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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규관의 고동소리] 제주 제2공항의 상투성

    [황규관의 고동소리] 제주 제2공항의 상투성

    제주도와 국토부가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에 건설하려는 제2공항 문제로 제주도는 최근 가장 핫(?)한 곳이 됐다. 사실 제주도와 국토부의 논리는 그 세세함을 따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냥 상투적인 개발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이 막무가내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듯이 말이다. 제주도는 최근 제2공항 문제뿐만 아니라 비자림로 확장 공사 문제, 영리병원 개원 문제로 조용할 날이 없는데, 여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듯 보인다.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줄곧 지켜보고 나서 발견한 개념으로 알려진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에서 ‘평범성’을 뜻하는 ‘banality’는 진부함, 상투성의 뜻에 더 가깝다고 한다. 풀어 말하면 악은 기왕의 습관, 옳음, 상식에 대한 물음이나 회의를 배제한 상투적인 사고의 결과라는 것이다. 제주도는 이미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그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서귀포 시내에서 한라산 쪽으로 가는 중산간 지역에 ‘헬스케어타운’ 개발을 중국 자본에 허가해 주었다. 이게 오늘날 국내 제1호 영리병원이 되려 하고 있는 애벌레였다. 박근혜 정권 때 일이나 정확히 말하면 어느 정권이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강정 해군기지는 노무현 정권 때 시작돼 이명박 정권 때 일단락됐고, 영리병원 문제와 제2공항 문제는 박근혜 정권 때 시작돼 현 문재인 정권에 들어서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4·3 70주년 추념식 때 국가폭력을 사과하고, 4·3은 대한민국 역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위해 제주 섬사람들을 학살한 가해의 역사이며, 제주 섬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에 대한 저항의 역사다. 역사를 말할 때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국가 입장에 서곤 하지만, 국가 바깥에서 보면 국가의 역사란 결국 전쟁과 폭력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국가가 우리의 실존을 강제하고 있는 현실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의 역사를 그냥 내면화하고 마는데, 그것이 아무래도 번민을 덜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근대 국가는 누구의 국가인가? 거칠게 표현하자면 자본을 위한 국가이며 완곡하게 말해도 국가는 경제성장을 위한 추동 장치의 성격을 아주 많이 갖는다. 제주도를 찾는 방문객이 많아져서 현재 제주공항의 수용 능력으로 실제 감당이 되는지 어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에 대한 세밀한 데이터는 나 같은 사람의 뇌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제주도 자체가 그 방문객들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항 문제를 떠나 제주도 사람들의 삶이 수많은 ‘손님’들의 방문에 힘들어한다는데 그보다 합리적인 제2공항 건설 여부의 척도가 있을 수 있는가? 무언가를 속이려고 하거나 또 다른 노림수가 있는 측의 말은 대부분 번다하고 논리가 복잡하다. 진실을 가급적 은폐해야 그 위에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짓고, 짓기 위해 다른 존재를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그것을 건설이라고 말한다. 훼손을 보호라고 속이며, 비참을 풍요라고 부른다. 백번 양보해서 그 사업이 타당성을 갖는지 묻지도 따지도 않는다. 2019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사자성어(?)인 ‘예타면제’만큼 그것을 상징하는 언어를 나는 알지 못한다. 국가의 개발 사업은 언제나 돈의 문제다. 당장의 지원금이든 개발 이후의 경제 효과든 어쨌든 돈으로 주민들을 나누고 공동체를 교란한다. 그리고 공동체의 혼란을 언론은 ‘찬반으로 갈리다’라고 부르며, 전문가들은 원인과 맥락이 삭제된 저울을 제시한다.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이라는 지독한 망상장애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만한 ‘절대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경제성장’이라는 괴물을 괴물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언론뿐이 아니라 학문도, 문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 즉 아무 물음 없는 상투적인 사고(다른 말로 하면 사고하지 않는 사고)라면 어쩔 것인가? 이미 그 결과는 차고 넘치다 못해 우리를 지치게 하지 않는가?
  • “고민을 쓰지, 비트를 타지, 할말은 하지… 힙합은 간지”

    “고민을 쓰지, 비트를 타지, 할말은 하지… 힙합은 간지”

    나만의 심경 담아낸 자작랩 통해 위로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 유튜브로 공개“웃고 있다면 웃고 있다면 이게 정말 행복일까/ 울고 있다면 울고 있다면 이게 정말 불행일까…/ 난 분명 행복한데 왜 난 안 그런다 느낄까/ 나 좋아하는 음악 하며 살고 있는데… 왜 자꾸 불행하다 느낄까.” 다음달이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성보문(15)군은 요즘 문득 느끼는 복잡한 심경을 자작 랩 ‘Sad and…?’에 꾹꾹 눌러 담았다. 공부라는 평범한 길을 접어두고 랩(Rap)에서 꿈을 찾기로 했지만, 이 길이 맞는 걸까 하는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성군은 무료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에 자작 랩을 업로드했다. “노래 좋다!” “팬입니다”라는 댓글에 다시 미소를 지었다. 활달한 성격의 성군에게 공부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참고서에 파묻히는 생활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런 성군을 위로했던 건 10대 래퍼 빈첸(이병재)의 ‘Ouu Ouu Ouu’라는 곡이었다. “고작 이 정도라서 미안해/ 잘하지 못해서 또 미안해…/ 널 행복하게만 해주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어/ 어제의 난 많이 어렸고 나는 아직도 어려…” 랩이 누군가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성군은 부모님을 설득해 컴퓨터와 스피커, 마이크 등 장비를 장만했다. 인터넷에 누군가 올려놓은 무료 비트 위에 직접 쓴 랩을 얹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자작 랩은 서른 곡이 넘는다. 주로 감성적인 비트 위에 자신과 주변 친구들의 고민과 상처를 가감 없이 풀어낸다. “가사가 비트에 딱딱 들어맞을 때” 짜릿함을 느끼고 “위로를 받았다”는 댓글에 힘이 난다. “어른이나 아이나 저마다의 고민이 있어요. 하지만 어른들은 10대의 고민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죠. 제 랩에는 제 인생이 담겨 있어요. 랩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요즘 친구들 사이에서는 힙합이 대세죠.” 고등학교 2학년 김창하(17)군은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면 다들 랩을 한다”고 말했다. 유튜브에는 ‘고등학생 자작랩’ ‘16세 래퍼 자작랩’ 같은 영상들이 셀 수 없이 올라오고 많게는 수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다. 10대들로 구성된 힙합 크루(팀)가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10대 래퍼들을 앞세운 TV프로그램이 줄을 잇는 등 힙합에 빠진 10대들은 또래 문화의 울타리를 뚫고 나와 대중음악과 방송으로까지 영향력을 뻗어가고 있다.고등학교 밴드부가 차지하던 ‘축제의 메인 공연’ 자리는 이제 힙합 동아리가 대신하고 있다. 김군이 올해부터 ‘부장’을 맡은 서울 상문고 힙합동아리 ‘흑락회’(黑樂會)는 힙합에 관심 있는 10대들 사이에서는 ‘전국구’다. 흑락회는 1999년 창단돼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긴 고교 힙합 동아리로 알려져 있다. 학교 축제의 개막 공연을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 인근 학교 축제에서도 인기 게스트로 통한다. 우리나라 힙합의 성지인 홍대에서도 무대에 오른다. 김군은 “공부를 하면서 취미 삼아 랩을 하는 친구들이 모인 동아리지만, 활동을 하면서 래퍼가 되고 싶은 꿈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10대들 사이에서의 힙합 열풍은 음악전문채널 엠넷의 고교생 랩 대항 프로그램 ‘고등래퍼’의 인기에서 가늠할 수 있다. 래퍼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의 스핀오프 격으로 2017년 첫 방송된 ‘고등래퍼’에는 당시 20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영비, 하온, 빈첸 등 이 프로그램을 거친 래퍼들이 스타로 떠오르면서 지난 23일 첫 전파를 탄 시즌3에는 1만명 이상이 도전장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은 책임프로듀서는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 등을 통해 자신의 랩을 공개하는 10대 래퍼들은 거의 다 지원했다고 봐도 될 정도”라면서 “힙합 음악을 하는 10대들에게 ‘고등래퍼’는 필수 관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10대들이 랩에 열광하는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힙합 중심으로 재편된 대중음악 트렌드의 영향이 크다. 또한 랩의 장르적 특성에도 기인한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는 “4분의4박자라는 동일한 패턴 안에 쿵쾅거리는 드럼의 경쾌함, 고저와 강약이 강조되는 랩 등 단순함 위의 다이내믹함에 10대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면서 “악기를 연주할 필요 없이 기존에 만들어진 비트만 있으면 가능해 접근성이 높다는 점도 (인기에) 한몫한다”고 분석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자신을 보여 주려는 10대들의 욕구가 랩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김 책임프로듀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로 내뱉는 게 랩”이라면서 “자기주장이 강하고 분출하고 싶은 것이 많은 10대들이 랩에 열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랩은 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에요. 주로 암울한 느낌의,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가사로 써요.”(김창하군) 랩을 하는 10대들은 자신의 고민을 꾹꾹 담아 두지 않는다. 지금 딛고 서 있는 현실에서 겪는 꿈과 좌절, 희망과 우울에 천착하고 이를 서슴없이 드러낼 줄 안다. 한 평론가는 “기성 래퍼들은 부와 성공을 향한 욕구를 주로 노래하지만 10대들은 친구들과의 관계나 학업에 대한 고민, 이상과 걱정 같은 노래를 많이 한다”고 분석했다. 직접 랩 가사를 쓰며 ‘할 말은 하는’ 10대들에게 방송가와 교육계 등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고등래퍼’에 이어 지난해에는 SBS ‘방과후 힙합’, EBS ‘배워서 남줄랩’ 등 랩을 하는 10대들을 내세운 프로그램이 잇따라 전파를 탔다. 얼핏 유행에 편승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지만, 10대들이 문화를 소비하는 ‘객체’가 아닌 문화를 창조하는 ‘주체’로서 대접받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방송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김 책임프로듀서는 “10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기”라면서 “이들의 다양한 생각과 고민들을 보여 줌으로써 기성세대들에게 화두를 던져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10대들에게 랩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서울교육청이 최근 개발한 ‘노동인권 지도자료’에는 노동 인권의 중요성을 알리는 힙합 음악을 제작하는 활동이 포함돼 있다. 굿네이버스가 지난해 11월 서울시와 함께 개최한 ‘쇼미더권리’ 경연대회에는 자신의 권리에 대한 고민을 랩으로 표현하는 10대 래퍼들의 경연이 펼쳐졌다. 대상을 받은 최용진(13)군은 “다들 꿈을 좇으래/ 근데 이제는 현실과 한발 가까워졌고/ 잘못될 수도 있는 선택”이라며 중학교 1학년이 겪는 꿈과 현실의 충돌을 노래해 박수를 받았다. 굿네이버스 측은 “10대들이 직접 가사를 쓰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아동 권리’에 대한 진솔한 생각을 듣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10대들의 힙합 문화에 기성 래퍼와 이들을 다루는 대중매체가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평론가는 “방송에 나오는 유명 래퍼들이 자기 과시에 치우쳐 있고 10대들도 무의식 중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10대들의 랩에서는 기성세대의 그것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순수한 울림이 있다는 의미다. 10대 래퍼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하온이 지난달 발표한 ‘꽃’은 이제 막 성인이 돼 사회에 발을 내딛는 또래 친구들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나이가 벼슬 또 젊음 이 변명 비록 지갑은 비었어도/ 머지않아 이쁜 꽃이 빛낼 거야 이 도실/ 회색도시 미세먼지 우리를 가릴 수 없지…”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공복자들’ 노홍철, 내시경 검사 도중 아무말 대잔치 ‘충격 발언?’

    ‘공복자들’ 노홍철, 내시경 검사 도중 아무말 대잔치 ‘충격 발언?’

