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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ulites]민·관 한마음 이끈 뮤직 페스티벌

    [Seoulites]민·관 한마음 이끈 뮤직 페스티벌

    서울 왕십리 로터리에 위치한 성동 문화회관에서 뜻 깊은 음악회가 열려 주민들을 감동시켰다. 지난 24일 오후 2시부터 3시간 가까이 진행된 ‘뮤직 페스티벌’.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성동장학회’의 설립을 축하하기 위해 성동문화원이 마련한 자리로,주민들의 문화 욕구와 자긍심을 일깨우는 의미있는 행사가 됐다. 40인조 관현악단의 연주로 막을 올린 이날 뮤직 페스티벌은 전직 경찰음악인들로 구성된 탱고밴드,아코디언 독주,13인조 무지개악단의 연주,최석준씨 등 초대가수들의 열창으로 이어졌다. 특히 팔순에 가까운 신동호 성동문화원장이 함께 공연한 8인조 탱고밴드의 이국적인 선율은 관객을 매료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음악회와 함께 64명의 지역 독지가에게 장학기금 출연증서를 수여했다.자칫 눈길을 끌지 못한 행사가 될 뻔한 수여식이 음악 공연을 통해 지역 주민과 흔쾌히 어우러지는 멋진 축제의 장으로 승화된 것이다. 앞으로도 성동문화원은 문화행사와 주민행사를 한데 아우르는 방식의 수준 높은 공연을 통해 주민의 문화욕구 충족뿐 아니라 구정 참여를 보다 활성화시켜 나갈 방침이다. 행사의 피날레에서는 60∼70대 노인 단원들로 구성된 무지개악단의 연주에 맞춰 출연자와 관객 전원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이날의 음악회는 주민을 한마음으로 묶고,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인재들에게는 희망을 안겨 준다는 의미에서 한층 더 빛을 발하는 음악회가 됐다.
  • ‘도심공원’ 구청, 바람쐬러 가자

    회사원 이상대(44)씨는 친구,거래처 관계자들과의 약속장소로 서울시청 뒤뜰을 자주 이용한다.직장이 인근 무교동인 데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 편안히 쉴 수 있는 벤치도 많아 만남의 장소로는 그만이다.더구나 서울광장의 잔디밭을 걸으며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광장의 분수와 덕수궁의 수문장 교대식,금요음악회 등 볼거리도 쏠쏠해 만나는 상대방도 아주 만족해 한다.이씨처럼 시청이나 구청 등 행정관서를 만남의 장소나,쉼터로 활용하는 시민들이 부쩍 늘고 있다.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 바람’과 주민 곁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는 ‘서비스정신’이 어우러져 일선 구청이 문화·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찾을수 있어 왕십리에 위치한 성동구청 광장에는 작은 연못 크기의 분수대가 주민들을 유혹한다.화려하지 않지만 시원한 물줄기를 뿜으며 일상에 지친 주민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다.주변에는 사방으로 돌벤치가 있어 편하게 앉아 사색도 할 수 있다.‘야외무지개 분수광장’으로 불리며 24시간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특히 3∼4m 떨어진 지점에는 200석 규모의 문화마당도 자리하고 있어 크고 작은 행사장으로 그만이다. 지난달 새 청사 개청과 함께 ‘호프데이’,‘구청장과의 대화’ 등 1개월동안 계속된 축하행사의 주무대로 활용되면서 주민들의 뇌리에 휴식·문화공간으로 각인됐다. ●새들이 지저귀는 푸른쉼터 광진구청은 40∼50년생 단풍나무,은행나무 등 1000여그루의 나무숲으로 에워싸여 있다.8년 전 청사 담장을 허물고 조성한 숲이다.1000여평에 달하는 숲속에는 딸기,보리 등 도심 속에서는 보기 어려운 농작물과 식물,꽃들이 풍성하다.공작새,참새,십자매 등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찾는 이에게 자연을 전한다.한편에는 어릴적 시골에서나 볼 수 있었던 원두막도 만들어져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인기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숲 여기저기에는 철봉과 역기 등 간단한 운동기구들도 설치된 데다 140m에 달하는 산책로에는 맨발지압보도까지 마련돼 주민들은 이곳을 ‘푸른 쉼터’로 부른다.손녀와 함께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황영심(자양동·65) 할머니는 “은행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를 걷다보면 수목원이 부럽지 않다.”고 자랑했다. ●음악이 흐르는 풍경 도봉구청의 지하 1층에 마련된 ‘실내 아트리움’은 전용면적 131평의 넓은 공간이 푸른 대나무와 실내분수 등으로 꾸며져 있다.특히 이곳에서는 매주 화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플루트와 클래식기타로 ‘정오음악회’가 열려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고 있다.광진구청의 푸른쉼터에도 잔잔한 음악이 하루종일 흐른다.야외 스피커가 설치돼 음악을 통해 지역주민들에게는 친근한 이미지를,직원들에게는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서울시청 뒤뜰에서는 금요일마다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아마추어 재즈그룹에서부터 경찰악단,서울시향 등 전문 음악인들이 펼치는 수준높은 연주와 노래로 문턱높은 관청의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오히려 도심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서초구청은 주말이면 벼룩시장으로 변신한다.평소 주민들의 휴식공간이나 청소년들의 농구장 등으로 사용되던 구청광장이 주말이면 어김없이 상인들과 주민들로 꽉찬다.물건을 사고팔고,바꾸려는 주민들이 5000명이 넘을 정도로 시골 장터를 방불케 한다.이에 비해 도봉구청은 좀더 우아한 멋을 즐길 수 있다.지하 2층,지상 16층이나 되는 최신식 건물 맨 위층에는 ‘스카이라운지’가 있다.주민들은 외식장소로 이곳을 찾아 한눈에 들어오는 도봉산,북한산,수락산,중랑천,동부간선도로 등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전망을 즐긴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儒林(108)-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신도비명을 더듬어 확인하던 나는 한 구절에서 손이 멈췄다.다음과 같은 문장에서였다. “오는 이와 가는 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망하지도 아니하고 어기지도 아니하며,뒤에도 계시옵고 앞에도 계시도다(有來有歸不亡不違在後在前).” 과연 그러한가. 조광조의 영령을 찾아가는 신도에는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오는 이와 가는 이가 끊임이 없이 이어지고 있는가.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진사림파와 훈구파의 정치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지 아니한가.어차피 권력의 다툼은 힘을 가진 구세력과 그것을 빼앗으려는 신세력의 신구갈등에서부터 비롯되는 것.구세력은 자신을 보수라 하고 신세력은 자신을 진보라 일컫는다.그러나 어차피 진보를 표방하는 신세력도 언젠가는 스스로 청산해야 할 낡은 구세력으로 전락해가는 것이니,조광조가 살았던 16세기보다도 더 심각한 국론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오늘날에도 조광조는 여전히 뒤에도 계시옵고 앞에도 계시옵는가. 그러나 아니었다. 조광조의 무덤으로 올라가는 길은 깎아지른 낭떠러지였다.조광조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하듯 조광조는 살아서도 절벽의 생애였고,죽어서도 단애(斷崖)의 운명이었다.따라서 조광조의 무덤은 끊겨서 더 이상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차안(此岸)의 언덕인 것이다. 연보에 의하면 1520년 봄,조광조의 시신을 심곡리의 언덕에 반장(返葬)하였을 때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전해 오고 있다. “소달구지로써 용인으로 관을 옮겨와서 장례를 마치고 나니 흰 무지개가 해를 둘렀는데,동쪽 서쪽으로는 세 번 두르고,남쪽과 북쪽으로는 각각 한 번씩 둘러섰고,남북쪽에 둘레 밖으로 두 줄기의 무지개가 띠를 둘러놓은 듯이 하늘에 닿을 것 같았다….” 그러나 쌍무지개가 떴던 무덤주위로는 홍예(虹)대신 고층 아파트들이 하늘에 닿을 것같이 띠를 두르고 서 있었고,깎아내린 산기슭에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간선도로가 개통되어 수많은 차량들이 굉음을 내며 달려가고 있을 뿐이었다.분명히 심곡리의 언덕이라고 표기된 기록과는 달리 조광조의 무덤은 급격한 경사를 이룬 비탈길 위에 마치 낭떠러지 위에 세운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길 양옆에 무덤들이 보였다.이곳 어딘가에 조광조의 선친이었던 조원강의 무덤도 있을 것이고,조광조의 차남이었던 용(容)의 무덤도 있을 것이다.조광조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장남 정(定)은 일찍 죽었고,둘째아들 용은 판관으로 있어 훗날 이퇴계에게 사람을 보내어 비명을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는 것이 행장기에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이곳 일대가 조광조의 선영이었던 것이 분명하다.조광조의 부인이었던 한산 이씨는 비교적 오래 살아 조광조가 죽은 지 38년 후에 이곳에 묻혀 장사를 치른 후 다시 조광조와 합장되었다.그러나 수백년의 세월이 흘러 묘비도 사라져버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황폐한 무덤들만 곳곳에 산재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가파른 비탈길을 빠르게 올랐다.짧은 거리였지만 급경사였으므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무덤 바로 앞에는 묘표(墓表)가 서있었다.죽은 사람의 이름과 생몰연월일 등을 새겨 무덤 앞에 세운 푯돌은 당대문장가였던 이산해(李山海)의 솜씨였다.이산해는 작은아버지 이지함에게 글을 배웠으며,지함은 평생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土亭)이라 불렸던 조선시대의 기인으로 ‘토정비결’의 저자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 儒林(108)-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108)-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신도비명을 더듬어 확인하던 나는 한 구절에서 손이 멈췄다.다음과 같은 문장에서였다. “오는 이와 가는 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망하지도 아니하고 어기지도 아니하며,뒤에도 계시옵고 앞에도 계시도다(有來有歸不亡不違在後在前).” 과연 그러한가. 조광조의 영령을 찾아가는 신도에는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오는 이와 가는 이가 끊임이 없이 이어지고 있는가.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진사림파와 훈구파의 정치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지 아니한가.어차피 권력의 다툼은 힘을 가진 구세력과 그것을 빼앗으려는 신세력의 신구갈등에서부터 비롯되는 것.구세력은 자신을 보수라 하고 신세력은 자신을 진보라 일컫는다.그러나 어차피 진보를 표방하는 신세력도 언젠가는 스스로 청산해야 할 낡은 구세력으로 전락해가는 것이니,조광조가 살았던 16세기보다도 더 심각한 국론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오늘날에도 조광조는 여전히 뒤에도 계시옵고 앞에도 계시옵는가. 그러나 아니었다. 조광조의 무덤으로 올라가는 길은 깎아지른 낭떠러지였다.조광조의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하듯 조광조는 살아서도 절벽의 생애였고,죽어서도 단애(斷崖)의 운명이었다.따라서 조광조의 무덤은 끊겨서 더 이상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차안(此岸)의 언덕인 것이다. 연보에 의하면 1520년 봄,조광조의 시신을 심곡리의 언덕에 반장(返葬)하였을 때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전해 오고 있다. “소달구지로써 용인으로 관을 옮겨와서 장례를 마치고 나니 흰 무지개가 해를 둘렀는데,동쪽 서쪽으로는 세 번 두르고,남쪽과 북쪽으로는 각각 한 번씩 둘러섰고,남북쪽에 둘레 밖으로 두 줄기의 무지개가 띠를 둘러놓은 듯이 하늘에 닿을 것 같았다….” 그러나 쌍무지개가 떴던 무덤주위로는 홍예(虹)대신 고층 아파트들이 하늘에 닿을 것같이 띠를 두르고 서 있었고,깎아내린 산기슭에는 도시와 도시를 잇는 간선도로가 개통되어 수많은 차량들이 굉음을 내며 달려가고 있을 뿐이었다.분명히 심곡리의 언덕이라고 표기된 기록과는 달리 조광조의 무덤은 급격한 경사를 이룬 비탈길 위에 마치 낭떠러지 위에 세운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길 양옆에 무덤들이 보였다.이곳 어딘가에 조광조의 선친이었던 조원강의 무덤도 있을 것이고,조광조의 차남이었던 용(容)의 무덤도 있을 것이다.조광조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장남 정(定)은 일찍 죽었고,둘째아들 용은 판관으로 있어 훗날 이퇴계에게 사람을 보내어 비명을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는 것이 행장기에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이곳 일대가 조광조의 선영이었던 것이 분명하다.조광조의 부인이었던 한산 이씨는 비교적 오래 살아 조광조가 죽은 지 38년 후에 이곳에 묻혀 장사를 치른 후 다시 조광조와 합장되었다.그러나 수백년의 세월이 흘러 묘비도 사라져버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황폐한 무덤들만 곳곳에 산재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가파른 비탈길을 빠르게 올랐다.짧은 거리였지만 급경사였으므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무덤 바로 앞에는 묘표(墓表)가 서있었다.죽은 사람의 이름과 생몰연월일 등을 새겨 무덤 앞에 세운 푯돌은 당대문장가였던 이산해(李山海)의 솜씨였다.이산해는 작은아버지 이지함에게 글을 배웠으며,지함은 평생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土亭)이라 불렸던 조선시대의 기인으로 ‘토정비결’의 저자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 외국인노동자 자녀의 어린이날

