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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우디 시위 전면 금지 예멘 대통령 퇴진 거부

    리비아 사태가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에서는 정부가 시민과 야권의 민주화 요구에 잇따라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5일(현지시간) 일체의 행진과 집회, 시위를 불허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막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사우디 내무부는 성명을 내고 “현행법상 어떤 형태의 시위도 불법에 해당한다.”며 공공질서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오는 11일로 예정된 대규모 민주화시위를 겨낭한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11일을 ‘분노의 날’로 정하고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의원 직접선거 도입, 여성 인권 확대,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우디에서는 시아파가 밀집한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소규모 시위가 이어졌다. 사우디에서는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시아파 무슬림이 다수인 수니파의 차별 행위에 불만을 제기하며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은 지난달 23일 주택건설과 결혼 자금 지원, 창업 지원, 국가 공무원 급료 인상 등의 유화책을 제시했지만, 시위대가 요구하는 사회·정치 분야 개혁에는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예멘에서는 33년째 집권하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연말 이전에 자진 사퇴하고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라는 야권의 요구를 거부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성명에서 “평화적인 권력 이양은 혼란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한 국민의 의지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예멘에서는 수도 사나를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있지만, 살레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2013년 이전에는 자진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예멘에서는 지난달 이후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2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전해졌다. 예멘 정부는 6일 군수품과 식량을 차량에 싣고 이동 중이던 정부군 소속 병사 4명이 6일 마리브 주에서 알카에다로 보이는 무장 대원들의 매복 공격을 받아 숨지면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가뜩이나 알카에다 때문에 골치를 앓는 마당에 전국적인 민주화시위를 진압하느라 군 병력이 각지로 분산되면서 대테러 작전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카다피 고향 턱밑서 충돌 정부군, 자위야 다시 탈환

    ‘피의 금요일’은 어김없이 반복됐다. 이슬람권의 휴일인 4일 리비아는 물론 대통령의 연내 퇴진 가능성이 보였던 예멘까지 중동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세력이 충돌했다. 이날 리비아에서 가장 격렬한 교전이 벌어진 곳은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 장악을 위한 마지막 전선으로 꼽히는 라스라누프와 서부도시 자위야였다. AFP통신에 따르면 무장한 시위대 60~70명이 ‘선발대’로 이곳에 진입했다. 이어 브레가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지원군이 뒤를 이었다.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폭탄과 자동화기 소리가 이곳을 가득 채웠고, 최소 4명이 사망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와 상관없이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BBC는 친정부군이 이곳에서 철수했고 반군이 이를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친위 병력은 금요 예배 후 시위를 차단하기 위해 트리폴리 시내 주요 지점에서 검문·검색을 실시했다. 그럼에도 이날 도심 녹색광장에서는 시위대와 친정부 세력이 충돌했다. 또 동부 타주라 지역에서 주민 1500명이 정오 예배를 마친 뒤 정권 퇴진을 외치며 시내를 향해 행진했다. 로이터통신은 총성이 들렸다고 전했지만 사상자 발생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반군은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외치며 트리폴리 진입을 시도했다. 정부군은 시위대가 장악하고 있는 자위야를 또다시 공격했고 전략적 요충지인 동부 도시를 재탈환하기 위해 사흘째 공습을 감행했다. 국영방송은 자위야가 정부군의 손에 넘어갔다고 보 도했다. 한 목격자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반군지도자 하산와르복을 포함 최소 50명이 죽고 300명이 다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바이 알아라비야 방송은 의료진의 말을 인용, 13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에서는 1억 6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리비아 화폐를 실은 선박이 트리폴리를 향해 출항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고 AP통신이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돈의 출처 등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자산 동결로 돈줄이 막힌 카다피 일가가 은행에 예치되지 않은 돈을 빼돌리려고 시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멘에서는 북부 암란에서 군이 시위대에 발포, 4명이 숨졌다. 수도 사나에서도 시위대 수만명이 금요 예배를 마친 뒤 사나 대학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는 시아파 중심의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성향의 수니파 무슬림이 충돌,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주민들이 전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알카에다, 리비아 민주화 시위 전폭 지원?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의 북아프리카 지부(AQIM)가 리비아 반정부 시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재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일부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AFP통신은 23일(현지시간) “AQIM이 미국의 이슬람 웹사이트 감시기구인 SITE에 올린 성명을 통해 ‘리비아 반정부 시위대의 싸움을 알라신을 사랑하는 무슬림 모두의 싸움’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AQIM은 “우리는 알라신으로부터 부여받은 힘으로 당신들을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AQIM은 성명에서 카다피를 ‘냉혹한 악질 사기꾼’으로 지칭하며 시위대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을 여러차례 밝혔다. 이미 성공한 튀니지와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무슬림의 권리와 재산을 가로채고 존엄한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마저도 갖지 못하게 했던 폭군들로부터 당신들을 지킬 것”이라며 “리비아인들의 혁명은 올바른 주장이며 후원을 보내겠다.”고 강조했다.  AQIM은 성명에서 이번 사태를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계기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숨기지 않았다. 북아프리카 정권들이 권력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그동안 알카에다가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AQIM은 성명에서 알카에다가 리비아 동부지역에 거점을 마련했다는 리비아 외무성을 주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칼레드 카심 리비아 외무차관은 리비아 동부 데르나 지역에 알카에다 세력이 무력 장악에 나섰다고 밝힌 바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오라스콤, 북한 내 사업 활발… 남북대화 기여할 것”

    “오라스콤, 북한 내 사업 활발… 남북대화 기여할 것”

