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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새문양 시비 유감/朴燦 문화생활팀 부장급(오늘의 눈)

    ‘용’이나 ‘봉황’은 우리 동양사회에서 예로부터 최고의 권위와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전설적인 동물들로 알려져 왔다. 용은 왕이나 위인과 같이 위대하고 훌륭한 존재이고 봉황은 성인이 세상에 나타날 때 함께 나타나는 상서롭고 귀한 새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래서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옷을 용포(龍袍)라 했고 중국에서는 용을 옥새 손잡이장식으로 사용했다. 대한제국에서도 중국과의 사대관계에서 벗어나 자주주권 국가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용 손잡이모양 옥새를 만들었다. 봉황은 뭇새의 왕이자 환상적인 새로 귀하게 여겨 궁궐에서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각종 장식물로 이용돼 왔다. 최근 ‘제2의 건국’을 맞아 행정자치부가 국새(國璽)를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보여준 태도는 우리 전통과 고유의 가치를 무시한 편의주의,또는 무사안일의 표본이 아닌가 여겨진다. 국새 손잡이 모양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위촉된 12명의 국새제작자문위원들이 용과 호랑이,봉황,태극기,무궁화 등을 놓고 토론을 벌인 결과 용이 가장 후한 점수를 받았다.그러나 용이 ‘사탄’을 상징하기 때문에 안된다는 일부 기독교인의 반대에 부딪치자 그렇다면 무난한 태극기와 무궁화로 변경할 뜻을 비쳤다. 태극기나 무궁화로 국새 손잡이를 만드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자문위원들로부터 가장 후한 점수를 받은 ‘용’이 특정 종교의 반대에 부딪쳐 채택되지 않고 차선으로 바뀔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가 그동안 다방면에 걸쳐 나라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근자에 들어 일부 기독교인 사이에서는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 고유의 전통과 가치를 무시하고 기독교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정부시책까지 관여하는 일도 있다. 문민정부시대 정부에서 시행하는 각종 시험일이 일요일에서 평일로 바뀐 것도 한 예다. 한국은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다종교 국가이기 때문에 특정종교가 교리를 이유로 정부시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은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정부는 바른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인내하고 설득해야 한다. 종교는 ‘교리’를 내세우기보다는 사회의 한 구성요소로 양보와 조화를 앞세우는 성숙한 아량을 보여야 한다.
  • 정부대책(무너지는 축산농가:下­2)

    ◎김성훈 농림부 장관에게 듣는다/자가 도축 허용·암소 한시적 수매/편의점 등 식육판매 장려·가격담합업체 세무조사/한우 전업농 1만호·경쟁력 있는 고급육 집중육성 □대담=權赫燦 경제과학팀 차장 金成勳 농림부 장관은 “소값 폭락에 무한책임을 느낀다”고 했다.그러나 “축산농가도 더 이상 정책의 보호 속에 있을 수만은 없다”면서 “경쟁력 없는 축산농가는 퇴출돼야 한다”고 역설했다.과천청사로 金장관을 찾아갔다. ­소값 폭락으로 축산농가들의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닌데요. ○학교급식·군납 등 확대 ▲잘 압니다.소값 하락과 분유 재고로 양축 농민들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대해 주무장관으로서 송구스러운 마음뿐입니다.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축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쇠고기 수입개방에 대비해 나름의 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만 예기치 않은 IMF사태를 맞아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이럴 때일수록 냉정히 접근해야 합니다.볏짚이나 남은 음식물 사용 등 자원절약형 농법을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또 모든 경제주체가 마음의 고향인 농촌을 살리기 위해 건전한 축산물 소비로 축산농가를 살려나가야 합니다. ­축산농가의 경영이 악화된 원인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 ▲문민정부가 축사 현대화다,소 입식자금이다 해서 저리의 정책자금을 무분별하게 지원했습니다.사료 회사들은 다투어 6개월짜리 외상 사료를 축산농가에 주었습니다.돈 들이지 않고 축산업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기업의 차입경영과 다를 바 없는 것이지요.그러다가 IMF를 맞은 것입니다.지원받은 정책자금은 올해부터 상환기한이 돌아옵니다.문민정부의 잘못된 정책집행이 축산 기반 붕괴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렇다고 국민의 정부가 책임을 면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최근의 소값 폭락과 과거 소값 파동의 다른 점은. ▲과거에는 육우 수입과 과다한 소 입식이 원인이었습니다.그러나 이번에는 장기간의 소값 호황에 따른 자연증식이 원인입니다.과거에는 연간 6∼11%의 경제성장률에 힙입어 총소비가 늘었으나 이번에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소비가 감소하고 있어요.특히 과거에는 공급과잉에 대응해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었고 재원만 있으면 소 수매를 늘릴 수 있었으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세계무역기구(WTO)협정에 따라 쇠고기 수입쿼터량을 이행해야 하고 소 수매를 위한 정부보조도 허용한도가 있어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소값 폭락을 막기 위해 취해온 조치라면. ▲IMF 이전인 지난해 초부터 정부가 소수매를 해왔습니다.축산농가의 경영안정지원 차원에서 1조1,600억원 상당의 정책자금을 지원했습니다.또 쇠고기 소비촉진을 위해 올 상반기 동안 결의대회와 브랜드전 개최,전국 캠페인을 전개해 소비 확대를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조성해왔습니다.그러나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이 때문에 7월13일 긴급 종합대책을 강구하게 됐습니다.식육판매업소에서만 육류를 판매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슈퍼 편의점 식당(갈비 가든 등)에서도 식육판매를 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가격담합행위나 값을 비싸게 받는 식육업소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도 하고 있습니다.농가가 자가소 비용으로 도축할 수 있도록 도축세도 면제해주기로 했습니다.군 급식용으로 납품하고 있는 한우수매육도 올 연말까지 1,440t에서 3,420t(월 340t)으로 늘려 공급하기로 했으며 내년에는 4,080t(한우 5만두분)을 공급할 계획입니다. ­수매는 어느 정도 이뤄졌습니까. ○차입경영으로 기반 붕괴 ▲7월18일부터 큰 소 수매를 중단하고 대신 한우 중수소 수매를 확대했습니다.중수소 수매 규격을 현행 300∼399㎏에서 200∼399㎏으로 낮추어 8월말까지 수매하고 소값 안정을 위해 수매육 방출을 7월18일부터 7∼8월 비수기 동안 중단하기로 했습니다.지난해 1월25일부터 최근까지 총 5,321억원을 들여 18만8,000마리의 소를 수매했습니다.지난 27일부터 다음달 말까지 한시적으로 암소도 수매합니다.암소 한마리를 사들이면 2.8마리의 감축효과가 있습니다. ­송아지 생산안정제와 젖소 송아지 구매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송아지 생산안정제는 송아지의 재생산을 보장해주기 위한 것입니다.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소값 파동으로부터 사육농가를 보호해주기 위한 중장기 보험성격입니다.반면 젖소에 한해 실시하는 송아지 구매사업은 우유소비 부진에 따른 분유 재고 증가로 송아지값이 폭락해 젖소 송아지(초유떼기)를 두당 10만원에 구매하는 것입니다. ­우리 실정에 축산업 자체가 경쟁력을 갖출 수 없는 것 아닙니까. ▲2001년부터 쇠고기 수입자유화시 경쟁가능한 예상 소값 수준(200만∼230만원)과 비교할 때 현재의 소값은 낮습니다.따라서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올 상반기 쇠고기 소비량이 전체적으로는 12.1% 줄었으나 구체적으로는 국내산 쇠고기가 13.7%가 늘고 수입쇠고기는 55.6%가 감소했습니다.따라서 쇠고기 수입개방에 대비해 경쟁력 있는 고급육산업으로 집중 육성해 나가야 합니다.한우 전업농 1만가구 육성,송아지 생산안정제 확대 실시 등으로 값싼 우량 송아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해나갈 계획입니다.축산물 등급제도 실시할 방침입니다. ­쇠고기뿐 아니라 우유 등 축산제품 전반이 수요 부진으로 빈사 상태에 빠진 느낌입니다. ○자발적 폐기처분 교훈 ▲원유생산량은 젖소 도태 지연과 원유가 인상 등으로 증가된 반면 우유소비는 경기 침체와 우유값 인상으로 감소해 분유재고량이 1만6,000t(1,000억원 상당)이나 됩니다.98년 1월 사료값이 36% 올랐다며 낙농업계가 우유값 18.1% 인상을 요구해 관철시켰습니다.정권 교체기여서 재경부가 그대로 승인 해준 것입니다.사실 낙농업계는 깎일 것을 감안해서 요구한 것인데….그러다 보니 유가공업체들도 3%를 얹어서 공장도가격을 21% 올렸습니다.IMF사태로 그렇지 않아도 소비가 주는 판에 값이 올랐으니 어떻게 됩니까.우유 재고는 쌓이고…우유 파동 배경에는 이런 측면이 있습니다.우유 수급안정을 위해 전국 축협을 통해 젖소 송아지에 대해 농가 희망물량 전량을 수매하고 저능력우 3만두를 8월 말까지 자율 도태시키도록 하는 한편 우유 소비를 늘리기 위해 백화점과 슈퍼 등 대형업소에 대한 직거래를 늘리고 있습니다.남북한 어린이 분유보내기 모금운동과 우유 한잔 더마시기 운동,학교급식 및 군납 확대도 적극 추진하고 있습니다.이런 대책에 힘입어 내년 상반기에는 회복할 것으로 봅니다. ­축산인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배합사료형 축산과 차입의존식 경영(42조원의 축산관련자금의 상환 만기도래),IMF사태,대폭적인 원유값 인상이 복합적으로 얽혀 최근의 사태를 가져왔습니다.축산농가 스스로 사육두수를 줄이는 등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부존자원을 활용한 자원절약형 농법으로 생산비 절감을 꾀해야 합니다.축산물생산 과잉시 자발적으로 폐기 처분하는 선진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값과 통상마찰/미·호 “수입쿼터 지켜라” 압력/정부선 “안먹는데 어떻게 수입하나” 요구 거절/김 농림장관 “오히려 값싼 우리송아지 사가라” 지난 8일 과천청사 농림부장관실.金成勳 장관이 알프레드 젠킨스 호주 하원부의장 등 일행 6명을 맞았다. “올해 쇠고기 수입쿼터가 18만7,000t인데 한국이 3만여t 밖에 수입하지 않았다.한우고기 판매점은 4만곳이나 되는데 수입쇠고기 판매점은 6,000곳 밖에 안된다.수입쿼터를 채울 방안을 제시해달라”일행은 수입쿼터 이행을 촉구했다. “젠킨스 부의장,귀국에서는 송아지값이 얼마나 갑니까”(金장관) “80달러쯤 나갑니다만…”(젠킨스 부의장) “우리는 23달러입니다.우리 송아지를 사가시오”(金장관) 쇠고기 수입 운운이 작금의 한국 현실에 얼마나 허무맹랑한 얘기인가를 역설한 대목이었다. 金장관의 발언이 이어졌다.“정부가 수입을 억제한 일이 없습니다.쇠고기수입이 준 것은 수요가 줄었기 때문입니다.수입쇠고기 판매점이 적다고 하셨는데 6,000곳아니라 6만곳도 허용하겠소” 물론 이날 회동이 양국간 수입쇠고기 문제를 따지기 위한 공식 자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호주정부가 수입쿼터를 문제삼고 있어 이들의 방문 역시 연장선상에 있었다. 쇠고기 수입은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결과에 따라 94년 9만9,000t을 기점으로 매년 늘려 97년 16만7,000t, 98년 18만7,000t, 2000년 22만5,000t을 수입하게 돼있다. 93년엔 쿼터 전량을 수입했고 호황기였던 94년과 95년에는 각각 2만t과 2만5,000t을 초과 수입했다.96년 97년에도 쿼터 전량을 수입했다.다만 올해의 경우 예기치 못한 IMF여파로 쇠고기 수입이 급감한 반면 공급과잉이 지속되고 있어 금년 쿼터량의 20% 수준인 3만7,000t에 그치고 있다. 미 정부와 쇠고기협회(NCBA)도 한국이 수입쿼터를 지키지 않는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수입쇠고기의 관세(42%)인하도 요구하고 있다.때문에 양국이 현재 협상 일정을 협의 중이다. 정부 입장은 다르다.관세문제는 UR에서 협상이 끝난 사안이라 재협상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수입쿼터도 쇠고기수입 억제책에 따른 것이 아니고 소비 위축에 따른 수입 둔화여서 미국이나 호주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농림부관계자는 “수입쿼터는 일정량을 의무 수입해야 하는 최소시장 접근과 다르다”며 “제도적 규제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쿼터량을 모두 소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WTO에 제소한다 해도 들어줄 수 없다는 얘기다. 소값 폭락으로 축산농민의 시름(內憂)이 깊어가면서 정부도 예기치 않은 통상마찰의 공세(外患)에 시달리게 됐다.
  • ‘새교육공동체’에 바란다(사설)