    82돌 어린이 날을 맞아 평소 소외된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이 우리나라 어린이들과 어울려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갖는 등 곳곳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졌다.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과천 서울랜드,경기 용인 에버랜드 등 수도권의 주요 놀이공원에는 3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하루종일 북새통을 이뤘다.또 야간까지 문을 연 놀이공원들 때문에 인근 도로는 밤늦게까지 정체현상을 빚기도 했다.하지만 한편에서는 홀아버지의 돌연사로 홀로 남게 된 소녀의 사연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주노동자의 자녀들,모처럼 함박웃음 “어린이날에도 일하러 간 우리 아빠가 같이 올 수 있었으면….” 5일 오후 서울 상암동 한강시민공원 난지지구 잔디마당에서 몽골·방글라데시·중국·스리랑카·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 자녀 80여명과 우리나라 어린이 90여명이 ‘어린이날 무지개 축제’에 참석,인종과 국적의 벽을 넘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회장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가 마련한 이날 행사에서는 자원봉사에 나선 6명의 소아과·치과 의사들이 건강검진을 실시하기도 했다.또 용천 어린이 돕기 모금 행사도 열렸다. ‘사랑의 썰매 끌기’에서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잔디썰매를 탄 방글라데시 출신 타냐(11)양은 “새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너무 재미있다.”고 좋아했다.낯선 외국인 친구를 처음 만난 이아름(12)양은 “처음에는 피부색,머리카락 등 생김새가 달라 조금 어색했지만 금방 친해졌다.”고 웃었다.하지만 행사장에는 부모가 휴일 근무를 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외국인 어린이들은 혼자 참석했다.김성수 건강협회장은 “다양한 색깔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무지개처럼,자라나는 어린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 갈등과 전쟁이 사라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빠잃고 혼자된 열살 소녀 4년 전 어머니를 잃고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와 함께 살던 초등학교 3학년생이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마저 잃었다. 4일 오후 9시쯤 서울 양천구 신월1동 강모(44·무직)씨 집에서 강씨가 딸(10)과 함께 식사를 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강양은 아버지가 쓰러져 움직이지 않자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강씨는 수족관을 운영하다 4년 전 지병으로 아내를 잃은 뒤 딸과 단둘이 살며 식사도 거른 채 매일 소주 2병을 마시다 알코올중독자가 됐다.지난해 12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지난 1월 퇴원하기도 했다.주민들은 “강씨는 끼니 때마다 딸의 식사를 직접 챙길 정도로 자상했다.”고 말했다. 안동환 채수범기자 sunstory@˝
  • 표성배 두번째 시집 ‘저 겨울산‘

