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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일 마오쩌둥 탄생 120주년… 中 사오산에서 본 추모열기

    26일 마오쩌둥 탄생 120주년… 中 사오산에서 본 추모열기

    “마오쩌둥(毛澤東)이 없다면 신중국도 없다.”, “동방에 태양이 떴네, 중국에 마오쩌둥이 나셨네.”, “마오쩌둥은 중국의 위인이자 자랑스러운 세계의 위인이다.” 26일 마오쩌둥 탄생 120주년을 앞두고 중국 대륙이 추모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5일 추모 인파와 함께 그가 태어난 후난(湖南)성 샹탄(湘潭)현 사오산(韶山)마을을 찾았다. 이곳은 평상시에도 방문객이 많지만 신년, 마오 탄생일 등 기념일에는 하루 관광객이 최소 10만명을 넘는 일명 ‘홍색 성지’로 유명하다. 마을에 조성된 10만㎡ 크기의 마오쩌둥 생가 관광 구역에는 이른 아침부터 그의 발자취를 더듬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마오 동상 주변을 에워싼 어른 키 높이의 화환들에는 ‘마오쩌둥,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란 글귀와 가족의 복을 비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동상 앞에 고개 숙여 묵념한 뒤 헌화하고 기념 사진을 찍으며 마오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식을 치렀다. 광장 주변 기념품 가게에선 마오의 얼굴이 그려진 손바닥 크기의 동전이나 돌에 이름을 새겨 복을 비는 이른바 ‘마오 부적’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마오는 중국인들에게 신중국을 건립한 국부(國父)를 넘어 반신(半神)으로 승격된 인물이라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생가 관광 구역 주변 전체가 그를 추앙하는 기념물로 가득했다. 광장을 중심으로 반경 2㎞ 안에는 원래 이곳에 있던 그의 생가와 마오씨 사당은 물론, 마오쩌둥 기념관, 마오쩌둥 도서관 등 그를 기리기 위해 추가로 세워진 건물들이 즐비했다. 인근에는 마오의 일대기를 그린 ‘테마파크’도 조성돼 있다. 마오가 농민을 조직해 결성한 홍군(紅軍)을 데리고 혁명의 첫 근거지인 징강산(井岡山)으로 들어가 세를 불린 뒤 훗날 옌안(延安)까지 대장정을 거쳐 국민당과의 내전과 항일전쟁에서 이기고 신중국 성립을 선포하기까지 거쳤던 유적들을 재현했다. ‘마오쩌둥이 없다면 신중국도 없었다’는 게 핵심 메시지다. 마오쩌둥 기념관에는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가리키는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다)전쟁이 ‘싸우면 무조건 이기는’ 군사 전략가로서의 마오의 성과임을 선전하는 내용도 전시돼 눈길을 끈다. 한쪽 벽면에는 당시 중국과 미국의 국력과 군력을 비교한 표까지 큼지막하게 적어 놓아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한눈에 봐도 차림새가 ‘소박한’ 기층 서민들이지만 400위안(약 7만원)짜리 화환도 아낌없이 바칠 만큼 마오를 존경하는 뚜렷한 소신을 지니고 있었다. 난징(南京)에서 왔다는 한 대학생은 “마오는 오지에서 태어난 농민 출신으로 서당에서 사서삼경 등 한학을 공부한 토종 영웅”이라며 “그는 중국식이 그 어떤 서양식보다 우수하다는 점을 보여 준 세계적인 위인”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을 도탄에 빠뜨린 마오의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이 거론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이날 1개 면 특집 기사에서 “마오는 신중국을 세우고 공산당을 창립했으며, 중국을 지키기 위한 인민해방군을 만들고, 중국을 하나로 묶는 ‘마오쩌둥 사상’을 완성시킨 지도자였다”며 그의 공로를 치켜세웠다. ‘마오쩌둥의 진실한 이야기’의 저자인 알렉산더 판초프는 “중국 젊은이들은 마오를 지금의 강한 중국의 기틀을 잡아 준 국부로 보기 때문에 문화대혁명과 같은 과오는 그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마오 탄생 120주년 기념 행사를 간소하게 치르라고 주문했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6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리는 마오 기념 좌담회에서 직접 연설할 예정이다. 사오산(후난성)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김정은 시대’ 2막 개막] 구호·추모사 대부분 ‘김정은에 대한 충성맹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주기를 맞은 17일 북한은 1년 전보다 한결 차분한 모습이었다. 지난해 장거리 로켓 발사(12월 12일)에 성공한 뒤 ‘김정일 유훈’을 관철했다며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1주기를 맞이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에는 1주기 전날인 12월 16일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중앙추모대회를 열었으며, 당일 오전 9시 금수산태양궁전 개관식을 성대히 열고 이어 금수산태양궁전 광장에서 군인들의 결의대회를 열었다. 반면 올해에는 2주기 전날 대규모 추모대회도 없었다. 이날 오후 2시에 비로소 조선중앙방송이 “김정은 제1위원장과 리설주가 김정일 동지의 서거 2돌에 즈음해 12월 17일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섭정왕’ 장성택의 처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숙청이 채 마무리되기 전에 김 위원장의 2주기를 김 제1위원장에 대한 충성 결집의 계기로 활용하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행사 시작인 오전 11시가 되기 전 2만여석의 평양체육관은 가득 채워졌다. 대회장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을 기리는 구호는 물론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영도 따라 주체혁명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자’ 등 김 제1위원장에 대한 충성 맹세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오전 11시 7분 김 제1위원장이 주석단이 착석하자 당 중앙위원회 비서인 김기남의 사회로 추모대회가 시작됐다. 2분간 묵념이 이어진 뒤 북한 국가인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추모사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맡았다. 추모사 중간중간 김 제1위원장부터 차례로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최근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의 죄목을 밝힌 판결문에서 “(2010년 9월 노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김정은 동지를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신 결정이 선포됐을 때 장성택은 마지못해 자리에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며 오만불손하게 행동했다”라고 적시한 탓인지 참가자들은 더 열정적으로 박수를 쳤다. 김 상임위원장의 추모사 후반부는 충성 맹세로 채워졌다. 김 상임위원장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을 주체혁명의 영도자로 높이 모시어 우리 조국은 영원한 태양의 나라로 번영할 것이며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주체의 태양으로 천세만세 영생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위대한 김정은 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억척 불변의 신념을 간직하고 김정은 두리(둘레)에 철통으로 뭉쳐 당 중앙을 목숨으로 결사 옹위하는 투사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군을 대표해 결의연설에 나선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도 “우리 혁명무력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르며 그 어떤 천지풍파 속에서도 오직 최고사령관 동지만을 받들어 나갈 것”이라고 충성을 다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北, 장성택 숙청 결정 회의 날짜 조작”