    ‘공복자들’ 노홍철, 김준현, 유민상이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 22일 방송되는 MBC ‘공복자들’에서는 위와 장에 음식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진정한 공복상태의 세 사람이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 현장이 공개된다. 노홍철은 수면마취 전 의료진에게 “입을 틀어막아 주세요”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어 수면마취 상태의 노홍철은 무의식 속에서 아무말 대잔치는 물론 충격적인 발언까지 했다고 전해져 궁금증을 자아낸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라고 걱정하며 검사에 들어간 유민상은 중간에 마취에서 깨어나 의료진을 당황하게 했다. 김준현은 검사 중 뜻밖의 애교와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해 모두를 웃게 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MBC ‘공복자들’은 22일 오후 8시 5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문화마당] ‘맑고 고운’ 피아노 소리라는 착각/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문화마당] ‘맑고 고운’ 피아노 소리라는 착각/이진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피아니스트

    “맑은 소리~고운 소리~.” 오래전 어떤 피아노 브랜드 사의 CM송이다. 그 브랜드를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로 자리매김하게 해 모두의 뇌리에 각인시킨 ‘효자’ CM송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파급이 얼마나 컸던지 우리는 이제 피아노라면 브랜드를 막론하고 으레 맑고 고운 소리를 가장 우선적으로 기대하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소리를 피아노 소리의 대명사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았나 묻는다. 그 CM송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인지, 반대로 그 CM송이 우리의 감성을 반영했는지 모르겠지만, 옛 어른들은 피아노 소리가 ‘또롱또롱’, 혹은 ‘또로롱또로롱’ 난다며 그런 소리를 반가워하시고 좋게 받아들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언어에는 이런 느낌의 표현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그나마 존재하더라도 사용 빈도가 훨씬 덜하다. 우리나라의 의성어 사용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발달했다는 좋은 관점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 의성어가 필요 이상으로 자주 사용됨으로써 피아노 소리를 우리 스스로 어느 한 범주에 국한시키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300년 전에 피아노가 발명된 뒤로 지금까지 피아노 제작과 발전의 뚜렷한 목표는 정확히 바로 그 ‘또롱또롱’ 소리가 안 나게 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소리가 시작되는 시점의 그 된소리를 풀어 주는 것이 첫 목표요, 마지막 지점의 ‘ㅇ’(이응) 받침을 최대한 늦춰 다음 음절까지 길고 풍부하게 울리게 만드는 데 마지막 목표가 있다. 안타깝게도 유럽의 피아노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또롱또롱한 피아노 소리는 실패한 전형적인 소리로 정확히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어릴 적 동네 학원 선생님께서 불러 주던 “딴 따따딴”에 적응돼 있다가 전공 레슨을 받게 되며 기이하고 충격적인 추임새를 듣게 되는데, 그것은 “이얌 빠라바암”이란 괴상망측한 언어였다. 그러면서 내 피아노 연주의 어법은 조금씩 더 다채로워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더 강렬히 우리에게 각인돼 있는 수사구가 있다.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 이 또한 우리의 뇌리에 아주 깊숙이 입력된 표현이다. 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표현이 무슨 잘못이 있으랴. 귀한 물건들의 아름다운 소리를 표현한 상상력 넘치는 옛 은유적 표현을 우리가 스스로 상상력을 버리고 직유해 옥구슬이 또르르 굴러가는 소리가 이상적인 피아노 소리라고 또다시 착각하지만 않는다면.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는 주로 모차르트의 16분 음표 패시지의 모든 음이 정갈하게 고르게 나고 절뚝거리거나 꼬이지 않으면서 투명하게 연주될 때 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 역시 모차르트를 대변하는 감수성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모차르트는 적어도 나에게는 순수, 정갈, 투명한 감수성을 우선해서 다가오지 않는다. 몹시 화려하면서 장난기 있고, 동시에 비통하면서 외로움에 사무친 지극히 인간적인 드라마가 꽉 차 있다. 청명하고 단아하기보다 드라마틱한 질풍노도가 모차르트의 음악적 성격과 감수성에 더 잘 들어맞는다. 어렸을 때 소나티네까지 진도를 무사히 나가다가 16분음표를 고르게 못 해내 선생님이 손등을 때리는 시기가 오면서 자연스레 피아노와 멀어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옥구슬이 귀하기에 좋은 소리를 옥구슬에 비유하지만, 정말로 옥구슬 굴러가듯 고르게 칠 필요는 없다. 영화 ‘아마데우스’는 그런 면에서 모차르트의 면모를 잘 보여 주는 편이다. 그의 음악은 그저 귀하거나 평탄하지만은 않다. 은쟁반 위의 옥구슬보다는 영화에서처럼 거리에서 병나발을 불며 뜀뛰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모차르트를 즐겨 보는 건 어떨까?
  • 서양화가 최비오 작가 2019독일 칼스루에 아트페어 참가

    서양화가 최비오 작가 2019독일 칼스루에 아트페어 참가

    한국의 서양화가 최비오(Vio Choe) 작가가 독일에서는 퀠른 아트페어에 이어 2번째로 규모가 큰 칼스루에 아트페어(Art Karlsruhe)에 2월 21일부터 참가한다. 아트 칼스루에는 한국에도 알려진 독일의 유명갤러리인 “디 갤러리”, “마이클 슐츠 갤러리” 등 독일을 대표하는 갤러리를 포함해서 독일에서만 194개, 외국59개 총253개 갤러리가 참가하고 총 방문자수는 5만에 달할 정도로 세계적인 아트페어로 독일 칼스루에 지역에 위치한 “Karlsruhe Messe” 전시장 에서 열린다. 최비오 (Vio Choe) 작가는 유럽 특히 독일에서의 인연이 깊다. 2011년 아트 칼스루에에 원 아티스트 쇼(One Artist Show)로 처음 참가하여 출품한 작품 12점 모두가 솔드아웃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8년 연속 참가를 하여 뜨거운 반응과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2016년에는 독일 베를린 미술협회 소속(Art from Berlin)으로 미국 뉴욕 컨텍스트 아트페어(CONTEXT Art NewYork) 에 참가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7년에는 독일 헤펜하임 미술협회(Kunstverein Heppenheim)에 초대되어 아시아인 최초로 개인전을 가졌으며 또 2012년 독일 베를린(Lee Galerie Berlin), 2016년 독일 칼스루에 (Artpark Karlsruhe Galerie) 에서도 개인초대전을 가졌다. 그 외에도 아트 시카고(Art Chicago), 스코프 마이애미(Scope Miami), 이스탄블(Contemporary Istanbul), 슈르트가르트, 런던, 홍콩, 대만, 두바이, 싱가포르, 베이징, 상하이 등 크고 작은 세계 아트페어 에서 열정적으로 전시를 이어온 최비오 작가는 해외 미술품 애호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다. 최비오의 작품은 작가 특유의 무의식 속에서 강렬한 선으로 감성적인 에너지와 다차원적 시공간을 표현한다.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가 많은 컬렉터들 에게 인정 받아 Consalto StB GmbH, Design Consulting Group, Elisabeth Krankenhaus Köln, Chemische Fabrik Budenheim KG Germany 등 많은 기업들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글로벌 작가로 성장하고 있는 최비오 (Vio choe) 는 그의 작품 세계를 널리 인정 받아 2019년 5월 세계 최고 예술 축제인 이태리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특별전인 Personal Structure에 한국인 회화 작가로는 이례적으로 초청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의 작품은 비엔날레 기간 중 6개월간 팔라죠벰보(Palazzo Bembo) 전시장에서 전시를 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젊은 시인들아, 가난한 사람이 따뜻해지는 詩를 쓰자”

    “젊은 시인들아, 가난한 사람이 따뜻해지는 詩를 쓰자”

    “후배들 언어 유희로 난해한 망상만 가득 필 오면 끄적이지 말고 24시간 몰두해야”“좋은 시인가 아닌가 아는 방법이 있어요. 시 쓰면서 우는 거예요. 대상하고 교감이 완벽하게 이뤄지면 그 동질감 속에서 눈물이 나오는 거죠.” 시 ‘사평역에서’를 쓴 ‘아기 참새 찌꾸’ 아빠, 곽재구 시인이 여덟 번째 시집을 냈다.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문학동네)다. 지난 28일 전화로 만난 시인은 “내 시가 좋다는 말은 아니지만 동화 ‘아기 참새 찌꾸’의 마침표를 찍을 때, 이번 시집을 쓸 때 눈물이 나왔다”고 말했다. 73편의 미발표시들로 빼곡히 채운 시집은 시인이 자신의 터전인 전남 순천의 샛강 동천을 걸으며 나왔다. ‘평생 강물의 노래를 들었으나/자신의 노래를 부른 적 없는 이가 눈보라를 맞는다/피아노의 검은 건반이 하얀 눈보라 속에 묻힌다’(‘징검다리’), ‘물고기 두 마리/입맞춤하네/가을에 사랑하다 헤어지면 봄 온다네’(‘나와 물고기와 저녁노을’) 등이 다 그렇게 나왔다. 일곱 번째 시집 ‘와온 바다’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생명력, 삶에의 거룩함은 신작에서도 그대로다. ‘니 좋으면 나 좋으니/나한테 더 좋은 일인지도 모르겄다/이번 달 시급 만 원 계산했다/새 정부에서 2020년부터 시행할 모양인데/힘들어도 함께 힘든 게 낫지 않겄냐?’는 삼겹살집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난 가난한 사람이 따뜻해지는 시를 쓸 거예요’라는 점원의 다짐으로 돌아오는 식이다.(‘라면 먹는 밤-성래에게’) “강은 쉽게 말하면 한반도, 착한 물고기들은 반도 안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 푸른 용은 반도와 사람들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는 에너지예요. 촛불집회하는 사람들 모습도 다 착한 물고기 속에 들어 있는 거죠.”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올해로 39년차인 시인. 그는 이번 시집에서 처음 시 쓰던 때, 도서관에서 윤동주 시집을 훔치던 때로 돌아갔다. ‘도서관에서/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초판본을 훔쳤지/(중략)/당신만큼 쓸쓸하고 순정한 시를 쓰리라 혼자 다짐했네.’(‘고교 1학년’) 초심을 되새긴 것이냐는 질문에 뜻밖의 날 선 대답이 돌아왔다. “방금 초심 이야기를 했는데, 저도 인제 우리 나이로 6학년 6반이에요. 근데 우리나라 시가 너무 자잘해요. 젊은 친구들 쓰는 시가 비전도 없고, 언어 유희에다가 난해한 망상들을 집어넣고…, 진정성이 없어요.” 순천대 문예창작학과에서 19년째 시를 가르치고 있는 시인은 ‘신인상 당선작에서 쓰레기 냄새가 난다’(‘물고기와 나’)고까지 썼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진정성이란 무엇일까.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하루 24시간을 시에 몰두해야 한다는 거다. 잠자다 꾸는 꿈에서까지.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면 꿈에 나와요. 무의식 세계하고 현실 세계의 경계에 있는 게 꿈이에요. 꿈이라는 일주문을 들어가야지 미지의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거죠. 일주일에 하루, 뭔가 ‘필’이 오면 끄적끄적 쓰고 시라고 발표하는 거, 그건 시가 아니에요.” 하루 열 편씩 쓰겠다는 초심을 지금도 이어 나가는 시인이다. “방탄소년단도 분명히 꿈에서 춤추고 노래할 것”이라고 덧붙인 시인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제 말은 다 틀린 것”이라며 ‘허허’ 웃었다. 시어에 김소월과 윤동주가, 해설 대신 직접 쓴 산문에는 정지용, 백석 등 먼저 간 선배 시인들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백석의 시를 일컬어 ‘번역이 불가한 도저한 조선의 시’, 김소월은 ‘눈보라 날리는 날 배고픈 내 손에 쥐여 준 따뜻한 고구마’, 윤동주는 ‘극한 상황에서도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적었다. “이 시집을 낸 의미 중 하나가 ‘젊은 시인들아, 좋은 시 좀 쓰고 살자’ 하는 겁니다. 한반도 미래를 위해서도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거밖에 없어요.” 시인이 말하는 좋은 시란 ‘쉽고 깊고 따뜻한 것’이다. 아주 쉬운 언어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 커튼에 햇살 비치는 무늬만 봐도 시를 떠올린다는, 39년차 순정한 시심(詩心)이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아직도 신경안정제 없인 잠 못 자… 공포는 여진으로 남았다

