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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걸프전쟁 개막 엿새째. 주요 일간지들의 제목을 보면 장기전 조짐,국제전으로 번질 가능성,후세인 군지휘체제 건재,미 단기압승에 회의론 등… 대체로 전쟁이 미국의 뜻대로 잘 돼가지 않는다는 식이다. 그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 장기고 단기고를 말할 단계가 아니다. 그저 예상했던 대로 가고 있다는게 옳은 말이다. ◆이번 전쟁은 애당초 군사적으로는 미국을 주축으로한 다국적군이 1백20% 승리하게 돼있는 전쟁이다. 다국적군의 공군은 하루 1천회 정도 출격,이라크의 군사시설을 정확히 공략,7백기가 넘는다는 이라크 공군은 아직 공중전 한번 제대로 못한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서구식 개념의 전술에 따른 현대전이라기 보다는 중동 특유의 정치전이요,심리전이라는 측면을 이해해야 한다. 이라크는 소련제 스커드라는 미사일을 전술목표에 따라 다국적군 기지나 토마호크 미사일을 탑재한 미국함정에 발사하지 않고 가만 있는 이스라엘의 인구밀집 지역과 사우디 주요 도시에 대고 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이라크는 지난 19일다국적군 조종사 1명 생포에 6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후세인은 우선 정면 대결아닌 정치전용으로 이스라엘에 스커드미사일을,심리전용으로 사우디에도 몇발을 쏘아 봤다. 이는 『유태인들아 빨리 화를 내며 대들어라 그래야 아랍권이 성전에 나설게 아니냐』 『사우디 놈들아 후세인 아직 건재하다 「좀 두고 보자」』는 공포분위기 조성탄인 셈이다. 후세인은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죽지만 않고 버티면 이긴다는 계산인 반면 다국적군은 서둘러 결판을 내야 이긴다며 속전속결을 다짐하고 있다. ◆후세인은 20일 7명의 포로 조종사를 TV화면에 내놓고 전선아닌 미·영·불 등 후방의 반전무드에 기름을 부으면서 앞으로 사막전에서 보다 많은 피를 보임으로써 문명인들의 심약한 평화주의자의 궐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자기나라 백성 몇10만은 죽어도 자신만 살아 버티면 된다는 것이 후세인식 전쟁논리다.
  • 외언내언

    「바그다드의 도둑」이란 영화가 있었다. 바그다드의 왕에게 예쁜 공주가 있어서 페르시아·인도·몽고에서 왕자들이 욕심내어 몰려온다. 하지만 그때 왕궁에 침입한 도둑과 결혼하게 된다는 얘기. 도둑역이 쾌남배우 더글러스 페어뱅크스였다. ◆그 시대 배경은 우마이야조에 갈음한 압바스 왕조였던 것일까. 압바스 왕조의 전성기는 카리프=무크타티르시대(908∼932). 당시의 바그다드는 티그리스강을 끼고 동서 양쪽으로 각기 약 37㎢씩의 넓이였다. 인구는 약 1백50만. 궁전만도 23개로서 시장에는 세계 각국의 진품들이 즐비했다. 이 압바스 왕조는 13세기들어 몽고군에게 망하여 영화의 모습을 잃어간다. 앞서의 영화에서도 몽고의 왕자는 군대를 끌고 와서 공주를 뺏으려 하는 점이 그 역사를 생각케 한다. ◆지금의 이라크가 차지하고 있는 지역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꽃피웠던 곳.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끼고 수메르·앗시리아·바빌로니아 제국의 흥망성쇠가 점철된다. 수도 바그다드는 거듭된 전화로 유적이 많이 손실되었다. 그래도 성벽과모스크,궁전의 터,문 등이 옛날을 되새기게 하는 것. 바그다드에서 떨어져 있는 여기 저기에는 성서에 나오는 유적 등 인류의 문화재가 숱하게 깔려 있는 나라이다. ◆이라크는 바빌론의 유적을 복원하고 있다. 거기 수많은 벽돌이 쓰인다. 그 벽돌 하나 하나에는 『네부카드네자르가 건설한 바빌론을 이제 사담 후세인이 재건한다』는 글씨가 박혀 있다고 한다. 그렇게 「역사적 인물」로 되기를 바라는 후세인이 제 나라로 전쟁을 끌어들였다. 전쟁이란 무자비한 것. 포탄이 문화재를 피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 끝나 봐야 알겠지만 고대문명의 유적이 파괴되는 것은 인류 전체의 손실이라는데서 가슴 아파진다. ◆최근 그를 방문한 아랍제국 대표단에게 『전쟁이 나면 이긴다고 생각진 않는다』고 말했다는 후세인. 그랬건만 소영웅주의 망상으로 지구촌의 평화를 불태운다. 고대문명의 자죽을 파괴시킨다.
  • “중동전쟁 발발 유감/최 공보,유엔 결의 따른 응징 지지”

    정부대변인 최창윤 공보처장관은 17일 페르시아만 전쟁발발에 즈음한 성명을 발표,『페르시아만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유엔 안보리가 요구한 철군시한을 이라크가 끝내 거부함으로써 사태가 전쟁으로 발발하게 된 것을 개탄한다』고 말하고 『우리는 반문명적 침략행위를 유엔의 결의에 따라 응징하기 위해 나선 다국적군과 미국의 행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표한다』고 밝혔다.
  • 「환경보전 5년 종합계획」 추진의 배경

    ◎「산업화에 밀린 환경몸살」 치유 처방/하수처리율등 선진국 수준으로/정화목표 연도별 제시,정밀 관리 환경처가 올해부터 환경보전 5개년 종합계획을 추진키로 한것은 각종 오염에 시달리고 있는 환경을 되살려 경제발전 수준에 걸맞는 쾌적한 삶의 터전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의 환경은 경제발전 우선시책에 밀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악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세계환경기구 조사에 따르면 서울은 세계주요도시 가운데 3번째로 공기가 나쁜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예년 같으면 한달에 2∼3번 정도 있을까 말까하던 스모그현상이 이번 겨울들어서는 안개를 포함해 벌써 3주일 이상을 기록하고 있고,공기는 아황산가스와 먼지 등으로 혼탁해 마음놓고 숨을 쉴수도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수은·납·카드뮴 등 중금속이 대기속에 오염되어 있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와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서울의 아황산가스 오염은 지난 83년 0.051ppm으로 환경기준치인 0.05ppm을 넘어선지 오래이고 89년에는연중 87일이나 기준치(0.05ppm)를 넘어섰다. 특히 서울 문래동과 길음동 등은 1일 최고치가 0.36ppm까지 올라가 52년 런던 스모그 대참사 당시의 오염도(0.57ppm)에 접근하고 있다. 런던 스모그현상은 4천여명의 인명을 앗아간 인류의 대비극이었다. 당시 런던 하늘은 4개월동안 지척을 가릴수 없는 안개에 묻혀 해가 나타난 시간은 하루평균 70분 밖에 안됐다. 각 가정의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안개와 섞여 집안으로 스며들고 시계는 10m 이하로 막혀 대낮에도 등불을 켜고 교통정리를 할 정도였다. 실제로 올 겨울들어 계속된 스모그현상은 도가 지나쳐 우리에게도 「문명의 재앙」이 찾아들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오염이 심하기로는 수질도 예외가 아니다. 전국 상수원중 1급수가 단 1곳도 없다. 1급수로 지정된 팔당호의 오염도가 BOD(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 1.2ppm으로 이미 기준치(1ppm)를 넘었고 대청호역시 1.6ppm으로 오염이 심하며 안양천과 금호강·광주천 등은 농업 및 공업용수로도 사용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국민 1인당 하루 쓰레기발생량도 영국과 일본은 각각 0.9㎏·1㎏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2㎏으로 2배 이상이 많으면서도 대부분 비위생처리해 환경오염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환경여건은 소비활동은 말할것도 없고 생산단계에서부터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서울의 경우 전 가정의 78%가 아황산가스 오염의 주범인 연탄을 난방연료로 사용중이며 공장과 빌딩의 68%가 벙커C유를 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차량의 42%가 매연이 많은 경유를 사용하고 있어 대기오염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비해 미국은 96%,일본은 97%가 난방연료로 가스·전기 등 이른바 청정연료를 사용하고 있다. 또 생활하수는 매년 7%,산업폐수는 20%씩 증가하고 있으나 하수처리율은 89년말 현재 28%로 선진국(영국 97%·미국 72%) 수준에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합성세제의 사용량이 크게 늘어 수질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내 합성세제 사용량은 81년 국민 1인당 1.92㎏이던 것이 89년 4.19㎏으로 2.2배가 늘어났다.정부는 이처럼 위험수위에 육박하고 있는 환경오염을 위기상황으로 인식하고 이번 1차 5개년 중기 종합계획을 통해 우선 구조적인 모순을 하나씩 해소해 나갈 방침이다. 이와함께 연도별 환경개선 목표수치를 구체적으로 제시,이를 달성함으로써 우리의 환경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국민이 바라는 맑고 깨끗한 환경을 앞당겨 조성할 계획이다. 대상사업은 공공부문 사업뿐만 아니라 민간부문까지 포함되며 시책 및 투자사업과 중앙자치단체 사업으로 나뉘어 추진된다. 부족한 재원은 「오염유발자 부담제도」를 도입해 충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계획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앞으로 노출된 정부 부처간의 이견에 대한 강력한 조정역할이 필요하며 기업의 자발적 협조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전제 조건이다. 아울러 재원조달에 있어서도 각 부처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여 환경보전위원회의 활성화 등을 통해 개발과 보전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도 주요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 페레스트로이카의 과제/조지 캐넌 진단(해외논단)

