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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일 정오 盧 전대통령 안장식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유골이 오는 10일 49재를 지낸 뒤 낮 12시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인근 장지에서 국민장 마지막 의식인 안장식을 갖고 안장된다. 국민장의위원회는 유족들과 협의를 거쳐 이같은 형식과 일정을 최종 확정했다고 2일 밝혔다. 안장식은 10일 정오쯤부터 장지인 봉하마을 봉화산 사자바위 서쪽 기슭아래에서 엄수된다. 앞서 오전 9시 봉화산 정토원에서 유족 중심으로 49재가 거행된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이 국군 의장대의 도열·호위 아래 안장식장으로 봉송되면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 등 4대 종단의 종교의식과 유족 및 각계 대표의 헌화와 분향, 안장, 허토, 조총발사, 묵념 등의 순서로 1시간30분 간 안장식이 진행된다. 장의위는 헌화 및 분향에는 유족 및 각계 대표에 이어 노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일반시민들도 참가한다고 소개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쌍둥이 자녀의 돌반지를 희망돼지 저금통에 냈던 부부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에 참석했던 장애인음악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네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씨 등 15~16명을 분향에 참가할 시민으로 선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장식이 끝난 뒤에는 내빈들과 일반 추모객들이 노 전 대통령 묘소에 참배할 수 있다. 김경수 비서관은 “봉분 겸 ‘작은 비석’으로 쓰일 자연석만 제외한 나머지 묘역시설은 안장식 전날까지 모두 완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비서관은 “국민장으로 치른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 대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묘지 표지석 등에 관한 제한을 받지 않는 ‘국가보존묘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신청절차를 밝고 있다.”고 밝혔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NOW포토] 이덕화ㆍ박신양ㆍ김호선ㆍ채시라 “편히 잠드세요”

    [NOW포토] 이덕화ㆍ박신양ㆍ김호선ㆍ채시라 “편히 잠드세요”

    배우 이덕화, 박신양, 김호선 감독, 채시라가 2일 오전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진행된 故 유현목 감독의 영결식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故 유현목 감독, 2일 충무로서 이별

    故 유현목 감독, 2일 충무로서 이별

    한국영화계의 거장 고(故) 유현목 감독이 일생을 바친 충무로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1일 고 유현목 감독의 관계자는 “고인의 영결식이 2일 오전 9시 치러진다. 영결식 후에 대한민국예술원을 거쳐 고 유현목 감독이 사랑했던 충무로에서 묵념의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충무로를 거쳐 고인이 교수로 후배들을 양성했던 동국대학교에서 조사 낭독과 묵념을 한 후 장지로 출발한다.”고 전했다. 고 유현목 감독은 28일 낮 12시 30분경 경기도 고양시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인의 장례는 ‘대한민국 영화감독장’으로 5일간 열릴 예정이다. 발인은 2일 오전 9시이며 장지는 성남 모란공원 묘역이다. 한편 지난 30일 오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서울성모병원에 차려진 고 유현목 감독의 빈소를 조문하고 정부를 대표해 유족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전달했다. 사진제공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민주는 盧 오재 대거 참석 딴청

    민주당 의원들이 26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찾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 중 다섯 번째 재인 오재(五齋)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날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오재에는 정세균 대표, 이강래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를 포함해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를 비롯해 한명숙 전 총리,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친노 인사들도 다수 참석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단독 국회 개회에 항의하는 의원총회를 가진 뒤 버스편으로 조계사로 이동했다. 의원 10여명은 계속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을 지켰다. 민주당은 의총에 앞서 이례적으로 노 전 대통령과 순국 선열을 애도하며 묵념하기도 했다. 의총 자유토론에서 의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오재가 열리는 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조문 정국’ 이후 민주당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지 않고 있는 정부·여당을 성토했다. 이 같은 민주당의 행보는 여야간 3차 입법대치를 앞두고 내부 동력과 결속을 최대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로 여겨진다. 또 ‘조문 정국’에서 확인된 지지 여론을 다시 한번 결집시켜 6월 임시국회와 이후의 정국 주도권을 확보해 나가려는 생각도 엿보인다. 다음달 10일 열리는 노 전 대통령의 49재를 앞두고 민주당의 대여(對與) 압박 수위는 갈수록 고조될 전망이다. 다만 국회 개회 지연과 원외 투쟁에 따른 여론의 비판을 민주당이 어떻게 수습해 나갈 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검찰 ‘PD수첩’ 기소] 대통령에 욕설하는 만화 원주시정 홍보지 실려 물의

    강원 원주시가 발행하는 시정 홍보지 최근호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욕설이 들어간 만화가 실려 물의를 빚고 있다. 원주시는 6월1일자로 발행된 시정 홍보지 ‘행복 원주’ 12면 시사만화에 ‘이명박 ○○○’ 식의 욕설이 눈에 띄기 어려운 교묘한 형태로 섞여 있는 것을 뒤늦게 확인, 만화를 그린 최모씨를 상대로 구체적인 경위와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제목의 이 만화는 호국영령의 위패 앞에서 묵념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위패가 놓인 제단의 문양에 문제의 욕설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욕설을 담은 문양 형태의 문자는 제단을 가로질러 쓰인 데다 거울에 비친 것처럼 좌우도 바뀌어 있어 세심히 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 없는 문양으로 인식되기 쉽다.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4일 20돌 맞는 中 톈안먼 사태]쇠울타리로 광장 봉쇄… ‘톈안먼’ 여전히 금기

