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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8 “빈국 부채 10억弗 탕감”

    (캘거리·카나나스키스 외신종합) 미국 등 선진 7개국과 러시아 등 G8 정상들은 26일 달러화 약세와 주가폭락,철강분쟁 등 경제현안은 물론 중동평화안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최근의 주가폭락이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현안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책이 나오기 힘들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중동평화안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위치에 대한 논란으로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아라파트 수반의 배제를 주장하는 미국의 입장에 대해 독일,유럽연합(EU),러시아 등은 회의적이다. 그러나 G8 정상들은 일부 최빈국들에 대해 부채 10억달러를 추가 탕감하기로 합의했다.과다채무빈국(HIPIC)에 대한 이같은 합의는 96년 마련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계획의 적용을 받는 아프리카 22개국들에 혜택을 주기 위한 조치다. 이와 함께 G7 정상들은 러시아가 핵무기 폐기와 대량살상무기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러시아가 과도하게 비축해 놓은 플루토늄을 폐기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이 앞으로 10년에 걸쳐 100억 달러를 지원하고 나머지 국가들이 10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2006년 G8 연례 정상회담을 주최하면서 정식회원국 자격을 갖게 된다. 한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를 제기했다고 일본 관리가 전했다.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만찬을 겸한 회담에서 북·일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일본인이 포함된 납북자 문제가 존재한다.”고 말했다.일본은 70∼80년대 최소 11명의 일본인이 납북됐다고 주장해왔으나 북한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 [김성호기자가 본 종교 ‘萬華鏡’] 장쩌민 주석의 고백

    티베트 수도 라사의 포탈라 궁은 티베트 민족의 비극에 앞서 티베트 불교의 수난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다.지금은 관광지가 돼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인종이 몰리고 있지만 티베트인들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픔의 상징이다. 1950년 티베트를 자국 영토라고 선언한 중국이 무력공격을 개시한 뒤 사망한 티베트인은 중국측 통계에 근거하더라도 8만7000명.1959년 6259좌에 달하던 사찰중 겨우 8좌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59만명의 승려 가운데 11만명이 박해로 숨지고 25만명이 강제로 환속했다. 탄압을 견디지 못한 달라이 라마는 1959년 1000여명의 추종자를 이끌고 포탈라 궁을 떠나 인도의 다람살라로 망명,지금까지 자치정부를 이끌고 있다. 인도의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운 지 40여년이 지났지만 중국은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에 대해 강경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중국정부는 90년대 이후 재정지원을 확대하는 등의 정책을 펴고 있으나 여전히 달라이 라마의 거동엔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지난 2년간 한국불교계가 추진한 달라이 라마의 방한도 결국 중국 정부의 반대 탓에 성사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중국은 티베트 망명정부에 대해 고삐를 죌 뿐만 아니라 종교정책에선 폐쇄적인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미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99년부터 2001년 10월 사이 중국정부 관계자들에 의해 작성된 비밀문서를 근거로,개신교·가톨릭 신자와 파룬궁(法輪功)회원 등 14개 종교단체 신자들이 탄압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음을 공개했다.이 기간에 최소 129명의 신자가 살해됐고 2만 4000명이 체포됐다는 주장이다.신자들에 대한 강간과 구타,전기고문도 여전하다고 한다.이같은 상황에서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불교에 심취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과 코란도 읽었다는 외신이 전해져 눈길을 끈다.지난해 11월 허베이성 자오현에 있는 바이린 사찰을 방문해 고승들과 대화하면서 “잠이 오지 않을 때는 금강경을 읽는다.”고 했다는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보도다.외신은,57년 위출혈을 일으켰을 당시 불교와 운명적으로 만났고 이슬람교의 코란과 성경도 여러차례 읽었다는 그의 고백도 전한다. 평소 무신론자임을 줄곧 강조해온 그로서는 퍽이나 이례적인 발언이 아닐수 없다.장 주석은 그 자리에서 “나의 철학은 덕목에 의한 통치”라면서 젊은층에게 종교적인 관심을 높일 것을 촉구했다고 한다.불과 3개월전 파룬궁 신도들의 지린성 장춘방송국 점거때 발포지시를 내린 모습과는 전혀 딴 판이다.진정 중국의 종교정책에 변화가 온다는 신호탄인지…. 김성호기자kimus@
  • [이색 당선자] 조남호 서울 서초구청장/서초구서만 ‘구청장 13년’

    조남호(趙南浩·64) 서울 서초구청장 당선자는 ‘복지’를 민선3기 정책기조로 삼고 있다.지난 7년간은 문화·예술도시 정착을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부터는 다양한 복지시책을 강화,고급도시로서의 서초를 완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서울시 사회복지 개척 1세대로 인정받는 조 당선자는 23일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복지,손에 잡히는 사회복지 실현을 위해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영아와 취학 전 어린이를 24시간 보살펴 줄 수 있는 탁아소를 확충할 계획이다.서초의 젊은 부인들이 사회에 나가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어린아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조 당선자는 “학교의 교육방식이 선진국형으로 진행됨에 따라 디지털 정보도서관 등 권역별로 도서관을 짓겠다.”고 말했다.선진국처럼 비싼 전문서적은 구에서 구입,도서관에 비치하고 구의 형편에 맞게 탄력적으로 예산을 지원,학교시설의 현대화를 돕기로 했다. 또 다른 자치구와 비교해 노인 인구가 많은 점을 감안,탁로원 및 노인종합복지센터를 되도록 많이 지을 계획이다.“경로당·노인정 개념에서 탈피,다양한 노인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버그룹이 지역사회 발전에 투입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자폐증 등 정서장애 및 정신지체 장애인을 위한 주간보호센터도 만들 계획이다.병원에 입원해도 간호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국내 지자체 최초의 호스피스센터 건립도 구상하고 있다. 조 당선자는 정보사 이전 부지 활용과 관련,“고밀도 아파트 건설 등 주거단지로의 개발은 반대한다.”면서 “서울에서 마지막 남은 녹지이고 교통접근성이 뛰어난 곳인 만큼 예술의 전당과 연계,자연사박물관이나 애니매이션센터 등 예술·문화터전으로 쓰여야 한다.”고 말했다.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 당선자와 협의채널을 만들어 무분별한 택지개발을 최대한 막을 계획이다. 지역의 핫이슈인 추모공원 문제에 대해서도 종전처럼 ‘원안 백지화’를 주장했다.조 당선자는 “선진국들도 대형화에서 분산 건립 쪽으로 가는 추세”라면서 “권역별,구별로 건립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자연에 대한 잘못된 개발과 도전이 후손들에게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며 서울시에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조 당선자는 서울시 공보관,보사국장과 관선 서초구청장에 이어 민선 1·2기 서초구청장을 지낸 정통행정관료로서 서초구에서만 13년 구청장 기록을 갖게 됐다. 최용규기자 ykchoi@
  • 책꽂이/정신병과 심리학 등

