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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고이즈미 위안부 법적 책임 인정해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일본을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국 정부가 한·일회담 외교문서를 공개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적시하자마자 “일본 정부 입장은 다르다.”고 맞받아쳤다. 이웃나라가 장시간 내부논의를 거쳐 내놓은 의견이라면 수용 여부를 고민이라도 해봐야 한다. 일언지하에 거절하다니, 외교적으로 무례한 일이다. 이래서야 한·일 선린관계에 해를 끼침은 물론 지구촌에 ‘속좁은 일본’을 각인시킬 뿐이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 그들 정부나 군 등 공권력이 관여한 불법행위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모두 해결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독일은 프랑스와 포괄적인 청구권협상을 끝낸 뒤에도 강제징집자 보상노력을 정부·민간이 함께 벌여왔다. 국제법을 따지기에 앞서 과거 잘못에 무한책임을 진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경제대국 일본에 위안부 등에 대한 피해보상 비용은 별로 부담이 되질 않는다. 국가 이미지가 올라가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일본측에서 사죄·보상을 서둘러야 마땅하다. 단기 해외원조보다 적은 비용으로 일본이 유엔 상임이사국이 될 기반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야3당이 올 봄 군위안부 사죄·보상 법안을 제출한 배경을 일본 정부는 숙고해야 한다. 이번 외교문서 공개로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동포, 원폭 피해자 등은 한·일 청구권협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음이 확실해졌다. 일본이 새로이 법적 책임을 느껴야 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법적 책임을 양자간, 또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적극 추궁하되 정부차원의 배상요구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국제사회에서 주의를 환기시켜 일본을 압박하고, 피해자 소송을 지원하는 정도는 너무 소극적이고 많은 시일이 걸린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고령으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이다. 살아계실 때 성과를 볼 수 있게 일본의 태도변화를 더욱 강한 방식으로 촉구해야 한다. 정부가 직접 배상을 요구하거나, 북한·중국·동남아국가와의 구체적 공조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국제기구 통해 ‘日 법적책임’ 제기

    국제기구 통해 ‘日 법적책임’ 제기

    “궁극적으로 일본의 군 또는 국가기관이 개입해 저지른 반(反) 인륜적 불법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도록 강도높은 압력을 넣겠다.” 정부 관계자는 28일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 일본측의 반인도적 행위의 불법성을 유엔 인권위 등 국제기구를 통해 강력하게 제기해 나갈 방침임을 천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의 반성없는 비양심적인 태도를 비난하는 압력을 계속 가해 나갈 것”이라면서 피해자들이 소송을 할 경우에 대해선 가능한 지원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부는 9월 유엔 총회 이후 10월 중순 속개될 유엔 인권위원회에서부터 강도 높은 대일 공세를 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부가 지난 26일 한일외교 문서 공개 이후 군대위안부, 사할린 동포, 원폭피해자 문제 등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재확인한 이후 드러낸 후속 외교 조치의 기본 방향이다. 정부는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지난 26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성노예로 동원된 ‘종군위안부’문제에 법적책임이 없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선 ‘말 대 말’차원의 직접적 대응은 하지 않을 방침이다. 정부는 일본 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한 점을 고려해 이들이 미국 등 제3국 사법기관에 소송을 제기할 경우 정부 입장을 해당 사법부에 적극 개진하는 방법으로 지원키로 했다. 사할린동포 문제와 관련, 정부는 현재와 같이 1세대만을 귀국시킬 경우 또다른 ‘이산가족’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최근 두 차례의 현지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9일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보상 문제 등에 대한 대책을 협의할 예정이다. 김수정 강혜승기자 crystal@seoul.co.kr
  • [사설] 한일회담문서 공개와 日의 법적 책임

    정부가 한·일 수교회담 관련 외교문서를 어제 공개했다. 대일(對日) 청구권 협상과 관련한 굴욕외교 논란과 독도 폭파 발언의 실체 등 그동안 제기된 숱한 의혹들이 진상을 드러내면서 한·일 현대사의 질곡을 새롭게 평가하고 정리할 기틀이 마련됐다. 우리는 먼저 광복 60주년을 맞아 어두웠던 과거사를 정리하고 새로운 한·일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정부가 취한 일련의 노력을 평가한다. 나아가 이들 외교문서를 바탕으로 한·일 수교협상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함께 역사적 평가 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벌써부터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공과를 재단하는 논란이 시작된 듯하나 당장 결론부터 내고 보자는 성급한 태도보다는 광복 이후 현대사를 객관적으로 조망하고 정리하는 차분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일 외교문서 공개를 계기로 정부와 국민들은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됐다. 우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일 협정이 담지 못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이다. 정부도 문서 공개와 함께 ‘일제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고 규정했다. 당연한 결정이고 마땅히 관철돼야 할 사안이다. 중요한 것은 이에 관한 한 그 어떤 외교적 흥정도 배제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북핵 6자회담과 동북아 신질서 구축이라는 복잡다기한 외교적 이해가 얽혀 있는 현실이지만 한·일 협정처럼 적당한 선에서 타결하려 든다면 이는 30년전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꼴이 될 것이다. 정부도 그 책임을 인정했듯 일본의 무상자금을 한푼도 받지 못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책 마련에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막대한 자금이 든다고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소홀히 한다면 진정한 광복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 일제징용 보상특별법 만든다

