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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마도 아리랑제(일본속의 한국문화:2)

    ◎통신사기념 매년8월 첫주 열려/일행 5백여명 탄 선단 이즈하라외항 도착/정사 선두로 중심가 행진… 구경꾼 연도 메워 통신사일행을 태운 배는 늘 새벽에 부산항을 떠난다.순풍에 돛을 달면 편안하게 그날 오후 4시경에 대마도에 도착하지만 역풍과 격랑을 맞나게 되면 밤늦게 악포 앞바다에 이르러 헤매게 된다.그리고 모두 배멀미에 시달려 일어나지 못하고 뻗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악포에서 몇날을 묵은 뒤 대마도의 행정수도 이즈하라(엄원)로 떠난다.배는 대마도의 서해안(즉 일본측 해안)을 따라가게 되는데 이 항로 또한 만만치 않아서 2∼3일만에야 겨우 목적지에 닿게 된다.이즈하라는 당시 대마도주 슈우케(종가)가 사는 성하정(읍)이어서 부중이라 불렀었고 1천호이상의 민가가 몰려 있는 번화가였다.지금도 대마도의 총인구 4만5천명 가운데 1만5천여명이 살고 있는 섬 제일의 고을이다. 특히 이즈하라에는 우리나라 통신사와 인연이 깊은 유물·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통신사일행이 묵은 숙소 서산사라든지 도주의 저택 김석성,그리고 옛 부두,어선강(오후네가와)등이 눈길을 끈다.어선강이라는 옛 부두는 지금의 이즈하라항구로 흘러들어오는 작은 냇물의 하구를 인공으로 넓혀서 만든 도주전용의 선착장인데 네개의 석축선착장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필자가 갔을 때 마침 밀물이라 항구에는 바닷물이 가득 차 있었으나 물이 빠지면 바닥이 드러난다는 것이며 이 경우 배들이 들어오지 못했다고 한다.당시 통신사일행이 5백명에 이르렀으므로 정사와 부사를 태운 세척의 배만 이 좁은 항구에 들어왔을 뿐 나머지 배들은 외항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수십척의 통신사 선단이 이곳에 도착하면 잠자듯 조용했던 이 섬은 흥분하기 시작한다.도착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듣고 나온 인파가 연도를 가득 메운 가운데 통신사의 행렬이 약 3㎞에 달하는 부중중심가를 뚫고 가게 되니 절해의 고도 대마도로서는 일대 소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최근 대마도에서는 그날의 열기를 기념하는 아리랑제를 매월 8월 첫주에 거행하고 있는데 단순한 한국관광객유치작전으로만 볼 수 없다. 통신사의 부중도착실황을 자세히 묘사한 기록으로 종사관 이경직의 「임상록」(1617년,광해군9년)이 있다.종사관은 정사와 부사 다음의 벼슬이다. 『7월9일(부산을 떠난 지 5일만)신시(저녁 네시경) 부중포에 당도하였다.정사(오윤겸)이하 4백28명이 모두 관대를 갖추어 위의를 성대하게 벌여 국서를 받들고 행진하였다.대오를 갖춘 위인들이 앞을 인도하는 가운데 부중에 들어서니 구경꾼들이 연도에 담치듯 하였고 남녀가 뒤섞여 시끌법석하였다. 섬안은 지세가 비좁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였고 민가가 많아 대강 1천여호가 되는듯 보였다.앞바다에는 큰 배 10여척,작은배 60여척이 대어 있었다.선착장에서 신사의 숙소까지 7·8이(약3㎞)가량 떨어져 있는데 좌우의 여염에는 누각이 많았고 소위 양반집 정원에는 송죽이 심어져 있었다.이는 대개 정결에 힘쓰는 이 나라 풍속 때문이라 할 것이다』 지금도 이즈하라거리에서 특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돌담을 높이 쌓은 소위 양반집이다.대마도에서는 무가의 저택이라 하는데 아래는 굵은 돌을 쌓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돌을 쌓은 것이 우리나라의 옛날 시골집 돌담과 흡사하다.이곳 사람들은 돌담을 높이 쌓은 이유를 혹은 방화벽이라느니 혹은 통신사가 지나가면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했다느니 설명하고 있으나 통신사기록을 종합해보면 이곳 주택들이 모두 목조건물이라 동네마다 돌담으로 칸을 막아 불길을 막고 출입구를 만들어 이문으로 삼았던 것 같다. 이경직이 대마도를 방문한 1617년만 하더라도 임진왜란이 끝난 지 20년이 채 못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풍신수길의 침략군 앞잡이를 한 대마도주에 대한 감정이 대단하였고 아무리 후한 대접을 한다 하더라도 마음속에는 늘 원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그래서 이경직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의 추한 모습을 볼 때마다 또 올빼미 같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뱀이 앞에 나타난 것같이 섬뜻하여 고통스럽기만 하다』 임진왜란 때 그들에게 죽은 사람은 부지기수였고 일본땅으로 끌려간 사람이 30만으로 추산되었다.바로 이 대마도에도 수많은 동포들이 끌려와서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할 리없었고 밥먹는 것이 모래를 씹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일본으로 보내는 사절단을 통신사라 이름하지 않고 회답·쇄환사라 했다.7월10일 정사 오윤겸은 대마도로 종의성에게 『이번 행차는 오로지 우리나라 사람을 쇄환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강조한다.그러나 종의성은 음흉하게도 이렇게 변명하고 있다.첫째 임란때 끌려온 조선인들은 이미 장가들고 시집을 가거나 자손을 본 사람까지 있으니 그들을 강제로 귀국시킬 수 없고,둘째로 관백(일본의 실력자 덕천)으로 하여금 전국에 쇄환령을 내리게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끌고 간 조선인의 대다수는 젊은 처녀와 10세전후의 어린 소년들이었다.그러니 근 20년이 지난 오늘 그 대다수가 결혼하고 자식을 두었다는 것이다.거기다 이들을 쇄환해가는 데 돈까지 요구하니 기막힌 이야기였다.침략행위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지는 못할망정 강제연행한 조선인의 송환까지도 거부한 일본의 교활하고 파렴치한 행동은 이미 3백년 전에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한국과 일본이 가깝고도먼 나라가 된 원인은 바로 이러한 일본지도자들의 무책임한 정책 때문이란 사실을 스스로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 김 대통령 신경제 5개년계획 특별담화 요지

    ◎“우리경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수출·설비투자 기지개… 국민동참 성과 대통령후보시절부터 저는 우리 경제를 살리는 일이 새 대통령이 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 믿고 준비를 해왔습니다.오늘 발표하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은 저의 임기중에 실천될 경제정책의 청사진입니다. 정부는 그동안 「신경제 100일계획」을 집행했습니다.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단기처방이었습니다. 먼저 금리를 낮추고 재정지출을 앞당겼습니다.정부예산을 아껴서 중소기업 구조개선사업에 쓰도록 했습니다.경제활동에 걸림돌이 되던 규제를 대폭 완화했습니다. 기본 생활필수품의 가격관리가 강화되었습니다.청와대부터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하도록 했습니다.공무원의 봉급을 동결했습니다.노총과 경총이 처음으로 임금인상률에 합의했습니다. 우리 국민의 헌신적인 동참으로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경제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수출이 활력을 되찾고 있습니다.중소기업의 투자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자율과 창의에 바탕한 기업경영 분위기가조성되고 있습니다.1백일동안의 「신경제」 경험에서 우리는 값진 교훈을 얻었습니다.희망과 신념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것입니다. 「신경제 5개년 계획」은 우리 경제의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새로운 문명권의 중심에서 경제대국으로 당당하게 자리잡은 「신한국」을 지향하고 있습니다.다가오는 통일에 대비하여 튼튼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목표만 옳다면 기꺼이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우리 국민의 고마운 동참의식을 확인했습니다. 「신경제 5개년 계획」은 우리 경제의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원대한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온 국민의 동참과 슬기가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경제성장의 주도원리는 통제와 보호였습니다.그러나 참여와 창의가앞으로 문민시대의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원리가 될 것입니다.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경제의 효율을 극대화 할 것입니다.기업가의 창조적 기업의욕이 경제도약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신경제 5개년 계획」은 경제정의가 실현되도록 역점을 두었습니다.소득이 많은 곳에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될 것입니다.거듭 말씀드립니다.김융실명제는 반드시 실시될 것입니다.참여와 창의를 고취하고 경제정의를 증진하기 위해 우리는 효율과 공정이 함께 보장되도록 경제제도를 개혁할 것입니다.재정,김융,그리고 경제행정전반에 걸쳐 폭넓은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할 것입니다. 「신경제 5개년 계획」은 성장잠재력을 극대화하면서 안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국제경쟁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에도 소홀하지않도록 하였습니다.주택·교통·환경·의료 등 모든 면에서 우리 국민이 보다 풍요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경제부처가 일치단결하여 5개년계획을 추진하도록 할 것입니다 한달에 한번씩 대통령이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여 5개년계획의 추진을 점검할 것입니다.또한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신경제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민간의 폭넓은 의견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튼튼한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정·부패가 없어져야 합니다.정치가 깨끗하고 공직사회가 투명해야 합니다.우리의 경제체질을 건강하게 바꾸어야만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에서 저는 취임후 변화와 개혁을 추진해 왔습니다.깨끗한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먼저 재산을 공개했습니다.뒤따라 고위공직자들이 재산을 공개하면서 우리 사회를 바꾸는 명예혁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어떠한 명목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해묵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은 것입니다.우리 사회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성역없는 비리척결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저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개혁에 대한 불만이나 저항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그러나 아픔을 견뎌야만 건강한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치개혁,그리고 경제제도개혁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의식개혁입니다.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를 버려야 합니다.더불어 함께 잘 사는 공동체의식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근로자와 경영자는 같은 배를 탄 공동운명체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에는 갖가지 배타적 집단이기주의가 분출되고 있습니다.가장 시급한 환경시설과 사회복지시설마저도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건설에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폭력으로 집단이기주의를 관철하려 하거나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집단행동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불법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 나가겠습니다. 우리 경제가 처한 여건은 대단히 어렵습니다.세계는 지금 치열한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앞으로 2∼3년은 우리의 장래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고비가 될 것입니다. 국제화시대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과학기술을 개발하고 정보화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낙오될 것입니다. 우리 경제의 여러 주체들에게 간곡히 당부드립니다.공직자는 투명하고 신속한 봉사로 깨끗한 정부를 만들어 주십시오.기업인은 세계의 일류기업을 만들겠다는 개척정신을 가져 주십시오.근로자 여러분은 자기분야에서 세계 제일이 되겠다는 장인정신을 키워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농어민 여러분은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창의력과 자조정신을 발휘해 주시기 바랍니다.가계를 맡은 주부 여러분은 더 아끼고 더 저축해 주십시오. 저는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혼신의 힘을 다해 앞장서 뛰겠습니다.우리 모두 더 넓은 세계,더 밝은 미래를 향하여 다시 한번 땀을 흘립시다.다가오는 21세기,세계속에 우뚝 설 위대한 한민족 시대를 향하여 다함께 달려갑시다.「신경제 5개년 계획」을 반드시 성공시켜 신한국 창조의 기틀을 다집시다.
  • 북의 대미 핵게임 두갈래 상정/오늘 뉴욕회담 어떤태도 보일까

    ◎핵금탈퇴 강행… 막후협상뒤 재가입/일단 복귀선언… 조건 달아 미와 절충/“세불리하면 막판 태도 호전” 희망적 관측도 오랜 진통 끝에 열리게 된 미·북한간 고위급회담이 임박했음에도 회담성패에 대한 예상은 전혀 불투명한 상태에 있다. 회담이 언제나 양측에 만족할 만한 결과만을 내는 것은 아니겠으나 이번 회담은 북한의 핵문제를 다루는 회담이고 또 북한의 NPT(핵확산금지조약)탈퇴발효시한을 불과 10여일 남겨 놓은 시점에 열리는 것이어서 일이 잘못 될 경우 불똥이 직접 우리에게 튀게 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회담은 당초 북한측의 집요한 요청에 의해 성사가 된 것인데 막상 회담원칙이 결정되고 나서는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북한측이 10여일이나 회담일자를 늦춰 온 것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또 지난달 27일 미NCC(전국교회협의회)뉴욕본부에서 열렸던 남북한문제에 관한 토론회에서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허종부대사가 미·북한 고위급회담에서 다룰 의제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무기 불사용 ▲팀스피리트훈련중지 ▲한국내 미군기지 공개 ▲미국의 대한핵우산 제공 중단 ▲주한미군 철수 ▲북한사회주의 체제존중 등 해묵은 요구조건들을 다시 들고나온 것도 심상치 않은 점이다. 북한이 이번 회담에 심드렁한 태도를보이고 있는 것과 관련,그동안 여러모로 분석이 시도돼왔는데 그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명은 미국이 이번 회담의제를 핵문제로 국한시키려 하는데 대한 불만의 표출이 아니냐는 것이다.잘 알려진대로 핵을 미끼로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등 다른 것들을 얻어내려는 것이 북한의 속셈이다.그런데 미국이 92년 1월의 미·북한간 1차 고위급회담 때와는 달리 차관급에서 차관보급으로 이번 회담의 격을 낮춘데다 수석대표도 핵문제 전문가인 로버트 칼루치 차관보를 내세워 의제를 핵문제로 국한시키려 한데 큰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북한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굴복(?)하기 보다는 핵게임을좀더 계속할 개연성도 있다는 분석이 최근 유엔에서 나오고 있다.여러가지 조건을 내세우고 그런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란 이유로 NPT탈퇴를 강행하는 것이다.이럴 경우 안보리는 당장 북한에 치명적인 제재결의를 하기가 어려워지고 그렇게 되면 북한은 시간을 두고 막후 협상을 계속하다 적당한 때 NPT에 재가입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다.다른 하나의 선택은 NPT복귀를 선언해놓고 이런 저런 이유를 달아 사찰을 미루며 미국과 협상을 계속하는 것이다.이런 것들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것일 뿐이다.안보리가 비록 치명적인 제재결의를 못하고 극히 형식적인제재를 한다고 해도 북한이 거기서 초래되는 국제적 압력을 얼마만큼 이겨낼수 있을지 의문이고 뉴욕까지 올때는 무엇인가 하러 오는 것 아니냐는 긍정적인 시각도 없지는 않다.또 91년 유엔가입 때도 그랬던 것처럼 막판까지가다 세불리하면 돌아선 전례도 있다.
  • 6공화국 5년간의 부문별 발자취(민주­화합의 시대 열다:7·끝)

