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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와 통일] (16)北인권운동가 빌리펠드

    [나와 통일] (16)北인권운동가 빌리펠드

    내 직업은 비영리단체 비상근직원, 그리고 자원봉사자다.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태어났지만 현재 한국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 주로 영어권의 외국인들에게 북한의 실상과 인권문제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 신촌이나 종로에 나가 거리 퍼포먼스를 벌인다. 재미교포 출신의 힙합 가수가 북한인권을 소재로 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사진전을 열기도 한다. 20명 정도 모이면 15명 정도는 나 같은 푸른 눈의 외국인이다. 외국인이 이런 것을 하면 한국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이렇다. “외국인이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그렇지만 북한 인권에는 관심이 없다. 미안하다.” 그러나 지난해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로는 북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관심도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거기서 작지만 변화의 희망을 보고 있다. 나는 북한의 인권을 다루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핵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다. 정부의 외교정책은 언제나 핵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핵 문제에만 집중하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더 중요한 북한 인권에 집중해야 한다. 안드레아 사크라프라는 소련의 핵무기 프로그램 총책임자는 “자기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나라는 그 이웃들의 권리도 존중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지도자의 이미지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쓴다. 우리가 꾸준히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물론 숨기려고 하겠지만, 결국은 해결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최근 10년간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다가 탈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감시원들이 인권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상부에서 인권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정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인권 남용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북한사회에 인권이라는 개념이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70년대 미국은 소련의 반체제 인사와 연계하는 방법으로 소련의 벽을 허물었다. 당시 소련은 경제적으로 교류를 원했다. 즉 소련에서 압박을 받는 사람들을 풀어주면 교역을 늘려주는 식으로 소련을 관리했던 것이다. 나는 이 전략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적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1987년 민주화항쟁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1980년대에는 대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민주화를 위해 거리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들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한국 사회가 이렇게 활기차고 생기 넘치는 사회가 된 것 아닌가. 미국도 노예제도가 있었던 매우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극복했다는 점은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주민들의 삶에 대해 묵인하고 있을 순 없다. 겨우 40마일(약 64㎞)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한국이 통일을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혁명의 대부분은 그 시작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6개월 전 중동에서도 혁명은 갑자기 일어났다. 한국의 통일이 10년 뒤일지, 20년 뒤일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계획이 있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통일이 당장 내일 온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 살고 있는 동안 이뤄진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변화가 오지 않는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매우 놀랄 것이다. 정리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北인권운동가 빌리펠드는… ▲36세 ▲미 위스콘신주 밀워키 출생 ▲워싱턴 DC에서 정치관련 NPO, 인터넷 회사 근무 ▲2006년 한국으로 이주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 정의연대 등에서 활동
  • ‘짝퉁’ 대공포

    청와대를 비롯한 수도권 상공 방어를 위해 배치된 ‘오리콘’ 대공포의 절반 이상이 국방부의 허술한 입찰 과정을 뚫고 납품된 ‘짝퉁 포’로 밝혀졌다. 엉터리 부품을 써 포신이 훈련 때 두 동강 나는 등 심각한 결함을 갖고도 6년여간 실전에서 운용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9일 군납업체 N사 대표 안모(52)씨를 사기 등 혐의로 검거했다. 안씨는 오리콘 대공포 제작회사인 스위스 콘트라베스사 규격 제품을 수입·납품하기로 한 계약을 어기고, 국내에서 제작한 엉터리 포신을 국방부에 납품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오리콘 대공포는 스위스제 35㎜ 쌍열포로, 1975년부터 ‘GDF001’모델 36문이 직도입돼 1990년 말 성능 개량사업을 거친 뒤 지금까지 청와대와 수도권 영공 방어에 투입돼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안씨는 국방부 조달본부(현 방위사업청)의 경쟁입찰을 통해 미국의 무기중개업체 T사 명의로 오리콘 대공포 포신 79개를 낙찰받았다. 이후 1998~2004년에 6차례에 걸쳐 부산 금정구의 Y기계제작업체에 10억 2700만원을 지불하고 불량 포신 79개를 주문했다. Y사는 무기 제작 경험이 없고, 열처리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이었지만, 안씨로부터 설계도 등을 건네받아 불량품을 제작, 전달했다. 이후 안씨는 이렇게 제작된 ‘짝퉁 포신’을 일반물자로 위장해 홍콩 및 미국으로 보냈다가 역수입하는 수법으로 국방부에 납품한 것으로 드러났다. 짝퉁 포신은 사격 훈련에서 잇따라 망가졌다. 지난 3월 18일 충남 모 사격장에서 실시된 훈련에서 포신이 두 동강 나는 등 납품된 79개 중 6개가 균열·파손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문제는 국방부의 입찰 및 조달품목 관리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을 만큼 허술했다는 데 있다. 현재 국방부의 무기 거래는 2006년 국방부 조달본부에서 독립한 방위사업청이 맡고 있으며, 무기 부품의 경우 성능이 같다는 것을 전제로 최저가 낙찰 방식을 적용한다. 그러나 주요 부품을 서류상으로만 확인하는 등 입찰 관리에 허점이 드러났으며, 이 과정에서 관계자들의 묵인이나 비호가 있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경찰의 시각이어서 향후 수사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檢, 금감원 현직국장 첫 소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김홍일 검사장)는 부산저축은행그룹에 대한 ‘부실 검사’ 경위 규명을 위해 금융감독원 저축은행서비스국장을 지낸 김모(57·1급)연구위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한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검찰은 또 부산저축은행 정·관계 로비 브로커인 윤모씨의 행방을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김씨는 2009년 3월부터 저축은행서비스국장을 맡아 저축은행에 대한 상시 점검과 현장 검사 등의 업무를 관리·감독해 오다 지난달 보직 해임돼 연구위원으로 전보됐다. 검찰은 부실 검사가 장기간 조직적으로 이뤄져 온 점에 주목, 김씨를 상대로 국장 재임 당시 검사반원들의 불법 행위나 비리를 알고 묵인했는지 등을 집중 추궁했다. 또 김씨가 지난 1월 25일 부산저축은행그룹 계열은행의 영업 정지 방침을 사전에 결정한 저축은행구조조정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한 것과 관련해 사전 정보 유출 경위도 캐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자신과 관련된 혐의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의 ‘몸통’인 김양 부회장의 측근이자 모 건설회사 출신인 윤씨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과 정·관계 로비의 연결 고리로 지목되는 인물이다. 검찰은 윤씨의 계좌에서 거액의 뭉칫돈이 입·출금된 정황을 확보했으나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윤씨가 해외로 달아난 것으로 알려졌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5·16 50돌] 5·16을 말한다

