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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소년 탈선 사회 문제화/특수계층 자녀들 중심 「놀새족」 등장

    ◎절도·폭행 빈발… 교양교육 효과없어 동독 유학생 출신의 귀순자 전철우씨는 한국사회에서 지탄받고 있는 「오렌지족」 뺨치는 특권 비행청소년 그룹이 북한에도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전씨가 「평양 놀새,서울 오렌지족」이라는 그의 책에서 밝힌 이른바 「놀새」그룹이 그들이다.그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호텔이나 수입품 전문점에서 여자애들을 꾀어 낚는 당정간부의 자제들」인 이들 「놀새」들은 『프리섹스 등 노는데는 서울 「오렌지족」을 능가한다』고 한다. 이처럼 80년대 중반이후 본격화된 북한 청소년들의 향락풍조는 김일성사망을 전후한 최근 폭력적 범죄 등 사회적 일탈행위로 확산되고 있어 북한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최근 북한각지에서 ▲강·절도 ▲음란비디오 시청과 성폭행 등 청소년들의 각종 비행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최근 귀순자들에 따르면 당정 고위간부 자제 등 특수계층 일부에서는 성개방 풍조까지 생기고 있다고 한다.그런가 하면 하류계층 일각에서는 이같은 사회적 불평등에 반발,팔·다리 등에 문신을 새겨 결속을 과시하는 폭력서클까지 조직하는 등 청소년들의 타락상이 위험수위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에 청소년 비행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90년대 이후 계속된 마이너스 경제성장으로 생활고가 누적된데다 당정간부의 부정과 비리 및 중국을 통해 알게 모르게 전파된 서구적 소비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여기에다 유사종교집단적 사회체제인 북한의 「교주」격이었던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정신적 구심점이 사라진데 따른 사회전반의 민심이완 현상도 청소년의 비행을 조장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북한당국도 이같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갖가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사로청」산하에 설치된 「청소년 과외교양 지도사업부」를 통해 청소년들의 비행방지 및 예의범절 교양을 위한 「개별담화」를 실시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대중잡지인 「천리마」지 등 각종 선전매체들을 총동원해 부모들이 자식들의 도덕교양에 많은 관심을 돌릴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도마찬가지 맥락일 것이다.그러나 이같은 대증요법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북한 청소년 비행이 식량과 기초적 생필품의 부족 등 경제난으로 인해 사회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배금주의와 당정간부들의 부패 등 구조적 요인과 맞물려 있는 탓이다.이를테면 식량배급의 삭감이나 지연으로 부모들의 가정불화가 빈발하고 있는데다 사회안전원 등 기관원들의 뇌물수수가 일상화되고 있는 형편에 가정 또는 학교교육을 통한 청소년 선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북한 전문가들과 귀순자들은 북한사회의 개혁과 개방으로 당면한 경제난을 타개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청소년 비행을 줄이는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파리/한국 화가들(아랍서 지중해까지:22)

