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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도현의 꽃차례] 시와 식물

    [안도현의 꽃차례] 시와 식물

    나는 정말 애기똥풀의 이름을 모르고 살았다. 나의 무지와 무관심 덕분에 눈앞의 모든 식물은 이름 없는 들꽃일 뿐이었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나는 참회의 시를 썼다. 그 이후 식물의 이름을 알아 가는 일은 내게 매우 흥미로운 일의 하나가 됐다. 이름을 아는 일은 그 존재의 입구로 들어서는 일이다. 이름이라는 형식은 존재의 기호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에튼버러는 ‘식물의 사생활’ 서문에서 식물은 볼 수 있으며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정확하게 시간을 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과학의 발견이지만 시적 통찰이기도 하다. 식물은 단순히 동물에게 영양소와 목재와 그늘을 공급해 주는 객체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식물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한국에서 식물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기 시작한 사람은 나카이 다케시노라는 일본인이었다. 그는 1913년 조선총독부 촉탁 식물학자로 들어와 4000종이 넘는 조선 식물을 근대적 분류법으로 등록했다. 특히 미선나무, 금강초롱 등 440여종의 조선 특산식물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학계에 보고했다. 그의 식물 채집과 통역을 도운 정태현, 생약학 전공자로 출발한 도봉섭이 조선인으로서는 최초의 식물분류학자라고 할 수 있다. 도봉섭은 한국전쟁 때 월북해 북한 식물학의 기틀을 잡았다. 1937년 정태현·도봉섭·이덕봉·이휘재의 이름으로 발간한 ‘조선식물향명집’은 우리 학자들이 식물명을 집대성한 최초의 단행본이다. 이 책은 식물에 ‘조선명’을 부여하는 확실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수십 년간 전국 각지의 현지조사에서 식물명을 수집했고 실제로 조선인이 사용하는 이름을 우선으로 했다. 지금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절필시대’라는 주제로 근현대화가 여섯 사람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는 9월 15일까지 이어진다. 이 중에 도봉섭의 부인 정찬영의 식물 세밀화는 이 분야의 원조라고 할 만하다. 그는 남편을 도와 식물 세밀화를 그렸지만, 부부가 함께 준비했던 식물도감은 남편이 행방을 감추자 출간되지 못했다. 정찬영은 1930년대에 모윤숙·최정희·노천명 등과 교유한 흔적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인 백석이 이 여성 문인들과 친분이 두터웠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당시 백석은 조선일보에서 잡지 ‘여성’과 ‘조광’의 편집을 담당했는데 그가 국내 식물학 분야의 성과를 눈여겨보았으리라는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백석은 1935년부터 1962년 북한에서 마지막 시를 발표할 때까지 모두 115편의 시를 남겼다. 여기에서 식물 이미지로 분류할 수 있는 시어가 350여개 등장하며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수록된 식물명이 105개에 이른다. 백석의 시에는 쇠조지(쇠서나물), 가지취(빗살서덜취), 이스라치(이스라지), 스무나무(시무나무), 들매나무(들메나무), 바구지꽃(미나리아재비)과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식물명이 자주 출몰한다. 한국인들은 식물도감이 아니라 백석의 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을 통해 ‘갈매나무’를 처음 만난다. 그는 갈매나무의 생태적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백석은 식민지의 현실을 받아들이거나 거기에 동조하는 대신에 그 현실을 응시하면서 현재를 견디는 상징으로서의 갈매나무를 설정했다. 그 갈매나무는 일제에 전면적인 저항을 하지 않으면서 친일의 길에 들어서지도 않았던 백석의 생애와 유사하다.1935년 간행된 정지용의 첫 시집 ‘정지용 시집’에는 모두 89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여기에는 48종의 식물명이 등장한다. 정지용은 자극적이면서 도발적인 감각을 구사하면서 외래어를 시에 끌어들이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백석과 달리 그는 장미, 바나나, 다알리아, 종려나무와 같은 외래식물에 뚜렷한 관심을 보인다. 정지용은 동백을 ‘춘나무’라고 쓰거나 ‘홍춘’(紅椿)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동백나무의 일본식 표기인 ‘쓰바키’(椿)를 사용한 것이다. 평안도 출신 백석이 통영에서 ‘동백’을 발견하고 그 표기를 그대로 쓴 것과 뚜렷이 대조된다. 백석이 제대로 된 식물도감 하나 없던 시절에 매우 구체적인 식물명을 시에 끌어들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이라고 할 수 있다.
  • 서울시 직장인 워라밸 좋아졌네…오후 7시 전 퇴근 증가

    서울시 직장인 워라밸 좋아졌네…오후 7시 전 퇴근 증가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등에 따라 서울 직장인들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출근 시간은 늦춰지고 퇴근 시간은 앞당겨졌다. 12일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서울시 등의 공공데이터로 2008년과 2018년의 시간대별 지하철 이용을 분석한 ‘서울시 직장인 출퇴근 트렌드 변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들은 하루 평균 출퇴근에 1시간 8분(왕복 기준)이 걸려 10년 전(1시간 9분)과 비슷했지만 출퇴근 시간대는 바뀌었다. 대기업 본사나 공공기관들이 모인 광화문·을지로입구·시청 일대는 출근 시간은 비슷했지만 2008년 보다 오후 7시 전에 퇴근하는 비중이 8.79%포인트 상승했다. 정보기술(IT) 기업이 모여있는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역은 9시 이후 하차승객 비중이 5.34%포인트 늘어나고 오후 7시 이후 승차 승객은 8.9%포인트 줄어들었다. 강남·역삼·선릉도 오전 9시 이후 하차 승객이 5.83%포인트 상승하고 오후 7시 이전 승차 승객이 3.38% 늘어났다. 이 지역 직장인들은 더 늦게 출근하거나 비슷하게 출근하고 더 일찍 퇴근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증권사나 방송국, 국회가 있는 여의도·영등포는 퇴근 시간이 앞당겨졌지만 출근 시간도 빨라졌다. 오전 7시대 출근 비중이 10년 전에 비해 4.76%포인트 올랐고 오후 7시 이전 승차 승객은 4.97%포인트 늘어났다. 회식 문화가 간소화되고 야근이 줄면서 종로·서초 등 업무지구에서 심야 시간에 택시 호출도 급감했다. 출근 시간에 승차 인원 비중이 높은 ‘베드 타운’으로는 까치산·장암역(88%)이 꼽혔다. 마들(87%), 신정(86%), 쌍문역(86%) 순으로 뒤를 이었다. 반면 을지로입구역은 출근 시간대에 하차 비중이 94.4%로 서울에서 가장 높은 ‘오피스 타운’이었다. 종각·국회의사당역(94.2%), 시청(94%), 광화문역(93%) 순으로 뒤를 이었다. 정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하철 이용 데이터 분석을 통해 오피스타운과 베드타운을 계량적으로 판별할 수 있게 됐다”면서 “최근 10년간 직장인의 출근 시간은 늦어지고 퇴근 시간은 빨라졌다는 점이 데이터로 입증됐다”고 밝혔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폐업 상조업체 가입자 보상금 965억...경기도, 보상금 주인 찾아준다

    폐업 상조업체 가입자 보상금 965억...경기도, 보상금 주인 찾아준다

    경기도가 등록취소, 직권말소, 폐업 등으로 사라진 상조업체로 인해 피해를 본 가입자를 대상으로 보상금 찾아주기에 나섰다. 경기도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 행정안전부와 신한은행, 우리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상조보증공제조합, 한국상조공제조합 등 6개 소비자 피해보상기관을 찾아 상조계약 보상금 수령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조치는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영업 종료된 상조업체에 가입된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예치금 수령 사실을 안내하는 등 소비자 권익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관련 부서에 주문한 데 따른 것이다. 현행 할부거래법은 상조업체가 은행·공제조합과 채무지급보증계약, 예치계약, 공제계약 등을 체결해 고객이 납부한 선수금의 50%를 보상금으로 보전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상조업체가 폐업할 경우 은행·공제조합은 우편으로 보상금 수령을 안내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은행이나 공제조합이 보상금 수령 안내 우편을 보내도 이를 찾아가지 않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올해 6월 김병욱(더불어민주당. 성남분당을) 국회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이후 폐업한 183개 상조업체 가입자 중 23만여명이 보상금을 찾아가지 않았으며, 그 금액이 95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조업체에 가입한 후 주소가 바뀌거나 가입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도는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도는 은행과 공제조합이 보유한 보상금 미수령자 정보와 행정안전부가 관리하는 주민등록 전산정보를 대조해 소비자의 최신 주소지를 확보한 뒤 보상금 수령을 다시 안내하는 방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해 이들 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를 통해 이르면 9월부터 최신 주소로 우편 발송을 시작하면 도민 5만8000여명(보상금 243억원 추산)이 보상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신혜 경기도 공정소비자과장은 “각 기관을 직접 찾아가 사업의 당위성을 설명한 결과 소비자 권익 증진을 위한 경기도의 행정에 동참하기로 했다”며 “도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많은 소비자가 잠자고 있던 보상금을 찾아가는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는 본인이 가입한 상조계약 정보를 손쉽게 조회할 수 있는 공정거래위의 ‘내 상조 찾아줘’ 서비스와 상조업체가 폐업하더라도 현존 업체를 통해 기존 가입 상품과 유사한 서비스로 계약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 상조 그대로’ 서비스를 연계해 소비자 권리를 최대한 보장할 방침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단독]中하이난 ‘천인갱’ 징용한인 유해, 귀향길 열린다

