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무욕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분배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정미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보니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 바드
    2026-06-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3
  • 儒林(129)-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그러나 공자는 절대로 초조해 하지 않았다.이 무렵 오히려 공자는 유유자적하고 있었는데,그것은 음악에 심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논어의 술이(述而)편에 보면 공자가 제나라에 있을 무렵 얼마나 음악에 몰두하고 있었던가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자께서 제나라에 계실 때 순(舜)임금의 음악 소(韶)를 들으시고는 석달 동안 고기 맛을 잊으셨다.그러고는 말씀하셨다. ‘음악이 이런 경지에 이르리라고는 생각도 못하였다.(不圖爲樂之至於斯也)’ ” 좋은 음악을 듣고 석달 동안이나 고기 맛을 잊을 정도로 심취하였던 공자.공자는 이미 음악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전문가 이상으로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심지어 공자는 29살 때 악관이었던 사양자(師襄子)에게서 금(琴)까지 배웠던 것이다.공자가 음악에 심취하였던 것은 호사스러운 취미생활이나 쾌락을 즐기려는 향락 때문이 아니라 음악을 천지의 조화로 보고 이를 통해 예의 질서를 터득하는 방법을 구하려 했던 것이다.사기에 나와 있는 대로 공자가 사양자에게서 금을 배웠을 때의 모습을 보면 공자가 음악을 통해 과연 무엇을 구하려 했음인가를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공자가 사양자에게서 금을 타는 것을 배우는데 열흘이 지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그러자 사양자가 말하였다. ‘좀더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이에 공자가 말하였다. ‘저는 이미 그 곡조는 익혔으나 그 이치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있다가 사양자가 말하였다. ‘이미 그 이치를 터득했을 터이니 다른 것을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공자가 대답하였다. ‘아직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있다가 사양자가 말하였다. ‘이미 그 뜻을 깨달았을 터이니 다른 것을 더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공자가 말하였다. ‘아직 그 인물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얼마 있다가 사양자가 말하였다. ‘고요히 깊이 생각하시고 기쁜 듯이 높이 바라보며,원대한 뜻을 지니는 듯하군요.’ 마침내 공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는 그 인물을 깨달았습니다.거무튀튀한 살갗에,훤칠한 큰 키에다 눈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하고 마음은 천하를 지배하는 형상이니,주나라의 문왕이 아니면 또 누가 이런 곡조를 지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사양자는 자리를 옮겨 앉으며 두 번을 절하고서 말하였다. ‘과연 그렇습니다.저희 스승님께서도 이 노래는 문왕의 곡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공자가 금을 통해 배우려는 것은 곡조나 이치나 뜻과 같은 테크닉이 아니라 그 곡을 지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공자는 음악을 예와 동일한 덕으로 보고 있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위대한 음악은 천지와 같은 조화를 이루고,위대한 예는 천지와 같은 절조를 이룬다.(大樂與天地同和 大禮與天地同節)” 음악과 예를 짝을 이루어 표현한 공자의 말은 다시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음악이란 천지의 조화이며,예란 천지의 질서이다.(樂者 天地之和也 禮者 天地之序也)” 심지어 공자는 음악을 인간 완성의 마지막 단계인 문채(文彩)로 보았는데,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인간 완성에 대해서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을 정도였다. “장무중과 같은 지혜와,공작과 같은 무욕과,변장자와 같은 용기와,염구와 같은 재주를 갖춘 데다 예와 악으로 문채를 더 보태면 인간 완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서울신문 제정 제12회 공초문학상 수상 정현종 시인

    “그동안 이런저런 문학상을 많이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갔으면 했는데….” 수상 소감치고는 짧은 한마디.그 속에 시인 정현종의 모습이 들어있다면 지나친 예단일까.시인의 상징처럼 보이는 흰 머리와 여전히 움푹 파인,맑으면서 직관이 그득한 눈매와 느릿느릿한 말에는 남에 대한 배려,겸허가 배어있다.수상시 ‘경청’이 이미 시인의 몸과 마음의 일부가 된 듯하다. ●중학시절 본 공초 ‘스님’ 이미지로 남아 “중학교 시절 명동의 음악다방에서 공초 선생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당시 윤동주 시집을 들고 문학에 빠져있던 터라 선생님 소문을 듣고 찾아갔는데 줄담배만 태우시며 말씀이 없던 기억이 납니다.제주 돌하루방과 흡사한 얼굴의 선생님은 제게 거의 반쯤은 스님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이 스쳐간 만남이 인연이 됐을까? 이후 공초와 다시 만난 적도 없고 문학 내적으로도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그의 수상시 ‘경청’은 공초의 삶과 시와 깊은 연관성을 보여준다. 공초는 일상의 구속을 거부한 채 형이상학적 세계를 시심(詩心)으로 그린 시인.무욕·무소유의 철학으로 세상을 초월한 삶을 살면서 수많은 문인들과의 접촉으로 시세계를 넓혀갔다.그의 시 정신을 기리는 공초문학상의 12번째 수장작 ‘경청’에서 정현종은 불행이나 비극의 원인이 경청하지 않는 세태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이라고 나지막이 노래한다.그가 강조한 ‘경청’은 자신을 낮추고 나아가 비워야 가능할 것이다.이 경지야말로 공초가 실천하려고 한 무욕과 통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맥이 통하네요.지금 우리 현실은 정치판·학교 등 어떤 공간에서건 자기의 말만 난무합니다.남의 말에 귀를 귀울이는 여유가 아쉽습니다.듣는 능력은 참 중요합니다.시(詩)든 음악이든 모든 예술은 들을 수 없으면 불가능합니다.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비단 여론만 듣는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비판까지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경청’은 지난해 세상에 나온 그의 여덟번째 시집 ‘견딜 수 없네’에 수록된 작품.시인 고은이 ‘우리 시대의 한 언어의 정령’이라고 찬탄한 첫 시집 ‘사물의 꿈’(1972년)을 낸 이후 시인은 작품을 낼 때마다 ‘문단의 화제’였다.초기에는 사물의 존재 의의를 내밀한 꿈의 속성과 연계시키는 관념적 시세계에 몰두하다가 80년대 이후 사물의 구체적 생명 현상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이후 다섯번째 낸 시집 ‘한 꽃송이’는 “상당한 변화를 겪으면서 보여온 과정이 마침내 도달하게된 ‘자유’의 한 극점”이라는 평을 받으며 환경문제를 문학적으로 집약한 전범으로 자리잡았다. ‘약점으로 내리는 비’‘확신과 열애의 손의 운행’ 등 파격적 시어들은 마침내 문학평론가 김현에게서 “한국 현대시의 표현법과 소재의 면에서 큰 충격을 준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김춘수와 김수영을 극복한 자리에 시인 정현종을 자리매김하게 했다. ●바람의 시인… 자유의 시인 숲과 우주에 관한 이야기에서 자신만의 특징을 보여주면서 ‘바람의 시인’‘자유의 시인’이라 불려온 그는 수상시 ‘경청’에 이르기까지의 시적 변화를 이렇게 말한다.“나이 들면서 문어보다는 보통 하는 말 즉 구어(口語)의 사용이 늘었습니다.또 관심 영역도 세상만사로 넓어졌고요.무엇보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뜻은 변하지 않았는데 읽기가 쉬워졌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경험의 눈으로 보는 게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탁월한 그의 시적 감수성이 세월의 흐름에 민감한 것은 자연스럽다.‘경청’이 들어있는 시집 ‘견딜 수 없네’에서는 시간의 무상함,어쩔 도리없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유달리 많이 토로한다.“나이 들면서 시간의 본질과 덧없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습니다.최근 ‘꽃 시간’이란 제목의 시도 두편을 썼습니다.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없다,바쁘다.’라고들 하는데 시간 자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주류의 삶에 딴죽을 거는 게 문학의 속성이라고 할 때 그가 이 광속의,현란한 속도의 세태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컴퓨터 앞에서 정신없이 살다 보니 더 바삐 굴러가고 조급해지는 거죠.