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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원, 기자 통화내역 조회 파문

    국가정보원이 기자의 통화내역을 확인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29일 “국정원이 최근 국민일보 기사와 관련해 외교통상부 출입기자의 통화내역을 확인했다.”면서 “하지만 청와대나 외교부가 국정원에 통화내역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지난 6일자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외교부,사사건건 충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윤 대변인은 “국민일보 기사와 관련해 NSC와 외교부는 보안유출이 있었는지를 확인해 달라고 국정원에 요청했다.”면서 “통화내역을 조사해 달라고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국정원은 해당기자의 휴대전화 가입회사인 SK텔레콤에 통화내역을 요청,제출받았다.국정원은 “적법절차를 거쳐 해당기자 통화기록을 조회했으며 조사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없이 ‘보안사고 조사대상이 아니다.’는 사실만을 NSC측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SK텔레콤 CR전략팀 이형희 상무는 “모 기관이 이달 초순 해당기자의 휴대전화에 대한 ‘통신사실 확인자료 요청서’를 공문서로 제시해 통화내역을 제공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통신비밀보호법 13조 2항에 따르면 국정원의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의 범위를 ‘수사 또는 형의 집행,국가안전보장 위해(危害) 방지에 필요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국정원과 청와대는 적법할 절차를 거쳐 통화내역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기자의 통화내역을 조회한 것은 언론자유를 침해한 것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윤 대변인은 “NSC가 국민일보 보도건과 관련해 민정수석실에 혐의 있는 사람의 조사를 의뢰한 것은 통화내역을 조사해서 한 것이 아니고,NSC가 자체 탐문해서 알고 있는 사안을 민정수석실에 의뢰한 것”이라고 말했다. 곽태헌기자 tiger@
  • 작년 부패공직자 58명 형사처벌

    부정부패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지난해 부패방지위원회에 신고·접수된 부패 공직자 가운데 16명이 구속되는 등 58명이 형사처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공직자 79명이 징계를 받았으며,총 64억 3200만원이 국고로 추징·환수조치됐다.29일 부방위가 발간한 ‘2003년 부패방지백서’에 따르면 부방위는 지난해 136건의 부패신고와 1669건의 진정을 접수받아 이 가운데 118건을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과 감사원에 이첩,이같은 조치 결과를 통보받았다. 공직부패는 뇌물수수가 26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공금횡령 15건을 비롯,불법 건축물 인허가,세금감면 청탁,공문서 위변조,직권남용,직무유기,비밀누설 등 실로 다양했다.부패 연루자는 6급 이하가 82명으로 다수를 차지했으나 전직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자치단체장들도 포함됐다. 5급 이상 간부급 공직자도 26명이나 된다. 주요 신고사례를 보면 손세일 전 민주당의원이 한전 석탄납품 비리의혹과 관련해 기업체로부터 1억 9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지난해 7월 징역 3년의 실형과 추징금 1억 7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서울 K구청 지방세 담당공무원 2명과 전직 행정자치부 공무원(5급)은 지난해 5월 중소기업 대표와 짜고 세무서로부터 세금 19억원을 불법 환급받아 그 대가로 2억 3000만원을 챙겨 구속기소됐다. 충북지역의 모 자치단체장은 관내 업체와 부하직원들로부터 현금 1200만원과 골프채 등 금품을 받아 불구속 기소됐으며,전남의 한 아동복지기관 사무국장은 후원금 200만원을 횡령했다가 구속기소됐다.또 강원도 W시청 환경과장은 관내 아파트 건설공사의 현장소장으로부터 공사관련 위법사항들에 대한 무마를 청탁받고 대가로 400만원을 챙겼다. 내부공익신고는 일반신고보다 큰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됐다. 내부공익신고의 경우 수사기관에 이첩돼 조사가 끝난 25건 중 72%인 18건의 혐의가 인정된 반면 일반신고는 46건의 60.9%인 28건만이 인정됐다. 또 형사입건도 내부공익신고는 ‘구속 10명,불구속 23명’으로 일반신고의 ‘구속 6명,불구속 15명,기소유예 3명’보다 제보의 신뢰도가 높았으며,추징회수액의 85.9%인 55억 3000만원이 내부공익신고를 통해 회수됐다. 부방위 관계자는 “내부공익신고의 경우 업무에 정통한 내부 구성원이 신고를 하는 것이어서 신뢰성이 훨씬 높다.”면서 “지난 해 공익신고자에게 신분상 불이익을 주는 기관들에 경고조치를 하고 신고자 2명에게 각각 6300여만원과 990여만원의 신고보상금을 지급하는 등 공익신고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주민등록등·초본 인터넷으로 뗀다

    안방에서 주민등록 등·초본 등 민원서류를 받아볼 수 있는 인터넷 서비스가 이르면 다음달부터 전국 어디에서나 실시된다. 행정자치부는 서울 강남구,부산 동래구,경기 고양시,강원 춘천시,전북 임실군 등 전국 5개 시·군·구 지역에서 30일부터 주민등록 등·초본을 인터넷으로 발급하는 서비스를 시행한다고 28일 밝혔다.주민등록 등·초본 외에 장애인 증명,농지원부등본,모자가정증명,건축물대장 등도 시범서비스 대상에 포함된다.이 서비스는 해당 행정청에 주민등록이 올라 있고 공인 전자서명인증서를 발급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위·변조가 의심될 경우 전자정부 홈페이지(www.egov.go.kr)에서 민원서류 상단에 있는 문서확인번호를 입력,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2월 임시국회에서 개정 주민등록법이 통과되면 등·초본 발급은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2007년까지 가능한 한 모든 민원서류에 대해 서비스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국세청도 오는 31일부터 납세증명과 사업자등록증명,소득금액증명,납세사실증명,폐업사실증명,휴업사실증명 등 6개 민원서류를 인터넷으로 발급키로 했다. 이에 따라 국세청 홈택스서비스(www.hometax.go.kr)에 접속,증명서류를 신청한 뒤 프린터로 출력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출력된 서류는 ‘민원사무 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의해 공문서 원본으로 인정된다.국세청은 오는 3월에는 영문증명 등 10가지,5월에는 수출주류 면세승인 등 17가지의 소비세 관련서류까지 인터넷 발급을 확대할 방침이다. 오승호 조태성기자 osh@
  • 中 “한국戰 외교문서 공개못해”

    |홍콩 연합|중국이 1949년 공산 중국 건국 이후 50여년만에 처음으로 기밀해제하는 외교문서들 가운데 한국전쟁 관련 문서는 공개하지 못한다고 중국 외교부가 27일 밝혔다.롄정바오(廉正保) 중국 외교부 문서보관소 관장은 이날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외교문서 기밀해제가 중국의 대외관계를 위험에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앞서 중국 외교부는 지난 18일 1949년부터 1955년까지의 외교문서 1만여건을 담고 있는 3000여권의 자료를 기밀해제하고 일반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공개한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보도했었다. 롄 관장은 “한국전쟁은 매우 복잡하며 관련 외교문서를 공개하면 북한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당시 옛 소련과 북한 등 3개국 관계 관련 문서도 공개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선지루 중국 사회과학원 세계정치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미국과 러시아의 북한 관련 문서도 공개됐다.”면서 “중국도 사전 검열을 최소화하고 총괄적으로 기밀해제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 의사소통 능력이 최고 경쟁력/니컬스등 지음 ‘강한 회사는‘