    아직도 신경안정제 없인 잠 못 자… 공포는 여진으로 남았다

    “지진도, 대처도 모든 게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규모의 재해가 닥친 유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예전의 일상은 사라졌습니다.” 2017년 11월 15일 오후 2시 30분. 경북 포항시 흥해읍에 사는 박형철(39·가명)씨는 그날 오후가 지금도 생생하다. 꿈에서도 그의 가슴을 옥죈다. 그날을 기점으로 박씨의 건장했던 인생은 통째로 달라졌다. 점심 직후였다. 자영업을 하다 새 일을 준비하고 있던 그는 맑은 하늘 어디선가 거대한 천둥소리를 들었다. 순간 전쟁이 났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땅이 흔들렸다. 지진은 포항시 북구 북쪽 8㎞ 지역에 5.4 규모로 찾아왔다. 한반도에서 역대 두 번째로 큰 지진이었다.무의식적으로 네 살짜리 조카가 있는 근처 영일어린이집으로 냅다 뛰었다. 선생님들이 그나마 아이들을 대피시킨 뒤 진정시키고 있었지만 여기저기 우는 아이들이 보였다. 영문을 모르는 조카는 삼촌을 보더니 환히 웃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나오는 순간, 바로 옆 건물 빨간 벽돌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어린이집 차량을 덮쳤다. 1m 차이로 화를 면했다. 경림뉴소망아파트 1층인 집은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배낭에 급한 짐을 구겨 넣고 어머니, 동생 내외를 수소문해 근처 흥해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사이렌은 울렸지만 그때까지도 대피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학교로 가면 뭔가 안내가 있을 거라고만 짐작했다. 동네 사람들 800여명이 뒤엉켰다. “작년 경주 지진이 더 심했다는데 어째 우리 동네가 더 무너진 것 같아”라며 옆에서 웅성거렸다. 한참을 기다려 구호품 키트를 받았다. 당장 잠을 잘 데가 없는데 지급된 텐트도 모자랐다. 그날 밤 가족 5명은 차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승용차에서 쪽잠을 잤다. 대피소는 어느 정도 질서정연했지만 밤이 되면 달라졌다. 구호품과 텐트를 받아 급식만 먹고 사라지는 이들, 술 먹고 남의 텐트에 쓰러지는 이들, 사생활이 없었다. 지진 후 사나흘이 지나자 “22일까지 피해 사실을 동사무소에 접수하라”고 했다. ‘집합건물은 전파, 개인주택은 반파’ 이상 판정받아야 이주시켜 준단다. 부서진 건물이 워낙 많은데, 대개 육안으로만 관찰하고 판정을 내렸다. 박씨 아파트도 처음엔 전파 판정을 받지 못했다. 90가구 중 65세 이상 어르신이 35%가량 사는 곳이다. 전기 스파크 튀는 소리, 벽 갈라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났다. 27일, 조심스레 지하실에 내려가 기둥을 만졌다. 콘크리트가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철근이 다 드러났다. 시청은 이튿날 전파 판정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면증이 찾아왔다. 대형 트럭이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창문 소리, 휴대전화 진동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극도의 공포감에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다. 집에서 5분 거리인 동사무소를 가는 데 동생의 부축을 받고서 한 시간이 걸렸다. 숨이 차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일상은 사라졌다. 2018년 2월 11일 새벽, 규모 4.6의 여진이 또 찾아왔다. 대피소 15곳도 철수하고 주민들도 일상에 서서히 복귀하려던 시점이었다. 그날 이후 증세가 더 심해졌다. 박씨는 다음달 갑자기 찾아온 가슴 통증에 결국 119에 실려갔다. 4월, 공황장애 판정을 받았다. 흥해보건소에 새로 생긴 재난심리센터에서 상담과 심리치료를 받긴 했지만, 전문의가 없어 약 처방은 받지 못했다. 그는 “지진보다 트라우마가 100배는 더 무섭다”고 했다. 박씨는 지진 감지 애플리케이션 3개를 동시에 쓰고 있다. 행정안전부 재난 안내문자의 속도가 가장 느리다며, 2월 여진 당시 문자 전송 시간을 보여 줬다. N사의 재해 발생 속보보다 7분이 늦었다. 그는 “흥해 사는 분들은 대부분 N사 앱을 쓴다”고 했다. 11월, 한동대에서 하는 지진 트라우마 극복 심리상담교육을 1주일에 2번 받기 시작했다. 항우울제 처방과 병행하니 다행히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게 처음인 탓에 주민도, 공무원도 헤맸다”고 했다. 정작 지원받아야 할 주민들이 뒤로 밀리는 경우도 많이 봤다. 역대 2위급 지진에다 현재까지도 운영 중인 대피소 관리부터 이재민 구호, 건물 파손 판정, 이주계획, 재난심리지원 등 모든 것이 장기간에 걸쳐 이뤄져야 했다. 반면 건축·재난 관련 전문가는 모자랐던 데다 주민 의견 수렴이 현장에서 잘 안 되다 보니 복구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지진 대피·구호소 운영 매뉴얼은 있지만 사후 현장과는 괴리가 컸다.신순옥(69·여)씨는 포항 흥해실내체육관 2층 2평(6.6㎡) 남짓 하는 텐트에서 남편과 단둘이 생활하고 있다. 딸과 아들이 있지만 “폐를 끼치느니 죽겠다”고 했다. “컴퓨터와 냉장고, TV, 세탁기, 세간살이가 다 산산이 부서졌는데 어디 가서 말도 못 한다”고 했다. 그가 살던 흥해읍의 한미장관 맨션은 C등급으로 ‘소파’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벽체에 여기저기 금이 간 집에 차마 들어가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신씨와 비슷한 200여가구가 이곳에서 텐트 생활을 하고 있고, 상주인구는 30명가량이다. 주민들은 2월 재정밀 안전점검 당시 현행 건축기준 전파 판정에 해당되는 D, E등급이 나왔는데도 시가 준공 당시인 1988년 건축기준으로 C등급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또 개정된 시설물안전특별법에 따르면 이 아파트가 ‘3종 건축물’로 지정 고시돼 현행 법규에 따른 정밀안전진단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는데도 시가 고시를 하지 않아 현행법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공기업에 다니던 남편 퇴직 후 아파트를 팔아 귀농하려 했지만, 노후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병원 가서 진료받고 친구들과 동네 사우나에서 만나 수다 떨고 점심 먹고 산책하던 일상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여기저기 쑤시는 통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만 새로 찾아왔다. 한의원에서 침 맞고 돌아오면 하루 종일 텐트에 누워 지낸다. 병원을 전전했지만 뇌와 심장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신씨 웃옷 주머니에는 약봉지가 가득하다. 신경안정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1년이 넘었다. 신씨 텐트 앞 조그만 어항에는 싸구려 열대어 ‘구피’ 몇 마리가 노닐고 있다. “귀하게 키우던 놈들도 어항이 깨지는 바람에 다 죽었네. 얘네라도 들여다봐야 위안이 되지….” 딸에게서 휴대전화가 걸려왔다. “김치했다니 가서 맛봐야겠네.” 얼마 전에 찾아온 손녀는 집 현관 앞에서 안을 들여다볼 뿐 망부석이 됐다. “할머니 무서워서 들어갈 수가 없어….” 올해도 혹한의 추위가 찾아왔지만, 누전 염려 때문에 전기요를 쓰지 못한다. 두꺼운 매트 2개를 겹쳐 깔았지만 한기는 사방에서 올라온다. 지병인 암 진료를 위해 남편과 고속버스를 탔는데 선잠이 들었다가 혼비백산해 깼다. 버스 진동이 여진인 줄 알았다. “다들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심리상담 같은 건 받을 생각들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역시 “시에서 한다는 얘기만 들었지 상담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다 필요없이 그냥 예전 집으로만 돌아가고 싶네.” 신씨가 혼잣말로 읊조렸다. “주민 주도형 복구, 그리고 단순한 ‘도시 풍경의 재생’이 아니라 주민 마음·터전의 재구성이 절실합니다.” 포항시 북구 환호동의 대동빌라주택재건축 정비사업조합설립 추진위원회를 맡고 있는 김대명(49) 위원장은 1년 넘게 휴직 중이다. 새 보금자리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보니 생업을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전파 판정을 받은 대동빌라는 지난해 11월 철거가 시작됐다. 아침에 들른 빌라 입구 한복판에는 죽은 쥐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힘없이 바스라진 벽체와 엿가락처럼 휘어진 창틀, 널브러진 깨진 유리창들이 고스란히 그날의 충격을 말해 준다. 개인 주택과 달리 공동 주택 주민은 내부 수리도 이웃 동의를 얻어야 하고 재건축 의견 수렴 과정 역시 기나긴 진통의 연속이다. 이런 이유로 지진 피해를 입은 공동주택 대부분이 아직 철거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 반면 대동빌라 주민들은 지난해 10월 부영주택㈜, 포항시와 함께 재건축 등 주택정비사업을 공동 추진키로 합의했다. 충돌을 최대한 피하고 주민 상생을 우선해 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었다. 같은 동 주민끼리 시비가 붙었다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청와대 제도개혁비서관을 어렵게 면담했다. “지원 법규가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하소연했다. 우선 국토교통부의 재해주택복구기금은 여지껏 공동주택을 지원한 사례가 없었다. 우리은행을 통해 ‘20년간 1.5% 장기 저리 지원’ 등 내규를 만드는 데만도 몇 개월이 걸렸다. 다들 “이런 규모의 지진과 피해가 처음이라 전례가 없어 그렇다”고만 반복했다. 포항 지진을 계기로 이재민에게 주는 재난지원금 기준도 ‘전파 900만원→1300만원, 반파 450만원→650만원’으로 상향됐지만, 정작 소급이 안 돼 포항 시민들은 지원받을 수가 없다. 정치인들이 지진 재해로 인한 재난복구·지원특별법 통과 등을 장담했지만, 주민들 피부엔 와닿지 않았다. 재건축만 확정됐을 뿐 분담금, 이주 기간 협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철거 판정을 받은 아파트는 대부분 1억원 이하인데 재개발하려면 1억 6000만원씩 내라는 게 시의 입장이었다. 이 돈을 감당할 수 있는 주민은 많지 않다. 분담금을 낮추는 협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임시 주택 거주 기간도 당초 6개월이었다가 2년으로 연장됐다. 재건축 완료까지 앞으로 최소한 3년 이상 걸리는데, 올해 말에는 여기서 나가야 한다. 포항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측과 계속 협상 중이니 올봄까지 기다려 보라고 한다. 재난 피해 지역을 특별재생지역으로 복구하는 ‘도시재생활성화 및 지원 특별법’이 지난해 4월 개정돼 포항이 특별재생지역으로 포함된 것 외, 포항 지진 관련 지원법은 지난해 국회서 통과된 게 전무하다. 예산 역시 올해 국가 지진 방재 교육관 용역비 1억원(전체 사업비 1000억원)이 반영된 게 전부다. 임시 이주한 주택은 포항시 반대편 끝에 있어 중학교 3학년 아들과 함께 매일 새벽 등교를 한다.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 왕복 3시간 통학 거리를 감수하는 아들이 안쓰럽다. 김 위원장은 “주민들은 그저 새집이 아니라 삶을 지탱한 터전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원한다”고 덧붙였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정우성, ‘여배우=꽃’ 비유 발언 사과 “차별적 표현 성찰할 것”[공식]

    정우성, ‘여배우=꽃’ 비유 발언 사과 “차별적 표현 성찰할 것”[공식]

    배우 정우성이 여배우를 ‘꽃’으로 비유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영화 ‘증인’ 개봉을 앞두고 있는 정우성은 23일 공개된 한 인터뷰에서 JTBC ‘SKY 캐슬’에서 활약 중인 염정아의 연기를 극찬하며 “꽃은 지지 않는다는 걸 온 몸으로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꽃’이라는 표현을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길 바라며,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정우성은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러분의 애정어린 지적에 감사를 표한다”면서 “표현한 사람의 의도와 상관 없이 받아들인 대상이 불편한 마음을 느낀다면 그 표현은 지양돼야 하고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개인적으로 이 기회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무의식적으로 쓰여지고 있는 차별적 표현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여러분의 좋은 가르침 다시 한 번 감사하고 느끼신 불편한 마음에 깊은 유감과 사과의 마음 전한다”고 진심 어린 사과를 전했다. 한편 ‘증인’은 유력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순호(정우성)가 사건 현장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2월 13일 개봉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세이프 코리아 리포트-화재, 불감증에서 탈출하라] “수면제 없인 힘든 일상…그 고통 보고도 어찌 비상구 막나요”