문명사라는 게 가속도의 역사 아니겠어요.천천히 가야 합니다.가끔은 멈춰서서 느긋한 마음으로 세상과 일을 돌아보는 게 필요합니다.이 격류의 세상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게 문학이 아닐까요.” 거슬러 올라가는 운명은 힘들다.그러나 내년이면 등단 40년을 맞는 시인이 헤쳐온 ‘시의 길’은 세속의 잣대로는 고난의 길이었을지 모르지만 정작 자신과 독자에게는 황홀하지 않았을까.그 ‘고통의 축제’는 시인이 90년 연암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밝혔듯이 “시(예술)라는 것이,혹시,폭설(제도와 문명의 폭력) 속에서 고라니가 찾아가는 인가 같은 것은 아닐까.”라는 예언자적 비유 속에 잘 녹아 있다. 글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 ■정현종 연보 ▲39년 서울 출생 ▲59년 연세대 철학과 입학 ▲65년 박두진 추천 시 ‘독무(獨舞)’로 ‘현대문학’ 등단 ▲66년 황동규·박이도·김화영·김주연·김현 등과 동인 ‘사계’ 결성 ▲70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74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 국제 창작프로그램 참가 ▲77년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교수 부임 ▲78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82년 연세대 국문과 시창작 지도교수 부임 ▲90년 연암문학상 수상 ▲92년 이산문학상 수상 ▲96년 대산문학상 수상 ▲작품집 ●시집 ‘사물의 꿈’‘나는 별 아저씨’‘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한 꽃송이’‘세상의 나무들’‘갈증이며 샘물인’‘견딜 수 없네’ ●시선집 ‘고통의 축제’‘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이슬’ ●산문집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숨과 꿈’ 등 ˝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9)한국의 찻그릇 - 우동진의 백자 찻사발

    백자는 청자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그릇이자 조선시대의 유교이념이 투영된 세계적 미술품이다.중국의 당·송 시대에서 비롯된 백자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고려 중엽 이후부터였다.불교사상을 상징한 청자시대의 화려하고 우아한 멋이 백자의 단아함과 고결함을 껴안게 되면서 고려시대라는 정신사를 아름답게 장식했다.주로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귀국하는 길에 선물용으로 사오거나 중국 정부의 예물로 들여오기 시작하다가 고려백자라는 이름의 흉내낸 그릇이 제작된 적도 있었지만,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게 된 것은 조선시대 들어서부터였다. 특히 순백자 예찬론자였던 세종대왕의 고급 문화정책에 힘입어 경기도 여주,이천,광주에 관요(官窯)가 세워졌고,조선의 왕실,귀족,양반 관료들만의 전유물인 고급 백자가 엄격한 체제와 관리 아래서 생산되었다.조선시대 민중들은 이같은 백자를 사용할 수 없었다.그릇은 곧 신분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백자시대였지만 정작 차문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찻사발은 그리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다.차문화가 불교문화의 핵심인 헌공다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불교사상을 배척하는 것을 조선의 정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지배자들이 차문화를 숭상하기 어려웠던 탓이다.차 대신 술이 지배한 시대가 조선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조선시대는 차 대신 술이 지배 그런 중에도 아주 적은 양의 찻그릇들이 제작되어 사용된 사실은 있었다.찻사발도 마찬가지였다.백자 찻사발은 백자 특유의 차갑고 엄격한 선과 색깔을 아름다움의 핵심으로 삼았다.날카롭다고 볼 수 있는 찻사발의 전이 지닌 얇고 경직된 선,단조롭고 정형화된 굽,허리와 중배에서 전으로 이어지는 차가운 선,조선 선비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절개와 무욕의 흰 색깔로 된 찻사발은 매우 적은 양만이 전해지고 있다.백자는 민중들과의 신분 차별을 뜻하기도 해서 역사적인 의미로나 미학적 접근에서 난해하고 제한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현대사회에 와서도 백자를 빚는 이들이나 사용하는 이들의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보여진다. 경남 양산시 웅상읍 매곡리 매곡요(梅谷窯) 주인 우동진(46)씨가 최근 발표한 백자를 주제로 한 찻사발의 재해석은 백자에 관한 우리의 통념을 크게 변화시켜 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그의 작업장으로 찾아가 작품 세계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문:기본적으로는 백자의 미학적 토대를 유지하면서도 민중적 정서와 체취를 느끼도록 시도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떻게 이같은 발상이 가능했을까요? 우동진:찻사발에 대한 관심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특히 최근 들어 도자작가나 차인들에게 크게 회자되고 있는 정호(井戶) 찻사발의 장점과 아름다움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백자에다 정호를 응용하고 싶어지더군요. 문:언제부터 도자기를 빚게 되었지요? 우동진:27세 때부터였습니다.처음엔 산어도자에 관심이 있었지요.타일,전기애자를 생산하는 일을 해 보고 싶었는데 이 분야는 기술과 자본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더군요.흙의 문제도 있었고요.생활도자기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흙을 만지게 되었습니다.벌써 20년째가 됩니다. 문:가마의 불은 어떤 재료를 주로 사용합니까? 우동진:석유가마,가스가마를 거쳐서 현재의 장작가마로 밟아왔습니다.이 가마는 스승이신 천한봉 선생께서 터를 잡고 지어주신 것입니다.가마가 곧 저의 스승인 셈입니다. 문:대학 학부에서는 도자공예를 공부하고,대학원에서는 도예디자인과 광물학 두 과정을 공부했거나 현재 공부하고 있는데,학문이 도자 실기에 도움이 됩니까? ●흙의 성질 알고 그릇 만들면 희열 우동진:굳이 찻그릇을 만드는데 석사 박사 학위가 필요한 조건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요.다만 제가 광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흙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도자기는 한마디로 흙의 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곳곳에 도자소가 산재했다는 점,선조들이 흙의 분석에 철저했다는 점 등은 우리나라 지층 구조가 다양했기 때문이라 봅니다.흙의 맛과 멋을 제대로 알고,흙의 성질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알고 그릇을 만들면 훨씬 자유롭고 깊은 정신적 희열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흙의 성격은 복합적인 화학적 구성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구성 요소마다 못된 놈 좋은 놈들의 상호작용이 존재하지요.그 작용이 조화인데,이를 잘 이해해야만 흙의 질서를 배울 수 있거든요.따라서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이 그냥 그릇을 만들어 돈을 받고 팔아서 먹고 사는 경우와 먹고는 살되 흙의 질서를 배워 나도 흙이 되려고 하는 경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제딴에는 후자에 속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문:백자 찻사발 세계를 들여다보면 박지원 선생의 양반전을 떠올리게 됩니다.조선의 양반제도가 지닌 모순과 폐해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꾸짖는 양반전의 통쾌함이 우 선생의 백자 찻사발에서도 감지된다는 말입니다.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이 무논에서 쟁기질하는 것 같은 묘한 맛과 함께,조선시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백자를 민중들의 정서에 맞도록 재구성한 것은 확실히 놀라운 실험정신의 소산으로 보입니다.그런 것을 의식했을까요? ●양반제 폐해 신랄하게 풍자해 통쾌 우동진:꼭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다만 우리 시대의 삶과 정신을 담을 수 있는 백자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줄곧 해왔습니다.임진왜란으로 한국 도자역사 500년을 일본에 빼앗겼지만 우리에게 미래는 무궁합니다.