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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여행 | 황하가 편애한 땅 닝샤寧夏

    해외여행 | 황하가 편애한 땅 닝샤寧夏

    중국에 이런 말이 있다. ‘천하황하부녕하天下黃河富寧夏’. ‘천하의 황하黃河가 닝샤寧夏에 복을 준다’는 뜻이다. 백 가지 해를 끼친다는 황하가 닝샤에서 그 도도함을 내려놓고 온순해졌으니, 그 물줄기가 빚어낸 운치는 필경 황하가 감춰둔 속살이 분명하다. 닝샤를 여행하기 전 중국을 여행하려면 관광비자를 준비해야 한다. 단체비자의 경우 5명 이상이 모여야 신청 가능하다. 닝샤의 연평균 기온은 11℃로 우리나라보다 낮고 건조한 편이다.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옷을 잘 준비해야 한다. 단벌보다는 입고 벗기 쉽게 겹쳐 입도록 챙기는 게 요령이다. 5~10월 초가 푸른 초원을 볼 수 있어 여행 적기다. 닝샤에서 흔히 접할 수 있고 유명한 음식은 양고기 요리다. 찜이나 탕보다는 바비큐가 우리 입맛에 맞다. 황하를 비롯해 호수가 많아 잉어 등 민물고기 요리도 다양하다. 한국식당과 커피전문점은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에 입맛이 걱정된다면 밑반찬과 개인 기호식품을 챙기면 좋겠다. 인촨공항은 규모가 작아 면세점이 한 곳뿐이고 술과 담배만 판매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인촨銀川 은빛 물의 도시 북으로는 네이멍구자치구, 남으로는 간쑤성에 접해 있으며 5,463km의 황하가 관통하는 서북부 내륙. 그곳에 닝샤寧夏, 정확히는 닝샤후이족자치구가 있다. 닝샤는 사막으로 둘러싸인 일종의 분지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다. 연간 일조량은 3,000시간이지만 그에 비해 강우량은 200mm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가장 많은 밀이 이곳에서 생산되고 옥수수와 쌀, 수박 등 농산물이 풍부하다. 이 땅이 이토록 비옥한 이유는 황하가 마르지 않는 물을 공급해 주고 몽골로부터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추위를 허란산맥이 막아 주기 때문이다. 황토고원과 산이 대부분인 남부에 비해 황하가 접한 닝샤 중·북부는 비옥한 닝샤평원을 끼고서 도시들이 몰려 있다. 닝샤의 성도인 인촨銀川도 이곳에 자리한다. 영상 4도. 10월의 마지막을 며칠 앞둔 인촨의 아침은 쌀쌀했다. 황사의 발원지라는 서북부 내륙답지 않게 공기가 맑다. “인촨에서는 ‘아침에는 솜옷을 입고, 점심때는 견사를 입고, 저녁에는 화로에 앉아 수박을 먹는다’는 재미있는 말이 있어요.” 가이드 안룡씨는 15도 이상 벌어지는 인촨의 일교차를 이리 설명한다. 따갑게 햇볕이 내리쬘 때면 그 말이 내내 떠올랐다. 인촨에는 크고 작은 호수가 72개다. 덕분에 안개도 잦다. 인촨이라는 이름도 ‘햇살에 하천이 은빛으로 빛난다’ 해서 붙여졌다. 인촨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40km 거리 사호沙湖로 향했다. 전통 배 형상의 유람선을 타고 안개 낀 습지를 가로질러 닿은 곳은 모래섬. ‘푹푹’ 모래를 밟고 올라 한숨 고르고 뒤를 돌아보면 언덕 아래로 갈대 호수가 장쾌하다. 전체 80km2의 방대한 사호의 중심에 선 이 모래섬은 텅그리 사막으로부터 날아온 모래가 호수 주변에 쌓이면서 시작됐다. 호수는 원래 양어장이었는데 황하가 범람하면서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1989년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봄이면 흑고니 등 200여 종의 철새들이 이곳을 찾는다니, ‘변방의 강남’이라는 별칭으로 낭만을 부추길 만하다. 56개의 소수민족이 인구의 60~70%를 차지하는 중국에는 소수민족자치구가 5개다. 몽골족의 네이멍구자치구, 장족의 광시장족자치구, 티베트족의 시짱자치구,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민족인 신장웨이우얼자치구, 그리고 중국계 무슬림 민족인 닝샤후이족자치구다. 사실 닝샤후이족의 분포는 34%, 약 200만명이다. 8세기 용병으로 중국에 왔던 페르시아와 아랍의 병사와 상인들이 조상이다. 한족과의 혼혈정책으로 지금은 중국화된 상태지만 후이족들은 지금도 그들만의 전통문화를 지켜 간다. 박물관, 사원, 민속촌, 공연장, 식당 등 중화회향문화원 내에서는 그 문화의 일단을 이해할 수 있다. 타지마할을 본뜬 입구를 들어서 광장을 지나면 황금빛 모스크와 마주친다. 중국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이다. 아라베스크 문양이 화려한 내부는 사뭇 경건하다. 후이족을 상징하는 ‘회回’자 형태로 지어진 박물관 안에는 관련 문화유물이 전시돼 있는데, 그중 금박을 입힌 코란은 국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지난 9월27일,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장셴량張賢亮이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를 접했다. 지병이 악화돼 인촨에서 숨졌다고 했다. 19세 때 쓴 서정시 ‘대풍가’ 때문에 반혁명죄로 지목돼 22년을 노동수용소에서 보냈고 1979년, 명예회복 이후 써 낸 작품들로 중국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우리나라에도 번역됐던 그의 자전적 장편소설 <남자의 반은 여자 1985>는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당시 중국에서 금기시된 주제를 다뤄 화제가 됐었다. 근교에 자리한 전베이푸鎭北堡영화촬영장. 닝샤서부영화세트장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을 만든 이가 바로 장셴량이다. 전베이푸는 변방을 지키는 보루였다. 사병들이 주둔하고 그 가족들과 농민이 거주했다. 장센량은 자신의 소설이 영화로 각색되면서 영화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폐허가 된 옛 성터를 1992년 촬영장으로 개발했다. <붉은 수수밭>, <목마인>, <신용문객잔> 등 총 70여 편의 중국과 홍콩 영화 및 드라마가 이곳에서 제작됐다. ‘중국전영종저리주향세계中國電影從這里走向世界.’ 중국 영화가 이곳에서부터 세계로 진출한다는 입구 현판이 이곳의 영향력을 입증해 준다. 방대한 규모의 촬영장을 다 둘러보고 나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고대문명의 흔적들 실크로드를 장악했던 고대 왕조는 한나라와 당나라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천년 전에 세워졌던 서하왕조(1038~1227년)는 쓰촨에서 살던 유목민 탕구트족이 토번족에 밀려 간쑤성 일대에 정착하면서 시작됐다. 당나라 말기 독립된 지방 세력으로 성장한 탕구트족은 1028년에 족장이었던 이원호李元昊가 간쑤성을 평정하고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나라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대하大夏라 이름 지어 스스로를 제왕으로 명했다. 하지만 송나라는 대하를 고대 하夏나라와 구분 짓고 송나라의 영토 서쪽에 있다 해서 ‘서하西夏’라고 불렀다. 서하는 그 영토가 한반도의 다섯 배에 달했다. 동쪽으로는 송나라를 압박하고 서쪽으로는 서역으로 가는 통로인 하서주랑河西走廊을 지배해 실크로드의 무역권을 장악했다. 역사는 길지 못했다. 1227년 칭기즈칸은 중국 정벌의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서하를 침략했다. 잔혹한 이민족 말살정책에 의해 사료도 없이 그야말로 ‘미지의 제국’으로 남은 서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0년대 구 소련의 역사학자들에 의해서다. 서하의 흔적이 남은 서하릉西夏陵으로 향했다. 능으로 가는 길은 하란산의 능선이 끝없이 동행한다. 입구부터 서하문자가 눈에 띈다. 한자보다 더 복잡하다. 6,000자로 창제된 서하문자는 티베트-미얀마 계통 언어로 알려져 있는데 획수가 40획을 넘기도 한다. 서하문자는 왕조가 멸망한 이후에도 16세기 초까지 사용됐다. 하란산 동쪽 기슭, 지는 해를 등지고 선 능은 신비로웠다. 총 53km2의 서하릉에는 9개의 제왕릉과 귀족들의 무덤인 253기의 순장묘가 있다. 제왕릉은 북두칠성 모양으로 구성됐고, 순장묘도 별자리 형태로 만들어졌다. 궐대, 월성, 내성, 남문 등 다양한 구조물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흔히 ‘태릉’이라 불리는 3호 왕릉, 바로 이원호의 묘다. 정확히는 지름 36m, 높이 24m의 모래 벽돌로 쌓아올린 능탑陵塔이다. 서하릉에서는 지금껏 200점의 건축 장식물과 문화재 등이 출토되고, 왕릉은 최근 6기까지 발굴됐지만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는 것은 이 태릉뿐이다. 서하는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를 국교로 숭상했다. 승려를 교육하고 배출시키는 관청을 설치하고 사찰을 건립했다고 전해지는데, 청동협시市에서 그 종교문화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108청동탑一百零八塔은 청동협시 입구의 서쪽 산기슭에 선 거대한 탑군이다. 서하 중·말기 때 라마교 양식으로 축조된 탑은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탑이 거대한 삼각형 모양을 이룬다. 맨 꼭대기 3.5m 높이의 탑을 시작으로 아래로 2.5m의 탑들이 3, 3, 5, 5, 7, 9, 11, 13, 15, 17, 19의 개수로 12단으로 이루어졌다.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탑의 꼭대기에서는 우수牛首산과 물줄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오르면 닝샤의 기원은 구석기 시대까지 닿는다. 인촨 남쪽 20km, 황하문명의 발원지인 수이둥거우水洞溝유적지에는 약 3만년 전의 유물과 유적이 광활한 자연경관 속에 잠들어 있다. 수이둥거우는 1923년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이자 고생물학자인 에밀 리상Emile Licent과 테야르 드 샤르댕P.Teilhard de Chardin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이곳을 보려면 노새가 끄는 마차와 유람선, 전동차와 도보의 여정을 번갈아 거쳐야 한다. 2,700km 만리장성의 끝자락이기도 한 수이둥거우에는 흙으로 쌓은 장성의 원형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명나라 때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지하 요새 창빙둥藏兵洞이 볼거리다. 좁은 미로로 이루어진 내부는 자칫하면 길을 잃기 일쑤다. 