    국민의 정부 교육개혁 추진기구인 ‘새교육공동체위원회’가 발족했다. 金大中 대통령은 24일 청와대에서 대통령자문기구로 구성된 새교육공동체위원 40명에게 위촉장을 주고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 국제경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체계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식정보화 시대 경쟁력의 원천은 교육이다. 우리나라처럼 자연자원과 자본이 부족한 곳에서는 특히 인간자원과 기술자원을 기르는 교육이 국가 경쟁력의 중심이 된다. 새교육공동체는 그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막중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야 할 것이다. 새교육공동체가 새로운 정책 입안보다 기존의 교육개혁안을 수용,보완하면서 일관된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개혁 실천에 무게중심을 두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제5공화국의 교육개혁심의회,제6공화국의 교육정책자문회의,문민정부의 교육개혁위원회를 통해 개혁·개선과제의 윤곽은 이미 드러나 있다. 따라서 정권과 장관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는 혼선을 또 다시 되풀이 할 필요 없이 교육개혁 작업의 실행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교육공동체 구성의 방향을 교원·학부모·지역사회 인사는 물론 산업계등 사회 각분야가 함께 참여하는 열린 교육공동체로 설정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교육은 더 이상 교육계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국가 사회 전체의 공동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중등 교육개혁의 현장성을 담보할 위원이 너무 적은 것은 문제라 할 수 있다. 우리 교육개혁의 핵심은 초·중등 교육에 있는데 40명의 위원중 초·중등 교원은 5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교장 3명을 제외하면 평교사는 2명뿐이다. 새교육공동체가 지향하는 교육현장에 밀착한 개혁을 위해서는 부족한 숫자다. 지난 정부의 교육개혁위원회가 이론 위주의 대학교수 중심으로 구성됐던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었는데 이번에도 교수의 구성비율은 높아 보인다. 문민정부의 교육개혁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아닌 위로부터의 획일적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새교육공동체는 일선 교사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교육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효율적인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金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만난(萬難)을 무릅쓰고라도 교육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교육개혁은 지속적인 의지와 투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아래서 모든 부문이 허리띠를 졸라 매야하므로 10년후에 성과가 나타나는 교육투자가 소홀해 질 수도 있다. 새교육공동체는 단순히 교육개혁 추진상황을 점검·평가하고 지도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교육개혁을 위한 꾸준한 관심과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명동성당/80년대 이후 농성史

    ◎양심세력의 피난처서 집단이기주의場 변질/군사독재시절­6·29선언후 반정부시위 메카로/문민정부 이후­이익집단 갈등으로 성당과 반목 서울 명동성당은 80년대 이후 각종 농성과 집회의 ‘상징’처럼 알려져 왔다.초기에는 공권력이 미칠 수 없는 ‘양심세력의 도피처’로 인식됐으나 성역을 역으로 이용하는 농성자들이 늘어나면서 집단이기주의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명동성당이 농성장소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87년 6·29선언 이후부터다. 이때부터 명동성당에서는 1주일이 멀다하고 농성과 집회,시위가 끊이질 않았다.70년대 군사독재시절 시국선언이나 성명을 기습적으로 발표하기 위해 애용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시대에 따라 농성의 성격이 달라지면서 명동성당의 대응도 바뀌었다. 盧泰愚정권 당시에는 군사정권의 연장이라는 시각이 깔려 있었다.91년 ‘강경대군 치사사건’과 ‘강기훈씨 유서대필사건’ 때에는 한 달 이상 집회와 농성이 이어졌지만 성당은 이들을 감싸고 사제단 성명 등을 통해 두둔하는 듯한 인상까지 주었다. 92년 金泳三정부가 들어서면서 집단 이해관계에 얽힌 대규모 농성이 잦아졌다. 94년 6월과 95년 5월의 서울 지하철 노조 농성과 한국통신 노조 농성이 대표적이다.3개월 동안 계속된 지하철 노조 농성 때에는 성당 본래의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무질서와 혼란이 심해 사제단과 사목협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철수를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4월부터 3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는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농성은 87년 6·10항쟁 이후 규모면에서 가장 크다.명동성당은 이번에 농성자의 철수를 요구하면서 “실정법 위반자에 대해서는 보호할 수 없으며 국민의 정부를 신뢰한다”고 천명했다.성당이 더 이상 집단이기주의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 혁명적 정화(金三雄 칼럼)

