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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칼럼] 경제를 세우는 ‘상생의 팀워크’/노영인 동양메이저·동양시멘트 부회장

    [CEO칼럼] 경제를 세우는 ‘상생의 팀워크’/노영인 동양메이저·동양시멘트 부회장

    월드컵이 다가왔다. 지난 대회 4강까지 오르며 ‘골 맛’을 톡톡히 본 우리 국민들이 이번 대회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최근 최종 엔트리가 발표되면서 대표팀의 윤곽도 드러났다. 박지성과 이영표, 안정환, 박주영, 이운재, 최진철 선수 등 나무랄 데가 없는 면면들이다.16강은 물론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두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불과 한달 전만 해도, 국민들은 불안해 했었다.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이동국 선수가 무릎 십자인대 부상으로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이동국 선수의 좌절이 곧 우리 대표팀의 최대 악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대안 찾기에 부심했다. 그 과정에서 나머지 선수들이 소외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만큼 대표팀에서 이동국 선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스트라이커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축구는 11명이 함께 뛰는 스포츠다. 스타플레이어 한명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개인 스포츠와는 달리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도 최종 엔트리를 발표하면서 “가장 균형 있는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아무리 중요하다고 스트라이커로만 엔트리를 짤 수는 없다. 공격과 허리, 수비의 적절한 균형과 조화 속에서 팀워크를 이뤄야만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동국 선수로 인해 조바심내던 국민들은 물론이고 전문가들도 막상 최종 엔트리가 발표되니 만족스러워했다. 그 엔트리에는 이동국 선수를 발견할 수 없었는 데도 말이다. 스트라이커 하나만 놓고 봤을 때는 불안했겠지만, 전체를 두고 보니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1,2명의 스트라이커에 의해 사회가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지닌 구성원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팀워크를 이루면서 발전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의 실정은 그렇지 않게 보인다. 편 가르기가 기승을 부리며 팀워크를 해치고 있다. 사회를 이분법적인 흑백논리로 나눴던 80년대로 되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계는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어 협력과 경쟁을 통해 공존하는 다변화된 사회로 변한 지 오래다. 하물며 자국 내에서는 말할 나위가 없다. 국제 사회와의 경쟁에 앞서 다양한 계층간에 대화와 타협으로 공통분모를 찾는 국민적인 합의가 선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구성원간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공존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겠다. 상대의 허물을 감싸안고, 기쁨을 함께 나눌 때 비로소 사회의 팀워크가 공고해질 것이다. 요즘 우리 기업들이 사회의 질타를 많이 받고 있다. 특히 일부 기업은 사법 심판대까지 갔다. 비록 수십년간 관행적으로 이뤄져온 일이라고 하지만 잘못된 점은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일각에서 일어난 이런 일들이 전체의 일인 양 침소봉대되면서 기업들이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편 가르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업 역시 사회의 일원으로 경제 분야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70,80년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됐고, 국제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세계경제와 경쟁하는 첨병으로 나서고 있다. 더불어 어느 사회, 어느 주체보다 사회공헌에 앞장서고 있다. 기업에 질타할 것은 질타해야겠지만 사회구성원으로서 맡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보듬어 주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 속에서 진정한 우리 사회의 팀워크가 살아날 것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에 쓰여 있는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노영인 동양메이저·동양시멘트 부회장
  • “세계서 단 하나인 회칼을 만든다”

    “세계서 단 하나인 회칼을 만든다”

    |사카이시(일본 오사카부) 이춘규특파원|“세계에서 가장 좋은 회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오직 하나인’ 칼을 만들려고 애쓴다.”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시의 명품 칼 제작 비결이다. 감각과 경험을 중첩, 수많은 실패를 통해 섭씨 1100도의 좁아터진 대장간에서 빚어낸 것이 ‘사카이 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 요리사들의 90%가 사카이칼을 쓴다고 한다. 5세기때 100여기의 고분군을 축조하기 위한 철제 도구를 제작하는 기술자들이 사카이에 집단을 형성, 대장간촌의 원형을 이루게 됐다. 여기에 ‘동양의 베니스’라 할 정도의 해상 교통요지여서 전국시대에는 일본서 가장 빨리 조총을 만들었다. 임진왜란 때 사용된 조총도 대부분 이 지역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에서 담배가 전래돼 일본에서 가장 먼저 심기 시작하면서 담뱃잎을 잘게 써는 전매품 ‘담뱃잎 칼’이 대량으로 생산됐다. 이 담뱃잎칼은 품질이 수입품보다 우수, 에도 바쿠후는 ‘사카이기와메(堺極)’라는 최고의 상표를 허락한다. 일본도를 만들던 전통이 조총, 담뱃잎칼, 식칼, 회칼로 이어진 셈이다.1982년에는 통상산업성으로부터 ‘전통공예품’으로 지정받아 더 유명해졌다. 현재 이곳에는 101개 업체가 ‘사카이칼 협동조합’을 결성, 판로를 개척하고 있다. 칼과 함께 가위와 손톱깎이 등도 만들어낸다. 칼 제작은 무쇠를 단련, 칼날 부분을 만드는 대장간과 이를 갈아서 완성품으로 만드는 갈이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지난해 전체 조합의 매출액은 250억엔(약 2147억원)이다. 일본 전체칼 시장의 6∼8%, 요리사용 칼의 90%를 점유한다. 일식 붐이 일고 있는 데 힘입어 회칼 수출도 늘어 세계 시장 점유도 늘고 있다. 사카이의 식칼이 발달하게 된 것은 맛만이 아니라 모양새도 중시하는 일본의 전통 음식문화와도 관계가 있다. 예리한 칼로 생선 등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썰어 모양까지 감상하며 먹는 전통이 칼을 발달시켰다는 것이 아지오카 도모유키 사카이칼 조합 전무이사의 설명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칼을 요리사들은 분신처럼 다룬다. 일식집을 운영하는 모치즈키 히데키는 “횟집 요리사들은 점포를 옮겨갈 때도 칼은 반드시 가져간다.”면서 “칼날에 따라 미묘한 맛 차이가 있기 때문에 주인이 종업원의 칼을 쓰려 할 때도 허락을 받고 쓸 정도로 엄격하다.”고 소개했다. 어려움도 적지 않다. 대장간 이케다 단련소의 이케다 요시카즈는 형은 대장장이, 할아버지는 칼을 갈았던 집안 출신이다. 단골 중에는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프로 요리사들이 다수 있지만 “스테인리스 제품의 등장으로 주문이 줄고 있다.”고 시대의 흐름을 전했다. 40년 이상 칼 단면을 갈아 완성품을 만들어 온 모리모토 고이치는 “계승자 문제에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taein@seoul.co.kr
  • [2집이 맛있대] 서울 마포 대현빌딩 ‘박대박’

    [2집이 맛있대] 서울 마포 대현빌딩 ‘박대박’

    미군부대에서 나온 재료들을 모아 만든 부대찌개. 먹기도 간편하고, 맛도 좋아 경기도 의정부시의 특산물(의정부찌개)이 됐을 정도로 많이 찾는다. 하지만 보통 서울에서 먹는 부대찌개의 맛과 실제 의정부 부대찌개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마포에 자리잡은 ‘박대박’은 의정부 부대찌개의 맛을 제대로 살렸다. 딱 봐도 무거워보이는 넓고 검은 무쇠솥에 각종 햄과 야채, 양념장이 올려져 있다. 이 무쇠솥은 이 집이 얼마나 노력하는 곳인지 알게 하는 요소. 식당에서 쓰는 모든 무쇠솥에 들기름을 발라 달구는 작업을 하는 데 무려 2박3일을 쏟아부었다. 일반 솥은 몸에 좋지 않은 금속성 물질이 스며나올 우려가 있지만, 무쇠솥에는 철분과 탄소가 적당량 들어 있어 해롭지 않고, 기름을 잘 흡수하는 장점이 있다. 박병선(34) 사장과 그의 남편이 팔에 덴 상처를 남기면서까지 무쇠솥을 만든 이유다. 무쇠솥에서 팔팔 끓는 찌개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먹으면 입 안에 깊고 풍부한 구수함이 돈다. 평상시에 먹은 매운 부대찌개의 맛이 아니다. 비밀은 양념장에 있다. 의정부 부대찌개의 맛을 살리기 위해 사장이 유명 부대찌개집에서 배워온 방법. 일반적으로 쓰는 고춧가루 양념장과 달리 보리고추장과 된장을 절반씩 섞은 보리장을 풀어 매콤함과 함께 된장의 깊은 맛을 살렸다. 그때 그 시절의 부대찌개 맛을 내기 위해 햄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제품이 아니라 수입제품을 쓴다. 조금 짠 편이지만 풍성한 햄 맛이 국물과 어우러져 풍미를 더한다. 3개월을 숙성시킨 김치도 부대찌개와 잘 어울린다. 의정부 김치공장에서 젓갈이나 조미료를 쓰지 않은 김치를 직접 관리한다. 대접에 소시지, 햄, 각종 야채와 찌개 국물을 넣고 쓱쓱 말아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맛있게 떠먹고, 밥이 모자라면 원하는 만큼 밥을 추가해 먹어 보자.“밥집이 밥 주는 데 인색해선 안 된다. 밥은 무조건 공짜”라는 나름의 운영 철학을 가진 박 사장이 정성을 쏟아 만든 부대찌개에 대한 ‘성의 표시’이다. 이 집의 또 다른 주력 메뉴는 스테이크. 한우 1등급 소고기를 써 부드럽게 씹히고 깊은 맛이 난다. 스테이크 소스와 겨자, 핫소스, 다진 마늘을 넣어 만든 소스에 찍어 먹으면 매콤달콤, 고소한 맛이 입안에 확 퍼진다. 아이들은 주식으로, 어른들은 술안주로 좋아하는 메뉴. 소시지, 햄이라는 재료 자체가 웰빙 경향에 맞지 않지만, 대신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이용해 고객의 건강을 신경쓴다. 글 사진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우전차 따러 영암 덕진차밭 가다