놀랍게도 함정, 식수로 썼던 우물터, 침실까지 있다. ●중웨이中衛 사막을 즐기는 방법, 텅그리 사막 ‘사포터우沙坡頭’ 닝샤, 내몽골, 간쑤 세 개의 지역이 교차하는 곳에 자리한 중웨이의 사포터우沙坡頭로 향한다. 중웨이라는 이름은 세 지역을 가운데서 호위한다는 의미다. 중웨이는 특히 구기자로 유명하다. 회족들이 안경을 낀 사람이 없는 이유가 눈을 밝히는 구기자를 많이 먹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사포터우는 청나라 건륭황제 3년인 1738년에 지진이 발생해 황하 북쪽에 길이 약 2,000m, 높이 100m, 경사 200m의 모래언덕이 생겨나 얻은 이름이다. 옛 이름은 사타沙陀였다. 잘 조성된 정원을 가로질러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00m 모래 언덕에 올랐다. 사막의 남쪽 아래로 샹산香山의 줄기가 황하의 지류를 두르고 함께 굽이친다. 장관이다. ‘대막고연직, 장하낙일원大漠孤煙直, 長河落日圓’. ‘큰 사막에 외로이 연기만 곧게 솟고, 긴 강에 지는 해가 둥글구나.’ 오죽하면 당나라 때 시인이자 화가였던 왕유王維의 시 ‘사시새상使至塞上’의 한 대목을 이곳에 적어 놓았을까. 사실 사포터우는 강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사막의 서정을 느끼기에는 너무 활기차다. 개발된 사막인 사포터우의 매력은 차라리 액티비티에 있다. 낙타 라이딩, 모래썰매, 케이블카, 전동카 등 모래와 함께하는 레포츠의 재미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200m의 모래언덕을 쏜살같이 내려오는 모래 썰매도 인기가 높지만 백미는 역시 낙타 타기다. 낙타의 굽은 등에 올라 출렁이며 모래를 밟으면 마치 수백년 전 실크로드를 지나던 상인이라도 된 듯하다. 상상하던 ‘진정한’ 사막을 보기 위해 사포터우에서 약 8km 떨어진 북면의 텅그리騰格里 사막으로 발길을 옮겼다. 텅그리는 몽골어로 ‘하늘처럼 넓다’는 뜻이다. 사포터우에 비해 텅그리 사막은 손대지 않은 사막의 풍광과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텅그리 사막은 신장의 ‘타클라마칸’, 내몽골의 ‘마오우쑤’, ‘바단지린’과 함께 중국 4대 사막으로 꼽힌다. 사포터우는 텅그리 사막의 한 지류다. 텅그리 사막 입구에 들어서자 겨울을 준비하는 퉁후초원이 길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텅그리에는 422개의 오아시스가 있다. 소금호수와 초원, 습지가 어우러져 사막 속의 에덴동산이라 불린다. 그 아름다움을 담지 못하는 아쉬움은 사막 지프로 달랬다. 굴곡진 텅그리의 사구를 굉음을 내며 롤러코스터마냥 내달렸다. 모래 파도 너머 해가 지고, 바람 한줄기가 심장을 다독이며 지나간다. ●징타이景泰 황하의 기적, 황하석림黃河石林 길은 좀더 멀어진다. 인촨에서 390km, 차로 약 3시간 거리의 징타이景泰로 향한다. 징타이는 간쑤甘肅성에 속해 있고 닝샤와는 접경이다. 인촨에서 벗어나 고속도로를 1시간여 달리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주위는 온통 돌과 흙뿐. 허허롭지만 메마르지는 않다. 대륙을 적시고 생명을 길러낸 황하의 물줄기는 징타이에 또 하나의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놓았다. 국가지질공원이자 지질유적자연보호구인 ‘황하석림黃河石林’이다. 총 34km2의 황하석림은 우취엔산五泉山의 퇴적암들이 어우러져 빽빽한 숲을 이룬 것이다. 약 210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비바람과 중력에 가라앉은 풍화작용에 의해 그 모습을 변화시켜 왔다. 바위 형상이 세워진 입구부터 이색적이다. 풍경구 내를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굽이치는 골짜기를 오르고 내렸다. 절벽 아래 누런 황하가 동에서 서로 휘돌아 흐르고 라우룽완老龍灣 마을이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버스가 여행객을 내려놓은 곳은 라우룽완 마을의 선착장. 석림으로 가려면 먼저 특별한 이동수단을 타고 황하를 건너야 한다. ‘양피파즈羊皮筏子’라는 양가죽 뗏목이다. 나무를 구할 수 없었던 이곳에서는 예부터 강을 건너기 위해 양가죽을 이용했다. 한나라 광무제 때의 기록에는 소나 양의 가죽뗏목이 운송 수단으로 사용됐다고 전해지니 양피파즈의 역사는 적어도 2,000년인 셈이다. 양가죽 뗏목은 통 양가죽에 유채기름칠을 해 가죽을 부드럽게 한 다음 말린다. 작은 입구에 풍선처럼 바람을 불어넣어 봉한 뒤 나무판에 14개를 엮어 물에 띄우는 방식이다. 얼기설기 엮은 뗏목은 사공을 합쳐 4~5명이 정원.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노가 일렁이는 물살을 가르자 천천히 뗏목이 움직인다. 눈앞으로 기암절벽이 강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황하 덕에 문명이 탄생하고 티베트 고원에서 화북 평원으로 이어지는 강 유역은 비옥한 곡창 지대를 이루었으며 수많은 왕조들이 이 강과 함께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물 한 말에 흙이 여섯 되’라는 누런 강 위에 생각이 머무는 사이 뗏목이 도착했다. 음마飮馬대협곡. 중국 역사극에 자주 등장하기도 하는 황하석림의 시작점. 오랜 시간의 흔적들을 암석들은 거대한 제 몸 깊숙이 새기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골짜기 양쪽으로 거대한 바위들이 뿜어내는 비장함이 황홀하다. 당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4.5km의 협곡을 지난다. 마른 먼지가 훅 인다. 늙은 마차꾼은 능숙한 걸음으로 나귀를 재촉하고 이따금 고개를 쳐들어 기암괴석들이 품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목란이라는 소녀가 병약한 아버지를 대신해 남장을 하고는 12년을 종군하고 금의환향 했다지요.” ‘화목란花木蘭의 귀향’ 등 바위들은 저마다 형상에 걸맞은 이름과 사연을 담고 있다. 감동은 끝나지 않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로 오른다. 끝도 없는 바위산이 발아래로 굽이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도 세차다. 10여 분. 1,600m 우취엔산 정상에 다다랐다. 날리는 옷깃을 여미는 사이 형용하기 힘든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천산만학千山萬壑’. 천개의 산과 만개의 골짜기다. 이토록 방대하고도 우아함을 잃지 않은 돌무더기라니. 위풍당당한 이 기적 앞에서 그저 설레설레 고개만 저을 뿐이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하나투어www.hanatour.com, 티웨이항공www.twayair.com ▶travel info Ningxia Airline 티웨이항공이 11월26일까지 2주에 3회 인천 출발 (월·금·수요일), 인촨 출발(화·목·토요일) 전세기를 운항 중이다. 2015년 3월부터는 주 3회 인천-인촨 정기편이 운항될 예정이다. 티웨이항공은 11월1일 무안-제주 노선을 시작으로 무안국제공항을 통해 중국 노선을 확대해 왔다. 앞으로 인천-하이커우, 인천-지난, 제주-난닝 등 서울거점 외 지방 공항을 활성화할 예정이다. 인천에서 인촨까지 비행시간은 약 3시간이다. www.twayair.com HOTEL 롱청 호텔Long Cheng Hotel 중웨이에 자리한 호텔로 깔끔하고 넓은 객실이 나무랄 데 없다. 총 148개의 객실과 레스토랑, 회의실 등을 갖추고 있고 닝샤 지역에서는 드물게 무선인터넷 사용이 편리하다. 공항과도 가까워 현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중위시 고루동가 오환광장 서측宁夏 中卫市 鼓樓东街 五环廣場 西側 +86-0955-7667777 ACTIVITY 사파두 사막 액티비티 사막에서 모래를 이용해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사파두의 매력. 200m의 경사를 순식간에 미끄러져 내려오는 모래썰매, 허공을 가로지르는 아찔한 로프웨이와 지프와이어, 번지점프는 스릴 만점. 마치 사막에 펼쳐진 놀이동산을 보는 듯하다. 지프나 사막 충랑차를 타고 굴곡진 사막의 능선을 신나게 내달리는 체험도 놓치기 아깝다. 기계적인 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에서 맛보는 스릴감은 색다르다.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낙타 라이딩. 일정 대열을 맞춰 낙타 등에 올라 몰이꾼을 따라 천천히 사막을 약 30분 지난다. 운 좋게 일몰을 만난다면 그 낭만이야 말할 것 없다. 가격은 낙타 라이딩이 80위안, 지프는 200위안이다. 영하 중위시 사파두 관광구宁夏 中卫市 城西 16公里 +86-0955-7681481 www.spttour.com RESTAURANT 만수르 궁Mansour Palace 중화회향문화원 안에 있는 이슬람 식당이다. 후이족 향토음식과 이슬람 연회식 등 후이족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슬람 풍의 인테리어를 갖춘 홀은 2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11개의 개별 룸도 있다. 양고기 바비큐와 양 내장요리, 냉채, 교자만두 등이 인기메뉴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허용된 할랄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이 다를 뿐, 맛은 일반 중국식과 큰 차이 없다. 은천 중화회향문화원宁夏 银川市 永宁县西京藏高速路 口出口处 +86-0951-8027318 www.zhhxwhy.com SHOPPING 중국 구기관Chinese Wolfberry Museum 닝샤는 구기자의 고향이다. 역사가 4,000년이다. 특히 주산지인 중웨이시 중닝현의 구기자를 최고로 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약재나 차로 즐겨 먹지만 닝샤 구기자는 맛이 달아 건포도처럼 간식으로 먹을 수도 있다. 2011년 인촨에 문을 연 중국구기관은 중국 구기자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중국 최초의 박물관이자 쇼핑점이다. 2층 건물 내에는 박물관, 문화센터, 건강서비스센터 등 홀이 나뉘어 고대로부터 이어온 중국 구기자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쇼핑점에서는 차, 스낵류, 음료, 건강식품 등 다양한 구기자 제품들을 시식하고 구매하며 국제배송도 가능하다. 중국 구기자는 5등급으로 분류하는데 최고로 치는 1등급 야생 흑구기자 가격은 약 3,000위안(한화 약 52만원), 15g 간식용은 약 7위안(한화 1,200원) 정도. 박물관 입장료는 20위안이다. www.berylgoji.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프랑스 언론사 최악테러] 시민들 “파리 최악의 날” 추모 종에 삼삼오오 기도

