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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문제 영향력행사 희망/야인 고르비 어떻게 지낼까

    ◎「사회·정치연구재단」에 전념할 듯/정부선 아파트등 제공… 생활 보장 소연방의 소멸로 세계초강대국의 최고통치자에서 러시아공화국의 평범한 한 국민으로 전락한 고르바초프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그는 일단 전직 국가원수로서 물질적 생활기반은 보장받게 됐다.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24일 고르바초프의 퇴임이후 그에게 아파트와 별장,경호원 20명,전용차 2대를 제공하고 현직수행시의 급여수준인 월 4천루블을 연금으로 지급할 것이며 지급액은 향후 인플레를 감안,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장래계획과 관련,모스크바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사회­정치연구재단」이사장으로 일할 것이라고 24일 밝혔다.이른바 「고르바초프재단」으로 불리는 이 재단은 보수강경파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직후에 설립됐었다.그러나 그는 지난 22일 미CBS방송과의 회견에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정치의 세계를 떠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언급,새로운 체제에서도 정치적 활동을 계속할 뜻임을 비췄다. 한때 그는 새체제에서 상징적 직책을 맡을 것이라는 추측도 많았다.그러나 그가능성은 희박하다.옐친은 최근 『새로운 체제하에서 고르바초프가 할일은 없으며 어떤 직책도 준비할 의사가 없다』고 못박았다.고르바초프도 새체제에 대한 강한 불신과 거부감을 표시화면서 의례적인 역할을 맡을 의사는 없다고 밝혀왔다. 그는 우선은 재단의 일에 전념할 것으로 보이지만 해외에선 인기가 높기 때문에 틈틈이 국제무대에서의 활동도 펴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직도 정치에의 강한 의욕을 지니고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고르바초프는 지금까지 쌓아온 민주화와 개혁 업적을 온존시키고 대중으로부터도 소외되지 않는 분야에서 자신의 진로를 조정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세상의 그 어떤것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고르비어록 ▲핵전쟁의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지상의 목표로 삼겠다(85.3.11 당서기장 취임연설). ▲지구를 핵의 파국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전인류적인 과제이다(86.8.18 일방적 핵실험동결연장발표). ▲국제적인 파급효과를 지닌 우리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는 국제사회에서 「소련위협」의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이다(87.11 연설에서). ▲냉전체제의 와해가 시작됐다.냉전을 끝내고 평화시대를 여는데 전력을 모으자(88.12.31 신년TV메시지). ▲동서분단의 가장 강력한 상징물인 베를린장벽은 언젠가 무너질 것이다.이 세상의 그 어떠한 것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89.6.18 연설에서). ▲냉전의 참호는 사라지고 있다.편견과 불신,적의의 안개는 걷히고 있다.전세계에 살고 있는 현세대는 문명사에서 확고부동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90.6.1 부시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나는 2년후 변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지도부는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90.7.5 제28차공산당대회). ▲이제 냉전은 종식되고 핵전쟁의 위험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평화의 지평선이 넓어진 것이다(91.1.1 90년 한해를 마감하며 미국에 보낸 메시지). ▲오늘날 모든 사회세력과의 단결을 위해,그리고 모든 갈등을 잊어버리기 위해 상호 함께 일해나가야 할것이다(91.4 연설에서). ▲우리가 시장경제를 이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계경제의 일원이 될수없다.우리는 개혁이 필요하다(91.7.30 부시미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의 생애에서 주요과업은 이루어졌다.나는 불과 물,바꾸어 말해 공산당과 군산복합체 그리고 새로운 연방의 동료들에 의해 짓밟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유연성을 보였다.페레스트로이카의 핵심이념을 추구하기 위해 실책도 없지 않았다.다른 사람이 나의 위치에 있었다면 그들은 이미 떠나버렸을 것이다(91.12.13 기자회견). 