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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백산에 산나물 캐러 간 50대 잇따라 2명 실종

    경북 영주에서 산나물을 캐러 간 50대 2명이 잇따라 실종됐다. 14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전 7시 30분쯤 영주시 남대리 소백산 자락으로 산나물과 약초를 캐러 간 김모(50·안동시)씨가 소식이 끊어졌다. 김씨는 일행 4명과 산에 들어가 무전기로 연락하며 산나물을 캤으나 3시간여 만인 오전 11시쯤 연락이 두절됐다. 11일 오전 7시쯤에는 박모(56·여·영주시)씨가 영주시 상가리 소백산 연화봉 방향으로 산나물을 캐러 간 뒤 소식이 끊어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들이 산에 들어간 지점부터 이동 경로를 추정해 수색하고 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세계 방산시장 노리는 K9 자주포·수리온

    세계 방산시장 노리는 K9 자주포·수리온

    국내 21개 업체 참가… 한국관 3배로 세계 최대 규모의 무기 전시회로 손꼽히는 ‘유로사토리’에 K9 자주포, 기동헬기 수리온 등을 비롯한 국산 무기들이 대거 전시됐다. 유로사토리는 1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개막해 17일까지 열린다. 1967년 프랑스 사토리 기지에서 처음 열린 유로사토리는 올해로 25회째를 맞으며 2년마다 격년제로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는 70개국 1600여개사가 참여했고 우리나라에서는 21개 방산업체가 참가했다. 2014년 국내 16개 업체가 참여한 것에 비해 참가 규모가 다소 늘었다. 한국관 규모도 2014년 205㎡에서 올해 638㎡로 약 3배 확대됐다. 한국관에는 기아자동차, 한화테크윈, 한화, 풍산, 한국항공우주(KAI), S&T모티브, 비츠로셀, LS엠트론 등 8개사가 단독 부스를 차렸다. 나머지 13개 중소기업들은 중소기업관에 자리를 잡았다. 한화테크윈은 전시장에 K9 자주포의 실물을 전시했다. K9 자주포는 대표적인 국산 무기로, 사거리가 40㎞에 달하고 1분당 6발을 쏠 수 있다. 2000년 실전 배치됐으며 터키에 약 10억 달러어치 수출됐다. 2014년 말에는 폴란드와 수출 계약이 체결돼 유럽 시장으로 진출했다. KAI는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KUH1) 모형을 전시하고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KAI는 KUH1을 기본형으로 다양한 모델을 개발해 세계시장을 개척할 계획이다. 기아차는 ‘한국형 험비’로 불리는 소형전술차량의 실물을 전시관에 비치했다. 현재 양산 준비 단계인 소형전술차량은 미국 험비와 같이 지휘, 기갑수색, 관측, 정비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다목적 차량이다. 우리 군의 K2 소총 등 개인화기를 생산하는 S&T모티브는 K2 소총의 개량형인 K2C1, K3 경기관총, K6 대공용 중기관총, K14 저격용 소총 등 신제품을 전시했다. 이 밖에도 한화는 요격미사일 발사시험에 쓰이는 지대공미사일 표적탄(KBATS) 실물을 전시했고 중소업체들도 휴대용 디지털 무전기, 잠수함 음파탐지 부표, 포구 자동청소기 등을 내놓았다. 해외 기업 중에서는 세계 최대 방산업체로 꼽히는 미국의 록히드마틴 등 70개국 1600여개 업체가 전차, 헬기, 미사일, 통신장비 등 지상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첨단 신무기를 대거 선보였다. 파리 국방부 공동취재단 서울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또 산에서…산나물 캐러 간 실종 50대 숨진채 발견

    또 산에서…산나물 캐러 간 실종 50대 숨진채 발견

    산나물을 캐러 갔다가 실종된 50대 2명 가운데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북 영주경찰서는 14일 오전 11시 30분쯤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산 절벽 중턱에서 김모(50·안동시)씨를 발견했다. 김씨는 절벽 중턱에서 자라는 나무에 몸이 걸쳐진 상태였다. 그는 지난 12일 오전 7시30분께 일행 4명과 산나물과 약초를 캐려고 산에 들어갔다. 김씨는 입산 이후 일행들과 무전기로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3시간여만인 오전 11시를 전후해 연락이 끊어졌다. 소방당국은 김씨 일행의 신고를 받고 인명구조견 등을 동원해 입산 지점 주변을 수색했다. 경찰은 김씨가 절벽 근처를 지나다 추락했을 것으로 보고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김씨보다 하루 앞서 실종된 박모(56·여·영주시)씨를 찾기 위해 계속 수색하고 있다. 박씨는 지난 11일 오전 7시쯤 영주시 상가리 소백산 연화봉 방향으로 산나물을 캐러 간 뒤 연락이 끊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더위와 싸우면서, 불과 싸웁니다

    더위와 싸우면서, 불과 싸웁니다

    6~8월 화재 발생 16% 증가 20㎏ 방화복 통풍·신축성 취약 열사병·열실신 등 고열 장애 신소재 방화복 개발 지지부진 “한여름도 아닌데 벌써부터 더워지니 걱정입니다. 방화복을 입고 한 시간만 진화 작업을 해도 흘러내린 땀으로 신발이 흥건해집니다. 올해는 여름이 참 빨리도 왔네요.” 29일 만난 김모(37) 소방관은 “기온이 30도 정도면 차 안에서 방화복을 입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체력를 많이 소모한 상태가 된다”며 “열사병, 탈수, 순환부전 등 고열병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5월 중순부터 이어지고 있다. 화재진압 현장의 소방관들에게는 열과 싸워야 하는 ‘고통의 계절’이 예년보다 보름이나 늘어난 것이다. 평년을 크게 웃도는 때 이른 더위, 여름철 화재 건수 증가, 지지부진한 신소재 방화복 개발 등으로 소방관들이 삼중고에 노출됐다. 29일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여름철(6~8월) 화재발생 건수는 2014년 8308건에서 2015년 9657건으로 1349건(16.2%)이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여름 화재발생 건수는 2007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통상 여름은 습해서 화재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캠핑 열풍과 가정 내 보양식 등 장시간 취사, 빨래 삶기 등으로 최근 증가하는 추세다. 폭염도 소방관들을 위협한다. 지난 19일에는 서울 최고온도가 84년 만에 가장 높은 31.9도를 기록했다. 기상청은 올해 6월과 8월의 기온도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불볕더위와 화재 건수 증가 등은 방화장비로 중무장한 소방관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통상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할 때 갖춰야 하는 장비는 방화복·방화두건·안전장갑·공기호흡기·안전화·헬멧·랜턴·도끼·무전기 등 대략 20㎏ 안팎에 이른다. ‘땀복’이나 다름없는 방화복에다 방화장비를 갖추고 햇빛에 따른 복사열을 견디며 화재진압을 하다 보면 탈진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2013년 8월 경남 김해에서 화재 현장에서 진화 작업을 하던 김윤섭 소방관이 과도한 복사열 등으로 탈진해 쓰러져 순직했고 지난해 8월에는 충북 청주에서 40도 날씨에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이 탈진해 쓰러지기도 했다. 소방관들이 흔히 겪는 고열 장애로는 열사병, 열경련, 열소진, 열실신 등이 있다. 통상 소방관들은 화재 신고가 들어오면 소방차에 탄 후 방화복으로 갈아입는다. 진화를 위한 골든타임 5분을 맞추기 위해 1~2분 내로 방화복을 입고 장비를 완벽히 착용해야 한다. 한모(30) 소방관은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는 차에서 방화복을 입은 것만으로 이미 온몸이 땀에 젖는다”고 말했다. 방화복, 방화두건, 안전장갑, 안전화의 주재료는 섭씨 400도까지 열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든 특수 섬유 ‘아라미드’다. 안전이 우선이다 보니 통풍과 신축성에 취약하다. 여름에는 복사열과 화재 현장의 불길로 방화복 속 온도가 40도를 넘기도 한다. 최모(34) 소방관은 “방화복 내부로 들어온 뜨거운 공기를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지거나 마스크 안쪽면이 흐려지면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유럽, 미국 등에서는 땀 배출·흡수 기능을 개선한 신소재 방화복이 등장하고 있지만 국내의 경우 개발 속도가 더디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방화복의 가격은 한 벌당 50만~60만원선인데 신소재 제품은 가격이 100만원까지 이르러 정부 예산으로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소방관들은 보급품 장갑보다 질이 좋은 해외 제품을 사비로 구매하기도 한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김모(28) 소방관은 “선진국까지는 아니어도 방화복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졌으면 좋겠고, 신발에 땀이 고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전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단독] “젊은 경찰오빠, 사귀자” 홍대 불금, 취객과 사투