    [프랑스 언론사 최악테러] 시민들 “파리 최악의 날” 추모 종에 삼삼오오 기도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 발생 이튿날인 8일(현지시간) 파리 시내와 지하철역의 시민 대다수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날 르몽드 1면 기사에는 ‘프랑스판 9·11’이라는 제목이 달렸고 ‘내가 샤를리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추모집회 사진이 지면 대부분을 차지했다. 파리의 에콜 밀리테르 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용의자 셰리프 쿠아치 관련 기사를 유심히 읽던 올리비에 르노르(46)는 이번 사건에 대해 “너무나 큰 충격”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그는 “파리 한복판에서 특정 언론인들을 표적으로 한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면서 “특히 테러범들의 얼굴과 신원까지 다 공개됐는데도 잡히지 않고 (이들이)여전히 프랑스 어딘가를 활보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끔찍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무장한 경찰이 파리 곳곳에서 상시 순찰을 하며 삼엄한 경계를 펴는 가운데 이날 정오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추모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도시는 일시 멈춤 상태에 빠졌다. 버스와 지하철이 운행을 중단했고 길가던 시민들은 삼삼오오 어깨동무를 하고 12명의 희생자를 위해 기도했다. 오후 8시에는 파리의 대표적인 상징물 에펠탑도 화려한 조명을 끄고 추모에 동참했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 파리는 세일로 들썩거릴 시기다. 그러나 기다리던 세일 첫날(7일)은 파리 역사상 가장 공포스러운 날로 기억되게 됐다. 유명 백화점인 프렝탕과 갤러리 라파예트, 고급 패션브랜드 매장이 몰려 있는 팔레 루아얄 광장의 갤러리 정원 등에 나붙은 ‘-40%’라는 할인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도시는 충격과 슬픔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쇼핑과 관광의 거리로 잘 알려진 오페라가(街)에서 만난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세일 대신 테러를 소재로 한 대화가 한창이었다. 사립예술학교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하는 이들은 “그제(7일)부터 학교에서는 테러 얘기뿐이다. 특히 데생 화가가 희생된 것에 대한 충격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믿을 수 없다”고 운을 뗀 뒨 카를(19)은 “화가, 만화가, 디자이너 등 예술가는 누구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하는데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남겼다고 그렇게 살해됐다는 데에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데생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는 총격 소식을 듣고는 그날 수업을 잇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한 친구가 “프랑스인을 상대로 한 이슬람주의자의 테러”라는 표현을 쓰자 폴린 사셰(20)는 “테러의 표적이 프랑스인으로 확대됐다는 것과 이를 이슬람 전체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면서 “이번 일이 무슬림 전체에 대한 증오심으로 이어진다면 오히려 더욱 큰 충돌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이슬람 정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있지만 최근 들어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앞서 지난해 12월 프랑스 중서부 주 레 투르와 동부 디종에서 각각 발생한 범행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소행으로 드러났다. 엔지니어로 일하기 위해 리비아에서 건너와 프랑스에서 어학 공부를 하는 일리암(26)은 “며칠 사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 같다”면서 “단지 히잡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라며 조심스러워했다. cyk@seoul.co.kr
  • [프랑스 언론사 최악테러] 순교하겠다며 테러범들 끝까지 저항… 파리의 ‘핏빛 금요일’

    [프랑스 언론사 최악테러] 순교하겠다며 테러범들 끝까지 저항… 파리의 ‘핏빛 금요일’