고르비 발자취 ▲31년3월2일=러시아공 스타브로폴시 인근 프리폴노예서 출생 ▲50년=모스크바대 법학과입학 ▲52년=공산당 청년조직(콤소몰)에 가입 ▲60년=스타브로폴지구 콤소몰 제1서기 ▲66년=〃 당제1서기 ▲78년=공산당 농업담당서기 ▲79년=정치국 후보위원 ▲80년=정치국 정위원 ▲85년3월11일=소련공산당서기장취임 ▲87년1월=당간부 비밀·경선도입등 개혁정책 본격화 ▲87년12월=워싱턴 방문,INF폐기협정 서명 ▲88년9월=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89년10월=몰타정상회담,냉정종식선언 ▲90년3월15일=5년임기의 초대대통령 취임 ▲90년12월=노벨평화상 수상.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쿠데타 경고후 사임 ▲91년1월=리투아니아공 무력탄압 ▲91년4월=제주서 한소정상회담 ▲91년8월=쿠데타 발발,3일만에 분쇄 ▲91년9월=소련 국가평의회,발트3국 독립승인 ▲91년12월=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등 3공화국 「독립국 공동체」창설선언.소연방 공식해체 발표 ▲91년12월26일=소연방대통령사임
  • 21세기 경제,인간중심으로/홍문신 한국감정원 원장(서울시론)

    ◎분배·복지 실현의 청사진 돼야 경제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대학 때 공부하던 알프레드 마샬의 경제학원론책을 다시 들쳐보았다. 대단히 재미있게 읽었다. 이 딱딱한 교과서가 재미있는 이유는 마샬의 폭넓은 시각이 전환기에 선 오늘의 우리 경제에 생생한 교훈을 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다루는 인간은 우리와 같은 현실세계의 인간이 아니라 로봇과 같은 가상인간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가상인간은 이기적 동기에 따라서만 움직인다고 가정하고 있다. 그 결과 경제학은 논리적이고 이론적으로는 정치할는지는 모르나,현실과 유리된 추상적 학문이 되고 말았다. 마샬은 경제학이 이런 경지를 벗어나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을 연구하는 인간학이 되어야 한다고 갈파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경제학은 한면에서는 부를 연구하는 것이지만 더 중요한 또 다른 한면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이와 같은 마샬의 명제 이것은 평범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씹어보면 볼수록 21세기 우리 경제가 지향해야 될 좌우명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30년간을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경제는 지금 절대빈곤은 사라지고 1인당 연간 GNP가 5천달러를 넘게 되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경제가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과거 절대빈곤의 멍에를 떨쳐버리는 것보다도 더 많은 숙제가 산적해 있다. 이제 이러한 숙제를 풀기 위해 21세기를 향한 경제의 대청사진이 마련되어야 하며,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샬의 주장대로 부만을 위한 경제학이 아니라 인간중심의 인간연구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학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야기가 좀 빗나간 감이 없지 않으나 서구문명사에서 인간위주,인간중심이란 사고의 시발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오게 되었나 하는 근원적인 생각을 해본다. 서구문명의 발달과정을 고대·중세·근세로 구분하곤 한다. 중세는 흔히 인간성이 말살된 암흑시대라고 한다. 이 중세로부터 근세로 넘어오는 역사적 시간에 중세의 정신을 극복하고,인간중심으로 세계를 재발견하는 위대한 시간이 있었다. 이것을 우리는 르네상스(14∼16세기)라고 부른다. 중세는절대적 교회 권위주의시대였다. 교회의 권위와 법칙만이 존재하고,모든 것(정치·경제·문화·학문·예술 등)이 이 권위와 법칙에 따라야만 됐다. 신만이 존재하고,신의 존재만을 지상 최대의 불문의 법칙으로 하는 시간에 인간이나 인간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와 같은 중세의 절대적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꽃피운 것이 르네상스이다. 르네상스시대에 이를 선도한 분야가 학문,예술과 같은 정신적 분야에서였다. 르네상스시대는 신과 교회의 법칙에 따라 학문을하고,신을 그리고,조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을 연구하고,인간을 그리고,조각하였다. 밖에서 주어진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따라 행동하고 작업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인간위주,인간중심주의가 생기게 된 것이다. 