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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통령 노벨평화상/ 사선넘어 민족화해의 물꼬 트다

    온갖 풍상(風霜)과 비운(悲運),그리고 좌절과 고난….흔히들 다섯번에 걸친 죽을 고비와 6년간의 감옥살이,55차례의 연금,10년의 망명생활로 부른다. 그런 고통의 세월을 견디어,‘인동초’로 불리는 섬마을 소년이 한민족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았다.그것도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자랑스런 평화상을.민주주의와 인권,한반도의 평화를향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긴 여정을 세계가 노벨평화상이라는값진 명예로 보답한 것이다. ◆유년시절과 정치입문 제 79대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인 김 대통령은1925년 12월3일 한반도 서남단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金雲植)과 어머니 장수금(張守錦) 사이의 네형제중둘째로 태어났다.그는 5년제였던 목포상업학교를 43년 졸업한 뒤 일제의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해운회사에 취직한다.해방되던 45년 해운회사를 차려 불과 4∼5년만에 화물선 15척을 소유하는 상업수완을발휘,목포신문사까지 인수하는 촉망받는 청년실업가로 급성장하게 된다. 학창시절,웅변에 능했던 그는 정치에 뜻을 두고 54년 해운노조의 지지를 받아 3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나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어찌보면 불운으로 점철된 그의 정치역정은 이 때 이미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30대 초반이었던 그는 두번의 실패 끝에 61년 5월 강원 인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나,겨우 사흘만에 5·16 쿠데타로 국회가해산되는 바람에 당선 무효,정치규제라는 불운을 맞게된다.박정희(朴正熙)가 대통령에 당선된 63년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그는 고향인 목포로 지역구를 옮겨 6대 의원에 당선,정연한 논리와 합법적인 의정투쟁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그의 정치인생에서 커다란 절정중 하나는 라이벌인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을 꺾고 40대에 제1야당인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일.끝내 박정희(朴正熙)후보에게 패했지만,그의 정치적 위상은 당선에버금갔다. ◆정치적 고난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집권층의 탄압을 받게되는 고난의 신호탄이기도 했다.대통령 후보로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통일정책과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 등 한반도외교정책은 뒷날 탄압의 빌미를제공하고,그 때부터 덧칠해진 ‘정치조작’은 그를 평생 괴롭히는 낙인으로 붙어다니게 된다. 국회의원 지원유세 도중,트럭 암살기도로 다리에 고관절 장애를 입었고,유신철폐를 주장하다 73년 여름에는 도쿄 납치사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다.79년 이른바 ‘서울의 봄’에는 민주화를 이루려다 신군부의 집권으로 군사법정에서 내란음모 혐의로 급기야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당시 수형생활 도중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와 가족들과 2년여동안 나눈 엽서는 뒷날 ‘김대중의 옥중서신’으로 출간돼 수감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국제여론과 미국 정가의 압력으로 특별감형된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 망명길에 올라 미국내 ‘한국인권문제연구소’를 개설했고,하버드대 국제문제 연구소 객원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대중참여 경제론’을 완성한다. 85년 2월8일 미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길에 오른 그는 미 각계지도자 20여명과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연행돼 가택연금 상태에놓이게 되나 김영삼 전대통령과 민추협 공동의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 주도한다.87년 6월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했으나 야권후보단일화실패로 대선에서 패했고,5년뒤에는 3당합당으로 여당후보로 출마한김영삼 전대통령에게 패배,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로유학길에 오른다. ◆수평적 정권교체와 IMF극복 통일방안 연구를 하다 93년 귀국,아태재단을 설립한 그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하자 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정계에 전격 복귀한다.이후 IMF 파고에서 ‘준비된대통령’이란 구호로 당선돼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의 위업을달성,3전4기의 신화를 낳는다. 그러나 당선 다음날부터 ‘6·25 이후 최대 국난’인 IMF위기와 싸운다.외자유치를 위해 당선자 시절부터 외국인들을 만났고,취임 이후에도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200만명에 육박한 실업자들이 노숙자로 변했고,경제위기는 계속됐다.하지만 그의 헌신성은 사상 유례없는 ’금모으기 운동’을 이끌어냈고,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 등 4대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했다.또취임사에서 대북 3원칙을 천명하고,북한에 대한화해·협력정책을 일관되게 폈다. 하지만 소수정권의 한계는 취임초부터 정치불안정이 계속됐고,원내 안정의석 확보의 필요성을 느껴 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원내 제1당이 되지못해 여전히 정치적 어려움에봉착해 있다. 하지만 그의 열성적인 노력은 IMF 구제금융에 들어간 지 1년반만에약속대로 외환위기를 극복했고,현재 외환보유고는 100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또 98년말 무역흑자가 사상 최고액인 400억달러를 돌파했고,국제신용기관의 한국의 신용등급은 상향조정되기에 이른다.실업자수도 80만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남북정상회담 대북 햇볕정책 또한 결실을 맺기 시작해 금강산 관광에 이어 지난 6월에는 역사적인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6·15공동선언’이라는 남북관계 대장전을 마련했고,남북이산가족 상봉,시드니 올림픽 공동 입장,비전향 장기수의 북송,경의선 복원공사 착수,남북 장관급 및 국방장관 회담으로 발전시켰다.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이 일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 20세기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튼 것이다.그가 평생을 준비해 온 3단계 통일정책의 1단계 완성을 향해 숨가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셈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北美 주요 합의 사항별 점검

    ◆평화협정 이행=북·미는 공동 코뮈니케에서 한반도 평화보장체제수립을 위해 4자회담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는 데 견해를 같이 했다.이는 두나라가 4자회담이란 마당(場)을 통해 한국전쟁 이후 지속돼온 기존의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노력을 가속화해 나갈 것임을 약속한 것이다.또 4자회담이 평화체제로 가는데 중요한 메커니즘의 하나가 됐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확보받으려고 노력해 왔다.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 시도도 이를 위해서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평화체제 수립논의가 4자회담이란 ‘다자협의 채널’을 통해 이뤄지게 된 것은 남북관계 및 동북아지역 안보의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평화체제의 수립문제는 정치·군사적인 신뢰가 구축되고 정상적인 외교관계가 확립된 뒤에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북·미관계의 최종 단계에서나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석우기자 swlee@. ◆핵·미사일 기본합의=북한과 미국간 갈등의 중심에 있어온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문제는 기존의 협약이 재확인됐다. 핵은 지난 94년 맺어진 제네바 기본 합의문에 명시된 각자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로 했다.합의문대로라면 국제기구의 확인이 북한핵의 투명성을 다시 확보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미사일에 관한한 북·미는 이번 성명으로 모두 세번째 발사 유예선언을 하게 된 셈이다.북한은 관련회담이 열리는 한 발사실험을 하지않기로 통보했음을 공동성명에서 밝히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분명히 발사실험을 폐기하지는 않았다.그러나 미사일의 경우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에 필요한 미 의회 동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사항이니만큼 그 효과는 가질 수 있다. 또한 용어 사용에서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다”고이전보다 포괄적으로 명시해 미사일 억제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보인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적대관계 해소=북·미 양측은 공동 코뮈니케에서 적대감을 떨쳐버리기로 했다고 공언했으나,이른 시간내에 양측의 적대관계가 근본적으로 해소되기는 힘들 것이란 시각이 더 많은 것 같다.양측 사이에놓여있는 걸림돌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걸림돌은 크게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느냐 여부와,북한이미사일 개발과 수출을 포기하느냐 여부 등 두가지다.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이 요도호 납치범인 일본 적군파를 추방해야 하는 껄끄러운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미사일은더욱 어려운 문제다.북한은 미사일을 체제유지의 마지막 보루로 여기고 있다.북한의 미사일 포기는 결국 군사강국 정책을 포기하고 미국의 질서 속으로 편입되는 천재지변적(?) 사건을 의미할 수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12일 “양측이 미사일 문제 등에서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과거의 합의를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친 것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를 두고 힘겨운 씨름을 계속할 것임을 시사한다”고평가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경제교류 협력=북·미 양측의 합의대로 가까운 시일안에 경제 무역 전문가들의 상호 방문이 실현되더라도 이는 상징적 의미에 그칠 뿐,본격적인 경협의 신호탄 역할을 하기엔 이르다는 게지배적인 관측이다.경협 활성화를 위해 먼저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지금과 같이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법률상 미국 기업의 대북 투자와 수출입이 제한돼 있는 실정이다. 이번 북·미 코뮈니케에 양측이 이처럼 실효성 없는 상호방문 문제를 명기한 것은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와 맞물려 경협분야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어렵게 되자 ‘만만한’ 아이템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상연기자
  • 北·美 공동코뮈니케 전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인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명록 차수가 2000년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미합중국을 방문하였다. 방문기간 김정일 위원장이 보내는 친서와 조ㆍ미관계에 대한 그의의사를 조명록 특사가 미합중국 클린턴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였다. 조명록 특사와 일행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월리엄 코언 국방장관을 비롯한 미행정부의 고위관리들을 만나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폭넓은 의견 교환을 진행하였다. 쌍방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사이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시킬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이 조성된 데 대하여 심도 있게 검토하였다.회담들은 진지하고 건설적이며 실무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을 통하여 서로의 관심사들에 대하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역사적인 북남 최고위급 상봉에 의하여조선반도에 환경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강화하는 데 이롭게 두나라 사이의 쌍무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들을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쌍방은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1953년의정전협정을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조선전쟁을 공식 종식시키는 데서 4자회담 등 여러가지 방도들이 있다는 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 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과 미합중국 측은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국가들 사이의 관계에서 자연스러운 목표로 되며 관계 개선이 21세기에 두 나라 인민들에게 다같이 이익으로 되는 동시에 조선반도와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전도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인정하면서 쌍무관계에서 새로운 방향을 취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하였다. 첫 중대조치로서 쌍방은 그 어느 정부도 타방에 대하여 적대적 의사를 가지지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앞으로 과거의 적대감에서 벗어난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공약을 확언하였다.쌍방은 1993년 6월 11일부 조ㆍ미 공동성명에 지적되고 1994년 10월 21일부 기본합의문에 재확인된 원칙들에 기초하여 불신을해소하고 호상(상호) 신뢰를 이룩하며 주요 관심사들을 건설적으로다루어 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이와 관련하여 쌍방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가 자주권에 대한 호상 존중과 내정불간섭의 원칙에 기초하여야 한다는 것을 재확언하면서쌍무적 및 다무적 공간을 통한 외교적 접촉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것이 유익하다는 데 대하여 유의하였다. 쌍방은 호혜적인 경제협조와 교류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협력하기로합의하였다.쌍방은 두 나라 인민들에게 유익하고 동북아시아 전반에서의 경제적 협조를 확대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는 데 기여하게 될 무역 및 상업 가능성들을 탐구하기 위하여 가까운 시일 안에 경제 무역 전문가들의 호상 방문을 실현하는 문제를 토의하였다.