    우전차 따러 영암 덕진차밭 가다

    파릇파릇한 보리밭을 바라보는 마을 뒷산에는 노랑, 빨강, 이름 모를 야생화들로 가득했다. 이들은 저마다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어 봄볕을 쬔다. 하얗게 수놓은 벚꽃과 연분홍 진달래도 더욱 화려함을 뽐낸다.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4월20일)를 앞두고 이들의 자태는 더욱 곱기만 하다. 곡우는 한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비를 내리는 절기. 따라서 농부들은 이날에 가뭄이 들면 농사 걱정으로 이만저만이 아니다. 또한 곡우가 녹차인들에겐 일년 중 가장 각별한 날이다. 곡우 전에 어린 잎을 따서 만든 녹차, 즉 우전차(雨前茶)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 우전차는 구수한 맛과 그윽한 향 때문에 녹차 중 으뜸으로 여긴다. 그래서 이맘때면 녹차 밭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다. 보성, 하동 등 지리산 자락에 유명한 차밭들이 많지만 달빛이 아름다운 월출산의 정기를 가득 받은 전남 영암의 덕진차밭은 이들보다 덜 알려진 셈. 곡우를 코 앞에 두고 덕진차밭을 다녀왔다.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월출산 자락에는 예로부터 형성된 야생차밭이 드문드문 있지만 규모가 큰 차밭은 영암군 덕진면 덕진차밭(061-471-7560)이 유일하다. 크기는 3만 5000평 규모로 그리 넓지 않지만 순수 재래종 차만을 27년째 가꾸고 있는 역사 깊은 차밭이다. 또한 야트막한 차밭 꼭대기에 서면 암봉으로 이루어진 월출산 정상의 모습이 파노라마 화면처럼 펼쳐진다. 특히 아침 햇살을 받은 차밭과 안개에 쌓인 월출산이 만들어 내는 풍광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산 너머 해가 떠오르니 월출산은 하얀 모자를 쓴 듯 둥근 안개가 드리워진다. 서쪽부터 황금빛으로 야금야금 물들이던 햇살이 차밭을 서서히 감싸안고 연녹색의 물감을 입혀가는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아침 태양으로 영롱한 이슬방울이 손톱만한 파란 녹차의 새순에서 또로록 떨어질 때 나지막하게 노래소리가 들려온다.‘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하춘화의 ‘영암 아리랑’을 부르면서 할머니들이 찻잎을 따러 올라온다. “녹차는 지금이 최고랑께. 요놈 좀 봐. 여리디 여린 새순이 봄의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지 않은가. 이런 놈을 마셔야 녹차를 쪼께 안다고 허지.”라는 이순희(67)할머니. 덕진차밭이 생긴 1979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잎을 땄다고 한다. 할머니는 “우전은 곡우 전에 딴 찻잎으로 만든 것이고, 세작(細雀)은 곡우에서 입하사이인 4월20일에서 5월5일 전후에 딴 것으로 찻잎이 가늘고 무척 부드럽지라. 중작(中雀)은 5월 5일에서 6월 중순 사이에, 대작(大雀)은 6월 하순에 이후에 딴 놈을 말헌당께.”라고 했다. 어린 잎일수록 질소가 함유된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 있어 차의 맛과 향이 뛰어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잘 정돈된 녹색의 융단 위에 삐쭉삐쭉 고개를 내민 어린 녹차 잎을 한잎 한잎 정성스럽게 따서 바구니에 담는다. 이렇게 딴 잎을 무쇠솥에서 정성껏 덖어 내면 우전차가 된다. 녹차는 머리를 맑게 하고 노화를 방지하는 것은 기본. 녹차에는 레몬 8배 가량의 비타민C가 있어 동맥경화나 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에 그만이고 다량으로 포함된 비타민A는 피부세포나 점막세포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노화억제에도 한몫을 한다. 또한 녹차에 있는 카테틴 성분은 담배 니콘틴을 빨리 배출 시켜주어 애연가들에게 좋다. 봄 햇살 가득한 차밭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 몸과 마음이 싱그러운 초록으로 물들어간다. 이번 주는 모든 것을 비우고 녹차 밭으로 떠나보자. ■ 혜우스님이 말하는 茶道 차와 율무염주. 스님들의 바랑속에 없어서는 안될 두가지다. 특히 차는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해 수행하는 스님들에게는 필수품이다. 최근 ‘다반사(茶飯事)’란 책을 펴낸 혜우스님에게 차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우전차란 무엇인가. “첫물차라고도 합니다. 색(色)·향(香)·미(味)가 뛰어납니다. 요즘처럼 ‘차의 보릿고개’에 묵은 차만 마시다 접하게 되는 것이니 맛과 향이 더욱 각별하지요.” -어떻게 마셔야 하나. “좋은 물을 사용하세요. 물은 차의 몸이라고 할 만큼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칩니다. 수돗물은 항아리 등에 오래 두었다가 사용해야 합니다. 펄펄 끓는 물에 찻잎을 넣어서도 안됩니다. 한김 내보낸 따뜻한 물에 마셔야지요. 또 다구(茶具)를 따뜻하게 예열해 놓는 것도 중요합니다.” -다구는 어떤 게 좋은가. “이웃나라에서 쓰는 것처럼 작은 잔은 무리가 있습니다. 향이 고일 자리가 없는 것이지요. 큰잔에 절반정도 따라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찻잔의 반은 찻물자리요, 나머지 반은 향의 자리입니다.” -일상에서 차의 의미는. “차는 대화입니다. 다구를 앞에 놓고 마주앉아 차를 마신다는 것은 상대방이 편안하게 마실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이지요. 이것은 곧 ‘난 당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내말만 하겠다는 것이 아니지요.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병은 대화의 단절입니다. 오직 차만이 이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약입니다. 가정은 물론, 직장이나 학교 등 어디에서도 차를 많이 마셔야 합니다.” -차의 효능은. “차를 마시다 보니 몸에 좋은 것이지요. 몸에 좋으니 차를 마신다면 그건 차가 아니고 약입니다. 일본에서는 차의 성분중에 카테킨이라는 물질만 따로 추출해 팔기도 한다지요. 효능으로만 따진다면 그 알약 한알먹는 것이 여러잔의 차를 마시는 것보다 낫겠지요. 차의 물질적인 효능만 강조하다보면 자칫 신비주의에 빠지거나, 차를 우상화 시키게 되죠.” -전통차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가마솥에서 덖음이라는 제다(製茶)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차입니다. 가마솥에 열을 가해 찻잎이 가지고 있는 수분만으로 익히는 것을 덖는다고 합니다. 한의학에서 약재의 성질을 변화시키기 위해 반복해서 열을 가하는 ‘수치포제’와 같은 원리입니다. 즉 덖음을 통해 찻잎이 가진 차가운 성질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에 맞도록 변화시키는 것이지요.” -다도에 대해서. “요즘의 차문화를 보면 형식만 있고 차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차문화가 다도라는 까다로운 틀에 연연하다보니 사람들과 거리가 생겨버렸지요. 차는 편안하게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차에 대한 지나친 신비주의는 멀리해야 합니다.” -다반사란 책을 내신 이유는. “자신있게 말하건대, 중국차는 담백한 식생활을 위주로 하는 우리와는 맞지 않습니다. 제다법이 각 나라의 식생활에 맞게 변화해왔기 때문이죠. 지금 우리 전통차가 중국산 등 외제차에 밀려 고사될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제다법이 공유되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요. 다반사는 차 만드는 비법을 공개한 책입니다. 제다법은 반드시 공유되어야 합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혜우스님은 전라남도 구례 섬진강변에 ‘제다 교육원’을 열어 농민들에게 무료로 차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승적은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세납 54세.
  • [여자프로농구] ‘우리’ 농구선수 맞아?

    지난해 11월 초 우리은행 선수단은 일본 홋카이도 지역의 소도시 비호루에 도착했다. 여름리그 챔피언결정전에서 신한은행에 3전전패로 무릎 꿇은 뒤 절치부심한 우리은행이 보름 간의 전지훈련을 온 것. 훈련 프로그램은 90년대 초 4년간 육상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12개의 한국신기록을 쏟아냈던 이준(55) 체력고문과 박명수(44) 감독이 머리를 맞대고 짜냈다. 육상선수들의 훈련법을 접목한 인터벌, 힐, 파트레이닝으로 선수들을 강철 심장과 무쇠다리로 만들었고, 산악행군으로 흐트러진 정신력을 다잡았다. 새벽부터 오후까지 이어진 7시간의 지옥훈련에 선수들은 기진맥진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엔 선수 개개인의 몸상태를 고려한 ‘맞춤형 재활훈련’이 2시간 동안 또 이어졌다. 워낙 악명(?)이 높은 우리은행 훈련이지만 이번엔 강도가 달랐다. 이준 고문은 “이전까지 훈련강도가 70% 라면 이번엔 여자의 몸으로 소화하기 힘든 한계치인 100%까지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김보미와 이경은 등 1∼2년차 선수들은 생전 처음받아 보는 훈련에 괴로워했고, 장신센터 김계령과 홍현희는 큰 체구 탓에 단내를 풍겨야 했다.주장 김영옥은 “새벽부터 밤까지 공은 만져보지도 못했고 하루 9시간씩 꼬박 뛰기만 했어요.”라며 “내가 농구선수가 맞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하며 몸서리쳤다. 결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비호루에서의 보름이지만 그 때 다져논 강철체력은 챔프전에서 빛을 발했다. 정규리그 20경기를 소화하고 플레이오프의 험한 관문을 뚫고나면 선수들의 ‘배터리’는 바닥난다. 신한은행이 시즌내내 11명의 선수들을 풀가동하고도 챔프전 3차전부터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제대로 뛰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 하지만 우리은행의 ‘철의 여인’들은 달랐다.6∼7명의 선수들이 경기를 도맡았으면서도 4차전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까지 경쾌한 발걸음으로 코트를 휘저었고 마침내 우승트로피에 입을 맞췄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3600인분 동지팥죽 끓인다

