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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이기호 “예술원 개혁해 신인들 지원해달라” 국민청원

    소설가 이기호 “예술원 개혁해 신인들 지원해달라” 국민청원

    소설가 이기호(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사진)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대한민국예술원 개혁을 촉구했다. 앞서 이기호는 최근 문예지 ‘Axt’ 7·8월 호에 보고서 형식 소설을 내기도 했다. 이번에 또다시 문제를 거론하면서 예술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이기호는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에서 기존 회원들의 인준으로만 이뤄지는 신입 회원 선출 방식과 예술원 예산의 대부분을 회원 월정액 수당으로 지급하는 구조 등을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한민국예술원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과 대한민국예술원법 개정, 대통령령 개정을 요구한다”면서 “회원에 대한 수당과 연금 지급 항목(대한민국예술원법 제7조)을 개정해주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독일이나 프랑스, 미국은 국가가 나서서 예술원 회원에게 정액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면서 “예술원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으로 우리나라 문화예술 예산의 효과적인 분배, 신인 예술가들에 대한 더 든든한 지원, 예술 분야의 부조리와 모순을 개선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대한민국예술원은 대한민국예술원법에 근거해 예술계 각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원로 예술가들을 예우하고자 1954년 설립된 정부 산하 특수기관이다. 문화예술계에서 일종의 원로원과 같은 기구다. 예술원 회원과 230여개 예술 관련 기관 및 단체 추천을 받아 문학, 미술, 음악, 연극·영화·무용 등 각 분야 신입회원을 선출한다. 전체 정원은 100명으로, 올해 4명의 회원을 추가해 현재 회원은 모두 91명이다. 예술 발전에 공적이 있는 사람만 회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종신 임기로 매월 수당 180만 원을 받는다.
  • 제9회 이설주문학상에 문효치 시인

    제9회 이설주문학상에 문효치 시인

    한국문인협회는 22일 제9회 이설주문학상 수상자로 문효치(78) 시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바위 가라사대’다. 문인협회가 주관하는 이 상은 이설주(1908~ 2001) 시인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시와 시조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고자 제정됐다. 문 시인은 1943년 전북 군산 출생으로 1966년 서울신문과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심사위원들은 ‘바위 가라사대’에 대해 “간결하고 처연한 서정성과 한(恨)의 빛이 담담하게 깔려 있다”며 “따뜻하게 사람과 시대를 안고 사는 시인의 일상적인 자화상을 그렸다”고 평가했다. 문 시인은 국제 펜 한국본부 이사장을 역임했고, 현재 계간 문예지 미네르바 대표를 맡고 있다. 김삿갓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았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근대광고 엿보기] 근대 대표 출판사 겸 서점 ‘박문서관’

    [근대광고 엿보기] 근대 대표 출판사 겸 서점 ‘박문서관’

    “신구 서적 만종(萬種)과 문방구를 완비하고 특별 대염가로 도매 소매하오니 다소(多少) 불구하고 주문하시오. 일어 영어 사전 자전 각종도 구비함.” 한국의 근대 출판을 대표하는 출판사 겸 서점인 박문서관의 광고 내용이다. 박문서관의 창업주 노익형(1885~1941)은 몹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4살 때부터 육의전의 하나인 저포전(苧布廛) 점원, 객주집 거간 일을 하고 잡화상을 차렸지만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지인의 권유로 경성 남대문통 3정목(현 남대문로 3가) 상동교회 앞에서 자본금 200원으로 작은 서점 박문서관을 연 것은 22세 때인 1907년이었다. 한일병합으로 총독부에 역사 서적을 몰수당하는 고초를 겪었지만, 봉래동을 거쳐 1925년 종로로 서점을 옮기고 출판사도 겸하면서 사업은 확장일로로 들어섰다. 박문서관은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을 약 4만부 팔았고, 춘향전·심청전·조웅전·유충렬전 등 구소설을 1년에 약 3만~4만부 판매하는 등 규모를 키워 갔다. 1920년대에는 ‘짠발쟌 이야기’ 등의 번역·번안물과 이광수의 ‘무정’, ‘첫사랑’ 등도 히트작이었다. 염상섭의 ‘견우화’, 현진건의 ‘지새는 안개’ 등도 출간했다. 큰돈을 번 노익형은 대동인쇄소까지 인수해 경영하며 출판, 서적, 인쇄 3대 부문의 패자(覇者)가 됐다. 인쇄소는 종로 YMCA 바로 뒤에 있었다. 서점 판매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 준 것은 오늘날의 온라인 판매와도 같은 통신판매였다. 1935년 무렵에 그는 신구 소설 등 1000여종의 책 판권을 갖고 있었고 매출의 70%를 통신판매로 달성했다고 한다(매일신보 1936년 5월 14일자). 박문서관은 문학도서 외에 문세영의 ‘조선어사전’ 등 사전류도 펴냈고, 무엇보다 박문문고라는 휴대하기 좋은 문고본을 발행해 독서의 저변을 넓혔다. 1938년에는 월간 문예지 ‘박문’을 발행해 쟁쟁한 문인들의 수필을 실었다. 그러나 노익형은 일제에 협력하고 창씨개명을 해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광복 후 박문서관은 박문출판사와 박문서점, 박문인쇄소로 분리됐다. 노익형 사후 유일한 혈육인 노성석씨를 거쳐 성석씨의 고교 선배인 이응규씨가 총괄 사장을 맡아 운영했다. 문을 닫은 것은 1957년이었다. 출판사와 서점 경영이 어려워진 것은 6·25 전쟁 때 인쇄시설이 폭격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60평쯤 되던 박문서점이 있던 곳은 종로2가의 옛 고려당 바로 옆 건물이었는데 2002년에 없어진 종로서적의 지척이었다. 폐업 당시 박문서점은 영창서관, 덕흥서림과 함께 서울의 3대 서점으로 꼽혔다. 1972년에 설립된 고시·수험 서적 전문 출판사 박문각과 박문서관의 연관성은 찾을 수 없다. 박문서관의 목판 691장은 2013년 근대문화재로 지정됐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나라 빼앗긴 왕의 눈물 이슬되어 참새 발 적신 곳 ‘노작’의 꿋꿋함 이곳에