     “조용하던 파리와 인근 지역이 모두 전쟁터로 변했다.” “프랑스가 악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AFP통신과 CNN의 탄식이다.  12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 7일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이 9일에는 동시다발 인질극으로 변했고, 용의자들이 모두 사살당하면서 끝났다. 테러 사건 용의자 사이드 쿠아치(34), 셰리프 쿠아치(32) 형제는 파리 인근 다마르탱에서 인질극을 벌였다. 오후에는 파리 동부 식료품점에서도 인질극이 벌어졌다. 양쪽의 인질범에 맞서기 위해 프랑스 경찰은 해당 지역을 모두 폐쇄하고 헬기, 저격수 등을 대대적으로 동원했다. 파리 내외는 숨죽인 채 급히 오가는 중무장한 병력들로 가득 찼다. AFP통신은 식료품점 인질극을 벌인 아메디 쿨리발리가 셰리프와 친분이 깊고, 2010년에는 탈옥사건으로 함께 조사받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쿨리발리는 쿠아치 형제의 탈출을 돕기 위해 인질극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쿠아치 형제의 행적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정보당국은 사이드가 2011년 예멘으로 건너가 알카에다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것 같아 수년간 감시해 왔다는 정보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예멘의 알카에다 조직을 알카에다 분파 가운데 가장 위험한 조직으로 지목했다. 2011년 드론 공격으로 이들 대장 안와르 아울라끼를 사살했다.  이슬람국가(IS)와의 연계 가능성도 있다. 동생 셰리프는 10년 전 경찰 단속으로 무너진 파리 인근 급진 이슬람단체 ‘뷔트쇼몽 네트워크’에서 ‘아부 이산’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핵심 인물이었다. 이 네트워크의 지도자급 인물인 부바키 알하킴은 2013년 튀니지로 가서 세속주의 정치인을 암살하는 데 관여하는 등 이슬람 극단주의 행동을 이어 갔다. 사이언스포 극단주의 연구원 장피에르 필루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알하킴이 IS와 연계된 인물이기 때문에 쿠아치 형제의 테러도 IS와 연결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필루는 “이런 정황 때문에 알카에다건 IS건 간에 이번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쿠아치 형제의 이런 행적 때문에 미국과 프랑스는 진작부터 이들을 추적, 관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행 금지 명단에도 이름이 올라 있었다. 문제는 왜 이 관찰이 느슨해졌느냐다. 인디펜던트는 “프랑스 당국이 이라크와 시리아에 관련된 젊은 무슬림에 집중하다 이들 형제를 놓친 것 같다”고 보도했다. 10~20대 청년에게 집중하다 보니 30대로 접어든 이들을 “한때 과격분자였던 인물”로 과소평가했다는 얘기다. 에릭 데니스 프랑스정보연구센터 연구원은 “언제까지나 모든 사람들을 다 지켜볼 수는 없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각국은 추가 테러 가능성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앤드루 파커 영국 국내정보국(M15) 국장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은 유럽 출신 지하드(성전) 전사들을 고용해 대규모 인명 살상 사태를 일으키려 하고 있다”면서 “가까스로 막고 있지만 나중에는 어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유럽은 대테러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프랑스는 11일 파리에서 반테러회의를 연다. 유럽연합(EU)도 19일에 외무장관, 28일에는 내무장관 회의를 열기로 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몇 주 안에 새로운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그간 위축됐던 정보기관에 크게 힘을 실어줄 가능성을 거론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프랑스 언론사 최악테러] 테러범은 대상자 정확히 가려내 방아쇠 당겼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저지른 무장 괴한 3명은 이슬람계 프랑스 국적자로 파리 출신인 사이드 쿠아치(35)와 셰리프 쿠아치(33) 형제, 그리고 북부 랭스 출신의 하미드 무라드(19)로 확인됐다. 무라드는 두 형제의 의붓형제 또는 셰리프의 처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라드는 이날 오후 11시 파리에서 북쪽으로 230㎞ 떨어진 벨기에 국경 근처 샤를빌메지에르 경찰서에 자수했다. 무라드는 자기 이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오르내리자 자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무라드는 테러 과정에서 차량을 운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미국 인터넷 매체 헤비닷컴은 전했다. 경찰은 이들이 단순 테러범이 아닐 것으로 보고 있다. 테러 당시 이들은 AK47 자동소총을 능숙하게 다뤘고 몸놀림도 민첩했다. 테러 목적과 대상자를 정확하게 가려낸 다음, 신속하고 대범하게 공격하고는 사라졌다. 전문적 훈련이나 충분한 예행연습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경찰의 배후 세력 수사가 관심이다. 일단 연결 고리는 셰리프 쿠아치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2005년 테러리스트 단체에 관련된 활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파리 동부의 모스크에서 체포돼 18개월 동안 복역한 적이 있다. 이슬람극단주의 세포조직의 일원으로 이라크 주둔 미군과 싸우기 위해 이라크로 가려는 무슬림들을 징집하는 활동을 했다. 그 자신도 군인이 되기 위해 이라크로 떠나려 했으나 그 직전 체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쿠아치는 체육 교사가 되기 위해 학위를 이수했지만 이후 피자배달원, 슈퍼마켓의 생선 판매원으로 일했으며 과거에는 극단주의자의 면모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주간지 르푸앵은 두 형제가 지난여름 시리아에서 되돌아왔다고 보도했다. 알카에다는 물론 이슬람국가(IS) 등 다른 극단세력과의 연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프랑스 언론사 최악테러] 反이슬람 민족주의 vs 벼랑끝 테러… ‘배고픈 유럽’의 악순환

    [프랑스 언론사 최악테러] 反이슬람 민족주의 vs 벼랑끝 테러… ‘배고픈 유럽’의 악순환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은 용의자 3명 모두 프랑스 국적자인 점으로 미뤄 자생적 테러로 추정된다. 190여명이 사망한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지하철 테러, 50여명이 죽은 2005년 영국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 때도 범인은 외부에서 건너온 요원들이 아니라 스페인과 영국에 오래 살아 왔던 이들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2010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 유럽 각국 지도자들은 앞다퉈 ‘다문화주의의 실패’를 선언하기도 했었다. 이번 테러 사건도 이런 흐름 위에 있다. 당분간 ‘반이슬람과 테러의 악순환’이 계속되리라는 전망이다. 가장 큰 원인은 유럽의 경기침체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이 대표적이다. ECB가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주도하지 못해 유럽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경우 유럽을 통째로 극우세력에 헌납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독일은 완강하게 ECB의 확장 정책을 막아서고 있다. 인위적 경기부양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알뜰살뜰 돈 모아 착실하게 갚으라는 얘기다. 그리스가 ‘그렉시트’ 가능성을 언급하고, 심지어 프랑스에서도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메르켈 총리는 물러설 기미가 없다.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경제 문제에 종교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비꼬는 이유다. 메르켈 총리가 기독민주당(CDU) 소속임에 빗댄 것이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은 유럽 내 약자들인 무슬림들에 직격탄이다. 먹고살기 팍팍해질 때 적당한 희생양을 찾는 우경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1·2차 세계대전의 경험 때문에 유럽은 오랜 기간 동안 강력한 민족주의적 정서를 금기시했다. 지금도 정치인, 언론인, 스포츠선수 등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은 민족주의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영국에서는 영국독립당, 프랑스에서는 국민전선, 독일에서는 민족민주당 등 반이슬람, 반이민 등 강력한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정당들이 각국에서 약진하고 있다. 밑바닥에는 반이슬람 우경화 경향이 만연해 있다는 얘기다. 최근 독일 드레스덴에서 ‘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EGIDA·페기다)이 대대적인 반이슬람 시위를 주도했을 때 1만명 이상의 시위대가 운집한 것은 이를 잘 드러내준다. 독일 주간지 슈테른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10명 중 3명은 반이슬람화 시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 만큼 이슬람이 독일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극우 세력이 최근 위력을 떨치는 스웨덴에서는 이슬람 사원을 방화하는 사건이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1일까지 잇따라 3건 발생했다. 이런 상황은 그간 무시당했던 이슬람 이민 2·3세대를 더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이민 1세대들이야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 주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차별을 참아냈지만, 이미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랐음에도 국민 대접은커녕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자라난 2·3세대들의 좌절과 분노는 엄청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 통합과 공존을 말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내세워 상대가 그렇게 싫어하는 행위를 계속하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프랑스 언론사 최악테러] “표현 자유” “신성 모독”

