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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환율전쟁의 이면/윤창현 명지대 무역학과 교수

    2차대전이 끝나기 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연합군의 승리가 굳어져가던 즈음 연합국의 대표들이 미국 뉴햄프셔주의 조그만 도시 브레튼우즈에 모여들었다. 전후의 국제금융질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이 모임에서 탄생한 제도가 바로 브레튼우즈 시스템이라 불리는 국제금융질서였다. 이 시스템 안에는 여러가지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축통화로서 달러를 쓰는 것이었다. 반대에 부딪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언제든지 바꿔 주겠다는 조항을 첨부하였다. 바로 금태환(兌換)보장 조항이다. 이미 미국은 2차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에 필요한 무기 등 각종 군수물자의 생산을 도맡아 엄청난 금을 축적하고 있었고 2차대전이 끝날 즈음에는 전세계 금의 3분의2 정도가 미국으로 건너와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부(富)를 축적한 미국의 능력을 인정하면서 달러와 금의 교환비율은 35달러대 1온스로 정해졌고 달러와 기타 통화간에는 고정환율이 적용되었다. 환율유지를 도와주기 위한 국제통화기금(IMF)과 개발기관으로서의 세계은행도 설립되었다. 이 제도는 잘 운용이 되었지만 결국 베트남전 때문에 일대 혼란이 야기되었다. 전쟁 때문에 엄청나게 달러가 남발되자 일부 국가들이 보유한 달러를 금으로 바꾸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맞서 닉슨 대통령은 금태환 정지선언을 통해 달러를 금으로 바꾸어 주겠다는 약속을 무효화시켜 버렸다. 미국이 한 약속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철회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금태환이 안 되어도 이미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는 확고하였고 대안은 별로 없었다. 결국 변동환율제도로 환율제도만 바뀐 상태에서 달러는 계속 기축통화로 사용되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에 의해 달러가 전세계에 풀리면 달러가치는 하락해야 마땅하다. 이때 미국은 자국이 발행한 가장 안전한 채권 곧 미국 재무성채권을 사도록 유도한다. 그리하여 경상수지 적자에 의해 풀린 달러가 미국재무성 채권을 통해 미국 내로 역류해 들어온다. 결국 일단 풀린 달러가 상당 부분 회수가 되고 달러가치는 유지가 된다. 그러나 미국이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보면 미국경제에 대한 우려가 생기면서 달러가치에 대한 불신이 생기게 되므로 언젠가는 한번 달러가치 조정을 해야 한다.1985년 플라자 합의에 의해 달러는 240엔에서 120엔대로 절하되었다. 이는 지속적인 달러 강세에 따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계속적으로 누적되다가 결국 한꺼번에 이를 조정하기 위한 조치가 행해진 예이다. 최근 환율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 이후 기습적으로 약(弱)달러정책을 천명하면서 원화절상이 급격해 지고 있다. 이번의 환율급변 현상은 우리와는 거의 무관하게 미국의 일방적인 주도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어찌보면 우리가 그다지 할 일도 없다. 지난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5307억달러로서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이다.2002년에는 4740억달러였다.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너무 크기 때문에 결국 한번 조절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이를 지켜보면서 움직임이 너무 가팔라지지 않도록 약간의 개입을 통해 속도를 조절하는 정도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수출산업이다. 개입을 통한 환율유지를 포기하고 수출보험이나 환율보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출기업을 직접 지원해 한계수출기업들이 한꺼번에 도산하지 않도록 적절한 정책을 써야 할 것이다. 1997년에는 달러가 너무 부족해서 외환위기를 겪었고 이번에는 달러가 넘쳐나서 좋다 했더니 기축통화발행국이 환율을 급격히 조정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동안 외환시장 개입비용이 지나쳤다는 반성도 나오고 있다. 좀더 길게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때이다. 윤창현 명지대 무역학과 교수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9)속초 아바이마을의 삶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9)속초 아바이마을의 삶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도 보고, 찾아도 봤던 그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홀로 왔다.’던 무수한 그 ‘아바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속초시의 바닷가 마을 청호동의 이른바 ‘아바이마을’로 더 유명한 ‘함경도촌’을 찾아가면 그네들이 살아온 삶의 내력을 엿볼 수 있다. 속초에서 서울로 오자면 미시령을 넘게 마련인데, 그 고갯목에 차를 세우고 굽어보면 속초 시내와 동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왼쪽의 영랑호, 오른쪽의 청초호, 그 뒤편으로 동해가 배경막처럼 놓여져 산과 바다와 호수의 동네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토록 아름답던 청초호의 길이 1㎞, 너비 80여m 남짓한 백사장에 함경도 피란민들이 처음 피란선의 닻을 내렸다. 그럭저럭 살다보면 돌아갈 수 있으려니 생각했으나 영영 불귀의 몸이 되어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1세대 세상은 거의 막을 내렸고,2세대도 이제는 거의 중년을 넘겼다. 그렇게 50여년을 청초호 바닷가에 뿌리 내리고 살았다. 속초는 본디 자그마한 읍내였다. 속초면이 속초읍이 된 시점이 1942년, 해방 이후는 38선 이북에 포함되어 있었다. 설악산을 병풍처럼 끼고 있고, 석호가 그야말로 그림같이 펼쳐져서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주민들은 어업보다 주로 농업에 종사했다.1930년대, 정어리떼가 청초호로 몰려들어 배들이 새까맣게 닻을 내렸을 때도 정작 속초배들은 별로 없었다. 전쟁은 중앙의 역사만이 아니라 지역사도 송두리째 바꿔 놓았으니 속초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업에 종사하는 피란민이 원주민보다 많아지면서 급속도로 어업 중심지로 바뀌었다. 종전 이후에도 연고를 찾아 몰려드는 연쇄 이동이 맞물렸다.‘일가 친척 없는 몸’들이 고향 사람을 찾아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5만여명이 배를 타거나 육로로 내려와 이곳에 여장을 풀었다. 선단을 이룬 이들은 청초호 모래톱에 배를 댔다. 육로로 내려온 이들은 학사평(지금의 공설운동장 쪽)에 ‘해방촌’을 꾸렸으나 차차 흩어져서 도시 속에 녹아들었다. 반면, 본디 어업에 종사하던 청호동 사람들은 강인한 단결력을 과시하며 지금껏 버티고 있는 중이다. ●쌀로 빚은 가자미식해·북청 사자놀이 일품 함경도, 그 중에서도 함경남도 사람들이 7할 정도 차지한다. 정평 이원 영흥 단천 흥원 신창 신포마을 등 청호동 집단취락명은 이네들이 내려와서도 응집력을 갖고 살아왔음을 웅변한다. 이 중에서도 단천과 신포마을이 헤게모니를 쥐고 살았다. 속초에는 지금도 함남도민회, 원산시민회, 함흥시민회, 북청군민회 등등 무수한 ‘월남 조직’이 있어 ‘피란민 도시’의 면모를 보인다. 이들이 석호의 모래톱에 불과한 청호동을 선택하게 된 동기는 무엇보다 국가 소유 해빈(海濱)인지라 무단 정착이 용이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밥벌이 기술’인 어업을 지속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분단기에 이북 어민들이 전국 해안에 뿌리를 내리면서 ‘어업의 장기지속성’을 보여준 사실에 대한 연구는 본격적으로 이뤄진 적이 없다. 그러나 전국을 돌아보면 해안 곳곳에 이들이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서해안 덕적도 진리포구는 황해도민이 집단 거주하며, 화성의 마산포같이 작은 포구에도 황해도촌이 존재한다. 인천시 화수부두에도 유별나게 황해도민이 많았으니, 김금화같은 무당들이 인천을 거점으로 배연신굿을 하는 토대도 바로 이곳이다. 전쟁때 선단을 통한 대대적인 피란과 정착이 이뤄졌음을 말해준다. 모진 해풍이 불어닥치는 낯선 바닷가에 당도하여 고생고생한 대목은 필설로 이루 말하기 어렵다. 한 마디로 분단의 비극이었다. 미군부대의 철조망 주변에 널린 레이션 박스를 주워 오고, 부서진 배 등을 엮어서 집이랄 것도 없는 집을 지었다. 겨울이 오면 흙을 발라서 흙집이 되었다. 구겨진 드럼통을 펴서 지붕을 얹기도 했고, 주변에 돌아다니는 모든 물건들을 주워 모아 청호동을 만들어 나갔다. 남해안의 여수, 거제 등으로 피란 갔던 이들, 경상도의 후포, 구룡포, 강원도의 양양, 대포 등에도 이들은 몰려 들었다. 나중에는 이른바 ‘반공포로’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찾아 들었다. 참으로 모진 세월이었다. 청호동에서도 모래톱 맨끝에 형성된 신포마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신포는 오늘날 북한 최대의 수산사업소가 있는 어업 전진기지이며, 일제시대에 함경도 어업의 최대 거점이었다. 한마디로 신포사람들은 동해안에서 가장 뛰어난 어민들이었으니, 이들의 저력이 모여 강원도 유수의 어항 속초를 만드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포는 남쪽으로 봉화반도가 뻗어 나왔고, 서쪽과 북쪽에 산이 있어 바람을 피하기 좋다.‘한국수산지’(1905)에 따르면, 호수 300, 인구 1360여명이었으며 명태 집산지로 이름 높았던 곳이다. 당시에 인구 1000명이 넘는 포구라면 상당한 규모다. 식민지로 접어들자 시가가 번창하며 기선 출입이 잦고 일본인 거주자가 증가했다. 건너편 북청으로 정기선이 다녔으며, 성진 원산 부산 등지로 연안 회항선도 다녔다. 1905년 당시에 이미 일본인 거주자는 수비대, 헌병대를 제외하고도 남자 31, 여자 23명이 살았으며, 직업도 무역상 기선업 잡화상 매약상 여인숙 음식점 과자상 우육상 등 다양했다. 신포 바로 앞의 마량도 출신인 박임학(79)옹의 증언.“북청군 신포읍 마량도가 고향이지요. 지금 경수로 만드는 곳까지 포함해 신포시가 되었어요. 신포 앞 섬, 거기가 내 고향 마량도지요. 신포 읍내에서 마량까지 수로로 10리 밖에 안되요. 연락선이 있었는데, 하루에 세번씩 다녔지요. 마량도는 12개 마을(리)로 되어 있었습니다. 소방서, 주재소, 그리고 국민학교도 있고,300여 호가 살았지요. 평지 대신 산이 많았고….” 지도를 펼쳐볼 필요가 있다. 신포와 홍원 사이의 마량도가 바로 코앞이다.12개의 마을이 형성될 정도의 크기이니 동해안에 섬이 없다는 우리들의 통념을 깰만 하다. 밑으로는 함흥이 있고, 함흥만 아래에 원산이 있어 천혜의 산란장이다. 이른바 한반도의 허리라고 하는 바로 그곳이다. 신포사람들은 청호동에 정착한 이래 한 시도 배를 떠나지 않았다. 함경도 명태잡이 기술이 이곳에 고스란히 전파되었다. 피란민을 통한 어업기술의 전파가 이루어진 것. 당연히 ‘아바이 말씨’와 음식도 함께 와 뿌리를 이어갔다. 덕분에 지금도 청호동 골목길에는 아바이순대를 비롯하여 함흥냉면 간판 등이 줄지어 서있다. 단천 출신으로 단천식당이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윤복자(63)씨는 함경도 음식 중에서 해산물로 명란젓 창란젓 아가미젓 꽁치젓 메가리젓 오징어젓 등의 젓갈류를 꼽았는데, 그 중 가장 함경도적인 것으로 가자미식해(食)를 내세웠다. 생선을 소금에 절이면 염장어가 되고, 발효시키면 식해 또는 어장(魚醬)이 되는 것이니, 이런 유의 음식은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 생선식해는 이른바 ‘감주’식혜와는 다른 것이지만, 발효시킨다는 뿌리는 같다. 곡식과 생선을 섞어 발효시킨 것이 가자미식해이니, 동해안의 원래 주인공인 동예(東濊)나 발해인들이 바로 이 식해를 먹었을 것이다. 곡식과 생선을 버무려서 발효시켜 저장하는 기술은 선사시대 이래의 식생활이니 가자미식해는 한반도에 흔치않게 남아있는, 그 자체가 바로 살아있는 무형의 문화유산 아니겠는가. ●명태잡이 어업기술 고스란히 전파 사실 동해안에 가자미만큼 흔한 고기도 없다.“왜 식해를 만들때 수많은 생선 중에서 가자미를 쓰느냐.”는 질문에 “뼉다구가 날래 물르기(빨리 삭기) 때문”이란다. 덧붙여 “가재미 식해는 뼈가 물러야지 좋으니까.”라고 사족을 단다. 재미있는 것은 조밥 대신에 쌀밥을 쓴다는 점.“경상도 사람들이 조밥을 넣지, 여기서는 그리 안해요.”이런 습속은 다른 곳도 같아 강릉시 사천면 진리 일대 등 여타 강릉시 일대에서도 흰 쌀밥을 이용해 식해를 만든다. 조로 만드는 것과 비교해 맛이 어떠냐고 묻자 “조밥보다 쌀밥이 더 맛있어요. 예전에는 값도 쌀이 비쌌지요. 삼척 넘어가고 경상도 가니까 다 조밥 넣데요. 그러나 이 인근은 모두 쌀밥으로 해요.”우리가 알던 ‘조밥 가자미식해’와는 다르다. 반백년쯤 지나다보니 아바이들의 삶도 서서히 변해 갔다.2세대들은 강원도 원주민과 많이 결혼했으며,3세대들은 학교, 직장 문제 등으로 외지로 나가 사는 경우도 많아 ‘아바이마을’의 정체성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게다가 속초시는 낙후된 이 일대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지금도 드라마 ‘가을동화’에 등장한 ‘갯배’라는 독특한 도항 수단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새 다리가 완공되면서 거대한 교각에 마을 경관이 눌린 꼴이 되고 말았다. ●취락지 보존 ‘아바이박물관’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2세,3세로 내려가면서 피가 섞이고, 함경도적 정체성도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청호동 바닷가 취락지를 보존해 ‘살아있는 아바이박물관’ 정도로 했으면 하는 희망이다. 분단시대의 박물관이자 분단의 균열 속에서도 고향의 응집력을 지니고 반백년을 살아온 그네들의 삶은 그 자체가 ‘역사자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양문화사적으로 그들의 어업기술사는 이북의 신포와 마량도 어업사를 고스란히 옮겨온 경우에 해당된다. 옛 사진첩에 1950년대의 북청사자놀이가 확인되니,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훨씬 이전부터 고향의 춤과 노래를 계속 이어왔다는 증거 아닌가. 쌀밥으로 빚은 가자미식해와 북청사자놀이의 호탕한 대륙적 음악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아바이 삶’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시신을 화장하여 속초 바닷가에 뿌리면서 바닷물을 통해서라도 고향으로 되돌아가길 기원하는 아바이들이 존재하는 한, 청호동은 지켜지고, 또 살아 남으리라.
  • 대딩들과 캠퍼스 미리보기