    ◎허름한 탱크창고 자리에 화실이…/「소나무회」 조직… 배우·음악인 함께 모여 고국 향수 달래 우리가 소나무회라는 한국 화가들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것은 비오는 날 하오였다.해외동표예술상을 탄 한묵선생의 특집프로에서 그 소나무회를 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건물도 사람도 어쩐지 낯이 익었다. 파리 시 20구에 있는 허름한 그 건물은 원래 국방부 관할의 탱크창고 였다고 한다.프랑스 영화사에서 2억원에 사겠다고 하는데도 화가라는 이유 하나로 국적을 불문하고 한국인의 작업실로 내놓은 것은 우리나라 정부에 대한 미묘한 문제도 개입되어 있을지 모르나 그러나 오직 프랑스이기에 가능하다고 그곳 사람들은 말했다. 일행의 친구이기도 한 소나무회원 박동일은 파리에 온지 벌써 13년째로 그 세월이 바로 엊그제인 것 같다고 말하며 이웃 작업실의 젊은 화가들을 불러모았다. 우리는 지붕위로 떨어지는 비를 느끼며 뜨거운 차와 포도주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었는데 벌써 20여년전 내가 그들의 나이 만할때 파리를 지나가던 교수나 화가 작가들을 보면서 어쩐지 생소하게 느끼던 그 느낌이 되살아나 조금 쓸쓸해졌다.그들도 지금의 우리를 그렇게 생소하게 볼 것이 분명했다. 그 당시 나는 이응로선생의 화실에서 선생의 일을 거들었다. 선생은 동양미술학교(1964년 개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고 따로 개인 작업실을 시외에 갖고 있었다.동양미술학교는 대부분 프랑스인들이고 독일 사람과 일본 사람도 있었다.한국인도 몇 있었는데 화가 방혜자,배우 윤정희,연극 박사논문을 쓰던 이숙희등이다.선생댁 거실에서 커다란 책상을 몇개 붙여놓고 열서너명 정도가 화선지에 먹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오직 사람은 그림그려라 선생은 누구에게나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하였다.그것이 선생의 독특한 인생관이 아니었나 지금 생각된다.즉 선생은 예술에 대한 재능같은 것은 무시하고 오직 사람이면 그림을 그려야한다,그림을 그려서 자신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던것 같다.그런가하면 또 「세계무대로 나가는 길이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예술로 세상을 제패하는 일에 대해서 누누이 얘기하셨다. 선생이한창 작업을 할때 동백림 사건으로 감옥을 살고 돌아와보니 자신의 자리가 없어져 있더라고,파리라는 무대가 한달이면 벌써 새사람이 떠오르는데 3년이란 공백기간이 자신에게 있어 치명적이었노라는 한탄도 하셨다.「예부터 나라이름을 빛낸 사람에게는 그 죄를 묻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 도 하셨다. 나는 선생의 일을 거들며 그분이 열과 성을 다하여 작업하는 나날을 보아왔으며 늘 고국에 대해 절절이 가슴 아파하던 일들을 잊을 수 없다.선생의 화실은 우리나라의 저 깊은 산골 장작불 타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 무렵 일어난 어떤 사건으로 선생의 화실에 가는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는데 간혹 선생이 떠오를 때면 사건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그분이 지녔던 진실이 장작불에 달궈진 쇠붙이처럼 되어 무엇인가를 뚫어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한사람의 어떤 진실이란 그것이 진실이기만하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아니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고야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관선생은 그 시절 혼자 파리에 잠시 머물고 계셨던걸로 기억된다.어느 저녁 시테 기숙사 친구 방에 가서 차를 마시는데 남관선생이 무슨 일로인가 거기에 오셔서 처음 뵈었다.남관선생 역시 큰 분이라는 무게를 그날 밤 느낄 수 있었다. 시테 기숙사 속에 있는 숲,그곳에 떨어져 있던 낙엽의 음영,짙은 안가,그리고 거대한 홀인 기숙사 식당에서의 식사시간,그곳 기숙사에 살던 화가 심경자·최수화,파리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병주,한국인 유학생들,교수,그때의 생활들을 추억이라는 이름하에 떠올릴 수 있다.지하철에서 듣던 아코디온 소리 「장미빛 인생」과 함께. 특히 식사시간 티켓을 들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 쟁반에 음식을 분배 받을때 매일 새로운 메뉴에 대한 기대같은 것들은 그 당시 몰랐던 고마움으로 이제 다가든다.누군가가 수고를 하여 그 많은 학생에게 맛있게 영양가도 골고루,그러나 그렇게 저렴한 값으로 먹게 해주던 것에 대해. 그 당시 백건우 윤정희 부부도 떠올릴 수 있다. ○한국인유학생 7천여명 날이 어두워서 그림수업이 끝나는 날은 백건우가 윤정희를 데리러왔다.그들이 서로 사랑하며 앞날을 향해 살아가던 모습을,그것 역시 그 당시는 잘 몰랐으나 이제와서 되돌아다볼 수 있다. 「보자르(국립미술학교) 학비가 한달에 3백프랑으로 보험료 정도인데 재료는 공짜로 나온다.그러나 사립학교인 요리나 보석학교는 석달에 1천만원이 넘는다.미술학교에서 석고데생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며 선생이 가르치고 학생이 배운다는 개념이 아니다.일년동안 다녀도 선생에게 무슨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한국인 유학생은 약 7천명이고 제일 싼 지붕밑 다락방값은 30만원 정도다」 이런 얘기들을 그날 소나무회원들에게서 들었다. 마침 한국문화원에서 한인전시회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여 그들과 함께 가보기로 했다. 나오다가 현관에 놓여 있는 한인회보를 보니 대사관을 비롯해 파리 한글학교,한인들의 천주교회당,외환은행 소식 등이 있었다. 한국문화원 전시실에는 여러 형태이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한쪽에 따로 있는 비디오아트실에서 한 작가의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우리는 어둠 속에 선채 잠시 영상을 보았다. 프랑스에서도 이미 순수미술은 사그라지고 있으며 팝아트라든가 TV·비디오아트쪽이 성행하고 이미지만으로 새로운 소통을 하는 방송채널도 새로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세계는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급속도로 변하고 있었다.그곳에서 후배들을 보러온 김창렬·오천석선생들을 볼 수 있었다. 프랑스 신부관에 있는 김인중신부는 뉴욕전시회에서 며칠전에 돌아왔으며 다음날 다시 전시회일로 로마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 외인부대에 한국인이 몇명 있다는 소식에 우리 일행은 놀라워했다. 외인부대를 제대한 한국인이 의류를 가지고 지방으로 다니며 보따리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불 외인부대에 한국인도 우리가 영화로 보아서 친숙히 알고 있듯 범법자들,삶의 맨 밑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이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에 목숨을 내놓고 택하는 그곳에 한국인도 있다니,그리고 제대를 하여 지방으로 다니며 보따리장사를 한다니 그들의 삶이 몹시 흥미로웠다.프랑스 혁명기념일 입장식에 나온 외인부대가 T셔츠바람에 머리를 기르고 몸에는 문신을 새긴 제멋대로의 모습인 것을 친구는 TV로 보았다고했다.소르본대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있는 유학생도 경험삼아 외인부대에 신청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그들을 꼭 만나보고 싶었으나 노출되기를 꺼려하여 수소문 끝에 전화로 통화만 할 수 있었다.제대후 여행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그는 목소리에 힘이 있고 단정하였으며 절대로 외인부대나 자신의 사적인 얘기를 할 수 없노라고 만나기를 거절했다. 파리에서 오직 하나뿐인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텔 물랭의 여주인은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는 그곳에서의 노후를 계획하다가 양로원에서 호박나물이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하나에 생각이 미치자 고국으로 돌아와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 했다.그렇다,바로 이 부분인 것 같다.이국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볼때마다 더구나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같이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곳,자유로운 곳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꼭 들던 것이­. 2,000년을 바라보는 이 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국경 같은 것은 점점 의미 없이 무너지고 전인류가 하나인 국제화시대가 도래한다고는 하지만 물랭호텔 여주인의 말에서 과연 하는공감을 받은 것은 오직 나 개인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이 고국이든 이국이든 어느 곳에서도 이방인 같기만 하고 진정한 따스함?진정한 소통이 되어지기 힘들게 살고 있다고는 해도 멀리멀리 두루 돌아다녀볼수록 그 반대편 저곳에 있는 집이라는 이미지,가장 자기를 붙들어주는 그것은 고국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 개 배설물 범칙금 부과/2만5천원씩… 험악한 문신도

    앞으로 개등 애완용 동물을 끌고다니며 대변을 보게 한 뒤 수거하지 않거나 험악한 문신을 공공장소에서 고의로 노출시켜 혐오감을 주는 사람에게는 2만5천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경찰청은 27일 이같은 내용의 경범죄처벌법개정안을 확정,다음달에 관계부처회의에 상정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다음달초쯤 경범죄처벌법시행령을 고쳐 현재 1만∼2만5천원으로 되어 있는 음주소란·주정차위반 등의 범칙금을 3만∼7만원으로 상향조정할 방침이다.
  • 노인정/정자:중(서울 6백년만상:57)

