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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슴 속 그림한폭] 모리스의 ‘초서작품집 표지’

    [가슴 속 그림한폭] 모리스의 ‘초서작품집 표지’

    예술이 낳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집이라고 답하리라. 그 다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책이라고 말하리라.‘천의 얼굴을 지닌 디자이너’로 불리는 윌리엄 모리스(1834∼1896)의 이 말은 생활 속 예술의 중요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모리스는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대표적 출판사로 꼽히는 한길사 김언호(61) 대표가 가장 존경하는 예술인이다. 김 대표는 모리스에 대해 “소설과 시, 회화, 디자인, 출판, 건축 등 다방면에서 탁월함을 보여주었던 토털아티스트였다.”고 설명한다. 기계문명이 결국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중세 전통과 아르누보적 요소를 생활예술로 끌어들인 예술인이라는 것. 런던 교외의 아름다운 전원마을 월샘스토에서 태어난 모리스는 특히 잎사귀, 꽃넝쿨 등에서 나오는 문양을 다양한 형태로 변형시켜 작품화하는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건축 문양과 벽지, 타일, 그림 등에 다양하게 이를 차용했지만, 출판인으로서 김 대표는 단연 모리스의 북아트에 주목한다. “모리스는 토털아티스트이면서도 북아트에 특히 애정을 보였어요. 영국 정부가 ‘계관시인’이란 엄청난 명예를 제의했지만 ‘나는 출판인이다.’며 사양했을 정도였지요.” 모리스는 자연주의와 중세적 아름다움을 절묘히 조화시켜 책 표지와 속지 등을 장식했다. 그중 최고의 걸작으로 김 대표는 켐스콧 본이란 인쇄공방이 찍어낸 ‘초서작품집´을 든다. 이 작품집은 동시대 아센덴 공방의 ‘돈키호테’, 더우즈 공방의 ‘성서´와 더불어 세계 3대 아름다운 인쇄본으로 서적문화사에 빛나는 작품이다. 벨럼 본과 흰 돼지 통가죽 장정본으로 만든 이 책은 그가 60세에 디자인에 착수하여 작고하기 4개월 전 완성했다. 표지와 속지 등을 장식한 포도 잎사귀와 넝쿨, 화초 문양이 매우 아름답다. 중세성당의 아름다움을 모아놓은 것 같다고 해 당시 ‘작은 대성당’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유명한 화가이자 모리스의 친구였던 번 존스의 삽화도 이 책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김 대표가 내세우는 출판의 모토는 ‘시대와 호흡하는 아름다운 책’이다.1970∼80년대 ‘해방전후사의 인식’‘함석헌 전집’ 등을 통해 이땅의 진보적 지식인들과 함께 ‘사회과학 출판시대’를 연 것이나,‘한길아트’를 설립해 굵직한 예술서적을 펴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의지의 소산이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운영하는 서점을 겸한 토털예술공간 ‘북하우스’나 출판도시에 세운 독특한 외양의 한길사 사옥 등은 그의 삶 자체가 아름다움을 향해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기계문명의 도래를 경계하고 중세적 아름다움을 새롭게 구현했던 윌리엄 모리스의 예술정신이 뿌리박고 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흑사병시대의 재구성’/존 켈리 지음

    ‘조류독감’에 ‘사스’까지 지구촌이 신종 전염병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전염병의 대부분은 생태환경의 변화로 사람과 동물이 함께 감염되는 특징이 있다.14세기 중반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도 쥐들이 인간의 거주지로 옮겨와 발생한 엄청난 재앙이었다. ‘흑사병시대의 재구성’(존 켈리 지음, 이종인 옮김, 소소 펴냄)은 서구인들의 집단기억 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사건인 흑사병(페스트)과 관련한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누가, 무엇이, 왜 이 대규모 재앙을 초래했는지 보여준다. 유럽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기록된 흑사병은 소위 ‘떼죽음’으로 불리며 인간과 동물을 최악의 순간으로 몰아넣었다. 사망자 수나 파괴상태, 정신적 고통 등에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에 이어 인류 역사상 두번째 큰 규모의 재앙으로 기억될 만큼, 현대에 들어서도 자연재앙의 무서움을 상기시키는 문화적 상징이 됐다. 1340년대 유라시아 초원을 건너 1346년 무렵 흑해 연안의 항구도시 카파에 도착한 흑사병은 제노바 상인의 선단에 올라타 시칠리아로 옮겨간다. 이때부터 유럽 전역으로 페스트가 퍼져 약 5년동안 유럽 전역을 휩쓸며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약 25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저자는 엄청난 번식력을 지닌 검은 쥐가 인간에게 페스트를 옮긴 핵심 인자였다고 말한다. 쥐 공동체의 서식지가 환경변화로 붕괴되면서 시작된 쥐들의 이동이 결국 흑사병을 돌게 한 것. 특히 유럽 도시마다 위생시설 미비 등에 따른 인위적인 환경 오염이 쥐들을 끌어들이게 됐다는 데 저자는 주목한다. 대재앙까지 야기한 이같은 요인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잠복해 있다. 온실효과(지구온난화)는 미국 뉴올리언스를 덮친 카트리나 태풍 등 재앙을 낳아 인간의 문명을 해칠 수 있다. 닭·오리 등 가금류 인플루엔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생긴 조류독감이나 박쥐로 인한 바이러스인 사스 등은 생태환경의 변화로 인간과 동물이 섞이면서 균형을 잃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환경파괴가 자연재해뿐 아니라 페스트 같은 무서운 질병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흑사병의 원인과 현상은 우리 시대에 경고의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흑사병 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드라마처럼 펼쳐보이면서 중세 유럽의 역사까지 자연스럽게 기술한다. 또 당시 유럽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패륜, 대규모 학살 등에 대한 기록도 담았다. 그러나 저자는 흑사병 이후의 유럽에서 한줄기 희망을 찾는다. 흑사병의 높은 치사율은 급증한 인구와 자원의 불균형에 따른 유럽의 마비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추진력을 줬다는 것이다. 생존자들은 자원을 현명하게 이용, 생산성이 높아지는 등 중세 후기 이후 유럽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2만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책꽂이]

    |실용| ●요리사가 말하는 요리사(한영용 등 지음, 부키 펴냄) 디저트의 종류로는 달콤한 것과 치즈 및 치즈 요리가 주가 된 세보리, 바바루아·블랑망제·샤를로트·무스 등 찬 후식, 베니에·크레페·푸딩 등 더운 후식이 있다. 이밖에 과일이나 건과, 건포도를 내놓기도 한다. 요리사의 세계는 디저트만큼이나 다양하다. 책에 나오는 14명의 현직 요리사들은 “눈은 선배의 요리를 훔쳐 배우고, 귀는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코는 냄새를 맡고, 입은 모르는 것을 물어보라.”는 요리계의 격언을 새내기 요리사들에게 들려준다.9500원. ●이솝경영학(데이비드 누난 지음, 김광수 옮김, 세종서적 펴냄) 기원전 620년경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이솝은 곱사등이에 말더듬이였지만 타고난 지성과 재치있는 말솜씨로 그리스 시민들 사이에서 현자로 추앙받았다. 그는 동서양 무역으로 국민들에게 황금을 뿌려줄 만큼 부유했던 도시국가 리디아의 ‘CEO’ 크로이소스 왕의 보좌관으로 활약하면서 인도와 중국까지 아우르는 동서양의 지혜를 집대성, 이솝우화로 알려진 ‘인간학의 바이블’을 썼다. 책은 이솝의 이야기에서 비즈니스 교훈을 하나씩 들춰낸다.1만원. ●만달라스 그리기(요하네스 로젠가르텐 지음, 최외선 감수, 이지북 펴냄) 불교 수행자가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한 그림인 ‘만달라스’. 그러나 만달라스를 유심히 살펴보면 이 그림에는 특별히 종교적인 색채랄 게 없다.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원과 선, 사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순한 만달라스가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최초로 탐구한 사람이 바로 심리학자 융이다. 우리가 그리는 원 그림이 무의식의 표현이며 무의식에 갇힌 창조적 에너지를 끌어내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게 그의 주장. 누구나 쉽게 따라 그릴 수 있는 만달라스 도안집. 전2권. 각권 6000원. ●연인끼리 함께 보는 별자리 비밀(겐 에니시 지음, 김현남 옮김, 아카데미북 펴냄) 그리스신화의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는 왼손에 보리의 이삭을 들고 있다. 그 이삭 앞에서 빛나는 별이 스피카다. 보리 이삭이 물들기 시작할 무렵 하늘 높이 빛을 발한다. 푸른 기운을 띠고 하얗게 빛나기 때문에 ‘진주성’으로도 불린다. 신비로운 별들의 세계.5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서양의 점성술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됐다. 책은 흔히 아는 12별자리가 아닌 24개 별자리를 다룬다.8000원. ●깨진 유리창 법칙(마이클 레빈 지음, 김민주ㆍ이영숙 옮김, 흐름출판 펴냄) 전설적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는 항상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늘 관중석에 자신의 플레이를 처음으로 직접 보는 팬이 앉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디마지오는 56게임 연속 안타의 신화를 세울 수 있었다.‘깨진 유리창 법칙’이란 기업의 실수로 고객이 겪은 불쾌한 경험이 결국 기업의 앞날을 뒤흔든다는 것. 디마지오는 작은 것에도 강박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범죄학에 도입해 큰 성과를 거둔 ‘깨진 유리창 이론’을 비즈니스세계에 접목한 책.1만원.
  • 박정신 교수가 본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