    [단독]中하이난 ‘천인갱’ 징용한인 유해, 귀향길 열린다

    韓기업 1995년 이후 유해 100여위 수습정부, 유전자 감식… 연내 中과 협의 추진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따른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관계가 최악에 이른 상황에서 정부가 일제강점기 중국 하이난섬에 끌려가 노역에 강제동원됐다 숨진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의 유해 봉환 작업을 본격 추진한다. 하이난성 싼야시 난딩촌에는 일제시대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집단 매장지 ‘천인갱’(千人坑)이 있는데, 이곳에는 1200구의 유골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1일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하이난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한 한국기업이 1995년 조선인 강제징용자 유골을 처음 수습한 이후 현재까지 100여위의 유해를 발굴해 추모관에 모시고 있다”며 “하이난 지역 강제징용 피해 신고 유족들과 발굴 유해의 유전자 감식을 통해 강제징용 여부를 확인한 후 국내로 봉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 때 하이난 지역을 침략한 일제는 1943년부터 경성형무소 등 전국 12곳에 수형된 조선인 2000여명을 ‘조선 보국대’라는 이름으로 탄광이나 비행장 건설 등에 강제동원했고, 이 중 1200여명이 일본군의 학대와 굶주림 등으로 사망해 이곳에 집단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인갱은 1995년 중국 하이난성 정부가 엮은 일제 피해자 구술집을 통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정부는 “천인갱 피해자 유족 신고 129건 중 사망·행방불명 62건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 중”이라며 “조선인 징용자들의 유골 매장지 보존 및 발굴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천인갱 유해 봉환 작업은 난관이 예상된다. 천인갱 지역은 1990년대 중반 한국의 중소기업이 망고 농사를 위해 중국 정부와 30년간 토지 임대 계약을 맺고 작업을 진행하던 중 우연히 천인갱을 발견한 뒤 일부 유골 수습 작업을 했지만, 지난 5년간 토지 사용료 등을 내지 못해 현장 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집단 매장 추정지 500여평을 국내 민간단체인 ㈔하이난천인갱희생자추모회가 20년 넘게 관리하고 있으나 최근 인근 부동산개발 바람 등에 따라 현장 훼손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올해 미국 측과 협의를 통해 태평양전쟁 격전지인 타라와섬에 강제동원돼 희생된 군무원 유해 봉환 작업을 위해 145개 유해 시료를 가져와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희생자 유족 183명의 유전자와 대조하고 있다. 행안부 황동준 강제동원희생자유해봉환과장은 “올해 안에 중국 정부와 천인갱 유해 국내 봉환 등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 협의를 추진할 예정”이라면서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의 유해를 국내에 모셔 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서 사회적 가치 실현에 최우선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서 사회적 가치 실현에 최우선

    글로벌 선도 타이어 기업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대표이사 조현범, 이하 한국타이어)가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사회적 가치 실현에 이바지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 공헌 및 환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1990년에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을 설립하여 적극적인 사회환원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기획∙운영 중이다. 특히 ‘행복을 향한 드라이빙’ 이라는 슬로건 아래 단순 기부를 넘어 전문 기술 등 사업 역량을 적극 활용한 진정성 있는 사회공헌활동으로 지역 사회와 아동청소년에게 행복의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타이어나눔재단의 대표 사회공헌 활동인 ‘차량 나눔’ 사업은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전국 사회복지기관에 차량을 지원하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매년 공모를 통해 최종 50개의 기관을 선정해 경차 각 1대씩을 전달한다. ‘타이어 나눔’ 사업은 전국 사회복지기관의 안전한 이동 환경을 위해 노후한 타이어를 교체해주는 활동이다. ‘차량 나눔’ 사업을 시작한 2008년부터 올해까지 12년 동안 전국 사회복지기관에 총 497대의 차량을 지원했으며, ‘타이어 나눔’ 사업을 통해 2010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총 2만여 개의 타이어를 지원했다. 또한 2016년부터 사회주택 공급 활성화와 사회적 취약계층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사단법인 나눔과미래에 출연하면서 국내 최초 민간 주도 사회주택사업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주거 취약계층도 부담 가능한 보다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단순 기부를 넘어 지속 및 확장 가능한 사회공헌 사업 모델로 기획됐다. 2016년 30억 원으로 시작된 기금은 2019년 현재 총 10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이와 함께 ‘틔움버스’ 사업을 통해 이동에 불편함을 겪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 기관에 45인승 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대 1박 2일 동안 45인승 버스와 버스 운행에 해당하는 모든 비용을 지원한다. 2013년부터 시작된 틔움버스 사업은 누적 총 2944대의 버스를 지원하여 약 10만여 명의 취약계층에 문화체험의 기회가 돌아갔으며, 매 체험마다 한국타이어의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동행 봉사로 더욱 의미 있는 활동이 되고 있다. 2014년 12월에는 국내 타이어 업계 최초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한국동그라미파트너스’를 설립했다. ‘한국동그라미파트너스’는 장애인들의 고용 창출과 함께 적합한 직무를 통한 자립과 자활의 기회를 제공하며, 대부분의 직원들이 지적장애 또는 시각, 청각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인들로 구성됐다. 직원들은 한국타이어의 사내복지업무를 위탁 받아 행정사무지원을 포함한 사내 카페테리아 운영, 근무복 세탁, 빵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담당하며 앞으로도 추가적인 직무 개발을 통해 장애인 고용의 질적 성장에도 힘쓸 예정이다. 한국타이어는 창의성, 진취적 도전정신을 중요시하는 특유의 기업 문화 기반으로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하고 활동하는 ‘동그라미 봉사단’도 운영하고 있다. 한국타이어 임직원은 모두 동그라미 봉사단으로 누구나 봉사 활동을 기획하여 참여할 수 있으며 벽화 그리기, 사회복지시설 일손 돕기, 홀몸어르신 반찬배달·말벗봉사 활동, 집수리 봉사활동, 헌혈캠페인, 청각장애 아동 소통체험, 다문화가정 아동 직업체험 등 지역 소외계층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참여하는 다양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매달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또한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으로 ‘연탄 나르기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인재들이 나눔과 상생의 가치에 대해 먼저 배울 수 있도록 연수 프로그램 중에서도 가장 먼저 진행된다. 매해 창립기념일에는 각 사업장에서 전사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해 78주년 창립기념일에는 본사, 한국테크노돔, 대전공장, 금상공장 등에서 총 16회 차에 걸쳐 서울과 대전, 금산 지역 아동센터에 기증하기 위한 ‘친환경 DIY 가구 제작’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1700억·日 261억·韓 21억원… 턱없는 예산에 더딘 해외 유해발굴

    美 1700억·日 261억·韓 21억원… 턱없는 예산에 더딘 해외 유해발굴

    美 “조국은 잊지 않아” 전담인력만 450명일제강점기 국외 전쟁터와 노역장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125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들 중 20만~6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광복 이후 올 6월까지 국내로 봉환된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는 총 1만 1069위에 불과하다. 대법원은 지난해 일본 기업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일제에 의해 일본군 해외 점령지 등으로 강제 동원됐다 희생된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의 유해 대부분을 국내로 봉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조금씩 속도를 내고 있다. 그동안 군인·군무원 중심으로 강제동원 피해자 유해 송환 작업을 벌여왔던 정부는 민간노무자까지 송환 대상에 포함시켰다. 유해 발굴 지역도 일본, 사할린 등지에서 태평양 격전지인 타라와섬이나 중국 하이난섬 등으로 확대하고 있다. 송환 작업도 정부 주도에서 민간단체와의 협력 등 투트랙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유해 발굴 및 송환에 걸림돌이 많다. 우선 유해 발굴 전문 인력 및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강제징용자 유해를 송환하는 정부 부서는 지난해 신설된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내 ‘강제동원희생자유해봉환과’(9명)가 유일하다. 올해 유해 봉환 관련 예산은 21억원에 불과하다. 내년에는 기획재정부에 27억원을 요청해 놓은 상태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유해 발굴 및 봉환사업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별도로 맡고 있다. 미국 정부의 경우 1973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에서 전사·실종된 미군 유해를 찾기 위해 전 세계를 샅샅이 훑고 있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 등을 모토로 내걸고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에서 전사자·실종자 유골 발굴·수습 봉환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지난해 관련 예산은 약 1700억원이며 전문인력만 450명에 이른다. 일본 정부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후생노동성 사회원호국을 중심으로 동남아, 남태평양의 일본군 전몰자 유골 수습에 본격 착수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2차 대전 당시 국외에서 전사한 군인, 군무원, 민간인 240만명 중 절반 정도인 127만여 위가 본국으로 송환됐다. 우리(1만 1069위)와 비교하면 유해 송환에 얼마나 적극적인지 알 수 있다. 2016년에는 유해 수습을 위해 ‘전몰자 유골수집 추진에 관한 법률’까지 제정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단독]中하이난 ‘천인갱’ 징용한인 유해, 귀향길 열린다

    [단독]中하이난 ‘천인갱’ 징용한인 유해, 귀향길 열린다

    韓기업 1995년 이후 유해 100여위 수습 정부, 유전자 감식… 연내 中과 협의 추진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따른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관계가 최악에 이른 상황에서 정부가 일제강점기 중국 하이난섬에 끌려가 노역에 강제동원됐다 숨진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의 유해 봉환 작업을 본격 추진한다. 하이난성 싼야시 난딩촌에는 일제시대 강제징용 조선인들의 집단 매장지 ‘천인갱’(千人坑)이 있는데, 이곳에는 1200구의 유골이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1일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하이난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한 한국기업이 1995년 조선인 강제징용자 유골을 처음 수습한 이후 현재까지 100여위의 유해를 발굴해 추모관에 모시고 있다”며 “하이난 지역 강제징용 피해 신고 유족들과 발굴 유해의 유전자 감식을 통해 강제징용 여부를 확인한 후 국내로 봉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평양전쟁 때 하이난 지역을 침략한 일제는 1943년부터 경성형무소 등 전국 12곳에 수형된 조선인 2000여명을 ‘조선 보국대’라는 이름으로 탄광이나 비행장 건설 등에 강제동원했고, 이 중 1200여명이 일본군의 학대와 굶주림 등으로 사망해 이곳에 집단 매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인갱은 1995년 중국 하이난성 정부가 엮은 일제 피해자 구술집을 통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정부는 “천인갱 피해자 유족 신고 129건 중 사망·행방불명 62건의 유전자 감식을 진행 중”이라며 “조선인 징용자들의 유골 매장지 보존 및 발굴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천인갱 유해 봉환 작업은 난관이 예상된다. 천인갱 지역은 1990년대 중반 한국의 중소기업이 망고 농사를 위해 중국 정부와 30년간 토지 임대 계약을 맺고 작업을 진행하던 중 우연히 천인갱을 발견한 뒤 일부 유골 수습 작업을 했지만, 지난 5년간 토지 사용료 등을 내지 못해 현장 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집단 매장 추정지 500여평을 국내 민간단체인 ㈔하이난천인갱희생자추모회가 20년 넘게 관리하고 있으나 최근 인근 부동산개발 바람 등에 따라 현장 훼손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올해 미국 측과 협의를 통해 태평양전쟁 격전지인 타라와섬에 강제동원돼 희생된 군무원 유해 봉환 작업을 위해 145개 유해 시료를 가져와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희생자 유족 183명의 유전자와 대조하고 있다. 행안부 황동준 강제동원희생자유해봉환과장은 “올해 안에 중국 정부와 천인갱 유해 국내 봉환 등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 협의를 추진할 예정”이라면서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의 유해를 국내에 모셔 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Focus人] ‘죽음 속 인권과 정의를 보다’ 유성호 법의학자

