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무장단체
    2026-03-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779
  • 美 ‘코소보해방군 이용 유고군 제압’

    유고공습이 장기화되면서 미국이 ‘민감한’ 지상군 파병보다 알바니아계무장단체인 코소보해방군(KLA)을 통해 세르비아군을 제압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전략을 구사하면서 KLA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미국이 최근 KLA와 대(對)전차무기 공급방안 등을 논의한 데 이어,미국내 알바니아계 젊은이들의 KLA 자원을 전폭적으로 도와주는 등 KLA를 측면지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KLA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16일 자신들이 생포한 유고군 장교의 신병을미국에 넘겨줬다. KLA는 지난 82년 코소보주 자치를 요구하다 투옥됐던 학생들이 ‘무장봉기를 통한 자유쟁취’라는 기치를 내걸고 결성한 ‘코소보인민운동(LDK)’이그 모태.지난 93년 지금의 KLA로 확대 재편됐다.정치는 가택연금 상태인 평화주의자 이브라힘 루고바가 이끄는 코소보 민주동맹(KDL)이 주도했다면,KLA는 정치적 암살 등 주로 무장투쟁을 벌였다. KLA는 95년11월 미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체결된 보스니아 평화협정안에코소보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자,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무력한’ 루고바의대안으로 KLA에 관심을 보이면서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 독립의 봄 찾아 수십년간 피의 투쟁/지구촌 민족·종족 분쟁

    *쿠르드 4,000년간 나라없는 유랑민족 터키정부의 쿠르드인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체포로 쿠르드인 문제가 국제사회의 초점이 되고 있다.4,000여년동안 나라없는 슬픔을 겪고 있는 쿠르드인은 지구촌 최대의 유랑민족.‘중동의 집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2,20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터키(1,200만명)를 비롯,이란(400만명)·이라크(400만명)·시리아(100만명)·아르메니아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쿠르드어를 사용하고 있으며,99%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다. 해발 3,000m의 고원·산악지역에 위치한 쿠르드인 집단거주지 ‘쿠르디스탄’의 대부분이 터키 영토에 속하는 탓에 이들의 독립 요구는 터키 정부의 최대 현안이었다.수천년동안 오스만 터키제국 등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온 쿠르드인은 1차대전 이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독립국가 건설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1920년 연합국과 오스만제국이 맺은세브르조약에서 쿠르디스탄을 국가로 승인한다고 규정한 탓이다. 그러나 23년 터키가 다시 군사강국으로 부상,이 조약은휴지조각이 돼 악연이 시작됐다.터키는 쿠르드인을 ‘산악 터키인’으로 부르며 쿠르드어 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주요 도시에서 쿠르드인의 고유의상을 입는 것까지도금지하는 등 철저히 탄압,쿠르드인의 증오심을 키웠다.이 때문에 74년 오잘란을 중심으로 쿠르드노동당(PKK)이 결성돼 반(反)터키 독립투쟁을 벌였다.PKK는 84년 이후 본격 무장투쟁을 전개,이 과정에서 3만명 이상의 희생자와 3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쿠르드인의 끈질긴 추구에도 불구하고 독립국가 건설 전망은 밝지 않다.쿠르드인 내부적으로 분열된 데다 열강들도 자국의 이익에 따라 쿠르드인을 교묘하게 이용할 뿐,독립국가 건설에 미온적이다. *코소보 '분리독립'요구에 학살로 대응 새해 들자마자 신유고 연방의 세르비아 공화국은 남쪽 코소보주에서 분리독립을 외쳐온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수십명의 무고한 양민이 처참히 살해된 이 사건은 지난해 10월 가까스로 체결됐던 세르비아 정부측과 알바니아계 주민 간의 휴전협정을 일거에 무효화하면서 코소보 ‘피의 역사’가 진행중임을 여실히 입증했다.발칸반도의 새화약고 코소보 민족분쟁은 138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막강 대국의 오스만 터키 제국은 세르비아 왕국의 근원지인 코소보를 점령,이곳에 이슬람교도인 자국내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정착시켜 인구의 90%를 차지하게 했다. 그러나 20세기초 터키 제국의 지배가 끝난 뒤 코소보는 다시 기독교 신앙의세르비아에 편입됐고 이때부터 끊임없이 인종·종교 갈등을 겪게 됐다. 특히 지난 89년 ‘대(大)세르비아’를 주창한 밀로셰비치(현 신유고 대통령) 당시 세르비아 대통령이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알바니아어 사용까지 금하자 이곳 주민의 분리독립운동도 거세지기 시작했다.96년 알바니아계 무장단체 코소보해방군(KLA)의 등장은 이후 세르비아 정부군과의 유혈충돌을불러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국제사회의 ‘무력 중재’로까지 이어진 코소보 사태는 지난 한해에만 2,000여명의 알바니아인들을 희생시켰는가하면 수십만명을 난민으로 떠돌게 하는등 참혹의 도를 더해갔다.방관적이던 국제사회도 프랑스 랑부예로 양측을 불러들여 평화회담을 벌이도록 종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 티모르,印尼서 내년 1월 독립허용 시사 23년간 인도네시아의 압제에 신음했던 동티모르에 최근 봄 소식이 잇달았다.그러나 독립의 진짜 봄이 올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지난 10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92년 수감했던 동티모르 독립운동 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를 석방했다.이어 11일 하비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00년1월에는 더 이상 동티모르 문제로 시달리기 싫다”면서 동티모르 독립허용을 시사했다.석방된 구스마오는 가택연금 상태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와 독립문제를 협상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동티모르가 독립을 달성하기까지는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많다.인도네시아 내에는 야당지도자 메가와티를 비롯한 강한 정치세력이 동티모르 독립을 반대하고 있어 인도네시아의 정세에 따라 현재의 분위기가 급변할 수있다. 인도네시아 동쪽 끝에 있는 동티모르는 400년 동안 포르투갈 식민지배를 받아오다 1975년 독립했으나 1년도 안돼 인도네시아의 27번째주로 강제 합병됐다. 이때 동티모르인 70만명 중 20만명이 학살당했다.인도네시아 정부의 심한인권유린이 자행되는 가운데 91년 180명이 희생된 ‘산타크루즈 대학살’과같은 독립투쟁이 이어졌다. 지난 96년 인도네시아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한 카를로스 벨로 주교와호세 라모스 호타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국제사회는 동티모르에 주목하게 됐으며,지난해 수하르토정권 축출 후 독립운동이 한층 거세졌다. *세계 주요 민족 분쟁 지역 [티벳]90년대부터 중국 자치구에서 분리독립하려는 움직임 표출.클린턴 미 대통령98년 중국방문 중 망명중인 달라이 라마와 대화를 할 것을 장쩌민 주석에게호소. [카슈미르]47년 인도,파키스탄 분리 후 귀속을 둘러싸고 2번 전쟁.89년후 분쟁격화 1만2천명 사망. [스리랑카 내전]인도 남부에서 이주한 힌두교의 타밀족 83년부터 분리독립 무장투쟁.5만명사망. [보스니아]4년간 20만명 사망한 내전이 95년말 협정체결로 종식됐으나 세르비아계 강경파 지도층 득세중. [바스크]이민족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해온 과격파 ETA(바스크 조국과 자유)가 지난해 말 30년만에 무기한 정전 선언. [체첸]러시아 정부와 분리독립 전쟁으로 3만명 사망.96년말 2001년까지 정전 합의. [나고르노·카라바흐]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안에 섬처럼 있는 아르메니아족 거주지역.88년부터 아르메니아 공화국 귀속 투쟁. [키프로스]그리스계 80%,터키계 20%.83년 북부에 터키 승인한 독립국 생긴 후 그리스,터키 긴장고조. [르완다]94년 후투족 50만명 투치족 학살.200만명 난민. [브룬디]93년 이후 다수파 후투족과 소수파 투치족 항쟁 격화.97년 투치족 군사쿠데타 집권.
  • 지구촌 테러(그래픽 진단 ’98세계:3)

