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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란쳇 주연영화 2편 개봉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족을 이끄는 여인을 맡아 신비한 이미지로 각인된 호주 출신의 할리우드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35).27일 그녀가 주연한 영화 2편이 나란히 개봉된다. ●베로니카 게린(Veronica Guerin) 27일 개봉하는 ‘베로니카 게린(사진 왼쪽·Veronica Guerin)’은 실화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9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발생한 여기자 베로니카 게린의 피살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녀의 삶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절을 집중조명하면서 기자의 소명의식·인간의 길 등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는 베로니카(케이트 블란쳇)의 살해 장면으로 열리고 닫힌다.신호 대기중인 그녀 차에 다가온 괴한들이 쏜 여섯발의 총성.‘폰 부스’‘타임 투 킬’ 등으로 낯이 익은 조엘 슈마허 감독은 그 사연을 밝히려 2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약밀매가 기승을 부릴 때 관련 기사를 심층취재하게 된 베로니카는 마약을 주입한 빈 주사기가 거리를 메우고 눈자위가 퀭한 청소년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광경에 분노한다.자기 정보원을 이용해 밀매조직의 보스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하자 위험을 느낀 보스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복에 나선다. 집에 날아든 총탄이나 허벅지를 관통한 청부업자의 습격도 진실을 향한 베로니카의 집념을 꺾지 못한다. 영화 곳곳에 감독은 베로니카가 기자 이전에 주부·엄마·딸로서 고심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담아 영화의 진정성이 더 살갑게 다가온다. 명랑하고 발랄함,대담하고 용기있는 모습,위협에 시달리는 표정 등 케이트 블란쳇의 폭넓은 연기는 영화 비중만큼이나 안정감 있게 펼쳐진다.‘캐리비안의 해적’‘나쁜 녀석들2’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유명한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 ●실종(The Missing) 케이트 블란쳇의 잡초처럼 강인한 캐릭터가 돋보이는 스릴러. 그녀의 역할은 미국 뉴멕시코의 시골마을에 두 딸을 데리고 혼자 사는 의사 매기.백인임에도 20년전 가족을 버리고 인디언의 삶을 택한 아버지 사무엘(토미 리 존스)이 갑자기 나타나자 분노하지만,곧 큰딸이 실종되면서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살인마 인디언에게 납치된 딸이자 손녀를 찾느라 목숨을 건 부녀(父女)의 이야기로 영화는 초점을 모은다. 대평원을 배경으로 한 로드무비 형식으로 선악의 캐릭터들을 뚜렷이 갈라놓은 뒤 그 사이사이에 부녀의 근원적인 사랑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목숨을 내걸고 손녀를 구하려는 아버지의 참사랑을 느끼며 매기는 조금씩 마음을 연다. 백인과 인디언들의 뿌리깊은 문화적 갈등과 반목을 요소요소에 반전소재로 집어넣어 쫓고 쫓기는 스릴러물의 단조로움을 피했다.주술이 지배하는 인디언 문화와 과학문명을 좇는 백인문화가 정면충돌할 때는 이(異)문화를 백안시하는 할리우드의 패권주의가 여지없이 드러나 씁쓸해지기도 한다. ‘랜섬’‘뷰티풀 마인드’의 론 하워드 감독이 연출했다. 이종수 황수정기자 sjh@˝
  • 마이클 크라이튼 원작 ‘타임라인’

    마침표가 없는 ‘상상’은 영원히 매력적인 영화의 소재다.‘쥐라기 공원’의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타임라인’(Timeline·27일 개봉)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장난처럼 지워 나가는 SF영화. 이야기 얼개는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기소설 ‘나무’의 한 대목을 그대로 퍼온 듯하다.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며 원하면 현재로 복귀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개발된 첨단문명시대를 그리되 디스토피아적인 음울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전화선으로 온갖 메시지를 전송하는 이 시대를 수백년 전에는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영화의 기본 설정도 마찬가지다.유적발굴에 참여하던 존스톤 교수가 비밀실험 도중 600년 전의 중세로 실종되자 그의 아들 크리스(폴 워커)와 여조교 케이트(프랜시스 오코너) 등이 시간여행으로 찾아나선다.양자 원격이동장치를 통해 과거로 들어가지만,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6시간.그 시간 안에 현재로 복귀하지 못하면 영원히 시간의 미아로 전락한다. 영화는 한판의 게임 화면처럼 속도감을 유지한다.시공(時空)이동을 소재로 했으나 시간의 그물망을 골치 아프게 뒤헝클어 고도의 추리력을 요구하진 않는다.하필이면 주인공들이 14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현장에 떨어져 포염 속을 헤매고,모험길에 나선 한 남자는 중세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그곳에 눌러앉기로 하는 등의 흥미로운 해프닝들이 꼬리를 문다.주인공들이 보물이 아니라 시간을 뒤져 사람을 찾는다는 설정이 아니라면,화려한 볼거리에 치중한 ‘미이라’‘인디애나 존스’류와 엇비슷한 맛이 나는 어드벤처물이다.감독은 ‘리셀웨폰’‘컨스피러시’‘매버릭’ 등을 연출한 리처드 도너. 황수정기자˝
  • ‘동성결혼’ 美대선 변수?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동성결혼 문제가 미 대선정국의 핫 이슈로 등장했다.샌프란시스코에 이어 최근 뉴멕시코에서도 동성커플에 결혼증명서를 발급하려 하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5일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헌법개정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민주당은 병역 의혹 등을 동성결혼 문제로 무마시켜 정국을 전환시키려는 대선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결혼은 남편과 아내의 결합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일개 주나 시의 일부 운동권 판사와 지방 관리들이 결혼을 재정의하려는 시도는 미 전역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결정적이고 민주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앞서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4일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권고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의회가 ‘남편과 아내’의 결합을 결혼으로 정의하는 헌법 개정안을 신속히 통과시킨 뒤 각주에 보내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부시 대통령은 남성과 여성의 결혼이 문명의 가장 기본적 제도로 헌법을 개정하는 것만이 결혼의 의미를 영원히 바꾸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부시 대통령은 각 주의 의회가 결혼 이외의 다른 제도를 정의할 수 있도록 선택할 여지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결혼은 아니지만 버몬트주에서 허용하는 ‘시민적 결합’을 묵인할 수 있다는 일종의 정치적 배려다. ●보수세 결집을 위한 대선용 카드인가? 부시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보수층은 즉각 환영했다.워싱턴에 있는 보수적 법률사무소 ‘법과 정의를 위한 미국 센터’의 제이 세쿨로 대표는 “결혼을 남녀간 제도로 국한하려는 사람들을 결집하는 데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텍사스에 기반을 둔 가족옹호그룹 ‘자유시장재단’의 켈리 색켈포드 회장도 “결혼 제도를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슈는 없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날 발표는 24일 열린 공화당 주지사 모임에서 “케리 후보는 각종 이슈에서 ‘양다리 걸치기’를 한다.”고 부시 대통령이 직접 비난한 다음날 나왔다.이 때문에 이라크 정보왜곡,실업문제,병역 의혹 등의 현안에 물타기하면서 케리 후보가 동성결혼 등 각종 이슈에 분명한 선을 긋지 않는다는 점을 공략하기 위한 일종의 전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공화·민주 양당의 현 의석분포에선 헌법개정이 쉽지 않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헌법에 차별적인 요소를 담을 수 없다” 민주당의 하원 지도자 낸시 펠로시는 “과거 어느 헌법 개정도 특정 그룹을 차별화하는 데 사용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전국위원회(DNC)의 테리 매컬리프 위원장도 “게이나 레즈비언 가족에 대한 공격을 선거전략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헌법개정에 반대할 뜻을 밝혔다.케리 후보는 “정치적 어려움에 빠진 대통령이 대선정국에 들어가면서 먼저 헌법을 개정하려는 데 미국민은 우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케리 후보도 동성결혼에는 반대한다. 동성커플에 결혼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는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우익을 개입시키려는 발표라며 반발했으며 각종 게이 단체들 역시 대대적인 반대운동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mip@˝
  • 이기적 판단도 존중해야 ‘님비’ 해결 실마리 풀려

    우리 사회에서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핵폐기물처리장,쓰레기매립장 등의 건설을 반대하는 이른바 님비(NIMBY) 현상으로 인해 주민과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사이의 갈등이 야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분권사회로의 진전에 따라 이러한 양상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전망 또한 없는 게 현실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진단과 해결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지역이기주의의 발생은 근대 이후 우리 사회가 경험한 공동체의식,그리고 정치권력의 통제방식 변화 등에 의해 기인한 것이다. 주지하는 대로 한국의 공동체의식은 가문·혈연·문벌·학연에서부터 지역 및 민족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와 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공동체의식이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우리사회의 전통적 공동체의식은 지역자치권의 확대로 인해 지역주민,지역단체의 손익계산을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이뤄지게 만드는 데 일조를 한 감이 없지 않다.따라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이익적 요구에 따라 상호 불신과 대립이 생겨나도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상호 의사소통망과 갈등조정시스템이 미비하였다.그렇다고 해서 지역이기주의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공공,공리라는 명분으로 소수와 지역이 무조건 희생되는 것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지역과 주민의 이기적 주장과 판단,그리고 응집된 힘을 지역의 개혁과 혁신 쪽으로 물꼬를 터가는 지혜가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기적 판단을 일단 존중하고,‘자!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전환이 필요하다. 님비현상은 기본적으로 이해관계 충돌에서 비롯된다.따라서 해결 또한 이해관계의 조정을 통해 모색되어야 한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주로 야기되는 님비현상은 이해관계의 조정보다는 찬성과 반대,흑과 백이라는 이분법적 구조에 근거한 명분싸움에만 매달리고 있다. 님비현상의 해결을 위해서는 성숙한 대화기법과 협상기법이 잘 작동하는 사회시스템의 구축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그러나 우리나라는 ‘한국에는 협상문화가 없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갈등조정에 익숙하지 않다. 문명사적 전환이라고 불릴 만큼 오늘날의 사회시스템은 사회구성요소들을 마치 거미줄처럼 연결시키는 수평적 네트워크 사회로 전개하고 있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권위주의적 질서는 급격하게 해체되고 집단적인 사고와 가치보다는 개인주의적 사고와 가치가 더 비중 있게 다뤄지도록 하고 있다.한편으로는 사회의 이질성과 다양성으로 인해 구성원간의 이해갈등도 급격히 증대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어떤 일방적인 명령이나 규제 혹은 일원적 가치구조로는 사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협상문화가 사회시스템 곳곳에 스며들고 정착되어 다양한 이해와 가치를 용해시킬 수 있는 협상지향적 시민사회로 혁신되어야 할 것이다. 우동기 영남대 교수 행정학˝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6)한국의 마음으로 빚은 사발(하)

