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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회 전통축제행렬 새달7일“첫 행차”/내고장 향토문화제 꽃피운다

    ◎서울신문사­금성사 공동주최/「충무공」 등 7개 행사… “10월까지 축제무드”/「한마음 한울림」주제,주민 자발참여 유도/「행렬」 일변도 탈피 뮤지컬·가무악 등 첫 선 향토문화축제 지원사업」의 첫번째 결실인 「충무공 승전 행차행렬」이 오는 4월7일 군항제가 벌어질 경남 진해에서 펼쳐진다.올해로 4회를 맞는 「향토문화축제 지원사업」은 서울신문사와 금성사가 전통축제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지역민들에게 미래 지향적인 삶의 원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 90년 시작한 것.KBS의 후원 아래 이제는 전국 각 지역 향토문화제의 대표적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올해는 「한 마음,한 울림의 신바람 축제」라는 주제로 전국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제 기간중 지역의 특색과 전통이 살아있는 7번의 축제행사를 펼치게 된다.행사 목표는 축제가 벌어지는 지역의 문화적 자부심을 불러 일으키고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향토축제를 정착시켜 지역의 사회 문화 경제적 발전에 기여할수 있는 축제를 만든다는 것.이에따라 지역의 문화예술인,향토사가 등 지역문화담당자들과의 꾸준한 협의를 통해 지역민의 자발적 참여와 흥미를 유발하는 생명력있는 축제가 되도록 할 계획이다. ○「축제예술」서 기획 올해 축제 지원사업의 특징은 그동안의 행차행렬 일변도에서 벗어나 각 향토축제의 성격에 맞게 뮤지컬과 가무악,무용극 등 다양한 형태의 축제행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행사의 기획과 연출,진행은 올해도 「축제예술」이 맡았다. 전국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 이번 행사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한다. ▷진해 군항제◁ 이충무공의 기개가 어린 충절의 고장 진해에서 펼쳐지는 군항제는 충무공호국정신선양회가 주최하는 종합 향토예술제.「충무공 승전 행차」는 벚꽃이 활짝 피어 축제 분위기가 절정에 달할 4월7일 경축식이 열리는 공설운동장에서 필승로,충무공시비,진해역을 거쳐 출발점으로 되돌아 오는 2.5㎞ 구간에서 벌어진다. 경축식은 안골포 해전에서의 승리를 알리는 파발마가 폭죽과 연막탄이 터지는 가운데 식장으로 달려 들어오며 시작된다.이어 이충무공이 취타대의 주악속에 입장하면 최초의 승전을알리는 장계가 낭송되고 승전무와 검무,사물놀이 등 축하공연이 펼쳐진다.경축식이 끝나면 사물놀이패와 충무공의 영정을 앞세운 승전 행차행렬이 출발한다.행렬에는 거북선과 판옥선이 등장해 충무공의 기개를 드높이고 시내 중심부에서는 판굿을 벌이고 축포를 쏘아 시민 및 관광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게 된다.또 잡색패를 행렬 주변에 따르게 해 관람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할 계획이다. ▷남원 춘향제◁ 춘향제는 정절의 여인 춘향의 얼을 부각시켜 한국 여인의 아름다움을 선양하기 위해 춘향문화선양회가 마련한 향토축제.이런 취지에 따라 올해는 행렬 대신 극단 대중극장의 고전 뮤지컬 「사물놀이와 서울방자」를 오는 5월28일 광한루 특설무대에서 공연한다. 대중극장은 「아가씨와 건달」「캐츠」 등으로 큰 성공을 거둔 뮤지컬 전문 극단.이번 공연은 대중극장 단원외에 「사물 광대패」와 남원상고 취타대 등 모두 52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무대가 된다. 「사물놀이와 서울방자」는 춘향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방자를 통해 춘향전이 갖고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선율과 정서를 조명하고 방자와 향단의 관계를 통해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파헤쳤다.현대 젊은이들의 즉흥적이고 일회용적인 사랑을 희극적으로 풍자했다. 「사물놀이와 서울방자」는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꽃 핀 광한루에서 횃불이 밝혀진 가운데 공연될 예정이어서 축제가 한창인 초여름 밤의 정취를 더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릉 단오제◁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는 단오제는 음력 5월5일을 전후해 20여일 동안 치러지는 강릉지방의 유서 깊은 산신성황제이다.강릉부사가 대관령 산신당으로 신을 모시러 가는 행차를 축제화한 「영신행렬」은 6월23일 시청에서 공설운동장에 이르는 2.5㎞ 구간에서 펼쳐진다. ○밤 행사로 전환 이번에는 그동안 낮에 열리던 행사를 밤으로 전환해 극적 효과 및 관중유인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행렬참가자들은 영산홍가,강릉 아리랑 등 잘 알려진 토속민요를 합창해 시민들이 후렴을 따라 부를수 있도록 할 계획.또 행렬 중간에 횃불놀이와 관노놀이,풍물놀이,취타연주 등 한바탕 잔치를 벌여 시민들의 참여를 높이기로 했다. 「영신행렬」에는 농악대와 취타대,민요팀,관노가면극회원,횃불행렬 등 모두 4백40명이 참여한다. ▷충주 우륵문화제◁ 충주는 신라의 낙성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탄금대가있는 곳.해마다 10월에 열리는 우륵문화제는 그를 기리는 축제이다.탄금대는 또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장렬히 싸우다 패퇴한 여한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임경업장군 출진행렬」은 임장군이 금나라와 싸우기 위해 출진하는 행렬을 재현한 것.안으로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밖으로는 외적을 치려던 장군의 기개와 국난극복 의지를 재조명하기 위해서 마련했다. 행사는 공설운동장에서 임장군을 모시는 청신과정을 통해 장군의 혼을 받드는 제의식으로 시작된다.이어 무술시연으로 흥을 돋우면 취타,검무,태평무 등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한 위안잔치가 펼쳐진다. 행렬은 공설운동장에서 시청,제1·제2 로터리를 거쳐 중앙공원에 이르는 3㎞ 구간에서펼쳐진다.임경업장군을 앞세운 행렬은 취타대와 영정,큰 북,전군,후군,고적대 등 모두 3백30여명으로 편성될 예정. ▷진주 개천예술제◁ 개천예술제는 경상남도가 해마다 10월에 거도적인 차원에서 벌이는 종합예술제이다.「김시민 목사행렬」은 진주성을 사수한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행사이다. 진주성 싸움은 임진왜란의 3대첩 가운데 하나.「김시민 목사행렬」은 김시민목사를 중심으로 의병장 곽재우 등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 왜적을 물리친 사실을 행렬화한 것이다. 행렬은 진주 검무 및 진주 오광대,쾌지나칭칭나네 민요와 민속연희 등 특징적인 형태를 도입해 「고수사전지계」의 투철한 정신을 살리도록 했다.편성은 전도와 취타,솟대,대고,목사 및 군사,의병,민속연희단의 순으로 모두 4백여명이 참여한다. ▷공주 백제문화제◁ 백제문화제는 백제문화권 주민들을 지역적 문화적 동질감으로 묶고 찬란했던 고도의 긍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부여와 공주에서 번갈아 가며 10월에 여는 축제.백제인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창작가무악「신명의 소리」와 무용극「윤회의 끈」을 준비하고 있다. 「신명의 소리」는 북,장고,징,꽹과리 등 타악기와 인간의 소리를 모아 우리 민족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신명을 표현코자 한 것.「윤회의 끈」은 생로병사에 얽힌 인간의 고뇌를 정중동,동중정의 무용으로 구성했다.
  • 무용가 이매방씨(이세기의 인물탐구:22)