    대딩들과 캠퍼스 미리보기

    수능 준비로 정신없이 보낸 가을. 시험을 마치고 보니 어느덧 겨울과 맞닿아 있는 가을 끝자락에 서 있다. 마냥 신나게 놀기엔 입시 전쟁이 아직 끝나진 않았다. 그렇다고 책상 앞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순 없다. 남은 전형기간 동안 지치지 않기 위한 자극제도 필요하다. 대학으로 가자. 친구들과 삼삼오오 캠퍼스를 걸으며 아직 남아 있는 가을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여기서 그동안 지친 심신을 달래고 대학생이 될 모습도 머릿속에 그려보자. ●건국대학교-최자윤(국제무역학과 03학번) 저희 학교에 오시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가장 먼저 발길이 가는 곳은 ‘일감호’라는 인공호수일 겁니다. 전국 대학내 인공호수 중 최대 규모로 1만 9000여평이나 됩니다. 호수를 끼고 형성돼 있는 ‘청심대’는 학생들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쉼터랍니다. 또 하나의 명소는 ‘상허박물관’이죠. 서울시 건축상을 받은 적이 있는 곳으로 낙원동에 1900년대 초 독립운동을 위해 지어진 건물로 저희 학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죠. 학교 안에는 건국햄 전시장이 있답니다.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싶으시다면 그 곳에서 파는 햄치즈 샌드위치(2500원)를 맛보세요. 제대로 밥을 먹고 싶다면 학교 근처 남도쌈밥집을 강추합니다. 만원이면 두명이서 주물럭 쌈밥에 냉면까지 든든해집니다. 맛은 기본이랍니다. ●경희대학교-박현주(의류학과 02학번) 대학교 하면 흔히들 상상하는 굵은 기둥의 높은 건물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저희 학교랍니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평화의 전당’은 저희 학교의 자랑이죠. 드라마 속 멋진 캠퍼스 장면이 대부분이 이곳에 촬영된답니다. 며칠 전에는 이곳에서 대학가요제도 열렸죠. 정문으로 들어와 언덕을 지나면 보이는 왕관 모양의 ‘크라운관’에도 꼭 들러보세요. 크라운관에서 아랫길로 조금 내려가면 ‘희랑’이라고 불리는 건물이 나오는데 이곳의 학생식당 밥맛이 좋습니다. 매일 메뉴가 바뀌는데 1500∼2000원 정도 가격으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답니다. 정문에서 나와 오른쪽에 있는 피나피니의 런치타임(오전 11시30분∼오후 4시)에 8000원 안팎으로 무한정 나오는 빵을 비롯해 패밀리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서비스를 즐길 수 있답니다. 피자돈가스가 인기 메뉴. ●성신여대-맹소영(식품영양학과 02학번) 학교 안에는 작고 운치가 넘치는 곳이 많아요. 도서관인 우정관 옆과 수정관으로 향하는 운동장 옆 잔디밭은 돈암동을 바라보며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여유를 갖기에 제격입니다.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한 건물들 사이에 잔디와 아름드리 나무가 많아 강의를 끝내고 몸을 달래는 휴식을 가질 수 있어요. 메인건물인 ‘수정관’을 꼭 들러보세요. 학교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곳곳에 푹신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얘기를 나누는 대학생의 일상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도서관 옆 제1학생식당은 한식이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제가 식품영양학을 전공하잖아요. 그래서 다른 곳과 비교할 기회가 많았는데 역시 이곳이 반찬도 골고루 나오고, 맛도 최고더라고요. 이중 참치김치찌개가 으뜸이에요. 찌개가 나오는 날이면 식당엔 발 디딜틈이 없죠. 주로 1300∼1400원대. 분식을 주로 내는 제2학생식당에선 면발 좋고 국물이 얼큰한 우동을 맛보세요. ●성균관대학교-최혜민(영어영문학과 03학번) 성균관대학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성균관’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장소는 바로 명륜당이죠. 정문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옛기와건물로 들어오면 옛모습 그대로의 명륜당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넓은 마당의 뒤편에 성균관대학교의 상징인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답니다. 이 은행나무에는 전설이 있는데 가을마다 은행에서 나는 냄새 탓에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지장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행이 열리지 않게 해달라는 제사를 지냈고 그 후로 지금까지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학교 내에는 식당이 다섯 곳이 있는데 그중에서 600주년 기념관 지하 1층에 자리잡은 ‘은행골’이 최고랍니다.‘육백년의 맛’이라는 한식,‘성균면옥’에서는 면종류의 음식을 맛볼 수 있죠. 또 ‘비볶’에서는 비빔이나 볶음류,‘프랜즈’에서는 양식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중 프랜즈의 바비큐 폭찹이 인기랍니다. 정문을 나서면 성대학생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명륜골의 불백은 그 맛이 일품이랍니다. 돼지불백에서 치즈불백까지 맛도 다양하니 꼭 한번 들러보세요. ●한국외대-민희창(일본어과 01학번) 저희 학교는 캠퍼스만 보자면 비교적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외국어 대학인 만큼 관련 시설에서 만큼은 최첨단을 자랑한답니다. 저희 학교의 ‘멀티플라자’에서는 미국부터 인도까지 세계 각국의 130여개 방송 채널을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이곳의 ‘국제 PC 카페’에서는 세계 각국 언어를 통한 PC 사용이 가능하죠. 학생식당에서는 신당동 떡볶이를 연상시키는 즉석 떡볶이를 맛보실 수 있답니다. 가스 버너가 비치되어 있어 직접 떡볶이를 요리하며 즐길 수 있습니다. 큰 냄비속에 각종 야채와 떡, 어묵, 라면 사리가 푸짐하게 들어갑니다. 여기에 주방방 아저씨가 비결을 절대 공개하지 않는 특제 고추장 양념이 들어가 환상적인 맛을 냅니다. 가격은 놀라지 마세요. 단돈 1500원이랍니다. 학교 밖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싶다면 오르페우스 블랙을 강추합니다. 스파게티 전문점으로 각종 파스타와 돈가스를 맛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메뉴는 돈가스 위에 피자가 올려져 있는 ‘홍콩돈가스’와 느끼하지 않으면 특이한 크림소스가 곁들여진 ‘알프레도 새우스파게티’가 있습니다. ●서울대학교-한지훈(언론정보학과 02학번) 학교를 제대로 다 둘러보고 졸업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만큼 넓은 게 일단 저희 학교의 특징이자 매력이죠. 다 가보지 못해도 어느 곳에서든 탁 트인 공간에 멋진 단풍과 낙엽이 어울린 가을 풍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많은 대학내 명소 가운데 ‘자하연’은 연인들의 필수 코스. 예전에는 수영도 할 수 있었다는 소문이 있지만 믿기엔 수질이 조금 떨어지죠. 하지만 분위기는 만점이랍니다. 연못 근처의 벤치에 앉아있다 보면 우정도 사랑도 새록새록∼. 학교가 넓다 보니 그만큼 학생식당도 많습니다. 그중에서 카페테리아식으로 원하는 음식을 골라먹는 음미대 식당이 괜찮습니다. 학내 언론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만족도 1위를 차지했으니 믿을 만하겠죠?학교 밖을 나오면 녹두거리라는 번화가가 나오는데 이곳의 우동촌은 몽골리안우동(5000원)과 같은 볶은 우동과 치즈치킨가스(6500원)등을 즐길 수 있습니다. ●중앙대학교-우정화(아동복지학과 02학번) 중앙대의 여러 명소 중 단연 으뜸은 본관 앞 청룡 호수입니다. 저희 학교를 상징하는 청룡이 여의주를 물고 펜을 들어 지구를 품에 감고 있는 모양이죠.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학교가 아닌 또 다른 자연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죠. 햇살이 맑은 날에 이곳의 벤치에 앉아 있으면 특히 무지개가 청룡상을 감싸는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때 사진을 찍으면 행운이 온다는 얘기도 있죠. 학교 내에서 가장 유명한 먹을거리는 바로 ‘CAU버거’랍니다. 중앙대의 영문이니셜이 붙은 이 햄버거는 시중가의 절반에 2배 이상을 맛을 자랑한답니다. 신선한 재료와 독특한 소스로 많은 중앙대 학생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아울러 함께 판매하는 ‘김치전’의 인기도 만만치 않죠. 학교 밖을 나서면 3000원 안팎의 돈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단비분식을 찾아보세요. 중앙대학교에서 모르면 간첩소리를 듣는 이곳은 저렴한 가격에 집에서 밥을 먹는 듯한 맛을 느낄 수 있답니다. 각종 찌개류부터 생선구이까지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답니다. ●고려대학교-김대규(통계학과 99학번) 학교의 전통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곳을 가장 추천하고 싶네요. 본관 석조건물은 말이 필요없는 학교 역사의 교과서죠. 마치 중세시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달까. 한국학관은 한옥건물로 고궁에 와있는 운치가 느껴지고, 중앙광장 분수대는 파란 잔디와 본관건물이 한폭의 그림이에요. 고대의 코엑스로 ‘고엑스’라고 불리는 ‘중앙광장’은 중간에 통로를 두고 양쪽으로 열람실과 편의점, 행정부서들이 있어요. 학생회관식당 감자커틀렛(1500원)은 이 메뉴가 나오는 날이면 학생들로 북적거릴 정도로 인기죠. 고대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정경대 후문 영철버거는 넉넉한 인심으로 학생들을 사로잡는 곳입니다. ●이화여대-김가진(인문학부 04학번) 학교를 방문한 학생들을 데리고 꼭 가는 곳이 이화포스코관에 있는 ‘이화사랑’이에요. 공부하는 사람, 담소를 나누는 사람, 간식을 먹는 사람 등 학생들의 일상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죠. 헬렌관의 아름뜰에서는 야외테이블에서 공부하면서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어요. 울창한 숲속에서 공부하는 분위기, 생각만해도 멋지죠?학생문화관 앞 겨움터도 딱 그런 곳이에요. 부지런한 학생들이 아침부터 이곳에 앉아 공부하죠. 생활관·헬렌관 학생식당 모두 좋지만 가장 추천하는 곳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숙사 식당. 너무 멀어 힘들지만 꼭 찾아가 먹을 만큼 1700∼1800원 하는 백반의 맛이 최고예요. 정문 앞 식당 밥의 순두부 정식(5000원)은 집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는 것 같은 정성과 맛으로 넘버 원! ●연세대학교-손령(인문계열 03학번) 그 어떤 캠퍼스보다 가을이 물씬 묻어나는 저희 학교에 오셨다면 ‘광혜원’은 꼭 들러보셔야 합니다. 정문에서 쭉 들어오다 보면 오른편에 작은 한옥지붕이 보이는데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광혜원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자 연대 세브란스 병원의 모태기도 합니다. 이제 광혜원을 본관쪽을 향해 가다보면 ‘윤동주 시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시비에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서시’가 새겨져 있으며, 오늘날에도 그를 추억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좀더 올라가면 저희 학교가 자랑하는 광대한 녹지 공간인 ‘청송대’(聽松臺)’가 나옵니다.‘소나무 소리를 듣는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곳은 연세대 캠퍼스 아름다움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식당은 학생회관 지하 1층의 ‘맛나샘’과 지상 1층의 ‘부를샘’ ‘고를샘’이 대표적입니다.2000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밥을 즐길 수 있죠. 