    [단독] “젊은 경찰오빠, 사귀자” 홍대 불금, 취객과 사투

    “아우~ 젊은 경찰 오빠, 진짜 맘에 든다. 나랑 사귀자. 응? 응?” 지난 7일 새벽 3시 술집과 카페, 클럽 등이 즐비한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거리. 황금연휴의 절정인 ‘불금’(불타는 금요일)의 끝을 통과한 취객들이 헤어짐의 아쉬움을 달랠 즈음,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 소속 최영구(51) 경위와 박준희(25) 순경은 서교동 클럽NB 부근에 쓰러져 있는 30대 여성에게 달려갔다. 만취한 여성은 갑자기 박 순경의 몸을 더듬으며 애정 공세를 폈다. 박 순경의 부축을 받고 순찰차에 오른 여성은 박 순경을 끌어 안고 “키스해 달라”고 말했다. 진땀을 뺀 박 순경은 지구대에 도착하자 동료 경관에게 동영상을 촬영해 달라고 했다. ●만취女 애정공세 대응 않자 욕설 지구대에서도 구애를 이어가던 여성은 대응이 없는 박 순경에게 화가 났는지 욕설을 퍼붓고 여러 차례 뺨을 때렸다. 박 순경은 말없이 한숨만 쉬었다. 옆에 있던 최 경위는 “남성에 대한 성희롱은 아직 사회적 인식이 덜한데, 현장에서는 이렇게 남성 경찰관이 수치심을 느낄 만한 일도 발생한다”고 말했다. 홍익지구대는 전국에서 가장 바쁜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3만 2540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112 출동신고가 접수됐고, 지난해 5월 23일에는 단 하루 동안 236건의 신고가 들어왔다. 홍대입구역의 지하철 이용인구는 하루 7만 8000여명으로 지난해 서울에서 5위였다. 주말이면 3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다. 홍대 앞이 ‘젊음의 해방구’로 유명해지면서 주말이면 지구대뿐 아니라 마포경찰서 형사들도 동원되고 있다. 취객과의 사투,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비, 음란업소 단속 등 홍익지구대의 주말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지난해 5월 23일엔 하루 236건 신고 지난 6일 오후 8시 30분 최 경위와 박 순경이 탄 순찰차에 신고가 떨어졌다. 내비게이션 화면에 서교동의 한 술집이 표시되자 최 경위가 화면의 ‘112 신고 음성 파일’을 눌렀다. 신고를 한 건물 관리인은 “어린 것이 금연건물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데 대든다”고 말했다.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현장 출동부터 쉽지 않았다. 간신히 현장에 도착하자 담배를 피웠다는 노래방 직원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건물 관리인도 “젊은 게 버릇이 없다”며 맞섰다. 최 경위는 10여분만에 두 사람을 설득했고, 둘은 악수를 했다. 최 경위는 “처벌보다 문제가 해결되도록 돕는 게 경찰의 임무이기 때문에 우선 중재부터 한다”고 설명했다. 오후 10시 권병길(39) 경사와 지두남(34·여) 경장의 순찰차로 바꿔 탔다. 비가 와서 출동이 그나마 줄었다고 했지만 6일 오전 9시부터 7일 오전 9시까지 들어온 112신고만도 79건에 달했다. 이중 61건(77.2%)이 오후 8시 이후에 몰렸다. 7일 오전 1시쯤 지구대로부터 “술집 화장실 문을 부순 범인을 찾아달라”는 신고가 전달됐다. 서교동의 2층 건물에 도착하니 1층 술집 옆 화장실의 나무 문의 일부가 누군가 주먹으로 세게 친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었다. 술집 주인은 만취한 일행을 붙잡고 시비를 가리고 있었다. 권 경사는 먼저 폐쇄회로(CC)TV부터 확인했지만 사각지대였다. 인근에 주차된 차를 살피던 지 경장은 술집 쪽을 찍었을 것으로 보이는 차 소유주에게 부탁해 블랙박스 메모리를 확보했다. 그는 술집 사장에게 경찰서에 정식 신고하도록 했다. 사건을 정리하니 오전 2시, 지 경장의 무전기에서 바로 옆 골목의 만취자를 보호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만취한 청년을 30m 전방에 있는 순찰차에 태우려 했지만 남성은 욕설을 하며 버텼다. 20분간의 사투 끝에 간신히 순찰차에 태웠는데 이번에는 순찰차에 구토를 했다. 지구대까지 이동하는 5분간 청년은 지 경장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욕설을 늘어 놓았다. 지 경장은 “매번 공무집행 방해로 기소하면 하루에도 수십 명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냥 참고 넘어간다”고 말했다. ●순찰차 토사물 치우고 또 출동 ‘일상’ 청년을 지구대에 인계한 권 경사와 지 경장은 동료들과 순찰차의 토사물을 치우고 곧바로 같은 차에 다시 올랐다. 새벽 5시 30분 동이 텄지만 신고는 계속됐다. 최 경위는 “오전 10시까지는 간밤의 피해자들이 본격적으로 여러 신고를 해 오는 시간”이라고 했다. 취객들은 지구대 의자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한 술집 종업원은 스마트폰 절도 사건에 연루돼 진술서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경찰관들은 믹스커피를 ‘원샷’하고 다시 순찰차에 몸을 실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이제훈 “어디에도 없던, 까칠남 홍길동”

    이제훈 “어디에도 없던, 까칠남 홍길동”

    지난해 가을 ‘시그널’ 촬영 때다. 드라마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무전기를 받아들고 왠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드라마가 끝난 뒤 먼저 촬영했던 영화의 후반 작업을 할 때에서야 깨달았다. 잊고 있었는데 영화도 무전기를 소품으로 썼던 것. 그것도 같은 브랜드의 제품. 이제훈(32)은 소름이 끼쳤다고 했다. 드라마에서 무전기가 인간미를 돋보이게 했지만 영화에선 섬뜩함, 치밀함을 보여주는 장면에 등장한다. 묘한 연결고리라 ‘시그널’ 팬들이라면 흥미로워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박해영 경위가 탐정 홍길동으로 돌아온다. 새달 4일 개봉하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을 통해서다. 우리나라 고전 소설의 영웅을 총, 안개, 골목길, 연기, 내레이션 등 필름 느와르로 색칠하며 새롭게 해석했다. 그것도 반(反)영웅으로. 이제훈은 “이제까지 우리 영화에서 없던 캐릭터”라며 뿌듯해했다. 영화 속 홍길동은 정의감이나 도덕, 신념 따위는 엿 바꿔 먹은 캐릭터다. 어릴 때 눈앞에서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결핍과 울분의 먹잇감이 됐다. 자신이 겪은 그대로 복수하기 위해 원수의 두 손녀를 데리고 다닌다. 머리는 비상하게 굴리는데, 주먹은 못 쓴다. 총질은 좀 한다.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쓰고 권총을 든 채 어두운 골목을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는 데 꿈을 이룬 셈이죠. 가까이 있기만 해도 몸서리칠 것 같은 나쁜 놈이 나쁜 놈을 잡는 이야기가 신선하기도 했고요. 아이들을 만나 성장하는 홍길동이 피터팬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제훈의 말처럼 바늘로 찔러도 꿈쩍 않을 홍길동 캐릭터를 흔들고 관객의 허를 찌르며 영화의 어둠을 살짝 걷어올리는 두 꼬마의 깜찍한 연기가 비장의 무기다.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미장센과 만화적인 비주얼도 돋보인다. “미국에 팀 버튼이 있다면 한국엔 조 감독님이 있는데 독특한 작품 세계에서 뛰어놀 수 있다는 자체가 무엇보다 흥분됐죠. 관객들이 결국 어린 두 친구를 기억하며 극장을 나서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해줘 정말 재미있었어요.” ‘시그널’이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탐정 홍길동’에 거는 기대가 남다를 터다. 제대 뒤 첫 영화이기에 더욱 그렇다. “‘건축학개론’은 네 명, ‘점쟁이들’은 세 명, ‘파바로티’는 두 명이 극을 이끌어요. 캐릭터 비중이 점점 높아졌는 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제가 가져가야 할 부분이 많아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감이 그 어느 때보다 크더라고요. 대중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당연히 있죠.” 데뷔 때부터 늘 연기파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지만 ‘시그널’에서는 연기력 논란이 일기도 했다. “피해자와 피해자 주변의 고통을 대변하는 인물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아픔도 있었어요. 그런 히스토리가 나중에 나오는 데 처음에 그 인물을 정당화하는 배경 없이 가니까 불편하게 본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것마저 조율하지 못한 제가 부족했던 거죠. 전 아직 멀었어요.” ‘시그널’도 그랬지만 ‘탐정 홍길동’도 후속편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결말을 빚어낸다. 물론 흥행 여부가 열쇠다. “저도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의 후속편을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사람 중 한 명인데, 우리에게도 그런 작품들이 있으면 좋겠어요. 시그널은 작가님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 채워져야 가시화될 것 같아요. 전 준비하고 있답니다. 하하하. 홍길동도 한 편에만 나오기에는 너무 아까운 캐릭터예요. 동시에 러브콜이 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고요? 한꺼번에 해야죠, 뭐. 몸이 부서져라.”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시속 35㎞ 구간을 127㎞ 과속… 나사 빠진 코레일

    시속 35㎞ 구간을 127㎞ 과속… 나사 빠진 코레일

    27명 중 기관사 1명 사망·8명 부상 관제 지시 오류·과속 원인 조사 사장은 비례출마 사퇴… 한 달여 공석 22일 오전 3시 41분쯤 전남 여수시 율촌면 월산리 율촌역 인근에서 무궁화호 1517호가 선로를 벗어나 기관사 1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달 11일 경부선 화물열차 탈선 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40여일 만에 일어난 이번 사고 역시 ‘안전불감증’이 부른 전형적인 인재인 것으로 드러났다. 코레일 사장이 한 달 이상 공석인 상태라 조직 기강과 안전의식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날 오후 10시 30분 서울 용산에서 여수엑스포역을 향해 출발한 무궁화호는 종착역 도착을 10분 정도 앞두고 ‘쿵’ 소리와 함께 선로를 벗어났다. 9량 중 기관차가 전복되고 객차 5량이 탈선하면서 전철주 4개, 궤도 400m 등이 파손됐다. 보조석에 앉아 있던 기관사 양모(53)씨가 숨졌고 운전을 한 보조기관사 정모(57)씨와 승객 7명이 부상했다. 당시 열차에는 승객 22명, 기관사 2명, 승무원 3명 등 27명이 타고 있었다. 광주지방철도경찰대 등은 사고 열차가 기관사와 관제사 사이에 주고받은 관제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것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사고 지점은 상행선에서 하행선으로 선로가 바뀌는 곳으로, 곡선 코스여서 시속 35㎞ 이하로 달려야 한다. 그러나 사고 열차는 시속 127㎞로 운행했다.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선로를 바꿔 타는 구간에서 갑자기 녹색 신호등이 보였고, 속도를 줄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블랙박스와 무전기록을 분석해 과속 여부와 관제 지시의 오류, 기관사 지시 이행 등에 대해 정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이번 사고는 대표적인 후진국형 사고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날 근무표에는 양씨가 주기관사, 정씨가 보조기관사로 적혀 있지만 운전은 정씨가 맡았다. 순천기관차 사업소 관계자는 “둘 다 기관사이기에 아무나 운전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코레일 사장의 장기간 공석 상태도 문제로 불거진다. 지난달 화물열차 탈선 사고도 열차 검수 및 열차 바퀴 품질이 원인이 됐다. 화물열차 사고 당시는 최연혜 전 사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최 전 사장은 사고 사흘 뒤(3월 14일)에 4·13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 출마를 위해 사퇴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사장 공석 상태가 되면서 전체적으로 조직 기강이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관리감독기관인 국토교통부도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승객 1명이 숨지고 90여명이 부상한 2014년 7월 영동선 열차 충돌 사고 후 갖가지 대책을 내놨지만 안전불감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열린세상] 구조개혁:미래가 보낸 시그널/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주미 특임파견관