    문제의 이 사발은 공식적으로 조선에 파견되는 당시 일본 외교사절인 ‘왜국국왕사(倭國國王使)’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전해졌다.조선시대 일본 외교사절은 승려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는데,이들은 조선과의 국교가 시작되어 임진왜란으로 잠시 국교가 단절되었던 때까지 조선을 방문하여 우수한 조선의 문물을 배웠거나 직접 가지고 돌아갔다. 대표적인 것은 베틀을 이용한 직물의 생산,불경과 대장경,도자기와 그 제작기술 등이었는데,조선 도자기 기술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어서 일본이 매우 탐내는 첨단 문명이었다. ●조선 도자기기술은 세계최고 수준 1423년 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이후 일본 승려들의 조선 방문은 더욱 활발해져서 조선의 민간 풍물과 사찰 문화를 집중적으로 수입해갔다. 조선에서 배워간 문물을 이용하여 일본의 저급한 문화를 일깨웠는데,가마쿠라막부와 무로마치막부 시대의 혼돈과 무절제,사치와 방종의 폐해가 일본의 존립을 위협할 때 그 대안으로서 조선의 문물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송나라로부터 수입한 문화인 서원차(書院茶) 병폐를 치유시키기 위해 응용한 것이 조선 서민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초가집 살림살이와,깊은 산중에서 은거하는 청빈한 수행자의 토굴 생활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절제와 무소유 철학을 가미하여 일본 특유의 초암차를 만들었다.이 초암차는 뒷날 ‘다도(茶道)’라는 일본 특유의 차문화가 탄생하게 되는 원천이 되었다. 서원차에서 다도까지의 진보 과정은 일본이 혼돈과 야만에서 정화와 문명으로 변화하는 혁명적 승화였다.이 혁명을 완성한 것은 인간이지만 그 인간의 내면세계를 혁명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차를 담아 마시는 찻그릇이었다.그 찻그릇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도차완이 통도사 봉발을 조형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무릇 모든 그릇은 조형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모두 중국의 청자와 백자를 조형의 모체로 삼아서 나름의 독창성을 이루어 냈다. 중국의 그릇 또한 인도 불교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발전했다.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이른바 주발(周鉢: 위가 약간 벌어지고 뚜껑이 있는 놋쇠로 만든 밥그릇,식기),바리(놋쇠로 만든 여자 밥그릇.오목주발과 같지만 입이 좀 더 좁고 중배가 나왔으며 뚜껑에 꼭지가 있음),완(梡,碗) 종류들이다. 모두 산스크리트 patra를 음역한 발(鉢: 승려의 식기)의 형태를 모체로 삼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한국적 특성 가장 잘 나타낸 분청사기 흙을 재료로 한 사발(砂鉢),구리를 이용한 동발(銅鉢),쇠를 이용한 철발(鐵鉢),진흙을 이용한 와발(瓦鉢),은을 이용한 은발(銀鉢)등이 크기와 형태에서 매우 다양하게 발전했다.그렇게 발전한 대표적인 성과물이 송나라대의 찻사발들인데,천목(天目)이라 부르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릇이다.천목찻사발의 형태는 고려 청자 찻사발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필연적으로 중국 도자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시대의 독특한 도자문화로 일컬어지는 분청(粉靑) 사기는 한국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다.청자에서 백자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체험하고 터득해 낸 조선 사기장들의 지혜와 미감(美感)이 응집되어 창출된 한국형 사발이다.이같은 우리나라의 도자사(陶磁史)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 저 일본인들이 이도(井戶)라 부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의 존재가 한국인에게 알려진 것은 일제시대를 통해서였다.따라서 그 이전 우리나라 그릇의 역사에서 이것의 존재는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400년 넘게 일본에서 자란 그릇이어서 이 그릇의 참된 주인은 일본 차인들이라고 말해야 옳을지도 모른다.그렇다보니 이 그릇의 본래 용도에 관한 연구와 논의도 일본에서만 이루어져 왔다.그러던 중 이도차완에 관한 한국 사기장들의 관심이 표명된 1960년대부터 조금씩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주로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 국한되어서였다. 그 뒤로 중국,일본의 차문화가 한국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한국에서도 차 마시는 인구가 1000만 명을 헤아리게 되면서 다른 찻사발들과 함께 이도차완의 감상과 미학적 탐구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왔다. 어느새 한국의 현재 찻사발 종류 중에서 이도차완 형태를 본뜬 것들이 찻그릇 문화를 주도해 가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히 이도차완으로 이름이 붙여져 찻사발로 이용되고 있는 이 그릇의 본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도 생겨났다.무릇 모든 그릇이 그러하듯 그 쓰임새를 알아야만 그릇에 대한 정확한 가치매김을 할 수 있다.이도차완은 본래 찻사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기된 당연한 의문이다.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맨 먼저 이 그릇의 용도를 얘기한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이다.동양미술사학자인 그는 일제시대를 통하여 조선서민들의 생활용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간 대표적인 사람이며, ‘민예(民藝)’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만큼 조선문화에 대한 전문가였다. ●日선 “雜器” “祭器” 두가지 견해 그는 이도차완을 16세기 조선서민들의 밥그릇,생활 잡기였다는 잡기설(雜器說)을 내놓았다.이 그릇의 투박한 생김새,자유분방한 색깔과 재료의 특성 등을 그 증거로 제시하면서였다. 두 번째 의견은 동경국립박물관 학예실장을 지내기도 한 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祭器說)이다.이도차완 중에서 규격이 큰 그릇들의 특징인 높은 굽을 증거로 내놓았다. 이 그릇의 가장 큰 특징이 높은 굽임은 확실하고,이 높은 굽으로하여 청자나 백자 혹은 분청사기와도 현저하게 다른 그릇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도차완의 가장 큰 특징 또한 굽의 형태와 굽 언저리의 신비스러운 문양이어서 높은 굽은 누구에게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일제시대의 산물이며,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4년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그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제기설에 동조하는 견해와 잡기설을 지지하는 견해로 나눠져 있다.두 가지 견해를 모두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일본에서 국보가 된 한국의 그릇은 이도차완뿐이며,청자,백자,분청사기는 전혀 다른 평가의 대상이다.이도차완 중에는 신비와 전설의 대상이 되었을 만큼 놀라운 정치적 흥정물로,천문학적 가격으로,죽기 전에 꼭 한 번 구경하기를 소망하는 그릇이 여러 점이다.이같은 역사가 한국인들에게는 더 관심거리로 작용하고 있는 듯 싶다. 어쨌든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이 그릇이 지닌 미학적 요소들을 놀라운 미감과 관찰력으로 읽어내어 이 그릇에 관한 평가를 한층 심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조선시대 사기그릇 祭器는 백자가 유일 16세기 조선의 도자사를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고 쓴 그릇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16세기 조선의 도자기 생산 제도는 철저한 관요(官窯)체제여서 모든 생활그릇의 공급을 국가가 전담했다.민간인이 마음대로 그릇을 생산 판매할 수 없었다.일정 직급의 관료와 양반 사대부,소수의 중인 계층들에게만 관요에서 생산된 그릇이 주어졌다. 따라서 농민 등 서민층은 질그릇 외의 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제기설이 이 그릇의 높은 굽에 착안하고 있는 점은 조선의 민속과 제도에 얼마큼 지식을 가졌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조선시대의 제기는 백자가 원칙이었다.놋그릇,목기를 제외한 사기그릇 제기는 백자가 유일하다.이도차완 종류는 백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도차완 형태의 그릇을 제상에 진설할 수 있는 상차림이란 없다. 두 가지 견해 모두 이 그릇의 용도를 전혀 엉뚱하게 추정하는 잘못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인으로서의 견해일 따름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못된다.문제는 한국인들이 앞의 두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 있지만 대부분이 일본 견해를 비판하지 못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도차완의 원래 용도는 통도사 봉발대의 봉발을 근원으로 하여 생활화하려 했던 승려들의 발우였던 것으로 보인다.마하승기율,사분율 등 주요 경전에서 규정하고 있는 흙발우의 조건과 통도사의 봉발,그리고 이도차완의 모든 것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도차완 미학의 신비로움은 미륵신앙에 담겨 있는 종교적 염원과 긴 역사가 승화된 것이라고 볼 때 조선 사기장들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도예가들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6)한국의 마음으로 빚은 사발(하)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16)한국의 마음으로 빚은 사발(하)