    조직 내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문서보다 말로 뜻을 전하는 게 바람직하다.현장 책임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보다 설득력 있는 의사소통법은 없기 때문이다.최근 출간된 ‘강한 회사는 회의시간이 짧다’(랠프 G 니컬스 등 지음,심영우 옮김,21세기북스 펴냄)는 성숙한 의사소통 능력이 최고의 경쟁력임을 일깨워 준다.책에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골라 뽑은 8편의 글이 실렸다. 저자들은 ‘회의는 조직의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된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던진다.궤도를 벗어난 백가쟁명식 토론의 역작용을 경계한 것이다.책에 따르면 회의를 열더라도 참석자는 되도록 줄여야 한다.회의 인원은 4∼7명이 적합하며 많아도 10명을 넘어선 안된다.잘 정리된 의제와 다양한 대안은 필수.부하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더불어 결정하는 ‘분별형 관리자’가 이끄는 간명한 회의야말로 강한 조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
  • 儒林(유림) 속 한자이야기

    유림 (8)에 나오는 말로 破天荒(파천황)이 있다. 破(깨뜨릴 파)자는 石(돌 석)자와 皮(가죽 피)로 구성되어 있는데 硏(갈 연),碁(바둑 기),碑(비석 비),磐(너럭바위 반) 등과 같이 石자가 들어간 한자의 대부분은 돌과 관계된 뜻을 지니며,나머지 부분이 음이 된다.재미있는 것은 乭(돌 돌)자는 石자와 乙(새 을)이 합하여져 만들어진 우리나라 한자이다. 그리고 皮자가 들어간 경우는 彼(저 피),疲(피곤할 피),被(덮을 피),波(물결 파),婆(할머니 파) 등과 같이 거의 대부분이 ‘피’ 또는 ‘파’로 발음되며 나머지 부분은 뜻이 된다. 파(破)자가 들어가는 말 중에는 요즘 안타깝게도 자주 듣는 파경(破鏡)이 있다.이 말은 송나라 때의 설화집인 太平廣記(태평광기) 중 다음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진(陳)나라 궁중 관리였던 ‘서덕언’은 수(隋)나라가 쳐들어오자 자기 나라가 패할 것이고,그렇게 되면 자기의 아내는 수나라 귀족의 노예가 될 것임을 알았다.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거울을 두 쪽으로 깨뜨려 한 쪽을 그의 아내에게 주면서 “우리나라가 패하면 당신은 노예로 잡혀갈 것이오.그러니 우리가 부부라는 증표로 이것을 나눠 가집시다.그리고 당신은 내년 정월 대보름날 장안의 거리에서 (누구에게 시켜서라도)이 반쪽 거울을 팔도록 하오.”라고 말했다.과연 그의 말대로 진나라는 패하고 그의 아내는 수나라 귀족 ‘양소’의 노예가 되었다. 다음해 정월 대보름날 서덕언은 장안 길거리에 나가 보았는데,거기서 한 노파가 팔려고 내놓은 깨진 거울을 발견하였다.이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깨진 거울과 맞춰 보니 딱 맞는 것이었다.그래서 그는 노파에게 사연을 말하고 그 깨진 거울의 뒷부분에다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시로 적어 보냈다. 거울을 전해 받은 아내는 食飮(食 먹을 식,飮 마실 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함에,그 주인인 ‘양소’가 사연을 알게 되어 매우 감동하고는 같이 살게 하였다.이처럼 파경(破鏡)이란 원래 부부를 뜻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오늘날은 글자 그대로 깨어진 거울,즉 부부간의 이별,파탄(破綻)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파탄 또한 중국 삼국시대 적벽대전 직전에 있었던 다음일화에서 나온 말이다.오(吳)나라의 ‘주유’는 ‘조맹덕(조조)’의 백만대군(百萬大軍)과 맞서 싸우게 되었는데,불리할 것 같아 詐降計(詐 거짓 사,降 항복할 항,計 꾀 계)를 사용하기로 하고는,‘함택’을 시켜 詐降書(거짓 항복 문서)를 바치게 하였다. 그랬더니 조조가 그 사항서를 읽고 버럭 화를 내며 “네놈들은 지금 꾀를 부리고 있구나.내 네놈들의 綻露(綻 터질 탄,露 드러낼 로:허점)를 알려 주노니,왜 항복시간을 명시하지 않았느냐?”하는 것이었다.이에 함택이 “主人(조조를 뜻함)을 배반하는데 어찌 시간을 정하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그러자 조조는 자신이 속았음을 깨달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그 사이에 주유는 군사 배치를 끝냈고 조조는 결국 주유에게 크게 敗(패할 패)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실로 未曾有(미증유)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속임수 중의 하나였다.未曾有란 ‘일찍이 없었다.’는 말인데,이와 같은 뜻으로 ‘前代未聞(전대미문:예전에 미처 들어보지 못함)’ 또는 다음 일화에서 나온 ‘파천황(破天荒)’ 등이 있다. 당나라때 형주(荊州)라는 지방은 文人이 많은 고장임에도 불구하고 500년 동안이나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없었기에 天荒(천황:옛날부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황무지를 뜻하는 말이기에 유명한 인물이 나오지 못한 편벽한 땅을 지칭함)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던 중 선종4년(850년)에 ‘유세’라는 사람이 과거에 급제함에 따라 天荒을 깼다 하여 마침내 破天荒이라 불리게 되었다.그래서 파천황은 ‘전례(前例)가 없는 일을 처음으로 하다.’ 또는 ‘최초’ 등을 뜻한다. 박교선 교육부 연구사
  • 서울시 부동산 민원 인터넷서비스