    정부는 오는 12월까지 일제하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추가 보상 등을 해주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특히 강제 동원 사망자뿐만 아니라 부상자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아울러 보상 신청 역시 시한을 두지 않고 받아들일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10월에 별도의 민관합동 대책기구를 마련키로 했다. 정부는 26일 광화문 중앙청사에서 이해찬 총리 주재로 ‘한·일 회담문서공개민관공동위원회’를 열어 이같은 방침을 정하고 지난 1월에 이어 3만 5354쪽 분량의 한·일회담 문서를 추가 공개했다.7400여쪽의 베트남전 파병 관련 외교문서도 함께 공개했다. 일반인 열람은 29일부터 양재동 외교안보연구원 사료연구실에서 가능하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효력 범위와 이에 따른 정부대책 방향을 확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75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있었지만 사망자에 한해 보상하는 등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추가 지원 방침을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와 군 등 국가 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 행위에 대해선 청구권 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사할린 동포와 원폭 피해자 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정부 관계자는 “청구권협정에서 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는 증거도 없고, 법적 논리도 없다.”면서 “이제 법적인 근거를 갖고 일본에 외교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정부가 일본 정부에 한·일협정 재추진 등을 시도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 법적책임 인정을 추궁하면서, 유엔 인권위 등 국제기구를 통해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해 나간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날 공개된 베트남전 파병 관련 외교문서에는 정부가 일본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제주도에 유치하는 방안을 미측에 타진한 사실이 포함됐다. 이태식 외교통상부 차관은 “이번 공개가 한·일협정 체결의 진실을 규명하고 역사적 평가 과정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향후 올바른 한·일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일제하 강제동원 진상규명위원회가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진상조사 차원에서 1차 피해자 신고접수를 실시한 결과,20만여명이 접수했다. 김수정 강혜승기자 crystal@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파병 수당 정상지급 확인 경제발전 ‘전용’ 없었다

    주월국군 장병들에게 지급됐던 해외근무수당이 정상적으로 지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26일 공개된 베트남전 외교문서가 아닌 국방부의 자료에서 드러났다.‘김성은 국방장관과 비치 주한미군사령관간 서신(66.3.4)’ ‘사이밍턴 청문록’ ‘파월 장병에게 지급한 개인수첩’ 등의 자료들이다. 1965년부터 파병 장병에게 해외 근무 수당을 주기로 합의한 한·미는 실무각서와 서신 교환을 통해 일당을 최종 결정했다. 계급별로는 준장 $7.00, 대령 $6.50, 중령 $6.00, 소령 $5.50, 대위 $5.00, 중위 $4.50, 소위 $4.00, 준위 $3.50, 상사 $2.50, 중사 $2.00, 하사 $1.90, 병장 $1.80, 상병 $1.50, 일병 $1.35, 이병 $1.25로 책정됐다. 이는 1970년 미 의회의 베트남전 청문회기록(사이밍턴 청문록)과 파병 당시 장병에게 지급했던 개인수첩에 명기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다.당시 정부는 80%를 국내 가족들에게 의무적으로 송금하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국방부는 “해외근무수당 가운데 일부가 이면계약을 통해 경제개발 등에 전용됐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10월 중순 베트남전 비공개 문서를 모두 공개할 방침이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독도 무가치… 폭파’ 日주장 확인

    “농담으로는 독도에서 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갈매기 똥도 없으니 폭파해 버리자고 말한 일이 있다.” 1962년 11월13일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과의 회담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던 김종필 전 중앙정보부장이 하네다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한 답변이다. 애매모호한 이 말로, 김 부장은 독도 폭파 발언자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26일 공개된 한·일회담 문서의 핵심중 하나는 ‘독도 폭파설’의 진상이 밝혀졌다는 것. 세간의 의혹과 달리 한·일 독도전(戰)에서 ‘돈’을 한 손에 들고 집요하게 독도 문제의 분쟁화를 시도한 일본을 제치고 우리 주장을 관철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본격 제기한 것은 수교회담이 물살을 타기 시작한 1962년 3월 제6차 회담 직전부터다. 그해 2월22일 김종필 부장은 고사카 젠타로 일본 외상이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고 한국측이 응소하길 바란다.”고 제의하자 “하찮은 섬 문제를 일본이 심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거부했다. 그 해 3월12일 고사카 외상은 최덕신 외무장관과 회담에서 “국제사법재판소와 같은 공정한 제3자에게 조정을 의뢰하자.”며 “현안이 해결되더라도 영토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국교정상화는 무의미한 것이다.”고까지 했다.최 장관은 “그렇게 하면 국민에 대한 책임을 면치 못하고 중대한 과오를 지적당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유명한 독도 폭파 발언은 같은 해 9월3일 예비절충 제4차회의 때 나온다. 일본 외무성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세키 유지로 아세아국장은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다. 크기는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발이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해 10월21일 오히라 외상은 김 부장과 회담에서 ‘국제사법재판소’를 다시 제기했다. 김 부장은 “독도문제는 회담초부터 한·일회담과 관계 없던 것을 일본측에서 공연히 끄집어 낸 별개 문제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밝혔다.이어 11월13일 제2차 김종필·오히라 회담에서도 오히라 외상이 국제재판소 문제를 들고 나오자 김종필 부장은 “한국민의 감정을 격화시킬 뿐이다. 제3국 조정에 맡김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일본은 생각해보자고만 했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담 막바지인 1965년 일본측이 분쟁처리에 대한 교환공문 의정서에 ‘독도’를 명문화하자고 요구했고, 우리측이 반발하자 사토 총리는 교환공문에서 독도라는 글자를 펜으로 긁어 삭제했다.김수정기자crystal@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새로 알려진 것들