    “공장과 함께 키가 자랐고/공장과 함께 사랑도 익었다.”(‘공장’)는 노동자 시인 표성배가 두번째 시집 ‘저 겨울산 너머에는’(갈무리 펴냄)을 내놓았다. 그의 시집에는 일하는 사람의 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건강함이 물씬 풍겨난다.무럭무럭 피어나는 뜨거운 김 속에는 일터 사랑과 근심,동료에 대한 애정과 세상의 모순이 포개져 있다.그 목소리는 거칠지 않고 응축된 시적 비유로 잘 다듬어져 있다. 시집 곳곳에 뿌려진 시적 자아는 개인의 차원에 머물지 않은 채 ‘2만불 시대’ 운운하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다.그는 마산에서 살고 창원공단에서 일하는,대물림한 노동자다.그에겐 “평생 막일에/굽은 등이 안쓰러운/아버지”와 “고무신 공장에서/어느 날,고무신처럼 천대받아 쫓겨난/누이”가 있다.시인 자신은 반복된 작업으로 창원대로를 달리면서도 “차소리 대신 기계소리”가 들리고 “자동화 기계에 밀리고 밀려/어느 날/수동 기계처럼/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은/내가 보인다.”(‘창원대로를 달리다 보면’)고 토로한다. 늘어만 가는 작업량과 기계화로 인한 퇴출 위기 등은 시인의 불안함을 가중시킨다.“십년 넘게 다닌 공장이/낯설게” 다가오고 “단단히/뿌리내리지 못한 채/하루하루를 견뎌 내는” 선인장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그래서 노동현장은 ‘겨울산’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산 속에 갇히지 않는다.간혹 “낭떠러지를 만나 고개 떨구고/아슬아슬 얼음판을 걸었지만” 그 ‘겨울산 너머’로 무지개를 본다.(‘잘 왔다 싶다’).“한 점 빛 새벽별 뚝뚝 떼어 짓밟고/저 겨울산을 넘고 싶다.”며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무지개 빛 희망을 못내 버리지 않은/마음뿐이다.”(‘무지개’)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이종수기자˝
  • [꼬불 꼬불 뒷골목] 제주의 ‘원조명동’ 칠성로

    제주시 칠성로는 동쪽으로 산지천 입구 성안보석에서 서쪽으로 개성연출미용학원까지 약 1.5㎞ 구간이다.일제 강점기 때부터 근대적 형태의 상점이 들어서 제주상권의 원조로 알려진 칠성로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의 ‘명동’이었다.이 곳에 가면 아무거나 먹고 살 수 있었고 구할 수 있었다. 광복 후 제주 최초의 다방 ‘파리원’이 들어선 곳도,유명 잡화점 ‘갑자옥’이 자리했던 곳도 이곳이며,인쇄소의 효시인 제주인쇄소와 최초의 목욕탕인 일출목욕탕,최초의 사진관인 월광사,최초의 서점인 우생당도 이 곳 언저리에 터잡았다. 1969년 제주 최초의 병원급 민간 의료기관인 나사로병원이 개설된 곳도,1973년 제주 최초의 백화점인 아리랑백화점이 들어섰던 곳도 바로 칠성로다.동백·은성·금성·금탑·이어도·무지개·청탑·정·정원 등 다방 10여개가 몰린 탓에 모든 약속도 주로 칠성로에서 이뤄졌다. 이러한 ‘최초’ 기록들은 칠성로가 산지항과 관청지역인 관덕정 광장과의 연결도로로 하루 유동인구가 1만명에 육박하리 만큼 장사 잘 되는 ‘노다지 장소’였기 때문이다.일등 상가로의 지위뿐 아니라 1951년 1·4후퇴 직후에는 피란온 문화·예술인들의 사랑채로 이용되면서 제주의 문화·예술을 꽃피운 장소로도 유명하다. 제주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최현식(79)씨는 “피란 문인들 가운데 ‘백치 아다다’의 계용묵,아동문학가 장수철,청록파 시인 박목월,그리고 김상일·이희철·김영삼·문덕수·김성환·함동선 등은 수시로 칠성로 동백다방과 우생당서점에서 제주 문인들과 시낭송회와 문학작품합평회,문학의 밤을 열어 4·3 여파로 단절의 세월을 보내고 있던 도내 문학도들에게 새로운 관심과 열정을 일깨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택지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90년대 들어 거주지와 상권이 신제주와 광양지역으로 분산되면서 칠성로는 이전의 화려한 빛을 뒤로 한 채 쇠락하기 시작했고,더구나 97년 외환위기에 몰리면서는 떠나는 상인들까지 생기는 공동화(空洞化)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지금은 골목 아닌 골목으로 변한 이곳에서 소매업 95곳,오락문화 16곳,음식업 21곳 등이 하루 2만명 정도의 유동인구를 상대로 영업 중이다.이 중에서도 핵심을 이루는 매장은 옷가게인 의류점들로 데코·라코스떼·이동수·아스트라·휠라·닥스·온앤온·줄리앙·블루페페·비키·지오다노·조이너스 등 익히 알려진 중고가 의류 브랜드 매장에서부터 ‘영캐주얼’‘무료입장’ 등 중저가 매장까지 57개 매장이 안간힘을 다해가며 버티고 있다. 금강제화 강남한(56) 사장은 “멀지 않은 곳에 이마트·월드밸리 등 대형 할인매장이 들어서고,공항과 부두에 내국인 면세점까지 생겨 칠성로 상인들에게 버거운 상대는 한둘이 아니다.”라고 푸념했다. 무너져 가는 상가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지난 99년 6월 상가대표 120명이 ‘칠성동번영회’를 조직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이들을 포함한 200여 상인들이 ‘칠성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을 만들어 자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으나 쉽게 풀리지 않는 눈치다. 김영식(53) 조합이사장은 “제주도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추진하려는 쇼핑아웃렛 사업이 지역상인들을 자극해 서로 단결하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 고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쇼핑할 수 있도록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산지천-칠성로-제주목관아지에 이르는 야간쇼핑거리를 조성하는 등 상권부활 운동을 적극 전개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양상호 탐라대 건축학과 교수는 “칠성로가 과거의 번성을 되찾으려면 열린공간,쾌적한 쇼핑환경으로의 특징있는 탈바꿈이 급선무”라며 “5∼6m의 좁은 가로폭에 비해 양쪽 건물 높이가 높아 가로공간 폐쇄감이 과다하고,점포 건물이 대지 경계선까지 들어차 도로와의 관계에서 여유가 없으며,점포간 간격이 밀집돼 가로외관 리듬이 결여되고 간판까지 난립해 열린공간은 전혀 없는 상태”라고 칠성로를 설명했다. 그러나 칠성로에는 다른 지역이 갖지 못한 여러 소중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비록 시간은 흘렀어도 개인적인 추억과 꿈,도시민의 애환,크고 작은 만남과 모임 등 여러 과거가 애잔하게 서려 있는 곳이 바로 칠성로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6)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上)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6)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上)

