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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영숙칼럼] ‘여우를 찾습니다’

    [임영숙칼럼] ‘여우를 찾습니다’

    사슴가족과 마주쳤습니다. 산자락을 끼고 도는 시골길을 자동차로 달리던 중이었습니다. 사슴이 출몰하니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설치된 길이었습니다. 저만큼 앞서 사슴이 길을 건너는 것을 보며 자동차를 세웠습니다. 어미 사슴을 따라 새끼 사슴 세마리가 길을 건너 해 저문 들판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우리 일행이 관찰 당하는 쪽이 되고 말았습니다. 새끼 사슴이 모두 길을 건넌 것을 확인한 어미 사슴이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한동안 쳐다 보는 것이었습니다. 경북 의성군 중앙고속도로에서 멧돼지 새끼 다섯마리가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는 보도를 보고 10여년전 미국 동부 지역에서 겪은 일이 떠 올랐습니다. 멧돼지 새끼들과 충돌한 자동차 운전자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차량통행이 적어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입니다. 그러나 사람과 야생동물이 그런식으로 마주치게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지난 1년동안 지리산 일대 4개 도로에서만 차량사고로 죽은 야생동물이 3000마리에 가깝다지요. 길을 너무 많이 만들고 야생동물이 지나갈 수 있는 생태통로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탓이랍니다. 최근 한달사이 네번씩이나 벌어진 서울의 멧돼지 출현소동도 그렇습니다. 분명 도심의 멧돼지는 문명속의 야만입니다. 아파트 주차장까지 휘젓고 다닌 멧돼지가 놀라움을 넘어 공포감을 안겨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더라도 인간이 길 잃은 멧돼지를 잡는데 ‘이토록 서툴어서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10월 환경운동단체 생명의 숲이 마련한 ‘양구 생태기행’에 참여했습니다. 소양호 선착장에 내리자 ‘여우를 찾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길가에 걸려 있었습니다. 작년 봄 죽은 여우 한마리가 양구에서 발견됐답니다. 지리산에서 여우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지 26년만이었습니다. 이에 양구의 환경단체 산사모(산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여우 찾기에 나선 것입니다. 여우가 살아 있을 것으로 확신한 양구군은 천연기념물인 산양 증식에 이어 여우 증식사업을 벌일 계획이랍니다. 양구는 자연생태계의 보물창고로 불리는 비무장지대(DMZ)와 민통선 면적이 전체의 7분의1을 차지하는 곳입니다. 역사적으로는 고통스러운 민족의 상처를 안고 있지만 생태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금강산 가는 길목에 자리한, 천연기념물 열목어의 최대서식지 두타연에서 우리 일행은 말을 잃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새벽녘 두타연 계곡에서 산양과 사향노루, 여우와 고라니가 노니는 모습도 상상해 보았습니다. 땅속에 묻힌 지뢰 때문에 50여년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속엔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스라소니, 표범과 반달가슴곰이 살아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내금강에서 발원해 파로호로 흘러들어가는 수입천은 요즘은 보기 힘든, 하천의 원래 모습을 간직한 아름다운 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양구군의 야생동물 피해 대책이었습니다.3년전부터 야생동물로 피해를 입은 농가에 3000만원의 예산을 책정해서 전액 보상해주고 있답니다. 예산 범위를 넘어선 피해농가엔 전기철책선을 설치해 주고요. 양구에서처럼 사람과 야생이 공존할 수는 없을까요? 사실 멧돼지 소동은 우리 생태환경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헐벗은 민둥산을 50년만에 울창한 숲으로 바꾸었듯이 DMZ와 민통선 지역을 앞으로 50년동안 고스란히 보존할 수는 없을까요? 생물종다양성, 유전자원이 국력인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논설고문 ysi@seoul.co.kr
  • 명품 50선만은 꼭 감상하고 오세요

    명품 50선만은 꼭 감상하고 오세요

    국립중앙박물관은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다 아우른다. 그 흔적을 다 살피기 위해서는 24시간도 부족하다. 유물 1만 1000여점의 위압감에 치여 관람을 포기하기 일쑤다.4만여평의 ‘광활한’ 박물관에서 길을 잃기도 십상이다. 6개 관과 특별전 등을 다 둘러볼 엄두가 안 나면 코스별로 관람하는 게 어떨까. 박물관이 선정한 명품이 테마별 관람 코스가 관람객들의 고민을 덜어준다.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위한 루트도 마련돼 있다. 코스만 충실히 다녀도 박물관의 절반 이상은 건지게 되는 셈이다. ●신라 금관·반가사유상과 만나다 박물관 추천 명품 50선은 주마간산(走馬看山)코스다. 이 것만 갖고 국립중앙박물관을 다 봤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러나 있을 건 다 있다. 관람의 ‘워밍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층 고고관, 역사관부터 시작해서 2층 미술1관을 거쳐 3층 미술2관, 그리고 다시 2층 기증관에서 끝난다.90분 정도 걸린다. 첫 만남의 상대는 요령식동검(遼寧式銅劍). 우리나라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검몸과 손잡이를 따로 만들어 연결하는 한국식동검의 원형이다. 신라금관도 빼놓을 수 없다. 번성했던 신라왕족의 힘과 권위를 나타내며 국보 제191호다. 국보 3호인 진흥왕 북한산비는 신라의 영토를 크게 넓힌 진흥왕에 의해 세워졌다. 조선 후기 금석학자 김정희가 비를 조사했던 행적이 새겨진 금석문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김홍도의 풍속도첩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서민들의 소탈하면서도 해학적인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국보 83호인 반가사유상은 이번 코스의 ‘백미’다. 입가에 머금은 그윽한 미소, 살아 숨쉬는 듯한 얼굴 표정, 상체와 하체의 완벽한 조화, 손과 발의 섬세하고도 미묘한 움직임 등이 이상적으로 표현된 동양불교 조각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한국 문화의 정수 100선 명품 100선도 50선에 뒤처지지 않는다.2시간30분 정도만 투자하면 전통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백제 무령왕비 관에 있는 관꽂이는 우아하면서도 섬세한 백제 문화의 대표작이다. 얇은 금판에 무늬를 새겼다. 중앙의 꽃병을 연꽃잎과 넝쿨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청자 칠보무늬 향로와 백자 매화·대나무·새무늬 항아리는 세계적인 명품인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대표한다. 각각 국보 95호와 170호다. 청자 향로는 음각, 투각, 상감 등 다양한 청자 기법이 집약돼 있다. 백자 항아리는 대나무, 매화, 새를 섬세하게 묘사해 한국적인 정서를 강조했다. 경천사 10층석탑은 1층 복도 맨 끝에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높이만 13m로 2층까지 올라와 있다. 대표적인 고려 후기 석탑으로 1층 가운데 부처님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등을 새겼다. 기증관에 있는 청동제투구도 코스에 포함돼 있다. ●테마별로도 즐기세요 우리 역사와 미술을 즐길 수 있는 테마별 코스도 마련돼 있다. 이웃 나라의 문화여행도 가능하다. 5000년 역사탐방기 코스는 한반도에서 문명이 발생한 구석기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 고고관과 역사관에 있다. 단축은 1시간, 기본 코스는 2시간 정도 돌아다니면 된다. 대표 유물로는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 ▲현존 최고의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고려 관리 허재의 석관 ▲구한말 대한제국의 황태자 책봉 금책 등을 만날 수 있다. 우리미술 바로알기는 그림, 도자기, 조각 등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전통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미술관Ⅰ·Ⅱ에 몰려 있다. 단축은 1시간, 기본은 2시간 걸린다. 여기에는 ▲18세기 작품인 작자미상 용감한 호랑이 ▲정조 임금의 서예 작품인 ‘임지로 떠나는 철옹 부사에게’ ▲고구려 6세기 작품인 원오리사지 출토 나한 입상 ▲조선 후기 이명기의 ‘강세황 초상’ 등이 있다.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등의 문화 유산을 감상하는 이웃나라 문화여행은 아시아관을 60분 정도 돌면 된다.▲중앙아시아 투르판 무르툭에서 가져온 ‘불법의 수호하는 신’ ▲중국 명 중기의 화가 임량의 ‘겨울 풍경속의 두마리 매’ ▲18세기 일본의 다색판화 작가 우케요에의 ‘도슈사이 샤라쿠, 생선장수 역할 배우’ 등 다양한 이국적인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청소년·어린이 코스 다양 박물관은 교실 밖의 훌륭한 역사·문화 학교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한 코스가 빠질 수 없다. 어린이 관람코스는 4가지가 있다.▲한민족의 시원(始原)을 보여주는 ‘선사시대 속으로! 맨처음 인류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삼국시대의 장신구를 소개하는 ‘청동에서 황금까지, 다채로운 고대의 장신구’ ▲번성했던 한민족의 불교 역사를 발견하는 ‘천년의 불교문화, 깨달음과 자비를 찾아서’ ▲조선조 다양한 계층의 문화가 담긴 ‘미술로 보는 조선의 생활과 예술’ 등이다.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관람시간도 각각 40분으로 짧게 잡았다. 수학여행을 온 청소년들을 위해 1시간30분,2시간짜리 코스도 있다. 신라의 금귀걸이, 감산사 미륵보살·아미타불 등 교과서에 나오는 유물들이 대상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김지하시인 연작 미학강의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김지하시인 연작 미학강의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유럽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죄다 한류 얘기를 합디다. 그걸 보니 우리도 문화입국까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학문과 기초예술 영역에도 한류가 일어나야 하는 시점에서 이 책이 한류의 미학적 뼈대를 마련하는 자극제가 되면 좋겠습니다.”10월 중순부터 2주 가량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 독일 교회의날 기념행사, 문명기행 등을 위해 독일, 체코, 그리스,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왔다는 김지하(64) 시인은 현지에서 직접 체험한 한류 이야기부터 꺼냈다. 미학강의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실천문학)는 바로 이 한류의 미학을 세상에 화두로 던진 책이다. 5∼6년 전부터 명지대와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했던 강의를 정리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는 1999년 출간한 ‘예감에 가득 찬 숲그늘’, 지난해 2월 내놓은 ‘탈춤의 민족미학’에 이은 시인의 미학강의 연작이다. 그가 제시한 ‘흰 그늘’의 미학적 개념은 동서고금의 여러 신화와 학문적 성과에 두루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를 테면 삼국유사의 고구려 유화편에는 방에 갇힌 유화가 흰 그늘(日影)을 껴안은 뒤 주몽을 낳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의식 저편에 가라앉은 욕구불만이 무의식에 축적됐다가 히스테리처럼 갑자기 튀어나오는 현상을 심리학자 칼 쿠스타프 융은 ‘그림자론’으로 설명한다. 그는 “우리 문학 가운데 정지용의 시집 ‘백록담’에도 흰 그늘의 이미지가 여러 차례 나온다.”고 덧붙였다. “그늘이 인생의 쓴맛과 단맛, 희로애락, 한을 표현한다면 흰빛은 신성함, 신명같은 것과 관련된다.”고 설명한 그는 “그늘과 흰빛, 한과 흥, 익살과 숭고미, 슬픔에서 신명에 이르는 통합적 미학은 인간의 정신적 천민화, 도회적 삶의 혼란상을 극복하는데 강한 소구력을 갖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한류의 미학적 근간을 ‘한(恨)을 동반한 흥(興)’에서 찾았다. 소문난 영화광답게 근래 감명깊게 본 영화를 예로 들었다.“너덜너덜한 삶이 만들어낸 한과 복싱의 흥이 어우러진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를 보면서 이유없이 눈물이 났다.”는 그는 “이런 난데없는 감동이 흰 그늘의 미학이며, 외국인들에게도 분명 감동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 직업은 둘인데 하나는 시인이고, 다른 하나는 형님”이라고 농담한 그는 “나는 미학자도 철학자도 아니다. 이번 책은 한류의 미학을 정립한 것이 아니라 형님으로서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떠냐.’고 미학자들에게 의견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류 현상을 뒷받침할 미학이나 예술이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져야 하고, 이는 한류의 성장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서양,위대한 창조자들의 역사/이바르 리스너 지음