    ◇정신병과 심리학(미셸 푸코 지음·박혜영 옮김)=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 푸코가 광기(狂氣)를 야기하는 삶의 조건과 심층의 문화 속에서 정신병리학의 실체를 파헤친 ‘작지만 큰 책’.푸코는 이 책에서 광기를 자연적 질병이 아니라 문화적 현상으로 간주하고 심리학·철학적 해부를 시도한다.‘정신의학과 조직의학’‘정신질환의 역사적 형성’‘광기,총체적 구조’ 등 각 주제에서 그의 천재성과 통찰력이 유감없이 배어나온다.문학동네.7000원.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최성일 지음)= 인문사회과학 서점의 새 전형을 구축하겠다며 의욕적으로 ‘운동’을 선언한 ‘책동무 논장’이 해외 사상가들의 궤적을 좇은 책이다.버트란드 러셀에서 미셸 트루니에에 이르기까지 70여 사상가들이 줄지어 독자를 기다린다.우리나라 번역출판의 궤적을 훑듯 사전 혹은 가이드북이나 에세이 성격으로 꾸며 연구는 물론 교양을 쌓는 데도 도움이 되도록 했다.논장.1만 5000원. ◇정보사회와 인간의 조건(애덤 샤프 지음·구승회 옮김) ‘=역사와 진실’로 우리에게 익숙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애덤 샤프가 ‘노동의 소멸로 삶의 의미를 상실한 인류,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잡아 저술한 좌파적 미래 예견서.정보사회의 미래와 새로운 노동개념,노동자 운용의 필요성 등을 좌파 논리로 정연하게 전개한다.한길사.2만원. ◇노인들의 사회,그 불안한 미래(피터 피터슨 지음·강연희 옮김)= 21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전혀 논의에 무게가 실리지 않은 노인문제를 다룬 의미있는 연구서.고령화의 원인 진단과 이로 인한 미래예측,처방 등을 상세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에코리브르.1만 5000원. ◇삼언(三言)(풍몽룡 지음·최병규 옮김)=중국 춘추전국 시대부터 명대에 이르기까지 서민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중국 통속소설의 백미.‘삼언’은 유세명언(喩世明言) 경세통언(警世通言) 성세항언(醒世恒言) 등 3부의 소설을 통칭한 것으로 원래는 120편 150만자나 되는 단편소설집이나 이중 가장 읽을 만한 여덟 편을 가려내 엮었다.창해.1만 2000원. ◇미디어의 이해(마셜 맥루언 지음·김성기 이한우 옮김)= 지금부터 40년 전에 ‘지구촌’‘정보시대’‘미디어는 곧 메시지다’ 등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한 캐나다의 사상가 마셜 맥루언의 명저.그동안 국내에서 수차례 번역본이 출간됐으나 이번에 민음사가 원저작권자와 정식계약을 맺어 새로 내놓았다. ‘미국 대학생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지닌 책’이라는 말이 돌 정도의 문명 예언서.민음사.1만 5000원. ◇디자인 문화비평(디자인문화실험실 엮음) =다양한 분야의 필자가 ‘판타지’라는 장르의 본질과 계보를 다뤘다.아울러 게임·건축·패션 등 각 분야에 나타나는 판타지 성향까지 다각도로 분석했다.판타지라는 특정 주제에 대한 비판과 원형 추적 등 다양한 접근이 눈길을 끈다.안그라픽스.2만원. ◇사회운동가들과 함께 세상읽기(권영길 홍세화 외 지음) 6월항쟁 15주년을 맞아 그동안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겪은 우리 사회를 되짚고 여기에서 새로운 운동의 화두를 추출할 수 있도록 엮은 책.그동안 필자로 참여한 저명한 운동가들의 강연을 직접 풀어서 정리해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내용도 쉽고 재미있어 읽는 부담이 없다.도서출판 책벌레.9000원. ◇말러와 그의 가곡(이경숙 지음)=낭만파적 교향곡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세계를 소개하는 ‘말러 입문서’.그의 음악세계와 음악을 낳은 정서적 배경,음악가 이후의 삶 등을 상세하게 기술해 말러 이해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삶과 꿈.9000원.
  • 현직공무원 기업연금전문서 발간

    기업연금제도가 현재의 퇴직금 제도는 물론 공적연금(국민연금) 제도를 보완하기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기업연금 관련 전문서적을 현직 공무원이 펴냈다. 기획예산처 김화동(金華東) 경제기금과장은 일본 정부가 수년간의 검토와 공론화과정을 거쳐 지난해 도입한 ‘신기업연금제도’를 자세히 소개한 ‘일본의 신기업연금제도’(도서출판 명경사)를 출간했다. 일본이 지난해 도입한 신기업연금제도는 미국의 기업연금제도인 ‘401k’를 보완한 확정갹출형 연금제도로 매월 일정액의 부금을 적립·운용하고,운용성과에 따라장래에 받는 연금액이 변동하는 제도다. 김 과장은 “우리나라의 퇴직금제도는 노후보장보다는 일시적 목돈의 성격에 머물고 있다.”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일본의 신기업연금제도를 소개하고,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살펴보기 위해 책을 펴냈다.”고 말했다. 함혜리기자 lotus@
  • 美 “기업범죄 강경 대응”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파도를 가르는 하얀 요트와 출·퇴근용 헬리콥터는 미 최고경영자(CEO)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그들은 1990년대 신경제의 붐을 타고 미국의 ‘영웅’으로 받들어졌으며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연간 소득에다 스톡옵션 등의 보너스로 평생을 보장받기까지 했다. ●수사 배경에 의혹도= 그러나 지난해 말 에너지기업 엔론의 파산 이후 CEO들의 자화상은 회계조작과 탈세 등으로 얼룩지고 있다.미 당국은 기업범죄에 강력히 대응한다는 방침이지만 그 배경과 일관성에는 다소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엔론과 백악관의 정경유착을 감싸기 위한 ‘희생양’으로 회계법인과 일부 CEO들을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반독점 혐의로 기소된 마이크로소프트에는 미 법무부가 나서 ‘아량’을 베푼 것과 달리 아서 앤더슨의 엔론문서 파기 건은 검찰이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직원들에게 주식을 사라고 권유하고 자신들은 주식을 판 케네스 레이 등 전 엔론 경영진에 대해서도 수사만 진행할 뿐 아직 기소하지는 않았다. 대신 문제가 있는 다른 CEO들은 철퇴를 맞고 있다.생명공학회사인 임클론의 새뮤얼 왁살은 내부자 거래로 체포됐다가 1000만달러의 보석을 내고 풀려났다.임클론이개발한 암치료제를 미 식품의약국(FDA)이 거부하기에 앞서 왁살이 친지들에게 주식을 팔도록 권유했다는 혐의다.임클론의 주가는 한때 86달러까지 치솟았으나 FDA의 거부 이후 7달러로 곤두박질쳤다.유죄가 확정되면 왁살은 최고 1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앞서 데니스 코즐로브스키 전 타이코 인터내셔널 회장 겸 CEO는 탈세혐의로 체포됐다.1300만달러에 이르는 모네와 르누아르의 작품을 기업 명의로 사는 것처럼 꾸며 세금을 탈루한 혐의다.문화계에서는 고가 예술품을 기업명의로 거래,고객에게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항변하지만 기업의 탈세에 강력히 대처한다는 당국의 의지는 분명하다.타이코의 다른 경영진들은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퇴임 후 거액 보수도 문제= 케이블 회사인 아델피아 커뮤니케이션과 글로벌 크로싱,K마트,월드컴,제록스 등의 기업과 전현직 경영진들에 대해서도 회계조작과 관련한 수사가 진행중이다.대부분 CEO들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로 지적됐지만 이들이 사임한 뒤 엄청난 보수를 챙기고 있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존 리가스 아델피아 전 CEO는 기업의 파산에도 불구, 앞으로 3년간 1400만달러를 받으며 버니 에버스 월드컴 전 CEO는 주가가 1달러에도 못미치는데도 평생 1500만달러를 보장받았다.주주들은 기업을 망친 경영진에게 이같은 보수가 마뜩치 않다고 말하지만 계약상으로 지급은 불가피하다.때문에 의회와 시장에서는 기업의 회계관행을 개혁하고 CEO에 대한 스톡옵션을 제한하는 한편 내부자 거래 등에는 강력한 처벌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엔론사 파산신청 직전 돈잔치= 한편 엔론사가 지난해 12월2일 파산신청을 내기에 앞서 일년간 고위 임원들에게 현금과 주식 등 총 6억 8100만 달러를 지급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7일 보도했다.신문은 엔론의 회계서류에 담긴 내용을 잘 알고 있는 2명의 취재원을 인용,이같이 전하면서 케네스레이 전 회장에게는 최소 6740만달러가 지급됐다고 밝혔다. mip@
  • 아서 앤더슨 파산 눈앞에

    미국 5대 회계법인중 하나인 아서 앤더슨이 15일(현지시간) 에너지 기업인 엔론의 파산과 관련된 내부 문서들을 파기한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다.앤더슨측은 항소할 뜻을 밝혔지만 89년의 역사를 지닌 아서 앤더슨의 파산을 막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배심원단,유죄 평결= 미 휴스턴 연방지법 배심원들은 이날 아서 앤더슨이 엔론이 파산하기 직전 수천건의 문서와 이메일을 의도적으로 파기한 행위가 사법방해죄에 해당된다며 유죄 평결을 내렸다.오는 10월11일로 예정된 선고재판에서 최고 50만달러의 벌금형과 함께 5년간 상장기업 회계업무 금지 결정이 내려질 전망이다. 배심원단은 앤더슨의 사내 변호사가 엔론 관련 메모를 위조하려 한 증거에 따라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검찰측은 이번 평결은 부실회계 등 각종 스캔들에 휩싸여 있는 회계법인들에 대한 경종이라면서 이번 평결을 계기로 엔론 스캔들의 진상 규명 노력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앤더슨은 평결 직후 미국증권관리위원회에 오는 8월 말부터 상장기업의 회계감사업무 일체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엔론 스캔들 이후 고객 이탈과 자산매각 등을 통해 근근이 버텨오던 앤더슨은 이번 평결로 재기에 대한 마지막 희망마저 잃게 됐다. ●앤더슨,파산 눈앞에= 앤더슨은 지난 3월 기소 이래 엔론의 주주들과 채권단으로부터 무더기 손해배상소송에 직면해 있다.또 텍사스주의 공공회계위원회가 지난 5월 앤더슨의 영업허가 취소를 위한 법적 절차를 개시했으며 애리조나·플로리다·코네티컷주 등이 유사한 조치를 취할 태세다.올들어 유나이티드항공,머크 코 등 굵직한 고객들을 비롯해 2311여 고객사중 690개사가 이탈했다.미국내 직원 2만 7000여명중 3분의2가 회사를 떠났다. 앤더슨측은 항소할 계획이지만 이미 기운 회사의 운명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회사도 향후 재판절차는 ‘앤더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문가들은 파산을 눈앞에 둔 앤더슨이 현실적으로 취할 수순은 파산이나 청산절차를 밟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서 앤더슨은 1913년 시카고의 명문 노스웨스턴대에서 회계학을 강의하던 아서앤더슨이 동료 회계사 클러런스 델라니와 함께 창업했다.회계법인 경영의 모범으로 통하던 앤더슨은 1979년 세계 최대의 전문 경영컨설팅회사로 발돋움했다.하지만 1989년 회계와 컨설팅 부문으로 분리한 뒤 선빔과 앤론 등 고객들의 회계처리와 관련,각종 스캔들에 잇따라 휘말리면서 위기를 맞았다. 김균미기자 kmkim@
  • 교육부 자료 PDF 서비스

