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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뷰티 유튜버들 “성형수술비 좀 세금에서 빼 주세요”…소득세 자진 신고 이유는?

    뷰티 유튜버들 “성형수술비 좀 세금에서 빼 주세요”…소득세 자진 신고 이유는?

    “방송에 꼭 필요해서 성형수술을 했는데 수술비 좀 세금에서 빼 주세요.”“외국 갈 때 불편해 죽겠으니까 소득세 신고 좀 빨리 해 주세요.” 최근 인기 유튜버들로부터 소득세 신고 업무를 위탁받은 서울의 한 세무사는 3일 “국세청에 소득세를 신고해 달라고 먼저 찾아오는 유튜버들이 적지 않다”면서 “화장법이나 다이어트 방법, 요가를 비롯한 운동을 알려주는 뷰티 유튜버들 중 일부는 성형수술비를 소득세에서 빼 달라는 요구도 종종 한다”고 말했다. 세무사들에 따르면 개인사업자인 유튜버들은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음식점을 비롯한 다른 자영업자들과 달리 관련 협회나 조직이 따로 없어 서로 세무 자문을 구하기 어렵고, 유튜버 대상 전문 세무사도 없어서다. 과세당국도 유튜버가 새 직업으로 뜬지 오래되지 않아 딱 부러지는 과세 기준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유튜버와 세무사, 과세당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세금 쟁점은 소득에서 얼마나 많은 비용을 빼 주느냐의 문제다. 개인사업자는 소득에서 사업에 필요한 각종 비용을 뺀 금액에 소득세율을 곱해 세금을 매긴다. 예를 들어 음식점은 매출에서 종업원 인건비와 식재료비, 가게 임대료 등을 비용으로 빼 준다. 유튜버들도 세무사를 통해 국세청에 각종 비용을 소득에서 빼 달라고 요구한다. 대표적인 비용은 성형수술비다. 한 세무사는 “특히 뷰티 유튜버들은 더 예쁘고,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구독자를 늘릴 수 있어 성형수술이나 시술에 쓰는 비용이 적지 않다”면서 “하지만 성형수술비는 방송을 위해 수술했다는 점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국세청으로부터 사업 관련 비용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전했다. 국세청에서는 영화배우나 가수를 비롯한 연예인 사례를 들이댄다. 연예인도 성형수술을 많이 하는데 소득에서 수술비를 빼 주지 않는다는 논리다. 다른 세무사는 “한 배우가 영화에서 눈썹이 아주 짙은 배역을 맡아 어쩔 수 없이 눈썹 문신을 한 경우는 세금에서 시술비를 빼 줄 수 있다는 예를 국세청 관계자에게 들었다”며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 사정 때문에 꼭 필요한 수술이나 시술이 아니면 비용으로 쳐주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유튜버들은 세무사에게 국세청으로부터 명품 가방이나 옷, 화장품 등의 구입비를 비용으로 인정받아 달라는 주문도 한다. 영상 촬영에 필요한 소품으로 샀다는 논리다. 한 세무사는 “명품 가방 등은 방송에서 쓰는 건 극히 일부이고 유튜버들이 일상 생활에서 쓸 수 있어 비품으로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구입 내역과 함께 방송에 썼다는 사실을 입증할 동영상 캡처 화면을 국세청에 제출하면 비용으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최근 뷰티 유튜버들을 중심으로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나오지 않았는데도 먼저 세무사를 찾아 소득세 신고를 요청하는 경우가 늘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유명 관광지나 명품 생산국에 직접 가서 방송을 찍어 올리는 유튜버들이 있는데 출입국할 때 세금 때문에 상당한 불편을 겪어서다. 국세청은 외국 과세당국과 납세자 소득 신고 자료를 공유한다. 외국 세관에서도 우리 국민들의 소득 정보를 알 수 있다. 한 세무사는 “뷰티 유튜버 중 상당 수가 미국 등에 갈 때 넉넉히 시간을 갖고 방송을 찍으려고 편도 항공권만 끊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티켓을 끊지 않는다. 외국 세관에서 볼 때 아무 소득도 없는 청년이 편도 항공권만 끊고 오면 불법 체류 의도 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입국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게 진행돼 한국으로 돌아와 세무사부터 찾아 ‘세금이 얼마가 됐든 사업자등록을 하고 소득세를 신고해 달라’고 요청하는 유튜버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유튜버는 방송으로 번 소득을 제대로 신고하는 게 최선의 절세법이다. 사업자등록과 소득세 신고를 하지 않아도 국세청에서 마음만 먹으면 소득을 다 들여다 볼 수 있어서다. 국세청 관계자는 “아프리카TV 등 국내 인터넷방송사들은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에게 별풍선 등 수입을 줄 때 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국세청에 신고한다. 유튜브도 구글로부터 광고 수입 자료를 받기 때문에 유튜버의 소득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득세를 신고하지 않으면 소득세액에 20%의 미신고 가산세가 붙고, 차명계좌 등 사기나 부정한 방법을 쓰면 최고 40%의 가산세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지난 9월부터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번호 업종코드가 따로 마련돼 유튜버 누구나 사업자등록을 할 수 있다. 사업자등록을 한 뒤 소득세를 신고하면 방송 촬영을 위해 필요한 촬영 및 편집 기사에게 준 인건비, 카메라 구입비 등을 비용으로 공제받을 수 있다. 이런 비용을 인정받으려면 소득과 비용 내역을 꼼꼼히 적은 장부를 만드는 게 유리하다. 소득이 많지 않으면 단순경비율을 적용받을 수도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전년도 수입이 2400만원 미만인 유튜버는 장부를 적지 않아도 소득의 64.1%를 비용으로 인정해 나머지 35.9%에만 소득세를 매긴다”면서 “영세 자영업자가 편리하게 세금을 신고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슬리피가 온 몸에 문신한 이유 [SSEN이슈]

    슬리피가 온 몸에 문신한 이유 [SSEN이슈]

    래퍼 슬리피가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문신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24일 오후 방송된 SBS 주말 예능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에서는 이상민과 슬리피가 함께 출연했다. 최근 소속사와 분쟁을 하며 “힘든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밝힌 슬리피에게 이상민은 따뜻한 말을 건넸다. 이날 방송에서 밤을 줍던 중 이상민은 슬리피에게 “요즘 괜찮냐”고 묻자 슬리피는 단번에 “안 괜찮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괜찮냐고 많이 물어보는 데 그럴 때마다 ‘(수도가 끊겨) 물 받아놓고 산다’고 말할 수 없지 않냐. 그래서 괜찮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답변했다. 슬리피는 “사람들이 나를 안타깝게 볼까봐 사람 많은 자리는 가지고 못하고 …그래서 세 보일려고 몸에 문신도 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두 사람은 밤을 한가득 줍고 식당으로 향했다. 이상민이 슬리피를 위해 고기를 사 주기로 했다. 이어 무한리필 고기 집에 도착한 슬리피에게 이상민은 “천천히 먹으라”며 “된장찌개에 LA갈비를 넣어서 먹으면 맛있다”고 비법을 전수해주기도 했다. 이상민은 슬리피에게 “에너지가 없어 보인다. 남자는 먹을 때 박력있게 먹어야 한다”며 큰 쌈을 싸서 슬리피 입에 넣어주고, 슬리피가 싼 작은 쌈을 자신의 입에 가져다 넣었다. 식사를 마친 이상민은 “고기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형한테 연락해. 대신 당분간은 무한리필 집”이라며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슬리피는 지난 9월 소속사 TS엔터테인먼트와 2008년 전속계약을 체결했을 당시 정산 비율이 1:9이고, 자신이 살던 집의 월세는 물론 수도세, 전기세, 가스비 등이 연체돼 퇴거 요청까지 받았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당시 소속사 측은 그동안 생활비와 휴대폰 요금 등을 지원했으며 수익을 내지 못하던 신인시절 미리 정산금을 받아가기도 했다고 밝히며 슬리피의 ‘폭로’를 반박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사용기간 경과 ,한약재로 제조한 한약국 등15곳 적발