    우리의 근·현대의 역사는 대립과 갈등의 역사다. 이 시대를 살아야 했던 이들은 외세와 대립하고 그리고 우리끼리 갈등해 왔다. 그래서 이 대립과 갈등의 질곡을 지나온 이들이 당연히 지니고 있을 ‘한’이 이 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해방된 후 우리의 근·현대사 연구가 본격화될 때‘식민사학 극복’이라는 기치를 높이 쳐든 ‘정의의 사도들’이 나타나 ‘우리’(我)와 ‘그들’(非我)을 구분하고, 친일과 반일, 순응과 저항, 식민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우리 편’과 ‘그들 편’ 사이에 굵은 줄을 그어대고 ‘재판의 한 마당’을 펼쳤다. 이들의 후예들은 군사독재시대를 지나면서 민주와 반민주, 통일과 반통일, 개혁과 반개혁이라는 잣대를 우리 역사와 우리 사회에 들이대었다. 이들은‘새로운 사회’를 갈망하고 모색하는 작업이 그들만의 사명인 듯이 때로는 이념의‘거룩한 사도’로서, 때로는 앞을 꿰뚫는 예언자로서, 때로는 신념에 가득 찬 혁명가로서 우리 역사를 읽어왔다. 다양하고 복잡한 삶의 마당이었을 우리의 근·현대 역사를 둘로 나누어 한 쪽은 선이고 다른 한 쪽은 악으로 인식하는 학문풍토를 만든 셈이다. 그런데 이들에 대항하려는 듯 또다른 ‘선 긋기의 학문하기’가 나타났다. 해방이후 나타난 ‘정의 사도들’이나 군사독재시대, 이른바 비분강개의 시대에 나타난 ‘혁명의 사도들’처럼 이들도 그들이 비판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그룹이 그어 논 선의 다른 한 쪽에서 ‘정의의 사도들’인양 또는 ‘혁명의 사도들’인 양 복잡하고 다양한 우리의 근·현대사를 읽으려 하고 있다. 아무리 학문이 변증적으로 발전한다고 하지만 이들 또한 ‘우리 편’과 ‘그들 편’이라는 편 가르기를 하거나 이념의 다른 한 쪽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우리의 역사현상을 읽으려 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양 쪽에서 벌이는 ‘이분법적 우리역사읽기’를 넘어서 복잡하고 다양했을 우리의 근·현대사를 인식하려는 새롭고 소망스러운 시도가 등장하였다. 우리의 학인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양나라나 일본에 줄지어 유학 갈 때, 반대로 좁다란 우물에 갇혀 우리 것 우리가 제일 잘 안다는 학문적 국수주의에 파묻혀 있을 때 홀연히 인도로 가 공부한 역사학자 이옥순이 이 작은 물결 그 한가운데에 있다. 그는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과 같은 저술을 통해 이미 역사연구에서 ‘제국주의/민족주의’ 패러다임과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의 유용성을 보고, 그리고/그러나 이를 넘어서려는 ‘새로운 역사읽기’를 보여주었다. 이번에 그가 펴낸 ‘식민지 조선의 절망과 희망, 인도’는 그가 끈질기게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역사읽기를 더 발전시키고 더 구체화하는 작업의 산물이다. 일제 식민지시대 우리 지식인들의 인도 인식을 그 시대의 신문과 잡지에 나타난 수많은 인도에 대한 기사, 논설 그리고 기획 기사를 통해 담아내고, 당시 우리에게 인도는 어떻게 각인되었고 또 왜 그렇게 되었는가고 묻고 있다. 우리와 같은 처지의 인도를 바라다보는 당시의 ‘우리 마음’에는 동경·연민·동질성과 연대의식과 함께 문명화되지 못한, 서구가 만든 그 ‘타자’를 바라다보는 측은함과 내려다봄이 담겨져 있음을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옥순은 바로 이 이중성과 모순성을 읽어낸 후 감히 이를 해석하고 설명하고 있다. <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 [이슬람 문명과 도시] (6)시리아 다마스쿠스

    [이슬람 문명과 도시] (6)시리아 다마스쿠스

    아침 비행기로 요르단의 암만을 출발한 지 1시간도 못되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착륙하겠다는 기내 방송이 나온다. 두 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가까이 위치하고 있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안전벨트를 매라는 승무원들의 재촉을 받으며 창밖을 바라보니 뿌연 매연을 뒤집어 쓴 다마스쿠스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그 서쪽으로 안티-레바논 산맥의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다마스쿠스를 감싸고 있다. 비행기는 한바탕 요동을 친 후 순조롭게 착륙해 활주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린다. #세계서 가장 오래된 ‘동양의 진주´ 소위 “인류가 계속해서 거주한 가장 오래된 도시” 다마스쿠스에 도착한 것이다. 다마스쿠스는 약3500년 전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후 한번도 폐허가 되지 않고 그 역사적 맥락을 이어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간주된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이 도시를 ‘동양의 진주(the Pearl of Orient)’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마스쿠스의 공식 명칭은 아랍어로 디마쉭 앗-샴(Dimashq ash-Sham)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줄여서 디마쉭이라고 부르지만 아랍인들은 앗-샴이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앗-샴은 북쪽을 의미한다. 아랍인들의 주요 거주지역에서 다마스쿠스는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택시는 총알처럼 달려 미리 예약된 신시가지의 호텔로 순식간에 나를 안내한다.1920년부터 1946년까지 4반세기를 프랑스의 신탁통치를 받으며 개척된 신시가지이기에 유럽식 건물들이 이방인처럼 여기저기 눈에 거슬린다. 한시라도 빨리 다마스쿠스 본연의 오리엔트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여장을 풀자마자 바로 신시가지를 벗어난다. #다마스쿠스의 젖줄 바라다 강 동쪽의 구 시가지를 향하는 택시는 바라다 강을 끼고 달린다. 이 강이 다마스쿠스의 젖줄이다. 습기를 잔뜩 머금고 지중해에서 출발한 바람은 그 험한 레바논 산맥과 안티-레바논 산맥을 힘들게 넘으면서 땀처럼 비를 뿌린 후 정작 다마스쿠스에 도달하면 건조한 바람으로 변한다. 그래서 다마스쿠스와 그 동쪽은 온통 사막뿐이다. 하지만 이 바라다 강이 구타(Ghouta) 오아시스를 만들어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 것이다.“금강(金江)”이라는 의미의 바라다는 정말 다마스쿠스에는 금과 같은 존재이다. 교통 체증으로 잠시 짜증이 밀려왔지만 곧 다마스쿠스 구시가의 성곽이 보이자 정신이 번쩍 든다. 이 성곽 안에 2000년 이상의 역사가 숨쉬고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흥분이 밀려온다. 우선 동쪽에 위치한 기독교 지역부터 답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하고 성곽의 동문(東門) 앞에 택시를 세웠다. 로마 시대에는 태양이 뜨는 쪽에 위치하고 있다 해서 태양의 문이라고 불렸던 동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그곳이 다마스쿠스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된 투마(예수의 제자인 도마의 아랍어식 표현) 지역이며 주로 기독교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다마스쿠스는 기독교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도시이다. 사도 바울이 다마스쿠스 외곽에서 예수의 환상을 보고 눈이 멀었으나 다마스쿠스 출신의 아나니아가 성안으로 바울을 데려와 치료해 주었다. 그 후 다마스쿠스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고 선교활동을 펼치던 바울이 유대인들의 위협을 받자 동료들이 그를 바구니에 넣어 성벽 아래로 내려 탈출시켰다. 동문 바로 북쪽 아나니아의 생가가 있던 자리에 기독교 교회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의 하나인 아나니아 교회가 있다. 로마의 기독교 박해 시절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교회는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사도 바울이 바구니로 탈출했던 자리에는 성-바울 기념 교회가 세워져 있다. #7세기 중반부터 기독교 공동체 인정 이슬람의 심장부에서 1350여년 동안 존속하고 있는 기독교 교회들을 둘러보며 새삼 우리가 얼마나 이슬람의 실체를 왜곡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7세기 중반부터 다마스쿠스를 지배한 이슬람의 아랍인들은 어느 정도의 차별은 있었지만 기독교 공동체를 인정하고 자치를 부여했다. 이 때문에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치면서도 오늘날까지 기독교 사회가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이슬람의 강제적인 포교를 상징하는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이라는 표현이 왜곡이라는 사실을 반증해주고 있다. 더욱이 기독교 지역 바로 서쪽의 하랏 알-야후드라고 불리는 전통적인 유대교 지역을 둘러보면서 아브라함 후손들의 종교가 사이좋게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오늘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종교 간의 충돌이 더욱 아쉽게만 느껴진다. 이제 나머지 이슬람 지역을 둘러볼 차례이다. 다마스쿠스의 상징이나 다를 바 없는 우마이야 모스크로 통하는 길목에는 아랍어로 ‘쑤끄(souq)’라고 불리는 전통 시장들이 늘어서 있다. 페르시아-터키 문화권의 ‘바자르(bazaar)’와 같은 의미이다. 이슬람에서 모스크는 단순한 신앙생활의 공간만은 아니다. 주변에 병원, 학교, 도서관, 시장, 공중목욕탕 등의 공공건물도 지어 문화적, 경제적 공간을 함께 제공해 주고 있다. 특히 시장의 상점에서 얻어지는 임대수입은 모스크 운영과 복지를 위한 중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문화·경제공간 전통시장 ‘쑤끄´ 삶을 외치는 싱싱한 소리를 들으며 이리저리 사람과 짐과 부딪치며 어렵게 전진해 가니 향긋한 냄새가 나를 반긴다. 바로 향료 시장이다. 음식에 향료를 많이 사용하는 아랍인들이기에 향료도 형형색색으로 수십 가지가 된다. 시장 골목의 북쪽 끝에 가장 큰 규모의 하미디예 시장이 있다. 고대부터 다마스쿠스는 무역의 교차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수많은 상인들과 엄청난 물자가 몰려들었다. 그러한 역사적 전통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 전통 시장들이다. 이스탄불이나 카이로의 전통 시장에서 느꼈던 소위 ‘삐끼’들의 지나친 강매행위나 버릇없는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환한 미소만 건네고 있다. 항상 시리아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 순박한 아랍인들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사회주의 국가로서 대외에 개방되지 않았던 탓에 아랍의 순수성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나라가 시리아다. 누가 이 순박한 사람들의 나라를 테러 지원국으로 보겠는가? 우마이야 모스크는 그 자체가 하나의 다마스쿠스 역사이다. 다마스쿠스를 거쳐 간 다양한 문명의 성전들이 같은 자리에 계속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약 3000년 전에 이 지역에 거주했던 아랍인들은 폭풍과 번개의 신인 하다드 신전을 이 자리에 처음 건설했다. 로마인들이 지배하면서 하다드는 로마인들의 최고신인 주피터로 대체되었다. 그 후 비잔틴 시대인 4세기 말에 기독교의 교회로 바뀌어 세례 요한에게 바쳐졌다. 그 후 7세기 중반부터 아랍의 지배를 받으면서 모스크가 되었는데, 처음 다마스쿠스를 점령한 칼리드 이븐 왈리드 장군은 교회 건물의 동쪽을 모스크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나머지 서쪽 부분은 기독교인들이 계속 사용하도록 했다. 나중에 우마이야 제국의 통치자들은 이슬람 신자들의 수는 늘어나고 기독교 신자의 수가 줄어들자 기독교 공동체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단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우마이야의 칼리프 왈리드 1세가 705년부터 7년에 걸쳐 오늘날의 규모로 확장했다. #세례 요한 머리뼈 모스크에 보관 모스크 첨탑 가운데 하나를 ‘예수의 첨탑’이라고 부른다거나 예배실 한쪽의 성소에 세례 요한의 머리뼈를 보관하고 있다거나 하는 것이 모두 다마스쿠스에서의 전통적인 기독교와 이슬람의 친밀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7세기에 기독교인들과 이슬람 신자들이 같은 문으로 사이좋게 들어간 후 자신들에게 정해진 공간에서 각자의 신앙생활에 몰두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흐뭇한 마음으로 모스크를 나선다.
  • 전라의 뜨거운 연기 현장

