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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성실납세,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현동 국세청 차장

    [기고] 성실납세,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현동 국세청 차장

    부가가치세는 1919년 독일에서 제안되었으며 프랑스 등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는 1976년 부가가치세법 제정을 거쳐 1977년 아시아 최초로 도입, 시행하고 있다. 2008년 기준 부가가치세 세수는 약 44조원으로 총세수 167조원 중 26.3%로 우리나라 재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현행 부가가치세는 납세자들의 성실한 세금계산서 교부를 전제로 하는 세목이다. 따라서 무자료 거래 등 세금계산서 거래 질서가 문란해지면 부가가치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재정 자체가 위태롭게 될 수 있다. 최근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등 과세 인프라 확충에 따른 수입금액 양성화는 일부 납세자들의 세부담 회피 유혹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세부담 축소의 가장 쉬운 방법(?)으로 자료상에서의 허위 세금계산서 수취가 이용되고 있다. 여기서 자료상이라 함은 실물 거래 없이 허위 세금계산서(일명 자료)를 발행하고 그 대가로 일정액의 수수료를 받는 자를 말한다. 자료상은 비정상적인 유통구조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납세자들의 세금을 줄이려는 욕구와 손쉽게 이익을 얻으려는 자료상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져 발생한다. 자료상의 자료는 세금을 줄이려는 납세자들의 탈세 수단으로 악용돼 대다수 성실 납세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주고 조세 행정의 목표인 공평과세 실현을 저해한다. 국세청에서는 이러한 자료상을 근절하기 위해 자료상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 등 행정적인 노력과 함께 자료상에 대한 처벌규정 강화 및 제도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국세청의 노력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세청은 사업자등록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사전 확인과 정기적인 부실사업자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부실사업자를 이용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려는 자료상을 사전 차단하고 있다. 둘째, 자료상 조사에서 투트랙(Two-Track) 방식을 채택했다. 자료상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에도 불구하고 자료상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허위 자료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국세청에서는 자료상에 대한 조사와 병행하여 허위 자료 수요 심리를 억제하기 위해 허위 자료 수취자에 대한 조사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고 있다. 또한 수취자에 대한 조사결과 탈루수법이나 규모로 보아 범칙처분 요건에 해당되는 경우에는 세금 추징뿐만 아니라 사법당국에 고발하는 등 엄정하게 처벌하고 있다. 셋째, 자료상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여 조기색출하고 있다. 자료상에 대한 상시 정보수집을 통해 자료상 행위가 적발될 경우 수사기관과 공조하여 현장에서 체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료상에 대한 처벌규정을 3년 이하 징역형으로 강화하여 긴급체포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특히 자료 발행 금액이 클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의해 가중처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2010년 ‘전자세금계산서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전자세금계산서 제도는 인터넷 PC 등 전자적 방식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그 내역을 국세청에 전송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세금계산서 발행 내역이 국세청으로 실시간 전송되고 모든 거래에 대한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해져 자료상 근절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국세청 출입문에는 ‘조세는 우리가 문명사회에 사는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즉 문명사회는 납세자의 성실납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자료상 자료 수취를 통한 탈세유혹을 과감히 뿌리칠 수 있는 성숙한 납세의식을 통해 선진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가길 희망한다. 이현동 국세청 차장
  • “노동자의 땀방울과 녹슨 철… 모두 예술이죠”

    “노동자의 땀방울과 녹슨 철… 모두 예술이죠”

    “철을 깎는 노동자의 땀방울, 녹슨 철과 기름 냄새 모두가 문래동의 예술이고 문화입니다.” 서울 문래동 일대에서 진행되는 ‘물레아트페스티벌 2009’의 개막을 하루 앞둔 16일 김금녀 조직위원장은 ‘일상의 모든 것들이 예술’이라고 강조했다. 물레아트페스티벌은 이 지역 예술인들이 2007년부터 매년 열고 있는 축제다. ●생생한 노동현장서 예술적 영감 얻어 문래동은 1970~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대였다. 하지만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대부분의 공장이 문을 닫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예술인들이 모여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곳을 찾은 예술인들은 “임대료가 낮을 뿐만 아니라 낡고 오래됐지만 생생한 노동의 현장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는다.”고 입을 모은다. 김 위원장은 “이번 축제는 문래동 철제상가의 역사와 기억을 되짚어 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철이 인간 문명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되새겨 보는 예술 잔치”라고 말했다. 축제의 상징인 물레는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물레질을 하면서 아름다운 삶의 천을 만들어 간다.’는 의미로 선택됐다. 김 위원장은 “물레는 문래동의 발음을 따기도 했지만 천을 짤 때 씨줄과 날줄이 결합하듯 생활 속에서 예술을 창작하는 과정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31일까지 춤·설치미술 등 다채롭게 이곳의 국악 앙상블 ‘뒷돌’ 단원인 정미나(36·여)씨는 “다양한 예술인들이 모여 교류하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면서 “지난해부터 이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이곳을 개발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독특한 문화지역으로 보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이소주(33)씨는 “한국 문화계를 위해서라도 문래동 예술촌과 물레아트페스티벌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축제는 춤, 설치미술, 연극, 영화, 사진전시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17~31일 진행된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대학은 지역사회와 적극 교류해야”

    “대학 교수들이 시민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게 흥미롭다.” 16일 서울대에서 열린 세계 대학총장 포럼에 참가한 폴 웨블리 영국 런던대학교 아시아·아프리카대 총장은 한국에 부는 인문학 열풍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전날 기자와 만나 대학이 상아탑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 교류하고 적극적으로 언론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웨블리 총장은 “역사, 철학, 문학 등 인문학을 배우면 물질적 행복보다 정신적 행복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면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라며 인문학의 열기를 분석했다. 그는 “자원을 다 써버린 끝에 멸망한 남태평양 이스터 문명의 역사를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고민하는 것처럼 인문학은 과거를 거울 삼아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학문”이라고 평가했다. 총장 취임 이후 해마다 한국을 찾고 있는 그는 올해 한국방문이 네번째다. 이날 포럼에서는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한 대학의 역할’을 주제로 연설했다. 날로 시장화, 기업화되고 있는 대학에 대해 웨블리 총장은 “변화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30년 전 영국의 대학은 공공서비스 기관이었지만 지금은 비즈니스 기업에 가깝게 변했다.”면서 “당시에는 학교 재정의 대부분을 정부에 의존했으나 현재는 정부보조금이 25% 수준으로 크게 낮아졌다.”고 말했다. 교육의 질을 높여 더 많은 학생과 교수진을 유치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한다. 그러나 웨블리 총장은 대학이 기술적으로 숙련된 인력을 배출하는 ‘직업 학교’로 전락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대학은 세부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식과 지혜, 판단력과 사고력을 길러주는 곳”이라면서 “학생들이 끊임없이 지적 호기심을 느낄 수 있도록 자극하는 것이 대학 본연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대학의 한국학과는 언어와 문학뿐 아니라 정치, 법학, 역사 등을 전공한 최고 수준의 교수진 13명을 갖추고 있다.”면서 “학생들의 한류 열풍도 대단해 해마다 한국을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열린세상] 디지털 시대의 으뜸문자 한글/박광서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열린세상] 디지털 시대의 으뜸문자 한글/박광서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며칠 전 한글날을 보내면서 그동안 바쁜 일상에 잊고 있던 우리말의 의미와 소중함, 그리고 우리 사회의 언어문화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말은 생명체 같아서 계속 변화하며 진화하기 마련이다. 세계를 상대로 교류하고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려면 언어가 섞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섞임이 서로의 언어와 문화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상승효과를 낼 수 있도록 신중해야 한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듯 주객이 전도된다면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특히 영어 과잉과 언어 오염이 도를 넘은 듯해서다. 야구팀의 이름은 연고지나 기업과도 무관한 타이거스, 라이언스, 베어스, 자이언츠 등 미국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1982년 처음 프로야구가 출발했을 때 있었던 MBC 청룡이 그나마 유일한 우리말 팀이었는데, 아쉽게도 사라지고 말았다. 음식점은 가든, 여관은 파크, 예식장은 홀이나 플라자로 자리잡아 가는 듯하다. DJ, YS, MB 등 정치인들의 애칭도 복합된 국민의 정서를 숨기기에 편리하다는 이유로 즐겨 쓴다. 대기업들은 앞다퉈 LG, SK, KB, KT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회지도층일수록 외국어 사용이 지식인의 척도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거나 영어 단어를 섞지 않고는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글로벌 스탠더드, 거버넌스(지배구조), MOU(양해각서), 에코 프렌즈, 그랜드 바겐, 원샷 딜 등등. 개인의 우월감 때문일까, 민족의 열등감 때문일까. 퍼스트 모기지론, 파이낸싱 페어 등 영어표기도 없이 한국식 발음만 그대로 옮겨놓아, 한국인을 위한 것인지 외국인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괴이한 형태도 자주 눈에 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면 말고 식이다. 공공기관이나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국적불명의 억지 영어를 만들어 쓰는 것도 부자연스럽다. K-water가 한국수자원공사인 줄 누가 알겠는가. NH가 농협이란 것도 누구를 위한 영어이고 약자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이자 우리 얼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따라서 외래어를 남용하거나 외국어로만 새 말을 만들어 써서 우리말과 글이 점점 퇴화되면, 얼빠진 민족이 되어 다른 나라의 문화속국 신세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다행히 우리는 고유의 말이 있을 뿐 아니라 한글이란 출중한 문자가 있어 자랑스럽고 행복한 문화민족이다. 우리말은 세계지적재산권기구가 정한 10대 국제공용어에도 속한다고 하니 우리말이 세계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또 세계적 언어학자들은 한글이 단순하면서도 조형미가 뛰어나고 독창적·과학적이어서 세계 문자 중 으뜸이라고 극찬한다. 더구나 한글은 글자를 쉽게 조합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중국어나 일본어에 비해 컴퓨터와 휴대전화에 입력할 때 속도가 7배나 빠르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정보기술(IT) 강국이 되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처럼 정보화 시대에 가장 적합한 한글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반세기 전처럼 보세가공품이나 수출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인류문명에 기여할 독창적 고유상품을 만들어 세계무대에 내놓지 않고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한글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흥미롭게도 인도네시아의 부톤섬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빌려 자신들의 말을 표현하고자 올해부터 한글을 정식 문자로 채택해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경제사회적 부가가치가 제일 높은 문화상품을 수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자 없는 그들에게 희망은 덤이다. 광화문 광장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 아래, 인류 공동번영을 위해 후손들에게 가장 값진 자산을 물려주신 데 대한 감사의 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한글날이 이름만 국경일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감사하고 기뻐하는 축제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광서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 [공연리뷰] 연극 ‘다윈의 거북이’

