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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막살인 범인 잡으려 여관女에 최면 걸었더니…

    토막살인 범인 잡으려 여관女에 최면 걸었더니…

    “기억의 보편적 원리 중 하나는 실제 회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기억을 못하는 것은 저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재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199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보 중에서> 2003년 3월 23일 새벽 인천 중구의 한 무역회사 사무실. 이곳 사장 K씨(당시 46세·여)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무슨 원한에서인지 범인은 잔혹하게도 그녀의 몸을 17차례나 반복해 공격했다. 사인은 다발성 자창(刺創). 과다출혈로 말미암은 쇼크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감식반은 몇 번이고 현장을 뒤졌지만 혈흔도, 지문도, 족적도 찾을 수 없었다.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에서 경찰은 어렵사리 목격자를 한 명 찾아냈다. 사건이 나던 날, 옆 건물에서 야간경비를 섰던 A씨였다. A씨는 자정 무렵 문제의 사건 현장으로 누군가 차를 몰고 들어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았다. 차의 번호는 물론이고 종류나 색상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피곤함에 지친 야간 경비원이 옆 건물까지 챙길 이유는 없었다. 지능적인 범인은 칠흙 같은 밤 차의 미등까지 끈 채 차를 몰았다. 경찰은 A씨의 동의를 얻어 법최면(Forensic Hypnosis) 수사를 시도했다. 흐릿한 그의 기억 속에서 범인의 흔적을 끌어낼 마지막 기회였다. “시간을 5일 전으로 돌립니다. 당신은 야간근무를 서고 있습니다.” 최면상태에 들어간 A씨의 뇌는 사건에 관한 정보를 기대 이상으로 많이 담고 있었다. 언뜻 보긴 했지만,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 뇌 한쪽에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다. 법최면은 이런 기억의 파편을 의식의 세계로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A씨는 차량이 들어온 시간을 22일 밤 11시 40분쯤으로 기억해 냈다. 주차 후 차에서 내려 회사로 들어가는 용의자의 뒷모습도 기억해 냈다. 평소에 보던 옆 회사 직원은 아니라고 했다. 최면 수사관은 다시 A씨의 기억을 23일 새벽 1시 30분으로 되돌렸다. 앞서 낯선 차가 빠져나갔다고 진술한 시간이다. 그렇게 기억의 실타래를 찾는 도중 A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남자가 황급히 나와 시동을 걸고 있어요. 화물차와 부딪힐 뻔하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어요. 어어…차의 모습이 보여요.” A씨의 뇌는 용케도 브레이크 등이 켜지는 찰나, 잠시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동차를 기억하고 있었다. 차는 빨간색, 일반 세단과는 달리 뒷 트렁크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A씨는 또 다른 목격자가 있음을 기억해 냈다. 부딪칠뻔한 화물차 운전사였다. 경찰은 해당 차량을 수배했다.   ●악마의 퍼즐 맞추기…잘못된 기억을 보정하라 법최면은 범죄수사에 최면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건 현장에 단서는 없고 목격자나 피해자만 있을 때 최면을 걸어 희미한 기억을 구체화하고, 이를 통해 수사에 필요한 단서를 끌어내는 수사방식이다. 최면은 이렇게 뇌 어딘가에 숨어 있는 기억을 끌어내는 단서를 제공한다. 강호순과 정남규, 유영철까지 최근 초강력 흉악범죄 수사에는 모두 최면수사가 활용됐다. 아직 최면을 통해 얻어낸 목격자 진술의 법적인 증거능력은 없다. 단, 모아낸 증언을 통해 악마의 퍼즐과도 같은 사건을 재연하고 이를 통해 또 다른 증거를 잡아내는 마중물 역할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최면수사가 ‘기억의 왜곡’을 수정하는 역할도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몽타주다. 보통 범죄 피해자들이 기억하는 범인의 얼굴은 실제보다 험상궂다. 두려움의 기억이 용의자의 인상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법최면은 이런 오류를 최대한 보정한다. 실제 비오는 목요일의 살인자로 불린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범 정남규도 이렇게 만든 몽타주에 꼬리가 밟혔다. 2004년 2월 주택가 뒷골목에서 20대 여성이 살해됐다. 며칠 후 한 30대 남자가 현장 근처 중국집을 찾아왔다. 며칠 전 여자가 죽지 않았느냐고 물은 그는 주변을 서성이다 사라졌다. 경찰은 범행 현장을 다시 찾은 범인이라고 여겨 중국집 종업원에게 최면수사를 시행했다. 중국집 종업원의 최면 속에서 떠올린 얼굴. 2년 후 정남규를 잡은 수사관들은 깜짝 놀랐다. 몽타주가 그야말로 판박이였다. ●최면과 해리포터의 마법의 물약 그럼 최면은 누구에게나 통할까. 답은 ‘아니오’다. 최면은 무의식 속에서 기억을 찾아내는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혼수상태처럼 전혀 의식을 잃은 상황에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최면에 절대 걸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에겐 최면을 걸 수 없는 이유다. 어렵게 최면을 거는 데 성공한다 해도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에 대해선 입을 닫는다. 이 때문에 범인 또는 경찰에게 뭔가 숨기고 싶은 사람에겐 최면수사는 무의미한 결과만을 가져온다. 10년 전인 2001년 5월 19일 서울 성동구 주택가에서 토막 난 4세 여아의 시신이 발견됐다. 9일 전 실종된 아이였다. 다시 3일 뒤 경기 광주의 한 여관에서 아이 시신의 나머지 부분이 발견됐다. 그 방에 투숙했던 손님이 놓고 갔다고 본 경찰은 범인의 인상착의를 알아내기 위해 여관 여종업원에게 최면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몇시간 후, 경찰은 최면수사를 포기했다. 최면유도가 반복됐지만 여종업원은 전혀 집중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여종업원은 최면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최면유도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최면 수사관은 담당 형사에게 “여자가 뭔가 수상하다.”고 귀띔했다. 수상한 여성의 진실은 일주일 후 범인이 잡히고 나서 밝혀졌다. 종업원은 여관에서 성매매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은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간의 성매매 사실이 경찰에 발각될 것이 두려워 스스로 뇌를 굳게 닫은 채 최면을 거부했던 것이다. 최면유도에는 개인차도 있다. 이를 최면감수성이라고 불린다. 일반적으로 감정표현이 자유롭고 집중력이 강한 배우나 가수 등 연예인은 최면에 잘 걸린다. 반면 매사에 의심이 많고, 비판적인 판·검사, 형사, 기자 등 직업군은 최면에 잘 걸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치는 않지만 최면이 걸린 상황에서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를 속여 마음 속에 거짓을 진실이라고 각인시켜 놓은 경우다. 단언컨대 최면은 판타지 영화 ‘해리포터’ 속의 ‘베리타세움’(진실을 말하게 하는 마법의 물약)이 아니다. 오히려 더 연구하고 개발시켜야 할 ‘과학’이다. 그만큼 철저한 전문과 양성과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서울신문의 주간연재 기획물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에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 4월 16일 시작된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기사입니다. 그동안 연재돼 온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크랩해 두시면 한편의 현장 과학수사의 사례집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3) 부인을 죽인 건 오열했던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죽거나 혹은 더 나빠지거나 4) 목졸려 죽은 시신의 ‘마지막 증언’ 운전석 아내 목졸라 살해하고 차는 낭떠러지로…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남성의 사연 6) 긴장한 범인이 현장에 남긴 대변이 결정적 증거를… 초미니 흔적 ‘미세증거물’ 7) 여성 유린 위해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8) 핏자국 속 엽기 살인범의 족보 혈흔 속 性염색체로 ‘악마의 姓’ 찾아내다 9) “왜 그날 조폭은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10) 급성 수분중독으로인한 사망사건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물 많이 마시면 생명 잃는다 11) “너무나 깨끗한 자살현장이 타살을 증명했다” 생활반응은 진실을 알고 있다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그녀가 아들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찾기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4) “그녀가 성형수술만 안했더라도…” 광대뼈 축소술, 동거男에 목졸린 백골의 한 풀다 15) 연쇄살인범에 당한 20대女…6년만의 대반전 연쇄살인 택시기사, 274만개의 눈 CCTV가… 16) 죽은 여성이 남긴 데스노트…살인자를 지목하다 찢어진 장부가 범인을 증언하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살인자를 가리키다 바다에서 건진 토막시신의 신원찾기 18) 치밀한 남편 ‘전류반’은 못 숨겼네 찌릿찌릿 전기충격기 자국이 완전범죄 밝혀내다 19) 두려움이 만든 ‘자기 폭력적 자살’ 참혹한 죽음…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20) 아파트 침대 밑 여성 시신 2구의 잔인한 진실게임…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21) 그 남자 노리는 ‘한밤 통증’… 동양인의 저주? 청장년 급사 증후군 22) 70% 부패한 시신… 말없이 증언하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3) 살인현장의 240㎜ 운동화 용의자 중엔 없는데…60대 노인의 트릭이었다 별무늬 자국의 비밀 24) 택시강도의 진실…흙탕물이 살인자를 지목하다 25) 담배꽁초에 묻은 립스틱 DNA 검사해보니 살인 현장에 남은 ‘그 남자’의 립스틱 26) 목졸려 숨진 60대 시신 크게 훼손됐는데…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 역학 ‘작명’ 학문적 근거로 과학적 접근 필요