미래의 세대가 21세기 한국의 도자 역사를 물을 때 대답해 줄 최소한의 몇 마디라도 준비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도자기 만드는 이들이 실험정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재료도 부족하지 않으냐는 지적을 많이 합니다만 저는 그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상업적인 도자 제작 판매에 매달려서 남의 우수한 창작품을 베끼기하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그렇지 않은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은 하나 하나가 다 도전정신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문:우 선생께서는 평소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요. 우동진:남 욕하고 허물을 들추지 말자는 것이지요.작가로서 이름 얻는 수단만 좇을 게 아니라 내가 할 몫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최선을 다하다 흙이 되자는 것입니다. 문:우리나라 찻사발의 문제점이 뭐라고 보십니까? 우동진:찻사발 만드는 작가들이 먹고 사는 일에 너무 급급하다 보니 실험정신과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실험정신은 도자 교육과정에서 강조되어야 옳은데 이를 소홀히 하면 미래로 향하는 작가의 발목이 현실 안주라는 마귀에게 붙들리게 됩니다.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지요.부족함을 드러낼 줄 아는 것이 실험정신이고,아름다움 아니겠습니까?˝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9)한국의 찻그릇 - 우동진의 백자 찻사발

    백자는 청자와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그릇이자 조선시대의 유교이념이 투영된 세계적 미술품이다.중국의 당·송 시대에서 비롯된 백자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고려 중엽 이후부터였다.불교사상을 상징한 청자시대의 화려하고 우아한 멋이 백자의 단아함과 고결함을 껴안게 되면서 고려시대라는 정신사를 아름답게 장식했다.주로 중국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귀국하는 길에 선물용으로 사오거나 중국 정부의 예물로 들여오기 시작하다가 고려백자라는 이름의 흉내낸 그릇이 제작된 적도 있었지만,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게 된 것은 조선시대 들어서부터였다. 특히 순백자 예찬론자였던 세종대왕의 고급 문화정책에 힘입어 경기도 여주,이천,광주에 관요(官窯)가 세워졌고,조선의 왕실,귀족,양반 관료들만의 전유물인 고급 백자가 엄격한 체제와 관리 아래서 생산되었다.조선시대 민중들은 이같은 백자를 사용할 수 없었다.그릇은 곧 신분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백자시대였지만 정작 차문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찻사발은 그리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다.차문화가 불교문화의 핵심인 헌공다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불교사상을 배척하는 것을 조선의 정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지배자들이 차문화를 숭상하기 어려웠던 탓이다.차 대신 술이 지배한 시대가 조선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조선시대는 차 대신 술이 지배 그런 중에도 아주 적은 양의 찻그릇들이 제작되어 사용된 사실은 있었다.찻사발도 마찬가지였다.백자 찻사발은 백자 특유의 차갑고 엄격한 선과 색깔을 아름다움의 핵심으로 삼았다.날카롭다고 볼 수 있는 찻사발의 전이 지닌 얇고 경직된 선,단조롭고 정형화된 굽,허리와 중배에서 전으로 이어지는 차가운 선,조선 선비의 이상향을 상징하는 절개와 무욕의 흰 색깔로 된 찻사발은 매우 적은 양만이 전해지고 있다.백자는 민중들과의 신분 차별을 뜻하기도 해서 역사적인 의미로나 미학적 접근에서 난해하고 제한적인 면이 없지 않았다.현대사회에 와서도 백자를 빚는 이들이나 사용하는 이들의 생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보여진다. 경남 양산시 웅상읍 매곡리 매곡요(梅谷窯) 주인 우동진(46)씨가 최근 발표한 백자를 주제로 한 찻사발의 재해석은 백자에 관한 우리의 통념을 크게 변화시켜 줄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그의 작업장으로 찾아가 작품 세계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문:기본적으로는 백자의 미학적 토대를 유지하면서도 민중적 정서와 체취를 느끼도록 시도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떻게 이같은 발상이 가능했을까요? 우동진:찻사발에 대한 관심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특히 최근 들어 도자작가나 차인들에게 크게 회자되고 있는 정호(井戶) 찻사발의 장점과 아름다움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백자에다 정호를 응용하고 싶어지더군요. 문:언제부터 도자기를 빚게 되었지요? 우동진:27세 때부터였습니다.처음엔 산어도자에 관심이 있었지요.타일,전기애자를 생산하는 일을 해 보고 싶었는데 이 분야는 기술과 자본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더군요.흙의 문제도 있었고요.생활도자기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흙을 만지게 되었습니다.벌써 20년째가 됩니다. 문:가마의 불은 어떤 재료를 주로 사용합니까? 우동진:석유가마,가스가마를 거쳐서 현재의 장작가마로 밟아왔습니다.이 가마는 스승이신 천한봉 선생께서 터를 잡고 지어주신 것입니다.가마가 곧 저의 스승인 셈입니다. 문:대학 학부에서는 도자공예를 공부하고,대학원에서는 도예디자인과 광물학 두 과정을 공부했거나 현재 공부하고 있는데,학문이 도자 실기에 도움이 됩니까? ●흙의 성질 알고 그릇 만들면 희열 우동진:굳이 찻그릇을 만드는데 석사 박사 학위가 필요한 조건이라고는 말하기 어렵겠지요.다만 제가 광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흙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도자기는 한마디로 흙의 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곳곳에 도자소가 산재했다는 점,선조들이 흙의 분석에 철저했다는 점 등은 우리나라 지층 구조가 다양했기 때문이라 봅니다.흙의 맛과 멋을 제대로 알고,흙의 성질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를 알고 그릇을 만들면 훨씬 자유롭고 깊은 정신적 희열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흙의 성격은 복합적인 화학적 구성 요소를 지니고 있는데,구성 요소마다 못된 놈 좋은 놈들의 상호작용이 존재하지요.그 작용이 조화인데,이를 잘 이해해야만 흙의 질서를 배울 수 있거든요.따라서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이 그냥 그릇을 만들어 돈을 받고 팔아서 먹고 사는 경우와 먹고는 살되 흙의 질서를 배워 나도 흙이 되려고 하는 경우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제딴에는 후자에 속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문:백자 찻사발 세계를 들여다보면 박지원 선생의 양반전을 떠올리게 됩니다.조선의 양반제도가 지닌 모순과 폐해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꾸짖는 양반전의 통쾌함이 우 선생의 백자 찻사발에서도 감지된다는 말입니다.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이 무논에서 쟁기질하는 것 같은 묘한 맛과 함께,조선시대 양반들의 전유물이었던 백자를 민중들의 정서에 맞도록 재구성한 것은 확실히 놀라운 실험정신의 소산으로 보입니다.그런 것을 의식했을까요? ●양반제 폐해 신랄하게 풍자해 통쾌 우동진:꼭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다만 우리 시대의 삶과 정신을 담을 수 있는 백자라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줄곧 해왔습니다.임진왜란으로 한국 도자역사 500년을 일본에 빼앗겼지만 우리에게 미래는 무궁합니다.미래의 세대가 21세기 한국의 도자 역사를 물을 때 대답해 줄 최소한의 몇 마디라도 준비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도자기 만드는 이들이 실험정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재료도 부족하지 않으냐는 지적을 많이 합니다만 저는 그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상업적인 도자 제작 판매에 매달려서 남의 우수한 창작품을 베끼기하는 이들이 없지 않지만,그렇지 않은 더 많은 작가들의 작품은 하나 하나가 다 도전정신의 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지요. 문:우 선생께서는 평소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요. 우동진:남 욕하고 허물을 들추지 말자는 것이지요.작가로서 이름 얻는 수단만 좇을 게 아니라 내가 할 몫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최선을 다하다 흙이 되자는 것입니다. 문:우리나라 찻사발의 문제점이 뭐라고 보십니까? 우동진:찻사발 만드는 작가들이 먹고 사는 일에 너무 급급하다 보니 실험정신과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실험정신은 도자 교육과정에서 강조되어야 옳은데 이를 소홀히 하면 미래로 향하는 작가의 발목이 현실 안주라는 마귀에게 붙들리게 됩니다.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지요.부족함을 드러낼 줄 아는 것이 실험정신이고,아름다움 아니겠습니까?