    [4일 20돌 맞는 中 톈안먼 사태]쇠울타리로 광장 봉쇄… ‘톈안먼’ 여전히 금기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은 여전히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양 어깨에는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세계인민 대단결 만세’라는 엄청난 구호를 짊어진 채 그는 여전히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톈안먼 사태 20년, 지금의 톈안먼에는 20년전 광장을 가득 메웠던 청년학생들의 민주화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중국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톈안먼 사태 20주년 기념일을 나흘 앞둔 지난 31일 오후, ‘혹시나’ 하는 기대와 함께 향했던 톈안먼 광장행은 ‘역시나’로 막을 내렸다. 20년전인 1989년 5월의 마지막날 중국의 청년학생들은 중난하이(中南海·중국 고위관리 집무 지역)를 향해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뜨거운 목소리를 토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2009년 5월의 마지막날 톈안먼 광장에는 함성은커녕 조용한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깃발’을 따라 움직이는 국내외 관광객들은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톈안먼에 내걸린 마오쩌둥 초상화를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단오절 연휴를 맞아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에서 올라왔다는 왕청(王誠·24)은 톈안먼 사태를 지칭하는 ‘6·4’에 대해 물어보자 “들어보긴 했지만 아주 어릴적 일이라 잘 알지 못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 중국에서 ‘톈안먼’은 철저히 봉쇄돼 있다. 광장 전체를 쇠울타리로 둘러치고, 출입자에 대한 삼엄한 소지품 검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곳곳에는 공안(경찰)과 무장경찰이 배치돼 눈을 번득이며 수상한 거동자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톈안먼 사건은 이미 금기어로 지정돼 있다. 인터넷 검색어로 ‘톈안먼 사건’과 ‘6·4’를 입력하면 “검색 결과 법규와 정책에 맞지 않아 보여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뜬다. 하지만 강요된 침묵은 오래갈 수 없고, 원천봉쇄 역시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6521공정’(건국 60주년, 티베트 봉기 50주년, 톈안먼 사태 20주년, 파룬궁 금지 10주년을 지칭) ‘20주년’ 등의 검색어를 이용해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고, 진실을 알리려는 배달부들은 그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 지난달 10일 베이징에서는 톈안먼 사태 재평가와 관련된 학술토론회가 비공개로 열렸다. ‘6·4 민주운동 토론회’로 명명된 이날 토론회에는 베이징대와 중국사회과학원 교수, 작가, 유가족 등 수십명이 참석했다. 마침 당일은 중국의 ‘어머니날’이기도 해 참석자들은 토론회 시작에 앞서 모두 일어나 20년전 소중한 아들딸을 잃은 어머니들에 대한 위로의 마음을 담아 3분간 묵념했다. 첫번째 발표자로 나선 베이징대 첸리췬(錢理群) 교수는 “20년전 많은 학생들이 중국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칠 때 교수로서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큰 한으로 남아 있다.”며 “정치가들은 ‘6·4’를 재평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학자들이 나서서 ‘6·4’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쉬유위(徐友漁) 연구원은 ‘1989년부터 2009년까지’라는 제목의 발표 논문에서 “당대 중국 역사와 정치, 그리고 사상의 분수령이었다.”고 톈안먼 사태를 평가한 뒤 “비록 중국의 정치제도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정치제도 변화를 준비하는 사상적 조건에 대해 말한다면 ‘6·4’는 정치제도 변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표된 논문들은 블로그를 통해 비밀스럽게 인터넷상에서 유통되고 있다. 강요된 침묵을 비집고 솟아나오는 이런 ‘반발력’을 중국 정부가 과연 끝까지 통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stinger@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이후] 대학가 “축제보다 추모”

