 화엄의 바다로 당겨가려는 강렬하고 간절한 서원(誓願)이 둘을 함께 하게 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집중했고, 고통을 감내했다. 새로 만든 문자 훈민정음은 ‘제국의 선언’이다. 신미는 백성이 주인 되는 제국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훈민정음과 세종, 신미를 위한 향후 계획은. “집현전 학자와 기득권 세력들이 백성이 깨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쌍수를 들고 막는 바람에 만들지 못했던 책들을 이 시대의 언어로 다시 써서 나녹과 출간해 갈 계획이다. ‘아롬’은 언제나 리더, ‘모롬’은 언제나 머슴이다. 민초들이 주인 되어 온 세상이 평등해지는 ‘아롬’의 혁명을 해나갈 것이다. -영화 ‘나랏말싸미’에 대해 출판사와 함께 법원에 영화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했는데. “영화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원안으로 한다는 약속이 있어 자문에도 응했다.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15년간 치열한 취재, 연구와 장인정신으로 출판한 크레딧을 인정해 달라는 것뿐이다. 당연한 요구다. 왜 그것을 가로채려 하는지 모르겠다. 영화사에 인간적 배신감과 모멸감, 환멸을 느낀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 ‘아스달 연대기’ 김원석 감독, 쏟아지는 비판에 “혼돈..즐기시길!”[전문]

    ‘아스달 연대기’ 김원석 감독, 쏟아지는 비판에 “혼돈..즐기시길!”[전문]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연출을 맡은 김원석 감독이 방송 이후 쏟아진 다양한 반응과 비판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첫 방송 전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김원석 감독은 방송 이후 홍보팀을 통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았고 약 한 달 만인 9일 답변을 회신했다. 첫 방송 이후 평가에 대한 생각과 고증에 대한 비판, CG·소품 완성도에 대한 아쉬움, 다른 작품과 유사성 의혹, 촬영 중 발생한 스태프 장시간 근로 논란에 대한 질문에 답변했다. 김원석 감독은 따끔한 비판도 겸허히 수용하며 “내 탓이다”고 말했다. 현재 ‘아스달 연대기’는 파트1·2를 마쳤다. 남은 파트3은 ‘호텔 델루나’ 종영 이후 9월 7일 방송된다. <이하 김원석 감독의 답변 전문> 1. 드라마 내용 관련 Q. 첫 방송 이후 호불호 평가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요. A. 시청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장르라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릴 것은 예상했습니다. 후반작업을 하면서 애정 어린 비판 의견 충실히 반영하여 남은 회차 더 친근하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첫 방송 이후 배우들과 나눈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A. 연기자 분들은 고맙게도 드라마에 만족해 하셨고, 약간 어렵다고 전해들은 분들도 있으나 대부분 주변에서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Q. ‘아스달 연대기’가 김원석 감독님이 기존에 연출한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와 같은 드라마와는 규모, 배경, 접근방식이 다른 드라마였을 것 같은데 연출하면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연출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A. 드라마 안의 사람이 보이도록 하는 것, 이것이 어떤 드라마를 연출하든 제 가장 첫 번째 목표입니다. 고대의 인물들에게도 현대의 시청자가 감정 이입할 여지는 충분하고, 그렇게 되어야 아스달 연대기를 만드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은섬, 타곤, 사야, 탄야, 태알하 모두 살아 남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입니다.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살아 내는 모습은 현대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껏 한번도 다룬 적이 없는 시대의 인물에게 어떻게 하면 시청자가 빨리 감정이입 하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지만, 어렵거나 낯설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은 제 노력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그 부분이 가장 아쉽습니다. 이름이라든지, 지명, 생소한 단어들이 글이 아닌 말로 전달될 때 훨씬 더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점을 고려하여, 앞으로의 회차를 수정 보완하고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아스달 연대기 속의 ‘사람’들을 더 잘 알게 될 수록 흡인력 있는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어렵다’는 반응을 우려하셨을 것 같은데 시청자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 연출자로서 고민한 지점이 무엇이었으며, 방송에 등장한 것 중에 예시가 있습니까. A. ‘아스달 연대기’의 연출 계획을 세울 때,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줘야 하는 만큼 초반 이야기의 진행 속도를 빠르게 하기보다 그 세계에 대해 익숙해 지는 시간을 갖고, 대신 그 안의 인물을 따라갈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고자 했습니다. 1회는 사람이 뇌안탈에게 행한 잔인한 짓과 이 때문에 희생자가 된 아사혼과 라가즈의 비극을 시청자가 따라가길 바랐고, 2회는 그런 과정을 통해 멀리 오지에서 살아가게 된 은섬의 아픔과 고민을 순박한 와한족들의 모습과 함께 그리려고 했습니다. Q. ‘아스달 연대기’의 강점과 무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 점점 좋게 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 져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작가님들과 만났을 때 작가님들의 고대사와 문화 인류학에 대한 방대한 스터디와 통찰에 놀랐고, 이것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함께 재미 있는 영웅 이야기 속에 잘 녹아 있는 대본을 읽고는 가슴이 뛰었습니다. 요컨대 매력적인 캐릭터와 흥미진진한 스토리라는 김영현, 박상연 작가 특유의 장점과 함께, 고대 인류사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느낄 수 있는 대본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한 스탭들과 많은 좋은 연기자들이 이 대본을 잘 표현하기 위해 그 동안 힘을 합쳐 노력해왔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아스달 연대기 속의 ‘사람’들을 알게되고 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재미와 함께 인간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스케일과 영상미는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스토리가 어렵다는 시청자들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아스달 연대기의 공간적 배경은 ‘아스’ 라는 가상의 대륙이고, 시대적 배경은 청동기 시대입니다. 가상의 공간이지만, 청동기라는 시대적인 배경이 있으므로 문명의 단계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설정할 수는 없다는 것. 연출자로서 이것은 제약이자 기회라고 느꼈습니다.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청동기 문명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문명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태고의 자연 환경과, 발달된 청동기 문명의 화려함을 모두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아스달 연대기의 기본 스토리는 우리에게 친숙한 영웅 탄생 신화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세상을 바꿀 운명을 타고난 인물들이 역경과 어려움을 이겨내고 스스로 자신을 증명해 내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는데, 공간과 시간이 이전에 다루지 않았던 설정이다보니 인물의 이름, 지명 등이 생소할 수밖에 없고 이는 글로 읽을 때보다 말로 전해질 때 시청자들이 생경하다고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또, 현대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사랑’ ‘배신’ 등의 개념어들이 과거에 똑같이 사용되지 않았을 거라는 가정하에, 작품 안에서 ‘바라다’’저버리다’와 같이 바꿔 쓰이고 있는데 이런 요소들도 쉽게 알아듣기 힘들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그동안 꾸준히 보신 분들은 이제 좀 익숙해 지셔서 이해하기 쉽다고 말씀하시지만, 처음 보시는 분들도 쉽게 인물의 감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소리나, 자막을 더 명료하게 하는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Q.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스토리 구상하고 8년 만에 제작 결정됐다고 하던데 영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작품인 데도 연출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또 예상대로 구현이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A. 위에서 말씀 드린대로, 연출자로서 표현하고 싶은 인물이 있었고 도전하고 싶은 비주얼이 있었습니다. 다만 모든 것을 잘 해내기 위한 엄청난 제작비를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아 처음에는 고사를 했었습니다. 