    ◎풍은 부원군 조만영의 필동 정자서 유래/명문대가·고관·문인들 모여 풍류 즐겨/마포 「망원정」은 임금도 자주 드나들어 갈데없는 도시노인들이 모여 심심파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노인정.아파트지하실에 차려졌건,아니면 공원모퉁이에 지은 가건물이건 노인들을 위한 휴식장소를 두고 사람들은 정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이를 노인정으로 부르는데 이는 서울에 실제로 있던 「노인정」에서 유래됐다고 전해 진다. 1800년대초 풍은부원군 조만영이 중구 필동2가 남산 북쪽기슭에 세운 「노인정」이라는 정자가 바로 그것. 주변은 숲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어 많은 노인들이 몰렸다.특히 당대 명문가이던 풍양조씨 일가의 고관들을 비롯,안동금씨·동래정씨등의 문인·대관들이 모여 풍류를 즐겼다. 한말의 풍운이 불어닥치던 시절에 선비들이 세상일을 등지고 풍류에만 젖어 있다 하여 뜻있는 사람들은 이를 풍자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노인정위에 어린이가 노나/삼월의 복사꽃이 물을 어지럽히는데/평생토록 세상일도 모르고/날마다 풍류로 늙어가네.」 노인정은 역사적인 한일간 회담이 열려 더욱 유명하다.1894년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던 일본은 내정간섭을 본격화할 목적으로 5가지 내정개혁안을 들고 일반백성이 눈치챌세라 인적드믄 노인정에서의 회담을 제의했다. 그해 6월8일부터 3차례에 걸쳐 회의가 열렸으나 3차회담에서 우리측이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로 일본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회담은 결렬됐다.그러자 일본은 군대를 이끌고와 경복궁을 포위하고 대원군을 입궐시켰다.이 사건은 이른바 갑오경장으로 이어진다.말하자면 노인정은 일본침략의 도화선이 된 불쾌한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였던 것이다.노인정은 일제시대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해방후에는 불교부인회에서 사용했다가 지금은 개인주택이 들어서 있다.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망원정」은 조선시대 임금들이 자주 드나들며 세상사를 논하던 곳으로 유명하다.태종의 둘째아들인 효령대군이 별장삼아 지은 망원정의 본래 이름은 희우정.효령대군의 아우인 세종이 바깥에 시찰을 나갔다가 정자에 들려 가뭄걱정을 하며 얘기를 나누던중 때마침 비가 내렸다는데서 유래되었다. 성종때에 이르러 희우정은 다시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별장이 됐으며 월산대군은 정자를 크게 수리하고 이름을 망원정으로 바꿨다.정자에 올라 앉으면 먼 경치까지 전부 바라볼수가 있다고 해 붙여졌다.성종도 역시 세종때의 일을 본따서 매년 봄이면 망원정에 나가 농사일등 세상 돌아가는 일을 살피고 여러 문신들에게 시를 짓게해서 현판에 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서깊은 망원정도 연산군에 의해서 일대 위기를 맞게 된다.궁중에서의 향락만으로는 부족해 각 명승지를 찾아 연회를 베풀던 연산군은 망원정의 절경에 취해 1천명이 들어앉을수 있도록 새로 지으라고 했다.그리고 연산군 12년 7월 망원정에서 바라다 보이는 곳은 공사 건물을 막론하고 모두 철거하라고 해 양화진에서 마포에 이르는 일대가 허허벌판이 될 판이었다.그러나 그해 9월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쫓겨나 공사는 즉각 중지되고 망원정은 살아남을수 있었다.망원정은 조선말기에 없어졌다가 88올림픽이후 한강변유적 복원사업으로 정자로는가장 먼저 복원됐다.
  • 압구정/한명회가 은퇴 앞두고 지어/정자:상(서울 6백년만상:56)

    ◎한강 보이는 절경에 자리… 풍류객 줄이어/세검정은 총융청 군인 여가용으로 세워 「산수가 좋은 곳에 놀기 위해 지은 집」이라는 사전적 의미와 같이 정자는 우선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고 생활의 여유를 형이상학적으로 나타내는 공간이었다. 정자에서 선비들이 술잔을 나누거나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타는 것은 요즘 사람들이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서울에는 옛날부터 많은 정자가 있었다.남산과 북한산의 계곡은 물론이고 한양의 남쪽을 흐르는 한강변에 많은 정자가 지어졌으며 이곳에서 시인·묵객들은 경치를 즐기면서 많은 시가를 남겼다. 오늘날 서울의 지역이름으로 유명한 압구정과 세검정은 이러한 정자 명칭에서 비롯되었다. 강남구 압구정동은 조선초 유명한 권신인 한명회가 지은 「압구정」이라는 정자에서 유래되었다. 성종때 정계은퇴를 앞둔 한명회는 명승지를 찾아 풍류로 세월을 보내기 위해 지금의 압구정동 산 310의3 부근 언덕에 압구정을 지었다. 압구정이 위치한 곳은 지금의 압구정동 456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로 잠실쪽에서 흐르는 한강줄기가 서남쪽으로 꺾어지는 모습이 내려다보이고 닥나무가 무성했던 저자도가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의 땅이었다.압구정이란 「오리·갈매기와 사귀는 정자」라는 뜻으로 세속의 일을 잊어버리고 갈매기를 벗삼아 남은 생애를 조용히 보내겠다는 뜻을 담아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정자이름과는 달리 권세와 명리에 밝은 한명회가 권력을 놓을 생각을 않자 성종때의 문신 최경지는 압구정을 지나면서 『임금의 은총 깊으니 정자가 있어도 와서 즐길 시간이 없네.가슴속에 공명심만 없어진다면 오리·갈매기와 사귈 수 있으리』라는 시를 지었다. 주인이야 어떻든 조선 말기까지 많은 명사·시인들이 찾아와 풍류를 즐기고 명시를 남겼던 압구정자리에는 지금 고층아파트들만이 숲을 이루고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와는 달리 자하문밖 종로구 신영동 사천계곡옆에 6각형 모양으로 지어져 오늘날에도 모습을 볼 수 있는 세검정은 오히려 그 유래가 분분하다. 1623년 인조반정때이귀·김유 등이 광해군 폐위를 논하면서 이곳에서 칼을 씻었다는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으며 연산군이 유흥을 위해 세웠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영조 24년(1748년)에 북한산성의 수비를 맡던 총융청 군인들이 군영 부근의 경치좋은 곳을 택하여 여가를 즐기기 위해 세웠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세검정 일대는 북한산 남쪽기슭과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냇물을 이루고 뒤에는 북한산의 연봉이 아늑하게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등 산수풍경이 절정을 이뤄 계절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물이 워낙 맑아 역대 왕들의 실록이 완성되면 그 실록 초고를 이곳에서 세초해 기록을 없애고 종이는 재생하여 썼다고 전해진다. 임금들은 실록을 완성한 뒤 이곳을 찾아와 연회를 베풀었으며 물이 불어날 때는 도성사람들이 몰려와 물구경을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세검정은 1941년 인근에 있던 종이공장 화재때 불타 없어졌으나 지난 77년 옛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
  • 새로운 「교육장전」 신설 추진/진리·정의 등 교육법전문 명시

    ◎교육법학회 보고서/홍익인간표현은 시대 안맞아 국민교육헌장의 폐지가 검토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교육이념과 이상을 포괄적으로 설명,교육장전의 성격을 띤 전문을 교육법에 신설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대한교육법학회(회장 안기성고려대교수)는 26일 교육부의 연구의뢰를 받고 그 결과를 교육부에 최근 제출한 「교육법 정비를 위한 기초연구」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연구책임자인 안교수는 현재의 교육법 1조(교육목적)의 「홍익인간」 정신이 현대국가의 교육이념을 나타내기에는 지나치게 제한적이어서 적절치 못하며 「공민」「자주적 생활능력」등은 진부하고 포괄적이라며 교육법 전문을 신설할 것을 건의했다. 이에따라 현행 교육법 1조(교육목적)과 2조(교육방침)등을 한데 묶고 국민교육헌장의 내용을 조정해 전문으로 정리,그 안에 진리·정의·근면·건강·자주·책임등 구체적인 덕목을 조문전체에 풀어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의 내용은 「우리는 홍익인간의 건국이념 아래 나라를 건설하고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슬기롭게 이를 지키고 키워왔다.…중략…우리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를 명백히 하기로 한다」는것으로 5문장 3백97자로 구성돼 있다. 교육부는 이같은 연구팀의 교육법개정안 제출과 관련,『올 정기국회에서 관련개념이나 용어를 가급적 부드럽게 고치기로 했으며 전문신설·학생의 정치교육 필요성등의 법개정은 내년에 긍정적으로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나체연극」 사법처리 방침/외설시비 「미란다」