    주한 외교사절 가운데 요즘 가장 바쁜 공관장을 꼽는다면 모하메드 엘조르카니 이집트 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한남동 이집트 대사관에서 만난 엘조르카니 대사는 외빈 접견 및 이어지는 전화 응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이집트 혁명에 쏠린 전 세계적인 관심과 파급 효과를 의식한 듯 질문 하나하나에 심사숙고하며 길게 답변을 했고, 결국 40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가 1시간 넘게 이어졌다. 2009년 12월 한국에 부임한 엘조르카니 대사는 이집트 외무부 아시아 담당 차관보, 주싱가포르 대사 등을 역임한 ‘아시아통’이다. 대사로 임명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묻자 “전혀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하야 소식 직후 사무실 벽에 걸려 있던 대통령 사진도 떼어냈다고 했다. 그는 “34년 경력의 전문 커리어(직업) 외교관으로, 정치적 임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엘조르카니 대사와의 일문일답. [남북방향] →이번 이집트 혁명이 한국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한·이집트 관계는 정치적으로 볼 때 뛰어나고 경제적으로도 계속 커지고 있다. 규모는 총 35억 달러(한국 수출 20억 달러, 이집트 수출 10억 달러)이고, 한국은 5억 달러 규모로 투자해 왔다. 이집트는 인구 8500만명에 지정학적으로 큰 시장이다. 한국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이집트에서 한국 자동차·전자제품 등의 시장 점유율이 40%를 차지한다. 이집트 관광과 관련,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집트에 다시 와 여행할 것을 부탁하고 싶다. 이집트는 지금 상황이 상당히 안정적이고 안전하다. 그래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집트로 다시 돌아오기를 권하고 그들이 예전처럼 다시 오는 것을 보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오라스콤사 등 이집트의 북한 진출이 활발하다. 이번 사태가 북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이집트·북한 관계에 대한 전망은. -이번 이집트 혁명은 중동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고무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평화로운 시위의 힘을 볼 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심판의 힘을 볼 때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자극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는 다른 나라들의 내부 문제에 참견하지 않으며 그렇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각 나라는 자신들이 갈 길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국민의 뜻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이집트의 북한 내 사업과 관련, 정부가 아닌 민간의 사적 사업이다. 오라스콤이 북한에서 사업을 잘 하고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오라스콤이 북한 개방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라스콤이 북한에서 정보통신사업 등을 하고 있는 것을 상기한다면 회사의 가장 큰 관심은 남북, 한반도에 평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안정적이고 국민이 번성하고 주머니에 돈을 더 갖게 된다면 더 많이 구매할 것이고 이것은 회사의 성장을 도울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오라스콤이 북한을 움직여 대화로 나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혁명이후] →해외에 파견된 대사로서 이집트 혁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이번 사태는 국민의 뜻에 의해 이뤄졌다. 국민이 심판을 했고 목소리를 냈고,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국민은 권력과 힘의 원천이다. 국가 통치자는 임기 동안 국가를 통치할 때 가장 힘이 있다. 그러다가 진실의 날, 진실의 순간이 왔고, 이 순간 통치자는 바로 국민이다. 국민이 통치하고 선거의 날이 오게 되니 통치자와 대통령은 더 이상 통치자, 대통령이 아니다. 국민이 대통령, 통치자, 지배자인 것이다. 국민의 말은 취소할 수 없다. 그들이 어떤 결정을 하든, 그것이 마지막 말인 것이다. 모두가 국민의 말과 뜻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집트 국민을 움직인 힘과 동기는 무엇이라고 보나. -그들의 슬로건은 ‘자유’와 ‘민주화’, ‘사회적 정의’였고 이것이 혁명의 동기였다. 국민들은 사회적 정의와 표현의 자유, 민주화가 충분치 않다고 느꼈고 매우 분명하게 평화롭고 문명적인 방법으로 더 많은 자유와 민주화, 사회적 정의를 요구했다. 그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그들이 빈부 차를 줄여야 한다고 요구한 것도 권리다. 부의 분배가 공평하지 않아 대다수 국민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집트 경제는 연간 7% 성장, 투자 확대 등 양호한데 성장의 결실이 대중에게 내려오지 않고 일부에 의해 독점돼 왔다. 국민들이 더 이상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향후 이집트의 앞날, 특히 대선과 군부의 역할에 대한 전망은. -군 최고위원회의 입장은 처음부터 확고했다. 그들은 과도기적 시기 동안 관리하고, 계속 머무르거나 권력을 맡지 않고 6개월의 과도기 이후 권력을 민간인 정부에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국민의 뜻은 민간인 정부가 이집트를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부도 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했다. 지금까지 징후로 보면 군 최고위가 이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본다. 6개월 과도기 후 군 최고위가 민간인 정권에 권력을 넘겨주길 바란다. 군부도 국민의 뜻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군부도 국민의 뜻에 거슬러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집트 사태가 중동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란·예멘·바레인·알제리· 리비아 등에도 시위가 진행 중이다. 향후 중동지역의 앞날은. -불꽃은 튀니지에서 시작됐다. 운명을 직접 손에 쥔 튀니지 국민에게 큰 존경을 표한다. 그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길을 열었다. 이집트의 경우, 전략적·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이번 혁명이 연쇄 작용, 파급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중동뿐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 심지어 세르비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집트 혁명은 중동 역사상 독재 정권을 평화적으로 무너뜨린 첫번째 혁명이다. 그들의 무기는 윤리적이고 고귀한 힘이었다. 도덕적인, 윤리적인 힘은 결과적으로 이번 혁명에서 어떤 폭력적 상황도 없이 승리했다. 그래서 이번 혁명은 롤 모델(모범)이 된다. [대외관계] →이집트와 향후 이란,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나. -대외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매우 분명하다. 군 최고위에서 모든 국제적 약속, 합의, 조약 등을 지키겠다고 했다. 이것이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국가 간 관계는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 이란과의 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면 이란과의 관계를 증진시켜야 한다. 만일 이란과 동맹을 맺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또 국민의 뜻이 이란과의 관계가 발전 없이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란과의 관계는 정체될 것이다. 또 이스라엘과의 평화가 더 활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면 더욱 활기를 띨 것이고, ‘긴장 속 평화’(cold peace)를 결정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향후 미국의 대중동 정책 및 이집트·미국 관계에 대한 전망은. -이집트와 미국의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양국 관계는 지금까지 견고했고, 튼튼하게 유지될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가치들을 존경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이번 혁명을 시작하기 위해 인터넷, 페이스북 등 미국의, 서양의 툴을 써왔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과 협력하기 원하고 그들이 이집트 국민의 편에 서서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등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무슬림형제단이 반미 세력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이집트에 속해 있고 이집트 국민의, 사회의 한 부분이다. 새 정권과 대통령도 미국과 계속 협력할 것이다. 단지 이집트 국민은 이스라엘과 관련, 미국이 진정으로 공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미국 정부가 옳든 그르든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에 관한 한 때때로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느낀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수류탄 투척… 野지도자 구금설… 중동 ‘폭풍전야’

