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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 고도리 고려 석불입상(한국인의 얼굴:52)

    ◎도르르 말린 턱수염 인상적인 노불/움츠러든 목·몸체 굵은 선으로 구분 고려의 석조불상은 후대로 내려올수록 정형의 틀을 크게 벗어났다.이질적 요소를 띠고 변신한 고려불상 하나를 고르라면 보물 46호인 전북 익산군 금마면 고도리 석불입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불교적이기는 하나 어떤 민속신앙이 가미되었다는 느낌을 짙게 풍기고 있다. 고도리 석불입상은 키가 4.24m에 이르는 거구다.얼핏 올려보아 몸뚱이 전체가 사다리꼴을 이루어 더 큰 키로 다가온다.이 불상은 2백여m 떨어진 데 자리한 다른 불상을 마주했다.그 다른 불상도 닮은 꼴이어서 한쌍이 분명하거니와 마을 수호신격의 장승기능이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의 하나도 여기 있다.그러니까 불교가 토착의 민속과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습합하기 시작한 신앙대상물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석불입상은 수염난 부처다.윗수염과 아랫수염을 돋을새김으로 도드라지게 표현했다.고려 석조불상에 흔히 붓으로 검은 수염을 그려넣어 분장시킨 다른 돌부처와는 사뭇 다른 존재다.그렇듯 고도리 석불입상은 세상에 드문 희세의 얼굴을 했다.윗수염은 입술을 따라 내려오다 입가에서 휘어붙였다.아래턱수염은 도안화한 전통문양의 고사리무늬라서 도르르 말려 있다. 얼굴 생김새를 굳이 말하면 각이 지지 않았을 뿐 네모꼴이다.가는 실눈을 했고 코는 짧다.작은 입을 약간 벌려 입가에 얇은 미소를 담았다.이마에 백호가 없는 것을 빼고 그런대로 부처의 상호를 갖추었다.코가 짧은 탓인지 인중골이 깊고 눈 아래에 주름이 잡혀 아마도 노불인 듯싶다.눈썹 언저리부터 이마를 좁혀나가면서 네모꼴 기둥모양의 보관을 붙여 깎고 덮개돌을 얹었다. 목은 마냥 움츠러들어 아예 보이지 않는다.턱과 몸뚱이 사이에 뚜렷한 선을 둘러 머리와 몸뚱이가 별개임을 구분한 정도로 마무리했다.좁은 어깨에 걸치옷이 사다리꼴 몸뚱이를 타고 길게 흘러내렸다.옷은 소매가 없는 민자옷 통견인데 가운데가 터졌다.마치 서양의상 망토가 연상되었다.그 터진 옷자락 사이로 두 손을 빼내 가지런히 배에 올려놓았다.팔 없는 손이 부자연스럽기는 하다.그러나 손을 돋을새김으로 처리했다. 이 마을 전설속에 나오는 두 석불입상은 이성(이성)으로 이루어진 한쌍이다.두 불상은 1년에 한 차례씩 만나는데,그 날은 섣달 돼짓날(해일) 쥐시(자시)라는 이야기다.불교설화라기보다는 민속과 어울린 전설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두 석불이 만난다는 섣달 이후 새해의 익산 금마지방의 민속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정월 열나흘 밤이 오면 마을 당산에서 기세배 전야제격의 기제사를 올렸다.이어 다음날 기세배를 하러가는 길에 다른 마을에 닿으면 당산굿을 놀았다.당산에서 노는 제의신앙의 대상을 장승으로 삼는 풍속이 전북지역에 더러 전해온 터였다.그러고 보면 고도리 석불입상은 장승의 기능을 얼마간 지녔을 것이다.
  • 경찰 50년 발자취 한눈에/서울청에 경찰박물관 개관

    ◎사료·장비 2천5백77점 전시 경찰 창설 50주년을 맞아 그동안 우리 경찰이 지나온 발자취를 한 눈에 보고 느낄 수 있는 경찰박물관이 8일 문을 열었다. 장소와 규모는 서울경찰청 1층 2백5평으로 생각보다는 단촐하다. 경찰과 그 가족은 물론 일반인들도 자유로이 관람할 수 있다. 이 곳에는 좌·우익이 극심한 대립상을 보였던 해방직후부터 「시민의 이웃」으로 탈바꿈한 오늘에 이르기 까지 갖가지 사료와 경찰장비 1천16종,2천5백77점이 전시되어 있다. 이같은 수집 분량은 지난 2월부터 10개월에 걸쳐 역대 국·청장과 유족들,심지어 여경들에게 까지 사료와 전시품의 기증 및 대여를 유도한 결과이다. 경찰은 전시에 앞서 사료의 고증에서부터 전시내용및 품목·실내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았다. 입구는 고풍스러움이 가득한 조선시대 전통적인 완자형 무늬로 된 창살문양의 자동문이다.벽면에는 「관람도」와 「박물관을 열면서」를 시작으로 「조선시대관」,「민족수난기관」,「건국경찰관」,「구국경찰관」,「경찰청시대」등으로 이어지는 세세한 설명이 붙어있다. 귀중한 전시품도 즐비하다.해방직후 경찰이 사용한 「백차」와 「순찰용 사이드카」를 비롯 초대 경무부장 조병옥 박사의 나비넥타이와 만년필·안경테·1924년 처음 세워진 현 서울 중부경찰서의 전신인 본정경찰서 상량판등이 그것이다.여기에 거북이등으로 만들어진 시가 1천5백여만원을 호가하는 희귀품인 조박사의 안경테와 장택상(장택상)초대 수도청장의 셋째딸이 기증한 퇴임기념 은잔,강남경찰서 학동파출소장 박석규(57)경위가 32년동안 모아온 자신의 월급봉투 뭉치등도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잡는 전시품이다. 박물관 개관작업을 맡은 서울경찰청 경무과장 김남배 총경은 『시민과 경찰이 더욱 가까워지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고려청자 인양 무안 앞바다서 선체 추정 물체 탐지

    ◎접시 등 1백1점 추가인양 최근 다량의 고려청자가 인양된 전남 무안 도리포 앞바다에 대한 전파탐지결과 선체로 추정되는 물체가 감지돼 문화재당국이 본격발굴에 나섰다. 문화재관리국 무안 도리포 해저유물탐사단(단장 정태진)은 21일 『지난 14일부터 20일까지 해군의 지원을 받아 도리포 앞바다에 대한 수중탐사를 실시한 결과 탐지기에 물체가 감지됐다』고 밝히고 『감지된 물체는 최근 이 지역에서 인양된 청자를 싣고 가던 배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문화재관리국은 『물체가 감지된 곳이 연안에서 가까운 점으로 보아 이 배는 우리나라 배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문화재관리국은 『배가 침몰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해역은 간조 수심이 7∼8m,만조 수심이 16∼18m,조류가 센 곳으로,선체는 배의 밑바닥부분만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달말부터 선체의 본격발굴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탐사에서는 청자상감초문잔·청자상감운학문대접·청자상감쌍어문대접 등 대접 52점,접시 46점,기타 3점 등 1백1점의 고려시대(14세기) 도자기가 추가로 발굴됐다.문화재관리국은 『이번에 발굴된 유물중에는 지난번에 없던 술잔과 학 및 두 마리의 물고기가 그려진 새로운 문양의 자기가 포함돼 있다』고 밝히면서 『이 해역에는 이미 발굴된 유물 이외에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매장돼 있을 것』이로 추정했다.
  • 12월초 대기업 공채… 유의사항을 알아보면