    ◎연출가·극장주인 곧 영장/여주인공 입건 서울지검 형사3부 황인정검사는 26일 외설성이 짙은 내용을 담은 연극 「미란다」를 공연한 포스트극단 대표이자 연출가인 최명효씨(39·예명 문신구)등 2명에 대해 공연음란혐의로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음란여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보완수사하라』며 재지휘지시를 내렸다. 검찰은 이 지시에서 『연극 「미란다」의 음란성여부를 가릴 수 있도록 연극인·문학평론가·문학가·극작가·연예인을 비롯해 이 사건 관련 연극인과 관객등의 진술을 첨부하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날 최씨와 연극공연장을 빌려준 낙산소극장대표 황규학씨(27·성동구 용답동 미성연립4동)등 2명에 대해 공연음란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연극의 주인공 미란다역을 맡아 나체로 공연한 연극배우 김도연씨(23·여·경남 울산시 남구 신정동 452)를 입건했다. 경찰은 검찰의 재지휘지시에 따라 연극 「미란다」의 외설성에 대한 내용을 보완,최씨등에 대해 공연음란혐의로 다시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어서추이가 주목된다. 연극 관련자들이 연극의 외설성여부와 관련,당국의 사법처리대상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씨는 지난 6월16일부터 7월24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낙산소극장에서 연극 「미란다」를 공연하며 김씨에게 전라상태로 10여분 성행위등을 묘사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황씨는 연극 「미란다」가 외설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최씨에게 미리 연출료 2천5백만원을 주고 자신의 극장에서 공연토록 하고 6천5백여명의 관객으로부터 입장료 4천만원을 챙겼으며 김씨는 최씨로부터 출연료 5백만원을 받기로 하고 전라상태에서 공연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재일교포 조행씨의 북송가족 찾기

    ◎오빠가족 62년 북한행… 67년 소식끊겨/“가족불익” 협박도 뿌리치고 행방 수소문 학문에의 열정으로 북송선을 탔던 조호평씨(당시 26세).그러나 그의 순수했던 젊은 날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지금은 행방조차 알 길이 없다.일본의 여동생 조행씨는 오늘도 오빠의 행방을 찾기 위해 조총련의 위협을 무릅쓰고 메아리 없는 인권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조호평씨는 62년 일본인처와 북송선을 탔다.일본의 동북대학원에서 생리학을 공부하던 그는 북한에 가면 모스크바대학 유학과 학문을 보장해준다는 조총련의 제의를 받고 북한행을 결심했다.그러나 북한의 제의가 「달콤한 악마의 유혹」임을 알고 있던 아버지는 결사반대했다고 조행씨는 회고한다. 그는 함흥의과대학 생리학강좌의 교원이 돼 학문의 꿈이 실현되는 듯 했으나 얼마후 함흥시 북방에 있는 과수원으로 이주됐다.그리고 67년이후 소식이 끊겼다.부인과 자녀들(아들 1명·딸2명)도 73년이후 행방불명됐다. 조씨부모는 아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조총련에 북한방문신청을 여러번 냈으나 그때마다 거부됐다.부모는 결국 아들을 만나보지 못한채 타계했다.조행씨는 그후에도 오빠의 행방을 찾기 위해 조총련과 일본적십자사 등에 문의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그러나 위협만 있었을 뿐 아무 대답도 없었다. 조행씨는 지난해 11월 도쿄에서 열린 증언집회에서 공개적으로 북송교포의 생명과 인권유린을 비판한후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가족의 행방찾기 운동을 시작했다.그것은 매우 어려운 결단이었다.북한에 있는 가족·친척의 불이익및 조총련의 위협과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이름을 밝히고 활동하는 사람들은 10만명의 북송교포 가족·친척중 조행씨와 김민주·박춘선씨 등 3명에 불과하다. 조행씨의 증언에 감동되어 도쿄대의 오가와 하루히사 교수를 중심으로 「북한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회」가 발족됐다.그럼에도 불구,조여사는 재일동포들을 서둘러 북한에 보낸후 그들의 비참한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일본 적십자사에 대해 크게 분개하고 있다. 그런 조여사에게 하나의 위안과 힘이 생겼다.김영삼대통령이 북한의 인권문제를거론하고 나선 것이다.『아시아에서 북한인권상황을 문제시한 정치지도자는 김대통령이 처음이다.그의 높은 도덕성에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 조여사는 강조한다.조여사는 그러나 일부 한국대학생들의 「북한환상」은 세계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그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순간에도 북한수용소에서는 생명이 죽어가고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고 안타까워 한다.
  • 전라연기/「미란다」 주연 김도연씨

    ◎“출연교섭땐 뒷모습만 5초간/실제는 대본에 없는 연기요구” 알몸연기로 물의를 빚다 최근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던 연극 「미란다」의 주연여배우 김도연씨(25·경남 울산시 남구 신정3동)는 29일 『잠적한 것이 아니라 연출가의 무리한 요구로 공연을 거부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아버지 김희진씨(54·회사원)를 통해 『내가 출연한 연극으로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고 전하고 『그러나 자신은 경찰의 수사를 피하거나 개런티문제로 잠적한 것이 아니라 연출가 문신구씨가 알몸연기를 강요해 공연을 거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문씨와의 출연교섭때는 알몸장면이 뒷모습만으로 5초간 있을것으로 약속했었으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요구했고 대본에도 없는 연기를 시켰다』며 『지난 25일 문씨에게 인격을 박탈당한 상황에서 더이상 공연할수 없다는 「내용통보」까지 했다』고 밝혔다.
  • 「알몸연기」 여배우 잠적 소동/“벗는 연극”비난­포르노 수사 따라

