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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도 영등제/30만명 운집… “세계적 축제”로

    ◎「모세의 기적」 바닷길 열리자 일제 환호/닻배노래·강강술래 등 민속행사 다채 【진도=최치봉 기자】 서울신문·스포츠서울과 LG가 공동 주최한 제19회 진도 영등축제가 4일 하오 1시 전남 진도군 고군면 회동마을 앞 바닷가에서 장덕상 서울신문감사·김봉호의원·배광언 전남도의회의장·허경만 전남지사·박승만 진도군수 등을 포함,10만여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모인 가운데 화려하게 펼쳐졌다. ○…이날 몰아닥친 강한 비바람으로 잠시 중단됐던 행사가 하오 4시쯤부터 속개되자 행사장을 빠져나갔던 관광객들이 다시 몰려들기 시작. 3∼5m의 높은 파도로 당초 예정된 해상선박 퍼레이드·윈드서핑대회 등 일부 행사가 제외됐으나 남도들노래·강강술래·진도만가·농악 등 민속행사가 이어지면서 관광객들은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진도만가와 씻김굿·다시래기 등의 구성진 가락과 애절한 춤사위 등을 처음 접한 외신기자와 관광객 등은 지금까지 잘 보존된 이곳의 무속행사에 깊은 관심을 표명. 하오 6시쯤 고군면 회동∼의신면 모도를 잇는 2·8㎞의 바닷길이 완전히 열리자 관광객들은 미리 준비한 장화 등을 신고 달려가 소라·낙지·다시마 등 각종 해산물을 채취하며 흥겨운 시간을 만끽했다. ○…영등축제추진위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초속 14∼18m의 강풍과 비로 해상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졌으나 하오 1시 당초 예정대로 개막식을 가졌다. 추진위 관계자는 『좋지않은 기상 때문에 모처럼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미안하다』며 쑥스러워했으나 하오 늦게 햇살이 쬐기 시작하자 안도의 한숨. ○…올처음 도입한 「진돌이 행진」과 「영등살의 밤」행사도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진도군이 천연기념물 제53호인 진돗개를 형상화해 만든 「진돌이」가장행렬과 농악대가 가계해수욕장∼행사장에 이르는 1㎞구간을 행진하는 동안 많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외국인 2∼3명은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추기도.이벤트회사가 마련한 「영등살의 밤」행사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즉석 노래방」이 등장해 이채. ○…행사 마지막날인 5일에는 전날 나쁜 기상 때문에 되돌아간 외지관람객 숫자가 많을 것으로 우려됐으나 10만명을 웃도는 인파가 찾아와 각종 축제를 즐겼다. 이날 하루동안 의신면 민속보존회의 닻배노래·강강술래·진도북놀이 등 다채로운 민속행사가 펼쳐지면서 풍어·풍년농사를 기원했고 부대행사로는 치어방생법회·신비의 바닷길체험·남도민요교실·특산품전시 판매행사가 이어졌다.
  • 인왕산·삼성산·수락산/수도권 도시림 갈수록 황폐화

    ◎임업연구원서 4년간 생태연구­서울시민 의식 조사/무분별 개발에 토양 오염… 자생수송 일부 멸종/“토지사유권 제한·산임세 징수 필요” 60% 넘어 수도권의 숲이 공해와 도시개발을 비롯한 누적된 인간의 각종 간섭및 토양상태의 악화로 심한 피해를 입고 있다.일부는 이대로 방치할 경우 나무가 자생력을 상실해 자연의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나타났다.이에대해 서울시민의 대부분이 산림세를 징수해서라도 자연림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임업연구원은 전국의 도시임을 대상으로 지난 92년부터 착수해 지속적으로 식물의 생태변화를 관찰하고 보존대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수도권의 인왕산,삼성산,수락산을 중심으로 한 식생구조와 동태및 이용실태의 조사에서 이같이 나타났다고 2일 밝혔다. 이들 지역에 자생하는 초목중 애기나리,둥글레,단풍취,은방울,대사초,고사리류,생강나무,당단풍등은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인왕산,삼성산은 식물군락의 종류도 단순하고 그나마 퇴색해가는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특히 인왕산은 장기간에 걸친 산림내의 무속행위와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상태의 회복이 어려운 실정이다.이곳의 생태계를 살리려면 전지역에 휴식년제 실시와 나무심기,토양개량등 적극적인 복원노력이 시급한 것으로 판단됐다.그리고 무분별한 등산로를 과감히 폐쇄하고 유도 입간판의 확대설치로 등산객들이 숲속에 출입하는 행위를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계획성없는 식재와 허술한 사후관리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연구원 조현제박사는 『무계획적이고 반생태적인 나무심기로 도시림이 이질적인 경관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앞으로는 식재에 있어 계절성과 생태적 안정성을 고려한 자생수종의 선택으로 자연성을 회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원은 서울시민 6백60명을 무작위로 추출,도시림의 이용실태및 의식조사를 했었다.이에 도시의 숲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95%에 이르렀고 90%가 수림에서 정신적 안정과 쾌적함을 느끼고 있었다. 도시림의 조성목적으로 매력적인 자연 환경보전이 26.3%로 가장 높았고 자연보호가 24.8%,수자원보전이 22.1%,휴양기회 제공은 11.1%,풍치기능확보 6.9%,야생동물보호 1.9%,목재생산및 기타가 0.4%였다. 도시주변의 숲을 보호하고 넓혀 나가기 위해 토지의 사유권을 제한해야 할경우에 23.9%가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47.7%가 찬성하는 반면 반대는 9.6%,적극반대가 1.2%에 불과했으며 기타 17.6%로 나타났다.만약 도시림을 가꾸기 위해 투자해야할 경비를 부담하는 방법으로 산림세를 징수할 경우 60%가 찬성했으며 반대는 25%로 세금을 부담해서라도 울창한 임야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편 조박사는 중부지역의 나무심기에 적합한 자생수종으로 ▲계곡=오리나무,들메,물푸레,느티,귀룽,야광,까치박달,산달,산사,산목련,층층나무 ▲산록과 저지대=개벚,갈참,졸참,엄나무,쪽동백,상수리,아그배,산돌배,느릅 ▲능선=신갈,당단풍,굴참,상수리,떡갈,팥배,서어나무등을 권하고 있다.
  • 전래동화·설화 아동극으로/서울두레,연중시리즈로 연극잔치

    ◎도깨비·호랑이 등 친숙한 소재 극화 우리 전통문화에서 소재를 찾은 아동극이 올해초부터 연중시리즈로 마련되고 있다. 「서울두레」(대표 김운태)가 어린이들에게 전통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서울 종로구 동숭동 두레극장(765­1871)무대에 올리고 있는 「96 두레 어린이 연극잔치」. 국악장단 위주의 음악을 사용하면서도 극 구성을 최대한 쉽게 해 어린이들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 1월9일∼3월3일 첫선을 보인 작품 「깨비 깨비 도깨비」(송인현 연출)는 맘씨좋은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로부터 우연히 얻은 도깨비 방망이때문에 물질에 눈이 어두워졌다 결국 잘못을 깨닫고 착한 마음씨를 되찾게 된다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아 호응을 얻었다. 지난달 15일부터 시작한 두번째판은 「호,호,호랑이다!」(송인현 연출).오는 28일까지 공연되는 이 작품은 홍콩·미국영화의 영향으로 「원수갚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어린이들에게 생명존중과 화합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호랑이에게 아버지를 빼앗긴 주인공 돌이는 호랑이를 찾아 죽임으로써 원수를 갚지만 호랑이가 배고있던 새끼는 차마 죽이지 못한채 호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살게 된다.그러던 어느날 호돌이는 엄마를 죽인 사람이 바로 돌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진정한 이해를 통해 서로 화해를 나누고 더불어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이밖에 5∼7월에는 극단「미추」가 참여,연극잔치 세번째 판으로 전통 꼭두각시 놀음을 이용한 새로운 창작극을 선보일 예정이다.작품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김용수씨가 연출을 맡고 중앙국악관현악단 음악에 김성일씨가 안무를 맡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또 7∼9월에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 무속설화 「바리데기 공주」를 원작으로 한 「쓰레기 공주」(김정숙 연출)를 무대에 올리고 10∼12월에는 「연희단 거리패」가 참여하는 아동극이 어린이들을 찾아가게 된다.〈김재순 기자〉
  • 외국인에 가장 권하고 싶은것 “민요·판소리”

    ◎버려야 할 문화폐습으로 「금전만능풍조」 꼽아/문정원 「문화의식」조사 한국인들은 우리 전통예능 가운데 민요와 판소리를 외국인에게 가장 권하고 싶어하며 「금전만능」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할 문화 폐습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이 지난해 10월 31일부터 11월 14일까지 전국의 만 20세 이상 남녀 1천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 문화의식 세계화」 조사결과 밝혀졌다.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에게 권하고 싶은 전통놀이·예능에 대해 민요·판소리(22.7%)를 가장 많이 꼽았고 다음은 태권도등 전통무예(18%),민속놀이(14.1%),사물놀이(14%),전통공예(11.8%),민속경기(6.8%)등 순으로 들었다.이는 전통음악에 36.7%나 답해 국악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것으로 풀이된다.이에비해 버려야 할 문화습성으로는 금전만능풍조(32.2%)를 가장 먼저 꼽았고 다음으로 남녀차별(17.7%),신분차별(17.6%),일제잔재(10%),무속신앙(7.9%),사주팔자(5.4%),가부장제(3.9%)순이었으며 분단의식도 2.2%나 됐다.또 가장 자랑스런 전통사상으로는 경로효친(65.5%)에 가장 많이 응답했고 다음은 안빈낙도(14.2%),예의와 학문숭상(7.3%),상부상조(6.7%),홍익인간(3%),인내천(2.4%)순이었다. 외국문화를 받아들이는 통로(중복응답)로는 TV뉴스(66.9%)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신문·잡지·서적(「53.9%)과 TV다큐멘터리(39.7%),영화(21.2%)순인 것으로 밝혀졌다.
  • 종교학자 하비 콕스 저 「영성… 성령운동」서 진단