    [5·16 50돌] 5·16을 말한다

    ■ “8기 JP가 주도했다고? 5기가 핵심 세력이었지” 주역 중 1인 김재춘 前중앙정보부장 ‘삼국지’ 첫 대목으로 기억된다. ‘창장(長江)강은 뒤 물이 앞 물을 밀치면서 도도히 흐른다.’ 역사의 물줄기를 의미하겠다. 꼭 50년 전 오늘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긴박했던 하루였다. 도도히 흐르던 역사의 물줄기를 확 바꿔놓은 사건, 이른바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던 날이다. 최근 50주년을 맞아 5·16 그날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주체세력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김종필(85·육사8기) 전 자민련 총재가 5·16에 대해 오랜만에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전 총재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반박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육사8기생들이 혁명의 주체세력이라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아니 혁명을 주도하려면 병력을 거느리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당시 그들에겐 따르는 휘하 병력이 거의 없었는데 뭘.” 김재춘(84·육사 5기) ‘재단법인 5·16민족상’ 이사장은 5·16 당시 6관구사령부 참모장(대령)이었다. 그는 거사 전야인 1961년 5월 15일 밤 육사 5기생 출신을 주축으로 30여명의 영관장교들과 대책회의를 주도했다. 나중에 박정희 소장도 참석, 부대를 진두지휘하는 등의 역사가 있어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소위 ‘혁명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그때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혁명의 발상지였어. 15일 밤 10시에 5기생부터 8기생까지 주요 보직에 있는 장교들이 많이 모였지. 그때 김 전 총리는 보이지도 않았어. 다들 목숨을 내놓고 온 장교들이라 긴 말이 필요없었지. 침묵으로 긴 밤을 새우고 이튿날 새벽 3시 혁명군들이 여러 시설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각자의 역할로 돌아갔지.”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에 장교들이 모인 까닭에 대해 그는 “6관구사령부는 수도권을 포함, 전국의 부대를 통신축선상으로 장악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당시 5기생 출신들이 5·16의 주도세력이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때 말야. 5사단장 채명신 장군, 12사단장 박춘식 장군, 6군단 포병단장 문재준 대령, 1공수여단장 박치옥 대령 등이 5기생 출신이었는데 병력을 이끌고 앞장서 출동해 말 그대로 일등공신들이었지. 개인적으로 김 전 총재에 대해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지만 당시 김 전 총재는 민간인 신분인 걸로 알고 있어.” 김 전 총재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동원된 3700명 병력이 적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혁명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이사장에게 “당시 김 전 총재는 하극상 사건으로 민간인 신분인데도 권총을 차고 가담한 것으로 돼 있다. 이는 불법무기 소지가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허허, 아마도 목숨을 내놓은 상황이라 다급하게 권총을 찼나 보지 뭐.”라고 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이하 김 참모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긴박했던 그날의 참모장실 분위기를 개략적으로 재구성했다. 김 참모장은 5월 15일 저녁 9시 30분쯤 시내에서 6관구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특이상황 여부를 묻고 박정희 소장에게 연락을 취한 뒤 곧장 부대로 향한다. 잠시후 부대정문에 도착한 김 참모장은 대기 중이던 혁명군 장교 20여명과 합류하여 참모장 집무실로 들어갔다. 밤 10시쯤 되자 다른 장교들도 추가로 합류했다. 김 참모장은 장교들에게 무기를 분배하는 등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6관구사령부는 당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해 있었으며 수도군단의 전신이다. 이 시간 박정희 소장은 경호책임을 맡았던 한웅진 준장(육군정보학교장)과 함께 청진동 소재 서울호텔에서 은밀하게 만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평소 청진동 골목에서 막걸리를 즐기다 보니 비밀장소를 서울호텔로 정했다. 이날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은 새벽 3시 6군단 포병단이 육본을 완전 장악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기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과 긴장의 시곗바늘만 째깍째깍 돌아갈 뿐이었다. 특히 새벽 3시 무렵, 참모장실에 영어를 구사하는 낯선 목소리의 전화가 와 긴장과 초조함은 더했다. 백악관인지 미8군 관계자인지 영어가 짧아 되묻지는 못했지만 ‘거사의 주동이 박정희가 맞느냐.’고 묻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김 참모장은 ‘맞다.’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새벽 4시 남산에 있는 방송국을 장악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김 참모장은 박정희 소장에게 미리 연락을 받았던 혁명 취지가 담긴 박정희의 친필 서신을 장도영 참모총장에게 인편을 통해 보냈다. 내용에는 ‘만약 일이 잘못될 경우 전원 자결키로 맹세한다.’는 뜻도 담겼다. 장 참모총장은 육본 군수참모 이·취임식이 있는 날이어서 필동의 한 음식점에서 회식을 마친 뒤 나중에 이철희 방첩부대장에게 종합적인 상황보고를 받았다. “5·16 아침 박정희 소장 등과 함께 청와대로 갔어. 윤보선 대통령한테 정확한 사정을 보고하기 위해서였지. 비서관이 먼저 나와 우리들에게 ‘각하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라고 묻더군. 앞으로 잘 모시고 혁명과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안심한 듯 만나게 해줬어. 장면 총리는 수녀원으로 피신해 있어서 금남의 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지.” 박정희 소장한테 거사계획을 언제 들었느냐고 하자 김 이사장은 “박정희 장군은 점조직을 통해 혁명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대부분 1대1로 만나 가담 여부를 타진했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원래 거사일을 5월 12일로 했다가 연기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고 술회했다. 또한 그는 “우리 5기생들은 육사 때 박정희 장군이 구대장과 중대장을 했던지라 거사 제의 같은 것은 거절할 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5·16 관련 내용은 인터뷰나 자료 등을 통해 대부분 공개됐다. 이 중 거사의 발상지는 6관구사령부 참모장실이며 주축세력이 육사 5기생과 8기생 출신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동안 왜 8기생 출신들의 역할이 더 부각됐느냐고 하자 김 이사장은 “아마 김 전 총재가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여서 그랬나 보다.”고 하면서 웃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김재춘은 1948년 육군사관학교와 1955년 육군대를 졸업했다. 1957년 연대장을 지낸 뒤 1961년 5·16 당시 5·16 군사정변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6관구사령부 참모장을 맡았다. 이후 방첩부대장 겸 군검경합동수사본부장을 지냈으며 1963년 최고회의 문교사회위원장을 맡았다. 그해 육군소장으로 예편한 뒤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다. 이후 무임소장관, 자민당 최고위원 등을 거쳐 1971년 제8대 국회의원(김포·강화, 민중당) 1973년 제9대 국회의원(고양·김포·강화, 민주공화당)을 지냈다. 1974년 축산단체연합회 회장, 1975년 한·중예술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재단법인 5·16민족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 “5·16前 JP가 찾아와 정치발언 하기에 내쫓아” 反혁명분자 몰렸던 김웅수 당시 6군단장 5·16 당시 육군 6군단장(소장)이었던 김웅수(88)씨. 수도권 요충지에 포진한 6만명의 예하 병력을 법을 어겨 가며 진압군으로 동원할 수 있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반 혁명세력으로 몰렸고 1년 뒤 군사정권의 간접적 압력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그레이트폴스시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5·16은 혁명인가, 쿠데타인가.’라는 질문에 “쿠데타로 본다.”고 했으나, 답변에서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 →5·16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사단장급 이상 야전군 지휘관 회의가 5월 17일 강원 원주의 야전군사령부에서 예정돼 있었어요. 16일 열리는 체육행사에도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25~26명의 지휘관들이 15일 원주에 다 모였어. 16일 새벽 4시쯤 잠을 자고 있는데 이한림 야전군사령관이 관사에서 회의를 소집한다는 거야. 그래서 가 보니 이 사령관이 서울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면서 “각자 부대로 돌아가 병력을 장악해라. 병력 이동의 빌미가 될지 모르니 부대에 비상을 걸지 말라.”고 지시했어요. →6군단은 어떤 조치를 했습니까. -6군단의 작전지휘권은 내가 아니라 미 1군단장이 갖고 있었어요. 불법을 진압하려 불법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그때 북한군 교신이 급격히 늘어나기에 비상을 걸었지. 비상을 걸면 자동적으로 1개 사단이 완전무장해서 특정지구로 출동하게 돼요. 이 일로 나중에 나는 반 혁명세력으로 간주되게 되었죠. →미군에는 조치를 요구했나요. -18일 나의 매부인 강영훈 육사교장이 육사생도들의 혁명지지 행진을 불허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라이언 1군단장한테 “왜 1군단이 갖고 있는 서울 비상계획은 쓰지 않는가.”라고 따졌어. 그날 저녁 라이언 장군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매그루더 미 8군사령관이 이한림 장군을 찾아가 얘기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이 장군이 “I will do(하겠다).”라고 했다는 거예요. 실제 그날 저녁 이 장군이 나한테 전화를 걸어 와 “도와 달라.”고 하더라고. 다음날 아침 이 사령관이 소집한 군단장 회의에 가려고 횡성 비행장에 도착했는데 미군 대령이 “이 장군이 이미 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면서 되돌아가라고 하더라고. →결국 미군이 묵인한 건가요. -매그루더 장군이 누구를 진압할 성격이 못 됐어요. 강직하지 않았어. →미국이 5·16을 사전에 감지했었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17일 마셜 그린 미국 부대사가 ‘군은 헌정에 의한 정통 정부에 귀속하라.’는 서한을 보내 왔거든. →6군단장으로는 언제까지 근무하신 겁니까. -20일 대통령 특사가 온다기에 군단 비행장으로 나갔어요. 도착한 비서 2명이 건넨 윤보선 대통령의 서신에는 ‘대립을 피하고 쿠데타에 협력하라.’라는 취지의 짤막한 글이 있었어. 그날 장도영 장군이 21일 오후 1시쯤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건물)에서 만나자고 하더라고. 서울로 떠나려는데 집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불길하다는 거야.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헌병 차량의 호송을 받으며 중앙청 쪽으로 가고 있는데 어떤 여인이 달려들어 막아서기에 내려보니 집사람이더라고. 그래서 “군인의 아내이니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한다. 아이들이나 잘 보살펴 달라.”고 말하고는 차에 올랐어. 아내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어. 의사당 앞에 도착하니까 어떤 장교가 다가오더니 권총을 옆구리에 대고 같이 가자고 해요. 차지철이었던 것 같아. 나를 마포 형무소에 집어넣더라고. →박정희 소장과 아는 사이는 아니었나요. -잘 몰랐어. 하지만 그 사람이 청렴하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함께 일해 보고 싶었어. 그래서 1957년 내가 군수참모부장으로 있을 때 그를 군수기지사령관에 추천했어요. →직접 본 박정희 소장은 어떤 인물이던가요. -강직한 느낌이었어요. 군수기지사령관 취임식 참석차 부산 동래에 내려가 있었는데 박정희가 숙소로 찾아와서는 “각하, 혁명이라도 해야지 나라가 이대로 되겠습니까.”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군인이 혁명한다고 나라가 잘 된다는 보장이 있나.”라고 했지. →김종필씨와는 인연이 있습니까. -5·16 전에 김종필 소령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부패한 장성들은 군대에서 나가야 한다.”고 하기에 내가 “부패한 장성이 누구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소문으로 알지 실제로는 모른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런 정치적 발언하려면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했지. →미국으로 떠난 이후 두 사람을 다시 만난 적은 없나요. -1972년인가 장모님이 위독하셔서 한국에 갔었어. 그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이 만나자고 연락이 왔더라고. →청와대로 갔나요. -청와대에서 박정희가 “언제 돌아오느냐.”고 묻기에 “이제는 사회 문제보다 개인사정이 더 중요하다. 막내 아들이 대학 들어가는데 3년은 더 있어야 나올 수 있다.”고 했어. 그랬더니 박정희가 “기업체를 순방하고 군부대도 순방해 달라.”고 그래요. 내가 “장모님 병 때문에 어렵다.”고 했더니 “나이 든 사람의 병이란 늘 그런 것 아니냐.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되지 않느냐.”고 해요. 그래서 포항제철하고 과학기술연구원인가 두 군데 돌아봤어. →김종필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만났더니 “선배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나라가 부패된 것 같은 인상을 받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미국에서 들었던 것보다 더 심각한 것 같다.”고 했지. →5·16은 필요했다고 보십니까,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생각해. 그런데 오늘날 국민 전체가 수긍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걸 보면, 5·16이 나라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구나, 국민의 감정에 완전히 반대되는 정권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김웅수는 192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2살 때 청산리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할아버지 김조현의 거처로 옮겨 6살 때까지 중국 하얼빈 근처 독립군 부락에서 살았다. 일본 관동군 학도병으로 끌려간 뒤 일본 센다이 예비사관학교에 편입해 장교가 된다. 일본 야마가타 연대 소대장으로 임명된 지 몇 달 뒤 일본 패망으로 해방된 한국에 들어왔고, 국군 장교가 됐다. 5·16 당시 혁명재판에서 10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1년 뒤 집행유예로 석방,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 워싱턴주립대 등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밟고 워싱턴 DC의 가톨릭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교수로 일했다. 여동생이 강영훈 전 국무총리의 부인이다.
  • ‘무소불위’ 中여성 청관들 ‘길거리 싸움질’ 파문

