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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회 현충일-현충원 나팔수의 하루

    51회 현충일-현충원 나팔수의 하루

    회색도시 서울 한 가운데 43만평의 조용한 숲속에 자리한 국립현충원. 일반인들에겐 현충일에나 북적거리는 별 존재감이 없는 곳이지만 전당대회나 선거같은 굵직한 이벤트를 앞둔 정치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김지훈 일병은 국립현충원 군악대 소속 트럼펫 연주자다. 김일병의 부대는 양악대, 국악대(취타대), 팡파르대가 하나의 대대로 이루어져 현충원내에 주둔을 하고 있다. 바깥에서 ‘손님’들이 오면 부대 막사에 대기하고 있던 그는 정복차림으로 현충탑 앞으로 달려가서 진혼나팔을 분다.“연주는 셋이서 하는데 한 명이 솔(낮은 솔)-미-도 하고 연주하면 다른 두명이 같은 선율을 돌림노래로 따라 합니다.” 헌화. 분향행사 외에 각종 국빈행사등에서 활약을 하는 김일병의 일과는 아침 6시 기상나팔로 시작된다. 오전에 그날의 행사지침을 받으면 하루의 대부분을 연습과 대기로 보낸다.“연못과 산책로가 아름다운 현충원이 바로 옆에 있어도 나들이를 못합니다” 갑자기 연락을 받고 행사 출동을 나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고생이 큰 만큼 보람도 크단다.“국가와 국민이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국내최고의 군악대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뿌듯함뿐만이 아니라 도서벽지에서 찾아온 어린이들에게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청와대, 전쟁기념관등의 외부행사를 마친 금요일 오후, 김 일병은 오랜만에 현충원 산책을 나섰다. 현충일을 앞두고 국립묘지는 공원으로 탈바꿈한다. 도시락을 먹고있는 유치원생들, 먼저간 전우를 그리워 하며 군가를 부르는이, 장군묘역 주변에 만개한 장미꽃 향기를 맡으며 데이트 하는 청춘 남녀... 그들을 바라보던 김 일병은 문득 자신에게 비치는 따사로운 오후 햇살의 느낌에 감사한다. 또한 이 느낌은 호국영령이 있었기에 가능한것임을 깨닫는다. 현충원에는 6.25전쟁에서 산화한 수많은 영령들의 묘역이 있다. 하지만 50년 세월이 흘러 현재는 발길이 뜸해진 쓸쓸한 모습이다. 그래서 현충원에서는 ‘한사람 한송이 헌화운동’을 하고 있다. 전사자 묘역을 뒤로 한 김일병은 현충원 끝자락에 있는 호국지장사(護國地藏寺)로 발걸음을 옮긴다. 조선후기 재상으로 유명했던 오성과 한음이 소년시절 머물면서 공부했다는 유래가 있는 곳이다. 김일병은 호국영령들께 묵념을 올리고 기도한다. 그리고 이내 트럼펫을 분다.“항상 낭만으로, 싱그러운 향기로, 그리고 정성을 다해 치장한 모습으로 저를 보살피듯이 이 나라도 살펴 주소서” ‘현충원 나팔수’의 진혼곡에 지장사 용마루로 날이 저문다. 글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10)‘북아프리카 지중해의 중심’ 알제리의 알제

    [이슬람 문명과 도시] (10)‘북아프리카 지중해의 중심’ 알제리의 알제

    북아프리카 서쪽의 알제리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매우 익숙한 나라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출신지역이고,‘이방인’·‘페스트’ 같은 그의 소설 주무대가 대부분 알제리를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 뿐이랴. 프랑스 대문호 앙드레 지드는 알제리의 체험을 배경으로 평생 소설과 산문시, 회고록 등을 남겼다. 그렇지만 알제리는 우리에게 별로 좋지 않은 이미지로 다가온다. 정부군과 이슬람 급진주의자들 사이의 끈질긴 내전과 잔혹한 민간인 학살 사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알제리는 아프리카의 해맑은 햇빛과 순수하고 파란 지중해로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의 나라로 일어서고 있다. 지금까지 가려져 있었던 북아프리카 지중해의 깊은 역사와 아름다운 사연들도 진주처럼 하나씩 베일을 벗고 우리 앞에 서게 된다. 그 알제리의 수도요 지중해의 중심도시가 알제다. 긴 여정이었다. 서울에서 11시간을 날아 터키의 이스탄불로 가서, 다시 그곳에서 4시간을 더 날아 도착한 곳이 알제 공항이었다. 그렇게 붐비지는 않지만 정감이 흐르는 도심이다. 하얀 차도르를 걸친 여인들과 삼각형 고깔 모자를 쓴 노인들이, 만나기만 하면 눈웃음을 보내는 정겨운 나라. 원시의 지중해를 끼고 언덕 위의 하얀 집과 해안가에 자리 잡은 또 다른 하얀 모스크와 성채들이 독특한 북아프리카 이슬람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 삶의 역동적 공간 ‘카사바´ 알제를 가까이서 호흡하기 위해 언덕위의 구 도심 카사바로 향했다. 알제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 구역이고 가난한 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위험하다며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원의 당부가 전공자들의 관심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오히려 알제 주민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삶 구석구석을 들여다 볼 기회를 만끽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인파들 사이로 여기저기 좁은 골목길이 미로를 만들고 있었다. 그 사이로 각양각색의 상품들이 제 주인을 기다리며 시끌벅적하게 흥정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가장 알제다운 역동적인 삶의 공간이 아니겠는가. 수백년 된 목욕탕 ‘함맘’은 아직도 따스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길에서 만난 꼬마는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따라 한참 동안 우리를 안내하더니, 어느 집 앞에서 멈춰 섰다. 알제리 독립을 위해 애쓰던 독립 투사들이 1957년 프랑스의 공격을 받고 순교한 곳이라고 했다. 그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잠시 묵념을 했다. 우리도 똑같은 독립의 험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가. # 알제리 대학 도서관의 카뮈 원서 한 권 구시가에 발길을 돌려 신시가 중심지로 방향을 틀었다. 체 게바라 거리를 따라 해안가로 20분정도 걸어가다가 서쪽 언덕으로 방향을 바꾸면 넓은 광장에 기마 동상 하나가 서 있다. 에미르 압둘 카디르의 동상이다.19세기 알제리 서부에서 프랑스에 저항하며 조국의 해방을 위해 평생을 바친 독립 투사다. 알제리 사람이면 누구나 존경하고 따르는 인물이라고 한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10만 대학생을 수용하는 알제리 대학이 보인다. 카페와 레스토랑, 패션 명품점까지 들어찬 대학촌을 지나 알제리 대학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19세기 이전에 편찬된 귀중본만 100만권 이상 소장하고 있는 북아프리카 최대 도서관 중의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운이 좋았던지 도서관장의 특별 배려로 전 세계에서 단 1부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카뮈의 ‘형이상학, 기독교, 신플라톤주의’라는 빨간 표지의 책을 볼 수 있었다. 그 때의 짜릿한 기분이란, 정말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 카뮈의 ‘티파사에서의 결혼’을 찾아서 알제리 주민 대부분은 7세기 무렵 이슬람교를 받아들였지만, 그들의 삶 속에는 고대 역사의 숨결이 여전히 묻어나고 있었다. 그 중심지가 수도 알제다. 아랍어로 ‘엘 제자이르’라 불리는 이곳은 고대 페니키아 시절부터 중요한 항구 도시였고,10세기경에는 로마와 북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역 도시로 성장했다. 그 때문인지 국제 교역의 요충지로서 알제 항구는 일찍부터 외세는 물론, 그 당시 성행하던 해적들의 주된 공격 목표가 됐다. 결국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그나마 발전의 발판으로 삼으며 성장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지금 남아 있는 성채나 모스크, 마드라사(신학교) 등은 이 시기에 건축된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알제 주변에는 이슬람 유적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의 화려한 유적들까지 군데군데 숨어 있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고대 유적지가 티파사다. 티파사라면, 카뮈의 산문 ‘티파사에서의 결혼’이란 작품을 탄생시킨 무대가 아닌가. 알제에서 서쪽으로 70㎞ 정도 떨어져 있는 티파사로 가는 해변길은 풍요와 은총으로 가득했다. 흑갈색 땅에서는 옥수수가 자라고 그 사이로 푸른 채소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드디어 티파사에 도착했다. 북아프리카 해변 한 쪽에 이렇게 장대한 고대 유적지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잘 포장된 길을 열어뒀다든가 안락한 숙박 시설을 마련해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한 그런 유적지는 아니었다. 잡풀이 무성하고 이름 모를 열대의 붉은 꽃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고대의 역사 공간이었다. 유네스코는 초라한 이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그 의미를 기리고 있었다. # 유럽과 아프리카의 만남-알제리 카뮈가 거닐었을 길을 따라 단절된 역사의 향기에 취해 보았다. 오래된 유적지는 고대 페니키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지만 원형극장이나 신전, 바실리카 등 대부분 비잔틴 시대의 유산이었다. 유적지가 끝나는 막다른 지점까지 다다르자 언덕 아래 세찬 물살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다와 닿아 있었다. 북아프리카의 지중해다. 그리고 그 건너편이 바로 프랑스 땅이다. 그러고 보니 알제에서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알제리 남쪽 도시 타만라세까지 2000㎞에 이르니, 알제에서 파리까지의 거리보다 길다는 사실이 문뜩 떠올랐다. 사하라를 고향으로 유목 생활을 하는 토착 투아레그족이나 베르베르족들의 전통과 관습보다 로마나 유럽의 해양 문화가 더 강하게, 더 빨리 스며들 수밖에 없는 북아프리카 문화의 특성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듯했다. 문화는 섞일수록 발전하고 다양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수록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는 사실을 북아프리카 최고의 해안 도시 알제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희수 이슬람문화연구소장·한양대 교수
  • “큰 별이 지다니…” 망연자실