    북한이 지난 5~6일 평양에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어 장성택 숙청을 결정한 뒤 8일 확대회의가 개최된 것처럼 날짜를 속여 발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2일 양강도의 한 기업소에 근무하는 현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8일 열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리상원 양강도당 책임비서가 확대회의 참석을 위해 평양으로 출발한 날이 4일 새벽이었고, 돌아온 날은 7일 밤이었다”고 보도했다. 리 책임비서는 확대회의가 열렸다는 8일 평양이 아닌 양강도에 있었으며, 양강도당과 사법기관의 주요 간부들을 불러내 김정일 국방위원장 2주기 특별경비태세를 검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장성택 숙청 사실이 발표됐던 9일 오전에는 다른 비서급 간부들과 함께 양강도 혜산시에 있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을 찾아 묵념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도당 책임비서는 정치국 확대회의에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주요 당 간부다. 북한이 정치국 확대회의 개최 날짜를 조작한 게 사실이라면 무엇보다 장성택 숙청 효과의 극대화를 노렸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정일 2주기 추모기간(9~20일)이 시작되기 직전 ‘반당·반혁명 종파행위자’를 체포했음을 선전해 주민들의 경각심을 높이고 달아오른 추모 열기를 이용해 ‘당에 반기를 든 장성택’에 대한 분노를 한 단계 더 끌어올리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장성택이 이미 처형됐다는 소문도 빠르게 번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장성택이 정치국회의 참가자들이 보는 앞에서 측근들과 함께 즉결 처형당했다는 얘기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면서 “공개 처형된 날짜가 6일이라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오는 17일 김정일 2주기에 맞춰 특별경비에 들어간 데 이어 북·중 국경지대 경비도 대폭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바이든 연세대 강연서 “만델라 같은 인물 필요”

    “변화와 위협이 심한 시기일수록 넬슨 만델라와 같은 인물이 필요합니다.” 조 바이든(71) 미국 부통령이 6일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 체육관에서 열린 정책연설에서 전날(현지시간) 타계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인품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연설장에는 정운찬 전 총리와 한덕수 무역협회장, 성 김 주한 미국대사, 학생 등을 포함해 모두 1300명이 운집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만델라는 지혜와 용기, 특히 용서를 아는 분이었다”며 첫 만남 때의 일화를 공개했다. 그는 “상원 외교위원회 의장 때 그를 만났는데 ‘당신 인생에서 생산적인 시간을 감옥에 갇혀 지냈다는 사실이 화난다’고 했더니, ‘저는 감옥에서 간수들과 친구였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다. 내가 만났던 어떤 사람보다 훌륭한 이들이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청중들에게 만델라 전 대통령을 위해 묵념의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미국 정계의 외교통인 바이든 부통령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1980년대 미국 망명시절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평소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김 전 대통령을 꼽을 정도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국민의례 꼴사납다” 장학사가 공식행사서 생략

    전북도교육청이 주관한 공식행사 진행을 맡은 현직 장학사가 국민의례를 꼴사납다며 생략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3일 전북도교육청과 지역내 학교장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도교육청에서 진행된 ‘독일 혁신학교 특강’ 식전에서 행사진행을 맡은 박모 장학사가 “외국인을 모셔 놓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것이 꼴사나워 생략합니다”라며 국민의례 일부를 생략했다. 박 장학사는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이다. 현직 장학사가 많은 참석자들이 모인 공식행사에서 국민의례를 부끄러운 행동으로 표현하자 참석자들로부터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날 행사에는 김승환 전북도교육감과 도내 혁신학교 교장 등 500여명이 참석했고 강사로는 독일 헬레네 랑에 지역 알베르트 마이어 수석 교사가 초빙됐다. 행사에 참석했던 A교장은 “통합진보당이 공식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교육공무원마저 국민의례를 꼴사나운 일이라고 표현해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너무 황당해 처음에는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면서 “아무리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전북교육의 수장을 맡고 있다고 하지만 이 같은 발상은 이해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한국교총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상식밖의 발상이다”면서 “박 장학사의 징계와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박 장학사는 “전날 전주교대 국제심포지움에서 독일, 덴마크, 일본 등 3개국 외국인 4명이 참석했는데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까지 지루한 국민의례를 하는 것을 보고 외국인들이 불편하게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표현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전북도교육청은 박 장학사의 이같은 행동이 적지 않은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나 이렇다할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아우슈비츠 찾은 반기문 총장의 쓸쓸한 뒷모습

