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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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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 세상]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난지원금 기부한 입주민

    [따뜻한 세상]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난지원금 기부한 입주민

    서울의 한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과 미화원들을 위해 써 달라며 정부로부터 받은 긴급재난지원금 전액을 기부한 사연이 알려져 훈훈함을 전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10시30분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입주민 한 명이 찾아와 10만원짜리 선불카드 10장과 ‘잘 전달해주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메모가 든 쇼핑백을 건네고 조용히 떠났다. 관리사무소 박정희(59) 소장은 21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본인이 받은 재난지원금으로 상품권을 만들었으니, 경비원과 미화원 분들에게 하나씩 나눠드리라고 말씀하셨다”며 “직접 전달해드리면 어떻겠냐고 여쭤봤는데, 대신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가셨다”고 설명했다. 익명의 입주민이 전달한 따뜻한 마음은 해당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6명과 미화원 5명에게 전달됐다.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뜻밖의 선물을 받은 그들은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박 소장은 “저희 아파트 근무하는 경비원과 미화원 한 분 한 분께 나눠드렸는데, 다들 너무 좋아하고, 감사하게 여기셨다”며 “미화반장께서는 본인도 받았으니, 또 누군가에게 베풀어야지 않겠냐며 관리사무소 직원들을 위해 과일 한 상자를 사서 선물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박 소장은 “요즘 경비원 폭행사건 같은 안 좋은 일들이 많은데, 이렇게 따뜻한 분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며 “저도 이분을 본받아서 좋은 일을 해야 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따뜻한 세상] 2300만원 보이스피싱 피해 막은 새내기 경찰관

    [따뜻한 세상] 2300만원 보이스피싱 피해 막은 새내기 경찰관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로 2300만원을 잃을 뻔한 20대 남성이 경찰의 도움으로 피해를 모면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달 8일 오후 경남 김해중부경찰서 연지지구대로 20대 남성 A씨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던 A씨는 “제가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 같다”라고 적은 메모를 경찰관에게 건네며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A씨는 대포통장 명의 도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범의 전화를 받고, 그들이 지정해준 계좌로 두 번에 걸쳐 2300만원을 송금한 상태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김유진(27, 여) 순경은 침착하게 A씨와 메모를 주고받으며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김 순경은 지난해 9월 경찰관으로 임용된 새내기 경찰관이다. 김유진 순경은 19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남성에게 금전적 거래가 있었냐고 물었더니, 두 차례에 걸쳐 2300만원을 입금했다고 답했다. 당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좌 지급정지를 요청하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순경은 “피해자와 종이에 글을 쓰면서 소통하는 사이에 상황근무를 서던 동료 경찰관이 은행에 전화를 걸어 지급정지를 요청했고, 다행히 돈을 모두 회수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끝으로 김 순경은 “요즘에는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피싱 문자나 어르신들에게 냉장고나 세탁기를 구매했다는 문자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어디든 돈을 먼저 요구하진 않는다”며 “섣불리 돈을 입금하지 말고, 의심스러운 전화나 문자를 받으면, 112로 신고하거나 가까운 지구대 또는 경찰서를 방문해 상담을 받아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자칫 2300만원을 날릴 뻔한 보이스피싱 피해자 곁에서 침착하고 신속한 대처로 금융피해를 막은 김 순경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경찰관들도 함께 노력해 막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따뜻한 세상] 도로 위 어미 잃은 새끼 오리 떼, 시민·경찰에 구조

    [따뜻한 세상] 도로 위 어미 잃은 새끼 오리 떼, 시민·경찰에 구조

    어미를 잃은 새끼 오리들이 시민과 경찰관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조됐다. 충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충북 청주시 오창읍 주성리의 한 도로에서 112순찰차 거점근무 중이던 청원경찰서 오창지구대 소속 최정섭(35) 경사와 염선돈(30) 경장 눈앞에 갑자기 속도를 줄이며 멈춘 차량 한 대가 들어왔다. 도로 한가운데에 멈춰선 차량에서는 여성 한 명이 내렸다. 다급하게 도로 위를 뛰던 여성은 순찰차를 보자 즉시 도움의 손짓을 보냈다. 사고라고 판단한 경찰관들은 곧바로 차선을 통제하고, 상황파악에 나섰다. 다행히 사고는 아니었다. 새끼 오리 4마리가 도로 위를 위태롭게 걸어가고 있던 것. 이를 발견한 운전자가 오리들을 피하면서 급히 차를 세운 뒤, 오리 구조 요청을 한 것이다. 이에 경찰관들은 도로 위를 뛰어다니며 새끼 오리들과 씨름했고, 10여 분 만에 4마리 모두 무사히 구조해 지구대로 옮겼다. 최정섭 경사는 14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어미 오리가 먼저 가서 새끼들이 낙오된 상태였다. 야생동물센터에 여쭤보니 어미 오리의 경우 새끼들이 낙오되면 그대로 버려두고 가는데, 어미가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끼들을 박스에 담아서 처음 발견했던 장소 인근에서 2시간 정도 기다려 봤지만, 어미는 오지 않았다. 구조한 새끼 오리들은 야생동물보호소에 인계했다”고 설명했다.이어 최 순경은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오리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오리를 구해달라고 말씀하신 여성분에게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당시 구조된 새끼 오리들은 흰뺨검둥오리로, 현재 충북야생동물보호소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이곳 임옥주 수의사는 “4마리 중 1마리는 안타깝게 죽었으며, 나머지 3마리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고 전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5.18 살아남은 자의 아픔’, 40년 만에 작품으로 고백한 김근태 화백

    ‘5.18 살아남은 자의 아픔’, 40년 만에 작품으로 고백한 김근태 화백

    오롯이 40년이 걸렸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 미술학도의 신분으로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야만 했던 김근태(63)화백. 눈앞에 쓰러져있던 많은 시체들과 쌓여진 총들, 저항에 참여해 달라는 주위의 외침을 뒤로한 채, 도청을 떠난 순간부터 시작된 정신적 충격과 기억의 쓰라린 아픔은 40년의 긴 시간을 그와 함께 했다. “전일빌딩 옆에 제가 있었어요. 헬리콥터 나는 소리도 들었고 총소리도 들었고 유리창 깨지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한 젊은 청년은 머리 쪽에 총을 맞은 거 같았어요. 피가 온전히 다 흘려서 하얗게 변해 있는 모습이 어마어마한 충격이었죠.” 기억을 도려내기 위해 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4번의 극단적 선택, 학생들을 더 이상 가르칠 수 없다는 죄책감으로 교단에서 떠나야만 했다. 방황하던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은 지적장애인들이었고 그들의 모습과 영혼을 30년간 화폭에 담아왔다. 이달 13일부터 내달 21일까지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 5관에서 5·18 민주화운동 이후 40년간 그가 직접 경험한 트라우마를 담은 작품을 화폭에 담아 선보인다. ‘오월, 별이 된 들꽃‘이란 이름으로. “40년 만에 여기 와서 보니 5월의 생생했던 모습이 떠올라요. 전두환이 지시를 내려서 죽은 영혼들을 태워 흔적을 없애려 했다는 것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토우 천 개와 한지 천 개를 만들어서 광주의 아픔을 담았고, 한(恨)의 노래도 들을 수 있어요. 이곳에 마음껏 오셔서 그날의 현장을 느끼면서 아픔을 넘어 치유가 되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 8일 전남 무안 옛 죽산분교 작업실에서 김근태 화백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Q) 장애인만을 그린 지 30여 년, 왜 지적장애인만을 그리는지4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아파 학교도 가지 못했고 늘 외롭게 지냈다. 누나와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한참 뛰어놀 나이에 다른 아이들과 달리 왜 죽는지 사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며 꼬마 철학자가 됐다. (Q) 장애인들을 그릴 때 5.18 민주화운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화백님께 5.18이란대학교 2학년 때 당시 23살 청년이었다. 총을 들고 마지막까지 옛 전남도청 정문을 지키는 사태수습 시민군이었다. 길거리에 아줌마의 배에서 터져 나온 피와 창자, 많은 시체들, 쌓여진 총들. 저항에 참여해 달라는 외침 등이 기억난다. 도청이 계엄군에 장악됐다는 소식을 들은 가족들의 애원에 도청 담을 넘었다. 죽음이란 최후의 시간을 앞두고 시시각각 조여 오는 극한의 긴장과 두려움, 그 터질 듯한 공포로부터의 본능적인 탈출이었다. 이후 나만 살아남았다는 자괴감은 모든 걸 마비시켰다. 무시로 일어나는 일탈로 교단에서 퇴직하게 됐고 신혼 중에 4번의 극단적인 시도까지 했다. 아내조차도 오랫동안 그 아픔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오월로부터 살아남은 내 젊은 날의 일그러진 초상이었다.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은 또한 내 인생의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지적장애인을 만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Q) 가장 낮은 자를 예술작품으로 담는 일이 5.18 정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는데단지 나 자신만을 생각했고 위했다면 5.18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돈을 생각해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면 가장 낮은 자의 모델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인간의 본질로 살려고 했던 그런 정신 상태에서 기초했던 거 같다. (Q) 어떻게 눈과 청력을 잃게 됐는지이후 한국을 떠나 프랑스, 인도 등에서 방랑자처럼 살았다. 옥죄어 오는 맨 정신의 고통을 털어보려고 술에 의존한 채 살았다. 결국 음주운전을 하다 담벽을 덮쳐 한쪽 눈의 망막이 크게 다쳤고 눈의 시신경과 연결된 청력이 손상된 거 같다. (Q) 폐인처럼 지내던 삶 속에 지적장애인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됐는데광부가 금맥을 찾은 느낌이었다. 목포 앞바다 작은 섬 고하도 목포공생재활원에서 누워 대소변을 타인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는, 자신의 손으로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지적장애인들을 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뒤틀린 자세로 모여 있는 그들의 모습은 오월 기억 속 주검들과 다를 바 없었고 내적 고통으로 헝클어진 내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됐다. 우연찮게 접하게 된 강렬했던 그 모습들은 나 자신의 피폐해진 현재의 삶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자각하게 만들면서 트라우마의 구덩이로부터 벗어나 자아회복과 치유로 나아가는 전환의 계기가 됐다.(Q) UN본부에 전시됐던 100미터짜리 ‘들꽃처럼, 별들처럼’의 의미는지적장애인을 그린 작품들로 2012년 7월부터 3년여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100호 캔버스 77개를 이어 붙였다. 두 가지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 사람들로 하여금 지적장애인이 오히려 인간의 순수 본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존귀한 존재라는 점과 그곳에 전시돼 있던 그림 속의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떠나는 소풍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 외에도 베를린 장벽전시회, 리우패럴림픽 기념 전시회 등 많은 곳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생각해 보니 그런 모든 과정들 또한 광주의 아픔에 대한 보이지 않는 치유과정 아니었나 생각한다. (Q) 장애인들의 사실적인 모습에서 점차 상징성이 담긴 그림으로 변화되었는데상징과 암시가 더해지다면서 형상이 점차 생략되더니 최근에는 아예 비정형의 추상 화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주제나 주인공들은 그대로다. 외적 형상 위주에서 차츰 내면세계와 본질로 향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조형적 변화일 수 있지만, 시력과 청력의 감각장애에 따른 불가피한 표현방식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양쪽 청력을 잃은 데다, 화가로서는 치명적이게도 나머지 한쪽 눈마저 시력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 하지만 절대 절망하지 않는다. 세상의 언어로는 한계가 있는 지적장애아들과의 소통에서 현상 너머 그들 영혼과 우주자연의 존재들과의 영적 교감에 더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Q) 40년 만에 작품으로 다시 찾게 된 옛 전남도청,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이곳에서 전시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5.18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픔이 치유된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지 70장을 샀다. 한지에 붉은 채색으로 그려 오월정신을 핏빛으로 담고 싶었다. 당시의 생생한 상황을 담은 한 작품 ‘오월빛’을 그렸다. 다시 옛 생각이 살아나는 현장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그림을 그리고 나서 더 이상 화폭에 손을 댈 수 없었다. 결국 5.18의 아픔을 그리는 대신 영혼을 위로하고 회복되는 예술작품을 그려야겠다는 마음으로 토우 1천 인, 1천 인의 한지조형 작품, 지적장애인을 그린 4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기쁨으로 돌아온 국립아시아문화전당(옛 전남도청) 전시는 내 역사에서 영원히 남을 거 같다. 눈과 귀가 안 좋아지면서 하나님과의 영적 교감에 더 의지한 거 같다. 그로 인해 작품에 몰입하는 정신력은 더 강해졌고 지적장애인들의 마음을 더 공감할 수 있었다.(Q) 토우 1천 인은 어떤 분들인가5.18 민주화운동 참여자, 사상사, 행불자, 살아남는 자들을 상징하고 있다. 토우 제작 과정 중 떨어지고 상한 토우와 완성된 토우들이 아픔과 상처의 벽을 넘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군상은 슬픔을 넘어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한지로 만든 1천 인도 물론 5.18의 아픔을 담아낸 작품이다.(Q) 내면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면가장 큰 원동력은 종교의 힘이었다. 새벽기도를 통해 큰 믿음을 얻게 됐다.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될 수 있었고 지혜와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지적장애인을 그리면서 순수한 에너지를 받았고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과 전시를 하면서 도와주신 주위의 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 칭찬 또한 큰 힘이 되었다.(Q) 지난해 장애어린이들의 화가에 대한 꿈을 심어주는 김근태미술상 공모전을 제정하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이 있다면지난해 장애어린이들의 화가에 대한 꿈을 심어주는 김근태미술상 공모전을 제정했다. 자칫 김근태를 드러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지인의 조언을 귀담아듣고 있다. 발달장애 작가들 그림과 글을 엮어주는 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 올해 처음 제1호 책이 나왔다. 또한 그림에만 머물지 않고 뮤지컬, 영화로 가치미학을 더 확장하고 싶다. 더 큰 꿈은 세계 발달장애 작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가칭 ‘미술페럴림픽’같은 국제 대회가 설립돼 발달장애 작가들의 꿈과 열정이 표현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길 소망한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기자 sungho@seoul.co.kr 임승범(인턴)
  • [따뜻한 세상] 코로나 의료봉사로 받은 수당 전액 기부한 전직 간호사