    [Focus人] ‘죽음 속 인권과 정의를 보다’ 유성호 법의학자

    “유병언을 처음 부검한 건 순천에 있는 병원 의사선생님이셨어요. 노숙자가 아니라 유병언이었다는 걸 시간이 한 참 지난 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알게 된 거예요. 국민들은 당시 유병언이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의심하는 상황이었잖아요. 관(官) 혼자서 처리하게 되면 뭔가 음모가 있다거나, 지금도 아마 죽지 않았다고 믿은 분들도 꽤나 있어요. 시신 자체가 엄청나게 부패했기 때문에 사망원인을 밝히지 못한 게 좀 아쉬웠지만 치아와 유전자 등 개인식별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의문과 의혹을 자신의 죽음으로 묻어버린 유병언. 그의 ‘확실한’ 죽음을 법의학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증언한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 이렇듯 전 국민적 관심이 모아진 유병언 사망사건, 선임병의 잔인한 폭행으로 사망한 28사단 윤일병에서부터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 속 결핵질환으로 쓰러져 간 어느 이름 모를 부검실의 시신까지, 법의학자로 살아오면서 그와 마주한 죽음은 자그마치 1500여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매주 월요일만 되면 시체를 만나러 가는 남자. 서울대 의과대학 4학년 때 스승이신 이윤성, 이정민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 법의학에 매료됐고 의학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인권, 정의라는 테마에 빠져들어 이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하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마주하고 누구보다 죽음을 깊이 성찰했던 그와의 만남을 정리했다.(Q) 법의학자가 된 계기서울대 의과대학 4학년 때 이윤성, 이정민 교수님의 강의를 듣던 중 매우 흥미있는 과목이라 느꼈고, 인권이라는 용어를 의학에선 좀처럼 듣기 어려운데 인권과 정의와 관련된 여러 강의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선택하게 됐죠. (Q) 얼마나 많은 시신을 부검했는지한 달에 보통 적을 때는 6건, 많을 때는 16건 정도 합니다. 지금까지 1500건 이상은 부검한 거 같습니다. (Q) 법의학자들의 인력난은 어떤지현업에 종사하시는 분이 40여명 정도다. 1년에 6000건이 넘는 부검을 하다보니까 한 사람당 거의 150건 가까이 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원래 인기 있는 직종은 아니지만 현재 사회에서 필요한 거에 비하면 굉장히 적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Q) 법의학자분들은 ‘한 버스에 함께 타지 않는다?’제주도 학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회가 끝나고 저녁 식사하기 위해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한 교수님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씀하셨는데 저도 인상에 깊이 남아서 책에도 썼다. ‘우리들이 한 버스에 타다 큰일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냐’라고 했을 때 웃을 수 만은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대변해 주는 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당시엔 우리나라 법의학자 분들이 30여명 정도밖에 안됐다. 지금도 여전히 한 버스로 움직일 수 있는 숫자라서 버스 숫자가 넘은 사람이 될 때가 언제일까 궁금하고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Q) 법의학자가 유난히 적은 이유요즘 직업을 선택할 때 워라밸, 급여, 서울(근무지) 이 세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저희 직업은 모두를 충족하지 못합니다. 급여는 임상 의사들에 비해서는 반도 안 되죠. 워라밸의 측면에선 ‘법의학이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부검을 주로 하니깐 응급이 없을 거다’라고 생각하는데 일이 상당히 고됩니다. 또한 대부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는데 지방 순한 근무가 있습니다. 좋은 직업이라고 추천할 만한 요소는 많지 않죠. (Q) 검안만 하는 법의학자도 있다는데검안은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서 해부를 하지 않고 체표면을 통해 사망원인, 사망시각 등을 추정하는 걸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1년에 8만 명 정도가 사망하는 데 그중에 변사가 3~4만 명이 됩니다. 저희 입장이야 모두 부검을 하고 사망원인을 밝히는 게 여러모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면도 있고요. 그럴 때 검안하는 의사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법의학에 계시다가 퇴직하시는 분들이 검안을 하게 됩니다. (Q)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는지사망 후 형태학적으로도 검사를 통해 알아낼 수 없는 질병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른 걸 모두 배제하는 방법을 씁니다. 소거를 하는 거죠. 외인사인지 아닌지에 따라 경찰의 수사의 지속성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외인사를 제거하고 나면 그 다음은 질병에 대한 건데요. 질병도 통계청에 넘어가기 때문에 중요하게 밝혀야 합니다. 부정맥 같은 경우는 모든 질병을 다 소거하고 남은 카테고리 안에서 저희가 임상적으로 판단하게 되는 거죠.(Q) ‘목욕탕 익사’ 관련 논문도 썼는데목욕탕에서 목욕하다가 돌아가시는 노인들이 많아요. 목욕 중 익사인지 아니면 심장질환이나 뇌혈관 질환 때문에 사망한 건지 부검을 했을 경우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만일 사망원인이 밝혀지지 않으면 보험 분쟁이 됩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물을 흡입하지 않았다. 심장질환이 발생해서 돌아가셨고 마침 그 장소가 물이 있었기 때문에 떠오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목욕탕에서 돌아가셨으니깐 당연히 익사가 되지 않느냐’라고 할 수 있는 거죠. 만일 익사로 돌아가신 게 증명되면 이건 상해사망, 재해사망이라고 부르는 카테고리에 속하게 됩니다. 질병과 상해는 보험금의 차이가 매우 큽니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당연히 높은 보험금을 받길 원하는 거죠. (Q) 부검할 때의 마음가짐‘이분이 사람이었고 지금도 사람이라는 거, 나와 같은 인간이었다’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사실을 따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분이라고 해서 그분이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고요. 다만 저는 그분의 사망원인과 사망종류를 밝혀줄 제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신이니깐 무섭다거나 피하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을 전혀 들지 않습니다. (Q) 2014년 윤일병 폭행 사건도 맡았는데당시 KBS 윤진 기자가 사건을 발굴해 가져왔고 단지 의학적인 판단을 제공했을 뿐이다. 처음엔 가해자들이, 음식물 먹고 있던 윤일병의 뒤통수를 쳤는데 캑캑거리며 질식사 했다고 했죠. 하지만 부검을 통해 비장이 파열될 정도의 잔인한 폭행과 출혈이 있었고 그로인해 사망한 건데 그 사실이 숨겨질 뻔 했던 거죠. 결국 기소를 다시 하게 되고 살인으로 판단하게 된 거죠. 마음속으로는 처음 이윤성 교수님의 강의에서 들었던 인권, 정의 이런 게 실현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속으로 뿌듯함이 있었죠. 세종대왕이 편찬하신 ‘무언록(無寃錄)’의 말처럼 원한을 없게 하는, 그게 바로 유족에게 드릴 수 있는 작은 위로 그리고 고인한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정의실현,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Q) 꽃피는 봄이 오면 더 바쁜 이유는보통 시신은 물에 빠지면 20~30%는 바로 떠올라요. 간혹 입고 있던 옷의 상태 등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가라앉게 되는 경우에는 부패하지 않으면 좀처럼 떠오르지 않게 돼요. 하지만 봄이 오고 따뜻해지면 부패가 진행되면서 시신이 떠오르죠. 어느 날은 익사로 사망해 떠오르게 된 부패가 다 진행된 시신들을 네 건이나 부검한 적도 있고요. (Q) 부검을 통해 시신의 과거모습을 느낄 수 있는지시신의 안쪽 장기를 보게 되면 ‘아, 이분이 어떻게 사셨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요즘엔 결핵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지 않지만, 생활형편이 어려운 지역에 계셨던 분을 보다 보면 결핵으로 사망한 경우도 있어요. 약복용과 치료를 잘 받았다면 그런 불행한 일을 겪지 않았겠죠. 폐기종이 많은 분들을 보면 ‘아, 정말 담배를 많이 피셨구나’라고 느끼죠. 임상 의사들은 초음파나 CT 등을 통해서 간을 보지만 저는 실물을 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Q) 기억에 남는 유서가 있다면단지 시신만을 보고 알 수 있는 게 한정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료의 해석에 있어서 경찰이 처음에 수집한 모든 상황들을 같이 공유합니다. 유서를 보게 되는 이유죠. 많은 분들은 유서라고 하면 제갈량의 출사표처럼 길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유서는 점점 짧아집니다. 본인의 죽음을 통해서 가족분들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제일 많습니다. ‘어렸을 때 때려서 미안하다. 살기 힘들어서 그랬다‘라고 아이에게 남기는 유서도 있고, ‘단골가게에 외상이 있는데 장례 치르고 남은 돈으로 갚아 달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고 여러 가지의 유서 형태를 보게 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Q) 죽음을 통해 느낀 나름의 성찰이 있다면처음에 법의학을 공부하고 부검을 하게 되면 가장 무서운 건, ‘자신이 갑자기 죽게 된다면…’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오래 흘러가다보면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역설적으로 그런 죽음을 오래 경험하다보면 ‘현재의 유한한 나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라고 많이 느끼게 돼요. 많은 분들은 법의학자 만나면 재밌고 미스터리한 사건 얘기해달라고 하는데, 사실 그런 건 기억에 잘 남지 않습니다. (Q) 부검 중 눈물 흘린 이유의정부 한 아파트에서 어떤 여성분이 돌아가셨는데 아이를 끌어안고 화상을 입은채로 발견돼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돌아가셨어요. 그 분 자신도 보육원에서 입양과 파양을 겪으면서 홀로 외롭게 자라왔죠.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미혼모로서 아이를 홀로 키우다 뜻하지 않는 사고를 당하게 된 거죠. 그 분 한쪽 눈가 끝에 눈물이 말라 붙어 있는 걸 보고 돌아가시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에 마음이 많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Q) 인간의 악함에 분노했던 부검 사례가 있다면굉장히 놀란 사건이었어요. 여성이 147번을 칼에 찔렸습니다. 이별 통보받은 남성이 격분해서 찌른 건데 그땐 굉장히 마음이 우울했어요. 잔혹한 것도 잔혹한 거지만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랬을까, 그것도 한 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서. 인간의 악함에 분노했던 기억이 납니다. (Q) 부검은 중요한 국가적 과제어떤 사람의 형법적 정의, 인권이라는 면에서 굉장히 중요하고요. 또 하나는 국가가 세금을 걷어서 제대로 쓰려면 국민의 인생 마지막 과정인 죽음에 있어서 실제로 어떤 과정에 의해서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돼요. ‘자살이 많다’면 당연히 그쪽을 예방하기 위해 국가 세금 써야 합니다. 그런 것에 근간이 되는 게 사망원인의 규명이죠. 부검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진 않지만 법의학자가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줘야 그 사회가 형법적 정의는 물론 국가의 세금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그리고 그걸 통해서 국민의 수명이 더 늘어나고 기대여명이 더 늘어날 수 있게 되는 거죠. (Q)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저는 직업 때문에 당연히 죽음을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시나리오도 여러 개 생각해 봤고요. 안타깝지만 현대사회에서의 죽음은 사실 의사에 의해서 좌우될 때가 많아요. 정신없이 뭔가를 진단받고 치료에 전념하다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나 주변에 본인이 남기고 싶은 죽음에 대한, 죽음을 통해서 얻은 자신만의 성숙한 고찰 등을 전혀 남기지 못하고 그냥 갈때가 많아요. 내가 뭘 원했는지 뭘 안 원했는지를 명확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죽음에 대한 준비, 거창하게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를 준비하는 게 진정한 죽음의 준비가 아닐까요. (Q) 앞으로의 계획법의학자가 된 후 살아온 삶보다 앞으로 법의학자로서 살아야 할 삶이 더 길다고 생각해요. 쓰고 싶은 주제의 논문도 많고요. 리서치와 실험 등 해야 할 게 많아서 차근차근 준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위고·크리스티… 작가판 사랑과 전쟁