    대학가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열기로 뜨겁다. 축제 일정을 연기하거나 축제 기간 고인을 추모하는 행사를 준비해 애도하고 있다.상명대와 청주대는 당초 예정됐던 봄 축제가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 기간과 겹쳐 일정을 연기했다. 상명대는 지난 26~28일, 청주대는 27~29일 축제를 열 계획이었다. 상명대 최영리(22·여) 부총학생회장은 “전직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흥청망청 놀 수 없다는 의견이 조성됐다.”면서 “검은색 플래카드를 걸고 장례기간에 차분히 지내기로 학생회 차원에서 결정했다.”고 밝혔다. 청주대 윤성훈(24) 총학생회장도 “이 시국에 축제를 해야 하느냐는 의견이 학내 게시판과 총학생회 전화로 쏟아졌다.”면서 “1학기 축제를 아예 취소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한 주 미루고 추도 묵념을 올리는 등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축제를 열기로 했다.”고 전했다.동국대 경주 캠퍼스와 부산 경성대는 1학기 축제를 아예 취소했다. 동국대 이정수(25) 부총학생회장은 “함께 슬픔을 나누는 차원에서 축제를 2학기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추모객들은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행렬을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29일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인도에 있던 추모객들이 도로로 몰려들면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가는데 1시간 이상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설정했지만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도착할 무렵인 오후 1시20분쯤에는 세종로 네거리부터 숭례문 앞까지 도로 전체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18만여명의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민 몰려 운구행렬 10분거리 1시간 걸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추모객들은 영구차에 노란 풍선과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여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님 이 땅에 다시 오시어 다시 한번 대통령이 되소서’, ‘당신과 함께 미래를 오늘로 만들겠습니다, 걱정 버리십시오’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고시 준비생인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며 아쉬워했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소망했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40여분간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 합창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때 건호·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이 울려퍼지는 애도의 거리를 따라 천천히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안치환·윤도현씨가 목 놓아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고인의 운구를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과 함께 운구행렬을 뒤따르던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뭘 했냐.”는 시민들의 원망과 질타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노 전 대통령 지켜낸 광장 광화문 네거리~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으로,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로 넘쳐났던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당시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서울광장 일대에는 오전 7시40분쯤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기 시작, 고인의 굴곡 많은 인생을 눈물과 통곡으로 달랬다. 오전 9시쯤 접어들면서 거대한 노란 풍선, 노란 모자 등 온통 노란색으로 광장이 물들었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여명(경찰추산, 주최측 50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노란 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22·여)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강의를 휴강했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장 2000여개 펄럭이며… 운구행렬이 노제가 치러진 서울광장을 벗어나는 동안 주변의 추모객들은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 박영선 의원 등에게 “살아 있을 때는 외면하더니 이제야 따라다니느냐.”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행렬은 오후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3시쯤 2000여개의 만장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당초 운구행렬은 오후 2시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흐름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어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추모객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1년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미소 지으며 걷던 서울역 계단과 광장은 이날 고인을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수가 6만 5000여명이나 됐다. 서울 화곡동의 직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 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대학생 원미라(22·여)씨는 “국장과 달리 국민장은 휴일이 아니어서 교수님들과 의논해 오늘 하루 휴강했다.”면서 “시대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방명록에 썼다.”고 말했다. ●경찰 주차시도에 시민들 물병 등 던져 운구행렬을 떠나보낸 추모객들은 다시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며 고인과의 이별을 슬퍼했다. 오후 3시30분쯤 경찰 버스 4대가 서울 프라자호텔 맞은편 서울광장 가장자리에 주차를 하려 하자 일부 추모객들이 물통 등을 던지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버스 1대와 경찰 지휘차량 1대가 일부 파손됐고 세종로에서는 추모객들과 경찰의 신경전이 밤늦도록 계속됐다. 경찰은 밤늦도록 추모객들의 귀가를 촉구하는 안내방송을 내보냈고, 이에 맞서 추모객들은 차량 위에 설치된 마이크로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추모사를 쏟아내 고인의 서거를 안타까워했다. 서울 유대근·수원 오달란기자 hunnam@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서울역 운구때 만장 2000여개 마지막 배웅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서울역 운구때 만장 2000여개 마지막 배웅