    교육인적자원부가 17일부터 PDF 시스템을 도입,정보서비스에 나선다. PDF(Portable Document Format)는 컴퓨터로 원래의 문서형태를 읽거나 출력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교육부는 저작권을 소유한 교육관련 자료를 데이터 베이스화해 종합교육자료실인 ‘지식정보센터(http:library.moe.go.kr)’에 올려 부내 직원은 물론 일반인들도 검색·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부 이정권 행정관리담당관은 “보관한 정책자료·주요업무 보고서 등 교육 자료들이 대부분 책 형태이기 때문에 공동 활용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직접 방문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홍기기자 hkpark@
  • 책/ 다양한 학문적 쟁점 쉽고 재미있게 소개

    지적 호기심을 충동질하는 새로운 지식의 만찬이 펼쳐진다. 세계화,디지털,게놈프로젝트,포스트모더니즘,첨단과학 그리고 환경.이 방대하고 광활한 지식의 성찬은 지금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있으며,어디로 나아가는 것일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은 16세기 이전 사람들의 맹신에 반기를 든 코페르니쿠스의 혁명 이후 세계는 정설과 이단을 구별할 수 없는 변화 속으로 진입해 지금에 이르렀다.이런 역사적 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대안’의 필요성이 아닐까. 이 필요성에 답을 줄 수 있는 지식과 학문의 최전선,즉 그 학문적 전투보고서인‘지식의 최전선’(김호기 외 51인 공저,한길사)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더 새롭고 창조적인 발상들’이란 부제 아래 엮여 나왔다. 강단을 지키는 학자는 물론 현장 일꾼인 영화감독과 평론가 등이 참여해 아직 따뜻한 현장정보를 생동감 있고 쉽게 전달해 주는 ‘두껍고,쉽고,재미있는 책’이다. 인문학을 비롯해 사회·자연·첨단 과학과 예술 및 대중문화 등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29가지 주요 분야의 학문적 쟁점과 토론,전망 등이 고스란히 담겼다.풍부한 사진과 그림자료,정확한 개념해설에 관련 인터넷 사이트까지 소개하는 자상함이 부담스러운 책의 무게감을 덜어준다.7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면서도 70가지 짧은 글들이 만들어 내는 경쾌한 호흡 때문에 읽는 지루함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학자뿐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와 정책 입안자들에게 두루 유용한 입문서가 될 수 있다.3만원. 심재억기자
  • [공직자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디지털시대 행정 리엔지니어링

    디지털시대다. 대량의 정보가 인터넷망을 타고 순식간에 전세계에 유통되고,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 걸쳐 광속(光速)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을 이해하고 선점하는 국가와 기업만이 생존 가능한 시대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한 조직의 정보·지식 습득능력과 이를 업무에 신속히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그 조직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라고 했다.챔버스 CISCO 회장은 “인터넷의 활용가치를 모르는 경영자는 현직에서 물러나라.”고 말한다. 행정도 예외는 아니다.급변하는 행정여건의 변화 속에서 행동양식과 의식은 물론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요구된다.디지털 혁명은 기존의 행정수단에 정보화라는 수단을 하나 더 보태는 ‘플러스 원’이 아니라 행정발전의 핵심요소가 되고 있다.선진행정은 디지털 혁명의 장점이 접목돼야 가능하게 됐다. 디지털시대 성공적인 행정을 위해서는 정보화 능력과 정보화 마인드가 필수조건이다.과거 극소수의 전유물이던 정보와 지식을 이제는 저렴하고 손쉽게 얻을 수 있다.우리 앞에 무한한 간접경험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디지털 혁명은 정보획득과 관리비용을 크게 줄여준다. 정보화의 장점을 행정에 접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터넷,이메일을 포함한 개인용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정보화 테크닉과 함께 행정일상에서 디지털 정보를 검색·활용·축적·관리하는 정보화 마인드를 함양해야 한다.또한 모든 공무원은 각자의 지식과 경험을 조직의 지적 자산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식과 정보는 공유하면 할수록 생산성이 높아진다.인터넷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분석하고,이를 전자문서로 작성·축적한 후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한다면 파일 캐비닛과 종이 문서를 대폭 줄이고 정보의 활용도도 높여나갈 수 있다.행정정보화는 반복적인 업무부담을 경감해 주고 신속·정확한 업무처리를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행정 서비스와 정책개발의 질적 향상도 가능하게 한다. 일선에서 일하는 사회복지 전문요원에게 노트북을 한 대씩 공급해 생활보호 대상가구 방문시 얻은 정보를 계속 축적·관리토록 한다면 매번 같은 자료를 수집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가구별 특성에 맞는 복지서비스 제공과 효과적인 복지정책수립도 가능할 것이다. 정부도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효율적인 행정을 위해 전자정부 구현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디지털 혁명은 우리 행정의 발전을 위한 도전인 동시에 기회가 되고 있다. “지축을 흔드는 시대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국가와 기업은 침몰할 수밖에 없다.”는 프랑스 역사학자 토크빌의 170년전 경고가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아침이다. 장승우 기획예산처장관
  • 인문·사회과학 서점 살리기 나섰다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논장’이 주목할 만한 독서운동을 주창하고 나섰다. 대학가에서조차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새로운 인문·사회과학의 르네상스를 꿈꾸는 ‘엉뚱하고 젊은 책 일꾼들’이 “기존 인문·사회과학 도서의 공급질서가 불합리하다.”면서 독서클럽을 통한 문화공동체운동 ‘논장 책동무’사업을 시작하고 나선 것. 회원제를 통해 ‘읽고 싶은 책을 필요할 때 읽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닻을 올린 논장 책동무 사업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왜곡된 지금의 출판풍토’를 철저히 부정,불신하는 데서 출발한다. 출판계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묻혀버린 독서인들이 스스로 자리를 되찾아 양서의 수요를 창출하고,결실도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이를 위해 회원제를 도입,누구든 1만원의 입회비를 내면 도서 할인 구입과 간행물 무료 구독 등의 특전을 주기로 했으며 자금난 타개를 위해 출자회원제도 함께 시행하기로 했다. 논장은 이밖에 책동무 운동으로 출판사 설립,독자 스스로 원하는 책 만들기 등의 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최근 붐을 일으킨 영화제작비 마련을 위한 네티즌 펀딩과 유사한 방식이다. 헌책 중개매매에 도서 마일리지를 도입해 더욱 많은 독자들의 참여를 이끌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논장 이재필 대표는 12일 “경영상의 문제를 해소하고 독자들에게 더 많은 권리와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독자들이 직접 경영과 출판기획,나아가 판촉까지도 담당하게 하는 인문사회과학서점의 새로운 모색이자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심재억기자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9)고종-니콜라이2세 특별한 관계