    나라 빼앗긴 왕의 눈물 이슬되어 참새 발 적신 곳 ‘노작’의 꿋꿋함 이곳에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한식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러고 귀밑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 어머니 몰래 남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중략)//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그러나 눈물의 왕!/ 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홍사용,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 중에서) 세상 어느 곳이든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눈물의 왕이 사는 나라. 어머니께서 그토록 울지 마라 당부했지만 끝내 흐르는 눈물에 어머니와 나를 모두 가두어버린 시인이 사는 나라다. 그리하여 이곳은 여 리고 가여운 왕이자 시인이며 또 ‘나’인 사람이 기어코 흘리고 마는, 아침 이슬 같은 눈물에 다리가 젖어버린 참새의 터다. 빼앗긴 나라의 왕이자 시인인 ‘나’는 혼자 우는 버릇이 단단히 들린 채로 어머니의 당부마저 눈물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이 시를 지은 홍사용 시인은 노작(露雀), 소아(笑啞), 백우(白牛)라고 지은 여러 호들 중에서 ‘노작’을 주로 사용했다. ‘노작’은 이슬 로(露)에 참새 작(雀)자를 쓴다. 선생이 살던 시대는 그를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이면서 독립투사로 만들 수밖에 없던 일제강점기. 나라와 자신의 처지가 원통하여 밤새 흘린 눈물이 새벽이슬이 돼 가녀린 참새의 다리마저 젖게 한다는 뜻을 호로 삼을 수밖에 없던 이의 자리란 또 얼마나 외롭고 애달팠을 것인가.노작은 1900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부친의 사망 후 백부가 살고 있는 화성으로 이주해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며 자랐다. 서울 휘문의숙을 졸업한 1919년에 기미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휘문의숙 재학 시절에 교우들과 문집을 간행했고, 졸업 후에는 문예지 ‘백조’와 ‘흑조’ 등을 기획해 창간했다. 노작 외에도 박종화, 나도향, 현진건, 이상화, 김기진 등이 합류해 만든 ‘백조’는 3호까지 나왔다. 편집은 노작이 맡았지만 발행인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1호는 배재학당의 교장이었던 아펜젤러, 2호는 보이스 여사, 3호는 러시아에서 망명한 훼루훼로로 외국인들을 내세웠다.●박종화·나도향·이상 등과 ‘백조’ 발간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선총독부에 의해 검열당한 채 간행된 문예지 ‘백조’ 곳곳에는 출판물에서 내용을 밝히지 않으려고 지운 자리에 ‘O’ 혹은 ‘X’로 표시한 복자(伏字)가 곳곳에 표시돼 있다. 작가의 사상과 문장을 검열한 뒤에 출간을 허가했던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나타난 아픈 역사적 사료인 셈이다. 노작은 ‘백조’의 창간과 함께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이때 ‘나는 왕이로소이다’, ‘묘장’, ‘그것은 모두 꿈이었지마는’ 등의 시를 발표했다. 선생은 시뿐만 아니라 소설 ‘저승길’, ‘뺑덕이네’, ‘봉화가 켜질 때’ 등을 썼고 희곡으로 ‘할미꽃’, ‘출가’, ‘제석’ 등의 희곡이 있다. 수필과 여러 비평문도 발표하면서 다방면의 글쓰기 작업들을 하는 동시에 1923년에는 토월회(土月會)에 가담해 문예부장을 맡기도 했다.“현실에 토착해 있되 이상은 명월같이 높게 가져야 한다”며 발족한 연극문화운동단체 ‘토월회’는 도쿄에서 유학 중이던 김기진, 김복진 등이 매주 한 번씩 모여 시를 낭송하고 그림을 감상하며 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십일월(十一月)에 결성됐다는 뜻으로 토월회라 부른다는 말도 있다. 당시 조선의 연극은 주로 신파극이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된 극단이 없이 여기저기서 파편화된 채 단발성 공연으로 진행되기 일쑤였다.●‘나는 왕이로소이다’ ‘묘장’ 등 시 발표 노작은 대중 속에 파고들어 깨우치는 데 연극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1927년엔 산유화회를 조직해 연극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대중적인 연극을 통해 민족의 아픔과 정한을 표출하고자 한 선생의 의도가 시대의 필요와 맞아떨어지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일제 검열로 대본 전체가 삭제, 압수되고 공연의 막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 속출했다. 선생은 조선총독부에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끝내 연극운동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번역극과 다채로운 신극 운동을 전개해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토월회는 경영난으로 1931년에 해산하게 된다.노작은 일제에 항거하는 작품들을 활발히 썼지만 저돌적인 투사의 문장이 아닌 1920년대 초에 붐이 일었던 낭만주의운동에 힘입어 향토적 서정, 자전적 전기 등의 감상이 짙은 작품들을 주를 이뤘다. 대다수 낭만주의 시인들이 외국 풍조에 영향을 받은 시들을 쓸 때 선생은 민중의식이 깃든 민요에 관심을 갖고 민족적 서정성을 끝없이 탐구하고 형상화했다. 그런 이유로 민요시, 향토시로 분류되기도 하는 그의 시들은 주로 비애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어 ‘비애의식을 민족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전통적인 맥락에서 시를 창작하고 민족적인 이념과 독립의 의지를 시와 희곡 및 소설 등을 통해 널리 알리고자 한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일제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꿋꿋하게 독립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던 선생은 해방을 맞이해 근국청년당 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러다 1947년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생전에는 책을 출판하지 않았다가 1976년에 와서야 유족들이 시와 산문을 모아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로부터 한참이 더 지난 2010년에는 유년기를 보내고 그의 묘지가 있기도 한 경기도 화성에 노작 홍사용 문학관이 개관되기에 이른다. ●오늘날 토월극장 이름 ‘토월회’서 비롯 나는 홍사용 시인을 고등학교 3학년 때 언어영역의 지문으로 나왔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로만 알고 있었다. 사는 곳의 지척인 화성 동탄 신도시에 문학관이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노작과 홍사용 그리고 시의 제목은 여전히 뇌리에서 각기 따로 놀았다. 그러다 몇 년 후에야 시와 시인, 문예지 ‘백조’와 지금의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이 ‘토월회’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곳과 인연이 닿아 이 년 넘게 소설창작과 단편소설읽기 강좌를 진행하게 된 후에야 비로소 선생의 발자취에 대해 본격적으로 인지했다. 문학관의 지척에 살면서도 조금 더 빨리 선생의 자리에 대해 숙고하지 않은 것은 내 게으름의 탓일 것이다.오랜만에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신도시의 유일한 문학관답게 문화적인 정취를 원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시와 연극, 소설로 대중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고자 했던 선생의 뜻에 걸맞게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노작 출판학교, 노작문학제, 노작 문예지 ‘백조’의 발간, 작가의 방 대관사업, 노작홍사용단막극제, 노작문학상 등을 비롯해 문예강좌, 청소년 문예교실, 우리동네 작은 영화관, 문학이 함께하는 음악회, 시인과 함께 걷는 시숲 길, 문학현장답사, 산유화극장 정기공연 등과 시민극단 연극동아리까지 시와 희곡, 수필과 소설을 아우르는 프로그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유튜브까지 진출해 온오프라인을 종횡무진하는 프로그램들의 목록을 보며 1920년대 초에 낭만주의 문학의 선두주자이며 문학사를 주름잡던 선생의 활동을 겹쳐 보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터. 현존하는 여러 문학관 프로그램들 중에서도 가히 손꼽힐 정도로 체계적인 외향과 내실을 다져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문학관 곳곳에서 선생이 살다 간 발자취와 시대정신, 문학에 대한 열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시도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는 주변의 시민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홍사용’이라는 이름을 신도시의 문화거점으로 우뚝 서게 한 노력의 발로다. 문학관이 시민들과의 소통을 최우선하고 글자와 문장을 넘어서서 그것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손택수 관장의 의지가 특히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에 호응하듯이 주체적으로 문학관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모습이야말로 이 자리를 자리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문장’이 아닐까. 이 모든 일들이 한 세기 전에 노작이 행했던 시대정신과 민족의식에 대한 문학적인 물음에 대한 후대의 답임을 보여 주고 있는 공간이었다. 당대의 호명으로 박제된 이름만이 아니라 오로지 선생의 작품과 민족정신을 일깨우던 자리가 현대적으로 재해석돼 생생하게 사람들 곁에서 살아 있는 문장으로 다가서는 그 이름. 그리고 그것을 일깨우는 여러 사람의 땀과 마음들. 나라를 빼앗긴 왕의 눈물이 이제는 동이 틀 무렵의 이슬이 돼 참새의 발을 씻어 주는 곳, 노작 홍사용 문학관이다.소설가 이은선
  • [문화마당] 신춘을 준비하는 만추/김이설 소설가