    아우슈비츠 찾은 반기문 총장의 쓸쓸한 뒷모습

    UN 사무총장으로는 최초로 옛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를 방문한 반기문 총장의 모습이 사진으로 공개됐다. 황량한 수용소의 분위기와 엄숙한 반기문 총장의 뒷모습이 이채로운 이 사진은 UN측이 촬영해 각 언론에 제공했으며 일부 언론은 이를 다시 흑백으로 처리해 공개했다. 이날 반총장은 ‘노동이 당신을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라는 유명한 문구가 적힌 수용소 입구를 시작으로 희생자들의 유골과 유품이 담긴 각 전시실을 둘러봤다. 또한 반총장은 차분한 표정으로 유태인들을 처형했던 ‘총살의 벽’을 둘러보고 잠시 묵념하기도 했다. 반 총장은 “사실로 믿기지 않는 이곳에서 수감자의 안경, 머리카락, 신발 등을 보며 희생자들을 상상했다” 면서 “죽음의 공장을 만들어낸 그들의 잔인함에 치가 떨린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우슈비츠는 잔악한 행위에 대한 저항의 공간일 뿐 아니라 용기와 희망의 장소이기도 하다” 면서 “다시는 이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아웅산 테러 30주기 추모식

    아웅산 테러 30주기 추모식

    김규열 제1차관을 비롯한 외교부의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유공자 제1묘역에서 열린 ‘제30주기 버마(미얀마) 아웅산 테러 순국자 추모식’에 참석, 묵념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아빠, 안녕…대구가스폭발 순직 두 경찰관 영결식

    가스폭발사고로 순직한 대구 남부경찰서 남대명파출소 소속 남호선(51) 경감과 전현호(39) 경위의 영결식이 26일 오전 대구 남부경찰서 마당에서 치러졌다. 대구지방경찰청장으로 열린 영결식에는 유족과 경찰, 각계 인사 등 800여명이 참석해 고인들을 추모했다. 영결식은 조곡 연주, 묵념, 약력 보고, 조사·고별사 낭독, 헌화·분향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남 경감과 전 경위에게는 특진 추서와 함께 훈장, 공로장이 헌정됐다. 최동해 대구지방경찰청장은 “고인들은 아무리 피곤해도 근무 중에는 쪽잠조차 허용치 않는 성실함과 어떤 힘든 일이라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처리하는 솔선수범의 표상”이라고 애도했다. 남대명파출소 김덕수 경위는 고별사에서 “당신을 보내는 우리 모두의 가슴은 미어지고 터지기를 반복하고 있다”며 “두 분이 못다 한 꿈, 모두가 약속했던 정의로운 사회를 반드시 이루어 놓을 것”이라며 영면을 기원했다. 유족들은 영결식 내내 고인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흐느꼈다. 전 경위의 아내(33)가 울음을 터뜨리자 아들(6)이 “엄마 울지 마”라며 눈물을 닦아줘 영결식장이 눈물바다가 됐다. 남 경감의 큰형과 아내, 아들, 딸도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영결식 후 두 경찰관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했다. 남 경감과 전 경위는 지난 23일 오후 11시 45분쯤 대구 남구 대명동 주택가에서 도보 순찰을 하던 중 가스배달업소에서 발생한 가스폭발사고로 순직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1) 남산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1) 남산