  • [길섶에서] 걸 레/강석진 논설위원

    걸레를 빤다.손으로 비벼 뽀얗게 된 녀석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얼마전까지 수건으로 쓰던 놈이다. 하늘을 두둥실 떠다니는 뭉게구름처럼 하얗게 터져 나왔던 목화솜이,실로 묶이고,천으로 짜여져,수건이 되고,인간의 얼굴을 한동안 닦아주다가,해지고 흉해지니 이제 걸레가 되었구나. 몰골은 흉해도 네 마음 씀씀이가 아름답다.네가 아니면 이구석 저구석을 무엇으로 닦겠느냐.너는 우리집의 오염측정기다.너를 대면하며 내 사는 곳이 얼마나 더러웠는지 가늠한다.한쪽 구석에 천덕꾸러기처럼 놓여 있다가도 차례가 오면 맹활약하는 너의 용맹스러움과,깨끗함을 주고 더러움을 제 몸에 묻혀 가는 희생정신이 가상하다.상대를 가리지 않으니 너그럽고,깨끗해져 옛 영화를 다시 맛보려 들지 않으니 무욕(無慾)의 계(誡)를 실천하고 있구나.중광 스님이 “나는 걸레”라고 말한 것도 이런 뜻이었을까.정말이지 ‘걸레’같은 인간이 많으면 좋겠다.나른한 봄날 오후 걸레 하나 빨며 해 본 생각이다. 강석진 논설위원 ˝
  • YMCA의 산증인 ‘오리선생’ 전택부씨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라는 구절이 제 삶의 원칙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하늘 나라를 위해서는 YMCA 일을 했고 땅의 나라를 위해서는 ‘한글 운동’을 했습니다.” 한국기독교청년회(YMCA)의 산 증인 전택부(全澤鳧·89).이름 뒷글자인 ‘오리 부(鳧)’자 덕에 ‘오리 선생’으로 불리며 70년대 좌담회와 80년대 ‘사랑방 중계’ 프로그램 등에서 구수한 입담과 재치있는 유머 감각으로 넉넉한 웃음을 안겨주었던 서울 YMCA명예총무가 최근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수필선집 ‘자화상을 그리듯이’(범우사 펴냄)를 완간했다.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만난 전택부 선생은 건강한 모습으로 무욕(無慾)의 삶을 살고 있었다. “7년 전 주위에서 자서전을 내라고 권유했는데 뭐 내세울 만한 것도 없어 반대했는데 하도 극성스럽게 말을 해 자서전은 뭐하고 해서 그 동안 낸 글모음집을 내기로 했어.그 속에 내 삶이 들어 있거든.” 60세까지 발표한 글을 모은 1권과 YMCA를 떠난 뒤 낸 수필을 담은 2권에 이어 이번에 낸 3권은 근래에 발표한 수필로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YMCA 숨결 불어넣은 ‘영원한 Y맨’ 함남 문천에서 1915년 태어난 그의 삶은 YMCA와 뗄래야 뗄 수가 없다.고 장준하의 부탁으로 사상계 초대 주간을 맡은 뒤 57년 YMCA에 들어가 이듬해 사무국장,64∼75년 서울 YMCA총무를 역임했다.그 기간 1938년에 일본에 의해 해산된 뒤 유명무실해진 한국 YMCA에 숨결을 불어 넣었다. 78년 10여년 동안의 자료를 일일이 모아 ‘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1903∼1945)를 펴냈고 6·25 때 불타버린 서울시 종로구 YMCA회관 건물을 10여년에 걸쳐 다시 지었다. 또 지난해 ‘Y새끼다리들이여’를 펴내 서울YMCA 개혁운동에 길을 터주며 ‘영원한 Y맨’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다. “1848년 시작한 YMCA운동의 기본정신은 정의와 자유야.산업혁명 뒤 영국에 몰려든 노동자들이 비참한 삶에서 헤어나려 자발적으로 주창한 이 운동은 한국에서는 독립운동이라는 특수성까지 맞물려 젊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어.” 2001년 쓰러진 뒤 거동은 불편하지만 기억력은 비상했다.삶의 주요한 장면을 들려줄 때 연도까지 정확히 짚어냈다.아마도 유머를 강조하며 실천해온 것이 기억력을 유지해온 비결인 듯 싶다. “YMCA운동의 핵심은 교파와 인종을 초월하는 통합정신과 유머를 강조하는 방법론이야.사회 정의를 실천하되 유머스럽게 하자는 거지.그런 의미에서 YMCA는 한국 유머의 발상지야.” 그의 유머감각은 많은 일화를 남겼다.‘사랑방 중계’패널 시절 초대손님으로 나온 중광스님에게 “앞으로 당신을 중광 목사라 부를 테니 저를 오리 스님으로 불러 달라.”고 해 방청객을 웃긴 일은 유명하다.또 2003년 낸 책 ‘Y새끼다리여‘의 ‘새끼다리’도 YMCA간사를 뜻하는 영어 ‘Secretary’의 음을 빌려 만들 정도로 감각이 탁월하다. ●한글사랑 온몸으로 솔선수범 오리 선생의 삶의 다른 축은 ‘한글 사랑’.함흥 영생학교 시절 민족주의자인 조선어선생 조정우에게 한글의 과학성과 편리함에 감화를 받은 뒤 한글에 대한 애정은 평생 이어졌다.일본 유학길에 조선어학회가 발간한 잡지 ‘한글’ 창간호부터 싣고 갔고 창씨 개명마저 거부했다. 해방후에는 초등학교 선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54년 이승만 대통령이 ‘한글 간소화’를 추진하자 사상계에 특집기사를 실어 강력하게 항의해 철회시키기도 했다. “일본 신학교 본과에 다니던 40년 한글을 못쓰게 하자 이에 항의,학교를 자퇴하고 조선총독을 죽이고 나도 죽자고 마음먹기도 했어.그게 뜻대로 되겠어? 화병으로 건강이 악화돼 고향으로 돌아왔지.” 차분한 목소리가 한글날 대목에 이르자 언성이 높아졌다.“글이 없는 민족이나,있어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민족은 망해.만주족을 봐.유엔에서도 인정한 보배 같은 한글을 무시하고 국경일에서 빼는 얼빠진 나라가 어딨어?” 2000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던 도중 2001년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글날을 살려달라.’는 내용의 글을 전하고 오다 쓰러져 입원하기도 했다. ●“온통 돈주고 해처먹는 소리만 들려” 그의 삶은 ‘한 우물’로 정의될 수 있다.“평생 야인으로 살면서도 정권과 명예 앞에 굽실거리지 않았어.YMCA를 떠난 뒤 퇴직금으로 빚갚고 나니 생활에 쪼들릴 때 이름만 걸치면 월급을 주겠다는 제의도 거부했어.”라는 그가 바라보는 현실은 당연히 어둡고 답답하기만 하다. “온통 검은 돈 주고 돈 받아먹은 소리밖에 안들려.지조나 신의도 없이 이해관계에 따라 이 당 저 당 떠다니는 정치가들을 보면 개탄스러워.”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서울 YMCA인물 70인전’을 펴낼 준비에 분주하다.그의 ‘YMCA 사랑’도 한결같았다.“YMCA운동만 잘해도 나라가 잘돼.” 이종수기자 vielee@ ■걸어온 길 △1975년 서울YMCA 명예총무 △1981년 외솔회 이사 △1986년 한국상록회 고문·인간상록수 △1987년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고문 △1999년 Hulbert 이사 기념사업회 명예회장 △1999년 성재 이동휘선생 기념사업회 이사 △2000년 한글날 국경일 제정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장 △2002년 한글인터넷주소 추진 총연합회 의장˝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8) 신경림-새로운 국가 독점과 민중의 위상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사랑 노래’ 중에서) 세상에는 높아서 높은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낮아서 높은 사람도 있다.아니 이렇게 낮아서 높은 사람이 정말로 높은 사람이다.키도 작고 얼굴에는 굵은 주름,잔주름 골이 패어 뙤약볕 쐬며 이 장 저 장 돌아다니는 나이든 장꾼처럼 보이는 신경림 시인.그러나 그는 스스로 높이지 않는데도 가장 높은 시인의 한 사람이다.이런 일도 세상의 묘한 이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신경림 선생은 정릉의 한 아파트에 홀로 산다.혼자 지내시기 적적하지 않으시냐고 했더니 워낙 습관이 되어 괜찮다고 하신다. 손자가 가끔 놀러 온다는데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여간 귀여워하지 않으시는가 보다. 한 마디를 해도 속에 있는 마음이 다 보이는 것처럼 투명하게 하시기 때문에 사실은 그 안에 더 많은 것이 있는 줄 잠시 잊을때가 많다. “선생님 여름이 다 지나갔네요.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금년이 덜 더웠던 것 같아요.비가 많이 오고.그래도 여름이라고 섬에도 한번 갔다 오고 시골도 며칠 걸려서 갔다 왔어요.” “어디로……?” “전라도로 해서 경상도,강원도,충청도로 돌아왔지.버스 타고 다니는 재미로 한바퀴 빙 돌았어요.아무도 안 만나고 혼자 다녔어요.” ●겉으론 소탈…속으론 깔끔 나는 선생의 서재를 다시 한번 둘러본다.책이 많은데 참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선생은 이사온 지 1년 반쯤 되었다며 다른 사람 많이 주고 꼭 필요한 것만 들고 왔는데 그래도 찾기 힘들다고 하신다.역시 겉으로 소탈하고 속으로 깔끔한 분이다. “얼마 전에 내신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가 MBC의 ‘느낌표’ 도서로 선정되면서 사람들이 무척 관심을 가졌던 모양인데요.시는 많이 쓰시는지요?” “가능하면 시 이외의 글은 안 쓰고 시만 쓰고 싶어요.시를 쓸 시간도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으니까.” “시집은 언제쯤?” “당장은 못 내지만 내년에 전집을 낼 계획을 세우고있어요.” 나는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선생께서 펴내신 책도 많더라고 했는데,선생께서는 인터넷 정보가 엉터리가 많더라고 하신다.당신이 직접 내신 책은 스무 권 정도라나.그러나 나는 선생의 취향이 겉보기 이미지와는 달리 매우 지적이라고 생각해 왔던 터다.예를 들어 요즘 인구에 회자하는 작가 황석영씨의 ‘삼국지’ 이야기가 나오자 선생은 우리나라에 번역된 삼국지 판본들을 비교하면서 내심 다 평가를 하고 있지만 표현은 안 하시려는 태도다. 나는 선생께 드릴 짓궂은 질문을 준비해온 참이다.