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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집트軍, 무르시측 反군부 시위대에 총격

    이집트軍, 무르시측 反군부 시위대에 총격

    이집트 군부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축출로 시작된 정국 혼란이 무력 충돌로 확산되고 있다. AP통신은 5일 이집트군이 카이로 공화국수비대 본부로 행진하던 수백 명의 무르시 지지자들에게 총을 쐈다고 보도했다. 이 총격전으로 인해 최소한 3명이 숨지고 여러 명이 부상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지난 3일 내쫓긴 무르시는 현재 공화국수비대의 한 병영 시설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무르시의 정치적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 전역에서 ‘거부의 금요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군부에 대한 반(反)쿠데타 시위를 벌였다. CNN은 카이로 외곽에서 무르시 지지자들의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군부가 무슬림형제단과 자유정의당의 지도부 300여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는 등 새로운 체제 구축에 나서자 무르시 지지세력의 반격이 거세진 것으로 보인다. 이 시위로 인해 혼란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 아들리 알 만수르 임시 대통령이 “무슬림형제단은 국민의 일부이며 국가를 재건하는 데 참여할 기회를 주겠다”며 회유에 나선 것도 무위로 돌아갔다. 앞서 이날 오전에는 이슬람 급진주의자들로 추정되는 세력이 로켓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시나이반도 엘 아리시 지역의 군경시설 4곳을 공격해 군인 1명이 숨졌다. 이 공격으로 인해 이집트 군부는 가자지구로 이어지는 국경을 무기한 폐쇄했고 엘 아리시 지역을 중심으로 군병력을 증강 배치했다고 이집트 현지 국영신문인 알-아흐람이 전했다. 군부에 의해 축출된 무르시는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이 지난 1일 제시한 최후통첩에 “내 시신을 밟고 가라”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르시는 첫 민선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자기 편에게서도 버림받고 군대와 경찰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군이 제시한 최종 시한이 끝나고 특공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압송에 조용히 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군부가 무르시를 몰아낸 데 대해 대부분의 서방 언론들은 “잘못된 쿠데타”라면서 비판적인 기조를 드러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무르시의 많은 실책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였다”면서 “군부의 축출은 의문의 여지없이 쿠데타”라고 지적했다. 영국 언론인 사이먼 젠킨스는 가디언에 쓴 칼럼에서 “군에 의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정부 전복은 쿠데타가 분명한데도 서방 정부들이 ‘좋은 의도를 가진 군사개입’과 쿠데타를 구분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내 시신을 밟고 가라”며 끌려간 무르시, 최대 실수는?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집권 1년 만에 축출된 이유는? 아랍권 위성방송 알아라비야가 5일 보도한 ‘무르시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 10가지’는 다음과 같다. ▲국가기관의 무슬림형제단화=각료 5명, 대통령실 8명, 주지사 7명, 시장 12명 등 무슬림형제단 출신 득세. ▲사법부와 갈등=검찰총장 해임 명령에 법원, 복직 명령으로 맞서. ‘파라오헌법 선언문’ 추진에 사법부 반발. ▲탄타위 국방장관 해임=무르시에 대한 군부의 불신 초래. 군부에 비판적인 무슬림형제단도 군부와 갈등. ▲언론 탄압=민영 TV 방송국 폐쇄, 언론인 200명 이상 검찰 조사. 대통령실은 언론인 상대 100건 소송. ▲경제재건 실패=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최저임금 인상 등 실패, 필수품 가격 인상으로 집회와 파업 이어져. ▲부적절한 외교 행보=시리아 정권 지지하는 이란 테헤란과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한 것에 대한 비판 제기. ▲무슬림형제단의 월권=국정 관련 주요 정책 발표 등으로 대중에게 부정적 대통령 이미지 형성. ▲부적절한 비상사태 선포=의회 허가 없이 수에즈 운하 인근 3개 도시에 비상사태 선포, 30일간 유지. ▲부적절한 사면권 행사=와디나트룸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22명의 강력범 재소자에게 사면권 행사 논란. ▲야권 지도부 비판 일색=무함마드 엘바라데이, 함딘 사바히, 아므루 무사 등 야권 지도자급 인사들 비방.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이집트 軍, 무르시 축출… 쿠데타 논란에 민심 분열

    이집트 軍, 무르시 축출… 쿠데타 논란에 민심 분열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집권 1년 만에 반정부 시위와 군부 개입으로 결국 권좌에서 축출됐다. 군부는 조기에 대선을 치르겠다고 밝혔지만 쿠데타 논란과 함께 민심도 분열돼 정국은 혼란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CNN에 따르면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은 3일 오후(현지시간) 국영TV 생방송에서 무르시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했다고 발표했다. 엘시시 장관은 “무르시가 이집트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아랍의 봄’으로 퇴진한 뒤 지난해 6월 대선을 통해 권력을 잡은 무르시 대통령도 정책 실정과 민심 이반으로 실각하는 운명을 맞았다. 이집트 군부는 현행 헌법 효력을 정지시키고 새로운 내각을 구성하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또 아들리 알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을 차기 대선 때까지 임시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만수르 소장은 4일 취임식에서 “무르시 사임을 촉구한 대규모 시위로 영예로운 혁명의 길을 바로잡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르시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의 반발이 거세 정치적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르시는 축출 발표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선출된 대통령이다. 군의 로드맵 발표는 쿠데타”라며 반발했다. 무르시는 측근들과 함께 카이로 공화국수비대 병영 건물에 억류됐다가 국방부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무르시의 정치적 세력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저항 집회를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반면 무르시 취임 1주년인 지난달 30일부터 대규모 시위를 벌여 온 수십만명은 이날 발표 후 축포를 쏘며 환호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이집트의 상황에 우려를 표하며 군부는 조속히 민간에 권력을 이양하라고 촉구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군이 이른 시일 안에 투명한 절차를 거쳐 민주적으로 선출된 민간 정부에 전권을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카이로 정국 시계 ‘O’…권력다툼땐 ‘아랍의 봄’ 능가하는 혼란 올 듯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카이로 정국 시계 ‘O’…권력다툼땐 ‘아랍의 봄’ 능가하는 혼란 올 듯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쫓겨나면서 이집트 정국이 시계 제로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만간 치러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군부와 세속주의자, 무슬림형제단 간의 치열한 권력 다툼이 벌어질 경우 ‘아랍의 봄’을 능가하는 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일(현지시간) 오후 9시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은 무르시의 대통령 권한을 박탈하고 이슬람 율법을 강조한 헌법의 효력을 전면 중지한다고 밝혔다. 이집트를 철권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내고 들어선 무르시 정권을 집권 1년 만에, 그것도 본격적인 반정부 시위 나흘 만에 끌어내린 것이다. 국영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이 발표 직후 무르시는 공화국 경비대에 가택연금을 당했고 그의 지지 기반인 무슬림형제단(MB) 핵심 멤버들은 출국금지 조치와 함께 체포됐다. 조기 대선·총선 실시 방침을 밝힌 군부가 아들리 알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에게 임시 대통령직을 맡기기까지 겨우 반나절이 걸렸다. 군사독재 타도 30년 만에 얻어낸 민주화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오히려 시위대는 군부를 환영하고 있다. 2년 전 과도정부를 세운 군부에 민권 이양을 요구했던 시위대의 모습과는 180도 달랐다. 이번 시위에서 충돌을 빚었던 세속주의 야권과 무슬림형제단의 관계도 변화무쌍하다. 2년 전 힘을 합쳐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했던 두 세력은 대통령이 하야한 뒤에는 서로 비방을 퍼붓더니 무르시가 취임한 이후에는 또다시 유혈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들은 목적이 같으면 허물없는 동지가 됐다가도 정세가 바뀌면 언제든 상극으로 바뀔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군부의 권력 이양이 늦어질 경우 내전에 버금가는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래 이집트를 이끌어 갈 새로운 지도자를 찾는 과정도 안갯속이다. 현재의 가장 유리한 세력은 군부다. 초대 대통령 무함마드 나기브를 비롯해 가말 압델 나세르, 안와르 사다트, 무바라크까지 네 명의 지도자를 잇달아 배출한 군부는 지금도 이집트 정치·경제·사법 분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권력 중추인 최고군사위원회(SCAF)와 최상위사법기구인 최고헌법재판소(SCC) 모두 군부가 차지하고 있으며, 이집트 경제의 40%도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60년간 실권을 유지해 온 군부가 이번 시위 과정에서 보여준 결단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1928년 서구 지배와 왕정정치 타파를 목표로 탄생한 무슬림형제단 역시 이집트를 대표하는 세력이다. 이슬람이라는 정신적 코드를 바탕으로 권력 내부의 막강한 네트워크와 지지 세력을 보유한 덕에 역대 정권과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2000년대 온건 노선으로 돌아선 무슬림형제단은 급기야 지난해 자유정의당(FJP)을 창당해 제1당에 오르더니 정치 신인인 무르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비록 지금은 수세 국면에 놓여 있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수백만 지지자와 함께 타흐리르 광장으로 나온 다음 정국 혼란을 틈타 정권을 재차지할 수도 있다. 무바라크 퇴출에 이어 무르시까지 무너뜨린 세속주의 세력 또한 이집트 핵심 권력이다. 야권인 구국전선(NSF)은 아랍의 봄 시위를 주도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대선 후보로 추천할 것으로 보인다. 황병하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는 “현재 야권 내부에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이슬람주의자와 콥트 기독교도 등 각계각층의 세력이 참여하고 있어 정치적인 단결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다”며 “지난 대선 때처럼 야권 후보가 난립할 경우 군부나 무슬림형제단에 정권을 다시 내줄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축제 분위기 속… ‘이집트 군부독재’ 악몽 솔솔