    ◎날듯한 보법·절묘한 선… “타고난 춤꾼”/안으론 한·밖으론 허공 다스려 관객심혼 울려/「살풀이 춤」은 “미학의 극치·최고무작” 평가받아/옳지않은 일 못참고 욕설잘하는 자유분방한 성품 천명이고 만명이고 관중들의 오장을 속속들이 뒤흔들어놔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매방,타고난 춤꾼 신들린 춤꾼인 그의 괴팍한 성격은 무용계에서는 알아주는 막무가나다.비위가 틀리면 어른이고 제자고 눈에 보이는것이 없다.주춤거리거나 남의 눈치를 본적도 없다.한번 입을 떼기 시작하면 몇시간이건 쉬지않고 속사포처럼 쏘아댄다.세상의 욕이란 욕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것이 없을 것이다.그야말로 제멋대로 살아온 자유분방한 인생이다. 그러나 그가 춤추기 시작하면 온몸으로 삼라만상을 보여주고 산천초목을 움직인다.미끌어질듯 날듯말듯 비스듬히 포개고 떼는 보법이며 무겁게 들어올렸다가 날카롭게 뿌리치는 광대한 능선,긴 날개처럼 펼쳐지는 장삼자락에는 냉혹한 귀기마저 감돌아 관객은 어느순간 전률에 몸을 떤다.아름답고 눈부신 보석같은 춤만으로도 그래서 그의 허물들은 눈녹듯이 용서된다. 마치 무당이 굿을 하지않으면 신병에 걸리듯 천수북을 앞에놓고 변죽을 울리면서 연풍대로 몸을 젖혀 엎어치고 휘돌아야만 살맛이 나는 모양이다.그중에서도 그의 보념승무는 염불장단과 굿거리 사이사이에 현란하게 두들겨대는 북춤이 일품이다.인간의 고통스러운 열정과 비애를 북가락에 실어 남도특유의 흥과 멋을 종횡무진으로 엇가른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는 아현동에있는 그의 연구소에서 한쪽 귀퉁이에 휘장을 치고 연탄불에다 냄비밥을 끓여먹었다. 결백증이 심해 돈이 오가는 풍조를 체질적으로 경멸하는데다가 재능이 없어보이면 처음부터 제자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이곳저곳 떠도는 방랑벽,훌쩍 떠나고 소리없이 머물면서 긴 정착을 꺼리는 성격탓에 마뜩한 거처하나 마련하지 못했었다.그의 부대끼는 삶의 모습을 지켜보던 둘째누이가 2년전 타계하면서 유산으로 남겨준 연구소옆 허름한 아파트가 60평생에 처음가져보는 제집일 것이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현관에 들어서면 마루한가운데 왜정시대때나 볼수있었던 낡은 싱거미싱한대가 놓여있다. ○무용복 손수지어 입어 그는 옛날부터 꼼꼼한 바느질솜씨로도 유명하다.무용발표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춤이 훼손될것을 걱정하여 복색일체를 손수 지어입는다.화장과 도련 소매부리를 재단하고 재봉틀에 누비는 귀신같은 솜씨는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룰 정도다. 정종 3병의 술실력,4,5년전까지 만해도 주정·주사가 극심하여 눈에 거슬리는 일을 보면 욕설을 퍼붇거나 남의 멱살을 잡기가 일쑤였다. 60년대중반 발레하는 이인범씨와 국도극장 악극단 쇼에 나간것이 말썽이 되어 무용협회가 이들을 제명처분하려던 사건은 무용계의 잊지못할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징계사실을 사전에 안 그는 술을 잔뜩 퍼마시고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예총으로 쳐들어가 기물을 부수는 등 광란의 주란을 부린 적이 있다. 「먹고 살자는 일인데 너희들이 내게 돈을 줬느냐 쌀을 줬느냐」 게다가 누군가가 그의 춤을 ‘기방춤’으로 격하시키려하자 「궁중무를 빼고 기방춤이 아닌것이 뭐가 있느냐? 너희춤은 양춤이냐발레춤이냐? 뿌리도없는 형식춤을 어디다대고 비교하느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막상 그의 신랄한 반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오히려 한말이래 변질되지않고 원형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그의 춤』을 정명호씨(중대교수)등 여러사람이 감싸주었다. 77년 서울 YMCA강당에서 열린 그의 춤을 보고 원로언론인인 홍종인씨는 이례적으로 「속절없는 슬픔과 기쁨을 아로새겨 나가는가 하면 기쁨도 슬픔도 초월한 파탈의 경지로 솟구쳐오른 황홀」이라는 찬양의 글을 써서 세인의 관심을 모았었다. 또 여성적 미학의 극치로 칭해지는 그의 「살풀이춤」은 극도의 긴장과 절제,어둠과 밝음,괴로움과 갈등을 교차하면서 정속에 폭발을 감춘 최고의 무작으로 평가되었다. 안으로는 한을 다스리고 밖으로는 하공을 다스리는 춤.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어 슬피 끝난 일들을 차곡차곡 망각하려는 애절함을 눈물의 춤으로 승화시키자 객석에서는 조용한 흐느낌마저 파동쳤다. 「덩닥궁 덩다꿍,어깨들고 착착쿵…」 그가 제자들을 가르칠때 보면 숨쉴틈도두지 않는다.지시하고 지적한대로 선을 만들지 못하면 냅다 달려나가 욕설을 퍼붓고 북가락을 내던진다. 변덕스럽고 삐치기도 잘해서 사근사근 사람을 홀딱 반하게 하다가도 못마땅한 구석을 발견하면 살차게 뿌리치고 미련없이 돌아 앉는다.끝없는 줄담배,쪽쪽 뻗은 검지와 장지에 꼬나문 담배하며 낮으막하나 재빠른 말씨,아래로 착 내려깐 날카로운 눈매와 여성적인 걸음걸이 등등 그의 이야기는 글로 써서는 충분치 못하다.진한 사투리의 육두문자와 구성진 입타령 일본춤 스페인춤 흉내,바느질과 다림질 솜씨,무엇보다 사람의 애간장을 뒤흔들어 놓는 살풀이춤을 보고나서야만 그가 누구인지 비로소 알게된다. 지난해 어느 사석에선가 명창 김소희씨가 매방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자기예술에 혼신바쳐 『이매방동생은 남못하는 예술을 가진 사람으로써 젊어서는 정말 「개판」이었지요.누구라도 한번 걸렸다하면 밤샘 술을 마셔야하고 휘젓고 돌아다니고 욕설 잘하고,그러나 그 춤만은 현재로선 제가 아는한 전무후무한 명무라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그 춤만은 가히 당대의 명인이지요』 이른바 재주가 승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오만방자와 안하무인의 기색이 역력하지만 자신의 예술을 알리기 위해선 한자리에서도 몇십번씩 무태를 보이는 성의를 잊지 않는다. 한때는 그가 후계자를 키우지 않아 「그의 춤을 저승으로 가져가려나 보다」고 무용계가 빈정거린 적도 있으나 그는 몇몇제자를 모아 세밀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엄하게 그의 춤을 보존하고 전장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매방은 전라도 목포에서 태어났다.아버지 이경율씨는 목포 양동에서 싸전과 장작장사를 하는 집안으로 그는 3남2녀중 막내,부모와 형제들의 귀여움을 두루 받았으면서 어릴 때부터 여성취향이 짙어 경대앞에 앉아 춤을 추거나 화장하는 흉내를 즐겼다.『나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가를 세살때나 또는 일곱살때,어쨌든 그 이전에 운명적으로 예감하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집에 세들어 있던 목포 권번 기생에게 춤을 배우고 권번에서 춤을 가르치던 집안의 할아버지벌인 이대조선생,화순의 박영구선생에게 본격적으로 승무검무 법고를 배웠다. ○매란방처럼 살고자 국민학교 2학년때부터 4년간은 큰형이 사업을 벌이고 있던 만주 대연과 북경에서 살면서 중국 경극의 대가인 매란방을 만났고 평생 매란방처럼 살고 싶어 본명인 「규태」를 버리고 그때부터 매방이란 예명을 스스로 지어가졌다. 군산에서 무용연구소를 개설,간간히 서울에 올라와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역마살이 뻗친듯 광주 대구 강릉 속초 부산 동래를 전전,형제들의 간곡한 권유로 69년,42세때 부산에서 무용활동을 하는 김명자씨와 뒤늦게 결혼하여 딸(현주·20)하나를 두고 대학 무용과에 다니는 있다. 부산에 머물고 있을때 그의 춤을 귀히 여기던 무용평론가 정병호씨와 거문고 인간문화재 한갑득씨의 권유로 77년부터 서울정착을 결심하게 되었다. 말도 탈도 많았던 들끓는 듯한 지난날,한번 움직일 때마다 수천 관중을 사로잡는 그의 춤에 매료되어 54년,서울 첫 정착때는 신익희선생의 따님인 정균씨가 동대문밖 창신동에 무용연구소를 차려준 적이 있었고 삼성의 이병철회장은 특히 그의 「살풀이춤」을 사랑하여 자주 별장에 불러 춤을 추게 했다고 한다. 그는 요즘도 매일 하오4시부터 4시간씩 연습,이렇게 연습을 해두기 때문에 공연을 앞둔 총 리허설은 해본적이 없다. 해마다 명무전 명인전 전통무용의 밤과 수많은 해외고연에 참가하고 프랑스 렌느 페스티벌에 다녀와서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럽공연은 「질색」이라고 거절한다.평생을 통해 그가 하고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마지못해 체면상 해본 일은 없을 것이다.그가 무엇을 어떻게 하던,욕쟁이로 소문이 나고 성질이 괴팍하던 말던,방약무인하고 오만불손하다 하더라도 김소희씨의 말대로 「당대의 전무후무한 명인」,절묘한 선으로 이어지는 천의무봉한 춤솜씨 하나만으로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이매방일 수밖에 없을 것같다. □연보 ▲1927년 5월5일 전남 목포출생(본명(이규태) ▲1935∼39년 만주 대연에 거주.전남 무안출신 이대조선생 「승무」「북춤」사사,전남 화순출신 박영구선생 「승무」「법고」사사,전남 목포출신 이창조선생 「검무」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예능보유자(87년 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예능보유자(90년 지정) ▲1948년 명창 임방울선생 명인명창대회 「승무」(3고)첫 출연 ▲1953년 전북 군산 국악원주최 명인명창대회 「승무」(9고) ▲1953년 이매방 개인무용발표회(광주) ▲1954년 삼성여성국극단 창극출연 「승무」(7고) ▲1955년 개인무용발표회(문하생 발표 포함·광주) ▲1956년 개인무용발표회(부산) ▲1957년 개인무용발표회 「살풀이춤」(부산) ▲1959년 서울 을지로 원각사에서 개인무용발표회 ▲1962년 광복절 경축예술제 「살풀이춤」(국립극장)(도쿄∼오사카) ▲1968년 일본 대민단본부주최 광복절기념공연 ▲1970년 부산·시모노세키 자매결연기념공연(시모노세키·부산) ▲1975년 부산예총주최 「무용합동공연」(부산) ▲1977년 이매방 「보념승무」발표회(서울YWCA강당) ▲1979년 대한항공 민항 10주년기념공연(미 6개도시 교포위문) ▲1981년부터 제1회 대한민국 전통무용예술제참가(해마다) ▲1982년부터 국악대제전 한국 명무전 출연 ▲1984년 무용인생 50년 특별기념공연 「북소리Ⅰ」(세종문화회관) ▲1986년 미 한미문화센터주최 워싱턴 공연 「살풀이춤」 ▲1986년 아시안게임 축전공연 출연 ▲1987년 개인무용발표회 「북소리Ⅱ」(문예극장 대극장) ▲1987년부터 해마다 중요무형문화재공연 출연 ▲1990년 개인무용발표회 「북소리Ⅲ」(호암아트홀) ▲1988년 88서울올림픽문화예술축전 참가 ▲1989년 조선일보주최 국악대공연 출연 ▲1990년 중국·북경·연변 교민 순회공연 ▲1991년 한국·일본 무형문화재 합동공연(도쿄) ▲1992년 국악대제전 명무전 출연 예술문화대상·눌원 향토예술대상·목관문화훈장서훈 (승무) 송수남·김진홍·임이조·채향순·국수호·채상묵 (살풀이) 정명숙·유숙희·김정녀·이진주
  • 성균관/침체유고 활성화 나섰다/올 석전대제서 처음 대국민 성어발표

    ◎문묘 매일 개방·성현 박물관설립 계획/각종기구도 대폭개편,「생활유교」 탈바꿈 시도 유교가 전통문화 전승및 보존의 본산으로 거듭태어날 전망이다.이는 「박물관유교」로 불릴만큼 침체된 유교의 위상을 되찾아 「생활유교」로 탈바꿈 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이에따라 성균관을 주축으로한 유교는 사회적으로 절실히 요구되는 도덕성회복등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이같은 변화의 한 단면은 27일 열린 금년도(공기25 44년)춘기 석전대제.먼저 김경수성균관장 명의로 석전대제에 즈음한 대국민 성어가 처음으로 발표됐다.이날 김성균관장은 성어에서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재물과 자리를 탐하면 온나라 국민이 수치를 모르게 될것』이라고 말하고 『덕성을 길러 각기 주어진 자리에서 예의와 성심을 다하면 국민들이 스스로 불의를 부끄러워 하여 나라가 바르게 될수있다』고 강조했다.그러면서 『국가기강의 벼리는 윗사람의 겸손과 청빈으로부터 바로 세워지는 것』임을 상기시켰다. 성균관은 또 대성전 개방을 검토,그동안 초하루 보름 두차례만 일반에 공개하던 문묘를 매일 개방키로 했다.일반인들이 언제라도 성현들을 찾아 예를 올릴수 있게 함으로써 생활유교로 정착시킨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이와함께 과거 중국성현들을 모시던 대성전 좌우측의 동무와 서무 건물을 현재 성균관에 모신 우리민족 성현 18분에 대한 박물관으로 개조키로 하고 그 유물및 유품들을 확보키 위해 후손들과 교섭을 진행중이다. 성균관은 이어 기구도 대폭 개편,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종무에 투입함으로써 생활유교와 함께 「젊은유교」로의 변화도 모색하고 있다.이를 위해 기획실·출판부·유교교육원·사업단등의 기구를 신설 또는 재편해,4월중에 열리는 전국유림총회에서 승인을 구할 예정이다.특히 출판부는 이미 업무를 개시,석전일을 기해 「청소년의 생활예절」「우리의 생활예절」등 두편의 생활예절 서적을 펴냈으며 앞으로 문서를 통한 생활유교의 전파에 힘쓸 계획이다. 이러한 일련의 유교중흥사업 일환으로 성균관은 공자의 75대직손 공건씨(36)를 이번 석전대제에 초청했다.「공자와 경영학」 「공자와 인간학」등 저술을 통해 공자사상의 현대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공건씨의 기념강연회도 열렸다.그는 「현대산업사회와 공자학」을 주제로한 강연을 통해 『공자의 도의사상을 바탕으로한 인본주의 윤리야말로 현대산업사회에서 가장 중요시 되어야할 규범』이라며 『공자사상은 죽은 사상이 아니라 오늘날 인간생활에 반드시 적용되어야할 살아있는 사상』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날 석전대제에는 전국 향교대표및 지방유림 1천여명이 올라오는등 모두 2천5백명이 참석한 사상최대 규모로 치러져 눈길을 끌었다.석전대제는 봄 가을 두차례씩 서울 성균관 대성전과 전국 2백32개 향교에서 동시에 봉안되는 유림 최대의 행사로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그 원형이 보존돼 있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 「보성 판소리」 가족 한자리에