르네상스는 중세로부터 근대적 사고와 정신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이다. 이런 대과도기에서 문제를 어떻게 보고 풀었던가 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또 지금의 우리에게도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본론으로돌아가 21세기 우리 경제사회가 권위주의를 떨쳐버리고 마샬이 말한 대로 인간중심의 경제가 되고 더 나아가 인문주의가 뒷받침하는 경제사회가 될 때 우리 사회는 진정한 선진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중심의,인간본위의 경제란 무엇일까? 지난 30년간의 우리 경제는 부의 양적 성장만을 일차적 목표로 두어왔었다. 다가오는 21세기 사회는 부의 크기나 경제적 안정 뿐만아니라 경제학이 추구하는 이상향적인 목표­경제적 정의,공평,경제적 자유,복지,분배 등­에 더 큰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런 것이 이루어질 때 인간을 위한 경제가 될 것이다. 최근 2∼3년간 우리 사회는 많은 문제가 제기되어왔다. 매일같이 신문·TV 등 언론매체가 전하는 경제현실이 그것이다. 그것은 경제적 정의·공평·경제적 자유·복지·분배와 같은 인간을 위한 경제를 향한 문제제기요,몸부림이다. 우리는 다가오는 21세기에 이런 것을 차근차근히 하나씩 풀어나가 정착시켜야 한다. 경제란 우리 말의 뜻이 「경국제민」에 있다면 경제란 말 속에 이미 인간을 위한 경제사회 건설이라는 숙제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이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하고 희생하고 인내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과정을 필자가 이미 본란에서 인용한 「부레너고개」의 비유로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부레너고개는 알프스를 남북으로 넘는 길이지만 그 정상은 필자가 가끔 산책하는 강남 대모산의 작은 언덕보다도 완만하다. 그러나 이탈리아 쪽에서 알프스를 넘기 위해서는 베로나·트렌토·볼차노시를 지나 부레너고개까지 수백 ㎞를 올라와야 부레너고개 정상에 이르고 그것을 넘어서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 낮은 고개 하나가 이탈리아로 대표되는 알프스 남쪽의 지중해 문화와 독일로 대표되는 북유럽 문화를 확연히 갈라놓는 것이다. 어쩌면 21세기에 인간 중심의 경제사회,더 나아가 인문주의가 뒷받침되는 복지선진 한국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길고 긴 부레너고개를 오름」과 비견될 수 있을지 모른다. 부레너고개 자체는 낮고 완만하지만 그 뒤에는 수백 ㎞ 능선길을 따라 올라와야 되듯이 마샬이 말하는 인간 위주의 경제사회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총의가 결집된 피와 땀과 노력이 뒤따라야 되는 것이다. 알프레드 마샬 정신이나 르네상스의 전환기적 의미는 21세기의 새로운 경제사회를 생각해보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 EC,후세인 퇴진 촉구/정상회담/「쿠르드족 안전지대」 설치 제의

    【룩셈부르크 로이터 AP 연합】 유럽공동체(EC)는 8일 특별정상회담을 통해 쿠르드족 난민을 위해 이라크내에 유엔이 관장하는 특별 「안전지대」를 설치할 것과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EC 정상들은 이날 회담에서 또 2백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쿠르드족 난민을 위해 1억8천만달러 가량의 긴급 지원을 제공키로 합의하는 한편 이라크군의 무자비한 쿠르드족 반란진압방식을 규탄하고 이의 즉각적인 중지를 아울러 요구했다. 이번 EC정상회담을 주재한 룩셈부르크의 자크 상테르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후세인 대통령이 권좌에 남아 있는 한 EC는 이라크가 문명사회의 일원으로 재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후세인 대통령의 하야를 강력히 촉구했다. 이 결의안을 제안한 존 메이저 영국 총리는 이라크측의 승인여부에 상관없이 유엔이 이라크 북부지역에 쿠르드족 난민을 위한 피란처를 설치하라고 촉구하면서 『이 제의의 목적은 일단 쿠르드족과 기타 이라크 난민들이 산에서 내려와 안전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것이며 이어 2단계에서 이들 난민들이 귀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쿠르드족이 주로 거주하는 이라크 북부의 일부 대규모 마을지역이 모두 특별구역화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번 EC정상회담에서는 지난주 유엔 걸프종전결의에 규정된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계속방침을 지지하고 제재조치가 이라크측의 정책변화가 있을 때까지는 지속되어야 한다고 천명하는 한편 무기금수원칙도 재확인했다.