나는 웃으면서 말씀을 드렸다. “대통령 선거가 되면 후보들에게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런 거 물어보잖아요? 시내버스 요금은 얼마고,전철은 얼마고,물어보지 않습니까? 저도 선생님께…” “시내버스는 700원이고 전철도 700원이지? 나이 먹으면 공짜로 타는데 나는 돈 내고 타요.카드 사가지고서.나까지 그럴 거 없지 않으냐는 생각 때문에.이번에 돌아다녀보니까 참 문제가 많아요.지방(시골)에 가보니까 한 70%가 결손가정이에요.부모 중에 하나가 없거나 부모가 둘 다 없어서 할머니 밑에서 크거나.굉장한 사회문제였어요.돈벌이가 없으니까 서울에 나가는데 서울에서 돈벌이 하다 보면 안 돌아와요.그러다 보면 아녀자들도 남편 따라서 도시로 나가는 거죠.아이들만 남아서 할머니 밑에서 크고.가난이 아직도 문제라는 거지.빈부격차가 엄청나게 심해서,과장된 표현을 하면 이러다가 우리도 남미나 필리핀처럼 사회의 깊은 갈등으로 굳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IMF사태 이후로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없는 사람들 편에서 생각하는게 문학 “선생님 책이 많이 팔리는데요.그런 선생님께 서민들이나 민중의 삶에 관해서 여쭤보는 것이 아직도 유효한지 모르겠습니다.” “없이 사는 사람들 편에서 생각하는 것이 문학이 아닌가 생각해요.잘 살고 돈 많은 사람들 편에서 생각하는 게 문학이 아니라.문학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피해자일 수도 있고,소외 계층일 수도 있고,그런 사람들과 생각을 함께 할 때 문학이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닌가생각해요.또 어떤 면에서는 삶의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그런 게 위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상벽이 있는 나는 이 대목에서 잠깐 숙연해졌다.짓궂은 질문으로 대화를 주제와 다르게 즐겁게 끌어나가려고 생각했건만 선생의 한 마디,문학은 없이 사는 사람들 편에서 생각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그만 다 잊어버린 듯했던,지나간 시대가 생각났던 것이다.요즘은 문학하는 마당에서 이런 말씀 듣기가 얼마나 어렵던가.‘삼국지’도 좋지만 문학이 문학하는 사람들만의 놀이가 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할 만한 때인 것이다. “지금도 서민이라든지 민중이라는 개념이 유효하다고 보시는지요?” “글쎄,옛날 같은 개념으로 똑같이 취급해서 서민이나 민중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요.그러나 오늘날에도 틀림없이 소외된 사람들이 많고 어떻게 보면 점점 더 이 빈부격차가 굳어지면서 옛날 같은 신분 상승은 더 힘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이 체제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민중이라고 봅니다.” ●전지구화는 ‘빈익빈 부익부’ 조장 “저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이 세계가 자유롭게 통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 구획이 되어서 계층이 다른 사람들끼리는 서로 잘 만나지도 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오히려 그런 기제가 더 정교하게 발달해 가고 있다는.” “지금 전지구화라고 하지만 전지구화라는 것이 정말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만들고 돈 많은 사람은 더 돈 많게 만들고 힘 있는 사람은 더 힘 있게 만드는 거죠.미국이라는 나라는 더 거대해지고 약한 나라들은 더 조그맣게 되고.신자유주의라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얼마 전만 해도 자살자가 속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간접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만.그래도 뭔가 삶의 태도 같은 것에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명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우리나라의 경우 사람들이 뭘 너무 급하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빨리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요.천천히 하려는 생각을 잘 안 해요.전지구화가 되어서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죠.그런 엄청난 경쟁사회 속에서 느리게 사는 것,천천히 사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봐야 될 것 같아요.그런 것이 적어도 아름답게 사는 것이라는 인식 같은 걸 환기할 필요가 있어요.천천히 살고,낮게 보면서 살고,마주보면서 살고,그래야 되죠.요즘 다들 목소리 높여 사는 것도 너무 급하게 살기 때문에 그래요.이거 아니면 다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죠.” “신문이나 방송에서 워낙 큰 돈이 문제가 되다 보니 가치관의 혼란도 심한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아라,이렇게 말하면 너 바보 돼라 하는 소리로 알아듣는다고 해요.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언젠가는 가장 잘 사는 것으로 통해야 하는데 뭔가 잘못된 거지요.그러나 세상이 불합리한 것은 그것대로 고쳐나가면서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면 잘 될 거라는 인식이 중요하게 여겨져야 합니다.부패해서 불안한 마음으로 사는 것보다는 돈 많이 못 벌어도 늙어서까지 편하게 사는 게 좋지 않겠어요? 모든 전직 대통령이 다 발을 못 뻗고 자지 않아요? 긍정적으로 보면 이런 상황을 과도기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이런 과정을 겪고 나서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로 가야지요.” “뭔가 다르게 사는 사람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사실은 많이 있습니다.남들이 생각하지 않고 돌보지 않는 농사에 매달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고.내 주변에도 상당히 높은 공직에 있다가 나와서 사업을 했는데 그 재산을 다 나눠주는 사람이 있어요.그런 사람들 보면 또 우리 사회가 그렇게 잘못됐다 하는 생각은 안 하게 되죠.아직 사람들이 이웃을 생각하고 하는 걸 많이 봐요.” ●시민운동도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일 주장해야 선생은 날카롭게 보시면서도 중용적인 데가 있다.말씀을 이어 요즘의 상황에 대해서도 옛날처럼 노동자는 선,기업가는 악이라는 식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면서,특히 대기업 노동자들은 자기 목소리만 높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밝히신다. 또한 시민운동도 큰 목소리만 낼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주장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러나 선생은 기본적으로 낙관적이다.젊은 날에 못 가본해외여행을 요즘에 다녀보면 우리나라만큼 사는 나라도 드물고 이렇게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나라도 많지 않단다.그런 선생께 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시(詩)가 살아갈 수 있다고 보시느냐는 우문(愚問)을 던진다. “시를 읽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시는 우리의 정신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지요.또 우리나라는 아직도 갈등이 심하니까 시의 역할이 아직도 있다고 봐야겠어요.” 말씀을 마치시는데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눈에 들어왔다.여쭈어 보니,나이가 들어가면서 옛날에 읽어봤던 감동적인 책들,읽고 싶었는데 다 못 읽은 책들을 읽으려고 하신단다.나는 잔주름 맺힌 선생의 두 눈이 오래 저렇게 맑게 빛나기를 속으로 빌었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시인 신경림 ●가장 낮춰서 가장 높은… 내가 재직하는 곳이 정릉동에 있는데 새삼스럽게 생각나는 것이 신경림 선생이 바로 정릉동에 사신다는 것이었다.친근하고도 단단한 말씀으로 집으로 오라신다.선생은 그렇게 소박하실 수가 없는데 정작 집을 찾아 들어가니 웬걸,선생 서재에 책이 너무나 정갈하게 꽂혀 있어 놀랐다.그런데도 선생의 연륜을 보여줄 만한 오래된 책은 정작 많지 않아서 궁금해 했더니,옛날에 군사정권 때 세 번씩이나 가택 수색을 당하고 좋은 책을 다 뺏기고 나서는 정나미가 떨어져서 새로 모으질 않으셨단다.그러고도 생겨나는 좋은 책들이나 서화들은 취미가 없어서 남들 다 주어버렸다고 하시는데,선생께서 무욕(無慾)하시다는 것은 알았지만 또 새삼스럽다. 작년인가 선생께서 내게 당신이 쓰신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보내주시면서 “방 선생,꼭 읽어 보시오.”라고 쓴 것이 우스우면서도 어렵게 느껴져 안 읽을 수 없었는데,늘 선생은 가장 낮아서 가장 높은 어른이다.인터뷰 마치고 선생께서 젊은 사람들 왔으니 고기라도 사주겠다고,어디 맛있는 고깃집 보아둔 데가 있으시다고,어딘가로 끌고 가서는 우리를 자꾸 먹이신다.덕분에 취재에 동행했던 시골 태생의 자취생인 작가 김신우씨가 배가 불렀다. ●사색으로 다스린 곡절 많은 삶 신경림은 길의 시인이다.한국을 대표하는 몇 사람의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1936년 충청북도 중원 출생,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초등학교 교사,출판사 직원 등 젊은 시절은 세상을 널리 익히기 위한 나날이었다.그가 나루터에서,장터에서,산 위에서 한 말들은 다 시가 되었다.시집 ‘농무’(1973)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그는 세상을 낮게 살아오면서 많은 주옥 같은 시집과 산문집을 냈고 ‘민요기행’(1985),‘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1998) 등 사람들에게 공감과 배울 것을 주는 책들을 엮어냈다.시집으로 ‘새재’(1979),‘달넘세’(1985),‘길’(1990) 등이 있고 199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시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그를 가난과 농민의 애환을 그린 시인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 바탕에는 꾸준한 독서와 곡절 많은 삶을 다스리는 사색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 JP대망론이어 ‘대안부재론’

