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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책 어때요]

    ●문신, 금지된 패션의 역사/스티브 길버트 지음 문신은 하나의 보편적인 문화양식이다.그리스와 로마인들은 노예나 범죄자들의 형벌이나 도망 방지 등의 목적으로 문신을 이용했다.유대인과 초기 기독교인들 사이에도 문신풍습이 있었다.그러나 서기 787년 교황 하드리아누스 1세가 문신행위를 금한 이래 기독교 세계에는 문신이 금기시되기 했다.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문신의 역사를 폭넓게 다룬다.문신은 주술적·종교적 기능 외에 인내의 상징,성인의 징표 등으로 사용된다.일본의 전통 문신은 등,팔,다리,가슴을 주된 문양 하나로 뒤덮는다는 점에서 서양 문신과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밝힌다.2만 8000원.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입니다/아베 피에르 지음 ‘빈민의 아버지’‘자유,평등,박애의 구현자’ 등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신부 아베 피에르.피에르 신부는 무엇보다 1949년에 설립한 세계적인 빈민구호 공동체인 ‘엠마우스’ 운동으로 잘 알려져 있다.최극빈층의 사람들은 물질적인 빈곤 뿐 아니라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피에르는 이 두가지를 해결하지 못하는 빈민운동은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말한다.2차대전 이후 국회의원을 지낸 피에르는 국회의원시절 좌와 우를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을 지향하는다는 의미로 “나는 극우도 극좌도 아닌 극고(極高)다.”라고 말해 주목받기도 했다.1만 2000원. ●봉기/레티시아 비카이으 지음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대한 생생한 기록.팔레스타인 민중의 자발적 봉기인 ‘인티파다’가 남긴 안팎의 모순을 들춰낸다.인티파다 전략은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공언해온 무력투쟁을 포기하는 대신 시민 불복종을 통해 민중차원의 저항운동으로 승화시키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것은 외부의 적인 이스라엘은 물론 내부의 적인 부패,계급갈등,성차별 등과 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정어린 시선이 없다는 게 이 책의 특징.‘사실의 힘’이 어떤 주장이나 해석보다도 강력함을 보여준다.1만 2000원. ●분서/이지 지음 ‘독설의 사유’로 유명한 중국 명대의 양명학 좌파사상가 이지의 저서 ‘분서’를 완역.중국철학사상 가장 입체적인 사상가로 꼽히는 이지는 유불선의 종지는 같다고 봤으며 유가에 대한 법가의 우위를 주장했다.선진시대 이래 줄곧 관심 밖에 있던 ‘묵자’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 것도 주목되는 점.스스로 이단을 자처하며 유가의 말기적 폐단을 공격하고 송명이학의 위선을 폭로한 그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릴 수밖에 없었다.혹세무민의 죄를 뒤집에 쓰고 감옥에 갇혀 있던 이지는 결국 76세에 자살로 삶을 끝냈다.전2권,1권 2만 5000원,2권 3만원. ●환상박물관/김장호 지음 사람들의 가슴 한 켠에는 누구나 환상의 자리가 있다.그 환상이야말로 숨막히는 현실을 견디게 해주는 숨은 힘이다.철학자 니체의 지적대로 환상은 현존재를 절망과 허무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지닌다.동양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환상을 ‘허깨비같은 이미지’로 정의한다.책은 ‘환상박물관’으로 안내한다.‘상상관’에선 요정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비현실적인 존재에서 마네킹,사이버 공간의 아바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상의 영토를 다룬다.또 ‘예술관’은 아돌프 뵐플리를 비롯한 이른바 아웃사이더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환상공간을 체험케 한다.1만 5000원.˝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바닷가 절집 해남 ‘미황사’

    습관처럼 땅끝으로 간다.먼 해남의 땅끝으로 가야지 왠지 본격적인 바다가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사실 나로서는 ‘땅의 끝’이라는 ‘육지 중심적 사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땅끝이 아니라 바다로 진출한 곶(串)이기 때문이다.육지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작과 끝을 따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땅끝의 남도 바닷길을 가다가 ‘엉뚱하게’ 산 속으로 들어가 본다.바다 대신에 역설적으로 산에서부터 출발하려는 것이니,해중산인(海中山人)의 속깊음을 미황사에서 확인해보려 함이다.바다와 육지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뜻깊은 변증의 세계가 미황사에서 펼쳐지고 있다. 땅끝이 국토의 남쪽 끝이라면 미황사는 육지 절집의 최남단이다.미황사는 남도에서 바다로 가는 매혹의 길목 풍경을 가장 잘 껴안고 있다.동백나무숲,장중한 부도밭,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達摩山),그리하여 ‘호남의 금강산’으로까지 불린다.그 무엇보다 미황사 대웅보전 기둥 주춧돌을 잊지 못하리라.주춧돌의 게딱지와 거북이를 생각하는 탓이다.왜 바다에 사는 게와 거북이를 양각으로 새겨놓았을까. 문제는 달마산에 오르면 풀린다.남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예의 땅끝은 물론이거니와 완도와 진도,그네들 섬에 딸린 조도군도를 위시한 자잘한 다도해의 ‘호수’들,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는 한라산 봉우리까지 잡힌다.그 산자락에 미황사가 안겨있으니,산이 바다를 안고 바다가 산을 품은 격이다. 달마산에서 맞이하는 다도해 낙조는 또한 무엇에 비할 것인가.어느 석수쟁이가 있어 불현듯 게와 거북이를 새겨놓았으리라.왜 그랬을까.숙종 18년(1692)에 민암(閔,1634∼1692)이 지은 미황사사적비(美黃寺事蹟碑)를 보자.‘신라 경덕왕 8년 8월12일,홀연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에 와 닿았다.하늘에서 들리는 음악인 듯 범패소리가 배 안에서 계속 들려오기에 어부들이 가까이 가 살펴보려고 하자 배는 문득 멀어져버렸다.소식을 들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향도 100명과 함께 해안가에 가 기도를 올리자 돌배가 뭍에 닿았는데,금옷 입은 사람이 노를 잡고 서있었으며,경전과 불상이 가득하였다.또한 배 안에 있던 검은돌이 벌어지며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이날 밤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옷 입은 자가 말하기를,나는 본디 우전국(優 國:인도)의 왕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상(經像)을 모실 곳을 구하다 달마산 꼭대기에 일만 분의 부처님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곳으로 찾아왔노라.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보면 소가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을 터이니,그곳이 곧 경전을 안치할 만한 장소라.이에 의조화상이 소에 경을 싣고 가는데,산골짜기에 이르러 소가 크게 울며 죽었다.소가 누워 죽은 그 골짜기에 미황사를 짓고 상을 봉안하였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에서 취한 글자요,‘황’은 사람의 색에서 취한 것이라 하였으니,사적비의 연기설화와 절집 이름이 일치한다.그런데 비문에 이르기를,당시 돌에서 나온 소며 금옷입은 사람 이야기 따위는 허황하고 망연하여 세상의 귀로는 믿기 어려운 일이라 하였다.그러나 연대의 고증을 그저 추측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패엽경과 탱화 등이 있어 완연하게 밝힐 수 있다고 하였다. ●대웅전은 부처님 모시고 온 배 사적비가 세워진 조선후기까지 남아있던 이들 증거물은 불행히도 현존하지 않는다.그러나 대웅전의 우물천장에 범어(梵語)로 쓰여져 있으며,인도에서 경상을 실어 보낸 배가 이곳에 도착하였다는 데서 국제적 해상교류의 느낌이 전해진다.완도 청해진이 지척이니 이 일대 해상세력들의 서원(誓願)으로 미황사가 창건됐음직하다.사찰 창건에 필요한 주요 물자들도 해상에서 들여왔고,미황사 창건에 당대 해상세력들의 직·간접적 지원과 참여도 있었을 것이다. 주지 금강스님은 미황사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해석하였거니와 건축학자 양상현(순천향대)도 같은 입장이다.대웅전 주춧돌에 게와 거북이 노닐고 있으니 주춧돌과 그 아래의 기단은 바다를 상징한다.대웅보전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되는 것이다. 바닷길로 부처님을 모시고 온 배를 상징함이다.바다 절집의 압권은 부도밭이다.서편의 아름다운 동백숲 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들어가면 달마산을 배경으로 부도와 탑비가 모셔져 있다.남쪽과 서쪽 부도밭 2개다.곳곳에 장엄된 부도 조각에는 서남해의 해산물과 우리 국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식물들을 문양의장으로 채용하고 있다. 게와 물고기,거북이,심지어 다리를 꼰 오리,방아찧는 토끼에 이르기까지 자유분방한 장엄으로 가득차 있다.엄정하고 단아할 뿐더러 소박하기까지 하여 일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조선후기 부도양식에서 이처럼 ‘장난치듯’ 민화풍 풍속의 세계관을 펼치고 있음은 미술사적 전환을 암시한다.문화사적으로도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작은 혁명’을 성취하고 있는 중이다.유독 해산물이 자주 등장함은 연기설화와 더불어 미황사가 바다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암시한다. 부도밭의 주인공들은 서산(西山)대사의 제자들.서산은 임란 후 자신의 의발(衣鉢)을 저 멀리 남쪽 해남 대둔사(대흥사)에 전수한다.그로부터 서산의 법맥은 강진의 만덕사,해남의 대둔사와 미황사로 그 영향력이 확대되어 간다.이렇게 해서 미황사는 서산의 후예들이 남도불교를 일으킨 진흥지가 되었고,이 부도들이 당대의 역사를 웅변해 준다. 조선 후기에만 3번에 걸친 중창불사가 이뤄졌으나 30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다만 부도군만이 오롯이 자취로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부도밭의 주인공들이 대개 인근 해변이나 섬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7대 종사 연담(蓮潭)은 수륙도장(水陸道場)을 개설하였는 바,바다에 인접한 미황사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둔사 8대종사 운봉(雲峰)은 가끔씩 섬으로 숨어들어가 자신의 초가집 암자에 야은(野隱)이라는 편액을 걸고 살기도 하였다.금하(錦河)는 장산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을라치면 살 수 있는 것을 골라 물 속에 넣어 살려주었다고 한다.즉원(卽圓)은 정조 18년(1794)에 궁복도(弓福島)에 있는 암자에서 열반에 들었다. 부도에 유난히 해산물이 많음은 부도의 주인공들이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되돌아 갔음을 암시한다.천진난만한 물고기와 거북이,게 그림에서 흡사 이중섭이 제주도 피란시절에 그렸던 그림이 떠오른다.지고의 경지에 이르면 이렇듯 천진한 어린이들 세계로 빠져드는 것일까.장난치듯 새겨놓은 해산물에서 바다 냄새가 달마산 자락까지 배어있음을 감지한다. ●장난치듯 새겨놓은 부도조각 바다는 늘 인자한 것만은 아니다.120여년 전 해남 출신 주지 혼허(渾虛)와 40여명의 스님들이 바다에서 몰살당한 전설도 전해진다.중창불사를 위한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로 향하다 조난당해 젊은 스님들이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그후 절은 폐사되다시피 몰락의 길을 걷는다.지금도 사하촌(寺下村) 사람들은 비바람이 을씨년스러운 날이면 ‘미황사 스님들 군고치듯한다.’고 한다.인근 송지면 산정리의 농기에는 삿갓 쓴 스님들이 거북을 타고 있는 그림이 전해진다. 땅끝으로 가는 길을 잠시 접고 미황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소이는 이와 같음이다.바다가 산을 벗하고,산이 바다를 벗하여 산중에 반야용선을 들여놓았고,게와 거북이와 물고기를 풀어놓았음이랴.지금은 남도의 끝자락으로 불리지만,청해진을 필두로 동북아를 주름잡던 해상세력의 근거지가 이 일대였으니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란 말이 실감난다.달마산에서 ‘왜 달마란 이름이 남쪽으로 왔는가.’를 통속적으로 묻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니,‘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듯 이미 남송(南宋) 사람들에게도 달마산은 영험한 도량으로 알려져 있었음직하다.1281년 겨울에 남송의 배가 표류하여 근역에 당도하였을 때,달마산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름만 듣고도 멀리 공경할 뿐인데,그대들은 이곳에서 생장했으니 부럽고 부럽도다.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고 하였다. 신라시대는 물론이고 고려시대까지도 국제 해상교류의 중심처였음을 설명함과 아울러 달마산의 국제적 위상까지 설명해 줌에랴. ‘택리지’에 이르길,해남 근역들은 모두 살기에 부적당하고 하였다.그러나 육지 중심이 아니라 바다 중심의 세계관적 전환을 고려한다면,그 언설을 전면적으로 승인하기는 곤란하리라.더군다나 바다가 절집에서 숨쉬는 풍경을 보노라면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불이(不二)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으리라.˝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바닷가 절집 해남 ‘미황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바닷가 절집 해남 ‘미황사’