    ◎연장공연 예정 「미란다」 전면 중단 여배우의 알몸연기로 논란을 빚었던 극단 포스트(대표 문신구)의 연극 「미란다」(원제 콜렉트·존 파울스 작·문신구 연출)공연이 출연여배우 김도연씨(24)의 잠적소동 끝에 26일 전면중단됐다. 이 연극은 지난 6월 16일 서울 동숭동 SKC플라자홀 무대에 오른 이래 관객동원에 성공을 거두자 오는 8월8일까지 연장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SKC극장측은 이번 공연중단 사태를 극단 대표이자 출연배우인 문씨와 김씨의 출연료 갈등 탓으로 돌리고 있다.그러나 공연중단의 실제 이유는 「벗는 연극」에 대한 일반의 비난여론이 비등하고 경찰이 수사를 본격화한데 따른 고육지책이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전라연극인 「미란다」의 공연법 위반 여부를 내사해온 경찰은 지난 24일 KBS­2TV 「추적60분」이 이 연극의 문제점을 여론화하자 수사를 본격화,25일 문씨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미란다」가 음란물로 판단될 경우 극단 대표인 문씨등을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이 연극에대한 경찰의 사법처리가 어느선까지 이어질지는 예단할 수 없지만 그 파장이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이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문신미술관에 도둑/수억원대 작품 도난

    【마산=강원식기자】 30일 상오 경남 마산시 합포구 추산동 문신미술관에 도둑이 들어 문씨의 59년작 「정물」(46×31㎝)등 유화작품 9점과 중국그림 2점등 수억원 상당의 작품이 도난당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미술관 관리소장 이미욱씨(35)에 따르면 『이날 상오 8시쯤 출근해 보니 전시관건물 뒤편 1·2층 중간에 있는 물탱크의 방수를 위해 설치해 놓았던 합판이 뜯겨져 있고 알루미늄 새시문도 부서진채 1·2층에 전시돼 있던 그림 11점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도난당한 작품들은 문씨가 지난 47년부터 59년 사이에 그린 유화작품등이다. 경찰은 지난 5월27일 미술관이 개관된 뒤 전시관 뒤편에는 일반인들에게 출입을 못하게 했다는 이씨의 말에 따라 미술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나 미술품 전문 절도범등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 추한 한국인(외언내언)

    미국에서 발행되는 산악잡지 「아메리칸 알파인 저널」은 지난해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봉 암벽에 쓰여진 한국등반대의 낙서사진을 공개했다.「이런 일을 저지르는 산악인은 산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와 함께. 최근 뉴욕시 경찰이 미국에서 불법화된 뱀탕집을 경영해 온 한국상인들을 체포했고 현지언론이 이를 집중보도하는 가운데 일부 방송사들은 중계차까지 동원하여 생방송을 했다고 한다.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추한 한국인」의 모습은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공보처가 해외공보관들을 통해 수집한 「해외에서의 국가이미지 실추사례」자료는 보다 더 다양하게 「추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국정신문이 「자괴감을 무릅쓰고」밝힌 이 자료에 의하면 외국여행에 나선 우리 관광객들의 무례함과 공중도덕 위반행위가 독일의 한 골프장에 「한국인 입장금지」라는 팻말이 나붙게 될 정도에 이르고 있다.심지어는 불교국가에서 불상을 파괴하는 일부 기독교인들도 있어 태국에서는 그런 여행객이 구속되기도 했다는 것.하긴 유럽의 유스호스텔등이 한국인의 예약을 사절한다는 소식이 들려온지 오래다. 이 자료는 또 동남아등 해외진출 한국 기업체가 인종차별적 언행과 열악한 근로환경,체벌과 기합등 잘못된 노사관리로 현지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음을 밝힌다.한국업체간의 과당경쟁,위조상표 부착등 국제 상거래질서 문란행위,계약위반등도 문제라는 것. 한국 공직자의 방문신청이 프랑스에서 거부당하기도 했다 한다.외국 시찰이나 연수에 나선 공직자들이 관광에 더 열중하고 해외 저명인사 면담시 수준이하의 질문을 던지며 면담내용보다 사진찍기에 더 관심을 둔 탓이라고.해외교포와 유학생들도 상호분열,현지인과의 불화,공공요금 미납등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추락하는 소리가 들리는듯 싶다.무한 경쟁시대의 경쟁력강화를 위해서도 국제화에 역행되는 부끄러운 모습들은 과감히 고쳐나가야겠다.
  • 회현동/지명 유래:2(서울 6백년 만상:33)

    ◎어진 선비들 모여 살던곳/뚝섬/정도후 군훈련장 자리… 사냥터로 유명/임금 행차때 둑기 꽂혀 둑섬→뚝섬으로 태조 이성계가 6백년전 지금의 서울땅에 수도를 정했을때 인구는 5만여명에 불과했다. 그때만해도 장안의 곳곳마다 땅이름이 있을리 만무했다.무학대사의 꿈속에서 「십리를 가라」는 현몽을 받았다해서 「왕십리」로 붙여지는 식이었다. 80년대초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아이들이 몰려들어 물놀이를 즐겼을만큼 물맑고 모래가 유난히도 고왔던 장안 제일의 유원지 뚝섬의 땅이름 또한 그러했다.뚝섬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한강본류와 북쪽에서 흘러 한강에 합류하는 중랑천사이에 자리해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삼각주이다.땅이 평탄하면서도 기름져 풀들이 무성해 정도직후부터 말목장이 들어섰고 자연스레 군대들의 훈련장이 됐다.89년 8월까지만해도 뚝섬에서 말들이 갈기를 치켜 세운채 모랫벌을 질주하던 경마장이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 지금의 뚝섬일대에는 강가의 버드나무를 비롯,갖가지 관엽수로 우거져 산짐승들이들끓었던 것으로 전해진다.옛 문헌들은 고려 현종때만해도 뚝섬일대 숲속에 호랑이들이 들끓었고 나라에서는 유명 장수들을 시켜 호랑이를 사냥토록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뚝섬에서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뚝섬은 한양을 지키는 주력부대의 훈련장이었다.역대 임금은 사냥놀이를 겸해 자주 이곳을 찾았고 그때마다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둑기가 꽂혔다.임금의 둑기가 세워지고 언뜻보기에 섬 같아 「둑섬」으로 불리다 「뚝섬」으로 정해졌다. 땅이 기름져 대궐에 바쳐지는 곡물과 채소류가 재배되기도 했던 뚝섬이 오늘날의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은 1908년 최초로 이곳에 상수도 수원지가 들어서면서 부터였다.어찌된 영문인지 뚝섬은 동명으로도 채택되지 않은채 「성수1가 2동」「구의 몇동」등 멋없는 이름으로 매겨져 있지만 시민들 가슴엔 여전히 「모래곱고 물맑은 뚝섬」으로 남아 있다. 뚝섬만큼이나 옛과 지금이 크게 달라진 곳으로는 서울 중구 회현동을 빼놓을 수 없다.회현동은 말그대로 조정의 어진 선비(현)들이 많이 모여(회) 살았다해서 붙여졌다.세조와 중종조의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을 비롯,선조때 상당부원군 한준겸,문강공 조말생,윤시동,정여창,강세황등 웬만큼 한학에 관심이 있고 익히 아는 명유와 명현이 회현동에서 배출됐거나 살았다. 회현동에서는 이같이 올곧은 선비들이 대거 배출되자 곳곳에 얽힌 민화도 적지 않다.지금의 회현동 1가 14에 있던 정광필의 집앞에는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어느날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이 나무에도 서각대 열둘을 걸게 되리라」했다.이후 동래정씨 문중에서 실제로 정승 열둘이 배출됐다고 한다. 이같이 삼강오륜을 경전으로 삼는 사대부들이 대대로 지켜온 회현동이 일제치하를 거치면서 한때 유흥가로 변한 것을 보면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속설이 실감난다.일본인들이 진고개,지금의 충무로를 상권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며 명동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되면서 인근의 회현동이 덤으로 「타락골」이 돼버린 것이다.
  • 어른되는 날(외언내언)