    요즘 대중을 겨냥한 역사서들에선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 역사적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마지못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소설 주인공처럼 등장해 사건을 주도해 나간다. 수동태로 쓰여진 문장보다 능동태로 서술된 문장이 자연스럽듯, 똑같은 역사라도 인물을 앞세워 펼쳐 나간 책이 좀더 친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서양, 위대한 창조자들의 역사’(이바르 리스너 지음, 김동수 옮김, 살림 펴냄)는 서양이라는 7000년에 걸친 방대한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그 주인공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해 나간 책이다. 서양정신의 기원이 된 역사적 유산들과 사건들, 뛰어난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창조적 작품들이 어떻게 서양문화를 풍성하게 했는지 생생히 재현하고 있다. 책은 바벨탑으로 상징되는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부터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문화, 중세를 넘어 20세기의 서양 정신을 넘나드는 방대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저자는 때로는 모래가 휘날리는 바빌론 사막의 한 가운데서,7000년 전 거대한 신전을 세우려 했던 고대인들의 꿈을 이야기하고, 에페소스에 남아 있는 성모 마리아의 마지막 집으로 알려진 곳에선 서양에 미친 그녀의 정신적 영향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같은 방식으로 저자는 서양의 문학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탐구의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최초의 동서양의 충돌로 기록되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어떤 인물들이 유럽의 운명을 결정했는지, 세계를 뒤흔든 로마의 뒷골목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한 편의 다큐멘터리 프로를 틀어주듯 생생히 서술하고 있다. 자자는 역사의 주인공들을 딱딱한 동상이나 제단, 무덤으로부터 과감히 탈출시켜 생명 불어넣기를 시도한다. 책에 묘사된 각 인물들의 일화와 심리가 마치 코 앞에서 보듯 생생하다. 다른 사람의 아내로부터 유혹의 눈짓을 받는 요셉, 은신처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성모 마리아, 담벼락에 영원한 사랑의 낙서를 하는 폼페이 연인들,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베아트리체의 죽음으로 사창가를 전전하는 단테,“나를 표현할 시간이 더 이상 없구나.”라며 숨을 거둔 화가 세잔 등등. 이들뿐만 아니라 역사서에서 찾아보기 힘든 민초들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아 냈다. 프랑스혁명의 급진적 지도자 장 폴 마라를 암살한 25살의 처녀 샬로트 코르데이가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단두대에 섰던 일, 페르시아 병사가 전쟁의 와중에서 던진 중얼거림 등. 수천년 역사속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인물들이 어떻게 서양문명을 일구어 왔는지 물 흐르듯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는 서양 지성사 산책으로 읽어볼 만하다.3만 4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문명의 붕괴/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앙코르와트의 버려진 신전들, 정글에 감춰진 마야의 도시들,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석상들….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했던 문명의 흔적들을 보며 현대인들은 자연스럽게 의문을 갖게 된다.‘이들은 왜 지속·발전하지 않고 몰락했을까?지금 우리의 문명도 이들과 같은 운명을 맞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한 사회가 자멸의 길을 재촉하는 실수를 범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미국 뉴올리언스 사태나 쓰나미 참사, 이라크 전쟁 등 최근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악몽 또한 이같은 문명 몰락에 대한 불안감을 던져 준다. 문명 비판서 ‘총·균·쇠’로 퓰리처상를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이번엔 ‘문명 몰락’이라는 묵직한 테마에 돋보기를 갖다 댔다. 얼마전 폐막한 독일 프랑크루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화제를 모은 책 ‘문명의 붕괴’(강주헌 옮김, 김영사 펴냄)가 그것. ●이스터섬·마야의 문명이 몰락한 이유는? 책이 담은 내용의 줄기는 크게 두 가지.‘과거의 위대한 문명사회가 붕괴해서 몰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운명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저자는 이스터섬의 폴레네시아 문화에서 시작해서 아나사지와 마야에서 꽃피웠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문화, 그린란드에 식민지를 개척한 바이킹들의 불행, 그리고 현대세계까지 추적해 재앙의 기본 패턴을 찾아낸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서 붕괴의 조짐이 보이는 곳들의 상황도 점검한다. 저자는 문명 붕괴의 이유를 크게 다섯가지로 나눠 관찰한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이웃 나라와의 적대적 관계, 우방의 협력 감소, 사회문제에 대한 그 구성원의 위기 대처 능력 저하가 그것이다. 그중 가장 강조하는 것은 환경파괴다. 폴리네시아의 이스터섬의 운명에 대해 저자는 ‘순전히 생태적 붕괴’에 가깝다고 말한다. 무자비한 삼림파괴가 전쟁으로 이어졌고, 지배계급이 전복되면서 위대한 거석문화마저 사라졌다는 것이다. 마야문명 몰락의 가장 큰 원인도 환경 파괴로 분석한다. 인구 과잉과 환경파괴가 식량 부족을 가져왔고, 이는 다시 전쟁으로 이어져 문명의 붕괴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폴리네시아인들이 정착한 피케언 섬과 헨더슨 섬은 우호적인 이웃의 지원 중단으로 붕괴한 예. 이곳에도 환경훼손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주된 무역 상대국인 망가레바 섬이 환경문제로 인해 붕괴된 것이 치명타였다. 이는 경제적 종속 현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이다. ●20세기 이후에도 지구촌 곳곳 붕괴조짐 그렇다면 똑같은 문제에 직면해서도 살아남은 사회는 없을까?이는 곧 문명 붕괴 이유 중 다섯번째인 사회 구성원들의 대응의 중요성으로 연결된다. 저자는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의 예를 들어 몰락한 사회와 살아남은 사회의 극명한 차이점을 보여 준다. 노르웨이령 그린란드는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노르웨이의 지원 중단, 이누이트족과의 적대적 관계로 인해 붕괴를 면치 못한다. 반면 아이슬란드는 취약한 환경을 딛고 가장 풍요로운 나라 중 하나로 우뚝 서 있다. 이들은 원주민들의 생활습관을 받아들이고, 노르웨이와의 우호관계를 위해 노력했으며, 환경 파괴를 최소화했다. 저자는 오늘날 이같은 문명 붕괴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대표적인 곳이 소말리아와 르완다. 환경파괴와 가뭄, 전쟁 등으로 인해 사회 자체가 몰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곳이다. ●과거의 문명 몰락이 주는 교훈 잊지말자 그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 몬태나에서도 그같은 가능성을 내다본다. 아직도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지난 200여년간 자행된 각종 개발로 인해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앓고 있는 곳이다. 한때 가장 부유했던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전락한 이곳이 겪고 있는 상황을 이미 붕괴된 문명들도 겪었음을 상기시킨다. 저자가 보기엔 과거보다 오히려 현대사회가 더 붕괴 위험이 크다.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세계화로 인해 멀리 떨어진 곳의 붕괴 파장에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불어난 인구와 파괴적 첨단 테크놀로지 또한 당시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소말리아와 같은 붕괴조짐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과거의 문명 몰락이 주는 교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라고 지은이는 거듭 주문한다.2만 89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정글아이/자비네 퀴글러 지음