    [공연리뷰] 연극 ‘다윈의 거북이’

    2006년, 호주의 한 동물원에서 175살의 세계 최고령 거북이가 숨졌다. ‘헤리엇’이란 이름의 이 암거북이는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이 1835년 갈라파고스섬에서 데려왔다.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헤리엇의 죽음에서 기발한 착상을 해낸다. 헤리엇이 다윈의 집에서 나와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20세기 근현대사의 현장을 목격하고, 다윈의 진화이론처럼 환경에 적응하느라 점차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상상! 서울시극단의 연극 ‘다윈의 거북이’(연출 김동현)는 인간세계 외부의 관찰자인 헤리엇의 시선을 통해 20세기 전후 근현대사를 신랄하게 비틀고, 뒤집는다. 200살 노파의 모습으로 나타난 헤리엇이 저명한 역사학자에게 들려주는 목격담은, 기술문명에 있어서 획기적인 진보의 역사와 달리 인간 정신사에서는 전쟁과 폭력을 되풀이하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인간 존재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유대주의가 만들어낸 마녀사냥 드레퓌스 사건, 스페인 게르니카 폭격,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그리고 이라크 바그다드 폭격까지 헤리엇의 눈에 비친 인간의 역사는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이다. 인간의 정신적 진화를 믿지 않게 된 헤리엇의 유일한 희망은 이제 갈라파고스 섬으로 돌아가는 것뿐. 하지만 현대사를 증언하는 대가로 갈라파고스 행을 약속했던 역사학자도, 그의 아내 베티도, 그리고 헤리엇의 진화를 연구하는 의사마저도 헤리엇을 철저히 배신한다. 마지막, 헤리엇의 극적인 복수로 닫히는 연극은 지구상 가장 진화한 존재라고 자부하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아프게 질문한다. 11월1일까지 세종M씨어터. 2만 5000~3만 5000원. (02)399-111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생태관광 명소 캐나다 앨버타주를 가다

    생태관광 명소 캐나다 앨버타주를 가다

    │앨버타 최여경특파원│캐나다 앨버타주 하면 캘거리를 거쳐 가는 웅장한 로키 산맥이나 밴프의 끝없는 설원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스키 여행이 퍼뜩 떠오른다. 시선을 조금 더 위로 올려 보자. 앨버타 북부로 향하면 웅대하면서도 아름다운, 또 다른 자연이 펼쳐진다. 저 멀리 광활한 평야의 끄트머리 지평선에서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에 몸을 싣더라도, 자연의 속도로 달리면 곧게 뻗은 자작나무와 은빛 늑대가 반긴다. ‘천혜의 자연’이라는 말이 그대로 실현되는, 인간은 그저 자연의 일부가 되는 그런 곳이다. ■광활한 대자연 품속에서 황홀한 휴식 ●자연으로 가는 길목, 에드먼턴 앨버타주의 수도인 에드먼턴은 캐나다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일조량이 많은 도시다. 서스캐처원 강이 동서로 흐르는 모습은 마치 서울 같다. 다른 점이라면 인간이 자연을 잠시 빌리고 있다는 말을 실천하는 듯 회색의 고층 건물보다 녹지의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 ‘로열 앨버타 박물관’에서는 이런 에드먼턴의 경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회색늑대, 아메리카곰, 무스, 바이슨(들소) 등 포유류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곤충, 캐나다의 광물, 원시부터 현대에 이르는 1만여년의 역사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동물전시장이 인상적이다. 로드킬(야생동물이 차에 받혀 죽는 것)당한 동물들을 박제해 놓고, 섬세한 배경과 새끼를 돌보거나 먹이는 노리는 등의 설정을 자연스럽게 연출해 극도의 생동감을 재현했다. 살아 있는 것들을 원한다면 에드먼턴 시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엘크 국립공원으로 가면 된다. 1906년에 만들어진 이곳은 아프리카 세렝게티 공원처럼 야생 그대로다. 엘크, 무스, 비버, 바이슨 등이 자유롭게 노닌다. 차로 공원 안을 다니며 야생동물을 만나고 캠핑도 할 수 있어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가족 여행지로 인기 있다. 도심 속 자연을 즐기려면 서스캐처원 강가가 딱이다. 강 주변에 조성된 공원은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의 22배에 달하는 넓이라니 규모를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160㎞에 달하는 산책길 주변은 넓은 공원과 바비큐 그릴, 벤치 등이 있는 휴식공간이다. 거버먼트 하우스 파크에서 에드먼턴의 명물로 떠오른 ‘세그웨이’를 타고 여행하는 투어 프로그램이 요즘 강력추천 코스다. 1~2시간 세그웨이를 타고 강가나 산 속 오솔길을 여행하면 몸과 마음이 저절로 상쾌해진다. ●자연과 역사의 만남, 애서배스카 에드먼턴에서 동북 쪽으로 1시간30분 정도 달리면 애서배스카 강가에 조성된, 인구 1만여명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을 만난다. 과거에는 배를 이용한 무역이 활발했던 상업 도시이자 캐나다 북부로 들어가던 모피 사냥꾼들이 쉬어 가는 마을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는 자연과 역사를 만끽하는 즐거움을 준다. 머스케그 크릭 공원에는 2시간 정도 소요되는 하이킹 코스가 있다. 자작나무, 소나무 등 키 큰 나무부터 블루베리, 라즈베리 등 각종 식용 열매들이 즐비하다. 숲 가이드 활동을 하는 마을 주민 제니스 피트먼은 “가지 끝이 거칠게 잘린 것은 곰이 와서 먹었다는 증거”라면서 “이곳의 열매는 모두 동물들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종이, 불쏘시개, 약용 버섯인 차가버섯의 토양인 자작나무, 찰찰 소리를 내는 열매, 시냇가에 비버가 만들어 놓은 댐 등이 있는 이곳이야말로 자연이 만들어 놓은 학교다. 애서배스카에서는 20세기 초반부터 이곳에 정착한 이주민들의 삶도 엿볼 수 있다. 1904년에 지어진 호텔(한때 화재로 전소된 것을 복원했다), 초기에 설립된 공립 학교, 오래된 도서관, 당시 지역 유지의 집 등이 보존돼 있어 마치 과거 속으로 들어간 듯하다. 앤티크 투어, 헤리티지 투어 등을 이용하면 설명을 들으며 여행할 수 있다. ●호수인가 바다인가, 슬레이브 레이크 자연 여행의 절정은 앨버타 북쪽 슬레이브 레이크다. 에드먼턴에서 북쪽으로 2번 고속도로를 타고 쭉 올라가면 거대한 빙하 호수가 나온다. 가로 108㎞, 가장 넓은 세로 폭이 25㎞에 달해 전망대에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못할 것이 없다. 햇살이 따사로우면 해수욕을 하고, 바람이 잦아들면 낚시와 카약을 즐긴다. 겨울이 되면 2~3m 두께로 얼어붙은 호수 위에 오두막을 짓고, 얼음에 구멍을 뚫어 낚시를 한다. 거친 땅에서는 산악 오토바이를 타고, 평야에서는 골프를 친다. 캠핑은 기본. 호수 주변에서는 세상의 모든 레저스포츠가 가능하다. 슬레이브 레이크의 지역 관광청 직원인 조지 라이트는 “소금기와 조개껍데기, 갈매기가 없을 뿐 이곳은 ‘해변’과 같다.”면서 “인터넷에서 놀랄 정도로 붐비는 한국의 해변 모습을 봤는데 이곳에 오면 정말 여유로운 해수욕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곳을 찾았다면 ‘보레알 조류 보존센터’도 꼭 들러야 한다. 새가 날개를 편 모습을 본떠 만든 건물이 보여 주듯 캐나다를 방문하는 온갖 종류의 철새들을 연구하는 곳이다. 새의 다리에 가벼운 표지를 달아 새의 건강 상태, 이동 경로, 개체 수 등을 파악하는 게 주요 업무다. 이곳을 방문하면 직접 새를 만져 보고, 마음에 드는 새를 연간 20~100캐나다달러에 입양할 수도 있다. 물론 가져가 키울 수는 없다. 대신 센터에서 알려 주는 ‘그 아이’에 대한 정보와 사진으로 안부를 확인할 수 있다. 캐나다 앨버타 북쪽으로 떠난 여행에서는 마냥 즐거움에만 빠져들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 큰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글 사진 kid@seoul.co.kr ■여행 Tip ●에드먼턴 - 전통적인 화이트街와 현대적인 재스퍼街 에드먼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항 셔틀을 이용해야 한다(편도 15캐나다달러). 에드먼턴에서 대표적으로 가볼 만한 곳은 서스캐처원 강 남쪽 ‘화이트가(Whyte Avenue)’와 북쪽 ‘재스퍼가(Jasper Avenue)’가 대표적이다. 화이트가에는 ‘올드 스트라스코나’라는 옛 도시가 남아 있다. 1890년대부터 남아 있는 건물을 그대로 보존한 거리에는 독특한 매장과 커피점 등이 즐비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끝자락에 있는 시장에서 신선한 먹거리를 살 수 있다. 화이트가가 전통적이라면, 강북 재스퍼가는 현대적이다. 앨버타 아트 갤러리, 프랜시스 윈스피어 음악당, 오페라극장, 공공도서관 등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에드먼턴의 동남쪽 ‘웨스트 에드먼턴 몰’은 세계 최대의 실내공간이다. 800여개 점포, 100여개 식당, 놀이동산 ‘갤럭시 랜드’, 내셔널 하키 리그가 열리는 아이스링크 등이 한 곳에 몰려 있다. 매년 11월 중순 에드먼턴에서는 ‘캐나다 로데오 파이널’이 개최돼 도시가 축제 분위기에 빠진다. www.edmonton.com ●애서배스카 - 가을낚시·카약하기 딱 좋아요 애서배스카 강을 따라 낚시와 카약을 즐기기도 한다. 가을이 낚시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로 알려져 있다. 낚시를 하기 위해서는 자격증이 필요하다. 낚시 패키지 가격은 반나절에 100캐나다달러부터 천차만별. 각종 관광 가이드를 담은 홈페이지(athabascacountry.com)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곳에 있는 호텔 4곳 중 3곳의 지배인이 한국인이라니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 ●슬레이브 레이크 - 보레알 조류 보존센터 꼭 들러보세요 워낙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이라 숙박시설, 음식점 등이 잘 조성돼 있다. 현지인이 안내한 소리지 인(Saw Ridge Inn) 안에 있는 식당은 서비스와 맛이 일품이다. 이곳 호텔 메뉴 경연대회에서 꾸준히 2~3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명한 곳. 호텔보다는 숲속에서 자연을 만끽하겠다면, 보레알 조류 보존센터의 네스트(nest·둥지)를 이용해 보자. 공동 식당과 거실, 침실 6개, 욕실 2개가 있는 아담한 시설이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기에도 그만. 1박에 성인 35~40캐나다달러, 12세 이하는 17~20캐나다달러. borealbirdcentre.ca
  • 한국도교 세계에 알리는 첫걸음