    문제의 이 사발은 공식적으로 조선에 파견되는 당시 일본 외교사절인 ‘왜국국왕사(倭國國王使)’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전해졌다.조선시대 일본 외교사절은 승려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는데,이들은 조선과의 국교가 시작되어 임진왜란으로 잠시 국교가 단절되었던 때까지 조선을 방문하여 우수한 조선의 문물을 배웠거나 직접 가지고 돌아갔다. 대표적인 것은 베틀을 이용한 직물의 생산,불경과 대장경,도자기와 그 제작기술 등이었는데,조선 도자기 기술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어서 일본이 매우 탐내는 첨단 문명이었다. ●조선 도자기기술은 세계최고 수준 1423년 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이후 일본 승려들의 조선 방문은 더욱 활발해져서 조선의 민간 풍물과 사찰 문화를 집중적으로 수입해갔다. 조선에서 배워간 문물을 이용하여 일본의 저급한 문화를 일깨웠는데,가마쿠라막부와 무로마치막부 시대의 혼돈과 무절제,사치와 방종의 폐해가 일본의 존립을 위협할 때 그 대안으로서 조선의 문물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송나라로부터 수입한 문화인 서원차(書院茶) 병폐를 치유시키기 위해 응용한 것이 조선 서민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초가집 살림살이와,깊은 산중에서 은거하는 청빈한 수행자의 토굴 생활에서 느껴지는 극도의 절제와 무소유 철학을 가미하여 일본 특유의 초암차를 만들었다.이 초암차는 뒷날 ‘다도(茶道)’라는 일본 특유의 차문화가 탄생하게 되는 원천이 되었다. 서원차에서 다도까지의 진보 과정은 일본이 혼돈과 야만에서 정화와 문명으로 변화하는 혁명적 승화였다.이 혁명을 완성한 것은 인간이지만 그 인간의 내면세계를 혁명시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차를 담아 마시는 찻그릇이었다.그 찻그릇들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이도차완이 통도사 봉발을 조형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무릇 모든 그릇은 조형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모두 중국의 청자와 백자를 조형의 모체로 삼아서 나름의 독창성을 이루어 냈다. 중국의 그릇 또한 인도 불교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발전했다.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이른바 주발(周鉢: 위가 약간 벌어지고 뚜껑이 있는 놋쇠로 만든 밥그릇,식기),바리(놋쇠로 만든 여자 밥그릇.오목주발과 같지만 입이 좀 더 좁고 중배가 나왔으며 뚜껑에 꼭지가 있음),완(梡,碗) 종류들이다. 모두 산스크리트 patra를 음역한 발(鉢: 승려의 식기)의 형태를 모체로 삼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들어냈다. ●한국적 특성 가장 잘 나타낸 분청사기 흙을 재료로 한 사발(砂鉢),구리를 이용한 동발(銅鉢),쇠를 이용한 철발(鐵鉢),진흙을 이용한 와발(瓦鉢),은을 이용한 은발(銀鉢)등이 크기와 형태에서 매우 다양하게 발전했다.그렇게 발전한 대표적인 성과물이 송나라대의 찻사발들인데,천목(天目)이라 부르는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릇이다.천목찻사발의 형태는 고려 청자 찻사발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는 필연적으로 중국 도자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시대의 독특한 도자문화로 일컬어지는 분청(粉靑) 사기는 한국적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다.청자에서 백자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체험하고 터득해 낸 조선 사기장들의 지혜와 미감(美感)이 응집되어 창출된 한국형 사발이다.이같은 우리나라의 도자사(陶磁史)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 저 일본인들이 이도(井戶)라 부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의 존재가 한국인에게 알려진 것은 일제시대를 통해서였다.따라서 그 이전 우리나라 그릇의 역사에서 이것의 존재는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았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400년 넘게 일본에서 자란 그릇이어서 이 그릇의 참된 주인은 일본 차인들이라고 말해야 옳을지도 모른다.그렇다보니 이 그릇의 본래 용도에 관한 연구와 논의도 일본에서만 이루어져 왔다.그러던 중 이도차완에 관한 한국 사기장들의 관심이 표명된 1960년대부터 조금씩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주로 차를 마시는 사람들에 국한되어서였다. 그 뒤로 중국,일본의 차문화가 한국인들에게 널리 보급되고 한국에서도 차 마시는 인구가 1000만 명을 헤아리게 되면서 다른 찻사발들과 함께 이도차완의 감상과 미학적 탐구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어 왔다. 어느새 한국의 현재 찻사발 종류 중에서 이도차완 형태를 본뜬 것들이 찻그릇 문화를 주도해 가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폭발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히 이도차완으로 이름이 붙여져 찻사발로 이용되고 있는 이 그릇의 본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논의도 생겨났다.무릇 모든 그릇이 그러하듯 그 쓰임새를 알아야만 그릇에 대한 정확한 가치매김을 할 수 있다.이도차완은 본래 찻사발이 아니었기 때문에 제기된 당연한 의문이다.일본에서는 지금까지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맨 먼저 이 그릇의 용도를 얘기한 것은 야나기 무네요시이다.동양미술사학자인 그는 일제시대를 통하여 조선서민들의 생활용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간 대표적인 사람이며, ‘민예(民藝)’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만큼 조선문화에 대한 전문가였다. ●日선 “雜器” “祭器” 두가지 견해 그는 이도차완을 16세기 조선서민들의 밥그릇,생활 잡기였다는 잡기설(雜器說)을 내놓았다.이 그릇의 투박한 생김새,자유분방한 색깔과 재료의 특성 등을 그 증거로 제시하면서였다. 두 번째 의견은 동경국립박물관 학예실장을 지내기도 한 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祭器說)이다.이도차완 중에서 규격이 큰 그릇들의 특징인 높은 굽을 증거로 내놓았다. 이 그릇의 가장 큰 특징이 높은 굽임은 확실하고,이 높은 굽으로하여 청자나 백자 혹은 분청사기와도 현저하게 다른 그릇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도차완의 가장 큰 특징 또한 굽의 형태와 굽 언저리의 신비스러운 문양이어서 높은 굽은 누구에게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일제시대의 산물이며,하야시 세이죠의 제기설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4년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그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제기설에 동조하는 견해와 잡기설을 지지하는 견해로 나눠져 있다.두 가지 견해를 모두 부정하는 견해도 있다. 일본에서 국보가 된 한국의 그릇은 이도차완뿐이며,청자,백자,분청사기는 전혀 다른 평가의 대상이다.이도차완 중에는 신비와 전설의 대상이 되었을 만큼 놀라운 정치적 흥정물로,천문학적 가격으로,죽기 전에 꼭 한 번 구경하기를 소망하는 그릇이 여러 점이다.이같은 역사가 한국인들에게는 더 관심거리로 작용하고 있는 듯 싶다. 어쨌든 야나기 무네요시의 잡기설은 이 그릇이 지닌 미학적 요소들을 놀라운 미감과 관찰력으로 읽어내어 이 그릇에 관한 평가를 한층 심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조선시대 사기그릇 祭器는 백자가 유일 16세기 조선의 도자사를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고 쓴 그릇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16세기 조선의 도자기 생산 제도는 철저한 관요(官窯)체제여서 모든 생활그릇의 공급을 국가가 전담했다.민간인이 마음대로 그릇을 생산 판매할 수 없었다.일정 직급의 관료와 양반 사대부,소수의 중인 계층들에게만 관요에서 생산된 그릇이 주어졌다. 따라서 농민 등 서민층은 질그릇 외의 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제기설이 이 그릇의 높은 굽에 착안하고 있는 점은 조선의 민속과 제도에 얼마큼 지식을 가졌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조선시대의 제기는 백자가 원칙이었다.놋그릇,목기를 제외한 사기그릇 제기는 백자가 유일하다.이도차완 종류는 백자가 아니다. 그리고 이도차완 형태의 그릇을 제상에 진설할 수 있는 상차림이란 없다. 두 가지 견해 모두 이 그릇의 용도를 전혀 엉뚱하게 추정하는 잘못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인으로서의 견해일 따름이므로 논의의 대상이 못된다.문제는 한국인들이 앞의 두 견해 중 어느 하나를 지지하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 있지만 대부분이 일본 견해를 비판하지 못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매우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도차완의 원래 용도는 통도사 봉발대의 봉발을 근원으로 하여 생활화하려 했던 승려들의 발우였던 것으로 보인다.마하승기율,사분율 등 주요 경전에서 규정하고 있는 흙발우의 조건과 통도사의 봉발,그리고 이도차완의 모든 것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도차완 미학의 신비로움은 미륵신앙에 담겨 있는 종교적 염원과 긴 역사가 승화된 것이라고 볼 때 조선 사기장들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도예가들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이라크 서구 - 이슬람 ‘문명충돌’

    자살폭탄테러의 빈발로 만성적 치안불안을 겪고 있는 이라크 사태가 점차 서구와 이슬람간의 ‘문명충돌’ 양상을 띠기 시작하고 있다. 이라크를 점령한 미군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중동의 중심지역에 심어보려 하는 반면,이라크의 보수세력은 이슬람 전통을 고수하며 서구화를 거부하고 있다. 특히 나토가 17일 이라크에서 평화유지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반면 이집트는 파병불가 입장을 재확인,십자군 전쟁이후 지속돼온 서구와 이슬람간의 불화가 재연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최근 불거진 이라크 미 군정과 이슬람 보수파간 이슬람의 근본가치인 ‘샤리아’를 둘러싼 이견은 문명충돌의 상징적 사건이다.샤리아는 이슬람의 율법으로 목욕,예배,순례,장례 등에 관한 의례규범에서부터 혼인,상속,계약,소송 및 범죄,형벌,전쟁 등 법적 규범을 망라한다. 폴 브리머 미 군정 최고행정관은 지난 16일 카르발라의 한 여성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라크 지도자들이 샤리아를 과도헌법인 ‘기본법’의 토대로 삼으려 할 경우 절대 수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브리머가 문제삼은 샤리아의 내용은 여성의 이혼청구권을 제한하고 일부다처제와 조혼(早婚)을 인정하는 등 서구적 시각으로 볼때 남녀 평등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수니파 지도자로 과도통치위 순번제(2월) 의장을 맡고 있는 모흐센 압델 하미드는 이슬람 율법이 과도헌법의 핵심 토대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특히 이라크 시아파 최고기구인 이슬람혁명최고위원회(SCIRI)를 이끄는 핵심인물 중 한사람인 사드랄딘 알 쿠반지는 “샤리아를 토대로 한 기본법안을 브리머가 거부해선 안 된다.”며 “어떠한 외세적 견해도 우리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이라크인들이 싫어하는 가치를 억지로 주입시키려 한다면 정치적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밝혀 새달부터 시행될 기본법을 둘러싼 충돌이 분출될 가능성을 예고했다. 이도운기자 dawn@˝