    [문화마당] 신춘을 준비하는 만추/김이설 소설가

    근래 책이 출간돼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책을 보낼 일이 많았다. 우체국 출입도 잦았고, 그 덕에 제법 가을 산책도 즐겼다. 그런데 한 달여간 우체국을 들락거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옛 기억이 떠올랐다. 10여년간의 습작 시절 동안 매년 봄·가을에는 문예지 신인상에, 겨울에는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를 했다. 1년 동안 공들여 쓴 예닐곱 편 소설을 신문사나 출판사에 보냈다. 10년간 습작 시절이었단 말은 그만큼 낙선을 경험했다는 뜻이기도 한데, 20대를 전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살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분명 내 청춘의 대부분이 소설가가 되기 위한 시간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참 무던히 쓰고 무수히 응모하고 매번 떨어지던 시절이었다. 어느 해였던가. 마감 날짜가 촉박해 응모 원고를 들고 신문사로 직접 찾아간 적이 있었다. 붉은 글씨로 ‘신춘문예응모작’이라고 쓴 서류 봉투를 품에 안은 나는 담당자가 무심히 가리킨 창고를 열어 보고는 기함을 했다.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마다 그득그득 쌓인 서류 봉투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수많은 작품들 위에 내 작품 하나를 올려놓고 나오는데, 눈물이 뚝 떨어졌다. 이렇게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다니. 이 많은 원고 중에 내 원고가 눈에 띌 수나 있을까. 그저 막막했다. 어쩌면 엄청난 원고 더미에 압도당해 기가 죽었을 수도, 그해 겨울이 유난히 추워서 몸과 마음이 다 시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그 이후에는 어떻게든 우편접수로만 응모했다.) 최근 출간한 내 책에 시인이 되고 싶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이렇게 읊조린다. ‘시인이 되기 위해서 임용고시처럼 일종의 시험을 치르는 것이 등단이냐고 그 사람이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등단을 하지 못하면 시인이 못 되는 것이냐고도 물어서 그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등단이라는 걸 꼭 할 필요는 없는 것이구나,라고 동의를 구했을 땐 조금 복잡한 문제라고 대답했다.’(‘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신춘문예나 신인상 공모 등의 등단 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목소리가 크다. 최근에는 등단 제도를 거치지 않고 새로운 플랫폼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많다. 그럼에도 신인상이나 신춘문예 응모작 수는 계속 증가한다니, 작가가 되고 싶은 이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다는 것만은 확실하겠다.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는 12월 초가 마감이니, 11월 중순인 지금은 아마 전국의 문청들이 가장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가장 마땅한 언어를 고르고, 가장 정갈한 문장으로 다듬고, 가장 보기 좋은 글로 완성짓느라 가을에서 겨울로 변하는 것도 잊은 채 원고만 보고 있을 터다. 그들은 모두 다른 글을 쓰고 있겠지만 당선되기를 바라는 간절함만큼은 모두 똑같을 것이다. 최종심에 한 번도 오른 적 없던 내가 당선 소식을 들은 건 신춘문예에 응모를 시작한 지 딱 10년 만의 일이었다. 시상식에서 나는 이렇게 당선 소감을 말했다. ‘누구도 억지로 시키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나선 길이니, 절대 멈추지 않고 끝까지 쓰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 말을 한 지 어느새 15년이 다 돼 간다. 그런데도 지난하던 시절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아직도 가슴이 할랑댄다. 무수한 밤을 새우며 소설을 쓰고 토할 정도로 퇴고를 보던 시절, 출력한 원고를 넣은 봉투에 떨리는 손으로 신문사 주소를 적던 시절, 새해 첫날 새벽부터 집을 나서 신문을 사들고 와 다른 이들의 당선작을 훔쳐 읽던 그 시절. 올가을, 우체국을 다니며 그 시절에서 멀리 온 것 같지만 따져 보면 그 시절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오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건, 아무래도 내 소설이 여전히 여물지 않은 까닭은 아닐까. 나는 떨어지는 잎을 보며 문득 송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 소설이 된 도시, 인천을 조망하다

    소설이 된 도시, 인천을 조망하다

    소설 속에 나타난 도시 인천을 조망하는 전시가 열린다.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오는 30일부터 인천 중구 해안동의 기획전시관에서 ‘인천 문학 기행: 인천, 이야기가 되다’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한 세기 전 신소설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설 속에 도시 인천이 형상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총 여섯 코너로, 1900년대부터 2015년 작품까지 총 18작품, 41점의 자료가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1930년대 지어진 근대 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기획전시관 개관을 기념한 특별전시다. 전시는 1·2부로 나뉘어 광복 이전과 한국 전쟁 이후부터 오늘날까지를 살펴본다. 소설 ‘빈상설’(1907)과 ‘모란병’(1909)에서는 개항 직후 외국인들로 북적대는 인천항의 모습과 치외법권이 형성된 조계지로서의 모습이 나타난다. 1930년대의 소설 ‘마도의 향불’, ‘밀림’, ‘박명’ 등에서는 식민지 파라다이스로 부상한 인천 월미도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시기 인천에서는 월미도의 해수온천 조탕(潮湯)이 전국 최고의 관광휴양지로 주목받았다. 이후 2부에서는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한국전쟁 후 쓸쓸한 모습의 인천(‘중국인 거리’), 북한과 가까운 항구도시로서 분단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인천(‘바닷가 풍경’, ‘포구의 황혼’) 등을 보여준다. 1970~1980년대에는 인천이 노동소설의 중심 배경이 됐다. 실제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5)의 작중 도시 ‘은강’은 인천을 모델로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김미월의 ‘중국어 수업’(2009)이나 백수린의 ‘중국인 할머니’(2015)처럼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화교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많이 쓰여졌다. 문학관 측은 1924년에 발행된 이광수의 소설 ‘재생’의 신문 연재 스크랩본 등 희귀자료 40점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전국 최초의 지역 문예지 ‘개척’(1920) 등 인천에서 만들어진 근현대 문예지 등도 만날 수 있다. 매주 월요일 휴관.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픽션·논픽션 경계 넘어 서사 중심 새로운 문학장 열 것”

    “픽션·논픽션 경계 넘어 서사 중심 새로운 문학장 열 것”

    픽션·논픽션의 경계를 넘어 문학장을 더욱 넓히고자 하는 시도가 시작됐다. 다산북스는 문학 계간지 에픽(EPIIC)을 창간하면서 픽션과 논픽션, 소설과 에세이, 순문학과 장르문학 간 장벽을 허물고 서사 중심의 새로운 문학장을 열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편집위원은 문지혁·임현·정지향 작가, 동네서점 고요서사의 차경희 대표다.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편집위원들은 “기존의 문학장으로부터 출발, 쓸 수 있는 글의 주제에 제약이 있는 전통 문예지와 자본이 부족해 지면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대안 문예지의 한계를 넘겠다”고 입을 모았다. 잡지 이름은 서사문학을 뜻하는 영단어 ‘에픽’(epic)에 모음 ‘i’를 하나 덧붙여 완성했다. “이야기, 서사란 하나의 나(i)가 다른 나(i)와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생겨난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호 커버스토리는 정 작가가 KU마음건강연구소 자살유족자조모임의 리더인 심명빈씨를 만나 기록한 논픽션이다. 이어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쓴 김민섭 작가가 ‘고스트 라이터’를,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해 썼다. 김혜진·이기호·정지돈·서장원 작가의 신작 단편과 이산화 작가의 SF 소설, 의외의사실 작가가 연재하는 그래픽 노블을 실었다. 논픽션과 픽션을 각 한 권씩 서로 연결해 소개하는 리뷰(‘1+1 리뷰’)와, 가상의 누군가를 만난 자리를 상상해 써 내려간 에세이 코너 ‘If I’ 등이 눈길을 끈다. 에픽의 주 관심사는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부각하는 문학의 한 형태인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다. 보고기사 또는 기록문학이라 불리는 르포르타주, 회고록·자서전 등을 뜻하는 메모어, 구술록 등을 포괄한다. 기존의 한국 문단에서는 문학 밖의 것으로 치부됐던 장르들이다. 문 작가는 “우리도 기존에 쓰고 있었는데 이렇게 호명한 적이 없었을 뿐”이라며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와서 에세이, 수필, 비문학 등으로 분류됐던 텍스트를 문학장 안으로 불러오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새 문예지 에픽 “픽션·논픽션 경계 넘어 서사 중심 문학장 만들 것”