    ◎취업시즌/면접땐 단정한 옷차림을/남성­짙은 감색·회색 정장에 사선무늬 타이 무난/여성­스카프 등 액세서리 이용하면 깔끔한 인상 본격적인 입사시험철이 다가왔다.대기업들은 오는 12월 첫째주와 둘째주 일제히 필기시험과 함께 면접시험을 치르지만 10월들어 각 대학의 학생과 취업게시판에 나붙기 시작하는 중소기업등의 사원모집 공고는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입사시험에서 면접이 차지하는 비중은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면접 시험관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첫인상을 좌우하는것은 옷차림이다. 면접때 옷차림은 지원하는 직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신뢰감을 줄 수있고 자신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옷차림이어야 한다.즉 단정하고 깔끔하면서도 성품이 좋아보이게 하는 「튀지않는」차림이 유리하다고 각 기업체 인사담당자들은 말한다. 면접때 결정권을 갖고 있는 사람은 40∼50대 회사 중역들이므로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성실하고 차분한 느낌의 옷차림을 해야 한다는것이다. 자신의 개성을 너무 강조하는 강렬한 인상의 옷차림은 오히려 역효과를 줄 수 있으므로 피하는것이 좋다. 남성복의 경우 슈트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일반 직장의 경우 짙은 감색이나 진회색 싱글슈트가 무난하다.넥타이도 원색과 요란한 색상을 피하고 물방울 무늬나 반복적인 사선무늬를 택한다.최근 유행하는 밝은색의 가로무늬 넥타이의 경우 이제는 「튀지않는」편에 속하므로 스스로 어두운 인상이라고 생각한다면 밝은 인상심기에 활용해 볼 수도 있다. 또 패션감각이 필요한 회사에 지원했다면 어느정도 대담한 푸른색이나 연노랑 분홍등 원색의 셔츠나 화려한 문양의 넥타이를 매도 무방하다. 「모두스비벤디」디자이너 이주연씨는 『넥타이의 경우 바탕이나 문양중 어느 한쪽이 양복 색상과 같은 계통의 색이 들어있으면서 다른색상이 섞인 것이 어울린다』고 조언한다. 여성사원은 특히 면접때 외모가 중시되는것이 현실.자신감있는 면접태도와 함께 깔끔하면서 발랄한 느낌을 주는 옷차림이 면접관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가장 보편적인 차림새는 재킷과 스커트에 블라우스 조끼류를 받쳐입는것.특히 재킷은 요란하지 않게 남성들의 양복처럼 깃이 있는 테일러드 칼라 스타일이 좋으며 치마는 무릎에서 약간 올라간 정도의 길이가 적당하다.요즘들어서는 단정한 바지차림도 무난하다.또 밋밋한 블라우스만 입기 보다는 그위에 스카프등 액세서리를 이용해도 밝고 활동적인 인상을 줄 수있다. 키가 작고 뚱뚱한 사람은 어깨패드가 너무 강조되거나 깃이 너무 넓은 재킷은 피하는 것이 좋으며 키가 크고 마른 사람은 밝고 따뜻한 계통의 색상을 선택해 볼륨감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하는 것이 좋다.깃이 없는 재킷은 작은 키를,더블여밈 재킷은 왜소한 몸을 다소 보완해 줄 수있다.
  • 한·중 민간교류의 새장 열다/서울신문 손주환 사장 방중 결산

    ◎언론분야­“양국 발전 촉진” 균형잡힌 역할 모색/학술분야­원로학자와 회동… 한국학 연구 활성화 인민일보사 공식초청으로 10일부터 5일간 이루어진 손주환 사장 등 서울신문 대표단의 중국방문은 두 언론사의 협력확대 차원을 넘어 비정부차원에서 한·중교류의 폭과 깊이를 한단계 높이는 계기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이번 방문을 통해 손사장은 당과 정부 학계 언론계의 고위관계자 등 각계 인사를 두루 만나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등 양국의 상호이해및 공감대의 토대를 넓혔으며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손 서울신문사장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이자 최고권위지인 인민일보의 소화택사장과 양사의 제휴협력에 합의하고 기존 우호협력관계를 갖고 있던 북경일보와는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하는 등 언론교류의 폭을 넓혔다.더욱이 중국대표적 지성인 북경대총장 등 학계원로와의 모임과 한국학 연구교수들과의 간담회 등은 비정부차원에서 한·중교류의 폭과 깊이를 두텁게 했으며 두나라 국민의 이해교류 기반을 다졌다는점에서 이번 방문의 성과로서 더 강조돼야 될 점이다. 손 서울신문사장은 13일 귀빈루호텔에서 오수청 북경대총장,외교관 전문양성기관인 외교학원의 유산원장,양경화 어언문화대학총장,여신 사회과학원부원장 등 중국 학계및 문화계의 대표적 인사들과 민간교류및 학술협력 증진 방안 등을 논의했다.이에 앞서 12일 화평호텔에서 양통방 북경대한국학연구센터소장,한진섭 사회과학원교수,허유한 북경어언문화대학 한국교육문화연구센터소장,심정창 한·중문화관계연구회 비서장 등 중국의 한국학연구 대표학자 10여명과 한국학연구 활성화와 언론의 역할의 모색을 위한 모임도 있었다. 12일 한국학 연구교수들과의 간담회에서 양통방 북경대교수 등 참가자들은 『지난 2년여 동안 북경대,어언문화대(전어언학원),상해 복단대,사회과학원 등 주요대학및 연구소에 한국학연구센터가 설립되고 이들에 의해 한국관련 간행물 출판과 한국연구가 비로소 시작됐다』면서 『불모지였던 한국학연구가 지난 92년말부터 국제교류재단의 적극적인 연구지원과 활동으로 불이 붙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사장은 『한국학연구는 한·중 두나라 국민의 유대및 이해의 기반을 다지는 기초사업』이라고 전제,『92년말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으로 취임,연구센터설립,간행물발간,인재 양성 등을 적극 지원,중국내에 한국학연구가 자리잡게된 것을 보람있게 생각한다』고 말했다.양경화총장,허유한교수 등은 『손사장이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시절 개설을 추진,지원해온 어언문화대학의 한국어과가 11일 첫 입학생을 받는다』며 이 대학의 한국어과 개설이 중국에서의 한국학 연구·발전에 새 이정표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손사장은 12일 정치국원겸 중공당 선전부장인 정관근을 예방,1시간여동안 강택민주석의 방한에 대한 의미,등소평의 건강,중국의 경제건설,외교정책및 한중관계 등 전반 문제에 대해 설명을 듣고 논의했다.이자리에서 정부장은 『한·중 수교 3년 동안 양국 지도자들의 상호방문은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발전에 큰 힘이 됐다』면서 『강주석의 방한은 두나라 관계발전의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사장등 대표단은 12일에는 유술경 외교학회회장의 초청으로 외교학회 관계자들과 양국 현안문제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나눈데 이어 13일 외교부 고위관계자의 초청으로 조어대에서 한·중관계및 외교현안에 대한 중국지도부의 입장과 시각을 듣고 논의하는 시간도 가졌다.외교부및 외교학회 고위관계자들은 이자리에서 서방언론의 중국위협론 등에 언급하면서 한국언론의 중국문제 보도에 있어 무책임한 외국기사 전재 등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고 중국내의 불만을 전달했다. 중국의 언론및 선전활동을 책임지는 당선전부장을 겸임하기도한 정관근정치국원도 『한중관계 발전을 위해 두나라 언론의 역할과 교류가 강화돼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손사장등 대표단은 한편 재회원 인민대외우호협회 회장,주목지 중한우호협회회장,이녹야 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겸 중국국제문제연구센터 이사장 등 중국외교계의 원로 등과 만나 민간차원에서의 한·중관계의 활성화방안과 언론의 역할 등을 논의했다.
  • 「한국의 문화유산」영문판 발간/한글·김치 등 20개 주제로 나눠

    ◎재외 공관등에 5천세트 배포/해외공보관 공보처 해외공보관(관장 이찬용)은 5일 우리생활 속에 살아 숨쉬는 전통과 문화·예술의 특징을 담은 「Korean Heritage Series(한국의 문화유산)」라는 제목의 15페이지 안팎의 영문판 소책자 시리즈 20권을 펴냈다. 이 책들은 ▲한글 ▲인쇄문화 ▲도자기 ▲단청 ▲문양 ▲장신구 ▲자수 ▲지공예 ▲보자기 ▲민화 ▲전통악기 ▲탈과 탈춤 ▲정원 ▲세시풍속 ▲무속 ▲관혼상제 ▲씨름 ▲태권도 ▲인삼 ▲김치 등 20개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주제로 선정,주제별로 핵심적인 내용을 화보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해외공보관은 모두 5천 세트를 만들어 재외공관과 해외의 문화계 주요 인사 및 주한 외국공관·대학도서관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 새마을기와 새마을 정신/박현갑 사회부 기자(오늘의 눈)

    22일 상오 10시 서울시청안 주차장.새마을운동중앙회 서울시지부 간부회원 2백여명이 「근면」「자조」「협동」을 외치며 서울시의 새마을기 게양 중단방침에 항의하고 있었다. 「참여하는 새마을,발전하는 우리서울」등 피켓도 수십개 보였다. 『새마을운동은 국가경제를 살린 원동력으로 그 기는 특정조직의 기가 아니라 국민운동의 상징기다』『그냥 내리면 될 것을 새마을 정신이 퇴색했다는 등 새마을 운동을 평가절하하는 발언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없애려면 차라리 일제의 잔재가 있다는 저 서울시 공식문양부터 없애라』『외국에서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오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시위에 참여한 50∼60대 남녀회원들은 서울시의 새마을기 게양 중단방침을 이구동성으로 비난하고 있었다. 송파구 잠실7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 박일규(70)회장은 『새마을기를 내리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그러나 새마을의 정신을 모독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새마을지도자 교통봉사대 김기범(54)강동지대장도 『야당에서 정권을 잡아도 새마을은 그냥 새마을』이라면서 여당의 편을 드는 관변단체가 아님을 강조했다. 상오 11시쯤 청사 2층 시정종합정보센터 문을 열고 새마을운동중앙회 서울시지부 이재호(52)회장이 나타나자 이들은 일제히 이회장에게 눈을 모았다. 이회장이 『조순시장에게 새마을기 게양중단 방침을 철회할 것과 만일 철회하지 않으면 다시 게양할 때까지 전국에서 궐기대회를 열겠다고 통보했다』고 말하자,이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입장변화는 없다. 이날 만일의 사태에 대비,청사입구를 통제하고 있던 한 경찰은 『새마을 운동으로 살기 좋아진 것은 사실 아니냐』면서 이들의 시위동기에 공감이 간다는 표정이었다. 반면 한 공무원은 『근면·자조·협동정신이 필요없다는 게 아니라 지금은 환경보존·사회복지·안전 등이 더 강조돼야한다는 뜻에서 새마을기를 내리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시정에 대한 신뢰부족을 안타까워했다.
  • 유형의 수도 이르쿠츠크(시베리아 대탐방:34)