    ◎한국교회 “열정적 포교… 계속 성장할 것”/“무속 지나치게 수용,주체성 잃었다” 비판도 세계적인 종교학자이며 신학자인 미국 하버드대학의 하비 콕스 교수가 21세기 종교의 전체적인 전망을 쓴 책 「영성·음악·여성 21세기 종교와 성령운동」이 도서출판 동연사에서 유지황씨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지난 65년 하비 콕스 교수가 종교의 사회성과 역사성,신앙인의 현실 참여와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여 전 세계종교계와 일반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세속의 도시」를 출판한 이후 지난 30년동안 그의 신학사상을 담고 있다. 3부 15장으로 구성된 이책의 11장은 「한국의 무속과 기업정신:환 태평양시대 아시아의 원초적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기독교에 관해 할애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은 저자는 『한국교회가 기독교 전체와 전세계인류 사회에 특별하고 절실한 공헌을 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다』며 『나는 한국교회가 이 거대한 기독교 전이과정에서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그는 이 책에서 『1958년 5명의 교인으로 출발한 여의도 순복음교회는 현재 교인수가 80만명이나 되는 세계최대의 교회가 되었다』면서 『한국에서 이같은 거대교회는 특이한 것이 아니며 세계 10대교회 명단속에 서울에 3곳,인천에 한곳등 4개 거대교회가 있다』고 밝힌다. 한국교회의 성공원인은 첫째 무속종교의 요소를 예배중에 포용하고 둘째 조직된 제자훈련을 통해 사회적인 대응력을 키웠기 때문이란 것이 그의 분석.『그러나 한국교회가 무속을 지나치게 수용함으로써 주체성을 잃었으며 조직훈련을 통한 전도과정이 지나치게 수치개념에 의존하는 세속화의 길을 걸었다』고 그는 비판한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원초적 에너지와 복음성령운동의 활력,그리고 정의를 추구하는 민중신학의 열정등으로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하비 콕스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종교에서 인간 생활의 역사적·사회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본원적인 원초적 영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현재 종교부흥추세를 선도하는 성령운동의 역사와 운동에 내재된 원초적 영성을 사실적으로 서술했다. 그는 『한때 서구의 물질주의와 전체주의의 억압에 눌려 질식할 위기에 있던 종교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일부 낙관적인 분석가들이 예측하는 대로 21세기가 「정신의 시대」를 맞게될 지는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 종교가 새로운 활력을 띠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종교부흥추세를 선도하는 종파는 기독교의 오순절교회로 이 교회의 신도수는 세계적으로 4억명을 넘고있으며 1년에 2천만명씩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은 연세대 신학과를 마치고 하버드대학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은뒤 하비 콕스 교수 밑에서 신학사를 공부하는 유지황씨가 했다.
  • 민속연구가 심우성(이세기의 인물탐구:91)

    ◎남사당패 쫓아 풍물 놀고 탈 만들고…/현장 찾아 자료 채집·기록… “발로공부” 평가 받아/1인극 「쌍두아」는 인형에 혼을 담은 산무대로/「꼭두각시 놀음」·「발탈」 무형문화재 지정에 큰몫 심우성(민속연구가)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삼단같은 머리를 땋아내린 사나이/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다홍치마를 두루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산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은반지를 사주고 싶은/고운 처녀도 있었건만/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처녀야!/나는 집씨의 피였다./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시인 노천명은 옛유랑 예인집단의 기약없는 인생과 서글픈 족적을 이렇게 노래부르고 있다.몇년전 타계한 예용해씨는 「일수가 좋으면 공청에나 또는 주막집 기역자 판을 끼고 잘때도 있지만 인심이 사나운 마을에서는 처마끝에서 비를 피해야 할 때도 있다」고 남사당패의 일상을 그의 저서에 쓰고 있다. 그러나 누더기에 걸식행각으로 밥을 빌어먹을 망정(걸양) 그들은 「꼭두각시놀음(우희)으로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소박한 신명에 겨워 살다가」 「어느 낯선 고장에서 길섶 아침이슬처럼」 사라져버린다고 했다. 판소리나 춤이나 연극을 하는 예인들의 대부분은 설날 명절 때 동네에 찾아든 유랑극단이나 광대패의 공연을 구경하다가 그들의 연희에 반해 길을 따라나서거나 부모의 대를 이어받는 수가 흔하다.인형극연희자인 심우성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그러나 그의 예능 기질은 누가 시킨 것도 권한 것도 아니며 집안의 내력을 이어받은 것은 더욱 아니다.단지 그의 마음속에서 끝없이 일고 있던 불가사의한 「끼」에 의해 뒤늦게 연희자로 돌아선 케이스다. ○머슴살던 노인에 영향 그는 언제부턴가 남사당패의 삶을 쫓아 풍물을 놀고 탈과 인형을 만들고 「취발이」나 「미얄할미」나 허세부리는 샌님,미소를 머금은 백정의 탈을 쓴 온갖 인형을 조종하면서 때론 분노로 때론 질타로 어느 때는 주책없고 어느 때는 넉넉하게 인간사의 천태만상을 손끝에서 펼치더니 어느 날 스스로 연희자가 되어 직접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민속연희중에서도 유독 인형극인 꼭두각시 놀음에 심취하게 된 것은 무대장치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무대밖의 공간이 연결되는 극적 공간의 자유로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그의 무대는 혼자서 극중인물이면서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해설자에다 산받이까지 도맡아 양반들의 어처구니 없는 횡포나 위선위귀를 징치하기도 하고 재난을 물리치는 홍동지의 기개를 앞세우는 등 지배층에 대한 세찬 비판을 표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른바 「광대」란 역사속에 놓여진 동시대인들의 희로애락을 세상으로 되돌리는 영혼의 울림대이기를 자처한 사람이며 그는 자신의 역할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충남 공주의 만석지기 외아들로 태어나 서울에서 휘문중에 다니다가 6·25를 만나 고향인 공주군 의당면에 머물면서 김재철의 「조선연극사」를 읽은 것과 집안의 나이든 머슴인 정광진노인으로부터 남사당패들의 내력을 들은 것이 연희자가된 동기다. 한때는 소설가 신문기자가 될뻔도 했고 서울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아나운서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걸핏하면지방 방송국에 출장간다는 핑계로 옛 남사당패를 찾아 나섰고 거의 전국을 떠도는 뜬 광대노릇으로 서서히 잊혀져 가던 풍물놀이(농악) 버나(대접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인형극 꼭두각시놀음)등 남사당놀이 여섯가지를 재현해 내는데 수많은 돈과 시간과 정열을 들여왔다.가족들에겐 의논도 없이 3년만에 방송국을 집어치우고 나서도 「어디어디 답사,무슨무슨 녹음 촬영」등으로 새벽부터 집을 뒤쳐나가는가 하면 여행과 술에 지쳐 며칠씩이나 대낮에도 이불을 펴고 눕는 것이 다반사였다.오죽하면 그의 부인(권숙현여사)이 「올해도 당신 작년처럼 그렇게 지낼거예요」했다는 말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 그는 가뜩이나 쪼들리는 살림에서 부친이 마련한 집을 팔기도 하고 동해안 서해안으로 다니다가 간첩혐의를 받기도 하고 녹음기와 카메라와 어렵사리 찍은 필름을 빼앗기기도 했다.5·16직후에는 종로 YMCA강당서 남사당창단 기념으로 남사당놀이중 「덧뵈기」를 공연하려 했을 때 「남사당」이 정당이름인줄 잘못알고 종로경찰서에 연행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빚기도 했다.59년 8월,전국에 흩어져있는 남사당패를 모아 지금의 남산도서관 자리인 빈터에서 요즘의 약장사처럼 「꼭두각시 놀음」을 공연한 것이 본격적인 해설가의 출발이 되었고 그후 전국각지 순회공연으로 「꼭두각시 놀음」과 「발탈」을 공연한 것이 후에 이 놀이들이 중요무형문화재(3호 7호)로 지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가 「책이 아닌 발로 공부한 사람」이란 평을 듣는 것은 자료수집에 혈안이 되어 현지에서 이를 확인보충하고 채집·기록한 공적과 실제로 수백여회에 이르는 연희를 주관하고 실연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심우성.민속예술에서 괴팍한 개성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드믈다.틀이 번듯하고 아나운서 출신답게 우아한 말씨를 쓰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광대기질을 타고난 사람에 틀림없다.이제 그 시절의 남사당패는 사라지고 없으나 유일하게 그 흔적과 체취를 물씬 풍기는 무대가 있다면 심우성의 1인무언극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뒤늦게 나마 재혼하는 과부의 설렘으로 무대에 서렵니다』 비장한 인사말과 함께 그가 지난 80년 공간사랑 소극장무대에서 선보인 첫번째 1인극 「쌍두아」는 글자그대로 머리가 둘,손은 넷에다 발이 둘인 전남 구례지방 풍장굿의 비비새놀이에 나오는 접광대를 본뜬 것으로 음악과 인형과 자신의 몸짓만으로 두동강난 조국의 분단된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뒤에서 인형을 조종하던 그가 이렇게 무대에 나서게 된 것은 「속되고 다난한 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정리하는 전기가 되고 그리고 인형속에 혼을 불어넣는 산무대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며 이는 「연희자가 무대에 나와 인형과 함께 춤춘 최초의 시도」로서 평론가 양혜숙은 「가면극이 인형극으로 거듭나면서 우리 예술사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은 계기다 되었다」고 평하고 있다.지난 88년 초연이래 최근까지 공연되고 있는 「남도 들노래」도 「민족적 아픔과 통일에의 염원」을 담아 분단을 넘어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희생된 한 젊은이의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민속박물관 5월 개관 「민속이란 고전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원형그대로 보존하라」는 강한 비판도 있었으나 그는 「민중의 습속이 시대따라 변하듯이 우리가 추구하는 민속극도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고 옛 것을 재현하는 연극이 아니라 옛 것을 바탕으로 오늘의 것을 한다」는 의지다. 그는 지난해 고향인 공주에다 오랜 숙원이던 민속박물관 건립을 시작,각종 탈전시에서 모든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민속과 관련된 자료전시관및 야외공연장을 오는 5월쯤 개관할 예정이다.가족은 노부모와 부부와 아들 하용씨(27·미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졸업)가 그를 돕고 있다. 호라티우스는 일찍이 「인간은 타인의 끄나풀에 조종당하는 인형 같이 움직인다」고 했지만 그의 인형은 「하나의 굳어버린 표정속에서 눈물을 흘릴 때 웃고 있고 웃어야 할 때 울고 있는」 아이러니와 시니시즘의 묘미를 그 때마다 능란하게 연출해낸다.오늘 그의 소원은 「타고난 광대의 운명」속에서 「피가 흐르고 살아숨쉬는 진짜 인형」이 되어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관중을 웃기고 울리는 소박한 신명으로 핍진하게 이룩하려는 것이다. □연보 ▲1934년 충남 공주출생 ▲53년 서울휘문고졸업 ▲53∼56년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 ▲58년 홍익대 신문학과졸업 ▲59년 남사당놀이패공연(남산) ▲60년 남사당놀이중 「덧뵈기(탈놀음)」공연(종로 YMCA강당) ▲64년 민속극회 남사당결성 ▲66년 한국민속극연구소 창설 ▲79년부터 극단 서낭당창단,전통인형극 「꼭두각시놀음」「발탈」「만석중놀이」,창작인형극 「홍동지의 나들이」「신경림의 농무」「청개구리는 왜 날이 궂으면 우는가」「우리산 우리강」외 김명수춤판,강만홍 인도무용,이동안 전통무용,이매방 민속무용,김숙자 무속무용,우옥주 만구대탁굿등 공연 ▲80년 1인극 「쌍두아」로 무대데뷔(공간사랑소극장) ▲83년 우리문화연구소장,인형극 「만석중놀이」(문예회관소극장) ▲85년 「문」(산울림소극장) ▲86년 서강대·한양대강사 ▲90년 인도 국제인형극제에서 1인극 「남도 들노래」 참가 ▲91년 프랑스·말레이시아·일본민속극제 참가 ▲93년 「판문점 별신굿」 공연 ▲94년 제주 4·3항쟁추념 「남도 들노래」및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기념 「새야새야」(문예회관대극장)등 3백여회 공연 현재=우리문화연구소장,민학회회장 「남사당패연구」(74년)이후 「한국의 민속극」「한국의 민속놀이」「전통무용용어의 연구」「마당굿 연희본 1·2」,평론집 「민족문화와 민중의식」「꼭둑각시놀음」등 20여권 서울시문화상(인문사회과학부문·79년)
  • 국악인 김천흥(이세기의 인물탐구:89)