    경찰도 정식 공무원도 아니지만 중국에서 행정기관의 위임을 받아 시민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악명 높은 도시 관리단원(청관·城管) 2명이 길거리에서 싸움을 하는 모습이 포착돼 시민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중국 충칭에서 최근 여성 청관 2명이 길거리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목격됐다. 여성 2명은 묶었던 머리카락이 다 풀릴 정도로 격렬하게 충돌했고, 남성 청관들은 이들을 떼어놓으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었다.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이들의 모습을 촬영해 올리면서 크게 보도됐다. 많은 이들은 “시민들에 때로는 폭력까지 쓰며 강압적인 법 집행을 하는 이들이 모범적인 행동은커녕 길거리에서 싸움질이나 하는 모습이 씁쓸했다.”고 비난했다. 목격자에 따르면 사진 속 여성 청관 2명은 시민들이 몰려들었는데도 욕설을 하며 싸움을 그치지 않았다. 사진에는 얼굴이 가려졌으나 이들의 신원은 곧바로 공개됐기 때문에 행정기관의 징계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이 163.com 등 포털사이트에서 수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자 곳곳에서는 청관의 자질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특히 도시 위생관리, 공사현장 관리, 주차 관리 등 13개 분야에서 난폭한 법집행도 서슴지 않지만 정작 청관들의 이런 그릇된 행각에 대해서는 행정당국이 묵인하고 있다는 비판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쑹장구 주팅에서 청관 8명이 전기자전거를 타고 신호 대기 중이던 농민공에 “길을 비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단 구타해 이에 시민 2000여 명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공안은 폭행에 가담한 청관들을 처벌하기는커녕 이들을 빼돌린 채 시민들만 해산하려고 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리비아 반군 ‘재반격’… 난민 ‘죽음의 항해’ 계속

