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무용지물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고시원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출연금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상한가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 적십자사
    2026-03-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27
  • [9·19 공동성명 이후] 핵폐기·경수로 일정 11월회담 구체논의

    |베이징 김상연특파원|19일 타결된 북핵 6자회담 공동성명은 원칙적인 수준의 합의내용을 담고 있어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궁금증을 문답식으로 알아본다. ▶공동성명은 언제부터 이행되나. -이번 합의는 선언적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인 이행계획 수립과 이행은 11월에 열리는 5차회담에서 논의하게 된다. 따라서 북한이 지금 당장 핵을 폐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 미국은 성명 타결 직후 북한이 영변 원자로의 가동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우리 정부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입각, 가동 중단을 강요하긴 힘들다고 보고 있다. 다만 신뢰회복 차원에서 북한 스스로 가동을 중단하길 바라는 눈치다. ▶과거의 사례에 비춰 공동성명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상황이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나. -물론 어느 한쪽이 합의 파기를 선언하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공동성명 안에 나름대로 ‘안전장치’가 있는 만큼 어느 일방이 큰 흐름을 되돌리긴 힘들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북한의 핵 폐기와 경수로 제공의 순서는 어떤 게 먼저인가. -공동성명은 이것을 명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논란이 되고 있다. 성명 타결 후 각자의 해석을 들어보면, 한·미는 북한의 핵 폐기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고 북한은 핵 폐기와 경수로 제공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대북송전과 경수로 가동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나. -공동성명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우리 정부의 해석은, 상식적으로 대북 송전과 경수로 가동이 겹칠 수는 없다고 본다. 송전은 지금 가동이 중단돼 있는 신포 경수로의 대체개념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경수로가 제공된다면 대북송전은 중단된다는 논리다. ▶공동성명에 명시된 ‘평화체제’는 어떤 방식으로 언제 논의되나. -6자회담의 틀에서 논의되는 것은 아니다. 별도의 장소에서 한다. 논의 시기는 다른 한반도 현안과 맞물려 갈 것으로 보인다. ▶공동성명에는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고 돼 있는데, 결과적으로 논의만 하고 안줄 수도 있는 건가. -각도에 따라서는 모호한 해석도 나올 수 있지만, 우리 정부는 제공을 전제로 한 논의라는 데 이견이 없다고 강조한다. ▶공동성명이 나온 이상, 앞으로는 6자회담의 하위기구가 주로 실무적인 현안을 다루게 되나. -그렇지 않다. 당분간은 현재의 수석대표를 중심으로 한 6자회담의 틀에서 논의하게 된다. ▶이번에 미국이 북한에 많은 양보를 했다고 볼 수 있나. -미국이 극구 거부했던 ‘경수로 제공’이 공동성명에 포함됐고 여러 다양한 대북 지원들이 명시됐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에 비해 많이 양보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한이 핵 폐기를 약속한 것 자체도 큰 양보이며, 결국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를 했다고 판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해석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의 1차 공동성명과 이번 공동성명 중 어떤 것이 더 진일보한 것인가. -그때 상황과 단순 비교하긴 힘들다. 당시 국제정세와 북·미관계, 핵의 심각성 등이 지금과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는 ‘동결’이 합의사항이었고 지금은 ‘폐기’를 합의했다는 점에서 보면, 이번이 더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 carlos@seoul.co.kr
  • 신들의 땅, 히말라야를 품다