    ◎“「오도된 평등주의」가 소개혁 막고 있다”/70년 독재로 자유경쟁원리 완전 망각/민족분규는 자율협조로 해결 바람직 소련은 지금 극도의 혼란에 빠져있다. 경제적 혼란도 문제지만 연방체제마저 와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47년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주창,세계적 명성을 얻었던 조지 캐넌교수는 이제 「슈퍼 스테이트」,소련의 붕괴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외교문제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91∼91년 겨울호에 실린 그의 논문을 요약,소개한다. 러시아는 과거 수세기동안 지리·정치적으로 서구문명과 단절돼 있었으며 그만큼 현대화 과정도 뒤졌다. 그러나 18∼19세기에 들어 러시아사회는 이러한 단절을 극복하고 현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의욕적인 교육개혁과 농업개혁이 추진됐고 사회전반에 의욕이 엿보였다. 물론 이를 가로막는 체제내 갈등과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절대왕정,의회제도의 부재,민족문제 등 고질적인 문제들이 이 현대화 작업의 장애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유혈혁명까지 필요하지는 않았다. 1917년 초에는 의회제도의 토대가 마련됐고 왕정폐지는 무혈로도 가능했다. 1917년 혁명은 이 평화적 변화가능성을 하루 아침에 뒤엎어 버렸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 러시아의 반체제 세력중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변화를 반대하는 급진 과격세력이 들어 있었다. 이들은 차르왕정과 러시아 사회를 완전히 파괴시키기를 원했다. 파괴 후의 계획은 극히 모호하고 유토피아적이었다. 이들은 러시아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함으로써 예상외의 호기를 얻었다. 1917년 여름 임시정부는 왕정이 붕괴된 어수선함 속에서 이 전쟁을 계속키로 결정,큰 실수를 저질렀다. 레닌파의 권력장악을 가능케한 것은 2년반에 걸친 전쟁과 1917년초 국내정치의 혼란이었다. 그러면 공산정권 수립이 러시아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레닌은 일차적으로 부르주아 인텔리층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후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 인텔리층까지 모조리 제거했다. 이 결과 러시아는 문화적으로 과거와 단절됐고 이 단절은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스탈린은 자신의 개인통치에 장애가 되는 지식층과 레닌의 잔재세력을 모두 몰아내기 위해 무자비한 숙청을 단행했다. 1937년과 38년에 이 숙청은 절정에 달했고 수백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사회전체가 히스테리 속으로 빠져들었다. 1940년대에 들어 러시아 국민들은 설상가상으로 숙청보다 더 무서운 2차 대전의 공포를 맞게 된다. 소련은 1941년 6월 정식으로 참전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소련국민들 사이에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원초적 민족주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스탈린은 자신을 이 감정과 교묘히 결합시켰다. 정부와 국민은 힘을 모아 나치에 저항했고 국민들은 정부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전쟁이 끝나면 정부의 통치방법에도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 변화를 단호히 거부하고 예전의 통치방식을 그대로 고수했다. 무서운 전쟁의 공포에서 살아남은 국민들의 간절한 희망을 스탈린은 철저히 무시했다. 국민들은 엄청난 좌절을 맛보았다. 1953년 스탈린의 사망으로 급격한 체제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배이념으로서스탈린주의에 대한 조직적인 대안도 반대도 러시아사회엔 존재하지 않았다.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잔재세력을 지도부에서 모두 몰아내는데 4년이 걸렸다. 그러나 흐루시초프 자신도 곧이어 밀려나고 말았다. 그후 80년대 중반까지 오면서 소련에는 계속해서 그렇고 그런 지도자들만 번갈아 등장했다. 물론 유리 안드로포프는 예외였다. 고르바초프가 시작한 체제변혁은 이들의 상상 범위를 넘는 것이었다. 전자통신 시대를 맞아 소련내 젊은 지식층들의 체제불만은 점점 더 높아져갔다. 여행과 표현의 자유는 제한돼 있고 경제기술 수준은 19세기 수준에 머물러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다. 레닌이 물려준 이데올로기로는 더이상 체제유지가 힘들게 됐다. 국민들 가슴속에선 이미 죽어 없어진 이데올로기에 소련 지도자들은 계속 매달려 있었다. 이 체제위기를 감지하고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이 고르바초프였다.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공산주의 이후 러시아의 앞날에는 힘든 3가지의 과제가 놓여있다. 첫째,공산당에 집중돼 있던 권력중심을 선거에의해 선출된 민주정부 체제로 이전하는 것. 둘째,중앙집중적인 경제체제를 자유기업 체제로 전환하는 것. 셋째,지난 3세기동안 지속돼온 다민족체제를 보다 자유로운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 이 3가지 변화들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러시아 국민들의 생활은 분명 크게 도약될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은 상상 밖으로 심각하다. 70여년의 공산독재로 러시아 국민들은 민주통치 원리에 대한 이해를 모두 잊어버렸다. 그 이해수준은 1910년대보다도 더 뒤떨어진다. 경제현실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창의적 영역이 철저히 억압당해왔기 때문에 국민들 스스로가 자신을 체제의 한 수동적인 일부분으로 간주한다. 과장된 평등주의가 만연돼 누구도 선두에 나서려 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생활수준을 남보다 앞세우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이러한 고질적인 병폐들로 인해 고르바초프가 추진하는 체제변화는 신속한 진전을 보이기가 상당히 어럽게 돼있다. 이런 태도들을 고치려면 오랫동안 꾸준한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이를 담당할 마땅한 교사들도 없다.한편 소련방을 구성하고 있는 제민족간 관계 재조정도 필수적이다. 현재 강력한 추세에 있는 민족주의로 인해 지난 세기의 다민족·다언어 제국 유지는 이제 용납이 안된다. 발트해 3국은 분명 독립할 자격이 있고 결국은 독립할 것이다. 그러나 공화국마다 차이가 있어 일괄적으로 단일모델이 제시되기는 힘들다. 현재 소련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러시아 공화국의 주권요구에도 상당한 근거가 있다. 러시아 민족은 전통적으로 여타 소수민족에 대한 배타적 감정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전통·문화·종교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정이 돼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 공화국까지 주권을 내세우면 소련방의 존재 이유가 의문시된다. 그리고 중앙정부와 연방공화국과의 관계도 깊은 역사적 뿌리가 있어 이것이 갑자기 끊어지면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하다. 경제적 혼란도 클 것이다. 보다 심각한 것은 연방공화국 몇몇은 서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공화국내에서 끔찍한 내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 연방 수중에 있는 핵무기에 대한 관리책임이 분담됨으로 인해 생겨날 문제도 끔찍하다. 여기에 덧붙여 세계무대에서 강대국으로 막대한 발언권을 행사하던 소련이라는 단일 국가가 갑자기 무대에서 사라진다는 것도 아무래도 불길하다. 현재 소련의 민족문제는 연방과 공화국 모두 양극단만 고집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래선 안된다. 타협이 마련돼야 하고 절제와 인내가 양쪽 모두에게 지켜져야 한다. 완전한 독립도 아니고 과거의 연방체제도 아닌 새로운 관계가 모색돼야 한다. 그것이 소련 자신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에도 유익하다.
  • 외언내언

