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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대통령,오열하는 유가족 위로/유 상경 빈소방문 이모저모

    ◎영정앞서 잠시 묵념… 침통한 표정/부상전경 병실들러 일일이 격려 김영삼 대통령은 3일 하오 시위진압 도중 순직한 고 유지웅 상경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경찰병원 영안실을 방문,유가족을 위로했다. ○…김대통령은 하오 5시쯤 경찰병원에 도착해 황용하 경찰청장,이필우 서울경찰청장,강진국 경찰병원장의 안내로 유상경의 빈소에 조의를 표했다.영정앞에 잠시 묵념한 김대통령의 표정은 비통해보였다. 김대통령은 유상경의 아버지 유해규씨의 손을 잡고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다』고 위로했다.유상경의 어머니 김길자씨가 『너무나 억울하다』면서 김대통령의 손을 부여잡고 오열하자 한동안 달래기도 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시위진압 도중 부상당해 입원한 전경 16명의 병실을 돌아보며 『곧 나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일일이 위로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심우영 행정수석으로부터 한총련 시위상황 등을 보고받은뒤 유상경 사망경위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 용서·화해로 국민대화합을”/5·18 정부주관 첫 기념행사

    ◎각계인사 3천여명 그날의 뜻 기려 「5·18 광주민주화운동」 17주년 기념식이 18일 상오 10시 광주시 북구 운정동 5·18묘지 참배광장에서 각계 인사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후 처음 치러진 이날 행사에는 고건 총리를 비롯,오세응 국회부의장·강운태 내무부 장관·손학규 보건복지부장관·박찬종 신한국당 고문·송언종 광주시장·허경만 전남지사 등 정부와 정당 인사들이 참석했다. 기념식은 순국선열및 5·18희생영령에 대한 묵념·헌화·경과보고·기념사 순으로 30여분 동안 진행됐다. 고총리는 기념사를 통해 『이제 5·18은 원한의 시발점이 아니라 수많은 민주시민이 이 땅의 민주화에 온몸으로 기여한 역사적 사실을 기리는 축복의 시작이 돼야 한다』며 『용서·관용·화해를 통해 국민 대화합을 이루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5·18정신을 계승하고 민주 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날 관련행사도 잇따라 이어지면서 추모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하오 1시쯤 5·18 묘지에서는 광주불교사암연합회 주관으로 5월 영령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추모법회가 열렸으며 광주한빛 교회에서는 추모예배가 이어졌다.하오 4시쯤부터 전남도청앞 5·18민주광장에서 기념대회가 열려 그날의 참뜻을 기렸다. 2년6개월간의 공사끝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5·18묘지는 잘 꾸며진 외형과는 달리 편의시설들이 부족해 참배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5만여평에 달하는 묘지 곳곳에는 참배객들을 위한 음료수대가 마련돼 있지 않거나 화장실,공중전화부스가 크게 부족했다.시민들은 주차장밖에 설치된 이동식 화장실이나 전화국 등에서 제공한 무료전화에만 의존했다. 한편 광주시는 기념식에 각계인사 550여명을 초청했으나 참석인사는 50여명에도 미치지 못해 국가기념일제정에도 불구하고 지역행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따랐다. 광주지역은 광주시와 전남도를 비롯한 각 기관·단체와 주요 건물은 물론 대부분의 아파트와 주택가 등에는 국기가 게양돼 기념일 지정을 경축했다. 시민들은 『국기게양은 지난 95년에는 광주시청,96년 광주시청 및 전남도청에만 내걸렸다』며 『하지만 이날 집집마다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니 5·18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것이 실감난다』고 말했다. ○금남로일대 격렬 시위 이날 광주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던 학생 1천500여명은 하오 7시10분쯤 동구 금남로 전남도청앞에 모여 고 유재을군(20·조선대 행정 2)의 장례보장 등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화염병을 던져 금남로 일대는 밤늦게까지 최루탄과 화염병 공방이 이어졌다.
  • 오늘 개막 중국 8기5차 전인대 의미와 전망

    ◎등 이후 중국 정국향방 가늠 척도/9기대표 구성방법 논의… 계파간 안배 주목/중경 직할시 승격… 지방세력 대두 사전봉쇄 1일 개막,14일까지 진행되는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우리의 정기국회격으로 올해는 등소평 사망직후 열리는 첫번째 주요 회의란 점에서 무게를 더한다.등 사후 중국정국의 향배를 재는 바로미터가 될것이란 점이 주목되는 것이다.이번 대회는 8기의 마지막대회인 5차회의다.내년 9기 시작에 앞서 93년이후 8기의 결과를 정리하고 향후 5년간의 정책방향을 논의한다.9기 전인대 대표의 수와 선출방법 등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계파간 안배도 주목된다. 사천성의 중경시를 북경,상해,천진에 이은 4번째 직할시로 승격,분리하는 문제도 결정된다.중경시의 승격은 대두하는 지방세력의 견제 및 중서부지역의 경제발전 촉진의지로 해석된다.정책방향은 1일 이붕총리가 낭독하는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공표된다.공개 이전에 전인대 상무위에서 수차례의 심의를 거친다.심의과정중 상무위의 의견이 반영되고 국무원측의 원안이 삭제되기도 한다.올 대회는 무엇보다도 안정 최우선에 무게가 실려있다.등 사후 당과 국가의 단결·안정이 최우선적으로 강조되는 것이다.부총리등 고위직 인사이동은 없을 것이란 이야기도 된다. 그러나 부정부패 척결문제 등은 주요 현안으로 강조된다.영국령 홍콩의 귀속을 앞두고 홍콩 전인대 의원 선출문제및 특별행정구 준비작업에 대한 상황 평가 및 논의가 주요 안건이다.국방법 초안,형법 수정안에 대한 심의·확정도 예정돼 있다.이붕 총리는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국유기업에 대한 개혁 확대등 내정을 비롯,한반도와 대만,홍콩문제도 언급한다.한반도 문제는 북한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 지속,한국과는 경제교류를 바탕으로 한 교류확대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한반도문제의 대화 및 긴장완화 등도 언급될 것이라고 관계자들이 전했다. 대만문제와 관련,양안 사이의 정치회담 진행,「일국양제에 의한 통일방안」호소 등 대만에 대한 공세가 예상된다.홍콩·마카오의 순조로운 귀속문제가 강조될 전망이다.이번 대회에선 등소평노선의 지속과 유지가 정부업무보고안에 삽입됐으며 대회시작 전에 에등 대한 묵념이 있게 된다.일단 강택민정권의 노선에등 대한 유지·계승을 다시한번 강조할 것이다. 이번 대회는 당과 정부의 결정 사항에 대해 무조건적인 승인절차에 그치던 「고무도장」전인대가 민주화,세력 다원화 추세속에서 보다 큰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주목된다.
  • 인민대회당 오성홍기 “애도 물결”/등소평 추도식 스케치