    서울시는 부동산 관련 6가지 민원서류를 인터넷을 통해 받는 ‘인터넷 민원발급서비스’를 시작한다.휴대전화로 서류발급을 신청,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된 단말기로도 민원서류를 받을 수 있다.서울시 이종상 도시계획국장은 20일 “토지관련 민원서류의 20%만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통해 발급받아도 교통·인건비 등 연간 246억원의 절감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발급되는 서류는 ▲토지대장 ▲토지이용계획 확인서 ▲건축물 대장 ▲개별공시지가 확인서 ▲지적도 ▲경계점좌표 등록부 등이다. 서울시는 인터넷 발급 민원서류의 위·변조 가능성에 대비해 일련번호를 문서에 기재하거나 복사할 때 문서에 적힌 ‘원본’이라는 글자가 사라지도록 만드는 등의 위·변조방지 기술도 도입했다. 이유종기자 bell@
  • IBM 해외 아웃소싱 확대등 내부문건 공개 파장

    ‘시간당 임금 12.50달러 vs 56달러’‘감원시 절대 해외이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 것’‘보도자료는 반드시 홍보실을 거쳐 순화할 것’ 세계적인 제조 및 정보기술(IT)기업들이 앞다퉈 생산기지와 연구개발(R&D)센터를 중국과 인도로 이전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대의 컴퓨터 생산업체인 IBM이 해외이전에 따른 경제적 손익과 해외이전 계획을 미국내 직원들에게 설명하는 요령을 담은 내부문건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입수해 보도한 IBM의 내부문서에 따르면 IBM은 비용절감 차원에서 올해 3000개에 이어 내년에도 수천개의 일자리를 중국 등 해외로 이전할 계획이다.이같은 일자리 해외이전으로 오는 2006년부터는 해마다 1억 6800만달러(약 1997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IBM측은 올해 3000개의 일자리를 해외로 옮길 것이며 내년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언급을 피했다.단,올해 세계 각국에서 채용할 신규인력 1만 5000명 중 5000명만 미국에서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또는 12월에 작성된 이 내부문서에 따르면,회사측은 해외이전 계획과 연계된 미국내 인력감축으로만 올해 3060만달러(약 363억원),내년에 4740만달러(약 563억원)의 경비절감을 기대하고 있다.IBM은 지난주 2003년 4분기 실적발표때 “지난해 70억달러(약 8조 3200억원)의 경비를 절감했고 올해에도 비슷한 수준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황장석기자 surono@
  • 中 1949~55년 외교문서 공개 6·25개입등 베일 걷힐듯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외교부가 처음으로 외교 문서를 일반인들에게 공개키로 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사가 19일 보도했다. 중국 리자오싱(李肇星)외교부장은 지난 16일 외교부내 난페이러우(南配樓)에서 열린 ‘외교부 공개서류 열람실’ 개관식에 참석 “신중국 성립 이후 작성된 외교문서를 처음으로 사회에 개방하는 것은 시대발전에 따른 새로운 조치”라고 말했다고 신화사가 이날 전했다. 공개될 외교문서에는 신중국 초기에 일어난 한국전(중국측 抗美援朝)과 관련된 문건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6·25전쟁중 중국의 개입과정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리 외교부장은 “이번에 공개되는 외교문서는 국가와 공중의 이익에 부합되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공개되는 외교 문서(案)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1949년부터 1955년까지 건국초기 6년간의 외교문서 1만건 안팎으로 알려졌으며,건국초기 중국의 대외관계 수립과 발전과정,외국과의 정치·경제·문화 교류 진행 상황 등이 총망라된다. 특히 중국이 50년대 초반에 시도했던 비동맹회의와 관련된 국제회의 관련 문서들도 상당수 공개될 예정이다. 중국 외교부는 1956년 이후의 외교문서도 단계적으로 개방할 방침이다. 중국 외교부의 한 소식통은 “외교문서가 사회에 공개되면 국내외에 신중국 건립 이후 외교적 성과를 이해하고 중국의 외교정책 및 중국 외교사 연구에도 상당한 공헌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oilman@
  • 산자와 죽은자의 만남 祭 禮