    남산 하면 벼슬길 진출을 위해 ‘열공’하던 딸깍발이 선비와 그들이 살던 낭만적인 남촌 풍경이 떠오른다. 조선 신궁과 통감부, 헌병사령부, 일본인 거주지 같은 좋지 않은 상념도 꽈리를 튼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라는 애국가 구절이나 한때 ‘남산’으로 불리던 옛 중앙정보부의 추억도 있다. 케이블카와 도서관, 어린이회관, 서울타워도 빠지지 않는다. 한강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기에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가 겹쳐 떠오르는 것이리라. 남산은 사대문 안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산이기에 익숙하고 친근하다. 풍수지리학상 342m 높이의 백악(북악)이 조선 한양의 주산(主山)이었다면 265m의 남산은 안산(案山)이었다. 쉽게 풀면 나라(임금) 앞에 놓인 밥상이나 책상 같은 개념의 산이다. 팔도에서 올리는 봉수대의 마지막 종착점이어서 남산 5개 봉수대에서 피어오르는 한 줄기 연기가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평화의 산이기도 했다. 남산 위에 오르면 도성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기에 오르지 못하도록 금했다. 덕분에 산림이 우거지고 울창해 서울의 허파가 되었다. 서울의 팽창에 따라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자연지리적인 요건을 갖췄다. 우리가 남산에 대해 꽤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 아는 것도 있다. 일례로 남산 소나무이다. 산림청에 등록된 4440개의 우리나라 산 이름 중 남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31개에 이른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마을 앞산을 남산 또는 앞산이라고 불렀다. 남(南)자를 ‘남녘 남’ 자가 아닌 ‘앞 남’으로 썼다. 남산은 앞산을 한자로 쓴 것이다. 목멱(木覓)의 유래도 흥미롭다. 남산의 다른 이름은 ‘마뫼’였다. 마뫼의 ‘마’는 ‘앞’, 뫼는 산의 우리말이다. 독립지사이자 역사학자였던 안재홍에 따르면 목멱은 이두식 표기다. 목(木)은 ‘마’를, 멱(覓)은 ‘뫼’를 적었다는 얘기다. 남산=앞산=마뫼=목멱이 같은 뜻 다른 이름이다. 방방곡곡 동네 앞산의 소나무가 모두 ‘남산 위의 저 소나무’인 셈이다. 샌님이 살던 남촌에 언제부터 왜색의 기운이 드리웠을까. 남산과 일본의 악연은 뿌리 깊다. 조선 초부터 임진왜란(1592~1598) 이전까지 일본 사신이 머물던 동평관이 남산 기슭 인현동 2가에 있었다. 남산은 7년 전쟁기간 동안 왜군 진지였다. 마스다 나가모리 등 왜장이 살았다고 해서 왜장터(왜성대)라고 불렸다. 그들의 진지는 지금의 정동에까지 이르렀다. 일제는 그로부터 292년이 지난 1884년 갑신정변을 틈타 남산 기슭 녹천정 자리를 영사관자리로 제공받아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곳에 일본공사관, 통감부, 총독부가 속속 들어섰다. 지금의 예장동, 주자동, 충무로1가인 진고개(본정)일대는 일본인 거주지였다. 진고개를 거점으로 남대문, 회현동, 명동(명치정), 을지로(황금정)쪽으로 주택가와 상가가 확장됐다. 화려한 남촌 일본인 상가는 북촌 조선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오늘날 일본인 관광객이 유독 명동을 즐겨 찾는 까닭도 그들이 누렸던 옛 영화를 그리워하는 회귀본능이 아닐까. 해방 직후 본정(本町)을 일본인이 두려워하는 이순신 장군의 호를 딴 충무로(忠武路)로 바꾼 것은 이를 차단하려는 속뜻이 작용한 것 같다. 남산과 남촌은 조선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일본인촌으로 변했다. 종로 우미관을 주름잡던 김두한 패가 청계천을 경계로 진고개 일본 건달과 세력을 다투던 시절이다. 19가구 89명(1885년)에 불과하던 일본인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1986가구 7677명(1905년)으로 늘었다. 강제병 탄이후 8794가구에 3만 4468명(1910년)으로 무서운 팽창세를 보였다. 일제의 남산 잠식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 1898년 예장동에 대성궁(경성신사)이라는 작은 신사를 세우더니, 1904년에는 2만여 평을 임대해 필동에 헌병대사령부를 구축했다. 1908년에는 30만 평을 영구 무상임대, 한양공원을 조성하고 조선 신궁을 세웠다. 그들이 잠식한 땅이 현재 남산공원(87만 6000평)의 3분의 1을 넘는다. 일제가 열도를 창조했다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와 명치 천황을 모신 조선 신궁은 한반도 전역에 있는 일본 신사의 총본부였다. 신궁은 사대문 안 어디에서나 보이는 남산 꼭대기에 있었으며 시내에서 전차가 신궁 밑을 지나갈 때는 승객 전원이 일어서서 묵념을 올려야 했다. 1918년 남산중턱 13만평의 수목을 베어내고 조성에 들어가 1925년 완공됐다. 지금의 남산식물원 자리이다. 일본의 성지 조성을 위해 남산은 깔아뭉개졌다. 남산 중턱 힐튼호텔에서부터 384개의 계단을 만들어 올라가도록 꾸몄다. 남대문에서 조선 신궁에 이르는 참배로를 조성하려고 남대문에서 남산을 잇는 성곽을 부수고 자동찻길을 냈다. 지금의 소월로이다. 남산생태계를 파괴한 주범이다. 조선신궁과 황국신민서사탑은 광복 직후 서울시민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 파괴할 정도로 원성이 높았다. 남산의 동쪽 기슭 장충단은 명성황후시해사건(1895) 당시 일본자객에 맞서 순직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곳이다. 장충단(奬忠壇)이란 글씨는 고종의 친필이다. 일제는 창경궁, 덕수궁과 함께 이곳을 공원으로 희화화하고서 장충단 동편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터에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를 세웠다. 일본 1000엔권 지폐에 얼굴이 등장하기도 한 이토의 업적을 영구히 기념한다는 구실로 내선일체를 꾀했다. 당시 여행안내책자에서 경성 제일명소로 칭송했다. 총독부를 지을 때 헐어낸 경복궁 선원전을 부속건물로,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을 정문으로, 광화문 양옆 궁성벽 석재를 가져다가 담으로 쌓았다. 박문사 건물은 해방 후에도 동국대 기숙사로 쓰였고 흥화문은 신라호텔 정문으로 쓰이다가 1988년에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중구 필동 남산한옥마을은 악명 높은 헌병통치의 본산인 조선헌병대사령부 터였다. 조선 초 박팽년의 사저였던 한국의집은 조선총독부의 2인자 정무총감의 관저로 쓰였다. 이들은 남산 중턱 왜성대에 총독관저를 세우고 그 아래 조선헌병대사령부를 뒀다. 서울유스호스텔은 일본공사관과 통감관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통감부와 총독관저가 각각 자리했었다. 남산은 경복궁 안에 총독부와 총독관저를 지어 옮겨가기 전까지 일본 식민통치의 심장부였다. 남산꼭대기 N타워 옆 팔각정은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평범한 정자에 불과하지만, 내력은 간단치 않다. 이 자리는 조선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부터 천하의 명당이었다. 태조가 남산의 산신을 모시려고 지은 국사당(國師堂)이 있던 자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무속사당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민속신앙 터인 국사당이 일본 토착신앙의 대표인 신궁에 쫓겨 인왕산으로 강제로 옮겨진 것이다. 일제는 ‘일본 최고 신과 살아있는 신인 천황을 모시는 신궁에 식민지 나라의 굿 집이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1925년 오백년 내내 있던 자리에서 내쳐버렸다. 한국의 무속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신도(神道) 역시 원시종교에 가깝지만, 정부나 국민이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정치생명을 건 야스쿠니 신사참배 행렬에서 엿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국사당을 원상회복시키자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못 얘기를 꺼냈다간 종교전쟁이 일어날 판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보고 싶어하는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명동을 거쳐 남산타워에 오른 일본인 관광객들이 국사당 축출 사연을 듣는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광복 후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도 남산을 그냥 두지 않았다.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승만은 국사당 터에 국사당을 되돌리기는커녕 자신의 호를 딴 우남정을 만들었고, 당시 세계최대 규모의 동상을 세웠다. 조선 신궁 터를 국회의사당 신축부지로 결정해 1959년 기공식까지 가졌지만 2년 뒤 5·16 쿠데타로 백지화됐다. 3500가구 2만 5000명이 정착한 서울 최초의 판자촌인 해방촌이 남산의 북쪽 기슭 12만 6000평을 차지하도록 사실상 허가해 남산의 피폐를 가속화했다. 이런저런 압력과 로비를 통해 숭의학원, 리라학교, 동국대학교가 남산에 틈입했다.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가장 집중적으로 훼손된 곳은 장충단공원이었다. 장충체육관, 신라호텔, 자유센터, 타워호텔(반얀트리),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옛 재향군인회(동국대), 옛 중앙공무원교육원(동국대) 등이 줄줄이 들어선 것이다. 장충단공원은 21만평이 넘던 서울시내 최대 근린공원에서 9만평의 평범한 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1984년 남산공원으로 흡수합병당하는 신세가 됐다. 1994년 외인아파트 2동이 폭파 철거되는 등 남산제모습찾기운동이 시작됐고 2009년 남산르네상스를 내세운 오세훈 전 시장이 찢어진 남산녹지축 연결을 시도했지만 마무리짓지 못했다. 남산에는 지금도 동상 10기, 기념비 14개를 비롯한 각종 시설물 28개, 체육시설 269개가 촘촘하다. 그러나 남산은 이들에게 마른 품을 기꺼이 내주고 있다. 아! 남산이여…. joo@seoul.co.kr
  •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 착수] 이석기 “南 양당체제는 美 분할통치 전략…2017년 대선 승리할 것”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 착수] 이석기 “南 양당체제는 美 분할통치 전략…2017년 대선 승리할 것”