아스달 연대기는 그 동안 한국에서 언제나 통했던 안전한 장르의 드라마가 아니기에 더더욱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드라마입니다. 하고 싶은 마음과, 해 내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극중 은섬(송중기)이처럼 두려움을 이겨내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결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남은 회차 열심히 후반 작업 하고 있습니다. 애초의 의도가 예상대로 구현이 잘 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씬에 따라 다르다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극의 상황에 어울리도록 잘 되었느냐의 최종 판단은 시청자 여러분들이 내려 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Q. 배우들의 극중 대사톤이 캐릭터별로 다양한것 같습니다. 연기톤에 있어서 어떤 설정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태고시대의 어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들어본 사람이 없을테니까요. 다만 우리가 조선시대 사극에서 흔히 보는 ‘사극 어투’가 있고 이것을 쓰는가 안 쓰는가의 문제를 질문하신 거라고 생각하여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아스달 연대기의 연기 톤을 잡을 때 연기자들에게 요청한 것은 목소리를 지나치게 긁어서 우렁차게 내는 과장된 사극 어투나, 지나치게 현대적인 말투를 모두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의 어느 지점의 말투를 인물별로 각자 어울리도록 준비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지나친 사극 어투와 지나친 현대어 말투 모두 자연스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아르크에서 문명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와한족 사람들은 격식이 없는 말투를 쓸 것이므로 좀 더 현대어에 가까운 느낌인 반면, 아스달의 정치가들은 격식이 있는 말투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사극 어투에 좀 더 가깝게 들리게 된 것 같습니다. 쌍둥이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자란 은섬과 사야는 그런 면에서 다른 어투를 쓸 수밖에 없다는 설정입니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익숙하지 않은데다 뇌안탈어를 포함한 각종 소수부족의 언어들이 등장하는 아스달 연대기에서 아스어(한국어)는 가장 자연스러운 말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뇌안탈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일부 한글을 뒤집어 만든 언어라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뇌안탈어는 작가님들께서 체계를 만든 것이고, ‘발음’에 있어서는 언어학자의 자문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뇌안탈어의 단어를 만들 때 아나그램이 사용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단어를 그저 거꾸로 뒤집어 모든 언어체계를 만든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단어를 조어하는 과정에서 백워드를 비롯한 아나그램이 사용되었고 문법체계와 규칙, 시제, 인칭, 격식 표현과 비격식 표현, 존비어의 체계 등등을 나름대로 만드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가님들께 구체적으로 여쭤보지 못했지만, 그동안의 작가님들이 공부하신 방대한 양의 문화 인류학 자료를 고려할 때 단순히 편하게 만들기 위해 아나그램을 사용한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피의 색깔, 공동 생활의 유무, 자연을 바라보는 세계관 등 여러 면에서 사람과 반대에 있는 뇌안탈의 언어로 어울리는, 재미있는 설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방송 후 시청자들이 번역기를 직접 만들어 돌릴 정도로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 모로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드라마인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발음은 고대 언어의 느낌이 날 수 있도록 언어학 교수님의 자문을 통해 유럽어 및 아랍어의 목젖소리, 목구멍 소리(uvula, pharyngeal consonant), 마야어 및 아이마라어의 분출음(ejective stops)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듣기에도 어려운 발음이지만 정확하게 내기 위해서 따로 상당 시간 연습을 해야 하는 발음들입니다. 연기자들은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따로 발음 지도를 받았고 저와 함께 수차례 따로 연습했습니다. Q. 고조선의 이야기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대중이 알 만한 신화의 재해석도 있을까요 A. 약간은 유머러스 하게 사용된 쑥과 마늘 이야기로부터, 드라마에서 ‘세상을 끝낼 천부인’으로 등장하는 방울과 칼, 거울 역시 단군신화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그러한 재해석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Q. 장르 특성 상 중반 시청자 유입이 다소 어려워 보이는데, 아직 안 본 시청자도 사로잡을 수 있을 작품만의 강점을 꼽아주세요. A. Part1,2가 주인공들이 역경과 고난을 통해 성장하고 각성하는 내용이 주라면, Part3의 내용은 각성한 인물들이 세상을 바꿀 힘을 얻어가는 과정입니다. 가슴 아프고 답답한 이야기 보다 뿌듯하고 감격스러운 이야기가 전개될 것입니다. 이전의 내용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라도 성장한 캐릭터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 해내는 성취의 순간을 충분히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방송이 쉬는 동안, 이전의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앞으로의 기대감을 높일 수 있는 영상을 준비중입니다. 아스달 연대기는 영웅 신화의 이야기 구조입니다. Part3는 드디어 영웅으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처음 보시는 시청자라도 쉽게 이들의 활약을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껏 보신 시청자분들은 그동안 주인공들의 고난과 역경을 보셨기에, 주인공들의 활약에 더욱 통쾌한 기쁨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Q. 김원석 감독님이 연출자로서 해석한 ‘아스달 연대기’의 파트 1, 2, 3의 세계관은 무엇이며, 앞으로 보여줄 ‘아스달 연대기’의 ‘큰 그림’은 무엇입니까 A. 이번 작품에서도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문명 단계에 접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원초적인 역동성을 가지고 있고 본능에 훨씬 충실한 태고의 사람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고대의 사람들을 움직이는 감정은 크게 두 가지로 보았습니다. 공포와 사랑입니다. 미지의 적으로부터, 혹독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사람은 공포를 느꼈을 것이고, 이에 대해 치열하게 대응하면서 잔인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영현 작가님이 제작발표회에서 말씀하셨듯이, 세상 모든 동물 중에 유일하게 사람만이 아종을 허락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공포로 무장하고, 사랑으로 연대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신과 소통하는 능력에 대한 갈망 역시 바로 공포의 감정에서 출발했다고 봤습니다. 이러한 태고의 인간들이 벌이는 약육강식의 싸움이 아스달의 세계관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현대의 사람들도 똑같이 벌이고 있는 중이라는 점에서 태고의 이야기지만 현재가 보이는 재미있고 의미있는 드라마가 되기를 희망합니다.2. 드라마 제작(및 연출) 관련 Q. 각 배우들의 캐스팅 동기, 각각 캐스팅에서 중요한 섭외기준이 궁금합니다 A. 제가 배우를 캐스팅하는 기준은 단 하나입니다. 그 역할에 맞는 이미지와 연기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스달 연대기는 다행스럽게도 저와 작가님들이 가장 먼저 생각한 배우 분들이 흔쾌히 참여해 주셨습니다. 큰 돈을 들여 드라마를 찍는다는 것은 실패할 경우의 위험도 커지는 것이므로 배우들에게도 큰 부담입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 잘 되어왔던 검증된 장르의 드라마가 아닐 경우는 더더욱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아스달 연대기의 캐스팅 제의에 응해주시고,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신 아스달 연대기의 모든 연기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Q. 역사적으로 따지면 청동기 시대인데 긴 쇠사슬 같은 무기가 나오고 의상에도 고도의 기술이 들어가서 어색해 보인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전문가의 고증을 거친 것인가요? 일각에서 미드, 영화, 애니메이션 등과 유사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비슷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A. 아스달 연대기의 공간적 배경은 ‘아스’ 라는 가상의 대륙이고, 시대적 배경은 청동기 시대입니다.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청동기 문명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문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태고의 자연 환경과, 발달된 청동기 문명의 화려함을 모두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양차가 사용하는 청동추의 사슬은 당연히 청동 사슬이고 끝에 달려있는 것도 청동추 이므로 (당시로 보면 무지 비싼 무기였겠지만) 시대에 아주 불가능한 무기는 아닙니다. 