    국립문화재연구소 지음 전통 유교사회에서 가족은 조상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집안 대소사가 있으면 후손들은 먼저 사당에 모신 조상에게 고했다.조상은 후손과 함께 살아갈 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여겨졌다.조상의 혼을 위로하는 제례의식도 그래서 생겨났다.제례를 통해 산 자와 죽은 자는 하나가 됐고,조상을 매개로 가족과 문중은 결속을 다졌다.그러나 가족의 해체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오늘날 전통 제례는 그 의미가 바랜 채 얼마간은 ‘부담스러운’ 의무로 변질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전통문화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추진해온 ‘전통 기ㆍ예능 조사연구 프로젝트’의 하나로 선보인 ‘종가의 제례와 음식’(전3권,김영사 펴냄)은 한국의 전통 봉제사(奉祭祀) 풍습을 통해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의 참모습을 일깨워준다.조선시대 가문 중에서 그 조상이 공자를 모신 문묘에 배향되거나 제왕가의 사당인 종묘에 공신으로 오른 종가를 대상으로 삼았다.책에는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지내는 전국 30여개 종가 가운데 다섯곳이 소개된다.의성김씨 학봉 김성일 종가(1권),서흥김씨 한훤당 김굉필 종가,반남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2권),월성손씨 양민공 손소 종가ㆍ청주한씨 서평부원군 한준겸 종가(3권)가 그것이다.불천위란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해 신주를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모신 채 제사를 지내도록 한 신위를 일컫는 말.신주를 매안(埋安)하지 않고 계속 봉사한다고 해 부조묘(不廟)라고도 불린다. 요즘은 일반 가정에서 사당이 사라져버려 사당 참배 제사나 속절(俗節) 제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설날과 추석차례 정도만 민족의 가장 큰 명절 차례로 남아 있다.그렇지만 유교문화의 마지막 보루인 종가,그 중에서도 몇몇 명문 종가에서는 나름의 엄격한 제사 풍습을 지켜오고 있다.‘제사는 가가례(家家禮)’라는 말이 있듯이 제례 풍습은 각양각색이다.집집마다 제물의 내용이나 진설 방법이 다르다.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학봉 김성일은 서애 유성룡,한강 정구와 함께 퇴계 문하의 세 인물로 꼽히는 성리학자다.안동의 학봉 종가는 북어·고등어·방어·상어·조기·쇠고기·닭 등을 전혀 조리하지 않은 날것으로 올린다.‘예기’의 법도에 따른 것이다.세배도 신년 세배보다 섣달 그믐날 밤에 하는 묵은세배,즉 묵세배를 진짜 세배로 친다.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한훤당 김굉필 종가는 이와 또 다르다.성균관 대성전에 조선시대 인물로서 첫 자리에 배향된 ‘유학의 조종(祖宗)’이 바로 한훤당이다.대구 달성군에 있는 한훤당 종가에서는 모든 음식을 익혀서 쓴다.이곳에서는 10여년 전만 해도 붕어구이를 올렸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나오는 토산물인 붕어를 이용한 붕어구이는 제사음식으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제물이 됐다. 한훤당 종가에서는 제사 절차를 문서로 적은 홀기(笏記)없이 제례를 올리는 점이 눈에 띈다.전문가들은 이런 제례 방식은 규범보다는 관행을 앞세우는 가야문화권의 영향이라고 말한다.명문 종가에서는 보통 ‘주자가례’를 비롯한 예서들을 토대로 홀기를 만들고,창홀을 하면서 의례를 진행한다. 목민관의 모범을 보여준 조선초 문신 양민공 손소 종가의 제사풍습은 어떨까.경주 양동마을 손소 종가의 제사음식은 경주라는 문화적·지역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다른 지역과 달리 대나무꼬치를 많이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데,이는 경주가 대나무 산지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같은 경상북도이면서도 안동지역은 고등어를 제사음식으로 사용하는 데 반해 경주 지역에서는 고등어를 제상에 올리지 않는다.경주지역은 해산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흔한 생선에 대해선 배타적이라는 것이다.갈치·삼치·꽁치·멸치 등 ‘치’자가 붙은 생선에 대한 금기는 손소 종가 내지 양동마을의 독특한 풍습이다. 종가의 전통은 종손과 종부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그러나 대부분의 종부들은 70∼80대 고령에 접어들어 전통 제례와 음식의 맥이 끊어져가고 있는 실정이다.2년간에 걸친 문헌연구와 현장조사 끝에 내놓은 이 시리즈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 제례의식을 뒤늦게나마 복원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270여 점의 원색도판이 ‘종가문화’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준다.각권 1만900원. 김종면기자 jmkim@
  • 北 “美서 적대정책 포기땐 핵철폐”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북한이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4단계 행동방안을 문서로 밝혀 주목된다.이른바 ‘동시행동에 입각한 일괄타결안’으로 북한 외무성의 이근 미주국 부국장이 지난해 12월 미 국가정책센터(CNP)에 ‘핵 문제 해결의 제반요소들’이라는 제목으로 보냈다. 특히 2차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한·미,미·중간 고위급 실무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리기 시작한 13일 이같은 제안이 공개돼 회담 결과가 주목된다. 북한은 CNP에 보낸 문서에서 미국이 동시행동에 따른 일괄타결안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면 핵의 완전철폐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일괄 타결안의 큰 틀은 북한의 ‘핵 포기 의사표명’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의 교환이다.미국이 강조해 온 핵 폐기 성명에 상응한 불가침 보장과는 밑그림이 다르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에 3가지를 포함시켰다.▲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불가침 보장을 믿을 만한 방식으로 제공하고 ▲북·미간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한국·일본 등 다른 나라와의 경제거래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괄타결안 실행에 북한은 4가지 행동순서를 제시했다.이근 부국장은 미국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받아들일 필요는 없으며 다음 6자회담에서 첫번째 단계에만 합의해도 회담이 지속될 기초는 마련된 셈이라고 밝혔다. 즉 북한이 핵 폐기를 선언하고 핵 활동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삭제하고 대북 정치·경제·군사적 제재와 봉쇄를 푸는 한편 주변국들이 북한에 중유나 전력 등의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것. 두 번째 단계는 미국이 대북 불가침을 문서로 보장하고 전력 손실을 보상하면 북한은 핵 동결과 동시에 핵 시설 및 물질에 대한 사찰과 감시를 허용한다.세 번째 단계는 북·미,북·일간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미사일 문제를 해결한다. 네 번째로는 경수로 건설을 매듭짓는 것과 동시에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해제한다. 안전보장 문제를 두 번째 단계에 포함시킨 것은 북한의 전력 및 경제문제가 극도로 심각함을 반영한다. mip@
  • ‘장준하 미스터리’ 베일 벗나

    29년전 죽음의 비밀이 마침내 풀릴 것인가. 지난 75년 경기 포천 약사봉 등반도중 의문사한 재야인사 장준하(사진)씨 사망사건의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하지만 당시 장씨에 관해 방대한 사찰자료를 확보한 정보기관들이 자료협조를 기피,진상이 명백하게 드러나기는 여전히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고지역 인근에 보안부대” 사건을 조사중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4일 종로구 수송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장준하씨 사망 다음날 진종채 당시 보안사령관(98년 사망)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50분 가량 독대한 사실 등 새로운 증거를 공개했다. 의문사위 이희수 상임위원은 “사건 발생 다음날인 8월 18일 오후 4시43분부터 5시 30분까지 진 사령관이 박 대통령을 독대한 사실을 정부기록물보관소에 보관중인 청와대 문서에서 확인했다.”면서 “보안사령관 혼자 갑자기 대통령을 만나 50분 동안이나 보고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사고 지역 인근에 보안부대가 있었고 사고 직전 장씨가 두명의 군인과 만났다는 목격자 진술이 나오는 등 이 사건과 군의 관련성을 의심케 하는 정황증거들이 다수”라면서 “대통령 보고와 이 사건의 관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기무사령부에 방문목적과 보고문서 등의 제출을 요구했지만 존안중인 문서가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동행자는 중정 정보원? 사건 직후 유족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사실을 알린 괴전화의 주인공이 당시 장씨와 동행했던 김모(69)씨였다는 점도 처음 밝혀졌다.김씨는 당시 장씨가 이끌던 통일사회당의 자원봉사자로 장씨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유족과 관련단체 등에서는 김씨가 중앙정보부의 정보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의문사위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서 김씨는 통화사실을 부인했지만 당시 중정이 작성한 ‘중요상황보고서’는 전화를 건 사람이 김씨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고 밝혔다.의문사위가 공개한 중정의 보고서에는 “현지 경찰(3명)이 현장을 경비중에 있는데,동 일행인 김○○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장준하 부인 및 가족 등이 20:30경 현장에도착하였음.”이란 내용이 적혀있다. 의문사위 관계자는 “당시 중정의 장준하 사찰 담당이었던 박모 계장과 전화도청을 담당한 기술정보실장도 보고서는 기술정보국의 감청결과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며 등장하는 실명은 사실확인을 거친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미공개 사진 6장 공개 의문사위는 이날 지금까지 공개된 3장의 시신 사진 외에 6장의 사진을 추가로 공개했다.의문사위 관계자는 “사진은 사고 이틀 뒤 유족들의 요청으로 조철구 박사 등 국내의료진 3명이 촬영한 것”이라면서 “5개의 감정기관에 보내 법의학적 소견을 얻는 중”이라고 밝혔다. 의문사위는 이 사진의 필름을 지난해 9월 장씨의 부인 김희숙씨 집에 대한 실지조사 과정에서 새로 찾아냈다. 이세영기자 sylee@
  • 벌금 100만원 ‘관대한 처벌’ 딸 姓바꿔 호적올린 女공무원