    도교의 수행자는 ‘도사’(道士)다. 이들은 신선이 되어 승천하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이나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위해 갖은 수행을 한다. 단전호흡은 기본이며 곡기를 끊는 벽곡(?穀), 날 음식을 먹는 생식(生食)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의 생활은 주로 중국 무협지를 통해 알려져 왔다. 하지만 도교와 도사가 중국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본에는 신도(神道)가 있고, 또 한국에는 고유의 ‘선도’(仙道)가 있다. 선인왕검(仙人王儉)이라고도 불린 단군을 교조로 보는 선도는, 858년 당나라 종남산에서 우화등선했다고 도경(道經)에 기록돼 있는 신라 왕족 김가기, 현묘지도(玄妙之道)를 이야기한 최치원 등으로 선맥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후 선도는 유교·불교의 득세로 약화됐고, 현재는 수련법·양생법이나 철학으로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렇듯 힘을 잃은 국내 도교를 재조명하고 세계에 알리기 위한 학술대회가 열린다. 세계금선학회, 한국도가철학회, 한국도교학회, 한국도교문화학회가 공동주최하는 ‘제1회 선&도 국제학술대회’는 생활속 정신문화로 전승된 한국 도교를 비교 연구하고 그 현대적 의의를 찾는 자리다. 22일부터 25일까지 고려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및 워커힐 호텔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센터장 도널드 스웨러 교수 등 미국·일본·중국·프랑스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석학들이 참석한다. 또 중국도교협회 런파롱(任法融) 회장, 장지위(張繼禹) 부회장을 비롯 무협지를 통해 알려진 무당파, 화산파 장문인 등 중국 도교 지도자들을 포함 총 120여명이 자리를 채운다. 22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23일에는 ‘종교와 인간, 환경’을 주제로 한 스웨러 교수 등의 기조발표 및 이애주 서울대 교수의 영가무도 공연, 고은 시인의 축시 낭독이 진행된다. 이어 24일에는 한국 고유사상과 선도, 도가사상, 건강과 양생, 환경과 생태 등 총 9개 분과로 나눠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25일에는 외국인 학자들을 대상으로 국내 문화탐방 행사를 갖는다. 공동대회장인 최병주 세계금선학회 회장은 “서구식 물질문명의 폐단으로 동양 정신문화가 조명을 받는 가운데 한국의 정신문화를 재조명할 필요성이 커졌다.”면서 “이번 대회는 한국문화 속에서 유구한 전통을 이어온 선도를 국제 무대에 처음으로 알리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병원·학교… 인프라 없는 국제도시

    병원·학교… 인프라 없는 국제도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국제도시인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명암(明暗)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2003년 8월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발판삼아 동북아 거점도시로 부각하고 있다는 찬사가 있는 반면, 인프라가 부족해 ‘외화내빈’이라는 지적이 동시에 나온다. 해외 인사들은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 입국했다가 한번쯤 들러야 할 곳으로 송도를 지목하기 시작했다. 아랍에미리트연합 하면 두바이가 떠오르듯이 ‘한국=송도국제도시’라는 등식이 성립되고 있다는 것이다. ●외국투자자·경제계 인사 방문 잇따라 세계 각국의 주한 대사들이 우리나라에 부임한 뒤 가장 먼저 가보고 싶어 하는 곳도 이곳이다. 올해 들어서만 미국, 노르웨이, 이스라엘, 쿠웨이트, 인도네시아, 스위스, 튀니지, 페루 등의 대사가 송도를 찾았다. 외국 투자자 및 경제계 인사들의 방문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최근에는 도리스 로이트하르트 스위스 부통령 겸 경제부장관이 이끄는 방문단이 송도국제도시 개발현장을 돌아봤다. 이 같은 현상은 송도의 상징성 때문이다. 33개의 글로벌 기업들이 송도에 입주, 정보기술(IT)·생명기술(BT)·나노기술(NT)·문화기술(CT) 등 첨단기술과 지식기반산업을 연구·생산하고 있어 문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해외 언론들도 송도를 한국경제의 신(新) 성장동력으로 집중 조명하고 있다. 국제도시답게 국제기구도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2006년 유엔 산하기구인 정보통신기술아시아태평양훈련원(APCICT)이 입주한 데 이어 지난 8월에는 유엔 국제재해경감전략(ISDR) 동북아사무소와 유엔 방재연구원이 문을 열었다. 인천시는 10여개의 국제기구를 추가로 유치할 방침이다. 하지만 정작 외국인을 위한 인프라가 크게 부족해 ‘절름발이’ 국제도시라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송도국제도시 내 국제업무단지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송도에 온 외국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불만을 토로한다. 숙소인 아파트를 비롯해 안내문 대부분이 한국어로만 돼 있는 데다 슈퍼마켓, 음식점 등 어디를 가도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인천시가 송도국제도시를 영어를 상용화하는 ‘영어도시’로 선언했지만 말 그대로 선언에 그치고 있다. 필수시설인 병원조차 없어 몸이 아플 때는 인천 도심이나 서울에 있는 병원을 찾아야 한다. 미국인 브라운(27·건축설계)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떠올리면 송도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외국인 자녀 교육을 담당할 송도국제학교는 올 상반기 준공됐지만 외국인 학생과 내국인 학생 비율을 맞추지 못해 개교가 내년으로 미뤄졌다. ●편의시설은 미국식 호프집이 유일 이뿐만이 아니다. 외국인 편의시설도 거의 없어 국제도시라는 구호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송도에는 현재 외국인 1000여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최근 문을 연 미국식 호프집이 유일하다. 외국인 전용 음식점, 문화·체육시설, 레저시설 등은 전무한 실정이다. 인하대 변병설(행정학) 교수는 “국제도시는 하드웨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도 중요하다.”면서 “균형 있는 국제도시 조성을 위해서는 외국인 복지 및 생활환경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열린세상] 독서, 내면과 대화하는 일/신방웅 한양대 석좌교수·한국시설안전공단 이사장