    리비아 반군이 11일(현지시간) 카다피군과의 격전 끝에 제3의 도시인 서부 미스라타의 공항을 장악하고, 수도 트리폴리 진격에 나서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런 가운데 리비아 난민들을 태운 선박의 침몰로 600여 명이 한꺼번에 숨졌다고 유엔은 밝혔다. 카다피군은 지난 7주 동안 트리폴리의 서쪽 관문인 미스라타를 포위한 채 탱크를 앞세워 반군 세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왔다. 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중 지원을 받은 반군이 격렬한 대치전을 벌이던 카다피군을 시 외곽으로 밀어내고 미스라타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 과정에서 반군은 미스라타 남부와 동부 지역을 카다피군으로부터 해방시켰고, 카다피군 상당수를 사살했으며, 그라드 로켓 40기를 포함해 많은 무기를 노획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지난 두 달 가까이 고립됐던 미스라타의 주민 50만 명이 항공편을 통해 식량과 의약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미스라타에서 카다피군의 기세를 꺾은 반군은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거점인 트리폴리를 향한 진격 작전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나토는 이날 오전 트리폴리 동부 지역을 1시간 가까이 폭격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나토는 지난 3월 31일 리비아 군사작전권을 넘겨받은 이후 지금까지 2300회에 걸쳐 전투기 공습을 벌였다고 밝혔다. 미스라타의 반군 지도자 하즈 모하메드는 “매일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진격은 막을 수 없다.”고 밝혔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제네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리비아 정부 측에 “즉각적이고 검증 가능한 휴전”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한편 유엔은 지난 9일 리비아에서 탈출한 아프리카 난민 600여 명을 태운 선박이 침몰한 사고와 관련, “탑승자 거의 전원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선박은 지난 9일 난민들을 태우고 항해하던 중 리비아 근해에서 침몰했다. 이에 대해 로베르토 마로니 이탈리아 내무장관은 카다피가 난민 문제로 이탈리아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엔난민최고대표사무소(UNHCR)는 리비아 정부의 묵인하에 밀수업자들이 알선한 배에 오른 난민들이 음식과 물 등 기본적인 식량조차 제공받지 못한 채 위험한 항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이대통령 “北 권력이양해도 김정일 대표성 계속될 것”

    이명박 대통령은 10일 “만일 북한의 권력 이양이 계획대로 이루어지더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표성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발행된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과의 회견에서 “북한은 권력세습이 3대로 이어지는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안정성을 원하고 있으며, 그러기 때문에 아마도 (우리와) 대화 용의를 보일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대화의지가 진정한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는 북한에 그들이 저지른 도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북한이 솔직한지를 지켜볼 것”이라면서 “그렇게 된다면 이들의 대화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아랍 국가의 연쇄적인 민주화 혁명을 뜻하는 ‘재스민 혁명’이 북한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북한 사회는 많이 차단돼 있고 정보도 부족하기 때문에 중동 혁명이 당분간은 적어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면서 “(그러나) 북한도 재스민 혁명과 같은 움직임을 거역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 행위에 대해서 이 대통령은 “과거 우리는 이런 도발을 묵인해 왔지만, 앞으로는 북한의 도발에 상응하는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원전 안전 문제와 관련,“원전의 안전성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며, 한국은 안전성에서 최고이며 완벽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베를린 도린트호텔에서 독일 통일 주역들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는 6·25 전쟁을 치렀고 그래서 치유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면서 “그러나 대한민국에 있어서 통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인 과제이고 그런 통일을 위해서는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를린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사설] 北, 김정일 핵안보 정상회의 초청 뜻 새겨야