    ◎4대째 계승한 3형제,24일 신나라레코드홀서 공연/선친인 판소리대가 정권진선생 추모/부인도 모두 참여… 국악가문 전통과시/「보성소리 기념관」 세우기위한 간담회도 「보성소리」를 4대 째 이은 판소리 가족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오는 24일 저녁 7시 신나라레코드홀에서 공연을 가질 정회천(전북대국악과교수)3형제가 그 들.이 연주회는 「보성소리」의 제3대로 이들의 선친인 판소리 대가 월당 정권진선생을 추모하는 공연이자 그가 부른 「심청가」를 음반으로 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 공연에는 4대의 맏이인 회천을 비롯,회완(전남도립남도국악단),회석(국립국악원)과 이 들의 반려자인 안희정(전북도립국악원교수)과 최미애(전남도립남도국악단),정수년(KBS국악관현악단)이 처음으로 함께 나서 명실상부한 국악가문의 전통을 과시하게 된다. 「보성소리」란 전남 보성지방에서 태어나 정씨 문중에서 전승되어 오다 이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게 된 판소리의 한 유파를 말한다.1대는 정재근으로 전남 보성군 회천면 도강재 마을에터를 잡고 서편제 소리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박유전으로 부터 「심청가」「수궁가」「적벽가」를 계승했다.「보성소리」를 흔히 「강산제」라고 하는 것은 이동네 이름을 딴 박유전의 호 강산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2대는 정재근의 조카인 정응민이다.「보성소리」에 동편소리인 김세종제 「춘향가」를 접목시킴으로써 비약적으로 발전 시킨 사람이다.현재 이 바디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그가 보성을 떠나지 않고 한 평생 갈고 닦아 완성한 뛰어난 소리의 예술성 때문으로 50년대와 60년대초 수많은 제자를 확보함으로써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3대 계승자인 정권진은 그의 외아들이다.아버지는 아들이 소리를 하려고 하자 목에 낫을 걸고 막았으나 양복쟁이와 경찰관을 거쳐 소리꾼으로 돌아온뒤 40대 초반에 불과한 1970년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됐다. 3대까지 판소리로만 이어지던 정씨 문중의 전통은 4대에 이르러 다른 부문으로 크게 영역을 넓혔다.회천은 김명환과 함동정월로 부터 각각 고법과 최옥산류 가야금산조를 전수 받았다.회완은 대금연주자이며 막내 회석은 판소리로 가문의 전통을 잇고 있다. 이번 연주회는 정권진의 3형제와 3며느리가 모두 나서는 산조합주로 막을 연뒤 회완이 회천의 북반주로 4대 째 이어 온 「심청가」를 선보인다.연주회에 이은 2부에서는 정재근과 정응민,정권진이 소리를 이은 보성 옛집 터에 「보성소리 기념관」을 세우기 위한 간담회도 갖는다.
  • 고개떨군 「입시부정」/박성원 사회1부기자(현장)

    ◎추계예교 공판서 교수들 궁색한 변명 『대학선배인 서한범교수의 부탁을 받고 국악이론의 기본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을뿐 시험문제를 유출한 적은 없습니다』 17일 상오 서울형사지법 424호 법정에서는 93학년도 추계예술학교입시문제지 유출사건과 관련,구속기소된 이 학교 김정수교수(45)등 4명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리고 있었다. 입시부정사건 재판으로는 처음 열린 이날 공판에서 김피고인등은 긴장된듯 낮은 목소리로 검찰신문에 대답해 나갔다. ­출제를 앞둔 교수가 문제경향을 묻는 국악전공교수에게 주요 분야를 얘기한 것이 문제유출이 아니란 말인가. 『국악이론은 입시총점가운데 비중이 10%에 불과하며 10문제 가운데 3∼4문제의 힌트를 주었다해도 합격여부를 좌우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문제를 빼돌리지 않았다면 학부모로부터 전달된 2천만원은 무엇인가. 『딸의 합격을 기뻐한 학부모가 대학4년동안을 지도할 교수에게 인사조로 주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국악과의 부족한 악기구입비로 쓰려고 받아두었다』 ­(목소리를 높여)국악과는 인사하는데 2천만원이나 드나. 『…』 이어서 변호인의 반대신문이 시작됐다. ­피고인은 방송국 관현악 단장을 지냈고 77년엔 주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등 국악발전에 일생을 바친 몸으로 반신불수가 된 80대 노부모를 모시고 있습니까. 변호인의 질문에 김피고인은 대답대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학부모 이금숙피고인(46·여)도 『큰 딸이 6차례나 대입에 실패한뒤 작은 딸마저 3차례나 낙방해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것을 부모된 심정으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눈물로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재판장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피고인들은 입시에 관한 자문을 위해서였다고 주장하지만 출제를 앞두고 출제교수가 학부모측과 접촉한 사실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나』 『더욱이 서피고인은 그렇고 그런 분야의 전문가라는 소문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재판장의 지적에 힘입은듯 검사가 김피고인등에게 징역1년∼3년씩을 구형하자 피고인들은 고개를 일제히 떨구었다.
  • 국악인 양승희씨(이세기의 인물탐구:18)

    ◎죽파의 가야금산조 득음 “외길 인생”/혹독한 수련 견디며 「명인」 향한 일념 불태워/뉴욕 독주회땐 “동양의 신의 경지” 격찬받아/세계 명대학에 한국학과설치 위한 모금연주 등 활동 활발 가볍게 튕기고 힘차게 엮는 줄은 가락마다 깊은 시름,희비가 엇갈려 가슴속에 묻어둔 사연을 한없이 풀어낸다.길어도 길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옥수 어느 때는 성긴 빗방울에 오동잎 스치듯,일렁이는 파도에 하늘이 소스라치듯 성난 폭우에 수면이 갈라지고 뇌성이 번뜩인다.활짝 핀 꽃송이가 삽시에 저버리는 아픔을 안으로 삭이는 절제미,청정과 청쾌가 선명한 양승희의 가야금 산조를 듣고있노라면 문득 연전에 돌아간 죽파의 운율이 되살아난다. 명인의 길에 오르기엔 젊고 눈부신 나이,화사하고 여린 용모,그러나 무대에서의 능란하고 당당한 연주솜씨는 당대 명인을 계승한 후계자다운 풍모다. 경건함 중에도 정한의 기개가 감돌고 줄을 타는 손끝에서 처절과 애련이 여울져 스승을 잃고 홀로서기까지의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절감케 한다. 양승희는 스승인 죽파 가야금산조 하나에 그의 전인생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산조 일인자를 꿈꾸며 오로지 이 한길을 위해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초를 스스로 감내해왔다.자신이 걸어온 가시밭길을 새삼 돌이켜볼 여유는 없다.다만 그것이 지금보다 더 험난하고 가파르다해도 미동도 지체도 할 수 없는 위치다.두 아들의 어머니로서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길 이전에 「죽파 가야금 산조의 가문」을 이어갈 공인이며 예인의 사명감이 있을 뿐이다. 죽파 김란초는 가야금 산조 창시자의 한사람인 김창조(1865∼1920)의 친손녀로 그는 조부의 산조에다 단몰이(세산조시)를 창작해넣어 독자적인 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성립,국내외에 1백여명이 넘는 제자를 두고있었으나 양승희를 후계자로 삼아 바로 이 산조를 계승시키고 있었다. 양승희는 스승으로서의 죽파의 삶을 전적으로 맡아 극진히 모셨을 뿐만 아니라 죽파의 모든것,예술혼과 예술성,인간의 도리와 예의범절에 이르기까지 스승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분신과도 같은 인연이다. ○곡해석·연주력 출중또 「뛰어난 곡해석과 연주력,끈질긴 노력과 집념,죽파가야금산조를 잇는데 최선을 다하는 지속적인 마음가짐은 누구에게도 비견될 수 없는 비범등이 후계자로 지목된 이유의 하나라는 것이 국립국악원 이승렬원장의 지적이다. 스승댁에 머물면서도 새벽에 눈뜨자 연습,장고에 맞춰 다시 한번,그리고 스승과 맞춰보고 학교에 다녀와서 한바탕 연습,단 한번도 스승을 거스르거나 거역하지 않았다. 「교수」보다는 「연주가」이기를 원하는 스승의 뜻을 받들어 국악의 세계무대 진출이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황병기 나인용 백병동등 국내작곡가들의 창작곡을 받아 초연으로 기량을 확대시켜 나가기도 했다.국악인으로서는 드물게 시립국악관현악단·시향·KBS교향악단과의 대연주회 협연,1년에 수십차례의 해외연주 활동등은 죽파로 하여금 어느 자리에서나 제자를 마음껏 자랑삼을 수 있게 해주었다.특히 85년 뉴욕 카네기 리사이틀 홀에서 가진 독주회 평과 사진이 실린 워싱턴 포스트지를 보고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그때 미국의 저명 음악평론가인 마리온 자콥슨은 양승희의 가야금연주를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의 솔로를 보는 듯한 황홀감」에 비유,「55분동안의 연주는 꼼짝없이 청중을 사로잡아 마치 동양의 선의 경지를 경험케 했다」고 쓰고 있다. 89년 79세의 나이로 스승이 몸져 눕게되자 양승희는 고려병원에 모시고는 꼬박 3개월을 그의 곁을 지키면서 스승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려면 「몸이부어 손가락자국이 깊이 남는다」고 안타까워 했고 이를 지켜본 국악계의 김소희씨며 박귀희씨는 『형님은 훌륭한 제자를 두셔서 돌아가셔도 여한이 없겠다』고 부러워 했었다. 같은해 9월17일 임종하기 직전에 죽파는 양승희부부를 불러 유산정리와 함께 자신의 장례를 부탁했다.스승의 유언이 아니더라도 양승희는 당연히 상주가 되어 장례기간의 상례지휘는 물론 삼우제와 사십구제,소상제와 대상제,91년에는 고인을 위한 추모음악회를 여는등 스승과 가까웠던 국악계의 원로들을 참여시킨 무대를 마련하여 「난죽같은 사제의 정」을 변함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양승희는 본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그러나 국민학교 3학년때 정치를 하는 부친을 따라 집안이 모두 강원도 원주로 이사.피아노와 무용을 배우다가 한 미국선교사의 권유로 원주여고 2학년 되던해 가야금을 시작했다. 서울을 오가며 서울대 김정자교수에게 가야금을 사사,처음부터 가야금의 가락이 마음속에 파고들어 타고난듯 악기에 밀착되는 감이었다. 대학교 2학년인 70년 4월 역시 김정자교수의 소개로 사직동에 있는 죽파문하에 입문,그때부터 만19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스승의 엄격한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고2때 가야금 시작 유난히 청각이 예민한 스승은 한올의 음정차이도 족집게로 집어내듯 가혹하게 교육시켰다.하루 6시간에서 7시간,어느때는 10시간을 해내야만 비로소 만족하는 듯 했다.마음에 들지않으면 노안에 광채를 번뜩이며 가차없이 바로잡아 주었다. 그러는 사이 오랫동안 교제해온 부군 노만균씨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3년후인 76년에야 뒤늦게 결혼해야 했다. 「결혼하면 가야금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스승은 이를 못마땅히 여겼으나 「결혼후에도 가야금 계속은 물론 예술가의 길을 걷는데 적극 협조하겠다」는 시댁측의 다짐을 받고나서야 안심하는 빛이었다.혈육이 없던 그는 친딸같은 양승희에게 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옥가락지를 물려주면서 「부디 가야금 가문의 대를 이어줄 것」을 두번 세번 당부해마지 않았다. 그러나 7년간의 혹독한 피나는 훈련과 수련에도 득음하지 못한 제자를 몹시 나무라는 눈빛에 양승희는 결혼 1년만에,낳은지 백일도 안된 아들을 시어머니(송재임여사)에게 맡기고 다시 스승의 문하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추구했다면 그는 그때 가야금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어린 자식을 떼어놔야 하는 마음은 문자 그대로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부군은 고대와 프랑스유학후 국립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시댁은 훌륭한 가문과 가풍으로 양승희는 얼마든지 풍족한 환경에서 아마도 안락을 누릴 수도 있었다.그러나 남편과 시어머니가 죽파와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오히려 「예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박사과정까지 서둘러주었다. ○지난의 수련과정 겪어가야금은 악기를 다루거나 기교를 가르치는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말과 마음으로 전하는 구전심수만이 참다운 예도였다.그해 6개월 다음해 다시 6개월,80년에는 9개월간이나 스승곁에서 성음을 얻기위한 피나는 훈련을 쌓아야 했다. 「학이 살포시 나무가지에 내려앉듯 햇빛 찬란한 해변에 잔물결 반짝이듯 용이 승천하는 힘찬 기운과 동시에 사방이 잠잠하여 침묵하듯 연주하라」는 것이 스승의 연주 지침이었다.차차 국악계의 원로들로부터 「죽파 전성기때의 소리가 난다」는 칭찬과 「매운 손끝에 만만찮은 도전적인 개척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그럴수록 그는 혼신의 힘으로 가야금에 매달렸다.이는 판소리에서의 폭포수같은 성음을 위한 폭포독공백일수련에 못지않은 지란의 과정이었다. 죽파의 총애와 편애로 동료들의 질시와 따돌림이 따랐으나 스승은 그때마다 「높이 나는 새는 눈에 띄는 법,어중간히 날면 백발백중 돌에 맞기 쉽지만 힘찬 비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된다」고 감싸주었다.그리고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물려주기 위해 그의 나이가 다했음을 애석하게 여겼다.커다란 회오리가 지나간듯 어쨌든 지난 세월속의 시련은 그에게 인간적인 성숙을 주었다. 그는 세계 각 유명대학에 한국학과 설치를 위한 기금모금 연주등 91년에 10여차례,지난해 20여차례,올해도 연초와 2월까지 유럽지역 순회와 터키연주등 연말까지 해외연주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있다.물론 그에게 남겨진 가장 큰 과제는 죽파기념관을 세우는 일,전수생들을 위한 연주무대 마련,이에 앞서 스승의 이야기를 창극으로만들기 위해 극본과 음악을 작가와 작곡가에게 의뢰해놓고 있다.그리고 이 모든 진행은 시댁과 남편의 따뜻한 보살핌이 뒷받침이 되어주고 있다. 진양조에서 중몰이 중중몰이에서 자진몰이 휘몰이 단몰이 장단배열을 갖는 죽파산조를 한바탕 타고나면 인생살이 희로애락이 한낱 물거품이라던 스승의 말이 불현듯 새삼스럽다.원형리정,이제 사계의 순리처럼 자연스러운 산조가락의 하나하나가 그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 자신이 바로 가야금이 되어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나 마음으로 음조를 울리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산조미의 극치에 이르고 싶은 것이 오직 절실한 그의 기원이다. □연보 ▲1948년 6월 서울출생,양주창씨(92년작고)와 박정옥여사의 2남4녀중 장녀 ▲58년 집안이 원주로 이사 ▲73년 서울대 음대 국락과졸업 ▲75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86년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예술철학박사학위) ▲75년∼93년2월 서울대 국악과강사 ▲76∼80년 동덕여대·목원대·성심여사대강사,이대·중앙대출강,한국가야금연주단단장,중요무형문화재23호 김죽파류 가야금산조이수자,준인간문화재 죽파 김란초를 비롯,이창규 황병기 이재숙 김정자 사사 ▲71년 서울대 음대 정기연주회 「죽파류 가야금 산조」독주 데뷔 ▲75년 서울국립국악원주최 신인음악회협연(이성천지휘) ▲77년 가야금 독주회(국립극장소극장) ▲79년 가야금 독주회(세종문화회관)·제1회 유네스코주최 2인음악회(가야금 양승희,거문고 김선한) ▲80년 가야금 독주회(공간사랑)죽파류 55분 가야금 산조 ▲82년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지휘 발터 길레센) ▲83년 무형문화재 예술단 창단 1주년기념 특별연주 ▲85년 대한민국음악제 KBS교향악단 협연(지휘 홍연택) ▲85년 미뉴욕 카네기 리사이틀홀 독주,자유중국·일본 독주회 ▲86년 자유중국 NewAspect 초청 국제예술제 국제 고쟁 명가대회참가 ▲88년 가야금 독주회(국립국악원 국악당) ▲89년 서울시향 범세대연주회(세종문화회관) ▲89년 KBS국악대상 축하공연외 해외연주8회 ▲90년 백두산 제천대회,가야금독주회(예음홀)해외연주 7회 ▲91년 KBS 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 해외연주 10여회 ▲91년 고 죽파 김난초선생 추모음악회주관(국립영화제작소 영화제작)등 해외연주 20여회 ▲92년 미 조지워싱턴대 초청연주 ▲92년 대한민국음악제 연변 김진교수와 남북한 가야금 비교연주등 해외연주 20여회 ▲93년 우즈베크스탄 공화국대 한국학과 설립기금모금외 유럽지역 연주 황병기 작곡 「비단길」「영목」 「밤의소리」「남도소리」 관현악곡 「7현을 위한 새봄」편곡 「Amaging Grace」나인용작곡「가야금 협주곡 도약」「용」「영상」이강덕작곡 「가야금 협주곡Ⅴ」정윤주작곡 「황병기주제에 의한 가야금 콘체르토」백병동작곡 「환명」 제1회 KBS 국락대상,중요무형문화재 예술상 공로상,KBS FM 명인 CD 출반
  • 「한국의 집」 개원 12돌/「전통문화보호가족」 결성