    무슬림(이슬람 신도)이 금요예배를 올린 18일(현지시간) 중동에서는 민주화 시위와 희생자의 장례식이 진행된 가운데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바레인에서는 보안군의 강제 진압으로 사상자가 발생하고, 예멘에서는 반정부 시위대에 수류탄이 던져져 수십명이 부상했다. 바레인과 리비아, 이란 등지에서도 희생자가 속출했다.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는 이날 진주 광장으로 향하는 반정부 시위대 수천명에게 보안군이 최루탄을 발사하고 강제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곳은 전날 경찰에 의해 시위 참가자 5명 이상이 숨진 곳이다. 목격자들은 시위대가 친서방 체제의 전복을 요구했으며, 진주광장 인근에서 총성이 들렸다고 전했다. 사상자의 규모는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남부 시트라의 이슬람사원에서는 수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희생자 3명의 장례식이 열렸다. 이들은 “하마드 국왕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사원 위로는 경찰 헬기가 비행하며 시위 확산을 경계했다. 바레인 인구 70%가량은 시아파지만 40년간 권력을 차지한 것은 수니파인 알할리파 가문이다. 때문에 수니파에 대한 시아파의 소외감이 시위를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남쪽으로 200㎞ 거리인 타이즈의 후리야(자유) 광장에서는 이날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누군가가 수류탄을 던져 시위 참가자 25명이 다쳤다. 시위 참가자들에 따르면 시위 도중 차량 한 대가 광장으로 접근한 뒤 누군가가 수류탄을 던지고 달아났다. 1만여명 규모의 시위대는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도 “독재자 타도”, “압제 타도” 등의 구호를 외쳤으며, 경찰은 공포탄과 최루탄을 쏘며 강제 해산을 시도했다. 남부도시 아덴에서는 경찰 발포로 시위대 1명이 숨졌다. 이란에서는 야권이 이날로 예정된 반정부 시위를 친정부 세력과의 충돌을 우려해 20일로 미뤘다. 사법부 수장인 아야톨라 사데크 라리자니는 “폭동 지도자들이 이끄는 단체의 반역행위는 결코 감춰지지 않는다.”며 야권 지도자들을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야권 핵심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가 실종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17일 보도했다. 무사비의 딸은 야권 웹사이트에서 지난 15일 이후 부모와 연락이 끊긴 상태라며 당국에 의한 구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6일부터 이틀 동안 시위 참가자 20여명이 사망한 리비아에서는 이날 제2의 도시 벵가지와 알 바이다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벵가지에서는 군 병력이 처음으로 시가지에 배치된 가운데 시위대 수천명이 집결해 42년째 집권하고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 원수를 규탄했다.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시민 수십만명이 무바라크 정권의 종식을 기념하는 ‘승리의 행진’을 벌이며 군부에 정치개혁 이행을 요구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이집트軍 “총선 전 계엄 해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 퇴진 이후 국가운영을 맡고 있는 군 최고위원회가 3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비상계엄령을 선거 이전에 해제할 예정이라고 개헌위원회에 참여하는 무슬림형제단 관계자가 16일(현지시간)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개헌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한 이 관계자는 “군 최고위가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 전에 비상계엄령을 해제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선거는 반년 안에 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비상계엄령은 1981년 안와르 사다트 전 대통령이 암살된 직후 내려졌다. 이런 가운데 이집트 현지의 민주화 열기는 노동권 보장 요구로 확산되고 있다. 카이로 공항 세관원과 관제사, 청소원 등 수백명은 이날 임금인상과 의료보험 보장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국영 방직공장 노동자 2000여명도 임금 현실화를 주장하며 파업에 들어갔고 인력부 공무원 2000여명도 부패척결과 임금인상 요구 시위를 벌였다. 한편 엘렌 러스트 미국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는 16일자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고를 통해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민주화 열기의 공통요소로 극심한 빈곤과 부정부패, 빈부격차 등을 꼽았다. 그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자료를 인용해 빈곤선 이하 생활을 하는 인구 비율이 이집트와 알제리는 40%, 예멘은 60%, 시리아는 30%라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생활수준이 높아 변화 욕구가 덜했던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연합 등에서도 불평등과 독재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특히 중동이 세계에서 가장 실업률이 높다는 점에서 사회불만이 높아진 청년층이 중요한 변수로 꼽혔다. 그는 이집트에서 군부가 강경 진압을 자제한 데는 권력층과 국민들이 모두 수니파 무슬림이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며 소수 종파·인종이 지배하는 바레인이나 시리아·요르단 등에서는 가혹한 탄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무슬림형제단 “창당”… 중동 정세 변수로

    57년 동안 이집트에서 불법 단체로 규정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이 창당을 선언했다. 최대 야권 단체가 창당 의사를 밝힘에 따라 향후 이집트는 물론 중동 정세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무슬림형제단은 15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우리는 정당 조직의 자유를 믿는다.”며 개헌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정식 정당으로 등록하겠다고 밝혔다. 이집트 헌법은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 조직을 금지하고 있지만, 현재 이 헌법은 효력이 중지된 상태다. 무슬림형제단은 올해 대선에는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고위 간부인 에삼 엘에리안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통합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합법화 과정을 원활하게 밟고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이집트 안팎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무슬림형제단은 지난 1954년 불법 단체로 규정됐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이들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온갖 탄압을 자행했다. 하지만 민주화 시위 당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마련한 야권과의 대화에 참여하면서 합법화를 위한 첫 단추를 끼웠다. 또 개헌위원회에 포함되면서 개헌 작업에도 참여하게 됐다. 이를 두고 무슬림형제단의 영향력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여전히 이집트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이들은 젊은이 중심의 온건파이지만 조직의 지도부는 반서구적 시각을 지닌 강경 보수파로 꼽힌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빵의 혁명’ 사하라 이남까지 가나