    이명박 대통령이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면서 비핵화 합의와 천안함·연평도 도발 사과라는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 두 가지는 어떤 경우에도 불변의 대북 기조임을 이 대통령이 재확인한 것이다.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이 성사되면 북측에는 이 대통령의 표현대로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 얼어붙은 남북 관계는 일거에 해빙되고, 국제사회의 고립에서 당당히 벗어날 수 있다. 두 전제 조건을 이행해야 그 미래가 가능함을 북측은 직시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핵 포기와 관련해 ‘확고한 의지를 국제사회와 합의할 때’라고 했다.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관계자는 합의에는 폐기 시점을 담아야 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따라서 6자회담에서는 선언적 내용이든, 구체적 내용이든 최소한의 합의가 필수다. 물론 이것만 해도 성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6자 회담은 3단계 중 첫 수순인 남북 간 회담부터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기에 북측의 도발에 대한 사과까지 요구했으니 그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럼에도 북측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북측이 수용하면 더 큰 이익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핵안보 정상회의는 최대 규모의 핵 관련 국제회의다. 김 위원장이 참석하는 자체만으로 네 마리 토끼를 잡는 격이 된다.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명해 온 그랜드바겐, 즉 일괄 타결에 단초가 마련된다. 북한에는 핵 포기 대가로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도 본격화되는 것이다. 나아가 북한은 불량 핵확산 국가의 멍에를 떨쳐버리는 기회를 얻는다. 세계 유례 없는 3대 세습에 대해 국제사회의 반발을 최소화하거나 묵인 내지 용인받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더욱이 과거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북한에서만 이뤄졌다. 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게 되면 역사적 답방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지닌다. 이번 제안의 방점은 가능성보다 원칙에 찍혀 있다. 실질적인 진전 없이 국면 전환만 하는 대화를 단호히 거부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기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북측은 읽어야 한다. 이제 남북 관계에서 우리 측의 일방적인 양보는 없다. 대화와 화해로 전환하느냐, 갈등과 대치의 늪에서 헤매느냐만 남았다. 선택은 북측의 몫이다.
  • [사설] 금감원 수사도 개혁도 부패척결이 요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어제부터 부산저축은행그룹의 검사에 관여한 금감원의 검사역 30명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부산저축은행 불법·비리의 경중을 가리자면 임직원보다 오히려 금감원 전·현직 직원이 크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들은 감시·감독을 하기는커녕 저축은행 임직원과 유착해 각종 불법행위를 방조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중점 조사 대상은 대출 청탁 및 알선, 횡령·배임을 묵인·방조하면서 금품이나 향응·접대를 받았는지 여부다. 상식선으로 보더라도 금품과 향응이 오가지 않고는 그런 불법이 나올 수가 없다. 어제 구속기소된 금감원 부산지원 수석 조사역 최모씨 역시 건설업자로부터 8000만원을 받고 부산저축은행 감사에게 부탁해 220억원을 대출받게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금품 수수 비리를 밝혀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검사역 몇명을 전시성으로 사법처리해서는 안 된다. 금감원은 2009년부터 20차례에 걸쳐 부산저축은행에 대해 검사를 벌였지만 문제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동안 시늉만 냈다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비리가 고질적이고 뿌리 깊다. 따라서 검찰은 윗선을 포함해 비리의 고질적인 구조를 밝혀내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금융검찰이라는 말을 들은 금감원이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했다간 비웃음만 사기 십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우려할 정도의 대수술이 필요한 곳이다. 마침 금감원 개혁을 위한 태스크포스팀도 가동되기 시작했다. 주요 방향은 반관반민의 괴물이 된 금감원에 대한 감시·견제 기능을 회복하고, 금감원 출신의 전관예우를 방지하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를 통해 먼저 한점 의혹이 없게 비리의 실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와 더불어 비리 연루자들은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정하게 사법처리해야 한다. 실상 파악은 금감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부산저축은행을 감사했던 감사원 역시 늑장대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감사원의 문제도 투명하게 밝혀 태스크포스팀에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총체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부패 척결과 개혁의 요체를 깨닫고 추진력도 얻을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대검 중앙수사부가 거악 척결의 중추라는 명예를 회복하기를 기대한다.
  • ‘빈라덴 비호’의혹 파키스탄 정보국은

    파키스탄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수도 이슬라마바드 문턱에서 5년씩이나 숨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파키스탄 정보국(ISI)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빈라덴의 비호 주체가 파키스탄 정부보다는 막강한 정보국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ISI는 파키스탄인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정부’, ‘국가 내 국가’로 불리는 최고의 권력기관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의 대부’로도 불린다. ISI는 지난 1948년 인도와의 영토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와 동파키스탄(현재 방글라데시)의 정보 수집을 위해 창설된 첩보부대에서 출발했다. 탈레반과 카슈미르 문제를 전담하는 북부합동정보국과 해외 비밀공작을 전담하는 일반합동정보국, 정치사찰을 전담하는 합동정보국으로 구성돼 있다. ISI 총책임자는 중장급 장성이 맡고 있지만 사안에 따라 군 최고지도부는 물론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을 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 정치인 암살에서부터 공작정치, 해외 무장세력 지원까지 국내외 주요 사건들에 개입해왔다. 지난 2007년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 암살과 2008년 인도 뭄바이 테러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핵기술 습득 관련 특수 부서를 만들어 파키스탄 핵무장의 기반을 마련하고, 아프간 무자헤딘에 대한 무장과 군사훈련을 통해 아프간 탈레반 정권 창출에 기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슬람 무장단체와 ISI의 오랜 협력관계를 감안할 때 ISI가 알카에다나 탈레반 활동을 묵인하거나 돕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금감원 ‘부당인출’ 알면서 방치했나

    금감원 ‘부당인출’ 알면서 방치했나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한 7개 저축은행에서 영업 정지 전날 영업 시간이 지나 1000억원대가 부당 인출된 데 대해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분노는 부실한 감독을 한 금융 감독 당국으로 모아진다. 부당 인출은 정치적인 사안으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고,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현대캐피탈 해킹, 농협 전산망 마비에 이어 제기된 저축은행 부당 인출로 인해 금융산업의 총체적 위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이 26일 국무회의에서 김석동 금융위원장에게 “감독 기관의 직원 문제와 함께 근본 원인을 잘 챙겨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금융 감독 당국의 책임을 완곡하게 지적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나라당 부산 지역 의원들은 이날 국회 정무위 소회의실에서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간담회를 갖고 금융 당국의 감독 부실을 강하게 질타했다. ●“국내 금융산업 전체의 위기” 허태열 국회 정무위원장은 “국내 금융산업 전체의 위기”라고 질타했으며, 김무성 원내대표는 “불법 인출된 돈을 환수 조치해 나머지 저축은행 피해자들과 나눌 수 있느냐.”고 따졌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도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을 항의 방문했으며, 야권은 국정 조사를 통한 진상 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돈이 묶인 30만 저축은행 고객은 물론이고 5000만원 이상 예치했다가 돈을 떼인 1만여 예금자들은 저축은행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보다는 이를 묵인한 금융 감독 당국에 분통을 터트린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금융감독 당국이 사실상 두달 동안 손놓고 있지 않았느냐는 데 있다. 부산저축은행에는 영업 정지 전날인 2월 16일 금감원의 감독관이 3명이나 파견됐지만 ‘부당 예금 인출’을 지켜만 봤다. 밤 11시 30분까지 인출 사태가 계속됐다. 하지만 금감원은 저녁 8시 50분 “고객이 내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원들이 고객 예금을 무단으로 인출해 송금하고 있다.”며 이를 금지한다는 공문만 보냈을 뿐이다. 금감원은 그날 낮에 유동성 부족에 따른 영업 정지를 신청하러 서울에 온 부산저축은행 대표와 감사를 부산으로 돌려보냈다. 은행 내부의 의견 검토를 거친 뒤 임직원 동의서 등 필요 서류를 갖춰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부산 2, 대전 등 5개 계열 저축은행이 모두 영업 정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알렸고 임직원들은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예금 인출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영업 정지 정보가 사전에 유출될 가능성이 뻔히 보이는데도 금감원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장호 금감원 부원장보는 지난 25일 “(대표와 감사를 다시 영업점으로 돌려보낼 때 일어날 파장을) 왜 몰랐겠나. 감안이 됐을 거다.”라면서 “내부 직원들의 정보 접근성이 빨랐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의 다른 관계자는 “금융기관 내부의 동의 절차 없이 대표의 뜻대로 영업 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 금감원이 향후 법적 책임을 질 수도 있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관계자 처벌 쉽지 않을듯 금감원은 부당 인출 관련자와 관련 계좌를 이미 지난 3월 검찰에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금융 당국은 부당 인출 사태를 알고도 두달 동안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27일부터 신응호 검사담당 부원장보를 부산에 보내는 등 부산저축은행의 5개 계열 저축은행에 대한 검사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다. 금융 당국은 부당 인출된 돈을 환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실제 환수 여부는 미지수다. 재산보전 조치를 취해야 하고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게 금융 당국의 판단이다. 금융 당국의 관계자 처벌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저축은행 직원들이 고객들에게 알려준 것은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처벌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점이 확인되더라도 벌금만 내면 되기 때문에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오달란·임주형기자 dallan@seoul.co.kr
  • “서민은 피마르는데 친인척 돈 빼돌렸다니…”

