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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네티즌들 희생자 추모 집회

    미국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물결이 주말에도 계속됐다. 21일 선진화국민회의와 재향군인회 등 보수진영의 248개 시민ㆍ사회단체 회원과 시민 등 1000여명이 서울광장에서 ‘버지니아 공대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버지니아 공대 한국인 동창회 부회장인 이원우 서강대 교수는 추모사에서 “희생자 부모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우리가 죄인이 된 심정이다. 이번 사태로 한국과 미국 사이에, 버지니아 공대와 한국인 유학생 사이에 나쁜 영향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경석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도 “한국인들도 조씨의 범행에 분노하고 있으며 미국인들과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네티즌들의 주도로 22일 대대적으로 열릴 것으로 알려졌던 촛불문화제는 열리지 않았다. 다만 포털사이트 다음의 ‘버지니아희생자 애도 추모제’ 카페 회원 등 일부 네티즌들이 22일 저녁 시청앞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모여서 총기난사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집회신고를 냈던 ‘버지니아희생자 애도 추모제’ 카페지기인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박찬재(28)씨는 “범인이 한국 교포학생 조승희여서가 아니라 인종과 국가를 떠나 예술인으로서 숨져간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싶었다.”며 회원들과 함께 추도문을 낭독하고 묵념을 올렸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승희야, 널 미워하지 않아…”

    |블랙스버그 이도운특파원·서울 안동환기자|“승희, 네가 그토록 필요했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돼 슬프구나. 네게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해.”(바버라).“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자리잡은 분노가 이제 용서로 바뀌기를….”(데이비드). 20일(이하 현지시간)은 33명의 버지니아 공대 총기참사 사망자를 기리는 ‘애도의 날’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정오를 기해 조종이 울려 퍼졌고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했다. 비극의 현장인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서는 33차례에 걸쳐 종소리가 울렸다. 그때마다 사망자를 상징하는 풍선이 하나씩 하늘로 올려 보내졌다. 찰스 스티거 총장 등 학교 관계자는 공식 희생자는 범인 조승희씨를 포함해 33명이라고 강조했다. 탄식과 흐느낌. 가슴을 에는 고통과 슬픔. 지워지지 않는 참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블랙스버그 버지니아 공대에는 치유의 희망과 용서의 싹이 트고 있었다. 교내 광장인 드릴 필드에 안치된 32명의 피해자들과 조승희씨 추모석. 그의 자리에도 학교를 상징하는 ‘VT’ 카드와 ‘2007년 4월16일 조승희’라는 기록이 놓여 있다. 높이 20㎝의 화강암으로 된 추모석 위에는 평화와 안식을 기원하는 편지들이 놓여 있다. 장미와 카네이션, 성조기가 보였다. 오른쪽 옆에는 바버라가 쓴 ‘조승희의 가족에게 사랑을 담아.’라고 쓰인 종이가 있다. 로라는 “승희야, 난 널 미워하지 않아. 네가 어떤 도움과 안식도 찾지 못한 게 가슴이 미어진다. 평화와 사랑을 찾기 바랄게.”라고 썼다. 조씨의 총격으로 다친 가레트도 언론을 통해 “조승희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전에 조씨를 만났더라면….”이라며 진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추모석 앞에서 흐느끼는 한인들도 있었다. 23년이라는 짧은 삶을 외로움과 분노, 광기 어린 증오로 마감한 조씨는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까. 조씨는 죽어서야 그의 아픔을 이해하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홀로코스트’ 생존 교수 장례식 참사 당시 제자들을 구하려다 숨진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의 장례식도 20일 이스라엘 중부 란나나에서 치러졌다. 장례식장에는 가족, 동료와 그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정부 대표 등 수백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아들 아리에는 “통계와 함수 강의는 끝나고 당신은 영웅적인 희생을 가르치는 새로운 강의를 시작했다.”고 애도했다. 리브레스쿠 교수는 2차대전 중 나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총기 참극 당일이 홀로코스트 기념일이었다. 대학 인근 장로교회에서도 기계공학과 캐빈 그라나타 교수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희생자 시신이 가족에게 인도된 뒤 블랙스버그에서 치러진 첫 장례식이다. 그라나타 교수의 장례식장에도 동료 교수·학생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희생자 시신이 본격적으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조씨 시신의 인계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 신문 “한국 사과 그만 하라” 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지는 ‘한국인에게’로 시작하는 ‘한국에 보내는 편지, 여러분의 사과에 담긴 교훈’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제 사과는 그만하라. 이것(총기 참사)은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고 당부했다. 이 신문은 서울의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촛불 추모식, 세 차례에 걸친 대통령의 충격 표시 등은 감동적이고 인상적이지만 문제는 한국이 아니라 이민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국에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조씨가 미국에서 자랐으므로 ‘우리가 그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해 여러분에게 사과해야 할지 모른다.’면서 ‘우리는 (한국인) 여러분의 사과를 신의 은총과 인간애에 대한 교훈으로 받아들이며 여러분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이다. 감사한다.’고 지적했다.●권총 탄창 이베이에서 구입 경찰 수사는 조씨와 처음 살해된 여학생 에밀리 힐스처(18)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되고 있다. 힐스처의 랩톱 컴퓨터와 휴대전화도 분석되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다. 경찰은 조씨와 힐스처간 평소 이메일 등의 교신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버지니아 공대의 컴퓨터 서버도 조사할 계획이다. 통상 살인사건에서 희생된 사람의 80∼85%가 범인에게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씨가 범행에 사용한 권총 탄창은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에서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베이는 조씨가 지난 3월22일 ‘Blazers5505’라는 회원명으로 22구경 발터 P22 권총의 탄창을 아이다호 주에 있는 한 총포상에서 구입했다고 밝혔다. 조씨는 10발이 장전되는 탄창 2개를 구입했다. 그는 또 이베이에서 폭력적인 주제의 책 몇 권과 버지니아 공대 미식축구 티켓, 그래픽 계산기 등을 산 것으로 나타났다.dawn@seoul.co.kr
  • [美 교포학생 총기난사 파문] “동포들 공격 표적될까 걱정”