    신들의 땅, 히말라야를 품다

    마음 속의 찌든 때까지 모두 버릴 수 있는 땅, 히말라야에 대한 기대는 여행을 넘어섰다. 그러나 신들이 살고 있다는 거대한 산을 첩첩이 품고 있는 히말라야는 좀체 인간의 발길을 허락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더욱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한해 히말라야로 가는 국내여행객도 1만명을 넘어섰다. 자연을 경배하고, 욕심과 분노덩어리인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히말라야는 트레킹마니아들의 천국이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과 얼음, 드넓은 초원과 에메랄드빛 빙하가 흘러내린 호수, 야생화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셰르파족 등…. 히말라야에서 지낸 20여일은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글·사진 히말라야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서,‘히마’는 빙설(氷雪),‘말라야’는 살고 있는 곳, 즉 ‘눈의 거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쿰부 히말라야(KHUMBU HIMALAYA)는 히말라야산맥(약 2800km)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가 우뚝 솟은 지역 일대를 말한다.원래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영국인이었던 측량국 관리의 이름을 본떠서 붙인 이름으로서 네팔어 정식 명칭은 사가르마타(SAGARMATHA)이다. ■ 마칼루·바룬 - 쿰부히말라야 26일간 대장정에 오르다 에베레스트의 이름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란 권위가 담겨있다. 높이에 대한 감탄뿐이 아니라 범접하기 어려운, 우러르는 마음을 갖지 않고선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경외감까지 포함돼 있다. 또한 로체, 마칼루, 초오유 등 8000m이상의 산들이 즐비한 지역으로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꿈, 그리고 죽음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전문 산악인들만을 위한 산은 아니다. 이곳에도 초등학생부터 70세의 어르신들까지 히말라야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히말라야의 또다른 미덕이다. 배타적이지 않은, 열려있는 산 히말라야가 오라고 손짓해서, 그래서 떠났다. ‘동네 뒷산처럼 쉽게 갈 수 있다’는 쿰부 히말라야코스, 산에 다녀 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가는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코스 등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전국 대학과 고등학교 산악부원 12명, 해외원정 경험이 많은 단장, 대장, 지도위원 4명. 그리고 1년에 고작 한두번 뒷산에 오르는 나까지 모두 16명으로 구성된 ‘2005 한국청소년오지탐험’ 마칼루팀은 7월23일, 서울을 떠났다. 우리팀은 히말라야 지역을 한바퀴 도는 트레킹을 계획했다. 히말라야에 머무는 날은 20일정도, 오가는 비행길까지 포함해서 26일간의 여정은 시작됐다. 옛날 광부들이 다니던 길로 5000m의 패스(고개)를 2개나 넘어야 하는 준전문가들용 코스인 마칼루와 바룬지역을 지나, 일반인들의 여행코스인 쿰부히말라야쪽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여기에서 하이라이트는 전문가들이라야 갈 수 있다는 6461m의 메라피크 등반이었다. 산을 전문적으로 타는 산꾼들과 함께 히말라야로 떠나게 된 초보의 심정, 막상 떠나려니 가슴이 무겁고 두려웠다. 준비할 것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장비는 3년된 등산화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히말라야를 향한 꿈을 접고 싶지는 않았다. 장비를 구입하고, 빌렸다. 사용법도 모른 채 장비를 카고(등산용 커다란 가방)에 쑤셔넣고 떠났다. ●아름답고 낯선 관문 루클라 히말라야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국내공항에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날개 양쪽에 프로펠러가 있는 장난감 같은 20인승 경비행기에 올라 루클라로 향한다. 가뿐하게 하늘로 날아 오른 비행기는 몇 번을 날라가다 뚝 떨어지고 옆으로 밀려가는 통에 자이로드롭을 탄 듯하다. 마음을 졸이며 50분을 날아 루클라 비행장에 도착했다. 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비행장으로 서울의 편도 4차선 크기의 달랑 하나뿐인 활주로가 눈에 띄었다. 경사가 15도 정도 기울어져 착륙을 돕는다. 반대로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가며 이륙한다. 활주로 끝은 천길 낭떠러지, 아찔했다. 이렇게 도착한 비행장은 내전 때문에 가 제법 삼엄하다. 아직도 포카라지역은 마오이스트들(마오쩌둥을 추종하는 무리)이 제법 많아 정부군과 교전이 잦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총멘 군인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손에 잡힐 듯한 산들, 어디선가 쏟아지는 물소리, 파란 하늘과 구름들. 히말라야의 첫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후에 접어들자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내린다. 별을 보며 저녁산책을 하리라는 꿈을 접고 롯지(산장)에 앉아 창문을 거세게 때리는 비구경을 했다. 히말라야는 9월말까지 몬순기간이라 거의 매일 비가 온다. 내리는 비를 뚫고 산을 오를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마침 셰르파가 다가왔다. 이름은 왕추, 나이는 31살.5명의 셰르파와 60여명의 포터의 대장인 ‘사다´로 에베레스트를 무려 8번이나 올라갔단다. 내 걱정을 알겠다는 듯 그는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잠자리에 들라.”고 말해줬다. 산사나이의 말을 믿고 습기로 축축한 침대에 올랐다. 두런두런 사람들의 이야기소리에 잠을 깼다. 먼저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럴 수가. 간밤의 오던 비는 꿈이었던가. 파란 하늘이 내 눈으로 빨려 들어온다. 아침을 먹고 드디어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딛는다. ●오후만 되면 비내리는 몬순의 고산지대 우리는 쿰부히말라야 일반적인 트레킹코스와 반대로 간다. 마칼루와 바룬지역으로 해서 쿰부히말쪽으로 돌아서 루클라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다. 마칼루와 바룬지역은 한국사람으로서는 우리가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루클라부터는 을 해야 한다. 휴대전화는 물론 전화, 전기도 들어 오지않는다.(큰 롯지에만 자가발전기를 쓴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도 무용지물이다. 가진 자나 그러지 못한 자 할 것 없이 공평하게 오직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걸었다. 여기서는 우리의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포터나, 집을 고치기 위한 나무를 지고 가는 주민들처럼 우리도 히말라야를 한발 한발 내디디며 마음이 아닌 온몸으로 히말라야를 느껴간다. 루클라를 떠난 지 1시간이 지나자 스티마 쿠알라계곡으로 들어섰다. 그곳의 자연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집채만한 바위 위를 파랗게 덮고 있는 이끼. 조그만 씨앗 하나가 몇백년동안 저렇게 바위에서 자신의 몸집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그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콸콸콸’하고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엄청난 양의 물에 압도당한다. 그런데 이곳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다.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스틱에 의지하며 건너간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찌릿찌릿’전기처럼 다가오는 차가움. 몇 발을 떼자 아예 통증이 된다. 루클라를 떠난 지 4시간30분만에 캠프사이트인 추탕가에 도착했다. 첫날인데 벌써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가 되니 비가 내린다. 몬순기간에 고산지대는 오후가 되면 기온이 상승하며 구름을 만들어 비가 내리고 새벽에는 기온이 내려가 날씨가 맑아진다. 히말라야에 머문 20일 동안 단 이틀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은 날씨였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은 봄과 가을이 제철이다. 비로 눅눅해진 텐트에 몸을 눕혔다.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 고소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고소’, 즉 고산병이다. 고도를 갑자기 올리는 것이 원인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생긴다. 몸속에 산소가 부족해서 혈액순환이 저하돼 두통이나 소화불량, 불면증, 무기력증, 손발 저림, 실어증 같은 것을 동반하며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소증세는 단 몇백m만 아래로 내려가도 언제 그랬냐 싶게 씻은 듯이 낫는단다. 그래서 일반적인 트레킹에서는 고소적응 기간을 두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지만 우리는 짧은 일정탓에 바로 4000m이상 올라 갔다. 4610m의 체트라고개를 넘어 4300m의 틸리 카르카에서 캠핑을 한다.3시간을 걷자 3910m까지 올라갔다. 앞에는 하얀 봉우리를 날카롭게 드러낸 커리륭이라는 7500m의 산과 여기저기 부서져 있는 바위들, 파란 초지, 이름 모를 야생화까지.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4000m를 넘자 이젠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아니 이 숨막히게 한다. 가도 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셔터를 누를 때 숨을 잠시 멈추면 바로 ‘헉헉’하고 몇 번 숨을 몰아 쉬고 걸어야 한다. 사진 한장 찍는 것이 고통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배낭에 넣어버렸다.1시간 전에 웃고 떠들던 대원들도 단한마디 말이 없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양사헌의 시조가 생각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그래 가자 가. 그렇게 5시간을 넘게 오르자 체트라정상에 섰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이름모를 산들. 마치 양탄자처럼 떠 다니는 구름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체트라 정상 구석에서 덩치가 제일 큰 원준희(춘천대 3)대원이 하얗게 변한 얼굴로 구토를 한다.“괜찮아?”하고 묻자 손만 내저을 뿐, 말을 하지 못한다. 몇 명의 대원들이 고소로 정신을 못 차린다. 말로만 듣던 고소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수천년 이어져온 자연의 힘 너덜지대를 걷는다. 돌들이 바닥에 깔려 있는 지대로 평지보다 걷기가 힘들다. 돌을 밟고 미끄러져 한바퀴 구른다. 아예 일어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어떻게 4000m가 넘는 곳에 이렇게 돌들이 많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바람에 날려 왔을 리도 만무하고…. “이게 자연의 힘이에요. 여름에 물기를 머금은 바위산이 겨울에 얼면서 갈라져 저렇게 커다란 바위가 생기고 또 바위가 여름에 물기를 머금고 겨울에 팽창을 하는 물 때문에 갈라져 이런 바위 너덜지대가 생겨요. 수 천년동안 이런 현상의 반복으로 바위가 없어지기도 해요.”라고 옆에 있던 서병란(43)지도위원이 대원들에게 설명한다. 자연의 위대함에 머리를 숙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4시 캠프사이트에 도착했다. 오늘 무려 9시간을 걸었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 좀 할 걸. 때늦은 후회가 가슴을 친다. 서울 가면 반드시 운동하리라, 지키지 못할 맹세도 했다. 간밤에 내리던 비도 어느덧 멈추고 그토록 괴롭히던 고소도 상당히 좋아졌다. 오늘은 3690m로 내려가 모솜 카르카에서 캠핑을 한다. 변변한 길도 없이 하루종일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정말 때묻지 않은 자연이란 말은 이럴 때 어울린다. 커다란 고목이 쓰러져 있고 고목을 뒤덮고 있는 이끼들을 보니 정글에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다. 고도를 내리자 고소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4356m의 탕낙을 지나 5045m의 카레캠프까지 걷고 또 걸었다. 이젠 5000m를 넘어서자 기온이 달라진다. 날씨가 초겨울 날씨같다. 이젠 5400m의 메라베이스 캠프다. 가파른 오르막과 험준한 산을 넘는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터져나가는 것 같다. 확실히 산소가 희박해짐이 느껴진다. 호흡을 일정하게 가지고 가야 한다. 간혹 기침을 한번 하면 자리에서 서서 숨을 고르고 가야한다. 사진을 찍는 것뿐 아니라 수통에 있는 물을 마시기조차 힘들다. 아니 0.1초라도 숨을 멈추고 있으면 바로 죽어버릴 것 같다. 모 등산화광고에서 엄홍길씨가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숨을 몰아 쉬는 것을 보고 연기인 줄 알았는데,5000m를 넘어서자 비로소 그 장면을 이해하게 된다. 3시간을 걸으니 이젠 거대한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메라라’ 라는 만년설로 덮힌 언덕. 보는 순간 그 거대함에 압도당한다. 안전을 위해 등산화를 벗고 이중화와 안전띠를 착용한다. 난생 처음 신어 보는 이중화. 스키부츠와 비슷하다. 겉면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설산에서 며칠을 있어도 방수가 완벽해 동상을 막아주는 신발이다. 그러나 정말 무겁다. 거기에 아이젠을 끼웠다. 그리고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띠를 착용하고 자일을 잡고 메라라를 오른다. 이마에 땀이 흐른다. 숨은 가쁘지만 가슴이 뻥 뚫린다. 몸속에 있는 독소와 스트레스가 히말라야의 기운으로 바꿔 채워진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날 것 같다. 수천만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거대한 얼음절벽 위에 서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베이스캠프에서 메라픽 정상을 가는 길과 홍구를 거쳐 추쿵을 가는 갈림길이다. 어디를 갈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히말라야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메라 베이스캠프부터 홍구, 판치 포카리까지는 거의 평지이며 바위 너덜지대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고비인 5800m의 암푸랍체가 우리를 기다렸다. 더구나 눈까지 내려 생각보다 힘들었다.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힘들다는 말이 실감난다. 길이 좁고 눈이 계속 내렸기 때문에 미끄러운 암푸랍체의 하산길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았다. 이제부터는 정말 편안한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는 쿰부히말라야다. 히말라야 마을 중 가장 오지이며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4730m의 추쿵. 왼쪽으로 8500m의 로체, 정면에는 6160m의 아일랜드피크, 오른쪽에는 6812m의 아마다블람은 거칠고 황량하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움을 만들어 낸다. ‘어머니의 목걸이’라는 뜻을 가진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의 보석으로 불린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길게 늘어선 하얀 허리를 가지고 있는 산. 그 선이 매우 날카롭지만 웅장하고 고왔다. 역시 많은 산사나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손 꼽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보는 일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지만 추쿵은 셰르파족이 사는 마을이 아니다. 몇 개의 롯지가 모여 트레킹족의 안식처가 되는 곳이다. 이제 진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향한다. 여기 추쿵부터는 일반인들이 쉽게 트레킹을 하는 곳이다. ●히말라야 하이웨이 추쿵부터 루클라까지를 히말라야에선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고속도로란 뜻이다. 길이 잘 이어져 있고 마을을 거쳐가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오갈 수 있다. 일단 여기부터는 롯지가 계속 있고 마을에 가게도 있어 콜라며 맥주, 과자 등을 사서 먹을 수 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일단 300루피(약 70루피가 1달러. 한화로 4000원)를 주고 시원한 산미구엘 맥주를 사서 한 모금을 마셨다.‘우∼ 세상에 맥주가 이런 맛이었나. 이렇게 맛있다니’ 히말라야에서 먹는 맥주는 입에 쫙쫙 붙는다. 어제와 오늘은 단순한 하루 차이지만 나의 느낌은 지옥과 천당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걷기도 편하다. 집들이 이어지고 돌담이 쳐진 밭에서는 감자와 보리들이 자라고 있다. 정말 즐거운 트레킹이다. 이제 며칠동안 햇빛을 못 본 카메라를 꺼내 사진도 찍을 만큼 마음도 몸도 여유가 생긴다.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트레킹족들은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히말라야를 다녀온 것인데, 나는 지옥훈련을 택한 셈이다. 2시간을 걷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올라가는 딩보체가 닿는다. 마을 입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라마의 문구를 새겨 놓은 돌을 쌓아서 만든 돌탑인 스투파. 포터들은 발길을 멈추고 스투파에서 기도를 하고 지나간다. 셰르파족인 그들은 그렇게 고단하고 힘든 삶을 이겨간다. 우리들이 감히 엄두도 못내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아무 욕심없이 라마교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고 있다. 머리에 40㎏의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다니는 락기리(17) 또한 아버지의 직업인 포터를 대물림하며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아무리 고산지대에 사는 셰르파족이라도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다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슬리퍼를 신고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오는 락기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해한다. 자연에 순응할 줄 알고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그들의 인생은 우리의 잣대로 가르는 것은 옳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소년 락기리가 좀더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살기를 빌었다. ●희망의 깃발이 나부끼는 곳 딩보체, 팡보체를 지나 탕보체 가는 길에 히말라야의 웅장한 산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바로 험준한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이 지역을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길고 짧은 다리를 만난다. 그런데 다리에 여러 색깔의 깃발이 걸려있다. 처음에는 ‘멋으로 했겠지.’하고 지나쳤지만 다리마다 걸려 있는 오색천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곳 사람들은 다리를 신성시하여 카타와 룽다(기도 깃발)를 걸어놓는 것은 물론 지날 때마다 ‘부디 하는 일 잘 되고 가족 모두 아무 탈 없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오늘도 사람들의 희망과 바람을 가득 담은 오색깃발은 바람에 따라 춤을 춘다. 3860m의 탱보체는 라마사원으로 유명하지만 에베레스트, 로체, 아마다블람 등 유명한 산들을 같은 방향에서 조망할 수 있는 히말라야의 전망대이다. 또한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도 후원을 한다는 티베트사원인 콤파를 만나게 된다. 탕보체의 콤파에는 많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콤부히말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화재로 사원이 전소되었다가 붉은색 벽돌로 다시 지었지만 중후한 분위기와 차분함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는 제1전망대에서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일정상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남체 바자르로 향했다. 계곡의 물소리 정겨운 작고 아담한 마을, 우거진 숲.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쿰부히말라야의 명동 쿰부히말라야의 제일 번화가는 당연히 남체 바자르다. 해발 3440m에 위치한 쿰부 히말라야의 상업적 요충지이며 등반과 트레킹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곳이다. 또 이 마을은 매주 토요일마다 장이 열린다. 쿰부히말라야에 사는 모든 셰르파족들이 생필품을 여기서 구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시장과 상점들이 모여있는 지역으로 빵집과 레스토랑, 클럽, 당구장 등이 밀집해 있어 깊은 히말라야의 산중이란 생각을 잠시 잊게 만든다. 이 마을 뒷산 꼭대기에는 히말라야의 설산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네팔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도 있다. ●그래도 새벽은 온다. 이번 탐사의 하이라이트는 메라피크 정상에 서는 것이다. 메라피크는 해발 6461m로 히말라야 트레킹피크 중에서 제일 높다. 윤대장이 은근히 나를 떠본다.“베이스에서 쉬시지?”내가 등반대장이라 해도 걱정이 되겠다. 장비라고는 제대로 된 것 하나 없지, 자일을 타 보길 했나, 설산 경험이 있나. 하지만 나는 큰소리쳤다.“해발 6000m, 자신있습니다.” 큰소리 지만 긴장과 두려움으로 뒤척이다 새벽을 맞았다.5800m의 메라 하이캠프로 올라간다.3명의 대원은 고소가 심해 베이스에 남았다. 눈부신 설원을 밟으며 걷는 대원들을 뒤에서 보고 있노라니 마치 파란 하늘을 향해 걷고 있는 천사들 같다. 하얀 천국의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온통 하얀색뿐이라서 그런지 1시간을 걸었는데도 제자리인 것 같다.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오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일단 하이캠프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무거운 다리를 옮겼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다음날 새벽 2시.8명이 정상으로 향했다. 서로 몸을 자일로 묶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며 오르기 시작했다.8명중 4번째 내가 섰다. 앞뒤 사람과 보조를 맞춰야 걸을 수 있다. 내가 못가면 앞뒤 사람이 다 못간다. 처음 1시간은 잘 걸었지만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자 나도 모르게 “잠시 대기”라는 외침이 입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3∼4발자국을 걷기가 힘들다. 얼마나 걸었을까. 뒤로 거대한 설산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자 이젠 마지막이야. 여기만 오르면 정상이야.”라는 외침에 정말 젖먹던 힘까지 다해 걸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간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가득 메울 때 “정상이야. 메라픽 정상이야.” 하는 외침이 들린다. 나는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보다는 앉아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상은 정상이다. 그런데 표지 하나 없다. 약간 허탈했다. 그때 셰르파가 다가 오더니 저기 보이는 산이 에베레스트라고 가르쳐 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신기루처럼 구름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불가능 같았던 산이 거기에 있었다. 신기루처럼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금방 사라지고 마는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의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다는 것으로 모든 고통이 잊혀진다. 마치 짝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만봐도 행복해지듯…. 눈앞에 드러낸 웅장함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이런 감상도 잠깐, 서둘러 사진을 찍고 하산한다. 햇볕에 눈이 녹으면 발이 빠져 걷기 힘들기 때문이다. ‘잘 있거라. 언제 다시 만나리라는 기약은 없지만 안녕!’ 13시간을 눈밭에서 구르다 베이스에 도착했다.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길고 힘든 하루였다. ■ 네팔 가려면 네팔은 우리나라의 3분의2 정도 크기의 면적에 인구는 약 2500만명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3시간15분 늦다. 화폐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루피(Rupee).1달러가 69루피 정도. 신용카드가 되는 곳이 드물며 한화는 환전을 할 수 없으므로 출국하기 전에 달러로 바꿔야 한다. 환전은 공항이나 카트만두에 있는 타멜시장의 시설 환전소를 이용하면 된다. 네팔은 비자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미리 네팔 비자를 받고 싶으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명예 네팔영사관(02-555-9040)’에 전화예약 후 방문하면 된다. 발급은 보통 이틀 걸린다. 비자수수료는 32달러. 카트만두 공항에서도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한국에서 준비하는 것이 낫다. 단 비자수수료는 한국보다 2달러 싼 30달러. 비행기는 직항노선이 없다. 홍콩, 방콕, 상하이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www.nepal.pe.kr,www.nepaltour.pe.kr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트레킹 하려면 혜초여행사(02-6263-3330,www.hyecho.com)는 네팔 트레킹의 선두주자. 한 해에 3500명 이상이 혜초여행사를 통해서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선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코스를 알려주며 네팔 현지 지사에서 셰르파나 포터뿐 아니라 필요한 물품도 공급해준다. 셰르파의 고향 남체로 찾아가는 9일 일정의 에베레스트 하이라이트 트레킹은 205만원,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의 완성인 17일 일정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260만원. 푼힐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안나푸르나를 바라보는 9일 일정의 로얄 트레킹은 185만원,180도 펼쳐지는 히말라야의 파노라마를 느낄 수 있는 13일 일정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220만원. 또 10월쯤이면 루클라에서 출발, 추탕가와 메라베이스, 암푸랍체를 거쳐 쿰부 하말라야인 추쿵, 남체를 거치는 20일 일정의 히말라야 일주 트레킹 상품도 나올 예정이다. 이밖에도 개인이나 단체의 일정에 맞춘 다양한 트레킹 여행도 가능하다. 네팔 트레킹은 여행기간이 길고 오지로 떠나기 때문에 전문여행사를 통해서 가야 한다.
  • 재난대비 시스템 ‘부실투성이’