  • UN산하 국제해양재판소 박춘호 재판관

    ‘삼산육수일평지(三山六水一平地).’산은 지구의 3할이고 바다는 6할이며,평지가 1할이라는 뜻이다.20세기가 ‘육지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바다의 시대’다.바다는 광활하고 신비스러운 곳이며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마지막 보고(寶庫)이기도 하다.그래서 세계 각국은 호시탐탐 ‘해양패권’에 혈안이 되고 있다.이에 따른 분쟁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국제해양법재판소의 박춘호(74) 재판관.그는 유엔(UN)산하인 이 재판소의 첫 한국인 출신 재판관이다.그는 1980년 세계 해양법학자 300명이 참가한 독일 ‘키일 총회’의 의장을 역임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이어 96년 8월 유엔본부에서 국제해양법재판소 초대재판관을 뽑을 때 그는 100개국 중 69개국의 지지를 얻어 9년 임기의 선두그룹으로 당선돼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문패’에 걸맞게 ‘분쟁의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지구를 80바퀴나 돌면서 세계와 상대하고 있다. ●해양법·학문 겸비한 국제적 에세이스트 ‘바다를 보거든 산을 보고,산을 보거든 바다를 생각하라.’그의 좌우명이다.‘해양법 35년 외길’을 걸어온 그는 비단 해양법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의 금쪽 같은 학문과 지식을 두루 섭렵한 문명비평가로도 명성이 높다. 그는 얼핏 딱딱한 인상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해박한 지식에다 풍부한 유머가 철철 넘친다.‘순도 100%의 촌놈’ 출신의 사투리까지 섞어 좌중의 배꼽을 죄다 흥분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영어·중국어·프랑스어·일본어·독일어·베트남어 등 6개국어를 구사한다.박식과 기지가 넘치는 국제적인 ‘에세이스트’다. 에피소드1.얼마전 독일 함부르크에서 국제해양법 재판관들의 회의가 열렸다.격무에 시달린 재판관 1명이 과로사로 순직한 직후였다.각국 재판관 21명이 참석한 회의실.최근 1년 사이에 벌써 3명이나 과로사를 당해 다들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박씨는 침울하게 앉아 있는 재판관들의 얼굴을 좌우로 쭉 훑었다.한 재판관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박씨 왈,“다음은 누군지 보려고 하는건 아닙니다.” 딱딱한 회의실이 금방 웃음바다로 변했다. 에피소드2.지난 12일 독도개발법과 관련,국회 농림해양수산위 공청회에서 모의원이 박씨에게 독도 영유권을 놓고 국제재판을 열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불쑥 물었다. 그러자 박씨는 이렇게 답변했다.“세상에는 열어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것이 다섯가지가 있소.첫째 도박,둘째 전쟁,셋째 선거,넷째 재판이오.” “나머지 하나는 뭐요?”하고 모의원이 다시 물었다.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머금던 박씨가 “부부싸움이지.한창 싸움하다가 한 사람이 ‘여보 사실은 그게 아니고….’하면서 꼬랑지내리면 누가 이겼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말했다. ●무궁무진한 촌철살인 에피소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베이징대에서 강의할 때 우리나라의 전라도 사투리 같은 산둥어를 자주 구사해 학생들을 웃기는가 하면,그의 생일(1930년 4월15일)이 김일성 주석과 같아 그를 만난 사람들이 불편해하기도 했다(한·중 수교전부터 베이징에 자주 다녀 북측 요원들과도 가끔 맞닥뜨릴 수 있었다). 또 지난 83년 5월 중국 민항기가 피랍돼 춘천의 미군 비행장에 불시착했을 때였다.중국 정부가 처음으로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이라는 정식국호를 사용하며 이례적일 만큼 신속하게 나선 진짜 배경에 대해서도 박씨만이 알고 있는 일화다.즉 승객 중에 중국 최고의 국방비밀을 쥔 유도탄 전문가가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3일 때마침 한국에 머물고 있는 박씨를 잠시 만나 영화보다,소설보다 더 진한 그의 인생역정을 들을 수 있었다. “선생님,우문 한가지만 감히 여쭙겠습니다.” “그래,해봐.” “독도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어떻게 해야 해결됩니까?” “독도문제? 이 사람아,해결되지 않는 게 해결되는 것이어.그냥 놔둬부러,왜 다들 난리방구야.”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頓悟頓修) 경지에서 나오는 즉답이라고나 할까.거침없으면서도 명쾌했으며 목소리는 거의 고성에 가까웠다.득도한 사람한테 감히 질문을 어떻게 하랴. ●“인생은 촌놈서 태어나 촌놈으로 가는 것” 어쨌든,추억의 시계바늘을 그의 과거로 돌렸다.지리산 첩첩 산골짜기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3세 때 부친을 잃고 농림학교를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6·25때 경찰에 투신해 지리산 전투에 참가했고 군산 미공군부대 클럽 바텐더 생활을 했다.10년 만에 대학 졸업 후 문교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으며,중국집 종업원,나이 39살에 해양법을 배우기 위한 영국 유학길 등 아시아해양법 개척자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인생의 시작과 끝이 뭐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박씨는 “촌놈에서 태어나 촌스럽게 가는 것이어.”라고 하면서 “이거봐,기자 양반.인류는 본디 굴속에서 살던 혈거부족(穴居部族)이어.촌놈들의 집단에서 싹튼 게 아닌가.”라고 일침을 놓았다. 박씨는 전북 남원군 대강면 평촌리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어린 시절 여수에 사는 고모댁에 갔다가 넓은 바다를 보고 감동해 ‘바다를 생각’하게 됐다고 그는 술회했다.‘장보고,이순신,그래 다음은 박춘호야.’라고…. 그는 어쩌면 독도문제에 대해서도 가장 확실한 ‘해법’을 가지고 있다.“독도개발법? 무슨 똥같은 얘기여.재판이 열리면 아무 소용이 없어.고증,그래 우리가 좀 유리하지.그러니까 좀 가만 있어봐.” ●새벽4시에 일어나 세계 각국과 이메일 박씨는 ‘서울대가 뭐가 잘났느냐.’는 오기로 원서를 냈다가 합격했다.그러나 6·25전쟁으로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그는 문교부 차관 비서관으로 발탁된다. 이때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중국집에서 이른 아침에 호떡장사 아르바이트를 했다.중국어를 배우겠다는 일념 때문이다.외국어 욕심이 남달리 강한 그는 아침에는 중국어,밤에는 독일어를 터득했다.남대문 시장에서 단파 수신기를 하나 사서 밤에 베이징방송을 들으며 독일어 뉴스를 청취했다. 문교부 차관 비서관 때 친구와 우연히 광화문에서 좌판깔고 있는 점쟁이를 만나 인생히 확 변했다.“수륙만리를 뛰어야 하는데 한 인간(문교부장관)이 가로막고 있구나.”라는 점쟁이의 말이 영국 유학(해양법)을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유학 다녀온 후 그는 해양법의 독보적인 존재가 된다.박정희 정권 때 석유개발에 대해 ‘코미디’라고 해서 당국의 신경을 건드린 적도 있었다.그는 중국과 수교전에 50여 차례 베이징을 다녀오면서 보이지 않는 역할을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세계 각국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김문기자 km@˝
  • 이슬람의 과학과 문명/하워드 R 터너 지음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의 언행록 ‘하디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지식을 구하라.지식의 소유자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할 수 있다.지식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보여준다.…학자의 잉크는 순교자의 피보다 신성하다.…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다.” 학문 연구를 적극적으로 권장했고 다른 문명의 지식체계에 대해서도 개방적이던 이슬람 사회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이같은 지적 열광이 이슬람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슬람의 과학과 문명’(하워드 R 터너 지음,정규영 옮김, 르네상스 펴냄)은 이슬람 문명의 황금기인 7∼17세기 무슬림 철학자들과 과학자,예술가,노동자들이 이룩한 문명을 ‘과학’에 초점을 맞춰 설명한다.이슬람 제국은 고대 그리스ㆍ로마의 필사본들을 아랍어로 번역하고 인도 및 중국의 학문을 받아들여 찬란한 과학문명을 이뤘다.이슬람이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가 천체 관측기구를 발전시킨 일이다. 오늘날의 병원 형태 또한 이슬람 세계에서 처음 발전했다.칼리프 알라시드(‘천일야화’의 칼리프)의 통치기간인 8세기에 이미 병원이 설립 운영됐다.병원들은 칼리프,토후,자선가,종교단체의 기부금으로 유지됐다.이슬람 과학문명의 한 귀퉁이를 당당히 차지하는 것이 점성술.중세 무슬림 점성술사들은 그들의 지식을 활용해 갖가지 예언을 했다.칼리프가 군사원정에 나설 경우,궁정 점성술사들은 공격 시간을 결정하도록 명을 받았다. 책은 이러한 이슬람의 과학적 지식과 사고가 중세 유럽의 학문과 르네상스의 출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사례 중심으로 살핀다.1만 8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월드이슈-히잡금지와 문명충돌] 자발라 누라 佛이슬람여성연대 회장

    |쿠르뇌브(프랑스)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이슬람여성연대(LFFM)의 자발라 누라(44) 회장은 “신을 섬기고,신에게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슬람 여성들은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머리수건을 착용한다.”며 “머리수건의 착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북아프리카의 튀니지 출신으로 14세때부터 머리수건을 착용하고 있다는 그녀는 “고등학교와 대학을 프랑스에서 나왔지만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머리수건 때문에 어떠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종교적 상징물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돼 다음 학기부터 적용된다.현재 심정은. -한 마디로 침통하다.이 법은 이슬람 여성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종교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종교를 버리지 않으려는 여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결국 사회로부터 격리될 것이다.이중적 차별을 받게 되는 셈이다.이것은 어린 여학생들에게 너무 가혹하다. 머리수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슬람교인들은 하루 5차례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하고,일상생활을 통해 경전에 적힌 규율에 따르며 종교생활을 한다.여성들의 경우 생리를 시작하는 시기부터 신을 섬긴다는 의미로 외출할 때 머리수건을 착용하는데 내 자신이 항상 신에게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종교적 의무에 포함된다. 머리수건이 남성에 대한 복종의 상징이라고 하는데. -이슬람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잘 못 이해하고 있다.나는 14살때부터 머리수건을 착용했다.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으며 내가 선택했다.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자아이들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머리수건을 착용한다. 이슬람교인들이 프랑스 학교의 비종교원칙과 사회질서를 위협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이슬람교인이라 하더라도 학교의 규칙은 물론이고 프랑스의 법을 준수하는 것은 당연하다.이슬람교에서는 남을 속이지 말고,남의 물건을 탐하지 말며,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라고 가르치고 있다.우리가 어떻게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겠나.˝