    [세이프 코리아 리포트-화재, 불감증에서 탈출하라] “수면제 없인 힘든 일상…그 고통 보고도 어찌 비상구 막나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나가주세요. 기자님 보면 그날 생각이 나서 다들 힘들어해요.” 충북 제천 복합건물화재 유가족 총회가 열린 2018년 11월 4일. 제천시청 한 회의실에 모인 유가족들을 만났다. 참사 1주기(2017년 12월 21일)를 코앞에 두고 유가족들의 얼굴에는 아픔이 생생해 보였다. 대학 입학식을 앞두고 운동을 하러 갔다가 참변을 당한 여고생의 어머니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팔순의 어머니와 이제 쉰이 된 여동생, 열아홉 살 조카까지 3대의 가족을 모두 잃은 민동일 유가족 공동대표는 줄담배를 피워댔다. 5시간을 차로 달려 찾아간 그곳에서 아무도 입을 떼지 않았지만, 한마디도 물을 수가 없었다. “인사도 없이 비명에 간 내 자식이, 내 동생이, 내 부모가 혹여나 언론을 통해 사람들 입에 쉽사리 거론될까 두렵다”며 누구도 기자와 쉽게 대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현직 교감인 류건덕 유가족 대표가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문밖에서 기다리기를 2시간. 한 유족이 동영상 하나를 보여줬다. 참사 당일 숨진 한 피해자의 목소리였다. 전 지방 사립대 교수였던 김인동씨가 우연히 그날 아내와 통화한 게 녹음된 것이었다. 김씨 부부는 그날 같이 헬스장에 운동하러 갔다. 화재가 난 것을 알고 김씨는 거의 끝까지 남아 피해자들 탈출을 도우며 구조활동을 했다. 하지만 정작 빠져나간 줄 알았던 아내는 건물 안에 있었다. 당시 눈앞에서 아내를 보내며 절규했던 그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녹음에 남았다. 김씨는 인터뷰를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말하고 싶다고 전해왔다. 자책 - 날 살린 아내 못 구한 난 죄인 대학 강단에 섰던 김씨는 심한 간경화 탓에 서둘러 은퇴했다. 의사도 치료가 어렵다며 가망이 없다고 했단다. 약만 먹으면 어지럽고 속이 따가워 약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그를 위해 아내는 산이고 들이고 부지런히 다니며 약초를 뜯어 달이고 그 물로 죽을 끓이고 밥도 지어 먹였다. 그렇게 지극정성 보살핀 아내 덕에 김씨는 거의 정상인에 가깝게 몸이 회복됐다. 부부는 그 과정에서 제천으로 내려왔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펜션을 열어 제2의 인생을 오순도순 건강하게 살아보잔 생각이었다. 땅을 사고 설계부터 건축까지 부부가 자그마치 5년간 발품을 팔아 2015년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17년 12월 그날도 김씨 부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4층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다. 근력이 약한 아내에게 김씨가 웨이트 동작 몇 개를 알려주고 뒤이어 아내가 옷을 갈아입으러 5층으로 올라간 뒷모습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4층 남성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느낌에 김씨는 점퍼와 바지 등 겉옷만 대충 챙겨입고 4층을 나섰다. “따르릉, 따르릉.” 그때야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2, 3, 4층에서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왔다. 아비규환이었다. 그나마 연기가 심하지 않아 눈으로 식별되자 김씨는 안 열리는 문 대신 1, 2층 중간 정도의 열린 창문으로 사람들을 내려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연기가 심해졌다. 숨이 턱 막혔다. 저절로 몸이 앞으로 풀썩 기울었다. 무의식적으로 창문을 찾아 몸을 내밀었더니 배꼽 밑으로 창틀에 걸린 상태가 됐다. 그래도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니 살겠다 싶었다. 양팔을 휘저으며 간신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때부터 집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먼저 문 열고 나간 것을 봤으니 어디 있나 하면서. 전화를 걸었더니 바로 통화가 됐다. 거기서부터 잊을 수 없는 악몽이 시작됐다. 공포 - 사라진 출구, 안 깨지는 유리창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나 아직 4층에 있어요. 마트 앞에 당신 차가 보여요. 연기가 올라오는데, 유리창이 안 깨져요.” 다급해진 김씨가 소리를 질렀다. “일단 엎드려! 입을 막아봐.” 김씨는 경찰관과 소방관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저기 사람이 있다, 우리 아내가 저기 있다. 유리창 좀 깨달라”고 애원했다. 아내는 오히려 “나 아직 살아 있어. 괜찮아”라고 김씨를 다독였다. 이후 김씨가 구조를 요청하러 다니는 동안 말소리가 끊겼다. 숨을 헐떡이는 마지막 음성까지 전화기에 고스란히 남았다. 김씨의 아내는 통화가 되지 않은 그 상태에서도 20분 뒤에나 숨졌다고 했다. 시신은 4층이 아닌 7층에서 발견됐다. “비상구가 막혀 있지 않았다면, 바로 유리를 깨라고 지시했다면, 건물 근무자들이 대피를 유도하고 빠져나왔다면 더 많이 살지 않았을까요? 건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같이 데리고 나가줬어야 하는데 길도 모르는 고객들이 캄캄한 연기 속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겠어요.” 그는 모두의 책임이라고 했다. 그날 참사 이후에도 김씨는 여전히 아내와 함께 문을 연 그 펜션에서 산다. 둘이서 소박하게 평생 먹고 살자던 그곳을 문 닫은 채로. 그래서 김씨의 하루는 아내의 납골당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마음이 편해서란다. 그렇게 사진으로나마 얼굴 한번 보고 제천 시내에 가 혼자 또는 지인들과 늦은 식사를 하고 주인 잃은 펜션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빵이나 떡으로 간단히 저녁을 때운다고 했다. “우리 세대가 어디 빨래 한번 제대로 합니까. 음식 해줍니까. 고생만 죽어라 시키고 보냈습니다. 수고했어. 고마워. 이 말 한마디를 못해주고 보냈습니다.”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나왔다.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없이 김씨는 잠을 이루기도 어려워졌다. 부실한 식사 탓에 약을 먹으니 어지러워 걸음은 비틀대고 멍한 상태가 됐다. 기억이 선명하면 괴로워 그게 더 낫다고 했다. 가끔 자녀가 김씨를 찾아오면 더 슬프다고 했다. “자기들도 힘들고 아플 텐데 나까지 짐이 되면 안 되잖아요. 사회에도 짐이 되면 안 되니까. 그저 집사람을 못 구한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거지”라며 “그때 같이 죽을 걸, 나 살린 사람도 못 구하고 나만 살아가지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은 다 그대로 있는데, 내가 꼭 필요로 하는 한 사람, 그 사람은 내 옆에 없으니까. 어디 아프고 노력이라도 해보고 그렇게 마음 준비할 시간이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처음에는 몇 번이나 집사람을 따라가려고도 했어요. 나까지 그리하면 자식들한테 더 못할 짓 하고 상처주는 거 같아서 내 할 도리는 다 하고 뒷정리는 하고 그러고 가려고”라고 덧붙였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속에 후회와 슬픔이 한숨과 섞여 나왔다. 기억 - 기본기만 지켜도 참사 없을 것 그는 “다시는 이런 사고 안 나게 제발 적어달라”고 했다. 김씨는 “지금도 비상구 표시가 계단에나 있지, 건물 안에는 안 보여요”라고 지적했다. 제아무리 시설 좋고 장비 좋은 건물이라도, 그 안에서 일하는 이들의 교육과 훈련은 없다고 했다. “다른 목욕탕을 가도, 좋은 식당을 가도 비상구 쪽은 밀폐돼 있어요. 비상구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건물 실내에서부터 바깥으로 이어지는 문까지 야광으로 큰 띠만 연결해놔도 사람들 그렇게 안 죽어요. 돈도 많이 안 들어요. 외국처럼 잘 깨지는 소재의 창문을 하나 만들고 연기 속에서도 식별 가능하게 X자 표시를 해서 여자들도 깰 수 있게 알려줘야 해요. 또 건물 종사자들은 불이 나면 소리만 지르고 도망갈 게 아니라 비상시 사람들에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안내하는 기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해요. 이런 기초적인 훈련과 시설이 갖춰져야 이런 참사를 줄일 수 있어요.”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 총회 날 먼저 펜션으로 돌아간 김씨를 빼고 유가족들과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어떤 유족은 오래 살았던 제천을 그날 이후 떠났다고 했다. 혹시나 웃으면 ‘가족 잃고도 웃는다’라고 남들이 흉볼까봐서라고 했다. 화재로 탄 시신을 가족 대신 확인한 친구는 지금도 잠을 못 이룬다고 했다. 2018년 12월. 제천시 하소동 체육공원 인근에는 높이 1.2m 크기의 추모비가 건립됐다. 유가족들은 29명의 희생자 이름과 함께 ‘유난히 추웠던 그해 겨울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는 글을 리본, 국화와 함께 새겨 넣었다. 그날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Remember 2017. 12. 21’라는 참사 당일 날짜도 아로새겼다. 한 유족이 말했다. “엄마를 잃은 유치원생 어린 딸이 이모만 보면 같이 살자고 한다더라고요. 화재는 고인뿐 아니라 이렇게 남은 가족에게도 화상을 남겼습니다. 이 끔찍한 일은 다시 일어나면 안 됩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박상현의 디지털 미디어] 스마트 스피커, 그녀의 목소리

    [박상현의 디지털 미디어] 스마트 스피커, 그녀의 목소리

    우리는 매일의 일상에서 녹음된 목소리의 안내를 받는다. 엘리베이터가 문이 닫힌다고 말해 주고, 에스컬레이터가 “걷거나 뛰어서는 안 되며”, “손잡이를 잡아야” 한다고 사용법을 설명해 준다. 지하철 승강장 스피커는 어떤 열차가 들어오는지 알려 주고, 열차와 승강장의 간격이 넓다고 경고한다. 버스 안의 스피커는 다음 정차할 정류장을 알려 주고, 현금인출기는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게 주의하라고 말해 준다. 그런데 이렇게 녹음된 목소리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전부 ‘여성’의 목소리다. 더 흥미로운 건 공공장소에서 단순 반복적으로 나오는 녹음된 안내 방송은 거의 예외 없이 여성의 목소리인 반면 살아 있는 담당자가 직접 개입할 때, 특히 지시나 명령을 내릴 때는 대개 남성의 목소리라는 점이다. 지하철에서 포교 활동을 하거나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 다음 역에서 내리라고 경고하는 목소리는 남성의 목소리고, 지금은 자주 들을 수 없는 민방위훈련이나 재난 대비 훈련방송의 목소리도 남성의 목소리다. 이런 불균형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남성이 결정권을 쥔 사회에서 여성은 “여성 특유의 자상함”을 강조하는 (대개는 낮은 직책의) 안내원 역할을 배정받았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서비스 목소리=여성의 목소리’라는 등식이 굳어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제의 기원이 아니라,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다. 우리가 이제까지 갖고 있던 편견과 불균형은 계속 유지될까, 아니면 바뀔까? 아쉽게도 여성은 21세기 디지털 세상에서도 여전히 “자상한 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을 계속하는 듯하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에서 만드는 스마트 스피커에 기본 장착된 여성의 목소리다. 그런데 그 목소리의 자상함은 나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보여 주는 친절함이 아니다.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태도가 눈에 띄게 강조된 태도다. 가령 그 스피커는 명령을 수행할 수 없을 때 몹시 미안한 투로 “안타깝지만, 제가 할 수 없는 일이에요”라고 말한다. 부당한 요구를 하는 사장님을 애교로 달래며 거절하는 여성의 목소리다. 몇 달째 사용하고 있지만, 그런 톤이 그 스피커가 가진 기본 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미국에서 제작된 음성비서 서비스의 목소리는 여성인 경우에도 순종적인 톤이 묻어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제작한 기업에서 의도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고 한다. 21세기의 미국인들 중에는 순종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의 목소리라도 당당하게 말하는 캐릭터를 선택했다고 한다. 친절하지만 순종적이지 않고, 그러면서도 대화하고 싶어지는 목소리를 어떻게 찾아냈을까? 구글은 그 목소리에 실제 인물 같은 배경 스토리를 부여하기로 했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콜로라도에서 자란 여성이다. 굳이 콜로라도로 정한 이유는 그 주 사람들의 말에는 지역적 특성이 가장 적기 때문이다. 그 여성의 어머니는 도서관의 연구직 사서, 아버지는 대학의 물리학과 교수이며, 어린 시절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TV 퀴즈쇼에 출전해서 상금으로 1만 달러를 받은 경험이 있다. 자라서는 중서부에 위치한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후, 인기 심야 토크쇼 진행자의 비서로 일한 적이 있으며, 취미로 카약을 즐긴다. 그렇게 정해진 캐릭터에 직원 하나가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카약을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따로 있냐는 거였다. 그러자 책임자는 이렇게 되물었다. “방금 오디션을 한 여성이 카약을 할 만큼 에너지가 넘쳤나요?” 아닌 것 같다고 하자 “네, 그런 식으로 골라내면 됩니다.” 과연 그 정도로 철저할 필요가 있을까?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화 상대의 말에서 내용만 듣지 않는다. 감정과 태도 등 다양한 비언어적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습득하고 거기에 반응한다. 스마트 스피커 속 음성비서의 목소리는 단순히 정보만을 전달하는 기계음이 아니다. 거기에는 그 서비스를 만든 사회가 가진 가치관과 편견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고, 서비스의 이용자는 그 가치관과 편견을 학습한다. 전형적인 여성 감정노동자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스마트 스피커가 걱정스러운 이유다.
  •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앙상블/채기성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앙상블/채기성