    ‘빵의 혁명’ 사하라 이남까지 가나

    무바라크 독재체제 전복이라는 혁명을 낳은 이집트 국민들이 절실히 원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빵과 자유. 세계 최대의 밀 수입국인 이집트 국민들에게 불어닥친 식량 가격의 폭등이 그들을 들고일어나게 했던 것이다. 이집트를 뒤집어 놓은 ‘식량 가격 폭등’이라는 폭탄이 남하를 시작했다. 사하라 남쪽 아프리카에 ‘이집트식 혁명’이 불어닥칠 조짐이 일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최근 2년 6개월 만에 최고가를 기록 중인 국제 식량 가격과 식량 부족 사태가 올해 아프리카 대륙에서 정치적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앞으로 1년 안에 30개국이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여기에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차드와 마다가스카르, 그리고 내전과 정치 불안이 일상화된 나이지리아와 콩고도 포함돼 있다. 식량 가격은 이미 지난달 기록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주 유엔은 식량 가격이 지난해보다 평균 25% 상승했다고 밝혔다. 지난달에만 3.4%가 뛰었다. 환경정책 연구단체인 미국 워싱턴 지구정책연구소의 레스터 브라운 소장은 최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식량 공급 문제는 정치적 소요로 바로 이어지기 쉽다.”면서 “먹거리 문제가 선거 판도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누구도 예상하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집트 사태는 무슬림형제단 때문도, 정치 때문도 아니다. 굶주림과 빈곤, 그리고 식량 생산과 세계 경제의 변화 때문”이라며 식량부족 사태가 낳을 남아프리카의 혼란을 우려했다. 올해 식량 가격 폭등은 러시아·캐나다 등 세계 주요 곡물 생산 국가의 단기적인 이상기후 때문으로, 더 큰 문제는 식량 부족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오 연료에 쓸 곡물을 생산하는 대규모 농장이 점점 늘어나고 최대 식량 소비국인 중국이 최근 곡물 수입량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 최악의 ‘애그플레이션’(곡물가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한 2008년에도 멕시코, 케냐, 방글라데시, 인도 등 지구촌 곳곳이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당시 아이티와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정권까지 교체됐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요동치는 중동] 무바라크 측근 자산 동결 추진

    이집트 군부가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측근들의 자산을 동결해줄 것을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요청하면서 해당국들이 동결조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최대 700억 달러(약 78조원)로 추정되는 무바라크 전 대통령과 그 일가의 해외 은닉 재산에 대해서는 이집트 군부가 아직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14일(현지시간) 이집트 군부가 무바라크 전 정권의 권력실세들이 소유했던 자산들에 대해 동결조치를 요청해 왔다는 사실을 하원에서 공개하고 15일 열리는 EU 회원국 재무장관회의에서 이 문제를 토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집트 국영 텔레비전도 자국의 새 정부가 영국에 이집트 공직자들의 자산을 동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정부 관계자 역시 무바라크 전 대통령 핵심 측근들의 미국 내 자산 동결 요청을 받았으며 현재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무바라크 전 대통령 본인의 미국 내 자산 동결 요청은 받지 않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EU의 한 소식통도 “이집트 군부가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 무바라크 정권 고위 인사 6~7명이 EU 역내에 은닉한 자산에 대해 동결 조치를 요청했다.”면서 “무바라크 전 대통령과 그 일가는 요청 명단에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프랑스 당국자는 이집트군이 일부 인사들의 EU 역내 자산을 동결할 것을 요청해 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무바라크와 그 일가에 대한 언급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군부, 8월 권력 민간이양 재천명 한편 이집트 군부는 앞으로 선거를 통해 새로 구성될 민간 정부에 오는 8월까지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혔다. 군부는 15일 성명을 통해 “군 최고위원회는 6개월 내에 평화적이고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대통령과 민간 정부에 권력을 넘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8명의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개헌 위원회가 열흘 내에 헌법 개정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집트 최대 야권 조직인 무슬림형제단은 정치적 정당을 세울 계획임을 밝히고 향후 재편되는 이집트 정계에서 합법적인 정치 활동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요동치는 중동] 코샤리 혁명의 승자·패자는 누구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으로 18일 만에 막을 내린 이집트 코샤리 혁명‘을 놓고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인터넷판이 14일(현지시간) 승자와 패자를 꼽았다. FP가 가장 먼저 꼽은 승자는 경찰의 무력진압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와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며 이집트의 혁명을 이끌어낸 시위대다. 아랍 세계의 ‘피플 파워’을 보여줬다. 이집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 단위로 보도했던 알자지라는 아랍세계와 외부를 연결해 주면서 강력한 혁명의 도구 역할을 했다고 FP는 평가했다. 중동의 민주개혁가들도 이집트 혁명을 통해 얻은 게 많다. 이집트 시위에 긴장한 다른 독재자들이 이들의 얘기를 경청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정치적인 위기의 시기에 오히려 자신들의 힘을 더 키운 이집트 군과,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 외교에 미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동안 상대적으로 ‘레이더 망’에서 벗어나게 된 중국도 승자에 이름을 올렸다. 어부지리의 반사이익을 얻은 셈이다. 무바라크 일가가 이번 혁명의 패자라는 것은 굳이 후시대의 역사적 평가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테러만이 아랍 세계를 바꿔놓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알카에다의 주장도 더욱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졌다. FP는 주요 야권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을 승자가 아닌 패자로 지목했다. 무바라크의 대안 세력이라는 인식 때문에 누렸던 대중적 지지는 이제 무바라크와 함께 과거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팔레스타인의 대차대조표는 다음 정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당장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무관심 속에 방치될 가능성이 높아 패자로 분류됐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이란 대규모 유혈시위

    중동의 반정부 시위 물결이 걸프만으로 번져 이란에서 유혈 시위가 발생하고, 예멘에서는 나흘째 시위대와 정부가 충돌을 빚었다. 14일(현지시간) 이란에서는 야당 지지자를 비롯해 수만명이 참가한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시민 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하는 등 사상자가 속출했다. 야권은 이란혁명 기념일 일주일째인 오는 18일 다시 대규모 시위를 벌이겠다고 예고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시위는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중부 이스파한, 동북부 마슈하드, 남서부 시라즈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테헤란에서는 아자디(자유) 광장과 엔겔라브(혁명) 광장 주변 등 도심 곳곳에서 시민 수만명이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란 반관영 파르스 통신은 시위대와 경찰의 물리적 충돌 과정에서 시위를 구경하던 행인 1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은 2009년 대선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진 이후 처음이다. 예멘에서는 수도 사나와 타이즈 등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경찰과 친정부 시위대로부터 공격을 받아 수십명이 부상하는 등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바레인에서는 수천명의 무슬림 시아파 시위대가 수도 마나마에서 정치개혁과 차별 철폐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해 2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다쳤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伊, 튀니지發 불법 입국자 러시 ‘비상’