    [열린세상] 독서, 내면과 대화하는 일/신방웅 한양대 석좌교수·한국시설안전공단 이사장

    가을이다. 책을 읽어 보자는 결심을 당장 실천해 보자. 첫술에 독서의 달인이 될 수는 없다. 손에 잡힌 한 권의 책에서 글쓴이의 내면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시도해 보라.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내면을 읽으려면 자기의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 어느 독일 철학자는 “마음을 여는 문의 손잡이는 안에 달렸다.”고 했다. 자신의 내면을 먼저 열어야 타인과 대화할 수 있다. 무작정 책을 많이 읽자고 결심만 하지 말고 제대로 읽기를 거듭해야 한다. 당연하지만, 독서를 잘하려면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단지 글자를 읽어 뜻을 풀며 줄줄 머릿속에 입력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 그 자체는 글자를 모아놓은 종이뭉치에 불과하다. 문자의 숲에서 글쓴이의 숨결을 호흡해야 진정한 독서이다. ‘독서삼도(讀書三到)’라 했다. 책 읽기의 세 가지 수준이다. 안도(眼到)는 눈으로만 읽는 것이다. 빠른 통독(通讀)에 가깝다. 필요한 정보만 재빨리 얻을 때 유용하다. 눈으로 읽기는 입력만 있을 뿐 출력이 없다. 머릿속에서 곧 잊히기 마련이다. 구도(口到)는 입으로 글을 새기면서 읽는 방법이다.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읽는 묵독(默讀)이 이에 해당한다. 눈으로 읽은 내용을 입으로 다시 되새긴다. 눈으로 입력한 것을 입으로 출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의 방법보다 오래 기억할 수 있다. 심도(心到)는 마음으로 이해해서 감동에 이르는 경지다. 독서의 정수(精髓)는 바로 여기에 있다. 책에서 저자의 진실한 감정과 진지한 생각에 공감하게 될 때, 독서의 재미를 느낀다. 이 경험을 자주 한 사람일수록 책 읽기에 빠지게 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책을 읽는 사람들은 바로 이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다. 잘 쓴 책에는 글쓴이의 마음이 담겨 있다. 신중하게 한 단어 한 단어 정성스럽게 골라서 자신의 내면을 종이에 내려놓은 정성을 느낄 수 있다. 독서하는 사람의 내면과 책을 쓴 사람의 내면이 공명(共鳴)하는 순간, 삶의 의미를 얻는다. 그리하여 책은 독자의 삶 한가운데 들어가서 거대한 나침반을 만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육체는 사라지지만 영혼은 남는다. 책을 쓴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으나 그가 쓴 책은 영원히 남는다. 문명(文明)은 책으로 전하는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이 이어져 발전했다. 세상의 변화는 책을 읽은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고 실천에 옮긴 사람이 주도했다. 우리는 책을 읽고 생각을 다듬는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생각은 깊고 풍성해진다. 충만한 생각은 현실을 바꾸는 행동에 이른다. 책은 현실을 담아서 반성하고 마침내 바꾼다. 이 순환 과정을 통해 인류는 진보한다. 생물학적 삶이란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다운 삶이란 생존을 넘어 의미를 추구한다. 독서를 권장하는 이유다. 책을 읽어 타인과의 대화에 힘써 달라는 얘기다. 반성하는 삶을 끝없이 실천하여 타인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독서가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의 중요성을 알면서 정작 책을 왜, 어떻게 읽어야 할지는 잘 모르는 듯하다. 노력은 하지 않고 성과만 얻으려는 탓이다. 피아노를 치고 싶지만 날마다 한 시간 이상 꾸준히 건반을 누르는 고된 훈련은 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사람들은 책에서 지혜를 얻고자 하나 글쓴이의 의도와 글의 맥락을 읽어내는 수고로움은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독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열어 타인을 수용하려는 용기와, 책에서 글쓴이가 과연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파악하려는 지혜는 오랜 독서 경험을 통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된다.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이 이 가을, 우연히 손에 잡은 책에서 타인과의 따뜻한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 신방웅 한양대 석좌교수·한국시설안전공단 이사장
  • [씨줄날줄] 톨스토이문학상/김종면 논설위원