    습관처럼 땅끝으로 간다.먼 해남의 땅끝으로 가야지 왠지 본격적인 바다가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사실 나로서는 ‘땅의 끝’이라는 ‘육지 중심적 사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땅끝이 아니라 바다로 진출한 곶(串)이기 때문이다.육지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작과 끝을 따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땅끝의 남도 바닷길을 가다가 ‘엉뚱하게’ 산 속으로 들어가 본다.바다 대신에 역설적으로 산에서부터 출발하려는 것이니,해중산인(海中山人)의 속깊음을 미황사에서 확인해보려 함이다.바다와 육지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뜻깊은 변증의 세계가 미황사에서 펼쳐지고 있다. 땅끝이 국토의 남쪽 끝이라면 미황사는 육지 절집의 최남단이다.미황사는 남도에서 바다로 가는 매혹의 길목 풍경을 가장 잘 껴안고 있다.동백나무숲,장중한 부도밭,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達摩山),그리하여 ‘호남의 금강산’으로까지 불린다.그 무엇보다 미황사 대웅보전 기둥 주춧돌을 잊지 못하리라.주춧돌의 게딱지와 거북이를 생각하는 탓이다.왜 바다에 사는 게와 거북이를 양각으로 새겨놓았을까. 문제는 달마산에 오르면 풀린다.남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예의 땅끝은 물론이거니와 완도와 진도,그네들 섬에 딸린 조도군도를 위시한 자잘한 다도해의 ‘호수’들,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는 한라산 봉우리까지 잡힌다.그 산자락에 미황사가 안겨있으니,산이 바다를 안고 바다가 산을 품은 격이다. 달마산에서 맞이하는 다도해 낙조는 또한 무엇에 비할 것인가.어느 석수쟁이가 있어 불현듯 게와 거북이를 새겨놓았으리라.왜 그랬을까.숙종 18년(1692)에 민암(閔,1634∼1692)이 지은 미황사사적비(美黃寺事蹟碑)를 보자.‘신라 경덕왕 8년 8월12일,홀연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에 와 닿았다.하늘에서 들리는 음악인 듯 범패소리가 배 안에서 계속 들려오기에 어부들이 가까이 가 살펴보려고 하자 배는 문득 멀어져버렸다.소식을 들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향도 100명과 함께 해안가에 가 기도를 올리자 돌배가 뭍에 닿았는데,금옷 입은 사람이 노를 잡고 서있었으며,경전과 불상이 가득하였다.또한 배 안에 있던 검은돌이 벌어지며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이날 밤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옷 입은 자가 말하기를,나는 본디 우전국(優 國:인도)의 왕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상(經像)을 모실 곳을 구하다 달마산 꼭대기에 일만 분의 부처님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곳으로 찾아왔노라.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보면 소가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을 터이니,그곳이 곧 경전을 안치할 만한 장소라.이에 의조화상이 소에 경을 싣고 가는데,산골짜기에 이르러 소가 크게 울며 죽었다.소가 누워 죽은 그 골짜기에 미황사를 짓고 상을 봉안하였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에서 취한 글자요,‘황’은 사람의 색에서 취한 것이라 하였으니,사적비의 연기설화와 절집 이름이 일치한다.그런데 비문에 이르기를,당시 돌에서 나온 소며 금옷입은 사람 이야기 따위는 허황하고 망연하여 세상의 귀로는 믿기 어려운 일이라 하였다.그러나 연대의 고증을 그저 추측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패엽경과 탱화 등이 있어 완연하게 밝힐 수 있다고 하였다. ●대웅전은 부처님 모시고 온 배 사적비가 세워진 조선후기까지 남아있던 이들 증거물은 불행히도 현존하지 않는다.그러나 대웅전의 우물천장에 범어(梵語)로 쓰여져 있으며,인도에서 경상을 실어 보낸 배가 이곳에 도착하였다는 데서 국제적 해상교류의 느낌이 전해진다.완도 청해진이 지척이니 이 일대 해상세력들의 서원(誓願)으로 미황사가 창건됐음직하다.사찰 창건에 필요한 주요 물자들도 해상에서 들여왔고,미황사 창건에 당대 해상세력들의 직·간접적 지원과 참여도 있었을 것이다. 주지 금강스님은 미황사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해석하였거니와 건축학자 양상현(순천향대)도 같은 입장이다.대웅전 주춧돌에 게와 거북이 노닐고 있으니 주춧돌과 그 아래의 기단은 바다를 상징한다.대웅보전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되는 것이다. 바닷길로 부처님을 모시고 온 배를 상징함이다.바다 절집의 압권은 부도밭이다.서편의 아름다운 동백숲 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들어가면 달마산을 배경으로 부도와 탑비가 모셔져 있다.남쪽과 서쪽 부도밭 2개다.곳곳에 장엄된 부도 조각에는 서남해의 해산물과 우리 국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식물들을 문양의장으로 채용하고 있다. 게와 물고기,거북이,심지어 다리를 꼰 오리,방아찧는 토끼에 이르기까지 자유분방한 장엄으로 가득차 있다.엄정하고 단아할 뿐더러 소박하기까지 하여 일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조선후기 부도양식에서 이처럼 ‘장난치듯’ 민화풍 풍속의 세계관을 펼치고 있음은 미술사적 전환을 암시한다.문화사적으로도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작은 혁명’을 성취하고 있는 중이다.유독 해산물이 자주 등장함은 연기설화와 더불어 미황사가 바다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암시한다. 부도밭의 주인공들은 서산(西山)대사의 제자들.서산은 임란 후 자신의 의발(衣鉢)을 저 멀리 남쪽 해남 대둔사(대흥사)에 전수한다.그로부터 서산의 법맥은 강진의 만덕사,해남의 대둔사와 미황사로 그 영향력이 확대되어 간다.이렇게 해서 미황사는 서산의 후예들이 남도불교를 일으킨 진흥지가 되었고,이 부도들이 당대의 역사를 웅변해 준다. 조선 후기에만 3번에 걸친 중창불사가 이뤄졌으나 30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다만 부도군만이 오롯이 자취로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부도밭의 주인공들이 대개 인근 해변이나 섬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7대 종사 연담(蓮潭)은 수륙도장(水陸道場)을 개설하였는 바,바다에 인접한 미황사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둔사 8대종사 운봉(雲峰)은 가끔씩 섬으로 숨어들어가 자신의 초가집 암자에 야은(野隱)이라는 편액을 걸고 살기도 하였다.금하(錦河)는 장산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을라치면 살 수 있는 것을 골라 물 속에 넣어 살려주었다고 한다.즉원(卽圓)은 정조 18년(1794)에 궁복도(弓福島)에 있는 암자에서 열반에 들었다. 부도에 유난히 해산물이 많음은 부도의 주인공들이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되돌아 갔음을 암시한다.천진난만한 물고기와 거북이,게 그림에서 흡사 이중섭이 제주도 피란시절에 그렸던 그림이 떠오른다.지고의 경지에 이르면 이렇듯 천진한 어린이들 세계로 빠져드는 것일까.장난치듯 새겨놓은 해산물에서 바다 냄새가 달마산 자락까지 배어있음을 감지한다. ●장난치듯 새겨놓은 부도조각 바다는 늘 인자한 것만은 아니다.120여년 전 해남 출신 주지 혼허(渾虛)와 40여명의 스님들이 바다에서 몰살당한 전설도 전해진다.중창불사를 위한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로 향하다 조난당해 젊은 스님들이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그후 절은 폐사되다시피 몰락의 길을 걷는다.지금도 사하촌(寺下村) 사람들은 비바람이 을씨년스러운 날이면 ‘미황사 스님들 군고치듯한다.’고 한다.인근 송지면 산정리의 농기에는 삿갓 쓴 스님들이 거북을 타고 있는 그림이 전해진다. 땅끝으로 가는 길을 잠시 접고 미황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소이는 이와 같음이다.바다가 산을 벗하고,산이 바다를 벗하여 산중에 반야용선을 들여놓았고,게와 거북이와 물고기를 풀어놓았음이랴.지금은 남도의 끝자락으로 불리지만,청해진을 필두로 동북아를 주름잡던 해상세력의 근거지가 이 일대였으니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란 말이 실감난다.달마산에서 ‘왜 달마란 이름이 남쪽으로 왔는가.’를 통속적으로 묻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니,‘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듯 이미 남송(南宋) 사람들에게도 달마산은 영험한 도량으로 알려져 있었음직하다.1281년 겨울에 남송의 배가 표류하여 근역에 당도하였을 때,달마산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름만 듣고도 멀리 공경할 뿐인데,그대들은 이곳에서 생장했으니 부럽고 부럽도다.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고 하였다. 신라시대는 물론이고 고려시대까지도 국제 해상교류의 중심처였음을 설명함과 아울러 달마산의 국제적 위상까지 설명해 줌에랴. ‘택리지’에 이르길,해남 근역들은 모두 살기에 부적당하고 하였다.그러나 육지 중심이 아니라 바다 중심의 세계관적 전환을 고려한다면,그 언설을 전면적으로 승인하기는 곤란하리라.더군다나 바다가 절집에서 숨쉬는 풍경을 보노라면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불이(不二)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으리라.
  • [‘발’위에서 생길일]올여름 유행샌들