정문을 나서면 수많은 신촌의 맛집들을 만날 수 있지만 연세대인들이 손꼽는 집은 바로 아침나무입니다. 무쇠솥밥으로 유명하죠. ●숙명여대-가애란(인문학부 01학번) 우리 학교에서 가장 예쁜 공간을 하나 꼽으라면 대부분 분수대를 꼽겠죠. 분수대 앞으로는 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숲속 벤치에는 삼삼오오 우정을 나누는 학생들이 사시사철 떠나지 않죠. 학교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랄까요. 국제화시대에 걸맞게 사회교육관에는 ‘영어카페’가 있어요. 주문할 때부터 카페를 나설 때까지 모두 영어로 하는 곳으로 나의 영어실력을 뽐내보는 것도 좋아요.‘스노카페’에도 들러보세요. 세련된 분위기, 푹신한 의자, 다양한 식음료는 몸을 풀기에 적격이죠. 학교 앞 진이분식은 참치김치찌개와 김치수제비로 유명한 곳이죠. 양은냄비에 내는 칼칼한 순두부칼국수가 일품인 가미원도 강추. ●홍대앞엔 특별한 게 있다 젊음의 거리 홍익대 앞에서 수능준비로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보자. 수능을 마친 청소년들을 위해 오는 21일 ‘제1회 유스(Youth) 홍대클럽데이’가 열린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 열리는 클럽데이는 홍대 앞 14개 클럽을 입장권 한 장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날. 올해 처음 열리는 유스 홍대클럽데이에는 엠투(M2), 흐지부지, 엔비(NB), 디디(dd), 코스모, 조커레드 등 7개 클럽이 참가했다. 입장권은 1만원. 누구나 입장이 가능하며 수험표를 지참하면 50% 할인된다. 각각의 클럽에서 영화 ‘발레교습소’의 시사회, 엠씨 스나이퍼·불독맨션 등 인기그룹 공연, 비보이(B-boy) 댄스 배틀 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 열릴 예정. 포털 네이버(naver.com),YMCA, 하자센터, 아하성문화 센터 등이 공동주관하며 오후 3시부터 밤 9시까지 진행된다. 청소년이 함께하는 행사인 만큼 술 담배는 절대 금지. 부모님도 안심시킬 수 있다. 예매는 티켓링크(ticketlink.co.kr)에서.
  • [CEO 칼럼] 신성장 동력 CEO와 한상/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CEO 칼럼] 신성장 동력 CEO와 한상/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한국의 미래는 경제에 달려 있고 경제는 기업에 달려 있다. 기업은 사람에 달려 있고 특히 최고경영자(CEO)에 달려 있다. 기업은 기(企)를 업(業)으로 하는 생명체다. 기(企)는 사람(人)이 머무는(止) 곳이다. 그 사람들을 섬기고 지도하는 이가 CEO다.CEO는 사람 중의 사람이다. 그래서 ‘기업이 열량이라면 CEO는 아홉량’이다. 이 CEO가 바로 한국의 신성장동력이다. 물론 한국의 10대 차세대 동력으로 그간의 전통산업인 조선, 자동차, 철강 등 중공업에 더하여 지능형 로봇, 차세대 반도체, 차세대 이동통신과 바이오 신약과 장기 등을 국가적 차원에서 경영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렇게 무엇을 해서 먹고 사느냐도 긴요하지만 누가 하느냐도 매우 절실한 과제다. 피터 드러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제 사지육신을 통해 먹고 사는 산업사회는 갔다. 한때 경공업이 리딩섹터였고 성장산업이었다. 그 후 중화학공업 등이 등장했고 이제 이른바 하이테크인 6T가 화두가 되었다.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나노기술(NT), 환경기술(ET), 항공기술(ST), 문화기술(CT)이 그것이다. 이것은 모두 사람머리의 소산이다. 그래서 그러한 하이테크를 개발·소유하는 인재는 특별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최근 삼성그룹에서는 사장보다 연봉이 많은 ‘S(Super)급’ 인재가 또 탄생했다고 보도됐다. 물론 슈퍼급 기술인력이 사장보다 많은 봉급을 받는다고 해서 CEO가 과소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함께 영광을 누려야 한다. 500년 전 조선조의 과학기술을 꽃피운 장영실도 세종대왕의 리더십 속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미래를 여는 CEO는 각방의 인재를 품는 리더다. 2002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는 평범한 학사연구원이었기에 더욱 세인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영광 뒤에는 중소기업인 시마즈 제작소의 CEO가 그의 연구를 묵묵히 지켜봐 주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CEO의 도전정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과감하게 도전하는 CEO는 아름답다. 시장개척이건 기술개발이건 모두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이고 뼈아픈 사례일지 모르나 이라크에서 납치당해 죽은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씨 사건을 돌이켜 보면 전쟁터에서 죽음을 무릎 쓴 비즈니스맨들의 감투정신에 숙연해진다. 국제금융계의 거인 유태계 로스차일드 가문도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박문덕 회장이 승부수 ‘천연 암반수로 빚은 하이트맥주’로 OB맥주의 40년 아성을 무너뜨린 것은 위기를 극복한 신화였다. 이와 같이 진정한 CEO는 위기를 감수하면서 번영을 창조한다. 한국은 전 세계 170여개국에 670여만명의 재외동포가 있다. 이들의 자산은 한국 GDP(국내총생산)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1000억달러를 넘어선다는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의 보고가 있었다. 미국 굴지의 철강회사를 일궈낸 백영주 패코스틸(Paco Steel) 회장과 라오스에서 자동차 조립생산공장으로 부를 이룬 오세영 콜라오 그룹회장 등 수많은 한상(韓商)들이 있다. 재외동포들, 특히 해외의 CEO들은 중국 화상들처럼 체계적이며 조직적으로 네트워킹이 되어 있지 않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CEO를 사회가 적극 격려하고 동시에 세계 곳곳의 ‘한상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국가적 대계(大計)가 절실하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 [열린세상] 한국을 이해하고 싶지않은 사람들/임춘웅 언론인

    지난 10월27일자 이 난에 모 대학 교수가 ‘한국은 이해하기 힘든 나라’라는 글을 썼다. 사람들은 때때로 남의 눈을 통해 자기를 재발견하게 되는데 외국인들이 한국을 이해하지 못하는 몇가지 사례를 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교수가 지적한 것들은 외국인뿐 아니라 한국인중에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첫번째는 한국인이 이라크전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반미적이라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반미적이라는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한 여론조사 결과가 그렇다는 것인데 어떤 여론조사인지 적시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한국은 이라크에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파병을 했고 그것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파병한 것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반미적”이란 근거가 빈약하다. 한국에서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서 심한 반대가 있었고 아직도 이라크전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지식인들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도 이라크전을 두고 반반이 갈려 있는데 한국에서 반대자가 없을 리 없고 명백한 침략전쟁을 비판하는 여론마저 없다면 그런 나라는 죽은 나라일 것이다. 두번째로는 한국인들이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비교적 태평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는 미국이 제기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이 태평하다면 그것은 미국이 한국사람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북한의 핵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증거를 제시한 일이 없다.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인지 핵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것인지도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필요가 있을 때 불쑥불쑥 북한이 핵폭탄 4∼5개를 갖고 있다고 했다가, 또 어떤 때는 7∼8개를 갖고 있다고 한다. 어느 경우든 한국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증거를 제시해주어야 한다. 북한이 핵폭탄을 이미 갖고 있다면 그 연료가 되는 플루토늄이나 농축우라늄이 왜 새삼 문제가 되는지도 의문이다. 세번째는 북한의 인권문제였다. 최근 미국의회가 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킨 이후 한국의 일부 여당의원들이 미국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놓았는데 이해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통일은 왜 하자는 것일까. 일차적으로는 분단된 국토의 통합이겠지만 보다 기본적으로는 북한에 사는 국민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회복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남북관계는 북한을 국제사회로 이끌어 내기 위해 화해 협력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걸음마 단계다. 인권문제는 그 기준이 애매하고 증거도 불충분해서 따지자면 삿대질부터 오가야 하는 성질의 것이다. 그런 문제를 들고 나오면 남북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여기에 인권 문제를 꺼내기 조심스러운 이유가 있는 것이다. 네번째는 연간 수출 2000억달러를 넘어선 한국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그런 문제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세계화가 무엇인지,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 개념파악도 안 된 상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통제되지 않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이미 세계의 지식인들이 누누이 지적해온 것이다. 그리고 수출 2000억달러가 세계화 때문이라는 논리도 비약이다. 국제무역은 신라때도 있었고 조선때도 했다. 그러나 지금 약소국가들은 세계화를 막을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현상이긴 하나 세계화는 어떤 방법으로든 다스려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열심히 대안을 찾고 문제점을 지적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본시 보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보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외국사람이 그들의 잣대로 현상을 보려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한국인마저 한쪽 눈을 감고 사물을 보려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임춘웅 언론인
  • 달러화 계속 하락…유로당 1.30弗 첫 돌파