    [따뜻한 세상] 코로나 의료봉사로 받은 수당 전액 기부한 전직 간호사

    한 간호사가 대구에서 코로나19 의료 봉사활동을 통해 받은 수당 전부를 후배들과 동료의료진을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따뜻한 사연의 주인공은 전직 간호사 김진선씨. 지난 3월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은 김씨는 한걸음에 대구로 달려갔고, 3월 11일부터 4월 1일까지, 22일 간 경증확진환자 진료소인 삼성생명연구소에서 의료지원업무를 담당했다. “대구에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주저 없이 대구 확진환자 간호파트에 지원했어요. 3월 10일 삼성생명연구소 발령 소식을 듣고, 다음날 KTX를 타고 대구로 내려가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어요.”김씨는 최근 의료봉사를 통해 받은 수당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을 위해 써 달라”며 모교인 호서대학교에 100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또 수당 일부는 의료현장에서 고생하는 동료를 위해 쓰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영업자가 많이 어렵다 보니, 아르바이트를 못하는 학생들이 늘어서 장학금을 기부하게 됐어요. 나머지는 아직도 현장에서 고생하는 간호사 분들을 위해 간식을 기부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김씨는 아직도 현장에 남아 있는 동료를 생각하면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가 끝날 때까지 남아 있겠다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먼저 떠나온 게 늘 미안하다. 힘든 시기를 잘 견뎌준 동료들에게 고맙다는 말, 정말 멋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해 3월 25일까지 고려대 구로병원 혈액종양내과 암 병동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간호사를 위한 기업 드림널스 공동대표로, 후배들을 위한 교육콘텐츠 제작 사업을 하고 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Focus人] 걸그룹 환상 벗어던지고 ‘여자 싸이’로 탈바꿈한, 차세대 트로트 가수 설하윤

    [Focus人] 걸그룹 환상 벗어던지고 ‘여자 싸이’로 탈바꿈한, 차세대 트로트 가수 설하윤

    “모든 가사가 속담으로 이뤄진 ‘속담파티’라는 신곡 녹음이 다 끝난 상태예요. 원래 3월쯤에 나올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선보이지 못하고 있어 너무 아쉬워요. 모든 분들이 힘들고 지치실텐데 힘내시고 하루빨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돼서 찾아뵙고 싶어요.” 장윤정, 홍진영을 잇는 차세대 여성 트로트 가수로 평가받고 있는 설하윤씨(28). 2015년 12월 한 음악 방송프로그램에서 ‘불멸의 연습생 S양’이란 이름으로 출연해 출중한 노래와 춤으로 화제를 모았고 그를 눈여겨본 소속사들로부터 많은 걸그룹 제의가 들어왔다. 아이돌의 꿈을 위해 12년간 외롭고 힘든 자신만의 싸움을 묵묵히 견뎌낸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트로트 가수의 길을 택했다. 왜일까? “내가 다시 아이돌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두려웠어요. 어느날 소속사 대표님께서 ‘트로트 가수 한 번 해보면 어떨까’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건 다 똑같은데, 제가 단지 걸그룹이란 거에 매료돼 있었던 거 같아요. 공연 다니면서 사람들의 눈을 직접 보고 노래하면서 위로를 해드리는 게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에요”라며 트로트 가수가 된 걸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부대에서도 교주급 지위를 누리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여자 싸이’라고 말할 정도로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단지 공연을 하러 온 것이 아닌 군인들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고 놀러 왔다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한다. 공연 중 흥을 돋우기 위해 군단장께 가는 도중 군인들이 만들어 낸 ‘모세의 기적’을 체험했다는 그는 ‘역시 현역 군인들이 최고죠’라며 군부대 공연을 갈 때마다 늘 좋은 기운을 얻어 온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그곳을 다시 찾아가고 싶다는 그를 지난달 24일 본사 스튜디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Q) 데뷔 4년 차다. 인기 실감하는지아직까지는 크게 실감을 못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사태로 좀 어려운 시기라 사람들 접촉을 많이 못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듣는 얘기들엔 조금 인기가 있다고, ‘핫’ 하다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방송에서도 많이 찾아주셔서 고정예능도 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저를 ‘리액션 요정’이라고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Q) 본인 인생이 이렇게 될 줄 예상했는지12년이라는 긴 연습생 끝에 이렇게 데뷔를 했는데 트로트 가수가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고 더군다나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할 줄은 더욱 생각 못했었던 거 같아요. 지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공연하고 행사하는 게 너무나 행복해요. 사람들에게 위로도 드리지만 저 또한 위로를 받아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 ‘박수, 함성~’ 하면서 외칠 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거 같아요. (Q) 가수를 꿈꾸게 된 계기는초등학교 5학년 친척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 준 적이 있어요. 그때 영화 타이타닉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을 불렀는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게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 그 당시 노래를 부르는데 소름이 돋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정말 멋진 일이구나’란 생각에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Q) 트로트 가수로 데뷔한 걸 후회하지 않는지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너목보’(너의 목소리가 보여)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죠. 엄마, 이모도 방송을 보러 오셨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제가 실력자로 나와서 이슈가 됐어요. 이후에 발라드 가수, 걸그룹 가수 등 제의가 많이 들어왔었는데 다시 아이돌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너무 두려웠어요. 그런데 그때 대표님께서 트로트 한 번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을 해주신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왜 트로트를 하냐고 친구들과 부모님도 의아해했죠.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는 게 다 똑같을 뿐인데, 단지 걸그룹에 매료돼 있었던 거 같아요. 아이돌은 ‘안녕하세요. 누구입니다’ 이렇게 예쁘게 딱 하고 더 이상 말을 못하잖아요. 저는 말을 너무하고 싶었거든요. 공연을 많이 다니면서 사람들의 눈을 직접 보면서 노래를 불러 드리고 위로를 해드리고 정말 매력적인 직업인 거 같아요. (Q) ‘신고할꺼야’ 첫 트롯 공식 데뷔 떨리진 않았는지긴장과 떨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안 떨리는 거예요. 그냥 너무 행복했어요. 무대에 서는 순간 그냥 신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의 신나는 모습이 카메라에 너무 비쳐서 조금 릴랙스 하라고 대표님께서 말할 정도였으니깐요.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 모습에 카메라 감독님들께도 신인 같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Q) 예능에서도 남다른 두각을 보이고 있는데정말 경험이 무시를 못한다고 예능이 정말 저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그냥 편하게 리액션을 하는 건데 너무 좋다고 칭찬을 해주시니깐 감사하죠. 저는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리액션이 나오니깐 피디님들 언제든 불러주세요. (Q) 콧구멍밖에 안 보인다는 악플에도 꿋꿋...‘너목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밑에서 카메라를 찍기 때문에 코밖에 안 보인다는 댓글이 있는 거예요. 악플이라고 생각하면 악플일 수도 있는데 ‘콧구멍 큰 걸 잘 살리면 개인기로 만들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어서 오십원 넣었는데 들어가고 백원 넣었는데 들어가고 오백원 넣었는데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이홍렬 선배님 다음으로 콧구멍 개인기를 만들었죠. (Q) 장윤정, 홍진영을 잇는 차세대 트로트 여신과분한 거 같아요 아직까지는. 장윤정 선배님이 젊은 친구들이 트로트를 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 주셨고 트로트 가수가 예능도 하고 노래도 하고 다 하네 이런 매력을 보여주신 게 홍진영 선배님이시기 때문에 제가 그 뒤를 잘 이어받으면 좋겠어요.(Q) 최초 여성 트롯가수 맥심 표지모델군인들의 최애 잡지 표지를 두 번이나 ‘아, 군통령 등극했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했죠. 여사친 콘셉트로 진행할 때, 좀 과하다고 생각한 의상을 주시더라고요. 제가 여사친 콘셉트가 맞는지 여쭤봤는데, 돌아온 답은 ‘예, 여사친 콘셉트입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Q) 군대에서 교주급 인기, 자신만의 ‘군대 콘셉트’많이 갈 땐 한 달에 13군데를 갔더라고요. 이틀에 한 번 꼴로. 군부대를 가면 좋은 기운을 많이 받는데 저도 뭔가 위로를 더 드릴 게 없을까라고 늘 생각해요. 그래서 특별한 이벤트를 자꾸 만들어요. 군인들한테 무대로 올라오게 해서 제 찐팬(진짜 팬)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군단장님이랑 와이프 분이랑 셋이서 함께 블루스를 추고 놀아요. 군인들에겐 ‘나는 너희들과 스트레스를 같이 풀러 왔다, 놀러 왔다’란 마음을 갖죠. 예쁜 척 콘셉트보다는 제가 조금 더 스트레스를 풀어줄 만한 여자 싸이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Q) 속옷 매장에서 매니저 제안받을 정도의 남다른 ‘장사 수완’속옷 알바를 하다가 제가 너무 잘 파니깐 매니저 할 생각 없냐고 점장님께서 직접 물어보시는 거예요. 일단 손님께서 좋아하시는 취향에 대해 조심스럽게 여쭤보고 치수도 직접 재드리고 해요. 남자친구가 있는지도 물어보죠. 그 유무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이 달라지거든요. 그런 걸 잘한 거 같아요. (Q) 꿈을 위한 기간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혼자서 많이 연습했던 거 같아요. 두 걸음만 옮기면 끝나는 좁은 방 안에서 계속 연습했죠. 제 목소리를 들으면서 많이 연구를 했고 다른 가수들이 어떻게 노래하는지도 많이 관찰한 거 같아요. 물론 외롭고 힘들었죠. 만약에 부모님이 안 계셨더라면 저도 굉장히 많이 힘들었을 거 같았는데 그 사랑이 저를 버티게끔 했었고 꿈을 그만큼 사랑했고 절실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죠. (Q) 이상형은듬직했으면 좋겠고, 묵묵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남자 품에 폭 안길 수 있는 키 큰 사람이면 좋겠고요. 그리고 제 성격이 너무 밝기 때문에 저를 부드럽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성격이라면 더 좋겠어요. (Q) 반려동물을 ‘푸딩’을 키우고 있는데반려동물 키우는 걸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진짜 많은 힘이 되고 가족과도 같은 존재예요. 바쁘고 힘든 생활 속에서 집에 들어가면 항상 반겨주는 게 반려동물이거든요. 그 행복감을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꼭 키우시길 권장합니다.(Q) <나는 트로트 가수다>를 통해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했는데너무너무 행복했어요. 영광스러웠고. 좋은 조언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조항조 선배님은 ‘하윤아 너는 어쩌면 그렇게 그림 같애’ 그러면서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셨고요. 제가 돌아가신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나요. 인터뷰하다가 할머니 얘기가 나와서 중단된 적도 있었거든요. 왕중왕전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5라운드 2차 경연에서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주현미 선배님의 ‘신사동 그 사람’을 준비했죠. 근데 이덕화 선배님께서 할머니께 바치는 노래라며 소개해 주시는데 뒤에서 그 소리를 듣고 미치겠더라고요. 결국 감정조절에 실패해 뜻밖의 실수를 했죠. 이덕화 선배님께서 그렇게 말씀 안 하셨어도 제가 더 끝까지 잘 부를 수 있었던 거 같은데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원망은 전혀 없어요. (Q) 계획과 꿈SNS를 통해 혼자 노래 연습하는 것도 보여 드리고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팬들과 소통을 많이 하고 있어요. 지치신 여러분들한테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신곡도 준비하고 있어서 곧 소개할 예정이고요.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게 꿈이에요. 항상 트롯가수로 활동을 많이 하고 싶고 지방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분들께 위로를 드리고 싶어요.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기자 sungho@seoul.co.kr 임승범(인턴), 장민주(인턴)
  • [그들의 시선] 목탁 장인 김종성씨의 60년…불평보단 인내를

