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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뜬별 & 진별

    2005 뜬별 & 진별

    2005년도 저물어간다. 언제나 그렇지만, 욱일승천의 기세로 올 한해를 자신의 해로 만든 부류는 누구인가. 반대로 급전직하의 참담함을 맛본 부류는 또 누구일까. 서울신문은 연말 특집으로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 극과 극의 행보를 보인 이른바 승자(Winner)와 패자(Loser)를 선정했다. ■ 존 매케인 vs 칼 로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올해 ‘세계의 정치 수도’인 워싱턴에서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와 같은 확실한 승리자와 패배자를 탄생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공화당 내에서는 존 매케인을 비롯한 중도적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크게 부상했고, 조지 부시 대통령의 권력 기반인 ‘텍사스 사단’은 눈에 띄게 힘을 잃었다. 매케인 의원은 이라크 전과 같은 안보 이슈에서는 철저하게 부시 대통령을 옹호하고 지원하며 보수성을 과시해왔다. 매케인 의원은 그러나 최근 테러리스트로 지목돼 억류된 포로에 대한 고문을 반대하는 입법을 주도하는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중도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민주당측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올 한해 매케인 의원이 직접 제출한 법안과 결의안만도 80건에 이른다. 또 미 상원 의원들은 법안을 제출할 때 정치적 영향력이 큰 매케인 의원이 함께 서명해주기를 원해 그의 서명이 들어간 법안 수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이같은 노력이 인정을 받아선지 지난 10월말 퓨 리서치 센터가 공화·민주당원 및 무소속 유권자를 상대로 조사한 2008년 대선 후보 여론조사 결과, 매케인 의원은 공화당 후보 가운데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공화당에서 2위를 기록한 루돌프 줄리아니 역시 중도적 성향의 정치인이다. 반면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사단 가운데서도 중심 인물이었던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을 유출한 ‘리크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부시 대통령의 신임도 떨어졌다고 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로브의 힘이 빠지면서 한때 탄력을 받았던 ‘보수세력 장기집권론’도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역시 텍사스 출신으로 부시 대통령이 주지사 시절부터 법률 자문을 해온 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법률고문도 2005년이 오욕으로 점철된 해였다. 마이어스는 부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지명됐지만, 부족한 경력과 불투명한 성향 때문에 논란이 빚어지자 스스로 물러났다. 마이어스의 상원 인준을 앞두고 ▲판사 경험이 전혀 없는데다 ▲앨 고어 등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기부했던 적이 있고 ▲낙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이 불분명하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보수층으로부터 사실상 외면당했다. dawn@seoul.co.kr ■ 도요타 vs GM 도요타자동차는 내년 3월 결산에서 일본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매출액이 20조엔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순이익도 3년 연속 1조엔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세계 자동차업계 1위인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는 판매부진과 경영악화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급기야 릭 왜고너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내년부터 북미지역 공장 9곳을 폐쇄하고 2008년까지 종업원 3만명을 줄이겠다는 처방을 내놓았다.11월 주가는 한때 18년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부도설까지 나돌았다. 올 한해 도요타와 GM의 엇갈린 성적표다. 그래서 ‘빠르면 2006년 도요타가 GM을 넘어선다.’는 예상도 나온다.2008년이었던 도요타의 목표보다 2년 빠른 것이다. 도요타는 내년 예상 판매대수를 900만대로 잡고 있고 공장을 폐쇄해야 하는 GM은 이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일시적이기는 하나 도요타가 북미시장 점유율에서 GM을 추월하기도 했다. 도요타는 이제 ‘기업’ 이상의 위치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도요타 배우기’ 열풍이 분 지 오래다. 순이익 1조엔은 이른바 빅3라는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순이익을 전부 합친 것의 2배 가까운 규모다. 일본 언론은 “도요타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주고 있다.”며 ‘일본경제 부활의 구세주’로 묘사하고 있다. 도요타의 힘은 낭비요소를 없앤 생산방식에서 비롯된다. 세계적 부품업체들과의 유기적 협조,50년간 노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노사관계, 철저한 품질 및 인적관리 시스템도 승승장구의 비결이다. 조 후지오 도요타 부회장은 “글로벌시대에는 국가별로 현지 문화 및 고객 기호에 부합하는 고품질 저가격 제품 생산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성공 비결을 역설했다. 반면 GM의 추락은 미국 제조업의 쇠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이던 GM의 신용등급은 ‘정크 본드’ 수준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여기에다 아성으로 여겨졌던 북미시장마저 일본 경쟁업체들로부터 위협받자 왜고너 회장이 직접 북미시장을 챙기기에 나섰다.‘직원용 할인가격’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적용하는 ‘제살깎기식’ 무한경쟁에 나섰지만 추세를 돌려놓기엔 역부족이었다. GM 추락의 주요 원인으로 우선 낮은 소비자 만족도를 들 수 있다. 과다한 직원 복지후생 부담도 발목을 잡고 있다.GM은 차를 한대 만들 때마다 1500달러씩의 후생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이래서는 도저히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오프라 윈프리 vs 마이클 잭슨 “그녀가 출마한다면 미국 정치의 심장과 얼굴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다.” 지난주 미주리주에서 ‘오프라를 대통령으로’란 문구가 새겨진 물품만을 파는 가게를 낸 패트릭 크로의 말이다. 물론 윈프리는 출마를 거부했지만, 여성이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보고 싶다고 말했다. 통큰 선행으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후보로까지 거론되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이미 전세계 여성들의 친구이자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있다.21년 동안 전세계 121개국 이상의 여성들이 그녀의 토크쇼를 보며 울고, 웃고, 열광하고 있다. 윈프리는 가난한 사생아로 태어나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실은 17살때 미인 선발대회 왕관을 썼고 3살도 안돼 책을 읽었다. 지난해 토크쇼 방청객 전원에게 자동차를 나눠주는 깜짝쇼를 연출한 데 이어 올해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재앙이 닥치자 연방 정부보다 재빨리 구호활동에 나섰다. 루이지애나주 슈퍼돔으로 달려가 이재민들을 안고 위로했으며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특히 3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나중에 토크쇼에 초청,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 등 210만달러 어치의 선물을 안겨줬다. 하지만 같은 흑인으로 팝의 제왕이었던 마이클 잭슨에게 올해는 최악의 한해였다. 아동 성추행 소송사건에 휘말리면서 전세계 매스컴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법정 출두를 미루다가 체포 영장을 발부하겠다는 판사의 경고에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타난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제이 레노, 매컬리 컬킨 등 유명 인사들의 대량 증언과 고액 변호사를 앞세워 결국 소송에서는 승리했지만 자택인 네버랜드를 팔아야 할 정도로 경제적 곤궁에 처했다. 변호사 비용만 500만달러를 썼으며, 빚은 4억달러가 넘는다. 잭슨은 미성년 아동과 같은 침대에서 잔 사실은 인정했지만, 성적 접촉은 부인했다. 비록 재판관은 그가 무죄라고 선언했지만, 잭슨이 결백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우상이었던 잭슨은 아동 성추행 재판으로 팝의 제왕에서 언론의 웃음거리로 단숨에 추락했다. 팬들은 그가 음악활동을 재개할 것을 바라고 있지만, 대중은 이제 잦은 성형수술로 무너질 위기에 처한 그의 코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佛 검찰 ‘망신살’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 검찰이 아동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질러 무고한 시민들을 죄인으로 내몬 사실이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파리 항소법원은 지난 1998∼1999년 18명의 어린이들을 강간, 성적 학대, 매매춘한 혐의로 지난해 7월 1심에서 집행유예 18개월부터 7년형을 선고받은 6명의 피고인에 대해 1일(현지시간)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001년 미리암 바다위 들레와 그녀의 파트너가 자신의 아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된 뒤 검찰은 아이들의 확증 없는 증언과 미리암의 진술을 과신,5년간 18명의 아이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성인 17명을 재판대에 세웠다.심지어 사건 배후에 프랑스와 벨기에의 국제 아동 매매춘 조직이 있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많은 어린이들의 증언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사건의 열쇠를 쥔 미리암이 다른 피고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거짓 증언했다고 실토하면서 실체가 드러났다. 아동 매매춘 조직 역시 허구에 불과하며 단 두 가정에서만 일어난 사건임이 확인돼 결국 미리암을 포함해 4명만 유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다른 7명은 파드칼레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에 무죄가 인정된 목사와 집달관 등 남성 5명과 여성 1명은 줄곧 무혐의를 주장했지만 23∼39개월 구금되는 바람에 직장을 잃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혼당하거나 자녀 양육권을 빼앗기는 등 수모를 당했다. 한 명은 2002년 6월 교도소에서 약물과용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파스칼 클레망 법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국가를 대신해 사죄한다.”고 말했다.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법의 실수”를 인정하며 “국가는 피해를 배상할 것”이라고 말했다.현지 언론은 이번 사건이 2차대전 이후 최대의 오심으로 법률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lotus@seoul.co.kr
  • 못갚을 카드사용 ‘사기죄’