    고고학자들이 고대 이집트 유적에서 만고불변의 진리를 찾았다.『요즘 젊은이는 이해할수 없다』는 명문을 읽어낸 것이다. 이해할수 없는 젊은이들이 기성세대가 되기를 수없이 반복한 것이 인류역사건만 이 진리는 지금도 유효하다.요즘 젊은이들은 「신세대」를 넘어 「X세대」로 불리는 것이다.「X세대」의 X란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라는 뜻으로 수학방정식의 X에서 유래한 것.지난해 미국의 한 광고 전문지가 특집제목으로 이 용어를 사용한 후 한국에도 재빨리 도입됐다. 이 세대의 특징은 그 이름만큼 모호하다.구속이나 관념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기 뜻대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어디로 튈지 알수 없는 럭비공에 비유되기도 하고 컬러TV를 보며 자란 비디오 세대라 하여 「호모 비디오쿠스」로 불리기도 한다.다양성,폐쇄성,극도의 이기주의도 이들의 특성으로 꼽힌다.기성세대는 이 세대의 특징적 모습으로 무엇보다 「피터팬 증후군」「마마보이 증후군」을 찾아 내기도 한다. 어제가 「성년의 날」이었다.권리와 책임을 지닌 어른으로서 인정받는 만 20세가 되는 이들을 축하하는 날이었다.올해 성년이 된 이들은 전체인구의 2%인 88만여명.물론 「X세대」에 속한다. 「X세대」의 「성년의 날」을 지켜본 기성세대들은 성년식의 옛풍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동서를 막론하고 옛날에는 어른으로 대접받기 위해 힘든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원시사회에서는 등짝 뚫고 새끼줄 꿰기,할례,발치,문신등 가혹한 의식이 행해졌고 조선시대만 해도 가파른 벼랑틈 뛰어 넘기,외줄 그네타기,무거운 돌 들기등을 해야만 장가 갈 자격을 얻고 품을 팔더라도 반품에서 온품을 받을수 있었다. 오늘의 성년식은 대학입시와 군복무라고도 하지만 결혼을 하고도 부모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X세대」,권리만 알고 책임을 모르는 그들이 성인답게 되려면 어떤 고행이 필요한지 부모세대가 생각해 볼 일이다.
  • 백제의 신화/무왕때부터 “왕은 용의 아들”(백제를 다시본다:11)