    전세계적으로 대형재난 피해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지진해일 등 재난상황에 대한 국내의 ‘국가안전관리시스템’이 총체적인 부실상태인 것으로 감사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은 6일 기상청·소방방재청 등을 대상으로 벌인 ‘지진해일 대응 및 대비실태’ 감사결과를 공개하고, 해당기관에 실효성 있는 재난상황관리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감사는 지난 3월20일 일본 후쿠오카(福岡) 해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우리 정부가 지진해일주의보를 늦게 발표하는 등 대응태세가 미흡했다는 지적에 따라 실시됐다. 감사원은 특별감사를 벌여 당시의 문제점과 함께 허술한 국가안전관리시스템의 근본적인 맹점을 지적했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정부가 재난대응을 위해 지난 1996년부터 521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운영하고 있는 국가안전관리시스템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후쿠오카 지진에서도 소방방재청은 기상청으로부터 지진해일주의보를 전달받은 지 14분이 지난 후에야 국가안전관리시스템을 통해 16개 지자체에 대응지시를 내렸다. 감사원의 작동실태조사에서도 메시지 입력에만 15분이 걸린 데다, 메시지를 20분 이내에 수신한 시·군·구는 전체 14%에 불과했다. 국가안전관리시스템이 무용지물로 전락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각급 지자체의 비상소집체계도 허술해 후쿠오카 지진발생시 부산 수영구와 경주시·포항시 등은 재난담당 공무원들을 아예 소집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클릭 이슈] 이산 1세대의 소원

    [클릭 이슈] 이산 1세대의 소원

    ‘여보 영옥 엄마, 아니 순임이. 이렇게 현실이 아닌 꿈의 공간을 빌려 편지를 띄우는 못난 남편을 용서하오. 지난 55년간 의지가 약해질까 꽁꽁 잠가뒀던 심중(心中)을 이젠 하릴없이 개봉해야 할 것 같소.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져 지팡이로도 거동하기 힘든 형편이라오. 이러다 끝내 당신한테 아무런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갈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나를 몰아세우는 구려. 오늘 여기 서울 하늘엔 오랜만에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올랐소. 계란 노른자처럼 명징(明澄)한 달빛이 실내등을 밀어내는 밤이면 당신이 더욱 사무친다오. 기억나나요?당신의 옥수(玉手)를 잡고 거닐던 그 논둑길, 사람들 눈을 피해 당신의 숨결을 오로지할 수 있었던 그 갈대숲, 그리고 당신의 머리카락에서 풍겨나던 그 동백기름 냄새…. 여보, 그때 내가 서울의 외삼촌 댁에만 내려오지 않았어도 우리한테 이런 생이별은 없었을 텐데 하는 회한은 수십년째 내 애간장을 혹사시키고 있소. 그래도 이 후진 목숨을 마침내 놓지 않고 있는 것은 오직 당신과 영옥이를 만나겠다는 일념에서라오. 전쟁이 끝나고 북으로 더이상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이곳에서 맘씨 좋은 여자를 만났고 아들 둘을 낳았소. 고맙게도 이들이 나더러 한을 풀어야 한다면서 이산가족 상봉신청을 해줬다오. 벌써 5년 전의 일이오.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곧 당신을 볼 수 있다는 설렘에 몇날 밤을 설쳤는지 모른다오. 만나면 무슨 얘기부터 할까, 당신의 곱던 얼굴은 어떻게 변했을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영옥이도 장성해서 아이들 낳고 잘 살고 있을까…. 그런데 내 기대의 본질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소. 상봉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이산가족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지. 지난 5년간 상봉신청자 12만명 중 불과 1000여명이 컴퓨터 추첨을 통해 상봉했는데, 이런 식이라면 내 차례는 언제나 돌아올지…. 단순계산으로 하면 앞으로도 500년은 더 건강을 조섭(調攝)해야 한다는 얘기니 이 어이없음을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이쪽에서는 화상상봉이니, 면회소 건설이니 하는 방법으로 상봉을 ‘제도화’한다고 바람을 집어넣는데, 이 또한 썩 미덥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오. 지난달 31일 금강산에서 면회소 착공식이 성대하게 열렸지만,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적극성을 갖지 않는다면 이런 하드웨어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런대로 순항하던 금강산 관광마저 느닷없이 축소되는 실정이니 어찌 맘을 놓을 수 있겠냐 말이오. 제발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주고받는 협상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되는데….“비싼 돈을 들여 면회소를 지어놔도 북한이 이를 또다른 협상카드로 쓰려든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만큼, 매달 일정 수의 규모가 상봉토록 하는 명실상부한 정례화를 약속해야 한다.”는 중앙대 제성호 교수의 조언을 모두가 유의했으면 하는 바람이오. 남북정상회담도 좋고 경협도 좋지만, 이산가족 문제만큼 촌각을 다투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당국자들은 신경이나 쓰는지…. 이산가족들이 다 죽고 없어진 다음에 면회소가 생기면 뭣하고, 제도화가 되면 뭣하겠소. 통일부 통계를 보면, 매일 평균 10명의 이산가족이 사망하고 있고 연간으론 3000∼4000명이 유명을 달리한다고 하니, 이보다 더 잔인한 안타까움이 어디에 있겠소. 달나라까지 사람이 가는 대명천지에 지척의 핏줄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하니. 이런 원초적인 휴머니즘 하나 해결해주지 못하는 정치권력들이 아무리 거창하게 통일을 얘기하고 인권을 운운한들 무슨 감동이 있겠소. 여보, 내가 너무 흥분했나 보구려. 성내면 결국 내 건강만 손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잘 안 된다오. 순임이, 이제 나는 큰 욕심을 버렸소. 금강산이든 화상상봉이든 당신 얼굴 보지 못해도 일 없으니 그저 생사만이라도 알고 눈을 감았으면 족하겠소. 그래도 꿈속에서나마 이렇게 당신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으니 나는 영영 이 몽상에서 깨지 말았으면 좋겠소.’100% 픽션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 글이 실제 이산가족들의 애절함을 반영하는 정도는 1%도 안 될 것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儒林(413)-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38)

    儒林(413)-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38)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38) 또한 유하혜는 더러운 임금을 섬기는데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작은 벼슬도 사양하지 않았다. 나아가서는 자기의 우수한 능력을 감추려 하지 않았고, 반드시 정당한 방법으로 일하였고, 버려져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곤궁에 빠졌어도 분노하지 않았다. ‘너는 너고 나는 난데, 내 곁에서 벌거벗고 있은들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느냐.’하며 자기의 맡은 소임을 다했던 것이다. 이렇듯 백이와 이윤, 그리고 유하혜는 각각 성인군자였으나 그 사는 방법은 이처럼 판이하였다. 백이는 굶어죽었으므로 절(節)의 표상이요, 이윤은 얼핏 보면 변절자처럼 보였으나 충(忠)의 표상이요, 유하혜는 깨끗함과 더러움을 가리지 않은 속인이었으나 화(和)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성인이 ‘귀결되는 것은 오직 하나였으니, 이 하나가 바로 인(仁)이라는 것’이 맹자의 결론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 순우곤이 내게 명예와 실적에 대해서 따지고 있지만 ‘나는 오직 군자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맹자의 대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만만하게 물러설 순우곤이 아니었다. 순우곤은 재차 공격을 시도한다. “노나라 목(穆)왕 때 공의자(公儀子)가 정치를 담당하였고 자유(子柳)와 자사(子思)가 신하가 되었지만 노나라가 쇠퇴해진 것이 더욱 심해졌으니 현명한 자가 국가에 무익한 것이 이와 같습니까.” 순우곤의 두 번째 질문도 교묘한 올가미를 갖고 있었다. 공의자는 이름이 휴(休)로 널리 알려진 노나라의 박사였다. 뛰어난 현인으로 이는 자유와 자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들을 등용한 노나라는 쇠망기에 접어들어 전국시대에는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소국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순우곤은 공의자의 예를 들어 널리 알려진 공의자와 같은 현명한 사람도 결국 나라에 무익한 존재가 되었으니, 그대 맹자가 아무리 현인이라고 하지만 결국 제나라에서는 무용지물이 아니었던가를 비꼬는 힐문이었던 것이다. 이에 맹자는 대답한다. “우(虞)나라는 백리해(百里奚)를 쓰지 않아서 망했고, 버려진 백리해를 진나라의 목공은 구해 써서 마침내 패자가 되었다. 현명한 자를 쓰지 않으면 망하는 것이 어찌 나라가 쇠퇴한 정도로만 그칠 수 있겠는가.” 맹자의 대답은 순우곤의 말을 전면으로 반박한다. 즉 현명한 자를 쓰지 않으면 나라가 망해버리는 것이니 나라가 쇠퇴하는 정도로 그칠 수 없음을 오히려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순우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냉소였다. 맹자의 무능함을 비웃고 있는 자신에게 오히려 자신을 백리해에 비교하고 있는 맹자가 아닌가. 그뿐인가. 맹자는 자신을 전설 속의 성인이었던 백이와 이윤과 같이 어진 길을 걷는 군자로 비유하고 있음이 아닐 것인가. “아, 그렇습니까.” 순우곤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그로서는 오랫동안 준비해 두고 있었던 최후의 비수였다.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는 정침(頂針)이었다. “그럼 선생님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 儒林(408)-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34)