    축제 분위기 속… ‘이집트 군부독재’ 악몽 솔솔

    이집트 역사상 최초의 민주 선거를 통해 선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대와 군부에 의해 권좌에서 쫓겨나자 이집트 전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4일 AP통신에 따르면 카이로의 민주화 성지인 타흐리르 광장과 대통령궁 주변에 운집한 수십만명의 반정부 시위대는 축포를 쏘고 “신은 위대하다” “국민들이 마침내 무르시 정권을 타도했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환호했다. 그간 무르시 정권에 대한 염증이 극에 달했던 시위대는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의 사진을 들고 자동차의 경적을 울리면서 새 정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반면 카이로 나스르시티와 카이로대 주변에서 집회를 열고 있었던 친무르시 세력은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의 권한을 박탈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당혹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무르시의 중추 세력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군부의 조치를 “명백한 쿠데타”라고 비난하면서 군부에 대한 저항 집회를 멈추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무슬림형제단의 게하드 엘 하다드 대변인은 3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정세가 바뀔 때까지 거리에서 우리의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평화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저항의 수단으로 폭력을 쓰지는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집트의 소요 사태와 관련해 주요 국가들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독주하던 무르시가 물러난 것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복잡한 입장을 내비쳤다. 이번 사태를 쿠데타라고 규정하면 무르시 대통령 편에 선 것처럼 보이거나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정국 안정을 위해 군부가 조속히 민간에 권력을 이양할 것을 촉구하는 선에서 입장을 밝히는 등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영국의 윌리엄 헤이그 외무장관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분쟁 해결을 위해 군이 개입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도 쿠데타라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반면 지난 6월 이집트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는 무르시의 축출 소식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이집트에서 벌어지는 것은 이른바 정치적 이슬람주의의 몰락”이라면서 “정치적 목적 또는 특정 분파의 이익을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자들은 몰락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집트 군부 무르시 축출] 만수르, 새 선거법 정비 주도할 듯…엘시시, 청렴·유능한 엘리트 평가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군부의 개입으로 하야하게 되면서 실세로 떠오른 두 인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군부가 내세운 임시 대통령인 아들리 알 만수르(67) 헌법재판소 소장과 군부 내 대표적인 미국통으로 꼽히는 압델 파타 엘시시(58) 국방장관이다. 이집트 군부는 3일 밤(현지시간)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면서 임시 대통령으로 만수르 소장을 내세웠다. 지난 1일 헌재부소장에서 소장으로 취임한 그는 지금껏 발휘해 온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했지만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시절부터 오랜 기간 민·형사법원, 종교법원 등을 두루 거치며 사법부에 몸담아 왔다. 이집트 군부가 그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새 선거법을 정비하는 데 그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만수르 소장은 카이로대학을 거쳐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국립행정학교에서 수학했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의 타렉 마수드 부교수는 미국 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만수르가 무르시나 무바라크 같은 대통령으로서의 실권은 갖지 못할 것”이라며 “군부는 헌법적 외양을 갖추는 것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엘시시 장관은 지난해 8월 물러난 무함마드 후사인 탄타위 전 국방장관의 뒤를 이어 군부를 무난히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집트 군부가 자국 내에서 비교적 청렴하고 유능한 조직으로 존경받는 엘리트 계층으로 평가받는 것도 그에게는 유리한 부분이다. 현재 군부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90%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엘시시 장관이 독실한 이슬람 신자라는 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무슬림형제단에 기반을 둔 무르시 대통령이 지나친 친이슬람주의 정책을 시행해 비난받았기 때문이다. 한편 군부를 제외한 야권 지도자로 이미지를 구축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72)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노벨평화상 수상자, 무바라크 정권 시절 마지막 총리를 지낸 아흐마드 샤피끄(71)도 이집트의 차기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극우’ 부전여전

    지난해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18%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한 마린 르펜 프랑스국민전선(FN)의 대표가 무슬림을 나치 부대에 비유한 발언으로 유럽의회에서 면책특권을 박탈당했다. 아버지 장마리 르펜 전 국민전선 대표도 1998년 반유대적 발언으로 면책특권을 잃은 바 있어 ‘부전여전’으로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 등에 따르면 르펜 대표는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 본부에서 진행된 투표 결과 찬성 11표, 반성 1표로 면책특권을 박탈당해 인종차별 혐의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르펜 대표는 2010년 프랑스 거리에서 기도하는 무슬림들을 2차 세계대전 당시 주둔했던 나치 부대에 비유해 남동부의 리옹 법원에 제소됐으나 유럽의회 의원 신분이라는 이유로 면책특권이 적용돼 지금껏 처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는 의회의 조사에서 “15년 전부터 우리는 거리에서 기도하기 위해 모여 있는 무슬림들을 보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들이 10~15개의 공공장소를 차지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르펜 대표는 2004년과 2009년 유럽연합(EU) 회원국 시민들이 5년에 한 번씩 투표에 참여해 선출하는 유럽의회 의원직에 당선돼 현재까지 활동해 오고 있다. 인종차별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르펜 대표는 최대 징역 1년형과 4만 5000유로(약 6673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美 “이집트, 조기 대선 하라” 軍 “피 흘릴 각오”… 무르시 사면초가