    ◎통치 스타일/「참용기」로 민주화 시련 극복/강권보다 민의에 의한 해결 택해/권위주의 배척… 「보통사람의 시대」 실현 노태우대통령은 취임초기의 혼란상황을 회고할 때면 「참용기」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참고,용서하고,기다린다는 단어의 머릿글자를 딴 약어다.「참용기」가 갖는 본래의 뜻과 어감도 마음에 들거니와 약어로서의 의미도 본인의 성품과 딱 들어맞는다고 흡족하게 여긴듯 하다. 「인내학 박사」에 얽힌 얘기도 애용했다.『외국 유명대학 총장이 당신은 참기를 잘하니까 인내학 박사(Doctor of Patience)학위를 주겠다고 하더라』는 노대통령의 설명이다. 참는다는 것,이는 노대통령의 고유상표처럼 인식되고 있다.많은 사람들이 「참용기」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인다.재임기간 동안 노대통령은 참기 어려운 상황에 수없이 직면했음에도 무던히도 잘 참았다. 노대통령은 취임과 더불어 민주화열기에 따른 대학가 시위와 노사분규에 시달려야 했다.지역·계층간의 집단이기주의도 여기에 편승했다.사회 전반의 질서와 기강이 흔들렸다.불만은 노대통령에게 쏠릴 수 밖에 없었다.보다 강한 공권력 집행을 통해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이때 「물대통령」이라는 소리까지 나왔다.그러나 노대통령은 구체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러면서도 사회는 차차 혼란의 고비를 넘기고 안정의 길로 들어섰다.결국 노대통령은 여론이 돌아서기를 기다렸고 민의에 의해 위기상황이 치유되도록 참았던 것이다. 노대통령 통치 5년은 민주화로 일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노대통령은 민주화를 역사가 부여한 숙명으로 받아들였고 최고의 가치로 선택했다고 회상하고 있다.오늘날 민주화는 노대통령의 이같은 역사인식과 더불어 「참인내」라는 독특한 통치스타일 때문에 가능했다는 데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결단력 부족을 노대통령 리더십의 결점으로 꼽는다.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 대응하지 못하고 시기를 놓쳐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지근 인사들은 그같은 지적이 현상에만 집착한 단견이라고 말하고 있다.민주화 실현이라는 대전제 아래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시간이 다소 지체됐을뿐 그대신 근본적인 치유가 가능했다고 설명하고 있다.노대통령은 「민주화」와 「능률성」이라는 상반된 가치중에서 「능률성」이 다소 희생되더라도 「민주화」라는 가치를 우월적인 것으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명석하면서도 사려가 깊고 온화하면서 신중하다고 주변에서는 말한다.언제나 정시에 일어나고 출·퇴근이 정확하며 과음,과식은 안하는 「모범」으로 알려지고 있다.웬만해서는 화를 내지않고 감정표현을 극히 자제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어쩌다 미간을 조금 찌푸린 모습을 보고야 화가 났구나 하는 정도를 알수 있을 뿐이라고 청와대 비서관들이 말하고 있다.모수석비서관을 정부요직에 발령하면서도 발표이후까지 한마디도 언급하지않을만큼 자신을 내세우는 일은 자제한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성품 모두를 통치권자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꼽을 수는 없다.오히려 약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다.그러나 6공을 권위주의에서 민주화체제로 넘어간 「과도기」라고 규정한다면 이같은 성품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많았다고 주변에서는 인식하고 있다.노대통령에 대한 최종적인 역사적 평가에 상관없이 노대통령은 과도기의 국가경영자로서 매우 적절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지난해초 민자당의 차기대통령 후보문제를 둘러싸고 시중에서 이른바 「노심」의 향배를 놓고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노대통령은 「자유경선」이라는 원칙적인 말만을 되풀이 했다.이종찬의원의 경선포기선언으로 모양이 다소 일그러지기는 했지만 노대통령의 침묵은 결국 헌정사상 최초로 집권여당 대통령후보의 자유경선이라는 전통을 세우게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보통사람의 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대로 노대통령도 보통사람의 모습에 충실하려고 애를 썼다.의전이나 경호방식을 대폭 간소화했고 회의방법이나 기자회견의 방식을 개선했다.청와대를 개방하고 「각하」「영부인」등의 용어를 배척했다. 노대통령의 집무실에는 「강유득중」이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있다.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 가운데 중간을 택하라는 뜻이다.이는 노대통령의 좌우명으로 알려져 있다.국가운영에 있어서도 이같은 좌우명은 상당부분 현실로 나타났다.노대통령은 원칙과 현실이라는 명제에 부딪쳤을 때 양쪽을 모두 고려해 결단을 내렸지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6·29선언이나 9·18결단이나 그것이 지닌 원칙적인 의미외에 국민의 바람이라는 현실을 함께 생각했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지도자가 역사의식을 갖고 모든 일에 임해야 하지만 역사의식이 국민의 생각과 다를 경우 독선이나 권위주의가 된다고 강조한다.노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힘이 못미치지만 성실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으며 잘 참고 기다릴 줄도 알았다고 써주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 식품품질 소비자 고발 증가/시민의 모임,작년접수 744건중 73%

    ◎건강식품 효능·과자류 이물질순 식품의 품질과 관련한 소비자고발이 늘고 있다. 지난해 1년동안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회장 김순)에 접수된 식품 관련 소비자고발 7백44건중 가장 많은 것은 품질에 대한 불만으로 73.2%인 5백45건이나 됐다.다음은 계약과 관련된 것으로 1백17건(15.7%),가격에 대한 불만이 28건(3.8%),그밖에 허위 과장광고,서비스에 대한 불만 등으로 나타났다. 품목별로는 건강식품류가 1백64건(22%)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제과·제빵류 1백35건(18.1%),농산물및 가공품류 1백7건(14.4%),유제품류 68건(9.1%),음료류 64건(8.6%),어육가공품류 56건(7.5%),육류 및 육가공품 54건(7.3%)의 순이었다. 고발내용을 품목별로 보면 ▲건강식품은 성분이나 효능에 대한 불신 ▲과자·빵·라면·유제품은 벌레나 철사등 이물질 혼입 ▲어묵·햄·소시지는 유통기간 경과 ▲음료는 비닐 등 이물질 혼입 ▲통조림은 내용물 변질 등으로 나타났다. 고발건수가 가장 많은 업체는 유제품의 경우 남양유업,음료수는 해태,제과는 샤니,육가공품은 롯데햄,어묵은 동원산업,라면은 삼양 등이다. 시민의 모임측은 이같은 소비자피해가 식품의 생산과정이나 유통과정에서 위생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관련 제조업체들이 문제가 있을 때 해명서만 제출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품질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오늘 의거 83주년… 한·중·일 3국 입체취재

    ◎안중근의사/“동양평화 지켰다” 중국인이 더 추앙/이등 저격 하얼빈시선 해마다 확술대회/기념비 곧 건립… 여순감옥엔 유품 보존 우리는 해마다 10월이 저물어가면 의사 안중근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19 09년 10월26일 하얼빈역두에 터뜨린 총성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더 이상 침략책동자로 세워두지 않은 의거의 그날이 돌아오기 때문이다.일제는 그를 테러리스트로 매도,끝내는 교수대에 세웠다.그러나 안의사는 지금 영원한 휴머니스트이자 또 평화론자로 추앙받고 있다. 1909년 10월26일 상오 10시가 막 지나는 시각.모두 6발의 총성이 중국 흑용강성 하얼빈시 하얼빈역두에 울려 퍼졌다.의장대 사열을 끝내고 귀빈열차를 향해 몸을 돌리던 일본의 침략원흉 이등박문을 향한 안중근의사의 육혈포가 불을 뿜는 소리였다.그날의 총성이 사라진지 83돌을 맞은 하얼빈역은 신역사를 짓는 건설현장의 굉음과 종종걸음치며 플랫폼을 오가는 중국인들의 말소리만이 어울려 요란할 뿐이다. 이등박문이 피를 뿌리며 쓰러진 1번 플랫폼앞 현장에는 뜰이 조성돼 대형플라스틱에 담긴 화분이 몇개 놓여 있었다.피격지점에서 10m쯤 떨어진 러시아군 사열대 뒤편에서 총구를 겨누었던 안의사의 저격장소는 이곳에 새로 지어진 1등 대합실건물에 편입돼버렸다.이등이 쓰러진 곳은 몇년전만해도 피살지점을 표시하는 둥근 녹쇠판이 놓여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등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 안의사가 5개월에 걸친 수감생활끝에 1910년 3월26일 상오10시15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여순형무소.당시 악명 높았던 이「인간지옥」은 요령성 대연시 서쪽 40㎞지점에 「여순일아감옥구지」라는 현판아래 지난88년부터 중국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됐다. 안의사가 복역한 지하감방은 간수사무실부속창고로 이용되고 있으며 수감동 복도벽에는 「조선애국지사 안중근」이라고 쓴 액자속에 안의사의 수감당시 사진과 함께 남아있다.이밖에 유화초상화·족자·유시「장부가」가 담긴 액자등이 걸렸다. 안의사에게 교수형이 행해졌던 교형실은 감옥 동북쪽 구석에 감춰진채 15평남짓의 좁은 공간으로 남아있다.교수대는 2층으로 꾸며져 있고 시체처리통까지도 보존됐다. 현재 6만명의 조선족동포들이 살고 있는 하얼빈시에는 2개의 안중근연구회가 있다.안의사추모사업은 지난89년 의거80주년을 맞아 한·중·일의 학자들이 하얼빈역에서 추모회를 가진 이래 학술대회를 잇따라 열어 왔다.또 안의사의 일대기를 그린 대형오페라가 공연되는등 추모붐이 대단했다.최근에는 새로 발굴된 자료를 모은 안중근사료집발간을 준비중이며 안의사기념비를 피격현장에 세우기위해 중국정부와 교섭도 벌이고 있다.당초 하얼빈역 광장에 안의사의 동상을 세우고 기념관도 건립할 계획이었지만 일본과의 불편한 입장을 고려한 중국측의 소극적 태도로 한걸음 물러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얼빈시내 동북열사박물관에 전시된 중국근대사소개부문에도 안의사의 영정과 기념자료등을 손문다음으로 다루는등 안의사에 대한 중국현지의 평가와 연구열기는 그 어느때보다 높다. ◎국내/국내연구 활기­일선 “평화주의자” 새 시각/학계 동향/대중수교 계기 새 자료발굴 기대 우리나라에서의 안중근연구는 올해 중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짐에 따라 새로운 계기를 맞고있다.그 이유는 중국이 「역사의 현장」인데다 그동안 우리측에 공개되지 않은 자료에 대한 접근도 가능해졌다는 데서 찾아진다. 이에따라 그동안 한정된 자료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국내 학계의 상황도 크게 개선되어가고 있다.또 안의사의 의병활동기지였던 러시아측의 연구성과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여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근에는 길림성 조선연구소가 국내에서의 안중근연구를 희망해오는가 하면 러시아사회과학원 동방연구소에서도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우리나라에 와서 발표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또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최석우신부)에서는 안의사가 천주교신자였다는 점을 고려,프랑스측이 소장해오던 자료를 입수,연구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한국연구원 최서면원장은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로 안중근연구에 숨통이 트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런때일수록 연구자들은 일과성이 아닌 체계적 연구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새로 입수된 자료들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되지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해석이 나올 경우 안의사연구에 자칫 흠집을 남길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올해는 아직 별다른 성과가 없다.안중근의사에 대한 저술은 물론 연구결과를 집약한 논문 역시 나오지 않았다.기존의 학술자료로는 「한국독립운동사 자료」(국사편찬위원회)안에 수록된 공판기록문서와 주한일본공사관 기록등이 정리돼 있다.또 논문은 신용하교수(서울대)의 「안중근의 사상과 의병운동」등이 꼽힌다.저술은 주로 전기류인데 안의사 의거 이후에 쓴 박은식의 「안중근전」이 있고 해방후에는 「의사 안중근」(만수사보존회·1964년)과 「안중근자서전」(안중근의사 숭모회·1970년)등이 나왔다. 그리고 안의사를 기리는 단체는 사단법인 안중근숭모회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안중근의사장학회등이 있을 뿐이다. ◎일본/올 전기 등 2권 출간… 사당건립도 안중근에 대한 가해자쪽인 일본에서 안의사 평가는 「암살자」와 「휴머니스트」라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시각으로 나타났다.테러리스트 시각을 가진쪽은 안의사의 의거 이후 일제정권담당자들이다.그리고 휴머니스트로 보는쪽은 안의사의 재판에 참여한 판사와 검찰관,여순감옥의 형리에서부터 시작되어 현재 일본의 지식인들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다.안의사를 휴머니스트로 보는 시각도 두 갈래로 나뉜다.그 하나가 중천팔양교수(축파대)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이끌려지는데,여순감옥에서 쓴 「동양평화론」이 『한일관계의 원전으로 오늘날 더욱 빛나는 혜안이었다』고 극찬한다.동아시아의 제국이 우방과의 신의를 축으로 한 동맹관계를 수립,러시아에 대응방위를 해야한다는 안의사의 주장은 오늘날 일본에 좋은 교훈이 된다는 것이다. 형무소장과 변호사는 물론이려니와 검찰관·재판관들이 서 있다. 재판과 수형생활등의 과정에서 안의사의 높은 지적수준과 고결한 인품이 자신들을 매료시켰다고 회고한다.오늘날 남아있는 안의사의 유묵은 그들에 의해 고이 간직되어 온 것이 많을 정도다.또 이들의 후손들에 의해 안중근연구회가 조직되어 일본안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현재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와카야나키의 대림사에 세워지고 있는 안의사의 기념사당도 그러한 경우다. 「테러리스트아닌 독립운동가」라는 시각에 따라 「안중근 무죄론」까지 제기되어 주목을 끌었다.특히 올들어 최근 일본에서는 안중근관계 저술이 2권이나 새로 출간됐다. 그 하나가 중야태낭교수(아세아대교수·국제관계학)의 「안중근」(아기화방간행).한국관계의 원상이라는 부제로 간행된 이 저술은 이토를 저격한 안의사를 훌륭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생애와 사상/의병투쟁땐 일군포로 석방/「동양평화론」 저술한 선각자 안중근의사는 1879년9월9일 황해도 해주 한 향반의 집에서 태어났다.그리고 나서 31살을 일기로 1910년3월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기 까지의 삶은 파란만장한 것이었다. 그 생애에서 안의사가 평화론자였다는 사실은 여러군데서 찾아진다.1907년 정미칠조약이 강제체결되고 고종 양위와 함께 군대가 해산됐을 때 독립전쟁을 주장하면서 의병활동에 뛰어든다.그는 의병전투기간에생포한 일본군 포로를 석방,논란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그러나 이 사실은 오히려 의병활동을 일본에 대한 대한제국의 독립전쟁이라는 국제공법에 근거,포로를 인도적으로 처리한 사례로 평가 되고있다. 안의사가 여순감옥에 갇힌 뒤 쓴 미완성원고 「동양평화론」은 그의 이같은 사상적 배경을 구체화한 것이다.「독립한 청국 한국 일본이 일심 협력해서 서양세력의 침략을 방어하게 된다」는 논리를 편다.그래서 개화의 역으로 진보,구주 세계각국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진력할 때 동양평화가 실현되고 또 유지된다고 주창했다. 이토는 침략의 원흉이고 동양평화에도 역행했다는 것이 안의사의 주장이다.그의 자서전과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이등의 15개조의 죄목」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결론적으로 안의사는 자신의 행동을 『한국의병참모중장의 자격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토를 공격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 부시 열세만회 실패/3차례 TV토론 결산(미 대선열전 현장:11)