    미국의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유로화가 사상 처음으로 1.30달러를 돌파했다. 10일 런던시장과 뉴욕시장에서 달러의 환율은 장중 유로당 1.3005달러까지 올랐다가 1.2963달러로 떨어졌다. 9월 중 미국의 무역적자가 당초 예상치보다 큰 516억달러에 달했다는 이날 미 상무부의 발표가 달러화의 하락을 이끌었다. 환율 전문가들은 유로당 1.30달러가 달러화 가치의 장벽으로 작용, 당분간 이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이날 연방기금 금리를 1.75%에서 2%로 0.25% 포인트 올릴 게 확실시돼 당장 달러화 가치의 급락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미국이 해외자본을 계속 유입해야 하기 때문에 달러화 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테러 전쟁을 수행하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재선으로 재정적자의 확대가 불가피해 연말까지 달러의 환율은 유로당 1.325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기업들 “올 1100원 아래로” 내년엔 1달러 1125원 전망

    기업들 “올 1100원 아래로” 내년엔 1달러 1125원 전망

    원·달러 환율이 4년여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정부와 수출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1110원대가 서울 외환시장에서 무너져 세계적인 ‘환율전쟁’이 본격화된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1조 달러에 육박하는 재정·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약(弱)달러정책을 유지하고, 중국에 대해 위안화 절상 압력을 가해오면서 원화절상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수출기업 321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출기업 10곳 가운데 6∼7곳은 최근의 원화강세를 지속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은 또 올해 원·달러 환율이 1100원선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평균 환율 전망치는 1125.5원으로 관측했다. 따라서 이들 기업들은 ▲환율변동의 속도와 폭 조절(36.5%)▲적극적인 환율방어(29.3%)▲세제·금융 등 지원(22.7%)▲환위험 관리능력 지원(10.3%)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원화강세와 관련해 지난해 평균 1180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이 올해 1110원으로 절상(6.3%)된다면 수출은 8억 4000만달러, 수입은 10억 2000만달러가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외국계 금융기관의 전망도 비슷하다. 씨티그룹은 1140원으로 잡았던 원·달러환율 기준을 최근 1100원까지 낮췄다. 6개월,1년 전망치도 각각 1080원과 1040원으로 기존 예상치 1120원과 1100원에서 하향조정했다. 씨티그룹 관계자는 “세계적 달러화 약세와 정부의 개입 약화 추세는 지속적으로 국내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있다. 금융연구원 박해식 연구위원은 이날 ‘국내 외환시장의 잠재불안요인’이란 보고서를 통해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는 환율이 내년에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겠지만, 환율이 급등할 잠재적 요인도 있다.”며 환율 상승요인으로는 국내 경기회복지연과 미국의 금리인상, 시중유동자금의 해외유출, 중국경제의 경착륙 등을 꼽았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減稅로 투자촉진… 통상압력은 강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제2기 경제 정책은 대내적으론 세금 감면에 의한 투자 촉진과 재정적자 해소에, 대외적으론 무역수지 개선을 겨냥한 자유무역협정(FTA)과 도하개발어젠다(DDA) 등에 의한 통상 압력에 집중될 전망이다. 기존 정책 틀을 벗어나지는 않지만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는 점에서 정책 추진엔 좀 더 힘이 실리게 됐다. ●투자 촉진과 재정적자 해소,‘두 마리 토끼’ 부시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강조한 것처럼 세금 감면 정책을 지속할 계획이다. 그동안의 감세 정책이 눈에 보이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자평하며 이런 기조를 안정화하기 위해 감세 정책을 영구화하겠다는 의도이다. 문제는 불어나는 재정적자. 지난 9월말로 끝난 2004회계연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4130억달러였다. 부시는 적자 규모를 임기 말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며 국방비 등 안보 비용을 제외한 예산 증가율을 연 1%이내로 제한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감세 정책과 양립할 수 없는 목표라는 비판도 나온다. 감세 정책을 영구화할 경우 10년 간 1조달러의 재정적자를 가져온다고 재무부는 보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쏟아붓고 있는 전쟁 비용도 재정적자 심화의 주 요인이다.2005년 미 국방부 예산에는 이라크와 아프간 전비 250억달러가 포함돼 있다. 적자재정에 따른 압박이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경우 장기적으로 볼 때 감세 정책이 기업 수익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지적도 월가(街)에서 나오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최근 보도했다. ●통상 압력 더욱 거세질 듯 2기 부시 행정부는 한국 등에 대한 스크린쿼터 폐지와 농축산물 시장개방 요구, 지적재산권 보호 등 통상 압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감세 정책으로 늘어날 재정적자를 대외적인 통상 압박으로 보전하겠다는 심산이다. 실제 미 무역대표부(USTR)의 한국 담당 웬디 커틀러 부대표보는 한국무역협회와 미국기업연구소(AEI)가 워싱턴에서 지난달 말 주최한 FTA 세미나에서 한국 정부에 그 같은 요구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중국과 한국 등 주요 대미 수출국에 대한 통화 절상 압력도 높아질 전망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이준규 부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부시 재선이 한국경제에 주는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중국에 위안화 가치를 높이도록 요구하고 한국에도 원화 절상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과 삼성경제연구소는 각각 미 대선 평가 보고서를 내고 이라크 전쟁 등 강경한 중동 정책을 추진해온 부시의 재집권으로 국제유가의 하락이 어렵고 미국이 수출을 늘리기 위해 달러 약세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분석돼 한국 경제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오늘의 눈] 미국은 전쟁중/이종락 산업부 기자

    미 대선 며칠 전 국내의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가 막판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그의 당선이 유력하지 않으냐는 질문이었다.100일 남짓 미국에 머물며 느낀 여러가지 정황을 들어 부시의 재선을 점쳤다. 이런 예상은 불행(?)하게도 적중했고 미국은 9·11테러 이후 아직도 끝나지 않은 (테러와의)전쟁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때문에 너무 보수화, 우경화하고 있다는 개인적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미국의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보면 ‘의심스러운 사람이 보이면 신고하라’는 문구와 함께 국토안보국 전화번호가 쓰여 있는 전광판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또 대도시를 벗어나 시골지역을 지나면 어김없이 이라크로 파병됐다가 복무기간이 끝나 귀국하는 군인들에 대한 환영 현수막을 볼 수 있다. 어떤 TV채널을 켜든 ‘이라크 최근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처럼 미국인들은 언제나 이라크 소식에 제일 먼저 귀를 기울인다. 얼마 전 끝난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와 리그챔피언전에서도 매 경기 중 성악가나 팝스타가 ‘God Bless America’를 관중과 함께 불렀다. 모든 게 불확실한 전쟁 중에 놓인 미국인들은 이 노래를 통해 신의 은총을 받을 것이라는 자기 암시로 위안을 삼으려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골수 민주당 지지자라 하더라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그라운드 제로’에 가면 공화당 지지자로 변한다는 얘기가 있다.9·11테러로 무너진 빌딩 자리에 아직도 터닦기가 한창인 모습을 보면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눈물을 훔치고 공사현장에 마련된 안내부스에 붙은 ‘9·11을 잊지 말자’는 문구에 공감한다. 이런 전시 분위기에서 부시의 승리는 당연히 예견된 것으로 여겨졌다. 이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전쟁 상태에 놓인 미국의 보수화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상태였다. 케리 후보가 대테러전을 이끌기에는 너무 약하다는 인상을 유권자들에게 심어준 점이 패배의 최대 원인이라는 분석도 이런 미국의 현지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이종락 산업부 기자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연수중 jrlee@seoul.co.kr
  • 한·일 PDP大戰 ‘2R’

    한·일 PDP大戰 ‘2R’

    한·일 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 특허 분쟁이 다시 불붙었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 마쓰시타전기는 지난 1일 LG전자가 자사의 PDP 관련 특허기술을 침해했다며 도쿄 법원과 세관에 LG전자 PDP 모듈에 대한 수입금지 가처분신청 및 통관보류 신청을 냈다.1주일 정도 뒤면 통관보류 여부가 결정된다.LG전자는 즉각 맞소송을 내면서 마쓰시타 PDP TV의 국내 수입 금지를 요청하는 등 정면 대응을 선언했다. 마쓰시타는 삼성SDI,LG전자와 함께 세계 PDP업계 1위자리를 다투고 있다.PDP외에도 파나소닉,JVC, 내쇼날 브랜드로 각종 디지털 가전과 전자부품 등을 생산하며 지난해 623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글로벌 기업이다. 일본 후지쓰와 삼성SDI간 벌어졌던 특허분쟁이 타결된 지 5개월 만에 재점화된 한·일 분쟁은 디스플레이 산업의 패권 다툼과 연계돼 있다. 일본 PDP업체들의 연이은 ‘특허시비’는 불과 3년 만에 세계 1위로 급부상하고 있는 한국 PDP업계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LG전자-마쓰시타 ‘정면충돌’ 두 회사의 특허분쟁은 지난해 8월 마쓰시타가 PDP 패널의 열을 발산시키는 방열기술 등 자사특허 5건을 LG전자가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LG전자도 마쓰시타가 자사의 전극분할(화면의 속도와 선명도를 높이는 기술) 특허 등 5건을 침해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4차례에 걸쳐 크로스 라이선스(교차특허)를 전제로 협상을 벌여오다 마쓰시타의 ‘선공’으로 전쟁은 시작됐다. LG전자는 2일 일본 법원에 수입금지청구권 부존재 확인소송을 내고 마쓰시타 한국법인(파나소닉코리아)을 상대로도 특허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또 산업자원부 무역위원회에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한 조사를 의뢰해 마쓰시타의 PDP TV에 대한 수입·판매 금지 및 반입배제, 폐기처분 조치를 건의했다. 나아가 전 세계에서 마쓰시타 제품의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도 제소를 검토 중이다. 정부도 일본정부에 ‘항의서신’을 보낼 방침이다. LG전자는 마쓰시타가 자사의 특허라고 주장하는 기술은 PDP 이전에도 평판디스플레이(FPD)와 LCD업계에 이미 널리 퍼져 있던 기술이어서 특허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지난 3월 일본특허청이 펴낸 ‘특허출원기술동향조사보고서’에 따르면 LG전자는 표시품질 개선, 고해상도, 저소비전력화 기술에서 앞서고 마쓰시타는 동작특성 개선, 고신뢰성화, 계조표시 개선기술에서 앞서는 등 두 업체의 기술수준은 별 차이가 없었다.LG전자 함수영 특허센터장은 “현재 PDP 수출물량 중 일본세관을 통과하는 물량은 월 100대 미만으로 통관보류 조치가 내려져도 수출 및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면서 “급성장하는 한국 PDP업계를 견제하기 위해 후지쓰에 이어 마쓰시타도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업체 연이은 특허시비, 왜? 지난해 24억달러에 달했던 전 세계 PDP시장은 올해 80% 성장이 예상돼 43억달러로 커진다. 메릴린치에 따르면 이 가운데 삼성SDI와 LG전자가 각각 24%,23%의 점유율로 1,2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마쓰시타가 17%, 삼성SDI와 특허분쟁을 벌였던 후지쓰와 히타치의 합작사인 FHP가 15%,NEC가 10%로 뒤를 잇는다.2002년만 해도 삼성SDI와 LG전자의 점유율은 각각 8%,12%로 마쓰시타 21%,FHP 28% 등 일본업체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국내업체들은 공격적인 설비투자로 생산능력을 끌어 올려 단숨에 일본업체들을 추월했다. 앞으로도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다만 마쓰시타는 내년이면 월 17만 5000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돼 각각 28만 5000대,25만대인 LG전자와 삼성SDI에 맞설 만한 수준이 된다. 설비투자에서 뒤처진 일본업체로서는 자신들의 강점인 특허기술로 한국업체들을 견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법정소송보다 일본업체에 유리한 ‘관세정률법’을 적절히 활용, 국산제품의 일본 수출에 제동을 거는 것이 특허료 협상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LG전자 “본때 보이겠다” 이번 분쟁은 법적분쟁이 먼저 일어난 뒤 협상으로 문제가 해결된 삼성SDI-후지쓰 경우와 달리 ‘크로스 라이선스’ 협상이 틀어진 뒤 마찰이 불거졌기 때문에 장기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LG전자 관계자는 “일본 업체들이 툭하면 특허시비를 거는데는 후발주자인 한국업체들이 그동안 특허협상에서 ‘저자세’를 보인 탓도 있다.”면서 “유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PDP 분야가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몇달 만에 기술의 흐름이 바뀌는 첨단산업인 만큼 특허소송으로 오랜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조기 타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도쿄 세관의 통관보류로 격화됐던 삼성SDI와 후지쓰의 특허분쟁은 지난 6월 초 양사가 크로스 라이선스 협약을 맺으면서 4개월 만에 타결됐다. 한편 LG전자는 후지쓰와도 특허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자사의 특허를 이용한 크로스 라이선스로 분쟁을 피해가고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외국 언론도 美대선 편들기