    [열린세상] 구조개혁:미래가 보낸 시그널/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주미 특임파견관

    자연현상의 인과관계는 시간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미래(결과)가 시간을 거슬러 현재(원인)를 바꿀 순 없다. 뉴턴 물리학의 요체다. 인과관계를 뒤집으면 드라마가 된다. 최근 종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시그널’. 과거와 현재의 두 주인공이 무전기로 소통한다. 미래가 보낸 시그널을 단초로 현재 미제 사건을 해결한다. 미래가 현재를 바꾸는 건 드라마 소재로 그치지 않는다. 경제 행위도 마찬가지다. 경제주체가 선택한 ‘현재’ 의사 결정은 ‘미래’ 상황을 염두에 둔 결과다. 기업투자, 가계소비가 그렇다. 앞으로 소득이 늘어난다는 기대가 있어야 지금 소비와 투자를 늘리게 된다. 미래는 원인이고 현재가 결과인 셈이다.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을 헤매고 있다. 회복 전망도 요원하다. 글로벌 수요 위축의 거센 파도를 한국도 피해 가기 어렵다. 여전히 수출이 성장 엔진인 우리 경제에 더 큰 도전이다. 지난 1~3월 중 수출은 13.1% 감소했다. 수출의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율도 2011년 202.7%에서 2015년 15.4%로 급감했다. 우리 물건을 사줄 상대국의 경제 사정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수출상품 경쟁력 강화만으로 접근하는 건 한계가 있어 보인다. 수출이 제 몫을 못하면 빈자리를 기업 투자, 민간 소비 등 내수가 채워 줘야 한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투자 비중(29.1%)이 39년 만에 최저다. 민간 소비 비중은 27년 만에 가장 낮다. 청년실업률(12.5%)도 사상 최고치다. 기업이 투자를 꺼리고 가계는 지갑을 닫은 결과다. 금리라도 더 내려 내수경기 촉진에 나서라는 주문이 드세다. 그런데 통화정책만으로는 어려워 보인다. 유동성 사정은 지금도 충분히 완화적이다. 기업의 투자 결정은 실질금리 수준에 달려 있다. 명목 금리에서 인플레이션 기대를 뺀 것이 실질금리다. 최근 명목 기준금리가 1.5%, 인플레이션 기대는 2% 정도다.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 영역에 있다. 2008년 이후 기업투자가 내리막이다. 장기간 지속 중인 하락세를 몇 번의 금리 인하로 반전시킨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위험한 투자 프로젝트를 부추겨 부실을 더 키우게 된다. 퇴출당해야 마땅한 한계기업에 연명할 기회만 줄 뿐이다. 내수 경기 부진의 두꺼운 벽은 미래를 바꿔야 뚫린다. 구조 개혁이 수단이다. 개혁으로 변화될 경제가 밝아 보이면 지금 소비하고 투자하게 된다. 방치된 돌부리를 치우고 팬 곳은 메워 평형한 운동장을 만들어 주는 게 첫 번째 과제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은 구조조정이 갈 길이다. 어려운 과제다. 마구잡이식은 안 된다. 옥석을 구분하고 고용보험 등 안전망을 가동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공정하고 투명한 규칙을 세우는 거다. 그래야 선수들이 자유롭게 뛸 수 있다. 제도와 규제의 개혁이다. 10년, 20년을 바라보는 구조개혁이 당장 시급한 내수 경기 살리기에 도움이 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제약회사 주가는 신제품 개발 성공 뉴스에 곧바로 급등한다. 완제품이 출시 전인데도 먼저 반응하는 거다. 시그널(구조개혁의 내용)이 믿음을 주면 즉시 화답하는 곳이 시장이다. 현재 경제 상황을 두고 위기, 위기 하는데 위기는 항상 기회다. 때마침 유럽·일본 등의 양적완화 정책 시행으로 글로벌 유동성이 넘쳐난다. 국내 기업들도 거액을 내부 유보 중이다. 기업소득환류세까지 논의될 정도다. 기업이 이익을 투자·배당으로 안 쓰면 과세하겠다는 압박이다. 해외 투자자와 국내 기업들이 큰돈을 끼고 앉아 망설이는 중이다. 공감할 수 있는 청사진을 제시하면 투자가 살아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다. 220조엔(약 2250조원) 풀고도 성장이 정체된 일본,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간신히 지탱한 ‘3년 반짝 회복’이다. 구조 개혁이 뒤따르지 않으면 성장은 ‘거기까지’라는 점이 교훈이다. 일본을 비아냥거릴 처지가 못 된다. 우리도 개혁 시도가 번번이 벽에 부딪히는 형편이다. 모처럼의 노사정 대타협(2015년 9월 15일 합의)이 좌절에 직면해 있다. 노동·교육·금융·공공부문 4대 개혁과제 중 피부에 와 닿는 성공 사례가 몇 개나 되나. 미래가 보내는 시그널은 구조 개혁이다. 20대 국회에도 크게 들렸으면 한다.
  • [문화마당] 불편한 기억, 슬퍼할 책임/김재원 KBS 아나운서

    [문화마당] 불편한 기억, 슬퍼할 책임/김재원 KBS 아나운서

    지난달 울릉도에서 이틀간 생방송을 했다. 울릉도는 뱃길 변덕이 심해 직장인은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이다. 이때 아니면 언제 가나 싶어 일처럼 여행처럼 다녀오기로 마음먹었지만 기억 저편에서는 계속 망설여졌다. 12년 전 3월 나는 독도에서 생방송을 했다. 날씨 변덕으로 사흘을 기다려 오징어 잡이 배를 타고 독도에 들어갔다. 그 당시는 접안시설도 없었고 일반인 입도는 불가능했다. 경비대원들과 밥 먹고, 등대요원들과 잠자며 사흘 동안 생방송에 참여했다. 하지만 기상 악화로 발이 묶였다. 결국 나는 후속 촬영 중에 턱뼈가 부러졌고, 응급치료도 없이 해군 식량 수송함을 타고 열흘 만에 독도를 벗어났다. 턱에 깁스를 하고 방송은커녕 말도 못 하고, 먹지도 못하며 두 달을 보냈고 12㎏이나 빠졌다. 아픈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일상을 방해한다. 배 타기가 망설여진 다른 이유는 떠나기 며칠 전에 본 세월호 생존 학생들의 졸업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때문이다. 준혁이는 마지막 구조자다. 배가 다 가라앉고, 점 같은 것이 떠올랐다. 복도에서 난간을 잡고 버티다 친구들이 물에 휩쓸리는 것을 보고 필사적으로 잠영을 해 배를 벗어난 준혁이었다. 같은 반 여학생의 손을 잡고 나오다가 급물살에 손을 놓쳤고, 지금도 그 친구는 꿈에 나타난다. 준혁이는 초중고를 같이 보낸 친한 친구 넷을 모두 잃었다. 일 년 반을 학교와 집만 오갔다. 놀 친구도, 사귈 친구도 없었다. 준혁이는 졸업여행을 결심한다. 친구들의 사진을 들고 제주도로 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애도여행이었다. 함께 찍은 사진은 친구들의 부모님께 선물했다. 손을 놓친 여학생의 부모님과도 처음 만나 눈물로 포옹했다. 이 년이 지나도 그들은 여전히 아프다. 사회는 ‘이제 그만하면 됐지’라고 말한다. 그들의 슬퍼할 권리마저 앗아 가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슬퍼할 책임이 있다. 그들의 아픔은 불편하다. 그 불편한 아픔은 우리가 짊어질 사회의 아픔이요, 나라의 아픔이다. 우리가 이 봄에 ‘귀향’이나 ‘동주’ 같은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꽃다운 처녀가 겪은 꽃잎이 찢어지는 상처나 순수한 문학청년이 겪은 하늘이 사라지는 황망함은 분명 백 년이 지나도 기억해야 하는 불편한 아픔이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마다, 윤동주 시인의 시가 바람에 스칠 때마다 우리는 아파야 한다. 용서와는 또 다른 문제다. 우리는 용서할 자격조차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기를 끈 드라마 ‘시그널’도 과거와의 소통을 통해 기억의 아픔을 만졌다. 무전기로 과거 인물과 소통한다는 터무니없는 설정은 어쩌면 과거의 아픈 기억과 소통하고 싶은 우리 심정이다. 미제 사건도 사회적 애도가 필요하다. 아픈 기억을 끌어안는 것만으로도 미제 사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것이다. 나쁜 기억은 저절로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누군가 대신 기억한다고 여길 때야 비로소 그 흔적이 엷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회적 애도가 필요한 사건, 사고의 생존자와 유가족의 삶은 여전히 사고 순간에 멈춰 있다. 잊어야지 마음먹는다고 사라진다면 이 땅에 고통 가진 자가 누구랴.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진부한 표현조차도 우리의 슬퍼할 책임을 강요한다. 기억은 분명 아프다. 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은 더 고통스럽다. 선거에 묻혀 버릴 세월호 참사 2주년의 아픔은 노란 리본 가슴에 달고 우리가 부둥켜안아야 할 기억이다.
  • 24시간 대기조… 수협 경계하는 상인, 무전기 든 경비… 상인 감시하는 수협