    민족전통문화 보존및 전파의 산실로 운영돼온 「한국의 집」이 개관12주년을 맞아 전통문화확산운동의 거점으로 새롭게 태어난다.「한국의 집」 운영을 맡고 있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김치곤)은 23일 정기이사회를 열어 현재 7천만원이던 재단기금을 5억원으로 늘리기로 하고 국민속에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분위기를 대대적으로 확산시킬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키로 했다. 이 재단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있는 사업은 「전통문화보호가족」의 결성.그동안 「한국의 집」에서 실시해온 전통문화학교를 수료한 1천2백여명과 지방및 해외문화유적답사에 참가했던 5백여명등 모두 1천7백여명을 우선적으로 조직하여 전통문화의 전파자로 활용할 계획이다.이들 전통문화보호가족에게는 「한국의 집」에서 벌이는 각종행사 참가및 문화용품 구입에 일정액을 할인해주며 5대궁과 능원의 입장도 무료로 해 전통문화에의 접촉기회를 최대한 부여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3월부터 개강하는 6개월 혹은 1년 단위의 전통문화강좌·연구강좌·전문강좌·신부학교등의 수강인원을 배로 늘리기로 하고 국내문화유적답사와 해외문화유적답사 프로그램도 다양화하기로 했다.또 문화재 복제사업도 폭을 넓혀 그동안 회화복제 위주이던 것을 전통생활기구등으로도 확대,큰비용을 들이지 않고 누구나 우리 전통문화의 향기를 집안에서 접할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편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의 신축 기공을 계기로 경복궁내의 전통공예관,잠실의 서울놀이마당,필동의 「한국의 집」을 기능별로 밀접하게 연계시키는 프로그램도 구상중에 있다.또 「한국의 집」의 식당기능을 한차원 높여 우리고유의 맛을 바탕으로한 식생활문화를 보존하고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리는 연구기능도 부여할 예정이다. 지난해 4월 부임이후 문화재보호협회를 재단으로 격상시키는등 전통문화보호에 남다른 열의를 보이고 있는 김치곤이사장은 『전직 공무원,교사등 사회적으로 영향력있는 분들이 공직에서 물러나 한가해진 시간을 전통문화학습에 몰두하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고 『이분들을 중심으로 우선 1만명을 목표로 전통문화보호가족을 결성,전통문화에 대한 확산을 꽤해나간다면 우리사회에 전통문화를 바탕으로한 가치관 확립에 큰 역할을 하게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 앞으로 173일(93대전엑스포 소식)

    ◎「꿈돌이만화」 새달 10일까지 공모/행사내용 담은 전자화보집 발간계획/“내고장문화 소개” 시도관공사 완공 ○응모자격 제한없어 ◎…스포츠서울과 사회복지법인인 사랑의 세계 및 조직위등 3기관이 공동으로 「엑스포 꿈돌이 만화」를 공모한다.제 3회 서울만화전을 겸한 이번 공모에서는 응모자격 및 작품 수에 제한이 없으며 모집 부문은 과제 부문과 자유 부문이다.과제부문의 주제는 「꿈돌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미래의 세계」이며 부제는 「새로운 도약」,「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이다.자유부문의 주제는 「좋은 만화」,「사회풍자 만화」로 정해졌다. 응모 작품은 오는 3월1일부터 4월10일까지 사랑의 세계(서울 마포구 서교동 373의3,전화 332­2641·733­3333)에서 접수한다.입상작은 4월 30일 발표하고 대상 1명에게 상금 4백만원을 주는등 모두 93명을 시상한다. ○무형문화재 실연도 ◎…전국 14개 시도가 「한겨레 한마음,더불어 앞으로」라는 주제로 갖가지 행사를 벌이게 될 시도관의 공사가 지난 8일 완공됨에 따라 각 시도가 본격적인 내부장식 및 전시물 설치에 들어갔다.총면적이 1천3백72평인 시도관에서는 각 고장의 고유한 전통기술과 문화예술 및 미래에 대한 비전등이 선보일 계획이다. 전시관,영상관,문화관으로 구성됐는데 전시관에서는 자기 고장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보여주며 영상관에서는 시도관의 이미지를 형상화해서 민족공동체로서의 화합의 모습을 보여준다.문화관은 전통 예술과 현대 과학이 만나는 장으로 유형 문화재와 무형 문화재의 실연장면을 괌람객들이 직접 볼 수 있게 꾸며진다. ○음향·영상 복합수록 ◎…조직위는 엑스포의 과학기술·문화예술이 접목된 각종 행사내용을 문자·음향·사진·영상등으로 복합적으로 기록하는 전자화보집(CD­ROM)에 실을 예정이다.차세대 전자출판 매체로 각광받는 CD­ROM은 광전자책으로 불리는데 문자와 음악 뿐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움직이는 영상등 거의 모든 형태의 자료를 원형대로 수록할 수 있는 대용량의 복합저장 매체이다.1장에 원고지 1백50만장의 분량을 저장할 수 있다. 전자화보집이 만들어지면 문자로 나타난 엑스포 행사내용을 읽으면서 현장의 음향을 들을 수 있고 영상으로 행사장면까지 볼 수 있어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된다.
  • 민족문화 창달(신한국 원년:23)

