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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돈의 이집트] “아랍권 시위는 일시적 사태 아닌 보편적가치 지향의 세계사적 흐름”

    “이집트, 튀니지 등의 민주화 시위는 프랑스 혁명과 같은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한국의 중동 문제 전문가들은 최근 아랍권 독재국가에서 민주화 시위가 도미노식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일시적인 소요사태가 아니라고 7일 진단했다. 한국중동학회와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가 8일 명지대에서 공동 주최하는 ‘이집트, 수단, 튀니지 사태와 중동의 민주화 전망’이라는 주제의 긴급 심포지엄에 앞서 미리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참석자들은 지금 아랍권 국가에서 범상치 않은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아랍 국가들 가운데 레바논을 제외하고는 시민혁명이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이집트의 시민혁명은 아랍권의 ‘남성 주도 가부장적 인식 체계’를 바꾸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민주화 시위의 근본 원인으로 장기 독재, 지도층의 부패, 빈곤과 실업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프랑스혁명과 같은 큰 변화, 장기적인 민주화 열풍이 불 것이라고 예견했다. 서 교수는 튀니지와 이집트 사태를 ‘웹에 등장한 벤츠와 당나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은 탈근대적 현상(벤츠)과 거리 시위와 같은 전근대적 현상(당나귀)이 동시에 나타나는 특이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황병하 조선대 교수는 이집트 야권의 최대 단일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았지만, 세속적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등 서방국가와 민주화운동 내부의 또 다른 중심축인 엘바라데이 및 암르 무사 지지 세력들의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켜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향후 무슬림형제단의 행보와 관련해 첫째, 샤리아에 근거한 이슬람국가의 수립 이념을 포기하지 않을 것, 둘째, 온건주의와 중도주의를 표방하면서 폭력 사용을 철저히 배격하고 무바라크의 점진적 퇴진과 정권 이양을 지지할 것, 셋째, 이슬람주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세속적 민주주의를 포용하면서 종교와 정치의 분리와 이슬람 가치의 확립을 헌법 개정으로 수렴하는 전략을 취할 것, 넷째, 이집트 민주화 과정과 선거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은 것 등으로 분석했다. 김효정 명지대 교수는 튀니지 민주화 운동을 ‘경제적 문제뿐만이 아닌 총체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현재 튀니지 국민의 반발에 비춰보면 벤 알리 측근 인물이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내다보고 “벤 알리 정권 아래에서 탄압을 받아 국외로 망명했던 인사들이 귀국하면서 튀니지 대선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상률 명지대 교수는 “중동 아랍 국가들의 민주화 문제는 하루아침에 부상한 것이 아니며, 자유와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세계사적 흐름”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금상문 한국외대 교수는 “이집트 등 중동 국가에서 불고 있는 민주화 시위의 근본 원인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고”라고 국한시켜 주장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혼돈의 이집트] 무바라크 “공직부패·부정선거 조사”

    이집트 소요사태가 정부와 야권의 정치개혁 추진 합의로 다소 진정 기미를 보이는 가운데 정부가 공직부패와 선거부정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추가 개혁조치를 내놓았다. 반면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청년 단체들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하기 전에는 그 어떤 정부와의 합의도 거부한다고 밝혀 추이가 주목된다. 7일 이집트 관영통신 메나(MENA)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총선과 관련한 부정선거 사건들을 재조사하라고 국회와 고등법원에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검찰도 부패 혐의가 있는 전직 각료 세 명과 집권 여당인 국민민주당의 고위 관료 한 명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여당이 국회 의석을 상당수 잃을 수 있으며, 재선거를 치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야권과 국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무바라크 정권의 조직적인 선거부정으로 여당이 압승을 거뒀다고 주장해 왔다. 이집트 정부는 또 이날부터 야간 통행금지 시간을 종전 ‘오후 7시~오전 8시’에서 ‘오후 8시~오전 6시’로 완화했다. 이런 가운데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새 내각 구성 이후 처음으로 전체 각료회의를 주재했다. 오는 9월 대선 때까지 임기를 채우겠다는 의지를 거듭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6일 폭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임기는 올해로 끝난다.”고 말해 ‘점진적 권력이양’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구(舊)체제 청산’을 외치는 시민들의 요구는 계속됐다. 외신에 따르면 반(反)정부 시위 13일째인 6일에도 카이로 중심가 타흐리르 광장에는 시민 수만명이 몰렸다. 이들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야권의 개헌위원회 구성 합의를 환영하면서도 ‘무바라크 퇴진’이라는 대전제가 먼저 충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4·6청년운동’ 등 청년 단체들은 ‘청년의 분노 혁명 통일 지도부’라는 연합체를 구성해 ‘선(先) 무바라크 퇴진’을 강력히 촉구했다. 연합체에는 ‘정의와 자유 그룹’, ‘문 두드리기 운동’, ‘엘바라데이를 지지하는 대중운동’, 무슬림형제단 등의 대표자들도 참여했다. 군 당국이 타흐리르 광장 일대에서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군 차량 진입을 막는 시위대와 군의 긴장도 고조됐다. 시위대는 광장 주변에 배치된 군 트럭과 탱크에 올라 차량 이동을 막는가 하면 차량이 지나는 길목에 드러누워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 군 진입을 막았다. 군은 탱크 주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공중으로 20발가량 경고사격을 하기도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이집트 여야 헌법개혁委 구성

    6일(현지시간) 이집트 최대 야권세력인 무슬림형제단과 처음 공식대화에 나선 이집트 정부가 여야 공동으로 헌법 개혁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정부와 야당측이 개헌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면서 13일째 이어진 이집트 반정부 시위가 봉합 국면으로 접어드는 동시에 30년 독재정권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환점이 될지 주목된다. 이집트 정부 대변인인 마그디 라디는 “정부와 야당이 헌법에 기초한 평화적인 권력이양에 합의했다.”면서 “헌법 개혁 위원회를 구성, 3월 첫째주까지 헌법 개정안과 입법 개정안을 논의, 제안하기로 합의했으며 위원회에는 다수의 정계 인사와 판사들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무슬림형제단을 비롯, 야당인 와프드당과 타가무당, 청년 야당 단체 등 일부 야권 세력과 면담을 가졌다. 하지만 술레이만 부통령은 이 자리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권력을 위임 받으라는 야당측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AFP통신이 면담에 참석했던 야권 인사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에 앞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술레이만 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 이양 과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석우·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기로에 선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勢불리기 서방 위협?