    자민련 김종호(金宗鎬) 총재권한대행이 21일 ‘JP 대망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리로 ‘대안부재론’을 제기했다. 김 대행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김종필(金鍾泌·JP) 명예총재가 지금 민심의 이동과 변화를 지켜보고 (대선출마를)스스로 결심할 때가 올 수도 있다”며 “내년초쯤이면 여권에서 대안부재론이 광범위하게 나돌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대선과 관련한 정치권의 상황이 변하고 있고 민심도크게 변하고 있다”면서 “대선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영남지역에서 제일 거부감이 덜한 여권 대선후보가 JP라는점을 주목하라”고 덧붙였다. 이에 JP의 공주고 후배인 한나라당 김홍신(金洪信) 의원은이날 편지를 보내 “그간 영욕이 많았던 김 명예총재의 인생에서 이제는 고요함을 배워야 한다” “무욕으로 돌아가라”고 고언을 토해냈다.자민련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이종락기자 jrlee@
  • 영혼은 보듬고 생명력은 탐색하고…

    시는 대개 드물게 주어지는 한가로움에서 읽게 되지만 좋은 시는 영혼을 바쁘게 출렁거려 준다. 김수영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을 받은 장석남은 시집 ‘왼쪽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창작과비평사)에서 세계를 현실로드러내거나 세계에 대하여 발언하고자 하지 않는다.시집후기 평문을 쓴 선배시인 최하림은 “다만 추억 속으로 들어가세계를 재생시키고자 하는 무욕한 꿈을 갖고 그 꿈을 보여준다”고 말하면서 특히 일상언어의 리듬감각을 잘 살린 시어에 주목한다. 풀린/봄/물결이여 네 고요 위에/봄비는 내려와/둥글게 둥그렇게/서로서로 몸을 감고 죽는다/…/아 너와 내가 잠들었던/이 한 덩어리 기슭의 바위에도 봄비는 와서/둥글게 둥그렇게/앉음새를 고쳐준다//(‘봄비’) 농민시에서 출발해 최근 생명시 자연시로 발전한 고재종은시집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시와사학사)에서 농촌 정경을 드러내면서 자연의 생명력을 탐색한다.시인 고은은 “농촌시에서 영영 이탈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승화로서 우주와 삶의 무애를 만나게 해준다”고 평했으며 평론가임규찬은 에로스적 서정에 주목하면서 “무언가로부터 결별했다는단절의 통증 속에서 지난 세월,자신이 놓쳐버렸던 것들을 아름다운 언어로 갈무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거기 막 탐스런 포도송이를/두 손 모아 받쳐드는/저 포도추렴온 연인들의…//그들 이내 포도알 하나씩 입에 따 넣고/아흐흐 아흐흐,퍼지지 않고는 못 배기는 단내와/젖지 않고는못 배기는 가슴들/(‘새말 언덕에 원두막 한 채를 치다’부분)김재영기자
  • [한반도를 평화 중심지로](4.끝)金대통령 국정운영방향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6일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이후 사정(司正)정국 도래설’을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러한 일을 한다면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도리가 아니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또 대화합 정치를 비롯해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세계적 경제강국 건설,남북 화해·협력 추진,서민생활보호 등 5대 국정지표를 설명하면서 노벨상위원회가 수상 이유로 적시한 대목임을 강조했다. 이는 노벨평화상의 정신을 향후 국정운영에 구현하겠다는 뜻이다.또한 지역·계층·집단 등 모든 갈등을 아우르며 가겠다는 구상이기도하다. 달리 보면 노벨평화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갈등 양상이좀처럼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한 관계자는 “여론조사 결과,‘북한에 그렇게 양보하고 노벨상을 수상하는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하는 비아냥거림이 잔존하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김 대통령이 새삼 국정 5대 지표를 거론한 것 자체가 국민대화합의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치유불가능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현상을 타개하지 않고서는 수상 의미는 물론 국가 재도약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이다. 따라서 노벨평화상 정신의 구현은 국민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것으로볼 수 있다. 첫 조치로 사직동팀을 28년만에 해체한 것도 마찬가지다.국민의 편에 서서 생각하고 국민의 요구를 국정의 그릇 안에 담아차근차근 실천해 가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간담회에서 “죽지않고 살아 대통령이 되고,이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으니 더없는 영광”이라고 언급한 것도 화합의 정치가 바로 무욕(無慾)의 정치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탄탄한 경제강국과정보강국을 다음에 들어설 정부에 물려주고 퇴임후에,나아가 역사의평가를 기다리겠다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김 대통령은 우선 개혁의 강도를 높이고,내치에 주력할것으로 판단된다. 또 야당의 목소리를 듣는 등 대화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가다가 탈(脫)정치의 시기를 가늠할 게 분명하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굄돌] 오어사에서 똥누기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지만,대한민국에서 가장 똥을 싸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나는 서슴지 않고 경북 포항시 오천읍에 있는 오어사(吾魚寺)라는 절이라고 말할 것이다.오어사는 원래 항사동이란 마을에 있어 항사사로 불렸다가 후에 바뀐 이름이다.그 이름의 유래는 일연이 쓴‘삼국유사’의해(義解)편의 이혜동진(二惠同塵)조에 나오는데,승려 혜공의 비범하고 신이한 능력을 보여주는 일화 속에 담겨 있다. 하루는 두 공(혜공과 원효)이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먹다가 돌 위에 똥을쌌는데,혜공은 이를 가리키며 희롱하기를 “너는 똥이고(汝屎)나는 물고기다(吾魚).”라고 했으므로 오어사라 하였다. 혜공의 장난끼 있는 말이 어이없게도 원효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하는 순간이다.혜공의 한마디는 원효의 학식과 도의 경지를 순식간에 내리누르고도 남는다.혜공이 원효의 스승격에 해당하는 인물임을 보여주고 있으나,곱씹어 볼것은 물론 혜공의 말이다.물고기가 똥이 되는 과정에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죽음뿐만 아니라 그렇게 파괴시키는 인간의 식욕이 매개되어 있다. 그러나 똥을 다시 물고기로 인식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대립되는 상극(相剋)을 하나로 보는 일원론적 사유와 불교적 윤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그리고인간과 물고기의 만남은 살생과 희생의 관계가 아니다.물고기를 만나 인간은살고, 인간은 다시 물고기를 살려보내려는 상생(相生)의 관계를 희망한 것이다. 이러한 상생의 관계가 유지되는 한 인간은 생명을 죽이는 이기적인 탐욕의 존재가 아니라 생명을 가치로 여기는 무욕의 존재에 가까워질것이다. 오어사는 이러한 깨달음이 살아 있는 곳이다.똥을 생명체의 죽음으로 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생명체로 인식하려는 무욕의 공간이다. 그렇게 보면 오어사는 포항시에 있는 어느 특정한 절이 아니라 마음 속의 절이다. 자 이제오어사로 가서 엉덩이를 시원스레 드러내놓고 마음껏 살아 있는 생명의 똥을누자. 홍창수 극작가
  • “채권단과 협의 구조조정 이행” 金宇中회장 성명