    사별한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두 딸의 성과 이름을 바꿔 재혼한 남편에게 입적시켰다가 고발된 여성 공무원 A(38·경기도 고양시청 7급)씨(서울신문 2003년 10월21일자 9면 보도)에게 검찰이 벌금 100만원과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고양시는 A씨가 직무를 이용해 문서를 조작한 것은 중징계 사안이어서 A씨의 징계수위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한편 A씨의 사연이 알려지자 여성단체연합·고양여성민우회 등은 A씨를 ‘전형적인 호주제 피해자’로 규정해 정부에 호주제의 조속한 폐지를,검찰에 호주제 폐지 후 사건처리를 공개적으로 요청했었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
  • ‘사이버 38선’에 한랭전선

    남북간의 새로운 교류형태로 주목되던 인터넷 사업을 둘러싸고 남북간에 미묘한 기류가 조성되고 있다. 통일부가 대북 인터넷 사업을 주도해오던 국내 기업 훈넷(www.hoonnet.co.kr)에 대해 ‘원래 취지에 맞지 않는 카지노 사업을 주도했다.’며 최근 사업승인을 취소하기로 하자 북측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측은 훈넷과 공동 설립한 ‘조선복권합영회사’의 사이트 주패(www.jupae.com)에 ‘이해할 수 없다.’는 성명을 게재하는 등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성명에서 북한측은 “조선복권합영회사의 남측 상대인 훈넷과 주체91(2002)년 9월16일에 체결한 기본 계약서에는 인터넷 갬블링 사업을 우리 해당기관의 승인을 받아 진행한다는 내용이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다.”고 밝혔다.이어 “이같은 명백한 사실이 있음에도 이제 와서 ‘훈넷측이 벌이는 복권발행 및 도박장 사업은 당초 승인받은 협력사업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통일부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는 “훈넷과 북한이체결했다는 사업승인 계약서에는 카지노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면서 “사업승인 취소는 북한측이 논의도 없이 카지노 게임을 하는 주패사이트를 오픈한 것에 따른 조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훈넷측의 주장은 엇갈린다.훈넷 김범훈 사장은 “통일부에 제출한 사업승인신청서에 실제 현금이 오가는 카지노 사이트를 개설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면서 “최초부터 잘못된 승인을 내줬다면 책임은 통일부에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북한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민경련의 공식문서를 받은 이후에도 통일부에서 회신이나 협조공문 없이 무응답으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훈넷’은 2001년 11월 통일부로부터 남북협력사업을 승인받고 북측과 ‘조선복권합영회사’를 설립,카지노 게임용 주패사이트 등을 운영해 왔다. 한편 서울지검 공안1부(부장 吳世憲)는 13일 남북한이 공동출자 운영하고 있는 ‘주패사이트’에 대해 법리검토를 한 결과,대공용의점이 없는 것으로 결론낸 것으로 알려졌다.이와 관련,박만 서울지검 1차장검사는 “이 사이트가 정부의 승인을 얻어 운영되고 있는 만큼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 사이트에서 이뤄지는 도박이 국내 실정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는 현재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수사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홍환 유영규기자 whoami@
  • EU, 對美무역 보복 착수

    |제네바 연합|미국이 버드 수정안 철폐시한을 넘긴데 반발하는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국 등 공동제소국의 대미 보복이 확실시되고 있다. EU는 12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13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국에 대미 보복의 승인을 요청하는 문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버드 수정안이란 미국 세관이 외국업체로부터 거둔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금을 미국내 피해 업체들에 재분배토록 규정하는 내용이다. EU의 이날 발표는 한국을 포함한 다른 제소국들이 보복 대열에 합류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선도적 조치를 취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11개 공동제소국 가운데 일본과 캐나다는 이미 보복 허가를 신청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상태다.WTO 관측통들은 한국도 EU,일본 다음으로 버드 수정법에 의한 피해가 큰 만큼 보복 승인을 신청할 것이 확실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소식통들은 다만 피해가 경미한 2∼3개국 정도는 보복에 동참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공동 제소국은 한국 외에 EU,일본,호주,브라질,칠레,인도,인도네시아,태국,캐나다,멕시코 등이다. 공동제소국은 오는 26일 WTO의 분쟁해결기구(DSB)에 제출할 의제의 마감이 15일로 임박함에 따라 지난 9일 제네바에서 비공식 접촉을 갖고 보복 여부를 논의했다.공동제소국은 13일 추가로 비공식 협의를 가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WTO 상소기구는 지난해 6월 버드 수정안이 WTO협정에 위배된다고 최종 판정하고 미국측에 이를 지난해 12월 27일까지 철폐토록 요구했었다.공동제소국은 외국기업에 벌금을 부과한 뒤 이를 미국내 경쟁기업에 기술개발비나 의료비,연금 등의 형태로 분배하는 것은 이중처벌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제소의 남발을 유도할 우려가 있다며 이를 제소,승소판정을 이끌어냈다.
  • 외교부 내부불화설 무성/북미·조약국 갈등이 ‘촉발’ 후문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외교부 직원 조사가 직접적으로는 외교부 내 용산기지 이전 협상을 둘러싼 정책갈등에서 비롯됐다는 관측이 나온다.외교부 내 국간,또 국 내부 직원간 견해를 달리 하면서 한 직원이 같은 외교부 청사 건물에 있는 민정수석실에 제보함으로써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이다. 처음 용산기지 이전 협상을 놓고 대립했던 부서는 북미국과 조약국인 것으로 전해졌다.북미국은 이번 용산기지 이전 협상을 통해 지난 90년 합의문서에 있던 손해배상부담 등 모두 30여개에 달하는 독소조항을 제거했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조약국은 90년 합의 때 문제로 지적된 이전비용 전액 부담 조항을 해소하지 못했다며 이전비용의 상한선을 설정해야 한다고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6차 한·미 미래동맹조정회의가 15∼16일로 잡혀 북미국의 계획대로 협상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조약국뿐 아니라 북미국 내부의 일부 직원도 이에 불만을 가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이와 함께 최근 인사 때 불이익을 받았다는 피해의식까지 겹치면서 결국 한 직원이 민정수석실에 제보한 것으로 전해졌다.이 직원은 제보 당시 용산기지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회의와 회식 등 공·사석에서 대통령과 NSC에 대한 조현동 북미3과장의 문제 발언을 열거하고 이에 동조한 직원들의 발언내용까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헌 외교부 조약과장은 “용산기지 이전 협상은 국민부담과 직결돼 있는 만큼 법적으로 명확히 합의문을 작성해야 한다는 점을 북미국에 전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일단락된 문제이고 청와대 조사 건과도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결국 북미국 소속 직원이 이같은 정황을 제보했을 가능성이 보다 높은 상황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백범암살 진실캐기는 아직 안끝났죠”워싱턴 국립문서기록관리청 방문하는 권중희씨

