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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장’ 속으로 떠난 한국문학의 거장… “오직 글로 말한 예술가”

    ‘광장’ 속으로 떠난 한국문학의 거장… “오직 글로 말한 예술가”

    분단·현대사에 대해 깊이 고뇌해 온 삶 ‘회색인’부터 ‘화두’까지 작품에 오롯이 소설 ‘광장’ 205쇄 찍은 기념비적 작품남북한 체제와 이데올로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 ‘광장’으로 전후 한국 문학의 지평을 새롭게 연 소설가 최인훈이 별세했다. 네 달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던 작가는 23일 오전 10시 46분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84세. 최 작가는 1934년(공식 기록은 1936년) 함경북도의 두만강변 국경 도시 회령에서 태어났다. 목재 상인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해방과 더불어 원산으로 이주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벌어지자 가족과 함께 원산항에서 해군 상륙함을 타고 월남했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6학기를 마쳤지만 전후 분단 현실에서 공부하는 데 갈등을 느껴 1956년 중퇴했다. 생전에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크다”고 말했던 작가는 지난해 서울대 법학과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최 작가는 1959년 군 복무 중 쓴 단편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을 월간 ‘자유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듬해 4·19혁명이 일어나고 7개월 뒤인 1960년 11월 월간 ‘새벽’에 문제적인 소설 ‘광장’을 발표했다. 남한과 북한의 정치 현실에 모두 환멸을 느낀 주인공 이명준의 역정을 다룬 이 작품은 한국 현대문학사 최고의 고전으로 꼽힌다. 작품이 발표된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여전한 분단 현실 앞에서 작가는 낡지 않은 문제의식을 던진다. 2008년 등단 50주년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4·19는 역사가 갑자기 큰 조명등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 생활을 비춰 준 계기였기 때문에 ‘광장’은 내 문학적 능력보다는 시대의 ‘서기’로서 쓴 것”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최인훈 전집’을 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의 이광호 대표는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께서 최인훈 작가를 ‘전후 최대의 작가’라고 하셨는데, 전후 뿐 아니라 한국 문학사에서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이라면서 “한국이 처한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지닌 의미를 보편적이고 철학적이고 세계사적인 문맥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찰하게 해 준 작가”라고 말했다. 고인은 그간 시대의 존재론적 고뇌를 그린 ‘회색인’,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파격적 서사 실험을 선보인 ‘서유기’, 20세기인의 운명을 조망한 ‘화두’, 실험적 패러디 기법으로 고전을 새롭게 해석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의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길에 관한 명상’ 등을 남겼다. 동인문학상, 이산문학상, 박경리문학상, 서울시문학상,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등을 받았다. 이날 최 작가의 별세 소식에 문재인 대통령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조화를 보내 애도했다. 수많은 동료, 후배 문인들의 애도도 이어졌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병익 문학평론가는 “작가로서 영향력이 컸지만, 문학권력이라고 할 만한 건 전혀 없었다”며 “오직 글만 쓰고 문학으로만 말한 예술가”라고 말했다. 공지영 작가는 트위터에 “책갈피를 넘기며 생각들이 떡갈나무 이파리들처럼 펄럭이게 했던 선배님 고이 잠드소서. 남은 후배들이 통일의 문학을 할 수 있게 빌어주소서”라고 애도 메시지를 올렸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희씨와 아들 윤구씨, 딸 윤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이다. 장례는 ‘문학인장’으로 치러진다. (02)2072-2091.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뉴스 분석] 검은돈, 정치인 그리고 도덕성

    [뉴스 분석] 검은돈, 정치인 그리고 도덕성

    특유의 촌철살인으로 부정부패 비판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국민들 충격23일 아침 날아든 노회찬(62) 정의당 의원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은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평소 특유의 익살 섞인 독설로 부정부패를 앞장서 비판해 왔던 노 의원이기에 검은돈 의혹 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 ‘설마’ 하며 믿고 싶지 않았던 여론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것은 어쩌면 노 의원이라는 정치인 자체가 정의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의 부정부패에 넌더리가 난 국민들은 차라리 노 의원이 사법당국에 출두해 명쾌하게 혐의를 부인해 주기를 바랐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국민들의 인지부조화를 해소해 주는 대신 노 의원은 죽음으로 진술을 대신하는 쪽을 택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 댓글조작 사건의 주범 ‘드루킹’ 김동원(49·구속 기소)씨 측으로부터 5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의혹을 받은 노 의원은 허익범 특별검사팀의 소환 조사를 앞두고 이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노 의원은 이날 오전 9시 38분 서울 중구에 있는 남동생의 아파트 1층 현관 앞에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해당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 계단에서 노 의원의 유서 등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투신한 것으로 추정된다. 노 의원은 이날 아침 정의당 상무위원회 회의에 이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일정을 취소한 채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비보가 전해졌다. 노 의원은 ‘드루킹 관련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유서를 통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고 함으로써 뇌물로 인식하고 받지는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평소 기업의 불법 정치자금 등 정경유착에는 민감했던 그가 다른 경로로 돈을 받는 데는 상대적으로 엄격하지 않았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 회자되고 있다. 실제 노 의원은 유서에서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 후원 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고 했다. 과거 노 의원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훨씬 파렴치하게 받은 정치인들과 비교하면 노 의원의 혐의는 무겁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엄격한 도덕률이 요구되는 진보 진영,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청렴 정치인으로 인식된 노 의원이었기에 작은 흠결도 치명타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노 의원의 별세가 특히 더 안타까운 점은 진보 정치를 대중에게 뿌리내리게 한 공로가 있음에도 별생각 없이 정치자금을 받은 뒤 진보는 깨끗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라고 했다. ‘촛불혁명’ 이후 국민들이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도덕률이 높아진 점도 노 의원에게 남다른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작은 불법이라도 스스로 삼가지 않으면 누구든 검은돈의 사슬에 걸릴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정치권에 새삼 던져준 것이다. 노 의원은 유서에서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광장’ 최인훈 작가 84세 일기로 타계…한국 현대문학 거목