    부산시 특별사법경찰과는 불법 한약재 제조와 유통,무면허 의료행위를 수사해 15곳을 적발했다고 24일 밝혔다. 한약방 2곳은 사용기한이 지난 한약재와 품질 관리기준에 맞지 않는 한약재를 보관했다가 적발됐다. 다른 한약방은 허가받지 않은 곳에서 한약을 만들어 판매를 위해 가지고 있다가 단속에 걸렸다. A 한약국은 사용기한이 1년이나 지난 한약재를 한약 조제에 사용할 목적으로,B 한약국은 품질관리 기준에 맞지 않는 비규격 한약재를 시장에서 산 후 한약 제조에 쓰려고 보관하다가 각각 단속됐다. C 한약국은 허가받은 영업장이 아닌 한 대학교 실습실에서 한약재인 오적산 4kg을 한약으로 조제해 판매할 목적으로 보관하다가 적발됐다. 한약재 도매상 6곳은 한약재 규격품 포장지 기재사항을 어긴 제품을 만들거나 팔다가 단속됐다.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다가 적발된 6곳은 소셜미디어로 손님을 모집한 뒤 상가 밀집 지역 오피스텔에서 반영구 눈썹이나 문신 등을 불법 시술하다가 단속에 걸렸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체육시설로 변한 독립투사 묘역 5년내 당당히 제 모습 찾는다네

    체육시설로 변한 독립투사 묘역 5년내 당당히 제 모습 찾는다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9차 효창공원’ 편이 지난 9일 용산구 효창동과 청파동 일대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지하철 6호선 효창공원앞역 1번 출구를 출발했다. 투어단은 먼저 백범김구기념관을 둘러보고 김구 선생 묘역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를 모신 삼의사 묘역과 임정요인 묘역에서 숙연한 마음으로 절정을 향해 치닫는 가을을 느꼈다. 시신을 찾지 못해 비어 있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일행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이날 일정은 김세중미술관을 거쳐 선린인터넷고등학교 교정에서 마무리됐다. 해설을 맡은 박정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알차고 유익한 해설 보따리를 풀어 공감을 얻었다.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효창운동장, 선린중·고 향나무와 선린인터넷고 강당 등 3곳이다. 미래유산이던 조각가 김세중과 시인 김남조 가옥은 김세중미술관으로 변신하면서 미래유산에서 해제된 사실을 확인했다. 영욕의 효창운동장도 효창공원 성역화 사업에 따라 축구장만 남고 관중석과 조명탑, 육상트랙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을 분리하던 흉물스러운 담장도 철거돼 2024년까지 전체 면적 16만㎡의 당당한 독립운동기념공원으로 조성된다. 독립공원에 어울리지 않는 반공투사 위령탑, 육영수 여사 경로 송덕비, 원효대사 동상도 옮기거나 철거될 전망이다. 효창운동장 옆 이봉창 의사 생가터에는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했다. 선린인터넷고 교정에 서 있는 210년 묵은 향나무는 1899년 국내 최초의 관립 상공학교로 설립된 옛 선린상고 개교를 기념, 고종이 명동 중국대사관 동편 학교 교정에 기념식수한 어사목을 1913년 옮겨온 것이다. 서울미래유산 지정을 알리는 기념동판이 땅바닥에 부착돼 읽기 어려울 정도로 닳고 부식돼 있었다. 돌과 벽돌을 접합재인 모르타르를 사용해 쌓아 올린 조적조 양식의 학교 강당은 1920년대 학교 건물을 대표하는 건축양식이다. 우리에게 낯익은 효창공원 옆 효창운동장은 멋쩍은 조합이다.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굴곡의 수난사 때문이다. 1786년 정조는 5살 때 세상을 떠난 큰아들 문효세자를 가슴에 묻으며 ‘효성스럽게 번창하라’는 뜻에서 효창묘라고 이름 지었다. 1870년 고종이 효창원으로 격상시켰다. 일제강점기 용산에 군사령부와 철도기지가 들어서면서 1921년 효창원을 빙 둘러싼 골프코스가 조성됐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집을 잃은 이재민 수용소를 거쳐 1927년 공원으로 본격 개발됐다. 문효세자 묘를 고양 서삼릉으로 이전했을 때 효창공원은 이전의 3분의1 규모로 쪼그라든 상태였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독립운동가 묘역으로 조성됐다. 국립현충원이 없던 시절의 현충원이었다. 묘역 조성을 주도한 김구 선생도 이곳에 묻혔다. 윤봉길·이봉창·백정기 등 무장투쟁 삼의사의 유해를 봉환하고, 임시정부 이동녕 주석·차리석 비서장·조성환 군무부장의 묘도 안장했다.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만들어 놨다.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효창공원 내 애국지사 묘역에 제2회 아세아축구대회 유치용 축구경기장 건립을 추진했다. 효창공원 내 독립지사 묘역 참배 행렬이 줄을 잇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첨꾼들의 장난질이었다. 격렬한 반대 끝에 묘역을 유지한 상태에서 운동장을 만드는 절충안이 도출됐다. 효창원 경내 15만 그루의 나무와 연못을 메워 운동장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의 국제 규격 축구경기장이다. 박정희 대통령 때도 반공투사 위령탑, 대한노인회, 육영수 여사 송덕비가 들어서면서 효창공원의 정체성은 독립운동가 묘역에서 도심 체육시설로 변모했다. 2002년 효창공원 테니스장 자리에 백범기념관을 짓고,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효창공원을 제2의 국립묘지로 민족공원화하는 사업을 추진했지만 축구장 대체 부지가 마련되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청파역은 조선시대 한양도성과 삼남지방을 연결하는 도성 밖 첫 번째 역이었다. 도성~경기도 광주 구간 제1구간이다. 특히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병조의 직할 역은 교통통신상 가장 중요한 지역에 설치했는데 청파와 노원역에 뒀다. 세종실록에 “청파와 노원 두 역은 인구나 물산이 메마르고 쇠잔하나 전달하는 문서는 가장 번거로우니…”라고 기록돼 있다. 19세기 초 편찬된 만기요람에서는 “청파역과 노원역에는 역졸이 모두 합쳐 288명이 있고, 말은 160필이 준비돼 있다”고 두 역의 무게감을 알렸다. 청파동을 상징하는 ‘청파배다리 터’ 표석은 무악(안산)에서 발원한 무악천이 한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만초천변 큰 다리 이름이다. 만초천을 경계로 삼는 주교동과 석교동 등의 지명이 이 다리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용산 운하’를 뚫자는 계획이 나왔다. 태종 13년(1413년) 좌의정 하륜이 “서울과 경기의 군인 1만 1000명을 징발해 숭례문 밖에 운하를 파서 용산까지 들어온 선박을 숭례문 앞까지 끌어들일 수 있게 물길을 연장하자”는 장계를 올렸다. 태종은 “모래땅이어서 물이 차지 못할까 걱정되고 인력을 쓰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당시 한강을 이용한 물자와 인력 수송은 오늘날 철도와 고속도로, 항공편을 모두 합친 물류수송로에 해당한다. 육상과 수상 운송에서 차지하는 청파역의 비중을 짐작할 만하다. 다만 만초천이 흐르는 용산 일대는 저지대여서 홍수의 위험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로 만리동~청파동~효창동 구릉지를 거쳐 칠패시장과 숭례문에 이르렀다. 청파라는 지명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지만 서울시사편찬위원회의 ‘동명연혁고’ 용산구편에 따르면 푸른(靑) 야산의 언덕(坡)이 많아서 생겼다는 설과 조선 전기의 문신 청파 기건(미상~1460)이 살았다는 양설로 나뉜다. 청파 일대는 지형상 배문중·고 뒷산인 연화봉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능선을 따라가다가 효창공원에 못 미쳐 남동쪽으로 갈라져 당고개 능선을 따라 만초천에 이르는 지역이다. 한성부 서부 용산방에 속했다. 근대 이후 청파역을 품은 용산역과 서울역이 서울의 제일 관문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청파 4계 축소리’라는 용어가 있다. 청파 4계란 지금의 청파동 1~3가와 원효로 1가 등 조선시대 청파 1~4계 지역의 지역단위다. 청파동 일대를 청파 4계라고 하고, 이 지역 노래꾼의 소리를 사계 축소리라고 했다. 19세기 서울 시정 음악을 이끈 전문 소리꾼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사계 가객으로 불린 이들은 돈을 받고 불려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전문 직업인이었다. 노래를 듣는 장소는 청파, 마포, 왕십리, 서빙고 등지의 ‘움집’이라는 소리방이었다. 청파를 주무대로 활동한 남녀 음악가들은 서울 긴잡가, 수잡가, 사설지름시조, 휘모리잡가 등을 불렀다. 이들의 소리는 도성 밖 소리방의 안진소리, 경성소리, 선소리 등으로 알려졌으며 서울 토박이 소리로 인정받았다. 이들의 소리가 근대 실내극장 설립 이후 대중음악의 주류를 형성했다. 잡가 명창으로는 박춘경·추교신·조기준·박춘재가 꼽힌다. 특히 박춘재는 1902년 최초의 관립 공연장인 협률사 창립 공연에 참가했으며 가장 많은 유성기 음반을 취입했다. 1914년 최초의 사설극장 광무대의 대표 가수이기도 했다. 종로4가와 5가를 거쳐 1930년부터 1936년까지 만리동 고개에 흥룡극장을 지어 상설공연을 계속했고, 해방 무렵까지도 공연을 이어 나갔다. 갖은 곡절로 얼룩진 효창공원의 장소성이 구성진 서울 토박이 노래로 이어진 게 아닐까.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30회 서울의 문학4(외솔 최현배의 사주오 두부장수) ■집결장소 : 11월16일(토) 오전10시, 독립문역 4번 출구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 (www.suci.kr)
  • 英 컨테이너 희생 베트남인 39명 명단 싣습니다. 10대가 10명이나