    ◎영토·인종 분쟁… 곳곳 핏자국 얼룩/이슬람,美 대사관 폭탄… 250명 사망/신유고,코소보 ‘인종청소’ 600명 희생/이스라엘­팔 난타전 요원한 중동평화 98년 지구촌은 테러의 핏자국으로 가득했다. 새뮤얼 헌팅턴이 예견한 ‘문명의 충돌’이 이미 시작된듯 미국과 이슬람 문명권의 부딪침으로 곳곳에서 수천명이 죽거나 다쳤다. 영토와 주권,인종,종교,권력 갈등이 야기한 잔인한 테러는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어느 한 곳도 안전지대로 남겨놓지 않았다. 최악의 테러는 지난 8월 이슬람 근본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한 케냐·탄자니아 미대사관 폭탄 테러. 250명 사망 5,000여명이 부상했다. 이어 테러 근절을 명분으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테러 의심기지와 수단 제약공장에 보복 폭격을 가해 수많은 인명희생을 가져왔다. 이슬람권과 미국의 긴장은 악화됐고 남아공 등에서 미국을 겨냥한 크고 작은 테러가 잇따랐다. 평화의 길목을 막아선 테러도 많았다. 30년간 이어진 피의 전쟁 종식을 선언하며 지난 4월 체결된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넉달만에 협정을 반대하는 무장단체 ‘리얼IRA’는 차량폭탄 테러를 자행,28명의 목숨을 앗았다. 수차례의 평화협정은 물론 최근 10월 평화협정 뒤에도 끊이지 않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주고 받기식 테러도 중동평화의 어두운 그림자. 신 유고연방내 코소보자치주 독립을 둘러싼 테러의 희생자는 600여명. 스페인은 바스크 조국과 자유당(ETA)의 정부요인 암살로 어두운 한해를 보냈다. 아시아에선 스리랑카에서 타밀엘람호랑이(LTTE)의 테러가,남미 콜롬비아에선 좌익게릴라들의 유정(油井)파괴등 반정테러가 잇따라 무려 250여명이 사망했다.
  • 송유관 잇단 폭발 540여명 사망

    ◎나이지리아­도둑이 구멍 뚫고 훔치려다 터져/콜롬비아­좌익 게릴라단체 테러공격 판명 【라고스(나이지리아)·보고타(콜롬비아) AFP AP 연합】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 송유관이 폭발해 400명이 그자리에서 숨지고 수백명이 크게 다쳤다. 비슷한 시간 남미의 콜롬비아에서도 송유관 폭발사고로 45명이 죽고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중상을 입었다. 나이지리아 라디오 방송은 18일 석유 중심지인 와리 부근에서 국영 석유회사의 송유관이 폭발해 400명의 주민들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불길은 부근 200여㎡를 초토화시켰다. 석유회사측은 석유 도둑들이 기름을 빼내려고 송유관에 구멍을 뚫다 불꽃이 튀어 폭발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에서는 최근 지하 무장단체들이 석유회사 시설을 몇차례 파괴했던 사례에 비추어 테러 단체들의 범행일 가능성도 있다. 콜롬비아에도 이날 송유관 폭발사고가 발생해 최소 45명이 불에 타 숨졌다. 사고는 수도 보고타에서 북서쪽으로 600㎞ 떨어진 마추카 마을에서 있었고 새벽시간이어서 피해가 컸다. 로디르고 료래다 국방장관은 “송유관 폭파는 콜롬비아 제2의 무장 반군세력인 민족해방군(ELN)소속 좌익 게릴라들의 소행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발표했다. 대원 5,000명의 ELN은 콜롬비아 석유산업에 다국적 기업이 관여하는 것에 반대,지난 10년간 이와 유사한 테러를 자행해왔다.
  • 朴殷植·申采浩·張道斌 3人의 주필(다시 태어난 ‘대한매일’:4)

    ◎민족사관 巨木 키워낸 ‘둥지’/겨레정신 부활 외친 예리한 필봉/세사람 구국운동·망명 등 공통된 삶/각종 역사서 편찬 근대사학 선구자 白巖 朴殷植과 丹齋 申采浩,그리고 汕耘 張道斌 등 세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공통점이 있다.그 가운데 우뚝한 것은 일제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정기를 벼린 민족주의사학의 거목이라는 사실이다. 아울러 이들은 대한매일의 주필직을 주고 받은 언론사(言論史)적인 인연을 갖고 있다.대한매일은 이들의 필봉에 힘입어 예리하고 격조높은 논조를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었다.대한매일이야말로 이들이 민족사관을 키우고 다듬는데 둥지 구실을 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백암 박은식(1859∼1925)은 성리학자로 이름을 높인뒤 사회·정치활동에 나선다.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하고,만민공동회에서는 문교부장급 간부로 활약한다.이해 9월 ‘황성신문(皇城新聞)’이 창간되자 張志淵과 함께 논설기자(주필)를 맡는다.황성신문은 한일합병후 문을 닫을 때까지 대한매일과 더불어 민족지를 대표했다. 백암이 대한매일과 인연을 맺은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일설에는 대한매일 창간때 이미 梁起鐸의 추천으로 주필에 취임했다고도 하고,황성신문이 정간당한 직후인 1905년 11월에 옮겼다고도 한다. 확실한 것은,일제가 1907년 1월18일자로 파악한 보고서에는 대한매일 사원으로 돼 있지만 1908년 5월28일자 기록에는 빠졌다는 사실이다.따라서 그가 주필로 일한 기간은 1905년 말에서 2년여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대한매일은 을사조약의 전말을 상세히 보도했을 뿐 아니라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게재로 정간당한 황성신문을 찬양한 ‘황성 의무’ ▲을사조약 강제 체결을 다시 비판한 ‘시일에 우(又=다시)방성대곡’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흉계를 비난한 ‘이등후(伊藤侯)’ 등의 논설을 잇따라 실었다.주필인 백암의 민족정신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들이다. 단재 신채호(1880∼1936) 역시 26살에 성균관 박사가 된 촉망받는 한학자였다.그러나 벼슬길을 마다하고 황성신문에 들어간다.단재는 박은식에게서 대한매일 주필직을 넘겨받아 1910년 4월 중국으로 건너갈 때까지힘찬 붓자루를 휘둘렀다. 그가 대한매일에 남긴 논설은 ‘일본의 3대 충노(忠奴)’ ‘서호문답’ ‘영웅과 세계’ ‘한국 자치제의 약사’ ‘한일합병론자에게 고함’ 등이다.또 ‘독사신론’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 ‘동국 거걸(巨傑) 최도통전’등 역사 논문들을 연재했다.이때 이미 민족주의사학자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백암이나 단재의 위명(偉名)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지만 산운 장도빈(1888∼1963)이 민족사에 끼친 공헌도 결코 작지 않다.박은식이 한성사범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을 때의 제자인 산운은 그의 추천으로 1908년 봄 대한매일에 입사한다. 20살 나이에 논설위원이 된 그는 양기탁·신채호와 함께 논진을 이룬다.몇달뒤 신채호가 병이 나자 주필직을 대신했고,그가 대한매일을 떠나자 정식으로 주필을 맡아 대한매일의 막바지 성전(聖戰)에 앞장선다.한일합병으로 대한매일이 일제에 넘어가자 산운은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나온다. 박은식­신채호­장도빈 세 사람은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깊은데다 구한말 언론구국운동에서서로를 이끌어주고 뒷받침한 선후배이자 동지였다.그들의 사상적 동질성은 대한매일의 주필직을 차례대로 이어받았다는 사실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한매일을 거쳐 각자의 길로 나선 뒤에도 세 애국자는 하나의 종착점을 지향한다.바로 민족의 바른 역사를 되살려 겨레와 국가를 부활케 하려는 목적을 향해서다. 백암은 1911년 4월 만주로 망명,동지 집에 1년간 머물면서 ‘동명성왕실기’ ‘발해 태조 건국지’ ‘몽배금태조’ ‘천개소문전’등 역사서를 정력적으로 저술한다.이후 상하이(上海) 블라디보스토크 등지로 옮겨다니면서 항일무장독립운동과 신문간행 등을 했으며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등 중임을 맡는다.‘한국통사(韓國痛史)’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의 역사서를 남겼다. 단재의 삶의 궤적도 백암과 비슷하다.그도 1910년 중국으로 가 항일무장단체 결성,신문발간 등으로 온 삶을 조국광복에 쏟는다.그는 특히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와의 투쟁’으로 파악하는 변증법적 역사발전 인식을 보였고,역사연구에서 실증(實證)을 강조,우리근대사학과 민족주의사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가 첫손에 꼽힌다. 백암과 단재에 이어 산운도 1913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 신채호 등 독립지사들과 일하는 한편 ‘근업신문’의 논설을 쓴다.그러나 1916년 병이 심해져 귀국한뒤 민족혼을 일깨우는 역사서‘국사’를 발간한다.曺晩植이 교장인 오산학교 교사를 거쳐서 출판사를 설립,잡지·역사서를 냈다.‘조선역사대전’ ‘조선위인전’ ‘조선역사록’ 등의 저서가 남았다. ◎대한매일신보 보도 원칙/“공중평화 문란케 하는 기사 받지 않는다”/창간후 1년 가까이 1면 머리에 매일 社告/제작원칙 밝혀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후 1년 가까이 1면 머리에 동일한 ‘사고’를 실어 제작원칙을 밝혀왔다.그 전문을 옮긴다. 우리 대한매일신보의 목적은 대한의 안녕질서에 관한 모든 제목에 대하여는 공평한 변론을 주장함이라.우리 통신원의 탐보는 신문 보시는 독자에게 항상 보도하리며 편지를 써보내주시는 이는 성명과 번지를 적어 부치시기를희망하오니 이것을 신문상에 게재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극히 신용하는 증거를 삼고자 하노라.기자는 아무 기사든지 기재함을 퇴각하는 권리를 가졌으나 퇴각하는 이유를 말할 터이오며 공중평화를 문란케 하는 듯한 기사는 의례히 받지 않겠사옵나이다.
  • 국제테러단·배후에 무력 보복/美,아프간·수단 폭격 왜 했나