    신문배달 자리 하나 얻어 하기가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오래 된 일도 아니다. 40대이상 이면 보고 겪었던 사실. 그렇게 고학으로 고등학교·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건만 지금은 신문사 지국을 맡아 하는 사람들이 애먹는 것중의 하나가 이 신문배달 구득난. 학생들은 거의 없어지고 부녀자들이 많이 갈음하고 있다. 그것 안해도 학교 다닐 수 있게 되었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겠으나 고되고 힘드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풍조도 가세한다. 하기야 태엽감아주는 것까지도 귀찮아 밥주는 시계가 스러진지 오래된 세상. 풍요화·문명화는 사람을 나태화하는 가. ◆각종 공사 현장에서는 잡역부가 모자란지 오래다. 농촌의 인구는 차츰 줄어든다. 이또한 고되고 궂은 일은 안한다는 시류때문. 수출공단 등 전국의 산업 현장에서도 생산직 근로자를 못구해 아우성이다. 엊그제 노동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3월말 현재 전국 사업장의 부족한 근로자 수가 16만5천여명으로 사상 최고에 이르렀을 정도로. 그런데도 화이트칼라 지향의 대학 졸업자는 또 취직을 못한 채 빌빌거린다. ◆노동은 신성하다느니,일하며 흘리는 땀은 진주라느니 하는 말이 설득력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런 말일수록 넥타이 맨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지만 산업현장의 인력난은 어떻게든 풀어내야 할 심각한 당면과제. 수출에 지장을 주는 등 우리 경제를 후퇴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사회같이 강제 노역으로 몰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여간 산업현장으로의 유인제공에 지혜를 모으는게 새해의 중요한 현안아닌가 한다. ◆쉽게 돈버는 사람을 볼때 착실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의 근로의욕은 꺾이는 법이다. 걱정되는 것은 고되고 힘든 일을 피하면서 쉽게 돈버는 쪽으로 머리를 쓰다가 자칫 악의 구렁으로 빠져드는 일. 너나없이 제 분수를 생각해야 할 때다.
  • 부시­고르비,“페만 협력” 재다짐/각국 정상의 신년 메시지

    ◎서방악마의 침략위협 강력 분쇄/후세인/중동사태 평화해결 간절히 기원/교황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91년 신년 메시지를 통해 냉전종식과 동구권 변혁,페르시아만 사태 등으로 점철되어온 지난 한해를 대격변의 해로 회고하고 올해는 평화롭고 밝은 한해가 되기를 기원했다. 부시 미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상대방 국민들에게 보내는 신년 축하방송에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각각 비난했다. 부시는 「야만적인 공격」이라고 평한 반면 고르바초프는 「평화적인 문명시대」로의 진전을 막는 위협이라고 이에 응했다. 고르바초프는 미국이 아직도 냉전시대의 잔재를 보인다고 일침을 가한 뒤 다음달 중순으로 예정된 모스크바 정상회담이 아직도 몇몇 「묵은 장벽」으로 방해받고 있는 소미관계에 「새로운 자극」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냉전은 끝났으며 이제 핵전쟁의 즉각적인 위협이 없어져 평화의 가능성이 증진됐다. 사람들과 국가들은 신천지를 향해 출발했다. 이 길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 길이 막 시작하는 지점에서 심각한 장애물에 봉착했다. 바로 페르시아만에서의 침략행위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소련 국민에 보내는 신년 메시지에서)=소련이 정치·경제적 개혁을 통해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위한 중요한 진전을 이룩한데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본인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야만적인 참략을 자행한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에 확고하게 반대한 소련의 단호한 조치에 갈채를 보낸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라크는 서방 세계의 악의 은신처에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침략위협에 처해있다. 평화와 안보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부인되고 있으며 그 최전선에 우리의 친척들과 팔레스타인의 아랍 형제들,레바논 국민들이 있다.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21세기가 가까이 온 지금 세계와 일본은 역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만일 이라크가 페르시아만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결정을 내린다면 일본은 이라크에 대한 경제협력을 확대할 것이다. ▲양상곤 중국국가주석=중국은 전세계에 대해 계속 문을열어둘 것이며 세계의 모든 친구들을 환영할 것이다. 중국은 90년대에 국민 총생산(GNP)을 2배로 늘릴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나는 이 목표가 달성되리라 확신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올해가 구원과 평화의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나는 슬픔을 갖고 중동문제를 기원한다. 91년이 모두에게 있어서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 외언내언

    지금까지의 우리 교통 사정을 속식의 과식과 음식문화 부재에 비유해 볼 수가 있다. 음식이란 천천히 잘 씹어서 적당히 먹어야 하는 것. 그러지 못하고 식욕만을 앞세울 때 탈이 나고 말 것은 자명해진다. ◆그렇건만 식탐하는 사람의 속식과도 같이 단시일 안에 쏟아져 나온 차. 1인당 도로 길이 1.3㎞로 미국의 20분의 1밖에 안되는 땅에 쏟아 놓은 그 차를 작은 위장이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10년 안팎을 두고 행해진 이 속식의 과식은 자동차 문화의 부재와 합세하여 마침내 전신장애로 이어졌던 것이 사실. 교통사고율 세계 제1위는 당연한 결과였다. ◆지난해부터 이에 대한 자기반성이 시작된다. 모든 도로에서의 안전띠 착용 의무화가 그 첫째. 이 조처 후에도 차량은 계속해서 늘어났지만 교통사고율은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집계된다. 이어서 음주운전과 주정차 위반에 대해서도 단속이 강화되었다. 그러자 대도시 간선도로의 주행시간이 빨라지기 까지. 지난 연말의 집계는 사상 처음으로 교통사고율이 전반적으로 줄어들었음을 알려준 바 있다. 자동차문화정착의 첫걸음마라고나 할까. ◆이와 맥을 함께 한다 싶은 것이 이번 연말 연시의 고속도로 사정. 1백% 원활한 소통이었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예상보다는 훨씬 좋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자가용 탄 귀향에는 과시심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옛얘기」. 그래저래 차끌고 가는 나들이가 줄어들면서 질서의식까지도 나아진 결과가 아닐는지. 어쨌든 「교통전쟁」 피하자는 심리가 일반화해 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듯. 물론 윤화도 작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 ◆속식의 과식이 주는 해악을 뼈저리게 경험한 우리들이다. 교통 소통이 원활해지고 사고율이 줄어든 것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자각ㆍ자제와 법규준수로써 이 흐름을 영속화해야 한다. 문명의 이기는 선용할 때 명실공히 이기가 되는 것임을 새삼 깨달으면서.
  • 중국/“개혁·개방 지속 추진” 채택

    ◎7중전회 폐막… 향후 10년 5대정책 결정/사회주의 고수·경제 자립 달성 【북경AFP로이터 연합 특약】 중국 공산당 제13기 7차 중앙위전체회의(7중전회)가 사회주의 노선 고수 등 향후 10년간에 걸쳐 시행될 5개항의 정책노선과 경제계획을 채택한 뒤 30일 폐막됐다고 중국관영신화통신이 보도했다. 7중전회는 6일간의 회의를 마치는 폐막성명을 통해 『급격히 변하고 있는 세계정세 속에서 내정문제를 잘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성명은 또 『국가의 안정을 꾀해야 한다』면서 『부르주아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투쟁을 계속할 것』을 주장했다. 신화통신은 7중전회가 향후 10년간 지속할 5대정책으로 ▲중국의 특성에 맞는 사회주의 건설 ▲개혁 개방정책 지속 ▲안정기조의 경제정책 ▲근면 절약을 통한 자립원리 추구 ▲사회주의문화·도덕 및 물질문명촉진 등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 “고르비는 「대처의 용단」 본받으라”/소 정치평론가,NYT에 기고