  • 「후세인악령」에 시달리는 글래스피

    ◎바그다드주재 전 미 여성대사의 불운/침공 예견못해 외교무대서 밀려/면담내용 입다문채 한직서 소일 에이프릴 글래스피 전 이라크주재 미국대사(48)는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직전 사담 후세인과의 짧은 만남으로 인해 외교무대의 불운한 주인공으로 전락한 인물이다. 여성으로 중동에 파견된 최초의 미국대사였던 글래스피대사는 현재 사담 후세인의 쿠웨이트침공을 예견하지 못하고 미국의 강력한 대응경고를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낙인이 찍힌채 국무부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일을 하며 일과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당분간 다시 대사직에 복귀하게 될 것이란 보장도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 하원외무위 유럽·중동소위원장인 리 해밀턴의원이 그녀의 증언을 공식적으로 요청했지만 국무부는 이를 거절한 상태이고 소환장을 발부해서라도 그녀가 『누구로부터 훈령을 받아 이라크에 영토분쟁에 관한 미국의 입장을 전달했느냐』를 따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그녀 자신도 국무부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입을 열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왔으며 언론들이 그녀의 집근처에 잠복했다가 마이크를 갖다대도 지금까지는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1주일전 글래스피 대사는 부임 2년만에 처음으로 사담 후세인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국무부가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문명사회에서 강압이나 협박은 있을 수 없다』고 이라크가 쿠웨이트와의 국경에 병력을 증강시키고 있는데 대해 미국이 경고한 직후였다. 2시간의 면담후 글래스피대사는 그 결과를 본국에 타전했다. 그 결과는 비밀문건으로 분류됐고 아직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는 그해 9월11일 면담결과를 공개했다. 이 속에는 『우리는 당신들과 쿠웨이트간의 국경 이견과 같은 아랍국가들 사이의 분쟁에 관해서는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는 대목이 있다. 글래스피 대사의 이 발언이 사담 후세인을 부추겼다는 주장이 있으나 미국무부는 이라크가 공개한 면담내용 녹음이 많이 첨삭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글래스피 대사가 침공을 강력히 경고한 대목은 지워졌다고 주장했다. 글래스피 대사는 90년 7월30일 일단 위기가 가라앉았다고 보고 워싱턴을 1주일 방문,본국 정부에 보고를 하기 위해 바그다드를 떠났다가 런던에서 침공소식을 들었다. 아랍어·불어에 능통하고 독신으로 25년간 직업외교관의 길만을 걸어온 그녀의 미래가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다. 그녀를 동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이 아랍국가간의 분쟁에 관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불개입한다는 입장을 취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쟁이 끝났으므로 글래스피 대사는 진상을 공개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의견도 있고 국무부는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자유』라고 말하고 있지만 소식통들은 그녀의 입을 열게 할 사람은 부시대통령 한사람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언젠가 바그다드에 미국대사가 다시 부임할 경우 그사람이 글래스피가 아닌 것은 확실하며 그녀는 앞으로 대사직보다는 국무부의 「조용한」 일자리에 임명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 동북아 새 질서 태동 진단(서울신문 광복45주년 특집)

    ◎한반도에도 데탕트 기류 가속화/하야시 다케히코 일본 동해대교수/「4강 역학」 어떻게 변화될까/평화공존 10여년 거쳐 통일정부 수립 가능성/GNP 1만불 육박땐 「5극체제」 출현 예상 지금 세계는 동·서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를 지양,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이행하려 하고 있다. 런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서의 선언과 미 휴스턴의 선진 7개국(G7)정상회담의 선언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및 그것과 표리일체를 이루는 공산주의의 좌절선언에 지나지 않았다(프랜시스후쿠야마 「세계를 말한다」 산경신문 7월31일). 38도선의 북쪽에 「아웃 사이더 국가」 즉 북한이 존재하고 있는 한반도도 그같은 세계변화의 큰 격랑속에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웃 사이더 국가를 포기한다는 것은,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룰을 받아들이는 국가로 되는 것이며,대내적으로는 「남반부 해방에 의한 통일」이라는 혁명노선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이상 세계정치의 본류를 우선 확인한 연후에 10년후 21세기초의 동북아시아 정세를 전망할 경우,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시점에서의 남북 분단의 극복 상황이다. 거기에는 3가지 케이스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제1은 북한이 언젠가는 닥쳐올 김일성주석의 죽음을 계기로 분단의 현상을 받아들여 평양정권의 존속을 꾀하기 위해 남북한 교차승인과 공존체제를 인정하고 그 결과로써 「1민족 2정부」의 상태가 도입되어 꽤 장기에 걸쳐 지속하는 케이스이다. 제2는 노태우대통령의 「한민족공동체통일안」에 따라 과도적으로는 남북 국가연합의 단계를 거쳐 통일국가의 형성을 지향하는 경우이다. 제3은 과도적 단계를 생략,동·서독일처럼 통일총선거를 선행시켜 일거에 통일정부를 발족시키려 하는 경우이다. 제1의 케이스는 72년 12월 국가간의 기본조약을 맺고 「1민족 2국가」의 체제를 작년 11월의 베를린장벽 붕괴로 연결시킨 동·서독일형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동서독일형은 3월 실시된 동독의 총선거에서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동독시민이 과도적인 국가연합단계를 생략,「독일의 재통일」을 희구하는 중도우파연합을 압도적으로 지지한결과였다. 