    시민혁명에 따른 정국 불안으로 튀니지를 탈출한 불법 이민자들이 지중해 건너 이탈리아로 몰리면서 양국 간 외교 갈등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튀니지의 정치 혼란을 피해 배를 타고 건너온 튀니지인 불법 이민자 규모가 닷새 만에 5000명을 넘어서자 14일(현지시간) 긴급상황을 선포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로베르토 마로니 내무장관은 “불법 입국자 가운데 테러리스트와 범죄자가 정치적 망명을 가장해 유럽으로 건너올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처음엔 불법 입국자라도 비상사태에서는 인도적 차원에서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한 이탈리아 정부는 ‘보트피플’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자 태도를 바꾸고 있다. 무슬림 이민자를 백안시하는 우파정당이 지배하는 이탈리아 정치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불법 입국자를 태운 선박이 해변에 닿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조치를 포함해 불법 입국자 처리에 관한 ‘비상대책’을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프랑코 프라티니 외무장관은 튀니지에서 건너오는 불법 입국자 처리에 대해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긴급회의를 열자고 제안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민주 터키식 vs 軍政 파키스탄식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으로 역사의 새 장을 맞은 이집트가 또 한번 갈림길에 섰다. ‘무바라크 퇴진’처럼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집트의 앞날은 대단히 유동적이다. 당장 권력을 접수한 군부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 그들의 움직임에 무슬림형제단 등 야권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이집트의 향후 정세를 결정할 변수로 꼽힌다. ●軍, 정권 쉽게 내줄까 이집트 군은 일단 권력의 민간이양을 공언했다. 모흐센 엘판가리 군 최고대변인은 12일(현지시간) 국영 TV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넘기고 (이스라엘 등) 국제사회와 맺은 모든 협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군부는 내각을 해산하고 헌법 효력을 정지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1952년 나세르혁명 이후 권력을 독점해온 군부가 쉽게 정권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1980년 한국의 제5공화국 등장처럼 또 다른 군사정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군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특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 과정에서 정권과 거리를 두며 군부의 양 축이 된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과 사미 에난 군 합동참모총장이 세력 다툼을 이끌 공산이 크다. 미국 LA타임스는 “포스트 무바라크 체제는 군부가 계속 강력한 권한을 틀어쥔 가운데서도 민주적 개혁작업을 꽃 피운 터키 및 인도네시아 모델로 가거나, 아니면 군부와 정보기관이 권력을 틀어쥔 파키스탄 모델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슬림형제단 움직임도 주목 선거가 원활하게 치러질지도 불투명하다. 대선이 오는 9월 예정대로 진행되려면 그전까지 후보가 결정돼야 하고 정당도 만들어져야 한다. 투표 방법 또한 정해지지 않았고 반정부 시위 때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여전히 불법단체의 꼬리표가 붙은 ‘무슬림형제단’의 정치 참여 허용 여부도 변수로 남았다. 조슈아 무라브치크 존스홉킨스스쿨 연구원은 “독재정권을 거쳐온 이집트로서는 (민주적 선거과정이) 완전히 새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여야 잠룡들이 뭍으로 대거 얼굴을 드러내면서 국론이 갈린다면 이집트 사회는 상당한 분열과 혼란에 휩싸일 수 있다. 개헌 논의도 이집트 정국을 어지럽힐 요소다. 당장 군이 무바라크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것은 현행 이집트 헌법에 위반된다. 1971년 개정된 헌법은 대통령 퇴진 때 부통령이 통치권을 물려받거나 의회 의장이 새 정부가 구성될 때까지 그 역할을 대신 맡게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권력을 둘러싸고 정통성 논란이 벌어질 소지가 다분한 셈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중동서 이란 입김 커질 듯… 美 정책기조 수정 불가피”

    “중동서 이란 입김 커질 듯… 美 정책기조 수정 불가피”