    새 문예지 에픽 “픽션·논픽션 경계 넘어 서사 중심 문학장 만들 것”

    픽션·논픽션의 경계를 넘어 문학장을 더욱 넓히고자 하는 시도가 시작됐다. 다산북스는 문학 계간지 에픽(EPIIC)을 창간하면서 픽션과 논픽션, 소설과 에세이, 순문학과 장르문학간 장벽을 허물고 서사 중심의 새로운 문학장을 열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편집위원은 문지혁·임현·정지향 소설가, 동네서점 고요서사의 차경희 대표다.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편집위원들은 “기존의 문학장으로부터 출발, 쓸 수 있는 글의 주제에 제약이 있는 전통 문예지와 자본이 부족해 지면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대안 문예지의 한계를 넘겠다”며 입을 모았다. 잡지 이름은 서사문학을 뜻하는 영단어 ‘에픽’(epic)에 모음 ‘i’를 하나 덧붙여 완성했다. “이야기, 서사란 하나의 나(i)가 다른 나(i)와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생겨난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1호 커버스토리는 정지향 작가가 KU마음건강연구소 자살유족자조모임의 리더인 심명빈씨를 만나 기록한 논픽션이다. 이어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쓴 김민섭 작가가 ‘고스트 라이터’를, 이길보라 독립영화감독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해 썼다. 김혜진·이기호·정지돈·서장원 작가의 신작 단편과 이산화 작가의 SF 소설, 의외의사실 작가가 연재하는 그래픽 노블을 실었다. 논픽션과 픽션을 각 한 권씩 서로 연결해 소개하는 리뷰(‘1+1 리뷰’)와, 가상의 누군가를 만난 자리를 상상해 써내려간 에세이 코너 ‘If I’ 등이 눈길을 끈다. 에픽의 주 관심사는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부각하는 문학의 한 형태인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다. 보고기사 또는 기록문학이라 불리는 르포르타주, 회고록·자서전 등을 뜻하는 메모어, 구술록 등을 포괄한다. 기존의 한국 문단에서는 문학 밖의 것으로 치부됐던 장르들이다. 문 작가는 “우리도 기존에 쓰고 있었는데 이렇게 호명한 적이 없었을 뿐”이라며 “‘크리에이티브 논픽션’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와서 에세이, 수필, 비문학 등으로 분류됐던 텍스트를 문학장 안으로 불러오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신간 안내] 김국현 수필집 ‘서해의 일출’ 출간

    [신간 안내] 김국현 수필집 ‘서해의 일출’ 출간

    수필가인 김국현(65) 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이 15일 수필집 ‘서해의 일출’(도서출판 소소담담)을 출간했다. 김 전 이사장의 다섯 번째 수필집이다. 이번 수필집에는 ‘코로나 단상’, ‘3분 드라마’, ‘버스킹에 빠지다’, ‘떠난 자와 남은 자’ 등이 담겨 있다. 김 전 이사장은 수필집 발간 동기에 대해 “세상에서 얻은 위로와 감사, 이웃과 자연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깃든 작은 마음을 글로 표현했다”면서 “독자들이 세상을 좀 더 깊이 느끼고 색다른 의미를 갖게 하고 싶었다. 여행에서 얻은 신선한 충격을 드러내고, 사회 현상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글을 쓰는 건 나 스스로를 새롭게 하는 힘이 있다. 철학적 사유를 통해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꾸었다”면서 “이 모든 것을 아울러 내 마음의 뜨락에 희망의 꽃을 피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문학평론가 신재기 교수는 김 작가의 글에 대해 “말하려는 바를 힘들이지 않고 편안하게 이야기한다. 상식과 교양과 전문지식이 경계 없이 잘 융합되어 작가의 정신세계가 품위 있게 드러난다”면서 “삶에 대한 긍정과 희망, 자연과 주위 사물에 대한 애정, 기독교적인 세계관은 그의 수필의 특징이고 무게”라고 평가했다. 김 전 이사장은 공직에 있을 때 간암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투병 중에 대학원에 입학해 불굴의 의지로 행정학박사 학위를 받고, 퇴직 후에는 수필가로 등단해 각종 언론과 문예지에 칼럼과 산문 등 다수의 글을 기고했다. 현재는 지역사회 봉사와 전문 주례인 등 재능기부 활동을 실천하고, 공무원연금공단의 초빙강사로서 은퇴예정 공무원의 꿈과 희망을 키우는 행복 전도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수필집 ‘그게 바로 사랑이야’, ‘청산도를 그리며’, ‘봉선화 붉게 피다’, ‘혼자 걷는 길’ 등이 있다. 2014년에 한올문학상을 받았다. 한국문인협회와 산영수필문학회 회원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창근 소설집 ‘욕망에 관한 작은 이야기’ 펴내

    고창근 소설집 ‘욕망에 관한 작은 이야기’ 펴내

    욕망에 관한 작은 이야기/고창근/문학마실/228쪽/1만원 고창근 작가가 10편째 작품집을 발간했다. 욕망에 관한 단편소설 10편이 실렸다. 작가는 그동안 소설집 3권 장편소설 4권 서사시집 2권을 썼다. 이번에 내는 소설집은 그동안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욕망’이라는 주제로 쓴 단편소설들을 묶었다. 누구나 살아가며 소소하게 일어나는 욕망, 그 욕망이 진정 자신의 욕망인지 의아할 때가 있다. 전혀 생경하게 다가오는 욕망들이 소설집에 녹아 있다. 소설집에 녹아 있는 욕망은 또한, 타인을 공격하기도 하고 자신을 공격하기도 한다. 때로는 드러나게 공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은밀하게 공격하기도 한다. 작가는 싫든 좋든 우리는 그 욕망을 껴안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겸허하게 바라보고 안아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욕망은 또 다른 “나’이기도 하고 또한 ‘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연 끊긴 도봉 거리예술단… ‘온라인 버스킹’ 구경오세요

    서울 도봉구의 거리예술단이 온라인 공연을 펼친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공연은 코로나19에 따른 공연 취소로 어려움을 겪는 도봉 지역예술인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고, 코로나19에 지친 구민을 응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오는 14일 오후 3시 도봉구를 대표하는 트로트 가수 공연인 ‘뮤지트로존’ 공연을 시작으로 이달 한 달간 모두 6회의 공연을 선보인다. 20일 ‘7080존, 추억의 7080음악과 포크송’, 21일 ‘순수라이브존, 화려한 악기들의 라이브 연주’, 22일 ‘동서양존, 동양음악과 서양음악의 조화’, 28일 ‘장미꽃존, 청소년·청년의 생동감 넘치는 공연, 29일 ‘소통존, 마술·연극’ 등 모두 6개 주제로 공연을 선보인다. ‘도봉문예지’ 유튜브 채널에서 오후 3시 라이브 방송으로 실시간 진행되며, 공연 종료 후에도 시청할 수 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문화마당] 의미 있는 실패/김이설 소설가