    정부가 국회로 보낸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구서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일명 산악회)의 총책이었으며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입각한 ‘남한 사회주의 혁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조직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의원은 ‘새누리-민주 양당체제’를 “미국 제국주의의 남측 분할통치 전략”이라고 평가했고, 지난해 당내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태’에 대해서는 “혁명과 반혁명세력의 치열한 전쟁”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8월 경기 광주시 곤지암에서 열린 ‘진실승리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와 2016년 제20대 총선을 통해 민주당을 제치고 제1야당의 위상을 확보한 뒤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집권 시간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념 및 강령] RO의 3대 강령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남한 사회의 변혁운동을 전개한다 ▲남한 사회의 자주·민주·통일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주체사상을 심화·보급·전파한다로 돼 있다. 여기서 언급되는 ‘자주·민주·통일’에 대해 공안당국은 “북한이 1970년 제5차 당대회 이후 설정한 ‘대남투쟁 3대과제’로서 ‘자주’란 미제를 축출하고 남한사회의 자주권을 확립하자는 ‘반미자주화투쟁’을 의미하고, ‘민주’란 파쇼정권인 남한정권을 타도하고 남한사회의 민주화를 이루자는 ‘반독재(파쇼) 민주화투쟁’을 의미하며, ‘통일’이란 북한식 연방제통일을 이루자는 ‘조국통일투쟁’을 의미한다”고 적시했다. 조직원의 5대 의무는 조직보위·사상학습·재정방조·분공수행·조직생활의 의무 등이다. [RO 가입절차] RO 가입 절차는 ‘학모’(학습모임), ‘이끌’(이념서클), 성원화 등 3단계로 구성돼 있다. 학모 단계는 일명 ‘주사파’ 변혁운동가를 대상으로 모임을 조직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등 이념 서적을 교재로 사상학습을 진행하는 단계다. 이끌 단계에서는 학모 단계 성원 가운데 주체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를 대상으로 ‘주체사상에 대하여’ ‘주체의 혁명적 조직관’ ‘김일성 회고록’ ‘김일성 저작집’ 등 북한 원전을 교재로 심화 사상학습을 진행한다. 성원화 단계는 이끌 단계 성원으로부터 자기소개서와 결의서, 추천서 등을 받아 상부에 보고한 뒤 가입대상자와 함께 해변이나 산악지역의 인적이 드문 민박집 등에서 수련회를 가지며 가입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이다. 이때 가입식은 ▲지휘성원의 지시에 따른 민주 열사에 대한 묵념 ▲조직의 강령, 5대 의무(조직보위·사상학습·재정방조·분공수행·조직생활) 고지 ▲결의다짐 ▲대상자 결의발표 및 지휘성원의 환영인사 ▲조직명(가명) 부여 ▲북한 혁명가요 ‘동지애의 노래’ 제창 ▲RO에서 내려준 학습자료로 주체사상 학습 실시 순으로 진행된다. 결의 다짐은 지도 성원이 “우리의 수(首)는 누구인가”라고 외치면, 대상자가 “비서동지”(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칭)라고 답하는 식으로 한다. [RO조직 체계] RO는 대략 130명을 넘는 특정 다수인으로 구성된 결사체이며, 최초 조직 시점은 2003년 하반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3~5명으로 구성된 세포조직을 단계별로 배치해 총책, 상급세포책, 하급세포책, 최하급세포원으로 이어지는 지휘통솔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RO는 지난해 3월 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킨스타워에서 총책인 이 의원을 진보당 비례대표 선순위로 올려 국회의원으로 만들기 위한 ‘이석기 지지 결의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의원을 비롯한 RO 조직원들은 국회를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입각한 사회주의혁명 투쟁의 교두보로 인식하는 한편, “한국사회변혁운동, 즉 북한 대남혁명론에 입각한 ‘사회주의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진보당을 건설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 의원은 조직원들에게 “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해 정치적 합법공간을 확보한 것은 ‘혁명의 진출’이며, RO 조직원의 국회의원 당선은 ‘교두보 확보’”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공안당국은 “실제로 RO 조직원이었던 두 사람이 비례대표 및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돼 지난해 5월 30일부터 국회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5대 보안수칙 준수] 이 의원을 비롯한 RO 조직원은 ‘사회주의 혁명투쟁’ 전개 과정에서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통신·컴퓨터·문서·USB·외부활동 보안 등 5대 보안수칙을 철저히 준수할 것을 강조했다. 조직과 관련된 사항은 반드시 공중전화기나 비폰(비밀 휴대전화기)을 사용할 것을 주문했고, 모임 시 대화내용 녹음·도청 방지를 위해 반드시 노트북 전원을 끌 것을 당부했다. 개인 이메일로 회합 장소나 조직과 관련된 자료를 송수신하지 말 것과 노트북·PC 하드디스크는 6개월 단위로 교체할 것도 지시했다. ‘사용한 종이는 반드시 소각하라‘ ‘모든 문서는 암호화된 USB로만 관리하라’ ‘삭제한 흔적은 SNOOP 프로그램으로 다시 제거해 분실 또는 수사기관 검거에 철저히 대비하라’ 등도 강조 했다. 수사기관의 미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꼬리따기’도 지시했다. 꼬리따기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거나 버스로 이동할 때 목적지 전 정류장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 RO 조직원들은 ▲회합 시 실명을 사용하지 않고 상부에서 부여받은 조직명을 사용하라 ▲자료 다운 시 PC방을 이용하되, 같은 장소나 자리를 이용하지 말라 등 준수사항을 지켰다. 특히 구속된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은 압수수색 등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USB를 부숴서 삼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 밖에 위급 상황에 대비해 ▲경기도 인근에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해 두었다가 유사시 활용할 것 ▲항상 10만원 정도의 현금을 소지할 것 ▲잠수(도피) 탄 후 재접촉 시 서로 암구호를 교환해 안전을 확인한 후 접촉할 것 등의 수칙도 있다. 이 의원도 지난 5월 12일 비밀회합에서 “보위에는 바늘 틈 하나도 흥정할 겨를이 없는 거야”라면서 “개인이 책임진다”며 보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택 압수물]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7일 수원지법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의 주소지 및 거소지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그 결과 주소지에서 도청탐지기 1개, 북한대남혁명론에 따른 조직생활을 강조하는 내용의 강의안 2개, 지도핵심육성방안 등에 대해 기술한 자필메모 수첩 2권, 북한의 노동신문에 실린 김용순 비서의 글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통일의 문을 열자’ 등 이적 표현물 10여점, 관련 오디오 테이프 10개, CD·DVD 17장, 플로피디스크 7개 등을 발견했다. 거소지에서는 ‘지자체 들어가 공세적 역량 배치’ 등의 내용이 기재된 자필 메모 1점, 이 의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의 편지 57통, USB메모리 2개, 노트북 1대, 검은색 비닐봉지 및 서재 옷장의 등산가방 안에서 5만원권 현금 9100만원 등을 압수했다. [제보자 역할] 공안당국은 이번 사건을 ‘북한의 전쟁도발 위협 상황을 빌미로 현 우리나라 체제 전복을 협의한 내란 음모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RO 핵심 조직원의 제보에 의해 최초 단서를 포착했다”는 점을 밝히며 “범죄사실이 중대하고 그 소명도 충분하기 때문에 이 의원에 대한 구속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제보자는 2004년 RO에 가입해 현재까지 활동해 온 구성원이며,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북한의 호전적 실체를 깨닫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RO의 맹목적 북한 추종 행태에 실망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각오로 수사기관에 제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자는 참고인 조사과정에서 RO의 강령, 목표, 조직원 의무, 보위수칙, 조직원 가입절차, 주체사상 교육과정, 총화사업, 조직원들의 활동에 대한 구체적이고 일관된 내용을 진술했고, 사상학습 자료가 든 USB 메모리를 제출했다. 이어 공안당국은 수원지법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증거물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제보자의 진술이 사실과 부합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공안당국은 또 “이 의원이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높고 도주의 우려가 있으며, 주요 참고인에 대해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면서 “이 의원의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공안당국은 현재 RO가 북한과의 연계성이 농후하다고 보고 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위안부 증언’ 이용녀 할머니 끝내 日사과 못받고…