  • [이런 책 어때요] 홍콩에서 예루살렘까지/현길언 지음

    ‘사해’하면 흔히 죽음의 바다를 떠올린다.사해 남쪽 소돔이란 지역이 주는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소돔과 고모라는 아브라함시대에 의인 열 사람이 없어 유황불로 멸망당한 죄악의 도시다.그 두 도시의 자리가 바로 사해라고도 전해진다.그러나 그건 인간 상상력의 소산일 뿐이다.소설가인 저자의 문명사적 시각은 단순한 소설적 상상력을 넘어선다.저자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온 뒤에도 여전히 뒤틀린 이스라엘의 역사를 안타까워한다.인간은 ‘나그네성’을 타고 났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여행의 가장 큰 기쁨은 문명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이다.1만 5000원
  • [월드이슈-히잡금지와 문명충돌] 여성 순결 상징… 이란선 '차도르’로 불려

    ‘히잡(hijab)’은 보수적 이슬람 가문의 여성이 얼굴의 일부나 전체를 가리는데 사용하는 일종의 수건을 가리키는 아랍어다.생김새 등에 따라 ‘부르카’,‘니캅’ 등으로도 불린다.터키에선 ‘페체’와 ‘차르샤프’,이란에선 ‘차도르’,인도네시아에선 ‘질밥’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비영리단체 이슬람정보교육연구소(III&E)는 이슬람 여성이 히잡을 두르는 이유를 “(이슬람교의 유일신)알라가 그리 하라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네 아내와 딸,그리고 나를 믿는 여성들에게 (외출하거나 남성들 사이에 있을 때)바깥 의상(히잡)을 두르게 하라.”는 코란 구절을 근거로 든다.또 다른 이유는 이슬람에서 남녀에게 요구하는 정숙성 때문.히잡을 두르는 것은 여성이 남성에게 “외모와 성욕이 아닌 지성과 기능으로 평가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는 게 III&E의 설명이다. 이런 해석과 달리 코란이나 하디스(선지자 마호메트의 언행록)에는 히잡 규정이 없으며,다만 구전자료에 마호메트가 자신의 아내들로 하여금 얼굴에 히잡을 두르게 했는데 일반 신도들로부터 일정한 사회·심리적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는 주장도 있다. 이슬람에서 속세로부터 여성을 격리시키는 것이자 여성의 순결을 의미하던 히잡이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된 것은 19세기 아랍세계가 서구의 식민통치 과정을 겪으면서였다.당시 프랑스와 영국 등은 히잡과 하렘(harem,이슬람권에서 친척 외엔 남성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을 일컫는 말)은 남성이 여성을 탄압하는 관습이라며 식민지 고유문화말살정책 차원에서 없애려 했다.그에 대한 반발로 히잡은 아랍권에서 식민주의 저항운동을 상징하게 됐다. 황장석기자 surono@˝
  • 남극 탐험의 꿈/장순근 지음

    지난해 12월 젊은 지구과학자 전재규 대원의 목숨을 앗아간 남극 세종기지 조난사고는 우리 극지 연구의 현주소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남극에 세종기지가 세워진 지 올해로 16년.하지만 남극 현장의 연구 여건은 초라하기만 하다.세종기지 대원들이 극지 연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쇄빙선 하나 없이 고무보트로 거친 남빙양을 항해해야 했던 사실이나 낡은 무전설비들 앞에서 동료들의 생사를 몰라 안타까워했던 모습은 우리의 열악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20년간 남극 지킨 저자의 생생한 체험 `남극 탐험의 꿈’(장순근 지음,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정부 차원에서 ‘극지 연구 활성화’ 방안이 논의되고 이공계 위기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특히 관심을 끌 만한 책이다.저자(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는 지난 20여년간 남극 탐험의 최전선을 지켜온 극지 연구의 개척자.남극 탐험의 역사와 자연환경,세종기지에 얽힌 이야기 등을 300여장의 현장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책은 먼저 남극의 역사·지리적 배경부터 살핀다.한국의 세종기지가 들어선 킹조지 섬은 남극의 관문인 사우스셰틀랜드 군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사우스셰틀랜드 군도는 1819년 영국 탐험가 윌리엄 스미스 선장이 최초로 발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그러나 저자는 ‘서인도 기술’ 등의 문헌을 토대로 1599년 네덜란드 출신 도선사 디륵 게리츠가 처음 발견한 것으로 추정한다.스미스가 발견한 것은 사우스셰틀랜드 군도가 아니라 그 남쪽에 있는 리빙스턴 섬이라는 것이다.책은 해표와 펭귄 고기를 먹고 연명하며 전설적인 생존신화를 남긴 섀클턴 탐험대의 이야기도 흥미롭게 전한다. ●`바다의 3대 악당’ 해적·노예선·물개잡이 사우스셰틀랜드 군도는 남극에선 문명세계에 가장 가깝고 얼음의 장애가 적은 편이라 발견되자마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가장 먼저 군도를 찾은 사람들은 물개잡이들.19세기 남극의 물개는 남획돼 거의 멸종지경에 이르렀다.해적과 노예선 선원,물개잡이는 ‘바다의 3대 악당’이라 불렸을 정도다. 현재 남극 대륙에는 한국을 비롯한 18개국이 42개의 상주 기지를 짓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한국은 지난 86년 남극조약에 가입하고 2년 뒤 세종기지를 세워 남극연구 대열에 합류했다.세종기지가 있는 사우스셰틀랜드 군도의 킹조지 섬은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900㎞쯤 떨어져 있다.남극 중에선 그나마 북쪽에 있어 얼음에 덮이지 않은 대지가 있고 연평균 기온도 그리 낮지 않지만 겨울엔 체감온도가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또 초속 30m가 넘는 남극의 폭풍 블리자드가 어김없이 몰아친다. ●`탁, 탁’ 노래하는 남극의 얼음 세종기지는 남극의 대기,지질,해양,생물 같은 자연환경에 대한 연구와 남극의 환경변화가 문명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것이 주된 임무다.지구상의 대륙 가운데 가장 늦게 발견된 남극은 여전히 미지의 땅이다.1360만㎢의 남극 대륙은 평균 두께가 2000m가 넘는 얼음으로 덮여 있다.남극의 얼음은 동글동글한 공기방울이 들어 있어 아주 아름답게 보인다.그 얼음을 물에 넣으면 ‘탁,탁’하는 공기 방울 터지는 소리가 난다.저자는 그것을 ‘얼음의 노래’라고 부른다.일본에서는 특유의 상혼을 발휘,남극의 얼음조각을 넣은 위스키를 비싼 값에 팔기도 한다. 얼음은 귀중한 연구 재료다.공기 방울 속에 지구의 역사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남극의 얼음은 물이 얼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눈이 쌓여 생긴 것이다.얼음 속 공기 방울은 눈 결정 사이에 있던 공기로,눈이 쌓일 때의 공기 성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그 공기 성분을 분석하면 당시의 기후와 지형을 알 수 있다. ●눈 속서 자라는 신기한 이끼 `눈조류’ 남극에는 어떤 생명들이 살고 있을까.남극의 혹한 속에서도 꽃이 피고 새가 운다.눈 속에선 눈조류라는 신기한 이끼가 자란다.거대한 코를 가진 코끼리 해표는 기이한 소리를 내고 남빙양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범고래는 곧추 서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남극이 펭귄의 무대인 것은 물론.저자는 날다 지치면 바다 위에 떠서 쉰다는 국제 보호조 신천옹도 가끔 킹조지 섬 부근에 나타난다고 전한다.책은 이밖에 남극 기지 사람들이 함께하는 남극 올림픽 이야기,영국·칠레·아르헨티나 등이 남극에서 서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분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유럽에선 가장 고상한 취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는 극지 봉투수집 이야기 등도 들려준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월드이슈-히잡금지와 문명충돌] '이슬람 머리수건’ 논란 일파만파

    프랑스 하원이 지난 10일 이슬람 여성들의 머리수건 등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한데 이어 다음달 2일 상원에서도 이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돼 프랑스에서 이슬람 머리수건 등 종교적 상징물의 교내 착용을 금지하는 법 제정은 기정사실화됐다. 이에 대해 이슬람권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머리수건 논쟁은 프랑스 국경을 넘어 문명 충돌 경향까지 띠면서 유럽 전역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 정부가 공화국 정신을 바탕으로 한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제정하려는 이 법에 대해 이슬람 사회에서는 이슬람 혐오증의 표출이며,명백한 종교 및 인권 탄압이라며 연일 격렬한 시위에 나서고 있다.이런 가운데 벨기에와 독일에서도 일부 보수파 정치인들이 이와 유사한 법을 제안했다. 다른 한편으로 머리수건 문제는 성차별 논쟁으로까지 비화되는 양상이다. ●모호한 기준,되풀이되는 논쟁 프랑스는 ‘비종교성(세속주의)’의 원칙에 따라 지난 1904년 2500개의 종교 교육기관을 폐교한데 이어 1905년 법을 제정,학교나 기타 공공기관에서 종교적 상징물 착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왔다.학교를 종교로부터 자유롭고,중립적인 장소로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이 법은 그러나 종교 상징물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해 이슬람교 여학생들의 머리 수건 착용이 문제가 될 때마다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머리수건을 착용한 터키 여학생 4명이 퇴학처분됐던 1994년 이후 머리수건과 관련해 100여건의 퇴학조치가 취해졌지만 절반 이상이 법원에 의해 취소됐다. ●국민 70%가 지지 지금까지 문제를 애써 무마하는데 급급해 왔던 프랑스 정부가 국내 외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법 제정을 강행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가장 큰 이유는 예방차원에서다.프랑스는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쟁,9·11 테러,이라크 전쟁 등으로 인종 및 종교간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학교가 종교 갈등의 무대로 변질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학교를 종교로부터 중립적인 공간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보수적 성향이 강한 프랑스 국민들로부터 설득력을 얻고 있다.프랑스 국민의 70%는 법 제정에 공감하고 있다. 법 제정이 이슬람교도 등 이민족의 프랑스 동화를 가속화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프랑스에 거주하는 이슬람교도는 약 500만명에 이른다.이들 중 4분의 3은 1970∼80년대 모로코 튀지니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이민한 사람들과 그들의 2·3세들이다.대부분 대도시 외곽의 이민자 집단 거주지에서 살며 그들만의 종교과 언어,문화를 고집하고 있다. 앞으로 다가오는 지방선거와 총선,대선 등 정치적인 일정을 앞두고 우파 정부가 극우파와 잠재적인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부정적인 효과 우려 이에 대해 프랑스 국내외의 이슬람 사회와 인권단체,기독교계,지식인 층에서는 “이 법이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으며,종교·인종 갈등을 심화시킨다.”