    ■ 행사장 차량통제 정오~오후 2시 광화문일대 통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엄수되는 29일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 교통이 통제된다. 경찰은 갑호비상근무 체제를 가동하고 광화문 일대에 200개 중대를 배치한다. 경찰청은 “김해 봉하마을부터 경복궁, 서울광장, 서울역, 수원 연화장, 봉하마을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에 순찰대와 경찰력을 집중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결식과 노제가 이뤄지는 29일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구간별로 차량이 통제된다.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동십자각 사이 사거리와 광화문에서 세종로 사거리 구간 등 양방향이 전면 통제된다. 오후 12시30분부터 2시까지는 세종로 사거리와 시청광장 사거리 사이의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 경찰청측은 “종로, 을지로, 퇴계로, 남대문로 등 주변 도로를 경유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교통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 장례행렬에는 운구차를 중심으로 차량 10대가량이 동원되며 고속도로에서는 순찰차 13대가, 일반국도에서는 경호 오토바이 18대가 경호를 맡는다. 장례행렬은 봉하마을에서 국도를 타고 남해고속도로로 나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등을 오가다 양재 나들목을 통해 서울로 진입, 한남대교를 타고 경복궁 앞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이동과정에서 교통정체나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동 중에도 경로가 변경될 수 있다.”고 밝혔다. ●만장 깃대 대나무 대신 PVC 사용 한편 장의위원회는 국민장에 사용하는 만장 2000개를 대나무가 아닌 PVC파이프에 걸기로 했다. 장의위원회 김종민 대변인은 “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점을 감안, PVC파이프를 사용하기로 자체 결정했다.”면서 “만장은 서울역까지만 들고 가고 정부에서 수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건형 강병철기자 kitsch@seoul.co.kr ■ 발인~안치 어떻게 진행되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마지막 안녕을 고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나서는 시간은 29일 오전 5시. 약 30분간 발인식을 가진 뒤 고속도로 등을 이용해 서울로 향한다. 노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은 시속 80~90㎞로 빠르지 않게 이동하며, 휴게소에서 20분간 한 차례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운구행렬이 서울에 들어서면 경찰 사이드카 28대가 호위에 나선다. 운구 행렬 선두와 후미에 8대가, 운구차 양 옆에 각각 10대가 격식을 갖춘 채 영결식장으로 인도한다.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가로 1.1m, 세로 1.4m)을 앞세운 영정차는 운구차 바로 앞에서 행렬을 이끈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11시 노 전 대통령의 운구가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군악대의 조악 연주로 시작된다. 송지헌 아나운서의 사회로 국민의례(1분)~고인에 대한 묵념(2분)~고인 약력보고(3분)~조사(12분)~불교와 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12분)~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선서모습 등 생전 영상 방영(4분)~헌화(18분)~추모공연(10분) 순으로 진행되며, 삼군 조총대원들이 조총 21발을 발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결식 도중에는 ‘영원한 안식’ ‘새같이 날으리’ ‘미타의 품에 안겨’ ‘오제의 죽음’ ‘장송행진곡’ 등의 추모곡이 연주된다. 추모공연에선 국립합창단이 ‘상록수’를 합창하고, 해금연주가 강은일씨가 노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아리랑’ 등을 연주한다. 영결식 장면은 공중파 TV 및 식장과 서울광장, 서울역 등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노제를 지낸다. 경찰청이 제공한 차량 4대가 대형 태극기(가로 5.4m, 세로 3.6m)를 펼친 채 운구차를 선도하며, 유족대표 등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는 모두 걸어서 이동한다. 노제는 도종환 시인이 진행한다. 가수 양희은과 안치환, 윤도현의 ‘여는 마당’이 이어지고, 안도현과 김진경 시인이 조시를 낭독한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안 시인의 시를 특별히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김 시인은 노 전 대통령 밑에서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다. 조시 낭독이 끝나면 장시아 시인이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낭독한다. 노 전 대통령은 소녀가장인 장 시인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봉사활동을 펼친 경험을 담은 시집 ‘그늘이 더 따뜻하다’를 국무위원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이어 안숙선 명창의 조창, 진혼무가 펼쳐지고, 합창단과 참석자 모두가 ‘상록수’ ‘아침이슬’ ‘애국가’ 등을 반주 없이 합창하면서 30여분의 노제가 마무리된다. 노제가 끝나면 운구 행렬은 숭례문 앞 태평로를 거쳐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한다. 도보 행렬에는 인터넷 공모를 통해 선발된 시민 2000여명이 장의위가 준비한 만장(輓章)을 들고 뒤따르면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한다. 도보 이동 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서울역을 출발, 오후 3시 수원 연화장에 도착해 유가족과 집행·운영위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약 2시간 동안 고인의 유언대로 화장된다. 유족들이 수습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유골함에 담겨 오후 9시쯤 봉하마을에 도착,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 안치된다. 유족들은 향후 길일을 잡아 노 전 대통령 유골을 봉하마을 사저 인근에 안장할 예정이다. 임주형 박성국기자 hermes@seoul.co.kr ■ 화장 절차 분향실 고별제례 분골은 안 하기로 29일 오전 11시 영결식 이후 진행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장 의식은 일반인과 특별히 다를 바 없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28일 수원시 시설관리공단 장묘환경사업소에 따르면 노 전대통령의 화장의식은 화장장 전체가 당일 오후 반나절 내내 할애되고 화장료 100만원을 면제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29일 오후 3시쯤 수원시 연화장에 영구차가 도착하면 관을 이동대차로 옮기는 운구를 시작으로 이동대차에서 화장로 앞 전동대차로 옮겨 화장로에 넣는 화장절차,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분향실에서 제례를 올리는 고별절차가 이어진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화장로 9기 가운데 가장 큰 8번 화로에서 화장되고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13㎡ 면적의 8호 분향실에서 제례의식을 진행한다. 평소 오후 2시까지 4차례 실시되는 일반 화장이 이날은 오전 8시, 10시 두 차례로 단축되고, 오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화장만 이뤄진다. 화장은 섭씨 800~1000도의 온도에서 1시간10분 정도 걸리는데, 관 재질이 두꺼울 경우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고 연화장 측은 설명했다. 화장이 끝나면 15분 정도의 냉각과정을 거쳐 유골은 분골실로 옮겨진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유해는 유족의 뜻에 따라 통상적인 분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유골 상태에서 정부가 마련한 유골함에 담겨 유족들에게 인계될 것으로 전해졌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NOW포토] 최민식 “좋은 곳으로 가시길~”

    [NOW포토] 최민식 “좋은 곳으로 가시길~”

    영화 ‘히말라야’(감독 전수일)의 언론시사회가 29일 오후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가운데 배우 최민식이 묵념을 하고 있다. ’히말라야’는 네팔인의 유골을 전하기 위해 히말라야를 찾은 남자(최민식)가 그 땅에 머물고 있던 바람이 전해온 막연한 희망의 기운을 느끼게 되는 영화로 6월 11일 개봉한다. 서울신문NTN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 前대통령 국민장] 발인까지 지켜보자… 밤을 잊은 애도