    적법하게 발급받은 신용카드라도 갚을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사용하면 사기죄에 해당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강신욱 대법관)는 29일 상환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해 현금 서비스를 받는 등 2570만원을 빚진 혐의로 기소된 안모(35)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기죄에 해당된다며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같은 재판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1660여만원어치 카드빚을 진 혐의로 기소된 박모(42)씨 사건도 유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2부(주심 이강국 대법관)도 신용카드로 2000여만원어치를 사용하고도 갚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이모(42)씨에 대해 원심의 무죄를 깨고 유죄 취지로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이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카드 회원이 카드사에 대금을 성실히 갚을 것을 전제로 한다.”면서 “한때 자금이 부족해 연체되는 것이 아닌, 과다한 채무 누적으로 카드빚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카드를 사용했다면 사기죄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들은 “신용카드는 그 속성상 카드회사가 고객의 신용상태를 엄격히 평가해 일정 범위의 신용을 제공하는 것”이라면서 “카드를 발급 받을 당시 카드회사를 속이지 않고 적법하게 발급 받았다면 사용한도 내에서 카드를 사용할 수 있고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카드회사에 자신의 신용상태를 고지할 의무도 없다.”며 사기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대법원은 ‘현금 자동인출기를 통해 현금 서비스를 받는 것은 사람을 속인 행위가 아니어서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일부 항소심의 판단도 받아들이지 않았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한나라 ‘3姜’ 다시 뭉치나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 강창희 대전시당위원장, 강삼재 전 신한국당(옛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 이른바 ‘3강(姜)’이 오는 28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만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이 자리는 강 원내대표가 마련한 것으로 최근 안풍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강 전 사무총장이 겪은 ‘고난의 시절’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3강’의 정치적 비중을 볼 때 이날 회동의 의미는 적지 않다. 각각 5선의 정치적 관록으로 ‘15선’이라는 녹록지 않은 무게가 실린다. 특히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과 만나 ‘정치적 부자(父子)’관계를 복원, 주목받는 강 전 사무총장의 정치 재개를 놓고 세 사람이 입장을 조율할 것으로 보여 더 눈길을 끈다. ‘3강’은 지난 98년 이회창 총재에 맞서 ‘토니 블레어론’을 내세워 힘을 합쳐 ‘강재섭 대망론’을 펼치다가 좌절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강 전 사무총장은 최근 몇몇 기자들에게 “일정을 맞추다보니 좀 늦어졌다.”며 “두 분에게 정치 재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어 경남지사 출마설 등 자신의 향후 거취와 관련,“정계를 은퇴한 입장에서 어디에 출마하겠다고 먼저 나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전제한 뒤 “정치를 재개하려면 당의 공식 요구가 있어야 되고 향후 정계 변화나 정권창출을 위한 역할 여부 등 종합적 판단이 필요한데 정치 일정상 내년 3월께 구체적 거취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자연인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세 사람은 28일 회동에서 서로의 정치적 필요성이 맞물려 ‘연대’를 논의할 가능성도 있다.‘3강’이 연대를 복원할 경우 그 상승효과는 향후 한나라당의 역학구도나 대권경쟁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강 원내대표는 대권 주자로서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강 전 사무총장도 ‘구시대 정치인’이라는 굴레를 벗고 자연스럽게 정치를 재개할 ‘모양새’가 필요하다. 강 위원장도 원외지만 ‘충청권 대표주자’로서 내년 지방선거나 2007년 대선에서 일정 역할을 바라고 있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이현세 만화경] 자유로운 의지라면…

    [이현세 만화경] 자유로운 의지라면…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갑자기 길거리가 노랗게 물들었다. 지난주까지 푸른빛을 더 보이던 은행잎이 어제 비가 온 탓인지 오늘은 노랗게 물들어 있다. 바람에 은행잎이 나비처럼 날리니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고 있다. 곧 겨울이 오면 은행처럼 바싹 마른 내 피부에도 훈장처럼 또 하나의 나이테가 늘어날 테다. 흰 눈에 덮여 있던 마른 은행은 그래도 내년에는 저 자리에 서서 잎을 피울 테고, 계절은 또 달려와 내게도 나이만큼 어울리는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줄 것이다. 중력을 벗어나지 못한 피부들은 아래로 향하고 귀밑에 내렸던 서리는 턱을 지나 온 머리를 뒤덮었다. 느닷없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 온 것인지 휘날리는 은행잎에 물어 보았다. 사실 나는 한 번도 달려가서 차를 탄 적이 없다. 달려가느니 다음 차가 내 앞에 설 때를 기다려온 게으름과 자존심이었다.20년 이상을 작가로서 생활해 오지만 이사를 가기 전에는 작업하는 자리를 옮겨 본 적이 없다. 책상도 언제나 있는 곳에 그대로 두는 것이 편하고 책장이나 소파들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독서대는 항상 내 상체를 적당히 앞에서 막고 있어야 하고, 펜과 연필도 있던 자리에 항상 그대로 있어야 찾아 헤매지 않아서 좋다. 가끔 지우개가 제풀에 굴러 떨어지면 그 지우개를 찾아 사방을 헤매다가 제 성질에 못 이겨 그 날일을 망칠 때도 많다. 이런 일이 많다 보니 한때는 지우개를 고무줄에 묶어 스탠드에 걸어 뒀었는데 스탠드에 매달려 달랑대는 꼴이 영 눈에 거슬려서 떼어버리고 다시 찾아 헤매는 짓을 되풀이한다. 청소하기 싫어서 가능하면 어지르지 않는 나를 보면 마치 나무늘보와 같다. 이런 나를 내 속의 어떤 괴물이 평생을 미친듯이 쓰고 그리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여러분은?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사실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은 언제나 소설과 영화 그리고 만화였다. 학교 도서관의 소설은 일찍 내 손에서 끝이 났고 영화관은 들어갈 수 없는 금역이었으며 라디오도 귀한 시절이라서 만화는 정보와 호기심의 보고였고 미술시간은 시시했다. 모두가 만화를 악마의 책처럼 취급했을 때 어린놈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신통하게도 책상 머리에 ‘나는 자유로운 의지이다!’라고 붙여 두고는 틈만 나면 이불속에 촛불을 켜두고 간첩처럼 만화를 가족 몰래 보았다. 그리고 만화가의 길을 걸을 때도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의지대로 결정을 했으며 영호남의 낯선 갈등으로 주위에서 결혼을 반대했을 때도 ‘나는 자유로운 의지이다!’라는 내 속의 괴물이 지금의 아내가 있게 했다. 98년인지….‘천국의 신화’라는 괴상한 이야기로 음란 폭력작가의 시비에 휘말렸을 때도 상황은 험악했다. 작가 이현세는 외국으로 미리 알고 도망을 갔다고 TV뉴스에서 떠들어대고 검찰은 구속 수사가 기본이라고 엄포를 쏴댔다. 죄인도 그런 죄인이 없었고 포르노 작가를 아버지와 남편으로 둬야 할 가족은 난리가 나고, 만화계는 불난 호떡집 꼴이 됐다. 그때 인도네시아에서 변호사 선배님에게 “어떻게 할까요?”라고 전화로 물었더니 바로 질문이 되돌아왔다.“작가로서 예술가로서 자신의 의지대로 떳떳하게 살아 왔느냐?” 라는 선배님의 말씀에 내 가슴은 흥분했다. 나는 그러노라고 얘기했고 선배님은 그렇다면 내가 변호를 맡겠으니 당당하게 조용히 들어오라는 말씀을 했다. 출판사는 금방 자유로운 의지대로 재판을 포기하고 벌금을 냈으며, 나는 또다시 내 자유로운 의지대로 그 선배님과 재판을 진행했다. 형사로 진행된 재판은 6년을 가고 어느 해인가 다시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나는 다시 네 군데의 출판사를 거쳐 ‘천국의 신화’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올겨울이 되면 내 의지대로 연재를 마칠 생각이다. 게으르고 미련한 나무늘보를 오늘 이 자리에 머물게 한 이유는 물론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나는 자유로운 의지이다!’라고 외친 내 속의 괴물이 최고의 몫을 한 것은 틀림이 없다. 아 참! 가능하면 재판은 하지 말라고 내 괴물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지만 그래도 그때 재판은 잘한 것이라고 웃음 짓는다.
  • [사설] 國基문란 논쟁 확대 경계한다