    단재 신채호선생은 우리는 ‘혁명적 정화’가 없는 민족이라고 아쉬워했다. 혁명 쿠데타 반정 정변 경장 등 정치상의 모든 방법이 나타났지만 한번도 ‘혁명적 정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해방 후에도 몇차례 기회가 없지 않았다. 건국과 함께 반민특위에서 친일반역자들을 처단하여 민족정기를 바로잡는 정화의 기회가 있었지만 이승만 세력에 의해 좌절되고, 4·19혁명후 독재세력을 청산할 혁명재판이 열렸지만 군사 쿠데타에 짓밟히고 말았다. 6월항쟁후 여소야대 국회의 5공청산 작업은 3당야합으로 역전되고,문민정부의 개혁은 역사의식의 부재와 너무 쉽게 부패하여 스스로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金大中 정부의 개혁작업은 지금 심한 도전에 직면했다. 모든 개혁을 좌절 역전시킨 반개혁 수구세력의 도전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최근의 몇가지 사례만 봐도 과연 이들의 도전으로 개혁이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이다. 첫째,햇볕론에 대한 수구세력의 도전이다. 이들은 동해안 간첩사건을 계기로 햇볕론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과거 햇볕론이 없고 강경일변도로 나갈때도 수차례 공비가 출몰했던 사실을 외면한채 정부의 햇볕 정책때문에 간첩이 나타난 것처럼 비판하면서 왜 응징하지 않느냐고 앙탈이다. 한바탕 붙기라도 하잔 말인지,지난 50년 강풍정책의 결과를 한 번쯤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국민정신을 반개혁 성향으로 오도한다. 반민주와 쿠데타와 양민학살을 일삼아온 독재자들을 영웅으로 추켜세우면서 국민이 개혁보다 강압통치 시대에 향수를 갖도록 여론을 조성한다. 셋째,‘우파는 사정(司正) 좌파엔 화해’란 도식을 만들어 햇볕정책을 색깔론으로,개혁을 우파 또는 특정지역에 대한 탄압으로 비약시키면서 계층과 지역감정을 조장한다. 명백히 드러난 수뢰 정치인의 사정도 표적수사 또는 지역차별이라고 억지를 부려 정치권의 사정과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군사독재와 부정부패의 늪지대에서 성장해온 남한의 극우세력과 부자 세습체제에서 성장해온 북한의 극좌세력은 평소 가장 적대적 상대인 듯 하지만 비상시에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적대적 공조관계’가 유지된다. 예컨대,1972년 朴正熙의 유신헌법과 金日成의 주석제헌법 개정이 거의 동시에 단행되고, 87년 야권의 승리가 보이는 듯 할 때 마유미(김현희)의 대한항공 폭파사건,92년 대선때 이선실의 간첩사건,96년 총선때 판문점 무장북한군 출몰사건,97년 대선때 특정세력과 북측의 내통사실 등 개혁세력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면 북한은 어김없이 안보위기나 공안사건을 만들어 수구세력을 도와주었다. 최근 북한의 잠수정침투사건도 햇볕론이 국민의 관심을 모으면서 소떼입북, 금강산관광등 한창 화해무드가 조성될 때 나타나 수구세력의 입지를 도와준 셈이다. 한국의 수구세력은 민주주의와 반공을 내세울 도덕적 자격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학살해온 독재전위 세력이었으며,반공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방편일 뿐이고, 오늘의 국난을 불러온 중심세력이기 때문이다. 독재자를 영웅시하고 화해정책을 용공시하고 사정을 계층과 지역감정으로 몰아가면서 개혁의 발목을 잡는 수구세력에 대한 ‘혁명적 정화’없이는 국난극복은 불가능하다. 50년만의정권교체는 민족모순과 사회모순을 바로 잡으라는 역사의 뜻이고,색깔론과 지역감정을 뛰어넘으라는 국민의 선택이다. 언제까지 이런 해묵은 ‘악령과 괴담’속에서 우리 정치와 사회가 세월을 보내야 하겠는가. 정부는 더 이상 원칙없는 온정주의와 눈치보기로 개혁에 갈팡질팡해서는 안된다. 좀더 과감한 사정과 개혁으로 5,000년 묵은 역사의 찌꺼기들을 퇴출시켜야 한다. 보수라는 이름 아래 역사의 방향과 전진을 가로막는 기득세력의 ‘여론’을 혁파해야 한다. 金大中 대통령은 1917년 러시아혁명의 어려웠던 시절 레닌의 침착함과, 1932년 대공황때 보인 루스벨트 대통령의 밝은 미소,프랑스가 패배한후 국민을 다시 규합한 드골의 리더십,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처칠의 여유와 지략으로 총체적 개혁을 단행할 때이다. ‘혁명적 정화’를 통해 제2 건국을 이뤄야 한다. “태양이 비칠때 풀(草)을 말리라”는 서양격언이 있다.
  • 감사관 개혁人士 교체 지지부진

    ◎각 부처 “유능한 인물 더 중요한 직책에”/당사자들도 “빛 안나는 자리” 꺼려/총리실 “교체여부 기관평가에 반영” 정부가 자체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각 부처의 감사관을 유능하고 개혁의지가 있는 국장급으로 전원 교체하도록 지시한지 보름이 넘었음에도 관련부처의 이해부족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13일 현재까지 감사관 교체인사를 단행 한 곳은 재정경제부,농림부 등 2곳에 불과하다. 이외에는 교육부가 감사관 교체계획을 세웠을 뿐이어서 부처의 개혁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외교통상부를 비롯한 일부 부처는 초임 국장급을 감사관으로 앉혀놓고 감사관 교체 계획이 없다고 버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감사관 교체 지시는 초임 또는 고참 국장을 기계적으로 임명하는 관행에서 탈피해 가장 유능하고 개혁의지가 있는 인물을 감사관으로 임명함으로써 부처 내부에서 공직기강을 확립하는 첫 단추로 삼겠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각 부처가 이처럼 감사관 교체에 미온적인 것은 유능한 인재들이 빛이 나지 않는 감사관직을 기피하는데다 부처장들도 능력있는 인사들을 감사관으로 보임하기보다는 다른 중요한 자리에 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는 각 부처의 감사관 교체가 부진함에 따라 감사관 교체 인사를 면밀히 분석해 장관의 개혁의지로 연결지어 평가하기로 했다. 국무총리실의 한 당국자는 “장관들의 감사관 교체인사를 다음달 초 실시될 기관 및 장관평가에 반영,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각 부처 감사관의 능력과 개혁의지에 대한 평가자료를 이미 확보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가장 유능한 국장급을 감사관으로 임명하고 감사관을 지낸 인물은 주요자리로 보내도록 각 부처에 적극 권유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 93년 문민정부 출범때는 투명행정을 강조한 당시 金泳三 대통령이 각부처의 공보관에 가장 유능한 국장을 보임하고 공보관을 지낸 인물은 우선적으로 승진시키라는 지시를 내린바 있으나 관료들의 인사관행을 깨는데 실패한 바 있다.
  • 友誼 다지는 첫 訪美 외교(사설)