쌍방은 미사일 문제의 해결이 조ㆍ미 관계의 근본적인 개선과 아시아ㆍ태평양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는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 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은 새로운 관계 구축을 위한 또 하나의 노력으로 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회담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모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하여 미국측에 통보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기본합의문에 따르는 자기들의 의무를 완전히 이행하기 위한 공약과 노력을 배가할 것을 확약하면서 이렇게 하는 것이 조선반도의 비핵평화와 안전을 이룩하는데 중요하다는 것을 굳게 확언하였다.이를 위하여 쌍방은 기본합의문에 따르는 의무 이행을 보다 명백히 할 데 대하여 견해를 같이 하였다.이와 관련하여 쌍방은 금창리 지하 시설에 대한 접근이 미국의 우려를해소하는데 유익하였다는 데 대하여 유의하였다. 쌍방은 최근연간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인도주의 분야에서 협조사업이 시작되었다는 데 대하여 유의하였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측은미합중국이 식량 및 의약품 지원분야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인도주의적 수요를 충족시키는데 의의있는 기여를 한 데 대하여 사의를 표하였다. 미합중국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조선 전쟁시기에 실종된 미군 병사들의 유골을 발굴하는데협조하여준 데 대하여 사의를 표하였으며 쌍방은 실종자들의 행처를 가능한 최대로 조사,확인하는 사업을 신속히 전진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다. 쌍방은 이상의 문제들과 기타 인도주의 문제들을 토의하기 위한 접촉을 계속 하기로 합의하였다.쌍방은 2000년 10월 6일 공동성명에 지적된 바와 같이 테러를 반대하는 국제적 노력을 지지 고무하기로 합의하였다. 조명록 특사는 역사적인 북남 최고위급 상봉 결과를 비롯하여 최근몇 개월 사이의 북남대화 상황에 대하여 미국측에 통보하였다.미합중국측은 현행 북남대화의 계속적인 전진과 성과 그리고 안보 대화의강화를 포함한 북남 사이의 화해와 협조를 강화하기 위한 발기(의견이나 제안)들의 실현을 위하여 모든 적절한 방법으로 협조할 자기의확고한 공약을 표명하였다. 조명록 특사는 클린턴 대통령과 미국 인민이 방문 기간 따뜻한 환대를 베풀어준데 대하여 사의를 표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김정일 위원장에게 클린턴 대통령의 의사를 직접 전달하며 미합중국 대통령의 방문을 준비하기 위하여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가까운 시일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방문하기로 합의하였다. 2000년 10월 12일 워싱턴
  • 클린턴 평양 간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북한과 미국은 12일 역사적인 양국 공동성명(북·미 공동 코뮈니케)을 발표,적대관계 종식을 공식선언하고 “4자회담등 여러 방안을 통해 한반도에서 긴장을 완화시키고 정전협정을공고한 평화보장체계로 바꾸어 한국전쟁을 공식 종식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날 오후 5시 북한 중앙방송,평양방송 및 텔레비전 방송을통해,미 국무부는 12일 오전 11시께(한국시간 13일 0시) 이같은 내용의 북·미 공동성명을 각각 발표했다. 양국 공동성명은 또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준비하기 위해 가까운 시일에 북한을 방문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은 11월중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이날 공동 코뮈니케 발표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클린턴대통령의 북한방문을 준비중이며 이를 위해 이달말 자신이평양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 국무부의 한 소식통은 클린턴대통령의 방북과 관련,“베트남방문 직후인 11월 18일쯤이 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북·미 양국은 또한 “양국관계 개선이 21세기 양국 국민에 다같이이익이 되며 한반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전도 보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제,관계개선을 향한 첫 중대조치로서 양국간 적대관계 종식을 공식선언했다. 공동성명은 이와 관련,양국관계가 자주권에 대한 상호존중과 내정불간섭의 원칙에 기초하고 “쌍무적 및 다자적 공간을 통한 외교적 접촉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데 유의했다”고 밝혀 사실상 수교에 합의했음을 시사했다. 공동성명은 또 양국은 미사일 문제 해결이 북·미관계의 근본적인개선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한 기여를 할것이라는데 견해를 같이했다면서 “미사일 문제와 관련된 회담이 계속되는 동안 북한은 모든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을 것임을 미국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공동성명은 이어 2000년 10월 6일 공동성명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테러를 반대하는 국제적 노력을 지지·고무하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공동성명은 북·미 양국이 1993년 6월 11일 북·미 공동성명과 1994년 10월 21일 기본합의문에서 재확인된 원칙들에 기초하여 불신을 해소하고 상호신뢰를 이룩하며 관심사들을 건설적으로 다루어나갈 수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양국은 또 호혜적인 경제협조와 교류를 발전시키기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성명은 밝혔다.이에 따라 양국간 무역 및 경젝교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가까운 시일 안에 양국 경제무역전문가들이 상호방문할 것이라고 성명은 밝혔다. 조명록(趙明祿)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4박 5일간의 미국방문을 마치고 12일 오전 귀국길에 올랐다. hay@
  • ‘시민의 힘’유고 역사를 바꿨다

    유고에도 봄은 왔다.시민들은 민주화를 선택했고 독재는 무너졌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이 5일 권좌에서 쫓겨났다.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앞세워 13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러온 그도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10일간의 시민혁명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로써 1989년 동구권에서 시작된 민주화 개혁은 11년 만에 완결됐고 동유럽의 공산주의식 독재정권은 종말을 고하게 됐다. 유고는 ‘지구촌의 화약고’로 불려져 왔다.코소보에서의 ‘인종 청소’와 네 차례에 걸친 내전은 유고뿐 아니라 유럽 전체를 불안하게했다.세르비아계 난민은 주변국에서 인종분쟁을 불렀다.지난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고 공습은 한때 유럽 대륙에서 신(新)냉전과함께 ‘피의 전쟁’을 부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냈다. 밀로셰비치는 그럴 때마다 세르비아 민족 감정에 교묘히 기대 권력을 유지했다.옛 유고의 영웅 티토가 개별 민족의 이질성을 인정하며분권적 연방제를 채택한 것과는 딴판이었다.밀로셰비치는 군·경을이용해 반체제 인사를 탄압했고 언론을 장악,우민정치를 폈다.금융,사법을 포함한 모든 정보는 그에게로 집중됐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의 고립과 내전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폐는밀로셰비치에 대한 지지를 점차 약화시켰다.한때 동유럽의 선진국으로 불리던 유고는 90년대 들어 250%가 넘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렸고공장 노동자의 60%는 일손을 놓아야 했다.내전으로 옛 연방 5개 공화국과의 무역은 단절됐고 유엔의 경제제재 조치는 유고 국민의 생활을더욱 궁핍하게 만들었다. 지난달 24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독재보다 민주화를,인종 분규보다 경제 재건을 바라는 유고 국민들의 마음을 대변했다.밀로셰비치가패배를 부인함으로써 시민혁명을 재촉했지만 유고는 이미 내부적으로혁명의 길을 치닫고 있었던 셈이다. 특히 군·경이 시위대에 동조하고 언론들마저 노동자의 파업을 지지함으로써 밀로셰비치의 통치 기반은 순식간에 무너졌다.그러나 혁명이 완전히 이뤄진 것은 아니다.밀로셰비치 정권을 떠받쳐온 군부를다잡아야 하고 내전으로 갈린 인종적 갈등도 다스려야 한다.게다가연방 공화국인 몬테네그로의 독립까지도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밀로셰비치를 지지하는 군부의 움직임이 큰 변수이나 당장 민주혁명의 큰 흐름을 막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그동안 밀로셰비치를 지지해온 러시아도 이고르 이바노프 외무장관을 유고에 급파,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를 사실상 ‘새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만신창이가 된 유고 경제의 재건 역시 과제다.미국과 유럽연합이 경제제재를 풀 뜻을 비췄으나 유고는 당분간 낙후된 농업에만 의지해야한다.외국인 투자가 없는 한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 플레이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권 쟁취 후 고질적인 야권의 분열 가능성도 문제다.코스투니차는집권 뒤 1년 6개월 이내에 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정치체제 개편 일정을 밝혔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까스로 단일화를 이룬 야당이 다시 분열한다면 유고의 민주화는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백문일기자 mip@
  • 2000년 서울국제문학포럼..’경계를 넘어 글쓰기’

    우리들 삶과 세계의 저 안쪽에 숨겨진 오의(奧義),가려진 메카니즘을 명징하게 밝혀주는 육성이 한층 그리워지는 이때,책 속의 글로만가까이갈 수 있었던 국제적 명망의 문인,학자들이 대거 서울로 몰려와 지혜의 말잔치를 벌인다.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컨퍼런스홀에서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 교보생명회장) 주최로 열리는 ‘2000년 서울 국제문학 포럼’. ‘경계를 넘어 글쓰기-다문화세계 속에서의 문학’이란 주제의 이 국제행사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미국 시인 개리 스나이더, 알바니아 망명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 등 19명의 외국 지성들이 참가한다.이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학자 55명과 함께 세계화와 문학,세계시장 경제체제에서의 글쓰기 등 9개 부문에 걸쳐 그간 다듬고다듬어온 생각들을 기탄없이 나눌 예정이다.개막에 앞서 미리 제출된주요 지성들의 강연원고를 정리해 본다. 편집자註. ◇ 트랜스크리틱이란 무엇인가. 나의 ‘트랜스크리틱’이란 기획은 칸트를 마르크스를 통해 읽고 마르크스를 칸트를 통해 읽으려는 시도이다.칸트와 마르크스에게 공통되는 비판(크리틱)의 중요성을 되찾고자 해온 나는 교의적인 인간으로서나 마르크스주의의 시조로서보다는 순수한 비판적 지성으로서 마르크스에 주목해왔다.즉 그에 대한 나의 경탄은 공산주의보다는 자본주의에 대한 치열한 열중과 깊은 통찰에 쏠려 있었다.그러나 공산권이 붕괴하면서 이전에는 회피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문제,즉 공산주의라 불리는 사상을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 밖에 없었고 이 국면에서칸트를 생각하기 시작하게 됐다.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몸을 단순히 하나의 ‘수단’으로서 사용하게끔 강제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문맥에서 칸트의 “목적의 왕국”들은 필연적으로 공산주의를 끌어들이게 된다.허만 코언은 칸트를독일 사회주의의 진정한 시조로 간주했다.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와 칸트는 서로 교차한다.1990년대를 기점으로 나는 이론이 현상의 비판적 검토에 머물러서는 안되며 현실을 변화시킬 뭔가 적극적인것을 제시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이런 문제의식 속에 칸트와 마르크스를 다시 읽은 것이다.그 결과 칸트와 마르크스의 역동적인-선험적이자 동시에 횡단적인-비판들을 트랜스크리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자와 소비자가 교차하는 트랜스크리틱한 계기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자본의 운동은 목적이 없으며 또한 끝없이 지속된다.자본의 운동이 인류의 미래에 재앙을 부를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며 우리의 윤리적 실천적 개입이 없으면 결코 저절로 끝나지 않는다.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자본주의 경제는 개인적인 책임을 무효화하는 구조적인 강제력을 지니고 있는데 어떻게 윤리적 실천적 개입이 가능할까.여기에서 ‘소비자로서의 노동자’의 개념이 핵심으로 부각되며 잉여가치의 착취에 대한 저항은 자본도 국가도 결코 통제력을 가질 수 없는 유통과정의 영역에서 일어나야 한다.19세기 후반이래 마르크스주의 운동들은 자본주의 경제와 국가에 대한 무지 때문에 패배했으며 오로지 여기서 교훈을 배움으로써만이 새로운 ‘초국적 연합주의운동’ 혹은 ‘참여민주주의’가 조직될 수 있다. 상품과 화폐 사이의 가치형태에 내재한 비대칭적인 관계가 자본을생산하는 것인데 또한 자본을 종식시킬 수 있는 입장전환의 계기들이 파악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이 계기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트랜스크리티시즘의 과제이다. 가라타니 고진 日 평론가·긴키대 교수. ◆ 탈식민주의 상황에서 글쓰기. 나는 언어가 적응을 하거나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적·지리적 기원에 상관없이 영어의 전지구적 우월성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상이다. 영어는 ‘인터넷 언어’이고 ‘금융 언어’다.또한 영어는 우주전쟁과 사이버스페이스의 언어다. 시인 코울리지가 “언어는 인간정신의 무기고이며,과거의 전리품과미래의 정복을 위한 무기를 동시에 포함한다”고 언명했듯 본디 언어란 정복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따라서 번역 그 자체도 정복의 한수단으로 볼 수가 있다.르네상스 학자 필레몬 홀랜드는 유럽 각국어로 그리스로마 문학이 번역된 것을 그리스로마문학의 묵시적 ‘정복’이라고 말한 바 있다. 침략자로서의 언어,정복자로서의 언어는 최근 문학에서 의식적인 주제가 되고 있다.탈식민주의 문학연구와 그 이전의 식민지 문학 또는식민지 이전 문학을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은 비교적 근래에 발전한 경향이다.언어와 정복은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현 시점에서 작가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역사,언어,인종 그리고 문화적 전유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토론의 조건들을 ‘의식’하고있다.영어와 유럽의 다른 언어로 글을 쓰는 일부 작가들에게 있어 이것은 그들 작품의 소재 자체가 되기도 한다.실제로 나이폴과 루시디같은 작가들도 다양한 관점에서 이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었으며 탈식민시대의 인도,아프리카,알제리아 등에 대해 영어,프랑스어,네델란드어로 글을 쓰는 다른 많은 작가들 또한 그러했다. 탈식민주의 연구는 여러면에서 창조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글쓰기에 영향을 미쳤다.영문학에 있어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문학주제의 하나는 노예제도에 대한 주제였다.그결과 제국,식민주의 그리고 노예제도와 오랜 연관을 지닌 영국은 노예무역을 다룬 소설가 겸비평가들과 역사가들을 많이 배출했다.이같은 관심 자체는 부분적으로는 이론적 논쟁에 대한 하나의 반응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경계해야할 것이 있다.