드라마를 준비하면서 실제로 구약성서를 비롯한 여러 고대 문헌에 청동사슬에 대한 내용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되어 드라마에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예를 들어, 성서에 삼손을 바빌론으로 끌고 갈때 삼손을 힘을 쓰지 못하도록 묶은 것이 청동사슬입니다) 우리가 본적도 없고, 사료로도 남아 있지 않은 당시의 건축물과 복식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회의를 거쳤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른바 ‘아스 양식’이 필요했고, 이를 시청자가 그럴 법하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논리도 필요했습니다. 아스 대륙은 가상의 대륙이지만, 갑골문 시대의 중국 문자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동양 어딘가의 대륙이었을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기후는 온대기후. 중국풍이나, 우리나라 삼한시대 드라마에 썼던 의상과 건축물이 나온다면 그보다 수천 년 이상 앞선 문명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반면 서양은 이집트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같은 청동기 문명의 건축물과 이미지가 많이 남아있고, 극화된 콘텐츠도 많아 청동기 문명의 모습을 연상할 때 쉽게 위의 문명들이 떠오른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양과 서양 문명 사이 어딘가 존재했을 법한 문명 양식을 찾고 싶었습니다. 화면에 ‘동양 문명과 서양 문명의 초기 모습이 함께 보인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스달 연맹궁은 중국 홍산 문명의 원형 제단과, 터키 괴베클리테페의 T자형 돌기둥, 첨성대 모양의 구조물, 메소포타미아 지구라트의 길고 높은 계단 등 동서양의 건축 양식들이 혼재 돼 있습니다. 괴베클리테페는 문명단계상으로는 신석기 문명이지만 불가사의한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고, 첨성대 역시 기본적으로는 신라시대 건축물이지만 그 이전과 이후로도 비슷한 모양의 건축물이 없다는 점에서 그 원류가 아스달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습니다. 한자 문명권으로 봐서 연맹궁, 대신전 등의 주요 건축물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 즉 원과 사각형의 기하학적인 조화를 추구하도록 했습니다. 연맹궁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건축물, 의상, 소품, 분장, 미용 등 미술영역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의 혼재된 느낌을 위해, 수많은 역사적 자료와, 영상 콘텐츠를 참고했고 위와 같은 회의를 거쳤습니다. 일부 기존 작품과 유사하다는 평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 여러분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스달 연대기의 촬영을 준비하면서 본적 없는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매번 위와 같은 조사와 회의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연출자와 스탭은 누구도 쉽게 어떤 콘텐츠를 따라하자는 시도를 한 적이 없다는 점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덧붙여, 위에서 말씀드린 동양과 서양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아스 양식’에서 아스달 서민들의 옷과 분장에 비해 지배계급의 복식은 조금은 더 서양 쪽의, 시대에 비해 발달된 모습을 띄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동양의 복식에 가깝게 설정한다면 삼국시대를 다룬 기존 우리나라의 사극 양식이 연상되어 그보다 몇 천년 앞선 청동기 시대와 차별화될 것 같지 않았고 그렇다고 중국이나 일본풍의 옷을 입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서양 고대 문명의 화려한 복식을 조금 더 참고하고 여기에 동양적인 요소가 조금씩 들어가 있는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청동기 시대에 이미 비단 등 다양한 옷감으로 옷을 지을 수 있었고, 청동뿐 아니라 금, 은, 보석 등 다양한 소재의 세공기술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옷과 장신구의 재단 및 세공수준이나 모양은 어쩔 수 없이 더 아름다운 쪽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어 드라마 배경보다 더 후대에 등장하는 옷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름답고 화려하면서 동양적인, 그러면서도 동양, 삼국 어느 한 나라에 치우치지 않는 ‘아스 지배 계급의 의복 양식’을 만들어 보려 했던 초창기의 목표에서 조금은 익숙한 모습의 복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특히, 태알하의 의상은 해족이 멀리 레무스라고 하는 발전된 문명세계에서 왔다는 설정으로 조금 더 앞선 단계의 의상과 장신구가 사용되었습니다. 수메르를 거꾸로 읽은 레무스야말로 대표적인 백워드 아나그램입니다. 수메르는 공식적으로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 할 수 있는데, 스스로를 검은 머리 사람들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작가님들은 수메르에서 우리나라쪽으로 이동한 어떤 무리들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고, 그것이 해족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양에서 왔으나 머리는 검고, 복식은 서양풍인 설정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Q. 큰 액수의 제작비가 계속 회자되었는데 부담스럽진 않으셨는지요 A. 네 당연히 부담스럽습니다. 일단 회자되고 있는 제작비는 맞지 않은 액수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역대 한국 드라마 최고 수준의 제작비가 들어간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알려진 제작비가 높으면 ‘들인 돈에 비해 어떻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홍보를 위해 제작비 규모를 알리는 제작사는 없습니다. 스튜디오 드래곤이 상장기업이다 보니 회사의 큰 돈이 움직이는 부분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공개를 해야 하는 과정에서 400억 남짓한 정도의 규모가 알려졌고, 예정된 것보다 촬영 일수가 늘어나게 되면서 여러 사람의 추측을 거쳐 지금의 액수까지 커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큰 돈을 들여서 드라마를 찍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아스달 연대기는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장르의 드라마가 아니라 더더욱 위험이 큰 프로젝트입니다. 이 때문에 프로듀싱의 영역이 중요했습니다. 드라마를 만들기 위한 재원을 조달하고, 이를 다시 회수할 방법을 미리 마련해 두어 위험을 최소화 하는 것이 프로듀싱의 기본이고 스튜디오 드래곤의 프로듀서팀들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드라마의 제작비는 18부 전체에 걸쳐 고루 쓰였습니다. 종종 드라마 초반에 많은 물량을 투입하고 이후 용두사미가 되는 케이스도 있는데, 아스달 연대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끝까지 보시고 판단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제작비에 비해 소품과 CG가 아쉽다는평, 두 부분에 대한 입장은 어떠한지요 A.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알려진 제작비는 업계의 추정치이므로 맞지 않는 액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드라마 최고 수준의 제작비가 들어간 것에 비해 소품과 CG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스달 연대기에 참여한 모든 스탭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고여서 같이 할 것을 부탁드렸고, 촬영을 하면서 최고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준비한 미술팀과 VFX팀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렇게 준비하도록 한 연출의 문제입니다. 물론 전문 스탭들은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연출자와 이야기해왔고, 저 역시 그분들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많은 것을 믿고 맡겨 왔지만, 기본적으로 큰 틀의 컨셉을 잡은 것은 연출이기 때문입니다. - 소품 아스달에 등장하는 소품은 위에서 말씀드린 회의를 거쳐 소품 스탭들이 일일이 만들어 내거나, 어렵게 구한 것들입니다. 청동기 시대이므로 아스달에 등장하는 청동 무기나 제례의식에 사용되는 도구들 모두 사전 자료조사를 거쳐 디자인 된 것들입니다. 한 세계의 소품을 모두 마련해야 하는 만큼 그 양과 질을 맞춰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었습니다. 소품에 대해 까다로운 제가 보기에도 완성도가 높은 소품을 준비해준 소품팀에게 저는 경의를 표합니다. 그럼에도 시청자 분들이 아쉬움을 느끼시는 부분이 있다면 제가 컨셉을 잘못 잡은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대흑벽을 오르내리는 데 사용한 ‘도르래’ 기술은 지레, 쐐기, 바퀴 등과 함께 단순기계(simple machine)에 속합니다. 단순 기계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이용해온 도구를 말합니다. 