    미국 대선에 외국 언론들도 편들기에 나서고 있다. 자신들의 색깔에 맞는 후보를 지지하기도 하고, 해당국 국민의 정서를 반영하기도 한다. 가장 관심이 많은 나라는 영국이다. 이라크전을 비롯해 많은 현안이 미국과 직접 연관돼 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굳건한 동맹을 맺고 있는 영국 정부의 입장과 달리 언론들은 대부분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선호하고 있다. 영국 국민들의 반(反)부시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유력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29일 발매된 최신호에서 사설을 통해 “진심으로 미국에 있는 구독자들은 케리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선언했다. 이 잡지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부시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한 뒤 “미국이 지속보다는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어 미 대선에 개입하는 이유에 대해 “미국에서 팔리는 부수가 영국보다 3배나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독일에서는 최대 일간지 빌트가 27일 독일 신문 가운데 처음으로 부시 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보수지인 빌트는 부시 대통령이 케리 후보보다 나은 점 10가지를 거론하면서 “부시 대통령은 그동안 케리 후보보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저지와 자유무역 옹호를 위해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마틴 부스 지음

    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마틴 부스 지음

    신비의 약인가, 죽음의 물질인가. 오늘날 아편이란 단어만큼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도 드물다. 아편은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양귀비 꼬투리의 수액’이란 뜻으로 사용한 평범한 단어였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그 본래의 뜻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편 하면 으레 부정적인 연상이 앞선다.‘아편, 그 황홀한 죽음의 기록’(마틴 부스 지음, 오희섭 옮김. 수막새 펴냄)은 바로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쓴 아편의 문화사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역사기록 작가인 저자는 그리스와 로마시대부터 중세와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아편을 둘러싼 갖가지 인간사를 다룬다. ●고대~현대 아편을 둘러싼 인간사 아편은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약품으로 인간문명 속으로 들어왔다. 기원전 3400년경 인류 최초의 문명인이었던 수메르인들은 양귀비를 ‘기쁨을 주는 식물’이라는 뜻의 ‘헐(hul)’ 또는 ‘길(gil)’이라 부르며 양귀비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양귀비는 기원전 2000년 말까지 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을 잊기 위해 아편을 복용했으며, 로마인들은 양귀비를 수면과 죽음의 상징으로 여겼다. 중세 스위스의 유명한 의사이자 화학자인 파라셀수스는 아편을 ‘불멸의 돌’이라 찬양하며 우울증 환자와 궤양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했다. 아편은 인류 문화의 창조에도 적잖이 기여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아편에 익숙했다. 토머스 드 퀸시, 조지 크래브,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존 키츠, 윌키 콜린스, 월터 스콧, 찰스 디킨스, 에드가 앨런 포, 장 콕토 등 수많은 문인들이 아편의 몽환적 특성을 창작에 활용했다. 셰익스피어 또한 아편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 그런 성향을 찾아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아편을 “사람을 졸리게 하는 시럽”으로 묘사했다.‘어느 아편중독자의 고백’이라는 자전소설을 남긴 영국 작가 토머스 드 퀸시는 아편을 가리켜 “공기와 같이 삶에 없어서는 안될 성스러운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비의 명약으로 인식되던 아편은 18∼19세기 들어 사람들에 의해 남용되면서 중독의 폐해를 낳기 시작했다. 또 영국 등 제국주의 열강은 대포와 아편을 이용해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열을 올렸다. 영국과 중국 사이의 아편전쟁이 대표적인 예다. 이 책에서는 ‘중화(中華)에서 중독(中毒)으로’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아편 역사와 문화를 다룬다. 아편은 일반적으로 7세기에 아랍인들에 의해 중국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에 아편에 관한 문헌이 중국에 있었음을 감안하면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중국과 아편은 종종 동의어처럼 인식된다. ●중독폐해·진통기능등 양면성 지녀 19세기 중반부터 중국인들의 해외 이주가 시작되면서 아편도 세계화의 길을 걸었음을 암시한다. 외국으로 나간 중국 노무자들은 이른바 ‘돼지무역’의 대상이 돼 혹사당하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오로지 아편을 통해 비천한 삶을 위로받았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에서 처음으로 아편을 흡입하게 된 것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때 들어온 중국인 노무자들에 의해서다. 그렇게 시작한 아편은 이제 마약이 돼 미국을 ‘중독된 거인’으로 만들고 있다. 옛날에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 하지만 오늘날 모든 마약은 미국으로 통한다. 미국의 66번 고속도로는 다름아닌 헤로인의 운송로다. 얼마나 많은 헤로인이 이곳을 통해 운반되는가는 밀수업자들이 즐겨 부르는 롤링스톤스의 ‘66번 국도’라는 노래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아편의 역성을 드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아편은 인간이 사용한 최초의 의학적 물질 가운데 하나였으며 수많은 이의 고통을 잠재워준 신의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편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될 수 있다.2만 1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인천 차이나타운