    저축은행 영업 정지 직전 임직원 등이 거액의 예금을 인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 측의 관리 감독 부재를 성토하는 등 예금자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예금자 300여명은 26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금융감독원 부산지원을 방문, 정부 측의 관리 감독 부재를 성토하고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했다. 집회에 참가한 예금자들은 ‘대검 중수부 철폐 철회’ ‘공적자금 투입하라’ ‘거리로 내몰리게 된 채권단 채권 보장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부산지원 앞에서 5시간여간 항의 시위를 벌였다. 부산저축은행 비상대책위원회 김옥주 위원장(50·여)은 “저축은행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도 문제지만 이를 묵인하고 방관한 정부 당국의 책임이 더 무겁다.”며 “금감원과 예금보험공사가 영업 정지 전날 예금 인출을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건 이들이 불법 예금 인출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는 증거인 만큼 관련자를 철저히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금자 이모(54·여)씨는 “영업 정지 이후 예금주들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있다.”면서 “직원들끼리 미리 짜고 자신들과 친·인척의 예금을 빼돌렸다는 것은 범죄 행위나 다름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을 고소한 비대위는 고소인 진술을 위해 새달 2일 서울 중앙지검에 출석하는 자리에서 부산저축은행의 예금 사전 인출과 관련해 추가 고발 등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할 예정이다. 부산저축은행 화명지점(북구 화명동)에서도 항의가 이어졌다. 오는 29일 지급 마감일을 앞두고 가지급금을 찾으려는 예금자들이 몰린 가운데 일부 고객은 “친·인척이나 유력 인사에게는 미리 돈을 다 빼주고 피땀 어린 돈을 맡긴 서민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며 격렬히 항의했다. 화명지점은 고객 1명이 영업 정지 전날 12억원의 예금을 사전 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2월 영업이 정지된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해 6개 저축은행에서는 영업 정지 전날 영업 마감 시간 이후 모두 3358건, 1057억원의 예금이 인출된 것으로 금융감독원이 파악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감사원, 재외공관 공직기강 특별점검

    감사원이 25일부터 주중 한국대사관 등 중국과 동남아 소재 19개 재외공관을 대상으로 ‘영사업무 및 공직기강 특별점검’에 착수한다. 국방전력증강사업 추진 실태에 대한 감사도 실시한다. 감사원은 24일 ‘상하이 스캔들’을 계기로 이 재외공관들을 대상으로 사증 발급 과정에서의 급행료 수수 여부, 브로커 개입 여부, 사증 심사와 발급 업무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 여부 등을 정밀하게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권 및 여행증명서 발급 등 영사 서비스의 효율성과 재외공관별 재외국민 보호 및 재외동포 지원실태, 재외공관 회계 비리도 점검할 방침이다. 나아가 외교관의 도덕적 해이와 공직기강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감사를 할 계획이다. 감사원은 19개 재외공관에 대한 1단계 감사에 이어 2단계로 외교통상부와 법무부 등 6개 출입국 관련기관을 대상으로 재외공관 업무 시스템과 제도 개선에 중점을 두고 감사를 벌일 계획이다.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의 조사를 받은 주 상하이총영사관은 이번 감사에서 제외된다. 감사원은 이와 함께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감사요원 41명을 투입해 전력증강사업 추진 실태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다. 1단계로 무기를 운용하는 군부대와 개발을 담당하는 국방과학연구소, 방위산업체 등을 대상으로 무기 개발과 운용실태를 확인하고 원가 부정 등 방산비리에 대한 점검을 진행한다. 2단계로는 국방부와 방위사업 등을 대상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비태세 등 전력증강사업 전반을 감사할 방침이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를 통해 무기와 장비 정비 주기 준수, 핵심부품 공급 등 장비 관리·정비 실태를 포함한 무기체계 성능확보 여부를 집중 확인할 방침이다. 또 원가 부풀리기 등 원가 부정, 불량품 납품 묵인 및 부당 수의계약 등 방산 비리, 전력 증강사업의 타당성과 소요량, 전력화 시기 등도 정밀하게 점검할 방침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전력증강사업 분야의 경우 북한의 현재·미래 및 비대칭 전력에 대한 대비 실태, 국방연구개발 사업 추진 실태에 대해서도 따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방사능 재앙 알고도 원전 묵인하겠습니까

    “후쿠시마 원전에 쓰나미가 일어나 해수가 멀리 빠져나가면 원자로가 모두 멜트다운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말기적인 사태로 몰아넣는 엄청난 재해가 일어날 것입니다.” 최근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정확히 짚은 이 경고는 히로세 다카시가 1990년 펴낸 ‘위험한 이야기’에서 한 것이다. 올해 일흔이 넘은 히로세는 ‘체르노빌의 아이들’ ‘원자로 시한폭탄’ 등을 쓴 일본 작가다. 와세다대 응용화학과를 나와 엔지니어로 일하다 평화운동가로 나섰다. 20년 전 나왔던 히로세의 책이 ‘원전을 멈춰라’(김원식 옮김, 이음 펴냄)란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 책에는 큰 사고가 일어났을 때의 절망적인 탈출법도 나오는데 역시 20년 전의 예상이 전혀 빗나가지 않는다. “도카이무라(원자력 시설 집적지)에 가서 몇백명이 풍선을 날려 보았습니다. 뜻밖에도 풍선은 바닷바람을 타고 똑바로 도쿄 방향으로 빨려들어 갔습니다. 일본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기상이 변하니까 바람은 북상한다고만 여겼는데 도카이무라에서 부는 바닷바람의 특징은 도쿄 방면으로 부는 바람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죽음의 재라면 아마 일본 전국으로 확산하였을 것이고, 방사능 구름은 단 5시간이면 도쿄 도심에 그 모습을 나타내어 수도권만도 3000만명이 전멸합니다. 사람들이 남하해서 도망치면 간사이 지방에서는 급히 바리케이드를 구축하고, 국가는 계엄령을 선포해서 도로를 봉쇄할 겁니다.” 치밀한 조사를 통해 원자력의 위험을 전달하는 저자는 원자력은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는 죽음의 얼굴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원자력 발전을 옹호하는 논리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란 주장이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연료를 정제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가 든다. 더 큰 문제는 반영구적인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원자력 발전소는 계속 짓는 것일까. 저자는 원자력을 통해 이득을 얻는 자본의 전략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우라늄 채취에서 발전소 건설에 이르는 원자력 산업은 모건이나 록펠러 같은 국제 금융재벌의 투기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유엔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역시 표면적으로는 중립 기관을 가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원자력 이권으로 큰돈을 버는 인간들이 각 기업의 대리인으로 참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는 ‘혹시 없으면 에너지난을 겪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계속 불어났고 결국 참사를 낳았다. 책은 오싹한 공포만 느낄 게 아니라 당장 행동을 해야 할 때라고 경고한다. 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사설] 이참에 대입 특별전형 확실히 재정비하라