    26일 공개된 베트남전 관련 외교문서에는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話) 등이 여럿 포함돼 있다. ●“제주도, 미군기지 될 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5월27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한·미 국방 각료회담에서 최영희 국방장관은 주일 미군기지의 한국 유치 의사를 피력했다. 일본이 철거를 요구하는 미군기지를 한국으로 옮긴다면 필요한 토지까지 제공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닛즈 당시 미 국방차관은 “막대한 예산이 드는 일이어서 간단하게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듬해 6월3일 서울에서 열린 2차 국방 각료회담에서는 이전 대상 지역이 ‘제주도’로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임충식 국방장관은 회담에서 “오키나와기지를 제주도로 옮긴다면 공군 및 해군기지를 만들어 주겠다. 이 경우 여러가지 면에서 실질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패커드 차관이 “제의를 염두에 두고 세계적인 기구를 포함해서 연구를 해나갈 것”이라고 답했으나 이후 이 제안은 특별히 진전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 “정보 수집차 북파 공작원 보내겠다.” 1차 각료회담 때 한국측은 정보 수집력 보강을 위해 북한지역에 공작원을 침투시키겠다는 의사도 피력했다. 최 장관은 “제3국이나 일본, 자체 수단 등을 통해 대북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나 앞으로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국제법 때문에 현재는 공작원을 북한에 보내지 않고 있으나, 앞으로는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브라운 주미대사가 정색을 하면서 “첩보원을 북한에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느냐.”고 묻자 최 장관은 “내가 헌병사령관 당시 첩자를 보낸 일도 있고 사진도 찍은 일이 있다. 한국은 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는 1951∼1994년 1만 3000여명의 북파 공작원이 양성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너무 싼 파월 국군 몸값 당시 파월 한국군의 해외 근무수당을 보면 준장∼중장이 일당 7∼10달러였고 이병∼병장은 1.25∼1.80달러였다. 당시 국내에 있던 이병의 월급이 1달러가 채 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조금 더 많다. 하지만 함께 근무했던 타 국군에 비하면 매우 낮았다. 태국군의 경우 한국군보다 최고 1.5배(장성급)의 해외근무수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이 미군 1인의 전쟁관련 전체비용을 1만 3000달러, 필리핀 비전투요원은 7000달러, 한국군은 5000달러로 잡았다는 통계도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당시 각국별 해외근무수당은 해당국의 국민소득 등을 감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교부,“미측이 대선 때문에 종전 분위기 띄우고 있다.” 철군 논의가 한창이던 1971년 4월 한국 외무부는 본국에 보낸 보고서를 통해 미국 정부가 1972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월남전의 종말이 가까워 온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국내(미국) 정치적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이 앞으로 월남에 대한 협력체로 참전국에 국한하지 않고 일본 등도 참여시켜 미국의 책임을 경감시키려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사과상자 30개… 읽는데만 두달 독도문서 공개 최종까지 망설여

    “한 페이지도 빠지지 않고 전면적으로 공개됐다.” 정부가 26일 공개한 156권 3만 5354쪽 분량의 한·일회담 문서는 1951년 10월21일 예비회담에서부터 65년 말까지 14년에 걸친 한·일수교 회담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지난 1월 발표된 자료는 개인 청구권과 관련된 부분이었고, 이번에는 각종 회의록,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회의 의장이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에게 보낸 훈령, 교섭 전략 내부 보고서 등이 망라돼 있다. 정부가 지난 3월 민·관 합동의 전담심사반을 구성한 까닭도 협상에 갖가지 의혹과 억측들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외교부 본부 대사 3명과 함께 진창수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전현수 경북대 교수, 이원덕 국민대 교수 등과 함께 6개월 동안 문서를 정리했다. 공개된 문서의 분량은 사과박스 30여개다. 한 사람이 하루에 100쪽씩 1년간 읽어야 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특히 1940∼55년 문서여서 한자·구문체로 쓰여진 필사본과 영문·일문으로 돼 있어 학자 3명이 문서를 읽는 데만도 두달이 걸렸다. 한·일 수교협정 문제 전문가들인 이들 학자마저도 문서량이 방대하고 난해해 “움베르토 에코의 영화화된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고문서를 읽다 죽어나가는 수도사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공개 과정에서 과거 협상에 참여했던 주역들이 당시 상황을 증언할 때는 모든 심사위원과 현직 외교부 직원들이 눈시울을 붉히는 등 숙연한 분위기였다는 후문이다. 막판까지 정부가 공개를 놓고 망설였던 부분은 독도 문제. 국민들에게 떳떳하게 공개했다는 평가를 기대할 정도로 선방했다는 게 정부 스스로의 분석이다. 그런 만큼 독도를 분쟁 지역화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일본이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정부는 “독도를 팔아 6억원을 챙겼다는 의혹이 남는 것보다는 낫다.”는 종합적인 판단에서 공개를 결정했다고 한다.“36년 지배는 합법이었다.”“증거를 대라.”는 식의 후안무치한 일본측의 망언이 드러날 경우 국내 반일 감정이 격화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책꽂이]