    ◎美 대사관 피폭 13일만에/‘궁지’ 클린턴 지지 상승세 ‘테러에 성역(聖域)은 없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의 테러 기지 및 시설을 폭격하며 내건 명분이다. 20일의 폭격은 미국인 12명을 포함해 250여명이 사망하고 5,000여명이 부상한 케냐와 탄자니아 미 대사관 폭탄 테러가 발생한지 13일 만에 이뤄진 무력보복이었다.미국을 겨냥하고 있는 모든 국제 테러와 배후에 있는 단체나나라에 던지는 전면전의 신호탄이기도 하다.나아가 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추가공격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의 테러기지에 대한 폭격 배경을 설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케냐 등의 미 대사관 테러 범인이자 과거 미국을 상대로 ‘피의 테러’를 자행해온 오사마 빈 라덴과 다른 테러 지도자들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의 기지에 모여 추가 테러를 계획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이 손에 넣고자 하는 대량살상용 화학무기가 수단의 제약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어 “전세계 인명을 존중하기 위해 폭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테러분자들의 거점과 인프라를 파괴,미국인을 포함한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최근 발생한 국제 테러의 3분의 1은 미국이 표적이었다.이슬람 근본주의자 무장단체 등 테러단들은 “미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한 성전”을 외쳐왔다. 클린턴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을 덮기 위한 ‘국면 전환용’이라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들이 이번 폭격에 폭넓은 지지를 보내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전 예고도 없이 2개국에 대해 전격적으로 군사공격을 감행한 것은 냉전 종식이후 슈퍼 파워로 부상한 미국의 우월감과 오만에서 비롯됐다는 국제사회의 여론도 따갑다. ◎美 공격 이모저모/아라비아·홍해 군함서 크루즈 미사일 발사/美 보복테러 우려 해외 자국민 신변 경계령 ○…미국은 20일 폭격을 가한 직후 보복테러를 우려,해외 대사관을 비롯한 주요 공관과 미국내 일부 공항에 대한 경비를 강화.미 연방항공국(FAA)은 일부 공항에서 경비강화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하고 항공사들에 대해서도 아프가니스탄과 수단 상공을 비행하지 말도록 지시했다.국무부도 해외에 체류하는 미국인들에게 비상 경계령을 내리고 사람이 많은 곳과 반미 감정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피하라고 당부. ○…미군의 공격은 그리니치 표준시(GMT)로 20일 하오 5시30분에 동시에 시작돼 한 시간이 못돼 완료됐다.작전시간은 한국 시간으로는 21일 상오 2시30분이었고 수단은 20일 하오 7시,아프가니스탄은 20일 하오 0시30분이었다. 국방부 관리는 아라비아해와 홍해에서 작전중인 미 해군함에 장치된 75기의 크루즈 미사일만을 사용했다고 설명. ○…폭격 소식은 클린턴 대통령이 휴가로 머물고 있는 미 메사추세츠주 마서스 비녀드섬에서 마이크 매커리 백악관 대변인이 “국가안보에 관한 중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함으로써 알려지기 시작.클린턴 대통령은 휴가를 중단하고 마서스 비녀드를 떠나기 전 기자회견에서 미군의 폭격 소식을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이 성추문 사건으로 시달리고 있는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번 폭격 상황을 거의 그대로 묘사한 영화 ‘왜그 더 도그(Wag the Dog)’가 화제.가상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한 걸스카우트 단원을 유혹했다는 추문으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알바니아에 대한 전쟁을 꾀한다는 내용이라고. ◎당사국 반응/수단­美 폭격은 비난받을 범죄.대사 소환·유엔 제소 방침/아프간­철면피한 적대행위 성토.응전 외치며 수만명 시위 미국의 폭격을 받은 아프가니스탄과 수단을 비롯한 아랍국가들은 일제히 응전을 다짐하며 미국을 맹렬히 비난했다. ▷수단◁ ○…수단의 가지 살라흐 아타바니 공보장관 겸 정부 대변인은 국영 수단TV와의 회견에서 “미국의 폭격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범죄적 행위”라고 규탄하고 “수단정부는 국제법에 따라 대응조치를 취하겠다”고 다짐. 또 오마르 엘­베시르 수단 대통령은 이날 미국 주재 수단 대사관직원 전원을 본국으로 소환 조치했다고 발표하고 이번 사건을 유엔에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간◁ ○…아프가니스탄 집권회교 무장세력인 탈리반 지도자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는 AIP 통신과의 회견에서 “미군의 공격은 아프간 국민에 대한 철면피적 적대적 행위”라고 성토. 수도 카불에서 남쪽으로 300㎞ 떨어져 있는 탈리반 거점도시 칸다르에서는 수만명의 성난 주민들이 ‘응전’을 외치며 시위. ◎테러 배후 지목 라덴/사우디 출신 巨富… 美에 聖戰 선포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 아라비아 출신의 건설 재벌 2세.막대한 부를 회교 극단주의 지원에 쏟아부으며 테러계의 대부로 꼽혀왔다. 79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면서.‘형제의 나라’ 아프간으로 달려가 탁월한 조직력·재정력을 발판 삼아 저항운동을 이끌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9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을 표적삼았다.95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군사훈련기지와 96년의 다란 군사훈련기지,그리고 96년의 뉴욕 월드 트레이드센터 등의 테러사건은 그의 소행으로 추정됐다.아프가니스탄의 ‘아랍 이슬람 전사 양성소’,파키스탄의 ‘세계 이슬람 전선’ 등이 그의 지원을 받는 대표적 테러단체들이다. 57년생으로 아내가 셋 이상일 것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 수단 등지를 전전하다 96년 아프가니스탄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96년부터 올해까지 세차례에 걸쳐 “미군이 신성한 아랍국가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미국과의 지하드(聖戰)을 불사하겠다”는 종교칙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지형적 장애물 피해 목표물 정확히 강타/레이더에도 안 잡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수단 폭격에 사용한 토마호크 크루즈(순항) 미사일은 지형상의 장애물을 피해가며 일정고도를 날아가 목표물을 정확히 강타하는 최첨단 무기.지상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게 특징.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개발했고 91년 1월 걸프전에서 위력을 떨쳤다. 사정거리 1,600㎞에 길이는 5.5m,무게는 1,200㎏이고 탑재된 폭탄 용량은 450㎏.핵탄두도 탑재가 가능하다.가격은 1기당 100만 달러(13억).
  • 테러/종교·민족 갈등 탓/33% 이상 美 겨낭