    전라의 뜨거운 연기 현장

    映畵街(영화가)이얘기저얘기-레디•고 金洙容(김수용)감독 「레디•고!」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지르는 이 외마디 소리는「필름」에 배우의 연기를 수록하는 최초의 신호. 촬영기사도 조명기사도 그리고 조감독과 모든「스태프」들이 잠시 호흡을 멈추고「카메라」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지켜보는 이 엄숙할이만큼 긴장한 순간과 순간들….「필름」의 회전소리가 감독의 심장 깊숙이 울려오는 이 시간이란 참으로 울고 싶도록 안타깝고 가슴 가득히 기도같은 갈망이 밀려오는 순간들이다. 그리고 천하의「코메디언」이 제아무리 우스꽝스럽게 굴어도, 비극배우가 제아무리 눈물을 짜도 감독의 얼굴에 그어진 무표정과「스태프」들의 긴장한 숨소리는 헝클어지지 않는 시간들이기도하다. 주연 배우가 全裸(전라)로 촬영 했다는 데 옷을 벗었느니 안벗었느니 또는 감독이 시키는대로 했다는둥, 제작자의 강요에 못이겨 그랬느니 외설시비에 소환받았던 감독과 여배우의 후일담이 심심치 않게 떠돌고 있는 요즈음, 나는 어느 신문에 실린 담당검사의 글에서『이번에 문제가 된 영화중의 하나인 XXXX의 경우 남녀 주연이 전라로 촬영했음이 밝혀졌다』 는 귀절을 읽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일찌기 배우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카메라」앞에 선 것을 본 일도 들은 일도 없다. 더욱이 정사「신」을 찍기위해 남녀배우가 알몸이 됐었다면 그것은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제아무리 이론을 펴도 그렇게 수치스러운 모양을 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연기를 했다면 그것은 마땅히 음화취급을 받아야 하지않을까? 그러나 설마 그럴수가 있었을까? 물론 감독들은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부득이「베드•신」도 찍어야 하고「키스」도 실감있게 연출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작된 기술이지 실지의 행위는 결코 아니다. 관객에게 실감을 주려는 나머지 배우들에게 실기를 시키는 감독도 없을뿐더러 감독이 시켰다고 선뜻 응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부부배우가「카메라」앞에서「키스」를 할때도 그들은 결코 실기를 하지않는다. 그러고 보면 연기란 어디까지나 흉내에 지나지 않는 것. 가령 전투영화에서 적을 사살하는 장면은 촬영할 때 우리는 한사람도 희생자를 내지않고도 얼마든지 치열한 전투장면을 묘사한다. 이것이 바로 감독의 연출능력이라고 한다면 어느 의미에서 관객의 눈을 잘 속이는 사람이 명감독인 지도 모른다. 情事(정사)신은 배우의 고생문 얼굴은 닿아도 몸비틀려 나의 체험을 토대로 정사「신」의 촬영 현장과 그 작업과정을 우선 소개해보자. 머리는 하나 몸은 둘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남녀의 정사「신」을 연출할 때 배우들의 위치를 두고 말한 것이다. 즉 얼굴과 얼굴은 서로 맞닿은 것 같이 보여 놓고 두사람의 몸은 따로 따로 분리돼 있다. 오히려 두사람의 몸이 서로 닿을까봐 그들은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런때 까다로운 아가씨 배우들의 신경질은 가히 볼만하다. 끝내는 몸이 비비 꼬이고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만다. 옷을 입은 하체가 서로 떨어져서 상체만으로 「러브•신」을 연기하는 곡예는 우스꽝스럽기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곡예와 같은 연기를 척척해내는 배우가 적지 않다. 우리들은 아무리 노골적인 정사「신」을 모아도 촬영할 때의 현장이 떠오르기 때문에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가 없으며 오히려 연민의 정으로 그러한 장면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남우중에도 신성일 최무룡 신영균 남궁원 박노식 김진규 제씨의 「러브•신」은 볼품이 좋아 무도회에서 「파트너」를 맵시있게 「리드」하듯 촬영현장에서도 부담없이 쉽게 해치우지만 신인인 경우 감독의 고심은 보통이 아니다. 하기야 여러 사람이 바라보는 앞에서 애무하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배짱이란 쉬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상대역 선배 여배우게게 미안스럽고 황송하기만 해서 우선 접근하질 못한다. 이런때 신인의 떨리는 손을 꼭잡아주고 서서히 연기할 수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여배우에 D양이 있다. 그녀는 자칫 쑥스러워지기 쉬운 장면을 부드럽게 수습하는 지혜가 있다. 배우가 옷을 벗는다는 것은 정사장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샤워」나 목욕「신」을 찍을 때도 여배우들은 모두 중무장을 하고「카메라」「플레임」속에서만 벗은 것 처럼 행세하지만 남배우들이 상의쯤 벗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옷입고 목욕하는 법 없다.” 故 金勝鎬(고 김승호)씨는 정말벗어 우리의 명우 김승호선생은 연기의 실감을 내기 위해 목욕「신」을 찍을 때 번번이 전라가 되시곤 했다. 도시 옷을 입고 목욕탕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느냐고 호통을 치시던 얼굴이 선하다. 하기야 남자들 끼리고 보면 정사「신」도 아닌 그러한 장면에 굳이 옷을 입힐 사람은 없다. 대중탕에 들어간 기분으로 작업을 진행시킬 뿐이다. 최근 오락 일변도의 미국 영화의 체면을 세운『스위머』란 문제작에선 남자 주연 「버트•랭카스터」가 엷은「팬티」하나만 입고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다. 영화의 내용은 상류사회의 가정용「풀」을 통해서 현대의 미국 물질문명을 통렬히 비판한 것이지만 이 영화가 크게「히트」한 원인의 하나는 「버트•랭카스터」가 시종 전라에 가까운 육체미를 보여준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육체의 아름다움이란 여성만이 가진 특권은 아닌 것 같다. 「로댕」의 조각들 처럼 싱싱하고 늠름한 남자들의 체구는 보는사람에게 형용할 수 없는 환희를 안겨다 준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이 도시 음탕해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어느 날 편집실에서「필름」을 정리하다가 D양의 찍혀서는 안될 여자의 가슴을 발견하고 당황하여 잘라버린 일이 있다. 「스웨덴」영화가 대담하다고 하지만 남녀 배우는 모두 살색으로 된 엷은 옷을 분명히 입고 있으면서도 나체처럼 행세하지만 우리들의 환경은 그렇지가 못하다. 여자의 가슴에서 「브래저」의 선이 한계를 이루며 「카메라」는 항상 그 윗부분을 포착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어짜하여 여자의 젖가슴이 찍혔을까? 촬영할때 그렇게 시간을 들여 싸매고 가리고 법석을 떨었는데도 실수는 있는 법. 움직이는 피사체에서 숨어야 할 것이 제멋대로 노출되는 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 선데이서울 69년 8/3 제2권 31호 통권 제45호 ]
  • 서방 ‘아프간 기독교도 구하기’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아프가니스탄 기독교도 구하기´에 나섰다.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이유로 사형당할 위기에 처한 압둘 라흐만(41)을 살려달라며 자국 기독교단체와 함께 압력 섞인 탄원을 보내고 있다.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기초한 아프간의 헌법은 기독교를 불법으로 보진 않지만 이슬람교를 믿다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배교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무슬림이 아프간 인구의 99%로 나머지는 대부분 힌두교도다. 성직자들은 23일(현지시간) 서방의 압력에 굴하지 말고 사형에 처하라며 반발 양상을 보였다. 탈레반 정권 때 탄압받았던 온건파 성직자 압둘 라울프 역시 “율법을 어기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강경했다. 또 다른 성직자는 “정부가 석방한다면 주민들이 목을 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 사건을 쟁점화할 뜻을 밝힌 데 이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날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바람직한 해결”을 촉구했다. 기독교도들은 백악관과 아프간 대사관으로 몰려가 목소리를 높였다. 부시 지지층인 복음주의 교계는 “4년 전 탈레반에 아프간을 해방시킨 대가가 이거냐.”며 항의했다. 마호메트 만평 파문처럼 자칫 서방과 중동의 문명충돌 양상으로 번질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아프간에 주둔 중인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도 우려를 표했으며 유럽연합은 “가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들의 비판도 쏟아지는 가운데 마호메트 만평을 실었던 율란츠-포스텐은 “덴마크 군대가 라흐만을 데려와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도 폈다. 하르자이 정부는 난감하다. 개종을 이유로 사형을 내린 선례도 없다. 최근 “라흐만의 정신이 이상한 것 같다.”는 검찰 발표에 고민이 엿보인다. 그를 정신질환자로 몰아 슬그머니 ‘무마하려는’ 시도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담당판사 안사룰라 마울라베자다는 “기독교 개종을 취소하라고 설득하겠지만 끝내 거부하면 사형시킬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라흐만은 16년 전 파키스탄에서 기독교단체의 봉사활동을 돕다 개종해 독일로 건너갔다. 탈레반이 무너진 2002년 귀국한 그는 두 딸 문제로 아버지와 다툼을 벌이다 가족의 신고로 체포됐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책꽂이]