    ◎「춘앵전」 등 궁중무 재현에 80평생/14세때 아악생으로 입문…악·가·무 두루 갖춰/대한 국악원·민속 예술원 등 설립,후지 양성/오는 3월 미수 앞두고 “전아의 극치” 「춘앵무」공연 준비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앵삼에 노란 관과 붉은 띠,오색 한삼속에 감춘두손을 좌우로 펼쳤다가 이마높이로 들어 모으며 창사를 읊조린다.여섯자 화문석위에서 「평조회상」에 맞춰 추는 「춘앵전」은 꾀꼬리가 버들가지를 넘나들며 노니는듯 노래부르는듯 화사하고 밝은 화전태와 여의풍이 특징이다.이는 궁중정재의 마지막 한끝을 잇는 심소 김천흥이 재현한 춤으로 그는 상영산에서 잔영산에 이르는 원형그대로를 추기도 하지만 느린 가락의 상영산을 생략하고 세영산을 위시한 삼현도드리와 변주곡인 군악의 장단으로 아정한 무작을 짜고 있다. ○꾀꼬리 춤사위 일품 그의 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사람의 심금을 움직인다.그것은 한낱노익장을 과시했다는 표현으로는 미치지 못하달 수가 있다.특히 한국무용의 기교를 전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처용무」는 「깊은 온축과 비범한 예술성,씩씩하고 장엄한 남무의 풍도와 낙화유수의 가녀린 애조가 두드러져 우리의 고대무용을 보다 본격적으로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즉 그의 춤은 천격이나 기교가 없이 「심소가 아니면 되살릴수 없는 무격이 제격」이다.크고 광활하게 장삼을 흩뿌리는 「승무」역시 무기교의 절제미와 정제미,무념무상의 선비적인 청정이 깃들어 몸이 아닌 마음으로 추는명무로 손꼽힌다.그런가 하면 그의 「살풀이」는 멈출듯 주춤한 정지속의 움직임과 여백의 미가 일품이다.명주수건을 던졌다가 다가서고 다가섰다 물러서는 흐르는 춤태는 손끝 하나에서도 예술의 연륜이 묻어나 이를 보고 「속으로 흐느끼지 않은이가 없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다.이 춤은 지난 연초 하와이대 객원교수로 갔다가 배한라여사의 1주기를 맞는 추모무대에서 춘 것이 「그곳의 객석을 흐느끼게 했다」고 전해져 왔다.노예술가의 연륜을 거론하는 것은 외람되나 약관 14세에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의 아악생으로 입소하여 장천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기를 어느덧 70여년.1923년 순종황제 탄신 오순을 경축하는 창덕궁 어전연주에서 무동으로 뽑힌 것이 인연이되어 그는 당대 명인 하규일 함화진으로부터 「악.가.무」일체를 이어받는 예인의 길에 올랐다.그가 재현하여 공연에서 선보인 궁중무만도 「춘앵전」외에 「무고」 「가인전목단」,용알을 가지고 사를 부르며 추는 「포구락」등 48종.궁중명무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 아악부를 떨치고 나가 교방의 무속악사로 전전한 경험때문에 민속무용과 무속음악에도 일가를 이루어 「꼭두각시」에서 「봉산탈춤」에 이르기까지 그가 추지 않은 춤은 없다.악기도 아악부시절의 전공은 해금이지만 양금 아쟁의 명수이고 곰삭고 결삭은 성대를 구사하여 남녀창인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선유가등 12잡가와 사설시조 휘모리시조를 어느 자리에서나 두루 거침없이 노래부른다.그가 춤과 국악으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개인무용발표회를 가진것은 56년부터 7차례,궁중무용 재현은 10여차례가 넘지만 공연뒤 리셉션을 가진 것은 72년 「무악생활 50년」과 92년 「무악생활 70년기념」공연등 단 두번뿐이다.그만큼 그는남에게 폐스러운 일,번거로운 일을 삼가고 분수에 넘치는 것은 넘보지 않는다.첫번째 공연에서 벌써 「우뚝하고 반듯한 김천흥의 무용」으로 평가되더니「완숙의 미와 멋과 흥」등 넘치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만약 충고하는 조언이 있으면 언제라도 주춤거리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돋보인다. ○순종 오순때 무동으로 「일찍이 없었고 뒤에도 없을 그의 공업은 동료와 제자의 경의와 찬하만으로 모자란다」는 이성천교수(서울대)의 말대로 그는 참으로 많은 업적을남기고 있다.40년대초 이전에서의 국악교육을 필두로 대한국악원 국악사양성소 무용인협회 한국가면극 대한민속예술원 정농악회등 국악과 관련된 수많은 단체를 만드는데 앞장서 왔으나 그는 이를 굳이 「창단」「결성」으로 강조하기보다 단순히 「참여」한 것으로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청렴했던 심소는 80평생 살림집과 무용연구소 이사를 다닌 것만도 50여번이 넘는다.살림집은 사글세 전세 전세를 전전하여 40여번,연구소는 지난 55년 낙원동에 김천흥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나서 78년 문을 닫기까지 10여번이상을 옮겨다녔다.무용발표 때마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집을 가진 것은 68년 잠실주공아파트가 처음이고 그후 다시 수번을 이사한 끝에 2년반전 현재의 서초구임광아파트에 정착했다.그러나 무용연구소 시절 장구쳐 줄 사람이 없어 하루종일 「하나둘 하나둘」 육성박자로 춤을 가르치는 궁핍한 생활에서도 그는 연구생들이 내는 월사금외에 별도로 작품료를 받은 적이 없고 월사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그냥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만사에 최선을 다하여 대강 넘어가지 않는 그는 60년대초 원각사 공연때는 빈혈로 쓰러지자 아침마다 신당동에 다니며 소피를 먹으면서 무대에 선 적도있고 76년 미독립 2백주년기념 축하행사는 50일간 필라델피아 워싱턴등 11개지역에서 20여회를 공연하는 동안 급작스런 복통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자신의 할바와 의무에 빈틈을보이지 않았다.지금도 「국록」을 받는다는 자세로 매일 국악원에 나와 직접후진을 지도한다. ○40여회 전·월세 전전 국악계를 통틀어 『높은 스승일뿐만 아니라 인품이요 덕망,학식이고 예술에서 앞으로 누가 있어 선생을 따를 이가 과연 있을 것 같지않다』는 성경린씨(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지휘 기능보유자)의 말대로 「명확한 운궁법을 통한 정확한 표현력으로 평가되어지는 악기」를 젖혀두고라도 전통무용으로 저문한 그는 당연히 「한국무용사의 산증인」이요 「궁중정재의 대명사」이며 「정재재현의 명장」이 아닐 수 없다.아악부 시절에 만난 성경린과의 총죽지교는 「한 핏줄과도 같은깊고 짙은 우정」으로 일요일마다 「산행의 동반자」이기도 하다.가족은 그를말없이 내조해온 부인 박준주여사는 2년전 타계하고 3남3녀중 5남매는 미국에 체류중.차남 정완씨(회사원)가 극진히 모시고 있다.여전히 가볍고 날렵한 그의 몸놀림은 어느 한구석 비틀거림이나 흐트러짐이 없다.갸냘프리만치 깡마른 체구에도 강단이 세고건강해서 그에게선 「노인」의 티란 찾아볼 수 없고 특히 춤을 출때 그렇다.『남과 다투지 않고 아부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마음 편히 늙었으니 행복하고후회가 없다』는 그는 『그러나 노장은 무용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무대에 서서 살아있는 춤을 보여주고 싶다』는 절규와도 같은 기원을 기필코지키고 싶어한다.오는 3월 30일 미수를 앞둔 제자들의 축하공연에서 심소는 또한번 「전아의 극치」로 일컬어지는 「춘앵무」로 우리에게 상서로운 봄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그것은 무용가 최현의 표현대로 「결과 멋과 흥」이 샘물처럼 어우러진 「절예의 경지」 또는 「입신의 경지」 그자체일 것이다. □연보 ▲1909년 서울출생 ▲22∼26년 이왕직 아락부원양성소 졸업(해금·양금·아쟁전공) ▲23년 순종황제탄신 오순경축공연 무동출연 ▲26∼42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아악수장 ▲40∼45년 이화여전 강사 ▲43∼45년 조선음악가협회회원 ▲45∼47년 대한국악원이사 ▲50∼88년 서울대·한양대·추계예대·숙대무용과 출강 ▲51∼95년 국립국악원 예술사,연주원,자문위원,현재 원로사범 ▲55∼78년 무용연구소 개설 ▲1956년 첫번째 무용발표회 이후 75년까지 7차례,창작무극 「처용랑」「만파식적」「흥부전」「봉산탈춤」등 발표 ▲61∼76년 한국국악협회이사,부이사장,상임고문,명예회장 ▲61∼80년 서울시 문화재위원 ▲62∼95년 미주·동남아·유럽지역등 해외공연 21차례 ▲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39호 처용무기능보유자지정 ▲73∼93년 대락회 이사장 ▲77∼현재 정농락회 회장,궁중무용발표회 이후 10여차례 ▲78∼현재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92년 「심소김천흥선생 무락생활 70주년기념」공연(국악원소극장) ▲93년 무악생활 70주년기념 해외순회공연 ▲95년 하와이대 초청 객원교수 한국무용의 기본무보(69년) 정악양금보(82) 정악해금보(88) 심소김천흥무악70년(95년) 서울시문화상(60년) 문화재보존공로상(68년) 한국문화대상(69년) 대한민국예술원상(70년) 국민훈장모란장(73년) 한국국악대상(83년) KBS국악대상 특별공로상(92년)
  • 작가 박경리(이세기의 인물탐구:88)