다시 한번 3가지 경우를 앞으로 예상되는 10년간의 한반도의 내외 정세추이에 맞춰볼 때 남북한도 다시 동서독 같이 남북공존체제의 제1의 케이스를 거친 뒤 점차 실현성을 갖게 되는 통일에 대한 남북시민의 실현의지의 강도가 동서독같이 「국가연합」의 단계를 생략시켜 제3의 케이스를 지향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여진다. 남북 공존체제를 통해 북한의 주민·민중들이 곧 알게되는 것은 남북 양체제의 우열이다. 그 우열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시대를 가속화하는 세계의 흐름에 합치하는 것으로써 북한민중들도 동독시민들이 베를린의 벽을 「시대의 흐름」으로 붕괴시켰던 것처럼 군사분계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자연의 추세일 것이다. 여기서 좀더 대담한 예측을 해 본다면 앞으로 10년을 거쳐 21세기의 초장을 맞는 한반도에는 수도를 서울로 하는 통일국가,통일정부를 수립해 문자 그대로 선진국에 들어서려는 국가가 출현할 것이라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즉 인구 7천만,국민 1인당 GNP 1만달러에 육박하는 국가의 출현이다. 인구 7천만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재통일을 이루려는 90년대 초의 동서독인구 7천7백만명에 필적하는 것이며 인구 규모로서는 선진 7개국중의 프랑스 이탈리아(양쪽 5천만명대)를 능가한다. 90년 현재 한국의 국민 1인당 GNP는 5천달러,북한은 1천달러(추정)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연간 7.2%의 성장률을 10년간 계속 확보한다면 1만달러 수준의 달성은 가능하다. 남북 공존체제는 북한경제의 개방체제를 더욱 촉진시켜 한국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남북 경제교류기금 2천∼3천억원의 운용과 북한합영법에 의한 남북 경제교류의 신장과 확대로 결국 남북통일에 앞서 북한경제의 한국형 경제에로의 수렴을 불가피하게 한다. 남북통일의 상징은 한국의 현대그룹이 계획하고 있는 시베리아의 천연가스 수송을 위한 파이프 라인이다. 야크츠크로부터 하바로프스크 블라디보스토크,나아가 평양을 거쳐 서울·부산까지 이어지는 4천㎞의 에너지 동맥이야말로 남북을 직결시키는 원동력이다. 파이프 라인 부설이 가져오는 주변의 경제개발이라는 파급효과도 시베리아·남북한을 통해 막대하다. 세계적 명산 금강산의 본격적인 관광개발사업도 남북 공동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며,그 공동사업이 초래하는 남북일체감 조성의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나아가 한국·일본·소련 사이에 최근들어 각광을 받기 시작한 「일본해=동해신시대」(조일신문 7월6∼14일 연재)는 남북공존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북한이 참가하고 북한경유 「일본해=동해」를 연결하는 중국 동북부가 참여하게 됨으로써 21세기와 함께 동북아시아에 성립하게 되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경제적 측면을 대표하는 신경제권으로 될 것은 확실하다. 인구 7천만,국민 1인당소득 1만달러국가의 출현은 경제적으로는 중·소를 압도하는 경제국가의 출현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적으로 말해 기존의 미·소·중·일의 주변 4대국에 남북통일 한국을 첨가시켜 동북아시아에 5대국에 의한 오극구조시대가 대두한다는 것과 직결된다. 오극구조를 갖는 국제관계에 있어서 세력균형의 이상적 체제와 위치를 부여한 것은 키신저박사(전미국무장관)의 연구성과였다. 물론 21세기 초엽 동북아시아지역에 통일한국을 축으로 오극구조가 성립된다는 것은 현단계에서 거대한 가설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오극체제의 성립을 보증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극의 한귀퉁이를 중·소가 각각 맡기 위해서는 중·소 자신이 더욱 개방체제를 추진하는 가운데 국가적 안정과 발전을 꾀해야 한다. 이 지역에 역사적으로도 가장 활발한 이해관계를 갖는 중·소 양국의 안정적 발전없이는 동북아시아의 오극체제는 그림의 떡이다. 이것은 남북 통일국가의 출현없이는 있을 수 없는 신국제질서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평가되어야 하는 것은 남북을 통한 한민족의 역량이며 영지이다. 제2차 세계대전후 45년,세계 격변의 시점에서 정말로 타의에 의하지 않는 민족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통일국가 실현의 지평을 여는 것이야말로 주변 4대국의 전면적인 협조와 협력체제를 가능케 하는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동북아시아의 오극체제에 의한 안정적 신질서의 도래는 모든 것이 그 한가지 사실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윤병익 통일연수원 교수/「통일시나리오」를 엮어보면…/체제공존→동질성 회복→총선이 합리적 수순/「4강 지렛대」로 북녘 개방 적극 유도 바람직 해방 45돌을 맞았다. 우리의 민족해방은 국제정치적 희생물로서 강요된 45년의 민족분단사로 이어져 우리 민족은 남북한체제의 갈등 속에서 끝없는 고통과 국가발전의 제약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광복절은 국제적으로는 동·서 체제간의 긴장완화 추세,공산권전반의 개혁·개방정책,목전에 이른 독일통일,그리고 민족 내부적으로는 변화된 국제정세의 파장을 한반도에로 끌어들이려는 양국및 국민의 노력이 상승작용을 하여 통일을 앞당기려는 민족의 열망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의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 질 것인가,또 「국제정세와 남북한 체제발전추세의 맥락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예상모형을 어떻게 상정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민족통일운동의 방향모색을 위해서도,민족의 발전과 번영을 보장할 수 있는 올바른 통일실현을 위해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분단국문제의 해결방안을 생각해 본다면 분단쌍방체제간의 평화공존,교류·협력관계의 정착화를 통한 민족동질성의 회복 그리고 총선거를 통하여 국민이 선택하는 통일국가의 수립만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북한당국이 체제적 특수성으로 말미암아 한사코 거부함으로써 한반도 통일문제 해결의 어려움이 있다. 