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프랑스 이슬람교평의회(CFCM)와 프랑스 이슬람단체연합(UOIF),전국이슬람여성연대(LNFM) 등 이슬람교 관련 단체들은 “머리 수건 착용은 이슬람교의 가르침이며 착용 금지는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사회학자 에드가 모렝은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계란을 깨기 위해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격으로 머리수건 문제가 과장돼 있다.”며 “법으로 머리수건 착용을 금지하기보다는 이슬람 사회가 프랑스 주류사회에 동화되도록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이란출신 작가 겸 저널리스트인 아미르 타헤리는 “2002년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에 180만명의 이슬람 여학생이 있으며,이들 중 머리수건을 쓰고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은 2000명에 불과하다.”면서 “머리수건 착용을 금지하는 법은 이슬람 공동체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치유책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여성단체 “여성 존엄성 위해 금지 마땅” 여성단체에서는 이슬람 여성들의 머리 수건 착용이 남녀 평등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엘리자베드 바당테르는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이슬람교 여성들의 머리수건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복종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이를 묵과하는 것은 성평등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창녀도,하녀도 아닌’이라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파델라 아마라는 “머리수건은 “여성을 압박하기 위한 도구”라고 말했다. ●새로운 논란의 시작 유럽 인근 국가의 보수주의 성향 정치인들은 프랑스 정부의 이번 법 제정에 고무돼 비슷한 법을 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벨기에의 알랭 데스텍스 상원의원은 “다원적 문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적 갈등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것을 예방해야 하며,이슬람교인들이 사회에 통합되고 동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며 법안을 제안할 것임을 시사했다.독일 서부 헤센주의 다수당인 기독교민주당은 이슬람 관리들의 머리수건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스위스의 제네바대학과 프라이부르그대학의 이슬람연구 및 철학교수인 타리크 라마단은 “유럽사회는 이슬람 교세의 확장으로 정체성이 와해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며,이러한 두려움은 이슬람 혐오증으로 표출되고 있다.”며 “프랑스의 법 제정은 논쟁의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논쟁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lotus@˝
  • 儒林(26)-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영의정이었던 정광필도 그 소문을 들었지만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었다.근거 없이 떠도는 유언비어(流言蜚語)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밀서의 내용대로라면 주상은 오히려 이를 ‘주초의 술수’라 하여서 크게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정광필은 모골이 송연하였다.그는 다시 밀지를 읽어 내렸다. “…내가 지금 그들의 죄를 벌하려 하여도 대간들과 홍문관 6조 유생들이 모두 이를 반대해 어찌할 수 없으니,요즘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잠을 자도 편안하지 않으니 경들이 합심하여서 그들을 처치하고 나에게 알리라.” 그것이 밀지의 전문이었다.밀지를 모두 읽고나서 정광필은 묵묵히 앉아있었다.눈치를 살피던 남곤이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다 읽으셨소이까.” “읽었소이다.” 정광필은 짧게 대답하였다.그러고 나서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주상께오서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잠을 주무셔도 편안하지 않으시다는 말씀도 읽으셨소이까.” “그렇소이다.” “하오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곤이 물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대감 나으리께오서는.” 정광필은 조광조를 향한 남곤의 증오심을 잘 알고 있었다.남곤 역시 엿새 전 78명의 삭훈된 공신의 명단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뿌리 깊은 원한이 있었다.남곤은 원래 문명을 떨치던 문장파로 도학을 숭상하는 조광조의 무리들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지만 특히 지난해 명나라에 주청사(奏請使)로 갔을 때의 실수로 조광조 일파의 집중적인 성토를 받은 쓰라린 과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명나라에서는 종계(宗系)의 일을 잘못 기술하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에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고,태조가 고려 말의 네 왕,즉 공민왕과 우왕,창왕,공양왕을 모두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이를 제대로 변무(辨誣)하지 못하고 귀국한뒤 예조판서가 되었다. 이에 대해 조광조의 무리들은 3년이고,4년이고 기필코 북경에 머물면서 이를 바로잡고 돌아와야지 어떻게 그대로 돌아왔느냐고 남곤을 질책하여 탄핵하는 상소를 수차례 올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남곤이 조광조를 숙청하는데 앞장서서 이처럼 꼭두새벽에 천민의 복장을 하고 찾아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감 나으리” 남곤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을 뱉었다. “주상께오서는 조광조의 무리를 처치하고 싶어 하십니다.조광조 무리를 한 사람이라도 남기면 그 해가 무궁할 것인즉 대감 나으리께오서는 이를 어찌하실 것입니까.” 남곤은 넌지시 정광필의 의향을 떠보며 때로는 좋은 말로 달래고,때로는 위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기록은 전해오고 있다. “주상께오서는 오늘밤 반드시 나으리를 불러 의논할 것이니 나으리께오서는 주상의 뜻을 받들어 주초의 무리들을 남김없이 제거하여 나라를 안정되게 하시오.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남곤은 잠시 말을 끊었다.그리고 짧은 침묵 끝에 정광필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반드시 후회할 일이 많을 것이오.” 남곤의 위협적인 말을 들으며 정광필은 정색을 하여 꾸짖었다. “공은 재상의 몸으로 이처럼 천민의 복장을 하고 장안을 돌아다니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사림(士林)을 해치는 일에 나보고 앞장서라는 것이오.이는 나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오.” 그러자 남곤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오면 대감께오서 주상의 뜻을 거역하시겠다는 말씀이시오.”˝
  • 儒林(26)-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儒林(26)-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영의정이었던 정광필도 그 소문을 들었지만 그냥 웃어버리고 말았었다.근거 없이 떠도는 유언비어(流言蜚語)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밀서의 내용대로라면 주상은 오히려 이를 ‘주초의 술수’라 하여서 크게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정광필은 모골이 송연하였다.그는 다시 밀지를 읽어 내렸다. “…내가 지금 그들의 죄를 벌하려 하여도 대간들과 홍문관 6조 유생들이 모두 이를 반대해 어찌할 수 없으니,요즘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잠을 자도 편안하지 않으니 경들이 합심하여서 그들을 처치하고 나에게 알리라.” 그것이 밀지의 전문이었다.밀지를 모두 읽고나서 정광필은 묵묵히 앉아있었다.눈치를 살피던 남곤이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다 읽으셨소이까.” “읽었소이다.” 정광필은 짧게 대답하였다.그러고 나서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주상께오서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잠을 주무셔도 편안하지 않으시다는 말씀도 읽으셨소이까.” “그렇소이다.” “하오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남곤이 물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대감 나으리께오서는.” 정광필은 조광조를 향한 남곤의 증오심을 잘 알고 있었다.남곤 역시 엿새 전 78명의 삭훈된 공신의 명단 속에 포함되어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뿌리 깊은 원한이 있었다.남곤은 원래 문명을 떨치던 문장파로 도학을 숭상하는 조광조의 무리들과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지만 특히 지난해 명나라에 주청사(奏請使)로 갔을 때의 실수로 조광조 일파의 집중적인 성토를 받은 쓰라린 과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명나라에서는 종계(宗系)의 일을 잘못 기술하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태조 이성계가 고려 말에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고,태조가 고려 말의 네 왕,즉 공민왕과 우왕,창왕,공양왕을 모두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이를 제대로 변무(辨誣)하지 못하고 귀국한뒤 예조판서가 되었다. 이에 대해 조광조의 무리들은 3년이고,4년이고 기필코 북경에 머물면서 이를 바로잡고 돌아와야지 어떻게 그대로 돌아왔느냐고 남곤을 질책하여 탄핵하는 상소를 수차례 올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남곤이 조광조를 숙청하는데 앞장서서 이처럼 꼭두새벽에 천민의 복장을 하고 찾아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감 나으리” 남곤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을 뱉었다. “주상께오서는 조광조의 무리를 처치하고 싶어 하십니다.조광조 무리를 한 사람이라도 남기면 그 해가 무궁할 것인즉 대감 나으리께오서는 이를 어찌하실 것입니까.” 남곤은 넌지시 정광필의 의향을 떠보며 때로는 좋은 말로 달래고,때로는 위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기록은 전해오고 있다. “주상께오서는 오늘밤 반드시 나으리를 불러 의논할 것이니 나으리께오서는 주상의 뜻을 받들어 주초의 무리들을 남김없이 제거하여 나라를 안정되게 하시오.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남곤은 잠시 말을 끊었다.그리고 짧은 침묵 끝에 정광필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반드시 후회할 일이 많을 것이오.” 남곤의 위협적인 말을 들으며 정광필은 정색을 하여 꾸짖었다. “공은 재상의 몸으로 이처럼 천민의 복장을 하고 장안을 돌아다니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사림(士林)을 해치는 일에 나보고 앞장서라는 것이오.이는 나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오.” 그러자 남곤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오면 대감께오서 주상의 뜻을 거역하시겠다는 말씀이시오.”