    ◎종합문예관 시·도 1개이상 건립/도서관은 10만명당 1개꼴로/지방시대 향토축제도 활성화 「문화의 힘이 삶의 힘이 되고 예술의 향기가 생활의 향기가 될때 신한국의 풍요로운 삶은 보장된다」 그러기 위해서 문화예술은 언제 어디서나 모두가 부담없이 즐기고 누려야만 한다는 것이 김영삼차기정부의 생각이다. 품위있고 차원높은 문화예술을 국민 모두가 누리고 이를 통해 특히 건전한 청소년문화를 육성·발전시켜 복지사회의 「정신적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란 판단인 것이다. 문화시설의 사회교육적 기능을 내실화하고 국민 누구나 쉽게 문화예술을 접촉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김차기대통령정부는 우선 국·공립 문화기관을 문화예술 연수기관으로 지정·운영하 것을 검토하고 있다. 또 모든 문화기관에 국민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향토문화축제의 활성화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문화의 대중화는 국가재정 규모의 0·43%에 불과한 현 문화부문 예산으로는 불가능하다. 예술인의 창작여건 개선과 지방문화의 활성화,청소년문화 육성과 선진방송기반의 구축등 삶의 질을 높이는 작업은 의욕 못지않게 재정의 뒷받침을 요구한다. 따라서 김차기대통령 정부는 문화정책과 관련,먼저 예산규모를 국가재정의 1%이상 투자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문화진흥기금의 확대조성 ▲종합문화예술인회관 건립 ▲문화창조자의 대우와 권리강화 ▲주요 문화유산 복원등을 이룩,문화창조자의 창작여건을 개선하고 예술인 복지지원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우수 예능인력을 육성하기 위해선 예능특기자에 대해 종전과 같이 병역특례를 부여하고 원로예술인 복지지원금 확대와 저작권제도 개선등을 통해 문화창조의 여건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김차기대통령 정부는 문화민족의 자긍심 고양을 위해 전통문화의 전승창달로 문화의 정통성을 확립하겠지만 대중예술활동도 보호·육성하는 시책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김차기정부는 「우리것」의 전승으로 품위있는 민족문화를 복원시킨다는 것이 1차적 목표이다. 기·예능보유자와 후계자에 대한 전승지원금확대,전통 기·예능의 체계적 전수교육 및 상설공연을 위한 무형문화재 종합전수회관 건립등 인간문화재의 활동여건개선과 문화재의 원형보존을 꾀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문화의 다양성과 특히 지방화시대에 걸맞는 지역문화창달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 지역문화공간을 대폭 확충하기 위해 ▲시·도단위별로 1개이상의 종합문예회관을 건립하고 ▲인구 10만명당 1개 수준으로 공공도서관을 확충하는 한편 ▲새마을문고를 읍·면·동당 1개씩 육성한다는 것은 지방문화를 활성화하여 문화혜택을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립박물관의 건립을 확대하여 지역의 주요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전시토록 하고 신라·백제·가야·중원문화권등 고도의 문화유적을 종합정비한다는 것은 「중앙집권적인」문화가 아닌 「지방분권적인」문화의 다양성을 도모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차기정부 문화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2천년대의 주역이 될 청소년육성에 초점이 맞춰진 미래지향적인 정책이란 점이다. 청소년의 유형·성별·연령 등에 따라 1백50개의 수련 기본프로그램을 개발,인격형성에 도움을 주고 시·군·구단위까지 청소년 상담실을 확대,청소년의 고충을 해소시켜 밝은 내일의 주인공으로 키운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밖에 학교주변의 유해 환경을 정화하고 ▲폭력배로부터의 보호 ▲마약·약물의 남용방지 ▲비행예방대책 등도 강구되고 있다.
  • 대보름날엔 우리 가락을/탈춤·판소리 등 전통문화강습 인기

    ◎직장인·주부 스트레스해소에 제격/3개월과정… 수강료 3만∼5만원선/국립국악원·각종문화센터 등 개설 피자나 스파게티로 외식을 하고 팝과 랩음악을 거리낌없이 즐기는등 많은 생활문화가 외래의 것에 익숙해져가는 가운데 탈춤과 판소리,가야금,대금등 전통문화를 강습하는 「취미교실」이 「우리의 것」을 찾으려는 이들의 발길로 분주하다.친지들끼리의 모임에 참석했을때 판소리를 한가락 늘어지게 뽑을 수 있는 재주가 있어야 진짜 멋쟁이로 통한지도 오래다.흥사단·우리마당등의 사설기관과 국립국악원및 각 무형문화재 전수회,각종 문화센터등에서 개설하고 있는 전통문화 취미교실을 소개한다. ▷탈춤·한국무용◁ 「신명나게 추어보세」라는 말처럼 10∼20분만 추어도 온몸에서 땀이 흐르는 격렬한 운동이면서도 힘든줄 모르고 기분에 흠뻑 취할 수있는 대표적인 전통문화놀이인 탈춤은 격렬한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하는 직장인들에게 인기다. 특히 동작이 큰 봉산탈춤이 탈춤중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흥사단(매주 목요일하오 7시∼8시30분 12주 5만원)과 동아문화센터(매주 화요일 7시 3개월 5만원),「우리마당」(주2회 입회비포함 월3만원)에서 강습하고 있다.삼성동 무형문화재 전수회관내에 있는 「봉산탈춤보존회」에서도 매주 화·금요일 강습을 하고 있는데 하루 4회(상오 10시 11시,하오 7시 8시)실시하고 있어 자신에게 알맞는 시간을 자유롭게 택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1개월에 3만원이며 방학중 청소년을 위한 기초반도 운영하고 있다. 섬세한 동작과 고운 동선을 통해 한국적인 미를 표현하는 한국무용은 주부·직장여성등 대체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낮12∼2시의 낮 시간대에 주부들이 많이 찾는 계몽문화센터(주2회 3개월 5만원)는 초급과 중급반으로 나누어져 있다. 국립국악원은 주3회 3주 단기과정(회비 1만원)으로 한국무용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동아문화센터는 3개월과정(회비 6만원)의 살풀이춤과 승무를 주1회씩 강습하고 있다.롯데백화점문화센터에도 주1회 3개월과정의 탈춤,한국무용반(각5만·6만원)이 개설돼 있다. ▷단소·대금◁ 단소는 휴대하기 좋은데다 비교적 배우기가 쉽고 소리가 작아 조용한 분위기를 찾는 이들이 많이 배운다. 단소는 흥사단(주1회 12주 5만원)과 국립국악원(주3회 3주 단기과정 1만원,주2회 1년장기과정 18만원),우리마당(주2회 입회비포함 월3만원),동아·중앙문화센터등에서 강습하고 있다. 대금은 흥사단(주1회 12주 5만원)과 우리마당(주2회 월2만원),동아·중앙문화센터등에 강의가 개설돼있으며 배우기가 쉽지 않은 만큼 국립국악원은 장기반(1년과정)만 개설해놓고 있다.국립국악원의 장기반은 화·목요일 주2회로 주간반과 3∼5시,7∼9시의 야간반으로 나눠져있다.올해 장기반 접수는 2월9일까지다. ▷민요·판소리◁ 일단 배우기 시작하면 그 기량을 어떤 모임에서건 자랑스럽게 발휘해볼 수있는 민요와 판소리.평소 「음치」여서 대중앞에서 노래부르기를 꺼리던 사람들이 판소리를 배우고부터는 적극적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민요및 판소리를 강습하는 곳은 흥사단(주1회 12주 5만원)과 중앙문화센터,우리마당(주2회 입회비포함 월3만원),국립국악원 단기반·장기반(주3회 3주1만원·주2회 연18만원)이 있는데 흥사단은 여성반만을 별도 모집하기도 한다. ▷가야금·거문고◁ 「뚱기당 뚱당」구슬픈 소리를 내면서 선비의 여유와 멋스러움을 한껏 맛보게 해주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 거문고를 배울 수 있는 곳은 국립국악원에서 실시하는 장기반 강습외에는 드물다.가야금의 경우 국립국악원 단기·장기반(주3회 3주 1만원,주2회 연18만원),동아문화센터(주1회 3개월6만원),롯데백화점 문화센터(주1회 3개월 7만5천원)등에서 강습을 하고 있다. ▷풍물◁ 장구 북 꽹과리 징으로 구성돼 흥겨운 우리가락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물놀이를 배우려는 사람은 꽤 많다. 흥사단의 「우리문화」풍물패에서는 초급(주2회 월3만원)중급(주1회 월1만5천원)반을 운영하고 있다.이밖에 우리마당(주2회 입회비포함 월2만원)과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주1회 3개월 6만원),중앙문화센터,국립국악원 단기반(주3회 3주 1만원),「사물놀이 난장」(2개월과정 10만원),「무형문화재 남사당놀이보존회」등에서 강습을 하고있다.
  • 주요 민속예술 한눈에/경연대회서 발굴된 수작 한권에 담아

    ◎문화부,전국 배포… 전승발전위해 활용 역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를 통해 발굴된 민속예술이 「한국의 민속예술」이라는 한권의 책자로 묶여 나왔다. 문화부가 펴낸 이책은 이제까지 33회에 이른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수상한 종목을 포함한 주요종목의 유래 구성 내용 놀이기구등 상세한 해설을 화보와 함께 4백68쪽 국배판에 담고있다. 이 책에는 또 이대회에 대한 신찬균문화재위원의 총괄적인 평가,임동권중앙대명예교수의 대회 의의 분석과 함께 각 민속분야별 성과에 대한 평가와 분석이 실려있다.특히 분야별 평가는 민속의례분야에 장주근,민속놀이에 신찬균,민속무용에 정병호,농악에 이보형,가면극에 이두현,민요에 권오성등 관계전문가들이 맡아 전문성과 학술성을 높였다. 이 책의 말미에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의 연도별 수상현황과 전국 무형문화재현황이 자료로 실려있다.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는 지난 1958년 건국 10주년 기념행사로 장충단 옛 육군체육회관에서 시작된뒤 해마다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번갈아 열려 지금까지 모두 2백95종의 민속을 발굴 재현하는등 사라져가는 향토예술을 보존하는데 기여해왔다. 이책은 이렇게 어렵게 재현된 민속예술이 갈수록 원형을 잃어갈 우려가 커짐에 따라 기록으로 이것을 보존,민속예술의 전승발전에 유용한 자료로 쓰기위해 만들어 진 것이다. 문화부는 이책을 전국의 도서관과 민속학회,관련 연구단체등에 배포해 민속예술의 계승 발전을 위한 자료로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
  • 강릉향토사료관 개관/영동지역 역사유물 연구·보존 활로텄다

    ◎유·무형문화재 1천여점 체계적 전시/대학박물관 중심 탈피… 시민에 친근감/개관되자마자 “만원”… 교육·관광 새 명소로 강릉향토사료관의 개관으로 박물관이 없는 영동지방의 역사유물 및 민속자료에 대한 보존·연구가 활기를 띠게 됐다.사료관은 또 지난 15일 개관되자마자 하루 1천명이상의 관람객이 찾아드는 등 지역민에 대한 사회교육의 장은 물론 강릉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강릉향토사료관은 강릉시가 지난 89년부터 모두 28억원을 들여 죽헌동177의4 오죽헌경내 5천2백22평의 대지위에 세웠다.건물은 지상1층 지하1층에 2백50평 규모.외관은 전통미를 살린 한옥이며 내부는 현대식으로 지어졌다. 사료관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유물 및 자료는 모두 1천여점이며 이가운데 4백70여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강릉시는 당초 사료관의 개관작업을 하며 어떤 성격을 택하느냐를 놓고 고민에 빠졌었다고 한다.민속박물관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강릉지역에 독특한 민속이 다양하게 전래되고 있어 관객의 흥미를 끌수 있는 전시가 가능하다는것이었다.또 민속박물관이라는 명칭이 일반인들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며 어느정도 권위도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였다.그러나 대세는 향토사료관을 주장하는 쪽으로 기울어갔다. 이들은 최근 영동지방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청동기·원삼국·삼국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체계적으로 발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동은 물론 강원도 전체에 박물관하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때문에 민속자료에 국한될 우려가 있는 민속박물관보다는 박물관과 민속박물관의 기능을 함께 하면서 규모는 작은 향토사료관이 되는게 바람직하다고 주장을 폈다.우선 지역내 역사유물및 민속자료에 대한 수집 보존 연구를 하고 후에 박물관이 세워지면 해당기능을 넘겨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탄생과정을 거쳐 사료관은 선사문화실과 역사미술실 민속문화실 야외전시장으로 4개부문의 전시영역을 갖추게 됐다. 먼저 66평규모의 선사문화실에는 명주 심곡리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 찍개 긁개를 비롯,강릉 명주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유물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다.특히 명주 안인리의 원삼국시대유적지를 바탕으로 당시 생활상을 재현해 이지역 선사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54평 규모의 역사미술실에는 보물 제81호인 한송사터 석불좌상을 비롯,강릉12향현의 유품,관동8경도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92평 규모의 민속전시실에는 중요무형문화재인 강릉단오제와 강릉농악을 축소형으로 재현하고 민가와 생활용구등을 다양하게 전시,이지역 선인들의 생활상을 살필수 있게 했다. 야외전시장은 지역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선정비들과 신라시대의 석탑기단면석,석불입상들을 한데 모았으며 양양 포월리의 석실고분과 괸돌의 하부구조도 옮겨 전시하고 있다. 사료관은 현재 장상준관장등 14명의 직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사료관의 개관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관동대 신호웅박물관장은 『그동안 영동지역의 유물수집과 연구는 대부분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대학박물관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만큼 사료관의 개관이 반갑다』고 말했다.신관장은 『그러나 사료관이 단순한 관광자원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유물수집과 연구에 획기적인 예산을 배정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무용가 정재만씨(이세기의 인물탐구)