    사실 경희를 만나려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먼저 경희를 봤다면 나는 아마도 버스에 타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J가 그녀의 어머니를 논현동 게장 집으로 퇴근 시간에 맞춰 모셔 오지 않았더라면 굳이 몸을 구겨 가며 버스를 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경희를 만나고 나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체 탓에 긴 행렬로 이어진 차들 사이를 뚫고 버스는 간신히 일 차선으로 빠져나와 정류장 쪽으로 겨우 몸을 돌렸다. 출입문 앞 쪽까지 가득 찬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며 몸을 늘어뜨리고 천천히 기어 오는 버스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일찍 나오지 그랬어.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내 문자에 대한 J의 회신에도 한숨이 생략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들보다 도로 쪽에 위태로울 정도로 바짝 붙어 섰다. 버스 앞문이 열리기는 했지만 입구까지 막아서 있는 사람들을 어깨로 밀어내며 올랐다. 내 바로 뒤에서 어깨로 등을 떠밀던 한 남자는 문이 닫히지 않자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낭패한 표정이 나에게는 왠지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버스 문이 겨우 닫혔다.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근래 들어 가장 운이 좋은 순간이었다.다음 정거장에서 앞쪽으로 몇 사람이 내리면서 문이 열렸다. 출입구 난간에 서 있던 나는 다시 사람들을 밀치고 버스 안쪽으로 올라섰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좁은 버스 출입구로 몰려들었지만 탈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없었다. 출입구 쪽의 사람들에게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기에는 퇴근 때보다 더 짙어진 어둠이 있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하게 저마다의 핸드폰을 보며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버스 창에 반사되어 보였다. 차례로 사람들을 훑어보다 버스 중간 즈음에서 나처럼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낮은 조도의 등 아래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경희였다. 오래전부터 나에게 닿아 있었던 것 같은 무거운 시선. 사람들을 비집고 버스에 탈 때부터 나를 알아봤을 것 같은 시선. 아니면 그전부터. 우리가 서로 보지 않았던 시절부터 그래 왔다고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경희의 무겁고 오래된 시선에 사로잡혀 나는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표정한 사람들의 흔들림을 사이에 두고, 경희와 나는 창을 통해 비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내려도 되죠?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기사 쪽을 향해 몸을 치켜세웠다. 버스 기사는 대답이 없었다. 버스 앞쪽으로 끼어들어 미적거리는 차량 때문에 예민해졌는지 기사는 후미 등을 반복해서 껐다가 켜 댔다. 버스 기사는 앞쪽 출입문은 되도록 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앞쪽으로 내리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한두 명 탈 수 있는 공간이라도 타기 위해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몰리면서 어깨로, 등으로,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밀어냈다. 버스 기사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뒷문을 먼저 열어 사람들을 그쪽으로 유도한 다음 앞문을 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뒤쪽이든 앞쪽이든 누군가 탈 만한 공간은 없었다. 일단 버스 앞쪽 난간에 매달린 다음, 문이 닫힐 수 있도록 까치발을 하고 몸을 앞으로 밀어대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위험하다는 기사의 만류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타겠다며 몸을 구겨 넣다가 버스를 출발조차 못 하게 만들었던 나를 경희가 봤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얼굴에 열이 올랐다. 고개를 쭉 뻗어서 경희가 있는 쪽을 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경희를 볼 수 없었다. 다시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움직이지 않고 내게로 향해 있는 경희의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 경희를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그녀가 독일로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는데, 그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나는 경희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다. 매년 경희의 생일을 챙겨 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때만큼은 그녀의 생일을 챙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연락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경희였다. 독일로 떠나기 전에 꼭 나를 보고 떠나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러마 했다. 신용카드 연체 독촉 전화와 문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외출을 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 됐다. 수개월간 회사의 급여가 체납된 끝에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이 언제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내지 못했던 월세 비용과 저축, 보험, 통신 요금의 더미에 묻혀 나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그 더미를 뚫고 나가 경희를 만나 웃으며 생일을 챙겨 줄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전혀 없던 것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시간만큼이나 연체된 카드 대금이 불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커피 한 잔은 사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비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내가 살게.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먹고 나서 경희가 보통 그렇게 얘기하면 나는, 배우가 무슨 돈이 있어, 하고는 늘 그렇듯이 그녀보다 한발 앞서 호기롭게 계산을 하고는 했다. 정말 유명한 배우가 되면, 그때야말로 나를 잊지 말고. 그리고 내가 다짐하듯이 경희의 눈을 보며 얘기하면, 보통 그녀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배우라는 말이 낯간지럽다는 듯이. 오늘은 내가 살게. 경희가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야 나는 옷을 챙겨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늘 만나던 홍대입구 8번 출구에서 만나 경의선 숲길 쪽으로 걸어가면서 경희는 딱히 어디를 가자거나 뭘 먹고 싶다고 선뜻 말하지 않았다. 둘이 자주 가던,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듣기에 괜찮고, 또 무엇보다도 술이며 안주가 그리 비싸지 않은 익숙한 곳 몇 군데를 얘기해 봤지만 경희는 하나같이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와인을 마시고 싶어. 그럼 어디? 뭘 하고 싶은데. 그렇게 물으려던 참이었다. 와인. 경희를 따라 입 밖으로 뱉어진 단어의 모음 두 개가 허공에서 공허하게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두 개의 원 안으로 와인이 무한대로 부어지고 있는 게 떠올려졌다. 경희와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함께 와인을 마셔 본 적이 없었다. 가자, 안 그래도 생일인데. 그건 비싸잖아.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결국 나에게 향한 말일 뿐, 경희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경희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가지 않을 수는 없어 나는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와인과 곁들여져 나올 샐러드와 안주 같은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낼게. 와인을 다 마시고 나서 자리를 뜰 때 경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그저 작은 위안이 되었다. 경희가 그 말을 할 때면 아주 단호하고, 무엇보다 진짜 멋있어 보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좋아 보인다며 경희가 앞장서 들어간 곳은 이층짜리 주택을 개조해 만든 건물이었다. 그냥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 앞에 주차된 차들은 거의 대형 수입차 세단이었다. 광택이 도는 창문 안쪽으로 와인을 마시며 앞에 앉은 남자를 그윽이 바라보는 여자가 보였다. 푸른색을 띠는 롱 드롭 귀걸이가 여자가 웃을 때마다 흔들렸다. 거기 안쪽에 있는 여자와 양복을 입은 남자,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어쩐지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았는데 그래서 그 안쪽으로 들어간다는 게 여간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진짜인 사람들은 저기에 있는데,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저기 있는데, 그 사람들을 따라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사람처럼 스스로 여겨져서 그랬다. 와인을 좋아하는 줄 몰랐네. 경희는 그 말을 듣고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옷가지들을 풀지 않고 걸치고 있던 머플러를 더 조여 맸다. 춥기도 하고. 와인을 마시면 몸이 좀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고 경희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마음도. 그 말과 동시에 머금고 있던 웃음이 바람에 꺼진 촛불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 순간, 경희의 표정은 차갑고, 두 눈은 아래쪽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일 것이라고 나는 직감했지만 그에 대해서 바로 묻지는 않았다. 경희는 나와 대화 중에도 반복해서 몇 번쯤 웃다가 다시 떠오르는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겠는지 허공에 떠 있는 생각들을 겨냥한 채 눈을 겨눴다. 경희는 내가 한 말을 자주 놓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반복해서 물었다. 경희와 나 사이의 대화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속 어긋나고 있었다. 딱히 서로에게 닿을 만한 대화가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건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내적 요구가 가장 큰 마음속의 것들을 꺼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경희가 와인 한 병을 더 마시자고 하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고, 경희는 와인을 마실 때마다 잔을 비웠다. 처음에는 와인 잔에 반쯤 따르던 나도 양을 삼분의 일로 줄였다. 와인의 건조한 습기가 그녀의 입술에 붙어 입술 틈 사이로 갈라졌다. 깊숙이 몸 안으로 채워 넣을 것이 필요한 사람처럼 경희는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잔으로 담은 붉은색 와인을 몸속으로 들이부었다. 미처 저어할 틈도 없이 경희는 추가로 와인을 주문했다. 경희처럼 단번에 와인을 마셔 버려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그곳을 나올 때 경희보다 앞서 나오면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금액이 이십오만 원쯤이었는데, 내가 낼게, 라고 경희가 나선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이 정도쯤 괜찮아. 내가 먼저 그렇게 얘기하자 경희는 고맙다는 말을 했다. 평소보다 돈을 더 많이 쓴 게 아니냐며 한 번쯤 얘기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나도 위로받고 싶다고. 와인을 마시는 내내 대화가 엇갈린 경희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마음속에서 웅얼거렸다. 내가 힘들 때도 타인을 챙겨야 한다는 모순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경희가 독일로 떠난 이후, 우리는 만난 적이 없었다. * 팔꿈치로 등을 짓이기는 듯이 세게 문질렀다가 신경질적으로 툭툭 치는 사람은 내 뒤에 서있던 중년의 여성이었다. 등을 마주 보고 서 있었는데 등을 찌르듯이 뾰족한 팔꿈치로 계속 찔러서 나는 최대한 여자의 등과 멀어지려 앞쪽으로 몸을 바짝 당기고는, 등을 활자로 폈다. 상대적으로 배가 앞쪽으로 들이밀어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바로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겨봤다. 배를 살짝 집어넣자 다시 여자의 팔꿈치 찌르기가 계속됐다. 내가 앞쪽으로 바짝 다가설수록, 그렇게 해서 생긴 빈 공간을 여자가 오히려 좁혀오는 것 같았다. 앞 남자는 몸이 닿는 게 싫은지 어깨춤으로 나를 살짝 밀쳐냈다. 하는 수 없이 활자로 핀 등을 일자로 세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의 날카롭고 뾰족한 팔꿈치와 닿았다. 왜 자꾸 밀고 그러냐는 여자의 거친 음성과 얼굴이 동시에 나에게 쏟아졌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봤다. 저도 계속 밀려서요. 여자에게 따지려 들면 더 싸움이 날까 봐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젊은 사람이 싸가지가 없긴. 여자는 그렇게 자기 말만 하고는 몸을 획 돌렸다. 결국 그 말을 타인, 상대방에게 던지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의도한 사람처럼 여자는 그 말을 던지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여자의 팔을 붙잡고 지금 뭐라고 한 거냐며 따지며 물었을 텐데 나는 일부러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저 뒤쪽의 경희도 여기를, 지금 나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여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방어하는 내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었다. 버스에 탈 때부터, 여자가 팔꿈치로 나를 찌르고,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고 있는 순간까지 전부 그대로를 경희는 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경희와 친구로 지내면서 보여 준 적이 없었던 민낯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만 있는 것 같았다. 버스에 타지 말았어야 한다니까. 나를 탓하는 목소리가 뇌에서 진동 주파처럼 반복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거기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주머니. 경희의 목소리였다. 아주머니, 방금 뒤에 있는 남자한테 소리 지르신 아주머니요. 차들이 밖으로 늘어서 있었다. 옆 차선으로 옮기려는 차들이 켠 주황색 방향지시등이 깜빡이고, 좁은 틈 사이로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거나 끼어드는 차선을 막아서는 차들의 붉은 후미등이 헤드라이트 불빛과 뒤섞여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는 사람들로 가려진 버스 뒤쪽을 고개를 돌려가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뭐야, 누구야. 방금 전의 격앙된 목소리보다 누그러진 신중한 목소리로 여자는 중얼거렸다. 그런 사람 아니라구요, 아주머니 옆에 있는 남자. 싸가지 없는 사람 아니에요. 김이 서리기 시작한 창 위로 희미하게 얹힌 도로의 풍경이 캔버스에서 흘러내린 물감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만들어 낸 그림 같았다. 경희의 목소리가 내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렸기 때문인지 바로 앞의 풍경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뭐야, 누구야. 누군데 그래 지금. 여자는 연신 뒤쪽을 쳐다보다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아줌마, 이제 조용히 좀 하세요. 여자 앞쪽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여자를 향해 말했다. 아니, 내가 괜히 그래요? 여자가 정색을 하고 남자를 내려 봤는데 동시에 여자의 목소리가 버스 기사의 욕설에 묻혔다. 버스 기사는 이제는 참기 힘들다는 듯이 운전석 옆의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버스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싸가지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경희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사람들의 고개와 시선이 다시 버스 뒤쪽으로 향했다. 경희의 그 말이 귓속에서 울리더니 가슴으로 내려와 울렸다. * 경희와 만나지 않고 지내던 시간 동안 나는 딱 한번 그녀의 연극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시작했다며 한번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였다. 경희가 독일로 떠난 이후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언제 한국에 돌아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후에도 몇 번쯤 경희가 먼저 연락을 해 왔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한동안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들어간 직장에서의 일이 절실하기도 했고, 그만큼 일상과 일과 중에는 일보다 중요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책상 한쪽에서 진동으로 울리고 있는 휴대폰 액정 화면 위에 경희라는 이름이 몇 번인가 떠 있었고,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채 나는 그것을 무심하게 지켜보았다. 진동이 그치고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매번 무표정한 내 얼굴 표정이 비쳐 보였다. 다시 전화가 오면 받아야겠다고,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았다. 그러나 경희가 두 번 연속으로 전화를 하는 일은 없었다. 경희에게 연락도 없이 소극장으로 향한 건, 한 번도 그녀가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시작할 만큼 간절히 원하던 뮤지컬을 떠나 갑작스럽게 다른 장르의 무대로 간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연극 무대에 선 경희가 어떤 모습인지 멀리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애써 그녀의 변화를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독일로 그녀가 떠난 뒤로 내게 몇 번이나 연락했는지, 언제 연락했는지를 모두 세고 있었던 것처럼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회사 휴게실에서 커피를 내릴 때, 누군가 뒤에서 손으로 등을 짚을 때, 차를 운전하다가 커브를 돌 때 같은 평범한 순간들의 틈을 타고 떠올려지는 기억들이었다. 나랑 사귀자. 농담이라며 경희가 무심코 던진 말이 한동안 얼마나 나를 들뜨게 했는지,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선 그녀를 단순히 객석에서 바라보던 일이 그렇게나 떨릴 만한 일이었는지를 재차 묻는 것 같은 기억들이었다. 기억들은 금세 사라졌다가 다시 불현듯 나타났다. 그래서 경희와 멀어지기 위해서는 갖고 있던 기억들이 완전히 소진되어 떠올릴 거리가 없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한때 삶의 중심과 사건들을 나누고 공유했던 경희와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떤 시절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관계의 인과와 고리가 있는 것일 뿐이고, 우리는 지금 막 그 인과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완전히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그 힘에 저항하는 관습과 기억의 뜨거운 층위를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경희의 연극을 보러 온 것은 그런 생각의 연장이었다. 연극 무대에 선 경희를 확인하면 끝내 그 층위를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그 기억들의 저항에 설득되었기 때문이었다. 