    [그들의 시선] 목탁 장인 김종성씨의 60년…불평보단 인내를

    “이제는 목탁을 못 놓지. 내 생명 끝날 때까지 해야 되는 거지…” 60여 년간 목탁(木鐸)을 만든 김종성(74)씨는 “남은 생도 이 일에 바치고 싶다”고 했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있는 시대, 그는 몇 곱절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전통방식의 수작업을 고집했고, 자신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기계로는 목탁을 대량 생산하겠지만, 수작업으로 만든 목탁 고유의 소리를 내지 못한다”며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목탁과 함께 한 김씨의 인생을 듣기 위해 지난 22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용암리 하개금마을에 있는 그의 작업 공간을 찾았다.김씨의 스승은 그의 선친(김사용씨, 1977년 사망)이다. 전국 방방곡곡 사찰을 돌며 목탁행상을 하던 그의 선친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접 목탁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궁핍한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김씨는 아버지와 동행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13살에 선택한 길이었다. “그때 초등학교도 못했어요. 학교도 못했지… 그러니까 취직 같은 건 엄두도 못 내고, 먹고 살길이 없으니 이걸 배워야 되겠다 싶어서, 2대째 배워서 목탁 만드는 일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고생이라는 것은 말도 못하지요. 절 같은 데 목탁 한 개 가져가서, 보리쌀 한 되, 두 되 얻어서 연명을 해 나온 기라.”기술을 익히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포기하기도 여러 번. 그는 “몇 번 안 하려고 했다”며 “목탁 만드는 일을 시작할 때, 아무리 해도 원하는 소리가 안 나오더라. 겉을 다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속을 파내서 소리를 내는 건 아무나 할 수가 없다. 껍데기가 아무리 좋아 봐야 소리가 안 나면 다 필요 없다”며 소리의 중요성을 터득하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보냈음을 밝혔다. 삼 년 반. 목탁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먼저 물푸레나무 뿌리를 캐내 습기 많은 논에 3년간 묻어 나무의 진을 뺀다. 굵은 소금과 함께 가마솥에 넣고 삶은 후 그늘에 석 달 건조하면 목탁 재료가 된다. 그 재료를 손도끼, 자귀, 곱칼 등을 이용해 다듬어 형태를 만든다. 그 위에 숯검정을 칠하고 들기름을 7번 덧칠하면 그제야 온전한 하나의 목탁이 완성된다.그렇게 완성한 목탁에 그는 ‘성공(成空)’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성철 스님이 ‘이루고 공을 들인 목탁’이라는 의미로 그에게 성공이라는 법명을 지어줬다. 오래전 그는 “목탁을 들고 해인사에 있는 성철스님을 찾았다. 스님이 한 번 치시더니, ‘김 처사 밥값도 못한다’고 하더라. 이후 매번 꾸중을 들으면서도 몇 년을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이 ‘됐다’고 하시면서 성공이라는 낙관 두 자를 주셨다”고 말했다. 목탁을 완성한 뒤, 잘 만들었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그는 단박에 “소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당같이 갇힌 공간에서 목탁을 두드리면 그 울림이 다르다. 소리 울림이 십리 까지 간다”며 “마음에 들지 않은 목탁은 바로 불구덩이 속으로 던져서 태워버린다”고 덧붙였다.평생 목탁만 만든 그는, 5남매 가운데 목탁 일을 배우던 둘째 아들을 2012년 심장마비로 먼저 보냈다. 그보다 앞선 2000년에는 군에 간 막내아들이 전역 석 달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오랜 시간 그의 곁에서 목탁 만드는 일을 돕던 친동생도 2011년 고인이 됐다. “내 사는 게 말도 못합니다. 군대 간 막내아들 하나 잃었지, 목탁 만든다던 아들도 죽고 없지, 제 동생도 세상 저버리고 없고… 소중한 세 사람을 갑자기 잃은 기라…” 최근에는 김씨의 24살 된 손자가 먼저 떠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할아버지 곁에 있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처음에는 못하게 말렸다. 아이를 봐서라도 대학까지는 마쳤으면 했는데, 끝내 목탁 만드는 일을 해보겠다는 고집을 꺾지 못했다”며 “지금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곧 내려와서 목탁 만드는 일을 한다고 했다”며 손자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손자가 대를 잇는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가난이 대물림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예불용 중에 최고 품질은 35만원이다”며 “한 달에 두세 개, 1년에 서른 개를 못 만든다. 그러니 현상 유지가 안 된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사실 빚만 남았다”며 손자가 추후 겪게 될 빈곤을 걱정했다. 그럼에도 불평보단 희망을 말하는 김씨. 그는 목탁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증조부,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4대째 목탁 만드는 일을 해보겠다는 손자 때문에 버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불심 때문인지 목탁 만들 때만큼은 정말 행복하다. 손자의 행복을 빌며 함께 이 길을 잘 가보려 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은 낡고 오래된 그의 작업공간만큼이나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김씨. ‘불평보다 인내를’ 택한 그는, 환하게 웃을 날을 기약하며 오늘도 묵묵히 목탁을 만들고 있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기자 gophk@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64회] “기억 안 난다”는 前고위 법관…변호인들 “검찰 조서 증거로 못 써”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64회] “기억 안 난다”는 前고위 법관…변호인들 “검찰 조서 증거로 못 써”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세부 내용은 기억을 못합니다.” 반복되는 답변에 결국 변호인들은 검찰의 신문조서가 증거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한다는 증인의 법정 진술과 달리 검찰 조서에는 증인이 단정적인 문장으로 답변을 한 것처럼 적혀있다는 이유에서다.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의 63회 재판에서는 지난 17일에 이어 두 번째로 증인으로 나온 한승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에 대한 반대신문이 이어졌다. 전주지방법원장을 지내다 지난 2일 퇴직한 한 전 실장은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재상고심 과정에서 참고인 의견서 제출제도를 도입해 외교부의 의견이 대법원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 의혹과 대법원이 헌법재판소보다 우월한 위상을 갖도록 헌재가 심리 중인 사건에 개입하도록 한 의혹 등에 연관돼 있다. ●“기억 안 나지만…”, “검찰 조사 땐 추측으로…” 구체적 답변 피해 지난 17일 검찰의 주신문 과정에서도 잇따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을 계속했던 한 전 실장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 측 변호인들은 검찰 조서에서의 한 전 실장의 답변이 법정 증언과 차이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 전 대법원장이나 박 전 대법관이 여러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관여했는지에 대해선 부인하는 취지의 답변을 끌어냈다. 2014년 2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을 지낸 한 전 실장은 2015년 4월 8일 남부지법의 한정위헌 취지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을 법원행정처가 취소하도록 개입한 혐의에도 관련돼 있다. 당시 남부지법 민사합의11부(부장 염기창)는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에 대해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법률심판을 헌재에 내기로 결정했다. 한정위헌은 특정한 방향으로 법원이 해석하는 경우에 한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는 헌재의 결정이다. 법률 자체의 위헌성이 아닌 법률을 해석하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이례적으로 꼽힌다. 특히 당시 사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헌재보다 강화시키려 했던 대법원으로서 일선 재판부의 한정위헌 취지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큰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검찰의 지적이다. 한 전 실장과 일한 문성호 전 사법정책심의관은 지난해 10월 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2015년 4월 10일 남부지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을 상부에도 보고했고, 이 내용이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한 전 실장은 문 전 심의관에게 “그냥 (문 전 심의관을) 도와준다는 취지에서 ‘일단 (상부에) 보고는 해야한다, 단독으로 보고 끝낼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그는 “법원 스스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에 상부에 보고하고 일이 진행돼야 하고, 상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안이 있는지 등 대책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있으니, 검토가 필요하다는 절차 안내를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증인이나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접수된 사실을 보고했는가” 묻는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의 질문에는 “제 소관이 아니라 따로 보고 안 했다”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 ‘위헌심판제청’ 직권 취소시킨 행정처… “내 소관 아니라 몰라” 그 해 4월 12일자 ‘한정위헌 취지 위헌제청결정 확인 및 향후 대책(대외비)’ 문건을 문 전 심의관이 작성해 이 전 상임위원에 보고했는데, 이 문건에는 ‘이 사건 제청결정이 헌재에 그대로 알려질 경우 헌재의 한정위헌 정당성 논거로 이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헌재 뿐만 아니라 법원 내부에서도 해당 결정문을 열람할 수 없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 ‘해결방안으로 직권취소, 경정, 방기가 있는데 이론적으로 무리가 있으나 흔적이 남지 않는 직권취소 후 재결정 방안이 적절’, ‘재판부가 본건 재결정을 함에 있어 법원행정처와 협의했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등의 방안이 담겼다. 그러나 한 전 실장은 “실장회의에서는 그런 논의를 안 했을 것 같다”고 했고, 문건에 담긴 여러 방안들이 실제로 논의됐는지 세부적인 내용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문 전 심의관이 작성한 보고서를 읽고 향후 대책대로 처리될 거라고 생각했냐”는 변호인 질문에도 “제 소관 업무가 아니라 깊이 생각을 안 했을 것”이라면서 “다만 문 판사가 행정처에 온 지 얼마 안 돼 저한테 참고로 보고한 것으로 보이고, 보고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제가 보고 표현 같은 것을 수정해주거나 이 정도 의견을 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증인은 검찰 조사에서 ‘직권취소할지, 경정 결정할지는 대법원장의 최종 결심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나오는데 그런 말을 했습니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 “그런 취지로 말한 것 같지 않습니다.” (한 전 실장) “그럼 이 진술은 어떻게 나온 것입니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 “(이 전 상임위원의) 메일을 보면 ‘대법원장 보고사항’이라고 써있고 문 판사가 보낸 것도 ‘내일 대법원장 보고할 것’이라고 돼있어 대법원장께 보고되지 않았을까 추측했습니다.” (한 전 실장) “대법원장이 이 사건과 관련해 정책을 결정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 “특별히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 (한 전 실장) “실제 대법원장에게 보고됐는지 여부를 알고 있습니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 “모릅니다.” (한 전 실장) ●변호인들 “한승 검찰조서 실제 진술과 달라…증거능력 없다” 주장 증인신문은 대체로 비슷한 모양새로 이어졌다. 한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에 대해 자신의 추측이거나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난 뒤 “그랬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말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 조서와 자신의 생각에 일부 취지 등의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조사에서 위헌심판제청 결정을 직권취소하고 다시 결정하도록 한 이유에 대해 “대법원장의 위상을 높이고 더 많은 권한을 갖기 위한 조직이기주의인가” 물은 검찰의 질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답변한 부분에 대해서도 한 전 실장은 이날 “내 생각이 아닌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거듭 검찰 조서의 내용과 법정 증언의 무게가 달라지자 변호인들은 한 전 실장의 검찰 조서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어 서류증거 조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3회 진술조서만 서증조사를 하고 1·4·5회 진술조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한승 증인의 증언에 따르면 증인에 대해 작성된 진술조서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증인이 진술한 내용과 달리 기재돼 있다는 것”이라면서 “한승 증인의 증언에 따르면 조서에 있는 내용 중 객관적인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 사실관계를 제외하고 나머지 이 사건 쟁점과 관련된 진술 기재 부분은 다 증거능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조사 과정에서 한 전 실장이 조서를 열람하고 수정도 할 수 있었다며 조서에는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증인신문 말미에 한 전 실장에게 “문답 다 마친 뒤에 열람을 해서 확인하셨고, 검사가 질문하고 증인이 답변하면 검사가 정리해서 답변한 다음 읽어서 정리하고 증인이 이런 취지로 답변한 것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지 않느냐”고도 물었다. 또 “수정이 필요한 사항을 연필로 기재해주시거나 필요한 수정의견을 주시는 과정에서 검사가 수정을 거부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있었는가”도 물었다. 한 전 실장은 “없었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한 전 실장의 조서를 증거로 채택할지 곧바로 결정하지 못했다. 대신 변호인들에게 검찰 조서에서 한 전 실장의 진술과 다르게 작성된 부분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서 내달라고 요청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신문은 전직 대법원장이 법정에 피고인으로 선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2019년 5월 29일부터 매주 최소 두 차례 이상 열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을 지면 제약에서 벗어난 온라인을 통해 글로 생생하게 중계합니다.
  • 서울대공원, 시베리아호랑이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다