    |제네바 심재억특파원·강혜승기자|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국내·외는 충격에 휩싸였다.WHO 본부는 홈페이지에 이 총장의 사진을 내걸고 타계를 애도하는 특별 웹 사이트(DrLee-tribute@who.int)를 마련했다. 유엔빌딩과 유엔 유럽본부(UNOG)는 이날 만국기를 조기로 게양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그가 사망한 22일은 우연히도 제59차 WHO 총회의 개막일이었다. 본부측은 개막식에서 사망소식을 전했다. 총회 의장을 맡았던 엘레나 살가도 스페인 보건장관이 사망 소식을 알리자 각국 대표들은 이 총장의 명복을 빌며 묵념했다.WHO는 총회가 열리고 있는 유엔 유럽본부 대회의장 한편에 조문록을 비치하고 각국의 조문객을 맞았으며,WHO사무국은 유족측이 WHO장(葬)을 희망하면 이를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WHO는 “놀랄 만한 리더십으로 세계의 보건정책을 이끌었던 수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비탄을 금할 길이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빠졌다. 특히 서울대 의대 동문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의대 동기인 서정선 교수는 “과로하는 듯했지만,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아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 줄 알았는데….”라며 슬퍼했다. 서울대 구내에 있는 국제백신연구소(IVI)도 고인과의 특별한 인연을 되새기며 애도했다.IVI는 “이 총장은 위대한 지도자였으며 가장 가난한 이들이 최고의 보건수준에 다다를 수 있도록 하자는 대의(大義)에 평생을 바친 공중보건 운동가였다.”며 고인을 기렸다.IVI는 한국에 본부를 둔 유일한 국제기구로, 개발도상국 아동을 위한 백신 개발과 보급을 주업무로 하고 있다. 이 총장은 WHO에서 일하면서 1994년 우리나라가 6대 1의 경쟁을 뚫고 IVI를 유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대한의사협회의 장동익 회장도 “이 총장은 에이즈·조류인플루엔자·백신 사업 등을 통해 질병으로부터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데 앞장선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고 강조했다.jeshim@seoul.co.kr
  • 그때 그함성… 5·18 18일 26돌

    5·18민주화운동 26돌인 18일 광주에서는 기념식과 추도제 등 5월 영령들의 넋을 달래는 각종 행사가 이어진다. 18일 오전 10시 북구 망월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는 유족과 정부 주요인사, 여야 대표 등 정치인, 시민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다. 기념식은 개회식과 묵념, 헌화·분향, 경과보고, 기념공연, 기념사, 기념노래 제창 등의 순으로 이어진다. 기념일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에서는 추모제와 함께 대동굿 형식의 전야제가 열리는 등 추모열기가 절정에 달했다. 이날 오전 9시30분 5·18묘지에서 열린 추모제에는 전통제례에 이어 추모사, 추모시 낭송, 추모 노래제창, 헌화·분양 순으로 엄숙하게 진행됐다. 전야제는 이날 오후 6∼11시까지 금남로 일대에서 ‘2006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주제로 시민 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시민군들은 5·18의 진행상황에 따라 각본대로 시국선언문 발표, 연좌·연와시위, 투석전을 꾸몄으며 계엄군의 발포에 결사항쟁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풍물패와 일본의 진보적 음악활동 그룹인 ‘우타고에’의 공연 등이 곁들여져 고조된 추모 분위기는 초·중·고생 100여명의 혼불모심,2006광주 5월선언, 시민들의 광주출정가 제창 등으로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스승의 날 두 모습] 죽어서도 제자사랑

    “벌써 천국에 도착했네. 생각보다 가까워. 내가 가까이 있으니 너무 외로워하지들 말아.” 목원대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은 지난 11일 이같은 문자메시지를 받고 또한번 깊은 슬픔에 잠겨야 했다. 지난 8일 세상을 떠난 같은 과 심재호(43) 교수로부터 날아온 메시지였다. 서유리(22·4년)양은 “집에 있다가 밤에 이상한 문자메시지가 와 학생회장에게 전화번호를 확인해 보니 교수님 휴대전화 번호였다.”며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서양은 “교수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하늘에서 지켜봐 주세요.”라는 답신을 보냈다. 메시지를 보낸 이는 이모 조교였다. 심 교수가 숨진 직후에 평소대로 심 교수의 휴대전화로 “잘 가셨습니까.”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심 교수의 부인이 받아 이같이 응답하고, 조교가 ‘이것이 교수님의 마음일 것’이라며 이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보낸 것이다. 제자들은 그를 ‘어린왕자’ ‘피터팬’으로 불렀다. 천진난만한 얼굴에 제자들과 허물없이 지내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붙인 별명. 그는 수업을 진행하다 학생들이 지루해하면 인디밴드 크라잉넛의 ‘밤이 깊었네’를 자주 불러주곤 했다. 제자들과 장난도 즐기고 갑자기 “야외수업을 하자.”며 분위기를 바꿔 주기도 했다. 심 교수가 강의를 중단한 것은 지난해 10월.2004년말 대장암 말기판정을 받고도 힘들게 2학기 강의를 하며 “이번 학기까지라도 강의를 마쳤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학과장 권중돈 교수는 “중도에 강의를 중단한 뒤에 제자들을 다 가르치지 못한 것을 못내 미안해했다.”고 전한다. 제자들은 스승의 날인 15일 대전시립납골당(영락원)의 그를 찾아 조촐한 행사를 가졌다. 묵념을 하곤 ‘스승의 은혜’를 합창했다.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네팔 하원 개원… 개헌 재확인