    ●악마의 사도(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이기적 유전자’란 책으로 유명해진 진화행물학자의 자전적 에세이. 이기적 유전자 등 중요한 생물학적 개념뿐만 아니라 종교의 해악을 폭로한 글,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 등 도킨스의 전체 면모를 알 수 있는 글들을 담았다.1만 4800원.●칭기즈칸, 제국을 달리다:유목민들과 함께 한 여행(스탠리 스튜어트 지음, 김선희 옮김, 물푸레 펴냄) 13세기 말 몽골을 방문했던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윌리엄 수사의 행적을 추적하여 칭기즈칸의 땅 몽골을 횡단하는 여행기.1만 1500원.●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원희룡 지음, 꽃삽 펴냄)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인 저자의 마라톤과 공부 이야기. 학력고사와 사법고시 전체 수석을 하게된 공부 비결과 함께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서브쓰리를 향한 힘든 여정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1만원.●대한민국은 군대다(권인숙 지음, 청년사 펴냄) 여성학적 시각에서 우리사회의 군사주의와 남성성을 비판한다. 징병제, 양심적 병역거부, 학생운동의 군사문화 답습,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 등의 문제들을 짚어보고 그 해법을 모색해 본다.1만 5000원.●현대과학의 6가지 쟁점(존L. 캐스티 지음, 김희봉·권기호 옮김, 지식의 풍경 펴냄) 생명의 기원, 사회 행물학, 언어 습득, 생각하는 기계, 외계 생명체의 답사, 양자적 실재 등 현대과학의 주요 쟁점들에 대한 연구 성과들을 다양한 사례를 겉들여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1만 5000원.●구수한 큰 맛(고유섭 지음, 진홍섭 엮음, 다할미디어 펴냄) 한국의 대표적 미술사학자이자 미학자인 우현 고유섭의 미술사 연구서. 제자인 진홍섭 연세대 석좌교수가 난해한 한문투의 글을 젊은 층이 읽기 쉽도록 한글투로 풀어 썼다.1만 5000원.●숲에서 길을 묻다(유영초 지음, 한얼미디어 펴냄) 숲과 문명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숲 해설가인 저자는 우리 숲의 사계와 외국의 모범적인 숲 이야기와 함께 숲과 멀어져가는 도시문명에서 사람들이 자연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쓴소리를 한다.1만 2000원.●스크린과의 대화(유리 로트만·유리 치비얀 지음, 이현숙 옮김, 우물이 있는 집 펴냄) 영화언어를 이해하고 영화와 대화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 입문서. 영화 읽기의 알파벳을 제시하면서 영화 보기가 오락이나 휴식을 넘어선 진지한 지적 활동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1만 2000원.
  •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朴대통령 “6억弗이 마지노선” 훈령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朴대통령 “6억弗이 마지노선” 훈령

    ‘김-오히라 회담’의 핵심은 역시 자금의 성격과 총액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62년 11월8일자로 직접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에게 훈령을 내려 “청구권에 관하여, 명목을 독립축하금 또는 경제협력으로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며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청구권에 대한 변제 내지 보상으로 지불될 것이라는 점을 납득시킬 수 있는 표현이 되어야 할 것임을 강조할 것”이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총액에 대한 지시는 더욱 구체적이다.“순 변제와 무상조의 합계액이 차관액보다 많아야 하며 총액이 6억불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라.”고 훈령을 내렸다. 이어 “만약 무상조가 3.5억불 이하로 내려올 때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라.”면서 공적원조 부채액을 포기시킬 것 등 3개항의 지침을 따로 보냈다. 일부 문서는 ▲발신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수신 ‘국가정보 부장’ ▲제목은 ‘대일 절충에 관한 훈령’으로 돼있다. 양자 회담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져 ‘김-오히라 메모’를 도출했다. 메모는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민간차관 1억달러 이상’으로 일본이 한국에 제공할 총액의 대강을 적고 있으나 자금 명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메모는 두 장짜리로 간략하게 구성됐다. 유상·무상·수출입 차관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양측의 요구조건을 먼저 기재한 뒤 각 항마다 ‘이것을 ∼한 조건으로 양 수뇌에게 건의한다.’는 합의내용을 담고 있다. 김종필 부장은 “단독회담 후 생길 수 있는 해석의 차이를 방지하기 위해 메모를 남기도록 하자.”고 제안했고, 오히라 외상은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은 거액의 별도 정치자금 제공설 등 갖가지 의혹에 시달렸고, 이에 김 부장은 두 차례나 외유길에 오르는 시련을 겪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한국군 김치통조림 먹을수 있게”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한국군 김치통조림 먹을수 있게”