영국의 소설가 샤롯 브론테는 남들이자신에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쓸 권리를 주장한 적이 있다.문학적 유행에 굴종하는 위험성에 대한 경고였다. 탈식민주의적 상황에서 작가들이 성실하게 글을 쓰기 위한 전제는,도덕적 임무와 상업적 투기를 구분하는 법을 터득하는 일일 것이다. 마거릿 드래블 英 소설가. ▲ 한국계 미국문학속의흑인(성)과 미국인의 정체성. 미국의 ‘인종관계’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어떤 한 인종집단이백인 및 백인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관한 것이다.우리들의 정체성과 공동체를 더 잘 알기 위해서 우리는 유색인종의 공동체를 백인들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관계에서 이해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집중시켜야 한다.한국인들이 미국으로 이민 온 초기부터 현재까지 한국인의 미국에대한 추구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고려해보기 위해 나는 영어로 씌어진 가장 초기의 작품과 최근의 작품속에 흑인과 미국적 정체성의 표현을 살펴보려고 한다.1937년 강용흘의 ‘동양 서양에 가다’와 60여년이 지나 발표된 하인즈 인수 펜클의 ‘나의 유령형님의 기억’ 패티 킴의 ‘릴라이어블이라는 이름의 택시’를 보기로 한다. 당시의 많은 유색인종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강용흘은 미국의 뿌리가 오직 유럽일 수 밖에 없다는 당시의 지배적 생각을 신봉했고,자기자신도 백인 중심과의 관계에서 이해하려 했다.그러나 펜클의 작품은 합리적 진보에 대한 계몽주의적 신념을 반대하고,서구적 백인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패티 킴의 주인공은 백인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에게 남긴 백인의 자취에 관심을 두고 있다.그의 작품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킴의 한국 이민으로서의 비참함 때문에 오히려 중화돼 버리고있다. 오늘날의아프리카계 미국인들,라티노,미국 인디언들,그리고 아시아계들은 모두 서로 다른 폭력의 역사를 헤쳐나왔다.유색인종들 사이의 친근성은 공통적으로 경험한 배반과 고통의 경험에서,그들이 경험하고 목격한 것에 대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인종 분열의 장벽을 무너뜨리려는 투쟁에서 온 것이다.미국이 필리핀,한국,월남을 군사적,경제적,문화적으로 식민화시켰다는 점과 중미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경제와 문화를 지배하려 했다는 점을 미국은 부인한다.그러나 이민들이 미국이란 제국의 중심으로 돌아와 서로 다른 위치에서 대꾸하며,인종적 분화와 계급체계에 도전하고,묻혔던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찾아오고,억눌렸던 지식과 덮고 있던 침묵을 깨뜨리고 있다.이것은 미국이 미국에 대해 만들어낸 허구를 부정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우리는 다함께 미국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한국계 미국작가들은 미국의 정신세계에서 배제되어 생긴 불안정 상태에 대항해 미국속에 굳건히 남아 싸워야 한다.이 시점에서 민족학적 접근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일레인 킴 美 버클리대 교수·평론가·한국계. △ 문학의 서쪽을 향한 正典,동쪽을 향한 정전. 어떤 작품이 전 세계 문학인이 떠받드는 정전으로 자리매김되어야하는가를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이를 잘 살펴보면 기존 세력과 이를 새롭게 바꾸려는 창조적 의지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이다.어떤 텍스트들로 문학 교육의 저변을 형성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서양 인문학계가 벌이는 논쟁을 듣다보면 특권화된 계층이 자행하는 괴이한 학문적 탐닉의 소리로 들릴 뿐 다른 나라에 있는 젊은이들의 기본적인 인문학적 정신 형성과는 전혀 무관한이야기임을 깨닫게 된다. 이국적인 세계 안으로 들어가거나 그 세계를 발견하는 일이 문학을통한 체험이다.이국적인 문학과 낯익은 세계 사이에서 상호침투가 이뤄질 때 우리는 삶을 보다 더 강렬하게 의식하게 되는데 이같은 두세계 사이의 감응 또는 다른 세계로의 유입이 오늘날 소비지향적인유럽 사회가 결하고 있는 것이라 할수 있다. 세계의 인문학적 유산을 아무런 생각없이 방기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문학의 시야를 좁히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같은 세계적 종교에 관여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사유의 자유화라는 원리로서 정전을 추방할 수 밖에 없다면우리의 작업은 성경과 코란이라는 문화적·정신적 전제 군주들을 문제삼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세계 어느 곳 호텔 방에 들어가든 침대 옆의 테이블 위에 놓인 채 우리를 반기는 텍스트가 인도의 우파니샤드,순디아타 서사시,아프리카이파의 성서가 될 때가 됐다. 현실적으로 성경과 코란을 포함하여 모든 텍스트들이 호텔의 진열장에 있어 접근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인문학에서 시간적,공간적 폐쇄성은 죽음을 초래할 것이며 예술과학문은 항상 이념론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이 세우는 경계 벽을 기어오른다. 사상의 자유로운 흐름을 통해 경계는 지워져야 한다.문학이야말로 사상의 자유로운 이동에 이용되는 가장 친숙한 운송인 것이다. 우리는 인류 공동의 보편적 계몽으로 향했으나 지금은 위협받고 있는 모든 지류들을 원상태로 복원한다는 결의를 다져야하며,이를 위해문학을 널리 퍼뜨리기 위한 근거를 인문학 내부에 구축해야 한다.여기서 새로운 정전을 개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이 정전은 창조적 개성이 형성되는 나이의 어린아이 시절부터 문학에 접할 수 있도록 고려되어야 한다. 공간,시간,학문 분야를 초월하여 이같은 정전이야말로 살아있는 인문학을,그리고 교화의 임무를 띤 문학을 확고하게 할 것이다. 월레 소잉카 노벨문학상·美 에모리대 교수.
  • [해외항일전적지를찾아서](7)丹東 臨政 교통국과 쇼우의‘이륭양행’

    일제하 항일투쟁 대열에 섰던 독립운동가 가운데는 국내외에 거주하던 외국인들도 적지 않았다.구한말 항일 필봉을 드날린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사람은 영국인 베델(한국명 裵說·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이었고,영국인 스코필드(한국명 石虎弼·68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박사는 3·1의거와 일제의 ‘제암리만행’을 전세계에 폭로했다. 또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한국명 訖法·50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박사는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을 지원한 주인공이다.베델과 헐버트 박사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스코필드 박사는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헐버트 박사 묘비에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는 박사의 유언이 적혀 있다. 한편 한국독립을 도운 외국인 가운데 G.L 쇼우(1880∼1943·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라는 인물이 있다.그가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은 이유는 해방 전에 사망한데다 그의 후손도 한국과 왕래가별로 없었으며,또 그동안 그에 대한 학계의 연구가부족했던 탓으로생각된다.그가 활동했던 1920년대초 당시 국내 일간신문을 펼치면 그의 행적이 곳곳에 남아있다.그러나 국내에선 그의 ‘흔적’을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그를 만나려면 지금은 중국땅이 된 남만주로 찾아가야 한다. 백두산에서 발원해 중국과 국경을 이루며 황해로 흐르는 압록강 하류의 신의주땅 건너편에는 단동(丹東,옛 지명은 安東)이라는 도시가있다.심양(沈陽)에서 아침 7시45분발 기차를 타면 점심때인 낮 12시10분에 도착하는 거리다.취재팀은 일행의 안내차 역으로 마중을 나오신 박문호(朴文鎬·65)선생과 먼저 점심식사를 한 뒤 답사에 나서기로 했다.취재팀이 첫 답사대상으로 삼은 곳은 ‘이륭양행(怡隆洋行)’건물이었다.이 건물은 쇼우가 경영하던 무역회사 겸 중국의 태고선복공사(太古船輻公司) 대리점이었다.70년 세월이 지났건만 놀랍게도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채 취재팀을 반겼다. 단동시내 육도구(六道口) 흥륭가(興隆街)25번지에 위치한 이 건물은 현재 단동시 건강교육소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세월의 풍상을 겪은낡은 모습이었다.겉에서 보면 2층 건물처럼 보이나 실지로는 3층 건물로,현재 이 건물은 1층만 건축 당시 그대로이며 나머지는 신축됐다고 한다.주민들에 따르면,인근에 헌 건물들이 많아서 이 건물도 곧헐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 건물의 주인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이방인 쇼우는 어떤 인물인가? 영국인들의 생몰기록을 보관하고 있는 영국의 ‘제너럴 레지스터 오피스’에 보관된 자료에 따르면,쇼우는 1880년 1월 25일 파고다 아일랜드에서 해양조사원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1908년 부친사망 당시 그는 중국 남동부의 항구도시 복주(福州)에 살고 있었다. 1912년 당시 상업에 종사하고 있던 그는 단동에서 일본여인 후미 사이토(당시 28세)와 결혼하였는데 이듬해 장남이 태어날 당시 그는 일본 고베에 머물고 있었다.그가 한국의 독립을 돕기로 결심한 것은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쇼우가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기로 한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다.첫째는 그의 출신과 가족구성.그는 영국 식민지인 아일랜드태생으로 자신의 고국이 식민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처지나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입장을 잘이해하고 있었다.특히 모친과 부인이 모두 일본인이라 일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더욱이 그의 사무실(이륭양행)은 안동(현 단동)구시가지에 위치해 있어서 일본영사관의 영향이 미치지 않아 한국인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바로 이곳 2층에 상해 임시정부 교통부 산하 ‘안동(安東)교통국사무국’이 들어있었다.교통국은 임정초기 정보수집과 재정모금,인물소개 등을 담당하였는데 국경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교통부 산하 7개 교통국 가운데서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그는 단순히 장소만 제공해준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을 숨겨주기도 하고,상해를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에게 배를 제공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편의를 제공해주었다. 1920년 그가 소위 ‘이륭양행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었을 때 일본 외무성에서 작성한 그의 행적자료에 의하면,그는 봉천(奉天) 주재영국 총영사가 일본당국의 요청으로 수차례 주의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대동단사건 지원 ▲독립군 무기수송 ▲독립운동 근거지 제공 ▲임정 비밀문서 전달 등을 한 것으로 나와 있다. 1920년 7월 오학수(吳學洙) 등이 국내로 무기를 들여오기 위해 그가 소유한 계림환(桂林丸)에 숨겨두었다가 발각되자 그도 이들과 함께일경에 구속되었다.1924년 단동을 떠나는 조건으로 영국 측의 도움을 받아 석방된 그는 복주(福州)로 거주를 옮겼는데,그해 11월30일 63세로 타계하였다.그의 사후 57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그에게 건국훈장 추서한 것이 전부일 뿐 그의 묘소에 꽃 한송이 바치지 못했다. 항일투쟁 끝에 단동에서 최후를 마쳤으나 일반인들에게는 쇼우처럼거의 무명(無名)에 가까운 독립투사 한 분이 있다.바로 편강렬(片康烈·1892∼1929) 의사다.17세때인 1907년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이듬해 13도창의군의 ‘서울진공작전’에 참가한 편 의사는 이후 1911년 ‘105인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2년여,1919년‘구월산주비단사건’으로 해주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하였다.출옥후만주로 건너가 양기탁(梁起鐸) 등과 의성단(義成團)을 결성,단장에취임한 편 의사는 이듬해 3월 장춘 일본영사관을 습격하였으며,다시1개월 뒤에는 봉천(현 심양)에서 일경과 백주에 시가전을 벌여 적 다수를 사살하였다. 1924년 길림과 하얼빈에서 각 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다가 일경에 체포된 편 의사는 국내로 압송돼 7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척추염이 발병,안동 적십자병원에서 순국하였다.불과 37세였다.구한말 의병전쟁에서 부터 독립군 투쟁에 이르기까지 청춘을 항일투쟁에 몸바쳤으나 이름을 아는 이가 적음은 물론 그의 묘소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생전에 편 의사는 ‘나라가 광복되기 전에는 내 유체를 고국에 이장하지 말라’고 유언했다.지금도 단동 진강산(鎭江山) 기슭 공동묘지 어디엔가 누워있을 편 의사를 생각하면 후손된 자로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단동은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압록강이 마지막 모습을 감추는 곳이자 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땅과 마주하고 있어 우리 민족에겐 ‘비원의 땅’이라고 할수 있다.또애국선열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조국광복을 위해 몸을 의탁하던 곳이자,살 길을 찾아 만주땅으로 향하던 유민들의 한숨이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강산(錦江山)공원(구 진강산공원) 옆에 있는 안동주재 일본영사관 건물은 아직도 그 화려한 건축미를 간직한 채 지금은 단동 경비사령부 건물로 사용되고 있었다.압록강을 가로지르는 두 철교 가운데 6·25때 끊어진 철교를 중국의 모 회사가 매입,관광용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한다.단동은 우리 근·현대사의 현장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중국의 경제개방 열풍속에서 나날이 변모하고 있었다. 정운현기자 jwh59@
  • 김대통령 “경제정책 수립때 北 고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2일 “한반도의 화해·협력 분위기에 맞게남북 경제를 착실하고 건전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면서 “남북이 손을 잡으면 우리의 활동영역이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유럽,태평양으로 뻗어나가 한반도 중심 경제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8·7 내각개편 후 첫 팀별 회의인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남북관계의 발전은 민족간 문제,전쟁 억지,통일 관련 문제뿐 아니라 21세기를 한반도의 세기로 만들어가는 큰의미가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이전했다. 이는 앞으로 경제정책 수립 및 추진 방향과 관련,북한을 구체적으로 고려할 방침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이어 “남북의 교류협력과 함께 투자보장,이중과세 방지,청산 계정 등을 제도화해 우리 자본이건 외국자본이건 북한에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북한의 경제가 회복돼야 우리 한반도의 긴장도 완화되고 장차 통일시에도 부담이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또 당면 경제현안으로 ▲건설업,지방유통구조 등 지방경제난 ▲벤처기업의 활성화 ▲부품소재 수입으로 인한 대일무역적자 심화 ▲중소기업의 자금난 ▲경제팀의 팀워크 등 5가지를 꼽고 “재경부장관을중심으로 팀워크를 살려 모든 것을 토론해 결정하고 한번 결정된 정책은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금융·기업·노동·공공 등 ‘4대 부문구조개혁 마무리계획’을 확정,연내에 금융지주회사를 발족시켜 금융·기업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내년 2월까지 주 44시간 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단축하기로 했다.또 포항제철·한국중공업 등의 공기업을내년 2월까지 민영화하기로 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경영평가위원회의 경영개선계획평가를 토대로 은행별 구조조정방안을 오는 11월까지 확정,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면 국회 동의 절차를 거치기로 했다.또 기업지배구조를 바꾼 10대 기업을 선정해 우량기업에 대한 시장의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도록 추진하고 내년 말까지 기업퇴출과 갱생을 신속·투명하게 추진하기 위해 회사정리법,화의법,파산법 등 도산 3법의 통합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진념(陳稔)재경부장관은 한국방송기자클럽 주최 조찬간담회에서 “금융·기업구조조정을 연내에 마무리짓고 공공·노동부문 개혁은 내년 2월까지 완료하겠다”고 밝혔다.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 가운데 회생 불가능한 기업은 연내에 퇴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현 박정현기자 yangbak@