    위고·크리스티… 작가판 사랑과 전쟁

    미친 사랑의 서/섀넌 매케나 슈미트·조니 렌던 지음/허형은 옮김/문학동네/416쪽/1만 5800원 #1. 1926년 12월 한 유명 추리소설가가 자신의 소설 속 미스터리한 사건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영국 전역이 난리가 난 가운데, 알고 보니 그녀는 한 고급 호텔에 머물며 태연자약하게 쇼핑과 스파를 즐기고 있었다. 호텔 직원의 제보로 발견된 그녀는 실종 기간 남편의 내연녀 이름으로 호텔에 투숙했다. #2. 한 대문호에게 50년 동안 2만여통의 연서를 보낸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그녀가 쓴 구절을 그가 고대로 베껴 다른 연애 상대에게 보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 1번의 주인공은 애거사 크리스티, 2번은 빅토르 위고다. 이 미친 ‘작가판 사랑과 전쟁’은 놀랍게도 모두 실화다. 책 ‘미친 사랑의 서’는 각각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 ‘더 라이터’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해 온 저널리스트 섀넌 매케나 슈미트와 조니 렌던의 집요한 취재 결과물이다. 출전과 참고문헌만 38쪽에 달하는데,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꼼꼼하게 고증했다는 얘기다. 작가들의 러브 스토리에서 삼각관계, 사각관계, 불륜은 애교 수준이다. 55세 차이가 나는 연상연하 커플(아서 밀러), 이중 결혼(아나이스 닌), 부인의 등에 실제로 칼을 꽂은 남편(노먼 메일러), 근친상간(바이런·아나이스 닌) 등이 속출한다. “결과가 어찌 되건 일단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은 그만한 가치가 있지”라고 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사연에는 ‘남자가 한을 품으면’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헤밍웨이는 몇 년을 주기로 배우자 교체를 밥 먹듯이 하다가 마침내 자신보다 더 활화산 같은 열정을 가진 저널리스트를 만나 그녀를 집에 눌러앉히려 갖은 술수를 부린다. 책은 어설픈 연애 지상주의나 정신 이상 예술가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책의 미덕은 이들의 ‘미친 사랑’이 작품에 어떻게 투영됐는가를 보여 주는 데 있다. 첫날 밤 탈장 증상이 온 신랑과 생리가 터진 신부의 ‘황무지’ 같은 결혼 생활은 T S 엘리엇의 대표작 ‘황무지’가 됐다. 책을 책임편집한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은 “책 덮고 나면 언급된 문호들의 작품을 찾아보고 싶어진다”며 “치정으로 범벅이 된 연애사, 난투극에 가까운 결혼 생활 후 작가들은 그 지질한 일상에서 스스로를 건져 내 작품으로 승화시켰다”고 했다. 대문호의 사랑에서 모종의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또는 작품으로 옛 연인에게 복수한 치졸한 그들을 맘껏 욕해도 좋을 것이다. 김훈 작가는 이 책더러 ‘40금(禁)’이라고 했단다. 지독하다, 이 책.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사설] 일본 방사능 오염수 방류는 인류에 대한 범죄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에 쌓여 있는 고준위 방사능 오염수 100만t 이상을 바다로 흘려보낼 계획을 추진하는 모양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원자력 전문가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이 사실을 기고문으로 공개하자 국제사회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무슨 꿍꿍이 속인지 일본은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태평양 연안 국가들은 방사능 오염에 무방비 노출될 수밖에 없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수가 유출된 사례는 이미 여럿이다. 사고가 나던 해에 고준위 오염수와 저준위 오염수가 유출됐고, 2014년에도 저장 탱크에서 300t이나 방류됐다. 사고 당시 녹아내린 핵연료를 물로 냉각시키는 과정에서 생긴 오염수에 지하수 등이 섞여 계속 불어나고 있으니 이런 꼼수로 처리한 것이다. 오염수 방출 사실이 몇 년씩 흐른 뒤에야 밝혀져 국제 환경단체들은 경악했다. 그런데도 또 방출할 심산이라니 도무지 묵과할 수 없는 문제다.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가 얼마나 바다로 흘러나가는지는 현재 알 길이 없다. 방사능 수치를 기준 이하로 떨어뜨려 정화 처리를 한다고 한들 오염수가 해양 생태계에 치명상을 입힐 것은 분명하다. 처리가 손쉽고 비용이 저렴하다고 치명적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일본 정부 차원의 국제 범죄나 다를 게 없다. 8000㎞나 떨어진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위험성에 지금까지도 기겁하는 나라가 누구도 아닌 일본이다. 참으로 이율배반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정부는 2021년 이후로는 더이상 저장 탱크를 증설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체 어쩌겠다는 것인지 일본 정부는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년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국제 환경단체 등의 비판을 달게 받아야 할 것이다.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2회]‘양승태 독대’ 김앤장 변호사의 ASMR “비밀유지 해야···”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22회]‘양승태 독대’ 김앤장 변호사의 ASMR “비밀유지 해야···”