    네팔 하원이 지난 2002년 해산된 지 4년 만에 처음으로 28일 개원했다. 하원이 다시 열린 것은 19일간에 걸친 야권의 총파업에 갸넨드라 국왕이 의회를 복원하겠다고 2차 양보안을 제시한 데 따른 것이다. 치트라 레카 야다브 부의장은 묵념을 올린 뒤 “모든 의원들을 환영하고 민주화 투쟁의 희생자들에게 감사를 표시한다.”는 말로 개원을 선언했다. 야권이 만장일치로 추대한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84) 네팔의회당 당수는 건강상 문제로 참여하지 못했다. 야다브 부의장은 “우리는 실로 위대한 것을 성취했고,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계속 하나가 되어 나아가는 일”이라면서 “만약 우리가 다시 정치적 위기를 유발한다면 어느 누구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토론을 거쳐 제헌의회 구성에 관한 선거 일정을 공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행 헌법의 개정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앞서 갸넨드라 국왕은 공산반군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조치의 연장 문제로 정쟁이 심화되자 지난 2002년 5월22일 하원을 전격 해산했으며 이어 지난해 2월1일에는 정부마저 해산하고 전권을 틀어쥐었다.그러나 국왕은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국내외의 압력이 계속되자 지난 24일 대국민 담화문에서 총파업 과정에서의 사망자와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표시한 뒤 “하원을 복원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하원청사 주변에서는 이날 오후 공산반군과 민주 세력들이 시위를 벌이면서 왕권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개정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이날 하원에는 205명의 제적의원 가운데 202명이 참여했다. 회의는 30일 다시 열린다.뉴델리 연합뉴스
  • “정책조정에 무게”

    한명숙 국무총리가 25일 취임 이후 첫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여성이 국무회의를 주재한 것은 정부수립 이후 한 총리가 처음이다. 이날 참석한 19명의 국무위원 가운데 여성은 한 총리와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 두 사람뿐이었다. 한 총리는 주재자로, 장 장관은 ‘정부내 각종 위원회 여성 참여현황 및 추진계획’ 보고자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 총리는 인사말에서 특유의 차근차근한 말씨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면 찬반이 있고, 소외 계층도 생기기 마련”이라면서 “성과도 중요하지만 정책수행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균형있는 정책조정을 이끌어 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또 “참여정부가 4년차에 들어섰는데 어려운 문제들이 많아 무거운 책임을 느끼고 있다.”며 최근의 불안한 경제동향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산적한 국정현안에 대한 중압감도 나타냈다. 그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잘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참석자들을 격려하면서 “책임총리로서 국민의 이익을 중심에 놓고 정책을 조정하겠다.”고 다짐했다. 한 총리는 고건 전 총리가 도입한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 이해찬 전 총리가 제안한 부총리·책임장관회의 등 전임 총리들이 세운 국정운영의 틀을 존중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앞으로 국무위원들과 여러 가지 문제를 놓고 토론할 것”이라면서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나 부총리·책임장관회의를 활용해 관계부처의 의견을 수렴하고 부처간 이견을 조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국무회의 분위기를 설명하면서 “여성 총리가 주재한 사상 첫 회의로 어머니같이 자상하고 품위있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부드러움 속에 총리로서의 위상을 갖추려는 의지도 감지됐다. 한 총리는 인사말에 앞서 박유철 국가보훈처장이 “건의사항이 있다.”며 발언권을 요청하자 단호하게 “조금 지나서 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처장은 국무회의 국민의례에 애국가 제창은 물론,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순서를 포함시키자고 건의하려고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구청장 현장인터뷰] 추재엽 양천구청장

    [구청장 현장인터뷰] 추재엽 양천구청장

    “독도는 우리땅.‘으뜸’ 양천구민 파이팅.” 제 87주년 3·1절인 1일 오전 11시. 추재엽(51) 양천구청장은 ‘제2회 독도사랑 양천마라톤 대회’가 열린 목동교 밑 안양천 변의 출발대에 올라 힘찬 목소리로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아침부터 봄을 재촉하는 꽃샘 추위가 몰아쳤지만 추 구청장은 7000여명의 참가자 모두가 출발할 때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양천구와 독도를 사랑하는 구청장 ‘독도사랑’이라고 쓴 머리띠를 두른 그는 “마라톤은 암울했던 일제시대 손기정옹이 국민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준 스포츠”라면서 “3·1절을 맞아 구민들이 독도사랑과 양천 사랑을 다시한번 되새기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라톤 대회는 지난해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등 일본의 역사왜곡이 한창이던 때 이를 규탄하고, 구민들에게 자주 독립정신과 역사관을 심어주기 위해 시작됐다. 양천구를 시작으로 독도사랑 열기가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는 취지도 담고 있다. 올해는 3·1절 기념식을 겸해서 열렸다. 추 구청장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과 애국가 제창, 만세삼창, 규탄사 낭독 등을 참가자들과 함께 했다. 스포츠맨인 추 구청장은 이날 5㎞에 참가해 주민들과 함께 뛰려 했으나 대회 직전에 참가를 포기했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생길지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참가자들의 안전을 직접 챙기기 위해서다. 그는 “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주민의 안전을 챙기는 게 우선이어서 포기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아줌마 부대에 인기 ‘짱’ 추 구청장은 이날 아줌마(?) 참가자들이 몰려들어 악수를 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임기동안 여성과 청소년을 위해 양천구를 교육·문화·예술·환경도시로 가꾸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안양천 변을 생태공원과 청소년을 위한 자연학습장으로 가꿨고, 목동과 신월동에 걷고 싶은 거리를 조성했다. 관내 58개 초·중·고등학교와 45개 유치원에 97억원의 예산을 지원해 보도정비와 체육시설을 신설했다. 최근 3년동안 서울지역 특목고 입학생 숫자에서 양천구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 전국자치단체 중 최초로 장수문화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며, 테마가 있는 실버공원도 조성했다. 그러나 열악한 재정에 비해 주민들의 민원이 많아 애로사항이 적지않다고 전했다. 그는 “재정은 지난해 25개 구청중 18위에 불과하지만 전문직 종사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강남구보다 살기좋은 동네로 알려져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유달리 많다.”면서 “그러나 주민들의 민원은 결국 구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밑거름이 된다.”고 강조했다. ●추진력 겸비한 젊은 구청장 젊은 구청장인 만큼 감각도 젊다. 구청장으로서는 드물게 개인 홈페이지(www.powerchoo.com)를 직접 운영한다. 네티즌들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다. 그는 “올해는 컴퓨터를 완벽하게 배워 예쁘고 다양하게 홈페이지를 꾸며보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 마련한 20대 대표사업도 젊은 감각이 빛난다. 낙후된 신월동 지역의 발전을 위해 신월·신정 뉴타운 사업을 추진하고, 교육도시답게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유치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대중교통 수단이 없는 남부순환도로 주민들의 교통불편 해소를 위해 신월∼신정∼목동∼당산간 경전철 사업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는 “구청장은 구민을 편안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도록 열심히 일하는 공복(公僕)”이라면서 “공복답게 올해도 구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출생 1955년 충남 보령 ▲학력 서울공고, 홍익대 전기공학과, 한양대 행정대학원(박사과정) ▲약력 서울시의회 사무처 전문의원(4급), 국회 정책연구위원(2급), 한나라당 부대변인, 홍익대 총동문회 부회장, 한나라당 양천을지구당 상임부위원장, 가톨릭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제7회 지방자치대상 복지대상, 대한민국 고객만족경영대상 최우수상(CS부문), 자랑스런 향토인상 ▲가족 한정순씨와 1남 2녀 ▲기호음식 김치찌개 ▲주량 마시지 않음 ▲좌우명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 ▲애창곡 유행가
  • 호주 미디어 재벌 패커 사망