    [뒷골목 맛세상] 인천 차이나타운

    작가 오정희의 빼어난 단편 ‘중국인 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절망적이며 게다가 퇴폐적이다. 주정뱅이, 양공주, 아편중독자 등이 우글거리는 1950년대 전쟁 직후의 ‘중국인 거리’에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주인공 소녀는 앞날에 대한 한 가닥의 희망도 없이 초조(初潮)를 경험한다. 기실 작가에게 있어서 ‘중국인 거리’란 갓 자의식에 눈뜨는 자신의 내면풍경에 다름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일찍이 구한말 이래 ‘청관’이란 이름으로 인천의 북성동과 선린동 일대에 자리잡고 살아온 화교들의 참혹한 생활사가 단색 판화처럼 실사적 풍경으로 드러나 있기도 하다. ‘…저녁 무렵이 되면 바구니를 팔에 건 중국인들이 몰려들었다. 뒤통수에 쇠똥처럼 바짝 말아붙인 머리를 조금씩 흔들며 엄청나게 두꺼운 귓불에 은고리를 달고 전족한 발을 뒤뚱거리며 여자들은 여러 갈래로 난 길을 통해 마치 땅거미처럼 스름스름 중국인 거리를 향했다. 남자들은 가게 앞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말없이 오랫동안 대통 담배를 피우다가 올 때처럼 사라졌다. 그들은 대개 늙은이들이었다. …늙은 중국인들은 우리들에게 가끔씩 미소를 지었다. 통틀어 중국인 거리라고 불리는 동네에, 바로 그들과 인접해 살고 있으면서도 그들 중국인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아이들뿐이었다. 어른들은 무관심하게 그러나 경멸하는 어조로 ‘뙈놈들’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들과 전혀 접촉이 없었음에도, 언덕 위의 이층집,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한없는 상상과 호기심의 효모(酵母)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밀수업자, 아편쟁이, 누더기 바늘땀마다 금을 넣은 쿠리, 그리고 말발굽을 울리며 언 땅을 휘몰아치는 마적단, 원수의 생간(肝)을 내어 형님도 한 점, 아우도 한 점 씹어먹는 오랑캐, 사람 고기로 만두를 빚는 백정, 뒤를 보면 바지도 올리기 전 꼿꼿이 언 채 서 있다는 북만주 벌판의 똥덩어리였다. 굳게 닫힌 문의 안쪽에 있는 것은, 십년을 사귀어도 좀체 내뵈지 않는다는 깊은 흉중에 든 것은 금인가, 아편인가, 의심인가.‘ 비단 작가 오정희의 작품 속에서만이 아니라도, 화교라는 이름으로 100년이 넘게 살아온 중국인들에게 우리나라는 척박한 황무지를 넘어 차라리 유형지에 흡사할 터였다. 애오라지 끈질긴 인내심 하나만으로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하여 어디에서나 나름대로 전통과 문화를 간직한 채 꼿꼿한 자긍심을 지켜온 화교들로서도 유일하게 발을 붙이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걸어야 한 곳이 바로 우리나라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쇠락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역시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화교들에 대한 각종 제도적인 제한과 거의 악랄하기까지 한 경제적, 사회적 차별정책 때문이었으리라. 그렇듯 어둡고 참담하고 부정적이며 어디를 둘러보아도 단 한 점의 희망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쇠락의 대명사 ‘중국인 거리’가 오늘은 관광특구 차이나타운이란 이름으로 화려하게 거듭 태어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이르러 IMF 극복을 위한 외국자본 유인책의 하나로 외국인들에게 부동산 취득을 가능하게 하면서 화교들에 대한 각종 제한과 차별정책 또한 사라진 것이 빌미가 되어, 일찍이 이 땅을 떠나 타이완, 동남아시아, 미국 등으로 나갔던 2,3 세대의 화교들이 되돌아오고 덩달아 화교 자본도 함께 들어온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초순 열린 ‘제3회 인천중국의 날 문화축제’때 둘러본 차이나타운은 옛날 가난에 찌든 어두운 모습은 거의 흔적조차 사라진 채 관광특구답게 보다 산뜻하고 이국적인 향취가 풍겨나는 화려한 거리였다. 중국풍의 백화점을 위시한 새로운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는가 하면,20여곳이 넘는 중화요리 식당과 중국잡화점, 중국식품점, 무역회사 등이 한창 번성하고 있었다. 이중에서도 새로 들어선 중화요리 식당들은 저마다 우리가 인천의 차이나타운이라면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자장면의 본고장이라는 식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들의 입맛에 초점을 맞추어 거의 퓨전에 가까운 새로운 메뉴들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자장면 하나에도 태림봉의 유슬자장면, 자금성의 향토자장면, 태화원의 채식자장면, 북경장의 시금치를 갈아 면을 뽑은 녹색자장면, 본토의 고구마자장면 등, 각 식당의 특성에 따라 전혀 새로운 자장면들이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었다. 태림봉(032-763-1688)은 일반 자장면을 약간 고급화하여 유슬자장면(5000원)이라는 특색 있는 자장면을 내었는데, 원래 유슬이란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가늘게 채 썰어서 볶는다는 뜻으로, 거기에 죽순, 표고버섯, 양파, 팽이버섯, 호박, 당근 등의 야채도 함께 채를 썰어서 자장소스를 만들어 보다 격조 높은 자장면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태림봉에서 맛본 요리 중 으뜸은 튀김초면(8000원)이라는 약간 생경한 이름이었다. 원래 팔진초면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 초면이란 일본의 라면처럼 면발을 기름에 튀겨 꼬불꼬불해진 것을 일컫는다. 팔진초면은 이름처럼 8가지 진기한 재료가 들어간다고 해 붙여진 것이다. 초면에 새우, 조개, 키조개, 오징어, 해삼, 소라 등의 해물과 죽순, 피망, 총각버섯, 샐러리, 청경채 등의 야채를 그릇 가득히 담아 내오는데,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드는 맛이 아연 일품이다. 만일 중화요리에 대하여 일가견을 가진 마니아가 있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태림봉의 기아해삼이란 비싼 요리를 권하겠다. 해삼의 내장을 빼내고 그 속에 새우며 키조개, 전복 등을 다져넣어서 통째로 찌고 튀기고 다시 볶아낸 다음에 한 입 크기로 먹기 좋게 잘라낸 이 기아해삼은 원래 쇼양해삼으로 불리는 요리이다. 그런데 옛날 기아자동차 회장이 이 요리에 심취한 나머지 거의 날마다 찾다 보니 중화요리 주방장들 사이에서 마침내 제 이름보다는 기아해삼으로 더 유명해져 버린 것이었다. 기아해삼의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드는 맛은 거의 황홀하여 비단 기아자동차 회장이 아니라도 깊게 빠질 수밖에 없는데, 한 접시에 6만원이나 되는 가격이 아깝지 않게 여겨질 정도였다. 향토자장면(4000원)으로 유명한 자금성(032-761-1688)은 태화원(032-766-7688)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곳에선 채식요리들을 권하고 싶다. 태화원의 채식요리는 중국요리로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다. 돼지고기나 닭고기, 쇠고기 같은 일체의 육류는 물론 생선마저도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콩, 표고버섯, 두부, 찹쌀, 감자 등으로 육류며 생선 맛을 내고 있다. 이를테면 콩으로 햄을 만들고 두부로 고기 맛을 내며 한천으로 해파리를 만들고 동고버섯 줄기로 생선을 만들어 내는 식이다. 이렇게 만들어내는 채식요리는 해파리냉채, 라조생선, 라조육, 탕수육, 팔보채, 샥스핀 등으로 물경 50여 가지에 이른다. 공화춘(032-766-0571)에서는 코스요리를 주문할 것을 권하고 싶다.1만 5000원짜리 코스요리에는 3품냉채, 유산슬, 팔보채, 탕수육, 새우칠리소스가 나오고 식사로는 자장면이 따른다.2만원짜리 코스요리에는 삼선샥스핀과 라조생선, 부추잡채가 추가되는데,1만 5000원짜리 코스로도 쉽게 포만감에 이른다. 차이나타운의 중화요리집은 이밖에도 부엔부, 청관, 대창반점, 본토, 신승반점, 주경루, 성림장, 황금성, 향만성, 풍미 등 많다. 만일 이국적인 향취에 취해 거리의 이곳저곳을 느긋하게 구경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한 끼를 때우기 위해서라면 하고많은 식당 중에서 구태여 어느 한 곳을 찾아 기웃거릴 필요가 있을까. 식당 주인들뿐만 아니라 주방장 같은 요리사들을 위시해 종업원 대부분이 화교출신이며 저마다 요리 전문가이다. ●자장면 나이는 121세 자장면이 처음 태어난 것은 1883년 인천이 개항되면서 청국지계가 설정되고 주로 산둥지방의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와 자연스럽게 청요리집들이 생겨나면서 부터였다. 이때 처음으로 청요리를 접한 서민들이 신기한 맛과 싼 가격에 놀랐고, 청요리가 인기를 끌자 누군가가 부두 노동자들을 상대로 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산둥지방에서 즐겨먹던 춘장에 생각이 돌아, 마침내 춘장으로 자장소스를 만들어 국수를 비벼먹는 자장면이 탄생한 것이었다. 자장면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메뉴로 내걸고 장사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05년에 문을 연 공화춘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공화춘은 지금은 당시 화려했던 옛건물의 자취만 남아 있지만 이미 일제 때부터 크게 이름을 날린 고급 요릿집이었다. 물론 지금 차이나타운에 있는 공화춘과는 무관하다. ●“아무거나 고르세요” 차이나타운의 식당 중에 문득 현관에 ‘자장면 없습니다.’라는 쪽지를 붙인 원보(032-773-7888)가 있다. 아니, 자장면을 팔지 않는다니!그러고도 장사가 되나? 약간은 어이없는 기분으로 슬쩍 식당 안을 들여다보면 웬걸 빈 자리가 없게 손님들이 바글거린다. 주로 중국식 만두를 전문으로 하는데 왕만두, 물만두, 찜만두, 군만두가 각각 3000원이고, 생선물만두와 별미만두국이 4000원이다. 어느 만두도 다 맛이 있지만, 별미만두국이야말로 이름 그대로 별미다. 별미만두국은 조개, 굴, 새우, 동죽살 같은 해물에다가 호박과 당근, 양파, 죽순, 송이버섯 등의 야채를 채 썰어 넣어 만두 위에 고명처럼 가득히 얹어준다. 자칫 그릇 밖으로 넘쳐날 것처럼 푸짐하지만 시원하면서도 고소한 국물 맛이 입안에 오래 머문다. 다 먹고나면 정말로 값이 4000원인가 싶게 그 양이며 맛이 뛰어나다. 원보에는 이밖에도 삼선해물탕(5000원), 오향장육이며 오향족발, 해파리냉채, 산동소계라는 닭고기요리가 저마다 1만원인데, 어느 요리든 눈 감고 주문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원보의 유천해 사장은 굳이 자장면을 먹으려면 북경장(032-766-4455)의 자장면을 먹으라고 권했다. 그이의 주장인즉 차이나타운의 자장면이야 맛이 도토리 키재기로 거기에서 거기인데 북경장 자장면이 2000원으로 값이 가장 싸다는 것이었다.
  • [보러갑시다]

    ■ 박경란 개인전 24∼30일 갤러리 PICI(02)547-9569. 생활풍경을 주제로 한 디지털 아트 작품. ■ 고승유묵전 11월30일까지 국립청주박물관(043-255-1632). 통일신라에서 고려, 조선, 근·현대에 이르는 1500여년 한국 서예의 역사를 고승들의 선필(禪筆)을 통해 조명. ■ 권정찬 작품전 24일까지 금호미술관(02)720-5114. 조선시대 전통 민화에서 힌트를 얻은 해학성 넘치는 채색화. ■ 에바 헤세 작품전 11월19일까지. 국제갤러리(02)735-8449. 미국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여성작가 헤세가 독일에 머물며 제작한 회화와 드로잉, 콜라주, 조각. ■ 아름다운 여인의 작별 22일∼11월14일 정미소(02)744-0300. 마틴 맥도나 작·강유정 연출, 이승옥 이영란 출연. 심술궂은 노모와 신경과민인 노처녀 딸의 애증을 그린 여성연극. ■ 카페 신파 26일∼11월28일 산울림소극장(02)334-5915. 김명화 작·임영웅 연출, 전무송 전국환 출연. 대학로 카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무대밖 연극인들의 인생. ■ 유다의 키스 31일까지 아룽구지극장(02)744-0300. 데이비드 해어 작·박정희 연출,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연극. ■ 라이방 31일까지 정보소극장(02)745-0308. 송민호 작·문삼화 연출, 지대한 윤진호 출연. 인생 역전을 꿈꾸는 30대 중반 세 남자의 좌충우돌 코믹극. ■ 청춘예찬 11월14일까지 동숭아트센터 소극장(02)762-0010. 박근형 작·연출, 김영민 고수희 출연. 남루한 일상에서도 희망을 잃지않는 청춘들에 대한 예찬. ■ 몽실언니 21∼24일 과천시민회관 대극장 1588-7890. 권정생 작·김정숙 연출. 한국전쟁을 겪으며 성장해가는 몽실이를 주인공으로 한 가족극. ■ 열두살에 부자가 된 키라 무기한 목동브로드웨이홀(02)3273-6885. 인기높은 어린이 경제교육서를 가족 뮤지컬로 각색. ■ 숲속나라 울보공주 31일까지 샘터파랑새극장(02)2232-0997. 울기만 하는 공주와 자연을 사랑하는 장군의 이야기. ■ 레드스타 레드아미 코러스 내한공연 21일 오후7시30분 덕양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 1544-1559,22일 오후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2187-6222. ■ 막심 벤게로프 바이올린 리사이틀 21일 오후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751-9606. ■ 서울바로크합주단 제104회 정기연주회 28일 오후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593-5999. ■ 컨버줌 무지쿰 초청 연주회 22일 오후7시30분 세라믹 팔레스홀(02)3411-4668. ■ 금난새의 행복이 흐르는 음악회 24일 오후5시 호암아트홀(02)751-9606. ■ 서울시교향악단 제643회 정기연주회 22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399-1741. ■ 박홍출 수궁가 완창 판소리 26일 오후5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02)354-9257. ■ 사물놀이 원류를 찾아서-이광수의 ‘大天命’ 27일 오후7시 국립국악원 예악당(041)333-3777. ■ 우모자 26일∼11월7일 한전아트센터(02)3472-4480. 아프리카의 원초적 음악과 춤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는 무대. ■ 찰리 브라운 11월21일까지 한양레퍼토리시어터(02)3141-8425. 클라크 게스너 작·박선희 연출, 곽상원 김경식 출연. 인기 만화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70년대 브로드웨이 뮤지컬. ■ 소나기 24일까지 건국대 새천년관 공연장(02)3445-7972. 황순원 원작·유희성 연출, 홍경인 최보영 출연. 유년시잘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 ■ 오네긴 25·26일 오후8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02)399-1145. 세계적인 프리마돈나 강수진이 활약하는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내한공연. ■ 말하지 않고 21·22일 오후8시,23일 오후6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02)2263-4680. 김영희 무트댄스 10주년 기념공연. ■ 투츠 틸레망스&케니 워너 콘서트 27일 오후 8시 코엑스 오디토리움(02)586-2722. ■ 바비킴 콘서트 23일 오후 4시·7시30분,24일 오후 6시 대학로 라이브극장 1544-1555. ■ 솔트레인-휘성·빅마마·세븐·거미 대구 콘서트 23일 오후 7시 대구전시컨벤션센터 1544-1555. ■ 이승철 수원 콘서트 23일 오후 4시·7시30분 수원아주대 실내체육관 1644-2021. ■ 조용필 대전 콘서트 23일 오후 7시30분 대전 무역전시관(042)252-7406. ■ 나윤선 퀸텟 콘서트 26·27일 오후 8시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02)784-5118.
  • [데스크 시각] 보이지않는 손 vs 기요틴/구본영 국제부장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겸 당총서기 등 4세대 지도부가 이끄는 중국에선 요즈음 ‘부패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지난달 공산당 제16기 중앙위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를 통해 명실상부하게 그의 시대를 연 후 주석의 의지가 실려 있을 법하다. 그는 4중전회에서 장쩌민 전 주석으로부터 당군사위 주석직, 즉 군권까지 이양받았다.4중전회는 공산당의 집정능력 강화 차원에서 국가적 투명성 제고와 반부패 투쟁 등을 다짐한 바 있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최근 당정군 간부들에게 이른바 ‘싼페이(三陪·세가지 동반) 관행’ 타파를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싼페이는 ‘오락 동반, 술상 동반, 불필요한 회의 동반’을 가리킨다. 싼페이 금지령은 한마디로 관료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금품과 향응을 민원인들로부터 제공받는 것을 차단하려는 발상이다. 투명한 사회풍토가 정착돼야만 개혁·개방으로 천신만고 끝에 이룬 ‘샤오캉(小康·중등 정도의 생활)’사회에서 선진 부국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중국의 한 연구기관이 부정부패로 낭비되는 세금이 최소한 수천억위안(약 수십조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었다. 그러나 4세대 지도부의 부패척결 드라이브가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이미 공직사회의 부패 추방을 위해 공개처형 등 온갖 극약처방을 써봤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지린성 국제경제무역개발공사 부총경리를 지낸 인사가 21억여원 횡령 등의 죄목으로 사형이 집행됐다고 중국 언론이 보도한 바 있다. 이제 눈을 우리 안으로 돌려보자. 지난 대선 이후 당시 제1,2당의 선거자금 책임자들이었던 전·현 대표와 사무총장들이 모두 구속되는 홍역을 치렀다. 그후 선거법 등을 고치는 법석을 떨었지만 우리 사회의 부패 고리가 끊겼다는 정황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안상수 인천시장이 현금 2억원이 든 굴비상자를 클린신고센터에 자진신고한 사건도 있다. 시장 자신이 결백하다는 입장이고, 그 진위는 조사가 끝나면 밝혀지겠지만, 우리 공직자들이 각종 ‘유혹’에 노출될 개연성만큼은 중국 못잖게 크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이는 제반 시스템의 미비로 각종 정책 시행 시 공무원의 재량권이 필요 이상으로 크고, 관료들에 대한 정치권의 불합리한 영향력도 여전히 막강한 후진적인 풍토를 웅변한다. 마오쩌둥에 의해 타이완으로 쫓겨난 장제스도 국민당 정권의 부정부패가 국공 내전의 주된 패인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의 친며느리까지 공개처형했지만 부패를 뿌리뽑진 못했다. 타이완이 정작 부패 추방에 효과를 본 시점은 복권과 영수증을 절묘하게 통합한 ‘통일발표’라는 제도를 도입하면서부터였다. ‘통일발표’는 화폐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제조·관리하는, 횡재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는 영수증이었다. 일체의 상거래 행위와 공과금 및 조세 납부 시에 판매자와 수납공무원이 반드시 영수증의 상단에 복권번호를 기재하게 하는 묘안이었다. 이 제도로 영수증 주고받기 운동이나 세액공제 혜택 부여 등 신용카드 사용 캠페인이 필요 없어졌음은 불문가지다. 이윤 동기의 적절한 활용이 처형장의 서슬 푸른 기요틴(단두대)보다 부정부패 근절에 더 큰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경제 메커니즘이 강압적 지시나 통제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라는 점에서 벤치마킹할 만한 제도다. 이름 그대로 참여정부라면 공허한 구호성 개혁보다는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보장하는 이같은 개혁에 주력해야 될 듯싶다. 구본영 국제부장 kby7@seoul.co.kr
  • LG전선-대한전선 “전쟁은 지금부터”

