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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1) 남산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1) 남산

    남산 하면 벼슬길 진출을 위해 ‘열공’하던 딸깍발이 선비와 그들이 살던 낭만적인 남촌 풍경이 떠오른다. 조선 신궁과 통감부, 헌병사령부, 일본인 거주지 같은 좋지 않은 상념도 꽈리를 튼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라는 애국가 구절이나 한때 ‘남산’으로 불리던 옛 중앙정보부의 추억도 있다. 케이블카와 도서관, 어린이회관, 서울타워도 빠지지 않는다. 한강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기에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가 겹쳐 떠오르는 것이리라. 남산은 사대문 안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산이기에 익숙하고 친근하다. 풍수지리학상 342m 높이의 백악(북악)이 조선 한양의 주산(主山)이었다면 265m의 남산은 안산(案山)이었다. 쉽게 풀면 나라(임금) 앞에 놓인 밥상이나 책상 같은 개념의 산이다. 팔도에서 올리는 봉수대의 마지막 종착점이어서 남산 5개 봉수대에서 피어오르는 한 줄기 연기가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평화의 산이기도 했다. 남산 위에 오르면 도성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기에 오르지 못하도록 금했다. 덕분에 산림이 우거지고 울창해 서울의 허파가 되었다. 서울의 팽창에 따라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자연지리적인 요건을 갖췄다. 우리가 남산에 대해 꽤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 아는 것도 있다. 일례로 남산 소나무이다. 산림청에 등록된 4440개의 우리나라 산 이름 중 남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31개에 이른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마을 앞산을 남산 또는 앞산이라고 불렀다. 남(南)자를 ‘남녘 남’ 자가 아닌 ‘앞 남’으로 썼다. 남산은 앞산을 한자로 쓴 것이다. 목멱(木覓)의 유래도 흥미롭다. 남산의 다른 이름은 ‘마뫼’였다. 마뫼의 ‘마’는 ‘앞’, 뫼는 산의 우리말이다. 독립지사이자 역사학자였던 안재홍에 따르면 목멱은 이두식 표기다. 목(木)은 ‘마’를, 멱(覓)은 ‘뫼’를 적었다는 얘기다. 남산=앞산=마뫼=목멱이 같은 뜻 다른 이름이다. 방방곡곡 동네 앞산의 소나무가 모두 ‘남산 위의 저 소나무’인 셈이다. 샌님이 살던 남촌에 언제부터 왜색의 기운이 드리웠을까. 남산과 일본의 악연은 뿌리 깊다. 조선 초부터 임진왜란(1592~1598) 이전까지 일본 사신이 머물던 동평관이 남산 기슭 인현동 2가에 있었다. 남산은 7년 전쟁기간 동안 왜군 진지였다. 마스다 나가모리 등 왜장이 살았다고 해서 왜장터(왜성대)라고 불렸다. 그들의 진지는 지금의 정동에까지 이르렀다. 일제는 그로부터 292년이 지난 1884년 갑신정변을 틈타 남산 기슭 녹천정 자리를 영사관자리로 제공받아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곳에 일본공사관, 통감부, 총독부가 속속 들어섰다. 지금의 예장동, 주자동, 충무로1가인 진고개(본정)일대는 일본인 거주지였다. 진고개를 거점으로 남대문, 회현동, 명동(명치정), 을지로(황금정)쪽으로 주택가와 상가가 확장됐다. 화려한 남촌 일본인 상가는 북촌 조선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오늘날 일본인 관광객이 유독 명동을 즐겨 찾는 까닭도 그들이 누렸던 옛 영화를 그리워하는 회귀본능이 아닐까. 해방 직후 본정(本町)을 일본인이 두려워하는 이순신 장군의 호를 딴 충무로(忠武路)로 바꾼 것은 이를 차단하려는 속뜻이 작용한 것 같다. 남산과 남촌은 조선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일본인촌으로 변했다. 종로 우미관을 주름잡던 김두한 패가 청계천을 경계로 진고개 일본 건달과 세력을 다투던 시절이다. 19가구 89명(1885년)에 불과하던 일본인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1986가구 7677명(1905년)으로 늘었다. 강제병 탄이후 8794가구에 3만 4468명(1910년)으로 무서운 팽창세를 보였다. 일제의 남산 잠식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 1898년 예장동에 대성궁(경성신사)이라는 작은 신사를 세우더니, 1904년에는 2만여 평을 임대해 필동에 헌병대사령부를 구축했다. 1908년에는 30만 평을 영구 무상임대, 한양공원을 조성하고 조선 신궁을 세웠다. 그들이 잠식한 땅이 현재 남산공원(87만 6000평)의 3분의 1을 넘는다. 일제가 열도를 창조했다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와 명치 천황을 모신 조선 신궁은 한반도 전역에 있는 일본 신사의 총본부였다. 신궁은 사대문 안 어디에서나 보이는 남산 꼭대기에 있었으며 시내에서 전차가 신궁 밑을 지나갈 때는 승객 전원이 일어서서 묵념을 올려야 했다. 1918년 남산중턱 13만평의 수목을 베어내고 조성에 들어가 1925년 완공됐다. 지금의 남산식물원 자리이다. 일본의 성지 조성을 위해 남산은 깔아뭉개졌다. 남산 중턱 힐튼호텔에서부터 384개의 계단을 만들어 올라가도록 꾸몄다. 남대문에서 조선 신궁에 이르는 참배로를 조성하려고 남대문에서 남산을 잇는 성곽을 부수고 자동찻길을 냈다. 지금의 소월로이다. 남산생태계를 파괴한 주범이다. 조선신궁과 황국신민서사탑은 광복 직후 서울시민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 파괴할 정도로 원성이 높았다. 남산의 동쪽 기슭 장충단은 명성황후시해사건(1895) 당시 일본자객에 맞서 순직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곳이다. 장충단(奬忠壇)이란 글씨는 고종의 친필이다. 일제는 창경궁, 덕수궁과 함께 이곳을 공원으로 희화화하고서 장충단 동편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터에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를 세웠다. 일본 1000엔권 지폐에 얼굴이 등장하기도 한 이토의 업적을 영구히 기념한다는 구실로 내선일체를 꾀했다. 당시 여행안내책자에서 경성 제일명소로 칭송했다. 총독부를 지을 때 헐어낸 경복궁 선원전을 부속건물로,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을 정문으로, 광화문 양옆 궁성벽 석재를 가져다가 담으로 쌓았다. 박문사 건물은 해방 후에도 동국대 기숙사로 쓰였고 흥화문은 신라호텔 정문으로 쓰이다가 1988년에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중구 필동 남산한옥마을은 악명 높은 헌병통치의 본산인 조선헌병대사령부 터였다. 조선 초 박팽년의 사저였던 한국의집은 조선총독부의 2인자 정무총감의 관저로 쓰였다. 이들은 남산 중턱 왜성대에 총독관저를 세우고 그 아래 조선헌병대사령부를 뒀다. 서울유스호스텔은 일본공사관과 통감관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통감부와 총독관저가 각각 자리했었다. 남산은 경복궁 안에 총독부와 총독관저를 지어 옮겨가기 전까지 일본 식민통치의 심장부였다. 남산꼭대기 N타워 옆 팔각정은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평범한 정자에 불과하지만, 내력은 간단치 않다. 이 자리는 조선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부터 천하의 명당이었다. 태조가 남산의 산신을 모시려고 지은 국사당(國師堂)이 있던 자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무속사당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민속신앙 터인 국사당이 일본 토착신앙의 대표인 신궁에 쫓겨 인왕산으로 강제로 옮겨진 것이다. 일제는 ‘일본 최고 신과 살아있는 신인 천황을 모시는 신궁에 식민지 나라의 굿 집이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1925년 오백년 내내 있던 자리에서 내쳐버렸다. 한국의 무속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신도(神道) 역시 원시종교에 가깝지만, 정부나 국민이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정치생명을 건 야스쿠니 신사참배 행렬에서 엿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국사당을 원상회복시키자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못 얘기를 꺼냈다간 종교전쟁이 일어날 판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보고 싶어하는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명동을 거쳐 남산타워에 오른 일본인 관광객들이 국사당 축출 사연을 듣는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광복 후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도 남산을 그냥 두지 않았다.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승만은 국사당 터에 국사당을 되돌리기는커녕 자신의 호를 딴 우남정을 만들었고, 당시 세계최대 규모의 동상을 세웠다. 조선 신궁 터를 국회의사당 신축부지로 결정해 1959년 기공식까지 가졌지만 2년 뒤 5·16 쿠데타로 백지화됐다. 3500가구 2만 5000명이 정착한 서울 최초의 판자촌인 해방촌이 남산의 북쪽 기슭 12만 6000평을 차지하도록 사실상 허가해 남산의 피폐를 가속화했다. 이런저런 압력과 로비를 통해 숭의학원, 리라학교, 동국대학교가 남산에 틈입했다.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가장 집중적으로 훼손된 곳은 장충단공원이었다. 장충체육관, 신라호텔, 자유센터, 타워호텔(반얀트리),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옛 재향군인회(동국대), 옛 중앙공무원교육원(동국대) 등이 줄줄이 들어선 것이다. 장충단공원은 21만평이 넘던 서울시내 최대 근린공원에서 9만평의 평범한 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1984년 남산공원으로 흡수합병당하는 신세가 됐다. 1994년 외인아파트 2동이 폭파 철거되는 등 남산제모습찾기운동이 시작됐고 2009년 남산르네상스를 내세운 오세훈 전 시장이 찢어진 남산녹지축 연결을 시도했지만 마무리짓지 못했다. 남산에는 지금도 동상 10기, 기념비 14개를 비롯한 각종 시설물 28개, 체육시설 269개가 촘촘하다. 그러나 남산은 이들에게 마른 품을 기꺼이 내주고 있다. 아! 남산이여…. joo@seoul.co.kr
  •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 착수] 이석기 “南 양당체제는 美 분할통치 전략…2017년 대선 승리할 것”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 착수] 이석기 “南 양당체제는 美 분할통치 전략…2017년 대선 승리할 것”