    역학 ‘작명’ 학문적 근거로 과학적 접근 필요

    서양의 학문만 학문이 아니다. 동양의 학문은 서양학으로는 풀 수 없는 동양만의 이치를 품고 있다. 한의학이 서양의학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며 수치화, 계량화되기 시작한 것처럼 동양학문은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동양의 오랜 학문 중 주역, 혹은 명리학은 서양학이 들어온 이래로 미신으로 치부되었지만 이름의 중요성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며 작명의 중요함, 명리학에 대해 새로이 비추는 계기가 되었다. 명민철학원(원장 진경선, http://www.myungmin.co.kr)은 확실한 학문에 근거해 과학적 원리로 우리 삶에서 직면한 선택의 기로나 문제 상황에 대해 상담한다. 20년 전 철학원을 개업한 후 오프라인에서의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홈페이지 블로그, 카페(http://ww.cafe.naver.com/sajubaksa9) 등 온라인에서도 상담을 이어간다. 먼저 사주는 생년월일을 60갑자로 바꾸어 만든 네 기둥(四柱)을 뜻한다. 사주는 하늘에서 내린 숙명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 하지만 후천적으로 정할 수 있는 이름으로 사주의 운을 보완할 수 있다. 진경선 원장은 사주를 정통적인 학문으로써 해설하며 상담자에게 단순한 미래 상담만이 아닌, 희망과 위로를 통해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도록 하며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명리학이나 역학으로는 불가능한 부분은 최면을 통해 보충하는 노력도 기울인다. 명민(진경선) 원장은 미국 스텐톤대 최면과학원을 수료하며 배운 것을 바탕으로 최면을 통해 전생, 빙의와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상담이나 집중력 개선, 학습능력 향상, 불안감 원인 해소, 버릇교정 등 개인의 무의식에 작용하여 실질적으로 편안하게 만드는 작업도 겸한다. 또한 명민철학원은 명리학의 새로운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서 뛰어난 인재를 모아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명리학 초급반 과정, 고급반 과정, 특별과정과 최면 치료사 과정, 최면 전문가 과정, 임상최면 치유사 과정 등 여러 과정을 운영 중이다. 명민철학관에서는 여러 교육 과정을 통해 더 이상 미신이 아닌 하나의 학문으로서의 명리학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명민철학원에서는 사주, 작명, 궁합, 출생신고일을 택일하는 일에서부터 최면까지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명민철학원 ※본 콘텐츠는 기업 제공 자료로 서울신문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2011 노벨문학상 발표] 스웨덴의 ‘말똥가리 시인’… 세상을 관조하다

    [2011 노벨문학상 발표] 스웨덴의 ‘말똥가리 시인’… 세상을 관조하다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국내에 유일하게 번역 출간된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80)의 시집 ‘기억이 나를 본다’(들녘 펴냄)의 표제작이다.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스웨덴의 국민시인 트란스트뢰메르는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서구 현대시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말똥가리 시인’이란 별명처럼 정치적 다툼보다는 북극의 얼음이 해빙하는 곳,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화해와 포용의 지역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북구의 투명한 얼음과 끝없는 심연, 영원한 침묵처럼 시인은 세상을 관조하며 일 년에 평균 네댓 편의 시를 써냈다. ●김성곤 교수 “삶의 통찰로 현대시 새 길” ‘말똥가리 시인’이란 별명은 높은 시점에서 지상 자연세계의 자세한 일에 초점을 맞추는 시 세계 때문에 붙여졌다. 꼼꼼한 거시주의 혹은 거시적 미시주의는 그의 특징적인 시작법이다. 트란스트뢰메르는 언론인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의 이혼 뒤에 아버지와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주로 섬에서 지냈던 트란스트뢰메르는 고고학과 자연에 매혹되어 탐험가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시인과 심리학자로 동시에 활동한다. 2004년 ‘기억이 나를 본다’가 한국에서 출간될 때 트란스트뢰메르는 1990년에 닥친 뇌졸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 뇌졸중으로 한동안 반신마비에 빠져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한국어판 시선집을 낸다는 편지에 흔쾌히 승낙 의사를 표시한 뒤, 영역본 시집을 주로 참조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공터에 /신문지 한 장이 몇 달째 누워 있다. 사건을 가득 담고 /빗속 햇빛 속에 밤이나 낮이나 신문은 그곳에서 늙어간다 /식물이 되어 가는 중이고, 배추머리가 되어 가는 중이고, /땅과 하나가 되어 가는 중이다. / 옛 기억이 서서히 당신 자신이 되듯.” ‘역사에 대하여’란 그의 시에서 알 수 있듯 트란스트뢰메르의 시적 공간은 무척이나 광대하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혹은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 탐구가 그의 시의 주요 영역이기도 하다. ●“종교적 경사 심하다” 비판도 중기 작품은 자연세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깊은 사색이 투영돼 있다. 특히 천상과 지상과 지하를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두드러진다. 시공을 초월하는 자유분방함은 기독교 신비주의와 긴밀히 연관된다. 이런 점 때문에 “종교적 경사가 심하여 반대로 정치사회적 맥락이 거세되었다. 특히 눈앞의 정치현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트란스트뢰메르는 이런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시 세상을 구축했으며 ‘침묵과 심연의 시’ 흐름을 주도했다. 그렇다고 트란스트뢰메르가 시에서 정치사회적 발언을 전혀 내비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오의 해빙’이란 시에는 “하지만 소음의 스커트 자락으로 예(禮)를 갖춰 인사하는 제트기가 /땅 위의 정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시구가 등장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 제3의 길을 걸었다고 평가받는 시인은 중용의 인생관을 구현하고자 했다. ‘100%’란 표현을 극단적으로 혐오한다는 시인의 말에서 이 같은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신비스러운 진리의 길을 올곧게 따라가는 것이 똑바로 선 인생의 길”이라고 강조한다. 영어권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스칸디나비아 시인인 트란스트뢰메르의 작품은 독일어, 핀란드어, 헝가리어, 영어 등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스웨덴 작가로는 1974년 수상한 시인 H 마르틴손에 이어 37년 만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독일의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 세계적인 문학상도 다수 받았다. ●‘기억이 나를 본다’ 국내 유일 출간 트란스트뢰메르의 작품은 사과나무, 벚나무, 호수, 잔디밭, 햇볕, 얼음, 눈, 붉은 벽돌집 등 시에 등장하는 소재만으로도 북유럽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스웨덴의 차갑고 투명하며 깨끗한 자연 속에서 시인은 우리가 모두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해 냈다. 시인의 딸 파울라 트란스트뢰메르는 한 외신과의 전화통화에서 “아버지가 수상 사실을 차분히 전해 듣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아이들 독서 쉬운 것부터