    ◎페로까지 표잠식… 재집권 희박/클린턴,백악관입성 가시권에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19일저녁(현지시간) 3번째이자 마지막 TV토론에서도 민주당의 빌 클린턴후보를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함으로써 재선고지를 확보하는데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평가됐다.이날 미시간주 미시간주립대에서 90분동안 진행된 토론에서 공화당의 부시는 지난 두차례의 토론과는 달리 적극적인 자세로 클린턴을 공격했으나 클린턴의 승세를 「엎어치기」하는데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3후보는 토론을 마치면서 각기 유권자들에게 마지막 호소를 했다.부시대통령은 『이 나라와 국민과 그 자손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사람이 누구일 것인가를 생각해달라』면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인품과 판단력·경험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에 비해 클린턴후보는 『또다시 경제를 주저앉게 할수는 없으며 정부를 갈아야한다』고 「변화」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했다.무소속의 로스 페로후보는 미국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뿐이라며 자신에게 던지는 표는 「묵은표」가된다는 말에 현혹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날 TV토론이 끝난후 ABC방송이 전국에 걸쳐 7백명의 등록유권자를 대상으로 반응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6%가 클린턴이 이겼다고 대답했다.26%는 페로가 이겼다고 했고 부시가 이겼다고 한 사람은 21%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정치평론가나 해설가에 따라서는 부시대통령이 이날 적극적인 자세로 클린턴을 공격했고 클린턴은 수세적인 입장이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또 말린 피츠워터백악관대변인은 『부시대통령이 이날 저녁으로 선거운동의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클린턴진영에서는 『부시가 자신이 재선되어야하는 이유를 유권자들에게 설명해주는데 실패했다』고 혹평했다. 어쨌든 부시대통령은 지난 3차례의 토론기회를 대클린턴 역전드라마로 엮지 못한 것은 물론 클린턴과의 벌어진 격차를 좁히지도 못했다. 페로의 재출마 변수도 부시진영의 당초 희망적인 관측과는 달리 클린턴의 인기를 갉아먹기보다는 오히려 부시의 지지몫을 삭감하는 결과를 나타내고 있는 실정이다. 오는 11월3일 대통령선거일까지는 2주밖에 남지 않았고 유동표의 결정에 영향을 주는 선거행사로 TV토론회만한 기회가 앞으로 없다는 점에서 부시의 재선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지는 반면 클린턴의 백악관 입성은 점점 가시권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번 2차 토론때 부시가 토론도중 손목시계를 3차례나 들여다 본것이라든가 「여성 러닝메이트」얘기가 나왔을 때 『바바라 부시가 출마했으면 당선될수 있을 것이나 너무 늦었다』고 언급한 대목은 스스로 패배를 절감하고 있거나 아니면 패배가 뻔히 보이는 선거운동이 지겹고 지긋지긋하다는 자신의 심정을 1억 시청자들에게 드러내 보여준것이라고 선거분석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언론들은 부시행정부의 관리들이 클린턴의 당선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하고 있으며 워싱턴 포스트는 『모두가 침몰하는 배에서 도망치는 쥐떼처럼 배에서 뛰어내릴 채비를 하고 있다』는 한 관리의 말을 인용,「침몰하는 부시행정부」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전하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선거에서 각 후보들에 대한 여론조사·인기도조사가 유권자들의 실질적인 투표결과와 어느정도 일치하는지는 불분명하나 기적이라고 할만한 특별한 이변이 없는한 「클린턴­고어」의 민주당 팀은 당선가도를 쾌속으로 달릴것으로 보인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신규식선생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예관(예관) 신규식선생이 선정됐다.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신규식선생이 한·중수교 시점에서 재조명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선생은 단순한 독립운동가로서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2대 조류인 외교중심론과 무장투쟁론을 접목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력배양·민중계몽운동·경제적 자립기반 확충등 총체적 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했기 때문이다.신규식선생의 43세 짧은 생애를 되새겨 본다. ◎상해 임정수립 주역… 중국승인 얻어내/한·일 합방 직후 망명… 12년간 항일운동 매진/신해혁명 참여… 손문정부와 연계투쟁 길터/22년 임정분열에 통분,병석에서 25일간 단식… 43세로 생 마감 신규식선생이 남긴 명저 「한국혼」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음이 죽어버린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없고,망국의 원인은 이 마음이 죽은 탓이다.…우리의 마음이 곧 대한의 혼이다.다 함께 대한의 혼을 보배로 여겨 소멸되지 않게하여 먼저 각자 자기의 마음을 구해 죽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 글에 담긴 선생의 철학은 목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소신찬 행동으로 이어진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사이 망국의 한을 온몸과 마음 바쳐 투쟁으로 승화시킨 신규식선생의 웅변이 지금 이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은 무엇을 뜻하는가.우리의 독립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라 할지라도,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충북 문의서 출생 신규식선생은 1880년 1월13일 충북 문의군(현재 청원군)에서 중추원 의관을 역임한 신용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채호 신백우와 함께 「산동삼재」라고 불렸다. 17세때 신학문에 뜻을 세우고 상경,관립한어학교를 거쳐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무덕을 쌓게 되었다.신동으로 불리며 한학등 구학문에 능통하고 문학에도 탁월한 자질을 지녔지만 기울어가는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국력배양에 있다고 생각했다. ○을사년 순국기도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육군참위로서 지방군대와 연계,대일항전을 계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3도 유생들이 조약 철회를 상소하고,장지연은 황성신문에 피를 토하듯 「시일야 방성대곡」을 썼다.민영환 조병세 홍만식등은 자결했다. 민심이 가마솥 끓듯 펄펄 끓을 때였다.청년장교 신규식은 계동·가회동·운니동등의 솟을대문들을 골라 몽둥이로 후려치며 미친듯 소리 질렀다. 『을사오적들은 나오너라!』 신규식은 호랑이라도 잡을 듯 거리를 쏘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운니동 집으로 돌아 왔을 때 그는 자신이 한낱 미약한 존재였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사흘을 문걸어 잠그고 굶었다.그리고 결론을 내렸다.민영환등의 순국은 소극적 행동이 아니라 적극적 투쟁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죽음은 거름의 역할을 하는 것­내한몸 거름이 되어 무수한 열매를 맺을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한국혼」 참조·26살 신규식의 이같은 생각은 그러나 후일 「치욕을 알면 피로써 죽음을 할 수 있고,치욕을 씻으려면 피로써 씻어야 한다」는 투쟁적 신념으로 바뀐다) 신규식은 독약을 마셨으나 문을 부수고 들어온 가족들에 의해 겨우 목숨을 구했다.그러나 약기운이 번진 오른쪽 눈은 시신경을 다쳐 애꾸가 되었다.거울을 들여다 본 신규식은 냉소를 지었다. 『애꾸,그렇다.이 애꾸눈으로 왜놈들을 흘겨보기로 하자.어찌 나 한사람만의 상처이겠는가.우리민족의 비극적 상징이다』 이때부터 청년 신규식은 흘겨볼 예(예)자,볼 관(관)자­예관으로 자호를 삼아 끝까지 사용했다. 문동학원·덕남사숙의 설립 또는 지원,중동학교장 취임,공업전습소생들을 중심으로한 「공업연구회」조직,월간 「공업계」창간,윤치성 민대식등 퇴역장교를 규합한 황성광업주식회사 설립·운영,민족종교인 대종교에의 입교,분원자기공장의 설립과 고려자기 재현운동…등등이 선생의 무서운 행동력을 입증한다. 그러나 1910년 「보호」라는 양의 탈을 쓰고있던 일제는 본색을 드러냈다.경술국치가 그것이다.우리나라는 통째로 그들의 입속으로 삼켜졌다. 선생은 다시한번 자결을 생각했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1911년 상해로 망명,운명할 때까지 12년여 동안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첫째는 당시세계정세를 능동적으로 이용하면서 독립운동의 2대 조류인 외교중심론과 무장투쟁론이라는 두가지 운동노선을 접목시켰다는 점이다.혁명가적 열정과 선각자적 혜안을 함께 갖춘 선생은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송교인 진기미 손문등과 교류하며 중국신해혁명에 외국인으로 참여하여 나중 중국국민당정부와의 항일연계투쟁의 기틀을 마련했다. 1911년 여름 어느날 선생은 손문과 함께 자리를 했다. 『예관선생이 우리 동맹회를 도와주시니 참으로 장한 일이십니다』 『바로 중국혁명운동이 한국독립에 직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양국 사이는 순치(순치)의 관계였습니다만 중국은 우리를 속국시한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혁명이념으로 볼 때 과거 우리에게 진 묵은 빚을 청산해주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듣던대로 훌륭한 논객이요.애국자이십니다』 선생과 손문의 혁명적 동지애는 변함없이 지속됐다.이 우정을 바탕으로 선생은 손문의 도움을 얻어 많은 우리 젊은이들을 적성에 따라 교육시켰다. ○3·1운동을 점화 둘째는 3·1독립운동과 상해임정수립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선생은 1917년 조소앙 박용만등 13명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선포한 「대동단결선언」을 통해 핀란드 폴란드등 당시 피압박민족의 독립을 열거하며 이는 좋은 징조이므로 우리나라도 통일된 최고기관 즉 정부의 조직필요성을 역설했다.또 국내와 일본등에 동지들을 밀파,2·8독립선언에 영향을 끼쳤다. 1919년 3·1운동이 터졌고 상해에서 선생은 프랑스 조계내에 독립임시사무소를 개설,정부수립을 추진했다.(언론인이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 한명인 오세창은 『3·1운동은 예관에 의해 점화되었다』고 단언하고 있으며 당시 일경비밀정보도 『…이 소요를 유발시킨 데에는 상해거주 불령선인들의 선동에 크게 힘입었다』고 쓰고 있다) 상해임정도 수립되었고 5월에는 손문등 중국광동정부로부터 국가승인도 얻어내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부수립후 고질적 파벌의식과 지방색·출세욕 등이 뒤엉켜 1921년4월 이후 임정은 혼란에 빠져들었다.선생은 병원에 누워 의정원 회의참석을 거부했다.4월10일 소위 「재미파」이승만이 내각수반이 되었다. 이듬해까지 병석에 누운 선생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국인들이 단합되지 않는 것을 통탄하면서 25일동안이나 불식·불언·불약을 고집했다. 이튿날인 1922년9월25일.선생은 마지막 남은 숨을 호흡단절법으로 끊고 이승을 버렸다. 『정부…정부…』 희미한 소리가 숨을 거두는 그의 목에서 새어나왔다.단식 25일만에 처음 나온 말은 선생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그 말은 7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도 남아있을 유언이 아닐는지…. ◎독립운동에 외교적으로 크게 공헌/역사적 평가/신승하 고려대교수·동양사 예관 신규식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상 알려져있는 것보다 숨겨져있는 공이 많은 분이다.특히 중국에서 한국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고 또한 중국정부나 중국인들로부터 중국에서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분이다.그런데 불행하게도 1922년 43세의 젊은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분이다. 구한말 애국계몽운동때부터 구국자강을 위하여 실업과 교육밖에 없다는 신념아래 학교를 세우고 또한 우리나라에선 제일 먼저 실업전문잡지인 「공업계」를 발간하였다.그러나 나라를 잃게 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에서 중국혁명당 인사들과 접촉하고 동맹회에 가입하였다.그리고 중국이 잘되어야만 우리나라도 잘될수 있다는 생각아래 그들과 함께 신해혁명에 참가하여 이후 중국 혁명당인들과의 교류가 더욱 밀접하게 될 수 있었다. 그는 인재의 양성이 절실하다 보고 우리 젊은이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웠으며 또한 중국인의 무관학교는 물론 일반 학교에도 입학을 주선하고 심지어 외국유학까지 보냈다.그리고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고 선전하기 위하여 진단이란 잡지를 상해에서 발간하였다. 1921년에 손문이 광주에서 광동호법정부를 수립하자 한국임시정부 의정원은 그를 전권사절로 파견하였다.그리하여 한국임시정부가 호법정부의 승인을 받고 중국의 각 군사학교에서 한국학생의 수용을 허가받아 이후 황포군관학교 광동대학 등에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입학되었으며 이들은 독립운동의 기간이 되었다. 따라서 신규식의 평가는 단순한 독립운동의 차원에서 할 것이 아니라 한걸음 앞서 독립운동을 위한 또 이를 전개하는 과정가운데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과 공헌이 있었음을 높게 사야 할 것이다.
  • “범여권결속으로 정권 재창출”/노 대통령 민자당총재 사퇴선언/요지