    儒林(408)-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34)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34) 맹자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탕(湯)’왕이 첫 번째 정벌을 갈(葛)에서 시작하였는데, 천하가 믿었으므로 동쪽을 향하여 정벌하니 서이(西夷)가 원망하고, 남쪽을 정벌하니 북추(北秋)가 원망하며 ‘어찌 우리는 나중에 하는가.’ 하였으니, 백성들이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라는 것처럼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장에 가는 자가 그치지 않았으며, 밭 가는 자가 멈추지 않거늘 그 임금을 죽이고 그 백성을 위로하니 단비가 내린 것 같아서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으니 ‘서경’에 이르기를 ‘우리 임금님을 기다렸는데, 이제야 임금이 오시니 만물이 소생하게 되었도다.’하였습니다.” 맹자의 이 대답은 탕임금처럼 어진 정치를 하면 사방 칠십 리의 작은 땅을 가지고 정치를 시작하더라도 천하의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몰려올 것이므로 결국 천하를 손에 얻게 될 것이다. 서경에 의하면 탕은 첫 정벌을 갈에서 시작했는데, 천하 사람들이 그 정당성을 믿고 좋아했기 때문에 동쪽을 정벌하면 서쪽 사람들이 자기들을 나중에 정벌한다고 원망하고 남쪽을 정벌하면 북쪽 사람들이 자기를 나중에 정벌한다고 원망하였다. 이는 백성들이 큰 가뭄에 구름이나 무지개를 바라듯이 탕임금이 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설명인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맹자는 선왕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지금 연나라가 그 백성을 학대하거늘 왕께서 가서 정벌하시니, 연나라 백성들은 자기들을 물과 불에서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도시락밥과 병에 담은 간장을 가지고 왕의 군대를 맞이하였는데, 만약 그 부형을 죽이고 그 자제들을 구속하며 그 종묘(宗廟)를 부수고, 중요한 제기들을 옮겨 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천하의 모든 사람은 본래 제나라가 강한 것을 두려워하는데, 지금 또 땅을 배로 넓히고서 어진 정치를 하지 아니하면 이는 천하의 무기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속히 명령을 내리시어 노약자들을 돌려보내고, 중요한 제기들을 가지고 오는 것을 중지시키고 연나라의 백성들과 논의하여 임금을 세운 뒤에 떠나면 그래도 중지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맹자의 충고는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맹자는 왕에게 곧장 군대를 철수하고 연나라 백성들과 의논해서 새 군주를 세울 것을 권유하였으나 패왕을 꿈꾸고 있던 선왕은 맹자의 권유를 무시하고 계속 군대를 연나라에 주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연나라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제나라 군대를 나라 밖으로 내좇아 버린다. 맹자가 걱정했던 대로 물이 더욱 깊고, 불이 더욱 뜨거워지자 연나라 백성들이 일제히 들고일어나 민심이 옮겨 간 것이었다. 이런 정황을 본 순간 맹자는 선왕이 더 이상 자신에게 배우려는 의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맹자를 조문객으로 보낼 때 부사 한 명을 딸려 보냈는데, 사신의 권한은 완전히 부사의 손아귀에 달려 있어 난처한 입장에 빠졌었던 맹자가 아니었던가. 선왕에게 자신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져 무용지물이 되었음을 깨달은 맹자는 마침내 제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맹자는 제나라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이런 맹자의 마음은 제자 공손추의 질문에 ‘제나라를 가지고 왕업을 이루는 것은 손을 뒤집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라고 대답한 맹자의 답변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음이다.
  • [열린세상] 학교 밖의 문화교육/이해준 공주대 사학과 교수

    경제적 풍요와 국민의 의식수준 향상은 문화적 수요와 기대를 다양화·고급화시킨다. 문화예술 향유층도 특수계층 독점에서 점차 일반화·교양화하는 추세이다. 그리하여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차별은 점차 의미가 없어지고, 이에 따라 문화행정·문화정책의 기본 방향도 보다 ‘광범한 시민, 일반교양인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반면교사 같기도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문화정책이나 문화교육은 ‘너무 많았거나’ 아니면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또 문화정책과 교육정책은 있었어도 ‘문화교육정책’은 없었다는 주장도 많다. 문화교육정책은 문화를 담당하는 문화관광부와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인적자원부 사이의 사각지대였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의 문화교육은 공동체적 문화 기반 속에서 학교교육과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사실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전해지는 문화교육도 있었고, 할아버지가 손자를 끌어안고 가르치는 가정교육도 있었다. 며느리는 시집의 새로운 가풍을 전수받기 위해 모진 시련을 감내하여야 했다. 농사꾼들은 농사꾼대로, 또 나무꾼도 그들 나름의 문화전수 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현대와는 달리 전통사회에서는 공동체 문화기반 위에서 다양한 문화교육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그 효용성을 충분히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식의 학교교육이 일반화되면서 그러한 전통적 문화교육의 모습은 점차 의미를 상실하여 갔다. 의미와 가치도 평가절하되어 학교교육과 맞설 수 없는 무용지물처럼 되었다. 과연 이러한 과정이 올바른 것이고, 당연한 것일까? 한국의 풋풋한 농민문화를 이야기할 때 어김없이 꺼내는 ‘두레’를 예로 이야기해 보자. 두레문화는 ‘모듬살이의 지혜’이자,‘공생(共生)의 지혜’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론과 객관적·합리적 논리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눈빛과 숨소리만으로도 교감한, 다정하고 끈끈한 인간관계(情)가 밑바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문화였다. 또 그것은 오랜 동안의 경험과 체득을 통해 우리의 실정에 맞게 정착된 것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인간관계나 이해관계는 거의 소멸되어버렸다. 인간적 감성보다는 이해타산적인 계산기가 되어가고 있다. 과거 두레가 발생·발전하였던 사회와 다르게 오늘의 사회가 그렇게 바뀌었으니 옛날의 두레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가 곰곰 생각해 볼 일은,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과연 정상적이고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서 “결코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고 싶다. 경제적인 문제가 목전에서 아른거리니까 자신을 발견하지 못할 뿐이지, 정신을 되찾으면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인가를 갈등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때에 따라 간사하게 자신을 바꾸거나 타협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매우 지혜로워서 반성도 잘 하고 참가치를 추구하는 현실 극복의 의지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두레문화의 참된 전통이 현대사회에 맞게 개선·개량·적용될 여지가 충분함을 아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필요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것이 전통의 올바른 이해이며, 바로 이러한 점을 문화교육·전통문화교육이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제도권 내의 학교교육보다, 학교 밖의 문화교육이 오히려 더 싱싱하고 씩씩해야 한다고 믿는다. 좀 격한 말이지만 그러다 보면 생각 있는 학교교육이 곁눈질을 하거나 참을 수 없어 제 길을 걸어갈 때까지, 그 때까지는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해준 공주대 사학과 교수
  • [北에 전력공급] “2년째 중단 경수로 종료돼도 북핵해결 기여한다면 만족”

    정부의 ‘북핵 폐기시 대북 직접 송전 계획’으로 완전 종료될 운명에 처해 있는 대북 경수로 사업의 수장인 통일부 장선섭(70) 경수로기획단장은 13일 담담하게 기자의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올 것이 왔다는, 일찌감치 마음을 비운 듯한 표정이었다. 먼저 경수로의 운명을 묻는 ‘뻔한’ 질문에 장 단장은 “현재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미 2년째 중단돼 있고 어제 정 장관 제안대로 북한의 핵 폐기 합의시 ‘종료될’ 것”이라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기자가 “그래도 막상 ‘종료’라는 단어를 들으니까 심경이 어떠냐.”고 재차 묻자 장 단장은 멋쩍게 웃음부터 지었다.‘다 아는 걸 뭘 묻느냐.’는 듯이. 그는 우선 “공무원으로서 정부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수로 사업은 처음 시작할 때는 비교적 잘 됐지만 점차 어려움에 부딪혔고 마침내 지난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불거져 미국이 중유를 중단함으로써 위기를 맞았다.”며 “이때부터 이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리라는 생각은 포기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미국이 ‘경수로의 장래는 없다.’고 했을 때 감 잡았다는 것이다. 일흔의 직업외교관으로서 사실상 생애 마지막이라 여기고 나름대로 애착을 갖고 진행해 온 사업이 무용지물이 된 데 대해 왜 감회가 없겠느냐마는 그는 기자에게 “쇼크는 아니다.”고 애써 강조했다. 장 단장은 끝으로 ‘중대 제안’에 대해 “정부가 고심 끝에 내 놓았는데 잘 돼서 6자회담 등을 통해 북핵 문제 해결에 기여하면 그 이상 만족할 게 없다.”면서 “통 크게 봐야죠.”라고 말했다. 현재 경수로 건설 현장에는 남측 인력 120여명이 상주해 유지관리·보수 업무를 맡고 있으며 지난해 400억∼500억원을 썼고, 올해는 280억원이 예산으로 잡혀 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8) 고용에 부는 제3의 바람