  • [김삼웅 칼럼] 독립운동 정신으로 통일운동

    오늘 해방 55주년을 맞는 광복절의 의미는 무엇일까. 1945년 해방의 날과 3년 뒤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에 맞은 광복절의 의미를 뺀다면 2,000년대 첫 광복절의 의미처럼 각별하고 감회깊은 날도 없을 것같다. 그것은 6·15 남북정상선언과 함께 갈라졌던 겨레가 다시 왕래를 시작하고 하나로 되는 기대가 모아지기 때문이다. 남북 7,000만 겨레뿐만 아니라 세계 142개국에 흩어져 사는 560여만명의 한민족 핏줄이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설렘이고 희망이다. 과거의 경우와는 크게 다르다. 7·4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이 양측 권력의 막후 흥정의 산물이라면 이번의 ‘사변’은 시대정신에 따른 실사구시적인 접근이라 하겠다. 가장 큰 걸림돌인 주변4강의 역학(力學)관계를 ‘배타적 자주가 아닌 협력적 자주’를 통해 수용하면서 전개된다는 점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이와 더불어 주한미군의 존재가 “지역안정과 완충역할을 담당한다”(김대중), “통일된 후에도 평화유지를 위해 남는게 유리하다”(김정일)는 인식의 공유에는 “일본의 군비증강과 중국의군사강국화”를 지켜보는 두 정상의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더 이상 적대와 분단상태로는 경제의 국경선이 무너지고 있는 세계의 장터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결코 좌절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한번의 좌절은 비극이지만 같은 이유로 발생한 좌절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어리석음이 연출한 희극이다”(칼 마르크스) 일제의 압제로부터 민족해방을 쟁취하기까지 수많은 애국선열과 지사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해방조국은 그들의 희생을 담보로 독립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분단국가의 절름발이 국가였다. 거기에다 동족상쟁을 치르고 길고도 신물나는 냉전시대를 살아야 했다. 동족간의 전쟁이나 대결은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모두 피해자다. 우리가 민족내부 문제로 적대와 증오를 극대화할 때 일본과 중국은경제·군사적으로 거대해졌다. 특히 일본은 군사대국화에 이어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인 자신을 피해자로, 연합군을 가해자로 진실을 뒤바꿔 놓으면서 자신들을 ‘아시아해방 지도국’이라 자처하기에 이르렀다.도쿄전범재판을 비난하고 2차대전 침략을 미화하는 역사왜곡의교과서를 만든다. 여전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앙탈을 부리면서영토야욕을 숨기지 않는다. 모리 요시로 일본총리의 ‘신(神)의 나라’ 발언은 그들의 지향점을 한눈에 읽게 한다. 남북이 합쳐도 맞설까 말까한 처지에서 쪼개고 갈라져서 어찌 그들과 맞상대가 되겠는가. 세계시장을 누비면서 번 달러를 무역적자로해마다 일본에 100억달러씩 쏟아붓는다. 경제적 예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경제단위로 하는 경제공동체가 아니고는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비대해지는 중국의 군사력과 경제력도 우리에게는 큰 위협이다. 이같은 주변상황을 직시한다면 우리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시간의 유예도 기대하기 어렵다. “길은 외길/남도천리”의 시구를 차용하여 “길은 외길/남북협력”일 뿐이다. 6·15선언은 이러한 역사의 소명에서 이루어졌다. 오늘 서울과 평양에서 상봉하게 되는 저 이산가족들의 피눈물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이산가족이 만나도록 길을 넓혀야 한다. 그리고 경의선 연결,경제협력,군비통제와 군비축소를 포함한 군사문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등 남북 사이의 모든 현안을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혈육과 가족이 다시 만나고 남북이 서로 협력하면서 전쟁의 위협을제거해 나간다면 하나되는 일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열망과 소망에 부합되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인류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닌가?”(에릭 홉스봄) 겨레의 화해와 협력을 못마땅해하는 세력은 일제로부터 해방을 두려워한 세력과 다를 바 없다. 분단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린 자들이나 왜정 치하에서 출세한 자들이나 정신적으로 한 통속이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해방둥이들이 50대 중반을 넘는 매정한 세월 속에서 우리는 민주화와 근대화의 현대국가 건설에 매진해왔다. 많은 사람의 피땀과 눈물이 배었다. 그 바탕에서 통일의 길을 연다. 8·15광복절 55주년,국민 모두가 반세기 묵은 녹슨 쟁기를 씻어 들고 통일의 황야로 나아가는,겸허하고 결연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김삼웅 주필 kimsu@
  • 새천년 첫 광복절 김대통령 경축사/ 연설 全文-1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은 광복 55주년이 되는 날이자 새천년 21세기에 처음 맞는 8·15 경축일입니다. 이 뜻깊은 날을 맞아 먼저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유가족 여러분에게도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또한 생존해 계시는 독립유공자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려 마지않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이산가족의 남북간 동시 상호방문이 처음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입니다.어찌 감격의 눈물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55년전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우리 민족에게 다시 없는 기쁨이었습니다.그러나 동시에 엄청난 비극과 시련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국토의 분단,동족상잔의 전쟁,그리고 경제의 황폐화가 이어졌습니다.반세기 동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동포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적대와반목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확고한 안보태세 아래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왔습니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다시 일어나 경제를 일으켰습니다.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독재체제의 삼엄한 탄압과 횡포 아래서도 민주화의 실현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1997년 마침내 헌정사상 최초로 국민에 의해 여야간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대업을 이루는데성공했습니다.참으로 자랑스러운 국민의 힘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시련은 그치지 않았습니다.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그 순간부터 우리는 IMF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경제위기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또다시 일어섰습니다.‘금 모으기 운동’으로 대표된바와 같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국가위기를 극복하는데 힘을 모았습니다.그리고 우리는 해냈습니다.전세계는 또 한번 우리 국민의 놀라운 저력과 불굴의 의지를 확인하고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저는이 자리를 빌려 위대한 우리 국민에 대하여 한없는 자랑스러움과 감사의 뜻을 밝히고자 하는 바입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55주년 광복절을 맞아우리는 조상들과 선열들의 얼이 깃들어있는 이 독립기념관에서 그 어느 때보다 떳떳한 심정으로 그분들의영전에 보고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남을대업을 우리가 지금 이룩해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달전 우리는 분단 55년만에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습니다.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민족의 화해와 협력,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위해 노력해나갈 것을 7천만 민족과 세계 앞에 선포했습니다. 우리 민족 스스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6·15남북공동선언이야말로 오늘의 광복절에 대한 최대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남과 북은 지금 두 정상의 합의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과 장관급 회담 등 후속조치들을 착실히 진행시키고 있습니다.이러한 진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의 성원과 지지로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도 이제 2년반이되었습니다.정부는 국민과 하나가 되어 짧은 기간동안 많은 일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언론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고 있습니다.시위·집회·결사의 자유도 보장되고 있습니다.모든 노동운동이 합법화되었고 노동자의정치참여가 허용되었습니다.최루탄이 사라졌습니다. 여성차별 금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법이 제정되는 등 여성의 권리도 대폭 향상되었습니다.시민단체의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성화되어 국정과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한국은 이제 세계적인 인권국가의 반열에 서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분야에서도 우리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무엇보다 우리는 급박했던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습니다.38억달러에불과했던 외환보유고가 이제 900억달러에 이르렀습니다.금리·환율·물가가 크게 안정되었습니다.무역수지와 경제성장도 견실한 기조를유지하고 있습니다.실업률이 OECD국가 가운데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일부에서 몇차례씩 제기했던 경제대란설의 우려도 모두 극복해 냈습니다. 우리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튼튼히 바꾸기 위해 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관계의 4대 개혁을 강도높게 추진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4대 개혁과 병행해서 지식정보화 혁명을 추진하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정보 인프라 스트럭처의 구축과 전 국민을대상으로 한 정보화 교육의 확대,벤처기업의 육성에 주력하고 있습니다.이제 아시아에서 가장 앞서가는 정보화 국가가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외환위기 과정에서 적지 않은 저소득층이 생계에 어려움을겪게 된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해왔습니다.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정부는 획기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새로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4인 가족 기준으로 월92만원까지 생계비가 보장됩니다.이제 돈이 없어서 밥을 굶거나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자녀를 교육시키지 못하는 일은 더 이상 없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보고드리는 바입니다. 시행과정에서 일부 진통도 있었지만 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의료보험 등 4대 보험을 모두 실시함으로써 선진 복지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의약분업도 국민에게 일시적인고통과 불편을 끼치고 있는 것은 가슴아픈 일입니다만,국민 여러분과 후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시행해 나가야 할 정책인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안보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우리 국군은 최고 사령관인 대통령을 신뢰하는 가운데 평화와 화해를위한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한·미간의 안보협력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국민 여러분이 국정에 대해 많이 염려하고 계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쓰러져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는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국민의 정부는 부단한 노력을 다했지만 여러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4대 개혁의 미완성,도덕적 해이,개혁피로 증후군과 집단이기주의,그리고 정치의 불안정 등 나라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일이 많습니다. 이제 개각의 단행과 더불어 국정 제2기로 접어들었습니다.앞으로 더욱 굳은 개혁의지와 투명하고 일관되며 효율적인 정책집행을 통해 시장과 국민을 안심시키고 신뢰와 희망을갖도록 총력을 다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이미 설정한 민주주의,시장경제,생산적복지의 3대 국정철학 아래 앞으로의 임기동안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5대 목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인권국가,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를만드는데 헌신하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평생을 인권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몸바쳐 왔습니다.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인권법’을 시행하겠습니다.국민 여러분의공감대 위에 ‘국가보안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고자 합니다.약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겠습니다.‘부패방지법’을 빠른 시일 안에입법하도록 적극 노력하겠습니다.인권이 살아 숨쉬는 나라,부정이 결코 용납되지 않는 나라를 만들고야 말겠습니다. 민주주의는 확고한 법질서의 토대 위에서 발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와 사회의 기강을 해치는 집단이기주의와 불법·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처해 나가겠다는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 [쟁점] 농산물 통상정책