    호주의 미디어 재벌이자 최대 갑부였던 케리 패커가 26일 밤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68세. 50억달러(약 5조원)의 자산가인 패커는 집안으로부터 물려받은 채널 나인 방송국과 잡지 출판, 카지노 등으로 부를 쌓았다. 역시 호주의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과는 라이벌 관계였으며 스포츠와 도박에 대한 열정을 과시했다. 오전 멜버른에서 연습경기를 가지던 호주와 남아프리카 크리켓팀은 그의 죽음에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1994년엔 멜버른 크라운 카지노의 파트너가 됐으며,2000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사흘 만에 2000만달러(약 200억원)를 날린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北과 백두산·개성관광 논의”

    “北과 백두산·개성관광 논의”

    금강산 관광 7주년 행사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참석,‘금강산 남북회담’ 결과가 주목된다. 현대그룹은 현정은 회장 등 계열사 임직원 250여명이 금강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2박3일 일정으로 18일 방북했다고 밝혔다. 정동영 장관도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금강산을 방문해 현 회장과 함께 이종혁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날 예정이다. ‘김윤규 사태’로 지난 9월부터 관광객이 1일 600명으로 제한됐던 금강산 관광은 18일부터 정상화됐다. 방북단은 이에 앞서 창우리 선영에서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묘소에 헌화하고 묵념을 했다. 현 회장은 “정몽헌 회장의 묘소에 묵념하면서 금강산 관광 7주년을 맞이해 좀 더 금강산 관광을 잘해보겠다는 다짐을 했다.”면서 “이번 방북에서는 금강산 관광 외에도 백두산, 개성관광 그리고 윤만준 사장 문제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발언대] 순국선열의 날에 생각한다/정하철 서울지방보훈청장

    금년은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다. 일제 침략으로부터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우리 민족은 암울한 질곡의 세월 속에 살아야 했다.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국내는 물론 머나먼 타국 땅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오로지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신념 하나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으셨던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어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강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항거하다 끝내 꿈에 그리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의 위훈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1939년부터 11월1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제정하였다. 그 배경은 1905년 11월17일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비분강개하여 순절하거나 의병항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던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국민들 중 상당수가 순국선열의 날이 있음을 알지 못할 뿐더러 순국선열이란 용어조차 낯설고 생소한 느낌을 갖고 있다. 즉 학교 조회시간이나 행사 참가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은 수없이 하고 있으나 그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학생이나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덕이 높은 분을 불천위(不遷位)라 하고 그 분들에 대하여는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예우하고 존경하였다. 그 가문에서는 신위(神位)를 사당에 모시고 후손대대로 불천위 제사를 지냈다. 이들 후손은 그 조상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시대 최고의 명문가로 인정받았다. 이는 국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인물을 영웅으로 대접하고 그런 훌륭한 인물이 탄생된 가문을 영구히 추앙하는 많은 선진국가의 제도와 유사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국민들은 선진국에 비해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부족한 듯하여 부끄럽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국권회복을 위해 위국 헌신한 수많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독립정신은 물론 조국 광복 이후에도 대한민국을 지키다 소중한 신명을 바친 호국용사들의 피와 땀, 남겨진 유가족의 비통함을 쉽게 잊어버린 채 세대간·지역간·계층간 갈등으로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물질만능과 소비향락 주의가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하여 국가에서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풍조를 바로잡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예우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현충일이나 순국선열의 날 등을 정부기념일로 정하고 기념식과 추모제전을 거행하고 있다. 이는 과거 우리 조상들이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해 그 집안 대대로 불천위 제사를 지낸 것과 같이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만큼은 우리 국민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일제에 항거하다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의 거룩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그 분들의 고귀한 뜻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는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은 조국을 위한 모든 순국선열들의 염원을 대변한 것이기도 하다.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수많은 순국선열들과 국가유공자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정하철 서울지방보훈청장
  • 日외상, 이수현씨 추모비 ‘깜짝 헌화’

    日외상, 이수현씨 추모비 ‘깜짝 헌화’

    ●日 “한국 한센인 보상관련 입법” 이달 초 취임한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은 APEC 공식행사 3일째인 14일 오후 2001년 일본 지하철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숨진 이수현씨의 추모비를 찾아 헌화했다. 일정에 없었던 일로, 아소 외상이 전격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소 외상은 오후 1시20분쯤 김해공항에 도착, 숙소인 부산 롯데호텔로 가는 도중 ‘의사자 이수현씨 추모비’가 있는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 대공원을 찾아 추모비에 헌화하고 묵념을 올렸다. 일본측은 이날 오전 11시쯤 APEC프레스 센터에 긴급 보도자료를 냈다. 아소 외상은 추모비 앞에 기다리고 있던 이씨의 여동생 수진(30)씨에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 오빠가 일본에 끼친 영향이 대단하다. 가정교육이 훌륭해 의로운 일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오빠가 저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에게 준 영향이 크다.”면서 “부산하면 이수현씨를 먼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아소 외상은 이날 일본이 한국 한센인들의 보상문제와 관련, 신규 입법을 제정할 계획을 밝혔다. 부산 벡스코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회담을 가진 아소 외상은 입법은 후생노동성 소관이지만 외무성 차원에서도 적극 도울 것이며 일측이 한국 한센인들에 대한 실태 조사시 한국정부가 협조해달라는 뜻을 밝혔다고 정부 관계자가 설명했다. ●환영 리셉션 성황 한편 부산에는 APEC 참가대표단 환영리셉션과 투자환경설명회,ABAC(기업인 자문위원회)회의 등이 잇따라 열렸다. 이날 저녁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는 APEC 회원국의 각료 등 참가대표단 2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 리셉션이 열렸다. 리셉션은 식전공연에 이어 허남식 부산시장의 환영사, 차기 개최국인 베트남 대표의 답사, 건배, 축하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부산시립청소년합창단의 경복궁타령과 새야새야 파랑새야 등 한국의 전통민요와 사물놀이를 서양의 공연양식에 접목한 ‘난타’가 공연돼 갈채를 받았다. ●AI 국제협력 강화 롯데호텔에서는 역내 기업인들의 자문위원회인 ABAC가 개막식을 갖고 사흘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환영만찬에 이어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한국 경제의 미래와 APEC 역할에 대해 강연을 했다. ABAC 위원들은 최근 조류인플루엔자(AI)발생에 따른 국제무역의 장애 등을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국제적인 협력이 요구된다는 메시지를 정상회의 건의문에 담을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공항청사서 실탄발견 한때 초긴장 한편 이날 오전 8시20분쯤 김해국제공항 국내선 청사 1층 서편 화장실내 쓰레기통 안에서 사격연습용 7㎜ 스포츠탄 1발이 발견돼 경찰이 바짝 긴장. 경찰 관계자는 “청사 입구마다 설치된 문형탐지기와 휴대용 금속탐지기를 이용, 이용객 모두에 대해 검문검색을 실시하고 있지만 실탄처럼 작은 금속체의 경우 가방을 일일이 열어 확인하지 않는 한 적발이 힘들 수도 있다.”고 애로를 토로. 부산 특별취재단 ●APEC 특별취재단 박재범 편집국 수석부국장(단장) 남상인 김명국 손원천 이언탁 차장, 안주영 도준석 정연호 왕상관 기자(이상 사진부)김수정 차장, 김상연 기자(이상 정치부)박정경 윤창수 기자(이상 국제부)백문일 차장, 전경하 기자(이상 경제부)정기홍 차장, 이종락 기자(이상 산업부)황성기 부장, 유지혜기자(이상 사회부)이정규 부장, 김정한 차장, 강원식 기자(이상 지방자치뉴스부)
  • [고이즈미 참배 파장] ‘사적 참배’ 치밀한 준비