    ◎21세기엔 위대한 한민족시대 열고/「6·29」로 열린 민주화 더욱 발전시켜야 오늘로서 나는 대통령 임기를 꼭 반년 남겨놓고 있습니다. 단임제 대통령으로서 남은 임기동안 국정의 마무리에 보다 충실하고 우리 당의 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제 내가 민주자유당의 총재직을 물러나야할 때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당은 대통령후보인 김영삼 동지가 총재직을 맡아서 이끌어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삼동지를 중심으로 당의 전열을 정비하고,범여권이 더욱 결속하여 일사불란한 당 지도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두어 민자당 정권을 재창출하고 나라와 국민의 밝은 미래를 열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세기가 다가기 전에 통일된 선진민주복지국가를 건설하여 다가오는 21세기 「위대한 한민주의 시대」를 열어야 하는 것은 우리 민주자유당에 주어진 엄숙한 소명입니다. 지난 5년동안 참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정치와 권력,정부와 국민과의 관계는 물론 사회 각 부문에서 가히혁명적이라 할 만큼 엄청난 질적·양적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내가 당시 민정당 총재로 선출되었을 때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극도의 사회적 혼란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정치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남북관계·국민의식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지금 우리에게는 정권의 정통성 시비도,해묵은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구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권위주의 통치가 청산되고 정치와 사회·경제와 문화 모든 부문에 자유와 자율의 활기가 넘치고 있습니다.민주화가 우리에게준 무형의 자산,보이지 않는 혜택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던 것,북방정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전세계를 우리의 활동무대로 만들 수 있었던 것,그리고 대북관계에서 우리가 확고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 모두가 우리가 민주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세기의 단절을 극복하고 전통적 우호의 맥을 다시 이은 한중수교도 역사속에 잃은 것을 되찾은 것입니다.나는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이만큼 바꾸어 놓고 집권당의 총재직을 물러나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합니다.그러나 앞으로의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이제 통일문제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주었졌으며,한중수교는 우리의 국제적인 책임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습니다.한중수교는 우리가 1세기 만에 다시 4강과의 관계를 정상화 했음을 뜻합니다.우리가 내부적으로 잘 결속되어 있고,힘이 있을때 우리 주변에 4강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일 수 있습니다. 나는 평소 국민의 당으로 새로 출범한 민자당의 차기 대통령후보는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자유경선으로 뽑는 것이 「6·29민주화 선언」을 명예롭게 마무리 짓는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지난 5월19일 우리는 헌정사상 집권당으로서는 처음으로 자유경선에 의해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을 우리 당의 대통령후보로 선출했습니다.경선과정에서 다소의 흠은 있었으나 그 정치적·역사적 의의가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나는 자유경선방식에 의한 우리당 대통령 후보의 선출이 우리 정당 민주주의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믿습니다.이 전통은 앞으로 더욱 발전할 것이며 결코 후퇴하는 일이 없을 것으로 확신합니다.우리 당이 대통령 후보로 뽑은 김영삼후보는 민주적 지도력을 바탕으로 「책임있는 정치」를 펴나갈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입니다.평생을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온 김영삼후보가 6·29선언으로 열린 민주주의 시대를 이어 받아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 말로 역사의 순리라고 본인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정당은 뜻과 이념을 같이 하는 동지들의 결합체입니다.따라서 우리 당은 상호 신뢰와 존경속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며 당원들의 굳건한 정서적 유대속에서 국민을 위한 희망의 정치를 산출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당원 상호간 신뢰가 무너졌을 때,정당으로서의 존재 가치와 생명력을 가질 수 없으며,만의 하나라도 당원 상호간 질시의 감정이 섞여 있다면,스스로 국민의 지지를 포기하는 결과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 총재직을 이양하는 엄숙한 이 자리에서 당원간의 신뢰형성이 정권 재창출의 원동력이며 민주적 정당운영이 정치발전의 기본임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바입니다.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한가지 당부할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작금의 정치상황이 단체장선거 연기문제로 국회가 파행에 빠지고,입법부가 8개월이 넘게 부재상태에 빠진 것입니다.이는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정부는 단체장선거 연기와 관련하여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으나 이것이 정치세력의 정략차원에서 이용되어 심의가 지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따라서,더 이상 국회가 신성한 직무를 유기할 때 국민들은 결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코자 합니다.그동안 내가 당 총재직을 수행하는데 지도편달해 주신 여러분과 2백만 당원 동지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 제주/태평양 제일 관광지 도약/2천년대엔 한해 2조3천억 수입

    ◎연 5백80만 유치… 1인소득 1천만원/「개발법」정비 발맞춰 공항·도로 대확충/총예산 2,494억 투입,항·포구 개발… 주택보급률 95%로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는 제주가 태평양 제일의 관광명소로 발돋움 하기위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해말에 제정된 제주개발특별법을 근간으로 오는 8월말쯤 이 법 시행령이 제정 공포되면,이어 내년 7월까지 특별법에 따른 종합개발계획을 최종 마무리해 제주의 산업·교통·환경분야등을 모두 망라한 지역개발사업과 관광개발사업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이들 사업이 끝나는 2001년에는 연간 5백8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게돼 관광수입은 무려 2조3천억원에 달하게 되며 이밖에 주택보급률은 95%,1인당 도민소득은 1천1백만원을 돌파하게 된다. ○지역 균형발전 기대 정부가 현재 마련한 제주개발특별법의 시행령은 그 기조가 명실상부한 제주도민을 위한 법이 되도록하고 이를 위해 시행령에 도민 의견을 최대한 수렴,반영했으며 개발계획의 수립을 위한 용역도 기존의 중앙기관 의뢰방식에서 탈피,제주대학교에 맡기고 있다. 도는 또 각종 개발사업을 원활히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농어촌지역을 망라한 주민숙원사업과 환경보전사업을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판단,올해부터 ▲농로 확·포장사업과 ▲항·포구및 어항 개발사업 ▲어장 정화사업 ▲환경오염방지시설 확충사업등을 4대 특수 역점사업으로 정해 추진하고 있다. 오는 2000년까지 2천4백94억원의 예산이 투입될 이들 사업중 1천4백59억원이 소요될 농로 확·포장 사업은 기존농로 2천5백7㎞중 이미 포장된 6백61㎞를 제외한 나머지 1천94㎞를 2차선 규모로 확·포장하는 것으로,이 사업이 완료되면 현재 26% 수준에 머물고 있는 도로포장률이 70%로 높아져 농업생산성 제고는 물론 지역간 균형발전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우루과이라운드 협상등에 따른 농산물수입개방조치 등으로 각종 대체작목이 권장되면서 작목별 생산지 공동출하로 인한 농로이용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여서 이같은 농로 확·포장사업은 생산농산물 수송체계에도 일대 혁신을 이룰 것으로보인다. 도는 1단계 사업기간인 올해에는 이용도가 높은 주간선농로 2백5㎞를 포장,포장률을 34%로 높이고 2단계 기간인 93∼97년에는 산간·오지에 분포된 소득기반농로 7백6㎞를 중점적으로 확·포장,포장률을 63%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다.또 마지막 3단계 사업기간인 98∼2000년에는 나머지 1백83㎞를 포장,계획기간중의 농로포장사업을 완료해 거의 모든 농로를 일주도로,동·서부산업도로,중산간도로 등과 연결짓게할 계획이다. 4백95억원이 투자되는 항·포구및 어항개발사업은 태풍피해에 따른 어선안전과 어촌정주기반을 조성,어민소득증대에 기여하기 위한 것으로 92년부터 96년까지를 사업기간으로 잡고 있다. ○어장 정화사업 박차 이에따라 도는 사업기간중 우도·조천·차귀·예초·가파·사계·대포·세화·표선항 등 9개 2종항과 제주시 화북항등 91개 소규모어항을 대상으로 태풍피해를 최소화 하기위한 연 8천7백m에 달하는 방파제·물양장 등 기본시설과 내항준설사업등을 완벽히 시공,항·포구로서의 시설완성비율을 최고 95%까지 높여 1천5백여척에 이르는 어선안전과 2만5천여 어민들의 어업활동및 소득증대를 도모할 방침이다. 올해부터 96년까지 20억원의 예산을 들여 5개년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어장정화 사업은 도내 해안변과 공동어장 연면적 1만5천◎를 대상으로한 산업폐기물과 생활쓰레기 없애기 사업으로 범도민 자연보호운동과 연계해 추진하게 된다. 도가 어장정화 사업을 4대 특수역점사업에 포함시킨것은 최근 각종 양식장 증가와 생활폐수 유입등으로 제주연안의 수질오염상태가 2급수 이하로 떨어진데다 해변 행락객과 낚시꾼들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어장환경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기때문이다. 이와함께 제주항로를 이용하는 일부 유조선과 어선들에서 흘러나오는 도는 이에따라 오는 96년까지 5만t 이상의 연안퇴적물과 쓰레기등을 수거한다는 방침아래 매년 3억원이상의 청소비를 들여 공동어장 정화는 관할 어촌계가 맡도록 하고 해안변은 해당 마을이 정화주체가 되어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펼치고 있다. ○오염방지 시설 확충 그러나 이같은 어장정화사업도 육상의 환경오염 방지시설이 확충되지 않고서는 실효를 거둘 수 없기때문에 도는 수질오염예방,폐기물 관리,대기및 소음관리등 18개 환경오염 방지시설의 확충사업에 1천95억원을 투자,오는 2000년까지 연차사업으로 추진해 해안과 하천은 물론 지하수·토양등에 대한 오염접근을 사전에 막기로 했다. 이를위해 지난 87년부터 공사에 착수해 현재 73%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는 제주시 도두동의 제주시하수종말처리장 1단계공사는 93년까지 완공,하루 6만t의 하수를 처리하도록 하고,이어 계속사업으로 94년 65억원,95년 87억원,96년에 93억원을 각각 투입,하수관로 2백92㎞와 노후하수관 12.6㎞를 개량키로 했다. 이밖에도 서귀포시 보목동에 건설할 예정인 서귀포시 하수종말처리장도 94년까지 3백15억원을 들여 완공,하루 3만5천t의 하수처리능력을 갖추도록하고 현재 80%의 공사진척을 보이고있는 남제주군 대정농공단지 폐수종말처리장도 올해안에 완공시켜 내년부터는 하루 3만5천t의 폐수를 처리할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자연경관 보존·무형자원 계승 병행/우근민 제주도지사의 청사진/1·3차 산업 연계 대단위 개발도 추진(인터뷰) 『제주도개발특별법 시행령이 제정,공포되고 앞으로 종합개발계획에 따른 장·단기 사업들이 마무리 되면 제주는 「세계속의 제주」로 부상할게 확실합니다』 우근민제주지사는 현재 정부에서 마련한 제주도개발특별법 시행령에 맞춰 제주도종합개발계획 수립에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사업추진은 오는 2001년에 도민 1인당 연간소득을 1천1백만원으로 끌어올려 복지제주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대특수시책 사업을 추진하게된 배경은. ▲제주개발특별법제정으로 올해부터 추진할 계획이던 제2차 종합개발계획이 사실상 폐기됐습니다.이에따라 특별법 시행에 앞서 지역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사항과 요구사항,특히 1차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농어촌주민들의 해묵은 숙원사항들을 해결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해 추진하게 된 것입니다. ­제주도는 눈에 보이는 자원을 개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형자원의 전승작업도 중요하다고보는데. ▲제주 고유의도둑·대문·거지없다는 「삼무정신」과 저축을 강조한 「▦냥정신」,협동을 바탕으로 한 「수눌음 정신」등은 계속 유지 보전시켜 제주발전의 지표로 삼아나갈 생각입니다.이와 함께 동·식물 등 천연자원 보존과 민족·문화유적들에 대한 발굴보호 전승사업에도 역점을 둬 인위적인 각종 개발사업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제주도의 장래는 관광개발사업의 방향과 질·무게 등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앞으로의 발전구상은. ▲제주도의 지역여건으로 볼때 1·3차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97%를 차지하고 있고,가공업 등 2차산업 유치가 곤란하며,그나마 1차산업도 기존방식으로는 개방화 시대의 경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관광분야의 개발이 상대적으로 요구되고 있습니다.따라서 자연경관과 환경을 관광자원화 하면서 국제수준의 시간단축형 관광수용시설을 확충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이와 함께 1차산업과 3차산업을 연계시킨 대단위 개발사업도 요긴하다고 생각합니다.제주도개발특별법 운용도 이러한 점에 유념해각종 개발사업에 적용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2000년대 제주의 위상과 국내·국제적으로 부여될 역할은. ▲2000년까지 공항·항만·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에 획기적인 투자가 이뤄져 연간 5백80만명의 관광객 수용이 가능해지고 이에 따라 도민 1인당 연간소득도 전국 최고수준인 1천1백만원이상으로 향상될 것이 자명합니다.또 통일을 전제로 할 때 금강산지역과의 관광객 유치경쟁이 예상되며 국제화·개방화 추세에 따라 세계유수의 관광지와도 겨뤄야 하는 입장이 되겠지요.그러나 제주는 제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인문·지리적 환경이 있기 때문에 우려할 바가 못됩니다.오히려 공해없는 제주바다,4계절이 뚜렷한 한라산,산소단백질로 일컬어지는 제주바람을 보고 즐기기 위해 더욱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 두륜산/천년고목·운무 어우러진 선경