    [노 前대통령 국민장] 발인까지 지켜보자… 밤을 잊은 애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에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는 이른 아침부터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도 줄지어 조문하는 데에 3시간 이상 걸렸다. 일부 조문객은 29일 오전 5시 거행될 발인까지 참가하겠다며 봉하마을에서 밤을 지새웠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을 포함, 지난 6일 동안 봉하마을을 찾은 조문객을 100만명 이상으로 집계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이날 아침 처음으로 분향소를 찾았다. 권 여사는 검은색 상복을 입고 왼쪽 가슴에 베 리본을 달았으며, 매우 수척한 모습이었다. 여 비서관의 부축을 받아 걸으면서도 휘청거렸다. ●노 전 대통령 강금원 보석 늦어져 상심 권 여사는 이날 오전 7시20분쯤 마을회관 앞에 설치된 분향소에 나와 남편의 영전에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치고 허리를 깊숙이 숙여 묵념했다. 이어 상주 역할을 하는 참여정부 인사들에게도 깍듯이 인사하고, 분향을 위해 줄을 선 조문객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장의위 관계자는 “권 여사의 판단에 따라 분향소로 나와 조문객과 자원봉사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에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대한 보석결정이 늦어지자 크게 상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서거 4일 전인 지난 19일쯤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강 회장이 보석으로 풀려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뤄지지 않은 뒤에 지인들의 전화도 아예 받지 않는 등 매우 상심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이날 오전 조문객 중에는 민중가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로 유명한 가수 안치환도 눈에 띄었다. 안치환은 조문을 마친 뒤 장례위에 자신의 앨범 ‘비욘드 노스탤지어’ CD를 전달했다. 또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와 신자 200여명도 빈소를 방문, 1시간여 동안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미사를 올렸다. 사제단이 분향하는 시간에는 아들 건호씨가 상주로 앞에 나와 예를 갖췄다. 미사를 마치자 건호씨는 분향소를 찾은 직장 동료 10여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울러 각 언론사의 취재진도 이날 정식으로 조문했다. ●봉하마을 6일간의 진기록들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6일간 각종 진기록이 쏟아졌다. 누적추모객은 하루 20만명씩, 100만 이상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조문객들에게 배식한 소고기 국밥의 재료로 하루 80㎏짜리 쌀 125포대가 소비됐다. 소고기도 하루평균 800㎏ 이상이 들어갔다. 황소 1마리 무게와 맞먹는 양이다. 김치 300㎏과 수박 500여개, 생수 1만병, 떡 10t 등이 하루를 채 버티지 못했다. 국화도 하루 평균 10만송이 이상 쓰였지만, 몰려드는 조문객을 감당하지 못해 깨끗한 것을 골라 재활용됐다. 김해 김정한 박정훈 김승훈기자 jhkim@seoul.co.kr ■ 발인식 앞둔 전국 각지 표정 광주·전남 시민 수천명 추모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전국 각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전날보다 더 많은 추모객이 나와 고인을 애도했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고인의 미공개 자료와 유품 등을 입수하는 대로 인터넷 등에 공개했다. ●추모객 “내일이면 만날 수 없어…” 이날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 4살짜리 손녀와 함께 나온 김덕주(62)씨는 “내일이면 영영 떠나 보내야 하는데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 같은 이 슬픔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은 분향소 옆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가슴 깊은 애도를 표하며 전국 대학생들의 힘을 모아 이런 비극을 부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덕수궁 분향소에는 간이화장실 3개가 설치됐다. 서울시는 지하철1호선 시청역2번 출구와 상공회의소앞, 시청 서소문청사 주차장 입구 등 3곳에 변기 27개(여자용 12개, 남자용 15개)가 마련된 이동박스를 설치했다.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역 등 정부분향소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재오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 등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김종선 한진그룹 부회장, 손욱 농심 회장, 이석채 KT 회장 등이 분향소를 방문했다. ●고인이 마지막까지 아낀 책 공개 이날 오후 7시 광주 동구 광산동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는 시민 등 수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 광주·전남추모위원회’ 주관으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문화제는 송기숙 위원장의 추모사와 김준태 시인의 헌시, 아침이슬·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영상 상영, 자유발언,추모 나비 날리기 등 순으로 밤늦게까지 진행됐다. 추모객들은 분향소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적힌 가로, 세로 1m 크기의 대자보를 내걸었다. 이날 오후 8시부터 전남 진도군 진도읍 철마광장에서는 고인의 넋을 기리는 씻김굿이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국민장 장의위원회는 이날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12월27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마지막으로 가진 송년회를 기록한 미공개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장의위는 또 고인이 서거하기 일주일 전에도 “책과 자료를 구해달라.”고 할 정도로 독서열이 높았다고 전하면서 고인이 남긴 책 20권을 ‘노무현이 만난 책, 노무현이 만날 책’이라는 제목으로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전국종합 광주 최치봉·서울 김민희기자 cbchoi@seoul.co.kr
  • 발인에서 안치까지… 마지막 여정 스케치