    “1970년대말 내 나이 5살. 선교사인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를 따라 들어간 서파푸아 오지 정글은 나에게는 문명세계보다 행복한 천국이었다.” 독일 국적으로 부모를 따라 인도네시아 서파푸아 정글에서 원시부족인 ‘파유족’과 함께 12년이란 시간을 보낸 백인 여자아이 자비네 퀴글러.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와 30대에 접어든 그녀의 삶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출간과 동시에 17개국에서 번역, 소개된 ‘정글아이’(자비네 퀴글러 지음, 장혜경 옮김, 이가서 펴냄)는 시간이 멈춰버린 정글에서 원시인 친구들과 함께 뛰놀았던 푸른 눈 백인 소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명세계와 고립된 낯선 땅에서 피부색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동물과 물고기를 잡았던 그녀는 식구들의 정글 적응기와 원시부족의 삶, 그리고 다시 문명세계로 돌아왔을 때 부딪혀야 했던 혼란과 갈등을 가식없이 담담하게 풀어낸다. 정글세계를 미화하지도, 문명세계를 비난하지도 않지만 꿈에도 정글이 나타날 정도로 정글세계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잘 그려진다. 파유족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구운 벌레를 간식으로 먹고 껌 대신 박쥐 날개를 씹으며 활과 화살을 갖고 놀면서 그들의 삶에 동화됐다. 병원도 없고 맛있는 아이스크림, 심지어 물을 담을 플라스틱 통조차 없지만 그녀의 가족에게 부족함은 없었다. 필요한 모든 것은 정글 자연속에서 얻을 수 있었고 정글의 충고에 귀 기울이면 모든 것이 해결됐기 때문. 그녀는 오히려 문명사회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털어놓는다.1년 내내 흘러나오는 온수, 원하는 건 뭐든지 살 수 있는 슈퍼마켓, 전기와 전화 등 없는 것이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과 담배에 의존하며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녀에게 문명세계는 정글 생활보다 더 많은 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글은 모든 것이 분명하다. 친구와 가족을 적으로부터 보호해야 하고 고기 한덩이라도 모두 나눈다.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간단명료한 것이다. 17세에 스위스 기숙사로 돌아오면서 문명세계를 접한 퀴글러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정글을 떠나고서야 기차를 처음 본 그녀는 문명의 ‘낯섬’과 ‘위험함’에 충격을 받는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극단적으로 다른 두 세계 사이에서 완전한 정글아이도 아니고 문명인도 아닌 채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방식의 삶을 인정하고,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배웠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퀴글러는 “10살짜리 아이를 혼자 정글 한 가운데 던져 놓는다면 살아돌아올 수 있지만 대도시 한 가운데 버려둔다면 분명히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복잡한 문명세계에 고립된 사람들이라면 문명밖 세계에서 산 정글아이가 들려주는 말에 귀를 기울여볼 만하다. 이미 익숙해진 ‘이성’이라는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말이다.1만 2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실크로드 동쪽 끝은 한반도”

    “실크로드 동쪽 끝은 한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한국을 보면 동쪽 끝에 외따로 박혀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래서인지 한국 하면 조용히 숨어있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서구중심적인 사고에 지나지 않을 뿐, 한국은 이미 오래전 세계화된 국가였다는 주장이 있다. 바로 실크로드를 통해서다. 이 문제를 짚기 위해 중앙아시아학회(회장 김호동 서울대 교수)는 4∼5일 이틀간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단순히 ‘비단 상인들의 길’이 아니라 ‘문명의 흐름’으로서 실크로드를 재조명해 보자는 것이다. 미리 배포된 발제문에서 고려대 정수일 초빙교수는 실크로드의 확대를 제안했다. 실크로드가 처음 드러난 것은 중국~인도간 교역로로서다.19세기말 탐험가들이 발견했다. 그 뒤 발굴과 탐험이 잇따랐고 이 길은 중국 시안에서 시리아의 팔미라에 이르는 기다란 길로 다시 태어났다. 이 길은 점처럼 흩어져 있는 오아시스를 잇는다 해서 흔히 ‘오아시스로’라고 불린다. 우리가 흔히 실크로드 하면 떠올리는, 모래바람부는 사막을 걸어가는 기다란 상인들의 행렬과 같은 이미지는 바로 이 오아시스로에서 온 것이다. 그러다 연구가 더 깊어지자 다시 북방초원지대를 통하는 ‘초원로’와 지중해에서 중국 동남해안에 이르는 ‘해로’ 개념도 등장했다. 이외에도 숱한 교역로가 확인되면서 이제 실크로드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 숱한 길들이 됐다. 정 초빙교수는 여기에다 아예 전세계를 뒤덮는 길로 실크로드를 재조명하자고 제안했다. 실크로드는 아시아와 유럽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대륙까지 연결됐다는 것이다. 그는 16세기 ‘대범선 무역’을 그 증거로 삼았다. 필리핀을 기점으로 중남미의 백은과 중국의 비단 거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정 초빙교수는 실크로드의 동쪽 끝을 중국이 아니라 한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조선과 고구려, 신라의 중국과의 교류를 보면 오아시스로와 잇대어 있다는 것이다. 해로 역시 유물로 증명된다. 백제왕릉에서는 동남아 특산 유리구슬이 나오고 중세 아랍문헌에서는 신라의 수출품목들이 나열되어 있을 정도다. 초원로는 아직 관련 연구가 부실해 명확한 증거만 없다뿐이지 활발하게 이용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 교수는 이런 증거들을 모아 실크로드가 한국까지 이어졌고 이것이 ‘세계 속의 한국’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소그드족을 가리키는 단어,胡 중국 왕조 가운데 국제적 교류가 가장 많았던 당나라에는 유독 ‘호(胡)’자가 들어간 것들이 많다. 호복(胡服)·호식(胡食)·호악(胡樂)·호선무(胡旋舞)·호희(胡姬)….‘오랑캐’라는 뜻에서 짐작할 수 있듯 중국이 북방 이민족을 부를 때 흔히 쓰이는 단어다. 그런데 일본 오사카대학 모리야스 다카오 교수는 당나라 때는 이 ‘호’가 바로 중국 서쪽에 있던 소그드족을 가리키는 단어였다고 주장한다. 소그드족은 중앙아시아 상인들로,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을 주도한 사람들이다. 다카오 교수가 보기에 실크로드에 대한 당나라의 입장은 들쭉날쭉하지만 그래도 일관되게 소그드족을 가리키는 단어로 ‘호’를 썼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바로 개국 초기 쇄국하고 있던 당나라가 시야를 넓혀 가고 있었다는 증거로 해석했다. 이외에도 이주형 서울대 교수, 우지용 신간문물고고연구소 연구원, 밸러리 핸슨 예일대 교수 등이 실크로드와 불교미술·복식·역사를 다룬 주제들을 발표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혁신 공기업 탐방] (29) 김호식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혁신 공기업 탐방] (29) 김호식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김호식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이 지난 6월 취임한 이후 줄곧 한 일은 공단의 모든 구조를 고객 위주로 바꾼 것이다. 영문명칭을 NPC(National Pension Corporation)에서 NPS(National Pension Service)로 바꿨다. 공단이 국민들에게 서비스하는 기관임을 분명히 명시했다. 홈페이지 주소도 npc.or.kr에서 nps4u.or.kr로 변경했다. 당신을 위한 기관이라는 의미가 추가됐다. 전국 지사에 설치된 가입자관리팀도 개인고객팀으로 바꾸도록 했다. 김 이사장은 31일 “공단 스스로가 고객을 위한 기관이라는 의식으로 철저히 재무장해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행정을 펼 수 있다.”면서 “연금기금은 안정성을 기반으로 수익성을 추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이 김 이사장을 만나 혁신전략을 들어봤다. ▶찾아가는 민원서비스 등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지난해 공단은 국민연금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오해로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이 커지면서 한때 상황을 맞기도 했다. 이에 공단은 고객 중심에 비중을 둬 업무절차를 개선하고 적극적인 고객 상담활동을 전개하는 등 국민 편의를 배려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해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자 전임직원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동상담실 전국 68곳 운영 1대1 맞춤 서비스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한다면. -고객 개인별로 상담내역을 전산화해 상담에 활용하는 ‘평생고객이력관리제’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보다 정확히 파악해 제공하는 1대1 맞춤서비스다. 원거리 고객을 위해 이동상담실을 전국 68곳에 운영하고 있다. 또 현장 캠페인인 ‘내 연금 알아보기 행사’와 연금제도 바로 알리기 사업인 제도설명회를 통해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불편한 점을 파악하고 있다. ▶현재 추진중인 전사적인 혁신전략을 설명해 달라. -혁신전략은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방향은 세 가지다. 첫째, 새로운 비전을 포함하는 전사적 경영혁신 마스터플랜을 수립 중이다. 세계화와 정보화 그리고 참여확대라는 세 가지 커다란 시대적 흐름에 걸맞게 국민연금의 새로운 비전을 정립하는 것이다. 둘째로 고객중심의 업무프로세스를 혁신해 수준 높은 서비스 조직으로의 탈바꿈하려 하고 있다. 셋째, 능력과 업적 중심의 인사관리를 통해 건강하고 실력있는 조직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그동안의 꾸준한 경영혁신이 성과를 거뒀나. -지난해 정부의 공기업 및 산하기관 경영혁신 평가에서 202개 기관중 종합 2위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올해는 기획예산처에서 주관한 212개 공공기관에 대한 혁신수준 진단에서 비수익기관 중 최상위 단계인 4단계를 차지했다. 또 올해 처음 시작된 정부산하기관 경영평가에서도 연기금운용 15개 기관중 3위를 차지했다. 올해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주관 콜센터서비스 품질지수(KSQI) 평가에서는 20개 공공기관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수급자 180만명 중 150만명이 노령연금 ▶국민들은 역시 기금이 잘 운용되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기금운용 현황을 설명해 달라. -지난 8월 말 현재 국민연금 기금의 자산규모는 시가기준으로 155조원이고, 매입가 기준으로는 147조 8000억원이다. 이는 규모면에서 전세계 연기금중 6위다. 금융부문은 144조 8000억원으로 전체의 97.9%를 차지하며, 채권 등에 132조 9000억원, 주식에 11조 4000억원, 대체투자에 5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출범한 1988년부터 지난 8월까지 모두 55조원의 수익금을 거두어 연평균 8.1%의 우수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올해도 저금리상황에도 주가상승에 힘입어 운용수익률이 7%를 상회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의 규모가 이렇게 늘어나면서 이를 운용하는 조직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기금은 투자계획, 집행, 위험관리 및 성과평가 등 운용의 전과정을 각각 전문성을 갖춘 부서에 기능별로 분담토록 해 운용의 전문성과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투자집행을 담당하는 기금운용본부는 86명의 각 분야 전문운용역들로 구성돼 있으며 본부내 각 팀은 투자계획, 투자집행, 리스크관리 및 성과평가 등 일련의 운용과정을 기능별로 분담하고 있다. 주식투자의 경우 자산배분은 투자전략팀이, 종목선정은 리서치팀이, 투자시점은 운용팀이 결정해 기능별로 분화하는 등 전문화돼 있다. ▶아직은 국민연금 수급자가 적은 편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가. -지난 7월 기준 180만명가량이 각종 연금을 수급하고 있으며, 이 중에서 순수 노령연금수급자는 150만명을 약간 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제도가 성숙단계에 접어드는 2020년에는 총수급자가 530만명에 이르고 2050년에는 1340만명까지 증가하게 된다. 이는 비록 장애연금 및 유족연금 수급자가 포함된 숫자이긴 하지만 65세 이상 인구 중에서 88%를 차지하고 있어, 향후 노후소득원 확보에 국민연금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담수준 높이고 급여 낮추는 연금제 필요 ▶국민연금제도 개혁이 국회에서 계속 표류 중인데. -국민연금제도는 초기 도입 단계때 ‘저부담·고급여’ 체계의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재정이 불안정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때문에 현재보다 부담수준은 높이고 급여수준은 낮추는 방향으로의 연금개혁을 해야 한다. 현행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는 가급적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해 사각지대 규모를 최소화하되, 빈곤노인에 대해서는 철저한 소득조사를 적용하는 공적부조제도를 통해 노후소득원을 보장하는 이원화된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대담 오풍연 공공정책부장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역점사업 CSA란 내년부터는 자기자산을 운영해 어떻게 노후를 설계할지를 상담하려면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찾으면 될 것 같다. 최근 민간 보험회사에서 경쟁처럼 번지고 있는 노후설계 프로그램을 공단도 제공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공단은 급격한 저출산·고령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노후 대비에 대한 필요성은 갈수록 높아지지만 개개인의 준비는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공단 관계자는 “안정된 노후 생활을 위해서는 젊었을 때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다방면에 걸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공단은 올 초부터 공단 연구원에 노후 설계컨설팅 TF를 설치해 외부전문가들과 함께 CSA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었다.CSA란 Consultant on Successful Aging의 약칭으로 성공한 노후설계 컨설턴트를 말한다. 공단은 이미 CSA양성 교재를 개발했고, 수차례 시범교육도 실시했다. 내년부터는 CSA 사내자격증제를 도입, 노후설계 컨설팅을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할 예정이다. 인력이 확보되는 대로 노후준비 지원시스템을 구축, 본격적인 노후준비 지원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복안이다. 전화·인터넷·이메일·방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CSA가 제공할 구체적인 서비스 내용은 세 가지다. 우선 건강·취미, 대인관계, 삶의 가치 등 다양한 관점에서 노후준비 방법을 제시하고 노화에 따른 신체적·심리적 변화에 대한 이해와 대응방법을 알려준다. 또 라이프사이클에 따른 여러가지 재무적 위험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가계자산 운용방법과 실천전략도 가르쳐준다. 마지막으로 국민 개개인의 노후준비 실태와 가계재무상태를 고려해 안정적인 노후생활 수입원인 국민연금을 기반으로 한 노후생활자금 확보방법을 설계해 준다. 공단은 CSA양성 프로그램을 외부인에게도 개방할 예정이다. 공단 관계자는 “국민연금 지사가 없는 시·군에서는 공단의 CSA 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한 외부인이 상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고객중심 경영’ 김호식 이사장은 김호식 이사장은 장관급 출신 가운데 처음으로 국민연금관리공단을 맡았다.150조원이나 되는 국민연금 기금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비중 있고 영향력 있는 CEO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이사장이 3차례의 공모 끝에 지난 5월 이사장에 내정된 것도 옛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국무총리실, 청와대 등에서 쌓은 다양한 국정경험에서 비롯됐다. 김 이사장은 원칙주의자다. 관세청장 재임 당시부터 청탁이 통하지 않는 기관장으로 유명했다. 김 이사장의 경영원칙 1호는 고객중심이다. 이 때문에 이사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는 공단의 부서 명칭을 고객중심으로 바꿨다. 종전의 ‘가입자관리실’을 ‘가입자지원실’로 바꿨다. 고객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지원 대상이라는 김 이사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최근에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리더십과 관련된 책을 직접 선정해 간부사원들에게 전달했다. 직원들에게는 PVDA(Passion,Vision,Decision,Action의 약자)를 강조하고 있다. ▲충남 논산(56) ▲서울고·서울대 무역학과 ▲행정고시 11회 ▲경제기획원 대외경제국장 ▲관세청장 ▲국무조정실장 ▲해양수산부장관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儒林(46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1)