    ◎삶과 문학에 당당히 맞선 “대지의 어머니”/암수술·사위구속 시련속 25년만에 「토지」 완간/인기영합 두려워 80년 원주 정착,은둔생활/「일본론」 집필 구상… 체험 바탕의 문학강의 큰 인기 「글을 쓸 때는 살아 있다/바느질할 때 살아 있다/풀을 뽑고 씨앗뿌릴 때/살아 있는 것을 느낀다/서쪽에서/빛살이 들어오는 주방/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나는 내가 죽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88년 「산더미 같은 「토지」에 파묻혀」 다른 잡사를 생각할 겨를이 없을 때 작가 박경리는 자신을 추스르고 위로받기 위해 시집 「못떠나는 배」를 낸 적이 있다. 그때까지 「토지」3부가 「열가닥의 씨올로 짠 피륙」이라면 4부의 무대는 「인간이 소모품으로 파괴되고 영혼과 육체가 참살되는 가공할 전쟁의 광란」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나락같이 깊은 내용과 엄청난 양감」으로 인해 어디서부터 소설을 허물어나가야 할지 망연자실하던 시기였다.그만큼 「토지」는 그를 비웃는 태산이었으나 내면의 아우성과 전진과 기록의 난무속에서」 그는 스스로 황폐해가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천형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사마천) 「우리는 시시각각 자신과도 이별하며 살아간다」(매)는 무명 같은 시들을 남기게 되었다. 평소 「작품을 쓰는 일은 자기속에 있는 악과의 싸움」이며 「쓰기 때문에 살아 있고 살아 있으면 써야 한다」는 그는 「진실을 위해 생명을 버림으로써 생명을 얻는다」는 성서의 잠언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사잊고 창작 몰두 이른바 한번 쓰기 시작하면 세사와의 접촉을 일체 끊고 몇년이고 칩거하여 창작에만 몰입하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그는 본래 투명하도록 맑고 연약한 인상이지만 「운명적으로 맡겨진 역할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똑바로 해내는 동안 「못 하나 박는 일」도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강인한 성격이 되었다.또 어떤 탁류에도 휩쓸리지 않으면서 만약 작은 상처를 입더라도 이를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줄 아는 섬광의 혜지를 타고났다.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외롭고 참담한 현실 앞에 어쩔 수 없이 견고해졌다고는 하지만 그에게선 끈질긴 여인의 일면이나 풍상에 시달린 마모의 기색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신기하다.오히려 작가로서 준열한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여 「독자에게 영합하려는 붓을 깊이 경계하고」 약자에게가 아니라 강자를 향해 안으로 도도하고 마음속으로 굽히지 않는다.그런 그를 시인 정현종은 「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독한 사람에 틀림없는 것은 한 작품에 25년간이나 매달린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파악된다.남들은 5년에 한번 쓸까말까한 장편을 58년 첫장편 「애가」와 59년 현대문학에 「표류도」 연재를 필두로 「내마음은 호수」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등 어느때는 1년에 두편이상을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처럼 끊임없이 집필하고 있었고 문학지에 발표해온 중단편이 그때마다 평자들의 호평에 오른 것은 작가가 정교하게 책임진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토지」1부를 쓸 때는 암으로 오른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고 2부때는 사위인 김지하시인의 구속사태로 가족이 온통 고통을 겪으면서 그의 눈에 넣어도 아파하지 않던 외손자 원보(군입대중)를 등에 업고 구치소 면회를 다니던 정릉시절이 눈에 선연하다. 「어찌하여 빙벽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가중되는 망상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들어야 하는가.나는 주술에 걸린 죄인인가」 그러나 「그것이 죽음보다 더한 가시덤불의 길일지라도」 「무자비하게 나를 묶어버린 그 숱한 정신적 속박의 사슬」을 물어 끊거나 도망치지 않고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삶과 문학에 그는 언제나 정면대결로 마주서 있다.그리고 구약의 욥이 가산도 자식도 다 잃고 악창에 시달려 환부에 흐르는 고름을 사금파리로 긁어내면서도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고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내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면서 악마의 시련을 신앙으로 극복한 의인의 발아래 진심으로 무릎을 꿇고 싶어했다.이 자세는 고통과 의지의 절대세계라고 할만한 작가의 구도적 혈흔이 선명히 와닿는 육성으로 그의 문학을 논할 때마다 인용되어지는명문이다. 그는 사람이 행불행을 수월하게 얘기하는 것을 보면 「때론 노여움을,때론 모멸감을」 느끼기도 한다.「무궁무진한 인생의 심층을 상식으로 가려버리려는 것이 비겁」하기 때문이다.또한 「그렇게 분류되는 불행,그렇게 가치지어지는 행복이라면 실상 그 어느것과도 나와는 별인연이 있을 성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외면해버린다. ○7백여평에 농사 지어 그의 주장은 작가의 선민의식을 시속기로 천시하여 「작가는 철저한 에고이스트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그래서 「토지」3부를 끝내고 「인기라는 물결로부터 자기가 썩고 있는 일에 빗장을 지르기 위해」 80년 아무런 연고지도 아닌 원주시 단구동에 정착,정릉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흙을 주무르고 나무를 가꾸고 온갖 새와 동물을 거두어 그의 7백여평의 드넓은 뜨락을 「억조창생」이 머무는 생명의 근원지로 만들어나갔다.그의 생명에 대한 겸손은 길가에 버려진 돌멩이나 배추 한포기라도 갓난아기를 안듯이 정성껏 보듬고 나무를 꺾으면 나무에 깃든 생명이 피를 흘리며 슬퍼한다는 것을아는 심심상인의 경지다.철이 되면 고추를 따서 햇볕에 말리고 날씨가 궂을 듯하면 다시 방에다 군불을 때어 바짝 마른 고추를 하나하나 헝겁으로 닦아내는 그의 정성은 한시도 쉬지 않는 또 다른 창작의 일면인 것은 두말의 여지가 없다.겉보기엔 일부러 사서 고생을 하는 것도 같고 인고를 타고난 것이나 아닌가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의 노동은 수확의 기쁨을 아는 농부의 그것일 뿐 그에게 있어 일이란 삶의 확인이자 생명의 신비와 경이에 대한 외경의 표현이다. 이제 그는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의 자신과의 언약에서 결국 「도전함으로써 비약」했다. 따라서 「토지」는 그의 대명사이자 분신 이전에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을 찬란한 광망」을 그었으나 「진실은 내 심장속 깊은 곳에 유폐되어 영원히 침묵한다」고 그는 심상한 의미를 예감시키고 있다. 「토지」 이후 그는 연세대 강의 외에 일간지에 시론을 쓰고 일본에 대한 그의 생각을 정리한 일본론을 구상중이다.특히 그의 문학강의는 어디선가 읽은 듯하거나들은 듯하거나 한번 들은 것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생한 체험이 말마다에 살아 있어 대학생 사이에서 명강의로 소문나 있다. ○내년 봄 매지리로 이사 요즘은 단구동일대가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는 바람에 그가 살던 집이 헐릴 위기에 있었으나 토지개발공사의 배려로 「박경리기념관」으로 남게 되었고 그는 이른 봄쯤 연세대 원주캠퍼스가 있는 승업면 매지리로 이사할 예정이다.아마 그때도 그는 농부가 될 것이다. 글 한줄도 쓰지 않으면서 「작가」를 자처하는 사람은 많다.글 한줄도 쓰지 않으면서 「마음속으로는 언제나 쓰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문단의 수많은 모임에서 사교적인 활동만으로 문인을 빙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모든 허세는 작가 박경리 앞에서 무색하다.작품의 질이나 분량에서 이미 남에게 비교될 수 없는 그를 두고 「모든 찬사는 미흡하다」는 문단의 평은 옳다.그의 손은 농사 외에도 바느질과 그림과 나무를 조각하고 돌담을 쌓느라고 거북등처럼 갈라졌으나 그의 미소는 작가의 웃음이며 그의 글은 단한번도독자를 배반하지 않는다.범접할 수 없는 결곡한 기상,금과 옥을 품은 거대한 푸른 산 같은 그 앞에 서면 왠지 작아지고 부끄러워진다는 최일남의 말은 한치의 과장 없이 모든 사람의 공감을 산다. □연보 ▲26년 경남 충무 출생 ▲45년 진주여고 졸업 ▲55년 단편 「계산」 「흑흑백백」 김동리 추천(현대문학)데 뷔 ▲58년부터 장편연재 「애가」(민주신보) 「표류도」(59년 현대문학) 「내마음은 호수」(60년 조선일보) 「노을진 들녘」(경향신문) 「가을에 온 여인」(62년 한국일보) 「파시」(64년 동아일보) 「타인들」(67년 주부생활) 「겨울비」(여성동아),69년부터 대하소설 「토지」1부(현대문학) 연재시작,「죄인들의 숙제」(경향신문) 「창」(70년 조선일보) 「단층」(74년 동아일보) ▲80년 원주시 단구동 정착 ▲84년 한국전후문학 30년 「최대의 문제작」으로 「토지」 선정 ▲86년 북경 연길 백두산여행 ▲90년 프랑스어판 「토지」(파리 벨퐁출판사)출간,중국기행 ▲91년 연세대원주캠퍼스 객원교수 ▲94년 민족사에 길이 남을 걸작 「토지」전5부 16권 완간(도서출판 솔),이대 명예문학박사 「김약국의 딸들」(62년 을유문화사) 「내마음은 호수」(63년 신태양사),단편집 「불신시대」(63년 동민문화사) 「시장과 전장」(64년 현암사),수필집 「거리의 악사」(77년 민음사) 「Q씨에게」(79년 풀빛사) 「박경리문학전집」전34권(79년 지식산업사) 「토지」사전(93년 도서출판 솔),시집 「못떠나는 배」(88년 지식산업사) 「자유」(94년 도서출판 솔)등 60여권 현대문학상(57년) 내성문학상(61년) 한국여류문학상(65년) 월탄문학상(72년) 인촌문학상(90년)
  • 95국악제 「젊은 미래의 푸른마당」을 보고/최종민 음악평론가