    우리 아이에게 맞는 책 읽기는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에게도 성공하는 사람들의 책 읽기 습관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 맞춤 독서법’(이소영 지음, 문예춘추사 펴냄)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나름의 해답과 생각의 실마리들을 던져준다. 저자는 우선 “내 아이를 관찰하면서 아이의 수준과 특징을 살피라.”고 주문한다. ‘지금 우리 아이의 수준에서 시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 아이 수준·특징 파악이 첫 번째 저자는 아이들의 특징과 성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부모들의 조급함을 경계했다. “아이는 같은 놀이라도 반복하면서 친근감과 재미를 느끼듯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 주기를 원한다. 부모가 이런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책을 읽어 주려 한다면 아이는 오히려 책에 실증을 낼 수 있다. 사 놓은 책을 다 읽어 줘야겠다는 성급한 마음을 내려 놓고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읽어 주자.” ●조급함 경계… 좋아하는 책부터 “아이들이 알고 있는 단어와 새 낱말을 연결해 어휘력을 키우고 어휘와 문장, 글의 관계를 연결하면서 책을 읽게 하라. 아이들이 스스로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면서 이야기 지도를 만들어 전체를 바라볼 수 있게 하자.”는 독서법도 소개했다. 학년별로 이해할 내용도 지적했다. “1학년이 ‘내 생각 알기’에 집중해야 한다면, 2학년은 다른 사람의 생각 이해하기, 3학년은 이야기 순서와 차례 알기, 5학년은 예를 들어 설명하기가 필요하다.” 책 읽기가 밥을 먹는 것처럼 무의식중에 습관이 된다면 일단 절반은 성공이다. “강가나 산, 놀이공원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아이에게 동시를 읽어 줘 보자. 하늘의 구름과 산림의 싱그러운 향취 속에서 이는 신비롭고 인상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학년별로 이해할 내용 달라 거실 한쪽 벽에 커다란 책 나무를 그려 넣는 방법도 권했다. “매일 책을 읽고 나서 아이와 함께 쪽지에 책 제목을 쓴 뒤 이를 하나씩 책 나무에 붙인다. 책 나무 아래에는 아이의 키 높이에 맞는 책꽂이를 마련해 아이의 책을 꽂아 놓고,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예쁜 쿠션도 놓아 둔다. 아이가 책 나무 아래에서 놀이하듯 부모가 책을 읽어 주는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책을 펼쳐 보게끔 한다.” 저자는 어떻게 아이에게 줄거리를 익히게 할지, 어휘력을 늘릴지,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질문을 해야 할지를 백석의 ‘개구리네 한솥밥’,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프란치스카 비어만의 ‘책 먹는 여우’ 등 30여권의 책 속 장면들을 예로 들어 알기 쉽게 설명했다. 그리고 책이 제공하는 정보와 내용의 관련성을 생각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 상상력의 날개를 펴게 하라고 조언한다. 1만 3000원. 이석우 편집위원 jun88@seoul.co.kr
  • 美 심리학 연구팀 “잠자면 공부된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다면 잠을 충분히 자는 걸 유념해야겠다. 인간은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될 수 있다는 미국 심리학 연구팀의 주장이 나왔다. 미국 미시건 주립대학의 킴벌리 펜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충분한 수면을 취할 때 무의식 형태의 기억체계가 작동하면서 자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될 수 있다.”고 최근 ‘실험 심리학 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에서 주장했다. 연구진은 실험참가자 250명에게 똑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같은 양을 자도록 한 뒤 수면이 기억력 향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일부에게서 이른바 ‘수면 기억력’이 거대하게 작용하는 걸 발견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충분한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기억력이 나빠진다는 기존의 과학적 주장의 반대 가설도 일부 사실로 밝혀진 셈. 주목할 점은 잠을 잘 때 작용한 기억력은 기존에 밝혀진 기억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독립된 형태였다는 점이다. 펜 교수는 “충분한 잠을 자는 동안 뇌는 정보를 처리하며 나중에 잠에서 깼을 때 이런 능력이 기억력에 기여를 한다는 중요한 증거가 나타났다.”고 설명하면서도 “하지만 새롭게 발견된 기억력의 효과는 전통적 지능테스트나 SAT와 같은 적성검사로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연구 결과는 새로운 잠재 기억력 구조가 학습에 미치는 결과에 대한 관계를 알아보는 첫 번째 단계였으며, 잠을 충분히 자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잠자는 동안 수준급 그림 그리는 ‘몽유병男’ 화제

    잠자는 동안 수준급 그림 그리는 ‘몽유병男’ 화제

    잠자는 동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다? 최근 영국의 한 남성이 신기한 ‘몽유병’을 앓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몽유병은 수면 시 이상행동을 하는 것으로 이 남성은 잠자는 동안 그림을 그린다. 특히 평상시 그림을 배운 적도 흥미도 없는 이 남성이 잠자는 동안 그린 그림이 수준급이라 주위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하고 있다. 화제의 남성은 영국 노스웨일즈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리 하드윈(37). 하드윈은 최근 자신이 잠자는 동안 그린 그림을 고가에 팔았다. 그림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그지만 몽유병 덕에 뜻하지 않은 수입도 얻게 됐다. 그가 이같은 이상 증세를 겪기 시작한 것은 4살 때 부터. 하드윈은 “4살 때 부터 새벽에 돌아다니며 냉장고와 벽 등에 낙서를 했다고 부모님이 말씀하셨다.” 며 “아침에 깨어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또 “평상시에는 그림에 전혀 취미가 없지만 지금은 침대 곁에 그림에 필요한 도구를 준비해 놓고 잔다.”고 덧붙였다. 하드윈을 검진한 에딘버러 수면센터의 주치의는 “그의 뇌에 특별한 이상 증세는 볼수 없다.” 며 “왜 수면 상태인 채 그림을 그리는지 원인을 알 수 없다.”며 황당해 했다. 한편 몽유병으로 인한 특이한 행동은 여러차례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 지난 2009년에는 몽유병을 앓고 있는 한 영국 남자가 악몽을 꾸다가 옆에서 잠자던 아내를 살해했으나 무의식상태 였던 점을 인정받아 풀려난 바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길섶에서] 소주 한 잔/주병철 논설위원

    사회생활을 하면서 무의식 중에 ‘소주 한잔’이란 말을 곧잘 쓴다. 오랜만에 만났거나 처음 인사를 나누는 사이라도 끝 무렵에는 “언제 소주 한잔 하자.”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다소 어색한 관계라도 이런 말을 한 다음에는 분위기가 한결 나아진다. 일종의 ‘대화 촉매제’쯤 되는 셈이다. 처음엔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언제부턴가 남녀 가릴 것 없이 편하게 쓰는 말이 됐다. 사람에 따라 소주 대신에 “맥주 한잔 하자.”, “커피 한잔 하자.”고 얘기하지만 의미는 같은 거다. 물론 소주는 한잔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잔이 두잔이 되고, 한병이 두병이 된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잔 속에는 정감이 흘러 넘친다. 그걸 낭만이라고 할 때도 있었다. 요즘은 “점심이나 한번 하시죠.” “또 봅시다.”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소주 한잔의 넉넉함보다는 삭막한 일상의 빠듯함에서 비롯된 듯싶다. 소주가 독하다며 맥주와 섞어 마시는 폭탄주를 즐기지만 그래도 ‘깡소주 한잔’의 정취가 그립다. 한잔이 부담스러우면 반잔은 어떨까.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굿모닝 닥터] 백반증이 난치병?

    노출의 계절 여름, 몸매를 뽐내려는 여성들이 많다. 한창 유행하는 핫팬츠에 긴 상의를 맞춰 입는 이른바 ‘하의실종’ 패션이 유행하면서 맨다리를 드러내는 여성들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이런 유행이 반갑지 않은 이들이 있다. 바로 피부질환자들이다. 특히 피부에 하얀 반점이 생기는 백반증은 아무리 각선미가 좋아도 스타킹을 신어야 마음이 놓인다. 게다가 관절 부위에 잘 생겨 환자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백반증은 멜라닌 세포가 파괴되면서 원형 혹은 타원형의 반점이 생기는 질환이다. 주로 10~30대에 손발가락·무릎·팔꿈치와 눈·코·입 주위는 물론 성기에도 발병한다. 물론 백반증이 생겼다고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난치질환으로 알려지면서 스트레스가 심해 외모 콤플렉스를 낳기도 한다. 이런 환자가 국내에만 40만명이 넘는다. 이런 백반증 치료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엑시머레이저다. 레이저로 멜라닌 세포를 자극해 색소침착을 유도하는데, 기존 치료에 비해 치료 기간을 2~3배나 단축시키며, 멜라닌 색소가 필요한 부위에만 빛을 쪼여 부작용이 없다는 점도 매력이다. 치료 기간은 반점의 크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얼굴의 경우 4~6개월 정도면 75% 이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반점이 작고 크기가 변하지 않는다면 1~2회 치료로도 좋은 효과를 보이는 표피이식술을 고려할 수도 있다. 시술이 간단하고 흉터를 남기지 않는 게 장점이다. 백반증은 관리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환부에 자극을 주지 않아야 한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만지거나 긁는데, 백반증 병변은 손상된 피부에서 훨씬 더 쉽게 번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백반증은 단시간 안에 치료 효과를 보기는 어려우므로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치료해야 하며, 자외선에 노출되면 반점이 점점 퍼지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 줘야 한다. 이상준 아름다운나라 피부과 성형외과 원장
  • [데스크 시각] 장애인올림픽은 덤이 아니다/김영중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장애인올림픽은 덤이 아니다/김영중 체육부장