    ‘위안부 증언’ 이용녀 할머니 끝내 日사과 못받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녀 할머니가 광복절을 나흘 앞둔 11일 별세했다. 87세. 경기 광주시에 위치한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인 ‘나눔의 집’은 이 할머니가 오전 2시 30분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할머니께서 일본의 공식 사과를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57명으로 줄었다. 이 할머니는 생전 일본군의 비인도적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행동에 앞장섰다.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에 참석한 이 할머니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실상을 증언했다. 당시 이 할머니의 증언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법정에서 승소했지만 민간 법정인 탓에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재판 결과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 할머니는 또 지난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 9명과 함께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말뚝을 세운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를 서울 중앙지검에 고소하기도 했다. 1926년 경기 여주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6살이 되던 1942년 미얀마 양곤으로 끌려가 4년간 일본군 위안부로 갖은 고초를 겪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수용소를 거쳐 부산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척추관 협착증 등으로 힘겹게 생활한 이 할머니는 1992년부터 나눔의 집에서 생활해 왔다. 그러다가 여생을 자식과 보내고 싶다는 뜻에 따라 지난해 말 퇴소했다. 지병이 악화돼 지난달 병원에 입원한 이 할머니는 입원 열흘 만에 숨을 거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오는 14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정기 수요집회에서 이 할머니를 기리는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정대협 관계자는 “수요집회에서 묵념을 통해 할머니의 뜻을 기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치권도 일본 정부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와 관련해 단 한번도 사죄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반역사적인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일본은 이제라도 위안부 문제에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현정은 현대 회장 “김정은 제1비서 구두친서 전달받아”