    ■두帝國 ‘마지막 황제' 친서외교 10여년 고종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침탈외교사에서 다소 의외라고 여겨질 만큼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고종(1852∼1919)은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으로 강제로 대한제국의 황제자리를 아들 순종에게 양위했지만 조선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다.니콜라이 2세(1868∼1918) 또한 1917년 2월 혁명에 의해 퇴위당한 뒤 유배지에서 처형당한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제였다.두 사람이 조선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의 정서가 통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가 황제 대 황제의 동격 관계는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꺼져가는 국운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은 고종이 일본을 밀어내기 위해 러시아에 매달리는 입장이었다면 니콜라이 2세는 만주에서의 이익 등 국익에 반하지 않는 수준에서 ‘외교적’으로 고종을 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밀월관계의 출발은 아관파천(1896년 2월11일∼1897년 2월25일)이었다.초대 서울주재 대리공사로 10년 넘게 서울에 주재하면서 고종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베베르가다리를 놓았다.대(大) 러시아제국의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에게는 저 멀리 극동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왕이 자국 공사관에 1년이상 몸을 의탁한 채 도움을 요청하자 애처로움과 동시에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다. 이같은 관계의 성립은 니콜라이 2세의 자상한 성격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해 보인다.니콜라이 2세는 전제군주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잔정이 많았다.해외 각국에 파견돼 있는 외교관들의 상주서에 일일이 답하는 것은 물론 건강까지 체크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중에는 고종과 니콜라이 2세가 친서를 주고 받은 사실이 30차례 가까이 등장한다.대부분은 고종이 보내고 니콜라이 2세가 받는 형식이었지만 니콜라이 2세도 여러 통의 친서를 보냈다.비공식 친서로는 1895년 7월 고종이 조선군 병참관 권동수(權東壽)를 연해주 지사 운테르베르게르 장군에게 보내 러시아 황제의 후원을 요청한 것이 있다.그러나 고종은 이후 문제가 야기되자 파견사실을 부인했다. 고종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첫 공식친서는 1896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민영환(閔泳煥) 특사를 통해 전한 다음 친서이다. 짐의 나라는 관습은 물론 언어와 문자도 고유해 외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불행하게도 짐 나라의 동쪽 이웃나라가 일본이다.일본은 섬나라이며 관습은 짐의 나라에서 유래됐고 문자와 제도도 짐의 나라에서 가르쳐주었다.…그 때문에 일본은 짐의 나라를 자기의 조상과 주인의 나라로서 섬겼다.…최근에 일본이 서양의 제도를 흉내내고 배워 동양의 맹주가 되려한다.…짐은 폐하가 짐의 나라의 실정을 동정하고 정의를 토대로 세계 열강제국이 짐의 나라에 대한 일본의 불법적인 행위를 꾸짖고 나라의 독립을 침해하지 못하게 모든 조약규정 위반을 즉시 중지하도록 권고하여 주시길 바라고 바란다.끝으로 짐은 눈물로 폐하께 호소하며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고종의 ‘눈물의 편지’를 읽은 니콜라이 2세의 마음이 움직였는지 러시아는 1896년 10월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을 파견했다.그리고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으로의 국호변경과 황제 즉위 등 칭제건원(稱帝建元)을 선언하자 열강 중 가장 먼저 이를 승인하고 축하전문을 보내왔다.눈치를 보던 일본,미국,프랑스,영국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고종은 혹시 러시아가 거부할 지 몰라 노심초사했으며 “승인을 하지 않더라도 곧바로 거부하지 말고 현재의 호칭(대군주 폐하)으로 대해주기를 바란다.”고 연막을 쳤던 터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두 사람간의 밀착관계는 1898년 조선이 러시아 군사교관단 및 재정고문 알렉세예프의 본국소환을 요청하자 금이 가는 것처럼 보였다.고종은 “재정고문과 군사교관단의 소환으로 야기된 일련의 사태가 그동안 베푼 황제의 호의에 아무 영향이 없기를 바란다.”고 조심스러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에게 변함없이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안심하도록 진정시키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일단 무마됐다. 니콜라이 2세는 내심 불쾌했지만 복심(腹心)은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니콜라이 2세는 “고종황제 개인이나 대한제국 정부가 앞으로도 러시아의 지지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지 문의하라.”는 칙령을 내리는 등 고종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하지만 고종을 공사관으로 피신시키겠다는 제2,제3의 아관파천 공작을 서울주재 공사관에서 보고하자 “그런 일은 현재의 정치여건 아래서는 지극히 위험한 사태를 몰고올 수도 있다.”면서 발을 빼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02년 고종의 즉위 40주년 기념식에 니콜라이 2세가 베베르를 특사로 파견키로 하면서 절정에 올랐다.니콜라이는 고종에게 축하친서와 함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성 안드레이 사도 1급훈장 등 러시아 최고 훈장을 선물로 보냈다.이에 앞서 고종은 대한제국 최고 훈장인 금척대훈장을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바있다.안드레이 1급훈장은 정교회 국가인 러시아 최고의 훈장으로 명예는 물론 당시 가격으로 5000루블을 호가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그러나 기념식이 콜레라 창궐로 연기되는 바람에 수여되지 않았다. 고종이 “기념식은 연기됐지만 베베르를 서울에 체류토록 해달라.”고 요청하자니 콜라이 2세는 “폐하의 요청을 받고 짐은 만약 뜻밖의 어려움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폐하의 재위 경축식이 다시 열리는 내년 4월17일까지 베베르의 서울체류에 동의한다.”는 친서를 보내는 등 서로의 돈독함을 공개적으로 내비췄다. 이후 1903년부터 1904년 사이 두 사람은 명헌태후 서거애도 친서,니콜라이 2세의 황태자 득남축하 친서 등을 주고 받았다.고종은 “황제께서 황태자를 생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자 한다.이 기쁜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축전을 치는 것이 도리였으나 외부의 방해 때문에 할 수 없이 이제 서한으로 축하를 드리게 됐다.”고 기술했다.니콜라이 2세는 “감사함을 전하라.”고 공사관에 지시했다. 러·일전쟁(1904∼1905)이 일어나자 고종은 “러시아의 승리를 확신하며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기를 바란다.”는 친서를 띄웠고 “러·일전쟁 발발시 중립준수를 요청한다.”는 니콜라이 2세의 친서를 전달받자 곧바로 중립선언문을 작성,일본을 비롯한 열강에 보내 화답했다. 하지만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일본은 보란 듯이 강제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했다.이로써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으로부터 벗어나려던 고종의 전략은 한계에 부딪힌다. 러시아는 모든 열강이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무력으로 독립과 불가침권을 침탈한 데 대해 견해를 밝힌 바 있다.러시아 외무부는 일본정부가 고종을 일본으로 이송,미리 준비한 비밀장소에 연금시킨다는 계획을 믿을 만한 소식통으로부터 입수했다.러시아는 천인공노할 일본의 계획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1905년 5월10일 외무부가 해외 러시아 공관에 보낸 회람전문) 니콜라이 2세도 이 전문상단에 “일본의 그런 행위는 어떻게든 예방돼야 한다.”고 지시하는 등 고종의 안위를 지켜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덕분에 고종의 일본강제 이송 및 연금계획은 무산됐다. 고종 개인에 대해서는 우정을 유지했지만 기울어진 대세는 니콜라이 2세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을사늑약체결 직후 고종이 “일본은 미리 작성해 온 조약문에 국새를 강탈해 날인하고 짐의 서명을 강요하였으나 단호히 거절했다.황제께서는 유럽 문명국에 일본의 만행을 알려 대한제국의 독립을 수호해 주시길 거듭 앙망한다.”고호소했으나 니콜라이 2세는 “국내문제로 더 이상 대한제국을 도와줄 수 없다.”고 냉정하게 거절한 것이다. 이후 헤이그밀사파견(1907) 등 고종의 거듭되는 친서와 러시아에로의 정치망명 요청 등에 대해 러시아는 포츠머스강화조약(1905) 준수와 극동질서를 강조하는 등 계속 딴전을 피웠다.1905년 ‘피의 일요일’사건으로 러시아혁명이라는 폭풍앞에 선 니콜라이 2세로서도 동방의 소국에 더이상의 잔정을 줄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종황제는 병이 들어 나약하고 병력이 없는 군부대신은 허수아비처럼 서 있고 다른 각부 대신은 일본인에 복종하고 있다.노쇠한 황제는 고통스러운 감금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대궐안팎은 일본인의 감시와 경비가 삼엄하다. 알현이 제한된 것은 물론 제3자를 통한 연락도 제한을 받고 있다.”는 1908년 12월8일자 소모프 총영사의 고종 및 대한제국에 대한 근황보고서는 두 마지막 황제의 관계가 대한제국의 몰락과 함께 종극(終劇)을 향해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주석기자 joo@ ■러시아가 본 조선王家 서울에 주재한 제정 러시아의 외교관들은 대한제국의 왕가(王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이번에 새로 발굴된 제정 러시아시대의 외교문서를 보면 러시아 외교관들은 고종과 주위의 대신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순종을 비롯해 엄비와 대원군,다음 왕위를 노리는 왕자들을 못마땅해 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오래전에 자주적인 통치력을 상실한 고종은 측근에게조차 권위가 없다.또 우유부단한 상태에서 대한제국 지배계급의 어느 한 집단이나 혹은 끊임없이 교체되는 명칭만 요란한 독립협회,황국협회,만민공동회,친러파,친일파,친미파,친영파 그리고 친독파로 구성되는 대신들에 의지하고 있다.(1901년 파블로프 대리공사) 고종황제 자신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물이나 많이 쇠약해져 있다.황실에서는 고위직과 하위직을 막론하고 음모,뇌물수수,매수가 만연돼 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서 임용이 결정된다.(1903년 베베르 초대 대리공사) 명성황후의 시해이후 10여년동안 사실상 왕비의 역할을 한 엄비(嚴妃)가 서거하자 “엄비는 평민출신으로 양반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당의 굿에 의존했다.(1903년 베베르).”고 힐난한 대목도 나온다. 대원군에 대해서는 실제 이상으로 부정적이다.틈만 나면 고종 암살기도설 등을 정보보고하고 있다.1896년 베베르는 “고종은 부친 대원군을 숙청할 생각을 갖고 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러시아가 대원군을 아무르주 혹은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주기를 바라는 고종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일이다.”라고 적고 있다.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황제의 친모인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민씨가 80세를 일기로 서거하자 “고종은 모친을 몹시 사랑했다.고종은 성품이 선량하고 동정심이 많고 나약한 점이 모친을 닮았다.(1898년 쉬테인)”고 애도하기도 했다. 1898년 대원군이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그로데코프에게 보낸 편지도 흥미롭다.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편지에서 대원군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부모와 자식간에는 화목하게 산다.그런데 수십년전 4명의 신하가 고종 임금앞에서 늙은 아비를 비방한 일이 있었다.하늘에 맹세코 말하지만 우둔한 자들이 음모를 꾸며 부자지간을 이간시켜 놓음으로써 나는 지금도 아비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종은 천성은 선량하나 나쁜 신하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러시아에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하고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에 대한 러시아 외교관들의 차가운 시선에는 애처로움이 느껴질 정도다. 순종의 즉위식이 8월27일 거행됐으나 고종과 세자는 참석하지 않았다.순종은 카키색의 군복을 입고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꺼렸다.황제의 인상은 침울하고 창백하며 놀란 듯한 두 눈에 얼굴은 병으로 부어 환자처럼 보였다.(1908년 소모프 총영사). 고종황제의 왕위를 이을 후계자에 대해 주목하면서 일일이 인물평을 늘어놓았다. 의화군 이강(李堈·후의 의친왕)을 유럽파견 공사로 임명했다고 조선정부가 통보해왔다.이강은 왕비가 낳은 아들이 아니라 궁인(귀인 장씨)에게서 얻은 왕자로 젊고 유능하며 쾌할한 성격이다.일부 사람들은 그가 앞으로 세자로 책봉될 것이며 좀 우둔한 세자(순종)보다는 덕망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하지만 고종은 세자를 더 사랑한다.(1895년 베베르) 또 1906년 1월1일 고종황제와 황실가족과의 신년 경축 알현식에 참석한 플란손 총영사는 “장자인 황태자는 30세로 명성황후의 적자이며 법통 후계자다.의친왕(李堈))은 17세이며 명성황후 생존시 상궁소생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다.삼자 영친왕(李垠)은 9세이며 엄비 소생으로 영특하고 야심만만하다.”라고 평가했다. 노주석기자
  • 종로서적 최종 부도