    ●파라오 이집트의 영광(델리아 펨버턴 지음, 김희상 옮김, 심산 펴냄) 카르나크와 룩소르의 대사원에서부터 투탕카멘의 무덤에 묻혀 있는 엄청난 보물에 이르기까지 고대 이집트인들은 어떤 고대문명도 따라올 수 없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이집트인들이 가장 중요하고 신성하게 여긴 도시는 테베. 고대 그리스인들은 테베 건축물들의 위용과 화려함에 감동한 나머지 “100개의 문을 가진 도시”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들은 보이오티아에 있는 자신들의 도시에 똑같이 테베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고대이집트 문명의 신비를 찾아 나선다.3만 8000원.●천로역정(존 버니언 지음, 김 창 옮김) 천국으로 가는 한 순례자의 고단한 여로를 장엄한 서사시처럼 그려낸 기독교의 고전. 간디는 존 버니언이 베드퍼드 감옥에서 지은 이 책을 “영어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책”이라고 칭송했다.“나는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라는 크리스천의 탄식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고뇌와 회심, 전도와 박해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승리로 이어지는 버니언 자신의 고달픈 생애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1만 6900원. ●지식의 증류(브루스 모런 지음, 최애리 옮김, 지호 펴냄) 16∼17세기 갈릴레오, 뉴턴 등에 의한 고전역학의 확립과 함께 자연상·세계상의 변혁을 몰고온 과학혁명. 이 과학혁명 이전, 천문학자는 점성술사였고 화학자는 연금술사였다. 사람들은 마법과 신비주의가 갑자기 과학과 합리주의로 바뀌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유럽지성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에 반박한다. 연금술도 그 자체의 맥락 내에서 보면 논증적 과학의 테두리 안에 놓일 수 있다는 것. 미신 혹은 마술로 잘못 알려져 있는 연금술은 오히려 근대과학을 태동케 한 변화의 주인공이었다고 주장한다.1만 8000원.●후쿠자와 유키치 자서전(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허호 옮김, 이산 펴냄)‘문명개화’의 선구자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인간적 면모가 담겼다. 막부 말기와 메이지 시대로 이어지는 근대 일본의 격동기를 헤쳐 나가면서 자신의 뜻한 바를 이뤄나간 과정을 담담하게 회고한다. 후쿠자와는 자신이 글을 비교적 늦게(열서너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했음에도 남들보다 빠르게 한문과 네덜란드어, 영어를 익힌 경험이 있어서인지 기본적인 예의범절과 예능교육 외엔 조기교육에 반대했다. 자신이 낳은 9남매에게도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랐지 공부하란 소리는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일본 만엔 권 지폐에 인쇄된 초상의 주인공이다.1만 9000원. ●미국법, 오해와 이해(이수형 지음, 나남출판 펴냄) 우리 언론에서 언젠가 “음반업체들이 존 도(John Doe)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법정 영어 용어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존 도’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존 도’는 소송의 원고나 피고를 특정할 수 없을 때 편의상 사용하는 무의미한 이름으로 우리로 치면 동사무소 민원양식에서 흔히 보는 ‘홍길동’ 정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명불상의 피고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제대로 된 번역이다. 국내 언론보도 등에서 잘못 번역되고 있는 미국법 관련 표현을 살폈다.2만원.●한비광, 김전일과 프로도를 만나다(조성면 지음, 일송미디어 펴냄) 장르문학에 대한 본격 평론집. 공포문학의 제왕 스티븐 킹과 현대인의 집단적 노이로제, 동아시아 최초의 베스트셀러인 ‘삼국지’ 등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한다. 제목의 한비광은 무협만화 ‘열혈강호’의 주인공이며, 김전일과 프로도는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과 현대 장르판타지의 효시인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1만원.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2) 이성을 넘어서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2) 이성을 넘어서