    테러의 사전적 의미는‘폭력수단을 행사하여 상대를 위협하거나 공포에 빠뜨리게 하는 행위’다.우리는 테러에서 처참하고 무자비한 살상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테러는 우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인류의 공분을 자아낸다.발생 시점 또한 전혀 예측 불가능하다.뿐만 아니다.수단이 대단히 잔인해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분개심을 느끼게 된다. 지구촌에서는 사실 이틀이 멀다하고 크고 작은 테러들이 저질러지고 있다. 최근 250명 가까운 인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5,000여명이 부상한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는 하나의 ‘큰 사건’에 불과하다. 인류가 제1의 공적으로 꼽고 있는 테러.과학기술의 발달로 더욱 치명적이고 대형화,다양화하고 있는 테러를 해부한다. ◎원인과 표적/美 세계 경찰국가 자임 분쟁 개입 많아/이슬람 무장세력 주축 각국서 저항 불러 ‘미국의 모든 것은 사악하다.따라서 우리 이슬람 무자헤딘(戰士)들은 사우디 등 성지(聖地)에 있는 미국의 존재들에 대해 ‘지하드(聖戰)’를 벌여야한다’ 이번 케냐 및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라딘이 올해 밝힌 회교 교령이다.비록 이슬람국가라도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무차별 테러에 대한 확신이다. 문명시대에 자행되는 반(反)인류적인 국제 테러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종교나 종파 갈등에서 민족·인종갈등,영토분쟁,식민지 반대 운동,반정(反政)투쟁 등이 우선 꼽히는 명분들이다. 그러나 국익이 우선시되는 국제사회에선 많은 경우 복합돼 테러로 이어진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한 영토를 놓고 분쟁을 벌이고 아랍권 국가내에서 이들 세력에 대한 지지 모습이 제각각인 것이 좋은 예다. 또 지난해 발생한 304건의 테러 가운데 3분의 1이상이 미국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도 한두가지 이유로 설명되지 않는다.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세계 곳곳에 개입하다 보니 원망을 사는 예도 잦다. 미국이 지목한 테러 국가는 리비아,수단,이라크,이란,쿠바,북한,아프카니스탄 등 7개국.냉전적 대립관계에 있는 국가는 북한과 쿠바뿐,나머지는 이슬람권 국가들이며 지난해 10월 발표한 30개 테러단체 역시 대부분 이슬람 무장세력이었다. 중동 정책에 개입,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이들 테러 국가들에 경제제재를 가한 것 등이 최근 빈발하는 대(對)미 테러의 요인이다. 유나 버머와 같은 반 문명주의자들,미국 오클라호마 연방건물 폭파범과 같은 자생적 극우주의자들도 최근들어 대형 테러 대열에 합류했다.최근에는 특별한 의도없이 대형 테러를 서슴지 않는 사례가 급속히 증가,인류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주요 발생 지역/유럽·중동 등 51개국 ‘핏빛 공포’/유럽­스페인 등에서 독립투쟁… 獨선 극우파 기승/중동­과격파 활동 가장 활발… 휴양지도 안심 못해 종교·인종·이념을 축으로 한 테러단체들은 줄잡아 51개국에서 살상을 일삼는다.피바람이 멈추지 않는 세계 곳곳의 테러 현황을 소개한다. ▷중동◁ 과격 회교근본주의 무장단체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중동에 주둔한 미군 및 공관과 이스라엘에 대항,회교원리주의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피빛 테러를 일삼고 있다.이스라엘에서는 94·95년 텔아비브,휴양지 나타니아에서 버스 폭탄테러가 발생했고 지난해엔 예루살렘 시장 폭탄테러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사우디 아라비아에선 96년 다란 미 군사기지 폭탄테러가,95년 리야드 미군사령부 차량폭탄가 발생했다. ▷유럽◁ 비교적 안정된 유럽 역시 테러 안전지대는 아니다.스페인의 분리독립 단체인 바스크 독립과 자유당(ETA)의 테러,독일의 우익단체 테러가 기승을 부린다.북아일랜드의 신페인당 무장단체 아일랜드 공화국군(IRA)과 신교도 얼스트의용군(UVF)도 주목받는 테러단체.아일랜드 오마시에서의 차량 폭탄테러는 세계를 경악케 하고 있다. 프랑스도 심각한 상태.95년 잇따른 지하철 폭탄테러로 수십명이 사망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에 시달리고 있다.94년 마르셰이유 공항에서 에어프랑스 납치사건이 유명하다. ▷아시아◁ 스리랑카,필리핀,아프카니스탄에서도 무차별 테러는 끊이질 않는다.회교무장학생단체 탈레반과 현 정부와의 내전이 끊이않는 아프카니스탄은 이란과의 접경지로중동 테러리스트 양성소 역할을 한다.스리랑카에선 자살 특공대 ‘검은 호랑이’의 테러와 박격포까지 동원된 엄청난 규모의 테러로 피냄새가 가시질 않는다.파키스탄도 이슬람 모하지르인의 무장단체(MQM)의 테러로 연평균 1,000명이 사망한다. ▷남미◁ 좌익게릴라들의 반 정부 유정(油井)폭탄 테러및 요인납치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콜롬비아에선 7일 안드레스 파스트라나 대통령 취임에 앞서 일어난 테러에서만 250여명이 사망했다. ▷아프리카◁ 알제리 92년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래 이에 회교근본무장단체들과의 내전으로 6년 동안 8만명이 숨졌다.버스안에 시민들을 가둬놓고 불을 지르는 등 극악한 테러를 자행한다.부녀자 강간도 극에 달했다.,이집트 룩소르 관광지에서 외국인 버스 테러가 잇따르는 등 위험지대다. ◎어떤 수법 있나/납치·폭파서 이젠 사이버테러까지/日선 독가스 살포… 세균탄도 실용화 가능성 높아/러,핵무기 위험성 담보 美에 보안비 요구하기도/컴퓨터 바이러스로 순간에 도시 마비시킬수도 인터넷 등 과학 기술의 발달은 테러수단을 첨단화시켰다. 핵무기를 사용한 테러의 위험성이 대두된지는 이미 오래다.냉전이후 보안이 느슨해진 러시아의 핵무기와 원료는 국제 테러리스트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실제로 레베드 전 러시아국가안보위원회 서기는 미국에 이를 구실로 보안비용을 요구하기도 했다. 비행기 납치 및 폭파는 70년대부터 테러범들이 자주 써온 전형적인 수법. 이제는 세균 덩어리나 포탄을 장치한 소형 비행기를 이용하는 방법까지 모색하고 있다. 최근 미국 기술평가국은 지난 93년 백악관 앞마당에 돌진했던 것처럼 소형 비행기에 100㎏의 탄저병원균을 실어 날려 보낼 경우 300만명이 희생될 수 있다고 밝힌 바있다. 95년 일본 도쿄의 지하철에 독가스를 살포한 오움진리교가 인체에 치명적인 에볼라 바이러스를 배양하려 했다는 사실도 이러한 세균테러의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가공할 위력을 과시하는 최첨단의 테러는 사이버 테러.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만으로 뉴욕시 전체를 암흑의 도시로 만들 수 있다. 선진국의 산업시설과 군사시설을 제어하는 컴퓨터에도착하기만 하면 그 기능을 마비시키는 바이러스를 담은,이른바 전자우편 폭탄(E­mail bomb)을 한꺼번에 보내 전 도시를 일시에 마비시킨다.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이란,리비아,중국,러시아 등 일부 국가들이 사이버 테러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페루의 투팍아마루혁명운동(MRTA www.blythe.org)과 콜롬비아 인민해방군(ELN www.voces.org) 등 상당수 좌익 테러 단체들은 아예 인터넷에 웹사이트까지 만들어 교리,주장을 전파하며 때로는 모금운동 까지 벌이는 등 첨단 이기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무차별 파괴하고 처참한 결과를 유발하는 폭력성 테러는 고전적이지만 전시효과를 노린 테러범들에 의해 계속 사용될 것이 분명하다. ◎악명 높은 단체/하마스­가자지구 주무대… 지지자 수십만명/헤즈볼라­레바논 회교도 조직… 이란 지원 받아/GIA­알제리에 근거… 잔혹한 학살 일삼아 ▲하마스(이슬람 저항운동)=87년 이슬람 동포단의 팔레스티나 지부가 발전, 조직된 단체. 이스라엘 점령지 가자지구가 주 무대.수만명의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다.지도자이자 창립자는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62).반 이스라엘 테러혐의로 8년간 투옥됐다 지난해 10월 석방됐다. ▲헤즈볼라(신의 당)=레바논의 시아파 회교 근본주의자들.조직원은 5,000여명.79년 이란 회교혁명후 이란 지원을 받아 급성장했다.83년 베이루트의 미국 해병대 막사폭탄 테러와 85년 미국 TWA기 납치 사건을 저질렀다. ▲가마아 이슬라미아=이집트내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중 가장 과격한 단체.무바라크 대통령의 세계주의 노선을 반대하고 있다.지난해 룩소르 관광객 버스 테러를 자행했다. ▲타밀엘람 해방호랑이(LTTE)=스리랑카에서 타밀족의 분리 독립을 위해 83년 조직된 단체.무장이 가장 잘 돼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조직원 1만여명. 자살특공대 ‘검은 호랑이’는 악명이 높다.지도자는 빌루필라이 프란바카란(45). ▲콜롬비아 혁명무장군(FARC)=남미 최대 무장 테러조직.5,0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있다.최근에도 전국 42곳에서 동시 다발적인 테러를 자행 230여명을 살해했다. ▲이슬람 무장그룹(GIA)=알제리에본거지를 둔 가장 잔인한 단체.92년 이슬람 구국전선(FIS)이 승리를 목전에 두고 군부정권에 의해 불법화되자 무장투쟁에 나섰다.무자비한 학살과 약탈에 부녀자 강간까지 일삼는다.지도자는 28세의 안타르 주아브리.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멕시코 치아파스에 근거를 둔 게릴라.94년 조직돼 농민폭동을 주도하고 있다.지도자 마르코스는 프랑스어에 유창하며 인터넷을 통해 외부와 연락한다.큰키에 다갈색눈으로 파이프를 물고 다니는 지적인 분위기의 소유자.여성팬들도 많다는 소문이다.
  • 反美 감정 짙은 회교 무장단체 지목/연쇄테러 배후는