    이념성이 내포된 사건이 벌어지면 국가사회를 이분법으로 갈라놓는 일부 지도층의 행태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분열의 골을 메우지는 못할망정 들쑤셔서 도지게 만들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발언 곳곳에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또 존폐 논란은 있지만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살아있다. 그를 기소해 실정법위반 여부를 법원 판단에 맡기자는 데 검찰은 물론 여권 핵심부의 생각이 같았다. 다만 그를 구속하진 말라고 청와대와 천정배 법무장관이 제동을 걸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에서는 청와대와 천 법무의 행위를 ‘국기(國基)문란’이라고 규정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오늘 기자회견을 갖고 대여(對與) 구국투쟁을 선언할 예정이라고 한다. 강 교수의 돌출발언을 처리하는 과정이 자유민주주의를 뒤흔든다는 주장은 비약이다. 공안사건에서도 인신구속에 신중을 기하자는 생각이 국가 정체성을 뒤집는 잘못이라는 비난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10·26 국회의원 재선거를 겨냥한 정략이 깔려 있다면 잘못된 판단이다. 득표의 유·불리를 떠나 국민들 마음을 이념으로 갈라 적개심이 가득 차게 한다면 언젠가 부메랑을 맞게 될 것이다. 여권도 이념 논쟁 과열의 책임에서 비켜갈 수 없다. 현 정부가 임명한 검찰총장을 이해시키지 못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반발하는 야당을 어떻게 설득하겠다는 것인가.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다고 ‘수구보수’,‘독극물’로 편가르기하는 습관도 버려야 한다. 오해살 부분이 없었는지 살펴보고, 검찰개혁은 무리없게 진행시켜야 한다. 대부분 이념 논쟁의 근저에는 국보법이 걸려 있다. 강 교수에게 적용되는 죄목은 국보법상 찬양고무죄이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단순 찬양고무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국보법개정안을 당론으로 내놓은 적이 있다. 한나라당 안대로 법이 고쳐지기만 했어도 강 교수 논란은 한층 수그러졌을 것이다. 국보법 폐지·유지 등 극단만을 주장하며 타협하지 못한 경직성이 지금까지 국론분열을 부추기고 있는 현실을 여야 모두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일반인들에게 ‘삼양설탕’(현 ‘큐원설탕’)으로 익숙한 삼양사는 한국 근대경제사를 주도한 명문 기업이다. 호남 거부의 후예인 김연수(金秊洙) 창업주는 일제하인 1924년 순수 민족자본으로 기업을 설립, 한국기업의 명맥을 이었다. 김 창업주는 형인 인촌(仁村) 김성수씨가 동아일보를 설립하고 꾸려가도록 뒷받침했고, 여러 차례 재산을 털어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기틀을 마련하도록 뒤에서 도왔다. 그러나 김 창업주는 일제하에 기업을 경영함으로써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사인명사전을 편찬하면서 친일인사로 선정하는 등 사후에 ‘친일’ 시비에 휘말리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근대 한국경제의 산증인인 김 창업주의 삶은 굴곡 많은 우리 근대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 김 창업주는 1896년 10월1일 전라도 고부군 부안면 인촌리에서 부친 김경중씨와 모친 장흥 고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형의 호인 인촌은 바로 두 형제가 태어난 동네 이름을 따온 것이다. 김 창업주의 부친은 1만 5000석 지기의 호남 최대 거부였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부친은 일제하에서 나라가 영영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당시 저명한 사학자들을 몰래 불러 ‘조선사’를 17권이나 엮을 정도로 민족애가 투철했다는 게 삼양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창업주는 어린 시절 외롭게 지냈다. 김 창업주의 부모는 그가 태어나기 전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일찍 잃었다. 여기에다 한 명뿐인 형인 인촌이 큰아버지인 김기중씨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자 양자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어릴 적 김 창업주는 몸이 허약했다. 폐가 약했으며 위도 튼튼하지 못해 일찍이 폐와 소화기 계통의 질병으로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는 부모의 애를 끓게 했다. 이런 이유로 개구쟁이처럼 장난이 심하고 활발했던 인촌과는 달리 김 창업주는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품을 지녔다. ●27세에 경영인으로 출발 김 창업주는 15세 되던 1910년 12월8일 자신보다 두 살 위인 박하진씨와 혼인을 맺었다. 결혼 이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인 최초로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온 이듬해인 1922년 형의 권유로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전무와 상무에 취임, 경영인의 삶을 시작했다. 김 창업주는 고무신과 ‘태극성표’ 광목을 대히트시킴으로써 일본자본과 맞서는 최대의 민족회사를 일궜다. 집안 내력을 잘 아는 김재억 삼양사 상임감사는 “30년대 경성방직은 우리나라 금융거래 절반을 담당할 정도의 민족 최대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김 창업주는 또한 농촌재건을 위해 소작농을 협동농업 형태로 결합한 근대영농을 시작했다. 이를 발판으로 1924년 삼수사(三水社)를 설립해 호남 일대의 소유농토에 대한 근대화 작업에 나섰다. 장성, 줄포, 고창, 명고, 신태인, 법성, 영광농장을 차례로 개설해 기업형 농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간척사업에도 눈을 돌려 손불농장과 해리농장의 2개 지역에 1070정보의 농토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 상호가 삼양사(三養社)로 바뀌었다. 어느 날 한 작명가가 찾아와 ‘물 수’(水)를 ‘만인의 양식’이라는 뜻인 ‘기를 양’(養)으로 바꿀 것을 권했다고 한다. 김 창업주는 만주벌 개척에도 나섰다.5개 협동농장을 개설한 데 이어 봉천에 남만방적을 설립했다. 남만방적은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생산법인이다. 그러나 1945년 해방으로 만주의 사업장들을 고스란히 놓고 철수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제당업으로 재기에 나서 해방공간을 겪으면서 반민특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김 창업주는 한국 전쟁 이후 해체상태에 놓였던 삼양사 재건에 나섰다. 그는 재기의 발판으로 제당업과 한천제조업을 선택했다. 당시 설탕은 수입에 의존해온 대표적인 외화소비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울산 바닷가를 메워 그곳에 제당공장과 한천공장을 건설했다. 그는 1956년 삼양을 제당으로 키우면서 주식회사 삼양사를 출범시켰다. 자신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고, 사장에 3남인 상홍(83), 상무에 5남 상하(80)를 앉혔다.3남과 5남이 삼양사를 맡는 전통은 3세에도 그대로 이어져 삼양그룹은 현재 상홍씨의 장남 윤(53)씨와 상하씨의 장남 원(48)씨가 삼양사 회장과 사장을 맡고 있다. 둘째 아들들인 량(51)씨와 정(46)씨도 각각 삼양제넥스 사장과 삼남석유화학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당시 삼양사보다 수익률이 높았던 해리염전을 삼양염업사라는 별개의 회사로 독립시키고 맏아들 상준(작고)을 사장에 임명해 경영을 맡겼다.3공화국때 문교부장관과 5공화국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차남 상협(작고)에게도 삼양염전의 지분 25%를 떼어주어 형제간 경영권을 일찌감치 교통정리했다. ●재계의 거목으로 김 창업주는 1962년 설립한 삼양수산을 통해 다양한 어종을 가공, 수출하는 등 한때 냉동선만 21척을 보유할 정도로 수산업에도 주력했다. 이처럼 제당과 수산업으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한국경제협의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 한국 재계의 얼굴이 되었다. 경영이 본 궤도에 오르자 김 창업주는 전주방직을 인수, 삼양모방(주)을 설립했다. 이어 1969년 전주에 대단위 폴리에스테르 공장을 건설했다. 이로써 70년대 들어 삼양은 국내 초창기 산업의 중심이었던 제당으로 확고한 제조업체로의 변신을 이룩했다. 이 당시 삼양은 매출액에서나 기업선호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국내 정상급 기업으로 우뚝 섰다. 김 창업주는 사업에 투신한 지 만 53년이 되던 1975년 회장을 상홍에게, 사장에 상하를 임명하는 등 ‘2세경영’을 출범시키고 은퇴했다. 그의 나이 80세일 때였다. 그는 은퇴 후 농촌으로 돌아가 마지막 열정을 쏟다가 1979년 84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감했다. ●교육사업도 아낌없는 지원 그는 기업경영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운영기금을 출연한 것을 비롯해 양영회와 수당장학회를 설립, 교육사업에도 힘썼다. 문성환 삼양사 부사장은 “창업주는 두 재단을 통해 대학생 2만여명에게 대학등록금을 비롯해 하숙비, 책값, 소정의 용돈까지 장학금으로 대줬다.”고 회고했다. 이런 김 창업주의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덕수 경제부총리, 오세철 연세대 교수 등이 꼽힌다. 경성방직의 회계를 맡아 김 창업주를 도왔던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는 “수당(秀堂·김 창업주의 호)은 돈 쓰는 데도 일가견을 가진 사람으로 만금을 쓰면서도 기업경영에는 한 푼을 아꼈다.”고 그의 용전(用錢)철학을 전했다. 김 창업주는 경쟁회사에도 관대했던 묵묵한 성격의 경영인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1966년 삼양의 경쟁회사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운영하던 한국비료가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곤혹을 치렀다. 임원들이 ‘사카린 없는 삼양설탕’이라는 문구로 대대적인 광고전을 벌이자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는 그의 성품을 읽는 일화로 경영인들에게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방대한 혼맥…사회 각 분야와 사통팔달 김 창업주는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들을 두었다. 아들로는 장남 상준(작고), 차남 상협(작고),3남 상홍(83),4남 상돈(81),5남 상하(80),6남 상철(70),7남 상응(작고) 등 7남과 장녀 상경(79), 차녀 상민(78),3녀 정애(75),4녀 정유(73),5녀 영숙(72), 막내 희경(66) 등 6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 가문의 혼맥은 정계·관계·학계·언론계·재계·교육계 등과 거미줄처럼 얽힌 방대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김 창업주의 성격이 소탈해 자식들에게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평범하고 무난한 결혼을 시켰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김재억 감사는 “창업주의 생활철학이 권세를 배격하는 것이어서 자식들이나 3세들의 결혼에도 사돈 될 집안의 내력과 상대방의 성실성을 먼저 봤다.”고 회고했다. 김 창업주는 특히 자녀들의 대부분은 중매결혼으로 짝지웠지만 사위와 며느리를 맞는 데서는 당시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사위를 고를 때는 가문을 따지지 않고 사람됨됨이와 능력을 위주로 보았고, 며느리는 후덕한 집안 출신으로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이기를 원했다. 특히 사돈가의 위치를 보고 정혼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해 그의 직접 사돈 가운데는 정관재계의 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김 창업주의 며느리들 가운데 위로 세 명은 이화여전 출신 등으로 당시의 김 창업주가 원했던 신여성들의 표본이 많았다. 반면 창업주의 형인 인촌 성수씨도 9남4녀를 두어 대가를 이뤘는데 장남인 상만(작고)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직계 자손들은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고 있다. 