    종로서적이 4일 최종 부도를 내고 영업을 중단했다. 종로서적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4일 “종로서적이 전날 외환은행 종로지점으로 돌아온 어음 2800만원을 갚지 못해 1차 부도를 낸 데 이어 이날 은행 영업 마감시간까지 어음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됐다.”고 밝혔다. 최근 극심한 경영난을 겪어온 종로서적은 외환은행에 7억원가량을 비롯,금융권에모두 20억여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종로서적의 부도로,2000여개에 이르는 서적납품 출판사들이 납품대금을 받지 못하게 돼 출판업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주현진기자 jhj@ ■국내 첫 대형서점 인터넷서점에 좌초 지난 70∼8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종로서적이 최종 부도처리됨에 따라 출판업계에 일대 파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종로서적은 이날 오전부터 매장 정문에 대표이사 명의의 ‘매장 재단장 공사’안내문을 붙이고 셔터를 내린 채 영업을 전면 중단했다. 종로서적의 은행권 부채는 약 20억여원이지만 종로서적이 2000∼3000개 납품 출판사들에 발행한 약속어음과,사채시장에서 끌어다 쓴 사채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돼 피해액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관계자는 “극심한 판매부진이 문을 닫게 된 주요 원인”이라고 밝혔다.관계자는 이어 “종로서적은 경영진이 현금 10억원 등 사재를 털어 회생을 시도했으나 역부족이었다.”면서 “지난 5월초 의류 유통업체인 ㈜밀리오레와 매각을 위한 가(假)계약을 체결했으나 판매부진이 계속되면서 인수자가 3억원의 계약금을 포기하고 인수를 중도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종로서적의 부도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서점 앞에는 책을 공급한 출판사 영업자들이 몰려와 대책을 촉구했다. 종로서적은 지난 1907년 종로2가 84의9 현재 위치에 예수교서회가 목조 기와집을사들여 기독교서적 출판·판매 업무를 시작하면서 출발한 국내 제1호 대형서점이다.1931년 지하1층 지상4층의 현대식 건물로 개축돼 교문서관으로 상호를 바꿨으며,1948년 종로서관,1963년 현재 이름인 종로서적센터로 개칭했다. 전성기인 80년대 초반에는 연면적 2000평 공간에 직원수 300여명에 이를 정도로 사세가 확대됐으나 교보문고 등 인근에 잇따라 들어선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들에 시장을 빼앗기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주현진기자
  • 공문서 형식 확 바뀐다

    공문서가 대폭 바뀐다.현재의 상자형 기안문에서 편지 형식으로 바뀐다. 행정자치부는 4일 민원인의 편의 및 행정의 투명성·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문서처리 절차를 개선하기로 하고 공문서 형태도 바꾸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사무관리규정의 개정안을 만들었으며,오는 9일까지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마무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새 문서 양식에서는 문서심사,선람·공람서명,취급,보고 등 9개 절차 및 항목이 폐지된다.이에 따라 현재의 38개 항목에서 19개 항목으로 줄어든다. 또 기안문과 시행문이 하나로 통합돼 편지문 형식으로 개선된다. 이와 함께 책임 행정을 강화하기 위해 기안자 및 검토자,결재자 모두의 서명이 문서에 남게 되고 기관의 상세한 주소,인터넷 홈페이지 주소,전자우편 주소 등이 함께 수록된다.주소에는 건물의 층과 호수까지 명기된다. 결재단계도 현재는 기관장 결재시 6∼7단계를 거치도록 돼 있으나 3∼4단계로 크게 줄어든다.민간기업의 경우 통상 3단계 이내에서 결재가 이뤄진다.행정자치부는 새로운 공문서 서식이 담긴 프로그램을 각 행정기관에 배포하고 있다. 행자부 김영호(金榮浩) 행정관리국장은 “사무관리규정 개정안 등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면 준비기간을 거쳐 내년부터 새 문서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라면서 “결재의 간편함과 행정의 투명성 등에 있어 많은 변화가 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
  • 안산신도시 위장전입 65억대 사기 12명 구속

    경기도 안산시 사동 신도시 개발지역에 위장 전입,실제 거주한 것처럼 속여 이주보상비를 받고 택지를 분양받는 등 65억여원을 편취한 사기 피의자 67명과 이주실태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공무원 8명 등 75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경기지방경찰청은 3일 이주대책위원장 이모(44·안산시 사동)씨 등 12명을 사기혐의로 구속하고 박모(49)씨 등 55명과 이모(55·6급)씨 등 안산시청 공무원 8명을 사기 및 공문서위조 등 혐의로 각각 불구속 입건했다. 이주대책위원장 이씨는 지난 89년 5월 안산시 사동 자신 소유의 건물과 토지를 장인(66) 명의로 이전한 뒤 92년 3월 이곳이 신도시 개발지역으로 고시되자 실제로 장인이 계속 거주해 온 것처럼 속여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이주택지를 분양받은 혐의다. 이씨는 또 사돈,형제 등 친·인척 4명 명의로 신도시 개발지역내 건물을 위장 매입하거나 위장 전입하는 방법으로 수자원공사측으로부터 이주택지를 분양받는 등 모두 13억 8200만원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선택 6.13/ ‘막말정치’ 배경·파장