    ◎신세대 「우리것 사랑」 신명의 한마당 95 대한민국 국악제 마지막날 공연 「젊은 미래의 푸른마당」(23일·문예회관)은 신세대 국악인이 꾸민 미래지향적인 무대였다.국악의 신세대는 대부분 국악인의 자녀로서 대학에서 국악을 공부했고 양악과 대중음악을 국악과 함께 즐기며 자라온 세대다.그래서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음악간의 벽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모든 음악을 편견없이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가진 세대이기도 하다. 3부로 나누어 공연한 이날의 공연내용에서도 신세대의 그러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는데 1부는 민속음악의 본향처럼 돼 있는 무속음악을 재치있게 무대용으로 재구성하였고,2부는 피아노로 국악을 연주한다는 임동창이 작곡한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그리고 3부는 구음정가·사물놀이·신민요를 기타까지 합세한 반주로 보여주었다. 국악제는 국악인의 축제이고 음악의 향연이다.뭉뚱그려 하나의 대동굿이고 별신굿이다.1부를 굿으로 시작한 이날의 공연도 전체가 하나의 큰 굿판처럼 어우러지는 무대였다.신세대 한사람 한사람의 장기를 선보이기도 하고 떠들썩하게 전체의 앙상블을 과시하기도 하면서 결국은 더불어 즐기는 신나는 놀이판을 연출해낸 것이다.김덕수를 비롯한 한울림예술단은 사물놀이의 현란함이 다른 악기를 리드하면서 전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타악의 우수성을 과시했고 이태백이 이끄는 민속악회 메나리는 젊은 국악인의 힘과 기량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서울굿의 대감놀이를 보여준 이금미나 정가를 구음으로 하여 색다른 효과를 연출한 강권순,그리고 동해안 별신굿의 화랭이 역할을 멋지게 보여준 김정희가 돋보인 개인들이었고 합주석에서 즉흥적으로 양악기와의 갈등을 해소시켜주곤 한 허윤정의 거문고 대현소리 또한 음악적인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였다.또 3부를 장식한 남도창의 유미리·최진숙·노은정은 판소리 전공의 신인으로 힘과 패기가 넘치는 신선함을 보여주어 관객을 즐겁게 했다. 한국음악의 미래를 위해서는 서양음악식의 작품도 많이 나와야 하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훌륭한 음악가를 많이 양성하는 것이고 그 음악가를 스타로 키워가는 일이다. 그런 점애서 이번 신세대의 국악제 참여는 국악계의 미래를 여는 중요한 단서를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들의 싱싱함,그들의 생명력,그들의 의욕이 국악의 미래를 그만큼 활기 있게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피아노나 앰프기타는 아직 우리화하지 못한 악기다.악기의 기능이나 그 악기가 음악을 만드는 방법이 기존의 국악기와 다르다.때문에 그 기능이나 방법이 우리화하기 전에는 우리 음악의 완성도에 기여하기 어렵다.
  • 제11회 향토문화 대상/대상에 김정명 춘천문화원장

    ◎본상 개인 5명·단체 1곳 선정/새달 1일 시상식 서울신문사가 전통문화 계승과 지역문화의 창달에 힘써온 숨은 일꾼을 찾기 위해 제정한 제11회 향토문화대상 수상자가 22일 결정됐다. 전통문화부문과 현대문화부문으로 나누어 전국의 시·군 문화공보실과 문화원·예총·향토사학자들이 추천한 단체 및 개인을 대상으로 심사한 결과 영예의 대상에는 김정명 춘천문화원장(75)이 선정됐다. 본상중 전통문화부문에는 ▲김상곤(남원애향운동 본부장·58·전북 남원) ▲대구향토문화연구소(대표 김택규·66) ▲최종덕(양양 오색국교교사·52·강원 양양)씨등 3명이,현대문화부문에는 ▲이윤수(시인·82·대구시) ▲이은구(이천문화원장·52·경기 이천) ▲심우성(극단 서낭당 대표·62·충남 공주)씨등 3명이 뽑혔다. 대상에는 상금 3백만원,본상에는 각각 2백만원씩의 상금이 주어진다. 올해 심사는 구상(시인)·차범석(극작가)·임동권(중앙대 명예교수·민속학)·정영호(한국교원대 교수·역사학)·이중한(서울신문 논설위원)씨등 5명이 맡았다. 서울신문사 주최,LG전자 협찬,문화체육부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향토문화대상 시상식은 오늘 12월 1일 하오 4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다. ◎대상 수상자 김정명 춘천문화원장/「소양제」 부활·예술행사 활성화/민속자료실 만들고 삼악산성 복원 앞장 『큰 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지역에 묻혀버린 향토문화의 발굴,보존에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대상 수상자로 결정된 강원도 춘천문화원장 김정명씨(75)씨는 『선인들의 얼이 담긴 향토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 작업이 너무 미흡해,후손으로서의 도리를 하려고 애썼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양구군수·강릉시장·도청 상공국장,중소기업 협동조합 도지부장 등을 거쳐 지난 87년 춘천문화원장으로 부임했다.그 때 문화원은 봉의동 도청 앞의 건물에 3평짜리 사무실를 임대해 쓰고 있었다.인원은 여직원 한명과 원장 뿐이었다. 문화재를 간수하는 유일한 기관인 문화원의 당시 역할과 위상을 말해주는 사례이다.『조상들의 발자취와 손때 묻은 유품들을 추스리려는 노력이나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때마침 시립도서관이 새 건물을 짓자,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해 사무실을 도서관으로 옮기고 민속자료실과 영상오디오 자료실·미니 도서실 등을 만들고 지역의 예술·문화 행사를 활성화하기 시작했다. 『흐지부지됐던 춘천의 향토문화 축제인 「소양제」를 77년부터 부활하고 정월 대보름 놀이와 청소년 유적답사 등도 알차게 추진했습니다』 향토문화를 지키고 가꾸려면 주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보고 솔선하기 시작했다.스스로 강원도 전역을 누비며 선조들의 생활도구와 유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은 베틀,소 구유,재래식 쥐틀 등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6백여점의 유물들을 의상,음식,생활,생활방식,습관 등으로 나뉘어 민속자료실에 전시했습니다』 대부분 지금은 볼 수 없는 물건들이다.학생들과 주민들이 문화원을 향토문화의 학습장으로 활용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요즈음은 스러져가는 산성 복원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춘천 덕두원리에 10여m 정도만 남아 있는 고대 맥국의 마지막 유적인 삼악산성의 복원 작업을 서두르고 있습니다.맥국은 삼국시대 이전의 고대 왕국으로 강원도의 뿌리입니다』 춘천,나아가 강원도의 뿌리인 맥국의 보존을 위해 3년 전 조사위원회를 만들었고,오는 연말까지는 신북읍 발산1리에 맥국터비를 세우기로 했다. 이에 앞서 몽고 침략에 맞서 결사적으로 싸웠던 항몽터전으로,허물어져 자취를 잃어가는 봉의산성을 2차례에 걸쳐 복원했다. 『국립 강원박물관을 세우고,지역 인사 17분이 모여 한일합방에 반대하는 시를 읊던 국사봉에 망배도 세워 선조들의 참된 얼을 배우고 잇는 곳으로 활용토록 하겠습니다』 정선아리랑 등 전통문화를 12분야로 나눠 책으로 펴내기 위해 서두르는 등 제 2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원장은 『강원도에 제 2의 김유정과 이효석이 배출될 수 있는 문화의 터전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춘향제」를 전국규모의 축제로/김상곤 남원애향운동본부장 지난 85년 춘향문화선양회를 발족해 해마다 춘향제를 창의적으로 유치,전국적인 규모의 축제가 되도록 했다.91년 춘향제부터는 춘향문화대상(학술·예술·여성·언론분야)을 제정해 올해까지 상을 시상해오고 있다.92년 춘향제 때는 「춘향제 60년사」를 발간했으며 93년에는 「춘향전 관계사 학위논문선집」「춘향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발간했다. 투철한 향토애를 바탕으로 남원의 문화전통을 가꾸고 남원인의 품위향상을 위해 애쓰는 것은 물론 현재 춘향제를 세계적인 관광문화축제가 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사당 놀이」 등 문화재지정 공헌/심우성 극단 서낭당 대표 59년 사라져 가던 「남사당 놀이」의 연희를 수합해 재연한 이래 특히 전통 인형극과 탈놀이의 발굴조사를 통해 무형문화재의 지정에 공헌해 왔다. 저서로 「남사당패 연구」「무형문화재 총람」「한국의 민속극」「한국의 민속놀이」「민속문화와 민중의식」「탈」등이 있으며 「조선무속의 연구」「역과 점의 과학」「연극의 역사」등 20여권의 역저가 있다. 현재는 문화체육부 문화재 전문위원,극단 서낭당 대표,한국민속연구소 소장,공주민속극박물관 관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69년 창립… 「향토문화」 회지 발간/대구향토문화연구소 69년 6월 향토사 및 향토문화의 조사연구에 관심있는 교수와 향토사가들이 모여 창립됐다.같은해 12월 회지인 「향토문화」를 육필사본으로 간행하는등 연구회의 발전을 꾀했으며 85년 7월부터는 대우학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모임을 활성화 하고있다. 현재 회지는 제7집까지 간행됐으며 조사보고서로는 「경상감사 도임행차순력 복원」「화랑문화의 신연구」「낙동강 유역사」등을 출간할 예정이다.이밖에도 향토사 사료 윤독회,향토사적 답사 등으로 대구 경북지역의 향토문화연구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87년부터는 각 지역의 향토문화 연구단체를 결집해 우리 문화유산을 발굴·보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76년 청파요 개설… 도예발전 헌신/이은구 이천문화원장 우리 전통도예의 맥을 이은 분청사기의 장인으로 76년 이천읍 사음리에 청파요를 개설해 도예문화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왔다. 91년 1월 이천문화원장에 취임한 이래 각종 문화사업을 통해 지역문화 발전은 물론 지방문화원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공헌했다.특히 이천문화원이 해마다 10월에 개최하는 이천도자기축제를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문화관광축제로 적극 육성,올해 제9회 이천도자기축제의 경우 외국인 1만5천명을 포함한 25만명의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으며 4억3천만원의 도자기 판매실적과 함께 도예작품전·한국의 잔 특별전·도자기 제작실연등 각종 행사를 마련해 도예문화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농악대 구성… 전통민속 보존 힘써/최종덕 양양 오색국교 교사 63년 교육계에 투신한 이래 투철한 교육관으로 전통민속예술과 우리 뿌리찾기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해왔다. 전통민속예술의 창달 및 계승발전을 위해 사라져 가는 향토민속의 발굴에 힘써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최우수상 3회,종합우수상 2회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3차례 수상했다. 양양군 전통민속보존회와 어린이·청년·노인 농악대를 각각 구성해 농악보급 및 보존에 힘쓰고 있으며 청소년 어울마당 지도교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여름 피서철에는 해수욕장에서 고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통민속을 공연함으로써 볼거리를 제공하고 향토민속을 관광자원화해 주민소득 증대에도 기여하고 있다. ◎광복뒤 첫 월간시집 「죽순」 창간/이윤수 시인 지난 45년 「죽순시인구락부」창립 이래 현재까지 대표로 있으면서 46년 광복 최초로 월간 동인시집 「죽순」을 창간했다.48년 한국문단 최초로 「상화시비」를 대구달성공원에 건립했으며 50년에는 문총(현 예총)구국대 경북지부를 조직했다.79년 동인시집 「죽순」을 복간했으며 83년에는 「전선시첩」1·2·3 합본을 발했다. 85년 상화시인상을 제정,올해로 10회째를 맞고 있으며 90년부터는 상화시 전국백일장을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92년 2월부터 한동안 서울신문에 「향토시인 이윤수 특집」이라는 글을 게재해 필력을 과시했으며 지난해 5월에는 한·일 국교수립후 처음으로 한·일 친선합동시화전을 주일 한국총영사관 초청으로 열었다.
  • 당진 안국사지 고려석불입상(한국인의 얼굴:50)