    ‘광장’ 최인훈 작가 84세 일기로 타계…한국 현대문학 거목

    소설 ‘광장’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으로 한국 현대문학사의 거목으로 우뚝 선 최인훈 작가가 23일 오전 10시 46분 타계했다. 84세. 최인훈 작가는 4개월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가족들의 임종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1934년(공식 출생기록은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등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국군을 따라 남쪽으로 왔다. 아버지는 목재상이었고, 집안이 제법 부유한 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 6학기를 마쳤지만 1956년 중퇴했다. 전후 분단 현실에서 공부에 전념하는 데 갈등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58년 군에 입대해 6년간 통역장교로 복무했다. 군 복무 중인 1959년 단편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을 ‘자유문학’지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듬해 4·19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7개월 뒤인 1960년 11월 ‘새벽’지에 중편소설 ‘광장’을 발표했다. ‘광장’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정면으로 다루며 그 안에서 실존을 고뇌하는 개인을 그려내 당시 문학계에 큰 파문을 던졌다. 고인은 자신의 대표작 ‘광장’에 대해 “4·19는 역사가 갑자기 큰 조명등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 생활을 비춰준 계기였기 때문에 덜 똑똑한 사람도 총명해질 수 있었고, 영감이나 재능이 부족했던 예술가들도 갑자기 일급 역사관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광장’은 내 문학적 능력보다는 시대의 ‘서기’로서 쓴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작품이며, 출간 이후 현재까지 통쇄 204쇄를 찍었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최다 수록 작품이며, 대학수학능력시험 지문으로 두 번이나 출제됐다. ‘광장’ 외에도 ‘회색인’(1963), ‘서유기’(1966), ‘총독의 소리’(1967~1968) 연작, ‘화두’(1994),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크리스마스 캐럴/가면고’, ‘하늘의 다리/두만강’, ‘우상의 집’ 등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길에 관한 명상’ 등의 작품을 냈다. 고인은 그 문학성을 인정받아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받았다. 고인은 2003년 계간지에 발표한 단편 ‘바다의 편지’를 끝으로 새 작품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2008년 신판 ‘최인훈 전집’ 발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에서 “한 권 분량의 새 작품집을 낼 만한 원고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듬해 자신의 희곡이 올려진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은퇴란 없다.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많은 문인 제자를 배출했으며 퇴임 이후에도 명예교수로 예우받았다. 대학에서 오랜 세월 후학들을 길러냈으면서도 정작 본인은 대학을 제대로 마치지 않았던 데 대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상의 혜택을 줬는데도 누리지 못한 그때의 내가 너무 밉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크다”고 깊이 아쉬워하기도 했다. 결국 2017년 2월 24일 서울대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며 오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희 여사와 아들 윤구, 윤경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02-2072-2020)에 차려진다. 이날 오후부터 조문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장례는 ‘문학인장’으로 치러지며, 위원장은 문학과지성사 공동창립자이자 원로 문학평론가인 김병익이 맡았다. 영결식은 25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내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시간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발인은 영결식 이후, 장지는 ‘자하연 일산’(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 456)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한반도 폭염 8.2일→13.7일…‘한증막 더위’ 일상이 됐다

    한반도 폭염 8.2일→13.7일…‘한증막 더위’ 일상이 됐다

    지난 11일 이후 일 최고기온 33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일엔 올 들어 처음 내륙지방 전 지역에 ‘폭염특보’(주의보·경보)가 발령됐고, 특히 서울은 22일까지 사흘 연속 오존주의보마저 내려졌다. 올해 폭염(낮 최고기온 33도)일수가 역대 가장 길었던 1994년(31.1일)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서울신문은 지구온난화의 ‘역습’과 이에 따른 우리의 대응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한반도의 폭염 현상은 편차가 있지만 증가세가 뚜렷하다. 22일 환경부에 따르면 1980년대 8.2일이던 폭염일수가 1990년대 10.8일, 2000년대 10.4일, 2010년대 13.7일로 늘었다. 2011~2017년 연평균 온열 질환자가 1132명 발생했고, 이 중 사망자도 11명이나 됐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기후변화로 인한 아시아 지역 리스크로 홍수, 가뭄과 함께 폭염을 들었다. ●북유럽 가뭄·日 폭우… 지구촌 이상기후 몸살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의 2016년 기후현황 보고서는 2016년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했다. 해수면 높이는 6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고 해수면 온도는 1981~2010년과 비교해 평균 0.65~0.71도 상승했다. 캐나다 퀘벡에서는 올해 6~7월 고온과 습도로 수십명이 사망했고 북유럽은 가뭄에 시달리는 등 이상기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지난 5~8일 태풍 쁘라삐룬이 역대 최고인 1050㎜의 비를 뿌려 200여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태풍 규모가 커지고 이동 속도가 느려지면서 호우가 집중됐다. 지난해 뉴질랜드에서는 500년 만의 홍수로 주민 2000여명이 대피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하비’가 역대 최고인 1320㎜의 비를 몰고 와 인명 피해뿐 아니라 180조원에 이르는 재산 피해를 낳았다. 한반도 상황도 심각하다. 1~2월 한파와 4~5월 이상 고온, 6월 가뭄, 7월 폭염, 지역적 편차가 심한 장마 등의 이상기후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이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 대형 산불과 대기질 악화, 어업 생산량 감소 등이 이뤄지고 있다. 기후변화가 지구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오래됐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인 석탄·석유·가스 등과 같은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기 위한 각국의 노력은 이제야 첫걸음을 내디뎠다. 2015년 12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는 신기후 체제 합의문인 ‘파리협정’을 채택했다. 신기후 체제는 온실가스 배출 감소, 기후변화 대응 재원 조성 등을 통해 환경과 경제·사회 발전의 조화를 이루는 ‘지속가능 발전’을 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제사회는 장기 목표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기로 했다. ●온실가스 탓 기후변화… 국제사회 감축 박차 한국은 2015년 기준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11.58t) 세계 6위, 국가 배출량(5억 8600만t) 7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이 최고 수준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배출 전망치(BAU·8억 5080만t) 대비 37%(3억 1480만t)를 줄이는 내용의 기본 로드맵을 2016년 발표했지만 이행 의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제기되자 ‘수정안’을 내놨다. 배출 목표인 5억 3600만t을 유지하되 이행 방안이 불확실했던 국외 감축량을 줄이고(4.5%) 국내 감축을 확대하기로 했다. 유승직 숙명여대 기후환경융합학과 교수는 “국내 온실가스 감축은 ‘탈석탄화’가 관건”이라며 “천연가스로 전환하면 비용이 상승하겠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을 5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정부 “폭염도 자연재난”…온열질환 피해 보상 길 열리나

    정부 “폭염도 자연재난”…온열질환 피해 보상 길 열리나

    행안부 “관련 법 심의 때 찬성할 것” 법 개정 땐 체계적 폭염 대응 가능해져정부가 폭염도 자연재난에 포함된다고 인정했다. 기존 ‘아니다’라는 입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앞으로 정부 차원의 폭염 대책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대응정책관은 22일 “내부적으로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했다”면서 “국회에서 관련 법 심의 때 폭염을 재난에 포함하는 데 찬성 의견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포함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이 의원 발의로 여러 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현재 재난안전법상 자연재난으로는 태풍, 홍수, 호우, 강풍, 대설, 해일, 황사, 화산, 소행성 등이 지정됐지만 폭염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온열환자가 속출하면서 폭염도 자연재난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정부 입장은 달랐다. 지난해 류희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폭염·혹한은 재난에 준해 관리 중이고 필요한 조치는 하고 있다”면서 “현재로선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1년 만에 정부 입장이 바뀐 것은 최근 폭염 피해가 전국에서 속출하고, 보다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2~15일 온열환자 285명이 발생했고, 이 중 2명이 사망했다. 이달 말까지 폭염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피해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의원 발의 법안에 정부가 찬성표를 던지고 법 개정이 이뤄지면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 등에 따라 폭염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이 이뤄질 수 있다. 온열질환 때문에 사망한 사람이나 폐사한 가축에 대해 피해 보상도 가능해진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전자랜드, 필리핀 클럼팀 꺾고 ‘3위’로 서머슈퍼8 마무리