    儒林(465)-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1)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1) 맹자의 대답 중 안연의 말을 인용한 ‘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도를 아는 사람은 또한 순과 같다.(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라는 문장은 누구든 성선지심으로 도를 닦으면 순과 같은 성군이 될 수 있음을 드러낸 명언이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맹자의 이런 ‘성선지설’은 서양철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스토아학파는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자연에 근거하여 공동의 이성법칙을 추구하였는데, 자연의 이성법칙에 따라서 행하기만 하면 이것이 바로 지선(至善)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성선설은 키케로(Cicero), 세네카(Ceneca)에서부터 루소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루소는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한 것인데, 문명과 사회제도에 영향을 받아 악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루소는 ‘자연이 만든 사물은 모두 선하지만 일단 인위(人爲)를 거치면 악으로 변한다. 그러므로 선은 천성에 속하고 악은 인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서양철학에서 루소가 ‘사람은 원래 선하지만 문명과 사회제도와 같은 인위를 거치면 악으로 변한다.’고 주장하였다면 동양철학에서 최초로 성선설을 주창한 맹자 역시 ‘사람은 선천적으로 선을 가지고 있지만 후천적인 환경과 감정의 제약 때문에 불선(不善)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부르짖었던 것이다. 맹자는 사람이 불선하게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들고 있다. 그 첫 번째는 ‘함닉(陷溺)’으로, 주위환경의 제약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그 속에 빠짐으로써 성선의 기초가 허물어져 드러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하는 주위환경이란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환경과 혼란한 사회악과 같은 외부적 상황을 뜻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다. “넉넉한 해에는 자제들이 풍년에 힘입어 온순해지는 것이 많고, 흉년에는 자제들이 포악해지는 것이 많으니, 이것은 선천적으로 자질이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빠뜨리는 것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이 문장에 나오는 ‘그 마음을 빠뜨리는 것’, 즉 ‘함닉’이 인간의 성선을 불선으로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 두 번째는 ‘곡망(梏亡)’이다. 곡망이란 인의지심(仁義之心)이 일어나지만 사리사욕의 훼방으로 성선의 마음을 잘 보존하여 기르지 못하고 오히려 소멸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맹자는 우산(牛山)의 나무를 들어 ‘곡망’을 다음과 같이 쉽게 설명하고 있다. “우산의 나무는 원래부터 아름다웠다. 그러나 큰 도시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땔감으로 쓰거나 목재로 사용하기 위해 찾아가 도끼로 베니,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는가. 또한 하늘은 비와 이슬을 내려주어 나무를 아름답게 자라나게 하지만 사람들은 소와 양을 방목하여 나무의 잎을 뜯어먹음으로써 반질반질하여진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원래부터 우산에 나무가 없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이 어찌 산의 본래 모습이겠는가.”
  • 한나라 서울시장 후보경쟁 ‘가속’

    한나라 서울시장 후보경쟁 ‘가속’

    한나라당 맹형규 정책위의장이 30일 서울시장 출마의지를 ‘공식화’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5월 치를 서울시장 출마준비를 위해 31일부터 정책위의장직을 사퇴한다.”면서 “정기국회 중에 그만두는 게 짐스럽지만 어차피 다음달 혁신위안이 통과되면 임명직 당직자는 물러나야하기에 미리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밝혔다. 맹 의장은 이날 ‘준비된 서울 시장 후보’임을 돋을새김하듯 ‘서울 재창조 프로젝트’ 1탄으로 ‘대한강(大韓江) 르네상스’도 발표했다. 그는 “산업화의 영광 속에 묻혀버린 민족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창의성을 ‘한강(韓江)문명’을 통해 부활시키기 위해 한강 유역의 생태환경을 복원하고 경제부흥과 문화부흥을 이루자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대학교수 등 전문가 그룹과 토론으로 구상한 실천작업으로 ▲강남북 연결 보행자 전용다리 ▲용산공원내 백범호수 ▲동부 지하고속화도로 조성 등 15대 핵심사업도 공개했다. 지난 27일 홍준표 의원에 이어 맹 의장의 ‘출마 선언’으로 당내 서울 시장 후보경쟁이 본격 점화될 전망이다.3선의 이재오 의원이 다음달 3일 출판기념회를 통해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고 박진·진영 의원 등도 출마 의사를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홍준표 의원은 출판기념회에서 “한반도 개조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에 앞서 서울 혁신, 서울 대개조를 첫째 과제로 삼을 것”이라며 출사표를 던졌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의원들 모임의 ‘분열 조짐’도 보인다. 서울시장의 경우 당내 최대 계파인 국민생각의 전 회장인 맹 의장과 현재 공동 회장인 박진 의원이 출마 의지를 비침으로써 두 사람을 둘러싸고 의원들의 분화가 예상된다. 당내 비주류 의원 모임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발전연)도 모양새는 비슷하다. 홍준표 의원과 이재오 의원의 한판 승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경기지사를 놓고도 발전연의 김문수 의원과 김영선 최고위원, 전재희 의원간 각축이 예상돼 소속 의원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국립중앙박물관 찾은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