    ◎해남서 12㎞… 정상까진 4시간/대흥사 둘러싼 동백군락 “장관”/전통다도 명맥잇는 일기암도 가볼만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엔 올망졸망한 섬들이 표주박처럼 떠있고 아스라이 이어지는 수평선 너머로 제주 한나산이 희미하게 보여 한 폭의 명화를 감상하는 듯하다.구름이 끼어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계곡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안개구름이 산세와 어우러져 선경을 연출해 낸다. 오우가와 어부사시사로 유명한 고산 윤선도와 임진왜란 때 승병대장으로 호국에 앞장섰던 서산대사의 발자취가 서린 전남 해남 두륜산 정상(7백3m)­. 산정으로 오르는 길목마다 천년을 넘는 고목과 5m도 넘어보이는 해묵은 동백나무 군락이 산행을 반긴다.그중에서도 금방이라도 화사함을 드러내 보일 듯이 꽃망울을 한껏 부풀리고 있는 동백꽃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남 해남읍에서 12㎞ 떨어진 곳에 자리한 전남도립공원 두륜산은 대흥사를 품에 안고 있어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해남읍에서 남동쪽으로 자동차로 20분가량 달리다보면 대흥사입구인 장춘리에 닿고 이어 대흥사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제일장춘교에서 대흥사앞에 이르는 2·5㎞는 대낮에도 컴컴할 정도로 온통 거목의 긴 터널을 이루어 그야말로 장관이다.고목으로 우거진 사잇길을 따라 해탈문을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이 천년풍상을 견디어 온 고찰의 풍모를 대변한다. 두륜산 정상까지는 두 길이 나 있다.하나는 진불암을 거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북암을 먼저 거치는 코스다.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4시간 가량이면 정상까지 갔다올 수 있다.오르막길에는 천연바위로 이뤄진 구름다리가 가로질러 하늘에 오르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하산은 노승봉,가련봉을 거쳐 북암쪽을 택할 수도 있으나 길이 험해 만일암터길로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다.만일암터에는 천년 묵은 거목이 빈 터를 지키며 그날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하산길에 천연기념물 173호인 왕벌나무와 동백나무로 둘러싸인 대흥사를 관람하는 것은 두륜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신라 진흥왕 5년(서기 544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대흥사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보전·보련각·천신암·일주문 등 34개 건물과 보물 4점 등이 보는 이를 압도하며 가람의 풍채를 자랑하고 있다. 또 이웃 표충사에는 서산대사가 생전에 입었던 금란가사를 비롯,밥그릇으로 사용했던 옥발 3점,칠보염주 1점,신발 2켤레,서산대사 친필인 정선사가록,임금이 내린 교지,도끼,창,승군단표지물,신호용 나팔 등이 전시되어 대사의 큰 뜻을 일러준다. 이와 함께 조선조말 초의스님이 기거하며 전통다도의 명맥을 이어온 일기암도 꼭 가볼 만한 곳이다.귀로에는 조선시대 유명한 화가 공재 윤두서 자화상과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등 유물 2천5백여점을 보관 전시중인 고산유적지도 돌아볼 수 있다.특히 이 유물관 뒷산은 천연기념물 241호인 비자나무숲으로 덮여있다.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우리 나라 육지 땅끝인 토말과 명량대첩지 우수영을 돌아보고 해남읍 천일식당(전화 0634­536­4001)에서 한식을 맛보는 것도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서울에서 대흥사를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비아 인터체인지에서 송정∼나주∼영암∼성전∼옥천∼해남∼장춘등을 잇는 코스가 지름길이다.
  • “국민 마음놓고 밤거리 다닐때까지/「범죄와의 전쟁」 계속”

    ◎노 대통령,경찰의 날 치사서 강조/「112순찰제도」 전국 확대/경찰 근무여건·처우 개선에 최선 노태우대통령은 21일 『우리나라의 치안상태는 구미선진국 어느 나라보다도 좋은 편이나 국민 모두가 가정과 일터에서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 할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범죄와의 전쟁은 국민 모두가 마음놓고 밤거리를 다닐 수 있을 때가지 계속될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46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치사를 통해 『정부는 범죄와 폭력을 소탕하고 불법·무질서를 다스리는데 경찰의 치안역량이 더욱 효율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112순찰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첨단과학수사장비와 방범수사인력을 증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국민 모두가 우리의 범죄유발요인을 없애고 범죄의 감시자가 될 때 범죄는 발붙일 곳을 잃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들의 청소년이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도록 사회환경을 개선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 경찰은 달라진 새모습을 국민속에서 실증하며 정예화·전문화·과학화를 지속적을 추진하여 선진경찰을 구현해야 한다』면서 『정부는 이와같은 경찰의 노력을 적극 뒷받침할 것이며 경찰관의 근무여건과 처우를 개선하는데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 대통령 경찰의 날 치사 광복과 함께 창설된 우리 경찰은 나라와 국민의 안녕을 지켜 온 보루였습니다. 지난 4∼5년간 민주주의를 여는 과정에서 빚어진 전환기적 상황을 극복하고 오늘의 안정된 사회를 이루는데 경찰은 힘겹고 고된 일을 다해왔습니다. 올해 경찰청이 출범함으로써 이제 21세기 선진민주경찰로 발전할 확고한 기틀이 이루어졌습니다.이는 우리 경찰이 그동안 나라와 국민을 위해 밤낮없이 일해온 결실인 것입니다. 우리 경찰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새로운 상황을 맞아 진정한 국민의 경찰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경찰은 지난날 권위주의의 낡은 사고와 폐습에서 벗어나 부단한 자기혁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지난 1년간 「범죄와의 전쟁」을불철주야 치르면서 국민의 편안한 삶을 위해 헌신하는 경찰의 참모습이 국민의 마음속에 투영되고 있습니다. 우리 경찰은 달라진 새모습을 국민속에서 실증하며 정예화·전문화·과학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선진경찰을 구현해야 합니다.정부는 이와같이 경찰의 노력을 적극 뒷받침할 것이며 경찰관의 근무여건과 처우를 개선하는데에도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난 1년사이 우리 사회에는 범죄와 폭력이 크게 줄었습니다.국민을 불안케하던 강력 흉악범과 가정파괴,인신매매,유괴범등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전국의 폭력조직도 뿌리 뽑혀가고 있습니다. 불법행위와 무질서도 잡혀가고 있습니다. 해묵은 학원시위와 폭력분규도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법치질서가 바로 서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경찰관 여러분이 쏟은 땀과 국민의 자율과 참여에 의해 이룬 보람입니다.우리나라의 치안상태는 구미선진국 어느 나라보다도 좋은 편입니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가정과 일터에서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준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국민 모두가 마음놓고 밤거리를 다닐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범죄와 폭력을 소탕하고 불법·무질서를 다스리는데 경찰의 치안역량이 더욱 효율적으로 발휘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112순찰제도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고 첨단과학 수사장비와 방범 수사인력을 증강하여 범죄를 제압하는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들의 청소년이 범죄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도록 사회환경을 개선하는데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범죄의 두려움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참여입니다. 국민 모두가 우리사회의 범죄유발요인을 없애고 범죄의 감시자가 될 때 범죄는 발 붙일 곳을 잃게 될 것입니다. 경찰은 국민을 위한 국민의 경찰로서 국민과 호흡을 함께 할 때 그 사명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전국의 경찰관 모두가 살기좋은 나라,21세기 영광된 나라를 창조하는 역군이라는 긍지와 책임감을 갖고 민주경찰로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해줄 것을 당부합니다. ◎19명에 훈장 수여제46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이 21일 상오 10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노태우대통령을 비롯,이상연내무부장관·김원환경찰청장및 경찰관 4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경찰청 독립이후 처음 맞는 이날 기념식에서 김영두중앙경찰학교장이 홍조근정훈장을 받는등 19명이 훈장을 받은 것을 비롯,모두 1백25명이 훈·포장및 대통령표창을,5개 경찰단체가 부대표창을 받았다. 이와 함께 각 시·도지방경찰청에서 올해 무궁화봉사왕으로 선발된 서울 영등포경찰서 유영선순경등 14명이 경장으로 1계급씩 특진했다.
  • 외언내언

    신장 1백68㎝의 일본인답지 않은 당당한 체구. 회갑을 넘긴 64세의 할머니이면서도 군고구마를 좋아하고 「엔카」라는 대중가요를 즐겨 부르며 프로야구광이기도 하다.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없는 독신주의 여성정치인. 69년 정치입문 이후 8선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 제1야당인 사회당 위원장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의 프로필이다. ◆86년 사회당 위원장에 선출되었을 때 일본 사람들은 「일본판 대처(영국의 여걸정치인)」의 출현에 은근한 기대를 걸기도 했었다. 그런 기대에 호응하듯 「마돈나선풍」이라는 「도이붐」을 타면서 89년의 참의원 선거를 여·야 역전의 대승으로 이끄는 기세를 올리고 90년 중의원선거에서도 승리하는 등 「일본판 대처」의 자리를 굳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의 성공은 온갖 스캔들에 인기없는 소비세까지 들고 나온 집권 자민당의 실정에 보다 큰 덕을 본 것. 일본국민이 원하는 사회당의 개혁엔 제대로 손을 대지 못했다. 세계 환경의 혁명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비무장중립론의 고수,자위대 부인,핵무기 반대 등 해묵은 노선을고집하는 사회당의 만년 야당체질 개혁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던 것. ◆대한 정책모순의 시정에도 나서는 듯했으나 지지부진. 89년말 사회당 최초의 공식 방한단을 파견하고 노 대통령 방일시 회담을 갖는 등 변화를 보였으나 한국 및 한일 기본조약 공식승인은 아직도 유보상태. 핵을 그렇게 반대하면서도 북한의 핵사찰 거부에 대해선 일언반구가 없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사회당과 도이 위원장의 무력에 대한 새로운 실망이 지난 4월 일본통일지방선거에서 의석 98석 감소라는 사회당 참패로 나타난 것. 중의원의석 85석을 잃고 물러난 이시바시 위원장의 뒤를 이은 그녀도 21일 마침내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을 발표. 금권과 파벌정치의 비판이 요란해도 책임정치 하나만은 철저한 일본 정치풍토가 부럽다고나 할까. 광역지방선거에 대패한 한국야당들의 행동거지가 궁금해진다.
  • 호미도 날이언마라난…/송정숙 본사 논설위원(서울칼럼)