    “동포 사회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양국관계에 타격을 입히지 않기를 바란다.”,“노무현 대통령이 방미,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한국계임을 너무 강조하지 말고 사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신중하게 대처하자.” 미국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한상(韓商) 리딩 최고경영자(CEO)들이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과 관련,“충격적인 사건”이라고 규정하면서 반한 감정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1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상 리딩 CEO 포럼’에 참석한 14명의 CEO들은 포럼 개회식에 앞서 총격 사건의 희생자와 그 가족을 위해 묵념한 뒤 이번 사건이 미칠 여파와 대책 등에 대해 논의했다.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은 “이번 사건으로 우리 동포들이 미국 사회의 공격 표적이 될까봐 걱정된다.”며 “한·미 FTA와 미국비자 면제협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신속하고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말레이시아 권병하 헤니권 코퍼레이션 회장은 “이번 사건은 전세계 재외동포들의 문제”라며 “정부에서 한국인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조치와 공관별 교육강화 등 장기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고 윤장호 하사 대전 국립현충원 안장

    고 윤장호 하사 대전 국립현충원 안장

    ‘부디, 편안하게 잠드소서….’ 5일 이른 아침부터 흩날리던 진눈깨비가 영결식이 시작될 무렵인 오전 8시 쯤부터 거센 바람과 눈보라로 변했다. 장례식장에는 스물일곱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낮은 곡(哭)소리만이 울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테러로 숨을 거둔 고 윤장호 하사의 영결식 및 안장식이 이날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과 대전 국립현충원에서 치러졌다.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영결식은 부모인 윤희철·이창희씨 부부 등 유가족, 정·관계 관계자 및 군 장병 등 600여명이 참석해 조사, 종교의식, 헌화, 조총 및 묵념, 폐식사의 순으로 40분간 진행됐다. 엄숙함마저 감돌던 영결식은 특전사 동기인 엄선호(22) 병장의 조사가 낭독되자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엄 병장이 “6개월 뒤 복귀 환영회식은 이 엄선호가 쏘겠다던 약속을 기억하냐.”고 말한 대목에서 동료 장병들은 어깨를 들썩거렸다.“장호야!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넌 멋진 동기였고 훌륭한 아들이었으며 자랑스러운 군인이었다는 것을…”이라는 말로 전우들은 고인을 마음 속에 묻었다. 고인이 입대전 근무했던 HB어드바이저스 직원들은 ‘장호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금은 하늘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걱정하지 마세요. 전 잘 있어요.’라고 위로하는 걸 알지만 목이 메고 눈물이 흐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구나.”라며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다. 놀랄 정도로 침착하던 유족들은 영결식이 끝난 뒤 운구가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옛 성남화장장)로 옮겨지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려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어머니 이창희씨는 유해가 운구차에 실리는 순간 못내 아들을 떠나 보낼 수 없다는 듯 관에 얼굴을 비벼댔다. 아버지 희철씨도 “장호야,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말을 잇지 못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아들 같은 장병들이 몸 건강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생사업소에 도착한 유해는 운구차에서 곧바로 2층에 있는 화장로로 향했다. 화장로 앞 관망실에서 유족과 군 관계자 등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윤 하사의 부모는 차마 화장로로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없는지 자리를 피했다. 분골작업이 끝난 유해가 국방부 헌병대의 호위 속에 영생사업소를 떠나자 거짓말처럼 하늘에 흩날리던 눈발도 그쳤다. 고인은 오후 3시 대전 국립현충원 전사자 묘역의 차가운 땅 속으로 돌아갔다. 지난 2일(현지시간) 고인이 유학시절 다녔던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의 한인감리교회에서도 지인과 교민, 현지 언론관계자 등 100여명이 모여 추모예배를 열었다. 고인의 절친한 친구인 김준엽씨는 “장호를 생각하면 웃고 싶다. 하지만 (장호를 앗아간) 이 세상에서는 웃을 수가 없다.”며 슬퍼했다. 한편 이날 오후 7시 서울 광화문에서는 시민 300여명이 ‘고 윤장호하사 추모와 아프간-이라크파병 한국군 즉각 철수’ 촛불문화제를 열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대전 이천열 성남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7000만 동포가 뒤에 있어 든든”

    “우린 5명에 불과하지만 우리 뒤에는 7000만명이 있는 만큼 전혀 외롭지 않습니다.” 24일 열리는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다케시마(竹島ㆍ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행사 규탄을 위해 방일하는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명예이장 최재익(52)씨의 각오다. 방일 채비에 바쁜 최씨를 20일 전화로 만났다.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여전히 ‘독도는 우리땅’이었다. 최씨 등 독도수호전국대 회원 5명으로 이뤄진 항의단은 24,25일 양일간 시마네현 한복판에서 ‘독도강탈음모 규탄대회’ ‘다케시마의 날 폐지 촉구 시가행진’ 등을 벌인다. 미니 항의단이지만 최씨는 “우리 뒤에 동포들이 있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최씨는 2005년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 조례가 통과될 때 현(縣) 청사에서 할복을 시도하다 현지 경찰에 연행된 전력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투쟁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당시엔 감정이 앞서 격한 행동을 했지만 너무 강경하게 비쳐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항의단은 스미다 시마네현 지사에게 독도 영유권 토론회를 제의하고, 시마네현 주민들을 상대로 역사왜곡에 따른 독도 편입의 부당성을 홍보할 계획이다. 이미 일어판 책자도 만들어 놓았다. 양식과 상식이 있는 일본 국민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행사장에서 애국가 제창, 일제강점기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 규탄서 낭독, 만세삼창 등의 행사는 가질 계획이다. 최씨는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편입시킬 때 우리가 묵시적 동의를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항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독도 사랑은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 때 싹텄다. 독도가 우리 수역이 아닌 중간수역에 놓이면서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따라 1999년 12월31일 부모님, 부인, 아들 등 가족 전원의 본적을 독도리 산 30으로 옮기고 독도수호전국연대 대표의장을 맡았다. 이어 2004년 2월에는 독도에 호적을 둔 주민들의 투표로 독도 명예이장에 뽑혔다. 현재 독도에 호적을 둔 사람은 모두 615가구,2057명에 달한다. 23일 오사카 간사이공항을 통해 방일하는 최씨는 “일본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매년 시마네현을 찾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씨의 입국이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지난해에는 시마네현 요나고공항에서 3시간30분이나 이유 없이 붙들려 있었다. 6대 서울시의원(2002∼2006)을 지낸 최씨는 “일본에 다녀온 후에는 전국의 초·중등학교 학생을 상대로 독도를 제대로 알리는 ‘독도교육’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공원명칭’ 논란 합천서 5·18 사진전