    英 컨테이너 희생 베트남인 39명 명단 싣습니다. 10대가 10명이나

    지난달 2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에식스주 그레이스 산업단지의 트럭 트레일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39명의 이름과 나이, 출신지 정보가 모두 공개됐다. 에식스 경찰은 8일 15세 소년 둘을 포함해 10대 10명이 희생자에 포함돼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과 함께 사건 발생 2주 만에야 희생자들의 신원을 공개했다. 대부분은 20~30대였고 40대 초반이 둘이었고 8명은 여성이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중부와 북부 일곱 성 출신들인데 영국 정부는 베트남 정부와 시신 인계 절차를 협의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경찰은 DNA 대조는 물론 치과 진료 기록, 문신이나 상처 등 의료 기록까지 모두 확인해 오차 가능성을 줄였다고 밝혔다. 희생자 가족들에게 사망했다는 사실을 먼저 알린 뒤 이들 명단을 한꺼번에 공개해 예상되는 혼란을 최소화하려 했다고도 설명했다. 컨테이너에 오르면서 가족들에 문자를 보냈고 나중에 “숨을 쉴 수가 없어 해외로 가는 일이 실패한 것 같다”고 문자로 어머니에게 알려 안타까움을 샀던 팜 티 짜 미(26)도 결국 희생자 명단에 들어가 있었다. 국내에도 상당한 베트남인 커뮤니티가 있어 희생자 명단을 싣는다. 어설프게 한글로 옮기다가 실수가 빚어질 수 있어 영문으로 실음을 양해 바란다. 모두의 명복을 빈다. Pham Thi Tra My (26 여성) Nguyen Dinh Luong (20) Nguyen Huy Phong (35) Vo Nhan Du (19) Tran Manh Hung (37) Tran Khanh Tho (18) Vo Van Linh (25) Nguyen Van Nhan (33) Bui Phan Thang (37) Nguyen Huy Hung (15 이상 남성 Ha Tinh 출신) Tran Thi Tho (21) Bui Thi Nhung (19) Tran Thi Mai Nhung (18) Cao Huy Thanh(33) Pham Thi Ngoc Oanh (28) Nguyen Thi Van (35 이상 여성) Vo Ngoc Nam (28) Nguyen Dinh Tu (26) Le Van Ha (30) Tran Thi Ngoc (19) Nguyen Van Hung (33) Hoang Van Tiep (18) Cao Tien Dung (37) Nguyen Minh Quang (20) Hoang Van Hoi (24) Nguyen Tho Tuan ( 25) Dang Huu Tuyen (22) Nguyen Trong Thai (26) Nguyen Van Hiep (24) Tran Hai Loc (35 이상 남성 Nghe An 출신) Duong Minh Tuan (27) Nguyen Ngoc Ha (32) Nguyen Tien Dung (33 이상 남성 Quang, Binh 출신) Phan Thi Thanh (41 여성) Dinh Dinh Thai Quyen (18) Dinh Dinh Binh (15 이상 남성 Hai Phong 출신) Tran Ngoc Hieu (17 남성 Hai Duong 출신) Nguyen Ba Vu Hung (34 남성 Thua Tien Hue 출신) Le Ngoc Thanh (44 남성 Dien Chau 출신)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이효리가 돌아왔다”...2년 만에 SNS 다시 시작한 이효리 [EN스타]

    “이효리가 돌아왔다”...2년 만에 SNS 다시 시작한 이효리 [EN스타]

    가수 이효리가 2년 만에 인스타그램을 다시 시작했다. 6일 이효리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Hello”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사진에는 이효리가 거울을 보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효리의 목 뒤에 있는 작은 문신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에 핑클 막내 성유리는 “와우 이게 누구야”라고 댓글을 남기며 반가운 마음을 드러냈고, 이효리는 “나다 임마”라고 장난기 넘치는 댓글을 달아 웃음을 자아냈다. 한편, 이효리는 지난 9월 종영한 JTBC ‘캠핑클럽’에 옥주현 이진 성유리와 함께 출연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은행 입사 앞두고 캄보디아 배낭여행 영국 여성 감쪽같이 사라져

    은행 입사 앞두고 캄보디아 배낭여행 영국 여성 감쪽같이 사라져

    영국 로이드 은행 입사를 앞두고 캄보디아를 여행 중이던 여성 배낭여행자가 비치 파티를 즐기다 갑자기 사라졌다. 잉글랜드 서식스주 워딩 출신의 아멜리아 뱀브리지(21)가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눈에 띈 것은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 코 롱 섬의 리조트에서였다. 언니(또는 여동생) 조르지 등이 영국에서 날아와 바다와 해변, 정글을 샅샅이 뒤졌으나 소지품을 해변에서 발견했을 뿐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함께 배낭여행을 하던 남자친구 라이언 해리스에 따르면 이렇게 며칠씩 연락이 안되는 것은 평소 조심스러운 몸가짐에 비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리스는 “그는 늘 일행과 함께 움직였다. 절대로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 롱 섬은 “아주 작은 곳”이어서 누구라도 2~3시간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는 곳이라고 영국 BBC가 26일 전했다. 해리스는 “밤에 친구와 헤어져도 20분 뒤면 만날 수 있고, 아무리 늦어도 다음날 아침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멜리아가 사라진 날, 다른 일행과 함께 이웃 섬에 놀러가 있었다며 자신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섬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멜리아를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잠수부들이 동원돼 정글과 해변도 다 살펴봤다. 경찰이 세 차례나 수색대를 보냈고, 모두가 동원돼 온 섬을 뒤졌다”고 말했다. 조르지는 가족과 친척들이 절망의 늪에 빠졌다고 했다.가족들에 따르면 3녀 1남 가운데 한 명인 아멜리아는 지난달 27일 베트남인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베트남을 찾은 다음 아버지와 함께 캄보디아를 여행하다 아버지는 돌아가고 남자친구 해리스와 코 롱 섬을 찾았다. 호스텔에 묵는 친구들과 옛날에 경찰서가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로 폴리스 비치로 불리는 곳에서 파티를 즐겼다. 조르지에 따르면 아멜리아는 2년 동안 열심히 저축해 취업 전 마지막 여행으로 이번 여행을 꼼꼼이 준비했다. 채식주의자이며 팔에는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소 문신을 하고 있다.한편 호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7명을 마치 사냥하듯 살해해 악명을 떨친 이반 밀랏이 27일 시드니의 한 병원에서 암으로 74세 삶을 접었다고 BBC가 보도했다. 밀랏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7명의 배낭여행자들을 살해하고 시드니에서 남서쪽으로 120㎞ 떨어진 뉴사우스웨일스주의 벨랑글로 숲에 버린 혐의로 종신형을 살고 있었다. 연초에 말기 식도암과 위암 진단을 받았다. 경찰은 밀랏이 훨씬 많은 범행을 저질러놓고도 이에 대한 진술을 거부해 더 이상 수사를 진척시킬 수 없었다고 봤다. 그의 손에 희생된 배낭여행객들은 독일인 3명, 영국인과 호주인 둘씩이었다. 모두 19~22세 젊은이들이었다. 밀랏은 또다른 영국 청년 폴 오니언스를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려 했으나 그가 달아나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체포됐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英경찰, ‘39구 시신’ 냉동 컨테이너 운전자 로빈슨 살인 혐의로 기소