    서울광장 노란 물결… ‘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눈물 참던 건호·정연씨 끝내 오열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많은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는 한시간 가까운 이상이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형성했으나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시민들은 영구차에 노란풍선과 노란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면서 아쉬워하셨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운구행렬이 도착한 오후 1시20분부터 40분여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한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가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때 노건호, 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기도 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추모객들이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합창하는 가운데 장례행렬이 재정비되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 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영결식이 끝나가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과 안치환, 윤도현이 ‘상록수’ 등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는 ‘여는 마당’이 열렸다. ●‘사랑으로’ 합창 부르며 노제 마무리 이날 추모객들로 가득 찬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이었다.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는 6월항쟁의 물결이 넘친 곳이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이때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는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도 이곳이었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이날 서울광장 일대는 경찰이 서울광장의 일반인 진입을 막는 차벽을 철수한 오전 7시40분부터 추모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운구행렬이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는 오전 9시쯤에는 광장을 가득 메웠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명(경찰 추산, 50만명 주최측)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하늘로 떠오른 노란색 풍선들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멀리 떠나보내는 듯했다. 노랑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여·22)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휴강해주셨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서울역 도착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운구 행렬은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오후 3시쯤 2000여개 만장들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운구행렬은 이곳에 오후 2시 도착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통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시민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고작 1년 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걸어오르며 미소지었던 서울역 계단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을 영원히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회사원 장진우(33)씨는 “지난해 배웅할 때는 우리가 계단 밑에 있었는데 이제는 대통령께서 계단 밑에 계신다.”면서 “눈물이 나서 더 이상 말을 못하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한편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6만 4997명이 분향했다. 서울 화곡동 직장에서 전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일부러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오후 6시 지나서야 수원 연화장 도착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추모행렬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운구행렬은 오후 6시가 지나서야 수원 연화장에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지대로 화장이 이뤄진 수원 연화장 역시 온통 노란 물결이었다. 연화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노란 풍선과 리본,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입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오후 1시부터 노란색 모자를 쓰고 노란 스카프를 두른 1000여명의 시민이 연화장 내부 승화원(화장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으로 영결식과 노제를 지켜보며 눈물을 훔쳤다. 주부 박현선(41)씨는 “대통령께서 가시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도록 배웅하러 나왔다.”면서 “뜨거운 가마 속에서 계셨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김인규(56)씨는 “지난 7일동안은 슬픔의 힘으로 버텼지만 내일부터 무슨 힘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권양숙 여사와 유족들의 앞날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화장은 2시간여에 걸쳐 마무리됐다. 향나무에 담긴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이날 연화장에서 4시간여 고속도로를 달려 이날 밤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유골함은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 향후 사저 옆 장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해 박정훈 김승훈 이재연·수원 오달란 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분향소 찾은 김대중 前 대통령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28일 오전 11시 서울역 앞 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전 앞에 헌화를 한 뒤 묵념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봉하 → 경복궁 영결식 → 서울광장 노제 → 수원 연화장 → 봉하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봉하 → 경복궁 영결식 → 서울광장 노제 → 수원 연화장 → 봉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29일 새벽 발인이 끝난 뒤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나 서울 경복궁 앞뜰 영결식장으로 향한다. 발인제는 1시간 전인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에서 진행된다. 운구행렬은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올 것으로 보인다. 이동 경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봉하마을 근처인 동창원IC(남해고속도로)~칠원JC(중앙고속도로)~여주JC(영동고속도로)~신갈JC(경부고속도로) 등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운구행렬 중 영정을 모실 검은색 캐딜락은 보닛 정면에 V자 모양으로 꽃 장식을 한다. 또 경찰 순찰차량이 노 전 대통령의 가는 길을 호위한다. ●종합청사서 대한문까지 교통통제 노 전 대통령이 오전 10시쯤 서울에 도착하면, 사이드카 24대가 영정차량을 앞뒤에서 호위한다. 선도차와 영정·훈장차가 앞을 달리고 상주차와 유가족차, 장의위원차 등이 뒤를 잇는다. 경찰은 이날 교통통제를 위해 서울시청 앞~미국대사관~시민 열린마당과 정부중앙청사~대한문까지 폴리스라인을 칠 계획이다. 경찰은 또 갑호비상체제로 전환하고, 경복궁 인근 광화문 네거리 차도를 통제한다. 영결식은 오전 11시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거행된다. 뜰에는 4층 계단형 제단이 세워진다. 흰색 천으로 덮인 제단은 2000여 송이의 국화꽃으로 장식된다. 식장에는 삼부 요인 등 1000여명의 장의위원과 수천명의 인사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다. 영구차가 군악대의 조곡에 맞춰 도열병을 통과한 뒤 자리잡으면 개식선언과 함께 국민의례가 시작된다.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한승수 장의위원장의 조사, 종교의식이 진행된다. 또 고인의 생전 영상이 방영되고 헌화와 조가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삼군의장대의 조총이 21발 발사되고 영결식 폐회가 선언된다. 낮 12시30분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행렬은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이동, 노제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 광장과 거리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태극기와 노 전 대통령의 상징인 노란 리본을 흔들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길엔 태극기·노란리본 물결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수원시 연화장으로 운구돼 화장되며 화장과 분골 절차가 마무리되면 다시 봉하마을로 향한다. 운구행렬이 봉하마을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10시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봉하마을 사저 인근 사찰인 정토원에서 하루 머문 뒤 다음날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 영면을 취할 곳은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12 일대가 유력하다.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야산이다. 그러나 유족들이 따로 길일을 잡으면 안장이 며칠 늦춰질 수도 있다. 박건형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대통령실장·靑수석들, 역사박물관서 조문