    서울대공원, 시베리아호랑이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다

    서울대공원이 자연사한 시베리아호랑이의 박제 과정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박제된 호랑이는 2018년 12월과 2016년 10월 각각 자연사한 ‘코아’와 ‘한울이’로, 1년여 간의 제작 끝에 두 마리가 눈밭을 뛰는 역동적인 모습을 재현했다. 서울대공원에서 만드는 박제는, 동물원에서 자연사한 동물들로 멸종위기종이거나 희귀종이다. 이번 시베리아호랑이 박제는 11년 경력의 서울대공원 소속 윤지나 박제사가 담당했다. 윤 박제사는 지난 20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2019년 3월부터 시작해 2020년 3월에 작업이 끝났다”며 “근무 특성상 호랑이 박제에만 매달릴 수 없기에 오래 걸린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윤 박제사는 “시베리아호랑이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사진과 영상자료를 찾아보던 중 눈밭을 뛰는 호랑이를 발견했다. 그 모습이 임팩트 있게 다가왔다”며 “무엇보다 눈밭을 뛰어다니는 호랑이의 생태적 환경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작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제 작업은 가죽손질부터 마네킹 제작 등 여러 공정을 거친다. 먼저 냉동 보관된 동물을 해동한 후 복부를 절개해 가죽을 벗기고 살점을 제거한다. 부패를 막기 위해 가죽은 약품 처리한 후 개체 치수에 맞게 제작한 마네킹에 씌운다. 이후 눈, 코, 입 등 세부적인 표현을 하고 봉합한다. 완성된 박제는 몇 주간 건조과정을 거친 뒤, 마지막으로 색을 덧칠하면 마무리된다.이번 박제는 시베리아호랑이의 종 특성을 살리기 위해 두 발만으로 땅에 지탱한 모습으로 구현됐다. 이에 윤 박제사는 “호랑이가 한 발, 혹은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기 때문에 무게 중심을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뼈대작업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시베리아호랑이 박제는 윤지나 박제사와 동료 임동섭 박제사가 함께 한 프로젝트다. 이에 윤 박제사는 “좋은 작품이 완성되어 만족스럽다. 매 작품을 만들 때마다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도전”이라며 “더 정교한 실력을 인정받아 세계박제대회에서 수상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팽목항에 설치된 ‘사랑‘ 조형물

    팽목항에 설치된 ‘사랑‘ 조형물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아 사고 희생자 304명을 기리는 작품이 팽목항에 설치됐다. 설치미술가 이효열(33) 작가와 태슬남(33) 디자이너는 세월호 참사 6주기를 일주일 앞둔 지난 14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분향소가 있던 자리 인근 선착장에 ‘사랑’이라는 작품을 설치했다. 작품은 높이 2m50cm의 철제 구조물 두 개에 각각 포맥스 소재로 제작한 ‘사랑’이라는 글자를 붙였다. 두 글자 사이는 종이테이프로 연결했고, 그 위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일일이 손으로 적었다.이 작가는 16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말고, 더욱 선명히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며 “잊지 말고 사랑과 관심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그들의 시선]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행복한 구두수선공 김병록씨