    ‘저자세 외교인가,국제규범 수용인가.’최근 중국과의 마늘분쟁 사례와 쇠고기의 음식점 원산지표시제 도입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농산물수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통상정책에 대한 입장을 들어본다. ■사전 예방이 더 중요. 한국은 무역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룩하였으며,무역의존도가 국내총생산(GDP)의 60%가 넘는 통상국가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통상정책이 ‘개방된 통상국가’를 지향한다는 것은 우리경제의 특성을 반영한 당연한 방향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국제경제체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국제규범에맞지 않는 불합리한 제도를 유지한 채 무임승차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교역상대국은 우리나라가 발전단계에 상응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국제사회의 기대는 우리의 대외적인 신인도로 구체화된다. 국제규범에 맞지 않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우리의 대외적 신인도를 저해시키고 대외무역과 투자유치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국제규범상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제도나 대외통상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수 있는 조치를 도입하는 경우,부처간 긴밀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제도나 조치가 국제규범과 합치하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주요교역국과의 통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신중히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통상문제를 접근하는 데 있어 대외신인도만 보자는 것은 아니다. 일부 국내산업의 이해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소비자를 비롯한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이익과 우리경제 전체의 전반적인 이익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상담당자는 물론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책임을 맡은 공무원에게무엇보다도 균형감각이 요구되는 이유이다.통상담당자에게는 특정 국내산업의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국내외적으로 국익이 장기적으로 어디에있는지를 살피는 혜안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때때로 통상담당자들이 국내산업의 성장을 무시한다거나 외국과의 분쟁을 피하려고만 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통상담당자는 외국과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다만,우리의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결국 우리의 대외적 국익이 손상되는 상황은 최대한 막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방적 통상외교이다.통상분쟁은 사후적 해결보다 사전방지가 더 중요하다.전쟁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예방외교가 국제사회의 중요한 명제가 되듯통상에서도 예방외교는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통상정책은 우리의 제도를 국제규범에 맞게 선진화하여 경쟁력을 향상시킴으로써 국민경제의 이익증대를 꾀하는 동시에 대외신인도를 제고해 나가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국제화시대에 합당한 ‘열린 국익’을 확보할 수 있을것이다. 이태호 외교부 세계무역기구과장. ■분쟁 피하지 마라. 국제통상 무대에서 통상교섭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사전에 불필요한 통상마찰을 피하는 것이고,두번째는 통상현안이발생했을 때 협상을 통해 국익을 지키는 것이다. 세번째 역할은 상대국 시장의 무역장벽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통상분쟁이 일상사가 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시대하에서 이 세가지는모두가 중요하나 각국이 처한 통상환경에 따라 우선 순위는달라질 것이다. 미국의 통상대표부(USTR)는 상대국의 무역장벽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있다. 우리의 경우 공산품과는 달리 농산품은 상대국의 시장개방 압력을 막아나가는 방어적 개념이 더욱 중요하다.통상담당자들은 본능적으로 통상분쟁을 피하고 싶어한다.그러나 통상교섭의 역할이 분쟁을 피하는 것이라면,통상 전문조직의 존재의미는 줄어들 것이다. 통상 전문조직은 통상분쟁의 현장에서 보다 전문화된 지식과 세련되고 효과적인 협상기술로 국익을 지킬 때 그 존재의미가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막무가내식 중국의 보복조치를 당하여 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적법한 절차에따라 기왕에 우리 정부가 취한 긴급 관세부과를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협상담당기관의 두번째 역할을 간과한 대표적 사례이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쇠고기의 음식점 원산지표시제를 둘러싸고 관계당국이 보여준 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정부의 최종결정이 내려지기도 전에 통상관련부서가 예단을 내리고 그것을 언론을 통하여 표출하는 태도는 책임있는정부 당국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정부 입장이 결정될 때까지 관련부서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특히 쇠고기 음식점에서의 원산표시제와 같이 논쟁이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만약,쇠고기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도가 WTO에서 논쟁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우리는 이 제도가 둔갑판매를 막고 소비자의 상품 선택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반면 상대국은 위장된 수입억제 수단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미 한국의 통상책임자가 스스로 이를 인정한 바 있지 않느냐고 공격해 올 것이다. 우리의 통상전문가들은 대문 밖의 상황만 살피는 편향된 통상교섭의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통상분쟁의 현장에서 나라의 안팎을 동시에 보는 균형된시각을 가지고 상대국의 무리한 요구를 능숙하고 세련된 자세로 물리치고 역공세도 취하면서 국익을 지키는 것이 통상마찰을 피하려는 노력 이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하석원 국제변호사-법무법인 김신유
  • 포철·新日鐵 전략적 제휴 안팎

    한국과 일본의 철강공룡이 경쟁보다는 동반성장을 기약할 수 있는 ‘협조’를 선택했다. 2일 포항제철이 일본의 최대 철강사인 신일본제철(NSC)과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은 세계 철강업계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으로 풀이된다. 대형화·통합화가 기업경영의 메가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포철과 신일철의 전략적 제휴는 조강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1,2위 철강사가경쟁보다는 협조를 통해 상호경쟁력 강화를 모색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최근 통신 금융 중공업 등 각 산업의 선도기업들은 물론,자동차 철광석 등철강업의 전후방 산업도 국경을 초월한 M&A(인수·합병)와 제휴를 통한 대형화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최근 중국 보산강철이 중소 철강사들을 흡수해세계 7위의 철강사로 도약하는 등 일련의 변화들도 이같은 요구를 철강업계에서 수용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이같은 철강업계의 움직임 외에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치열해진국경없는 무역전쟁,전자상거래의 확산 등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계경제의흐름은 아무리 세계 1,2위의 철강기업이라도 제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한순간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양사는 이러한 경영환경의 변화추세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에 합의한 것이다. 이번 전략적 제휴로 포스코와 신일철 양사는 여러 분야에서 상생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신기술,신제품 공동개발로 개발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비상시 상호소재공급으로 원가절감과 안정적 시장확보가 가능해졌다.제 3국에 대한 해외투자사업 공동진출로 투자위험을 줄이고 투자효과도 높일 수 있게 됐다. 특히 이번 전략적 제휴로 신일철이 포철지분을 3%까지 보유할 수 있게 돼포철은 민영화 완료 이후 우려되는 적대적 M&A시도에 대비,우호주주 확보를통해 경영안정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 함혜리기자 lotus@. *劉常夫 포스코회장 문답. “두 회사의 긴밀한 협력은 서로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해 전체 철강업계의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유상부(劉常夫) 포스코 회장은 2일 일본 신일본제철과 전략적제휴조인식을마친뒤 기자회견을 갖고 제휴배경과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전략적 제휴를 하게 된 계기는. 양사는 포스코 설립 초기부터 긴밀히 협력해 왔다.신일철은 초기 포항제철소 건설과 조업,엔지니어링,기술 등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두 회사 경영진도 서로 잘 알고 있으며 각종 국제회의나업무접촉 때에도 각자 관심사를 자연스럽게 논의해왔다.이를 배경으로 글로벌 경쟁시대에 공동발전을 도모하는 ‘윈-윈’제휴를 하게 됐다. ■제휴가 포스코에 가져다 줄 이익은. 신일철은 생산규모면에서 세계 2위의철강회사이자 세계 최고의 철강 기술력을 가진 탄탄한 파트너다.기초기술의공동개발에 따른 개발비용의 절감과 해외 투자사업의 공동진출을 통한 투자위험 감소,투자효과 증대가 기대된다. ■구체적인 협력분야는. 현재 기초기술 개발이나 제3국에서의 공동투자를 같이 하기로 합의한 상태다.구체적인 협력방안은 앞으로 실무진을 편성해 시간을 갖고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e-비즈니스에서도 협력하나. 유지노,코러스,TKS,아베드 등 유럽의 4대 철강회사가 최근 공동으로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개설하기로 합의했다.우리쪽도그렇게 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e-비즈니스는 규모의 경제가 요구되는 사업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
  • 美공화당 전당대회/ 기존의 北포용정책과 큰 차이

    *美공화당의 對한반도 정강. [필라델피아 최철호특파원] 전당대회 첫날인 31일 미 공화당이 채택한 정강은 올 가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승리할 경우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적지않은 변화가 올 것임을 예고한다. 이날 채택된 정강의 한반도 관련 내용이 지금까지 빌 클린턴 대통령의 대(對)북한 포용정책과는 크게 차이를 보이고 있고 보기에 따라서는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천명하는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민주당 행정부는 1992년 집권 이후 북한과의 과거 관계는일단 접어두고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인다는 목표 아래 일정 범위내에서 채찍보다는 당근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공화당은 부시 후보의 선거공약이 될 새 정강에서 한국은 귀중한 민주동맹국인데 반해 ‘북한은 국제체제 테두리 밖의 존재’라고 규정하면서‘한반도에서의 침략’을 저지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공화당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50년이 지난 후에도 ‘잊혀진 전쟁’을 기억하고있다”면서 “미국인들의 침략저지 태세”를 강조한 것은 공화당 행정부가들어설 경우 북한을 여전히 “침략국”으로 보고 강경정책을 펴나갈 것임을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대량파괴무기와 관련해서도 공화당은 클린턴 행정부가 얼마 전 폐기한 용어인 “불량국가(Rogue State)”의 범주에 이란,이라크 등과 함께 북한을 포함시키면서 이들 국가의 핵 및 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의 확산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북한 정책을 포함한 외교.안보문제에 관한 공화당의 정강은 현재 부시 후보를 보좌하고 있는 강경파 인사들의 입장과 견해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관측통들은 이번 선거에서 부시 후보가 백악관을 차지할 경우 그가 외교적 경험이 없다는 점을 들어 강경 외교론자인 딕 체니 부통령후보가 외교 안보를총괄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체니 후보는 조지 부시 전 대통령행정부의 국방장관으로서 걸프전을 총지휘했던 보수 강경주의자다. 여기에 콘돌레사 라이스,폴 월포위츠등 부시 외교안보팀의 라인업은 대체로강성으로 짜여졌다. 이런 점을 들어 선거기간중 또는 집권시 정권 초반에는북한에 대한 강경 기조는 유지될 것이란 지적이 우세하다. 일부에서는 공화당행정부가 들어선다고해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큰 흐름에 있어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란 지적도 한다.이들은 공화당측이 실제로집권하고 나면 지금까지 민주당 행정부가 펼쳐 온 포용정책보다 더 효과적인정책을 강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제약을 논거로 제시한다. *美공화당 경제정책 분석. [필라델피아 최철호특파원] 미 공화당 정강에 나타난 경제정책의 근간은 자유시장경제 옹호,세금감면,규제완화,대미 불공정 무역관행 개선 등으로 요약된다.한마디로 지상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화당 정강에 나타난 구체적인 경제정책은 ▲광범위한 세금 감면 ▲사회보장세 축소를 통한 개인연금 투자 기회 확대 ▲불공정무역개선을 위한 강력한조치 시행▲최소한의 규제로 최대한의 비즈니스 환경보장 등이다. 공화당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평화,과학발달,정의복지사회에 살고있는미국인들의 가장 큰 희망은 경제적 번영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그러나 세금감면시 분배정책은 후퇴할 수밖에 없고 가뜩이나 저소득층의 의료보장이 취약한 가운데 사회보장세를 더 축소할 경우 절대빈곤층이 증가할 것은 불보듯 뻔해 공화당 경제노선이 지나치게 기업과 부자 위주라는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불공정무역관행 개선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질 미국의 무차별적 경제이익실현 시도는 미국과 여타 국가간의 기존 경제력 차이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도 낳고 있다.