    전자랜드, 필리핀 클럼팀 꺾고 ‘3위’로 서머슈퍼8 마무리

    전자랜드가 아시아 클럽대항전에서 3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전자랜드는 22일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돔에서 열린 2018 아시아리그 서머슈퍼8(summer super8) 3~4위전에서 NLEX 로드 워리어스(필리핀)를 67-62로 꺾고 3위를 차지했다. 삼성과 맞붙었던 4강에서 패해 우승은 놓쳤지만 유종의 미를 거뒀다. 3위팀에겐 상금 1만달러(약 1135만원)가 주어진다. 서머슈퍼8은 아시아 5개국 8개팀이 나선 클럽대항전으로서 한국 프로농구에서는 삼성과 전자랜드가 출전했다. 정효근이 13득점 6리바운드 2블록을 기록했고, 김상규도 11득점 4리바운드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홍경기는 12득점, 정영삼은 11득점을 보탰다. 전자랜드는 시작하자마자 내리 5점을 내줬지만 이내 박성진의 연속 득점과 교체투입된 홍경기의 자유투와 점프슛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필리핀 원정팬들의 응원 열기 때문인지 초반에 다소 밀렸지만 선수들의 적극적인 수비로 금세 따라잡았다. 1쿼터를 2분 34초 남기고는 정병국의 레이업 슛으로 11-9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부터는 단 한 번도 리드를 내주지 않았다. 전자랜드는 2쿼터 초반부터 김상규의 3점슛을 앞세워 분위기를 가져왔다. 2쿼터 종료 3분 1초전에는 정효근의 3점슛으로 32-22로 점수차를 벌렸다. 상대의 공격도 효과적으로 막아내며 7점차(34-27)로 전반을 마무리지었다. 3쿼터에는 김상규의 3점슛으로 전자랜드는 45-29까지 달아났다. 낙승을 거두나 싶었으나 NLEX가 갑자기 힘을 내 3쿼터 종료 3분 3초를 남기고는 45-42, 3점차로 쫓기며 이번 경기 최대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3쿼터 막판에 정효근과 박봉진이 각각 득점에다가 반칙으로 얻은 자유투까지 성공시키며 한숨을 돌렸다. 4쿼터에는 NLEX 데이브 마르첼로가 박봉진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해 퇴장 명령을 받는 어수선한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종료 10초를 남기고는 65-62로 격차가 줄었다. 그럼에도 전자랜드는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경기 막판 김낙현이 반칙으로 얻은 자유투를 모두 성공시켜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전자랜드는 23일 마카오에서 휴식을 취한 뒤 귀국할 예정이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무더위 날리는 조선 여성, 조선 무인, 조선 사람들 이야기

    무더위 날리는 조선 여성, 조선 무인, 조선 사람들 이야기

    조선시대를 다룬 신간이 잇따라 출간돼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여성, 조선시대 무인, 그리고 조선시대 특이한 이들을 다룬 책들이다. 조선의 풍속, 행정, 문화, 사람 이야기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 시대상을 보여준다. 무더운 여름, 이들의 삶을 살펴보고 당시 시대에 관한 시야도 넓혀보는 것은 어떨까.30여 년간 한국 여성사 연구에 전념한 장병인 충남대 명예교수가 쓴 ‘조선 여성의 삶’(휴머니스트)은 조선시대 혼인, 이혼, 간통, 성폭행을 둘러싼 법과 풍속을 세세하게 살핀 책이다. 그동안 잘못 알려진 인식에 관해 자료로 이를 바로 잡는다. 예컨대 조선시대 이혼에 관해 일제강점기 한국학자 이능화는 ‘조선여속고’에서 “국법에 그 내용이 없다”면서 “사대부 집안 여성이 이혼하려면 왕에게 허락 받아야 한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저자는 ‘대명률’과 ‘경국대전’ 항목을 들어 반박한다. 이에 따르면 합법적인 이혼을 가리키는 ‘이이’를 비롯해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기된 상황을 가리키는 ‘출처’, ‘기별’, ‘거처’ 등 용어가 사용됐다. 오늘날처럼 부부 합의로 이혼하는 사례를 비롯해 부부 의사와 관계없이 국가가 강제로 부부를 갈라서게 하는 ‘강제 이혼’이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저자는 또 조선시대 성폭행의 실상을 들여다보고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출신 성분, 범죄 내용, 처벌 양상 등을 신분별로 조선 전·후기를 나눠 상세하게 분석한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과 재판기록인 ‘추관지’, ‘심리록’ 등을 근거로 113건의 관련 사건을 다룬다. 여기에 드러난 조선시대 강간 범죄의 양상이 생생하다. 저자는 이와 관련 “‘남존여비’ 통념이 형성된 배경에 서구중심주의적 사고, 그리고 아직도 불식되지 않은 식민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은 조선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한 모든 전근대사회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었으며,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고 식민사관과 결합하면서 잘못된 인식이 만연했다는 지적이 날카롭다.1600년부터 제도가 폐지된 1894년까지 무관을 뽑는 시험인 무과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조선 무인의 역사’(푸른역사)도 눈여겨볼 만하다. 임진왜란 이후 조정에서는 공로가 있는 백성을 위로하려고 이전과 달리 무과를 대규모로 시행했다. 무과에 서얼이나 노비까지 응시했고, 무과에 합격하더라도 무관이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은 나름 알려졌다. 실제로 1609년부터 1894년 시행된 무과 가운데 254번의 무과를 치렀는데, 한 번에 100명이 넘는 합격자가 나오기도 했다. 이 중에서는 실제로 활을 쏘지 못하더라도 합격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 의도 역시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저자는 그럼에도 왜 백성이 끊임없이 무과에 응시했는지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과 문·무과 합격자 명단을 가리키는 ‘방목’ 자료를 분석해 결론을 얻는다. 피지배층에게 조금씩 문호를 양보하며 체제불만이라는 충격을 흡수했다는 것이다. 저자인 재미학자 유진 Y. 박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미국에서 2007년 낸 책에 추가 자료를 보완해 국내에 출간했다. 조사를 위해 조선시대 전체 무과급제자 5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2327명의 무과 급제자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연구했다. 방대한 자료로 촘촘히 분석한 책이라 가치 있다.안세현 강원대 한문교육과 교수가 낸 ‘傳, 불후로 남다’(한국고전번역원)는 조선 문인이 쓴 ‘전(傳)’ 가운데 교훈을 주거나 흥미있는 글을 뽑아 주제별로 엮은 책이다. ‘전’은 인물의 선행과 미덕을 담은 문체로, 지금으로 치면 ‘전기’에 해당한다. 조선 초반에는 모범이 되는 인물에 관한 전기가 많았으나, 후대로 갈수록 삶의 양상이 복잡해지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룬다. 책은 문인들이 글로 남긴 33인의 삶을 풀어내고, 저자가 해설을 붙였다. 이 가운데 우리가 예상치 못한 독특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자못 흥미롭다. 예컨대 전쟁 포로 조완벽은 정유재란 때 왜군에게 잡힌 뒤 포로가 돼 일본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노비로 일하다 주인을 따라 지금의 베트남인 ‘안남국’을 가게 된다. 죽음을 무릅쓰고 간 그가 안남국으로 향하며 항해를 기록한 이야기라든가, 머리가 긴 안남국 사람들을 묘사하는 부분이 아주 흥미롭다. 그는 ‘긴 밧줄에 철추를 매달고 그 밑에 밥을 으깨 붙여서 바다 밑으로 내려 보냈는데, 더러는 곧장 3·4백발 정도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철추 아래 묻어 나오는 흙은 검거나 희었는데, 흙 색깔로 어느 지방인지 분별하였다’고 했다. 안남국 사람에 관해서는 ‘모두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고 맨발로 다녔다. 겨울에도 봄처럼 따뜻해서 맨발로 다녀도 발에 상처가 나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특히 ‘조선에서 왔다’고 하자 ‘이지봉을 아느냐’면서 안남국 사람이 이지봉의 시를 줄줄 외는 모습도 나온다. 책은 충신, 효자와 같은 전형적인 인물부터 여군자, 기인, 은둔자, 협객, 과학자, 예술가, 골동품 수집가, 귀화인, 득음한 가수, 침술의 대가를 비롯해 다양한 인물을 다룬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에 더위가 날아갈 듯 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부친상 중에 판결문 읽은 김명수 대법원장