    전두환 전 대통령 아호인 ‘일해’를 공원 이름으로 정해 논란이 되고 있는 경남 합천군 ‘새천년 생명의 숲’에서 11일 5·18 광주항쟁 사진전이 열렸다. 참교육학부모회 경남지부는 이날 새천년 생명의 숲에서 경남도내 초·중학생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현대사 바로알기 합천 놀이마당’행사를 갖고 5·18 사진전을 열었다. 사진전에는 일해공원반대 광주전남대책위원회에서 제공한 5·18 광주 항쟁 당시 현장 사진 38장이 전시됐다. 학생들은 사진을 보며 5·18 광주항쟁에 대한 설명을 듣고 느낀 점을 편지 형식으로 적어 공원에 전시했다. 이들은 합천군 율곡면에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 전 전 대통령의 행적 등에 대해 항의하는 의미의 묵념 등을 할 계획이었으나 마을입구에서 주민들이 막아 무산됐다.합천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방어축제 실종 서귀포시장·선장 합동영결식

    지난달 25일 방어축제 선상낚시 체험에 나섰다가 실종된 이영두 서귀포시장과 김홍빈 선장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17일 오전 서귀포시청에서 거행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시민, 공무원 등 1000여명이 참석, 고인에 대한 묵념에 이어 오성휴 장의위원회위원장의 영결사,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조사, 유적대표의 고별사,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오성휴(서귀포시 부시장) 장의위원장은 영결사에서 “민·관·군·경을 총동원해 두 분을 찾으려는 간절한 소망과 애타는 노력에도 끝내 유해마저 거두지 못한 채 영전 앞에 서 있는 지금 이 순간 애통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며 “16만 서귀포시민의 이름으로 삼가 고인의 영전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고 추도했다. 이어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조사를 통해 “언제나 제주특별자치도, 그리고 도민들에게 21세기 희망봉을 찾아 떠나는 길에 등대가 되어 앞길을 밝혀주시기 바란다.”고 추모했다. 이영두 서귀포시장에게는 홍조근정훈장이, 김홍빈 선장에게는 대통령표창이 추서됐다. 시신 없이 치러진 합동영결식 후 이 시장의 유품은 서귀포시충혼묘지에, 김 선장의 유품은 대정읍충혼묘지에 각각 안장됐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도하의 비극…승마 김형칠 선수 경기중 낙마 사망

    |도하(카타르) 임일영특파원|도하아시안게임 승마 종합마술에 출전한 김형칠(47·금안회)이 7일(이하 현지시간) 경기 도중 말에서 떨어져 숨졌다. 한국 선수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종합대회에서 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아시안게임에서의 사망사고도 역시 첫번째다. 굵은 빗줄기가 새벽부터 쏟아져 도하 승마클럽이 진흙탕으로 변한 가운데 종합마술 2일째 개인·단체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시작됐다. 오전 10시쯤 출발한 김형칠은 2∼3분 뒤 높이 110㎝의 계단식 8번 장애물에서 말이 너무 일찍 뛰어오른 탓에 앞다리가 걸리며 말과 함께 거꾸로 떨어졌다.500㎏에 이르는 말이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뒤집어지며 엉덩이로 선수의 머리와 가슴을 짓눌렀다. 의무진이 곧바로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로 고개를 가누지 못했으며 곧바로 하마드 종합병원으로 후송된 뒤에도 맥박을 회복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시신을 확인한 박원하(삼성병원 스포츠의학실장)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의무위원은 “낙마 직후 즉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공식사인은 두개골 골절에 따른 과다출혈”이라고 밝혔다. 기상악화와 무리한 경기스케줄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크리스토퍼 허드슨 국제승마연맹(FEI) 부회장은 “사고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KOC는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장례절차 등을 논의했다. 장례는 대한체육회장으로 치르기로 하고 우선 선수단 본부와 태릉선수촌에 임시 분향소를 설치했다.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은 “체육훈장을 추서하고 정부와 협의해 대전국립묘지에 안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도하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DAGOC)도 모든 장례, 운구 비용을 지원하겠다면서 8일 열릴 모든 경기에서 시작 전 1분간 묵념을 하겠다고 밝혔다. 친동생 재칠씨가 유족대표로 이날 밤 도하로 출국했다. 유족이 받게 될 보상금은 대한체육회가 출국전 가입한 여행자보험 사망보상액 3000만원과 태극마크를 달 때 가입되는 단체 및 스포츠상해보상금 3000만원이 있다. argus@seoul.co.kr
  • 한총리, 서해교전 전적비 총리론 첫 참배

    한명숙 총리가 4일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서해교전 전적비를 참배했다. 한 총리는 이날 오전 경기도 평택에 있는 해군 2함대사령부를 방문해 서해교전 전적비를 찾아 헌화, 묵념한 뒤 교전 당시 침몰됐다가 인양된 참수리호 357호를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한 총리는 김중련 함대사령관의 보고를 받은 뒤 “2함대 사령부는 지난 99년 연평해전에서 완벽한 작전능력을 보여주는 등 늘 믿음직한 해군으로서 역할을 다해 왔다.”고 치하했다. 정부 일각에선 서해교전 후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희생자 예우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눈총을 받아온 정부가 다소 방향을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내놓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그러나 “특별히 서해교전을 염두에 두지는 안았고,2004년과 지난해 연말 육군, 공군부대를 위문방문한 바 있어 이번에 해군부대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해교전에서 순국한 윤영한 소령의 부친인 윤두호(64)씨는 “정부가 군인에 대해 제대로 대접해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故 최규하 前대통령 국민장 이모저모