    ○대외 신인도 제고 기회로 金大中 대통령이 오늘 하오 취임이후 첫 미국 방문 길에 오른다.정상외교의 의전상 최상위급인 국빈(國賓)방문이다.이번 金대통령의 방미(訪美)는 한미 두나라가 그동안의 혈맹관계를 재확인하고 한 차원높은 공영(共榮)지향의 동반자로서 상호 협력의지와 우의를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경협·對北정책 공조 초점 더욱이 우리경제는 외환위기 극복에 필요한 외자(外資)유치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최대출자국인 미국협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이러한 상황에서 金대통령의 확고한 개혁의지와 민주주의·시장경제실현이라는 국정운영 철학은 동질성 측면에서 미국측 호응을 어렵잖게 불러 일으켜 전반적 대외신인도 제고(提高)와 경제회생을 앞당기는 강한 추진력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이와 관련,金대통령은 5일 국민의 정부출범 100일과 방미에 즈음한 내외신기자 회견을 통해 정치불안정이 경제구조조정 및 회생노력의 발목을 잡는 점을 지적,향후 정계개편과경제개혁의 강력한 추진계획을 밝힘으로써 대내외적으로 개혁의지에 대한 신뢰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겠다. 金대통령의 해외방문은 이번이 두번째다.지난 4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외환위기극복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이끌어 내는 등 첫 경제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물론 이번에도 외자유치를 중심으로 한 마케팅 확충의 경제외교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다음으론 대북(對北)관계 완화와 북한개방 유도에 역점을 둔 한미공조체제의 강화에 초점이 모아질 것이다.이러한 두가지 과제를 놓고 한미정상은 심도있는 협의를 갖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미투자협정 체결 활약 특히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주목하는 것은 오는 10일 金대통령과 클린턴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투자협정 연내체결을 천명키로 한 대목이다.이 협정은 여타 국가와 맺은 기존의 내용과는 달리 두나라 기업인에 대해 제각기 상대국 국민과 동등한 자격으로 각종 투자·인허가 획득·입찰·송금 등의 모든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허용함으로써사실상 한미간의 경제국경이 없어지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이는 미국자본 유치를 통한 고용창출과 국내산업 경쟁력 강화의 유인효과를 제공할 것이다.또 우리는 다른 수출경젱국들에게 잠식당했던 미국시장을 다시 확보함은 물론 과학기술·문화 각 방면에 걸쳐 민간차원의 교류를 긴밀히 하는 등 다소간 소원했던 한미관계의 원상회복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NAFTA 가입 재추진을 사실 우리는 그동안 6공(共)시절에 북방지역 특수(特需)의 허상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구매력이 큰 미국시장과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한 정책상 허점을 드러냈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문민정부에서는 한때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가입을 타진했으나 관계당국자들의 소극적인 태도로 무산되는 무사안일과 비효율을 경험했다.때문에 우리는 이번 기회에 한미투자협정체결의 확약과 함께 NAFTA가입도 긍정적인 시각의 검토를 거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함을 강조한다.유럽연합(EU) 등의 예에서 보듯 무한경쟁속에서 세계각국은 보다 많은 자국 이익을 위해 경제활동영역을 블록화하는 추세에 있는 만큼 NAFTA가입은 거대한 북미시장개척에 도움을 주는 한편 한미간 전략적 유대를 강화시킬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한미정상은 미측의 북한경제제제 완화문제 등 대북정책을 다룸에 있어 양국의 공조체제와 동반자적 시각을 보다 확실히 하고 동북아지역 안보체제의 효율적인 구축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번 방미는 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진 데다 金대통령의 오랜 민주화 투쟁경력 등으로 해서 미국조야의 관심과 호응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외신은 전하고 있다. ○새도약의 전환점 기대 이는 8박9일의 일정에 무려 80회가 넘는 각종 행사와 만남 그리고 73회의 연설이 예정된 사실에서도 잘 읽을 수 있다.金대통령은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 이어 IMF·IBRD 총재를 만나고 자본주의의 메카인 뉴욕증권거래소도 방문, 한국의 경제개혁 노력을 설명하는 등 세일즈 외교를 펼친다.매우 빠듯하고 바쁜 일정이다.金대통령의 첫 방미를 전환점으로 개혁에 대한 국제적 신뢰도가 높아지고 범국민적 경제회생노력이 열매 맺는새 도약의 장(章)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 보안법 위반 저작물 재평가를/柳一相(기고)

    문민정부를 자칭하던 金泳三정권하에서 학술탐구와 저술활동에 ‘부지런한’ 몇분 교수들이 열정에 넘친 자신들의 연구성과를 공표했다가 오히려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는 사건들이 있다.광주대 朴智東 교수는 그의 저서를 이적표현물로 몰아부친 구정권에 의해 구속되었다가 현정권 출범후 건강상태에 대한 인도적 배려로 보석되어 현재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독재정권 유지 희생양 이밖에도 한국외국어대 李長熙 교수는 96년 통일원 추천도서로까지 지정되었던 ‘나는야 통일 1세대’라는 교양저술로 지난해말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줄 의도를 깊숙이 감춘 공안검찰의 집요한 구속요구에 시달렸다.94년 경상대 張尙煥·정진상 교수의 ‘한국사회의 이해’사건 역시 위의 두 사건과 같은 유형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다.이들 역시 아직도 재판에 계류중이다. 이 사건들에서 우리는 국가보안법이 군사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지식인들의 인권을 의도적으로 유린하고 정론직필 대신 사론(邪論)과 곡필,그리고 ‘당근’과 같은 연구프로젝트에 탐닉하도록 만드는 부작용이 있었음을 재인식하게 된다.왜냐하면 이들 세권의 저술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한국사회가 안고있는 여러 모순들의 근원과 그 전개과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방책을 궁리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게 하고,더 나은 말과 글로 자신들의 의식과 판단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양서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는 언론학자로서 朴智東 교수의 ‘진실인식과 논술방법’이라는 저술이 전체적으로 보아 올바른 논술전개를 위한 안내서로서 기자를 포함한 논술자가 오류에 빠지지 않고 객관성,전체성,심층성을 고려하면서 논술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취재보도 방법론의 책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朴교수를 구속에까지 이르게 했던 것은 검찰측의 일부가 선거때의 북풍공작에 편승하여 민주주의발전과 사회개혁을 위해 애써오던 사람들의 올바른 의견공표에 재갈을 물리고 보수·수구세력의 집권을 연장해 보려는 정치적 의도에 조직적으로 동원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지식인 바른양심에 재갈 현행 국가보안법 제7조 1항과 5항은 이적단체에 대한 찬양·고무와 관련표현물을 제작한 죄를 처벌하는 규정인데 적용범위가 광범하여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을 정도로 법문(法文)으로서 애매모호한 점이 있지만 더욱 큰 문제는 검찰의 교조성,언론의 무책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 무책임성도 한몫 이제 검찰과 언론은 구시대의 잘못된 정치로 인해 공안몰이의 피해자가 됨으로써 고통을 당한 이웃들을 편안하게 해줘야 할 의무가 있음을 심각하게 깨달아야 한다.검찰은 朴智東 교수를 비롯하여 연구실적의 공표 때문에 사법적 처리의 대상이 된 다른 3명의 교수들에 대해서도 공소를 취하하는 진정한 반성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고,언론도 공정보도를 포기하고 남북관계라면 무조건적으로 색안경을 쓰고 보던 과거의 타성으로부터 비판적 이성을 되찾는 것이 진정한 언론개혁임을 숙지해야한다.국민정부의 검찰과 새시대의 언론은 金大中 대통령이 추진하는 민주사회를 활짝 여는데 동참해 주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이제 새로운인식과 판단의 잣대로 새시대의 법질서를 지켜주고 도와주기 바란다.
  • 반민특위의 좌절과 개혁세력(金三雄 칼럼)