    이슬람교에서는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모습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 이슬람교에 대한 풍자를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는 서방국의 가치와 신성모독이라는 이슬람권의 가치가 충돌하는 일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12년 9월 리비아 벵가지에서 무슬림 폭도들이 미국 영사관을 습격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 등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의 발단도 무슬림을 비하한 영화 ‘무슬림의 순진함’이었다. 이스라엘계 미국인이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이 영화는 무함마드를 바람둥이, 동성애자, 아동 학대자로 묘사해 이슬람 진영의 강한 반발을 샀다. 2005년에는 덴마크 신문 율란츠 포스텐이 무함마드를 폭탄 터번을 두른 테러리스트로 묘사한 만평을 게재해 논란이 일었다. 해당 신문의 사과로 일단락되는 듯하던 사태는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언론사들의 동조 만평 게재로 갈등이 확산됐다. 동조 만평을 게재한 언론사 중에는 샤를리 에브도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덴마크는 파키스탄 대사관을 임시 폐쇄했고 이란에서는 영국과 독일대사관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다. 이보다 훨씬 앞서 인도 출신의 영국인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1988년 소설 ‘악마의 시’가 이슬람 신성 모독 논란에 휘말리면서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로부터 살해 대상으로 지목돼 영국에서 10년간 도피생활을 했다. 루슈디는 7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종교적 전체주의가 이슬람 내부에서 치명적 돌연변이를 일으켜 오늘 파리에서 일어난 일과 같은 비극적 결말을 부른 것”이라며 프랑스 테러 사건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프랑스 언론사 최악테러] 무함마드 누드·콘돔 낀 교황…풍자와 선동 사이 외줄타기

    [프랑스 언론사 최악테러] 무함마드 누드·콘돔 낀 교황…풍자와 선동 사이 외줄타기

    1970년 11월 9일 프랑스의 영웅이었던 샤를 드골 대통령이 사망했다. 주간지 하라키리는 ‘콜롱베의 비극적인 무도회:사망자 1명 발생’이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의 죽음을 전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몇 주 전 드골이 살던 콜롱베에서 발생한 나이트클럽 화재사건에 빗대 ‘조롱’한 것이다. 당국은 하라키리를 폐간시켰다. 프랑스 역사상 마지막 언론 검열이었다. 그러나 기자들은 즉각 새로운 매체를 창간했다. 그 매체가 바로 이번 테러로 10명의 직원을 잃은 샤를리 에브도이다. BBC는 7일(현지시간) “저항과 선동, 성역 파괴와 무례, 폭로와 포르노 사이에서 외줄을 탄 주간지”라고 샤를리 에브도를 평가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온갖 추문을 캐내 앙시앵레짐(구체제) 타도의 전기를 마련한 프랑스 언론의 DNA를 유감없이 발휘했지만, 표현의 자유를 극단으로 몰아붙인 ‘문제적 언론’이라는 것이다.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매주 커버를 장식하는 만평이었다. 이번에 숨진 샤를리 에브도 직원 10명 가운데 5명이 유명 만화가이다. 이들은 2011년 ‘아랍의 봄’ 기념 특별호 표지에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모습과 함께 ‘웃다가 죽지 않으면 태형 100대에 처하겠다’는 내용의 말풍선을 그린 만평을 실었다가 방화를 당하기도 했다. 무슬림은 무함마드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 자체를 모욕적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들은 2012년에도 무함마드 누드를 묘사한 만평을 게재했다. 샤를리 에브도는 지난해 12월 소니 해킹 사건과 관련해 ‘퍼니 김정은’이라는 트위터 만평에서 김정은을 조롱하기도 했다. 이 밖에 참수된 이민자의 목을 든 경찰, 콘돔을 낀 교황 등 그들의 만평은 늘 논쟁적이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미아 칼리파, 히잡 쓰고 포르노 찍었다가 ‘충격’

    미아 칼리파, 히잡 쓰고 포르노 찍었다가 ‘충격’

    미아 칼리파, 히잡 쓰고 포르노 찍었다가 ‘충격’ 레바논 출신 포르노 배우 미아 칼리파가 히잡을 쓰고 포느로에 출연, 무슬림의 맹비난을 받고 있다. 미아 칼리파(22)는 레바논에서 태어나 자라다 10대에 미국으로 이주, 텍사스의 대학에 입학한 뒤 지난해 포르노 영화사와 출연 계약을 했다. 폭발적인 반응에 미아 칼리파는 최근 진행된 네티즌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문제는 미아 칼리파가 한 포르노 동영상에 히잡(무슬림 여성이 머리에 쓰는 스카프)을 쓰고 등장하면서 불거졌다. 여성의 정숙함을 상징하는 히잡을 포르노의 소품으로 이용하는 도발적 영상에 아랍권 네티즌들은 분노했다. 이에 미아 칼리파는 “레바논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의견을 밝힐 자격이 있다”며 “중동에서 나보다 심각한 문제가 많지 않다. 그 문제나 해결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검은 두건 쓴 괴한 2명 “알라는 위대하다” 난사

    검은 두건 쓴 괴한 2명 “알라는 위대하다” 난사

    평일 한낮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서 무차별 테러 공격이 벌어져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AFP,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은 7일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평으로 유명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가 이날 오전 무장괴한들의 공격을 받아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가운데 편집장 스테파니 샤보니에와 만화가 3명, 경찰관 2명 등이 포함됐다. 외신과 현지 매체에 따르면 복면을 쓴 괴한 2명이 칼리슈니코프(자동 소총)와 로켓 발사기로 무장한 채 파리 중심부에 있는 샤를리 엡도 사무실에 난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한 목격자는 TV방송에 “오전 11시 30분쯤 두 명의 검은 두건을 쓴 남자가 자동 소총을 들고 건물로 들어갔으며, 몇 분 후 많은 총성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괴한들은 사무실 2층으로 올라가 보도국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당시 편집 회의로 사무실에 많은 수의 기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통신은 약 30발의 총알이 발사됐다고 보도했다. 샤를리 엡도의 한 직원은 TV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학살이 일어났다”고 끔찍한 현장을 전했다. 누구의 소행인지 전해지지 않은 가운데 괴한들이 현장에서 “우리는 무함마드의 복수를 했다”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근처 건물 지붕에서 한 목격자가 찍은 영상에는 경찰과 교전 중인 가운데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라는 괴한의 외침이 담겨 있다고 AFP가 보도했다. 범인들은 건물 밖에서 경찰관들과 총격전을 벌였으며, 대기하고 있던 차량을 타고 도주 중이다. 샤를리 엡도는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만평으로 줄곧 논란을 일으켰다. 2006년 덴마크 신문에 실렸던 무함마드 풍자만화를 전재해 처음 무슬림의 표적이 됐다. 2011년 11월호 표지에 무함마드의 이미지를 넣은 이후 폭탄 공격을 받았으며, 2012년엔 무슬림 모독 논란을 빚은 미국 저예산 영화 ‘순진한 무슬림’(Innocence of Muslim)과 관련해 무함마드 누드 만평을 게재해 무슬림의 공분을 샀다. 최근 공식 트위터를 통해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 지도자 아부 바크 알 바그다디를 조롱하는 만화를 올렸다. IS는 샤를리 엡도가 풍자 트위터를 게재하기 전 “샤를리 엡도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했고, 이에 맞서 샤를리 엡도는 ‘프랑스에 아직 테러가 없다’(Still No Attacks in France)는 제목의 트윗에서 바그다디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또한 샤를리 엡도의 최신호 첫 지면을 장식한 기사는 최근 화제가 된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베크의 새 소설 ‘복종’(Soumission)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래에 프랑스에서 이슬람 정권이 탄생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소설은 이슬람에 대한 반감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현재 경찰이 괴한들을 쫓는 가운데 프랑스 정부는 파리 지역의 경계 단계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렸다. 이번 총격은 1995년 130여명의 사상자를 낸 파리 통근 열차 폭탄 테러 이후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총격 소식에 곧바로 현장을 방문하는 한편 비상 각료 회의를 소집하고 대국민 연설을 준비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국제사회는 즉각 비난을 쏟아내고 프랑스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끔직한 총격 사건”이라고 비난하고 테러범 추적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영국은 모든 형태의 테러에 맞서 프랑스와 함께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신문사에서 야만적인 공격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경악한다”고 말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히잡’ 쓰고 포르노 찍은 미모 여대생 파문

    ‘히잡’ 쓰고 포르노 찍은 미모 여대생 파문

    레바논 출신의 한 여성이 '히잡'을 쓰고 포르노 영화에 출연한 것을 이유로 살해 위협을 받고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있다. 화제의 여성은 10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는 대학생 신분인 미아 칼리파(21). 그녀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포르노 영화의 여배우로 활동하면서 부터다. 아리따운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하는 그녀는 출연과 동시에 최고의 온라인 조회수를 기록하며 일약 '남성들의 스타'가 됐다. 논란의 계기가 된 것은 그녀의 거침없는 행보였다. 평소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혀온 그녀는 레바논 정권에 반대하는 문신을 몸에 새기는 등의 정치적인 행동으로 중동 출신 남성들의 분노를 샀다. 특히 종교적 상징성을 갖는 히잡을 쓰고 포르노에 출연한 것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네티즌들은 그녀의 트위터에 "칼리파가 무슬림의 가치를 단돈 5센트 짜리로 만들었다" 면서 "그녀의 행동은 전 무슬림을 욕보이는 짓" 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일부 네티즌들은 "같은 아랍인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럽다. 목을 칼로 자르겠다" 는 살해 위협의 글까지 남겨 논란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이에대해 칼리파는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다. 칼리파는 "나 말고 중동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어떠냐?" 면서 "새 레바논 대통령을 찾는 일이나 IS(이슬람국가)에 대해서나 관심 가져라" 라고 일갈했다. 사진=미아 칼리파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글로벌 시대] 인도네시아의 대국 정신 이해해야/엄성용 수출입은행 자카르타 사무소장