북한당국은 통일로 가는 불가피한 과정인 남북한체제의 상호개방을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란 북한통치명분을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하여 이른바 「조선노동당시대의 기념비적 건조물」로 꾸며진 평양은 개방할 수는 있으나 「미제의 식민지」아니면 「거지소굴」로 선전되어 온 「남조선」을 북한주민에게 개방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당국은 서독체제로 흡수·통합되는 독일통일 과정에서 남북한 체제개방의 결과를 예견하고 전율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른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내세우면서 『남북의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그대로 두고연방제로 최종의 통일정부를 수립하자』고 내세우고 있지만 이것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간의 연방구성안이 아니며,「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이란 「선남조선혁명,후통일」전략의 일환이다. 따라서 진정한 통일방안이라기보다 전 한반도의 공산화 방안임이 분명하다. 남북한 체제공존을 북한체제 전복의 한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는 북한당국으로서는 「연방제 통일」의 주장과 함께 대남통일전선전술을 구사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체제수렴론」이 한반도의 통일방안으로 수용되지 않고 있는 현상황하에서는 결국 국민에 의한 「체제선택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북한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정책을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인간적인 민주적 사회주의」 등으로 위장을 하고 있으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적 한계성을 자인한 것임에 틀림없으며,따라서 우리는 아집이 아닌 인류문명사적 시각에서 민족통일을 위한 북한체제의 변화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자유와 안정과 행복을 보장하는 통일국가의 수립을 표방하고 있으며 우리는 비록 마지막이 될지언정 공산권의 개혁·개방의 물결이 북한에도 와 닿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숙청으로 점철된 북한정치사 속에서 반김일성·김정일 세력이 완전히 제거되었을 뿐만 아니라,이른바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투쟁사」와 「주체사상」으로 세뇌된 신정체제하에서 조직적인 저항세력도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루마니아에서와 같은 인민봉기에 의한 체제변화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는 「위로부터의 변화」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북한당국은 남북한 경제발전의 격차를 의식한 나머지 1984년 합영법을 제정하여 대외개방경제정책을 제한적으로 시도하고,「경공업혁명」을 추진할 뿐만 아니라 비록 대남전략적 의도가 강할망정 종교활동을 선전하는등 제한적인 변화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산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내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오히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표방,체제수호를 위하여 역사의 흐름을 거역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통일을 위한 당면과업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의 물결을 어떻게 북한체제에 불어넣느냐의 문제로 압축된다. 우선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미소등 한반도 주변강대국은 동·서 냉전체제의 마지막 유산인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남북대화를 강력히 종용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은 북경 등지에서의 접촉과정을 통해 미국과 북한만의 평화협정 체결을 고집하는 북한에 분명히 거부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의 경제교류·협력을 강력히 바라고 있는 소련은 남북한 평화공존관계를 위한 「두개의 한국정책」 추진을 위해 「김일성의 항일빨치산투쟁」의 허구성과 김일성·스탈린의 「한국전쟁」 유발책임을 폭로하고,한소수교를 가시화시킴으로써 대남혁명전략에 따라 「하나의 조선정책」을 고집하는 김일성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소수교는 궁색한 「정경분리원칙」을 고수하지 않을 수 없는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에도 정책선택의진폭을 넓혀주고 있다. 이런 배경때문에라도 북한은 「남북 고위급회담」등 남북대화의 마당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체제공존을 지향하는 남북대화를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의 자리에 나온다 하더라도 대남전략적 발상의 주한미군 철수,군축,한반도의 비핵·중립화 등 상투적인 군사문제 선결입장을 계속 제기하면서 당국,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통한 「고려연방제통일방안」의 관철을 주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남북한의 체제공존을 지향하면서 민족통일로 접근하려는 우리의 통일정책과 「남조선」의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을 지향하는 북한통일정책의 막판 승부의 장으로 급히 줄달음치고 있는 형국이다. 