    ◎건국신화 없어 고구려·신라에 열등감/권위회복·단결위해 「용 설화」 만들어/능산리 금동용봉향로의 태자상 장식이 그 증거 우리나라 상고사중 한민족 중심인 단군조선,부여와 고구려에는 각기 고유하면서도 서로 맥이 통하는 신화가 있다.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인 설화에는 신화,전설과 민담이 포함된다.어떤 학자는 신화를 건국,씨족,마을과 무속의 네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한국의 신화에서는 신격을 타고난 인물이 범상을 벗어나 과업을 성취하거나 주인공의 원향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출생­성장­혼인­즉위­죽음의 통과의례에 대한 과정을 다룬 건국신화나 시조신화를 으뜸으로 쳐왔다.왕권을 신성화하고 있는 한국의 건국신화는 신화에서 벗어나 역사화된 것으로,그리고 전설이 역사적 믿음을 이념으로 삼은 신화와 전설의 복합체이다.신화는 민족적인 범위에서 전승된다고 한다.국가창건신화의 경우 국가가 바로 증거물에 해당하며,만일 신화에서 이와같은 증거물이 없다면 전승은 중지되거나 민담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기록 「삼국유사」권제1기이 제2에 의하면,왕검조선은 상제인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지상(신단수아래 신시)에 내려와 3.7일을 굴에서 지낸후 여자가 된 웅녀와 결혼해서 난 단군왕검이 아사달에서 나라를 엶으로써 생겨난다.그 해가 요제 즉위후 50년 경인년(실제는 정사)으로 기원전 2333년(동국통감에 의해 당고 무진년)에 해당한다.그는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 일컫고 이어서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 1천5백년을 다스리다가,주 무왕(호왕) 기묘년(기원전 1122년)에 기자조선이 들어서매 장당경으로 옮기고 후일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되었다.그의 나이는 1천9백8세였다 한다.최근 그의 무덤(소위 단군릉)이 평양근교 강동군 대박산기슭에서 발굴되었다고 북한의 고고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으나 무덤의 위치,연대,묘의 구조와 출토 유물 등에서 여러가지 모순점을 보인다. 북부여의 경우 해모수가 하늘에서 다섯마리의 용을 타고 내려옴으로써 나라가 이루어진다.그 해가 전한 선제 신작 3년으로 기원전 59년에 해당한다.그의 가계는 해부부(가엽원으로 도읍을 옮겨 동부여라함)­김왜(하늘이 점지한 개구리같은 어린이로,해부루의 수양아들이며 태자임)­대소에게로 세습된다.삼국유사 권1 동부여조에 의하면 이 나라는 왕망 15년,기원후 22년(고구려 3대 대무신왕5년)에 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부여는 346년 연왕 모용황에게 망하고,실제 고구려에 투항하는 494년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고구려의 건국자인 동명왕(주몽,성은 고)의 개국설화에는 대개 세가지가 전한다.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그는 북부여의 건국자인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용왕의 딸인 하백녀(유화)사이에 알로서 태어났는데(난생),그 해가 한 신작4년,기원전 58년이다.그리고 그는 해모수의 아들인 해부루와는 이모형제가 된다.그가 금와의 태자인 대소와 사이가 좋지 않아 졸본주(졸본부여,홀본 골성)로 가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다. 이규보의 「동국리상국집」동명왕편에 의하면,그 해가 한 원제 12년으로,기원전 37년(최근 북한 학자들은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277년으로 잡고 있으며 그 이전단계를 「구려」로 보고 있다)이며 그의 나이 21세 때이다.그리고 기원전 19년에는 그가 부여에 있을때 예씨부인으로부터 얻은 아들로서,자기집 일곱모의 소나무 기둥 아래(칠령칠곡의 소나무위에 선 기둥)에서 부러진 칼을 찾아 온 유이(기원전 19∼기원후 18년)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백제의 건국자는 주몽의 셋째 아들인 온조(기원전 18∼기원후 28년)이다.그는 아버지인 주몽을 찾아 부여에서 내려온 유리왕자(고구려의 제2대왕)존재에 신분의 위협을 느껴 한 성제 홍가 3년(기원전 18년) 형인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하북위례성(현 중랑천근처이며 온조왕 14년,기원전 5년에 옮긴 하남위례성은 강동구에 위치한 몽촌토성으로 추정됨)에 도읍을 정하고,형인 비류는 미추홀(인천)에 근거를 삼는다.이들 형제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구려의 건국자인 주몽의 아들로 되어 있으나,삼국사기 백제본기 별전(권23)에는 북부여의 둘째왕인 해부루의 서자인 우대의 아들로 나와 있다.이는 그의 어머니인 서소노가 처음 우태의 부인이었다가 나중 주몽에게 개가하기 때문이다. 이들 신화에서는조지훈과 이동환을 비롯한 이 관계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국조탄생설화,이주개국형,난생설화,개탁국가,중서자립국과 이모형제들이 공통된다.다시 말하여 단군조선­부여­고구려­백제는 같은 맥이나 한핏줄을 이루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최근 북한에서 이러한 맥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정치적 정통성을 확립하고 정당화시키는데 이용하고 있다.그러나 백제의 건국자인 온조는 천손인 해모수,용왕의 딸인 하백녀(유화)의 신화적인 요소와,알에서 태어난 주몽의 탄생과 같은 난생설화가 없이 처음부터 주몽­서소노­우태라는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태어난다.그래서 백제에는 부여나 고구려다운 건국신화나 시조신화가 없다.이것이 백제가 어버이 나라인 고구려에 항상 열등의식을 지녀온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이점은 온조왕 원년에 동명왕묘를 세운 것이나,백제 13대 근초고왕(346∼375년)이 371년 평양으로 쳐들어가 고구려 16대 고국원왕(331∼371년)을 사살하지만 평양을 백제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한성으로 되돌아 오는 점 등에서 이해된다. ○왕권 신성화 애써 그래서 백제의 왕실은 고구려왕실에 대한 열등감의 극복과 아울러 왕실의 정통성을 부여하려고 애를 써왔다.그것이 전설적인 신화보다는 용이 왕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왕권의 탄생설화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인 것 같다. 중국과 한국에서 용은 물(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경사회를 상징하는 왕이다.최근 부여 능산리에서 발견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의 뚜껑과 몸체에 표현된 도교와 불교적 문양과 용봉(또는 주작과 현무),연화문 가운데의 태자상의 장식등이 그러한 증거로 보여진다.이것은 후일 신화가 없어도 될 것 같은 고려나 조선도 「제왕운기」나 「용비어천가」를 만들어 건국의 정신적,이념적 틀을 꾸준히 보완해 나가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농경사회의 수신… 왕권 상징/부여 절터에서 용무늬 벽돌 출토/용의 의미 백제는 신화나 설화의 자료가 사실상 희박하다.특히 건국신화는 없다.우리 신화의 원전격이라 할 수 있는 「삼국유사」의 경우 고구려,신라,가락의 건국신화만을 다루었다.그러면서 신라 중심의 호국,인문신화에 치중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건국신화 말고는 무왕(?∼641년)과 관련한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용이 등장하는 설화다.그 어머니가 서울 남쪽 못가에다 집을 짓고 살았는데,못 속의 용과 관계한 이후에 낳은 아들이 무왕이라는 것이다.용을 모티브로 한 숱한 「삼국유사」기록 가운데 하나인 이 무왕과 용에 대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 크다. 용은 대체로 호교의 상징 내지는 호국의 상징으로 나타난다.이러한 사실을 상기하면 무왕은 호교와 호국 두 요소에 바로 연결된다.전북 익산 금마에 미륵사를 창건했고 부소산성과 마주하는 백마강 건너 울성산성 근처에 호국사찰 왕흥사를 완공시켰다.그는 금강 언덕의 바위에서 예불한 다음 배를 타고 건너가 법회에 친히 참석했다고 한다. 그는 추풍령을 넘어 낙동강 유역까지 진출,신라를 위협했다.사비성으로 천도한 이후 가장 막강한 군주로 문화를 꽃피우는 가운데 영토를 관리하는데도 주력했다.이렇게 보면위대하고 훌륭한 존재와 비교되는 용은 왕권이나 왕위를 상징할 수도 있다.그래서 「삼국유사」에 나오는 용과 무왕의 연관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연말 사비시대 백제의 고토인 부여 능산리 출토품 김동용봉봉래산향로의 용은 왕권을 상징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뚜렷한 신화가 없는 백제가 사비시대에 창조한 신화적 요소가 용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그렇다면 용에는 백제인들의 융합을 위한 신성성이 내포된다.이는 역사와 관련을 가지면서 민족의 단합을 꾀하는 신화구성 원칙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 북녘도 연애결혼 확산/성개방 풍조만연… 처녀임신·간통 빈발

    북한에서도 최근 자유연애 및 성개방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북한에선 지난 70년대까지만 해도 중매결혼이 주류를 이뤘다.80년대 들어 점차 연애결혼이 증가하기 시작,최근 평양 등 대도시에서는 북한의 젊은 남녀들이 연애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 있는 등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같은 세태로 인해 임신이나 간통사건이 빈발,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심지어 일부 여성들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일부러 「부화사건」(간통사건)을 조작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즉 북한당국이 간통을 중벌로 다스리는 것을 이용,일부 여성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들과 의도적으로 동침하거나 소문을 퍼뜨려 결혼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연애풍조가 확산되면서 아직 결혼 적령기도 아닌 10대나 20대 초반의 청소년층에서 반지 교환과 문신 새기기가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남녀 학생들간에 정분의 표시로 주고 받는 반지는 값비싼 도금반지보다 주화의 가운데 부분을 도려내거나 동파이프를잘라서 직접 다듬어 만든 사제품이 주로 이용된다.또 학교내 불량서클에 가입한 경우 남학생은 손등에 별 모양이나 여자나체를,여학생은 몸에 꽃이나 남학생의 얼굴을 새겨 장래를 약속하며 결속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최근 연애결혼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난이 가중되자 배우자 선택기준도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과거에는 성분이 좋은 국가안전보위부나 사회안전부 등과 같은 권력기관 종사자가 인기였으나 요즈음엔 남녀 공히 경제적 능력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특히 당고위간부가 아닌 일반주민들 사이엔 외교관·무역회사직원·선원·운전사 등이 배우자감으로 선호되고 있다.이들 직종이 외화나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생필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뇌물이나 부수입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외국 관광객에 전방 방문 허용/국방부