    인간이 얼마만큼 이성적일까? 보통 우리는 감정이 격해서 흥분한 사람에게 이성적(reasonable)으로 또는 합리적(rational)으로 행동하라는 말로 충고한다. 저 말은 감정의 흥분과 격정에 생각을 맡기는 것을 피하라는 말로 들린다.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빨리 흥분하고 격정적이어서 대국(大局)에서 실수를 잘하고 공동의 이익을 놓치는 어리석은 일을 감행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종종 걱정한다. 오기가 나면 이익도 팽개치고 다 엎어버리는 한국인의 충동적 행동을 나는 그 동안 세상을 살면서 여러 번 경험했다. 나는 감정적 흥분상태의 격정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이성적 또는 합리적 사고방식이라고 젊었을 적부터 꽤 오랫동안 생각해 왔었다. 한국인의 비이성적, 감정적 생활태도를 나는 비판적으로 보아왔다. 그런 나는 얼마만큼 이성적이었던가? 나 역시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쉽게 빨리 흥분하는 감정의 행태를 노출해 왔었다. 직업상 나는 학술세미나에 많이 참석해 왔었다. 학술세미나에서는 찬반 토론이 생기고 때로는 격렬한 주장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거의 예외없이 학술세미나에서 반대의견의 개진이 치열할 경우에 논리적으로 합리적 종결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는커녕, 감정상의 앙금이 남아서 가시돋친 말의 교환이 오가는 와중에 겉으로는 점잖아 보이지만 속으로 감정이 뒤틀어진 상처가 이성의 당위적 요구를 무색케 하는 현상을 나는 많이 목도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20세기 독일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거장인 하버마스의 이성적 비판이론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사회를 교조와 통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목적으로서의 ‘이상적 담화의 상황’에 의하여 균형적 말의 교환을 방해하는 장벽을 헐고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대화하는 이성사회가 가능하겠는가 크게 의심하게 되었다. 단적으로 나는 그런 사회의 창조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나는 점차로 이성에 의한 인간의 해방은 불가능한 꿈을 꾸는 공상과 유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이성은 결코 무의식에 침전된 인간의 감정적 앙금을 씻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 길로 나아갔다. 그리고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규정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가 지니는 의미를 숙고하게 되었다. 과연 인간은 이성적 동물인가? 그 말의 뜻이 무엇일까? 앞글에서 여러 번 강조됐듯이, 인간의 본능은 동물의 본능처럼 확실하게 각인되어 있지 못하고 희미해서 본능 대신 지능이 생존의 능력을 대행하게 되었다. 지능만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자연의 본능을 지배하고, 세상을 인간중심으로 개척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대본은 다 지능의 산물이다. 이성적 동물은 지능적 동물의 다른 이름이다. 이런 이성은 도구적 이성을 뜻한다. 지능과 이성은 다 도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인간이 동물인데, 단지 동물과 다른 특이한 차이는 지능을 사용하는 동물이라는 뜻이겠다. 그 말이 옳다. 도구적 이성은 실용적인 편리의 진리를 추구한다. 그런데 지능은 동물적 본능의 대행이므로 본능이 지닌 자기생존의 우선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개인적, 가족적, 국가적, 종족적, 종교적, 이데올로기적 자기생존의 우선권이 지금까지의 인류사에서 한 번도 포기된 적이 없었다. 그것이 포기된 상태는 곧 지능이 모자라는 것으로 평가받아 왔다. 세계를 지배한 나라는 그만큼 지능의 경쟁에서 승리한 나라라고 봐야 한다. 즉 도구적 이성의 사용이 왕성한 나라가 세상을 지배해 왔다. 그 도구적 이성의 승리는 늘 자아주의, 이기주의의 생존욕을 안으로 감추고 있다. 그런 생존투쟁을 비판하면서 도덕적 해방적 이성을 강조하는 반(反)도구적 이성주의의 사상이 반작용으로 존속해 왔다. 그것이 시대마다 다른 이름을 지었었지만, 좌우간 이기적 자아생존의 우선권이 늘 패배자의 슬픔을 밟고 있어 왔기에 불의의 역사를 심판하는 그런 기능을 비판적 이성이 담당해 왔었다. 동양에서 주자학적 도학주의나 대동(大同)이념에 입각한 성리적 사회사상, 서양의 각종 사회주의나 마르크시즘,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 등등은 다 도덕적 성리주의와, 또 도구적 이성을 비판하는 사회적 이성이나 해방적 이성의 신뢰에 근거해 있다고 봐도 괜찮겠다. 유가적 성리론(性理論)은 천명(天命)의 절대적 선의지를 인간의 사회에 대동적(大同的)으로 실현하려는 도덕주의를 말하고, 기독교적 메시아사상과 연관된 사회주의적 이성론(理性論)은 이기적 지능을 초월한 공동선 의지에 입각한 역사적 구원의 공동체를 이 세상에 실현하여 인간의 현실적 소외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이성(理性)의 개념은 서양어 ‘reason’의 번역어이나, 이미 동양에 있어 온 성리(性理)의 개념을 참작하여 살짝 바꿔 옮긴 것이겠다. 그래서 역사를 구원하는 해방적 이성론자들은 도구적 이성을 격하시키고, 보다 더 상위적인 구원적 이성을 지고선(至高善)의 이념과 동격으로 부상시켜 그런 구원적 이성이 인간의 모든 생각을 궁극적으로 통일하는 규정적 이념(regulative idea)이라고 여겼다. 지고선의 규정적 이념이 과연 인간의 모든 감정의 비이성적 앙금의 응어리를 씻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비이성적 감정의 앙금은 역시 이기적 지능의 자아우선주의와 직결된다. 자아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기에 그것이 감정의 앙금으로 남아 타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은연중에 작용하고 있다. 그러면 자아에는 도구적 이성의 자아우선주의와 다른 해방적 이성으로서의 보편적 자아가 있다는 것인가? 나는 그런 보편적 자아가 현실적으로 실존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보편적 자아는 관념상의 추상적 자아로서 당위적으로 이기심이나 감정적 흥분을 억제해야 한다는 의식상의 의지론이지, 그 의지론이 자아의 자연적 실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의식의 각성은 무의식의 자연적 기호를 이기지 못한다. 모든 도덕주의나 사회주의가 실패한 기본원인은 그것이 무의식의 기호를 외면한 명분주의이기 때문이다. 의식이나 의지는 모두 자아에서 발원하고 있으므로 자아에서 발원하는 모든 현상은 자아우선적 이기심의 무의식을 벗어나지 못한다. 해방적 이성이 그리는 보편적 자아가 도구적 이성이 낳는 이기적 자아를 능가할 것 같지만, 전자는 의식의 명분이고, 후자는 무의식의 자아우선의 기호를 대행하는 것이므로 의식의 명분이 무의식의 기호를 결코 이기지 못한다. 사회주의나 도덕주의가 실제로 시장주의와 기술주의를 능가하지 못하고 패배하는 이유는 바로 의식상의 명분이 무의식상의 이익을 조금도 부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성주의는 곧 지능의 사상이고, 그 생명은 20세기 미국의 철학자 듀이가 갈파한 도구주의적 이성(지성)의 영역을 넘지 않는다. 듀이는 해방적 이성같이 거창한 허구를 수용하지 않고, 착실한 현실적 문제해결의 가능한 영역에 이성의 기능을 제한시켰다고 하겠다. 도구적 이성의 진리는 곧 세상살이를 편리하게 만드는데 있다. 편리를 만들려는 자아우선주의는 본질적으로 자아중심의 소유주의적 속성을 경쟁적으로 띠고 있으므로, 나의 승리는 너의 패배요, 나의 기쁨은 너의 슬픔이 되게 마련이다. 이것이 도구적 이성주의의 빛과 그림자다. 도덕주의와 사회주의가 아니고 저 이성주의의 소유론적 자아우선주의의 독성을 중화시키는 방법이 없을까? 우리는 여기서 공자가 ‘논어’(자한편)에서 말한 ‘절사’(絶四)의 뜻을 음미해 볼 필요를 느낀다.“공자가 네가지를 끊었는데, 곧 그것은 무의(毋意=자기 멋대로 함이 없음), 무필(毋必=기필코 관철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없음), 무고(毋固=고집스러운 집착이 없음), 무아(毋我=자아우선의 욕심이 없음)이다.” 뒤에 우리가 공자의 사상을 다시 검토하는 기회를 갖겠지만, 단적으로 공자의 사상은 삼원체제(자연적 무위/도덕적 당위/기술적 유위)를 갖추고 있다. 오늘의 ‘절사’사상은 그 중 하나인 무위유학의 면모를 말한다. 이 면모는 불교와 노장사상과 유사한 대목을 지닌다. 장자(莊子)의 ‘대종사’편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인 ‘심재좌망(心齋坐忘)’이 여기에 속한다. 마음의 공허가 심재요, 좌망은 장자의 유명한 주석가인 3세기경 중국 위진시대의 곽상(郭象)의 표현처럼 ‘무심의 마음’,‘일신을 느끼지 못함’,‘천지를 알지 못함’ 등으로 이해된다. 의식의 생각을 온전히 비웠다는 것이 곧 심재좌망이겠다. 자아가 존속하는 한에서 경쟁의 세계에 살 수 밖에 없는데, 경쟁과 자아우선의 사고방식을 약화시키는 길은 그것을 억압하거나 지우려고 노력하는 도덕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니다. 억압의 길은 파행적 지능의 교활함을 더욱 부채질할 뿐이다. 사회주의에서 시장이 봉쇄되면서 시장의 기능이 암시장으로 은폐되어 나라경제를 교란시키는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도덕주의는 명분지향의 한국사회처럼 앞뒤가 다른 위선의 풍토만을 조성할 뿐이다. 억압 대신에 자의식을 고요히 쉬게 하는 무심한 마음의 안정법을 익혀야 한다. 의식이 고요히 쉬면, 무의식에 숨어 있는 본성이 잠을 깨면서 이기적 본능의 탐욕이 자의식과 함께 누그러진다. 본성의 자발적 기호는 본능의 자발적 기호가 쉬면 드러난다. 이것이 열리면 지능의 이기적 분별심 대신에 본성의 지혜가 빛을 발하면서, 지능의 도구적 이성의 역할이 자리이타적 방향으로 발양하게 된다. 공자가 말한 심재좌망은 마음이 그냥 멍청하게 아무 생각 없는 무기(無記)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의 자기 생존욕을 잠재우고 본성이 자기 존재의 꽃을 피워 타인들에게 이익을 보시하려는 고요하면서 즐거운 채우기를 뜻한다. 자의식의 이기심은 도덕주의적 훈계나 사회주의적 권력계도로 사라지지 않는다. 자의식의 마음이 고요히 쉬게되면, 마음의 본성이 무의식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면서 본능과 지능의 합작품을 본성과 지능의 합작품으로 돌린다. 마음의 본능을 억압하는 도덕과 정치보다 오히려 마음의 본성을 가까이 하는 방법을 미래교육의 화두로 삼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儒林(56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

    儒林(565)-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

    제5부 格物致知 제3장 天道策(1) 1558년 명종 13년 겨울. 성균관의 문묘 뒤쪽에 설치된 명륜당(明倫堂)에서는 별시해(別試解)가 거행되고 있었다. 별시란 정기적으로 3년에 한번씩 열리는 식년과(式年科)라 불리는 과거시험과는 달리 세자의 탄생, 책봉과 같은 나라의 경사가 있거나 10년에 한번 당하관(堂下官)을 대상으로 한 중시(重試)가 있을 때 시행하던 일종의 부정기적인 과거시험이었다. 식년시에는 33명의 인재가 선발되고,10년 만에 한번씩 치르는 중시 때는 조의(朝儀)를 행할 때 당상의 교의(交椅)에 앉을 수 없는 서얼(庶孼)과 같은 특수한 신분의 낮은 계층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었으나 이번의 별시는 주로 성균관 유생에 한정되어 치르는 별시문과(別試文科)였다. 율곡은 이 특별시험에 참석하기 위해서 강릉을 떠나 시험 이틀 전에야 한양의 수진방에 도착하였다. 그해 봄 퇴계를 만나 2박 3일의 짧은 상봉을 끝낸 후 율곡은 줄곧 강릉에 머물며 학문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율곡이 별시에 응시하기 위해서 한양으로 돌아온 것은 거의 10개월 만의 외출이었던 것이다. 율곡으로서는 세 번째의 과거시험이었다. 이미 율곡은 불과 13세의 어린나이로 진사과에 초시로 합격하였다. 두 번째 시험은 금강산으로 출가하였다 환속한 다음해였던 1556년 21세 때의 일이었다. 한성부에서 실시한 것으로 한성시(漢城試)라고 불렸던 초시였다. 이 시험에서 율곡은 장원으로 뽑혀 널리 문명을 떨쳤으나 최고 학부인 성균관에 유학할 수 있는 특권을 얻은 것에 지나지 않았을 뿐 여전히 백면서생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율곡에게 있어 세 번째 별시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이제 율곡은 더 이상 홀몸이 아니라 아내까지 거느린 가장이었고, 양반의 신분으로 태어난 율곡이었지만 이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과거에 급제한 뒤 입신양명함으로써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제도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뿐인가. 율곡은 스승 퇴계를 만나고 강릉으로 돌아간 10개월 동안 스승으로부터 점지 받은 ‘거경궁리’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율곡이 평생 동안 공부하였던 학문의 양보다 이 짧은 10개월 동안에 더욱 깊이 침잠하였던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율곡의 철학과 지적수준이 이 무렵에 거의 완성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학문에 투자하느냐 하는 사실보다 비록 짧은 기간이더라도 얼마나 집중하고 몰두하느냐 하는 것이 학문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사실을 율곡의 모습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 번째의 과거시험이었던 별시해는 율곡의 학문을 객관적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였던 것이다.
  • [길섶에서] 까치집/이호준 뉴미디어국장