    “이번 동짓날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가마솥에서 쑨 팥죽이 어떠세요.” 충북 괴산군은 농협 괴산군지부와 함께 동짓날인 22일 오전 10시 괴산읍 서부리 고추유통센터 앞 광장에 설치된 세계 최대 무쇠가마솥에서 3600명분의 팥죽을 끓여 군민과 관광객에게 무료로 나눠준다고 5일 밝혔다.지난 7월27일 선보인 이 무쇠가마솥에서 고추축제 때 옥수수와 감자가 쪄졌으나 잡곡은 이번이 처음이다. 팥죽을 쑤는데 들어가는 잡곡은 80㎏짜리 팥 10가마, 찹쌀 5가마, 멥쌀 2가마, 물 3000ℓ 등이다.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 60㎏도 준비된다. 군은 팥죽이 눋는 것을 막기 위해 길이 3.6m짜리 넉가래(눈을 치울 때는 쓰는 도구) 15개를 만들었다. 팥죽이 쒀지는 2∼3시간 동안 직원들이 교대로 이를 젓는다는 구상이다. 괴산군이 총 5억 6100만원을 들여 만든 이 가마솥은 높이 2.22m, 둘레 17.85m, 직경 5m, 무게(뚜껑 포함) 43.5t으로 4만명분 밥을 한꺼번에 지을 수 있는 세계 최대 솥단지로 기네스 등재를 추진 중이다. 군 관계자는 “압력을 가해야 하는 밥보다는 팥죽을 쑤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면서 “넉가래로 젓기는 젓겠지만 눋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괴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길섶에서] 호미 연가/심재억 문화부 차장

    호미는 험한 세상, 힘겹게 살았던 모든 어머니들의 흔적입니다. 삽과 괭이가 남정네들의 연모라면 호미와 바늘 등속은 여인네들의 그것이었으니까요. 검댕이 수북 쌓인 부엌 나무창살에 걸린 호미의 닳은 손잡이는 금방이라도 퍼런 도깨비불이 일렁일 듯 어머니의 인(燐)으로 반질거렸습니다. 한 날, 대장간에서 막 벼린 새 호미를 사오신 어머니, 마루에 걸터앉아 혼잣말을 하십니다.“이걸로 또 얼마나 땅을 파야 할꼬.”어린 제게도 그 모습이 그렇게 처연할 수가 없었는데, 문득 강아지 귀때기처럼 닳은 헌 호미가 눈에 듭니다. 손바닥만한 새 호미날, 저걸로 맨땅을 얼마나 파고 긁어야 꽝꽝한 무쇠가 저리 졸아들까요? 새 호미를 거머쥔 어머니는 서둘러 밭으로 나서고, 어린 아들은 그의 지친 생애 한 구석에 뎅그렇게 앉아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도 돌아가신 뒤, 옛집에서 문득 그 닳아빠진 호미와 마주치고는 목이 잠겨 한동안 말을 잊습니다. 발갛게 녹이 슬어 뒹구는 그 호미날에 ‘사는 게 고행’이라던 어머니의 잔상이 어리고, 그 어머니가 차마 가져가지 못한 동통(疼痛)이 새삼 제 허리께로 울려 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실속있는 서울 동네박물관

    실속있는 서울 동네박물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은 문화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빗살무늬토기나 훈민정음을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부모의 교육열에 자칫 ‘박물관=지루한 곳’이라는 편견을 가질 수도 있다. 새 국립중앙박물관을 갔다왔다면 동네 박물관을 들르는 게 어떨까. 로봇, 부엉이, 장신구 등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다양한 전시물을 즐길 수 있다. 작은 규모이지만 한 주제에 천착한 뚝심도 빛난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즐길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다. ■ 삼청동 주변 박물관 ‘문화의 거리’로 떠오른 삼청동 일대에는 박물관들도 아기자기하게 몰려 있다. 낡은 건물 사이로 오밀조밀한 골목을 거닐며 박물관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다. 이는 삼청동 유람에서 빠질 수 없는 ‘감초’와도 같다. 부엉이박물관 부엉이박물관에는 부엉이가 없다. 대신 부엉이가 그려진 접시, 부엉이가 주인공인 그림, 부엉이 조각 등 부엉이와 관련된 물건 2000여점이 있다.27년 동안 전업주부였던 배명희 관장이 중학교 때부터 틈틈이 모은 것이다. 부엉이는 지혜의 상징이며 곡식을 보호하는 익조라는 게 수집의 이유.‘관장님’보다는 ‘부엉이 엄마’로 불리고 싶어하는 배 관장은 박물관 카페에서 쌍화차도 대접한다. 세계장신구박물관 장신구가 말을 한다. 결혼식에 썼건, 장례식에 썼건 모든 장신구들은 착용한 사람들의 사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뜻이다.25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닌 김승영 전 대사의 아내인 이강원 박물관 관장이 각국의 재래시장 등지에서 현지인의 숨결이 담긴 장신구를 수집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아프리카에서 남미까지 50여개국의 장신구 1000여점이 ‘UN 모의 총회’라도 하는 듯 전시되어 있다.”고 자랑한다. 티벳박물관 ‘티벳에서의 7년’ 정도로만 티베트를 알고 있었다면, 이 곳에서는 티베트의 문화를 직접 느껴볼 수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옴 마니 팟 메훔’이라는 이국적인 음색의 불경이 들린다.‘연꽃 속의 보석이여, 영원하라’는 뜻. 두개골로 만든 공양기(퇴방)와 넙적다리뼈로 만든 나팔(깔링), 인골 염주는 인생을 덧없다고 여긴 티베트 사람들의 생각을 보여준다. 인테리어 디자인 사업을 하는 신영우 관장이 수십년 동안 티베트를 드나들며 모은 13∼20세기 유물 1200여점 가운데 300여점을 돌아가면서 전시하고 있다. 떡·부엌살림박물관 쑥을 넣어 빻은 멥쌀가루를 떡살로 찍으니 쑥개떡이 나오네.50명 이상의 단체 관람객은 1인당 1만원에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은 물론 떡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박물관은 시절(時節)마다 차렸던 옛 음식,5첩반상, 전통혼례상이 전시된 부엌살림박물관과 오메기떡, 닭알떡, 노티떡, 구름떡 등 갖가지 떡이 있는 떡박물관으로 나뉜다. 어릴적 아궁이에 불을 지펴본 어르신부터 우리 부엌 문화를 궁금해하는 어린이까지 두루 즐길 수 있다. 김유영 이두걸기자 carilips@seoul.co.kr ■ 대학로 일대 박물관 문화의 거리 대학로도 삼청동 못지않은 ‘박물街’이다.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세대를 뛰어넘어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로봇박물관 40여개국에서 온 3500여점의 추억의 로봇들이 총출동하는 곳이다. 세계 최초, 최대의 로봇박물관이다. 수집가로 유명한 서울 명지전문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과 백성현 교수의 로봇벽(癖) 덕분에 태어났다. 이곳의 주인공은 태권브이, 마징가Z, 그랜다이저, 아톰, 건담 등 70,80년대를 풍미했던 ‘정의의 사도’들이다. 아이들보다 아버지들이 이곳에서 더 열광하는 이유다.1900년대 초 독일에서 만든 양철로봇 틴맨,1926년 여성로봇으로는 처음 등장한 마리아 등 희귀로봇도 만날 수 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근처다. 쇳대박물관 다양한 쇳대(열쇠)를 전시한 곳이다. 이름에 걸맞게 시뻘겋게 녹슨 철판으로 된 외관으로 더욱 유명하다. 건축가 승효상씨의 작품이다. 고려·조선시대 서민들이 사용한 무쇠자물쇠는 물론 화려한 장식이 들어간 왕실 자물쇠, 유럽·아프리카 등 국내외의 300여 작품이 선을 보이고 있다. 이것도 철제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최홍규(48) 대표가 소유한 3000여점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혜화역 2번 출구에서 낙산 쪽으로 5분 거리다. 짚풀생활사박물관 농경민족인 우리 선조들이 짚과 풀로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가마니, 삼태기, 짚신, 삿갓 등 3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매주 토·일요일에 체험 교육이 열린다. 강의별로 1만원 안쪽의 체험학습비를 내야 한다. 체험학습 특별전도 열린다.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나와 혜화로터리를 지나 바로 왼쪽에 있다. 의학박물관 서울대병원 안에 있는 의학박물관에는 근대의학 도입 이후 각종 문서 및 의료기기 1000여점이 전시돼 있다.1900년대 초반 쓰였던 현미경, 필름판독기, 점빼는 기구 등도 볼거리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인체체험과 의료기구체험’도 운영된다. 어린이가 직접 청진기를 끼고 자신의 심박동·폐음을 들어보게 한다. 또 혈압 측정하기, 맥박 측정하기, 심장 박동수 듣기 등을 통해 몸에 대한 상식을 알려준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기타지역 박물관 도심에만 박물관이 있는 건 아니다. 주택가에도 재미있는 박물관들이 시민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IQ박물관 은평구 불광동 팜스퀘어 쇼핑몰 6층에 있는 IQ박물관은 두뇌를 쓰는 장난감의 천국이다. 수수께끼, 체스 등 6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관장 김혁(41)씨가 30년 가까이 모은 물건들이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간단한 퍼즐을 풀고 미로를 통과해야 한다. 이집트·몽골의 체스, 큐빅 등 다양한 장난감들을 보고 직접 즐길 수 있는 체험식 박물관이다. 특히 병을 통과한 나무화살, 좁은 병 안의 실패와 꽃 등 임파서블 퍼즐(impossible puzzle)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웬만큼 퍼즐에 자신있는 사람들은 ‘악마의 퍼즐’이라는 이름의 몽골 퍼즐에 도전해 볼 만하다.10분 안에 풀면 황금 100돈을 준다. 물론 지금껏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별난물건박물관 이름 그대로 별난 물건들만 모아둔 곳이다. 소리, 빛, 과학, 생활, 움직임 등 5가지 주제의 작품 3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등에 바를 수 있도록 긴 막대가 달린 독신자용 물파스, 말하는 변기, 어깨견착식 우산 등 신기한 물건들이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포구 동교동에 있다. 삼성어린이박물관 미취학 어린이와 초등학생 전문 체험박물관이다. 어린이의 탐구력과 표현력 증진을 위해 인체탐구, 과학탐구, 사회문화 등 11개 영역 1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 미술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감상할 수 있는 ‘아트갤러리’, 성장과 노화를 다룬 ‘인체탐험관’, 방송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어린이 방송국’ 등도 운영한다. 특히 이번달에는 개관 10주년을 맞아 나무 블록으로 고층 건물 쌓기, 카우보이 활동 체험 등 미국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하철2호선 잠실역 8번 출구 시그마타워 뒤편에 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대문구 연희3동에 있는 구립 자연사박물관은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최초의 자연사박물관이다. 지역 환경의 지질학적, 생물학적 사실에 대한 증거와 기록을 보존·연구하며 전시하는 장소다. 포유류·파충류 등 동물과 속씨·겉씨 등 식물, 그리고 다양한 화석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이밖에 도봉구 쌍문동 옹기민속박물관,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있는 김치박물관, 구로구 오류동 평강제일교회 교육관에 있는 성서유물박물관, 종로구 원서동 한국불교미술박물관도 아이들과 나들이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두걸 김유영기자 douzirl@seoul.co.kr
  • 국내 최초 용광로 등록문화재 지정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용광로인 삼화제철소 8호 용광로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포항시는 최근 문화재청이 삼화제철소 8호 용광로를 등록문화재 제217호로 지정, 시에 통보해 왔다고 15일 밝혔다. 포스코가 지난 5월 이 용광로가 국내 최초의 근대식 용광로 보존 가치가 있다며 포항시를 통해 경북도와 문화재청에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한 지 6개월 만이다. 삼화제철소 8호 고로는 일본 고레가와(是川)제철이 1943년 삼척공장을 건설하면서 설치한 선철(무쇠) 생산량 1일 20t 규모의 소형고로 8기 가운데 하나다. 높이 25m, 직경 3m, 철피 두께 15㎜, 중량 30t 규모이다. 광복 직후 삼화제철소로 회사 이름을 바꾼 뒤 자금 및 전력 부족으로 가동과 휴업을 되풀이하면서 1971년까지 존속했다. 이후 몇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철거 위기에 놓인 것을 1993년 포스코가 사들여 포항으로 옮겼다.2003년 4월부터 포스코역사관 야외 전시장에 복원·전시해 왔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 용광로는 국내 제철기술과 제철공업 발달사에 대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중요한 산업시설물로 역사적·산업 발달사적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길섶에서] 보습의 노래/심재억 문화부 차장