  • 역사 속의 매춘부들/니키 로버츠 지음

    그리스 일곱 현인 가운데 한 명인 아테네의 입법가 솔론은 매춘을 영리 목적에 이용,최초로 공창제를 도입하고 그 수익으로 국가 재정을 충당한 인물이다.솔론의 여성관은 분명했다.여성은 아내 아니면 창녀였다.여성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에 기여한 것으로 말하면 장 자크 루소 또한 빠지지 않는다.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 루소는 “남성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인 여성이 아이를 낳다 죽는 것은 영광”이라며 현모양처론을 펼쳤다.‘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이들도 각도를 달리 해 보면 전혀 다른 평가의 대상이다. ●`나쁜´ 창녀를 탄생시킨 건 위선적인 성도덕 ‘역사 속의 매춘부들’(니키 로버츠 지음,김지혜 옮김,책세상 펴냄)은 이런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성도덕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출발한다.영국의 소호에서 매춘부로 일한 경험이 있는 저자의 시각은 여러 면에서 전복적이다. 여성을 아내와 창녀로 나누는 것은 가부장제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기원전 2000년경 고대 수메르에서 아내와 창녀를 분리하는 법이 처음 생겼다.저자는 여성을 ‘착한’ 아내 대 ‘나쁜’ 창녀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게 된 데는 기독교의 위선적인 성도덕이 큰 구실을 했다고 주장한다.여성에게 현모양처를 강요하는 기독교의 금욕주의가 그 반대편에 ‘비정상적인’ 여인의 표상으로 매춘부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들에게 불도장이 찍히게 했다는 것이다.구약의 선지자들은 매춘부를 고집 세고 도발적인 여성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책은 매춘의 역사가 남성 중심의 기록임을 밝힌다.매춘의 기원을 고대문명의 ‘사원 매춘’에서 찾는 것은 저자 또한 기존의 역사가들과 다르지 않다.고대 가나안에선 종교적 매춘과 세속적 매춘이 모두 번성했다.고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원 가운데 하나로 이름 높았던 코린트의 아프로디테 사원은 1000명이 넘는 ‘신성한’ 창녀들을 거느렸다.히에로둘레라 불린 이들은 여신의 시녀로 간주된 매춘부 계급이었다. 저자가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그동안 여성 사제가 정치·경제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 외면당해 왔다는 점이다.예컨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왕이 매춘부를 겸한 여성 사제와 신성한 혼인을 치른 것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의례였음에도 단순히 ‘다산 의식’으로 치부돼 왔다는 것이다. ●도시의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 매춘 혹은 매춘부에 대한 이중적인 기준은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중세의 교회는 매춘을 금지하면서도 ‘필요악’으로 규정해 제한적으로 허용했다.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회의 이런 태도를 다음과 같은 비유로 정당화했다.“도시의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시궁창을 없애버리면 궁에서는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날 것이다.” 수많은 왕과 주교들은 성도덕이란 잣대를 매춘에 들이대는 한편 자신의 쾌락을 위해선 매춘부들을 궁 안으로 데려왔다. 19세기에 들어서는 매춘부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과학적으로’ 정당화되기도 했다.범죄인류학을 창시한 이탈리아의 법의학자 체사레 롬브로소는 매춘부들의 신체적 특징을 조사한 뒤 그들은 모두 좁은 이마와 비정상적인 코뼈,그리고 거대한 턱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나아가 과학자들은 창녀가 고통에 둔감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창녀의 몸에 전기충격 실험을 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들이 확인한 것은 매춘부들 역시 다른 여성과 마찬가지로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직업 전선에 나선 평범한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매춘, 정당한 산업으로 인정해야 저자에 따르면 매춘부들은 사회의 통념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매춘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그들은 성적 억압이 일상화된 가정을 떠나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되찾기 위해,혹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에 몸을 팔았다.그와 같은 맥락에서 매춘은 정당한 산업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자발적인 매춘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매춘에 도덕적 굴레를 씌워 게토로 몰아내는 것이야말로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평등한 지배구조를 영속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서울광장]'실미도’와 집단기억/이기동 논설위원

    실미도의 추억은 무장공비,위수령,10월 유신,대한항공기 폭파,남북대화 등으로 점철된 우리의 집단기억을 이렇게 파고든다. 관객 1000만 돌파를 눈앞에 둔 영화 ‘실미도’의 성공비결 중 하나는 이 영화가 중장년층의 집단기억을 건드린 것이라고 한다.영화는 실제로 지난 1968년 1월 포박당한 채 TV 카메라 앞에 끌려나와 “박정희의 모가지를 따러 왔수다.”라고 내뱉던 그 북한 군인의 말에서 받은 충격을 생생히 떠올려 주었다.그뒤 일어난 실미도 684부대원들의 비극적인 죽음.그때 여남은 살에 불과했던 중년의 ‘우리들’은 영화관을 나와 돌아오는 길에서도 내내 눈물을 훔쳐야 했다. 실미도의 추억은 무장공비,위수령,10월 유신,대한항공기 폭파,남북대화 등으로 점철된 우리의 집단기억을 이렇게 파고든다.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기억들은 계기만 있으면 이렇게 불쑥 되살아나 우리의 눈물샘,분노샘을 자극한다.영문도 모른 채 지옥훈련을 받고 “김일성의 목을 따오라.”는 명령을 받은 31명의 젊은이들.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화해 무드속 남북대화의 걸림돌 취급을 받게 되자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들이 죽은 날은 1차 남북적십자회담 접촉이 있은 이틀 뒤인 1971년 8월23일이었다.그로부터 꼭 1년 뒤 남북한은 평양에서 남북적십자회담 첫 본회담을 가졌다.남북화해를 앞세운 국가주의의 위력 앞에 실미도 대원들은 무력했고 이후 32년 동안 이들의 죽음은 역사 속에 묻혔다.하지만 북한 핵문제를 놓고 공방중인 현실을 보면 당시 그들의 죽음이 그들이 절규한 대로 ‘개죽음’이 된 것 같아 분통이 터질 뿐이다.국방부가 겨우 이들의 신원 일부를 확인했지만 진상규명과 이들의 명예회복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우리의 의식 속에는 한층 더 깊고 모질게 자리한 또 하나의 집단기억,6·25가 있다.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 전쟁의 추억을 되살려 준다.전장으로 내몰린 뒤 광기어린 살상기계로 변해가는 심성 착한 형제의 비극은 중년·노년의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품고 살아가는 악몽 같은 것이다.3년간의 전투에서 250만명이 죽고 수백만 이산가족의 한을 만들어낸 전쟁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념전쟁으로 세계전쟁을 구분한다.첫 번째 전쟁은 순수 아리안 혈통의 지배를 꿈꾸는 나치가 일으킨 2차세계대전이고 두 번째 전쟁은 노동자계급의 지배를 실현하려 했던 공산주의가 서방과 벌인 냉전이다.9·11 이후 전개되는 이슬람·기독교권의 이념전은 세 번째 대전이다.이슬람이 자살테러라는 무기를 들고 서구문명과 벌이는 전쟁이다.냉전의 틀을 못 벗어난 우리는 이 3개 전쟁의 요소들을 함께 안고 살아간다. 600만명의 동족을 아우슈비츠에서 잃은 유대인들은 지금도 생존에 대한 강박증을 안고 산다고 한다.6·25는 우리에게 ‘아우슈비츠’ 같은 것이다.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의식은 이 전쟁이 남겨준 강박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그래서 이 강박관념은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가장 손쉽게 호소하고 싶어하는 소재가 됐다.퍼주기와 홍위병 논란,반미와 숭미론,지난 대선을 장식한 촛불 시위대의 반미구호 언저리에도 전쟁의 추억은 예외없이 일렁거렸다. 친노(盧) 성향 단체인 국민참여 0415 등이 주축이 된 시민단체들의 선거활동을 장려해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야당이 불법 장려행위라고 들고 일어났다.친북세력의 발호를 우려한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을 비판하는 글과 이를 다시 비난·옹호하는 단체와 글이 뒤섞여 난무하고 있다.우리는 이렇게 해서 몇 안 남은 권위를 또 하나 잃어버렸다.김 추기경은 이제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다.이제 이 혼탁과 과열을 막을 이는 대통령뿐이다.만약 대통령이 지금처럼 올인 총선전략을 계속한다면 이는 국민들에게 정말 못할 짓을 하는 것이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