    부친상 중에 판결문 읽은 김명수 대법원장

    갑작스러운 부친상을 당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상(喪) 중에 법정으로 출근했다.김 대법원장은 19일 오후 2시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3건의 전원합의체 선고 공판에 참석했다. 전합 사건은 대법원장이 재판장 역할을 맡는다. 사회적 여파가 큰 사건이거나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는 사건이 전합에 회부된다. 앞서 김 대법원장은 부친인 김종락씨가 지난 17일 오전 별세하자 부산시민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하고 상주 노릇을 했다. 당초 발인이 20일 오전으로 예정돼 있어 김 대법원장이 이날 전합 선고에 참석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이 예상을 깨고 직접 참여한 것이다. 평소보다 수척해진 모습으로 대법정에 나타난 김 대법원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판결 이유와 주문을 읽었다. 선고 절차를 마무리한 김 대법원장은 곧바로 부산으로 돌아가 부친의 발인 절차를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법원장이 전합 선고에 참석한 것은 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전합의 중요성을 감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합 선고 일정은 오래전 정해져 당사자에게도 공지된 사항이라 부친상이라 하더라도 시간을 내 참석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문화마당] 양성평등 사각지대인 문화예술행정/박조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문화마당] 양성평등 사각지대인 문화예술행정/박조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전통적으로 문화예술 분야는 정계, 재계, 학계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한 분야로 꼽힌다. 지금이야 집권 여당 대표가 여성이고 이름을 날리는 여성 기업인, 학자들이 많지만 과거 손꼽을 만한 여성 정치인, 기업인, 학자가 없던 때에도 여성 문인, 여성 화가 등 여성 문화예술인은 차고 넘치게 많았다.과거 정계, 재계, 학계 등이 남성들만의 리그였다면 문화예술계는 그나마 여성의 비율이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는 문화예술계가 여성들이 성차별을 덜 받고 능력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럼 문화예술행정은 어떨까? 문화예술계가 상대적으로 여성들의 능력이 인정되는 분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문화예술행정에서도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이 다른 행정 분야에 비해 높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논리적일 것이다. 그래서 살펴봤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는 말, “이거 실화냐?”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우리나라 문화예술행정을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정무직 공무원은 세 명이다. 장관과 차관 2명. 모두 남성이다. 물론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하지만 두 명의 차관 가운데 한 명 정도는 여성으로 임명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무직에 가까운 차관보가 여성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보면 아쉽다. 문체부 본부에는 21개의 실국장 자리가 있다. 그 가운데 문화정책관과 예술정책관은 현재 공석이다. 그러니까 현 문체부 본부에 19명의 실국장이 있다는 얘기다. 그럼 여기서 예상해서 맞혀 보기 퀴즈 하나. 현직 실국장 19명 가운데 여성은 몇 명이나 될까. 그래도 서너 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러면 15~20% 정도? 그런데 아니다. 그렇게 많지 않다. 서너 명이 많은 거라면 그래도 두 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10% 정도로 낮춰 잡으면 맞을 거라는 예상. 그런데 실상은 놀랍게도 0%다. 실국장급 19명 가운데 여성은 한 명도 없다. 문체부 본부 조직도를 보면 과장급이 55명인데 그 가운데 여성은 11명이다. 정확히 20%다. 그나마 실국장급에 비한다면 여성의 비율이 높기는 한데 그래도 남성 편중이 너무 심하다. 그렇다면 문체부 소속 기관은 어떨까. 소속 기관은 국가 기관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해외문화홍보원, 국립국악원, 국립민속박물관, 국립중앙극장,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16개 기관이 있는데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본다면 문체부 본부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 기관장이 공석인 국립중앙극장과 국립민속박물관을 제외한 14개 소속 기관의 기관장들 가운데 여성은 그나마 국립국악중고등학교장 단 한 명뿐이다. 비율로 따지면 겨우 6% 정도다. 문체부 홈페이지에 링크돼 있는 46개 산하, 유관 기관들 역시 양성평등의 사각지대에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위원 8명이 모두 남성이다. 과거 2~3명의 여성 위원이 임명됐던 것을 감안하면 양성평등은 오히려 후퇴한 것 아닌가. 미디어산업 진흥과 정부 광고 대행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이사장 이하 모든 경영진이 남성으로 채워져 있다. 획일화된 체제에서는 문화예술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문화예술행정이 남성 위주의 획일화된 체제에서 벗어나 양성평등을 지향하도록 함으로써 여성들이 문화행정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 주길 고대한다. 국무위원만 여성 할당을 제도화할 것이 아니라 문화행정에도 여성 할당을 제도화할 필요는 없을까?
  • [이정수의 덕업일치] 빅뱅·블랙핑크 가는 구내식당 줄 서기도 ‘소확행’

    [이정수의 덕업일치] 빅뱅·블랙핑크 가는 구내식당 줄 서기도 ‘소확행’

    서울신문 창간 114주년, 한층 젊어진 지면 개편과 함께 ‘덕후’(마니아) 기자가 시작하는 ‘덕업일치’ 첫 회. 덕업일치는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게 됐다는 뜻의 신조어다. 남몰래 아이돌 전문가를 꿈꾸다 문화부에 갓 입성한 기자가 연예계를 동분서주하며 ‘성덕’(성공한 덕후)에 이르는 길을 밟아 갈 예정이다. 아이돌 팬이라면 그들이 땀 흘리던 연습실, 매일 오가는 일터가 가장 궁금한 것은 당연한 일. 케이팝 한류의 주역들인 아이돌 기획사들을 차례로 탐방하는 것으로 연재를 시작한다.첫 회에서 찾아간 곳은 1996년 설립된 국내 최고의 연예 기획사 중 한 곳인 YG엔터테인먼트다. 찜통더위가 이어진 지난 17일 한낮에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YG 본사를 찾았다. ‘뚜벅이’ 기자가 합정역에 내려 한강 방향으로 10분쯤 걷자 주택가 골목 사이로 YG 사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2010년 완공 당시부터 독특한 외관으로 화제를 불러모았던 건물이다. 방송 등에 꾸준히 소개된 곳이라 외관만큼은 내 집처럼 익숙했다. 사옥에 몇 걸음 더 다가가자 정문 맞은편 편의점 앞에 한눈에도 팬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가 보니 여남은 명의 외국인. 그중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중국 랴오닝성에서 친구와 함께 왔다는 시통허(19)양은 “6년째 빅뱅 지드래곤의 팬”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드래곤이 군대에 가 있어 보지 못할 걸 알지만 그의 소속사인 이곳에 꼭 와보고 싶었다”며 “팬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들러야 할 핫플레이스”라고 말했다. YG 사옥 방문은 두 번째로 한국에 왔다는 그가 한국을 찾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외국 팬들이 서 있는 곳 뒤편 주택 담벼락엔 YG 소속 가수 이름, 팬의 이름, 하트 표시 등 낙서가 빼곡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수년 동안 덧씌운 낙서로 더 쓸 공간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YG 소속 아이돌들이 회사에 올 때면 그 시간을 귀신같이 아는 팬 수십명이 북적이는 일도 많다고 한다. 회사 앞에 진을 치고 있는 팬들 때문인지 사옥 현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경비실에 소속과 이름, 연락처, 방문 목적, 서명 등을 적어서 내고 YG 로고가 새겨진 출입증을 받았다. 미리 연락한 회사 관계자가 내려온 뒤에야 사옥 안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YG 사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오래전부터 합정동 맛집으로 유명세를 탄 구내식당일 것이다. 최근 JYP엔터테인먼트가 강동구 성내동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훨씬 큰 규모로 구내식당을 마련하긴 했지만 지난 8년간 가수 기획사 유일의 구내식당으로 명성을 떨쳐 온 곳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YG에 왔는데 지하 1층 구내식당 밥맛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초복인 이날 메뉴는 삼계탕이었고 낮 12시부터 2시까지인 점심시간 내내 식당이 붐볐다. 한쪽 까만 벽면 전체에 물이 흘러내리는 게 인상적인 아늑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의 식당은 30여석의 크지 않은 규모라 평소에도 줄을 서서 먹는 때가 많다. 지하 1층에는 아이돌들이 땀 흘리며 춤을 추는 공간인 연습실이 두 곳 있다. 지난달 새 앨범을 내고 왕성히 활동 중인 블랙핑크가 콘서트 준비까지 하고 있어 한 곳은 요즘 거의 블랙핑크 전용 연습실로 쓰이고 있다. 연습실 앞 지하로 들어가는 좁은 복도에 검은색 여행가방 20여개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게 독특했다. 소속 아티스트들의 의상을 담아 나르는 가방이라고 한다. 회의실 세 개가 나란히 있는 6층에는 YG 대표 아티스트들의 대형 사진이 차례로 전시돼 있었다. 초창기의 지누션, 원타임부터 위너, 아이콘에 이르는 소속 가수뿐 아니라 배우 강동원, 코미디언 유병재 등의 사진이 보였다. 복도 끝 회의실에 들어가 보니 고급스러운 대리석 인테리어가 양현석 대표의 취향을 반영하는 듯했다. 정남향 통유리 너머로는 한강 조망이 넓게 펼쳐졌다. 저만치에 여의도 국회의사당도 내려다보였다. 꼭대기층인 7층에는 양 대표의 집무실이 있고, 나머지 층은 대부분 사무실로 쓰인다. 녹음실은 프로듀서 등 소수의 관계자에게만 접근이 허용된다고 했다.사옥 바로 옆에서는 내년 이맘때쯤 완공될 예정인 신사옥 공사가 한창이었다. 신사옥은 대지 3145㎡에 연면적 1만 8905㎡의 지하 5층, 지상 7층 빌딩으로 지어진다. 공사 금액만 약 458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양 대표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신사옥 모형과 조감도를 공개하기도 했다. 본사 직원만 400명가량인 YG는 사옥이 좁아 인근 건물 등에 일부 세 들어 살고 있다. 신사옥이 완공되면 16개에 이르는 계열사 일부도 입주할 전망이다. tintin@seoul.co.kr
  • [길섶에서] 술, 숙명인가/김성곤 논설위원