    ◎두 나라서 같은 시간대에 계획된 범행/사우디 반정세력·지하드 연계 가능성 【워싱턴=崔哲昊 특파원】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및 인근 건물 폭파사건의 배후는 누구인가. 아직까지 이번 사건과 관련,증거가 포착된 테러단체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내외 테러전문가들은 조심스러우나 즉각적으로 중동의 무장테러단체들에게 혐의를 맞추고 있다. 워싱턴의 테러 전문가들은 이웃한 두나라에서 같은 시간대에 벌어진 상황을 놓고 볼 때 한 단체의 소행이라기보다는 ‘뜻’이 맞는 ‘전문단체’들의 연계 소행으로 보고 있다. 사건 하룻만에 테러 전문가들 사이에 실명이 오르내리는 인물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오사마 빈 라딘을 들 수 있다.오사마는 정치인 출신으로 사우디 내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사우디 왕정을 전복하기 위해 몇년 전부터 테러단체를 이끌어 오다 추방된 인물.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중인 그는 지난 6월 ABC 방송과의 회견에서 “미국인은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공격 목표가 될 것이다”고 떠벌이기도 했다. 용의선상에떠오르는 또하나의 테러단체는 이집트의 회교무장 테러단체인 ‘지하드’.이들은 최근 소속 테러리스트들이 알바니아에서 체포돼 이집트로 넘겨진 점을 강력히 비난한 바 있다. 한 전문가는 한편 “오사마가 한때 지하드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손을 잡았었으며 이번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두 테러리스트들이 손을 잡고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지적. 또 하나의 용의자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과격무장테러단체인 헤즈볼라.세계 전역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이들은 이번에도 관련성을 의심받고 있다. 자이레와 소말리아 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로버트 오클리는 미국 CNN 방송과의 회견에서 “사건은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미국을 공격대상으로 했을 뿐 이 지역과는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분석했다.
  • 지구촌 분쟁지역 점검

    지구촌이 뒤숭숭하다.엘니뇨가 몰고온 기상이변으로 곳곳에서 인류가 끔찍한 시련을 격었다.아시아는 엎친데 덮친 겪으로 경제위기까지 맞고 있다. 그러나 인류를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전쟁.유럽의 발칸반도에서는 ‘인종 청소’라는 대학살이 또다시 시작될 것 같다는 소식이 전해진다.아프리카에서는 한달째 무모하게 죽고 죽이는 국경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도 조용하지가 않다.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반세기 이상 국경분쟁을 겪고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실험을 강행해 인류를 전율케 했다.어느새 전쟁을 하기 시작했거나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세계의 분쟁지역을 긴급진단해 본다. ◎코소보 세르비아측 알바니아계 탄압 배경/민족성지서 이민족 판치다니…/세르비아 전성기유적 코소보에 오롯이/주민 90% 알바니아계 자치 누리며 생활/현정부 자치권 박탈하자 독립 외치며 투쟁/서방,인종청소 우려 ‘공습 불사’ 개입 태세 유럽의 발칸반도를 흔히 ‘화약고’라고 한다.발칸반도의 신(新)유고연방세르비아공화국 코소보주에서 포연이 피어 오른다.끝이 보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발칸반도를 자칫 전쟁으로 몰아 넣을 수도 있는 ‘코소보 사태’는 세르비아군이 자국민이면서 종족이 다른 코소보주 주민들을 유혈 탄압하면서 비롯됐다.코소보주는 세르비아 공화국 땅이면서도 주민은 엉뚱하게 90%가 알바니아계.코소보 사람들은 종족이 다른 까닭에 세르비아로부터 분리,독립하고 싶어 한다.코소보해방군(UCK)이라는 무장단체까지 만들었다. 세르비아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분리주의자들을 색출한다는 이유로 즉각 군사행동을 폈다.알바니아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면 무차별 포격한다.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5만명 이상이 집을 버리고 이웃 알바니아 등으로 피난을 갔다.세르비아가 알바니아계를 없애거나 코소보에서 모두 쫓아내려 한다고 우려한다. ▷배경 및 발단◁ 본질은 민족 갈등이다.유고에서는 세르비아계,알바니아계,몬테네그로계 등이 얽혀 산다.전체는 1,100만명 정도.알바니아계는 200만명 정도로 코소보에 몰려 산다.코소보의 90%가 알바니아계.세르비아계로 둘러싸인 알바니아계‘인종의 섬’같은 형국이다. 코소보의 고난이 시작된 것은 9년전인 89년.밀로셰비치 대통령은 티토정권이 들어선 2차 세계대전이후 인정해온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했다.코소보는 91년 급기야 독립을 선언하고 나선다.세르비아는 바로 옆의 알바니아가 사주했고 물심 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세르비아 사람들에게 코소보는 결코 내줄 수 없는 땅이다.정신적 고향이 자성지이다.세르비아의 전성기인 14세기 스테판두산 왕국 시절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실제 1차 세계대전 때까지만 해도 세르비아계가 차지하고 있었다.전쟁이 끝나며 바로 옆에 있는 알바니아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 오늘에 이르렀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이 세르비아가 코소보에서 ‘인종 청소’를 감행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세르비아는 95년 7월까지 3년이나 계속됐던 이른바 보스니아사태에서 ‘인종 청소’을 감행해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유고연방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독립을 선포하자 세르비아는 즉각 응징에나섰다.보스니아사람들을 아예 없애버리기로 하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었다. ▷사태 전망과 해결◁ 세르비아는 보스니아 때와 마찬가지로 무차별 보복을 할 것이다.그러나 보스니아 사태와는 사안이 사뭇 다르다.코소보 뒤에는 알바니아라는 나라가 있다.벌써 5만여명이 알바니아로 국경을 넘었다.알바니아를 근거지 삼아 장기적인 무력항쟁태세를 갖춘다면 세르비아는 알바니아를 공격하려 들 것이다.전쟁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사태의 심각성은 즉각 감지됐다.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즉각 세르비아에 물리력을 자제할 것을 경고하며 무력시위에 나섰다.알바니아에는 전투기를 치키로 했다.여차하면 폭격을 감행할 참이다.세르비아와 알바니아에 함께국경을 대고 있는 마케도니아에는 지상병력을 파견키로 했다. 그러나 무력시위나 결의안 만으로 이번 코소보 사태가 풀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상대가 아예 없어져 주기를 바라면서 벌이는 싸움이다.보스니아 사태에서도 그랬듯 다국적 평화유지군이 개입해야 발칸의 화약고가 잠잠해질 것같다. ◎印·파 카슈미르 분쟁 뿌리와 현주소/종교갈등이 핵경쟁까지 불러/주민 60%가 이슬람교도/47년 독립때 ‘파’ 귀속 희망/힌두교도 嶺主 인도에 양도/‘파’ 즉각반발 3차례 전쟁/협정이후 양국 분할 통치/모두 완전한 지배는 못해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유권 싸움을 하고 있는 카슈미르 지역이 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두나라가 지구촌의 우려와 비난을 무릅쓰고 핵실험을 강행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 곳 때문이었다.세차례나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상대를 압도할 무기가 필요했고 앞다투어 핵무기 개발에 진력해왔다.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과 중국 등이 국경을 함께 맞대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때문에 두나라간에 치열한 영유권 다툼을 가져왔고 남아시아의 화약고가 됐다.22만여㎢의 면적에 500만여명이 살고 있다.인구의 6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종교적 차이로 서로 다른 나라가 된 인도와 파키스탄.카슈미르는 어느 나라의 영토도 아니었다.주민들은 당연히 종교가 같은 파키스탄으로 편입될 것을 기대했다.그러나 힌두교도인 영주(領主)가 인도에서 원조를 받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통치권을 인도에 넘겼다. 파키스탄이 즉각 반발하며 전쟁이 벌어졌다.유엔이 중재에 나섰고 어느 쪽에 편입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서로 다른 의견이 팽팽히 맞섰고 결과적으로 분열만 조장했다.그리고 65년과 71년 또 두번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세번째 전쟁이후에는 협정을 맺었다.카슈미르를 두개로 쪼개 북부의 아자드 카슈미르는 파키스탄이,남부의 잠무 카슈미르는 인도가 통치하도록 했다.어느 나라도 완전한 통치권을 행사하지 못해 지금도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무력충돌 원인과 전망/독립당시 국경선 획정이 불씨/이웃사촌이 앙숙 사이로… 평화적 해결 불투명 아프리카 북동쪽에서 한달 가까이 총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국경선을 둘러싸고 에티오피아와 이웃 에리트레아가 전면전을 방불케 하는 국경분쟁을 치르고 있다. 이번분쟁은 지난달초 에리트레아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겠다고 국경을 넘어 에티오피아를 공격하면서 본격화했다.에티오피아의 반격과 함께 두 나라는 전투기까지 동원,수도와 주요 도시들을 서로 폭격했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국민소득은 각각 400달러와 570달러.모두 95년도 기준치이지만 요즘이라고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근래엔 심한 가뭄마저 들어 더욱 먹고살기가 어렵게 됐다.싸울 형편도 못되는 두 나라가 곧 전면전에 돌입할 태세다. ▷발단과 배경◁ 직접적인 원인은 국경분쟁이다.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 서북부에 위치한 티그레주의 바다메를 침공해 점령한 것은 지난달 12일이었다. ‘내 땅은 내가 차지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루아침에 ‘내 땅’을 빼앗긴 에티오피아도 발끈했다 두나라의 응어리는 6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에리트레아는 2차대전이 끝나면서 50여년만에 이탈리아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났다.그러나 독립국가는 되지 못했다.국력이 월등했던 에티오피아가 흡수 통합해 버렸다.에티오피아와는 천년도 넘게 같은 생활권으로 살아왔던 터.에리트레아는 즉각 해방전선을 조직해 무력항쟁을 벌인다.그리고 31년만인 93년 마침내 신생 독립국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국경선이 문제였다.이번 분쟁의 빌미가 된 티그레주 일부가 에티오피아 땅으로 되어 있었다.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의 식민지에서 벗어날 당시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자국 영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지금까지 에티오피아에 편입되어 있었다. 모호한 국경선이 늘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두 나라는 우호적이었다.한나라나 다름없이 화폐도 같이 쓰던 이들이 틀어지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 통화 ‘비르’를 버리고 ‘나크파’라는 화폐를 만들었다. 에티오피아는 에리트레아가 괘씸했다.예전과 달리 교역을 하면서 미국 달러로 결제해 줄 것을 요구했다.에티오피아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온 에리트레아는 당장 큰 타격을 입었다.에티오피아의 국민총생산액은 250억달러에 이르지만 에리트레아는 20억달러.두나라 국민감정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잠재되었던 국경분쟁이 자연스레 불거졌다. 미국과 르완다,리비아 등이 앞다퉈 분쟁의 중재에 나섰다.두 나라에게 93년 이후 지켜져 왔던 국경선으로 각자 군대를 철수시키고 협상을 갖도록 촉구하는 평화안을 제시했다.그러나 감정이 절정에 다다른 두나라가 영토분쟁을 평화적으로 매듭지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두 나라 비교◁ 에티오피아 면적은 112만8,000㎢로 한반도의 5.5배쯤 된다.인구는 6,000만명.이탈리아의 침략을 물리치고 독립을 유지했던 나라로 한국전쟁 때 우리를 돕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적 안정을 찾지 못한 채 지금까지 극빈국에 머물고 있다. 반면 에리트레아는 국토의 크기를 비롯해 전체인구와 국민총생산액 등 국력이 에티오피아의 10분의 1 수준.종족과 언어가 9개에 이르고 이슬람교에서 기독교까지 종교도 복잡한 것은 두나가 모두 똑같다.
  • 크메르 루주 붕괴 초읽기