    이집트 반정부 시위대와 군부로부터 전방위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하야 불가 방침을 거듭 밝히면서 이집트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이집트 사태에 소극적이었던 미국이 무르시 대통령에게 조기 대선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무르시 대통령이 고립무원의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야권과의 합의 실패 시 무력 개입하겠다는 군부의 최후통첩 시한(현지시간 3일 오후 4시)을 조금 앞둔 3일 오전 무르시 대통령은 생방송 TV에 출연해 “이집트 국민의 자유의지에 따라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만큼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그는 “역사에서 퇴진하느니 나무처럼 서 있다가 죽는 게 낫다”면서 군부도 무력 개입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발표 직후 이집트군 수뇌부는 공식 페이스북에 ‘최종 시간’이라는 성명에서 “테러리스트와 바보들에게 맞서 피 흘릴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해 무르시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군 관계자는 이 메시지는 무르시가 임명한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으로부터 나왔다고 전했다. 이집트 관영통신 메나는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이 최후통첩을 거부하는 상황에 대비해 헌법 효력을 정지하고 의회를 해산하는 내용을 담은 정치적 로드맵을 이미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로드맵에 따르면 군부는 무슬림형제단과 이슬람주의자들이 장악한 슈라위원회(국회)를 전면 해산하고 이들이 통과시킨 헌법을 정지한 뒤 국방장관과 각 정당, 시민단체, 종교기관 대표 등으로 구성된 새로운 과도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CNN은 미국이 이집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르시 대통령에게 조기 대선과 내각 개편을 제안했다고 익명의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은 무르시 대통령에게 새 총리와 내각을 지명하고 검찰총장을 경질하도록 조언했다”며 “동시에 군부에도 쿠데타를 일으킬 경우 (연간 15억 달러의) 원조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했다”고 밝혔다. CNN은 또 다른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앤 패터슨 카이로 주재 미 대사와 국무부가 최근 이 같은 방침을 무르시 대통령 측에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그런 결정을 내릴 주체가 아니다”라며 해당 보도를 부인했다. 한편 4일째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오전 카이로대학 앞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대와 무르시 지지자 간 시위 도중 유혈 충돌이 발생해 최소 18명이 숨지고 400여명이 다쳤다고 관영 메나통신이 보도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48시간 내 국민 요구 수용하라” 이집트 군부, 무르시에 최후통첩

    취임 1주년을 맞은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틀째 이어지면서 시위대가 무르시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무슬림형제단 본부를 공격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였다. 무르시 대통령이 버티는 가운데 장관 5명이 집단 사퇴하고,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의 결단을 압박하고 나서 이집트 정국은 더욱 요동칠 전망이다. 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반정부 시위가 이어진 가운데 시위대가 카이로에 있는 최대 이슬람 조직이자 무르시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 기반인 무슬림형제단 본부를 공격, 건물 내부에 있던 2명이 다쳤다. 목격자들은 시위대가 무슬림형제단 건물 1층에 화염병을 던져 유리창이 깨지고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고 전했다. 반정부 시위를 이끈 ‘타마로드’(반란)는 이날 무르시 대통령에게 2일 오후까지 퇴진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타마로드는 성명에서 “무르시는 2일 오후 5시까지 사임하라. 그러지 않으면 전면적 시민 불복종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이로 타흐리르광장과 대통령궁 주변에는 전날에 이어 시위대 수백명이 무르시 대통령의 퇴진과 조기 대선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무르시 대통령은 퇴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혀 정국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무르시 대통령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일탈 행위에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보통신부와 환경부, 관광부 등 장관 5명이 이날 정치적 혼란에 책임을 지고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이집트 국영TV가 전했다. 이들은 반정부 시위대에 동조하는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군부는 이날 국영TV를 통해 밝힌 성명에서 “국민의 요구가 48시간 내 충족되지 않으면 군부가 개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48시간이라는 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책임을 져야 한다”며 무르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편 이틀간 이어진 시위로 최소 16명이 숨지고 780명 이상이 다쳤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전문가 진단] 이슬람·세속주의 충돌… 군부 개입이 관건

    [전문가 진단] 이슬람·세속주의 충돌… 군부 개입이 관건

    2011년 2월 아랍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이집트는 장기 군부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주의 정권을 창출했다. 하지만 새 정권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대다수 이집트인들이 원했던 형태가 아니라 이슬람주의를 주창하는 정권이었다. 그 중심에는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과 무슬림형제단(MB), 자유정의당(FJP)이 있었다. 30일은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1년 동안 이집트는 4900여 차례 파업과 22차례의 대규모 시위 등 수많은 정치·사회적 혼란을 겪었다. 이집트 정치와 사회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주체는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 군부다. 내부의 역학구도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대립, 이슬람 세력과 군부의 갈등, 기득권 세력과 일반 대중의 갈등으로 형성돼 있다. 30일 대규모 시위를 주도한 세력은 지난 4월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타마르루드’(Tamarrud) 운동이다. 이는 무르시 정권에 대한 불신임, 불복종 운동으로서 세속주의 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운동은 지난 대선 후보자였던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등 야권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운동은 무르시 대통령의 하야와 조기 대통령 선거를 요구하고 있으며, 1500만명 이상의 지지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반면 친 무르시 지지자들은 6월부터 ‘타자르루드’(Tajarrud)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공평과 공명정대, 합법성을 주장하는 운동으로 이슬람주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 운동은 무르시 대통령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합법적으로 당선됐기 때문에 반(反)무르시 집회를 개최하는 것은 반헌법적이고, 미국과 시온주의자(유대 민족주의자)들의 사주를 받은 무모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대중들은 지난 30년 동안 축적됐던 부패와 타락을 해소하기 위해 1년은 너무 짧은 기간이기 때문에 4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치적으로 1년 만에 무르시를 몰아내면 더 큰 혼란이 닥쳐 이집트의 정치는 더 큰 수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양 진영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30일 반정부 시위 이후 이집트 사회의 미래가 여전히 불안한 것은 이슬람주의자들과 세속주의자들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계속 대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군부는 위기 때마다 정치에 개입할 공산이 크고, 이슬람은 이집트의 전통적·현대적 가치에서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 [위클리 포커스] 기로에 선 이집트 ‘아랍의 봄’

    [위클리 포커스] 기로에 선 이집트 ‘아랍의 봄’

    ‘재스민 혁명’(튀니지 민주화 혁명) 이후 ‘아랍의 봄’의 성지로 불렸던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이 또다시 긴장에 휩싸였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축출한 뒤 반세기 만에 이뤄진 민주 선거에서 지도자를 뽑았던 이집트 시민들은 1년 만에 광장으로 다시 나와 무르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제2의 재스민 혁명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무르시 정권 1년에 대한 평가와 향후 이집트 정국을 전망해 본다.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 취임 1주년인 30일(현지시간) 수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세력 간의 대규모 맞불 시위가 벌어졌다. CNN·B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수천명의 시민들은 무르시 대통령의 하야와 재선거를 요구하며 대통령 집무실까지 행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야권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시위대 ‘타마르루드’(아랍어로 반란)는 무르시의 불신임 서명운동에 이집트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달하는 2213만명이 서명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무르시 정권이 자신들을 옹립한 무슬림형제단의 권력 독점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경제난과 치안 부재 등 이집트 내부 문제 해결에는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한 시위 참가자는 “무르시는 상처 입은 채 궁지에 몰린 사자”라며 “그가 우리를 공격하든 안 하든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미국 공영방송(NPR)이 보도했다. 반정부 시위는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나일 델타 지역의 메누프·마할라, 운하 도시 수에즈, 포트사이드는 물론 무르시의 고향인 자가지그에서도 동시에 열렸다. 이날 이집트 전역의 시위에는 최대 100만명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시간 반정부 시위대를 규탄하는 맞불 시위를 개최한 무슬림형제단 소속 회원과 친정부 성향의 이슬람주의자들은 “무르시는 역사적인 자유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며, 불황과 종교적 갈등 문제는 현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이번 시위의 배후에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잔재 세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무르시 대통령은 이날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합법적으로 선출된 누군가를 바꾼다면 그들(시위대)은 또 새로 뽑은 대통령을 반대할 것”이라며 시위대의 퇴진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앞서 28일에는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에서 무르시 찬반 시위대 간 무력 충돌로 이집트 미 문화원 영어 강사로 일하던 미국인 앤드루 프록터(21)를 포함해 8명이 숨지고 600여명이 부상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이란 “시리아 정부 지원군 4000명 긴급 파병”