    러시아에는 소크라테스의 진정한 후예가 없다고 한다. 백화난만한 문학·예술 분야에 비해 순수 형이상학의 전통이 미약해서일까. 하지만 철학의 영토까지 아우르는 게 러시아 문학이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의 말대로 러시아 문학은 아득한 정신의 산맥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거대한 톨스토이의 산맥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는데, 그 산맥을 한 걸음씩 오르다 보면 정상 너머로 또 다른 산맥이 보인다.” 지드는 도스토옙스키를 또 다른 산맥으로 꼽았지만 러시아 문학의 산맥은 중중첩첩 끝간 데를 모른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그의 존재는 러시아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소품집 ‘톨스토이단편선’이 100만부 이상 팔려나가는 영원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해외 첫 공개되는 육필 원고를 비롯, 국보급 문화재로 취급되는 톨스토이의 유품들이 대거 국내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모스크바 남쪽 야스나야 폴랴냐의 귀족 출신으로 드넓은 영지를 소유한 대지주였지만 그의 관심사는 일반 시민 특히 농부라는 이름의 민중이었다. 육체의 탐닉을 즐겼지만 일생에 걸쳐 도덕을 설파했다. 선(善)만이 서구문명에 오염된 러시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10년 가족 몰래 가출해 라잔 우랄 철도의 조그만 간이역 아스타포브(현 톨스토이역) 역장 관사에서 객사한 대문호. 논리보다는 감성으로 이해해야 할 그는 ‘이율배반의 구도자’가 아니었을까. 그의 업적을 기리는 톨스토이문학상이 러시아 현지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2003년 삼성이 제정한 톨스토이문학상은 영국이 후원하는 맨 부커상, 솔제니친문학상, 국가문학상과 함께 러시아 4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러시아에서는 해마다 크고 작은 톨스토이행사가 열린다. 톨스토이문학상은 단연 하이라이트다. 올해도 러시아 문단 안팎에서 한국이 무덤 속 톨스토이를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삼성은 톨스토이문학상 외에 볼쇼이극장 후원, 에르미타주박물관 문화재 복원사업 지원 등 다양한 메세나활동을 통해 대외 이미지를 높여왔다. 문화마케팅은 계속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화두인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지름길이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약탈한 고대유물로 장사하는 박물관들 그리고 끊이지 않는 반환요구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조선 전기 화가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이야기를 듣고 그렸다는 몽유도원도를 보기 위해서였다. 임진왜란 때로 추측할 뿐, 언제 일본으로 유출됐는지 확실하지 않은 몽유도원도가 13년 만에 잠깐 고향 나들이를 한다는 소식에, 이 걸작을 소장하고 있는 일본 덴리대의 으름장에 밀려 국내에서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람들은 3~4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1분 정도 구경했다.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는 몽유도원도 외에도 우리 것이지만, 해외에서 빌려와야 했던 문화재들이 수두룩했다. 빌려준 곳도 각양각색이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LA카운티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컬럼비아대학 도서관, 일본 오쿠라 문화재단 등등. 최근 국정감사에서 문화재청은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의 규모가 7만 6000점에 달한다고 밝혔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 파악이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한 수치가 이렇다. 그런데 1955년 일본으로부터 처음 환수가 시작된 뒤 국내에 돌아온 문화재는 10개국 8154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시킨 말이 떠오른다. “이거 왠지 씁쓸하구만.” 이집트 덴데라의 하토르 신전 천장에는 천궁도의 석고 복제품이 있다. 진본은 세계적인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가지고 있다. 골동품 수집가 세바스티앙 루이 솔니의 대리인들이 1821년 폭약을 터뜨리며 진품을 뜯어내 프랑스로 가져갔다. 솔니는 이를 프랑스 국왕 루이 18세에게 팔았다. 루브르는 관람객들에게 이집트 천문학에서 사용된 난해한 형상과 상징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설명하지만 이 장엄한 미술 작품의 약탈 과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역사와 유물, 문화재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박물관에게 부끄러운 과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입수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에 한해서다. 루브르의 3대 유물 가운데 하나인 승리의 여신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부영사 샤를 샹푸아소는 1863년 사모트라케 섬을 탐사하다가 산산조각난 이 조각상을 발견했다. 루브르는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이를 복원해 냈다. 루브르가 승리의 여신 입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를 발견하고 복원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고 유익한 역할을 했다고 거드름을 피우는 것에 다름 아닌 셈이다. 뉴욕타임스의 문화부 기자 및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샤론 왁스먼은 ‘약탈 그 역사와 진실’(오성환 옮김, 까치 펴냄)을 통해 약탈당한 고대 유물과 현재 그 유물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반환 전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8개국 10여개 도시를 찾아가 수십 명을 인터뷰하고 취재했다. 상당수 고대 유물에 대한 입수 경위에 의문이 제기됐고, 반환을 요구받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J 폴 게티 박물관 등 서양의 4대 박물관을 찾아가 관계자들을 만났다. 또 적극적으로 고대 유물 반환을 요구하고 추진하고 있는 이집트,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를 찾았다. 언론을 통해 압력을 가하는 이집트 고유물 최고위원장인 자히 하와스, 법적인 기소도 불사하는 이탈리아의 마우리치오 피오릴리 검사, 특종 보도로 유물 반환에 기여한 터키의 언론인 오르겐 아자르 등의 입장에서는 서양의 대형 박물관은 고대 유물의 약탈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시장과 마찬가지다. 서양 박물관 쪽 입장은 다르다. “그리스 조각상이 그리스에 있었을 경우 누가 관심을 기울이겠는가? 이런 유물들이 위대한 것은 루브르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루브르의 수석공보관 아지 르롤의 말이 이를 웅변한다. 박물관들은 고대 유물들이 원래 자리를 떠나 제대로 보관됨으로써 고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고고학이 탄생했고, 유물들이 파괴로부터 구제받았다고 항변한다. 반환 문제에 있어서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국가들에 무조건 유물을 반환하는 것은 유물의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때 이집트 정부가 피라미드의 돌을 이용해 공장을 지으려고 했다는 사실 등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에 수긍이 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문명 발전에 공헌한다는 신념보다는 유물 소유에 대한 탐욕이 출발점이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약탈된 유물의 반환을 요구하는 일부 국가들의 보존 역량을 믿을 수 없어 반환은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서양 박물관들이 유물 취득 경위를 선별적으로 왜곡해 유물을 빼앗긴 나라들의 자존심을 무시하는 것 또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유네스코에 약탈 문화재 반환 규정이 있지만 1970년대 이후에 거래된 약탈 문화재에만 적용되며 여전히 도굴, 밀수입 등을 통한 약탈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서양 박물관들은 유물 약탈 역사를 밝히고,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출처 국가들과 대여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서양 박물관들은 출처가 의심스러운 유물의 구입을 근절하고 출처 국가들과 공조해 유물을 공동관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심스레 의견을 제시한다. 2만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원시생활 체험해보고 공연도 즐기고

    원시생활 체험해보고 공연도 즐기고

    서울 강동구가 6000년 전 선사시대와 현대 첨단문명이 어우러진 ‘제14회 강동선사문화축제’를 개최한다. 10~11일 이틀간 암사동 선사주거지에서 열리는 이번 축제는 개청 30돌 기념행사와 함께 열려 의미를 더한다. ●선사벽화·씨름대회·호상놀이 등 다채 축제는 아득한 선사시대를 떠올리기 위해 체험위주로 짜여졌다. 선사주거지 내에서 ▲원시생활 체험 ▲선사벽화 그리기 ▲선사미술체험 ▲원시 씨름대회 등 신석기인의 삶과 문화를 되돌아보는 한편 민속놀이와 예술인 장터 체험행사도 준비됐다. 원시생활 체험은 부싯돌로 불켜기, 도토리음식 만들기, 뗀석기·간석기 만들기, 곡식 껍질 벗기기, 동식물 다듬기 등으로 구성된다. 암사동 선사주거지에서 대량 발굴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를 직접 만드는 시간도 마련된다. 민속놀이 체험은 활쏘기와 널뛰기, 굴렁쇠 굴리기, 통나무 멀리 던지기 등으로 이뤄진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10호인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도 펼쳐진다. 11일 선사주거지 일대에서 재현되는 호상놀이는 출상시 상여가 험한 길을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출상 전날 밤 선소리꾼과 상여꾼들이 모여 빈 상여를 메고 밤새도록 상엿소리를 부르는 강동지역 전통놀이다. 이 밖에 축제기간 도서교환 판매, 저소득층 자립을 위한 자활박람회, 원시퍼포먼스, 미술 심리치료 등이 열린다. ●구 서른 돌 맞아 불꽃놀이도 지난 1일 개청 서른 돌을 맞은 강동구는 선사문화축제 기간 개청30년 기념행사도 개최한다. 10일 오후 축제 개막을 알리는 불꽃놀이와 함께 개청행사도 막을 올린다. 주차장 무대에선 인순이 등 인기가수들이 출연하는 공연이 펼쳐진다. 공연은 평화방송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중계된다. 11일에는 개청 기념 ‘자전거 대행진’이 열려, 암사동 선사주거지에서 생태공원사거리를 거쳐 선사주거지로 돌아오는 9.1㎞의 행렬이 펼쳐진다. 강동구에 따르면 1979년 천호출장소가 강남구에서 분리, 강동구로 독립된 뒤 인구는 44만 4000여명에서 올해 48만 1000여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한때 100만명에 육박했지만 송파구가 분리돼 나가면서 인구가 줄었다. 주택 보급률은 79년 65.5%에서 올해 82.4%로 늘었다. 단독주택은 1만 9000여가구로 줄고, 아파트와 연립주택은 각각 6만 7000여가구와 7000가구로 늘었다. 특히 재건축사업은 올해 32개 단지 2만 3000가구 규모로 진행돼 개청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1곳도 없던 대규모 도서관은 10곳으로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한다. 이해식 구청장은 “앞서 개통된 광진·천호·올림픽·강동대교, 올림픽대로, 남부순환로 등과 함께 지하철 8·9호선 연장이 마무리되면 강동구는 도심과 강남, 경기 동북부를 잇는 중심축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사모아 쓰나미 맞춘 ‘지진계의 미네르바’ 등장

    사모아 쓰나미 맞춘 ‘지진계의 미네르바’ 등장

    지난해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등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경제 미네르바가 화제였다면 이번에는 ‘지진계의 미네르바’가 등장했다. ‘오늘의 유머(todayhumor.paran.com)’ 사이트에 ‘공동묘지’란 아이디로 지난 9월부터 지진관련 속보를 올리는 한 네티즌은 정확한 예측으로 ‘지진계의 미네르바’라 불리고 있다.   ‘공동묘지’는 지난달 2일 “올해 말 또는 내년 초중반 진도 8 이상 9에 버금가는 강한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며 “지진 해일 관련사진을 보면 호주 11시 방향 해안선 부분에서 쓰나미 발생이 우려되지만 우리나라는 쓰나미에서는 안전해 보인다.”라고 강진 도표와 함께 글을 올렸다.  이후 실제로 지난달 30일 호주 인근 남태평양에 있는 사모아에서 규모 7.9의 지진과 함께 쓰나미가 발생, 한국인을 포함해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공동묘지’가 인용하는 지진 관련 지도나 도표는 IRIS(www.iris.edu)라는 지진학 연구 기관이 협력해서 만드는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IRIS에서 지진 예측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공동묘지’는 인터넷에서 활용 가능한 지진 관련 자료를 토대로 앞으로 어디에서 지진이 일어날 것이란 예고를 하고 있어 영화 ‘해운대’에서 박중훈이 열연했던 쓰나미를 예고하는 지질학자 같다는 것이 네티즌들의 의견이다.  지난 6일 발생, 79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공식집계된 인도네시아의 지진도 ‘공동묘지’는 지난달 4일 “다음 6.0 이상 강진 예상발생지역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곳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파망 지역”이라고 예고했다.  ‘공동묘지’가 가장 최근에 예측한 지진은 지난 8일 “12시간 내에 일본 규슈 남쪽지역 및 오키나와 지역이 지진관련 가장 큰 예상지이며 중국 광주지역 및 류큐(琉球) 열도가 그다음 예상지다. 류큐열도에 강진이 오면 우리나라 전라도, 제주도, 경상도, 서해안 일부 등도 쓰나미의 피해가 상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때는 일본에 태풍 멜로르가 상륙한 상태였다.  다음 달 개봉되는 영화 ‘2012’는 고대 마야 문명때서부터 끊임없이 회자되어 온 인류 멸망이 지진, 화산폭발, 거대한 해일 등 각종 자연 재해와 함께 온다는 내용이다.  최근 사모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지진이 잇따르자 전문가들은 환태평양 지진대가 다시 활동기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역시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며 올해 들어서는 49건이 발생, 지난 2000년 29건보다 69.0% 늘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씨줄날줄] 거세刑/육철수 논설위원