    권중희(權重熙·67)씨.백범(白凡) 암살범 안두희하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다.우리 현대사에서 그만큼 집요한 사람도 드물다.안두희를 추적하며 개인차원의 응징도 여러 차례 했다.그러나 암살 배후의 전모는 끝내 밝혀내지 못했고,안씨는 몇 년전 세상을 떴다. 권씨는 요즘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미국의 백범 암살 관련 여부를 캐기 위한 미국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권씨는 이달 말쯤 워싱턴 인근 칼리지파크에 있는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방문,미육군 정보 문서철 가운데 백범의 암살과 관련된 자료를 찾겠다는 계획이다. 권씨가 미국행을 결심한 것은 안두희로부터 백범 암살에 미국이 관련된 듯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생전의 안두희가 “미국 정보기관에 근무하는 중령이 암살 2개월 전 찾아와 백범을 ‘블랙 타이거’로 지칭한 뒤 ‘국론분열자’‘제거되어야 할 인물’이라며 강한 살해암시를 주었다.”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권씨는 이를 밝히기 위해 오래전에 방미 계획을 세웠으나 비용 때문에 진행시키지 못했다.그러다 지난해 11월 한 인터넷매체에 이화여대 부고 박도(57) 교사의 ‘의를 좇는 사람들-권중희편’이라는 글이 실리면서 길이 열렸다.네티즌들의 모금이 3600만원에 달해 미국행이 성사된 것이다. 권씨는 그러나 고민이 많다.미국문서청에 보관된 파일이 455만개에 달하기 때문이다.백범 관련 자료를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찾기’와 같다.이 때문에 영문과 도서관학 관련지식이 풍부한 동행자를 찾고 있으나 체류비외에는 보수가 없기 때문인지 마땅한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미국과의 외교문제도 조심스럽다.미국 개입에 대한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의 일을 밝히려다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권씨는 “미국이 관련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궁금증을 풀자는 차원으로 해석해 달라.”면서“그렇지만 성과가 없으면 국민 성금을 낭비한 꼴이라 무슨 낯으로 귀국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서울 신촌 이화여대 앞 사거리에서 허름한 기원을 운영하던 평범한 가장이었다.이곳의 수입으로 2남1녀를 가르치고 근근이 생계를 꾸려갔다.그러다 81년 우연히 신문에서 “백범 암살범 안두희가 미국으로의 이민을 기도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이 기사는 인생행로를 바꿔 놓았다.스스로 ‘주제넘은 일’이라고 치부하는 일에 뛰어들게 된다. 어릴 적 ‘백범일지’를 읽은 뒤 김구선생을 흠모하기는 했지만,먹고살기도 바쁜 판이어서 백범 암살에 관한 진상 규명은 ‘거창한’ 사람들이나 기관이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하지만 수십년이 지나도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권씨는 일단 결심이 서자 안두희를 무섭도록 옭매었다.숨어 지내는 안두희를 수년간의 추적끝에 찾아내 87년 3월 서울 마포의 대로변에서 ‘민족반역자를 응징하며’라는 성명과 함께 몽둥이 찜질을 했고,이후에도 계속 거처를 옮기는 안두희를 귀신처럼 찾아내 수차례에 걸쳐 백범 암살과 관련된 귀중한 증언을 얻어냈다. 이 과정에서 다소의 폭력을 행사해 두 차례나 옥살이를 하고 ‘강압에 의한 고백’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얻어낸 증언은 백범 암살 당시의 상황 및 관련자들의 진술과 일치돼 ‘백범 암살사’를다시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백범 살해 당시부터 떠돌던 장은산 포병사령관,김창룡 특무부대장,이승만 대통령 개입설을 안두희가 자신의 입으로 밝힌 최초의 증언이었던 것이다. 결국 안두희는 96년 10월 23일 권씨의 ‘제자격’인 박기서(57)씨에 의해 몽둥이로 살해됐다.이때 권씨는 뜻밖에도 안두희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그는 “안두희를 살려두고 역사적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야 했다.”고 했다. 이후 본업(?)을 잃어버린 권씨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안두희를 추적할 때도 생활이 어려웠지만 부인 김영자(64)씨가 주방기기 외판업을 해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갔는데 부인마저 이 무렵 다단계판매에 손댔다가 사기를 당해 1억원의 빚을 지고 거리로 내몰렸다. 다행히 권씨를 따르는 유모(45)씨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농장 소우리를 개조해 만든 단칸방을 내줘 거처를 옮겼다.그러나 이마저도 서울외곽순환도로 공사로 헐리자 2002년 6월부터 지인 김모(49)씨의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 26평 아파트에서 더부살이하고 있다.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돼 매월 받는 27만원이 권씨의 유일한 소득이다.할 일이 별로 없어 틈틈이 글을 쓰고 독립운동과 민족사에 관한 책을 읽으며 소일해 왔다. 권씨는 이순(耳順)을 훨씬 넘겼음에도 아직도 꼬장꼬장하다.3년전 독립기념관 인근에 있는 천안시 목천면사무소에 민원서류를 떼기 위해 들렀을 때의 일이다.입구 조형물에 서정주의 시 ‘국화옆에서’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면장을 찾아가 “하필이면 독립기념관 옆에 친일문학가의 시를 전시한 이유가 뭔가.”라고 따져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가 사물과 현상을 판단하는 첫째 기준은 친일 여부와 민족정기다.그래서 정치권 보수세력에 대해 극도의 불신을 표시한다. “우리나라 보수세력은 일제 때는 친일,미국이 들어오자 친미,다시 군부독재에 빌붙은 전천후 기회주의자일 뿐입니다.” 그는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면서도 의기가 드높을 때 보수를 말할 자격이 있다.”면서 “보수를 한답시고 트럭으로 수 백억원씩 강탈하는 무리들은 도적떼에 불과할 뿐”이라고 질타했다. 김학준기자 kimhj@
  • 日 “수교문서 공개말라” 외교압박

