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는 기업」이 21세기 이끈다/홍문신(서울시론)
◎「이윤 일변도」 탈피,분배·복지에 기여를
19일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우리 노 대통령이 제주도에서 정상회담을 갖게 됐다. 냉전시대를 살아온 우리로서는 감회가 새롭고 우리 국력의 신장과 함께 세계 속에 점하는 우리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는 한 계기가 될 것이다. 소련뿐만 아니라 중국·동구 등 여러 나라들이 우리나라가 이룩한 자본주의 시장 경제발전 경험을 배우고 싶어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또 가르치는 과정에서 우리의 21세기를 위해 무엇을 터득해야 하는가.
○사회의 주체는 기업
필자는 3년 전 중국 사회과학연구원과 국무원의 초청으로 북경에서 「한국 경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 후 질의응답시간에 그들의 관심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알고는 필자는 많은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들의 질문 요점은 대략 이러하다. 한국의 경이적인 경제발전을 가능케 한 주역은 누구이며 사회조직은 무엇이었나. 경제발전 과정에서 고급두뇌들은 어떤 역할을 하였으며 국내외 고급두뇌를 어떻게 유치,활용하였나.
한마디로 경제발전 과정에서 「사람」과 「조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은둔의 나라를 다이내믹한(동적인) 시장경제체제로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그들의 질문에 따라 자연스레 60년대 이래 우리 경제발전 과정에서 발전의 지혜에 대한 여러 가지 사례가 나열되었다. 그들이 나의 설명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것은 이런 것들이다.
발전과정에서 경제기획원이나 관련부처의 역할. 이들에게 지혜와 머리를 빌려준 두뇌집단(ThinkTank),예컨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경제연구원(KIET의 전신) 등의 역할,또 수출진흥확대회의,대통령 직속의 과학기술자문회의나 기타 각종 위원회는 발전을 가속화하는 데 어떤 작용을 하였나 등등. 요컨대 사람과 조직의 운용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 결국 60년대 시작된 우리 경제발전은 사람과 조직을 어떻게 활용하여 국가의 지혜를 총동원하는 체제로 만들었는가 하는 것이 핵심이며 이것이 그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요체이다. 1960년 이래 30년간 우리의 경제발전은 여러 계층의 협조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관료조직의 공을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최근 대우 김우중 회장과 전 고대 김용옥 교수가 해외여행중 나눈 이야기를 담은 「대화」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온 선두조직이 대학→군→행정부→기업의 네 단계로 변천하였다고 적고 있다.
「20세기 초엽부터 일제 식민지가 끝나는 시점까지 우리 사회의 가장 선진조직은 대학이었다. …해방을 거치고 6·25를 거치면서 5·16까지 우리나라를 리드한 가장 선진조직은 군대였다. …5·16 이후 우리 사회에 등장한 가장 선진조직은 엘리트 관료층이 형성한 행정부 조직이었다. …80년대 들어와서 …그것은 기업으로 이동하였다.」
이 4단계 구분법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90년대와 그를 넘어 21세기 우리나라의 주역이 기업이 되고 또 되어야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필자와 의견을 같이한다.
십수 년 전 일본의 원로 기업가로부터 일본의 고급 엘리트들의 사회적 이동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들은 적이 있다. 동경대와 같은 명문대 출신의 최고 엘리트들은 관료로 나가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들 엘리트들은 관료보다 기업을 선택하는 경향이 눈에 두드러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기업이라는 새로운 핵심사회를 조직으로 인재가 모이고 인재들이 관→기업,기업→관으로의 사회적 횡적 이동이 원활하게 될 때 일본의 사회구조도 변화를 가져오게 되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나아가 21세기에 이르러 과거와는 달리 기업의 위치가 독립적인 주역으로 부상하게 되면 더욱 훌륭한 인재들이 기업으로 몰리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 강조해두어야 할 것은 기업이 우리 사회를 이끄는 21세기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기능,역할이 혁신적으로 달라져야 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가가 지금까지 평면적 사고에서 벗어나 입체적 사고로 의식을 전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요청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기업철학,새로운 기업관,기업가정신이 창출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지금처럼 기업의 목표를 이윤추구에만 두어서는 안 되고,국가와 사회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여러 가지 가치를 조화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평면적 사고」 벗어라
90년대 그리고 21세기의 우리 사회에서는 단지 이윤이나 성장 추구를 넘어 경제사회적 정의·공평·자유·분배·복지 등의 상위가치를 포괄하는 목표를 본격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이런 여러 가지 가치를 포괄하는,즉 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때 그 기업은 다기화한 21세기 사회에서 명실상부한 주역이 될 수 있고,국민의 존경을 받는 기업이 될 수 있고,또 국제사회에서 우뚝 설 수 있는 국민경제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만이 기업과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기업 스스로가 인식하는 속에서 혁신이 이루어지고 또 모든 경제주체가,지식인이,근로자가,소비자가,뷰로크라시가 우리 기업이 기업다운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이여,21세기를 향하여 다시 한 번 깨어나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