    [글로벌 시대] 인도네시아의 대국 정신 이해해야/엄성용 수출입은행 자카르타 사무소장

    지난해 12월 21일 인도네시아 해군이 영해 내 불법 조업을 하던 어선을 폭파시켰다는 뉴스 하나가 한국에 보도됐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는 한때 메인 뉴스로 선정돼 많은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하는 필자로서는 자카르타 포스트라는 현지 신문에서 같은 기사를 본 다음날 우리나라에서 다시금 주목받은 그 기사를 참 흥미롭게 지켜봤다.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들까지 상당수 읽어 보기도 했다. 이 기사에 대한 댓글은 크게 두 가지 논조로 구분된다. 하나는 최근 중국 어선들의 우리나라 영해에서의 불법 조업이 더욱 대담해지고 이 탓에 많은 우리나라 어민들이 상당한 경제적·정신적 손실을 보고 있는 불편한 현실과 맞물려 외국의 불법 조업 어선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내릴 수 있는 인도네시아가 부럽다는 논조였다. 다른 하나는 만약 불법 조업 어선이 힘없는 파푸아뉴기니가 아닌 중국 배였다면 인도네시아도 그런 강력한 조치는 취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그러면 그렇지’라는 나름의 분석을 담은 논조였다. 정말 그 불법 조업 어선이 인도네시아 주변의 중국, 호주 등 소위 힘 있는 국가의 어선이었다면 그렇게 단호한 조치가 가능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인도네시아에 대한 현황과 최근 불고 있는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우선 인도네시아의 면적은 우리 한반도의 약 8.5배나 된다. 인도네시아 서쪽에서 동쪽까지 거리는 약 5100㎞로 한국에서 인도네시아까지의 거리 약 5200㎞와 비슷하다. 비행기로도 약 7시간이 소요되는 엄청난 거리다. 또 화산 지역이 넓게 발달한 영토에는 석유를 시작으로 천연가스, 니켈, 주석, 석탄, 목재 등 다양한 천연자원이 엄청나게 존재한다. 인구도 약 2억 5000만명으로, 특히나 중위 연령은 2010년 기준 27.9세로 우리나라의 37.9세보다 10살이나 어리다. 그만큼 젊은 노동력이 풍부하고 내수시장도 크다는 의미다. 인도네시아는 흔히 이야기하는 단순한 개발도상국이 아니라는 뜻이다. 외교적으로도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약 86%가 이슬람교를 믿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슬림 국가다. 총인구가 중국, 인도, 미국에 이은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이며, 전통적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외교 노선을 걸어왔다. 경제적으로는 비록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지만 소위 말하는 대국으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국 정신은 최근 시행된 대통령 선거에서도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두 명의 대통령 후보는 모두 정치·경제적으로 자주적인 인도네시아의 건설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현재도 그때의 공약들은 하나씩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감이 부족해진 많은 한국 기업들에 인도네시아는 주요 시장이 되고 있다. 주요 건설사들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해 있고, 많은 금융기관도 인도네시아 진출을 했거나 준비 중이다. 하지만 진출한 기업 중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는 뉴스는 아직 많지 않다. 그만큼 쉽지 않은 시장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역사와 필자의 인도네시아 생활 경험에 비춰 보면 인도네시아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한다면 상대가 전 세계 어느 나라라고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의 대국 정신을 먼저 이해하고 이 나라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시장이라 하더라도 이익을 내기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 커지는 獨이슬람 혐오증…깊어가는 메르켈의 고민

    “그들 마음속엔 편견과 냉담, 증오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이 주도하는 집회에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발표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신년사는 매주 월요일 드레스덴에서 벌어지는 반(反)이슬람 시위에 참가하지 말라는 일종의 대국민 호소문이었다. 집권 10년 동안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존경받는 메르켈 총리가 일개 집회에 이토록 신경 쓰는 이유는 뭘까? 뉴욕타임스(NYT)가 1일 답을 제시했다. NYT는 “패전 후 독일의 역사는 극우, 나치 극복의 역사였는데, 최근의 반이슬람 시위에 편승한 극우가 이 역사를 위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독 민주화운동의 성지인 드레스덴에서 무슬림과 이민자에 대한 증오가 표출되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서방의 이슬람화에 맞서는 애국적 유럽인들’이라는 단체가 주도하는 드레스덴 ‘월요시위’는 지난해 10월 시작된 이후 참가자들이 계속 늘어나 12월 말에는 2만여명으로 불었다. 유럽연합(EU) 탈퇴와 이민자 추방을 외치는 신생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도 시위에 가담하고 있다. 시위대는 동독 민주화운동 당시 사용된 ‘우리가 국민이다’라는 구호를 ‘너희(무슬림)는 우리가 아니다’라는 구호로 바꿔 외치고 있다. NYT는 “새해 첫 월요시위에서 시위대 규모가 더 커지면 메르켈은 상당히 곤혹스러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취업률이 하락하고,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가 증가함에 따라 반이민·반이슬람 정서가 ‘이민자들의 국가’ 독일에서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주간지 슈테른이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13%는 반이슬람 시위가 인근에서 열리면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특히 ‘독일을 위한 대안’ 지지자 계층에서는 동참 의사가 45%에 달했다. 치솟는 극우정당의 지지율에 위기감을 느낀 집권 기민당(보수당) 내부에서도 메르켈 총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농업부 장관을 지낸 한스 피터 프리드리히 의원은 “이민자 이중국적 허용과 같은 좌파적 정책으로 전통적 지지층이 극우당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면서 “이민자 우호정책은 총리의 치명적인 실수가 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반이슬람 시위를 지켜본 드레스덴 과기대의 베르너 파젤트 교수는 “극우주의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기민당보다 ‘독일을 위한 대안’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더 잘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면서 “시민의식에 호소하는 차원 이상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셀레나 고메즈 ‘발목’에 비난 쏟아진 이유

    셀레나 고메즈 ‘발목’에 비난 쏟아진 이유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오랜 연인이자 최근에는 올랜도 블룸과 열애설이 났던 셀레나 고메즈가 아부다비의 한 사원에서 찍은 사진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일자 보도에 따르면, 최근 셀레나 고메즈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그랜드 모스크(회교사원)을 방문한 뒤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해당 사진은 셀레나 고메즈 외에도 유명 가수들이 함께 사원을 관광하며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문제는 셀레나 고메즈의 ‘발목’이었다. 그녀는 길게 늘어뜨린 검은색 옷을 살짝 들어 올려 한쪽 발목을 노출했다. 이는 신체 노출을 엄격히 금하고, 특히 사원 내에서 옷차림과 행동거지에 주의해야 하는 무슬림 규율에 어긋난다. 뿐만 아니라 동행한 친구들과 익살스러운 포즈와 표정을 지은 사진과 동영상 등도 함께 올렸고, 이를 본 무슬림들은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 무슬림 네티즌은 “매우 무례한 행동이다. 그곳은 그저 즐기는 곳이 아닌 신성한 종교적 장소”라면서 셀레나 고메즈를 향한 실망을 드러냈고, 자신을 팬이라고 소개한 또 다른 네티즌 역시 “그녀의 행동을 보니 더 이상 팬이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신성모독으로 논란이 된 스타는 셀레나 고메즈 뿐만이 아니다. 팝스타 리한나는 지난 해 같은 장소에서 검은색 복장에 진한 화장을 하고 다양한 포즈를 취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후에 그랜드 모스크로부터 입장 제지를 받기도 했다. 그랜드 모스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이슬람 사원으로서, 아랍에미리트의 대표 관광지로 손꼽힌다. 평소 비무슬림의 출입을 제한하지 않지만, 신을 모독하는 옷차림이나 행동을 한 사람에 한해서는 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세계의 창] “종교는 정치 참여 말라” vs “신정일치 국가 건설” 세력다툼