    초하의 6월이 열리면 우리는 6·25한국전쟁과 반독재 6월 민중항쟁을 생각한다. 한국 현대사의 물굽이를 바꾼 큰 사건이다. 그런데 6월이면 잊어서는 아니 될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앞의 두 사건에 못지 않는 사건이다. 단재 신채호의 필법을 차용하여 ‘한국현대사의 제1대사건’이라면 무엇일까. 해방 건국 분단 전쟁 4월혁명 5·16쿠데타 10월유신 10·26사태 5·17쿠데타 광주항쟁 여야정권교체 등, 안정된 사회라면 1세기에 한번 겪을까말까할 일을 우리는 숨돌릴 틈도 없이 무수히 치렀다. 그 ‘다사다난(多事多難)’중에 정신사적으로나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국민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의 하나는 이승만 정부의 반민특위 해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민족을 배반한 반역자들을 하나도 처벌하지 못하고 친일세력이 건국과정과 그 이후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잡으면서 사회정의와 민족정기가 설자리를 잃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6·6사건’으로 불리는 친일경찰의 반민특위 습격사건은 1949년 6월6일 상오에 자행되었다. ‘웃어른(이승만)’의 양해를 받은 무장경찰은 관할인 서울 중부서장 윤기병의 지휘로 반민특위 사무소를 습격하여 요인들을 체포하고 기물을 파괴했다. 시경국장 김태선 내무차관 장경근 종로서장 윤명운 등 일제경찰출신들이 중심이 된 만행이었다. 이날 경찰에 끌려간 특위 직원들은 심한 고문을 당하고 많은 관련 자료가 폐기되었으며 지방의 특위 사무소도 피습되어 업무가 마비되었다. ○청산하지 못함 반민세력 국민적 환호와 기대를 받으면 진행되던 반민특위의 친일파 청산작업은 이렇게 하여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반면 친일파들은 이승만과 결탁하여 뿌리를 내리고 군사정권과 문민정부를 거치는 동안 가지를 쳐서 기득세력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반민특위를 와해시키려는 친일세력의 공작은 집요했다. 이들은 반민특위인사들을 ‘빨갱이집단’이라 음해하면서 정신적 지주인 김구를 살해하고 국회프락치사건을 일으켜 항일독립운동 세력을 제거했다. 친일파들이 독립운동가들을 완벽하게 제거한 6·6사건의 진상은 독재치하에서 묻혀지고, 식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가 반세기 동안 이어지게 된 것이다. 50년만의 정권교체로 집권하게 된 김대중 정부의 책임과 사명은 막중하다. 현실적으로는 경제를 희생시켜 IMF체제에서 해방되는 일이며, 역사적으로는 반민특위의 좌절이래 전도된 가치관과 사회정의를 바로 잡는 일이다. ○개혁, 반민특위 정신으로 친일세력에 뿌리를 둔 수구세력은 그동안 키워온 인적 물적 기반을 바탕으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김대중 정부의 개혁을 훼방하고 국가적 위기상황에도 눈을 돌린채 기득권 유지에 연연하면서 사사건건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 반민특위의 좌절로 지난 반세기의 역사가 독재와 불의로 점철되었듯이 김대통령의 개혁이 실패하면 역사는 또 얼마나 가혹한 시련을 안겨줄 것인지, 수구세격은 이를 외면하는 것이다. 하루빨리 김대통령의 개혁의지를 뒷받침할 컨트롤 타워로서의 개혁주체(세력)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청산할 것은 청산하고 개혁할 것은 개혁하여 국난을 극복해야 한다. 뼈저린 반민특위 좌절의 역사는 한번으로도 족하다.
  • 白凡 재조명:1/金九 연구 어디까지(정직한 역사 되찾기)

    ◎그의 죽음은 ‘불행한 역사’의 시작/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참역사의 불꽃 스러지고/식민유산 씻을 주체 상실 평화통일론 어둠속 유배/국가차원 연구후원 全無 이젠 정당한 평가 필요 백범 金九 선생은 우리 현대사의 거인이다.순수한 열정으로 조국의 독립과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했다.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이끌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다.독립후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앞장섰다.그러나 그는 1949년 6월26일 암살됐다.타계한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면 현대사는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국민의 존경을 받았지만 권력은 그를 왜곡했다.이제 그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와야한다.정직한 역사를 되찾기 위해 金九 선생을 재조명한다. 어둠의 시대에 등불이었던 민족의 큰 스승 백범 金九.그는 일제식민통치의 암울한 시대를 끈질긴 생명력으로 밝혀온 민족의 등불이었다.그의 헌신적 민족사랑은 조국독립이라는 찬란한 불빛으로 빛났다.그러나 그 불빛은 정의의 역사로 승화되지 못한 채 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꺼지고 말았다.그의 비극적 죽음은 ‘정의의 역사’가 현실에서 패배한 민족의 비극이다. 그는 1949년 6월26일 안두희에게 암살됐다.암살범은 일본인이 아닌 그가 사랑했던 같은 민족이었다.그러나 ‘암살범’은 안두희라는 개인이 아니었다.그는 거대한 음모의 한낱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金九 선생은 권력에 의해 조작된 제도적 폭력에 희생된 것이다.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안두희의 총성은 일그러진 현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결국 잘못된 현대사에서 파생된 권력의 폭력은 5·18 광주민주항쟁도 무력으로 진압했다. 金九 선생을 죽인 권력과 친일세력들은 그를 낡은 역사속에 묻어두려했다.그들은 金九 선생의 최고 가치였던 독립과 민족통일론을 매도했다.그의 평화통일론은 냉전체제속에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그는 자유당 정권에 의해 현실에서의 ‘패배자’로 왜곡됐다.자유당정권은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의 출판도 금지시켰다. 그는 朴正熙 대통령과 그이후 全斗煥·盧泰愚 정권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군사정권들은냉전체제의 분단상황에서 백범의 민족통일론을 외면했다”고 창원대학의 都珍淳 교수(한국사)는 말했다. 金九 선생을 죽게한 일그러진 현대사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현대사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마땅히 단죄됐어야 할 민족반역자 친일세력들이 해방후에도 부와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것이다.백범의 죽음은 일제식민통치의 유산을 청산할 주도세력의 상실을 의미했다.그러한 불행한 역사과정은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며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 굴절된 현대사의 어둡고 긴 그림자 속에서도 백범은 일반대중들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추앙받아왔다.SBS방송 조사결과,金九 선생은 광복이후 50년동안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나타났다.그는 고대 신문이 실시한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백범은 국민들에게는 가장 존경을 받으면서도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된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현대사가 권력지향적 사회였기 때문에 백범연구는 활발할 수 없었다.문민정부에 들어와 그의 연구는좀더 적극화됐지만 국가차원에서 그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일부 정치세력이 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이면서도 그의 기념관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중국에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임시정부 국무회의까지 열렸던 경교장(京橋莊)의 복원도 불투명하다.그가 서울에 설립했던 2개의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들은 흔적조차 없어졌다.백범 푸대접은 정통성이 약한 과거의 권력이 그의 영웅화를 두려워하고 그의 통일론과 분단상황이라는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었다.그러나 냉전체제도 무너지고 金九 선생에 각별한 존경과 관심을 갖고 있는 金大中 대통령의 등장으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都교수는 예상한다. 金九 선생은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른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야한다.그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중요한 일이다.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백범의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면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 그의 열린 민족주의와 삶의 철학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래에도 ‘등불’이 될 것이다. ◎죽음을 초월한 생애 ▲1876년(고종13년) 해주에서 탄생 ▲1893년(18세) 동학에 입도 동학접주가 됨 ▲1896년(21세) 황해도 치하포에서 변장한 일본인 쓰치다 때려 죽임. 해주감옥에 감금됐다 인천으로 이감 ▲1898년(23세) 인천감옥 탈옥.마곡사에 들어가 승려가 됨 ▲1904년(29세) 최준례와 결혼 ▲1909년(34세)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자로 체포됐다 석방 ▲1919년(44세)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로 망명.임시정부 경무국장 취임 ▲1923년(48세) 임시정부 내무총장 취임 ▲1924년(49세) 부인 최준례 여사 사망 ▲1926년(51세) 임시정부 국무령에 선출 ▲1930년(55세) 이동녕·안창호·조완구·조소앙 등과 한국독립당 조직 ▲1932년(57세) 이봉창 의사의 日王 저격,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지휘.상하이에서 자싱(嘉興)으로 피신 ▲1933년(58세) 중국의 장제스(蔣介石)와 만나 낙양군관학교에 한인훈련반 설치 합의 ▲1935년(60세) 난징(南京)에 학생훈련소 설치 ▲1938년(63세) 호남성 장사로 피신.민족진영3당 통합을 논의하던중 이운환의 저격으로 중상 ▲1939년(64세) 어머니 곽낙원(81세) 여사 사망 ▲1940년(65세) 임시정부 주석으로 선출 ▲1941년(66세) 대한민국 건국강령 제정.대한민국 임시정부 명의로 대일선전포고 ▲1945년(70세) 중국에서 귀국.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반대하여 신탁통치반대운동 전개 ▲1947년(72세) 제2차 반탁운동 전개.인재 양성을 위한 건국실천원양성소개설 ▲1948년(73세)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하는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발표.남북연석회의 위해 평양방문후 귀국 ▲1949년(74세) 백범학원·창암학원 설립.6월26일 육군소위 안두희의 저격으로 서거.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추서 ▲1969년 남산에 동상 세움(서거 20주년)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cslee@seoul.co.kr
  • 창립 10주년 맞은 民辯 崔永道 회장