    정부가 국회로 보낸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 요구서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지하혁명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일명 산악회)의 총책이었으며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입각한 ‘남한 사회주의 혁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조직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의원은 ‘새누리-민주 양당체제’를 “미국 제국주의의 남측 분할통치 전략”이라고 평가했고, 지난해 당내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태’에 대해서는 “혁명과 반혁명세력의 치열한 전쟁”으로 규정했다. 지난해 8월 경기 광주시 곤지암에서 열린 ‘진실승리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와 2016년 제20대 총선을 통해 민주당을 제치고 제1야당의 위상을 확보한 뒤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집권 시간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념 및 강령] RO의 3대 강령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남한 사회의 변혁운동을 전개한다 ▲남한 사회의 자주·민주·통일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주체사상을 심화·보급·전파한다로 돼 있다. 여기서 언급되는 ‘자주·민주·통일’에 대해 공안당국은 “북한이 1970년 제5차 당대회 이후 설정한 ‘대남투쟁 3대과제’로서 ‘자주’란 미제를 축출하고 남한사회의 자주권을 확립하자는 ‘반미자주화투쟁’을 의미하고, ‘민주’란 파쇼정권인 남한정권을 타도하고 남한사회의 민주화를 이루자는 ‘반독재(파쇼) 민주화투쟁’을 의미하며, ‘통일’이란 북한식 연방제통일을 이루자는 ‘조국통일투쟁’을 의미한다”고 적시했다. 조직원의 5대 의무는 조직보위·사상학습·재정방조·분공수행·조직생활의 의무 등이다. [RO 가입절차] RO 가입 절차는 ‘학모’(학습모임), ‘이끌’(이념서클), 성원화 등 3단계로 구성돼 있다. 학모 단계는 일명 ‘주사파’ 변혁운동가를 대상으로 모임을 조직해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등 이념 서적을 교재로 사상학습을 진행하는 단계다. 이끌 단계에서는 학모 단계 성원 가운데 주체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를 대상으로 ‘주체사상에 대하여’ ‘주체의 혁명적 조직관’ ‘김일성 회고록’ ‘김일성 저작집’ 등 북한 원전을 교재로 심화 사상학습을 진행한다. 성원화 단계는 이끌 단계 성원으로부터 자기소개서와 결의서, 추천서 등을 받아 상부에 보고한 뒤 가입대상자와 함께 해변이나 산악지역의 인적이 드문 민박집 등에서 수련회를 가지며 가입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이다. 이때 가입식은 ▲지휘성원의 지시에 따른 민주 열사에 대한 묵념 ▲조직의 강령, 5대 의무(조직보위·사상학습·재정방조·분공수행·조직생활) 고지 ▲결의다짐 ▲대상자 결의발표 및 지휘성원의 환영인사 ▲조직명(가명) 부여 ▲북한 혁명가요 ‘동지애의 노래’ 제창 ▲RO에서 내려준 학습자료로 주체사상 학습 실시 순으로 진행된다. 결의 다짐은 지도 성원이 “우리의 수(首)는 누구인가”라고 외치면, 대상자가 “비서동지”(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칭)라고 답하는 식으로 한다. [RO조직 체계] RO는 대략 130명을 넘는 특정 다수인으로 구성된 결사체이며, 최초 조직 시점은 2003년 하반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3~5명으로 구성된 세포조직을 단계별로 배치해 총책, 상급세포책, 하급세포책, 최하급세포원으로 이어지는 지휘통솔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RO는 지난해 3월 8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킨스타워에서 총책인 이 의원을 진보당 비례대표 선순위로 올려 국회의원으로 만들기 위한 ‘이석기 지지 결의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의원을 비롯한 RO 조직원들은 국회를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입각한 사회주의혁명 투쟁의 교두보로 인식하는 한편, “한국사회변혁운동, 즉 북한 대남혁명론에 입각한 ‘사회주의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진보당을 건설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 의원은 조직원들에게 “진보당의 당권을 장악해 정치적 합법공간을 확보한 것은 ‘혁명의 진출’이며, RO 조직원의 국회의원 당선은 ‘교두보 확보’”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공안당국은 “실제로 RO 조직원이었던 두 사람이 비례대표 및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돼 지난해 5월 30일부터 국회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5대 보안수칙 준수] 이 의원을 비롯한 RO 조직원은 ‘사회주의 혁명투쟁’ 전개 과정에서 수사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통신·컴퓨터·문서·USB·외부활동 보안 등 5대 보안수칙을 철저히 준수할 것을 강조했다. 조직과 관련된 사항은 반드시 공중전화기나 비폰(비밀 휴대전화기)을 사용할 것을 주문했고, 모임 시 대화내용 녹음·도청 방지를 위해 반드시 노트북 전원을 끌 것을 당부했다. 개인 이메일로 회합 장소나 조직과 관련된 자료를 송수신하지 말 것과 노트북·PC 하드디스크는 6개월 단위로 교체할 것도 지시했다. ‘사용한 종이는 반드시 소각하라‘ ‘모든 문서는 암호화된 USB로만 관리하라’ ‘삭제한 흔적은 SNOOP 프로그램으로 다시 제거해 분실 또는 수사기관 검거에 철저히 대비하라’ 등도 강조 했다. 수사기관의 미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꼬리따기’도 지시했다. 꼬리따기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거나 버스로 이동할 때 목적지 전 정류장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 RO 조직원들은 ▲회합 시 실명을 사용하지 않고 상부에서 부여받은 조직명을 사용하라 ▲자료 다운 시 PC방을 이용하되, 같은 장소나 자리를 이용하지 말라 등 준수사항을 지켰다. 특히 구속된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은 압수수색 등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USB를 부숴서 삼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 밖에 위급 상황에 대비해 ▲경기도 인근에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해 두었다가 유사시 활용할 것 ▲항상 10만원 정도의 현금을 소지할 것 ▲잠수(도피) 탄 후 재접촉 시 서로 암구호를 교환해 안전을 확인한 후 접촉할 것 등의 수칙도 있다. 이 의원도 지난 5월 12일 비밀회합에서 “보위에는 바늘 틈 하나도 흥정할 겨를이 없는 거야”라면서 “개인이 책임진다”며 보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택 압수물]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7일 수원지법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피의자의 주소지 및 거소지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그 결과 주소지에서 도청탐지기 1개, 북한대남혁명론에 따른 조직생활을 강조하는 내용의 강의안 2개, 지도핵심육성방안 등에 대해 기술한 자필메모 수첩 2권, 북한의 노동신문에 실린 김용순 비서의 글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통일의 문을 열자’ 등 이적 표현물 10여점, 관련 오디오 테이프 10개, CD·DVD 17장, 플로피디스크 7개 등을 발견했다. 거소지에서는 ‘지자체 들어가 공세적 역량 배치’ 등의 내용이 기재된 자필 메모 1점, 이 의원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의 편지 57통, USB메모리 2개, 노트북 1대, 검은색 비닐봉지 및 서재 옷장의 등산가방 안에서 5만원권 현금 9100만원 등을 압수했다. [제보자 역할] 공안당국은 이번 사건을 ‘북한의 전쟁도발 위협 상황을 빌미로 현 우리나라 체제 전복을 협의한 내란 음모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RO 핵심 조직원의 제보에 의해 최초 단서를 포착했다”는 점을 밝히며 “범죄사실이 중대하고 그 소명도 충분하기 때문에 이 의원에 대한 구속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제보자는 2004년 RO에 가입해 현재까지 활동해 온 구성원이며,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북한의 호전적 실체를 깨닫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RO의 맹목적 북한 추종 행태에 실망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각오로 수사기관에 제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자는 참고인 조사과정에서 RO의 강령, 목표, 조직원 의무, 보위수칙, 조직원 가입절차, 주체사상 교육과정, 총화사업, 조직원들의 활동에 대한 구체적이고 일관된 내용을 진술했고, 사상학습 자료가 든 USB 메모리를 제출했다. 이어 공안당국은 수원지법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증거물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제보자의 진술이 사실과 부합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공안당국은 또 “이 의원이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높고 도주의 우려가 있으며, 주요 참고인에 대해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다”면서 “이 의원의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공안당국은 현재 RO가 북한과의 연계성이 농후하다고 보고 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위안부 증언’ 이용녀 할머니 끝내 日사과 못받고…