    ◎개혁 도입·독재청산 등 성공적 임무 수행/“위대한 배우는 자신의 은퇴시기 알아야” 소련 정부기관지인 이즈베스티야지의 정치평론가인 멜로 스튜루아는 19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도입하고 독재를 청산한 것으로 그의 역할을 마감하고 이제는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하버드대 존 F 케네디 정치학부 연구원이기도 한 멜로 스튜루아는 이날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고르바초프도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의 뒤를 따라 권좌에서 물러나는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멜로 스튜루아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그가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면서 고르바초프의 퇴진을 대처의 퇴진과 연결시켰다. 그는 『고르바초프의 등장을 예언한 대처와 고르바초프는 모든 점에서 의견을 달리했지만 서로의 입장이 비슷했기에 상대방에 동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처와 고르바초프는 집권당내의 내분,인플레이션,사회불안 등에서도 공통점이 있었지만 대처가 지난달 파리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정상회담을 마치고 곧 사임,두 사람의 행보는 큰 차이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스튜루아는 『레닌이 지구의 6분의 1을 문명세계로부터 격리시킨 반면 고르바초프는 이를 복원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고르바초프는 레닌보다 위대한 정치인』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에 필수적인 인물은 아니라면서 페레스트로이카의 생명력 및 밝은 미래는 창안자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위대한 배우는 자신의 은퇴시기를 잘 알고 있다』면서 『권력에 오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듯 권력에서 물러나는 데에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고르바초프의 용퇴를 촉구했다.
  • 한·소 정상회담을 보고(서울시평)

    ◎“제정러시아의 행보를 반추하라” 외교관계의 진행에 있어서 국민의 의식과 정부의 정책추진간에 시차가 생기는 일은 흔히 있다. 아예 국민의 의사를 무시할 수 있는 시대나 정치체제하에서는 그것이 별문제가 될 리가 없다. 그런데 소련은 지금 격심한 국내정치의 혁명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소련국민들의 시각에서는 한국과의 수교가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위시해서 소련정부가 하고 있는 일에 회의적인 희망을 갖고 있는 정도가 소련국민들의 일반적인 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러시아 앞세우려 노력 그리고 소련에서는 과거 70년간의 공산주의 역사를 깨끗이 버리기를 주저하는 자세가 없지 않다. 그러면서도 한편 그들은 「소련」을 뒤로 밀어 넣고 「러시아」를 앞세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소련으로서는 다만 군사대국을 이루었으나 다른 분야는 망치고 말았다. 이제 러시아를 부활시킴으로써 그들이 유럽문명의 일원이며 종교와 문화에 있어 위대한 독창적 전통을 갖고 있었다는것을 내세워 새로운 대국으로서의 자세를 세워 보려 하는 것 같이 보인다. 실패한 역사에 대한 인식과 새로운 위상설정에 대한 기대가 모두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것이 소련국민들의 의식상태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 수교하는 일에 대한 소련정부의 정책과 국민의 의식간에 괴리가 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국민들의 북한 김일성 체제에 대한 태도는 비판적인 단계를 넘어 혐오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 한국에 대한 태도는 어떠할까? 극히 일부의 지식인 그것도 고르바초프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김일성 정권이 우리를 비판하던 그 수사적 표현에 젖어있는 것이 지배적인 현상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후진국 중 경제발전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점에서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북의 변화 촉진에 기대 지난 6월초에 있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한소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가 마치 내키지 않는 일을 저지른 것 같은 표정이 있던 것에 비한다면이번 모스크바정상회담에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결심을 한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선입견인지 모르겠으나 고르바초프가 유럽의 정상들과 어울릴 때처럼 신나게 웃는 장면을 못 본 것 같다. 물론 국내문제가 어려워 크게 웃을 형편이 못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취재하던 어떤 TV의 기자는 붉은 크렘린궁성을 가리키며 우리나라 대통령이 별과 낫이 그려진 깃발이 나부끼는 저 높은 담 속에서 소련측 상대와 회담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러시아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소련과의 관계설정이 이렇게 급속히 진행되는 데 어리둥절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저 좋은 세상이 오려나보다 하는 기대를 갖고 있는 상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좋은 세상이란 어떠한 것일까? 우리가 소련과의 외교관계 설정에 거는 기대는 북한 김일성 정권의 개방과 변혁을 촉진시켜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나아가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고 남북한간에 평화통일이 이루어지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가장 합리적이고 또 당연한 것이다. 소련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고 또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은 크게 줄어들고 있다. 북한은 1989년 11월 현재 소련에 13억달러가 넘는 빚을 지고 있으며 1991년부터 경화로 소련의 석유를 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기왕에는 시장가의 반액으로 공급해왔는데 이 제도를 폐지하기 때문에 그만큼 소련의 영향력은 줄어든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모스크바선언에서 「남북한간에 정치적 군사적 대결의 종식」 운운하였으나 소련이 그 동안 표현해온 정책원칙을 천명한 데 지나지 않는다. 다만 소련이 그 동안 북한의 군사력을 부추기는 기본세력이었으나 이제는 그러한 정책을 재고하게 될 것이라는 데 기대를 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지역 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소련은 한반도 비핵화와 주한미군 철수라는 점에서 북한과 태도를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사실은 기존 한미우호와 안보협력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과는 최근 통상정책면에서 마찰을 빚어 전통적인 우방이라는 국민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 ○이젠 부산까지 영향력 이렇게 볼 때 한소 수교와 협력관계의 증진이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으면서 미국과의 관계냉각화로 이어질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사실을 중요시하여야 할 것이다. 국제관계란 묘한 것이어서 예기치 않은 오해를 가져올 수 있고 이것이 또 외교의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소련을 시장으로서의 가치보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중요시해왔다. 그러나 소련은 경제협력 못지않게 아시아지역으로의 전통적인 러시아적 세력확장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소련으로서는 북위 38도선이 종착역이었으나 러시아로서는 부산 또는 제주도가 종착역이었던 것이다. 외교에는 반드시 앞면과 뒷면이 있다. 우리의 한소 관계도 이같은 일반원칙의 거울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외언내언

    「위대한 문학과 음악,사상과 학문…/찬연한 문화를 창조한 힘과 높은 자질의 국민이 있습니다./뭉친 힘으로 숱한 외침을 막았고,1·2차대전에 나라와 세계문명을 지켰습니다. 여러분은 페레스트로이카를 승리로 이끌 모든 것을 갖고 있습니다.…」­3천여 명의 눈망울 맑은 젊은 대학생들이 대형 강당을 가득 메운 채 우리의 노 대통령의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대통령 자신의 말처럼 이런 일은 2·3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그러나 이날의 강연이 「좋았다」고 생각된 것은 그런 「감회」 때문만은 아니다. 연설의 내용이 매우 찰지고 순도가 높고 성실하게 마련된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껏 자료를 준비하여 솜씨있는 숙수가 알뜰하고 정성스럽게 장만한 음식상 같았다. 신선하고 영양이 균형잡히고 향기있는 맛을 지닌 식단의 상차림…. ◆특히 이 연설이 우리의 자존심을 만족시킨 것은 품위있게 상대방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우리의 소신을 피력한 점이다. 어쩌다 경제발전을 좀 이룩한 나라의 졸부같은 방자함도 없었고,적대관계로 반세기를 보낸 초강대국에 대한 주눅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불행했던 지난날에 대해 『잊고 있지는 않지만 원한을 품지는 않을』 태도도 분명히했다.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작가가 「현인」인 전통을 지닌 나라다. 러시아문학은 순결하다. 사색적이고 삶에 대한 근원을 천착하는 문학이다. 그러면서도 혹독한 추위와 정치적 고난과 싸우면서 형성된 구도자적 승리의 문학이다. 그 때문에도 문학의 영향력과 사회적 역할을 가벼이 볼 수가 없는 정치적 사회적 여건을 지니고 있다. 노 대통령의 모스크바대 연설문에 문학적 향취가 깃들인 것은 아마도 이런 러시아적 특성을 이해한 때문인 듯하다. ◆판에 박은 미사여구나 현학적 수사학으로 대강대강 넘기지 않고 이렇게 잘 장만한 상차림처럼 연설을 준비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모스크바대학생들은 8번이나 박수를 보냈고 마침내는 환호했다. 한소 교류가 노 대통령의 모스크바대학 연설 수준의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모스크바선언 전문