동네 마다 있던 우물의 두레박의 원리가 도르래라는 점에서 도르래의 원형이 되는 물건은 청동기 시대에 있었을 것으로 상상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도르래 기술을 이용해 승강기를 만든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고, 엄밀히 말해 우리나라에서 도르래를 사용한 거중기가 만들어진 것은 조선 후기에 정약용에 의해서라는 것도 인지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드라마 안에서 보여진 것 같은 승강기가 존재했을 가능성은 당연히 거의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가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고, 해족이 극중 발달된 문명세계에서 넘어온 첨단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는 씨족으로 설정된 만큼 드라마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면 드라마 속에서는 가능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CG 아스달의 CG는 아스대륙과 아스달성, 연맹궁, 거치즈멍 그리고 대흑벽, 소금사막, 신성한 나무, 예쁜 물가, 폭포 등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표현하는 데 쓰였을 뿐 아니라 늑대, 곰, 뱀, 황소, 말 등 동물들의 연기를 표현하기 위해서도 쓰였습니다. 이 중에는 비교적 아쉬운 상태로 방송이 된 부분도 물론 있지만 시청자들께서 CG인 것을 눈치 못 챌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CG들도 많습니다. CG는 단순히 기술이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기획 단계, 촬영 단계, 후반작업 단계에서 연출, 촬영, VFX부서의 스탭들 간에 긴밀한 협의와 부단한 노력, 그리고 충분한 작업 시간을 거쳐야 완성됩니다. 아스달 연대기는 처음 기획단계부터 두 분의 VFX 슈퍼바이저가 헌신적으로 CG업무를 진두 지휘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물에 대해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지만, 그중 일부라도 시청자 여러분께서 만족하시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모두 연출의 탓입니다. 3. 편성 관련 Q. ‘아스달 연대기’는 파트별 6회씩, 총 3파트로 나뉘어 있습니다. 파트3 작업은 얼마나 진행됐는지, 이같이 분리편성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A. 모든 촬영은 첫방송 시작전에 종료되었으며, 현재는 파트3의 후반작업이 진행중입니다. 파트1,2가 아스달 중심의 이야기라면 파트3는 아스 대륙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미드로 본다면 시즌 2의 시작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분리 편성을 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김영현 작가님께서 말씀하셨듯, 아스달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시청자 여러분이 좀더 친숙해진 이후에 더 확장된 공간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더욱 박진감 있는 이야기를 잘 표현하기 위한 후반작업 시간이 더 생긴다는 또 다른 장점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Q. 시즌2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신가요. 저 역시 궁금합니다.^^ 4. 기타 Q. SNS에 남긴 심경글의 의미는 뭘까요 (첫 방송 직후 SNS에 게재하신 장그래 대사 인용글) ‘나는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는 글을 게재한 것이 실제 ‘아스달 연대기’ 반응에 대한 심경이었는지요 A. ‘아스달 연대기’의 촬영 감독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매 씬, 매 컷 쉬운 것이 없네요” 그 동안 스탭, 연기자 모두 힘을 합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찍었고, 이미 촬영은 모두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드라마 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양도 많은 후반 작업이 남아 있습니다. 이를 더 열심히 잘 해서, 어렵게 찍은 씬들 고생한 보람이 있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에서 쓴 글입니다. 드라마의 모든 회차가 끝나고 나서 후회 없도록 하자는 의미였습니다. Q. ‘아스달 연대기’는 김원석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A. ‘한계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전에 없었던 새로운 작품을 하는 소감, 목표가 있다면 A. 이러한 시도가 앞으로 더 나올 수 있을 정도의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5. Part2, 3 관련 Q. 쿠키 영상이 매우 흥미로워 쿠키영상을 기다리는 시청자들도 많습니다. 쿠키영상을 도입하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A. 내,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언제나 불안했던 아스달 시민들은 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신의 말씀을 듣기위해서는 제관을 통해야만 했습니다. 제관의 직무를 독점하던 아사씨는 자신들만의 창세신화를 만들어 시민들의 의식을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막강한 권력을 악용해 정적을 무너뜨리고, 부를 축적해왔습니다. 위와 같은 각 씨족의 이해관계라든지, 창세 신화, 리산과 아사신의 이야기, 아라문 해슬라 전설, 칸모르, 뇌안탈 등의 배경 지식을 더 잘 알면 드라마를 좀 더 재미있고 쉽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Q. 송중기의 1인 2역(은섬/사야)이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캐릭터인 은섬과 사야를 연출하는데 있어서 감독님은 어떤 점에 중점을 두셨나요. A. 은섬은 이아르크에서 자연을 맘껏 뛰놀며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랐고, 사야는 필경관의 탑에 갇혀 햇빛도 제대로 못보고 외롭게 자란 인물입니다. 일란성 쌍둥이지만 두 극단의 환경에서 자란, 그래서 너무 다른 인물이 잘 표현 되었다면, 이는 전적으로 송중기씨의 노력 덕분입니다. 우선 은섬 씬을 찍기 위해 송중기씨는 몸의 부피를 키워 근육질로 만들었고, 이를 단기간에 근육을 빼고 사야의 몸으로 만드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근육질의 은섬보다 훨씬 말랐을 것이 분명한 사야를 표현하기 위해 몸 대역을 쓸까 고민도 했었지만, 연기자가 깜짝 놀랄 정도로 몸을 다르게 만들어 와서 본인으로 찍을 수 있었습니다. 몸 뿐 아니라 목소리와 말투, 눈빛에 이르기까지 연기자가 너무 디테일하게 다르게 준비해와서 연출자 입장에서는 그저 흐뭇하고 감사하게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Q. 파트2에서도 다양한 CG와 시각 효과들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또 강렬한 엔딩 또한 많이 회자 되었고요. 감독으로서 파트2 촬영당시 가장 공들였던 씬이나 인상 깊었던 씬이 있다면 어떤 장면일까요 A. 가장 인상깊은 씬은 언제나 가장 힘들게 찍었던 씬인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장면이 다 힘들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꼽기 어렵지만 파트2에서는 12회 엔딩인 신성재판 장면과, 돌담불 촬영이 가장 생각이 납니다. 특히 돌담불 깃바닥씬을 찍을 때는 진흙을 퍼올리는 설정상 세트 내부에 물이 고일 정도의 진흙을 깔아 놓고 찍었는데 물이 고여있다보니 하루만 물을 갈지 않아도 좋지 않은 냄새가 나고, 연기자들 피부에 발진도 나고 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사리지 않고 진흙바닥에 뒹굴어가며 열연을 보여주신 배우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Q. Part2에서 은섬 사야를 비롯해 타곤, 탄야, 태알하 등 각 주인공이 운명적인 변곡점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또 새로운 인물들도 많이 등장했고요. Part 3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인물관계나 연출포인트는 무엇인가요? A. 은섬은 사트닉의 유언을 실행하기 위해 주비놀 산장을 찾았다가 새로운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본인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잠재력과 운명을 깨닫게 되고 탄야와 와한족 사람들을 구하러 갈 수 있는 힘을 키우게 됩니다. 탄야 역시 아스달의 대제관 아사탄야로서 타곤과 태알하 등의 기득권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연맹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자신만의 힘을 기르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타곤과 태알하, 그리고 아스달 부족 연맹이라는 기성 권력에 맞서는 과정이 Part3의 중심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타곤과 태알하는 모두 아버지로부터 이용당하고 학대당한 아픔을 공유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로서 권력 의지를 키워온 캐릭터입니다. 두 사람은 정치적 동지이자 ‘서로를 위해 죽지 말자’고 맹세할 정도로 서로를 마음에 품은 사이입니다. 아사론과 미홀이라는 구세대 권력이 마지막 발악을 하지만, 타곤과 태알하는 끈끈한 동지애와 팀웍을 바탕으로 굳건한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러나 밖으로는 은섬과, 탄야, 사야의 세력이 성장하면서 위협이 되고, 안으로는 절대 권력을 향한 두사람의 욕망이 충돌하는 위기를 겪게 됩니다. 타곤과 태알하 둘의 관계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봐야할 점은 욕망에 충실한 이 두 캐릭터가 내뿜는 에너지와 이를 표현하는 두 연기자의 혼신의 연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Part3가 9월 7일 돌아오는데요. Part3을 더욱 즐길 수 있는 관전포인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세상을 끝낼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은 결국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 운명을 타고났다는 말일 것입니다. 