    [일본을 다시본다] (8) 고용에 부는 제3의 바람

    |도쿄 특별취재팀|일본 닛산자동차의 스티븐 윌하이트 마케팅 담당 수석 부사장은 ‘서서 일하는 임원’으로 유명하다. 도쿄 시내의 긴자 번화가에 자리한 닛산 본사. 부사장 방에 들어서자 노트북이며 온갖 서류들로 어지러운 큼지막한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정작 의자는 없었다.“서서 일하는 게 업무 효율성이 훨씬 높다.”는 윌하이트 부사장은 “10년 넘은 버릇”이라며 의자없는 책상에서 능숙하게 결재서류들을 처리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론 ‘괴팍한 취미도 다 있다.’ 싶었다. 그러나 파산 직전의 닛산을 살려냈다는 ‘닛산 3부작 스토리’를 설명들으면서 윌하이트 부사장의 의자 치우기는 작은 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1부 닛산재생계획(NRP)이 시작된 2000년. 닛산의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들은 매일매일 주어지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퇴근하지 못했다. 그러고도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월급이 깎였다. 회사가 흑자로 돌아서자 닛산은 곧바로 2부 ‘180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차를 100만대 더 팔고 영업이익을 8% 신장시키며 회사 빚을 0으로 만들자는 프로젝트였다. 올해 닛산은 세번째 이야기 ‘밸류업’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전세계 판매대수를 420만대로 끌어올리는 것 등이 목표다. 닛산 3부작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지만 6년여에 걸친 상영과정에서 일본경제와 일본인들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줬다. 바로 ‘평생직장 신화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각인시켜준 것이다.NRP가 진행되는 동안 2만명의 직원이 닛산을 떠나야 했다. 그렇다고 강제해고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과가 신통찮은 사람은 버텨내기 힘들다. 윌하이트 부사장은 이를 두고 “미국식도, 일본식도 아닌, 닛산식 고용체계”라고 정의했다. ●‘미국식 성과주의´ 후지쓰의 교훈 일본 기업의 고용 풍토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종신고용과 연공서열로 대변되던 일본식 고용제도를 버리고 열병처럼 미국식 성과주의로 옮겨가는 듯 싶더니 다시 일본식을 ‘수혈’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물론 일본식으로의 완전한 회귀는 아니다. 미국식과 일본식 고용제도의 장점을 섞은, 말하자면 ‘하이브리드식’이다. 일본식 고용안정을 통해 회사와의 일체감을 다시 자극하면서도 미국식 성과체계로 비효율적인 온정주의를 견제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후지쓰’의 교훈이 컸다.1993년 일본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미국식 성과급을 도입한 후지쓰(전자업체)는 한동안 모범사례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정보기술(IT)산업의 거품이 빠지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고, 납기일을 지키지 못해 계약을 해지당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지난해 ‘안에서 본 후지쓰의 성과주의 붕괴’라는 책을 쓴 조 시게유키는 그 원인을 잘못된 성과주의에서 찾았다. 후지쓰에서 인사 실무를 오랫동안 담당했던 그는 “개인 단위로 목표량을 할당하는 등 목표관리제도를 도입했으나 부서간 암투 등으로 부작용이 끊이지 않았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그렇다고 종신고용 체제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면서 “무능한 간부들에 대한 엄정한 평가, 성적 공개 등을 통해 일본 체질에 맞는 성과주의를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과주의를 도입한 일본기업의 75%가 제도 개선 및 재고가 필요하다고 밝힌 것은 이같은 기류를 잘 말해준다. ●호봉제 유지하는 미즈호·신일철 미국식과 일본식을 혼합 수용해 효과를 보고 있는 기업으로는 미즈호 금융그룹을 들 수 있다. 미즈호그룹은 일부 은행점포에 대해 지점장을 공모한다. 부서 이동 때는 잡(Job) 공모도 실시한다. 인사 발령 때는 공모 여부를 일일이 표시해 누구나 알 수 있게 했다. 물론 상여금도 차이난다. 그러나 호봉제의 큰 골격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강제해고도 하지 않지만 50세부터 전환배치를 시켜 ‘퇴직’에 대비케 한다. 요네야마 미사오 미즈호그룹 홍보담당자는 “성과주의 없이는 기업이 강해질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성과만 추구했다가는 직원들과 13만 거래기업이 불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순익(2206억엔)을 거둔 신일본제철도 여전히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골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성과급도 도입해 개인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홍보팀의 스즈키 마사토는 “제철회사의 특성상 기술전수가 매우 중요한데 (성과급에 따라)급격히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면 경쟁력이 약화된다.”면서 “이것이 신일본제철이 오랫동안 안정된 직장을 제공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일본식→미국식→일본식+미국식 혼다자동차도 직원을 뽑은 뒤 일정 경력에 도달할 때까지는 연공서열을 적용한다. 따라서 이 때까지는 연봉이 매년 오른다. 그러나 일정 시점 후에는 성과에 따라 보수를 책정한다. 이 과정에서 연봉이 깎이기도 한다. 창업 이래 처음으로 외국인 CEO(하워드 스트링거)를 전격 선임해 일본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소니가 어떤 변화를 시도할지도 주목된다.LG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위원은 “시기심이 많은 일본의 국민성으로 감안할 때 성과주의 확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일본식과 미국식의 혼합에서 해답을 찾는 기업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hyun@seoul.co.kr ■ ’제2 닛산신화’ 곤 사장의 회생 비결 |파리 특별취재팀| “일본은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을 잘 받아들이는 민족이 아니다. 그러나 닛산차는 이를 해냈다.” 닛산 구원투수로 불리는 카를로스 곤(51) 일본 닛산차 사장은 구조조정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비결로 ‘동기부여’를 꼽았다.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는 것,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직원들과 주주들에게 명확하게 제시했다. 덕분에 임직원 개개인은 의욕을 갖고 목표에 덤벼들었고, 구조조정도 받아들였다. 그 결과 고용을 다시 늘릴 수 있었다.” 2000년 6월 닛산차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매일 같이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했다. 이 때문에 ‘세븐투일레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5개 공장을 폐쇄해 ‘코스트(비용) 킬러’로도 불렸다. 적자투성이 회사는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곤 사장은 “회색지대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모든 부문의 우선순위와 전략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닛산은 마케팅·판매 등 각 분야의 직원을 섞어 팀을 새로 짠 뒤 필달(必達)목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일반 평사원에게도 적용하고 있다. 프랑스 르노차그룹 회장이기도 한 그는 파리와 도쿄를 오가며 ‘제2의 닛산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닛산 신화가 과장됐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곤 사장은 “닛산 스토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서 “지난 5년간이 닛산의 회생 기반을 닦는 시간이었다면 올 4월부터 시작된 밸류업 프로젝트는 본격적으로 기업 가치를 올리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최종평가는 밸류업 프로젝트가 끝나는 3년 후에 해달라는 주문이다. 브라질에서 레바논계 부모 사이에 태어난 그는 프랑스의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에콜 폴리테크니크(국립공과대학)를 나왔다. 첫 직장인 미셰린타이어에서 두각을 나타내 르노그룹에 스카우트됐다. hyun@seoul.co.kr ■ ”미국식 성과주의 결속력약화 한계” |도쿄 특별취재팀| 일본의 고용형태 변화에 대해 한참 장황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12년째 기업론 및 경영관리를 가르치고 있는 고토 이스케(62) 교수는 “매우 간단한 문제”라며 질문자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일본식 종신고용이나 연공서열식 승진체계가 바람직하다. 성장하는 만큼 순익도 계속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을 멈춘 기업은 미국식 성과주의 체계가 필요하다. 순익이 늘지 않는데 종신고용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토 교수는 “도요타 자동차나 캐논이 종신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두 기업이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그의 얘기. “일본식 고용체계를 두고 미국기업들은 인적 자원을 전혀 관리하지 않는다며 비판했고, 일본인들도 그 말이 맞다며 심각히 반성했다. 그러나 그 말이 정말 맞다면 60∼70년대의 일본 고도성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일본경제의 침체와 국가간의 경쟁 심화로 일본식 고용체계가 지금은 힘을 잃었을 뿐, 그 자체가 무용지물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일본경제 회복론이 고개를 드는 지금, 일본식 고용체계는 다시 힘을 받게 될까. 고토 교수는 “그렇게 되긴 힘들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일본경제가 제조업을 중심으로 살아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중국 등 강력한 라이벌의 출현으로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재현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종신고용으로의 완전한 회귀는 어렵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식 고용체계의 무분별한 수용을 경계했다.“기업의 경쟁력은 지식과 지식의 결합에서 나온다.”면서 “미국식 성과주의는 성과에 따라 자꾸 사람(직원)을 들고나게 해 이 결합을 약화시킨다.”고 꼬집었다. 도요타식이 A지식과 B지식을 결합시켜 C지식을 만들어내는 반면 미국식은 A는 A로,B는 B로 끝낼 따름이라는 설명이었다. hyun@seoul.co.kr
  • “美정가 韓國과 우호적 이혼 고려중”

    “미국은 한국과 ‘우호적 이혼’을 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 부시 행정부 싱크탱크의 하나인 미국기업연구소(AEI)가 펴내는 잡지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American Enterprise)’ 7·8월호에 이같은 내용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부시행정부 싱크탱크기관지편집장 기고한나라당 외교안보통 박진 의원은 7일 당 중앙위원회가 주최한 한나라포럼에 참석해 “미국 정가에서 충격적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며 대니얼 케널리 ‘아메리칸 인터레스트(American Interest)’지 편집장이 이 기고한 논문 내용을 공개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케니얼 편집장은 “노무현 정부는 남한 역사상 가장 반미 감정이 강하고 좌파 성향을 바탕으로 대중의 반미 성향을 부추겼다.”며 “주한 미군의 존재는 북한의 인질과 같아서 미국의 선택을 방해할 뿐이며 남한과의 동맹 역시 미국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盧정부 한국역사상 가장 反美감정 강해”이어 케널린 편집장은 “북한의 정책을 바꾸기에는 ‘당근’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이미 입증되었지만, 남한이 미국의 채찍 사용을 금지하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고 박 의원은 전했다. 박 의원은 또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뒤 양국 정상은 한·미 관계에 이견이 없다고 공언했지만, 현재 미국 워싱턴 정가와 각종 연구소에서는 이제는 한·미 양국이 웃으면서 헤어져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軍이 흔들린다

    軍이 흔들린다

    군의 기강 해이에 따른 각종 사건·사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 19일에는 최전방 경계초소(GP)에서 사병이 동료 군인에게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 장병 8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당한 참사가 발생했다. 북한군 병사 월남사건으로 철책선 경계 근무에 허점을 다시 드러낸 지 불과 사흘만이다. 최전방 철책선이 절단돼도 누구의 소행인지도 모르고, 만취 어부가 어선을 몰고 월북하고, 해군의 특수임무용 고속단정이 분실되는 등 정상적인 작전임무를 수행하는 군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황당무계한 사건·사고 등이 잇따랐다. 이에 따라 군의 기강이 총체적으로 무너진 게 아니냐는 질타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방부대 GP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고도 각종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연동해서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육군은 이날 오전 2시 30분쯤 경기도 연천군 중면 모 사단 GP에서 근무 중이던 김모(22) 일병이 내무반에서 수류탄 1발을 투척하고 실탄 40여발을 난사, 장병 8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했다고 이날 발표했다.1990년대 이후 군부대 총기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고로 기록됐다. 해당 부대뿐만 아니라 상급부대 관계자까지도 엄중 문책될 것으로 보이며, 군 수뇌부 문책론도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충격적인 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사과를 드린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육군은 김 일병이 평소 선임병들에게 언어폭력 등 괴롭힘을 받아오던 중 내무반에서 자고 있던 다음번 근무자를 깨우기 위해 내무실에 들어갔다가 평소 자신을 괴롭혀온 선임병을 발견, 화를 참지 못하고 갖고 있던 수류탄 등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군은 사고 후 합동조사단을 현장으로 급파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중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만을 놓고봐도 이번 사건은 근무자의 근무지 무단 이탈에다 허술한 실탄 관리, 동료 병사들간의 폭력행위 등 총체적인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병영내 폭력 추방과 철저한 경계 근무 등 그동안 군당국이 강조해 온 구호가 공염불임을 여실히 확인해줬다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17일엔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에서 아군측 3중 철조망을 뚫고 월남한 북한군 병사 이영수(20)가 마을 주민의 트럭에 숨어 있다가 주민의 신고로 검거됐다. 합동신문조 조사 결과 이영수는 나흘전인 지난 13일 최전방 철책을 시작으로 3중 철책을 땅을 파거나 뛰어넘는 방식으로 간단히 넘은 뒤 민통선 이남지역을 무려 나흘간이나 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어느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사건이 발생한 지역의 담당부대는 지난해 10월에도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이 3중 철책을 뚫고 월북한 사건이 발생한 곳이어서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 당시 사건 이후 군 당국은 취약한 경계근무 시스템을 보강하기 위해 관측용인 열상관측장비(TOD)와 CCTV 등을 설치했었다. 그러나 합동참모본부의 이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장비들은 이영수의 방향조차 잡지 못해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中小벤처 ‘맞춤형 정책’ 활용하라