    장애인 체육계가 ‘더반의 기적’ 하루 만에 일어난 ‘쓰나미’의 충격에 휩싸여 있다. 강원 평창이 3수 끝에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서 성공했다. 장애인 체육계도 평창 유치에 힘을 보탰다. 2018년 장애인 동계올림픽이 열린다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한 단계 높아질 터닝포인트이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 뒤 열린 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상전벽해 이상이었다고 한다. 장애인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비장애인 체육계에는 아직도 7월 6일 밤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들려온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평창~”이란 소리가 귀에 맴돈다. 이제는 7년간 차근차근 준비해서 성공적으로 동계올림픽을 치르는 일만 남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이를 위한 기초적인 단계가 있다. 국회가 예산을 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순리대로 더반의 기적 다음 날 평창 지원을 위한 특별 법안이 발의됐다. 국회의원 41명이 당당하게 서명했다. 그런데 장애인 체육계는 법안을 들여다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장애인 동계올림픽 개최를 체감해서가 아니라 황당해서다. 법안 어디에도 장애인이란 단어를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형식은 완성됐지만 중요한 게 빠졌다. 물론 지원 법안에서 빠졌다고 장애인올림픽을 치르지 못하는 건 물론 아니다. 조직위가 구성된 뒤 장애인 체육계가 여기에 숟가락을 얹을 수도 있다. 그런다면 그것은 ‘구걸’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당연한 건데 구걸하려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기획단계부터 함께 가야 성공적인 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다. 우리나라 장애인 체육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목이다. IOC 실시단이 평창을 방문했을 때 장애인 대회도 역대 최대 규모로 열겠다고 약속한 지가 몇달 되지 않았다. 장애인 체육에 대한 인식이 없다 보니 어느새 머릿속에서 싹 지워져 버렸다. 정부의 동계스포츠 중장기발전계획에도 장애인 스포츠는 없다. 특별예산 3000억원 중 겨우 1%만 장애인 스포츠에 지원한다고 돼 있다. 장애인올림픽은 비장애인올림픽의 덤이 아니다. 흔히 슈퍼에서 보는 ‘1+1’ 상품이 아니다. 엄연히 독립적으로 치러지는 대회다. IOC는 아예 2000년 시드니하계올림픽 이후 함께 열도록 의무사항으로 만들었다. 비장애인 올림픽이 끝난 뒤 같은 도시에서 한달 뒤 개최해야 한다고 장소와 개최 시기까지 못박았다. 내년 런던올림픽 조직위 공식 명칭도 ‘2012 런던올림픽 및 장애인올림픽 조직위원회’다. 그런데 우리는 법안을 발의할 때부터 명칭이 삭제돼 있다. 이런 불상사는 예견됐는지 모른다. 더반에서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최종 프레젠테이션할 때 윤석용 장애인체육회장도 휠체어를 타고 연단에 올랐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치위 대표단의 일부 관계자들은 수군거렸다. 왜 저 사람이 연단에 있느냐고. 비장애인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이 함께 간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다. 윤 회장은 “부잣집 형님 잔치를 가난한 동생이 구경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비장애인들이 잊은 게 또 하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노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장애인과 노인’,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뇌졸중 등 여러 원인으로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일수록 장애인에 대한 범위가 넓다. 복지 정책의 하나다. 결국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배려다. 윤 회장은 지난달 말 국회의원 신분을 활용해 평창 특별법의 수정 법안으로 ‘2018평창동계올림픽 및 장애인올림픽대회 지원 특별법안’을 국회 제출했다. 세상은 변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애써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뿐이다. jeunesse@seoul.co.kr
  • ‘문학 엄숙주의 해체’ 덧씌운 가식·허울 남김없이 걷어내다

    ‘문학 엄숙주의 해체’ 덧씌운 가식·허울 남김없이 걷어내다

    장정일과 마광수의 후예들이 그려낸 2011년 대한민국 섹스 기상도는 어떤 모습일까. ‘남의 속도 모르면서’(문학사상 펴냄)는 8명의 젊은 남성 작가들이 섹스를 주제로 쓴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작가들의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미혼과 기혼에 이혼남까지 골고루 섞였다. 신승철 문학사상 기획위원은 “대한민국도 이제 성을 주제로 편하게 쓰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해서 평소에 공격적으로 쓰는 남성 작가들에게 소설을 청탁했더니 아주 흔쾌히들 응했다.”고 말했다. 장정일은 1997년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법정 구속된 바 있고, 마광수도 1992년 ‘즐거운 사라’로 구속됐다. 두 작가 모두 죄명은 음란물 제조 혐의였다. ●장정일·마광수 후예 30·40대 작가들 ‘남의 속도’의 수위는 작가들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수레 위 섹스(조헌용의 ‘꼴랑’)부터 의자에 집착하는 양성애자(김도언의 ‘의자야, 넌 어디를 만져 주면 좋으니’), 일본 성인 비디오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박상의 ‘모르겠고’)까지. 작가 김도언(39)은 “장정일이 법적 제재를 받았을 때 쏟아지는 질문에 ‘성에 대해 너무 무지해 오히려 이런 집요한 묘사를 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나 역시 성에 대해 아직도 미지한 영역이 많이 남아 있어 적극적으로 청탁을 받았다. 유년 시절 성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를 앓는 양성애자가 결국 인간이 아닌 의자에서 위안을 발견하는 데서 불구적인 현대인의 무의식을 묘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노골적 주제… 의외로 다양한 내용나와 여러 명의 작가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쓰는 테마 소설은 그동안 독신, 자살, 눈, 비 등 관념적이고 문학적인 주제가 많았다. 섹스처럼 노골적인 주제는 처음이다. 이런 시도는 영화계가 훨씬 앞서 있다. 1996년 박철수·강우석 등 중견 감독 7명이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7가지 이유’를 발표했지만 흥행과 비평 모두 좋은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인형방, DVD방, 안마방 등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퇴폐적인 ‘방’과 관련된 업소에서 일하는 과정을 그린 ‘풀코스’의 권정현(41)은 “섹스가 주제라면 천편일률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나중에 듣고 보니 모두 다른 소재와 주제로 썼다는 이야기에 놀랐다.”며 “5년 전이라면 섹스를 주제로 청탁했을 때 거절하는 작가들도 있었겠지만, 문학 엄숙주의가 해체되는 게 대중과 호흡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내 이야기를 소설로 써 달라.’고 했던, 실제로 키스방을 운영하는 고향 친구를 찾아가 취재를 하고 소설을 썼다. 그는 ‘외로운 남성을 위로해 준다.’는 친구의 개똥철학이 문학 엄숙주의보다 더 진정성 있게 와 닿았다고 덧붙였다. 배설 기능만 가진 여성을 사랑한 남자와 그 남자의 상담을 받은 정신과 의사의 삶을 비교한 ‘배롱나무 아래서’를 쓴 은승완(43)은 “섹스나 성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일부 소설처럼 섹스를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도 있는데 나부터 이중적인 자세가 있지 않았나 돌아봤다.”고 소설을 쓴 소감을 밝혔다. ●“나의 이중성부터 돌아봤다” 발기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남성 작가들은 몸과 정신을 최대한 발기시킨 채 섹스에 대한 소설을 썼다고 이야기한다. 다들 조금은 가볍게, 조금은 문학이 짓누르는 압박감을 벗어나 썼다고 하지만 모두 신춘문예에 당선되거나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인 만큼 성적 사유가 얄팍하지만은 않다. 섹스란 육체적이고 반복적인 행위일 뿐이지만 소설은 단순한 ‘액션’에 진지한 명상을 덧입혔다. 작가 권정현은 어린 시절 에로 비디오로 소문난 ‘투문정션’의 모자이크를 지우기 위해 아세톤으로 테이프를 닦았다가 플레이어를 망친 경험을 말하며 낄낄댔다. ‘남의 속도’는 섹스에 대해 우리가 씌운 가식과 허울의 모자이크를 닦아 낸 소설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가위바위보 게임시 무승부가 잘 나는 이유는?