    [그들의 시선]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행복한 구두수선공 김병록씨

    “구두수선집을 운영하는 행복한 사람, 김병록입니다” 구두수선공 김병록(61)씨는 스스로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인터뷰 내내 ‘행복’을 강조한 그는 “내가 행복해야 남들도 행복할 수 있다. 그래서 나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씨가 말하는 행복의 의미와 그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그의 구두수선집을 찾았다. 김씨는 11살 때부터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인 그는 어머니가 재혼한 뒤 계부의 폭력과 괴롭힘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견디다 못한 김씨는 결국 어린 나이에 가출을 결심했다. 그의 나이 9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집을 나와 길거리 노숙을 전전하던 소년 김군은 생계를 위해 구두 닦는 일을 선택했다.“계부의 시달림을 피해 집에서 도망쳤습니다. 길거리 노숙생활을 하던 중 어떤 형의 도움으로 구두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구두)통을 메고 다니며 구두 닦는 일 밖에 할 수 없었지요.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가난과 부모님의 그리움을 품고 살았습니다.” 생계와 씨름하면서도 그는 야학을 다니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그 시절 따뜻한 위로를 많이 받았다. 낮에는 구두를 닦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했다. 힘들었을 텐데도 누나와 형 같은 대학생들이 꾸준히 공부를 가르쳐줬다”며 “그분들 덕분에 글을 배웠다.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김씨가 보낸 바로 이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그가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되었다. “그분들에게 받은 도움을 언젠가 보답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어요. 진짜 어려운 분들, 나를 필요로 하는 분들의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그때부터 내 형편에 따라, 내 힘이 닿는 데까지 (봉사활동을)한 거예요.”그렇게 김씨는 긴 시간 다양한 방법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1996년부터 헌 구두를 수선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줬고, 헌 우산을 수리해 버스 정류장에 비치함으로써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이발 기술을 배워 요양원이나 장애인시설 등을 방문해 이발 봉사를 하고 있다. 2010년부터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등에서 뒤차 돈 내주기, ‘행복 릴레이’ 캠페인 등을 하고 있다. “봉사를 하는 원동력은 간단합니다. 내가 행복해지기 때문이에요. (봉사를) 할수록 행복합니다. 그 순간이 바로 행복입니다. 또 이발을 해드리고 나올 때면, 사우나를 끝내고 나올 때, 몸이 개운한 것처럼 마음이 상쾌하고 개운합니다. 봉사하는 전날에는 설레기도 해요.” 김씨는 최근 통 큰 기부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달 23일 코로나로 아픔을 겪는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7억여원의 땅(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임야 1만평, 시가 5억~7억원)을 파주시에 기증했다. 자신의 노후를 생각해 마련한 땅이었다. 그는 “나라가 위급한 상황인데 내 땅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라가 위기일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행복하다. 집사람도 잘했다고 해서 마음이 편하다”고 밝혔다.김씨는 최근 큰딸을 출가시켰다. 현재는 아내와 작은딸, 다운증후군을 앓는 1급 지적장애인 아들과 행신동의 2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는 자식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건 물질의 풍요로움이 아닌 마음의 풍요로움이라고 강조하며, “어린 아이들과 함께 봉사를 다녔다. 마음과 정신을 물려받았으면 한다. 그게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아이들이 어릴 때 구두 닦는 아빠를 부끄럽게 생각해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그의 일을 점점 특별하게 이해했고, 가장 큰 힘을 주고 있다. 그는 “큰딸 같은 경우, 면접에서 ‘구두 닦는 일을 하면서 멋진 일을 하고 계신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고 했다. 매우 행복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끝으로 김씨에게 가족과 넓은 평수의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고 물었다. 간명하게 “아니”라고 답한 그는, “사람의 욕망과 욕심은 끝이 없다. 수백 평, 수천 평을 가진 사람도 더 가지고 싶은 마음일 것 같다. 나는 지금 행복하고, 현재 상황에 만족한다”며 “앞으로 이웃사랑 실천을 꾸준히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기자 gophk@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61회] “실행했으면 웃음거리 됐을 것” 헌재 무력화 ‘비상적 대처방안’ 적극 부인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61회] “실행했으면 웃음거리 됐을 것” 헌재 무력화 ‘비상적 대처방안’ 적극 부인

    “그걸 추진했으면 웃음거리가 됐을 겁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헌법재판소의 위상을 약화시키기 위한 이른바 ‘비상적 대처 방안’은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단순한 아이디어를 모은 보고서였다고 당시 행정처 고위 간부들이 거듭 주장했다. 실제로 실행된 내용도 없다는 강조가 이어졌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60회 재판에서는 네 번째로 증인으로 나온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 대한 고 전 대법관 측의 반대신문이 진행됐다. 박 전 대법관에 이어 2016년 2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고 전 대법관은 이 전 상임위원을 통해 헌재에서 심리 중인 사건의 진행 상황이나 추진 중인 정책 관련 내용 등 내부 정보를 보고받고 헌법재판소장을 비판하는 대필 기사를 내보내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규진 전 양형실장 네 번째 증인신문… “헌재 비상적 대처방안 문건, 실현가능성 없어” 두 차례 재판에 걸쳐 이뤄졌던 박 전 대법관 측 반대신문을 이날 오전 마치고 고 전 대법관 측의 반대신문이 시작됐다. 변호인은 2015년 10월 1일자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지원실에서 작성한 ‘헌재 관련 비상적 대처방안(대외비)’ 문건을 언급했다.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업무방해 사건에 대해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를 확인한 뒤 만들어진 이 문건에는 ‘헌재 역량을 약화시키고 노골적 비하전략을 세워 헌재의 위상을 하락시키면 헌재의 결정에 대한 권위가 하락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방안들이 담겼다. 특히 헌재를 비판하는 내용의 광고를 하거나 헌재소장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활용하는 방안, 대법관보다 ‘급이 낮은’ 지방법원 부장판사급을 헌법재판관으로 앉히거나 헌법재판관 출신을 다시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핫뉴스]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8회] “헌재가 불쾌했던 대법원장, 비상대처 방안 지시” “증인은 이 법정에서 문건에 ‘대외비’를 표시하는 기준에 대해 ‘정해진 기준은 없고 꺼림칙하거나 제3자가 안 봤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있는 것에 붙였다’고 했는데, 대외비가 표시된 문건을 작성자 기준에서 보더라도 실현가능성을 전제하지 않고 (아이디어를) 가감없이 기재한 차원의 보고서라 과격하거나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있는 문건으로 보이는데 어떻습니까?” (고 전 대법관 측 변호인) “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작성한 보고서는 문성호 전 사법정책심의관이 작성한 보고서를 불러와서 덧씌우기를 한 것이라 거의 대외비가 표시돼 있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 “구체적, 현실적 방안을 검토해서 작성을 지시한 것은 아니죠?” (고 전 대법관 측 변호인) “그걸 지시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도 방안이 없으니 행정처 사법정책실에서 얘기한 내용과 저하고 얘기한 내용을 그냥 주욱 정리해 본 것입니다.” (이 전 상임위원)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이어 문건 속 구체적인 방안들을 언급하며 문건 속 내용들은 단순히 비현실적인 아이디어까지 모두 모아놓았을 뿐이고, 실제로 추진된 적도 없다는 점을 이 전 상임위원을 통해 역설했다. “보고서 내용 중 ‘만 40세 간신히 넘긴 법관 (헌법재판관으로) 지명’ 이런 내용도 터무니없어 보이는데 어떤가요?” (고 전 대법관 측 변호인) “그래서 제가 ‘어느 심의관이 이런 생각을 했냐’고 웃으며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 전 상임위원) “헌재소장의 좋지 않은 소문을 이용한다는 것도 실제로 논의된 적이 없죠?” (고 전 대법관 측 변호인) “없습니다. 소문 내용을 알고 있는데 저와 문 심의관 둘 사이 오간 것을 그냥 적어둔 것입니다.” (이 전 상임위원) 이 전 상임위원은 2015년 10월자 보고서에서 실현가능성이 있는 방안들을 추려서 다시 정리를 해보기로 한 뒤 그해 11월 9일자 보고서가 다시 작성됐는데, 이 문건에서도 실행된 방안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2015년 10월 말과 11월 초는 업무방해 사건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이 가시화되는 얘기들이 많이 나와 당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 차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위기감이 굉장히 컸다”면서 “비상적 대처방안을 한 번 검토해보라고 한 것으로 이해했고 한정위헌 결정과 관련해 어떤 방안이 있을지 답답하니까 (정리를) 지시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저 보고서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를 비판하는 광고를 게재하는 등의 방안에 대해서는 “실제 추진하면 웃음거리가 됐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문건에서 실제로 이뤄진 방안은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장에게 보고되는 보고서에 실현가능성이 없는 방안들이 올라와서 놀랐다”, “한정위헌 결정과 관련해 법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취지로 작성된 보고서라면 헌재를 방해한 게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증언도 이어졌다. “행정처 보고서라는 것이 헌법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고 저희들끼리 아이디어 차원에서 공유하는 보고서도 상당수 있다”는 강조도 더해졌다.헌재에 파견된 법관인 최희준 부장판사를 통해 헌재 내부 정보를 확인한 데 대해 고 전 대법관 측도 ‘사법신뢰’를 이유로 들었다. 지난 3일 박 전 대법관 측 변호인도 법원과 헌재의 판단이 엇갈리면 겪게 될 국민들의 혼선을 막기 위해 헌재의 내부 상황을 확인하고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고 전 대법관의 변호인은 이날 “(국민들의) 갈등 해소 및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법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헌재와 교류, 협력하려고 했던 것을 증인은 알고 있는가“ 물었고 이 전 상임위원도 “그렇다”고 답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지난 재판에서 파견 법관이 헌재의 동향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하는 것이 오랜 관행이라고도 말했다. “대법원장과 전임 처장이 (과거부터 해온) 전통적으로 허용된 수집 범위를 벗어나서 무리하게, 또는 많이 헌재 내부의 정보를 수집하라고 했거나 그 밖에 다른 지시를 할 동기나 달라진 사정이 있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변호인 질문에 이 전 상임위원은 “위법한 지시를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헌재 내부 정보 수집은 관행…위법 부당한 ‘윗선’ 지시도 없었다” 헌법재판관들의 평의 내용 및 결과가 법원행정처로 보고된 것을 두고도 고 전 대법관 측은 이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평의 결과를 보고하지 않을 수 없었고, 처장도 정보 수집을 하지 말라거나 (정보 수집에) 불법적 방법을 동원하라는 지시도 없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끌어냈다. 그러면서 “피고인(고 전 대법관)이나 심지어 증인이 없어도 그런 정보 수집 활동이 행정처가 파견 법관을 통해 관행상 해오던 정보들의 수준 범위를 초과했다고 인식하지 않아 정보수집을 중단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다는 것이지, 부적절하거나 위법한 부분을 알고도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느냐”고 확인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이렇게 설명하며 계속해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네. 그래서 제가 검찰 조사 때도 검사님께 ‘파견 공무원이 그 기관에서 진행하는 내용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더니 검사님이 ‘헌법재판연구관 보고서는 좀 부적절하지 않느냐’고 해서 ‘그건 좀 부적절하다. 그것에 대해선 제가 징계를 받았다’고 했고, 검찰에서도 파견기관이 그렇게 하는 것은 맞지만 이렇게 이메일로 다 남긴다는 것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메일로 한 것은 잘못된 게 맞다고 답변한 적이 있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그들의 시선] 신천지에 빠진 아내를 기다리는 남자