    등산로 초입에서 까치 두 마리를 만났다. 유난히 부산스러운 몸짓에 다가가 보니 작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새로 짝을 이뤄 집을 짓기 시작한 모양이다. 아하, 봄은 벌써 이만큼 와 있구나. 냇물이 다시 흐르고, 새들이 집을 짓고…. 걸음을 멈추고 까치 한 쌍을 한참 바라본다. 까치는 보통 2∼3월에 둥지를 튼다.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재료로 쓰지만 부리로 꺾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둥지는 촘촘하게 잘 엮어져 구렁이나 족제비 같은 적이 침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비가 와도 새지 않는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정성이나 솜씨 모두 사람에 못지않은 듯싶다. 예전엔 까치의 집을 보고 한 해의 날씨를 점쳤다고 한다. 가령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지으면 그 해는 별 재해 없이 날 수가 있고, 반대로 중간의 굵은 가지에 집을 지으면 태풍 등의 재해를 예고한다는 것이다. 문명의 발달이 극에 달했다는 지금도 인간은 자연재해 앞에 여전히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산길에서 만난 까치 한 쌍에게 부탁해본다. 될 수 있으면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틀어다오. 이호준 뉴미디어국장 sagang@seoul.co.kr
  • 유라시아 1000일 ‘소멸로 본 생성’

    문명은 없다. 단지 생명의 적멸(寂滅)이 있을 뿐. 죽음이 삶이고, 삶이 죽음이라는 다분히 동양철학적 깨우침이 수묵의 미학으로 되살아난 듯하다. 김호석의 그림에서 시인 고은은 ‘진혼의 미학’을 본다. 광활한 몽골 설원. 풀 한포기 뜯어먹기 위해 고개를 눈 속에 처박고 죽은 짐승의 사체. 하지만 여름에 다시 찾은 그곳엔 하얀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나고, 양떼들이 이를 뜯어먹는다. 지난 2002년 ‘열아홉 번의 농담’이란 주제로 골계미를 한껏 발산시킨 수묵화가 김호석이 이번엔 8년여에 걸친 유라시아 답사결과를 전통 먹빛으로 재생시켰다.28일까지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열리는 ‘문명에 활을 겨누다’전. 작가가 총 1000여일을 여행하며 보려고 한 것은 인간의 문명이 아니다. 작품들은 오히려 문명의 이전, 아니 문명 너머엔 무엇이 있는지 끊임없이 묻고 있는 듯하다. 동물들이 뜯어먹다 남아 썩어가는 사체 아래 발그스름하게 들꽃이 피어나는가 하면(‘소 갈비 사이에 핀 패랭이’), 반쯤 선 채 죽음을 맞이한 소의 사체 너머로 멀리 낙타들이 걸어간다(‘수컷’). 동물 사체들이 쌓여 썩어가는 들판을 한 몽골노인이 무심코 지나가기도 하고(‘조드’), 죽은 소의 이빨 틈새에 나비가 노는 가운데 머리통 주변엔 꽃이 피어 있다(`죽음과 나비´). 유목민의 일상을 포착한 작품들도 ‘생명의 순환’이란 이치에 닿아있기는 마찬가지. 나담 축제의 말 타기 경주를 소재로 하고 있는 ‘해 뜨는 곳에서 해지는 곳까지’를 비롯, 마치 티끌같은 인간이 거대한 자연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듯한 ‘샤먼’, 동물과 한몸처럼 살아가는 유목민의 모습을 표현한 ‘형제’가 그렇다. 작가는 “죽음이 새로운 창조로 시작된다는 게 북방의 사유구조”라며 “이들에게 죽음은 삶만큼 친숙하고 가까이 있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작가는 특유의 정교한 필치로 구체적 소재와 주제를 담으려고 했다. 하지만 꿈틀거리는 듯한 구름과 사체가 해체되는 모습 등은 상당한 추상성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화가가 소멸을 통해 생성을 보고자 하는 자신의 대주제를 40여점의 작품에 관통시키고자 한다는 점을 읽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번 전시를 기념하여 문학동네에서 화집 ‘문명에 활을 겨누다’(2만2000원)도 발간했다.(02)733-5877.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문명과 야만을 넘어서 문화읽기/이태주 지음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한 인류학자가 문명에 의해 야만으로 규정된 세계를 여행하고 쓴 일종의 기록문학 작품이다. 그런데 왜 ‘슬픈’이란 수식어가 붙었을까. 무엇이 야만을 슬프게 만드는가. 문명이 죄다. 문명은 오만했다. 대항해 시대 이후 불붙은 유럽의 식민지 경영은 문명의 이름으로 야만을 단죄했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문명이 남긴 열대의 상처를 보듬으며 인류의 전체주의적 속성을 고발한다. 각각의 문화는 나름의 합리성 위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타문화에 대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명과 야만을 넘어서 문화읽기’(이태주 지음, 프로네시스 펴냄)는 이같은 전제에서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에 입각한 서구중심적 문화해석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나아가 진정한 문화상대주의의 가능성을 살핀다. 문화인류학자인 저자(한성대 교수)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 파푸아뉴기니에서 거꾸로 된 세계지도를 보고 받은 충격에서부터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도시문명이 발달한 유럽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원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야만’은 발견된 것일까. 이 책에서는 유럽의 시선으로 포착된 야만을 달리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증언과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복전쟁을 정당화하는 계몽주의의 신화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선에 태웠다.1000만명이 넘는 흑인 이주의 역사와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이 진정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문명화를 위한 사명’ 때문이었을까. 결론은 역시 비판적 지성 에드워드 사이드를 빌려 내릴 수밖에 없다. 사이드는 일찍이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유럽 중심의 잘못된 세계관과 편견을 분석, 동양에 대한 계몽을 정당화하는 서구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했다. 우리는 얼마나 다른 문화에 관용을 보이고 있는가. 문화상대주의는 이제 우리 시대의 보편적 가치다.9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군포 ‘물테마체험관’ 29일 개장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수도사업소에 ‘물 테마 체험관’이 29일 문을 연다. 체험관은 65평 규모로 생명의 물, 정보의 물, 새로운 물, 재미의 물, 문화공간 등 5개 테마관으로 나뉘어 물, 환경의 중요성을 전시와 체험을 통해 체득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특히 체험관에는 물과 지구의 관계, 물의 탄생 과정, 인간의 치수 역사, 물과 문명의 발상지, 우리나라 상수도 변천사, 물과 인체의 관계, 물이 몸안에서 하는 일, 생활 속 물의 오염 등의 내용이 알기 쉽게 전시돼 있다. 또 수돗물 탄생 과정을 보여주는 정수장 축소 모형, 어항세트 속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관찰하는 코너도 마련돼 있고 입체 패널과 LCD 모니터, 와이드 컬러, 미니어처, 터치 스크린 등이 갖춰져 관람자가 직접 만지거나 조작할 수도 있다. 문화 공간에는 물 관련 애니메이션과 어린이들이 물을 소재로 쓰고 그린 글과 그림 등이 전시돼 있고 야외에는 물레방아, 조형 분수, 쉼터 등이 설치돼 있다. 수도사업소는 개장과 함께 체험관을 일반 시민과 학생들에게 무료 개방할 방침이다.(031)390-0448.군포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깨미동과 떠나는 생각여행] (3)IQ와 편견