    가을날, 맑은 햇빛을 받은 논두렁 보습날이 각성처럼 반짝입니다. 어릴 적, 흙을 뒤집느라 닳은 그 무쇠 보습의 하얀 속살을 보노라면 불현듯 만져보고도 싶었습니다. 그 싱싱한 쇠붙이의 진실은 무언가와 뜨겁게 부대끼지 않으면 결코 드러나지 않는 것이니까요. 쇠를 녹여 지어낸 쟁기날을 보습이라고 합니다. 요새야 어딨는지도 모르지만 예전에는 쟁기없는 농사 엄두를 못 냈으니 보습이야말로 경작혁명이었겠지요. 쟁기에 그 보습을 갈아끼운 아버지, 추수 끝난 벼논을 갈아 엎습니다. 가을볕에 드러난 흙의 속살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솟고, 그 보드라운 흙 속에 묻혀 있던 살진 미꾸라지가 툭툭, 동강나 꼼지락거립니다. 뜨끈뜨끈 살아있는 흙의 생명력이 보습 아래 드러납니다. 차진 땅을 가느라 숨가쁜 소가 허연 입김을 토하며 힘겨워하면 아버지는 “그래, 쉬었다 가자.”며 논두렁에 앉아 탁배기 한잔으로 땀을 식힙니다. 그 한 컷의 바랜 기억은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제 의식 속에 진실의 실체, 자연에 대한 외경의 근거로 남아 있습니다. 새삼스럽게도 저는 지금 보습날 닳아 빛나도록 뭔가를 갈아 엎고 싶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박은영의 DVD레서피] 마법의 세계가 부글부글

    [박은영의 DVD레서피] 마법의 세계가 부글부글

    ‘마법사’ 하면 커다란 무쇠 솥을 걸고 비밀스러운 약을 만드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를테면,‘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마녀의 솥에는 양귀비꽃이 지천으로 피는 원예 비기가 들어 있고,‘그녀는 요술쟁이’의 미녀 마법사는 상대 배우가 바보짓을 하게 만드는 음해 비법을 제조 중이다. 박쥐 날개, 쥐꼬리, 말린 도롱뇽 가루 등 재료가 무엇이든 가슴이 두근거리고 뒷덜미가 간질간질한 환상적인 뭔가가 그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1939년에 만들어진 ‘오즈의 마법사’는 지금까지도 강력한 포스를 발휘하는 팬터지다. 동화로 먼저 제작되었고 만화로도 제작되었지만 주디 갤런드가 ‘오버 더 레인보우’를 노래하는 영화의 매력이야말로 쏙 빠져들 지경이다. 그 애정이 얼마나 간절한지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는 오히려 회춘을 거듭하고 있는데, 곧 출시되는 DVD에선 세월의 더께를 말끔히 덜어낸 아날로그 팬터지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다. 요술쟁이의 매력은 TV 시리즈에서도 유효하다.1964년부터 8년간 미국에서 방영된 ‘아내는 요술쟁이’는 최근 니콜 키드먼과 노라 애프런의 합작으로 스크린 위에서 다시 태어났다.‘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내공을 감지하기는 어렵지만, 니콜 키드먼이 오목조목한 코와 입이 귀엽게 움찔거릴 때면 새로운 요술쟁이의 탄생을 감지할 수 있다. ●오즈의 마법사 SE ‘시작은 흑백이었으나 곧 총천연색 캔디 컬러가 되리니.’ 영화사상 이보다 충격적인 화면 변환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도로시가 오즈에 발을 딛자마자 돌변하는 원색화면은 인상적이다.DVD는 이미 한 차례 출시된 적이 있었지만 화질과 사운드의 개선은 물론 상당히 많은 부가영상까지 담고 있어 기존 출시판과는 확실히 다르다. 도로시가 신은 마법사의 루비 구두는 그 색상과 반짝임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며 바닥이 비치는 황금 길과 배경은 동화 속 팔레트에서 금방 찍어낸 듯하다. 유명 감독 시드니 폴락과 출연진이 함께한 코멘터리와 50분의 제작과정 다큐멘터리 등 부가영상도 방대하다. ●그녀는 요술쟁이 1964년 TV 시리즈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몽고메리의 원작 화면을 부가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니콜 키드먼처럼 강렬하고 날카로운 이미지가 아닌 온화하고 친근한 이미지라 두 요술쟁이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어딘가 서먹하게 들뜨는 월 페렐의 코믹 연기와 TV 쇼까지 출연하게 된 요술쟁이 니콜 키드먼의 상황은 다소 억지스럽지만, 진짜 요술쟁이 같은 마이클 케인의 활약을 곳곳에서 지켜보는 것은 유쾌하다. 노라 애프런의 음성해설, 삭제장면, 메이킹 다큐 등이 부가영상에 수록되었으며, 영화의 밝은 분위기답게 밝고 원색적인 색상 표현이 경쾌하다. DVD칼럼니스트 mlue@naver.com
  • [조용섭의 산으路] 강원도 홍천군 가리산