    ◎“비민주적 사법제도 아직 많다”/법조계 비리 물들면 사회 희망 사라져 “지난 10년 동안 정치사범을 변론하면서 수사단계의 가혹행위를 없애는 등 비민주적인 사법제도의 개선에 앞장섰지만 아직도 고쳐야 할 문제점은 태산같이 쌓여있습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崔永道 회장(60)은 29일 창립 10주년을 맞는 감회를 이같이 말했다. 민변은 민주화운동이 고조되던 지난 88년 5월28일 인권문제에 관심이 있는 변호사들의 모임인 ‘정의실천법조회’를 주축으로 발족됐다.이후 10년동안 민주화운동이 우리 사회에 뿌리는 내리는 데 큰 몫을 했다.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인권상황이 다소 나아지기는 했지만 국가보안법은 그대로입니다.앞으로도 시국사건 변론은 물론 비민주적 법률과 제도의 개선,바람직스런 여론 조성,사회인권단체와의 연대 활동에 더욱 힘쓰겠습니다” 崔회장은 최근 잇따른 변호사들의 비리를 강도 높게 질타했다.법조계에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면 국가의 희망이 사라진다고 지적하고 “변호사들이 법조계에 첫발을 디디면서 다짐한 사명감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어 “부당해고와 임금삭감 등으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가 침해되고 있는 점을 감안,이들의 권익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겠다”면서 “대기오염과 식수문제 해결에도 앞장서는 민변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 과거 청산과 미래 개척(대한민국 50년:21·끝)

    ◎이데올로기·개발독재 넘어 통일로/反民특위 “실종”… 건국 최초 과거청산 실패/‘제주 4·3’ ‘거창사건’ 아직도 어둠 속에/지역할거 정경유착 파당정치 악습 깨고 군사정권 시대 숱한 의문사도 밝혀내야 1948년 8월15일 신생정부 출범 당시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약소국이었다.한반도 면적 22만1,487㎢ 가운데 3·8선 이남인 9만9,221㎢만 확보했고 인구도 2,002만명(48년 미군정청 추정치)에 불과했다.또 국민 가운데 80%가량이 농업 등 1차산업에 종사했고,그해 수출액이 2,230만달러에 그칠만큼 경제력도 볼품없었다. 정부수립 50돌을 눈앞에 둔 지금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어떠한가.97년 말 현재 인구는 4,666만명,수출액은 1,361억6,430만달러,1인당 GNP는 9,511달러에 이른다. ○‘삶의 질’ 향상되지 않아 지난 50년동안 인구는 2.3배,수출규모는 6,106배로 급증했다.1인당 GNP는,가장 이른 통계치인 53년의 67달러에 비교해도 142배나 늘었다.가히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비약적인 성장’이라는 찬사가 부끄럽지 않은 양적 팽창이었다.그러면 이같은 성장이 우리 사회의 내적(內的) 발전이나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그대로 동반한 것일까.여기서 한국에 대한 외국의 시각을 잠깐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이 펴낸 책자 ‘South Korea’(92년 간)는 한국의 기본사항을 소개한 데 이어 ‘재벌 중심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독재정권 시대에 고착된 퇴행적인 정치질서에,통제받는 사회구조를 가진 나라’라고 덧붙였다.또 65만의 군대와 한해 100억달러(89년 기준)에 이르는 군사비도 주요항목으로 들었다.다른 나라의 일반적인 한국관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 의회도서관 책자의 표현이 비록 유쾌하지는 않지만,우리 현실을 상당히 정확하게 지적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대한민국 성장의 뒤안길에는 필히 청산해야 할 역사적 잔재가 누적돼 있기 때문이다.이는 정치·경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구조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특정사건의 진상을 은폐·왜곡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치 분야에서의 청산대상은 분단체제에서 파생한 반공이데올로기의 악용과 개발독재 논리이다.해방이후 정치의 흐름을 살펴보자.3년동안의 극심한 좌우대립 끝에 남과 북에는 상호 배타적인 정부가 들어선다.2년이 채 못돼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져 분단체제는 더욱 굳어진다.이후 한국에서는 李承晩 정부가 장기집권하고 그에 따른 부정부패가 만연한다. 4·19혁명이 일어나 민주주의가 되살아나는 듯 했지만 곧바로 5·16쿠데타로 무너진다.朴正熙 정권은 개발논리를 앞세워 독재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른다.군사정권은 全斗煥­盧泰愚 시대까지 이어졌지만 80년의 5·18광주민중항쟁,87년의 6월항쟁 등 국민의 극심한 저항에 부딪쳤고 그 결과 93년에 문민정부가,그리고 50주년이 되는 올해 국민의 정부가 탄생한다. 대한민국 50년 정치사를 일별하면,그것은 정치적 억압과 이에 맞서 민주사회를 추구한 국민의 대항으로 요약할 수 있다.그 과정에서 억압적 정권이 양손에 든 무기가 반공이데올로기와 경제개발 논리였다. ○가치관 대혼란 초래 남북이 체제의 존립을 걸고 대립하는데다 6·25라는 비극을 겪은 마당에 반공이데올로기는 필연적인 역사의 부산물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문제는 권력이 이를 정치적 대항세력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악용한 점에 있다. 멀게는 한국전쟁 전의 ‘국회 남로당 프락치 사건’에서 가깝게는 지난 대선의 ‘吳益濟 월북 및 편지사건’‘흑금성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집권세력은 늘 ‘용공조작’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려고 시도했고 대부분 목적을 달성했다. 朴正熙 정권이 들어서서는 경제성장을 내세운 개발독재 논리가 못잖게 위력을 발휘했다.국민 대다수가 절대빈곤에 시달리는 상태에서 ‘잘 먹고 잘 살려면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하는 추상적 가치는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쉽게 먹혀들어갔다.시민의식이 어느정도 성숙하기 전까지 ‘중단없는 전진’과 ‘잘 살아 보세’는 국민적 합의처럼 보였다. 이같은 정치적 적폐(積弊)는 지금도 파당정치·지역할거주의·정경유착 등 여러 유형의 악습으로 고착됐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의식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전통을 잇는 문화와 사상은 ‘전근대적’이거나 ‘비효율적’이란 이유로 외면받는 대신 출세지상주의·이기주의가 넘쳐나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재벌의 소유 집중,극심한 빈부격차 등 경제 분야의 해묵은 과제도 해결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정치사의 굴절이 가져온 또다른 폐해는 역사적 진실의 은폐·왜곡이라 할 수 있다.대한민국 최초의 ‘과거청산 실패’사례로는 48∼49년에 걸친 ‘반민특위 사건’이 꼽힌다.일제강점기에 친일과 반민족 행위를 한 자를 처벌하고자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한 제헌국회는 곧이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한다.위원회는 반민족행위자 305명을 검거하지만 참다운 활동을 벌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만다.친일파에 권력기반을 둔 李承晩 행정부의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나쁜 선례는 길이 남게 마련인가.해방정국에서 수차례 벌어진 정치지도자 암살사건,6·25를 전후해 빚어진 ‘제주 4·3’이나 거창사건을 비롯한 양민학살,군사정권에서 발생한 민주인사·학생들의 숱한 의문사와 실종들이 아직껏 그 실상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어둠에 묻혀 있다. 사건 발생 자체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예컨대 49년 12월24일 경북 문경군에서 일어난 국군의 양민학살 건이다.미국 국립공문서 보존관리청(NARA)에서 최근 발굴한 주한미군 군사고문단 보고서에 나타난 실상은 이렇다. 육군 25연대 7중대 병력이 석달이라는 산간벽지 마을에 들어가 주민들을 모은 다음 빨치산에게 협조했다는 죄목으로 무차별 살해한다.보고서는 “(주민들이) 도발하지도 않았는데 카빈 소총·수류탄·바주카포 등으로 공격해 성인 86명,학생 9명,어린이 3명이 숨졌다.또 집 27채 가운데 23채를 불태웠다”고 밝혔다.이 사건이 세상에는 빨치산의 만행으로 알려졌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민족의 성지’국립묘지에도 존재한다.문민정부 출범 초기인 93년 7월 국가보훈처가 金性洙·李甲成·尹致暎·李殷相·徐椿·李鍾郁·尹益善·全協 등 8명에 대한 친일행각을 조사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이들은 모두 독립유공자로서 각종 훈·포장을 받았고 사회의 지도층인사로 행세했다.이 조사 역시 결말없이 끝났고 뒤이은 문민정부의 ‘역사바로 세우기’도 정치적인 의도라는 오해만 샀을 뿐 결실을 맺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특별한 책무 한민족이 빛나는 21세기를 향해 전진하려면 두가지 전제조건이 이뤄져야 한다.하나는 물론 통일이요,또 하나는 역사에 덕지덕지 낀 찌꺼기를 걷어내는 일이다.통일은 북한이라는 상대와 더불어 장기간에 해결해야 할 민족의 숙원이지만 잔재 청산은 우리의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국민의 정부는 우리 현대사를 정화하는 데 앞장서야 하는 특별한 책무를 안고 있다.
  • YS정부 청와대 살림 오늘부터 감사