    [문화마당] 의미 있는 실패/김이설 소설가

    교실마다 옷걸이·방향제·거울 등 용모 단장 물품을 구비하겠다, 온라인 축제를 하겠다, 사복 데이를 정해 교복 없는 하루를 보내겠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인 큰아이가 학생회장 선거에서 낸 공약이다. 포스터와 피켓을 만드느라 난리가 난 방에 웅크려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관직욕이 많다고 놀렸던 일이 좀 미안해졌다. 그러고는 나도 모르게 이번엔 좀 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이의 낙선 경험은 역사가 꽤 깊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전교어린이회 부회장에, 6학년 때는 회장 후보로 출마했다. “인조잔디를 깔겠다”, “토끼장을 만들겠다”, “급식 우유를 초코우유로 바꾸겠다”고 하는 경쟁자들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공약들도 지켜지지 않았다). 초등학교는 학기별 선거였으므로 아이는 총 4번의 낙선을 경험했다. 그러고는 심기일전이라도 했다는 듯이 2년 만에 다시 학생회장 선거에 입후보한 것이다. 낙선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내 지난한 습작기도 빼놓을 수 없다. 생애 첫 신춘문예 응모는 스물한 살 겨울이었고 당선된 건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의 겨울이었다. 일년 동안 쓴 소설들을 추리고 고쳐 문예지 신인응모와 신춘문예에 응모를 했다. 평균 일 년에 열 편을 응모하고 열 번 낙선하는 일이 그렇게 10년 동안 반복됐다. 근 백 번은 떨어지고서야 나는 소설 쓰는 사람이 된 것이다. 최근 읽은 ‘실패도감’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물들의 실패 이야기가 담겼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적이 있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인어공주’를 쓴 안데르센은 연이어 사랑에 실패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가수의 꿈을 포기했고, 위대한 경제학자 마르크스는 정작 돈을 벌지 못해 가계를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마티스는 번번이 전람회에 거절당했고, 몽고메리는 출판 제의를 못 받은 ‘빨간 머리 앤’을 몇 년 동안 창고에 버려둬야만 했다. 어린이책이지만, 이 무수한 실패담을 읽다 보면 ‘실패는 누구라도 하는 것’, ‘실패는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 같은 문장을 쉽게 떠올리게 된다. 교과서 같은 결론이지만 실패가 있어서 훗날의 성공도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이야기야말로 비단 어린이들에게만 필요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세계인이 인정하는 훌륭한 사람들 또한 보통 사람들처럼 실패했고, 좌절했으며, 심지어 찌질하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위로받게 되니까. 당연히 그들의 실패 극복기는 범인들인 우리에게 소소한 용기를 주기도 하니 말이다. 내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면, 백여 번의 낙선 이후에 맞이한 당선 소식은 사실 반갑지 않았다. 그렇게 바라던 당선이 기쁨보다는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선돼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나도 모르게 당선 그 자체를 목표로 두고 응모했던 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들었던 탓이다. 그것은 작가가 되는 방법만 알았지, 좋은 작가가 되는 법을 몰랐다는 자각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순간부터 다시 처음의 자세가 돼야 했다. 문득 잠든 아이의 손에 눈이 갔다. 선거 유인물을 만드느라 검은 매직으로 잔뜩 얼룩져 있는 그 손을 바라보며 아이가 이번엔 부디 당선되기를, 설사 김칫국일지라도 아이가 내세운 공약을 잘 지켜내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자기가 약속한 말을 지키는 일, 책임감을 갖고 학생의 대표로서 남은 중학교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그러나 또다시 낙선자가 되면 어떠랴. 일상 어디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삶이고, 실패와 눈물 속에서 삶의 귀감은 더 용이하게 얻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 코로나로 지친 구민들에게 전합니다 …도봉 문화예술인의 온라인 희망 콘서트

    코로나로 지친 구민들에게 전합니다 …도봉 문화예술인의 온라인 희망 콘서트

    서울 도봉구는 코로나19로 지친 주민들에게 음악으로 위로를 전하는 ‘코로나 아웃, 온라인 희망 콘서트’를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오는 11일까지 열리는 콘서트는 도봉구민회관 대강당에서 관객 없이 진행된다. 대신 구청 유튜브와 페이스북으로 실시간 중계한다. 6일에는 클래식 공연, 7일에는 인문학 콘서트, 8일에는 뮤직토크 콘서트, 마지막 11일에는 도봉구립교향악단의 ‘뮤지컬, 드라마 OST 공연’으로 이어진다. 또한 도봉구는 그동안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의 기회가 적었던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 무대와 함께 경제적 지원을 하기 위해 29일까지 마을극장 흰고무신에서 ‘온라인 상설 공연장’을 운영한다. 공연 영상은 도봉구 홈페이지에서 매일 볼 수 있다. 더불어 도봉구립교향악단, 도봉구립소년소녀합창단은 ‘예술로(路) 희망을’ 아트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30일까지 매주 목~토요일 오후 3시에 도봉문예지 유튜브와 도봉구청 홈페이지에서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코로나로 인해 침체된 지역 예술이 하루빨리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폐허가 된 세상, 마지막 남은 인류… 희망은 있을까

    폐허가 된 세상, 마지막 남은 인류… 희망은 있을까

    시하와 칸타의 장/이영도 지음/현대문학/240쪽/1만 3000원한국 판타지 문학에서 이영도는 그 자체로 브랜드다. PC통신에 연재한 첫 작품인 ‘드래곤 라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래 순문학, 문예지 중심의 문학장에서 장르소설의 문을 열고 중흥을 꾀했다. 경장편 소설을 다뤄 온 출판사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에서 장르소설 출간의 문을 여는 이가 이영도인 것은, 어느 정도 ‘다 계획이 있는’ 일로 보인다. 그가 2년 만에 들고 온 신작 소설 ‘시하와 칸타의 장’은 폐허가 된 세상, 마지막 남은 인류의 이야기다. 덫에 걸린 요정에게 “너 식용이야, 아니야?”(10쪽)부터 묻는 본새가 이들의 각박한 삶을 말해 준다. 살아남은 열아홉 살 소년 소녀, 시하와 칸타는 부모를 잃고 헨리동물원에서 살고 있다. 헨리는 드래건의 이름으로, 선조가 후대에게 전달해야 할 것들을 담은 노래와 시를 완벽하게 외우는 이에게만 거래를 허락하는 팍팍한 인물이다. 제대로 암송하는 건 시하가 유일하다. 즉 시하가 인류의 희망봉이다. 그러나 시하는 자신이 처한 고통을 되새기며 사랑과 번식에 모두 회의적인 인간이다. 보통의 인간들이 관심을 갖는 요소인 건강과 장수, 매력 등에 대해 “전부 자식을 위한 것”이라고 일갈할 만치. “매력으로 좋은 짝을 찾고 건강으로 안전하게 자식을 낳고 장수로 오랫동안 양육한다”(14~15쪽)는 건, 썩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이런 시하 앞에 나타난 요정 데르긴은 ‘사랑의 묘약’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랑을 받게 되는 약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에 빠지는 약. 멸종 위기의 인류 앞에서 마지막 희망인 시하는 어떤 선택을 할까. 판타지 소설은 괴팍하리라는 일련의 편견과 달리 소설은 굉장히 정의롭고 바른 방향으로 간다. 해제를 쓴 이융희 작가는 ‘반지의 제왕’을 쓴 J R R 톨킨의 말을 전하며 이영도가 여태껏 구축해 온 판타지 세계를 상찬한다. “좋은 판타지 소설이란 현실 세계의 질서와는 유리된 2차 세계를 창작한 뒤 독자에게 진짜로 있는 세계처럼 신뢰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한국 문학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가진 이영도를 지탱해 온 비기일 것이다. 비교적 짧은 ‘시하와 칸타의 장’은 방대한 이영도 문학의 입문서로 좋을 듯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문화마당] 2020 문학, 혁신을 요구받다/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2020 문학, 혁신을 요구받다/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계간 ‘자음과모음’ 봄호 특집 ‘작가-노동’이 화제다. “원고료로 생활이 가능한 ‘전업 평론가’는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문학평론가 장은정이 구체적 숫자로 답했기 때문이다. 2009~2019년 11년 동안 그가 발표한 글은 176편, 원고 매수로 5728매다. 대가는 총 3390만원, 한 달 평균 46만원이다. 이른바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에 속해 상당히 많은 발표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이 정도다. ‘전업 평론가’는 불가능하다.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은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민음사, 창비 등 주요 문학 출판사의 내부 독회에 바탕을 둔 차세대 평론가 운영 체제를 말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들 출판사는 내부 편집위원, 편집자, 외부 평론가 등과 정기 독회를 갖췄다. 여기서 문예지 발표작, 단행본 시집과 소설집, 장편소설을 토론하고 작품성·대중성·가능성 등을 고려해 잡지에 청탁하거나 단행본 계약을 한다. 이때 참여하는 외부 평론가는 등단 5년 이내 ‘젊은 평론가’들이다. 이유는 두 가지. 우선, 한 사람이 모두 좇아서 읽지 못할 정도로 작품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이들이 분담해 읽고 일정한 논의 구조를 거쳐 좋은 작가를 가리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다음, 차세대 육성이다. 평론가는 20대 후반 등단한 후 학계에 자리잡을 때까지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에서 논문 중심 체제가 강화된 2000년대 들어 교수가 현장 평론을 하는 건 힘들어졌다. 자사 발행 작품을 잘 읽어 줄 평론가가 충분하지 않자 출판사 입장에선 ‘좋은 평론가’ 자체를 길러내는 게 나았다.(시인-서평가, 소설가-서평가가 늘어난 것도 같은 사정에서다.) 장은정에 따르면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에는 근본적 결여가 있었다. 젊은 평론가한테 주어진 기회는 대부분 ‘리뷰’였다. “잡지를 운영하는 편집위원들이 정해 준 텍스트”에 대한 글이었다. 젊은 평론가에게는 선배 평론가들의 ‘좋음’에 복속해 그 과업을 잘 수행할 의무만 있었다. 평론가가 “어떤 텍스트가 다시 읽힐 만한 비평적 가치가 있는지를 선별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한 존재”로 전락하고, 출판산업이 평론을 내부의 한 영역으로 포획해 버린 것이다. 출판산업과 직접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비평가가 드물어지자 문학권력이 작품 생산에서 평가까지 모두 장악하면서 무분별한 작동을 시작한다. 장삿속이 노골화돼 작품에 대한 긍정 비평, 즉 ‘세밀한 읽기’만을 조장하고 작품의 질에 대한 근본 질문, 즉 ‘비판적 읽기’를 둔화시킨다. 우정의 리뷰만 가능하고 도발적 비판이 좀처럼 존재하지 못한다. 비판 없는 권력은 균형을 잃는다. 장은정이 보기에, 타락한 권력이 봉합된 진실을 견디지 못하고 찢어져 버린 것이 ‘2015년 신경숙 표절 사태’다. 신경숙을 옹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언어가 동원됐는가. 이후, 올해 초 이상문학상 저작권 문제에 이르기까지 더이상 “세밀한 읽기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났다. 문학제도 자체의 혁신을 위한 문제제기가 절실해졌다. ‘작가-노동’도 한 이슈다. 출판이 작품 노동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느냐는 오래된 질문이다. 예술성과 시장성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으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본래 좋은 답이 없다. 작가의 바람은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집에 살며, 3800원짜리 마카롱을 사 먹고, 집 앞 근사한 카페에서 드립 커피 정도는 살 수 있는 삶”이다. 십여년 넘게 동결된 원고료 인상 등 실제 대책도 중요하다. 그러나 작가가 진짜 바라는 것은 문학제도가 자존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작동하는 것 같다. 작가와 출판사가 같은 길에 있다는 느낌이 무너졌다는 심각한 위기의 신호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2020년대 문학은 혁신의 과제를 무겁게 짊어진 채 출발하게 됐다.
  • #절필 #권리찾기 #원고청탁거부