    여름이라고,너도나도 노출한다고,무턱대고 노출하면 그날 패션은 ‘영 꽝’이 되고 만다. 샌들도 마찬가지.올 여름 샌들은 굽이 10㎝는 넘어야 하고 화려하고 섹시해야 한다고 한다.하지만 역시 내 스타일에 맞고,내 발이 편해야 하는 게 우선.올 여름 샌들,어떻게 멋낼까. ●발랄한 소녀같고 싶다 ‘여성스러움=섹시함’만은 아닐 것이다.때로은 소녀처럼 귀엽고,로맨틱한 감성을 표현하는 것도 여성스러움을 부각하는 포인트. 나비,하트,꽃,리본,별 등을 형상화한 문양으로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표현한 샌들은 소녀적 감성이 물씬 풍긴다.높이는 3∼6㎝가 최적이다. 발목 부분을 끈으로 한 번 감아 마무리하는 앵클 스트랩 디자인에 여러가지 원색을 섞은 줄무늬가 가미되면 발랄하다.시폰 소재의 귀여운 원피스에는 로맨틱한 분위기를,청치마에는 스포티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때론 튀고 싶다 너무 높은 굽은 발목,무릎,허리에 무리를 줄 수 있어 왠지 꺼려진다.하지만 완벽하게 멋을 내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다.이럴 때는 12∼13㎝의 웨지힐(밑창과 굽이 하나로 연결된 모양)이나 메탈,나무 등으로 만든 7∼10㎝의 독특한 굽의 샌들이 좋다.큼직한 꽃 코사지와 술,과감한 크리스털 장식,얇은 가죽 끈 여러 겹을 발목에 칭칭감는 모양,은색과 금색으로 반짝이는 에나멜 샌들은 먼 곳에 있어도 시선을 집중시킨다.강렬한 파랑 분홍 주황 초록 등의 원색이라면 더욱 화려하다.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여성 샌들만큼 남성 신발도 다채롭다.올 시즌에는 엠보 무늬(도마뱀,악어 무늬 등),시원한 펄과 광택,표면을 한번 벗겨내어 오래된 느낌을 주는 브러시오프 가죽 등 다양한 소재로 심플한 디자인의 남성 샌들을 보다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변화시켰다.벨크로(일명 찍찍이)와 고무 밴드 등으로 편안함과 활동성을 강조하거나 다양한 자수나 섬세한 버클 장식,스포티한 느낌을 주는 디테일이 다양해진 것도 특징이다. ■ 도움말 금강제화 강주원 디자인실장·레노마 함영숙 디자인실장·에스콰이아 상품기획실 오세희·탠디 옴므 강창석 과장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발’위에서 생길일]올여름 유행샌들