은섬, 사야, 탄야가 자신들의 운명에 따라 전설을 쓰기 시작하는 단계가 Part3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껏 스스로 한계에 부딪치며, 시행착오를 거쳐 성장해온 은섬과 탄야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힘을 얻어 가는지, 정치적 동지이자 연인인 타곤과 태알하는 ‘사랑’과 ‘권력욕’ 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욕망사이에서 어떤 행보를 할지, 꿈으로 연결된 은섬과 사야는 어떻게 서로를 알아갈지, 대전쟁과 대사냥에서 살아남은 뇌안탈들은 어떻게 ‘사람의 시대’를 살아낼지... 등등 Part1,2에서 시작된 이야기들이 더욱 흥미진진하게 전개됩니다. “혼돈...! 일단 즐기시길! 흔들리는 모든 것은 결국 멈추는 법이니.” 극중 사야가 극도의 혼란을 일으키며 타곤을 위기에 빠뜨리고 한 말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직전의 혼란스러운 세상, 그 안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위기를 헤쳐 나가는지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스달 연대기는 본격 판타지 드라마라기 보다는 가상 역사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문명의 태동기에 국가와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국가도 영웅도 쉽게 탄생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동안 주인공들이 역경과 아픔을 겪어왔습니다. 이제 그들이 강해져서 우뚝 서는 이야기가 Part3입니다. 이전에 없었던 드라마, 인류 역사의 기원을 다루는 드라마, 고대 인류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라는 가치에 스탭과 연기자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최선을 다해 촬영했습니다. 조금 부족해 보이시더라도 버리지 않으신다면 새롭고 다양한 드라마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더욱 힘을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6. 제작환경 관련 Q. ‘아스달 연대기’ 현장에서 발생한 제작환경 이슈에 대해 연출로서의 입장이 궁금합니다. A. 질문에도 있듯이 연출로서, 현장에서 나오는 모든 얘기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어려운 상황의 스탭들 목소리 하나하나에 귀 기울였어야 했는데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저를 포함한 아스달 연대기의 연출부, 제작부는 현장 스탭들이 제작 가이드 안에서 일하고, 로테이션 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회사도, 저도 열심히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더욱 철저히 지켜질 것이라 믿습니다. Q. 현재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과 개선 움직임에 대한 김원석 감독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현재 제작환경 상황과 향후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A. 반드시 제작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저는 주로 한 팀으로만 촬영을 해 왔는데 주당 2회 방송이 바뀌지 않는 한, 한 팀으로 촬영하는 것은 앞으로 쉽지 않은 시스템일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모든 촬영은 미리A,B팀을 나누어 준비하고, 기술 스탭 뿐 아니라 미술 스탭도 반드시 로테이션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힘든 상황에 처한 스탭이 없는지 철저히 챙기겠습니다. Q. 고발 관련 현재 어떻게 상황이 풀리고 있는 것인지 A.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한 부분에 대해서는 촬영 당시 근로감독관이 현장에 나와 조사했고 현재 심리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뭔가 갈등상황이 드러나게 있었던 적은 없었지만, 매우 힘든 상황에 처했던 스탭이 있었고 그 분 혹은 그분들이 어려움을 호소해서 위 단체가 고발을 한 것이므로 연출로서 당연히 책임을 느끼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Q. ‘아스달 연대기’ 촬영 중 발생한 스태프들의 촬영환경 제보 이후 촬영현장의 변화는 무엇이었습니까 A. 스탭 제작환경 문제가 불거진 후 더욱 철저하게 A,B팀을 나누어, 하루 촬영시간이 14시간이 넘어갈 경우에는 아예 낮씬과 밤씬을 나누어 하루에도 A,B팀을 돌리도록 했습니다. 로테이션 문제가 제기됐던 미술 스탭에 대해서도 반드시 로테이션이 되도록 권고하고 지원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회사의 구체적인 입장 발표문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긴 답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우리 모두의 페미니즘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우리 모두의 페미니즘

    어울리지 않게 대학원 박사과정 전공이 페미니즘이었다. 1990년대 중반경 포스트모더니즘 비평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얼떨결에 발을 담갔다가 결국 페미니즘 이론에 매료된 것이다. 페미니즘에 혹했던 이유는 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평등한 세상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 학위를 포기하고 공부를 중단하기는 했지만, 그때 접한 페미니즘 세계관이 지금껏 내내 내 시각을 잡아 주고 삶을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제일 흥미로웠던 주제가 ‘언어’다. 세계가 유럽ㆍ백인ㆍ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언어는 유럽ㆍ백인ㆍ남성이 지배하고 그 나머지들은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지배자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문학작품 속에서 여성이 (남성의 언어를 도구로)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고 또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지를 살폈다. 자크 라캉에 따르면 언어란 개별 인간 이전에 존재하고 개별 인간은 언어를 받아들이면서 사회화한다. 여성은 스스로의 언어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성의 언어를 체득하며 사회화하므로 곧바로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고 만다. 남성 중심 언어에서 남성은 기준이 되고, 여성은 배제되거나 부차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히스테리를 ‘남성 성기의 결여’에서 찾고(기준은 늘 남성이다), 여성을 가리키는 단어 ‘우먼’(woman)은 남성 ‘맨’(man)에 의존해서만 존재한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 김승섭 교수는 “과학에서 여성의 몸이 사라진 현상”에 대해 언급한다. 과학적으로 정했다는 사무실 적정 온도 21도는 몸무게 70㎏의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한다. 불면증 치료제 졸피뎀의 기본 처방 용량 10㎎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부작용 가능성이 크다. 새 신부에게 남편 식구들을 ‘서방님’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예법은 누가 만들었을까. 명절에 시집부터 찾는 풍습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부모 재산은 왜 남자들이 다 가져갈까. 우리는 왜 이런 불평등들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걸까. 남성의 몸에 맞게 만든 옷이 여성에게 편할 리가 없다. 페미니즘 문화 이론가이자 철학자 크리스티나 폰 브라운은 히스테리, 거식증, 분열성 정체성 장애 등 여성 특유의 질병이 남성 주도적 문자 사회에서 비롯했다고 지적한다. 남성의 상징체계가 여성의 몸에 강제적으로 이식되면서 여성들이 끊임없이 고통을 겪어 왔다는 것이다. 20대 남성 70%가 페미니즘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뉴스를 접했다. 군대 문제를 비롯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는데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느 통계를 보아도 남성은 이 불평등 사회의 수혜자다. 20대라고 다를 바 없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여성이 부당하게 취급받는 게 아니라 그걸 당연시하고 고착화하려는 사회 분위기다. 페미니즘에 주홍글씨 낙인을 찍고 심지어 페미니즘을 남녀의 성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정당도 있다. 페미니즘은 남성과 싸우자는 이론이 아니다. 기득권, 주도권을 빼앗겠다는 싸움도 아니다. 우리 어머니, 누이, 연인이 겪고 있으며 또 미래의 아내, 딸이 겪어야 할 질병과 고통에 대한 얘기다. 지금까지의 가부장적, 남성주도적 세계관을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의 눈으로, 아내와 여동생, 딸의 입장에서 세상을 이해해 보자는 운동이다. 경쟁자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바로 내 가족을 위한 노력이고 운동이다. 나는 여전히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여야 남녀가 모두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 카롤린스카도 2015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여성의 권익이 향상되면 남성도 살기 좋아진다. 남성의 어깨에 있는 짐을 일부 내려놓으면 남성도 편해진다. (페미니즘이) 한국을 구할 것이다.” 페미니즘이 우리 모두의 페미니즘이어야 하는 이유다.