    中小벤처 ‘맞춤형 정책’ 활용하라

    IT벤처기업을 운영하던 이모(41) 사장은 최근 주주들에게 회사 문을 닫겠다고 통보했다. 몇년 전부터 개발한 기술(매직메일)이 무료 메일시장 때문에 무용지물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 사장이 개발한 기술은 메일 내용의 비밀보장 등으로 기술로만 보면 포털업계 등에서 깊은 관심을 가질 만했다. 하지만 미처 시장성을 따지지 못했다. 그는 “무조건 만들기만 하면 돈이 될 것이란 생각뿐 시장 예측은 신경쓰지 않았다.”고 후회했다. 이 사장처럼 IT중소벤처기업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갖가지 정책을 내놓았다. 특히 ‘묻지마 벤처 지원’을 자제하고, 현장 맞춤형 정책을 펴기로 했다. ●현장 자료, 부지런히 활용하라 일방적으로 지원하던 방식을 버리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뒤 수요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형태근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국장은 “그동안 업종마다 애로점이 다른데도 무조건 지원만 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포괄적 정책을 펴 효과가 미흡했다.”면서 “데이터를 먼저 구축하고 업종과 기업의 개별적 환경을 고려해 지원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나승식 정통부 IT중소벤처기업종합대책추진반장은 “중소벤처기업은 자사의 기술 수준과 관련한 시장규모 등을 제대로 몰라 사업 모델이 부실한 경우가 많고, 따라서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한발 늦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정통부는 IT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IT 스머프(SMERP)’를 갖췄다. 과(課)단위의 IT중소벤처기업종합대책추진반을 만들었다. 업종별 전문협의회가 열리고,IT중소벤처기업 현장 지원단도 가동했다. ●전문협의회에서 정보를 준다 분야별 전문협의회를 두고 정부와 기업, 관련 협회가 분기별로 1∼2번 정기모임을 갖는다. 2만 3000여개 기업을 54개 업종으로 분류, 전문협의회를 구성했다. 정책 건의는 정통부의 중소기업정책과도 연계된다. 정통부는 관련 홈페이지(www.itsmerp.or.kr)를 구축, 전문협의회의 논의, 후속조치, 국내외 산업·기술 동향 등을 알려준다. 회원제로 운영돼 이곳에 가입하면 사업비 절감 등 여러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난 4월에서는 IT기업들의 일반현황, 재무, 생산, 수출정보 등을 온라인으로 조사한 IT산업 및 기업정보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문협의회는 단순 정책뿐 아니라 벤처캐피털 등 금융권과도 연결시켜 준다. 벤처캐피털의 경우 8900억원 정도의 자금을 조성해 놓았고, 현재 3000억원 정도를 운용 중이다. 정통부,IT벤처기업연합회, 전경련 홈페이지에서 상세한 가이드를 받을 수 있다. 기업 IR도 해준다. ●현장에서 도움 받아라 지난 3월부터 IT중소벤처기업 현장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정통부, 전문 컨설턴트가 현장을 방문해 자금, 마케팅, 상품전략, 지적재산권 등 경영에 대한 컨설팅을 지원한다. 원하는 기업은 정통부나 IT벤처기업연합회(www.koiva.or.kr)로 신청하면 된다. 이와 함께 전문인력이 부족한 100만 소기업(자영업자)을 대상으로 회계관리, 급여관리 등의 프로그램을 빌려주는 사업도 있다.KT의 비즈메카 등이 그것이며 5개 업체가 제공하고 있다. 기술담보 융자 보증비율을 전체의 60%까지 끌어올려 기술력 있는 기업에 담보없이 수출신용장 등에 근거한 금융지원도 해주고 있다. 기술보증기금에서 보증서를 끊어 신청하면 된다. 정통부, 정보통신연구진흥원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자격,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 은행들 ‘상품베끼기’ 여전

    은행들 ‘상품베끼기’ 여전

    ‘창의력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창의적일 필요가 없는 것인가.’ 은행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상품을 쏟아내고 있지만 독창적인 신상품 개발은 뒷전이다. 너나없이 ‘블루오션’ 창출을 부르짖고 있지만 정작 시장을 선도하는 ‘블루오션 상품’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독창적인 상품보다는 잘 팔리는 상품을 얼마나 빨리 리모델링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항변하지만 전문가들은 “창의적인 상품 개발을 계속 미루다가는 외국계 은행에 고객을 모두 빼앗길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배타적 판매권, 특허 획득 상품 겨우 1개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배타적 판매권’을 획득한 은행 상품은 인터넷커뮤니티와 인터넷뱅킹을 연계한 첨단 입출식 전자통장인 농협의 ‘아니누리통장’ 하나뿐이다. 지난달 18일 은행연합회 심사를 통과한 이 통장은 기존 모임통장과 달리 회원들이 커뮤니티에서 예금주에게 예금인출을 승인하거나 통장 거래내역을 열람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배타적 판매권은 은행연합회가 2001년 도입한 제도로 독창적인 신상품의 선발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기간 독점판매를 허용, 다른 은행의 ‘베끼기’를 금한다. 지난 5년을 통틀어도 승인된 상품 수가 겨우 6개에 불과하다. 더욱이 은행들의 신청건수도 올해 2건을 포함,5년간 26건에 그쳐 은행들이 창의적인 상품 개발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독창적인 상품을 내놓기가 힘들뿐더러 상품들이 거의 비슷비슷해 은행들이 신청 자체를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 없었던 상품의 작동 원리를 개발해 특허청으로부터 ‘비즈니스모델(BM) 특허’를 획득한 은행도 올해에는 신한은행 한 곳뿐이다. 신한은행은 예금과 대출상품을 같이 거래하는 고객을 위해 대출이자 감면 목적의 패키지 서비스 상품인 ‘옵셋플랜’을 만들어 최근 BM 특허를 땄다. 외환은행도 외환 및 환율 거래와 관련된 상품에 대해 4건의 BM 특허권을 보유하고 있고, 우리은행 2건, 조흥과 하나은행이 1건씩의 특허를 갖고 있지만 대부분 오래전에 획득한 것이다. ●‘독창성 뒷전, 베끼기 앞장’ 은행들은 “아무리 독창적이라도 시장에서 먹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면서 “현재 잘 나가는 상품을 약간씩 변형시켜 출시하는 게 훨씬 수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들어 각 은행은 대동소이한 주가지수연동상품이나 적립식펀드, 중소기업 및 소호(SOHO) 대출, 주택담보대출 상품 개발에만 열을 올렸다. 특히 독도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을 때는 반나절 만에 신상품을 내놓는 기민함도 보였다. 시중은행의 상품개발 담당자는 “트렌드를 확 바꾸는 신상품을 개발해 내는 게 꿈이지만 경쟁은행의 상품을 살피고, 수익성을 좇다 보니 완전히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또 “비록 특허 수준의 상품을 개발했다고 해도 시의성이 떨어지거나 마케팅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사장되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독창적인 신상품 개발을 계속 미루면 결국 도태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제일은행을 인수한 SCB(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소매금융그룹 대표 마이크 디노마는 최근 ‘SCB제일은행’ 브랜드 선포식에서 “아시아 시장에서 인정받은 다양하고 독특한 신상품을 대거 한국시장에 내놓아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이 소매금융을 급속도로 잠식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은행이 손쉬운 ‘베끼기’식 상품 개발에만 머무른다면 결국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사설] 당국이 앞장선 불량 농·축산물 유통

    불량식품 파동이 날 때마다 공적(公敵)으로 지목되는 것은 식품업체였다. 만두파동이 났을 땐 만두제조업체에 비난이 집중됐고 불량급식이 문제됐을 땐 학교와 어린이집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나 감사원이 발표한 식품과 농·축산물 검사제도 운영실태를 보면, 농림부와 보건복지부, 식약청, 지자체 등 규제당국의 관리부실도 업체 못지않게 한심하다. 재료 단계의 불량품 유통도 제대로 막지 못하면서 최종 먹을거리 생산업체에만 악덕업체니 뭐니 하며 칼날을 휘두른 꼴이다. 감사결과로 유추해 보면 항생물질이 기준치를 넘은 돼지고기, 잔류농약 범벅인 시금치 등이 시장에 그대로 유통됐을 가능성이 크다. 간이검사에서 항생물질 양성반응이 나온 돼지고기에 대해 정밀검사도 하지 않고 출하금지 조치도 하지 않은 탓이다. 농약 시금치의 경우도 해당 도매시장에 적발 사실이 통보되지 않아 한 달동안이나 같은 농가 제품이 유통됐다. 유통중인 식품의 위생점검을 백화점 등 대형유통점 위주로 한 데 대한 변명은 어이없기만 하다. 재래시장은 위생상태가 훨씬 취약한 곳인데도 수거비용 카드결제가 어려워 점검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식품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정부는 불량식품 파동이 나자 식품위생법을 강화하고 식품안전기본법안을 내놓는 등 법규정비에 열을 쏟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법규도 당국이 시행을 소홀히 한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도 ‘꿀꿀이죽’논란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부모들이 울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당국은 각성해야 한다.
  • 서울 새주소 쉽게 확 바꾼다