    역사상 거세형벌을 받은 가장 유명한 사람은 중국 한무제 때 사관 사마천일 것이다. 그는 선비족과의 전투에서 투항한 장군 이릉을 비호하다 무제의 심사를 뒤튼 죄(?)로 궁형(성기를 통째로 도려내는 형벌)을 당한다. 역사소설가 가오광(高光)은 사마천이 뜨끈뜨끈한 누에방에서 노인 형리 두 명에게 궁형을 받는 장면과, 공포에 몸서리치는 사마천의 심리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래도 거세의 치욕을 딛고 불후의 역사서 ‘태사공서(사기)’를 남겼다. 그걸 보면 남성을 잃은 저주스러운 형벌이 그를 더욱 강인한 역사 인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거세는 구약성서에 등장할 정도로 동서양에서 오래된 형벌의 하나다. 고대 그리스, 이집트, 로마, 인도 등에서는 전쟁에서 지면 성기를 자르는 관행이 있었단다. 성욕을 막으려는 종교의식이나, 환관이 되기 위한 거세도 있었다. 18세기 유럽에선 성악가(카스트라토)가 되려는 소년들에게 거세를 시행했는데, 이 역시 형벌과는 무관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거세든 남자들에겐 끔찍한 일임에 틀림없다. 문명의 시대인 요즘, 국내에서 거세 논란이 한창이다. 조모(57)씨가 초등학교 어린이를 성폭행한 데 대한 최근의 재판 결과 때문이다. 이 일로 어린이는 심신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이고, 그 가족은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그런데 대법원이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은 조씨에게 고작 징역 12년형을 선고한 게 온 국민을 분노케 했다. 양심에 털이 난 조씨 같은 흉악범에게 ‘화학적 거세(chemical castration;약물 주입으로 성욕을 억제시키는 처방)’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이 형벌을 이미 시행 중인 덴마크는 꽤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피해 어린이와 가족 처지에선 흉악범을 능지처참해도 시원찮을 판이다. 그러나 이용훈 대법원장 말대로, 형량을 여론에 따라 들쭉날쭉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아동 성폭행범의 경우 증거 부족으로 불기소가 적잖다고 한다. 형량도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 국민의 법감정이 폭발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짐승 같은 범인에게 아무리 형량을 높이고 거세형을 도입한들 이미 산산조각난 피해자의 인생은 어디서 다시 찾겠는가.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객원칼럼] 국무총리 청문회가 섬뜩했던 까닭은/정인학 언론인

    [객원칼럼] 국무총리 청문회가 섬뜩했던 까닭은/정인학 언론인

    국무총리 청문회는 아슬아슬했다. 절제도 없고 격식도 없었다. 섬뜩함마저 들었다. 3년여 전 신문을 펼쳤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국민적 사표(師表)로 추앙받던 한국의 지성이었다. 서울대 총장에서 물러나고 3년여 만에 그토록 나빠졌다는 말인가. 최소한의 양심마저 짓눌러도 좋을 언행을 60년 넘게 숨겨오다 이번에 들통이 났다는 말인가. 아니면 서울대 총장으로서는 괜찮고, 국무총리로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물론 서울대 총장 정운찬이 그대로 국무총리 정운찬이 되었어야 했다. 아쉽다. 그러나 사람을 가늠하는 잣대 또한 시대적 결과라는 사실을 정말 몰랐단 말인가. 얼마 전 족집게 증권분석사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증권가에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넘쳐나는 사연을 털어놨다. 주가가 오른다고 전망하면 심지어 떨어지더라도 별 탈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떨어진다고 전망했다가 빗나가면 뺨 서너 대는 얻어맞는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주식 사서 돈 벌었는데 네 말을 들은 나는 돈을 못 벌었다고 야단이라는 것이다. 내가 손해 보는 것은 괜찮아도 다른 사람이 돈 버는 꼴은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어찌 사람 사는 세상에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여기는 시기심이 없겠는가. 이번 총리 청문회와 궁중암투식 폐습은 정녕 무관한 것일까. 세계의 역사를 보면 스파르타와 함께 아테네가 등장한다. 스파르타는 군사력으로 고대 그리스를 통일했지만 그리스의 내면세계는 아테네 그대로였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역사와 문학을 살찌웠고 과학 문명을 배양했던 것이다. 아테네 민주주의의 위대함은 페리클레스의 행적에서 빛을 발한다.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완성한 페리클레스를 극악한 독재자로 지목했다. 그러나 국사범을 도태시키지 않고 추방이라는 방식으로 관대함을 베풀었다. 2500년 전 아테네라면 한국의 국무총리 청문회를 어떻게 치렀을까. 이번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사화(士禍·史禍)로 얼룩졌던 조선시대를 떠올렸다. 정적의 삼족까지 몰살해야 칼춤을 멈췄던 소모적인 피의 복수극은 민초의 언로(言路)라고 장식된 상소로 시작됐다. 절대 권력의 똬리였던 궁중으로 향하는 상소이니 왜 음해와 비방이 날조되지 않았겠는가. 같은 상소인데도 언제는 민생을 추스르는 회초리가 되고, 언제는 피바람을 일으키는 칼날이 됐다. 권력의 지킴이가 살아 있어야 한다. 이번 청문회를 전후해 고위 공직자의 자리바꿈이 있었고 이런저런 얘기가 떠돌았다. 검증과정에서 비방과 음해로 시달린 고초를 털어놓으며 북받쳐 울먹였다는 어떤 분을 간과해서 안 된다.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을 세운다고 한다. 우리 역사를 관통하는 영웅치고는 초라해 보인다. 우리 역사는 하향평준화 역사였다. 역적의 굴레가 수단이 되었다. 주식으로 내가 돈을 벌듯, 다른 사람도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경쟁은 하되 건전성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우수한 기량을 펼칠 수 있듯 다른 사람의 뛰어난 역량을 인정할 줄 아는 너그러움의 미덕을 추슬러야 한다. 허물타령으로 분란을 일삼던 시대는 쇠멸했고 지혜로 극복한 시대는 융성했다는 역사를 곱씹어야 한다. 고발이라는 미명으로 음해를 일삼는 암투를 발본해야 한다. 최고 사정 담당자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감언이설로 세상을 희롱하는 독초와 입맛이 쓴 약초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땅에서도 우리의 영웅이 잉태되도록 해야 한다. 광화문 광장을 꽉 메울 영웅을 기다리며…. 정인학 언론인
  • 亞! 현대미술을 말하다