    가위바위보 게임시 무승부가 잘 나는 이유는?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무승부가 잘 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증명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UCL 인지과학 연구팀 토마스 쿡 박사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는 자동 모방(automatic imitation)에 의해 가위바위보 게임 시 무승부가 잘 나온다.”고 밝혔다. 자동 모방은 상대방의 움직임을 무의식 중에 흉내내는 사람의 성질로 한마디로 가위바위보 게임시 상대방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한다는 것. 연구팀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피실험자 45명을 대상으로 1, 2라운드에 걸쳐 모두 눈을 가린 상태와 상대쪽 만 눈을 가린 상태로 게임을 실시했다. 그 결과 두명 다 눈을 가린 상태에서 비길 확률은 33.3%가 나온 반면 한명만 눈을 가린 상태에서의 무승부 확률은 36.3%로 증가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순식간에 상대방을 따라할 수 있을까? 토마스 쿡 박사는 “인간에게는 밀러뉴런이라고 하는 신경세포가 있는데 반응하는 시간이 200밀리세컨드에서 400밀리세컨드(1밀리세컨드=1000분의 1초)” 라며 “사람은 가위바위보시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모방해 같은 것을 내게 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 연구결과에서 가위바위보 게임시 피실험자가 가장 많이 낸 것은 가위(34.4%), 보(33.3%), 바위(32.4%) 순이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석유회사 창고에 유령? 아이들 웃음소리도…

    석유회사 창고에 유령? 아이들 웃음소리도…

    영혼이 있다면 과연 카메라에 잡히는 일은 가능한 것일까. 베네수엘라 최대 기업인 국영석유회사 PDVSA의 한 창고건물에서 찍었다는 한 심령사진이 최근 공개됐다. 카비마스에 있는 PDVSA 창고에서 야근을 하던 경비원이 지난해 휴대전화로 찍었다는 사진을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굳게 입을 다문 채 카메라를 향해 내려다 보고 있다. 남자의 하체에는 또 다른 유령(?)의 얼굴이 크게 겹쳐 있다. 심령사진을 찍었다는 사람은 루벤 카르데나스라는 이름의 PDVSA의 경비원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4일 회사의 14번 창고를 지키다 이상한 경험을 했다. 괜히 누군가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머리카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는 그는 무의식적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몇 발자국을 걸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려고 몸을 돌이킨 그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나무의자가 있어야 할 곳이 처음보는 철제의자가 놓여 있었던 것. 그간 뗀 건 몇 발자국이었지만 나무의자는 30m 거리에 놓여 있었다. 그는 황급히 자리로 돌아가 앉았지만 등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신이여, 도우소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눈을 감고 무작정 사진을 찍었다. 이튿날 사진을 본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혼자 있었던 곳이지만 사진엔 웬 남자가 서 있었다. 창고에선 이후에도 이상한 일이 계속됐다. 14번 창고를 지키다 누군가 목을 졸라 의식을 잃었다는 경비원이 여럿 나왔다. 루이스라는 경비원은 “14번 창고에선 야근을 한 적이 없지만 경비를 선 동료들이 매일 유령에 시달린다고 한다.”며 “경비원들이 집단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9번 창고를 맡고 있다는 또 다른 경비원은 “밤만 되면 14번 창고에서 어린이의 웃음소리, 장난감을 갖고 노는 소리가 들린다.”며 “유령들이 떼지어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미술·전시

    ●이상덕 개인전 8월 11일 경기 파주시 헤이리 갤러리이레. 무의식의 세계, 이중인격, 다중주체 같은 주제를 보통사람들의 초상과 신화적인 캐릭터를 겹쳐내는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 전시. (031)941-4115.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6)페미니즘 여성작가 버지니아 울프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6)페미니즘 여성작가 버지니아 울프

    1910년 영국 런던. 블룸즈버리 그룹의 일원이었던 로저 프라이가 기획한 프랑스 현대미술작가전이 그래프턴 갤러리에서 열렸다. 제목은 ‘마네와 후기 인상주의’. 세잔, 반 고흐, 고갱, 피카소 등 지금은 거장이라 추앙받는 이들의 작품을 두고 당시 영국인들은 ‘포르노’ ‘미친 사람들의 작품’이라며 경멸했다. 대상을 충실히 재현하는 고전주의 회화와 달리, 주체와 대상의 경계 없이 자신의 눈과 마음을 관통해 들어오는 세계를 표현해낸 이들의 작품은, 중심과 보편을 거부하는 ‘반(反) 전통적 선언’이었다. 버지니아 울프(1882~1941)에게 이 전시는 낯선 감각적 충격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1월 25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버지니아 스티븐. 정치 저널리스트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은 19세기 영국 지성사의 중요한 인물이었고, 어머니 줄리아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 울프는 어린 시절부터 가끔씩 우울증을 앓거나 정신 발작을 일으켰다고 한다. 많은 연구자들은 울프의 이런 병증을 개인적인 가정사나 의붓오빠들에게 당한 성추행의 충격 탓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기록을 보건대, 그녀의 병증은 개인적인 트라우마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었다.“이 일은 몸의 어떤 부분에 대한 감정이, 그 부분은 만져서는 안 된다는, 그 부분이 만져지게끔 허락해서는 안 된다는 감정이 본능적임을 보여준다. 이 일은 버지니아 스티븐이 1882년 1월 25일 태어난 것이 아니라 수천년 전에 태어났다는 점을, 그리고 과거의 수천명 선조에 의해 획득된 본능과 바로 처음부터 만났다는 점을 증명한다.” 그녀가 느낀 수치심과 두려움은 ‘과거의 수천명 선조’의 몸에서 몸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온 것이다. 즉, 그녀의 병증은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역사로부터 온 것이다. 울프의 무의식에 내재된 수천의 조상들과 전통은 망령처럼 그녀의 삶을 통제했다. 그런 울프에게 돌파구가 된 것은 새로운 이들과의 만남이었다. ●문학으로 광기를 돌파하다 가족이 새롭게 거처를 마련한 블룸즈버리에서 울프는 지적 네트워크와 접속한다. 울프의 언니 바네사와 오빠 토비를 비롯해 E.M. 포스터, 로저 프라이, 클라이브 벨 등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의 엘리트들이 참여한 블룸즈버리 그룹에서 울프는 모더니즘적 자양분을 섭취한다. 그들은 문학, 평론, 미술, 경제학 등을 가로지르며 19세기의 숨막히는 빅토리아적 관습에 저항했다. 울프는 세잔이 그림을 통해 한 일을 자신은 문학으로 하겠노라고 결심한다. 울프에게 문학은 낡은 세계와 결별하고, 과거의 자기로부터 떠나는 것을 의미했다. 1915년에 출간된 첫 장편소설의 제목 ‘출항’은 이런 울프의 열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울프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그 시대가 낳은 광기를 돌파해 나가고자 했다. 하지만 ‘출항’까지는 9년이라는 힘든 시간을 통과해야 했다. 기존의 영토를 떠나 새로운 흐름에 자신을 던지는 일은 그토록 지난(至難)한 일이었으리라. ●‘댈러웨이 부인’, 또 다른 탄생의 기록 1925년 버지니아 울프의 첫 출세작 ‘댈러웨이 부인’이 출간된다. 중산층 부인 클라리사의 하루를 담은 이야기, 특별한 인과도 없고, 정해진 인칭도 없으며, 성격 묘사나 교훈도 없이 기억과 의식, 감각만으로 이루어진 이 낯선 소설에 대해 많은 독자들은 부정적이거나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소설의 원제는 ‘시간들’이다. 울프에게 시간은 “빛이 발산되는 후광, 의식이 생기기 시작해서부터 사라질 때까지 우리를 감싸는 반투명의 봉투”이다. 균질하게 흐르는 객관적 시간은 없다.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시간이 다르고, 한 사람에게도 동시에 여러 겹의 시간이 작동한다. 울프에게 시간은 경험하는 사람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지 인간의 경험 이전에 미리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들’ 속에서 우리의 기억은 끊임없이 유동하고,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에게 스며든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들’ 속에서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클라리사는 매순간 자신을 관통해 들어오는 자극을 “끔찍하도록 민감하게” 느끼면서 복수의 시간들을 통과한다. “그녀가 집에 있는 나무들의 일부”가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클라리사와 셉티머스의 관계다. 셉티머스 역시 클라리사처럼 세계를 민감하게 느끼지만 그는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전하는 비밀의 암호는 혐오와 증오와 절망”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민감함이 세상 속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그의 자아가 세상 앞에서 빗장을 닫아거는 순간, 그의 탈출구는 죽음밖에 없었다. 반면 클라리사는 매순간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며 자아의 죽음과 탄생을 동시에 경험함으로써 죽음의 충동을 극복해 나갔다. 셉티머스와 클라리사, 그들은 생사의 문턱을 넘나들며 글을 써 나갔던 울프의 분신들이다. 문학은 광기의 기록이 아니라, 광기를 넘어서려는 분투의 기록이라는 것. 어렵게 ‘출항’한 울프는 그렇게 흐름 위에서 자신의 광기를 직시하며 나아갔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여성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듯했던 울프. 그러나 모더니즘 문학의 영토 안에서 그녀는 새로운 벽에 부딪히게 된다. 모더니즘 역시 남성들의 영토였고 그들만의 리그였던 것. 그 안에서 여성은 여전히 성적 매력과 미모를 과시하며 남자를 유혹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페미나(Femina)상을 받은 ‘등대로’(1927)는 울프의 페미니즘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흔히 이 작품의 등장인물인 램지 부인은 대지의 어머니로서 여성성을, 램지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성성을, 릴리 브리스코는 이 둘을 조화하는 인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남성-여성의 이분법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공허하다. 울프는 ‘조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양성(兩性)을 구분하는 전제들 자체를 의문시한다. 소설에서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릴리의 선처럼, 울프는 양성을 가로지르는 제3의 선을 그리며 남성-여성의 영토에서 탈주한다. 그리고 “인생이란 양성 모두에게 힘들고, 어렵고, 영원한 투쟁”이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자기만의 방’(1929)이다.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쓴 ‘여성문학사’다. 영국 역사 속에서 여성 예술가는 죽거나 미칠 수밖에 없었다. 자기만의 방이 없었고, 잘난 여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프는 여성이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를 권할 때, 나는 여러분이 리얼리티에 직면하여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고 조언하는 겁니다.” 울프의 두 발은 현실 위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고,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유머와 활력을 잃지 않았다. 그것만이 ‘여성 작가’가 아닌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믿었다. 울프는 여성의 상황을 남성들이나 시대에 대한 증오로 돌리지 않고, 그 지반을 가볍게 활공한 선배 작가의 삶에서 새로운 비전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울프가 주목한 것은 “미움 없이, 쓰라림 없이, 두려움 없이, 항의 없이, 설교 없이 글을 쓴” 제인 오스틴이었다. 남성에 대한 적대감이 여성을 구원해줄 수는 없다. 여성이 작가로 살아가려면 담담하게 세상의 적대감과 대면하면서 자신의 영토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 “순수한 가부장제 사회의 한가운데서 그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보는 대로의 사물을 움츠러들지 않고 굳건히 고수”한 제인 오스틴에게서, 울프는 남성-여성의 경계를 훌쩍 넘어선 “천재적 성실성”을 보았다. 역사 속의 여성작가들을 경유한 울프는 이제 “여성으로서, 그러나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잊어 버린 여성으로서 글을 썼으며 그리하여 그녀가 쓴 페이지들은 성이 그 자체를 의식하지 않을 때에만 도래하는 진기한 성적 특성으로 가득차” 있게 된다. 여성의 눈도 남성의 눈도 아닌, 모든 ‘시간들’을 살아가는 모든 ‘성(性)들’의 눈을 갖고, 버지니아 울프는 세계를 감각하고, 기록한다. 더없이 성실하게. 그렇게 버지니아 울프는 페미니즘의 영토를 끊임없이 탈주하는, 모든 실험적 페미니즘들의 이름이 되었다. 최태람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여섯 인어공주 자매들의 잔혹한 사랑