    국내에서 한·일수교회담 문서의 공개를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되자 일본 외교 당국자들이 외교통상부에 해당 문서의 비공개를 수시로 요청하는 등 외교압박을 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제정 추진위원회’는 지난 9일 서울 행정법원에서 열린 한·일 수교회담 문서 공개소송 결심공판에서 이같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11일 밝혔다. 일제강점하 피해자 100명은 지난해 “1965년 한·일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되지 않아 피해보상 소송에 어려움이 많다.”며 외교통상부 장관을 상대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날 결심공판에서 피고측 증인으로 나선 유의상 외교부 동북아 1과장은 “정보공개 청구 이후 스기야마 시스케 주한공사 등 일본의 외교 당국자들로부터 수교문서의 비공개를 수시로 계속 요청받고 있느냐.”는 증인신문에 대해 “그렇다.”고 인정했다. 이날 증인신문에서는 일제강점하 피해자들이 2002년 9월 외교부에 수교문서 공개를 청구하자 일본 정부가 국익을 훼손할 수있는 중요 정보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어 ‘정보공개청구에 응하지 말아달라.’고 공식 요청했던 사실도 드러났다.외교부 관계자는 “외교문서 공개여부를 검토할 때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 의견을 물어 동의할 경우에만 공개하는 게 외교 관례”라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 “부시 9·11이전 이라크공격 계획”/오닐 前재무장관 “후세인 제거등 독단적 정책결정” 비난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귀머거리에 둘러싸인 장님이다.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이라크 공격은 9·11 이전부터 계획됐다.” 폴 오닐(사진) 전 재무장관이 부시 대통령의 독단적인 정책결정 등을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섰다.전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인 론 서스킨드가 쓴 ‘충성의 대가’라는 책에서 오닐 전 장관은 부시 행정부의 초기 2년을 질타했다. 13일 출간을 앞두고 11일 CBS와 가진 대담에서 그는 “부시 대통령의 행동은 예측할 수가 없어서 각료들은 대통령이 바라는 것을 놓치기 일쑤이고 백악관의 정책에는 육감에 의존하도록 강요받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각료회의 중인 부시 대통령은 주의가 산만해 ‘귀머거리’로 가득찬 가운데 있는 ‘장님’과 같다고 말했다. 오닐 전 장관은 대통령과의 첫 만남도 ‘실망’으로 묘사했다.“나는 대통령과 논의할 목록들을 갖고 갔다.대통령이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나 혼자 얘기하고 대통령은 단지 듣기만 하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그것은 거의 독백이었다.”특히 이라크 침공은 당초 알려진 것처럼 9·11테러가 발생하고 8개월이 지난 뒤가 아니라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2001년 1월 직후부터 계획됐다고 밝혔다.오닐 전 장관은 CBS와의 대담에서 “부시 행정부는 처음부터 후세인은 나쁜 사람이고 제거할 대상이라는 확신을 가졌다.”며 “‘미국이 결정한 것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권리가 있다.’는 선제공격의 개념은 나에게 커다란 비약이었다.”고 말했다. CBS 대담에 함께 참석한 서스킨드는 오닐 전 장관과 백악관의 다른 관리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는 집권 3개월만에 군사작전을 고려했고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의 평화유지군이나 전범재판 등과 같은 대책안을 강구했다고 밝혔다. 자료에는 ‘비밀’로 찍힌 ‘포스트 사담 계획’이라는 메모도 포함됐다.‘외국의 이라크 유전 계약자’라는 국방부 문서에는 이라크 유전지역을 망라했을 뿐 아니라 이라크 석유에 관심을 보인 30∼40개 나라의 계약자들을 명시했다고 서스킨드는 말했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그가 장관직을 수행한 데 감사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백악관이 책의 내용까지 검토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가 성취하고 있는 결과보다 그의 의견을 정당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오닐 전 장관은 수입철강 관세에 반대하고 환율에 민감한 발언을 자주 한 데다 기업 등을 위한 부시 대통령의 감세정책에 반대,2002년 12월 전격 해임됐다. mip@
  • [정동주 역사문학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3)한국인을 사랑한 사람, 무어 목사