    정정길 대통령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은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역사박물관을 찾아 조문했다. 정 실장과 수석들은 이날 오전 9시33분쯤 셔틀버스 2대에 나눠 타고 분향소에 도착,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흰색 장갑을 끼고 대열을 지어 분향소로 입장했다. 정 실장이 먼저 헌화와 분향을 한 뒤 고개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빌었고, 이어 김인종 경호처장과 맹형규 정무수석 등 수석 비서관과 비서관들이 일제히 헌화하고 묵념을 했다. 정 실장은 조문록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통령실장 정정길”이라고 적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노 前대통령 영결식 29일 경복궁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9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뜰에서 거행된다. 노 전 대통령 유족 측은 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29일 새벽 5시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에서 발인을 한 뒤 서울로 옮겨 경복궁 뜰에서 영결식을 진행키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영결식장이 경복궁으로 사실상 결정됨에 따라 화장 장소도 김해 시립추모의 공원 대신 서울에서 가까운 경기 벽제 서울시립승화원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에 앞서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지내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 장의위원장에 한승수 국무총리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공동위원장으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장례절차 등은 행정안전부 실무팀이 노 전 대통령의 유족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결식이 경복궁에서 치러짐에 따라 장례 동선은 김해 봉하마을-서울 경복궁-경기 벽제-봉하마을로 이어진다. 영결식은 경복궁에서 국민장이 이뤄진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선례에 준해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영구차가 군악대의 조곡에 맞춰 도열병을 통과한 뒤 자리잡으면 개식선언과 함께 국민의례가 시작된다.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한승수 장의위원장의 조사, 종교의식이 진행된다. 또 고인의 생전 영상이 4분 간 방영되고 15분 간의 헌화, 조가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삼군의장대의 조총이 21발 발사되고 영결식 폐회가 선언된다. 노 전 대통령 장의위원회는 1000명 이상 규모로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서거한 최 전 대통령의 국민장 당시 장의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고문 55명, 국회부의장과 선임 대법관, 감사원장과 부총리 등 부위원장 8명, 위원 616명 등 총 680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유족 측은 장의위원장뿐 아니라 고문과 부위원장, 위원 등에 정부 측이 선정하는 인사 외에 참여정부 인사들을 참여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명숙 공동 장의위원장은 브리핑에서 “노 전 대통령과 친분 있는 분들을 장의위원으로 추가 요청했다.”면서 “정확한 인원은 모르지만 장의위 규모가 1000명은 넘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또 ”영결식 후 노제 장소는 아직 미정이지만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집행위원장인 행안부 장관이 검토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해 유대근·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노 前대통령 서거] 빗속 300m 조문행렬… 건평씨 묵묵부답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하늘은 비를 뿌렸고,사람들은 오열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는 이날 오후 2시20분쯤 기상청도 예상치 못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추모객들은 30여분이나 비를 맞았지만 300여m나 늘어서 조문 차례를 기다렸다. 추모객들의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빗소리가 뒤엉키면서 봉하마을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오늘 새벽 1시30분쯤 입관식 추모객들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10~20명이 한꺼번에 조문했다. 차례로 줄지어 흰 국화 1송이씩을 영정 앞에 올린 뒤 묵념하고 유족에게 인사했다. 오전 11시30분쯤 마을회관 옆에 폭 10m 규모의 철제 구조물로 된 공식 분향소가 마련됐다. 수천 송이 국화가 제단에 헌화됐고, 영정과 위패가 안치됐다.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빈소와 분향소 설치를 도왔다. 빈소를 찾는 추모객의 행렬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봉하마을로 향하는 진입로가 좁고 주차장이 없어 혼란이 더했다. 봉하마을 측은 인근 진영 공설운동장을 임시주차장으로 꾸미고, 대형 셔틀버스 6대를 운행했지만, 몰려드는 추모객들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추모객들은 공설운동장에서 봉하마을까지 5㎞ 넘게 늘어섰다. 25일 새벽 1시30분쯤 고인에 대한 입관식을 가졌는데, 더위로 인한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해 약품처리를 했다. ●40여가구 조기 내걸어 봉하마을 40여가구는 이날 조기를 게양했다. 마을 스피커에서는 진혼곡과 함께 ‘솔아솔아 푸른 솔아’ 등 민중가요가 흘러나왔다. 추모객과 봉화 주민들은 차분한 분위기에서 고인을 애도했다. 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노사모 회원 500여명도 비교적 차분한 모습으로 마을을 지켰다. 추모객들의 식사대접을 돕거나 행사장 질서유지에 나섰다. 장례 진행을 맡은 배우 문성근씨도 마을 스피커로 “분향소를 찾는 조문객은 (정파에 관계없이) 누구라도 따뜻이 맞아주자.”는 내용의 안내방송을 반복해서 내보냈다. 이날 5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과 빈소를 찾은 경남이주민연대회의 이철승 목사는 “노 전 대통령께서 퇴임후 ‘힘이 있을 때 이주노동자 문제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사과하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이날 오전 11시20분쯤 한 50대 여성은 조문을 마친 뒤 감정이 북받친 나머지 갑자기 실신,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날 10여명이 대기 중인 의료진의 도움을 받았다. ●건평씨 “죽기는 왜 죽어”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는 법원으로부터 7일 동안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이날 새벽 봉하마을의 동생 빈소를 찾았다. 지난해 12월5일 세종증권 매각비리 연루 혐의로 구속된 뒤 5개월 20여일 만에 풀려나 고향 땅을 밟은 건평씨는 오전 8시50분쯤 빈소에 도착했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다만 조문을 마치고 자신의 집에 머물 때 찾아온 마을 주민에게 “죽기는 왜 죽어.”라고 비통한 심정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의 관은 빈소 정면의 병풍 뒤에 안치돼 있다. 병풍 앞에 영정이 놓여 있으며, 외부에서는 들여다 볼 수 없도록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다.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 “쓰촨 대지진 1주년… 단결의 힘 입증”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죽은 자에게는 안식을, 산 자에게는 용기를.’  8만 6633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쓰촨(四川) 대지진 1주년인 12일 중국은 또다시 슬픔에 잠겼다. 오후 2시28분 운명을 가른 ‘그 시간’에 중국 전역은 모든 것을 멈추고 희생자들을 생각했다. 그리곤 주먹을 불끈 쥐고 ‘재건’(重建)과 ‘재생’(重生), ‘굴기’(堀起·우뚝 솟음)를 부르짖었다.  이날 오후 2시20분 진앙지인 쓰촨성 원촨(汶川)현 잉슈(映秀)진에서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부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1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중국 정부는 구조 및 복구활동에 도움을 준 20여개국 외교사절을 초청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신정승 주중대사가 참석했다. 헌화, 국기 게양, 국가 제창, 묵념 등의 순으로 진행된 추모행사에서 후 주석은 “거대한 재난 극복 과정에서 단결이 힘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며 “우리 모두 일치단결해 앞날의 어려움과 위험에 과감히 맞서 신중국 건국 60주년을 뜻깊게 맞이하자.”고 국민들을 독려했다.  4일간 임시 개방된 몐양(綿陽)시 베이촨(北川)현 옛 읍내에서는 희생자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먼저 간 가족들을 생각하며 통곡했다. 학교 부실공사 여부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5335명에 이르는 학생 피해자 가족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등 후유증도 아직 만만치 않게 남아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11일 후 주석이 전격 방문한 베이촨 중학교 신축 부지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옛 베이촨 중학에서는 단식농성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stinger@seoul.co.
  • [기고] 삼각산 자락 순국선열 묘역 성역화해야/김현풍 서울 강북구청장