    인어공주 이야기다. 아주 기괴하고도 낯선 인어공주,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무려 여섯 인어공주 자매들의 이야기다. 사랑을 위해 마녀와 위험한 거래를 서슴지 않는 것은 인어공주 이야기의 기본이다. 이들은 격정적 사랑에 늘 동반되곤 하는 죽음에 가로막힌다. 결국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사내의 팔과 다리를 뜯어먹거나 밤만 계속 이어지도록 사내에게 환각의 풀을 씹도록 해야 한다. 김종호(41)는 자신의 첫 장편소설 ‘인어공주 이야기’(문학과지성 펴냄)를 ‘아름답고 음란한 책’이라고 일컬었다. 아름다움과 음란함은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아니라고 작가는 덧붙였다. 작품 속에서는 맏언니 인어공주 ‘파르반’의 입을 통해 “아름다운 것은 슬픈 것”이라고 말한다. ‘인어공주 이야기’는 일찍이 안데르센의 원작이 그랬듯, 슬프고 아름다운 잔혹 동화에 가깝다. 김종호의 문장은 우리네 사설조 형식을 빌렸건만 서사를 앞세운 문단의 익숙한 화법과는 거리가 멀다. 다분히 철학적 사변을 바닥에 깔아둔 채 몽롱하게 상상의 공간을 한껏 확장시킨다. 그 결과 그의 작품 안에서 신화와 역사, 설화와 전설, 시간과 공간, 국적과 역사 등 모든 경계는 하릴없이 무화되고 만다.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랑을 이루고 싶은 발가벗은 욕망과 한계에 부닥치며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결핍, 그리고 상처의 심연만 덩그러니 남는다. 그러고 나서도 김종호는 “욕망해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말한다.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불을 욕망하는 부나비처럼, 사랑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의 모습에 대한 참혹한 재현이다. 젊은, 그러나 이미 아내와 아이가 있는 어부를 사랑한 맏언니 파르반, 뭍을 두려워하며 바닷속 깊은 곳에 들어앉은 둘째 인어공주 ‘마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거나 앞당기는 능력으로 자유를 열망하는 셋째 인어공주 ‘쿠두’ 등 소설 내내 입은 닫고 다섯 언니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막내 인어공주가 나온다. 소설은 인어공주로 시작했지만 인어공주 바깥으로 나아가 욕망과 무의식의 서사가 무변 무애로 자유롭게 펼쳐진다. 김종호는 이것을 ‘검은 소설’이라고 명명한다. ‘인어공주 이야기’는 안데르센의 작품 ‘인어공주’에 대한 전복은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 기대 그 이미지와 철학을 심화하고 무한 서사로 재창조했다. 화가 허남준(35)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곁들여져 인어공주들은 더욱 검은 심연의 공간 한복판에 있는 존재로 완성되며, 소설 또한 비로소 완결된다. 허남준은 김종호와 함께 ‘텍스트 실험집단 루’의 동인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불온한 작가’ 中 옌롄커의 자기 고백

    ‘불온한 작가’ 中 옌롄커의 자기 고백

    그는 돈 10위안(약 1500원)이 아까워 병석에서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영화 ‘소림사’를 보여드리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무의식 속에 병든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랐다고 털어놓는다. 젊은 시절 몰래 훔친 면도기를 아버지에게 선물이라며 드렸고, 이를 평생에 걸쳐 애지중지 쓰는 모습을 보면서도 진실을 얘기하지 않았다고 토설한다. 쓰는 작품마다 출판 금지, 판매 금지 등 중국 정부 당국과 끝없이 불화해온 ‘불온한 작가’ 옌롄커(閻連科·53)의 자전적 산문집 ‘나와 아버지’(김태성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는 위악적인 자기 고백과 28년 전 폐부종으로 숨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앞세워 숨가쁘게 변해가는 중국이 애써 잊고 사는 가난과 고통의 한 시대를 고스란히 되살려낸다. 한동안 중국 독자들에게도 잊혔던 옌롄커를 다시 열광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출간하자마자 30만 부가 넘게 팔렸다.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방한한 옌롄커는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국 문단에서 고아와 같은 존재였던 나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라면서 “나의 성장기와 아버지, 가족의 이야기를 진솔히 풀어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세대가 어떻게 살았는지, 문화대혁명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바링허우 세대’(1980년 이후 태어난 세대)들이 감동받고 눈물을 흘렸다.”면서 “아버지와 아버지들이 살아온 세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가 지내온 유소년과 청년 시절의 삶은 1949년 사회주의 중국 수립 이후 3년 대기근,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등 힘겨운 중국 현대사와 씨줄날줄로 얽혀 있다. 옌롄커는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농촌의 가난과 굶주림을 벗어나고자 아버지의 뜻을 저버린 채 군대로 떠났고, 문학의 길을 택했다고 말한다. 중국작가협회 소속 작가 7000여명을 비롯해 문학에 관련된 이라면 모두 꿈꾸는 위치인 ‘1급 작가’가 됐고 루쉰 문학상, 라오서 문학상 등 중국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장편소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 등 작품을 실을 곳을 찾지 못해 홍콩, 유럽 등을 전전해야 했고, 어렵사리 출간되더라도 중국에서는 판매 금지되기 일쑤였다. 마오쩌둥 주석에 대한 모욕, 중국의 에이즈 실태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바깥에서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으며 열광하지만, 중국 안에서는 독자들과의 접점 자체를 찾지 못하던 차에 이번 산문집으로 자신의 문학적 시원 및 창작의 배경을 내밀히 고백하고 소통하게 된 셈이다. “서구에서 좋아하는 소재인 티베트 등을 다루는 작품을 쓰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글쓰기는 저와 진실과의 대면입니다. 무슨 상, 돈, 권력을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쓸 수는 없죠.”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내 정치를 말한다] (7) 김세연 한나라당 의원