  • 美 공화 오늘~4일 전당대회

    ◆필라델피아(미 펜실베이니아주) 최철호특파원 31일부터 8월4일까지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필라델피아시 스포츠경기장 ‘퍼스트 유니언 센터’는30일 각종 대회구호와 오색풍선들이 곳곳에 내걸린 채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공화당 대표들은 핵무기를 대폭 축소하는 반면 ‘견고한’ 미사일방위체제구축 추진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정강을 29일 채택.공화당의 새 정강은 냉전시대가 지나간 현 시점에서는 ‘공포의 균형’(핵무기의 상호 보유가 전쟁을 억제하고 있는 상태)에 더 이상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명시했다. 새 정강은 이에 따라 핵무기의 수를 가능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줄이되 72년체결한 탄도탄미사일(ABM)협정개정을 위해 먼저 러시아와 협상할 것을 명시. 러시아가 이를 거부하면 미국은 ABM탈퇴를 선언하고 국가미사일방위(NMD)체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새 정강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찬성하지만 중국은 인권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전당대회장인 ‘퍼스트 유니언 센터’는 미국 3대 케이블회사의 하나인 콤캐스트(Comcast)사가 2억 1,000만 달러를 투입해 지은 최첨단 스포츠시설.약2만 2,0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경기장 안을 조망할 수 있는 126개의 관망대와 최신 조명설비,그리고 모든 기능을 갖춘 TV스튜디오 등 언론매체를 위한각종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ABC,CBS,NBC,CNN 및 폭스 등 미국 5대 TV방송사를 비롯한 전세계 약 1,500개 언론기관의 보도진 1만5,000명이 취재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앤디 카드 공화당 전당대회 공동의장은 “신세대와 구세대를 대표하는 명사들이 총출연하는 이번 대회는 최고의 잔치가 될 것이며 참석자들은 기대감과 재미로 자리를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전당대회 조직위에 따르면 1만3,000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진행을 돕는다.공화당원들은 부시 후보가 러닝메이트로 딕 체니 전 국방장관을 지명한데 대해 만족하고 있으며 ‘따뜻한가슴을 지닌 보수주의’라는 부시 후보의 슬로건에도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있다. ◆각종 시민단체를 비롯한 압력단체들은 전당대회를 전후한 일주일간을 시위기간으로 선포,총기 문제와 의료 보험 등 각종 이슈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표출하기로 했다.총기 소지 금지를 지지하는 시위대들은 29일부터 자유의 종인근에 총기 폭력희생자를 상징하는 3만점의 신발을 늘어 놓고 총기 규제를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필라델피아 시내에서는 29일 250명의 낙태 반대 운동가들이 밤샘 기도 행사를 가졌으며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는 낙태 지지자들이 낙태의 자유를 유지할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경찰은 공화당 전당대회 기간? 약 2만명의시위자들이 집결 다양한 요구를 표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당대회 주제는 “다함께,미국의 결의를 새로이”.예비선거 및 당원대회(코커스)를 통해 선발된 2,066명의 대의원들은 3일째인 오는 8월2일 부시 주지사와 체니 전국방장관을 정부통령후보로 각각 공식선출하는 투표를 실시한다.부시 지사는 대회 마지막날인 3일 공화당의 백악관 탈환을 선포하는 연설로 대미를 장식할 계획이다.앞서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과 부시 지사의 최대경쟁자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 등의 연설등을 통해 당의단합을과시할 방침이다. hay@. *全大 열리는 필라델피아市.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필라델피아시는 미국독립의 산실이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인 이곳에서 전당대회를열어 공화당 바람을 일으켜보겠다는 계산을 하고있다.필라델피아에서 공화당전당대회가 개최된 것은 이번이 6번째.그동안 필라델피아에서 치러진 5차례의 전당대회에서 공화당후보로 지명된 4명이 선거에서 승리,백악관에 들어갔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정치의 1번지이자 미국 독립 및 건국과 뗄래야 뗄수 없는 도시.바로 영국 식민지에 대항해 발생한 보스톤 차(茶)사건 이후 1774년미국 최초의 의회(일명 대륙회의)가 소집된 곳이면서 1776년 7월4일 미국 독립선언이 선포된 곳이다.독립이후 미국 최초의 의회가 1790년부터 1800년까지 자리했으며,도시 곳곳에는 벤저민 프랭크린,토머스 제퍼슨 등 ‘미국의국부’들의 생가나 거처가 남아있다. 인구 160만으로 동부에서 뉴욕시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이곳은 그러나 공화당보다는 민주당의 성향이 강하다.지난 52년간 필라델피아 시장은 민주당이독식을 하고 있으며 현재 하원의원 3명 역시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공화당 전당대회 일정◈◆7월31일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과 부시 지사의 부인 로라 여사 연설◆8월1일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역시 예비선거 후보였던 엘리자베스 돌 전미국적십자사 총재,부시후보의 외교안보 고문 곤돌리자 라이스 스탠퍼드대교수 연설◆8월2일 제럴드 포드,로널드 레이건 및 조지 부시를 포함한 역대 공화당 대통령들을 찬양하는 행사.딕 체니 부통령후보 지명 및 수락 연설◆8월3일 부시 대통령후보 공식지명 및 후보 수락연설로 폐막
  • 통일시대 이렇게 준비하자/ 후삼국 통일의 교훈

    *李煥慶 KBS ‘태조 왕건’ 작가가 보는 통일. 지난달 남북정상회담의 성공 이후 통일논의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이런시점에서 한민족 역사상의 통일 경험을 되살펴보는 일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한반도의 통일드라마는 지금껏 두차례 펼쳐졌다.처음은 1,400여년전 신라에 의한 것이었고 두번째는 1,000여년전의 고려가 이룬 것이다. 특히 고려는 코리아(Korea)라는 영문표기가 알려주듯 빼어난 문화와 풍요로운 문물로 해외에 널리 알려진 제국이었다.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시대를마무리짓고 지역갈등이 심했던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대역사를이뤄냈다.이같은 역사는 세번째 통일을 준비하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통일을위한 통찰과 교훈을 남긴다.21세기의 모두에서 과연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1,000년 전,왕건은 통일제국인 ‘고려’를 세웠다.물론 그 이전에도 고구려라는 이름이 줄여져서 쓰인 ‘고려’가 있었지만 왕건의 고려와는 차별화가된다.그 고려가 그 무렵부터 국제무대에서 ‘코리아’로 불려지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나라이름은 왕건의작품이 되는 셈이다. 왕건은 황후가 무려 29명이나 된다.후삼국의 불꽃튀는 영토전쟁의 와중에서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모으고 나름대로 지역적 안배와 평화를 굳히기 위한전략적인 결과가 혼인정책으로 이어져 많은 황후들을 탄생시킨 것이다. 또 그는 기록적으로 볼 때 매우 부드럽고 원만하며 합리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제국을 창업한 군주로선 어딘가 걸맞지 않은 유약함도 비친다.하지만 상대적으로 남성적 힘이 강해 보였던 궁예와 견훤이 결국은 왕건의 부드러움에 밀려 통일대업의 주도권을 놓치고 있는 것을 볼 때 결코 강한 것이모두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은연 중 우리는 배우게 된다. 왕건은 대대로 무역업을 해온 대상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세상을넓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장사와 정치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그것은 곧 상대를 읽는 기술과 그에 따른 계산과 거래가 그것이다.그는 자신의 경험을 십분 활용해 통치자로서 백성들이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해답을내놓았다.그리고 백성들은 그 해답과 선물에 만족해했고 결국 제국의 창업에 성공하게 된다.다시 말하면 왕건의 성공비결은 외유내강(外柔內剛) 그리고지독한 인내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한층 공감하게 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일반에 전해내려오는 왕건의 시가 한 구절 있는데 서예가들은 그 필법을 광초(狂草)라고 말한다.‘광초’란 여러 서체 가운데 하나로 글쓴이의 성격이 남성적이면서 호쾌한 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왕건의 성격을 필체로 본다면 강렬하고 자유분방하며 보다 남성적이고 호쾌한 기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비약해보면 왕건은 자신의 남성적인 모든 격함과 성급함을 누른 채 인내로써 현실과 타협함으로써 ‘코리아’라는 제국을 건설했던 것이다. 지난 6월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현안문제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그것도 아주 우호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목적은 결국 통일을 염두에 둔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지난날 국토가 양분되면서 ‘코리아’는 ‘남쪽 코리아(South Korea)’와 ‘북쪽 코리아(North Korea)’로 나뉘어졌다.1,000년전 어렵게 후삼국을 통일해 국제 사회에 우리나라의 이름을 분명히 세워 놓았던 왕건이 본다면 참으로 눈물을 흘릴 일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번의 통일작업은 우리 민족사중 세 번째에 해당된다 하겠다.처음은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이고 두 번째는 고려에 의한 후삼국 통일이었다.그리고 이번 세 번째가 남북통일이다.지난 두 번의 경우는 모두가 무력통일이었으나 이번은 다르다.그래서 어떤 면에서 보면 신라나 고려때보다더욱 어려울 수가 있다.대화와 이해로써 풀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깊은 인내가 요구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50년을 적대관계로 살아온 남과 북이다.하루아침에 모든 것의 해답을 원할수는 없다.이럴 때일수록 왕건의 인고와 기다림의 그 큰 미덕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을 것같다.변하는 것은 세월이지 인심이 아니다.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법과 이치는 다 똑같은 법,다시 한번 1,000년전 왕건의 행보와 의미를 생각해 볼 일이다.