    30년 철권통치를 끝낸 이집트인들의 혁명 열기가 뜨겁다. 호스니 무바라크가 물러난 이집트는 과연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튀니지에서 시작돼 이집트의 독재정권마저 무너뜨린 아랍 민주화의 물결은 이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중동 전문가인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와 황병하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의 긴급 지상대담을 통해 코샤리 혁명 이후의 이집트와 중동의 앞날을 짚어 본다. ●무바라크 퇴진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뭔가. 서정민 교수 가장 먼저 짚어 봐야 할 대목은 이집트인들이 5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시민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점이다. 이집트가 아랍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한다면 아랍 현대사를 다시 쓰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지난 10일 밤 무바라크가 퇴진을 거부하고 나서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봐야 한다. 1952년 쿠데타로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채택했지만 그것이 민주화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치와 경제에서 기득권을 누려온 군부가 얼마나 개혁조치를 취할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한마디로 이집트인들은 이제 민주화로 가는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 군부가 실권을 장악했다. 황병하 교수 이집트 헌법은 대통령이 물러날 경우 국회의장이 권력을 승계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번 사태에서는 군 최고위원회가 권한을 이어받았다. 군부는 나세르 전 대통령이 주도한 쿠데타 당시부터 이집트 정치에서 핵심 역할을 해 왔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군부 출신이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군부는 지금 적지 않은 불안감을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1952년 나세르 혁명도 군부 고위장교들이 왕정을 지지하며 기득권에 안주할 때 자유장교단을 중심으로 한 하위직 청년 장교들이 나세르 혁명을 이끌었다. 이번 시위에 일부 청년 장교들이 가담했던 점을 감안하면 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것은 군부 내부결속을 다지는 것과 함께 무바라크를 옹호하는 쿠데타와 그를 축출하려는 쿠데타 모두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조치였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군부가 오랜 이집트 통치 경험을 바탕으로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측면도 존재한다. 무바라크가 아들 가말에게 권력을 세습시키려 했지만 술레이만 당시 정보국장과 탄타위 국방장관이 끝까지 반대하는 바람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을 정도다. 군부는 앞으로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무바라크를 퇴진시키기로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이집트 정국을 전망한다면. 서 교수 한국이 1987년 경험했던 6월항쟁과 비슷한 경로로 갈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가 국민들 요구를 수렴하는 선에서 양보하되 권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모델이 가장 유력할 것이다. 그게 사실 미국 등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물론 자유로운 총선과 대선은 보장할 것이다. 다만 당초 계획대로 오는 9월에 대선을 치를 가능성은 많이 낮아졌다. 1년 이상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선거 일정에 따라 이집트 정세가 안정으로 갈지 혼란으로 갈지 판가름 날 것이다. 무바라크 측근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요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상황에서 쉽지는 않을 것이다. 향후 정국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집단은 무슬림형제단이다. 가장 큰 득표력을 갖고 있다. 이번 혁명은 민족적·세속적 성격이 강했고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한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 의회에서 굉장히 약진할 것이다. 2005년 총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도 전체 의석의 20%를 차지한 경험이 있다. 향후 총선에선 최소한 3분의1의 의석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무슬림형제단은 군부와 대화 채널을 유지하면서 캐스팅보트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황 교수 무바라크가 퇴임한 건 상징적인 의미가 크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기존의 공동목표를 달성한 이상 이제부터는 각자 소속 정파와 조직 목표에 따라 다양한 요구가 터져나올 것이다. 현재 야권세력은 외형상으로는 크게 4·6청년운동, 변화를 위한 이집트운동(키파야), 무슬림형제단으로 나눌 수 있다. 4·6 청년운동과 키파야 등은 암르 마무드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을 지지한다. 변화를 위한 민족연합(NAC)은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과 파루크 아흐마드 술탄 대법원장을 지지한다. 무슬림형제단이 대선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대선 승리가 아니라 의회에서 의석을 최대한 확보해서 이집트 민주화와 선거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인 듯하다. 전체 인구의 40%가 하루 2달러가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경제문제는 가장 첨예한 쟁점이다. 무슬림형제단은 빈곤구제 등 사회활동에서 보여준 오랜 경험과 열정으로 서민들의 신뢰를 쌓아 왔다. 앞으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보여줄 것이다. ●중동에 미칠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황 교수 튀니지에서 벌어진 민주화 열기가 이집트로 옮겨 왔지만 이집트와 튀니지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튀니지는 서구나 다름없는 국가지만 이집트는 관광산업을 빼고는 그동안 철저히 고립된 상황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집트는 말 그대로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 혁명이 곧바로 중동에 영향을 미치기는 쉽지 않다. 만약 이집트에서 이슬람 정당을 허용했다면 지금처럼 급격한 변화를 겪진 않았을 것이란 말도 있지만 요르단만 해도 이슬람 정당을 인정하고 정부에 참여시킴으로써 완충작용을 한다. 예멘이 불안하다고는 하지만 4개 유력부족 대표가 대통령과 협의하면서 운영하는 이 나라에서 이집트식 혁명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페르시아만 인근 산유국들도 막대한 자금력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흡수할 충분한 여력이 있기 때문에 일부 개혁은 가능하겠지만 이집트식 혁명은 힘들다. 서 교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은 커질 것이고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슬람에서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종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성격이 강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수니파의 대표주자였던 이집트가 격랑에 싸였다. 그동안 이란과 국교까지 단절했던 이집트에서 발생한 정치변화는 이란에 대한 단일전선을 흔들게 되고 이는 중동 전체 정치 역학에서 이란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이스라엘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그동안 이집트는 중동에서 가장 이스라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국가였다. ●이번 혁명이 ‘쇠퇴하는 미국 헤게모니’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서 교수 미국은 중동에 대한 정책기조를 바꿔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입만 열면 중동 민주화와 인권을 외쳤지만 사실 지역 안정을 가장 중시했다. 그러다 보니 이집트에서 발생한 혁명 국면에서 상황을 주도하지 못했다. 겉보기엔 공개적으로 언급했던 대통령 퇴진을 이끌어냈으니까 외교적 승리라고 할지 모르지만 무바라크가 사임을 거부했다가 번복하는 약 24시간 동안 미국이 별다른 역할을 못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그동안 중동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무력으로 후세인 정권을 교체하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국내 정치에 미치는 힘은 제한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무바라크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춰온 대표적인 친미 인사라는 점도 미국엔 부담이다. 무바라크에 대한 역풍 때문에 이집트가 과거처럼 친미정책을 펼 여지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무바라크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황 교수 군부가 지켜주는 한 무바라크가 이집트를 떠날 가능성은 낮다. 무바라크가 머물고 있는 샤름 엘셰이크는 이집트 국내에서 무바라크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다. 독재자 단죄에 있어서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전통적인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 시아파는 지도자가 잘못하면 법적인 책임을 포함해 끝까지 책임을 묻지만 수니파는 역사적으로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 비록 각종 부정부패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일단 사임한 이상 무바라크 쪽에서 볼 때 수니파 정부가 무리한 요구까지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거기다 군부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무바라크를 마냥 내칠 수 없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도망자 신세 된 독재자… 700억달러 어디로 빼돌렸나

    도망자 신세 된 독재자… 700억달러 어디로 빼돌렸나

    ‘현대판 파라오’를 무너뜨린 것은 차량폭탄·총격 등 10차례의 암살 시도도, 중병도 아닌 그의 국민들이었다. 29년 120일간 지속됐던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숨통을 민주화 시위가 18일 만에 끊어 놓은 것이다. 명예퇴진을 고집하던 무바라크는 이제 구원의 손길 없이 남은 세월을 가족과 함께 도망 다니는 신세로 전락했다. 1973년 이스라엘과 맞붙은 제4차 중동전쟁에서 세운 공으로 1975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으로부터 부통령으로 발탁된 그는 1981년 사다트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4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가말 압둘라 나세르와 사다트 같은 전임 대통령들이 군사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려 국민들 사이에 정통성을 획득한 것과 비교하면 처음부터 취약한 기반에서 출발한 그는 철저한 권위주의 정부를 고수했다. 30년간 국가를 옥죄어 온 비상계엄법과 이집트 최대 야권 세력인 무슬림형제단 탄압, 정당·대선 후보 조건 강화로 반대파의 정계 진입 봉쇄 등이 대표적 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정적들을 낳았다. 알지하드, 카마 이슬라미야, 탈레알파타 등 숱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암살 시도에도 여러 차례 직면했다. 하지만 외교적 수완은 남달랐다. 미국·이스라엘 등과 탄탄한 동맹을 유지, 중동평화의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한 동시에 매년 15억 달러의 원조를 얻어내 이집트 경제에 수혈했다. 무바라크의 가장 큰 실책은 차남 가말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이집트 국민들을 돌아서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가말은 결국 지난 5일 집권 국민민주당 ‘넘버 3’인 정책위 의장에서 사퇴, 세습의 꿈을 버려야 했다. 700억 달러(약 78조 8900억원)로 알려진 무바라크 일가의 재산에도 세계의 눈이 쏠려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관리들은 무바라크 가족들의 재산을 20억~30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으며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등 외국 은행에 은닉돼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무바라크가 시위기간 중 재산을 추적 불가능한 해외 계좌로 빼돌렸다고 전했다. 스위스 당국이 지난 11일 스위스 은행의 무바라크 자산을 동결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무바라크는 자산을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빼돌리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바라크 일가는 미국 뉴욕과 베벌리힐스를 비롯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에 막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국영기업 민영화와 외국 기업의 이집트 진출 과정 등에서 이권을 챙긴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가말은 이집트 최대 투자은행인 EFG-헤르메스와 함께 석유, 철강, 시멘트 등의 사업에서 영향력을 행사, 부를 형성한 혐의가 짙다. 유럽연합(EU) 관계자는 14~1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등에서 무바라크의 자산 동결 여부가 긴급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무바라크 일가의 부정부패로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면서 그가 이미 독일로 출국했거나 UAE,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는 설도 나온다. 허핑턴포스트는 “무바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하면 튀니지 혁명으로 축출된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과 함께 ‘독재자 클럽’을 만들 것이고 이 클럽의 회원 수는 더 많아질 것”이라는 뼈 있는 농담으로 30년 독재자의 말로를 정리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오바마! 내친구 모욕마라