    [조용섭의 산으路] 강원도 홍천군 가리산

    강원도 홍천의 가리산(1051m)은 강원도의 산으로서는 드물게 사방으로 시계(視界)가 열리는 곳이다. 정상에서 까치발 딛고 손차양 해서 끝없이 둘러쳐진 산줄기를 바라보노라니 바라봄은 어느새 그리움이 되고, 그 그리움은 또 다시 끝없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게다가 짙푸른 소양호까지 바라볼 수 있으니 가리산 산행이 주는 기쁨은 그야말로 각별하다. ­강원도 홍천군 가리산 山길은 홍천군 두촌면 천현리 가리산휴양림 산막에서 출발하여 삼거리-가삽고개-북봉-정상에 이른 뒤, 무쇠말재-삼거리-휴양림으로 내려서는 원점회귀 코스로 잡았다. 산길 들머리에서 진행 방향 정면에 올려다 보이는 우뚝 솟은 가리산, 참 기이하다. 평평한 능선에 우뚝 솟아 있는 정상과 북봉, 두 암봉은 마치 노적가리를 쌓아둔 듯한 모습인데,‘가리’라는 이 산의 이름을 낳게 만든 풍경이다. 계곡을 왼쪽에 두고 집수정, 다리를 지나며 편안한 길을 10여분 오르면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오른쪽 가삽고개로 방향을 잡는다. 왼쪽은 하산길이다. 다소 가파른 오름길을 40여분 진행하면 방향이 왼쪽으로 꺾이는 지점에 휴식하기 좋은 공터가 나온다. 낙엽송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멋진 숲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왼쪽 완만한 오름길로 오르다 보면 계단으로 된 산사면이 한동안 이어지고, 가삽고개에 이르기 직전에 산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과 만난다. 숲은 신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투구꽃을 비롯한 가을꽃이 한창이다. 북봉 아래까지 이어지는 편안한 능선길을 걷다 보면 오른쪽으로 춘천시 북암면 물노리 선착장으로 내려서는 길이 나온다. 배편을 이용하여 소양댐-춘천으로 가려면 정상에 들렀다가 되돌아와 이 길로 내려서야 한다(하산 3시간 소요. 배편 하루 2회 오전 9시50분, 오후 3시40분.033-241-4833). 북봉 아래 갈림길에서는 이정표상 3봉 방향인 바위사면으로 오르는 길을 택한다. 쇠난간과 디딤판 등 안전시설을 이용해서 오르면 이내 북봉에 닿는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북봉의 모습도 아름답다. 왼쪽으로 내려서서 다시 급사면을 오르면 사방이 훤히 트이는 가리산 정상이다. 북쪽 먼 곳, 칼날처럼 솟구친 특이한 모습의 내설악 안산을 찾아보도록 하자. 그 뒤로 파란 하늘과 맞닿으며 오른쪽으로 길게 드리워진 산줄기가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정상 아래 바위지대 사이로도 역시 안전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바위지대를 내려서면 잠시 능선이 이어지다가 정면으로 ‘등산로 아님’과 왼쪽-휴양림, 오른쪽-샘터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거대한 바위 표면에서 흐르는 물줄기가 특이한 샘터를 들렀다가 되돌아 나와, 휴양림 방향으로 내려서면 너른 터의 갈림길을 만난다. 오른쪽으로 평평한 길을 잠시 진행하면 무쇠말재이다. 왼쪽으로 낙엽송이 들어선 가파른 길을 내려서면 계곡을 만난다. 계곡을 건너 잠시 나아가면 3거리에 닿고 이내 휴양림이다. ●이렇게 가세요 자가용: 서울-6번.44번 국도-홍천-철정검문소-역내리(좌회전)-휴양림 / 대중교통 : 상봉(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홍천행 버스. 홍천시외버스정류장((033-432-7788)→가리산자연휴양림(44번 국도 역내리 아침 6시10분부터 저녁 7시까지 1시간 간격 운행.033-432-7893).
  • 가을山, 네가지 이야기

    가을山, 네가지 이야기

    푸르른 날 서 정 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눈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가을산이 좋다. 아름다운 단풍과 억새가 지천이니 볼거리 풍년이다. 단풍과 억새가 뿜어내는 자연의 향기는 와인 향보다 감미롭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며 산에 오르고 싶을 만큼 좋은 계절. 그래서 가을 산행을 ‘등산’이라 하고 또 ‘놀이’라 하지 않는가. 가족과 함께 혹은 연인과 함께 쉬엄쉬엄 가을산의 경관을 만끽해보자. 힘겨운 일일랑 잠시 접어두고, 바쁜 일은 잠시 선반에 올려두고…. 강원도 정선군 민둥산 “가을볕 따사로운 오후의 언덕에서 억새를 바라본다. 억새는 달빛보다 희고, 이름이 주는 느낌보다 수척하고, 하얀 망아지의 혼 같다.”시인 최승호는 억새를 이렇게 노래했다. 가을산의 제일은 화려한 단풍이지만 수수한 억새는 차분한 가을을 느끼게 만든다. 햇빛을 받아 은빛, 금빛으로 빛깔을 달리하는 억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깊어가는 가을이 가슴에 들어온다. 은빛 물결처럼 출렁이는 억새산으로 가자. 강원도 정선의 민둥산, 제주도 동부지역의 오름지대, 경남 창녕의 화왕산, 전남 장흥의 천관산, 경기도 포천의 명성산, 지리산자락의 만복대, 경남 밀양의 사자평, 울산의 신불산…. 억새가 아름다운 곳으로 소문난 곳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억새 명소들을 다 찾아가 볼 수는 없는 일. 기자는 고민끝에 산행시간이 비교적 짧고 오르기가 쉬워 가족산행에 좋은 민둥산을 택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억새산행 정선군 남면의 민둥산(1117m)은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산 위에 나무가 거의 없는 대머리산이다. 정상 능선을 따라 억새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억새산’이라고도 불린다. 거리가 짧고 오르기가 편하다는 발구덕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발구덕 마을의 첫번째 매점근처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했다. 추수를 끝낸 배추밭을 지나 등산로로 접어들었다.10일부터 시작하는 억새축제 때문인지 등산로가 잘 조성돼 있다. 시멘트가 아니라 흙으로 계단을 만들어 산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등산로 폭이 어른 서너명은 지나갈 수 있을 정도여서 쾌적함까지 느껴진다. 때문에 지난해와 달리 등산객이 몰려도 병목현상은 없을 듯하다. 등산로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울창한 나무에 가려서인지 억새는 보이지 않는다. 땀방울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할 때쯤 시야가 탁 트이면서 정상 능선이 드러난다. 군데군데 모습을 드러낸 억새를 보니 사진에서 보는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괜히 민둥산으로 왔나.’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새로 만들어진 2층 높이의 산불 감시초소가 보인다. 저멀리 민둥산의 정상이 보인다. 마지막 10분동안 오르는 ‘깔딱고개’를 올라서자 민둥산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은빛 물결을 따라 추심(秋心)도 흔들리고 “와”하는 탄성이 흘러나온다. 산에 오르면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광활한 은빛바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써억 써억∼’울어대는 가냘픈 여인의 몸짓 같은 억새를 보고 있노라니 가을의 고독이 살며시 찾아온다. 해가 서쪽으로 뉘엿뉘엿 기우는 오후 5시. 그나마 같이 오른 사람들도 내려가고 이제 혼자 남았다. 텅빈 산에 억새와 홀로 마주섰다. 햇빛에 따라 은빛으로, 금빛으로 옷을 갈아입는 억새는 눈물 나도록 아름답다. 어느덧 태양이 산너머로 스러진다. 그때 불현듯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둘러 카메라를 꺼냈다. 카메라의 ‘찰칵찰칵’ 요란한 소리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내려오는 길 내내 물결치는 억새의 잔상이 가슴에 진하게 남았다. 민둥산은 강원도 정선군 남면과 동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117m, 이름처럼 정상에는 나무가 없고, 드넓은 주능선 일대는 참억새밭이다. 능선을 따라 정상에 도착하기까지 30여분동안 억새밭이 장관을 이룰 이맘때 사람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 이처럼 억새가 많은 것은 산나물이 많이 나도록 하려고 매년 한 번씩 불을 지르기 때문. 억새꽃은 남쪽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곳 민둥산은 10월 중순에 절정에 이른다. 이렇게 오르면 장관이 펼쳐져요 증산초등학교에서 시작해 해발 800m의 발구덕마을에 이른 다음 왼쪽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오른 뒤 다시 발구덕마을, 증산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는 약 9㎞로 4시간이면 넉넉하다. 또 아이들이나 나이든 어른과 함께라면 발구덕마을까지 차로 이동해서 정상으로 가는 코스를 추천한다. 거리는 4㎞가 채 안 되며 시간은 왕복 1시간20분 정도면 충분하다. 단 축제기간 동안은 발구덕마을까지 차를 통제한다. 편하게 자고 맛있게 먹을 집 혹시 하루를 쉬었다 오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번잡한 여관이나 호텔보다 민박을 권할 만하다. 넉넉한 강원도 인심을 흠뻑 느낄 수 있다. 남면 무릉2리 억새마을의 이강태(033-591-1598)씨, 이재국(033-591-1768)씨 집 등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곳의 별미로는 곤드레밥을 추천한다. 정원식당(033-378-3636)은 곤드레 나물을 푹 삶아 들기름과 소금, 마늘 등을 넣고 볶다가 쌀과 함께 섞어 무쇠솥에 밥을 한다. 부추와 갖은 양념을 섞어 만든 간장에 조금씩 비벼가며 먹는데 그 맛이 별미다. 함께 나오는 된장도 맛깔스럽다.5000원. 증산에서 영월로 나오는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 신동읍 예미를 지나면 국도변에 있다. 원래 곤드레는 가난했던 시절 부족한 끼니를 푸짐하게 하기 위해 넣었던 구황식물중 하나이다. 큰 잎사귀에 긴 뿌리가 특징인 산나물로 원래 이름은 고려엉겅퀴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의 모습이 술 취한 사람과 비슷하다고 해서 곤드레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가세요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로 가다가 남원주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서제천 IC로 빠져나오면 된다. 약 1.5㎞ 정도 제천방면으로 가다가 제천외곽도로로 진입해서 38번 국도를 타고 가면 영월을 거쳐 증산에 도착한다. 또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빠져 59번 국도를 타고 정선을 거쳐 가도 된다. 시간이나 거리는 제천으로 가는 편이 좋으나 길이 약간 복잡해 초행길이라면 진부로 가는 것을 권하고 싶다. 차가 막히거나 운전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열차를 이용해도 좋다. 청량리역에서 증산역으로 오전 8시,10시, 낮12시에 출발하며 증산역(033-591-1069)에서 청량리역으로는 오후 1시35분,5시5분,6시52분,7시15분(주말에만 운행)에 출발한다. 요금은 무궁화호가 1만 2600원, 새마을호가 1만 8700원. 여행상품도 있다.우리테마(www.wrtour.com)에서는 10월31일까지 매주 수, 토, 일요일 오전 7시에 버스로 출발하여 당일로 민둥산 억새와 정선의 소금강단풍을 둘러보고 오는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교통비와 점심식사를 포함해서 3만 5000원.(02)733-0882. 정선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씨줄날줄] 헬리코박터균/육철수 논설위원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물체의 길이는 대략 0.1㎜ 이하, 면적은 0.03㎟ 이하로 알려져 있다. 세균의 크기는 대개 ㎛(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단위여서 현미경을 통해 보지 않고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다. 우리 몸에는 입안에 300여종, 대·소장에 500여종 등 무려 100조 마리의 세균이 산다고 한다. 손과 발, 겨드랑이 등 인체 외부에 붙어있는 세균까지 합치면 사람은 몸 자체가 세균 덩어리인 셈이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발견한 호주의 배리 마셜(53) 박사와 로빈 워런(67) 박사가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위(胃)의 아래쪽 유문(파일로리) 근처에 사는 나선형(헬리코) 균(박터)을 일컫는다. 한국야쿠르트가 몇해전 이 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기능성 발효유 ‘윌’을 만들어 잘 알려진 세균이다. 특히 마셜 박사는 윌의 TV광고 모델로 활동 중이어서 한국인들에겐 친숙한 인물이다. 위 속에는 무쇠도 녹일 만한 강산성의 위액 때문에 세균이 살지 못할 ‘청정구역’일 거라는 통설을 깨고 1979년 워런 박사는 위궤양 등의 원인균인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했다. 또한 마셜 박사는 진단법과 치료법 개발을 위해 이 균을 일부러 먹어 위궤양에 걸리면서까지 균 배양에 성공했다니 그 정신이 놀랍다. 위에만 기생하는 헬리코박터균은 위액의 역류로 감염될 수 있으며 특히 술잔 돌리기, 음식물 씹어 먹이기, 연인끼리의 키스 등으로 전염될 우려가 크다고 한다. 그렇다고 남녀간 사랑도 현미경 갖고 다니면서 조심스럽게 나눠야 할 정도로 위험한 것은 물론 아니다. 한국 성인의 60∼70%는 헬리코박터균을 갖고 있는 등 인체의 세균 중에는 병원균이 많지만 몸에 유익한 유산균이 훨씬 더 많다니 다행이다. 무균질 인간보다 유균 인간의 저항력이 더 강하다는 점은 이미 동물실험으로 밝혀졌으니 세균을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게 속 편한 일일 것이다. 어쨌거나 미생물의 세계는 우주처럼 무궁무진해서 과학자들의 무한한 호기심의 대상이다. 세균 하나 제대로 발견하면 이처럼 노벨상도 거뜬하니 수많은 과학자들이 오늘도 현미경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인생을 거는 게 아닌가 싶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고향소식] 충북제천 “이만한 솥 못봤지유?”