고려대 이사장이자 동아일보 전 회장인 장손 병관씨는 장남 재호(41·동아일보 대표이사 전무)씨를 이한동 전 총리의 차녀인 정원(38)씨와 결혼시켰고,2남 재열(37·제일모직 상무)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서현(32·제일모직 상무보)씨와 결혼했다. 김연수 창업주 자녀들의 혼맥을 살펴보면 장남 상준씨는 당시 집안과 각별하게 지내던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의 소개로 이뤄져 1943년 구영숙씨의 맏딸 연성(85)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상준씨는 보성전문 상과를 나와 조흥은행에 근무할 때였고 연성씨는 이화여전 음대를 졸업한 직후였다. 상준씨는 3명의 딸을 출가시켜 정·관·재계 인맥을 형성했다. 장녀 정원(62)씨의 부군은 고려대와 국가대표팀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김선휘(68·삼양염업사부회장)씨다. 축구를 좋아하던 상준씨는 모교인 고려대 축구팀을 지원했는데, 이 일로 선휘씨가 상준씨 집에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혼사가 맺어졌다. 차녀 정희(58)씨는 5공시절 당시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진만씨의 맏며느리로 보내 동부그룹 회장인 김준기(64)씨를 사위로 맞았다.3녀 정림(57)씨는 전 문교장관 윤천주씨의 장남 대근(59)씨와 결혼했다. 대근씨는 현재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과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을 맡고 있다. 상준씨의 장남 병휘(60)씨는 한양대 자연과학대 자연과학부 수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차남 범(52)씨는 독신으로 지내며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차남 상협씨는 해방 직후 고려대 부교수 시절, 의사 김준형씨의 2남3녀 가운데 맏딸 인숙(82)씨와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인숙씨도 니혼조시 대학을 나온 당시 보기 드문 일본 유학 신여성이었는데 상협씨의 도쿄제대 동창 부인의 소개로 만나 연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녀 명신(58)씨를 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65) 서울대 법대교수와 혼인시켰다.2녀 영신(56)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 성진(58)씨와 결혼했다. 외아들 한(52)씨는 메리츠증권 부회장으로 있다. 3남 상홍(83)씨는 구 치안본부 재직시절 수원갑부 차준담씨의 2남2녀 가운데 맏딸 부영(7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영씨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을 나온 재원이었다. 상홍씨는 2남2녀 가운데 장남 윤씨를 전 서울신문사 김종규 사장의 딸 유희(46)씨와 혼인시켜 벽산그룹 김인득 회장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다. 또 차남 량씨는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의 막내딸 영은(46)씨와 백년 가약을 맺었다. 영은씨의 오빠 장대환씨는 매일경제 신문 창업주 정진기씨의 사위로, 현재 매일경제신문 대표이사회장 인쇄인 겸 발행인과 현 매일경제TV 대표이사 회장이다. 장녀인 유주(56)씨를 사업가 윤주탁씨의 2남 영섭(59·고려대 상대교수)씨에게 시집 보내 윤주탁씨와 직접 사돈간인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과 연결되고 있다. 영섭씨의 남동생인 영식씨가 박 전 위원의 장녀 진아(48)씨와 결혼했다. 4남 상돈씨는 6·25 직후 김유황 전 광장㈜ 부사장의 딸 용옥(73)씨와 결혼했다. 상돈씨는 맏형인 상준씨의 중매로 장남 병진(52)씨를 축구협회 부회장과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한흥기씨의 딸인 혜승(45)씨와 맺어줬다. 차남 영로(50)씨는 사업을 하던 정형식씨의 딸 은미(46)씨와 혼인했다. 외동딸 희진(45)씨는 전 대한항공 이사 오명석씨의 외아들 광희(49)씨에게 시집갔다. 광희씨는 전 나이스정보통신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5남 상하씨는 삼양사 설탕공장 설립관계로 일본에서 일하고 있던 1953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귀국, 바로 박상례(75)씨와 혼인을 맺었다. 상례씨는 공무원 출신인 박규원씨의 딸로 김 창업주의 친구가 중매를 섰다. 외동딸인 영난(44)씨를 송하철(45·주식회사 항소 사장)씨와 결혼시켜 송남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며느리로 보냈다. 장남 원씨를 배영화 경희어망 회장 딸인 주연(45)씨와 맺어 줬다. 차남 정씨는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딸인 혜원(39)씨와 결혼했다. 6남 상철(70)씨는 사업을 하던 우근호 씨의 딸 정명(63)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7남 상응(작고)씨는 공무원 생활을 했던 권오경씨의 5녀중 셋째딸 명자(53)씨와 결혼했다. 장녀 상경(79)씨는 아폴로박사 조경철씨와 결혼 후 이혼해 조서봉(필립), 조서만(조지)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차녀 상민(78)씨의 남편은 이두종(작고)씨로 활발하게 삼양사의 경영에 참여했다. 온양 지주의 아들로 자란 두종씨는 1956년 삼양사 과장으로 입사해 이 회사의 대표이사 부사장까지 올랐다.1984년 회사를 떠난 뒤에도 삼양그룹이 운영하는 재단법인 양영회와 수당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3녀 정애(75)씨는 교육계에 몸담았던 조종립씨의 아들 석(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씨는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결혼 후인 57년 삼양사에 사원으로 입사, 총무부장·경리부장·이사·상무·대표이사 부사장을 거쳐 전 삼양제넥스 상임고문까지 역임했다. 4녀 정유(73)씨의 남편은 전 서울대 부총장인 김영국(작고)씨다. 그는 인천에서 사업을 하던 김덕창씨의 8남매 가운데 3남으로 인천이 낳은 천재로 불리었다. 이들은 김 창업주 친구의 소개로 결혼했다. 영국씨는 서울대 정치학과 총동창회장을 지낸 상하씨의 후배이자 매제인 셈이다. 5녀 영숙(72)씨는 미국인 스테푸친과 결혼, 딸 페기, 아들 프랭크를 두고 미국에서 살고 있다. 막내딸 희경(66)씨도 교육자였던 김종규씨의 아들 성완(68·삼양사 의약사업 고문)씨와 결혼,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성완씨는 미국 유타대학 석좌교수로 인공심장 분야의 권위자다. jrlee@seoul.co.kr ■ 창업주의 친일논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8월29일 친일인사인명사전 편찬을 앞두고 수록예정자 명단 3090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 명단에는 삼양사의 창업주 김연수씨도 포함됐다. 김씨는 전쟁협력 분야에서 ▲1939년 만주국 명예 총영사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이사 ▲조선방적 이사장 ▲1940∼1945년 중추원 참의(자문위원)를 지냈다는 이유로 선정됐다. 이에 대해 삼양그룹측은 대응을 일절 자제한 채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다만 그룹의 한 관계자는 “창업주가 일제의 압제에 죽음으로 항거하는 등 깜짝 놀랄 만하게 대항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일제의 폭거에 맞서 민족자본을 형성했다.”며 “후세에 역사가들이 올바른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비교적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보다 반일 감정이 팽배했던 1949년 반민특위 재판에서도 창업주는 무죄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또 창업주는 창씨 개명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창업주의 일대기인 ‘한국 근대기업의 선구자’에는 일제시대 그의 행적이 상세히 수록돼 있다.6부로 구성된 전기에는 4부 ‘고난의 시절’ 편에 일제에 협조할 수도, 항거할 수도 없었던 고심의 일단들이 실려 있다. 김씨는 중추원 참의 임명과 관련해 1940년 5월 조간신문에 자신이 칙임참의에 임명됐다는 기사를 보고 내무국장 우에다키에게 항의하러 갔지만 결국 그의 완력에 굴복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설사 내가 지녔던 일제치하의 모든 공직이나 명예직이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고 위협과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런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과 민족앞에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통렬한 자기반성의 글을 실었다. 김 창업주는 반민특위에 검거돼 7개월간 수감됐지만 이런 반성의 자세가 참작됐는지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경성방직을 경영함에 강력히 일본자본과 싸웠고, 항상 한민족을 위한 경제적 기반확립에 노력했고, 경성방직의 상표를 태극기에서 모방한 것으로 보아 피고의 행위는 많이 참작할 곳이 있으며, 그 외의 관직 및 명예직은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피동적으로 맡은 것이라고 증명되며, 또 피고는 한국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많은 학생에게 원조를 해 그의 혜택을 본 자의 수는 현재 수백명에 달하는 것이니 이 점으로 피고가 남긴 공적은 크다고 할 것이며, 기타 증인의 증언을 통해 볼 때 피고를 단순히 친일 및 반민족행위자라고 규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jrlee@seoul.co.kr ■ 형 김성수와 동생 김연수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인촌(仁村) 김성수와 수당(秀堂) 김연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인촌과 수당은 호남갑부 김경중씨의 두 아들이었지만 성격은 딴판이었다. 수당은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침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반면 형 인촌은 활달하고 외향적이었다. 여기에 형제는 다섯살이나 터울이 져 어린 시절엔 서로 어울리는 일이 적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평생을 친한 형제로 지냈다. 인촌은 수당이 근대적 교육을 받도록 인도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일본으로 가게 해 중·고등학교와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하도록 도왔다. 수당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일찍이 ‘기업인’이 될 것을 결심했다. 오사카의 공장지대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결단의 계기였다. 이처럼 수당의 행적은 형 인촌의 행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수당이 기업가로서 길을 걷는 데는 인촌이 설립하고 인수한 기업의 경영을 맡음으로써 시작됐다. 수당이 경영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것도 1922년 형이 운영하던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경영인을 맡고부터다. 이후 수당은 경영인으로서 성공하자 인촌을 적극 도왔다. 생전에 인촌은 수당이 없었으면 교육사업을 비롯한 자신의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곧잘 술회했다. 수당은 언제나 인촌에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껏 뜻을 펼치라고 말했다. 인촌이 설립한 고려중앙학원이나 고려대, 경성방직과 동아일보 등 모두 동생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수당은 1940년대까지 고려중앙학원과 고려대에 기부한 재산이 연 평균 250만원에 이르렀는데, 이를 현 시가로 어림잡아 환산하면 1000억원(쌀값 기준)을 훨씬 넘는 액수다. 그러면서도 동생은 형이 하는 일을 뒤에서 묵묵히 돕기만 했다. 그는 “모든 것을 형님이 알아서 하시니까 나는 재정적인 지원만 하면 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형을 만날 때마다 “형님은 교육과 문화사업을 하세요. 저는 뒤에서 돈을 대리다.”라며 든든한 후원자를 자임했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옴부즈맨 칼럼] 서울신문 변신의 끝은?/김동률 KDI 매체경영학 연구위원