    호매도 날이언마라난 낟가티 들리도 업스니이다 아바님도 어이어신 마라난 어마님가티 괴시리 업세라 아소 님하 어마님가티 괴시리 업세라 5월에 우리는 「사모곡」을 들었다. 『호미도 날이 있지만 낫의 날 만큼 들지 못하듯,아버님도 어버이이지만 그 사랑이 어머님 만하지는 못하다』는 내용을 지닌 이 고려가요를 우리는 고교시절의 고전문학 교과서 같은 곳에서 배워 시처럼 외긴 했었다. 「아소 님아,어머님같이…」라는 마지막 구절의 은은하고 애틋한 맛이 오랜 여운을 남기게 하던 고전이다. 이 가사에 사모곡 악보인 시용향약보를 원본 그대로 사용하여 국립국악원 연주단이 연주하고 노래했다. 가사와 악보가 완벽하게 전해오는 보물 제551호의 이 노래가 우리에게 「최초」로 들려지게 된 일이 미심쩍고 신기하다. 우리에게는 구슬이 서 말은커녕 삼천 말은 있지만 꿰지 못해서 보배가 못된 채 이리저리 구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서러운 마음까지 들게 하는 노래다. 사모곡이 처음 연주된 자리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인 사모곡상이 수여된 국립극장 소극장이었다. 이 상은 그 동안 숱하게 있어온 상과는 그 격이나 모양새가 달랐다. 부상도 대나무 마디 무늬로 세공한 비녀인 순금의 「죽절잠」이다. 2백만원어치 상당의 금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있어온 아름다운 것을 박물관의 유리상자 속에서 이끌어내어 생활의 볕쐬기를 하는 방법으로도 이 상품 아이디어는 좋아 보인다. 시상식장의 무대를 사모곡의 옛 악보 벽지로 장식하고 돗자리 깐 무대에서 옥색주의를 입은 창사가 『호미도 날이언마라난…』을 읊어내리는 그 광경은 아주 괜찮았다. 상 타는 자리가 소요스럽고 동도 서도 아닌 얼치기가 되어 수상자를 공연히 구차하게 만들고 하객은 하객대로 부담스러워 고역스럽게 하는 요즘의 급조된 시상식 습속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우선 이 시상식은 좋았다.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우리가 지녀온 전통의 보옥들을 잘 살려 보배로 꿰어낸 성과 때문이라는 것이 반가웠다. 『풍속을 너무 푸대접하면 그 앙갚음이 우리 자식에게로 돌아간다』고 경고한 사람(듀켄)이 있다.우리는 어쩐지 지금 그런 징후를 느끼고 있다. 우리가 지녀온 좋은 것들을 헛간에,창고 선반에,묵은 책갈피 속에 쓰레기처럼 팽개치고 돌아보지 않아온 「푸대접」의 앙갚음을,품위없고 성급하고 거칠고 포악한 젊은이들에 의해 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상이 만들어진 일이나,처음 상이 피아니스트 신수정씨 모녀로 정해진 일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말참견」에는 용훼할 생각이 없다. 다만 시상의 격식을 또 하나의 창작삼아 공들인 노력은 여간 반갑지 않다. 검둥개 멱감듯이 대강대강 해치우는 풍조가 너무 만연해서 진품에 접하기 어렵고 공들이고 정성들이는 행동이 어리석은 것처럼 여겨지게까지 된 오늘의 세태가 걱정스러운 우리에게는 이런 노력 자체가 반갑고 대견하다. 시국의 돌개바람이 5월 하늘을 뒤덮어 훈향도 희망의 기운도 앗겨버린 듯했지만 그래도 한편에서 문화를 가꾸는 발걸음은 이렇게 멈추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 시국의 돌개바람이 아무리 거칠고 집요해도 그것은 지나는 바람이다. 땅에 갈아놓은 문화의 싹이 다치지만 않는다면그것이 남는다. 5월에 꽤 자라난 문화의 싹으로는 도서상품권,연극의 「사랑티켓」 같은 것도 있다. 도서상품권에 대해서는 문화를 맡은 주무장관이 『이것만은 잘한 일이라고 인정받을 줄 알았는데 터무니없는 모함까지 받았다』며 노여워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일이 있다. 그 말을 들었을 때,앞뒤없이 터져나온 것은 실소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재능과 자존심 때문에 자애가 승하고 폄하는 말에 병적으로 민감한 성정의 자연인이 관사라고 하는,특히 「구렁이 기질」이기를 요하는 고급관리의 직함에 자리했을 때 나타남 직한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올해를 「연극영화의 해」로 정하고 갖가지 일들을 열에 떠서 꾸미는 동안에도 「공치사」대신 노여움을 자극하는 일만 많이 생겼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그런 것에 궤념하지 않고 밭갈고 씨뿌리며 수걱수걱 일해놓으면 싹은 돋아 정직하게 자란다. 도서상품권이 당초의 예상을 뛰어 넘는 성과로 호응이 확대되고 「사랑티켓」이 보름 만에 동이 나 매진되는 일 따위가 그런 것을 증거한다. 그 물증만큼 도서인구는 늘어나고 연극 붐에 기여할 것이다. 기업을 끌어들여 연극표 값을 나누어 물게 한 사랑티켓은 좀더 늘리기를 원하는 사람도 많다. 서초동에는 「예술의 전당」이 있다. 그 언저리의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주변이 그런대로 품위있어 문화예술의 냄새가 그득하다. 묵향 풍기는 서예전도 이어지고 홀로그라피 같이 앞서가는 현대미술도 만난다. 음악당에서는 연주가 끊이지 않고 국악당도 이웃에 있다. 어린이랜드에 자가용을 이끌고 갔다가 가족이 지쳐 돌아오는 데 드는 비용 만큼만 투자하면 두고두고 즐길 수 있는 작은 그림을 장만할 수도 있다. 이런 것 모두가 우리의 성에 꽉 차는 것은 못될지 몰라도 오늘의 우리가 쌓아놓은 문화의 축적이다. 잘 꿰어서 가꾸면 보배가 되어 줄축적이다. 시위 연기가 초연처럼 가득해 보이는 그 한겹 겉껍질 밑에서 이만큼이라도 자라고 있는 싹들이 우리에게는 위로가 된다. 멀찌감치 팔짱을 끼고서 흰눈을 뜨고 지켜보는 비판적 지식인에 주눅들지 말고 잘못된 것은 고치라고 주장하고 잘된 것은 앞질러 누리노라면 심어진 나무는 자랄 것이다. 「건배!」대신 우리말로 「지화자!」라고 하자는 제의도 문화정책을 관장하는 부서에서 나왔다. 처음 듣기에는 어쩐지 스멀스멀해서 입에 담기가 어색하다. 그러나 「위하여!」라는 말도 어쩐지 군사문화 냄새가 난다고 싫다는 사람이 많았었다. 그래도 여러 번 해보니까 「위하여!」도 쉽게 동호할 수 있었다. 나라의 태평함과 국민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뜻이 담겼다는 「지화자」도 부르다 보면 익숙해질지 모르겠다. 잡다한 것까지 들춰내면서 「문화운동」의 열에 떠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선한 화답이 좋은 성과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런 뜻에서 문화운동을 한 번 더 부추겨본다. 지화자!
  • 「두산」이 갚게 해야 한다/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페놀의 망령이 나라 안을 분탕질치고 다닌다. 무신경의 틈사귀를 뚫고 새어나와 독사의 혀끝같은 독기로 낙동강을 타고 흘러 언저리 사람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다. 한 번만으로도 모자란지 재조업한지 몇 날도 못가서 또다시 기어나와 같은 물줄기를 타고 독 품은 파충류처럼 달려갔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가까스로 악몽에서 수습되려고 노력하던 낙동강 언저리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안쓰럽고 가슴아프다. 외눈 하나 깜박이는 듯한 소홀함에도 순식간에 1천만명쯤의 선량한 사람들을 공황에 몰아넣는 이 위험하고 사악한 물질을 「두산」은 무엇 때문에 끼고 사는가. 꼭 돈벌이만을 위해서 그처럼 혼이 나고도 그걸 끼고 돌다가 마침내 그룹 총수가 자기 조상이 창업한 회사에서 손을 들고 마는 신세가 되게 했는가. 그렇다면 차라리 이 몸서리나는 독물을 영영 고체로 동결시켜 나라 먼 곳으로 내동댕이쳐버릴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이쯤에 이르면 요괴처럼 킬킬거리며 비아냥거리는 「페놀망령」의 소리가 들린다. 『내가 없으면 누가 아쉬운데…?』 요괴임이 분명하지만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요괴가 있다. 페놀도 그런 것이다. 이로운 기능만 살려쓰고 요괴 노릇은 못하게 몇 겹이라도 싸 바르고,24시간 감시하여 밖으로 빠져나가 사람에게 해꼬지하는 독물이 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것 못했던 것이다. 좁은 땅에 사람은 밀집되어 가만히만 있어도 공해물질이 탄생될 판인 터에 살면서 변변한 자원도 없는 우리나라는 국토의 전지역이 공장화해야 먹고 살 형편에 놓여 있다. 따라서 모든 기업이 현실적이거나 잠재적으로 공해업체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어느 기업의 갈라진 벽 틈을 뚫고 어떤 공해의 요괴가 빠져나와 우리를 향해 공포의 살을 쏘아올 것인지 알 수 없다. 페놀은 우리에게 그걸 경고하는 척후병처럼 찾아왔다. 공해요괴를 어설프고 엉성한 우리에 가둬놓은 채 별 감시도 하지 않고 생산력만 독촉하는 기업이 거의 다이다시피한 세월을 우리는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는 안 되게 되었다. 「페놀」의 분탕질이 그걸 적나라하게 증명했다. 몇 겹 옹벽을 쳐서라도실오라기 만큼도 새나오지 못하게 해야만 기업이 살아남는다. 기업의 그런 기능을 나라가 감사하지 못하면 정권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그와 함께 이런 일도 생각해보아야 하게 되었다. 공해에 대한 지난날의 무신경이 우리 체질에 심어놓은 「패닉증후군」이 있으며 이 증후군은 분명히 치유되어야 할 증세라는 사실이다. 분노의 외침만 증폭시킨 결과 속죄양만을 제단에 올리고 사육제살인놀이의 뒤끝 같은 결과를 부를 수 있는 이런 증후는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작 진상은 가려지고 앞의 경험이 다음을 위한 교훈으로 공헌하는 기능을 잃기 때문이다. 페놀범 「두산」의 경우에도 그 증후군은 나타났다. 인민재판성 성토에 공황이 먼저 휩쓸어 사려있는 결과를 추출하는 데 방해가 되게 했다. 「벌」이 「죄」와 합당하지 못하면 원한을 축적시킨다. 오래 묵은 공해피해의 한을 지닌 대중을 자극하여 복수심에 불타게 하고 그 한풀이에만 취하게 하는 이런 대응도 극복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페놀요괴를 풀어놓아우리 사회를 갈기갈기 상처나게 한 「두산」에게 살기등등한 「효수의 밧줄」을 들이대는 사람도 많았다. 그만한 분노를 지나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생각해보면 이런 측면도 있다. 첫번 실수로 그룹 전체가 얼이 쑥 빠진 상태였을 수도 있다. 야단을 심하게 맞은 아이들이 헛손질·헛발질을 하여 또다른 일을 저지르듯이 두 번째 저지른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능력있고 성숙한 사람은 위기가 닥쳐올 때 화불단행함을 생각한다. 두 번째 유출 때 어쨌든 재빨리 신고부터 하고 조치를 하려고 애쓴 흔적이 정상을 짐작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인 구우들이 「왕초」라는 별명을 붙여 드렸던 고 장기영 선생을 나는 개인적으로 많이 존경한다. 그 분이 자신의 회사에서 실수로 회사에 손해를 입힌 부하사원에게 하던 말을 기억한다. 책임을 느끼고 사표를 내러 간 부하사원에게 『…일을 저질러서 회사에 손해를 입혔으면 열심히 일해서 그걸 벌충해주는 것이 갚는 길이지 당신이 나가버리면 나는 어디서 그 손해를 메웁니까. …그 손해 메울 때까지 나갈 수 없어요…』 하고 말했었다. 「두산」을 없애는 일은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상처를 보상하게 하는 일을 잃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페놀에 의한 물리적 피해에도 분노를 느끼지만 더욱 속상하고 아린 것은 이 땅에서 유일한 「백년기업」이 이렇게 우리를 실망시켰다는 정신적 피해 때문이기도 하다. 독과점 품목으로만 재미를 챙겨온 기업이라고 폄하는 소리도 높지만 정치적 특혜 속에 급성장한 졸부의 혐의를 지닌 대기업에게 전열을 내주고 소리없이 탄탄하게 살아남은 그 생존관리능력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업체의 최소한의 시장점유율만은 잠식하지 않는 것을 기업윤리로 삼았다는 금도도 인정하고 싶었다. 최근에 「민물고기 할아버지」인 원로 생물학자 한 분을 만나 뵌 일이 있다. 그 분 말씀으로는 『두렵고 걱정이 돼서 그렇겠지만 온통 난리만 칠 일이 아니지…. 노력하면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어요. 우리 환경이 손쓸 수 없을 만큼 악화된 건 아니어요…. 우리가 조옴 현명한 국민인가…. 소동은 그만 멈추고 세워놓은 대로 착실히 노력해가면 돼…』 두 번째 다가온 사고의 파랑 앞에 망연자실했다는 기업의 총수가 물러가고 전문경영인에게 회사운영을 내맡긴 「두산」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노생물학자의 희망적인 현답대로 정신차리고 일어나 지은 과오를 책임지고 바로잡으라고 이르고 싶다. 그렇게 하여 공해차단에서도 모범적인 명예로운 재생을 회복하는 일이 유일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견디느라고 너무 애써준 낙동강 언저리의 사람들과 정신적 피해로 열병을 앓은 온국민에게 사죄하는 길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 대담(걸프전후의 새 기류:8·끝)