    이집트 정부가 최대 야권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을 비롯, 일부 야권세력의 개헌 요구를 수용하는 등 전격 협상에 돌입하면서 13일째 지속된 이집트 시위사태가 마무리될지 주목된다. 1928년 이슬람학자인 하산 알반나가 창설한 무슬림형제단은 1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1952년 이집트 최고 실권자였던 가말 압둘 나세르 초대 대통령의 암살을 기도해 이후 이집트 정부로부터 불법조직으로 규정, 배제돼 왔다. 하지만 6일(현지시간) 무슬림형제단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가진 대화에서 개헌을 비롯, 여러 요구사항을 관철하면서 정부와의 관계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형제단’ 정계진출 확대되나 이번 합의로 이집트 시위사태와 정국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전망이다. 무슬림형제단이 웹사이트에 게재한 요구사항에 따르면 이들은 모든 부정부패에 대한 신속하고 책임있는 조사와, 모든 정당에 대한 공정한 기회 부여, 언론의 자유, 국가 통합정부 구성, 투명한 의회 선거 보장, 구금된 활동가 석방 등을 주장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은 수십년 전부터 폭력투쟁을 포기하고 자신들도 다른 정당처럼 선거에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이집트 정부에 민주적 개혁과 선거를 요구해 왔다. 이를 통해 2005년 선거에서는 전체 하원 의석의 20%인 88석을 차지했으나 지난해 11~12월 총선에서는 단 한 석도 획득하지 못했다. 이들이 이번 합의를 계기로 정부에 입김을 불어넣고 세를 불리게 될 경우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들에 위협으로 작용하게 된다. 급진주의 이슬람단체로의 권력 이양을 우려해 왔던 미국정부는 기존의 입장을 바꿔 이집트 정부의 점진적인 권력 이양을 지지한다고 5일 밝혔고 이 과정에서 이집트 군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이집트와의 4차례에 전쟁 끝에 1979년 평화협정을 체결해 중동의 ‘왕따’를 피했던 이스라엘은 이번 합의로 반 이스라엘 기치와 이슬람 정부 확대를 내세우는 무슬림형제단의 세 확대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야권 전체 갈등 비화 가능성 이번 합의가 야권의 대표주자였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등을 배제하고 이뤄진 점이라는 데서 야권 전체의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야권 세력 간의 정권 이양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권력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5일 로이터통신은 현자 협의회를 자칭하는 유력 엘리트 단체가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실권을 위임, 그가 9월 대선까지 과도정부를 이끌며 대선을 치르는 방안을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야권의 인사 25명이 정부 수립을 위한 정권교체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합의로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을 요구해왔던 시위대도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날도 수천명의 시위대가 반정부 시위의 메카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을 메우며 시위를 이어갔지만 시위대는 반 무바라크와 친 무바라크파로 나뉘어 균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날 대부분의 기업과 시중은행들이 업무를 재개하면서 시민들은 일상을 서서히 회복했다. 강국진·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이집트 정부내 무바라크 퇴진 논의”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로부터 하야 압박을 받고 있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점진적으로 권좌에서 물러나도록 할 방안이 이집트 정부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4일 보도했다. NYT는 이날 이집트와 미국 관리들을 인용, 오마르 술레이만 신임 이집트 부통령과 군부 지도자들이 무바라크 대통령이 당장 퇴진하지는 않더라도 그의 권력을 단계적으로 줄일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나면 술레이만 부통령이 이끄는 과도정부가 야당 지도자들을 상대로 개헌 협상에 착수, 이집트 민주화에 나설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망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거취와 관련, 이집트 정부 관리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로 가거나 요양을 위해 독일로 떠나는 방식으로 명예롭게 퇴진하도록 할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WSJ도 미국 관리들과 정통한 이집트인들을 인용, 술레이만 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점진적으로 행정권력을 내놓되 오는 9월 대선까지 명목상의 대통령직은 유지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술레이만 부통령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퇴진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갑자기 물러날 경우 정치적 공백이 생길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집트의 한 고위 관리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임하면 헌법상 이집트 의회 의장이 명목상으로나마 대권을 승계하게 되는데 이는 이집트 체제 변화를 위한 최선의 방도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즉각 퇴진해야 정부와의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한 시위대가 그의 점진적인 퇴진 방안을 수용할지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이집트 야권과 지식인들도 안정적인 체제 변화를 위한 방안들을 제각기 제시하고 있어 주목된다. 야권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2∼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권력을 이양하고 이 위원회가 다음 대선까지 국정을 운영할 방안을 제안했다. 엘바라데이 전 총장은 현 시점에서 이집트 군의 임무는 체제 변화가 안정적으로 이뤄지도록 이를 수호하는 것이라며 국정을 운영할 위원회에 군 출신 인사는 1명만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야권 지도자들이 임시 헌법 마련에 착수했다며 인권 보장에 초점을 둔 이 임시 헌법에 법률가와 전문가들이 동의하면 이를 국민투표에 부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 지식인 단체들도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실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국정 운영을 맡고 있는 술레이만 부통령이 법적으로도 권력을 이양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야권 중심세력인 무슬림 형제단의 지도자 모하메드 엘 벨타구이는 무슬림 형제단은 다음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며 이는 무바라크의 철권통치가 끝나면 이슬람 극단주의가 득세하리라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무바라크 ‘개헌’ 승부수… 엘바라데이와 빅딜 가능성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민주화 시위에 따른 정권 상실 위기를 ‘제도적 민주화 수용을 통한 민심 수습’으로 돌파하려는 기류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의 전두환 정권이 1987년 ‘6·29선언’을 통해 재집권에 사실상 성공했던 사례를 연상시킨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6·10 민주항쟁으로 정권이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2인자였던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6·29선언을 통해 개헌을 요구하는 모양새로 야권의 직선제 개헌 요구를 전격 수용했다. 이로써 시위는 누그러졌고 새 헌법을 통해 대선이 치러졌으나 야권의 분열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면서 사실상 정권을 연장할 수 있었다. 성난 민심으로부터 거센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무바라크 정권도 ‘개헌’ 카드를 들고 나왔다. 오마르 술레이만 이집트 부통령은 3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무바라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야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들과 대화를 시작할 것”이라면서 “야당과의 대화 주제는 헌법 및 법률 개정과 관련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모든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무바라크 정권으로서는 야당의 개헌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무바라크의 급작스러운 퇴진을 피하면서 시간을 벌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술레이만은 무바라크의 최측근으로 무바라크 정권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라는 점에서 ‘한국의 노태우’와 흡사하다. 무바라크 정권의 이 같은 ‘전략’은 미국 정부와의 교감 아래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이집트에 반미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미국은 이집트 국민의 민주화 요구는 지지하면서도 ‘질서 있는 전환’을 강조해 왔다. 9월 대선에 친미성향 후보를 출마시키고 무바라크는 합법적으로 퇴장시키는 출구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무바라크 정권의 개헌 수용 입장에 대한 야권의 통일된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야권의 대표 격으로 활동 중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정부와 대화할 의향이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기 때문에 협상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엘바라데이를 비롯한 야권 온건파는 무바라크의 퇴진이 무슬림형제단 등 급진 이슬람 세력의 집권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문제는 엘바라데이가 야권 전체를 대변할 정도의 인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집트 시위대에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없고 무바라크 퇴진 외에 목표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한계’라고 지적했다. 야권이 분열할 경우 무바라크 정권의 ‘개헌 카드’가 먹혀들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이집트 反무바라크 →反美시위 비화