    신문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만드는 신문이 엘리트신문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엘리트신문이 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있다. 권력으로부터 독립은 물론이고 재정적인 안정도 필요하다. 교육수준이 높은 뛰어난 취재진을 다수 확보해야 함은 물론이다. 미국의 USA Today는 대중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많은 부수를 자랑하지만 아무도 엘리트신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1982년 창간된 이 신문은 심각하고 중요한 뉴스도 간단하고 가볍게 다룬다. 여행·스포츠에 비중을 두면서, 날씨를 1페이지나 할애하는 등 독자들을 위한 편집의도를 확실히 살렸다. 특히 짧고 간략한 기사, 화려하고 컬러풀한 사진 등이 특징이다. 신세대를 겨냥해 기사는 600단어 이내로 제한하고, 한 문단은 짧은 문장 3개 이하로 구성했다. 이 신문은 창간되자마자 신세대의 취향과 맞물리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른바 텔레페이퍼의 시대를 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도 이 신문을 권위지로 보지는 않는다. 높이 평가하기는커녕 아예 ‘맥 페이퍼(맥도널드 페이퍼)’라고 무시하기도 한다. 곧 많이 팔린다고 좋은 신문은 아니라는 의미다. USA Today가 인기를 끌자 칼럼리스트 조너선 야들리는 1989년 엘리트신문과 대중신문과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엘리트신문은 독자들에게 날마다 간유(肝油)를 배달해 준다. 맛은 없지만 몸에는 아주 좋다.USA Today는 아침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가득 전해 준다.” 풀이하자면 엘리트신문은 독자의 취향이나 대중적인 인기보다는 공공성, 언론의 사회적 책임, 사명감 등을 기사의 선별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서울신문은 여러 가지 진통을 겪어오면서 적어도 지면에서만큼은 어느 신문과 비교하더라도 큰 손색이 없을 만큼 발전했다. 언론학자로서 진단하건대 서울신문의 변신은 놀랄 만한 수준이다. 과거 관영매체 (state-run-paper)의 흔적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며, 레이아웃부터 촌철살인의 돋보이는 만평,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재미있는 읽을거리 등은, 이른바 신문 보는 재미를 담뿍 안겨준다. 그렇다고 서울신문이 최고라는 것은 아니다. 기사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특히 그렇다. 지나치게 호흡이 긴 기사는 읽는 이에게 큰 부담을 안겨준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10월6일에는 하단광고도 없이 21면 전체를 ‘정감록 산책’으로 빼곡하게 채웠다.10월5일에도 14면 전면을 지나치게 대형화된 와이드 인터뷰로 메웠고,10면 전체를 차지한 울산시 체전 관련기사 역시 기사의 중요성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지면을 할애했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와이드 인터뷰는 이른바 인물기사(human interest)가 먹히는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대형화돼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USA Today처럼 무조건 짤막한 기사로 대처하라는 말은 아니다. 말은 아끼면서 정보는 풍요롭게 하는 노력이 아쉽다는 의미다. 그러나 서울신문이 가야 할 길은 서울신문이 정해야 한다. 비록 USA Today에 비해 발행부수면에서는 한참 뒤지지만,1000여개가 훨씬 넘는 미국 신문들은 뉴욕타임스의 얼굴을 보며 그날의 지면을 꾸려가고 있다. 그래서 미국 언론의 아침은 뉴욕타임스로 시작한다고 말할 정도다. 이에 비해 대중지를 고집하는 USA Today의 신문 철학은 이른바 ‘희망의 신문’이다.“우울하고 어두운 뉴스보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신문이 되고 싶다.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타임스처럼 매일 아침 세상을 욕하고 비판하는 신문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도 있지만 서울신문의 변신은 이제 외형적으로는 완성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변신의 최종 역이 엘리트 신문일지 아니면 대중신문이 될지는 궁극적으로 서울신문이 결정해야 한다. 변신의 끝이 기대된다. 김동률 KDI 매체경영학 연구위원 yule21@empal.com
  • “일제 한센인핍박 치떨려 광복후에도 편견 여전해”