    ◎정부군 마지막 거점 공세 강화… 전의 상실/67년 창설… 내부 분열·골수당원 이탈 가속 캄보디아의 급진적 공산주의 무장단체인 크메르 루주가 역사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지난 70년대말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뒤 2백만명의 캄보디아인을 학살했던 크메르 루주는 베트남군의 침략에 이어,내분과 현 정부군의 소탕작전으로 조직이 궤멸 단계를 맞고 있다. 크메르 루주는 타이 국경의 북부 안롱벵 지역을 마지막 거점으로 지난주부터 시작된 정부군의 무력공세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으나 궤멸은 시간문제라는 평가다.정부군측은 “크메르 루주로부터의 산발적인 반격은 있지만 더 이상 싸울 의사를 상실한 것 같다”고 평했다.조직원수도 93년 4만여명 수준에서 수천명으로 급감한 상태다.크메르 루주는 ‘붉은 크메르’란 뜻으로 67년 창설돼 농촌지역에 대한 세력확장을 통해 75년4월 무력으로 수도 프놈펜 등 캄보디아를 장악했었다.그뒤 78년 베트남의 침략으로 정권에서 축출됐고 89년 베트남군 철수 뒤에는 내부 분열과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 비타협적인좌경(左傾)모험주의 노선으로 대내외적으로 고립되면서 영향력을 상실했다.크메르 루주의 두 기둥인 폴 포트와 키우 삼판 사이의 갈등 등 노선투쟁과 내부 분열도 골수당원의 이탈 등 조직의 붕괴를 재촉해 왔다.지난해 6월 폴 포트는 크메르 루주 지도부에서 제거되고 사망 직전까지 연금상태로 범죄인 취급을 받아왔다.현재 크메르 루주는 키우 삼판과 군사분야를 담당한 타목 장군이 이끌고 있다.
  • 여순반란사건(대한민국 50년:12)

    ◎20개월 앞서 치른 ‘6·25 리허설’/진압에 미군 고문단 관여… 한국전 미 개입 레일 깐셈/주한미군 철수 연기·국가보안법 제정 촉발한 효과/좌파세력의 투쟁방식 게릴라전으로 전환한 계기로 “경찰이 쳐들어 오고 있다” 1948년 10월19일 여수시 신월동 국군 제14연대.늦가을의 어둠이 짙게 깔린 하오 8시쯤 14연대의 연병장에서는 고함소리가 적막을 갈랐다.연대 인사계 지창수 상사의 목소리였다. “경찰을 타도하자.조선인민군이 남조선해방을 위해 38선을 넘어 남진중에 있다”.지상사의 선동에 연병장에 모여든 장병들은 “옳소”를 연발했다.반대한 하사관 3명은 즉석에서 사살됐다.연병장에 모인 2천5백여명의 병력은 순식간에 무장하고 시내로 뛰쳐나갔다.여순사건은 이렇게 일어났다. ‘경찰이 쳐들어 온다’는 선동으로 일어난 여순사건은 당시의 시대상황 탓이다.해방 5개월뒤인 46년 1월부터 각 시도별로 연대 창설 및 모병업무가 시작됐다. ○병력 절반 이상이 좌익 이른바 ‘향토경비대’.14연대는 여순사건 5개월전에 창설됐지만 당시의 경비대는 경찰의 보조기관에 불과하다는 게 일반인들의 인식이었다.특히 경찰은 허술하게 조직된 경비대원들을 오합지졸로 간주하는 시선을 감추지 않았고 군인들은 일제의 주구였던 경찰이 자신들을 폄하하는 것이 못마땅했다.게다가 무기·장비·복장·급식 등 모든 처우에서 경찰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불만은 팽배해 있었다. 46년부터 48년 사이에 많은 젊은이들이 군에 지원했다.새 조국의 건설을 위해,친일경력의 면죄부를 받기 위해,또는 공산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군을 선택했다.향토경비대 입대과정에서는 신원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처우 등의 불만때문에 군을 그만두거나 탈영하는 이가 적지 않아 충원작업은 어려움을 겪었다. 14연대가 여순사건의 진원지였던 까닭은 병력의 절반이상이 좌파였기 때문이다.미군정의 무장단체 해산령과 남로당의 조직적 침투로 군은 적화돼 있었던 것이다.군정의 해산령은 좌익계열의 분열을 가져왔으며 좌파들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군대로 물려들었다.남로당은 사병들에게 ‘반경의식’을 고취시켜 미군정의 물리적 기반인 경찰과 군의 반목을 조장하려 했다.다시말해 군을 정치투쟁의 공간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지창수 상사가 연병장에 서기 직전,당세포 40여명과 함께 무기고를 미리 점령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좌익세력때문에 가능했다.좌익은 비상계엄령이 발령된 제주치안 확보를 위해 연대가 출동하기 전날밤에 여순사건을 일으켜 좌익반란을 본토에 확대하려 했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인 이범석은 여순사건 진압 직후 “공산주의자들은 여수에서 반란을 일으켜 제주사태를 남한 각지에서 전개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거리로 뛰쳐 나간 반군들이 여수시가지로 진입한 것은 5시간여 뒤인 20일 새벽 1시20분.이들은 여수읍내 좌익단체와 학생단체에 무기를 지급했고 상오 3시쯤에는 여수경찰서를 점령했다.반란군은 이어 주요기관을 완전 장악했으며 거리에는 온통 인공기의 물결을 이뤘다.여수 인민위원회가 복구됐고 인민재판소는 체포된 경찰,국군장교,지주,그리고 우익인사들을 처형했다.이 때숨진 경찰관은 5백여명.반란군은 식량창고를 개방해 쌀배급을 실시했으며 창고에서 흰 고무신을 꺼내 주민들에게 나눠줬다.이런 인민행정은 14연대 병력이라기 보다는 남로당과 연계된 토착 좌익세력에 의해 이뤄졌다.보복정책과 동시에 선심정책이 이뤄졌던 것이다. ○식량창고 탈취 쌀 배급 반란군은 상오 8시 순천행 통근열차를 타고 북상하기 시작해 순천읍을 장악했다.이어 광양,곡성,구례,고흥 등 동부 전남지역을 손아귀에 넣었고 경찰은 반군이 오기도 전에 도망하는 일도 벌어졌다.군인들의 봉기는 토착 좌익세력들과 어울려 거대한 민중봉기로 발전했다. 반란군이 순천에 진입할 즈음 서울에서는 긴급히 비상회의가 소집됐다.국방장관 이범석,주한미군 임시군사고문단 로버츠 준장,경비대총사령관 송호성 준장 등이 참석한 회의는 작전지도부를 광주에 급파하기로 했다.21일에는 송호성 사령관이 반군토벌사령관으로 임명됐다.전군 지도부가 총력대응 태세로 대응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토벌군은 반란 사흘째인 22일 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진압작전에 나섰으나 초기에는 별다른 성과를얻지 못했다.군 자체가 지휘불능과 병력 붕괴상태가 나타나기도 했다.가까스로 순천 탈환작전에 성공한 토벌군은 23일 여수 진압에 나섰다.송호성 사령관은 부산에서 급파된 병력 지원을 받아 바다에서 박격포 포탄을 쏟아 부었다.하지만 박격포 포사격의 미숙과 반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엄청난 사상자만 낸 채 실패하고 말았다. ○AP통신기자도 사망 송사령관은 24일 2차 여수진압작전을 직접 폈으나 오히려 자신이 반군의 기습으로 부상만 입었다.AP통신기자가 총탄에 맞아 숨진 것도 이 때였다.두차례의 실패를 맛본 토벌군은 반란 8일째인 26일 대대적인 여수 탈환작전에 나섰다.이날 정오쯤 경비정 6척이 여수반도를 포위한 채 배위에서 엄청난 박격포 포격을 가했다.여수시내는 불바다로 변했고 5분의 3은 잿더미로 바뀌었다.하지만 토벌군의 작전이 개시될 즈음 반란군들은 모두 시내를 빠져나간 뒤였으며 학생들과 좌익단체 회원들만 남아 있었다.27일에야 여수 시내를 완전 탈환함으로써 9일동안의 여순사건은 진압됐으나 2천3백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2천8백여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여순사건으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됐으며 주한미군 철수도 연기됐다.전남 동부지역을 휩쓴 여순사건은 좌파세력의 투쟁방식이 대중투쟁에서 게릴라투쟁으로 바뀐 것 뿐이었다.지리산으로 들어간 반군세력 주력들은 벌교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빨치산 투쟁을 벌였다.해방후 좌우익이 반란과 진압으로 대규모 충돌한 여순사건은 2년뒤 한국전쟁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다시말해 여순사건은 한국전쟁의 리허설이었고,전쟁은 사실상 이미 시작됐던 것이다. 50년이 지난 오늘도 여순사건의 상흔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여수·순천주민들에게 남아 있다.여수·순천 시민들은 여순사건을 ‘여순병란’으로 바꿔 불러주기를 바라고 있다.시민들의 봉기가 아니라 ‘향토 경비대 14연대’의 반란이라는 것이다. ◎미군기 정찰­진압 병력 수송 참여/주한 미 24군 ‘G­3보고서’ 입수 확인 여순사건에서 미국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주한 미군의 보고서는 당시의 상황을 사태발생과 진압 등 5개 분야에 걸쳐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기록자는주한 미24군 G­3.제목은 ‘여수와 대구 등지에서의 반란사’로 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이승만 대통령의 승인없이는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있었다.주한미군 임시군사고문단(PMAG)의 로버츠 단장은 미국인들이 직접적인 전투에 참여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따라서 미군은 지휘역할을 맡았다. 주한미군 군사고문단 G­3의 제임스 하우스만 대위,G­2의 존 리드 대위 등은 미군의 직접 개입없이 가장 빠른 시일내 반란군을 포위·진압할 수 있는 작전을 수립했다.이에따라 하우스만 대위와 리드 대위 등은 송호성 경비대총사령관,육본 정보참모부장 정일권,정보국장 백선엽 등과 함께 광주로 직접 내려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미군의 C­47 수송기는 한국군 병사,무기,기타 물자를 대구에서 실어 날랐으며 주한미군 군사고문단의 정찰기들은 반란기간 내내 여순지역을 감시했다. 미군 비행사들은 여수의 반란 세력이 2개의 군 중대와 1천여명의 민간인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여순사건이 2년뒤 한국전쟁의 리허설이었듯이 미군의 한국전 참전 조짐도 이때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 스리랑카 수도 폭탄테러/30명 사망·200명 중상