    양승태 전 대법원장 21차 공판 지상중계김앤장 전관 출신 중심으로 청와대·사법부 소통전범기업과 논의 공개는 “변호사 윤리 위반” 과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판사 출신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을 만나기 위해 대법관 사무실과 대법원장 사무실을 들락거렸다. 서울 강남의 고급 호텔 식당에서 자주 만나 식사도 했다. 자신이 소송 대리를 맡은 대법원 사건에 대해 서슴지 않고 양 전 대법원장에게 궁금점과 의견을 말했다. 오랜 친분이 있었고 만나서 “사담을 나눈 것”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사실상 로펌과 법원의 창구 같은 역할을 했다. 그가 속한 로펌에서는 판사 출신은 물론 고위 관료를 지낸 ‘전관’들로 구성된 대응팀을 만들었다. 서울대, 전관, 김앤장 법률사무소. 이 공통점을 가진 이들이 모이니 정부와 사법부가 움직였다.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21회 공판에는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한상호 김앤장 변호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그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재판에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변호사는 특히 양 전 대법원장과 독대해 강제징용 사건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지목돼 더욱 주목을 받았다. 한 변호사가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연수원 네 기수 후배이고 같은 판사 출신에 1994년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근무한 경력도 있어 매우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날 오전 10시 8분쯤,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법정에 들어선 한 변호사는 증인석에 앉자마자 특이한 모습을 보였다. 들릴 듯 말 듯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려 재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의 방청석에서는 도무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강제징용 사건의 핵심 증인으로 꼽히는 한 변호사의 출석으로 휴정기에도 절반 가까이 찬 방청석에 있던 모든 이들이 법정 앞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법정 경위가 한 변호사의 앞에 놓인 마이크를 그의 입에 더 가까이 대기도 하고, 증인석 스피커의 볼륨을 키우느라 왔다갔다 분주했다. ●김앤장 변호사, 전범기업과의 논의 내용 묻자 “변호사윤리장전 어긋나” “변호사가···의사교환에 대해 ···”, “제시된···윤리장전···의사교환 내용들을···없습니다” 검찰이 김앤장을 압수수색하면서 확보한 한 변호사 작성의 메모나 문건들에 대해 진정성립 절차를 갖고 본인이 작성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자 한 변호사는 연신 이렇게 답했다. 그가 증언을 거부한 메모나 문건들은 신일철주금과 논의한 내용들이었다. 의뢰인과 주고받은 내용을 밝히는 것은 변호사의 비밀준수 의무를 어기는 것이라 문제가 된다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2015년 9월 8일자 한 변호사의 메모를 검찰이 제시하며 직접 작성한 것이 맞는 지 묻자 증언을 거부했다. 검찰이 “그럼 이 메모에 있는 필적이 증인의 필적이 맞는가”라고도 바꿔 물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검찰은 “양승태 피고인의 변호인 의견서를 보면 한상호 증인을 비롯한 김앤장 관계자 증언에 대해 이들의 증언이 업무상 비밀누설죄로 형사처벌받거나 변호사윤리장전에 따른 윤리규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징계사유가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면서 “그러나 증인으로서의 진술은 공익성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정상이고 증언거부권을 증인의 권리여서 기밀누설죄가 성립이 안 돼 업무상 기밀누설이라는 이유로 증인이 작성한 메모에 대한 진정성립을 따지고 있는데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정당한 사유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증인의 증언을 통해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매우 중요한 공익상의 법익이 지켜질 수 있도록 소송 지휘를 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한 변호사를 가운데 두고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의 공방이 몇 차례 오가다 재판부가 3분 휴정을 한 뒤 “증인의 필적이 맞냐는 질문에 대해선 증인의 증언거부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냈다. 한 변호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실 발견을 위해 감사드리고···저도 계속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만···말씀드렸다시피···(변호사)윤리장전에 해당돼···많은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필적은 제 필적이 맞습니다.” 그러면서 거듭 강조했다. “저는 재판에 협조하러 나온 사람입니다.” 그나마 자신의 ‘클라이언트’인 신일철주금과의 논의 과정을 제외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작은 목소리로나마 답변했다. 양 전 대법원장과의 대화 내용이나 양 전 대법원장의 의견 등 이른바 ‘재판 거래’와 관련된 혐의와 직결될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지만 그의 희미한 기억과 목소리로도 일제 강제징용 사건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사법부의 움직임, 그리고 전범기업 소송 대리를 맡은 김앤장의 대응과정이 다시 확인됐다. 한 변호사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의 질문과 그의 답변을 토대로 재구성해봤다. ●양승태 “강제징용 왜 소부에서 선고했는지” 불만 드러내 2012년 5월 24일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가 1·2심 모두 패소로 결론났던 강제징용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선고 이틀 뒤인 26일 오전 김앤장은 대책회의를 열었다. 김영무 대표와 한 변호사, 김용갑·권오창·조귀장 변호사 등이 모였고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도 참석했다. 올해 5월 14일 윤 전 장관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농단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대책회의에 참석했다고 밝히며 “특별한 자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반면 이날 한 변호사는 “잘 생각이 안 난다”며 참석 사실조차 밝히지 않았다. 회의를 통해 한 변호사는 재상고심까지 신일철주금 측 소송 대리를 맡기로 했다. 그해 9월 양 전 대법원장이 취임하기 전에도 한 변호사는 대법관 사무실에서 양 전 대법원장을 만났고, 대법원장 취임 이후에는 사무실과 서울 서초구의 한 호텔 식당에서 자주 만났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증인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파기환송이 선고된 날로부터 양승태 피고인이 대법원장인 시절에 15번 정도 만난 것으로 보이는데 만났을 때 나눈 이야기가 모두 기억나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2013년 3월, 두 사람이 식당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김능환 전 대법관의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 김 전 대법관이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서 퇴직한 뒤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보도들이 나오며 화제가 됐다. 김 전 대법관의 근황에 대해 얘기하다 한 변호사가 “강제징용 사건이 (파기환송으로) 선고될 때 알고 계셨냐”고 물었다. 그러자 양 전 대법원장이 “주심인 김 전 대법관이 귀띔도 안 해줬다”면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을 전원합의체가 아닌 소부에서 선고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한 변호사는 “(2012년) 강제징용 판결은 선례에도 어긋나고 한일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한일청구권 협정을 뒤집는 것”이라는 의견도 슬쩍 내밀었다. 다만 검찰이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적정성에 대한 대화도 있었느냐”고 묻자 한 변호사는 “직접적으로 적정 여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눈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5년 5월엔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임 전 차장으로부터 재상고심과 관련해 연락이 왔다. “새로 제출된 증거를 근거로 소부에서 처리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원칙적으로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하기로 했다. 남은 대법관들을 설득하기 위해 외교부 의견서가 필요하니 김앤장에서 법무부와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내달라”는 요청이었다고 검찰은 파악했다. 한 변호사는 “정확히 기억 못하겠다”며 답을 피했다. 검찰이 제시한 한 변호사가 듣고 전달해 김앤장에서 작성된 문건에는 ‘5/14 법원 동향. 기조실장과 (외교부) 법률국장이 직접 만났음. 기조실장은 외교부 의견서 꼭 있어야 한다는 입장 vs 대국제법률국장은 대법원의 정식 요청이 있어야 제출가능하다는 입장. 대법원은 새 증거 근거로 파기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원칙대로 전합이 회부키로 함’ 한 변호사는 임 전 차장에게 이 같은 내용을 들었다고 말했다. ●임종헌, 김앤장 변호사에 “의견서 내달라” 요청 후 절차 상의 같은 문건에는 ‘5/18 법원 동향. 기조실장 왈 협의 완료됐다. 민사소송규칙은 언급 안 할 예정’이라고도 적혔다. 그리고 한 변호사는 당시 임 전 차장에게 “재상고 사건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검찰이 “재판과는 관계가 없는 임종헌 기조실장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논의 끝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양승태 피고인의 결심이 있었다고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한 변호사는 “전원합의체 말씀을 한 건 (대법원장의 결심이) 어느정도 감안됐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대법원장은 13명의 대법관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이기도 하다. 검찰은 임 전 차장에게 이러한 의견서를 받았다고 양 전 대법원장에게 말했는지 물었지만 한 변호사는 “사적인 만남이었기 때문에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렸다. 검찰 조사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전달했다고 말했다며 거듭 질문하자 “(김능환) 전 대법관 말씀이 나왔을 때 이 사건에 대한 말씀을 드렸고 그런 차원에서 임 실장님께 제안을 받았기 때문에 알려드린다는 취지에서 말씀드렸다”고 했다. 그 뒤에도 한 변호사는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과 대화를 나눴냐는 질문에 재차 “그래서 만난 것은 아니다. 꼭 그렇지 않다. 오가며 사적인 자리에서 말씀은 드리려고, 관심이 있으신지 물어보고 그런 정도였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후 의견서를 내는 문제를 두고 임 전 차장과는 계속해서 의견을 나누었다고 설명했다. 전범기업 측 소송 대리를 맡은 김앤장에서는 기존 송무팀과 별도의 대응팀이 꾸려졌다. 한 변호사와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현홍주 전 주미대사, 최건호·조귀장 변호사가 포함됐다. 대응팀은 ‘새로운 차원의 접근’을 시도하기로 했다. 정부, 특히 2012년 파기환송 판결이 한일청구권 협정에 반한다고 판단해 반감이 큰 외교부의 입장을 근거로 대법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설득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양 전 대법원장 등 법원과 원활한 소통이 되는 한 변호사에게도 역할이 요구됐다. 대응팀은 정부와 청와대, 사법부 등 전방위적으로 정보를 취합했고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유 전 장관은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 학자, 전·현직 관료들이 모인 ‘한일 현인회의’를 주도하며 일본의 아베 총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번갈아 만나며 강제징용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전관 출신 ‘김앤장 대응팀’ 전방위 로비… ‘외교부 움직여 대법원 설득’ 시도 2014년 11월쯤 현 전 대사가 유 전 장관과 한 변호사를 불러 청와대의 입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강제징용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무총리가 보고를 했고, 대통령이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법원에 직접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는 설명이었다. 청와대와 정부가 모두 같은 의견임을 확인한 김앤장은 이들과 더욱 활발히 소통했다. 현 전 대사와 유 전 장관의 대화내용이 담긴 메모 ‘10월 11일 유명환 식사, 대통령 주재 회동. 연말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확인. 신영철 전 대법관 유 장관 법과 대학 동기. 12년 판결 문제 있다. 주한 일본대사관 고바야시 검사’에는 특히 ‘※법무부로부터 들었는데 연말에 전합으로 하기로. 적어도 올해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일(2015년 6월 22일) 전에 선고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검찰이 이 같은 정보를 2014년 11월 13일 접하고 일본 관계자에게 상황을 보고했냐고 물었지만 한 변호사는 “오전에 말씀드렸듯 의사교환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김앤장 조귀장 변호사가 미쓰비시 관계자와 통화한 내용을 정리한 문건이 있다며 질문을 계속했다. ‘※클라이언트 반응. 대법원 심사숙고. 매스컴, 식자층 등 반성 여론으로 재상고심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음. 다만 대법원이 기존 판결을 바꾸려는 노력은 계기가 부여돼야 가능성 높아짐. 청구권 협정의 일방 당사자인 한국 정부의 긍정적 입장 표명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음. 지금까지는 준비서면 등으로 법률적 주장을 했으나 외교부 등 외부에서도 대법원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게 무르익었음’이라는 문건 속 문장들이 읽혔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증인이 증언거부 하고 있는 내용을 왜 밝히느냐”며 항의했다. ●양승태 직접적인 입장이나 재판거래 혐의는 “기억 안 나” 함구 이날 검찰로부터 제시된 한 변호사가 작성한 메모들에는 이런 내용들도 있었다. ‘(2015년 11월) 지난 토요일 조 차관(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과 미팅. 대법원과 커뮤니케이션 문제 없나. 혼네(本音·본심에서 우러나온 말)로 문제 없다. 지난번 장관 미팅 때 10월 30일 전후로 추진. 한일 정상회담 OK, 개각 전에 해야 하지 않겠나? 외교부가 먼저하는 게 좋겠다. 대법원이 조심스러워진 건가? 윤 장관이 VIP(대통령)와 논의해야’(한 변호사가 작성한 메모) ‘(2015년) 11월 17일 곽병훈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 전화. 외교부, 위안부 문제 진전 전까지 곤란하다. 대법원이 이니셔티브(주도권)을 쥐고 먼저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유명환, 대법원 시작하면 외교부는 따라올 것으로 예상. 대법원 외교부 설득해 진행되도록’(한 변호사가 곽 전 비서관과 통화한 내용을 적은 메모) ‘곽 프로(곽 전 비서관) 오찬. 곽 부장도 조심스런 반응. 위안부 문제도 있는데 이 시점에 꺼내든다는 게 헌법재판소 사건에 제출된 의견서 언급하며 외교부 초안, 헌재 의견서 보완 방안 언급하니 좋은 아이디어라는 반응. 늦어질 가능성 대비 필요’(한 변호사 작성 메모) ‘외교부 장관→BH(청와대) 실장→외교안보·민정수석→법원행정처→대법원’ (한 변호사 작성 메모 ※본인의 상상을 적은 것이라고 주장) “증인은 양승태 피고인을 만난 자리에서 외교부가 (의견서 제출 등 소송 대응에) 소극적이라 걱정이라 말했더니 양승태 피고인이 ‘외교부 요청으로 시작된 일인데 외교부가 절차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느냐”고도 검찰은 물었다. 한 변호사는 “거기에 대한 공감을 표시한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제가 자신은 없지만 그런 취지로 답한 것 같기도 하고. 정확하지 않지만 사적 대화를 하다가 재판에 대해 가볍게 말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사적인 대화, 가벼운 언급으로 강제징용 사건은 피고 측 대리인과 대법원장 사이에 지속적으로 대화가 오갔다. 그 사이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가 김앤장과 소통했고, 김앤장은 정부와 청와대, 일본으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얻어 대응했다. 재상고심이 결과가 나오는 데만 6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과정에는 이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6년 9월 대법원은 민형사 소송규칙 개정안을 시행해 판사가 변호사 등 소송 관계인과 법정 밖에서 만나거나 전화 변론을 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임기 내내 전관예우 근절을 강조하며 법관들에게 경계를 강조했다. 한 변호사는 다음달 18일 다시 법정에 나오게 된다. 증인신문이 길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재판부가 한 기일 더 부르기로 하고 재판을 서둘러 마친 이유에서다. 한 변호사는 건강 문제로 9월 초에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한다며 추석 연휴 뒤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증인들이 말하는 모든 사정을 고려해주면 향후 재판 진행이 제대로 될지 의문스럽고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항의의 뜻을 밝혔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일본 정부 여러번 사과”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밀가루 투척당해