    #절필 #권리찾기 #원고청탁거부

    문단 “불합리한 관행 깨야” 성토… 자음과모음 소설 공모에도 영향올 초 불거진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6일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단편 저작권을 출판사 측에 3년간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계약서 조항에 반발해 우수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이어 31일에는 전년도 대상 수상자 윤이형 작가가 절필을 선언했고, 동료 작가들이 이에 연대해 이상문학상 주최사인 문학사상사 업무 거부에 나섰다. 이 사태는 여타 문학상에 대한 문제제기, 부당한 원고 청탁에 대한 거부 등 문단 전체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제대로 사과하라”… 문학계 지지 여론 확산 작가들은 문학사상사의 제대로 된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문학사상사는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문제가 된 조항이 직원 실수로 우수상 수상작에도 포함됐다는 언론 보도가 전해지며 작가들의 공분을 샀다. 급기야 윤이형 작가가 트위터에 “제가 받은 이상문학상을 돌려드리고 싶다. 부당함과 불공정함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며 절필을 알려 문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윤 작가는 전날 서울신문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제 작품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이득을 얻는 것 같아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며 절필 이유를 밝혔다. 그는 문학사상사 대표를 향해 공식 입장 표명과 사과, 운영 개선 등을 요구했다.전년도 우수상을 받은 최은영 작가도 같은 날 트위터에 “분별없이 수상에 동의하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에 올해 수상 작가들에게까지 피해가 갔으리란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모든 책임을 직원 개인의 ‘실수’로 몰아가며 자신들의 부당한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 문학사상사에 사과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작가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문학사상사 보이콧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동료 작가들은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해시태그로 의지를 드러내고, 구병모·황정은·조해진·권여선·장류진·정세랑·함정임 소설가, 오은·권창섭 시인 등이 이에 연대했다. 독자들도 ‘#문학사상사_소비_거부’, ‘#문학사상사_독자_보이콧’ 등으로 동참하고, 동네서점 몇 곳은 문학사상사 책을 입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문학사상사 측은 묵묵부답이다. 서울신문은 문학사상사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매년 이상문학상 대상 작가의 커버스토리를 담았던 ‘문학사상’ 2월호는 이번 호를 ‘시 공동 창작’ 특집으로 꾸렸다. 수년간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권영민 미국 UC버클리대 연구 교수는 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상의 운용에는 관여하지 않아 얘기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도 “작가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상금=선인세’ NO… 다른 문학상도 내용 정정 문학사상사 보이콧 사태는 다른 문학상 관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출판사 자음과모음은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한 신인문학상 공모 내용을 정정했다. 상금 500만원을 두고 ‘인세가 상금을 상회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인세로 지급한다’고 공지했다가 삭제했다. 상금을 선인세로 공제하고, 출간을 전제로 한 장편소설 공모가 아닌데도 단행본 계약을 강제한다는 데 이의 제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부당한 원고 청탁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움직임도 나온다. ‘소정의 고료’로만 통용된 출판계 관행에 대한 반기다.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이원석씨는 “올초 고료를 미리 밝히지 않은 원고 청탁을 거절했다”며 “함께 등단한 신인 작가들과 연대해 목소리를 내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를 문학 출판 제도의 현대화가 이뤄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예술을 노동과 멀리 떨어뜨린 예술관에 대한 이의 제기가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과거에 비해 문예지가 중심이 된 출판사의 권위 약화, 저작권 개념에 대한 문제 의식 강화로 일어나는 일”이라며 “궁극적으로 해외 사례처럼 저작권을 관리하는 에이전트 시스템을 널리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상문학상 사태’ 일파만파…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이상문학상 사태’ 일파만파…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올 초 불거진 이상문학상 수상 거부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6일 김금희·최은영·이기호 작가가 ‘단편 저작권을 출판사 측에 3년간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계약서 조항에 반발해 우수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이어 31일에는 전년도 대상 수상자 윤이형 작가가 절필을 선언했고, 동료 작가들이 이에 연대해 이상문학상 주최사인 문학사상사 업무 거부에 나섰다. 이 사태는 여타 문학상에 대한 문제제기, 부당한 원고 청탁에 대한 거부 등 문단 전체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문학사상사, 제대로 된 사과하라”…#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작가들은 문학사상사의 제대로 된 사과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문학사상사는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문제가 된 조항이 직원 실수로 우수상 수상작에도 포함됐다는 언론 보도가 전해지며 작가들의 공분을 샀다. 급기야 윤이형 작가가 트위터에 “제가 받은 이상문학상을 돌려드리고 싶다. 부당함과 불공정함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며 절필을 알려 문학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윤 작가는 전날 서울신문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제 작품이 누군가를 착취하고 이득을 얻는 것 같아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며 절필 이유를 밝혔다. 그는 문학사상사 대표를 향해 공식 입장 표명과 사과, 운영 개선 등을 요구했다.전년도 우수상을 받은 최은영 작가도 같은 날 트위터에 “분별없이 수상에 동의하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에 올해 수상 작가들에게까지 피해가 갔으리란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어 “모든 책임을 직원 개인의 ‘실수’로 몰아가며 자신들의 부당한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 문학사상사에 사과를 요구한다”고 덧붙였다.작가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는 문학사상사 보이콧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동료 작가들은 ‘#문학사상사_업무_거부’ 해시태그로 의지를 드러내고, 구병모·황정은·조해진·권여선·장류진·정세랑·함정임 소설가, 오은·권창섭 시인 등이 이에 연대했다. 독자들도 ‘#문학사상사_소비_거부’, ‘#문학사상사_독자_보이콧’ 등으로 동참하고, 동네서점 몇 곳은 문학사상사 책을 입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문학사상사 측은 묵묵부답이다. 서울신문은 문학사상사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매년 이상문학상 대상 작가의 커버스토리를 담았던 ‘문학사상’ 2월호는 이번 호를 ‘시 공동 창작’ 특집으로 꾸렸다. 수년간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권영민 미국 UC버클리대 연구 교수는 2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상의 운용에는 관여하지 않아 얘기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도 “작가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상금=선인세’ NO… 신진 작가들, 권리 찾기로 확산 문학사상사 보이콧 사태는 다른 문학상 관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출판사 자음과모음은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한 신인문학상 공모 내용을 정정했다. 상금 500만원을 두고 ‘인세가 상금을 상회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인세로 지급한다’고 공지했다가 삭제했다. 상금을 선인세로 공제하고, 출간을 전제로 한 장편소설 공모가 아닌데도 단행본 계약을 강제한다는 데 이의 제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신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부당한 원고 청탁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자인 성다영 시인을 필두로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 신인문학상 수상자인 이원석·차도하·조용우씨는 문학세계사가 내는 ‘신춘문예 당선 시집’에 시를 싣는 것을 거부했다. 문학세계사가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와 관련된 출판사라는 이유에서다. 뿐만 아니라 고료를 미리 밝히지 않은 청탁을 거부하겠다는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출판계에서 ‘소정의 고료’로만 통용돼왔던 관행에 반기를 든 것이다.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인 이원석씨는 “올초 고료를 미리 밝히지 않은 원고 청탁을 거절했다”며 “함께 등단한 신인 작가들과 연대해 목소리를 내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를 문학 출판 제도의 현대화가 이뤄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예술을 노동과 멀리 떨어뜨린 예술관에 대한 이의 제기가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과거에 비해 문예지가 중심이 된 출판사의 권위 약화, 저작권 개념에 대한 문제 의식 강화로 일어나는 일”이라며 “궁극적으로 해외 사례처럼 저작권을 관리하는 에이전트 시스템을 널리 확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여성·퀴어·SF… 펜에 스민 다양성