    무바라크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가 주말을 넘기며 반미 시위로 비화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독재를 비난하며 정권 타도를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미국이 무바라크를 비호하고 있다.”는 등의 비난 구호도 시위 현장에서 거침없이 등장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반미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으로의 급진적인 정권교체를 경계하면서 무바라크 정권 주도의 정치개혁을 강조하고 나섰다. 31일로 일주일째를 맞은 이집트 민주화 시위 사태가 독재 대 반독재와 친미 대 반미가 뒤엉킨 복잡한 국면으로 빠져드는 형국인 것이다. 미국 등 서방의 입장에서는 경우에 따라 이집트 사태가 무바라크 개인의 진퇴 차원을 넘어 대(對)중동 정책 전반을 새로 써야 할지 모르는 중대한 고비가 되고 있음을 강력히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집트 수도 카이로 중심부를 장악한 시위대는 31일 경찰의 진압에도 불구하고 계속 세를 확산시킨 데 이어 1일(현지시간)을 기해 무기한 총파업과 함께 100만명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곳까지 행진하겠다고 밝혀 이날이 이집트 사태의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의 반정부 투쟁에 맞서 무바라크 대통령은 개각 단행 하루 만인 30일 아흐메드 샤피크 신임 총리에게 경제개혁과 민주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사실상 정권퇴진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의 주도로 정치개혁과 권력 이양 작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시위대는 “지금 필요한 것은 무라바크의 퇴진뿐”이라고 일축했다. 무슬림형제단 등 반정부단체들은 무바라크가 임명한 새로운 내각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과도정부 구성 방안 논의에 들어갔다. 반면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CNN방송 등에 출연, “우리는 ‘질서 있는 전환’(orderly transition)을 촉진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무바라크가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진정한 민주화에 도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상연·유대근기자 carlos@seoul.co.kr
  • 美, 친미 무바라크 물러나도 무슬림형제단 집권만은…

    美, 친미 무바라크 물러나도 무슬림형제단 집권만은…

    이집트 시위 상황이 격화되면서 포스트 무바라크 체제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 행정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시위 초기 무바라크 정권의 퇴진에는 반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미국은 현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본격적으로 ‘무바라크 이후’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무바라크 정권 붕괴가 이슬람형제단 등이 주도하는 반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막아야 한다는 게 미 행정부의 판단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9일과 30일 잇따라 영국, 이스라엘,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 각국 정상과 전화통화를 하며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30일 CBS방송에 출연해 “질서 있는 전환을 촉진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힐러리 장관의 이 같은 언급에 대해 30일 “무바라크의 퇴진이 자칫 이집트에서 정치적 진공상태를 초래해 반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9일 일리애나 로스레티넌 하원 외교위원장이 “책임 있는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기준을 충족하는 후보들이 참여하는 선거만 지지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무슬림형제단을 겨냥한 발언이라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미국은 무엇보다 이라크 집권세력의 굳건한 버팀목이 돼 온 군부를 다독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30일 무함마드 후세인 탄타위 이집트 국방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장시간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했던 것으로 AP통신 등이 전했다. 미국은 이집트 군부에 대한 설득작업을 통해 이들을 무바라크 정권이나 시위대 어느 한 쪽도 아닌 ‘중립지대’로 묶어두는 한편 그 다음 수순으로 이집트 내 주요 정치세력이 체제 전복과 같은 극단적 방법이 아닌 협상과 타협을 통해 ‘포스트 무바라크 체제’를 꾸려나가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급작스러운 체제 전복으로 혼란이 이어질 경우 미국으로서는 자칫 대 중동전략의 핵심축을 잃게 될 뿐더러 자칫 극단적인 반미 세력이 집권할 경우 아랍권 전체에 반미 기류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미국의 경계대상인 무슬림형제단은 1928년 결성된 이집트 최대 정치·사회단체로, 하마스 등 중동 과격단체의 뿌리에 해당한다. 정부의 탄압 속에서도 2005년 총선에서는 조직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전체 의석의 20%나 되는 88석을 차지할 정도로 강한 조직력을 자랑한다. ‘이슬람법(샤리아)에 근거한 사회’를 목표로 삼지만 최근 폭력 사용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등 전에 비해서는 온건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제 테러단체인 알카에다와는 수십년간 앙숙 관계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시위대 “1일 100만명 거리행진” 내무장관 교체 등 국면전환 시도