    [고향소식] 충북제천 “이만한 솥 못봤지유?”

    “세계에서 가장 큰 가마솥 구경하러 오세요.” 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 고추유통센터 광장에 가면 거대한 가마솥이 설치돼 있다. 지난달 27일 고추축제 개막식 때 일반에 처음 선보인 가마솥은 일단 규모에서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크기는 높이 2.22m, 둘레 17.85m로 직경이 5m에 이르고 있다. 무게는 본체 30t과 뚜껑 13.5t을 합쳐 43.5t에 달하고 솥의 두께는 5㎝이다.80㎏짜리 쌀 50가마를 한꺼번에 넣어 4만명이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세계 최대 솥단지이다. 괴산군이 솥 제작에 들어간 것은 2003년 8월. 증평군이 분리되면서 인구가 4만명 아래로 떨어지고 지역경제가 계속 침체되고 있던 때였다. 아이디어는 김문배 군수가 내놓았다. 군 관계자는 “‘한솥밥 문화’를 복원, 이웃간의 정을 돋우고 관광상품화해 지역경제를 살리고 싶어 제작했다.”고 말한다. 제작비 5억 6100여만원은 군민들의 성금과 예산으로 해결했다. 군내 주물공장에서 무쇠로 만들었다. 이런 규모의 큰 솥을 만들기는 처음이어서 수차례 실패했다. 예산이 늘어나자 무용론이 제기돼 중단위기를 겪기도 했다. 공장에서 24㎞쯤 떨어진 유통센터까지 옮기는 것도 힘들었다. 공장 담벼락과 정문을 허문 뒤 지게차와 트레일러를 동원했다.8시간여가 걸렸다. 뚜껑을 여닫을 때도 트레일러를 이용한다. 모양은 뚜껑에 용머리를 새겼다. 가마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을 빼고 열기를 조정하는 역할이다. 뚜껑 표면에 있는 12마리의 거북이와 무궁화는 괴산군과 11개 읍·면을 상징한다. 솥 둘레에는 용무늬를 그려넣어 웅장함과 용맹스러움을 나타냈다. 솥을 떠받치고 있는 화덕에는 군과 읍·면 이름을 모두 새겨 군민이 한식구임을 표현했다. 솥에는 들기름을 칠한다. 군 관계자는 “동네 할머니들이 ‘가마솥은 들기름을 10번 칠해야 녹이 슬지않고 쇳내도 없어진다.’고 말해 그리하고 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물과 소나무를 넣고 3일간 우러낸 뒤 맹물을 넣고 불을 지펴 솥을 었다. 물을 빼낸뒤 솥이 식기 전에 들기름을 발랐다. 지금까지 두번 들기름을 발랐고, 들기름은 모두 24ℓ쯤 들어갔다고 직원은 말했다. 군은 세계기네스협회의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가마솥 관리전담 부서도 설치한다. 고추축제 때 처음 솥을 썼다. 특산품인 ‘대학찰옥수수’를 하루에 5000개씩 이틀간 1만개를 쪄 관광객들에게 나눠줬다. 미리 물을 끓이고 옥수수를 넣었다. 옥수수를 삶는데 코크스 1.5t(70만원 정도)이 들었다. 괴산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닭뼈도 모두 씹어먹어요” 무쇠 이 40대 화제

    “닭뼈도 모두 씹어먹어요” 무쇠 이 40대 화제

    “나는 생선의 가시든,고기의 뼈든 뱉어내지 않고 모두 씹어먹는답니다.얼마나 고소하고 맛이 있는데요.” 중국 중부지역 쓰촨(四川)성 성도(省都)인 청두(成都)에는 생선 가시나 닭고기 등의 뼈를 씹어삼키는 ‘무쇠이빨(鐵齒)’을 가진 슈퍼맨이 나타났다고 청두완바오(成都晩報)가 23일 보도했다.바로 그 주인공은 올해 47살의 쑨룽다(孫龍達)씨.15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는 그는 키가 175㎝일 정도로,매우 건강하고 엄장한 신체의 소유자이다. 쑨씨가 생선의 가시나 뼈를 먹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30년 전인 18살 때부터.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그 당시 어느날 한 음식점에서 생선을 먹게 됐는데,도무지 가시를 발라내기가 쉽지 않았다.그렇다고 뱉어내기도 쉽지 않고 해서 할 수 없이 꼭꼭 씹어삼킬 수 밖에 없었다.그 이후부터 생선의 가시는 씹어먹게 됐다.가시를 씹어먹는 것이 어느 정도 습관화되고 발전하면서 닭고기 등의 뼈도 씹어 먹게 됐다. “가시나 뼈를 꼭꼭 씹어먹으면 고소한 맛을 말할 것도 없고 몸에 얼마나 좋은데요.제가 어릴 때부터 고질적인 류마티스염을 앓았는데요.가시와 뼈를 씹어먹은 뒤부터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나았거든요.그래서 친구들에게 생선의 가시나 고기 뼈를 남기지 말고 꼭꼭 씹어먹으라고 권하죠.그러면 친구들은 ’너나 많이 씹어먹고 잘 살아라.’고 비아냥거려요.참 안타까워요.” 나의 말을 안듣는 친구들이 ‘밉다.’고 눈을 흘긴 쑨은 ‘무쇠이빨’이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구이’ 음식점으로 들어갔다.음식점에 들어간 그는 주인에게 구운 생선과 닭고기를 주문했다.주문한 생선과 닭이 나오자마자,우선 생선과 닭고기의 살은 모두 발라 먹고 가시와 뼈만 앙상하게 남겼다. “이제부터 생선 가시와 고기 뼈를 씹어먹는 시범을 보이겠다.”라고 선언한 쑨은 젓가락으로 생선 가시를 입안에 집어넣고 씹어먹기 시작했다.5㎝의 생선 가시가 3초도 안돼 모두 그의 뱃속으로 사라졌다.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제는 닭고기 뼈 먹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닭고기 뼈를 한참 쳐다보며 빙그레 웃던 그는 커다란 뼈 한조각을 입에 넣고 아작아작 씹어먹기 시작했다.쑨씨는 “이번 뼈는 조금 딱딱한 것같다.”며 “그렇지만 1분이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과연 1분도 안돼 닭고기 뼈는 모두 그의 뱃속으로 들어가버렸다. 뼈를 모두 먹은 쑨씨는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나보다 더 좋은 ‘무쇠 이빨’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도전해봐요.어디 한판 붙어보자구요.” 인터넷부
  • [2005세계육상선수권대회] ‘50세 철각’ 기적의 21위