    ‘깽판,양아치,마피아,아이들 단속,똘마니,쓰레기,쪽팔려….’‘망나니,이런 놈의 나라,죽 쒔다,DJ의 양자,빠순이,시정잡배,새천년미친X당….’ 6·13지방선거를 맞아 전면전으로 치닫는 정치권의 막말·독설 공방의 원인을 알아본다. ■'시선끌기'… 계산된 언어도발 정치권은 입으로는 ‘정책대결’을 외치면서도 너나 가릴 것 없이 저잣거리에서나 오가는 단어를 동원,상대방 흠집내기에 골몰하고 있다.다른 점이 있다면 민주당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가 전면에 나선 반면,한나라당은 당직자들이 ‘총대’를 메고 있다. 과거 선거 때에도 ‘충청도 핫바지’론 등 지역주의를 자극하는 마구잡이 표현들이 정치권을 달군 적이 있다.그러나 이번처럼 대통령후보나 당 지도부가 전면에 나서 연일 막말 공방을 벌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치권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날마다 거친 표현을 쓰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전략이라고 분석한다.‘당대당’ 구도로 치러지고 있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화두로 내세운 ‘부패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자 뾰족한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또 ‘DJ·昌’ 구도를 차단하고 노풍을 되살리기 위해 젊은유권자들에게 ‘무현스러움’을 다시 보여주는 전술적 선택이라는 설명도 나온다. 노 후보는 지난달말 지방선거를 ‘盧·昌’ 구도로 치르겠다고 선언했다.이후 그는 ‘양아치,마피아,아이들’ 등 원색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이 의도한 대로 ‘DJ·昌’ 구도로 치러진다면 노풍이 완전히 꺾일 수 있다고판단한 듯 유세장마다 “이번 선거는 노무현 대 이회창의 대결”이라고 강조하고있다. 한나라당은 노 후보의 발언이 연일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이 없다.’고 깎아내리면서도 내심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노 후보의 발언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의도하고 있는 ‘DJ·昌’ 구도가 훼손될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다. 한나라당 선거대책본부장인 이상득(李相得) 사무총장은 2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민주당이 저질·비방 선거전도 모자라 노 후보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총동원돼막말을 하고있다.”면서 “월드컵에 손님을 초청해 놓고 야비한 선거운동을 해선안된다.”고 민주당을 깎아내렸다. 단국대 안순철(安順喆·정치학) 교수는 “원래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정치인들은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자극적인 표현을 쓰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최근정치권의 막말 공방은 ‘盧·昌 구도’를 만들고 싶은 민주당과 ‘DJ·昌 구도’를 선호하는 한나라당의‘대결 공간’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이어 “노 후보가 거친 표현을 쓰는 것이 의도적이라고 할지라도 대선 국면에서 자신의 말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의식한듯 노 후보는 2일 인천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앞으로…언어는 정제해서 쓰도록 하겠다.”면서 “싸움은 대강 이 정도로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밝혀 ‘막말 공방’이 조기에 마무리될 가능성도 내비쳤다. 전영우 홍원상기자 anselmus@ ■지도부 지원유세 표정/ 승부처 수도권서 독설대결 6·13지방선거전이 중반전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각 정당 수뇌부는 휴일인 2일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에서 격렬한 설전을 벌이며 지원유세전을 벌였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는 이날 경기지역 정당연설회에서 “얼마전 한국을 방문한 싱가포르의 한 사업가로부터 ‘한국이 이렇게 썩었는데도 불구하고 망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또 훌륭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이 정도밖에 발전하지 못한 것이 이상하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소개한 뒤 “현 정부의 부정부패로 부패공화국 소리를 듣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이 나라에서 온 국민은 자존심에 상처받고 치욕에 얼굴을 못 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가 집권하면 이 나라를 확 바꿔 역사상 가장 유능하고 깨끗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서청원(徐淸源) 대표도 이날 당의 최대 취약지인 호남지역 유세에서 “재미는 대통령 아들들과 친인척,권력 실세들이 다 보고 욕은 호남사람들이 다먹게 만들었다.”고 주장한 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를 겨냥,“‘깽판’이니 ‘양아치’니 하는 입에 담기 힘든 말을 쏟아내고 독선과 오만에 빠진 사람에게 어떻게이 나라를 맡길 수 있겠느냐.”고 공세를 취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이번 지방선거의 승부처인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지역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특히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를 직접 겨냥한 신랄한 공격을 계속했다. 노 후보는 인천시장후보 지원 거리유세에서 “‘부패정권 심판하자.’고 이회창후보가 말하고 다닌다.”면서 “그러나 부패정권 심판은 국민이 하는 것이고,이 후보는 함께 심판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이 후보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노 후보는 “아직도 보스정치,권위주의정치,가신정치 등 3김식 정치를 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반문한 뒤 “3김식 정치를 청산할 때 이 후보도 함께 청산하자.”고 세대교체론과 함께 ‘창(昌) 청산론’을 거듭 주장했다. 한 대표도 경기지역 정당연설회에서 “이회창 후보는 자기 아들 병역비리를 덮으려고 공문서를 폐기했고,이를 위해 대책회의를열었다고 언론에 나왔다.사실이 아니라면 언론을 고발해야 하는데 아직도 고발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부정부패한 사람은 정치계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조승진 김상연 홍원상기자 redtrain@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8)군사교육 지원의 전모