    ◎강택민 추도사 내내 감정받쳐 울먹여/등 차남 등질방 모습 안보여 추측만발 ○…25일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거행된 등소평 추도식은 등의 대형사진과 오성홍기로 감싸여진 유골함이 단상에 꽃으로 둘러싸인채 배치되고 그밑에 정치국원 등 핵심지도자들과 유족들이 도열한 가운데 진행.2시간전부터 입장한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된 추도식장의 2층 난간에는 『강택민 동지를 중심으로 한 당의 영도하에 등소평 동지의 유지를 계승하자』는 내용의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3분간의 애도묵념에 이어 50여분 동안 계속된 강택민 국가주석의 추도사는 등소평 지도노선의 방향 등과 관련,기존의 대내외정책을 재확인하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뤘다.강주석은 추도사를 낭독하기 시작한지 1분도 안돼 『등소평동지의 서거에 무한한 슬픔과 고통을 느낀다』는 구절에서 눈에 물기가 돌기 시작,『등소평이 문화대혁명후 복권돼서도 아무런 사심없이 국가에 어떻게 헌신할 것인가만 생각했다』는 대목에 가서는 감동에 복받쳐 울먹이기도. ○…천안문 광장에는상오 7시30분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삼엄한 분위기.상오 10시 추도대회에서의 3분간 묵념시간에 중국 방방곡곡을 달리는 기차 선박 군함 공장 등에서는 경적이 일제히 울려 추도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홍콩에서도 이 시간에 맞춰 지하철등에선 장송곡조의 경건한 음악이 울려퍼졌고 거의 모든 차량들이 1∼10분간 경적을 울리며 등 사망에 애도를 표시. ○…등의 생가가 있는 사천성 광안현 패방에는 10만여명의 조문객들이 몰려 등을 추도.조문객들은 생가앞에 설치된 대형 TV 스크린을 통해 눈물을 흘리면서 추도대회 진행을 시청. ○…24일은 중국 대학생들이 춘절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온 날이어서 당국은 각 대학에 대해 학생들을 등소평 추도집회에 참석하거나 자체적으로 추도회를 열지 못하도록 지시,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소요사태에 대비. ○…여러 차례 수뢰혐의 연루설이 나돈 뒤 지난해 공직에서 물러난 등의 차남 등질방이 이날 추도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여러 억측을 낳고있다.일부에서는 이를 등사후 예상되는 등가족들에대한 처벌의 신호탄과 관련지어 해석하기도.
  • 중 서열4위 이서환 주석/강택민에 충성다짐 기피

    【홍콩 연합】 등소평 사후 권력 투쟁 조짐이 일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이서환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이 교석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상무위원장에 이어 정치국 상무위원중 2번째로 강택민국가주석 겸 당총서기에 대한 충성 다짐을 기피했다고 홍콩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가 24일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 서열 4위인 이주석은 23일 제8차 정협회의를 앞두고 열린 예비회의에서 등을 위대한 지도자로 추모하면서 강주석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지 않았다. 서열 3위의 교석 위원장(72)은 앞서 전인대 상무위원회 폐막에 즈음한 발언을 통해 등의 업적을 기린 뒤 모든 참석자들에게 3분간 묵념할 것을 제의했으나 강주석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 25일까지 추도기간 선포/장례 어떻게 치르나

    ◎외국사절 안받고 국장아닌 간소한 절차로/시신은 팔보산 혁명열사묘지서 화장할 듯 등소평의 장례는 언제,어떤 절차로 치러질까.관영 신화통신은 등 사망 이튿날인 20일 강택민 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을 주임위원으로 하고 전·현직 고위지도자들로 구성된 459명의 장례위원회 명단과 장례절차와 관련된 기본입장을 보도했다.등이 최고지도자의 신분이었으나 사망당시 공식적인 국가직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장으로 치러지지 않고 간소한 절차로 치러질 것으로 알려졌다.외국사절도 초청치 않는다고 했다. 장례일정과 관련,일본 정부대변인인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관방장관은 20일 『중국이 등소평의 추도대회를 오는 25일 북경에서 개최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현재로선 25일 설이 유력.일본 NHK­TV도 이날 중국 당국이 25일까지는 등소평 추도기간으로 선포했다고 보도.그러나 장례일자,시신을 화장할지 방부처리할지와 매장방법등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있는 가운데 이곳 소식통들은 등의 비중을 감안해 지난 76년 사망한 모택동의 장례에 버금가는 예우가 주어질 것으로 전망.모의 장례를 따를 경우 장례행사는 상오 10시쯤 시작해 낮 12시 3분간의 묵념으로 시작되며,이때 북경시와 성도소재지에서는 조포를 쏘고 기관차와 선박들이 일제히 고동을 울린뒤 등소평의 업적보고와 추도사 순으로 이어질 예정. 추도사를 읽을 사람은 앞으로 중국권력의 핵심인사중 1인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20일 발표된 장례위원 명단에는 오는 7월1일 주권반환뒤 홍콩을 이끌 초대 홍콩행정장관으로 선출된 동건화의 이름도 들어있어 눈길을 끈다.
  • 순직 본사 정주성 기자 회사장 엄수

    지난 25일 순직한 스포츠서울 야구부 고 정주성 기자(32)의 영결식이 28일 상오 9시 유족과 회사 임직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신문사장으로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의료원에서 1시간여에 걸쳐 엄숙히 치러졌다. 고인의 유해는 영결식이 끝난 뒤 상오 11시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서울신문사옥 앞에 들러 사우들로부터 묵념과 배웅을 받았다. 이어 낮 12시30분쯤 장지인 경기도 파주군 용미리 공원묘지에 도착,유족과 조객의 오열속에 안장됐다.
  • 김 대통령,전사장병 분향소 조문

    ◎“값진 희생” 유가족과 일일이 악수 위로 김영삼 대통령은 5일 저녁 강원도 인제군에서 무장공비 잔당 2명과 교전중 숨진 오영안 대령·서형원 대위·강민성 상병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강서구 등촌동 국군수도통합병원을 찾아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김대통령은 저녁 7시쯤 병원 영안실에 도착,윤용남 합참의장과 도일규 육참총장 등의 안내를 받아 분향소에 들어가 헌화·분향하고 묵념한뒤 30여명의 유가족들을 일일이 위로했다. 김대통령은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손을 부여잡고 『숨진 아드님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라며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이어 김대통령은 분향소앞에 대기중인 군장병들및 기무사 간부들과 악수를 나누며 격려했다. 김대통령은 이 곳을 출발하기전 임재문기무사령관에게 정중한 장례식을 치르도록 당부하고 임사령관이 전사자들에 대한 서훈과 일계급 특진계획을 보고하자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이날 하오 청와대 영빈관에서 통일유관단체 주요 인사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무장공비가 침입한지 2개월이 지났으며 오늘은 잔당이 소탕된 날』이라고 말했다.김대통령은 이어 『이번 일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면서 『망상적 통일론에 대해서는 단언코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북한은 내년 4월15일 김일성 생일을 벌써 준비하고 있으며 며칠전 큰 도시에서 피난연습과 전쟁연습을 했다』며 『북한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으며 그런 어리석은 일,시대착오적 일을 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 고 최덕근 영사 어제 영결식… 보국훈장 추서