    24시간 대기조… 수협 경계하는 상인, 무전기 든 경비… 상인 감시하는 수협

    “지난달 16일부터 밤샘 근무조를 만들었으니까 오늘이 딱 20일째네요.” 5일 새벽 1시 기존의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만난 장한기(52)씨는 현대화 시장 입주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붉은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는 “새 시장으로 간 상인들을 제외하고 남아 있는 우리 500여명 중에 350명이 24시간 대기조를 편성했다”며 “수협중앙회가 고용한 경비업체 직원들이 입구, 주차장, 해수 공급시설 등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후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지키는 ‘새벽조’의 조장이다. 조원들은 목에 호루라기를 걸고 있었다. 반면 상인들이 지키는 곳 주변에서는 수협 측이 고용한 경비업체 직원들이 손전등과 무전기를 들고 대기 중이었다. ‘구(舊)시장’과 ‘신(新)시장’은 20m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서로 등을 맞댄 채 반목하고 있었다. 새벽 장을 보러 손님들이 찾아오자 시장 입구에 있던 호객꾼들은 연신 신시장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익숙한 전통시장으로 향하는 손님이 더 많았다. 특히 이날은 전날 있었던 칼부림 사건으로 분위기가 더욱 살벌했다. 지난 4일 상인 측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수협 직원 2명, 경비업체 직원 1명을 칼로 다치게 한 일이 있었다. 한 상인은 “우리 상인들 전체가 폭력적인 집단으로 낙인찍힐까 봐 걱정”이라면서 “새 시장으로 입주한 상인들을 보며 마음이 뒤숭숭하던 차에 불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현대화 시장으로 입주한 상점은 200여곳으로 당초 예상보다 많다. 수협 측은 영업면적(4.9㎡·1.5평)이 작다는 상인들의 불만을 의식한 듯 먼저 계약에 나선 상인들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면서 입주를 유도했다. 이번 칼부림 사태에 대해 “언젠가 일이 터질 줄 알았다”고 말한 상인도 많았다. 이미 지난달 26일 기존 시장에서 수협이 고용한 경비업체 직원들이 상인들의 테이블과 의자를 부수려다가 양측에 몸싸움이 일어났다. 이달 1일에는 트럭과 굴착기를 동원해 시장 입구와 주차장을 막으려는 경비업체 직원들을 저지하다 상인 35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기존 시장에 있는 상인 최모(43)씨는 “주차장 전기를 끊겠다거나 시장이 위험하다는 안내문을 수협 측에서 돌리는 통에 상인들의 스트레스가 크다”고 전했다. 수협 측 관계자는 “주차장은 노후화가 심해 안전 문제가 있으며, 상인들이 테이블을 설치한 곳은 영업 공간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기존 시장이 무허가 시장이 된 만큼 상인들이 무단 점거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협 쪽과 자신들의 점유권을 지키려는 상인들의 갈등은 평행선을 내달리고 있다. 이날 새벽 시장을 찾은 손님 황모(54·여)씨는 “시장 외벽에 ‘철거·위험’이라고 쓰인 글씨들을 보면 우리까지 마음이 불안해진다”며 “그래도 새로 지어진 시장은 익숙하지도 않고 어수선해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상인들은 시장이 갈라진 후 고객이 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수협은 구시장을 지키고 있는 상인들을 상대로 공간을 비워 줄 것을 요구하는 명도소송에 이어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봄이 왔지만 아직 진짜 봄이 오지 않은 노량진수산시장. 무겁고 차가운 어둠을 지나 새 아침이 밝았지만 구시장에 남은 사람들도 신시장에 들어간 사람들도, 그리고 손님들도 표정은 모두 굳어 있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태양의후예…특수부대 대접 좀 해주시지 말입니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태양의후예…특수부대 대접 좀 해주시지 말입니다

    특전사 파병부대 장교와 해외 의료봉사단의 여의사가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독특한 스토리로 연일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시청자, 특히 여성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에 붙잡아 놓으며 이른바 ‘태후 신드롬’을 이끌어 가고 있는 일등공신은 역시 주인공인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다. 유시진 대위는 훤칠한 키와 외모, 다부진 근육, 그리고 육사 출신의 엘리트 특수부대 팀장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유 대위는 시내에 데이트 나왔다가 헬기를 타고 부대로 복귀하는가 하면, 시종일관 폼 나는 군복과 장비를 착용하고 나오며,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면 별 세 개인 특전사령관의 명령도 무시하고 무전기까지 꺼버리는 패기를 보여주며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러한 패기와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상남자’ 특수부대 대원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것이겠지만, 실제 특전사는 이러한 호연지기는 고사하고 온갖 규정과 규제에 묶여 점차 야성을 잃어가며 ‘보이스카우트’ 대접을 받고 있다면 과연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제 장비는 쓰지 말라“ 9.11 테러 이후 세계 각지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각국은 대테러 작전 수행을 위한 특수부대 강화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으며, 최근 IS 테러리즘이 세계 각지에서 창궐하며 대테러 특수부대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과거에는 특수부대원 개개인의 초인적인 정신력이 특수부대의 전투력을 가늠하는 척도였다면, 군사과학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의 특수전은 속된 말로 ‘장비빨’이 얼마나 받쳐 주느냐에 따라 특수작전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장비의 수준이 특수부대의 전력 수준을 평가하는데 있어 중요한 척도가 되고 있다. 문제는 ‘안 되면 되게 하라’ 정신으로 정신력에서만큼은 세계적으로도 탑클래스로 평가받던 대한민국 특전사가 ‘장비빨’에 밀려 점차 전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특전사 훈련 사진과 다른 선진국들의 특수부대 훈련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군대나 무기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차이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장비다. 다른 나라의 특수부대, 특히 특수전 분야에서 독보적인 국가로 평가받는 미국의 특수부대를 잘 살펴보면 대원 개개인의 총기나 헬멧, 조끼, 심지어 전투복까지 다른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미군 델타포스(Delta force)나 네이비씰(Navy SEAL) 대원들은 같은 팀이라도 사용하고 있는 총기가 모두 제각각인데, 미군 제식소총인 M4 카빈을 비롯해 독일과 벨기에서 특별히 주문한 HK416이나 SCAR, 심지어 러시아제 AK-47을 개조한 총기를 쓰는 대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많이 쓰이는 M4 카빈의 경우 대원 개개인의 취향에 맞춰 총열, 개머리판, 조준장비, 탄창, 심지어 몸통까지 커스텀해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복장이나 보호장구, 군장도 마찬가지다. 전술조끼나 방탄복도 본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해 사용할 수 있고, 보급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별도로 사제 장비를 구입해 쓰거나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할 수도 있으며, 보급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장비를 구할 수 없는 경우 직접 해외에서 제품을 구해 장병에게 전달해주는 비영리 민간단체(Troops Direct)까지 있다. 그렇다보니 미군 특수부대원 1명이 몸에 두르고 있는 장비의 가격을 뽑아보면 준대형 세단 한 대 가격을 가볍게 웃도는 경우가 많다. 개개인에 맞게 환골탈태 수준으로 개조한 소총과 권총에 1000만~1500만원 이상, 최신 방탄복과 헬멧, 피복류에 300~500만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첨단 통신장비와 휴대용 저격수 탐지 시스템 등의 생존 장구류까지 합치면 병사 개인당 장비의 가격은 수천만 원을 넘어간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뿐만 아니라 최근 이슬람 테러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선진국 특수부대 가운데 이러한 흐름에서 유일하게 역행하는 부대가 딱 하나 있다. 바로 대한민국 특전사이다. 특전사는 지난해부터 국가공인기관으로부터 인증 또는 검증받지 아니한 규격, 국방부 요구조건에 미충족하는 저급, 저질제품의 사용 및 유입을 차단한다는 이유로 대원 개개인의 사제 장비 사용과 부대 반입을 엄격히 금지하기 시작했다. 나이프나 멀티툴, 모자 등 일부 품목에서는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총기 부품이나 방탄 장구류, 야간 투시 장비 등의 반입을 금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령부 차원에서 이러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일선 부대에서 사제 장비를 사용하는 사례가 급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보급되는 레일과 조준장비가 개개인에게 맞지 않거나, 총기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성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부착했던 각종 부품과 부수장비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특수전사령부에서 이러한 지침을 내린 이유는 간단하다. 규정 때문이다. 군은 군수품 표준화업무규정에 따라 모든 무기체계와 장비를 표준화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는 국방기술품질원 등 전문기관에서 검증된 규격과 형상의 무기체계를 운용함으로써 사용자 운용 편의성과 군수보급상 이점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비정규 작전을 수행하는 특전사 대원들로부터 거센 반감을 사고 있다. 가령 특전사 대원들의 표준 개인화기인 K-1A 소총의 예를 들어보자. 특전사 대원들 사이에서는 K-1A 소총의 접철식 개머리판 대신 M4 카빈에 쓰이는 신축식 개머리판을 부착하고, 사제 레일 시스템을 달아 여기에 자신에게 맞는 배율 조준경과 도트사이트, 수직 손잡이 등을 추가해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제 개머리판은 더욱 안정적인 견착을 가능케 해 중거리 사격에서 명중률을 높여주고, 2개의 광학조준장비는 가까운 표적이나 먼 표적에 대해 빠른 조준 전환을 도와줌으로써 신속한 사격이 가능케 해준다. 그런데 규정대로라면 이러한 개조는 불법이며, 총기에 부착된 모든 부수기재는 떼어내거나 부대에서 보급되는 장비를 달아야 한다. 특히 전술훈련평가 때는 이러한 장비가 다른 팀 또는 다른 부대와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하여 부착을 더욱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훈련이 있을 때 특전사 대원들이 아무것도 달리지 않은 ‘맨총’을 자주 들고 나왔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각종 장비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총기를 들고 언론사 사진에 찍히면 스스로 규정위반을 인증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전역을 앞두고 있다는 한 특전부사관은 사령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통해 대원들이 사비를 털어 장비를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소연하고 있고, 주요 군사전문매체와 언론도 이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특전사령부는 그 어떤 입장 변화도 보이지 않고 있다. 주눅 드는 특수부대 "How about you and your Korean Boy Scouts go back home, and train with your mama's?(너희 한국 보이스카우트들은 집에 돌아가서 엄마랑 훈련하지 그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주인공의 팀과 연합훈련 중이던 미군 델타포스 팀장이 주인공 팀에게 던진 조롱이다. 물론 실제로 동맹군 사이에서 이런 수준의 폭언이 오가는 경우는 없지만, 미군 입장에서 지금의 한국군 특전사가 ‘보이스우트’처럼 보이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보이스카우트는 주로 ‘엄마’들의 손에 이끌려 가입하고, 조직에서 정해준 유니폼과 규정에 따라 움직이며 각종 행사에서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상당히 작용하는 편이니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금의 특전사는 ‘육군본부’라는 ‘엄마’의 치맛바람에 묶여 있는 ‘보이스카우트’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특수부대는 일반 부대와 편제와 운영, 전술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독립된 지휘체계와 군수보급체계를 갖춰야 한다. 미국의 경우 사성장군이 지휘관인 별도의 특수작전사령부(SOCOM·Special Operations Command)가 존재하며, 미 육군의 그린베레, 해군의 네이비씰, 공군의 24특수전술대대 등의 작전지휘와 보급을 모두 특수작전사령부에서 담당한다. 그러나 한국군 특전사는 평시 육군본부의 통제 하에 있기 때문에 훈련과 보급 면에서 특수전과는 거리가 먼 육군본부의 규정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최근 실시되고 있는 한미연합 특수전 훈련 현장에서 전해지는 소식들을 종합해보면 함께 훈련하는 미군 입에서 ‘보이스카우트’라는 비아냥이 나올 법도 하다. 사실,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특전사는 정말 폼 나고 멋진 조직이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속 특전사 대원의 모습을 보면 정말 멋있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표적과 표적 사이를 걸어가는 교관을 피해 실탄 사격 훈련을 하고, 외출 나온 대위가 긴급 복귀를 위해 병원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드라마 속 허구일 뿐, 실제 현장에서 전해지는 특전사의 실태는 드라마 속 내용과 거리가 좀 멀다. 교관을 앞에 두고 전진하면서 폼 나게 사격 훈련하는 대신 공포탄 탄피도 잃어버릴까봐 총기에 탄피받이 붙이고 탄피 주우러 다녀야 하고, 훈련 도중 불쑥불쑥 나타나는 평가관과 통제관에서 상황 브리핑도 해야 한다. 여주인공을 뒤로 하고 폼 나게 헬기로 출동하는 대신 훈련장까지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올해 키 리졸브/독수리연습 기간 중 한미연합 특수작전 훈련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리스트들과 치열한 실전을 경험했던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이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특전사는 간부로 이루어진 비정규전 전문 프로 집단이다. 특전사 대원 하나 하나는 강도 높은 훈련과 수련으로 다져진 야수들이며, 이 야수들은 유사시 적진 한가운데에서 일당백으로 싸우는 최정예 전투원들이다. 적진에 홀로 고립되어 1대 다수로 싸우려면 그 전술은 변칙적이어야 하고 비상식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비정규전이라 부른다. 정규전을 수행하는 일반 육군 부대의 규정, 그리고 부대 운영 원칙을 비정규전 부대인 특전사에 적용하는 것은 야영 전문가들을 앉혀 놓고 보이스카우트 교육을 진행하는 것과 다름없다. 특전대원들의 잃어버린 야성을 깨우기 위해서라도 이제 적어도 특수부대에서만큼은 규정과 방침에서 유연성을 좀 갖는 것이 어떨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 finmil@nate.com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세월호 2차 청문회 중계] “진도-제주 VTS 교신 내용 달라…편집 의혹”