    ◎왕정반란 「12월 당원」들의 마지막 안식처/유형 온 주모자가 살았던 주택을 박물관으로/앙카라 강변엔 17세기 「시베리아 정복탑」 우뚝 이르쿠츠크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물은 앙가라강변에 세워진 시베리아 정복탑이다.총독청사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오벨리스크다.동진하던 러시아 정복자들은 17세기말 이곳에 이르러 가쁜 숨을 내쉬고는 잠시 정복의 발길을 멈추었다.그리고는 이곳에 높이 10여m의 대형 정복탑을 세워 그동안의 공적을 자축했다.정복의 상징인 대형 쌍독수리 문양 아래 모라비요프·아무르스키·스페란스키 등 정복자들의 이름이 쓰여져있고 「시베리아 정복자들에게 영광있기를」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철도 개통… 도시 부흥 이르쿠츠크는 1686년 정식 도시가 된 뒤 성장을 거듭,1764년에는 이르쿠츠크 구베르니(주)의 수도가 됐다.그러나 도시발전의 진짜 전기는 1898년 시베리아철도가 이곳을 통과하면서 찾아왔다.따라서 3년 뒤면 동시베리아 철도가 개통된지 1백주년이 된다.당시 이곳은 주도 였기 때문에 동시베리아의 철도업무를 이곳에서 관장했다.관공서 거리였던 칼 마르크스거리에는 당시 이르쿠츠크·부리야티·치타주의 철도를 총괄하는 동시베리아 철도청이 있었다.4층짜리 대형 대리석건물인데 혁명 전 세워진 건물원형에다 혁명 뒤 소비에트식 건물장식을 곳곳에 덧붙이고 역시 혁명성이 강한 대리석 조각까지 건물상단 곳곳에 만들어 붙여서 연대불명의 이상한 건물이 돼버렸다.시베리아 곳곳에 이런 식으로 옛건물에 사회주의 장식을 덧붙여 건물의 원형을 훼손시킨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르쿠츠크는 혁명 전 러시아 유형의 수도였다.특히 1825년 왕정에 반대기치를 내걸고 반란을 일으켰던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 주모자들 대다수가 이곳으로 유형 와 생을 마쳤다.사회주의 시절 볼셰비키들은 이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을 혁명의 시작이라고 추앙했다.그래서 이곳은 혁명의 성지 같은 곳이 됐다.당시 데카브리스트들이 유형 와 거처했던 집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만들고 성역화해 놓은 이들의 무덤이 곳곳에 있다. ○교회에 구경꾼들 몰려 제르진스키거리에있는 「돔 무제 데카브리스트」는 1826년부터 30여년간 12월당 혁명주모자들 수명이 유형생활을 했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민 대표적인 명소다.12월당 혁명은 1825년 알렉산더 1세가 후사 없이 죽고 그의 동생인 니콜라이 1세가 뒤를 이어 즉위할 즈음에 일어났다.당시 군대내에 왕정폐지를 주장하던 비밀결사조직인 12월당원 5백여명이 「새 차르즉위 반대,공화정 수립 지지」를 내걸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나드광장에서 무력저항을 시작한 것이다.25년 12월14일 하오3시 직후였다.물론 이 저항은 왕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분쇄됐고 이후 주모자 5명은 처형되고 나머지 주모자급 1백28명이 모두 시베리아로 유형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이들은 중죄인으로 유형지에서도 모두 죽을 때까지 카타르가(쇠족쇄)를 차고 살아야했다.박물관 자료에는 당시 12월당원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북 소사이어티」와 키예프를 중심으로 한 「남 소사이어티」등으로 나뉘어 이미 광범위한 비밀세력을 형성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데카브리스트들의 박물관,그들의 무덤이 있는 교회입구에는 반드시 늘어서서 여행객들을 맞는 불청객들이 있다.바로 구걸꾼들.입구의 좌우로 10여명씩 늘어서서 연신 성호를 그으면서 자비를 구하는 데 도저히 그냥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이들을 위해 잔돈을 준비하는 것도 신경써야 할 일이다. 이르쿠츠크는 폴란드인들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도시다.제정 러시아시절부터 러시아에 이주해온 폴란드인의 정신적 수도 같은 곳이고 폴란드인들의 대성당이 이곳에 있다.시베리아 폴란드인들도 유형 와 정착한 사람들이다.나폴레옹시대가 지난 1861년 당시 바르샤바가 있는 동폴란드는 러시아영토였다.1861년부터 63년까지 폴란드인들은 거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그러나 이 독립운동은 실패로 끝났고 1만여명이 시베리아로 유형을 왔다.이들의 주유형지가 바로 이르쿠츠크였고 그들의 친척·후손들이 지금도 이 일대에 모여살게 된 것이다. 주청사 바로옆 「폴란드혁명거리」에 위치한 폴란드성당인 「성모 무염시태(무염시태)성당」도 1884년 이들이 세운 것이다.소련시절 교회가 폐쇄된 채 국유화돼 시립 파이프오르간 연주장 등으로 쓰이다 지난해말 건물 일부가 폴란드신도들에게 되돌려졌다.폴란드에서 파견돼온 베르다벳다라는 젊은 수녀는 현재 이르쿠츠크 오블라스치(주)에 약 3천여명의 폴란드인이 사는 데 매주 3백여명의 신자들이 참석해 미사를 올린다고 했다.이곳 뿐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크라스노야르스크·옴스크 등 시베리아 여러 곳에 폴란드성당이 있는 데 하나 같이 교회건물 반환문제를 놓고 러시아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폴란드 혁명거리로 모스크바에도 많은 폴란드인이 살고 폴란드 성당이 2곳 있는 데 이들은 시베리아 폴란드인들과는 또 다른 이주배경을 갖고 있다.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 서부러시아는 과거 폴란드의 지배를 받았다.당시 그곳에 살던 폴란드인 다수가 모스크바로 옮겨가 살았다.특히 폴란드인들은 교육열이 높아 모스크바의 각종 대학·인스티튜트(단과대학)등에서 공부했다.소련시절에는 모스크바 거주 폴란드인수가 10만명을 넘었다.모스크바의 가톨릭교회도 소련시절 국유화됐는 데 최근 반환을 요구하는 폴란드인들과 시정부가 맞붙어 유혈충돌까지 벌어졌다.모스크바 폴란드성당건물은 외양만 교회이지 시정부에서 건설회사 사무실로 사용해 내부는 완전히 일반 사무실처럼 바뀌어 있다.러시아전역이 마찬가지지만 국유화된 교회는 이렇게 사무실로,창고로,때로는 감옥으로도 바뀌어 철저히 파괴됐다.모스크바의 폴란드성당은 몇개월 전 건물일부가 반환돼 폴란드인들과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외국인 가톨릭신자들이 그곳에서 미사를 본다. 이르쿠츠크의 폴란드성당 멀지 않은 곳에는 주청사건물을 비롯한 정부청사들이 들어서있다.시베리아의 각 도시들이 마찬가지지만 주도에는 주청사·지방의회·지방선거위원회 등과 함께 연방대통령 대리인의 집무실이 나란히 들어서 있는 게 흥미롭다.93년말 새헌법 채택으로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대폭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자신의 심복들로 임명하는 지방관을 보내 주정부의 일을 감독·감시토록 하는 것이다.그래서 주민이 선거로 뽑은 주지사·시장과 이 대통령 대리인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 고구려 지명새긴 기와 첫 발견/반월산성서/포천 옛이름 「마홀」입증