    英경찰, ‘39구 시신’ 냉동 컨테이너 운전자 로빈슨 살인 혐의로 기소

    영국 남동부 에식스 경찰이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 발생한 ‘냉동 컨테이너 집단 사망 사건’과 관련해 트럭 운전자인 모리스 로빈슨(25)을 기소했다고 26일 밝혔다.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기소된 그는 39명의 살인 및 인신매매, 돈세탁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북아일랜드 크레이개번 출신인 로빈슨은 28일 첼름스퍼드 치안판사법원에 출석할 예정이다. 로빈슨은 자신의 대형 트럭에 해당 컨테이너를 적재했다가 사건 발생 당일 체포됐다. 로빈슨 외에도 대형 트럭 수송업체를 운영하면서 로빈슨이 몰던 트럭을 불가리아에 판매했던 조안나-토머스 마허(이상 38) 부부, 북아일랜드 출신의 48세 남성 등이 경찰에 체포돼 구금 중이다. 세 사람은 살인과 인신매매 혐의를 받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별도로 아일랜드 경찰은 에식스 경찰의 의뢰를 받아 더블린 항구에서 북아일랜드 출신 20대 초반 남성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앞서 23일 오전 1시 40분쯤 런던에서 동쪽으로 32㎞가량 떨어진 에식스주 그레이스의 워터글레이드 산업단지에서 39구의 시신이 담긴 화물 트럭 컨테이너가 발견됐다. 남성 31명, 여성 8명이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는 냉동 컨테이너 안에서 동사했거나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당초 경찰은 모두 중국인인 것으로 추정했지만 그 뒤 베트남 출신이 상당수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짠 응옥 안 런던 주재 베트남 대사는 에식스 경찰과 주의회 등을 방문했고,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장관과 대화를 나눴다. 런던 주재 베트남 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피해자들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영국 경찰과 협력하고 정보를 교환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신원이 확인된 이는 없다고 설명했다. 에식스 경찰은 39구의 시신을 모두 인근 병원으로 옮겨 부검을 진행하는 등 신원 확인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희생자들이 신원을 확인할 만한 물건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아, 지문과 DNA 등의 생체정보와 문신 등의 신체 특성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엘리트 유생들의 성역 너머로…거리예술 꽃피운 ‘원조 대학촌’

    엘리트 유생들의 성역 너머로…거리예술 꽃피운 ‘원조 대학촌’

    서울신문이 서울특별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5차 성균관과 반촌’ 편이 지난 12일 종로구 연건동과 명륜동, 혜화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혜화역 3번 출구에서 집결, 학림다방을 거쳐 대명거리를 지나 성균관으로 향했다. 혜화역 4번 출구에서 성균관대 입구 사거리까지 300m 이어지는 대명거리는 조선시대의 ‘원조 대학촌’이다. 당시 반촌이라고 불리던 유서 깊은 거리다. 종로구는 2010년 대명거리를 도로명 주소로 고지했다. 참가자들은 성균관 대성전 외삼문을 마주 보는 주택가에 홀로 서 있는 심산 김창숙 선생 집터 푯돌 앞에서 선생의 치열한 독립정신을 기린 뒤 성균관 대성전과 명륜당을 두루 탐방했다. 우암 송시열 집터~옛 한소제 가옥에 세워진 혜화동 주민센터~문화이용원~동양서림을 둘러보았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학림다방, 한소제 가옥, 문화이용원, 동양서림 등 4곳이었다. 성균관을 대표하는 중세의 송시열과 근대를 대표하는 김창숙 두 인물의 집터가 성균관 앞뒤를 지키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서울미래유산투어에 데뷔한 임정화 해설사는 유생 복장으로 성균관의 어제와 오늘, 성균관의 안과 밖을 쉽고 재미나게 풀어 줬다.조선은 종교와 학문이 분리되지 않은 교학일치 국가였기에 유교와 유학이 한 몸이었다. 성균관은 조선왕조 국가 이데올로기의 상징 공간이었다. 공자를 모신 대성전과 유생이 공부하는 명륜당은 동일체였다. 제사의 개념이 앞선 초기에는 묘학, 중기 이후 문묘라고 불렀으나 후기로 가면서 성균관이 통칭이 됐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엘리트 선비와 관료를 양성하는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이자 유일한 국립대학이었다. 율곡 이이, 매월당 김시습 등 거의 모든 학자와 문신이 성균관 출신이었고, 퇴계 이황과 추사 김정희가 대사성(총장)을 지냈다. 선비의 일생은 과거로 시작해서 과거로 끝났다. 과거에 급제해서 관직에 오르는 것이 효이고, 이는 족보에 기록돼 남으며, 가문의 융성을 이룬다고 믿었다. 때문에 갈수록 문묘는 간판에 불과했고, 성균관 유생교육과 시험 위주로 돌아갔다. 과거제는 조선사회를 완벽하게 지배한 ‘갑 중의 갑’이었다. 성균관은 장차 관리가 될 유생 200명의 의식주를 책임졌다. 한양에서 대궐 다음으로 크고 번화하며 떵떵거리는 곳이었다. 조선은 과거공화국이었다. 각종 명목의 과거가 시도 때도 없이 치러지는 한양은 ‘과거시험의 도시’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정조의 일기인 일성록 등에 따르면 1800년(정조 24년) 3월 21일에 시행된 정시(庭試) 초시의 응시자수는 11만 1838명이었고, 이날 거둬들인 시권(답안지)은 3만 8614장이었다. 이튿날인 3월 22일 창덕궁 춘당대에서 열린 인일제(성균관 유생에 한해 응시자격을 주는 시험)의 응시자는 10만 3579명, 수거 답안지는 3만 2884장이었다. 이틀에 걸쳐 무려 21만 5417명이 한양에서 과거를 봤다. 당시 한양 인구가 20만~30만명 사이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한양 인구에 육박하는 사람이 과거를 치르는 경천동지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 개국한 1392년부터 과거제도가 폐지된 1894년까지 503년간 선발된 과거문과 급제자는 모두 1만 4615명으로, 1년 평균 29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과거 문과에 급제해도 벼슬자리는 500개에 불과해 합격자들이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엽관과 매관매직은 물론 당파에 줄을 서는 당쟁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과거제도는 조선을 흥하게도, 망하게도 한 ‘요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성균관은 과거공화국의 중심이었다.반촌은 성균관 앞 동네를 이른다. 공자를 모신 문묘가 있는 성균관을 반궁이라고 했기에 생긴 동네 이름이다. 반궁의 반은 연못을 상징하고, 궁은 유생이 교육을 받는 학궁을 뜻한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반촌이란 반궁에서 일하는 노비가 거주하는 동네다. ‘동국여지비고’에 “반궁에서 나오는 동(東)반수는 성균관 앞 식당교(진사식당)와 비각교(탕평비 앞 다리)를 경유하고 서(西)반수는 창경궁의 집춘문 앞 다리를 경유하여 대성전 외삼문 밖에서 합해져 남쪽으로 흘러…청계천 오간수문으로 들어간다”라고 기록돼 있다. 성균관 경내인 반수 건너편 마을이 반촌이다. 성균관에 딸린 노비를 반인이라고 했는데 개성 사투리를 쓰고 개성 풍속을 따랐다. 성리학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고려의 안향이 기부한 노비 100명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개성 성균관에 소속돼 있다가 조선왕조가 세워지자 한양 성균관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이들에게 소를 잡아서 팔 수 있는 특권을 부여했다. ‘동국여지비고’에 따르면 18세기 도성 안에는 모두 23곳의 현방(다림방, 푸줏간)이 설치돼 있었다. 현방이란 한양의 소 도살과 소고기 판매 독점권을 가진 시전의 하나다. 반인은 소고기를 팔고 남은 수입으로 성균관의 유지비를 댔다. 반인은 유생의 손발 노릇을 했다. 성균관에 딸린 노비는 많을 때 500여명에 이르렀다. 명륜당 소속 재직, 대성전 소속 수복, 식당의 찬모 등이다. 성균관 안에도 비복청이라고 하여 번듯한 거처가 있었지만 반촌에 사는 외거노비가 대부분이었다. 명종 16년(1561) 7월 25일 성균관 노비가 사람을 죽이고 성균관으로 도망치자 체포하러 들어간 형조의 관리를 유생들이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왕은 “형조 관리의 잘못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전성기의 성균관은 성역이었다. 성균관 유생 출신 윤기(1741~1826)는 유생들의 생활상을 220수의 장편 시로 읊은 ‘반중잡영’을 남겼다. 윤기는 33살 때 소과에 합격해 성균관 유생이 됐고, 52세 때 대과에 급제한 뒤 종6품 성균관 전적으로 근무한 사람이다. 반중잡영에는 성균관의 건물구조, 유생들의 방 배정, 식당 규칙과 음식, 학생회 구성과 운영, 행사와 동원, 반촌의 명승지 등 38개 항목의 시와 해석이 달려 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성균관 실록이라고 할 만하다”라고 평가했다. 반촌은 성균관이 비좁아서 기숙사에서 들어와 살지 못하거나, 집안 형편으로 가끔씩 오는 유생들의 하숙촌이기도 했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유흥을 즐기는 공간이 됐다. 성균관에 입교한 유생 대부분이 생원과 진사였는데 평균 연령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가장이었기에 유흥과 일탈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했다. 18세기 서울의 길거리문화를 소개한 강이천의 ‘남성관희자’는 남대문 밖 지금의 애오개 현방에서 본 가면극과 꼭두각시놀이를 묘사한 한시다. 강이천은 화가 강세황의 손자로 자신이 10살 때 본 장면을 기록했다. 앞부분에는 인형극이, 뒷부분에는 가면극이 담겼다. 세부적인 구성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이와는 다르고 현존하는 가면극의 바탕이 되는 산대놀이와 유사하다. 반인들이 소고기 장사에 종사하면서 가면극 공연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성균관에서 편찬한 ‘태학지’에는 중국 사신이 오면 조정에서는 나례도감을 설치, 반인들로 하여금 반촌 안에 무대를 설치하고 놀이를 공연토록 했다고 전하고 있다. 영조실록에도 반인들은 중국 사신 환영행사 동원은 물론 시정의 꼭두각시놀이와 가면극을 벌였다고 적혀 있다. 성균관 소속 노비, 반인은 조선후기 이후 서울지역 공연문화의 주역이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6차 서울의 영화4 -유현목 감독의 수학여행 ■집결 장소 : 10월 19일(토) 오전 10시 혜화역 3번 출구 뒤 자전거대여소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400년 전 일본 찾아간 사명대사가 남긴 글은