    [기고] 삼각산 자락 순국선열 묘역 성역화해야/김현풍 서울 강북구청장

    온 나라가 경제살리기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마이너스 경제성장은 피할 수 없고, 실업자 수도 100만명을 넘보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 소비경기 등이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일자리 창출 등 여러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역사 속에서 위기 극복의 묘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난을 이겨낸 선조의 지혜에서 교훈을 얻고 우리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을 바로 세운다면 위기를 이겨낼 동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반만년의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깎아내리고 전통을 천시하는 잘못을 저질러 왔다. 일제의 식민사관은 우리 역사에 대한 열등감과 패배감을 새겨 놓았으며, 광복 이후 혼란과 분단은 애국과 매국을 뒤집어 놓았다. 이제 잘못된 역사 의식을 떨쳐 버리고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되찾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다. 여기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삼각산 자락에 고이 잠들어 계신 21기의 순국선열 묘소를 소개할까 한다. 이곳엔 헤이그 밀사로 파견되어 순국한 이준 열사를 비롯해 3·1운동을 주도한 손병희 선생, 항일독립운동과 좌우 합작운동을 펼친 여운형 선생,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임시정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 이시영 선생 등 조국의 독립과 건국에 헌신한 선열들이 모셔져 있다. 또 신익희, 조병옥 등 대한민국의 기틀을 다진 정치가와 오상순, 현제명 등 문화예술인, 조국 광복을 위해 꽃다운 청춘을 바친 17위의 광복군 합동 묘까지 있다. 한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교육장이라고 할 만하다. 이처럼 한 분, 한 분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분들이건만 묘소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채 우악스러운 철문과 철조망에 갇혀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나는 1991년부터 벌초와 묘소 관리를 자처하고 나섰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깔끔하게 정비되었으며, 잠겨있던 문도 열려 참배가 가능하다. 지난해에는 환경부에서 7억원의 예산을 들여 이시영, 신익희 선생 등 독립유공자 14분의 묘소를 새로 단장했다. 주변에 있는 국립4·19 민주묘지는 기념일뿐 아니라 평소에도 수많은 참배객들이 찾아오지만 그 수많은 발길 중 순국선열 묘역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러한 푸대접은 조국을 위해 몸바친 선열들을 뵐 면목이 없기도 하거니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후손들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순국선열 묘역을 제대로 활용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게 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히 각각의 묘소별 정비가 아닌 묘소간 탐방로를 연결, 이야기가 있는 순례 코스로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묘소를 거리와 안장자별 특성에 따라 건국 존, 독립 존, 문화예술 존 등 테마별로 묶어 순례 코스를 조성해야 한다. 탐방로는 이동통로가 아닌 삼각산의 자연환경을 만끽하고 삼림욕까지 즐길 수 있는 산책 공간으로 조성한다. 묘역이 집중한 곳엔 역사문화관을 짓고, 다양한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묘역 주변이 역사교육의 장이자 가족나들이 장소로도 사랑받을 것이다. 강북구는 올해부터 순국선열 묘역 성역화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진행한다면 삼각산의 순국선열 묘역이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을 찾는 성지로 각광받을 날도 머지않으리라 믿는다. 따뜻한 봄, 주말 가족과 함께 4·19묘지를 지나 순국선열 묘소로 발길을 돌려보자. 20세기를 관통하며 조국 독립과 건국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에게 묵념을 드리고 아이들에겐 그분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을 설명해 주시라. 김현풍 서울 강북구청장
  • ‘꽃남’측, 故장자연 추모…“진실 밝혀지길”

    ‘꽃남’측, 故장자연 추모…“진실 밝혀지길”

    지난달 31일 막을 내린 KBS 2TV ‘꽃보다 남자’ 제작사 그룹에이트와 드라마 관계자들이 종방연에서 고(故) 장자연을 추모했다. ‘꽃보다 남자’ 측은 1일 오후 7시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배우들과 제작진 등이 참석한 가운데 종방연을 가졌다. 특히 이날 관계자는 종방연 시작 직전 “장자연이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없게 돼 슬프다.”면서 “장자연은 10대 1의 오디션을 거쳐 발탁된 연기자였다. 늘 성실하고 밝은 모습으로 제작진을 북돋워줬다. 그런 힘든 일을 겪었다니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경찰이 조사중이니 진실이 밝혀져 고인 가는 길이 편하길 바란다.”며 “편안히 잠들기 바란다.”고 말한 뒤 묵념의 시간을 통해 고인을 애도했다. 故장자연과 함께 악녀 3인방 멤버였던 민영원은 “처음 오디션을 통과해 다함께 대본 리딩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드라마가 끝났다.”면서 “(장)자연 언니를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故장자연은 ‘꽃보다 남자’에서 금잔디(구혜선 분)를 괴롭힌 악녀 3인방 진선미 중 선인 써니 역으로 출연, 주목 받았으나 3월7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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