    “새 국립중앙박물관의 출발이 감춰져 있던 한국문화를 세계에 제대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합니다.” 세계적인 지성으로 손꼽히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61·불로뉴 비앙쿠르시 부시장)이 한국을 찾았다.28일 국립중앙박물관과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새 박물관 개관을 기념하기 위해 ‘미래는 문화와 경제:미래는 문화에 있다’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 발표자로 참석, 문화한국의 미래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그는 심포지엄 발표에 앞서 기자간담회에서 “박물관을 둘러보니 장관이다. 이런 박물관이 한국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문화적 세계지도를 그릴 때 한국은 뒤처져있다고 생각해왔어요. 이번 새 박물관 개관으로 인해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외부에 알리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적인 불상과 고화, 문인들이 쓰던 생활품 등이 인상적이라는 그는 박물관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한국문명 전체가 모두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종교적 측면이 부족해요. 특히 서민들의 예술, 즉 대중적인 측면이 더 반영돼야 합니다. 과거와 오늘날, 귀족과 서민문화가 만나는 장소가 돼야 하는데 구현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는 한국문화가 ‘4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국1’은 공동체·계급간의 단합을 보여주며 ‘한국2’는 개인적인 생산체계,‘한국3’은 북한,‘한국4’는 이민세대를 의미한다는 것.“한국문화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논하려면 이들 4가지 문화를 모두 살펴야 합니다.4개의 한국이 갈등없이 풀려야 미래지향적인 세계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이런 차원에서 박물관에도 4가지 모습이 모두 담기면 좋겠다고 조언한다.“박물관이 ‘공동묘지’가 되지 않으려면 과거 유물 진열에 그칠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활동과 창작이 이뤄져야 합니다.” ‘한류’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아직 아시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한류가 지속되려면 민간차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의 활약이 컸고, 유럽에서 한국문학이 많이 번역, 소개되고 있다.”면서 “이문열·백남준이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외교사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논쟁이 끊이지 않는 ‘약탈문화재’ 반환에 대해서는 “모든 물건은 돌고 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소신론을 폈다. 그는 “박물관 소장품은 특정 국가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재산이어야 하며, 전시회 등을 통해 도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중앙박물관도 내년에 프랑스에서 전시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로 서구 국가들의 박물관 전시품들이 약탈하거나 훔친 문화재인데, 그동안 잘 보존하고 가꾼 점은 인정해야 한다.”면서 “훔쳤다고 볼 수도 있지만 구해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책꽂이]

    ●구텐베르크 수사들(한기 지음, 역락 펴냄)문학이 위기의 시대에 내몰리게 된 근본적 원인 탐색과 더불어 문학의 존재이유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담고 있는 평론서. 염상섭, 채만식 등 비판적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들에서부터 1990년대 이후 등단한 젊은 작가들에 대한 논평들을 실었다.2만 3000원.●변산바다 쭈꾸미 통신(박형진 지음, 소나무 펴냄)중학교 중퇴 이후 줄곧 땅을 갈며 살아온 농부시인의 진솔한 인생예찬. 소박하고, 청정한 시골생활을 맛깔스러운 전라도 사투리에 담아냈다.199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한 시인은 시집 ‘바구니속 감자싹은 시들어 가고’, 산문집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등을 펴냈다.8800원.●기발한 자살여행(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솔 펴냄)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자살희망자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통해 부조리한 현실과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풍자소설. 독창적인 인물 설정과 독특한 서술방식, 유머감각이 돋보인다.2004년 ‘유럽의 작가상’수상작.9500원.●이야기 파는 남자(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박종대 옮김, 이레 펴냄)철학소설 ‘소피의 세계’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저자의 장편소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기이한 운명을 짊어진 사내 페테르를 중심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 출판계의 어두운 뒷모습을 액자소설 형식으로 엮었다.1만원.●행복한 지붕수리공(요아힘 링에나츠 지음, 김재혁 옮김, 하늘연못 펴냄)길거리 카페 낭송시인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해 종전 후 현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새로운 개성의 작가로 부각된 저자의 소설집.‘생의 열쇠구멍을 통해서’‘누군가 들려주는 일리넵 이야기’ 등 국내 독자에게 소개되지 않은 단편 17편을 모았다.9000원.
  • 소설·산문집 들고 한국찾은 히라노

    “일본인은 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윤리가 종교를 대신하지도 못합니다. 지금은 잘 사는 사람이 승자로 대접받고, 못사는 사람이 패자로 손가락질 당하는 경제지배의 시대가 돼버렸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이것이 작가로서 평생을 안고 갈 관심사입니다.” 1989년 교토대 법학부 재학중 ‘일식’으로 아쿠타카와상 최연소 수상기록을 세우며 일본 신세대 문학의 기수로 떠오른 히라노 게이치로(30). 우리말로 번역된 ‘일식’‘달’로 국내에도 상당수 팬을 확보하고 있는 그가 산문집 ‘문명의 우울’(염은주 옮김)과 장편소설 ‘장송’(전2권·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펴냄)의 번역 출간과 강연회 참석차 방한했다. ‘문명의 우울’은 한 일간지에 2년 간 연재한 글을 묶은 것으로, 시사적인 현상과 사건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분석한 에세이집.‘장송’은 1848년 2월 혁명을 전후한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쇼팽, 들라크루아, 조르주 상드 등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 1년간의 자료수집과 3년간의 집필과정을 거쳐 탄생한 ‘장송’(2002년)은 낭만주의 예술철학을 다룬 예술가 소설이자 심리소설이며, 당대 사회상을 세밀하게 묘사한 풍속소설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 맞춰 발자크, 플로베르 같은 19세기 작가들의 문체를 염두에 둔 점도 흥미롭다. 신에서 인간으로, 전통에서 현대로 이행하는 유럽 근대화시기는 문명의 폐해와 물질만능주의로 위기에 처한 오늘날의 풍경과 자연스레 겹쳐진다. 국내에서 인기있는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주로 섬세한 심리묘사와 감성에 무게중심을 둔 반면 그의 소설은 진지한 주제의식과 작품마다 자유자재로 변하는 문체의 다양함을 무기로 삼고 있다.“한살 때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는 그는 다음 작품에서 ‘살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1년 간 프랑스 파리에 머물다 지난 8월 돌아온 그는 고향인 교토를 떠나 현재 도쿄에서 살고 있다.27일에 이어 28일 오후4시30분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이야기-전달한다는 것’을 주제로 강연회를 연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실전논술] 두 글의 공통된 역사관과 타당성 여부