    ◎한·소 관계발전이 아태평화에 기여/선린·신뢰·협력정신으로 유대 강화 대한민국의 노태우 대통령과 소비예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1990년 12월14일 모스크바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의 현황과 전망,그리고 광범위한 국제문제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양국간 전반적인 협력의 발전에 대하여 공동관심을 표명하면서 한반도의 평화가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한반도의 통일이 한국민의 염원임을 확인하면서 최근 남북한간의 총리회담을 포함한 남북 접촉의 확대를 환영하고 보다 더 공정하고 인본적이며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새로운 국제질서의 수립을 굳게 다짐하면서 다음의 원칙을 양국 관계의 기조로 삼을 것임을 선언한다. ▲주권평등·영토보전·정치적 독립을 상호존중하고 양국의 국내문제에 상호간섭치 않으며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의 정치 및 사회·경제적 발전의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음을 인정한다. ▲국제법의 규범을 준수하고 유엔헌장의 제반목적과원칙을 존중한다. ▲무력에 의한 위협이나 무력의 사용,타국의 희생하에 자국의 안보확보 또는 모든 관계당사국간의 합리적 동의에 입각한 정치적 합의 이외의 방법에 의한 국제적·지역적 분쟁의 해결을 인정치 아니한다. ▲화해와 상호이해의 심화를 위하여 여러 국가와 국민들간의 폭넓고 호혜적인 협력을 발전시킨다. ▲핵 및 재래식 군비경쟁의 완화와 인류가 직면한 환경재난의 방지,빈곤·기아·문명의 극복,그리고 여러 국가와 국민들간의 현저한 개발격차의 해소 등과 같은 범세계적인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한다. ▲다가오는 2000년대에는 인류의 발전과 모든 국가,국민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안정되고 공평한 세계를 수립한다. 상기의 제 원칙에 입각하여 양국 관계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대한민국과 소비예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상호 이익을 위하여 선린·신뢰·협력의 정신으로 제반관계를 구축할 것을 다짐한다. 이러한 목적에서 양국은 정치·경제·통상·문화·과학의 인도적인 분야 및 여러 분야에서 유대와 접촉을 강화하기 위하여 관련협정의 체결을 추진한다. 대한민국과 소비예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자국의 국내외 정책에 있어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제규범의 우선권을 인정하고 조약의무를 성실히 이행한다. 양국 대통령은 경제·통상·산업·수송분야에서 효율적이고 호혜적인 협력을 심화시키고 선진 과학기술을 교환하며 합작기업과 새로운 형태의 협력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양국 기업인을 각기 지원하고 호혜적인 사업의 개발과 투자를 환영한다. 양국은 아이디어와 정보 및 정신적·문화적 가치를 교환하고 문화·예술·과학·교육·체육·언론·관광분야에서의 인적 교류를 확대하며 양국 국민의 상호 여행을 권장한다. 양국은 환경보호와 국제테러,조직범죄 및 불법 마약거래의 통제를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를 위하여 국제 및 지역기구에서 협력한다. 대한민국과 소비예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이익의 균형과 자결에 입각한 동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를 수립하고 양자 및 다자간 협의의 과정을 통해 아시아·태평양을 평화와 건설적인 협력의 지역으로 만들기 위하여 노력한다. 양국 대통령은 한소 관계의 발전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평화와 안보의 강화에 기여하고 이 지역에서 진행중인 변화에 부응하는 것이며 아시아에서 대결적 사고방식과 냉전의 종식을 가속화하고 지역협력에 기여하며 남북한의 통일을 위한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촉진시킬 것임을 확신한다. 소비예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남북한간에 정치적·군사적 대결의 종식과 전 한국민의 의사에 따라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한국문제의 공정하고 공평한 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남북대화의 지속을 지지한다. 대한민국은 전세계가 보편적인 가치·자유·민주·정의에 입각하여 대결의 시대에서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음을 환영하고 소련의 개혁정책의 성공이 금후의 국제관계와 동북아시아 정세발전 및 양국 관계의 증진에 중요한 요인임을 확신한다. 양국 대통령은 대한민국과 소비예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간의 교류와 접촉의 확대가 각자의 제3국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거나 각자의 다자또는 양자 조약이나 협정상의 의무수행에 장애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대한민국과 소비예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정상간의 정치적 대화를 추진하고 양국 관계심화와 관련있는 국제문제에 대한 협의를 위하여 여타 수준에서도 정기적으로 협의를 갖기로 합의하였다. 1990년 12월14일 노태우·미하일 고르바초프
  • 공인엑스포의 국민적 이해(사설)

    「대전엑스포 93」의 공식 승인절차가 12일 파리에서 열린 국제무역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완결되었다. 지난 6월 총회에서 결정했던 것은 개최지와 개최일에 관한 것이었고 제 일반규정의 확정을 포함하여 공인등록을 하고 BIE기까지 수령하는 절차가 이번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로써 대전엑스포는 92년 세비야,95년 빈,2000년 하노버엑스포와 함께 20세기 마지막 10년 동안에 열리는 세계 4대 박람회가 되었다. 우리는 이를 좀더 중시할 필요가 있다. 엑스포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아직도 우리에게서 그 동안 좀 해왔던 무역전시회쯤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단기간내 상거래를 촉진하는 형식의 무역전시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공인엑스포이다. 우선 개최목적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이고 전시내용도 BIE의 면밀한 검토와 승인에 따른 세계와 인류의 업적과 미래상을 주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관으로서의 주제관이 중심을 이루고 여기에 국가의 명예를 걸게 되는 것이 그간 엑스포의 역사였었다. 그러므로 대단히 까다로운 BIE의 주제검토를거쳐 승인받은 우리의 주제 「새로운 도약의 길」만 해도 우리끼리 대전에 모여 생각해보는 주제가 아니라 전세계가 대전엑스포를 기점으로 함께 숙고하게 되는 주제이다. 이런 이유로 공인엑스포란 경제와 과학 및 문명적 사고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것이다. 서울올림픽을 하면서 우리는 선진국으로의 발돋움 계기라는 표현을 썼었다. 이 표현은 기실 과장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올림픽을 통해서 우리는 세계의 데뷔탕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같은 표현 속에서 대전엑스포는 선진국과 같은 대열에 서서 세계 및 인류의 발전과 그 방향을 같이 생각하고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올림픽 수준을 뛰어 넘는 임무이고 때문에 좀더 진지한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 동안 엑스포는 선진국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부의 전시와 국력의 과시로 흘렀다는 지적도 받아 왔다. 그러나 사실상 6개월까지도 하게 되는 장기 전시기간과 그 규모로 보자면 어느 나라든 할 수 있는 행사는 아니다. 우리만 해도 올림픽 수행능력이라는 실증이 있어 공인을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이 공인에 의해 우리는 또 다른 과제를 갖게 된다. 이제 선진국이 되려는 나라로서 우리의 무게와 세련성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개도국의 선도역으로서 어떤 모범과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느냐라는 힘든 부담을 갖고 있다. 이 관점에서 우리는 우리 발전의 보다 내면적인 반성과 질적 정리를 해보는 계기로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상당한 시설투자와 운영경비들에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시적 투자가 아니라 어차피 해야 할 투자들과 긴밀히 연계하여 효율을 살린다면 이점 또한 새로운 이익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선진국으로 가는 모든 국민들의 창조적 감수성을 이 엑스포 행사과정을 통해 세계차원으로 이끌어 올릴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조직되어야 할 것이란 점이다. 그 첫 단계로 필요한 것은 공인엑스포가 무엇이냐에 대한 모든 국민의 보편적 이해이다.
  • 페만사태,전기를 맞는가(사설)