    경기도 문화재 제48호인 포천군 군내면 구읍리 산5­1 반월산성에서 고구려시대의 옛 지명이 정확하게 새겨진 기와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단국대 사학과팀(단장 박경식교 수)이 지난 7월1일부터 반월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와 25일 공개한 기와는 폭 4.3㎝,길이 19.5㎝ 크기의 회백색 연질로 「마홀수해□」란 글자가 뚜렷하게 양각돼 있다. 삼국사기 권35 잡지 제4지리2는 『견성군은 본시 고구려의 마홀군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였다.지금의 포주니 영현이 둘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단국대 사학과팀은 따라서 『포천은 고구려 당시 마홀군으로 불려졌음을 알 수 있으며 기와의 명문이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하는데 삼국시대의 지명이 기와로 확인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박경식 발굴조사단장은 『명문기와의 발견으로 반월산성이 고구려에 의해 처음으로 축조됐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면서 『출토된 기와의 처리수법과 문양을 볼때 앞으로 남한지역에서 출토되는 고구려 기와 연구에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전투기 축하비행… 축제분위기 절정에/중앙경축식·광복 길놀이

    ◎환호·박수속 “흙 다시 만져보자” 합창/길놀이팀 축제에 시민들 “즉석출연”/오색풍선 수천개… 꽃차 수십대 참가 1995년 8월15일.서울거리는 태극기의 물결과 대한민국만세 소리로 메아리쳤다. 「광복 50주년」 중앙경축식이 열린 15일 서울 광화문앞 드넓은 거리에는 태극문양이 뚜렷하게 새겨진 모자를 쓰고 태극부채를 든 시민들의 상기된 얼굴로 가득차 마치 50년전 「광복의 그날」 전국을 메아리치던 해방의 감격이 재현된 듯했다. ○…이날 서울 세종로에는 5만여명의 내외빈과 시민들이 아침일찍부터 모여 들어 축제 분위기.주변 건물마다 「통일로,미래로」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고 하늘에는 대형태극기가 바람에 힘차게 나부껴 분위기를 돋웠다. 광화문앞 왕복 16차선 도로에는 30도안팎을 오르내리는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온 시민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들은 저마다 태극모자와 태극부채를 들고 질서정연하게 앉아 망원경이나 대형멀티비전을 통해 행사를 지켜보며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는 모습.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중앙청 첨탑제거가 끝난뒤 상오 10시50분쯤 공군 전투기 5대가 오색연막을 날리며 행사장 상공을 축하 비행하자 참석한 시민들은 또다시 탄성을 질러 축제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으며 5만여명의 시민들이 한목소리로 외친 「대한민국 만세」 소리가 도심곳곳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이날 행사는 시민들이 「광복절노래」와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는 가운데 아우내장터에서 채화된 통일성화가 식장에 도착,손기정옹을 거쳐 황영조선수에게 전달된 뒤 황선수를 선두로 한 50명의 「통일성화봉송단」이 파주 오두산 통일동산으로 출발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중앙경축식 행사에 이어 하오4시부터 2시간30여분동안 동대문운동장에서 종로를 거쳐 광화문일대에 이르는 2㎞ 도로에서는 「광복 길놀이」 행사가 펼쳐졌다. 길놀이행사에는 지난 12일부터 사흘동안 부산 광주 대전 전국 8개 시도별로 열렸던 길놀이팀이 모두 참가했으며 각시도의 상징물과 대형장식차량 30여대가 총동원. 우렁찬 팡파레와 사물놀이로 흥을돋운 뒤 시작된 길놀이 행사는 수천개의 오색풍선이 하늘을 날면서 선두 길잡이패의 행진으로 본마당에 돌입.4천여명의 행사참가자들이 일제시대 광복군차림을 재연하는등 다채로운 옷차림으로 행진을 벌이자 가두의 시민들은 흥겨운 표정으로 해신·달신달기와 물총놀이 등 행사에 직접 참여. ○…서울시는 15일 정오를 기해 조순서울시장을 비롯,독립유공자 유족 등 50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신각을 타종. 광복절에 보신각종이 울린 것은 지난 46년 광복절날 이승만,김구선생 등이 타종한 이후 처음으로 새벽을 열고 중생을 악에서 구제한다는 뜻에서 모두 33번 타종됐다. ◎음악인 대향연/한여름밤 빛낸 “감동의 선율”/세계 정상급 한인 음악스타 총집합/5만관객 운집… 환상적 공연에 갈채 ○…15일 하오7시30분 서울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대향연」은 국내 음악사상 최상의 출연진에 5만명이 넘는 최대규모의 관객이 운집한 흥겨운 축제였다.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세계적 명성의 우리 음악인들이 한사람도 빠짐없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관객들은 흥분.출연진은 지휘자 정명훈씨를 비롯,성악가 홍혜경 조수미 신영옥 최현수,피아니스트 한동일 신수정 이경숙,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김영욱 강동석 장영주 김남윤,첼리스트 정명화씨등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음악인 20여명과 KBS교향악단,연합합창단등을 포함,6백50명에 이르렀다. ○정명훈씨,KBS악단 지휘 ○…정명훈씨 지휘의 KBS교향악단이 연주하는 애국가가 웅장하게 울려퍼지면서 개막된 이날 무대는 1부 악기연주,2부 베르디 오페라 아리아로 짜여졌다. 최연소 연주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양(14)은 이날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전에 일정이 잡힌 5개의 연주회를 취소했다고.해방둥이인 피아니스트 이경숙씨는 『광복50주년 무대에 서는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1부무대에는 또 원로시인 구상씨와 판소리명창 박동진씨가 등장,광복의 벅찬 감동을 담은 시낭송을 했다.1부와 2부사이에는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씨가 광복5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제작한 2분30초짜리 비디오작품이 초대형스크린으로 소개돼 음악과 영상이 어우러진 화려한 첨단쇼가 연출됐다. ○「한국환상곡」 피날레 장식 ○…밤10시가 넘어 음악회는 수백발의 축포가 터지는 가운데 「한국환상곡」(안익태곡)으로 피날레를 장식했으나 환호하는 관객들은 어둠이 짙게 깔린 경기장을 메운채 끊이지 않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날 음악회가 열린 잠실주경기장에는 음향 조명등의 첨단장비와 5만명의 관객들로부터 잔디구장을 보호하기 위한 최첨단 잔디보호시스템이 유럽에서 공수돼와 설치되기도.그러나 음향상태는 나빠 전경기장에 골고루 소리가 전달되지 못했다.입구표시가 제대로 돼있지 않아 수많은 관객들이 입장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등 초반 행사진행도 미숙했다. ◎돛단배 등 80척 “원색의 장관” 연출/전국 돛단배 한강 종주대회/2,500명 참가… 한강 20㎞ “릴레이 노젓기” ○…한국해양소년단 연맹은 이날 한강에서 「전국 돛단배 한강종주대회」를 열어 한강을 형형색색의 배로 수놓아 장관. 광복 5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연맹 산하 전국 15개 시·도 대표 9백45명등 모두 2천5백여명이 참가한 이날 대회는 상오 10시부터 하오 4시까지 잠실선착장∼여의도선착장 20여㎞를 7개 소구간으로 나눠 릴레이식으로 진행. 돛단배 18척과 고무보트·카누 등 80여척의 오색무늬 배를 타고 출전한 국민학생에서 대학생에 이르는 참가자들은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장관을 연출하는 열띤 경연속에서 50년전 오늘의 기쁨을 되새기는 모습. 행사를 주관한 한국해양소년단 조수호 총재는 『이번 행사는 해방 50주년을 기념하고 청소년들의 해양사상과 진취적인 기상을 드높이기 위해 마련됐다』며 『특히 우리 민족과 영욕을 같이 해온 수도 서울의 젖줄 한강에서 대회를 열어 뜻깊게 생각한다』고 흐믓한 표정.
  • 일본에선…/유출 한국 문화재(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11)