긴장완화와 공산권 전반의 개혁·개방정책으로 기울어진 인류문명사의 대세와 신정체제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북한체제간의 간격이 벌어지면 벌어질수록,또 북한체제가 고립화되면 될수록 북한당국은 더욱더 「남조선」 민중과의 「통일전선」 형성에서 탈출구를 찾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민족의 통일은 「남조선 혁명」 전략에 따른 북한의 대남 제의를 우리가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오히려 북한사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가까워질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 “사막의 방패”… 미국의 결의/장수근 국제부차장(오늘의 눈)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과 미국간의 힘겨루기가 점차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는 가운데 9일 미 국방부의 소식통은 사우디 방어를 위한 미 지상군의 파병규모가 25만명에까지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아직 추가파병의 규모와 시기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같은 비상계획 공개는 페만의 전쟁억지를 위해 미국이 더큰 위험부담도 감수할 것임을 분명히한 시사라는 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물론 이같은 규모의 지상군이 페만에 작전배치 되려면 최소한 60여일이란 시간이 필요해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현지 상황대처에 즉각적인 효과는 없을 것이란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같은 미국의 파병의지 표현만으로도 「아랍의 비스마르크」를 꿈꾸고 있는 사담 후세인의 야심을 꺾는 데 상당한 효험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만만찮다. 「사막의 방패」로 명명된 미국의 파병계획에 따라 현재 사우디에는 베트남 전쟁이후 최대 규모의 미군이 투입되고 있으며 그 위험성에도 불구,미 의회와 국민들은 부시대통령의 결정에 초당적이며 동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있다. USA 투데이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미국인의 80%가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는 사우디에 대한 이라크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미군의 파병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ㆍ민주 양당의원들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미국의 지금까지의 이니셔티브가 적절했다고 말하고 사담 후세인 성토에 나서고 있다. 미국 언론들도 출정을 앞두고 가족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는 장병들의 이별장면 사진과 화면을 보도,파병에 대한 국민여론을 「애국」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번 이라크의 쿠웨이트 강점은 미소간의 냉전종식으로 전면전의 가능성이 배제된 현 국제질서 아래서도 지역분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이럴 경우 진화에 나설 「국제경찰」의 존재가 얼마나 절실한 명제인가를 보여준 한 예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군의 대규모 사우디 파병결정은 문명사회의 세계질서 파괴행위에 대해서는 이를 단호히 응징하겠다는 강력한 의지표명이라고 풀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시에 세계는 미국의 이번 페만 군사력 개입이 군사대국 미국의 고압적 무력시위가 아니라 세계질서와 자유산업사회 보호를 위해 적절한 조치였던 것으로 기록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 「김일성 이후의 북한」세미나/김학준씨 발표 요지

    ◎“남ㆍ북한 교류물꼬 2∼3년내 트인다”김일성 생존말기 「제한된 교역ㆍ협력」시도 예상/대미관계등 개선… 동독식 온건개혁 추구할 듯 「김일성이후의 북한」을 주제로한 세미나가 한국지역사회연구소(이사장 장성만)주최로 23일 하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 세미나에서 김학준박사(대통령사회담당보좌역)는 주제발표를 통해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사후가 아니라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며 이미 그 변화의 조짐은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수년내에 북한은 대한민국의 실체를 인정,대화를 통해 민족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로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박사는 또 2∼3년내에 북한은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남북한간 교류와 교역,협력을 시도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우리는 「건강한 민주복지국가」를 발전시켜 이 시기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박사의 발표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시간은 항상 사회과학자들을 망신시켜 왔다』는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갤브레이스교수의 말처럼 어떤 사회의 변화를 예측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이후 전개된 소련을 중심으로한 공산권의 변화는 한마디로 「혁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공산권의 변화를 예측한 사회과학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특히 정보가 극히 통제돼 있는 페쇄체제인 북한에 대해 그 미래를 전망하기란 매우 어렵다. 