    문명이 가장 발달됐다고 하는 인류사회의 오늘에도 세계 도처에서 각종 분쟁은 끊임이 없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분쟁의 역사 그 자체이다. 오늘날 페르시아만사태가 그것이다. 전쟁의 그림자와 평화의 비둘기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유엔 안보리가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 결의안을 통과시킨 이후 페르시아만사태는 확실히 뭔가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여기에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6일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억류된 모든 외국 인질들을 석방하겠다고 했다. 물론 전쟁을 일으켜서 한 나라를 병탄했고 수많은 외국 인질들을 가두면서 전세계의 평화적 해결요구를 외면하고 있는 장본인의 발표이니 그 신빙성 여부에 앞서 귀추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후세인이 의도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로서는 그 동안 비축해온 카드로서 미국과 유엔이 주장해온 페르시아만사태 선결요건의 하나를 제거하는 효과를 거두는 외에 미국과 대좌를 앞둔 시점에서 이같은 평화제스처가 어떤 반향을 일으킬 것인가를 살피겠다는 뜻이다. 그 후에 다음 행동을 하겠다는 속셈이다. 이라크측은 유엔 안보리의 무력사용 결의안을 포함해서 모두 11차례의 결의를 거부하면서도 협상을 통해 전쟁위기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라크가 제안한 협상안은 쿠웨이트 무력합병의 발단으로 삼은 국경문제에서 서방측이 양보하면 쿠웨이트로부터의 전면철군은 물론 전복·축출된 왕가의 복귀도 허용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 초기에 보였던 배짱과 주장에 비추어보면 어느 정도 「협상의지」가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역시 유엔 안보리 결의로 무력대응에 관한 공인을 얻은 직후 이라크에 평화협상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의 무조건 철군이라는 요구조건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후세인이 협상의지를 보이며 인질석방을 단행하겠다는 시점에서 미국이 계속 이라크의 무조건 철군을 밀고 나갈지 또는 그의 협상조건을 수락할지는 의문이다. 한편 서방관련국들은 이라크에 약간의 양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협상에 의한 평화회복을 원하는 것 같다. 인류역사의 주류를 이룬 전쟁에 대한 혐오와 평화공존의 의지라 할 것이다. 페르시아만사태에 관한 한 아직도 전쟁불가피론자들은 있다. 국가간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월등한 무력으로 상대를 합병했고 유엔의 결의까지 무시하는 후세인을 상대로 협상할 때는 지났다는 주장이다. 미국내에서도 친이스라엘계의 「강경응징」 압력과 평화적 해결 요구가 교차하고 있다. 일부 여론은 조건부 협상을 수락할 바에는 왜 그 많은 군대를 보냈느냐는 반문도 제기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의 새 군축질서를 맞고 있다. 그같은 시대적 추세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인류보편의 평화의지에 입각한다면 페르시아만사태는 역시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세계의 유전지대가 전쟁으로 황폐화되기보다는 안정과 번영을 찾아 인류와 세계경제에 기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세계는 전쟁이 없는 상태에서 더 나아가 국제적 조화와 통합상태의 「적극적 평화」에로 나가야 할 것이다.
  • 「범죄와의 전쟁」 이기는 길을 찾는다(질서있는 사회로:16)

    ◎잦은 송년모임… 다시 고개든 음주운전/올들어 5만명 적발… 빙산의 일각/「간접 살인」·「범죄의식」 공감대 절실/외국선 술권한 사람도 벌금형… 강력단속/사회봉사·재교육 통해 처벌효과 높여야 「범죄 및 무질서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후 검찰과 경찰의 강력한 단속으로 한때 주춤하던 음주운전이 연말을 앞두고 송년회 등 각종 모임이 잦아지면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음주운전은 특히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를 「살인흉기」로 돌변시킨다는데 문제가 있다. 지난달 30일 새벽 경기도 화성군 동탄면 영천리 경부고속도로에서 4명의 목숨을 잃게한 교통사고도 20대 트럭운전사가 혈중알코올 농도 0.35의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일어난 것이었다. 치안본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한햇동안 전국적으로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4백60명이 숨지고 1만9백69명이 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과 경찰은 올들어 지난 10월말까지 ▲단순 음주운전 3만4천4백8명 ▲음주측정 거부 8백54명 ▲음주운전 관련 교통사고 1만5천7백78명 ▲기타 59명 등 모두 5만1천99명을 적발했다. 이는 지난 한햇동안 적발된 2만6천2백25명의 갑절에 가까운 것이다. 또 이 가운데 구속된 운전자는 모두 5천61명으로 지난해 1천2백35명의 4배에 이르러 지속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적발된 운전자의 몇십배에 이르는 운전자들이 음주운전을 계속하고 있으며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고 어떻게든 단속만 피하려는 데 있다. 단속만을 피하려는 가장 흔한 경우가 이곳 저곳 수소문해 경찰의 단속길목을 미리 알아내고는 단속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길로 돌아다니는 음주운전자들이다. 도심에서는 그래도 이목이 있는지 최근들어 경찰의 자세가 상당히 엄격해졌지만 으슥한 변두리에서는 아직도 단속에 걸리더라도 「말이 통한다」는게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 『마음씨 좋은 단속경찰에게는 사정을 하면 통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돈이면 된다』는게 이들의 얘기다. 이들보다 한수 더 뜨는 경우는 멀찌감치 단속하는 경찰이 보이면 아무데서나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그대로 몸만 빠져나와 달아나는 이른바 「도주형」 음주운전자들이다. 걸리면 범칙금은 물론,면허정지에 잘못하다가는 구속까지 될판이니 어떻게든 현장을 피하고 보자는 것이다. 주·정차위반으로 끌려간다 하더라도 이튿날 술이 깬 뒤 견인료만 내고 되찾아오면 되니 경제적으로도 오히려 이익이라는게 이들의 계산이다. 이처럼 음주운전이 판을 치는 것은 우리나라의 특이한 음주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자랑하는 사회분위기,억지로 술을 권하는 관습,취중에 저지른 실수는 눈감아 주는 풍속 등이 음주운전을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원 이모씨(29·회사원·영등포구 문래동)는 『소주 한두잔만 마셔도 금세 취해버리지만 술자리에서 직장동료·상사들의 권유에 못이겨 늘 주량을 넘어서게 된다』면서 『지금까지 운이 좋아서인지 사고를 내거나 단속에 걸린적이 없어 음주운전이 거의 습관화돼 있다』고 말했다. 음주운전은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해치는데도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이 운전자들에게널리 퍼져있는 것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음주운전이 늘어나는 추세에 따라 정부는 도로교통법을 크게 고쳐 음주운전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이미 시행에 들어간 개정교통법에 따르면 단순 음주운전이라도 혈중알콜 농도가 0.36% 이상이면 구속수사하고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에 그쳤던 형량과 벌금액을 크게 높여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다. 구속사안이 아닌 혈중알코올 농도에 따른 벌금부과 기준도 ▲0.26∼0.35% 2백만∼3백만원 ▲0.16∼0.25% 1백만∼2백만원 ▲0.05∼0.15% 50만∼1백만원으로 크게 올렸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단속 및 처벌기준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대체로 우리나라보다 더 강력한 방법으로 음주운전을 다스리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으나 처벌이 가장 무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적발될 경우 6∼12개월 면허정지와 2백50(약 18만원)∼4백달러(약 29만원)의 벌금이나 구류 30일에 1∼2일간의 순화교육을 받아야 하며 3년동안 해마다 1천달러의 보험금을추가로 내야한다. 두번째 걸리면 면허정지 2년,5백∼1천달러 벌금,구류 90일 등으로 처벌이 가중된다. 일본에서는 음주운전을 과속,무면허운전과 함께 교통의 3악으로 규정,운전자에게 술을 제공하거나 권한 사람까지 벌금형에 처한다. 서독에서는 맥주 2잔 정도를 마셨을 때 농도가 0.03% 이상이면 3년동안 면허정지를 받고 사고를 내면 체형을 받는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음주운전자가 기혼일 경우 부인과 함께 구류시켜 다음날 술이 깬뒤 함께 훈방한다. 터키는 음주운전자를 시외곽 경계선으로부터 30㎞ 밖으로 데리고 가 경찰 감시아래 집까지 걷게 한다. 불가리아와 엘살바도르는 한때 음주운전자를 교수형이나 총살형에 처할만큼 가혹했던 적도 있었다. 서울지검 강지원검사는 『구금 등의 처벌은 생업에 지장을 줄뿐 아니라 막대한 인력손실을 가져오는 측면이 있다』면서 『면허정지·취소의 기준을 높이고 일정기간 운전 재교육을 받도록 하는 수강명령이나 음주운전예방 캠페인을 벌이도록 하는 사회봉사명령 등을 통해 처벌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음주운전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잘못된 음주문화를 바로잡고 음주운전 또한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잡도록 하는 범국민적 공감대와 실천의지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국익 위하는 정론의 길/창간 45주년에 다시 다짐한다(사설)