    ◎힘차고 광활한 춤사위… 남무의 대가/벽사에 사사한 승무,만개앞둔 꽃망울 연상/“생활이 춤”… 삶의진실 담은 전통 재현 노력/작품구상땐 무작정 거리 헤매… 「구두한켤레」 별명도 □연보 ▲948년3월 경기도 화성출생 ▲72년 경희대 무용학과 졸업 74년 동 대학원 졸업 ▲73∼79년 국립무용단단원 ▲80년 국립국악원 수석무용 ▲80∼87 세종대 무용과 조교수 현재 정재만무용단,남무단대표(정기공연),벽사 춤아카데미 대표,서울예술단 무용감독,한국무용가협 부이사장 「92 춤의해」운영위원,숙명녀대 무용과 교수 국립무용단 무용극 출연 「별의 전설」「왕자호동」「꿈꿈꿈」「시집가는날」등서 주연 해마다 대한민국 무용제·무용예술큰잔치·무형문화재 공연참가 「춤소리」「□」「춤 그 신명」「먼길」「홰」「비천무」「바라춤」「학춤」「승무」「살풀이굿」「학불림굿」「춤4319」「달맞이」「비단타령」「빛과 소리」(88서울올림픽)「자화상」「한량무」「꿈」「광대의 꿈」「북소리사위」「태극선의메아리」「길놀이 마당놀이」뮤지컬 「옹고집전」「양반전」「지신밟기」안무 84년부터 미국·유럽각지역·동남아·호주·남미·이스라엘·연변·북경·상해 백두산 등 각지역 순회공연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중요 무형문화재평가회의 「학무」최우수상,82대한민국 무용제 안무상,84대한민국 무용제 대상,제45회 디종 국제민속예술제 금상 수상 정재만의 춤은 힘차고 광활하다.수평의 폭이 넓고 수직은 하늘로 솟구친다.긴 장삼 얼기설기하여 공간으로 획 뿌리치는 무태에는 비구름이 묻어있다.그리고 움직임 움직임마다에 기쁨과 슬픔,고통과 오뇌가 휘몰아치다 잦아든다. 신라시대 화낭을 연상케 하는 씩씩한 기상과 자신감 넘치는 풍모가 정재만 춤의 특징이다.그가 한번 춤추기 시작하면 그 주술적인 힘에 매료되어 관객은 어깨춤이 절로 나거나 한동안 숨을 멈추게 된다. 특히나 그의 「승무(승무)」는 날이 갈수록 깊은 맛을 더하여 푸른 못속에 뜬 연(연))꽃 봉오리가 만개하려는 찰라다.이제 그는 춤을 알게된 나이다. 15∼16년전쯤 어느 사석(사석)에선가 정재만의 스페인춤을 본적이 있다.그때만해도 조택원이후 송범씨가 그 맥을 이어받았을뿐 남성무용수는 다섯손가락이 넘지않았고 그중에서 정재만은 첫째 둘째를 다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살풀이」며 「산조」를 한자리씩 추는 자리에서 유독 구둣발로 바닥을 울리며 등장하더니 그는 「투우사의 노래」를 허밍하면서 정열적인 스탭으로 「투우사의 춤」을 밟아나갔다.한국무용을 하는 사람답지 않은 힘찬 스타카토의 리듬이 돋보이는 춤이었다. 테이블의 붉은 카네이션을 양복주머니에 꽂고 목에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물레타처럼 휘두르며 이리저리 소를 유인하는 동작은 마치 영화 「바렌티노」에서 누레예프의 탱고춤이 어울리듯 그늘진 구석없는 화려한 스페인춤이 더없이 어울려보였다. 춤추기 시작한지 어느덧 30년.그의 이력에는 「송범 문하생·벽사 한영숙전수생·김백봉사사」가 자랑스럽게 따라다닌다. ○가난했던 소년 시절 그는 일찍이 송범문하에 들어가 전통무의 발디딤새를 배우고 벽사의 「승무」「살풀이」「학무(학춤)」를 전수하여 중요무형문화재 27호인 「승무」 전수조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기전 그는 경기도당굿이 성했던 화성에서 태어나 동네에서 벌어지는 굿판에 몰두한 시절이 있었다.하루종일 굿구경에 빠져있다가 배고파 집에 돌아오면 가난이 기다렸다. 옹기를 굽는 집안에서 9남매중 다섯째인 그는 어쩔 수 없이 불우한 소년기를 보내야했고 그래서 차라리 굿판에나 따라다녔으면 하는게 소원이었다. 본래는 부농이었으나 아버지 정수환씨(70세로 82년 작고)가 남의 빚보증을 서는 바람에 집안이 망해 광성국민학교를 졸업하던해 서울로 이사,위로 큰형과 세 누나와 뿔뿔이 헤어져 그는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방배동 단칸방에 정착했다. 그때는 어머니(김순림여사·78)가 동작동 국립묘지 앞에서 꽃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아직 중학교에 가지못한 그는 낮에는 집안을 치우고 동생들을 돌보다가 저녁밥까지 지어놓고 동작동까지 나가 어머니의 꽃 모판을 받아이고 돌아오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그런중에도 틈틈이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소설책을 읽었다.하루는 헌잡지에서 본 조택원씨의가사를 떨쳐입고 춤추는 사진과 일대기를 읽고는 막연하나마 조택원씨처럼 되고싶은 꿈을 꿨었다. 『저앤 공부도 잘하고 재주도 많은데 어디 양자라도 보내어 공부를 계속하게 했으면』 어머니는 설거지에 밥하고 동생이나 돌보는 아들의 고생이 보기 안쓰러운 나머지 동료 꽃장수들에게 그렇게 하소연하곤 했다. 그후 인천으로 출가한 큰누나의 집에 얹혀살면서 여기서도 낮에는 조카들을 봐주고 밤에는 인천대건중학교,다시 서울로 올라와 서라벌예고에 진학하면서 가정교사,그러다가 가정교사로 있던 주인집의 소개로 필동에 있던 송범무용연구소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잔심부름과 청소로 학교에 다니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뚜렷한 이목구비에 재빠른 동작을 눈여겨본 송범씨가 그에게 조금씩 춤을 지도했고 그는 한 동작 한 동작을 혼신을 다해 익히면서 스승이 귀가한 후에도 혼자서 밤새도록 마루바닥을 뛰었다.발바닥이 얼얼하게 부어 성할 날이 없었다. ○송범씨 만나 춤과 인연 벽사 한영숙씨의 제자가 된 것은 벽사가 71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였다. 폐쇄적인 당시의 무용인맥에서는 좀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송범씨는 자신의 문하생을 선뜻 벽사에게 허락해주었다.고 한성준옹으로부터 그의 따님이던 한영숙씨에게 전수된 문화재급의 주옥같은 춤들을 남자무용수로서 전수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벽사의 유일한 남자제자가 된 그는 「승무」「학무」를 비롯,「살풀이」「산조」「훈령무」「태평무」를 차례로 전수받았고 벽사로서도 부친의 춤의 맥을 잇는다는 일념외에도 그를 친아들처럼 믿고 의지했다. 89년 10월 벽사는 눈을 감으면서 그의 춤의 사군자로 일컬어지던 승무·학무·살풀이·태평무의 보존과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살풀이」「태평무」에 대한 당부를 그에게 녹음유언으로 남겼다. 그는 요즘도 공연을 앞두거나 해외에 나갈땐 경기도 남양주군 남한강가에 모신 스승의 산소를 찾아 돗자리를 펴놓고 춤추는 성묘로 보고하기를 잊지 않는다. 지난해엔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승무·학무 보존을 위한 벽사춤아카데미를 청담동 그의 무용연구소에 개설,6월에는 「나의 춤모(모)에게 바친다」 추모공연을 가져 무용계에 훈훈한 미담을 만들어 주었다. 그는 송범의 춤의 특징인 수직과 대학·대학원의 지도교수였던 김백봉의 수평,벽사의 곡선을 두루 망라하여 춤에서의 원의 완미를 이룬다는 목표를 세우고있다. 스승이 남긴 승무·학무의 보존을 위해서는 고유의 특성을 훼손·변질시키지 않는데 그치기보다 「삶의 진실에 대한 표현,삶에 대한 유기적 통찰」의 의미를 담아 전통을 재현해낸다는 자세다. 한때 초기의 춤에서 환희와 힘을 과시하면서 극적표현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그의 외롭고 초췌했던 성장기를 은폐하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창작무용에 손대기 시작한 80년에 접어들어 그는 씩씩한 우조에서 벗어나 높은 것을 한층 난춰 감동이 배제된 은은한 계면조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춤소리」와 「□」은 화려함속에 비감이 느껴지는 수작으로 그는 한작품 작품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시대를 뛰어넘는 불후의 빛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역시 그런 각오로 빚어진 「북소리사위」는 북을 한곳에 고정시키지 않고 춤추는 사람이 5북에서 9북을 다루는 파격적 춤사위로 「거동이 정한(정한)하면서도 흥과 멋이 섬화처럼 빛나는 쾌작」으로 손꼽힌다. ○해마다 전국순회 공연 무용계에 남성무용수가 적은 것을 안타까워한 그는 세종대교수시절 졸업생들을 모아 정재만 남무단을 발족,87년 국립극장에서 창단기념공연을 가진이래 숙명녀대로 옮겨와서도 해마다 방학이면 이들을 이끌고 대전·대구·부산에서 당진·서산·합덕에 이르기까지 지방 구석구석을 찾아 순회공연하는등 안성들만의 「훈령무」와 「학무」 「북소리사위」를 펼치고 있다. 73년부터 6년간 국립무용단의 주역으로 뛸때의 파트너이자 경희대 후배인 박순자씨와 75년에 결혼,박순자씨는 무용극 「시집가는 날」의 여주인공을 끝으로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해 무용단을 떠났다.자녀는 용진(남·국악고2)형진(여·국민교1)남매. 요즘도 그는 스승들을 사사하던 시절과 똑같이 새벽4시에 일어나 5시부터 연구소에 나가 3시간연습,낮에는 대학강의와 무용감독으로 있는 서울예술단에 출근했다가 하오 6시부터 밤10시반까지 연습,춤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연구소로 달려간다.춤구상을 할때면 무작정 거리를 방황하는 버릇 때문에 「구두 한켤레」란 별명이 붙어있다.한두달에 보통 구두한켤레씩을 해뜨린다는 얘기다. 그의 생활모두는 춤이다.춤과 관련되지 않는 것은 흥미도 관심도 없다.그의 춤의 한 단면만을 본 사람이라면 씩씩하고 남성다운 용모로 인해 그들 솔직하고 사교적인 인물로 착각하기 쉽다. 더구나 「한량춤」에서 보이는 「끼」와 가락은 한량기질이 넘쳐보이기도 한다.물론 아직은 40대중반이어서 그의 춤이 달통의 경지라고는 미리 말할순 없을 것이다.다만 견제가 심한 무용계에서 일관된 침묵과 양보,남과 다투지않는 화합의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만 파고든다. 이따금 옹기장이이던 가난한 부친과 그의 굽던 옹기생각에 온몸이 뜨거워지고 아버지 그리움에 곧잘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그래서 요즘은 아버지를 위한 창작무 「사금파리」를 구상하고 있다. 남모를 추억과 슬픈 그리움 때문일까.그의 춤추는 손가락 끝에선 피가뚝뚝 흐르는 절규,비스듬히 미끌어지듯 내딛는 보법에는 메마른 눈물과 싱그러운 꽃가루가 동시에 흩날린다. 깊이 숙여쓴 고깔과 백합같은 정화,허공 한끝을 헤매는 속눈썹엔 부세의 번뇌가 향연처럼 타오르고 그의 승무는 지금 속절없는 방황을 헤뜨린듯 하얀 소매끝에서 장한이 적멸된다.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합장)인양」 동중정을 극도로 자제하여 그속에는 탄식 같은 흐느낌을 소리없이 감추고 있다.
  • 이명미씨/전통춤 발굴에 20년간 정열(본상)