    문익점(文益漸,1329-1398).‘원나라에서 목화 종자를 들여와 헐벗고 살던 겨레붙이들에게 옷을 입도록 한 것은 농사를 시작하여 굶주리지 않게 한 후직(后稷)의 잊을 수 없는 은혜와 같다’는 시로 문익점을 찬양한 사람은 남명 조식 선생이다. 문익점은 우리 겨레가 무명옷을 입는 문화를 열고,명주와 모시,삼베옷 밖에 없었던 옛사람들에게 비로소 나라가 무엇이며,학자나 배우는 자는 뭘 하는 사람들이며,가진 이와 지도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없는 말로 깨닫게 해준 스승이다. ●모진추위에 얼어죽은 사람들이 곳곳에 해마다 가을 추수 무렵이면 이듬해 초봄까지 약 여섯 달 동안은 쌀쌀하고 추운 날이 많다.전체 인구의 8할이 넘는 서민들에게 겨울철은 징역살이보다 무서운 지독한 고통의 날들이었다.추위를 막아줄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명주베가 있기는 했으나 그 양이 지극히 적은데다 왕실이나 귀족,일정 품계 이상의 직위를 가진자들만 입을 수 있도록 법이 정해져 있어서 서민들은 함부로 명주옷을 입기 어려웠다. 삼베옷과 모시옷은 더위를 막아주는 옷이어서 아무리 여러 겹을 껴입어도 한겨울 추위를 막아주지는 못한다.그래서 겨울철이면 서민들이 사는 마을에는 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었고,모진 추위가 엄습하고 나면 곳곳에서 얼어죽는 사람들이 뒹굴었다.지옥의 날들이었다.어느 왕도 이 불우한 서민들의 얼어죽는 삶을 구원하지 못했고,어떤 부자,어떤 높은 벼슬아치나 학자도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얼어죽는 서민들의 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기껏해야 시 구절 몇 자 써서 남겼을 뿐이다.이토록 참혹한 서민들의 얼어 죽는 역사 천여 년 뒤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명베 옷을 입고 세상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며 살도록 해준,또 한 번의 천년 역사를 연 것이 문익점이다. 이 땅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한결같이 제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고,역사와 민중에게 저지른 과오를 참회하기는 커녕 회피와 궤변으로 더욱 더 자리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가는 요즘,문익점은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자 그리운 이름으로 되살아난다. ●문익점이 목화 재배 처음 성공해 그리하여 오늘은 문익점이 태어나 살았고,그의 은공을 기리는 도천서원(道川書院),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목화를 시험 재배했던 시배지(始培地)가 있는 경남 산청으로 길을 떠난다. “오늘날은 심심하여 베틀 연장이나 챙겨볼까 베틀다리 사형제는 동서남북 갈라서고 앉을깨는 돋움 놓아 그 위에 앉은 이는 모두 각시 상경하고 말코라고 생긴 것은 구렁이 죽은 넋일는지 뚤뚤 감고 나자빠졌네. 부티 허리 두른 양은 비오고 갤 날 허리 안개 두르듯 자질개 물 준 양은 세우 살살 뿌린듯네 다문다문 주는 최활 북두칠성 주는듯네. 배부른 기러기 알을 안고 옥양강을 드나들고 바디집 깡깡 치는 소리 옥양이라 깨치듯네. 잉앗대는 삼형제요 눌깃대는 독자로다 삼발 났다 저 비경이 삼천군사 거느리고 커다란 대한 길에 하늘하늘 잘도 간다. 용두머리 우는 소리 홀로 가는 외기러기 벗 부르는 소린듯네 쿵절쿵 도투마리 정절쿵 일어남서 배이볕에 듯는 양은 구사월 세단풍 나뭇잎 들는듯네 절로 굽는 저 철귀신 사시춘풍 사시절에 큰애기 발꿈치만 물고 돈다.” 경상도 산청지방에 전해지는,문학적 구성이 매우 뛰어난 베틀노래다.베틀 각 부분 명칭과 기능이 적절한 비유를 통해 잘 드러나 있고,베 짜는 여인과 베틀이 한 몸이 되어 서민들 한의 정서를 절묘한 은유로 노래하고 있다.무명베 올이 곱고 가늘수록 베짜는 어머니의 마음은 지상의 모순된 제도와 속박을 훨훨 벗어나 천상계의 아름다움을 숨쉬며 날아오른다.베틀 위에서 올올이 짜진 무명베는 천상을 향한 꿈이 소리 없이 날개를 저어 무지개를 불러와 색깔이 되고,해와 달,별과 바람과 구름을 데려와 무늬를 새기고 질감을 녹여 넣은 것이다. 무명베는 곧 어머니께서 꾸는 꿈의 몸인 것이다.어머니로 하여금 이같은 베틀노래를 부르면서 설움과 고난도 잊은 채 베를 짜서 부모님과 식구들 옷을 지어 입히고,자식들 혼수도 장만하고,살림 밑천도 마련하는 베틀의 역사를 존재하게 한 것이 문익점 선생이었다. ●서장관으로 뽑혀 원나라 방문 선생이 목화가 재배되고 있던 원나라를 여행하게 된 것은 1363년이었다.136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세 해 뒤엔 사간원좌정언(司諫院左正言)이 되었는데,이 해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뽑혀 원나라에 가게 되었다.원나라 방문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은 기록관이다.선생은 윗전인 정사(正使),부사(副使)를 수행하는 지위였다. 선생 일행이 원나라 연경(燕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그 일의 핵심에는 고려의 왕족이자 충선왕의 셋째 아들로 알려진 덕흥군(德興君)과 원나라 황제인 순제(順帝)의 황후가 된 고려 출신 기황후(寄皇后),고려를 배반하고 원나라로 망명한 최유(崔濡) 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매우 복잡하고 저속한 반역행위의 원인은 덕흥군을 이용하려는 고려 출신 여인이자 변신의 천재였던 기황후에게 있었다.덕흥군은 그를 낳아준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인데,다만 충선왕이 내친 어느 궁녀가 원나라 사람에게 출가하여 낳았다는 설이 있지만 그가 과연 충선왕의 아들인지도 확실치 않다.불우한 몸으로 일찍이 고려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나라로 도망갔다.공민왕은 그간의 원나라 노예국으로 지내온 고려의 정치적 위상을 고쳐잡기 위하여 1356년 반원개혁(反元改革)을 단행했다. 이 개혁정책은 그때 원나라 순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놀랍게도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 기황후의 친정 오라버니이자 고려의 원나라의 속국으로 만들어 가려는 기철(寄轍) 일파를 숙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철 일파가 공민왕에 의하여 죽게 되자 기철의 누이 기황후는 공민왕을 원망하면서 보복할 것을 음모했다.이 음모를 도운 자가 원나라로 망명해 있던 최유였다.최유는 고려 공민왕이 불경스럽게도 군사를 일으켜 원나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음모를 꾸며서 기황후로 하여금 순제에게 일러바치도록 했다. 기황후와 최유는 미리 공민왕을 제거하기 위한 책략까지 준비한 뒤였다.덕흥군이 비록 충선왕의 아들임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려 왕족 출신임은 분명하므로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삼고 원나라 군사를 이용하여 고려를 정벌하자는 것이었다. 뜻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기황후는 고려를 보다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최유 또한 고려를 손 안에 틀어 쥐고 권력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을 터였다. ●기황후 계략에 빠져 유배당해 기황후의 교태에 푹 빠져 살던 순제는 기황후의 말대로 믿었다.즉시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여 공민왕을 축출하라는 뜻을 내렸다. 일이 그 지경으로 되어 있을 때 선생 일행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다.선생 일행의 인사를 받은 순제는 기황후의 권유대로 선생 일행에게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을 새로운 왕으로 모실 것을 명령했다. 선생에게는 외부시랑(外部侍郞)이란 높은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의 신하가 되어 충성하라는 것이었다.선생은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거절했다.자신은 고려의 신하이지 원나라의 신하가 아니며 고려 공민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덕흥군을 새로운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는 데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생의 충절이 순제의 눈에는 죄가 되는 장면이다.결국 순제는 괘씸죄를 적용하여 선생을 연경에서 남쪽으로 만리나 떨어진 운남성 교주국으로 유배시켜버렸다.지금의 베트남 국경 부근으로 유배를 당한 선생의 심정은 몹시 착잡했다.죽게될지,살아서 고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 신고지역 취득·등록세 3~5배