    [그들의 시선] 신천지에 빠진 아내를 기다리는 남자

    “저는 아내가 신천지에 빠졌고요. 그것으로 인해 아내가 (저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이혼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가정파괴가 됐다고 봅니다.” 신천지에 빠진 아내로 인해 겪은 일들을 A씨(60)는 이렇게 정리했다. 그의 아내는 2009년 신천지에 빠졌다. 이후 복음방과 센터과정을 거쳐 2010년 신천지에 입교했다. 이 사실을 A씨가 눈치 챈 건 2011년이었다. “아내는 저와 결혼하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성가대 활동도 열심히 하고, 교회 활동을 굉장히 열심히 했습니다. 아마 성가대에 어떤 권사님이 신천지 추수꾼으로 암약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분이 저희 아내를 타깃으로 삼아서 포섭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A씨의 아내는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A씨는 “아내가 갑자기 교회와 목사님 설교 말씀에 대해 비판했고, 교회를 옮겨보자고 제안했다”면서 “어느 날 말씀을 잘 전하는 목사님이 계신다며 (가족을) 데려간 곳이 신천지 위장 교회였다”고 설명했다. A씨는 “가족과 매주 예배를 갔다. 한 10개월 정도 다녔는데, 그때까지 눈치를 못 챘다”며 “전통 교회처럼 간판도 똑같이 꾸며놓고, 예배 방식도 똑같이 진행됐다. 10개월 동안이나 구별 못 했으니 완벽하게 속였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아내와 함께 위장교회의 교육관에서 성경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던 중 그곳이 신천지 위장교회라는 것을 눈치 챈 건 우연한 기회였다고 밝혔다. 그는 “집 근처 공원 벤치에서 누군가 나눠주는 전단을 받았다”며 “깜짝 놀랐다. 그 전단 내용이 교회에서 배운 것과 일치했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이상해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그동안 위장교회에서 배웠던 내용이 신천지의 교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아내가 신천지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모든 자료와 증거를 아내에게 보여주니 화를 내더라. 그때부터 싸움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아내가 신천지에 빠진 것을 알게 된 A씨는 분노와 당혹감, 배신감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가장 힘들었던 건, 제일 믿었던 아내가 가족을 속였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아내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여러 방법으로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빌어보기도 하고, 윽박질러도 봤어요. 그러면서 많이 싸웠죠. 싸우는 과정에 경찰도 몇 번 집으로 왔습니다. 제가 아내를 폭행했거나 그런 게 전혀 없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신천지)매뉴얼에 있는 대로 아내가 행동했던 것이었어요.” A씨는 아내로부터 고소를 당했고, 벌금형을 선고받아 전과자가 되어버렸다. 이제 그는 이 모든 것이 신천지 매뉴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만약 남편 성격이 급하면, 그런 걸 이용해서 슬슬 약을 올려 (일부러)싸움을 일으키는 방법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예를 들면, 새벽같이 나가서 밤 12시나 새벽 1시에 들어온다면, 남편으로서는 당연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런 걸로 시비를 걸고 트집을 잡아 싸움을 일으킨다”며 “특히 조금이라도 언성이 높아지면, 경찰을 부른다. 이 모든 것은 이혼 소송을 진행할 때, 진단서라든가 경찰에 신고한 기록 같은 내용을 한꺼번에 첨부하는 토대가 된다”고 매뉴얼에 대해 부연했다. 그렇게 6년간의 긴 싸움 끝에 A씨는 2017년 아내와 이혼에 합의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내가 언젠가는 돌아올 것을 믿는다”며 “신천지 핵심교리 중에 육체영생이 있는데, 이것은 이만희 교주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존재로 믿는 것”이라고 밝혔다. “(가족들이)아내에게 ‘교주가 죽으면 돌아올 것이냐?’라고 물었더니, ‘교주가 죽으면, 신천지는 사기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때는 당연히 돌아올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때까지는 아내를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A씨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2011년도부터 신천지 피해가족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가족 중에 누군가 신천지에 빠진 사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침착하게 대처하라”고 조언했다. “배우자가 신천지에 빠진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색하지 말고 먼저 전문 상담소를 방문해 상담을 받으세요. 억지로 설득하려고 하거나 신천지를 공격하는 말을 하면, 되레 싸움을 하게 되고 이혼까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문상담사를 통해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피해가족의 절실함과 같은 마음으로 조언한 A씨는, “저희 같은 직접적인 피해자들이 봤을 때, (신천지는)사이비이며, 범죄집단, 가정파괴집단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재 신천지 신도 수가 23만에서 30만 명이라고 하는데, 4인 가족으로 따지면, 100만이 넘는다. 대한민국에 100만 명이 신천지에 빠진 피해자 가족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저희는 반드시 이만희가 죽는다고 보기에, 아마 (그가)죽게 되면 많은 사람이 신천지가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곳에서 나올 것 같다. 그때까지 신천지의 불법성을 공론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김민지 기자 gophk@seoul.co.kr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8회] “헌재가 불쾌했던 대법원장, 비상대처 방안 지시”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8회] “헌재가 불쾌했던 대법원장, 비상대처 방안 지시”

    “그래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격노했다’는 말을 들었습니까?”, “격노까진 아니고 불쾌하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반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불쾌함’을 느낀 뒤 법관들을 통해 헌재에 대한 ‘비상대처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고 당시 사법부 핵심 고위관계자가 증언했다. 다만 아이디어 차원에서 여러 방안들을 정리하도록 했을 뿐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선을 그었다.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의 57회 재판에는 이 재판의 핵심 증인 가운데 한 명인 이규진(58·사법연수원 18기)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나왔다. 공소사실에 연관된 내용이 워낙 많아 강형주·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 전 상임위원에 대해서는 여러 날에 걸쳐 증인신문이 이뤄져야 한다고 재판부가 예고한 바 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이날부터 앞으로 네 차례 이상 더 재판에 나올 예정이다. 이날 재판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공소사실 가운데 헌재에 대한 위상 강화를 위해 법원행정처가 헌재 내부 정보를 빼내거나 관련 재판에 개입하려 한 의혹들이 주로 언급됐다. 통합진보당 의원들 및 서기호 전 의원의 행정소송에 개입하려 한 혐의, 정운호 게이트 당시 법원의 대응 과정에서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도 거론됐다. 2015년 7월, 이 전 상임위원은 문성호 당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 심의관에게 ‘헌재 관련 비상적 대처 방안 검토’ 문건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지난해 10월 16일 36회 공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문 판사는 “(대법)원장님 지시사항이라는 말과 함께 여러 방안을 불러주셨다”고 말했다. ▶[핫뉴스]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37회]노골적인 헌재 견제·무력화 검토···문건 쓴 판사 “크게 후회” 이 전 상임위원은 “기억은 나지 않는데 일정 파일에 기재된 것을 보고 추정한 것이 대법원장께서 2015년 7월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비상적 상황에 대비해 검토해 보라’는 취지로 말씀하셨다”고 설명했다. 이 전 상임위원의 그해 7월 13일자 업무일지에는 ‘大(대법원장). 헌재의 적극적 시기 도래. 우리도 적극적 대처 필요. 합리적 대처수단 아닌 비상적 극단적 대처 방안. 시간 얼마 안 남았음’이라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 전 상임위원은 문 판사와 함께 석 달 가까이 검토 보고서를 작성한 뒤 그해 10월 1일 대외비 문건을 완성해 보고했다. 보고서에는 ‘헌재 역량을 약화시키고 노골적 비하전략을 세워 헌재의 위상을 하락시키면 헌재의 결정에 대한 권위가 하락될 것으로 예상’, ‘좋지 않은 소문 활용’, ‘통진당 행정소송 재판 적절히 활용’ 등의 내용이 담겼다. ●“‘비상적 대처 방안’ 아이디어 차원에서 짜낸 것…실현 의도 없었다” 이와 관련 이 전 상임위원은 “저 보고서 작성은 기본적으로는 저하고 문 심의관하고 둘이서 여러 이야기를 해왔던 것인데 거의 대부분은 행정처 사법정책실에서 아이디어를 짜낸 것”이라면서 “제가 첨언하고 싶은 것은 저것은 대법원장께서 비상적 상황으로 가정해서 검토해 보라는 것이라 실행 가능한 방안이 없고 그저 아이디어 차원에서 비상적 방안을 검토하라고 해서 짜낸 것이지, 저걸 무슨 정책적으로 실현 의도를 갖고 작성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양 전 대법원장이 ‘비상적 대처’를 주문한 결정적인 계기는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조 업무방해 사건으로 꼽힌다. 현대차 전주공장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이 2010년 3월 정리해고를 이유로 정식 쟁의절차 없이 잔업과 휴일특근을 거부해 사업장에 약 3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업무방해죄로 기소돼 2012년 7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그러자 노조 간부들은 형법상 업무방해죄 규정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에서 한정위헌 결정을 한다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반하는 판단이 되고, 대버?의 위상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우려를 했다는 것이다. 한정위헌은 법률 자체의 효력이 아닌 법의 해석에 대한 위헌을 판단하는 것으로 헌재가 이 사건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하면 대법원이 판단을 잘못했다고 지적하는 모양새가 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2015년 4월 헌재에 파견된 법관 등을 통해 이 전 상임위원이 다수의 헌재 재판관들이 한정위헌 의견을 갖고 있다는 평의 결과를 보고하자 양 전 대법원장이 ‘격노’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 전 상임위원은 또 “5~6월쯤 교대역에 헌법재판소 광고판이 설치됐다는 사실을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했다”며 “당시 행정처 회의에서도 안국역에 헌재에 대한 비난 광고를 게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 소리도 나왔다”며 당시 고위 간부들의 헌재에 대한 반감을 전하기도 했다. ●“통진당 행정소송 문건, 재판부엔 전달하지 말라고 했다” 헌재에서 통진당 해산을 결정한 뒤 통진당 의원들이 낸 의원직 지위확인 소송에 개입한 혐의와 관련해서 이 전 상임위원은 앞선 증인들과는 다른 증언을 내놨다. 지난해 11월 6일 42회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조한창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015년 5월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 전 상임위원과 점심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 전 상임위원에게 서류봉투를 하나 받았다고 했다.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문건으로, 해당 재판부가 헌재의 결정과 연관된 이 사건을 각하 판결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조 부장판사는 이 전 상임위원이 이 문건을 서울행정법원 재판부에도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걸 어떻게 재판부에 주느냐”고 반발하자 “그럼 잘 읽어본 뒤 법리를 전달해 주면 어떻겠느냐”고 이 전 상임위원이 말했다고도 했다. ▶[핫뉴스]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43회] “재판부에 법리 전달 좀…” 동기법관의 ‘찜찜한 요청’ 거절못한 이유는 그런데 이 전 상임위원은 이날 “저는 문건을 주면서 ‘이걸로 공부를 좀 해주고, 재판부에 이러한 법리도 있다는 걸 간단하게 얘기를 해주면 좋겠다. 그런데 문건은 전달하지 말라는 게 기획조정실장(임 전 차장)의 지시’라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조 부장판사의 법정 증언을 확인한 뒤 다시 조 부장판사와 통화하며 “문건은 주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고 말했다고도 한다. 임 전 차장이 문건을 재판부에 전달하진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그 이유를 묻자 “왜냐고 묻진 않았지만 문건을 주는 게 적절치 않았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라면서 “그래서 명확히 기억했기 때문에 재판부에 문건을 전달하지 말라고 했다”고 답했다. 이처럼 행정처가 수립한 판단의 방향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것에 대해선 “조금 무리는 되지만 (재판부가) 법리적으로 그런 생각을 미처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법리가 있다는 정도는 알려줘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 부장판사는 당시 재판장이었던 반정우 부장판사에게 행정처의 입장을 전달했지만, 부정적인 반응을 감지했고 이 역시 행정처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전 상임위원은 “(전해들은 반 부장판사의 반응을) 대법원장께는 보고하지 않았고 법원행정처 차장과 기조실장에겐 했다. 처장께는 보고했는지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고 했고, 양 전 대법원장이 누구를 통해서든 전달을 받았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이날 법정에서는 양승태 사법부에서의 블랙리스트 등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뒤 총선에 출마한 이수진 전 부장판사도 거명됐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행정처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을 접촉할 당시 2015년 4월 이수진 전 부장판사(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서 전 의원과의 “다리를 놔달라”고 해 함께 만났다는 게 이 전 상임위원의 설명이다.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상고법원에 반대 입장인) 서기호·서영교 의원을 접촉하라는 말씀이 있으셨던 것 같고, 제가 서기호 의원을 만난 적은 없지만 인권법연구회와 관련돼 있어 제일 말하기 편하다고 해서 제가 만난 것”이라면서 “이수진 연구관에게 ‘서기호 판사를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상고법원 관련해 도움이 필요한데 다리를 좀 놔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 전 상임위원은 서 전 의원과의 대담 내용을 담은 파일을 작성해 이 전 부장판사에게 보내 내용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메일 내용에 따르면 서 전 의원은 이 전 상임위원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법원의 노력과 입장을 이해하지만 상고법원이 최선의 방안은 아니다”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이 전 부장판사 측은 28일 “상고법원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인권법위원회 초기 활동을 같이 한 선배가 만남을 조율해 달라는 것까지는 거절할 수 없어 서기호 전 의원에게 이규진 전 상임위원의 면담 신청 목적을 알렸다”고 설명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김수찬 “트로트 맛깔나게 부르는 법? 3가지만 지키세요”