    다음 두 글은 역사를 보는 공통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읽고, 두 글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역사관의 내용이 무엇인지 간략히 요약한 다음, 그러한 역사관이 타당한지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할 것.) (가)창조적 인물이 나타날 때에는 다행히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몇 사람은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는 타성적이고 비창조적인 대중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사회적 창조의 행위는 창조적 인물 개개인의 노력이거나 아무리 많아도 창조적 소수의 노력이다. 그러므로 잇따른 전진이 있을 때마다, 그 사회 구성원의 절대 다수는 뒤떨어지게 된다. 오늘날 세계에 현존하고 있는 위대한 종교들, 즉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힌두교를 보면 우리는 이름만 신자인 대다수의 사람이 입술로만 고백하는 신조가 아무리 고매하다 할지라도 종교에 관한 한 순전한 이교 정신과 별로 멀지 않은 정신적 분위기 속에 아직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대 물질 문명의 업적도 마찬가지이다. 서구 사회의 과학 지식과 그것을 응용하는 기술은 위험할 만큼 밀교적(密敎的)이다. 민주주의와 산업주의라는 새로운 사회의 위대한 흐름은 극소수의 창조적 소수가 일으킨 것이고, 인류의 대다수는 아직도 이 거대한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기 이전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지적 중간점, 도덕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실 ‘땅의 소금’을 자처하는 서구 세계가 왜 오늘날 그 맛을 잃어버리려는 위험에 처하고 있느냐 하는 주요한 이유는 서구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인간들은 아직도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성장은 창조적 개인들이나 혹은 창조적 소수의 세력에 의해 성취된다는 사실은, 선구자들이 열성적으로 전진할 때 그 게으른 후위 부대를 같이 이끌고 가는 어떤 방법을 강구하지 못한다면 이 비창조적 다수는 뒤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지금까지 연구한 문명 사회와 원시 사회의 차이에 대한 정의를 수정할 필요를 느낀다. 이 책의 첫 부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원시 사회들은 정지 상태에 있는 데 반해 문명들은-발육 정지 문명은 제외하고-동적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오히려 성장하고 있는 문명들은 그 사회 내부에서 창조적 개인의 동적 운동이 행해지고 있기 때문에 정지 상태의 원시 사회와 다르다고 고쳐 말해야 되겠다. 그리고 이 창조적 인물들은 아무리 그 수가 많은 경우라도 결코 적은 소수를 넘지 못한다고 덧붙여 말해야 되겠다. 어떠한 성장기의 문명에 있어서도 거기 관여하는 개인의 대다수는 정지한 원시 사회의 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침체된 정지 상태에 있다. 그리고 또 성장기의 문명에 관여한 대다수는 교육이라는 겉치장을 지워 버리면 원시인과 마찬가지의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성을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격언의 진리성을 발견한다. 탁월한 인격들, 천재들, 신비가들 혹은 초인들-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이란 평범한 인간성의 덩어리 속에 있는 누룩 이상이 아니다.(중략) 창조적 힘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불붙이는 것은 틀림없이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전적으로 거기에 의지한다는 것은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이다. 비창조적인 일반 대중에게 창조적 선각자들과 동일한 행동을 취하도록 하는 문제는 순전한 모방(mimesis)의 능력-인간성에 별로 고귀하지 않은 능력의 하나로서 영감보다는 훈련에 의해서 길러지는-을 활동시키지 않고는 실제 사회적 규모로 해결될 수는 없다. 어쨌든 ‘모방’은 미개한 인간이라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통상적 능력의 하나이기 때문에,‘모방’을 하는 것은 당장의 목적을 위하여 불가결하다. 우리는 앞서 ‘모방’은 원시 사회에서나 문명 사회에서나 공통된 사회 생활의 일반적 특징이지만 그것은 이 두 종류의 사회에서 각각 다른 양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정지 상태의 원시 사회에서는 ‘모방’은 살아 있는 사회 구성원 중의 연장자와 사자(死者)를 대상으로 하지만, 문명이 발전되는 역사 과정에서는 ‘모방’의 능력이 새로운 흐름을 시작한 창조적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게 된다. 능력은 동일한 것이지만 향하는 방향은 반대이다. (나)여기서 우리는 잠시 동안 위인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이 이 세상사에 등장한 방식에 대하여, 또한 위인들이 세계사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이루었으며, 사람들이 위인들을 어떻게 생각하였으며, 위인들은 어떠한 일들을 하였는가 등등에 대하여 말하도록 하겠다. 즉, 영웅과 그가 받은 대우 및 그들의 공적, 그리고 이른바 영웅 숭배와 인간사에서의 영웅적인 것에 대하여 말하도록 하겠다. 물론 이것은 큰 주제로서 우리가 여기서 시도할 수 있는 접근 방식과는 아주 다른 접근 방식이 마땅히 필요한 주제라는 점은 너무도 분명하다. 이 주제는 큰 주제로서, 정말로 제한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를 가진 주제이며, 보편적 역사 자체만큼이나 광범위한 주제이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어 놓았는지를 기록하고 있는 보편적 역사는 근본적으로는 이 세상에서 활동한 위인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인들이야말로 인류의 지도자였다. 이 위대한 사람들은 일반 대중이 이루고자 했거나 얻고자 했던 것의 모델을 제시하는 사람이자, 모형이자, 넓은 의미에서는 창조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세계 속에 성취되어 있는 모든 것은 바로 세상에 나왔던 위인들이 품고 있던 사상이 외적으로 드러난 물질적 결과이며, 실천적으로 실현되고 구현된 것이다. 따라서 전 세계 역사의 진수는 바로 위인들의 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것이 여기서 충분히 다루어질 수 있는 주제임은 너무나도 명백한 일이다. ● 지문의 분석 (가)는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12권 중 한 부분이다. 역사가 토인비의 필생의 작업이 담겨있는 책으로 독특한 역사관을 제시하고 있는데,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에 발표되자마자 서구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복잡하고 오랜 인류 역사에 대해 단순한 해석에 끝나지 않고, 그 해석에 기초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를 위한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이 책에서 토인비는 우선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문명을 역사 연구의 주요 단위로 설정한다. 그런데 문명은 계속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흥망성쇠의 과정을 겪는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적 반복’을 ‘도전과 응전’이라는 틀로 개념화한다.‘도전과 응전’이라는 틀이야말로 ‘역사의 연구’에서 제시되는 핵심 개념이다. 토인비는 바로 ‘도전과 응전’이란 틀에 의해 문명의 발생과 몰락을 설명한다. 그는 문명이 특별히 좋은 조건으로부터 저절로 발생한다는 관점을 비판한다. 문명은 자연 환경이나 앞선 문명의 해체에서 오는 자연적, 사회적 도전에 대해 응전함으로써 발생하고 성장한다. 그런데 이때 응전의 주체로 ‘창조적 소수’가 설정된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와 비창조적 다수를 구분한다. 문명이 한참 성장할 때에는 비창조적 다수가 창조적 소수를 기꺼이 따르고 모방함으로써 일체감이 형성되어 문명은 통일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창조적 소수의 창조성이 약화되고 이에 따라 지도력이 결핍되어 사회의 통일성이 깨어지면, 다수와 소수의 조화의 상실은 곧 문명의 좌절로 이어진다. 따라서 새로운 도전에 응전할 수 있는 새로운 창조적 소수가 끊임없이 등장할 때에만 문명은 유지될 수 있다. (나)는 칼라일의 ‘Worship and the Heroic in History’로 자유의 힘이나 자연 과학의 성과를 중요시하는 계몽주의의 역사 서술에 대한 반발로 등장하는 낭만주의적 역사 서술의 기본 관점을 보여 주고 있다. 칼라일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는 현명한 자가 지배하고 무지한 대중이 여기에 복종할 때 발전할 수 있다. 따라서 독재자도 현명하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인정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서술에서도 정치적, 사회적 문제보다는 현명하고 강력한 개인, 즉 위인이나 영웅의 특징적인 성격을 묘사하는 개인 전기에 중점을 두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본다. ● 출제의도 역사 발전의 주체가 엘리트인가 대중인가 하는 물음은 그 자체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전적 논쟁거리이다. 이 문제의 경우, 논의가 추상적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소수 엘리트를 역사의 주체로 보는 입장을 제시문으로 주고 이에 대한 찬반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초점은 둘째 요구 사항에 모아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요구 사항은 핵심만 짚으면 간략히 처리하면 된다. ● 생각하기 이 문제처럼 제시문에 대하여 찬성 또는 반대의 입장을 제시해 보라는 ‘입장 선택형’ 문제의 경우, 일반적으로 다음 세 가지 사항을 충실히 따져 보아야 한다. 첫째, 절충적인 대답이 가능한지 검토해야 한다. 입장 선택형 문제라고 해서 반드시 양자 택일의 논지만 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경우 두 제시문은 역사 발전의 주체는 영웅이나 창조적 소수이고 다수 대중은 소수를 모방해야 할 종속 변수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정반대 논지는 문명 성장의 주체는 다수 대중이지 소수의 천재들은 실제로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제3의 논지도 가능하다. 즉, 소수의 엘리트와 다수 대중에 서로를 자극하면서 유기체적인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야만 사회 발전이 가능하다는 논지도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제시문의 입장을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보더라도 정반대의 논지를 펼 것이지 제3의 절충적 논지를 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둘째, 입장 선택형 문제는 논증력을 측정하는 것이 주안점이기 때문에 이 문제의 경우도 가능하면 답안을 논쟁적으로 구성하고 노력해야 한다. 논쟁적인 답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입장에 대한 적절한 근거도 제시해야 하지만, 특히 상대 입장에 대한 효과적인 반론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입 논술처럼 비교적 짧은 글에서는 결정적인 반례를 제시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제시문에 찬성할 경우에는 다수 대중이 가진 부정적 성격을 부각하여야 할 것이고, 정반대의 논지를 택할 경우에도 엘리트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여야 할 것이다. 제3의 절충적 논지를 택할 경우에는 엘리트와 다수 대중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보는 입장이 가진 문제점을 분명히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이 문제의 경우 제시문을 요약하는 요구 사항 때문에 좀 복잡해질 수 있지만, 답안 구성에서 미괄식과 두괄식 중 어느 쪽이 효과적인지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입장 선택형 문제의 경우 두괄식 구성을 통해 첫 단락에서 자신의 입장을 미리 밝혀주는 것이 훨씬 더 명료한 글이 될 확률이 높다. 채점자가 우선 궁금한 것이 바로 학생의 결론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문제나 답안의 성격에 상관없이 무조건 미괄식으로 구성하는 타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어떻게 쓸까 이 문제의 논의의 주제는 개략 역사의 주체로서의 엘리트 정도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제시된 글의 논점을 추출해 논의를 전개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제문은 대중을 이끄는 개방적인 창조적 엘리트야말로 역사 발전의 주체라는 정도로 잡으면 될 것이다. 서론 부분에서는 문제의 조건에 충실하게 논의의 방향과 화제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제시문을 정확하게 요약하는 것이 초점이 된다.(가)에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이란 틀에 의해 문명이 발생하고 몰락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문명은 자연적, 사회적 도전에 대해 응전함으로써 발생하고 성장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 창조적 소수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데, 새로운 도전에 응전할 수 있는 새로운 창조적 소수가 끊임없이 등장할 때에만 문명은 유지될 수 있다는 관점을 보이고 있다.(나)에서는 사회는 현명한 자가 지배하고 무지한 대중이 여기에 복종할 때 발전할 수 있다는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을 요약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면 된다. 즉, 소수의 엘리트를 역사의 주체로 보는 두 제시문의 공통된 관점은 타당하다는 정도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본론에서는 그러한 논의의 방향과 관련해 핵심적인 논의를 전개하면 된다. 특히 그러한 논의의 근거로 대중이 지니고 있는 한계와 사회 발전을 위한 엘리트의 역할에 대해 핵심적으로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결론 부분에서는 논의를 요약하면서 마무리를 하되, 본론 부분에서 논의한 내용에 대한 제한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마무리를 하면 논의가 완결되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석혹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2/전국 역사교사모임 엮음

    ‘세계사’ 하면 유럽과 중국 역사를 연상할 정도로 우리가 접해온 세계사 역사서는 특정 지역의 비중이 높았다. 특히 서구 중심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옮겨와 세계 역사를 보는 시각이 서구화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지구상에서 다양하게 펼쳐진 인류의 역사를 한국사와의 연관속에서 그려낸 역사서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1,2’(휴머니스트 펴냄)는 이런 점에서 단연 눈에 띄는 책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소속 10명의 교사들이 ‘한국인의 눈으로 세계사를 읽는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세계사를 재구성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세계사 집필에서 유럽사와 중국사에 지나치게 쏠렸던 비중을 확 줄였다. 대신 역사적인 문명권 개념에 지리적 구분을 가미하여 유럽, 서아시아, 남아시아, 동아시아의 4대 문명을 중심으로 삼았다. 여기에 그동한 소홀히 다루었던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도 비중있게 다룸으로써 세계사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혔다. 제1권은 국가와 국가, 지역과 지역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에 주목하면서 ‘문명과 관계 속에서’ 국가와 지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제2권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통해 형성된 자본주의, 국민국가, 세계체제를 근대의 특질로 삼아 근현대사를 조명했다. 각권 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두 남편을 사육하는 아내