    [세월호 2차 청문회 중계] “진도-제주 VTS 교신 내용 달라…편집 의혹”

    28일 ‘세월호 2차 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은 세월호 참사 당시 녹음됐던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 교신 내용 가운데 일부가 편집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오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제2차 청문회에서 장완익 청문위원은 제주 VTS와 진도 VTS의 교신 내용 가운데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 위원은 배명진 소리공학연구소장의 음성 설명 자료를 공개하며 “진도 VTS에서 제주로 안내 메시지를 보내는데 28초 밖에 안 걸렸는데 제주 VTS는 30초가 걸렸다”면서 “짜여진 문구가 2초 정도 삽입됐다. 고의적으으로 편집·삽입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주장했다. 다른 내용이라고 지목된 내용은 “각국 각선 450명 이상 선원 여객선 37분 해상에”라는 문장이었다.또 장 위원은 당시 교신기록 녹취에서 같은 문장이 두 번 들리는 등 편집 증거가 발견됐다고 주장하면서 추궁했다. 이와 관련 강상보 전 해양수산부 제주 VTS 센터장은 “편집할 수 없다”면서 조작 의혹을 부인했다.그는 무전기가 5개라 채널이 중복되면 소리가 들어오다 시간차 때문에 중복되는 일이 있다고 해명했다. 또 김형준 해양경찰청 진도연안 VTS센터장은 “진도와 제주의 통달 거리도 고려돼야 한다”면서 “진도 VTS에서도 안내 방송을 할 때 보조 선박을 동원하기 위해 통신 장비를 더 이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권영빈 진상규명소위원장도 편집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제주 VTS는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사흘간 (주)GCSC를 통해 VTS 유지·보수를 진행했는데 담당자의 승인 도장이 찍혀있지 않으며, 관련 업무 담당자들이 이같은 내용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권 위원장은 “긴급 정비 보수 확인서에 (담당자인) 강승필 주무관의 서명이 없다”면서 “또 ‘기술 검토 보고서’에 대해서도 이 업무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강상보 증인과 이상길 증인만 알고 있고, 실무자들은 모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 설명서에 공개된 업무 내역은 ‘백업 파일 만들기(GCSS 3개 정도)’였다. 강상보 전 센터장은 “수사 기관이나 조사 기관에서 요청할 것에 대비해 백업 파일을 만들었다”고 해명했지만, 당시 누구와 어떤 과정을 거쳐 백업 파일은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일관했다. 강 전 센터장이 “모르겠다”는 답변을 이어갈 때마다 유가족 등이 앉아있는 방청석에서 야유가 터져나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2차 청문회] 세월호 승무원, 2년 만에 첫 진술 “청해진 해운이 대기 지시”

    [세월호 2차 청문회] 세월호 승무원, 2년 만에 첫 진술 “청해진 해운이 대기 지시”

    28일 세월호 2차 청문회에서는 세월호 참사 당시 선사인 청해진해운 측에서 선내에 ‘대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증언이 제기됐다. 세월호 여객영업부 직원으로 참사의 생존자인 강혜성 씨는 이날 오후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제2차 세월호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참석해 이같이 진술했다. 강씨는 “사고 당일 오전 9시 26분쯤 양대홍 여객부 사무장(사망)이 무전을 통해 ‘10분 후에 해경 올 거야. (승객들) 구명조끼 입혀. 선사 쪽에서 대기 지시가 왔어. 추가 지시 있을 때까지 구명조끼 입히고 기다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강씨는 양 사무장이 지시에 앞서 무전기 채널을 바꾸라는 뜻의 “CC(채널 체인지)”라는 말을 했고, 남들은 쓰지 않는 5번 채널로 바꿔 이러한 대화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권영빈 특조위원이 “선사 측에서 대기 지시가 내려왔다는 사실을 약 2년 동안 수많은 조사를 받으면서 한 번도 말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냐”고 묻자 강씨는 “영업부 직원들의 희생에 누가 될까봐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권 위원이 “선사로부터 불이익을 입을까봐 말 안 한 것은 아니냐”고 재차 묻자 그는 “그런 생각은 안 했고 개인적인 양심의 문제였다”고 답했다. 강씨는 자발적으로 유가족들에게 사죄 발언을 하겠다고 신청한 뒤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 하루빨리 사고 원인 등 진실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권 위원은 강씨의 발언에 대해 “진술 하나만으로 무엇을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선사가 대기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니 세월호 침몰 자체에 누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 좀 더 깊이 조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기 없이 무게 만으로 열리는 자동문…국내 업체 첫 개발 중

    전기 없이 무게 만으로 열리는 자동문…국내 업체 첫 개발 중

    건물 입구에 놓인 자동문 시스템은 생활에 많은 편리함을 더해주는 시설 중 하나다. 그러나 전기로 작동되다 보니 아파트 등 일부 공공시설물에서는 자동문이 과도한 전기세를 유발하기도 한다. 또한 전기 설비에 이상이 생길 경우 출입문이 작동하지 않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이같은 문제를 줄이기 위한 취지로 무동력, 무전기의 친환경 자동문이 국내에서 개발되고 있다. 도어 제작 업체인 삼아디오시스템(대표 문성업)은 국내 최초로 중량 만으로 열리는 자동도어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 자동문과 병행해서 설치가 가능한 친환경 자동문은 오로지 통행자의 무게 만으로 문이 열리고 닫힌다. 동력이나 전기를 필요로 하지 않고, 소음도 발생하지 않는다. 문이 열리는 중량은 사용자가 10~100㎏ 범위 안에서 임의로 조절할 수 있다. 삼아디오시스템 관계자는 “친환경 에코 자동문은 무동력, 무전기, 무소음 제품으로 민원인의 출입이 잦은 관공서나 어린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유치원∙어린이집 등에 유용할 것”이라면서 “18년간 쌓아온 자동도어 기술을 바탕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편의성과 실리성을 담은 제품을 꾸준히 개발, 보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업체는 일반 자동문에 하이패스(HI-PASS) 기능도 탑재할 예정이다. 국내 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한 HI-PASS 기능은 자동문이 닫히는 도중 통행자와 신체가 접촉하게 되면 0.4ms의 속도로 즉시 열려 통행자의 안전사고를 예방한다는 취지다. 고효율, 저소음 모터와 특수 폴리우레탄 코팅을 한 행거 롤러 시스템은 레일과 롤러와의 구름 마찰 소음을 줄여 보다 쾌적한 사용환경을 제공하며, 200만 사이클 이상 작동 가능한 모터 수명과 고품질 모터 특성에 맞춰 내구성과 견고함을 높였다.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그럼 살려요”… 시청자가 사랑한 ‘태양의 후예’ 명장면