    김수찬 “트로트 맛깔나게 부르는 법? 3가지만 지키세요”

    최근 방송계에 트로트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미스터트롯’에서 넘치는 끼와 가창력으로 사랑받은 김수찬(26)이 트로트 잘 부르는 비법을 공개했다. 그는 트로트를 맛깔나게 부르는 핵심 요소로 절제미와 흥, 강약 조절을 꼽았다. 그는 “트로트를 발라드처럼 부르시는 분들도 계신데, 트로트는 끊어줄 때 끊어주고 뺄 때 확실히 빼주면 트로트의 맛이 산다”면서 “길게 끌지 말고, 흥이 넘치게 부르는 것이 트로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못 불러도 화끈하게 부르는 자신감”이라고 덧붙였다.특히 님진, 송대관, 김연자, 주현미 등 트로트 가수들의 특징을 그대로 잡아낸 ‘성대모사 신동’으로도 화제를 모은 그는 “선배님들의 공연 모니터링을 자주 하는데, 선배님들마다 마이크 잡는 법부터 무대 매너가 각각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은 공연장에서 김연자 선배님의 와이파이 창법을 따라했다가 소리가 제대로 안나 음향 감독님이 당황했던 적도 있다”고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김수찬은 기라성같은 대선배들이 포진한 트로트계에서 인사성 밝고 예의바른 후배로 통한다. 그는 선배들의 사랑을 받는 비결에 대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신곡 홍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대기실, 공연장, 라디오 녹화장 입장과 동시에 선배님들의 신곡을 부르면서 입장하곤 하는데, 히트곡은 워낙 익숙하지만 덜 알려진 신곡을 연습해서 불러드리면 다들 좋아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선배님들과 눈이 마주치면 맥락없이 장소를 불문하고 노래를 불러드리는게 나만의 비결”이라면서 “현숙 선배님이 춤까지 춰 주시면서 가장 잘 받아주시는 편”이라고 말했다. 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영상 문성호·김형우·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가족을 파괴하는 존재죠”, 신천지 피해 부모의 절규

    “가족을 파괴하는 존재죠”, 신천지 피해 부모의 절규

    “안 나서고 싶었어요. 지금은 시위를 멈추고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라 아이가 어떤 거에라도 자극받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신천지에 대해서 많이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곳까지 오게 됐습니다.”  지난 20일 10년 전 신천지에 빠진 막내딸을 둔 한 부부를 서울신문 스튜디오로 모셨다. 인터뷰에 응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텐데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에, ‘신천지에 대해서 알려야 한다’는 생각 하나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며 오히려 따뜻한 미소를 건네었다. 부부는 “자녀와의 단절이라는 걸 안 겪어본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죠. 그냥 살아온 인생이 다 허무하니깐요. 그래도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신천지의 반사회성, 해악성 등이 많이 알려져서 다행이고 저희 딸과 같은 아이들이 신천지로부터 보호를 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이 말은 꼭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같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신천지 피해가족분들에게 “언젠가는 가정으로 반드시 돌아올 거니깐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인내하세요”라며 “신천지 피해 가족들끼리 서로 만나기만 해도 가슴으로 그 아픔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 부부도 지금까지 많은 위로를 받았죠. 집에만 있으면 죽습니다. 정말로” 다음은 부부와의 일문일답.(Q) 딸이 신천지에 빠진 걸 어떻게 알게 됐는지(남편) 막내딸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인데 대학입시 준비를 안 하더라.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신천지에 올인했던 거 같다. 결국 5년 전, 신천지에 빠진 걸 가족에게 들켰다. 이후 본 적도 없고 연락도 안 된다. 올해 서른 살이 됐다. 딸 하나 잃어버린 셈이다. (Q) 직접 보고 느낀 신천지를 간단히 정의한다면(남편) 좀비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 사람이 전도돼 끝나는 게 아니다. 전도된 사람이 바이러스처럼 균을 가지고 있다가 음지에 숨어서 다른 사람에게 또다시 퍼뜨리는 좀비 같은 존재다. / (아내) 가정을 파괴하는 악마 같은 집단이기도 하다. (Q) 딸을 되찾느라 생계도 어려웠을 텐데(남편)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지금은 낮에는 일상생활과 대인관계도 잘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밤에는 집에 들어가 저나 아내나 둘 만의 자리가 됐을 때는 이게 사는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 (아내) 딸을 잃어버리고 나서 남편이 뇌하수체 종양을 받았다. 저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아내이기도 하다. 이 둘을 하나로 뭉텅거려서 살아야 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다. 만일 제가 시위조차 하지 않았다면 머리에 핀을 꼽고 미쳤을 거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나마 신천지를 향해 소리도 지르고 신천지에 대해 알릴 수 있었기 때문에 살아올 수 있었던 거 같다. (Q) 신천지에 빠진 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남편) 5년을 속고 살은 셈이다. 생활도 감쪽같이 해왔기 때문에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아이가 모태부터 교회를 다녔고 주일학교, 학생부, 청년부까지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엔 성가대와 교사까지 섬겼다. 어느 날엔 교리에 맞지 않는 엉뚱한 얘기를 물어보고 했다. “아담 이전에 사람이 있었냐”고. 그 당시엔 그 얘기가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신천지 교리더라. 신천지 교리를 공부하고 있었던 거다. 구정 때 아내가 딸 방을 청소하는데 못 보던 노트를 발견했는데 일반 교회에서 안 쓰는 용어가 나왔다. 딸이 ‘구역 식구들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구역이란 말을 알리가 없었기 때문에 이상한 사이비 교단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바로 신천지를 생각했다. / (아내) 그날 아이 방을 뒤져보니깐 자료가 많이 나왔다. 공부한 자료, 아이들 관리한 자료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지방에서까지 활동한 내역들까지. 남편에게 얘기했고 신천지란 걸 알게 됐다. 당시엔 솔직히 신천지가 뭔지 몰랐다. 노트 위에 ‘신 몇 기’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이게 뭐지’라고만 생각했다. 그게 신천지란 걸 알게 되면서 너무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Q) 딸을 건져내기 위한 힘겨웠던 싸움...(남편) 신천지라는 집단이 암처럼 조직이 죽지 않고 다른 정상세포를 공격하는 괴물 같은 집단이라 생각해‘아이를 속히 건져내야 되겠다’고 맘을 먹었다. 누구보다 딸을 잘 알고 있었기에 ‘부모가 얘기하면 오겠지’란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신천지엔 섭외부라는, 경찰 같은 조직이 있는데 그곳에서 시키는 대로만 한다. 딸이 섭외부에서 하는 말만 듣지 부모 말은 절대로 듣지 않았다. / (아내) 추석 때 딸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딸이 추울까봐 옷 가져가라는 말을 했다. 딸은 우리 부부가 주일에 교회 간 틈에 와서 신발까지 다 챙겨갖고 사라졌다. ‘많이 사랑합니다’, ‘오빠 생일 때 케이크 사서 보낼 게요’라고 편지를 써서 남겨 놓고. 정말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나갔다. (Q) 상담 후, 회심한 딸이 다시 신천지로(남편) 저희가 이단상담소에서 상담하는 과정에서 딸은 신천지에서‘14만 4천 명이 2~3년 이내면 완성된다’고 늘 말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지가 벌써 몇 년인데 아직도 안 이뤄지고 맨날 똑같은 소리만 해서 그만 나가고 싶다고 했다. 딸아이가 그런 마음을 먹은 어느 날 형사한테 전화가 왔다. 신천지 쪽에서 ‘앞으로 자기(제 딸) 신상에 어떤 이상이 있을 경우엔 부모형제 건 누구 건 간에 제가(딸이) 저의 신변을 위탁한 이 사람(신천지)의 말만 들어주시고 이 사람의 의사대로 행해 주세요’라는 신변보호요청서의 내용을 근거로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경찰서에 와서 행패까지 부리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할 건지 말해 달라는 취지였다. 그 말을 듣고 저희 딸이 자진해서 풀겠다고 직접 경찰서에 갔다. 하지만 신천지 쪽에서 스타렉스 두 대를 타고 근처에 사는 다른 신천지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아이를 데려갔다. 합법적인 납치인 셈이다. 경찰도 ‘딸이 직접 마음을 돌이켜 부모를 보겠습니다’라고 말하기 전까진 딸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우린 딸에 대한 아무런 권리가 없는 셈이었다. (Q) 신천지 신앙을 위협받으면 ‘가족을 떠나라’모든 사람들에 대해 자기들의 정체를 숨기고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인다는 것이 우선 큰 문제다. 그곳에서 교육을 받고 그 곳 사람들로부터 세뇌를 받으면 사고구조가 바뀌는 거 같다. 신천지 밖에 있는 사람들은 부모라 할지라도 원수, 마귀라고 인식하게 만들고 부모를 정상적인 통로는 여기지 않는다. ‘저 사람들은 속여야 될 대상이다’이렇게만 생각한다. 제가 위급할 때, 꼭 필요할 때 쓰라고 신용카드도 줬는데 그거 갖고 다니면서 신천지 활동을 한 거다. / (아내) 신천지는 제일 먼저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게 ‘부모를 속여라’라고 가르친다. 부모를 속이면서도 그게 정말 잘못된 거라는 걸 모를 정도로 뇌에 아무것도 없는 걸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저희 딸을 보면서 더욱 가슴이 아팠다. (Q) 깊게 빠지면 빠질수록 나오기 힘든 이유는(남편) 우선 교리가 있다. 교회나 사회에서 시키는 교육보다 더 철저하게 시켜 그게 머리에 박히도록 만든다. 또한 그 속에서 엮여진 여러 인간관계들 때문에 신천지를 나가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난 그 얘 하곤 둘도 없는 사이였고, 외롭고 힘들 때마다 그 얘가 나한테 제일 힘을 많이 줬는데...’, 이런 것들이 신천지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Q) 코로나19 사태 여파 속에 딸의 건강도 궁금할 텐데(아내) 알 수가 없다. 교인명단 확보됐다고 해서 혹시라도 이름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해서 서울시를 가고 싶을 정도였다. / (남편) 이번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그동안 해왔던 것들이 헛된 일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청원도 많이 했고 청와대 앞에서 시위도 했다. 지나가면서 ‘자식 하나 제대로 못 지키면서, 자식 찾는다고 여기 와서 그렇게 소란을 피우냐’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때 했던 일들이 다 쌓여있기에 정부에서도 언론에서도 가정 파괴하는 신천지 집단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주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한다. (Q) 딸에 대한 기약 없는 기다림(아내) 그냥 집에 돌아오기만 했으면 좋겠다. 만날 수만 있으면 좋다.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그냥 안아 줄 거 같다. 요새는 아이들이 마스크를 다 쓰고 다니는데, 딸이 제 옆을 스쳐 지나가도 몰라보는 건 아닌가하는 마음이 든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서 신천지에 대해 많이 알려져서 좋기도 하지만 반대로 밑으로 숨어 버리는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된다. / (남편) 자녀와의 단절이라는 걸 안 겪어 본 사람들은 알 수 없다. 그냥 살아온 인생이 다 허무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신천지의 해악성, 반사회성이 많이 알려져서 신천지로부터 아이들이 보호를 받았으면 좋겠다. (Q)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남편) 정말 아무것도 묻지 않고, 우리가 그저 잘못한 게 있다면, 그리고 딸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면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 아이도 얼마나 집에 오고 싶어 하겠나. 제발 이제 좀 우리 딸을 놔줬으면 한다. (Q) 신천지 피해자를 둔 가족분들에게나중에 저희 딸이 회심돼서 돌아오게 된다면 신천지센터에서 교육받는 아이들을 상대로 ‘얘들아 부모 속이지 마라, 이건 나쁜 거다. 정상적인 종교생활이 아니다’라고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 / (남편) 신천지로부터 피해를 당하신 부모님들끼리 서로 만나기만 해도 가슴으로 그 아픔을 알고 느낄 수 있다. 저도 위로를 많이 받았다. 집에만 있으면 정말 죽고 싶은 맘만 든다.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니깐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인내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제가 얻은 결론이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따뜻한 세상] “한 분당 2개씩 가져가 주세요” 특별한 마스크 두 장