    “일제 한센인핍박 치떨려 광복후에도 편견 여전해”

    “사람 대접도 못 받던 우리를 위해 시대가 나섰습니다. 여러분, 오래 사세요. 지금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지난 24일 오후 한센인 요양시설인 경북 안동시 성자원 성당. 인근 칠곡농장과 삼애농원(김천) 등지에서 온 한센인 5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이크를 쥔 한센인 인권단체 ‘한빛복지협회’ 임두성 회장의 목소리가 본당 내부를 울렸다. 이들은 1917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에 의해 소록도에 강제로 수용됐던 사람들. 이날 자리는 앞으로 이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할 한센인 2차 보상소송을 설명하기 위해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주관으로 마련됐다. ●“이제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맞아, 저기가 감금실이었어. 겨울에 저기 갇혔다가 죽은 사람들이 많았지.” 납골당·중앙공원 등 소록도를 담은 영상이 방영되자 곳곳에서 아픈 기억이 탄성으로 터져나왔다. 지난해 10월25일 한센인 117명은 일제의 소록도 격리수용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일본 정부에 첫 소송을 냈다. 일본 정부가 2001년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과거에 강제수용됐던 자국 한센인에게는 보상을 했지만 소록도 피해자들에게는 보상을 거부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 선고재판이 정확히 1년 만인 다음 달 25일 열린다. ●소록도 삶 증명해야…1차소송보다 힘겨울 듯 지난해 1차 소송의 원고는 광복 후에도 계속 소록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었다. 반면 곧 제기될 2차 소송의 원고는 광복 후 소록도를 떠나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아온 280여명이다. 변협은 소송 원고인단 모집을 위해 이날 성자원과 익산농원(전북 익산)을 시작으로 주말마다 전국 순회설명회를 연다. 익산농원에서도 첫날 78명에 대한 상담이 마무리됐다. 변협은 다음 달 17일까지 소송준비를 마칠 계획이다. 2차 소송은 피해자들이 일제 강점기에 소록도에 수용됐던 사실을 증명할 만한 문서가 거의 없어 1차 때보다 더 힘겨운 싸움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음지에 숨어살던 한센인들은 소송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기쁘다고 한다. 한빛복지협회 임 회장은 “세월과 고통 앞에 노쇠해진 한센인들이 소송을 내면서 더욱 건강해졌다.”면서 “이번 소송이 한센인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변호인단 단장을 맡은 박영립 변호사는 “1차 소송 선고와 2차 소송 제기는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일본 정부에 대한 소송에 이어 국내 한센인 인권침해에 대한 실태조사 등을 통해 보상특별법 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록도 나와서도 힘겨운 삶…관심 광복 이후까지 이어져야 1차 소송으로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면서 한센인들은 한층 자신감을 얻었다. 피하고 숨어만 지내던 이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삼애농장에서 살고 있는 박모(81)씨가 대표적이다. 23세에 손톱과 눈썹이 빠지면서 한센병 발병 사실을 알게 된 박씨는 경찰서 창고에 3일간 갇혀 있다 소록도로 갔다. 광복이 되면서 고향인 경북 김천으로 돌아왔지만 이웃의 횡포에 다시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마을 외곽까지 쫓아와 다른 곳으로 가버리라며 천막에 불을 지르고 폭력을 가하던 동네사람들을 피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군수에게 청원해 국유지에 겨우 터를 잡았다. 하지만 ‘정상인’들의 마을에서 아이라도 한명 없어지면 마을에는 어김없이 경찰이 닥쳤다. 한센병 환자가 아이들을 잡아먹고 묻었다는 흉흉한 소문 때문이었다. 박씨는 “그때도 우리 마을엔 한센병을 겪은 병력자만 있었을 뿐 환자는 없었다.”면서 “말문이 막힌 우리에게 경찰은 ‘신고가 들어왔으니 수색 안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경상도 지역 한센인들에게 1991년의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남모르는 상처로 남아 있다. 소년들을 납치해 약으로 쓰고 암매장한 것으로 지목된 칠곡농원은 공권력과 언론에 의해 마구 헤집어졌다. 박씨는 “이제라도 우리의 무죄가 밝혀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글 사진 안동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中 전역 반미고조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 여성을 폭행, 중국인들의 분노를 샀던 미국 국경수비대원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중국 전역이 들끓고 있다. 뉴욕 서부연방법원은 8일 중국 톈진(天津)의 여성기업인 자오옌(趙燕·38)을 구타한 혐의로 기소된 미국 국토안보부 소속 국경수비대원 로버트 로즈에게 배심원단 평결에 의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홍콩 언론이 10일 보도했다. 뉴욕 주재 중국 총영사관측은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명했고 중국 네티즌들도 미국에 대한 비난 여론을 쏟아내고 있다. 로즈는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다고 로즈 변호인측은 전했다. 중국의 네티즌들은 “정말로 불공정한 판결” “미국의 외국인 차별의 현 주소” “거만한 미국인들의 상징” 등 다양한 반미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이와 관련, 변호사 라이윈펑(來雲鵬)은 “로즈의 폭행사건은 미국내 반테러 조치가 왜곡 변질되고 있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비난했다. 자오옌은 지난해 7월 친구 2명과 함께 나이애가라 폭포를 관광하던 중 미국 국경수비대원들이 자신에게 최루가스를 뿌리고 벽에 밀친 뒤 머리를 무릎으로 치고 땅바닥에 내치는 등 무차별 폭행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로즈는 자오옌 일행이 검문소로 오라는 명령을 거부한 채 달아났고 자오옌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때리고 할퀴려 했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시 타박상을 입은 그녀의 사진이 중국 언론에 보도되자 중국내 반미감정이 거세졌고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이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장관에게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등 외교 마찰로 비화됐었다. oilman@seoul.co.kr
  • 최민수 오토바이 사고 중상

    영화배우 최민수가 오토바이 사고로 전치 8주의 중상을 입었다. 최민수는 지난 15일 오전 9시30분쯤 자신의 오토바이를 몰고 서울 이수교차로 사거리를 지나던 중 자동차를 피하려다 넘어지며 오른쪽 쇄골이 세 조각으로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그는 영화 ‘홀리데이’에 함께 출연하는 후배 이성재와 스태프들 격려차 촬영장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사고 직후 최민수는 강남 모 병원으로 후송돼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영화 제작사 ㈜현진시네마측은 “부상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해 최민수의 출연 분량을 뒤로 미루어 촬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영화 ‘홀리데이’는 88년 교도소에서 탈옥해 인질극을 벌이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겼던 탈옥범 지강헌 사건을 영화화하는 작품이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데스크시각] 서울 행정2부시장 유고 너무 길다/ 강동형 지방자치뉴스부 차장