    ◎아랍 세력균형 이뤄야 중동평화 온다/「팔」문제 해결에 미의 적극적 노력 긴요/아랍권 민주화 부축… 정정불안 막아야/“핵균형속의 국지전 가능성·힘에 의한 모험주의 불용”… 한반도에 양면교훈 걸프전은 끝났지만 그 여파는 세계 및 중동의 질서개편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들의 접촉이 활발하고 아랍국가들도 모임이 빈번하다. 걸프전후 세계 정세는 어떻게 변할 것이며 이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등을 유정렬교수(외국어대·중동문제 전공)와 박경서교수(중앙대·국제정치학)의 대담을 통해 정리해 본다. ▲박경서교수=중동은 지금 심각한 전쟁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예상할 수 있었던 여러가지 시나리오 중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이 없지 않지요. 미국은 후세인의 전쟁수행능력 파괴를 원하기는 했지만 이라크가 완전히 무력화돼 국가기능을 상실하고 인접 온건 아랍국들마저 위협할 정도로 혼란에 빠지기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라크의 레바논화는 미국에 또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죠. 중동에서의 전후처리 문제는 전쟁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에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사막의 폭풍」 작전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셈입니다. ○이스라엘 편향 탈피/팔문제 관심 가져야 ▲유정렬교수=걸프전쟁은 중동지역에서 세력균형이 깨진데 따른 무질서 상태에서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이 지역의 정치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중동국들간의 정치·군사적 세력균형을 어떻게 재형성하느냐 하는 문제가 큰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 후세인은 축출위기를 맞고 있고 이라크에서는 상당기간 정치혼란이 계속될 전망이며 「제2의 레바논」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내부세력간 갈등 뿐아니라 주변국들간의 해묵은 역사적 이해관계가 어떤 형태로 폭발되느냐도 문제입니다. 내부적으로 이라크내 다수 시아파가 이란과 연계해 어떻게 나올지,쿠르드족이 터키·시리아·이란·소련 등지에 퍼져있는 동족들과 연계해 어떻게 행동할지가 문제이며 외부적으로는 이라크 북부 모슬렘지역이나 남부 시아파 거주지역에 대해 나름대로 역사적 영유권을 주장할 근거를 갖고있는 시리아나 이란이 어떻게 나올지가 변수입니다. 쿠웨이트 등 페르시아만 연안의 6개 보수 아랍국에서도 앞으로 이라크의 정세변화에 따라 불안이 가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박교수=미국은 유엔의 협조를 얻어 이라크의 안정조치를 취해야할 것입니다. 이라크의 레바논화를 방치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야기될 것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중동질서의 구축은 강·온 아랍국간의 조화와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해결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중동에서는 지금 이라크의 패전으로 강경국들의 입지가 약화돼 강·온국들이 함께 참여하는 평화적인 집단안보체제 구축의 최적시기를 맞고 있습니다. 미국은 후견국으로서 베이커 국무장관의 계획처럼 지역안보체제 구축과 중동개발은행 설립 등을 통해 포괄적이고도 근본적인 중동분쟁 해결을 추구해야 합니다. 미국은 이스라엘 점령지 문제를 공평하게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미국이 원하는 중동질서 구축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미국이 이스라엘 편향정책을 계속할 경우에는 이스라엘만을 위한 미국의 패권주의라는 비난을 면치 못해 전후질서 형성과정에서 미국의 입장이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강대국간의 분쟁으로 유엔 안보리의 단합과 신평화질서가 깨질 우려마저 없지 않지요. ▲유교수=미국의 중동정책을 되돌아보면 55년 바그다드조약기구에서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항상 소련의 남하정책 저지를 위한 중동국들과의 전략적 합의모색이란 과정이었습니다. 신데탕트시대를 맞아 미소간 경쟁관계가 진정국면에 접어들고는 있으나 앞으로 이해충돌로 이 지역에서 경쟁이 재연될 가능성은 많습니다. 앞으로 미국의 중동정책은 페르시아만안 6개국으로 형성된 경제안보협력기구를 강화시켜 전쟁방지를 도모하는 방향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지원아래 사우디가 중심역할을 맡고 반이라크 전선에 동참한 이집트와 시리아의 참여도 가능하겠죠. 그러나 아랍권은 생리적으로 불안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세력재편은 어디까지나 팔레스타인문제 등 새로운 문제가 터지면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가변적인 것입니다. ○이라크 위기감 고조/중동 정치불안 가중 앞으로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전에 따라 중동판도와 세력관계의 또다른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프랑스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창설하자는 입장이고 미국 군사전문가들도 웨스트뱅크의 비무장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백악관은 다르지만 미국무성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보는 시각이 건전한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전쟁의 와중에서 복잡하기는 했겠지만 이번 사태는 쿠웨이트 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국적군내 아랍국 뿐만 아니라 서구국들간에도 분열이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죠. ▲박교수=미국의 중동정책의 성사여부는 이스라엘 편향태도를 어떻게 시정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양보가 필요한데 미국 정치지도자들이 정치적 손실을 감수해가며 이스라엘의 양보를 강요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민주화입니다. 정치 경제질서가 민주화되지않고서는 제2,제3의 후세인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이는 강경국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온건국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떠한 중동질서도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지요. 미국이 쿠웨이트를 해방시켰고 일단 왕정복귀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아랍국들의 정치·경제민주화를 추구할 것으로 봅니다. 그럴 경우 중동에서도 동구권에서와 같은 정치개방에 따른 혼란이 되풀이될 것이고 중동질서는 상당기간 유동적일 수밖에 없죠. ▲유교수=걸프전쟁은 한나라가 뚜렷한 명분없이 무력에 의해 침략되는 일이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중동을 포함한 전세계질서의 본질은 힘에 의한 현상타파를 불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기존정부와의 유대를 통해 세력균형 및 안전보장을 유지해왔고 협력대상 제3 세계국들의 정치체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미국의 신세계질서 형성에는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습니다. 중동국들만 해도 보수왕정 아니면 군사정권이거나 권위주의 독재정권들로서 따지고보면 민주정권이 하나도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죠. 미국은 앞으로 중동판 페레스트로이카를 강조할 것이고 이번 전쟁에서의 승패에 관계없이 아랍국들,나아가 이란·터키에서까지 개혁이 수반될 것이며 이스라엘에서도 우익보수정권과 온건 노동당간의 조화가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안보·경협기구 강화/전쟁 재발 방지해야 ▲박교수=부시 미 대통령이 이번 전쟁에 중요성을 부여한 이유는 선진산업국의 석유안정공급이란 실리차원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몰타정상 회담에서 청산한 얄타체제 이후의 세계평화질서 창출에 중동이 시금석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양국정상이 전쟁보다는 유엔 등 국제기구를 통한 지역분쟁 해결과 미소협력을 통한 세계평화 모색을 선언,데탕트시대를 연 이후 처음으로 받는 능력테스트여서 가볍게 넘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탈냉전시대의 세계질서 창출이란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결국 군사력이란 현실적 수단에 의존하고 말았고 무력행사 과정에서도 강대국 우월주의와 패권주의가 약간씩 나타나 결국 우방간 세력갈등의 또다른 불씨를 남겼습니다. 미국이 승리에 자만해 미국의 시각에 입각한 중동정책을 강요할 경우 미소관계의 악화 내지 정체를 초래하고 주요 우방국들과의 관계가 국가실리면에서 첨예하게 대립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세계정치가 미국일국에 의해 주도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군사력은 경제력에 기초하며 경제적으로 다극화 지역화되고 있어서 미국을 견제할 세력이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독일중심의 유럽과 일본중심의 동아시아,미국중심의 북미 세력권간의 세력다툼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우리나라도 장기적인 대외정책 개발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전비 전액부담 불능/미의 한계 극명 노출 ▲유교수=아직까지는 세계평화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원칙이 확립됐다기 보다는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소위 팍스 아메리카나의 부활은 미국중심의 질서유지 및 평화회복으로서 어떻게 보면 냉전구조의 연장입니다. 미국이 유엔결의와 소련의 협조를 구하는 체 했지만 이번 전쟁도 사실상 거의 전적으로 미국의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고 과거 냉전시대의 분쟁해결 양상과도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나마 미국이 유엔을 동원해 소련의 협조아래 12개 결의안을 이끌어낸 것은 국제협력기구의 존재가치와 평화유지를 거기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죠. 아직까지는 힘의 정치가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상호의존도가 강해짐에 따라 국제협력의 가치도 더해지고 있어서 앞으로 국제질서 원칙이 어느쪽으로 결정될지 기로에 서있는 셈입니다. ▲박교수=중동전쟁은 미국에 의해 주도되기는 했지만 미국의 한계도 노출시켰습니다. 전비를 자체부담하지 못하는 양상으로 전개된 것이죠. 뒤에서 재정지원을 했던 독일이나 일본이 당장은 전쟁분위기에 휩싸여 목소리를 내지않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지분을 요구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미국만이 신세계질서를 주도할 수는 없는 형국입니다. 신세계질서는 대외적으로 미국 주도하에 놓여있는 것같지만 지역세력간의공동관리체제로 넘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북미 유럽 동아시아권간의 지분찾기 경쟁은 동서블록간 대립이란 단순양상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전개될 것입니다. 한국도 홀로 서서는 목소리가 약하기 때문에 아태협력체제를 구축해 지역적으로 대응해 나가야할 것입니다. ○새 세계질서 구축엔/지역 안보체제 중요 ▲유교수=최근 중국의 훈춘에서 남북한 중국 소련 일본학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경제협력 세미나가 열려 만주남부와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경제협력을 모색했었죠. 아시아지역의 협력관계를 확대해나가고 단계적으로 미국도 참여시켜 환태평양기구로의 발전도 가능합니다. ▲박교수=아태협력체제는 크게 2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연변과 두만강유역을 중심으로 자유경제 지대화해 중국 소련 남북한 일본이 상호보완 및 협력관계를 증진시키는 동북아 경제권과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국들의 경제이익을 도모하는 동남아 경제권으로 이 두가지 블록을 합해 동아시아 경제협력체제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도 선도적역할을 통해이 지역 협력체제내에서 위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삼분체제의 국제정세속에서 동아시아 경제협력체제의 본격화는 90년대 대외정책의 큰 과제이며 앞으로 한국의 좌표를 설정할 국가전략이기도 합니다. ▲유교수=걸프전이 다국적군의 완승으로 끝난 것은 남북한관계의 발전과 전환에도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흔히들 후세인과 김일성 카스트로 카다피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고 사실 공통점도 많습니다. 앞으로 세계가 무모한 정치·군사적 모험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교훈은 북한에 교시하는 바가 클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개방·민주화 추세가 지배적인 현실이고 보면 북한도 걸프전 종결과 함께 자성하는 면이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우리도 남북한간의 협력관계와 군비통제 및 정치관계 발전을 위한 좋은 기회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북측이 팀스피리트훈련을 구실로 총리회담을 일방적으로 거부하기는 했지만 축구와 탁구의 단일팀을 이룩하는 성과를 얻어낸 것도 사실입니다. 비정치적인 면에서 좀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미,90년대 세계 주도/우방국 갈등 심할듯 ▲박교수=이라크가 다국적군에게 무참히 패배해 지역적인 모험주의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김일성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베트남전 이후 핵공포와 핵균형하에서 강대국은 전쟁을 할 수없는 시대로 접어들었고 전쟁에 의한 문제해결은 불가능한 것으로들 생각했지만 이번에 모험주의가 있을 수 있고 강대국도 이상주의를 명분으로 내세워 무력사용이 가능함이 입증됐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도 오판에 의한 모험주의,즉 전쟁발발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교훈도 함께 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수=그렇기 때문에 전쟁 억제장치를 자꾸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세계추세는 과거보다 전쟁 가능성이 줄어들지 확대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박교수=강경아랍국들의 입지가 약화되고 소련국내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당분간은 미국의 일국대권주의가 90년대를 이끌어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방간 관계에서 볼때오히려 적신호이며 90년대는 우방간 갈등이 오히려 심화될 것입니다. 우리도 여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 “「2중곡가제」당분간 현행대로 유지”/24일 본회의(의정중계)

    ◎노령수당 지급·농어촌 의보료 인하를/북한과 물자교역 추진·「묵은쌀」해소방안은 뭔가 질문/민방 92년 총선·언론통폐합 등과 무관/중기 고유업종 확대·근로자 병역특혜 부여 검토 답변 ◇장경우의원(민자)=지난 84년부터 연 4년째 엄청난 규모의 세금이 초과징수돼 조세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정확한 세수추계를 위해 양곡 유통위원회와 같은 객관적인 제3의 세수추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대도시 교통난해소를 위해서는 현재 17%밖에 안되는 지하철 이용률을 선진국의 50∼70%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향후 투자계획은. 재고양곡의 해소를 위해서는 소련·북한 등 식량부족국가와 물자교역을 추진해야 한다. ◇홍영기의원(평민)=정부는 91년도 예산안을 세입범위내의 균형예산이라고 강변할 수 있는가. 현재의 통화증가율을 감안할 때 91년도 팽창예산이 통화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가. 물가가 과연 한자리숫자로 잡힐 수 있다고 보는가. 대일 무역적자의 해소방안을 밝혀라. 한소 경제협력과 관련 국회내에 대 북방 경제협력기구를 설치할 용의는. ◇최무룡의원(민자)=5·8대기업 과다보유 부동산 강제매각조치는 정부의 실무집행단계로 넘어가면서 그 빛깔이 퇴색되고 있다는 여론이 높다. 현재까지의 진행과정과 결과를 소상히 밝혀라. 수입에 알맞는 주택소유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주택규모별로 전기·수도·도시가스요금 등을 차등 적용하고 동일가옥이라 할지라도 임대주와 세입자에게 차등적용하는 제도의 도입이 강구돼야 한다. ◇박영숙의원(평민)=범죄와의 전쟁선포후 구속된 노동자·농민·학생숫자를 밝혀라. 환경오염으로 인한 주민 집단시위를 감안해 환경감사원제도를 도입하는데 대한 견해는. 현재 마련중인 핵발전소 추가건설계획과 핵폐기물처리장 건설계획을 밝혀라. 팔당상수원의 골재채취를 당장 중지할 용의는 있는가. 정부의 지방의회 여성참여방안을 밝혀라. 민간탁아소에 대한 폐쇄조치를 철회하라. 대졸여성의 취업확대 방안은. 내년부터 노령수당을 지급할 용의는. 농어촌 의료보험료 인상을 한자리수로 다시 조정하라. ◇임인규의원(민자)=문화부의 내년도 예산은 정부예산의 0.38%에 불과하다. 문화부장관은 이 예산으로 문화발전 10개년계획을 어떻게 실천할 생각인가. 초·중·고 교육과정 개편의 기조는 무엇이며 현재 입시공부 위주로 되어 있는 초·중·고 교육개혁을 위한 문교부장관의 복안은. 북한영화 상영금지의 법적근거와 우리 TV의 북한 프로그램방영의 법적근거는. ◇강영훈 국무총리=6공의 「안정속의 성장정책」이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올바르게 수용되지 못해 각종 경제윤리의 부작용을 낳은 것이 사실이다. 지역간 계층간의 불균형을 낳았고 국민욕구의 폭발을 불러왔으며 노사분규가 빈발해졌다. 정부는 이에 따라 도농간 격차해소,산업평화정착,부의 분배촉진,경제력 집중완화,중소기업 지원확대 등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토록 노력하고 있다. 제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특별 설비자금과 외화대출의 확대,임시세액 공제제도 확충,첨단 및 자동화설비 감가상각 등 금융 세제지원을 계속하고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리겠다. 교육환경개선을 위해 매년 3천7백억원 규모의 교육환경개선 특별회계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자치제 실시에 따라 지역주민들의 교육관련 비용부담을 늘리겠다. ◇이승윤 부총리=양곡 초과재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련·북한 등 식량부족국과 물자교역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일부 국가에 대해 쌀 무상원조 또는 현물차관제공을 검토한 바 있었다. 그러나 잉여농산물을 타국에 제공하는 것은 57년 세계식량농업기구의 결정에 따라 쌀 수출국 등 이해관계국과 사전에 협의토록 하는 국제관행이 있고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서 우리가 쌀을 수입개방 할 수 없는 예외품목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을 주장하는 것은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 ◇정영의 재무장관=현재의 조세부담률은 19% 정도로 이는 복지수요·사회간접자본 확충·농어촌 구조개선·방위비·지방재정확충 등 현실여건을 감안할때 적절하다고 본다. ◇조경식 농림수산장관=93년부터 2중곡가제도를 폐지한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다소의 정부재정부담이 있더라도 2중곡가제는 상당기간 더 계속될 것이다. 고미를 사료로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일이다. ◇박필수 상공장관=대일 무역적자의 가장 큰 요인인 설비투자용 기계·부품수입을 줄이기 위해 국산화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당분간 대일 적자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보호육성을 위해 고유업종부문을 확대지정토록 하겠다. 또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 병역특혜를 주는 방안과 주택취득 우선권을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이희일 동자부장관=페르시아만 사태가 4개월이 되도록 해결이 불투명,국제 유가의 상승세가 계속중이다. 그러나 유류과소비 현상은 심화돼 비산업 부문의 유가인상이 불가피하다. 벙커C유는 주요산업(47%)과 발전용(28%)으로,경유는 버스 철도 등 대중교통연료(57%)와 산업용(22%)으로,LPG는 가정취사(52%)와 택시연료(38%)로,LNG는 발전용(76%)으로 주로 사용되므로 파급효과를 고려,올해에는 인상치 않을 방침이다. ◇김진현 과학기술처장관=과학기술투자진흥을 위해 각종 조세지원제도를 확대해 나가겠다. 구체적 내용으로는 기술개발준비금 적립한도를 2배로 상향조정하고 기술 및 인력세액 공제를 현행 10%를 15%로 늘리겠다. ◇안응모 내무장관=범죄와의 전쟁선포후 범죄발생은 13.7% 감소하고 검거율은 15% 증가하는 등 범죄분위기가 위축되고 있다. 연내에 전경찰력과 행정력을 투입,강·폭력범과 유해업소 단속을 집중적으로 실시해 범죄예방 및 검거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 ◇이종남 법무장관=북한영화는 자유세계의 영화와는 달리 체제유지 및 혁명사상 고취수단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제7조 이적표현물에 해당되므로 상영을 허용할 수 없다. 검찰은 흉악범의 구형량을 높였으며 법정외 신문제도를 활용,피해자가 신분상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하겠다. ◇최영철 노동부장관=남녀고용 평등법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은 법집행과정에서 구체적 기준이 미흡한 것으로 드러나 전문연구기관에 객관적 기준을 마련토록 의뢰했으며 이 결과에 따라 조속한 시일내에 시행령을 보완하겠다. ◇최병렬 공보처장관=민방 참여자 출자비율을 정해준 것은 신청자 희망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총 출자규모를 1천억원으로 한정했으므로 일부 주주는 본인의 동의를 얻어 출자액을 축소조정했다. 민방 참여신청을 지난 10월10일 마감한뒤 심사기준을 10월18일 발표한 것이 시점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훨씬 이전부터 언론에 나가 구체적 심사기준을 얘기했으며 심사기준이 늦게 나와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중소기협중앙회와 기독교방송에 대해서는 사전에 충분히 민방 지배주주로서 타당치 않다는 설명을 했다. 이들 3개 업체 사장과 직접 면담한 결과 여의도에 6천5백여평의 건물을 보유한 태영이 새 민방의 지배주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정치적 시각에서 보면 민영방송문제와 관련,일부 언론에서 92년 총선과 연관된 것이 아니냐고 보고 있는 것도 일리는 있으나 민방은 그런 정치적 시야에서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민방뿐 아니라 케이블TV,HDTV,위성방송에 대비해 여러 준비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올해 민방을,내년에 케이블 TV를 시작하고 이어 각 지역 민방을 시작하면서 KBS 중심으로 HDTV 개발에 들어간다. 80년 언론통폐합과 관련해 여러 소송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들재판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나 정부는 법이 하라는대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새 민방은 채널 6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이들 소송과 관련이 없다. 방송의 남북교류와 관련,라디오는 괜찮지만 TV는 시스템이 달라 문제가 있다. 라디오도 상호성이 중요하며 우리 국민만 북한방송을 듣게하는 것은 대단히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 “공해없는 거리”… 중국의 자전거 행렬(서울시론)