    ◎새 정부에 업무 인계 이행여부 중점 조사/金賢哲씨 측근 등 정원 초과 인사도 규명 청와대가 25일부터 감사원 감사를 받는다. 감사원은 2주 동안 10명의 감사요원을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 투입,지난 2년간의 살림살이를 점검한다.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선지 아직 100일이 넘지 않는 시점이다.따라서 이번 감사는 ‘국민의 정부’ 청와대가 아니라 ‘문민정부’ 청와대에 대한 감사인 셈이다. 감사원은 특히 전 정권의 청와대 고위 및 실무 직원들이 새 정부측에 각종자료 전달 등 업무 인계를 제대로 했는지 중점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청와대 관계자들은 “金泳三 전 정부로부터 넘겨 받은 서류가 거의 없다”고 말하고 있다.잘못된 관행은 반복되는지 지난 92년 金전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청와대에 입성할 때도 정무수석실 금고에는 내각제 합의각서 사본 1부만 달랑 놓여있었다고 한다. 이와함께 전 정권의 청와대가 정원을 훨씬 초과하는 인원을 운용한 부분도 감사의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청와대의 정원 초과는 늘상 문제가 되어 왔다.특히 지난 정권에서는 金賢哲씨의 측근이 불법적으로 정원외 근무하는 등 청와대 인사가 파행적으로 이뤄져 왔다.따라서 이번 감사는 새 정부에도 반면교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감사는 96년부터 격년제로 실시돼 왔다.감사원이 처음 청와대에 감사반을 보낸 것은 지난 93년 李會昌 원장 시절이다.당시 洪仁吉 총무수석은 “감사원장 시켜줬더니 우리한테 칼을 돌리냐”며 반발했으나 결국 감사를 수용했다.그러나 당시 청와대 감사결과는 특이한 사항이 없었다.盧泰愚 전 대통령의 아들 載憲씨가 ‘발렌타인 30년’같은 고급 양주를 너무 많이 가져가 담당직원이 일일이 내역을 기록했다는 정도에 머물렀다.
  • 경제失政 수사 새국면/검찰 이신행 의원 소환 파장

    ◎‘金善弘 리스트’ 거명 정치인 수사 불가피/정치권 전체 司正으로 확대 여부에 관심 검찰이 한나라당 이신행 의원(서울 구로 을·전 기산 사장)을21일 소환하기로 함에 따라 문민정부 경제실정 수사가 새 국면을 맞았다. 특히 ‘김선홍 리스트’에 거명된 여야 정치인 등 정치권 전반에 대한 사정으로 확대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은 19일 밤 기아 사태와 관련,이의원 소환 조사 방침을 전격 발표하면서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 사실은 드러난 것이 없으며 기아 협력업체의 자금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소환한다”고 밝혔다.그러면서도 “정치인이 아닌 기산 사장으로서 이의원을 수사하는 것”이라며 개인비리 수사에 국한할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의원에 대한 수사가 기본적으로 기아 비자금에 초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는 만큼 ‘김선홍 리스트’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검찰이 이미 확보하고 있는 ‘김선홍 리스트’에는 K,L,S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5∼6명과 국민회의 K의원 등 김 전회장의 정치권 비호 세력과 이들에게 건네진 4억∼23억원의 로비 자금 내역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따라서 검찰은 李의원을 불러 金전회장과 함께 조성한 비자금을 어디에 써쓴지,즉 정치권에 대한 로비를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중진인 김덕룡의원(서울 서초을)과 김기수 전 대통령수행실장의 소환을 검토하는 것도 이의원 수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김의원과 김 전실장은 해태그룹 협조융자와 관련,박건배 해태그룹회장의 부탁을 받고 김인호 전 경제수석에게 대출 청탁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박회장과 김 전수석은 검찰 조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정치권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으로까지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일각에서는 ‘정계개편과 지방선거를 앞둔 엄포용’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검찰은 아직까지 김의원과 김 전실장의 소환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관련자와 참고인을 조사하다가 정치인이 나오면 수사할 수도 있다”고 말해 PCS 사업자 선정특혜의혹과 종금사 인허가비리 등에 연루된 정치인에까지 수사의 칼날이 미칠 수 있음을 내비쳤다.
  • 李信行 의원 오늘 소환/검찰 기아사태 관련

    ◎해태융자 청탁 김덕룡·김기수씨도 조사 검토 문민정부 경제실정을 수사중인 대검중수부(李明載 검사장)는 20일 상오 8시 기아사태와 관련,한나라당 李信行 의원을 소환 조사키로했다고 19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기아사태와 관련한 정치권 로비사실은 아직까지 드러난게 없다”면서 “기아의 협력업체 조사를 위해 李의원을 소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해태그룹의 협조융자 청탁 과정에 한나라당 金德龍 의원과 金基洙 전 대통령수행실장이 개입한 사실을 밝혀내고 금품수수 여부를 집중 수사하고 있다. 검찰은 金 의원과 金 전 수행실장의 소환 조사를 검토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해태그룹에 대한 협조 융자가 본격 검토된 것은 金 전 수행실장이 金仁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부탁하면서 시작됐다”면서 “金 전 수행실장이 金泳三 전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를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金 전 실장은 경복고 동문인 해태 朴健培 회장에게서 청탁을 받고 金 전 수석에게 협조융자 주선을 부탁했으며 金의원은 지난 해 8월 해태그룹 朴회장의 주선으로 金 전 수석과 만나 계열사 제3자인수와 협조융자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등 2차례에 걸쳐 청탁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 ‘換亂 규명’ 끝내기 국면/경제失政 수사 점검

    ◎‘PCS 의혹’ 제외한 대부분 관련자 사법처리/지방선거후 정치권 개입 여부 본격수사 할듯 문민정부 경제실정(失政)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내기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번 주말쯤 姜慶植 전 경제부총리에 대한 사법처리가 예상되는 가운데 12일 金善弘 전 기아그룹 회장을 비롯,4개 종금사 대표들이 구속 수감됐다.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 의혹 사건도 귀국을 거부하고 있는 李錫采 전 정보통신부장관을 기소 중지하는 선에서 매듭지을 전망이다. 사건마다 과거의 어느 대형사건 못지 않아 장기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수사 착수 한달여만에 환란(換亂),기아사태,종금사 및 PCS 비리 등 4개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마무리되고 있다. 검찰의 신속한 행보는 수사 초기부터 예견된 것이었다.검찰 내부에서도 “늦어도 5월 중순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 나왔다.과거에 대한 단죄에 집착하다 보면 현재의 국가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 달 치러지는 지방선거도 의식한 것 같다.선거를 앞둔 사정(司正)은 여권의 주문에 따른 것이라는 등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소지도 있다. 하지만 어느 사건도 완결된 것은 아니다.검찰의 고위 관계자는 “이번 주안에 수사의 큰 줄기는 마무리될 것”이라면서도 “장기 체제로 바꿔 (수사는)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검찰의 수사는 기아사태와 종금사 인허가,PCS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개입 여부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金善弘 전 회장의 로비를 받은 정치인이 신한국당의 구 민정계 의원을 중심으로 40여명에 이른다는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종금사 인허가 과정에도 민주계 의원 다수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이 이날 종금사 대표들을 정치권에 대한 로비 여부와 관계없이 CP 불법매매 등 혐의로 구속한 것은 일단 신병을 확보한 뒤 정치권의 압력 여부등을 조사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의 정치권 수사는 지방선거 이후 불거질 공산이 높다.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인들이 대부분 야당 인사들이어서 선거 전에 수사에 착수하면 야당 탄압이라는 역공세에 말려들수 있기 때문이다.
  • 姜慶植씨 내일께 영장/외환위기 보고 묵살 확인