    |도쿄 이춘규특파원|고이즈미 총리의 17일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치밀한 각본에 따른 흔적이 짙어 보인다. 참배 두시간반 전에 언론에 일정을 공개, 은밀하게 행했던 이전의 참배와는 달랐다. 아울러 연미복이 아닌 양복정장 차림이었고, 참배자 명단에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적지도 않았다. 헌화료도 내지 않았다. 참배전에서 일반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참배했다. 주변국에 공적이 아닌 사적 참배임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참배 소식이 알려진 뒤 야스쿠니신사 주변에서 취재하던 보도진 사이에 “총리가 오늘 참배한 뒤 총리직을 물러날 것이라고 한다. 다음 총리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라는 소문이 나돈 것도 이례적이었다. 이날 오전 10시 야스쿠니신사 경내의 방송국 보도진 무전기로 “관저를 나섰다.”는 내용이 타전되면서 수백명에 달하는 경찰과 국내외 취재진, 고령자 위주의 참배객들이 빠르게 움직였다.100m 정도의 포토라인도 무색했다. 10시13분. 고이즈미 총리를 실은 검은색 관용차가 4대의 호위차량에 둘러싸여 신사 중간에 나 있는 도로로 들어와 멈췄다. 차량에서 빠져나온 고이즈미 총리는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당당한 걸음과 입술을 앙다문 채 참배전으로 무표정하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일반 참배객들처럼 참배전 앞에 서 묵념을 한 뒤 바지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함에 던지고는 30초 정도 고개를 숙인 채 합장하고 곧바로 돌아서 대기 중인 관용차에 올라타 신사를 빠져나갔다. 따라서 신사 경내에 머문 시간은 5분 정도에 불과했다. 신사 경내는 참배 소식을 듣고 찾아온 유족 등 우익들의 목소리가 높았다.“감사합니다.”,“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응원하는가 하면 “공식적으로 참배하세요.”라는 극우도 있었다. 참배 반대자들은 신사 밖에 머물렀다. 야스쿠니신사 정문 앞에서는 호세이대학 학생과 일반 시민 등 10여명이 ‘침략전쟁 반대’ 등의 피켓을 들고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석한 전국대학생연합 졸업회원 미즈타니 야스다카(59)는 “미·일동맹을 앞세워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려는 준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taei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서재응·김병현·최희섭 키운 광주일고 허세환 감독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서재응·김병현·최희섭 키운 광주일고 허세환 감독