    “그럼 살려요”… 시청자가 사랑한 ‘태양의 후예’ 명장면

    방송부터 OST까지 연일 ‘태후’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태양의 후예’가 시청률 30% 진입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1회분부터 8회분까지의 분당 최고시청률(수도권 기준)을 통해 시청자들이 사랑한 명장면을 꼽아봤다. # 송송 커플의 빠른 로맨스 ‘돌직구 로맨스 좋지 말입니다’ 유시진(송중기 분)과 강모연(송혜교 분)은 1회부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했지만 바쁜 스케줄로 계속해서 엇갈렸다. 이에 시진은 작전지로 출발 전, “건강하게 돌아올 테니 영화 봅시다”라는 데이트를 신청했지만 1회분 엔딩에서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하며 험난한 로맨스를 예고했다. 이후 서로 다른 신념에 이별을 맞이했던 두 사람은 우르크에서 운명적으로 재회했다. 시진과 모연의 로맨스 재시동을 알린 2회 마지막 장면은 순간 시청률이 20.8%까지 치솟으며 심상치 않은 ‘태후’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 “그럼 살려요” 신념 지킨 군인 송중기… 말 한마디에 30% 돌파 ‘태후’ 신드롬은 이날부터 시작됐다. 우르크를 순방하던 중 아랍 의장이 긴급 이송됐다. 모연은 수술을 주장했지만, 경호원들은 칼을 댈 수 없다며 총을 겨눴다. 시진은 일촉즉발의 상황에 상부의 중립 명령을 어겼다. 살릴 수 있다는 모연의 말에 “그럼 살려요”라며 경호원들과 대치한 것. 의사로서 모연을 믿는 시진과 그녀의 사명감이 깨어난 3회의 엔딩신은 30.5%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갈등을 반복하며 가까워지기 시작한 이들은 와인 키스로 4회를 마무리, 분당 29.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 “이쁜이입니다” 송송커플 무전신에 시청률도 응답… 최고 시청률 34% 지난 5회분에서 시진에게 배운 무전기 사용법에 재미가 들린 모연. 그녀는 위문 공연이 필요하다는 송상현(이승준)의 장난에 “걸그룹 이쁜이입니다”를 외치며 씩씩한 군가로 화답했다. 모연의 귀여운 매력에 시청자들은 분당 최고 34%의 시청률로 응답했다. 이후 본격적인 지진 이야기가 펼쳐진 6회분에서는 자신의 오진에 죽음을 맞이한 환자 앞에서 오열하는 이치훈(온유)의 안타까운 장면에 순간 최고 시청률 34.3%를 보였다. # “함께 싸워줘서 고마웠다” 송송 커플의 ‘위로맨스’ 우르크 재난상황 속 시진과 모연은 각자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했다. 이후 시진의 부상 때문에 마주하게 된 두 사람. 이들은 “함께 싸워줘서 고마웠다”는 진심을 주고받았고, 위기의 상황에서 서로를 생각하며 의지하는 위로맨스에 7회분의 순간 최고 시청률은 34.7%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어진 8회분에서는 모연이 환자치료를 위해 음악을 트는 모습이 그려졌다. 하지만 시진을 향한 모연의 진심이 담긴 녹음 파일이 재생되며 뜻밖의 공개 고백이 펼쳐졌다. 이에 분당 최고 시청률은 34.6%를 기록하며 이들의 로맨스에 기대감을 더했다. 사진제공=태양의후예 문화산업전문회사 & NEW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올해 1만명 시대 ‘진짜 여군’

    올해 1만명 시대 ‘진짜 여군’

    육군 2항공여단 소속 장시정(37) 소령은 UH60 ‘블랙호크’ 수송헬기를 조종하는 여군 조종사다. 중대장을 맡고 있는 장 소령은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과 1학년 딸을 둔 엄마이면서도 지난해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항공우주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장 소령이 ‘슈퍼 여군’으로 활약할 수 있는 원동력은 가족들의 격려와 배려다. 육군은 유엔이 제정한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 금녀의 벽을 허문 여군들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육해공군 전체 여군의 숫자는 올해 초 기준으로 현역 장성 2명을 포함해 9750여명이며 올해 말까지 1만 490명으로 늘어나면서 사상 처음으로 1만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그동안 여군들이 두각을 보이는 분야는 군 법무관이나 간호장교 등으로 한정됐었다. 특히 현역 육군 여성 법무관은 59명으로 장기복무 법무관의 35.8%다. 하지만 육군은 지난해 군종, 포병, 방공 병과도 여군에게 개방했고 이제 남성 영역으로 간주되던 항공, 정보, 수송 등의 영역에서도 여군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강원 철원 6사단 수색대대 정보과장에 임명된 주현정(31) 대위도 금녀의 벽을 허문 선두주자다. 북한군 부대의 동향을 분석하는 최전방 일반전초(GOP) 수색대대 정보과장을 여군이 맡은 것은 주 대위가 처음이다. 주 대위는 “앞으로 많은 후배들이 남군과 동등한 여건에서 당당하게 임무를 수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6월부터 육군 72사단에서 연대장 직책을 맡은 노경희(47) 대령도 육군 최초의 여군 보병연대장으로 화제가 됐다. 39사단 정비근무대 소속 여군 조주연(28) 중사는 2년 연속 ‘특급전사’ 휘장을 달고 있다. 특급전사는 사격, 기초 체력, 10㎞ 완전군장 행군, 화생방 등에 대한 병사 지도 능력, 무전기 등의 편제 장비 조작 등에서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선발된다. 조 중사는 특급전사가 되려고 체육 활동 시간마다 3㎞씩 뛰며 체력을 유지해 왔다. 2군수지원사령부 601수송대대의 이승연(27) 중사, 김지선(26) 하사, 김미선(23) 하사는 각각 11.5t 트럭, 유조차, 버스를 운전한다. 김지선 하사는 유조차뿐 아니라 지게차, 굴삭기 등의 운전에도 도전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저출산으로 인한 남성 병역 자원 부족과 군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 증대로 여군 비율은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며 “전방 부대 어린이집을 늘리는 등 다양한 육아 지원 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라일락에 최루탄에 눈물겹던 그 봄날