    국내 기업 인수합병(M&A)계의 ‘거물’로 떠오른 대한전선이 진로산업 인수전에서 전선 라이벌 LG전선에 ‘고배’를 들었다.하지만 대한전선은 진로산업 담보채권의 75.8%,무담보 채권의 34.2%를 보유 중인 채권자로 인수에 실패했더라도 ‘남는 장사’인 것으로 알려졌다.게다가 지난해 매출이 6000억원이 넘는 ㈜진로 인수를 선언한 터여서 두 전선그룹의 자존심 대결은 지금부터라고 볼 수 있다. LG전선은 11일 대한전선과 경합을 벌였던 선박ㆍ해양용 케이블 전문업체 진로산업의 최종 인수업체로 선정됐다.추후 채권자인 대한전선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LG전선은 “진로산업 인수로 3000억원 규모의 선박ㆍ해양용 케이블 세계시장 점유율이 30% 이상으로 올라 넥상스(Nexans·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1위로 부상하게 됐다.”면서 “이달 중순 진로산업 인수계약을 체결하고 올 연말까지 인수를 마무리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매출 1450억원을 올린 진로산업의 인수로 LG전선과 대한전선의 외형상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됐다.LG전선은 올 상반기에도 1조 2068억원의 매출을 기록,7633억원에 그친 대한전선을 눌렀다. 대한전선그룹과 LG전선그룹의 상반된 경영전략도 관심사다. 대한전선은 무주리조트 인수에 이어 올해 쌍방울 인수에도 성공하면서 전선사업의 한계를 돌파했다.최근에는 비록 지분투자 형식이긴 하지만 YTN미디어에 20억원을 투자,DMB(디지털미디어방송)사업에도 뛰어들었다. 1955년 설립된 대한전선은 88년 대한제당의 계열분리 외에는 부동산 임대(대청기업),금융 서비스(한국산업투자),무역업(삼양금속),레저(무주리조트),의류제조(쌍방울) 등 전방위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왔다.서울 양재동의 남부터미널 부지도 대한전선 소유다. LG그룹에서 LG전선,LG산전,가온전선(구 희성전선),LG니꼬동제련,E1(구 LG칼텍스가스),극동도시가스를 떼어내 출범한 LG전선그룹은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대기업 집단으로 분류되면서 소규모 계열사가 포함돼 13개 계열사로 늘어났다.최근에도 리튬이온 음극재 재료업체인 카보닉스와 무선통신용 초고주파 부품업체 코스페이스를 추가,현재 계열사가 15개에 달하지만 대부분 기존 사업영역과 연관성이 있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베트남 투자 10계명’ 소개

    한국·베트남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내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이 더욱 활성화 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과의 교역 규모는 국교가 수립된 1992년에 4억 9000만달러에서 지난해 30억 7000만달러로 6배,투자 규모는 9200만달러에서 24억 4000만달러로 27배 증가했다.이에 따라 코트라(KOTRA)는 10일 베트남 무역과 투자시의 정보와 유의할 점을 정리한 ‘베트남 비즈니스 로드맵’을 10일 발간했다. 책자가 제시한 ‘시장공략을 위한 10계명’은 ▲민족적 자존심을 존중하라(베트남 전쟁 언급은 금물)▲시장특성을 적극 활용하라(여성의 높은 위상을 활용)▲비공식적인 인간 관계도 적극 형성하라▲상담시 조급함을 피하라▲비즈니스 관행에 대비하라(급행료,한국초청 약속을 요구)▲지적재산권 보호에 대비하라▲합작투자시 현지인 명의신탁은 자제하라▲경영권 마찰에 대비하라 등이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8) 근대의 불빛 우도 등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28) 근대의 불빛 우도 등대