    [‘발’위에서 생길일]올여름 유행샌들

    여름이라고,너도나도 노출한다고,무턱대고 노출하면 그날 패션은 ‘영 꽝’이 되고 만다. 샌들도 마찬가지.올 여름 샌들은 굽이 10㎝는 넘어야 하고 화려하고 섹시해야 한다고 한다.하지만 역시 내 스타일에 맞고,내 발이 편해야 하는 게 우선.올 여름 샌들,어떻게 멋낼까. ●발랄한 소녀같고 싶다 ‘여성스러움=섹시함’만은 아닐 것이다.때로은 소녀처럼 귀엽고,로맨틱한 감성을 표현하는 것도 여성스러움을 부각하는 포인트. 나비,하트,꽃,리본,별 등을 형상화한 문양으로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표현한 샌들은 소녀적 감성이 물씬 풍긴다.높이는 3∼6㎝가 최적이다. 발목 부분을 끈으로 한 번 감아 마무리하는 앵클 스트랩 디자인에 여러가지 원색을 섞은 줄무늬가 가미되면 발랄하다.시폰 소재의 귀여운 원피스에는 로맨틱한 분위기를,청치마에는 스포티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때론 튀고 싶다 너무 높은 굽은 발목,무릎,허리에 무리를 줄 수 있어 왠지 꺼려진다.하지만 완벽하게 멋을 내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다.이럴 때는 12∼13㎝의 웨지힐(밑창과 굽이 하나로 연결된 모양)이나 메탈,나무 등으로 만든 7∼10㎝의 독특한 굽의 샌들이 좋다.큼직한 꽃 코사지와 술,과감한 크리스털 장식,얇은 가죽 끈 여러 겹을 발목에 칭칭감는 모양,은색과 금색으로 반짝이는 에나멜 샌들은 먼 곳에 있어도 시선을 집중시킨다.강렬한 파랑 분홍 주황 초록 등의 원색이라면 더욱 화려하다.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여성 샌들만큼 남성 신발도 다채롭다.올 시즌에는 엠보 무늬(도마뱀,악어 무늬 등),시원한 펄과 광택,표면을 한번 벗겨내어 오래된 느낌을 주는 브러시오프 가죽 등 다양한 소재로 심플한 디자인의 남성 샌들을 보다 세련되고 고급스럽게 변화시켰다.벨크로(일명 찍찍이)와 고무 밴드 등으로 편안함과 활동성을 강조하거나 다양한 자수나 섬세한 버클 장식,스포티한 느낌을 주는 디테일이 다양해진 것도 특징이다. ■ 도움말 금강제화 강주원 디자인실장·레노마 함영숙 디자인실장·에스콰이아 상품기획실 오세희·탠디 옴므 강창석 과장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선사시대가 남긴 세계의 모든 문양’/아리엘 골란 지음

    이 책의 원제목은 ‘신화와 상징,선사시대 종교에 나타난 상징성’이다.본래 신화와 상징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불가분리의 개념이다.무엇보다도 인류가 남긴 대부분의 문양은 상징성을 가지고 있고,또 그것의 바탕을 캐어보면 종교와 신화와 연결되게 마련이다.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 번역책에서처럼 ‘문양’을 강조하는 것이 더 실질적일지 모르겠다. 일찍이 상징의 의미를 미학적 견지에서 밝혀낸 사람은 독일의 에른스트 카시러(1874∼1945)였다.또 그 맥락을 발판으로 에르빈 파노프스키(1892∼1968)는 미술사의 주요 방법론인 도상해석학을 이끌어내었다.이 경우 상징 자체가 미술작품의 배후에 있는 중요한 ‘의미내용’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사실상 상징의 의미와 실제가 현대미술에만 국한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그것을 역사적으로 소급해서 따져 올라가면 자연히 선사시대의 문양들에 다다를 수밖에 없게 된다.우리는 고고학과 미술사에 나타나는 문양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의문과 때로는 편견을 가지고 해석을 시도하여 왔던가.이제 그에 대한 많은 가능한 해답이 이 책의 저자 아리엘 골란을 통해 구해진다. 그의 상징체계는 러시아 ‘문화기호학’의 방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이는 예술,종교 등의 문화요소를 마치 언어처럼 기능하는 체계로 간주하는 것이다.그는 가능한한 많은 문양자료들을 분석함으로써 그가 내린 결론의 오류를 줄여 나가고자 노력한다.이러한 그의 실증적 자세는 그의 이론을 더욱 든든하게 만든다.그리하여 그가 다룬 문양들은 종교관념에 의해 읽혀지고,거꾸로 문양들에 의해 종교의 본질이 구명되는 일종의 해석학적 순환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그리하여 그의 연구의 본질은 “고대 상징을 해독하고,상징을 매개로 표현된 종교적 신앙을 복구하는 것”으로 귀착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태양,황금뿔 사슴,뱀과 물,만(卍)자 등 우리에게 낯익은 28개 항목을 설정하고,세부적인 문양사례로서 419종의 도판을 제시하였다.뿐만 아니라 각 도판마다 서너개 씩의 유사자료들을 끌어들여 이들 도판문양을 전부 합치면 총 2000여개에 이른다.이 백과사전적 자료는 어느 한 지역과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시공을 종횡무진으로 가로지르면서 문양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가령 ‘동심원’ 같은 문양도 일반적인 해석인 태양상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늘상징으로 된다.그는 그에 대한 예로서 남시베리아 투바의 쿠르간(대형고분)을 들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천전리 암각화에 나타난 동심원을 거기에 대비시킬 수 있다.또한 사슴뿔에 대해서도 매우 흥미있는 견해를 표명한다.그는 사슴뿔과 나뭇가지는 고대언어,특히 리투아니아어에서 동일한 단어로 통용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또한 스키타이어의 사카(saka,사슴)와 산스크리트어의 사카(sakha,나뭇가지)를 비교시키고 있다.우리가 알다시피 사슴뿔과 나무는 신라금관의 주된 표현 모티프이다.그의 논지에 따르면 이 두 요소가 하나의 조형물(금관)에 구현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 된다.그밖에도 그에 따르면 손(手)문양이 사람,사람의 힘,권력 등을 상징할 뿐 만아니라,신의 손을 상징한다.이런 해석은 예산 동서리 출토의 방패형청동기에 표현된 손을 ‘샤만의 손’으로 해석하는 경우와 일치하고 있어 매우 주목된다. 그가 취급한 문양사례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동서양에서 나타나는 당초문과 연화문,그리고 무엇보다도 상상적인 동물문양의 보고(寶庫)인 중국의 ‘산해경’ 같은 고전이 다루어지지 않고 있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그러나 어쨌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이와 같은 고대문양의 총체적 사례집이 출판된 것은 당해 학계에서 경하해야할 일임은 틀림없다.5만9000원. 권영필 ˝
  • [24일 TV 하이라이트]

    ●황태자의 첫사랑(MBC 오후 9시55분) 신도끄에 도착한 건희는 지갑을 리조트에 두고 온 사실을 알게 되고 할 수 없이 유빈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유빈은 우연한 기회에 승현 회사에 비서로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보게 된다.하지만 유빈이 이력서에 기재한 비서경력이 거짓임이 들통 나고 유빈은 응시자격을 박탈당한다. ●생방송 쟁점토론(YTN 오후 3시10분) 신행정수도 건설,바람직한 해법은 무엇인가.각당의 정책위의장,학계 전문가들과 함께 토론해본다.신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홍재형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황희연 충북대 도시공학과 교수,최상철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참석한다. ●문화센터(EBS 오전 11시) 인테리어 소품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낸 전통문양이 담긴 액자를 만들어 본다. 먼저 전통적인 문양을 잘라 오려 붙이는 방법을 소개한다.이어 조립하는 방식이 각각 다른 세 가지 유형의 꽃을 만들어 붙이는 전통 문양의 액자를 완성해 본다. ●1050정면승부(iTV 오후 10시50분) 최국과 전진우가 소개할 여행지는 경기도 수원.넓은 저수지를 품고 있는 광교산 등반길에 오른 뒤 산 정상에 있는 약수터 맛을 본다. 이어서 수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하고 수원 화성에서의 낭만적인 데이트와 화성열차까지 즐겨본다. ●오픈 스튜디오(SBS 오후 4시10분) 아내가 남편이,때로는 자녀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상할 때가 많다.하지만 가족 구성원에 대한 소유욕을 버리고 서로를 인정할 때 갈등 없이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다.행복한 가족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에 대해 알아보고 부부애를 키워주는 명상 체조를 배워본다. ●이홍렬,박주미의 여유만만(KBS2 오전 9시30분) 중년남녀들의 뱃살은 성인병이나 노화는 물론 성기능 장애까지 초래한다.잘 먹어야 잘 빠지는 여유만만 뱃살 다이어트 혁명,‘뱃살,먹어야 빠진다’편을 살펴본다.‘스타 다이어트 백선’에서는,톱스타들의 다이어트법과 인터넷을 떠도는 온갖 유행다이어트의 허와 실을 진단한다. ●금쪽같은 내 새끼(KBS1 오후 8시25분) 선자는 대석의 나무람에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한편 지혜를 혼내는 성애에게 민섭은 자식에게 무관심하다며 화를 낸다.분이 풀리지 않은 지혜와 재민은 회사에서도 서로 외면한다.진국은 희수가 집 문제로 상호저축은행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영실과 연관이 있는가 의심한다. ˝
  • 자동차 번호판 한줄로 바뀐다