  • 외교부, ‘발틱’을 ‘발칸’으로 잘못 기재…잇단 실수 왜 이러나

    외교부, ‘발틱’을 ‘발칸’으로 잘못 기재…잇단 실수 왜 이러나

    말레이시아를 국빈 방문한 대통령에게 틀린 인사말을 하게 해 외교 결례를 했다는 지적을 받았던 외교부가 지난달에는 ‘발틱’ 국가를 ‘발칸’ 국가로 잘못 기재했던 것으로 3일 뒤늦게 드러났다. 외교부 당국자는 “보도자료를 영문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틱’을 ‘발칸’으로 잘못 표기해 확인 후 수정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지난달 19일 직제 개정안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에 우리 재외공관이 부재했다“는 문장을 넣었는데, 맞게 쓰인 국문과 달리 영문자료에는 ’발칸‘이라고 오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지난달 21일 주한 라트비아대사관의 지적이 있고서야 오류를 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발칸 반도에 속하는 나라는 불가리아, 알바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이다. 외교부는 지난해 말에는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표기해 지적을 받기도 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93년 1월 1일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됐다. 지난달 13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빈 방문한 말레이시아에서 정상회담 뒤 인사말을 하면서 인도네시아어인 ‘슬라맛 소르’라고 잘못 말하게 해 외교 결례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간부회의에서 “외교부 최수장으로서 부끄러움과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서 재발 방지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사문난적으로 몰린 박세당, 세상에 굴하지 않고 ‘학문의 길’ 가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사문난적으로 몰린 박세당, 세상에 굴하지 않고 ‘학문의 길’ 가다

    #우암의 학문 권력이 사문난적 굴레를 씌우다 1700년 4월 12일, 성균관 유생 홍계적 등 180명이 숙종에게 상소해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1629∼1703)이 지은 ‘사변록’(思辨錄)과 ‘이경석신도비명’(李景奭神道碑銘)을 불태워버리기를 청하면서 말한다. 온 세상으로 하여금 주자(朱子)의 말은 헐뜯을 수 없고 송시열의 어짊은 모함할 수 없으며, 성인을 업신여기고 정인(正人)을 욕하는 죄는 징계하지 않을 수 없음을 분명히 알도록 하소서.성인에 버금가는 주자를 헐뜯고 바른 사람인 우암 송시열을 모욕한 서계를 단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상소로 서계는 일흔다섯의 나이에 삭탈관작과 문외출송의 명을 받고 이어 전라도 옥과로 유배되는 처분을 받는다. 이 상소가 나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서계 생전에 마지막으로 지은 ‘이경석신도비명’ 때문이다. 이에 앞서 이경석은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한 뒤 “문자를 배운 것을 후회한다”면서 청 태종의 공덕을 찬양하는 ‘삼전도비문’을 지은 바 있다. 서계는 이경석의 신도비명에서 그의 ‘삼전도비문’ 찬술이 불가피한 일이었음을 피력한다. 그리고 송시열과 이경석을 올빼미와 봉황에 견주면서 “불선한 자는 미워할 뿐, 군자가 어찌 이를 상관하랴”라고 해 송시열을 불선한 소인배로 깎아내린다. 성균관 유생이 서계를 단죄할 빌미로 삼은 것은 이경석의 신도비명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사변록’에 대한 노론의 의구심과 분노가 깔려 있었다. ‘사변록’은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주석한 주자의 ‘사서집주’를 서계가 비판적 시각에서 새로운 해석을 가한 책이다.#현실에 끝내 고개 숙이지 않다 송시열을 모욕하고 주자에게 반기를 들었으니 주자를 성인시하고 송시열을 ‘조선의 주자’로 여기는 노론의 분노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노론은 서계를 이단으로 몰아 ‘사문난적’(斯文亂賊) 굴레를 씌웠다. 이때 송시열은 이미 죽고 없었지만 그의 학문 권력은 이토록 강고했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던 것일까. 서계는 ‘사변록’을 완성하고 나서 ‘좀’이란 시에서 자신의 운명을 이렇게 자조한다. 좀이라는 놈 평생 책 속에서 살면서 다년간 글자를 먹더니 눈이 문득 밝아졌네 뉘에게 인정받으랴 그래 봐야 미물인 걸 경전 망쳤단 오명만 영원히 뒤집어쓰겠지 그러나 시는 시일 뿐이다. 서계의 진짜 생각은 달랐다. 서계는 ‘사변록’ 서문에서 “육경(六經)의 귀결처는 하나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이므로 다양한 견해가 수용되어야 육경의 대체가 온전해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 주자만을 맹신하던 당시 학문 풍토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서계는 죽음을 몇 해 남겨 두고 스스로 묘표를 지어 또 이렇게 말한다. 맹자의 말씀을 매우 좋아한다. 차라리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며 남과 합치되는 바가 없이 살다 죽을지언정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이 세상에 맞춰 살면서 남들이 선하다고 해 주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자에게 끝내 고개 숙이거나 뜻을 굽히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여기서 “세상에 맞춰 살면서 남들이 선하다고 해 주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자”는 공자가 말한 ‘향원’(鄕原, 사이비 군자)에 대해 맹자가 그 의미를 부연한 말이다. 맹자는 또 향원을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만 요순의 도에는 들어갈 수 없는 자’로 묘사한다. 서계의 짧은 말 속에는 이런 의미맥락이 숨어 있다. 무덤에 들어가서도 향원에 불과한 자에게 고개 숙이거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미완의 꿈-석천동 은거 세상 사람치고 은거를 꿈꾸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서계도 그런 꿈을 꾸었다. 서계는 마흔이 되던 1668년, 벼슬에서 물러나 양주 석천동에 은거한다. 지금의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수락산 골짜기다. 서계는 30년을 넘게 이곳에서 살다가 이곳 언덕에 묻혔다. 스스로 보기에도 재주와 역량이 보잘것없어 큰일을 하기에 부족한 데다 세상도 날로 도가 쇠해져 바로잡을 수 없다고 여겼다.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도성에서 30리 떨어진 동문 밖 수락산(水落山) 서쪽 계곡에 은거하였다. 그 계곡을 ‘석천동’(石泉洞)이라 이름하고, 이로 인해 스스로 ‘서계초수’(西溪樵)라 일컬었다. -서계초수묘표(西溪樵墓表) 하지만 은거한다고 세상과 오롯이 멀어지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깊은 곳이라도 속세로 통하는 길은 나 있게 마련이다. 그 길 너머에는 가까운 피붙이가 있고 그리운 벗도 있으며, 학문적 동지도 있고 적도 있다. 서계는 소론의 거두인 윤증을 비롯해 8촌 아우 박세채, 처남 남구만 등과 교류했다. 우참찬 이덕수, 함경 감사 이탄, 좌의정 조태억 등은 서계의 문하로서 정계에서 활약했다. 이래저래 세상과 얽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서계의 은거는 미완의 꿈이었다. 사문난적으로 몰린 게 그 반증이다.#두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의 슬픔 게다가 서계의 만년은 그야말로 기구했다. 환갑을 전후해서 4년 사이에 큰아들 박태유를 병으로 잃었고, 촉망받던 작은아들 박태보마저 잃었다. 박태보는 인현왕후 폐비를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사 국문 끝에 죽었다. 