    당대에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베트남전 참전과 한일협정 체결 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의중 대로 밀어붙이고 결정하고 주관한 것으로 26일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명실상부한 최고권력자로서 총체적인 그림을 그린 ‘지휘자’이자 실무적인 문제까지 일일이 챙긴 사실상의 ‘연주자’였다. 베트남전 외교문서에 따르면,1967년 9월 박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한국군 증파 요청을 받고 외무장관한테는 “미국에는 일단 대통령이 신중히 검토하라고 했다는 취지로 말해 둬라.”고 ‘전략적 지시’를 내린다. 나중에 박 대통령 자신이 미국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되면 직접 의사를 밝히겠다는 심산이었다. 박 대통령은 실제 클리포드 테일러 미 대통령 특사로부터 한국군 증파 요청을 받고 “전투병력 증파는 곤란하다.”고 일단 난색을 표명한다. 앞서 같은 해 3월8일 정일권 당시 국무총리가 방미할 때 박 대통령은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를 쥐어줬는데, 편지의 내용은 뜻밖에도 ‘김치’ 얘기였다. 실무적인 현안까지 챙긴 대표적 사례다. 친서에서 박 대통령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매일 매식 빼놓을 수 없는 특이한 고유의 전통 부식 김치만이라도 하루바삐 월남에 있는 우리 군인들이 먹을 수 있게만 하더라도 사기는 훨씬 앙양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일 한국군에 한국음식의 야전식량을 공급하게만 된다면 사기와 전투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할 것으로 확신한다. 각하께서 이 특별한 사정을 양찰하시고 월남의 한국군인들이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하는 방안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조치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한국 정부는 한국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월남에 있는 한국 군인들의 소원을 풀어 주기 위해 통조림으로 된 야전식량의 연구, 생산을 이미 9개월 전부터 착수해 성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상태”라며 “그 제품의 일부는 미 국방부의 식품연구소에 보내 시험 중인데 중간검사 결과가 매우 좋은 것으로 듣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편지를 받아본 존슨 대통령은 국방장관에게 즉각 ‘조치’를 지시하고, 정 총리는 박 대통령에게 “김치문제는 머지않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는 ‘낭보’를 띄운다. 5·16 직후인 1962년 당시 권력 2인자로서 거의 독자적으로 오히라 일본 외상과 담판을 벌인 것으로 지금껏 알려져 왔던 김종필(JP) 중앙정보부장도 알고 보니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일일이 지시를 받고 움직인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JP는 도쿄에서 ‘의장 각하’에게 친서를 띄워 자신의 동선(動線)과 회담경과를 상세히 보고하는 등 수시로 박 의장의 가이드라인을 구했다. 이에 박 의장은 JP를 ‘귀하’로 칭하는 자필 서신과 훈령 등을 통해 “청구권 명목을 독립축하금 또는 경제협력으로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등의 지침을 하달했다. 나아가 “일측에서 독도문제를 다시 제기하는 경우에는 한국민에게 일본의 대한 침략의 경과를 상기시킴으로써 회담의 분위기를 경화시킬 우려가 있음을 지적할 것”이라는 등의 협상전략을 하달하는가 하면 “혁명정부라고 해도 6억불 이하로 하강하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청구권 액수를 구체적으로 지시하기도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치열한 對日외교전 굴욕·매국 흔적 없어”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치열한 對日외교전 굴욕·매국 흔적 없어”

    “한계는 있지만 한일협정을 굴욕·매국외교로 단죄하기는 어렵다.” 지난 2월부터 ‘외교통상부 민관공동 한일협정 문서공개 심사반’에서 민간위원으로 활약했던 이원덕(43·국민대 역사학부) 교수는 6개월 동안의 ‘산고(産苦)’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독도를 놓고 ‘제3국 거중조정안’을 제안하는 등 졸속협상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는데. -심사과정에서 법률·증거주의를 내세우며 탄탄한 관료조직으로 무장했던 일본을 상대로 피눈물나는 외교전을 벌였던 외교관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 정부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4조에 근거해 전후 배상은 고려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승전국으로서 모든 조치를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독도 문제만 해도 우리 정부는 시종일관 협상의제가 아니라고 주장했고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행을 고집했다. 이 과정에서 제3국 거중조정안이 나왔지만 일본측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의미없는 제안이 되고 말았다. ▶회담에서 미국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당시 강화조약에서 우리는 승전국의 지위를 놓쳤다. 미국은 애초 한국을 승전국 서명대상에 검토했다. 한국전쟁 와중이라 이승만 정권에게 위신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 상황에서 영국이 중국의 대표권을 마오 정부에게 줘야 한다는 주장을, 미국은 타이완에 줘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결과적으로 중국이 서명국에 빠지게 되면서 영국이 “중국도 빠졌는데 한국을 승전국 서명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고 문제제기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장면이다. 우리가 강화조약의 서명국 일원이었다면 일본이 불법지배 사실도 받아들였을 것이다.JP의 ‘제3국 거중조정안’도 방미 후 나온 것으로 봐서 미국의 상당한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향후 공개문서의 영향을 고려할 때 한·일 양국이 주력해야 할 점은. -일본은 지나친 법률주의만 주장하면 형식논리에만 빠지게 된다. 미해결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역사적 화해를 시도해야 한다. 한국도 객관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고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관용을 가지는 시각이 필요하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61년 발발·73년 휴전 한국 64~66년 파병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9월, 프랑스령 식민지였던 베트남은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곧 프랑스와의 전쟁이 시작됐다.8년 뒤인 54년 휴전했지만, 이듬해에는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쪽에는 프랑스를 대신한 미군이, 북쪽엔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통합국가 건설을 둘러싼 대립으로 양측은 73년 휴전 협정 때까지 전쟁에 돌입했다.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61년 게릴라전이나 정보수집·선전·파괴활동 등에 능한 특수부대를 투입시킴으로써 ‘미국 대 북베트남’ 전쟁을 본격화시켰다. 한국은 64년 9월 이동외과병원 장병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을 처음 베트남에 파견했다. 이듬해 2월 미국의 요청에 따라 공병부대인 ‘비둘기부대’ 2000명이 베트남 땅을 밟았다.같은해 10월엔 “6·25전쟁 때 우방의 파병에 보답한다.”는 명분에 따라 본격적으로 전투부대가 파견되기 시작했다.청룡부대·맹호부대·혜산진부대·백마부대가 66년까지 차례로 파병돼 한국은 규모면에서 제2의 파병국이 됐다. 베트남전쟁은 동원 병력, 사상자 수, 항공기 손실, 탄약 사용량 등 비용면과 파괴력면에서 지독한 전쟁으로 꼽힌다. 일례로 당시 미군이 밀림을 없애려고 다량으로 뿌렸던 제초제로 인해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지금까지 수만명에 이른다.한국군과 현지 여성 사이에 태어났지만 그곳에 버려진 ‘라이 따이한(Lai 大韓·한인2세를 낮춰 부르는 말)’도 참상의 한 자락으로 기록됐다.올리버 스톤의 ‘플래툰’,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 마이클 치미노의 ‘디어 헌터’ 등은 베트남전의 참상을 제대로 짚어낸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美, 파병비용 690만弗 ‘미군장비’로 떠넘겨