    서울신문은 오늘 창간 45주년을 맞는다. 조국광복의 환희와 그 소용돌이 속에서 고고의 소리를 울린 서울신문은 광복 후 조국의 운명을 그대로 짊어진 채 45개 성상을 겪어 내려오고 있다. 그런 만큼 영욕의 교차가 무상한 궤적이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국익과 공익을 위한 정론의 길을 걸어 오늘의 성장에 이르렀음을 자부한다. 또 오늘을 맞는 우리는 앞으로도 그 길을 위해 매진해 나갈 것을 한번 더 다짐한다. ○어려운 시대상황의 극복 오늘의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국면을 살고 있다. 맨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발전된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갖가지 진통의 분출이다. 그것은 오늘의 문제이면서 40여 년을 두고 억눌려 쌓인 불만과 울분의 반작용이기도 하다. 그것이 분별력을 잃고 때로눈 초법적인 형태로 폭발되면서 우리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협하기도 한다. 행정이 강력한 제어력을 잃고 자제·자중을 잃은 각종 욕구만이 분출되고 있는 사이 독버섯처럼 사회 각계에 번져난 것이 반사회·반가치 행위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것은 잔인해지고 흉포해진 범죄의 확산현상이다. 그렇건만 정치는 오히려 국민이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넌더리나는 전철을 거듭해 온다. 이 체제의 유지 발전에 앞장서야 할 가진 자들은 더욱 몰염치해 가고 지도층은 양식을 잃어간다. 무역수지는 악화하고 있는데도 통상압력은 갈수록 거세어져만 간다. 동유럽 쪽의 변화와 동서독일의 통일을 보면서는 성급한 혹은 감상주의에 치우친 통일론이 대두되고 일부의 과격한 언행은 그 길을 가로막는 요소로 되기도 한다. 그 사이 일각에서는 복고풍을 일으켜 시대의 진운에 역행하는 움직임도 보인다. 이 모두가 오늘의 어려운 상황을 말해 주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양적 팽창과 신문의 사명 겪어야 할 진통은 겪어야 한다. 또 그것은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때 내일에의 밑거름이 되어 우리 사회를 더욱더 다양하고 풍요로운 것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또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하여 지혜를 모아 나가는 자세가 소망스럽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언론의 힘이 크고 서울신문또한 그 반열에 있음을 생각하면서 지워진 책임의 막중함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 신문은 양적인 면에서 엄청난 신장세를 보여 준다. 민주화 바람을 불러 일으킨 6·29선언 전후의 숫자를 들여다 보면 이 양적인 팽창 또한 그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지난 3월15일 현재 전국 일간신문 수는 60개인데 88년 이후 새로 발간된 것이 그 중 28개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 신문들이 발행하는 면수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87년까지는 한결같이 72면이던 것이 88년 후 늘어나기 시작하여 지난 8월 현재 평균 1백46면으로 되고 있다. 배증한 셈이다. 더구나 증면 경쟁은 끝났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자성해 보고자 하는 것은 이와 같은 양적인 팽창에 비해 과연 질적인 향상이 그를 따르고 있는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동안 지면의 부족을 느껴온 것이 사실이었다고 하더라도 증면함에 따라 충실화·심층화를 기함에 있어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였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점을 남긴다는 것이 사실 아닌가 한다. 그런 가운데도 크게 성찰해야 할 대목은 상업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공기임을 잊고 빠져든 선정주의라고 할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자유주의국가에서 펴내는 신문은 상품이다. 그래서 고객의 선호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 선호하는 바의 건전성에 유념해야 하는 것이 신문이 지녀야 하는 양식이다. 오늘의 어려운 상황을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면서 밝은 우리의 내일을 위한 지표를 비추는 자세가 저급한 영합보다는 소중한 사명으로 되는 것이다. ○정신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서울신문은 이를 성찰하는 가운데 앞으로도 국익과 공익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제작 지표로 삼아 나가고자 한다. 국익과 공익은 정권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우리나라와 겨레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뜻함이다. 그 관점에서 출발하는 시시비비는 언제 어느 경우에 있어서고 떳떳할 수 잇다. 증면한 구석구석이 하나같이 소중한 지면으로 되게 하기 위하여 널리 알리고 깊이 파헤치기에 배전의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다. 서울신문이 지향하는 우리 사회는 경제적으로 풍요롭되 정신이 또한 건강한 삶의 모습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 밝은 삶이다. 이기의 패각에서 벗어나 이타하며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사람다운 삶의 모습이다. 서울신문이 그동안 우리 사회의 밝은 면을 더 많이 조명하여 온 것은 그같은 삶을 귀감삼아 나가자는 뜻을 담고 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보도 자세는 더욱 확대 심화시켜 나갈 것이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인 여러 형태의 범죄를 본원적으로 다스리는 길이 정신건강의 회복에 있다 함은 누누이 지적해온 터이다. 그것은 도덕성 회복이며 인간성 회복이다. 사실,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하여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고 몰염치해지며 양식이 마비된다면 경제의 풍요나 문명화의 혜택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간 45주년을 맞은 서울신문은 사람이 사는 사람다운 삶을 위하여 그같은 건강한 사회로의 가치관 정립에 앞장서 나갈 것을 거듭 다짐한다.
  • 시라크 파리시장 특별강연

    ◎“한국은 불의 훌륭한 경협파트너”/과학ㆍ기술 등 상호교류 확대 강력히 희망/대소 관계개선은 한국의 경제력이 바탕 지난 86년 프랑스 총리에 취임,사회당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이른바 「좌우동거정부」를 구성한바 있는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 겸 공화국 연합당 총재가 시사저널 초청으로 내한,19일 하오 신라호텔에서 「유럽과 아시아」란 제하의 특별강연을 했다. 다음은 시라크의 강연요지다. 본인은 여러분이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 펼치는 노력을 항상 주의깊게 지켜보아 왔습니다. 본인은 다른 기회에 강조했던 것처럼 베를린장벽과 마찬가지로 판문점도 역사의 운명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지난 30여년동안 지극히 혐오스러운 북한의 동향에 엄숙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1988년 가장 세계적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여러 사회주의국가가 그 후 한국과 외교관계를 갖게 됐으며 소련조차 얼마전에 한국을 승인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현 한국의 위치를 증명해 주는 성공사례들입니다. 동시에 한국은 가장 최근의 커먼 웰스를 비롯한 여러가지 평화적 통일안을 제안했습니다. 드디어 북한의 총리가 지난 9월에 이곳 방문을 수락함으로써 사실상 한국을 승인했습니다. 그후 총리들의 만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성공은 프랑스 기업체들에 생산성과 상업적 박력을 강화시켜주는 촉진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균형을 찾고 도전을 해야 합니다. 상업적 경쟁이 아무리 치열하다 하더라도 신의만 있다면 정치적 적대감으로 악화될 수 없습니다. 양측에서 게임의 룰은 존중돼야 하며 몇가지 오해를 없애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봅니다. 유럽공동체(EC)는 「요새」가 아니며 그렇게 될 의사도 없습니다. 반대로 유럽공동체의 소명은 늘 더 개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규모 단일시장의 논리를 갖기 때문입니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에 등을 돌린다는 것은 프랑스에도 한국에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동맹관계는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한국의 안보를 강화시켜주는 전략적 관계를 맺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점에서 한국과 프랑스는 지난 7월에 군사협력협정을 체결했는데 본인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원한다면 프랑스와 유럽의 극동지역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본인이 보기에 한국은 신생산업국 가운데 맨앞에 서서 아시아의 축 속에서 균형요소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기술을 이전하고 제3국들과의 공동행동에 의거하여 신뢰의 파트너 관계를 구축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본인은 오늘날 프랑스 기업인들이 한국의 두가지 계획에 제출한 내용의 질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프랑스,더 넓게는 유럽과 아시아는 인류에 많은 기여를 한 오래된 문명지역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알지 못하면 어떤일도 지속적으로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본인은 한국에서 프랑스문화와 과학에 대한 관심이 어떤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좀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프랑스에서 우리들은 극동의 문화를,특히 한국의 문화를 더 잘 소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외언내언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좋은 점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악마의 발명품』. 앰브로스 비어스는 「악마의 사전」에서 「전화」를 이렇게 풀이해 놓는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점」이란 정겹게 쓰는 편지라도 뜻함이었을까. ◆그 전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해는 1882년. 1876년 벨이 발명한 지 6년 후가 된다. 그 당시 쓰였던 다리풍ㆍ덕률풍은 텔레폰을 음사한 이름이고 어화통ㆍ전어통은 그 구실을 생각하는 뜻으로서의 이름. 1902년에는 한성(서울)∼인천 사이에도 가설된다. 하지만 해방되던 해까지 서울의 전화 대수는 1만5천6백56대. 전국을 친다 해도 3만대 안팎이었다. ◆그러니 전화를 가진 집이라 하면 대단할밖에 없다. 그것은 1공화국ㆍ2∼3공화국시대도 마찬가지. 80년을 전후할 무렵까지도 전화는 「재산」 속에 들었다. 80년대 들면 3백만 회선을 육박하지만 그래도 신청을 해놓고 좋이 한두해는 기다려야 했던 전화사정. 그것이 지금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신청 즉시 가설될 정도가 되었다. 외국에서 걸어도 이웃집에서 건듯이 감도까지 좋아진 전화. 그 전화가 1천5백만 회선을 돌파하고 있다. ◆그렇게 필수품화해 있는 문명의 이기를 일상생활화할 수 있을 만큼 전화문명을 정립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우리 의식구조. 우선 전화를 걸고 받는 예절부터 많이 잘못되었음은 누구나 느끼는 일이다. 전화통을 잡았다 하면 여고시절 얘기까지 늘어놓는 장광설. 음담패설을 지껄여대는 장난질 전화. 몸살을 앓는 공중전화시설. 114에 폭주하는 하루 3백12만건의 문의전화. 이 모두가 「1천5백만 회선에 부끄러운 작태들이다. △물론 「악마의 발명품」 아닌 「천사의 발명품」. 하지만 문명의 이기란 그것을 선용할 때 더욱 빛나고 값지게 되는 법이다. 이용자들의 높은 공중도덕심 확립이 회선의 증가 자랑보다 앞서는 일 아닐까 한다.
  • 노벨문학상 옥타비오 파스의 생애와 작품세계