    ◎약탈·밀반입 문화재 10만점 추산/고려 대장경 등 10점 「일 국보」 지정/알려지지 않은 개인 소장품 훨씬 더 많아/고려청자·회화 희귀품 많아… 반환이 과제 고려청자의 걸작품 청자투각당초문상자. 화려한 투각문양과 청록색의 이 명품은 수백년이 지난 오늘도 맑은 에메랄드처럼 빛나고 있다.그것을 만든 장인은 가고 없지만 고려청자의 예술은 오늘도 찬란하다.그러나 그 걸작품은 지금 한국에 없다.굴절된 한국의 현대사를 증언하듯 그 작품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국립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도쿄 국립박물관의 안내책자는 8만8천여점의 소장품 가운데 엄선한 26개 작품중에 청자투각당초문상자를 소개하고 있다.일본도 걸작품의 예술성을 아는 것일까.고려청자의 전성기였던 12세기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4점밖에 남지 않은 상자형 청자중의 하나이다. ○3만여점은 공개 도쿄 국립 박물관에는 청자투각당초문상자 외에도 많은 한국문화재가 있다.문화재 수집가 오쿠라 다케노스케(소창무지조)가 기증한 「오쿠라 컬렉션」을 포함,2천여점의한국 예술품이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그러나 도쿄박물관에 있는 문화재는 일본에 의해 약탈됐거나 불법유출된 한국문화재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정부에 의해 파악된 해외유출 문화재는 세계 17개국에 6만4천여점이며 그중 가장 많은 3만여점이 일본으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공개된 것일 뿐 실제로는 10만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일본의 경우는 도쿄국립박물관,오사카(대판) 시립동양자기미술관,야마토(대화)문화관,도쿄에 있는 민예관 등 박물관에 있는 한국문화재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알려지지 않은 개인소장 문화재가 더 많다고 주일 문화원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역사연구에 중요 한국국제교류 재단은 해외에 있는 문화유산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일본 민예관에 있는 한국문화재의 도록을 「한국문화재」라는 제목으로 93년 12월에 발간한데 이어 95년1월에는 도쿄국립박물관,오사카 시립동양자기미술관,야마토문화관에 있는 한국문화재의 도록을 만들었다. 한국의 문화재들은 멀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일본의 식민통치 기간과 그 이후의 사회적 혼란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4백여년에 걸쳐 일본인들에 의해 약탈됐거나 일본으로 밀반출됐다. 일본으로 건너간 문화재중에는 국보급의 걸작품들도 적지 않다.일본정부는 고려판 「대장경」을 비롯,10점을 국보로 지정하는 등 1천2백70여점을 중요 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다. 도쿄국립박물관에는 일제시대 때 대구를 중심으로 한국문화재를 전문수집했던 오쿠라씨가 죽은 후 지난 81년 기증된 「오쿠라 컬렉션」의 1천여점의 한국문화재가 전시돼 있다.오쿠라 컬렉션을 시대적으로 구분하면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서부터 통일신라에 이르는 고고(고고)자료가 많으며 고려·조선시대의 미술작품,청자 등도 적지 않다. 오쿠라가 모았던 문화재들은 양이 많을 뿐만아니라 예술성에서도 뛰어난 작품이 많다고 민속학자 김광언교수(인하대)는 지적한다.그중에는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는 이정의 「니금죽도」,정선의 「산수도」,장승업의 「묘도」등이 있다.도자기도 신라·가야의 마형도기,수레형도기 등 50여점과 고려·조선시대 도기 1백30여점이 있다.명품이 많은 고려청자는 38점이며 조선백자도 많다. 오사카시립 동양미술관에도 1백여점의 도자기들이 있는데 국내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명품들도 많다고 윤용이교수(원광대)는 말한다.오사카미술관은 지난 92년11월 고려청자,조선분청사기 등을 포함한 일부유물을 보여주는 명품전을 열어 세계 도자기 애호가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기도 했다. 나라현 나라시에 있는 야마토(대화)문예관에도 많은 한국문화재들이 소장돼 있으며 도쿄에 있는 민예관에는 야나기 무네요시(유종열)가 제창한 민예이론에 따라 수집된 1천5백여점의 문화재들이 있다.일본의 유명사찰 등에도 한국문화재들이 소장돼 있으며 예술적 가치가 높은 조선초기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덴리(천이)대학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민간기업도 참여 한국은 일본에 있는 이러한 많은 문화재들을 되돌려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성과는 별로 없다.지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 「한·일간 문화재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에 따라 그동안 돌아온 문화재는 2천7백77점에 지나지 않는다.지난해에는 일본의 하치우다 다다스씨(68·부동산업)로부터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 등 3백82점을 기증받은 경우도 있으나 문화재를 돌려받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한국정부는 문화재 반환을 위해 일본정부와 접촉하기도 하지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주일 문화원 관계자는 말한다.일본내 우익세력들이 개인소장가들의 문화재 반환을 막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문화재 반환은 세계적으로 어렵고 미묘한 문제이다.유네스코를 중심으로 문화재 반환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강대국들이 대부분 유출 문화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실효성이 별로 없다.이때문에 민간기업들이 문화재에 많은 관심을 갖고 해외 경매시장에서 사들이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하는 문화재 전문가들도 많다.
  • 중국보다 3백88년 앞서 사용/“태극도형은 우리 고유문양”

    ◎서울시·국기선양회 실증 공개/중 주염계 태극도설 1070년 발표/감은사지 기단문양은 682년 새겨져/“정확한 고증 안거친 단순비교는 무리” 견해도 태극기의 원형이 되는 태극도형은 우리가 중국보다 3백88년이나 앞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1일 서울시와 국기선양회(회장 김영환)에 따르면 서기 682년에 건축된 신라 시대의 경주 감은사지 기단의 석각에서 발견된 완벽한 태극 문양이 중국의 주염계(돈이)가 태극도설을 발표한 1070년보다 3백88년이 앞선다. 이는 중국의 주렴계가 태극도설을 처음 발표하기에 앞서 우리 민족이 독자적으로 태극을 신성한 부호로 널리 사용해 온 것을 나타낸다.감은사지 기단의 태극 문양은 지난 56년 학계에 이미 보고됐으나 눈길을 끌지 못하다가 해방 50주년을 맞아 국기선양회가 다시 공개함으로써 재조명을 받게 됐다. 그러나 감은사지의 태극문양과 태극도설 시기를 단순비교하면서 4백년 가까이 시대가 앞선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도 없지 않다.다시말해 중국의 다른 태극문양이 있는지를 고증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같은 논지는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국기선양회는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서울시 등의 후원아래 오는 4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갖는 「대한민국 태극기 변천사」전시회 출품 목록을 이날 공개했다. 공개된 자료에는 감은사지 기단의 문양 외에 태극과 태극기의 시원이 될만한 것과 아직 발표되지 않은 실물·사진 등 국내외 자료 1백51점이 망라돼 있다. 이들 자료가운데 태극도형과 4괘가 정확히 음각돼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꼽히는 고려 말의 범종 사진도 눈길을 끈다. 1956년 「태극도설」(저자 도단양수 전 오타니대 교수)에 사진이 실린 이 범종은 지름 30㎝·높이 35㎝ 크기로 태극기가 선명하게 음각돼 있으며 고려 공양왕 때인 1392년에 제작된 것으로 감정됐다.이를 일본인 하야시(임)씨가 우리나라에서 가져가 가나가와(신나천)현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우랄산맥을 넘어(시베리아 대탐방:22)