    이란이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군을 돕기 위해 병력 4000명을 긴급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사우디아라비아는 반정부군에 대공 미사일을 제공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리아 내전이 무슬림 종파 간의 복잡한 갈등 양상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이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 “이란이 지난 14일 치러진 대선 전에 이미 4000명 규모의 이란 혁명군을 시리아에 보내 수니파 반군과 싸우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정부군은 최근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인 헤즈볼라와 합류해 북부 알레포 등 반군의 주요 거점을 공격하는 등 전방위 공세를 취하고 있다. 이에 맞서 같은 이슬람 수니파인 시리아 반군을 지지하는 사우디는 반군에 유럽산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MANPADS)과 이동식 방공시스템을 보내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AFP 통신이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지대공 미사일은 저공 비행기를 타격할 수 있으며 1980년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무자히딘’(이슬람 전사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구 소련군에 맞서 사용했던 무기다. 지난 2년간 계속된 시리아 내전에서는 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시아파 정부군과 수니파 반군의 대결로 9만여명이 희생됐다. 인디펜던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내전 불개입 원칙을 깨면서 미국은 이제 중동에서 가장 극단적인 수니파 이슬람주의들의 편에 서서 내전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게 됐다”고 전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파리 대낮 번화가서도 군인에 흉기테러

    파리 대낮 번화가서도 군인에 흉기테러

    영국 런던에 이어 프랑스 파리 번화가에서도 대낮에 군인을 노린 칼부림 사건이 벌어져 비상이 걸렸다. 25일(현지시간) AF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쯤 파리 라데팡스 기차역 안에서 테러 감시 활동을 위해 군복을 입고 순찰 중이던 군인 세드릭 코르디에(23)가 괴한이 휘두른 커터 칼에 수차례 찔려 다쳤다. 피해자는 프랑스 제4기병대 소속으로 사건 당시 프랑스 대테러 감시 활동인 ‘비지피라트’에 따라 동료 군인 2명과 함께 순찰 중이었다. 피해자는 목에 입은 상처로 피를 많이 흘렸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로 알려졌다. 파리 경찰 당국은 현장 폐쇄회로(CC)TV를 토대로 용의자가 30대 중반의 북아프리카계 남성으로 190㎝의 큰 키에 수염을 길렀으며, 무슬림이 쓰는 모자와 ‘젤라바’(아랍인이 입는 긴 외투)를 착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범행 후 혼란한 틈을 타 주말 관광객으로 붐비는 상점가로 도주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에티오피아를 방문 중인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지금 단계에서 (이번 사건을) 런던 테러와 연계할 만한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으나,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반면 장이브 르드리앙 국방장관은 이번 사건을 ‘군인을 노린 테러 사건’으로 규정,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은 수사팀이 올해 초 아프리카 말리에 대한 프랑스의 군사 개입 이후 보복을 다짐해 온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지부(AQIM)가 이번 사건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22일 런던 테러 사건 이후 영국 내에서 이슬람 혐오 범죄가 잇따르는 등 반(反)이슬람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고 BBC방송이 25일 보도했다. 북동부 뉴캐슬에서는 이날 ‘영국수호리그’가 주최한 집회에 1500여명이 참가해 피해자 군인인 리 릭비(25)의 이름 등을 외치며 행진하다 출동한 기마 경찰부대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 앞서 런던 수사 당국은 사건 당일 마이클 아데볼라요(28)와 공범 마이클 아데보왈레(22) 등 용의자 2명을 체포한 데 이어 23일에도 남성과 여성 2명을 추가로 잡아들였다. 이들 가운데 아데볼라요는 2010년 알카에다와 연계된 소말리아 군 조직인 알샤바브와 테러훈련을 준비하던 중 케냐 경찰에 체포돼 강제추방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또 24일에는 “친구인 아데볼라요가 사건 6개월 전 알카에다 정보를 빼내려던 영국 정보기관 MI5로부터 비밀활동을 제안받았다”고 폭로한 아부 누사이바(31)가 방송 직후 테러 공모 혐의로 체포됐다고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이런 가운데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극단주의 교리를 설파하는 이슬람 종교 지도자의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극단주의자·급진화 방지 태스크 포스’(TERFOR) 설치를 지시하는 등 대테러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에 나섰다고 26일 데일리메일이 보도했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英 “대테러 구멍” 비난 봇물

    지난 2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테러사건을 수사 중인 영국 경찰이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용의자 2명을 추가로 체포했다. 23일 BBC와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영국 경찰은 이번 사건에 공모한 의혹을 받고 있는 29세의 남성과 여성을 긴급 체포했다. 경찰은 이들이 알카에다와 연계된 소말리아 테러조직인 알샤바브에 가입하기 위해 소말리아를 방문하려 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사건 현장에서 붙잡힌 용의자 한 명의 신원도 밝혀졌다. 테러 당시 카메라에 잡힌 흑인 남성 마이클 오루미데 아데볼라요(28)는 나이지리아 혈통으로 런던 램버스에서 태어나 그리니치 대학을 다녔다. 22세인 또 다른 용의자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인디펜던트는 아데볼라요가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와 가까운 무슬림 지도자들의 강연을 즐겨 듣곤 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정보국인 MI5도 아데볼라요가 과거 급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슬람 팸플릿을 시민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영국 내에서 정보당국의 테러 대처 능력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현재 영국 정부는 추가 테러에 대비해 군부대 시설물과 인구 밀집지역, 교통 중심지 등에 1200여명의 경찰을 투입해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한편 영국 정부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육군 소속 리 릭비(25)라고 발표했다. 2006년 입대한 릭비는 기관총 사수로서 아프가니스탄과 키프로스, 독일 등에 파병됐고, 특히 2009년까지 아프간 부대에서 두 차례 복무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급진 이슬람, 런던 한복판 ‘흉기 테러’

    영국 런던에서 이슬람 급진주의자로 추정되는 괴한 2명이 대낮에 영국 군인 1명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정부는 이번 사건이 미국 보스턴 테러와 같이 서구에 불만을 품은 자생적 테러리스트인 ‘외로운 늑대’의 소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경찰 수사를 벌이고 있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20분쯤 런던 동남부 울위치의 영국 포병대 막사 인근 거리에서 흑인 남성 2명이 20대 군인 1명을 벌채용 대형 칼과 정육점 칼 등으로 무참히 살해했다. 목격자들은 용의자들이 피해자를 끌고 다니는가 하면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현장을 배회하면서 시민들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영국 ITV가 이날 공개한 동영상에는 용의자들이 피묻은 칼을 든 채 아랍어로 “신은 위대하다”고 외치고, 영국 억양의 영어로 “전능하신 알라신 앞에 맹세하건대 우리는 당신들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할 것이다”고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용의자들은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나선 스카우트 교사 잉그리드 로요케네트에게 “(피해자가) 무슬림들을 죽였기 때문에 살해했다.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슬림들을 살해하는 것에 신물이 난다”고 범행 이유를 털어놨다. 용의자들은 사건 발생 20분 만에 출동한 경찰이 쏜 총에 맞고 체포됐으며, 한 명은 중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용의자 중 한 명은 런던에서 태어난 나이지리아 혈통의 마이클 오루미데 아데볼라요(28)이며, 지난 2001년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고 더타임스가 보도했다.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의 배후에 알카에다의 지시가 있었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영국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합류해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보내고, 최근에는 말리 내전에 개입한 프랑스를 지지하면서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표적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프랑스에서 중도 귀국해 비상대책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테러에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범인들이) ‘단독으로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고 말해 이번 사건의 원인이 이슬람과는 무관함을 강조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①Axum악숨, Lalibela 랄리벨라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①Axum악숨, Lalibela 랄리벨라