    30일부터 주택거래신고제가 시행된다. 신고제 실시 지역에서 아파트를 사고 팔면 모든 세금을 실거래가 기준으로 내야 한다.이렇게 되면 취득세와 등록세가 지금보다 3∼5배 오른다. 제도 자체는 30일부터 시행되지만 3월 말 주택가격 동향조사 결과가 나온 뒤 요건을 갖춘 지역을 가려내 주택정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므로 실제 적용 시기는 4월 중순 이후로 예상된다. ●계약후 15일내 시·군·구에 신고 주택투기지역 가운데 집값이 급등한 지역이 해당된다.투기지역에서 매월 아파트값이 1.5% 이상 오르거나 3개월간 상승률이 3%를 넘어야 한다.연간 아파트 또는 연립주택 가격상승률이 전국 상승률의 2배 이상인 지역도 신고지역 지정대상이다. 대상 주택은 전용면적 60㎡를 초과하는 아파트 및 전용 150㎡를 초과하는 연립주택이다.다만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에 의한 재건축·재개발 정비구역에서는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신고 대상이다.신고 대상에 따라 아파트거래신고지역,연립주택거래신고지역,아파트·연립주택거래신고지역으로 구분해 지정된다.신고지역은 시·군·구,읍·면·동 또는 아파트 단지별로 지정할 수 있다. ●모든 세금 실거래가 기준 부과 집을 사고 판 사람은 계약 후 15일안에 거래내역을 시·군·구에 신고하면 된다.신고지역 지정 전에 계약을 했더라도 계약서에 검인을 받지 않은 경우에는 신고지역 지정일부터 15일 이내에 관할 시·군·구청에 신고해야 한다.따라서 계약체결 후 잔금을 지급했더라도 신고지역 지정일을 기준으로 당해 계약서에 검인을 받지 않은 때는 신고대상이 된다. 신고지역으로 지정되면 모든 세금을 실거래가로 내야 한다.따라서 취득·등록세가 지금보다 3∼5배 인상된다.현재 취·등록세 부과 기준인 과세시가표준액이 실거래가의 30%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건교부는 서울 강남 대치동 A아파트 31평형의 경우 취득세가 84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3.6배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서울 강남 개포동 B아파트 17평형은 765만원에서 3500만원으로 4.6배 인상된다.성남 분당 무지개 C아파트 33평형은 260만원에서 1750만원으로 무려 6.73배 오를 것으로 보인다.대전 만년동 D아파트 31평형은 330만원에서 825만원으로 2.5배 오른다.특히 시가에 비해 과세표준액이 적게 산정됐던 소형 재건축 아파트의 세금이 큰 폭으로 오르게 된다. ●계약일시·거래가격등 신고해야 거래 당사자 인적사항,계약 일시,실거래가,주택 종류·규모·소재지,소유권 이전 예정일,중개업자 인적사항,계약의 조건 및 기한 등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거래 가격.건교부는 지자체·국세청 등이 허위신고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국민은행과 한국감정원이 투기지역을 대상으로 구축한 주택가격 데이터베이스를 지자체 등에 매월 제공할 계획이다.신고필증을 교부받은 때에는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에 의한 검인을 받은 것으로 간주,별도로 주택거래계약서에 검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신고를 늦추면(1월 미만,1∼3월 미만,3∼6월 미만,6월 이상,12월 이상) 등 단계에 따라 각각 취득세액의 1∼5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내야 한다.또 허위(10% 미만,10∼20%,20∼30%,30∼50%,50% 이상)로 신고해도 단계에 따라 취득세액의 1∼5배에 해당하는 과태료가 부과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무료 배식 위한 ‘무지개밥차’ 기증

    이종인(李鍾仁)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28일 부천시 중앙공원에서 노숙자와 결식아동 등에 무료 배식할 ‘무지개 밥차’를 종교인평화봉사단에 기증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26)그리운 사람 그리운 이름,문익점(上)