    현정은 현대 회장 “김정은 제1비서 구두친서 전달받아”

    고(故) 정몽헌 전 회장 10주기 추모식을 위해 3일 오전 방북했다가 돌아온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은 추모식에 참석한 원동연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부터 정몽헌 전 회장을 추모하는 내용의 김정은 제1비서의 구두 친서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현정은 회장은 “김정은 제1비서의 구두 친서는 ‘정몽헌 전 회장의 명복을 빌며 아울러 현정은 회장을 비롯한 정몽헌 회장의 가족과 현대그룹의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현정은 회장은 또 “이날 행사에는 북측의 아태평화위에서 약 20여명이 참석해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각각 추모사를 낭독하고 헌화, 묵념하는 순서로 진행했다”고 설명했였다. 이어 “북측은 아태평화위 명의의 조화를 보내줬다”고 덧붙였다. 현정은 회장은 “관광시설을 둘러본 결과 외관상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재개시 정밀 진단과 개보수가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전 60주년’ 참전국 대표단 유엔공원 참배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12개 참전국 대표단과 참전 용사 등 500여명이 28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이날 행사는 국가보훈처가 주관했으며 존 키 뉴질랜드 총리와 줄리아노 판티노 캐나다 보훈부 장관을 비롯해 9개국의 장관급 인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허남식 부산시장, 참전 용사 58명 등이 참석해 헌화하고 묵념했다. 합동 참배 행사 후에는 국가별 참배 행사가 이어졌고, 참전 용사들은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간 전우들의 묘비를 쓰다듬으며 고인의 뜻을 기렸다. 미국의 6·25 참전 기념비 헌정식도 엄숙하게 거행됐다. 미국전쟁기념비위원회(ABMC)가 제작한 이 기념비는 미국이 1, 2차 세계대전 이외의 전쟁과 관련해 처음으로 해외에 건립한 참전 기념비다. 가로 1.2m, 세로 2.4m가량인 이 기념비는 미국 버몬트주에서 채석한 진회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전쟁의 영예를 상징하는 별 모양 3개와 ‘영예, 자유, 평화’라는 세 단어가 새겨졌다. 바버라 리 디에몬슈타인슈피보겔 ABMC 위원장은 “이 기념비는 60년간 이어 온 한·미 양국의 군사 동맹은 물론 경제, 사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리한나,마틴 소년 살해 무죄 “엿먹어!”

    세계적 팝스타 리한나가 최근 미국에서 논란이 뜨거운 17세 흑인 소년 트래번 마틴 살해범 무죄 판결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리한나는 최근 사진 공유 SNS인 인스타그램에 마틴 살해범 조지 짐머만에 대한 무죄 판결을 반대하는 내용의 사진과 의견을 올렸다. 25살의 미녀 팝스타인 리한나는 짐머만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온 다음날 아침 다음과 같은 원색적인 반대 목소리를 냈다. “한 소년이 이유 없이 총에 맞아 쓰러졌어. 그런데 왜 어디에서도 살인이라고 하지 않는 거야? 내 어린 동생도 17세야. 이런 엉터리 시스템은 엿먹어야돼” 이번 사건에 대해 목소리를 낸 유명인사가 리한나 뿐만은 아니다. 팝스타 비욘세는 지난 토요일 저녁 미국 내쉬빌 공연에서 마틴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 코러스로 “너를 한 가족으로서 항상 사랑한다”는 내용을 노래했다. 유명 래퍼 영 지지도 이번 사건과 판결에 대해 ‘정말 차디찬 세상이야’란 트랙을 녹음함으로써 이번 판결을 성토했다. 사진=게티이미지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제2연평해전’ 윤영하 선배님 잊지 않겠습니다

    ‘제2연평해전’ 윤영하 선배님 잊지 않겠습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추모식이 28일 윤 소령의 모교인 인천 송도고등학교에서 열렸다. 추모식에는 윤 소령의 부친 윤두호씨, 윤영하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상은(새누리당 인천 중동구·옹진군) 국회의원, 정인양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사령관, 조진형(전 국회의원) 총동문회 이사 등 내외빈과 재학생 1500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교정에 건립된 윤 소령의 흉상 앞에 헌화하고 고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묵념했다. 윤 소령의 고3 담임이었던 이정현 교사는 추모사에서 “옳은 일에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으면서도 친구들과 땀흘려 운동한 뒤 환하게 웃던 윤 소령의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며 “조국을 위해 헌신한 윤 소령의 충혼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도고는 추모식 후 영화 ‘NLL연평해전’ 제작비 지원을 위해 모금한 성금 6000여만원을 제작진에 전달했다. 오성삼 송도고 교장은 “교정 한쪽에 동상으로 서 있는 선배를 영화로나마 부활되기를 염원하는 후배 학생들의 모습이 대견하다”고 밝혔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6·25전쟁 63주년… 참전 21개국 청소년의 ‘추모’