    ‘꿈의 무대’라고 했다. 처음엔 영화나 소설속에서나 접했다. 그래서 먼 나라, 남의 나라 얘기였다.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와도 무척 가깝다. 내로라하는 세계 톱스타들이 모이는 메이저리그 야구, 언제부터인가 한국 선수들이 야금야금 접수했다. 박찬호(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김선우(콜로라도 로키스)…. 이른바 ‘한국인 빅리거’들이다. ●세명이 50회 청룡기 우승 일궈 잠깐, 여기에서 꼭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미국에 진출한 ‘빅리거 5명’ 중 3명이 같은 고교 출신이라는 사실. 메이저리그에서 같은 고교 출신 3명이 동시에 활약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일단 흔치 않은 일이다. 주인공은 서재응을 비롯해 김병현 최희섭 모두 광주일고 출신이다. 흥미로운 것은 1995년 6월 제50회 청룡기대회 결승에서 한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일궜다는 점이다. 이때 3학년 서재응은 3루에서,2학년 김병현은 투수로,1학년 최희섭은 1루를 굳건히 지키며 금자탑을 세웠다. 이쯤되면 영화 소재거리가 아닌가. 또 있다. 이들을 키워낸 의지의 한국인 허세환(45) 광주일고 야구감독이다.‘한국인 빅리거의 스승’이라는 찬사가 늘 뒤따른다. 아울러 세 선수 모두가 허 감독의 뛰어난 안목과 지도력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시 북구 누문동 광주일고 운동장. 광주일고 야구부 선수들이 허 감독의 지시 아래 열심히 연습 중이었다. 수비 위주의 기본기 훈련이었다. 잠시 후 비가 갑자기 쏟아졌다. 이때였다. 약속이나 한 듯이 선수들은 축구 대형을 갖춘다. 아니 야구선수들이 축구를? 이유를 물었더니 허 감독은 “순발력 향상에는 축구가 더없이 좋다.”면서 다들 축구실력도 훌륭하다고 웃는다. 서재응이나 김병현도 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썩 잘했으며, 최희섭은 농구를 무척 좋아했다고 귀띔했다. 점입가경이다. 이어 허 감독은 선수들에게 “이봐 기다리면 공이 오나. 뛰어, 그래 슛이야 슛!”을 연발했다. 도대체 야구감독인지 축구감독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빅리거를 키워낸 비결이 무엇이냐고 했다. 지체없이 “야구나 모든 스포츠는 기본이 가장 으뜸이 아니냐.”면서 “선수들에게 항상 열심히 하라, 최선을 다하라, 스스로 인성을 길러라.”는 말을 늘 강조한다고 했다. 즉 기본기 체력 인성 등 세 가지를 갖춰야 앞으로 경쟁에서 이겨나갈 수 있다는 정신자세를 심어주는 것이 감독이 할 일이라고 했다. 다행히 선수들도 자율적으로 알아서 열심히 따라준다고 했다. 후배들도 자연스럽게 선배를 본받으려고 한단다. 미국에 진출한 빅리거 트리오도 똑같이 그런 과정과 환경 속에서 스스로 성장을 잘 해줬다고 대견스러워했다. ●TV중계 반드시 챙겨 가족들에 소감전해 허 감독은 이들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TV중계를 반드시 본다고 했다. 시합이 끝나면 광주에 사는 가족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소감을 전해준다. 요즘에는 셋 다 경기내용이 좋아 칭찬하기에 바쁘다고 했다. 허 감독은 빅리거 트리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서재응(28·뉴욕 메츠):낙천적이며 아주 외향적인 성격이다. 노래도 잘 부른다. 이역만리 타향에서도 향수병 없이 잘 견디고 있다. 원래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0㎞. 하지만 직구 위주에서 요령껏 구질 개발에 성공했다. 광주 충장중학교 때 3루수였다. 공 던지는 자세가 너무 좋아 광주일고 입학 전부터 투수감으로 점찍었다. 입학 후 본격 조련을 받으며 후배 김병현과 함께 광주일고 마운드를 지켰다. 김병현(27·콜로라도 로키스):악바리다. 내성적이면서도 꼼꼼하고 승부근성이 뛰어나다. 광주 무등중학교에서 유격수였다. 수비능력도 좋고 손목 힘이 뛰어나 유격수로만 쓰기에 너무 아까웠다. 본인도 투수를 원했다. 그래서 투수 연습을 시켜보니 가능성이 있었다. 체구가 작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밤마다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시켰다. 체구가 작고 빨라 수비 반경이 넓었다. 공을 던질 때 손목으로 채는 힘이 좋아서 빠른 공을 잘 던진다. 평소 영화감상을 좋아한다. 최희섭(27·LA 다저스):대인관계가 원만하다. 붙임성도 좋고 순박한 시골총각이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귀엽기까지 하다. 원래는 서재응과 김병현 졸업 이후 투수로 키울 생각이었다. 우선 큰 체격과 왼손잡이라는 점이 투수로서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타자로 대성할 체격조건과 기량을 발견했다. 그래서 고3 때부터 타자로 바꾸도록 했다. ●선동렬 감독과 동창 유격수로 활동 “이들 셋은 모두 3학년때 팀 주장을 맡을 정도로 리더십도 뛰어났습니다. 자랑스럽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만큼 부와 명예를 잘 이루기를 바랄 뿐이죠.” 허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시멘트 부대로 야구 글러브를 만들어 야구를 즐겼다. 광주일고 56회 졸업생인 그는 선동열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고교 동기동창. 광주일고 당시 유격수 출신의 잘나가던 1번타자였다. 선동열과 함께 80년 대통령배 우승의 주역으로 이 대회에서 5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초일류급 고교야구 스타였다. 이같은 실력으로 인하대에 스카우트됐다. 대학 졸업식 때 선후배들과 친선 축구대회를 하다 그만 인대를 다쳤다.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도 있었지만 의사의 만류 등으로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84년부터 실업팀 포항제철에서 8년간 선수생활을 했다. 이후 92년 모교인 광주일고 코치로 부임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당시 광주일고는 이종범(기아)이 활약했던 88년 청룡기 우승 이후 침체된 분위기. 허 감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수들의 정신무장과 팀 정비에 나섰다. 그 결과 부임 2년 반 만에 빅리거 트리오와 함께 95년 청룡기대회의 우승컵을 안았다.98년까지 광주일고를 맡았고, 이후 충장중학을 거쳐 2002년 12월 다시 모교인 광주일고로 돌아왔다. “원래는 체육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야구란 인생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홈에서 출발해 홈으로 돌아오거든요. 남의 도움으로 1루에서 2루로 갈 수도 있고 또 뜻하지 않은 실책으로 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런 기구함의 연속이 아닌가요.” ●부와 명예는 노력에서 얻는 것 광주일고가 어떻게 해서 야구명문이 됐을까. 허 감독은 “광주지역에 초등학교 7개팀, 중학교 4개팀, 고교 3개팀 모두가 전국 상위권”이라고 했다. 풍수지리적인 이유도 있을 법했다. 광주일고 운동장에서 멀리 무등산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 허 감독은 무등산의 정기와 학교의 터가 풍수적으로 잘 맞아떨어지면서 좋은 선수를 키워낸다며 웃었다. 이어 운동장 한 편에 있는 학생운동 기념탑을 가리킨다.“바로 저기가 일제시대 때인 1929년 11월3일 발생한 광주학생운동의 시발점”이라고 했다. 선수들은 연습 전에 항상 탑을 향해 묵념한다고 했다. 예전에도 학교를 여러 차례 이전하려고 했지만 이 탑이 늘 마음에 걸려 옮기지 못했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조상들이 광주일고 출신 선수들이 해외에서 국위선양하도록 힘을 보태주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허 감독은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 아니냐.”면서 선수 각자의 눈물나는 노력이 없다면 오늘날의 명예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빅리거 트리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각자의 인생에서 잠시 자신을 만났을 뿐 스스로가 앞길을 잘 헤쳐가고 있다며 무등산쪽을 바라본다. 이윽고 축구시합을 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움직여. 기다리면 공이 오나.”라고 다시 크게 소리친다. 그에게 “저들 중에 당장이라도 메이저리그에 갈 선수가 있나요.”라고 질문했다.“암요, 있지요 1∼2명 정도는 충분합니다.”라며 자신감에 넘쳤다.“누구냐고 물으면 답을 안 해주겠지요.”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또 다른 빅리거 탄생이 머지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1년 광주 출생 ▲광주 남초등·동신중·무등중학교에서 야구선수로 활약 ▲81년 광주일고 졸업 ▲84년 인하대 졸업 ▲84년 12월∼92년 12월 포항제철 선수 ▲92년 2∼10월 광주일고 야구 코치 ▲92년 10월∼98년 11월 광주일고 야구감독 ▲99년 광주 충장중학교 야구감독 ▲2002년 12월 광주일고 야구감독 ■ 수상경력 80년 대통령배에서 타격상, 타점왕, 수훈상, 최다안타상, 도루상 수상, 황금사자기 준우승.82년 백호기 우승.93년 광주일고 감독을 맡아 청룡기와 황금사자기 3위 입상.94년 1회 무등기 우승, 전국체전 3위 입상.95년 청룡기 우승(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출전).96년 전국체전우승(김병현 출전).97년 황금사자기 준우승(최희섭 출전).2003년 무등기 우승, 봉황기 준우승.2005년 황금사자기 우승, 봉황기 준우승 등.
  • ‘참회의 마라톤’

    “일본이 과거 한국에서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본 지식인들이 과거를 참회하고 일본과 한국의 평화를 기원하는 ‘피스-런’(Peace-run) 마라톤 행사가 열렸다. 일본 도쿄학예대학 와타나베 마사유키(渡邊雅之ㆍ51) 교수 등 일본인 13명과 서울마라톤클럽 회원 6명은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출발해 임진각까지 47㎞ 코스를 완주했다. 참가자들은 찜통 같은 무더위와 습한 날씨 때문에 달리다 섰다를 여러차례 반복한 끝에 출발 8시간만인 오후 4시,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 도착했다. 이들은 한국어와 일본어로 ‘평화 달리기’라고 적힌 붉은색 티셔츠를 맞춰 입었으며 달리는 내내 태극기와 일장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임진각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북녘 땅을 향해 묵념을 올린 뒤 평화의 종각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타종 행사를 열었다. ‘피스-런’ 마라톤 행사는 와타나베 교수의 의지가 있어 가능했다. 지난해 서대문 형무소를 혼자 방문한 그는 한국의 독립 투사들이 일본에 저항하다 숨진 형무소를 보면서 일본인으로서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일본이 한국에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고민 끝에 공무원, 회사원, 교사 등 마라톤 동호회 회원을 모아 한국에서 참회의 마라톤을 열기로 결심했다. 단순한 사죄와 참회에 그치지 않고 양국의 평화를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행사 이름도 ‘피스-런’으로 결정했다. 와타나베 교수는 6월26일 일본 돗토리현(鳥取縣)에서 열린 100㎞ 울트라마라톤 대회에서도 제주도의 민속의상을 입고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일본어와 서툰 한국어로 낭독하기도 했다.그는 “일본에 저항하다 사망한 애국지사들을 기리기 위해 마라톤 출발점을 서대문 형무소로 정했으며 한국 분단에 일본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최종 목적지를 임진각으로 정했다.”고 말했다.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日 고교생들, 5·18묘지서 애국가 연주