    400년 전 일본 찾아간 사명대사가 남긴 글은

    “강호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지 오래되지만/어지러운 세상에서 지낸 것이 벌써 10년이네/갈매기는 그 뜻을 잊지 않은 듯/기웃기웃 누각 앞으로 다가오는구나.” 임무를 마무리한 뒤 선승의 본분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사명대사의 시로, 고려 말 문신 유숙의 시 ‘벽란도’에서 운을 빌려 지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본 교토 고쇼지가 소장 중인 사명대사(1544~1610) 유묵을 국내 처음으로 공개하는 특별전을 15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 상설전시실 1층에서 연다. 사명 유정은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인 포로 송환 협상을 위해 교토를 찾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을 짓고 포로 3000명을 데리고 1605년 귀국한다. 이번에 전시하는 유묵은 사명대사가 교토에 머무를 때 남긴 것들이다. ‘대혜선사의 글씨를 보고 쓴 글’은 스승 서산대사가 남긴 뜻에 따라 백성을 구하고자 일본에 왔음을 밝힌다. ‘승려 엔니에게 지어 준 도호’는 고쇼지를 창건한 승려 엔니 료젠에게 자를 ‘허응’(虛應), 호를 ‘무염’(無染)으로 도호를 지어준 내용, ‘승려 엔니에게 준 편지’는 도호의 뜻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서울서 만나는 회재 이언적의 보물

    서울서 만나는 회재 이언적의 보물

    14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회재 이언적, 독락당의 보물 서울 나들이’ 특별전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시대 전기 문신인 이언적이 만든 경주 독락당이 대를 이어 가며 약 500년 동안 지킨 고문헌들이다. 연합뉴스
  • 눈썹·아이라인 반영구화장도 미용업소서 시술 가능

    앞으로 눈썹과 아이라인 문신 같은 반영구화장 시술이 일반 미용업소에서도 합법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고 ‘중소기업·소상공인 규제 혁신방안’ 140건을 확정했다. 이날 확정된 ‘반영구화장 시술자격 확대안’에서는 그동안 의료 행위로 분류돼 의료인만 가능했던 모든 문신 시술 중 반영구화장 시술은 미용업소 등에서도 가능하도록 했다. 이미 미용업소 등에서 반영구 화장이 암암리에 행해지는 만큼 현재의 시장 여건을 고려해 자격 요건을 완화한 것이다. 정부는 내년 연말까지 공중위생관리법 등을 개정해 이 내용을 시행할 계획이다. 정부는 또 건설기계 대여업자나 매매업자의 사무실 공동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건설기계 대여업이나 중고 알선 등 매매업은 1인 또는 소규모 형태가 대부분이지만 영업 등록을 위해 사무설비·통신시설을 갖춘 별도 사무실이 필요했다. 정부는 이런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사무실 공유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업체당 연간 600여만원의 비용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건축물을 개량·보수하는 시설물유지관리업 등록을 위해선 카메라, 비디오카메라 등 고가의 장비가 필요했으나 앞으로는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대체할 수 있는 카메라, 비디오카메라는 요건에서 제외된다. 이를 통해 업체당 200여만원의 비용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정부는 또한 물에 타서 마시는 제품의 제조방식을 다양화하기로 했다. 기존에 물에 타서 먹을 수 있는 제품의 경우 분말, 과일원액 등의 형태로만 가능하고 분말을 압축한 정제 형태는 불가능했으나 앞으로는 정제 형태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눈썹 문신, 비의료인 시술 허용…중소기업·소상공인 규제 혁신

    눈썹 문신, 비의료인 시술 허용…중소기업·소상공인 규제 혁신

    정부, 중소기업·소상공인 규제 혁신 방안 140건 논의·확정창업 시 사무실·장비·자본 요건 및 근로자파견 겸업도 완화‘항문외과’ 등 신체 부위명으로 의료기관 상호 표시 허용 반영구화장 등 문신 시술 중 안전·위생 위험이 낮은 분야의 경우 비의료인 시술이 허용된다. 또 전문의가 의료기관을 개설할 때 신체 부위명으로 상호를 표시하는 것도 허용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90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중소기업·소상공인 규제 혁신 방안 140건을 논의·확정했다. 이번 규제혁신 방안은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창업→영업→폐업→재창업’에 이르는 생애주기(life cycle) 전반에 걸쳐 각 단계별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개선했다. 정부는 창업 단계시 구비해야 할 물적·인적요건 35건을 완화하고, 영업 단계에서 영업 범위·방식을 제한하거나 과도한 행정·비용 부담을 초래하는 규제 66건을 개선한다. 폐업·재창업 단계 시에는 폐업 절차와 재창업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규제 39건을 완화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눈썹·아이라인 등 반영구화장은 미용업소 등에서도 시술이 가능해진다. 그 동안 모든 문신 시술은 의료행위로 분류돼 의료인만 가능했다. 실제로 경기도 뷰티샵 원장 A씨는 반영구화장 국제대회에서 입상한 이후 눈썹 문신으로 상당한 고객을 유치했으나 불법 의료행위로 벌금형에 처해져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구체적인 범위와 기준은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확정할 계획이다. 창업 시에 필요한 사무실·장비·자본 요건도 완화하거나 공유를 허용할 방침이다. 건설기계 대여·매매업은 1인 또는 소규모 형태가 대부분인데도 영업 등록을 위해서는 사무설비·통신시설을 갖춘 별도 사무실이 필요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복수의 건설기계 대여·매매업자의 공동 사무실 사용이 가능해진다. 이련주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은 지난 8일 정부세종청사 국조실 브리핑실에서 열린 사전브리핑에서 “이 같은 규제개선을 통해 업체당 연간 600여만원의 비용 부담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기존 건축물을 개량·보수하는 시설물유지관리업 등록을 위해서는 육안 검사를 위해 카메라, 비디오카메라 등 고가의 장비가 필요했지만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대체할 수 있는 카메라, 비디오카메라는 요건에서 제외된다. 정부는 업체당 200여만원의 비용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근로자파견사업자 겸업 제한도 완화한다. 그 동안 근로자를 모집해 타 사업장에 파견하는 근로자파견사업자는 식품접객업 6개와 겸업이 불가해 직업 선택의 자유가 제한됐지만 앞으로는 유흥접객영업이 아닌 일반음식점, 위탁급식, 제과점은 겸업을 허용한다. 영업 단계 규제 혁신 차원에서는 제품과 서비스 영업 범위를 확대한다. 앞으로는 분말을 원판 형태로 압축한 정제 형태 음료 베이스 제조가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제품이 출시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 동안은 물에 타서 음료를 만들어 마시는 제품인 음료 베이스는 분말이나 과일 원액 형태는 가능하나 정제 형태 판매는 불가능했다. 또한 직사광선 차단, 비가림 등 위생 관리가 확보 되는 전통시장 식육점은 외부 진열대 판매도 허용할 계획이다. 의료기관 개설자가 전문의인 경우에는 관련 신체 부위명 표시도 허용한다. 그 동안 의료기관 상호는 내과·외과·신경외과 등 전문과목으로만 가능하고 신체 부위 명칭 사용이 금지돼 왔다. 이 때문에 대장·항문은 장문외과 또는 대항외과 등 변형된 상호를 사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이 폐업 시에는 필요한 서류·방문기관을 줄이고 신고기한은 연장한다. 영업 취소 후 재허가 제한기간도 업종 특성을 고려해 완화된다. 방문판매업·소독업 등 10개 업종의 폐업 신고 시 허가증 등이 없는 경우 분실사유서로 대체가 가능해진다. 그 밖에도 직업소개사업 등은 5년의 영업 취소 후 재허가 제한 기간이 2년으로, 수출입목재열처리업 등의 경미한 취소사유는 2년에서 1년으로 완화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황석영·공지영 등 작가 1276명 “조국 지지” 성명 발표