    김우중(金宇中) 대우 회장은 25일 대우의 구조조정계획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채권금융기관과 협의,사업분리,자산매각,계열사 분리 등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또 구조조정 추진을 둘러싸고 정부 및 채권단과 대우 사이에이견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대우센터에서 ‘구조조정의 확실한 이행을 다짐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이번 성명은 계열분리 및출자전환 등을 통해 대우의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수용,금융시장의 불안심리를 조속히 진정시키고 이를 통해 구조조정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김회장은 대우 해외차입현황과 관련,현지법인 외화 차입금 중 외국계 금융기관을 통한 차입은 45억8,000만달러 수준이며 이 중 단기차입금은 27억1,000만달러(한화 약 3조2,500억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평생을 기업경영을 통해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하려고 노력해 왔다”면서 “다시 한번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무욕(無慾)의 자세로 혼신의힘을 다해 대우그룹의 경영을 조기에 정상화해 국가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없애고 명예롭게 퇴진하겠다”고 말했다. 김환용기자 dragonk@
  • 고은 소설 ‘수미산’…수미行者의 비장한 구도정신

    고은 시인(67)이 ‘소설 화엄경’에 이어 또 하나의 구도소설을 냈다.물무늬 같은 선적(禪的) 감수성이 빚어낸 장편 ‘수미산’(전2권,대원정사).‘소설 화엄경’이 선재동자의 구도행각을 그저 평면적으로 그린 작품이라면 ‘수미산’은 천상과 지옥,축생과 아귀 등을 종횡으로 오가며 존재의 의미를캔 매우 입체적인 소설이다. 환속을 했다고 하지만 고씨는 마음 한 자락을 여전히 산문(山門)에 걸쳐 두고 있다.선의 정신에 바탕을 둔 리얼리즘 작품들을 통해 그는 특유의 ‘화엄적 변증법’의 세계를 일궈왔다.‘수미산’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읽힌다. 이 작품은 보통 소설들과는 달리 구도가 미리 짜여져 있지 않다.등장인물이 그때 그때 스토리를 이끌고가는 형식으로 꾸며졌다.따라서 주인공이 따로없다.각 등장인물들이 저마다의 업보와 발원을 안고 세상을 편력하는 식이다.구태여 주인공을 들라면 우주 한가운데 우뚝 솟은 수미산이라고 할 수 있다.수미산은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의 산이 아니다.그것은 인도의히말라야산을 본뜬 허구의 산이요상상의 산이다.그러나 이 마음속의 산인수미산은 작가에게는 눈에 보이는 히말라야보다 더 생생한 현실로 다가온다. 소설에서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밑으로는 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의 세계가 펼쳐지며 그 위로 층층이 솟아 있는 하늘에는 신들의 세계가 무진장으로전개된다. 소설의 공간적 출발점은 서해안의 무인도인 무욕도(無慾島).서산 간월암(看月庵)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 ‘바다의 도량’은 이름 그대로 세속의 번뇌와욕망을 떨쳐버리고자 하는 수행인의 발원이 담긴 섬이다.이 무욕도의 수행자들은 일정한 경지에 든 뒤에는 자비행에 나선다.소설은 지장보살처럼 지옥마저 구도의 장으로 삼고 신음하는 중생을 구하려는 수미행자의 비장한 삶에서 절정을 이룬다. 불교에서는 본래 윤회를 부정적인 눈으로 본다.윤회의 사슬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 해탈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작가는 윤회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윤회를 무한한 수행과정으로 인식하는 그의 시각은 그래서 독특하다.그는 “누가 해탈을 윤회의 반대라고 하는가.윤회야말로 우주의 힘이고 세계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법칙이다”라고 사자후를 토한다.윤회가 해탈이라는 이 언어도단의 이치.그것은 작가로 하여금 미물조차도 자신의 삶 속으로 기꺼이 받아들에게 한다.그는 이제 이 세상에 작은 짐승이나 심지어 아메바로 태어나도 좋다.고은 시집 ‘속삭임’에 나오는 시 ‘내생’을 보면 그의 윤회·해탈관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겠다/결코!//이 다음에 나는 짐승이면 된다/큰짐승이 아니라/잔 진승이면 된다/또는/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아메바이면 된다…” 이렇듯 그는 끝없이 태어나고 죽는 윤회의 과정을 무한한 수행의 과정이요,깨달음이 동터오는 삶의 장으로 껴안는다.생사를 들고 나는데 작가 고은은그토록 자유롭다.억겁의 세월이 지나 그 세월마저 무너져내릴 때까지….
  • 沈壽官/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한국의 예술에 대해 한국인보다 더 큰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던 일본의 미술사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도자기의 아름다움은 ‘자연이 보호’ 해주는 ‘무사(無事)의 아름다움’이며 그곳에 깃들인 자재미(自在美)와 무심미(無心美)는 ‘조선인이 아니면 아무나 할수 없는 조선만의 창조’라고 감탄했다. 따라서 조선의 도자예술은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으며 ‘뽐내며 피는 모란꽃이 아무리 강하고 아름다워도 가련한 수련의 아름다움을 거부할 수없다’고 철저히 편들었다. 임진왜란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도공의 후예 沈壽官이 정부수립 50주년을 맞아 ‘400년만의 귀향­ 沈壽官家 도예전’을 일민미술관에서 갖게 된다고 한다. 심수관가는 일본 도자기의 대표적인 대명사인 사쓰마야키(薩摩燒)의 종가로 1598년 남원성(南原城)이 함락되면서 왜장이 끌고간 조선도공 중 沈當吉이 이룬 일가다. 올해로 일본의 최남단 가고시마(鹿兒島)에 정착한지 400년. 그동안 조상이 물려준 성(姓)을 그대로 간직한채 일본 최대의 도예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일본인들은 조선도 공들에게 좋은 흙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도예작업에만 매달릴 수 있도록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순수혈통을 잇기 위해 잡혼을 금지하는등 조선에서 천대받던 조선의 기술을 그들은 일본에서 마음껏 꽃피울수 있게 했다. 특히 이번에 선보인 작품중에는 끌려가면서 가져간 흙과 잿물로 빚었다는 초대 沈當吉의 ‘히바카리’도 들어있다. 그의 도예는 조선미술에 심취하다 조선땅에 묻힌 일본인 아카사카 다쿠미에 의하면 ‘사람의 손으로 빚은 또하나의 자연’이다. 역시 심수관가의 도자기를 본 소설가 한수산도 그의 작품은 ‘본것이 아니라 만난 것이며 귀기가 느껴질 정도로 무섭다’고 했다. 한 문화사학자는 ‘온갖 위대한 문화의 역사는 그 문화가 지닌 도자기에서 찾아볼수 있다’고 지적한다. 400년간을 이국땅에서 살았으나 오염되지 않는 도공의 순수성은 아무나 흉내낼수 없는 무욕(無慾)경지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사람이기 때문이며 심수관의 도예는 바로 조선도혼(陶魂)의 맥을 잇는 그 흔적일 것이다.
  • 이홍구 대표 공식 경선합류 임박

    ◎11일 대표 퇴임직후 출마 뜻 밝힐듯/새달부터 의원·대의원접촉 본격화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가 「위탁관리자」에서 대권주자의 한명으로 탈바꿈한다.새로운 당체제의 출범에 때맞춰 당내 대권 레이스에 본격 가세하는 것이다. 이대표는 13일 새 대표 임명을 위한 전국위원회 소집을 앞두고 11일 하오 청와대를 방문,김영삼 대통령에게 퇴임인사를 할 예정이다.이어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퇴임의 소회와 향후 거취문제를 언급한다.측근들은 청와대 방문과 기자간담회에서 경선출마의 뜻을 완곡하면서도 분명하게 밝힐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이미 이대표는 7일 최형우고문등 몇몇 대권주자들에게 자신의 출마의사를 전하며 「인사」를 나눴다. 이대표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집권여당 대표로서의 지난 10개월을 반추하고 15대 대선이후의 국가를 이끌 리더십에 대한 견해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21세기 국가경영의 비전과 창조적 리더십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상품성」을 부각하며 자연스레 대선출마의 뜻을 내비칠 것으로 전해졌다.유약한 이미지를 떨칠 강한 어조가 사용될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당직개편 이후 이대표는 이달중 조직정비를 마친 뒤 4월부터 본격적인 소속의원 및 대의원 접촉에 나설 계획이다.특히 4월중 미국을 방문,워싱턴 존스홉킨스대에서 강연을 하고 몇몇 언론사와 회견을 갖는 등 대외적 이미지를 제고하는 방안도 잡아놓고 있다. 「무욕론」을 털어낸 이대표의 변신에 대해 당내의 반응은 엇갈린다.다만 대권레이스에서의 자력우승을 위해서는 김심,즉 김대통령의 도움이 절대적인 변수이며 이대표측도 이에 의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한 대권주자는 이대표를 이회창·박찬종 고문에 대한 견제카드로 조심스레 해석하기도 한다.