    ◎출퇴근때 장관… 또다른 삶의 생동감 자가용에 사람 많이 들어가기 경연을 했는데 28명이나 탔다고 합니다. 중국을 말하자면서 무슨 이야기냐 하시겠지만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백두산 천지행을 위하여 중국을 여행하면서 누구나 하룻밤은 머물게 되는 상해의 하룻밤은,이조 17대 임금 인조의 둘째 아드님 효종이 8년간 볼모로 가있던 심양으로 다음날 여행일정이 잡혀 있다는 안내인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 마음을 상심과 불면으로 쓸쓸히 해 주기에 넉넉했습니다. 중국기행이 가히 시론이 될 만큼 중국의 호텔로비나 엘리베이터나 관광지에는 한국사람과 한국어만 판을 치고 있으니 삼태기로 쏟아 붓듯이 중국으로 한국의 금쪽같은 외화가 유입되는 것이 정녕 눈에 보였습니다. 국가정책을 담당한 분들은 어떤 기상천외의 복안이 있으시기에 이러한 사태를 관망만 하시는지,아니 심지어는 정부예산으로 숱한 사람들을 중국에 보내기까지 하시는지,더욱이 90년 북경아시아올림픽에 우리가 가져다 퍼부을 외화를 생각하면서 나는 중국을 여행하고 있는나 자신에 대해서까지 끈끈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다 우리는 이산 40년을 만들어 놓은 전쟁가해국인 중국의 음흉한 속셈에 이렇게 놀아나고 있는 것일까?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민간차원의 개방을 가장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외화를 쓸어 모으고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공룡이 낮잠 자는 시늉을 하면서 작은 생명체들로부터 생존의 기력을 흡수해 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고성능 흡입기로 우리의 재화를 빨아들이고 있는 곳에 우리가 무방비의 자세로 자진해 다가서고 있으니,옛날 효종의 볼모는 강요받은 볼모였지만 오늘 우리의 무절제한 중국행은 자기선택의 정신적인 볼모됨이 아니겠습니까. 알루미늄 새시로 테를 두른 통유리창 하나 볼 수 없는 상해에서 제일 고급에 속하는 곳이 홍교호텔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티스푼은 갈신스런 양은 조각이었고 음식그릇이나 커피잔은 이빠지고 금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부산대학교 C교수는 쇼핑 할 때에 거스름 돈을 덜 받았고,나는 시종일관 그들을 의심하며 끝까지 사기 안 당하려고 조심했는 데도 드디어 눈속임에 넘어가 역시 손해를 보았고,연세대의 N교수는 환금 후 돈을 세어보니 부족하여 따졌는데 마치 준비나 하고 있었듯이 『죄송합니다』하며 손에 쥐고 있던 돈을 내 주더라는 것입니다. 무서운 사람들의 무서운 나라입니다. 「민간 차원의 개방 및 여행 자유화」라는 슬로건으로 민주화의 냄새를 풍기면서 실은 여행객의 돈주머니 달러화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중국이 친근해 보일 수가 있겠습니까. 북한땅도 아닌 중국땅을 마치 북한으로 착각하고 우리 남한인들이 외화를 생각없이 마구 씁니다. 봉황호텔은 심양에서 최고라고 하지만 치약에서는 6ㆍ25 직후에 우리가 쓰던 박하와 석회 냄새와 떫은 풋딸기 맛이 나서 나는 미리 준비해 간 한국산 치약을 썼습니다. 수건은 얇고 갈신스럽고 전날 묵은 손님의 땀냄새가 밴 채 다시 접어만 놓았으니,그곳의 실정을 가히 짐작할 수 있으시겠지요. 그러나 중국약과 비단과 발모제를 사라고 충동 구매욕을 부채질하던 상해의 한족여인가이드와는 달리 심양의 조선족 여인 가이드는 유창한 모국어로 우리의 감동을 불러 일으키며 조선 여인의 슬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풍 곽씨 곽태순이구요,저의 남편은 김수영입니다. 남편은 정부 기관에서 일합니다. 이곳 여성들은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남성,남편을 좋아합니다. 저의 조선어가 부족하더라도 여러분은 교수님들이시니까 제자나 후배로 여기시고 잘 배워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아버님이 일제 때 이곳으로 오셨기 때문에 저는 심양에서 태어나 심양에서 자라났습니다. 여기서는 목수나 기술자나 운전수들이 벌이가 좋습니다. 선생질 하는 교수는 월급이 눅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돈은 적게 벌어도 모든 인민들이 교수를 존경합니다. 기술이 제일 높은 사람을 일류 공정사라고 부르는데 교수님은 바로 일류 공정사입니다. 이곳이 사회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누구든 대학을 필업해야 좋은 직업을 얻습니다. 고등학교를 필업하면 70%가 대학을 가는데 그중에서 조선족이 제일 많습니다. 우리 요령성 인민은 3천6백만명이고 심양 교구민은 5백70만명입니다. 소수민족이 40만명인데 그중에서 조선족이 9만명입니다. 조선족은 농사를 잘 지어 개인기업을 합니다. 정부가 농민에게서 벼 5백g을 20원 주고 사서 가공해 입쌀 5백g을 18원60전에 배급합니다. 그러나 야미로는 입쌀이 80원입니다. 농작물을 내다 파는 것은 큰 개인 기업입니다. 조선족은 부지런하기 때문에 입쌀을 배급받고 게으른 사람은 옥수수 가루를 배급 받습니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제일 존경받는 백성입니다. 7군부 지도자 중에서 한명 꼴이 조선족입니다』 이렇게 가이드하는 조선족의 딸은 모국어로 일을 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도시에서 만난 조선족의 딸 가이드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부디 서울에서 한국어 문학과를 필업할 수 있도록 입학허가를 구해 주세요. 북경대학교 조선어학과 교수가 되는 것이 저의 인생 목표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조선의 딸은 미래 첨단사회의 좌표를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이 아닌 중국에서 조선의 딸이 말입니다. 그러나 야바위꾼들이 설치는 나라 중국을 여행한 후,그래도 내가 다녀오기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도시의 장관을 보고 깨달은 감동 때문입니다. 출퇴근 시간에 볼 수 있는 자건거의 행렬과 무궤도 전기버스는 12억 인민이 사는 중국을 거의 공해 없는 나라로 유지해 주고 있었습니다. 중국에 다녀온 후 요즘 나는 갈등하고 있습니다. 나도 자전거를 탈까? 나부터 자가용을 없앨까? 한사람 출퇴근하자고 구르는 저마다의 차들이 서울거리를 메우고 있으니 서울의 공해를 어찌하나. 자가용을 타면 지각하고 자전거를 타면 지각을 안할 만큼 극심한 서울의 교통지옥을 어떻게 치유한단 말인가. 이 노릇을 어찌하나. 사람 28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자가용을 내몸 하나 태우고 끌고 다니다니. 그래서 요즘 나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환상의 꿈을 꿉니다.
  • 외언내언

    좀 오래 됐지만 어린이만화를 보다가 낯선 단어에 부딪쳤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를 표현하면서 써 놓은 「꽈당!」. 「쨍그랑」이 알맞을 자리 같았다. 한참 생각하다가 그 경우의 일본말 「가탕」을 떠올렸다. 일본만화를 베꼈던 것일까. 이젠 이 말이 일반화하여 쓰인다. ◆이 또한 좀 묵은 얘기긴 하다. 서울에서 발간되는 한 종합일간지의 사진설명에 『당가에 실려 나오는 피고인…』이란 대목이 있었다. 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진이었다. 「당가」는 「담가」를 읽는 일본발음. 곧 「들것」이다. 이렇게 일본말인지 한국말인지 모르고 쓰는 말들이 많다. 「문화제」 「축제」의 「제」도 그런 것. 일본말은 「제사」와 「잔치」의 뜻을 함께 갖지만 우리는 본디 제사쪽만이었다. 그런데 이젠 「잔치」에도 쓰이는 글자로 되고 있다. ◆지금도 「이조」라고 쓰는 경우들을 더러 본다. 그렇다면 왕씨가 세운 고려는 「왕조」일까. 당연히 국호인 「조선」을 써야 옳다. 격하시킬 의도로 일본사람들이 쓴 게 「이조」 아니었던가. 무심코 「광주학생사건」 「을사보호조약」이라 쓰지만 그런 표현은 일제의 시각. 「광주학생운동」이 돼야 하고 「을사5조약」이든 「을사 침탈조약」이 돼야 한다. 바루어야 할 말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얼마전 서울대 인구및 발전문제연구소 교수팀이 행한 「광복 45주년 국민의식조사 연구」에도 나타난다. 그에 의할 때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가 30.1%,『일부 남아있다』가 53.7%였다. 합치면 83.8%. 일상 쓰는 언어에도 그 잔재는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잔재를 털기는커녕 새로운 일본말까지 받아들인다. 「단지」 「고수부지」… 따위가 그런 사례이다. ◆광복 45주년. 잃어가던 우리 말도 「광복 45주년」이지만 아직껏 혼혈의 잔영이 적잖이 어른거린다. 거기에 협상차로 벌어져 가는 남과 북의 말. 「통일되고 순수한 배달겨레의 말」을 생각케 한다.
  • 북의 대남전략 변화없어 결실 기대난/첫 남북총리회담과 연형묵

    ◎연총리는 합리적 성격의 기술관료 출신/김부자 신임 두터우나 행동반경 의문 북한의 정무원총리 연형묵(65)이 오는 9월초 서울에 온다. 지난 12일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실무대표들이 남북총리를 각각 단장으로 한 남북고위급회담 1,2차 회담을 오는 9월초순 서울과 10월 중순 평양에서 번갈아 개최키로 완전합의함에 따라 분단 45년만에 최초로 북한의 총리가 서울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장차관급(북한의 경우 정무원 부장ㆍ부부장)을 비롯,수행원 33명,기자 50명 등 모두 90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서울에 오게될 연형묵총리는 현재 북한내 권력서열 6위의 혁명 2세대. 북한권력 서열상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떠받치고 있는 70대고령의 혁명 1세대인 오진우(73ㆍ3위ㆍ인민무력부장),이종옥(79ㆍ4위ㆍ부주석),박성철(76ㆍ5위ㆍ부주석)에 이어 김영남(65ㆍ7위ㆍ외교부장) 허담(65ㆍ11위ㆍ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등 60대중반의 혁명 2세대중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김일성대학 이공학부와 소련우랄공대에서 금속ㆍ기계ㆍ전기ㆍ전자 등을 공부한 대표적인 기술관료(테크노크랫)로서 북한의 행정집행기구의 총책임을 맡고있는 동시에 당정치국원ㆍ당중앙위원 등을 겸직,노동당의 정책결정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지난 85년 정무원 제1부총리겸 금속기계공업위원장을 맡아 정무원에 첫 진출,88년 12월 이근모의 후임으로 총리직에 선임됐는데 기계공업분야에 정통하며 북한의 대외경제협력 등을 추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83년과 84년 김일성을 수행,중국ㆍ소련ㆍ동구권 등을 방문하는 등 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운 편이며 러시아어와 불어ㆍ일어 등에도 능통,국제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25년 북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70년 당중앙위 부장에 기용되면서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만경대 혁명학원 1기생으로 김정일의 선배이자 70년대 3대혁명소조운동이 벌어졌을 때 당책임지도원을 맡았던 경력이 말해주듯 김정일 후계체제의 강력한 후원자로서 앞으로 김정일의 정치ㆍ경제 참모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연형묵은 판단이 예리하고 날카로우며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는데 김일성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동시에 김정일의 측근인 그가 앞으로 있을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어떠한 자세를 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이와 관련,북한문제전문가들은 경제실무에 밝으며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기술관료출신의 연형묵이 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북한이 판문점에서의 8ㆍ15 「범민족대회」개최와 제정당ㆍ사회단체가 참여하는 「통일협상회의」개최를 거듭 주장하고 있는 등 기존의 대남적화 통일전략을 바꾸지 않고 있어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얼마만큼의 결실을 거둘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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