    ***“6000精兵 양성” 러 군사교관단 2차례 파견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민영환(閔泳煥) 특명전권공사는 1896년 6월13일 외무장관 로바노프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민영환 특사는 러시아군대 파견,군사교관단 파견,차관제공,재정고문 초빙,전신선가설 등 5가지 요청 사항을 제시했다.이중 러시아군 및 군사교관단 파견요청에 대해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답은 다음과 같다. 고종의 호위를 위해 러시아 군대를 조선에 파견해 줄 수 있는가.(민영환).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있는 동안 러시아 해군이 호위할 것이다.공사관에 체류하고 싶은 만큼 체류할 수 있다.(로바노프).조선군대를 훈련시키는 동시에 왕을 호위할 군사교관 200명을 파견해 줄 수 있는가.(민영환).군사교관은 파견할 것이나 빠른 시일안에는 곤란하다.(로바노프) 당시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아관파천(1896년2월11일∼1897년 2월20일)기간중이었고 러시아가 조선의 국사를 쥐락펴락하던 시기였다.고종은 자신의안위를 보호해줄믿을 만한 군대가 절실하게 필요했고 러시아군이 그같은 역할을해줄 것으로 여겼다.고종은 일본인 특히 일본 군사고문단의 한반도 진출을 꺼려했다.일본 군사고문단 대신 러시아 군사교관단을 초청하고 싶었다.하지만 군사교관단의 파견은 러시아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열강을 동원한 일본과 친일파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러시아로서도 극동주둔 군사력의 대(對)일본 열세를 잘 알고 있었고 당시 군사교관단의 파견은 군대 파견의 전제조건이자 러시아의 확고한 한반도 지배의사로 해석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1896년 2월23일 일본 군사무관 보각 대령은 참모본부 학술위원회에 보낸 전문에서 “조선의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 파견요청에 동의하면 일본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이 경우 일본 정계에서 조선문제에 관해 러시아와 협력을 하려는 분위기를 파국으로 이끌거나 아니면 일본의 적극적인 개입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러시아 군 내부에서도 반대여론이 팽배했다.이 때문에 러시아정부는 파견결정을 차일피일미뤘고 주한 베베르 대리공사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결국 군사고문단의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선에서 ‘생색내기용’파견이 이뤄졌다. 조선의 불안한 정세로 보아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 파견문제를 고종과 협의하기는아직 시기상조이다.(1896년 3월1일 로바노프 외무장관이 스페이예르 서울주재 공사대리에게) 가능하면 신속하게 군사고문단을 파견해야 한다.그것이 왕권강화,질서회복 그리고일본견제책의 유일한 수단이다.(같은해 3월20일 베베르가 외무부에 띄운 보고문)국방부에서 검토한 결과 고종의 시위대는 러시아인 장교를 지휘관으로 한인 1개 대대로 구성하고 교관은 위관급 5명,상사 4명,하사관 10명과 소총 1000정이 적합하다고 한다.(1896년 4월28일 외무장관이 베베르에게).고종은 무기와 교관단 파견결정에 감사를 표했다.조선군은 4000명이기 때문에 왕의 시위대외에 서서히 다른 부대의 교육도 위탁하고자 한다.(같은해 같은달 30일 베베르가 외무부에) 1896년 11월22일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민영환 특사와 청국주재 군사무관이던푸차타 대령 사이에 제1차 군사교관단초청 계약서가 체결됐다.계약에 따르면 초청기간은 1년이며,인원은 장교 2명,하사관 10명,군의관 1명,악장 1명 등 모두 14명으로 돼있다.조선측은 장교급에겐 매월 150엔,사병에게 20엔의 월급과 숙소를 제공키로 했다.제물포까지의 여비와 부임수당 등도 별도로 부담하는 조건이었다.이들 중악장을 제외한 13명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레마쉬호를 타고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했다. 곡절끝에 13명의 제1차 러시아 군사교관단은 1896년 10월24일 조선땅에 들어왔다.고종이 요청했던 200명에는 턱도 없이 모자란 숫자였지만 군사교관단의 한반도 파견의 의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었다. 러시아는 군사교관단의 파견과 함께 푸차타 대령을 군사교관단장에 임명했다.또 1896년 1월 동부 시베리아 제2보병여단 소속 스트렐비스키 중령을 서울주재 러시아공사관 군사무관(軍事武官)으로 임명했다.1895년 6월17일 아무르군관구 참모부장이 외무장관에게 “이제 서울에도 별도의 상주 군사무관이 필요하다.앞으로극동의분쟁에서 조선의 무력이 큰 변수로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데 따른 후속조치였다.스트렐비스키 무관은 1902년 라벤 중령과 교체될 때까지 서울에서 근무했다. 조선은 청·일전쟁(1894∼1895)이전까지는 지리적 특성으로 러시아 우수리지방의중요한 국경을 보호해 주는 방벽구실을 했다.현재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앞으로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 것인지 예상하기 어렵다.그러나 조선의 최근 역사를 분석해 볼 때 아마도 국내의 혼란으로 인해 정치적 욕망이 많은 열강,특히 일본의 세력각축장으로 변하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푸차타 군사교관단장의 1897년 수기)조선은 6000명의 상비군을 보유해야 국내 질서가 안정될 것이다.고종은 유럽식으로 군사교육을 받은 3000명의 정병(精兵)이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다.…6000명 정병양성은 조선의 영토나 국민수로 보아 외국의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조선과 병력양성문제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뒤 일본과 협의를 해야 할것이다.군부에 만연돼 있는 부패를 척결하고 공정한 예산집행이 이뤄져야 한다.(1897년 6월17일 푸차타의 비밀보고서) 푸차타의 이같은 조선군대 증강계획안에 대해 일본은 거세게 항의했으며 러시아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었다.증강계획을 포기하든지 일본과의 전쟁을 불사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전쟁은 러시아에 불리하기 때문에 이 계획에 착수하면 돌이킬수 없는 우를 범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제1차 군사교관단의 대한제국군 군사조련은 일단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1897년6월9일 고종과 각부 대신 그리고 주한외교사절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조선군 의장대 사열식은 참석자들에게 큰 감격을 안겨주었다.대한제국군중 러시아교관단 산하부대로 들어오려는 경쟁도 치열했다. 당시 서울에는 대한제국군 5개 대대병력 4000여명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30대의 젊은 한국인 대대장이 부대에 출근할 때는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영감행세’를 하기 일쑤였다.병력중 많은 숫자가 ‘유령 병력’이었다.식비를 횡령하기 위해 숫자를 부풀린 탓이다.대부분이 군인 신분을 창피하게 여겨 밖에 나갈 때는 사복으로 갈아 입었다.교관단은 이중 1600여명을 선발해 2개 대대로 조직했다.이들은 궁정을 경비하는 시위대 요원이었다.따라서 훈련과목에는 궁중 예절과 궁중 호칭법 등도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정부는 대한제국 군대의 개편을 포함,재정지원을 제공하고 제2차 군사교관단을 또다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장교 3명,하사관 10명,사관학교 교관·병기병·군악대지휘자 각 1명,군악대원 3명,위생병 2명 등 총 21명이다.(1897년 5월15일 베베르가 무라비요프 외무장관에게) 1차 군사교관단의 성공에 고무된 러시아가 제2차 군사교관단을 파견했다.2차 교관단의 장교와 하사관 등 13명은 아무르군관구에서 차출됐으며 나머지 기능직은 예비역중에서 선발됐다.하지만 독립협회의 활동과 친일파의 득세 등으로 인해 대한제국내 정세는 급격하게 반(反)러감정이 확산되고 있었다.급기야 1897년 8월14일 푸차타 군사교관단장이 본국으로 소환되면서 알렉세예프 중위에게 교관단 통솔권이 위임됐다.푸차타 대령의 야심찬 조선군 증강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는 이후 소장으로 진급,아무르지사로 임명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최근 여러 보고서로 미뤄볼 때 대한제국의 정세가 매우 불안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관직에 있는 사람이나 모든 당파가 러시아에 적대적이며 친러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고종황제 역시 매우 의심스럽게 되었다.이러한 상황 때문에 러시아가 대한제국 국내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것이다.니콜라이 황제께서 고종황제와 대한제국 정부가 향후 러시아의 지원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지 문의하라고 하셨다.대한제국의 요청으로 파견된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이 필요치 않다면 러시아는 마땅히 소환하겠다.(1898년 3월3일 외무장관이 스페이예르 대리공사에게) 대한제국 정부가 공식적인 회답을 보냈다.현재 러시아의 군사 및 재정고문(알렉세예프)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했다.러시아는 모든 외국인 고문의 파면을 요청하고 최근 통역관(김홍륙)살해 음모자 처벌을 요구해야 한다.대한제국 정부가 거부하면 공사관 기를 내리고 원산을 점령해야 한다.(같은해 3월12일 스페이예르의 회신) 평소 거칠고 직선적인 언사 때문에 초대 대리공사 베베르가 10년동안 한국에서 닦아놓은 외교적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스페이예르는 ‘공사관철수 후 한반도 북부 무력 점령’이라는 극단 처방을 내놓았다.니콜라이 2세는 1898년 5월4일 대한제국에서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의 철수를 허락했다. 러시아 군사교관단이 철수한 이후 대한제국군의 조직은 일본의 수중에 넘어갔다.일본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20명의 한국인 장교들이 교관이 되었다.1901년 1월 당시 대한제국군은 장교 372명에 사병 1만 5200명이었고 군대예산은 360만엔이었다. 1,2차 러시아 군사교관단의 한반도 파견과 철수시기를 전후해 일본과 러시아는 1896년 로바노프-야마가타 의정서(모스크바 프로토콜)체결,1898년 로젠-니시협정(러·일특별협정) 등 대한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협정을 맺었다.러시아가 일본과 일련의 협정체결과 함께 군사교관단을 철수시킨 것은 대한제국을 지배하려는 야심을 사실상 접은 것이나 다름없었다.고종은 이후 국내외 압력에 밀려 러시아교관단이 철수하도록 등을 떼민 자신의 ‘우둔한’결정을 한없이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고 돌이킬 수 없었다.‘눈엣가시’러시아군이 떠나자 일본의 한반도 점령 프로젝트 추진에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노주석기자 joo@ ■'거문도 사건' 러 대응 1885년 4월15일부터 23개월 동안 영국의 극동함대가 거문도(전남 여수시 삼산면)를 무단 점령한 사건은 러시아의 태평양진출정책을 경계한 열강,특히 영국의 극동에 대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친 사건이었다. 새로 발굴된 러시아문서보관소의 비밀외교문서에 따르면 러시아 군부는 거문도 점령 당일 외무부에 급보를 띄워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서울점령 등 강공책을 제시하는 등 급박하게 움직였다.하지만 영국의 무력시위 앞에 러시아는 다소 유약한 모습을 보였다.이 과정에서 영국과 청의 비밀거래설도 제기돼 주목된다. 블라디보스토크호가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귀국하는 길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거문도를 방문한다.거문도를 점령한 영국의행위는 러시아에 적대적인 것이다.러시아의 태평양함대사령부와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 영국의 군사기지를 폐쇄하도록항의해야 한다.영국과의 협상에서 카스피해 동부지역과 조선이나 일본의 항구를 점령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야 한다.(1885년 4월15일 해군부관리관이 기르스 외무장관에게 보낸 비밀문서). 만일 영국이 거문도를 합병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러시아 순양함대는 동해에서완전히 군사적으로 봉쇄당하게 된다.또한 일본군이나 청국군이 서울을 점령하게 되면 러시아군이 그들을 몰아내고 아예 서울을 점령해야 한다. (1885년 4월18일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코르프가 황제의 시종무관장에게 띄운 암호전문). 러시아는 정보라인을 총동원,영국의 점령의도와 군사력 등을 파악했다.거문도점령 9일후인 4월23일 일본 나가사키에 파견된 코스틸예프가 외무부에 보낸 전문에는“거문도에는 1척의 영국전함이외에 2척의 소형함정이 있다.오늘 식료품을 실은 기선이 거문도로 출발했다.그곳에는 상륙병 50명이 있으며 나가사키에 있는 영국군함에는 200명의 수병이 승선하고 있다.”.라고 보고했다. 또 베이징주재 러시아 공사 파포프는 1885년 9월20일 외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청국의 이홍장(李鴻章)은 영국의 거문도점령을 결코 찬성하지 않는다.그는 종속국인 조선의 보호를 의무로 여기고 있다.청국의 거문도철수항의를 영국이 수용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거문도 때문에 전쟁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러시아가 거문도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하면 영국은 거문도를 떠날 것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영국의 거문도점령은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한 결과로 분석된다.”라고정확하게 분석했다.청국주재 군사무관 시누에르는 1885년 11월17일 참모본부학술위원회에 보낸 보고서에서 “확증은 없지만 청과 영국의 비밀거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이홍장의 한 측근은 나에게 ‘영국은 러시아와 전쟁시 거문도를 요새로 사용하고 전쟁후에는 시설물 일체를 청국에 팔기로 했다’고 귀띔했기 때문이다.”라고 보고해 영국과 청의 거래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결국 북양대신 이홍장의 중재에 의해러시아는 한국영토의 어느 지점도 점령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했고 영국함대는 1887년 2월27일 자신들이 헤밀턴섬이라고 이름붙인 거문도를 떠났다. 노주석기자
  • 정부 문서보존 ‘구멍’