    “일본 정부 여러번 사과”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밀가루 투척당해

    소녀상 옆에서 또 기자회견…“문 대통령 하야”한 남성이 밀가루 투척했지만 경찰 제지로 모면“없애버리겠다” 주옥순 대표 밀친 시민은 연행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사죄한다”는 발언으로 도마에 오른 주옥순 엄마부대봉사단 대표 등이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밀가루 투척을 당했다. 8일 오전 11시 35분쯤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주옥순 대표 등 엄마부대 회원들이 ‘한일관계 회복을 위한 제5차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중 몇몇 시민이 야유를 보냈다. ‘일장기 든 토착왜구 태극기모독단! 척결’이라고 쓴 피켓을 든 남성은 “감히 보수라니, 보수의 뜻도, 가치도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라며 엄마부대를 향해 외쳤다. 이 남성은 경찰에 둘러싸여 있던 주옥순 대표를 발견하고선 밀가루 봉지를 던졌다. 그러나 경찰이 이들을 각각 에워싸고 간격을 떨어뜨려 놓으면서 주옥순 대표는 밀가루에 맞진 않았다.이어 또 다른 남성이 주옥순 대표를 향해 “오늘 너를 없애버리겠다”고 달려들었다. 경찰의 제지를 받은 이 남성은 “적보다 내부의 적 한 명이 더 무섭다. 일본 언론이 이걸 이용해 우리를 공격하는데 놔둬야 하나? 못하게 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이 남성은 주옥순 대표를 밀친 혐의로 현장에서 경찰에 연행됐다. 예정된 시각보다 20분을 넘겨 시작된 기자회견에서 주옥순 대표를 비롯한 엄마부대 회원 10여명은 “문재인 정권이 먼저 한일 청구권 협정을 어겼다”면서 “문 대통령은 일본에 사과하고 하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문재인 (정권)은 어렵게 도출한 종군위안부 관련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미 배상이 끝난 1965년 협정을 뒤집었다. 이것은 일본에 대한 고의적 도발 행위”라고 주장했다. 주 대표는 “과거에 일본이 침략한 건 잘못됐지만 과거에 매여 언제까지 일본과 싸우냐”면서 “북한 미사일, 중국의 기술 도용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고 왜 일본만 갖고 그러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지금껏 여러 번 사과해왔다”면서 “문재인(정부)은 국가간 신뢰를 저버렸기에 일본 정부에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기자회견을 또 소녀상 옆에서 하는 이유를 묻자 주옥순 대표는 “소녀상 옆에서 하면 어떠냐”면서 “일본이 너무 강경하게 나오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화해를 시키기 위해서 이곳에서 하고 있다”고 답했다. 주옥순 대표는 지난 1일 같은 곳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베 수상님, 저희 지도자가 무력해서, 무지해서 한일 관계의 모든 것을 파기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이러한 발언 등으로 주옥순 대표는 일부 시민들에 의해 국가보안법 위반·여적(與敵) 등 혐의로 전날 검찰에 고발됐다. ‘자유한국당국민고발인단’ 회원 1752명은 7일 “주옥순 대표와 엄마부대 회원 16명을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찬양·고무, 형법상 여적 혐의를 적시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피고발인들은 엄마부대 등 반국가단체를 조직하고 모든 법과 원칙에 반하는 일본의 아베를 찬양하거나 문재인 대통령을 비방하는 등 허위사실을 선전·선동함으로써 반국가적 위법행위를 하고 있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한남대교 아래서 피한 소나기 잊지 못할 한강변에서의 추억

    [흥미진진 견문기] 한남대교 아래서 피한 소나기 잊지 못할 한강변에서의 추억

    오후 6시 압구정역에서 모였다. 동호대교에서 반포대교까지 한강변을 걷는 투어였다. 아직 태양은 한강 수면의 두 뼘 높이에서 작열하며 강물에 붉은 물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전철이 지나는 동호대교 아래에서 옛사람들은 한강을 강이 아니라 동호·서호·남호 등 3개 호수로 나눠 부르면서 풍류를 즐겼다는 해설 사이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천둥소리였다. 왼편에 잠원지구의 초록나무와 잔디, 오른편에 푸른 강물을 두고 한남대교를 향해 걸었다. 한강 물빛은 날과 시간에 따라 같을 때가 없다고 하는데, 회색 강물 빛이 지루하다며 잔디 쪽으로만 시선을 주는 분들도 있었다. 갑자기 후드득후드득 소나기가 내렸다. 빠른 걸음으로 비를 피할 수 있는 한남대교 아래까지 걸었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즐기던 열 가지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가 한남대교 근처에 있었다던 제천정에서 하는 달구경이었다고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실눈썹같이 가느다란 초승달이 떠 있었다. 조선시대 즐겼다는 보름달은 아니었지만 새초롬하니 마음을 간질이는 매력이 있었다. 오후 7시 30분 반포대교에서 20m 아래 한강으로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190개 경관조명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물줄기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달빛무지개분수는 2008년 영국 세계기네스협회에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분수’로 등재됐다고 한다. 한강 물이 굽이쳐 흐른다고 서릿개라고 했다가 한자 표기가 바뀌어 반포로 불리는 반포지구에 다다르자 태양은 사라지고 주변이 캄캄해졌다. 한강 건너 노란 불빛이 긴 띠를 이루고, 환하게 빛을 밝힌 한강유람선은 강물에 황금빛무리를 만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모두 50여개 노선을 운영하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대한 해설을 마지막으로 투어를 마쳤다. 한강은 차로 지나며 멀리만 바라보던 곳이었다. 햇빛과 달빛, 물빛과 풀빛, 한강변의 불빛까지 빛의 향연이었고, 어느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시구처럼 한강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경험이었다. 이소영(동화작가)
  • 강남시대를 연 제3한강교… 서울의 생명줄이 흐른다

    강남시대를 연 제3한강교… 서울의 생명줄이 흐른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5회 한강 밤마실(동호에서 반포까지)’ 편이 지난 3일 한강공원 잠원 및 반포지구에서 열렸다. 장마와 불볕더위를 피해 오후 6시부터 진행하는 혹서기 야간투어 프로그램의 두 번째 순서였다. 폭염과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도 40여명의 참석자는 압구정역 6번 출구에 어김없이 집결했다.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어서 집결 장소를 지하역사 안으로 변경한 데다 3호선 전철이 신호장애로 연착해 일부 참가자가 지각하는 소동이 빚어졌지만 무사히 함께 모여 출발할 수 있었다. 투어는 압구정 현대백화점과 동호대교 사이 육교를 타고 올라가 동호대교 아래에 이르는 아슬아슬한 다리 체험으로 시작됐다. 동호대교~한남대교를 거쳐 반포대교와 잠수교로 이어지는 야경을 바라봤다. 달빛무지개분수쇼는 장관이었다. 한강공원 잠원~반포지구에서 강 건너 남산과 한남동 일대에 펼쳐진 한강 북쪽의 경관을 즐겼다. 해설을 맡은 이준섭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강과 한강다리에 얽힌 스토리를 꼼꼼하게 짚었다. 사전에 보내 준 답사노트는 호평을 받았다.서울 강북 사대문 안이 ‘조선의 수도’였다면 강남은 ‘대한민국의 수도’라고 말할 수 있다. 제3한강교(한남대교)는 강남 탄생을 알린 기념비적인 다리다. 1969년 12월 25일 이 다리가 준공되면서 서울의 폭발적 확장을 예고했다. 제3한강교는 경부고속도로·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함께 강남시대를 연 ‘삼총사’였다. 1985년 한남대교로 이름을 바꾼 이 다리는 본래 한강대교라고 명명해야 옳았다. 다리가 놓인 조선시대 나루가 한강나루~새말나루(사평나루) 구간의 한강진(한강나루)이기 때문이다. 한강나루는 조선시대 한강에 있던 20여개의 나루 중 ‘서열 1위’였다. 1900년에 건립된 인천~서울역 간 한강철교와 1917년 일제 경제 침탈용으로 지어진 제1한강교(한강대교)가 이름을 선점하는 바람에 쪼그라들었다. 왜곡된 지명의 역사를 다시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면 한강대교는 노량대교, 한남대교는 한강대교라고 제 이름을 찾아 줘야 한다.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신사동을 연결하는 한남대교는 지금도 한강의 모든 다리 중 하루 평균 자동차 통행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한남대교 남단 새말나루는 한양과 삼남(충청·전라·경상)지방을 연결하는 선상에 위치한 수상과 육상의 교통 요충지였다. 고산자 김정호의 ‘경조5부도’를 보면 한양의 각 나루에서 삼남지방으로 이어지는 여러 길 중 도성에서 강남을 거쳐 용인으로 통하는 길은 두 갈래였다. 광희문~한강나루~사평리~양재거나 광희문~서빙고나루~사평리~양재였다. 두 길 모두 사평리(새말나루)를 통한 것을 알 수 있다. 한양의 한강나루나 서빙고나루를 출발한 나룻배는 강을 건너 경기도 광주 사평리에 도착한 뒤 양재와 용인을 거쳐 청주나 충주로 하향 길을 떠났다. 사평리에는 길손들이 쉬어 가는 사평원이라는 숙소가 있었다. 이곳에 주막과 장터가 섰다. 지금의 신사동 간장게장골목을 비롯한 먹자골목 기원이 사평원에서 시작됐다. 9호선 사평역과 6호선 녹사평역이라는 명칭 역시 사평나루와 사평원에서 땄다. 경조5부도에 새말나루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새말나루가 신생마을이기 때문이다. 서울지명사전에서 ‘새말’이라는 동명을 찾아보면 무려 26개의 동일한 지명이 등장한다. 동대문구 신설동, 서대문구 신촌 또한 신생마을 즉 새말이다.행정구역 개편이 이뤄진 1914년 이후 새말나루와 사평나루가 신사도선장으로 통합됐다. 새말나루가 있던 곳은 한남대교 남단 아래고, 사평리는 지하철 3호선 신사역 근처다. 1970~1980년대 두 차례 한강종합개발계획 때 강을 메워 아파트를 지어 엄청난 지형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예측하기 어려우나 한강나루와 사평나루가 직선상에 위치한 것은 분명하다. 신사동이라는 동명은 새말의 한자지명 신촌의 신(新)자와 사평리의 사(沙)자를 각각 따서 만든 합성지명이다. 한남대교 남단에 세워진 새말카페는 한때 번성했던 새말나루터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애초에 ‘레인보우 카페’라는 국적불명의 이름을 사용하다가 옛 지명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바꿨다. 본래 한강나루(한강진)는 한강진에 강남 쪽 새말나루와 사평리를 합친 개념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강북 쪽 나루만 인정했을 뿐 강 건너 강남 쪽 나루는 부속품으로 여겼다. 18세기 이후 한강이 기존의 5강 체제에서 8강, 12강으로 분화·확장하는 과정에서 ‘조선 제일 나루’의 위상이 다소 위축됐다. 18세기 이전까지 3강(한강, 용산강, 서강) 체제를 유지했지만 상업 발달에 따라 18세기 중엽에는 5강(3강+마포, 양화진)으로, 18세기 후반엔 8강(5강+두모포, 서빙고, 뚝섬)으로 분화됐기 때문이다. 19세기 이후 12강(8강+연서, 왕십리, 안암, 전농)까지 뻗어 나갔다. 강남은 경부고속도로와 제3한강교의 개설로 말미암아 갑자기 솟아난 도시가 아니다. 고속도로 노선이 이곳을 통과하게 된 것이나 ‘말죽거리신화’라는 강남발 부동산 신화가 양재에서 불붙은 것 또한 우연이 아니다. 수로의 중심 새말나루터는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잇는 최단거리 지름길 한남대교가 됐고, 육로의 중심 양재역은 서울과 지방을 잇는 경부고속도로의 시발점이 됐다.오늘의 강남 지형을 만든 ‘요술 방망이’는 공유수면매립과 아파트지구 지정 두 가지였다. 우리가 올림픽대로(88도로)와 강변북로라고 부르는 한강 남쪽과 북쪽의 강변도로는 1970년부터 16년에 걸쳐 구간별로 쪼개 만든 뒤 붙인 수해 방지 목적의 제방도로였다. 제1한강교에서 여의도 입구~영등포 서울교 남단까지 3720m 길이의 강변1로가 우리나라 최초 자동차전용도로이자 유료도로였다. 이후 제방 건설과 매립, 도로 건설과 병행해 강변2로부터 강변8로까지 부분적으로 지은 도로를 통합해 강남 쪽은 올림픽대로, 강북 쪽은 강변북로라고 각각 명명한 것이다. 제방과 도로 건설을 위해 1962년 법률로 제정, 공포된 공유수면매립법이 오늘의 압구정, 반포 아파트지구를 만든 일등공신이다. 한강의 섬과 백사장을 메워 아파트 택지로 둔갑시켰다. 1976년 건설부 고시 제131호에 따라 반포지구와 압구정동지구, 청담지구, 도곡지구, 잠실지구, 이수지구 등 강남권 6개 지구를 포함한 서울 11개 지구에는 아파트와 부속건물밖에 지을 수 없게 됐다. 듣도 보도 못한 기상천외의 ‘아파트지구 지정’이 오늘날 아파트 40만 가구, 거주율 80%를 자랑하는 강남아파트 시대의 닻을 올렸다. 진정한 강남시대의 개막은 ‘강남 삼총사’ 중 막내인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 완공된 1981년 10월 20일 이후라고 할 수 있다.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 1973년 호남고속도로, 1975년 영동고속도로가 속속 개통했지만 터미널은 1978년 호남선과 영동선, 1981년 경부선터미널이 따로 지어졌다. 1985년 3호선 고속터미널역이 생길 때까지 대중교통이 없는 ‘불구’ 터미널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 한강 수계에 있는 다리는 모두 28개다. 1900년 한강철교가 처음 준공된 이래 1950년대까지 한강대교와 광진교 등 3개밖에 없었다. 1970~198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14개 다리가 집중 건설됐고, 2000년 이후 9개가 추가됐다. 구리암사대교가 가장 최근인 2014년 준공됐다. 상암동~양평동 구간 월드컵대교와 노량진~노들섬을 잇는 보행 전용교 백년다리가 2021년 개통될 예정이다. 한강나루의 대를 이은 한강다리가 서울의 생명줄 노릇을 하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단독] 세종청사 조형물 ‘저승사자’ 논란 또 불거져…결국 이전 추진