    ◎「평화의 나라」서 잠드소서 고 최덕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영사의 영결식이 8일 상오 8시10분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의료원에서 유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족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은 부인 김영자씨(52)와 현칠(24)·성이(26) 자녀 등 가족과 친지의 분향과 헌화에 이은 배재고 동창 임서규씨(53·신용보증기금 서부지역본부장)의 조사,직장동료의 분향·헌화·묵념 등의 순으로 30분동안 계속됐다. 임씨는 조사에서 『지난 8월 아들을 장가보내며 「이젠 가장으로서 할 일은 다했나봐」라며 환히 웃던 그 사람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 무슨 비통한 일이냐』며 『이승에서 못다한 온갖 아쉬움과 시름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와 평화가 상처받지 않고 영생의 생명수가 면면히 흐르는 나라를 찾아 부디 승천하소서』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추서된 이사관임명장과 보국훈장 천수장 및 근정포장을 뒤로 하고 영결식장을 떠난 시신은 고인의 양친과 생가가 있는 경기도 평택시 이충동 석정마을에서 노제를 지낸 뒤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김태균 기자〉
  • 개천절과 국악(외언내언)

    3일 상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우리 민요와 전통가곡을 국악관현악곡으로 편곡한 음악이 은은히 울려퍼지는 가운데 참석인사들이 객석에 자리를 잡으면 국무총리를 비롯한 3부요인이 조선조 궁중행악인 노요곡(일명 길타령)연주속에 단상에 오른다. 이어 개식선언과 함께 국방부 취타대의 팡파르가 울린다.서양악기인 아이다혼이 아닌 태평소 징 꽹과리 나발 나각 북 용고등을 사용한 장엄한 팡파르다.역시 국악반주속에 국기에 대한 경례가 올려지고 국악으로 편곡한 애국가 합창이 울려퍼진다.애국가 선창은 영화「서편제」로 널리 알려진 국악계의 스타 오정해·김명곤씨가 맡는다…. 제4328주년 개천절 행사는 이처럼 국악 연주속에 진행된다.공식 국가행사에 국악만이 사용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서양에서 유입된 종교인 가톨릭의 국악미사가 정착해 가고 있는 것에 비하면 국조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한민족 최초의 국가를 세운날을 기념하는 개천절에 이제야 국악을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늦은 셈이다.앞으로 개천절 행사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행사에도 국악을 사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만 하다. 애국가는 물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국기에 대한 경례에 사용되는 음악등 의식음악의 국악화는 이미 이루어진 상태.애국가는 지난 60년대 창작국악의 선두주자였던 김기수(1917∼1985)가 편곡했고 다른 의식음악도 국립국악원이 3∼4년전 국악으로 편곡해 「오늘의 국가기념일 음악」이라는 컴팩트 디스크까지 나와 있다.이번 개천절 행사에서 보듯 각종 의식에서 사용됐던 조선조의 궁중음악도 활용할 수 있다.마음만 먹으면 국악만으로 모든 국가행사를 치를 수도 있는 것이다. 오랜 서양음악 위주 교육탓으로 국악이 양악보다 더 낯설을 수도 있다.그러나 지금도 국악은 우리에게 「피가 땡기는」 체험을 갖게 한다.
  • “숨진 아드님은 나라위해 희생”/김 대통령 전사자 조문 이모저모

    김영삼 대통령은 23일 상오 「비감한 표정」으로 서울 등촌동 국군수도통합병원을 찾았다.북한무장공비 토벌작전중 숨진 이병희 상사·강정영 병장·송관종 상병의 합동분향소 조문을 위해서다. 김대통령은 이양호 국방장관·윤용남 육군참모총장·정영무 특전사령관 등의 안내를 받아 합동분향소로 들어가 헌화 분향,묵념을 했다.이어 유가족 30여명을 일일이 위로했다. 김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들의 손을 부여잡고 『숨진 아드님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라고 말하고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 했다. 병원을 찾기전 과천 구세군양로원을 방문했던 김대통령은 미리 준비한 검은색 양복과 검은색 넥타이로 옷을 바꿔 입고 분향소를 방문했다.이날 방문에는 청와대의 김광일 비서실장과 유종하 외교안보·박세일 사회복지·윤여전 공보·번기문 의전수석 등이 수행했다. 김대통령은 무장공비에 의해 모친을 잃었다.무장공비사건에 대한 심경이 남다를 것 같다. 과천 구세군양로원을 찾은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여러분을 만나뵙게 되니 36년전 5대국회때 공산간첩에 의해 살해된 어머님이 생각난다』며 『오는 25일이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36주기여서 그런지 특히 감회가 새롭다』고 술회했다.
  • 정상회담 75분… 경협 진지한 논의(중남미 순방 여로)