    亞! 현대미술을 말하다

    ‘테이트 모던’은 영국 런던 템즈 강 하류에 자리잡은 발전소를 리모델링해 2000년에 개관한 미술관으로 1900년 이후부터 현대까지의 현대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만약 터키 이스탄불에서 영국의 테이트 모던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할까. 터키의 현대미술 작가 쉐넬 오즈멘과 엘칸 오즈겐은 비디오작품인 ‘테이트 모던으로 가는 길(The Road of Tate Modern)’에서,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복을 근사하게 차려입은 두 남자는 말과 당나귀를 타고 길을 떠난다. 양치기를 만나서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어떻게 가느냐.”고 묻기도 하고, 더위를 식히기 위해 계곡물에 목을 축이기도 한다. 이 영상물은 제3세계 국가들이 현대 미술계의 주류시장에 진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신성불가침’인가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작품이다. 터키 이스탄불에는 5년 전에서야 국립현대미술관이 생겼다. 지구는 글로벌하게 하나로 통합됐는데, 영국 미국 중심의 현대미술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타 나라의 비주류 예술가들은 한줌 소수에 지나지 않다.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수용되기도 쉽지 않다. 도쿄 모리미술관과 베이징 금일미술관, 이스탄불 현대미술관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 등이 주축이 돼 아시아의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 2층과 3층에서 11월22일까지 열리는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 시티-네트 아시아(City-net Asia)2009’ 전시다. 한국, 중국, 일본, 터키의 젊은 작가 40여명이 모여 회화, 사진, 조각, 설치, 영상작품 100여점을 보여준다. ‘시티-네트 아시아’전은 서구 중심의 국제미술계에서 최근 급부상 중인 아시아의 동시대 미술을 소개하는 격년제 아시아현대미술프로젝트다. 2003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한국 일본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소개해 왔다. 4회째인 올해 처음으로 동아시아를 벗어나 터키의 미술까지 포함시켰다.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서양 큐레이터들에 의해 연구되는 아시아 현대미술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시아 정체성 논의를 주도하기보다 여전히 서구적 한계에 갇혀 있었다.”면서 “아시아 내부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서 이 전시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말했다. 서울전 기획자 조주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는 ‘양날의 검’이란 주제로 한국적 문화의 정체성을 찾아나선다. 2층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공기의 움직임을 통해 팽팽한 피부의 소녀와 쪼글쪼글한 노파의 험상궂은 얼굴을 드러내는 이병호의 ‘여인두상’이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쇳가루로 풍경화를 그리는 김종구는 군복무 시절 야간투시경을 쓰고 본 비무장지대(DMZ)의 산악을 온통 붉은 색으로 그려놓았다. 아찔할 정도의 고요 속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산하는 총과 칼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만들어낸 기묘함도 있지만 결국 이중적인 아름다움에 불과하다. 해병대를 제대해 30년간 공무원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나체를 ‘영웅’이란 제목으로 조각해 낸 최수앙의 작업은, 개개인들의 희생으로 이루어낸 현대사와 경제발전이 과연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지를 묻고 있다. 나무 뒤에 흰막을 배경삼아 설치하고 촬영한 이명호의 사진 ‘나무’는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인공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합성사진처럼 보이는 사진들은 그러나 모두 현실 속에 존재하는 풍경이다. 수개월 동안 인공적인 풍경을 찾아나선 작가의 노력이 있을 뿐이다. 1960~80년대에 출생한 작가 9명이 민주화와 세계화 속에서 성장한 자신들, 한국인, 서울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도쿄 모리미술관 큐레이터 아라키 나쓰미가 기획한 도쿄전의 주제는 ‘중심을 벗어나-일본현대미술에서 일어나고 있는 조용한 변화’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앞뜰의 흙을 비롯해 한국의 흙을 물감처럼 활용한 아사이 유스케의 벽화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데, 작가는 흙을 준비해 놓고는 전시장 바닥을 뒹굴다가 벌떡 일어나 벽화를 그리고, 다시 놀고, 다시 그리고를 반복하면서 개인의 예술적 감성에 집중했다. 애니메이션을 회화와 접목시킨 사토 마사하루의 ‘11개의 아바타’도 볼만하다. 아이코 테즈카의 ‘날실들을 잡아당기기-오색’은 일본 가정에 하나 정도 있는 커튼천(태피스트리)을 이용해 다섯가지 색을 풀어내서 치렁치렁하게 머리를 묶듯이 전시 해놓은 작품이다. 작가는 서구문명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키치적인 감성을 지속해온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드러냈다고 한다. 1970년을 전후해 출생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 20여점이 전시됐다. ‘퇴적작용’이란 주제를 내건 베이징전은 의외로 잔잔한 재미들이 있다. 금일미술관 부관장 리 샤오치엔 기획으로 급변하는 중국사회를 보여준다. 바이 이뤄의 농기구들이 나뭇잎과 꽃으로 피어난 나무나,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건물을 트랜스포머로 만들어 사진을 찍은 츠펑의 ‘왜 내가 너를 사랑해야만 하지’, 장시간 노출로 특정 지역이나 직업군들의 연출사진을 찍어 그 사진 속의 사람들 사이의 공통점과 개인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추 즈제의 사진작업 등은 보는 즐거움이 있다. 허 윈창은 5명의 여성에게 뼈로 된 목걸이를 착용하게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듯한 대형 사진 5장을 선보이는데, 그 목걸이가 그의 갈비뼈라는 점을 알게되면 엽기성에 전율하게 된다. 이스탄불 전시의 기획은 레벤트 칼리코글루 이스탄불현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가 맡았다. 전시의 주제는 ‘새로운 대륙:이스탄불’이다. ‘마침내 당신이 내 안에’라는 문구가 써 있는 쟈난 세놀의 작품이 인상적이다. 작가가 임신했을 때 만든 작품인데, 공공 장소에 이 작품이 전시되자 이 문구에 숨어있는 성적 도발로 대중들이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작가는 순수성을 보여주고자 했는데 말이다. 대중의 보수적 정서를 자극하며, 진정한 현대화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20년간 4번의 쿠테타가 발생한 터키를 두 개의 화면으로 비교하는 귤슨 카라무스타파의 영상물도 1960~70년대 한국을 생각나게 한다. 관람료 700원. (02)2124-8800.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 [최동호 오솔길 산책] 문학의 힘과 한글의 역사성

    [최동호 오솔길 산책] 문학의 힘과 한글의 역사성

    서늘한 가을바람이 옷깃에서 일어난다. 영 물러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가고 있다. ‘지난여름은 위대했다.’고 독일의 한 시인은 노래했지만 이제 한번쯤 작열하던 여름의 추억을 돌이켜 볼 시간이다. 지난 8월 초 필자는 중국 작가협회초청으로 서북쪽 칭하이성에서 개최된 제2회 국제시인대회에 다녀왔다. 세계 43개국에서 50명의 시인이 참가하고 중국에서 200여명의 시인이 참가한 대규모 국제시인대회였다. 대회의 주제는 ‘물질문명을 초월하는 정신의 힘’이었다. 공식 초청된 시인들의 주제 발표에 이어 각자 시 2편을 낭송하는 시간이 있었으며 서북지역 최대의 청정자연호수 칭하이 호숫가에서 음악제를 갖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황하의 발원지 칭하이호에서 왜 이와 같은 대규모 국제시인대회를 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필자의 머리를 맴돌았다. 동북지역 길림성이 주관하는 행사를 칭하이에서 개최한다는 문구에서 동북공정에 이어 서북공정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동북과 서북을 잇는 광대한 문화적 역사적 영토확장사업을 전개하는 그들의 노력이 무서울 정도였다. 당나라가 고구려의 후예 고선지 장군을 내세워 이 지역을 평정하려 했던 그들의 영토확장 정책이 아직도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8월말에는 다시 재미시인협회 초청으로 로스앤젤레스를 다녀왔다. 때마침 산불이 번져 세상이 온통 소란스러운 가운데서도 70여명의 청중이 운집하였는데 대략 50세 전후이거나 60세가 넘은 분들이 상당수였지만 강의에 집중하는 그분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외국에서 한국어로 시를 쓰면서 시인으로 살고자 하는 그분들의 열기는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미국 생활 30여년에 가까운 이들이 왜 아직도 모국어로 시 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의 관심사는 한국의 시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나의 시가 어떻게 한국에서 평가될 것인가 하는 것들이었다. 또한 한국의 정치상황, 유명한 운동선수의 경기실적, 한국에서 쏘아올린 우주선, 한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 등등 민감하게 돌아가는 한국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도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럼에도 좋은 시를 쓰기 위한 그분들의 노력이 너무 순수한 까닭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표현된 그분들의 진솔하고도 소박한 시들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었다. 한국어로 시를 쓸 때 그분들은 아직도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고 공감하는 세대인 것이다. 칭하이 시인대회에서 필자는 ‘시의 힘은 미약한 것이지만 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시는 한 방울의 물방울 같은 것이어서 아무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방울의 물이 칭하이 호수를 형성하고 다시 황하로 흘러가는 계곡과 산맥을 지나가면서 거대한 인류의 문명사를 만드는 것이라는 것이 주제 발표의 요지였다. 인류사를 돌이켜 볼 때 언어와 문자는 사람을 움직이고 역사를 움직이는 문화적 동력을 가진 것이었다. 재미시인들이 아직도 외국에서 한국어로 시를 쓰고 있는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시와 그 시를 표현하는 언어 문자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중국의 변방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역사를 보존하고 오늘날 독립국가로서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도 언어와 문자의 힘 때문일 것이다. 정치는 국민을 분열시키지만 문학은 국민을 하나로 통합시킨다는 말은 결코 우연한 말이 아니다. 한글날이 가깝다. 문자가 없는 외국의 한 나라에서 한글을 자기네 공식 문자로 채택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우리말과 글을 갈고 다듬어 세계적인 언어 문자로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은 문학의 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한국 문학이 세계인을 감동시킬 수 있을 때 우리나라도 문화적 자긍심을 지닌 선진적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 [씨줄날줄] 박작산성/김종면 논설위원

