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겉으론 평온 안으론 진통/오늘 「천안문사태」 2주년
◎국제고립 벗기·내부통제 강화 골몰/일부 대학선 반 등소평 전단 나돌아
중국당국은 2년 전 6월4일 북경 천안문광장의 민주개혁 요구 시위를 총칼로 진압했던 「6·4사건」의 후유증으로 아직도 적잖이 시달리고 있다.
해마다 6월이 다가오면 미국측에서 인권문제를 내세워 최혜국대우의 철폐를 주장하고 나서는 것도 「6·4사건」의 유산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사건발발 2주년을 맞는 현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당시 시위군중 1천5백여 명(중국 당국 주장 2백여 명)을 무차별 사살,세계를 경악케 했던 「충격파」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6·4사건」을 애도하는 해외거주 화교의 시위군중 규모도 1주년이던 지난해에 홍콩 10만명,마카오 1천명,샌프란시스코 3천명이던 것이 올해엔 2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2일 각각 1만명,1백50명,1백명 등으로 열기가 크게 식었다는 게 홍콩 언론들의 분석이다. 반체제 물리학자 방려지 등 해외망명중인 민주인사들의 활동도 점차 활기를 잃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그 동안 중국에 가해졌던 서방국가들과 세계은행(IBRD) 등의 경제제재도 대부분 풀린 상태이다.
어느 나라건 비슷하겠지만 특히 중국의 역사는 끊임없는 민중의 항거와 권력자의 탄압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천안문광장 곳곳을 피로 물들이고 마감한 「6·4사건」도 역사상의 수많았던 민·관 투쟁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이는 또 새로운 항거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6·4사건」과 관련,중국 당국은 시위군중을 반혁명 폭란분자로 매도하고 국민들의 슬픔을 달래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처방은 「안정」을 확실히하기 위해 정치적 규제를 강화하는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다.
중국 당국의 국가지도노선은 『경제는 개방개혁 등으로 자유화하되 정치는 콘트롤을 강화해야…』한다는 최고실권자 등소평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특히 현재의 중국 지도층은 동구 사회주의의 붕괴에서 받은 배움을 통해 국민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믿음을 더욱 공고히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중국 지도층이 동구·소련의 민주화의 혼란을 통해 절실하게느낀 점은 공산당이란 어떤 희생이나 비용지출이 따르더라도 그 지도력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중국 지도층은 마르크스 레닌과 모택동 사상 견지,프롤레타리아 전제 등의 4원칙론을 계속 강조하고 있으며 「6·4사건」 이후 북경 상해 남경 등 주요도시 대학생들에 대해 1년 동안 의무적으로 군사훈련을 받도록 하고 있다.
특히 중국 지도층은 현재 동구와 소련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 정치적 어려움이 사회주의를 외면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로 지적하고 있으며 천안문 시위의 무력진압을 정당화하는 호재로 한껏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 당국은 또 그 동안 「6·4사건」으로 인한 국제적 고립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각적인 외교전략을 구사,적잖은 성과를 올린 것으로 지적된다. 그들의 우방인 북한과 대치상태에 있는 한국과 무역대표부를 상호 개설했고 이스라엘 남아공 등 과거 적대시했던 국가들과의 관계도 호전시켰다. 미·일 등 선진국 지도자들과의 정치적 유대도 심화시키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은 「6·4사건」의 장을 닫아버리기 위해 지난 연말 사건관련 인사 7백15명에 대한 재판을 모두 끝냈고 해외망명인사들에 대해서도 앞으로 정부 비방만 않는다면 처벌 없이 귀국을 허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엔 천안문 시위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실각시킨 조자양 전 당 총서기와 그의 추종세력 가운데 호계립(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등 심복 3명을 복권시켜 정치사회의 안정을 과시하는 제스처도 취했다.
지난해 「6·4사건」 1주년을 맞았을 땐 약 1주일 동안 폐쇄했던 천안문광장도 올해엔 평양시처럼 개방했다.
또 북경대학교 등 일부 대학에서 「천안문사건을 잊지말자」는 등의 내용이 담긴 전단이 뿌려지고 등소평의 이름과 발음이 같은 소병(작은 병)이 내팽개쳐져 깨지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대규모 시위의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이 사건이 중국 국민들에게 남겨준 상처는 너무 깊어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