    서울 새주소 쉽게 확 바꾼다

    연꽃길, 명륜길, 솔샘길…. 도로와 골목마다 붙어 있는 팻말을 본 기억은 있지만 정작 자신의 새 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올해 안으로 전체의 18.3%인 3685개의 도로명을 바꾸는 등 새주소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새주소 사업은 1997년 모든 거리와 건물에 번호를 부여해서 길찾기의 불편함을 없애자는 취지에서 행정자치부 주도로 시작됐다. 그러나 도로명이 낯설고 어려워 시민들의 인지도·활용도가 저조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새주소 올해 안에 뜯어고친다 서울시는 6월 중으로 외우기 어려운 도로명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해 올해 안에 도로명판·건물 번호판 설치를 끝낼 방침이라고 31일 밝혔다. 교체 대상은 부르기 어려운 도로명 3685개(18.3%)와 도로명 글자수가 6자 이상인 3834개(19%) 등이다. 이와 함께 서울시 전체를 224구획으로 설정한 뒤 도로망을 다시 구축해 ‘하나의 도로는 하나의 도로구간’으로 설정할 방침이다. 당초 접근성을 위주로 하는 바람에 도로 구간이 잘게 나뉘었지만 이번에는 연속성을 위주로 하게 된다. 또 자치구마다 제각각인 건물 번호판과 도로 명판을 통일된 디자인으로 개발하고 도로 명판 설치 기준에 대한 지침도 명확하게 제시하기로 했다. ●외우기 어려운 도로 이름 서울시 자체 보고서에 따르면 부르기 쉽고 의미있는 도로명은 전체의 50.3%(1만 154개)였다. 부르기 쉽지만 의미가 없거나 어려운 도로명은 31.4%(6318개), 부르기 어렵고 의미있는 이름은 6.1%(1223개), 부르기 어렵고 의미도 없거나 어려운 이름은 12.2%(2462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명의 글자가 6개 이상인 곳도 전체의 19%인 3834개나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로명은 ‘자치구 지명위원회’에서 심의해야 하지만 동장·구의원·주민대표 등 10명으로 구성된 ‘동 도로명 협의체’에서 선정한 이름이 대부분 도로명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외우기 어려운 도로명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하나의 도로인데도 구간마다 다른 이름이 붙어서 헷갈린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새주소 사업이란 지난 4월말 기준으로 새주소 사업이 끝난 곳은 전국 234개 시·군·구 가운데 92개로 사업 완료율이 39%에 불과하다. 전국적인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지만 주소 사업의 특성상 아직은 인프라가 미비한 실정인 셈이다. 새주소 사업은 1996년 청와대 소속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기획단이 1997년 해체되면서 예산문제에 부딪혔다. 사업 진행이 차질을 빚으면서 새주소는 주민등록번호나 퀵서비스 등에도 표기되지 않고 무용지물이 됐다. 서울시는 2002년 200억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해 새주소 사업을 끝냈지만 아직은 지방세 납세 고지서에 새주소를 병기하는 수준에서 홍보하고 있다. 서울시는 도로명판 관리비, 전산 구축비용 등으로 매년 8억원 안팎을 쓰고 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변미리 박사는 “새주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정보통신부, 건설교통부 등 관련 부처와 긴밀한 협의가 이뤄지고 택배회사 등 민간에서도 새주소를 사용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새주소의 법정 주소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건강칼럼] 건강식품은 건강한가

    진시황이 목마르게 불로장생 약을 찾았듯 아무리 많은 돈이나 권력, 큰 명예를 가진 사람도 건강 앞에서는 왜소해질 수밖에 없다. 의학 발달과 함께 평균 수명 70세를 넘기는 세상이 됐지만 중요한 것은 자연적인 수명이 아니라 삶을 얼마나 건강하고 활기차게 사느냐이다. 병상에서 100살이 넘게 산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10년을 덜 살더라도 90세까지 치매 안 걸리고 가족, 친구들과 즐겁게 살고 싶은 것이 필자뿐 아니라 모든 이의 소망일 것이다. 이 소망 때문에 누구나 건강식품이나 좋은 음식을 찾는다. 넘치는 건강식품, 광고대로라면 100살도 더 살 것 같다. 그러나 ‘약식동원’이란 말이 있듯 중요한 것은 본인의 건강상태에 맞게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잘 먹는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음식을 최적 상태로 먹고 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필자가 항상 좋은 음식, 즉 적당한 육류와 야채, 과일과 운동을 말하지만 이 또한 실천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필자도 하루에 4알의 영양제와 2가지의 건강식품을 따로 섭취하고 있다. 음식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중요한 것은 이 필요한 부분이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다 좋은 건강식품은 공기와 물 빼고는 없다. 이렇듯 본인에게 알맞은 음식이나 건강식품이 따로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나름의 방법이다. 제약회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약도 부작용이 있고, 수천년 동안 인류가 먹어온 음식도 사람에 따라 부작용이 있듯이 건강식품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게 자신에게는 효과가 없거나 손해가 될 수도 있다. 토마토의 리코펜 성분은 흡연자에게 좋은 항암 성분이자 항산화 성분이지만 토마토 알레르기가 있다면 무용지물이다. 아무리 좋은 건강식품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사실 좋은 건강식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 일이 고민스럽다면 자신의 주치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본인의 건강뿐 아니라 건강식품의 건강 상태까지 살필 수 있으니 적어도 해로운 것을 먹는 어리석음은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승남 강남베스트클리닉원장
  • [열린세상] 북측 권호웅 내각 참사께/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사실 지난 주말에 저는 대북 비료지원을 서둘러야 한다는 칼럼 원고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우리 정부가 조건 없이 비료지원을 하는 것이 오히려 북핵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원고가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북측 권호웅 참사께서 남측 정동영 장관에게 통지문을 보내 당국 실무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당국간 대화 중단이라는 상황을 전제로 써내려가던 제 칼럼은 당연히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칼럼 원고가 쓸모없게 된 개인적인 안타까움보다는 10개월 넘게 소강상태였던 남북관계가 정상화된다는 기대와 기쁨이 훨씬 컸던 게 사실입니다. 그간의 사정이야 어찌됐든 북측이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결단을 내려준 데 대해서는 모자라지 않는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열리는 실무회담에서도 아무쪼록 조그만 의견차이는 뒤로 하고 당국간 대화 재개라는 큰 대의를 위해 조금씩 양해하면서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합니다. 물론 이번 북측의 당국간 대화재개 제의 배경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한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금년 공동사설에서 농업을 사회주의 건설의 주공전선으로 규정한 북측의 사정상, 시기를 놓치기 전에 남측으로부터 비료를 받아야 했다는 절실한 이유를 지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저는 굳이 비료제공이라는 현실적 혜택 때문에 북측이 대화재개에 나섰다고 보는 것은 피차가 조금은 궁색해 보이는 것 같아 썩 내키지 않습니다. 또 눈앞에 닥쳐온 6·15 남북공동행사 등을 원만하게 진행하고 민족공조를 대내외에 과시함으로써 북측이 중요하게 여기는 이른바 ‘우리민족끼리’ 이념을 널리 선전하기 위해 당국간 대화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만, 이 역시 북측 내부의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민족관계를 활용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쉽사리 동의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날로 심각해지는 북핵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북측이 남북관계 복원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물론 이번 대화재개 방침의 진짜 배경이야 권 참사께서 누구보다도 잘 아시겠습니다만 비료지원이나 6·15 행사 때문이라면 남이나 북이나 왠지 씁쓸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북·미간 대결이 심화되고 있는 위기상황에서 남북관계의 돌파구가 한반도의 긴장고조를 일정정도 완화시킬 수 있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번 대화 재개는 의미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번 실무회담의 합의에 따라 15차 장관급회담 등 끊겼던 당국간 대화가 조만간 열리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만큼 남북은 많은 일들을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랜만에 남북간 대화 채널이 확보된 만큼 핵문제 해결을 위한 생산적 성과가 나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북핵문제 해결은 북·미의 상호양보를 통해서만 평화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요구사항을 다 알고 있고 이에 대한 이행의지도 있는 만큼 타협의 여지는 충분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문제는 협상 당사자인 미국의 양보의사가 불투명하고 신뢰구축 의지가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측의 안타까움과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원칙을 강조하는 것과 함께 불만족스럽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직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원만한 해결을 위해 미국이 좀더 전향적으로 협상태도를 가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면, 오히려 북측이 선양보 조치를 취함으로써 협상의 주도권을 갖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1년 가까이 공전되고 있는 6자회담 재개에 당당히 나서는 것이 오히려 그 틀 안에서 북·미간 양자대화를 내실 있게 진행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어렵게 마련된 남북관계 복원의 첫출발이 중단된 당국간 대화의 재개에만 머물지 말고 지금 한반도에 잔뜩 드리워져 있는 북핵위기의 먹구름을 해소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부디 건승하십시오.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 [문화마당] 종교가 해야 할 일/강주헌 펍헙에이전시 대표· 번역가

    1997년 우리 경제가 IMF의 관리를 받기 시작하면서 출판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이른바 성공학에 관련된 실용서가 많이 팔리기 시작했고, 출판계가 큰 불황에 빠진 지금도 실용서는 꾸준히 팔린다. 이같은 실용서들의 뿌리에서 읽히는 정신은 무엇인가. 개인의 경쟁력 강화가 곧 국부의 근간이며, 시스템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개인의 변화가 없으면 그 훌륭한 시스템도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계발을 장려하는 책은 영국인 새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의 ‘자조론’이 원조로 평가되지만 본격적인 시작은 한 세기 이상 전에 미국에서 시작되었다.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은 깊은 불황에 빠졌고, 현재의 우리처럼 수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잡지 못하고 실업자로 지내야 했다. 그리고 많은 미국인이 실의에 빠졌다. 이렇게 좌절감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희망의 불꽃을 던져준 사람들은 기독교의 한 종파인 유니티교파였다. 그들은 ‘신사고 운동’을 펼쳤다. 종교의 교리보다 삶과 행복에 대한 실질적인 철학을 가르쳤고 긍정적 사고방식을 강조하면서 생각이 갖는 무한한 힘을 강조했다. 이런 가르침은 데일 카네기를 거쳐,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의 저자인 나폴레온 힐까지 이어졌으며 요즘의 실용서들에서도 면면히 이어진다. 우리나라 기독교 교리의 기준에서 유니티교파가 이단종파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 한 종파의 가르침이 오늘날의 미국을 만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해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교세의 확장을 목표에 두지 않고 좌절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들이 책을 쓸 때마다 빠뜨리지 않았던 가르침이 그 증거다. 수입의 10%는 가난한 사람를 위해서 쓰라고 가르쳤다. 교회에 그 만큼을 헌금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미국의 기부 문화는 여기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추론이 맞다면 미국의 기부 문화는 100년의 전통이 만들어낸 결실인 셈이다. 1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고 지리적 공간도 다르다. 우리는 청년실업을 비롯한 온갖 사회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들었다는 염려는 있지만 그 해결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저출산 문제로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고, 저출산의 원인으로 육아비용과 과도한 사교육비가 거론되지만 대책이라고는 출산 장려금이 전부이다. 고등학교 1학년들은 내신평가방법에 불만을 품고 집단시위까지 계획하며 자살이란 단어를 서슴없이 거론하지만 교육부는 딴청이다. 교사들은 교원평가제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그들의 요구를 먼저 들어달라고 고집을 피운다. 속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한 세기 전 유니티교파가 미국에서 그랬듯이 우리 종교계는 그런 일을 해낼 수 없을까? 우리나라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들에게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기독교이거나 불교이다. 하여간 종교가 없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둘 중 하나이다. 이렇게 풍부한 자원을 가진 우리가 기적을 이뤄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 교회나 절을 근거로 제2의 교육자가 된다면, 목사나 스님이 그들에게 교회나 절을 교육의 장으로 기꺼이 개방해준다면 수능시험을 앞두고는 내 교회, 내 절에 다니는 학생들을 위해 앞다퉈 기도회를 갖는 외식적 행위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우리 교회나 절을 들여다보면 회의적이다.“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이나,“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섬기며 공양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경계를 짓지 말고 남을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예수와 부처는 스스로 고행의 길을 택했지만 지금의 성직자들은 호의호식에 길들여진 듯하다. 두 분은 결코 이름을 얻는 데 힘쓰지 않았지만 지금의 성직자들은 이름을 남기려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경전의 가르침과 다른 삶을 사는 그들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그들부터 변할 때, 한 세기 전 유니티교파가 지금의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일조를 했듯이 우리 종교계도 대한민국을 진정한 소강국으로 키워가는 데 큰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강주헌 펍헙에이전시 대표· 번역가
  • [시론]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황연대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부회장