    문익점(文益漸,1329-1398).‘원나라에서 목화 종자를 들여와 헐벗고 살던 겨레붙이들에게 옷을 입도록 한 것은 농사를 시작하여 굶주리지 않게 한 후직(后稷)의 잊을 수 없는 은혜와 같다’는 시로 문익점을 찬양한 사람은 남명 조식 선생이다. 문익점은 우리 겨레가 무명옷을 입는 문화를 열고,명주와 모시,삼베옷 밖에 없었던 옛사람들에게 비로소 나라가 무엇이며,학자나 배우는 자는 뭘 하는 사람들이며,가진 이와 지도자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없는 말로 깨닫게 해준 스승이다. ●모진추위에 얼어죽은 사람들이 곳곳에 해마다 가을 추수 무렵이면 이듬해 초봄까지 약 여섯 달 동안은 쌀쌀하고 추운 날이 많다.전체 인구의 8할이 넘는 서민들에게 겨울철은 징역살이보다 무서운 지독한 고통의 날들이었다.추위를 막아줄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명주베가 있기는 했으나 그 양이 지극히 적은데다 왕실이나 귀족,일정 품계 이상의 직위를 가진자들만 입을 수 있도록 법이 정해져 있어서 서민들은 함부로 명주옷을 입기 어려웠다. 삼베옷과 모시옷은 더위를 막아주는 옷이어서 아무리 여러 겹을 껴입어도 한겨울 추위를 막아주지는 못한다.그래서 겨울철이면 서민들이 사는 마을에는 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었고,모진 추위가 엄습하고 나면 곳곳에서 얼어죽는 사람들이 뒹굴었다.지옥의 날들이었다.어느 왕도 이 불우한 서민들의 얼어죽는 삶을 구원하지 못했고,어떤 부자,어떤 높은 벼슬아치나 학자도 도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얼어죽는 서민들의 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기껏해야 시 구절 몇 자 써서 남겼을 뿐이다.이토록 참혹한 서민들의 얼어 죽는 역사 천여 년 뒤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무명베 옷을 입고 세상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며 살도록 해준,또 한 번의 천년 역사를 연 것이 문익점이다. 이 땅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한결같이 제 자신의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하고,역사와 민중에게 저지른 과오를 참회하기는 커녕 회피와 궤변으로 더욱 더 자리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가는 요즘,문익점은 사무치게 그리운 사람이자 그리운 이름으로 되살아난다. ●문익점이 목화 재배 처음 성공해 그리하여 오늘은 문익점이 태어나 살았고,그의 은공을 기리는 도천서원(道川書院),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목화를 시험 재배했던 시배지(始培地)가 있는 경남 산청으로 길을 떠난다. “오늘날은 심심하여 베틀 연장이나 챙겨볼까 베틀다리 사형제는 동서남북 갈라서고 앉을깨는 돋움 놓아 그 위에 앉은 이는 모두 각시 상경하고 말코라고 생긴 것은 구렁이 죽은 넋일는지 뚤뚤 감고 나자빠졌네. 부티 허리 두른 양은 비오고 갤 날 허리 안개 두르듯 자질개 물 준 양은 세우 살살 뿌린듯네 다문다문 주는 최활 북두칠성 주는듯네. 배부른 기러기 알을 안고 옥양강을 드나들고 바디집 깡깡 치는 소리 옥양이라 깨치듯네. 잉앗대는 삼형제요 눌깃대는 독자로다 삼발 났다 저 비경이 삼천군사 거느리고 커다란 대한 길에 하늘하늘 잘도 간다. 용두머리 우는 소리 홀로 가는 외기러기 벗 부르는 소린듯네 쿵절쿵 도투마리 정절쿵 일어남서 배이볕에 듯는 양은 구사월 세단풍 나뭇잎 들는듯네 절로 굽는 저 철귀신 사시춘풍 사시절에 큰애기 발꿈치만 물고 돈다.” 경상도 산청지방에 전해지는,문학적 구성이 매우 뛰어난 베틀노래다.베틀 각 부분 명칭과 기능이 적절한 비유를 통해 잘 드러나 있고,베 짜는 여인과 베틀이 한 몸이 되어 서민들 한의 정서를 절묘한 은유로 노래하고 있다.무명베 올이 곱고 가늘수록 베짜는 어머니의 마음은 지상의 모순된 제도와 속박을 훨훨 벗어나 천상계의 아름다움을 숨쉬며 날아오른다.베틀 위에서 올올이 짜진 무명베는 천상을 향한 꿈이 소리 없이 날개를 저어 무지개를 불러와 색깔이 되고,해와 달,별과 바람과 구름을 데려와 무늬를 새기고 질감을 녹여 넣은 것이다. 무명베는 곧 어머니께서 꾸는 꿈의 몸인 것이다.어머니로 하여금 이같은 베틀노래를 부르면서 설움과 고난도 잊은 채 베를 짜서 부모님과 식구들 옷을 지어 입히고,자식들 혼수도 장만하고,살림 밑천도 마련하는 베틀의 역사를 존재하게 한 것이 문익점 선생이었다. ●서장관으로 뽑혀 원나라 방문 선생이 목화가 재배되고 있던 원나라를 여행하게 된 것은 1363년이었다.1360년에 과거에 합격하여 세 해 뒤엔 사간원좌정언(司諫院左正言)이 되었는데,이 해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뽑혀 원나라에 가게 되었다.원나라 방문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역할을 맡은 기록관이다.선생은 윗전인 정사(正使),부사(副使)를 수행하는 지위였다. 선생 일행이 원나라 연경(燕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그 일의 핵심에는 고려의 왕족이자 충선왕의 셋째 아들로 알려진 덕흥군(德興君)과 원나라 황제인 순제(順帝)의 황후가 된 고려 출신 기황후(寄皇后),고려를 배반하고 원나라로 망명한 최유(崔濡) 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매우 복잡하고 저속한 반역행위의 원인은 덕흥군을 이용하려는 고려 출신 여인이자 변신의 천재였던 기황후에게 있었다.덕흥군은 그를 낳아준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인데,다만 충선왕이 내친 어느 궁녀가 원나라 사람에게 출가하여 낳았다는 설이 있지만 그가 과연 충선왕의 아들인지도 확실치 않다.불우한 몸으로 일찍이 고려에서 승려가 되었으며 1351년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나라로 도망갔다.공민왕은 그간의 원나라 노예국으로 지내온 고려의 정치적 위상을 고쳐잡기 위하여 1356년 반원개혁(反元改革)을 단행했다. 이 개혁정책은 그때 원나라 순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놀랍게도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 기황후의 친정 오라버니이자 고려의 원나라의 속국으로 만들어 가려는 기철(寄轍) 일파를 숙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철 일파가 공민왕에 의하여 죽게 되자 기철의 누이 기황후는 공민왕을 원망하면서 보복할 것을 음모했다.이 음모를 도운 자가 원나라로 망명해 있던 최유였다.최유는 고려 공민왕이 불경스럽게도 군사를 일으켜 원나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음모를 꾸며서 기황후로 하여금 순제에게 일러바치도록 했다. 기황후와 최유는 미리 공민왕을 제거하기 위한 책략까지 준비한 뒤였다.덕흥군이 비록 충선왕의 아들임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고려 왕족 출신임은 분명하므로 덕흥군을 고려왕으로 삼고 원나라 군사를 이용하여 고려를 정벌하자는 것이었다. 뜻대로 일이 이루어진다면 기황후는 고려를 보다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최유 또한 고려를 손 안에 틀어 쥐고 권력을 맘대로 휘두를 수 있을 터였다. ●기황후 계략에 빠져 유배당해 기황후의 교태에 푹 빠져 살던 순제는 기황후의 말대로 믿었다.즉시 덕흥군을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여 공민왕을 축출하라는 뜻을 내렸다. 일이 그 지경으로 되어 있을 때 선생 일행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것이다.선생 일행의 인사를 받은 순제는 기황후의 권유대로 선생 일행에게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을 새로운 왕으로 모실 것을 명령했다. 선생에게는 외부시랑(外部侍郞)이란 높은 벼슬을 내리면서 덕흥군의 신하가 되어 충성하라는 것이었다.선생은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거절했다.자신은 고려의 신하이지 원나라의 신하가 아니며 고려 공민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덕흥군을 새로운 고려의 왕으로 옹립하는 데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생의 충절이 순제의 눈에는 죄가 되는 장면이다.결국 순제는 괘씸죄를 적용하여 선생을 연경에서 남쪽으로 만리나 떨어진 운남성 교주국으로 유배시켜버렸다.지금의 베트남 국경 부근으로 유배를 당한 선생의 심정은 몹시 착잡했다.죽게될지,살아서 고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 [이집이 맛있대]압구정동 순대카페 ‘순愛보’

    외식산업에도 역발상이 화두가 되고있다.값싸고 대중적인 음식 중 하나인 순대를 우아하게 즐길 수 있는 곳,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순愛보’는 ‘순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컨셉이 젊은이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순대국밥집이라기 보다는 카페같아 보이는 자동문을 통과하면 플로리라주립대에서 외식경영을 전공한 대표 오현준(30)씨의 사진과 인테리어를 맡은 건축가 민경식 씨에 관한 설명이 예사롭지않다.더욱이 벨벳을 씌운 의자와 무지개 빛의 블라인드,거울이 모던한 느낌을 준다. 지난 2월에 문을 열었으나 명성이 알려진 것은 인테리어때문만은 아니다. 순대와 보쌈의 맛이 깔끔하고,맛깔스럽다는 것. 대표적인 순대는 야채로 만든 깔끔한 맛의 ‘야채순대’,매콤한 청량고추를 넣은 ‘매콤순대’,인도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커리순대’등으로 5000원으로 저렴하다.또 소시지 제조기술과 순대를 접목시킨 ‘일품순대’(7000원)는 아이들에게도 인기. 이집에선 익힌김치를 살짝 씻어낸 ‘묵은지’를 함께 내놓고 있어 맛을 돋운다.또 순대를 먹을 때,와인을 함께 권하는 것도 이 집만의 특징.“순대를 입에 넣고 씹다가 3분의 1이 남았을 때,와인 한 모금을 더하는 것이 맛있게 순대를 먹는 비결이다.”고 오 대표는 일러줬다. 보쌈도 자랑거리.보쌈과 모듬순대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순애보특선’(2만5000원)은 3∼4명이 함께 저녁을 즐길 때 좋다. 가스레인지 대신 유리 보온장치를 사용해 순대가 마르는 것을 방지할 뿐아니라 무드램프 기능까지 더해준다. 허남주기자 hhj@˝
  • 백두대간 생태·문화기행