    【콜롬보 AP AFP 연합】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번화가에서 5일 강력한 폭탄이 터져 30명 이상이 숨지고 200명 가까이가 중상을 입었다고 스리랑카 관리와 목격자들이 밝혔다. 경찰은 폭탄이 장치된 정확한 지점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으나 초동수사 결과,타밀족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 게릴라들이 버스 내에 짐으로 위장해 숨겨놓은 폭탄이 터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클린턴 스캔들 배후는 이 정보기관”/팔 하마스 지도자 제기

    【가자지구 AFP 연합 특약】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이번 섹스 스캔들 주장이 중동평화 협상과 관련,자국에 대한 클린턴의 압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이스라엘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인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은 23일 가자지구에서 기도회를 마친뒤 기자들에게 “내 생각에 이번 스캔들뒤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시오니스트들의 로비가 숨어 있다”면서 “이스라엘 정보기관원들의 목적은 클린턴 대통령의 이스라엘에 대한 압력을 약화시키는데 있다”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이번 스캔들은 클린턴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워싱턴에서 중동평화 문제에 대한 회담을 가진뒤 하루만에 나왔다.
  • “이군 요르단강 서안 철수 연기”

    ◎네타냐후 총리,정착촌 확대 강행 천명 【예루살렘 AFP DPA 연합】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8일 요르단강 서안 주둔군 철수를 연기하는 동시에 유태인 정착촌 확대도 강행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29개국에서 온 유태계 의원 방문단을 만난 자리에서 팔레스타인 당국이 무장단체 해체 등 평화협정 약속 이행에 “10∼20%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난하며 주둔군 철수 가능성을 한마디로 배제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당국이 먼저 약속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면서 현정부는 지난 67년 중동전 당시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 등 팔레스타인 지역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국제/서울신문 선정 1997년 10대 뉴스

    ◎아시아 경제위기 금융위기의 한파가 아시아 각국들의 97년 세모를 꽁꽁 얼어붙게 하고 있다.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위기는 태국이 지난 7월2일 변동환율제로 바꾸면서 촉발됐다.그 한파는 도미노현상을 보이며 인접국인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특히 경제 규모 세계 11위인 우리나라를 삼킨데 이어,경제대국 일본마저 휘청거리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홍콩 중국반환 지난 7월1일 0시.홍콩 할양을 규정한 1842년 남경조약 이후 156년,홍콩반환을 확정한 중·영 공동선언 이후 13년 만에 홍콩의 주권이 마침내 중국으로 이양됐다. 홍콩의 중국주권 회복은 중국에는 굴욕적인 역사를 청산하고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아시아의 보루’로 떠오른 계기가 된 반면,영국에는 과거의 찬란했던 영화에 조종을 울렸다. ◎등소평 사망 2월19일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사망은 국가주석겸 당총서기인 강택민 시대가 시작됨을 대내외에 선포하는 사건이었다.강은 덤으로 홍콩 반환과 10월말 미국 방문이라는‘선물’도 받아 그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최고의 한해를 맞았다. 강택민 시대는 모택동과 등소평 시대와는 달리 강을 정점으로한 주용기 부총리 등 기술관료들의 ‘집단지도체제의 시대’로 그 성격이 전환되고 있음도 보여줬다. ◎복제양 ‘돌리’ 탄생 2월 영국 에딘버러의 로슬린연구소가 발표한 복제양 ‘돌리’의 탄생은 세계인들을 경악시켰다.복제양 ‘돌리’는 6년생 암양의 유방에서 체세포의 유전자를 떼어낸 뒤 자체 유전암호가 제거된 다른 양의 난세포와 결합시켜 대리모 양의 자궁에서 길러낸 것. 특히 복제양 ‘돌리’는 그 탄생과정이 앞으로 10년 내 인간 복제의 가능성도 예고해줌으로써 국제사회에 거센 찬반논쟁을 불러일으키며 관심을 끌고있다. ◎유럽에 좌파 물결 유럽에는 좌파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난 한해였다.유럽을 이끌고 있는 삼두마차격인 영국·프랑스·독일중 영국과 프랑스에서 좌파정권이 들어선 것. 5월1일 영국에서 실시된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18년 동안 장기집권한 존 메이저의 보수당을 물리친데 이어,6월1일에는 프랑스에서 예상을 뒤엎고 리오넬 조스팽이 주도하는 사회당이 승리했다. ◎테레사·다이애나 사망 97년 지구는 세기적인 비극 동화의 아름다운 여주인공과 인류구원의 삶을 산 성녀를 1주일 간격으로 잃었다.영국 찰스 왕세자와 결혼한 뒤 불륜·이혼 등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아온 다이애나는 8월31일 파리에서 파파라치의 추적을 따돌리다 애인 도디 파예드와 함께 교통사고로 사망했다.향년 36세.‘빈자의 어머니’마더 테레사 수녀 역시 다이애나가 사망한지 엿새 뒤인 9월5일 인도 캘커타 ‘사랑의 선교회’에서 8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패스파인더’화성 탐사 7월4일 미 우주항공국(NASA)은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이후 최대의 우주이벤트를 인류에 선사했다.소형로봇 소저너를 탑재한 NASA의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호는 화성에 착륙,화성표면의 흙과 암석에 대한 화상자료와 성분분석 자료를 보내와 지구와 화성이 닮은꼴임을 재확인시켜줬다.냉전 이후 인간의 우주도전 경쟁에서 독주를 계속하고 있는 미국의 또 한번의 승리. ◎지구촌 기상 이변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한 엘니뇨현상으로 전 지구가 이상한파와 폭우,한발 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지난 8∼9월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 등에서 발생한 산불은 가뭄으로 확산,동남아 전체를 연무의 공포로 몰아넣었다.최근 멕시코에서는 100년 만의 폭설이,모스크바엔 영하 30도 이하의 한파가 몰아치는 등 이상기온이 계속되고 있다.내년 2∼4월께 엘니뇨는 더욱 맹위를 떨칠 것으로 보인다. ◎콩고 등 내전 확산 지난 5월 오랜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을 축출한 자이르의 로랑 카빌라.또 파수칼 리수바 대통령을 몰아내고 정권을 다시 잡은 콩고의 드니사소 응궤소 전 대통령. 7월 노로돔 라나니드 제1총리를 쿠데타로 쫓아내고 집권한 캄보디아의 훈센. 이들의 등장은 국민들의 피를 요구하는 내전을 전제로 했다.이밖에 시에라리온,앙골라,수단 등에서 내전이 확산,97년 전세계 난민수는 2천2백72만명에 이르렀다. ◎이집트 관광객 테러 11월17일 이집트의 고대 유적지 룩소르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무차별 총격으로 스위스인 25명을 포함,외국 관광객 67명 사망했다. 이슬람 무장단체 가마아 이슬라미아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을 두고 국제사회의 강력한 규탄이 잇따랐다.그러나 이집트가 주수입원이었던 관광수입 격감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서도 엄격한 회교국가 수립을 위해 반정부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회교무장단체들의 대관광객 테러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 애 관광객 탈출 러시/무장단체 테러 계속 위협