    ‘위안부 증언’ 이용녀 할머니 끝내 日사과 못받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녀 할머니가 광복절을 나흘 앞둔 11일 별세했다. 87세. 경기 광주시에 위치한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인 ‘나눔의 집’은 이 할머니가 오전 2시 30분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할머니께서 일본의 공식 사과를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57명으로 줄었다. 이 할머니는 생전 일본군의 비인도적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행동에 앞장섰다.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에 참석한 이 할머니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실상을 증언했다. 당시 이 할머니의 증언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법정에서 승소했지만 민간 법정인 탓에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재판 결과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 할머니는 또 지난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 9명과 함께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말뚝을 세운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를 서울 중앙지검에 고소하기도 했다. 1926년 경기 여주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16살이 되던 1942년 미얀마 양곤으로 끌려가 4년간 일본군 위안부로 갖은 고초를 겪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수용소를 거쳐 부산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척추관 협착증 등으로 힘겹게 생활한 이 할머니는 1992년부터 나눔의 집에서 생활해 왔다. 그러다가 여생을 자식과 보내고 싶다는 뜻에 따라 지난해 말 퇴소했다. 지병이 악화돼 지난달 병원에 입원한 이 할머니는 입원 열흘 만에 숨을 거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오는 14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정기 수요집회에서 이 할머니를 기리는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정대협 관계자는 “수요집회에서 묵념을 통해 할머니의 뜻을 기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치권도 일본 정부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을 주문했다. 민현주 새누리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와 관련해 단 한번도 사죄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반역사적인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일본은 이제라도 위안부 문제에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현정은 현대 회장 “김정은 제1비서 구두친서 전달받아”