    [따뜻한 세상] “한 분당 2개씩 가져가 주세요” 특별한 마스크 두 장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마스크 대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스크를 손수 만들어 무료로 나눠주는 따뜻한 손길이 있어 눈길을 끈다. 설치미술가 이효열(33) 작가는 지난 16일부터 일회용 마스크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원단을 치수에 맞게 가위로 자르고 재봉틀을 돌려 꼼꼼히 박음질을 한 뒤 양옆에 끈을 달아 완성한다. 이렇게 완성된 마스크는 하나씩 비닐포장지 속으로 들어가 시민들과 나눔의 장소에 비치된다. 바로 서울 종로구 서촌에 있는 이 작가의 작업실 입구다. 정성스럽게 만들어놓은 마스크는 누구나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 시선을 모으는 것은 이 작가의 특별한 바람이 적힌 포스트잇이다. “마스크가 필요하신 분은 한 분당 2개씩 가져가 주세요. 하나는 자신을 위해, 하나는 모르는 사람을 위해 사용해 주세요”라는 메모가 있다. ‘모르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이 캠페인에 대해, 이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에 줄지어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며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특히 모르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이어 그는 “어려운 때일수록 모두 하나가 되어서 이 사태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다”며 “기부 릴레이처럼 함께 나눔을 이어갈 수 있는 캠페인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효열 작가는 연탄재에 꽃을 꽂는 설치 작품 ‘뜨거울 때 꽃이 핀다’, 추운 겨울이면 버스정류장에 노란 방석을 설치하는 ‘네모난 봄’, 여름에는 그늘막 쉼터에 양산을 설치하는 ‘우리의 그늘’ 등의 소박한 캠페인을 통해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기자 gophk@seoul.co.kr
  • 안효섭 “‘김사부3‘ 기대중...사회 이슈 더 다뤘으면”

    안효섭 “‘김사부3‘ 기대중...사회 이슈 더 다뤘으면”

    최근 종영한 인기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에서 외과의사 서우진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찬 배우 안효섭이 “’김사부‘ 시즌3가 제작된다면, 출연 의사가 있다. 저도 기대중”이라고 밝혔다. 이 드라마는 시골의 돌담병원을 배경으로 사람을 살리는 진짜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27.1%의 높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 진정한 의술과 이 시대가 원하는 멘토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며 잔잔한 감동을 줬다. 안효섭은 ’김사부2‘의 인기 요인에 대해 “많은 분들이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점들을 잘 녹인 드라마의 메시지에 공감하신 것 같다”면서 “만약 ’시즌3‘가 제작된다면 메디컬 쪽에 이야기에 집중해서 메시지나 사회 이슈들을 좀더 다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연기한 서우진은 내적인 상처로 세상과 벽을 두고 살아가지만 김사부의 가르침으로 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시놉시스를 토대로 우진의 일대기를 그리면서 의사로서의 우진과 인간으로서의 우진을 중점을 둬서 연구했다”면서 “현장에서 선배님들과 감독님들이 이끌어주신 대로 잘 따라가면서 성실하고 열심히 한 것뿐”이라면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그는 데뷔 이후 주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꽃미남‘ 등 주로 외모가 부각되는 역할을 주로 맡아왔지만 앞으로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음에는 덜 각이 잡힌 자유분방하고 러프하고 망가질 수 있는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앞으로 안주하지 않고, 부족함을 항상 인지하고 채워나가는, 시야가 넓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안효섭이 돌담병원 외과의사 서우진 선생으로 변신한 ‘과몰입 인터뷰’를 유튜브 채널 ‘은기자의 왜떴을까TV’(https://www.youtube.com/watch?v=J3Wa4hyJ91s)에서 만나보세요. 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영상 문성호 김형우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따뜻한 세상] 전복된 사고 차량 발견, 한걸음에 달려가 운전자 구조

    [따뜻한 세상] 전복된 사고 차량 발견, 한걸음에 달려가 운전자 구조

    새벽 시간에 사고로 전복된 승용차 안에 갇혀 있던 운전자를 구조한 한 시민의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6일 오전 2시 30분쯤 인천 연수구 동춘동 북인천지하차도에서 귀가 중이던 정경환(33, 인천 서구 검암동)씨는 승용차 전복 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정씨는 곧장 차에서 내려 사고 현장으로 다가갔다. 운전자는 팔과 다리를 크게 다친 상황. 정씨는 조심스럽게 운전자를 부축, 대피를 도왔다. 정씨는 지난 9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처음 사고 현장을 목격했을 때 차가 많이 찌그러져 있었다. 혹시 운전자가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걱정을 많이했다”며 “다행히 운전자 분이 앉아 계셨고, 괜찮다고 하셔서 차 밖으로 나오도록 도와드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정씨는 현장에 구급대가 도착할 때까지 운전자 곁을 지켰다. 팔과 다리를 감싼 채 벌벌 떨고 있는 운전자를 위해 정씨는 자신의 차에서 패딩을 꺼내서 건넸다. 또 사고로 놀랐을 운전자를 위해 계속 말을 걸며 안심시켰다. 정씨는 “운전자께서 떨면서 왜 그랬지… 계속 그러시더라. 운전자를 안정시키기 위해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이런 식으로 대화를 계속 했다”며 “10여분쯤 지났을 때 구급대가 도착해서 사고 차 안에 다른 탑승자가 없다고 말씀드린 후 현장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누구라도 다 그랬을 것 같다”며 “제가 사고현장으로 뛰어갈 때 다른 많은 분이 뛰어 오셨고, 괜찮냐고 물어보시더라. 제가 아니어도 현장에 계신 분들이라면 다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용기 있는 자신의 선행을 낮췄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데뷔 확률 0.1%, 그들이 아이돌에 도전하는 이유

    데뷔 확률 0.1%, 그들이 아이돌에 도전하는 이유

    동갑내기 아이돌 연습생이 있습니다. 올해 나이 만 스물두 살인 아현(22)씨와 세연(22)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의 연습생 기간은 2년 남짓.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을 그들은 “꿈을 채워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을 그들을 지난 6일 강남구 개포동의 한 연습실에서 만났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국내 아이돌 지망생을 대략 100만 명으로 추산합니다. 이 중 한해 데뷔하는 아이돌(솔로가수 포함)은 1000여 명에 불과합니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아이돌 데뷔가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0.1% 확률의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연습생들은 오늘도 노래와 춤 연습에 구슬땀을 흘립니다. 아현씨와 세연씨도 그렇습니다.이들에게 연습생 기간 중 가장 힘든 점을 물었습니다.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기약 없는 기다림”이라고 답했습니다. 세연씨는 “데뷔날짜를 계속 기다리는 게 힘들고, 함께 연습하던 친구들이 한 명 한 명 떠날 때면 속상하다”고 말합니다. 아현씨 역시 “함께 연습하던 친구가 제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팀을 이뤄 데뷔한 모습을 보면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답합니다. 세연씨가 “함께 연습하던 친구들이 떠날 때마다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자, 아현씨는 “실력이 늘지 않고 제자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그만두고 싶고, 그때마다 엄마 생각이 난다”며 외로운 심정을 고백합니다. 마마무의 실력과 소녀시대의 칼군무를 좋아하는 두 사람은 미래의 걸그룹을 꿈꾸며 서로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우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같이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아현씨에게, “친구들이 나가더라도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잘 헤쳐나가서 꼭 데뷔하자”고 답하는 세연씨, 오늘도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를 토닥입니다. 마지막으로 아현씨와 세연씨는 당찬 각오를 내비쳤습니다. 아현씨는 “쉽게 되는 길도 아니고 아직 가야 할 길도 멀다. 앞으로도 힘든 일이 많겠지만,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꼭 좋은 모습 보여주도록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세연씨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열심히 연습해서 꼭 데뷔하도록 하겠다”며 씩씩하게 주먹을 꼭 쥐었습니다. 아이돌 데뷔 확률 0.1%. 그 낮은 확률을 뚫기 위해 많은 아이돌 연습생들은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기자 goph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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