    감사원이 대학입시 특별전형 감사에 들어갔다. 대상은 서울에 있는 주요 대학과 지방의 주요 국립대이다. 우리는 감사원이 이번 감사를 철저하게 진행해 그동안 암암리에 벌어진 편법·부당 입학 사례를 낱낱이 밝혀내기를 기대한다. 또 교육계가 이참에 대입 특별전형 제도의 목적과 선발 방식, 입학 후 학생 관리 등을 전반적으로 재정비하도록 촉구한다. 우리 사회가 특별전형을 허용하는 까닭은 명확하다. 다른 수험생들과 같이 경쟁하기 힘든 처지에 놓인 학생들에게 정원외로 대학에 갈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교육환경 격차’를 개선하자는 뜻이다. 실제로 농어촌·재외국민·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 등 다양한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처음에는 학업 성취도에서 다소 떨어지다가도 졸업 즈음이면 우수한 성적을 내는 일이 드물지 않다. 제도가 가진 순기능이다. 반면 부작용 또한 적지 않은 게 현실이기도 하다. 대도시에 사는 학생이 일정기간만 농촌 학교로 옮겨 농어촌 특별전형의 혜택을 받는다든지, 부모가 위장 이혼을 해 한쪽을 소득 없는 것처럼 꾸민 뒤 기초생활수급자 행세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는 재외국민 특별전형에 들려고 출입국 기록을 조작하는 행위까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특별전형 경쟁률을 조작하느라 ‘작전 세력’을 동원한 수험생과 주변 인물 33명이 이달 초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 모두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일부의 부도덕성이 특별전형 제도까지 오염시킨 결과다. 아울러 우리는 이번 감사에서 대학 쪽에도 치밀하게 공과를 따져야 한다고 본다. 특별전형제가 이처럼 흔들리는 데는 대학쪽 책임 역시 작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원외로 학생을 받는 까닭에, 특별전형 지원자가 편법을 써도 이를 추려 내지 않고 무관심이나 묵인으로 조장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 진학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도모하는 공개적인 통로인 것이다. 이 통로마저 비리로 뒤덮인다면 사회정의는 결코 실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사설] 한국 청소년 더불어 사는 능력 키워라

    중등교육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민주시민으로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데 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동시에 나만이 아닌 다른 이들을 되돌아보는 삶의 태도를 익히도록 하는 것이다. 진학에만 몰입하는 사교육과 다른 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고교 청소년생들에게 배려, 양보, 협동, 타협 등과 같은 공동체 의식은 결여된 측면이 적지 않다.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청소년의 사회역량지표는 세계 36개국 중 35위에 그쳤다. 세부 항목인 사회적 협력과 관계지향성에서는 꼴찌를 차지했다.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연구 결과는 2009년 국제교육협의회(IEA)가 세계 36개국의 중학교 2학년 14만 600여명에게 설문한 국제 시민의식 교육연구를 근거로 삼았다. 문화·사회·경제적으로 이질적인 상대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인 사회역량지표의 상위권에는 태국, 인도네시아, 아일랜드, 영국 등이 포함됐다. 우리 청소년들은 갈등의 해결을 위한 지식을 중시하는 갈등관리에서는 덴마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지식 개발에 함몰된 바람에 다양한 이웃들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나아가 모든 게 ‘나’에게 맞춰진 탓에 정부와 학교에 대한 불신도 컸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전체 평균 62%의 3분의1인 20%, 학교는 평균의 절반을 약간 웃돈 45%에 불과했다. 청소년들의 부족한 공동체 의식을 더 이상 묵인하거나 방치할 수 없다. 그렇다고 청소년만을 탓할 수 없다. 오히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시스템과 교육 풍토의 피해자다. 뛰어난 친구들을 칭찬하고 인정하기보다 경쟁 상대로 여기는 상황에서 더불어 사는 의식을 기대하기란 무리다. 결국 공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정부는 학벌의 병폐를 깨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능력에 따른 차이는 인정하되 학력에 의한 차별은 금지해야 한다. 학교는 성적 줄세우기보다는 전인교육에 비중을 두고,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외향적 출세보다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의 구축은 사회적 비용과 맞물려 있는 만큼 우리 모두 깊이 고민해야 한다.
  • [열린세상] 중국 한반도 정책의 미국 요인/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열린세상] 중국 한반도 정책의 미국 요인/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의 내전이 격화되자 서둘러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공군력·해군력 사용을 핵심으로 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지상군 투입은 미국의 주저와 중국의 반발로 배제되었다. 그러나 ‘민간인 보호를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에 따라 카다피 군에 대한 폭격이 실시됐다. 미국은 카다피 축출을 개입의 목적으로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는 공습의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리비아 사태는 강대국 정치에 민감한 한반도의 안정, 평화와 통일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소련·북한·중국이 6·25전쟁 공모 시 미국이 군사개입한다면 중국은 군대를 보내 김일성을 도울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의 참전은 한국군이 아닌 미군 주도의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할 때 결정되었다. 휴전회담 초기에 중국은 한반도에서 모든 외국군의 철수를 주장했지만 미국의 강한 반발로 철회했다. 1972년 중국은 미국과의 수뇌회담을 통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받고 타이완으로부터 모든 미군과 전술핵무기의 철수를 얻어내는 데 성공하지만 주한 미군의 존재를 묵인한다. 그후 중국은 주한 미군을 중국 안보의 위협보다는 한반도 통일의 방해요인으로 선전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 중국의 주한미군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중국은 주한미군의 공식적 철수 주장은 미국 패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이유로 자제하면서 주한미군 증원이나 새로운 첨단 무기 도입 및 한·미 연합훈련의 강화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견지해 오고 있다. 중국 정부와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의 발생 가능성을 부인한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면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이 조성,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중국은 북한 난민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의할 의사가 있으나 북한 급변사태 시 정치적 문제에 대한 논의를 꺼린다.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 시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야 하며 외세의 개입이 없다면 중국도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개입한다면 유엔의 결의를 거쳐야 함을 강조한다. 중국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를 통일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한국 일부 언론의 보도를 의식한 듯 중국 정부가 지지하는 통일 원칙, ‘당사자 간에 자주·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상기시킨다. 통일한국은 비핵화, 외교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한미군의 향방에 대해서도 논의를 원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의 단일 국가 등장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안정된 관계를 유지했음을 상기시키면서, 강대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동북아 정세의 안정과 지역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중국은 북한의 핵문제로 미국과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미국의 주장에 따라 북한을 압박하기보다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여건 조성을 위해 관련국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한다. 전문가들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로 한반도에 긴장이 높아지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 경제가 궁핍해지고 내정이 불안정해지는 사태를 더욱 우려한다. 중국은 이러한 사태의 예방을 위해서도 중국이 북한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북한의 리더십 안정과 경제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중국 정부는 북한의 안정과 비핵화 중 안정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북한의 핵 무장은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고 미국·일본·한국 간의 안보협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붕괴는 동북아 세력균형을 중국에 불리하게 만들어 미국의 패권질서를 강화시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의 대비는 일차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 한·미의 군사 대비가 언론에 과도하게 노출되다 보니 북한 붕괴를 겨냥한 통일이 목표인 양 오해 받기 쉽다.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의 원인이 핵과 선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북한의 노선에 있음을 직시하고 정책전환을 지원해야 한다. 또 유사시 북한이 중국의 내정불간섭 원칙의 예외지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내부 폭발이 국제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외교적 대비가 필요하다. 주변국이 납득할 수 있는 통일한국의 외교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 상습구타로 멍든 ‘해병대 전통’