    ◎교민들 생활상·교육·애로사항 청취/페루,APEC 가입 한국지원 요청 13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중남미순방 마지막 국가인 페루에 도착한 김영삼 대통령은 교민을 위한 다과회를 주재한데 이어 14일 새벽에는 페루의 후지모리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막바지 일정을 보냈다.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후지모리 페루대통령은 페루대통령궁에서 1시간15분동안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협력증진방안을 폭넓게 협의. 독립기념탑 헌화를 마친 김대통령은 곧바로 리마시 중앙광장에 위치한 대통령궁에 도착,「대홀」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후지모리 대통령과 악수를 교환한뒤 기념촬영. 양정상은 이어 단독회담과 양측의 외무·통산장관등이 참석한 확대회담을 잇따라 가졌는데 『우호적인 분위기속에서 양국간 공동관심사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우리측의 한 참석자가 전언. 회담에서 김대통령이 『페루의 풍부한 천연자원개발과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 우리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페루정부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자 후지모리 대통령은 『한국기업이 페루의 민영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희망. 후지모리 대통령은 페루의 APEC(아태경제협력체)가입노력을 설명하며 『페루가 APEC에 가입하는데 한국이 적극 지원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김대통령은 협조를 약속. ○…양국정상은 회담후 후지모리 대통령 집무실에서 잠시 환담을 나눈뒤 「황금실」에 마련된 협정서명식장으로 이동,양국 외무장관간에 이뤄진 남극협력협정 서명식을 지켜보고 협정서명을 축하하며 건배. 김대통령은 서명식 축사를 통해 『한국의 해양연구소와 페루의 국가 남극위원회가 공동으로 과학적인 조사와 기술개발 등에 착수하기로 합의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평가. 김대통령의 페루방문에는 최종현 전경련회장 김상하 대한상의회장을 비롯한 경제인 25명이 수행했는데 이들중 최회장 등 15명은 브라질리아에서 리마로 오는 비행기편이 없어 대통령전용특별기에 동승해 리마에 도착. ▷독립기념탑 헌화◁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숙소인 쉐라톤 리마호텔에서 승용차로 20여분 거리인 헤수스 마리아구에 있는 페루 독립기념탑을 방문. 김대통령은 이날 가라이코체아 페루영예수행대사의 안내로 숙소를 떠나 승용차를 타고 독립기념탑에 도착한 뒤,토레스 무가 페루의전장의 영접을 받고 의장대를 사열. 김대통령은 애국가와 페루국가가 차례로 울려퍼지는 가운데 토레스의전장의 안내를 받아 독립기념탑에 헌화한 뒤 잠시 묵념. ▷교민 리셉션◁ ○…김대통령 내외는 이에 앞선 13일 상오 쉐라톤 리마호텔 2층 인디펜던스룸에서 열린 교민리셉션에 참석. 김대통령 내외는 이원영 주페루대사의 영접을 받으며 리셉션장에 들어선뒤 입구에서부터 줄서있는 교민 80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헤드테이블로 이동해 참석자들과 잠시 교민의 생활상·교육문제·애로사항 등을 주제로 환담. 김대통령은 특히 『해외에 살고 있는 5백50만 우리 교포는 우리나라의 지평을 넓히는 재산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며 『정부도 해외교포의 2세 교육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필요한 지원을 해나가겠다』고 약속. ▷공항도착◁ ○…김대통령은 13일 새벽 중남미 순방 마지막 방문국인 페루의 수도 리마공군기지에 도착. 공항도착후 김대통령은 이원영 주페루대사와 토레스 무가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은뒤 예포 21발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트랩을 내려와 공식 환영식에 참석. 이날 페루측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과 딸 소피아 후지모리씨가 직접 공항에 영접을 나와 트랩밑에서 김대통령을 맞는 등 중남미 순방국중 가장 극진히 예우해 김대통령의 방문에 대한 기대를 반영.
  • “1년새 두번 대면” 두 정상 유대 과시(중남미 순방 여로)

    ◎“한­아르헨 잠재력 공유… 공동번영 기대”/“멀지 않아 남북한 통일” 교민들에 연설/아르헨외교 기내 영접… 이례적인 예우 김영삼 대통령은 9일 상오(이하 한국시간) 세번째 방문국인 아르헨테나에 도착,교민리셉션·공식환영행사 등에 참석한데 이어 한·아르헨티나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유대확대를 위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양국 동반관계 강조 ▷정상회담◁ ○…김대통령과 메넴 아르헨티나대통령은 이날 밤(한국시간)대통령궁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실질협력 증진방안을 비롯한 공동 관심사에 관해 논의. 정상회담은 단독 및 확대회담에 이어 협정서명식 순으로 50여분간 진행. 김대통령은 이날 대통령궁에 도착,영접나온 대통령궁 의전장의 안내로 대통령궁 2층의 「남쪽방」으로 이동,잠시 머문뒤 이어 「하얀방」으로 입장해 기다리고 있던 메넴대통령과 반갑게 악수하며 인사. 양국대통령은 인사를 나눈뒤 단상으로 올라가 기념촬영을 하고 서로 환영사와 답사를 교환. 메넴 대통령의 환영사에 이어 김대통령은 답사를 통해 지난9월 방한한 메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두번째로 정상회담을 갖게 된데 대해 『불과 1년 사이에 지구 반대편의 저쪽과 이쪽에서 두번이나 마주앉게 된 것을 무척 뜻깊게 생각한다』면서 『이는 한국과 아르헨티나가 서로의 잠재력을 유용하게 나눌 수 있는 동반자 관계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 김대통령은 『양국이 이러한 동반자 관계를 바탕으로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 나간다면 두나라의 공동 번영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며 『그러한 점에서 오늘 이 자리에 양국간 협력을 보다 구체화시키는 역사적인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 양정상은 이어 수행원들을 서로 소개한뒤 곧바로 대통령집무실로 자리를 옮겨 양국 외무장관을 배석시킨 가운데 단독정상회담에 들어갔다. ○국제무대 협력 다짐 김 대통령과 메넴 대통령은 10여분간의 단독회담을 마친뒤 「북쪽방」으로 이동해 양국대표단과 함께 확대정상회담을 갖고 경제교류 확대와 국제무대에서의 협력방안 등에 대해 논의. 확대정상회담을 마친 양국정상은 다시 「하얀방」으로 자리를 옮겨 양국 외무장관간에 이뤄진 항공 원자력협정 서명식을 지켜봤다. ▷경제단체 오찬◁ ○…정상회담에 이어 김대통령은 10일 새벽(한국시간)부에노스아이레스 증권거래소에서 행한 아르헨티나 경제인단체 주최 오찬연설에서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아태경제협력체(APEC)와 남미공동시장(MERCOSUR)과의 지역간 협력시대를 열기 위해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하고 『두나라 경제계지도자간 신뢰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 ○경제인 백여명 경청 아르헨티나 수출재단,아르헨티나 투자재단 공동주최로 열린 이날 오찬에는 아르헨티나 정·재계인사 1백여명과,우리측 기업인 및 현지지사장 70여명이 참석해 양국대통령의 연설을 경청. 김대통령은 「자유와 번영의 동반자」란 주제의 연설에서 『메넴 대통령이 앞장서온 규제완화·민영화·무역자유화 등 일련의 효율적인 신경제정책과 국민정신에 힘입어 아르헨티나 경제는 91년이후 7%대의 착실한 성장을 하고 있다』고 메넴 대통령의 경제업적을 평가한뒤,김대통령 자신이 주도해온 한국의 세계화 정책과 대외 개방협력정책을 소개하며 메넴과의 연대감을 표시. ▷공식환영 행사◁ ○…김대통령은 이에 앞선 9일 하오 남미 독립영웅 산마르틴 장군을 기념한 산마르틴광장에서 개최된 공식환영식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방문 이틀째 일정을 시작. 숙소인 알베아르 호텔에서부터 기마대의 호위를 받으며 산마르틴광장에 도착한 김 대통령은 디 텔라 아르헨티나 외무장관의 영접을 받은 뒤 의장대를 사열. ○산마르틴 동상 헌화 김대통령은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태극기와 아르헨티나 국기 앞에서 잠시 멈추어 경의를 표시한 뒤 연단위로 이동. 이어 김대통령은 아르헨티나 국가와 애국가가 차례로 연주되는 가운데 텔라 외무장관의 환영사를 들은 다음 답사를 통해 아르헨티나 방문 소감과 아르헨티나측의 성대한 환영에 감사한다는 뜻을 전달. 김대통령은 델라 루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으로부터 「행운의 열쇠」를 증정받은 뒤 기마 대장과 텔라 외무장관의 안내로 산 마르틴장군 동상앞으로 나아가 헌화한뒤 진혼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잠시 묵념. 공식환영식 행사를 마친 김대통령은 다시 기마대의 호위를 받고 숙소인 알베아르호텔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메넴 대통령과의 한·아르헨티나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회담장인 대통령궁으로 이동. ○경제난 극복 자신감 ▷교민리셉션◁ ○…김대통령 내외는 공항도착후 숙소인 알베아르호텔 1층 베르사이유홀에서 공식 수행원들과 함께 교민리셉션에 참석.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는 선진국 모임인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에 가입할 능력과 자질이 있는 만큼 이번 가입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강조. 김대통령은 또 최근의 경제난에 대해 『지금은 우리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우리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피력. 김대통령은 이어 『남북한은 멀지않아 숙명적으로 통일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통일은 민족의 자유·평화·번영을 위해 민주주의적 방식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이날 리셉션에는 4백여명의 교민이 참석,김대통령 내외를 열렬히 환영했고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참석자와 일일이 악수를 하는 것으로 답례. ○교민 4백여명 환영 ▷공항도착◁ ○…앞서 이날새벽 전 방문국인 칠레를 떠난 김대통령은 상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에세이사국제공항에 도착. 김대통령은 공항도착후 디 텔라 아르헨티나 외무장관과 조기성 주아르헨티나 대사,파우리에 의전장 등의 기상영접을 받은 뒤 보딩 브릿지를 통해 공항청사로 들어와 통로를 따라서 도열해 있던 의장대를 사열. 아르헨티나측은 당초 텔라 외무장관을 비행기밖에서 대기토록할 예정이었으나,외무장관이 직접 기내에까지 들어가 영접하는 등 극진한 예우를 표시.
  • “한·칠레 태평양 양안 잇는 다리 되자”(중남미 순방 여로)