    “요즘도 그렇게 약주를 즐기시나요.” “허허 술은 숙명이지요.” 아주 오래전 한 라디오 아침 프로에 출연한 문인이 진행자와 나눈 대화 한 토막이다. 술이 덜 깬 듯 탁한 목소리에 실려 전해진 그 말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동서고금을 떠나서 술이 숙명인지는 모르지만, 숙제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술에 먹힌 사람도 있고, 술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술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은 입에 문 시가가 연상되지만, 애주가이기도 했다. 그는 “술이 내게서 빼앗아간 것보다 내가 술에서 얻은 유익함이 더 많다”고 말하곤 했다. “술 마시는 것이 죄악이라는 책을 읽고 난 뒤 난 독서를 포기했다.” 영국의 코미디언이자 영화배우였던 헤니 영맨의 얘기이다. 낭만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알코올과 물의 조합일 뿐인데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 끝은 쓰다. 그러나 술의 경계는 모호하다. 약의 다음 단계이거나 독의 전 단계쯤 되는가. 안타깝지만, 술은 우리의 많은 이웃을 앗아가고 아프게 한다. 그제도 우리와 너무도 친숙한 이웃 하나를 보냈다. 문상을 다녀온 뒤 우리는 술과 너무 친해 헤어나지 못했던 그를 추억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숙명인가. sunggone@seoul.co.kr
  • 법원행정처 사라질까···법원 안팎 인사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 신설 추진

    대법원 사법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대신 법원 안팎의 인사들로 구성된 가칭 ‘사법행정회의’가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대법원 산하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는 17일 6차 회의를 열고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사법행정에 관한 총괄기구로 사법행정회의를 설치하는 내용의 건의안을 채택했다. 건의안에 따르면 대법원장이 기존에 행사하던 사법행정 관련 권한을 새로 구성된 사법행정회의가 수행한다.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회의 결정을 집행하는 법원사무처로 축소된다. 법원사무처는 사법행정회의의 운영을 지원하고 대법원장과 사법행정회의가 위임한 일상적 행정사무와 재판지원 업무만을 담당하게 된다. 의장은 대법원장이 맡는다. 위원은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위원 중 판사는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추천을 받도록 했다. 이와 함께 법원사무처에는 법원행정처와 달리 상근 판사를 두지 않거나 최소화하기로 했다. 단순한 사법행정 사무나 재판지원 업무는 전문인력에 맡기고, 일부 보직은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 등 법원 외부에 개방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원회는 법관인사운영위원회를 신설해 판사의 보직인사에 대한 심의를 전담하도록 할 것도 건의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유엔 안보리 “북한산 석탄 지난해 2차례 한국서 환적”/사실이라면..대북 제재 위반/

    /유엔 안보리 “북한산 석탄 지난해 2차례 한국서 환적”/사실이라면..대북 제재 위반/

    북한산 석탄이 지난해 10월 2일과 11일 각각 인천과 포항에서 ‘환적’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의 소리(VOA)방송은 16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이 최근 공개한 ‘연례 보고서 수정본’을 인용해 러시아 콤스크항에서 실린 북한산 석탄이 인천과 포항에서 환적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북한산 석탄의 최종 기착지는 어디인지는 아직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선박들이 지난해 7월과 9월 사이 총 6차례 북한 원산과 청진항에서 석탄을 싣고 러시아 홀름스크항으로 향했다. 이후 홀름스크항에 하역된 석탄은 파나마 선적인 스카이 엔젤호와 시에라리온 선적의 리치 글로리호 등에 옮겨 실려 제3국으로 출발했다. 이 가운데 10월 2일 ‘스카이 엔젤’에 실린 북한산 석탄은 인천에 도착했고, 같은달 11일에는 ‘리치 글로리’가 북한산 석탄 총 5000t을 싣고 포항에 정박했다. 포항에 도착한 석탄은 t당 65달러로 계산된 32만 5000달러어치이다. VOA는 전문가패널에 이번 수정이 최초 보고서 작성 당시 실수 때문인지, 한국 등 특정 국가의 요청 때문이었는지 문의했지만 현재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16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좀 더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유보적인 대답만 했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해 8월 채택한 결의 2371호를 통해 석탄을 포함한 북한산 광물에 대한 전면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다. 따라서 북한의 석탄이 러시아에 유입된 것은 물론 이후 한국에까지 들어온 것이 사실이라면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한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은 16일부터 8월 4일까지 3주간 유엔 회원국들의 대북제재 결의 이행과 관련한 2018년 중간 보고서 작성 회의를 연다. 패널에 소속된 8명은 이번 회의에서 유엔 회원국들이 그동안 제출한 제재결의 이행보고서를 분석할 예정이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인천 화재’가 커진 이유는?… “사람 키 두배 만큼 쌓인 고무매트 때문”

    ‘인천 화재’가 커진 이유는?… “사람 키 두배 만큼 쌓인 고무매트 때문”