    [세계의 창] “종교는 정치 참여 말라” vs “신정일치 국가 건설” 세력다툼

    #1 지난 8월 미국의 맹방을 자처하는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UAE) 공군이 리비아를 기습 폭격해 미국을 당황케 했다. 이들은 왜 미국 몰래 공습을 감행했을까? #2 ‘아랍의 봄’ 투사였던 이집트 청년 아흐메드 알다라위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대원으로 활동하다 전사한 사실이 지난 3일 전해졌다. 경찰 출신으로 민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했던 그가 왜 세계 ‘공공의 적’인 IS의 대원이 됐을까? #3 터키의 판검사들은 왜 국민이 장기집권을 허락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고 할까? 위 세 가지 질문은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발단의 단초는 하나다. 바로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충돌’. 얽히고설킨 중동 정세를 이 키워드를 통해 바라보면 분쟁의 원인과 실체가 드러날 때가 많다. 먼저 이집트와 UAE의 리비아 공습부터 살펴보자. ‘아랍의 봄’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이 무너진 이후 리비아에서는 이슬람주의 민병대와 세속주의 민병대가 일진일퇴의 내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8월은 이슬람 민병대가 의사당과 정부 청사를 점령한 때다. 세속주의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이집트와 세속주의 왕정이 통치를 하고 있는 UAE로서는 자신들의 턱밑에 이슬람주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방치할 수 없었다. 미국은 왜 놀랐을까? 이집트와 UAE가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면 이슬람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는 이웃 카타르와 터키도 개입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중동전문가 미셸 둔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가자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에게 리비아에서 4개국이 전투를 벌이는 상황은 그야말로 악몽과 같다”고 분석했다. 피아 구분이 불분명해진 시리아 내전도 근원은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의 충돌이다. 처음에는 세속주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 대항해 모든 이슬람 세력이 함께 대항했다.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이슬람 무장단체 내부에서 종파 분쟁이 터졌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려는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이후 IS로 진화)가 다른 반군들을 제압해 가며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의 ‘괴물’이 됐다. IS의 단기 목표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세속주의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장기 목표는 미국을 침몰시키는 것이다. 이집트 청년 알다라위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전쟁의 희생양이다. 촉망받는 경찰이었던 그는 호스니 무바라크를 무너뜨린 항쟁의 최전선에 섰다. 그러나 ‘아랍의 봄’이 가져다준 해방 공간에선 이슬람주의 시위대와 세속주의 시위대가 충돌했다.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한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를 급속도로 이슬람화시켰다. 이에 반발한 압둘 팟타흐 시시 국방장관은 쿠데타를 일으켰고, 무바라크보다 더 강압적인 철권통치에 나섰다. 알다라위의 삶을 추적한 파이낸셜타임스는 “알다라위는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시위대가 분열되는 것을 보고 절망했으며, 다시 군부가 집권하는 것을 보고 극단적 이슬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보도했다. 시민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시리아, 리비아, 예멘, 알제리 등에서도 알다라위와 같은 선택을 하는 청년들이 줄을 잇고 있다.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제 뉴스의 단골손님이다. 최근 그는 “무슬림 뱃사람들이 콜럼버스보다 314년 빠른 1178년에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했다”고 주장해 때아닌 역사 논쟁을 일으켰다. 여성학자들의 토론회에 참석해서는 “여성은 기본적으로 남성과 평등할 수 없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터키 공교육의 이슬람화도 추진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가자지구 전쟁에서 하마스를 지원하고, 시리아에서는 무슬림형제단 반군을 지원하며, 이집트 군사정권과 각을 세우는 원인은 그의 판단 기준이 이슬람주의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자 에르도안에게 가장 강력하게 저항하는 이들은 터키의 검사와 판사들이다. 삼권분립과 신정분리에 의해 통치되길 바라는 사법부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통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 특히 터키는 1923년 중동 국가 중 처음으로 헌법에 세속주의 통치를 못 박은 나라다. 이 때문에 판검사들이 나서서 대통령과 대통령의 아들 및 측근의 비리를 캐고 있다. 가디언은 “터키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향방을 정하는 시금석”이라고 평가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용어 클릭] ■이슬람주의 이슬람의 이념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하려는 이데올로기이다. 종교지도자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통치하는 신정일치 국가 건설을 추구한다. ■세속주의 정치와 종교가 분리돼 종교의 정치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는 이념이다. 중동에서는 주로 왕족과 군부가 독재 통치로 세속주의 정치를 유지해 왔다.
  • [세계의 창] 민주주의 실험 홀로 성공 튀니지 비결

    튀니지는 ‘아랍의 봄’ 진원지이자 아랍 민주화의 ‘마지막 불씨’다. 2010년 12월 경찰의 폭력적인 단속에 항의한 대학생 노점상의 분신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는 벤 알리의 23년 독재정치를 종식시켰다. 뒤이어 민중 봉기가 발생한 다른 아랍 국가들은 모두 군부독재로 회귀하거나 내란·내전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 갔다. 하지만 튀니지는 지난 4년 동안 위기를 극복하면서 민주정치의 기틀을 다졌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사상 처음 민주적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 세계가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튀니지가 민주주의 실험에 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BBC와 알자지라는 이날 튀니지를 ‘아랍의 새로운 모델’로 묘사하면서 이슬람주의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의 타협 과정을 조명했다. 벤 알리 정권 붕괴 이후인 2011년 10월 총선에서 온건 이슬람주의 정당인 엔나흐다당이 승리해 연립정부를 구성하자 옛 정권을 지탱했던 세속주의 세력이 반발했다. 갈등이 고조되자 강경 이슬람주의 살라피스트들이 득세하며 세속주의자들을 공격했다. 혼란을 틈타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세력이 세를 불렸다. 경제 위기까지 고조되자 정권퇴진 목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엔나흐다당은 정부 총사퇴와 중립 과도정부 구성이라는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 간 타협의 결정체는 헌법이었다. 새 헌법은 국교를 이슬람이라고 명시했지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이슬람 율법(샤리아)에 근거한 조문들도 모두 삭제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못 박았다. 고문 금지, 적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남녀평등도 명시했다. 더욱이 튀니지는 이슬람 강경파가 소수였다. 다수파인 무슬림형제단 계열의 온건한 엔나흐다당은 헌법 양보를 넘어 대선에서 이슬람 후보를 내지 않았다. 대신 민중 시위를 이끈 문시프 마르주키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 옛 정권 출신의 세속주의자로 경제를 외치는 에셉시 후보와 ‘아랍의 봄’ 투사 사이의 양자대결은 이렇게 완성됐다. BBC는 “정치에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 군부의 전통, 종교보다는 경제에 더 관심이 많은 여론, 프랑스와의 심리적 유대감 등도 튀니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고 있다”면서 “온건 엔나흐다당이 종교적 가치에서 출발했으나 세속적 민주주의 정당으로 발전한 유럽의 기독민주당이나 기독사회당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88세 에셉시, 튀니지 첫 민선 대통령에

    88세 에셉시, 튀니지 첫 민선 대통령에

    2011년 아랍의 민주화 시위 이후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지켜온 튀니지의 대선 결과 세속주의 원로 정치인인 베지 카이드 에셉시(88) 후보가 당선됐다고 22일 AFP통신이 밝혔다. 에셉시는 이날 튀니지 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대선 결선 투표 결과 55.68%의 득표율을 얻어 44.32%의 지지율을 얻은 반체제 인사 출신의 몬세프 마르주키(67) 후보를 따돌렸다. 결선 투표율은 59.04%였다. 이에 따라 에셉시 후보는 튀니지가 1956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자유 민주 선거를 거쳐 선출된 첫 대통령이 됐다. AP 등 외신에 따르면 앞서 여론조사기관 시그마 콘세일은 결선투표 출구조사 결과 에셉시 후보가 55.5%를 얻어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에셉시 후보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즉각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선거운동본부 앞에 모인 2000여명의 지지자들 앞에서 “승리를 튀니지의 희생자들에게 바친다”면서 “마르주키 후보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은 튀니지가 1956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이후 처음으로 자유 경선으로 치러졌다. 앞서 지난달 23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도 에셉시 후보는 득표율 39.5%로 1위, 마르주키 후보는 33.4%로 2위를 차지했다. 반(反)이슬람주의자인 에셉시는 세속주의 정당인 니다투니스(튀니지당) 지도자로 ‘아랍의 봄’ 때 축출된 벤 알리 정권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 때문에 그의 당선은 ‘독재 회귀’라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 경륜, 안정을 주장한 에셉시는 부유층과 해안지역 유권자들에게서 지지를 받았다. 벤 알리 정권 이후 임시 대통령을 맡아온 마르주키는 민중항쟁을 이끈 인권운동가이나 과도정부가 경제 성장을 이끌지 못하자 지지율이 떨어졌다. 마르주키는 주로 보수적 무슬림과 빈민층의 지지를 받았다. ‘아랍의 봄’의 주축 세력이었던 이슬람주의 정당 엔나흐다당은 자체 후보를 내지 않고 마르주키를 지지했다. 한편 튀니지의 새로운 헌법은 대통령이 독재를 할 수 없도록 권한을 축소했다. 이에 따라 신임 대통령은 군 통수권을 갖되 군 인사권은 총리와 공유해야 하고, 외교 문제도 총리와 협의해야 한다. 이창구 기자 window2@seoul.co.kr
  • 인질극 사망자 추모하는 무슬림 신부에 박수 터져나와