    현정은 현대 회장 “김정은 제1비서 구두친서 전달받아”

    고(故) 정몽헌 전 회장 10주기 추모식을 위해 3일 오전 방북했다가 돌아온 현정은 현대그룹회장은 추모식에 참석한 원동연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부터 정몽헌 전 회장을 추모하는 내용의 김정은 제1비서의 구두 친서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현정은 회장은 “김정은 제1비서의 구두 친서는 ‘정몽헌 전 회장의 명복을 빌며 아울러 현정은 회장을 비롯한 정몽헌 회장의 가족과 현대그룹의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현정은 회장은 또 “이날 행사에는 북측의 아태평화위에서 약 20여명이 참석해 공동으로 진행했으며 각각 추모사를 낭독하고 헌화, 묵념하는 순서로 진행했다”고 설명했였다. 이어 “북측은 아태평화위 명의의 조화를 보내줬다”고 덧붙였다. 현정은 회장은 “관광시설을 둘러본 결과 외관상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재개시 정밀 진단과 개보수가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전 60주년’ 참전국 대표단 유엔공원 참배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12개 참전국 대표단과 참전 용사 등 500여명이 28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이날 행사는 국가보훈처가 주관했으며 존 키 뉴질랜드 총리와 줄리아노 판티노 캐나다 보훈부 장관을 비롯해 9개국의 장관급 인사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허남식 부산시장, 참전 용사 58명 등이 참석해 헌화하고 묵념했다. 합동 참배 행사 후에는 국가별 참배 행사가 이어졌고, 참전 용사들은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먼저 간 전우들의 묘비를 쓰다듬으며 고인의 뜻을 기렸다. 미국의 6·25 참전 기념비 헌정식도 엄숙하게 거행됐다. 미국전쟁기념비위원회(ABMC)가 제작한 이 기념비는 미국이 1, 2차 세계대전 이외의 전쟁과 관련해 처음으로 해외에 건립한 참전 기념비다. 가로 1.2m, 세로 2.4m가량인 이 기념비는 미국 버몬트주에서 채석한 진회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전쟁의 영예를 상징하는 별 모양 3개와 ‘영예, 자유, 평화’라는 세 단어가 새겨졌다. 바버라 리 디에몬슈타인슈피보겔 ABMC 위원장은 “이 기념비는 60년간 이어 온 한·미 양국의 군사 동맹은 물론 경제, 사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리한나,마틴 소년 살해 무죄 “엿먹어!”

    세계적 팝스타 리한나가 최근 미국에서 논란이 뜨거운 17세 흑인 소년 트래번 마틴 살해범 무죄 판결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리한나는 최근 사진 공유 SNS인 인스타그램에 마틴 살해범 조지 짐머만에 대한 무죄 판결을 반대하는 내용의 사진과 의견을 올렸다. 25살의 미녀 팝스타인 리한나는 짐머만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온 다음날 아침 다음과 같은 원색적인 반대 목소리를 냈다. “한 소년이 이유 없이 총에 맞아 쓰러졌어. 그런데 왜 어디에서도 살인이라고 하지 않는 거야? 내 어린 동생도 17세야. 이런 엉터리 시스템은 엿먹어야돼” 이번 사건에 대해 목소리를 낸 유명인사가 리한나 뿐만은 아니다. 팝스타 비욘세는 지난 토요일 저녁 미국 내쉬빌 공연에서 마틴을 위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 코러스로 “너를 한 가족으로서 항상 사랑한다”는 내용을 노래했다. 유명 래퍼 영 지지도 이번 사건과 판결에 대해 ‘정말 차디찬 세상이야’란 트랙을 녹음함으로써 이번 판결을 성토했다. 사진=게티이미지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제2연평해전’ 윤영하 선배님 잊지 않겠습니다

    ‘제2연평해전’ 윤영하 선배님 잊지 않겠습니다

    제2연평해전 당시 전사한 윤영하 소령의 추모식이 28일 윤 소령의 모교인 인천 송도고등학교에서 열렸다. 추모식에는 윤 소령의 부친 윤두호씨, 윤영하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상은(새누리당 인천 중동구·옹진군) 국회의원, 정인양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사령관, 조진형(전 국회의원) 총동문회 이사 등 내외빈과 재학생 1500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교정에 건립된 윤 소령의 흉상 앞에 헌화하고 고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며 묵념했다. 윤 소령의 고3 담임이었던 이정현 교사는 추모사에서 “옳은 일에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으면서도 친구들과 땀흘려 운동한 뒤 환하게 웃던 윤 소령의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며 “조국을 위해 헌신한 윤 소령의 충혼을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도고는 추모식 후 영화 ‘NLL연평해전’ 제작비 지원을 위해 모금한 성금 6000여만원을 제작진에 전달했다. 오성삼 송도고 교장은 “교정 한쪽에 동상으로 서 있는 선배를 영화로나마 부활되기를 염원하는 후배 학생들의 모습이 대견하다”고 밝혔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6·25전쟁 63주년… 참전 21개국 청소년의 ‘추모’

    6·25전쟁 63주년… 참전 21개국 청소년의 ‘추모’

    6·25전쟁 63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2013년 유엔 참전국 청소년 평화캠프’에 참가한 유엔참전 21개국의 청소년과 참석자들이 전사자 묘비 앞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美 혼다의원 “日, 위안부 문제 빨리 해결하라”

    美 혼다의원 “日, 위안부 문제 빨리 해결하라”

    미국의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연방 하원의원이 뉴저지주에 설치된 위안부 기림비를 방문,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했다. 뉴저지 지역 언론 노스저지닷컴 등에 따르면 혼다 의원은 지난 7일(현지시간) 빌 파스크렐(민주·뉴저지) 하원의원 등과 함께 뉴저지주의 팰리세이즈파크(팰팍)의 위안부 기림비를 방문해 헌화와 묵념을 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가 과거에 분명히 있었지만 이제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성노예 제도를 시행했다는 것을 하루빨리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일본계 3세인 혼다 의원은 2007년 7월 미국 연방의회 하원에서 사상 처음으로 위안부 결의안을 발의해 통과시킨 인물로, 혼다 의원이 위안부 기림비를 직접 찾은 것은 처음이다. 혼다 의원은 “내가 위안부 문제를 각별히 여기는 것은 미래 세대가 학교에서 역사를 정확히 배워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1950 ~ 1970년대 현충일 동영상 등 공개