    인천 서구의 한 합성수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이유는 사람 키의 두배 만큼 쌓인 고무매트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천소방본부는 17일 이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고무발표수지류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급격하게 확산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 공장은 포장 완충재, 보온 단열재 등을 만드는 곳으로 원료가 되는 고무발포수지류 등을 공장 내부에 적재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진압에 나섰던 한 의용소방대원은 “형형색색의 고무 매트가 사람 키 두배 정도로 공장 주변에 곳곳에 쌓여 있었다”며 “이 매트가 특히 불에 잘 타는 성질이어서 급속도로 불길이 번졌고, 열기로 인해 진화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진화 당시 공장 곳곳에 천막이 쳐진 작업 공간이 마련돼 있어 방화 구획이 없었고, 건물간 이격거리도 협소했던 점도 불을 키운 원인으로 지목됐다. 소방 관계자는 “도로 곳곳에 상당한 높이로 고무 매트가 쌓여 있는데다, 공장 내부 곳곳에 설치된 작업공간 때문에 더 빠르게 불이 번진 것”이라며 “이 탓에 소방차 진입에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불은 전날 오후 11시40분 발생해 공장 건물 전체 4개동(3866㎡) 중 3개동을 태웠으며 나머지 1개동(기숙사)과 인근의 가구·금속가공 공장 일부를 태웠다. 당시 기숙사에 외국인 노동자 등 5명이 있었으나, 긴급 대피시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은 화재 발생 4시간 만인 17일 오전 3시43분께 큰 불길을 잡았다. 하지만 화재 구역이 광범위해 대응 1단계를 유지한 채 잔불을 정리하며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소방 관계자는 “공장 직원들이 작업하던 도중 공장 외부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봤다는 진술을 확보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473위 무명 반란

    473위 무명 반란

    PGA 생애 첫 우승… 215위로 껑충‘아마추어 기대주’였던 재미교포 마이클 김(25·한국명 김상원)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데뷔 3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에 올라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이날 그의 우승으로 PGA 투어에서는 지난주 밀리터리 트리뷰트의 케빈 나(35·한국명 나상욱)에 이어 2주 연속 교포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마이클 김은 16일 미국 일리노이주 실비스의 TPC 디어런(파71·7268야드)에서 열린 존 디어 클래식(총상금 580만 달러)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5타를 줄여 최종 합계 27언더파 257타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공동 2위인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이탈리아), 브론슨 버군(미국) 등 4명과 8타 차가 나는 압도적인 승리였다. 2015~16시즌부터 PGA에서 활동한 그는 투어 통산 84번째 대회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그는 향후 2년간 투어 시드와 다음주 브리티시오픈(디 오픈) 출전권을 확보했다. 세계 랭킹도 473위에서 215위로 258계단 뛰었다. 그가 이번 우승으로 챙긴 상금은 이번 대회 전까지 받은 상금을 모두 합한 28만 1986달러에 4배 가까운 104만 4000달러(약 11억 7000만원)다. 마이클 김은 이번 대회 3라운드까지 22언더파 191타로 5타 차 선두를 달리며 앞서 나갔다. 4라운드에선 첫 홀(파4)에서 약 4m 버디 퍼트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3번 홀(파3)까지 버디 행진을 이어 갔고 2위 그룹과 7타 차로 벌리며 독주 체제를 굳건히 했다. 마이클 김은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을 가졌다. 7세 때인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로 이민을 가 초등학교 때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 명문인 UC버클리에 진학한 그는 대학시절 전미 대학 개인 랭킹 1위에 오르며 미국대학스포츠협회의 ‘잭 니클라우스 상’을 받는 등 기대주로 꼽혔다. 2013년 US오픈에서는 아마추어 선수 중 가장 높은 공동 17위에 올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마이클 김은 대회를 마친 뒤 인터뷰에서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잠을 거의 못 잤다”며 “수백만 가지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맴돌아서 그런 생각을 지우려고 애썼다”고 첫 우승을 앞두고 떨렸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는 이어 “우승 트로피 옆에 앉아 있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18번 홀 그린에서 스크린을 통해 부모님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뜨거운 사랑의 감정 제 얘기 쓰고 싶더라고요… 퀴어소설 많아졌으면”

    “뜨거운 사랑의 감정 제 얘기 쓰고 싶더라고요… 퀴어소설 많아졌으면”

    짧은 머리의 한 남자가 등을 진 채 해변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왼팔을 비스듬히 기대고 바다 위 눈부신 윤슬을 감상하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 사람의 뒷모습엔 다양한 감정이 배어 있기 때문인지 어쩐지 돌아서면 그는 상념에 잠겨 있을 것만 같다. 영국 화가 헨리 스콧 튜크가 그린 ‘비치 스터디’의 풍경은 이 그림을 표지로 내세운 김봉곤(33) 작가의 첫 소설집 ‘여름, 스피드’(문학동네)와 꼭 닮았다. 강렬한 여름날, 사랑의 달콤함과 씁쓸함을 모두 맛본 한 남자의 찬란하고도 쓸쓸한 뒷모습 말이다.●게이의 사랑과 이별 그린 중단편 6편 ‘여름, 스피드’는 게이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중단편 6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작 ‘여름, 스피드’를 비롯한 각 작품에는 2016년 등단과 함께 ‘커밍아웃한 첫 게이 소설가’로 알려진 작가의 경험이 곳곳에 배어 있다. 동성애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퀴어소설’이라는 특별한 분류를 떠나 감각적인 문체로 사랑의 다양한 빛깔을 아름답게 펼쳐낸 그의 연애 소설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지난달 출간된 책은 2주 만에 4쇄(총 6000부)를 찍었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김 작가는 “첫 책이 나온 것은 크게 놀랍지 않았는데 (퀴어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아 좀 놀랐다”고 말했다. ●출간 2주 만에 4쇄… “독자 반응에 놀라” 경남 진해가 고향인 작가는 부산의 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다 스물네 살에 상경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입학했다. 1학년 때 정이현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들은 것을 계기로 글쓰기에 흥미를 느낀 그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다. 그에게 ‘글을 쓰는 것’이란 곧 ‘그를 쓰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번 소설집에서 ‘나’는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개별 수업을 받으면서 알게 된 일본인 교수에게 강렬하게 빠져들고(컬리지 포크), 첫눈에 보자마자 좋아했지만 최악의 기억을 남긴 남자가 6년 만에 한 연락에 또다시 설레고 만다(여름, 스피드). 처음 만난 남자와의 데이트에서 ‘나’는 만남의 끝이 허망할지언정 매 순간 진심을 다하고(디스코 멜랑콜리아), 사귄 지 보름 만에 연락이 끊기고 부고로 자신의 부재를 알려온 한 남자와의 기억을 떠올린다(라스트 러브 송). 작가는 열렬히 사랑했지만 뜻하지 않은 사랑의 끝에 홀로 남겨진 자들의 지나간 기억을 그러모아 가만히 보듬는다. 물론 사랑의 처연함과 이별의 쓰라림도 곳곳에 묻어나지만 그의 작품이 마냥 비감에 젖지 않는 건 타인을 향한 감정의 진정성 덕분이다. “사랑의 뜨거운 감정에 대해 쓸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에너지와 기분, 그리고 그 사람에게 헌신하는 제 자신을 좋아해요. 전 기쁨에 반응하는 만큼 슬픔이나 서글픔에도 굉장히 반응을 잘 하거든요. 서러움이 그 순간 당장 느끼게 되는 감정인 반면 서글픔은 시간이 흐른 뒤에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 사랑은 그렇게 시작됐지’, ‘그때 우린 참 기뻤지’ 이런 감정을 반추하다 보면 글을 쓰고 싶어지더라고요.” ●“앞으로도 절절한 사랑 이야기 쓸 것” 게이들의 은어, 구체적인 성애 묘사 등은 어떤 독자들에겐 유별나게 보일 수도 있을 터다. 동성애자의 이야기를 다룬 퀴어소설로만 한정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을까. “제 작품이 퀴어소설로 읽히는 건 당연히 괜찮아요. 그렇게 명명되고 앞으로 퀴어소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물론 분류를 한정하고 제 작품들을 본다면 (이야기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분명히 생기겠죠.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번 편협하지 않은 시선으로 무언가를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는 건 아니니까요.” 첫 소설집 출간을 계기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됐다는 작가는 앞으로도 뜨겁고 절절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했다. “가끔 ‘외도’를 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결국 사랑의 변주이지 않을까요. 추리소설이든 SF소설이든 다른 모습의 꼴을 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들이요. 사랑이 참 재미있는 게 하나같이 끔찍할 때도 있지만 매번 다 다르더라고요.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랑도, 연애도 무궁무진할 것 같아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존재의 본질’ 치열한 탐구… 조선 양명학 체계를 세우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존재의 본질’ 치열한 탐구… 조선 양명학 체계를 세우다