    【카이로 AFP DPA 연합】 17일 이집트 룩소르에서 발생한 테러사건으로 이집트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대거 탈출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이 테러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회교과격단체 ‘가마아 이슬라미아’가 추가테러를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여행사들은 룩소르에 체류중인 외국관 광객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항공편 예약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올 연말까지 예약된 이집트 관광계획을 모두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영국 전세항공기들은 전날에 이어 19일에도 이집트에 체류중인 약 2천명의 영국 관광객들을 개트위크,맨체스터공항 등으로 귀국시켰다. 또 세계 최대규모 여행사중 하나인 클럽메드는 이날 관광객 약 90명을 귀국시켰으며,이집트에서의 활동을 모두 일시 중단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집트에는 매년 4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으며 이들은 30억달러의 관광수입을 안겨주고 있다. 이 가운데 스위스당국은 19일 자국인 부상자 11명을 취리히로 이송했다.
  • 애 회교단체 “관광객 테러 계속”

    ◎알 지하드 “정부 맞서 과업 계속 수행” 위협 【카이로·도쿄 AFP AP 연합】 회교 무장단체 알 지하드는 다른 이슬람 과격단체의 공격으로 관광객 67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지 하룻만인 18일 이집트 관광객에 대한 후속 테러를 자행하겠다고 위협했다. 81년 안와르 사다트 전 대통령을 암살했다고 자처하는 알 지하드는 한 서방통신사에 보낸 성명을 통해 “정부가 이슬람운동의 아들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한 무자헤딘도 자신들의 과업을 계속 수행할 것이므로 룩소르공격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일본여행사들은 17일의 룩소르 테러사고로 일본인 10명이 사망하자 긴급히 이집트 여행 일정을 취소하거나 변경했다.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는 이번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고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에게도 위로 전문을 보냈다. 하시모토 총리는 전문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이같은 사태의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가미아 “테러 자행” 주장 【카이로 AP 연합 특약】 이집트의 회교무장단체 가미아 이슬라미아는 18일 외국관광객 58명의 목숨을 앗아간 룩소르 테러사건은 자신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밝혔다. 가미아그룹은 이날 AP통신에 보낸 성명을 통해 “자신들은 본래 미국에 투옥돼 있는 지도자 오마르 압델 라만의 석방을 위해 이들 관광객들을 인질로 잡을 계획이었으나 이집트경찰이 관광객들과 민간인들의 목숨을 경시,총격전을 벌임으로써 많은 인명피해를 내게 했다”고 말했다.
  • 알 지하드·가미아 주축 10여개 활동/이슬람 무장단체 실태

    81년 사다트 대통령 암살사건에서부터 17일의 룩소르 관광객 테러에 이르기까지 이집트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테러사건의 범인은 이슬람 과격주의단체들이다. 이집트내 25개의 이슬람정치조직 및 단체 가운데 정부전복을 목표로 한 급진과격운동단체는 10여개에 달하며 이집트를 근본주의 회교국가로 건설하려는 하나의 목표를 갖고 있다. ‘모자이크 형태로’ 분열상을 보이고 있는 이들 단체 가운데 테러수법과 세력면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것은 알 지하드(성전)와 가미아 이슬라미아(이슬람그룹)다.이슬람국가를 세우고 이슬람법을 집행하는 유일한 방법을 성전에서 찾는 지하드는 81년 사다트 대통령 암살 이후 몇차례 요인암살을 기도했으나 ‘근본적인 변화’의 포괄적 준비를 위해 단기 무장투쟁을 지양,최근엔 무장투쟁을 사실상 중단했다.반면 가미아는 90년대초 무바라크 대통령의 친서방정책에 정면대응을 선언,현재까지 거의 매년 발생한 테러를 주도함으로써 이집트정부로부터 이번 테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 영 총리­신페인당수 역사적 대좌/76년만에

    ◎‘북아일랜드 평화’ 비공개 논의 【벨파스트 AFP 연합 특약】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는 13일 북아일랜드 평화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벨파스트 근처 스토몬트성에서 북아일랜드 독립을 요구하는 가톨릭계 무장단체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정치조직인 신 페인당의 게리 아담스 당수와 역사적인 회담을 가졌다. 블레어 총리는 이날 취임후 두번째 북아일랜드를 방문,북아일랜드 평화협상을 진행중인 모든 정파 지도자들과 회담하면서 영국총리로서는 1921년 아일랜드 독립이후 처음으로 신 페인당 최고 지도자와 만났다. 블레어 총리는 회담후 ‘아담스 당수와 악수를 했느냐’는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은채 “나는 그를 똑같은 인간으로 대했다”고 말했다. 블레어 총리는 평화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아담스 당수를 비롯 가톨릭,개신교 대표 등과 약10분씩 만났다고 밝혔다. 야당인 보수당측은 그동안 블레어 총리에 대해 아담스와 공개적인 악수등 신체접촉을 하지 말도록 경고해왔는데 IRA가 지난 96년 2월 런던에서 폭탄폭발 사건을 야기해 1년 5개월간 계속되던 휴전을 깨기 직전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아담스 당수와 공개적으로 만났다가 곤경에 처했던 상황을 상기시켰다. 구교도(가톨릭)의 신 페인당은 친영 기독교 정당인 북아일랜드연합 등과 함께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장래를 논의하기 위한 8개 정파간 협상 파트너의 하나로 영국으로 부터 협상참여를 허용받은바 있다.
  • 미 항모 걸프 도착/이란은 대규모 해상훈련

    【두바이·테헤란 AFP AP 연합】 미국 항공모함 니미츠호가 12일 이라크 남부 비행금지구역 정찰력 강화를 위해 걸프지역에 도착했다고 미 해군 대변인이 밝혔다. 이란이 걸프 북부해역에서 대규모 해상기동훈련에 들어간지 하루만에 이곳에 도착한 니미츠는 6척의 부속 군함단과 F­18,F­14기 등 75대의 함재기를 탑재하고 있으며 항모 본선에 5천500명,부속 군함단에 2천여명의 해군병력이 탑승하고 있다고 고든 흄 대변인은 말했다. 니미츠호의 파견은 이란 전투기들이 지난달 29일 이라크 남부의 반정부 무장단체 거점을 공습한데 대한 대응으로 항모 니미츠와 부속 군함단은 당초 싱가포르 기항을 마치고 이달 말쯤 걸프지역의 기지로 귀환할 예정이었다. 한편 이란은 11일부터 ‘피루치­8’이라는 훈련명으로 미사일 공격함과 구축함·잠수함 등 50여척의 해군함정들을 동원한 대규모 해상 기동훈련을 시작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