    ◎원통형 머리­꽉 다문 입 “장승과 흡사”/감은 눈에 납작한 코… 무속적 인상 짙어 고려의 석조불·보살상들은 개국의 시기로부터 멀어질수록 제작과정에서 생략기법이 보다 많이 적용되었다.불·보살의 의상인 천의를 간소하게 표현했다가 뒷날에는 아예 옷을 입히지 않았다.마치 스핑크스의 발모양으로 과장했거나 기호로 간략히 표현해온 발도 없애버렸다.얼굴,보관 및 보관의 덮개 등을 포함한 머리부분과 머리갖춤에 표현의 초점을 맞추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충남지역 몇몇 석조불·보살상에 나타났다.당진군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 절터의 석불입상이 대표적 케이스다.이 불상은 선 자세인데 키가 5m에 이르는 거상이다.한 덩어리로 이루어지는 이른바 괴체화 한 11세기 고려 불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이는 뒷날 전북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에서 처럼 무속적 성격을 강하게 띤 석불로 이어지는 것이다. 불상의 머리는 원통형이다.얼굴은 네모꼴에 가깝고 넓적한 인상을 풍긴다.감아버린 눈 사이의 납작한 콧날은 얼굴을 더욱 넓게 보이도록한 몫을 단단히 거들었다.작은 입을 꼭 다물었다.그 다문 입은 몸둥이와 더불어 마치 장승을 연상시켰다.이마에 박혔던 구슬 백호는 누가 빼내어 구멍에 그늘이 졌다.보관 언저리에서 시작한 귀는 마냥 늘어져 어깨에 와 닿았다.장인이 의도한 석가모니 부처의 모습을 그런대로 갖추었다. 불상은 의관 중에 옷 말고 관모는 제대로 챙겼다.두상대로 원통형에 가까운 보관을 썼다.보관 위를 덮은 보개가 하도 넓어 몇 사람 정도는 불상 둘레에서 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다.인동의 사람들이 석불입상을 가리켜 갓쓴 바위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 있다.그런 보관과 보개와는 달리 옷을 입은 흔적은 없거니와 인체의 볼룸조차 살리지 않아 몸둥이는 민패 그것이다.발을 표현코자 시도한 흔적은 전혀 없다. 그런데 억지로 갖다 붙인듯 해보이는 팔과 손이 드러나 있다.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하지만 손가짐(수인)만큼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다.아미타불이 극락정토의 9등급을 나타내는 구품인의 하나 중품중생인을 표현했다.이 석불은 혼자서 있는 것이 아니라 좌우에 협시보살을 거느렸다.그리고 절은 없을지라도 석탑 1기가 남아 그리 외롭지 않았다. 안국사는 지금 이들 불·보살상과 석탑이 남아있을 뿐 창건이나 폐사에 관한 기록이 없다.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안국산 중턱에 절이 있는데,안국사라고 부른다는 대목을 적어 놓았다.그로 미루어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1531년 무렵까지는 절이 있었던 모양이다.절 뒷산 바위에 「여미북천구」라고 새긴 글씨가 있다.아마도 여미지역의 큰 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1929년에 한 승려가 중창한 바 있지만 곧 폐사된 것으로 알려졌다.안국사에서는 금동제 작은 불상이 출토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 제주 무속음악 집대성 칠머리당굿 공연/3∼4일 연강홀

    ◎어부 안녕·풍어 기원 제주지방 특유의 무속음악을 집대성한 제주 칠머리 당굿이 오는 3일부터 4일까지 서울 연강홀 무대에 오른다. 서울에서 초연되는 제주 칠머리 당굿은 육지의 도당굿에 해당하는 제주도의 가장 큰 굿으로 어부와 해녀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타악기로만 음악을 연주,형식상 다른 지방의 화려한 무속음악에 비해 조촐하면서도 훨씬 더 힘이 넘쳐나는 신명을 선사한다. 육지의 무속음악에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지만 북,장구,대영(징),설쇠(꽹과리)가 어울려 빚어내는 소리는 제주 특유의 힘이 넘쳐 난다. 짚으로 짠 제주지방의 망태기인 멕에서 꺼낸 제주의 타악기는 모양새나 연주방법에서 뭍의 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북은 들거나 메고서 치는 것이지만 제주 칠머리 당굿에서는 북을 얕은 바구니 위에 얹어 놓고 두드린다.또 양손에 대나무 밑둥으로 만든 채를 쥐고 북의 오른쪽만 치는 것도 특이하다. 불룩 나온 놋쇠그릇처럼 생긴 설쇠(꽹과리)도 엎어 놓거나 방석 위에 얹어 두고 연주하는 데육지의 꽹과리보다 맑고 높은 소리를 낸다. 제주 칠머리 당굿의 이번 첫 서울나들이는 타악기로만 연주하는 이 굿의 음악이 우리 국악장르 가운데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물놀이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할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 제주 칠머리 당굿의 인간문화재 김윤수씨를 비롯,한생소·강순선·이용옥·김연희씨등이 출연한다.공연시간은 3일 하오7시30분,4일 하오4시.문의 708­5001
  • 궁정동 안가터 공원 “변신”/「10·26」16주기… 지금 그곳은