    인질극 사망자 추모하는 무슬림 신부에 박수 터져나와

    고운 드레스를 입은 무슬림 여성이 부케를 들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그녀의 발길이 멈춘 곳은 얼마 전 호주 시드니에서 벌어진 인질극으로 사망한 인질 2명을 기리는 추모공간입니다. 올해 23살인 마날 카셈은 이날 막 결혼한 새신부입니다. 그녀는 흰백색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베일을 쓰고, 부케를 들고 이곳을 직접 찾았습니다. 여전히 경찰들이 주위를 서성이고 사람들의 눈길이 와 닿는 것을 느낀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자신의 부케를 내려놓았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인질극의 범인은 이란 난민 출신의 무슬림입니다. 호주 일부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고개를 든 상황이어서, 카셈의 행동은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사망자를 기리기 위해 수북하게 쌓은 꽃다발 위에 자신의 부케를 올려놓자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새신랑인 마흐모드 호마이시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신랑신부의 웨딩플래너는 “원래 두 사람은 결혼식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마날(신부)이 이곳을 방문하기를 원했다”고 전했고, 꽃다운 무슬림 신부의 모습을 직접 본 한 목격자는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무슬림 신랑신부가 추모공간으로 다가가는 모습에 사람들의 눈길이 쏠렸다. 신부가 부케를 내려놓으며 마음을 전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고 전했습니다. 호주인들의 무슬림 감싸기는 어제 오늘일이 아닙니다. 사건이 발생한 뒤 레이첼 제이콥스(37)라는 여성은 지하철을 탄 한 무슬림 여성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히잡을 억지로 벗자, 그녀에게 다가가 “걱정 마세요. 제가 당신과 함께 있을께요.”라고 말했고, 이 사연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이후 트위터에서는 “내가 함께 타줄께요”(#illridewithyou)라는 해시태크가 24시간 동안 15만건 이상 올라와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진심을 전하는 무슬림과 그들을 감싸는 호주인들의 마음이 전 세계에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무슬림 신부의 시드니 인질극 사망자 추모에 반응이...

    무슬림 신부의 시드니 인질극 사망자 추모에 반응이...

    고운 드레스를 입은 무슬림 여성이 부케를 들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그녀의 발길이 멈춘 곳은 얼마 전 호주 시드니에서 벌어진 인질극으로 사망한 인질 2명을 기리는 추모공간입니다. 올해 23살인 마날 카셈은 이날 막 결혼한 새신부입니다. 그녀는 순백색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베일을 쓰고, 부케를 들고 이곳을 직접 찾았습니다. 여전히 경찰들이 주위를 서성이고 사람들의 눈길이 와 닿는 것을 느낀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자신의 부케를 내려놓았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인질극의 범인은 이란 난민 출신의 무슬림입니다. 호주 일부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고개를 든 상황이어서, 카셈의 행동은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다른 사람들이 사망자를 기리기 위해 수북하게 쌓은 꽃다발 위에 자신의 부케를 올려놓자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녀뿐만 아니라 새신랑인 마흐모드 호마이시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신랑신부의 웨딩플래너는 “원래 두 사람은 결혼식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마날(신부)이 이곳을 방문하기를 원했다”고 전했고, 꽃다운 무슬림 신부의 모습을 직접 본 한 목격자는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무슬림 신랑신부가 추모공간으로 다가가는 모습에 사람들의 눈길이 쏠렸다. 신부가 부케를 내려놓으며 마음을 전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고 전했습니다. 호주인들의 무슬림 감싸기는 어제 오늘일이 아닙니다. 사건이 발생한 뒤 레이첼 제이콥스(37)라는 여성은 지하철을 탄 한 무슬림 여성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히잡을 억지로 벗자, 그녀에게 다가가 “걱정 마세요. 제가 당신과 함께 있을께요.”라고 말했고, 이 사연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이후 트위터에서는 “내가 함께 타줄께요”(#illridewithyou)라는 해시태크가 24시간 동안 15만건 이상 올라와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진심을 전하는 무슬림과 그들을 감싸는 호주인들의 마음이 전 세계에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獨 “나치 계승·민주질서 침해” 1950년대 두차례 정당 해산

    19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한국도 ‘정당 해산 국가’ 중 하나가 됐다. 한국에선 1960년 위헌정당해산심판제도가 법으로 규정된 이래 최초 사례지만 시야를 해외로 돌리면 독일, 터키 등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침해’와 같은 이유로 해산 결정을 내려 왔다. 전문가들은 분단을 겪은 독일 외에는 시대 상황이 달라 한국과의 비교가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선 사회주의제국당(SRP)과 독일공산당(KPD)의 해산 결정이 1950년대에 전부 내려졌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952년 ‘과거 나치당을 계승한다’는 점을 들어 SRP에 해산을 명했고, 이로부터 4년 뒤에는 KPD를 해산시키며 “목적과 활동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한다”고 헌재 결정문에 명시했다. 2003년에도 독일 정부는 극우정당인 독일민족민주당(NPD)을 상대로 해산 청구를 요청했으나 증거가 불법적 경로를 통해 얻어졌다는 이유로 해산 절차가 중단됐다. ‘터키 복지당’ 해산 결정은 1998년 이뤄졌다. 세속주의적 헌법에 반해 이슬람 율법을 절대화하는 신정주의를 주장한다는 게 이유였다. 유럽인권재판소는 2003년 이 해산 결정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이외에도 2003년 바스크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바타수나당’의 해산이 스페인에서 이뤄졌고, 이집트에서는 최대 이슬람 조직 무슬림 형제단이 만든 ‘자유정의당’이 지난 8월 해산됐다. 또 태국에서는 2007년 5월 탁신 전 총리의 ‘타이 락 타이’ 당이 부정선거를 저지른 혐의가 인정돼 해산된 사례가 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납치狂 보코하람

    파키스탄 탈레반이 학생 142명을 학살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나이지리아 이슬람 반군 보코하람이 최소 185명의 여자와 아이들을 납치하고 32명을 죽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8일 CNN에 따르면 보코하람은 나이지리아 동북부 치복의 굼수리마을을 덮쳐 저항하는 남자들은 죽이고 온 마을을 불태운 뒤 여자와 아이들을 강제로 끌고 사라졌다. 이 사건은 지난 14일 발생했으나 늦게 알려진 것은 마을이 궁벽한 곳에 있는 데다 보코하람의 계속된 공격으로 통신시설이 다 파괴돼 외부에 알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코하람의 공격에서 겨우 살아남은 이들이 인근의 마이두구리 지역으로 대피하면서 사건이 발생 4일 만에 외부에 알려진 것이다. 나이지리아 정부도 도망쳐 나온 주민들을 수소문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도망 나온 굼수리마을 주민 모두 칼리는 “그들은 마을 전체를 다 없애려는 듯이 아이와 여자들을 무조건 트럭에다 강제로 태웠고 방해되는 이들은 죽였다”면서 “나도 지금 걸치고 있는 옷 말고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도망쳤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급격하게 세를 불리기 시작한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 보코하람은 8000만 무슬림의 권익을 보호하겠다고 주장하며 아이들을 납치해서는 짐꾼이나 소년병으로 부려먹고, 여자들을 성노예로 삼아 왔다. 지난 4월 소녀 276명을 납치한 사실이 알려지고 국제적 관심이 고조되자 굿럭 조너선 대통령이 보코하람과의 전쟁을 선포했었다. AFP통신은 “똑같은 치복 지역에서 이와 같은 대규모 납치 사건이 다시 발생했다는 것은 나이지리아 정부의 척결 다짐이 공허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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