    “한국은 고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해준 이웃 나라입니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15일 한국의 민주화를 대표하는 광주의 국립 5·18묘지에서는 일본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애국가를 연주하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일본 고치(高知)현 중앙고 취주악단 학생 16명과 교사 2명은 이날 오전 10시 5·18묘지를 찾아 민주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분향과 묵념을 올린 뒤 ‘애국가’와 우리의 대표 노래인 ‘아리랑’을 차례로 연주했다. 학생들을 이솔한 마에다 마사야(前田正也·48) 교장은 “올해 ‘8·15’는 한국에는 광복 60주년, 일본은 패전 60주년을 맞는 의미있는 날”이라며 “한국의 독립과 번영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애국가를, 한국 문화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기 위해 아리랑을 연주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마에다 교장은 이어 “한국은 고대 일본에 문화와 종교를 전파해준 은혜로운 나라”라며 “다양한 한·일 교류를 통해 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연주에 참여한 아베 도모미(16·고2년)양은 “한국과 일본이 항상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주했다.”고 말했다. 이 고등학교는 지난 2000년부터 수학여행 등을 통해 한국과 교류를 시작했으며 지난 5월에는 사이클링부 학생들이 고치현을 출발, 광주까지 520㎞의 자전거 대장정을 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참배 뒤 전남 장성의 복지시설 프란치스코의 집을 방문해 위문연주회를 가졌으며 16일에는 목포 공생원을 방문하고 진도 실업고 학생들과 합동 연주회도 가질 예정이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헌화·분향없이 추모 묵념

    헌화·분향없이 추모 묵념

    광복 60돌 기념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14일 서울에 온 북측 당국 및 민간 대표단이 오후 3시 동작동 서울 국립현충원을 공식 참배했다. 북한측 인사가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처음이다. 북측 대표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은 또 오는 17일쯤 청와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 여부와 함께 친서를 전달할지가 주목된다. 북측 대표단은 16일에는 분단 사상 처음으로 국회를 방문, 남북 국회회담 개최방안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남북 국회간 교류가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이날 현충원 참배에는 김기남 당 비서와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최성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 등 14명의 당국 대표단과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김정호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장,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 13명의 민간대표단, 기자 3명 등 모두 30명이 참석했다. 북측 대표단은 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봉안된 현충탑 앞에 도열,“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해 묵념”이라는 집전관의 구호에 따라 약 5∼6초간 묵념했다. 그러나 헌화와 분향 순서는 생략했으며, 방명록에 서명을 하진 않았다. 김기남 비서는 이에 앞서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에 도착한 직후 정동영 통일부장관 등 우리측 대표단과의 환담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생을 바친 분이 있어 방문하겠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해 6·25 전몰 군경이 아닌 광복 유공자를 위한 추모 차원에서 방문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북측 자문위원인 임동옥 제1부부장은 이 자리에서 “현충원 (참배) 결정은 어려운 것이었고 언젠가는 넘어야 할 관문”이라며 “6·15 시대에는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앞서 북측 당국대표 17명, 남녀축구선수단 65명, 민간 대표 100여명 등 18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5분과 10시20분 고려항공 전세기 2편에 나눠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김수정 김상연기자 crystal@seoul.co.kr
  • [광복60-민족대축전 화보] 광복에 바친 生 영원히…

    [광복60-민족대축전 화보] 광복에 바친 生 영원히…

    ■ 北대표단 현충탑 참배 안팎 그들의 얼굴 앞에 포연(砲煙) 대신 향연(香煙)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14일 ‘8·15 민족대축전’ 북한 대표단이 6·25 전쟁 전사자의 위패가 모셔진 현충탑 앞에서 참배하는 장면은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긴 여운을 남겼다. 50여년 전 서로 총부리를 들이댔던 쌍방이 무덤 앞에서 참배의 형식으로 만나는 그림은 전쟁 당시는 물론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일반 국민으로서는 상상키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측 대표단의 표정과 행동엔 약간의 경직됨이 묻어 있었고, 참배 절차와 시간도 최대한 짧게 하는 등 전체적으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이날 오후 3시쯤 대형버스로 현충원 현충문 앞에 도착한 북측 대표단 32명은 김기남 당국대표 단장과 안경호 민간대표 단장을 선두로 해 5열 종대로 줄을 맞춰 현충탑으로 향했다. 고경석 현충원장과 송기호 현충과장이 좌우에 서서 대표단을 안내했다. 이때 양옆에 도열한 국군의장대가 “받들어 총”이라는 구령과 함께 거총 자세로 예우를 갖췄지만 대표단은 일체 두리번거리지 않고 정면만을 응시했다. 표정은 엄숙하면서도 굳어 있었다. 대표단은 50m가량을 걸어서 2분여 만에 현충탑에 도착했다. ●행동경직… 참배시간 모두 5분정도 걸려 현충탑 앞에 도열한 대표단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해 묵념”이라는 집례관의 구호에 따라 약 5초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대표단은 묵념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오던 길을 되돌아 현충문으로 나왔으며 이때 의장대가 다시 “세워 총”이라는 구령으로 거총 자세를 취하면서 참배는 마무리됐다. 전체 시간은 5분 정도 걸렸다. 김기남 단장은 나오는 길에 고경석 원장에게 현충원의 시설과 규모에 대해 물었다. 이어 그는 “이렇게 현충원을 방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족의 화합을 위해 앞으로 일들을 많이 합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안경호 단장은 기자들이 몰려들자 “역사적인 장면이니까 취재 경쟁이 심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충원의 공식 참배 절차는 헌화→분향→묵념 등 순으로 진행되지만 북측은 이날 헌화와 분향 절차를 생략했다. 다만 대표단이 도착하기 전 현충원측에서 향을 피워놓아 묵념 당시에는 하얀 연기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통일부측은 “우리와 북측은 참배 관행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보수단체 회원 24명 연행 격리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동상 등을 참배할 때 헌화는 하지만 분향은 하지 않는다. 앞서 오후 1시45분쯤 현충원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보수단체 회원 24명이 경찰에 의해 연행돼 강제 격리됐으며, 대표단 버스가 현충원 정문을 통과할 때도 40대 남성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버스에 달려들며 반북구호를 외치다가 연행됐다. 김상연 이효연기자 carlos@seoul.co.kr ■ 헌화·분향 않고 왜 묵념만 14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이 묵념만 하고 5분 만에 서둘러 자리를 뜬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표단은 현충원의 공식 참배 절차 가운데 헌화와 분향 순서를 생략했다. 이는 북측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의 참배 관행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북측은 김일성 동상과 혁명열사릉 등 현충시설을 참배할 때 분향은 안 하지만 꽃다발과 꽃바구니로 헌화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측은 5초 정도의 짧은 묵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둘러 현충탑을 떴고, 내내 경직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이와 관련, 북한 당국이 북한내 강경파와 대남관계의 수위 조절을 두루 감안한 것 같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충탑에 헌화할 경우 김일성 동상에 대한 예우와 맞먹는다는 점에서 북한 주민이 받을 충격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직 남한과의 공조 방침이 확실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번에 너무 최고의 예우를 할 경우 나중에 남북관계가 부정적으로 흐를 때 빠져나갈 여지가 없다는 점도 감안했다는 관측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민족대축전 이모저모 14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은 관중석을 가득 메운 5만 인파의 우렁찬 통일 함성으로 진동했다. 함성은 이어 벌어진 통일축구로 절정에 달했다. ●“말복 폭염도 통일열기 못 따라와” 나흘간 계속되는 8·15 민족대축전은 오후 5시10분 남·북·해외 대표단의 민족대행진(상암동 평화공원∼월드컵경기장)으로 막을 열었다. 북한 대표단은 ‘역사적인 북남공동선언 기치 밑에 통일운동을 거족적으로 벌여나가자.’고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워 행진했다.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은 “오늘이 말복이라 날씨가 덥고 폭염이 계속되고 있지만 통일열기는 따라잡지 못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대표단이 경기장에 도착한 오후 6시 각각 백두산과 한라산에서 채화된 성화가 성화대에 불을 붙였고, 그 순간 한반도기가 게양됐다. 개막식은 백낙청 남측 준비위원회 위원장의 개막선언과 북측 당국 대표단장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남측 당국 대표단장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개막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세종로서도 축구 보며 남북 동시응원 오후 7시 남북 통일축구 경기 시작에 앞서 일제시대 위안부로 끌려갔던 최갑순씨 등 정신대 할머니 3명과 경기 하남시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 학생 28명이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경기가 열린 상암월드컵경기장 주변은 물론 차량의 통행을 막은 세종로에 모인 시민들까지 남북 양측을 모두 응원하며 통일을 향한 염원을 실어보냈다. 통일연대 등 진보단체는 15일 0시쯤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결의의 밤’ 행사를 가졌다.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 등의 인사말로 시작된 행사에는 학생 등 1만6000여명(경찰추산)이 참가했다. 이례적으로 한국민주통일연합(재일 한국인 단체) 등 해외인사들도 참석했다. 당초 행사는 연세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연세대측과 연세대총학생회의 반대로 장소가 변경됐다. 유영규 이효연 나길회기자 whoami@seoul.co.kr
  • 마지막 황세손 떠나는 길 하늘에선 ‘애도의 소나기’