    수백만년 전 유인원 루시Lucy가 직립보행을 시작했으며, 모세가 신으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이 지금도 보관돼 ‘있다는’ 나라. 전설과 신화, 역사가 뒤엉킨 에티오피아 북부 지역을 여행했다. 흡사 장대한 스케일의 대하소설 속을 유랑하는 것만 같았다. 랄리벨라에 있는 암굴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수도사의 모습 곤다르 교회의 천장에 새겨진 천-사들의 얼굴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Axum악숨 에티오피아의 처음을 더듬어 보다 와인처럼 깊은 향기가 매혹적인 예가체프Yirgacheffe 커피를 제외하고는 에티오피아에 대해 별다른 호감이 없었다. 가난과 기근, 현대문명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원시 부족들,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이런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수많은 나라를 제쳐두고 굳이 에티오피아를 여행할 이유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에티오피아인들의 문화적, 역사적 자부심을 몰랐을 때의 이야기였다. 고대에는 동아프리카와 아라비아 일대에서 강대국으로 군림했으며,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보다도 기독교를 일찍 받아들여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19~20세기 열강의 침략을 뿌리친 나라. 이처럼 화려했던 에티오피아의 과거를 더듬어 보는 여행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문화유적을 둘러보는 이번 여정은 수도 아디스아바바Addis Ababa에서 출발해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바하르다르Bahar Dar, 곤다르Gondar, 악숨Akxum, 랄리벨라Lalibela를 거쳐 다시 수도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기원을 만날 수 있는 곳부터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좋으리라. 하여 악숨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사실 악숨은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눈이 심심한 도시였다. 가는 곳마다 유적은 폐허였거나 발굴 중이었기에 ‘볼거리’ 측면에서 영 시덥지 않았다. 그러나 시바Sheba 여왕과 성경에 얽힌 전설 혹은 신화(그들은 ‘역사’라 한다), 악숨왕국의 명성 등은 여행자로 하여금 무궁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고, 여행 후에도 그 잔상은 오래 남았다. 구약성서에도 등장하는 시바는 기원전 10세기경 아라비아와 동아프리카 일대를 다스렸던 나라로, 시바의 여왕이 이스라엘의 솔로몬과 사랑에 빠져 낳은 아들이 바로 에티오피아 최초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메넬리크Menelik’다. 시바 여왕과 메넬리크는 에티오피아에서는 단순히 국가의 시조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들에 얽힌 신화는 주변국인 수단, 에리트리아, 예멘 등도 공유하고 있지만 에티오피아는 자신만의 역사로 편입시키며 국가의 뿌리로 주장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그러한 역사가 서린 악숨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시바 여왕의 존재를 여전히 수수께끼처럼 여기지만 악숨에는 여왕의 궁전터와 목욕탕 등이 남아 있다. 물론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악숨에 사는 사람들은 해마다 시바 여왕의 목욕탕에서 세례의식을 치르며 그녀를 잊지 않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악숨에 자리한 시온의 성 메리 교회. 바로 옆에 있는 ‘구교회’에는 이스라엘에서 가져온 모세의 법궤가 있다고 한다 2 정교회에서는 에티오피아 고대어인 ‘기즈어’로 쓰인 성경을 본다 3 교회 앞마당, 보라색 꽃이 핀 자카란다 나무 아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즐기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모세의 법궤에 얽힌 수수께끼 신화가 서린 도시 악숨에서도 가장 믿기 힘든 이야기는 모세가 신으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법궤, 그러니까 유대교와 기독교 역사에서 각별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는 역시 시바 여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날 메넬리크는 아버지 솔로몬을 만나고자 예루살렘으로 갔고, 부자는 감격적인 해후를 나눴다. 솔로몬은 메넬리크에게 왕권을 물려주길 원했으나 메넬리크는 고심 끝에 거절하고 에티오피아로 발길을 돌렸다. 이를 아쉬워 한 솔로몬은 유대교 사제 64명과 1만2,000명의 젊은이들을 함께 보내 줬다. 그런데 한 신실한 사제가 신의 법궤와 절대 떨어질 수 없다며, 그것을 훔쳐 왔고 법궤의 힘으로 메넬리크와 무리는 ‘순식간에’ 악숨까지 이동해 왔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 주변국에 점령을 당해 수천년간 비참한 국운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법궤를 잃은 탓이라 한다. 법궤는 지금까지도 악숨의 ‘시온의 성 메리 교회St. Mary of Zion Church’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 교회는 4세기 무렵 악숨의 이자나Ezana 왕이 세운 것으로, 아프리카 최초의 기독교 교회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법궤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의 *정교회 수도사뿐, 그것도 1년에 단 한차례 지성소 안에 들어가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교회 옆, 오래된 박물관에는 고대, 중세 왕들의 화려한 금관을 비롯해 다채로운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19세기 말, 이탈리아 군대가 이 유물들을 갈취하러 왔다가 법궤의 기운에 압도되어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만화 같은 전설들을 결코 우습게 여길 수 없었던 것은 이런 이야기들이 지금의 에티오피아를 떠받치는 힘이기 때문이다. 악숨에는 신약성서에 등장하는 에티오피아 내시에 관련된 유적도 있다. 예수 사후, 초대 기독교의 지도자였던 빌립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에티오피아 내시는 이스라엘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기독교를 전파하고 직접 세례터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실제로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진 다수의 세례터가 악숨에서 발견됐다. 시온의 성 메리 교회 주변에는 오벨리스크Obelisk 수십 개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높이 30m, 무게 500톤이 넘는 화강암 덩어리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만으로도 강력했던 당시 권력을 가늠할 수 있다. 오벨리스크 아래 묻혀 있던 유물들은 모두 도굴되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 정교회 4세기 악숨의 이자나 왕 시절에 전파됐다. 예수의 ‘인성’을 부인하는 단성론을 믿으며, 20세기 초까지 이집트 콥트교회의 분파였다가 독립된 체제를 갖추게 됐다. 에티오피아 국민들의 43% 가량이 정교회 교인으로, 에티오피아를 떠받치는 강력한 사회문화적 토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Lalibela 랄리벨라 천사가 함께 만든 암굴교회 에티오피아 영토에서는 다양한 국가가 명멸을 거듭했다. 고대에 위세를 떨쳤던 악숨 왕국은 홍해와 아라비아 지역의 무역 중개권을 무슬림에 빼앗긴 뒤 붕괴됐고, 이후 수백년간은 암흑기로 역사가 남아 있지 않다. 이후 12세기에 이르러 악숨에서 400km 가량 남쪽에 위치한 랄리벨라Lalibela 지역에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자그웨 왕조Zagwe Dynasty가 들어섰고, 건축사적으로 각별한 의미를 갖는 독특한 암굴교회를 남겼다. 랄리벨라 공항에 내려 암굴교회를 찾아가는 길은 흡사 인디애나 존스가 법궤를 찾아가는 여정을 연상시켰다. 해발 2,800m, 산악지대에 건설된 도시는 모래먼지가 휘날리며 황량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눈에 띌 리가 없는 암굴교회는 미로 속을 헤짚어야 나올 것만 같았다. 다행히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교회는 마을 중심가에서 멀지 않았고, 입구에는 유럽에서 온 성지순례 여행객들로 바글거렸다. 순례객들은 11개의 교회를 둘러보면서 연신 ‘언빌리버블!’을 외치기에 바빴으니, 이는 기이한 건축물의 위용에 압도된 것도 있겠지만 약 천년 전 교회가 만들어진 과정도 믿기 힘든 마술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위세를 떨치던 12세기, 랄리벨라 왕은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난 뒤 자신의 땅을 ‘제2의 예루살렘’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왕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무슬림에 공격을 당하더라도 화재의 위험이 없는 암굴교회를 짓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약 4만명을 동원해 23년에 걸쳐 11개의 교회를 완공했다. 유럽의 중세교회 하나를 짓는 데 수십년에서 100년 이상 걸린 것을 감안하면 ‘눈 깜짝할 사이’라 할 만하다. 전승에 따르면 인부들이 일을 하다가 잠을 자거나 쉬는 사이에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공사를 도와줘 시간이 단축됐다 한다. 천사가 일꾼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바위를 쪼개가며 30m 이상의 깊이로 바위를 파내가며 예술적인 요소까지 놓치지 않고 11개의 교회를 완공했다는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불가사의한 건축물임에는 틀림 없다. 11개의 교회들은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한덩이의 암석으로 이뤄진 교회가 있는가 하면, 몇 개의 거대 암석을 덧대어 만든 것도 있고 동굴 형태도 있다. 가장 큰 규모의 ‘메드하네 알렘 교회Bet Medhane Alem’는 한덩이 암석으로 72개의 기둥을 갖췄을 정도로 세밀하게 고안됐는데 형태는 악숨의 건축양식을 따라 지어졌다. 가장 유명한 교회는 정교회의 십자가 모양으로 건축된 ‘성 조지 교회Bet Giyorgis’다. 언덕에서 내려다본 교회는 그리스 정교회의 십자가형으로,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형태가 완벽히 보존돼 있다. 실내는 다른 교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화살촉 문양의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남쪽의 ‘아바 리바노스 교회Bet Abba Libanos’는 랄리벨라 왕의 부인이 천사들과 함께 하루 만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요르단의 페트라를 연상시킨다. 11개의 교회들은 크게 북쪽 그룹과 남쪽 그룹으로 나뉘어 있는데, 중간에 흐르는 강은 예수가 세례를 받은 ‘요단강Jordan river’, 교회 곁을 지키고 있는 야트막한 산은 예수가 거룩한 모습으로 변했던 ‘다볼산Mt.Tabor’으로 불린다. 메드하네 알렘 교회 내부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무덤이 꾸며져 있어 ‘제2의 예루살렘’을 꿈꿨던 랄리벨라 왕의 신앙심 혹은 기지를 확인할 수 있다. 11개 교회에는 지금도 수많은 정교회 수도사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사진을 요청하거나 귀중품을 보여 달라고 하면 대부분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수도사들에게 정중하게 팁을 건네는 것은 최소한의 에티켓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랄리벨라 11개 교회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성 조지 교회. 정교회의 십자가 모양으로 암석을 위에서 파내려가며 만들었다 2 정교회 수도사들은 친절하게 여행객을 맞아준다3 교회 내부에는 예수의 제자들과 정교회에서 추앙하는 성자들을 새겨 기념하고 있다4 랄리벨라는 유럽 성지순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여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까닭이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주한에티오피아대사관 02-790-9766, 에티오피아항공 02-733-0325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②Gondar 곤다르, Mt. Simien National Park시미엔산 국립공원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②Gondar 곤다르, Mt. Simien National Park시미엔산 국립공원