  • [종하랑 선영이의 베낭메고 60개국]②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와트 유적지는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앙코르의 사원들은 7∼11세기 사이 크메르 문명의 전성기에 만들어졌으며,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당시 크메르 제국의 황제는 앙코르에 앉아 남으로는 베트남,북으로는 중국의 윈난성,서쪽으로는 벵골만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통치했다고 한다.앙코르 왕조가 멸망함에 따라 앙코르와트는 정글에 함께 묻혀버렸고,수백년이 지난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에 의해 발견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캄보디아 씨엠립 킬링필드의 나라,선조들이 남겨준 유적 앙코르와트로 먹고 사는 나라,무장강도와 거지들이 여행자들을 강탈하고 구걸하는 나라,곳곳에 게릴라가 출몰하고 여기저기 지뢰가 묻혀 있는 나라…. 캄보디아에 오기 전 내가 갖고 있던 인상들이었다.그런 무서운 나라에 가는 게 겁나기도 했지만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유적지 앙코르와트를 봐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그리고 앙코르와트만 보고 얼른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태국 아란지방을 통해 국경을 넘었다.비행기로 오면 편했겠지만 배낭여행자들인 우리에게 비행기값은 한달 이상의 생활비와 맞먹었기 때문에 두 주먹 불끈 쥐고,심호흡을 하고 그 악명높은 국경넘기를 감행했다. 방콕에서 캄보디아 씨엠립까지 꼬박 하루 버스를 타고 ‘죽음의 길’ 비포장 국경지역을 달려 미지의 땅,무시무시한 나라 캄보디아에 밤늦게 도착했다.캄보디아는 전력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밤이 되면 온통 암흑세계가 된다.불안감이 가중된 우리는 빨리 숙소를 잡고 다음날부터 앙코르와트를 돌기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우리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연방 두리번거렸다.그런데….이상하게 나쁜 사람은 찾을 수가 없고 가는 곳마다 호의적이고 순한 사람들뿐이었다.물론 여행하기 위험한 지역도 있겠지만 최소한 이곳 씨엠립은 그리 위험한 것 같지도 않고 사람들도 너무나 순박하고 착해 보였다. 하루만에 캄보디아에 대한 나의 모든 편견은 여지없이 무너졌고,우리는 정작 앙코르와트 유적지보다도 사람들 사는 모습과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미소에 더 관심이 많아졌다. 캄보디아는 국민소득이 연 300달러에도 못미치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이지만 고단해보이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별로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캄보디아를 여행하면서 자꾸만 맘에 걸리는 것은 국경지대나 유적지 입구에서 만나는 어린이들이다.선조들이 남겨준 찬란한 유적지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얼 먹고 살까 싶을 정도로 캄보디아는 오직 이 유적지를 찾는 관광객에게 의존하고 있는 듯하다.전력도 수입해서 쓸 만큼 별다른 기간산업이 없다. ‘원 달러’를 외치며 계속 물건 하나만 사달라고 따라다니며 애원하는 대여섯살 정도밖에 안 된 어린이들.가난을 안고 태어나 가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 어린이들에게 이들의 신은 어떤 은총을 내려줄까….인간이 만든 최고의 아름다운 사원이라 칭송받는 앙코르 사원을 돌아보며 이 거대한 신전을 짓기 위해 무거운 돌덩이를 이고 나르던 고단한 백성들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인간에게 종교란 과연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 인터뷰 - 고교1년생 싼 보파양 씨엠립은 앙코르 유적 덕분에 캄보디아의 다른 지역보다는 생활수준이 높은 편.그래도 고교 진학률은 중학교 졸업생의 30∼40% 정도에 불과하다.이때문에 이곳의 고등학생들은 혜택받은 소수의 인텔리층에 속한다.씨엠립 외곽에 있는 왓 스배이(Wat Svay)고등학교 1학년생인 싼 보파(Ssan Bopha)도 그런 학생 중 한명이다. 학교 생활에 대해. -유치원을 포함해서 보통 7시에 수업을 시작해요.유치원은 2∼3시간,초·중·고등학교는 6시간 정도예요.교실이 많지 않아서 오전,오후반으로 나눠 공부해요. 방과 후나 방학에는 주로 무얼 하는지. -형편이 좋아서 대학진학을 할 수있는 애들은 공부를 더 하는 편이고,그렇지 않은 애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집에서 농사일을 도와요.방학도 농번기인 4월에 보름,6월에 한달 정도여서 가족들을 도와 들판에서 일을 하는 애들이 많아요. 이곳 고등학생들도 과외를 하나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따로 과외반을 모집해서 등록금 외에 별도의 과외비를 받고 영어나 수학 같은 주요 과목을 가르쳐요.그런데 시험에 나오는 내용들은 정규 수업시간보다 과외시간에 주로 가르쳐주기 때문에 형편이 되는 애들은 과외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관광가이드예요.돈도 많이 벌 수 있고,또 외국인을 많이 만날 수 있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이죠.그 다음으론 택시 운전기사인데,역시 돈을 많이 벌어서예요.저도 대학에 가면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관광가이드가 되고 싶어요. 학교시설이 훌륭해 보이진 않았지만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은 모두 밝고 건강해 보인다.캄보디아의 미래가 자신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을까.˝
  • 서울신문 창간 100년/새로운 100년을 준비합니다

    서울신문은 국내 현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올해 창간 100주년을 맞습니다. 1904년 7월18일 창간하여 항일운동의 선봉에 섰던 대한매일신보의 구국독립정신과 지령을 계승해온 서울신문은 민족의 고난과 영광을 함께 해왔습니다. 서울신문은 창간 100주년을 맞아 새 감각, 바른 보도로 독자 여러분께 한 걸음 더 다가갈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창간 100주년 기념사업'을 펼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바랍니다.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155마일 비무장 지대가 남북 해빙 무드에 따른 개발 요구로 환경 파괴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환경전문가를 포함한 생태계 탐사반이 DMZ를 따라 장기탐사활동에 나서 생태계의 보전 가치를 재조명하고 종합적인 보전 방향을 제시합니다. 오는 8월 제28회 올림픽이 열릴 아테네는 올림픽 운동의 발상지이자 서양 합리주의 사조의 뿌리인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국내 유수의 화가들과 함께 고대 유적지들을 답사, 그리스 신화에 얽힌 신비한 이야기들을 작가들의 회화작품과 함께 소개합니다. 발생 원인이나치료법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희귀질환이 수천가지나 됩니다. 본사는 로또공익재단과 함께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소개하고 최신 정보를 제공, 사회적 관심을 조성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희귀병 어린이 돕기 캠페인을 펼칩니다. 선진국 도약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부정부패 척결입니다. 서울신문은 깨끗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비전과 실천방안을 제시하는 캠페인을 반부패국민연대와 공동으로 전개합니다. 우수한 반부패 사례를 개발하고 실천한 개인과 단체 등을 선정, 반부패상도 시상합니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공동으로 제정, 민원을 우수하게 처리하는 기관과 개인을 매년 선정, 훈·포장과 표창 등 시상합니다. 시·군·구 및 교육청, 특별지방행정기관, 정부투자기관을 대상으로 제도 개선 및 특수시책, 집단·사이버 민원 처리 실태 등을 심사합니다. 시원한 한강변에서 연일 신나는 공연과 한국 영화를 무료로 즐기며 무더위를 날릴 수 있는 축제의 장을 마련합니다. 서울시·서울영상위원회와 공동으로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에서개최합니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 함께 멋진 추억거리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한강변에서 풀 코스와 하프 코스, 10㎞ 등 다양한 종목의 시민 마라톤축제를 서울시와 공동으로 10월3일(일) 펼칩니다. 내외국인 누구나 참가할 수 있습니다. 서울신문 하프마라톤은 5월23일(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엽니다. 5㎞, 10㎞, 하프코스. 올해 제24회로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서울현대도예 공모전 수상작과 함께 역대 심사위원 및 대상 작가 40여명의 작품을 비교 전시, 한국 도예의 진수를 선보입니다. 권순형 황종례 신상호 천복희 임무근 등 중진작가들이 참가합니다. 11월29일~12월4일 서울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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