  • “국민 신뢰회복 절실”합심노력 당부/이홍구 대표 당무회의 고별사

    ◎개인 사무실 곧 마련… 정치행보 본격화될듯 경질을 앞둔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위원이 5일 당무회의에서 「고별사」를 했다. 이날 회의는 그가 주재하는 마지막 당무회의였다.후임 대표 임명동의안 처리를 위한 전국위원회는 다음주 열린다.이대표는 김영삼 대통령의 전국위 소집지시로 대표경질이 공식화될 6일 청와대 주례보고를 앞두고 스스로 당무를 매듭짓는 수순에 들어간 셈이다. 이대표는 또 『올해 정치일정이 험난하니 당무위원들이 단합,개인의 욕심이나 집단의 이익을 넘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자』고 결속을 당부했다.끝으로 이대표는 개인적인 거취와 관련,『당과 국가를 위해 힘닿는대로 적극적 자세로 일하겠다.앞으로도 계속 도와달라』며 여운을 남겼다. 이대표의 한측근은 『당 대표직에서 벗어남으로써 이제 정치인 이홍구의 행보는 자유롭게 됐다』면서 『향후 활발한 행보를 암시한 고별사 내용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광화문이나 여의도 일대에 개인 사무실을 마련키로 했다는 후문도 이대표가 더이상 「무욕론」에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한층 넓어진 대권레이스 입지/이홍구 대표 향후행보

    ◎“승산 충분… 적어도 당내위상 확보” 이달 중순쯤 이뤄질 신한국당 대표의 교체를 앞두고 현 이홍구 대표의 향후 거취가 관심이다.이대표는 일단 대표직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상임고문에 앉을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안팎의 관심은 그의 대권도전 여부에 쏠려 있다. 이와 관련해 이대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한 측근은 『이대표가 향후 거취에 대해 숙고하고 있으나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전했다.그러나 당내에서는 그의 변신을 점치는 시각이 우세하다.「관리자」의 틀에서 벗어나 어떤 식으로든 대권레이스 합류를 모색하리라는 관측이다. 이대표가 대권행보에 나서리라는 관측을 뒷받침하는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우선 행보가 빨라졌다.당정개편이 기정사실화된 지난달 중순부터 이대표는 당 안팎의 지인들과 활발히 만나 거취문제를 심각히 논의하고 있다.이를 통해 대권행보에 상당한 자신감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이대표 스스로도 3일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완곡하게나마 대권도전의뜻을 내비쳤다.결심을 굳히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이대표의 의중이 대권도전쪽으로 기울고 있음은 분명한 셈이다.당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대선후보들의 합종연횡의 결과에 따라서는 충분히 승산이 있으며 설사 대권도전에 실패하더라도 작지 않은 당내 위상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의 거취에 대해 당내에서는 오는 10일이후 대표교체가 이뤄질 전국위원회 소집 전후 시점을 주목하고 있다.어떤 식으로든 이대표가 자신의 거취문제를 언급하리라는 관측이다.많은 사람들은 이 시점이 이대표가 그동안의 무욕론을 털어버릴 때로 보고 있다.
  • 스님들의 탁발(외언내언)

    『…인간이 백살을 산다 해도 병든 날 잠든 날 걱정근심 다 제하면 단 사십을 못사는 인생,한번 아차 죽어지면 싹이 나느냐 움이 나느냐… 명사십리 해당화는 동삼 석달 죽었다가 봄이 오면 다시 피련만 우리 인생 한번 가면 어느 시절 다시 오나,생각하면 묘창해지일속이라…』 남루지만 정갈하기 그지없는 장삼에 삭발자국이 파르스름한 채 대문간에 서서 이런 「회심곡」을 들려주는 탁발스님이 옛날에는 있었다.구성지고 절절한 그 노래를 다 듣기 위해 어머니들은 시주거리를 들고서도 선뜻 나서지 않고 부엌문 뒤에 숨어서 끝나기를 기다리곤 하셨다.인생무상과 부모은중의 뜻,그리고 덕행의 독려가 구구절절한 회심곡 한곡을 적선과 바꾸고 표표히 떠나는 탁발승의 걸음에는 마알갛게 승화된 무욕의 아름다움이 배어 있었다. 탁발은 그것으로 거두는 실제의 구제보다는 목탁을 두드리며 외는 염불이나 구성진 회심곡 한가락이 중생의 마음을 울리는 구제를 더 크게 여겼을 것이다.그 탁발이 「구걸」로 절하된 것을 꺼려 금지한 것을 조계종 종단차원에서 재현하는 행사가 있었다.불우이웃과 북한동포 돕기가 취지다. 그러나 복잡하고 현란한 현대도시의 도심에서 벌인 오늘의 탁발은 옛날과는 영 다르다.기회있을 때마다 정치적 비중이 육중하게 돋보이던 스님이 윤기 있는 장삼과 가사차림으로 즐비하게 참여하고 그 곁에는 부유해 보이는 여신도의 패셔너블한 매무새가 날아갈 듯 화사하게 따르고 있다. 세월이 달라졌음을 실감케 하는 이런 탁발에는 시주도 단위가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살림에 고달픈 시정의 아낙에게 위로를 주던 「회심곡」의 선사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기우」겠지만 이런 것을 흉내낸 사이비 시주의 강요가 정당화되는 부작용도 염려된다.굳게 닫친채 열릴줄 모르는 여염이라 탁발에 나서는 스님도 한계를 느낄 것 같다.모처럼 재현된 도심의 탁발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 “김심 중립” 해석속 미묘한 시각차/여 예비주자 반응

    ◎이회창·박찬종 고문측 공정경선방침 환영/3·5보선후 후보군 본격 경쟁체제 나설듯 신한국당의 대선예비주자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대통령 후보를 투명하고 민주적이며,공정한 경선을 통해 선출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데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대부분 최대 킹메이커로 여기던 이른바 「김심」의 중립으로 해석하는 눈치였다. 이를 뒷받침하듯 강삼재 사무총장도 『현재의 당헌·당규를 고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했다.이미 실무작업이 진행중임을 시사한뒤 조만간 당내에 개정위원회의 설치 뜻까지 피력했다. 당헌·당규의 개정은 사실상 당내 예비주자들간 대권레이스 돌입을 의미하는 일이다.그동안 일부 주자군이 누차에 걸쳐 당헌·당규 개정필요성을 제기하고 그 때마다 당지도부가 이를 전면 부인한 「다람쥐식」 설전도 사실은 대권논의와 맞물려있었다. 개정의 핵심은 경선출마자가 8개 시·도 각 50명 이상의 대의원 추천을 받아야 하는 현행 규정의 존폐여부다.또 미국식 예비선거제도를 도입할 것인지와 이에 따라 현 대의원 수를 얼마나늘리느냐로 압축된다. 대부분의 예비주자군들도 앞으로 논의해야 할 문제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이를 인정한다.이회창·박찬종 고문측이 공정한 경선 방침을 환영하면서 실질적인 조치로 대의원수 확대에 보다 큰 관심을 나타냈다.반면 당내 지분이 비교적 탄탄한 최형우 이한동 고문과 김덕룡 의원측은 대통령의 의지표명 자체에 무게를 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후보군은 「공정한 경선」에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대통령의 공정한 경선관리는 상대적으로 각 진영의 역할 증대를 위한 공간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또 후보간 합종연횡의 가능성은 물론 「김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후보군의 세력약화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설사 그렇더라도 당총재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시각도 없지않다. 어째튼 「3·5 보선」이 끝나면 당은 사실상 후보군들간의 본격 경쟁체제로 돌입한다고 봐야할 것이다.이홍구 대표의 한 측근은 『경쟁을 위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조성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무욕을 넘어 경쟁에 합류할 뜻임을 시사한 대목이다.
  • 여 당정개편/「대선관리형 체제」 유력

    ◎물갈이 방향·폭싸고 관심 고조/김 대통령 경제회생·안보에 더 큰비중/대선주자보다 무욕의 중진급 기용설 여권의 당정개편이 표면화되면서 정가의 관심은 개편 방향과 폭에 쏠리고 있다.방향은 이번 개편을 계기로 과연 대선국면으로 진입하느냐,아니면 여전히 12월 대선을 위한 관리형체제의 유지냐로 압축된다. 현재 당쪽의 기류는 대선 관리형체제의 등장 관측이 주류를 형성한다.예비주자군의 대표기용보다는 당내 경선과 대선을 관리할 무욕의 중진급 인사가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의중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고 말한다.경제회생과 안보가 시급한 현실에서 후보군 인사의 기용은 자칫 당내 분란의 소지를 높일 것이라는 우려에서이다. 물론 현 이홍구 당대표­이수성 국무총리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을 전제로 한 관측이다.한 민주계 의원은 『그렇지 않고서는 당정개편의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에 비해 소수론이지만 후보관리를 위한,즉 대선논의 자제를 지탱할 체제의 등장을 점치는 상반된 관측도 공존한다.여론의 허를 찌르는 김대통령의 인사스타일도 이 논리에 한 몫을 하고있다.선 내각과 청와대,후 당이라는 「징검다리식」 개편방식도 그럴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들은 노동법과 한보사태로 당이 깊은 상처를 입긴했어도 지도부를 경질할 이유까지는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른바 「유한책임론」이다.사태의 본질상 내각과 청와대가 책임질 영역이 크지,당이 짊어져야 할 「부채」는 별로 없다는 논리다. 이들은 또 3월5일 보선결과를 변수로 꼽는다.의외의 성과를 거둘 경우 되려 늦춰지거나 소폭에 머물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사실 당진용의 재편은 누가 대표가 되건 후보논의 촉발과 무관할 수 없다고 봐야한다.당의 「새판짜기」는 후보군의 한사람이 대표로 있는 현체제의 붕괴를 의미,후보간 경쟁을 불러올수밖에 없다. 이는 효과적인 임기말 국정운영의 걸림돌로 작용하리라는게 소폭의 후보군 관리형체제의 등장을 내다보는 인사들의 논리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