    ◎박 대통령 시해됐던 자리엔 석조상이… 「탕 타 탕」 16년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18년 독재역사의 거목은 배신한 측근이 뿜은 총탄에 허무하게 쓰러졌다. 지난 93년 서울 종로구 궁정동 55의 3 3천2백평 필지에 조성된 「무궁화 동산」은 공작정치회동과 밀실연회의 산실인 청와대 안전가옥터다. 일본풍 향나무는 모두 뽑아내고 옮겨심은 수령 30년된 무궁화나무와 은은한 향기가 1백리까지 풍긴다는 울룽도 섬백리향이 새벽 공원을 찾는 인근 주민을 반갑게 맞이한다. 풍수발복의 땅 북악산 아래 무속헌터를 지켜온 3백년된 회화나무는 총성이 울린 인왕산 아래 안채를 굽어보며 덧없는 권력무상을 느낀다.헐린 안가 5채중 최고권력자가 술상앞에 쓰려졌던 이 터에 지금은 높이 3m의 석조물이 바위가 무너져내리는 형상으로 서 있다. 매일 아침 아내와 함께 운동삼아 이곳을 거니는 상훈(65·서울 종로구 옥인동)씨는 『30여년을 이곳에 살았지만 79년 당시 이곳이 청와대 안가인지 몰랐다』며 『국민의 뜻을 저버린 통치자가 겪은 역사적 교훈이 이곳을 찾을 때마다 되새겨진다』고 10·26 16주기 감회를 밝혔다.
  • 「백마강 달밤에」 1천여 관객 “갈채”

    ◎서울신문·LG전자 주최 축제극/의자왕 혼 모셔오는 대동제 관객 숙연/“백제역사 깊이 생각 계기” 찬사 쏟아져 서울신문이 LG전자와 공동으로 백제인의 정신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한 축제극 「백마강 달밤에」가 11일 하오8시부터 공주문예회관에서 1시간30분동안 화려하게 펼쳐졌다. 제41회 백제문화제의 하나로 마련된 축제극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극작가 겸 연출가인 오태석씨가 작품을 쓰고 연출한 것으로,백제정신의 부활을 당집·별신제·돌다리가는 길 등 3장에 담았다.중견연극인 15명과 5명의 스태프가 어우러져 열연,백제문화제중 가장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극단 「목화」의 대표이기도 한 오씨는 이날 망국의 한을 안고 중국 고원에 묻힌 의자왕의 혼을 모셔오는 대동제에서 화려함과 웅장함을 연출,1천여명의 관객을 사로잡았다. ○…산신과 천신 등 무속신과 인간을 연결,충청도 어느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형상화한 「당집」이 시작되자 관객은 신비한 듯 숨을 죽이며 극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을의 대소사를 돌보고,삼국시대 황산벌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숨진 병사의 넋을 위로하며,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무병장수를 빌어온 늙은 무당이 꿈에서 백제를 망하게 해꼬지한 수양딸 「순단」을 만나 갈등을 빚기 시작하자 객석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2장 「별신제」로 들어서면서 수양딸이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애첩 금화로 변신해 신위를 모신 제단에서 지전을 흔들며 의자왕의 혼을 위로하는 장면으로 이어지자 객석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러나 제단에 모신 신위가 왕이 아니라 계백장군으로 바뀌었다는 얘기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며 폭소가 터졌다.이어 가요 「백마강 달밤에」가 흘러나오자 관객이 모두 따라 부르며 흥겨운 축제분위기를 이뤘다. ○…애첩 금화로 변신한 수양딸이 우여곡절 끝에 중국 고원에 외롭게 묻혀있는 의자왕을 만나는 3장 「돌아가는 길」에서는 마치 나라를 잃은 의자왕처럼 가슴 아파하며 일부 관객이 눈물을 흘렸다. 의자왕이 무당에게 『어서 빨리 고국으로 데려다달라』고 간청하는 대목에서도 탄식이 터졌다.수양딸이 1천3백년동안 타국에 묻혀있는 의자왕을 모셔오겠다고 다짐하며 백제왕과 3천궁녀 및 병사의 넋을 위로하는 대동굿이 사물놀이와 펼쳐지는 피날레에서는 힘찬 박수가 터져나왔다. 박선희양(20·회사원)은 『이처럼 재미있고 웅장하며 백제의 역사를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하는 연극은 처음』이라며 『국민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이런 연극이 자주 공연돼 역사의식을 바로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한국의 문화유산」영문판 발간/한글·김치 등 20개 주제로 나눠

    ◎재외 공관등에 5천세트 배포/해외공보관 공보처 해외공보관(관장 이찬용)은 5일 우리생활 속에 살아 숨쉬는 전통과 문화·예술의 특징을 담은 「Korean Heritage Series(한국의 문화유산)」라는 제목의 15페이지 안팎의 영문판 소책자 시리즈 20권을 펴냈다. 이 책들은 ▲한글 ▲인쇄문화 ▲도자기 ▲단청 ▲문양 ▲장신구 ▲자수 ▲지공예 ▲보자기 ▲민화 ▲전통악기 ▲탈과 탈춤 ▲정원 ▲세시풍속 ▲무속 ▲관혼상제 ▲씨름 ▲태권도 ▲인삼 ▲김치 등 20개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주제로 선정,주제별로 핵심적인 내용을 화보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 해외공보관은 모두 5천 세트를 만들어 재외공관과 해외의 문화계 주요 인사 및 주한 외국공관·대학도서관 등에 배포할 예정이다.
  • 부랴트공 수도 울란우데(시베리아 대탐방:37)

    ◎시장마다 중국상인 호객소리 시끌벅적/중 국경과 인접,17세기부터 국제 교역도시/한때 칭기즈칸이 지배… 몽골·중·러 문화 혼재 울란우데에 도착하며 모스크바로부터의 거리는 5천5백32㎞로 늘어났다.이곳에서 제일 먼저 실감하는 것은 중국상인들의 위력이다.몽골국경을 넘어 들어온 중국상인들은 울란우데 시내 곳곳에 대형 중국시장을 형성해 오랜 소비에트체제에 젖어 굼뜬 이곳 사람들의 「혼을 빼놓고」 있다.우리나라 남대문·동대문시장의 축소판을 연상시킬 정도로 활기찬 중국상인들의 호객소리·흥정소리는 주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이곳 러시아인들의 의식에 가히 폭풍같은 변화를 몰고 왔다. ○남대문시장 축소판 이곳 민족시인 개세르의 이름을 딴 호텔 리셉션의 부랴트 아가씨는 얼마나 친절한지 이 도시에 대한 인상을 여행중 최고로 만들어 놓았다.택시기사·식당의 여급 등 대부분의 시민들이 지나온 시베리아의 다른 도시들과는 완전히 다른 개방 마인드를 보여주었다.중국상인들의 영향과 함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를 거쳐 북경으로가는 기차의 교차역이라는 지리적 위치가 개방의식을 불어넣는 데 일조했음이 분명하다. 울란우데는 국제무역 도시로서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처음 도시는 1666년 코사크요새로 출발했다.이 요새를 거점으로 부랴트인·에벵키인 등 원주민들로부터 「애삭(공물)」을 거둬들였다.우다강과 그 지류인 셀렝가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울란우데의 옛지명은 「우다강 상류」라는 뜻의 베르흐니우딘스크였다.베르흐니우딘스크는 중국국경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곧바로 바이칼 이동 지역의 대형 상업중심지로 성장했다.이곳을 거점으로 중국으로부터 차·비단 등이 대거 수입됐다.1899년 시베리아횡단열차가 이곳을 통과하며 도시발전을 더욱 가속화시켰다.1920년 잠시 극동공화국 수도였고 58년부터 부랴트공화국의 수도가 됐다.「붉은 우다강」이라는 뜻의 울란우데로 개명한 것은 1984년이었다. 부랴트인들은 원래 이곳 토착민들이다.그러다 8세기에는 위구르·투르크한의 지배를 받았고,9세기 때 몽골의 침략을 받기 시작해 10세기에 들어 칭기즈칸에 의해 완전히 몽골로 편입됐다.이후 줄곧 몽골말과 몽골글을 사용했다.그러다 17세기중반부터 러시아의 점령이 시작됐고 1939년부터 러시아문자를 쓰기 시작했다.이같은 복잡한 역사 탓에 여러 문화·종교·관습이 어지럽게 혼재돼 있다. ○곳곳에 라마교 사찰 특히 이곳은 시베리아에 진출한 라마교의 총본산이 있는 곳이다.도착한 이튿날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이곳을 찾아갔다.도심을 벗어나자 곧바로 광대한 평원이 펼쳐진다.평원 뒤로 얕은 산이 둘러쳐진 전형적인 자바이칼 스텝이다.평원에는 주말을 맞아 사람들이 대거 몰려나와 감자를 심고 있다. 불교의 절을 부랴트 말로는 「다싼」이라고 부른다.불과 1시간여만에 유명한 항공기 제작공장이 있는 소콜시를 지나 1백여호의 이볼긴스키 다싼 마을에 도착했다.평원 한 가운데 요란한 치장을 한 다싼의 불탑이 솟아있다.티베트에 있는 라마교 사원과 거의 똑같은 양식이고 불당안에는 달라이 라마의 초상이 곳곳에 걸려있다.주말인데도 불구하고 10여명의 승려만 예불을 보고있고 신도는 2∼3명에 불과했다.부랴트의 다싼들은 스탈린시절인 30년대말 종교탄압때 거의 폐쇄당해 이볼스키 다싼 한곳만 남았다고 한다.물론 NKVD(KGB의 전신)의 철저한 통제를 받았다.그러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복원운동이 일어나 현재는 부랴트공화국 안에 모두 14개의 다싼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이볼스키 다싼에는 시베리아유일의 라마교 신학교도 개설돼 있다.바이칼 서쪽의 퉁가라는 마을에서 왔다는 한 신학생의 말에 따르면 현재 1백명의 신학생이 있으며 철학·천문·티베트어·영어·몽골어 등을 공부한다고 했다.그는 라마교와 불교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라마교는 샤머니즘 요소가 강하며 호랑이·큰 바위 등 잡신을 많이 섬긴다』고 했다. 이곳과 달리 바이칼 서쪽의 부랴트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정교를 믿는다.이 지역의 기독교화는 1681년부터 시작됐는데 러시아역사에는 이 선교운동을 「다우리아 미션」으로 부른다.18세기에 이르러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10만명 정도의 부랴트인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초대형 레닌 두상도 울란우데 시내중심가의 주청사앞 광장에는 아마도 러시아 전역에서 제일 클 것같은 초대형 레닌두상이 세워져 있다.기단높이 20여m,두상높이가 15m는 됨직하다.그런데 그 두상을 정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부랴트인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알마아타 중앙광장의 레닌얼굴은 어딘가 카자흐인을 닮았고 타슈켄트의 레닌동상에서는 우즈베크인의 분위기를 느꼈던 기억이 난다.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묘한 일이다. 주청사 꼭대기에는 백·청·적의 러시아국기와 함께 청·백·황의 부랴트국기가 나란히 걸려있다.현재 이곳은 2년전 주민 직선으로 선출한 레오니드 보탐포브 대통령이 있고 자체국기,자체 공식언어 등 외형적으로는 거의 독립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다. 울란우데 교외에는 시베리아 최대의 민속촌이 있다.고대 에벵키인·부랴트인들의 무속·관습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면 반드시 한번 둘러볼만한 곳이다.이들이 사용했던 유르타(천막집)·사냥도구·각종 무구 등이 잘 보존,전시돼 있다.차르 이반 그로즈니때 러시아정교가 신구파로 양분되고 난 뒤 구파 정교회의 건물도 이곳에만 보존돼 있다.지금의 러시아정교회는 당시 왕실과 타협해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새로운 전통을 받아들인 신파다.「라스콜(분리)」이라고 부르는 이 신구파 분리는 러시아 교회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구파,즉 「스타라오브랴치(전통관습이란 뜻)」는 주도권을 신파에게 빼앗긴 뒤 얼마간 독자적인 교회양식,전통을 고수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하오에는 트람바이를 타고 울란우데 외곽을 돌아보았다.반갑게도 「크바스」라고 부르는 러시아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전통음료를 길거리에서 팔고 있었다.이스트를 넣어 시큼달콤한 맛을 내는데 리어카에 실은 큰 철제탱커에 수도꼭지를 달아 아주 싼값에 판다.모스크바에서는 2∼3년전부터 코카콜라·펩시 등 서방음료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는데 시골마을이라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큰 유리컵에 가득 담긴 크바스를 노인과 젊은이 2명이 번갈아 마시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 「민족의태동,혼의소리」로 개막/민족음악협,1∼2일 광복50돌 공연