    ‘근대’는 그림처럼 다가왔다.그것이 ‘식민지 근대’였건,‘제국주의 근대’였건 어김없이 왔다.비행기가 없었던 시절,‘문명’이라 이름붙은 것들은 대개 해양을 통해 들어왔다.19세기말의 조선도 예외가 아니었다. ‘제국의 바다’는 등대 건설로부터 시작됐다.침략이었건,무역교류였건,해저 지형에 익숙지 않은 외국배가 들어오자면 등대는 필수 시설이었다.이 땅의 등대는 그렇게 제국주의 뱃길을 인도하는 길라잡이로 태동했다.어느날 갑자기 포구 앞의 무인도에 일본인들이 높다란 기둥 건물을 세우자 사람들은 그것을 ‘등대’라고 부르며 수군댔다.등대에 불이 점화되고 그렇게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해,인천 앞바다 칠발도등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한국 등대 100주년 기념식’이 그것.100주년 회년은 비단 칠발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울기등대(1906),시하도등대(1909),죽변등대(1910),어룡도등대(1910) 등 전국의 수많은 등대들이 속속 회년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도 우도등대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지난 100년을 생각한다.양정식(32) 등대지기가 길안내를 맡는데 세살배기 아들이 쫄랑거리며 층계를 앞서 오른다.등대 주변에서 사는 덕분에 그 나이에도 인근의 지형지물을 꿰뚫고 있다. 등대지기의 삶은 이처럼 가족공동체적일 수밖에 없다.등대지기 중에는 더러 급환으로 자식이나 가족을 잃은 애달픈 경험도 가지고 있다.편의상 등대지기라고 부르지만 그들의 공식 직함은 ‘항로표지원’.명칭은 아무래도 좋다.뱃길을 지켜주는 ‘바다의 지킴이’ 역할은 그대로이므로. ●세계 등대역사 실물 모형 한눈에 우도를 찾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섬에 만들어진 등대공원은 우도가 처음이다.호미곶,부산영도,여수 오동도 등지의 등대들이 속속 박물관·조망관·체험관 등으로 재탄생하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제주도 우도등대도 그 행렬에 동참했는데,특기할 점은 세계의 등대 역사를 알려주는 실물 모형을 만들어 앉은 자리에서 세계 등대여행을 할 수 있게 한 점이다. 상하이항의 파고다,신화 속의 등대인 파로스,독일의 브레머헤븐,일본 최초의 양식 등대인 쓰루가만 입구의 다데이시사키,1355년에 세워진 프랑스 코르투앙,뉴욕 허드슨강 입구의 킹스턴,그리고 한반도의 이러저러한 등대들이 모형으로 모여 있는 산교육장이다. 서기 874년 중국 상하이의 마호강 중앙에 세워진 마호타파고다등대는 글자 그대로 탑이다.송나라 때인 1279년까지 불을 밝혔으며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목탑 양식으로 서구의 근대적인 기능형 등대와는 다른 민족적 조형미를 보여준다.오로지 원통형기둥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파고다등대는 등대 건축에서도 민족적 형식이 도입될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더구나 신화 속의 등대로만 알려진 파로스등대에 이르면 서구의 등대가 가히 빌딩 수준의 규모였음을 알게된다. 우리 등대도 근래 들어 다양한 건축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등대가 항로표지뿐 아니라 정서적,미학적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갖는다는 각성이 낳은 결과다.거북선 모형의 한산도등대,새가 올라앉은 형상의 몽하도등대,첨성대를 바위에 올려놓은 듯한 호도등대 같은 재미있는 등대도 있다. 민족건축 양식은 아니더라도 현존하는 오래된 등대의 건축사적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등대 건축은 1900년대 초반부터 콘크리트를 사용한,당대로서는 최첨단 공법이 적용된 건축물이었다.벽돌조,철근콘크리트조,철골조 등 다양한 건축기술은 다양한 실험을 가능하게 해 로마시대나 르네상스풍을 연상케하는 등대도 많다. 칠발도등대(1905)를 필두로 팔미도(1903)·부도(1904)·거문도(1905)·제뢰(1905)·우도(1906)·울기(1906)·죽도(1907)·시하도(1907)·당사도(1909)·목덕도(1909)·하조도(1909)·격렬비도(1909)·가덕도(1909)·죽변(1910)·소리도(1910)·방화도(1911)·어청도(1912)·산지(1916)·주문진(1918)·홍도(1931)·미조항(1939)·서이말등대(1944) 등은 대한제국기와 일제 침략의 요동치는 현장을 지켜본 근대 문화유산의 총아들이다.그런 점에서 지금 남아 있는 수십개의 등대들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일을 더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그만큼 문화사적으로 값진 유산이기 때문이다. ●일제 침략 현장 지킨 근대 문화유산 우도에 왜 이렇게 수많은 등대모형을 만들어 전시했느냐고 묻자 부원찬 제주해양수산청장은 이렇게 답변했다.“한국 등대사가 100년을 돌파했음은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21세기가 문화의 세기인 만큼 등대도 변해야 합니다.바닷길만 밝힐 게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하는 해양문화의 바닷길도 아울러 열어야지요.” 등대의 역사 자체가 ‘제국의 역사’였던 만큼 이전까지만 해도 ‘시민과 함께하는 등대’는 사실 구두선이었다.그러나 근래 등대들은 분명히 변신을 시작하였다.영도등대에서는 문학인들의 시낭송회가 열리고,우도등대에도 숙박을 하며 등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이제는 명승지나 대충 둘러보고 마는 바다여행이 아니라 등대 여행도 꿈꿔볼 일이다. ●“바닷가 절경엔 등대 아니면 초소” 필자는 지인들에게 가끔 이런 농담을 하곤 한다.‘대한민국 바다에서 가장 뛰어난 절경은 등대 아니면 해안초소’라고.동해안의 절경마다 해안초소가 서있어 접근을 막는다면,만이 훤히 굽어보이는 높다란 곳에는 또한 등대가 서있었다.그러니 근대적 관해(觀海)의 가장 빼어난 조망지는 등대일 수밖에 없다.불빛이 퍼지자면 사방팔방 관망되는 절벽이나 산봉우리,우뚝 솟은 암초의 등을 타고 서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도등대도 그런 곳이다.등대에 오르니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바다가 열린다.절벽 아래로 아낌없이 부딪혀 깨어지는 파도를 보노라니 세상을 잊고 이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과욕(?)이 머리를 쳐든다.조용하다.그리고 아름답다.그러나 막상 역할이 바뀌어 정작 내가 등대지기가 되어도 주변의 모든 것이 마냥 아름답고 조용하기만 할까.오고가는 배들이 모두 걱정거리로 보이는데도 말이다.그래도 좋다.제주도에서 풍광이 가장 뛰어난 곳 가운데 한 곳에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우도등대는 돔형의 탑으로 1906년 3월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2년만 지나면 이 등대도 100살의 나이를 채운다.이렇듯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등대들은 나름의 설치 배경이 있다.모두 하나같이 외해(外海)로부터 들어오는 길목의 험난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우도등대 바로 앞은 물살이 거세기로 유명한 곳이다.수심도 깊다.그래서 다리도 놓지 못하고 늘 도항선으로 오가야 한다.제주도 등대의 맏형이 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등대 ‘낭만’은 만들어진 환상 1123년에 북송의 사신으로 고려를 다녀갔던 서긍이 남긴 ‘고려도경’에도 ‘바닷길은 깊은 곳이 두려운 곳이 아니라 얕은 곳이 무섭다.’고 기록돼 있다.이른바 ‘배가 깨지는’ 해난사고는 대부분 해변에 가까운 곳에서 빚어지는 사고다.등대는 이런 곳에 설치된다. 등대는 ‘낭만’인가.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그러나,단연코 그렇지 않다.‘등대낭만’은 등대에 관한 수많은 미화와 환상이 불러일으킨 환영일 뿐이다.영국의 사학자 홉스 바움의 표현대로 ‘만들어진 전통’이다.근대적 등대가 선보인 이래 등대의 전통을 만들어나가는 ‘환상 창조’의 위력이 문학예술 곳곳에서 발휘돼 그런 ‘환영’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나라에 등대가 처음으로 도입되었던 20세기 초만 해도 등대는 ‘선진기술’의 집약체였다.단순하게 불빛만 비추는 곳이 아니라 이곳에 최초로 무선전신지국을 설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정세의 동향을 감지하고 보고하는 중요한 목적까지 수행했다.무선국의 존재는 등대지기가 최소한 무선기술을 습득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인데,당시에 무선사는 최고의 첨단기술자였다.그러니 전쟁이 벌어지면 적의 함대나 항공기가 등대를 우선 공격목표로 삼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래서 일제시기의 모든 등대장들은 일본인들로 채워졌다.비밀유지를 위해서였으며,한국인들은 일용직으로만 일할 뿐이었다.광복 당시에 한국인으로서 정식 등대원으로 잔존한 사람은 고작 4명에 불과했다.지방에서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등대장도 초대받아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그 사회적 위상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광복되던 해,많은 등대들이 민중들의 공격을 받았다.일본인 등대지기가 철수한 상태에서 등대의 값진 설비들을 모조리 뜯어가기도 했다.그만큼 등대의 장비가 첨단 시설이자,고가품이었다는 방증이다.또 당시 민중들의 의식 속에 깃든 등대에 대한 민족적 적대감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등대는 24시간 가동하므로 3교대를 돌리자면 쉴틈이 없다.우도등대의 경우 주변에 흩어진 8개의 등표도 함께 관리해야 한다.하루에 세 번씩 이상유무를 점검해 해난의 여지를 살핀다.선박 조난의 책임을 등대에서 져야 할 이유는 없지만 막상 관할 해역에서 사고라도 나면 등대원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그런 즉,등대를 두고 말하는 ‘낭만타령’은 얼마나 속절없는가! 지금도 등대가 밝히는 뱃길을 따라 상상을 초월하는 물동량과 정보가 숨가쁘게 세계에 전달된다.그 ‘오고 감’이 없다면 우리 경제가 아예 돌아가지 않는다.등대는 ‘현실’이다.
  • [‘알 카에다’ 테러 위협] 9·11테러 자행… 55개국 1만여명 활동

    알 카에다는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해 오사마 빈라덴이 이끄는 국제적 테러지원 조직이다.알(Al)은 정관사,카에다(Qaeda)는 ‘기지(基地)’를 뜻한다. 1979년 옛 소련이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이에 반대하는 세계 각지의 모슬렘들이 ‘무자헤딘(전사)’의 이름으로 참전했다.당시 20대 청년으로 유산과 건설업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라덴도 파키스탄 등지에서 무자헤딘을 모집하고 훈련시키는 ‘무크탑 알키다마트(MAK)’를 만들었다.1988년 소련이 물러나기 직전 무자헤딘을 중심으로 ‘알 카에다’를 창설,이듬해 MAK를 흡수했다. 1991년 걸프전쟁이 터지자 수단으로 근거지를 옮겨 반미 테러로 방향을 틀었다.처음에는 이슬람권에서만 활동하다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미국과 영국 등지에도 조직을 침투시켰다.서방의 정보기관들은 9·11 이전에 55개국 이상에서 1만명의 점조직이 활동한 것으로 평가했다.1996년 미국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1998년에는 이집트의 원리주의 무장단체 지하드 등과 결합,‘알 카에다 알 지하드’로 세를 넓혔다.지하드를 이끌던 이집트 의사 출신의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빈 라덴에 이은 조직내 2인자로 9·11을 계획하고 집행한 실질적 장본인으로 알려졌다. 9·11에 앞서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지하 주차장 폭탄테러와 1998년 탄자니아 및 케냐의 미 대사관 테러,같은해 예멘의 미 군함 콜호 폭탄공격이 모두 알 카에다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체첸 공화국의 학생 인질극과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테러도 이들과 무관치 않다.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이은 대대적인 소탕작전으로 지도부 75%가 체포되는 등 조직이 상당부분 괴멸된 것으로 평가된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녹색공간] 상생과 공존을 위한 전략/이상헌 지속가능발전위 에너지산업팀장

    한국 사람들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경제성장을 해왔다.다른 나라에서 100년,200년이 걸렸던 산업화와 도시화를 불과 4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그것도 전쟁의 폐허로 아무런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낸 근저에는 강한 인종적 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다.그러나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성장 전략이 지정학적으로 유리할 게 별로 없는 우리의 처지에서 앞으로도 계속 도움이 될는지는 의문이다. 중국은 막대한 규모의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여 우리와의 격차를 좁히고 있으며 우수한 인재 양성과 해외 자본의 유치에 힘입어 기술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얼마 전 언론에 보도됐듯이 우리의 미래 성장을 견인할 핵심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기술격차는 평균 2년 남짓하다고 한다.또 삼협댐 프로젝트나 남수북조(南水北調) 사업 등과 같은 대규모 환경 파괴형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자국만이 아니라 한반도 생태계도 위협하고 있으며,동북공정 사업을 통해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장기적인 포석으로 남북통일 이후의 상황을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의 행보도 우리에게 중요하다.우리가 앞으로 러시아의 석유나 천연가스를 수입한다는 상황도 있을 수 있지만,그보다는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인정하는 것에 화답하기 위해 지난 9월30일 러시아가 교토의정서 비준법안을 연방하원의회에 제출했으며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교토의정서가 비준될 것이라는 점이다.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면서도 의무감축대상국에서 제외돼 있었던 우리나라는 이렇게 되면 2차 공약기간이 시작되는 2013년부터 의무감축 압력을 거세게 받게 될 것이다.1990년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거의 3배로 늘어난 우리나라에서 1990년 수준으로 줄이라는 것은 상당한 규모의 산업구조조정과 에너지 수요 감축을 의미하며,우리가 겪어야 할 변화는 과거 경제성장보다 더 극적으로 전개될 것이다.폐쇄적 체제 유지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과 경제 개방에 따른 이익의 크기를 저울질하면서 핵문제를 다각도로 이용하는 북한의 외교 전략,북한인권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어렵게 성사시켰던 6자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미국의 패권주의,장기 불황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약하는 동시에 평화헌법을 수정하여 재무장을 시도하는 일본의 야심도 우리에게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이처럼 막강한 국가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분명한 것은 강력한 주변국과의 배타적인 경쟁이나 단기간의 성과에 치중하는 성장 전략은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점이다.세계적으로 환경무역장벽이 높아지고,기후변화협약 등으로 인해 환경친화적인 산업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된 상황에서 인접국과의 경쟁보다는 상호공존이 전략적으로 보다 유리하다.따라서 우리의 경우 동북아시아 지역에서의 협조와 상생을 지향하는 지혜롭고도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이러한 전략의 수립에는 기존의 발상을 넘어서는 혁신적 사고가 요청된다. 중국의 학자 쑨거(孫歌)는 식민지와 전쟁이라는 외상의 역사를 가진 동아시아에서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동시에 공존의 미래를 열기 위해 민족국가 단위보다는 아시아를 사유 단위로 고려해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민족국가가 정치적으로는 분리돼 있어도 생태적으로는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쑨거의 주장은 새겨들을 만하다.생태계에서는 독불장군이란 없기 때문이다.주변국과의 상생과 공존을 위한 지혜로운 지속가능발전 전략이 우리에게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상헌 지속가능발전위 에너지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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