중년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된 연극의 삼분의 일이 지나갈 무렵까지도 경희는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진한 화장을 하고 등장한 중년 남자의 딸이 경희일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중년 남자의 내연 관계인 직장 후배도 아니었다. 극의 중반 즈음을 지나서 등장한 중년 여성이 경희였다. 앞서 등장한 여성들이 모두 경희가 아닐까 생각했던 탓인지 중년의 여성으로 나타난 경희가 뜻밖에도 낯설게 느껴졌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게 분장을 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동안 경희가 뮤지컬에서 맡아 왔던 역할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정적으로 보였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유행이 지난 옷들을 차려입은 그 역할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중년의 역할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적정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게 아니냐며, 연극이 끝난 후에 찾아가 경희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 나이가 되면 말이야, 표현하지 않으려 해도 연기가 자연스러워질 텐데 굳이 왜. 나는 경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거기까지 떠올리다가 멈췄다. 넌 내 말을 들은 적이 없지. 정작 내가 경희에게 하고 싶던 말은 그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사실은 그 말 안에 내가 경희를 미워하는 감정이 얼마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이상하게도 경희가 독백을 할 때마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일부러 무대 뒤편으로 자리를 잡아 놓기도 했고, 소극장이지만 그래도 무대 조명이 밝아서 어두운 객석의 사람들을 쉽게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음에도, 경희의 시선이 내게로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경희를 외면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 그때 혹시 말없이 소극장을 찾아가 공연을 보고 있던 나를 경희가 알아봤는지, 그리고 그녀가 뮤지컬에서 연극무대로 전향한 이유 중에 어떤 것을 먼저 물어볼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경희네가 했던 연극 공연을 보러 갔었다고, 차라리 그렇게 말을 시작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경희는 알아, 혹은 그랬어? 그렇게 둘 중에 하나로 대답하고, 나는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먼저 알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다시 관계가 시작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145번 버스는 여전히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정체가 심한 신사동 고개에서부터 가로수길 입구를 거쳐 신사동 사거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신사동 고개에서 정차했다가 출발한 버스는 그나마 정체가 덜한 좌회전 차선으로 옮겨 갔다가, 신사역이 가까워오자 사 차선에서 일 차선으로 한 번에 가로질러 갔다. 그사이 각 차선에 겹쳐 있던 차들 몇 대가 신경질적으로 클랙슨을 울려 댔다. 버스 기사의 거친 운전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리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 모두 금요일 퇴근길의 정체가 지겨운 표정이었다. 이번 정류장에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앉으려는 사람, 내리기 쉽도록 문 옆으로 가 있으려는 사람들이 뒤섞이는 동안 사람들에게 밀려났는지 경희의 모습은 창에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느릿하게 가는 동안 나는 자주 버스 뒤편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등과 머리 사이 틈새 어딘가에 경희가 목에 두른 파란색과 검은색 도트 무늬가 새겨진 스카프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버스는 신사역 정류장 바로 앞에 차를 대지 못하고, 조금 미치지 못한 곳에 정차한 상태에서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앞 뒤 문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내리려는 사람들을 먼저 비집고 들어가 버스 뒤편으로 향했다. 이제는 텅 비다시피 한 버스를 아무리 찾고 둘러봐도, 경희는 없었다. * 아마도 신사역에 도착하기 전이나 아니면 그보다 전 정류장에 내렸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혹 다른 사람을 경희로 착각한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도 해 보았지만 그건 분명히 아니었다. 그렇게 깊고 말간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은 경희밖에 없었다. 화가 렘브란트는 자신의 연대기에 따라 자화상을 그려 냈는데, 청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은 비록 달라졌어도 눈빛만큼은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진다. 육체는 사라져도 눈빛만큼은 영겁의 시간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는 한눈에 경희의 눈빛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경희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해도 눈빛 하나로 그녀를 구분해 낼 자신이 있었다.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창을 통해서였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랬으므로 버스에서 내려 신사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해서도, 날이 지나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며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녀가 있었으나 사라졌던 자리와 음성을 지우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있었다. 몇 번쯤 핸드폰을 들고 경희의 연락처를 훑다가 말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갑자기 사라진 그녀에게 집중되는 생각의 관성이 오히려 나 자신을 괴롭힐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경희를 만나기 이전으로 그저,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그녀와 연결된 세계에 살고 머물게 될 것이었다. 그녀와 단절된 삶으로서의 세계. 그것이 내가 원하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그날의 일을 기억 속에서 정리하기로 했다. 버스에서의 만남과 기억에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버스에서 경희가 사라진 이유도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경희가 정리가 된 적은 없었다. 삶의 어디선가 경희는 꼭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145번 버스에서처럼. 전우영씨죠. 굵고 낮은 목소리 톤을 가진 한 남자의 전화를 받은 것은 내가 어느 정도 경희에 관한 일을 어느 정도 잊고 있을 때였다. 회사 연수원에서 승진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받다가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잠깐 교육장을 나와 라운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때였다. 그렇습니다만. 차경희씨의 오랜 친구라고 들었습니다. 남자의 입에서 경희의 이름이 불려졌을 때, 그녀를 생각지 않고 지내던 시간들은 금세 증발되고, 애써 한쪽에 치워 놓고 쌓아 두려 했던 경희의 기억들이 눈앞으로 함몰되어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음성에서 느껴진 알 수 없이 무겁고 감당하지 못할 어떤 예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남자가 전한 것은 경희의 죽음이었다. 그저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우영씨가 가장 친했던 친구라고 해서요. 마지막에 경희는 우영씨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지만요. 제가 대신이나마 한번 만나 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남자의 무거운 목소리는 내 무의식의 심연보다 깊어 그곳에서 나를 끌어내리는 소리 같았다. 온 힘을 다해 끌어내리는 목소리. 반드시 나를 만나야만 한다는 의지와 무게로 나의 목을 끌어안는 목소리였다. 그건 그래서 남자의 목소리라기보다 내 목소리인 것 같았다. 남자를 통해서라도 경희를 알아내야만 한다는 목소리. 그런데 혹시, 전화를 주신 분은 누구시죠. 아, 제 소개를 하지 않았네요.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경희의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섣불리 어떤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반쯤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저는 김재철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굵은 톤으로 지금까지의 조심스러운 말투와 다르게 기운차게 자신을 소개했다. 남자의 이름이 상당히 낯익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 속 어딘가 존재하는지 떠올려 보고 있었는데, 남자가 이어 꺼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경희와 같은 배우였습니다. 뮤지컬을 오래 같이 했습니다.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지만 나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남자의 얘기를 듣고, 동창들이나 친구들을 수소문해 경희가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을 찾아갔다. 그리고 근 한 달 동안 계속 술을 마셨는데 그때마다 경희에 대한 모든 사소한 기억까지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다. 경희에 대한 기억을 꺼내면 꺼낼수록 그 기억들의 중심에는 어떤 죄책감이 놓여 있었다. 그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기억들을 끊어 내려 했던 죄책감을 희석시키고자 나는 끊임없이 그녀의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오 개월 전에 이미 떠난 그녀가 어떻게 불과 이 개월 전에 버스 안에서 나를 마주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면서도, 출근을 하면서도 서류 더미 위로 떠올려지는 그 물음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것은 경희, 차경희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남자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은 그 일에 대해 한 번쯤 말해 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본 것이 경희에 대한 일종의 환영이었는지, 아니면 착시였는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고백하자면 내가 그녀에게 갖게 된 어떤 죄책감이 버스 안에서의 기억과 강하게 밀착되어 내게서 한시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음이 괴로워서였다. 남자는 예상대로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경희가 했던 한 뮤지컬 공연에서 수도 없이 그녀를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던 상대 남자 배우. 남자는 그때처럼 팔 근육이 여전히 우람했다. 콧수염뿐이었던 수염이 턱 밑까지 깊고 거칠게 길러져 있었다. 더 달라진 게 있다면 한데 묵어 허리까지 내렸던 긴 머리를 잘라내 버린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들어 올리기 쉽도록 해야 한다며 경희 스스로 다이어트와 금식을 하면서 몸무게를 조절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버스 안에 있었던 겁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남자는 경희가 버스 안에 있었던 게 분명하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버스에 없었던 게 아니구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어긋난 겁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과거의 시간에 놓여 있던 어떤 순간의 지형이 어긋나거나 뒤틀려서 현재의 시간 어딘가에 다시 배치가 된 겁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우영씨가 본 건 경희가 맞아요. 그럼, 시간의 잘못된 인과다? 그렇다기보다 찢어 붙이기 같은 거죠. 저쪽 시간에서 잘못 끼워진 시간이 현재의 어떤 시간에 다시 조합된 거예요. 껴 맞춰진 거죠. 그런들 어쩔 수가 없어요. 그건, 시간이 하는 일이니까. 깨진 거울의 한쪽 면에 새 거울 조각을 맞추듯이. 가급적 오류를 그런 방식으로 해결해 가면서, 되도록 완벽한 시간성을 구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 우영씨가 본 건 그와 같은 통제에서 벗어난 시간의 왜곡으로 일어난 일이다, 이겁니다. 이 세상에 없는데도 나타날 수 있는? 내가 반문하자 남자는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한 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를 ㄴ자로 만들어 나를 쏘는 흉내를 냈다. 쿨.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경희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언젠가부터 그림자처럼 그녀 곁에 붙어있는 남자가 같이 떠올려졌다. 그 남자에 대해 아직도야? 그렇게 물으면 경희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왜 대답을 안 해? 그렇게 다시 경희에게 물으며 본론으로 돌아가면, 네가 싫어하잖아. 경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깊고 비어 있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런 대화는 경희와 만날 때마다 반복이 됐다. 나 역시 경희가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그게, 매번 집요하게 그 남자에 대해 물었다. 그 사람. 그 사람 뭐? 취기가 볼에 붉게 오른 경희의 오른쪽 눈가가 엷게 떨렸다. 이런 얘기를 더 이상 주고받고 싶어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사람 만나러 가지 말라고, 독일에. 독일로 떠나기 전 만났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래서, 내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아내가 있는 사람을 만날 건데, 너. 그래도 그 정도는 늘 경희에게 하는 얘기였으니 어쩌면 거기까지만 말하고 멈췄어도 괜찮을 법했다. 경희는 내가 연이어 던진 말을 듣고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 같았다. 너는 그 사람의 아내까지 망치려는 거야. 그때, 경희에게 그렇게 소리치며 화를 내고 짜증스럽게 말한 게, 오랜 실직 상태로 지쳐 있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는지, 아니면 정말 경희가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일만 챙기려 드는 것 같다고 여긴 것 때문이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내가 오랫동안 그녀의 편이 돼주기보다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며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어쩌면 경희는 내가 자신을 혐오스럽게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에게 실망하며 마음을 닫아 버리려 노력했던 나와 달리, 이제는 세상에 없는 경희에 대해서도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남자에게서 나는 어떤 종류의 패배감을 느꼈는데, 자세히 그 감정을 살펴보니 더 깊은 안쪽에는 경희에 대한 부채의 감정이 거기 머물러 있었다. 나를 실망스럽게 쳐다보는 것 같은 경희의 얼굴처럼. * 경희는 그즈음 자주 뮤지컬계를 떠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사랑하는 뮤지컬을 떠날 수 있겠냐고 농담조로 말하면 경희는 별 말없이 허공을 쳐다보고는 했다. 그제야 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다는 듯이. 더 큰 박수를 받는 건 주연급뿐이잖아. 그래서 경희가 그렇게 덜컥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정말 그녀에게 뮤지컬에 대한 권태로움이 심각하게 찾아왔구나 싶었다. 경희는 수년째 뮤지컬 무대에서 코러스와 춤을 뒷받침하는 앙상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박수를 받는 주연의 뒷모습을 같은 무대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고 했던 그녀였다. 주연에게 기립 박수를 치는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경희가 말했을 때, 경희에게는 뮤지컬을 더 이상 할 수 있는 어떤 동력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주연을 맡는 사람은 따로 있더라고. 경희의 그 말이 내게는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될 일은 없는 것 같다고 토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자조 섞인 말투로 뮤지컬을 떠나야 하는 이유들을 말하던 끝에, 경희는 그 남자, 김재철이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최근에 막을 내린 뮤지컬에서 경희의 파트너 역할을 했던 남자 배우라고 했다. 경희의 뮤지컬을 빠지지 않고 보던 나에게도 익숙한 남자 배우였다. 한데 묶은 긴 머리와 양 팔의 근육을 드러낸 화려한 의상을 입고 경희와 호흡을 맞추던 강한 인상의 그를 나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무대에서 경희를 몇 번씩이나 어깨 위로 들어 올리고, 경희의 두 손만을 잡고 몸을 쭉 뻗은 경희를 회전시키는 등의 고난도 동작을 소화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은 서울 공연이 끝나고 시작한 지방 투어 때, 회식이 끝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기 전, 자신에게 입맞춤을 하고 난 다음에야 알았다고 했다.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돌리기에는 그때는 이미 늦었었다고 경희는 고백했다. 경희는 남자의 아내가, 그 공연을 주최한 뮤지컬 회사의 안무가라는 사실은 남자와 조금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 후에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남자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경희는 매일 남자와 공연 연습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묘해. 경희는 남자와 남자의 아내 앞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순간을 그렇게 묘사했다. 미쳤어?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듯이 경희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아내와 나를 부서질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 사이의 중심에 내가 있는 거잖아. 그런 셋을 단원들이 바라보고 있고 말이야. 너와 남자의 관계를 단원들이 알아? 아내도? 알고 있는 것 같아. 경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가 이 극의 주인공이야. * 경희가 뮤지컬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 한정된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뮤지컬에 대한 권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남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경희를 버스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먼저 그 이유를 묻고 싶었었다. 사실 나는 경희가 뮤지컬을 떠난 이유보다 남자와의 관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걸 더 궁금해할 것이라는 것을 경희는 아마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버스에서 사라진 걸까. 나는 오래 경희의 곁에 머물러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의 편에 서있던 순간들은 많지 않았다. 내가 경희에게 던지고 싶던 질문들은 그래서 수거되어야 할 것들이었다. 더 이상 경희에게 닿지 말아야 할 것들이었다. 퇴근 시간 무렵 145번을 탈 때면, 발뒤꿈치를 들고 버스 안쪽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가만히 서서 고개만 돌려가며 사람들 사이 틈으로만 봐서는 경희를 찾아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경희를 다시 만난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 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편을 들어 주는 경희의 목소리가 가끔 환영처럼 들렸다.
  • [하지현의 사피엔스와 마음] 의식하지 않는 즉흥성의 필요