    20여년간 인천지방의 전통민속인 민요가사와 춤사위를 발굴 채록해 왔다.「인천근해 갯가노래 뱃노래」와 「주대소리」를 인천지방 무형문화재3호와 5호로 각각 지정받게 했고 인천지역의 무속집도 발간했다.
  • 지역문화 구심체로 거듭난다/창립 한돌 맞은 「정선아라리 문화연」

    정선아라리문화연구소(소장 진용선)가 지역문화의 구심체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 9일로 이 연구소는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에서 문을 연지 1주년을 맞았다. 이날을 계기로 연구소는 「지역에 전래되는 민요의 연구와 발전」이라는 한계를 벗고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리랑인 정선아라리는 그동안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중심으로 보존돼온 반면 정선지역에 흩어진 수많은 다른 아라리소리는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 이지역 문화예술인과 상공인들이 정선아라리의 체계적인 연구에 뜻을 모아 연구소를 설립했다. 정선아라리 소리자체는 물론 그 소리가 나오고 보존될수 있었던 정선사람들의 삶을 조명해 보자는 것도 이 연구소의 중요한 설립 이유가 된다. 따라서 연구소의 활동도 아리랑이 「한의 정서」에 만 국한된 청승맞은 가락이 아닌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담는 포용력있는 가락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자는데 뜻이 모아졌다. 연구소는 설립이후 지난 6월5일 정선아라리의 발상지인 아우라지나루터에서 20여명의 시인이 참석한 가운데 「정선아라리민요기행」,6월6일에는 「아리랑시낭송회」를 가졌다.이어 7월17일에는 사북석탄회관에서 「정선아라리공연및 경창대회」를 열었다. 회원들은 이같은 1년동안의 활동을 분석한 결과 『정선아라리를 단순한 민요가 아닌 지역발전의 모티브로 삼아야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정선아라리의 실체가 점점 널리 알려질수록 『정선에는 아라리이외의 별다른 문화가 없다』는 사실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졌기 대문. 이에따라 연구소는 올해안에 8백여수의 정선아라리가사를 5백여페이지에 담은 자료집을 펴내고 정선아라리의 서울공연을 추진하는 기존활동과 함께 「지역민들에 의한 문화단체설립운동」을 벌여나가기로 했다.극단과 문학·미술동인회등 당장 조직이 가능한 것은 적극 지원하고 외부음악단체의 공연도 초청하는등 지역문화전반의 발전을 위해 활동영역을 넓혀가겠다는 것이다.
  • 남도의 대표적 민요/진도 아리랑/전승·발전운동 “한창”

    ◎「보존회」,육지정서 혼합으로 원형퇴색따라 발벗고 나서/마을잔칫집 다니며 가사 7백여종 발굴/경창대회·순회교습통해 전승자 육성/타지인에 알리기위한 「아리랑 비」도 곧 건립 애절한 가락과 해학 넘치는 노랫말로 우리민족의 정서를 대표해온 아리랑타령.그 가운데서도 진도아리랑은 남도특유의 한(한)과 섬사람들의 낭만이 서려있어 대표적인 남도민요로 손꼽히고 있다.그러나 진도연육과 함께 육지문화가 섬사람들의 정서에 혼합되면서 진도아리랑원형이 퇴색해가자 「진도아리랑타령보존회(회장 박병훈·56)」가 이의 전승·발전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보존회회원은 향토사간인 박회장을 비롯,정회원 17명과 준회원 14명등 모두 31명.이들은 요즘 진도아리랑의 유래를 찾고 가사를 발굴하는등 보존·전승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마을 잔칫집등 놀이마당이 열리는 어느곳이나 필기도구를 지참하고 찾아다니며 할머니들이 즉흥적으로 불러내는 가사를 채록하는 것도 이들의 차지다.회원들이 그동안 찾아낸 가사만도 7백여종이나 된다.이들이 보존회를 만들고 발굴·조사활동에 나서던 85년의 80여가지에 비하면 엄청난 양이다.이들은 이를 모아 「진도아리랑타령가사집」전3권으로 펴냈다. 격년제로 열리는 군민의날 행사에서 「진도아리랑 경창대회」를 열어 입상자 3명씩을 뽑아 아리랑 전승자로 육성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보존회는 또 지난 88년 서울 「모임아리랑회」주최로 열린 제1,2회 아리랑제에서 진도아리랑 발표회를 여는등 지금까지 1백50여차례에 걸쳐 서울·부산·대구·광주등 전국 대도시를 돌며 공연을 갖고 진도아리랑을 전국에 알리고 보급하기로 했다. 특히 이고장 후손들에게 아리랑의 맥을 이어갈수 있도록 매년 2차례씩 관내 초·중학교를 돌며 「진도민요 순회교습」도 열고 있다. 이와함께 이고장을 찾는 관광객이나 타지인들에게 진도아리랑을 알리기 위해 추진중인 「진도 아리랑비」건립은 현안 역점사업이기도 하다. 지난 90년 제2회 전남 향토문화제에서 1백만원을 수상한 보존회는 회원들의 갹출금 1백만원등 모두 5백만원의 예산도 이미 확보,올 안에 아리랑비의 위치,문안 등의 선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건립에 들어갈 예정이다. 보존회가 현재 가장 바라고 있는 것은 진도아리랑의 무형문화재 지정과 전수회관 건립. 회원 한영심씨(63·여)는 『아리랑은 그동안 잡가(잡가)로 천시,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게 사실』이라며 『일부 아리랑을 국악인들만의 전유물에서 대중적 가락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무형문화재지정등 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사재를 털어 진도아리랑비를 세우려는 것도 바로 이런대 큰 뜻이 있다고 박회장은 덧붙였다.
  • 손남원기자,일 후쿠오카현을 가다:상

    ◎“세계적 관광지로”… 지역문화까지 상품화/민속유적 단장… 쇼핑·위락시설 잘 갖춰/“외국인 불편없게” 정책·시민의식 큰 몫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한 마을에서는 개똥벌레를 키우고 공중화장실을 다실과 같은 전통건축양식으로 꾸민다.그런가 하면 또 다른 마을에서는 등불박물관·미술관등 「문화」를 관광상품으로 중점개발하기도 하고 「산촌과 도시공동의 산촌진흥모델사업」이란 프로젝트를 만들어 인근대도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관광개발비를 조달한다. 외화가득률이 가장 높은,「보이지 않는 수출」인 관광산업에 일찍이 투자해온 일본의 지방관광 활성화 방안은 매우 다양하다.관광사업자끼리 서로 다른 분야의 사업을 넘보지 않는 기능분담주의가 엄격히 시행되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일본에서 후쿠오카는 연중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관광자원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하려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한국서 제일 가까운 도시 일본을 구성하고 있는 4개의 큰섬중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규슈.그중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후쿠오카는 거리상으로 일본열도에서 우리나라와 제일 가까운 도시다.서울에서 비행기로 불과 한시간남짓 거리인 반면 도쿄에서 후쿠오카까지는 1천1백㎞나돼 1시간50분이 걸린다.빠르기로 소문난 신칸센열차로는 7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지난 90년 한햇동안 후쿠오카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수는 모두 3백50만명.이중 우리나라의 관광객 수가 98만명으로 가장 많고,대만(61만명)·미국(56만명)의 순이다.유럽 각국에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수도 적지않아 무려 51만명이 후쿠오카현을 돌아봤다.이는 91년 한햇동안 우리나라를 찾은 관광객이 3백19만명이었음을 감안할때 대단한 수치라고 할 수있다. 일본내 1개현에 불과한 후쿠오카에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보다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요약될수 있을듯 싶다. 첫째는 관광객들을 찾아다니며 편의를 봐주는 후쿠오카현 자체의 적극적인 관광정책.후쿠오카현청에는 국제교류과와 통상관광과가 있어 외국 관광객의 유치와 쾌적한 체류를 위한 각종 정책을 입안,실시하고 있다.일례로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자유화가 실시되자마자 후쿠오카현의 주요 관광지에 한글로 된 안내책자와 표지판들이 설치된 것을 봐도 그 기민함을 알수있다. ○외국서 홍보사업 벌여 이외에도 민간차원의 교류촉진을 위한 국제교류센터가 시중심부에 있는 하카타역옆에 설치돼 외국인들의 후쿠오카 생활을 돕는다.현자체에서 외국 현지로 직접 주재원을 파견해 후쿠오카의 홍보사업을 벌이는 점도 주목할만하다.현재 서울과 홍콩에 3년임기의 주재원이 거주하며 중국·말레이시아·호주·미국·태국등에는 2명씩의 연수생이 나가있다.이들은 임기만료후 후임자와 교체돼 돌아와 현지에서 익힌 능숙한 외국어와 문화체험등을 발판으로 합리적인 국제교류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또다른 이유는 잘 꾸며진 관광지와 친절한 시민의식이다.시전체를 민속유적·쇼핑장소·동·식물원등 구역별 특성을 살려 개발해 놓은데다 현내에도 민속관광지는 물론 첨단설비를 갖춘 놀이동산을 만들어 놓아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를테면 야나가와(유천)시와 지쿠고가와(축후천)의 온천지대는 옛날의 유적을 상품화한 대표적인 관광지.후쿠오카시에서 특급전차로 50분정도 걸리는 야나가와는 운하와 강을 연결시킨 독특한 뱃놀이 코스로 유명하다.1시간 정도 소요되는 뱃놀이중에 관광객들은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사무라이들의 숙소와 옛 성주의 별장,일본식 정원들을 구경할 수 있다. 온천으로 이름난 지쿠고가와를 가면 우카이라는 민속놀이를 감상할 수 있다.우카이란 가마우지(검정오리)를 길들여 은어등 물고기를 잡게하는 것으로 일본내에서도 이곳에 유일하게 전승돼온 무형문화재다.전통문화를 단순히 보존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오늘의 경제구조속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바가지상인·택시기사 없어 한편 첨단과학을 응용해 만든 관광지로는 마린월드와 스페이스월드등이 있다.오카시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내의 마린월드는 희귀한 어류들을 전시해놓은 수족관과 돌고래쇼로 널리 알려져있다.특히 야자수로 뒤덮인 주변경관이 뛰어나 일본내 관광객들도 많이 몰려든다. 후쿠오카현을 여행하다보면 이곳 사람들의 친절에 한국인 관광객들은 당황해할때가 많다.길을 잃어 파출소에 가면 경찰관이 해당지역의 약도를 들고나와 행선지까지 안내해준다.외국인 관광객이라 해서 바가지를 씌우려는 상인이나 택시기사도 없다. 이런데도 관광객이 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것이다.해마다 외국인관광객의 증가율이 감소하고 있는 우리 현실과는 비교되는 현상으로 향후 우리의 관광정책 수립에 있어 후쿠오카현의 성공사례는 좋은 교훈이 될것으로 보인다.
  • 서울 「장안 골 편사놀이」 등 14개 첫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오늘 구미서 개막/이북5도 등 19개 시도서 25팀 참가/사진공모전·무용경연대회도 개최 우리 민속 최대의 잔치인 제3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가 23일부터 25일까지 3일동안 경상북도 구미에서 열린다. 「신명과 화합의 큰 잔치」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대회는 문화부가 주최하고 경상북도와 구미시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특히 이번 대회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첨단산업도시인 구미시가 유치하여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의 모범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민속예술의 기량을 겨루는 경연부문에 이북 4도를 포함한 전국 19개 시 도에서 20개팀 1천5백88명이 참가한다. 또 지난해 대통령상을 받은 여수 영당풍어굿을 비롯,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안동 차전놀이등 5개종목에 7백52명이 참가해 시연하는등 이번 대회는 모두 25개 종목에 2천3백4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제전이 된다. 올해는 특히 20개의 경연종목가운데 서울의 민속놀이 장만 골 편사놀이등 14개가 새로 발굴되어 첫선을보이는 종목이어서 더욱 의미있는 대회가 될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대회는 경연과 시연의 구분없이 마당종목은 23일과 25일 구미시민운동장에서 무대종목은 24일 금오공대체육관에서 진행된다. 한편 대회개막에 앞서 22일 하오7시부터 시청에서 구미역까지의 2·5㎞구간에서 축등행렬이 펼쳐졌으며 금오산잔디밭에서는 대회참가자들이 모두 초청된 가운데 경축리셉션이 열렸다.또 하오7시50분부터는 금오산과 신평,인동등 3곳에서 쏘아올린 6백여개의 불꽃이 20여분동안 밤하늘을 수놓아 시민들을 즐겁게 했다. 구미시는 대회기간중 3도미술교류전과 전국사진공모전,전국무용경연대회등 9개의 문화행사로 이루어진 92구미예술제도 열며 특히 향토음식과 특산물을 선보이는 풍물시장을 열어 독특한 향토색을 참가자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는 잊혀져가는 우리의 전통을 발굴해 이를 전승·발전시키기 위해 19 58년 건국10주년기념행사의 하나로 처음열렸다.이 대회는 지금까지 33회를 맞는동안 각지방의 새로운 고유민속 2백95개를 발굴하는성과를 거두었으며 이가운데 안동하회별신굿탈놀이등 34개종목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로,정선아리랑등 20개종목은 시도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대회의 종합 최우수상인 대통령상수상단체에게는 1천만원,종합우수상인 국무총리상에는 6백만원,부문별우수상인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한 5개단체에게는 각각 2백5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며,개인연기상인 경북지사상수상자 3명에게도 1백만원씩이 주어진다. 이번 대회에 출연하는 종목은 별표와 같다. ◇경연종목(20개) ▲장안 골 편사놀이(서울 민속놀이) ▲부산 영산재(부산 민속무용) ▲날뫼 북춤(대구 민속무용) ▲인천 소금밭 일놀이(인천 민속놀이) ▲광산 들노래(광주 민요) ▲도안동 농요(대전 민요) ▲포천 메나리(경기 민요) ▲화천 나무꾼 농목장치기(강원 민속놀이) ▲영동 길쌈노래(충북 민요) ▲부여 용정리 호상놀이(충남 민속놀이) ▲임실 삼계고전상여노리(전북 민속놀이) ▲고흥농악(전남 농악) ▲금릉빗내농악(경북 농악) ▲예천 공처농요(경북 민요) ▲밀양법흥상원놀이(경남 민속놀이) ▲화반놀이(제주 민속놀이) ▲해주 검무(황해 민속무용) ▲평양 검무(평남 민속무용) ▲성황부군도당굿(평북 민속놀이) ▲북청 돈돌날이(함남 민요) ◇시연종목(5개) ▲안동 차전놀이(경북 민속놀이) ▲여수 영당풍어굿(전남 민속놀이) ▲청도 차산농악(경북 농악) ▲안동 하회별신굿탈놀이(경북 민속극) ▲익산 삼기농요(전북 민속놀이)
  • 과학전에 나타난 가능성들(사설)