    ◎과테말라∼칠레/경협위 연설 칠레 재계대표 대거 참석/칠레육사 방문… 생도 15명과 새벽 조깅/“한국 대통령 첫 방문” 교포들 열띤 환영 김영삼 대통령은 6일 상오(이하 한국시간) 과테말라 방문에 이어 두번째 순방국인 칠레에 도착,공식환영행사등에 참석한데 이어 한·칠레 정상회담을 갖는 등 3박4일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공항행사◁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산티아고의 베니테즈 국제공항에 도착,조명행 주 칠레대사 및 페레즈 칠레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을 내려와 대기중이던 칠레의 인술자 외무장관과 산후에자 공군지역사령관과 반갑게 인사를 교환.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남미국가를 방문한 김대통령은 감회어린 표정으로 군의장대의 환영의식을 받으며 사열대를 통과. 이어 김대통령 내외는 도열해 있던 칠레측 출영인사 및 우리 교민대표들과 인사를 나눈 뒤 환영나온 60여명의 교민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며 격려.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화동 이정규군(8)과 이송희양(8)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고 가벼운 포옹으로 친근감을 표시. 환영식이 끝난 후 김대통령은 취재나온 내외신기자등 보도진에게 손을 흔들어 가볍게 인사한 후 승용차편으로 숙소인 하얏트호텔로 이동. 김대통령은 산티아고로 오는 도중 적도를 통과할 때쯤 특별기안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관계수석으로부터 남미순방과 관련한 제반 보고를 받고 현안을 점검.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이날 새벽 2박3일간의 과테말라 방문을 끝내고 아우로라 공항을 출발. ▷공식 환영식◁ ○…김대통령은 이어 숙소인 하얏트호텔 인근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새벽 조깅을 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 김대통령은 칠레육사생도 남녀 15명과 함께 약 30분간 연병장을 돌며 체력을 다진 뒤 이들과 잠시 환담하고 기념 촬영. 이어 김대통령은 숙소로 돌아와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공식 수행원들과 함께 산티아고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건국영웅 오이긴스장군동상에 헌화하고 묵념. 김대통령은 헌화에 앞서 페레스 요마 국방장관과 외무부 및 군의전 고위관계자의 안내로 의장대를 사열.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김대통령은 건국영웅 동상에 참배한데 이어 광장 지하의 오이긴스장군기념관도 시찰. ○…김대통령은 에두아르도 프레이 대통령과 한·칠레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이날 하오 대통령궁앞 헌법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 김대통령은 페레스 칠레의전장의 안내를 받아 프레이 대통령 내외와 인사를 교환한 뒤 기념촬영. 김대통령은 양국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산티아고지역 사령관의 안내로 프레이 대통령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 김대통령은 공식 환영식이 끝난 후 대통령궁에 입장해 도열병을 통과한 뒤 방명록에 서명. ▷한·칠레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이어 이날밤 프레이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경제협력증진 및 상호 관심사에 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 환영식이 끝난 뒤 김대통령은 프레이대통령의 안내로 대통령궁 접견실로 이동,양국 외무장관과 통역만을 배석시킨 채 단독회담. 회담이 끝난 후 두 정상은 대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공로명 외무장관과 11명의 공식 수행원 및 칠레 관계자들이 배석한가운데 확대정상회담을 시작. 프레이대통령은 먼저 『각하의 방문이 양국간 경제협력및 우호증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인사했으며 이에 대해 김대통령은 『칠레를 최초로 방문한 한국대통령으로서 나의 방문이 양국관계는 물론 한국과 남미간 관계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답례. 김대통령이 지난 94년 프레이 대통령의 방한이후 상호 보완적 경제협력이 확대되고 있는데 대해 만족을 표시하자 프레이 대통령은 『앞으로 양국이 태평양 양안협력의 동반자로서 아시아와 중남미 대륙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자』고 화답. 이어 두 정상은 대통령궁 토에스카 홀에서 공외무장관과 인술사 칠레 외무장관이 서명한 투자보장협정문을 교환했으며 곧 이어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회담결과를 발표. ▷한·칠레 민간경협위◁ ○…김대통령은 한·칠레 정상회담에 이어 7일 새벽 하얏트호텔 리전시볼룸에서 열린 제11차 한·칠레 민간경협위에 참석,「태평양시대의 새로운 특별동반자 관계」란 주제로 연설. 김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칠레 경제는 「중남미의 떠오르는 별」로 부상하고 있으며 남미지역에서 유일한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원국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과 협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면서 『우리 기업의 미주 대륙진출에 있어 훌륭한 거점 국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 김대통령은 특히 『칠레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자원개발 분야에서도 두 나라 기업간의 긴밀한 협조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 김대통령은 다가오는 태평양시대에 아시아와 남미를 연결하는 특별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호혜적 경협관계 ▲개방과 투자자유화 ▲민주화와 선진화 공동노력 등 3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두 나라가 상호 노력해 나가자고 강조해 열띤 박수를 받기도. 이날 경협위에는 리자나 칠레산업진흥협회(SOFOFA)회장과 마리스타니 한·칠레경협위 칠레측위원장,구스만 칠레상공인 연합회장,아보이티즈 시그도 코파그룹회장 등 칠레 경제계를 대표하는 재계인사 1백여명이 참석했으며 한국측에서는 김상하 대한상의회장 등 경제4단체장과 정몽구 현대그룹회장,현지진출 기업체관계자 등 80여명이 참석. 한편 제11차 한·칠레 민간경협위에서는 정보통신과 산림개발·광업·사회간접자본 분야에서의 투자와 교역증대방안이 집중 논의됐으며,특히 한국의 개방정책 설명에 이어 양국간 실질적인 경협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
  • 민족혼 깃든 도시 대련(압록강 2천리:34)