    故 최규하 前대통령 국민장 이모저모

    지난 22일 별세한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26일 엄수됐다. 공교롭게도 자신을 현대사의 격랑 속으로 밀어넣은 1979년 10·26사태가 일어난 지 꼭 27년이 되는 날이었다. 영결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인사와 주한 외교사절, 시민 등 각계인사 2000여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장인 경복궁 앞뜰과 운구행렬이 이어진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오전부터 추도의 물결이 넘쳤다. 헌정 사상 ‘최단명 대통령’이라는 기록과 함께 역사의 비밀을 가슴 속에 묻은 채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고인에게 시민들은 애도와 아쉬움을 함께 표했다. 발인제는 이날 오전 9시 빈소가 마련됐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장의위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0여분간 열렸다. 강릉 최씨 대종회장 최손규(82)씨가 “자애로운 모습이 지금도 눈 앞에 어른거린다. 이제 세상 원망, 근심, 걱정 모두 물려주시고 조상들과 함께 하늘나라 영화를 누리며 잠드소서.”라며 조사를 읽어나가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최 전 대통령과 2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홍기 여사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 2대 등 영구 행렬은 경찰 사이카 28대와 순찰차 등의 호위를 받으며 오전 10시쯤 영결식장으로 들어섰다. 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고인의 약력을 보고하며 영결식이 시작됐고 한명숙 국무총리가 조사를 했다. 전례에 따라 불교, 개신교, 천주교 성직자들이 각각 고인의 명복을 비는 종교의식을 치렀다. 상주와 직계가족에 이어 노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등의 순으로 헌화의식이 진행됐다. 운구차는 오전 11시쯤 경복궁 영결식장을 출발해 추모객들과 이승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서울시청 앞까지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운구행렬이 지나는 경복궁 동문-동십자각-광화문-세종로터리-남대문-서울역-삼각지 일대에는 시민들이 길가에서 조의를 표했다. 운구차량은 오후 2시쯤 대전현충원에 도착했다. 유해는 국방부 계룡대 근무지원단 소속 의장대 대원들에 의해 국가원수 묘역으로 봉송됐으며, 상주 등 유족과 정부부처 관계자 등이 고인의 뒤를 따랐다. 이어 고인의 유해 앞에 영정을 모셔놓고 불교, 개신교, 천주교 성직자들이 각각 고인의 명복을 비는 종교의식을 가졌다. 안장식은 상주와 직계가족, 각계 대표들의 헌화 및 분향에 이어 하관, 허토,21발 조총, 묵념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안장식은 굵은 빗줄기로 인해 더욱 무거웠다. 안장식이 끝난 뒤 고인의 묘 앞에는 ‘제10대 대통령 최규하 영부인 홍기의 묘’라고 적힌 임시목비가 세워졌으며, 비문과 공적비, 향로대, 상석 등은 유가족과의 협의를 거쳐 조만간 설치될 예정이다. 이로써 최 전 대통령은 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안장된 첫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사진 연합뉴스 / 강성남·김명국·이언탁기자 snk@seoul.co.kr
  • 최규하 前대통령 국민장 어떻게 치러지나