    “내 친구를 모욕하지 마라.” 친미파인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미국의 대(對)이집트 전략을 비판하며 오바마 대통령을 강하게 몰아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갑작스레 퇴진해 아랍권의 ‘친미 라인’이 무너지면 지역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절박감 때문으로 보인다. 압둘라 국왕은 이집트 시위 발생 나흘째인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과 가진 통화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굴욕감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10일 영국 더 타임스 인터넷판이 전했다. 압둘라 국왕은 “미국이 매년 15억 달러(약 1조 6722억원) 규모의 이집트 재정지원을 중단한다면 내가 지원을 시작하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압둘라 국왕과 무바라크 대통령은 매우 가까운 사이로 국왕은 자신의 친구가 굴욕적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이집트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면 자국이 이란은 물론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무슬림 세력에 포위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9일 압둘라 국왕과 전화 통화를 갖고 “이집트에서 의미 있고 적법하면서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는, 질서 있는 전환이 이뤄질 수 있게 조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해적들에게 몸값 한푼도 안줬다”

    “해적들에게 몸값 한푼도 안줬다”

    금미305호 석방 협상을 주도한 케냐 교민 김종규(58)씨는 10일 “선원들의 석방 대가로 해적에게 몸값(석방금)을 줬다는 일부 언론보도 내용은 잘못된 것이며, 한푼도 건네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도 석방금을 준 사실도, 주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해적이 몸값을 받지 않고 금미호를 풀어준 배경에 대해 “선장 겸 선사 대표인 김대근씨가 붙잡혀 있어서 처음부터 석방 협상을 할 방법이 없었고 기름과 부식도 떨어진 상태에서 대부분 선원들의 건강이 안 좋아 교환가치가 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또 피랍된 케냐 선원들의 종교가 무슬림이었는데, 케냐에 있는 무슬림 단체와 현지 사업가 등이 해적들에게 ‘같은 형제들’이라며 석방을 강력하게 요청한 것도 큰 힘이 됐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가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함구했다. 김씨는 1979년 태권도 사범으로 케냐로 건너가 태권도 도장 등을 운영했으며, 몸바사 지역의 태권도협회장을 맡고 있다. 10여년 전부터 국내 선박과 원양어선을 상대로 한 선박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뱃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그동안 해적들에게 납치된 국내선박 석방 협상에 대부분 관여했다. 2006년 원양어선인 동원 628호, 2007년 마부노호 협상 때에도 참여해 선원들이 풀려나는 데 모종의 역할을 했다. 김씨는 개인적인 일로 지난 9일 귀국해 경기 의정부에 머물고 있으며 귀국하면서도 전화로 계속 해적과 협상을 해 왔다. 김씨는 2009년 9월 한국 국적을 상실하고 케냐 국적을 갖고 있다. 가족으로는 아내와 아들 둘이 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무바라크의 ‘꼼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들과 반대파가 충돌한 시위사태에 대해 독립 수사위원회를 설치,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대대적인 부정부패 수사와 공무원 임금 15% 인상 등 후속 개혁안도 들고 나왔다.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잔여 임기 동안 무바라크의 잔류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밝힌 가운데 무바라크의 민심 달래기 및 시간 벌기 조처로 보인다. 이집트 관영통신 메나는 7일(현지시간) “무바라크 대통령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지난 2일 시위를 조사하기 위해 주요 인사들이 참여하는 위원회 설립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달 25일부터 2주간 계속된 시위로 이집트 전역에서 297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이날 타히리르 광장에 집결한 시위대는 사복경찰들이 체포 위협을 가하기 위해 자신들의 사진을 찍어갔다고 규탄했다. 계속되는 시위 속에서도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새 내각 출범 이후 처음으로 전체 각료회의를 주재하며 남은 임기 동안 잔류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 지난해 11월 총선의 부정사건을 재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부패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각료 4명과, 집권 국민민주당(NDP)의 전직 고위 간부이자 무바라크의 아들 가말의 최측근인 철강재벌 아흐메드 에즈에 대한 부패 조사에 나섰다. 희생양을 만들어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최대 야권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이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대(對) 정부 협상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이날 처음 무바라크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목표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공식 인정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혼돈의 이집트] 이집트 개혁 ‘총감독’ 군부… 경제도 좌우 ‘막강파워’

    [혼돈의 이집트] 이집트 개혁 ‘총감독’ 군부… 경제도 좌우 ‘막강파워’