    중국은 신화와 전설의 시대인 하·상·주시대를 역사에 편입한 하상주단대공정(1996년)을 필두로 전설시대인 3황5제와 요순시대를 이집트시대와 견줘 5000년 전 역사시대로 규정한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을 벌였다. 이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킨 동북공정을 진행했다. 그것도 모자라 중국 문명의 기원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밝혀지고 있는 요하지역으로 옮기려는 요하문명론까지 펼치고 있다. 중국 문명의 시원을 황하 유역의 앙소(仰韶)문화나 장강 하류의 하모도(河姆渡)문화보다 무려 2000년 이상 앞서는 역사적 시공간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그 거대한 역사공정의 속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은 모두 중화민족이고 그들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바탕에 깐 대(大)중화주의는 끝간 데를 모른다. 국가전략 차원의 집요한 역사만들기 작업이 두려움마저 안겨준다. 중국은 지난달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중국명 장백산) 일대를 대규모 관광지로 개발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중국 관광지 개발사상 최대인 3조 7000억원이 들어가는 엄청난 역사(役事)다. 백두산을 터전으로 한 한민족의 역사를 만주족의 역사로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중국은 이미 장백산문화는 숙신·여진으로 이어진 만주족의 문화로 한민족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중국의 지방문화에 불과하다는 ‘장백산문화론’을 제기한 터다. 지금 중국에서는 만리장성 동단(東端) 늘리기 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중국은 최근 명나라 때의 만리장성 동쪽 끝 기점을 기존의 허베이성 산하이관(山海關)보다 훨씬 동쪽으로 떨어진 압록강 하류 랴오닝성 후산(虎山)산성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이렇게 되면 만리장성의 길이는 기존의 6300㎞에서 8851.8㎞로 2500㎞가량 늘어나게 된다. 후산 일대는 고구려의 요동 방어기지인 박작산성이 있었던 곳. 우리 고대사의 자취가 어려 있는 장소임을 감안하면 또 다른 ‘동북공정 굳히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중국이 과연 대국을 넘어 진정한 ‘초급국가(超級國家·슈퍼파워)’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라도 중국은 좀더 열린 역사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나이들면 욕심도 미움도 사라질줄 알았는데…

    정진홍(72)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일흔이 넘으면, 나는 내가 신선이 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온갖 욕심도 없어지고, 이런저런 가슴앓이도 사라지고, 남모르게 품곤 했던 미움도 다 가실 줄 알았다고 했다. 후회도, 안타까움도, 두려움도, 죽음의 절망도 아침 안개처럼 걷힐 줄 알았다고 했다. 종교학자이기도 한 그는 나이 일흔은 ‘드문나이’라고 해서 고희(古稀)라고 했는데, 성숙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남자이길, 여자는 여자이길 그만두고,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나누는 갈래짓기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일흔이 되고 보니 욕심도 가시지 않고 가슴앓이도 삭지 않고, 미움도 여전하고 고집은 신념이란 이름으로 더 질겨지고, 과거의 보람은 고함처럼 커간다고 했다. 예순 때보다 쉰 때보다 더 철저하게 사람 구실을 하나도 놓지 않고 더 질기게 사람노릇하는 나 자신을 확인한단다. 그는 일흔에 자신의 스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민속지에 나오는 민담(民譚)과 다르지 않고, 다른 종의 생물이 인간의 언어로 여긴다고 증언한다. 일흔이 발언하면 일흔을 함께 사는 사람 말고는 아예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기 위해 고안해 놓은 사회복지도, 종교도, 공동체와 혈연마저도 노인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증오는 신념으로 승화하고, 갑자기 지사(志士)가 되기도 한다. 돈 문제로 치사스럽고,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조바심에 바짝 건강을 염려하는데, 옆에서 볼 때는 다 늙은 노인네가 주책스럽다고 여긴다고 속상해한다.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어사연 글, 궁리 펴냄)에서 정 교수가 70대를 대표해서 글을 쓴 것이 서문이 됐다. 이 책은 10대부터 80대까지 10년씩 잘라서 각 연령대마다 노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개인적 경험에 비춰 적어내려간 책이다. 어떤 은퇴한 부부가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들 부부를 불러 저녁식사를 하면서 “잘 다녀 오마.”하고 인사를 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아들 부부를 배웅 나간 부모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 뒤 빨리 내려가지 않아서 듣지 않은 만 못한 소리를 듣게 된다. 아들은 “노인네들이 벌어놓은 것 다 쓰고 세상 뜰 모양이지.”라고 말한 것. 상심한 늙은 부부가 주변에 하소연했더니, 다른 집 자식들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란다. 늙음과 젊음, 이렇게 서로의 형편과 처지가 다르다. 평소 공자의 말씀에 귀기울여왔던 동양인들은 최소한 40세가 되면 불혹, 50세 지천명, 60세 이순의 순으로 유혹을 떨쳐내고, 하늘의 뜻을 이해하며, 어떤 소리에도 희로애락하지 않는다고 알아왔는데 70세가 넘어서도 떨쳐왔다고 생각해 온 그 세계가 악귀처럼 달라붙어 있다니 실소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근력과 육체를 사랑하는 산업자본주의시대에 늙는 일은 서럽기 짝이 없다. 쏟아지는 과학문명에 자신들의 지혜는 설 자리를 내주고 폐기물로 돌아서야 하기 때문이다. 1만 2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내 안의 그리스도 찾아 기도하고 일할 뿐

    내 안의 그리스도 찾아 기도하고 일할 뿐

    베네딕도 수도회 한국 진출 100주년 기념행사가 한창이던 21일 경북 왜관 베네딕도 수도회 대강당. 십자가 아래 제단에 선 독일 베네딕도 뮌스터슈바르자크 수도원 안셀름 그륀 수사신부는 엇갈린 두 팔을 살며시 가슴에다 포갰다. 그리고는 기도를 시작했다. ●수녀·수사·신자 1000여명 한자리 “주님, 이 집에 들어 오소서. 당신의 천사들이 이 안에 머물 수 있게 해주소서. 그들이 우리를 평화롭게 돌보아 주시길, 당신의 거룩한 축복이 영원히 우리에게 머물길……” 마치 자신을 안는 듯한 이 자세를 그륀 신부는 “자기 안의 그리스도를 찾는 베네딕도식 기도법”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시대 ‘영혼의 인도자’로 불리는 그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모인 1000여명의 수녀·수사·신자들은 모두 영성 가득한 가운데 제 안의 그리스도를 불렀다. 그륀 신부는 기도와 함께 ‘베네딕도의 영성’을 주제로 베네딕도 수도회의 역사와 사명, 신앙적 특수성에 대해 열정적인 가르침을 전했다. 250권이 넘는 저서로 이미 베네딕도회의 ‘스타 수사’로 이름난 그이기에 사람들의 질문도 끊이질 않았다. 그는 강연에서 “베네딕도 성인은 사회가 혼란스럽던 시기에 적극적으로 공동체를 꾸려 이를 통해 유럽을 변화시키고자 했다.”면서 “100주년을 맞은 왜관 수도원도 사회에 자유·희망·사랑·신뢰를 전하는 본래의 사명을 되새기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베네딕도(480~547년경)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 생활하는 베네딕도 수도회는 1909년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의 선교사 2명이 서울에 발을 디디며 한국에 처음 진출했다. 이후 북한 지역에 자리잡았다가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왜관에 둥지를 틀었고 올해 100주년에 이르게 됐다. 70명가량인 왜관 수도원의 수사들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가르침을 받들어 하루 다섯 번의 전례미사와 생산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이들은 출판사 일부터 목공업, 금속공예, 농업 등 일을 하며 자급자족의 공동 신앙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행사 백미는 ‘겸재 정선 화첩’ 전시 하지만 이들이 폐쇄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100년 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베네딕도 수도회는 끊임없이 한국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이들은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를 도입해 지역민에게 수공업 기술을 전파했고, 왜관 순심학교, 김천 성의학교 등을 세워 교육사업도 이어가고 있다. 또 한국에서의 국제 앰네스티 활동이나, 1970년대 해방신학의 융성도 베네딕도 수도회의 업적 중 하나다. 올해는 19~25일 다양한 100주년 기념 행사를 마련하고 수도원의 문을 활짝 열었다. 특히 행사의 백미는 겸재의 그림 21점을 모은 ‘겸재 정선 화첩’ 전시다. 이를 보관 중이던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은 영구임대 형식으로 화첩을 왜관 수도원에 전해 한·독 수도회의 100년간 변치 않는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 수도회는 전 세계 베네딕도 수도원 연합 회의인 ‘총재 아빠스 회의’를 한국에서 진행했다. 그외 수도회 역사서와 화보집을 발간하는 한편, ‘역사 심포지엄’, ‘기념 음악회’ 등도 열었다. 이형우 시몬 베드로 왜관수도원 아빠스(총책임자)는 “100년이란 시간은 짧지만 순교의 땅인 한국에서 이 기간은 순간순간이 드라마 같았던 시기였다.”면서 “향후 100년 수도원은 발달한 물질 문명 속에서 영적으로 목말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영적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 사진 왜관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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