    6·25 전쟁을 마친 뒤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56년, 그동안 산발적으로 지내오던 국군 장병들의 제사를 정부가 공식으로 날을 정해 추모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했다가 1975년 정식 명칭을 ‘현충일’로 개정했다.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5일 제1회 현충일기념식 모습을 담은 대한뉴스 등 현충일 관련 동영상 4건, 사진 6건 등 기록물을 나라기록 포털(contents.archives.go.kr)에 공개했다. 1956년 6월 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제1회 현충일 기념식에는 1956년 5월 31일까지 전몰한 영령들의 추도식이 엄숙히 거행됐다. 함태영 당시 부통령과 유가족, 시민 등 2만여명이 참석했으며 소복을 입은 유가족 대표들의 헌화가 이어졌다. 첫해 동영상뿐 아니라 1965년 제10회 추도식에서 오열하는 유족의 모습이나, 1975년 제20회 현충일에 주택가 골목에서 묵념하고 있는 엄마와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요즘의 현충일 풍경과 사뭇 달라 보인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용사를 기리는 관련 자료를 보고 나라사랑의 마음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현충일 면접 “잠 안 자고 욕설 잘 견디는 사람” 방송사 채용공고 논란

    현충일 면접 “잠 안 자고 욕설 잘 견디는 사람” 방송사 채용공고 논란

    최근 한 방송사에서 “욕 먹으면서 잠을 안자고서라도 열정적으로 일할 분을 모집한다”는 내용의 채용공고를 내 논란을 빚고 있다.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한 네티즌 ‘사인펜(yki****)’는 지난 4일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채용공고를 보게 돼 글을 올리게 됐다”면서 글을 남겼다. 이 네티즌에 따르면 지난 3일 언론사 취업준비 관련 카페에 올라온 한 지상파 방송사 예능프로그램 관계자는 “끈기있는 프리랜서 조연출을 찾는다”며 글을 올렸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일주일에 3~4일은 밤을 새는 업무에 매일매일 고된 노동이 이어지므로 무엇보다 체력이 좋고 각종 욕설과 쿠사리(’핀잔’을 뜻하는 일본어)에 스트레스를 덜 받는 성격을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급여나 업무환경 등 구체적인 처우에 대해서는 “합격자에게 개별통보해 드리겠다”며 자세한 언급을 삼갔다. 이 관계자는 채용공고 마지막 문장에서도 “욕 먹으며 잠을 안 자고서라도 제대로 편집해내는 열정있는 분만 지원해주세요”라고 거듭 강조했다. 채용공고가 올라온 뒤 일부 카페 회원들이 부적절한 내용을 문제삼자 이 관계자는 다시 “일주일도 못 버티고 힘들다고 도망가는 지원자들 때문에 피차 시간낭비할 바에야…(글을 그대로 놔둬서 이력서를 받겠다)”면서 “교양없고 천박한 환경에서도 하고 싶은 일, 꿈을 위해서 꾹 참고 해내실 분만 연락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카페의 채용공고는 삭제된 상태다. 아고라에 글을 올린 네티즌은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상사로부터 호된 충고와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각종 욕설과 핀잔을 하겠다고 당당히 엄포를 놓는 채용공고가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채용공고를 보면서도 순간 지원서를 넣을까 말까 했던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며 취업 준비생들의 씁쓸한 현실을 그대로 전했다. 글이 올라온지 하루만에 네티즌 4만 6900여명이 이 글을 읽었고 200여명의 네티즌들이 격앙된 반응을 댓글로 달았다. 네티즌들은 “말이 조연출이지 노예를 뽑겠다는 것 아니냐”, “솔직하긴 한데 웃프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면접일이 현충일이라 더욱 씁쓸하다는 반응이다. 네티즌들은 “면접일이 현충일인 것부터 밤낮없이 부려먹겠다는 것인가”, “현충일에 면접? 작가들을 위해 묵념” 등의 조소 어린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호국영령 기리는 고사리손

    호국영령 기리는 고사리손

    호국보훈의 달을 앞두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한 사람 한 송이 헌화운동’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23일 무궁화를 들고 묵념하고 있다. 동작구는 2005년부터 매년 현충일에 앞서 호국영령을 기리는 주민 참여 운동을 해 오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양키스 팬이 불렀다 보스턴의 응원가를

    17일 양키스타디움을 메운 미프로야구 뉴욕 양키스 팬들이 앙숙인 보스턴 팬들의 응원가를 한목소리로 불렀다. 제117회 보스턴마라톤 폭발물 공격이 만들어낸 색다른 풍경이다. 보스턴 팬들은 1997년부터 홈 구장인 펜웨이파크에서 8회 말 공격 전 닐 다이아몬드의 노래 ‘스위트 캐럴라인’을 합창해오고 있다. 이날 애리조나와의 홈 경기가 열린 양키스타디움 외벽에는 양키스와 보스턴 구단의 휘장과 함께 ‘우리는 하나다’라는 문구가 아로새겨졌다. 관중석 스탠드 난간에도 같은 문구가 등장했다. 전례 없는 참사에 슬퍼하고 있을 보스턴 팬들을 위로하려고 양키스 팬들이 진심을 담은 것이었다. 두 팀의 열성 팬들이 상대를 거의 원수 대하듯 해 온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 지라디 양키스 감독도 “모든 이들이 한마음으로 보스턴 시민을 지지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며 “이 곡은 보스턴 시민과 펜웨이파크에 의미 있는 곡이기 때문에 우리의 뜻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추신수(신시내티)의 홈 구장인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 시카고 컵스의 리글리필드 등에서도 같은 노래가 울려 퍼지는 등 미국 야구장 곳곳에서 추모 열기가 이어졌다. 묵념으로 경기를 시작한 밀워키는 보스턴을 배경으로 한 시트콤 ‘치어스’ 주제가를 경기 도중 들려주면서 ‘보스턴 친구들에게, 우리의 마음은 오늘 당신들과 함께 있다’는 글귀를 전광판에 띄웠다. 보스턴이 클리블랜드 원정 경기를 벌인 프로그레시브파크에서도 이 곡이 흘러나와 검은 완장을 팔에 두른 채 그라운드에 나선 보스턴 선수들을 감격시켰다. 더그아웃에 ‘보스턴 617 강하다’라고 적힌 회색 원정 유니폼을 걸어 둔 보스턴이 7-2로 이겼다. ‘617’은 보스턴 지역의 전화번호다. 존 패럴 보스턴 감독은 “클리블랜드와 다른 모든 메이저리그 구단에 감사드린다”며 “양키스타디움에서 ‘스위트 캐럴라인’이 울려 퍼진 것은 아주 감동적이고 멋진 일”이라고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보스턴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는 경기 전 “분명 일상적인 경기가 아니다. 보스턴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잠시라도 좋지 않은 기억을 잊을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이크 나폴리도 “선수들 모두가 슬퍼하고 있다. 우리의 가슴은 보스턴을 향해 있다. 야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서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보스턴은 오는 20일 펜웨이파크로 돌아가 캔자스시티, 오클랜드, 휴스턴 등과 홈 10연전을 치른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붉은 운구행렬… 남미 좌파 지도자 대거 참석