    ◎국악·민중가요·서양고전음악·동요 망라 민족의 소리로 광복 50년을 반추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공연「민족의 삶,뜻,소리」가 9월1·2일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국악,민중가요,서양 고전음악등 각 장르의 벽을 넘는 민족의 소리꾼들과 춤꾼들이 꾸미는 이 무대는 민족음악협의회(의장 강준일)가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마련했다. 모두 3부로 이어지는 이 공연은 김덕수패 사물놀이와 민중가수 안치환이 엮는 「민족의 태동,혼의 소리」로 막이 오른다. 1부는 춤패 춤세상이 독립군과 정신대의 혼을 기리는 춤과 작곡가 강준일씨의 무속음악을 형상화한 무당춤을 선보인다. 또 록그룹 천지인,노래마을이 「지리산」,「광야」등의 노래로 민족의 태동과 시련의 역사를 그린다. 2부는 광복50년의 역사가 국악,민중가요,서양 고전음악등 장르를 초월한 종합공연 형식으로 진행된다. 민족음악연구회가 김순남 작곡의 「해방의 노래」를 금관5중주로 연주하고,한돌,「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70년대의 통기타문화를 상징하는 연곡을 부른다. 이어 판소리명창 안숙선씨가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을 담은 「남부리 북누리」를 창으로,정태춘·박은옥부부가 서정어린 민중가요 「북한강」등을 영상과 결합한 노래로 선사한다.또 노찾사는 환경파괴의 아픔을 그린 「고운동 달빛」을 재즈피아니스트 임동창씨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한다. 3부는 어린이 노래모임 굴렁쇠,노래패 꽃다지등이 미래를 상징하는 노래로 힘차게 펼쳐간다. 공연시간은 9월1일 하오7시30분,2일 하오4시,7시.문의 766­2983.
  • 작고 김동리씨 전집 1차분 6권 출간

    ◎장편소설 2편·단편 109편 수록 지난 6월 작고한 소설가 김동리의 작품들을 묶은 「김동리 전집」 6권이 민음사에서 나왔다.총 20권으로 기획된 전집의 1차분으로 김동리의 대표적 장편소설 2편(「사반의 십자가」「을화」)과 1백9편에 이르는 단편소설을 모두 수록했다. 1권 「무녀도/황토기」에는 그의 데뷔작인 화랑의 후예부터 해방이전까지 토속적인 무속정서가 두드러지는 작품이,2권 「역마/밀다원시대」에는 해방뒤의 첫작품 「윤회설」부터 실존적 허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50년대 까지의 작품이 수록됐다.3권 「등신불/까치소리」는 그의 문단경력이 정점에 올랐던 60∼70년대의 작품을,4권 「저승새/만자동경」은 김동리 말년의 작품과 「김동리 역사소설」에 수록된 연작형식의 작품 등을 모았다.장편 「사반의 십자가」와 「을화」는 5권과 6권에 각각 수록됐다.책 말미에는 문학평론가 유종호·김윤식·김치수·진정석·이동하씨 등의 해설과 연보가 덧붙여졌다. 이밖에 김동리의 나머지 장편들과 시들을 담은 전집 2차분은 오는 96년 발간될 예정이며 에세이와 기타 미발표 원고 및 자서전을 묶은 전집 3차분은 97년 발간된다.
  • 현암사 발간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예인 백사람」(화제의 책)

    ◎예맥 이어온 「장이들」 조명/명창서 무명인간문화재까지 소개 황병기,박동진,안숙선,공옥진….다들 잘 알려진 이름이지만 이들의 음악이나 공연을 제대로 접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이처럼 이름값에 비해 푸대접 받아온 전통 예술인들을 조명하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이규원 지음,정범태 사진)이 현암사에서 나왔다.일반인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우리 문화에 초점을 맞춘 의의가 클 뿐더러 문외한들도 흥미롭게 읽게끔 사람얘기 중심으로 풀어썼다. 6백50여쪽 분량의 이 책엔 1백30명에 이르는 우리 전통예술의 우뚝한 봉우리들이 망라돼 있다.가야금산조,사물놀이,씻김굿 등으로 제법 알려진 예능인 뿐만 아니라 칠머리당굿,선소리 산타령,결성농요 같이 이름도 생소한 예맥을 지켜온 장이들의 사연이 실려 있는 것.「뱃놈」으로 사는 고생이 하도 심해 신세한탄하느라 「배치기 노래」를 배웠거나,유복자로 태어난 한에 독경의 세계에 빠져버린 이들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예인의 예술세계와 그 삶이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춤,무속,공연·놀이·의례의 다섯분야로 나눠 전통예술의 지형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장점. 부록으로 예인들의 이름과 공연·춤·노래명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한 찾아보기를 덧붙였다.임방울·정정렬·이동백 등 전설적인 명창들의 희귀한 사진을 비롯,세계일보 사진부 부장기자가 직접 찍은 예인들의 공연사진 등 1백60쪽의 화보도 실렸다.
  • “한국 굿­일본 가쿠라 모드 진혼 의식”

    ◎한·일 민속공동연구 1차 학술회의/한국국제교류재단­일 국제교루기금 연구비 지원/일 학자 제주도­한국학자 규슈지역 탐사/무당 모두 여자… 치병·점치는 일등 담당 한일민속공동연구 1차 학술회의가 2일 하오 서울 연세대박물관에서 열렸다.한국국제교류재단과 일본국제교류기금이 각각 상대국 학계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형식의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가시화한 첫 행사.한국쪽의 지원을 받기로 한 일본학계는 지난 겨울 이미 제주도 지역에서 민속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한국 학계는 일본쪽의 지원으로 오는 12월부터 일본 규슈지역에서 학술조사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날 학술회의에는 공동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팀장인 연세대박물관장 김인회 교수와 일본팀장 게이오대 노무라(야촌신일)교수 등 두 나라 관계학자들이 나왔다.김 교수가 먼저 「한일 무속문화 비교연구를 위한 관점과 전제」를 주제로 공동연구방향을 제시했다.이어 노무라교수의 「무와 예능자의 세계」를 주제로 한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주로 일본에서 본 한국무속에 초점이 모아졌는데 이는 일본팀이 제주도의 민속을 앞서 조사했기 때문이다. 일본팀에서는 노무라교수 이외에 게이오대 스즈키(영목정숭) 교수가 「일본의 가쿠라(신락)와 한국의 굿」을,게이와학원대 간다(신전자)교수가 「일본의 무녀와 제주도의 신방」을 각각 발표했다.이들은 비교민속 및 비교무속 차원에서 연구논문을 다루었는데 노무라교수는 한국의 광대가 하위신을 모시는 과정에서 놀이를 담당한 일종의 무당이라고 보았다.광대의 역할을 제주도의 영감놀이와 같은 탈놀이에서 찾은 그는 일본의 사루가쿠(원락)를 일본의 광대로 해석했다. 일본의 가쿠라와 한국의 굿을 비교연구한 스즈키교수는 이들 두 무속이 갖는 의미를 진혼에 두었다.우선 계절적으로 겨울에 행해진다는 점에서 제주도의 영등과 진도의 씻김굿이 일본 가쿠라 사이에 공통점이 있는 것으로 밝혀냈다. 간다교수는 일본 동북에 위치한 이와데겐(암수현)연안지역에서 미코(신자)라는 무녀와 제주도 신방을 비교분석했다.그 결과 제사 담당자(사제),신령을 받아 전하는 일(영매),병고치기(치병),점 치는 일(점복),제의 때 신탁에 따라 노래하고 춤추는 일(가무새신)따위의 기능이 모두 같다는 것이다.이 두 지역의 무당이 여자라는 것도 공통현상으로 지적되었다. 한편 한국팀에서는 관동대 황루시(황루시)교수가 나와 「한국무속의 이중성」이라는 주제로 한국의 굿과 독경을 소개했다. 이번 학술회의는 한·일 두 나라가 상대국 학계에 기금을 지원,상호교환 연구의 길을 여는 첫 모임이라 할 수 있다.그것도 기층문화로서의 민속연구를 공동 프로젝트로 결정했기 때문에 두 나라가 문화인류학적으로 뿌리를 확인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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