    자동차번호판 숫자가 현재의 2열에서 1열로 배치된다.색상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자로 바뀐다.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와 한양대는 번호판의 시인성과 가독성을 높인 새로운 번호판 개선안을 마련,16일 공청회를 개최한다. 개선안에 따르면 번호판 숫자 및 글자가 1열로 배치되고,위·변조가 어렵도록 서체가 변경된다.번호판과 자동차 색상의 조화를 위해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자가 사용된다.규격은 기존 자동차의 경우 현행 규격(가로 335㎜,세로 170㎜)대로 하고,신규등록 자동차는 가로를 늘리고 세로를 줄인 번호판(520㎜×110㎜)으로 바뀐다. 번호판 재질은 단기적으로는 현행처럼 페인트식 번호판이 그대로 사용되고 장기적으로 반사형이 검토되고 있다.반사형은 다양한 색상을 적용할 수 있고 문양도 넣을 수 있는 등 디자인은 뛰어나지만 현재의 무인단속 카메라가 인식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 최선모 실장은 “공청회 개최와 인터넷을 통한 여론수렴 과정 등을 거쳐 다음달 중에 최종안을 확정짓겠다.”면서 “자동차 제작사의 번호판 부착 위치 변경과 경찰청 등 관계기관의 의견을 고려하면 3년 후부터는 새로운 번호판 방식이 시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건교부는 “기존 등록차량의 경우 이전등록할 때나 본인이 원할 경우 새 번호판으로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용수기자 dragon@seoul.co.kr˝
  • 인감증명 위조범죄 차단 8월부터 특수용지 사용

    행정자치부는 개인재산에 손실을 주는 경우가 많은 인감증명 위·변조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오는 8월부터 인감증명에 특수용지를 사용토록 하고,내년부터는 증명의 진위를 인터넷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하겠다고 13일 밝혔다. 현재 인감증명에 사용되는 용지도 복사할 경우 바탕의 무궁화 문양이 사라지는 등 특수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를 더욱 강화,주변의 온도가 40℃가 넘으면 문양이 사라지는 용지를 쓰도록 했다. 거래상대방이나 공인중개사,금융기관 등 인감증명을 많이 쓰는 곳에서는 인감증명을 뜨거운 곳에 놓거나 라이터 등을 가까이 대보면 진짜를 쉽게 가려낼 수 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청자운반선 1000년만에 ‘햇빛’

    고려청자 운반선 가운데 가장 앞서고 온전한 형태의 선체가 확인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특히 지금까지 발견된 고려청자 운반선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선체 부분이 처음 발견돼 고려청자 운반선의 구조와 이동경로를 총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은 지난해 10월 군산시 옥도면 십이동파도 근해에서 발견된 고려청자 운반선에 대한 수중해체 작업과 2차발굴조사를 벌여 소나무와 참나무로 건조된 선체 14편을 인양하고,청자 35점을 포함한 도자기 2184점을 새로 수습했다고 10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십이동파도’ 고려청자 유물선 선체의 3분의1이 인양됐으며 1차 발굴작업 때 확인된 5266점을 포함,모두 8739점의 유물이 수습됐다. 해양유물전시관이 이날 공개한 선체는 바닥판(저판) 6조각을 비롯해 뱃머리재목인 이물비우(선수재),배밑과 바깥 판목을 연결하는 만곡종통재,양뱃전을 묶는 가룡목,호롱받침대,나무닻이 잘 가라않도록 하기 위해 매다는 닻돌,배 밑 연결용 가쇠와 외판의 연결용 나무못 등 모두 14편.이 가운데 뱃머리재목인 이물비우는 1983∼84년 전남 서해안에서 조사된 완도선(12세기초)과 1995년 목포시 해역에서 조사된 달리도선(14세기)등 지금까지 발견된 고려시대 한선(韓船)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기록상으로는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던 선체의 부분으로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칡넝쿨로 만든 닻줄도 처음 발견됐다. 해양유물전시관은 해저에 깊숙이 파묻힌 나머지 선체를 마저 발굴해 탈염시켜 경화처리한 뒤 복원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모든 선체가 복원돼 공개되기까지는 약 10년이 소요된다. 해양유물전시관은 “운반선의 갑판 등 상부 부분이 남아 있지 않으나 확인된 다른 부분의 구조로 볼 때 최고 길이 10m,폭 2.5m 규모로 추정된다.”며 “청자 등 유물의 상태로 미루어 11세기 말∼12세기 초 해남에서 청자 등 도자기를 싣고 개성으로 가던중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해양유물전시관이 새로 수습해 이날 공개한 유물은 청자완과 시저받침을 포함해 소접시와 대접 등 주로 중상류층에서 사용하던 생활용기가 대부분으로 이 가운데 톱날이빨 모양의 ‘청자음각거치문화형접시’와,‘청자음각국화당초문접시’는 종전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문양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제주 체험관광 1번지 일출랜드

    “동굴도 관광하고 체험관광도 즐기고….” 개장 2주년을 맞은 제주도 동남부지역의 대표적 관광지인 남제주군 성산읍 ‘일출랜드’가 뜨고 있다. ‘천가지 아름다움을 간직한 동굴’이라는 미천굴(美千窟)은 전장 1700m의 용암동굴이다.또 1년에 1㎜밖에 자라지 않는다는 선인장 중의 왕 ‘금호선인장’하우스,워싱턴야자가 군락을 이룬 아열대 산책로,동백·철쭉·담팔수·후박나무·소나무 등이 우거진 수목원,제주의 현무암 덩어리와 폭포분수로 꾸며진 수변공원,돌하르방·맷돌·연자방아·절구 등을 전시해 놓은 제주돌 도구 전시장 등이 볼거리다. 또 커피잔과 열쇠고리를 직접 만들고 스카프에 천연물감을 들일 수 있는 체험관광 프로그램까지 마련되어 한 번 왔던 관광객들이 두 세번씩 찾고 있다. 일출랜드의 대표적 구경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미천굴. 가지굴 등의 훼손을 막고 나사접시거미,고려가게거미,제주굴아기거미,관박쥐,쥐며느리,담흑물결자나방,굴꼽등이,털노래기,뿔띠노래기 등의 동굴 동물과 곤충들을 보호하기 위해 비록 365m 밖에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25만년 전부터 형성된 종유석 무리와 붉은 진흙 무더기들,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등은 ‘태고’를 감상하고 느끼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내부 온도가 여름은 평균 섭씨 17도,겨울은 14도여서 하·동절기 관광객들은 동굴의 자연 냉·온방에 감탄한다. 동굴에서 두손을 벌려 오른손에 물이 떨어지면 아들,왼손에 떨어지면 딸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까지 있어 아기 없는 부부나 신혼관광객들을 사로잡고 있다.MBC 주말연속극 ‘장미의 전쟁’도 이곳 미천굴에서 녹화됐다. 미천굴에서 나와 관광객들이 들르는 곳은 체험관광 학습장이다. 도예·칠보공예·염직 등이 대표적인 체험 프로그램으로,하루 300∼500여명의 관광객들이 7명의 전문 강사가 가르치는 대로 티셔츠에 문양새기기,영화 ‘사랑과 영혼’의 물레장면 따라하기,칠보장식 만들기,접시·모빌·찻잔 받침대·머그컵·토우 만들기,스카프에 천연물감 들이기 등을 즐길 수 있다.물론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가져갈 수 있다. 지난 13∼17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7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기간 중에는 다다오 지노 ADB총재 부인과 울펀슨 제임스 세계은행(IBRD)총재 부인,호스트 콜만 국제통화기금(IMF)총재 부인,미국 존 W 스노 재무장관 부인 등 세계 금융·재계 관계자부인들과 자녀들도 이 곳에서 체험관광을 즐겨 더욱 유명세가 붙었다. 문영빈 영업팀장은 “보기만 하는 관광지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보면서 즐길 수 있는 체험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흰 눈속에서 흰색·분홍색·빨간색 꽃이 피는 동백을 즐길 수 있고 2월 말부터 4월까지는 3000여평에 이르는 노란 유채꽃을,3월부터 6월까지는 20여만그루의 철쭉을,5월 말부터는 여름에만 나는 하귤을 맛볼 수 있다. 100여명의 일출랜드 가족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그것은 제주도가 육성하고 있는 3개단지 20개 관광지구 가운데 순수한 제주 토착자본에 의해 조성된 제주도 유일의 관광지이기 때문이다. 공항 리무진버스를 운영하는 삼영교통 대표이자 삼영관광 대표인 강재업(62)씨가 1000평에서 시작해 5만평 규모의 일출랜드를 직접 꾸렸다.강 사장은 관광객들을 위한 만점 서비스를 위해 두줄짜리 ‘일출랜드 고객헌장’도 만들었다. ‘제1조,고객은 언제나 옳다.제2조,만약 고객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제1조를 보라.’가 그것이다. 태고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고 사계절 푸른 공간을 즐길 수 있는 곳,그 곳이 바로 일출랜드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그림속에 詩가 녹아있네