    암 투병 끝에 사망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시신이 6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 군사학교에 임시로 안치됐다. 차베스 대통령의 운구 행렬은 그가 치료를 받다 숨진 카를로스 알바레스 군 병원에서 이날 오전 출발해 약 8㎞ 떨어진 군사학교로 이동했다. 지지자 수십만명은 집권당을 상징하는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차베스 대통령의 사진을 든 채 거리로 나와 지도자의 죽음을 애도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차베스 대통령의 시신이 군사학교 강당에 안치된 후 대통령의 가족을 비롯해 측근, 남미 일부 정상들은 추모 의식을 치르며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차베스 대통령의 시신은 8일 장례식이 치러진 뒤 특정 장소로 옮겨져 영구 안치될 예정이다. 이날 호세 오르넬라 대통령 경호실장은 군사학교에서 AP통신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차베스 대통령이 암 투병으로 고통을 겪던 중 극심한 심장마비 증세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지난 2년간 차베스 대통령의 곁을 지킨 오르넬라 경호실장은 차베스 대통령이 마지막 순간에 “죽고 싶지 않다. 제발 죽지 않게 해 달라”고 말했다고 임종의 순간을 전했다. 장례식에는 남미 정상들을 포함해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차베스와 ‘형제’처럼 지낸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을 비롯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대통령은 이미 카라카스에 도착했다. 세르비아는 올리베르 안티치 보좌관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장례식에 파견하는 한편 양국의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차베스 대통령에게 ‘세르비아 공화국 명예훈장’을 추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날 회의에 앞서 사망한 차베스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1분간 묵념하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한편 차베스 대통령의 사망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정책에 큰 변화를 불러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차베스 대통령은 집권 기간 석유 생산 시설을 국유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펼쳤다. 전문가들은 석유 정책에 유연성이 생길 수는 있으나 차베스 대통령이 생전에 후계자로 지명한 니콜라스 마두로 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기존 석유 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커버스토리] 시대의 거울이자 국민 향한 다짐…10명의 대통령 초심 지켰을까

    [커버스토리] 시대의 거울이자 국민 향한 다짐…10명의 대통령 초심 지켰을까

    비장하고 숭고했다. 그 자리에 선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눈빛은 한결같이 국가와 민족,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일념으로 이글거렸다. 1948년 대한민국 초대 정부 출범 이후 모든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국민의 기대와 환호속에 국민을 위한 멸사봉공을 다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작 때의 감격은커녕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부하의 총탄에 맞고 숨졌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아니면 쓸쓸하게 해외로 망명했거나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감옥에 갔다. 이틀 뒤면 열한 번째 대통령이 취임한다. 임기를 마친 뒤 더욱 행복해하고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역대 대통령의 취임식과 취임사를 되짚어 본다. 5년 전인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장에서 ‘섬기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호언했다. 취임식 진행 역시 그에 충분히 호응했다. 무대 위는 국민대표와 각 나라 정상급 인사, 재외동포, 해외기업인 등 외빈에게 내주고 무대 아래에 새 정부 장관 후보자, 청와대 수석 내정자들의 자리를 만드는 파격을 선보였다. 지금껏 취임식 중 가장 많은 6만 405명이 참석한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대통령의 권위적 모습을 없애기 위해 취임식 엠블럼에도 봉황 문양 대신 ‘태평고’(태평소+북)를 집어넣었다. 장소는 국회의사당 앞 광장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이 늘 이렇게 성대하고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60여년 전에는 모든 게 처음이었다. 준비 일정은 숨가빴고 모습은 투박했다. 입헌민주주의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순정함과 독립국가를 만들려는 치열함이 그 원동력이었다. 1948년 7월 1일 제헌의회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고, 17일 헌법을 공포했다. 그리고 20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선출했다. 그해 7월 24일 오전 10시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 광장에서 첫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애국가 제창, 국기에 대한 경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취임사 등이 지금에야 뻔한 의례로 여겨지지만 입헌민주국가 건설의 새 역사를 쓰는 참석자들에게는 엄숙하고 가슴 벅찬 걸음걸음이었다. 해방된 대한민국의 첫 번째 대통령의 취임사는 비장했다. 그는 “내 집을 내가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으면 필경은 남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된다”면서 “과거 40년 동안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국민에게 주문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된 후 민의원, 참의원 합동회의에서 2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보선은 8월 13일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대통령 취임사’가 아닌 ‘대통령 인사’로 표기됐다. 그는 “4월혁명으로부터 정치적 자유의 유산을 물려받은 제2공화국 정부는 이제 국민이 잘먹고 잘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를 위해 “독재가 뿌렸던 반민주성과 부패독소를 조속히 제거하고, 과감한 혁신행정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이른바 ‘셀프 훈장’으로 논란이 됐던 무궁화대훈장 수여식은 이때 처음으로 이뤄졌다. 19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은 1963년 12월 17일 오후 2시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다. 취임식 참석 인원은 3373명이었다. 무궁화대훈장이 대통령과 함께 영부인에게도 수여된 것은 이때부터다. 무궁화대훈장을 목에 건 박 대통령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조국의 근대화라는 막중한 과업을 앞에 두고 있다”며 ‘민족의 대단합’을 호소했다. 이날 취임식은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숨지기까지 5대 17년에 걸친 장기집권의 서막이었다. 격동의 현대사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1980년 9월 1일 열린 11대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은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됐다. 그동안 사라졌던 대통령 찬가가 다시 불렸다. 전 대통령은 목에 무궁화대훈장을 걸고 붉은색 어깨띠(대수)까지 두르고 등장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개헌 의사를 천명했고, 1981년 2월 개헌을 한 뒤 본격적인 5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국정지표로서 ‘우리 정치풍토에 맞는 민주주의 토착화’, ‘진정한 복지국가 이룩’, ‘정의로운 사회 구현’, ‘교육혁신과 문화창달로 국민정신 개조’를 내세웠다. 특히 범국민적인 사회정화운동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이듬해 전 대통령은 개정 헌법에 의해 새로 구성된 대통령선거인단의 간접선거에 의해 다시 대통령에 선출됐고 1981년 3월 3일 12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다. 1987년 6월 항쟁은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13대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에서부터 무궁화대훈장을 목에 걸거나 어깨에 두르고 나오는 모습은 없어졌다. 예포 발사와 국립국악원의 국악이 취임식에 처음 등장했다. 장소도 체육관을 벗어나 국회의사당 앞 광장으로 옮겨졌다. 참석자들도 2만 5000명으로 확 늘어났다.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자신을 ‘저’로 칭했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 대통령은 ‘나’로 표현했고, 최규하·전두환 대통령은 ‘본인’으로 자신을 나타냈다. 6월 항쟁으로 국민이 따낸 직선제 개헌에 의해 당선된 만큼 자신을 국민 개개인의 눈높이에 맞추겠다는 표시였다. 노 대통령은 국민이 주인된 국민의 정부임을 강조하고, 고도성장의 열매가 골고루 미치는 정직하고 정의로운 분배를 실현하겠다고 역설했다. 또 이념과 체제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내용의 북방외교도 강조했다. 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환경’의 가치를 내세웠다. 재생용지로 초청장을 만들었고, 꽃가루 뿌리기와 풍선 날리기를 없앴다. 길가에서 태극기를 흔들어대는 시민동원도 중단했다. 취임식 참가자는 3만 8000명으로 늘었다. 김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민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그 전까지 군 출신 대통령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는 핵심 국정 지표로 ‘신한국 창조’를 내걸고 이를 위해 부정부패 척결, 경제 회복, 국가 기강 정립을 내세웠다. 1998년 2월 25일 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서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꽃동네 주민, 독도경비대원, 마라도 주민, 대학생, 전방 소대장, 청년 노동자 등 국민 대표들이 처음으로 취임식 무대로 올라갔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속에 취임한 김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새 정부는 ‘참된 국민의 정부’임을 선포하고, 대한민국이 모든 분야에서 좌절과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 뒤 총체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특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전의 양면이고 수레의 양바퀴와 같다면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병행하겠다고 약속했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일주일 뒤에 열려 경건한 분위기였다. 윤도현밴드의 공연을 취소한 것이 그 상징이다. 취임식에서는 운동권가요와 일반가요, 클래식, 국악 등을 적절히 조화시켰다. 4만 8500명이 참석했는데 이 중 절반 가까이인 2만여명이 일반 국민이었다. 각계각층 국민대표 50명을 국회의원, 외빈 등과 나란히 앉을 수 있게 했다. 참여의 가치를 앞세운 노 대통령은 지방분권, 동북아시대의 중심국가로의 도약, 한반도의 평화 증진을 주요 지표로 내세웠다. 임창용 전문기자 sdragon@seoul.co.kr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대구지하철 참사 10주기 ‘끝나지 않은 가슴앓이’