    황석영·공지영 등 작가 1276명 “조국 지지” 성명 발표

    소설가 황석영·공지영, 안도현 시인 등 작가 1276명이 7일 조국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고 검찰 개혁의 완수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조국을 지지한다, 검찰 개혁 완수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낭독하고 “블랙리스트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데 다시 자의적인 공권력의 폭주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불안과 분노를 함께 느낀다”며 “검찰 개혁은 시대적 과제이자 촛불 민심의 명령이란 점을 확인하기 위해 서명에 나섰다”고 밝혔다. 작가들은 성명에서 “현재 조 장관을 둘러싼 논의는 매우 혼란스럽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조 장관 임명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조 장관과 그의 가족을 일체화할 것인가 분리해 볼 것인가, 심판관을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확인되지 않는 의혹 생산자 역할을 하는 검찰은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현재 통제받지 않고 있는 검찰 권력이 휘두르는 칼날은 군부 독재 시절 총칼보다도 더 공포스럽다”며 “그동안 문재인 정부와 조국 장관이 역설한 검찰 개혁의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주저앉혀버리고 말겠다는 검찰의 살기가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 검찰은 마음만 먹으면 어떤 ‘블랙리스트’도 자신들 의사대로 만들 수 있다”며 “자신들에게 잠재적 위험이 될 것 같은 조국 섬멸을 위해, 대통령과 국회도 무시하는 검찰의 칼끝은 결국 우리 공동체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칼날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언론에 대해서도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권력 하이에나나 다름없는 대한민국 언론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게됐다”며 “‘조국의 진실’을 밝힌다는 미명 하에 ‘조국(祖國)’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기득권 지키기에만 매몰된 정치 집단은 해묵은 정쟁을 일삼고, ‘권력의 칼날’에서 ‘칼날을 쥔 권력’이 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 대한민국 검찰, 이들 사이를 오가며 권력 주변을 서성이는 언론 하이에나, 이들은 ‘삼각 동맹’과 같이 한 몸으로 움직이며 정치 개혁, 검찰 개혁 등의 시대적 과제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될까, 흙탕물 튕기기에 급급하다”고도 했다. 아울러 “우리는 촛불 혁명 과정을 통해 스스로 각성했고,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이 나라를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는지 스스로 확인한 국민들”이라며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돼 온 나라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고 들어가려 획책은 더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던 암흑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소설가 황석영은 성명서 낭독이 끝난 후 취재진을 만나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실을 언급하며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각계 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이번에 검찰이 변해야 한다는 강력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밝고 쾌활하고 명랑한 에너지가 깔려 있었다”고 말했다. 소설가 황석영·정도상·공지영, 시인 안도현·이시영·장석남을 대표 발의자로 한 서명은 지난달 25일부터 인터넷을 통해 진행됐다. 시인 정양·이상국·이동순·함민복·이윤학·이정록·나희덕·박성우·문신·김성규·박준, 소설가 이경자·양귀자·최인석·이병천·김연수·김현경·박문구·이기호·이만교·정찬·권여선·오수연, 방송작가 송지나 등이 서명에 참여했다. 이밖에 문학인 명단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웹툰 작가, 미술인, 서예인, 음악인 등 53명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안도현 시인은 “추후 검찰 개혁 진행 상황에 따라 문화예술계와 전체적으로 연대하여 행동하는 방안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춘향의 남자 흔적 따라가 보니… 그들 사랑은 새드엔딩이었네