    Gondar 곤다르 유럽과 아시아를 품은 궁전 에티오피아에 어떤 볼거리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의외로’ 문화유적이 많다는 답과 함께 랄리벨라와 곤다르Gondar가 거명된다. 16세기까지 암흑기를 거친 에티오피아 땅에는 그럴싸한 제국도, 번듯한 수도도 없었는데 파실리다스Fasilides 황제가 등극하며 곤다르를 수도 삼아 막강한 권력을 떨쳤고, 후대 왕들도 같은 요새 안에 각기 다른 양식의 궁전을 지었다. ‘파실 게비Fasil Ghebbi’라 불리는 이 요새 지역은 수차례 외침을 겪으면서도 그 형태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해발 2,200m, 분지형으로 도시 자체가 하나의 요새 같은 곤다르. ‘요새 안의 요새’ 파실 게비에 들어서자 각기 다른 양식의 고성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같은 문명권의 건축물이라 하기엔 이질적으로 보이는 고성들은 약 200년의 통치기간 동안 곤다르가 다양한 문명과 교류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최초의 건물은 파실리다스 황제가 지은 것으로 악숨과 포르투갈, 북아프리카 무어인Moorish, 인도 등 다양한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궁전 내부의 문화재들은 대부분 소실되었는데 연회장, 기도실, 침실 등 다채로운 용도로 공간을 나눠 사용한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요하네스Yohanness 1세의 궁전은 이탈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밝은 노란색 페인트로 덮여 있고, 그의 아들 이야수Iyasu 1세의 궁전에는 베니스 상인들을 통해 들여온 거울과 금 장식과 그림들이 화려하게 전시돼 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파실 게비 안에는 터키식 목욕탕, 사자를 가둬둔 우리, 도서관, 연회장 등 여가 생활을 위한 공간들도 남아 있다. 요새와 고성들은 18세기 지진과 2차 세계대전 시절 영국군의 폭격으로 일부 파괴됐으나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재건됐다. 파실리데스 왕은 요새에서 2km 떨어진 곳에 별장과 목욕탕을 만들었는데, 그 크기가 웬만한 수영경기장보다도 크다. 황제가 로열패밀리들과 여가를 즐기던 장소는 이제 에티오피아 정교회에서 매년 예수의 세례를 기념해 축제를 벌이는 장소로 쓰인다. ‘팀카트Timkat’라 불리는 이 축제 때면 곤다르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흰 천을 두르고 모여 성탄 전야부터 당일까지 성찬을 즐기며, 세례의식을 거행하고 목욕탕에서 수영을 즐기는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스페인의 라토마티나, 태국의 쏭크란에 견줄 만한 이 숭고하고 흥미로운 ‘물의 축제’를 보려면 에티오피안력으로 성탄절인 1월19~20일에 곤다르를 찾으면 된다.곤다르에서는 이야수 1세가 세운 ‘데브레 베르한 셀라시교회Debre Berhan Selassie Church’도 지나칠 수 없다. 교회 내부를 수놓은 독특한 에티오피아식 성화는 모든 교회에서 볼 수 있지만 이곳만큼 화려한 곳은 없다. 특히 교회 천장에 그려진 135개의 천사 얼굴은 에티오피아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쓰이고 있다. 천사들의 눈빛은 모두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고, 각양각색의 표정을 짓고 있어 인간을 보호하고 희로애락을 공감하는 신의 마음을 대변한다고 한다. 현대판 엑소더스, 그리고 남은 유대인 에티오피아는 기독교 문화에 기반한 나라지만 다양한 종교를 믿는 이들이 별 갈등 없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정교회 인구가 43.5%, 무슬림 33.9%, 개신교 18.6%로 다양하게 집계됐는데 1990년대 초까지 1만4,000명에 달했던 유대인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곤다르에는 이스라엘로 떠나지 못한, 혹은 떠나기를 거부한 소수의 유대인만이 모여 사는 초라한 마을이 남아 있다. 1991년 에티오피아에 들어선 공산정권은 농업집단화 정책을 펼쳤고, 이에 반발한 ‘펠라샤Felasha’라 불리는 유대인들은 집단 학살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들은 4세기 악숨에서 기독교가 국교화됐을 때도 신앙을 굽히지 않은 이들의 자손이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 국무부, CIA 등과 협력하여 이른바 ‘솔로몬 작전’을 펼쳤고, 불과 36시간 만에 34대의 비행기를 투입해 1만4,000여 명의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탈출시켰다. 1984년 수단에서도 ‘모세 작전’을 통해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약 8,000여 명이 이스라엘로 탈출해, 현재 에티오피아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탈출을 못한 유대인들만이 남은 셈이다. 곤다르에서 약 6km 떨어진 ‘월레카Wolleka’ 마을에는 소수의 유대인들이 모여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을 입구, 다윗의 별이 그려진 팻말과 함께 어린 소녀들이 기념품을 손에 들고 관광객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런데 한 소녀의 목에 십자가 목걸이가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예수라면 치를 떠는 유대인이 십자가를? 어린 소녀이기에 별뜻 없이 액세서리를 한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이 마을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가짜 유대인들’이라 한다. 그저 생계를 위해 유대인 행세를 하고 있는 그들은 우습게도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 예수에게 기도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짜 유대인은 없는 것인가? 마을 한켠, 푸른색 다윗의 별 장식이 걸려 있는 집에는 이 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유대인 여성 ‘매리 니구시Mariy Nigusie’ 씨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솔로몬 작전’ 때 이스라엘로 갈까도 고민했지만 수십년 살아온 고향을 도저히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을에 있던 유대교 회당은 모두 파괴되어 니구시 씨는 홀로 안식일을 지키며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기도를 한다. 종교와 국가의 엉킨 실타래 속에서 그녀는 ‘가짜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이 수공예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Mt. Simien National Park시미엔산 국립공원 5만 마리 원숭이가 사는 그랜드캐년 에티오피아에서는 케냐나 탄자니아처럼 사자와 기린, 코끼리가 초원에 떼지어 있는 장관을 볼 수 없지만 곤다르 북쪽에 위치한 ‘시미엔산 국립공원’에서는 해발 4,000m에 달하는 기이한 풍광의 산등성이와 희귀한 동물들을 마주할 수 있다. 해발 2,200m 환경에 적응이 됐을 만도 한데 산으로 접근할수록 귀가 먹먹해지고 머리는 어질해지기 시작했다. 곤다르에서 차로 2시간여, 시미엔산의 서쪽 관문인 드바라크Debark 마을에 다다랐다. 등산객들의 베이스캠프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시미엔산은 광활한 산악지역이지만 등산하기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드바라크에서 동쪽끝인 ‘첸넥Chenek’까지 포장도로가 잘 깔려 있어 체력 수준에 따라 1일부터 최대 10일까지 코스를 선택해 트레킹을 소화하면 된다. 인프라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산 곳곳에 여장을 풀 수 있는 숙소도 있다. 물론 자동차를 타고 국립공원을 관통하며 하이라이트만을 감상할 수도 있다. 산 중턱의 ‘산카바르Sankaber’에 차가 멈췄다. 그리고 눈 앞에는 미국의 그랜드캐년을 방불케 하는 외계 행성 같은 풍광이 펼쳐졌다. 시미엔산은 약 4,000만년 동안 침식과 융기, 화산 폭발이 거듭되며 형성된 지형으로, 절벽 끝에 서서 4,000m를 넘는 봉우리들과 깊은 계곡들이 교차하는 풍경을 멍하게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모든 시름이 씻겨나가는 기분이다. 절벽에서 방향을 돌리자 수백 마리의 ‘개코원숭이Gelada Baboon’ 떼가 서로의 털을 골라주며, 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붉은색 하트 무늬를 가슴에 품고 있는 녀석들은 매우 진화된 의사소통 구조와 사회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본적으로 3대가 가족을 이루고 있는가 하면 최대 800마리가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시미엔산에는 약 4만~5만 마리의 개코원숭이, 에티오피아 늑대, 큰 뿔을 가진 염소 ‘왈리아 아이벡스Walia Ibex’뿐 아니라 다채로운 조류까지, 희귀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번 여정에서는 트레킹을 즐길 만한 시간이 부족해 주요 전망대에서 산과 계곡의 풍경을 굽어볼 수밖에 없었다. 저녁 무렵 곤다르에 있는 호텔로 돌아왔을 때, 무거운 배낭을 메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독일인 여행객과 마주쳤다. 그녀는 여든살의 아버지와 함께 에티오피아를 여행 중인데 아버지는 버스로, 자신은 두 발로 시미엔산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리곤 시미엔산의 속살을 찬찬히 걸어 보지 못한 나를 안스러워 했다. “6시간 정도 내리막길을 걸었는데 환상적인 산등성이와 야생동물들을 보며 걷는 기분은 최고였어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쳤다니 정말 안타깝네요.”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주한에티오피아대사관 02-790-9766, 에티오피아항공 02-733-0325
  •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③바하르다르, 청나일폭포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③바하르다르, 청나일폭포