    #하곡 정제두 두 번 죽다 하곡 정제두(鄭齊斗·1649~1736)의 일생 동안 죽음은 늘 삶의 등 뒤에 따라붙어 있다가 삶과 경계를 공유하곤 했다. 그는 34세 때인 임술년(1682년·숙종 8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스승 박세채에게 그동안 자신의 입속에서 맴돌던 말을 끄집어낸다. 제가 수년 동안 고심하였던 것을 한번 선생님께 털어놓고 절충을 구하려 하였으나, 이제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유감입니다. 제 생각에 심성의 본질에 대한 왕양명(王陽明)의 학설은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찾지 못하고서는 그대로 잠자코 있을 수 없어서 감히 대강을 말씀해 올리오니 이해해 주십시오. -하곡집, ‘박남계에게 올리려던 글’ 이 글은 양명학자로서 자신에 대한 첫 번째 공식 ‘커밍아웃’이었다. 그는 주자의 성리설과 격물치지설이 성인인 공자의 뜻을 완벽하게 풀어내지 못함을 고민해 왔다. 그러다 그 끝에서 결국 양명학과 만나게 되었음을 스승에게 고백한다. 그러나 이 당시까지 정제두는 아직 양명학에 대한 논리를 완성하지는 못했다. 그는 11세 아들과 30세 된 동생 정제태에게 자신이 수행해 온 미완의 양명학 연구를 이어 나가 줄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죽음을 예감한 순간 쏟아낸 진솔한 언어들의 수신처는 결국 자기 자신이 돼 버렸다. 그때 죽음의 위기를 넘긴 하곡은 치열하게 양명학에 몰두한다. #존재에 관한 고민, 존재를 위한 번민 하곡 정제두의 초년기는 상실의 연속이었다. 5세 때 부친을 여의고, 16세 때 백부와 조부마저 세상을 떠났다. 23세 때는 부인과도 영결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또 34세 때는 그 자신조차 죽음의 위기에 내몰렸다. 그래서 그의 고민은 ‘존재의 본질’로 향했다. 주자학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목마름을 느꼈다. 그는 1668년(현종 9년) 별시에 급제했지만, 전시에는 낙방했다. 동생 정제태가 급제한 뒤로 모친의 허락을 얻어 경전 공부에만 전념했다. 1680년(숙종 6년) 여름 김수항의 추천으로 벼슬길이 열렸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이후 여러 차례 동지중추부사, 한성좌윤, 이조참판, 대사헌, 우찬성 등 관직에 제수됐지만 역시 나아가지 않았다. 당시 조선은 주자학 허울을 뒤집어쓴 수많은 인사가 주자를 앞장세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크루스테스’처럼 다리를 잘라 내고 팔을 잡아 늘여 자신들에게 맞는 이들로 무리를 늘리고 있었다. 그들은 권위주의적 폐쇄성 속에서 이른바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용어로 너와 나를 가르고 무리를 지었다. 이런 상황에 관해 정제두는 “오늘날 주자의 학문을 말하는 자는 주자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곧 주자를 핑계 대는 것이요, 주자를 핑계 대는 데에서 나아가 곧 주자를 억지로 끌어다 붙여서 그 뜻을 성취하며, 주자를 끼고 위엄을 지어내 자신의 사사로움을 구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1709년 8월 강화로 거처를 옮기고 본질을 찾기 위한 학문에 매진한다.#그럼에도, 결국 버릴 수 없는 마음 스스로 양명학자임을 표방하고 나서 정제두는 다양한 우려와 공격에 시달리게 된다. 그의 스승 박세채는 ‘왕양명학변’을 지어 양명학을 비판한 뒤 그에게 양명학을 버릴 것을 종용했다. 또 다른 스승 윤증 역시 ‘변설’을 지어 그를 꾸짖었다. 최석정은 ‘변학설’을 지어 그의 양명학에 대한 의지를 비판했다. 민이승, 박심도 그의 양명학에 대한 열정을 우려했다. 그러나 정제두는 양명학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왕양명의 학설에 애착을 갖는 것이 만약 남보다 특이한 것을 구하려는 사사로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결연히 끊어 버리기도 어려운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학문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성인의 뜻을 찾아서 실제로 얻음이 있고자 할 뿐입니다.” -하곡집 ‘박남계에게 답하는 글’ 스승과 친구, 주변 여러 사람의 회유와 질책에도 그는 성인의 뜻을 찾아서 실제로 얻음을 얻고자 양명학이 보여 주는 길을 선택했다. 주자학이라는 이름의 우상 뒤편이 주는 안락함, 그 아래 무리 지어 있는 대상들과의 동질감, 그것은 그에게 학문적 타협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그는 ‘마음이 곧 이치다’(心卽理)라는 양명학의 본질적 명제를 밝히는 데 투신했다. 이후 그는 양명학의 치양지설과 지행합일설을 받아들이고, ‘대학’, ‘논어’, ‘맹자’, ‘중용’ 등 유가 경전을 새롭게 해석해 주자학의 권위에 맞섰다.#강화에 심은 양명학의 씨앗 조선 후기 강화를 거점으로 양명학을 연구·발전시켜 온 학파를 흔히 ‘강화학파’라 칭한다. 강화학파의 다른 이름은 ‘하곡학파’로, 강화의 양명학이 하곡 정제두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증명하는 호칭이다. 실제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문인이 배출됐다. 그리고 그가 강화에서 양명학에 매진한 이후 강화는 조선에서 가장 진보적인 공간으로 거듭났다. 아들 정후일을 비롯해 윤순, 김택수, 이광사 등이 그의 뒤를 이었다. 이들은 정제두의 자장 안에서 역사학과 음운학, 서예와 시문을 발전시켰다. 강화학파의 특징으로는 다양한 학문에 대한 관심을 표방하는 ‘박학’과 ‘실천주의’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우리 문화사에서 다양한 성과로 등장한다. 글씨에 원교 이광사, 역사에 연려실, 이긍익과 황현, 한학에 석천, 신작, 훈민정음 연구에 유희, 문자학에 남정화, 문헌학에 남극관 등이 강화학파의 범위를 확장해 나갔다. 영재 이건창에 의해 계승된 조선 양명학 정신은 민족자존의 주체사상으로 구현됐고, 신채호, 박은식, 정인보 등에 의해 민족주의 사상으로 형성돼 항일운동과 국학 연구에 이바지했다. 하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하곡집은…간행되지 못한 채 총 4종 필사본으로만 존재 정제두가 남긴 문집이다. 그러나 그의 문집은 간행되지 못한 채 필사본으로만 존재한다. 필사본은 총 4종이 전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22책본, 서울대학교도서관 소장 11책본,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0책본,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8책본이 있다. 문집이 인출되지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양명학에 대한 정제두의 긍정적 시선 때문이었다. 정제두의 현손 정문승은 하곡집의 앞머리에 붙여 “문인으로서 이 일을 맡은 사람도 함부로 손을 대어 말속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아니하므로”라고 하곡집이 수습되지 못했던 저간의 사정을 증언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22책본 하곡집은 정집, 부집, 내집, 외집의 4부분으로 구성됐다. 정집에는 편지글과 상소문, 잡저와 시문이 수록됐다. 특히 그의 양명학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존언’(存言)과 ‘학변’(學辨)이 저록됐다. 부집에는 신작이 완성한 정제두의 연보 등이 수록됐는데, 이 연보에는 주자학적 측면을 강조하고자 하곡의 양명학 사상을 의도적으로 지우려 했던 흔적도 남아 있다. 내집은 경학에 관한 독립적인 저술로 구성됐다. 그러나 중복되거나 빠진 부분이 많다. 외집에는 하도(河圖)와 선후천도설(先後天圖說)에 관해 다양한 그림으로 풀이한 내용이 실렸다.
  • 자판 누르는 맛 ‘블랙베리 키2’ 알뜰폰 나왔다