    해병대에서 구타·가혹행위가 상습적으로 이뤄져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4일 해병대 내의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해 처음으로 직권조사를 벌인 결과 폭행·욕설 등 가혹행위가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은폐·축소 역시 심각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해병대사령관에게 가해자 8명에 대한 사법처리와 피해자 7명에 대한 보호조치를 권고했다. 또 피해 정도가 심각한 2명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에 법률구조를 요청했다. 인권위는 “해병대 1개 연대에 대해 직권조사를 실시했더니 행동제한을 뜻하는 ‘인계’, 아래 위 기수 관계를 무너뜨려 인격적 모독감을 주는 ‘기수열외’ 등 가혹행위가 만연했다.”면서 “해병대 상습 구타·가혹행위에 대한 근절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한 해병대 부대원으로부터 선임병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진정을 접수하고 지난 1월 해당 연대에 대한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A선임병은 지난해 8월 14일 B이병에게 청소불량, 군기 유지 등을 이유로 이층침대에 매달리게 한 뒤 온몸을 폭행해 다발성 늑골·흉골 골정 등 중상을 입혔다. B이병이 고통을 호소하자 선임병들은 소대원들을 소집해 피해자가 ‘축구하다 다친 것’이라고 말을 맞췄다. 또 간부들은 구타 사실을 알고서도 사단장에게 알리지 않은 채 가해자에게 영창 10일의 행정처분만을 내렸다. 다른 선임병 C는 후임 D이병에게 평상시 청소 불량 등 사소한 이유로 검지와 중지 사이에 볼펜, 가위 등을 끼우고 꽉잡게 하는 가혹행위를 가했다. 또 D이병은 수시로 구타를 당해 늑골 골절로 전치 6주 진단을 받았으나 분대장 등 지휘관들은 작업 도중 다쳤다고 보고하라며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 심상돈 인권위 조사국장은 “대부분 가해자가 후임병 시절 자신도 비슷한 행위를 당했고, 이를 참는 것이 ‘해병대 전통’이라고 알고 있었다.”면서 “국방부 등 관계기관과 협조해 구타를 묵인하는 병영문화와 지휘감독 체계를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무려 472명에 무면허 성형

    부산 금정경찰서는 23일 무면허 의료행위를 해온 혐의(부정의료 행위 등)로 부산 모 병원 운영자 박모(38)씨를 구속했다. 또 박씨에게 고용된 유모(40)씨와 이모(44)씨 등 의사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설립 요건에 미달하는 병원의 개원을 묵인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은 김모(50)씨 등 보건소 7급 공무원 2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무면허 의사인 박씨는 2009년 5월 부산진구 부전동에 자신이 고용한 유씨 명의로 병원을 개설, 지난 1년 8개월 동안 환자 472명을 상대로 성형수술, 지방흡입수술 등 부정의료 행위를 해주고 3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씨 등 의사 2명은 같은 건물에서 피부과 등을 운영하며 박씨와 공생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與 ‘개헌 기구’ 절충안 합의

    한나라당이 우여곡절 끝에 개헌 특별기구를 최고위원회 산하에 두기로 했다. 안형환 대변인은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가 끝난 뒤 브리핑을 통해 “특별기구를 최고위원회 산하에 두되 정책위원회에서 운영을 맡기로 했다.”면서 “일부 최고위원들이 (최고위원회 산하 기구를) 반대해 이 같은 절충안으로 특별기구를 구성키로 했다.”고 말했다. 특별기구 설치가 결론날 수 있었던 것은 홍준표 최고위원의 입장 변화가 결정적이었다. 홍 최고위원은 “지도부가 분열상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나는 찬성도, 반대도 아닌 묵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홍 최고위원은 “분당할 각오가 돼 있으면 개헌을 추진하라.”, “대통령이 직접 개헌 발의를 하라.”고 직격탄을 날려 왔고, 개헌을 적극 추진하는 안상수 대표와 김무성 원내대표를 빼고 나머지 최고위원들만 따로 모아 오찬을 하기도 했다. 개헌 논의에 반대했던 나경원 최고위원도 “개헌 특별기구의 진정성을 보여 줘야 한다.”며 동조했다. 두 최고위원의 입장 변화는 전날 청와대 만찬 이후 나온 것이서 주목된다. 대세가 굳어지자 정두언 최고위원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정 최고위원은 “‘안 될 것이 분명한데 무슨 꿍꿍이냐.’는 것이 민심”이라면서 “민심이 아니라 다른 것을 두려워하면 지도부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민심과 달리 가면 딴나라당 소리를 들으면서 외면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영화 ‘친구’의 대사가 생각난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많이 먹지 않았느냐).”라고도 했다. 개헌 특별기구가 당내는 물론 여야 관계에서 추동력을 확보할지, 아니면 반대론에 부딪혀 좌초될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개헌 전도사’ 이재오 특임장관은 이날 “이제 내 손을 떠났다. 당 개헌특위에서 알아서 해야 한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특위가 구성되면 야당과의 협상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두언·서병수 최고위원 등이 여전히 부정적이고, 친박계가 특위에 참여할 뜻이 없는 데다, 야권의 반대도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거세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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