    시위대 “1일 100만명 거리행진” 내무장관 교체 등 국면전환 시도

    30년 철권통치를 종식시키려는 이집트 시민들의 반정부 외침이 시위 발생 7일째를 맞으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새 내각을 발표하고 일자리 창출 등 민심을 달래기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싸늘하게 돌아선 시민들은 ‘무바라크의 퇴진이 유일한 답’이라며 맞섰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개각 단행 이틀만인 31일(현지시간) 시위대로부터 사임을 요구받은 하비브 알 아들리 내무장관을 마후므드 와그디 전 경찰 총사령관으로 교체하는 등 전면 개각을 단행했다고 이집트 국영방송이 보도했다. 재무장관에는 사미르 모하메드 라드완, 무역장관에는 사미하 파우지 이브라힘을 각각 임명하는 등 경제 각료도 새로 내세웠다. ●시위대 총파업 경고 무바라크 대통령은 또 신임 아흐메드 샤피크 총리에게 경제개혁 및 민주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자신이 샤피크 총리에게 보낸 지시 서한을 이집트 관영 나일 TV를 통해 공개하며 내각에 시위의 도화선이 된 경제난 극복을 위해 물가상승 억제 및 일자리 창출 방안 마련을 주문했다고 밝혔다. 또 정치 개혁 방안을 세우기 위해 야권과 폭넓은 대화를 시작하라고 총리에게 지시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또 모하메드 탄타위 국방장관을 만나 사태 수습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정부의 개혁 약속이 ‘헛공약’에 불과하다며 대규모 시위와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별렀다. 투쟁의 근거지가 된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는 정상 출근일인 30일에도 수만명의 시민이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무바라크, (출국할)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구호를 외치는 등 평화 시위를 벌였다고 BBC가 전했다.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 지도부는 “1일 카이로에서 100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거리행진이 계획됐다.”고 밝혔다. 또 운하도시인 수에즈를 중심으로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타흐리르 광장의 주진입로가 철조망으로 봉쇄되는 등 시위세력을 약화시켜려는 정부의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반정부 시위 취재를 금지 당한 알자지라 영문 뉴스채널 소속 기자 6명이 31일 카이로 호텔에서 이집트 경찰에 한때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또 1일 예정된 100만명 거리행진에 대비, 이집트정부가 모든 열차 운행을 중지하기로 했다고 관영매체가 보도했다. ●알자지라 기자6명 체포됐다 석방 시위 일주일째에 접어든 31일 정지됐던 도시 기능이 일부 복구되는 모습도 감지됐다. 주말 이후 거리에서 종적을 감췄던 경찰과 환경미화원이 이날 아침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군부와 시민 간 시위현장의 ‘불안한 동거’는 이날도 계속됐다. 전날 카이로 등 주요 도심에 배치된 군 탱크와 장갑차는 30일에도 자리를 지켰고 시위대는 탱크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고 군인을 무동 태우는 등 서로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군인들도 밤새 거리를 활보한 시위대를 연행하지 않았다. 한편 안보 공백을 틈탄 일부 폭도의 상점 약탈이 이어졌다. 특히 30일 새벽 이집트 전역 교도소에서 수감자 수천명이 달아났으며, 이집트 최대 야권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의 간부와 조직원 34명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 조직원들도 탈옥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개혁 기수·무바라크의 남자 ‘차기’ 빅딜 나서나

    개혁 기수·무바라크의 남자 ‘차기’ 빅딜 나서나

    ‘개혁의 기수’ 엘바라데이와 ‘무바라크의 남자’ 술레이만이 ‘빅딜’에 나선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왼쪽)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최측근인 오마르 술레이만(오른쪽) 부통령에게 여야를 아우르는 통합 과도정부에 합류할 것을 제의했다고 ABC방송이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ABC ‘월드투데이’ 진행자 엘레노어 홀의 이 같은 물음에 중동 정치전문가 파와즈 저지스는 “엘바라데이는 기본적으로 이집트가 선거를 준비할 수 있는 국가 통합 정부를 원하고 있다.”면서 여야 지도부 간 빅딜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여기서 키를 쥐고 있는 것은 ‘군부’다. 군부가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판도가 결정된다. 저지스는 “이 구상은 전면에서 국가 통합을 구성하는 엘바라데이와 다른 반대파 인물과 함께하는 술레이만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규모 시위가 예고된 향후 1~2일간은 상황이 유동적인 만큼 이 빅딜에는 불확실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정부는 이미 내부적으로 무바라크의 시대가 끝났다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을 이어갈 수 있도록 술레이만 등 친미 인사가 구심점이 되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개혁 열망 중심에는 엘바라데이 전 IAEA 사무총장이 서 있다. 그는 전날 과도정부의 책임자로 지명된 데 이어 이집트 최대 야권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이 여당인 국민민주당을 배제한 거국정부 구성을 그와 논의 중이라고 밝히는 등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하지만 외교관 출신으로 30년 이상을 해외에서 활동해 국내 기반이 취약한 데다, 반미 성향으로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 등이 한계다. 1995년 무바라크를 암살 위기에서 구하면서 2인자로 군림해 온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 역시 엘바라데이와의 연대는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의 신뢰를 받고 있는 데다 정보부장으로 오래 활약하면서 이집트의 대외관계 등과 관련한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그이지만 당장 무바라크와 한묶음으로 엮여 타도 대상으로 내몰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빅딜설 속에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도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2005년 대선 후보로 나섰던 알가드당 대표 아이만 누르도 정부와 요구 조건을 협상할 야당 측 위원회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카이로 시내를 메운 시위대와 별개로 이집트 여야 정파 지도부 내부의 복잡한 이합집산이 본격화한 양상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이집트 군부도 무바라크 사퇴 촉구”

    이집트의 반정부 민주화 시위 사태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를 진정시킬 열쇠를 쥐고 있는 군부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사퇴를 촉구했다고 알려지면서 30년 독재 정권의 운명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영국 더타임스는 30일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 부통령에 임명된 군 중장 출신이자 무바라크의 측근인 오마르 술레이만과 모하메드 후세인 판타위 국방 장관은 전날 무바라크와 만나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두 사람은 그(무바라크)에게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꺼냈다.”고 전했다. 무바라크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집트 국영 방송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날 오전 한 부대의 작전 지휘부를 방문했으며 부통령, 국방장관,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이날 오후 4시에 시작되는 통금을 앞두고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 광장에 탱크가 추가로 등장하고 전투기 2대가 저공 비행해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CNN은 이 같은 군의 움직임에 대해 시위대를 위협하기 위한 것인지 정부(내무부)와의 갈등을 표출하는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시위가 엿새째로 접어들었지만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시위는 수그러들기는커녕 확산일로에 있다. 이날 통금 시간을 넘어서도 시민들은 계속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분노한 시위대는 전날 카이로에서만 최소 17곳의 경찰서를 불태우고 총기와 탄약을 탈취했다. 약탈자들이 상점과 부유층 주택가에서 물건을 훔치고 이날 오전까지 최소 3곳의 교도소에서 수천명의 수감자가 탈출, 경찰과 총격을 벌이는 등 혼란상이 펼쳐졌다. 지금까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최소 150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다쳤다고 알 자지라 방송은 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앞서 29일 밤 술레이만 정보국장을 부통령에 임명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시위대는 정권 퇴진 운동을 계속해 나갈 뜻임을 분명히 했다.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한 야당 단체로 이뤄진 변화를 위한 국민연합’(NAC)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에게 무바라크 대통령 정권과 협상에 나서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엘바라데이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협상의 여지가 없다. 무라바크는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유혈사태가 확산되자 이집트 국민과 외국인들의 탈 이집트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서방 각국은 일제히 무바라크를 압박하고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집트 정부가 정치개혁을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이집트 유혈시위] 사우디 ‘무바라크 감싸기’ vs 이란 ‘시위대 적극 지지’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의 민주화 운동 불길이 이집트를 덮친 가운데 중동의 각국 지도부는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린 반응을 내놓았다. 우선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위대로부터 뭇매를 맞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을 감싸고 나섰다. 압둘라 사우디 국왕은 29일(현지시간) 이집트 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시위대의 약탈과 파괴행위를 비난했다고 사우디 관영 SPA통신이 전했다. 모로코에서 요양 중인 압둘라 국왕은 오전 무바라크 대통령과 한 전화통화에서 “일부 침략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이집트의 치안과 안정을 파괴시키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집트 정부 및 국민과 함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압둘라 국왕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도 통화를 갖고 “이집트의 안정과 국민의 안전을 놓고 거래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30일 “30년간 지속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평화 협정은 유지돼야 한다.”며 시위 사태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1979년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은 이후 무라바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현 정권이 물러나고 야권의 무슬림 형제단이 득세할 경우 양국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이란 FNA통신에 따르면 외교부 대변인 라민 메흐만파라스트는 이날 “이집트 국민의 시위는 정의를 쟁취해 국민적·종교적 의지를 깨우치려는 움직임”이라고 밝혔다. 미국 등 서방 각국은 친미 성향의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면 무슬림 정치세력이 이집트 정권을 장악, 이란과 연대해 반미노선을 걸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월드이슈] 엘바라데이 귀국 이틀만에 가택연금… 무바라크 ‘초강수’