    Bahar Dar 바하르다르 호수 위 비밀의 수도원 느긋하게 휴양을 즐길 만한 곳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바하르다르Bahar Dar’만한 곳이 없다. 지중해변을 연상시키는 타나호수Lake Tana와 청나일폭포Blue Nile Falls로 가기 위한 관문 도시인 바하르다르는 이제껏 거쳐 왔던 다른 에티오피아 도시들과는 전혀 다르다. 여유로운 풍경이 펼쳐지는가 하면, 종교적으로 곤다르 왕국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어 여행객들이 절대 놓치지 않고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호수변에 자리한 리조트에서 오찬을 마치고 에스프레소를 한잔 마시며 여유를 만끽하는 사이, 보트 한 대가 여행객을 태우기 위해 슬며시 다가왔다. 서울의 약 6배(3,500km2)에 달하는 광대한 타나 호수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에티오피아 정교회 수도원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보트는 수도원을 찾아 북쪽으로 힘차게 내달았다. 호수 안의 작은 섬들과 호반에는 10여 개의 정교회 수도원이 있는데 뱃머리는 가장 아름답다는 ‘케브란 가브리엘Kebran Gabriel’ 수도원이 있는 섬을 빗겨갔다. 여성의 출입이 금지된 까닭이었다. 정교회 수도원이 궁벽한 호숫가에 자리잡은 것은 17세기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은 예수회가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을 강제로 개종시키려 했고, 무슬림의 공격도 거셌던 터라 이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당시부터 일부 수도사들은 결혼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여성과 마주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 한 시간여쯤 달려 ‘제게 반도Zege Peninsula’에 정박했다. 여러 수도원과 교회가 몰려 있고, 여성의 출입도 가능해 여행객의 발길이 가장 많은 곳이다. ‘성 조지 수도원Beta Giorgis’이 먼저 나타났다. 이 수도원은 에티오피아에서도 아름다운 성화들을 간직한 곳으로 유명하다. 유럽 성당의 으리으리한 성화에는 예수와 성경의 인물들, 성자들이 마냥 성스럽게 묘사됐다면, 에티오피아 성화 속 인물들은 어딘가 친근하다. 서양 미술을 기준으로 보면 신체 비율, 이목구비 등은 엉성하기 짝이 없고 색은 과장된 듯이 보이지만 에티오피아 토착 미술 양식이 반영된 이 그림들이야말로 낮은 자에게 가까이 다가간 예수를 더 잘 묘사한 것이 아닐까? 중동의 사나이인 예수를 금발머리 영화배우처럼 묘사한 유럽의 그림들이 더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이곳 수도사들은 관광객에게 호의적이다. 수도원 옆에는 화려한 금관과 에티오피아 고대어인 기즈어로 쓰인 성서도 전시돼 있다.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한 수도사는 능청스럽게 노란 가운을 걸치고 십자가를 손에 쥐더니 포즈를 취해 주었다. 수도원을 둘러보고 바하르다르로 돌아올 때는 일몰시간을 맞췄다. 푸른 호수가 점점 붉게 물들어 갈 무렵, 해를 등지고 유유히 노를 저어가는 돛단배 한 척이 나타나 한 폭의 그림을 완성시켜 주었다. 파피루스로 만든 조각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어부였다. 타나 호수에는 펠리칸, 플라밍고 등 다양한 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어 새를 관찰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운이 좋으면 호수변에서 하마를 볼 수도 있다고 한다. Blue Nile Falls 청나일폭포 흐르고 흘러서 지중해까지 바하르다르에서 차를 몰아 1시간여, 붉은 먼지를 일으키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청나일폭포Blue Nile Falls에 다다랐다. 아프리카에서 빅토리아 폭포 다음으로 크다는 폭포를 보기에 앞서 가이드는 “지금은 건기니까 너무 큰 기대를 갖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느다란 청나일강의 지류를 따라 폭포가 있는 곳까지 약 30분을 더 걸었다. 무덤 같은 모양의 가지런한 산봉우리, 너른 들판, 양과 소를 몰고 있는 꼬마 목동들까지 폭포를 마주하기 전부터 눈앞에 펼쳐진 풍경만으로도 가슴 속이 시원해졌다. 순진한 눈망울의 어린이들은 ‘헬로우’ 하며 흔들었던 손을 뒤집어 이내 “헤이, 미스터! 머니! 펜! 초콜릿!”을 외치며 성가시게 따라붙었지만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윽고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폭포는 가문 계절의 그것이라고는 믿기 어렵게 장쾌한 소리를 내며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폭포 앞에서는 소와 양, 염소들이 촉촉히 젖은 풀을 뜯기에 여념이 없었다. 폭포 위로 파랑새가 날아 다니는 풍경은 에덴동산처럼 평화로웠다. 이번 에티오피아 여행 시기가 건기였기에 아쉬움이 가장 컸던 것은 바로 이곳에서였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여행하기 좋은 11~1월 사이를 선택하지만 경천동지의 청나일폭포 풍경을 보려면 우기가 끝난 9, 10월이 최적기다. 2003년 수력발전을 위해 폭포에 댐을 만들어 수량 조절을 하고 있지만 우기에는 400m 너비의 위용 넘치는 폭포를 볼 수 있다. 폭포가 흘러 이룬 청나일강은 빅토리아호수에서 흘러온 백나일강과 만나 이집트를 관통해 지중해까지 5,000여 킬로미터의 대여정을 치른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주한에티오피아대사관 02-790-9766, 에티오피아항공 02-733-0325
  • 야당 고위 女정치인 의문의 총격에…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에서 총선 재선거를 하루 앞두고 친(親)이슬람 성향의 야당 소속 한 고위급 여성 정치인이 피살돼 파장이 예상된다. 파키스탄 경찰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카라치에서 자흐라 샤히드 후세인(60) 테흐리크-에-인사프(PTI) 수석 부대표가 무장괴한들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크리켓 국민 스타 출신 임란 칸이 이끄는 PTI는 지난 11일 치러진 총선에서 26석을 확보,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N)에 이어 제2야당으로 도약했다. PTI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총선 이후 파키스탄 전역을 흔든 선거 부정 논란에 따른 희생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칸 PTI 대표는 트위터에서 “후세인이 강도로 위장한 표적 테러에 희생됐다”며 세속주의 정당인 무타히다카우미운동(MQM)과 영국 정부를 그 배후로 지목했다. 집권 파키스탄인민당(PPP)의 연정 파트너인 MQM은 이번 총선에서 전체 18석을 얻는데 그쳤지만, 카라치에서는 의석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에 PTI 지지자들은 선관위에 MQM이 선거부정을 저질렀다고 항의해 재선거 명령을 받아냈다. 이 지역 PTI 관계자는 AFP 통신과 인터뷰에서 “출근길 자택 인근에서 오토바이에 탄 남성 3명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후세인은 괴한들이 돈을 원한다고 판단해 가방을 넘겼지만 살해됐다”고 전했다. 후세인은 머리에 두 발의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 중에 숨졌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그러나 가디언 등 일부 영국과 현지 언론들은 경찰 당국의 발표를 인용, 이번 사건이 강도 미수 과정에서 벌어진 사고라고 보도하고 있다. MQM 측도 PTI의 배후 의혹을 강하게 부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이 구했다고 해고… 法의 판단은?