    화가 심경자(60·세종대 교수)는 잘 알려진 대로 운보 김기창 화백의 수제자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 그의 그림은 운보의 ‘알기 쉬운’ 그림과는 전혀 달라 보인다.그의 작업은 한지 위에 바림으로 물을 들인 뒤 나이테 등의 탁본을 뜬 종이를 콜라주하는 간단찮은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인 만큼 고도의 추상성을 띤다.혹자는 그의 예술을 동양화의 이상적인 경지,즉 ‘그림 속에 시가 있는’ 경지에 닿아 있다고 말한다.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심경자 개인전’ 은 작가의 이와 같은 고답적인 작품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이번 전시에는 정신적인 격조를 느끼게 하는 70여점의 작품이 나와 있다.나무의 물결무늬나 원목의 나이테,기왓장의 선조문양,떡살문양 등이 예스러움의 향취를 전해준다. 전시는 6월 12일까지.(02)734-6111. 김종면기자 jmkim@˝
  • 儒林(95)-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차에서 내리자 오월의 햇살이 한꺼번에 플래시를 터뜨리듯 작열하고 있어 눈이 부실 정도였다.낮은 울타리를 따라 피처럼 붉은 영산홍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서원 뒤편의 숲 속에 아카시아 꽃들이라도 만발한 듯 달콤한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그러나 서원 주위는 문자 그대로 천지개벽이었다.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까뭉개고 그곳에 새 아파트를 짓고 싶지만 명색이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돼 있는 유적지라 어쩔 수 없이 보존하고 있는 듯 서원의 건물들은 흥부네 집 아이들의 헤진 옷을 기운 누더기처럼 간신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원래는 야산을 등 뒤로 하고 양지바른 명당자리에 세워진 서원이었지만 이제는 볼썽사나운 고층아파트들로 둘러싸여 서원은 데리고 온 의붓자식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 서원의 입구는 세 칸의 솟을대문으로 이루어진 외삼문(外三門)으로 돌계단 위에 우뚝 서 있었다.홍살문처럼 역시 붉은 칠을 한 대문에는 각각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었고,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쓰여진 ‘심곡서원’이란 현판이 내걸려 있었다.그러나 그것보다 강렬하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서원 바깥에 있는 작은 못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조광조는 이곳에 스스로 못을 파고 그곳에 연꽃을 심었다고 하는데,그렇다면 이 못자리가 조광조가 만들었다는 그 연지(淵池)가 아닐까.그러나 철책으로 둘러싸인 못자리는 물조차 없는 메마른 구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개발,개발에만 온 정신을 팔고 있는 사람들.그러나 그들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는 이와 같이 무신경하다.아파트 한 채에 들어가는 주방기구의 값만으로도 조광조가 만들었던 연못은 복원될 수 있을 것이다.아파트 거실에 매달린 고급 샹들리에의 조명 값만으로도 그 못에 연꽃을 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미친 것은 우리들이다.기록에 의하면 사람들은 ‘선생이 하는 것을 보며 어떤 사람은 미치광이라 칭하였다.’고 하지 않았던가.그러나 미치광이는 조광조가 아니라 후세를 사는 우리들인 것이다.무엇이 소중한지 무엇이 귀한지 모르고 오로지 경제적 논리에 의해서 이익을 좇고 프리미엄에 미쳐 있는 미치광이들. 그 메마른 구덩이가 조광조가 직접 만든 연못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바로 못자리 위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조광조는 ‘이곳에 연못을 만들고 잣나무 두 종류를 심어놓고 쉬는 것을 위탁하였다.’고 전하고 있다.조광조가 심었던 잣나무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그 나무들이 연못 위쪽에 아직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나무들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세 그루. 나는 연못가에 있는 느티나무로 올라가 보았다.나무 밑둥 옆에는 이 느티나무가 경기도에 의해서 보호수로 지정되었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었고,수령 5백년이 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5백년이 된 느티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나무의 높이는 17m,밑 둘레가 4m에 이를 만큼 거목으로 자라 있었다.조광조가 죽고 왕이 바뀌고 왕조가 멸망하고 전쟁이 일어나는 5백년 동안 그가 심은 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역사의 진리를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노래하였던가. “나무는 신성한 것이다.나무와 이야기하듯 나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진리를 안다.나무는 교의(敎義)도 처방도 듣지 않는다.나무는 개개의 일에 집착하지 않고 삶의 근본법칙을 말해준다.” 조광조가 심은 느티나무.조광조가 죽은 이래 5백 년 동안이나 삶의 근본법칙을 말해주는 느티나무.조광조의 혼백은 저 느티나무처럼 아직도 살아남아 역사의 진리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의 교의를 가르쳐주고 있지 아니한가.˝
  • 儒林(95)-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95)-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차에서 내리자 오월의 햇살이 한꺼번에 플래시를 터뜨리듯 작열하고 있어 눈이 부실 정도였다.낮은 울타리를 따라 피처럼 붉은 영산홍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서원 뒤편의 숲 속에 아카시아 꽃들이라도 만발한 듯 달콤한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그러나 서원 주위는 문자 그대로 천지개벽이었다.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까뭉개고 그곳에 새 아파트를 짓고 싶지만 명색이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돼 있는 유적지라 어쩔 수 없이 보존하고 있는 듯 서원의 건물들은 흥부네 집 아이들의 헤진 옷을 기운 누더기처럼 간신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원래는 야산을 등 뒤로 하고 양지바른 명당자리에 세워진 서원이었지만 이제는 볼썽사나운 고층아파트들로 둘러싸여 서원은 데리고 온 의붓자식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 서원의 입구는 세 칸의 솟을대문으로 이루어진 외삼문(外三門)으로 돌계단 위에 우뚝 서 있었다.홍살문처럼 역시 붉은 칠을 한 대문에는 각각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었고,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쓰여진 ‘심곡서원’이란 현판이 내걸려 있었다.그러나 그것보다 강렬하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서원 바깥에 있는 작은 못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조광조는 이곳에 스스로 못을 파고 그곳에 연꽃을 심었다고 하는데,그렇다면 이 못자리가 조광조가 만들었다는 그 연지(淵池)가 아닐까.그러나 철책으로 둘러싸인 못자리는 물조차 없는 메마른 구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개발,개발에만 온 정신을 팔고 있는 사람들.그러나 그들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는 이와 같이 무신경하다.아파트 한 채에 들어가는 주방기구의 값만으로도 조광조가 만들었던 연못은 복원될 수 있을 것이다.아파트 거실에 매달린 고급 샹들리에의 조명 값만으로도 그 못에 연꽃을 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미친 것은 우리들이다.기록에 의하면 사람들은 ‘선생이 하는 것을 보며 어떤 사람은 미치광이라 칭하였다.’고 하지 않았던가.그러나 미치광이는 조광조가 아니라 후세를 사는 우리들인 것이다.무엇이 소중한지 무엇이 귀한지 모르고 오로지 경제적 논리에 의해서 이익을 좇고 프리미엄에 미쳐 있는 미치광이들. 그 메마른 구덩이가 조광조가 직접 만든 연못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바로 못자리 위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조광조는 ‘이곳에 연못을 만들고 잣나무 두 종류를 심어놓고 쉬는 것을 위탁하였다.’고 전하고 있다.조광조가 심었던 잣나무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그 나무들이 연못 위쪽에 아직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나무들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세 그루. 