    두 남편을 사육하는 아내

      한 여인이 두 남편을 사육하고 있다. 이「남편들」은 정확히, 그리고 의좋게 보름씩 아내를 위해「교대근무」를 한다. 경남 통영군내 외딴 산골의 김춘자(34·가명)씨 일가.「세컨드」남편까지 거느린 이 여인의 행복을 일러「남복」이라 해야 할까. 산골 외딴집에 1처(妻) 2부(夫), 두 남편은 완전한 평등권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산골의 외딴집에 기구한 운명이 갈라놓은 한 여인의 두 줄기 사랑이 침침한「베일」속에 가려진 채 흐느끼고 있다. 한 몸으로 두 남편을 섬겨야 하는 숙명 아닌 숙명이 그를 묶어놓고 있다. 자그마치 10년이란 세월을 두고 두 명의 남편을 변함없이 섬기고 있는 김춘자 여인.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부도덕한 여자라고 욕한다. 그러나 그에겐 사랑과 동정과 책임감이 흐르고 있다. 경남 통영군내 산간 마을 국도변에서 동쪽으로 5리 남짓 가면 나지막한 야산이 나타난다. 멀리까지 인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 산중턱 후미진 곳에 황토흙과 돌멩이만으로 쌓아 올린 토담집 한 채가 있다. 바로 여기가 김여인의 순박한 애정이 두 묶음으로 나누어져 2대 1의 가정을 이끌고 있는 1처 2부의 요람. 토담집 방은 둘 뿐, 부엌도 변소도 제대로 없는 야산의 움막이다. 두 명의 남편에겐 김여인을 가질 수 있는 똑 같은 자격과 권리가 부여되어 있다. 김여인 자신도 사랑의 척도를 똑같이 재고 있다. 한 명은 최모(37)씨, 또 한 명은 박모(40)씨라고 했다. 둘 다 뱀잡이로 생활하는 땅꾼들 - . 이들에게도 부부생활의 준칙이 설정되어 있다. 1녀 2남의 3인 구두언약이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김여인은 이 토담집을 하루도 떠나지 못하고 두 남편은 15일간씩 외근(?) 활동을 교대로 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것. 뱀잡으러 외근을 보름씩, 돌아올 땐 생필품 사들고 최씨가 보름 동안 뱀을 잡아 시장에 갔다 판 수익금을 갖고 식량과 일용품을 사 들어오면 그 동안 부부생활을 하던 박씨는 날짜의「에누리」없이 망태를 둘러메고 뱀을 잡으러 떠나는 것이다. 그사이 최씨는 보름 동안 잊었던 아내를 다시 맞아 부부애를 만끽하면서 보름 후에 다시 돌아올 박씨를 생각한다는 것. 그러나 최씨와 박씨의 방만은 다르다. 두 개의 방 중 오른쪽은 최씨, 왼쪽 방은 박씨 방이다. 결국 아내가 보름마다 한발 건넌방으로 이사(?)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도 이들 사이엔 아기가 없다. 아내가 잉태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허다한 가정처럼 복잡한 가재 도구는 필요없다는 것. 옷과 이불을 얹을 수 있는 낡은 농 하나씩이 양쪽 방에 있고 두 방 사이에 부엌 삼아 솥 하나 걸어놓고 물동이 하나, 밥그릇 몇 개가 뒹굴고 있을 뿐 - . 물론 전깃불이며「라디오」등 문명의 혜택을 입은 기구는 하나도 없다. 등잔불과, 보름간의 날짜를 기록하는「캘린더」가 이들의 중요한 생활도구 - . 그래도 옷들은 누구 못지 않게 깨끗하다. 기자가 찾은 날도 김여인은 자색 털「쉐터」에 양단치마를 입고 예쁘장한 얼굴에 약간의 화장을 하고 있었다. 마침 당번 근무(?)중이던 박씨도 검은 양복에다 약간 낡은「파일」외투를 입고 나왔다. 옷들은 뱀잡아 번 돈으로 보름간의 외근을 마치고 귀가할 때 시장에서 사들고 온다는 것. 박씨는 낯선 손님들이 찾아들자『또 경찰서에서 왔습니까?』라고 당황스럽게 물으면서 무척 꺼려하는 눈치였다. 관할 경찰서에서 너무 외딴집에서 생활하는 이들을 수상히 여겨 여러 차례 조사를 해갔다는 것. 3년 전엔 갑자기 밤중에 4~5명의 경찰관들이 토담집을 포위, 심한 가택수색까지 한 일이 있는데 그때도 아랫마을 사람들이 이들의 거동이 이상하다고 경찰에 정보를 제공, 출동했다는 이야기다. 쉽사리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 이들의 말을 대충 종합해본 생활동기는 - . 김여인의 고향은 고성군 거류면 - . 아버지가 역시 땅꾼이라 했다. 지금의 두 남편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뱀잡이를 배웠다는 것. 김여인이 스무 살 때 두 사람 중 나이가 많은 박씨에게로 시집을 갔다. 병으로 집나갔던 남편이 개가(改嫁)하자 뜻밖에 돌아와 두 사람은 가난하면서도 단란한 가정을 꾸며 제나름대로의 행복을 누렸다. 결혼 이듬해에 박씨에겐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내려졌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손가락이 굽어들고 전신이 험하게 헤지면서 난치의 환자라는 굴레가 씌워진 것이다. 박씨는 말없이 집을 떠나 어디론지 발길을 옮겼다. 아내는 처가에 맡겨두고 - . 3년이 넘어도 남편의 소식은 감감했다. 김여인의 아버지는 지금의 최씨에게 재혼을 시켰다. 최씨도 당시 총각으로 김여인을 극히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지금의 2대 1 가정의 시발점이었다. 최씨와 재혼 생활 2년만인, 그러니까 박씨가 떠난 지 5년 만에 박씨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 멀리 떨어진 섬에 가서 난치의 병을 깨끗이 고치고 아내를 찾아온 것이다. 돌아온 남편 버릴 수 없어, 할 수 없이 가족회의 끝에 이미 때는 늦었다. 그러나 아내는 첫 남편을 버리지 않았다. 아무리 난치병 환자라 해도 버릴 수는 없다고 나섰다. 사랑보다도 동정이 앞섰고 동정보다도 아내였다는 책임감 때문에 박씨를 붙잡고 용서를 빌었다. 최씨도 김여인을 버릴 수 없다고 버티었다. 어쩔 수없이 가족회의를 열었다. 김여인의 아버지를 참석시키고 두 명의 남편과 아내는 함께 살자고 약속했다. 이웃과 친척들의 눈이 무서워 인가 많은 마을을 피해 지금 살고 있는 이곳 산중턱에다 집을 짓고 살자고 - . 이 자리에서 맺어진 언약이 바로 보름간의 교대근무(?).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도 이 언약의 위반행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부부사이에 말이 없다는 것 뿐이다. 침묵으로 남편을 맞고 또 보내는 것이 아내의 변함없는 사랑의 표시였다. <공하종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3/16 제2권 11호 통권 제25호 ]
  • 코소보 ‘독립의 길’ 열린다

    코소보 ‘독립의 길’ 열린다

    수백년 동안 갈등과 혼란이 지속돼온 코소보의 독립 문제를 논의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4일 개막됐다. 코소보에 ‘조건부 독립’ 지위가 부여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코소보 다수 민족인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 정부 모두 반대하고 있어 험난한 일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독립 뒤 주권 제한될 듯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이날 ‘코소보 독립을 향한 길이 마련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안보리 회의를 기점으로 코소보 독립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코소보 지역 유엔 특사인 카이 에이드는 4개월 동안의 활동을 마치고 코소보 상황에 대해 이사국들에 보고했다. 앞서 지난 7일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보고를 받은 뒤 “코소보의 독립과 자치에 대한 논의를 곧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코소보의 지위는 ‘조건부 독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은 하되 당분간 주권이 제한된다는 것을 뜻한다. 대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 대표단이 주요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이다.10만명 정도인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 주민들에게는 상당부분 자치권이 인정될 전망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상세한 부분까지 논의되려면 앞으로 9개월 가량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별로 나누면 전쟁으로 이어질 것” 이에 대해 알바니아계, 세르비아 양측 모두 반발하고 있다. 보이슬라프 코스투니차 세르비아 총리는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일부이며,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인디펜던트는 “세르비아인들에게 코소보는 ‘문명의 발상지’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코소보 독립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바니아계가 장악하고 있는 코소보 자치정부의 바즈람 코수미 총리 역시 로이터와의 회견에서 “코소보는 독립적인 주권국가가 돼야 하며, 어떠한 조건도 붙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약에 민족별로 지역을 나누고 자치를 인정한다면 이는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14세기부터 갈등 이어져 코소보의 비극은 1389년 오스만투르크가 세르비아와의 전투에서 승리, 코소보를 점령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이슬람계인 알바니아인들이 대거 이주, 현재는 200만 인구 가운데 90% 이상을 알바니아계가 차지하고 있다. 이후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코소보는 세르비아에 편입됐고, 세르비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원이 되면서 코소보도 유고의 일부가 됐다. 한동안 잠잠했던 코소보에 피바람이 불어닥친 것은 1989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당시 유고 대통령이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면서부터다. 알바니아계는 독립을 선언했고, 마침내 1998년 양측은 무력충돌했다. 이른바 ‘코소보 사태’가 벌어지면서 밀로셰비치는 ‘인종청소’라는 명분 아래 알바니아계 주민 1만명 이상을 학살하고 80만명을 추방했다.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엔이 개입, 정전협정이 맺어져 평화유지군이 주둔한 가운데 불안한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이야기꾼들이 뒤집어 본 신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종교 연구가인 카렌 암스트롱은 ‘절대적으로 유일하고 정설인 신화는 없다.’고 단언한다. 신화란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유효하기 때문에 진실인 것이며, 시대와 상황이 변함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유효하게 변경되는 것이 신화의 존재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유효한 신화는 어떤 모습일까. 각국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참여해 역대 신화들을 재조명하는 세계적인 출판 프로젝트로 주목받아온 ‘세계신화총서’가 6년 간의 준비끝에 1차분 3권을 내놓았다.20일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의 기자회견에 맞춰 전 세계 31개국에서 동시 출간된 ‘세계신화총서’(문학동네)는 1999년 스코틀랜드 케넌게이트출판사의 수석편집자이자 발행인인 제이미 빙이 기획한 것으로 2038년까지 모두 100권을 만드는 거대 프로젝트다. 출판사는 작가들을 섭외하고, 원고량(한국판 기준 200쪽 내외)을 정해줄 뿐 다루는 신화의 내용이나 형식은 전적으로 작가의 판단에 맡긴다. 그리스, 이슬람, 힌두, 남미 신화 등을 총망라하며, 픽션 혹은 논픽션으로 다뤄진다. 지금까지 확정된 필진은 카렌 암스트롱(영국),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 재닛 윈터슨(영국)빅토르 펠레빈(러시아), 데이비드 그로스만(이스라엘), 치누아 아체베(나이지리아), 도나 타트(미국), 밀튼 하툼(브라질), 이언 매큐언(영국), 키리노 나츠오(일본), 수 통(중국)등이다. 이밖에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오르한 파묵(터키)과 이사벨 아옌데(칠레), 주제 사라마구(포르투갈), 토미 모리슨(미국)등의 작가와는 현재 계약이 진행중이다. 이번에 출간된 3권은 기존 신화서들과 차별되는 이 시리즈의 방향성과 특징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제1권으로 나온 카렌 암스트롱의 ‘신화의 역사’(이다희 옮김, 이윤기 감수)는 1만 2000년 인류 역사를 아우르는 신화 개론서이면서 동시에 이 시리즈의 의미를 설명하는 입문서 노릇을 톡톡히 한다. 서구문명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 대안으로 신화의 복귀를 제시하는 저자의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페넬로피아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김진준 옮김)는 서양 문학 최고의 고전 오디세이아를 통쾌하게 뒤집은 소설이다.‘눈 먼 암살자’로 부커상을 수상한 페니미즘 문학의 대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오디세우스의 헌신적이고 정숙한 아내 페넬로페의 시각에서 역마살과 여성편력, 영웅 콤플렉스 등 오디세우스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다룬다. 열 두명의 시녀들이 등장해 동요, 연극,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한 재판 장면 등을 보여주며 오디세우스의 비밀을 폭로하는 대목은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작가적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무게,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는 ‘21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로 칭송받는 재닛 윈터슨의 소설이다. 올림포스 신들에 저항한 벌로 지구를 떠받치게 된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 등 고대 그리스의 두 영웅을 불러낸다. 번역을 맡은 소설가 송경아는 옮긴이의 말에서 “(아틀라스는)소외된 자, 침묵하는 자, 누구도 짊어질 수 없는 무게를 견디면서도 위로받지 못하는 자”라면서 “재닛 윈터슨은 작가의 권능과 세계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아틀라스에게 동반자와 자유를 준다.”고 썼다. 각 권 9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박완서 살아가는 이야기] 산이여 나무여