    “대황제 폐하께,나 새뮤얼 무어는 미국의 시민으로서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느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만약에 황제폐하께서 폐하의 신하들과 함께 이 말씀을 듣기를 원하신다면 저를 불러주시길 황송한 마음으로 바라옵니다.” 한글로 적힌 이 편지는 겉봉에다 ‘코리아의 황제,서울시(The Emperor of Korea,City)’라 적고 그 안에 넣어져 우체통에 있었다. 이 편지는 고종황제께 전달되지 않고 내무부 관리의 손에 들어갔다.그 관리는 편지를 보낸 이가 그즈음 한창 한국의 백정(白丁)들에게 설교하는 일로하여 미국선교단과 서울 주재 외교관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새뮤얼 무어라는 사람임을 알았다.그 관리가 보기에 무어 목사는 불손하기 그지없었다.감히 일개 외국선교사가 사사로이 고종황제에게 편지질을 한 것은 크게 비난받을 무례한 짓이라는 공식 불평과 함께 그 편지를 미국 공사 알렌(H,N,Allen)에게 다시 보냈다. ●“무어는 정신이 건전치 못한 사람 같다” 편지 겉봉의 수신인은 ‘코리아의 황제’,수신인의 주소를 ‘서울(City)’이라고 적은 것은 우습기도 하고 기발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편지를 검토한 알렌 공사는 미 국무부에 보낸 공문서에서 “이런 겉잡을 수 없고 무례한 선교사는 공사관 영창에 가둬야 옳다.”고 했다.그의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서는 “무어라는 괴짜 선교사 한 사람을 감금시키겠다고 협박할수밖에 없다.”고 했으며,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 엘린우드(Ellinwood)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무어 목사는 가장 어렵고 귀찮은 사람이며 내가 언젠가 그를 ‘미친인간’으로 보지 않으리라 장담 못하지만 그의 행동은 분명 ‘정신이 건전치 못한 사람’같다.”고 썼다. 또한 “무어 목사가 고종황제를 만나겠다는 것은 그의 백정들(his butchers)을 인정받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며,‘정신 상태가 건전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가 없어서 공사관에 관계된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삭제해버렸다.”고 하면서 “선교사들의 보호뿐만 아니라 무어 목사같은 괴짜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선교사 거류지를 차라리 부산,인천,원산과 같은 개항지로제한하는 것이 좋겠다.”고 까지 썼다. 알렌 공사는 1900년 가을 평양에서 열린 장로교 선교사들의 연례회의에서,앞으로 무어 목사가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알렌 공사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고 재한 미국인 거류민으로서 어울리는 행동을 하겠다는 서약을 받도록 했다.그리고 이같은 사실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는 회의록을 미국공사관에 전달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무어 목사는 이 통고를 받은 뒤 몹시 괴로워하다가 “내가 미국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에 대하여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여 나의 상관에게 매우 버릇없이 말했음을 깨닫지 못했었다.”는 사과편지를 알렌 공사에게 보내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지을 수 있었다. 알렌 공사의 말대로라면 “무식한 토박이 글쟁이가 썼기 때문에 무례한 글”이었으나 무어 목사는,“그 편지는 지도를 받아 가장 존대하는 말로 썼으며,편지 겉봉의 표기가 잘못되어서 불손하다는 항의를 받게 되었다면 그것은 본의가 아니고 이 나라의 관례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며,불손한 의도는 전혀 없었고 다만 황제폐하와 그가 다스리시는 나라의 현재와 영원한 복락을 염원해서 쓴 것이었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한국의 천민 계급의 대명사이자 가장 탄압받고 사는 백정들에게 기독교를 통하여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참뜻을 깨닫게 하기 위한 선교활동으로 인하여 알렌 공사와 무어 목사 사이에는 비난과 해명의 편지가 여러 차례 오고 갔다. ●1900년 서울 외교관들 화제의 주인공 무어 목사는 참기 어려운 마음의 괴로움을 선교본부 엘린우드 총무에게 편지로 토로했다.“나와 같은 사람을 파괴시키기 위해 알렌은 그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고 느껴집니다.나는 지금까지 누구를 증오한다는 것이 어떤 심정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알렌에게 품었던 미워하는 감정은 몇 주간이었고,그 폭풍은 벌써 지나가버렸습니다.아마 누군가가 특별히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라고. 1900년 한해 내내 서울의 외교관들 사이에서 단연코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던 무어 목사는 그때 40세였다. 새뮤얼 무어(Samuel F.Moore,한국 이름 모삼열·牟三悅)는 1860년에 태어나서 1906년에 이 세상을 떠났다.그가 한국에 온 것은 1892년 9월19일 제물포를 통해서였다.시카고 부근 그랜드 리지(Grand Ridge)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1889년 몬타나대학(College of Montana,현재 이름은 RoCky Mountain College)을 마치고,매코믹신학교(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에 입학하여 1892년 봄에 졸업했다. 대학 시절부터 남다른 소명의식을 갖고 있었던 그는 대학시절 학교 근처 감옥의 죄수들을 찾아다니면서 인간답게 사는 길을 열렬하게 외쳤고,신학교 시절에는 경찰서 유치장의 죄수들을 찾아다니며 인간의 행복에 대해 설교하기도 했다.그해 9월 로즈 엘리(Rose Elly)와 결혼하여 미국 북장로 선교사가 되어 두 달 뒤 아내와 함께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15년동안 한국에 살면서 아들 셋,딸 하나를 모두 한국땅에서 낳아 길렀다.딸은 무어 목사가 세상을 떠날 때 아내의 복중에 있어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는 죽은 뒤에도 한국땅에 묻혀서 우리와 함께 살지만,그가 떠난지 10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한국인은 그토록 그가 차별받은 사람들을 붙들고 절규했던 인간평등과 사랑을 많이 잊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리 스스로에게 되묻고 싶다. ●3년만에 한국말로 완벽하게 설교 그는 한국에 온 뒤 빨리 한국말을 익히기 위하여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그 당시 선교사들은 정동이나 연동에 모여 살았다.신변의 안전과 가정생활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무어 목사는 한국인 마을에서 서민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다.빼어난 언어감각으로 한국이 온지 반년이 채 못지나서 한국말로 주기도문을 유창하게 외웠고,간단한 기도는 거뜬히 할 수 있었다. 3년 뒤 그는 수원의 한 교회에서 한국말로 설교를 했는데 너무나 완벽하게 한국 서민이 사용하는 말로 교인들을 감동시킨 나머지 한 교인이 미국에서도 목사들이 한국말을 쓰는지 묻는 바람에 크게 웃은 일이 있었다. 한국사람이 양복만 입은 것 같다는 한국인들의 그에 대한 칭찬은 그의 한국말 솜씨가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의 생활 대부분이 한국인들과의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 그의 말은 서민들의 생활언어여서 서민이라면 누구하고도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 그즈음 미국의 선교사위원회에서는 선교활동을 돕기위하여 선교사들에게 ‘한국어 시험’을 치르도록 하고 있었다.그런데 그토록 한국말을 잘하는 무어 목사는 그 시험에서 늘 낙제점수를 받았다.이유는 사뭇 엉뚱했다.그 시험에서는 서울 양반계층들이 사용하는 유식하고 고급스러운 말들만 물었기 때문에 무어 목사가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이다.선교위원회에서는 무어 목사에게 양반의 고급 교양어를 배우도록 권고했다.무어 목사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민중을 가르치려면 민중과 호흡해야 자신이 최선을 다해 섬기고 싶은 것은 평범하고 진실된 한국 서민들이며,그들을 위하는 길은 양반들의 고급스러운 말을 이용한 성경운동 보다는 그들의 가난하고 낮은 삶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서,그들의 마음이 되어서 그들의 눈과 가슴으로 인간이 평등해야 하는 까닭을 설명했다.자유를누리기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그들의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 보다 현명한 것은 없다고 했다. 감리교의 초기 선교사였던 아펜젤러(H.G.Appenzeller) 목사는 어느날 무어 목사가 어느 교회앞 길거리에서 많은 한국인들에게 한국말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전도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감동적이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기도 하다. 그는 민중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민중의 습속을 생활하면서 민중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믿었다.이런 그의 진지하고 애정어린 태도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갖게 했고,향기롭게 새겨진 그의 인상은 오래도록 가슴에 살아남아 있다. 그의 집은 늘 한국 서민들로 북적거렸고,항상 그는 길거리에서 서민들을 만나 세상사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조금도 차별하지 않고 좋은 이웃이 되려고 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그의 집을 인의예지가(仁義禮智家)라 칭송했다. 오늘,같은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을 차별하는 저 천하에 몹쓸 지연,학연,혈연이 만든 질병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무어 목사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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