    ◎안중근의사 조국에 잠재운 여순감옥 그대로/홍구공원 거사 가담 애국단출신 노인 생존/대륙진출 관문… 한국 보따리장사꾼 “북적” 요령성 대련시는 이 도시의 한 구역인 여순으로 해서 금세기 초에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1905년의 러·일전쟁에서 전략적 격전장이었던 여순은 일본의 승전지이기도 했다.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한 것이어서 그로부터 40년 뒤인 1945년 소련 원동방면군 사령관 바실레스키원수등 수많은 별들이 패전지에 와서 승전의 묵념을 올렸다. 우리에게도 대련시 여순은 귀에 설지 않다.안중근의사와 함께 기억되는 도시다.1910년 3월26일 일제가 안의사를 처형한 여순감옥 건물은 아직도 대련시에 남아있다.역사의 거인이 잠든 대련.압록강구에서 서남으로 5백16㎞,대동강구 남포로부터는 6백24㎞가 떨어진 발해만의 이 도시는 우리와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각별한 감회가 와닿는 대련에 와서 많은 조선족들을 만났다. 그 가운데 한 분이 이화림(91)할머니다.그 유서깊은 도시에 걸맞게 민족의 혼을 지킨 여인이기도 했다.1920년 평양 숭의여학교 유아사범반을 졸업하고 1930년 3월 상해에서 김두봉의 소개로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한인애국단은 김구 선생이 이끌었는데,그녀는 이 때에 선생을 처음 만났다.김구 선생의 비서격으로 일하면서 선생의 침식을 도맡아 돌보았다. 그녀는 이봉창의사의 일본천왕암살 미수사건과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사건에도 관여했다.1932년 1월8일 천황이 열병식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가지고 상해를 떠나는 이봉창의사한테 작탄 두개를 감출 수 있는 내복을 지어주었다.그리고 1932년 4월29일 일본천황 생일기념식장인 상해 홍구공원에는 본래 그녀가 윤봉길의사와 부부로 가장하여 잠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그래서 거사전에 홍구공원의 지형지물을 세밀히 조사하여 김구선생에게 직접 보고를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거사 며칠을 앞두고 윤의사의 단독거사로 계획이 바뀌었다.그녀는 1936년 김구 선생 곁을 떠나 광주로 갔다가 다시 남경으로 거처를 옮겨 조선민족당 총무 부녀국 위원으로 일했다.이어 일본군의 남경공격을 피해 중경으로 나 앉았다.그녀는 중경에서 김구선생을 극적으로 상봉했으나,선생과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다.중경에서 상봉했을때 그녀는 한인애국단시절 자신이 공산당이었다는 사실을 선생에게 고백한 것이 만남의 끝이 되었던 것이다. 김구 선생은 그녀의 고백을 다 듣고나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그 말씀은 『이제부터 다시 만나지 맙시다』라는 한마디였다고 한다.이후 그토록 흠모했던 선생을 중경땅 지척에 두고도 한 차례도 만나지 못했다.그녀는 김약산조선의용대부녀대 대장으로 있다가 해방을 맞은 1945년 연안중국의과대학에 들어갔다.그러고 나서 오늘의 연변의학원 전신인 중국의과대학 제1분교에 배치되었다. 그녀는 한때 북한으로 소환되어 인민군 제6독립군단 전선의무소 소장을 지냈다.1952년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중국으로 들어와 심양의사학교 부교장,연변위생국 국장을 연임했다.문화대혁명 당시는 한인애국단에서 활약한 것이 죄가 되어 3년동안 옥고를 치르고 나와 1984년 대련시 시찰원(시장대우)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그녀는 일생동안 아껴 모은돈 1만원을 연변작가협회에 내주었다.연변 작가협회는 그 돈으로 화림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가슴속 깊이 맺힌 회한이 있다면 김구선생을 평생 못 모신 것이다.이념의 차이로 가장 존경하는 어른과 인연을 끊게 된 것은 비극인지도 모른다.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념의 허상이 무너진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대련은 한국을 향해 문이 활짝 열렸다.지난해부터 대련∼인천간 여객선이 매주 목·일요일 대련항을 출항한다.또 매주 월·수·금요일에는 비행기가 서울을 향해 뜨고 있다. 대련∼인천간은 중국과 한국을 잇는 최단거리의 작항해로다.따라서 운임도 싸기 때문에 중국 동북시장 맛을 본 한국의 보따리 장사꾼들이 대련으로 몰려들고 있다.천진은 상대적으로 여객이 줄어 오는 음력설을 전후로 해서 노선이 폐쇄될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어떻든 간에 대련은 한국에서 중국 동북방을 잇는 관문도시로 떠올라 날로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대련시 서강구 빈해로 부가장 해변가에는 빈해호텔(빈해대하)이 자리했다.대련시 10대 풍치지구의 하나인 부가장 해변가의 이 호텔에는노래방과 나이트클럽을 겸한 한미가무술집이 있다.연변국발실업총공사가 빈해호텔과 6년 계약을 맺고 운영하는 이 업소는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손님들이 들끓는다.말하자면 대단한 성업인 것이다. 연변국발실업총공사는 지난 93년에 창업한 기업.기업과 무역이 불황기였을 때 간장과 된장·고추장을 생산하는 고려식품공장,급수설비와 열교환장치를 만드는 유한회사 이외에 장림목재공장 등 3개 계열업체를 세웠다.그러고 나서 빈해호텔에 한미가무술집을 냈다. 한미가무술집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잘 되기로 말하면 빈해호텔도 마찬가지다.해수욕철인 여름이 오면 1백20개 객실은 일찍 동이 나 버린다.한꺼번에 3백2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호텔도 늘 북새통이다.겨울 얼마동안은 손님이 뜸하나 한미가무술집은 철을 타지 않았다.그래서 빈해호텔측은 김일웅 회장과 합작으로 한국부를 최근 개설했다.대련으로 몰려오는 한국 장사꾼 유치를 겨냥한 것이다. 한국부 책임자는 서울출신인 박동렬(28) 부장.젊은 사람이었지만 의욕이 대단한 그는 승부수가 들여다 보인다고 했다. 『저는 소신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이 호텔의 위치가 우선 그만입니다.부두까지 15분,공항까지는 25분 거리고 문만 나서면 역과 번화가로 통하는 버스가 수시로 다닙니다.한식전문 식당이 있고 연락만 하면 부두와 공항에 나가 손님을 모셔오고 있습니다.각종 티켓은 물론 무역상담도 해주는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해 주니까 잘 될 겁니다』 대련시의 조선족은 그리 많지 않아 5천2백50명에 불과하다.그러나 조선족 부동인구는 상당히 많아 조선족문화관이 주최하는 민속절 행사에는 8천여명이나 몰려든다.이 가운데는 한국인과 북한인들도 포함되어 있다.한가지 흥미를 끄는 일은 대련시 조선족 소학교의 남북한 어린이들의 공학이다.대련에 사는 남북한 기업인들의 자녀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는 것이 이 학교 계영자(48) 교장의 귀띔이다. 『한국 아이들은 활발하고 자기의사를 대담하게 표현하디요.반면 북한 아이들은 소박하고 수줍어하는 편입네다.그런데 아주 친하게 어울리는 것을 보면 형언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이 들디요.하기야 아이들에게 무슨 이념이 있겠습네까만…』
  • 독립유공자 초청 보은행사/독립기념관,보훈의 달 맞아