    ■ 초등4~6년생·가족 대상 서울신문은 사단법인 무지개세상과 함께 민족의 정체성과 국토의 소중함을 되새기면서 가족간의 대화와 공동체 활동을 통한 사회적 유대감을 확보하고자 ‘백두대간 생태·문화기행’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기행은 우리나라 산맥의 중요한 전통사상을 정리한 산경표(山經表)를 바탕으로 백두대간 기본줄기와 강줄기를 따라 답사하게 됩니다. ●대상 초등학교 4~6학년·가족 ●일정 및 탐사지역(주말 1박2일) 3~5월 지리산, 치악산, 설악산 6~8월 두륜산, 마니산, 백두산(5박6일) 9~11월 덕유산, 내장산, 태백산 ●주관 사단법인 무지개세상 ●후원 문화관광부, SBS문화재단, 스포츠서울 ●참가문의 www.ecorainbow.or.kr / 02-458-0803 주최: 서울신문사˝
  • 광교등 6곳 공사 재개될듯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문화재가 발굴돼 복원공사가 잠정 중단됐던 광교 등 6곳에 대한 공사가 곧 재개될 전망이다. 서울시 한문철 복원관리담당관은 19일 “청계천문화재 보존 전문가 자문위원회가 공사가 중단된 6곳의 문화재 복원 방안에 잠정 합의했다.”면서 “이에 따라 시는 발굴 유구에 대한 복원을 전제로 공사를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문위원회는 오간수문 터의 경우 ‘제자리 복원’은 동대문운동장과 동대문을 연결하는 흥인로 일대에 교통대란이 우려되기 때문에 발굴 유구를 박물관 또는 청계천문화관 등으로 이전·보관토록 결정했다. 청계 6가에 위치한 오간수문은 북악·인왕·목멱·매봉산 등에서 모인 물이 청계천을 통해 배수되는 수문으로,최근 발굴조사에서 다리받침대와 홍예(무지개 모양) 기초부,다섯 칸 수문터 등이 발굴됐다. 자문위원회는 수해방지공사가 시급한 광교와 수표교에 대해서도 임시 가시설 설치를 위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발굴 유물을 해체·이전할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인 복원 방안은 다음 회의에서 논의키로 했다.모전교 주변 발굴 석축은 청계천 하폭을 넓혀 복원할 예정이다.효경교·하랑교는 바닥석 등 발굴 유구만 재현할 계획이다. 장세훈기자˝
  • 청계천 이번엔 ‘문화재 훼손’ 논란

    지난해 7월 청계천 복원공사의 착공문제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던 시민단체와 서울시간의 힘겨루기가 다시 시작됐다.당시 서울시의 착공 강행에 밀렸던 시민단체들은 최근 청계천 오간수문터에서 홍예석(무지개모양 다리 기초석) 등 조선시대 유물이 잇따라 발굴되자 유물 발굴을 위해 공사중단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문화연대,녹색연합,환경정의시민연대 등 11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올바른 청계천 복원을 위한 연대회의’는 지난달 26일 서울시청 앞에서의 공사중단 시위를 시작으로 반대운동에 돌입했다.특히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공사에 대한 시민 의견을 모으기 위해 시민단체와 전문가 등으로 구성한 ‘청계천 복원사업 시민위원회’(시민위원회)의 역사분과위원회도 반대운동에 동참했다. 현재 시민단체와 서울시의 입장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태다.서로 양보할 수 없는 불가피한 입장을 내세워 마치 지난해 벌어졌던 ‘7월1일 착공’ 논란을 방불케 하고 있다. ●청계천 논란 ‘2라운드’ 돌입 시민단체는 “공사강행으로 문화유적·유물의 훼손이 우려된다.”며 공사중단을 요구하고 있다.반면 서울시는 공사를 멈추면 여름철 장마 때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강하게 맞서고 있다. 강찬석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600년 역사유적인 청계천의 발굴을 청계천 복원이라는 미명 아래 뭉개 없애버린다면 역사와 후손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것”이라며 비난했다. 시민위원회 역사문화분과위 홍성태 간사위원(상지대 교수)은 “잘못된 실시계획을 제출하고,불법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2년 6개월 안에 업적을 만들어 내겠다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야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공사를 중단할 경우 공사 지연에 따른 시민불편과 함께 다가오는 장마철에 물난리 등이 우려된다.”면서 “공사중단에 따른 시민불편과 안전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반박했다. 시민단체들은 문화재청에 즉각 공사중단 명령을 내릴 것과 청계천 구간에서 문화재가 발견된 곳을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사적으로 ‘가지정’해줄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또 청계천 전 구간에 대한 전면 문화재 발굴을 촉구했다. ●“문화재 발견지역 사적 가지정 해야” 청계천 발굴조사사업을 모니터링해온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최근 발굴된 모전교 양쪽의 호안석축,오간수문의 홍예석 등은 청계천 전체 5.8㎞구간 중 극히 일부인 500m구간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발굴지역을 확대할 경우 문화재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덕희 시민위원회 위원은 “실시설계에 대한 시민위원회의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는 데도 서울시가 이미 광교의 상판공사를 하고 있으며,수표교의 양쪽 석축공사를 하고 있다.”면서 “서울시가 시민위원회를 완전히 무시하고 제멋대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이 ‘문화재 출토로 청계천 복원을 멈춰야 하는가’라는 내용의 인터넷 폴(실시간 투표)을 실시한 결과,1일 현재 9098명이 참가해 이 가운데 81.9%인 7448명이 ‘문화재 보전방식 검토를 위해 일단 공사를 멈춰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시민불편 최소화를 위해 공사 변경은 없어야 한다.’는 응답은 16.3%인 1482명에 그쳤다. 조기 완공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이에 따라 오는 2005년으로 돼 있는 완공 예정 일정도 미지수다. ●성급한 공사강행 부작용 우려 목소리 강병기 시민위원회 위원은 “처음부터 지적한 ‘하천공원형’ 복원사업의 문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면서 “청계천에 인공둔치를 만들고 조경을 꾸미고 시설을 갖추는 것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비가 조금만 와도 침수돼 쓰레기로 뒤덮일 수밖에 없는 대단히 잘못된 계획”이라고 지적했다. 이민규 경실련 서울시민사업팀 간사는 “그동안 서울시가 청계천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동의를 얻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위원회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서울시가 문화재를 제대로 복원하라는 시민위원회와 연대회의의 의견을 겸허하게 수용해 올바른 복원계획 및 절차를 다시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길섶에서] 파랑새 증후군/우득정 논설위원

    출근길 버스 안.옆에 앉은 20대 청년이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전화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오늘 출근길에 사표를 내겠다는 내용이다.아마도 통화 상대방이 어머니쯤 되는지 설득이 잘 안되는 모양이다.“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요.”“적성에도 맞지 않는 일을 붙들고 있느니 당분간 백수로 지내면서 마음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볼랍니다.” 문득 얼마 전 지면에서 본 ‘파랑새 증후군’이 떠오른다.젊은이 4명 중 1명이 실업자일 정도로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시대.20대 직장인의 절반가량은 수없는 도전 끝에 간신히 취업에 성공했음에도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이직을 갈망한다고 했다.남의 떡이 더 크게 보여서가 아니라 어쩌면 저 언덕 너머에는 어릴 적부터 꿈꾸었던 무지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 때문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파랑새를 꿈꿀 수 있는 젊음은 행복하다.어느 날 젊음이 내 곁을 떠났다고 느끼는 순간 무기력한 일상의 반복만 남는다.20여분간 버스가 떠날 듯이 큰소리로 통화하고도 한마디 인사치레조차 없이 일어서는 그 청년이 오히려 부럽기만 하다. 우득정 논설위원
  • 청계천 오간수문지 보존 양호