    최규하 前대통령 국민장 어떻게 치러지나

    정부는 26일 열리는 최규하 전 대통령의 국민장 일정을 최종 확정했다. 오전에 서울대병원에서 발인제, 경복궁에서 영결식을 갖는 데 이어 오후에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안장식이 치러진다. 행정자치부가 25일 밝힌 국민장 계획에 따르면 발인제는 최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에서 유족과 장의위원회 간사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다. 이어 경복궁 앞뜰에서 전·현직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정당 대표 등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엄수된다. 영결식은 오전 10시 개식을 알리는 조악에 이어 국민의례, 고인에 대한 묵념, 장의집행위원장인 이용섭 행자부 장관의 고인 약력 보고, 장의위원장인 한명숙 국무총리의 조사,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의 종교의식 순으로 진행된다. 종교의식이 끝나면 생전의 활동을 담은 영상을 3분가량 방영한 뒤 조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상주와 직계가족, 장의위원장의 헌화가 있다. 이어 소프라노 박정원 한양대 교수가 조가로 ‘청산에 살리라’를 부른다. 삼군 조총대원 7명이 조총 21발을 발사하면 영결식은 모두 끝난다. 이어 영구차는 경복궁 동문∼동십자각∼광화문∼세종로∼남대문∼서울역∼삼각지∼반포대교∼경부고속도로를 거쳐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한다. 영결식 사회는 차인태 이북5도위원회 위원장 겸 평안북도 지사가 맡는다. 최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2인의 국회부의장과 선임 대법관, 감사원장,3인의 부총리, 고인의 고향인 강원도의 지사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고문은 전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5인의 정당 대표, 친지 등으로 구성됐다. 또 장의위원으로는 행정부 장·차관급과 사회 각계 대표인사 615명이 위촉됐다. 글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21) 우리와 닮은 친근감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이슬람 문명과 도시] (21) 우리와 닮은 친근감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는 어딜 가나 길이 있다. 하얀 포플러 줄기가 끝없이 가로수가 되어 길을 잇고 길을 만든다. 실크로드의 길이다. 그리고 길에는 사람이 있고 양떼가 가끔씩 길을 메운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를 떠나 대상들이 지쳐버릴 때쯤 나타나는 오아시스의 도시가 비슈케크다. 중앙아시아의 지붕인 천산산맥을 따라 펼쳐지는 풍요와 설렘의 길이다. 3개월은 족히 걸렸을 실크로드 길을, 비행기로 5시간 반 만에 비슈케크에 도착한 것은 가을이 한창 무르익을 때였다. 소비에트 시절 뚫어 넓은 길에는 마로니에 낙엽이 나부끼고 하얀 수염을 바람에 흩날리는 노인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첫 인상은 우리와 매우 닮았다는 친근감이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 이웃의 다른 투르크계 사람들보다도 훨씬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었다. 해맑은 웃음을 싱긋 건네는 아이들의 웃음은 석류보다도 눈부시고, 포도만큼이나 싱그럽다. 다음날 날이 밝자 무작정 시내로 걸어나왔다. 소비에트 시절의 계획도시답게 인적도 드문 길은 사통팔달 시원하게 뚫려 있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시내 중심가 관공서 건물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단층으로 된 초라한 벽돌집이다. 키르기스스탄이 오랜 소련연방 통치를 벗어나 독립한 것은 1991년. 그렇지만 공산당 출신의 아스카르 아카예브가 초대 대통령이 되어 독재권력을 유지한 결과, 지난해에는 민중혁명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서방화를 꾀하며 3000명가량의 미군주둔을 허용하고, 새로운 도약을 꿈꿔보지만, 이웃 강국인 우즈베키스탄의 위협과 자원의 제한으로 삶의 질은 쉽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흉노 역사를 밝힌 노인 울라가 발굴한 유물 처음 찾아보는 이 나라의 역사와 과거를 더듬어 보기 위해 습관처럼 역사박물관부터 들렀다. 시내 한복판 대통령궁 옆의 역사 박물관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직원들 몇 사람만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시절의 홍보 전시관 같은 2층을 지나 3층에는 키르기스의 역사시대 유물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3층 난간에는 투르크 시대 석상들을 초원에서 옮겨 놓았다. 제주도의 돌하르방을 연상시키듯이 7∼8세기 무덤을 지키던 수호신상들이다. 원래 유목전사들은 죽으면 화장을 했다는데,10세기 이후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매장관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석상들의 오른손은 물그릇을 들고, 왼손은 칼을 들고 있다. 물을 마시면서 칼을 잡던 돌궐시대 유목전사들의 맹약의식이 잘 표현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놀랍게도 흉노역사를 세상에 알린 노인 울라의 발굴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1924년 러시아 지리학회 소속의 코즐로프 탐험대가 212개의 고분을 발굴하게 되는데, 그 중 상당수가 기원 전후 흉노귀족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직도 색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2000년 전 인류최초의 카펫을 바라보는 감동은 표현할 길이 없다. 그밖에도 각종 금속제품과 펠트 위에 아플리게 기법으로 장식한 수공예품 등을 보며 책에서만 읽었던 흉노의 역사적 실체를 확인하는 기쁨을 혼자서 만끽했다. 키르기스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의 현장을 호흡하기 위해 대시장인 오쉬 바자르로 달려갔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따라 찾아 온 상인들이 눌러 앉아 장사를 해 오던 곳이다. 빼곡히 들어선 가게 사이 길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길을 걷는다기보다는 인파에 떠밀려가는 느낌이다. 인구 100만의 키르기스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 같다. 좁은 골목 길마다 각기 다른 물품들이 줄을 잇고, 거대한 삶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오쉬 바자르에서 만난 고려인 아주머니 없는 것이 없단다. 코너를 돌 때마다 과일, 공산품, 토산품, 수입 잡화, 음식점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눈에 띄는 것은 특이하게 생긴 전통 모자다. 염소 털로 곱게 짜서 금실로 수를 놓은 칼팍이라는 모자는 키르기스 남성들의 명예와 존재의 상징이다. 처음 뜨거운 목욕탕에서 머리의 열기를 보호하기 위해 썼다는 칼팍이 이제는 모든 공식행사나 축제 때 빠질 수 없는 전통 모자가 됐다. 식품코너에서는 어김없이 하얀 김치가 등장하고, 고려인 아주머니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손님을 맞이한다.“안녕하세요.”란 말에 대뜸 “코리아에서 왔수까?”라는 질문과 함께 표정이 달라진다. 먼 길을 찾아온 서울 한국 손님에게 좌판 한 구석을 가리키며 앉아서 김치국시 한 그릇 말고 가란다. 이곳에도 1만 8000명가량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1937년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에서 시작된 스탈린에 의한 한국인 강제이주의 한과 핏줄에의 강한 집착은 이처럼 중앙아시아 전역에 슬픈 역사를 남긴 채 이어지고 있었다. 양고기 꼬치구이인 샤슬릭 두 줄에 모처럼 고향의 맛이 담긴 국시 한 그릇을 비우고 40숨을 주었다. 그래야 우리 돈 1000원 남짓한 값이다. ●아타 베이릭 학살 현장에서 서서…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천산산맥 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달렸다. 비슈케크에 온 김에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바깥 세상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아타 베이릭 학살기념관이다.1938년 11월15일,138명의 키르기스 지식인들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집단학살당한 채 매장된 엄청난 사건의 현장이다. 당시 공산정권에 협조를 거부한 작가와 교수, 민족지도자들은 하룻밤 사이에 비밀리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 끝에 모두 처형당하게 된다.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서 행해진 세기의 학살은 우연히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본 한 농부의 몫으로 남는다. 농부는 임종을 앞두고 가슴에만 품고 있던 그 비밀을 18살의 딸에게 전하고, 조국이 독립을 쟁취하는 날 이 사실을 알리라는 유언을 남긴다.1991년 키르기스스탄이 자주독립을 선포한 후, 이미 70대의 노파가 된 딸이 이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릴 뻔했던 잔혹한 역사가 빛을 본 것이다. 홀로 묵념하고 서서 조용히 감회에 젖어 있는데, 백발이 성성한 관리인 할아버지가 희생자 중에는 한국인 2∼3명이 들어있다며 자료를 들쳐주었다. 윤상신·강태주 같은 이름이 분명하다. 연해주에서 겨나 낯선 땅에서 정치적 희생이 되어 한 많은 생을 마감했을 원통함과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그들의 영혼에 한 줌 간절한 위안을 실어 보낸다. 길거리에서 만난 비슈케크 시민들은 반갑게 눈웃음을 보낸다. 남자들은 칼팍 모자를 쓰고 여성들은 면화로 된 편안한 점박이 치마를 입었다. 놀랍게도 이곳 주민들의 거의 8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음에도 차도르를 쓴 여성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느 이슬람 국가에서나 쉽게 눈에 띄는 모스크도 찾을 길 없었다.120년 가까운 소비에트의 점령 하에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변질을 강요당했고, 이슬람 문화는 철저하게 말살되었다. 금요일 주일 예배가 열리는 날, 비슈케크에서 몇 안되는 모스크를 힘들게 찾아보았다. 오후 1시쯤 예배하러 몰려든 사람들의 대부분이 젊은 남성들이었다. 독립한 지 이제 겨우 15년. 조금씩 잃어버린 종교와 전통을 찾아가는 비슈케크 시민들의 발길에서 희망을 읽었다.
  • 로마 지하철 추돌사고 100여명 死傷