    [외교문서 공개-베트남戰] 美, 파병비용 690만弗 ‘미군장비’로 떠넘겨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정당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군 파병이 한국 경제 도약의 ‘동력’으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하다. 26일 공개된 베트남전 관련 외교문서에는 우리 정부가 참전을 계기로 미국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지원받기 위해 전방위 외교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악착 같은 경제·군사외교,‘조금이라도 더’ 당초 우리 정부는 브라운 합의각서를 통해 한국군의 베트남 증파 선행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차관 제공과 전쟁물자·용역의 한국 제공, 한국군 장비 현대화 지원 등을 약속받았다. 특히 1966년 10월24∼25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베트남전 참전 7개국 정상회담에 임하는 우리 정부의 각오는 각별했다. 회담 11일 전인 13일 외무부는 유양수 주필리핀 대사에게 긴급 타전을 했다. 필리핀이 이번 회의가 평화를 모색하는 회의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인 만큼 군사적인 정세의 검토 및 전쟁 노력의 강화 방안이 반드시 의제에 포함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베트남 사태의 평화적 해결 방안을 토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것만을 위해 정상회담이 소집됐다는 식의 해석에는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 정부는 주최국인 필리핀이 제시한 회의의 가명칭인 ‘마닐라 평화회의(Manila Summit Peace Conference)’에서 Peace를 빼도록 훈령을 보냈다. 필리핀측이 마르코스 당시 대통령을 ‘아시아의 지도자’로 부상시키기 위해 베트남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비해 베트남전에 따른 군사·경제적인 반대급부가 많은 우리 정부가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 것이다. ●미측, 파병비용 정산방식 매끄럽지 못해 파병비용 등과 관련해 우리 정부의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인 입장과 달리 미측은 부대비용 등 일부를 매끄럽게 정산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브라운 각서에 근거해 1970년 7월부터 이듬해 6월30일까지 소요된 추가경비 690만 달러(당시 원화 27억 8700만원)를 현금으로 조속히 지급해 달라고 미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1972년 11월 주한미군에 훈령을 보내 미지급액 상당의 미군 잉여장비를 한국측에 이양하겠다는 답을 보내 왔다. 결국 수 차례 토의 끝에 우리측은 미측의 헬기 3대,U-21 경비행기 1대 등 430만 달러어치의 군 장비를 취득가의 56%로 계산해 넘겨받았다. 또 64만 달러어치의 전투식량(K-Ration)을 대미 채무변제시 상쇄키로 했으며, 잔액 200여만 달러는 미8군 재고훈련탄을 받기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합의했다. 베트남전 종전으로 미측이 부담해야 할 강제퇴역 한국군의 일시 퇴직금 27억원 가량도 한국측에 전달되지 않았으며, 파월장병의 귀국비용은 태국군에는 귀국 이후 2개월 분이 추가지급됐으나, 한국군에는 지급되지 않았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문서공개 의미·전망