    ◎유럽·아시아의 분수령… 정상엔 경계비 우뚝/모스크바 떠난지 30여시간만에 첫 기착/140만 인구 에카테린부르크에 여장 풀어/2차대전뒤 군수공장 대거 이전… 산업 중심지로 우랄의 역사는 곧 옛날 러시아 정복자들의 침략사다.침략은 15세기에 시작돼 16세기에 마무리됐다.철길 대신 카마강의 물길을 따라 동진해온 러시아 정복자들은 페름주와 스베르들로프주의 경계지대인 우랄 산자락까지 와서 그곳에서 산맥을 넘었다.그리고 우랄북쪽에서부터 도시들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도시는 카마강변의 솔리캄스크.「카마강의 소금채취장」이란 뜻을 가진 마을이다.우랄산맥을 넘어 에카테린부르그 북쪽에 베르하투라가 두번째로 건설됐다.「투라강 상류의 마을」이란 뜻.정복자들은 이후 투라강을 따라 동남진하며 70∼80여개의 도시를 건설해나갔다.피터대제는 메탈 매장량이 많은 이곳에 작은 금속공장을 계속 만들었다.튜멘주의 수도 튜멘은 투라강이 시베리아철도와 교차하는 지리적 요건 덕분에 융성한 대표적 도시가 됐다. ○피터대제 부인 이름 따 도시건설은 두 갈래 방향에서 추진됐다.하나는 메탈공장 건설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중심지를 만드는 것이었다.1720년대에만 17개의 새 공장이 우랄에 건설됐다.스베르들로프스크주의 두번째 도시 니즈니타길도 이때 건설됐고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되는 페르보우랄스크도 이때 세워졌다.그러다가 드디어 1723년 모든 우랄공장의 총괄본부로 에카테린부르그가 건설됐다.정숙한 피터대제의 부인 에카테리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에카테린부르그로 진입하기 전 만나게 되는 명물은 페르보우랄스크의 유럽·아시아 분수령에 서 있는 대리석 경계비. 우랄의 산정역 베르시나역을 지난 뒤 5㎞,모스크바에서 1천7백77㎞ 떨어진 지점에 이 오벨리스크는 서 있다.철로에서 불과 10여m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높이 7∼8m의 수수한 돌조각물 상단에 「아시아·유럽」이라고 쓰인 선명한 글씨가 두 대륙의 경계를 알린다.승객들은 차창가에 몰려 이 역사적 기념물을 카메라에 담느라 법석이다. 러시아인들도 이 산정 경계를 우리와 똑같이 「바다라즈젤(분수령)」로 부른다.산정에서 물이 한쪽은 유럽으로 다른 한쪽은 아시아로 흘러들어가는 말뜻 그대로 분수령인 것이다.추사바야강은 왼편 유럽으로 흘러들어가고 타길·네바·살바·투라강 등은 아시아로 흘러들어간다. 페르보우랄스크에는 유난히 금속튜브공장이 밀집돼 있는데 1920년대 우랄에서 첫번째 튜브생산품이 이곳에서 나오자 이를 기념해 「페르보우랄스크(우랄에서 첫번째)」라고 부른 것이 그대로 도시이름이 됐다. ○금속튜브 공장들 밀집 이곳에서 50㎞를 더 나아가 마침내 스베르들로프주의 수도 에카테린부르그역에 도착했다.모스크바를 출발한지 꼭 29시간30분만에 처음으로 짐을 꾸려 기차에서 내렸다.이웃들이 모두 복도로 몰려나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91년 도시이름을 스베르들로프스크에서 에카테린부르그로 바꾸면서 주이름은 그대로 두어 다소 혼란을 일으킨다.이름을 바꾼 이유는 스베르들로프가 볼세비키의 이름을 딴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도시는 혁명 뒤 볼셰비키들의 총애를 받아 번창한 전형적 사회주의 행정·산업중심지이다.현재 인구가 1백40여만명에 이르는 우랄의 비공식 수도이다.1723년 이셰치강변의 작은 메탈공장으로 도시가 출범한 이래 우랄지역 각종 광산들의 관리소가 이곳에 들어섰다.그러나 혁명 전까지 우랄의 행정·지리적 수도는 페름이었고 이곳은 단순한 산업도시 기능만 했다.이를 볼세비키들이 혁명 뒤 모든 행정·문화중심을 이곳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그것은 옛 전통을 끊고 프롤레타리아의 새 전통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특히 이곳은 반혁명부대인 체코백군의 본거지가 됐던 곳이다.혁명 뒤 23년 이곳을 우랄의 행정수도로 정하면서 볼셰비키들은 그 이듬해 도시이름을 스베르들로프로 바꾸었다.그 뒤 극장·박물관·대학·과학아카데미·연구소 등이 줄이어 들어서기 시작했다.2차 대전중 모스크바,레닌그라드 등 유럽쪽에 있던 군수공장들이 대거 이곳으로 피난와 본격적 산업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소비예트 시절 시베리아에는 크게 두가지 타입의 도시가 존재했다.하나는 오랜 학문·예술전통을 가진 도시들로서 페름·옴스크·톰스크 등이 바로그들이다.이들은 혁명 뒤 볼세비키정권에 의해 무대 뒷전으로 밀려나 과거의 명성을 잃게 된다.다른 하나는 새로 각광받은 노동자 도시들이다.에카테린부르그·노보시비르스크·이바노바 등이 단적인 예이다.오랜 정치·문화·학문전통을 억누르고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전통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거역할 수 없는 판도의 역전이었다. ○옐친이 태어난 곳 지금 크렘린의 안방을 차지한 사람들은 「스베르들로프 마피아」들이다.옐친 대통령을 비롯해 일본의 옴진리교로부터 뒷돈을 받고 이들을 러시아로 진출시켜주었다는 로보프 안보위서기와 부르불리스 장관 등이 그 멤버들.이외에 15∼20명의 이곳 출신 인사가 현재 옐친 주위에서 일을 하고 있다.옐친 대통령은 에카테린부르그에서 동쪽으로 1백㎞ 떨어진 스탈리차에서 출생해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고 에카테린부르그시당 제1서기,주당 제1서기를 거친 다음 고르바초프가 불러올려 모스크바시당 제1서기를 지냈다. 에카테린부르그는 예부터 돈많은 광산주들이 많았던 탓에 대부호의 저택들이 유난히많이 남아 있다.또 전형적인 우랄 통나무집들도 곳곳에 보존돼 있다.이들 전통가옥들이 스탈린시대 때 건설된 웅장한 대리석 건물들과 조화를 이뤄 매우 아름다운 도시풍경을 만들고 있다.전형적인 우랄 통나무집은 보통 2층인데 1층은 반지하로 만들어 시멘트,돌 등으로 아주 견고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겨울에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지반이 흔들리는데 대비하기 위함이다.거기다 창문주위에 갖가지 문양을 새긴 나무장식을 해놓아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우랄사람들은 이 창문장식을 「날리치니키(얼굴)」라고 부른다.집의 얼굴이라는 뜻. 쨍쨍 내리쬐는 5월의 햇살 속에 거리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굵은 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갔다.우리가 「여우비」라고 부르는 이 자연현상을 우랄사람들은 「버섯비」라고 불렀다.이 비가 지난 뒤면 숲의 버섯이 쑥쑥 자라기 때문이다.
  • 그릇류 생산/동양도자기(앞서가는 기업)

    ◎“디자인으로 승부”… 매출 연20% 신장/고유 문양에 서양 미 접목 「패스카」 히트/자동화로 제품 양산… 미·가·호 수출 급증 『무한경쟁 시대에서 중소기업이 살아남는 길은 좋은 디자인과 기술로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어내는 것밖엔 없습니다』 동양도자기 하태리사장(여·48)은 직원회의 때마다 세계화시대에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명하느라 목이 쉰다. 1인당 국민소득이 1천7백달러에 불과하던 지난 81년,10년 앞을 내다보며 출범했던 동양도자기가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맞아 날개를 달았다.하 사장은 도자기 산업을 국민소득이 올라갈수록 유망한 산업이라고 말한다.GNP가 6천달러를 지나면 사람들이 생활의 질을 생각,일반 가정의 식탁에서도 우아한 도자기 그릇을 식기로 사용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충북 청주시 송정동에 본사와 생산공장을 두고있는 동양도자기는 회사 설립초기 낙후된 기술로 인한 시행착오와 적은 판로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그러나 노사화합을 바탕으로 고비를 넘기며 꾸준한 성장을 유지해왔다.90년대 들어서는고부가가치제품 개발과 시설자동화로 생산량을 월 50만피스에서 1백만피스로 늘리면서 이 분야에서 가장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현재 근로자 수는 3백50명. 동양도자기의 히트 상품은 국내업계에 도자기의 최고급품인 본차이나 바람을 일으킨 「패스카」로 포도문양의 백자와 화려한 색상·문양의 서양적 미를 뽐내는 식기 및 커피잔이 주종.생활도자기로 종류를 다양화해 폭넓은 소비계층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현재 국내 도자기 시장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몇년 전부터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 미국과 캐나다·호주로의 수출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연간 매출액도 최근 2∼3년 전부터 해마다 20% 이상씩 성장,지난해 1백30억원을 올린데 이어 올해는 1백80억원을 목표로 잡았으나 수출물량이 늘어 20억원 정도를 추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동양도자기의 성공은 돌다리도 두들긴다는 여성 경영인의 치밀함과 기독교 이념이 바탕이 됐다.하사장은 회사의 이익은 사원에게 돌려야한다는 원칙 아래 사원복지를 경영의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다.88년 완공한 복지관과 91년 집없는 사원을 위해 준공한 28평 규모의 아파트 75세대가 좋은 예.96년 5월 준공을 목표로 6백평 규모의 종합문화센터를 건립 중에 있기도 하다.올 초부터 도자기 그릇 외에 스테인리스종류의 생산을 추가한 동양도자기는 앞으로 주방기구 종합메이커가 되는 것이 목표다.
  • 경제활력의 원천(운남성을 가다:6·끝)