    이탈리아 로마에서 17일 지하철 추돌사고가 발생,30대 여성 1명이 숨지고 100명의 부상자 가운데 5명은 위중한 상태라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날 사고는 오전 9시 무렵 로마 중심가의 비토리오 광장역에 먼저 도착한 열차가 문을 열어젖힌 상태에서 뒤따라 오던 다른 열차가 들이받아 일어났다.일부 언론은 기관사 한 명도 사망했다고 보도했지만 이 남자는 철로에 튕겨져나와 목숨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일부 승객들은 추돌한 열차가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질주해 참사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목격자들은 충돌로 인해 승강장 위쪽에 있던 기둥 몇 개가 무너져 내렸으며 사고와 함께 승강장 안의 전등이 꺼져 더욱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때맞춰 개막된 로마영화제 주최측은 시사회와 기자회견에 앞서 추도 묵념을 올리기로 했으며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부대행사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통신은 전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시대의 양심… 이젠 편히 쉬소서”

    “어둠의 시대에 빛으로, 길없는 시대에 큰 길로, 언젠가는 하나로 설 이 나라에 큰 넋으로 왔다 가는 이여…”(양성우 시인의 조시(弔詩)중에서) ‘광주의 혼’ ‘시대의 양심’으로 추앙받는 고 홍남순 변호사가 17일 각계의 애도 속에 광주시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됐다. 안장식은 유족과 정·관계 인사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종교의식, 헌화, 하관, 허토, 성분, 묵념 순서로 엄수됐다. 이에 앞서 오전 9시 광주시 동구 옛 전남도청 마당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 이명박 전 서울시장,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박광태 광주시장 등 정·관계 인사와 유족, 친지 등 1000여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떠나는 길을 지켜봤다. 영결식은 묵념, 약력보고, 노무현 대통령·박광태 광주시장등의 조사, 불교의식, 양성우 시인의 조시 낭송, 육성녹음 근청, 헌화 및 분향, 유족대표 인사 등 순으로 1시간 가량 진행됐다. 노 대통령은 이병완 비서실장이 대독한 조사에서 “고인께서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오셨다.‘어둠의 시대에는 법보다 양심이 앞선다’는 신념으로 민주투사들의 벗이 되셨다.”며 “임을 향한 존경과 그리움을 민주주의와 나라 발전의 큰 힘으로 삼아나가겠다.”고 추모했다. 영결식을 마친 유족, 친지, 지인 등은 광주 동구 궁동 고인의 생가를 방문, 노제를 지낸 뒤 5·18 민주묘지로 향했다. 유족과 5.18묘지측은 고인의 부인이자 5·18 유공자인 고 윤이정(1992년 작고)씨의 묘도 화순군 선산에서 국립묘지로 조만간 이장할 계획이다. 민주화 투쟁과 양심수 무료변론 등을 통해 한국 민주화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고인은 지병이 악화돼 지난 14일 새벽 타계했다.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만장일치 총회에 추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만장일치 총회에 추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9일 저녁 유엔사무총장 ‘내정자’자격으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가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날 밤 10시30분께(현지시간 9일 오전 9시30분) 뉴욕에서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안보리 공식 투표에서 반 장관을 만장일치로 총회로 추천하고, 곧바로 대북 제재 문제를 논의하러 들어간 직후다.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반 장관은 이같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모두 발언에서 가감없이 표현했다. 반 장관은 “영광되고 기뻐야 할 순간에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면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치된 경고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강행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북한의 핵실험에 따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전화협의, 한·미·일 3자 외무장관 전화협의, 한·미·일·중·러 5자 외무장관 전화협의를 갖는 등 하루 종일 긴박하고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반 장관은 북핵 문제를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질문에 “사무총장에게 주어진 권한과 권능을 이용, 필요한 주도권을 취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외교장관으로서뿐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 후보 지명자로서 이번 사태를 엄중히 받아들이며 앞으로 국제평화·안전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는 계기를 삼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앞으로 사무총장에 임명되면 유엔 헌장상의 책무를 바탕으로 북핵문제는 물론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문제의 해결에 기여토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반 장관은 특히 “이번 안보리의 결정은 본인에 대한 신뢰뿐 아니라 한국의 역량과 경험에 대한 기대도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은 국가적 역량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분쟁 해결, 개도국의 개발지원, 세계적인 인권 및 민주주의 신장 등에 기여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존 볼턴 유엔주재 미 대사는 안보리 회의 직후 반 장관의 사무총장 총회 추천사실을 밝히고 “지난 60년 한반도의 분단을 거쳐 남한에서는 유엔사무총장이 탄생하고, 북한에선 핵실험으로 심각한 불행이 초래된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반 장관은 이날 오전 동작동 국립현충원 아웅산 순국외교사절 묘역을 찾아 23년전 미얀마(구 버마) 아웅산 폭탄테러로 순국한 희생자 17명에 대한 묵념을 올렸다. 해마다 10월9일 외교부 고위 당국자들은 묘역을 참배하지만 이 날은 감회가 남다른 모습이었다. 묘역에는 반 장관이 보좌관 시절 모셨던 이범석 전 장관도 잠들어 있다. 한편 반 장관은 당초 10일 뉴욕으로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핵실험으로 12일에야 뉴욕으로 출발해 13일께 열릴 총회를 지켜본 뒤 귀국할 계획이다. 유엔총회는 안보리가 반 장관을 차기 총장 단일후보로 공식지명함에 따라 박수로 추인절차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복구 더딘 발라코트는 ‘지옥의 변방’