    [월드이슈] 엘바라데이 귀국 이틀만에 가택연금… 무바라크 ‘초강수’

    ‘분노의 금요일’을 맞은 이집트가 혼돈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난 군중 수만명이 28일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무 바라크 집권 30여년간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로, 이집트 전역 28개 지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고 AP, AFP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이집트는 하루종일 암흑에 잠겼다. 이날 0시를 넘어서자 시위대의 결집을 차단하기 위한 정부의 꼼수로 인터넷과 휴대전화 서비스가 차단됐다. 정오 예배가 끝난 뒤 시위가 개시되자 경찰의 최루탄 세례로 도시 곳곳이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카이로 도심 모한디신 지구에만 2만명의 시위대가 몰렸고,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델타 등 지방도시에서도 시위 인파는 점점 불어났다. 이날 예고대로 카이로 도심 기자 모스크 앞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무바라크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경찰의 물대포 세례를 맞고 모스크 안에 갇혔다 가까스로 빠져나왔으나 가택 연금에 처해졌다. 경찰은 시위대에 고무탄으로 경고사격을 날린 뒤 최루탄을 쏘며 강경 진압에 나섰다. 시민들도 카이로 경찰서 2곳에 불을 지르고 경찰과 경찰차량에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하게 맞섰다. 가장 시위가 과격했던 곳은 운하도시인 수에즈로 시위대가 경찰서에 보관된 무기를 탈취하고 경찰차량 20여대에 불을 질렀다. 이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 1명이 숨졌다. 2005년 무바라크에게 도전장을 던진 야당 대선후보인 아이만 누르(알가드당 대표)도 부상을 입었다. 이로써 이번 반정부시위로 시민 6명, 경찰 2명 등 총 8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을 입었다. 시위대는 카이로 시내 무바라크 대통령궁 인근과 집권당 사무실로 몰려가는 등 권력의 중심부를 향해 거침없이 진격하면서 무바라크 대통령을 위협했다. 한편 반정부 시위 나흘간 무라바크 대통령의 행방이 묘연해 국외 탈출설도 퍼졌지만 이집트 현지 언론은 이날 무바라크 대통령은 수에즈 시장과 통화하는 등 시위 상황을 살폈다고 전했다. 시위 전날인 27일에는 시나이 지역의 모하메드 아테프(17)가 총에 맞는 동영상이 로이터통신을 통해 보도되고 유튜브 등 동영상 공유 사이트 등을 통해 퍼지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2009년 이란 대선 부정 선거 논란 당시에는 총격으로 숨진 여대생 네다 솔탄의 동영상이 시위를 확대시킨 바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2005년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지도부 탄압을 통해 잠재우는 등 집권 30년 동안 수많은 고비를 넘겨 왔다. 그러나 인구의 40%가량이 빈곤 상태에 있을 정도로 분배 정책에 실패하면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통치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반정부 시위는 ‘4·6 청년운동’이 전면에 서고 최대 야권세력이자 강경 이슬람단체인 ‘무슬림형제단’과 ‘개혁을 위한 국민연합’(NAC) 등이 뒤따르는 형국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찰은 시위에 앞서 ‘무슬림형제단’의 핵심 인물 등 주요 정치인 20명을 잡아들였다. 아랍권 독재 국가 가운데 국민 저항에 대한 내성이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은 이집트에서의 시민혁명 성공 여부는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이상의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격화되는 시위…이집트 앞날은] 무바라크 3연임 반대…‘30여년 외국 생활’ 걸림돌

    [격화되는 시위…이집트 앞날은] 무바라크 3연임 반대…‘30여년 외국 생활’ 걸림돌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 이어 이집트에서 ‘코샤리(이집트 전통음식) 혁명’이 이뤄질 수 있을까. 그 해답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것이 모하메드 엘바라데이의 등장과 역할이다. 엘바라데이(69)는 2009년 1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뒤 이집트의 정치개혁을 촉구하며 민주화 세력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30년간 장기 집권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선 연임 제한을 위한 개헌과 비상계엄법의 폐지 주장은 엘바라데이를 오는 9월 대선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강력한 대항마로 부각시켰다. 그는 지난해 11월 총선 국면에서 집권 국민민주당의 선거조작 가능성을 제기하며 야권에 선거 보이콧을 제안한 바 있다. 이후 총선이 집권당의 압승으로 마무리되자 부정선거 코미디라며 일축하기도 했다. 무바라크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엘바라데이지만 걸림돌도 없지 않다. ‘(그가) 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집권세력의 비난과 거리의 반정부 투쟁에 참여하지 않고 30년 남짓 외국에서 생활했다는 반대파의 비판을 우선 헤쳐나가야 한다. 최대 야권조직인 무슬림형제단과 힘을 합칠 것인지 여부도 그의 숙제다. 외교관 출신인 엘바라데이는 4년 임기의 IAEA 사무총장을 12년간 역임하면서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등 강대국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과 독자성을 지켜내 국제적인 영향력과 신망을 얻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7일 “엘바라데이가 이라크와 이란 등의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협상을 주장함으로써 중동에서 신뢰를 받았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3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원자력정상회의에서는 “북한이 핵기폭장치를 보유한 것으로 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고 말해 시선을 끌기도 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격화되는 시위…이집트 앞날은] “무바라크 2代 세습 방법 고심했다”

    [격화되는 시위…이집트 앞날은] “무바라크 2代 세습 방법 고심했다”