  • 6·15선언과 金대통령 통일론/(하)청사진과 미래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최근 대한매일이 주최한 국군 모범용사 부부 청와대 초청 다과회에서 “남북문제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착실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거듭 다짐했다.특히 “내가 다 하려고 하지 않고 쉬운 것부터 벽돌을 쌓듯 하나 하나 추진해 나가면서 다음 대통령이 이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정착부터/ 김 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남은 2년반 동안의 임기중 남북관계 구상을 함축하고 있다.결론부터 말하면 총체적인 바탕은 한반도 냉전구도 해체와 평화정착임을 알 수 있다. 김 대통령은 여러차례 “통일은 20∼30년 뒤 다음 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남북통일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바랄 뿐,달성까지는 ‘욕심’을 내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다.또 통일은 의도하거나 기획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다 보면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김 대통령의 관측도 이를뒷받침해 주는 언급이다. 김 대통령이 평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남북공동선언 2항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의외의 성과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연합 뿌리내리기/ 그렇다면 김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구체적인 청사진은 무엇일까.가능한 쉬운 것부터 해결하려는 자세여서 종합적인 청사진을 조망하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러나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단독회담에서의 논의내용을 감안할 때,그의 ‘3단계 통일론’중 1단계인 남북연합단계의 안정적 운용과 정착화로 볼수 있다.남북정상회담의 정례화와 각료회의,국회회담 등을 통해 남북연합단계를 착근(着根)시키는 데 온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김 대통령이 귀국보고에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밝힌 대목은 그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가 평화공존에 대한 남북간 합의에 있음을 천명한 것으로,‘3단계 통일론’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김 대통령은 남북연합단계의 첫 단추를 ‘평화공존 속의 평화교류’로 보고 있다. ●다양하고 착실한교류/ 앞으로 발빠르게 진행될 남북 경협과 이산가족 상봉 및 재결합,비전향장기수와 납북인사 송환협의,체육·문화·예술분야의 교류 등도 남북연합단계라는 큰 틀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김 대통령은 '남북 평화공존이 합의된 뒤부터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교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그래야만 힘의 논리에 의해 한 체제가다른 체제로 급속히 흡수되지 않는 문자 그대로의 ‘평화통일’을 지향할 수있다는 논리에서다. 어쨌든 이런 교류협력 작汰? 정상궤도에 진입하면 김 대통령은 남북연합을위한 구체적인 제도 마련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투자보장 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청산결제 방안 등이 그것이다.또 평화공존을 담보하기 위한 평화협정 체결 및 군비통제,평화체제 유지 공동감시단 가동 등의 수순을 밟게될 것이다.나아가 북한이 미·일과의 수교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국제사회로부터 보장받고 남북이 공동 파트너로 확실히 자리잡는 일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승현기자 yangbak@. *3단계통일론 정착 '이제 첫걸음'.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남북연합-남북연방-완전통일)은 이제 겨우 1단계의 초입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다.가녀린 싹을 막 틔운 셈이다. 따라서 조심스럽고 지속적인 ‘양육(養育)’이 중요하다. 양육에 필수적인 ‘물’과 ‘양분’은 역시 남북 상호간 교류지속이다.그중에서도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이산가족 상봉의 연속성,경제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 등이 기본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 국방위원장 답방/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보더라도 정상간의만남은 그 어떤 대화방식보다 효과가 크다.이 때문에 김 대통령도 김 위원장에게 “70대 노인이 평양에 왔는데 예의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이 서울에 안오는 게 말이 되느냐”는 말까지 해가며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온 힘을쏟았다. 앞으로 1단계(남북연합) 정착에 필수적인 남북연합 정상회의,남북연합 각료회의,남북연합 회의(의회) 등을 구성하려면 정상간 대화는 무엇보다 필수적이다.특히 북한은 우리보다 체제가 일사불란하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의 태도와 의지 하나하나가 통일 논의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 ●이산가족 교류 정례화/ 정부당국의 의지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가 여론이다. 고위층끼리 아무리 합의를 도출해도 민심이 따라오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될 우려가 있다.따라서 남북 이산가족들이 계속 만나 동질감을 확인하고 나아가 통일에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번 8·15 이산가족 상봉이 2차,3차로 계속 이어지면서 통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야 김 대통령이 그리는 남북연합 단계도 가능한 것이다.따라서 남북 양측은 이산가족의 지속적인 교환방문은 물론,판문점 등에 면회소와서신교환소를 설치하는 등 이산가족의 교류를 상시화하는 게 중요하다. ●경협의 제도적 장치/ 민간차원이든 정부차원이든 남북간 경제협력을 병행해야 통일 논의가 견고함과 지속성을 띨 수 있다.경협이 깊숙이 진행될수록 뜻밖의 돌발적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거나 통일 논의 자체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적어진다. 남북 양측이 벌여 놓은 장·단기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경우 어느한쪽이 일방적으로 대화를 무효화시키기 어렵게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남북 당국은 경협을 그때 그때 단발성으로 진행시킬 게 아니라,장기플랜을 토대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추진할 필요가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 *전문가 제언. ●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 차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지난 91년 김일성(金日成) 주석은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를 천명한 바 있다.소련제국과 동구권이 몰락하고 동서독이 통일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고려연방제라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를 계속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교와국방을 서로 나눠 갖자고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같은해 7월 북한의 한시해(韓時海) 주 유엔 대표는 ‘미국의 초기 연방제’를 거론했다.미국의 초기 연방제는 바로 대륙회의 즉,국가연합을 말하는 것이다.김 위원장의 연방제는 그런 과정을 통해 나온 것이며 우리의 남북연합과 내용상 같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집권후 특별히 새로운 통일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정책은 88년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때 만들어진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방안에는 이미 야당 시절부터 김 대통령이 제기해 온 3단계 통일방안이대부분 반영돼 있다.김 대통령은 집권이후 최근까지 경제난 등으로 통일방안을 논의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통일정책을 밝히지 않았다고본다. 남북한의 통일논의가 시작된 시점에서 정부는 민간 전문가 등과의 지속적인토론을 통해 국론을 결집해야 한다. 분위기가 무르익은 뒤 남북한이 각료회의와 의회 협의회 등을 구축하고 정상회의를 수시로 열 수 있다면 국가연합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이행이 되지는 않았지만,91년 말 남북기본합의서에서 합의됐던 공동위원회가 국가연합의 실행기구 성격이었다. ●정용석(鄭鎔碩) 단국대 정치외교학과교수(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남과북은 반세기가 넘도록 서로 전혀 다른 체제 속에 살아왔다.장기적인 예비기간을 두고 통일의 단계적 준비가 필요하다.연합-연방-통일이 3단계 통일론의 기본 골간이다.1민족·2국가·2체제·2독립정부 형태인 연합 단계에서는 제반 분야의 교류 협력을 기본으로 삼아야한다.남북 정부의 정상회의,국회 공동회의도 제도화하는 등 민족적 공통점을찾아내야 한다. 특히 북측의 공산주의와 남측의 시장경제 사이의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 가운데 1단계인 공화국 연합제에서도 남측 입장인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점을 감안할때 북한과의 상이한 체제·이념·제도를 융합할 수 있는 기본틀이 최우선 과제다. 2단계인 연방단계에서는 1민족·1국가·1체제·2자치정부로서 하나의 국호와 외교·국방권을 갖는다.이 단계에서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공존하는 ‘제3의 체제’로 발전돼야 한다. 대외통상관계에 있어서도 남측의 개방경제를 택해야 하는지 북측의 유치산업구조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을 관철할 것인지 등의 협의를 이뤄내야 한다. 통일단계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에서 주장하는 복수정당제·자유선거제·시장경제 등을 북한이 수용할지의 여부가 관건이 된다.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한 그릇에 담을 때 어느쪽으로든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통일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 [김삼웅 칼럼] 하늘이 준 기회 놓치지 말자

    서기 7세기 초의 삼국정립기, 고구려·백제·신라는 끝없는 영토싸움과 보복전으로 바람잘 날이 없었다. 고구려가 백제를 치고, 백제가 신라를 치고,신라가 고구려를 치는, 물고 물리는 동족상쟁이었다. 서기 642년, 신라의 김춘추는 숙적인 고구려를 끌어들여 백제를 칠 방략을세우고 결사의 각오로 고구려 수도 평양을 방문, 연개소문과 담판을 벌였다. 양국간의 평화공존과 공동출병하여 백제를 치자는 협상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신라가 점령한 옛 고구려 땅을 먼저 돌려줄 것을 요구하여 협상은 결렬되고 김춘추는 억류되었다. 간신히 탈출한 김춘추는 당나라로 달려가 충성을 맹세하고 당군을 끌어들여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역사에 가정이 부질없다지만, 만약 김춘추와연개소문의 협상이 잘 진척되어 양국 또는 삼국간의 평화공존이 이루어졌다면 당나라의 백제·고구려 침공은 어려웠을 것이고, 그랬다면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와 백제의 우미한 예술문화는 오롯이 한민족의 역사로 이어졌을 것이다. 7세기의 두 영웅, 김춘추와 연개소문의 소아병적인 아집과 독선, 사대주의와 적개심으로 대륙을 빼앗기고 쪼그라진 반도국가로 전락하는 비극의 단초가 되었다. 역사에 우연은 몰라도 기적은 없다. 기회가 있을 뿐이다. 기회를 포착하고선용하는 것은 당대 지도자의 역할이요 국민의 몫이다.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면 역사의 보복을 받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고 골육싸움과 공리공담으로 민족의 기상과 역량을 소진시켰던가.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평양회담은 한민족 현대사는 물론 동북아 질서를 바꾸게 될 일대 ‘사변’이다. 전쟁과 증오와 적개심으로 가득찬민족 성원간의 해원상생(解寃相生)의 씻김굿이요 평화헌장이며 통일의 장전이다. 아무리 냉전논리와 분단의식에 젖은 사람일지라도 정상회담의 성과와 평양에서 보여준 화해의 모습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쟁포기, 민족자주,이산가족 상봉, 통일방법 접근, 교류협력 등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내부개혁과 역량결집이 시급하다. ‘로마제국흥망사’를 쓴 E.기번은 “개혁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외부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실천하고 한반도의 새질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내정개혁과 국민화합을 도모하는 내부정비가 서둘러져야 한다. 그동안 대통령의 관심이 정상회담에 집중되면서 경제문제 등 내정에 이완현상이 나타나고 개혁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가 햇볕정책, IMF극복, 성공적인 4강외교 등 평가받을만한 일을 하고도 총선결과에서 보듯이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이들 성과를 뒷받침하는 내정의 취약성때문이다. 특히 옷사건과 언론문건사건등 집권층 일부 인사들의 절제되지 못한 언행으로 인해 민심의 이반현상을 가져왔다. 여기에는 물론 개혁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정치세력과 보수언론의 발목잡기도 책임이 따르지만 ‘원인제공’은 집권층의 몫이다. 민주화와 DJ집권에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무임승차’한고위직들이 문제다. 국난극복과 개혁에 열과 성을 다한 사람도 없지 않지만,개중에는 임명권자 눈치보기, 제사람 심기, 보신주의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개혁보다 현상유지, 자기희생보다 살아남기에 더 ‘능력’을 발휘한다. 이들 때문에 정권교체를 신앙처럼 기대했던 국민에게는 배신감이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이다. 개혁이 시급한 분야가 산적해 있다. 무역적자로 경제기조가 흔들리고 당장의 ‘의료대란’,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지역주의는 통일시대를 맞는 우리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사회지도층의 비리는 국민에게 허탈감과 배신감을 안겨준다. DJ정부에 참여한 고위직들은 ‘명리(名利)’를 탐해선 안된다. 명리라는 말이 붙어다니지만 명(名)과 이(利)가 붙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공직은 명을 지키는자리이지 이를 탐하는 곳은 아니다. 대통령은 명리만을 추구하는 고위 공직자들을 퇴진시키고 개혁인사를 중용하여 남북화해시대 ‘새질서’의 기회를활용해야 할것이다. 언론·지식인들도 통일국가 건설을 위한 ‘남북대화’에 건전한 비판이 아닌 사사건건 딴죽걸기나 어깃장으로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 김삼웅 주필