    춘향의 남자 흔적 따라가 보니… 그들 사랑은 새드엔딩이었네

    경북 봉화에 기존 춘향전과 사뭇 다른 버전의 춘향 이야기가 담긴 문화재가 있습니다. 물야면의 계서당이 그곳입니다. 고택의 옛 주인은 성이성입니다.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인물입니다. 그의 삶을 되짚어 올라가면 춘향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춘향전 프리퀄’(오리지널의 과거 이야기)쯤 되려나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말은 다릅니다. 소설과 현실의 차가운 괴리를 여기서 봅니다. 폭설을 뚫고 광한루로 간 어사 성이성이 전전반측의 밤을 보내게 만든 ‘소년 시절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초로의 나이가 돼서야 해후했던 늙은 기녀와 옛 스승에게 전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춘향의 남자를 찾아 경북 봉화와 영주로 갑니다.●“이몽룡 실제 모델은 경북 봉화 성이성” 여정을 떠나기 전에 알아 둘 것이 있다. ‘춘향전 프리퀄’이라 할 성이성(成以性·1595∼1664) 이야기는 온통 정황증거들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히는 ‘기록에 근거한 추정’이 거의 전부다. 그 기록 중엔 성이성 본인이 남긴 것도 있고, 후손이 남긴 것도 있다. 기록은 ‘전북 남원에서의 일’을 명확히 적시하고 있지 않다. 정인과의 일들에 대해 완곡하게 드러내고는 있지만 겨우 한두 줄에 그친다. 사대부가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의 일단이라고 생각했을지, 혹은 당대의 터부가 작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같은 정황증거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다. ‘춘향전 프리퀄’의 발단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연세대 설성경 교수가 “이몽룡의 실제 모델은 경북 봉화의 성이성이며 춘향전은 팩트와 픽션이 결합된 팩션 소설의 효시”라는 요지의 주장을 펴 화제를 모았다. 이후 춘향전의 실제 작가가 성이성의 글공부 선생이었던 조경남(1570~1641)이란 주장 등이 덧붙여지며 ‘이몽룡=성이성’설이 일정 부분 사실(史實)처럼 굳어져 가는 형국이다.봉화 물야면은 우리나라 오지를 상징하는 ‘BYC’(봉화, 영양, 청송) 중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곳이다. 여기에 성이성의 호를 딴 계서종택(중요민속자료 171호)이 있다. 성이성이 기거했을 사랑채의 당호 ‘계서당’으로 더 흔히 불리는 집이다. 붉게 익은 사과나무 너머로 ‘ㅁ’자형 구조의 옛집이 고풍스럽게 앉아 있다. 팔작지붕의 계서당 옆은 사당이다. 성이성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사당 오른쪽 텃밭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가로로 길게 누웠다. 성이성과 함께 성장했다는 ‘이몽룡 소나무’다. 굵기는 가늘어도 수령이 500년을 넘는다고 한다. 고택 마루에 걸터앉아 성이성의 프로필을 살핀다. 성이성은 선조 28년인 1595년 현 경북 영주시 동면 문단리 외가에서 태어났다. 성이성의 13대 손 성기호(78)씨는 “외가 창고에 있던 뱀바위를 끌어안고 아기를 낳으면 큰 인물이 된다는 당시 믿음에 따라 어머니 예안 김씨가 바위를 붙잡고 출산한 분이 성이성”이라고 했다. 성이성은 남원부사를 제수받은 아버지를 따라 12세 때인 1607년(선조 40년) 전북 남원으로 간 뒤 1611년(광해 3년) 광주로 옮겨 가기까지 5년 가까이 남원에서 살았다. 이팔청춘의 팔팔했던 시절을 남원에서 보낸 셈이다. 춘향전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바로 이 시기에 벌어진다. 성씨 문중에서 성이성을 춘향전과 연결짓는 것을 내심 꺼려하는 것도 바로 이 ‘사건’ 때문이다. 성이성은 당대의 대표적인 청백리 중 한 명이다. 한데 공부도 안 하고 주색잡기에 빠진 인물로 묘사되는 것을 후손들이 반길 리 없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뒤 고향 봉화로 돌아온 성이성은 32세(1627)에 문과에 급제했고 44세 때인 1639년에 마침내 호남 암행어사를 제수받아 남원에 ‘출두’했다. 정인을 남겨 두고 남원을 떠난 지 28년 만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때 그가 남긴 일기는 남아 있지 않다. 정작 ‘춘향전 프리퀄’의 모티브가 된 건 성이성이 52세 되던 1647년 두 번째 호남 암행에 나서 첫 번째 암행을 회상하며 기록한 일기였다. 성이성의 일기를 바탕으로 후손들이 펴낸 ‘계서선생일고’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52세에 해후했던 늙은 기녀와 옛 스승 “12월 초하루 아침 어스름에 길을 나서니 채 10리가 못 되어 남원 땅이다. 오후에는 눈바람이 크게 일어 지척이 분간되지 않았지만 가까스로 광한루에 도착했다. 노기(老妓) 여진(女眞)과 노리(老吏) 강경남이 와서 절했다. 날이 저물어 누각 난간에 나가 앉으니, 흰 눈빛이 들에 가득 차고 대숲이 모두 흰색이었다. 소년 시절 일을 생각하며 밤 깊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성이성이 전전반측의 밤을 보내게 한 “소년 시절의 일”이란 과연 뭘까. 그리고 늙은 기생 여진은 누구였을까. 어사가 돼 첫 번째로 남원을 찾았던 그날 밤 성이성은 어지러운 심경의 일단을 ‘조선의 셰익스피어’ 조경남에게 털어놓는다. 이어지는 일기에 그 단초가 나온다.“원천부사 송홍주가 나와 조진사 경남댁에 자리를 마련하였다. 조진사는 내가 어릴 때 송림사에서 공부를 가르쳐 주던 분이다. 기묘년 역시 암행으로 이곳을 지날 때 진사가 살아 있어 광한루에서 같이 자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제는 이미 그가 몰(沒)하고 없고….” 당시 성이성과 조경남이 밤새 나눴던 정담의 내용은 뭘까. 필경 이때 나눈 정담이 훗날 춘향전의 모티브가 됐을 것이다. 춘향전의 하이라이트라 할 ‘암행어사 출두 장면’은 성이성의 4대 손 성섭의 ‘필원산어’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특히 성이성이 지은 한시는 춘향전 속 이몽룡이 지은 시와 정확히 일치한다. “독에 든 아름다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소반 위의 기름진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진다.” 이제 ‘춘향전 그 후’ 이야기. 해피엔딩이었던 소설과 달리 실제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새드엔딩이었을 거란 견해가 대부분이다. 관기로서의 삶을 거부하다 끝내 고을 수령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거란 것이다. 후손의 증언에서도 이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성이성은 광주로 간 뒤 1년여 만에 봉화로 돌아왔다. 봉화 금씨란 여성과 결혼도 했다. 하지만 성이성의 문집 어디에서도 남원에서 만난 여인을 데려왔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당시 습속에 비춰 보면 성혼도 하지 않고, 과거도 치르지 않은 유생이 아버지 부임지에서 만난 여인을 결혼 상대자라며 데리고 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요즘이라면 물론 다를 수 있었겠지만. 지금 봉화에 남은 성이성의 흔적은 달랑 집 한 채 뿐이다. 하지만 유품은 무려 700여점에 달한다. 임금이 내린 어사화와 어사출두 때 썼던 얼굴가리개인 사선(紗扇), 계서선생문집 등 다양하다. 이들 대부분은 성기호씨의 기탁을 받아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보관하고 있다. 다만 수장고에 있어 일반 관람은 어렵고 특별 전시 때나 만나 볼 수 있다. 이웃한 영주시 이산면의 계서정도 둘러볼 만하다. 성이성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지금이야 계서당이 있는 봉화와 행정구역이 다르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모두 순흥 지역에 속했을 것이다. 영주시가 계서정 주변에 ‘이몽룡 인문학 둘레길’을 조성해 뒀다. 계서정과 성이성 묘를 잇는 1㎞ 남짓한 둘레길이다.●인근 명소 백두대간수목원·만산고택·축서사 봉화와 영주 여정에서 들러야 할 명소 몇 곳만 덧붙이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이름 그대로 백두대간에 터를 잡은 수목원이다. 그만큼 수목원의 규모가 ‘어마무시’하다. 수십 헥타르에 달한다는 전체 규모는 가늠조차 어렵다. 호랑이들이 살고 있는 방사장 규모만 축구장 일곱 개 크기이고, 트램을 타거나 걸어서 돌아다닐 수 있는 면적은 어지간한 대학의 캠퍼스보다 넓다. 호랑이숲에는 현재 5마리 호랑이가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암컷 한청(14세)과 수컷 우리(8세) 등 두 마리만 방사장에서 볼 수 있다. 가급적 오전 10시 이전에 방문해야 영역 순찰 등에 나서는 녀석들의 활동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수목원은 규모만 너른 게 아니다. 고산식물원, 야생화 언덕 등 볼거리도 빼곡하다. 시드 볼트가 특히 인상적이다. 지구상 식물종의 절멸에 대비해 만든 일종의 ‘식물을 위한 방주’다. 세계 각국의 식물 씨앗을 보관하고 있다. 북극 노르웨이 스발바르섬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수목원은 오는 13일까지 ‘봉자페스티벌’을 연다. 구절초, 감국 등 다양한 가을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춘양면 쪽엔 한수정, 권진사댁 등 고풍스런 옛집이 여럿 남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이름난 집은 만산고택이다. 조선 말 문신이었던 만산 강용이 지은 이래 130여년 동안 후손들이 계속 살고 있는 고택이다. 전형적인 조선 사대부집으로 행랑채와 솟을대문, 사랑채, 안채 등이 있고, 담장으로 분리된 후원과 칠류헌 등도 빼어나다. 물야면의 축서사는 ‘독수리가 사는 절집’이란 뜻의 사찰이다. ‘독수리 축(鷲)’ 자에 ‘살 서(棲)’ 자를 쓴다. 절집 뜨락에서 맞는 소백산 일대 풍경이 장쾌하다. 112개의 진신사리가 담겼다는 오층석탑, 보광전 비로자나불좌상 등 볼거리도 많다. 글 사진 봉화·영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기는 베트남] 10대 아들 양팔에 ‘전화번호’ 문신 새긴 부모의 사연

    [여기는 베트남] 10대 아들 양팔에 ‘전화번호’ 문신 새긴 부모의 사연

    15살 아들의 양팔에 큰 숫자 문신을 새겨 넣은 부모의 사연이 알려져 화제다. 베트남 현지 언론인 브앤익스프레스는 1일 남딘성에 거주하는 호앙 콩 비엔(46)씨가 아들의 양팔에 집 주소와 전화번호 문신을 새기게 된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비엔 씨에게는 정신지체 장애를 겪는 아들이 있다. 15살 아들 빈은 지난 2009년 장애아 위탁센터에 보내질 계획이었다. 하지만 차마 아들을 떼어놓기 어려웠던 비엔 씨 부부는 힘들어도 아들을 집에서 돌보았다. 빈은 초등학교 5학년 과정까지 마쳤지만 학업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했고, 본인이 친구들을 밀치기도 해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홈 스쿨링을 선택한 부모는 빈을 집에서 돌보게 되었다. 하지만 집에서도 말썽은 끊이지 않았다. 책을 찢고, 소리를 지르고, 이웃집에 피해를 주기 일쑤였다. 하지만 집에서 100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근무하는 비엔 씨는 아들의 힘겨운 육아를 아내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던 지난달 7일 빈이 실종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행히 이웃 주민이 집에서 2km 가량 떨어진 장소에서 혼자 배회하고 있는 빈을 찾아서 데려왔다. 아들이 걱정됐던 비엔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녘 집에 도착해 아들을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한 비엔 씨는 접수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아들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당부했지만, 그 사이 아들은 또 사라졌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아들을 찾은 비엔 씨는 아내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아들이 실종되더라도 아들을 찾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했다. 부부는 고심 끝에 아들의 팔에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새기기록 결정했다. 결국 아들의 양쪽 팔에는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큼지막한 문신으로 새겨졌다. 하지만 사연을 접한 일부 누리꾼은 “몸에 숫자를 새기는 것은 동물에게 하는 짓이지, 사람에게 해서는 안된다”라는 등의 비난 글을 올렸다. 그러나 비엔 씨는 “이미 두 번이나 아들을 잃을 뻔했는데, 이 같은 상황을 겪은 자라면 부모의 심정이 어떤지 알 것”이라면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마음의 상처”라고 전했다. 이종실 호치민(베트남)통신원 jongsil74@naver.com
  • ‘B형’에 큰 의미 둬… 화성 토박이임에도 용의선상 안 올렸다