    ◎전국 1백93명 모여 「험난한 시절」 회고/목천·병천초등학생과 통일염원 타종도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전국에 생존해있는 독립유공자들을 대상으로 한 보은행사가 12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관장 박유철)에서 열렸다. 전국의 독립유공자 3백86명가운데 1백93명이 배우자와 함께 1박2일간 한자리에 초청돼 기념행사를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독립에서 통일로!」를 주제로 한 이날 행사에는 이강훈·안춘생·박영준·서상교·이규창·김승곤·조인제·권쾌복선생 등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원로유공자,지부영·신순호여사 등 여성독립운동가 10여명과 황창평 보훈처장,이경문 문체부차관,이수빈 삼성사회봉사단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보은의 뜻과 함께 독립세대와 통일세대가 한 자리에서 만나 독립의 의의를 되새기자는 취지에서 인근 목천초등학교와 병천초등학교의 어린이 1백40여명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하오 1시부터 참석자들은 독립기념관 추모의 자리에서 육군본부 의장대의 도열과 진혼곡속에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 산화한 동지들과 순국선열 영령들에게 헌화를 하고 묵념을 했다.이어 겨레의 집으로 자리를 옮겨 기념식을 가진뒤 이강훈 선생(93)으로부터 독립운동당시의 회고담을 들었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험난한 시절의 얘기를 손주에게 옛날얘기 들려주듯 자상하게 일러준 이옹은 『나라가 힘이 없으면 다른 나라의 업신여김을 받는다』며 『여러분이 훌륭히 자라 하루 빨리 통일을 이루고 나라를 튼튼하게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이선생의 발표가 끝나자 또랑또랑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던 어린이들이 기다렸다는듯 갖가지 궁금증을 쏟아놓았다.『일본인들이 독립운동가들에게 어떤 고문을 했나요』『독립운동할때 가장 힘든 점은 어떤 것이었나요』『그 당시 독립군가를 불러주세요』 정진영양(13·병천초등6)은 『우리나라를 찾기 위해 열심히 싸우신 할아버지들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더욱더 나라를 사랑할 것을 다짐했다. 열띤 대화의 시간뒤에 이들은 한마음으로 통일염원의 종을 타종하고 이어 독립운동가들의 자취가 배어있는 전시관을 함께 관람하며 제2의 광복인민족통일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삼성그룹과 공동으로 이 행사를 주관한 박유철 독립기념관장은 『생존 독립유공자의 공훈을 기리고 육성녹취를 통해 미흡했던 독립운동사의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이같은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천안=이순여 기자〉
  • 서울 사이렌 또 침묵/현충일 묵념시간 홍은·거여동 “먹통”

    ◎지난달 「미그기 소동」 불구 개선안돼” 지난 달 23일 북한 미그기 귀순 때 울리지 않아 물의를 빚었던 서울시 민방공 사이렌이 현충일인 6일 상오 10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1분동안의 묵념시간에도 서대문구 홍은동과 송파구 거여동 등 두 곳에서 울리지 않았다. 서울에는 1백30개 지역에 경보사이렌이 설치돼 있다. 역시 추모 사이렌이 울리지 않은 강남구 수서동에는 경보사이렌이 아예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시 관계자는 『서대문구 홍은동은 통신선로의 이상이 확인돼 하오에 즉시 보수했고 송파구 거여동은 통신선로 등은 정상이었으나 전자사이렌 시설이 낡아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밝혔다.〈강동형 기자〉
  • 호국영령에 묵념하며(사설)

    오늘 41회째 현충일을 맞는다.상오 10시 전국 일제히 울리는 사이렌소리에 맞춰 국민은 모두 경건하게 묵념을 올리고 호국의 영령을 생각하게 된다. 6월6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기념하는 것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바친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호국의 얼을 이어받자는 뜻에서다.따라서 공휴일 하루가 생겼다는 철없는 생각에 분수없이 행락에 나대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뒤 광복을 되찾고 대한민국을 건국하기까지,그리고 6·25 한국전쟁을 치르며 나라를 지키고 자유를 수호하기까지 험난한 역정을 거듭해왔다.우리조국이 백척간두위기의 고비에 처할 때마다 호국선열은 분연히 일어나 역사의 소명앞에 한몸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일신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는 숭고한 희생정신은 민족정기로 승화되어 오늘의 우리의 번영과 발전을 초래하게 했음을 어찌 우리가 잊을 수 있으랴. 광복 반세기가 지나 우리는 전쟁의 참화에도 불구하고 번영과 성장을 거듭하여 수출 1천만달러에 무역규모 세계12위권,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진입했다.정치적으로 문민정부 출범이후 완전한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켜 세계 중심국가로 우뚝 서고 있는 중이다.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이어 21세기 첫장을 여는 2002년 월드컵대회를 한·일공동주최로 유치해놓고 있다.이러한 모든 발전과 번영,국운의 융성이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에서 비롯된 것임을 국민은 절실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역사는 영광과 고난을 굽이쳐 돌며 연면히 이어진다.오늘의 우리가 경제발전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제의 호국영령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순국선열과 호국의 영령 앞에 진정으로 우리가 보답할 수 있는 길은 그들이 목숨까지 바치며 사랑한 조국의 번영을 위해 온 국민이 합심하여 매진하는 일이요,한국을 선진국의 대열에 밀어올리고 분단조국의 통일을 앞당겨 실현하는 일이다.
  • 의식이 없어진 기념일들(송정숙 칼럼)