    마지막 황세손 떠나는 길 하늘에선 ‘애도의 소나기’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고 이구(李玖)씨의 영결식이 24일 서울 창덕궁 희정당에서 오전 10시에 열렸다. 고인은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 영친왕(英親王)의 왕세자로서 조선왕가의 마지막 적통이었다. 이날 영결식은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이환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황세손장례위원회’ 주관으로 치러졌다. 상주는 지난 22일 고인의 양자로 입적된 이원(李源)씨가 맡았다. 영결식에는 이해찬 국무총리와 유홍준 청장, 주한일본대사, 박진·이낙연 등 현직 국회의원과 문중인사, 취재진 등 약 1000여명에 달하는 인파가 모여들었다. 마침 창덕궁을 둘러보던 외국인 관광객들도 우연히 마주치게 된 이번 행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해찬 총리등 1000여명 인파 몰려 또 조선왕조의 마지막 행사라는 역사적 의미 때문인지 일부러 자녀들의 손을 이끌고 나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방학 숙제 주제로 잡고 이번 행사를 꼼꼼히 기록하는 중·고등학생들도 많았다. 무더위 때문에 일부 관람객들은 쓰러지기도 해 119구조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영결식은 운구 운반→개식 선언→묵념→조악(弔樂) 연주→고인의 약력보고(이용규 장례부위원장)→인사(이환의 이사장)→식사(유홍준 청장)→조사 낭독(이해찬 총리)→유족과 조문객 분향→조악(弔樂) 연주→퇴회식 순서로 진행됐다. 이해찬 총리는 조사를 통해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고 이구 저하의 훙서(薨逝)를 진심으로 애도하오며, 영령께서 사랑하시는 부왕(영친왕)과 모후(이방자)를 만나 현세에서 다하지 못한 행복을 영원토록 누리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돈화문~종로3가~종묘 노제 영결식 뒤 운구 행렬은 창덕궁 돈화문과 종로 3가를 거쳐 종묘에 도착해 노제(路祭)를 지냈고, 노제 뒤에는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 영친왕 묘역인 영원(英園)으로 옮겨 고인을 안장했다. 운구행렬이 지나는 동안 종로3가는 교통이 통제됐고 지나가던 시민들도 황세손의 마지막 길을 유심히 지켜봤다. 일부 시민들은 “이렇게 행사만 요란하게 할 게 아니라 왕손들을 지금이라도 우리가 잘 챙겨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휴일을 맞아 극장가에 나온 젊은이들은 행사의 의미를 잘 모르는 듯 무심코 지켜보기도 했다. 행사는 전통과 근대 사이에 있었던 대한제국의 역사를 반영하듯, 전통과 근대가 혼합된 형식으로 치러졌다. 한편에서는 군악대와 국군의장대, 캐딜락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취타대와 만장 행렬 등이 함께 했다. ●3년상위해 낙선재에 상청 설치 논의 9일장으로 치러진 고인의 장례식은 고궁 내에서 치른 마지막 장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후에라도 양자가 지명됐다고는 하지만 고인의 사망으로 조선왕실의 적통은 단절됐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고인과 결혼했으나 ‘외국여자인 데다 후손도 없다.’는 이유로 강제 이혼당한 줄리아는 노제가 열린 종묘공원 맞은 편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조용히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장례는 고인의 어머니 이방자 여사의 1989년 장례절차를 기록해둔 ‘의민황태자비 장의록’에 따라 치러졌으며,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우제’는 낙선재에서 25일 열린다. 종약원측은 3년상을 위해 낙선재에 상청을 설치하는 문제를 두고 문화재청과 계속 협의키로 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수색작업 부진…1000명 실종설도

    런던 연쇄테러가 발생한 지 나흘째인 10일 이번 테러로 인한 사망자가 50명 이상으로 늘어난 가운데 테러 당일 연락이 끊긴 가족과 연인, 친구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그러나 구조 당국은 시신의 신원 확인, 증거 수집과 생존자 수색 등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러셀광장 근처 지하 30m에 위치한 터널 안에 상당수 시신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섭씨 60도의 고온에다 먼지가 자욱하고 추가 붕괴위험마저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일간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신문은 올드게이트역과 에지웨어역 근처에도 많은 시신이 파묻혀 있으나 구조팀이 주기적으로 지상에 나와 호흡을 해야 하는 관계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공식 실종자를 25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일부에선 1000명 이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사흘 동안 실종자 신고 전화만 13만통을 넘었다. 시신들도 대부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경찰은 신원 확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이에 따라 지하철역 부근 벽과 울타리, 가로등, 공중전화 박스 등에는 사랑하는 이의 사진과 신상정보를 담은 포스터가 나붙었다. 한 남성은 “아들 필립이 7일 아침 9시30분 직장에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뒤 소식이 끊겼습니다. 아마 기절해 기억상실증으로 거리를 헤매고 있을지 모릅니다.”라고 애타는 사연을 써붙여 놓았다. 한 여성은 “7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 제이미 고든이 그날 아침 유스턴과 킹스크로스 사이 버스에 있다고 말한 뒤 아무 소식을 들을 수 없습니다. 병원 명단을 다 뒤져도 그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발 그가 살아 있기만을….”이라고 써붙였다. 가족들은 또 집에서 인터넷 웹사이트 등에 “우리 가족 못 보셨나요.”라고 글을 올리고 있다. 사상자가 후송된 병원에서도 불안과 근심에 찬 표정의 가족들이 사랑하는 이의 미소 띤 얼굴 사진을 손에 든 채 환자 명단을 확인하고 병상을 직접 뒤지는 모습이 목격됐다. BBC는 빅토리아역 근처 복스홀 브리지로드의 한 스포츠센터에 실종자 가족센터를 24시간 운영한다고 보도했다. 일부 신문은 애끓는 사연과 함께 실종자 명단을 신문에 게재해 이들을 돕고 있다. 한편 영국 정부는 14일 정오부터 2분 동안 전국에서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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