    올해 전국과학전에 나타난 빛나는 가능성에 우리는 커다란 기대를 보낸다.해마다 이어지는 과학전이고,전국의 창의력 있는 인재들이 이 과학전을 통해 이미 많은 성과를 거두었음을 알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올 과학전은 우리의 관심을 끈다.과학기술력으로만 살길을 개척할 수 있는 우리의 형편에 부응하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교원 일반부에서 대통령상을 탄 「황칠채취법」의 경우 우리의 전통 황칠을 되살려낸 장한 일을 지방 과학고등학교 교사들이 해냈다.천연물질로 오묘한 빛깔을 내는 이 황칠은,여러가지 귀중한 요소를 갖춘 무공해 소재다.개발에 따라서는 국제진출의 길이 충분한 고부가가치산업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지난 주에 KBS는 「한국의 미」시간에 이 「황칠」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무형문화재급의 전통장인이 우리의 것을 찾아 수십년을 헤매온 사연이며,시골 과학고교사들이 수행하듯 정진하며 황칠의 세계를 연구해온 발자취는 사뭇 감동적이었다.도시의 들뜨고 덧없는 삶에 비하면 숭고하다고 할 이런 노력과연구들로 우리는 이만큼이라도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대전과학고 학생들이 차지한 학생부 대통령상 수상작도 우리에게 신선한 기대를 걸게 한다.아주 평범한 「방충망」에서 힌트를 얻어 그 문양의 움직임을 이용하면 3차원의 화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탐구해낸 것이다.이들의 연구는 첨단과학의 세계에 대한 도전을 보여준다.말하자면 굳어진 기성의 두뇌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창의성으로 해낸 업적으로 보인다.그 점이 우리는 대견하다.미래의 세계는 그런 전략으로 정복할 수밖에 없다. 모처럼 우리에게 빛나는 가능성의 기대를 안겨준 이들 과학전을 보며 이런 탐구들이 더욱 발전하여 실제로 우리에게 기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은 갖춰져 있는지 궁금해진다.고도의 과학두뇌들이 「원자탄제조의 가능성」을 제시했을 때 「실험실의 환상」이라고 일축했던 일본의 군부가 오래지 않아 「버섯구름의 공포」에 떨며 항복의 두손을 올려야 했다는 일화가 있다.과학하는 두뇌들의 「실용성이 의심되는 탐구」속에는 엄청난 가능성의 인자가 숨어있다는 신념을 갖고 탐구한 당사자보다 더 큰 정열과 노력으로 뒤를 밀어주지 않는다면 모든 과학적 탐구는 「실험실의 환상」으로 끝나고 만다. 과학전을 휩쓰는 세력들이 「과학고등학교」와 유관하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시행만이 성과를 확대하는 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투자하지 않으면 거두지 못한다는 뜻에서는 교육만큼 에누리 없는 것도 없다.또한 투자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하는가에 대한 투자까지 포함된 관심과 노력만이 수확의 극대화를 가져온다. 방송의 좋은 프로그램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우리는 이번에 경험했다.이런 통합된 사회적 경험의 총화가 결국은 국력을 만든다.지금도 과학의 세계를 공략하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전국의 숨은 두뇌들에게 격려를 보내며 지치지 말고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 추석민속 온가족 함께 즐기자/연휴 나흘 공연안내

    ◎놀이마당/봉산탈춤 흥겹게/민속촌/전통혼례식 시연/서울랜드/남사당놀이 한판/자연농원/제기차기·널뛰기 오는 11일은 설날과 함께 우리민족 최대명절로 꼽히는 추석.올 추석은 예년과는 달리 연휴가 10일부터 13일까지 4일간이나 이어진다.모처럼 긴연휴를 맞은 근로자들은 벌써부터 휴가를 떠날 채비를 서두르느라 부산한 모습이며 여가를 보다 알차게 즐기기위해 성묘를 미리 다녀온 도시민들도 적지않다. 그래서 전국의 레저현장은 전에없이 붐빌 전망이다.온천을 비롯한 관광휴양지의 콘도와 호텔은 이미 예약이 끝났고 등산 낚시등에 이용되던 여행사 관광버스도 동이 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추석 연휴때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세시풍속을 즐기며 한때를 보낼수 있는 민속놀이 공연장을 찾아봤다. □서울놀이마당=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온뒤 저녁 보름달이 밝아질때까지 이웃사람들과 함께 농악놀이·씨름·널뛰기·줄다리기등 놀이를 갖는 것이 우리들의 한가위 풍속이었다.그러나 사회가 산업화되면서 아름다운 우리전통문화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우리민속을 전수 보급하고 있는 서울 놀이마당은 잊혀져 가는 이러한 우리 민속을 되살리기위해 추석연휴기간(11∼13일)우리민속을 시연해 보인다.공연내용은 봉산탈춤·경기민요·평택농악·남사당놀이·북청사자놀음·김덕수패 사물놀이 선소리산타령·송파산대놀이등 8가지.이 가운데 송파산대놀이·북청사자놀음·봉산탈춤등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민속이기도 하다.이 공연에는 해당 인간문화재들과 문화재 이수자들이 직접 나와 특기를 선보인다.공연은 매일 하오3시부터 시작되며 공연시간은 각 종목마다 1시간씩으로 되어 있다. □한국민속촌=11일 낮12시30분부터 추석특별공연을 시작한다.추석당일엔 송파산대놀이와 농악·줄타기등이 시연되며 전통혼례식도 열린다.12일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인 강령탈춤을 비롯,농악·줄타기·줄풍류·전통혼례등이 5시간동안 이어진다.또 13일엔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인 북청사자놀음과 중요무형문화재 58호인 줄타기·농악등을 공연한다.강령탈춤공연에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김정순씨가 나와 직접 보여줄 예정이며 북청사자놀음에도 전광석인간문화재가 직접 출연할 예정으로 있다. □서울랜드=10일부터 13일까지 한가위 특집행사를 마련한다.이 기간동안 남사당패들을 초청,서울랜드내 연꽃분수와 장터주변에서 하루 3번씩(상오11시·하오1시·하오3시)풍년을 기원하는 농악놀이를 펼친다.이 농악놀이에는 24인조 농악대가 놀이판을 벌이며 장터주변에서는 민속놀이 한마당도 펼쳐진다.이곳 민속놀이마당에는 그네·윷·제기·널뛰기도 준비,가족·친지들끼리 우리고유의 놀이를 즐길수 있게 할 계획이다. 또 4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삼천리대극장에서는 하오2시부터 2시간동안 한가위 특집쇼가 진행된다.여기에는 가수 최진희·유현상·김흥국등이 초청가수로 출연하며 서울랜드무용단·캐릭터·고적대·악단등이 총출연,명절분위기를 더한층 돋운다. □자연농원=가을정취를 풍기고 전통미 가득한 민속가족게임과 각종 행사를 준비한다.추석날엔 잊혀져 가는 민속놀이의 재발견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줄넘기,재기차기,널뛰기,윷놀이마당을 마련한다.11일에는 북청사자놀음을,12일에는 송파산대놀이와 안성 남사당 풍물놀이를 야외무대에 올리며 풍장패 사물놀이가 날마다 명절의 흥을 더해준다. 또 고향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동물원과 중문지역에 떡메를 준비,인절미 등 고향의 맛을 전해줄 장터거리를 연출하며 군밤 엿치기등 갖가지 먹거리도 푸짐하게 마련한다. □롯데월드 민속관=11일부터 3일동안 하오4시부터 5시30분까지 민속관에서 한가위 팔도민요잔치를 벌인다.경상도의 모내기노래와 함양양잠가,전라도 진도아리랑과 새타령,황해도 난봉가·산염불,평안도 산타령·긴아리 잦은 아리,경기도 청춘가·한강수타령·풍년가,충청도 흥타령,함경도 궁초댕기·신고산타령,강원도 아리랑·한오백년,제주도 둥그네 당실 등의 정든가락이 무대에 올려진다.인간문화재57호인 이은주씨를 비롯 인간문화재57호후보 김금숙씨와 김점숙,인간문화재57호 이수자등 10명이 출연할 예정이다.관람료는 무료이다. □제주신라호텔=12일 하오8시 대연회장 한라홀에서 한가위 음악회를 무료로 개최한다.이 음악회에는 랄프 도링 빈 국립음대교수(바리톤)와 이 대학에 재학중인 유소영씨(소프라노)가 출연,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슈만의 시인의 사랑,바그너의 탄호이저중 볼트담의 아리아·동심초·신아리랑·무곡 등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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