    이명박 서울시장은 “행정 2부시장이 없는데.”라는 질문에 “행정 2부시장이 없다는 것은 틀린 말이고,‘유고’라고 해야지….”라고 대답했다. 맞는 말이다. 서울시 행정 2부시장은 유고(有故) 상태다. 양윤재 부시장은 영어의 몸이어서 100일 동안 출근하지 못하고 있을 뿐 부시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지난 5월6일 구속된 뒤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양 부시장의 유무죄 여부와 관계없이 시의 기술관련 행정을 사실상 책임지는 중요한 자리를 장기간 비워두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 양 부시장을 둘러싼 뒷말도 무성하다.‘왜 이명박 시장은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을까.’‘왜 양 부시장은 사의표명을 하지 않을까.’로 압축된다. “무죄를 주장하는 사람을 어찌 내칠 수 있느냐.”는 게 서울시의 기본 입장이다. 이 시장도 “본인이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데 (1심)재판 결과도 나오기 전에 야박하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견해를 보였다. 양 부시장을 잘 아는 서울시 간부들도 그의 무죄를 확신하는 분위기다. 자치단체장이 범죄 사실이 확정될 때까지 사표를 제출하지 않고 직무를 수행하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고위공직자, 그것도 부시장이 비리혐의로 구속된 뒤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이유야 어떻든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이 먼저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 도리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양 부시장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양 부시장이 구속 초기에는 (구두로)사퇴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청계천 복원공사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양 부시장이 당초 8월까지만 있기로 했다는 얘기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혹자는 양 부시장의 이같은 태도를 그가 학자 출신인 점을 꼽기도 한다. 공무원들은 구속되면 결백여부를 떠나 조직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사직서부터 내지만 학자들은 자신의 명예 때문에 섣불리 사표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행정 2부시장의 장기유고 사태를 설명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시장과 양 부시장 사이에 ‘특별한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의혹도 시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러한 의혹은 점점 부풀려질 것이다. 이 시장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시장은 취임사에서 “부정부패 없는 깨끗한 서울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행정2부시장 장기유고를 보면서 이 시장이 ‘깨끗한 서울만들기 공약’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야당출신 서울시장으로서 분한 마음도 읽혀진다.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행정 2부시장은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서울시에만 있는 직책이다. 서울시보다 인구가 많은 경기도에도 행정 2부지사는 없다. 서울시 행정 2부시장은 기술직을 총괄하며, 청계천 복원공사, 도시계획위원회 등 서울시의 핵심 정책들을 다룬다. 시 공직협의회에서는 양 부시장이 구속되자마자 후임을 즉각 임명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나아가 “행정 2부시장이 이렇게 불필요한 자리라면 없애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현재 도시계획국장과 뉴타운 보좌관이 행정 2부시장의 빈 자리를 어렵사리 메우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명박 시장은 행정 2부시장 인사 시기를 놓쳤다. 그렇다고 재판이 끝날 때까지 이 상태로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나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잘못을 알고 이를 바로잡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다. 몇달전 이 시장은 복원된 청계천의 시작부에 위치한 모전교의 재시공을 지시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이 시장의 한 측근은 “용기있는 결단”이라고 치켜세웠다. 실기했지만 이를 바로 세운다면 늦지 않은 게 세상 이치다. 야당 시장으로서 ‘분함’은 개인적인 것이며 서울시민을 위한 시장의 태도는 아니다. 시민을 위한 ‘용기있는 결단’을 기대한다. 개인적인 억울함이야 있다 하더라도 양 부시장이 먼저 사의를 밝히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 강동형 지방자치뉴스부 차장 yunbin@seoul.co.kr
  • [국제플러스] DNA검사로 강간범 누명 벗어

    DNA검사를 통해 강간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19년동안 감옥살이를 하던 남자가 자유의 몸이 됐다. 미국 언론은 2일 1986년 피츠버그시의 한 병원에서 48세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감옥에 갔던 토머스 다스웰(46)이 무죄로 밝혀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당시 두 아이의 아버지였던 다스웰은 성폭행 피해자와 목격자가 경찰이 제시한 용의자 사진 가운데 그를 지목하는 바람에 강간범으로 몰리고 말았다. 경찰은 강간 혐의가 있는 용의자 얼굴 사진에 ‘R’자 마크를 찍었는데, 다스웰은 피해자가 본인의 사진에 찍힌 ‘R’자 때문에 선입견에 의해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은 다스웰의 전 여자친구가 그를 강간혐의로 고소한 상태여서 사진에 ‘R’자 마크를 찍은 상태였다. 검찰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DNA검사는 결국 피해자의 몸에서 채취된 정액이 다스웰의 것과 일치하지 않음을 밝혀냈다.
  • 영화 ‘친구’ 감독 협박 조폭 유죄

    대법원 2부(주심 이강국 대법관)는 28일 영화 ‘친구’의 곽경택 감독을 통해 제작사 등으로부터 3억원을 갈취한 혐의로 기소된 폭력조직 칠성파 두목 권모(46)씨와 조직원이자 곽 감독의 친구인 정모(40)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권씨 등이 곽 감독을 통해 제작사 등을 직접적이거나 명시적으로 위협한 것은 아니지만 이에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겁을 먹게 한 것이므로 공갈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권씨 등은 자신들의 조직원을 미화한 영화 ‘친구’가 흥행에 성공하자 2001년 4월부터 곽 감독에게 수차례 금품을 요구해 같은해 11월 곽 감독을 통해 영화 제작사 등에서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으나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X파일 파문] 前감찰실장 “테이프200개 전량 소각”

    국가정보원 감찰실이 1999년 전 안기부 미림팀장 공운영씨가 빼돌린 도청 테이프를 회수해 전량 소각했으며 도청 내용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이건모 당시 감찰실장이 28일 밝혀 진위 여부가 주목된다.이 전 실장은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전권 하에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그의 주장 요지.▶무슨 자료를 불태웠나.-1999년 여름 공씨에게서 도청 테이프 200여개와 녹취록 등 박스 2개 분량을 반납받아 전체 내용을 정리·분석한 후 천용택 당시 국정원장에게 개요만 보고하고 그 해 12월20∼23일쯤 국정원 소각장에서 전량 소각했다.▶도청 내용은 뭐였나.-세상에 공개된다면 상상을 초월할 대혼란을 야기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에 걸친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해 내 전권으로 모두 소각했다.▶상부에 보고했나.-천 원장에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접근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한 뒤 내 책임 하에 처리했다.▶추가 유출 테이프 가능성은.-언론을 통해 공개된 ‘X파일’ 내용 중에는 당시 공씨로부터 반납받은 자료에 없는 것들이 있다. 공씨가 유출자료 전량을 넘기지 않은 게 아닌가 판단된다.▶공씨를 사법처리 않은 이유는.-사법처리할 경우 도청 테이프 존재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 것으로 판단, 내가 직무유기로 훗날 처벌받을 것을 감수하고 독자적 판단으로 문제 삼지 않았다. 뒷거래는 없었다.●이건모(60)씨는 1999년 3월∼2001년 4월 국정원 감찰실장을 지냈으며 광주지부장으로 재직하던 2002년 12월 감찰 정보를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2003년 4월 구속기소됐으나,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최근 국정원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외설 판단기준 논란

    대법원 3부(주심 박재윤 대법관)는 27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자신과 부인의 사진 등 음란물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전 태안 안면중 미술교사 김인규(43)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일부 유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음란’이란 보통사람의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쳐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면서 “음란물 여부는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건전한 통념에 따라 객관적·규범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김 교사는 “고법까지 인정했던 예술적 의도를 대법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음란의 기준이 보통사람의 관점이라면 왜 고법판사들과 대법관들의 생각이 다르냐.”고 말했다. 그는 “환자용 변기에 놓인 남성성기 그림과 음란물로 판정받은 여성성기 그림은 모두 같은 성의학책의 해부도를 따라 그린 것”이라면서 “단순히 크기로 음란성을 판단하느냐.”고 반문했다.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용틀임 시작했다 ‘단기필마’ 4인방