    여성·퀴어·SF… 펜에 스민 다양성

    대부분 문학상 수상자 여성 돌풍 여전 장르 문학도 약진… ‘K문학 위상 높여’올 한 해 문학계는 ‘다사다난’보다는 ‘다이내믹’에 가까웠다. 한림원에 번진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로 한 해를 거른 노벨문학상은 두 명의 수상자(올가 토카르추크·페터 한트케)를 배출했다. 한국에서는 김혜순 시인이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 차기 노벨문학상 수상 전망을 높였다. 변방의 서자 취급을 받던 SF 등의 장르 문학은 대세로 떠올랐고, 여성 작가를 필두로 한 페미니즘과 퀴어 서사는 여전한 힘을 발휘했다. ●후보도 수상자도 여성… 여성 작가 초강세 올해 트위터에서 돌았던 ‘짤’ 중 하나. ‘김승옥문학상 수상자’라는 코멘트 아래 쭉 이어지는 7명의 사진은 모두 여성이었다. 대상을 받은 윤성희 작가를 비롯해 우수상 수상자인 권여선, 편혜영, 조해진, 황정은, 최은미, 김금희 모두 여성인 까닭이다. 올해 13회째를 맞은 김유정문학상도 사정은 비슷했다. 수상자 편혜영 작가를 비롯해 후보 작가들(김금희, 김사과, 김혜진, 이주란, 조남주, 최은미) 모두 여성이었다. 동인문학상(최수철)을 제외하고 이상문학상(윤이형), 현대문학상(박민정) 등 주요 문학상도 여성들에게 돌아갔다. 박혜진 문학평론가는 “최근 사회에 던지는 윤리적인 질문 자체가 문학 미학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가 됐다”며 “젠더나 퀴어, 장애인 같은 소수자 서사를 다루는 데 여성 작가들이 사회에 더욱 직접적으로 질문하는 ‘첨단의 윤리’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페미니즘·퀴어 서사의 진화 여성 작가들의 활약으로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이 쏘아 올린 페미니즘 소설 붐은 올해도 계속됐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리타 메이 브라운 등 외국 유명 페미니스트 소설가들의 작품이 번역 출간되는가 하면 국내 여러 작가가 참여한 앤솔로지 발간이 이어졌다. 퀴어 문학에서는 박상영이라는 걸출한 신예의 탄생이 주목받았다. 지난해 출간한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문학동네)로 주목받았던 박상영은 두 번째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으로는 6개월간 4만 5000부를 찍었다. 성에 대한 자유분방한 묘사가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퀴어 서사를 넘어 청년 세대의 사랑과 상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한다는 평을 받는다. ●신성의 등장, 무크지 창간… SF 문학의 약진 웹소설 플랫폼의 성장과 함께 SF, 판타지, 무협, 로맨스, 추리 등을 포괄하는 장르 문학이 크게 각광받았다. 그중에서도 SF의 활약은 눈부셨다. 포스텍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은 출간 6개월 만에 3만 3000부를 찍어 신예 작가로는 이례적인 관심을 받았다. 김보영 작가는 미국 최대 출판그룹 ‘하퍼콜린스’에 중·단편 소설 3편의 번역 출간권을 판매, 한국 SF 최초로 영미권 주요 출판시장에 진출했다. 한편 지난달에는 SF 전문 무크지 ‘오늘의 SF’(아르테)가 창간돼 SF 문학을 비평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고호관, 듀나, 정세랑, 정소연 등 SF 문학의 최전선에 있는 작가들이 편집위원을 맡았다. 복도훈(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평론가는 “AI나 인류세,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SF적인 상상이 우리 삶의 중요 기제가 됐다”며 “최근의 SF 붐은 밑바닥부터 실력을 다져 온 작가들과 팬덤, 출판사들까지 오래된 노력이 ‘빅뱅’처럼 폭발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로 뻗어가는 K문학의 힘 한국에서 130만부를 찍은 ‘82년생 김지영’은 올해까지 19개국에 수출, ‘K문학’의 위상을 드높였다. 중국에서만 18만부, 일본에선 15만부가 인쇄되는 등 비슷한 사회 환경의 동아시아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다.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에서도 한국 문학에 대한 열띤 관심이 이어졌다. 지난 6월 김혜순 시인은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 시문학상을 한국 작가로는 처음 수상했다. 9월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은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낭독회를 들으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즈음 스웨덴 문예지 ‘10TAL’은 한국문학 특집호를 발간했다. 외국으로 번역 출간되는 한국문학을 지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올 한 해 출판 지원 종수는 26개 언어권 151종이었다. 2010년 15개 언어권, 53종의 책을 번역 출간한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여성, 무대 위 주류가 되다

