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관회는 불교의례? 그 왜곡과 진실 찾기
“고려시대는 조선왕조에 의해 배척되고 왜곡된 상처와 흔적을 안고 있다. 그 상처가 지금까지 유산으로 남아있고, 흔적은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 상처를 기억하고 흔적을 규명해 고려시대의 진실을 밝히고 복원하는 것이 고려인의 후예라면 피할 수 없는 흥미로운 책무이다.”
●조선 성리학적 사대주의의 오류
한흥섭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이런 ‘책무’를 고대부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역사 속에 녹아든 음악사상에서 찾는 것으로 실현한다. ‘한국의 음악사상’, ‘우리 음악의 멋 풍류도’, ‘한국 고대 음악사상’ 등을 집필한 한 교수는 신작 ‘고려시대 음악사상’(소명출판 펴냄)에서 고려시대의 문화사 복원의 하나로 국가제전인 ‘팔관회’와 궁중음악 ‘아악’을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한 교수는 “고려에는 드높은 위상과 문화의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음악적 유산이 있었지만 조선왕조에 들어와 철저히 배제되고 왜곡됐으며, 이런 관점이 무비판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왜곡의 바탕에는 너무나 견고한 조선 성리학자들의 사대주의적 시각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신라에서 이어져 고려왕실의 공식행사 중 하나가 된 팔관회로, 고려 문화의 결집체이자 상징이었다. 신라시대에는 위령제적 성격이 짙은 불교의례였지만 고려시대에는 천령과 명산대천 등에 제사하고 복을 비는 토속의례의 성격이 강해진다. 팔관회의 핵심 의례인 ‘백희가무’에는 국선, 선가, 선랑, 화랑 등 춤추고 노래하며 토속신령에 기원하는 가무단이 행사를 이끈 것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또 왕의 사찰방문과 환궁 행렬이 이어지면서 축제적 성격도 띤다. 결국 팔관회는 유교적 의례와 신선이나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도교적 취향, 사찰 방문이라는 불교적 행사, 백희가무에서 드러나는 토속신에 대한 신앙 등이 총체적으로 연출된 종합행사다.
그러나 팔관회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고려 전통을 인정하지 않는 부류들과 배불정책에 따라 철폐된다. 팔관회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 없이 단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두고 팔관회가 불교의례라고 단정짓는 것에 대해 저자는 “피상적인 시각에서 비롯한 오류에 불과하다.”면서 “팔관회의 본질적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는 작업은 고려문화의 실제에 접근하기 위해 필수적이고 중대한 절차”라고 강조한다.
‘궁중음악의 총칭’으로 정의되는 아악에 대해서도 저자는 문제를 제기한다. 아악이 고려 예종 11년(1116년)에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왔다는 한국국악계의 지배학설도 시대착오에 불과하다는 것. ‘고려사’를 통해 국가제사를 진행하고 문물제도를 정비한 성종(982~997년) 때 이미 아악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성종은 원구에서 풍년을 기도하고, 태묘를 건축해 친히 제향을 치뤘다. ‘고려사’의 ‘예지’에 나온 의례절차를 보면 이들 의례에는 반드시 악()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성종 때에 이미 아악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아악은 삼국시대부터 존재
아악기의 구성을 따지면 아악이 삼국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중에서 연주되는 아악과 당악, 향악에는 각기 고유의 악기로 연주한다. 예컨대 생, 우, 훈, 편종, 편경 등 아악기는 철저히 아악에만 사용했다. ‘삼국사기’의 ‘악지’에는 고구려악을 소개하면서 생, 소, 지 등의 악기를 거론한다. 당나라 역사서인 ‘북사’에 백제의 아악기 우와 지가 소개돼 있고, 신라 눌지왕 때 만든 ‘우식악’에는 훈과 지 등의 악기 연주가 묘사돼 있다. 당시 일반인들은 악기를 쉽게 접하기 어려웠다는 점, 또 외국 문헌에는 보통 한 국가의 궁중에서 사용하는 것들이 전해진다는 점을 종합하면 이미 그 전에도 궁중음악인 아악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전에는 ‘현존하는 아악을 문묘제례악 한 곡 뿐’이라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악도 엄연히 궁중음악인데, 이를 제외하는 오류도 범한다고 지적한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많은 부침을 겪은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은 음악사상 분야도 벗어날 수 없다. “고려시대 음악문화의 실상에 대한 논의나 상상력이 더욱 풍요롭고 다양해지기를 기대한다.”는 말에서 저자가 풍부한 자료를 근거로 들어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해진다. 2만 6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