    6·25전쟁 63주년… 참전 21개국 청소년의 ‘추모’

    6·25전쟁 63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2013년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에 참가한 유엔참전 21개국의 청소년과 참석자들이 전사자 묘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美 혼다의원 “日, 위안부 문제 빨리 해결하라”

    美 혼다의원 “日, 위안부 문제 빨리 해결하라”

    미국의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연방 하원의원이 뉴저지주에 설치된 위안부 기림비를 방문,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뉴저지 지역 언론 노스저지닷컴 등에 따르면 혼다 의원은 지난 7일(현지시간) 빌 파스크렐(민주·뉴저지) 하원의원 등과 함께 뉴저지주의 팰리세이즈파크(팰팍)의 위안부 기림비를 방문해 헌화와 묵념을 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가 과거에 분명히 있었지만 이제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성노예 제도를 시행했다는 것을 하루빨리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본계 3세인 혼다 의원은 2007년 7월 미국 연방의회 하원에서 사상 처음으로 위안부 결의안을 발의해 통과시킨 인물로, 혼다 의원이 위안부 기림비를 직접 찾은 것은 처음이다. 혼다 의원은 “내가 위안부 문제를 각별히 여기는 것은 미래 세대가 학교에서 역사를 정확히 배워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1950 ~ 1970년대 현충일 동영상 등 공개

    6·25 전쟁을 마친 뒤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56년, 그동안 산발적으로 지내오던 국군 장병들의 제사를 정부가 공식으로 날을 정해 추모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했다가 1975년 정식 명칭을 ‘현충일’로 개정했다.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5일 제1회 현충일기념식 모습을 담은 대한뉴스 등 현충일 관련 동영상 4건, 사진 6건 등 기록물을 나라기록 포털(contents.archives.go.kr)에 공개했다. 1956년 6월 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제1회 현충일 기념식에는 1956년 5월 31일까지 전몰한 영령들의 추도식이 엄숙히 거행됐다. 함태영 당시 부통령과 유가족, 시민 등 2만여명이 참석했으며 소복을 입은 유가족 대표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첫해 동영상뿐 아니라 1965년 제10회 추도식에서 오열하는 유족의 모습이나, 1975년 제20회 현충일에 주택가 골목에서 묵념하고 있는 엄마와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요즘의 현충일 풍경과 사뭇 달라 보인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용사를 기리는 관련 자료를 보고 나라사랑의 마음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현충일 면접 “잠 안 자고 욕설 잘 견디는 사람” 방송사 채용공고 논란

    현충일 면접 “잠 안 자고 욕설 잘 견디는 사람” 방송사 채용공고 논란

    최근 한 방송사에서 “욕 먹으면서 잠을 안자고서라도 열정적으로 일할 분을 모집한다”는 내용의 채용공고를 내 논란을 빚고 있다.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한 네티즌 ‘사인펜(yki****)’는 지난 4일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채용공고를 보게 돼 글을 올리게 됐다”면서 글을 남겼다. 이 네티즌에 따르면 지난 3일 언론사 취업준비 관련 카페에 올라온 한 지상파 방송사 예능프로그램 관계자는 “끈기있는 프리랜서 조연출을 찾는다”며 글을 올렸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일주일에 3~4일은 밤을 새는 업무에 매일매일 고된 노동이 이어지므로 무엇보다 체력이 좋고 각종 욕설과 쿠사리(’핀잔’을 뜻하는 일본어)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 성격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급여나 업무환경 등 구체적인 처우에 대해서는 “합격자에게 개별통보해 드리겠다”며 자세한 언급을 삼갔다. 이 관계자는 채용공고 마지막 문장에서도 “욕 먹으며 잠을 안 자고서라도 제대로 편집해내는 열정있는 분만 지원해주세요”라고 거듭 강조했다. 채용공고가 올라온 뒤 일부 카페 회원들이 부적절한 내용을 문제삼자 이 관계자는 다시 “일주일도 못 버티고 힘들다고 도망가는 지원자들 때문에 피차 시간낭비할 바에야…(글을 그대로 놔둬서 이력서를 받겠다)”면서 “교양없고 천박한 환경에서도 하고 싶은 일, 꿈을 위해서 꾹 참고 해내실 분만 연락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카페의 채용공고는 삭제된 상태다. 아고라에 글을 올린 네티즌은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상사로부터 호된 충고와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각종 욕설과 핀잔을 하겠다고 당당히 엄포를 놓는 채용공고가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채용공고를 보면서도 순간 지원서를 넣을까 말까 했던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며 취업 준비생들의 씁쓸한 현실을 그대로 전했다. 글이 올라온지 하루만에 네티즌 4만 6900여명이 이 글을 읽었고 200여명의 네티즌들이 격앙된 반응을 댓글로 달았다. 네티즌들은 “말이 조연출이지 노예를 뽑겠다는 것 아니냐”, “솔직하긴 한데 웃프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면접일이 현충일이라 더욱 씁쓸하다는 반응이다. 네티즌들은 “면접일이 현충일인 것부터 밤낮없이 부려먹겠다는 것인가”, “현충일에 면접? 작가들을 위해 묵념” 등의 조소 어린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호국영령 기리는 고사리손

    호국영령 기리는 고사리손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한 사람 한 송이 헌화운동’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23일 무궁화를 들고 묵념하고 있다. 동작구는 2005년부터 매년 현충일에 앞서 호국영령을 기리는 주민 참여 운동을 해 오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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