    호스니 무바라크 정부와 야권이 헌법개혁위원회 구성 등에 합의해 소요 사태 2주일 만에 대화 국면을 형성하면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막후의 군부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가 6일(현지시간) “9월 선거 이후 누가 새 대통령이 되더라도 부유하고 비밀스러운 군부가 이집트 통치의 열쇠를 쥐게 될 것”이라고 보도한 데에서 보듯 ‘포스트 무바라크 시대’의 열쇠는 결국 술레이만과 군부가 쥐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집트 정치 개혁 논의의 ‘주연’이 술레이만이라면, 군부는 이를 연출하는 ‘총감독’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형국이다. ●현대 이집트 권력의 원천 사실 이집트의 현대정치는 군부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1953년 ‘자유장교단’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뒤 초대 대통령이 된 무함마드 나깁부터 가말 압델 나세르, 안와르 사다트는 물론이고 무바라크 현 대통령까지 역대 모든 최고 권력자가 군부를 기반으로 권력을 잡았다. 이집트 군부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30년이나 장기 집권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 왔다. 상대적인 청렴성과 우수한 인재들로 구성된 덕에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조차 군대와 별다른 충돌이 없을 정도로 국민들의 신뢰까지 얻고 있다. 이스라엘을 빼고는 중동과 아프리카를 통틀어 최강 전력이자 세계 10위 군사력을 자랑하는 이집트군은 약 47만명에 이르는 현역에 예비군도 48만명이나 된다. 고졸자까지는 3년, 대학생 이상은 1년간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단 기독교의 한 분파인 콥트교 신자는 병역을 면제한다. 군부는 막강한 경제력도 갖고 있다. 국방예산도 2009년도 기준 58억 5000만 달러로 국내총생산(GDP) 1891억 달러의 3%나 된다. 군부는 무기뿐 아니라 도로와 주택건설, 소비재, 리조트 경영 등 사업에도 관여한다. 대통령에게만 보고할 뿐 구체적인 국방예산 내역 등 대다수 군 관련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 등 상당한 독립성과 특권을 누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6일 “최근 군 장교들의 임금이 사기업 직원들에 비해 떨어지면서 군의 인기가 시들해지긴 했지만 이집트군은 전자제품이나 의류, 심지어 식품 생산에도 직접 개입하고 있다.”며 막강한 군부의 부와 영향력을 전하기도 했다. ●미국·이스라엘과 밀월 관계 유지 이집트군이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배경 중 하나로 이스라엘과 벌였던 전쟁을 빼놓을 수 없다. 1948년 제1차 중동전쟁에서 겪은 치욕적인 패배가 쿠데타로 이어졌고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승리는 아랍권의 자존심을 세우며 위상을 높였다. 특히 당시 공군을 이끌었던 무바라크가 이 전쟁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하면서 이후 대통령에 오르는 배경이 됐다. 이집트군은 1979년 사다트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미국으로부터 해마다 막대한 군사 지원을 받고 있다. 2009년 지원액도 13억 달러에 이른다. 덕분에 미국제 F16은 이집트 공군의 주력 전투기가 됐고, 미국제 M1A1 에이브럼스 탱크는 이집트 육군을 이스라엘에 이어 중동에서 두 번째로 많은 차세대 전차를 보유한 군대로 만들었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거치며 성장한 이집트 군부가 1979년 이후로는 미국·이스라엘과의 밀월 관계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해 온 셈이다.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 등 주목할 인사 이집트 정세가 요동치면서 군부를 움직이는 핵심 인사들의 면면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술레이만 부통령이다. 육군 중장 출신으로 무바라크 대통령의 오른팔로 꼽히는 그는 1993년부터 2011년까지 정보국장에 재직했다. 그의 잠재적인 경쟁자로 꼽히는 무함마드 탄타위 국방장관은 군 안팎에서 전쟁 영웅으로 명성이 높다. 군 원수 출신이며 전형적인 야전 군인이다. 1956년 이스라엘과의 수에즈 전쟁에서부터 1991년 미국의 이라크전 때까지 중동에서 벌어진 전투에 빠짐 없이 참전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카이로 주재 미국 대사관 외교전문에 따르면 일부 군 장교들은 탄타위 국방장관을 ‘무능력한 무바라크의 딸랑이’로 묘사했다. 해외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미 에난 참모총장도 주목해야 할 인물로 꼽힌다. 그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은 깨끗한 이미지로 국민의 신임을 받고 있다. 사실상 최대 야당인 무슬림형제단도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정도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혼돈의 이집트] “아랍권 시위는 일시적 사태 아닌 보편적가치 지향의 세계사적 흐름”

    “이집트, 튀니지 등의 민주화 시위는 프랑스 혁명과 같은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한국의 중동 문제 전문가들은 최근 아랍권 독재국가에서 민주화 시위가 도미노식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은 일시적인 소요사태가 아니라고 7일 진단했다. 한국중동학회와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가 8일 명지대에서 공동 주최하는 ‘이집트, 수단, 튀니지 사태와 중동의 민주화 전망’이라는 주제의 긴급 심포지엄에 앞서 미리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참석자들은 지금 아랍권 국가에서 범상치 않은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아랍 국가들 가운데 레바논을 제외하고는 시민혁명이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면서 “이집트의 시민혁명은 아랍권의 ‘남성 주도 가부장적 인식 체계’를 바꾸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민주화 시위의 근본 원인으로 장기 독재, 지도층의 부패, 빈곤과 실업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앞으로 프랑스혁명과 같은 큰 변화, 장기적인 민주화 열풍이 불 것이라고 예견했다. 서 교수는 튀니지와 이집트 사태를 ‘웹에 등장한 벤츠와 당나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은 탈근대적 현상(벤츠)과 거리 시위와 같은 전근대적 현상(당나귀)이 동시에 나타나는 특이한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황병하 조선대 교수는 이집트 야권의 최대 단일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았지만, 세속적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등 서방국가와 민주화운동 내부의 또 다른 중심축인 엘바라데이 및 암르 무사 지지 세력들의 우려와 걱정을 불식시켜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향후 무슬림형제단의 행보와 관련해 첫째, 샤리아에 근거한 이슬람국가의 수립 이념을 포기하지 않을 것, 둘째, 온건주의와 중도주의를 표방하면서 폭력 사용을 철저히 배격하고 무바라크의 점진적 퇴진과 정권 이양을 지지할 것, 셋째, 이슬람주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세속적 민주주의를 포용하면서 종교와 정치의 분리와 이슬람 가치의 확립을 헌법 개정으로 수렴하는 전략을 취할 것, 넷째, 이집트 민주화 과정과 선거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은 것 등으로 분석했다. 김효정 명지대 교수는 튀니지 민주화 운동을 ‘경제적 문제뿐만이 아닌 총체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현재 튀니지 국민의 반발에 비춰보면 벤 알리 측근 인물이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내다보고 “벤 알리 정권 아래에서 탄압을 받아 국외로 망명했던 인사들이 귀국하면서 튀니지 대선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상률 명지대 교수는 “중동 아랍 국가들의 민주화 문제는 하루아침에 부상한 것이 아니며, 자유와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세계사적 흐름”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금상문 한국외대 교수는 “이집트 등 중동 국가에서 불고 있는 민주화 시위의 근본 원인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고”라고 국한시켜 주장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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