박태보를 미워했던 송시열조차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박태보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도록 자손에게 경계하였다는 기록이 숙종실록에 보인다. 자식을 둘씩이나 앞세워 보낸 아비의 슬픔이 어떠했겠는가. 박태보를 잃은 이듬해 섣달에 서계는 ‘달자(達者)가 어리석다고 욕할까 봐 함부로 슬퍼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울음을 삼킨다. 일 년이 다하도록 아무런 의욕이 없고 종일토록 내내 기쁜 일 드물구나 자식이 죽으면 그래도 아비가 묻지만 아비가 늙으면 다시 누가 보살피랴 -섣달그믐에 소회를 털어놓다 #시인이기를 거부했던 서계 서계의 시와 문은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얼핏 보면 깡마른 고목 같다. 그러나 그 속에는 생명이 꿈틀댄다. 그렇지만 서계 자신은 시인이 되기를 거부한다. 시인이 되느니 차라리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게 낫다. 시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그마한 명성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명성은 남이 주는 것이고 쓸모없음은 내가 하기 나름인 것이니, 남이 주는 명성에 얽매여 살까 보냐. -한인(閑人)시의 시서(詩序) 서계는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학문을 했다. 그래서 그는 시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쓸모없는 사람이 되길 원했다. 서계가 현실에 고개 숙이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힘은 일견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런 완고함에서 나온 것이고, 그 문학적 성취와 학문적 결실은 문집인 ‘서계집’을 비롯해 ‘사변록’, ‘신주도덕경’, ‘남화경주해산보’, ‘색경’으로 남아 있다. 김낙철 한국고전번역원 교수 ●‘서계집’은 시·서 등 모은 시문집…추각본 포함 총 22권 조선 후기 소론계 학자이자 문인인 서계 박세당의 시문집이다. 1권에서 4권까지는 800여편의 시(詩)가, 5권에서 16권까지는 소차(疏箚), 서(書), 서(序), 기(記), 제문(祭文) 등이 실려 있다. 17권에서 22권은 2차에 걸쳐 추각된 것으로, 간독(簡牘), 시장(諡狀), 연보(年譜)가 실려 있다. ‘한국문집총간’ 134집은 추각본이 모두 포함된 22권본으로 정리됐고,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이를 저본으로 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에 걸쳐 4권의 번역서를 완간한 바 있다.
  • 최고 인공지능 번역 앱이 곰돌이 푸를 인식못하는 이유

    최고 인공지능 번역 앱이 곰돌이 푸를 인식못하는 이유

    중국 최고의 인공지능(AI) 기업 아이플라이텍(iFlytek·科大訊飛)의 번역 앱이 중국 민주화 운동인 톈안먼, 독립, 시진핑, 시 주석의 별명인 위니 더 푸 등의 민감한 단어를 검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8일 보아오 포럼, 상하이 국제수입박람회 등 각종 국제행사에서 사용된 아이플라이텍의 번역 앱에 민감단어 검열 기능이 있다고 보도했다. 톈안먼과 같은 민감한 단어를 입력하면 아예 인식이 되지 않고 번역도 되지 않는다. 타이완 독립을 입력하면 타이완만 번역하고 독립이란 단어는 번역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경쟁사인 바이두의 번역 앱은 중국 당국이 검열하는 민감한 단어도 번역이 가능하다.음성인식 기술을 개발한 아이플라이텍은 중국 인공지능 기업으로 음성을 인식해 자동 번역하는 앱을 개발했다. 음성은 번역이 되어 자동으로 문자로 제공되는 데 민감한 단어나 이름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중국 당국은 아직까지 디지털 번역 서비스까지는 검열하지 않는다고 익명의 아이플라이텍 소식통은 전했다. 아이플라이텍의 번역 앱이 민감 단어를 거르는 이유는 중국 당국의 인터넷 통제 정책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최대 인터넷 사용자 보유국인 중국은 소셜네트워크의 문자 메시지까지 검열한다. 지난주 중국 인터넷 판공실은 이달 30일까지 모든 인터넷 플랫폼에 온라인 상에서 사회 운동에 대한 내용이 퍼지는 것에 대한 현황 보고를 하라고 지시했다. 아이플라이텍이 거르는 위니 더 푸는 시 주석의 별명으로 곰돌이 푸의 사진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등에서는 자동 삭제된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천문학책 번역, 유감 있습니다!

    [이광식의 천문학+] 천문학책 번역, 유감 있습니다!

    요즘 천문학책들이 활발히 출간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문지인 <월간 하늘>이 창간된 1990년대 초, 더 거슬러올라가 <코스모스>가 처음으로 한국에 선보였던 80년대만 해도 천문학책은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러니 종로에 지하철 1호선 공사가 한창이던 70년대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다들 입에 풀칠하기가 바빠, 하늘, 우주에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 무렵 나는 사회 초년병으로 월 2000원짜리 변두리 사글셋방에서 자취하며 출판사 편집부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었는데, 내 머리속에는 늘 하나의 화두가 자리잡고 있었다. - 내가 살고 있는 별 반짝이는 이 우주란 동네는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 나는 이 우주에서 어떤 존재일까? - 이런 거 좀 속시원히 알려줄 책이 없을까? 그래서 하루는 날을 잡아 청계천으로 나갔다. 그때만 해도 청계로 양쪽으로 수백 개의 헌책방들이 즐비하게 있었는데, 온종일 다리 아프도록 책방들을 뒤지며 그런 천문학책을 찾아보았지만 종내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최초로 의미있는 천문학책을 대하게 된 것은 80년대 초 학원사판 <코스모스>였다. 누런 중절지에 찍은 책이지만 올컬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처럼 천문학책이 귀했던 시절이었다. 그때에 비해 요즘 천문학 독자들은 참 행복한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을 만한 책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외국책 번역이 많다 보니,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역과 오류가 그것들이다. 이런 점들에 대해 독자로서 나 역시 불만이 없을 수 없지만, 출판 밥을 오래 먹은 처지에 이를 언급한다는 것도 조심스럽고 또 한편으론 귀찮은 일이기도 해서 모른 체 지내왔는데, 요즘 ‘그게 최선입니까?’ 하는 자문이 떠올랐다. 그렇다. 최선은 아니다. 오래 전 노자 선생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시비에 얽혀들지 마라’는 충고를 잠시 외면하고, 천문학과 그 독자들을 위해 짚을 것은 짚어주는 게 독자이자 작가인 나의 할 도리라는 생각으로 몇 가지 짚어보려 한다. 근래 읽었던 책 중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이란 천문학책이 있는데, 베트남 출신의 미국 천문학자 트린 주안 투안이 하와이 마우나케아에서 하룻밤 관측하면서 느낀 바를 책으로 쓴 것이다.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나 재미있는 대목은 눈에 띄지 않지만, 화려한 화보, 우주 감수성이 돋보이는 에세이풍의 천문학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번역에서 눈에 밟히는 구석이 적지 않아 약간 짜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예컨대, 몇 개만 간추린다면, -27쪽/ 일식을 말하면서 태양과 달의 겉보기 크기가 같다는 대목에서 ‘이 두 별은 크기가 똑같다’는 표현. (달은 별이 아니라 위성이다) -89쪽/ 유성우를 말하면서 ‘이때 유성이 어찌나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지, 유성을 거의 1분에 하나씩 볼 수 있다.’ (시간당 떨어지는 유성의 수(ZHR)를 말하는 거라면 ‘높은 빈도’라고 해야 한다) -91쪽/ ‘이따금 소행성은 중력의 영향으로 근처에 있는 별이나 소행성과 충돌하여 (...) 