    기회가 있으면 한번 제언하고 싶었던 일이 있다.언제부턴가 그저 노는 날로만 찾아왔다가 지나가는 현충일을 보낼 때면 송구스럽고 부끄러워 번번이 별러보는 그런 「제언」이다. 최근 그런 충동을 또한번 자극받았다.어느 조간신문에서 한 보훈관계 공무원의 투고를 발견하고서다.총선이 끝나자 연일 당선자들을 초청하여 『자랑스런 동문』잔치를 벌이는 풍경들을 보며 자기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국회의원을 많이 배출한 것이 소속 집단이나 동문들에게 자랑인 것이라면 그들만큼 기려지고 추모해야 할 또다른 대상들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같은 명문대학에는 교정에 충혼탑을 세우고 거기에 전쟁에 나가 나라위해 목숨바친 모교출신들의 이름을 새겨놓고 영원히 기억될 자랑스런 동문으로 기리게 한다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6·25전쟁이 나자 조국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학도병으로 지원병으로 전선에 뛰어들어 산화한 고귀한 희생학도병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있는데 그런 동문을위해 무엇인가 기념될만한 일을 해놓은 대학이 우리에게는 한군데도 없다는 것이다.『그들의 희생위에 오늘을 살고있는 우리』의 무심을 한탄한 그 투고글은 뒷맛을 씁쓸하게 했다. 그가 지적한 현상은 우리의 단순한 무심함만도 아니기 때문이다.『그 희생을 딛고』 번영하는 오늘을 사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일조차 자연스럽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우리에게는 있다.그때의 「희생」을 가장 존귀하게 회고해야 당대의 군출신 원로정치인조차,사선을 넘어 몰고온 「귀순 미그기」를 『도로 돌려주는 것이 좋겠다』는 「농담」을 즐기는 판국이라 「분위기」는 더욱 이상해졌다. 「추모」와 「기리기」를 위해 있는 것은 국경일과 기념일인데 그 또한 명색뿐인 날들이 되고 있다.3·1절도 4·19도 현충일도 제헌절도 그리고 독립절인 건국기념일 8·15도 「광복절」로만 축소시켜,그저 「노는 날」로만 즐겨지고 있고 민족의 하늘이 열린 개천절도 그냥 「공휴일」일뿐이다.크리스마스나 석탄일같은 날들은 열성적인 신도들이라도 많아서 화려하게 누려지지만 「나라」와 관계있는 기념일들은 그런 대접도 못받는 것같다. 그래도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학교들은 이날 기념식을 하고 이런 날들이 왜 「노는 날」만은 아닌지를 새기는 기회를 가졌었다.『기미이년 사암월 일일 정오오…』로 시작되는 기념노래를 부르며 피투성이가 된 태극기와 더불어 만세를 부르다가 쓰러진 선열도 그려보고,새나라를 세운 감격도 되새기며,현충일이면 경건하게 머리숙여 호국영령들께 묵념도 함께했었다.그러나 이제는 이틀만 연휴가 되어도 괌으로 뉴질랜드로 골프여행을 계획하고 등산이나 행락일정을 세워 고대하는 것 외에는 왜 그날이 「즐거운 공휴일」이 되었는지를 도무지 아랑곳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연전에 수원의 발안 어딘가에서 농업학교 교장을 하는 훌륭한 교육자 한분을 만나뵌 일이 있었다.그분은 기념일에 대한 오늘과 같은 현상을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어서 당신이 봉직하는 학교에서만은 기념일 아침 일찍이 전교생과 교직원이 참석하는 기념식을 마치고서야 휴일을 즐기게 하고 있다고 했다.그러면서 『나같은 고집쟁이 늙은이나 하는 짓이니까 내 대에서 끝날 일이지…』하며 쓸쓸히 웃던 그분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그 이후 초중등학교에서 이런 기념식을 되살리자는 것을 「제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노는 날」의 의미로만 기억하는 날들을 기념식으로 「묶자」는 인기없는 「제언」이 먹혀들리는 없다.그렇다면 꼭 그날이 아니라 하루 전날에라도 기념행사를 갖고 그날에 담긴 민족정기를 어린 세대에게 옮겨주어 구천을 떠도는 호국영령을 위로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민족이고 국민된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날로 놀기에만 극성스러워지고 그러노라고 국토와 산하를 쓰레기로 뒤덮이게 하며 타락해가는 우리 심성을 다스리는 일도 어느정도 가능할 것이다.사려깊은 젊은 아버지가 아이들 손을 잡고 민족의 시원(시원)을 들려주고,『나라 지키다 숨진 영령들을 위해서 우리 묵념하자』며 경건하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어느 교훈보다 훌륭한 모습으로 심어질 것이다. 옷깃을 여미고 그것을 제언한다.〈본사 고문〉
  • 2·8독립선언 등 독립운동 시발점/재일한국YMCA 창립 90돌

    재일한국YMCA(이사장 천무봉)가 25일로 창립 90주년을 맞았다.이날 하오 4시 도꾜시내 천대전구 원낙정(천대전구 원낙정) 재일한국YMCA 9층 강당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이경문 문화체육부차관과 김태지 주일대사·신용상 재일민단중앙본부단장·안현진 한국YMCA전국연맹이사장·이남주 한국YMCA전국연맹사무총장·가미산절 일본YMCA동맹이사장·표용은 서울YMCA이사장 등 초청인사와 재일교포 2백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특히 지난 1일 신임총무로 선임된 임광진 총무의 취임식이 함께 마련돼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됐다. 1부 창립기념식에서는 국민의례와 애국가제창·묵념·한국YMCA목적문낭독에 이어 천이사장이 기념사를 했으며 이문체부차관을 비롯한 초청인사가 축사를 했다.천이사장은 기념사에서 『본회가 걸어온 90년의 역사는 미래를 개척하면서 민족사의 중심에 서고자한 땀과 고뇌의 역사였다』고 회고하고 『독립운동의 기초를 이루는 2·8독립선언을 비롯한 다양한 구국운동으로 독립의 열망을 국내외에 널리 호소하고,민족의식의 고취와 역량을 키우기 위한 각종 활동으로 해방이후 한·일국교가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재일한국인의 구심점 역할과 대사관 역할을 수행했다고 자부한다』고 감회를 밝혔다. 이자리에서 천이사장과 김광수·백창호 전 이사장등 3명이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으며 김수규 전 총무가 대한민국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이어 2부에서는 임총무의 취임식이 열렸으며 특별순서로 재일한국YMCA의 90년을 돌아보는 슬라이드가 상영되고 도쿄사물놀이팀이 신나는 사물놀이를 펼쳐 참석자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임총무는 취임사를 통해 『21세기를 맞아 아시아의 관문인 도꾜에서 아시아청소년센터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일본내에서 재일동포의 권익뿐만 아니라 일본인과 더불어 사는 여건이 성숙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재일한국YMCA는 1906년 도꾜에서 창립된 뒤 재일유학생의 결집을 주도해 각종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됐으며 조만식·백남훈·신익희·이광수 선생등 쟁쟁한 민족지도자가 이 단체에서 활동했다. 지금은 70만 재일한국인을 대상으로 민속교육·문화활동·체육사업 등을 폭넓게 전개,민족문화전당으로서 산교육을 담당하고 있다.또한 도꾜에 살고 있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는 활동을 활발히 펴고 있다.〈도쿄=이순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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