  • 남북 화해시대/ 수행원이 전하는 평양소식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수행한 130명의 공식·비공식 수행원들도 얘기 보따리를 한아름씩 들고 왔다.수행원들이 전해온 생생한평양 소식을 모았다. ◆만찬장서 자잣기 낭독 고은시인. 시인 고은씨(高銀·67·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고문)는 15일 “북한도 이제까지의 대결구도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각성을 보여준 것 같았다”고 2박3일 동안의 방북소감을 밝혔다.이날 저녁 서울에 도착,청와대 연무관 뒷뜰에서 북한을 함께 다녀온 특별수행원들과 기념촬영으로 해단식을 대신한 뒤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그동안 남북 사이에 몇차례 합의서 작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하나의‘언어’로만 남았지 진전이 없었지 않느냐”면서 “그러나 이번 방북에서채택한 남북공동선언은 공존의 인식을 새로 보여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4일 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위해 만찬을 베푼 자리에서 ‘대동강 앞에서’라는 제목의 장시(전문32면)를 낭독하여 분위기를 숙연케 했었다.“시는 그날 아침에 쓴 것”이라면서 “당초에는 낭독할 계획이없었으나 시를 썼다는 사실을 강만길(姜萬吉)고려대 명예교수가 좌중에서 얘기하는 바람에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15일 동명왕릉을 방문했을 때 큰절을 올린데 대해서는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은 우리 시조”라며 자신이 동명왕과 같은 고씨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환히 웃었다.특히 북한에 머무는 동안 사회문화단체를 총괄하는 김영대 민화협위원장 겸 사회민주당 위원장과 만났다고 소개하고 “그에게 ‘통합문학독본’같은 것을 만들어 남북이 함께 공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는 ‘통합문학독본’을 만드는 공동작업의 가능성에는 “8·15 이산가족상호방문이 성과를 거두고 양쪽이 공명을 얻으면 쉽게 이루어지지 않겠느냐”고 낙관하는 표정이었다.김정일위원장의 인상은 “처음 만났지만 생각과는전혀 다른 느낌이었다”면서 “속에 있는 말을 결코 에두르지도,꾸미지도 않는 허심탄회하고 인간적인 풍모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98년7월 보름 동안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고씨는 “그 때와 지금은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면서 “이번에는 민족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사적순간에 동참했다는 감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동철기자 dcsuh@. □최학래(崔鶴來) 한국신문협회 회장. 한마디로 엄청난 변화를 목격하고 왔다.두 정상의 만남은 오래 전부터 사귀어 온 사람들의 일처럼 여겨질 정도였다.지난 90·98년 방북 때 주민들이 ‘천편일률’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던 반면,이번에는 그들 모두가 남측 인사들에게 거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대했다는 점에서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개인적으로는 남북간 언론교류의 물꼬를 틀 계기를 마련한 것이 최대의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측 언론 3단체(신문협회,편집인협회,기자협회)가 계획한 남북간 언론교류 제안서를 북측 기자동맹에 전달했는데 곧 답변을 줄 것이라는 전언을 들었다. □이해찬(李海瓚) 민주당 정책위의장. 김영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나 국회 회담 재개 문제를 요청했었다.그때는 남북회담 합의문이나오기 전이어서 회담 결과가 나오면 대답하겠다고 했었다. 양형섭 부위원장과도 같은 얘기를 했는데 노동당 쪽에서 협의해 회답을 주기로 약속했다.앞으로 의장단 선에서 서로 연락을 할 것이다.이번에 내가 방북한 것도 이만섭 국회의장의 남북 의회교류 당부 때문이기도 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신문에 난 것처럼 활달하고 소탈했다.식량난 등 북쪽 사정이한결 나아짐을 느꼈으며 북 인사들의 태도가 진지하고 성실했다. □장상(張裳) 이화여대 총장. 남북한 여성이 갈라진 한반도를 잇는 연결고리가 되자고 다짐했다.또 삼천리 금수강산을 지키는 환경운동 협력 등 여성교류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북한의 탁아소시설은 남한에 비해 너무나 잘 돼 있었다.덕분에 여성의 49%가 직장에 다닌다고 했다.북한여성들이 너무나 활동적이고 일인다역을 당차게 해내는 모습이 참 인상깊었다. 여원구 최고인민회의 부의장,홍선옥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 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원장,천연옥 여맹위원장은 자신의 힘으로 최고위치에 오른 유능한여성지도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장치혁(張致赫)고합 회장. 머리로만 생각하다가 직접 가서 보니 마음이 열리는 것 같았다.가슴과 가슴이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평양을 떠나오기 하루 전날인 15일 자정 청룡호텔에서 친척 2명을 극적으로상봉했다. 사업차 북한을 몇차례 방문한 적은 있지만 가족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생각했던 것보다 잘 지내고 있더라. 방북일정이 빠듯해 고향땅(평북 영변)엔 못갔다. 이제 이산가족 만남이 테이프커팅된 거나 마찬가지다.북한 경제인 대여섯명과 한차례 경제인 회담을 가졌다.투자보장·이중과세방지 등 제도적 장치 마련에 합의를 보았다. □김민하(金玟河)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머물렀던 2박3일은 감격과 영광의 연속이었다.북측 동포들을 만나보니 남북 통일에 대한 큰 희망과 우리 민족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다.회담은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철학이 가져온 진효(眞效)다.남북한 7,000만 동포는 물론 전 세계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측의 지도자들이 김 대통령의 통일 철학에 신뢰를 가졌다는 확신이들었다.작심하고 회담에 나온 것 같았다.대화 의지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남북간에 서서히 화해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이완구(李完九)자민련 의원. 이번 평양 방문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내 생애 최대의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서독의 브란트 전 총리가 말했듯원래 하나였던 것이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이었다.순안 비행장에서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뜨겁게 악수를 나눴던 순간은 마치 정지된 활동사진을 보는 듯했다.회담의 명칭은 남북정상회담이라기보다 가족상봉회담이라고 불렀어야 맞다.한 민족이라는 강한 형제애를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북측 인사들은 우리를 따뜻하고 정성어린 진심으로 환대했다.통일을 바라는 의지였다.그동안 북측에 가졌던 이미지는 모두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차범석(車凡錫) 예술원 회장. 55년을 기다려온 보람이 있었다.서로 머리맞대면 실마리가 풀릴 일을 왜 그렇게 오래 먼길을 돌아왔는지 돌이켜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이번 방북의 성과물은 ‘통일문학전집’ 발간이다.남북한 작가의 작품100권을 싣는 전집발간은 북측 민화협과 협의를 끝냈다.예정했던대로 2002년까지는 완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방북길에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면,그것은 환영·환송식에나온 시민들의 열광적인 표정들이다.우는 사람도 많이 봤다. 나는 그들의 눈물이 모두 진심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만길(姜萬吉)고려대 명예교수.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이 만난 역사적 현장을 목격한 것은 한마디로 엄청난 감격이었다.이번 정상회담은 끊어진 국토와 민족의 핏줄을 잇는 초석이 된 사건이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어 파격적으로 환대했다.그동안 알려진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김 위원장은 대단히 이활하고 소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또 악수를 하는 손에 힘이 들어 있었다.평양시내는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이었으며 궁핍해 보인다는 인상은 느끼지 못했다.출발전 북한 역사학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했으나 이번 일정이 너무 빡빡해 이뤄지지 못해 아쉽다. □김재철(金在哲)무역협회 회장.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경협의 확실한 물꼬를 튼 것 같아 경제단체장의 한사람으로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투자보장 및이중과제방지,분쟁조정절차 등 제도적 뒷받침만 된다면 경제단체든 기업이든협력할 준비가 다 돼있음을 함께 확인했다.북한 관계자들은 “외세를 배격하고 자주적 남북 경협을 통해 강대국으로 거듭나자”고 말했다.특히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의 정운업(鄭雲業)회장은 남북경제협력공동위를 통해경제협력을 구체화시키자고 강조해 인상적이었다.앞으로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구체적인 남북경협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 남북 정상회담/ 5개항 합의 전문가 분석

    14일 남북정상들의 역사적인 합의가 이뤄졌다.사회 각계의 전문가들은 이번합의가 한반도 냉전해체와 남북간 화해·협력의 물꼬를 텄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합의 자체가 포괄적이라 실천 과정에서 문제들이 발생할 수있다”는 일부 우려도 있었다. ■황태연(黃台淵)동국대 교수/ 90년대 남북기본 합의서에 거론됐던 남북간 화해와 통일은 선언적인 의미에 불과했다.그러나 지금은 북한이 우리를 환대해주는 수위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파격적인 문제 접근 방식 등으로미뤄볼 때 과거 합의서의 수준보다 훨씬 진척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다.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은 남북간 화해와 통일을 뒷받침하는 중요 의제다.다른분단 국가의 경우 긴장 문제만 언급되는 수준이나 남·북한은 전쟁을 격은나라인 만큼 평화문제를 근본 문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가 의제로 합의된 것은 역사적인 전환점의 상징이다.이산가족 상봉은 기타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인 전제다.남북 양측의 대북·대남 정책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확보하는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경제 등다방면에 걸친 교류협력은 이번 합의에서 알맹이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전제와 기본 문제들이 원만히 처리되면 지금까지 소규모나 단발적으로 진행되던 남북한 교류가 획기적으로 확대·심화되는 기대를 담을 수 있게 된다. ■송영대(宋榮大) 전 통일부차관/ 전체적으로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평가하자면 55년만에 남북정상이 만났다는 상징적 의미와 외형적으로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시켰다는 점을 꼽고 싶다.향후 남북협력 사업을 진행하는데 적지않은 자산으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정상이 합의한 4개항은 내용면에서 보면 너무나 ‘포괄적’이며구체성이 결여됐다. 앞으로 이를 실현하는데 곳곳에서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예비접촉에서 남북이 합의한 내용과 비교해 대동소이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을 명기,합의한 것은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북측의 뜨거운 영접은 있었지만 앞으로 남북 합의사항을 실천하는데 상당한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리라 본다. ■김재한(金哉翰) 한림대 교수/ 남북 두 정상이 서명한 합의문은 지난 91년에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비교할 때 내용과 실현 가능성에서 다소 발전된 형태라고 본다.온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의 두 정상이 합의를 도출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한다. 남북간 화해와 통일은 남북 양측의 공동목표라는 것을 재삼 확인시켜 줬다. 특히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경우 지난 합의서가 소극적 의미의 무력충돌 방지에 머물렀다면 이번엔 평화모색을 위한 적극적 의지가 담겨있다. 또 이산가족 상봉문제는 교류협력의 한 부문이었던 것을 별도 의제로 취급했다.그동안 이산가족문제를 꺼려 했던 북측의 태도 변화 가능성을 입증한다.상호 접촉이 전무했던 과거에는 교류협력이 선언적 의미에 그쳤던 반면 경제협력 등 남북간 민간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에는 실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홍지선(洪之璿)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북한실장/ 두 정상의 합의는체제가 다른 남북한이 경제통합 이전단계인 경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길을 닦은 것이다.남북 경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신·수송분야에서 우선적인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전력난을 해결하고 농업기반을 확충하는데필요한 지원도 이뤄져야 명실상부한 경협이 가능할 것이다. 이중과세방지협정 같은 남북간 경협제도를 마련하면서 우리 내부의 많은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복잡하고 이중으로 돼 있는 사업자승인 방식도 고쳐야한다.대북 투자는 그동안 정치적인 요인이 작용했던 측면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기업체의 판단과 수익성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같은 업종의 중소기업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북한에 동반 진출하는 방식이 바람직스럽다. 북한 특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남북경협은 돈을 버는 것보다는북한 경제재건에 모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 [김삼웅 칼럼] 일본총리 망언과 독도문제의 배경

    모리 요시로(森喜郞)일본총리가 28일 방한한다. 정부는 그의 ‘신국론(神國論)’발언이나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외무성 발간의 ‘2000년 청서’문제 등을 엄중히 따져야 한다. 일본은 기회있을 때마다 엉뚱한 수작으로 한국의 반응을 떠보곤 했다.임진왜란때나 19세기말 침략할 때도 그랬다. 본론에 앞서 두가지 문제부터 살펴보자. 하나는 일본의 국호문제다. 명치시대의 대표적인 학자 요시다다고(吉田東伍)는 1907년에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국호편에서 “일본이란 이름은 한민족이 처음으로 쓰기시작했으나 우리 일본인들이 그 이름이 아름답고 나라 이름으로 쓰는 것이 어울린다고 믿어 만고불변의 국호로 삼았다”고 썼다. 다른 역사학자들도 비슷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은 ‘일본’이란 국호를 한국계 도래인(渡來人)들이 사용해온 말을 701년 다이호(大寶)율령에서부터 국호로 채택하여 써온 것이다. 그 이전에는 왜(倭)라고 불렀다. 두번째는 일본의 양심적 학자 와다하루키(和田春樹)의 “소련이 참전하면한반도는 분할점령케 될 운명에 있었으므로 소련참전 이전에 전쟁(태평양전쟁)을 끝내지 않은 일본은 한국의 분할점령 나아가 분단의 책임이 있다”는지적이다. 분단의 원인제공은 물론 직접책임도 일본에 있다는 분석이다. 멀리는 일본이란 국호를 ‘차용(借用)’해서 쓰고 가까이는 민족분단의 비극을 안겨준 일본이 ‘종전’반세기가 넘는 현재, 많은 인적교류와 물적거래를 하는 ‘우방’에 대해 엉뚱한 독도영유권 주장과 잊힐만하면 망언을 서슴지 않고 군사대국화와 극우노선으로 치닫는 배경은 무엇일까. 비록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세계화에 앞섰다고는 하지만 변함없는 ‘섬나라’근성과 콤플렉스인가 아니면 16세기말부터 집착해온 이른바 ‘정한론’의 부활인가. 2002년 월드컵공동개최를 앞두고 두나라는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된다. 그러나 한꺼풀만 벗기면 해마다 쌓이는 연100억달러 규모의 무역역조와 일본군위안부로 동원된 20만 희생자의 배상문제 등 ‘미제사건’과 개선해야 할 현안이 수두룩하다. 한꺼풀을 더 벗기면 1905년의 을사조약 문제다. “회의장 주변과 궁궐·서울시내 전역이 일본군에 의해 점령된 상태에서 한국측 대표와 정부대신 심지어 국왕에게도 협박이 가해져서 한국측의 자유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을사조약은 ‘완전무효’(프랑스국제법학자 프랑시스 레이, 1906년)”라는 국제법상의 유권해석이다. 여기에 한국측대표 외부대신 박재순이나 일본측 전권대표(林權助)가 각각 국왕의 위임장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체결된 을사조약은원인무효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이후 일체의 한일조약이나 협약은 무효가 되고, 일제는 한국을불법강점해온 것을 속죄와 배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1965년 박정희정권이 이러한 역사적 바탕에서 국교정상화 조약을 체결하지 못한 것은 중대한 실책이다. 그렇다고 ‘역사적 진실’이 사라지거나 일본의 불법과 책임이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일본이 지난해 여름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규정하는법률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자위대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활동영역을 확장하는 새 미―일(美日)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관련 3개 법안을 마련하고 이달초에는 동남아시아의 군사적 교두보라고 할 수 있는 싱가포르 기지 사용권을 얻어냈다. 일본자위대는 이미 세계 제2위의 막강한 전력(戰力)을 보유하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를 종합할때 일본의 ‘군사대국호’는 이미 닻을 올린상태에서 우리를 넘보고 있는 것이다. 독도문제만 해도 그렇다.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한 1905년 시마네(島根)현의 고시(告示)는 국제법상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 영유권을 주장할수 있는 주체는 국가이므로 중앙정부가 아닌 일개 지방현의 고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일본이 떼를 쓰는 것은 그들의 숨긴 의도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독도를 ‘실효적으로’지배하고 있다는 안일한 자세를 버리고 단호한 대처가 있어야 한다. 북한과 독도관련 공동대책도 필요하다. 우리가 베푼은혜와 저들이 저지른 죄악을 잊고 새로운 군국화에 열을 올리는 일본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남북정상회담의 성공과 통일은 시급한 민족사적 과제다. 김삼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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