    조선시대 서울 청계천에 놓여 있던 수문(水門)의 하나인 오간수문지(五間水門址)가 원형을 상당부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청계천 복원공사 구간에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앙문화재연구원은 청계6가 오간수문지에서 다리 양쪽의 교대와 무지개 모양의 홍예기초 등이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오간수문은 서울 도성 안 북악·인왕·목멱·매봉산에서 모인 물이 청계천을 통해 배수되는 곳에 지어진 다섯칸 수문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조사 결과 30.66m 너비의 양쪽 교대와 교대 부분의 물흐름을 좋게 하는 날개,4개의 홍예기초,수문바닥돌 등이 큰 손상없이 남아 있었다.홍예기초부 앞쪽에서는 거북이 모양의 석수(石獸)도 나왔다. 서동철기자 dcsuh@˝
  • 올 봄 유행예감

    핑크,그린,옐로….여전히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지만 거리의 쇼윈도는 무지개빛 봄 옷으로 갈아입었다.‘로맨틱’을 주제어로 한 패션 트렌드가 번지면서 화사하면서 사랑스러운 핑크 계열의 색상이 유독 강세다.‘메트로섹슈얼’붐에 따라 여성의 색상으로만 느껴지는 핑크가 남성 패션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 올 봄 패션 특징 중의 하나.하성동 롯데백화점 해외명품팀 매니저는 “지난해 가을·겨울시즌부터 해외컬렉션에서 선보였던 ‘캔디 컬러’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추세”라면서 “특히 여성적인 색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핑크가 남성 패션에도 접목돼 더욱 화사한 패션을 연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봄이 오는 거리 백화점·로드숍 등은 예년보다 열흘 정도 빠르게 봄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춥지 않은 날씨가 계속된 탓이다.거리의 패션피플들의 옷도 겉옷은 두껍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밝고 경쾌한 색상으로,봄 기운이 흐른다. 수입 브랜드들은 이보다 더욱 빠르게 봄·여름 신상품을 내놓았고,시즌을 겨냥한 ‘ready to wear(기성복)’ 패션쇼를 진행했다.전체적인 테마는 빨갛고 노랗고 파란,밝은 색상의 ‘캔디 컬러’.이 가운데 ‘핑크’ 계열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지난해부터 밝은 색상을 선보이기 시작한 버버리는 더욱 화사하고 달콤해졌다.베이지색 바탕과 체크 패턴으로 대표되던 버버리 아이콘을 연한 핑크톤으로 변화시킨 ‘캔디 컬렉션’을 내놓았다. 한국에서 막강한 인기를 끌고 있는 거친 질감의 트위드 소재 재킷은 파스텔톤 핑크로 더욱 사랑스러워졌고,마틴 싯봉은 트로피컬 핑크의 의상으로 더욱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남성도 밝고 따뜻하게 남성복도 여성복과 마찬가지로 밝고 따뜻한 느낌의 색상으로 편안함을 살리고 있다.특히 잘 쓰지 않던 핑크 컬러를 접목해 더욱 화사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제이폴락 김난이 디자인실장은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컬러로 마력을 가진 핑크가 올해는 남성패션 속으로 들어갔다.”며 “섹시한 느낌은 빨간색보다 한 톤 낮지만 관능적인 매력으로 남성의 ‘메트로섹슈얼’을 표현하기에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정장은 감청색과 회색을 기본 색상으로 사용하고,핑크 오렌지 등의 악센트 색상을 사용한 스트라이프(줄무늬)로 부드러운 느낌을 살린다. 남성 셔츠에는 다양한 크기의 꽃무늬가 내려앉아 성 영역의 자유로움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핑크를 주류로,그린 옐로 등을 첨가해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주고 있다. 로가디스 이은미 디자인실장은 “날씬한 3버튼 정장에 하얀색이나 연한 누드핑크 셔츠를 받쳐 입고,핑크 계열의 타이로 코디하면 산뜻한 봄 분위기가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소품에도 핑크 바람 손끝,발끝도 경쾌해졌다. 샤넬,구찌,크리스챤 디올 등의 봄 컬렉션에서 핑크빛 세상을 연출하고 있다.오랜 이미지 리뉴얼 작업을 마무리한 펜디는 커다란 자사 로고를 박은 분홍빛 가죽 ‘셰도백’으로 여심을 유혹한다. 루이비통은 강렬한 쇼킹핑크의 핸드백과 구두를 선보였고,발렌티노는 베이지색 가죽과 핑크빛 패브릭(천 소재)을 믹스매치한 호보백을 내놓았다.시계 브랜드 지오 모나코는 누드 핑크,테크노 마린은 빈티지 핑크,포체는 파스텔 핑크의 가죽 시계줄로 손목을 즐겁게 한다. 최여경기자 kid@˝
  • [길섶에서] 꿈을 꾸어라

    꿈을 꾸어라.새 꿈을 꾸어라.푸르디푸른 하늘처럼 파란,넓디넓은 초원처럼 드넓은 꿈을 꾸어라.좁은 마음으로,거친 입으로,멀게진 눈으로,꽉 막힌 귀로,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한 걸 꾸어라.꿈이 있다면 깊은 밤 지난 새벽 더 찬란하게 밝아올 것이다. 새 날이 온다.하루 하루 또 하루 새날은 시작한다.더께로 앉은 묵은 먼지 털듯 지난해의 소란과 미움을 모두 버려라.미련은 새 날엔 어울리지 않는다.새 날에는 반짝이는 눈,온화한 마음,정중함을 동무로 삼자.현실이 먼지 뽀얀 자갈길 같아도,꿈이 있다면,험한 길 같이 갈 동무가 있다면 수고로움이 덜어질 것이다.킹 목사의 꿈처럼 웅장하지 않아도 좋다.무지개처럼 뻗지 못해도,강물처럼 흐르지 않아도 좋다.거짓이 아니면 된다. 이 길을 갈 때 입만큼은 꾹 다물고 가자.풍진(風塵)이 들어와서가 아니다.동무들 마음을 상하게 할까 보아서다.꿈은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전염시킬 수 있다.푸른 꿈으로 두 천사(2004)의 해를 살아보자. 강석진 논설위원
  • 박여숙화랑 20돌 오늘부터 특별전

    서울 청담동 박여숙 화랑이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았다.당시로서는 드물게 대표의 이름을 따 화랑 이름을 짓고 미술품 카드 할부판매를 실시해 일찍이 눈길을 끌었다.박여숙화랑은 젊고 역량있는 작가들의 발굴에 힘써 왔다.그동안 전시 횟수만 170여회.1991년부터 시카고·바젤·쾰른·FIAC 등 세계 유수 아트페어에 참여해 한국작가들을 해외에 소개해 왔다.박여숙화랑이 20주년을 기념해 16일부터 27일까지 특별전을 연다. ‘함께한 20년’이라 이름 붙여진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박여숙화랑과 함께한 한국 작가들과,화랑이 국내에 소개한 외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권옥연 김강용 김원숙 김종학 김태순 남춘모 박서보 박용남 박은선 서세옥 서정국 윤형근 이대원 이영섭 이진용 이헌정 임만혁 정종미 정창섭 등의 회화 작품이 출품된다.또 나이젤 홀,줄리아노 반지,빌 베클리,우고 리바,프레 일겐,패트릭 휴스,크리스토와 장 클로드,해리 게리츠 등 해외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몇몇 작가들은 개관 축하 작품들도 보냈다.패트릭 휴스는푸른 바탕에 박여숙이라는 영문 알파벳과 무지개가 교차되는 원색의 그림을 보냈고,나이젤 홀은 아크릴과 목탄으로 원을 그린 드로잉 작품으로 개관 20주년을 축하했다.(02)549-7574. 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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