    [깨미동과 떠나는 생각여행] (3)IQ와 편견

    ●피부색이 흴수록 IQ가 높을까? 작년 영국의 학술저널에 리처드 린 교수와 폴 어윙 박사가 남성의 평균 지능지수가 여성보다 5점 높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노벨상처럼 높은 지능이 필요한 여러 분야에서 남성 수가 많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여성의 학업성취도가 높은 것은 비슷한 지능에서는 여성이 더 오랜 시간 열심히 공부하는 경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이한 점은 이들이 이전에도 미국 흑인들 중 피부색이 밝은 사람이 더 검은 사람보다 똑똑하다는 가설을 증명하려는 연구를 진행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계 이민자의 지능이 낮아 전체사회의 수준을 낮춘다고 주장하는 호주의 학자도 있다. 이런 주장은 결국 상대를 열등하거나 문제 있는 집단으로 분류하여 차별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우리가 늘 똑똑함의 척도로 생각하는 IQ는 어떻게 등장했을까? IQ는 1905년 프랑스 정부가 정상아와 지진아를 판별하기 위해 비네(Binet)에게 검사도구를 개발하도록 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미국 육군에서 우수 장병을 단기간에 선발하기 위해 집단적인 지능검사를 발전시킨다. 우리나라 역시 독자적인 지능검사를 개발했다. 100년 동안 발전해온 IQ검사는 신뢰성이 높다. 대부분 학교에서 IQ검사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데 검사를 할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요한 이유는 개인의 개별적인 사항을 고려하는 개별식 검사가 아닌 집단 검사 방식이어서 정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능은 순수하게 타고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만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검사결과가 향상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 사회에서 특정 계층이나 인종의 IQ가 낮다면 사회적으로 차별받거나 교육기회가 제한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은 IQ가 개인의 능력을 정확히 보여주는 지표인가 하는 점이다. 각 분야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IQ가 가장 높은 사람들일까.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매우 다양한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 사업가에게는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이끄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IQ는 우리의 수많은 능력 중에서 기억력, 이해력, 사고력에 중점을 두고 측정한 결과이기 때문에 IQ 이외에 새로운 지수가 주목을 받고 있다.EQ(감성 지수·Emotinal Quotient),SQ(사회성 지수·Social Quotient),MQ(도덕 지수·Moral Quotient),CQ(카리스마 지수·Carisma Quotient),AQ(역경지수·Adversity Quotient) 등 다양한 측면을 강조하는 새로운 지수가 계속 등장하는 것도 IQ의 한계 때문이다.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기존의 IQ를 반박하면서 1983년 ‘다중(多重)지능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각 문화권에서 가치있게 여겨지는 것을 창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지능이라고 보았다. 단일한 지능이 아닌 언어 지능, 공간 지능, 대인 지능, 자연 지능, 자성 지능, 음악 지능, 신체운동 지능, 논리수학 지능 등 8가지 복합적인 지능을 제시하였다. 이 이론에 따르면 모두가 다중 지능을 갖고 있고, 각 지능 영역마다 발달 정도가 다를 뿐이다. 또한 지능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향상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중지능이론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한 가지 측면에서만 인간의 지능을 측정하는 기존 방식의 한계를 잘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을 지능의 우열에 따라 나누기보다 자신이 뛰어난 지능이 무엇인지 알고 계발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된다. 전통적인 견해가 맞다면 IQ가 높으면 공부를 잘할 것이고 반대라면 학업성취도가 낮을 것이다. 실제로는 주변에서도 그렇지 않은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IQ는 122로 결코 천재적인 지능지수가 아니었다. 두뇌까지 전시되었던 아인슈타인의 학업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한 사람의 지능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지금까지의 IQ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처럼 지능을 측정하는 척도는 다양하며 여러 방면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별이나 피부색에 따라 지능이 다르다거나 아프리카계 이민자의 IQ가 낮아서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이는 주류 집단이 느끼는 위기감의 반영이다. 그들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점과 불만들을 특정 집단에게 돌리고, 차별받는 집단은 선천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신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1. 저렴하면서도 멋진 옷을 잘 고르고, 색상을 조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VQ(시각적 감각 지수·Visual Quotient)는 이런 시각적 안목을 나타낸다. 디자이너가 아닌 일반인도 물건을 고르거나 과제물을 만들 때에 감각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은 교육을 통해서, 또한 다양한 시도와 생각의 전환을 통해 계발할 수 있다. 작품성 있는 영화와 드라마, 음악 등을 고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안을 정리해보자. 2. 요즘 시대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능력이 무엇인지 토론해 보자. (예)요즘에는 NQ(공존지수·Network Quotient)가 중요시되고 있다.IQ나 EQ 등은 개인의 능력에 중점을 둔 지수이다. 공존 지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과 관계를 잘 이끌고 함께 소통하는 능력을 말한다. 3. 과거 초원지대를 누비며 살아가던 인디언이 현대 도시문명 속으로 갑자기 들어온다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열등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그들의 세계로 들어간다면 역시 비슷한 처지에 빠질 것이다. 누구의 지능이 더 높은지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옥성일 서울 용산고 교사·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
  • [이슬람 문명과 도시] (5) 분리장벽에 갇힌 동예루살렘

    [이슬람 문명과 도시] (5) 분리장벽에 갇힌 동예루살렘

    학술진흥재단 ‘중동 부족주의 연구’ 프로젝트의 현장조사와 지난 1월25일 팔레스타인 의회선거 국제감시단 활동을 위해 1년여 만에 다시 찾은 동예루살렘. 저녁 9시가 넘어서야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했다.10달러를 내고 승합차를 타려다 승객이 다 찰 때까지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50달러를 내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그러나 동예루살렘 부근에서 이 운전사는 아랍인 구역은 안전하지 않아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결국 팔레스타인 사람이 운전하는 택시로 갈아탔다. 다음날 아침 찾은 동예루살렘 거리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 눈부신 태양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침울한 표정도, 주택과 건물들이 철거된 채 폐허로 남아 있는 것도,50년 이상된 낡은 건물들이 가득찬 거리도. 그날 저녁 팔레스타인 국제연구소(PASSIA)에 들러 식사를 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택시 요금에 대해 물었다. 예루살렘대학 무스타파 아부 스웨이 교수의 말이다.“이스라엘 택시 기사들은 요금 더 받으려고 보안문제를 항상 들먹이죠. 거기다 동예루살렘이 불안하다면서 전세계 관광객들을 서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호텔로 끌어들여요.” 실제 종교유적이 많은 동예루살렘을 보러 겨울철에는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수백명 단위의 한국 관광객들도 많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이스라엘인들이 운영하는 서예루살렘 호텔을 이용한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의 동예루살렘 호텔들은 대부분 경영난에 허덕이고, 필자가 지난해까지 이용했던 팔레스타인 호텔 두 곳은 결국 문을 닫았다. 필자는 지난 겨울방학 동안 동예루살렘 옛도시 근처 ‘크리스마스’ 호텔에서 40여일 머물렀다.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처럼 호텔 주인 에밀 자르아위는 기독교신자다. 기독교 할당으로 이번 의회선거에서 의원으로도 당선됐다. 그러나 이 호텔 직원의 절반은 동예루살렘 근교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 출퇴근하는,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한 명인 무함마드. 두 자녀를 거느린 가장인 그가 한달에 받는 월급은 500달러. 예루살렘 주변 물가가 서울 못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돈으로 한 가족이 먹고 살 수 있을지 걱정이다. 거기다 이스라엘은 ‘노동허가증’을 받지 못한 그를 불법노동자라며 단속한다. 현장에서 체포되면 수감당한다. 여섯달 전에도 새벽 5시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호텔에 들이닥쳐 4명의 직원들을 체포, 두달 간 가뒀고 호텔 측에는 1만 3000달러 이상의 벌금을 물렸다. 그러나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감옥행보다 가족의 생계다. 그래서인지 무함마드는 동예루살렘 주변지역에 둘러쳐지고 있는 분리장벽에 분통을 터뜨렸다. 분리장벽이 완성되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서 동예루살렘 호텔로 오는 비밀 통로가 완전히 막힌다고 했다.“당신이 내년에 이 호텔로 다시 와도 나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올해엔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가르는 분리장벽이 완성되겠죠. 그러면…. 자식들의 생계가 걱정이에요.” 이내 목이 멘 그는 황소처럼 순박한 큰 눈을 껌벅이며 곧 눈물을 쏟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감시탑과 전기 흐르는 철장까지 합해 8m 높이로 지어지고 있는 콘크리트 분리장벽은 거의 완성 단계다. 완성되면 동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은 오직 이스라엘 검문소를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다. 이스라엘 허가 없이 동예루살렘에 들어와 일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드나들 방법이 없을게다. 이 검문소를 통과하려면 200m나 되는 철장 미로,3중의 회전철창문, 전자감지 장치를 한사람씩 한사람씩 지나야 한다. 검문소에는 당연히 중무장한 이스라엘 병사들이 배치된다. 이제 동예루살렘은 서안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도시,‘고립된 섬’으로 남게 된다. 현재 동예루살렘은 막강한 화력을 가진 이스라엘의 선제 공격으로 시작된 19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은 곳이다. 점령 직후 이스라엘은 이곳을 수도라고 선언했다. 당연히 국제법상으로는 불법 점령지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대사관이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에 있는 이유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수도선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에 사는 20만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시민권이 아닌,‘영주권’만 가지고 있다. 더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 주민의 33% 이상을 차지하는데도, 예루살렘시가 이들에게 쓰는 예산은 10%에 불과하다. 그것도 채 안될 때가 많다. 이 때문에 동예루살렘은 상하수도 시설부터 가로등과 도로 등 모든 공공서비스가 부족하고 낡았다. 심각한 수준이다. 여기다 점령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새 건물을 짓는 것을 허가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과 호텔 등 건축물은 그 나이가 기본이 50살이다. 점령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을 계속 빼앗으면서 그 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영구추방하고 있다. 이번 팔레스타인 의회선거에서도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가운데 단 6100명에게만 투표를 허락했다. 그것도 5개의 우체국에서.6100명을 제외하고 투표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예루살렘 도시 밖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으로 나가서 투표를 하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사람만의 도시로 생각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 주권을 협상하려 했지만,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독점권에서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는다. 예루살렘 분쟁의 핵심은 바로 이 대목이다. 오직 땅만 바랄 뿐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추방시키는 것이 이스라엘의 정책이다. 이 주장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 예루살렘에 대한 ‘선취권’을 내세운다. 기원전 10세기, 다윗과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유대성전을 건립했다는 게 전부다. 그러나 지금 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이름을 보라. 이브라힘(아브라함), 무사(모세), 다우드(다윗), 술레이만(솔로몬), 유세프(요셉), 이사(예수)……. 성경 속 인물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쓸 뿐 아니라, 이 선지자들이 모두 자신들의 조상이라 말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렇다. 기원전 13세기쯤 유대교가 만들어진 이래 서기 1세기에 기독교가 나오자 이 지역 유대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7세기 중엽부터 19세기까지는 이슬람세력이 예루살렘 지역을 장악하면서, 또 수많은 유대교도와 기독교도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바꿔 말해 이는 유대교도, 기독교도, 이슬람교도들이 문화적으로는 물론, 혈연적으로도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예루살렘 역사를 공유해 왔다는 뜻이다. 이렇게 본다면, 선취권을 내세워 예루살렘에 대한 독점적 주권을 내세우는 이스라엘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홍미정 한국외대 연구교수
  • 세계 500대江 절반이 죽어간다