    연정 파문, 부동산파문 등 정치·경제적으로 혼란한 틈을 타 정치권에선 ‘제3세력’이 용틀임을 시도하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라는 ‘빅2’의 차기 대권 주자들에 가려 있던 인사들이 조심스럽게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행보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 대권 구도를 재편성하는 ‘허리케인’으로 변할지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면서 의욕적인 동선(動線)을 그리고 있다. 공식적인 활동을 일절 하지 않고 있지만 비공식 만남은 활발하다. 최측근으로 통하는 민주당 최인기 의원은 “대선까지 2년 반이 남았기 때문에 당분간은 비정치적인 발언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변에는 옛 내무부 관료출신 후배, 경기고와 서울대 동문들이 늘어났다.20여년동안 모임을 가져온 ‘동숭포럼’도 있고, 다산연구소도 측면 지원에 적극적이다. 지난달 9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 국회의원들을 만난 데 이어 자신의 홈페이지 방문객과 호프미팅을 갖기도 했다. 이달 초엔 중국을 방문, 안중근 의사 공원이나 동상을 건립하는 문제를 적극 협의했다. 무소속 정몽준 의원은 2년 반의 침묵을 깨고 최근 입을 열었다. 지난 대선 때 자신이 주도했던 ‘국민통합21’ 담당기자들과 오찬에서 “시간도 지났으니까 이제 좀 (정치를) 해봐야죠.”라며 의욕을 내보였다. 차기대선 구도가 현 상태로 굳어지기 전에 어떤 형태로든 그 속으로 진입해 보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정 의원측은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정 의원측은 “작심하고 한 말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당이 없어져서 기자들과 만남이 여의치 않았다.”면서 “그동안에도 언론 기고 등을 통해 활동을 했다.”고 발을 뺐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기회가 되면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해 ‘대권 재도전’ 의사를 부인하지 않았다. 간접적으로는 법안제출 등을 통해서 현안과 관련한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자민련 이인제 의원은 겉으론 가장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 대선 자금 수수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은 이후 가속도가 붙었다. 최근 기자회견에서 차기 대선에서 어떤 식으로든지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냈다. 그는 자민련과 신당의 통합을 강조하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 재개라는 점을 스스로도 시인했다. 이 의원측은 “필요하다면 향후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면서 “다음 정권이 들어서는 데 밀알이 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자민련에서는 탐탁지 않은 반응이다. 이규양 대변인은 “개인적인 희망이 아니겠느냐.”면서 의미를 깎아내렸다. 심대평 충남지사는 창당을 추진 중인 ‘중부권 신당’을 발판으로 ‘제2의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를 꿈꾸고 있다.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일단 ‘제1연합 대상‘’을 특정하지 않는 합종연횡 구도를 그리고 있다. 차기 대권의 향배를 가름하는 ‘α’로서 자리매김하겠다는 복안이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21년만에 벗은 간첩누명

    21년만에 벗은 간첩누명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이호원)는 15일 위장 귀순해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함주명(74)씨의 재심청구 사건에서 함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조작간첩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른 간첩사건도 재심 받아들여야” 재판부는 “1983년 함씨가 위장간첩으로 귀순했다고 자백한 내용은 당시 수사관이었던 이근안씨의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었으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함씨를 간첩으로 지목한 홍모씨의 진술도 시간이 흐르면서 엇갈리는 등 신빙성이 없다.”고 밝혔다. ●아들 혼사 막히고 집안 전체가 고초 겪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찬양 혐의에 대해서는 “함씨가 고향 친구들에게 사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적은 있지만, 이를 두고 북한을 찬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함씨는 “간첩누명을 쓴 아버지 때문에 아들의 혼사길이 막히는 등 집안 전체가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이제 무죄를 선고받아 그동안의 내 말이 진실이었음을 인정받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신규영, 이장형, 박동운씨와 1985년 구미유학단 사건의 김성만·황대건씨 등 다른 조작간첩 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한 재심 청구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면서 “정부가 피해자의 누명을 벗기는 데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신을 고문한 이근안씨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말을 잘랐다. 그는 최후변론 당시 “1999년 서울지검에서 이씨와 대질신문을 했는데, 그가 미안하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위장자수 간첩조작에 16년간 옥살이 1954년 남파간첩으로 내려온 함씨는 “남한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왔다.”며 자수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을 받았다. 그는 1983년 남파되자마자 위장자수를 하고 고정간첩으로 활동해 온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수감 16년 만인 1998년 8·15 특사로 풀려났다. 이듬해 이근안씨가 함씨에게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문을 했다고 검찰에 자수하자, 함씨는 2000년 사건에 대해 재심청구를 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무죄’ 송영길 의원 “檢 여론 눈치 무리한 기소”

    ‘무죄’ 송영길 의원 “檢 여론 눈치 무리한 기소”

    박주선 전 민주당 의원,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에 이어 최근 이인제(자민련)·유시민(열린우리당) 의원이 잇따라 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아내자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24일 선거법 위반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송영길 의원은 2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검찰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송 의원은 “검찰이 연예인처럼 여론에 흔들리면서 인민재판에 영합할 때 무리한 기소와 무죄판결이 난다.”며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는 엄정한 자기원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이 청와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어느 정도 달성이 됐지만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독립은 아직 요원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검찰에 대한 원망엔 한목소리를 냈지만 이인제 의원은 이를 현 정권과 결부시켰다. 이 의원은 이번 사건을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독기어린 노무현 정권의 조작이라고 규정한 뒤 “진실을 억압하는 권력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토요영화]

    ●허리케인 카터(KBS2 밤 12시25분) 인종차별로 인해 20여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흑인 권투선수 루빈 카터의 실화를 영화로 옮겼다. 이 이야기는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투쟁의 모티프가 되어 1976년 미국의 음유시인 밥 딜런에 의해 8분이 넘는 노래로 불려지기도 했다. 덴젤 워싱턴은 미들급 권투선수와 죄수 역을 위해 1년 넘게 권투 훈련을 하고, 몸무게도 20㎏이나 줄이기도 했다.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과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을 받았다. 캐나다 출신의 거장 노먼 주이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의 작품은 45차례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고,12번 이 상을 수상했다. 주이슨 감독이 영화감독 데뷔 5년 만에 흑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시드니 포이티에가 열연한 ‘밤의 열기 속으로’(1967)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날리던 복서 루빈 카터(덴젤 워싱턴)는 백인 3명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무죄를 주장하지만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유죄를 선고한다. 그로부터 22년 뒤, 캐나다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흑인 소년 레스라(비셸루스 레온 샤논)는 헌책방에서 카터의 자서전 ‘제16라운드’를 접하게 되고 종신형을 살고 있는 카터를 돕기로 결심하는데….1999년작.139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엘리자베스(EBS 오후 11시40분) 16세기 영국 절대왕정의 황금기를 열었던 엘리자베스 1세의 젊은 시절을 그렸다.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출신의 세카르 카푸르 감독이 연출을 맡은 점이 이채롭다. 그는 앞서 ‘밴디트 퀸’(1994)으로 명성을 얻었다. 호주 출신 연기파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타이틀 롤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블란쳇은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를 통해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배우다. 제프리 러시, 조셉 파인즈, 리차드 아텐보로, 캐시 버크, 뱅상 카셀 등 쟁쟁한 배우들도 나온다. 블란쳇은 역시 카푸르 감독이 연출하는 ‘골든 에이지’를 통해서 중장년 시절 엘리자베스 1세를 연기할 예정. 1554년 영국은 가톨릭 신봉자 메리 1세(캐시 버크)의 신교도 박해 때문에 시름에 빠져 있다. 메리 1세의 이복 여동생 엘리자베스 공주(케이트 블란쳇)도 신교도라는 이유로 모함에 빠져 사형 위기를 맞지만, 메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오히려 여왕 자리에 오른다. 정략결혼 요구에 시달리고, 전쟁과 암살 위협 속에서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이 영국과 혼약을 맺은 ‘버진 퀸’임을 선포한다.1998년작.1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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