    [내 정치를 말한다] (7) 김세연 한나라당 의원

    나는 굴곡 없는 삶을 살았다. 자수성가하신 할아버지와 기업인·정치인의 길을 걸으신 아버지 덕분이다. 기업체를 운영하는 입장이지만 ‘독점’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게 된 것도 교만과 독선에 대한 경계심을 키워 주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할아버지는 항상 ‘두꺼비 헛배 부르듯 허욕 부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의 일이다. 나는 당시에는 흔치 않게 자가용으로 등교를 했다. 친구들과 마주칠까 봐 학교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내려 걸어갔다. 1학년 어느 날, 시간이 늦어 교문 가까이에서 내렸다. 마침 그 자리에서 마주친 물리 선생님이 “세연아, 돈이 없어 점심을 못 먹는 친구들도 생각해 보거라.”라고 나무라셨다. 민망함에 며칠 동안 가슴이 울렁거렸다. 가진 사람일수록 겸손해야 하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봐야 한다는 가르침을 깊이 새겼다. 굴곡이 없는 삶은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스펙’일지도 모른다. 그런 차원에서 내 정치의 원동력은 권력의지가 아닌 셈이다. 애당초 ‘정치인’이 되기 위해 정치권에 발을 들인 것도 아니었다. 정치와 행정에 대한 감시자로서 정치권에 잠시 파견 나온 것이라고 스스로 규정했다.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받은 많은 혜택을 보은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복무의식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이라고 말할 정도는 못 되지만, 공직에서 선공후사(先公後私)는 반드시 지키고자 한다.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스스로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협하는 무엇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국가사회 공동체를 지켜 내는 데 일조하기 위해서다. 거대한 비전을 제시하거나 어떤 일에 앞장서는 것보다는 올바른 지도자를 제대로 돕는 것이 정치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에는 약자를 위한 안전망이 아직도 너무 성기고 부실하다. 그 그물을 튼튼히, 촘촘히 쳐야 한다. 하지만 뒷감당하지 못할 퍼주기 선동을 일삼는 자들을 보면 그 허위와 기만에 분노를 느낀다. 오로지 권력만 탐하는 자들, 남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이익에만 사생결단으로 달려드는 자들을 보면 역겹다. 이들은 사회 공동체의 안정적인 발전과 행복을 위협한다. 이들로부터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지켜 내야 한다. 경제권력, 정치권력, 행정권력 간의 결탁과 담합을 막아야 국민이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다. 경제적 포식을 일삼는 탐욕스러운 일부 재벌, 제 밥그릇만 챙기는 일부 관료집단, 선동만 일삼는 포퓰리스트, 영혼을 팔아먹은 종북주의자들로부터 국민을 지켜 내야 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위기에 빠진 청소년, 다문화가정 등 ‘표’가 없어 정치로부터 소외된 영역을 위해서도 노력하려고 한다. 정치의 관심에서 벗어난 영역의 일도 누군가는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정리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Q & A] “黨쇄신 성공 못하면 미래 어두워” Q 아버지가 김진재 전 의원이고, 장인이 한승수 전 국무총리다. 그런 집안 내력이 정치에 입문한 배경인가. A 아버지의 이름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오래 기억되도록 하는 게 자식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인생을 대신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Q 집안에서 어떤 정치를 배웠나. A 아버지가 직접 정치를 가르치진 않았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들어 보니 아버지는 주목받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들을 챙기려고 애를 많이 쓰셨다고 한다. Q ‘18대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이 맘에 드나. A 별로다. 관심의 초점이 의정활동에 맞춰지지 않고 나이에 맞춰지면 본질적인 면보다 다른 곳에 관심이 쏠려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중진의원들과 의견이 다를 때에는 동등한 무게가 주어지지 않는 것 같다. Q 공직자 재산공개 때 825억원을 신고했다. 약자들의 어려움을 알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A 사실 그게 콤플렉스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라온 게 아니기 때문에 애환을 다 알 수 없다. Q 콤플렉스를 갖게 된 계기가 있나. A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 ‘성인이 된다는 것은 자아를 객관화할 수 있는 것’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업을 하면서 재벌끼리 독식하는 모습에 화가 나곤했지만, 나 역시 다른 사람들 눈에는 부모 잘 만나서 모자람 없이 자란 사람에 불과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힘없고 약한 사람들 편에 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Q 당내 쇄신파로 분류된다. 쇄신이 성공할 수 있다고 보나. A 다른 대안이 있었다면 고민했겠지만 한나라당 말고는 대안이 없어 입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바른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쇄신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지금의 변화가 완결되지 못하면 한나라당의 미래가 어두워질 것이다. Q 언제부터 당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A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느꼈다. 공천에서 떨어져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복당한 뒤에도 오랜 기간 당협위원장을 맡지 못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절실히 느꼈다. 사실 지난 5월 황우여 원내대표가 선출되기 전까지는 계속 좌절감을 갖고 있었다. 의원들의 자율성이 보장되지 못했고, 당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Q 계파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사람 사이에 친소관계는 생길 수밖에 없지만 국회의원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계파구도에 갇혀 종속변수로 전락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특정 계파의 수장에게 공천권을 받았거나, 받을 거라고 기대하고 소신없이 움직이는 걸 보면 불편하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1972년생(39세) ▲금정고,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아내 한상은씨와 2남 1녀 ▲취미:독서, 영화감상 ▲좌우명:정직, 성실, 신뢰 ▲동일고무벨트(주) 부회장 ▲(재)고촌장학재단 이사 ▲낙타장학회 발기인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청년위원회 미래세대위원장 ▲한·일의원연맹 21세기위원회 부위원장 ▲한·중의회 정기교류체제 청년노동분과위원장 ▲새로운 한나라·민본21 공동간사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 [특파원 칼럼] 태극기와 성조기/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태극기와 성조기/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태극기를 밟고 찍은 사진이 한국에서 논란이 된 모양이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둘로 갈려 있었다.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태극기를 짓밟다니, 대한민국을 떠나라.”라는 비난과 “별걸 다 트집 잡는다. 그럼 태극기를 엉덩이에 두르는 것은 괜찮으냐.”라는 두둔이 드잡이하고 있었다. 내 알량한 분석력을 총동원해 판단하건대, 한 전 총리가 고의로 태극기를 밟은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아마도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를 의식하느라,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석에 헌화하느라 태극기에 신경을 쓰지 못한 듯하다. 정말 작심하고 모독하고 싶었다면 굳이 신발을 벗고 태극기 위에 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전 총리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적어도 잠재의식 속에서라도 그가 태극기를 무시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태극기를 밟거나 엉덩이로 깔고 앉았더라도 실수로 봐줄 수 있지만, 한 전 총리는 통혁당 사건으로 복역했던 전력으로 미뤄 의심이 간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의 잠재의식 속에 정말 ‘태극기 무시’가 들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의 모습에서 태극기에 대한 극진한 애정이 묻어나지 않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극진한’이라 함은 부모님 영정만큼, 아니면 자신이 존경하는 전직 대통령의 영정만큼 끔찍이 위한다는 의미다. 만약 그랬다면 아무리 경황이 없더라도 태극기에 발을 올려놓는 일은 저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런 글을 쓰는 나는 어떤가. 고백하건대, 나 역시 태극기를 극진히 예우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국경일에는 ‘애국심을 꼭 표현해야 맛인가.’라는 자의적 논리로 국기 게양의 귀찮음을 합리화했고, 평소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촌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월드컵 응원할 때나 돼서야 맘 떠난 애인 손잡듯 찾는 게 태극기였다. 왜 그랬을까 ‘분석’해 보니 과거 군사정부 시절 강요된 애국심에 대한 무의식적 반발심리였던 것 같다. 그때는 길을 걷다가 저녁 무렵 애국가가 울리면 그 자리에 부동자세로 서서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를 웅얼거리던 시대였다. 민주주의도 자라고 나도 자랐지만, 태극기에 대한 나의 정서는 유년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나는 미국에 와서 ‘개과천선’했다. 미국 국민의 성조기 사랑은 가히 설화적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공사장 타워크레인 꼭대기에 성조기를 꽂아놓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중고차 판매장에 진열된 수백대의 차 하나하나에 성조기가 붙어 있는 모습도 봤다. 이러니 미국에서는 따로 국경일에 국기를 내걸라고 계도할 필요가 없다. 미국인의 이런 태도는 세계 최강대국 국민이라는 자부심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일류대학, 일류직장에 다니면 자랑하고 싶은 심리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성조기 사랑은 불온한 파시즘이나 유치한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끌어올림으로써 행복감을 느끼는, 유쾌한 ‘퍼포먼스’인 셈이다. 삼류대학, 삼류직장에 다닌다고 생각하면 우울해지는 것처럼 삼류국가 국민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국기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다. 성조기를 자랑스러워하는 미국 공사장 노동자가 태극기를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한국의 화이트칼라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국기 홀대는 자신을 홀대하는 것이고 국기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인 것이다. 만약 북한 인공기를 너무 흠모한 나머지 태극기에 정이 안 가는 분이 정말 있다면, 그 마음 씀이 너무 박절하다고 말하고 싶다. 태극기는 남북이 분단되기 훨씬 전부터 우리와 가시밭길을 함께한 ‘겨레의 조강지처’이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의 혈서를 받은 것도 태극기였고, 유관순 누나가 아우내장터에서 손에 들었던 것도 태극기였다. 지난주에는 프랑스의 한류팬들이 우리보다 더 열렬하게 태극기를 흔들었다. carlos@seoul.co.kr
  • “이름 석자 부끄럽지 않게 최선”