    정부가 각종 문서들을 관리하거나 복원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100년 이상 보존돼야 하는 기록보존 문서들이 50년도 채 안돼 종이·잉크·필기구 등의 질이 나빠 쉽게 훼손되는 것으로 드러났다.더욱이 예산부족으로 복원작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일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에 따르면 정부기록보존소의 보유 문서(57만권)의 대부분이 오래 되고 낡아 누렇게 변하거나 찢어져 낱장을 넘기기가 어려울 정도다.잉크가 퇴색돼 글자를 알아 볼 수 없는 것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이들 문서를 복원하는 데 드는 예산이 턱없이 모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산업자원부가 98년부터 연간 500억원을 들여 훼손이 심한 것부터 복원시키고는 있지만,지금까지 복원된 분량은 전체의 20∼30%에 불과하다.필름·사진 등은 아예 엄두도 못내고 있다. 기술표준원 박종희(朴鍾憙) 사무관은 “정부기록보존소 보유 문서뿐만 아니라 주요 공공도서관 등의 중요한 보관문서까지 포함하면 복원비용만도 수조원 이상이 들 것”이라며 “주요 선진국들은 역사적인 기록물을적극 보호하기 위해 보존용품에 대한 품질기준을 정해 이 기준에 맞는 인증제품만 보존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자부는 국가 중요 보존기록물의 추가 훼손을 막기 위해 이달부터 종이,잉크,필기구 등에 대한 ‘품질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주병철기자 bcjoo@
  • 선택 6.13/ 지원유세 이모저모

    연말 대선의 전초전 격인 6·13지방선거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한나라당과 민주당대통령 후보의 대립구도도 한층 첨예해 지고 있다.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와의 ‘노(盧)-창(昌) 대결’을 선언하자 한나라당은 ‘DJ양자론’을 내세워 맞불을 지폈다. ●노-창 대결론=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31일 경기 시흥,군포,광명,부천지역에서 열린 진념(陳^^) 경기지사 후보 정당연설회에 잇따라 참석,“당 대 당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면,노무현과 이야기하자.”며 이번 선거구도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대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아닌,‘노-창’ 대결로 전환시키는데 주력했다. 노 후보는 “이회창 후보가 부패정권 심판하자는 깃발을 내걸고 국민의 정부의 잘못을 들춰내서 지자체 선거를 치르려고 하는데,이 후보가 부정부패에 대해서 말할자격 있나.”며 이회창 후보와 각을 세웠다.이어 “세풍,안풍,북풍,총풍,노풍 가운데 좋은 풍(風)은 ‘노풍’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부정부패 풍인데,이 후보가 한다리 안 걸친 풍이있느냐.”면서 “법적책임은 피했지만 정치적 책임은 피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한화갑(韓和甲) 대표도 이날 서울 모래내시장에서 가진 정당연설회에서 “이회창후보는 자기 아들 병역문제가 말썽이 되니까 문서를 파기하고,조작하기 위한 대책회의까지 열었다는 보도가 있다.”면서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더 고치고 조작하는 이런 사람은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고 이회창 후보 비난에 동참했다. ●DJ 양자론= 한나라당은 ‘노-창 대결전략’을 “국민 호도용”이라며 “노무현·이회창 대결과 김대중·이회창 대결이 뭐가 다르냐.”고 반박했다.오전 서청원(徐淸源) 대표 주재로 열린 선거대책회의에서 당 지도부는 “김대중(金大中) 정권의후계자이자 ‘양자’인 노 후보가 이제 와서 ‘DJ와 다르다.’고 하는 것은 국민들의 냉소만 받을 뿐”이라고 비난했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이 정권의 비리와 부정부패로 날이 샐 때 한마디라도항의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이런 말로 국민을 호도하려들면 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한나라당은 그러나 노 후보의 ‘노-창 대결전략’이 자칫 ‘권력형비리 공세’의 약효를 떨어뜨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웠다.대통령 아들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는 상황을 감안할 때 비리공세를 연말까지 이어가려던 하반기 대선전략을 새로 짜야 하는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진경호 홍원상기자 jade@
  • [씨줄날줄] 축구 날씨

    월드컵은 축구가 북 치고 장구 치는 잔치다.여느 잔치도그렇지만 월드컵이 뜨고 축구가 살려면 하늘이 도와야 한다.날씨가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많은 육상 경기처럼 축구도 섭씨 15∼23도 정도가 제격이다.구름이 약간 끼어 하늘을 우러러도 눈부시지 않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이번월드컵이 개막하는 날엔 오던 비가 그치고 개면서 축구하기에 좋은 날씨가 된다고 하니 월드컵에서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월드컵이 모두가 함께 흥겨워해야 할 잔치라지만 자웅을겨루는 경기이고 보면 이겨야 한다.석연치 않은 신승(辛勝)이 아무리 그럴 듯한 분패(憤敗)보다 훨씬 나은 법이다.이기고 지는 거야 갈고 닦은 실력에 좌우될 것이다.그러나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고 한다.공이 둥글다 보니 어디로굴러 갈지는 공을 차봐야 안다.꺼진 불이 살아나고,양지가 한순간에 음지되는 게 축구란다.변칙이 통하는 틈새가 세상 사람들을 축구에 열광케 한다는 것이다. 축구에서 변칙을 실력으로 둔갑시키는 요술봉은 날씨라고 한다.월드컵이 개막하는 마당에 ‘축구 날씨’를 늘어놓는 까닭이기도 하다.가을 같은 날씨에서 연습해온 선수들이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적응하려면 열흘이 넘게 걸린다.여기에 바가지로 물을 퍼붓는 듯한 폭우라도 쏟아진다면상상만 해도 아찔할 것이다.땅 설고 물 선 것도 적지않은부담이 되는 터다.그러고 보면 한국 축구는 한참 점수를따고 들어가는 셈이다. 우리 상대인 폴란드와 포르투갈은 이유야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둘 다 비교적 건조하고 무더위가 없는 나라들이다.1년 내내 우리네 가을 날씨에 가깝다.이들에게 초여름 무더위는 그렇다치고 시간당 비가 5㎜만 내리면 물바다가 되는 그라운드는 도깨비만큼이나 겁이 날 것이다.수중전으로 말하자면 미국팀은 속수무책이라고 한다.소낙비 대책을물었더니 얼마나 질겁했던지 “우리는 매일 샤워를 한다.”고 동문서답을 하더라는 것이다. 이왕 준비한 월드컵이고 보면 대표팀이 닥치는 대로 이겼으면 좋겠다.개막일 날씨를 보면 하늘도 우리를 음으로 양으로 돕는 것 같다.대표 선수들이 잉글랜드나 프랑스 평가전에서 보여주었던 실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상승 기류를 탄 대표팀이니 소나기가 쏟아지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한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대하며 예선전을 갖는 6월 4일과 10일 그리고 14일의 날씨를 기다려봐야 겠다. 정인학 논설위원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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