    [단독] 세종청사 조형물 ‘저승사자’ 논란 또 불거져…결국 이전 추진

    “밤에 보면 저승사자 형상” 직원·주민들 깜짝 놀라“국세청 이미지에도 안 맞다” 4년전 현위치 이전 소방청 이어 올해 행안부까지 조형물 뒷건물로 이사“재난안전 헤드쿼터 앞에 저승사자라니…” 또 논란원래는 ‘신명나는 우리가락’인데 애물거리 전락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조형물 이른바 ‘저승사자’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세종시에 입주한 부처는 물론 시민들에게 저승사자로 알려진 조형물의 원래 이름은 ‘흥겨운 우리 가락’이다. 작가 안초롱씨는 “한국·문화 예술의 우수성, 아름다움을 표현해 정부세종청사의 복합문화공간에 랜드마크적인 이미지를 부여토록 디자인한 작품”이라고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갓 쓰고, 장삼을 두른 채 두 팔을 벌려서 가락에 맞춰 춤을 추는 형상이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작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조형물은 세종시에서 몇 차례 논란이 됐다. 아무리 흥겨운 우리가락이라 외쳐도 보는 사람이 저승사자로 받아들이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조형물 밑에 흥겨운 우리가락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지금은 저승사자가 돼 버렸다. 이 조형물은 당초 세종정부청사 16동(국세청) 남서 측에 있었으나 국세청 직원들과 시민들이 “밤에 언뜻 보고 저승사자인 줄 알았다”며 옮겨달라고 민원을 제기한다. 당시 국세청에 있다가 서울청으로 올라온 한 여성 사무관은 “여직원들이 야근하고 나가다가 그 조형물을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세청의 이미지 훼손 논란도 제기됐다. 가뜩이나 국세청이 세금을 거두는 기관으로 대국민 이미지가 좋지 않고, 서울청 ‘조사4국’이 ‘기업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마당에 본청 앞에 저승사자로 불리는 조형물이 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세청이 부처 앞에 저런 조형물을 세워 놓고 국민에게 위압감을 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국세청에 이 조형물은 눈엣가시(?)였다. 그러던 차에 국세청 앞에 지하도 건설을 계기로 조용히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바뀐 KT&G 건물 옆 대로변으로 옮긴 것이다. 물론 국세청은 자신들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극구 부인한다. 저승사자가 대로변으로 나오자 “국세청 공무원들이 싫다고 이것을 대로변에 옮겨놓으면 시민들인들 좋겠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렇게 4년여가 흘렀다. 그런데 2019년 여름 세종시 저승사자는 다시 길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다시 이전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올해 초 KT&G 건물로 행정안전부가 옮겨오면서 미리 와 있던 소방청과 함께 정부청사 16동은 재난안전의 ‘헤드쿼터’가 됐다. 그런데 그 위치가 이 조형물 바로 뒤라는 것이다. 행안부와 소방청 직원과 민원인들이 오가도록 보조 출입구가 나 있는데 밤에 이 문을 나가다가 그 뒷모습을 보고 기겁을 한 여직원이 한둘이 아니라는 전언이다. 밤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보면 영락없는 저승사자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바로 위에 행정안전부와 소방청 간판이 불을 훤히 밝히고 있다. 길 건너편에서도 밤에 시선을 돌리다 보면 나무와 전신주 사이로 시커먼 것이 서 있다. 바로 이 조형물이다. 기겁하는 시민이 적지 않다. 조형물의 본래 이름과는 달리 세종시에서 이 조형물을 저승사자로 부른지 오래다. 간혹 이름을 몰라 저 무서운 동상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 시민들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행안부와 소방청 앞에 떡 하니 저승사자로 불리는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부처의 이미지와 부합되진 않는다.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들의 목숨마저 내맡긴 채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그 본부 앞에 저승사자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안팎에서 제기된 것이다. 여기에다가 주변 상인들도 적잖게 이전을 원했다는 후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조형물의 설치나 이전은 행안부 산하 청사관리사무소가 담당한다. 행안부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을 한다는 것을 4년 전에는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알고도 조형물 위치를 잡았다면 소관 부처의 이미지를 고려하지 않은 ‘무지한 결정’이었다는 비난을 받아도 싸다는 지적이다. 이 조형물이 어디로 옮겨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휘장을 둘러서 다른 곳에 보관할 수도 없고, 조각공원을 만들어서 다른 조형물들과 함께 전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세종시 저승사자는 올해도 또다시 청사관리사무소의 두통거리가 되고 있다. 김성곤 선임기자 gsgs@public.com ▶[핫뉴스] ‘폭염인데 공무원은 왜 반바지를 안 입을까’▶[핫뉴스] “14시간에 달랑 4만원…공무원이라고 막 부려 먹어도 됩니까”
  • 조용원, 재기 꺾인 이유 “팔다리 못 쓴다 해서” 충격

    조용원, 재기 꺾인 이유 “팔다리 못 쓴다 해서” 충격

    배우 조용원을 직접 만나기 위해 ‘불청’ 멤버들이 발로 뛰었지만 아쉽게도 만남은 이루지 못했다. 조용원을 보고 싶은 새친구로 꼽은 이들은 6일 방송된 SBS ‘불타는 청춘’에서 그를 찾아 나섰다. 이들은 시청자들로부터 죽전의 한 카페에서 자주 목격됐다는 제보를 받고 무작정 찾아나섰다. 우연히도 그들이 찾아간 곳은 조용원이 주로 간 카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페 사장의 도움을 받아 조용원이 가깝게 지내는 지인을 알게 됐다. 어렵사리 지인의 근무지까지 찾아갔지만 조용원과 직접적인 연락을 취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 돼 병원을 다니고 있다는 게 지인의 설명. 특히 방송 노출을 꺼려한다는 말에 따라 ‘불청’ 멤버들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담아 문자로 보냈다. 조용원은 빼어난 미모로 단숨에 톱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교통사고로 극심한 부상을 입고 연에계를 떠났다. 당시 사고에 대한 심정이 담긴 그의 목소리가 공개되기도 했다. 그는 “몸을 많이 다쳤기 때문에 얼굴 다친 것은 신경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며 “(얼굴을) 먼저 해줘야 하는데 이 신경이 끊어지면 팔을 못 쓴다, 다리를 못 쓴다 해서 다른데 먼저 고치다 보니까 피부에 대한 치료가 늦었다”고 전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태극기는 보수도 아니고, 엄마부대 주옥순도 아니다