    [외교문서 공개-韓·日협정] 문서공개 의미·전망

    정부가 26일 전면 공개한 3만 5354쪽의 한일협정 문서는 지난 40년간 줄기차게 제기돼 온 ‘굴욕외교’ 시비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독도를 팔아 6억달러를 챙겼다.”“김종필 전 중앙정보부장이 전권을 행사했고, 밀약이 있다.”는 무수한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햇볕 아래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들도 “한일협정이 굴욕외교라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물론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등 진정한 과거사 청산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는 주문도 곁들였다. 특히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이날 열린 ‘한일회담 문서공개 등 대책기획단 민관공동위원회’는 ‘일본군위안부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에 대해 일본측에 법적 책임을 묻고 1975년 당시 보상 당시 제외됐던 부상자들도 보상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이는 향후 한·일 과거사 청산에서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유도하는 데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책임범위와 피해보상 대상자, 재원 마련, 보상 기준 등은 쉽지 않은 논란으로 남을 전망이다. 정부는 피해자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일본에는 정정당당하게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전략이다. 우선, 정부는 청구권협정 당시 받은 무상자금 중 상당한 금액을 강제동원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해야 할 도의적인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다. 부상자 문제 해결책이 불충분했다는 자성도 곁들여졌다. 이해찬 총리가 이날 회의에서 “앞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경우 시간 제한을 두지 않고 장기적으로 피해신청 접수를 받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낸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지난 1975년 1차 보상이 이루어지기 전 시기를 정해둔 탓에 피해자 규모도 적었고 사망자 유족 8000여명에게 30만원씩 지급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정부는 일제강점하 피해자들의 보상을 위해 “일본측에 도의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협정 당시 청구권이 이미 소멸됐다.”며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던 게 사실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결정에 대해 “한일협정은 합법적 민사상 청구권을 합의한 것이므로 일본 사람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부분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해돼 왔다.”며 “이제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불법행위가 일본에 있다는 원칙적인 수준의 언급일 뿐 책임 추궁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구혜영 강혜승기자 koohy@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유흥비 탕진해 진 빚 파산면책 가능한가요

    실연하고 아픔을 잊기 위해 1년을 멋대로 살았습니다. 유흥주점에서 3000만원 정도를 썼고, 비슷한 돈을 경마로 날렸습니다. 해외여행길에 두번 올라 500만원 정도를 쓰다 보니, 결혼자금으로 쓰려던 적금 2000만원을 탕진한 것도 모자라 빚이 5000만원이 되었습니다. 이자만 월 100만원이 넘는데, 배달 기사로 한 달에 버는 100만원으로는 이자도 내지 못합니다. 파산하고 면책받을 수 있을까요? -한갑수(27) 지나치게 낭비하는 채무자의 면책을 허가하지 않아도 파산법상 문제는 없습니다. 실무상으로는 월 수입의 50% 이상을 유흥과 여가활동에 쓴 경우에 해당하는지를 따져 낭비의 경중을 판단합니다. 한갑수씨의 경우 수입에 비해 과다한 유흥비를 지출했으니, 형식적으로 낭비를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파산을 신청해도 면책을 받지 못할 사유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절망하지는 마십시오. 구제 받을 길은 있습니다. 우선 면책이 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개인신용대출은 용도를 묻지 않고 이루어지고, 신용카드는 빚을 져서라도 소비하라고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낭비의 책임을 오직 채무자에게만 지우지는 않습니다. 채권자의 잘못도 있다는 것입니다.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나약함이 강박적·충동적 소비를 조장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진보적인 성향의 판사들 중에는 채무자가 문서위조 같은 적극적 위법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순전한 소비신용에 대해 면책을 하기도 합니다. 법은 반드시 면책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 게 아니라 면책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파산제도에 의한 면책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개인회생 제도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죠. 개인회생은 파산법에 의해 면책을 못 받은 경우에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파산제도의 한 변형이지만 짧으면 3년에서 길면 8년, 일반적으로 5년 동안 최저한의 생계비로 근검절약하면서 저축할 돈을 변제하도록 요구합니다. 따라서 즉시 면책을 해주는 파산제도에 비해 보통 채무자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채무자는 선택을 망설이게 됩니다. 개인회생 제도에서 채무자를 유인하기 위해 일종의 당근으로 마련한 장치가 채무가 생긴 원인을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거 낭비로 인해 증가된 채무도 개인회생채권에 편입돼 변제계획에 따른 일부 변제로 청산됩니다. 한갑수씨의 개인회생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급여 100만원 중 최저생계비 60만원을 뺀 40만원씩 60개월간 합계 2400만원을 갚을 계획을 세운다면 변제계획이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도중에 실직 등 돈을 갚지 못할 불가피한 사유가 생기면 다 이행하지 못해도 면책을 부여합니다.
  • “DJ정부시절 국정원 도·감청 무차별적으로 하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유선중계 통신망을 통한 불법 도·감청이 대공수사나 안보 목적과는 관계없이 임의로 자행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이동식 감청장비를 이용한 휴대전화 불법 도·감청은 영장 청구 등 합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일부 불법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정보원 김승규 원장은 2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과거 불법 도·감청 실태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고 열린우리당측 정보위 간사인 임종인 의원이 전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이날 발표는 논란의 불씨를 남겼다. 특히 김 원장이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불법 감청이 이뤄졌던 흔적이 일부 드러났으나 과거와 달리 무차별적으로 행해지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차별성 또한 분명하게 확인됐다.”고 말한 것을 놓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봐주기’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국정원이 이날 보고는 지난 5일 김대중 정부 시절 도청을 공개한 뒤 이어진 긴박한 정국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DJ의 갑작스러운 입원과 그에 따른 호남 민심의 악화, 이를 의식한 여권의 ‘달래기 노력’ 등 전·현 정권이 불편한 관계를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국정원은 이날 DJ정권 시절의 불법 도·감청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DJ에게 ‘상대적 도덕성’을 주려는 카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등 야권은 ‘청와대를 의식한 DJ 감싸기 발표’라며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의 발표 수위가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원장은 또 “불법 감청 장비지원 신청서를 통해 감청 장비를 지난 2001년 4월까지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전직 직원 등 일반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어 당시 감청 업무에 관여한 일부 직원들의 진술에 의거해 대강의 정황과 일부 문서 등을 파악한 수준”이라며 “누가 누구에게 누구를 대상으로 도청할 것을 지시하고 그 결과물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은 정확히 확인할 수가 없었다.”고 보고, 축소 수사 시비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불법도청 대상에 정치인 포함 여부도 논란이 예상된다. 김 원장은 이와 관련된 야당 의원들의 거듭된 질문에 강력히 부인하지는 않았다고 한 정보위원이 전했다.이지운 구혜영기자 jj@@seoul.co.kr
  • “토문강과 두만강 다른 강” 中, 60년대 외교문서서 인정