    자판 누르는 맛 ‘블랙베리 키2’ 알뜰폰 나왔다

    실물 자판이 달린 디자인으로 마니아층이 두터운 블랙베리 신제품 스마트폰이 CJ헬로의 알뜰폰 브랜드 헬로모바일을 통해 단독 출시됐다. 국내 출시되는 인기 스마트폰 중에선 유심(USIM·가입자인증모듈) 두 개를 끼울 수 있는 첫 번째 제품이라 이동통신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올지 기대를 받고 있다. 헬로모바일은 ‘블랙베리 키2’를 단독 출시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날부터 25일까지 사전 예약을 받고, 26일부터 순차적으로 개통을 진행한다. 블랙베리 키2엔 테두리를 최소화한 베젤리스 디자인이 적용돼 전작보다 화면 크기가 넓어졌다. 하단의 물리 키보드인 쿼티 키보드도 전작 대비 20% 확대했고, 국내 소비자를 위해 한국어를 각인했다. 앱과 앱 사이를 빠르게 이동하는 스피드키, 문서 스캔이 가능하고 아웃포커싱 기능이 탑재된 듀얼 카메라, 이틀 이상 지속되는 고속충전 배터리, 지문인식 센서 등을 갖췄다. 색상은 실버(64GB), 블랙(128GB) 2종으로, 가격은 각각 64만 9000원, 69만 3000원이다. 단말 지원금을 받으면 실구매가는 30만원대까지 떨어진다. 특히 블랙베리 키2는 ‘듀얼유심폰’으로, 단말기 하나만 있어도 서로 다른 이통사에 중복 가입할 수 있고, 두 번호를 동시에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업무용과 개인용 단말기를 각각 들고 다닐 필요가 없고, 낮은 가격대의 음성·문자 요금제를 유지하면서 저렴한 데이터 유심을 추가로 장착해 사용할 수도 있다. CJ헬로는 지난 3월 듀얼유심 기능이 지원되는 샤오미 ‘미A1’을 출시했다. 듀얼유심은 아직까지 국내에선 생소하지만 해외에선 흔하다. 국내 이동통신사들은 아직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듀얼유심 전용 요금제 출시 등을 미루고 있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 신제품에 듀얼유심 기능이 탑재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만큼 앞으로 유심 중심의 요금제가 나오는 등 이동통신 사용 방식에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엄태준 이천시장 ‘시민과 함께하는 대화’ 첫 일정 시작

    엄태준 이천시장 ‘시민과 함께하는 대화’ 첫 일정 시작

    엄태준 경기 이천시장은 지역 현안 파악과 여론 수렴을 위해 ‘시민과 함께하는 대화’에 나섰다. 이번 일정은 시정운영 방향과 비전을 시민과 함께 공유하고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시정에 반영하기 위해 마련됐다. 시민과 함께하는 대화는 16일 창전동을 시작으로 17일 마장면, 18일 설성면, 19일 율면·부발읍, 20일 증포동, 23일 중리동·관고동, 24일 호법면, 25일 장호원읍·모가면, 26일 신둔면·대월면, 27일 백사면 순으로 오전과 오후로 구분해서 진행된다. 16일 진행된 창전동 시민과 함께하는 대화에는 기관·단체장, 이·통장, 새마을지도자 등 주민대표 150여 명이 참석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참석자들은 엄 시장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취임 후 첫 방문인 만큼 엄 시장은 민선7기 시정운영 방향과 비전을 참석자들에게 설명하고 시정 협조를 당부했으며, 지역 기본현황과 주요 현안을 꼼꼼히 챙겼다. 또한 행정의 최일선에서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 하고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건의사항을 청취하고 적극적인 검토와 해결방안을 약속했다. 엄 시장은 민선7기 시정 비전을 시민이 주인인 이천, 시민우선 행정 실현을 시정목표로 세웠으며 5대 시정방침으로 ▲시민만족 행정 ▲탄력적인 행정 ▲현장중심 행정 ▲신속한 행정 ▲신뢰받는 공직사회로 정했다. 엄 시장은 “한 분 한 분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진정성 있게 소통해 시민들이 원하는 시정을 펼치도록 노력하겠다”며 “시정의 추진방향과 발전을 위해 아낌없는 조언과 협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제10대 서울특별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부위원장에 송재혁·김경우 의원 선임

    서울특별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문영민, 양천2)는 7월 12일 제282회 임시회 행정자치위원회 첫 의사일정으로 송재혁 의원(더불어민주당, 노원6)과 김경우 의원(더불어민주당, 동작2)을 제10대 전반기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송재혁 부위원장은 제2대와 제4대 노원구의회 행정복지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교육복지재단 상임이사,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노원구 지원 단장, 노원구 서비스공단 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노원구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송재혁 부위원장은“행정자치위원회는 서울시의회 상임위원회중 중추적이고 핵심적인 상임위원회로써, 제1순위로 행자위를 지명했다”며 “구의회와 시민사회 단체 등의 다양한 경험을 살려 행정자치위원회를 서울시의회의 핵심적인 상임위원회로 발돋음 시키겠다”며 왕성한 의정활동을 예고했다. 김경우 부위원장은 약사출신 전문인으로서 동작구약사회 회장과 민주평통 동작구협의회 수석부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지역봉사를 위해 앞장선 결과로 제10대 서울시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김경우 부위원장은“천만서울시민의 핵심부서를 감시·감독하는 행정자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어 기쁘다”라고 밝히면서“향후 동료 의원님들과 소통하여서울시민의 부름에 봉사와 결실로 보답하겠다”라며 강한 포부를 피력했다. 문영민 행정자치위원장은“제10대 전반기 행정자치위원회 위원님들은 전문성과 역량을 갖추고 있는 분들로써 향후 활발한 의정활동을 기대한다”고 말하며 “이번에 선임된 송재혁·김경우 부위원장 및 여러 의원님과 협의하여 서울시의회에서 으뜸이 되는 모범상임위원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정자치위원회는 부위원장 선임건과 서울혁신기획관 등 3곳의 업무보고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의정활동에 들어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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