나는 연못가에 있는 느티나무로 올라가 보았다.나무 밑둥 옆에는 이 느티나무가 경기도에 의해서 보호수로 지정되었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었고,수령 5백년이 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5백년이 된 느티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나무의 높이는 17m,밑 둘레가 4m에 이를 만큼 거목으로 자라 있었다.조광조가 죽고 왕이 바뀌고 왕조가 멸망하고 전쟁이 일어나는 5백년 동안 그가 심은 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역사의 진리를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가 노래하였던가. “나무는 신성한 것이다.나무와 이야기하듯 나무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진리를 안다.나무는 교의(敎義)도 처방도 듣지 않는다.나무는 개개의 일에 집착하지 않고 삶의 근본법칙을 말해준다.” 조광조가 심은 느티나무.조광조가 죽은 이래 5백 년 동안이나 삶의 근본법칙을 말해주는 느티나무.조광조의 혼백은 저 느티나무처럼 아직도 살아남아 역사의 진리를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의 교의를 가르쳐주고 있지 아니한가.
  • 儒林(94)-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조광조가 소학(小學)을 열심히 읽었던 것은 그의 스승 김굉필로부터 받았던 영향 때문이었다. 소학은 남송시대 주자(朱子)의 감수 아래 그의 제자인 유청지(劉淸之)가 편찬한 책으로 대학(大學)에 대응된 말이며,초보교육을 위해 아동에게 일상적 예의범절과 어른을 섬기고 벗과 사귀는 도리를 가르치는 목적으로 어릴 때부터 유교적 윤리관을 가르치기 위한 아동의 수신서(修身書)로 장려되었던 모든 교육기관에서 필수교과서로 읽힌 책이었으며,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었던 책이었다. 특히 조광조의 스승 김굉필은 소학동자(小學童子)라고 불릴 만큼 소학을 읽는 데만 열중하였다.김굉필은 소학을 읽은 후 독소학(讀小學)이란 시를 지었는데,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문을 배우고도 천기를 알지 못하더니 소학의 글 속에서 어제의 잘못을 깨달았네(業文猶未識天機 小學書中悟昨非).” 김굉필이 소학에 깊이 빠진 것 역시 그의 스승 김종직의 영향이었는데,김종직 역시 그의 부친이었던 김숙자(金叔滋)로부터 소학의 중요성을 전수받게 되었으므로 이로부터 소학을 중시하는 ‘소학파’란 학통(學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학통은 특히 고려 신하로 굳게 지조를 지켰던 길재(吉再)와 세조의 쿠데타에 항의하여 관직을 버린 김숙자로 이어지는 사림파의 핵심적 교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조광조는 스승의 영향을 받아 소학을 중심으로 하는 경전들과 중국의 역사서인 ‘통감강목’에 의지하여 연보에서 기록된 것처럼 주위사람들로부터 미치광이란 말을 들을 만큼 이곳 일대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던 것이다. 경사진 오르막길을 오르자 곧 다시 내리막길이 나타났다.거의 다 왔는데 안내판이 나타나지 않아 잠시 차를 멈추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려 하는데 멀리 표지판이 보였다.한눈에 유적지를 나타내는 갈색 이정표였다.일단 갈색 표지판이 나타난다는 것은 가까운 곳에 유적이 있다는 반가운 신호였으므로 나는 그대로 차를 몰고 다가가 보았다. “심곡서원” 마침내 어렵사리 미로를 헤치며 찾아온 뒤끝에 목적지인 심곡서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서원으로 들어가려면 왼쪽으로 급커브를 틀어 낮은 분지로 들어가야 했으므로 나는 조심스럽게 오가는 차량이 있는가를 살피며 샛길로 접어들었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가꾸고 있기 때문일까,작은 공터들이 보이고 둘러싸인 야산에는 온통 아파트의 건물들이 병풍을 두르고 있었다.그 공터에 초라한 몇 개의 건물이 보이고 마침내 홍살문(紅箭門)이 나타났다. 보통 홍살문은 능이나 묘,궁,관가들의 입구에 세운 것으로 두 개의 둥근기둥을 올리고 지붕이 없이 붉은 살을 쭉 박고 가운데 태극 문양을 새긴 문이었다.붉은 칠을 한 것은 잡귀신을 쫓고,홍살문 안에는 위대한 사람의 신위가 있으므로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은 반드시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라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도로변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우뚝 서 있었다.‘누구든지 그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가진 석비로 품귀에 따라서 1품 이하는 10보,3품 이하는 20보,7품 이하는 30보 앞에서 내려 걸어가게 되어 있는 ‘대소인원개하마비(大小人員皆下馬碑)’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홍살문 안으로 작은 주차장이 보였으므로 그대로 차를 몰고 들어가 그곳에 차를 세웠다.˝
  • 儒林(94)-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94)-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조광조가 소학(小學)을 열심히 읽었던 것은 그의 스승 김굉필로부터 받았던 영향 때문이었다. 소학은 남송시대 주자(朱子)의 감수 아래 그의 제자인 유청지(劉淸之)가 편찬한 책으로 대학(大學)에 대응된 말이며,초보교육을 위해 아동에게 일상적 예의범절과 어른을 섬기고 벗과 사귀는 도리를 가르치는 목적으로 어릴 때부터 유교적 윤리관을 가르치기 위한 아동의 수신서(修身書)로 장려되었던 모든 교육기관에서 필수교과서로 읽힌 책이었으며,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었던 책이었다. 특히 조광조의 스승 김굉필은 소학동자(小學童子)라고 불릴 만큼 소학을 읽는 데만 열중하였다.김굉필은 소학을 읽은 후 독소학(讀小學)이란 시를 지었는데,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문을 배우고도 천기를 알지 못하더니 소학의 글 속에서 어제의 잘못을 깨달았네(業文猶未識天機 小學書中悟昨非).” 김굉필이 소학에 깊이 빠진 것 역시 그의 스승 김종직의 영향이었는데,김종직 역시 그의 부친이었던 김숙자(金叔滋)로부터 소학의 중요성을 전수받게 되었으므로 이로부터 소학을 중시하는 ‘소학파’란 학통(學統)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학통은 특히 고려 신하로 굳게 지조를 지켰던 길재(吉再)와 세조의 쿠데타에 항의하여 관직을 버린 김숙자로 이어지는 사림파의 핵심적 교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조광조는 스승의 영향을 받아 소학을 중심으로 하는 경전들과 중국의 역사서인 ‘통감강목’에 의지하여 연보에서 기록된 것처럼 주위사람들로부터 미치광이란 말을 들을 만큼 이곳 일대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던 것이다. 경사진 오르막길을 오르자 곧 다시 내리막길이 나타났다.거의 다 왔는데 안내판이 나타나지 않아 잠시 차를 멈추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으려 하는데 멀리 표지판이 보였다.한눈에 유적지를 나타내는 갈색 이정표였다.일단 갈색 표지판이 나타난다는 것은 가까운 곳에 유적이 있다는 반가운 신호였으므로 나는 그대로 차를 몰고 다가가 보았다. “심곡서원” 마침내 어렵사리 미로를 헤치며 찾아온 뒤끝에 목적지인 심곡서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서원으로 들어가려면 왼쪽으로 급커브를 틀어 낮은 분지로 들어가야 했으므로 나는 조심스럽게 오가는 차량이 있는가를 살피며 샛길로 접어들었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가꾸고 있기 때문일까,작은 공터들이 보이고 둘러싸인 야산에는 온통 아파트의 건물들이 병풍을 두르고 있었다.그 공터에 초라한 몇 개의 건물이 보이고 마침내 홍살문(紅箭門)이 나타났다. 보통 홍살문은 능이나 묘,궁,관가들의 입구에 세운 것으로 두 개의 둥근기둥을 올리고 지붕이 없이 붉은 살을 쭉 박고 가운데 태극 문양을 새긴 문이었다.붉은 칠을 한 것은 잡귀신을 쫓고,홍살문 안에는 위대한 사람의 신위가 있으므로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은 반드시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라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도로변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우뚝 서 있었다.‘누구든지 그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가진 석비로 품귀에 따라서 1품 이하는 10보,3품 이하는 20보,7품 이하는 30보 앞에서 내려 걸어가게 되어 있는 ‘대소인원개하마비(大小人員皆下馬碑)’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홍살문 안으로 작은 주차장이 보였으므로 그대로 차를 몰고 들어가 그곳에 차를 세웠다.
  • ‘다이내믹 코리아’ 로고 변경