    ◎61만개 「향진기업」이 성장이끈다/「중국판 새마을운동」으로 개방 주도/관광·연초산업 발달… 재정 73% 담당/도로·공항에 집중투자… 골프·레저사업 진출도 『향진기업은 중국식 사회주의의 미래이다』­중국 운남성 백족(백주)자치주에서 10여명의 종업원과 함께 향진기업을 운영하는 장사신공장장의 향진기업 예찬론이다. 장공장장이 중국의 밝은 미래라고 말하는 향진기업은 말단 지역행정기관이 운영하는 기업들이다.우리나라 새마을 공장이나 농공단지 공장과 비슷하게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다.이 때문에 향진기업을 중국판 새마을 운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2백억 위안 생산 향진기업은 관광산업,연초산업등과 함께 개혁·개방정책으로 경제적 도약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운남성의 「지속적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등장하고 있다.운남성 정부의 유경부성장은 『61만여 향진기업의 총생산량은 현재로선 성의 총생산량 6백억위안(약6조원)의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이지만 2000년까지는 3분의2 정도로 끌어 올리고 싶다』고 말한다. 백족자치주의 수도 대리시에서 북쪽으로 얼하이 호수를 따라 20분쯤 달리면 대리시 희주진 주성염색공장이 나온다.전통문양과 염색술을 이용한 의류·면직물산업에 힘을 쏟고 있는 백족들의 향진기업 현장이다.지난해 매출액은 8백만위안.상근 근무자가 10여명 정도에 불과한 사실에 비하면 적잖은 매출 규모다. 주 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이기도 한 이 공장의 장공장장 명함 뒤에는 「백족 염색기술은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말로 시작되는 선전문구가 영문과 한문으로 씌어있다.이곳의 당간부 역시 주민소득향상을 위한 세일즈맨이라는게 그의 말이다.대리석가공과 유가공품 제조등 식품제조업도 백족 대리자치주의 말단지방행정조직인 희주진 공산당조직이 운영하는 향진기업중 하나.인구 8천여명의 마을 전체 연수입의 절반가량을 이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그는 『염색창과 대리석가공업의 성공은 도랑에서 보석을 주웠다는 말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유색,디자인 고침 기묘한 바위로 숲을 이룬다는 이른바 석림으로 유명한 인구 20여만명의 노남의향진기업은 3천여개.공예품,대리석가공,관광기념품제작등이 주요 품목이었다.소수민족들의 고유한 색채와 디자인으로 만든 제품들은 새로운 유망상품으로 주민들의 지갑을 두툼하게 해주고 있다. 향진기업은 그러나 최근 그 영역을 시멘트공장과 골프장 및 콘도미니엄형 휴양지건설까지 점차 넓히고 있다.골프장의 경우 싱가포르 환태평양출판공사가 1천만달러를 대고 나머지 30%가량은 노남현정부가 대는 형식으로 올해초 착공,내년말이나 내후년초 쯤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운남성은 담배산업으로도 유명하다.운남은 「홍탑산」·「아시마」·「홍매」·「운연」등 여러 종류의 유명담배를 생산하며 중국의 담배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고급담배 생산량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이 지역 담배산업은 운남 경제의 기둥이다.성 재정의 73%가 연초산업에서 나올 정도이다.80년대초 연해지역 성들이 개방구를 만들어 외국자본을 유입,경제개발에 성공을 거두었다면 이곳은 담배라는 전략상품에 집중투자,개방이후 지난 15년동안 평균 9.6%의 경제발전을 이룩해 냈다. ○연평균 9.6% 성장 세계적 금연운동으로 담배메이저 필립모리스등이 식품분야로 진출,사업다각화를 꾀했듯이 운남의 담배업체도 본격적 사업다각화 작업에 들어갔다.초웅시 권연창(담배공장)의 납종회 지배인은 『이미 2년전부터 순수입의 30% 가량을 비료공장및 플라스틱가공업,식품공업,호텔건설에 투자하기 시작했다』며 『10년쯤 뒤에는 담배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족 대리자치주 양신전부주장은 올해 10월말 대리시공항이 완성될 예정이라며 지난해 중앙정부가 운남을 주요 관광개발지역으로 결정하면서부터 대이·곤명·노남·초웅·경홍 등을 중심으로 도로,공항등 사회간접자본건설과 호텔건설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 성적·교우관계 비관/고교생 2명 자살

    8일 상오5시쯤 서울 서초구 서초3동 K빌딩 앞 주차장에서 이 빌딩 5층에 사는 홍석필(15·서울S고 1년)군이 머리에 피를 흘리고 신음하고 있는 것을 홍군의 형 석훈군(17·고3)이 발견,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경찰은 숨진 홍군이 지난 4월말 치른 모의수능시험 성적이 나쁘게 나와 부모에게 성적표를 보여주지 못하고 고민해왔다는 석훈군의 말에 따라 이를 비관,빌딩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날 상오5시쯤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동양도자기 사원아파트 뒤 공터에서도 이 아파트에 사는 문모양(16·C여고 2년)이 숨져 있는 것을 문양의 어머니 신옥순씨(44·회사원)가 발견했다. 경찰은 문양이 「어버이날 꽃을 달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사이 좋게 지내고 싶었다…」는 유서를 부모와 친구 앞으로 남긴 점으로 미루어 문양이 교우관계를 비관,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 왕도의 비밀 1∼3(화제의 책)

    ◎광개토 대왕 업적 추리기법으로 소설화 우리 역사상 가장 드넓은 땅을 개척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추리기법으로 풀어나간 역사소설.작가가 옛 토기에 새겨진 신비로운 문양의 비밀을 좇아 국내와 중국 대륙을 전전하는 과정을 씨줄로,5∼6세기 고구려·백제·신라·왜가 얽히고설켜 벌이는 이야기를 날줄로 삼아 2중으로 구성했다. 1986년 경기도 광주군 이성산성 발굴조사에서 「Ξ」무늬를 바닥에 새긴 자배기가 나온다.나(작가)는 평범한 토기에 마치 낙서처럼 새겨진 그 무늬에 이상하게 끌린다.조사 결과 충주 경주등 전국 10여곳에서 그 같은 토기가 나왔음을 알게 된다.하지만 학계에서는 막연히 「고구려 것」이라고 추정할 뿐 그 의미는 커녕 같은 무늬를 지닌 토기가 곳곳에서 발굴된 사실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나는 「Ξ」무늬의 비밀을 캐려고 중국에 가 고구려의 유적들을 돌아보며 그곳에서도 역시 「Ξ」무늬 토기를 찾아낸다… 소설적인 재미 못잖게 역사의 진실을 찾는 작가의 진지함이 돋보인다.소설 형식을 빌린 학술논문 같은 인상도 준다.원래 일간지에 연재하다 중단한 소설이지만 이번에 책으로 내면서 원고지 1천5백장 분량을 새로 써 전면 개작했다. 샘터 각권 6천원.
  • 「니그로 예술」/손 끝에서 태어나는 생활공예품(아프리카 기행:9)