    국방부는 17일 현재 개방하고 있는 땅굴·통일전망대등 수도권 부근의 안보관광지외에 그동안 내·외국인 관광객의 출입을 통제해온 강원도 일원 민통선 북방지역 6·25격전지등에 대해서도 관광을 허용키로 했다. 이는 「94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내·외국인들의 전방지역 방문을 적극 유도하기 위한 조치이다. 국방부는 또 외국인 방문자들의 편의를 위해 현행 7일전에 방문신청토록 돼있는 신청절차를 3일전으로 완화하고 외국인에 대해 방문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이번에 새로 개방되는 지역은 ▲수도권일원의 제3땅굴·도라 전망대·애기봉·오두산 통일전망대 ▲중부지역의 제2땅굴·철의 삼각지·태풍 전망대·백마고지 전적비·멸공OP ▲동부지역의 제4땅굴·을지 전망대·피의 능선·저격능선·펀치볼·향로봉·도솔산등 6·25 격전지 ▲고성 통일전망대등 17곳이다.
  • 성폭행여자 애인 청부폭행 귀잘라

    서울송파경찰서는 21일 사채업자 문신철씨(40·송파구 잠실본동 189)와 「영산파」 청부폭력배 주지용씨(25·구로구 구로동 166)등 4명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박종희씨(25·양천구 신월2동)등 4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이들은 지난달 1일 상오 2시30분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노상에서 문씨가 성폭행한 문모양(22)의 애인 이모씨(25·인쇄업)에게 『애인과 헤어지라』고 협박하며 이씨의 왼쪽 귀를 흉기로 2㎝가량 자르는등 이씨를 2차례에 걸쳐 납치,폭행한 혐의를 받고있다.
  • 자식이름 「악마」로 지은 심리는(박갑천 칼럼)

    아들 이름을 악마(아쿠마:악마)로 지어 출생신고한 부모가 있어서 일본은 지금 시끄럽다.당국에서 사회통념상 문제가 있다면서 신고를 받아들이지 않자 부모는 이의신청을 냈다.국민들 사이에서도 찬반양론이 일고 있고 내각회의가 끝난 다음의 화제로까지 발전하여 관심은 높아진다. 유별난 이름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그러나 일본 사람들의 경우 그 성부터 희한한 것들이 많다.나중에 암살 당하는 비운의 정치가 이누카이(견양의)만 해도 그렇다.개견(견)자가 들어있지 않은가.그 성으로도 수상까지 지냈으니 용타고 할까.「귀신귀 귀」자를 쓴 오니쓰카(귀총)란 성도 있다.뜻이 「귀신무덤」이고 보면 누구 곱송그리는 꼴이라도 보자는 것인지. 이런 유형의 성명을 일일이 거론할 수야 없지만 재미있는 이름으로는 국철본사 수사과장을 지낸 「아이우에오」(아정묘영웅)라는 사람을 들수 있겠다(이규현지음 「이름」에서).성이 「아이」이고 이름이 「우에오」인데 「아이우에오」는 일본어 홀소리를 모두 나열한 것이기도 하고 그들의 글자표 고주온즈(오십음도)의 첫째줄이기도 해서 특이하다. 우리의 부모들 가운데도 일본의 「아쿠마」군 부모 비슷한 심리의 사람들이 없지 않다.「조물주가 낳은 최대의 걸작품」이란 이름으로 호적신고를 했고 안받아주자 대법원까지 찾아가 항의한 아버지의 경우가 그것이다.「박차고 나온노미 새미나」「박박차고 나온놈이 옹달샘」같은 이름을 지은 부모도 있다.측간(변소)에서 낳았대서 측간이,심술이 궂대서 심술이,오래 살라는 뜻을 담은 개똥(개동)이와는 다른 작명심리라고 하겠다. 이런 이름들을 말하면서 생각나는 것이 김시양(김시량)의 「부계기문」에 보이는 이공린의 아들들 이름이다.그가 혼인하던날 밤 꿈에 늙은이 8명이 나타나 절하면서 삶아지게된 자기들 목숨을 살려주면 은혜를 갚겠노라고 말한다.놀라 깨어 알아봤더니 자라 여덟마리를 요리하려 하고 있었다.한마리는 잘못하여 죽고 나머지 일곱마리를 강물에 놓아보냈다.꿈에 일곱 늙은이가 나와 감사하다고 했다.그후 그가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이 대체로 자라와 관계된다.귀(구거북구)·오(오자라오)·별(별자라별)·타(타악어타)·경(경생선뼈경)·곤(곤곤이곤)·원(원자라원)이 그들이다.모두 재명이 높았다. 「악마」가 아니더라도 가령 조지서(조지서:연산군때 문신)같은 이름은 출석 부르는 오늘날에는 발음상으로 듣기 거북한데가 있다.자식 이름이 사회통념에서 벗어난 부모취향 따라 지어져선 안되겠다.뜻과 소리를 살피면서 나중에 고치는 일 없게 지을 일이다.
  • 2월의 문화인물/황희 선생/조선시대 명재상으로 청백리 사표

    ◎생애·업적 재조명 기념행사 잇달아 문화체육부는 2월의 문화인물로 조선시대 명재상인 황희선생을 선정했다. 문체부는 바람직한 공직자상 정립의 일환으로 2월을 「황희의 달」로 정해 청백리의 사표인 황희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한편 위국애민의 정신을 재조명하므로 오늘의 교훈으로 삼기위해 민족사 바로찾기 국민회의,한국문화예술진흥원등 관련단체와 함께 학술대회,백일장,기념도서발간등 다양한 기념행사를 개최하기로 했다. 황희선생은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일생을 청렴한 생활로 일관하며 백성을 위해 바른 국정을 펴므로 나라의 기틀을 굳건히 다져 세종시대의 황금기를 이룬 청백이이다. 황희선생은 온화하고 도량이 넓은 성품으로 백성으로 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특히 검소하고 청렴한 공직자세는 오늘날에도 공직자의 영원한 귀감이 되고 있다. 황희의 달인 2월 한달동안 펼쳐질 주요행사는 다음과 같다. ▲종합학술대회=16일,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 ▲방촌사상 학술 강연회=23∼25일,파주군청 회의실. ▲황희의 생애와 사상 강연회=19일,국립중앙박물관 회의실. ▲청백리 황희정승 토론회=25일,전북 한약협회 회의실. ▲황희 청빈사상 강연회=18일,옥구문화원. ▲방촌선생 유덕추앙 글짓기 공모전=1∼19일,파주문화원. ▲황희선생 관련도서 전시회=1∼28일,국립중앙도서관 로비. ▲책자발간=「황희선생의 사상과 얼」,경기도 주관,2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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