    아이 구했다고 해고… 法의 판단은?

    “아이를 구한 죄로 해고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월마트에서 해고된 셜리 개스퍼의 일성이다. 개스퍼는 사진 현상소에서 일하다가 대마 잎사귀와 마리화나가 나뒹구는 곳에 아기가 기어다니는 사진을 현상했다. 직감적으로 아기의 위험을 감지하고 지역 경찰에 문제의 사진을 제공했다. 경찰이 찾아낸 아기는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고, 아이는 구제됐다. 그런데 개스퍼는 월마트에서 해고됐다. 특정 사진을 경찰에 넘기기 전에 먼저 매장 매니저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재판에 선 두 당사자는 모두 ‘이유있는’ 항변을 했다. 개스퍼는 “분명히 아기가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즉시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월마트는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규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직원이 문제가 없는 사진도 충동적으로 경찰에 신고할 우려가 있다”고 대응했다. 이런 복잡하고 난처한 사건을 해결하고 이해관계를 풀어내기 위해 마련된 장치가 사법체계이다. 그런데 바로 그 법 테두리 안에서 결국 개스퍼는 직장을 잃었다. 법원 배심원단이 개인정보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한 월마트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명백한 선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딜레마를 웅변한 사례다. 미국의 법학자 스티븐 러벳 노스웨스턴 법학대 교수는 신간 ‘정의가 곧 법이라는 그럴듯한 착각’(조은경 옮김, 나무의철학 펴냄)에서 “정의의 실현과 법의 역할이 과연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진단한다. 러벳 교수는 ‘법과 정의의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으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적시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많다.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하며 젊은 시절 영재로 주목받았고,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투지를 보여주었다. 문화계 보수주의자들에게는 퇴폐적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성을 무분별하게 탐닉했다. 애정행각이 발각된다 해도 자신의 매력과 기지를 이용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법정에서 상대보다 자신들이 한 수 위라고 생각했고 자신들이 한 거짓말을 변호사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폴라 존스는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로 일할 당시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클린턴은 능력 있는 변호사 로버트 베넷에게 변호를 맡겨 공격적인 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존스 측 변호인단도 만만찮았다. 그들은 의외의 인물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모니카 르윈스키다. 베넷은 르윈스키가 증인으로 나선 것에 대해 클린턴에게 물었으나 “모른다”는 답으로만 일관했다.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증언 선서를 한 클린턴은 모니카 르윈스키와 단둘이 있은 적도, 성관계를 맺은 적도 없다고 차분히 거짓말을 했다. TV에서도, 대배심 증언에서도 거짓말로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다. 결국 르윈스키와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클린턴은 1년간 정치적으로 추락했고,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된 대통령이 됐다. 오스카 와일드의 실수는 더 치명적이었다. 당시 금지됐던 동성애로 법정에 서게 된 그는 자신의 변호사에게서 남색과 관련해 “엄숙하게 맹세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오스카 와일드가 그런 거짓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재판도 없었고 중노동 2년형을 선고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2006년 10월 지나 무하마드는 미시간주 햄트랙 법정에 들어설 때만 해도 자신의 종교 때문에 소송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법원에서 진실 여부를 따져야 할 것은 엔터프라이즈 렌터카가 무하마드에게 2750달러 규모의 트럭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법원에서 핵심 문제는 보수적인 무슬림인 무하마드가 쓴 니캅이었다. 파룩 판사는 “배심원들의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니캅을 벗으라고 요구했지만, 무하마드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버텼다. 결국 사건은 기각됐다. 러벳 교수는 학교 교실과 법정을 떠들썩하게 만든 명왕성 논쟁, 작은 소란을 인종차별로 부풀린 하원의원 매키니, 사소한 오리사냥에서 에너지 정책 로비 의혹을 부른 딕 체니 부통령, 보스턴 대교구 성직자 성추행 사건 등 논쟁을 불러일으킨 역사적 재판들을 나열했다. 그리고는 “사법체계에서 주요 참여자로 활동하는 의뢰인, 변호사, 판사 등이 선의를 갖고 있다 해도 올바른 정의란 실현하기 어려운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어느 것이 선이며 악인지, 어떤 가치를 더 우선시해야 하는지 명쾌한 견해도 덧붙였다. 한편의 법정드라마를 보여주듯 화제 사건의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풀어내는 책의 갈피갈피에 ‘법과 정의의 딜레마’가 어떻게 줄타기를 하는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숨겨져 있다. 1만 6000원.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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