    화성서 태어나 연쇄살인 때도 일대 거주 추정 범인 혈액형과 달라 용의자 제외수배전단 ‘왼손 문신·흉터’ 이씨와 불일치청주서 처제 살해, 관할 핑계 공조 안 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모(56)씨가 사건 발생 장소 근처에서 30년가량 산 것으로 확인되면서 용의자 특정에 30년이나 걸린 이유를 두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경찰이 초기 미숙하게 대응해 사건이 장기화된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나온다. 2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씨의 본적은 경기 화성군 태안읍(현 화성시 진안동)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1993년 4월 충북 청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계속 화성에 살았다. 10차례의 연쇄살인이 이어진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이 일대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2만여명을 조사한 경찰 수사 때 잡히지 않았다. 당시 경찰이 추정했던 범인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씨가 수사망을 빠져나간 이유를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다. 우선 외관상 이씨와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다. 이씨가 1993년 청주에서 저지른 ‘처제 살인 사건’을 수사했던 김시근 전 형사는 “경찰서 게시판에 화성 사건 몽타주가 붙어 있어서 오가며 수시로 봤다”며 “몽타주 눈빛은 날카로운데 이씨 눈빛은 날카롭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또 수배 전단에는 왼손 팔목에 문신이 있고 오른손 둘째 손가락에는 물린 듯한 흉터가 있다는 목격자 진술도 실렸다. 하지만 이씨는 왼 손목에 문신이 없고 오른손 둘째 손가락에도 별다른 흉터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씨의 키는 수배전단에 나왔던 170㎝ 정도로 알려졌고 나이도 화성 사건 범인의 추정 나이와 비슷하다. 또 경찰이 현장 조사 등을 토대로 추정한 범인 혈액형(B형)에 의존해 수사하다가 혼선을 빚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씨의 혈액형은 O형이다. 4, 5차 사건에서 피해자 신체 주요 부위에서 B형 혈흔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고, 특히 9차 사건 이후 경찰은 “피해자의 신체에서 채취한 정액과 현장 주변에서 발견된 체모,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라고 밝혔었다. 현재 수사를 진행 중인 나원오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과장도 “당시 단서가 하나도 없으니까 ‘B형’에 중점을 두고 수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은 “당시 경찰은 범인이 B형이라고 공식적으로 특정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또 이씨가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했을 때 청주와 화성 경찰이 제대로 공조하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당시 두 지역 경찰의 손발이 맞지 않았다는 증언은 곳곳에서 나온다. 청주 사건을 수사했던 김 전 형사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이씨를 데리고 화성 거주지에 갔더니 화성 경찰들이 찾아왔었다”며 “청주로 오면 수사자료 등 필요한 것을 제공하겠다고 했는데 이후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남부청 전담수사팀은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이씨가 수감 중인 부산교도소로 세 차례 경찰과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 등을 보내 조사했지만, 이씨는 계속 범행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에는 2009년 여성 10명을 살해해 붙잡힌 강호순에게서 자백을 끌어낸 공은경(40) 경위 등이 포함됐다. 경찰은 이씨의 DNA가 검출된 3개 사건 외에 다른 화성 사건들과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1991년 4월 10차 이후부터 이씨가 청주에서 검거된 1994년 1월까지의 기간에 추가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살펴볼 예정이다. 서울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청주 처제 강간살인사건 판결문 보니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청주 처제 강간살인사건 판결문 보니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56)씨가 1994년 청주에서 처제를 강간살인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복역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처제 강간살인사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995년 5월8일 선고된 대전고법 판결문 등에 따르면 이씨는 1994년 1월13일 오후 2시40분쯤 대학교 직원이던 처제에게 전화를 걸어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 집에 와서 토스트기를 가져가라고 했다. 이씨 아내는 가출한 상태였다. 이씨는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처제를 성폭행하기로 마음먹고 수면제가 섞인 음료수를 처제에게 먹였다. 그런데 처제가 수면제 약효가 나타나기전에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가려하자 이를 막고 성폭행했다. 이씨는 자신의 성폭행 사실이 알려질 게 두렵자 집에 있던 망치로 처제 뒷머리를 내리쳐 실신시킨 후 양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어 이날 11시40분쯤 스타킹 등으로 피해자 몸을 묶고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운 뒤 집에서 약 880m떨어진 곳에 사체를 버리고 그곳에 있던 덮게로 덮어놓았다. 판결문에는 이씨의 난폭한 성격도 담겨있다. 이씨는 내성적이나 화가나면 부모도 말리지 못할 정도였다. 아내와 아들을 폭행하기도 했다. 또한 동서에게 “아내와 이혼을 하겠지만 재혼을 못하도록 문신을 새기겠다”는 폭언도 했다. 범행 20일전 가출한 아내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들은 대부분 퇴직했다. 그들은 이씨 범행이 잔혹했다고 기억했다. 감식을 맡았던 이모(62)씨는 “시신을 비닐봉지, 청바지, 쿠션 커버 등 여러 겹으로 싸서 집에서 떨어진 철물점 야적장에 버린 것으로 기억한다”며 “증거를 찾기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사건 현장 등을 뒤지느라 애를 먹었다”고 회상했다. 막내 팀원으로 수사에 참여했던 현직 경찰관은 “유모차를 이용해 사체를 유기했었다”며 “이씨와 아내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처제가 와서 빨래도 해주고 반찬도 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도 처제가 청소와 빨래를 해준 것으로 조사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형사계 당직근무 중 신고를 받고 출동해 유기된 사체를 목격한 또다른 이모(67)씨는 “피해자 머리가 심하게 다쳤고 피가 많이 났다. 피가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고 머리를 무언가로 덮어놓았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 새벽 이씨 집에서 물소리가 났다는 제보를 받고 이씨 집 욕실 정밀 감식을 벌여 세탁기 받침대에서 피해자 DNA를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씨가 범행 후 피해자 혈흔을 씻는 과정에서 미량의 혈액이 남았던 것이다. 아쉽게도 당시 경찰은 화성연쇄살인사건과의 관련 가능성은 살펴보지 못했다. 두 사건을 동일범 소행으로 볼수 있을 만한 공통점이 크게 없었고, 비교분석할수 있는 자료도 부족했다는 게 전직경찰들의 얘기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부산 여성 관광객 ‘묻지마 폭행男’ 검거 “문신 싫어서”

    부산 여성 관광객 ‘묻지마 폭행男’ 검거 “문신 싫어서”

    지난 5일 부산역 지하상가에서 여성 2명을 폭행하고 달아난 남성이 3일 만에 붙잡혔다. 부산 동부경찰서는 폭행 혐의로 A(53·무직)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일 오후 2시 50분쯤 부산 동구 부산역 지하상가 7번 출구 계단에서 여성 여행객 B(26)·C(27)씨 등 2명의 얼굴을 주먹으로 마구 때리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갑작스러운 폭행에 코뼈가 내려앉는 중상을 입었고 C씨도 입술에 상처를 입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날 여행 차 KTX를 타고 부산역에 도착했으며 지하상가 쇼핑을 마치고 빠져나가는 길에 이같은 봉변을 당했다. 당시 용의자는 금전 등의 요구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B씨 등의 얼굴을 때린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범행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도주 경로를 확인하고 지난 8일 오후 A씨를 붙잡았다. A씨는 경찰에서 “피해자들이 문신을 해 보기 싫었다. 평소 문신에 대한 혐오가 있다”고 범행 이유를 진술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현역 복무 피하려 온몸 문신한 20대 징역형 집행유예

    현역 복무 피하려 온몸 문신한 20대 징역형 집행유예

    병역 의무를 피하기 위해 온 몸에 문신을 해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은 20대 남성에게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부산지법 형사6단독 천종호 부장판사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25)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고 8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3년 4월 병무청에서 실시한 병역판정 검사에서 가슴, 등, 왼쪽 팔, 엉덩이에 문신이 있다는 이유로 신체 등급 3급 판정을 받아 현역 복무 대상이 됐다. 이후 A씨는 병역 기피 목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다리, 오른쪽 팔, 얼굴, 목을 제외한 몸 전체에 추가로 문신을 했다. 그 결과 2018년 병역판정 재검사에서 신체 등급 4급 판정을 받아 사회복무요원 복무 대상이 됐다. 병역법 86조는 병역 의무를 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신체를 손상하거나 속임수를 쓴 사람을 1년 이상, 5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천 부장판사는 “병역 의무를 피하거나 감면받을 목적으로 신체를 손상해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다”면서도 “범행을 자백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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