    ‘세월의 벽도 뜨거운 심장과 무쇠 같은 다리를 막을 순 없었다.’ 전성기를 훌쩍 지난 50대 마라토너가 2005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마라톤에서 당당하게 21위에 올라 감동을 안겨주었다. 1955년 4월11일생인 하일레 사타인(50·이스라엘)이 13일밤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경기에서 세계적인 건각들과 경쟁을 해 2시간17분26초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이날 레이스는 참가한 96명의 세계적인 철각들 중 35명이 기권할 만큼 급커브와 돌길이 많고 오르막 내리막 경사가 심한 지옥의 코스였다. 이런 악조건에서 대회 2연패를 거머쥔 조아드 가리브(33·모로코·2시간10분10초)와는 7분10초 차이에 불과했고, 한국 선수 가운데 54위로 가장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은 제인모(29·국민체육진흥공단·2시간26분39초)와 비교하면 엄청난 기록인 셈.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난 사타인은 1991년 이스라엘로 이주한 뒤 39세이던 94년 마라톤에 입문한 늦깎이 마라토너.2002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32위에 올라 두각을 나타냈고 2003년 프라하마라톤에서 5위를 차지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개인 최고기록은 2년 전 베니스마라톤에서 기록한 2시간14분21초. 이날 레이스에서 30㎞까지 선두권에서 질주하다가 마지막 5㎞를 남기고 처진 사타인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 심장은 쓸 만하다. 다음 목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라고 말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0)서산대사와 ‘정감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0)서산대사와 ‘정감록’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사에 관한 조선시대 일반 민중의 기억은 그런 것이다. 대사는 절간에 몸을 매어두고 있었지만 국란을 당하자 창칼을 들고 일어나 왜적을 무찔렀다. 그래서 국왕의 총애를 받아 벼슬이 당상관(堂上官 정3품 이상의 고관)에 이르렀다. 민중이 기억하는 서산대사는 무엇보다도 도술에 능했다. 그는 바람과 비를 마음대로 몰고 다니는,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신승(神僧)이었다. 이런 역사적 기억은 사실에 토대를 둔다. 하지만 기억이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기억은 무척이나 선택적이며 주관적인 것이다. 특히 민중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승돼 온 기억은 더욱 그렇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숨쉬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민중의 기억은 역사에 대한 민중의 바람이라고 해야 옳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민중이 기억하는 서산대사는 모르는 것, 못 할 일이 단 하나도 없는 완벽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그는 당연히 앞날을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어야 했다. 서산대사에 대한 민중의 기대는 ‘서산대사비결’이란 책자를 낳았다. 비슷한 이유에서 민중은 신라 고승 원효가 지었다는 ‘원효비결’이란 예언서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원효비결’은 20세기 후반에야 등장했다. 그와 달리 ‘서산대사비결’은 조선 후기에 출현해 정감록의 일부가 되었다. 서산대사는 왜 서산대사로 불리는가? 그는 오랫동안 관서지방의 묘향산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대사의 법명은 휴정(休靜), 속성은 최씨다. 대사는 묘향산에서 멀지 않은 평안도 안주(安州) 출신이었다. ●서산대사는 호국불교의 상징 타고난 운명이 기구했던지 대사는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었다. 사춘기엔 방랑을 떠나 멀리 남부지방까지 떠돌았다. 그는 지리산에 매료돼 숭인장로(崇仁長老)란 고승의 문하에 들어갔고, 선승(禪僧)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러던 중 선조 22년(1589) 정여립(鄭汝立)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서산대사는 이 사건에 연루돼 갖은 고초를 당했다. 그러나 결백이 입증돼 국왕의 특명으로 석방된다. 평소 대사는 즐겨 시문을 지었다. 옥사 사건 때 조정 대신들은 그 글들을 세밀히 검토하게 되었다. 대신들은 서산대사의 글이 단아한데다 그 대부분이 국왕을 위한 기도로 가득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 국왕 선조 역시 대사의 충성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선조는 서산대사에게 친필로 시를 써주었다. 아울러 손수 그린 묵죽(墨竹) 한 점을 주어 대사의 마음을 위로했다(실록, 선수 23년4월1일 임신). 얼마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조선팔도를 유린했고 선조는 의주까지 밀려났다. 국운이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수년 전 서산대사를 깊이 신뢰하게 된 국왕은 대사에게 도움을 부탁한다. 서산대사는 전국 각지의 사찰에 연락해 의승군(義僧軍) 5000명을 조직한다. 서산대사가 이끈 승군은 명나라 군대와 함께 평양성 탈환에 참여한다. 작전은 성공했고 덕분에 국왕은 서울로 환도한다. 서산대사는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승군의 지휘를 맡기고 묘향산으로 돌아간다. 서산대사는 사명당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정을 왜군 진영에 보내 정전회담을 모색하게 했다. 그런데 공식적인 역사기록에 따르면, 서산대사의 승군은 전쟁터에서 직접적인 공적을 별로 쌓지 못했다 한다. 살생을 금기로 삼고 있는 승려들인 만큼 접전(接戰)엔 약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승군은 성실해서 요새의 경비에 뛰어났다. 성을 보수하거나 새로 축성하는 데도 그만이었다. 승군의 이런 장점은 널리 인정을 받게 돼,“각 도가 모두 승군에 의지하였다”(선수 25년7월1일 무오). 왜란 중 서산대사의 처신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그는 자신의 공을 믿고 교만 방자하여 행궁(行宮) 어문(御門) 밖에서까지 말을 타고 횡행(橫行)하였다. 심지어는 대궐 출입까지 허락받기도 했다.”(선조26년7월19일 신미) 평소 불교계를 배척해온 유학자들로서는 서산대사가 궁궐출입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서산대사가 방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이미 나이가 80에 가까워 도보로 먼 거리를 출입하기란 불가능했다. 왕은 이런 사정을 고려해 대사에게 말을 타고 궁궐을 드나들게 허락했다고 봐야 옳다. 선조가 자신에게 특별한 호의를 보이자 서산대사는 그 기회에 불교를 중흥할 꿈을 키웠다. 대사는 선종(禪宗)을 중심으로 삼아 분열된 교단을 통합하려 했고, 이를 위해 몇 권의 책자를 저술했다. ‘선가귀감’(禪家龜鑑)은 선종의 입장에서 모범이 될 만한 가르침을 모은 것이다.‘선교석’(禪敎釋)과 ‘선교결’(禪敎訣)은 선종과 교종을 비교 설명한 것이다. 이밖에 참선수도에 필요한 주문을 모아 ‘운수단’(雲水壇)을 짓기도 했다.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산대사의 뜻대로 불교가 중흥되지는 못했다. 대사는 결국 금강산에서 입적했는데, 자신의 의발(衣鉢 승려의 유품)을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에 두라고 유언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따랐다. 그들은 대흥사 경내에 표충사(表忠祠)를 세워 대사의 은덕을 추모했다. 뒷날 정조는 표충사라는 현판을 사액했다(정조12년7월5일 을축). 대사가 오래 주석했던 묘향산(妙香山)에도 수충사(酬忠祠)라는 사당이 봉헌됐다(정조 18년3월16일 계묘). 정리하면, 서산대사는 고대부터 이어진 호국불교의 전통을 따른 고승이었다. ●서산대사는 만능의 도사 국가가 편찬한 역사기록은 믿을 만한가? 역사상 있었던 구체적인 사실에 관한 기록은 신빙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사실이 다 기록되지는 못한다. 그럴 필요도 없다. 역사책에 기록될 사실은 어차피 선택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의 선택은 이미 역사적 사건에 관한 주관적 해석이다. 심지어는 왜곡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서산대사가 호국불교의 화신이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다. 그걸 확인하는 방편으로 조선시대 민중이 서산대사를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알아볼 수도 있다. 민중의 견해는 민간설화로 남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설화에서 보이는 서산대사의 모습은 도술의 대가였다. 물론 대사가 정말 도술에 능했을 리는 없다. 다만 민중은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아 여러 방면에서 활약한 대사의 모습에서 참된 영웅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대사는 그런 영웅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게 마음대로 도술을 부릴 수 있었을 거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서산대사의 도술 이야기는 임진왜란에 관한 것이 많다. 한 번은 서산대사가 제자 사명당을 일본에 사신으로 보내면서 부적(符籍) 하나를 건네줬다고 한다. 이 부적 덕택으로 사명당은 일본의 왕성에 있던 병풍에 적힌 시구를 모두 알아 맞힌다. 일본인들은 사명당을 무쇠 방에 집어넣고 불을 때 태워 죽이려 했지만 사명당은 방안에 고드름이 맺히게 해 그들을 놀라게 한다. 그런가 하면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원병이 오게 된 것도 서산대사 덕분이라 한다. 일찍이 서산대사는 중국의 큰 부자에게 살아 움직이는 금강산도(金剛山圖)를 그려 주었다. 그림 값으로 수표 한 장을 받았는데 어떤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버린다. 나중에 그 집 딸이 큰 부잣집에 시집가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원병을 보내게 한다. 명나라 장수로 조선에 파견돼 온 이여송이 생떼를 부리자 이를 무마했다는 전설도 있다. 이여송은 용의 간과 소상강 반죽을 내놓으라며 억지를 부렸는데 대사가 개입해 백마의 간과 백두산의 대나무로 대신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진주성에서 기생 논개가 왜장을 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하게 된 것도 실은 서산대사의 지도로 된 일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설화들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사명당의 외교적 수완이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서산대사의 부적 때문에 공을 세웠다곤 볼 수 없다. 명나라가 조선에 이여송을 파견한 것, 이여송이 방자하게 굴었던 점도 사실이다. 하지만 서산대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논개의 죽음을 서산대사와 연결시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서산대사와 사명당의 도술시합 민중은 영웅인 서산대사와 그 제자 사명당의 도술 시합도 창안해 냈다. 사제관계였던 두 명의 고승이 도술시합을 벌인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를 점쳤던 것이다. 어느 날 사명당이 서산대사를 찾아 금강산 장안사로 갔다. 절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법당문이 열리며 서산대사가 밖으로 나오려는 것이었다. 사명당은 대사에게 말싸움을 건다. 사명당은 마침 공중을 나는 참새 한 마리를 손으로 움켜쥐고 대사에게 묻는다. “지금 제 손아귀에 들어 있는 이 참새가 죽을까요, 살까요?” 사명대사는 이렇게 응수한다.“내 한 쪽 발이 법당 안에 있고, 또 한 발은 법당 밖에 나가 있다. 내가 밖으로 나가겠느냐, 안으로 들어가겠느냐?” “그야 밖으로 나오시겠지요. 애초 나오실 생각이 없으셨다면 문은 왜 열며, 벌써 한 발은 왜 밖으로 딛으셨겠습니까?” “맞다. 네가 손에 쥔 참새도 마찬가지다. 불승이 어찌 살생을 하겠느냐?” 얼핏 막상막하로 뵈지만 서산대사의 판정승이다. 사명당은 고작해야 발의 동작에 주목했다. 하지만 서산대사는 일시적인 몸동작이 아닌 승려 본연의 자세를 논했기 때문이다. 사명당은 등에 졌던 봇짐을 내려 놓는다. 그 안엔 바늘이 가득 담긴 그릇이 있다. 사명당은 잠시 그 바늘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자 바늘이 먹음직한 국수로 변한다. 사명당은 국수를 맛있게 먹으면서 서산대사에게도 함께 먹기를 청한다. 두 사람은 맛있게 바늘국수를 먹는다. 잠시 후 서산대사의 입에선 바늘이 줄줄 흘러나온다. 사명당은 얼른 패배를 인정하기가 싫다. 이 번엔 백 개의 계란을 꺼내어 땅바닥에서부터 한 줄로 차근차근 쌓아 올린다. 신기에 가깝다. 서산대사는 그 모양을 보고 빙긋 웃더니 계란을 공중에서부터 거꾸로 쌓아 내려온다. 마지막 용기를 내어 사명당은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그러자 여태 구름 한 점 없이 맑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모인다. 금방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번개가 친다. 밧줄처럼 굵은 빗줄기가 한참동안 쏟아져 내린다. 서산대사는 한바탕 껄껄 웃고 나서 소낙비를 멎게 한다. 뿐만 아니라 땅바닥을 적신 빗방울까지 몽땅 하늘로 거둬 버린다. 사명당은 패배를 깨끗이 인정한다. 그 순간부터 사명당은 서산대사를 깍듯이 스승으로 모신다. 조선시대 민중은 스승과 제자의 서열을 뒤집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명당도 서산대사 못지않게 뛰어난 고승이었건만 민중의 공론은 명백했다. 감히 제자가 스승을 앞지를 수는 없었다. ●예언가 서산대사의 비결(訣) 절세의 영웅 서산대사는 과거 현재 미래를 투시하는 능력을 가졌다. 어떤 여인이 광주리에 달걀을 가득 담은 채 손을 팔팔 휘저으며 걸어갔다. 그러자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 본 대사는 광주리 안의 달걀이 64개임을 대번에 알아 맞혔다.“팔팔(八八)” 걸었기 때문이란다. 물론 이것은 민중이 지어낸 익살이다. 그러나 장난끼어린 익살 속에도 서산대사의 투시력에 대한 민중의 기대가 숨어 있다. 실제로 서산대사는 한두 가지 예언을 남겼고 그대로 적중했다고 한다. 그는 임종시 유품(遺品)을 해남 대흥사에 두게 했다. 제자들은 왜 하필 그렇게 멀고 구석진 곳이냐고 물었다. 대사는 그곳이 “천년 병화(兵火)가 미치지 않아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땅”이며 “불교의 법통이 돌아갈 곳”이라 말했다. 과연 서산대사의 유품을 보관하게 되자 이 절은 크게 융성했다. 이 절엔 서산대사의 금란가, 옥발, 수저, 신발, 염주, 교지 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음은 물론, 초의대사(草衣大師)를 비롯해 많은 고승들이 배출됐다. 조선 후기가 되어 세상이 어수선해지자 많은 사람들은 예언서를 찾게 되었다. 만일 서산대사 같은 분이 살아 계신다면 앞일을 무어라 말씀하실까, 하는 생각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산대사비결’이란 신종 예언서가 탄생했다. 실상 서산대사와는 무관한 예언서였다. 생전에 조선왕실의 안녕을 위해 충성을 다 바친 대사의 이름을 빌려 그 왕실의 패망을 아무렇지도 않게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의 이름을 빌린 이 예언서의 내용은 대개 이렇다.1. 조선 말년에 당목 넷이 지나면 지혜 있는 선비는 반드시 떠나갈 것이다.2. 만일 성스러운 해를 만나면 천척의 배가 갑자기 인천, 부평의 넓은 들에 정박하리라.3.10년 동안 들에서 밥을 먹으니 집 생각하는 마음이 무궁하고, 천리에 곡식을 운반하니 편안하고 한가할 날이 기약이 없다.4. 코가 검은 장군이 여진에서 나와서 오얏나무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시덤불을 벤다고 큰소리치지만 그는 실상 오얏나무를 베는 도끼다. 첫째는 난을 피해 길지로 숨을 시기를 예언한 것이고, 둘째는 진인이 이끄는 천척의 배가 쳐들어올 시기를 말한 것이다. 셋째는 혼란기에 벌어질 전쟁이 10년 동안이나 지속된다고 본 것, 넷째는 이씨 왕조(‘오얏나무’)를 뒤엎을 세력이 북쪽에서 나온다는 예언이다. 이런 내용은 ‘정감록’에 실린 다른 예언서들과 별로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감결’에 나와 있는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다. 넷째 번은 좀 색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전에 살핀 대로 ‘토정비결’에선 요동에서 곽 장군이 나와 진인왕을 돕는다고 했다.‘서산대사비결’에선 바로 그 곽 장군을 ‘코가 검은 장군’으로 바꿔 썼다. 게다가 그 곽 장군이 진인왕을 직접 돕는 것이 아니라 조선왕실의 편을 드는 척하다 결국 왕조를 뒤엎어 버린다고 예언한 점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여기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예언서들이 자꾸 만들어진 이유는 뭘까?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곧 조선왕조는 망한다. 그 다음엔 진인왕이 새 나라를 세운다. 그러나 왕조교체의 과도기엔 오래 혼란이 지속된다. 그 때 사람들은 길지로 피란가는 것이 상책이다.” 이것이 ‘정감록’의 핵심이다. 조선 후기의 술사들은 민중이 기억하는 역사상의 대 예언가들의 이름을 빌려 이런 메시지를 기정사실로 만들려고 했다. 이를테면 부조(浮彫) 수법이었다. 때론 다른 이유도 작용했다.‘정감록’에 담긴 메시지를 수정하거나 보충할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예언은 미래를 겨냥한 것이고 따라서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던지는 점괘는 늘 달리 풀이될 수 있어야한다. 그런 점에서 대안이 늘 필요했다. 엄밀한 의미로 ‘서산대사비결’은 ‘정감록’의 개정판이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최홍만 “핵주먹 나와”