    여성, 무대 위 주류가 되다

    2018년 공연계가 문화계 전반에 퍼졌던 ‘블랙리스트 사태’ 후폭풍과 ‘미투 운동’(성폭행 피해 폭로)으로 흔들렸던 해라면, 올해는 이런 문제의식이 작품으로 발현되면서 여성을 주체적으로 다룬 작품이 풍성해진 한 해였다. 뮤지컬 시장은 인기 라이선스 작품들의 여전한 강세 속에 창작 뮤지컬 약진도 돋보였고, 부산에서 문을 연 대형 뮤지컬 전용관은 한국 뮤지컬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문화계 흔든 여성 이슈… 공연계도 흔들다 뮤지컬과 연극은 고전 소설이나 희곡에 뿌리를 둔 작품이 많은 탓에 여성 캐릭터는 주로 남성 주인공의 이야기를 꾸미는 역할을 하거나 수동적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2017년과 2018년 한국은 물론 세계 문화계를 흔든 ‘미투 운동’은 공연 창작자들과 배우들의 의식에도 큰 변화를 줬다. 무엇보다 20~30대 여성이 핵심 소비층인 한국 공연계에서는 ‘주체성’에 눈 뜬 관객 눈높이에 맞게 기존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 구조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뮤지컬 ‘시라노’는 여성 캐릭터 ‘록산’의 주체적인 캐릭터를 부각하기 위해 기존에는 없었던 검술을 배우고 문예지 활동을 한다는 설정을 추가했고, 올해 초연한 ‘엑스칼리버’는 여성 캐릭터 ‘기네비어’에게 활을 쥐여주고 주체성을 강조한 대사를 삽입했다. 그러나 ‘엑스칼리버’는 기네비어의 등장을 제외한 장면에서는 남성 의존적인 캐릭터로 풀어내는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다.여성 캐릭터가 주도한 작품으로는 단연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는 책과 읽히지 않는 인생’이 돋보였다. 프란츠 카프카의 유작 원고 반환 소송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주인공 호프를 주체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올해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올해의 뮤지컬상’을 받았고, 극 중 78세 노인 호프를 연기한 김선영은 ‘올해의 배우상’을 받았다. 연극은 더욱 진보적이고 논쟁적으로 여성 이슈를 풀었다. ‘인형의 집, Part2’, ‘와이프’, ‘이갈리아의 딸들’, ‘환희, 물집, 화상’ 등 여성과 소수자를 향한 사회적 차별과 폭력을 고발한 작품이 이어졌다. 특히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이갈리아의 딸들’은 공연 티켓 오픈 직후 전 회차 모든 좌석이 팔려나갔다. 1977년 출간된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크의 동명 여성주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극 중 이갈리아는 여성이 사회의 중심인 ‘가모장제’ 사회로 그려진다.●관객 몰린 라이선스 대작들… 창작도 약진 라이선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맘마미아!’, ‘레베카’, ‘아이다’ 등 스테디셀러 대작은 다시 관객을 객석으로 불러들였다. 특히 ‘맘마미아!’는 8월 22일 한국 뮤지컬 사상 두 번째로 200만 관객을 달성했다. 2004년 1월 17일 한국 초연 이후 15년 7개월 5일 만에 ‘캣츠’의 200만 기록(2017년 12월)에 다가섰다. 올해 초연된 창작뮤지컬 ‘엑스칼리버’, ‘귀향’, ‘여명의 눈동자’, ‘영웅본색’ 등도 뮤지컬 시장을 풍성하게 했다. 초연 10주년을 맞은 ‘영웅’은 전국 투어에서 여전한 힘을 입증했고, ‘벤허’는 동명 영화를 기억하는 40~50대 남성 관객에게 뮤지컬이 가진 맛을 알렸다.●뮤지컬 시장 이끌 새 동력, 부산 ‘드림씨어터’ 지난 4월 11일 부산 남구 문현동에서 문을 연 뮤지컬 전용극장 ‘드림씨어터’는 부산·경남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 뮤지컬 시장 성장을 이끌 새로운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3층 객석, 1727석 규모로, 부산에서는 첫 뮤지컬 전용극장이다. 4월 개관 작품으로 유치한 디즈니 뮤지컬 ‘라이온 킹’ 월드투어는 애초 6주 공연으로 예정됐으나 전 회차 매진 열풍에 힘입어 공연을 일주일 연장해 폐막했다. ‘라이온 킹’이 떠난 무대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 신작 ‘스쿨 오브 락’ 월드투어와 안무 거장 매슈 본의 댄스 뮤지컬 ‘백조의 호수’ 등이 올라 역시 흥행을 이어갔다. 지난 13일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역시 예매가 시작된 티켓은 대부분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범인 아닌 별 잡았네… ‘백두’ ‘한라’ 이름 남긴 경찰관

    범인 아닌 별 잡았네… ‘백두’ ‘한라’ 이름 남긴 경찰관

    이름·표어 공모전 400회 참여 ‘작명왕’ “전세계서 불릴 이름… 한국 특성 떠올려” 의성어 등 우리말 두루 연구하고 메모 공모전 노하우 바탕으로 책까지 펴내“세계 최초로 별에 우리말 이름이 붙는 거잖아요. 천문학사에 제가 뭔가 이바지했다는 생각에 하늘을 날 듯이 기쁩니다.” 범인이 아닌 별을 붙잡은 경찰관이 있다. 서울 혜화경찰서 소속 채중석(51) 경위다. 지난 17일 국제천문연맹(IAU)은 전 세계에서 진행한 ‘외계행성 이름 짓기 캠페인’에서 한국 과학자들이 관측한 별 8UMi와 외계행성 8UMi b에 각각 ‘백두’(Baekdu), ‘한라’(Halla)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밝혔다. 채 경위는 백두와 한라라는 우리말 이름을 제안한 주인공이다. 앞으로 백두와 한라는 전 세계 천문 공용 명칭으로 쓰인다. 현직 경찰인 그는 사실 문예지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다. 또 10년 넘게 꾸준히 이름 짓기 공모전에 참여한 ‘작명 왕’이기도 하다. 2008년 재미 삼아 참가한 한 이름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작명가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현재까지 참여한 이름·표어 공모전은 400회 이상, 올해 받은 상금만 약 800만원어치다. 서울 지하철역인 ‘광운대역’, 경남 함안 뚝방길 ‘에코싱싱로드’, 여성가족부 캠페인 ‘가족사랑의 날’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작명왕’의 경쟁력은 부지런함과 꼼꼼함에서 시작된다. 채 경위는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인터넷 검색을 많이 하는데, 이때 공모전 정보를 얻고 꼼꼼히 일정을 메모해 둔다”면서 “‘송알송알 청송’, ‘창창한 창원’ 등 의성어, 의태어, 순우리말, 각 지방 방언을 두루 연구하고 고민한다”고 말했다. 또 “공모전마다 주최 측이 요구하는 주제와 비전이 다르다. 예컨대 이번에 별 이름을 지을 때는 전 세계 공모전이니만큼 한국의 특성을 잘 알릴 수 있는 키워드를 생각했다”면서 “백두, 한라 외에 ‘누리’, ‘마루’ 등도 제안했다”고 말했다. 바쁜 경찰 업무 특성상 아쉽게 기회를 놓칠 때도 있다. 그는 “경인 운하, 종각 태양열 정원 이름 공모전에서 각각 ‘경인아라뱃길’, ‘태양의 정원’으로 응모했는데 동일 명칭이면 먼저 접수한 사람이 당선된다”면서 “일 때문에 제때 응모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좀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 2월에는 네이밍 관련 책도 출간했다. 그는 “음주운전 금지, 교통질서 확립, 각종 시설물 명칭 등 이름, 슬로건을 지어야 할 때가 많다”면서 “고민해서 만든 이름이 교과서에 실리는 등 후대에 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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