    시각적 언어로 폭넓은 세계관 표현/20여년 외교관생활… 동양문학서 영향받아/“인간의 실존』에 관심,초현실주의 수법 구사 금세기 중남미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중의 한사람인 옥타비오 파스는 스웨던 한림원이 그의 노벨상 수상결정과 함께 밝혔듯이 넓은 세계적인 전망을 지닌 지성적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멕시코 태생으로 스페인 내란때 직접 전쟁에 참여하기도 한 그는 20여년에 걸친 외교관 생활에서 프랑스 미국 영국 인도 일본 등 세계각지의 영사 및 대사로 근무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폭넓은 시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동양문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남미작가로 중국시나 일본시의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하기도 했고 공간시ㆍ실험시로 불리는 시각적 이미지의 난해한 시를 쓰기도 했다. 멕시코 국립대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1931년 바란달(Barandal)이라는 잡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여 시그룹 타예르(Tallero)를 주도하기도 했다. 1937∼1938년에는 스페인에 거주하면서 라파엘 알베르티,루이스 세르누다,기옌 데 카스트로,파블로 네루다,세사르 바예호 등 당시의 유명시인들과 교분을 맺었다. 그후 1943년에 구겐하임(Guggenheim) 장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공부한 파스는 파리 주재 외교관으로 임명되어 초현실주의자 및 실존주의자들과 접촉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멕시코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정부의 유혈진압에 항의하여 외교관직을 사임한 후 귀국하여 오로지 시작에만 전념하였다. 제네바 주재 유엔대표 시절에 국제시상을 수상하였던 파스는 1985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옥타비오 파스는 외교관으로서의 공직생활과 시인으로서의 예술가생활을 조화있게 영위하였다. 그는 인도와 파리 등지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으며 특히 인도에서의 장기간에 걸친 대사생활을 통해 결정적으로 동양적인 시세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시는 모든 인간의 행위와 예술을 주재하는 것이며 시의 목적은 언어와 사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해방시켜 원초적인 상태로 되돌려보내는 것이다. 그가 시의 사회적ㆍ역사적 관점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초현실주의를 포함한 현대의 시경향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초기작품 「언어밑에서의 자유」는 인간의 실존과 시간의 문제에 눈을 돌린 형이상학적인 시세계를 보여주며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시 「태양의 돌」이나 「독수리 혹은 태양」은 남미의 아즈텍 문명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진정한 초현실주의 수법을 드러낸다. 우리가 죽은 후의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아있는 지금의 눈으로 관찰하면서 인간실존의 절박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시집 「불도마뱀」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꿈과 비논리의 세계를 들어가는데 언어사용의 새로운 국면을 시도한 이 작품집은 파스의 가장 난해한 시가 실린 책으로 꼽힌다. 이 시인의 시어탐구는 「동쪽기슭」에서 절정에 이르며 구조주의 언어학 연구에 영향을 받아 글자배치 및 시의 공간적인 표현방식까지 보인다. 파스의 가장 큰 관심은 시간으로 그의 모든 작품에서 시간에 대한 그의 성찰을 읽을 수 있다. 시간적 이미지를 배치한 「토포에마스와 시간적인 음반」을 냈을 정도다. 이 시각시는 여러가지형태의 판독을 가능하게 할 뿐더러 독자가 직접 작품구성이나 창작에 참여하게 한다. 최근 그의 시는 회화적이고 음악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시의 본질은 잔치의 본질과 비슷한 것으로서 달력속에 들어있는 날짜와 달리 그것은 시간의 단계적인 진행을 깨뜨리는 한 파열이며 어제나 내일없이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한 현재의 돌입이다. 모든 시는 잔치이며 순수한 시간의 응결이다』 옥타비오 파스의 시론이다. 그는 또 『역사 없이는 시가 있을 수 없으며 역사를 변화시키는 것 이외의 시의 다른 사명은 없다』고 믿고 있다. 지난 85년부터 노벨문학상 후보로 그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국내에서도 그의 시선집 「태양의 돌」(민용태 옮김)이 발간됐으며 「문학사상」 「외국문학」 「작가세계」 등 문예지에 그의 시론 및 작품세계 등이 소개된 바 있다. □옥타비오 파스연보 ▲1914년 3월31일=멕시코 멕시코시 교외에서 출생. ▲1931년=아방가르드잡지 「바란달」을 창간,자작시를 발표하여 작품활동 시작. ▲1933년=첫 시집 「안개속의 달」 출판. ▲1937년=멕시코대에서 문학을 전공했으나 학위수여 거부. 스페인 내란당시 공화파 적극 지지. 초현실주의 입각한 제2시집 「인간의 기원」 출판. ▲1938년=문예지 「타예르」 창간. ▲1944년=미국 구겐하임 문학상 수상. ▲1946년=외교관 입문,파리에 첫 부임. 카뮈,사르트르,브레튼 등 실존주의 작가들과 교우. ▲1962∼68년=일본 등을 거쳐 인도대사 역임. ▲1971년 이후=미 텍사스대 하버드대 영 케임브리지대 등 객원교수 역임. ▲1981년=스페인어권의 최고권위 문학상인 세르반테스상 수상. ▲1982년=미 노이스타트상 수상. ▲1985년=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름. ▲주요작품=「야생의 달」(1933) 「돌과 꽃 사이로」(1941) 「세계의 기슭에서」(1942) 「말 아래서의 자유」(1949) 「태양의 돌」 「격렬한 계절」(1958) 「불도마뱀」(1962) 「완전한 바람」(1965) 「공백」(1967) 「동쪽 산기슭」(1969) 「선회」(1976) 등 다수. ○독백 허무와 꿈 사이, 부서진 기둥들의 밑에서, 나의 불면의 시간을 가로질러 가는 너의 이름의 음절들 붉으레한 너의 긴 머리칼, 한여름의 번갯불이 밤의 등 뒤에서 달콤한 횡포의 불빛으로 떨리고 있다. 폐허에서 솟아나는 꿈의 어두운 물살, 허무로부터 너를 벼루어내는 물에 젖은 밤의 해변이여 거기 눈 먼 바다가 밀려와 미친 듯 후려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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