    [김동률 교수의 1980’s 청춘의 재발견] 라일락에 최루탄에 눈물겹던 그 봄날

    라일락 향기에 정신이 어질어질하던 어느 봄날이었다. 서울 종로 고려당 제과 2층에서 만난 그녀가 내민 한 권의 책이 불씨가 된다. 프란츠 파농(1925~1961)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었다. 벌써 서너 번을 만난 그녀는 얼마 전 하숙집 선배가 주선한 미팅에서 처음 봤다. 목포에서 올라온 그녀의 낯설고도 고운 남도 사투리는 모차르트처럼 들렸다. 파농을 같이 읽고 토론해 보자는 것이었다. 으음, 여자친구와 독서토론이라…. 한마디로 황홀한 제안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떠도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주고받았다. 그러나 달콤함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하숙집에 돌아와 펴 본 책은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10대 성장기, 클래식으로 분류되던 책들을 몽땅 탐독했다고 자만했던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난해한 개념들이 가득했다. 파농은 당시 운동권에 벤치마킹 대상이던 인물. 서인도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서 태어난 치열한 흑인 혁명가를 내가 알 리 만무했다. 총 맞은 기분이었다. 다시 만날 날은 다가오고, 요즘 말로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몇날 밤을 손가락으로 볼펜만 360도 빙그르르 돌리다가 잠이 들었다. 따스했지만 결기에 찬 눈빛으로 ‘파농’을 건네주던 그녀의 기대치에 나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결국 그녀와의 만남은 삼월에 시작해 장미향이 스멀스멀 퍼지던 오월에 끝나게 된다. 그녀는 언니, 오빠까지 소개해 주며 나에게 열심이었지만 그만 만나자는 말은 막상 내가 먼저 했다. 내려다보는 듯한 그녀의 태도가 점차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스스로 차인 것이다. 충격적인 그날 이후 나는 내 또래의 누구라도 그랬듯이 이념서적을 손에 쥐게 된다.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해방전후사의 인식’, ‘8억 인구와의 대화’, ‘민중과 지식인’, ‘민족지성의 탐구’ 등은 단골화제가 되었다. 아, 그리고 또 있다. ‘난쏘공’이다. 가상의 공간인 은강시를 배경으로 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그 시절 우리들의 필독서였다. 문제는 이 같은 이념서적들과 내가 궁합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술자리에 가면 늘 ‘말빨’이 달렸다. 강촌, 대성리나 송추, 일영 유원지에서 보낸 MT의 밤은 힘들었다. 담배연기 가득한 좁은 방에서 독한 소주에 고추장 멸치, 꽁치 통조림을 갖다 놓고 밤새 벌이는 격론에 나는 늘 꿀 먹은 벙어리였다. 뒤풀이 시간에 잠시 빛을 발했지만 결국 이 같은 모임과는 멀어지게 된다. MT의 목적보다는 MT 분위기를 즐거워하고 데모를 하기보다는 데모하는 상황에 가슴이 흥분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기보다는 술 마시는 분위기를 즐거워하던 나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나날들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앞서 예를 든 책들을 멀리한 것은 아니다. 같은 시공간에서 숨을 쉬기 위해서는 이념서적을 옆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내 지식 지도에 불모지대였던 한국 현대사를 새롭게 보게 되는 기제가 된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시절은 일정 부분 ‘이념 과잉’의 시대였다. 비판이론 책은 사방에 널렸고 사계절, 돌베개 등등 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상표였다. 책들은 필독서가 되었고 80년대를 강타한 학생운동의 이론적 배경이 된다. 봄은 최루가스와 함께 왔다. 눈물과 함께 왔다. 도서관 주변은 늘 긴장감이 흘렀다. 누군가가 유인물을 한 움큼 뿌린다. 유인물은 작은 새처럼 춘삼월 봄바람에 팔랑거렸다. ‘짭새’들이 득달같이 달려오고 모여든 학생들이 구호를 외친다. 하나 둘, 마침내 한 무리 대열이 꾸려진다. 대열은 교문을 향해 움직인다. 구호는 노래가 되고 함성이 되고 마침내 절규가 되었다. “선봉에 서서 하늘을 본다 / 고향집 하늘 위엔 굴뚝 연기가 / 투사가 되어 조국의 내일 / 이 몸과 이 혼으로 다져나가리” 그러나 정문과 담장은 넘사벽, 페퍼포그 차량에서 불을 뿜는다. 최루가스에 눈물 콧물을 쏟아내면서 대열은 순식간에 흩어진다. 유인물을 뿌린 학생은 사복 경찰에게 질질 끌려간다. 속칭 백골단으로 불리던 서울시경(현 서울경찰청) 1081, 1082 중대 무술경찰들이 마지막 남은 시위 학생들을 낚아채기 시작한다. 유도와 태권도를 합치면 10단이 넘는다는 무술경관들 앞에서 학생들은 가랑잎처럼 가볍다. 지켜보는 여학생들이 비명을 지른다. ‘우리는 승리하리라’는 노래는 서서히 그리고 짧은 시간 잔불처럼 사위어 간다. 험악했던 시절. 시커먼 무전기를 움켜쥔 짭새들이 캠퍼스를 제 집처럼 활보했고 신촌, 종로통의 골목골목에는 중무장한 전경들이 넘쳐 났다. 모두가 주변을 힐끗거리며 술을 마셨다. 세상은 회색빛이었다. 학교 앞 주점에는 시국토론의 핏빛 목소리가 가득했다. 행사가 끝나면 자체 반성의 합평회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시대 상황은 자연스레 ‘낭만 결핍’의 시대를 의미한다. 당연히 축제 문화도 영향을 받았다. 세탁소에서 옷을 빌려 입고 때 빼고 광내고 참가했다던 선배들의 쌍쌍파티의 추억은 대동제 앞에서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파쇼 타도”란 구호와 깨어진 보도블록, 최루탄이 오월에 흩어졌다. 봄은 개나리, 진달래에 앞서 전경들의 군홧발 소리와 함께 왔다 멀어져 갔다. 그러나 꽃다운 20대, 시국과는 무관하게 혼자 보내는 대학생활은 감미로웠다. 난생처음 집을 떠나 혼자 있음으로 해서 느끼는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자유만만세! 술도, 담배도, 외박도, 연애도 맘대로였다. 밤새워 포커를 즐기고 춤을 추고, 한마디로 맘대로 인생이었다. 가벼운 신열에 들떠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시대 상황과 무관하게 미팅은 활기를 띠었다. 이성교제가 엄격하게 규제되는 환경에서 성장한 탓에 기대욕구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미팅은 해방구로 나가는 통과의례였다. 가끔은 낮은 목소리로 고팅이 들려왔다. ‘개빙고’(개강을 빙자한 고팅) 등의 말들이 눈치 보듯 들렸다. 질색하던 비판적 골수 운동권 친구들도 가끔은 얼굴을 보였다. 대학가만이 아니다. 공장이 몰려 있는 구로동과 영등포 일대에도 고고장은 성업 중이었다. 그러나 어렵게 지탱되던 미팅 문화도 어느 순간 사라졌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라던 시구절처럼 질풍노도 같던 80년대는 그렇게 멀어져 갔다. 어느 봄날이 생각난다. 80년대 초 명동 고고클럽 마이하우스쯤으로 기억된다. 본격적으로 밴드 연주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20여명의 잘 차려입은 여학생들이 교수 몇 분을 모시고 때늦은 사은회를 하고 있었다. 그땐 사은회란 게 있었다. 어느 순간 누가 일어나 댄스 타임에 앞서 한곡을 뽑기 시작했다. “아모레 아모레 아모레 미오” 영화 ‘형사’ 주제곡이다. ‘죽도록 사랑해’라는 뜻의 ‘시노메 모로’란 제목보다 ‘아모레 아모레’라는 가사가 더 유명하다.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홀 안으로 몰려드는 여자들을 매의 눈으로 살피던 중에 들리던 노래였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노랫소리는 너무 슬프고 애잔해서 먹먹했다. 나는 작업하던 눈길을 접고 잠깐 동안 그 여학생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필이 꽂힌 것이다. 한마디 말도 건네 보진 못했지만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추억은 아쉬움으로 인해 더욱 또렷해져 온다.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마알간 목소리에 아찔했던 오늘 같은 봄밤이었다.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