    [시론]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황연대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부회장

    지난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전후해 언론매체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앞다퉈 장애인 기사를 다뤘다. 성공한 장애인, 장애인과 공동체를 일궈낸 사람들, 체육대회에서 함박웃음을 짓는 장애인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그날 사회 한쪽에서는 ‘장애인 차별철폐’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자유롭지 않은 몸은 전동휠체어의 힘을 빌리고, 소리가 나지 않는 목소리는 호르라기로 대신하며, 자신의 생일날 거리로 뛰쳐나온 장애인들…. 이들이 점거해 버린 마포대교에는 퇴근차량과 뒤엉켜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었다.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의 삶을 지탱해 주는 생계형 트럭도 있었을 것이고, 거래선 납품 시간을 맞춰야 하는 기업체의 긴박한 물품도 있었을 테고, 모처럼만에 장거리 손님을 태운 택시도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이들이 거리로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일년에 딱 하루, 장애인의 날이 아니면 아무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17대 국회에서 여당과 야당이 경쟁하듯 장애인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탄생시키자, 국회내 편의시설이 빠른 속도로 보완되고 장애인 국회의원들이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장애 당사자가 체감하는 장애인복지 수준은 과거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장애인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마다 장애인의 날을 전후해 온 사회가 장애인 문제에 대해 떠들썩하다가 또다시 며칠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해지는 현상. 그 근본 원인은 바로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후진성(시선의 오류)에 있다고 본다. 아직도 장애인을 능력과 개성을 가진 한 주체가 아닌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혹여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날 하루만이라도 떠들썩한 관심을 보여야 나머지 364일이 심적으로 편한 까닭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이제 장애인 문제는 복지적 관점에서 베푸는듯 해온 기존의 관행과 인식을 바꿔 ‘인권’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장애인들의 가장 큰 현안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이 손꼽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법적인 강제성을 통해서라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장애인의 ‘인권’을 우리 사회가 지켜주어야 한다. 우리 국가와 사회는 장애인문제를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생계형 운행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장애인 차량의 LPG 사용을 한달 250ℓ로 상한선을 정한 점,1991년 제정 이래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아직도 2% 선에 머무르고 있는 점(선진국은 최고 15%까지 적용), 장애아동의 양육 문제를 전적으로 가족에게 책임지우는 일 등은 바로 가슴이 아닌 머리로 한 일들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장애인 중 92.4%가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으로 발생한 후천성 장애인 점을 감안하면 우리 모두는 예비장애인인 셈이다. 따라서 장애인복지에 투입되는 비용은 나와 가족을 위한 미래투자이며, 장애인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사회의 안전망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 줄기세포는 척수장애인의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아 주고, 컴퓨터칩이 내장된 인공 의족과 의수는 불편한 몸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게 해줄 게 틀림없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장애인을 영원히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갈라 놓는다면 이러한 첨단기술들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필자 역시 세 살때 소아마비를 앓아 일본인 교장에게 초등학교 입학부터 거절당했던 아픈 기억을 안고 사는 장애인으로서 이제는 국가경제와 사회 인식 수준에 맞는 장애인정책이 수립되고 운영되길 간절히 바란다. 장애인들이 장애인의 날 길거리에서 처절한 모습으로 절규하는 모습을 더이상 보지 말았으면 한다. 장애인들 역시 이제는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우리 모두의 노력을 통해 장애인의 날이라는 ‘특별한 하루’가 필요없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황연대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부회장
  • [안동환기자의 현장+] 독도 경비대와 보낸 2박3일

    [안동환기자의 현장+] 독도 경비대와 보낸 2박3일

    산란기를 맞은 괭이갈매기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독도경비대 막사까지 들려온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무렵 먹구름이 몰려오고 세찬 비바람이 분다. 새벽녘에 강풍과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면서 뱃길마저 끊겼다. 기자가 울릉군으로부터 받은 체류 허가는 24시간. 자연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이곳에서 관청의 허가는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았다. 식사 대용으로 가져온 초코파이도 다 떨어졌다. 지난 19일 만 하루를 기약하고 독도에 들어간 기자는 풍랑에 묶여 21일까지 염치없게 경비대원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내무반에서 생활했다. 밤새 뒤척이다 밖으로 나가자 바닷바람이 온 몸에서 선 잠을 툭툭 털어내준다.“독도야 잘 잤니?” ●대한민국 독도 경비대. 오버! “독도는 ‘전국구’입니다.”2003년 경찰대를 졸업하고 독도에 자원한 성대규(26·경위) 경비대장과 서울 근무를 마다하고 독도에 온 석장준(35·경장) 부대장의 자부심이 배인 말이다. 대장부터 막내 대원까지 37명 모두가 섬 생활이라곤 해 본 적 없는 전국에서 모여든 뭍사람들이라는 뜻일게다. 등대원 3명과 종일 심드렁하게 누워 있는 천연기념물 368호 삽살개 곰이(수컷)와 몽이(암컷)도 외지에서 왔다. 대한민국 동쪽 땅끝. 해발 98.6m 동도(東島) 정상은 사방을 둘러봐도 바다뿐이다. 대원들은 24시간 수평선을 마주한 채 경계근무를 선다. 독도는 울릉경비대 소속인 6개 소대가 2개월씩 돌아가며 근무한다. ‘우리 땅’ 독도이지만 반경 12해리를 지나는 배는 외국 상선이 10척 중 9척꼴로 훨씬 많다. 외국 상선과의 무전 교신은 우리의 독도 주권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This is Korea Police Dokdo dispense station.Welcome to Korea.(여기는 대한민국 경찰 독도경비대. 한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상황실에서 교신을 시도하자 외국 상선은 즉각 국적과 항로를 말하며 화답한다.“Thank you.(고맙다)” 20일 새벽 2시. 온 몸을 때리는 비바람 속에서의 경계근무. 칠흑같은 어둠에 잠긴 적막한 순간이다. 이날 오전 최대 순간풍속은 22.7㎧. 몸을 가누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초소 양 옆은 천길 낭떠러지다. 대원들의 가장 큰 적은 일본 순시선도 괴선박도 아닌 험준한 지형과 외로움이다. 근무 중 추락 사고 등으로 사망한 젊은 대원만 6명에 달한다. ●“돌 하나씩만 집어가도 독도는 없어져요.” 지난 3월부터 독도 입도가 허용되면서 경비대는 바빠졌다. 오전과 오후 하루 두차례 독도에 들어오는 인원은 모두 140명. 울릉도에서 출발한 삼봉호가 접안을 할 때마다 경비대의 ‘선박 경계조’가 출동한다. 주 임무는 관광객의 안전을 챙기고 통제구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감격에 겨운 관광객 1명이 해안가에서 검은 돌 하나를 집어들자 석 부대장이 제지한다.“여러분이 돌 하나씩만 가져가도 독도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독도는 천연기념물 336호로 지정된 섬 자체가 천연보호구역이다. 토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화산암으로 이뤄진 독도는 풍화작용만으로도 계속 깎여 나가고 있다. 보급선에서 물을 공급받는다는 기자의 잘못된 상식과 달리 경비대는 바닷물을 사용하고 있었다. 기계로 걸러낸 식수의 최대 담수용량은 3t. 물탱크를 가득 채워도 경비대의 일주일 사용량에 불과하다. 대원들은 샤워도 순번대로 한다. 한번 사용한 물과 빗물은 그냥 버리는 법 없이 화장실과 청소에 사용한다. ●불어라 “북동풍아….” 독도에 머문 지 사흘째에 불과한 눈썰미로도 파도와 바람 방향만 보고도 배가 뜰지 안 뜰지, 접안이 가능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반인이 독도에 들어갈 수 있게 된 지난 3월 24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울릉도∼독도간 유람선 삼봉호(106t·정원 210명)의 운항횟수는 40회. 이 중 23회는 독도 접안에 성공했으나,17회는 실패했다. 삼봉호 선장 송경찬(50)씨는 “북동·북서풍이면 독도가 바람을 막아 접안시설 인근에 파도나 너울(바다의 크고 사나운 물결)이 거의 일지 않게 돼 접안이 가능하지만, 남동·남서풍이면 해풍을 막아 줄 아무런 시설물 등이 없어 2∼4m의 높은 파도가 일어 접안이 불가능하다.”고 귀띔했다. 21일 오후 삼봉호가 독도를 향해 출발했다는 소식에 짐을 꾸렸다. 그러나, 높은 파도에다 풍향은 여전히 접안에 맞지 않는다. 삼봉호의 접안이 불투명해지자 경비대가 체류 시한을 24시간 이상 넘긴 기자를 울릉도로 보내기 위해 인근에 머물던 오징어잡이 배에 연락을 취했다.‘기자 독도 방출 작전’은 파도가 잦은 독도의 반대편에 위치한 옛 접안 시설에서 어선을 타고 바다에서 삼봉호로 옮겨 타는 것으로 계획이 잡혔다. 숨가쁘게 달려간 옛 선착장. 어선은 보이지 않고 입도에 실패한 삼봉호가 우리를 발견했다. 별안간 ‘뿌∼웅’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방향을 튼 삼봉호. 선착장 1m 앞까지 접근하자 몸을 날린 기자를 뱃머리에서 붙잡는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독도야. 인간의 욕심에 상처입지 말고 이 땅의 모든 생명들에게 푸르게 푸르게 생명 그대로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렴.”한 점으로 작아져가는 독도를 향해 기자는 두손을 모았다. ● 76년 접안시설 기념글엔 유신흔적이… 기자는 독도경비대가 주둔하는 동도(東島)의 통제구역에서 독도의 여러 모습을 찾아냈다. 접안 시설인 물량대에서 동도 정상까지 난 외길을 타고 들어가, 독립문 바위 동쪽 방향으로 계단을 내려가면 옛 접안시설 부근에 새겨진 한 글귀가 있다.‘총화로 단결하여 유신과업을 완수하자.’1976년 7월 18일 울릉경찰서가 접안시설을 준공한 기념으로 새긴 글이다. 뱃사람들이 오가는 이곳에 유신이라니…. 참담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게 된다. 독도는 괭이갈매기의 집단 서식지이다. 독도에 마을이 생긴다면 ‘괭이부리말’이라고 부를 성 싶다.4월 산란기를 맞은 괭이갈매기들은 이방인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사람의 발길이 뜸했던 동쪽 계단은 그들의 둥지가 됐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기자에게 괭이갈매기는 여지없이 ‘똥벼락’을 날린다. 그들 나름의 불청객 퇴치법이다. 유난히 상징물이 많은 독도. 경비대 막사 앞에 새겨진 ‘韓國領(한국령)’이라는 글자는 예전 ‘독도의용수비대’가 새긴 것이다. 그러나, 물량대 인근에서 발견한 한 비석은 오랜 세월에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라는 글자만 보일 뿐 누가 세웠는지는 글자가 희미해 분명치 않았다. 괭이갈매기의 텃세를 피해 경비대 막사 지붕에 자리잡은 한 쌍의 비둘기. 동해 묵호항에서 울릉도까지는 161㎞, 독도는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9.5㎞ 거리에 있다. 통신을 목적으로 훈련시킨 전서구(傳書鳩)로 추정된다. 글 독도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