    [하지현의 사피엔스와 마음] 의식하지 않는 즉흥성의 필요

    내년 초에 단행본을 낼 예정이다. 편집자가 초고를 수정해 보내 줬다. 반년 동안 써 내려간 글이 정리가 돼 도착했다. 앞에 쓴 내용이 뒤에 또 나오기도 하고, 호흡도 일정하지 않아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길고, 힘이 떨어져서 성급히 마무리를 하면서 어려워진 부분도 있었다. 이런 점이 전문가의 손을 거치면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팩트 체크를 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출력한 원고를 빨간 펜을 들고 내용을 검토하는 중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나 같으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 부분이다.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히 나답지 않았다. 예를 들어 “끝이 나지 않고 간극은 선명해질 뿐이다”라는 문장인데, 초고를 찾아보니 “끝은 나지 않고 간극은 선명해질 뿐이다”라고 썼었다. 다른 곳에서도 ‘은’과 ‘이’가 미묘하게 바뀐 곳이 몇 군데 있었고, 하나같이 ‘어색한데?’라고 느낀 지점이었다. 예전에 한 소설가가 하루 종일 ‘은’과 ‘이’ 중 고민을 하느라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는 인터뷰를 보고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라고 비웃었는데, 남의 얘기가 아니었던 것이다.나는 흔히 글쓰기를 밑준비는 오래 걸리지만, 한 번 워크를 잡으면 센 불에 단숨에 요리를 해내는 중국요리에 비유한다. 쓸 내용을 준비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한 번 자리를 잡고 앉으면 한 흐름에 최대한 많은 양을 써 내려가야 흐름도 좋아지고, 쓰기 전에는 생각 못했던 새로운 걸 써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게 글쓰기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기억력이나 판단력과는 다른 영역의 작동이다. 어떨 때에는 자판을 두드리는 손가락을 머리가 못 쫓아간다고 느껴질 정도의 무의식적 흐름을 경험한다. 이때 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의 안나 핀호는 다양한 경력의 피아니스트 39명이 즉흥연주를 할 때 fMRI를 찍어 뇌의 활동을 관찰했다. 즉흥연주를 한 경험이 많을수록 전두엽과 두정엽의 실행 능력을 다루는 부위의 활동은 줄어들고, 전두엽 전반의 연결성은 증가하는 것이 관찰됐다. 원숙한 연주자가 즉흥적 연주를 할 때에는 판단하고 계획해서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에 에너지를 덜 쓰고, 대신 뇌의 여러 영역의 연결성을 강화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창조적 시너지를 내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다. 연주자들이 공연할 때 악보를 앞에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의식을 하지 않고 연주하는데, 악보를 신경쓰기 시작하는 순간 연주가 자연스럽지 않아지는 걸 바로 느낀다고 한다. 통제하고 계획하는 영역의 관장이 줄어야 즉흥의 영역이 자유로워져 새로움이 만들어진다. 나 역시 글을 쓸 때에는 조사나 부사의 세세한 차이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지 않고, 평소 느낌과 스타일대로 썼다. 그걸 편집자가 수정을 하면서 본인의 판단으로 몇 군데 교정을 본 것이 내게 어색함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때부터는 글을 읽으면서 작은 디테일에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처음 글을 쓰는 단계가 아니고, 디테일까지도 신경을 써서 오류를 찾고 수정을 하는 시기였기에 더 도움이 되기는 했다. 글을 쓰건, 연주를 하건, 요리를 하건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신경을 쓰지 않고 즉흥적으로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새로운 창조적 결과물을 내는 데 필요하다. 큰 덩어리만 잡아 놓고 나면 나머지는 충분히 익혀 완숙의 경지에 이른 테크닉으로 판단이나 실행의 통제 없이 거의 즉흥적으로 해나갈 수 있어야 프로의 경지라 할 수 있다. 결과물이 나온 다음에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는지 설명할 수 있지만, 만드는 동안은 무의식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아마와 프로의 차이는 그렇게 막 해버려도 될까 하는 망설임과 불안을 넘어서는 것에서 오지 않을까. 다만 즉흥성은 자칫 군더더기가 너무 많아진다는 단점은 있다. 좋은 고깃집에서는 들여온 고기에서 힘줄, 기름을 다 손질하고 난 뒤 손님상에 내놓는다. 불가피한 과정이다. 내 초고 원고도 20%는 사라져 버렸다. 살점이 베이는 느낌이라 차마 본인은 못할 일이지만 훨씬 정갈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새로운 것의 창작은 능숙한 기술에 의한 즉흥을 기반으로 하되 사후에 현실적 조정 과정을 수반해야 하는 것 같다.
  • [달콤한 사이언스] 성(性) 고정관념은 유치원부터 학습된다

    [달콤한 사이언스] 성(性) 고정관념은 유치원부터 학습된다

    요즘은 초등학교 교과서나 교육현장에서도 특정 성역할에 대한 강조를 하지 않고 성평등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는 추세이다. 예를 들어 ‘남성=동적’ ‘여성=정적’ 같은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들은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초등학교가 아닌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학습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러시아 국립고등경제대학 수리경제학자와 사회학자로 구성된 공동연구팀은 27~40세 엄마들과 4~7세 아이가 있는 엄마, 아빠들과 심층인터뷰를 통해 유치원 교사들이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보수적인 생각을 포함한 고정관념을 무의식중에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사회학 및 정책학 분야 국제학술지 ‘사회정치과학 연구’ 21일자에 발표됐다. 성적 인식은 옷, 행동 규범 같은 외부 자극 요인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남자는 거칠고 활동적이며 여성은 친절하고 근면하고, 예술적이다라는 생각과 ‘여자아이들은 분홍색을 좋아한다’는 등의 고정관념이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심층 인터뷰와 기존 연구문헌들의 메타분석을 통해 ‘교사들이 남자아이들에게는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활동적이게 하고 여자아이들은 주의깊고 외모를 깔끔하게 보여야 하며 학구적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유치원 교사들은 여자 아이들에게 음악, 노래, 춤 등을 필수적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부모들도 그들 실제 관심사에 상관없이 딸들에게는 예술적 활동을 많이 시킨다는 설명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직업을 이야기할 때도 소방관이나 운전사 같은 육체적 직업을 이야기할 때는 남자아이들이 주목하도록 하고 여자아이들은 수의사나 선생님 같은 직업에 관심을 갖도록 무의식적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올가 보리소브나 사빈스카 박사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역할놀이를 시키는 것도 무의식적으로 교육적 관습이나 고정관념으로 자리잡게 만든다”라며 “이런 고정관념들은 여자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도록 만들거나 수동적으로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만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도 성역할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나혼자산다’ 전현무, 프레디 머큐리로 완벽 변신 “현장 초토화”

    ‘나혼자산다’ 전현무, 프레디 머큐리로 완벽 변신 “현장 초토화”

    ‘나혼자산다’ 전현무가 퀸 프레디 머큐리로 변신해 화제다. 21일 방송되는 MBC ‘나혼자산다’에서는 기안84 사무실 개업을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무지개 회원들이 새해 운세와 축하 공연으로 안방극장을 뒤집어 놓을 예정이다. 이날 박나래는 무지개 회원들의 2019년 새해 운세를 가져와 큰 웃음을 선사한다. 토정비결을 믿는다고 고백한 기안84가 사업가의 운이 상위에 들 정도로 좋다는 말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지만 연이어 나온 나쁜 운세에 동공지진, 멘붕에 빠진다. 기안84의 운세를 듣던 이시언의 고자질(?)이 세 얼간이를 해체 위기에 빠뜨린다고 해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시언이 평소 헨리에게 말하지 못했던 기안84의 섭섭함을 대신 전달하던 도중 기안84가 무의식중에 밷은 한 마디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무릎까지 꿇었다는 후문. 이어 자신의 캐릭터가 그대로 반영된 무지개 회원들의 축하 공연이 웃음 폭탄을 날린다. 피아노 연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한 헨리의 공연에 이어 준비한 게 없다는 박나래가 더 강렬하고 섹시한 의상으로 갈아입고 기안84를 위한 노래를 불러 대폭소를 유발한다.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이 연출한 전현무의 무대가 무지개 회원들을 초토화 시켰다고 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다. 한편, MBC ‘나혼자산다’는 21일 오후 11시 15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심석희·변천사 선수에 이어…전직 국가대표 주민진 “나도 맞았다”

    심석희·변천사 선수에 이어…전직 국가대표 주민진 “나도 맞았다”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맞았다.” (심석희 쇼트트랙 선수)“머리를 잡고 세게 집어 던졌다.” (변천사 전 쇼트트랙 선수) 용기를 낸 쇼트트랙 선수들의 증언으로 그동안 은폐됐던 빙상계의 뿌리깊은 폭력 문제의 실상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심석희·변천사 선수에 이어 주민진 전 국가대표 선수도 용기를 냈다. 그는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주민진 전 선수는 20일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훈육이 아닌 폭행과 구타를 일삼아온 빙상계의 폭력 문제가 “굉장히 오래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심석희 선수랑 변천사 선수의 말을 듣고 되게 놀랐던 점은, 제가 당했던 폭행하고 너무 비슷했기 때문에 놀랐다”면서 “머리채를 잡아서 흔들다가 던진다거나 발로 찬다든가, 손으로 머리를 계속해서 때린다든가, 독방에 들어가서 혼나고 폭행을 당한다든가 이러한 것들이 굉장히 비슷하다”고 밝혔다. 이런 범죄 행위들이 은폐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주민진 전 선수는 “당시에는 저희가 굉장히 이제 중학생,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을 때이기 때문에 코치, 감독 말이라면 거의 법으로 알고 살았을 때였다”면서 “그래서 ‘외부에 선수촌 안의 일은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 ‘무조건적으로 말하면 안 된다’ 항상 이렇게 말들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도 모른 채, 저희는 꼭 그래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밖에다 그런 안에 있는 일들을 말을 하면 정말 큰일이 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밖에 그런 일들이 알려질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가해자들은 한목소리로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그랬다’고 폭행을 정당화했다. 이런 가해자들의 주장에 주민진 전 선수는 “그 당시에 그렇게 폭행을 당하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냈던 선수들도 있다. 꼭 폭행을 당했다고 해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면서 “좋은 성적을 내던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선수 생명이 끝난 선수들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폭행을 당하는 것과 성적과는 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맞섰다. 빙상계 감독들과 코치들의 선수 폭행이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의 죄는 무지가 아닌가 싶다”면서 “세대가 변하면서 코치, 감독은 당연히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데 (중략) 공부를 하지 않고 무조건 많은 훈련 양과 그냥 한번 때리면 따라오는, 폭력을 행사하는 예전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그 외에 더 좋은 훈련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것을 그대로 계속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때 대표팀 코치를 지내기도 했던 주민진 전 선수는 “어떠한 폭력은 다 대물림이 되는 것 같다. 선수들을 가르칠 때 항상, 저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제가 맞았던 일들이 불쑥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면서 “똑같이 되지 않으려고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다. 폭력은 대물림이 되는 거고 끊어버리기가 쉽지 않은 거라서 굉장히 많이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나혼자산다’ 전현무 머큐리 뜬다 “기안84 개업식 초토화”

    ‘나혼자산다’ 전현무 머큐리 뜬다 “기안84 개업식 초토화”

    예고편에 등장해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프레디 머큐리’ 전현무의 모습이 드디어 공개된다. 21일 방송되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는 기안84 사무실 개업을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무지개 회원들의 새해 운세와 축하 공연이 공개된다. 박나래는 무지개 회원들의 2019년 새해 운세를 가져와 큰 웃음을 선사한다. 토정비결을 믿는다고 고백한 기안84가 사업가의 운이 상위에 들 정도로 좋다는 말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지만 연이에 나온 나쁜 운세에 동공지진, 멘붕에 빠진다. 또 기안84의 운세를 듣던 이시언의 고자질(?)이 세 얼간이를 해체 위기에 빠뜨린다. 이시언이 평소 헨리에게 말하지 못했던 기안84의 섭섭함을 대신 전달하던 도중, 기안84가 무의식중에 내뱉은 한 마디로 큰 파장을 일으키며 무릎까지 꿇었다는 후문. 이어 자신의 캐릭터가 그대로 반영된 무지개 회원들의 축하 공연이 웃음 폭탄을 날린다. 감미로운 피아노 연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한 헨리의 공연에 이어 준비한 게 없다는 박나래가 강렬하고 섹시한 의상으로 갈아입고 기안84를 위한 노래를 불러 대폭소를 유발한다. 특히 요즘 핫한 밴드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똑같이 연출한 전현무의 무대가 무지개 회원들을 초토화 시켰다고 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하고 있다. 금요일 밤의 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할 무지개 회원들의 장기자랑은 내일(21일) 밤 11시 15분에 방송되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도경수 “저도 몰랐어요, 춤출 때 그렇게 웃는지”