    30년간 장기 집권해 온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오는 9월 대선에서 자신의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물려줄 방법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던 사실이 28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외교전문을 통해 드러났다. 카타르 도하 주재 미 대사관이 지난해 2월 24일 본국으로 보낸 이 외교전문에는 11일 전인 13일 카타르의 하마드 빈 자심 알 타니 총리가 존 케리 미 상원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어떻게 아들(가말)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줄지 고심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가말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둘째 아들로, 2002년 집권 국민민주당(NDP)의 정책위 의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1973년 중동 전쟁 당시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파일럿 출신의 아버지와 달리 군 경험이 없다. 이를 근거로 미 대사관은 2009년 5월 외교문서에서 무바라크가 다시 출마할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 대사관은 위키리크스가 이날 공개한 같은 해 7월 외교문서에서는 청년 장관을 지낸 NDP 소속 알리 에딘 엘 데수키 박사의 말을 인용, 이집트 군부가 아들 가말로의 권력 승계를 수용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데수키 박사는 “군이 여전히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설명했다. 또 그는 이집트의 야권은 힘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알 타니 총리는 무바라크가 최대 야권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의 세 확산을 차단할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 중이라면서 “현재 이 단체 소속 1만명이 재판 없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고 전문은 전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엘바라데이 귀환… 이집트 격랑속으로

    엘바라데이 귀환… 이집트 격랑속으로

    28일 이집트에서 두 번째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예정된 가운데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귀국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가 등장한다는 것은 사공만 있던 배에 선장이 등장하는 격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당국 ‘저항매체’ 트위터 서비스 차단 로이터통신은 오스트리아 빈에 머물고 있는 엘바라데이가 27일 귀국한다고 보도했다. 200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바라데이는 2009년 11월 IAEA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뒤 정치개혁 운동을 벌여왔고 자연스럽게 오는 9월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 때문에 무바라크 정권으로부터 생명을 위협받고 있지만 시위가 계속되자 귀국을 결정한 것이다. 그는 지난 22일 반정부 시위를 지지한다면서도 직접 참여하지는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카이로로 돌아가 거리로 나갈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집트로 출발하기 전 빈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국민의 요청을 받으면 이집트의 ‘권력 이양’을 이끌어 나갈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고물가와 실업 대책 부재에 대한 분노에서 촉발된 이번 시위는 야당과 ‘4월 6일 운동’과 같은 청년 단체가 이끌고 있다.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용률이 70%가 넘는 덕에 시위대를 조직하는 것은 수월한 편이지만 여당이 하원 의석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등 야당의 힘은 미약하다. 엘바라데이가 시위대에 합류키로 하면서 30년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은 새로운 동력을 갖게 됐다. 무바라크 정권은 28일로 예정된 ‘분노의 금요일’ 시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무슬림뿐만 아니라 독자적 기독교 종파인 콥트교인들에게도 금요 예배가 가장 중요하다. 예배를 마친 이들이 시위대에 대거 합류할 경우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질 수 있고 이는 오는 9월로 예정된 대선에까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집권여당인 국민민주당 사프와트 엘셰리프 대표는 대화를 위한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면서 28일 집회 때 보안군은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AP통신이 27일 보도했다. 하지만 무바라크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그는 대통령에게는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美 등 국제사회 “시민권 존중해야” 시위대와 경찰 간의 쫓고 쫓기는 상황은 시위 사흘째인 이날도 계속됐다. 카이로에서 시위대 1명, 경찰 1명이 추가로 사망함에 따라 희생자는 6명으로 늘었다. 사복경찰 수천명이 거리에 깔리면서 지금까지 언론인 7명을 포함한 860명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희생자가 늘어나자 이집트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도 거세지고 있다. 기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은 “이집트 사태는 민주화와 인권과 시민권에 대한 존중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랍권 최대 동맹국에 대한 지지를 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시위대를 탄압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시위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트위터는 지난 25일 이후 이집트 내에서 서비스가 차단됐고 스웨덴의 휴대전화 동영상 공유 서비스인 밤유저도 이집트에서는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다. 페이스북 역시 작동되지 않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푸틴의 테러 보복대응, 부메랑 될 것”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25일(현지시간) 전날 모스크바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에 복수를 다짐하면서 강경 대응 방침을 천명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외신들은 이슬람 소수민족을 겨냥한 푸틴의 이 같은 ‘보복 대응’이 다시 피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AP통신은 푸틴의 강경책이 테러 증가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뿐이라고 꼬집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도 “(이슬람에 대한 푸틴 정부의) 온건책은 비현실적이며 강경책은 이슬람 반군 지원자만 늘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슈피겔은 보안군이 캅카스(코카서스)에서 벌이는 ‘초법적인 군사활동’ 때문에 “반군 한명을 죽일 때마다 또 다른 이들이 반군에 가입하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캅카스 주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는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푸틴의 이슬람정책은 체첸을 대상으로 한 초토화 작전으로 상징되는 강경책을 위주로 하면서 대규모 관광단지 개발이라는 온건책도 병행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푸틴 총리가 권력 강화를 위해 줄곧 슬라브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바람에 슬라브족과 무슬림 사이의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에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이슬람 등 소수민족에 대해 무차별 폭행을 가하자, 이를 참지 못하고 소수민족 대표들이 자위권을 위해 무장하겠다고 선언한 일까지 발생하는 등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올해 18조 3600억원을 투자하는 야심찬 캅카스 지역 경제개발 계획을 발표하는 등 유화책을 지난주 꺼내든 바 있다. 하지만 슈피겔은 “스키 리조트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개발을 통해 캅카스 지역에서 관광산업을 부흥시키고 이슬람 반군을 약화시킨다는 발상은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정책보다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다. 700만명에 이르는 러시아의 무슬림 인구는 주로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캅카스 지역에 거주한다. 150년 넘게 피의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는 체첸은 캅카스 지역에 위치해 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쫓겨난 독재자’ 벤 알리는 누구