    며칠 전 후배문인들과 일박이일로 남도 여행을 다녀왔다. 섬진강 유역은 내 마음이 가장 이끌리는 데고, 갔다 오면 더한 그리움으로 남는 고장이다. 섬진강 굽이마다 지리산 골짜기마다 펼쳐 보이는 절경도 절경이려니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쪽에 각별한 정이 가는 이유일 것이다. 거의 일년에 한번씩은 가던 곳을 올해는 봄에 다녀오고 또 갔으니 두 번 간 셈이다. 주로 매화와 산수유가 한창일 때 가던 고장을 오래간만에 가을에 가보니 그 맛 또한 새롭고 각별했다.단풍은 아직 일렀지만 풍년든 들판의 황금물결은 바야흐로 가을의 절정이었다. 누렇게 익은 벼이삭을 보면서 느끼는 흐뭇한 충만감을 무엇에 비길까. 어려서부터 익히 듣던, 풍년든 문전옥답은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농경민의 정서를 요새 젊은이들은 알기나 알까. 예전엔 쌀밥에 배부른 게 행복의 첫째 조건이었다. 들판의 가을경치와 산과 강에서 난 맛있는 음식으로 눈과 입을 실컷 호강시키고 나서 숙소는 몇 년 전부터 아주 지리산 사람이 돼버린 여성 산악인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씩씩한 그녀가 장만한 집은 그 곳 원주민이 살던 옛날 집이라 내가 잔 뜰아랫방도 흙벽에 장작 때는 구들방이었다. 옛날 문짝은 허술해서 웃풍도 좀 있었다, 나는 방학해서 돌아가 고향집 방에 누운 어린 날처럼 꿈 없는 깊은 잠을 잤다.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잠깐 동안에 알밤을 점퍼 양쪽 주머니 가득 주웠다. 도토리도 지천으로 눈에 띄었다. 산책에서 돌아오니 후배들이 텃밭에서 호박잎을 따다가 다듬고 있었다. 대나무 평상에 앉아 호박잎 줄기를 벗기는 일을 거들면서 오랜만에 완벽하게 평화로운 행복감을 맛보았다. 아침 밥상에는 말랑하게 찐 호박잎 말고도 싱싱한 푸른 이파리들도 듬뿍 올랐는데, 알고 보니 댓돌 밑에 무성한 푸른 것들이 다 먹을 거였다. 풋고추와 함께 생된장에 찍어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예로부터 흉년이 들면 산으로 가란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왜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우리를 후하게 대접해준 그녀는 씩씩할 뿐 아니라 웅숭깊기도 하다. 관광개발로 해마다 모습이 변해가는 명소를 답사하기보다는 지리산을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서 보기를 권했다. 우리는 그녀의 안내로 섬진강을 건너서 백운산으로 올랐다. 강을 사이에 끼고 마주보는 산이었다. 중턱까지는 차로 오르고 나서 완만한 등산로를 쉬엄쉬엄 걸어서 오르면서 그녀가 지시하는 지점에서 바라다보는 지리산은 보는 시점에 따라 모습을 달리했지만 한결같이 장엄하고 관대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섣불리 지리산을 정복해 보겠다고 날치던 젊은 날에는 못 보던 지리산의 진면목이었다. 백운산도 단풍이 제대로 들려면 보름쯤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자지러지게 물든 단풍나무 옻나무들이 탄성을 자아내며 걸음을 멈추게 했다. 일행 중에는 몇 년 전부터 그 지방에 정착한 시인도 한 사람 있었는데 어떤 키큰나무를 가리키며 고로쇠나무라고 했다. 그 나무엔 단풍이 든 것도, 안 든 것도 아닌, 말라비틀어진 나뭇잎들이 엉성하게 매달려 있어서 불쌍해 보였다. 시인의 설명에 의하면 고로쇠나무도 원은 단풍이 곱게 드는 나무인데 물오를 때 사람들이 너무 극성맞게 고로쇠 물을 채취해가서 가을에 저 꼴이 됐다는 것이었다. 건강에 좋다는 것이라면 인정사정 없이 덤벼드는 우리들의 그악스러운 건강 열에 문득 진저리가 쳐졌다. 그 물이 정말 그렇게 몸에 좋은 것일까. 만일 검증된 효능이 있다면 더더욱 나무도 살리고 그게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나무 눈치 봐 가며 조심조심 채취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니었을까. 참담한 고로쇠나무가 아직도 나에게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나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이다. 나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허영이 있다면 그건 우아하게 늙는 것인데, 마음이 모질지 못해서든, 알량한 문명을 위해서든 이렇게 내 몸의 진액을 낭비하다가는 아마 마음씨 좋은 고로쇠나무처럼 불쌍하고 추한 말년이 될 것 같아서이다. 글 쓰는 일이란 몸의 진액을 짜는 일이니까.
  • [발언대] 자비군(慈悲軍)을 창설하자/김지수 전남대 법대 조교수

    최근 들어 여성의 병역의무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여권신장과 남녀평등의 흐름 속에 저출산·가족해체·고령화 추세가 가속화하면서 노인 요양복지 및 병역자원 감소가 국가의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시기나 주제가 따로 거론되지만 두 문제는 유기적으로 해결하는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남성 전투력 위주의 군대를 국토방위의 평화군(平和軍)으로 삼고, 여성보위력 중심의 자비군(慈悲軍)을 창설하자는 것이다. 자비군은 노인·장애인·난치병 환자 등의 보건요양 복지업무에 투입하도록 한다. 여성 중 조건이 맞는 자원자 일부는 군대수요와 여건에 따라 평화군에 종사할 기회를 준다. 남성 중에도 종교·양심의 이유로 병역 기피하거나 특히 간병 적임자는 인권보장 차원에서 자비군에 대체 복무할 권리를 준다. 아울러 심각한 이농과 고령화로 황폐화돼 가는 농지를 전통 병농일치(兵農一致)정신에 따라 여유 군 인력으로 직접 또는 대리 경작해 수입을 군비에 보태면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율곡 선생께서 주창하신 십만양병설의 선견지명을 찬탄하며, 그 정신을 되살려 백만자비군 창설을 제안한다. 헌법상 ‘국방’의무란 단지 무력에 의한 ‘국토방위’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다. 법 자체나 법의 해석 적용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남녀평등과 시대수요에 비춰 국방의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국가사회의 방위와 국민생존의 방호까지 포함한다. 국토는 국민 및 주권과 함께 국가를 이루는 한 요소에 불과하다. 국가가 잘 유지되려면 국토보전이 필수지만, 건강하고 평안한 국민생활과 사회질서 확보도 중요한 조건이다. 군 일부에서 씩씩한 여성의 복무능력은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남성보다 여성(약 50%) 자신들이 병역의 평등부담을 더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부작용과 문제점도 적지 않다. 성에 따른 일반적성 및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면, 여성은 아직 자비군 위주로 하되 예외로 군의관·법무관·방위산업체 등 일부 영역에서 평화군을 허용하는 편이 좋다고 본다. 물질문명과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은 크게 늘었다. 산업화로 가족이 거의 해체된 마당에, 노병요양을 전통효도 윤리나 효도법으로 개별 가족에 떠맡길 때가 지났다. 발상을 과감히 바꿔 온고지신의 묘책을 꾀하자. 여성 특유의 온유한 자비심을 국민건강과 국가사회 방위에 적극 동참시키자. 첨단 정보산업과 함께 전통 군대·전투 개념도 크게 변해 여성의 병역복무 가능성과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 평화군 참여기회도 점차 넓혀 나가는 게 낫겠다. 현재 보충역이 맡는 공익업무도 대개 여성이 더 잘할 수 있어 보여 함께 맡기자. 그러면 남녀 성에 따른 분업과 개인의 능력발휘로, 남성에 편중된 국방부담이 덜어져 균형을 이루고 여성의 자아성취도 실현될 것이다. 생산성 증대와 활력 강화로 사회적 비용절감과 건실한 재정유지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남성·무력위주 군대 문화가 여성의 온유한 자비심과 어우러져 음양조화를 잘 이루면,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계 제일의 지상낙원을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옛날 행주산성에서 아낙들이 돌을 날라 장정들의 전투력을 도와 대첩을 이루었듯이. 김지수 전남대 법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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