    국정홍보처는 11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브랜드인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의 로고를 새로 바꾸었다고 밝혔다.새 로고는 태극문양과 변화의 새물결을 모티브로 한국의 역동적인 미래비전을 표현하고 있다.홍보처는 새 로고를 공공기관의 각종 양식과 홍보물을 비롯,아테네 올림픽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주요 국제행사에 적극 활용,한국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정착시켜 나갈 방침이다.˝
  • [패션+α]

    ●스와롭스키 벤쳐스 코리아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스와롭스키 비즈 페어 2004 서울’을 29∼30일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연다.웨딩드레스를 입은 바비인형,크리스탈 비즈로 만든 동물 등 수백여점의 작품이 전시될 예정.입장료,관람료 무료.02-3442-5366,beadsfair.co.kr. ●파우더 전문브랜드 로트리는 피부를 보송보송하게 하는 파우더와 피부 결점을 보완하는 팩트,화이트 핑크 골드 등 다섯가지 펄이 빛을 반사해 입체감을 표현하는 하이라이트 기능을 하나로 묶은 ‘다브레카 트리플 케익’을 선보였다.2만 7000원. ●할인점 전용브랜드인 LG생활건강 레뗌은 천연칼슘 성분과 보습성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하이드로 케어 7종’을 출시했다.스킨 230㎖ 2만원선,로션 180㎖ 2만 2000원선,에센스 60㎖·아이크림 30㎖ 2만 3000원선,크림 60㎖ 2만 5000원선. ●한국스킨아트협회는 5월8일 서울 종로 밀레니엄프라자 행사장에서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스킨아트 무료디자인 행사를 연다.스킨아트는 천연원료로 피부에 문양을 그려넣는 것으로 2주∼1개월 후 자연스럽게 지워진다.02-2266-0812. ●EXR는 5월1∼16일 전국 130여개 매장에서 8만원 이상 구매고객에게 멀티포켓가방인 ‘EXR 캡벨트’를 증정한다.자세한 내용은 www.exrkorea.com.˝
  • 영천서 2000년전 청동·철제무기 출토

    경북 영천시 고경면 용전기 농가 밭에서 2000년 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 목관묘가 발견돼 쇠뇌(방아쇠를 당겨 쏘는 기계식 화살)의 청동제 방아틀 뭉치(노기),청동꺾창,화살촉,도끼 등 고대 청동 및 철제 무기류가 쏟아져 나왔다. 이 목관묘는 지난해 12월29일 포도밭을 개량하기 위한 공사 중에 발견돼 각종 유물들이 출토됐으며,그후 국립경주박물관(관장 박영복)이 긴급조사를 벌여왔다. 4일 조사단에 따르면 조사 전에 이미 청동투겁창,쇠투겁창 등 15점의 유물이 나왔다.조사단은 이후 청동꺾창집,청동노기,쇠투껍창,쇠화살촉 등 기원 전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금속제 유물 20여점을 추가로 발굴했다.목관묘 1기도 새로 발견해 조사 중이어서 출토 유물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목관묘는 기원 전 1∼2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해 기원 전후를 거쳐 기원후 2세기 무렵까지 영남지방 전역에 퍼진 무덤이다. 이 중 쇠뇌 청동제 방아틀 뭉치는 한강 이남에서는 처음으로 발굴되었으며,평양 석암리 등에서 출토된 쇠뇌 방아틀보다 보존상태가 훨씬 양호해 학계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청동꺾창집도 현재까지 발견된 것보다 보존 상태,문양 등이 완형에 가까워 희귀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관계자는 “이 유물들은 기원 전후에 영남 지역에 고도의 금속 문명이 뿌리내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무덤의 주인공은 신라 건국과 관련이 있는 지역세력의 우두머리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종하랑 선영이의 배낭메고 60개국](10) 티베트 ‘라싸’

    북경에서 청두(成都)를 경유하여 5시간 남짓,그림 같은 설산들이 이어지는 장엄하고 험준한 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티베트 라싸 공항에 도착했다.높고 가파른 설산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분지,티베트 땅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히말라야에서 불어오는 맑은 공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다.그러나 곧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가빠온다.고도 30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느끼는 산소부족 현상 때문이다.고산증세는 사람에 따라 느껴지는 정도가 다르지만 심한 경우는 호흡곤란을 호소하다가 기절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고산병에는 약이 따로 없고 심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특히 위험한데 호흡장애를 일으키며 병원에 실려가는 사람들에게 의사들의 처방은 딱 한가지라고 한다.“GO DOWN!”. 라싸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각종 엽서,필름 등과 함께 산소를 팔기도 하는데 너무 비싸서 웬만하면 숨을 아끼며 쉬는 게 상책이다.아,산소의 소중함을 이 곳에 와서 깨닫게 되다니…. ‘옴마니 반메훔! 옴마니 반메훔!(연꽃 속의 보석이여 영원하소서!)’ 꿈인 듯 들려오는 낮은 염불 소리,어디에서 들었더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남편과 열심히 보았던 역사극에서 궁예가 불법을 설파하면서 외웠던 말이다.티베트 라싸에서는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옴마니 반메훔’을 읊조리며 오체투지(머리와 사지를 모두 땅에 대고 절하는 티베트의 기도방법)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티베트 사람들에게 종교는 곧 삶이고 삶은 곧 오체투지의 연속이다.티베트의 북부나 남부,각 지방에서 가장 신성한 조캉사원이 있는 라싸까지 산과 들을 거쳐 수백,수천㎞ 되는 거리를 오체투지만을 하며 올라오는 사람들도 많다. 농사를 짓는 사람중에는 농한기인 겨울에 몇달을 기도기간으로 정해 오체투지하며 기도를 하기도 한다.라싸에 있는 조캉사원은 라마승과 신도들에게 가장 큰 성지로 손꼽히는 곳으로,이 사원 앞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와 상관 없이 이른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티베트 전 지역에서 몰려든 신도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외지인들의 관심을 끄는 또 다른 티베트의 독특한 문화는 바로 장례의식이다.티베트 사람들은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를 신성한 동물로 여기며,죽은 후에 독수리가 죽은 육신을 먹게 함으로써 영혼이 더 하늘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일반 서민들의 장례형태로,조장(鳥葬) 혹은 천장(天葬)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조장터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으나 요즘에는 ‘사진촬영 금지’ 표시와 함께 개방되고 있다.재미있는 사실은 서양 친구들은 대부분 조장을 보러 가지 않거나 보더라도 멀찌감치 뒤에 서서 보는데 호기심 많고 용감한(?)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은 바로 앞에 서서 끝까지 지켜본다는 것이다.물론 우리도 선봉에 섰다. 처음엔 나도 모르게 등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너무 충격적인 장면에서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남편 뒤로 숨어 들었지만,대부분의 절차는 손가락 사이로 목격할 수 있었다.산을 내려오면서 내내 묘한 기분이 들었다.영혼이 빠져 나간 육신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내 몸을 빌려 내가 살아 움직일 때 더 선하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옴마니 반메훔’. ■ 라싸 외곽 시골 마을 전통적인 티베트의 가옥양식과 농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라싸 외곽의 당슝 마을을 방문했다.관광지구인 라싸를 벗어나 시골마을로 들어서자 낯선 이방인들이 마냥 신기한지 삼삼오오 모여 야크 똥을 말리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사람들도,흙을 파며 뛰놀던 어린 아이들도 온통 시선이 우리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인다.무뚝뚝한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하던 사람들은 폴라로이드 사진 한장에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들어 서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한다. 티베트의 전통가옥은 빈부의 격차 없이 모든 집이 동일한 양식과 디자인으로 지어진다.벽돌로 사각집을 지은 후에 흰색 회칠을 하고 지붕에는 종교적 의미를 지닌 오색기를 단다.흰색 벽과 대비되는 화려한 원색의 문 위에는 그들이 신성시 여기는 야크의 머리로 장식을 하고 ‘옴마니 반메홈’ 이라는 문구를 적어 놓는다.그리고 겨울에 연료로 쓰는 야크 똥을 빈대떡처럼 빚어 벽에 붙여 건조시킨다. 손자와 함께 구경나온 할머니 한분이 집안을 보여주신다며 우리를 이끌었다.시멘트 바닥에 장과 소파가 있는 응접실,침대가 있는 침실,불상을 모시는 작은 사원 등이 있는 집안은 화려한 티베트 전통문양의 양탄자,깔개,걸개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집구경을 시켜 주신 후 할머니는 야크의 우유에 소금간을 한 버터차를 만들어주셨다.버터차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으로,우리 입맛에는 약간 느끼하다.내색을 하면 서운해하실 것 같아 맛있게 호호 불어 마시는데,할머니는 보온병을 들고 옆에 서 계시다가 한 모금만 마셔도 계속해서 차를 따라 주셨다. 옆집 사는 딸이 우리에게 보여주겠다며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찍은 옛사진 한 장을 가져왔기에 “너무 예뻐요.이런 옷이 다 집에 있으세요?” 하고 물었더니 갑자기 집안 식구들이 각 방으로 흩어져 남녀 전통의상을 가지고 나온다.갑자기 티베트의 전통의상을 입게 된 우리는 서로의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티베트의 아름다운 시골마을에서 정겹고 따뜻한 사람들 덕분에 참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평생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몰라도 이렇게 만난 건 그들 종교에서 말하는 대로 전생에 억겁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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