    ◎컵·의자·표주박·질그릇 등에 갖가지 문양/부족보호·번성 기원하는 주술적 혼 담겨/16세기 축조한 지저스요새는 박물관으로 변해 몸바사의 기구한 역사를 속속들이 증거하고 있는 명소는 포트 지저스라는 요새다.올드타운의 해안에 있는 이 요새는 1596년에 완성되었다.1824년 영국의 보호령으로 선포될 때까지 이 요새를 중심으로 벌어진 싸움은 거의 그칠 날이 없었다.1593년 포르투갈의 항해가였던 바스콘첼로스가 천연의 요새지를 우연히 발견한 이래 인공을 가해 건설한 것이 포트 지저스다.1875년 영국 함대가 몰려와 아랍인들을 몰아낼 때까지 280여년동안 격전장이 되었다.아랍·포르투갈·오만·영국을 비롯해서 마즈루·발루치와 같은 성주들까지 번갈아가며 요새를 빼앗고,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그때마다 요새주변은 풀 한포기 남지 않는 초토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요새의 해안을 지나는 해적선이나 상선들이 물과 양식을 구걸하다가 거절당하면 요새를 공격하고 해서 집중포화를 얻어맞았던 일도 여러번이었다.지저스요새는 강력한군사요충지로 건설되었지만 지금은 마치 짓다만 건물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성벽의 두께는 2m가 훨씬 넘고 높이는 15m나 된다.이 성벽에 대고 먼저 대포를 쏜다는 것은 십자포화에 얻어 맞는 것을 자초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성벽 곳곳 총탄 흔적 1824년 이 요새에 영국 깃발을 꽂았던 해군의 리츠대위는 이 연안에서 더 이상은 노예수출을 하지 않겠다고 마즈루 성주에게 약속했다.그 약속의 대가로 마즈루는 영국인들의 주둔을 허용했었다.그러나 리츠대위에 의한 보호령 통치체제는 그 이듬해로 마감되고 말았다.그것은 그가 23세의 짧은 나이로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나서 1875년 회교부족국가의 왕이었던 술탄의 명령에 따라 이 요새를 지키고 있던 사령관이 술탄의 소환명령에 불복하는 사건이 일어났다.이에 분노한 술탄은 영국 함대의 도움을 청한다.두시간에 걸친 영국 함대의 집중포화에 혼찌검이 난 사령관은 드디어 항복하게 된다.그후 1958년까지 이 요새는 감옥으로 개조되었다가 걸벤키언재단이 기증한 3만파운드를 들여 지금은 박물관으로 고쳐 쓰고 있다.어떻든 지저스요새는 동아프리카 노예시장과 뗄래야 뗄수 없는 비정의 역사를 간직하였다.그래서 주변 열강들의 추악한 전쟁은 그칠 날이 없었던 것이다.군데군데 총탄자국이 뚜렷한 붉은 색깔의 성벽에는 그때의 참상과 흑인들의 눈물이 얼룩져 있는듯 하였다. 이곳 몸바사에는 케냐 관광조각상품의 60%의 수요를 감당하는 조각공장이 있다.아프리카인들에게 미술은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그 뿌리는 갖가지 장식적 문양을 새겨넣은 컵·표주박·의자·질그룻·빗·손칼·창 등의 공예품으로 손 끝에서 피어난다.또 잉태와 부족의 번성을 상징하는 주술적 인물상,적으로부터 부족을 보호하는 의미를 가진 전사상,가죽제품같은 생활에 친숙한 물건들에도 일상적 예술성이 내포되어 있다.이런 조각작품들은 피상적인 묘사보다는 그속에 깃든 부족의 심성이나 그들이 추구한 이상이 더 중요하다. 아프리카 조각과 함께 떠오르는 화가가 바로 피카소다.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항변할 수 있는사람은 없다.피카소는 시각적인 겉모습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하는 20세기 젊은 화가들의 열망을 풀어줄 예술의 열쇠가 바로 아프리카의 가면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하였다.아프리카 미술이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측면을 일컬어 「니그로의 예술은 합리적」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피카소 미술에 영향 피카소는 말했다.『아프리카에서 온 가면들을 보는 순간,나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 가면들은 다른 여느 조각들과 달랐다.그들은 마력을 지닌채 미지의 모든 것들과 대적한 채 서 있는 것같았다.나는 한동안 그것들을 주시하다가 깨달았다.나 또한 모든 곳과 대적하여 서 있다는것을.그리고 그 모든 것은 미지의 것이며 나는 그 미지의 것들을 모두 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것을.여인들,어린이들,담배,놀이같은 세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전체가 미지의 것이며 나의 적이었던 것이다』라고….아프리카 미술품에 표출된 모든 우주창조적 요소들은 피카소의 작품을 통해 마치 환생이라도하는 것처럼 다시 태어났다.그래서 피카소의 이 말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주제설명 일수도 있다.피카소는 일생동안 무수한 변화를 추구해 왔었지만 그 다양했던 변화과정 중에서도 아프리카 조각을 만났을 때처럼 그의 미술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몸바사 중심부에 자리잡은 조각공장의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하였고 정돈된 것이라곤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시설도 원시적이었고 공장은 먼지투성이었다.그 속에서 한 사람이 나무토막 한개를 잡으면 완성품이 나올때까지 오직 칼과 끌,깎고 다듬고자 하는 나무토막,이외 한눈을 팔지 않았다.그러나 어느 한 사람 낙후된 시설을 헐뜯거나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그 공장에서 우리는 매우 싼값으로 몇가지 기념품들을 살수 있었다.관광 길목마다에는 관광조각품을 팔고 있는 점포가 즐비하고 점포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솜씨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하지만 어느 덧 그들의 소박하고 단순한 인간미에 매혹되어 별 소용도 없을법한 목조기념품을 샀다. ○조각품 가게들 준비 하오에 호텔로 돌아왔을때 또다른 아프리카의 아픔과 서러움을 목격하였다.르완다에 주둔하고 있는 다국적 군인들이 몰려와서 호텔로비를 메우다시피 우글거렸다.그들은 르완다의 주둔지에서 군용기로 잠시 몸바사공항으로 날아와 이틀이나 사흘씩 피로를 풀고 다시 르완다로 돌아간다.그런가하면 호텔 야외에 있는 야자수 그늘에는 유럽에서 휴가온 사람들이 벤치 위에 누워 일광욕으로 하오를 즐기고 있다.바로 한빨짝 밖에서는 수십만의 르완다 난민들이 굶주린 배를 쓸어쥐고 시시각각으로 엄습하고 있는 죽음과 대치하고 있는데….두발짝 밖 몸바사의 고급호텔 야외로비에서는 이런 호사로움이 그들 유럽 관광객과 같은 입장이 되어버린 우리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 러 「승전 50년」 행사 법석/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코너)

    모스크바시민들은 지난 29일부터 무려 열흘이 넘는 장기 연휴에 들어갔다.공식휴일은 메이데이휴일인 5월1일,2일과 2차대전 「승전 50주년 기념일」인 5월8일,9일이지만 중간에 끼인 날까지 계속 노는 직장이 태반이어서 그야말로 황금연휴에 젖어든 모습들이다. 연초부터 박차를 가해온 승리의 날 행사준비는 막바지 손질이 한창이다.주요 행사장소는 붉은 광장과 크렘린 옆 마네슈광장,그리고 승리박물관이 새로 들어선 시외곽의 빠끌라나야 고라광장.붉은광장에선 5월9일 4천5백명의 퇴역군인과 사관생도 2천명이 참가하는 군사퍼레이드가 펼쳐진다.클린턴 미국대통령을 비롯,전세계 50여개국 지도자들은 레닌묘위에 마련된 단상에서 이 퍼레이드를 참관하게 된다. 현역군인들이 펼치는 진짜 퍼레이드는 시외곽의 빠끌라나야광장에서 거행된다.체첸전쟁에 대한 국제여론을 감안,서방지도자들 앞에서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이 퍼레이드에는 장갑차,탱크 2백여대와 전투기 70대,1만명의 병력이 참가한다.지난 17일부터 매일 하오6시면 이들 병력과 장비들이 예행연습을 위해 시내로 이동했다가 자정쯤 부대로 되돌아간다. 이 때문에 퇴근시간에 2∼3시간씩 도로가 차단돼 시민들의 불편을 주어왔으나 대낮에 2백여대의 탱크가 시내로 들어가는 장면은 큰 구경거리임에 틀림없다.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또 쿠데타가 난 게 아니냐며 불안해하기도 한다.연휴기간중에는 시내 도처에서 낮에는 브라스밴드행진이 펼쳐지고 밤에는 폭죽놀이가 계속된다고 한다. 옐친정부가 이번 행사에 기울이는 정성은 대단하다.공식적으로 발표된 행사비용이 자그마치 55억루블(1백10만달러).2천여종의 포스터가 거리에 나붙었고 수만장의 국기가 시내를 장식했다.버스,전차들에도 각가지 문양,포스터가 부착됐다.시공보실이 배포한 자료에는 이번 행사의 목적이 『당시 우리 군의 영웅적 행적을 되새김으로써 국민들의 애국심과 조국방위정신을 드높인다』고 적혀있다.국내 정치적인 효과는 물론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사정을 보면 이런 요란한 행사치레는 아무래도 걸맞지 않은 것같다.체첸공화국에서는전투가 계속중이고 월소득 30달러이하의 빈곤계층이 전체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실이다.이런 마당에 채무국 지도자들을 우르르 불러 모아놓고 요란한 잔치를 벌인다는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 차이나 칼라셔츠/신체선 살린 재킷/여름 남성복 「패션 벽」허문다

    ◎95신제품 매장서 알아본 새경향/“넥타이 안매 간편” 20∼30대 즐겨 입어/양복소재로 마 이용… 생동감 연출 정형화된 남성복의 틀을 과감히 벗어던진 멋쟁이 남성들이 올 여름의 거리에서 유난히 눈길을 끌 것같다.지난 2∼3년간 꾸준히 확산돼온 이 신남성미는 남성패션의 벽을 허물며 등장한 소프트재킷과 지난해 갑자기 부상한 차이나칼라셔츠,개성적인 넥타이차림새등 몇몇 아이템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또 영화속의 프리랜서 직업군에게나 어울릴 법한 투박한 마나 마혼방소재,그리고 햇빛에 바랜듯하고 건조한 느낌이 나는 다양한 소재등도 그 특징들 가운데 속한다. 소프트재킷은 신사복 상의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넣는 어깨심지와 안감등을 아예 빼 신체의 특징을 살려준 부드러운 스타일.특히 더운 여름에 시원한 맛을 낼 수 있어 더욱 부각되는 형태다. 넥타이를 매지 않고 목선을 부드럽게 감싸는 차이나칼라 셔츠는 과거 연예인등 자유로운 직업의 남성들이 주로 입었던 차림새.그러나 남성들의 멋내기가 일상화되면서 상당수 남성복 업체들이 칼라없는 셔츠와 함께 차이나칼라 셔츠를 올 봄 여름 주력 신제품으로 제시,남성복매장을 한결 여유롭게 만들고 있다. 특이 이들 셔츠는 청바지나 정장바지에 모두 어울려 20.30대 남성들 사이의 유행품목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단정하고 깔끔한 분위기를 내는 소재여야 한다」는 등식도 신사복에선 사라졌다.마·모 등의 천연소재를 혼방하면서 만들 수 있는 생동감 있는 효과를 최대한 살려 거친 듯하고 조직감이 느껴지는 소재가 강세를 띠면서 올 여름 남성복 캐주얼시장을 주도할 전망이다. 넥타이도 마찬가지.동물·꽃이나 기하학 문양처럼 화려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실크넥타이와 함께 물세탁이 가능한 진넥타이가 큰 인기다.다소 투박한 듯하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로 유행재킷등 다른 품목과의 연출효과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남성복 디자이너 임혜주씨는 『남성복의 탈 정형화 현상은 최근 긴장감없는 일상생활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욕구가 짙어지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라면서 『직장남성도 약간의 패션감각만 발휘한다면 그다지튀지않는 개성적인 차림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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