    파키스탄 발라코트의 파즐 레흐만 가족은 다가오는 겨울이 두렵다. 텐트 속에서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얼려 버린다는 ‘히말라야 혹한’을 견뎌야 한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동쪽으로 200㎞ 떨어진 발라코트. 이곳은 지난해 10월 발생한 대지진으로 한꺼번에 3만여명이 숨지면서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동묘지’로 변한 곳이다. 아내와 5명의 자녀를 부양하는 레흐만의 인생도 지진으로 산산조각났다. 그는 지진으로 숨진 형과 장인·장모의 무덤 인근에서 1년째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요리사로 일했던 호텔이 무너지면서 직업도 잃었다. 8일(이하 현지시간)은 지난해 7만 3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키스탄 대지진이 발생한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다. 오전 8시52분 발생한 진도 7.6의 강진은 진앙지에서 700㎞ 떨어진 남부까지 파키스탄 전역에서 감지됐다.●“강진 또 온다”… 공포에 떠는 발라코트 CNN은 1년이 지났지만 발라코트의 모습은 마치 ‘지옥의 변방’이나 되는 듯 여전히 참혹하다고 전했다.BBC도 다가오는 혹한, 관리들의 구호금 횡령 등 생존 자체가 고통스러운 파키스탄인들의 삶을 소개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이날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주도인 무자파라바드의 ‘아자드 잠무 카슈미르 대학’ 운동장에서 열린 1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오전 8시52분이 되자 사이렌이 1분 동안 울렸다. 시내 번화가에서도 길을 멈춘 채 묵념을 올렸다. 파키스탄 정부는 최근 또 다른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 정부는 1만여명의 생존자 전부를 2007년까지 이주시킬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은 더디기만 하다. 발라코트는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부딪치는 바로 위의 지표면이다. 아시프 칸 국립지질연구센터 소장은 “인도판이 1년에 3.3㎝씩 북쪽으로 이동, 유라시아판 밑을 파고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히말라야 단층에 충돌이 발생, 에너지가 축적되면서 연이어 강진이 발생하는 원리다. 상점 주인인 무니르 후세인은 “살아 남은 자들도 떠나고 싶지만 쉽지 않다.”고 말한다. 굴 후세인은 “주민 90%가 농민이다. 농사지을 땅도 없는 곳으로 가면 우리는 무엇을 하며 먹고 살수 있는가.”라고 울분만 토한다. ●관리들은 구호금 횡령… 히말라야 혹한 피해 우려 BBC는 7일 이슬라마바드에서 지진 생존자 1000여명이 1주기를 맞아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일부 관리들이 구호기금을 빼돌리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생존자 고하르 레만은 “지난 5개월 동안 단돈 1페니도 받지 못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부정부패와 별개로 도움의 손길도 여전히 절실하다. 얀 반데무르텔레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은 최근 “이 상태에서 혹한이 오면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된다.”고 지원을 촉구했다.그는 “1년 기한의 ‘조기복구계획(ERP)’을 위해 4000만달러를 요청했지만 모금액은 1400만달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ERP 전체 예산 2억 7000만달러 중 지금까지 모금된 액수는 64% 수준이다. 국제적십자사는 살을 에는 히말라야 혹한이 불어 닥치는 북부 산악지역에서는 생존자 40만명이 텐트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며 겨울을 나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 첫 겨울이 이상기후로 예년보다 따뜻했지만 올해는 한파가 예상돼 우려는 커지고 있다. 지난해 지진은 라마단 사흘째 발생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라마단이 왔다. 먼저 떠난 가족들의 무덤가에서 흐느끼며 기도를 올리는 파키스탄인들의 얼굴에는 지워지지 않는 공포와 깊은 슬픔이 여전히 교차하고 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씨줄날줄] 국가 제창/황진선 논설위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선포한 ‘국민교육헌장’의 첫머리다. 당시 초·중·고교를 다닌 학생들에겐 이를 외우기 전에는 집에 못가게 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땐 몰랐는데 요즘 읽어보니 전체주의 냄새가 물씬 난다.‘국민교육헌장’은 1994년이 되어서야 황국신민교육을 위해 만든 일제의 ‘교육칙서’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행정기관·학교·기업·단체에서 공식행사를 할 때는 먼저 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순으로 국민의례를 거행한다.‘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 유신정권이 탄생한 1972년부터 전국 학교에서 시행해오다 1980년 지금과 같이 국기에 대한 경례 때 함께 낭송하는 형태로 정착됐다.1984년엔 대통령령인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으로 법제화됐다. 국민의례를 불편해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달에는 경기도 부천시 S고교의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편향적 가치관을 주입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2004년에는 종교 때문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수 없다는 학생에 대해 고교 입학을 불허해 논란이 일었다. 최근엔 경례보다 맹세에 반감을 표현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가 유신정권의 유물로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을 법률로 격상하되, 애국심과 국기에 대한 존경을 포함하고 개인의 양심과 신념에 따른 행동도 함께 보장토록 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엊그제 도쿄 지방법원이 학교의 입학식이나 졸업식에서 국기를 향해 일어서게 하고, 국가인 기미가요 제창을 강요하는 것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우리나라에선 우경화와 군국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일본 사회에 양심의 목소리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국민의례에 거부감을 표현하는 사람은 아직 소수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부시, 9·11희생자 애도 묵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1일 오전 8시46분(현지시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터에서 1분 동안 묵념했다. 묵념 시간은 5년 전 테러범들의 첫 비행기가 WTC 건물에 돌진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이날 그의 입은 무거운 편이었다. 하루만이라도 추모의 염을 다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어 승객들과 납치범들의 격투 끝에 UA93편이 추락한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을 찾아 헌화했고 또다른 참사가 빚어진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를 찾았다. 일주일 동안 안보 유세를 벌인 부시 대통령이 이날 제대로 입을 여는 것은 밤 9시(한국시간 12일 오전 10시) 백악관에서 갖는 TV연설에서다. 미 전역에서 동시 묵념이 진행됐고 뉴욕 그라운드 제로 현장에서는 추모 사진전과 철야 촛불 집회가 열렸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핀란드 헬싱키에 모인 38개국 정상도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시간을 가졌다. 논란이 됐던 ABC-TV의 다큐드라마 ‘9/11로 이르는 길’은 몇몇 문제되는 장면을 모호하게 처리하는 식으로 예정대로 방송됐다.CNN은 인터넷을 통해 5년 전 그날 뉴스를 그대로 재방송했다.부시 대통령을 대신해 테러와의 전쟁을 옹호하는 발언은 딕 체니 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에게서 나왔다.체니 부통령은 전날 NBC 방송에 출연,“지난 5년간 미국 정부가 테러리스트 감시와 자금 추적, 구금 등을 통해 안보를 크게 강화해 왔다.”며 “9·11 이후 (미 본토에 대한) 테러가 재연되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5년간 눈부신 일을 해냈다.”고까지 했다. 이에 대해 존 케리 민주당 상원의원은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쏟아부은 돈은 본토 안보를 위해 썼던 돈과 비교하면 엄청난 규모”라며 “그러나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반박했다. 전날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이 9·11 이후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고 답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씨줄날줄] 혁명열사릉/강석진 수석논설위원