태양계 안쪽으로 내던져진다.(근처의 별과 충돌할 수 있나요? '섭동을 일으켜'라고 하는 게 낫다) -92쪽/ [그림] 장기간 동안의 혜성 궤도. 장주기 혜성을 이렇게도 말할 수도 있나? -103쪽/ 큰곰자리의 별들은 북두칠성을 제외하곤 다른 별들은 육안으로 볼 수 없다.(별자리가 원래 육안으로 보이는 별로 만든 건데 정말 볼 수 없을까?) -109쪽/ ’용자리에 속한 알파라는 별...‘(알파가 별이름? 알파는 그 별자리의 수성(首星)을 말한다) -112쪽/ ’태양은 (...) 2억 2천만 년 동안 우리 은하 핵을 중심으로 공전한 것이다.‘(2억 2천만 년 동안 1회 공전하는 것이고, 46억 년 동안 약 20회 공전한 것이다) -157쪽/ 공허空許의 개념(空虛가 아닐까?) -172쪽/ 만일 별들이 무한히 연속된다면 하늘의 배경은 은하가 보여주는 것 같은 균일한 광도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배경에는 별이 존재하지 않으니 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이 문장 이해가 되나요?) -196쪽/ 1,001종에 달하는 (지구상의) 동물과 식물(수백만, 수천만 종은 될 것이다) (이밖에도 많은 오류들이 눈에 띄지만 여기서 줄인다) 눈썰미 있는 천문학 독자라면 이 책의 번역자가 천문학에 대한 기본 개념이 거의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비전문가가 천문학책을 번역하는 데 있는 셈인데, 보다 좋은 천문학 책을 읽을 권리가 있는 독자로서, 다음과 같은 문제해결책을 제안한다. 1. 가능하면 천문학책 번역은 검증된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 좋다 2. 외국어를 안다고 다 번역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출판사 편집자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3. 천문학책 편집-교정자도 천문학 기본지식은 갖추는 게 바람직하다. 박학다식이 편집자의 기본덕목이다. 4. 불가피하게 비전문자에게 번역을 의뢰하더라도 ’책임있는 감수‘를 거치는 게 안전하다. 단, 이럴 경우에도 편집부에서 스크린은 필수적이다. (위의 책도 감수자가 천문학 전공자인데, 제대로 감수한 것 같지 않다.) 번역이란 사실 인문학적 해박함, 해당분야 전문지식, 외국어 실력, 게다가 모국어 문장력까지 갖춰야 하는 고도의 작업으로 제2창작이라고까지 하는데, 너무 쉽게들 생각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는 듯하다. 어쨌든 이상은 천문학책을 백 수십 권 읽은 우주 덕후로서, 서투른 번역이 독자의 우주에 대한 관심을 꺾지 않게끔 보다 좋은 천문학책을 위해 올리는 고언으로, 전혀 사적 감정이 개재된 것이 아님을 밝히며, 이 점 널리 해량하기 바란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금요일의 서재]난해하고 어려운 고전, 쉬운 해설로 읽는다.

    [금요일의 서재]난해하고 어려운 고전, 쉬운 해설로 읽는다.

    고전은 어렵다. 내용 자체가 어렵고,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더 어렵다. 번역을 뜻하는 ‘역(譯)’ 외에 보충 설명을 의미하는 ‘주(注)’, 해석을 가리키는 ‘해(解)’ 등이 필요한 이유다. 고전은 흔히 몸에는 좋지만 먹기 어려운 쓴 약에 비유되곤 한다. 이럴 때 적절한 해설은 달콤한 설탕막을 씌운 ‘당의정’과도 같다. 최근 어려운 고전을 친절하게 해설한 책들이 눈에 띈다. 더위가 한 꺼풀 물러간 지금, 가을을 조용히 기다리며 고전의 향연을 음미해봄은 어떨는지. ◆난해한 주역 그래픽으로 알기 쉽게=유교 3개 경전 가운데 하나인 ‘역경’은 가장 오래된 경전이자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중국 시대마다 다른 역경이 전해졌는데, 주역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 역(易)이란 뜻이다. 역사상 유일하게 유가와 도가 학파에서 동시에 추앙받는 경전이자,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생명과학 분야 모두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고전으로도 불린다. 다만 그 방대함과 난해함으로 수많은 논쟁을 부른다. 중국 국학 연구 1인자로 통하는 장치청 북경교중의약대학 교수가 쓴 ‘주역 완전해석’(판미동)이 반가운 이유다. 역경 64괘 경문은 물론, ‘역전’의 단전, 상전, 문언전, 계사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 등 모두 7종 10편에 달하는 주역 원전 전체를 수록했다. 저자는 주역의 본뜻에 어긋나지 않게 원전을 해석하고 그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변용해 일상의 변화에 대응하는 원리, 길함을 따르고 화를 피해 가는 지혜를 제시한다. 입문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780여개 도판과 그래픽을 수록했다. ◆소통 관점에서 본 장자 쉽게 풀어내=중국 도가 사상가을 집대성한 장자(莊子)는 내편, 외편, 잡편으로 구성된다. 내편은 7편, 외편은 15편, 잡편은 11편이다. 내편은 장자의 정수다. 외편과 잡편은 내편의 사상을 해석한 책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정탁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교 교수가 최근 낸 ‘장자 내편’(성균관대학교 출판부)는 장자의 사상을 ‘소통’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저자는 이에 관해 “장자는 사람들 간의 소통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결국 사람과 자연과의 소통으로 귀결된다. 첫편 ‘소요유’ 주제가 소통이고, 뒤이은 ‘제물론’이 ‘호랑나비의 꿈’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호랑나비의 꿈’은 사람들이 꿈과 현실의 차이를 느끼지 않는 데에서 출발해 결국 삶과 죽음의 차이도 없다는 걸 보여주며, 그럼으로써 사람과 자연 간 소통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내편의 소요유·제물론·인간세를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으로, 양생주·덕충부·대종사·응제왕은 ‘인간과 자연과의 소통’을 다룬다고 설명한다. 장자가 인간끼리의 소통을 넘어서서 인간과 자연과의 소통까지를 목표로 한다고 덧붙인다. 질문을 던지고 이어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식으로 진행되는 저자의 글이 장자 속에 숨겨진 은유 등을 잘 알려준다. 형이상학적인 내용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어렵고 지루한 서양고전 핵심만 쏙=1971년 초판 출간 후 전 세계 26개 언어로 번역,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책 100선 가운데 하나. 존 롤스의 ‘정의론’이다. 신학에서 출발해 윤리학과 법학을 거쳐 경제학으로 완성된 장대하고 수미일관된 체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관한 설명이다. 이 책들은 유명하긴 하지만,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은 난해하고 지루한 책으로도 악명높다. 출판사 샘앤 파커스는 최근 ‘리더스 클래식’ 시리즈를 출간했다. 리더스 클래식은 ‘누구나 알지만 정작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고전을 쉽게 해석한 시리즈다. 첫 두 권으로 존 롤스 ‘정의론’과 애덤 스미스 ‘국부론’을 골랐다.이근식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의 핵심 내용을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애덤 스미스의 저작인 ‘도덕감정론’, ‘법학강의록’ 등에 담겨 있는 세계관을 구체적으로 살피고, 애덤 스미스 사상의 정수로 다가간다. 황경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해석을 맡은 ‘정의론’은 상식에 호소하는 직관적 이해 방식, 논증적 접근 방식이라는 방식으로 정의론에 접근토록 돕는다. 정의론의 본질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최소 수혜자에 대한 최우선 배려’, 그리고 ‘평등한 자유’와 ‘차등’의 두 원칙으로 구성되는 정의관도 알려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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