    ‘쫓겨난 독재자’ 벤 알리는 누구

    1881년부터 75년간 프랑스령이었던 튀니지는 1956년 3월 독립한 뒤로 단 두명의 국가 지도자만이 존재해 왔다. 독립 운동을 이끌었던 하비브 부르기바 초대 대통령이 30년간 권좌를 지켜온 튀니지는 1987년 당시 총리이던 제인 엘아비디네 벤 알리(74) 현 대통령의 무혈 쿠데타로 정권 교체를 이뤘다. 국민의 환영 속에 막을 올린 새 정권도 오래 지나지 않아 민주주의를 도입하겠다던 약속을 저버렸다. 종신 대통령 직함을 없애고 최대 3선까지만 허용하도록 했지만 2002년 4선 도전을 위해 다시 개헌했다. 지난 2009년 5선 연임에 성공, 23년 넘게 튀니지의 독재자로 군림했다. 임기 초기를 제외하면 정권 유지에 ‘올인’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야당 인사들을 끊임없이 탄압하고 국민들의 인권을 제약했다. 튀니지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국이 안정돼 있지만 1058만명의 국민들은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다른 독재국들과 달리 경제적 풍요라는 ‘당근’을 주지도 못했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 추정치는 9500달러로, 1만달러가 안 된다. 실업률은 1990년부터 지금까지 12~16%를 유지했고 최근에는 물가, 특히 식품 가격이 치솟았다. 석유가 나오지만 하루에 수백만 배럴을 생산하는 인근 산유국과는 달리 일일 산유량이 고작 9만 7600배럴 정도에 불과하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페니키아, 로마, 비잔틴, 이슬람 등 다채로운 인류문명의 유적지를 지니고 있는 튀니지는 GDP의 54.8%가 관광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 제2위의 올리브 수출 국가이긴 하지만 농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인구의 98%는 수니파 무슬림이며, 1%는 기독교인이다. 아랍권 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많은 1000명가량의 유대인 인구도 살고 있다. 공식 언어는 아랍어이며, 무역 등에서는 프랑스어도 통용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방글라데시, 천상의 미소 속으로

    방글라데시, 천상의 미소 속으로

    세계 최고의 인구밀도로 유명한 나라 방글라데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도 다카의 인구는 하루 2000명꼴로 늘어나고 있다. 교육의 기회조차 보장되지 않고 풍족하지 않은 환경이지만 스치는 사람들의 얼굴엔 순박한 웃음과 낯선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하다. 10일부터 14일까지 매일 오후 8시 50분에 방송되는 EBS ‘세계테마기행’은 ‘남아시아의 등불, 방글라데시’ 편을 방송한다. 방글라데시 어디에서든 여행객들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는 것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연신 방글거리는 백만불짜리 미소의 아이들이다. 전 국민의 90%가 무슬림인 이 나라에서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천상의 섬이라 불리는 방글라데시 유일의 산호초 섬인 세인트마틴은 아름다운 풍광뿐 아니라 이슬람 교육의 메카로도 유명하다. 이슬람 종교학교 ‘마드라샤’에서 일곱 살 때부터 히잡과 두피를 쓰고 등하교하고 코란을 암송하는 방글라데시 아이들을 만나 본다. 방글라데시는 아직까지 교육의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나라기도 하다. 수도 다카 인근의 아슐리아 강 주변엔 수백개의 벽돌공장 굴뚝이 쉼 없이 연기를 내뿜고 있다. 이곳에서는 아직 학령기에 있는 아이들이 학교가 아닌 공장에서 먹고 자며 출퇴근을 한다. 열네살 샤잉은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벽돌을 빚어 내는 보조공이다.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가족들에게 보내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는 샤잉의 하루를 함께해 본다.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인 콕스바자르는 방글라데시의 대표적 휴양지다. 비치파라솔이 끝도 없이 이어진 이 해변에서 가장 찾아보기 힘든 것은 다름 아닌 수영복.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옷차림 그대로 파도를 즐기고 소와 말이 일광욕을 즐기는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브라질과 콩고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물이 많은 나라인 방글라데시. 캅타이 호수는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큰 인공 담수 댐이다. 50년 전 수력발전을 위해 지어진 이 커다란 댐은 식수와 요리, 빨래 등 지역민들의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수자원인 동시에 수십종에 달하는 물고기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십여개의 소수부족 중에서도 가장 큰 차그마족은 댐이 만들어지면서 수몰된 지역에 살던 선주민이다. 차그마족은 90%가 무슬림인 방글라데시에서도 자유연애를 즐기며 부족 내에서 혼인을 한다. 전통놀이나 얼굴의 생김새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 문화와 닮은 차그마족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갈등의 시대, 해법을 논하다] ‘부디스트 크리스찬’ 폴 니터 & ‘한국의 고승’ 진제 대선사