    역대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길은 늘 조심스러웠다. 호찌민 묘소 방문과 관련된 의전 때문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방문했으나 호찌민 묘소를 들르지 않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걸음 나아가 묘소 입구에서 헌화했다. 금기가 깨진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한 2004년. 노 대통령은 헌화에 이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시신이 안치된 2층까지 들러 묵념했다. 금기의 영역이 한발 한발 풀려 나간 것이다. 2000년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길은 화제였다. 올브라이트는 첫 공식일정으로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다. 교전 당사국이고 수만명의 군인을 남쪽에 배치해 놓고 있는 관계를 생각하면 올브라이트의 걸음은 파격이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한 대표단의 국립현충원 참배도 ‘사건’이었다. 하지만 아직 남쪽에선 파격이 때로 ‘죄’가 된다. 지난 5월 평양을 방문한 노동계 일부 관계자들이 혁명열사릉을 참배했다.3개월의 뜸을 들인 끝에 통일부는 이들에게 1개월간 방북 금지라는 행정제재를 내렸다.‘성지’방문으로 처벌받는 것은 처음이다. 참배자들에게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죄의 발동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혁명열사릉은 금수산기념궁전, 애국열사릉과 함께 북한의 3대 ‘성지’이기 때문에 보수 쪽에서 이들의 행위를 경솔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쉽게 예상되는 일이다. 한데 궁금하다. 금강산 관광객을 빼고 한해 8만명이 방북하는데 다 조사해서 처벌할 수 있을까. 통일부 관계자는 일일이 확인할 만큼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며, 방북자가 성지에 갔다고 보고서를 제출한 예는 아직 없단다. 실효성이 꽝인 셈이다. 방북 1개월 금지 정도로 의미있는 제재가 되는지, 참배가 국가안보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위협하는지도 궁금하다. 연간 8만명의 교류시대에 ‘성지’방문은 죄를 물을 만한 파격도, 북한체제에 대한 충성 맹세도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단순한 존중이거나 한발씩 다가가면 허물어지고 말 우리 마음 속의 금기일 뿐이다. 강석진 수석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北 “南 월드컵결승 가시라요”

    6·15 공동선언 여섯돌을 맞아 남북의 민·관 대표단이 참석한 6·15 민족통일대축전이 14일 3박4일 일정으로 개막됐다. 이날 저녁 7시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남북·해외대표단 500여명과 1만여명의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던 행사는 많은 비가 내린 탓인지 한 시간여 늦게 시작됐다.●DJ 특별연설서 “철의 실크로드 대화나눌 것”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이날 개막식에 참석해 특별연설을 통해 자신의 방북과 관련해 “어떻게 하면 기차가 부산과 목포를 출발해 개성과 평양을 거쳐 유라시아대륙을 관통하고 파리, 런던까지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를 이룩할 것인가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으로 머지않아 북한을 방문하고자 한다. 김 위원장과 우리 민족의 운명에 대해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비가 내린 탓에 귀빈석인 주석단 대신 로열박스에서 이희호 여사와 나란히 앉아서 연설을 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장은 개막식보다 일찍 행사장에 도착해 대기실에서 나란히 앉아 대화를 주고받아 눈길을 끌었다.●북측 대표단 5·18 민주묘지에 헌화 북측 당국 대표단 19명과 민간 대표단 40명 등은 남측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광주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5·18민중항쟁추모탑에 참배했다. 참배행사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헌화와 묵념 순으로 약 2분간 진행됐고 분향은 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북관계가 파탄날 것이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안경호 민간대표단장은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입을 다물다가 ‘한나라당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나라당에 가서 물어보라.”고 말했다. 북측 대표단에는 외교 및 대남통인 백남순 외무상의 3남인 백룡천 내각 사무국 부장, 고 김용순 노동당 대남 담당 비서의 아들 김성씨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한국 축구 결승까지…” 우리측 정부 대표인 박병원 재정경제부 1차관은 공항 VIP룸에서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장 등 북측 당국 대표를 영접하고 한국-토고의 경기를 주제로 환담을 나눴다. 축구소식 들었느냐는 박 차관의 말에 김 단장은 “남측 팀이 첫 경기부터 2대1로 이겨 동족으로서 아주 기쁘다.”고 화답했다. 김 단장은 “남측 사람들이 계속 올라갔으면 좋겠다.17차때는 4강까지 올라가지 않았느냐.”면서 “북측 사람들도 경기를 보는데 4강까지 올라가도록 마음의 성원을 보내겠다.”고 덕담을 건넸다.이어 “세계적인 관측에 의하면 선수권 우승은 브라질과 이탈리아가 다툰다고 하는데, 그건 관측일 뿐이고, 남쪽이 그중에 한 자리를 차지했으면 좋겠다.”고 한국팀의 결승 진출 기대감을 표시했다.광주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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