    문민정부 경제실정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李明載 검사장)는 5일 姜慶植 전 부총리에 대해 7일쯤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金仁浩 전 경제수석은 불구속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姜 전 부총리가 지난 해 외환위기를 충분히 감지하고도 한국은행 등의 IMF 지원 건의를 묵살한 채 金泳三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정경분리­상호주의 일관성 유지/여권의 對北정책 방향

    ◎비료회담 통해 ‘끌려다니지 않을것’ 통첩/인도주의 명분 확고… 이산가족문제 관철 “DJ의 대북 햇볕론은 곧 빛을 볼 것이다” 4일 통일부와의 당정협의를 통해 여권은 ‘후퇴없는 햇볕정책’을 재확인했다.햇볕정책의 데뷔전이었던 북경 비료회담이 비록 결렬됐지만 여권은 “북경회담을 통해 과거처럼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DJ의 의지를 확실히 전달했다”며 후한 평가를 내렸다. 南宮鎭 제1정조위원장은 “북한이 5월말 정도면 비료 재고가 떨어지기 때문에 추가 회담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여권은 햇볕론이 ‘정경분리’와 ‘상호주의’로 발현되고 있다는 진단이다.정경분리는 민간차원 경협교류의 전면허용으로 이미 윤곽을 드러냈다.북한은 경제회생,남측은 IMF 위기극복이라는 양측의 기대가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다.조만간 현대그룹 鄭周永 명예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상당한 경협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란 판단이다. 하지만 상호주의 강조는 ‘일방적인 대북지원은 없다’는 여권의 확고한 의지 표현이다.문민정부에서 李仁模노인의 송환과 쌀지원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서 얻은 교훈인 셈이다. 상호주의의 핵심 고리는 ‘인도주의’로 볼수 있다.우선 이산가족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얼핏 정경분리 원칙에서 후퇴한 것으로 비치지만 南宮위원장은 “인도주의는 세계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북전략”이라고 밝혔다.대북 주도권의 고삐를 쥐면서 명분을 확보하는 이중포석의 의미다. 물론 햇볕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북한의 개혁·개방이다.이를 위해 여권은 3단계 전략을 준비 중이다.우선 정례적인 남북 당국자 회담을 개최하는 일이다.DJ햇볕론을 펼칠 발판을 마련하고 대화채널 확보라는 의미가 크다. 다음 수순은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다.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과 대대적인 남북 경제교류를 위한 발판인 셈이다.마지막 수순은 91년 체결한 남북 기본합의서의 전면 이행에 돌입하는 일이다.당의 한 관계자는 “남북합의서 내용만 왜곡없이 실행된다면 남북 통일은 상당기간 앞당겨 질 수 있다”고 밝혔다.
  • “탈법시위 국민이 용납안할것”/金 대통령 WSJ 회견 내용

    ◎문민정부의 實政 부총리·수석에 책임/前 대통령들 여론 의식 조용히 지낼것 金大中 대통령은 4일 하오 청와대에서 미국 유력 일간지인 월스트리트 저널과 인터뷰를 갖고 최근 불법·폭력시위와 전직 대통령의 사회활동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비켜가지 않고 털어놨다. ­심해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항의에 대한 정부대책은. ▲노동자들이 법을 어기거나 기업운영을 간섭하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그 예가 대한중석과 기아이다.우리 국민들은 일터를 보장하라고 폭력시위를 하면 외국자본이 들어오지 않고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어지지하지 않는다.한총련은 국민 뿐아니라 학생들로 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정부가 외국투자를 유치해 일자리를 창출하면 모든 노동자들과 무난히 협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청문회는 언제하나. ▲金泳三 전 대통령이 앞서간 전대통령들의 운명으로는 가지않을 것으로 본다.외국 돈이 빠져나가고 선진국 운운하며 달러를 외국에 나가 쓰도록 국민들에게 권장하는 등 실질적으로 경제를 총지휘했던 것은 대통령이라기 보다는 부총리,경제수석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경제정책은. ▲경제장관들에게 권한을 주고 국무회의에서 토론,최종결정해 집행하지만그 주도권은 내가 행하고 있다. ­북경회담이 성과가 없는 데,특별한생각은. ▲북한은 3가지중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다.첫째는 남한을 무력 공격하는 방법이다.우리도 피해를 입겠지만 북한은 파멸이 올 것이다.둘째는 지금과같이 개방도,전쟁도 하지않고 가는 것이다.그러나 갈수록 북한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공산주의 사회는 강력한 질서유지가 필요한 데,지금 현재 북한은 질서유지가 어렵다.결국 북한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개방하는 일이다. ­전직대통령들이 모두 조용히 보낼 것으로 보는가. ▲지금 현재 집에 있고 사생활의 자유를 갖겠지만 사회활동은 안할 것으로 본다.국민들이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국민 여론상 그외 다른 것은 없을 것이다.나는 그들로 부터 박해와 불이익,그리고 목숨까지 잃을 뻔 했으나 편안한 사생활을 위협할 생각은 전혀 없다.
  • 姜 전 부총리 기자 질문공세에 함구/경제실정 수사 이모저모

    ◎국회 출석 이유 검찰 나왔다 하오 재출두/“金 전 수석 경제논리 뛰어나 조사 힘들어”/한솔 간부 자해소동 의식 밤샘조사 안해 문민정부 말 경제 정책을 책임졌던 姜慶植 전 경제부총리가 1일 검찰에 소환됨으로써 20여일 동안 진행되어 온 환란(換亂) 수사가 분수령을 맞았다. ○…姜 전부총리는 이날 상오 8시 아카디아 승용차를 타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출두,“외환 위기를 부른 책임을 인정하는가”라는 등의 빗발치는 질문에 굳은 표정과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뒤 두툼한 서류봉투를 들고 청사 11층 조사실로 직행. ○…검찰은 金仁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재소환,환란 책임 규명에 박차를 가했지만 金 전수석이 완강하게 혐의 사실을 부인해 어려움을 겪었다.검찰관계자는 “경제논리가 뛰어난 사람을 상대로 조사하는데 아무래도 힘이 들지 않겠느냐”면서 “현재의 조사 진척도로 봐서는 다음주까지 (조사가)이어질 것 같다”고 설명. ○…姜 전부총리는 출두 4시간만인 낮 12시쯤 임시 국회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검찰을 빠져나간 뒤 하오 3시30분쯤 다시 나와 늦은 밤까지 조사를 받았다.검찰 관계자는 “姜 전부총리가 ‘국회 개원에 필요한 정족수에 문제가 있어 나가봐야 한다’고 말해 내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이 관계자는 그러나 姜 전부총리가 국회출석을 이유로 출두를 거부하면 “법에 따라 다른 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못박아 체포동의안 제출 등의 방법으로 정면대응할 것임을 시사. ○…검찰은 당초 姜 전부총리를 조사한 결과,직무유기 혐의 외에 다른 혐의 사실이 드러나지 않으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으나,이미 姜 전부총리가 고교동창이 운영하는 울산 주리원백화점이 거액의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관계기관에 압력을 넣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검찰 관계자는 “직무유기만 적용하면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하지도 않을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개인 비리가 드러난 만큼 영장을 발부받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솔제지 李相喆 상무의 자해소동이 보도된 뒤 사건 관계자에 대한 검찰의 소환 및 조사방식이 대폭 달라져 눈길.검찰이 그동안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오던 밤샘조사 관행이 사라지고 조사대상자를 아침 일찍 불러 늦어도 자정 전에 되돌려 보내고 있는 것.한 특수수사 검사는 “수사효율이 적어도 3∼4배 정도는 떨어질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인권보호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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