공산권의 변화이후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북한의 변화가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대체로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이 2∼3년 또는 3∼4년안에 변화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북한은 소련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동유럽국가들과 달리 중국이라는 또하나의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동유럽국가들은 지리적으로 소련에 인접,개혁과 개방의 도미노현상을 피할 수 없었으나 북한은 그 진원지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셋째,유고와 알바니아를 제외한 동유럽의 국가들이 대부분 2차세계대전후 소련군에 의해 권력이 창출됐고 그 이후에도 소련군에 의해권력이 유지돼 대소의존도가 매우 컸지만 북한은 소련군에 의해 정권을 수립한후 곧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를 확립,자주노선을 밟아옴으로써 소련의 압력을 피할 수 있는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변화에 대한 또다른 견해는 북한도 1∼2년,적어도 2∼3년내에 반드시 변화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같은 주장은 현재 공산권에서 전개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은 세계사적이며 문명사적인 조류로써 「인류사에 일대 획을 긋는 피할 수 없는 전환」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자그대로 「혁명적 변화」라고 일컬어지는 이 물결을 북한이 끝까지 거부할수 있겠느냐하는 물음에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논거로는 첫째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소련의 대북압력이 매우 크다는 점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2월 파리에서 열린 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던 고르바초프의 한 군사담당보좌관은 『북한에 대해 동유럽에 대한 것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 발언을 전후해 김일성을 비난하거나 북한의 실정을 폭로하는 기사들이 소련언론에 계속 게재되기 시작했다. 특히 6.25의 남침설이 소련학자에 의해 입증되고 있으며 김일성일인 지배체제 확립의 핵심기둥이 되어온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신화를 파괴하는 내용마저 공개되고 있다. 뿐만아니라 한서정상회담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발표된 직후 『이는 고르바초프가 대낮에 많은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김일성의 뺨을 때린 것과 같다』는 외신의 보도처럼 소련의 대북개방압력은 매우 크며 북한이 이를 거부할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최근 북한내부에서도 조직화되고 정치세력화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김일성의 지도노선 또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불평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으며 이는 북한의 변화를 예측하는 주요한 지표가 될수 있다는 지적이다. 셋째,테크노크랫의 부상도 북한의 변화와 관련지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볼수 있다는 점이다. 본질적으로 실용주의노선을 추구하는 테크노크랫의 부상은 변화의 조짐을 예고하는 것으로 그 폭이 넓어질수록 변화의 속도는더욱 빨라질 것이다. 나는 북한의 변화가 멀지 않았다는 후자의 주장에 동조한다. 다만 북한은 「김일성 개인의 국가」이기때문에 김일성사후가 아닌 김일성이 살아있을때 그 자신으로부터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올해 78세인 김일성은 지난해만도 2차례 심근경색을 겪었을만큼 건강이 좋지않으며 곧 무력화될 것이다. 따라서 김일성은 정치적 카리스마를 지니지 못한 김정일의 세습기반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변화를 추구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대남민족해방전략을 고집해온 김일성이 대남관계의 물꼬를 트지않은 상태에서 사망,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했을때 김정일이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정책의 전환을 시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북한변화의 길도 김일성 스스로가 닦아 놓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북한의 변화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고르바초프와 같은 권력자나 공산당이 주체적으로 개혁하는 소련식의 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서방세계로부터의 계속된 지원을 바탕으로 반체제세력이 집권을 하는 헝가리식의 변화도 겨우 불만이 노출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일반근로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정권에 도전해 협상과정을 거쳐 집권에 이른 폴란드식도 근로자들의 정치적 조직화가 전혀 돼있지 않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호네커체제의 붕괴후 들어선 크렌츠가 물러나고 또다른 세력이 집권,보다 온건한 개혁노선을 추구해온 동독식의 변화가 가장 가깝다고 생각된다. 루마니아식의 혁명적인 변화도 배제할수는 없으나 조직화된 반체제정부세력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은 김일성 생존말기에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도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변화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보다 완만하고 단계적인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측된다. 즉 한소정상회담이후 가시화되고 있는 미ㆍ일과의 관계개선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남북한전면개방과 인적교류」를 선언한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발표를 일단 거부한다고 선언했으나 결국은 수용할 것으로 생각한다.또 앞으로 몇년내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남북한간의 교류ㆍ교역ㆍ협력이 시작될 것이며 우리는 북한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대비책은 바로 우리 스스로 건강한 민주복지국가를 발전시키는 길이며 이를 바탕으로 북한을 개방의 길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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