    태극기는 보수도 아니고, 엄마부대 주옥순도 아니다

    “태극기 부대를 이해해야 하나요? 이해도 안 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요.”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거리에 쏟아져나온 ‘태극기 부대’의 존재. ‘반문재인’, ‘빨갱이’, ‘반공’, ‘박근혜 석방’을 주장하는데….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데다 일부 과격한 행동과 발언이 언론에 비치면서 젊은이들에게 태극기 부대는 마치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듯 하다. 왜 이들은 왜 극단적인 발언을 수정하지 않는 걸까. 왜 이들은 늘 화가 나 있는 걸까. 사회 주류가 태극기 부대를 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그들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문제는 어르신들의 순수한 ‘애국심’, ‘외로움’을 이용하고 있는 어떤 세력일지도 모른다고.NA>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눈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반문재인’과 ‘빨갱이 타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태극기 부대. 망가져 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이 세상이. 꼭 이 나라가 오물 속에 내가 들어앉은 심정이라. 그래서 이렇게 나온 거에요 우리는. 저도 자식이 하나 있는데 태극기 집회라 하면 눈이 쓱 돌아가요. 지금 내 자식도. 젊은 사람들을 깨닫지 못해서 그런 거여요. 그래서 우리 어른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NA> 젊은이들은 태극기 부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시민 1> 자기주장들만 길거리에서 저러고 그러고 있는 게 다른 사람한테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시민 2> 자기 스스로 세뇌를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자기 암시인지 몰라도 자기가 생각하는 게 다 맞다 옳다고 여기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곽동수 시사평론가> 상대 이야기를 듣고 그럴만하다 공감하는 대신에 그래도 그렇지 얘가 나에게 맞먹었어. 본인 주장을 지르는 데만 익숙하셔서 그게 저는 ‘강압’이라는 단어가 되는 거라 보고요. 지금 그래서 태극기 부대가 나와있는 건 선과 악 구도로 보는 거죠. 우리가 옳고 우리가 경제 성장을 시켰고 그 기반에 너희가 자랐는데 왜 그 모든 것을 부정하려 드느냐. NA> 파독 광부로 청춘을 보낸 태극기 부대 어르신을 만나 박정희 대통령을 잊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파독광부 출신 태극기 집회 참가자 이재영 씨> 이 조국이 어떻게 왜 이렇게 여기까지 왔는가 내가 조금 격해. 고생도 무지무지했어. (고생 많으셨죠) 광부 8000명, 간호원 12000명 가서 광부 한 100명 죽었다고. 그 죽는 것도 보고 광부 그때 일하다 올라와서 1964년. 내가 갔더니 육영수 여사, 뤼브케 대통령 광산을 간 거야 가서 일하다 말고 잠깐만 올라와 보래 땅속에서 올라오는 거야 올라와서 우리 대통령님. 서로 막 붙잡고 울고 그때 이제 박정희 대통령이 말씀하시다가 몇 번 울고 그 옆에 육영수 여사님 도대체 눈물이 나가지고 왜? 자기 자식들이란 말이야 자식들이 와서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사지에 와서 시커멓게 해서 올라오니까….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군사정권이었고 독재정권이었지만 이들을 어쨌든 그 박정희 정권과 함께 해서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뤘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당시 박정희 정권의 가족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됐을 때도 마치 우리 세대에 대한 어떤 평가 절하, 비하 이렇게 받아들였고요. 아마 이제 그 부분은 당연히 우리가 동일시라고 하는 심리 기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겁니다. 박근혜를 탄핵하고 박정희를 욕하는 것은 우리 산업화 세대인 우리 세대를 욕하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또 많이 화가 나셨을 거 같아요. 곽동수 시사평론가> 저희 아버지가 살았던 시대는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 성장을 일군 세대로 내가 거기에 기여했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을 통째로 도둑맞는 느낌이 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재영 씨> (손자들에게) 조금 얘기하려고 하면 지 엄마 아빠가 막 가로막는 거야 그리고 할머니는 왜 쟤들한테 그런 고통을 주느냐고 왜 그런 어려운 얘기 옛날 얘기하느냐고.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지금처럼 뭔가 본인이 배신감을 느꼈고 이 사회나 가족들에 대해서 또 본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소외감 같은 것들이 느껴졌겠죠. NA> 어르신은 자신들의 공로를 인정해준 박근혜 정권에 큰 감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재영 씨> 공개적으로 받은 거에요 전부 다 우리 광부 간호원들 박근혜 대통령이 되면서 연락이 왔더라고 나한테. NA> 하지만 태극기 부대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합니다. 시민2> 이해가 되지도 않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시민3> 말이 안 통할 것 같고 자기 할 만만 계속 하시는 그럴 거라 생각이 드는데 (만약에 저분들이 대화를 해보고 싶다. 젊은 사람들한테 이러면 대화를 할 용의가 있어요? 해보고 싶어요?) 아니요. 곽동수 시사평론가> 태극기 부대가 열심히 외치지만 그 사이에 보면 외로운 어르신들이 축제 한마당으로 나와 있는 경우가 더 많아요. 어머님들은 나오실 때 떡 사오고 케이크에 사탕에 나눠가면서 그냥 그 세대도 외롭단 말이에요…. 이재영 씨> 놀러다니기도 하지 (놀러다니시기도 하세요? 등산도 하시고요?) 일주일에 한 번 두 번은 (집회 나오시는 분들이랑 같이?) 처음에 나오지 않았지 그놈들이 근데 요새는 내가 여기 와서 너무 열정적이고 그러니까 내가 지네 뒷바라지도 좀 해주고 하니까 친구들이 이제 살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 (집회 끝나고 약주도 하고 하세요?) 그렇지 집회 끝나고. 곽동수 시사평론가> 그 어르신들의 그런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노는 세력이 있어요. 그게 작전 세력이 아니라. 저는 정치 세력이 잘못 써서 그렇다고 보고요. 그들이 좋아서, 무식해서 쫓아가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 얘길 들어주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 사회적 약자인 노인들에 대해서 관심을 더 가지고 또 노인에 대한 뉴스를 늘리는 것도 그분들을 위한 배려나 양보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곽동수 시사평론가> 대한민국이 뭐니뭐니해도 외국단어로 설명 안 되는 ‘정’이라는 게 있는 나라거든요. 싸우더라도 죽이지 않을 거고 태극기 어르신들 욕한다고는 하지만 백색 테러가 일어나지 않아요. 서로 양보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젊은이들은) 어르신들 체면 좀 살려 드리면서, (어르신들은) 젊은 애들한테 “미안하다 우리가 이런 세상 만들어서”라고 하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그렇게 되면 더 나아질 거예요. NA> 태극기 부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세계 최고 지능견 세상 떠나…생전 명사 1022개 학습

    세계 최고 지능견 세상 떠나…생전 명사 1022개 학습

    명사 1022개를 알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개로 불린 보더콜리 ‘체이서’가 15세 나이로 숨졌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지난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고(故) 존 필리 미국 워포드 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보더콜리 반려견 체이서가 지난 23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州) 스파턴버그 시(市) 집에서 15살 나이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필리 교수의 아내 샐리 필리와 두 딸 비안키, 로빈이 체이서의 임종을 지켰다. 유족은 지난 26일 체이서의 페이스북에 부고를 올렸다. 필리 교수는 체이서보다 앞서, 지난해 89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과 함께 체이서를 조련한 딸인 비안키는 체이서의 노환과 관절염이 최근 몇 주간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체이서는 필리 교수의 자택 뒤뜰 고인의 곁에 묻혔다. 체이서가 명사 1022개를 구분하는 능력을 증명해보이면서, 필리 교수와 체이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필리 교수의 특별한 교수법 비결은 특별하지 않았다. 바로 끈기였다. 고인은 스파턴버그 시 개 사육업자에게 흑백색 보더콜리 강아지 체이서를 사서, 3년간 하루 4~5시간씩 체이서에게 단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필리 교수는 물건을 보여주고 그 물건의 이름을 40번씩 말했다. 그리고 그 물건을 숨긴 후, 체이서에게 그 물건의 이름을 말하면서 찾아내라고 명령했다. 이 과정에서 필리 교수는 체이서에게 보여주기 위해 동물인형 장난감 800개, 공 116개, 프리스비(플라스틱 원반) 26개, 플라스틱 물품들 등을 사용했다고 한다. 비안키는 체이서의 언어학습 수준이 매우 높아, 보통명사와 고유명사를 이해했다고 밝혔다. 체이서는 한 물체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질 수 있고, 단어 하나가 여러 물체를 가리킬 수 있다는 것까지 알았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생전인 지난 2014년 뉴욕타임스에 “큰 교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개들이 더 똑똑하다는 것을 안 것”이라며 “시간을 들이고, 인내심을 가지며, 즐겁게 자주 복습하면, 우리는 개들에게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파턴버그 시 소재 업스테이트 어린이 박물관이 내년에 체이서의 동상을 세우고, 청동 발도장도 동상 옆에 만들 계획이라고 비안키는 밝혔다. 한편 아래 동영상은 체이서가 6살때 필리 교수와 함께 출연한 PBS 프로그램이다. 노트펫(notepet.co.kr)
  •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 “아베 수상님에 사죄…지도자 무지”

    엄마부대 주옥순 대표 “아베 수상님에 사죄…지도자 무지”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으로 전국적으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한 보수성향 단체 대표가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해 사과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6일 유튜브 채널 ‘엄마방송’에 올려진 영상을 보면 엄마부대봉사단(이하 엄마부대)의 주옥순(66) 대표와 회원 10여명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문재인 정권은 일본 정부에 사과하라’, ‘반일 감정 조장은 대한민국 공산화 전략이다’, ‘반일 감정을 조장한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외치며 오히려 정부 대응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주 대표는 이 자리에서 “아베 수상님, (한국의) 지도자가 무력해서, 무지해서 한일 관계의 모든 것을 파괴한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주 대표는 또 “우리 국민들은 정말 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면서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에서 미래로 가야 한다. 과거에 매여있는 지금의 종속·이념적 사고를 가진 주사파 정권은 국민이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목솔리를 높였다. 일본 정부의 백색 국가(화이트리스트) 배제 결정에 앞서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서 주 대표는 “내일 하는 화이트 리스트(배제 결정)에 우리 국가를 절대로 제외하지 마시고 간절한 호소를 들어주시기를 부탁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엄마부대는 보수를 표방하는 단체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거나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집회에 맞서 비판 집회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단독]日TV “문재인 대통령, 북한에서 태어났다” 방송사고? 고의조작?

    [단독]日TV “문재인 대통령, 북한에서 태어났다” 방송사고? 고의조작?

    일본 TV방송들이 연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폄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가운데 시청률 기준 민방 2위인 테레비아사히가 문 대통령이 북한에서 출생했다고 생방송을 하는 대형사고를 쳤다. ‘한국 대통령이 북한 편향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다. 테레비아사히의 평일 오전 종합뉴스 프로그램인 ‘와이드 스크램블’은 6일 방송에서 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한국과 문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문 대통령에 대해 “1953년 북한 출생으로 한국전쟁 발발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고 방송했다. 이런 잘못된 내용이 담긴 그래픽 자료도 함께 화면에 노출시켰다. 와이드 스크램블은 “문 대통령이 북한에 편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그 이유로 몇 가지를 제시하면서 첫번째로 ‘북한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문제의 내용은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1953년생이라고 밝히면서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 월남의 계기가 됐다고 주장하는 상식적인 차원의 무지는 차치하고라도 다른 나라 대통령의 신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최소한의 팩트 점검도 하지 않은 것이다. 와이드 스크램블은 방송이 나간 후 사회자를 통해 문 대통령이 아니라 가족이 북한 출신이고 문 대통령은 한국(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고 정정을 했지만, 문 대통령과 북한을 연결시키기 위해 애초부터 ‘의도된 사고’를 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특히 당시 와이드 스크램블은 한국에 대한 ‘혐한론’ 전파에 앞장서고 있는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일본대사를 게스트로 불러 방송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무토 전 대사는 2017년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좋았다’라는 제목의 혐한서적을 낸 데 이어 지난달에는 ‘문재인이라는 재액(災厄·재앙으로 인한 불운)’을 출간한 인물이다.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니혼테레비, 테레비아사히, TBS, 후지테레비 등 일본의 민영방송사들은 시청률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과 표현을 동원하며 한국과 한국정부를 공격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공영방송인 NHK나 일간지들에 비해 정도가 한층 심하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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