    최홍만 “핵주먹 나와”

    ‘테크노골리앗’ 최홍만(25)과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39)의 맞대결 성사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스포츠신문인 스포츠호치는 2일 “일본 K-1의 다니카와 사다하루(45) 사장이 ‘타이슨이 범죄 경력 때문에 일본에는 입국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 최홍만과 붙으면 분위기가 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최홍만(5전5승)은 지난달 30일 하와이 호놀룰루 알로하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K-1 하와이 대회 슈퍼파이트에서 스모선수 출신 아케보노(미국)를 통쾌한 TKO승으로 물리친 뒤 경기를 지켜본 타이슨에게 ‘링 위로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는 등 도발적인 제스처를 취해 관심을 끈 적이 있다. 다니카와 사장은 이어 “오는 13일 열리는 K-1 라스베이거스 대회에서 타이슨측과 계약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맞대결의 대전제인 타이슨의 K-1 전향이 전격적으로 이뤄질 경우 타이슨의 첫대결 상대가 최홍만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난 86년 스무살의 나이로 무쇠주먹을 휘두르며 역대 최연소 세계권투평의회(WBC) 헤비급 세계챔피언에 오른 타이슨(50승6패44KO)은 이후 무절제한 생활로 빚더미에 오른 뒤 지난 6월 헤비급 논타이틀전에서 케빈 맥브라이드(아일랜드)에게 TKO패하고 은퇴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길섶에서] 곤로/심재억 문화부 차장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유행시켰다는 ‘곤로’라는 게 있었지요. 유리심지가 아래쪽 기름통에 닿아 불을 피우는 조리기구였습니다. 더워서 연탄불 때지 못할 때 간편하게 밥 짓기에는 그만이었습니다. 한되들이 소주병 들고 기름집 드나드는 일은 귀찮았지만 안 먹고 살 수는 없었으니까요. 이 곤로가 신주단지처럼 부엌 가운데 떠억 자리를 잡습니다. 부엌에 아궁이 두개를 만들어 대솥과 중솥을 따로 걸어 썼지만, 곤로가 나온 뒤부터 작은 아궁이는 쓸모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거기 걸려 있던 무쇠솥은 헛간이나 뒤란을 뒹굴다 마침내 엿장수 손에 넘어가고, 아궁이를 메운 자리에 멋진 ‘후지카’ 곤로가 놓여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땔감 안 들지, 힘들게 불 지피지 않아도 저절로 익히고 끓이니 얼마나 기특했겠습니까. 다들 ‘살다 보니 이런 세상도 다 있구나.’싶었지요. 한날, 이 곤로가 아버지의 비위를 건드렸습니다. 어떻게 튀었는지 밥상에 올린 찌개에서 석유 냄새가 진동한 것이지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아버지,“세상에 거저 좋고, 거저 편한 게 는디, 모두 다 새 것만 좋다고들 야단법석들이니….”하시며 가만히 밥상을 물리셨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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