    대구지하철 참사 10주기 ‘끝나지 않은 가슴앓이’

    대구지하철참사 10주기 추모행사가 18일 대구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2·18 대구지하철참사 10주기 추모위원회와 대구지하철화재참사 비상대책위원회는 대구문화예술회관과 경북대 글로벌프라자에서 각각 10주기 추모식을 거행했다. 대구문예회관 비슬홀에서는 10년 전 지하철 화재사고 발생 시각인 9시 53분에 맞춰 1분간 묵념과 함께 추모식이 시작됐다. 이어 퍼포먼서의 넋 모시기 몸짓이 펼쳐졌고 종교의식, 추도사 낭독, 추모의 노래, 넋 보내기 퍼포먼스, 분향·헌화 순으로 추모식이 진행됐다. 참석한 유족들은 참사 10주기가 어느 때보다도 슬픔에 사무치는 듯 추모식 내내 눈물을 쏟아내 분위기는 숙연했다. 황명애씨는 사고로 잃은 딸을 기리며 “가슴앓이 10년 동안 엄마는 우리 고운 딸의 멈춰버린 시간들을 가슴 속에서 키워 왔었지”라며 추도사를 낭독하고 “추모사업을 완성하겠다”고 다짐했다. 황씨가 추도사를 읽는 동안 유족들의 흐느낌이 거세졌다. 참석자들은 추모식을 마친 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로 자리를 옮겨 추모 조형물 앞에서 참배했다. 같은 시각 경북대 글로벌프라자 경하홀에서는 대구지하철화재참사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하는 추모식이 유족 등 15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대구시도 참사 발생 10주기를 맞아 간소하게 추모 행사를 치렀다. 대구시청과 산하 211개 기관에서는 조기가 게양됐고 9시 53분에 맞춰 묵념이 진행됐으며, 직원들은 희생자들을 추념하는 검은 리본을 달았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유족 단체들이 주최하는 추모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이날 오전 대구도시철도 중앙로역 지하 1층에 마련된 추모대를 찾아 헌화했다. 2·18 대구지하철참사 10주기 추모위원회는 지난 15일부터 시작된 추모주간을 19일까지 운영하기로 하고 심포지엄, 사진전 등 다양한 추모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다른 장애 같은 열정의 8일… 안녕, 참 뜨거웠던 겨울올림픽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 다른 장애 같은 열정의 8일… 안녕, 참 뜨거웠던 겨울올림픽

    여드레 동안 설원과 빙판을 뜨겁게 달궜던 2013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이 화려한 막을 내렸다. ‘함께하는 도전’(Together We Can)이란 슬로건 아래 펼쳐진 대회는 지적장애인 선수와 가족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함께 즐기는 축제로 발돋움했고, 지적장애인의 권익 향상을 촉구하는 ‘평창 선언문’이 발표되는 등 인권 올림픽으로 주목받았다. 5일 오후 7시 평창 용평돔에서 106개국 선수단과 내빈 등 3003명이 참석한 가운데 폐회식이 열렸다. 스페셜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파키스탄 선수단은 ‘대한민국 감사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입장해 눈길을 끌었다. 식에 앞서 선수단과 관중은 대회 도중 사망한 플로어하키 선수 개리스 데렉 코윈을 기리는 묵념을 했다.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섬나라 맨섬 대표팀의 코윈은 지난달 30일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지적장애인 8명으로 구성된 소리샘벨콰이어팀의 핸드벨 연주로 시작된 식에서 나경원 조직위원장과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각각 폐회사와 환송사를 낭독했다. 이어 티머시 슈라이버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 위원장이 평창 대회의 폐막을 세계에 알렸다. 지적장애인 기타리스트 김지희씨가 잔잔한 선율을 연주하는 사이 여드레 동안 평창을 밝힌 성화가 천천히 꺼졌다. 나 위원장과 슈라이버 위원장은 201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차기 대회를 개최하는 미국 조직위에 SOI기를 전달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와 ‘피겨 전설’ 미셸 콴은 머라이어 캐리의 발라드곡 ‘히어로’에 맞춰 합동 공연으로 평창의 밤을 수놓았다. 이 둘과 함께 지적장애인 피겨스케이팅 선수 18명이 빙판을 활주했다. 김연아와 콴은 배경음악이 갑자기 ‘강남 스타일’로 바뀌자 얼음판 위에서 ‘말춤’을 추기도 했다. 김연아는 폐회식 직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스페셜올림픽에서 뛴 모든 선수가 영웅”이라며 “이들에게 우리의 공연을 선물하고 싶다”고 밝혔다. 평창 대회는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지적장애인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파했다는 평가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 아웅산 수치 여사 등 각국 지도자 300여명은 지난달 30일 글로벌개발서밋을 열고 ‘경청을 통한 변화’란 제목의 ‘평창 선언문’을 채택했다. 나 위원장은 “나부터의 실천, 작은 실천, 작은 행동이 중요하다”며 “우리 옆집 지적장애인에게 말을 걸어 보고 그들과 친해지고 그들을 기다리면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평창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朴 “미래·변화 위해 힘 모으자”