    세계 500대江 절반이 죽어간다

    강이 죽어가고 있다. 문명의 발상지이자 삶의 젖줄인 강이 황폐해지면서 인류의 미래도 위협받고 있다고 유엔 조사보고서가 경고했다. 나일·인더스 등 세계 500대 강의 절반이 심각하게 고갈되거나 오염됐다고 12일 영국의 인디펜던트가 오는 22일 ‘세계 물의 날’을 맞아 공개될 유엔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주요 원인은 대형댐 건설과 지구 온난화. 강의 지도를 완전히 바꿔 놓는가 하면 서식어종 20% 이상을 멸종시키고 있다. 뉴딜 정책으로 유명한 후버댐의 건설지 미국 콜로라도강은 더이상 바다에 도달하지 못한다. 재규어와 비버 등 400여종의 동식물이 습지를 배경으로 서식했지만 지금은 하류가 소금밭과 죽은 조개무지의 사막으로 변했다. 멕시코와의 국경으로 유명한 리오그란데강도 일부 구간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줄기가 둘로 끊어졌다. 오염 천국이 된 지역을 주민들은 “잊혀진 강”으로 부른다. 중국 황허의 물도 지난 35년 동안 태평양까지 흘러가지 못했다. 호주의 머리강은 2년에 한번꼴로만 바다에 도달한다. 요르단강은 이스라엘이 관개농업을 위해 파이프로 모조리 끌어간다. 영국 하천의 25%인 40여개 강도 대서양으로 가기 전 유량의 대부분을 도시 및 공업용수로 빼앗긴다. 알래스카 유콘강은 댐은 없지만 지구 온난화로 수온이 올라가 연어가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오늘날 강은 원래 자연의 모습에서 한참 벗어나, 물을 집적해 도시나 경작지로 끌어들이는 거대한 ‘하수 시스템’으로 변모해 버렸다. 현재 지구에는 4만 5000개의 대형댐이 들어서 15%의 물만 바다로 흘러가게 놔둔다. 대형 저수지의 면적은 전세계 대륙의 1%를 덮고 있다. 1970년대 초기 왕성했던 댐 건설은 이후 줄어드는 추세이나 여전히 수백개의 댐이 건설 중이다. 유엔의 결론은 환경 보전과 함께 대형댐을 지양하는 것이다. 대형댐 1개를 짓기보다는 소형댐 여러 개가 낫다고 충고한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씨줄날줄] 8영8치(八榮八恥)/육철수 논설위원

    새떼의 군무나 물고기떼의 일사불란한 유영은 신비의 극치다. 무리가 많아도 서로 부딪치거나 대열을 이탈하는 개체는 없다. 새는 지저귐과 날갯짓, 물고기는 옆줄의 감지기능에 의해 무리의 흐름을 따른다고 한다. 좀더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면, 영국의 물리학자 레이놀드의 실험이 유용하다. 이에 따르면 이들은 우선 우두머리를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조타성과 정렬성을 갖고 있다. 이동중 개체간 충돌을 막는 분리·회피성, 그리고 다른 개체들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무리의 중심으로 모여드는 응집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새떼는 바람이 불듯 거침없이 날고, 물고기떼는 물흐르듯 유연하게 헤엄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행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맨앞에서 조타역을 맡은 우두머리다.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는 국가지도자와 인민의 모습은 새떼와 물고기떼의 행동을 연상시키기에 딱 알맞다. 후진타오 주석은 며칠 전 인민정치협상회의 연설에서 8가지 영광과 8가지 수치(八榮八恥:바룽바츠)를 7언율시로 제시했다고 한다. 이 내용이 뒤늦게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중국 전역이 매료되고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8영8치의 내용은 기실 별게 아니다.▲조국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해 봉사하며 ▲과학을 숭상하고 ▲근면하게 일하며 ▲서로 돕고 ▲신의를 지키며 ▲법을 지키고 ▲어렵더라도 분투하는 것이 이른바 8영이다. 이와 거꾸로 하는 행동은 8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 인민들이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을 위한 목표와 요구를 제대로 제시했다.”며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배금·향락·개인주의와 부정부패가 팽배한 시점이어서 심금을 울리고 반향이 컸던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국가지도자의 입을 통하면 이렇듯 국가비전으로서 무게를 한층 더하는 법이다. 후 주석은 ‘적시타’를 날림으로써 국가와 인민이 일사불란하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켰다. 막말에다 성추행, 적절치 못한 골프 등으로 걸핏하면 국민을 서글프게 만드는 게 우리 정치지도자들이다. 이들의 처신을 후 주석의 기준에 비추어 보니 적잖은 수치를 범하고 있다. 비전 제시는커녕 국가에 해를 끼치고, 국민을 배반하며, 법을 어기고, 이익만 좇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세계사를 바꾼 질병 ‘페스트’

    아직까지도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한 생물학적 질병이 많다.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AI) 때문에 독일 월드컵이 취소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생물학적 질병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단연 페스트(흑사병)이다. 페스트는 치명적인 질병이라는 것 외에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바꿔놓은 질병으로 분석된다. 페스트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라는 박테리아에 의해 감염된다.1346년 흑해 연안 항구도시 카파를 거쳐 몽골제국에서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쥐에 기생하는 쥐벼룩이 박테리아를 인간의 몸에 옮겼다. 일단 이 병에 걸리면 열이 나기 시작한 뒤 몸 곳곳에서 커다란 종기가 나고, 의식이 흐려지며 기침을 할 때마다 피를 토해내다가, 결국에는 숨지게 된다.14세기 당시 유럽 인구의 65%가 페스트로 목숨을 잃었다. 패스트가 창궐하던 4년 동안, 유럽에서 안전지대는 없었다. 페스트는 신의 형벌이라고 여겨졌으며, 유대인들이 공포에 사로잡힌 집단 히스테리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흑사병이 지나간 뒤 유럽은 사회 경제적으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인구가 크게 줄은 탓에 노동력이 부족해져 가난한 농부들은 일자리 걱정을 덜었고, 임금도 올랐다. 주인 없는 땅이 남아돌았기도 했다.종교의 권위도 조금씩 허물어졌다. 종교 사제들도 피할 수 없었던 페스트 때문에 교회 권위도 조금씩 허물어졌다. 페스트는 아이로니컬하게도 중세에 종지부를 찍고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 촉매제가 된 셈이다. 페스트는 541년 아라비아 반도에서, 1850년 중국 대륙에서,1890년 인도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지금도 우간다, 아라비아 서부, 쿠르디스탄, 인디아 북부, 고비 사막이나 미국 남서부 지역에 페스트 균이 존재하고 있다. 히스토리채널이 오는 10일 오전 10시와 오후 9시(재방 12일 오후 10시)에 페스트에 대한 총체적인 보고서인 2부작 특별 다큐멘터리 ‘페스트’(Plague)를 방송한다. 전 세계 130개국 2억 3000만 시청가구를 거느리고 있는 히스토리채널이 거의 동시에 방송하는 ‘월드와이드이벤트’의 8번째 시리즈다. 미국에서는 지난달 27일 방영했을 정도로 최신 작품이다. 유럽에서 페스트가 기승을 부렸던 당시를 드라마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존 애버스 버몬트대 교수 등 역사 전문가 의견을 곁들이며 사회 근본구조까지 뒤흔들었던 질병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공포심과 이기심, 영웅주의와 희생 정신이라는 상반되는 본성을 드러냈던 상황이 고스란히 그려진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제국의 부활/페터 벤더 지음

    미국과 로마는 닮은 점이 많다.‘섬’으로 출발해 비슷한 길을 거쳐 강대국이 됐고, 당대 유일의 세계 최강국의 위치를 차지한 점 등이 그것이다. ‘제국의 부활’(페터 벤더 지음, 김미선 옮김, 이끌리오 펴냄)은 미국과 로마를 비교역사학적으로 분석,‘미국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로마 제국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이는 곧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과 동일선상에 있는 것. 미국의 최근 모습은 ‘제국’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세계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을 ‘새로운 로마’로 명명함으로써 과거와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는 정치는 물론, 인간 사이의 교류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미국의 세계지배 정책은 로마제국의 정책과 동일선상에서 분석된다. 우선 두 강대국의 출발점을 ‘섬’이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에서 찾는다. 두 제국이 걸쳐있는 고대부터 2003년까지의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공간적으로 떨어진 두 강국의 근본적인 차이점과 유사점을 꼼꼼하게 관찰한다. 이탈리아와 북아메리카라는 ‘섬’에서 군사적·경제적으로 다른 어떤 나라도 추월하지 못할 세력으로 성장했으며, 바다가 더 이상 자신들의 보호막이 되지 못하자 방어의 목적으로 밖으로 팽창하게 된다. 마침내 그들이 추구하지 않았던 지역과 위치에 서 있게 됐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유례 없는 위치에서 로마 헌법은 변화를 극복하지 못했다. 도시국가 로마는 제국이 됐고, 공화정은 군주정이 됐다. 그렇다면 미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는 이 지점에서 두 제국의 길이 달라질 수도, 같아질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이제 미국이 결정을 내릴 때라는 것. 미국은 제국을 세워 그 권력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할 것인지, 한 국가의 전능에 가까운 권력은 어떤 유혹을 받으며, 또 그 나라에 어떤 책임을 부과하는지 등에 대한 무수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미국의 제국주의화를 비판하는 시각과 달리,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유사 이해 변하지 않았던 것, 즉 ‘인간’을 조망한다. 로마의 전략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와 먼로선언의 기초를 마련한 미국의 전략가 존 퀸시 애덤스의 정치적 견해는 놀랍도록 흡사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저자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로마가 애착과 경외심을 가지고 행한 자기수용의 과정에서 그리스의 문화적 유산을 재탄생시켰듯이, 미국은 유럽과 함께 서구 문명을 보호하고 유지시키며 문화적 뿌리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 역사의 조각들이 퍼즐 맞추듯 이어져 과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유일한 초대강국 미국의 향방을 전망하고,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리도 새롭게 점검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1만 30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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