    [갈등의 시대, 해법을 논하다] ‘부디스트 크리스찬’ 폴 니터 & ‘한국의 고승’ 진제 대선사

    “일부 비뚤어진,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리스도교인을 향해 함께 미워하지 말고 불교가 먼저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폴 니터 교수) “불교는 갈등을 부추기고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형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둘이 아니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닌데, 무슨 투쟁이 있고 반목이 있겠습니까.”(진제 대선사) 이심전심(以心傳心)이며, 염화미소(拈華微笑)였다. 한국 선(禪) 불교의 법맥을 잇는 큰스님이 알 듯 모를 듯한 총론을 얘기하면 푸른 눈의 세계적인 신학자는 구체적인 각론으로 응답했다. 통역을 가운데 두고 선문답처럼 오가는 대화 속에서도 현실적 의제에 대한 공감의 폭과 깊이는 무르익어만 갔다. 언뜻 낯설어 보이는 만남과 대화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세 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갈등이 증폭되는 시대에 적지 않은 울림을 줬다. 2010년이 저물어가는 31일 오후 대구 동화사 설법전 앞마당은 전날 내린 눈이 소복이 덮여 있었다. 동화사 들머리 앞쪽에 내걸린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과 사찰 경내에 걸린 ‘불교를 탄압하는 이명박 정부 규탄한다’는 현수막이 유독 눈길을 끌었다. 종교 갈등, 사회 갈등이 심상치않은 시기임을 짐작케 한다. ●“기독교·불자간 갈등 유감스러워” 조계종의 대표 선승인 진제 대선사와 세계적인 종교신학자인 폴 니터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교 교수가 불교, 기독교 사이의 경계와 벽을 허물고 나눈 대화에 더욱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설명하기도 한다. 종교 간 갈등, ‘4대강 개발 논란’ 갈등 등 사회 전반에 반목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두 사람의 만남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동화사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이른바 ‘동화사 땅밟기’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이는 등 한국 사회 내 종교 간 갈등의 첨예한 현장 중 한 곳이었기에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상처가 깊을수록 치유의 효과도 큰 법이다. 니터 교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최근 한국 사회의 군사적, 종교적 갈등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내놓았다. 니터 교수는 “현재 남북 사이에 커다란 군사적 긴장 관계가 형성돼 있으며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기독교와 불자들 사이의 갈등도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봉은사와 동화사에서 무례하게 행동한 이들은 전체 그리스도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럽게도 생각하고 내가 대신 사죄한다.”고 말했다. 진제 대선사는 이에 대해 “어려운 시기에 니터 교수가 구만리 장도에 오셔서 한국을 염려해주니 대단히 반갑고 고맙다.”면서 “모든 불자와 그리스도인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합심해 인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라고 화답했다. 니터 교수는 단순한 사과의 뜻을 넘어 그리스도인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도 에둘러가지 않았다. 그는 “이웃은 물론 적까지 사랑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는데 이들은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고 이는 예수님의 복음과 어긋난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예수님의 근본적 가르침인 정의, 평화, 사랑의 가치로 돌아가야 할 때”라고 자신의 다원주의적 종교관의 핵심을 피력했다. 두 영적 지도자들은 굳이 수다스럽게 자기 의견을 내놓을 것도, 서로 상대방 의견에 애써 동의할 것도 없었다. 많은 말을 섞지 않았음에도 종교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상통됐다. 72세, 77세 두 원로의 대화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겼건만 훈훈함만 쌓여가며 그칠 줄 몰랐다. 서로에 대한 인간적 궁금함도 묻고 답해졌다. “저는 로만-가톨릭이에요. 어릴 적 사제가 됐다가 30세에 사회로 돌아왔죠. 유일 진리를 얘기하는 그리스도교임에도 다원주의 가치를 갖게 된 것은 20대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마침 로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2000명 이상의 가톨릭 주교들이 모였고 ‘다른 종교에도 하느님이 계시고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다.’는 의견들이 오고갔었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배우는 것은 기회일 뿐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큰스님’께서는 어떻게 깨달음을 얻으셨나요?” 니터 교수는 진제 대선사를 부를 때마다 꼬박꼬박 서툰 우리말로 ‘큰스님’이라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한국 선불교의 대표적 은둔 수행승인 진제 대선사는 10여분가량 깨달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니터 교수는 눈을 반짝거리며 듣다가 하나의 화두를 붙들고 2년 반 동안 수행한 뒤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진제 대선사는 “분별없는 참된 나, 즉 인간 본연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 청정무구의 평화로운 마음을 되찾는 방법으로서 선 수행이 중요하다.”면서 “선은 불교 전통으로 이어오는 것이지만 신앙의 대상이 아닌 만큼 종교를 떠나 인간 누구나 할 수 있는 수행법”이라고 말했다. 다만 세상에 접근하는 구체적인 방식에는 작은 이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진제 대선사가 “우리는 자아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참나를 발견하라는 간화선을 던지는 것”이라면서 “내 눈이 어두운데 중생을 안락국토로 인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명상 수행 동안에도 고통받는 사람 있음을 생각해야” 하지만 니터 교수는 “내가 지금 명상 수행을 하는 동안에도 지구에는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들, 전쟁과 폭력, 고문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진제 대선사와 생각이 다름을 내비쳤다. 니터 교수는 함께 방문한 그의 부인 캐서린 코넬과 함께 서구사회에서 보기드물게 ‘그리스도-불자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1980년대부터 전쟁과 기아, 고통이 있는 곳에서 사회운동을 해온 탓이다. 그 또한 세계적 권위의 가톨릭 신학자이면서도 오랫동안 불교 선(禪) 수행을 해왔고, 최근에는 달라이 라마로부터 티베트불교 전통에 따라 ‘연꽃 치유자’(Lotus Healer)라는 법명과 함께 수계도 받았다. 공식적으로 ‘불자-그리스도인’이 된 셈이다. ‘부처님이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다’는 그의 최근 저서는 미국을 비롯해 서구 종교계에 큰 화제를 몰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진제 대선사는 대담을 마친 뒤 니터 교수에게 ‘진아’(眞我)라는 법명과 함께 직접 쓴 ‘처처작주’(處處作主·어디에 머무르건 참나를 찾아 삶의 주인이 되라는 뜻) 편액을 선물하며 이미 충분히 가까워진 종교 간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니터 교수는 “불교식 선 수행이 나의 기독교 신앙을 더욱 성숙시켰다.”면서 “나는 이제 72세인데 큰스님처럼 수년 동안 화두 붙들고 수행하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까요?”라고 기쁨과 감사의 뜻을 표현했다. 이날 두 정신적 지도자의 만남은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고려 최초의 대장경) 제작 1000년인 2011년을 맞아 특별히 성사된 ‘밀레니엄 평화 대담’이다. 외세 침략 앞에 무력으로 맞서지 않고 종교적 염원이라는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장경을 조성했던 정신을 기린다는 의미다. ●종교초월 사회 통합위한 ‘야단법석’ 진제 대선사와 니터 교수의 대담 이후에는 동화사 수좌 스님들을 비롯해 대구 경북 지역 불자와 기독교 단체가 니터 교수와 함께 한자리에 모이는 ‘야단법석’(野檀法席)을 펼쳤다. ‘불교-기독교 간 수행 전통에 대한 이해와 교류’를 주제로 한바탕 깊은 얘기를 나눴다. 행사를 주관한 동화사 주지 성문 스님은 “이번 대화는 종교의 벽을 넘어 21세기 함께 사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마련했다.”면서 “대화를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선 불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종교를 초월하여 사회 통합과 평화를 이뤄내자는 불교계의 간절한 의지를 전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니터 교수는 1일 동화사에서 초청 강연을 마친 뒤 5일까지 부산 해운정사, 부산 범어사, 서울 국제선센터 금차선원을 잇는 전국 순회 평화 토크를 가진 뒤 6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대구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폴 니터 1939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1966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정을 이수, 목사가 됐으며 1972년 독일 마르부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부터 미국 유니온 신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달라이 라마, 데스몬드 투투 등과 함께 평화평의회국제위원회의 이사로 활동해으며 무슬림과 힌두, 불교 신도들과의 심층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의 정점에 서 있는 그는 교회 중심주의·그리스도 중심주의에서 신 중심주의로, 해방의 실천을 통한 구원 중심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세계를 돌며 마음의 평화와 세계 평화에 대해 설파하는 인기 강연자이다. ●진제 대선사 1934년 남해에서 태어났다. 1954년 해인사로 출가해 전국 선원에서 수행했으며, 향곡 선사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았다. 경허-해월-운봉-향곡으로 이어지는 한국 선불교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조계종 기본선원 조실(사찰의 최고 어른)과 동화사 조실이다. 선객들 사이에서 ‘북송담, 남진제’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인천 용화사의 송담스님과 더불어 불교계를 대표하는 정신적 지도자로 꼽힌다. 1971년 부산에 해운정사를 창건했다. 선학원 이사장, 문경 봉암사 조실을 거쳤고 1998년과 2000년 백양사 1·2차 무차선대법회 초청법주, 2002년 국제무차선대법회 법주에도 몸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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