    “토문강과 두만강 다른 강” 中, 60년대 외교문서서 인정

    토문강(土門江)이 두만강이 아니라는 사실을 중국도 인정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포항공대 인문사회과학부 박선영 교수는 1960년대 북한과 중국 사이에 비밀리에 체결된 국경조약 ‘조중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에서 이런 대목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조약 의정서에서 국경을 따라 촘촘히 설치한 각 경계팻말의 위치를 설명하는 대목에 따르면,9호 팻말을 기준으로 10호 팻말을 찾을 때 ‘흑석구(토문강)’라는 지명이 나온다는 것. 조약 의정서는 9호 팻말의 위도와 경도까지 표기해 두고 있다. 이를 보면 중국도 토문강이 두만강과 다른 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인정했던 것 아니냐는 추정이다. 중국은 조선과 청나라가 압록강과 토문강을 국경으로 삼아 백두산정계비를 세운 1712년 이후 줄곧 ‘당시 토문강은 두만강’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이는 북간도 지역의 영유권 문제와 연결돼 있는 민감한 문제다. 의정서에는 또 중국이 한국과 일본의 조작이라며 그동안 존재를 부정해 왔던 섬 ‘간도’를 지칭한 대목도 명기돼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회플러스] 공적자금 가로챈 어민 12명구속

    광주지검 목포지청은 25일 어류 양식장 면적을 부풀려 가짜 계약서를 만든 뒤 공적자금 수십억원을 부당하게 대출받아 가로챈 이모(58·신안군 흑산면)씨 등 양식업자 12명에 대해 사기 및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김모(58·신안군 흑산면)씨 등 어민 21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 포터필드 감독 “누구나 대표팀 감독을 원한다”

    포터필드 감독 “누구나 대표팀 감독을 원한다”

    조 본프레레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의 퇴진으로 차기 사령탑에 대한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명되고 있는 프로축구 부산의 이안 포터필드(59·스코틀랜드) 감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포터필드 감독은 24일 부산 아시아드종합경기장에서 수원과의 프로축구 K-리그 후기리그 개막전을 마친 뒤 “차기 한국대표팀 감독에 대한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 나의 팀은 (프로축구)부산 아이파크이고, 앞으로 남은 후기 리그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고 구체적 언급을 회피했다. 최근 축구협회로부터 강력한 제안을 이미 받은 것으로 알려진 포터필드 감독은 그러나 협회와의 접촉 여부 질문에 대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부인한 뒤 지금 (후임 감독 내정설에 대해) “이 상황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등 다른 관련 질문에 대해서도 동문서답으로 일관, 좀 더 구체적인 접촉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까지 불러 일으켰다. 이날 경기에서 승리한 뒤 앞서 인터뷰한 차범근 수원 감독에 견줘 포터필드 감독은 마치 질문 내용을 미리 예상한 듯 시종 여유있는 모습으로 재치있게 질문을 피해나간 게 그 이유. 일관되게 ‘노(N0)’로 일관한 뚝심도 돋보였다. 다만 포터필드 감독은 “모든 국민들이 자신들의 축구선수가 잘 하길 바라고 있고, 내가 있는 동안 팀과 K-리그가 많이 성장했다.”고 은근히 자신의 역량을 과시,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또 “누구나 대표팀 감독이 되길 원한다.”고 운을 뗀 뒤 “대표팀이든 클럽팀이든 커다란 책임감이 필요하고, 의무감으로 자신의 직함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해 국가대표 사령탑으로서의 자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다음은 포터필드 감독과의 인터뷰를 요약한 일문일답.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에 대한 의향은. -난 지금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이다. 즐기고 있다. 그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또 축구협회와는 아무 일도 없었다. ▶‘본프레레호’의 문제점은 뭔가. -잘 모르겠다. ▶(대표팀)감독직에 부담이 있나. -누구나 감독을 원한다. 다만, 큰 책임과 의무감이 따라야 한다. ▶국내파가 옳은가, 해외파가 옳은가.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다. 축구는 온갖 의견이 분분한 스포츠다. 글 사진 부산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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