    도경수 “저도 몰랐어요, 춤출 때 그렇게 웃는지”

    살벌한 전쟁터에서도 청춘의 꿈과 내일의 희망은 자라는 법이다. 강형철 감독이 영화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신의 손’에 이어 네 번째로 선보이는 장편 ‘스윙키즈’(19일 개봉)는 1951년 한국전쟁의 한복판에서 춤을 통해 행복을 찾고자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주연을 맡은 배우 도경수(25)는 서로를 겨누는 총 대신 그저 리듬에 자신을 맡기고 싶었던 북한 병사 ‘로기수’를 연기했다. 북한군·중공군 등 포로들로 구성된 댄스팀 ‘스윙키즈’의 메인 댄서로서 ‘미제 춤’인 탭댄스를 배우며 춤의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인물이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와 영화 ‘카트’, ‘신과 함께’ 등에서 정서적으로 불안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연기했던 도경수는 이번 작품에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포로들 사이에서 추앙받는 리더로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이내 순수한 어린 아이처럼 환하게 맑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도경수는 “제 안에 있는 장난스러운 모습, 남자답고 호기로운 모습은 지금까지 보여드리지 않아서 그런지 ‘로기수’라는 캐릭터에 엄청 끌렸다”면서 “이상과 현실이 다른 상황에 처한 청춘이 내뿜는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점도 이 영화를 꼭 하고 싶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스윙키즈’는 한국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시나리오의 3분의 1 이상이 음악과 춤 장면으로 이루어졌다. 도경수는 댄스단 ‘스윙키즈’의 멤버 중 가장 많은 분량의 탭댄스 장면을 선보인다. 특히 과거 브로드웨이 무대를 누비던 탭댄서이자 댄스단을 결성한 미군 하사 잭슨(자레드 그라임스)과 일대일로 탭댄스 실력을 겨루는 장면에서 고난도의 동작도 무리없이 소화한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디오(D.O.)로 파워풀한 칼군무로 단련된 그에게도 탭댄스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캐스팅 확정되고 촬영 하기 전 5개월간 탭댄스를 배웠어요. 극 중 로기수가 탭댄스의 리듬이 자꾸 떠올라서 쉽게 잠을 못 이루는 장면이 있는데 저도 자기 전에 탭댄스만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지금까지도 무의식중에 발을 두드리는 습관이 있는 걸 보면 ‘많이 연습하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직접 해보니까 탭댄스는 하나의 악기 같더라고요. 손으로 드럼을 치듯이 발로 바닥을 두드리고 스스로 박자를 만드는 게 매력 있어요. 유산소 운동으로도 제격이고요.(웃음)”도경수는 극 중 로기수가 영국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를 배경으로 춤추는 모습을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로기수가 수용소에서의 갑갑한 현실을 잠시 잊고 춤에 대한 끓어오르는 열정을 몸으로 발산하는 장면이다. “감독님께서도 제게 ‘너가 알아서 표현해보라’고 말씀하신 장면이에요. 촬영하면서 해방감을 느꼈고 스트레스도 진짜 많이 풀었어요. 제가 춤출 때 그렇게 웃는지도 처음 알았고요. 그동안에는 짜여진 안무를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제가 잘 할 수 있는 춤을 춘 느낌이었어요. 예전에는 촬영장에서 긴장을 많이 해서 선배들 눈도 못 쳐다볼 정도였는데 지금은 뭐든 재밌어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제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겠죠.” 그간 다양한 배역을 맡으며 연기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온 도경수는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을 계기로 중장년 팬까지 사로잡았다. “10~20대들이 엑소의 디오를 많이 알아본다면 이제는 어머니들도 저를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최근에 팬들께 사인을 해드릴 때 ‘누구누구 어머니’라고 쓰는 경험을 많이 해요. 행복한 경험이죠. 앞으로도 저의 연기를 보시는 많은 분들에게 에너지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 나이대에 도전할 수 있는 캐릭터라면 어떤 것이든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멜로든 누아르든 휴먼드라마든 상관없이요.”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프리스트’ 연우진, 정유미 향한 이상한 감정들 “천벌 받을..”

    ‘프리스트’ 연우진, 정유미 향한 이상한 감정들 “천벌 받을..”

    ‘프리스트’ 연우진이 정유미에게 보이는 이상한 감정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OCN 토일 오리지널 ‘프리스트’(극본 문만세, 연출 김종현, 제작 크레이브웍스, 총 16부작)에서 악령을 구마하는 엑소시스트와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 만난 오수민(연우진)과 함은호(정유미). 지난 방송에서 와인과 코코아라는 두 사람 사이의 공통점과 함께 8년 전 기억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처럼 아직 베일에 싸인 두 사람의 과거 인연에 대한 떡밥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가운데, 오수민이 함은호를 향해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내보여 시청자들의 의심을 사고 있다. 오수민에게 함은호는 “성깔 있는 의사”, “똥고집”, “독한 여자”로, 그녀를 설득하는 것보단 “차라리 악령을 없애는 게 빠르겠다”고 생각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함선생 곁에서 잘 지키라”는 문기선(박용우) 신부의 명령에 언제나 툴툴거렸다. 그러나 함은호의 레지던트 후배 송미소(박정원)가 부마 증세로 그녀를 공격하려고 할 때도, 함은호가 의국에서 잠을 자다 폴터가이스트 부마자 서재문(연제욱)이 자신을 감시하는 악몽에 소리를 지르며 깼을 때도, 가장 먼저 나타나 함은호를 도왔던 건 오수민이었다. 서재문으로부터 함은호를 피신시키기 위해 “사귀는 거 아니면 적어도 썸타는 관계”라고 생각했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정태현(이동하)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 오수민. 휴가계를 낼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는 오수민에게 정태현은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재미있네요. 신부님께서 내비치는 감정들 말입니다. 함선생에 대한 과도한 걱정, 관심, 경계, 질투, 보통 이런 게 연적 같은 사이에서 드러나는 감정인데, 제 착각이겠죠?”라고. 오수민은 “신부님한테 그런 농담하면 천벌 받습니다”라며 웃어넘겼지만, 그냥 묵과할 수만은 없었다. 오수민의 머릿속 역시 무의식 속에서 만난 ‘웨딩드레스를 입은 함은호’에 대한 잔상 때문에 복잡했기 때문이다. 이후 함은호는 휴가를 내고 신미연(오연아)의 갤러리로 향했지만, 강한 집착을 보이던 서재문의 협박으로 인해 병원으로 다시 돌아갔고, 이를 눈치챈 오수민과 문신부는 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서재문이 있던 기계실에 도착한 뒤,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의해 몸이 결박됐고, 그 사이를 틈타 서재문은 함은호를 향해 “내 여자”라며 다가갔다. 함은호는 공포에 휩싸였고, 오수민은 “그만해!”라고 소리치며 분노에 차올랐다. 계속해서 함은호에게 보이는 이상한 감정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본방송에 앞서 공개된 7회 예고 영상(https://tv.naver.com/v/4736759)에서 잃어버린 8년 전 기억을 되찾으려는 함은호. 이를 통해 드러날 두 사람의 과거 인연에 귀추가 주목된다. ‘프리스트’ 제7회, 오늘(15일) 토요일 밤 10시 20분 OCN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프리스트’ 측 “연우진·정유미, 더 강력해진 악령과 마주한다”

    ‘프리스트’ 측 “연우진·정유미, 더 강력해진 악령과 마주한다”

    ‘프리스트’ 에 더욱 강력해진 악령의 등장이 예고됐다. 이번에는 강한 집착을 보이는 부마자로 인해 연우진과 정유미를 비롯한 634레지아가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다. OCN 토일 오리지널 ‘프리스트’(극본 문만세, 연출 김종현, 제작 크레이브웍스, 총 16부작) 지난 방송에서 응급실 에이스 의사 함은호(정유미)의 레지던트 후배 송미소(박정원)의 무의식 구마에 성공한 오수민(연우진). 무의식 속에 숨어있던 몽마를 쫓아냈고, 머리카락과 이가 빠지는 등 신체적 붕괴 현상까지 겪으며 공포에 휩싸였던 송미소는 웃음을 되찾았다. 오히려 착하고 성실했기 때문에 악령에 씌었다던 송미소는 전문의가 되기 위한 전력 질주를 잠시 멈추고 “살아야겠다”며 휴가를 신청했다. 이렇게 평화를 되찾은 듯 싶었던 남부가톨릭병원. 그러나 악령의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오늘(8일) 본방송에 앞서 공개된 예고 영상에서 더욱 강력해진 새로운 부마자로 보이는 인물이 등장한 것. “전, 재문씨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라는 함은호와 마주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부마자나 악령이 강한 집착을 보일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오수민과 “더 위험한 존재가 될게 분명해”라는 문기선(박용우) 신부의 설명이 이어졌다. 무슨 이유에선지 불안에 떨던 그 남자는 어느 순간 악마의 눈빛으로 돌변, 오수민과 문신부, 그리고 634 레지아 단원인 구도균(손종학), 신미연(오연아), 정용필(유비)을 위기에 빠트렸다. 함은호 역시 친자매처럼 지냈던 수간호사 차선영(강경헌)이 의식 불명에 빠져 정신이 붕괴된 상태였다. 제작진은 “오늘(8일) 밤, 더욱 강력해진 악령이 새로운 능력을 가지고 등장할 예정이다. 본적 없는 강력한 부마 증상에 오수민, 함은호, 문기선이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한다”고 예고하며, “점점 더 거세지는 악령의 힘과 맞서 싸우며, 더욱 쫄깃한 전개를 선보일 ‘프리스트’ 본방송과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OCN 주말드라마 ‘프리스트’는 8일 오후 10시 20분에 방송된다. 사진제공 = ‘프리스트’ 예고 영상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긍정으로 춤추는 kt ‘양궁 농구’

    긍정으로 춤추는 kt ‘양궁 농구’

    “4쿼터에 부정적 언어를 사용하면 팀이 무너집니다.” 강경두(39) kt 심리 주치의가 발급한 진단서다. ‘슛 난사를 하지 마라’, ‘수비를 느슨하게 하지 마라’는 식의 부정적 지시를 선배들로부터 받으면 특히 젊은 선수들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똑같은 말이라도 ‘외곽을 쏠 때 리바운드도 준비하자’, ‘너도 저 선수를 잘 막을 수 있다’는 식의 긍정적 언어를 늘려야 한다. 강 주치의의 고민은 지난 시즌 경기 막판만 되면 무너지던 팀 분위기였다. 지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주효했을까. 4쿼터 득점이 지난 시즌 리그 8위(평균 19.9점)에서 올 시즌 3위(20.6점)로 개선됐다.‘심리 주치의’는 한국 프로농구에서는 아직 낯선 보직이다. 팀 내에 선수들을 전담하는 심리 주치의를 둔 것은 남자프로농구 10개 팀 중 kt가 처음이다. 국가대표나 프로야구 선수들 사이에서는 심리 상담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프로농구는 상대적으로 구단 몸집이 작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은 외부 상담원을 비정기적으로 초빙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강 주치의는 지난 6월부터 팀에 합류해 선수들과 호흡하고 있다. 중앙대 의과대학 외래교수인 데다 개인적으로는 심리치유센터 소장도 맡고 있어 매일 바쁘지만 수도권이나 부산에서 열리는 kt의 경기에는 반드시 함께한다. 경기 전날 선수들이 묵는 호텔에서 같이 하룻밤을 보내며 고민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튿날 훈련과 경기 때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강 주치의는 경기 중에 코칭스태프 유니폼을 입고 벤치에 있기 때문에 교수님이라기보단 ‘농구인’처럼 보인다. 스스로를 ‘농구광’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애정이 많아 빨리 팀에 스며들었다. 가끔 선수들과 자유투 내기도 한다. 경기 도중에는 벤치에서 선수들의 표정과 제스처를 ‘매의 눈’으로 관찰한다. 얼굴을 찡그리거나 머리에 손을 올리는 등의 작은 표정 변화와 행동을 놓치지 않는다. 경기가 잘 안 풀리고 있다는 무의식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경기 도중 이런 포인트를 파악해 하프타임 때 라커룸에서 해당 상황에서 뭐가 좋고 나빴는지 선수와 이야기한다”고 한다. 반대로 경기가 잘 풀릴 때는 선수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마련이다. 감독 지시에 더 집중력을 보인다. 서동철 감독은 “선수들의 고민을 감독이나 코치가 치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선수들이 심리 주치의 상담 도움을 받아 경기에 더욱 집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예전에는 ‘헝그리 정신’으로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요즘 선수들에게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 심리 상담이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상담 내용은 철저히 비밀로 한다고 한다. “심지어 감독님에게도 안 알려줍니다. 그렇다보니 선수들이 경기와 관련된 것뿐 아니라 연애 문제나 가정사까지도 편하게 털어놓는 편이죠.” 지난 시즌 꼴찌였던 kt의 성적은 현재 2위(12승6패)로 수직 상승했다. 서 감독 특유의 ‘양궁 농구’와 맞물려 어떤 시너지효과를 낼지 주목된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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