    朴 “미래·변화 위해 힘 모으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신년 화두로 새로운 미래와 변화를 제시했고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등 당직자들은 정치쇄신과 겸손한 자세를 강조했다. 박 당선인은 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당 신년인사회에 참석, “이제 지나간 과거의 모든 것들은 털어버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창출해 나가기를 염원한다”면서 “새로운 미래와 새로운 변화를 위해 다 같이 힘을 모아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서 박 당선인은 새해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국민 열망에 부응한 새 희망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오전 8시 30분쯤 현충원에 도착한 그는 현충탑에 헌화·분향한 뒤 묵념을 하며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의 넋을 기린 데 이어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이날 당 신년인사회에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 정재철 상임고문, 안응모 국책자문위원장, 황 대표, 한광옥 대통령직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 서병수 사무총장, 권영세 전 대선 중앙선대위 종합상황실장 등 주요 당직자와 당료 100여명이 참석했다. 황 대표는 당이 해야 할 과제로 정치쇄신을 꼽으면서 “꾸준히 쇄신하는 저희 자세가 국민이 바라고 기다리는 모습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몽준 전 대표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옆에 서 있으니 가슴이 뿌듯하다. 새누리당이 당선인을 중심으로 단합해 겸손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가 역사에 남는 위대한 정부가 될 수 있도록 각오를 다지는 한 해가 되자”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인수위 추가 인선을 위해 오후에는 다른 외부 일정을 잡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뉴욕 한복판에 ‘위안부 길’ 만든다

    뉴욕 한복판에 ‘위안부 길’ 만든다

    미국 뉴욕한인회가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뉴욕 내 ‘위안부 길’ 조성을 추진한다. 한창연(58) 뉴욕한인회장은 23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아 “내년이면 뉴욕에 ‘위안부 길’이 들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브루클린 ‘플러싱 156번가’의 이름을 바꾸기 위해 최근 명칭 변경안을 뉴욕시의회에 제출했다는 것이 한 회장의 설명이다. 내년 2월쯤 변경안이 통과되면 뉴욕 한복판에서 500여m 길이의 ‘위안부 길’을 볼 수 있게 된다. 뉴욕한인회와 함께 방한한 뉴저지 한인회 관계자들도 이날 위안부 피해자 납골함 앞에서 묵념한 뒤 15분간 피해자 활동영상을 보고 할머니들을 만났다. 피해 할머니 5명과 나란히 앉은 이현택 뉴저지한인회장은 “역사의 진실은 언제든지 밝혀진다. 미주 교포가 이 점을 되새기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뉴욕과 뉴저지 한인회는 또 오는 11월과 내년 2월쯤 두 도시에 위안부 기림비를 추가 건립할 계획이다. 지난 5월 일본 정부가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팰팍)에 설치된 위안부 기림비 철거를 요구하자 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한 회장은 “일본 의원이 팰팍의 기림비를 헐면 그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말을 듣고 한인회가 나서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면서 “기념비를 헌다고 해서 역사가 사라지진 않는다.”고 주장했다. 새로 지어질 기림비에는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중립적 표현 대신 그동안 일본정부가 사용을 꺼려 왔던 ‘성노예’(sexual slavery)라는 단어를 직접 표기하기로 했다. ‘성노예’라는 단어를 통해 일본의 약탈적 행위를 표현하겠다는 의지이다. 이야기를 다 들은 강인출(84) 할머니는 “죽기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고 있지만 일본의 변하지 않는 태도에 마음이 아팠다.”면서 “동포들이 이렇게 도와준다고 하니 이제 마음이 조금 놓인다.”고 말했다. 뉴욕·뉴저지한인회는 미국 한인들의 권리신장 운동을 펼치는 한인유권자센터(KAVC)와 함께 기림비 확대 노력과 함께 미국사회에 위안부 피해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연합뉴스·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文 “비공개 대화록 제기는 與의 색깔론”

    文 “비공개 대화록 제기는 與의 색깔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12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비공개 대화록’ 의혹 제기에 대해 ‘색깔론이자 구태 정치’라고 비판하며 초강수 대응에 나섰다. 이런 강경한 자세는 새누리당이 비공개 대화록을 고리로 보수층의 결집을 유도하고 참여정부는 물론 자신을 공격하는 상황을 막아야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또 남북정상회담 실무준비를 책임졌던 당사자로서 새누리당이 제기한 비밀 녹취록이 없는 것은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도 사실이 아니라는 확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문 후보 측 설명이다. 문 후보는 새누리당의 총공세에 격앙된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는 기자들의 관련 질문을 중간에 자른 뒤 “더 세세한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 결국 문제는 녹취록이나 비밀 대화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한 뒤 “녹취록 또는 비밀 대화록이 국가정보원과 통일부에 있다면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은 그 존재를 즉시 밝혀 주길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문 후보는 이날 국방·안보 행보로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를 방문해 부대 현황에 대해 듣고 안보공원을 참배한 뒤 천안함을 방문해 헌화, 묵념했다. 이어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한국형 구축함’ 양만춘함에 승선해 승조원들을 격려했다. 오후에는 서울 동작구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전직 국방장관 및 예비역 장성들과 ‘유능한 안보, 신뢰받는 국방’이라는 주제로 열린 국방안보 간담회에 참석했다. 문 후보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의식한 듯 “대통령이 되면 민주정부의 NLL 수호 의지를 발전적으로 계승해 서해에서 어떤 도발도 용납하지 않는 확고한 안보 능력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문 후보의 개성공단 방문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문 후보 측을 방문해 “우리 대선 후보가 북한 승인을 받아 가며 방문하는 것은 위상을 생각했을 때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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