    깡촌 소작농의 아들 누나의 희생으로 진학 철도원으로 살다가 다시 주경야독육사에 붙고도 결핵으로 불합격그래도 내 결론은 도전박운상 선생님 덕에 물리학에 눈떠4년 만에 석·박사 탄소나노튜브 실험과 응용 연구나는 콧수염 학자 애벌레처럼 살 거야 “제가 원래 털이 빨리 자라는 편이에요. 철도원 생활을 하다가 스물두 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오랜만에서 해서 그런가, 너무 재미가 있는 거예요. 공부에만 정신이 팔리니까 다른 일들은 다 귀찮아지더군요. 하루이틀 안 깎은 게 60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콧수염의 역사를 묻자 이영희(61) 교수는 “사람들이 전공인 탄소나노튜브보다 이 털들을 더 궁금해하니 큰일”이라며 껄껄 웃었다. 경기 수원에 있는 연구실(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물리학과)로 그를 만나러 간 지난 15일은 전국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날이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리구조연구단 단장을 겸하고 있는 이 교수는 7명의 교수, 30명의 박사후연구원 및 연구교수, 80명의 석·박사 과정 학생 등 120명에 이르는 대식구와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학생들 논문 지도 때문에 요즘 정신이 없다”며 약속 시간에 30분 늦은 데 대해 양해를 구했다. -1974년 2월의 어느 날 아침. 그날도 오늘처럼 추웠다. 기차를 타고 출근하며 메마른 창밖을 내다보는데 문득 ‘10년 뒤에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철도고를 졸업하고 철도청에 들어간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였다. 인천 부평에서 누나 집에 얹혀살며 매일 근무지인 서울역으로 통근을 했다. 갑작스럽게 든 생각처럼 결론도 갑작스럽게 났다. ‘그래, 다시 공부를 하는 거야. 공부를 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리겠지.’ 그때 고민만 하고 끝났다면 지금쯤 난 한적한 시골역의 역장이 돼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그렇게 산 것도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중학교 때까지 전북 김제의 깡촌에서 자랐다. 논이 동네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누가 “이 동네에서 가장 못사는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누구라도 우리 집을 가리켰을 것이다. 부모님은 다른 사람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머슴에 가까웠지만.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초등학생 때 가진 꿈은 말을 타고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큰 농장을 갖는 것이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어린 사람에게까지 무시당하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는 동네 형들하고도 주먹질을 할 정도로 괄괄한 ‘이씨네 말썽꾸러기’로 통했다. -원래 집안 사정이 안 좋기는 했지만 애들이 공부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어려워진 것은 ‘딸깍발이’ 할아버지 탓이 컸다. 일제가 쳐들어와 양반들이 몰락하자 “왜놈들 세상에선 아무것도 안 한다”며 평생 돈벌이라곤 하지 않으셨다. 집 안에 먹을 게 다 떨어져 자식들이 굶고 있는데도 할아버지는 소신만 지키셨던 것 같다. 평생 힘들게 사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면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지금도 여전하다. 어려서 “할아버지 때문에 우리 집은 이게 뭐냐”고 대들다가 아버지나 삼촌들한테 맞은 적도 여러 차례 있었다. -가난한 집에 먹는 입은 많다고, 나는 3남 2녀 중 장남이었다. 바로 위 누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고 미안한 마음이 크다. 누나는 집안 사정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내가 이만큼이나마 된 것도 그렇지만 여동생과 남동생이 초등학교 교사와 공무원을 하고 있는 것도 누나의 희생을 바탕으로 가능했다. -부모님은 “우리 장남 영희는 중학교까지는 나와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뒤집어 보면 중학교 졸업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남의 집 머슴일을 하면서 틈틈이 중학교 등록금을 모아 놓으셨는데, 어느 날 그 돈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중학교에 못 가게 될 상황이 된 거였다. 그때 이웃집 할머니께서 “사내놈이 중학교까지는 나와야 하지 않겠나”라며 여기저기 수소문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셨다. 그게 나에겐 약이 됐다. 중학교 들어가서 정말 미친 듯이 공부만 했다. 한 초등학교 친구가 “영희가 미쳤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였다. 꿈은 없었다. 그냥 공부를 잘하는 걸로 만족이었다. -대학교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등학교는 마치고 싶었다.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인문계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다 나라에서 세운 철도고에 들어가면 학비 대주고, 나중에 취업까지 시켜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딱 내 학교였다. 그렇게 철도고에 들어갔는데 철도원으로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다 보니 별달리 꿈이란 게 생길 턱이 없었다. 머리건 몸이건 좀 더 써 보고 싶은데, 내 몸의 혈액과 호르몬들은 나에게 한계 상황까지 가 보라고 다그치는데 현실은 그저 ‘등교-수업-하교’가 전부였다. 그러다 유도를 시작했다. 먹고 자는 시간과 수업받는 시간을 빼고는 그것만 했다. 다른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멋지게 업어치고 메칠 수 있을까, 관심은 그것뿐이었다. -1974년 1월 5일 토요일에 졸업식을 하고 7일 월요일 서울역으로 첫 출근을 했다. 통신전자과 출신인 나에게는 통신기지국과 열차 간 송수신기에 문제가 없는지를 점검하고 열차 자동 정지장치를 수리하는 일이 부여됐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달을 지내고 난 어느 날 아침, 불현듯 미래에 대한 고민이 들었던 것이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이 시작됐다. 딱히 어떤 대학, 어떤 학과를 가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배움에 대한 갈증에 공부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다고나 할까. 실업계 학교를 나왔으니 당연히 대학 입시 기초가 약했다. 서울 종로2가에 있는 종로YMCA에서 대학입시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난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국문학과가 어울릴까? 수학 문제를 풀 때가 제일 신나는데, 그리로 가 볼까?’ -물리학을 공부하기로 한 것은 학원에서 ‘분석물리’ 과목을 가르치던 박운상 선생님 덕이다. 입시 학원이었음에도 문제 풀이 요령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간단한 실험도구를 갖고 물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물리학도 문학만큼이나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해 내는구나.” 거창하게 말하면 내 인생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1975년 초 기관차 수리 공장이 있는 수색역으로 발령났다.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곳이라 공부하기엔 좋았지만 그러다 보니 체력은 바닥나고 업무 환경도 그리 좋지 않아 대입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결핵이라는, 당시로서는 꽤 중한 병을 얻었다. “고등학교 졸업해 번듯한 직장까지 얻었으면서 몸까지 상해 가면서 대학을 가려고 하느냐.” 아버지는 나를 꾸짖다가 “다 내가 못나서 널 제때 공부를 못 시켜 준 탓”이라며 통곡을 하셨다.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고, 공짜로 공부시켜 주는 곳.’ 내가 가야 할 대학의 최우선 조건이었다.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필기·실기시험에 모두 합격했지만 결핵 때문에 신체검사에서 떨어졌다. 그때의 상실감은 아주 컸다. 회사에 2개월 휴직계를 냈다. 머리까지 박박 밀고 고향집에서 2주 동안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부모님께서는 ‘얘가 죽으려고 하는 것 아닌가’ 걱정하셨단다. 방 안에 틀어박혀셔 ‘과연 나는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결론은 ‘일단 시작한 것, 원 없이 한번 도전해 보자’는 것이었다. -2개월 휴직 기간이 끝나니 김제에서 가까운 익산역으로 근무지가 바뀌었다. 직장 생활과 대학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전북대 물리학과였다. 입학 성적이 좋아 장학금을 받고 76학번으로 입학했다. 함께 일하는 직장 선배가 눈감아줘 근무 시간에 전공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갔다. 그러기를 1년. 공부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회사에 못 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표를 냈다. -죽어라고 공부만 했다. 장학금 받기 위해서도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뤄진 공부가 쌓이자 내 평생의 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지도교수님께서 미국 켄트대를 추천해 주셨다. 입학 지원서를 냈는데 놀랍게도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다. 1982년 8월 졸업이 예정돼 있었는데 가을 입학을 하라는 통보를 받아 7월 미국으로 건너갔다. 유학 후 첫 학기를 끝낸 1월 갑자기 온몸이 아파 왔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웬걸. 학교 보건소 의사는 타이레놀 한 알을 주더니 “푹 자라”고 했다. 다음날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유학에서 비롯된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좋아하는 공부를 장학금 받고 해서 그랬을까. 석·박사 과정을 4년 만에 초고속으로 마쳤다. 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고 모교인 전북대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마침 우리 학교에 교수 자리가 하나 났으니 지원하라”고 하셨다. 덜컥 합격했는데 그게 1986년 여름이었다. 7월 켄트대 학위수여식을 한 달 앞두고 모교에 돌아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박사 때까지 희한하게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과정이 순조로웠는데 외려 그것 때문에 나는 졸업식에 참석해 본 적이 없다. 그 흔한 학위 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이 없다. 아들내미와 딸내미가 아빠 학력 위조한 거 아니냐고 말한 적도 있었다. -반도체 물리학이 전공이었지만 다양한 분야에 항상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있었다. 1991년 탄소나노튜브가 세상에 처음 소개됐다. 논문들을 읽다 보니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본 듯한 충격을 받았다. 무엇보다 기초연구이면서도 실험과 응용연구가 가능했다. 대단한 매력이었다. 물리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이론과 실험 두 분야를 동시에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지만 내게는 공고 출신이라는 남다른 이력이 있었다. 직장에서 열차 무전기를 고쳤던 경험 등 현장에도 익숙하다. 그래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실험과 응용연구에 두려움이 없었다. -일반 사람들에게 내 연구 분야는 아주 생소하다. 이름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탄소는 뭐고, 나노는 뭐고, 거기에 튜브는 뭐란 말인가. 탄소나노튜브 연구가 잘 이뤄지면 요즘 많은 사람이 관심 갖는 전기자동차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정도로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까. 탄소나노튜브를 응용하면 고성능 에너지 저장장치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전기차의 생명인 배터리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전자 소재로 응용될 경우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른 초고속 컴퓨터를 만들 수도 있다.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각국의 연구자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눈에 불을 켜고 책과 논문을 파고 실험을 하는 것이다. 탄소나노튜브의 기초이론을 보강하고 응용연구로 연결시키는 과정은 앞으로도 지난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후배들과 함께 가야 할 길이다. -과학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자주 막다른 길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은 물론 연구원들에게도 나는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 나온 구절을 인용한다. ‘애벌레가 화려한 나비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은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질 정도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 최종 목표’를 묻는데 나는 그런 것이 없다. “내 최종 목표는 이거다”라고 정해 버리면 그것을 성취하고 난 다음에는 무슨 재미로 삶을 살겠나. 나도 알 수 없는 미지의 내 인생 최종 목표를 향해 이제 제대로 한 걸음 뗄 수 있는 준비가 됐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이영희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우리나라보다 해외 학계에서 더 유명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리구조연구단장을 함께 맡고 있는 그는 전 세계 대학 연구실과 산업 현장에 ‘탄소나노튜브’ 열풍을 일으킨 한국의 대표 물리학자 중 한 명이다. 차세대 신소재로 각광받는 단층 탄소나노튜브의 대량 합성과 성장 메커니즘 규명이 그의 성과다.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이론’과 ‘실험’ 가운데 하나를 골라 자기 주력 분야를 정한다. 그러나 이 교수는 탄소나노튜브 이론뿐 아니라 수소 저장, 투명전극, 복합체 연구 등 산업화 기술도 함께 개발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누가 “기초과학은 투자 대비 성과가 적다”, “기초과학은 돈이 안 된다” 같은 말을 하면 질색을 한다. ‘기초과학을 통해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게 그가 제자들에게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1955년 전북 김제 출생 ▲1987년 전북대 물리학과 교수 ▲1989년 미국 에임스국립연구소 방문연구원 ▲1993년 IBM 취리히연구소 방문연구원 ▲2001년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2006년 한국물리학회 학술상 수상 ▲2006년 국가석학 선정 ▲2014년 수당상 기초과학분야 수상. 【탄소나노튜브 Carbon nanotube】 탄소 6개로 이뤄진 육각형 모양이 서로 연결돼 가늘고 긴 대롱 모양을 이루고 있는 신소재. 1991년 일본 이지마 스미오 박사가 처음 발견한 이 물질은 튜브의 지름이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1에 불과한 나노(10억분의1)급 크기여서 탄소나노튜브로 불린다. 탄소나노튜브는 구리보다 전기 전도율이나 열 전달률이 우수하고 강도도 강철보다 100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도체, 배터리, 초강력 섬유, 생체 센서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제가 원래 털이 빨리 자라는 편이에요. 철도원 생활을 하다가 스물두 살에 대학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오랜만에서 해서 그런가, 너무 재미가 있는 거예요. 공부에만 정신이 팔리니까 다른 일들은 다 귀찮아지더군요. 하루이틀 안 깎은 게 60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죠.”
  • “무전내용 딱 걸려” 몰카 동원 사기도박 일당 덜미

     광주 광산경찰서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사기도박을 벌인 혐의(사기 등)로 남모(36)씨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3일 밝혔다.  남씨 등은 지난 22일 오후 9시 30분께 광주 광산구 광산구 우산동의 한 술집에서 속칭 ‘바둑이’ 도박을 30여 차례 하면서 피해자들에게 363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도박장 천장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고 밖에서 관측 모니터로 상대방의 패를 확인,무전기와 초소형 이어폰을 활용해 알려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범행은 이상 주파수와 무전 내용을 감지한 광주전파관리소에 의해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현장에서 몰래카메라 1대와 무전기 2대,이어폰 2대를 압수하는 한편 이들의 여죄를 조사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그널, 오늘(19일) 5분 일찍 방송…‘이재한 형사 미스터리’ 파헤친다

    시그널, 오늘(19일) 5분 일찍 방송…‘이재한 형사 미스터리’ 파헤친다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활약 중인 김혜수가 또 다시 위기에 직면한다. 지난주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에서는 ‘대도 사건’ 이면에 숨어있던 진실을 밝히고 검사장 아들 한세규(이동하)를 검거하는 ‘사이다’ 전개로 시청자들에 통쾌함을 안겼다. 하지만 8회 방송 말미 수사국장 김범주(장현성)가 광수대 계장 안치수(정해균)에게 “‘이재한(조진웅) 사건’을 철저히 감시하라. 진상이 밝혀지면 가장 곤란한 건 너다”라는 말에 이어, 과거 치수가 재한을 총으로 쏴 살해하는 장면이 등장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번주에 방송되는 9, 10회에서는 수현(김혜수)이 위기에 처하는 장면이 등장해 또 한 번 안방극장을 충격에 빠뜨릴 전망이다. 공개된 9회 예고편에서는 과거 재한이 수현을 다급하게 부르는 장면과 트라우마에 사로 잡힌 듯 파르르 몸을 떨고 있는 수현의 장면이 등장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예고편 중반에 등장하는 이상엽의 모습이 강렬히 비춰지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 옆 동네 여자 죽은 사건 흉내 낸 거 맞죠?”라는 내레이션이 깔려 모두를 경악케 할 엄청난 미제 사건을 예고한다. 또한 해영(이제훈)의 책상에서 또 다시 무전이 울리고 마치 무전기의 실체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해영 앞에 나타난 치수는 과연 재한의 비밀을 어디까지 간직한 것인지, 재한은 왜 실종된 것인지, 무전과 관련한 비밀이 밝혀질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오늘 방송되는 ‘시그널’ 9화는 5분 빠른 저녁 8시25분에 시청자를 찾아간다.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설현, 아찔한 초미니 드레스 ‘무보정 몸매 보니?’ ▶김태희, 몰디브 해변서 도발.. 다리 벌리고 ‘아찔’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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