    “이름 석자 부끄럽지 않게 최선”

    “국민(초등)학교에서 얼굴로도, 언변으로도 주목받지 못했다. 그럴싸한 별명도 없었다. ‘보리밥’으로 불렸다. 누구나 그랬듯 날마다 꽁보리밥 도시락을 쌌다는 게 이유다.” 31일 문충실(61) 동작구청장은 수필집 ‘현장에서 숨쉬는 나의 열정‘을 펴낸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안국신(64) 중앙대 총장은 “별명 ‘문성실’에 걸맞게 역경과 부딪칠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 도전하는 정신으로 이겨냈다.”고 추천사를 썼다. 문 구청장은 고향인 전북 옥구군에 대해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표현한다면 옥구는 기름진 뱃살 부분”이라며 친구들과 뛰놀던 반세기 전 시절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군산과 김제, 부안을 아우르는 새만금 방조제 사업이 전부 마무리되면 모든 것들이 추억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한반도 지형을 바꾸는 대역사(大役事)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아쉽기만 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군산 문창초등학교 졸업 뒤 중학교에 1년 늦게 진학한 뼈아픈 사연도 곁들였다. 면사무소 직원으로 박봉에 시달리던 부친, 자신을 잉태했을 때 얼음판에 넘어져 뇌를 크게 다친 어머니 대신 병환 중인 할머니를 보살펴야 했다. 그는 “배움의 길을 잠시나마 접어야 했던 맏손자 앞에 ‘얼른 죽어야지’라던 할머니의 말을 듣고 ‘저 선반 위에 쥐약 있거든’이라며 화를 냈는데 참 모질었다.”고 회고했다. 2006년 여동생과 미국에서 지내던 어머니가 별세했을 때 임종하지 못한 죄스러움도 잊지 않았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이름과 유사한 문자를 가진 직업과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름 효과’(Name-Letter Effect)를 소개하며 최선을 다한 세월이었다고 덧붙였다. 미국 예일대 연구진이 야구선수와 경영학 석사(MBA) 과정, 로스쿨 학생 등 2만여명을 조사한 결과다. 문 구청장은 “이름 석자를 부끄럽게 하지 말자는 생각을 지상명령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8대 독자, 4남 2녀의 장남으로 군산고 졸업반 때 학비도 버거우니 교육대에 가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어머니에게 힘을 얻어 “군인으로 평생 국가를 지키자.”며 육군사관학교를 선택했단다. 조모께서 일곱살까지 업어 키우다 보니 ‘O자형’ 다리였다. 이 때문에 한겨울 교정에 있는 연못 화랑천(현 범무천)에 잠수하는 단체기합을 받았다. 하체를 찌르는 고통 탓인지 동기생 중 유독 딸 부자가 많고 같은 중대엔 아들을 낳은 동기가 아예 없다는 우스개도 흥미롭다. 가슴 저미는 제1장 ‘하늘을 여는 꿈’은 이렇게 끝난다. 제2장 ‘시련을 이기는 힘’과 제3장 ‘희망, 꿈, 그리고 비상’에는 육사를 떠나 공직에 발들여놓은 경험을 녹였다. 문 구청장은 동대문구 부구청장과 서울시 현장시정추진단장 등을 거쳐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당선장을 받았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목욕탕서 마주한 나의 내면… 그리고 당신의 내면

    목욕탕서 마주한 나의 내면… 그리고 당신의 내면

    큰일났다. 기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대답이 추상적이다. 그마저도 짧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해 길게 물어 봤자 “그냥요.” “그런 뜻은 아니에요.” “무의식적으로 하다 보니…”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란다. 뒤에 무슨 말이 더 이어지겠지 싶어 볼펜을 만지작거리고 서 있어 봤자 거기서 끝이다. 되든 안 되든, 심오한 사유이든 개똥철학이든 뭔가 이야깃거리를 풀어 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따윈 없어 뵌다. “이러다 기사에 ‘그냥요’라는 말만 나간다.”고 협박(?)해 봐도 돌아오는 건 배시시 웃는 낯뿐이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영빈(31) 작가 얘기다. 이제 갓 대학원을 졸업한 신예다. 개성 시대 아니랄까 봐 젊은 작가들도 자신의 작업에 대해 포장하는 게 보통 아니다. 정말 그럴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평소에 신 나게 놀다가 지원금만 쥐여 주면 뚝딱뚝딱 작품을 만들어 내는 젊은 작가들도 많다. 그런데 이 작가는 다르다. 어린 나이에 대형 상업화랑에서 떡하니 전시를 열게 됐으니 기분이 ‘업’(UP)돼서 수다를 떨 법도 한데 말이 짧다. 작품은 모두 목욕탕을 그린 것이다. 언뜻 심심하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한지에 연필로 그린 드로잉인데 가끔 담채로 색깔을 올렸다. 자를 안 대고 막 그어 댄 듯, 탕 안의 타일과 바깥의 마룻바닥을 드러내는 선들이 삐뚤빼뚤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게 텍스타일 같기도 하다. 요즘도 저렇게 단순 무식하게 큰 목욕탕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목욕탕 풍경도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다. 중간에 탕 하나 큰 게 있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도 아니고 잠잠하다. 목욕탕 안의 인물들도 지극히 작고 단순하게 그려져 있다. 목욕탕 하면 떠오르는 훈훈한 증기 같은 것도 없다. ‘마음의 때를 벗기고 어쩌고’ 식의 뻔한 소리가 나올 만한 구석도 눈 씻고 찾아 봐도 없다.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개인적인 작가 스타일을 접목시키고 나면 작품이 슬슬 눈에 녹아들기 시작한다. 모든 게 ‘네거티브’다. 반항이라 해도 좋고, 역발상이라 해도 좋고, 소외된 것을 끌어안는다 해도 좋고, 작가의 말마따나 음의 기운이나 아래로 하강하는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라 해도 좋고, 말 그대로 단순히 네거티브 필름을 떠올려도 좋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작품에도 작가의 시점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격자형으로 그려진 타일들은 인물들 간 거리를 표시하는 모눈종이 같다가도, 인물들을 이어주는 연결 통로처럼도 보인다. 폐쇄적 공간의 단절감 같다가도, 원래 인간의 존재라는 것이 저런 식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순한 이미지 속에 격렬한 충돌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그걸 작가의 내면 풍경이라 해도 좋고, 관람객들이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입이라 해도 좋다. 이웃한 전시 공간은 더 파격적이다. 16절지에다 간단히 인물을 드로잉한 작품 150여 점을 쭉 잇대어 걸어 놨다. 아니 붙여 놨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액자나 별 다른 장식도 없이 그냥 벽에다 풀로 붙인 듯한 모양새다. 인물 드로잉 자체가 하나의 타일 같기도 하다. 그래선지 이번엔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악필이라 친근하다.” 했더니 “저 글씨 예쁘다던데요.”라며 살짝 눈을 흘긴다. “작가라서 일부러 못 쓰는 척한 거 아니냐.” 했더니 “그런 거 아닌데….” 하곤 끝이다. 역시나다. 전시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은 그나마 가장 화려하다. 역시나 목욕탕인데 안팎 경계 없이 타일로 점철된 공간에서 자유롭게 날아가는 한 사람을 그렸다. 아니 그물에 걸린 생선 같기도 하다. “저건 해방에 대한, 자유에 대한 제 느낌이에요.” 겨우 하나 맞췄다고 하자 “보는 분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죠.” 맥 빠진 답이 돌아온다. 여성적이고 섬세한 내면을 가진 이라면 푹 빠져들 법한 전시다. 6월 26일까지. (02)720-1524~6.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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